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 만일결사 중
제10차 천일결사, 제4차 백일기도 중 20일 째 기도를 시작하겠습니다.
1. 삼귀의
1. 삼귀의 (삼배하면서 발원한다)
(1)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합니다.
부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귀의합니다. (1배)
(2) 부처님 법 만난 것을 기뻐합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아
부지런히 정진하겠습니다. (1배)
(3) 부처님 제자됨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땅에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구원하는
보살이 되겠습니다. (1배)
2. 수행문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잘 살펴보면
다 내 마음이 일으킨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괴로움과 얽매임이 밖으로부터 오는 줄 착각하고
이 종교 저 종교, 이 절 저 절,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며
행복과 자유를 구하지만 끝내 얻지 못한다.
그것은 안심입명의 도는 밖으로 찾아서는
결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에서 일어난 어떤 괴로움일지라도
안으로 살펴보면
그 모든 괴로움의 뿌리가 다 마음 가운데 있고
그 마음의 실체가 본래 공한 줄 알면
모든 괴로움은 저절로 사라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일으킨 한 생각에 사로잡혀
옳다 그르다 모양 짓고
그 모양에 집착해서 온갖 괴로움을 스스로 만든다.
한 생각 돌이켜서 이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즉시 사라진다. (반배)
3. 참회
화나고, 짜증나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이 모든 것은
밖으로 살피면 상대가 잘못해서 생긴 괴로움인 것 같지만,
안으로 살피면
'내가 옳다'는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일어난 것이므로
모든 법에는 본래 옳고 그름이 없음을 깨달아
'내가 옳다'는 한 생각을 내려 놓을 때
모든 괴로움은 사라지고 온갖 업장은 녹아나는 것이다. (반배)
(수행문 또는 기도문에 집중하여 마음을 돌이켜 뉘우치면서 108배 참회의 절을 한다.)
넓고 깊은 원력 세워 보살도를 닦고 닦아
고통중생 구하시려 사바세계 몸을 나퉈
크신 사랑 연민으로 널리 중생 구하시는
관세음보살님께 지성 귀의하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108배)
멸 업장진언 『옴 아르늑게 사바하』(3번)
온갖 신통 갖추시고 방편 널리 닦고 닦아
시방세계 모든 국토 그 몸을 나투시어
고통중생 구하시는 관세음보살님께
지성귀의하옵니다. (반배)
원하옵나니
사생육도 법계중생 다겁생래 지은업장
지금 내가 참회하니 모두 소멸하여지고
세세생생 보살도를 행하게 하여 지이다 (3번)
원하옵나니
이와 같이 지은공덕 일체중생 회향되어
정토세계 함께 가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함께 성불하여 지이다. (반배)
4. 명상
(자세를 바르게 하고, 마음을 코 끝에 모아서, 숨이 들어오고 나감을 알아차린다.)
5. 경전독송
2021.01.03
집에 불이 난 것을 물로 꺼버리듯,
지혜로운 사람들은 걱정이 생기면 이내 지워 버린다.
마치 바람이 솜털을 날려 버리듯이.
진정한 즐거움을 구하는 사람은
슬픔과 욕심과 걱정을 버리라.
번뇌의 화살을 뽑으라.
번뇌의 화살을 뽑아 버리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면,
모든 걱정을 초월하여 근심 없는 자,
절대 평화의 세계에 들어간 자가 될 것이다.
2021.01.04
[젊은이 바셋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잇차낭갈라 숲에 살고 계셨다.
그때 바셋타와 바라드바자라고 하는 두 젊은이가
오랫동안 앉아 있었기 때문에 생긴 피로를 풀기 위해
여기저기 거닐면서 논쟁을 벌였다.
“도대체 바라문이란 어떤 것인가?”
바라드바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이 다 칠 대의 조상에 이르기까지
혈통에 대해서 지탄이나 비난을 받은 일이 없는
순수한 모태에서 태어난 사람,
이런 사람을 바라문이라 합니다.”
바셋타는 말했다.
“계율을 지키며 덕행을 갖추고 있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바라문입니다.”
2021.01.05
바라드바자는 바셋타를 설득할 수 없었고,
바셋타도 바라드바자를 설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셋타는 바라드바자에게 말했다.
“바라드바자여, 석가족의 아들인 사문 고타마는 출가하여
이곳 잇차낭갈라 숲에 살고 있습니다.
그 고타마에게는 다음과 같은 좋은 평판이 있습니다.
즉 그는 참사람, 깨달은 사람, 지혜와 덕행을 갖춘 사람,
행복한 사람, 세상을 알아 버린 사람, 더없이 완벽한 사람,
사람들을 길들이는 이, 신과 인간의 스승, 눈 뜬 사람,
거룩한 스승이라고 불립니다.
사문 고타마에게 가 봅시다.
거기 가서 그분에게 이것을 물어 봅시다.
그의 대답에 따라 그것을 믿읍시다.”
그들은 스승이 계신 곳으로 찾아갔다.
스승께 절하고 나서,
기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2021.01.06
바셋타 바라문은 다음과 같은 시로써 스승께 여쭈었다.
“우리 두 사람은 3베다의 학자라고 스승도 인정하고
스스로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저는 폭카라삿티의 제자이고 이 사람은 타루카의 제자입니다.
3베다에 씌여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완전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베다의 어구와 문법에 통달했고
독송도 스승에게 견줄만 합니다.
고타마시여, 그러한 우리가 태생에 대한 논쟁을 했습니다.
‘태생에 따라 바라문이 된다.’고 바라드바자는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행위에 따라 바라문이 된다.’라고 주장합니다.
눈이 있는 분이시여, 이런 사정임을 알아 주십시오.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눈 뜬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스승께 물으러 온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름달을 향해 합장하고 절하듯이,
세상 사람들은 고타마를 향해 절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출현하신 고타마께 우리는 묻습니다.
태생에 따라 바라문이 됩니까,
행위에 따라 바라문이 됩니까?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바라문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도록.”
주) 폭카라사티, 타루카 이 두 사람은 모두 잇차낭갈라 마을에 살던 부유한 바라문 사제들이다.
2021.01.07
스승은 대답하셨다.
“바셋타여, 그대들을 위해 모든 생물에 대한 구별을 설명해 주리라.
그들에게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 것은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풀이나 나무에도 종류와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는 풀이다’라든가
‘우리는 나무다’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의 특징은 태생에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또 구더기나 귀뚜라미로부터 개미에 이르는 것들에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네 발 달린 짐승에게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배로 기어다니는 길이가 긴 것들에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물에서 태어나 물에서 사는 물고기들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나는 새들에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2021.01.08
이와 같이 생물에 있어서는
태생에 따른 특징이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사람에게는 그 특징이 다를 수 없다.
머리카락이나 머리, 귀, 눈, 코, 입술이나 눈썹에 대해서도.
목이나 어깨, 배, 등, 엉덩이, 가슴, 음부에 대해서도.
손이나 발, 손가락, 손톱, 종아리, 허벅지,
피부색이나 음성에 대해서도,
다른 생물처럼 태생에 따른 특징의 구별이
사람에게는 결코 없다.
몸을 가지고 태어난 생물 사이에는 각기 구별이 있지만,
인간에게는 그런 구별이 없다.
인간 사이에서 구별이 있는 것은 다만 그 이름뿐이다.
2021.01.09
인간 가운데서 소 치는 것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농부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인간 가운데서 여러 가지 기술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기술자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인간 가운데서 사고 파는 것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상인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인간 가운데서 남의 일을 해주는 것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고용인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주) 초기 불교에서 이상적인 수행자를 바라문이라고도 불렀다.
2021.01.10
인간 가운데서 훔친 것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도둑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인간 가운데서 무술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무사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인간 가운데서 제사 지내는 것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제관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인간 가운데서 마을이나 나라를 차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왕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주) ‘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이란 ‘도둑’과 ‘통치자’를 동시에 말하고 있다. 둘 다 선량한 사람들에게 폭력을 써서 무엇인가를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2021.01.11
나는 바라문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를 바라문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는 ‘그대여, 라고 불리는 사람’이라 불린다.
그는 무엇인가 소유물에 걸려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집착이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모든 속박을 끊고 두려움이 없으며,
집착을 초월하고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고삐와 함께 가죽끈과 가죽줄을 끊어 버리고
어리석음을 없애 눈을 뜬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죄 없이 욕을 먹고 구타나 구속을 참고 견디며,
인내력이 있고 마음이 굳센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2021.01.12
성내지 않고 도덕을 지키며
계율에 따라 욕심을 부리지 않고 몸을 잘 다스려
‘최후의 몸’에 이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연꽃 위의 이슬처럼,
송곳 끝의 겨자씨처럼,
온갖 욕정에 더럽혀지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이 세상에서 이미 자기의 고뇌가 소멸된 것을 알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걸림이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지혜가 깊고 현명하며 온갖 길에 통달해
최고의 목적에 도달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주) ‘송곳 끝의 겨자씨’란, 집착하는 마음이 없음을 말한다. 송곳 끝에 아무리 작은 겨자씨를 올려놓아도 곧 떨어지는 것처럼.
