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월

온라인 정토불교대학
신입생모집

입학식 : 3월 9일 (화)
원서접수 : 1월 18일 (월) ~ 2월 21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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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온라인 설 명상수련

2021년 2월 10일 (수) ~ 2월 14일 (일) 4박5일
접수 : 1월 22일 (금) 오전 9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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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즉문즉설 Live

2021년 2월 4일(목) 오후 7시30분
유튜브 "법륜스님의 희망세상 만들기"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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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기부금 영수증 발급안내

발급시작일 : 2021년 1월 15일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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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패브릭 달력 증정 이벤트

법륜스님 신간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기간 : ~ 소진시까지
문의 : 정토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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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

41기 백일출가

2021년 2월 22일 (월) ~ 6월 1일 (화)
원서 마감 : 2021년 2월 3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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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사라진 법당 1호의 산증인

코로나로 인해 모든 법당 활동이 온라인으로 바뀌고, 개인 방이 모두 법당화되면서 사라진 법당 1호가 된 왜관법당의 산 증인 한옥주님. 침묵의 불도저로 법당 개원부터 폐쇄까지 4년여를 시골의 불법 전도사로 각종 불사 및 행사를 빠지지 않고 진행하며 행복 전도사로서 수행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빨주노초파남보 같은 인생 얘기, 온갖 풍파 헤치고 이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국화와 같은 한옥주님. 지금 이대로 더없이 행복하다는 그녀의 수행담을 들어보았습니다. 인터뷰하는 한옥주님 가시나는 공부시키지 마라 저는 대구 인근에서 1남 5녀인 딸 부잣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공직생활 일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계셨고, 어머니는 가사와 과수원 농사 등 집안일 전반을 책임지고 도맡아 하시며 헌신하는 분이셨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술을 드시고 늦게 귀가하여 자고 있는 우리들을 깨워서 ‘가시나들 공부 시켜봐야 아무 소용없다’ ‘책을 불 질러 버려야지’라며 고함치시며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주무시는 것이 거의 일상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동네에서는 모두가 가난하여 자식들을 공부시키지 않았는데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의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딸들을 전문대학까지 보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니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불안한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마음에 상처가 많고, 나는 초라하다는 열등감을 항상 느끼며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생각하면 술 취한 아버지의 부정적 이미지만 떠올라 그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고, 이런 기억과 경험들이 나의 무의식에 쌓여 부정적인 자아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나마 대학까지 졸업하고 이렇게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덕분이라 여겼습니다. 아도모례원 봉사, 오른쪽에서 세 번째 어깨가 무거운 맏며느리 고등학교 때 친구 어머니의 중매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은 2남 3녀의 장남이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자상하고 잔정이 많고 경우가 바르시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며느리의 책임과 기대에 못 미치면 사정없이 질책하시고 못 마땅해하셨습니다. 시아버지는 본인의 안위밖에 모르시고 어른 대접 해주기만 바라시고, 시집살이하는 며느리를 이해하기보다는 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지적하고 꾸중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늘 어깨가 무겁고 힘들었으며, 그게 너무 싫고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온통 미움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며,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성당에 가서 영세도 받고, 이 절 저 절 수 없이 다니며 기도와 법문을 들었지만 미워하고, 괴로워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 이런 곳 정토회 그나마 남편은 언제나 나를 이해하고 내 입장이 되어 주었지만, 시부모님에 대한 미운 감정은 어쩌지 못했습니다. 