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65년

부처님 오신날

2021년 5월 19일(수) 오전 10시
연등/영가등 접수 : 정토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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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하반기

온라인 주말명상 일정

호흡에 깨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속박에서 자유로, 괴로움에서 행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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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S 어린이날 온라인모금 캠페인

다시 해, 봄!
같이 해, 봄!

2021년 5월 1일(토) ~ 31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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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내 행복이 모두의 행복

언제 어디서나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주는 일산법당의 남궁옥 님. 조용하지만 강하고 끈기 있는 남궁옥 님은 매력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 매력 속으로 지금 들어갑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사람마다 어려움의 총량이 있다면 제 경우는 8090는 20대 안에 다 일어났다고 생각할 만큼 무척 힘들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했고, 삼 남매와 엄마,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엄마는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되고 우리나라에 와서, 많이 배우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 적었지만, 우리 삼 남매를 열심히 키워주었습니다. 당시 돈을 잘 벌며 한 푼도 주지 않던 아버지가 정말 미웠습니다. 우리 집이 가난한 것도, 엄마가 힘든 것도, 이 모든 것이 다 아버지 때문인 것 같아 그냥 미웠습니다. 엄마도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까 어린 저를 붙들고 아버지 욕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자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책임지지 않고, 유약한 남자나 가장의 모습은 더더욱 싫었습니다. 엄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근근이 먹고 살 수는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오빠와 언니는 대학 진학으로 집을 떠났고, 저 혼자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엄마는 저를 돌본다고 생각했겠지만, 오빠와 언니가 없는 이 집에서 엄마를 보살필 사람은 저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19년 부처님 오신 날 묘수법사님께 마정수기 받기 가난해도 넘치는 사랑 학창 시절 집에 갈 때는 항상 번개탄을 사가던 생각이 납니다. 그날도 번개탄을 사서 연탄을 때고 솥에 물을 끓였는데, 어쩌다가 그 팔팔 끓는 물을 쏟아서 발등이 다 뎄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오기 전에 청소를 다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그 발을 끌고 청소를 했습니다. 엄마가 제 발을 보고 많이 속상해 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떤 상황이 오면 ‘못 해요 안 돼요’라는 말을 못 합니다.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야 했기에 받아들이는 게 익숙했습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 옛말처럼, 투정을 부리거나 사춘기로 고집을 부리지 못했습니다. 엄마도 살아가기 위해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때가 행복했습니다. 정말 가난했지만 사랑은 넘치게 받고 자랐습니다. 엄마는 아버지가 없다고 넘치는 사랑을 줬고, 9살 많던 오빠는 제게 아빠가 되어 사랑해줬고, 언니도 학교에서 나오는 빵과 우유를 자기도 먹고 싶었을 텐데 늘 제게 가져다줬습니다. 서로가 각자의 방식으로 막내였던 저를 너무나 사랑해줬습니다. 지금도 제 인생 중 가장 힘든 일이라고 하면 오빠가 제 곁에 없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지주면서 가장이던 오빠가 결혼한지 6개월 만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한 직후였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제게 아빠이자 오빠면서 언제나 키다리 아저씨 같은 든든한 버팀목이던 오빠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제 오빠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지, 모든 것이 막막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또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고혈압을 앓던 엄마와 임신 7개월인 언니를 대신해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장례식 날 슬퍼할 새도, 아파할 시간도 없이, 사고 난 차 번호판을 들고 뒷처리를 했습니다. 이때부터 엄마를 보호할 사람이 정말 저밖에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대학 커플로 만난 남편은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없이 자란 저와 집안 환경이 비슷해서였을까요? 서로 같은 어려움이 있다 보니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고, 따뜻한 사람이어서 참 좋았습니다. 취직 후 남편이 군대에 가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지고 여러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저에게 잘해주기만 해도 호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이제 와서 왜 그런지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사랑이 부족한 것을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채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봐도 별다른 사람이 없음을 깨닫고, 지금의 남편과 2년 만에 다시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은 어린 시절 유복하게 잘 지냈으나, 어머니가 재가해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할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할머니에게 얹혀산다는 생각 때문에 눈치를 많이 보고 자랐다고 합니다. 2019년 4월 행복한 대화 외부 안내 봉사 결혼 후 5년 동안 시할머니와 시삼촌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시누이와 아이들이 매주 찾아왔고, 정작 우리 아이는 돌보지 못하고 친정에 맡겨둔 채 시댁 식구들을 챙기느라 버거웠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너무 어렵게 자라 돈에 대한 집착은 없었지만, 일에 대한 집착은 아주 강했습니다. 