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년

백중기도

입재 : 7월 3일(수) / 회향 : 8월 18일(일)
기도접수 : 6월 26일(수) ~ 8월 20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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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

48기 백일출가 모집

출가기간 : 2024년 9월 5일(목) ~ 12월 13일(금)
접수마감 : 2024년 8월 14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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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8일 단기출가

붓다처럼

출가기간 : 2024년 8월 11일(일) ~ 18일(일)
접수마감 : 2024년 8월 7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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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생방송 여름 명상

7월 26일(금) ~ 7월 30일(화) 4박 5일
7월 26일(금) ~ 8월 1일(목) 6박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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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다시 만나다

2024 행복한 대화

법륜스님의 오프강연 행복한 대화 시즌2!
오프강연이 전국 15개 도시로 직접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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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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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만 배, 만 번의 숙임

힘들고 치열한 세상살이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은 가족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가족 관계에서 생긴 괴로움이 없는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 정도로 가족에 대한 애증은 보편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글쓴이가 괴로워하다 도망치다 다시 괴로움에 빠지길 반복할 때 같이 답답했으나, 생채기가 생겼다 단단해지는 모습을 보니 저도 같이 극뽀옥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자, 거울 치료 한번 시작해 보실까요? 출가하기 “경전대학 졸업했으니 이제 뭐 할 거야?” “출가해야지” 남편이 물어와서 얼른 대답했다. 아니 반사적으로 말이 나왔다. 백일출가 모집 안내를 보고 언제 말을 꺼낼까 틈을 보고 있던 차였다. 혹시 싫어하지 않을까? 가지 말라고 하지 않을까?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괜한 일이었다. 그날로 입방 원서를 냈다. 결혼 31년 만에 상황이 바뀌어 남편이 집에 있고 내가 집을 나가게 되었다. JTS 거리모금 중 결혼 후에도 이어진 엄마의 간섭 도대체 가족이란 뭐지? 나에게 가족은 벗어나고 싶은 굴레였다. 아버지와 엄마를 보며 부부 관계의 모순과 이기심을 보았다. 가족은 사랑과 이해의 관계라기보다는 관습에 얽매인 관계로만 보였다. 그 속에서 맏딸인 나 또한 관습의 희생자였다. 결혼 직후부터 나는 엄마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결혼하면 엄마도 나를 한 사람으로, 엄마와 같은 입장의 여자로 이해해줄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엄마는 여전히 내게 요구가 많았다. 조금이라도 엄마의 뜻을 맞추지 못하면 비난하셨다. 몇 년 후 지방에 사시던 부모님이 우리 집 근처로 이사하셨다. 결혼 전과 같은 관계가 다시 시작되었다. 엄마의 구속과 간섭은 결혼 전과 다름이 없었다. 엄마는 여전히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셨고 나는 엄마를 점점 더 미워했다. 맏이로서 엄마를 도왔고 엄마 말씀을 거스르지 않으며 살았는데 인정받기는커녕 비난만 받아 억울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원망과 비난이었다. 엄마를 미워하는 나 자신도 싫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비난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왜 비난을 받을까? 나만 문제인가? 서러웠고 답답했다. 고라니밭 내려가는 길 기도해도 누그러지지 않은 원망 방황하다가 어느 독서 모임에서 법륜스님의 《금강경》을 읽게 되었다. 드디어 구세주를 만난 듯했다. 읽고 또 읽으며 이 책을 평생 끼고 살아야지 마음먹었다. 스님의 즉문즉설도 들었다.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따끔하게 설하시는 스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일어났다. 감사기도를 하며 절을 하라는 스님의 법문을 듣고 108배를 시작했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100일 동안 매일 300배를 했다. 감사기도가 참회 기도가 되어버렸다. 가족이 모두 나가고 없을 때 혼자 절을 하며 실컷 울었다. 눈물이 줄줄 흘렀으나 가슴은 시원해졌다. ‘이런 거구나’ 괴로움은 내 문제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집살이와 남편 뜻을 받드느라 힘들어서 나를 그렇게 대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아무리 어렸어도 엄마는 맏딸인 나에게 의지하고 싶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가 나한테 너무 심했지’, ‘같은 여자로서 이해받고 싶다면 엄마가 먼저 나를 이해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엄마는 변하지 않을 텐데 나만 노력한다고 달라질까?’ 여전히 나는 어둠 속에 있었고 온전한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도반들과 함께 깨달음의 장에서 발견한 엄마보다 더 싫은 나의 모습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던 해에 경기도에서 강원도 원주로 이사했다. 남편이 퇴직하고 아이들도 독립했기 때문에 대도시를 떠나기로 했다. 