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앱에서

스님의 하루를 구독하세요!

가장 최신 법문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매일 아침 스님의 하루를 만나보세요.
자세히 보기

나의 거울, 나의 도반
우리 이야기가 찾아갑니다.

텔레그램에서 정토행자의 하루를 구독하세요
자세히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전생에 진 빚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가을 햇살이 화창한 날, 마당에 예쁜 화초들이 있는 한옥에서 신혜정 님을 만났습니다. 신혜정 님과 남편이 손수 만든 도심의 한옥으로 평소 행복학교로 쓰이는 곳입니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지만, 한때 미움과 원망으로 가득했던 삶을 살았다는 신혜정 님. 지금은 고즈넉한 한옥처럼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이라는 신혜정 님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전생에 진 빚일까 저는 세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부모님은 자식들을 돌볼 여유가 없으셨고, 아들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부모님의 아쉬운 마음이 제게 크게 투영되었는지, 어려운 집안 상황 속에서 저는 ‘내가 잘해서 집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막연한 책임감 속에서 자랐습니다. 평소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느낌인지 알아차리기보다는 어떤 일을 해야 주변 사람들을 기뻐하는지 살피며 살았습니다. 불대특강수련 봉사 중 .left 대학교에 진학해서 남편을 만났고, 6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습니다. 제가 번 돈으로 가난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게 그 당시 제가 가졌던 소박하지만 가장 큰 바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신혼여행 다녀온 지 3일 만에 남편은 시댁에 빚이 있다고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빚을 못 갚아 어머니가 머리채를 잡히는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1년 늦게 결혼했다 생각하자며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친정아버지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친정아버지가 빌려온 돈을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아서 시어머니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것이 시작인 줄 그때는 몰랐습니다. 빚을 갚아준 저를 예뻐하고 고맙다고 할 줄 알았는데 정반대로 남편은 자주 술을 마시거나 늦게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 저는 시골에서 교사로 근무했었는데, 월급 전액과 모은 돈을 다 시댁에 보내고 보충수업하며 번 돈으로 살았습니다. 남편과의 관계는 멀어지고 계속되는 빚 갚음에 화가 나 ‘전생에 내가 빚을 졌나? 내가 빚진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혼 1년 후 저는 괴물이 되어 있었고 2년, 3년이 지나도 빚은 계속 나왔습니다. ‘더 못 갚겠다, 이러다 내가 죽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3년에 아이를 낳고 휴직해서, 남편이 번 돈으로 시댁에 용돈만 부치고 1년 동안 살았지만, 남편과의 관계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끝없는 갈등 속에서 돈은 없고 아이도 남편도 내 맘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행복학교 송년행사 봉사하며 불안하고 불행하고 공허하다 저는 직장에서는 전교조 조합원으로 다른 사람들이 던져 준 문제에, 증거를 가지고 모양새 있게 잘 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밖에 나가서 싸우는 게 길어지면서 저는 지쳐 있었습니다. 결혼생활은 불안하고 불행했고 직장에서도 싸움닭처럼 정의를 외치는 게 너무 공허했습니다. 마음속에 분노가 쌓여있었습니다. 그때 〈깨달음의 장〉을 알게 되었고, ‘뭘까?’ ‘내가 깨달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신청해 가출하듯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남편은 틀렸고 제가 옳다 생각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길바닥에 쓰러져 있어 누군가에게 부축받고 들어오는 남편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빚 갚아준 사람을 무시하는 남편은 사기꾼이었습니다. 저에게 남편은 미워해도 되는 사람이었고 겉모습과 다른 가식적인 시부모님은 원망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깨달음의 장〉에서 완전히 깨져버렸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남편의 마음을 읽지 못했던 것이었고 모두 제 고집이었습니다.