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특집]

대중법사님들 이야기

2022년 1월 14일(금) ~ 5월 27일(금)
정토행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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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온라인 설명상

2022년 1월 29(토)~ 2월 2일(수)
대상 : 정토회원 또는 주말명상 이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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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 만일결사 제10차 천일결사

제8차 백일기도 입재식

2022년 2월 6일(일) 오전 9시30분
대상 : 천일결사자 및 예비천일결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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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생방송

법륜스님 즉문즉설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대상 :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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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기부금 영수증 발급안내

발급시작일 : 2022년 1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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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

백일출가 43기 모집

원서 마감 : 2022년 2월 23일(수)
면접 : 2022년 2월 26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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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향실법사님 첫 번째 이야기_새까매지는 마음

저를 아시는 분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일반회원들과 만날 즈음에는 홍제동 정토포교원이 있었을 때였고 1999년 서초회관이 건립되고 100일 법문이 진행될 때까지 총무 소임을 맡았습니다. 이후 법당이 활발하게 생기고 있을 무렵, 저는 중앙사무국에서 소임을 맡았고 평화재단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재단 회계를 맡고 있어서 대중과 만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1991년 4월 23일은 제가 다시 태어난 날입니다. 그 전 시기를 저는 전생이라고 칭합니다. 지나간 전생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다시 태어나기까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새까만 탄광촌, 새까매지는 마음 남편과 결혼하기 전 시댁 방문을 위해 기차를 탔습니다. 시댁에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기차뿐이었습니다. 밤기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내린 도착역은 사방이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뜬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마을을 둘러 싼 산이 온통 새까맸습니다. 시댁은 석탄을 캐는 탄광촌이었습니다. 결혼 직후, 남편은 회사에서 준 사택에서 살고 제게는 시집에서 살라 했습니다. 알콩달콩한 결혼생활을 상상했던 저는 영문도 모른 채 남편이 시키는 대로 홀로 시댁에 들어갔습니다. 앞으로의 제 생활을 예감하신 걸까요? 결혼식을 치루고 저를 시집에 데려다 주고 떠나는 친정 어머니는 집에 갈 때까지 엄청 울었다고 합니다. 제가 커온 동네와는 너무나 다른 새까만 작은 동네에 저를 혼자 두고 가기에 마음이 많이 아팠나 봅니다. 어느 곳으로 눈을 돌려도 보이는 것은 온통 새까만 산과 흐르는 물까지 새까만 탄광촌. 유일한 화장실이라고는 동네 주민 모두가 같이 쓰는 공동 화장실 하나뿐인 이곳에서 남편 없는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제 마음속에 불안이 싹트고 있던 것 같습니다. 신혼이라고 하지만 혼자 시집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임신 중일 때는 새벽 동이 트면 시어머니가 부엌문을 드르륵 여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기를 여러 번이었습니다. 시간이 됐으니 밥을 안치라는 소리였습니다. 어떤 날은 아이 젖먹이다가 깜빡 잠들어버렸는데 시어머니가 크게 화를 냈습니다. 시어머니가 외출하고 들어왔는데 며느리가 자고 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결국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고야 무마되었습니다. 석탄가루가 쉴 새 없이 날리는 곳이라 아기 기저귀는 밖에 널지 못하고 항상 방 안에서 말렸습니다. 하루에도 몇 십 장씩 나오는 기저귀에 미처 다 마르지 않은 빨래한 기저귀를 보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런 사소함들이 쌓여 제 마음에 먹구름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볼모와 같은 생활을 지내는 중에 신혼방을 차릴 돈이 없어서 신부인 저를 홀로 시댁에 들어가 살라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돈이 없던 시댁은 빚을 내어 남편을 결혼시키고 그 빚을 남편보고 갚으라 했다 합니다. 그 당시 월급이 적어 제게 생활비도 제대로 부쳐주지 못한 남편이 시댁 빚 역시 매달 갚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식구는 늘었는데 들어오는 돈이 없어 쪼들리며 살다 보니 시어머니도 나름 힘들었을 것입니다. 