간섭받기 싫어서 모든 일을 다 처리하고 이삿날이 정해진 후에야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사실 통보였다. 부모님, 특히 엄마는 놀라셨고 늙은 부모를 두고 멀리 간다며 야속하게 생각하셨다. 죄송한 마음은 있었으나 친정과 멀어져 마음은 홀가분했다. ‘가족의 굴레를 벗어나서 내 인생을 살아보자’ 라는 마음이 컸다. 2022년 가벼운 마음으로 온라인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다. 처음 《금강경》을 읽고 10년도 훨씬 지난 시점이었다. 그 때문인지 입학식 법문부터 가슴이 벅찼다. 스님의 가르침도, 부처님 법도 모두 받아들이자 마음먹었다. 경전대를 시작하며 깨달음의 장 수련을 했다. 뭔가 좀 달라질까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내 분노의 근원, 엄마에 대해 내어놓았다. ‘깨달음의 장’에서 나는 엄마의 독설과 손찌검을 말했고, 내 모성과 엄마의 모성을 비교하며 엄마가 얼마나 차가운 사람인지 울먹이며 토로했다. 그랬음에도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았다. 셋째 날, “엄마를 원망하는 보살이 엄마보다 더 차가운 사람이다”라는 안내자의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났다. 처음으로 내 생각이 뒤집혔다. 싫어했던 엄마의 모습보다 훨씬 더한 내가 보였다. ‘변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두북수련원 피 뽑기 이제껏 남의 도움으로 편하게 살아왔구나 백일출가 45기. 58세. 나이 제한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늦은 나이다. 지금이 가장 젊은 순간이니 해보자. 만 배, 사람들은 만 배 때문에 백일출가를 망설인다고 했지만, 나는 만 배를 하려고 백일출가를 결심했다. 절을 하며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고, 참회의 심정으로 나를 힘든 상황에 놓아보고 싶었다. 막상 하니 힘들었지만 그만둘 생각이나 못할 거라는 생각이 아예 없었기에 그냥 할 수 있었다. 내 기도문은 ‘받은 사랑을 나누겠습니다’였다. 남은 97일도 그냥 해본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사는 연습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똥 푸고, 사면 정리하고, 도로 포장하고, 농사짓고, 공양 짓고, 몸 사리지 않았다. 일할수록 힘은 들었지만 힘든 만큼 내가 얼마나 남의 도움으로 편하게 살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께 받은 게 너무 많다는 것도 알았다. 도반을 통해 비친 인정하기 싫은 내 모습 한 도반에게 내가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 수행을 마치면 마음 나누기를 하는데 그렇게 느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수긍하지 못했다. 순간순간의 느낌을 잘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밑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정이 빡빡하고 힘들어서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채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다른 밑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할 때는 일만 보았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도반을 살피지도 않았고 넓은 시야로 상황을 보지도 못했다. 내가 한 일에 대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고, 상황을 도반들과 공유하고 협력하기보다 내 식대로 통제하고 싶었다. 잘하는 일은 혼자 하고 싶고, 마음에 들지않는 사람이 있으면 속으로 그 사람을 배제했다. 스스로 그런 사람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나의 실체였다. 명상원 앞 길 소임 속에서 다시 마주한 싫은 내 모습 회향 후, 그런 나를 드러내는 일이 벌어졌다. ‘잘 쓰이겠습니다.’ 명심문을 새기며 바라지 팀장 소임을 맡았다. 백일 동안 공양간 일도 해봤으니 걱정은 하지 않았다. 잘 쓰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크게 넘어졌다. 배우기 위해 기존 팀장님 밑에서 바라지했는데 나와 너무 다른 성향 때문에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팀장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시비 분별했다. 백일 동안 뭐 했지? 일 수행을 하며 일과 수행은 하나라고 배웠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나와 다른 상대를 아예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내 마음에 안 든다며 회피했다. 마음이 불편했고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왔다. 자신감은 사라지고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어쩌지? 싫은 마음을 추스르고 대웅전에 올라가서 300배 정진했다. 정진하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졌다. 어린애 같은 마음이 보였다. 팀장님이 자상히 가르쳐주길 기대했고 잘한다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상대가 나를 무조건 인정할 만큼 내가 대단한가? 칭찬받을 만큼 최선을 다했나? 받은 사랑을 세상에 회향하겠습니다 바라지를 마치며 법사님과 마음 나누기를 했다. 법사님 앞에, 여러 사람 앞에 나를 내려놓고 인정하기 싫은 밑마음을 내어놓았다. 법사님은 경험 많은 선배님의 모든 것을 따라 배우라고 하셨다. ‘네, 알겠습니다’ 마음을 숙였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엄마가 아니라고 무시하고 원망하면서 꼿꼿이 나를 세우며 잘난 척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숙이겠다고 만 배를 하며 기도했건만 여전히 자신을 내려놓지 못했음을 알았다. 그러나 수행이란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정진하는 것임을 체험한 기회였다. 백일의 기도가 가슴을 울렸다. 받은 사랑 세상에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천룡사에서 이 글은 2024년 1월호에 수록된 윤 심 님의 백일출가 수행담입니다. 글윤 심 편집월간정토 편집팀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월간정토 2024.07.15. 1,783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비에 젖지 않는 마음