이 일이 없으면 당장 먹고 살 수가 없으니, 일하고, 집안일하고, 아이 키우고, 뭐든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툭하면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푸념하는 남편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가족을 책임지지 않아서 저를 힘들게 했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그대로 남편에게 전달됐습니다. 남자도 힘들 수 있는데, 그 당시 저는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대인기피증 시할머니, 시삼촌과 분가하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과외를 하다가 지인과 함께 교육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 했습니다. 수익성이 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력은 한없이 부족했고,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기력이 다 빠져서 그런 거라며 15분 이상 걸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지인에게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저를 함부로 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일을 시키고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더 해주기를 바라는 상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대인기피증이 생겼습니다. 67년 동안 개인과외와 집만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아이가 불안장애로 아파 돌봐야 했고, 개인 과외하고, 집안일하고 아주 바쁜데 대외 활동이 없으니 막연한 공허함이 느껴졌습니다. 2017년 12월 광화문 1만 평화행진 참여.left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스님 책을 찾았습니다. 3년 정도 스님의 책은 모두 다 찾아 읽었습니다. 그 책들 내용 중 “어제까지 너무 좋은 남편이었는데, 그다음 날 남편이 바람피운 걸 알게 됐다. 그러면 똑같은 사람을 두고 어제는 좋은 사람이었다가 오늘은 엄청 나쁜 사람이 됐다. 그럼 이게 누구의 문제인가? 아, 결국 내 생각과 마음의 문제이구나 이런 관점으로 삶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이 신선했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생활해보니 삶의 에너지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 좋은 에너지를 제 돈을 벌고, 제 것을 만들어가는 것에만 쓰기에는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딘가 좋은 곳에 쓰고 싶다는 생각에 일산법당을 찾았습니다. 이 길을 가야겠다 경전반 졸업식 날,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선배 도반들의 봉사를 받았으니, 이제 갚아야죠?” 라는 총무의 인사를 들었습니다. 졸업생인 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마음속에 화살이 박히는 듯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지. 받았는데 갚는 것이 당연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2018년도 봄불교대학 담당 소임을 맡았습니다. 봉사를 덥석 맡는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경전반 졸업할 즈음 법사님과의 대화 속에서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매 순간 저 자신을 채찍질했습니다. 부족한 부분들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랑받지 못해서 떨고 있는 제 모습이 어느 순간 보였습니다. 그때 많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불법은 저에게 들어와 제 어릴 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도, 결혼하고 나서도, 회사 다니면서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제 모습이 슬라이드 돌아가듯 보였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거 같았고, 그렇게 저를 인정하고 안아주는 과정을 연습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아버지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잘나가는 실력파에, 곰 같은 아내, 지금의 저보다도 어린 아버지의 실수가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게 평생을 두고 원망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108배 할 때, 제가 이렇게 세상에 잘 쓰일 수 있게 낳아주셔서 아버지 고맙습니다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전에는 아버지에게 뭘 감사해야 하는 건지 알 수도 없었고,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더욱이 제일 고민했던 것 중 하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장례식에 가야 하나였습니다. 너무 꼴 보기가 싫은데 자식 도리상 그러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생판 모르는 사람을 위해 밤새워서 봉사도 하는데 그 장례식 가는 게 뭐 대수야? 가볍게 엄마 손 잡고 가볼 수 있겠다’ 하는 마음이 듭니다. 2019년 10월 문경 활동가 나들이 기도는 이거구나 이게 진짜구나 이 길을 가야겠다 하는 마음을 주었고, 그 어떤 보시, 봉사, 수행도 거뜬히 해낼 수 있게 했습니다. 하지만 2018년도 봄불교대학 졸업생 수가 적고, 경전반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적어 반이 꾸려지지 않아 큰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로인해 하기 싫은 마음은 올라왔지만, 2019년 봄불교대학 담당과 불교대학 팀장, 2020년 지원팀장 소임을 거뜬히 해냈습니다.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가능했습니다. 주어진대로 살아야만 했던 지난 과거는 제 삶의 큰 자산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제 뜻대로 살 수 없어 괴로웠던 지난날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낼 수 있는 다변한 제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수행하면서 다양한 곳에 쓰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자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길 봉사하면서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미안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은 압니다. 제가 행복하고 가벼운 것을 보여주니 남편도 덩달아 가벼워지는구나 지금은 내가 돈을 조금 못 벌어도, 내가 행복하고 가벼워지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한 길이기에 이 또한 미안한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삶은 이렇게 가벼워졌습니다. 잠이 부족하면 내일도 자고, 모레도 잘 텐데, 하루 좀 못 잔다고 별일 있겠나. 내려놓는 공부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고, 봉사는 저의 시간과 노력, 에너지를 내어주는 연습을 하는 것이기에 거리낄 것이 없습니다. 항상 어디선가 누군가의 뒤에서 조용히 바라지를 하는 남궁옥 님을 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많이 배웁니다. 지금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보여주는 남궁옥 님의 앞길을 늘 응원합니다. 글김세영 희망리포터 편집장순복