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활동가 나들이 봉사하며.right 멀미가 날 정도로 브레이크 없이 열심히 달려오기만 했던 일상을 잠깐 멈추고 수련을 다녀온 지 보름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심장병 환자의 몸으로 아이 둘을 키워주셨던 아버지를 왜 미워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미워하고 화낸 것들로부터 멈춘 계기가 되고 주변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저도 이해받고 싶었습니다. 〈나눔의 장〉에 다녀오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해서는 울면서 수업을 받았습니다. 위로받아서 울고, 괴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되면서 아주 가벼워졌습니다. 모든 문제는 제가 해결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남편의 문제는 그 자신의 문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몸을 다독이면서 ‘그래그래 잘했어. 안 미치고 살아있어서 고마워.’ 이렇게 저를 스스로 위로하면서 괴로움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수 있다 봉사하며 정진도 열심히 하고 ‘매일 잘살자’, ‘탄탄한 일상으로 나를 지켜내자’ 하며 봉사 거리가 오면 무조건 다했습니다.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사로잡혔고 내 옳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굳어 있었지만, 도반들과 부대끼며 조금씩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적과 비난, 평가에 예민한 사람인 것도 알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과 맞추는 것을 배우게 되니, 남편과 아들한테도 조금씩 맞추고 받아들였습니다. 전에는 다른 사람이 힘들어하면 ‘힘들지만 해야지’ 했었는데, 제가 3개월 휴가를 내고 입원할 정도로 아파보니 그럴 수 있겠다. 진짜 그럴 수 있겠어요. 하며 공감하는 폭이 넓어졌습니다. 통일의병활동 봉사하며 저는 제가 불행의 상징인 줄 알았는데, 저도 행복할 수 있고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화가 멈춰지고 두통도 사라지며 억울해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는데, 숨도 쉬어졌습니다. 다른 세상이 열렸습니다. 정토회에서 하는 것은 빠지지 않고 다 했습니다. 살고 싶어서 했고 할수록 내 안의 분노가 멈춰지는 게 고마웠습니다. 봉사하면서 저를 격려하고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 질투심이 원동력이 되어 봉사했지만, 갈등 속에서 깨지면서 조금씩 자유로워졌습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힘 큰아들은 노력해도 엄마한테 인정받지 못해서 상처만 받으며 컸고 중학교 3학년 때 사춘기가 왔는지 저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3년을 지켜보면서 기다리는 힘이 생겼고, 봉사로 에너지를 빼고 집에 가니까 남편도 아들을 그냥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엄마로 많이 미숙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은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우울증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더 깊어지기 전에 저에게 이야기해서 병원치료를 받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아들은 지금도 치료받으며 약을 먹고 있지만, 대학 1학년 때 〈동북아 역사기행〉 을 시작으로 〈깨달음의 장〉,〈나눔의 장〉, 〈명상수련〉을 다녀왔습니다. 지금은 정토불교대학을 다니고 있으니 저는 아들에게 가장 큰 전법을 했습니다. 행복캠프 봉사 돌아보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아버지, 남편, 아들 모두가 미워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깨닫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고 지금도 휘둘릴 때가 있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상대를 객관화시키고 나를 객관화 시키니 제 인생에서 기적과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수행과 봉사하면서 저의 에너지와 열정을 정토 세상 만드는데 잘 쓰이고 싶습니다. 지난 어려움과 극복 과정을 편안하게 내어주신 신혜정 님의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하였습니다. 한길을 같이 가고 있어 뿌듯하고 많은 에너지를 흠뻑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이재선 편집임도영

