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 제2차 만일결사 중
제1차 천일결사, 제4차 백일기도 중 65일 째 기도를 시작하겠습니다.
1. 삼귀의
1. 삼귀의 (삼배하면서 발원한다)
(1)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합니다.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겠습니다. (1배)
(2) 부처님 법 만난 것을 기뻐합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아
부지런히 정진하겠습니다. (1배)
(3) 부처님 제자됨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땅의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구원하는
보살이 되겠습니다. (1배)
2. 수행문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잘 살펴보면
다 내 마음이 일으킨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괴로움과 얽매임이 밖으로부터 오는 줄 착각하고
이 곳, 저 곳,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 다니며
행복과 자유를 구하지만 끝내 얻지 못한다.
왜냐하면 행복과 자유는 밖으로 찾아서는
결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에서 일어난 어떤 괴로움일지라도
안으로 살펴보면
그 모든 괴로움의 뿌리가 다 마음 가운데 있고
그 마음의 실체가 본래 공한 줄 알면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즉시 사라진다. (반배)
3. 참회
화나고, 짜증나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이 모든 괴로움은
밖으로 살피면 상대가 잘못해서 생긴 괴로움인 것 같지만,
안으로 살피면 '내가 옳다'는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일어난 것이므로
본래 옳고 그름이 없고 서로 다름을 깨달아
‘내가 옳다’는 한 생각을 내려 놓으면
화날 일도 없고 미워할 사람도 없어지게 된다.
(목탁소리에 맞추어 수행문에 집중하여 마음을 돌이켜 뉘우치면서 108배 참회의 절을 한다.)
4. 명상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한 후 모든 동작과 생각을 멈춘다.
아무 할 일이 없으므로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긴장하거나 애쓰지 않으며 의도적으로 숨을 쉬지 않는다.
관심은 오직 코 끝에 두고 다만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린다.)
5. 경전독송
2024.01.14
이와 같이
사람들 중에는
왕족, 바라문, 평민, 노예, 천민이 있지만
그 중에서 한 사람이 태어나
올바른 수행으로 잘 길들여지고,
정직하고,
계를 지키고,
진실을 말하고,
양심이 있고,
생사를 버렸고,
청정한 삶을 살고,
짐을 내려놓아 번뇌가 없으며,
모든 담마에 통달하여
집착함이 없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티끌 없는 밭에
보시를 한다면
좋은 결실을 맺게 되네.
2024.01.15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교도의 유행승들이
‘도반들이여,
세 가지가 있습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입니다.
이 세 가지의 차이점은 무엇이고,
특징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대들은 이와 같이 대답해야 한다.
‘도반들이여,
탐욕은 허물이 작지만 천천히 사라지고,
분노는 허물이 크지만 빠르게 사라지며,
어리석음은 허물도 크고 천천히 사라진다.’
AN 3.68: Titthiya Sutta — Sectarians {A i 199} [Thanissaro].
2024.01.16
‘도반들이여,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탐욕이
일어나게 되는 연유가 무엇이며,
이미 일어난 탐욕이
점점 커지고 거세어지는
연유는 무엇입니까?’라고
그들이 묻는다면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이라 답해야 한다.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에
헛되이 마음을 두면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탐욕이 일어나게 되고,
이미 일어난 탐욕은
점점 커지고 거세어진다.
AN 3.68: Titthiya Sutta — Sectarians {A i 199} [Thanissaro].
2024.01.17
‘도반들이여,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성냄이
일어나게 되는 연유는 무엇이고,
이미 일어난 성냄이
점점 커지고 거세어지는
연유는 무엇입니까?’라고
그들이 묻는다면
‘불쾌한 자극’이라 답해야 한다.
불쾌한 자극에
헛되이 마음을 두면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성냄이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성냄은
점점 커지고 거세어진다.
AN 3.68: Titthiya Sutta — Sectarians {A i 199} [Thanissaro].
2024.01.18
‘도반들이여,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어리석음이
일어나게 되는 연유는 무엇이고,
이미 일어난 어리석음이
점점 커지고 거세어지는
연유는 무엇입니까?’라고
그들이 묻는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에 마음을 두는 것'이라 답해야 한다.
이치에 맞지 않는 것에 마음을 두는 이에게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 어리석음이 일어나고,
일어난 어리석음은 점점 커지고 거세어진다.
AN 3.68: Titthiya Sutta — Sectarians {A i 199} [Thanissaro].
2024.01.19
‘도반들이여,
일어나지 않은 탐욕이 끝내
일어나지 않는 연유는 무엇이고,
이미 일어난 탐욕이 사라지는
연유는 무엇입니까?’라고
그들이 묻는다면
‘마음을 끌어당기지 않는 것'이라고 답해야 한다.
마음을 끌어당기지 않는 것에
온당하게 마음을 두면
일어나지 않은 탐욕은 끝내 일어나지 않고,
일어난 탐욕은 사라지게 된다.
AN 3.68: Titthiya Sutta — Sectarians {A i 199} [Thanissaro].
2024.01.20
‘도반들이여,
일어나지 않은 성냄이 끝내
일어나지 않는 연유는 무엇이고,
이미 일어난 성냄이 사라지는
연유는 무엇입니까?’라고
그들이 묻는다면
‘자애로운 마음에 의한 해탈'이라고 답해야 한다.
자애로운 마음에 의한 해탈에
온당하게 마음을 두면
일어나지 않은 성냄은 끝내 일어나지 않고,
일어난 성냄은 사라지게 된다.
AN 3.68: Titthiya Sutta — Sectarians {A i 199} [Thanissaro].
2024.01.21
‘도반들이여,
일어나지 않은 어리석음이 끝내
일어나지 않는 연유는 무엇이고,
이미 일어난 어리석음이 사라지는
연유는 무엇입니까?’라고
그들이 묻는다면
‘이치에 맞는 것에 마음을 두는 것'이라고 답해야 한다.
이치에 맞는 것에 마음을 두면
일어나지 않은 어리석음은 끝내 일어나지 않고,
일어난 어리석음은 사라지게 된다.
AN 3.68: Titthiya Sutta — Sectarians {A i 199} [Thanissaro].
2024.01.22
비구들이여,
악하고 해로운 것의 세 가지 뿌리가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탐욕이 악하고 해로운 것의 뿌리이고,
성냄이 악하고 해로운 것의 뿌리이고,
어리석음이 악하고 해로운 것의 뿌리이다.
탐욕은 악하고 해로운 것이다.
탐욕스러운 사람이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들은 악하고 해롭다.
탐욕스러운 사람이
마음이 탐욕으로 가득 차고
탐욕에 사로잡혀
‘나는 힘이 있다, 나는 힘을 갖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폭력이나 감금, 약탈, 모욕, 추방함으로써
괴롭힌다면 그것 역시
모두 악하고 해로운 것이다.
이처럼
탐욕에서 생겨나고,
탐욕이 원인이 되어 생겨나고,
탐욕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수많은 악하고 해로운 것들이 일어난다
AN 3.69: Mula Sutta — Roots {A i 201} [Thanissaro]
2024.01.23
성냄은 악하고 해로운 것이다.
성내는 사람이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들은 악하고 해롭다.