2021.01.13
재가자나 출가자 누구하고도 섞이지 않고,
집 없이 두루 다니며 욕심이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힘세거나 약한 어느 생물에게도 폭력을 쓰지 않고,
또 죽이거나 죽이도록 하지도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적의를 품은 자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들에게 적의를 품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는 자와 함께 있으면서도 마음이 온화하며,
집착하는 자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겨자씨가 송곳 끝에서 떨어지듯이,
집착과 증오와 오만과 거짓을 털어 버린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2021.01.14
거칠지 않고 사연을 전하는 데 진실한 말을 하며
말로써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이 세상에서 길거나 짧거나, 가늘거나 굵거나,
깨끗하거나 더러운 것을 막론하고
주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이라도 갖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현세도 내세도 바라지 않고,
욕심도 걸림도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2021.01.15
집착이 없고 완전히 깨달아
의혹이 없고 불사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이 세상의 재앙이나 복과 덕,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근심과 티가 없이 깨끗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구름에 가리지 않은 달처럼,
깨끗하고 맑아 환락의 생활을 끝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이 힘들고 어려운 길,
윤회와 헤맴을 넘어 피안에 이르고,
깊이 명상하여 욕망도 집착도 없이 마음이 고요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2021.01.16
이 세상에 대한 욕망을 끊고 집을 떠나 두루 다니며
집착의 생활을 끝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이 세상에 대한 집착을 끊고 집을 떠나 두루 다니며
집착의 생활을 끝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인간의 인연을 끊고 천상의 인연도 끊어
모든 굴레를 벗어 던진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주) ‘모든 굴레’는 시간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한 것을 말한다.
2021.01.17
쾌락도 쾌락 아닌 것도 버리고,
맑고 깨끗해져 얽매임 없이 세상을 이겨낸 영웅,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모든 살아 있는 생물의 생사를 알고
집착 없이 행복한 사람,
깨달은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신도 귀신(간다르바)도 인간도 그 행방을 알 수 없는 사람,
번뇌의 더러움을 씻어버린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단 하나의 물건도 갖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황소처럼 늠름하고 기품 있는 영웅,
위대한 성자,
도의 승리자,
욕망 없는 사람,
목욕하는 사람,
깨달은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삶의 모든 일을 알고 천국과 지옥을 보며
생존을 멸해버린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2021.01.18
세상에서 쓰는 이름이나 성은 부르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태어나는 그때마다 임시로 붙여지는 것이다.
이름이나 성이 임시로 붙여진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그릇된 선입견을 오래 가지게 된다.
모르는 사람은 말한다. ‘태생에 의해서 바라문이 된다’고.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되기도 하고,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안 되기도 하는 것이다.
2021.01.19
행위에 의해 농부가 되고,
행위에 의해 기술자가 되며,
행위에 의해 상인이 되고,
또한 행위에 의해 고용인이 된다.
행위에 의해 도둑이 되고,
행위에 의해 무사가 되며,
행위에 의해 제관이 되고,
행위에 의해 왕이 된다.
이와 같이 행위를 있는 그대로 본다.
그들은 ‘연기(緣起)’를 보는 자이며,
행위와 그 결과를 잘 알고 있다.
세상은 행위에 의해 존재하며,
사람들도 행위에 의해서 존재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행위에 매여 있다.
마치 달리는 수레바퀴가 축에 매여 있듯이.
고행과 청정한 수행과 감각의 절제와 자제,
이것으로 바라문이 된다.
이것이 으뜸가는 바라문이다.
2021.01.20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
바셋타와 바라드바자 청년은 스승께 말씀드렸다.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고타마시여.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또는 ‘눈이 있는 사람은 빛을 볼 것이다’ 하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듯이,
당신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희는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도를 닦는 수행자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당신 고타마께서는 저희들을 재가 수행자로서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하겠습니다.”
2021.01.21
[홀로 가는 수행자 나라카]
나라카가 말했다.
“아시타가 들려준 말이 진실임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니 고타마시여, 모든 것에 통달하신 당신께 묻겠습니다.
스승은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성자의 경지를 일러 주리라.
이것은 행하기 어렵고 이루기 힘들다.
이제 그대에게 그것을 알려 줄 것이니 마음을 굳게 가지도록 하라.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든지 절을 받든지 한결같은 태도로 대하라.
욕을 먹더라도 성내지 말며 절을 받더라도 우쭐대지 말고 무심하라.
주) 아씨따 선인이 부처님을 살아서 볼수 없을 것을 알고 자신의 조카인 날라까에게 즉시 출가하여 유행자가 되어 나중에 부처님을 뵐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부처님께서 출현하여 초전법륜을 굴린지 칠일만에 그가 부처님을 찾아뵙고, 질문하면서 성립한 경이다.
2021.01.22
동산의 숲 속에 있더라도 불꽃처럼 여러 가지 유혹이 나타난다.
부녀자는 수행자를 유혹한다.
부녀자로 하여금 유혹하지 못하도록 하라.
모든 육체적 즐거움을 버리라.
모든 욕망을 버리라.
약한 것이든 강한 것이든
모든 생명 있는 것을 미워하지 말고 좋아하지도 말라.
그들은 나와 같고 나도 그들과 같다고 생각하여,
살아 있는 것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
또한 남들에게 죽이게 해서도 안 된다.
2021.01.23
보통 사람은 욕망과 탐욕에 집착하지만
눈 있는 사람은 그것을 버리고 진리의 길을 가라.
그리하여 이 세상의 지옥을 벗어나라.
배를 비우고 음식을 절제하여 욕심을 없애고 탐내지 말라.
욕망을 버리면 욕심이 없어 평안하다.
수행자는 탁발을 끝내고 숲에 돌아와 나무 아래 앉아야 한다.
그리고 정신을 안정시키고 나무 아래에서 명상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주) ‘이 세상의 지옥’이란 이 세상에서 잘못된 삶을 살면서 모든 것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2021.01.24
날이 밝으면 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누구에게 식사 초대를 받거나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가져올지라도
결코 반겨서는 안 된다.
그리고 마을에 이르러서는
이집 저집 조급하게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
입을 다물고, 음식을 구하는 말을 꺼내서는 안 된다.
‘음식을 얻어서 잘 됐다’ ‘얻지 못해서 잘 됐다’ 생각하고,
어떤 경우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마치 과일을 주우려고 나무 밑에 간 사람이
과일을 줍거나 줍지 못하거나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오듯이.
바리때를 손에 들고 돌아다니는 그는
벙어리는 아닌데 벙어리처럼 보일 것이다.
시주 받은 것이 적다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시주한 사람을 업신여겨서도 안 된다.
2021.01.25
스승은 피안에 이르는
여러 가지 수행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거듭 피안에 이르는 일은 없으나
단번에 이르는 일도 없다.
윤회의 흐름을 끊은 수행자에게는 집착이 없다.
해야 할 선도,
하지 말아야 할 악도 버렸기 때문에 번뇌가 없다.”
스승은 다시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최상의 경지를 말하리라.
음식을 얻을 때에는
칼날의 비유를 생각하라.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스스로 배를 비우라.
마음이 어두워서는 안 된다.
또한 쓸데없이 많은 것을 생각해서도 안 된다.
비린내가 없이, 걸림이 없이,
청정한 수행을 궁극의 의지처로 삼으라.
주) 음식을 얻을 때는 칼날의 비유를 생각하라는 것은, 칼날에 묻은 꿀을 핥을 때는 혀가 베이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시주 물건을 사용할 때 번뇌의 더럽힘이 없도록 주의하라는 뜻이다.
2021.01.26
홀로 있는 일을 배우라.
으뜸가는 수행은 홀로 있는 것이다.
홀로 있어야만 진정으로 즐거울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그는 온 세상에 빛나리라.
욕망을 버리고 명상하고 있는
그의 이름을 들으면,
내 제자는 더욱더 겸손해지고
믿음이 깊어질 것이다.
이것을 깊은 강물과
얕은 개울물의 비유로 알라.
바닥이 얕은 개울물은 소리내어 흐르지만,
깊은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르는 법이다.
2021.01.27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찬 것은 아주 조용하다.
어리석은 자는 물이 반쯤 찬 항아리 같고,
지혜로운 이는 물이 가득 찬 연못과 같다.
