정토행자의 하루

남산법당
불행에서 행복으로, 거기에 정토회가 있습니다
박나교 님 수행 사례담

남산법당 도반들과 함께(왼쪽에서 세 번째)
▲ 남산법당 도반들과 함께(왼쪽에서 세 번째)

나는 불행했습니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떠안은 빚을 청산하는데 딱 10년이 걸렸습니다. 몸에 병이 와 사직서를 제출하고 뛰어든 남편의 학원, 나의 퇴직금과 그간 저축한 돈이면 남에게 손 벌리지는 않겠다 싶어 퇴사를 했지만 학원에는 내가 모르는 빚이 많았습니다. 화가 났지만 갚아 나갔습니다. 수강생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복습자료를 만들어 보강을 하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유머집을 뒤적였습니다.

학원은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입소문이 나면서 수강생은 늘었고 더불어 수입도 올랐습니다. 모든 게 순조로웠습니다. 빚은 줄어들고 이제 학원은 정상궤도에 안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시련은 다 끝난 듯 했습니다. 그러나 2013년 승인 받아야 할 세 개의 과정 중 한 과정만이 승인이 났습니다. 노동부 평가에서도 a등급을 받아 승인 받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을 거란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무서웠습니다. 다시 그 지긋지긋한 궁핍한 생활의 터널로 들어가는 것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는 벌벌 떨었습니다. 이런 불안한 마음을 달래줄, 아니 다잡아줄 그 무언가가 나에게는 절실했습니다. 살아야했기에,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그 무엇을 찾아야 했습니다. 책을 뒤지고, 친구를 만나도 마음은 더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남편이 미웠습니다. 그가 무능력해 보이고 이 모든 것이 그의 탓만 같았습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법륜스님의 법문.
수행이란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이런 것도 있단 말인가? 나는 그 밤 정토회를 찾아가 수강신청을 했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고 깨달음의장(이하 깨장)을 다녀왔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저것은 진정 나의 것인지?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이 과연 그러한지?

깨장은 나를 산산이 박살냈습니다.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당황스러웠습니다. 모든 것은 뒤집어져 있었습니다. 맞는 것은 틀린 것이며,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곳에서 해답이 툭툭 튀어나왔습니다. 도반들의 업식을 보며 나의 모습과 겹쳐졌습니다. 그들의 문답을 보며 내 머릿속에서 모범답안이 착착 만들어졌습니다. 나는 기뻤습니다. 나를 오롯이 바로 세울 수 있는 답이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다시는 추락하지 않으리라. 이 날개로 화려하게 비상하리라. 깨장은 제 2의 탄생을 예고하듯 화려하고도 경이로웠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현실, 현실과 이상의 거리는 멀기만 했습니다. 머리로는 다 이해했는데, 다 아는데, 남편과 만나기만 하면 충돌했습니다. 더 지독하게, 더 악랄하게, 더 집요하게 그를 괴롭혔습니다. 이 무슨 얄궂은 일이란 말인가? 알고도 하는 어리석은 행위는 나를 더 미치게 했습니다. 후회는 늘 행동 후에 오는 뒤늦은 것이었습니다. 머리로 이해해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간격은 크기만 했습니다.

부처님에게 매달려 보자. 그러나 남편이 먼저 나가 떨어졌습니다. 20년을 나에게 맞추어 살았던 남편, 부실한 몸은 수시로 앓아 눕고 집안일에 학원 일까지 남편의 노동의 강도는 높아져 가는데 마누라는 미쳐 날뛰니 그가 백기를 들고 잠적을 해 버렸습니다. 세상에 그가 이렇게도 나올 수 있는 거구나. 그러나 반성은 멀고 분노는 눈앞에서 이글거렸습니다. 핸드폰 번호는 없는 번호로 둔갑을 하고 그는 새로 바뀐 번호를 얄려 주지 않았습니다. 완벽한 잠적이었습니다. 어렵게 연결된 남편과의 통화, 학원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결정적인 사건에서도 남편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난 직감했습니다. 그의 마음이 접혔다는 것을,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현실을 말입니다.