성내는 사람이
마음이 성냄으로 가득 차고
성냄에 사로잡혀
‘나는 힘이 있다, 나는 힘을 갖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폭력이나 감금, 약탈, 모욕, 추방함으로써
괴롭힌다면 그것 역시
모두 악하고 해로운 것이다.
이처럼
성냄에서 생겨나고,
성냄이 원인이 되어 생겨나고,
성냄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수많은 악하고 해로운 것들이 일어난다.
AN 3.69: Mula Sutta — Roots {A i 201} [Thanissaro]
2024.01.24
어리석음은 악하고 해로운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들은 악하고 해롭다.
어리석은 사람이
마음이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고
어리석음에 사로잡혀
‘나는 힘이 있다, 나는 힘을 갖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폭력이나 감금, 약탈, 모욕, 추방함으로써
괴롭힌다면 그것 역시
모두 악하고 해로운 것이다.
이처럼
어리석음에서 생겨나고,
어리석음이 원인이 되어 생겨나고,
어리석음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수많은 악하고 해로운 것들이 일어난다
AN 3.69: Mula Sutta — Roots {A i 201} [Thanissaro]
2024.01.25
이러한 사람을 일컬어
때가 아닌 때 말하는 자,
거짓을 말하는 자,
근거 없는 말을 하는 자,
담마에 어긋난 말을 하는 자,
계율에 어긋난 말을 하는 자라고 한다.
왜 그러한가?
‘나는 힘이 있다, 나는 힘을 갖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폭력이나 감금, 약탈, 모욕, 추방함으로써
괴롭혔기 때문이다.
AN 3.69: Mula Sutta — Roots {A i 201} [Thanissaro]
2024.01.26
그에게 사실을 말해주면
그는 인정하지 않고 이를 부정한다.
그에게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해주면
그는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것은 근거가 없다'라는 것을
밝혀내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을 일컬어
때가 아닌 때 말하는 자,
거짓을 말하는 자,
근거 없는 말을 하는 자,
담마에 어긋난 말을 하는 자,
계율에 어긋난 말을 하는 자라고 한다.
AN 3.69: Mula Sutta — Roots {A i 201} [Thanissaro]
2024.01.27
살라나무나 자작나무, 사시나무에
넝쿨 세 가지가 기생하여
나무를 온통 휘감고 뒤덮어버리면
이는 나무에게 재앙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서 생겨난
악하고 해로운 것들에
마음이 사로잡힌 사람은
현세에는 두려움과 혼돈, 흥분된 마음으로
괴로움 속에 살고,
죽음 뒤 몸이 무너질 때에는
나쁜 곳에 떨어진다.
이것이 바로 악하고 해로운 것의 세 가지 뿌리이다.
AN 3.69: Mula Sutta — Roots {A i 201} [Thanissaro]
2024.01.28
비구들이여,
선하고 유익한 것의 세 가지 뿌리가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탐욕 없음이 선하고 유익한 것의 뿌리이고,
성내지 않음이 선하고 유익한 것의 뿌리이고,
어리석지 않음이 선하고 유익한 것의 뿌리이다.
탐욕 없음은 선하고 유익한 것이다.
탐욕이 없는 사람이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들은 선하고 유익하다.
탐욕이 없는 사람은
마음이 탐욕으로 가득 차 있지 않고
탐욕에 사로잡히지 않아
‘나는 힘이 있다, 나는 힘을 갖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폭력이나 감금, 약탈, 모욕, 추방하거나
괴롭히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모두 선하고 유익한 것이다.
이처럼
탐욕 없음에서 생겨나고,
탐욕 없음이 원인이 되어 생겨나고,
탐욕 없음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수많은 선하고 유익한 것들이 일어난다.
AN 3.69: Mula Sutta — Roots {A i 201} [Thanissaro]
2024.01.29
성내지 않음은 선하고 유익한 것이다.
성내지 않는 사람이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들은 선하고 유익하다.
성내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성냄으로 가득 차 있지 않고
성냄에 사로잡히지 않아
‘나는 힘이 있다, 나는 힘을 갖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폭력이나 감금, 약탈, 모욕, 추방하거나
괴롭히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모두 선하고 유익한 것이다.
이처럼
성내지 않음에서 생겨나고,
성내지 않음이 원인이 되어 생겨나고,
성내지 않음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수많은 선하고 유익한 것들이 일어난다.
AN 3.69: Mula Sutta — Roots {A i 201} [Thanissaro]
2024.01.30
어리석지 않음은 선하고 유익한 것이다.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들은 선하고 유익하다.
어리석지 않은 사람은
마음이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있지 않고
어리석음에 사로잡히지 않아
‘나는 힘이 있다, 나는 힘을 갖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폭력이나 감금, 약탈, 모욕, 추방하거나
괴롭히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모두 선하고 유익한 것이다.
이처럼
어리석지 않음에서 생겨나고,
어리석지 않음이 원인이 되어 생겨나고,
어리석지 않음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수많은 선하고 유익한 것들이 일어난다.
AN 3.69: Mula Sutta — Roots {A i 201} [Thanissaro]
2024.01.31
이러한 사람을 일컬어
적절한 때에 말하는 자,
진실을 말하는 자,
근거 있는 말을 하는 자,
담마에 비추어 합당한 말을 하는 자,
계율에 걸맞는 말을 하는 자라고 한다.
왜 그러한가?
‘나는 힘이 있다, 나는 힘을 갖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폭력이나 감금, 약탈, 모욕, 추방하거나
괴롭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AN 3.69: Mula Sutta — Roots {A i 201} [Thanissaro]
2024.02.01
그에게 사실을 말하면
그는 이를 부인하지 않고 인정한다.
그에게 사실이 아닌 말을 하면
그는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것은 근거가 없다'라는 것을
밝혀내기 위해 애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을 일컬어
적절한 때에 말하는 자,
진실을 말하는 자,
근거 있는 말을 하는 자,
담마에 비추어 합당한 말을 하는 자,
계율에 걸맞는 말을 하는 자라고 한다.
AN 3.69: Mula Sutta — Roots {A i 201} [Thanissaro]
2024.02.02
이와 같은 사람에게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서 생겨나는
악하고 해로운 것들이 사라지고
그 뿌리가 뽑혀
마치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악하고 해로운 것들이
더 이상 자라나지 않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게 된다.
그는 지금 여기에서 두려움 없이 고요하여
평온함 속에 살게 되고
지금 여기에서 열반에 이른다.
AN 3.69: Mula Sutta — Roots {A i 201} [Thanissaro]
2024.02.03
예를 들어 살라나무나 자작나무, 사시나무에
넝쿨 세 가지가 기생하여
나무를 온통 휘감고 뒤덮어버린다고 하세.
어떤 사람이 호미와 바구니를 가지고 와
넝쿨의 밑동을 자르고
그 주위 땅을 파
뿌리를 뽑아내고
심지어 잔뿌리까지 모두 뽑아낸 뒤
토막 내어 자르고
그 토막을 잘게 쪼개어
산산조각을 내고
햇볕과 바람에 말리고
불에 태워
재로 만든 뒤
그 재를 강한 바람에 날려 보내거나
거센 강물에 흩어버린다고 하세.