사문이 의미 있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스스로 알고 법을 설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알고서 많은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 알면서도 자제하여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인의 행동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성인으로서 성인의 행동을 보인 것이다.”
주) 여기서 사문은 부처님을 가르킨다.
2021.01.28
[두 가지 관찰]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밧티의 동산에 있는
미가라 장자네 어머니의 누각 안에 계셨다.
그때 거룩한 스승은 달 밝은 보름밤에
수행자의 무리에 둘러싸여 집 밖에 계셨다.
거룩한 스승께서는
묵묵히 앉아있는 수행자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거룩하게 출가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여러 가지 진리가 있다.
그대들이 거룩하게 출가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여러 가지 진리를 듣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하고 누가 묻거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라.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라고.
그렇다면 그대들이 말하는
두 가지란 무엇이냐고 한다면,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고
‘이것은 괴로움의 그침이다.
이것은 괴로움을 그치게 하는 길이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수행자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거룩한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2021.01.29
그리고 행복한 스승은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괴로움을 모르고 괴로움의 원인을 모르며,
괴로움의 그침을 모르고
괴로움을 그치게 하는 길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은 마음의 해탈을 얻지 못하고,
지혜의 해탈도 얻지 못한다.
그들은 윤회를 끊어 버릴 수가 없다.
그들은 생과 사를 계속 받는다.
그러나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알고,
괴로움의 그침을 알고
또 괴로움을 그치게 하는 길을 아는 사람들.
그들은 마음의 해탈을 얻고,
지혜의 해탈도 얻는다.
그들은 윤회를 끊어 버릴 수가 있다.
그들은 생과 사를 더 이상 받지 않는다.”
2021.01.30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업에 따라 생기는 것이다.’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업을 남김없이 끊어버리면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다.’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거룩한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행복한 스승은
또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세상에 있는 모든 괴로움은
생존의 업에 따라 생긴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그 생존의 업을 짓는 어리석은 자는
계속해서 괴로움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것을 분명히 알고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을 관찰해 업을 짓지 말라.”
주) 업業이란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선악善惡의 소행을 말하며, 이것이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
2021.01.31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무지로 인해서 생긴다’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무지를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삶에서 다른 삶으로 되풀이하여
윤회를 받는 사람들은
그 원인이 무지에 있다.
무지란 기나긴 헤맴인데,
이로 말미암아 오랜 윤회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밝은 지혜에 이른 사람들은
다시는 생존을 받는 일이 없다.”
2021.02.01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물질로 인해 생긴다’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물질에 대한 집착을
남김없이 없애 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모든 괴로움은 물질로 인해 생긴다.
물질에 대한 집착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
괴로움은 물질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모든 물질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욕망을 끊는다면,
괴로움은 없어지고 만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알라.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를 아는
현자나 베다에 통달한 사람들은,
악마의 속박에서 벗어나
다시는 생존을 받지 않는다.”
2021.02.02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식별작용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식별 작용을 남김없이 없애 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모든 괴로움은 식별 작용으로 인해 일어난다.
식별 작용이 없어지면 괴로움은 생길 수 없다.”
괴로움은 식별 작용에 의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식별 작용을 고요히 가라앉힌 수행자는,
쾌락에서 벗어나 평안에 이르게 된다.”
2021.02.03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접촉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접촉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접촉에 얽매이고, 생존의 물결에 휩쓸리며,
그릇된 길에 들어선 사람은 속박을 끊기 어렵다.
그러나 접촉을 잘 알아 평안을 즐기는 사람은,
실로 접촉을 없애 버렸기 때문에
쾌락에서 벗어나 평안에 이르게 된다.”
2021.02.04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느낌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느낌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즐겁든, 괴롭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든,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느낀 것은 모두 괴로움인 것을 알고,
없어지고 말 허망한 것을 느낄 때마다
그것의 소멸을 인정하고서야
느낌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다.
느낌에 대한 집착을 버렸기 때문에
수행자는 쾌락에서 벗어나 평안에 이르게 된다.”
2021.02.05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망상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망상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망상을 벗 삼는 사람은
이 생에서 저 생으로 전전하며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괴로움은 망상으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수행자는 망상을 버리고
망상 없이 바른 생각을 가지고 정진해야 한다.”
2021.02.06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집착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집착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집착으로 인해 생존이 생긴다.
생존하는 자는 괴로움을 받는다.
태어난 자에게는 죽음이 따른다.
이것이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이다.
그러므로 현자들은 집착을 끊고
태어남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잘 알아
다시는 생존을 받지 않는다.”
2021.02.07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움직임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움직임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모든 괴로움은 움직임으로 인해 생긴다.
모든 움직임이 없어지면 괴로움도 생기지 않는다.
괴로움은 움직임으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모든 움직임을 버리고,
움직임이 없는 상태로 해탈하라.
생존에 대한 집착을 끊고
마음이 고요한 수행자는 윤회를 벗어난다.
그는 다시 생존을 받지 않는다.”
주) 움직임aramgha은 활동이지만, 여기서는 주로 나쁜 방향 쪽으로 활동하는 것을 일컫는다.
2021.02.08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음식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음식에 대한 집착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모든 괴로움은 음식으로 인해서 생긴다.
음식에 대한 집착이 소멸되면
괴로움도 생기지 않는다.
괴로움은 음식으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모든 음식을 잘 알고 음식에 집착하지 않는다.
모든 번뇌의 때를 없애 버리면
병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바르게 알고,
반성하며 법에 따라 사는 베다의 달인은
어리석은 생존의 고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주) 병이 생기지 않음은 열반, 다시 말해 높은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한다.
2021.02.09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마음의 동요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마음의 동요를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모든 괴로움은 마음의 동요로 인해 생긴다.
모든 마음의 동요가 그치게 되면
괴로움도 생기지 않는다.
괴로움은 마음의 동요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수행자는 마음의 동요를 버리고
모든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려서,
무동요 무집착으로 바른 생각을 가지고 정진해야 한다.”
2021.02.10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구속이 있는 사람은 주저한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구속이 없는 사람은
주저하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구속이 없는 사람은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속이 있는 사람은
이 생에서 저 생으로 전전하며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여러 가지 구속 속에
커다란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
수행자는 구속 없고 집착 없이
바른 생각을 가지고 정진해야 한다.”
2021.02.11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물질적 영역보다도
비물질적 영역이 더 고요하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비물질적 영역보다
소멸의 영역이 더욱 더 고요하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물질적 영역에 사는 모든 생물과
비물질적 영역에 사는 모든 생물들은
소멸을 모르기 때문에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나 물질적 영역을 잘 알고
비물질적 영역에 안주하며
소멸의 영역에 이른 사람들은
죽음에서 벗어난 것이다.”
2021.02.12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진리다’라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 ‘이것은 허망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를 가지고 본다.
이것이 첫째 관찰이다.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허망하다’라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 ‘이것은 진리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를 가지고 본다.
이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2021.02.13
“보라, 신과 세상 사람들은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생각하고,
그 이름과 형태에 집착해 있으면서
‘이것이야말로 진리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떤 것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더라도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자의 생각은
허망하기 때문이다.
지나가 버리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므로.
그러나 해탈은 허망한 것이 아니다.
성자들은 이것을 진리로 알고 있다.
그들은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쾌락에서 벗어나 평안에 들어간 것이다.”
2021.02.14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안락이다’라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를 가지고 본다.
이것이 첫째 관찰이다.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 ‘이것은 안락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를 가지고 본다.
이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2021.02.15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형상, 소리, 향기, 맛, 감촉,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서
한결같이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것.
이런 것들을 신이나 세상 사람들은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것이 사라질 때 그들은 그것을
‘괴로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인들은 자기 몸에 대한 집착을 끊는 것을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바르게 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세상의 사람들과는 정반대다.
세상 사람들이 ‘기쁨’이라 하는 것을
성자들은 ‘괴로움’이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을 성자들은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알기 어려운 진리를 보라.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헤매게 된다.
2021.02.16
덮여있는 사람에게는 어둠이 있다.
바르게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암흑이 있다.
그러나 선량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펼쳐 보여진다.
마치 볼 수 있는 사람에게 빛이 있는 것처럼.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짐승 같은 바보는
진리가 옆에 있어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생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히고 생존의 흐름에 떠내려가,
악마의 영토에 들어간 사람은 이 진리를 깨닫기 힘들다.
성자들 말고 누가 이 경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이 경지를 바르게 알면,
번뇌의 때가 묻지 않는 이가 되어
절대 평화의 세계에 들어가리라.”
스승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은 기뻐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이 설법이 있을 때 육십 명의 수행자들은 집착을 없애,
마음이 더러움에서 해탈되었다.