남산법당 2020.10.29. 642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그래, 시작이 반이다

국제구호단체인 JTS는 인종, 종교, 민족, 성별, 사상, 이념과 관계없이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작은 힘이나마 함께 모아 일해 가는 단체입니다. 북한사업, 인도 사업, 필리핀 사업과 국내 사업을 다양하게 하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는 청소년 모부가정, 조부모 가정, 한부모 가정, 저소득 결식아동 등 지원이 필요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찾아 그해 겨울부터는 여름, 겨울방학마다 꾸준히 결식아동 영양꾸러미 지원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JTS 홍보물 동인천법당에서는 2017년 하반기부터 복지담당인 조상혜 님과 부담당인 손미연 님이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발굴과 지원대상자의 선정, 물품의 준비과정과 각 가정에 전달되기까지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을 담아보았습니다.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의 시작 처음 시작하는 법당의 자원봉사자들은 지원 대상자의 발굴부터 승인을 받기까지 민관과의 관계나 서류에서 복잡한 절차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동구에서 태어나서 동구에서만 사는 조상혜 님은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행정복지센터의 복지팀과 연계하여 필요한 서류를 직접 작성하고 준비하는 데 큰 어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인천 동구 지역을 3개의 권역으로 나누어서 권역별로 옮기면서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자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영양꾸러미를 지원받는 분을 생각해서 대부분 일회성 지원보다는 3회 정도 지속해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다문화가정은 지원 대상자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기관에서 조사하고 발굴하게 되면 동인천법당과 연계하여 지원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합니다 2017년 하반기에 지원계획을 세우고 JTS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2018년 상반기에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13세대에는 도시가스 난방비를, 1세대는 연탄업체에 의뢰하여 연탄으로 직접 받으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영양꾸러미와 온누리 상품권을 13세대에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조상혜 님이 직장에서 퇴근 후 영양꾸러미 지원할 물품들의 목록을 들고 마트에서 하나하나 직접 구매하기도 하였습니다. 2018년 하반기부터는 JTS에서 물품을 법당으로 보내주었습니다. 법당에서 포장과 전달만 하니 아주 수월해졌다고 합니다. 2018년 하반기와 2019년 상반기에 각각 20세대, 2019년 하반기에는 21세대로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영양꾸러미는 어떻게 구성되는지 궁금하시죠? 관공서나 타 단체에서는 김치나 쌀, 참치 세트 등의 물품을 지원합니다. JTS 영양꾸러미는 햄, 참치, 반찬류, 떡볶이, 견과류, 간식 등 아이들을 위한 물품입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반응이 좋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라면에 대해 물었더니 “라면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식품이지만 끓여 먹어야 하는 불편함과 불을 이용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영양을 생각해서 지원하지 않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건강을 우선시하는 품목들로 찾다 보니 유기농 음료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각 가정에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면서 설문지를 드립니다. 작성한 설문지를 핸드폰으로 받아 추후 필요한 물품들을 선정하는 데 반영하기도 합니다. 영양꾸러미 물품에도 신경을 써야 해요 JTS에서 영양꾸러미 물품이 각 법당으로 내려옵니다. 물품을 취합해서 지원하기까지 1주일 정도 소요됩니다. 유통기간이 넉넉한 물품은 괜찮지만, 반찬류는 유통기간이 짧아 신경을 더 써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여름방학 기간에 멸치와 견과류 볶음이나 오징어 진미채 볶음을 지원 물품으로 보내올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물품들과 함께 포장해야 하므로 반찬이 상하지 않도록 포장할 때까지 냉장고에 보관해야 합니다.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고 배송 물품이 모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포장하면 안 됩니다. 반찬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배송 당일 다른 반찬으로 교체해야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법당에 모여 가볍게 마음을 나누고, 각자 맡은 일들을 척척 해나갑니다. 영양꾸러미 물품 담을 상자 준비 중 물품 목록을 가지고 빠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체크하며 전달할 상자에 쏙쏙 여럿이 함께하니 물품 전달 준비가 뚝딱 영양꾸러미 전달을 위해 사전 계획을 하고 팀별로 동선을 짭니다. 골목을 돌고 돌아 영양꾸러미를 전달하기 위해 출발 영차영차 가볍게 영양꾸러미와 함께 잠깐 담소도 나누고 환한 미소로 인사드립니다.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조상혜 님과 이야기 나누어 보았습니다. 부자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 아이 혼자서 물품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문만 열어봐도 알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이 감지되었습니다. 아이 혼자 방치된 듯한 느낌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번은 영양꾸러미를 받은 어머님이 고맙다며 아이와 직접 만든 예쁜 비누를 건네주었습니다. 사양했지만 계속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비누 선물을 받기도 그렇고 받지 않기도 그렇고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준비했다면서 극구 건네주시는 어머님의 마음을 생각해서 받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준다는 생각보다는, 제가 건강하게 봉사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활동하는 내내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돌아보지 않던 제 삶을 성찰해보고 있습니다. 