이렇게 하면
나무에 기생하던 넝쿨의 뿌리는 파괴되고
마치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악하고 해로운 것들이
더 이상 자라나지 않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게 된다.
AN 3.69: Mula Sutta — Roots {A i 201} [Thanissaro]
2024.02.04
마치 이와 같다.
이런 사람에게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서 생겨나는
악하고 해로운 것들이 사라지고
그 뿌리가 뽑혀
마치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악하고 해로운 것들이
더 이상 자라나지 않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게 된다.
그는 지금 여기에서 두려움 없이 고요하여
평온함 속에 살게 되고
지금 여기에서 열반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선하고 유익한 것의 세 가지 뿌리이다
AN 3.69: Mula Sutta — Roots {A i 201} [Thanissaro]
2024.02.05
한때 부처님께서는 사밧티(Savatthi) 부근의
아나타삔디카(Anathapindika)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유행승 찬나(Channa)가 아난다 존자를 찾아가
공손히 인사를 주고받은 뒤
한쪽에 앉아 이렇게 말하였다.
“아난다 도반이여,
그대 역시
탐욕을 버려야 하고
성냄을 버려야 하고
어리석음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가?”
“그렇소, 도반이여.
우리는 탐욕을 버려야 하고
성냄을 버려야 하고
어리석음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네.”
AN 3.71: Channa Sutta — To Channa the Wanderer {A i 215; Thai 3.72} [Thanissaro]
2024.02.06
“아난다 도반이여,
탐욕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를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가?
성냄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를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가?
어리석음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를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가?”
AN 3.71: Channa Sutta — To Channa the Wanderer {A i 215; Thai 3.72} [Thanissaro]
2024.02.07
“탐욕에 사로잡히고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손해를 입히고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고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손해를 입힌다네.
또한 정신적인 고통과 슬픔을 겪게 된다네.
그러나 탐욕을 버린다면
자기 자신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고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고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는다네.
또한 정신적인 고통과 슬픔을 겪지 않는다네.
AN 3.71: Channa Sutta — To Channa the Wanderer {A i 215; Thai 3.72} [Thanissaro]
2024.02.08
탐욕에 사로잡히고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은
몸으로 악행을 짓고
말로써 악행을 짓고
생각으로 악행을 짓는다네.
그러나 탐욕을 버린다면
몸으로 악행을 짓거나
말로써 악행을 짓거나
생각으로 악행을 짓지 않는다네.
AN 3.71: Channa Sutta — To Channa the Wanderer {A i 215; Thai 3.72} [Thanissaro]
2024.02.09
탐욕에 사로잡히고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은
무엇이 진정으로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 알지 못하고
타인에게 이익이 되는지 알지 못하고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지 알지 못하네.
그러나 탐욕을 버린다면
무엇이 진정으로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
타인에게 이익이 되는지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지 알게 되네.
AN 3.71: Channa Sutta — To Channa the Wanderer {A i 215; Thai 3.72} [Thanissaro]
2024.02.10
도반이여,
탐욕은 눈을 멀게 하고
앞을 보지 못하게 하며
무지하게 만드네.
탐욕은 지혜를 앗아가고
괴로움을 일으키며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네.
AN 3.71: Channa Sutta — To Channa the Wanderer {A i 215; Thai 3.72} [Thanissaro]
2024.02.11
성냄에 사로잡히고
성냄으로 가득 찬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손해를 입히고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고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손해를 입힌다네.
또한 정신적인 고통과 슬픔을 겪게 된다네.
그러나 성냄을 버린다면
자기 자신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고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고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는다네.
또한 정신적인 고통과 슬픔을 겪지 않는다네.
AN 3.71: Channa Sutta — To Channa the Wanderer {A i 215; Thai 3.72} [Thanissaro]
2024.02.12
성냄에 사로잡히고
성냄으로 가득 찬 사람은
몸으로 악행을 짓고
말로써 악행을 짓고
생각으로 악행을 짓는다네.
그러나 성냄을 버린다면
몸으로 악행을 짓거나
말로써 악행을 짓거나
생각으로 악행을 짓지 않는다네.
AN 3.71: Channa Sutta — To Channa the Wanderer {A i 215; Thai 3.72} [Thanissaro]
2024.02.13
성냄에 사로잡히고
성냄으로 가득 찬 사람은
무엇이 진정으로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 알지 못하고
타인에게 이익이 되는지 알지 못하고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지 알지 못하네.
그러나 성냄을 버린다면
무엇이 진정으로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
타인에게 이익이 되는지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지 알게 되네.
AN 3.71: Channa Sutta — To Channa the Wanderer {A i 215; Thai 3.72} [Thanissaro]
2024.02.14
도반이여,
성냄은 눈을 멀게 하고
앞을 보지 못하게 하며
무지하게 만드네.
성냄은 지혜를 앗아가고
괴로움을 일으키며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네.
AN 3.71: Channa Sutta — To Channa the Wanderer {A i 215; Thai 3.72} [Thanissaro]
2024.02.15
어리석음에 사로잡히고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손해를 입히고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고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손해를 입힌다네.
또한 정신적인 고통과 슬픔을 겪게 된다네.
그러나 어리석음을 버린다면
자기 자신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고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고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는다네.
또한 정신적인 고통과 슬픔을 겪지 않는다네.
AN 3.71: Channa Sutta — To Channa the Wanderer {A i 215; Thai 3.72} [Thanissaro]
2024.02.16
어리석음에 사로잡히고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사람은
몸으로 악행을 짓고
말로써 악행을 짓고
생각으로 악행을 짓는다네.
그러나 어리석음을 버린다면
몸으로 악행을 짓거나
말로써 악행을 짓거나
생각으로 악행을 짓지 않는다네.
AN 3.71: Channa Sutta — To Channa the Wanderer {A i 215; Thai 3.72} [Thanissaro]
2024.02.17
어리석음에 사로잡히고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사람은
무엇이 진정으로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 알지 못하고
타인에게 이익이 되는지 알지 못하고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지 알지 못하네.
그러나 어리석음을 버린다면
무엇이 진정으로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
타인에게 이익이 되는지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지 알게 되네.
AN 3.71: Channa Sutta — To Channa the Wanderer {A i 215; Thai 3.72} [Thanissaro]
2024.02.18
도반이여,
어리석음은 눈을 멀게 하고
앞을 보지 못하게 하며
무지하게 만드네.
어리석음은 지혜를 앗아가고
괴로움을 일으키며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네.
AN 3.71: Channa Sutta — To Channa the Wanderer {A i 215; Thai 3.72} [Thanissaro]
2024.02.19
탐욕에 이러한 위험이 있음을 알아
우리는 탐욕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네.
성냄에 이러한 위험이 있음을 알아
우리는 성냄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네.
어리석음에 이러한 위험이 있음을 알아
우리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네.”
AN 3.71: Channa Sutta — To Channa the Wanderer {A i 215; Thai 3.72} [Thanissaro]
2024.02.20
“도반이여, 그렇다면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버리는
길이 있겠는가?”
“그렇소, 도반이여, 길이 있소.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버리는
길이 있소.”