2021.02.17
[욕망]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 욕망을 이루면,
그는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기 때문에 기뻐한다.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
욕망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
그는 화살에 맞은 사람처럼 괴로워하고 번민한다.
뱀의 머리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것처럼,
모든 욕망을 피하는 사람은
바른 생각을 가지게 되고
이 세상의 집착을 넘어서게 된다.
주) 세존께서 싸밧티 시에 계실때에 탁발하러 나갔다가 한 바라문이 아찌라밧띠 강 언덕의 나무를 베고 옥수수 밭을 가는 것을 보고 먼저 말을 건냈고, 그는 ‘옥수수를 파종하는 것입니다.’라고 수확후의 공양을 약속했으나, 옥수수가 익기 전에 태풍으로 옥수수가 모두 떠내려가자, 그를 위로하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2021.02.18
논밭, 집, 황금, 말과 소, 노비, 고용인, 여자, 친척,
그밖에 여러 가지를 탐내는 사람이 있으면,
온갖 번뇌가 그를 이기고
위험과 재난이 그를 짓밟는다.
마치 부서진 배에 물이 새어들듯이,
괴로움이 그를 따르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항상 바른 생각을 지키고
모든 욕망을 피해야 한다.
배에 스며든 물을 퍼내듯이,
욕망을 버리고 거센 강을 건너
피안에 도달한 사람이 되라.
2021.02.19
[동굴]
동굴 속에 머무르며 집착하고
온갖 번뇌에 뒤덮여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사람.
이러한 사람은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참으로 이 세상의 욕망을 버리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욕망에 따라 생존의 쾌락에 붙잡힌 사람들은
해탈하기 어렵다.
남이 그를 해탈시켜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래와 과거에 집착하면서
눈앞의 욕망에만 빠져든다.
그들은 욕망을 탐하고 거기에 빠지며,
인색하고 옳지 못한 일에 친근하지만,
죽을 때는 괴로움에 짓눌려 슬퍼한다.
여기서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될까 하고.
주) 육신을 동굴에 비유한 것이다. 삔돌라 바라드와자는 꼬쌈비 시의 우데나왕의 사제의 아들이었다. 그는 베다를 배우고 훌륭한 선생이 되었으나 만족하지 않고 라자가하 시로 갔다가 부처님의 승단에 들어가 숲속에서 궁녀에 설법을 했는데, 우데나 왕에게 들켰다. 그러자 세존이 이하의 시를 읊은 것이다.
2021.02.20
그러므로 사람들은 여기서 배워야 한다.
세상에서 옳지 못하다고 하는
그 어떤 일에도 휩쓸려서는 안 된다.
사람의 목숨이 짧은 것이라고
현자는 말하지 않았던가.
세상 사람들이 생존에 대한 집착에 붙들려
떨고 있는 것을 나는 본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생존에 대한 집착을 떠나지 못한 채
죽음에 직면해 울고 있다.
무엇인가를 내것이라고 생각하며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의 모습은 물이 말라 가는 개울에서
허덕이는 물고기와 같다.
이 꼴을 보고 ‘내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여러 가지 생존에 대해 집착을 버려야 한다.
2021.02.21
현자는 양극단에 대한 욕망을 절제하고,
감각과 대상의 관계를 잘 알아서 탐하는 일이 없다.
자기 자신조차 비난할 만한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보고 듣는 일에 팔리지 않는다.
생각을 가다듬고 거센 강을 건너라.
성인은 소유하고자 하는 집착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며,
번뇌의 화살을 뽑아 버리고 열심히 정진하여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바라지 않는다.
2021.02.22
[분노]
마음으로부터 화를 내고
남을 비방하는 사람이 있다.
또 마음이 진실한 사람이라도
남을 비방하는 일이 있다.
비방하는 말을 들을지라도
성인은 그것에 흔들리지 않는다.
성인은 어떠한 일에도
마음이 거칠어지지 않는다.
욕심에 끌리고 소망에 붙들린 사람이
어떻게 자기의 생각을 뛰어 넘을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고
또는 아는 대로 떠들어댈 것이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남에게 자기의 계율과 도덕을 자랑하는 사람,
스스로 자기 일을 떠들고 다니는 사람은
거룩한 진리를 지니지 못한 사람이라고,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말한다.
마음이 평안하고 안정된 수행자가 계율에 대해,
나는 이렇게 하고 있노라 하면서 뽐내지 않고,
이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번뇌에 불타지 않는다면,
그는 거룩한 진리를 지닌 사람이라고,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말한다.
주) 이교도의 음모로 유행녀 쑨다리는 저녁에 제따바나 숲으로 화환과 향료와 과일을 들고 드나들게 했다. 그리고는 근처의 유행자의 승원에서 잠을 자고는 아침에 제따 숲에서 나오는것처럼 꾸몄다. 얼마후 이교도들은 청부업자를 고용하여 쑨다리를 살해해서 제따 숲 근처의 수풀더미에 버렸다. 그러자 왕의 조사가 이루어지고 그녀의 시체가 부처님의 향실근처에서 발견되어 비난을 받게 되자, 아난다는 부처님께 다른 도시로 갈것을 청했다. 부처님은 다른 곳으로 피신하는 어리석음을 꾸짖고, 칠일 후에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이 경을 설했다.
2021.02.23
때묻은 교법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치우쳐서,
자기 안에서만 훌륭한 열매를 보는 사람들은
‘흔들리는 평안’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물의 본질을 확실히 알고
자기의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좁은 생각의 울타리 안에 갇혀
진리를 등지고 또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사악함을 물리친 사람은,
이 세상 어디를 가든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한 편견을 보이지 않는다.
사악함을 물리친 사람은 교만과 거짓을 버렸거늘,
어찌 윤회에 떨어질 것인가.
그에게는 이미 의지할 것도, 가까이할 것도 없다.
모든 일에 기대고 의지하는 사람은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기대고 의지함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비난받을 수 있겠는가.
그는 집착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그는 이 세상에서 모든 편견을 없애버린 것이다.
2021.02.24
[으뜸가는 것]
세상사람들이 훌륭하다고 보는 것들을
‘으뜸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 생각에 붙들려
그 밖의 다른 것들은
모두 ‘뒤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여러 가지 논쟁을
뛰어 넘을 수가 없다.
그는 본 것, 배운 것,
계율과 도덕, 사색한 것에 대해서
혼자서 어떤 결론을 내리고,
그것에 집착한 나머지
그 밖의 다른 것은
모두 뒤떨어진 것으로 안다.
사람이 어느 한 가지만 중요하다고 여긴 나머지
그 밖의 다른 것은 모두 가치 없다고 본다면,
그것은 커다란 장애라고,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는
본 것, 배운 것, 사색한 것,
또는 계율과 도덕에 붙잡혀서는 안 된다.
지혜에 대해서도, 계율이나 도덕에 대해서도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자기를 남과 동등하다거나 남보다 못하다거나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주) 세존께서 싸밧티 시에 계실때에 여러 외도의 스승들이 ‘이것이 최고이다. 저것이 최고이다.’라고 논쟁을 하고 있었다. 왕은 그들의 논쟁을 듣다못해 그들에게 코끼리를 만지게 하고 각자에게 어떻게 생겼는가를 물었다. 코를 만진 자는 코끼리가 쟁기처럼 생겼다 등의 모든 묘사를 듣고 ‘그대들 외도의 교의들은 이와 같다.’고 하고는 외도를 추방했다. 세존께서는 수행승들에게 ’외도는 맹인이 코끼리를 만지듯’ 각자의 견해에 집착하여 논쟁하는 것이다.’고 가르치며 이 경을 설한것이다.
2021.02.25
그는 가지고 있던 견해를 버리고 집착하지 않으며,
지혜에도 특별히 의지하지 않는다.
그는 실로 여러 가지 다른 견해로
분열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어느 한 쪽을 따르는 일이 없고,
어떤 견해일지라도 그대로 믿는 일이 없다.
그는 양극단에 대해서,
여러 생존에 대해서,
이 세상에 대해서도 저 세상에 대해서도
원하는 바가 없다.
모든 사물에 대해 단정하는 편견이
그에게는 조금도 없다.
그는 이 세상에서 본 것, 배운 것,
또는 사색한 것에 대해
티끌만한 편견도 가지지 않는다.
어떠한 견해에도 집착하지 않는 바라문이
이 세상에서 어찌 그릇된 생각을 하겠는가.
그는 그릇된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어느 한 견해만을 특별히 존중하지도 않는다.
그는 모든 가르침을 원하지도 않는다.
바라문은 계율이나 도덕에 이끌리지도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피안에 이르러
다시는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다.
2021.02.26
[늙음]
아, 짧도다 인간의 생명이여.
백 살도 못 되어 죽어버리는가.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결국은 늙어서 죽는 것을.