지적이고 개성이 독특한 불자인 남편이 어느 해 여름휴가 때 영천 은해사 하계수련회를 갔다 오면서 정토지를 받아왔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 2000년 7월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나 자신에 대해 깊이 돌아보게 되었고, 수련원을 내려오는 길에 향자재 법사님을 만나 대구까지 버스를 같이 타고 오면서 정토회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아 이런 곳도 있구나’ 하며 며칠 후 궁금한 마음에 범어법당에 찾아갔습니다. 내킬 때마다 다니면서 법륜스님의 육조단경 강의를 들었는데 내용은 좋은데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고 상세하게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집전도 하고 청소도 하면서 여러가지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법당에서 기도 정진을 많이 했기에 매일 법당에 나가 사시예불, 금강경 독송, 300배 정진을 하니 마음도 안정이 되고 다른 봉사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환경담당을 맡았을 때 기존 활동가들의 화기애애한 회의광경을 보고 나도 저들처럼 실질적인 활동을 빨리 했으면 좋겠다는 조바심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내가 많이 변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경수련원 앞줄 왼쪽 첫 번째 새털같이 가벼워진 마음으로 어느 해인가 우리 집과 치매 걸린 시어머니 집, 두집을 보살피는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설이 지난 며칠 후 시아버지께서 전화로 “설에 먹고 남은 많은 강엿이 왜 없느냐? 너희들이 다 가져갔지?“하시며 가족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막말을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그 막말에 충격을 받아 괴로워 하다가 정초법회 때 법륜스님께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으로 질문을 하였는데, 답변이 너무 명쾌하여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아, 내 생각과 다르게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구나, 그런데 나는 내 입장에서 그 말의 의미만 크게 확대해서 움켜쥐고 괴로워하고 있었구나’ 하고 이해하니 바위에 억눌려 있던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졌습니다. 공양간 소임으로 밥맛을 잃었던 나 그 뒤 공양간 소임을 맡게 되었는데 처음 하는 일이라 앞이 캄캄하고 마음이 무거워 밥맛을 잊어버릴 정도로 걱정이 되어 매일 가던 법당을 일주일간 나가지 않았습니다. 처음 하는 공양간 일인데 누구보다 잘하고 싶고 맛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만 앞서서 지레 걱정이 되어 법당을 못 나간 것이었습니다. 그때 총무가 전화로 집에 숨어있지만 말고 법당에 나와 무슨 이유인지를 이야기 해보라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심기일전하여 공양간 일을 서서히 익히며 봉사를 이어 갔습니다. 당시 법당에서는 행사가 유독 많았습니다. ‘100일 릴레이 거리 모금’, ‘미안하다 동포야’, ‘빈그릇 운동’등, 그리고 북한 동포 돕기 하면서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고 대구백화점 앞에서 ”반갑습니다“ 노래에 맞춰 율동도 하고, 문경수련원에서 하는 입재식에서도 공연을 준비하는 등 많은 일들을 가볍게 하며 보람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4월 초파일에는 도반들 각자가 나물 반찬을 한 가지씩 해 와서 공양간 준비도 함께하는 등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도반에 대한 고마움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라 미소가 그려집니다. 법사님 수계식 후 오른쪽.right 여러 종류의 복 소임 그렇게 활동하고 있을 때 범어법당에서 지금의 수성법당으로 이전 불사를 하였습니다. 총무인 향자재법사님은 불사 책임을 맡고 나는 공양간을 맡았는데 많은 봉사자들과 함께 불사금 모금도 같이 진행하였습니다. 최대한 돈을 아끼기 위해 있는 건물 구조를 그대로 사용하다 보니 동선이 맞지 않아 많이 힘들었지만 어느 덧 법당이 완성되어 개원 하게 되었습니다. 공양간은 의외로 일이 많고 지원하는 봉사자도 적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힘들고 일거리는 많아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개원 법회를 마치고 스님께서 봉사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때 공양간 일이 너무 힘들다고 울먹이는 내게 스님께서는 “그러면 내가 밥하까” 하시는데 그 말씀에 이제까지 불편하고 힘들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고 더없이 편안했습니다. 그 당시는 몰랐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 누군가 내가 이렇게 힘든 것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분별심 지나고 나면 내가 일으키는 것임을 돌이키다 수성법당은 접근성이 좋고 법당도 넓어서 각종 회의며 전국 행사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개인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고 법당에서 공양 준비를 했습니다. 6년 정도 공양간 소임을 하고, 교육팀장, 지원팀장 소임도 하게 되었는데 특히 지원팀은 각종 업무를 지원하는 일이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 엄청 많았습니다. 