울지 않았습니다. 울 수가 없었습니다.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은 컸고 다급했습니다. 하루 열 시간 수업으로 혓바닥이 갈라지고 살은 급속도로 빠져나갔습니다. 분노로 한 숨도 자지 않고 출근해 수업을 해도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분노는 나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었지만 마음은 황폐해져갔습니다. 절을 하면서 아이들 몰래 우는 횟수가 늘어갔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받아들였고 깊이 참회했습니다. 더 이상 남편이 밉지 않으니 마음은 한결 가벼웠고 일상의 생활도 큰 무리없이 해 나갔습니다. 수시로 아파 드러누웠던 난 근 6개월간 한 번도 아프지 않았고 수행으로 맛본 평온함이 나에게는 아주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괴로워 몸부림치다가도 다시 평온함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나는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고락의 수레바퀴에서 울고 웃기도 하면서 거리모금에 참석해 저 사람이 넣을지 안 넣을지 미리 예측해 요리조리 피해가며 모금활동을 하는 나를 보았고, 대가 없이 하는 행동들이 이렇게 편안하고 좋은 것이란 것을 알아갔습니다.

그의 부재가 일상이 되어갔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과정신청을 해보고 컴퓨터를 사서 사전감사를 받았습니다. 남편이 수시로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그에게 전화하지 않았습니다. 2014년 신규과정에서 또 미끄러졌습니다. 기존 승인난 과정을 참고하고 동종업종의 과정을 면밀히 검토해서 작성했는데 집중과정으로 분류되어 타 학원도 승인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나는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었습니다. 그때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학원을 운영할지 얘기를 하자는 거였습니다. 버스 떠난 뒤 손 흔드는 그가 야속해 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울기만 했습니다. 그는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학원이야 나 혼자 운영해도 되니 자신에게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남편과 대면하기 전 그에 대한 내 원망과 미움은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 분출되지 않았을 뿐, 내 마음 깊은 곳에는 그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여전히 켜켜이 쌓여있었습니다. 그가 미워지기 시작했고 난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또다시 원점으로 되돌아 가는 것은 아닌지, 나의 공부가 물거품이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습니다.

나는 그때 300배 절을 하고 있었고 내 마음속에 걸려있는 이런 저런 결론들을 부처님께 온전히 맡겨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00배 정진이 한달을 채울 무렵, 출근해 스님 법문을 듣는데 나를 앞에 세워두고 하시는 말씀처럼 들렸습니다. '니가 하는 기도로 남편과 다시 살든지, 그가 죽어 결론이 나든지, 아니면 그가 나랑 살지 않겠다고 결론을 내리든지.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난 순간 겁이 덜컥 났습니다. 나는 그 정도로 최악의 상황을 바라고 기도하는 것은 아닌데, 단지 그가 나에게 더 나긋나긋하길, 진심으로 사과해 주길 바랄 뿐인데.... 그때 나는 내 본심을 알았습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하면서도 남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고 아직도 내가 옳고 내가 더 억울하고 내가 더 힘들게 살았다는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변한 게 하나도 없는 내가 보였습니다. 아니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대충 절 몇 번 하고 빚을 탕감 받으려는 내 비열한 마음이 훤히 보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변했다는 내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남편에게 메세지를 남겼습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앞으로 잘하겠다고, 함부로 대해 미안하다고 화해의 손을 먼저 내밀었습니다.
그렇게 난 큰 산을 하나 넘었습니다.
지금, 나는 여기에 서 있습니다.

경전반 졸업을 앞두고 뒤돌아보면 분명, 일 년 전의 나와는 다릅니다.
부처님의 법을 쫒아 이리저리 허둥대며 따라왔지만, 내 마음에는 이제 안전장치가 하나 있습니다.
적어도 아군과 적군을 혼동해 시한폭탄을 투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지은 복 없이 터무니없이 달라고만 조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죄 지은적 없습니다고 뒷걸음치며 도망치진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무조건 내가 옳다고 핏대 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부족하고, 어리석어 늘 억울하고 분했던 내가 이젠 행복한 나로, 희망인 나로 거듭 태어남에 감사하며 나는 수행자임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딸과 함께
▲ 딸과 함께

글-박나교 희망리포터(대구 남산법당)
편집-도경화(대구경북지부)

전체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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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사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_()_

2016-05-18 18:12:01

곽길선

보살님 글 지금 힘들어하는 지인께 전달하겄습니다 많은 힘이되길 바라면서 ~~

2016-05-17 07:39:47

부동심

수행담 나눠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게 힘을 이렇게 나눠주시니. 열심히수행하겠습니다.

2016-05-17 0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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