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의 기적, 함께해요

제1차 만일결사 회향식

2022년 12월 4일(일) 오전 9시 25분 ~ 오후 5시
대상 : 천일결사자 및 만일결사자 회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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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에게 오롯이 깨어있기

12월 온라인 주말명상

기간 : 12월 9일(금) ~ 12월 11일(일)
대상 : 만 20세 이상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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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친절한 선옥씨

친절한 나의 아상이 흔들릴 때 에 갔고 수련에서 그 아상은 여지없이 깨졌습니다. 남들과 비교하며 열등감으로 자신을 괴롭혀 왔던 김선옥 님은 이제 ‘나는 잘하고 있습니다’며 자신을 칭찬하는 보디사트바로 태어났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정토행자로 살아가는 활력의 근원이라는 김선옥 님의 수행 이야기를 전합니다. 친절한 보건교사라는 아상 동북아역사기행에서 김선옥 님.left 저는 보건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친절한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대하던 제가 그 친절때문에 힘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2017년 6월, 화장실에서 한 학생이 엄마와 통화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달래주기 위해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을 뿐인데, 전화기 너머 제 목소리는 아이를 윽박지르는 것으로 들렸나 봅니다. 상황을 오해하고 화가 난 학부모는 교감선생님을 찾아와 항의했습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학부모는 상황을 이해하기는 커녕, 오히려 교감선생님의 대응에 불만을 가지며 교육청에 민원을 넣었습니다. 민원이 해결되는 한 달 동안 저로 인해 교감선생님마저 곤란에 빠뜨린 것 같아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친절한 보건교사였던 저는 한 순간에 문제 교사가 된 듯 했습니다. 저는 제가 무얼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그러면서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잘못했다 말하는 비굴한 나와 잘못된 상황을 바로 잡지 못하는 자신감 없는 나의 모습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현실의 나와 이상의 나의 차이를 느낀 겁니다. 문득, 에 가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2022년 그룹원들과 문경수련원 연등달기 울력 나는 잘나야 한다 저는 스스로 기준을 높게 정해놓고, 이에 미치지 못하면 자신에게 실망하고 괴로워하며 힘들어했습니다. 현실의 자신과 이상의 자신이 너무나 달랐고, 이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친절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공부하기 싫어서 보건실에 온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보건실을 습관처럼 찾아오면 안된다는 잣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저의 이상적 기준으로 잣대질하며 살았고, 이상의 나는 잘나야하는데 현재의 나는 그렇지 않으니 나를 타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제 모습을 에서 알았습니다. 저는 잘나야 한다는 과대망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모습을 깨닫고 나니 자연스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잘하고 못하고가 없다는 것,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요. 이후 정토불교대학에 등록했습니다. 미신으로 알고 있던 불교에 대한 관념이 깨졌고, 신세계였습니다. 저는 공부를 하면서 부처님 법이 정말 좋았습니다. ‘일체유심조’, ‘나에게서 나와 나에게 돌아간다’는 원리가 가슴에 다가왔습니다. 인연과보와 평등사상에 매료되었습니다. 제 안에 있던 ‘위로 받고 싶은 아이’가 경전대학에 다니면서 줄어들더니, 지금은 아예 사라졌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를 칭찬하지 못했던 것은 남들과 비교하며 생긴 열등감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낭비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정토회 와서는 이런 감정 낭비를 하지 않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이 줄었습니다. 2022년 그룹원들과 문경수련원 연등달기 울력 전에는 건강 때문에 오후 9시면 잠자리에 들어야했습니다. 퇴근하고 정토회 소임을 하다 보면 오후 11시에 자고 아침 4시 반에 일어나서 천일결사 정진을 해야하니 대여섯 시간 밖에 못자는데도 전보다 에너지가 많습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경전대 학생 겸 담당을 맡은 이후 봉사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부터 환경, 통일, 복지에 관심이 많았기에 통일의병도 되었고, 봉사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정토회에 깊이 발을 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개인의 행복을 넘어서 통일, 복지, 환경활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봉사를 통해 알게 된 나 2017년 가을, 불교대학 시절부터 JTS 거리모금은 매달 빠지지 않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부끄럽고, 아는 사람 만날까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부끄러울 게 뭐 있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모금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분별심이 일었습니다. 