홍제동법당 1994년 송년법회 고운 투피스를 입고 만난 불법 특정한 종교 없이 관광지에 가면 절에 들르는 정도였던 저는 1991년 4월 정토회와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가 자기가 다니는 절에 참 좋은 강의가 있다며 같이 들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강의보다 친구와의 만남에 들뜬 저는 예쁜 투피스를 입고 약속장소인 서초동 우면산 예술의전당 뒤편 대성사 언덕길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길목에서 ‘최석호 법사 반야심경 강좌’라는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반야심경의 뜻도 모른 채 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가슴에 큰 응어리가 툭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본래 이것이다 할 만한 것이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으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할 뿐이다.’ 반야심경의 조견오온개공을 설명하셨는데 ‘내가 헛것을 붙들고 있었구나’ 그동안 맞다, 틀리다, 옳다, 그르다의 사로잡힘으로 상을 붙들고 살아왔다는 것이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기둥이라 하고 귀를 만지고 부채라 한다. 누구나 눈만 뜨면 전체가 훤히 보이니 설명할 필요가 없다.” 법문이 끝난 후 스님의 발원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바로 이거구나. 아 나는 지금 죽어도 괜찮아.’라고 할 만큼 법문을 듣고 난 후 모든 분별이 끊어져 새털처럼 가벼웠습니다. 그때의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그러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두부 장사가 흔드는 종소리도 풍경소리로 들리고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는 염불소리로 들렸습니다. 다음 일주일 후에 있을 법문이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법문을 빨리 듣고 싶은 마음에 하루하루를 시간으로 쪼개서 재었습니다. ‘48시간 남았구나, 이제 15시간 남았구나’ 하면서 법문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 당시 스님의 법문을 들으러 오는 신도들이 너무 많아 우면산 대성사 법당 마당에 멍석을 깔고 법문을 들었습니다. 친구와 아침 일찍 도착해 멍석을 깔아두고, 법문이 끝나면 멍석을 전부 개어서 넣어두고 오곤 했습니다. 이런 봉사로 법문에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홍제동 법당시절 성지순례 그렇게 살고 있는데요 첫날 법문을 듣고 돌아와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든 전하고 싶어, 그날 받은 반야심경 자료집 뒷장에 있는 주소로 스님께 감사의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다음 법회에 참석하였더니 스님이 제 이름을 불러 기도문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기도문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저는 주문처럼 외우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남편에게는 푹 숙이고 살겠습니다. 엎드려 살겠습니다. 지시하지도 않겠습니다. 화를 내지 않겠습니다. 108배 기도 지금까지 지갑에 간직하고 있는 스님의 메모.left 메모지를 받아든 저는 “그렇게 살고 있는데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저를 바라보는 스님의 눈빛이 싸늘해져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이 때 받은 첫 기도문은 아직까지도 제 지갑에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그냥 해보자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는 중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호흡이 힘들 정도로 흐느껴 울었습니다. 스님 앞에서 그렇게 살고 있다고 했지만 겉으로만 그랬을 뿐, 속으로 남편을 다 이겨먹고 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제 깊은 곳에는 작은 부인의 자식인 남편을 무시하는 마음이 가득이었습니다. 결혼할 당시 남편은 저에게 호적정리가 잘못되었을 뿐 자기 어머니가 본부인이라 했습니다. 6.25전 후라 행정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아버지 호적에 자식들만 올라가 있다는 겁니다. 남편 말만 철석같이 믿고 있던 저는 시어머니의 먼 친척으로부터 다른 사실을 들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본 부인이 아니라 호적에 올라갈 수 없는 인연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미 유부남이었던 아버지를 만나 사형제를 낳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남편이 말해준 것과 다름을 물었더니 오히려 남편은 그래서 무얼 어쩌라는 거냐며 쏘아 붙였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속으로 무시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겉으로는 ‘예, 예.’하고 들어도 흘려듣고 행동으로 가르치려 들었습니다. 향실법사 님과의 인터뷰 특집기사 발행일정표 다음 주 금요일에 향실법사 님의 두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인터뷰 진행권영숙 인터뷰 지원김혜경 속기 및 녹취강현아, 박문구, 백금록, 서지영, 이정선, 임명자, 장은미 편집김난희 도움주신이전은정

[특집] 대중법사님 이야기 2022.01.14. 3,248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손에서 손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_화성지회 연탄 봉사