그 후 총무 소임도 맡았지만, 그때마다 힘든 줄 모르고 그냥 하게 되었습니다. 점점 맡은 소임이 커지면서도 어려운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일했고 일하는 도중에 일어나는 분별심은 많았지만 끝나고 나면 내가 일으키는 것임을 알고 돌이킬 수 있어 마냥 좋았습니다. 수행이라는 긴장감보다는 봉사한다는 기쁨과 같이하는 도반의 따뜻한 마음이 있어 할 수 있었습니다. 공양간 소임도 지원팀장 소임도 기꺼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의 변화와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 관계에서 수줍어하고 말도 잘 못 하고 부끄러워하는 내가 조금 당당해지고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 알아가는 힘이 생겨 소임이 복인 줄 다시 한번 느낍니다. 부처님 오신날 행사, 오른쪽 첫 번째.left 사라진 1호 법당 『왜관법당』 총무소임을 내려놓고 대경지부에서 활동하다가 남편의 정년퇴직으로 왜관으로 이사를 오면서 왜관법당 불사를 또 하였습니다. 적당한 법당을 찾아 여러 곳에 발품을 팔아야해서 힘들기도 했지만 또한 도반들의 많은 지원으로 원만하게 법당을 개원하고 총무소임을 맡아 그동안 갈고 닦은 봉사의 힘으로 열악했던 우리 지역 불교 포교의 기반을 닦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를 하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내가 정토회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깊은 불심과 성실함으로 보이지 않게 뒷받침해 준 남편의 공이 컸습니다. 덕분에 수행과 정진으로 정신적 성장과 심리적 안정을 되찾아 더없이 행복합니다. 사실 저는 마음공부와 수행보다는 정토회에서 하는 일이 다 좋습니다. 특히 소임을 맡고 내려놓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무쌍한 마음을 보면서 집착할 것이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였습니다. 소임을 맡으면 많은 일들 때문에 부담이 되어 힘들고, 소임이 없으면 서운함에 힘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이 얼마나 집착이 강한지도 알고 고집이 센 것도 알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딸의 해외활동 간담회, 앞줄 오른쪽 세 번째 나의 변화된 모습을 남들이 잘 모를지라도 그리고 내겐 꾸준함이라는 장점이 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지금은 나에 대해 조금씩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제가 대견하고 고맙습니다. 한편으로 나도 이렇게 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는데 주위에 나와 인연 있는 가까운 이들에게 이 법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그것이 내 뜻대로 안 될 때 안타깝기도 하지만 이 또한 세상이치임을 알고 있습니다. 나의 변화된 모습이 상대에게는 보이지 않나 봅니다. 친정 언니나 동생은 아예 관심이 없고, 남편은 적극적으로 지원은 하지만 법당에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딸은 청년 활동부터 인도 수자타 봉사 등 나와 함께 부처님의 길을 가고 있어 참 다행입니다. 지금 내가 변한 것은 만나는 상대를 이해하고 나를 더 이상 고집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됩니다. 예전에는 상대가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미워하고 말도 안하고 하였으나 지금은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이 조금 되었습니다. 아직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은 듣기 싫어하는 마음이 남아 있어 공부 꺼리지만 곧바로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연습을 꾸준히 할 것입니다. 백년지기 남편과 일본여행중 한때.left 온라인 정토회와 함께 새로운 도약을 올해부터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비대면 생활방식으로 많은 불편과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이 있지만, 대의원 소임으로 삶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처음 산 노트북 사용법도 익히고 영상회의와 법회 등 많은 시간을 노트북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바뀐 정토회 활동의 새로운 도약과 개인적으로는 여여한 수행 정진으로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수행인으로 거듭나 이웃과 사회에 행복 전도사가 되리라 서원해봅니다. 한결같이 조용하고 무엇이든지 수용해주는 보살님의 뒷면에 이런 파노라마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일을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보살님의 수행담을 들으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소임을 주면 뒤로 빼지 말고 무엇이든지 방긋방긋 웃으며 “예”하는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일상이 바뀌었지만 매일 새벽 5시 기도로 하루를 여는 우리의 일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늘 또 하루 살아있어 행복한,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로 살겠습니다. 글전현숙 편집이정선