“도반이여, 그 길이 무엇인가?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버리는
그 길은 무엇인가?”
AN 3.71: Channa Sutta — To Channa the Wanderer {A i 215; Thai 3.72} [Thanissaro]
2024.02.21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 있으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집중일세.
이것이 바로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버리는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일세.”
“아난다 도반이여,
이는 참으로 고귀한 길이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버리는
고귀한 길이니
방일하지 말아야겠소.”
AN 3.71: Channa Sutta — To Channa the Wanderer {A i 215; Thai 3.72} [Thanissaro]
2024.02.22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 아난다 존자는 꼬쌈비 시의
고시따승원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아지와까의 제자인 어떤 장자가
아난다 존자가 있는 곳으로 가
절을 올린 뒤 한쪽에 앉아 말하였다.
“존자시여, 우리들 중에
누구의 담마가 가장 잘 설하여졌습니까?
이 세상에서 수행을 잘 하신 분은 누구입니까?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분은 누구입니까?
AN 3.72: Ajivaka Sutta — To the Fatalists' Student {A i 217; Thai 3.73} [Thanissaro]
2024.02.23
“장자여,
그렇다면 이제 내가 그대에게 묻겠습니다.
그대 마음 가는 대로 대답해보십시오.
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탐욕을 버리고
성냄을 버리고
어리석음을 버리도록
담마를 설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 담마는 잘 설하여진 것입니까,
아니면 그렇지 않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존자시여,
탐욕을 버리고
성냄을 버리고
어리석음을 버리도록 설하신 분들은
담마를 잘 설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AN 3.72: Ajivaka Sutta — To the Fatalists' Student {A i 217; Thai 3.73} [Thanissaro]
2024.02.24
그렇다면 장자시여,
탐욕을 버리도록 수행하고
성냄을 버리도록 수행하고
어리석음을 버리도록 수행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수행을 잘 하신 분들이 맞습니까,
아니면 그렇지 않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존자시여,
탐욕을 버리도록 수행하고
성냄을 버리도록 수행하고
어리석음을 버리도록 수행하는 분들은
이 세상에서 수행을 잘 하신 분들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AN 3.72: Ajivaka Sutta — To the Fatalists' Student {A i 217; Thai 3.73} [Thanissaro]
2024.02.25
그렇다면 존자시여,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 뿌리를 뽑아
마치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더 이상 자라나지 않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게 된
그러한 분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이 세상에서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분들입니까,
아니면 그렇지 않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존자시여,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 뿌리를 뽑아
마치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더 이상 자라나지 않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게 된 분들은
이 세상에서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분들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AN 3.72: Ajivaka Sutta — To the Fatalists' Student {A i 217; Thai 3.73} [Thanissaro]
2024.02.26
“장자시여,
그대는 이처럼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답하였습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버리도록
설한 담마는 잘 설하여진 것이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버리도록
수행하는 분들은 수행을 잘 하신 분들이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 뿌리를 뽑아
마치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더 이상 자라나지 않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게 된 분들은
이 세상에서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분들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자신의 가르침을 격찬하거나
타인의 가르침을 비난하지 않고,
담마의 가르침을 그대로 드러내시어
직접적인 언급 없이도
핵심을 말씀하셨습니다.
AN 3.72: Ajivaka Sutta — To the Fatalists' Student {A i 217; Thai 3.73} [Thanissaro]
2024.02.27
존자께서는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의 버림에 관한
담마를 설하십니다.
존자께서는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버리도록
잘 수행하신 분입니다.
존자의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은
버려지고, 그 뿌리가 뽑혀
마치 종려나무 그루터기처럼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더 이상 자라나지 않고
미래에 다시 생겨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존자께서는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분입니다.
AN 3.72: Ajivaka Sutta — To the Fatalists' Student {A i 217; Thai 3.73} [Thanissaro]
2024.02.28
경이롭습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가려진 것을 드러내어 주시듯,
길 잃은 자에게 길을 보여주시듯,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추시어
눈 있는 자가 형상을 보게 해주시듯,
아난다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담마를 확연히 밝혀주셨습니다.
저희는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저희를 재가 신자로 받아주시옵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제 인생을 바쳐 귀의하겠습니다.”
AN 3.72: Ajivaka Sutta — To the Fatalists' Student {A i 217; Thai 3.73} [Thanissaro]
2024.02.29
농부들에게는 서둘러서 해야 하는
세 가지 일이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농부는 서둘러 밭을 갈고 고르게 만든다.
서둘러 밭을 갈고 고르게 만든 뒤
서둘러 씨앗을 심는다.
서둘러 씨앗을 심은 뒤
서둘러 물을 대고 물을 뺀다.
이것이 바로 농부들이
서둘러서 해야 하는 세 가지이다.
이 농부에게는
‘내 농작물이 오늘 싹트기를,
내일은 이삭이 열리기를,
모레는 이삭이 다 익기를’ 이라고 할 만한
신통력이나 능력은 없다.
그러나 때가 되면
농작물은 싹이 트고,
이삭이 열리고,
익어가게 될 것이다.
AN 3.91: Accayika Sutta — Urgent {A i 239; Thai 3.93} [Thanissaro].
2024.03.01
마치 이와 같다.
비구에게는 서둘러서 해야 하는
세 가지 일이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계행을 열심히 닦는 것,
선정을 열심히 닦는 것,
지혜를 열심히 닦는 것이다.
이 비구에게는
‘오늘이나 내일, 모레에는
집착을 끊고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하기를’이라고 할 만한
신통력이나 능력은 없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는 집착을 끊고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할 것이다.
AN 3.91: Accayika Sutta — Urgent {A i 239; Thai 3.93} [Thanissaro]
2024.03.02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와 같이
스스로 수행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계행을 닦는 데 대한
강한 의지를 지닐 것이다,
우리는 선정을 닦는 데 대한
강한 의지를 지닐 것이다,
우리는 지혜를 닦는 데 대한
강한 의지를 지닐 것이다.’
그대들은 참으로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AN 3.91: Accayika Sutta — Urgent {A i 239; Thai 3.93} [Thanissaro]
2024.03.03
왕이 소유한 좋은 혈통의 멋진 말은
세 가지 특성을 지녀
왕에게 가치가 있고,
왕의 자산이 되며,
왕의 팔다리와 같이 여겨진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왕이 소유한 좋은 혈통의 멋진 말은
용모를 갖추고,
힘을 갖추고,
빠른 속력을 갖추었다.
이러한 세 가지 특성을 지녀
왕에게 가치가 있고,
왕의 자산이 되며,
왕의 팔다리와 같이 여겨지는 것이다.
마치 이와 같이
세 가지를 갖춘 비구는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고,
보시를 받을 자격이 있고,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비구가 용모를 갖추고,
힘을 갖추고,
빠른 속력을 갖추는 것이다.
AN 3.94: Ajaniya Sutta — The Thoroughbred {A i 244; Thai 3.97} [Thanissaro]
2024.03.04
그렇다면 비구는 어떻게 용모를 갖추는가?
비구는 계를 잘 지킴으로써 용모를 갖춘다.
그는 계본을 따라 자신을 절제하며 머물고
올바른 활동
올바른 행실을 갖춘다.
