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청춘톡톡 LIVE

2022년 5월 21일(토) 오후 2시
대상 : 2030 청년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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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차 천일결사

제9차 백일기도 입재식

2022년 5월 22일(일) 오전 9시 25분
대상 : 천일결사자 및 예비천일결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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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에게 오롯이 깨어있기

5월 온라인 명상

5월 25일(수) ~ 29일(일) 4박5일
정토회원 또는 온라인 주말명상 수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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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S 어린이날 캠페인

여기 이제 봄! 우리 다시 봄!

~ 2022년 5월 31일(화)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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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온라인 생방송

법륜스님 즉문즉설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대상 :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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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특집]

대중법사님들 이야기

1월 14일(금) ~ 5월 27일(금)
정토행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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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향음법사님 두 번째 이야기_분홍색을 좋아하는 투사

정의를 외치고 앞장서는 투사를 떠올리면 강렬한 붉은색이나 평화를 의미하는 푸른색이 떠오릅니다. 무엇이든 꽂히는 일이 생기면 사람들을 모아 의기투합하며 앞장서던 향음법사님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분홍색이랍니다. 우연히 분홍색 표지의《월간정토》를 만난 법사님은 투사같은 열정으로 정토회 북한동포 돕기 운동을 하고, 어린이 법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향음법사님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시아버지 병구완과 분홍색 정토지 남편의 미국 유학으로 온 가족이 미국에서 살던 어느 날, 시아버지에게 갑작스레 병환이 생겼습니다. 작은 아이 출산 후 산후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시아버지 병구완을 하라는 친정어머니의 부름에 작은 아이만 데리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시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서 작은 아이와 온종일 생활했습니다. 머리도 헝클어지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병실을 왔다 갔다 하는 아이가 안쓰럽고 속상했습니다. 또 사소한 것으로 시어머니와 자꾸 부딪혀서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마음이 불편하면 병원에서 후다닥 나와 집 근처 조계사에서 꾸벅꾸벅 절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습니다. 어느 날 조계사에 물건 파는 곳을 지나가다 분홍색 책자가 눈에 확 띄었습니다. 평상시에 분홍색을 좋아했는데 눈에 띈 그 책자가 바로《월간정토》 였습니다. 가격도 저렴해서 냉큼 집어 들고는 병원으로 돌아오면서 내내 읽었습니다. ‘나를 버리고 깨달음으로, 조금씩 나아지는 삶’ 홍보 문구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늘 뭔가 쫓기는 듯 조급하고, 무언가를 의무감으로 해야 한다는 옥죄는 삶을 살았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뭔가 탁 풀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게 뭐지? 