구미법당 2021.01.22. 1,042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그래, 시작이 반이다

국제구호단체인 JTS는 인종, 종교, 민족, 성별, 사상, 이념과 관계없이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작은 힘이나마 함께 모아 일해 가는 단체입니다. 북한사업, 인도 사업, 필리핀 사업과 국내 사업을 다양하게 하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는 청소년 모부가정, 조부모 가정, 한부모 가정, 저소득 결식아동 등 지원이 필요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찾아 그해 겨울부터는 여름, 겨울방학마다 꾸준히 결식아동 영양꾸러미 지원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JTS 홍보물 동인천법당에서는 2017년 하반기부터 복지담당인 조상혜 님과 부담당인 손미연 님이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발굴과 지원대상자의 선정, 물품의 준비과정과 각 가정에 전달되기까지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을 담아보았습니다.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의 시작 처음 시작하는 법당의 자원봉사자들은 지원 대상자의 발굴부터 승인을 받기까지 민관과의 관계나 서류에서 복잡한 절차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동구에서 태어나서 동구에서만 사는 조상혜 님은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행정복지센터의 복지팀과 연계하여 필요한 서류를 직접 작성하고 준비하는 데 큰 어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인천 동구 지역을 3개의 권역으로 나누어서 권역별로 옮기면서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자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영양꾸러미를 지원받는 분을 생각해서 대부분 일회성 지원보다는 3회 정도 지속해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다문화가정은 지원 대상자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기관에서 조사하고 발굴하게 되면 동인천법당과 연계하여 지원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합니다 2017년 하반기에 지원계획을 세우고 JTS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2018년 상반기에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13세대에는 도시가스 난방비를, 1세대는 연탄업체에 의뢰하여 연탄으로 직접 받으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영양꾸러미와 온누리 상품권을 13세대에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조상혜 님이 직장에서 퇴근 후 영양꾸러미 지원할 물품들의 목록을 들고 마트에서 하나하나 직접 구매하기도 하였습니다. 2018년 하반기부터는 JTS에서 물품을 법당으로 보내주었습니다. 법당에서 포장과 전달만 하니 아주 수월해졌다고 합니다. 2018년 하반기와 2019년 상반기에 각각 20세대, 2019년 하반기에는 21세대로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영양꾸러미는 어떻게 구성되는지 궁금하시죠? 관공서나 타 단체에서는 김치나 쌀, 참치 세트 등의 물품을 지원합니다. JTS 영양꾸러미는 햄, 참치, 반찬류, 떡볶이, 견과류, 간식 등 아이들을 위한 물품입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반응이 좋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라면에 대해 물었더니 “라면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식품이지만 끓여 먹어야 하는 불편함과 불을 이용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영양을 생각해서 지원하지 않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건강을 우선시하는 품목들로 찾다 보니 유기농 음료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각 가정에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면서 설문지를 드립니다. 작성한 설문지를 핸드폰으로 받아 추후 필요한 물품들을 선정하는 데 반영하기도 합니다. 영양꾸러미 물품에도 신경을 써야 해요 JTS에서 영양꾸러미 물품이 각 법당으로 내려옵니다. 물품을 취합해서 지원하기까지 1주일 정도 소요됩니다. 유통기간이 넉넉한 물품은 괜찮지만, 반찬류는 유통기간이 짧아 신경을 더 써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여름방학 기간에 멸치와 견과류 볶음이나 오징어 진미채 볶음을 지원 물품으로 보내올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물품들과 함께 포장해야 하므로 반찬이 상하지 않도록 포장할 때까지 냉장고에 보관해야 합니다.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고 배송 물품이 모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포장하면 안 됩니다. 반찬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배송 당일 다른 반찬으로 교체해야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법당에 모여 가볍게 마음을 나누고, 각자 맡은 일들을 척척 해나갑니다. 영양꾸러미 물품 담을 상자 준비 중 물품 목록을 가지고 빠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체크하며 전달할 상자에 쏙쏙 여럿이 함께하니 물품 전달 준비가 뚝딱 영양꾸러미 전달을 위해 사전 계획을 하고 팀별로 동선을 짭니다. 골목을 돌고 돌아 영양꾸러미를 전달하기 위해 출발 영차영차 가볍게 영양꾸러미와 함께 잠깐 담소도 나누고 환한 미소로 인사드립니다.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조상혜 님과 이야기 나누어 보았습니다. 부자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 아이 혼자서 물품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문만 열어봐도 알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이 감지되었습니다. 아이 혼자 방치된 듯한 느낌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번은 영양꾸러미를 받은 어머님이 고맙다며 아이와 직접 만든 예쁜 비누를 건네주었습니다. 사양했지만 계속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비누 선물을 받기도 그렇고 받지 않기도 그렇고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준비했다면서 극구 건네주시는 어머님의 마음을 생각해서 받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준다는 생각보다는, 제가 건강하게 봉사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활동하는 내내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돌아보지 않던 제 삶을 성찰해보고 있습니다. 