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천일결사

제3차 백일기도 입재식

2023년 10월 8일 (일) 오전 9시 30분
온라인 생방송으로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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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사회문화회관

법륜 스님 즉문즉설

2023년 10월 6일(금) 저녁 7시30분
온라인 유튜브 동시 생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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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청춘톡톡 LIVE

2023년 10월 14일(토) 오후 2시
대상 : 2030 청년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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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_나타나는 정반장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은 대전충청지부 천안지회 정반장 정보성 님입니다. 어느 영화에 나왔던 홍반장처럼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꼭 나타나는 분이라서 정반장이라는 별명을 붙여보았습니다. 남의 일 봐주느라 제 실속은 없어 보였던 홍반장의 삶이 얼마나 잘 사는 것이었는지 때마침 만난 주인공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정반장, 정보성 님의 솔직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어보겠습니다. 누군가 말하길 정토회 행사에 가면 어디든 항상 제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 뭐할 사람이 없네?”라고 하면 제가 배워서라도 하려고 합니다. 우리 아버지도 항상 남에게 손해 안 끼치고, 남의 일도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는데 제가 닮았습니다. 귀하게 자랐습니다 어머니가 45세에 저를 낳았습니다. 병약했던 제가 초등학교에서 우등상을 타니까 부모님이 기대를 품었습니다. 부여에서 중학교까지 다니고 어머니랑 대전으로 나왔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가난했지만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귀하게 자랐습니다. 그래서 철이 없었습니다. 너무 받기만 하고 살아서, 감사할 줄도 몰랐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밤이면 이불에 누워 몰래 울었습니다. 잠들면서 울고, 꿈꾸다 깨서 울었습니다. 꿈에서는 어머니가 살아있었습니다.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것 같아,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의지처가 사라진 두려움도 컸습니다. 의지했던 그 마음만큼 괴로움도 오래 갔습니다. ‘아버지’라는 숙제 통일의병대회에 참석한 정보성 님.left 예전에는 개인 사찰이 많았습니다. 계룡산에도 조그만 절이 많았는데 아버지도 산 중턱에다 암자를 하나 세웠습니다. 아버지는 혼자 머리카락을 깎고, 목탁 치고 절하며 기도했습니다. 경을 읽다가도 “학교 가면 뭐 하냐. 학교에서 가르치는 거 소용없다.”라고 세상을 욕했습니다. 어릴 때 친척들에게 무시당하고 핍박받았던 얘기를 할 때면 감정이 복받쳐 세상을 욕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또 저러네 자기도 똑같으면서 세상 탓을 하네’라며 속으로만 불만을 쌓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욕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고는 저에게 “죄짓지 마라, 살생하지 마라, 남한테 잘해라.” 이런 얘기를 하는데, ‘자기는 맨날 엄마한테 욕하면서 왜 저러지?’ 하는 반감이 쌓였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를 괴롭히는 아버지를 많이 미워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도 그 미움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크게 슬프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제 인생에 답이 안 보였습니다. 전공도 재미없고 공부도 하기 싫었습니다. 한번은 강의실에서 동기들과 후배들을 데리고 밤새 술을 마셨습니다. 조교가 쫓아와서 “너희들 밤늦게 강의실에서 술 먹고 떠들면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가 조교에게 욕하면서 교탁을 던지려고 했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술에 취해 긴장이 풀어지니까 안에 쌓였던 불만이 밖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에 대해 가졌던 불만과 반항심이 성인이 되어서는 세상에 대한 불만과 반항심으로 바뀌었습니다. 드디어 만난 정토회 첫 직장을 서울에 잡았는데 서울살이가 힘들었습니다. 서른 한 살에 회사를 그만뒀는데 아버지는 뭐라고 안 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면서 마음공부 하고 싶다니까 한번 해보라며 지지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땅도 없고, 농사 경험도 없어 시골에서 할 수 있는 경찰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스님을 만나기 전까지 제 마음은 뿌리 내리지 못해 붕 떠 있고, 비구름 낀 하늘처럼 어둡고 답답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직장 동료의 소개로 처음 즉문즉설을 들었을 때, 구름이 걷히자 드러난 파란 하늘처럼 환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진짜 불교는 이런 거구나’ 용하다는 스님들만 보다가 법을 쉽게 설명해 주는 스님을 만나니 오히려 충격이었습니다. 때마침 홍성에 법당이 열려, 저는 아주 자연스럽게 2014년 가을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경전대학에 입학하면서 정토불교대학 진행을 맡았습니다. 문 연 지 얼마 안 된 작은 법당이라 봉사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잘 몰랐던 만큼 정성을 쏟았기 때문인지 진행자 하던 그때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학생일 때는 만날 뒤에서 졸았습니다. 진행자가 되어서는 앞에서 졸 수 없어 정신을 바짝 차리니, 법문이 잘 들렸습니다. 정토불교대학 홍보중인 정보성 님.right 당시 정토불교대학, 경전대학은 각각 1년 과정이었습니다. 봉사할 사람이 없어서 그 두 개를 동시에 맡아 진행한 적도 있습니다. 어떤 날은 학생이 아무도 없어서 혼자 수업하기도 하고, 추운 겨울밤에 혼자 법당을 지킬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운동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해서 약속과 술자리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에 서너 번씩 법당에 가야 하니까 사생활이 저절로 정리되었고, 제 삶도 함께 정돈되었습니다. 어느새 정토회가 1순위가 됐습니다. 직장에서 부서를 옮길 때도 근무가 편한지 승진에 도움이 되는지 보다, 되도록 정토회 일정에 맞출 수 있는지를 따져서 이동했습니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에 다녀오고서야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많이 털어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 얼굴도 몰랐습니다. 