이 책 참 좋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아버지 병환이 나으면 미국 가기 전에 꼭 도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문경수련원에서 명상수련 공양바라지들과 언제 돌아가실까요? 무너진 나의 허상 집에서 가까운 홍제 법당을 찾아갔습니다. 아래층에 단란주점이 있고 2층 법당 입구에는 붉은 주단이 깔려 있었습니다. 절도 아닌 것이 보기에 영 어색했습니다. 스님을 뵙기 위해 법문이 끝나길 기다렸는데 1시간 반을 기다려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면서 ‘내가 왜 이 스님을 만나러 왔지?’ 자문해 보았습니다. ‘시아버지 병구완으로 한 달 반이나 한국에서 다리가 묶여 있는데, 병이 나을 것 같지도 않고 돌아가시지도 않을 것 같은데, 이 생활이 언제쯤 끝날까요? 언제 돌아가실까요?’라고 묻고 싶었습니다. 스님이 점쟁이도 아니고 알 것 같지도 않아서 그냥 돌아왔습니다. 1996년 을 등록하고 나서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월요일에 장례를 마치고 수요일에 문경으로 바로 갔습니다. 시어머니에게는 시아버지 좋은 곳에 가시라고 기도하러 간다고 거짓말을 했고, 작은 아이는 친정에 맡겼습니다. 수련장이라고 터벅터벅 올라가 보니, 점심때여서인지 백화당 안마당에는 그릇마다 음식만 담겨있고 아무 볼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뭘 얻겠나 싶어 되돌아가려고 하니, 누군가 갈 때 가더라도 밥이나 먹고 가라 하여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밥을 먹고 나자, 바로 수련이 시작돼서 얼떨결에 수련장에 들어갔습니다. 법륜스님이 직접 진행하셨습니다. 저는 놀러 나온 사람처럼 우아한 척 많은 미사여구로 시아버님 돌아가셨다며 며느리로 가슴 아프다라고 했습니다. 스님은 나이 들어서 돌아가셨는데 그게 뭐 가슴 아플 일이냐며, 시아버지를 위해서 우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우는 것이라고 따끔하게 저의 위선을 지적해주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저는 4년 내내 투사처럼 데모하다 대학생활을 마쳤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 안에 분노가 많았습니다. 스님은 제 모습을 아셨는지 나누기 말을 준비하고 차례 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제 앞사람까지 쭉 진행하다 제 차례가 되면 건너뛰어 옆 사람을 시켰습니다. 준비하고 있는데 넘어가면 준비한 말과 마음이 와장창 깨져 버렸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저의 허상과 허세를 깨뜨렸습니다.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천일 릴레이 정진을 앞두고 백두산 정상에서 독립투사가 된 기분, 북한동포돕기 돌아가는 미국행 짐가방에 묘수법사님이 준 《월간정토》를 한가득 챙겼습니다. 차에 싣고 다니면서 못하는 영어로 정토지를 교민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한글학교 선생님과 유학생 부인들과 마음이 맞아 《월간정토》와 《금강경》을 돌려보며 공부하고 뉴욕에서 보내준 스님법문 카세트 테이프로 매주 우리 집에서 법회를 열었습니다. 법회 의식도 없이 저의 방식대로 법회를 했지만, 부부싸움 하던 부부가 싸움이 잦아들기도 하고, 불임클리닉을 다니던 도반이 아기가 생겼다고 하여 모두 신기해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재미있게 6개월 정도 법회를 진행하고 한국으로 왔습니다. 환희심이 그득할 때였습니다. 1997년 귀국하면서 스님과 인연이 있으니 어딘가 적을 두고 정토회를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홍제동에 정토회 법당이 있고 재동에 월간정토와 환경교육원이 있는 정토회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재동은 제가 사는 동네이긴 했지만, 막상 적을 두고 싶으면서도 사무실을 지나칠 땐 힐끔힐끔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빼꼼 거리는 제가 유수 스님의 눈에 띄어 홍제동 법당으로 갔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당시 모임 이름이 승만회였습니다. 승만회 회원이 되어 작은아이를 데리고 법당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북한동포돕기 서명운동을 하던 때라 회원들과 서명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였습니다. 버스에 올라가서도 서명을 받았고, 전경에게 쫓겨 다니면서 서울역에서도 서명을 받았습니다. 법당 앞에는 전경이 보초를 서기도 했습니다. 남북 관계가 경직된 상태라 서명받기가 쉽지 않아서 마치 그런 상황이 대학교 때 하던 데모의 연장 같기도 했습니다. 