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한

국내외 모든 환자들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정토회원 여러분,
신종 코로나19의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정토회와 각 법당의 모든 정토회원들은
아래의 지침을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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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출가•열반재일

8일 용맹정진

출가재일 : 2020년 3월 2일
열반재일 : 2020년 3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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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공부

2020년 봄학기
정토불교대학 신입생 모집

모집기간 : 2020년 1월 1일~2020년 3월 29일
문의 : 각 지역 정토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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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가벼워지고 행복해지는 길

2020년 봄학기
경전반 신입생 모집

입학식 : 3월 16일(월) ~ 3월 22일(일) *지역별로 다름
신청마감 : 3월 29일(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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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하늘나라로 간 아들이 맺어준 인연

햇살이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어느 따뜻한 겨울날, 김용숙 님을 만났습니다. 가정법회부터 시작해서 6개의 법당을 내고 남양주 정토회를 만들고, 이제는 법사교육을 시작한 김용숙 님. “이 인터뷰 내가 해도 되나?” 했지만 늘 그렇듯이 “ 그냥 하지 뭐.”라고 하며 담담하지만 진솔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들이 맺어 준 인연   종갓집 장손인 외아들이 9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늘은 노랗고,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사고 나고 2주 후 친정어머니가 어디 좀 가자 하셔서 따라와 보니 홍제동 법당이었습니다. 스님이 한참 얘기를 들으시더니 아들이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엄마가 그러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 빨리 업고 뛰라고 하셨습니다. 실감이 안 나서 그렇게 하면 아들이 다시 살아올 거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49일 동안 매일  3천 배를 하라는 말씀에 삼배하는 것도 모르면서 겁도 없이 용감하게 법당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법문 하는 스님 뒤에서  3000배를 했습니다. 아들한테 고맙다는 말을 되뇌며 절을 하고 또 했습니다. 아들이 저를 수행의 길로 인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9재 회향을 하면서 유수 스님께서  매일 사시 예불부터 시작해서 법당 끝날 때 가라며 천일 결사 명단 작성 소임을 주었습니다. 인터뷰 하는 날 밝은 표정의 김용숙 님 꾸준히 법당을 다니는 중에 한 번의 유산을 겪고 임신 중독으로 고생하면서 겨우 딸을 낳았습니다. 한 달 된 애를 매일 홍제동까지 업고 다녔는데, 자꾸 토해서 알아보니 유문협착증이었습니다. 5시간이 넘는 수술을 하는 동안 한쪽 구석에서 염불을 외우면서 또 한 번의 고비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딸이 자라면서 더 집착하게 되어 문득 이러다 딸을 망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에 대한 집착을 놓는 연습 한다고 중1때 외국으로 어학연수 간 아이를 7년 동안 들어오라 못했습니다. 이제 딸아이는 훌쩍 자라서 직장 다니며, 엄마를 돌보는 효녀가 되었습니다.    가정 법회에서 법당으로   IMF로 97년에 길거리로 나 앉았습니다. 당장 기도비 낼 돈도 없어 어머니가 내는 기도비를 제가 가지고 갔습니다. 딸이 4학년 때 구리법회를 알게 되어 다녔습니다. 자주는 못 가더라도 법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23년 다녔는데, 법당 하던 두 부부가 영주로 가게 되어 법회를 못 하게 되었습니다. 법문을 듣고 싶은 답답한 마음에 가정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홍보도 안 했는데 도반들이 점점 많아지니 집이 좁았습니다. 제가 경락 일도 하고 있어서 법당의 필요성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군대 법당에서 1년 정도 법회를 했는데, 드나드는 데 불편함도 있고, 사단장이 바뀌면서 지원도 달라졌습니다. 