할머니는 아버지를 낳자마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형제가 없는 진짜 독자였습니다. 사촌들은 있었지만, 아버지를 무시하고 함부로 했다고 저에게 자주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처음부터 속세와 어울릴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인터뷰 중인 정보성 님 ‘아버지도 이해받고 인정받고 싶었을 텐데, 어머니는 들로 산으로 다니며 자식들 먹여 살리고 키우느라 아버지 얘기를 안 들어줬구나.’ 아버지가 겪었을 외로움이 느껴졌습니다. ‘세상에 의지할 곳이 없어 종교에 의지했구나. 그럴 수 있었겠다. 그렇게밖에 못 사셨겠다.’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서 이해하니 미움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과 괴로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부모님에게 감사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생각에서 나오던 감사가 어느 날부터 가슴에서 나왔습니다. 오해가 이해로 아내가 제 표정이 마음에 안 든다고 얘기했습니다. 무표정하게 있으면 자기를 못마땅하게 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아내의 오해라고 생각하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내가 정말 그런가?’ 싶어 아내가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할 때 제 마음을 관찰했습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쳐서 몰랐는데 아내의 행동 하나, 말투 하나에 걸릴 때가 많았습니다. ‘왜 저렇게 그릇을 탁탁 놓지? 발걸음이 왜 저러지?’ 이렇게 아내의 말과 행동을 불편해하는 제 마음을 알아차리자, 비로소 ‘내가 정말 그랬구나’하고 아내의 불만이 이해되었습니다. 정진할 때 ‘아내 이해하기’를 수행 과제로 삼았습니다. 쉽게 되지 않아서 다음 정진 때 더 연습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로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전교육 편안한 진행자의 탄생 저는 수줍음이 많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까 두려워 자신 있게 말도 못 했습니다. 남한테 속마음을 얘기해본 적이 없어서 마음 나누기 순서가 영 불편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려 뛰쳐나가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에 다녀올 무렵, 정토회에 ‘행복한 회의’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운동의 가장 큰 목적은 ‘모든 사람이 회의에 참여했다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모두에게 발언 시간이 충분해야 합니다. 진행자는 한 사람이 발언을 독점하지 않도록 하고, 너무 짧게 발언하는 사람에겐 화제를 주어 더 말할 수 있도록 조정해야 합니다. 천안지회 행복한 회의 진행자 교육 ‘행복한 회의’ 담당 소임을 맡아 교육받고 실습하면서 ‘이게 진짜 회의 아닌가 진짜 마음 나누기 아닌가’하고 감동하여 울컥했습니다. 일 년 동안 매주 법당을 돌며 ‘행복한 회의’를 설명하고 실습교육도 진행했습니다. 전체를 파악하면서도 개개인을 살필 여유가 생겼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의 진행자를 할 때도 여유가 생겼고, 회의를 주재할 때도 당황하지 않고 편안할 수 있었습니다. 남은 숙제 겉과 속이 같자 저는 뭘 해도 즐겁고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일상화되어 감지조차 할 수 없는 불안함이 항상 안에 있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좋은 사람, 착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 욕먹기 싫어서, 남에게 안 보이게 노력했을 겁니다. 아마 그만큼 스트레스가 되어,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이것저것 많이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JTS거리모금 저를 보고 ‘항상 여유 있고 여여하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항상은 아닙니다. 표현을 안 할 뿐이지, 속에서는 갈등도 있고 물러서는 마음도 있습니다. 저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큼 속에서부터 편안하면 좋겠습니다. 만약 반대로 속에 뭔가가 있으면 밖으로 쉽게 꺼낼 수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욕심일 수도 있지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제게 숙제가 남아있습니다. 안팎의 차이가 줄어들수록 더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그리고 더 자유로울 것입니다. 이거 말고 할 게 없다 취미라는 게 결국 개인의 즐거움을 찾는 놀이인데, 저도 취미 활동한다고 많이 놀아봤습니다. 그런데 정토회 활동하면서 ‘인생 살면서 이거 말고는 딴 거 할 게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정토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계속 일할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그러려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생각합니다. 스님께서 “포기하지 말고 붙어만 있어라” 하셨듯이 말입니다. 새물정진 “저에게 정토회란 삶에 꼭 필요하고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전히 물러서는 마음이 들고 자주 흔들리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나아가고자 합니다. 조금 더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길을 알았으니, 계속 가야 하지 않을까요?” 정보성 님은 제가 만일결사각주22 회향 기념 온라인 불교대학에 재입학하여 공부할 때 진행자를 했습니다. 예민하고 까칠하고 분별심 많은 제가 전법활동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내게 한 일등공신이었습니다. 정보성 님 나이가 제가 생각한 것보다 열 살이 많아 놀랐습니다. 나이는 생체 나이보다 ‘마음 나이’가 중요하구나를 알았습니다. 저도 정보성 님처럼 어디선가 누군가에 잘 쓰이며 진짜로 살아있어야겠다고 다시 한번 마음을 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사를 통째로 듣는 희망리포터 소임에 감복하여 그날 밤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글박은영 희망리포터 편집이승준 각주3 정일사정토회를 일구는 사람들의 준말로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 각주4 새물정진정일사 프로그램을 마친 정토회 신규 활동가를 대상으로 하는 수련프로그램. 각주21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각주22 만일결사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천안지회 2023.09.27. 1,718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우리는 함께하는 도반입니다