제 생활이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봉사를 하면서 ‘내가 많이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온 바로 다음 날 영양꾸러미를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인도아이들이 불쌍하고 안쓰럽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해맑은 얼굴이 떠오르며 행복의 기준이 물질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풀 한포기도 나서 거름이 되는데 사람으로 태어나서 무언가는 보람된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 법륜스님의 말씀이 떠오르면서 어려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인다는 마음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어머님이 주신 각양각색의 예쁜 비누들 우리 법당도 영양꾸러미 지원사업을 참여하고 싶어요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처음 시작하는 법당의 자원봉사자들은 지원 대상자를 발굴하고 지원 승인을 받기까지 기관과의 연계나 서류의 준비 등 복잡한 절차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시작하는 송도법당의 경우 지원 대상자 발굴을 위해서 기관을 방문하여 대상자를 물색하였으나 연계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동인천법당에서 지원 대상자를 조금 더 선정한 후 송도법당이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함께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동인천법당에서는 인근 법당에서 영양꾸러미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싶은 분들이 도움을 요청할 경우 흔쾌히 돕겠다고 하였습니다. 일정을 마친 행복한 웃음 가득한 자원 봉사자들의 마음 이경준 님 봉사하러 온 도반들이 많았습니다. 일사분란하게 각자 맡은 일들을 척척해내는 것을 보고 훈훈한 마음입니다. 가정에 방문했을 때 시설이 노후 되고 벽지에 곰팡이가 핀 환경에서 자식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하는 마음에 속상했습니다. 이교옥 님 두 번째 봉사였습니다. 영양꾸러미를 받고 기뻐할 아이들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하였습니다. 영양꾸러미를 받는 아이와 부모님의 기뻐하는 모습에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법당의 도반들과 행복을 전하는 일에 함께할 수 있어서 뿌듯하고 행복했습니다. 이선정 님 작게나마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참여했습니다. 방학 때 혼자 끼니를 챙겨 먹기 어려운데 영양꾸러미 간편식으로 영양을 보충할 수 있으니 좋았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는 끼니를 거르는 아이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되고 뿌듯했습니다. 박옥금 님 처음 참여하는 봉사여서 아무생각이 없었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한 집 두 집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던 중 젊은 어머님이 ‘아이와 함께 만들었다’며 손수 만드신 비누를 건네주셨습니다. 받지 않으려고 극구 사양했지만 ‘어떻게 매 번 받기만 하느냐?’고 하시면서 다시 건네주신 비누를 어쩔 수 없이 받아오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생활이 어렵다고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누고 싶어 하는 그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며 더 많이 나누고 열심히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안현식 님 개인 약속을 뒤로하고 참여한 ‘영양꾸러미’ 자원봉사 활동. 도반들과 함께해서 값지고 보람되었으며 훈훈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어려운 가정을 눈으로 보는 순간 내 마음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을 느꼈으며 ‘일체유심조’가 떠올랐습니다. 손미연 님 영양꾸러미 지원 사업을 위해 사전에 수많은 문서들을 준비하고, 민관의 소통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마음을 내어 정성을 다하고 있는 모습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JTS의 국내사업의 일부인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는 과정을 통해 거리모금의 의미도 더욱 간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땅의 어떤 아이들도 소외되지 않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생겼습니다. 조상혜 님 JTS의 영양꾸러미 봉사 횟수가 늘어가면서 함께 늘어가는 자원봉사자들을 봅니다. 도반이 전부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함께 한 도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영양꾸러미를 받고 고마움을 겉으로 표현 못하시는 분도 있고, 감사하다며 환하게 웃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쓰일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함께 한 도반들이 모자이크 붓다가 되어 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손미연 님과 함께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결과보다는 과정의 중요함과 행복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분들 덕분에 제가 행복해졌습니다. ‘영양꾸러미’ 지원은 꾸준히 계속됩니다.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 초기에는 2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초기라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힘들었습니다. 2020년 1월에는 7명의 도반들이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물품의 포장부터 전달까지 일사분란하게 진행이 되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기사를 취재하면서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2명으로 시작된 힘들었던 상황들이 떠오릅니다. 영양이 듬뿍 담긴 영양꾸러미를 받고 좋아하시는 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부총무 소임을 새롭게 맡으신 조상혜 님의 ‘함께 한 도반들이 모자이크 붓다‘라는 말처럼, 많은 분들이 함께 해서 더욱더 많은 아이들이 영양꾸러미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영양꾸러미를 준비하고 전달하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활동가들의 밝고 행복한 모습에 흠뻑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기획.취재인연등 글안순애 편집고영훈

복지 2020.03.19. 19,005 읽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전국 강연 일정은 추후 공지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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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