일산지회 2021.05.11. 707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그래, 시작이 반이다

국제구호단체인 JTS는 인종, 종교, 민족, 성별, 사상, 이념과 관계없이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작은 힘이나마 함께 모아 일해 가는 단체입니다. 북한사업, 인도 사업, 필리핀 사업과 국내 사업을 다양하게 하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는 청소년 모부가정, 조부모 가정, 한부모 가정, 저소득 결식아동 등 지원이 필요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찾아 그해 겨울부터는 여름, 겨울방학마다 꾸준히 결식아동 영양꾸러미 지원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JTS 홍보물 동인천법당에서는 2017년 하반기부터 복지담당인 조상혜 님과 부담당인 손미연 님이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발굴과 지원대상자의 선정, 물품의 준비과정과 각 가정에 전달되기까지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을 담아보았습니다.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의 시작 처음 시작하는 법당의 자원봉사자들은 지원 대상자의 발굴부터 승인을 받기까지 민관과의 관계나 서류에서 복잡한 절차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동구에서 태어나서 동구에서만 사는 조상혜 님은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행정복지센터의 복지팀과 연계하여 필요한 서류를 직접 작성하고 준비하는 데 큰 어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인천 동구 지역을 3개의 권역으로 나누어서 권역별로 옮기면서 골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자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영양꾸러미를 지원받는 분을 생각해서 대부분 일회성 지원보다는 3회 정도 지속해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다문화가정은 지원 대상자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기관에서 조사하고 발굴하게 되면 동인천법당과 연계하여 지원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합니다 2017년 하반기에 지원계획을 세우고 JTS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2018년 상반기에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13세대에는 도시가스 난방비를, 1세대는 연탄업체에 의뢰하여 연탄으로 직접 받으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영양꾸러미와 온누리 상품권을 13세대에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조상혜 님이 직장에서 퇴근 후 영양꾸러미 지원할 물품들의 목록을 들고 마트에서 하나하나 직접 구매하기도 하였습니다. 2018년 하반기부터는 JTS에서 물품을 법당으로 보내주었습니다. 법당에서 포장과 전달만 하니 아주 수월해졌다고 합니다. 2018년 하반기와 2019년 상반기에 각각 20세대, 2019년 하반기에는 21세대로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영양꾸러미는 어떻게 구성되는지 궁금하시죠? 관공서나 타 단체에서는 김치나 쌀, 참치 세트 등의 물품을 지원합니다. JTS 영양꾸러미는 햄, 참치, 반찬류, 떡볶이, 견과류, 간식 등 아이들을 위한 물품입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반응이 좋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라면에 대해 물었더니 “라면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식품이지만 끓여 먹어야 하는 불편함과 불을 이용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영양을 생각해서 지원하지 않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건강을 우선시하는 품목들로 찾다 보니 유기농 음료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각 가정에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면서 설문지를 드립니다. 작성한 설문지를 핸드폰으로 받아 추후 필요한 물품들을 선정하는 데 반영하기도 합니다. 영양꾸러미 물품에도 신경을 써야 해요 JTS에서 영양꾸러미 물품이 각 법당으로 내려옵니다. 물품을 취합해서 지원하기까지 1주일 정도 소요됩니다. 유통기간이 넉넉한 물품은 괜찮지만, 반찬류는 유통기간이 짧아 신경을 더 써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여름방학 기간에 멸치와 견과류 볶음이나 오징어 진미채 볶음을 지원 물품으로 보내올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물품들과 함께 포장해야 하므로 반찬이 상하지 않도록 포장할 때까지 냉장고에 보관해야 합니다.