2021년 11월 27일 토요일 오후 1시, 화성지회 봉사자 31명이 이웃에 연탄을 전달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전날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강했는데 봉사 당일의 날씨는 반짝 푸근했고 하늘은 마지막 가을 기운을 퍼트리듯 높고 맑았습니다. 여기서 저기로, 손에서 손으로, 연탄을 옮겨 온기를 전해주며 ‘잘 산다는 것은 결국 잘 쓰인다’는 것임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화성지회 복지담당자와 나눈 이야기와 그날의 현장 사진 함께 나눕니다. 맑은 마음으로 따뜻한 마음을 전한 화성지회 봉사자들 복지 봉사자로 지원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화성지회 복지 담당자 이재향 님 이재향 사실 세세한 계기나 원대한 포부가 있진 않았어요. 다만 평소 사회문제나 그 실천 활동에 관심이 있어서 이렇게 복지 담당자로 인연 닿은 것 같습니다. 광효光曉 저는 경전반에서 공부하던 중 사회활동 담당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활동을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되어 수락했습니다. 맡은 후, 2020년 여름과 겨울방학 그리고 2021년 여름방학에 ‘결식아동 영양꾸러미 전달 사업’을 진행하였고, 2020년 12월 시범적으로 시행된 ‘연탄 지원 사업’에 이어, 2021년 가을 ‘이불 전달 사업’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두 번째로 연탄 자원 사업을 다시 맡아 진행했습니다. 연탄 지원 가정을 선별하는 과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일과 수행의 통일, 시작 전 마음 나누기로 시작합니다 이 지역 주민센터나 복지관 등의 기관에서 추천을 받기도 하고, 각 지역의 이장님, 통장님, 사회복지사와 연탄배달업체 사장님 등 개인을 통해 추천 받기도 합니다. 우리 화성지회는 감사하게도 광효님께서 이 작업을 다 해주셨어요. 올해는 작년에 지원하였던 10가구를 대상으로 전화 조사를 먼저 실시하였고, 기름보일러로 바꾼 2가구를 제외하고 8가구에 현장조사를 나갔습니다. 작년에는 임시 사업이라 기초수급자도 대상에 포함되었는데 올해는 좀 더 많은 복지 사각지대 가정을 발굴하여 돕고자, 정부에서 지원을 받는 기초수급자는 제외되었습니다. JTS의 지원 대상과 목적이 ‘기초수급자를 제외한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회 취약계층을 발굴하여 돕는다’이기 때문입니다. 지원 가정 선별은 어떻게 되고, 과정의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고무장갑 끼고 일사분란하게 한 줄로 쭈욱 늘어서서 손에서 손으로 연탄을 전달합니다. 광 네 지원 받는 대상자의 연령이나 형편 등을 고려하여 최대한 마음을 다치지 않고 편안하게 자격조건을 알아낼 수 있는 대화의 요령이 필요합니다. 이 맞습니다. 아무래도 질문이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이기에 조심스러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월 소득과 월 지출, 주거 형태, 생활실태 등을 인터뷰하기에 마음 상하는 대상자도 계시고, 미안함과 민망함을 표현하는 대상자도 있습니다. 저희는 최대한 담담하게 진행하지만, 한편으로는 괜스레 죄송하고 어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지원 가정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연탄이 창고 가득 차니 마음이 든든합니다.right 광 제가 사회활동 담당을 처음 맡았을 때부터 지원해오던 한 가정은 외국인 여성과의 재혼가정이었습니다. 부부가 합심하여 타인 소유 비닐하우스와 관리용 주택을 임차해서 묘목을 재배하고 판매하였고 소득이 점차 늘었습니다. 이번 여름방학 때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러 갔는 데, 인근에 논밭도 사고 이제 본인들은 살 만하니 다른 어려운 가정에 영양꾸러미를 전달해 달라고 해 기쁘기도 하고 감동도 받았습니다. 이 이번에 현장 조사를 간 한 가정은 집의 외관이 깨끗하고 마당에 정원도 잘 가꾸어져 있어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가정이 아닌 듯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20년 전 남편이 하반신마비로 거동이 불편해졌고, 아내 분은 그런 남편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돌봐야 해서 멀리 나가거나 장시간 집을 비우지 못하고 늘 함께 계셨습니다. 그래서 집을 깨끗이 치우고 마당에 국화를 예쁘게 가꾸는 것으로 그 긴 시간의 간병을 이겨내고 있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셨어요. 저는 순간 뒷통수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금강경을 배우며 상을 짓지 말라는 가르침을 들어왔는데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제가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자원사업을 이어오면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나 특별히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요? 