사람은 내것이라고 집착하는 물건 때문에 근심한다.
자기가 소유한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 것은 모두 변하고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
집착과 욕망의 집에 머무르지 말라.
사람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물건,
그것은 그 사람이 죽음으로써 잃게 된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현명하게 이 이치를 깨달아,
내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라.
이를테면, 잠이 깬 사람은
꿈 속에서 만난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듯이,
사랑하는 사람도 죽어 이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다.
권세가 있던 사람도
한 번 죽은 후에는 그 이름만이 남을 뿐이다.
내 것이라고 집착하여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걱정과 슬픔과 인색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평안을 얻은 성인들은
모든 소유를 버리고 떠난 것이다.
주) 한 때 부처님은 싸밧티 시에서 우기를 지내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가 싸께따에 도착하여 안자나바나 숲에 들렀다. 그 다음 날 부처님은 많은 수행승들과 함께 싸께따로 탁발하러 들어갔다. 한 부유한 바라문 노부부가 부처님을 보고 ‘아들아, 얼마만이냐!’하면서 울면서 다가왔다. 이 노부부는 과거 오백생의 부처님의 부모였다고 알려진다. 얼마후 그들이 죽은 소식을 싸밧티 시에서 들은 부처님은 수행승들에게 이하의 시들로 이 경을 설했다.
2021.02.27
세상에서 물러나 수행을 닦는 사람은
멀리 떨어진 곳을 즐겨 찾는다.
그가 생존의 영역 속에 자기를 집어넣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성인은 어떤 곳에도 머무르지 않고,
사랑하거나 미워하지도 않는다.
또 슬픔도 인색함도 그를 더럽히지 않는다.
마치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연꽃잎에 물방울이 묻지 않듯이,
성인은 보고 배우고 사색한
어떤 것에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사악함을 털어 버린 사람은
보고 배우고 생각한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것에 기대어 깨끗해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탐내지 않고 탐욕에서 떠나려 하지도 않는다.
2021.02.28
[파수라]
어떤 사람들은 ‘이것만이 청정하다’고 고집하면서,
다른 가르침은 청정하지 않다고 말한다.
자기가 따르고 있는 것만을 진리라 하면서,
서로 다른 진리를 고집하고 있다.
그들은 토론을 좋아하고,
토론장에 나가 서로 상대방을 어리석은 자라고 비방하며,
스승을 등에 업고서 논쟁을 벌인다.
자신이 논쟁에서 이기고자
스스로를 진리에 도달한 사람이라 하면서.
논쟁을 하는 사람은 이기고자 애를 쓴다.
그리고 패배하면
풀이 죽어 상대방의 결점을 찾다가
남에게 비난을 받고 화를 낸다.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그대는 패배했다. 논파당했다’라고 하면,
논쟁에 패배한 자는 슬피 울고
‘저 사람이 나를 이겼노라’며 비탄에 잠긴다.
주) 세존께서 싸밧티 시에 계실 때였다. 빠쑤라라는 논쟁의 일인자가 있었다. 그런 빠쑤라가 싸리뿟따와 논쟁에서 패하고 싸리뿟따야말로 대논사라고 인정했다. 그는 싸리뿟따에게 출가하여 논쟁술을 배우려 제따바나 숲으로 들어갔다가, 랄루다인이라는 수행승을 논쟁에서 이기고 기고만장하여 ’고따마와 논쟁을 해보자!’고 생각하고 세존을 찾아간가. 그런데 막상 세존을 만나자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세존은 이하의 시로서 그를 가르쳤다.
2021.03.01
이러한 논쟁이 수행자들 사이에 일어나면,
이들 가운데에는 이기는 사람이 있고 지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논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논쟁에서 이겨도 잠시 칭찬을 받는 것 이외에
아무런 이익도 없기 때문이다.
또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고
그것으로 칭찬을 받으면
속으로 기대했던 이익을 얻어
그 때문에 기뻐 우쭐해진다.
우쭐해진다는 것은 오히려 그를 해치는 일이다.
그는 교만해지고 허세를 부리게 된다.
그러므로 논쟁을 해서는 안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도 논쟁으로 깨끗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2021.03.02
이를테면, 국왕의 병사가
적의 병사를 보고 달려가는 것과 같다.
병사여, 그 적이 있는 곳으로 가라.
그러나 우리가 싸워야 하는 적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만의 철학적 견해를 가지고 논쟁하며
‘이것만이 진리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대는 그들에게 말하라.
‘논쟁이 일어나도
그대를 상대해 줄 사람은 여기는 없다’고
또 번뇌의 군대를 물리치고,
바른 견해가
모든 편견과 부딪히지 않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대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파수라여,
오랫동안 ‘으뜸가는 것’이었다 해서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대는 ‘나야말로 승리를 거두리라’ 생각하며,
마음속에 여러 가지 편견을 가지고
사악함을 물리친 사람과 같이 걸어가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
2021.03.03
[마간디야]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예전에 도를 닦을 때에
집착과 혐오와 탐욕이라는 세 마녀를 보고도
그녀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 여자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오줌 똥으로 가득 찬 그녀들에게
나는 발을 대기조차 싫었다.”
마간디야가 말했다.
“만약 당신이 여러 왕들이 원했던
여자나 보물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어떠한 견해, 어떠한 계율이나 도덕, 생활법,
그리고 어떠한 생존 상태로 태어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마간디야여, ‘나는 이런 것을 말한다’고
정해 놓은 것이 없다.
모든 사물에 대한 집착을 분명히 알고,
모든 견해에는 과오가 있음을 보고
어느 한 견해를 고집하는 일이 없이,
안으로 살피면서 마음의 평안을 알았노라.”
주) 꾸루 국의 바라문인 마간다야는 마간디야라는 아름다운 딸을 갖고 있었다. 많은 귀족들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으나 바라문은 그들을 탐탁하지 않게 여겼다. 어느 날 부처님의 금색광명을 보고는 부처님에게 자신의 딸을 주려고 생각했다. 마간디야의 아내는 부처님의 발자국을 보고 그 발자국의 주인은 욕망에 묶여있지 않은 분이라고 말했으나 바라문은 부처님에게 딸을 바치고자 하였다. 그때 부처님과의 대화가 시로서 성립한 것이 이 경이다.
2021.03.04
마간디야가 말했다.
“성인이시여, 당신께서는
생각하고 정해놓은 것을 고집하지 않으며
‘마음의 평안’이란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을 다른 현인들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간디야여, 견해나 학문에 의해서, 지식이나 계율,
또는 도덕에 의해서 깨끗해질 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견해와 학문과 지식이 없이도,
계율과 도덕 없이도
깨끗해질 수 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버리고 고집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덧없는 생존을 원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마음의 평안’이다.”
2021.03.05
마간디야가 말했다.
만약 견해나 학문에 의해,
지식이나 계율 또는 도덕에 의해서도
깨끗해질 수 없다 하고,
또 무견해, 무학, 무식에 의해서도,
계율과 도덕 없이도 깨끗해질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가르침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견해에 의해
깨끗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그대의 소견에 의지하여 물어보기 때문에
집착에 빠진 것이다.
그대는 이 마음의 평안에 대해서
조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는 나에게
사람을 혼란하게 만든다고 말하는 것이다.
2021.03.06
‘뛰어나다’든가 ‘동등하다’든가
혹은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는 그런 생각 때문에 흔들릴 것이다.
그러니 이 세 가지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에게는 ‘뛰어나다’든가 ‘동등하다’든가
혹은 ‘뒤떨어진다’는 생각이 없다.
그런 바라문이 무엇 때문에
‘내 말은 진실하다’고 하겠는가?
또 ‘네 말은 거짓이다‘라고 하며
누구와 논쟁하겠는가?
같다든가 같지 않다는 분별이 없어진 사람이
누구와 논쟁을 벌이겠는가?
집을 버리고 거처 없이 방랑하며
마을 사람들과 가까이 하지 않는 성인은,
온갖 욕망을 떠나
미래에 희망을 두어서는 안 되며,
또한 군중들에게 이론을 내세워
논쟁을 벌여서도 안 된다.
2021.03.07
용은 모든 편견을 떠나
세상을 두루 다니며 수행하기 때문에,
고집을 부리며 논쟁해서는 안 된다.
수련이나 연꽃이
물이나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듯이,
성인은 평안을 말하는 사람이므로 탐내지 않고,
욕망에도 세속에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베다에 통달한 사람은
견해나 사색에 있어서 교만하지 않다.
그의 본성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업에도 학문에도 이끌리지 않는다.
그는 어떤 집착하는 것에도 끌려 들어가지 않는다.
생각을 떠난 사람에게는 얽매임이 없다.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사람에게는
어리석음이 없다.