다들 힘들다고 했지만 저는 마치 독립투사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승만회 도반들과 같이 한 일 중 가장 보람된 일은 북한동포돕기 서명이 끝나고, 북한에 옷가지를 보내는 소임이었습니다. 모인 옷이 많아지자 재동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하니 창고를 빌려달라고 요청해 학교 창고에서 일을 진행했습니다. 영어로 된 장식이 있는 옷들은 빼고, 나머지는 깨끗하게 세탁하고 포장해서 보냈습니다. 영어가 쓰여 있어 보내지 못하고 남은 물품은 홍제 법당 앞에 좌판을 깔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끌어가며 팔았습니다. 무려 500만 원을 모아서 북한동포돕기에 성금을 보탰습니다. 지리산수련원 깨달음의장 공양바라지들과 어린이 법회, 상소문을 올리다 승만회가 홍제법당에서 활동하다가 서초법당으로 옮겨 왔습니다. 무엇이든 꽂히는 일이 생기면 사람들을 모아 의기투합했던 기질이 또 발동했습니다. 승만회 활동을 하던 도반 자녀들이 비슷한 나이다 보니 어린이 법회를 만들자고 했고 실무는 제가 맡았습니다. 어린이 법회 운영은 아이들이 목탁도 치고, 방석도 까는 등 자율적으로 했습니다. 서초 법당에 어린이 법회가 있다고 해서 왔다가 다른 절의 거창한 법회를 생각하고 온 사람들은 오합지졸로 조그만 애들이 하고 있으니 실망하고 그냥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어린이 법회를 정토회에 자리 잡게 하고 싶었습니다. 유수 스님이 어린이 법회 장소도 마련하고 투명유리창도 설치해준다고 했지만, 상황이 안 돼서 마음에 원망이 생겼습니다. 야밤에 선실을 어린이 법회장소로 빼앗는 작전을 세웠습니다. 선실에 책이란 책을 모아 가득 쌓아 놓고 ‘어린이 법회 하는 곳’이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잠수도 타고, 때론 상소문을 써서 유수 스님 책상 위에 놓고 따지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철없이 대들고 했으면, 유수 스님께서 ‘나 스님 나 스님’ 하던 모습이 떠올라 지금도 생각하면 어이가 없습니다. 결국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청소년 법회는 저녁부 활동으로 근근이 진행하고, 어린이 법회는 떡볶이 간식해주면서 일요일에 따로 진행했습니다. 작은아이는 저와 법당으로 출퇴근하면서 지하철에서 한글이며 음악, 산수 공부를 했습니다. 정토회 활동도 함께 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가 되니 “내가 학교 가면 《월간정토》를 누가 배송하나요?” 하며 걱정했습니다. 한번은 학교에서 가정조사서를 가져와서 한숨을 쉬고 있기에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가족란에 유수 오빠, 무변심 언니, 묘덕 언니를 다 적어야 하는데 칸이 없다고 난감해해서 한참 웃었습니다. 문경 수련원에 갔을 때, 제가 아랫마을을 내려다보며 나중에 저기서 살아야겠다고 하니 작은아이가 수련원 뒷산을 보면서 여기가 이렇게 넓고 좋은데, 왜 저기 좁은 데 가서 살려고 하냐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법당은 우리 작은아이를 키워준 수행터이자 학교였습니다. 시어머니 모시랴, 남편 모시랴, 힘들게 살았지만 돌아보니 ‘매일 드나들던 정토회 봉사활동 덕으로 자식들이 먼 데로 튀지 않고 다 주변에서 이렇게 있구나’ 하는 감사의 마음과 안도감이 듭니다. 빈그릇100만서명을 달성하고 환경사업부원들과 함께 인도성지순례에서 모두 다 바꿔 형제들을 보면 제 업식과 판박이입니다. 일단 좋다 하면 주변에 떠벌려서 이거 해보자는 업식이 있습니다. 일을 논리적으로 하기보다는 감각적으로 했고 극단적인 사고도 많이 했습니다. 대학교 때 처음 데모를 해서 동기들은 무서워 다 도망가는데, 저는 스크럼에 들어가 끝까지 했습니다. 선배들조차 저를 과대평가했고 제 기준에 맞추느라 힘들어하고 쫓아오느라 애를 썼습니다. 고집이 세서 조금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무조건 제 방식대로 바꿨습니다. 108배도 꾸준히 하지 못하면서 300배도 하고 500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기도를 놓치기도 하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보였는지 자제 법사께서 그냥 108배를 꾸준히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정토회에 와서 정토회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사회에서 알던 지식을 정토회에 심으려고만 했습니다. 지켜보던 유수 스님이 제일 힘들었을 것입니다. 뭐가 그렇게 바꾸고 싶은 게 많았는지 돌아봐 집니다. 대중법사님 특집기사 발행일정표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인터뷰 진행김난희 인터뷰 지원김혜경 글, 편집장준분, 박문구, 강현아 도움주신이이정선, 백금록, 박우경, 김승희, 박정임, 전은정, 장은미, 권영숙, 서지영, 김세영