아주 작은 허물에서도 그 위험을 알아
계율을 받아 지니고
스스로 정진한다.
이것이 바로 비구가 용모를 갖추는 길이다.
AN 3.94: Ajaniya Sutta — The Thoroughbred {A i 244; Thai 3.97} [Thanissaro]
2024.03.05
그렇다면 비구는 어떻게 힘을 갖추는가?
비구는 악하고 해로운 것을 버리고
선하고 유익한 것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함으로써 힘을 갖춘다.
선하고 유익한 것에 있어
물러섬이 없이 노력하기를 굳건하고 확고히 한다.
이것이 바로 비구가 힘을 갖추는 길이다.
AN 3.94: Ajaniya Sutta — The Thoroughbred {A i 244; Thai 3.97} [Thanissaro]
2024.03.06
그렇다면 비구는 어떻게 빠른 속력을 갖추는가?
비구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안다.
이것이 바로 비구가 빠른 속력을 갖추는 길이다.
이 세 가지를 갖춘 비구는
이 세상에서 위없는 복밭이기에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고,
보시를 받을 자격이 있고,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
AN 3.94: Ajaniya Sutta — The Thoroughbred {A i 244; Thai 3.97} [Thanissaro]
2024.03.07
한때 아난드핀디까 장자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가
절을 올린 뒤 한 쪽에 앉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자여,
마음이 보호되지 않으면
몸으로 짓는 행위도 보호되지 않고
말로 짓는 행위도 보호되지 않고
생각으로 짓는 행위도 보호되지 않는다.
몸으로 짓는 행위와
말로 짓는 행위와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보호되지 않으면
몸으로 짓는 행위가 젖어 들고
말로 짓는 행위가 젖어 들고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젖어 든다.
몸으로 짓는 행위와
말로 짓는 행위와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젖어 들면
몸으로 짓는 행위가 썩게 되고
말로 짓는 행위가 썩게 되고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썩게 된다.
몸으로 짓는 행위와
말로 짓는 행위와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썩으면
그의 죽음은 행복하지 못하다.
AN 3.105: Kuta Sutta — The Peak of the Roof {A i 261; Thai 3.110} [Thanissaro]
2024.03.08
마치 이와 같다.
집의 지붕이 허술하게 지어졌다면
대들보도 보호되지 않고
서까래도 보호되지 않고
벽도 보호되지 않는다.
지붕의 대들보와 서까래와 벽이
보호되지 않는다면
대들보도 젖어 들고
서까래도 젖어 들고
벽도 젖어 든다.
대들보와 서까래와 벽이 젖어 들면
대들보가 썩게 되고
서까래도 썩게 되고
벽도 썩게 된다.
AN 3.105: Kuta Sutta — The Peak of the Roof {A i 261; Thai 3.110} [Thanissaro]
2024.03.09
마치 이와 같다.
마음이 보호되지 않으면
몸으로 짓는 행위도 보호되지 않고
말로 짓는 행위도 보호되지 않고
생각으로 짓는 행위도 보호되지 않는다.
몸으로 짓는 행위와
말로 짓는 행위와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보호되지 않으면
몸으로 짓는 행위가 젖어 들고
말로 짓는 행위가 젖어 들고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젖어 든다.
몸으로 짓는 행위와
말로 짓는 행위와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젖어 들면
몸으로 짓는 행위가 썩게 되고
말로 짓는 행위가 썩게 되고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썩게 된다.
몸으로 짓는 행위와
말로 짓는 행위와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썩으면
그의 죽음은 행복하지 못하다.
AN 3.105: Kuta Sutta — The Peak of the Roof {A i 261; Thai 3.110} [Thanissaro]
2024.03.10
장자여,
마음이 보호되면
몸으로 짓는 행위도 보호되고
말로 짓는 행위도 보호되고
생각으로 짓는 행위도 보호된다.
몸으로 짓는 행위와
말로 짓는 행위와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보호되면
몸으로 짓는 행위가 젖지 않고
말로 짓는 행위가 젖지 않고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젖지 않는다.
몸으로 짓는 행위와
말로 짓는 행위와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젖지 않으면
몸으로 짓는 행위가 썩지 않고
말로 짓는 행위가 썩지 않고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썩지 않는다.
몸으로 짓는 행위와
말로 짓는 행위와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썩지 않은 사람의 죽음은 행복하다
AN 3.105: Kuta Sutta — The Peak of the Roof {A i 261; Thai 3.110} [Thanissaro]
2024.03.11
집의 지붕이 제대로 지어졌다면
대들보가 보호되고
서까래도 보호되고
벽도 보호된다.
대들보와 서까래와 벽이
보호되면
대들보가 젖지 않고
서까래도 젖지 않고
벽도 젖지 않는다.
대들보와 서까래와 벽이 젖지 않으면
대들보가 썩지 않고
서까래도 썩지 않고
벽도 썩지 않는다.
AN 3.105: Kuta Sutta — The Peak of the Roof {A i 261; Thai 3.110} [Thanissaro]
2024.03.12
마치 이와 같아서
마음이 보호되면
몸으로 짓는 행위도 보호되고
말로 짓는 행위도 보호되고
생각으로 짓는 행위도 보호된다.
몸으로 짓는 행위와
말로 짓는 행위와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보호되면
몸으로 짓는 행위가 젖지 않고
말로 짓는 행위가 젖지 않고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젖지 않는다.
몸으로 짓는 행위와
말로 짓는 행위와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젖지 않으면
몸으로 짓는 행위가 썩지 않고
말로 짓는 행위가 썩지 않고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썩지 않는다.
몸으로 짓는 행위와
말로 짓는 행위와
생각으로 짓는 행위가 썩지 않으면
그의 죽음은 행복하다
AN 3.105: Kuta Sutta — The Peak of the Roof {A i 261; Thai 3.110} [Thanissaro]
2024.03.13
비구들이여,
세 가지 지혜가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몸의 지혜,
말의 지혜,
생각의 지혜이다.
몸의 지혜란 무엇인가?
비구가 생명을 해치지 않고,
훔치지 않고,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다.
이것을 몸의 지혜라 한다.
AN 3.120: Moneyya Sutta — Sagacity {A i 273; Thai 3.123} [Thanissaro]
2024.03.14
말의 지혜란 무엇인가?
비구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이간질을 하지 않고,
욕설을 하지 않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것을 말의 지혜라 한다.
생각의 지혜란 무엇인가?
비구에게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올바로 알아 실현하며 머문다.
이것을 생각의 지혜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세 가지 지혜이다.
AN 3.120: Moneyya Sutta — Sagacity {A i 273; Thai 3.123} [Thanissaro]
2024.03.15
몸에 있어 지혜로운 자,
말에 있어 지혜로운 자,
생각에 있어 지혜로워 번뇌 없는 자.
최상의 지혜를 성취한 현자는
모든 것을 버렸네.
그 모든 것을.