남양주 군대 법당 시절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법당을 내자는 의견들이 모여서, 저는 하기로 했으니 그냥 한다는 생각으로 법당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법당을 열고 온종일 법당에 있었습니다. 시간을 못 맞추니 경락 손님은 자꾸 떨어져 나가고, 남편은 돈을 거의 안 갖다 주었지만, 법당에 있었던 덕분으로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습니다. 8차년도에 대의원에 당선되었는데, 총무로 지정할 사람이 없어서 가벼운 마음은 아니었지만, 총무를 3년 더 하게 되었습니다. 일 자체가 힘든 건 없는데, 좋다고 와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돌아서는 도반들을 이해 못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내 맘 같지 않다는 생각에 도반들을 못 살피고 너무 일에만 쏠려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공부해서는 전혀 도움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남양주는 면적이 넓어 오고싶어도 못 오는 분들도 많아서 남양주, 양평, 구리, 의정부, 포천, 동두천에 법당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저기 법당 내느라 정작 남양주 법당은 신경을 못 썼는데도, 그 동안 탄탄해진 도반들이 알아서 잘해갔습니다.  가정법회에서 연등 만들기 내가 지은 인연을 몰랐습니다 .   9차에는 특위를 맡게 되었습니다. 행복학교, 강연 등 돌아다니는 일이 많아서 나이도 있고, 체력적으로 힘들어 못하겠다는 의사 표현을 했는데 해야 한다고 해서 처음에는 섭섭했습니다. 그러다 “아직 쓰일 수 있으니 그랬겠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수행은 아니지. 네 하고 해보자.“라고 생각하며 강연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몸에 무리가 갔는지 신우신염이 와서 열흘 입원하고 나와서 3개월 휴가를 냈습니다. 몸도 지치고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였습니다. 문경 돕는이로 가는 것도 차비가 부담될 정도였습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문경 봉사도 하고  다음 년도까지 특위 활동을 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을 키우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기분이 묘하고 억울해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따져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와 보니까 사람 간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 제가 어떻게 하는지 보게 되었습니다. 요양보호사로 밤을 새워 근무하고 힘들어서인지 신우신염이 또 도졌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7달 정도 하고 좀 쉬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쓰러져서 직접 병간호를 하게 되었습니다. 젓가락질도 못 하는 어머니를 간호하며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5개월 동안 화를 한 번도 안 냈습니다. 평소에 힘들면 짜증을 많이 냈는데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2015년 송년 법회 30년 전에 받은 기도문이 ‘내가 지은 인연을 몰랐습니다. 지은 인연 과보를 감사히 받겠습니다.’ 였습니다. ‘ 내가 지은 인연이 이거구나. 정토 안 만났으면 아픈 어머니 모시겠다는 생각도 안 했을 테고, 돈 안 갖다주는 남편도 더 들들 볶았을 테고, 나 편한 것만 하려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내 인연, 감사할 뿐입니다.  2020년에는 안 해본 대의원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때 법사님께서 활동하면서 문경에 가끔 1박 2일 올 수 있냐는 전화를 주었습니다. 그저 연수원 봉사 소임이 있나 보다 생각하고 어머니도 많이 좋아지고 요양보호사 친구가 가끔 봐줄 수 있다 하여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생각지도 못한 법사교육이었습니다. 전에 법사 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지만, 잊어버렸고 바라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자신도 없고, 잘못 할까 봐 걱정도 더 많았을 겁니다. 사실 좀 겁이 나기도 하지만, 지금은 기회 주시니 그냥 해 보자 마음먹었습니다. 이 기회에 제가 맺은 인연을 알고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갈 길은 멀지만, 더 숙이는 연습 하고 마무리하라고 기회를 주셨다 생각합니다. 친정어머니와 도반들과의 춘천 청평사 나들이 저를 정토회와 인연 맺어주고 하늘나라로 간 아들과 제가 힘들 때 무조건 정토회로 데리고 와 준 친정어머니가 계셔서 요즘은 정토회에 발 담그길 정말 잘했다 생각합니다. 수행하게 해 주어  정말 고맙고 잘 쓰이겠습니다. 글김영신 희망리포터 편집임도영