[특집] 대중법사님 이야기 2022.05.20. 92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이방인이 이방인을 치료하다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안산 JTS 다문화센터 의료봉사를 올해 1월 16일부터 개시했습니다. 1년 넘게 준비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계속 연기했다가 드디어 올해 시작했습니다. 입재식을 했던 2월 6일에도 의료봉사를 했습니다. 정토행자의 하루 희망리포터이자 의료봉사자 중 한 명인 윤정환 님이 그날을 스케치했습니다. 함께 그날로 가보겠습니다. 준비하다 2022년 2월 6일 일요일 새벽 4시 50분. 좀 더 늦잠 자려고 알람까지 껐는데 아침 기도 습관이 밴 저의 몸이 태클을 걸었습니다. 자동으로 부스스 일어나서 평소보다 조금 더 여유롭게 아침 기도를 마쳤습니다. 8시 20분경 소외계층 진료팀장 한현숙 님을 만나 안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조금 늦게 출발했지만, 부드럽고 노련하게 운전 솜씨를 발휘해서 9시가 되기 전, 안산 JTS 다문화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충주지회 봉사자들이 도착해서 입재식 준비까지 마쳐놓아서 깜짝 놀라고 고마웠습니다. 입재식 입재하다 입재식이 끝나면 바로 진료를 시작하기 때문에, 먼저 진료 준비를 하고 입재식을 시작했습니다. 예전 법당에서 했던 것처럼 오랜만에 도반들과 함께 모여 새로운 곳에서 입재식을 하니 옛날 기억이 떠올라 좋았습니다. 입재식 중간 휴식 시간에, 소풍 온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저는 도시락을 싸 오지 않아서 다른 도반들의 식사를 얻어먹었습니다. 얻어 먹는 밥이었지만, 도반들 덕분에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약제실 담당, 김연희 님과 이영수 님 진료하다 입재식을 마친 후에, 진료 준비를 마무리하고 환자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20분 넘게 지나도 환자가 오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개점 휴업을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힘이 빠졌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도반들과 함께 입재하고, 도시락 먹고, 봉사 준비하는 과정이 즐겁고 감사해서 ‘환자가 없어도 괜찮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다행히 몇 명의 환자가 와서 기뻤습니다. 환자가 많지 않아 여유가 있어서 방문한 모든 환자가 양방과 한방, 두 과에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접수와 예진하는 한현숙 님 60대 재중동포 여성 환자는 간 혈종 수술 경력이 있는데 입안에 염증이 잘 생기고 감기를 달고 산다고 말했습니다. 어차피 한의사인 저도 알아야 할 내용이기에 양방진료 시 말하는 환자 병력에 제가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저에게 와서 허리와 엉치가 아프고 눈도 깔깔하다면서 여기저기 아픔을 호소하는 것을 듣고 침을 놓았습니다. 또한, 사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세 명의 아들이 모두 중국에 있고,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었는데 몸이 성한 데가 없고 수술을 받느라 돈을 많이 썼다는 넋두리를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습니다. 다음 환자는 약간 비만 상태의 60대 초반 태국 여성이었습니다. 뒤 목과 어깨가 많이 뭉치고 통증을 호소했는데, 여유가 있어서 앞으로 누운 상태뿐만 아니라 뒤로 누운 상태에서도 침을 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목 뒷부위에 피를 빼는 부항을 뜰 때, “괜찮아요?”라고 물었더니 “괜찮아요. 나 기름 많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아주 잠깐 어리둥절하다가, 살이 찌고 지방이 많다는 표현임을 알아차렸습니다. 곧바로 제가 “기름 좀 많이 빼셔야겠어요”라고 응대하니 환자가 웃었습니다. 침을 놓는 윤정환 님 깨닫다 이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40대 초반 같았는데 알고 보니 50대 초반인 또 다른 태국 여성 환자가 왔습니다. 경추 디스크 수술을 했는데도, 상시로 목과 팔까지 통증이 있음을 호소했습니다. “아, 네... 답답하시겠어요”라고 대답하면서 열심히 침을 놓고, 매주 계속 진료받으면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환자가 침을 맞고 있는 상태에서 계속 핸드폰을 만지고 들여다보길래, 침 맞을 때 움직이면 안 돼요라고 제가 말했습니다. 그 환자는 저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주며 자신의 식당에 손님이 왔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식당에 손님이 없는 사이에 침 맞으러 와서 핸드폰으로 식당 내부를 비추는 CCTV를 확인한 것입니다. 한 테이블에 손님이 서너 명이 있고 주방장 혼자서 요리하고 있는 화면을 저에게 보여줬습니다. 외국인이라서 영세적으로 영업할 것 같았는데, 첨단기계를 그렇게 잘 활용하는 모습에 저는 약간 놀랐습니다. 부항 치료를 받는 60대 태국 여성과 친분이 있어서 둘이서 한국말로 대화하다가 나중에는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신나게 대화했습니다. 무슨 얘기인지 궁금한 마음에 제가 “어느 나라 말이에요? 베트남어에요?”라고 물었더니, “태국 말이에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순간 오히려 제가 이방인이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두 개의 언어를 잘해서 어느 말을 해도 의사소통할 수 있는데, 그들이 태국어로 말할 때 저는 언어장애인이 된 듯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제가 잘났고 저보다 처지가 못한 사람들을 돕고 제가 베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저의 생각에 우월감이 깔려있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한국 내에서도 제가 이방인이 될 수 있고, 태국 여성의 식당에 가면 제가 봉사를 받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서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고, 각자의 성실한 삶 자체가 서로에게 봉사하는 것임을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한방진료와 양방진료 나누다 진료를 마치고 사용했던 물건들을 제자리에 정리한 후, 나누기를 했습니다. 