어린이날을 맞아 지난 5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전국 47개 지회에서 JTS거리홍보캠페인이 열렸습니다. 올해는 불교대학, 경전대학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면서 캠페인 참여자가 70명이 넘는 지회도 있었습니다. 비오는 날도 끄떡없습니다. 우산을 쓰고, 비옷을 입고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배고프고 아픈 아이가 없는 세상을 꿈꾸며 율동과 구호에 온몸을 던진 회원들의 열정을 전합니다. 여는 나누기로 회원들과 인사하고 설레는 마음, 긴장된 마음을 공유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처음 잡아보는 마이크에 괜시리 손도 떨리고 목소리도 떨립니다.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높여봅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 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때에 배워야 합니다. 연습을 하고 왔는데도 율동은 어색합니다. 하지만 신나게 따라하다보니 어느새 음악이 나오면 저절로 움직여집니다. 춤을 잘 못 추는데 밖에서 회원들과 함께 율동을 해보니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몸치지만 춤추면서 겸연 쩍어서 웃고 재미있어서 웃었습니다. 율동 중 지나가던 중학생이 뛰어들어 와 같이 율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즐거웠습니다. 5월 어린이날 JTS거리홍보캠페인에는 정토회원들의 아이들도 마음을 보탰습니다.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지구촌 곳곳에 꼭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이와 함께와서인지 더 뿌듯했습니다. 잘 자라는 저희 아이처럼 다른 아이들도 모두 먹고 입고 학교에 다닐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전국에서 진행하다보니 시민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JTS를 알렸습니다. 거제지회에서는 오카리나, 플릇, 기타 연주와 함께 거리모금을 진행했습니다. 시민들뿐만 아니라 캠페인에 참여한 회원들도 연주로 힐링되는 시간이었다고 하네요. 사하지회에서는 회원들이 삐에로 복장으로 참여해 시민들의 시선을 잡았습니다. 인천지회에서는 거리홍보캠페인 후 거리행진을 했습니다. 시민들의 호응이 JTS거리캠페인을 훨씬 풍성하게 합니다. 학생들이 쭈빗거리며 수줍게 모금함에 천 원 넣고 가는 모습이 참 이뻤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하니 힘이 나고 좋았습니다. 시민들과 아이들이 마음을 열어 호응해주어 뿌듯했습니다. 많은 인원이 함께 활기차게 캠페인을 하니, 도로 건너편 시민들까지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보고 흥이 났습니다. 연휴라서 나오기 싫었지만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뜻 깊고 좋은 일을 해서 뿌듯합니다. 나오길 잘했습니다. 시간이 짧아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JTS의 취지와 하는 일에 대해 시민들에게 많이 알릴 수 있어 의미있고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불교대학, 경전대학 학생들을 보니 뿌듯합니다. 미래 정토행자들과 함께 해서 좋았습니다. 넓은 곳에서 마이크도 잡아보고 율동도 해보는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다음에 또 참여하겠습니다. 관심 갖고 바라봐주시는 시민들의 눈길이 감사했습니다. JTS캠페인에 참여한지 1년 정도 되었는데, 오늘이 제일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아마도 평소보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전국에서 3,500명이 넘는 봉사자가 다른 장소에서 JTS거리캠페인을 했지만 같은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 모두 우리 아이입니다.” 부처님 당시 바람에 비록 다른 촛불이 꺼져도 원을 세운 가난한 여인의 촛불은 바람에도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많은 비에 비록 몸은 젖어도 원을 세운 도반들의 마음은 젖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저의 마음은 흠뻑 젖었습니다. 그러한 도반님들을 보는 감동으로 진행자 이재원 정리김난희 글과 사진복지팀 복지다문화 활동 공유 밴드

복지 2024.06.29. 1,091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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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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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