남양주법당 2020.02.28. 1,853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우리의 조그만 손이 부처님의 큰 손길로 이어지다

영양꾸러미 사업은 국가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챙기는 JTS의 국내 복지 활동입니다. 방학기간 동안 홀로 있는 아이의 영양 섭취에 중점을 두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식품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덕양법당 활동가들의 발자취를 좇아 영양꾸러미의 진행 과정을 함께 해보겠습니다. 덕양법당은 2017년 첫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일산지역의 기존 민간단체가 개설한 청소년 복지센터와 연계하여 복지 센터에 있는 학생들에게 물품을 지원하였습니다. 두 번의 사업을 진행 평가한 결과, 기존의 사설 복지 센터에서 벗어나 덕양법당 스스로 지원대상을 발굴하고 직접 지원하는 형태로 전환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영양꾸러미 포장을 마치고 함께한 소감나누기 2017년 사업부터 고양시 덕양구의 학교별로 학교에 근무하는 복지사 선생님들과 연계하였습니다. 각 학교에서 상담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을 발굴하고 필요성을 검토 정리하여 선정하였습니다. 첫해에는 덕양구에 소재하는 4개 학교에서 23명을 선정하였습니다. 2019년 상반기는 30명, 2019년 하반기에는 27명이 선정되었습니다. 주로 한부모 가정, 조손가정, 다문화가정, 새터민 가정이었습니다. 상담 과정에서 눈물겨운 사연과 다른 지원이 절실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전달할 물품을 척척 정확히 체계적으로 나누어 순식간에 포장 각 가정에 전달될 영양꾸러미 탄생 학교 지원 복지사 선생님들의 경험을 공유합니다. 영양꾸러미 신청서와 정보 동의서를 작성합니다. JTS 국내사업팀에 신청하고 협의하고 심사를 거쳐 지원이 확정됩니다. 지원이 확정되면 국내사업팀에서 지원 물품을 택배로 법당에 보냅니다. 물품 수량을 확인하고 수령 여부를 보고합니다. 전체 물품이 도착하면 불교대학이나 경전반 학생들, 봉사자들이 일정을 잡습니다. 포장 작업을 울력으로 함께 진행합니다. 포장할 물품의 가짓수와 수량이 많아 약간 복잡하지만, 도반들의 울력이 체계적으로 작동하여 각 가정에 전달될 영양꾸러미가 탄생합니다. 박스제조부터 테이핑까지 일사분란 그럼, 물품 포장부터 시작해 볼까요 먼저 엑셀에서 뽑은 물품 목록을 정리하고 각 상자에 포장될 순서대로 물품을 나열합니다. 포장될 물품 담당자를 정하고 물품 수량과 담당 물품을 확인합니다. 상자 조립 담당자가 상자를 조립 하면 포장 담당자가 상자를 가져갑니다. 수량에 맞게 컨베이어 시스템처럼 이동하며 물건을 담습니다. 그야말로 공장 조립라인의 가동입니다. 마지막 물품이 담기면 물품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한 번 더 체크하고 포장 끝 카드와 안내지를 넣고 마감 테이핑이 이루어집니다. 순서대로 포장이 완성된 상자가 법당 벽면으로 차곡차곡 쌓이면서 포장이 마무리됩니다. 나머지 팀은 처음 물품이 담겨온 빈 상자를 해체하여 정리합니다. 여럿이 함께하니 어느새 뚝딱이네요 이렇게 마무리가 되고 도반들의 손길로 완성된 꾸러미를 두고 사진 촬영 후 소감 나누기로 포장 공정이 마무리됩니다. 영양꾸러미 포장을 마무리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한 장 찰칵 우리는 봄불대생 다음은 영양꾸러미 전달입니다. 학교 위치에 따라 크게 3개 지역으로 나누어집니다. 화정 행신지역, 광산 내 유동지역, 원흥 오금지역. 지역별로 구역이 나누어집니다. 구역이 나눠지면 각 가정에 연락해 전달 일정을 잡습니다. 이에 맞추어 봉사팀을 꾸리고 차량을 수배하고 일정에 맞추어 영양꾸러미를 차에 옮깁니다. 이제부터는 직접 발로 뛸 시간 주소지, 연락처, 전달 순서를 기록한 지도를 챙겨서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러 출발 행신동 일대에 올망졸망한 주택가에서는 집 찾기도 어렵고 차량 진입도 쉽지 않아 무거운 박스를 들고 다녔습니다. 번지수가 일치하지 않는 집, 사전 연락이 되었음에도 부재중인 집에서는 연락이 되지 않아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이사를 해서 주소가 일치하지 않은 집은 다시 주소를 물어 신 주소지로 찾아가야했습니다. 골목길에서 차량이 펑크가 나서 AS를 부르고 기다렸던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양꾸러미를 받고 환하게 웃는 아이와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에 힘들었던 과정은 녹고 봉사하는 도반들도 절로 미소 짓게 됩니다. 