AN 3.120: Moneyya Sutta — Sagacity {A i 273; Thai 3.123} [Thanissaro]
2024.03.16
한때 부처님께서는 웨살리 부근의
고따마까 탑묘에 머물고 계셨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담마를 설하는 것은
내가 직접 아는 바를 통해서이지,
직접 아는 바를 통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내가 담마를 설하는 것은
설할 근거가 있는 것이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내가 담마를 설하는 것은
경이로움이 있는 것이지,
경이로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AN 3.123: Gotamaka-cetiya Sutta — At Gotamaka Shrine {A i 276; Thai 3.126} [Thanissaro]
2024.03.17
“내가 담마를 설하는 것은
내가 직접 아는 바를 통해서이지
직접 아는 바를 통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설할 근거가 있는 것이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고,
경이로움이 있는 것이지
경이로움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가르침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나의 충고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여래가 스스로 올바르게 깨달았고,
승가가 올바르게 수행하고 있음은
만족하고 기뻐하고 흡족할 만한 일이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기뻐하였다.
AN 3.123: Gotamaka-cetiya Sutta — At Gotamaka Shrine {A i 276; Thai 3.126} [Thanissaro]
2024.03.18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바라나시의
이씨빠따나에 있는 녹야원에 머물고 계셨다.
아침 일찍 부처님께서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가사를 수하시고 발우를 들고
탁발을 하기 위해 바라나시로 들어가셨다.
우시장에 있는 무화과나무 근처에서
탁발을 하시다가 어떤 비구를 보셨는데
그 비구는 공허한 것을 기쁨으로 삼고,
외적인 것을 기쁨으로 삼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한 알아차림이 없고,
집중을 놓치고,
마음이 산란하고,
감각기관은 제어가 되지 않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자신을 더럽히지 말게.
자신을 더럽혀 썩은 내를 풍기는 자에게
파리들이 떼지어 공격하지 않을 리 없다네.”
부처님의 이러한 충고를 듣고
비구는 정신을 차렸다.
AN 3.126: Katuviya Sutta — Putrid {A i 279; Thai 3.129} [Thanissaro]
2024.03.19
부처님께서는 바라나시에서 탁발을 하시고
공양을 드신 뒤 돌아와
비구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주셨다.
그 말씀을 듣고
한 비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자신을 더럽히는 것은 무엇이고,
썩은 내는 무엇이며,
파리떼는 무엇입니까?”
“비구여,
자신을 더럽히는 것은 탐욕이라네.
썩은 내는 성냄과 같은 악의일세.
파리떼는 악하고 해로운 생각이라네.
자신을 더럽혀 썩은 내를 풍기는 자에게
파리들이 떼지어 공격하지 않을 리 없다네.”
AN 3.126: Katuviya Sutta — Putrid {A i 279; Thai 3.129} [Thanissaro]
2024.03.20
눈과 귀를 보호하지 않고
감각기관을 통제하지 않으면
탐욕에서 생겨난 파리떼가 몰려드네.
비구가 더러움에 물들어
썩은 내를 풍기면
열반과 멀어져
오직 괴로울 뿐.
AN 3.126: Katuviya Sutta — Putrid {A i 279; Thai 3.129} [Thanissaro]
2024.03.21
마음의 고요함이 없으면
그가 있는 곳이
마을이든 숲 속이든 관계없이
파리떼가 에워싸네.
그러나
계를 갖춘 자,
지혜와 고요함을 즐기는 자는
평온한 마음으로 잠에 드는구나.
파리가 내려앉을 곳,
그에게는 없네.
AN 3.126: Katuviya Sutta — Putrid {A i 279; Thai 3.129} [Thanissaro]
2024.03.22
비구들이여,
이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바위에 새기는 것과 같은 사람,
흙에 새기는 것과 같은 사람,
물에 새기는 것과 같은 사람이다.
바위에 새기는 것과 같은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은 화를 자주 내고
그 화는 오래 간다.
마치 바위에 새긴 것은
바람이나 물에 의해 쉽게 지워지지 않고
오래 남아있는 것과 같다.
이처럼 화를 자주 내고
그 화가 오래 가는 사람을 일컬어
바위에 새기는 것과 같은 사람이라 한다.
AN 3.130: Lekha Sutta — Inscriptions {A i 283; Thai 3.133} [Thanissaro]
2024.03.23
흙에 새기는 것과 같은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은 화를 자주 내지만
그 화가 오래 가지는 않는다.
마치 흙에 새긴 것은
바람이나 물에 의해 쉽게 지워지고
오래 남아있지 않는 것과 같다.
이처럼 화를 자주 내지만
그 화가 오래 가지 않는 사람을 일컬어
흙에 새기는 것과 같은 사람이라 한다.
AN 3.130: Lekha Sutta — Inscriptions {A i 283; Thai 3.133} [Thanissaro]
2024.03.24
물에 새기는 것과 같은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은 거친 말을 듣고,
모진 말을 듣고,
불쾌한 말을 들어도
잘 화합하고 다정하고 예의 바르다.
마치 물에 새긴 것은 즉시 사라져
오래 남아있지 않는 것과 같다.
이처럼 거친 말을 듣고,
모진 말을 듣고,
불쾌한 말을 들어도
잘 화합하고, 다정하고,
예의 바른 사람을 일컬어
물에 새기는 것과 같은 사람이라 한다.
이들을 두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라 한다.
AN 3.130: Lekha Sutta — Inscriptions {A i 283; Thai 3.133} [Thanissaro]
2024.03.25
비구들이여,
‘모든 형성된 것은 변화한다.’라는 것은
여래의 출현 여부에 관계없이
담마로 확립된 것이고
담마로 타당한 것이다.
‘모든 형성된 것은 변화한다.’라는 것을
여래는 확연히 깨닫고 꿰뚫어
이를 천명하고, 가르치고, 설명하고,
드러내고, 명확하게 밝힌다.
AN 3.134: Dhamma-niyama Sutta — The Discourse on the Orderliness of the Dhamma {A i 286; Thai 3.137} [Thanissaro]
2024.03.26
비구들이여,
‘모든 형성된 것은 괴로운 것이다.’라는 것은
여래의 출현 여부에 관계없이
담마로 확립된 것이고
담마로 타당한 것이다.
‘모든 형성된 것은 괴로운 것이다.’라는 것을
여래는 확연히 깨닫고 꿰뚫어
이를 천명하고, 가르치고, 설명하고,
드러내고, 명확하게 밝힌다.
AN 3.134: Dhamma-niyama Sutta — The Discourse on the Orderliness of the Dhamma {A i 286; Thai 3.137} [Thanissaro]
2024.03.27
비구들이여,
‘모든 현상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라는 것은
여래의 출현 여부에 관계없이
담마로 확립된 것이고
담마로 타당한 것이다.
‘모든 현상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라는 것을
여래는 확연히 깨닫고 꿰뚫어
이를 천명하고, 가르치고, 설명하고,
드러내고, 명확하게 밝힌다.
AN 3.134: Dhamma-niyama Sutta — The Discourse on the Orderliness of the Dhamma {A i 286; Thai 3.137} [Thanissaro]
2024.03.2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반다 마을에
머물고 계셨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예, 부처님이시여.” 비구들이 응답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와 그대들이 길고 긴 세월 동안
치달리며 윤회해 온 이유는
네 가지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AN 4.1: Anubuddha Sutta — Understanding {A ii 1} [Thanissaro]
2024.03.29
고귀한 계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했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길고 긴 세월 동안
치달리며 윤회해 왔다.