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고 배송 물품이 모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포장하면 안 됩니다. 반찬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배송 당일 다른 반찬으로 교체해야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법당에 모여 가볍게 마음을 나누고, 각자 맡은 일들을 척척 해나갑니다. 영양꾸러미 물품 담을 상자 준비 중 물품 목록을 가지고 빠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체크하며 전달할 상자에 쏙쏙 여럿이 함께하니 물품 전달 준비가 뚝딱 영양꾸러미 전달을 위해 사전 계획을 하고 팀별로 동선을 짭니다. 골목을 돌고 돌아 영양꾸러미를 전달하기 위해 출발 영차영차 가볍게 영양꾸러미와 함께 잠깐 담소도 나누고 환한 미소로 인사드립니다.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조상혜 님과 이야기 나누어 보았습니다. 부자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 아이 혼자서 물품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문만 열어봐도 알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이 감지되었습니다. 아이 혼자 방치된 듯한 느낌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번은 영양꾸러미를 받은 어머님이 고맙다며 아이와 직접 만든 예쁜 비누를 건네주었습니다. 사양했지만 계속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비누 선물을 받기도 그렇고 받지 않기도 그렇고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준비했다면서 극구 건네주시는 어머님의 마음을 생각해서 받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준다는 생각보다는, 제가 건강하게 봉사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활동하는 내내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돌아보지 않던 제 삶을 성찰해보고 있습니다. 제 생활이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봉사를 하면서 ‘내가 많이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온 바로 다음 날 영양꾸러미를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인도아이들이 불쌍하고 안쓰럽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해맑은 얼굴이 떠오르며 행복의 기준이 물질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풀 한포기도 나서 거름이 되는데 사람으로 태어나서 무언가는 보람된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 법륜스님의 말씀이 떠오르면서 어려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인다는 마음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어머님이 주신 각양각색의 예쁜 비누들 우리 법당도 영양꾸러미 지원사업을 참여하고 싶어요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처음 시작하는 법당의 자원봉사자들은 지원 대상자를 발굴하고 지원 승인을 받기까지 기관과의 연계나 서류의 준비 등 복잡한 절차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을 시작하는 송도법당의 경우 지원 대상자 발굴을 위해서 기관을 방문하여 대상자를 물색하였으나 연계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동인천법당에서 지원 대상자를 조금 더 선정한 후 송도법당이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함께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동인천법당에서는 인근 법당에서 영양꾸러미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싶은 분들이 도움을 요청할 경우 흔쾌히 돕겠다고 하였습니다. 일정을 마친 행복한 웃음 가득한 자원 봉사자들의 마음 이경준 님 봉사하러 온 도반들이 많았습니다. 일사분란하게 각자 맡은 일들을 척척해내는 것을 보고 훈훈한 마음입니다. 가정에 방문했을 때 시설이 노후 되고 벽지에 곰팡이가 핀 환경에서 자식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하는 마음에 속상했습니다. 이교옥 님 두 번째 봉사였습니다. 영양꾸러미를 받고 기뻐할 아이들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하였습니다. 영양꾸러미를 받는 아이와 부모님의 기뻐하는 모습에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법당의 도반들과 행복을 전하는 일에 함께할 수 있어서 뿌듯하고 행복했습니다. 