2023년 9월 10일 일요일, 전북 장수 죽림정사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이곳에서 전주지회의 날 행사가 열립니다. 2차 만일결사 시작 후 광주전라지부 중 처음으로 전주지회에서 지회의 날을 진행했습니다. 기획단의 손길이 분주합니다. 54명의 전주지회 도반들이 참석했습니다. 가족을 만난 듯 반가워하며, 대웅전 뒤뜰에 마련된 행사장으로 이동합니다.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이 도반들이 더러 눈에 띄었습니다. 곽미정 님의 사회로 행사를 시작합니다. 죽림정사의 원장법사이신 보덕법사 님, 광주전라지부장 임정아 님, 전주지회장 고경희 님의 환영사가 이어집니다. 오전 일정은 청백전으로 진행됩니다. 모두가 흰색 계열의 상의를 입었고, 추첨으로 결정된 청팀은 JTS조끼를 덧입어 구분했습니다. 가벼운 국민체조로 몸을 풀어봅니다. 체조만 하는데도 아이구야하는 소리와 함께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청백전의 첫 게임은 공든 탑이 무너지랴 입니다. 큰 쟁반에 작업방석을 쌓아 넘어뜨리지 않고 재빨리 돌아오는 게임입니다. 두 번째 게임은 날아라 고무신입니다. 신발을 날려 손수레에 넣으면 1점을 획득합니다. 신발이 하늘을 날 때마다 큰 함성과 탄식이 오갑니다. 손수레 지기는 강대웅 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세 번째 게임은 말 없는 발 천리입니다. 3인 1조로 짝을 이루어 한 발을 옆 사람과 묶고 달리는 게임입니다.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네 번째 게임은 고유의 민속놀이, 승부사들의 게임인 제기차기입니다. 청백팀의 모든 도반들이 제기를 차고, 그 수를 합산하여 승부를 내기로 했습니다. 한 개도 차지 못하는 도반부터 12개 이상 차는 도반까지 다양했습니다.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아 재대결을 이어갔습니다. 김영자 님과 어린이 도반이 연신 빵개였으면 좋겠네 주문을 외운 탓일까요. 다섯 번째 게임은 팀원 전체가 한마음으로 참여하는 배달의 민족입니다. 일렬로 서서 비치볼을 머리 위로 한 번, 좌측 옆구리로 한 번, 우측 옆구리로 한 번, 마지막으로 가랑이 사이로 통과시켜 빨리 반환점을 돌아오는 팀이 이깁니다. 여섯 번째 게임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치기입니다. 새우등에 올라간 풍선을 터치하는 것은 아니고 완전히 터뜨려야 합니다. 새우처럼 휘어지며 깔깔 웃는 도반들이 보입니다. 너무 아파서 웃음이 나는 걸까요. 대망의 마지막 게임은 피구입니다. 기획단의 게임 설명에 따르면 공에 맞을 경우 열반하는데, 팀 전원이 먼저 열반하는 팀이 패합니다. 경기장은 제기차기 못지않은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자, 누가 먼저 떠날까요. 여기저기서 윽소리와 함께 열반이 시작되었습니다. 날렵한 몸짓을 선보이다 너무 빨리 가는 분도 있습니다. 역시 열반에는 누가 먼저랄 것이 없습니다. 대립과 경쟁을 뛰어넘어 화합을 이룬 도반들이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모든 경기가 종료되었습니다. 청백전은 청팀이 승리했지만, 승부를 내려놓고 진정 즐긴 이가 챔피언입니다. 도반들이 보시한 친환경 em비누와 em주방세제, 기도포와 스카프 등 각종 붓다명품을 추첨하여 나눠 가졌습니다. 단체 사진을 촬영하면서도 웃음이 떠나질 않습니다. 점심 공양은 각자 싸 온 도시락을 모둠별로 나누어 먹었습니다. 내 도시락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음식은 이미 자리에 펼쳐졌고, 먹어도 되느냐 물을 필요도 없이 모두가 모든 것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나니, 오후 프로그램인 장기 자랑 준비가 한창입니다. 죽림정사에 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러 연습 해온 모둠도 있습니다. 비밀리에 연습을 거듭하는 모둠도 있고, 생전 처음 둘러보는 반짝이에 심호흡하며 자신을 내려놓고 있는 도반도 있습니다. 