뒷정리도 깔끔하게 마무리 합니다.left 광 올해부터는 영양꾸러미의 물품을 지회에서 직접 기획하고 구매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본부에서 구매하여 물품을 보내주면 꾸러미에 담아 전달 봉사만 했는데, 대상자 발굴부터 물품을 구매하고 전달하는 봉사까지 직접 하라고 하니 참 막막하고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지회장과 복지 담당자, 각 꼭지들이 합심하여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비교 검토하고 더 좋은 물품을 찾아 헤맸습니다. 덕분에 좋은 물품을 더 싼 가격으로 구매하여 푸짐한 꾸러미를 전달할 수 있어서 보람되고 감동이었습니다. 기부하는 봉사와 직접 발로 뛰는 봉사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연탄 내려놓은 곳과 먼집도, 좁은 골목길의 집도 거기에 맞게 문제 없이 척척 이 기부하는 봉사든 발로 직접 뛰는 봉사든 개인의 상황에 맞게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현장에서 뛰는 봉사를 하게 되면 이웃들과 정서적 온기를 주고받을 수 있고, 함께하는 도반들을 통해 모자이크 붓다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광  기부가 직접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작은 편이라면, 봉사는 내 마음과 몸과 시간을 내기 때문에 해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의미와 감동이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연탄 지원을 받는 가정에게 이 연탄이 어떤 의미이길 바라나요? “나는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입니다” 명심문 삼창과 서로를 향한 감사의 박수로 마무리 합니다.right 광 정말 춥고 배고픈 사람에게는 연탄 한 장, 라면 한 봉지가 절실합니다. 이 연탄이 그분들의 추운 삶을 따뜻하게 하는 온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가구마다 다르겠지만, 저희가 지원한 세대는 한 해 1,500장1,800장 정도의 연탄을 난방으로 쓰신다고 해요. 우리가 지원한 이 연탄은 한 해 연탄 소비량의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따뜻하게 겨울을 나시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이 연탄이 그분들께 정서적인 나눔도 되었으면 합니다. 봉사를 통해 자신의 변화된 점이나 성장한 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이 직접 몸으로 부딪쳐 보기 전에는 잘 몰랐던 것 같아요. 해보니 하나의 일에도 많은 분들의 도움과 노력이 필요하구나 느끼게 됩니다. 준비를 하는 데에도 이전에 하셨던 분들의 자료와 경험담들이 좋은 이정표가 되어주었고요. 옆에서 이끌어주고 밀어주고 지지해주고 함께하고 응원해주는 도반들의 힘을 많이 느꼈던 시간이었어요. 봉사를 망설이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남도 좋고 나도 좋은 봉사가 되었는지 세세히 살펴 보는 봉사 후 평가회의 이 봉사라 이름지어져 있지만 해보니 결국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게 체감되었습니다. 하기 전엔 이럴까 저럴까 많은 생각이 드는데 정작 해보면 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 내 마음이 갈팡질팡 어려웠던 거구나 알게 되고요. 잘 쓰였다는 보람과 가슴 따뜻해지는 도반애 그리고 이웃 사랑을 덤으로 느끼실 수 있습니다. 함께해요 광 그냥 한번 해보면 나를 위한 일이구나 알게 됩니다. 다음에도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연탄 봉사를 위해 모인 우리의 집합 장소는 안성의 미리내성지였습니다. 미리내는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천주 교우들 집에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호롱불빛이, 마치 밤하늘의 별이 성군을 이룬 은하수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옛지명이었습니다. 아무리 깊은 골짜기로 숨어들어도 새어나오던 그 불빛이 미리내 같다는 의미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날 연탄을 옮기며 우리 봉사자들에게서 새어나오던 온기, 새어나오던 땀, 새어나오던 미소가 미리내 별들처럼 빛났었다면 좀 과장일까요? 함께했던 31명의 봉사자들, 그 한 분 한 분 빛나던 모자이크 붓다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글허인영 편집서지영

복지 2021.12.22. 2,044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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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