영양꾸러미 담당자 정민섭 님, 학교 복지사 유금순 님, 김은주 님 함께 한 봉사자 소감 “정부나 지자체의 공적인 지원으로부터 소외된 사각지대의 어린이들을 보살필 수 있어서 매우 기쁘고 반가웠습니다. 특히 벌써 네 번째 지원하는 가정과는 친밀감과 유대감이 생겨서 더욱더 반갑고 기뻤습니다.” “더운 여름날 밭에서 따온 풋고추와 열무를 한 다발 주시면서 고맙다고 전하는 할머니. 저희가 받기에 난감하였지만, 그 마음을 받았습니다. 좋아하는 손녀딸을 보며 반가워하는 할머니의 미소가 잊히지 않습니다.” “4번째 전달하는 영양꾸러미. 이젠 학생과 할아버지와 친밀도도 높아졌습니다. 그 사이 할머니는 요양원에 가시고 할아버지는 허리 수술을 하였습니다. 집안 형편은 더 안 좋아졌지만 그래도 반가움과 JTS에 대한 호감은 한층 좋아졌습니다. 반기는 아이와 할아버지의 얼굴이 환하여 좋았습니다.” “물품 전달을 위해 전화를 했는데 ”필요 없어요“하고 끊어버리는 할머니.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그래도 사전 전달이 약속되어있어 찾아갔습니다. 반가워하면서 다른 업자인 줄 알았다고 미안해하는 할머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좋아하는 아이와 할머니를 보며 다행이란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태국으로 탈북하며 한국 국적을 못 얻어 3년째 국적 취득 재판을 하는, 언제 추방될지 모른다는 부자 새터민을 보며 재판과정에 도움을 주고 있는 복지사 선생님의 고충도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연의 소중함도 느낄 수 있어 기뻤습니다.” 차량지원과 봉사를 함께 한 김현옥 님 부부 “신청서 작성할 때의 주소에서 멀리 이사한 집을 찾아 헤맸습니다. 3시간 만에 찾아 전달할 때 함께 고생한 도반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준비하느라 몇 달 전부터 고생하신 담당자들께 특히 감사한 마음입니다.” “차량과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신 도반님과 내외분께 감사드립니다. 함께 할 수 있어 더욱 행복합니다.” “처음 해봤는데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전달하는 학생 집이 개척교회 전도사이고 교회에서 기거하는 분이셨습니다. 처음에는 분별심이 일어났는데 금강경의 무주상보시라 생각하고 선입감을 없애고 잘 전달하였습니다. 좋아하는 학생과 고마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상을 짓는 것이 어리석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어려운 쪽방을 방문하여 꾸러미를 전달하는데 할머니가 금강경을 봉독하다 저희를 보며 JTS가 불교단체라고 반가워했습니다. 부처님의 공덕을 말씀하시는데 기복을 바라는 듯한 상이 올라왔습니다. 참회합니다.“ 베트남 다문화 가정이 세 가정이 있었습니다. 세 가정이 모두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화목하게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집과 가정폭력에 멍든 집이 너무 대조적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하며 다문화 가정을 이해하는 경험을 깨우쳐 주는 기회도 얻게 되었습니다. 영양꾸러미 선정기준이 어떻게 되나요? 형편이 열악한 한 부모, 다문화 가정 위주로 합니다. 어려운 사정을 잘 아는 지역아동센터와 연계해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주로 지역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저소득 상황을 확인합니다. 지역 아동센터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제외되거나 여건이 어려운 아이들을 선별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영양꾸리미 전달 처음 영양꾸러미 소임을 맡았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저는 국내복지 영양꾸러미 사업이 무엇인지, JTS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단순히 물품전달 차량지원 봉사를 하다가 졸지에 국내 복지 영양꾸러미 사업 담당이 되었습니다. 