이선정 님 작게나마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참여했습니다. 방학 때 혼자 끼니를 챙겨 먹기 어려운데 영양꾸러미 간편식으로 영양을 보충할 수 있으니 좋았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는 끼니를 거르는 아이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심이 되고 뿌듯했습니다. 박옥금 님 처음 참여하는 봉사여서 아무생각이 없었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한 집 두 집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던 중 젊은 어머님이 ‘아이와 함께 만들었다’며 손수 만드신 비누를 건네주셨습니다. 받지 않으려고 극구 사양했지만 ‘어떻게 매 번 받기만 하느냐?’고 하시면서 다시 건네주신 비누를 어쩔 수 없이 받아오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생활이 어렵다고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누고 싶어 하는 그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며 더 많이 나누고 열심히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안현식 님 개인 약속을 뒤로하고 참여한 ‘영양꾸러미’ 자원봉사 활동. 도반들과 함께해서 값지고 보람되었으며 훈훈한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어려운 가정을 눈으로 보는 순간 내 마음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을 느꼈으며 ‘일체유심조’가 떠올랐습니다. 손미연 님 영양꾸러미 지원 사업을 위해 사전에 수많은 문서들을 준비하고, 민관의 소통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마음을 내어 정성을 다하고 있는 모습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JTS의 국내사업의 일부인 영양꾸러미를 전달하는 과정을 통해 거리모금의 의미도 더욱 간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땅의 어떤 아이들도 소외되지 않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생겼습니다. 조상혜 님 JTS의 영양꾸러미 봉사 횟수가 늘어가면서 함께 늘어가는 자원봉사자들을 봅니다. 도반이 전부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함께 한 도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영양꾸러미를 받고 고마움을 겉으로 표현 못하시는 분도 있고, 감사하다며 환하게 웃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쓰일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함께 한 도반들이 모자이크 붓다가 되어 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손미연 님과 함께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결과보다는 과정의 중요함과 행복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분들 덕분에 제가 행복해졌습니다. ‘영양꾸러미’ 지원은 꾸준히 계속됩니다. 영양꾸러미 지원 활동 초기에는 2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초기라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힘들었습니다. 2020년 1월에는 7명의 도반들이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물품의 포장부터 전달까지 일사분란하게 진행이 되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기사를 취재하면서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2명으로 시작된 힘들었던 상황들이 떠오릅니다. 영양이 듬뿍 담긴 영양꾸러미를 받고 좋아하시는 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부총무 소임을 새롭게 맡으신 조상혜 님의 ‘함께 한 도반들이 모자이크 붓다‘라는 말처럼, 많은 분들이 함께 해서 더욱더 많은 아이들이 영양꾸러미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영양꾸러미를 준비하고 전달하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활동가들의 밝고 행복한 모습에 흠뻑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기획.취재인연등 글안순애 편집고영훈

복지 2020.03.19. 24,932 읽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전국 강연 일정은 추후 공지 예정입니다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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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