고귀한 삼매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했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길고 긴 세월 동안
치달리며 윤회해 왔다.
고귀한 지혜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했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길고 긴 세월 동안
치달리며 윤회해 왔다.
고귀한 해탈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했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길고 긴 세월 동안
치달리며 윤회해 왔다.
AN 4.1: Anubuddha Sutta — Understanding {A ii 1} [Thanissaro]
2024.03.30
그러나 고귀한 계를 깨닫고 꿰뚫으면
고귀한 삼매를 깨닫고 꿰뚫으면
고귀한 지혜를 깨닫고 꿰뚫으면
고귀한 해탈을 깨닫고 꿰뚫으면
존재하고자 하는 갈망이 부수어지고,
갈애와 집착으로의 이끌림이 끊어져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
스승이시자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분인
부처님께서는 바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AN 4.1: Anubuddha Sutta — Understanding {A ii 1} [Thanissaro]
AN 4.1: Anubuddha Sutta — Understanding {A ii 1} [Thanissaro]
2024.04.01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흐름을 따르는 사람,
흐름을 거스르는 사람,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굳건하게 서있는 사람,
흐름을 건너 저 언덕의 견고한 땅에 서 있는 바라문이다.
흐름을 따르는 사람은 누구인가?
감각적 욕망에 빠져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을 두고
흐름을 따르는 사람이라 한다.
AN 4.5: Anusota Sutta — With the Flow {A ii 5} [Thanissaro].
2024.04.02
흐름을 거스르는 사람은 누구인가?
감각적 욕망에 빠지지 않고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비록 괴롭고 슬퍼
눈물을 흘리더라도
완벽하고 깨끗하게 청정한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사람을 두고
흐름을 거스르는 사람이라 한다.
AN 4.5: Anusota Sutta — With the Flow {A ii 5} [Thanissaro].
2024.04.03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굳건하게 서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을 부수고
다시 태어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을 두고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굳건하게 서있는 사람이라 한다.
AN 4.5: Anusota Sutta — With the Flow {A ii 5} [Thanissaro].
2024.04.04
흐름을 건너 저 언덕의 견고한 땅에 서 있는
바라문은 누구인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깨닫고
지금 여기에서 이를 실현한다.
이러한 사람을 두고
흐름을 건너 저 언덕의 견고한 땅에 서 있는
바라문이라 한다.
세상에는 이러한 네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AN 4.5: Anusota Sutta — With the Flow {A ii 5} [Thanissaro].
2024.04.05
감각적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쾌락에 빠진 자들은
태어남과 늙음의 고리로
다시 또 다시 돌아오네.
갈애에 사로잡혀
흐름을 따라가는구나.
AN 4.5: Anusota Sutta — With the Flow {A ii 5} [Thanissaro].
2024.04.06
깨달은 이는
마음챙김을 확고히 하여
쾌락과 악에 빠지지 않네.
비록 어려움이 따를 지라도
쾌락을 버릴지니,
그를 두고
흐름을 거스르는 자라 한다네.
AN 4.5: Anusota Sutta — With the Flow {A ii 5} [Thanissaro].
2024.04.07
다섯 가지 번뇌를 끊어버린 자,
위없는 수행을 이룬 그에게
되돌아 감이란 없네.
오롯이 깨어
감각기관 고요하니
그를 두고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굳건하게 서 있는 사람이라 하는구나.
AN 4.5: Anusota Sutta — With the Flow {A ii 5} [Thanissaro].
2024.04.08
깨달은 이에게
높고 낮은 법은
부수어지고 사라졌으니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구나.
그를 두고
위없는 지혜의 스승,
청정한 삶을 이루신 분,
세상의 끝에 이르러
저 언덕으로 건너가신 분이라 한다.
AN 4.5: Anusota Sutta — With the Flow {A ii 5} [Thanissaro].
2024.04.09
잘못된 길을 가는 네 가지 경우가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탐욕으로 인해 잘못된 길을 간다.
성냄으로 인해 잘못된 길을 간다.
어리석음으로 인해 잘못된 길을 간다.
두려움으로 인해 잘못된 길을 간다.
이것이 바로 잘못된 길을 가는
네 가지 경우이다.
만일 그대가
탐욕, 성냄, 어리석음, 두려움으로
담마에 어긋나는 길을 간다면
그대의 명성은
달이 기울 듯
사그라드네.
AN 4.19: Agati Sutta — Off Course {A ii 18} [Thanissaro]
2024.04.10
잘못된 길을 가지 않는 네 가지 경우가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탐욕으로 인해 잘못된 길을 가지 않는다.
성냄으로 인해 잘못된 길을 가지 않는다.
어리석음으로 인해 잘못된 길을 가지 않는다.
두려움으로 인해 잘못된 길을 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잘못된 길을 가지 않는
네 가지 경우이다.
만일 그대가
탐욕, 성냄, 어리석음,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담마에 어긋나는 길을 가지 않는다면
그대의 명성은
달이 차듯
높아져가네.
AN 4.19: Agati Sutta — Off Course {A ii 18} [Thanissaro]
2024.04.11
청정한 자들의 네 가지 전통이 있다.
이는 그들의 독창적인 것이고,
오랜 기간 지속된 것이며,
전통적이고, 아주 오래된 것이다.
이는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전해져 왔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켜져 왔으며,
의심할 여지가 없고,
지혜로운 수행자들에게
허물이 되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AN 4.28: Ariya-vamsa Sutta — The Discourse on the Traditions of the Noble Ones {A ii 27} [Thanissaro].
2024.04.12
그 어떤 낡은 옷에도 만족하는 비구가 있다.
그는 그 어떤 낡은 옷에도
만족해하는 삶을 칭송한다.
그는 옷 때문에 이치에 어긋나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으며,
옷이 없다고 하여 안달이 나지 않는다.
옷을 얻으면 그것을 사용할 뿐
집착하거나 마음을 뺏기지 않고,
옷에 대한 집착의 과보를 알아
그 위험에서 벗어남을 통찰한다.
자신이 그 어떤 낡은 옷에도 만족한다고 하여
자신을 치켜세우거나
타인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이렇게 선하고 유익하며
방일하지 않고
오롯이 깨어 마음 챙기는 비구를 일컬어
청정한 자들이 이어온
독창적이고 오랜 전통 속에
굳건히 서있는 자라 한다.
AN 4.28: Ariya-vamsa Sutta — The Discourse on the Traditions of the Noble Ones {A ii 27} [Thanissaro].
2024.04.13
그 어떤 탁발음식에도 만족하는 비구가 있다.
그는 그 어떤 탁발음식에도
만족해하는 삶을 칭송한다.
그는 탁발음식 때문에 이치에 어긋나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으며,
탁발음식이 없다고 하여 안달이 나지 않는다.
탁발음식을 얻으면 그것을 사용할 뿐
집착하거나 마음을 뺏기지 않고,
탁발음식에 대한 집착의 과보를 알아
그 위험에서 벗어남을 통찰한다.