그러나 생각과 견해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남과 충돌하면서 세상을 방황한다.”
주) 용은 수행의 완성자, 즉 부처님을 말한다.
2021.03.08
[죽음이 오기 전에]
“무엇을 보고 어떤 계율을 지키는 사람을
‘평안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고타마여, 그 가장 훌륭한 사람을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스승은 대답하셨다.
“죽기 전에 집착을 떠나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는 미래에 대해서도 별로 걱정할 것이 없다.
그는 화내지 않고, 두려워 떨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으며,
주문을 외거나 경박하게 굴지 않고, 말을 삼간다.
주) 부처님이 오백 명의 아라한과 함께 까삘라밧투 시의 마하바나 숲에 머물고 있을 때에, 탐욕스러운 자들에게 설법한 경인데, 이 시는 그 도입부의 질문이다.
2021.03.09
미래를 원하지도 않고,
과거를 추억하며 우울해하지도 않는다.
감각에 닿는 모든 대상에서
멀리 떨어질 것을 생각하며,
어떤 견해에도 이끌리는 일이 없다.
탐욕에서 멀리 떠나
거짓이 없고 욕심 내지 않으며,
인색하거나 거만하지 않으며,
미움 받지 않고 두 가지 말을 하지 않는다.
쾌락에 빠지지 않고 거만하지 않으며,
부드럽고 상냥하게 말하며,
어떤 것을 무조건 믿는 일도 없고
욕심을 버리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2021.03.10
이익을 기대하거나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이익이 없을지라도 성내지 않는다.
집착 때문에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맛있는 음식을 탐내지도 않는다.
항상 침착하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남을 자기와 같다고도,
또 자기가 뛰어나거나 못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더 이상 번뇌의 불이 타오르지 않는다.
걸림이 없는 사람은 진리를 알아
걸림이 없는 것이다.
그에게는 생존을 위한 집착도,
생존을 끊어버리려는 집착도 없다.
2021.03.11
모든 욕망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평안한 사람’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에게는 더 이상 얽매임이 없고,
이미 모든 집착을 뛰어 넘었다.
그에게는 자식도 가축도 논밭도 집도 없다.
이미 얻은 것도, 아직 얻지 못한 것도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범부와 사문 또는 바라문들이 그를 비난하여
탐욕의 허물이 있다고 하겠지만,
그는 탐욕 같은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여러 가지 논쟁에도 동요되지 않는다.
2021.03.12
성인은 탐욕을 떠나 인색하지 않으며
‘나는 뛰어나다’든가 ‘나는 동등하다’든가
‘나는 뒤떨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릇된 생각에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없다.
또 무소유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그는 어떠한 사물에도 이끌리지 않는다.
그는 참으로 ‘평안한 사람’이라 할 만하다.”
2021.03.13
[투쟁]
“투쟁, 논쟁, 근심, 슬픔, 인색, 오만, 거친 말은
어디서 일어나는 것인지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투쟁, 논쟁, 근심, 슬픔, 인색, 오만, 거친 말은
사랑하고 좋아하는 데서 일어난다.
투쟁과 논쟁에는 인색이 따르고,
논쟁이 일어나면 거친 말이 나온다.”
“세상에서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은
무엇에서 일어납니까?
또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욕심은
무엇에서 일어나며,
사람이 내세에 대해서 갖는 희망과
그 성취는 무엇에서 일어납니까?”
“세상에서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과 욕심은
욕망에서 일어난다.
또 사람들이 내세에 대해 갖는 희망과 성취도
이것에서 일어난다.”
주) 부처님이 오백 명의 아라한과 함께 까삘라밧투 시의 마하바나 숲에 머물고 있을 때에, 분노가 많은 자들에게 설법한 경인데, 이 시는 그 도입부의 질문이다.
2021.03.14
“그러면 욕망은 또 무엇에서 일어납니까,
또 형이상학적인 단정은 무엇에서 일어납니까,
분노와 거짓말과 의혹과
사문이 말하는 현상은 무엇에서 일어납니까?”
“세상에서 유쾌, 불쾌라고 하는 감정에서
욕망이 일어난다.
모든 물질적 존재에 있어
생기고 소멸하는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외적인 사물에 사로잡혔다고 단정을 내린다.
분노와 거짓말과 의혹,
이런 것도 유쾌, 불쾌의
두 가지 감정이 있을 때 일어난다.
의혹이 있는 자는 지혜의 길에서 배우라.
사문은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말하는 것이다.”
2021.03.15
“유쾌, 불쾌는 무엇에서 일어납니까,
또 무엇이 없을 때 이것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생기고 소멸하는 뜻과
그 원인이 되는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유쾌, 불쾌는 접촉에서 일어난다.
접촉이 없을 때는 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생기고 소멸하는 뜻과 그 원인이 되는 감촉을
나는 너에게 말한다.”
“감촉은 무엇에서 일어납니까?
집착은 무엇에서 일어납니까?
무엇이 없을 때 집착이 없어집니까?
또 무엇이 없을 때 접촉이 없어집니까?”
“접촉은 이름과 형태에서 일어난다.
모든 집착은 요구에서 일어난다.
요구가 없을 때는 집착도 없어지며,
형태가 없을 때는 접촉도 없어진다.”
2021.03.16
“어떻게 수행하는 자에게 형태가 소멸됩니까?
소멸되는 모습을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그것을 알고자 합니다.
나는 이같이 생각했습니다.”
“바르게 생각하지도 말고 잘못 생각하지도 말며,
생각을 가지지도 말고 생각을 없애지도 말라.
이렇게 수행하는 자에게 형태가 소멸된다.
그러나 의식은 생각을 인연으로 넓어지는 것이다.”
2021.03.17
“우리가 당신께 물은 것을
당신께서는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것을 당신께 묻겠으니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서 어떤 현자들은
이 상태야말로 사람의 가장 청정한 경지라고 말합니다.
혹시 이보다 더 청정한 경지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이 세상의 어떤 현자들은
이 상태야말로 가장 청정한 경지라고 말한다.
또 그 가운데 어떤 사람은 단멸을 말하며,
정신도 육체도 남김없이 소멸하는 데에
가장 청정한 경지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생각이 깊은 성인은,
이 사람들은 ‘걸림이 없다’는 것,
여러 가지 걸림을 알고
‘현자는 덧없는 생존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해탈한 사람은 논쟁에 끼어 들지 않는다.”
2021.03.18
[문답 - 첫째]
세상 학자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자기야말로 진리에 도달한 사람이라 하면서 여러 가지 주장을 한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진리를 아는 사람이다.
이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그들은 이렇듯 다른 견해를 가지고 논쟁하며
‘저 사람은 어리석어 진리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모두 자기야말로
진리에 이른 사람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말하는데,
그들 중 누구의 말이 진실한 것일까?
주) 부처님이 오백 명의 아라한과 함께 까삘라밧투 시의 마하바나 숲에 머물고 있을 때에, 어리석은 자들에게 설법한 경인데, 이 시는 그 도입부의 질문이다.
2021.03.19
만약 남의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어리석고 저속하며 지혜가 뒤떨어진 자라면,
그들은 각자의 견해만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어리석고 지혜가 뒤떨어진 것이다.
또 만약 자기의 견해로 인해 깨끗해지고,
완전한 지혜를 가진 자, 진리를 터득한 자,
밝은 지혜를 지닌 자가 된다면,
그들의 견해는 그런 점에서 똑같이 완전하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지혜가 뒤떨어진 자는 없을 것이다.
2021.03.20
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서로 비방하는 말을 듣기만 할 뿐,
‘이것이 진실이다’고 그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견해만을 진실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어리석은 자’라고 보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진리다, 진실하다’고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거짓이다, 허황하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그들은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논쟁한다.
어째서 사문들은 똑같은 것을
똑같이 말하지 않는 것일까?
2021.03.21
진리는 하나일 뿐, 둘은 없다.
그 진리를 안 사람은 다투는 일이 없다.
그들은 각기 다른 진리를 찬양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문들은 똑 같은 것을 똑같이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 진리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어째서 여러 가지 다른 진리를 내세우는 것일까,
그들은 여러 가지 다른 진리를 남에게 들은 것일까,
아니면, 자기의 사색에 의한 것일까?
2021.03.22
세상에 여러 가지 다른 진리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원할 것으로 상상할 뿐이다.
그들은 자기만의 편견에 사로잡혀
사색하고 탐구한 나머지
‘내 말은 진리다’ ‘다른 사람의 말은 허황하다’라고
두 가지로 말한다.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견해나
학문, 계율, 서원, 사색 등 남의 말에 기대어,
자기 학설만을 고집하며
‘반대하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진리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다’라고 한다.