스님 법문으로, 거리모금은 JTS를 알리는 게 목적인데, 동참하지 않는 이들에게 분별하는 것은 내가 간섭하는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분별심은 사라지고 상대방의 어떤 반응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모금활동을 하면서 제 고정관념도 보였습니다. 잘 차려입은 사람보다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이 모금함에 더 많이 기부하고, 남자도 여자 못지 않게 기부했습니다. 봉사를 통해 제 자신을 알고 배웠습니다. 지금은 일산지회 복지꼭지와 영양꾸러미 연탄봉사 꼭지를 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통일의병으로 동북아역사기행도 다녀왔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웅대한 발자취와 독립운동사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심양박물관 홍산문명전시관 유물에 대한 설명에 한글표기가 있었습니다. 황하문명보다 2천년 정도 앞선다는 홍산문명을 중국도 속으로는 우리의 선조들이 세운 문명임을 인정하는 것같아 기분 좋았습니다. 우리의 역사교과서에는 배달나라를 인정하지 않고 고조선부터 시작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 북한 땅을 가까이 바라보면서도 갈 수 없는 안타까움, 북한 난민을 돕는 분들의 경험담은 독립운동사를 듣는 것 만큼이나 감동적이고 감사했습니다. 2021년 겨울방학 영양꾸러미 포장 2021년 겨울방학 영양꾸러미 활동 평가회 나는 잘 하고 있습니다 천일결사 기도 정진은 94차부터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2018년 신년맞이 임진각 1만 배 정진 때 저는 3일간 3천배를 했습니다. 그 이후 허리와 골반에 무리가 왔고 점점 안좋아지다가 통증으로 절 할 수 없는 날도 생겼습니다. 2019년에는 아픈 날이 많아 이 치료 저 치료를 해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건강이 무척 나빠진 겁니다. 절을 해서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제 몸이 척추 측만과 후만 등 원래 많이 틀어져 있는데 바른 자세를 하다보니 통증이 온 것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3년째 장침을 맞고 있습니다. 장침 맞으며 몸이 좋아져서 절을 할 수 있습니다. 절 수행 음원이 나올 때 남들은 108배 이상을 하는데, 몸이 안좋아진 이후 60배 정도 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침 맞은지 3년 되니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 음원에 맞줘 90배 정도는 합니다. 절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35년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내년에 퇴임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작은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정토회 봉사를 할 수 있지만 내년에 큰 학교로 발령이 날 예정입니다. 하루에 100여 명의 아이들이 보건실을 찾기 때문에 정토회 봉사를 하기 힘들어집니다. 사실 정토회 봉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남편을 출근시키고 놀아보고 싶습니다. 2021년 연탄지원 활동 남편이 다정다감하지 않고 부부끼리 시간을 같이 보내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불만을 표하면 남편은 “당신이 하고 싶은 거 다 하는데 뭐가 불만이야”라고 했습니다. 그 대답도 불만이었는데, 수행을 하니 남편의 좋은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나하고 살아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불교대학 수행연습 중 나의 장점과 고쳐야할 한 가지를 가족이나 지인에게 물어보기가 있었습니다. 저의 언니가 말했습니다. 팔랑귀를 가졌다. 귀가 얇아 이 사람 저 사람 말에 너무 잘 휘둘린다”고. 그게 저 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옳고, 저 말을 들으면 저 말이 옳다 느껴지는, 줏대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명심문도 ‘내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겠습니다’로 했다가, ‘내가 문제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로 했다가, ‘나는 들에 핀 한송이 풀입니다’로 했다가 왔다 갔다 합니다. 좋게 말하면 집착하지 않고 인연 따라 달라진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지금 명심문은 ‘나는 잘하고 있습니다’ 입니다. 가끔씩 안되는 저를 보며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깨달음을 얻고도 45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정진하신 부처님을 생각하며 마음을 돌이킵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유훈을 생각하면서요. 동북아역사기행에서 글임현주 희망리포터 편집김난희