먼저 입재식에 대한 나누기를 하고, 이어서 의료봉사에 대한 나누기를 했습니다. 이영수 조촐하게 모여서 진료하니 가족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았습니다. 환자들이 생각보다 조금 온 것이 아쉬웠는데, 조금 일찍 와서 홍보하고 진료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연희 얼떨결에 왔어요. 이영수 약사님이 연락하지 않았으면 오지 않았을 겁니다. 토요일까지 정토회 일정이 있어서 일요일은 쉬어야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다른 봉사자들이 많으니 빠지려고 했는데, 막상 오고 나니 정기적으로 하면 저에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마음은 너무 좋습니다. 권순녀 정토회 일은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해버리면 ’맞아, 하면 좋지‘하는 그런 게 있어요. 이런 좋은 기운이 쌓이고 전달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입재식도 하느라 바빴지만, 봉사 시작 전에 조금 더 일찍 와서 홍보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그냥 다만 한다, 이런 마음으로 했어요. 성과를 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이렇게 조촐하게 하니 또 나름대로 따뜻함이 있네요. 자주 뵙고 싶습니다. 자주 뵙고 싶습니다. 한현숙 너무 노골적인데요. 김종건 코로나 환자가 삼, 사만 명 정도 되는 것 같네요. 그래서, 오늘 환자가 그리 많지 않을 거라 예상했습니다. 병원에서도 환자가 많이 줄었어요. 오늘 몇 분 안 왔지만, 진료 잘 봤습니다. 두 달에 한 번은 봉사 올 예정입니다. 박인숙 정토회 의료인 봉사 모둠에 속해있었지만, 많이 활동하지 못했습니다. 막연히 한번 안산에 오고 싶었어요. 과연 제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직접 보니, 하려고 하면 할 게 아주 많은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홍보가 부족했던 것 같네요. 웬만한 병원 못지않게 준비했는데, 불법체류자나 금전적인 문제로 일반 병원에 가지 못하는 분들이 몰라서 못 온다는 생각에 아쉬웠습니다. 돌아가기 전에 홍보하고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윤정환 환자가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 그만 왔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느낀 점은 아픈 것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서 왔는지, 아들이 몇 명이고, 어디에 사는지 등을 대화 중에 물어보는 인간적인 접근 방식도 좋은 것 같습니다. 양방과 한방을 모두 진료하는 경우가 있는데, 환자가 여러 번 자기 병력을 얘기하는 게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병원의 협진 체계처럼 양방의사와 한의사가 동시에 한 환자를 보는 방식을 잠깐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한현숙 오늘, 봉사 첫날인 입재식임에도 불구하고 봉사 신청한 도반들에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학교 다니면서 성과가 중요한 삶을 살았는데, 저도 모르게 그런 것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느꼈어요. 봉사 신청을 많이 하지 않아도 걱정이 안 되고, 환자들이 많이 오지 않아도 ’아, 환자들이 편안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매주 올 수 있게 배려한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어제는 약간 불평했지만, 예전처럼 지갑이나 차 키를 뺏지는 않으니 정말 고마워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왔네요. ‘이렇게 한발 한발 넘어지면서도 또 일어나 나아가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의료봉사하면서 생각했던 개선점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눈 후에 북한식 송편을 간식으로 먹으면서 못다 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 도중 월광 법사님이 주변 식당이나 사원에서 남은 음식을 받아서 식사한다는 말을 듣고 ’말 그대로 정말 탁발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감동받았습니다. 끝으로 전체 청소를 하고, 귀한 하루를 보낸 감사함과 도반들의 따뜻한 마음을 가슴에 안고 각자 귀갓길에 올랐습니다. 의료봉사자 일동 글을 쓰라고 하기에 무슨 내용을 써야 하나 문의했더니, 그냥 일어나는 마음에 대해 써보라는 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1인칭 시점에서 안산 JTS 다문화센터 의료봉사 첫날을 스케치하기로 했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는 저의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표현한들 무슨 도움이 될까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의료봉사했던 날을 떠올리고 글을 쓰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고마움으로 가득 차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의료봉사를 통해 저 자신을 돌아보고 외국인들과 삶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다음 의료봉사에는 어떤 새로운 외국인들과 무엇을 나눌 수 있을지, 기대로 마음이 부풉니다. 글윤정환 희망리포터 편집성지연

복지 2022.03.04. 3,945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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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