2021.03.23
반대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보는 동시에,
자기는 진리에 이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기는 진리에 이른 사람이라 하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한다.
그는 그릇된 생각으로 차 있고 교만에 넘쳐 있다.
자기를 완전하다고 생각하고,
최고의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견해는 자신이 볼 때
그처럼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2021.03.24
만약 남이 자기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자신도
상대방과 함께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이다.
또한 스스로를 베다에 통달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라 부를 수 있다면,
여러 사문 중에 어리석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내 학설 이외의 가르침을 말하는 사람들은
청정하지 않으며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이교도들은 흔히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견해에 빠져,
때가 끼어 있는 것이다.
2021.03.25
자기 학설만을 청정하다 하고,
남의 가르침은 청정하지 않다고 한다.
이교도의 무리들은 이와 같은 집착에 빠져
자기의 학설만을 완고히 내세운다.
자기의 학설을 완고히 내세우고 있지만,
어느 누구를 어리석은 사람이라 볼 수 있을 것인가?
남의 가르침을 어리석다거나 옳지 않다고 한다면,
그는 스스로 옹고집이 되고 말 것이다.
학설의 결정에 있어 스스로 잘 헤아리면서도
그는 다시 세상에서 논쟁을 만들게 된다.
모든 철학적 단정을 버렸다면
사람들은 고집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2021.03.26
[문답 - 둘째]
이렇게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면서
‘이것만이 진리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다만 그를 따르는 일부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뿐.
가령 칭찬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순간이어서 평안을 얻지 못한다.
논쟁의 결과는 칭찬과 비난 두 가지 뿐이다.
이것을 보고 그대들은
논쟁이 없는 절대 평화의 경지를 알아
논쟁을 하지 마라.
주) 부처님이 오백 명의 아라한과 함께 까삘라밧투 시의 마하바나 숲에 머물고 있을 때에, 사유하는 자들에게 설법한 경인데, 이 시는 그 도입부의 질문이다.
2021.03.27
대개 저속한 무리들이 갖는 이러한 세속적인 견해를
지혜로운 사람은 가까이하지 않는다.
그는 보고 듣는 일에 대해
‘이것이다’라고 단정하지 않기 때문에 걸림이 없다.
그가 무엇에 걸릴 것인가.
계율을 으뜸가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계율을 지킴으로써 청정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며
계율을 받는다.
‘이 가르침을 따르자,
그러면 청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진리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덧없는 생존에 유혹되고 있는 것이다.
2021.03.28
만약 계율이나 도덕을 깨뜨리게 되면
그는 두려워 떨 것이다.
그는 ‘이곳에만 청정이 있다’라며 그것을 바랄 것이다.
카라반에서 떨어진 상인이 카라반을 찾고,
집을 떠난 나그네가 집을 찾듯이.
모든 계율과 맹세를 버리고,
세상에서 죄가 있든 없든
모든 행위를 다 버리고,
청정하다거나 청정하지 않다고 하면서
어떤 것을 구하는 일도 없이,
그것들에 얽매이지 말고 수행하라.
물론 평안을 고집하지도 말고.
2021.03.29
하기 싫은 고행을 하고,
또는 보고 배우고 생각한 것을 가지고
목청을 높여 청정을 찬양하는 이는,
덧없는 생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원하고 구하는 이에게는 욕심이 따른다.
또 계획을 짜는 이에게는 두려움이 따른다.
이 세상에서 생도 사도 없는 사람,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원하고 구할 것인가?
2021.03.30
어떤 사람은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하는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은 ‘천박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야말로
진리에 이른 사람이라고 하는데,
누구의 말이 진실한 것일까?
그들은 자기의 가르침만을 완전하다 하고,
남의 가르침을 천박하다고 한다.
그들은 이렇게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논쟁하며,
저마다 자기의 가르침을 진리라고 말한다.
2021.03.31
만약 남이 천박하다고 비난한다고
정말 천박해진다면
모든 가르침 가운데서 뛰어난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가르침만 고집하고,
남의 가르침은 불완전하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의 길을 찬양하는 것처럼,
자기의 가르침을 존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가르침은
진실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 가르침은
모두가 청정하기 때문이다.
2021.04.01
바라문들은 남에게 이끌리지 않는다.
또한 여러 가르침에 대해서
단정을 내리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논쟁을 초월해 있으며,
남의 가르침을 가장 훌륭하다고 보지도 않는다.
‘우리는 안다, 우리는 본다,
이것은 사실이다’라는 견해에 의해
청정해질 수 있다고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비록 그가 보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바른 길에서 벗어난 채,
다른 것에 의해 청정해질 수 있다고 하는데.
2021.04.02
보는 사람은 이름과 형태를 본다.
보고 나서는 그것들이 영원하며, 즐거움을 주고,
실재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보고 싶은 사람은 많든 적든 그렇게 볼 것이다.
그러나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은
그렇게 봄으로써 청정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집착하여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견해만 존중하므로
그를 인도하기란 매우 어렵다.
자기가 믿고 있는 것만을 옳다고 하며,
그것에 의해서만 청정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와 같이 하나만을 본다.
2021.04.03
바라문은 바르게 알고
그릇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기 소견에 휩쓸리지 않고
지식에 기대지도 않는다.
그는 범속한 모든 견해를 알고 있지만
어느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거기 집착하고 있지만.
성자는 이 세상에서 모든 속박을 버리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에도
어느 한쪽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는 불안한 사람들 가운데 있으면서도
평안하고 집착이 없다.
2021.04.04
지나간 허물은 버리고
새로운 허물은 짓지 않으며,
욕심부리지 않고 논쟁에 집착하는 일도 없다.
현자는 모든 견해에서 벗어나
세상에 물들지 않으며 자책할 일도 없다.
현자는 보고 배우고 생각한
어떤 일에 대해서도 맞서지 않는다.
그는 모든 짐을 벗어 버렸다.
그는 계략을 꾸미지 않고,
쾌락에 빠지지 않으며,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2021.04.05
[빠름]
“태양의 후예이신 위대한 성인께
세속에서 멀리 떠나는 일과
평안의 경지에 대해 묻겠습니다.
수행자는 어떻게 해야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평안에 들 수 있겠습니까?”
스승은 대답하셨다.
“나는 존재한다는 의식을 모두 잘라 버리고,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집착까지도 눌러 버리도록
항상 열심히 배우라.
안으로든 밖으로든,
진리를 알기 위해 노력하라.
그렇다고 마음이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
진리에 도달한 사람은
그것을 평안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로 말미암아
‘나는 뛰어나다’든가 ‘나는 뒤떨어진다’
또는 ‘나는 동등하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러 가지 질문을 받더라도
자기가 뛰어나다고 망령되이 생각하지 말라.
주) 부처님이 오백 명의 아라한과 함께 까삘라밧투 시의 마하바나 숲에 머물고 있을 때에, 믿음이 있는 자들에게 설법한 경인데, 이 시는 그 도입부의 질문이다.
2021.04.06
수행자는 마음이 평안해야 한다.
밖에서 고요함을 찾지 말라.
안으로 평안하게 된 사람은 고집할 것이 없다.
하물며 버릴 것이 있으랴.
바다 깊은 곳에는 파도가 일지 않고 잔잔하듯이,
고요히 멎어 움직이지 말라.
수행자는 어떤 욕심도 내서는 안 된다.”
2021.04.07
“눈을 뜨신 분께서는
직접 체험하신 위험과 재난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바른길을 일러주십시오.
계율이나 정신을 안정시키는 방법도
함께 말씀해 주십시오.”
“눈으로 보는 것을 탐내지 말라.
저속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말라.
맛에 빠져 들지 말라.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내것이라고 고집하지 말라.
고통을 겪을 때도
수행자는 결코 비탄에 빠져서는 안 된다.
생존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무서운 것을 만났을 때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2021.04.08
음식이나 옷을 얻더라도
너무 많아서는 안 된다.
또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다고 해서
걱정해서도 안 된다.
마음을 안정시켜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
후회하지 말라.
게으르지 말라.
그리고 수행자는 한가하고 고요한
앉을 자리와 누울 곳에서 살아야 한다.
잠을 많이 자서는 안 된다.
부지런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게으름과 수다와 이성의 사귐과 겉치레를 버리라.
내 제자는 꿈을 해몽하거나
관상을 보거나 점을 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임신술이나 의술을 행해서도 안 된다.
2021.04.09
수행자는 비난을 받더라도 걱정해서는 안 된다.
칭찬을 받더라도 우쭐거려서는 안 된다.
탐욕과 인색과 성냄과 욕설을 멀리해야 한다.
수행자는 장사를 해서는 안 된다.
결코 남을 비방해서는 안 되고
마을 사람들과 가까이 사귀어서도 안 된다.