일산지회 2022.11.28. 1,599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아사달이 석가탑을 짓듯이_온라인 청년 역사학교 2

오래된 새길을 가는 청년들,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두 달여 간의 여정 끝에 막을 내린 2022년 정토회 청년 특별 지부 온라인 역사 학교. 그 뒷면에는 묵묵히 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한 역사팀이 있습니다. 청년 특별 지부 역사담당 정해준 님의 이야기 들어봅니다. 24기 백일출가, 정해준 님 아사달이 석가탑을 짓듯이 역사팀은 세 명의 봉사자로 구성되었는데 그중 저는 전 시간으로 역사 학교의 전반적인 운영을 맡았습니다. 현재 서울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저는 버스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광고를 보고 정토회와 인연 맺었습니다. KBS 홀에서 스님의 법문을 직접 들으며 당시 괴롭던 마음이 해소된 경험도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스님의 유튜브 즉문즉설 영상을 더 찾아서 보고 정토회 활동가로 참여했습니다. 이후, 더 깊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군대 가기 전 백일출가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전역 이후, 저는 배우고 싶은 마음에 평화재단에서 꾸려지던 청년팀으로 합류했습니다. 당시 평화재단에서는 청년 주력 사업으로 법륜스님과 유명 인사들이 청년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청춘콘서트와 청년역사학교, 그리고 역사 기행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그 중에 역사 관련 소임을 맡았습니다. 2017년 가을부터 시작한 저의 역사 소임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청년 역사학교 봉사자 만남의 날, 맨 뒤 왼쪽 첫 번째 정해준 님 저에게 역사 학교는 매우 보람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고되고 힘든 일이기도 했습니다. 아사달이 불국사의 석가탑을 지을 때 3년 동안 부인도 만나지 못하면서 지었다고 들었는데, 저도 그런 지향점을 가지고 했습니다. 역사 학교 영상에 자막도 넣고, 나누기 주제와 방향성에 대해서 토론도 하느라 바쁜 가운데 공동체 구성원들과 단체 울력도 자주 생겼습니다. 하지만 역사 학교 관련 업무에만 매몰되는 것보다 그렇게 여러 일에 적극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더 힘이 났습니다. 덕분에 더 넓게 보는 시야가 길러져 역사학교 업무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소수 인원으로 역사팀을 꾸려 가고 역사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2022년 역사 학교를 준비하며 3주 정도 되었을 때 ‘앞으로 6주를 더 어떻게 하지?’ 하는 막막함이 들기도 했습니다. 생생한 역사 속에 나 지금의 저는 광활했던 우리 역사를 아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또 역사 공부를 함으로써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도 처음부터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역사를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방황해도 괜찮아, 정해준 님.right 학창 시절 저는 국가대표선수가 꿈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역사, 사회, 정치에 관심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정토회를 만나고 경주 역사 기행에 참여했는데, 법륜스님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역사 공부에 흥미가 붙었습니다. 도반들의 애정으로 성장하는 공동체 생활 제가 처음 공동체 생활은 2015년 백일출가였습니다. 그 이후 군대 문제로 절 밖으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군대 가기 전까지 약간의 시간이 남았으니 문경에서 지내다 가라는 행자 반장님의 권유가 있었지만 이를 뒤로 한 채 밖으로 나왔다가 군대를 갔습니다. 전역 후 다시 문경의 문을 두드렸으나 절을 의지처로 삼는 것을 꿰뚫어 보신 법사님은 절 밖에서 독립해 살아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습니다. 그 후 절 밖의 삶에 적응하며 ‘아 이렇게 밖에서 지내도 괜찮겠구나’ 하던 시점에 유수스님에게 ‘절에 들어와서 한번 살아볼래?’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약간의 저항감이 있었지만 애초에 절에 들어와 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서울 서초 정토회관에서 생활하며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절에 들어가 살려 할 때는 의지하려는 마음이, 밖에 나가 살 때는 그곳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공동체 재입재 한 후, 서울 상근자 수련 중, 오른쪽 맨 끝 공동체에 살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저는 추운데 다른 사람은 문을 열어둔다거나, 하는 사소한 일로 부딪히게 되는데 그럴 땐 가볍게 이야기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말을 꺼내려고 하다가도 가슴이 탁 막혀서 말이 잘 안 나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 가볍게 이야기해야 가슴도 답답하지 않고 마음도 가벼워집니다. 가볍게 이야기를 못하는 건 그걸 꼭 해야한다고 붙잡고 있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가볍게 이야기 하는 게 수행과제라서 일상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합니다. 제가 가벼워지니 상대방의 이야기도 잘 들렸습니다. 도반이 준 선물 서울회관은 도심 속에 있어서 언제든지 중독적인 음식이 유혹합니다. 공동체 계율 중에 비닐에 든 빵을 먹는 것은 환경오염을 시키는 것이고, 계속 맛있는걸 사먹어도 맛에 탐닉하는 것이라 보통은 혼자서 참회하곤 합니다. 한번은 도반이 선물이라고 알려준 것이 있었습니다. 내용은 발우공양 시간에 숟가락 소리가 나게 밥을 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당황스러웠지만 이후 다시 살펴보니 진짜 그랬습니다. 그 이후로 내가 모르는 나를 알게 해준 그 도반을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모든 사람이 도반들을 애정으로 살펴주고 있단 생각이 듭니다. 또 생활속에서 법사님들이 알려주는 부분, 도반들과 맞추어 가는 노력들을 통해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청년 역사 학교 역사팀 평가회의 수행 정진하여 어느 정도 개인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역사를 공부하게 되니 사회문제에도 많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하는데 사실 국민들의 대다수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현재 우리의 시대 과제가 평화와 통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청년들이 역사 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면 일제강점기 때와는 달리 현시대의 과제가 무엇인지 깨어있게 되고 자부심도 생길 거라 믿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데도 보탬이 될 것 같습니다. 아직 기도문대로 다 되진 않지만 안되니까 꾸준히 할 뿐, 세세생생 수행 정진하며 살고 싶습니다. 글청년특별지부 기획 서포터즈 이하윤, 한상훈 편집권영숙

통일 2022.11.04. 2,519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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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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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