제 생활이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봉사를 하면서 ‘내가 많이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온 바로 다음 날 영양꾸러미를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인도아이들이 불쌍하고 안쓰럽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해맑은 얼굴이 떠오르며 행복의 기준이 물질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풀 한포기도 나서 거름이 되는데 사람으로 태어나서 무언가는 보람된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 법륜스님의 말씀이 떠오르면서 어려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인다는 마음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어머님이 주신 각양각색의 예쁜 비누들 우리 법당도 영양꾸러미 지원사업을 참여하고 싶어요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처음 시작하는 법당의 자원봉사자들은 지원 대상자를 발굴하고 지원 승인을 받기까지 기관과의 연계나 서류의 준비 등 복잡한 절차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시작하는 송도법당의 경우 지원 대상자 발굴을 위해서 기관을 방문하여 대상자를 물색하였으나 연계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동인천법당에서 지원 대상자를 조금 더 선정한 후 송도법당이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함께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동인천법당에서는 인근 법당에서 영양꾸러미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싶은 분들이 도움을 요청할 경우 흔쾌히 돕겠다고 하였습니다. 일정을 마친 행복한 웃음 가득한 자원 봉사자들의 마음 이경준 님 봉사하러 온 도반들이 많았습니다. 일사분란하게 각자 맡은 일들을 척척해내는 것을 보고 훈훈한 마음입니다. 가정에 방문했을 때 시설이 노후 되고 벽지에 곰팡이가 핀 환경에서 자식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하는 마음에 속상했습니다. 이교옥 님 두 번째 봉사였습니다. 영양꾸러미를 받고 기뻐할 아이들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하였습니다. 영양꾸러미를 받는 아이와 부모님의 기뻐하는 모습에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법당의 도반들과 행복을 전하는 일에 함께할 수 있어서 뿌듯하고 행복했습니다. 이선정 님 작게나마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참여했습니다. 방학 때 혼자 끼니를 챙겨 먹기 어려운데 영양꾸러미 간편식으로 영양을 보충할 수 있으니 좋았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는 끼니를 거르는 아이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되고 뿌듯했습니다. 박옥금 님 처음 참여하는 봉사여서 아무생각이 없었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한 집 두 집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던 중 젊은 어머님이 ‘아이와 함께 만들었다’며 손수 만드신 비누를 건네주셨습니다. 받지 않으려고 극구 사양했지만 ‘어떻게 매 번 받기만 하느냐?’고 하시면서 다시 건네주신 비누를 어쩔 수 없이 받아오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생활이 어렵다고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누고 싶어 하는 그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며 더 많이 나누고 열심히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안현식 님 개인 약속을 뒤로하고 참여한 ‘영양꾸러미’ 자원봉사 활동. 도반들과 함께해서 값지고 보람되었으며 훈훈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어려운 가정을 눈으로 보는 순간 내 마음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을 느꼈으며 ‘일체유심조’가 떠올랐습니다. 손미연 님 영양꾸러미 지원 사업을 위해 사전에 수많은 문서들을 준비하고, 민관의 소통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마음을 내어 정성을 다하고 있는 모습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JTS의 국내사업의 일부인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는 과정을 통해 거리모금의 의미도 더욱 간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땅의 어떤 아이들도 소외되지 않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생겼습니다. 조상혜 님 JTS의 영양꾸러미 봉사 횟수가 늘어가면서 함께 늘어가는 자원봉사자들을 봅니다. 도반이 전부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함께 한 도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영양꾸러미를 받고 고마움을 겉으로 표현 못하시는 분도 있고, 감사하다며 환하게 웃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쓰일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함께 한 도반들이 모자이크 붓다가 되어 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손미연 님과 함께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결과보다는 과정의 중요함과 행복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분들 덕분에 제가 행복해졌습니다. ‘영양꾸러미’ 지원은 꾸준히 계속됩니다.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 초기에는 2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초기라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힘들었습니다. 2020년 1월에는 7명의 도반들이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물품의 포장부터 전달까지 일사분란하게 진행이 되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기사를 취재하면서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2명으로 시작된 힘들었던 상황들이 떠오릅니다. 영양이 듬뿍 담긴 영양꾸러미를 받고 좋아하시는 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부총무 소임을 새롭게 맡으신 조상혜 님의 ‘함께 한 도반들이 모자이크 붓다‘라는 말처럼, 많은 분들이 함께 해서 더욱더 많은 아이들이 영양꾸러미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영양꾸러미를 준비하고 전달하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활동가들의 밝고 행복한 모습에 흠뻑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기획.취재인연등 글안순애 편집고영훈

복지 2020.03.19. 14,422 읽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전국 강연 일정은 추후 공지 예정입니다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불교대학 과정

자세히 보기

지금 바로 시작하기
입학 신청

입학 신청 하기

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