이익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서는 안 된다.
또 수행자는 거만해서는 안 된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말을 꾸며서도 안 된다.
거만하거나 불화를 가져올 말을 해서도 안 된다.
거짓말을 피하라.
남을 속이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생활에 대해서나 지혜에 대해서,
혹은 계율이나 도덕에 대해서
자기가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2021.04.10
출가 수행자는 말많은 세속인들한테
욕을 먹거나 불쾌한 말을 듣더라도
거친 말로 대꾸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수행자는 적대적인 대답을 하지 않는다.
수행자는 이 이치를 알아,
깊이 생각하고 늘 조심해서 배우라.
모든 번뇌가 소멸된 상태가 ‘평안’임을 알고,
고타마의 가르침을 게을리하지 말라.
그는 스스로 이기거나 남에게 지는 일이 없다.
남에게서 전해 들은 것이 아니고
스스로 깨달은 진리를 보았다.
그러므로 스승의 가르침에 게으르지 말고,
항상 예배하고 따라 배우라.”
이와 같이 스승은 말씀하셨다.
2021.04.11
[무기를 드는 일]
서로 죽이려고 싸우는 사람들을 보라.
무기를 드는 데서 두려움이 생긴다.
내가 어떻게 해서 그것을 멀리했는지,
멀리한 일에 대해서 말하리라.
물이 말라 가는 개울의 물고기처럼
두려워 떨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또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두려워졌다.
주) 싸끼야국과 꼴리야국은 로히니라는 작은 강을 따라 댐을 막아서 양국이 같이 관개용수로 이용하고 있었다. 어느해 가뭄이 들어 양국의 주민들이 서로 물을 사용하고자 분쟁이 일어났다. 부처님은 그들 양 쪽의 씨족들이 같은 부족에서 유래한 같은 종족임을 설득시키고, 물 때문에 서로 살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말씀하셨다.
2021.04.12
이 세상 어느 곳도 견고하지는 않다.
어느 곳이나 모두 흔들리고 있다.
나는 내가 의지해야 할 곳을 찾았지만,
이미 죽음과 고통에 사로잡히지 않은 곳은 없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이
결국 죽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불안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마음속에 차마 볼 수 없는
번뇌의 화살이 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
이 화살이 박힌 자는 사방을 헤맨다.
이 화살을 뽑아 버리면
헤매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2021.04.13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학문을 배운다.
그러나 그 여러 가지 속박의 굴레에 빠져서는 안 된다.
모든 욕망을 완전히 알고 나서 평안을 배우라.
성자는 성실해야 한다.
오만하지 않고,
더러운 탐욕과 인색을 초월해야 한다.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잠과 권태와 우울을 이겨내야 한다.
게을러서는 안 된다.
교만해서도 안 된다.
2021.04.14
거짓말을 피하라.
아름다운 겉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또 교만한 마음을 잘 알라.
포악하지 말라.
낡은 것을 좋아하지 말라.
새로운 것에 매혹당하지도 말라.
사라져 가는 것을 슬퍼하지 말라.
잡아 끄는 것에 붙잡히지 말라.
2021.04.15
나는 잡아 끄는 것을 탐욕, 거센 흐름,
빨아들이는 욕망이라고 부르며,
또는 계략, 넘기 힘든 욕망의 진흙탕이라고도 한다.
성자와 바라문은 진실에서 떠나지 않고,
확실한 언덕 위에 서 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평안에 이른 사람’이라 불린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고
베다에 통달한 사람이다.
그는 진리를 알아 걸림이 없다.
그는 세상에서 바르게 행동하고,
이 세상에서 어떤 것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모든 욕망을 초월하고,
극복하기 어려운 집착을 넘어선 사람은
거센 흐름에 떠내려가지도 않고
얽매이지도 않는다.
걱정하지 않고
누군가를 좋아해 애태우지도 않는다.
2021.04.16
과거에 있었던 것(번뇌)을 지워 버리라.
미래에는 아무것도 없게 하라.
현재에도 아무 일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평안해지리라.
이름과 형태에 대해서
내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
또는 무엇인가 없다고 해서 근심하지 않는 사람,
그는 참으로 늙지 않는다.
2021.04.17
‘이것이 내것이다’
또는 ‘이것은 남의 것이다’ 하는 생각이 없는 사람,
그는 내것이라는 관념이 없음으로,
내게 없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다.
시비하지 않고, 탐내지 않으며,
마음이 흔들려 괴로워하지 않고,
만물에 대해 평등하며,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에 대해 묻는 이가 있거든,
나는 그의 아름다운 점을 이렇게 말하리라.
2021.04.18
지혜가 있는 사람은
마음이 흔들려 괴로워하지 않고,
그에게는 어떠한 거짓도 있을 수 없다.
그는 꾸밈에서 벗어나
가는 곳마다 평안을 본다.
성자는 자기가 대등한 사람들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못난이들 속에 있다거나
잘난 사람들 속에 있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는 평안에 들어가 인색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가지거나 버리지 않는다.
10-4차 백일기도 독송경전은 3차에 이어서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Sutta Nipāta)입니다. 이 경은 역사적인 인물인 불타 석가모니와 초기 불교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우리가 독송할 <숫타니파아타>는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스님의 번역본으로, <맑고 향기롭게>의 협조로 함께 독송하게 되었습니다. <맑고 향기롭게>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6. 정토행자의 서원
지금 우리 인류는 인간성 상실 · 공동체 붕괴 · 자연환경 파괴라는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 속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첫째, 연기법을 우리의 세계관으로 삼는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존재의 상호 연관성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네가 죽으면 나도 죽고 네가 살면 나도 산다.
네가 불행하면 나도 불행하고,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는 연기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함께 살고 함께 행복해지는 이 길을 추구한다.
여러가지 꽃들이 모여 하나의 화단을 이루듯이
각자의 다양한 개성이 모여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하여
시기와 질투를 뛰어넘어 사랑을,
대립과 경쟁을 뛰어넘어 화합을,
투쟁과 전쟁을 뛰어넘어 평화를 이루는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고자 한다.
둘째, 부처님과 보살을 우리 삶의 모범으로 삼는다.
평생을 가사 한 벌과 발우 한 개로 걸식하며 살아가신
부처님의 삶을 본받아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자며,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살아가는 구도자의 자세를 갖는다.
나아가 중생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스스로 사바세계와 지옥 속으로 뛰어들어
중생을 구제하시는 대비 관세음보살님과
대원 지장보살님의 원력을 본받아
일체중생을 구원하는 대승보살이 되고자 한다.
셋째, 무아(無我) · 무소유(無所有) · 무아집(無我執)을 수행의 지표로 삼는다.
정토세계를 이룩하기 위하여
나를 버리고, 내 것을 버리고, 내 고집을 버리고
오직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는 보살이 되고자 한다.
그리하여 한 생각 돌이켜 사로잡힘에서 벗어나
괴로움도 없고 얽매임도 없는 대자유인(成佛)이 되고자 한다.
나아가 인류에게 불어닥친 이 위기를 극복하고
행복한 인생(맑은 마음), 평화로운 사회(좋은 벗),
아름다운 자연(깨끗한 땅)을 일구어
살기 좋은 세상 정토(淨土)를 만들고자 한다. (반배)
7. 천일결사의 목표
1)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인다.
2) 정토세상을 실현할 정토행자를 양성한다.
3) 수행, 보시, 봉사를 실천하는 정토법당을 만든다.
4) 모둠활동으로 모자이크 붓다를 실현한다.
5) 행복학교를 널리 열어 국민행복도를 높인다.
6)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한국을 실현한다.
7) 기아, 질병, 문맹퇴치를 위한 국내외 활동을 확대한다.
8)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는 쓰레기제로운동을 생활화한다.
9) 세계 전법의 기반을 마련한다.
10) 공유와 연대가 실현되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간다.
8. 보왕삼매론
1)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하셨느니라.
2)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하셨느니라.
3)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하셨느니라.
4) 수행하는데 마(魔)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하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모든 마군으로써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하셨느니라.
5)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 데 두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하셨느니라.
6)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하셨느니라.
7)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지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써 원림을 삼으라」하셨느니라.
8)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덕 베푼 것을 헌신처럼 버려라」하셨느니라.
9)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을 도웁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적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되라」하셨느니라.
10)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도웁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막히는 데서 도리어 통하는 것이요,
통함을 구하는 것이 오히려 막히는 것이니,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저 장애 가운데에서 보리도를 얻으셨느니라.
세상에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만일 먼저 역경에서 견디어 보지 못하면
장애에 부딪칠 때 능히 이겨내지 못해서
법왕의 큰 보배를 잊어버리게 되나니
역경을 통하여 부처를 이룰지로다. (반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