장기 자랑이 시작되었습니다. 사회는 센스제일 강동주 님이 맡아주셨습니다. 전주지회에는 7개의 모둠이 있습니다. 전주의 효자모둠, 송천모둠, 완산모둠, 덕진모둠이 있고, 익산모둠, 군산모둠, 정읍모둠까지 일곱 모둠입니다. 귀여운 어린이 도반이 함께한 효자모둠의 순서가 끝나고, 죽림정사에 사무장으로 파견 나온 최선희 님이 축하공연을 해주셨습니다. 다소곳한 그녀, 과연 무슨 춤이라도 출 수 있을까요. 걱정과는 달리 이미 오래전에 나를 버린 듯한 화려한 몸짓에 급기야 관중이 난입하며 축하 공연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음악이 시작되자, 인간 최선희는 죽고 나비만 펄럭였다고나 할까요. 정토회의 혼을 보여준 두 사람을 뒤로하고, 장기 자랑이 계속됩니다. 완산모둠은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을 정토 내게 행복을 주는 수행으로 개사해 준비했습니다. 익산모둠은 곰 세 마리를 개사했습니다. 커다란 아빠 곰들의 깜찍한 춤이 돋보입니다. 군산모둠은 몸빼바지와 고무장갑으로 울력 준비를 마쳤... 아니 오늘은 농사 대신 도반들의 웃음을 지으러 왔습니다. 송천모둠은 트로트를 준비했습니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이들에게 결코 태클을 걸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진모둠은 반짝이는 의상과 아모르파티를 준비했습니다. 흥이 오르자, 음악과는 상관없는 춤이 펼쳐집니다. 나를 버리랬더니 여기서 진정한 나를 만난 것입니다. 장기 자랑의 마지막 순서는 전주지회 담당법사이신 명일법사님의 정읍모둠입니다. 오늘은 법사가 아니라 도반 손미옥으로 오셔서 홀로 아리랑을 선보입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잔잔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장기 자랑을 마치고 간단한 경품추첨과 닫는 나누기가 있었습니다. 전주지회의 이날 명심문은 우리는 함께 하는 도반입니다였습니다. 명심문을 만든 이윤정 님 아난다여, 좋은 친구와 사귀는 것, 좋은 동료와 사귀는 것, 좋은 동료와 사귀는 것은 청정한 삶의 전부에 해당한다네. 좋은 친구와 사귀고, 좋은 동료와 사귀고, 좋은 도반과 사귀는 비구가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을 익히리라는 것은 자명하다네. 집에서 홀로 수행할 때는 도반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내 이웃의 누가 아픈지 기쁜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내 아이라는 명심문도 와닿지 않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말도 와닿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우러져 있으면 도반의 눈을 통해 나를 볼 수 있습니다. 내 것을 고집하지 않고 나누어 먹게 되고, 나를 버려 도반의 함박웃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지회의 날 행사도 커다란 수행이었습니다. 우리는 수행을 마치며 불자들의 네 가지 큰 서원, 사홍서원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모둠별로 마음 나누기를 하고, 죽림정사 전체를 청소했습니다. 이제 함께 한 도반들과 아쉬운 작별을 합니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입니다. 2023년 9월 10일, 전주지회의 날 영상배기숙 님 제작 글·사진이승준 편집김난희

지회의 날 2023.09.19. 1,586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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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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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