자신이 그 어떤 탁발음식에도 만족한다고 하여
자신을 치켜세우거나
타인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이렇게 선하고 유익하며
방일하지 않고
오롯이 깨어 마음 챙기는 비구를 일컬어
청정한 자들이 이어온
독창적이고 오랜 전통 속에
굳건히 서있는 자라 한다.
AN 4.28: Ariya-vamsa Sutta — The Discourse on the Traditions of the Noble Ones {A ii 27} [Thanissaro].
2024.04.14
그 어떤 거처에도 만족하는 비구가 있다.
그는 그 어떤 거처에도
만족해하는 삶을 칭송한다.
그는 거처 때문에 이치에 어긋나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으며,
거처가 없다고 하여 안달이 나지 않는다.
거처를 얻으면 그것을 사용할 뿐
집착하거나 마음을 뺏기지 않고,
거처에 대한 집착의 과보를 알아
그 위험에서 벗어남을 통찰한다.
자신이 그 어떤 거처에도 만족한다고 하여
자신을 치켜세우거나
타인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이렇게 선하고 유익하며
방일하지 않고
오롯이 깨어 마음 챙기는 비구를 일컬어
청정한 자들이 이어온
독창적이고 오랜 전통 속에
굳건히 서있는 자라 한다.
AN 4.28: Ariya-vamsa Sutta — The Discourse on the Traditions of the Noble Ones {A ii 27} [Thanissaro].
2024.04.15
또한 비구는
선하고 유익한 것을 닦는 것에 기뻐하고
악하고 해로운 것을 버리는 것에 기뻐한다.
자신이 선하고 유익한 것을 닦는 것에 기뻐하고
악하고 해로운 것을 버리는 것에 기뻐한다 하여
자신을 치켜세우거나
타인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이렇게 선하고 유익하며
방일하지 않고
오롯이 깨어 마음 챙기는 비구를 일컬어
청정한 자들이 이어온
독창적이고 오랜 전통 속에
굳건히 서있는 자라 한다.
AN 4.28: Ariya-vamsa Sutta — The Discourse on the Traditions of the Noble Ones {A ii 27} [Thanissaro].
2024.04.16
이러한 네 가지를 두고
청정한 자들의 네 가지 전통이라 한다.
이는 그들의 독창적인 것이고,
오랜 기간 지속된 것이며,
전통적이고, 아주 오래된 것이다.
이는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전해져 왔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켜져 왔으며,
의심할 여지가 없고,
지혜로운 수행자들과 바라문들에게
허물이 되지 않는 것이다.
AN 4.28: Ariya-vamsa Sutta — The Discourse on the Traditions of the Noble Ones {A ii 27} [Thanissaro].
2024.04.17
청정한 자들의 네 가지 전통을
계승하는 비구가 있다.
만약 그가 동쪽에서 머문다면
그는 싫어함을 극복하지,
싫어함을 극복하지 못한 채 머물지 않는다.
만약 그가 서쪽에서 머문다면
그는 싫어함을 극복하지,
싫어함을 극복하지 못한 채 머물지 않는다.
만약 그가 북쪽에서 머문다면
그는 싫어함을 극복하지,
싫어함을 극복하지 못한 채 머물지 않는다.
만약 그가 남쪽에서 머문다면
그는 싫어함을 극복하지,
싫어함을 극복하지 못한 채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현명한 자는 좋아함과 싫어함 모두를
극복하기 때문이다.
AN 4.28: Ariya-vamsa Sutta — The Discourse on the Traditions of the Noble Ones {A ii 27} [Thanissaro].
2024.04.18
싫어함은 깨달은 자를 정복하지 못한다.
싫어함은 그를 제압하지 못한다.
깨달은 자는 싫어함을 감내하여
이를 정복한다.
모든 업을 끊은 그를
누가 제지할 수 있는가?
최상의 황금으로 만든
보물과 같은 그에게서
누가 흠집을 찾을 수 있으랴?
신조차 그를 칭송하고
범천조차 그를 칭송하는구나.
AN 4.28: Ariya-vamsa Sutta — The Discourse on the Traditions of the Noble Ones {A ii 27} [Thanissaro].
2024.04.19
사람간의 유대와 포용을 위한 네 가지 법(사섭법)이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베푸는 것(보시섭),
부드러운 말(애어섭),
도움을 주는 행동(이행섭),
함께하는 것이다. (동사섭)
이 네 가지가
사람간의 유대와 포용을 위한 네 가지 법이다.
AN 4.32: Sangaha Sutta — The Bonds of Fellowship {A ii 32} [Thanissaro].
2024.04.20
각각의 상황에 걸맞는
베푸는 것,
부드러운 말,
도움을 주는 행동,
함께하는 것.
이 네 가지는 이 세상에 있어
수레바퀴의 바퀴살과 같네.
AN 4.32: Sangaha Sutta — The Bonds of Fellowship {A ii 32} [Thanissaro].
2024.04.21
사람간의 유대와 포용을 위한 네 가지 행위가 없다면
어머니는 자식으로부터
존경과 보호받지 못하고,
아버지 역시 그러하네.
현명한 자는 이 유대와 포용을 위한
네 가지를 올바로 성찰하여
위대함을 얻고 칭송을 받네.
AN 4.32: Sangaha Sutta — The Bonds of Fellowship {A ii 32} [Thanissaro].
이번 천일은 초기 빠알리어 경전 중 [앙굿따라니까야]를 독송하기로 합니다. 번역은 빠알리어 경전의 영역본을 모아놓은 사이트 https://www.accesstoinsight.org 에서 발췌한 것을 번역팀에서 정리한 것입니다.
6. 정토행자의 서원
지금 우리 인류는
인간성 상실, 공동체 붕괴, 자연환경 파괴라는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 속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첫째, 연기법을 우리의 세계관으로 삼는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존재의 상호 연관성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네가 살면 나도 살고,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는
연기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함께 살고 함께 행복해지는 이 길을 추구한다.
여러가지 꽃들이 모여 하나의 화단을 이루듯이
각자의 다양한 개성이 모여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하여
시기와 질투를 뛰어넘어 사랑을,
대립과 경쟁을 뛰어넘어 화합을,
투쟁과 전쟁을 뛰어넘어 평화를 이루는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고자 한다.
둘째, 부처님과 보살을 우리 삶의 모범으로 삼는다.
평생을 가사 한 벌과 발우 한 개로 걸식하며 살아가신
부처님의 삶을 본받아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며,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살아가는 구도자의 자세를 갖는다.
나아가 중생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스스로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중생을 구제하시는 대승보살의 원력을 본받아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수행자가 되고자 한다.
셋째, 무아(無我) · 무소유(無所有) · 무아집(無我執)을 수행의 지표로 삼는다.
한 생각 돌이켜서 사로잡힘에서 벗어나
나를 버리고, 내 것을 버리고, 내 고집을 버리고
오직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는 보살이 되어
괴로움도 없고 얽매임도 없는 대자유인(成佛)이 되고자 한다.
나아가 인류에게 불어닥친 이 위기를 극복하고
행복한 인생(맑은 마음), 평화로운 사회(좋은 벗),
아름다운 자연(깨끗한 땅)을 일구어
살기 좋은 세상 정토(淨土)를 만들고자 한다. (반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