어리둥절한 상황에서 사업을 맡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담당자가 없다는 상황에서 일이 주어졌지만 ‘그냥 예하고 합니다’하며 일을 맡았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니 고양시에 어려운 가정들이 보이고 이들의 다양한 문화와 삶의 형태가 들어오면서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보람 있고 즐거웠습니다. 때론 일손이 부족하고 시간을 못 맞출 땐 결국 혼자 짊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별심이 들었습니다. 어려운 아이들에게 이 작은 물품이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는 아이,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의 환한 웃음을 보면 이내 저의 작은 분별심이 부끄러워지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JTS 거리모금에서, 법당에서 함께 손을 모아준 정토회 도반님들과 인연으로 연결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의 손길 중에 나도 하나의 손이 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일을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삼 년째 이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해진 일정에 따라 일을 수행하니 큰 어려움은 없어졌지만, 아직도 행정적인 서류를 깐깐한 JTS 양식에 맞추는 것이 어려움으로 느껴집니다. 엑셀 문서가 구글 통합문서형식으로 변환되다 보니 너무 큰 파일로 연결됩니다. 좀 단일한 문서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메뉴 형식으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좀 더 간소한 형식으로 통합했으면 합니다.” “물품이 각각 배송 됩니다. 항상 법당에 근무하는 것이 아니어서 일일이 챙기기가 번거롭고 계속 연락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컸습니다. 법당에 일일봉사가 꾸려져서 잘 해결되어 가고 있긴 합니다.” “물품 포장은 도반님들의 봉사와 협조로 큰 어려움이 없으나, 전달에는 일정을 맞추고 일일이 전달해야 하므로 차량과 봉사자를 맞추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광명법당의 전달 방식에서 많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양꾸러미 대상자들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겠지만 멀리 이사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여 전달의 어려움이 자주 발생합니다. 감당해야 할 사유라 생각합니다만 애를 먹다 보니 이젠 회향해야지 기필코 이번이 마지막이야 하는 생각이 자꾸 떠오릅니다. 사홍서원의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라는 큰 원을 무주상보시를 수행의 덕목으로 삼지 못함에 자꾸자꾸 번뇌합니다.” 활동하면서 보람은 무엇인가요? 인생을 살아오면서 거창한 사회개혁, 사회변혁을 생각해 왔지만, 실제 제 삶은 매우 이기적인 자기만족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토행자가 되어 작은 일이지만 실제로 나의 손길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의 작은 손길이 되어 실천하고 있다는 것 깨달았습니다. 일의 과정에서 어려움에 부딪치면 분별하다가도, 마치고 나면 마음에 뿌듯함이 채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JTS 사업에 참여하며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라는 큰 원에 함께 할 수 있어 보람됩니다.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올라오는 마음과, 함께하는 봉사의 즐거움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발로 뛰며 수고해 준 덕양법당 봉사자, 도반들 그리고 고양시 학교지원 사회복지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글정민섭 편집고영훈

복지 2020.02.29. 274 읽음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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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