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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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7 대구 통일의병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대구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했습니다.nbspnbsp오늘 대중들보다 일찍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기도를 마친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아침 8시에 조찬 모임을 위해 외출을 했습니다. 오전에는 평화재단에서 미팅과 회의를 몇 차례가 가진 후 오후 1시에 서울을 출발해 대구로 향했습니다. nbspnbsp오후 5시에 대구 정토법당에 도착한 스님은 찾아온 손님과 미팅을 가진 후 6시 20분에 오늘 강연이 열리는 수성대학교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수성대학교 김선순 총장님이 직접 인도로 나와 스님으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총장님과 간단히 안부 인사를 나눈 후 강연장으로 들어갔습니다.nbspnbsp▲ 수성대학교 김선순 총장님nbspnbsp강연을 하기 전에는 대구 지역 통일의병들과 함께 간담회 시간을 30분 동안 가졌습니다. 대구 지역 통일의병은 변호사, 교수, 시민단체 활동가,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모임이 구성되어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 대구 지역 통일의병 간담회nbsp각자 자기 소개를 마친 후 스님이 먼저 왜 지금 시기에 통일의병이 필요한지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설명을 마치고 궁금한 것을 묻는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분은 보수적인 대구경북 지역에서 과연 통일운동이 잘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물었고, 한 분은 청소년들은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통일 교육을 해야 하는지 물었고, 한 분은 통일은 북한이라는 국가와 국민들의 존재를 정치적으로 소멸시키는 것이 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방법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시간 제약 상 짧게 답변을 해주었고, 모두들 스님의 말씀에 깊은 공감을 표했습니다.nbspnbspnbsp특히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통일은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는 평화적인 해법에 대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충분히 설명을 잇지 못한 스님은 “자세한 이야기는 강연장에 들어가서 하자”고 하면서 자리를 일어섰습니다.nbspnbsp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으면서 오늘의 만남이 대구 지역 통일운동의 씨앗이 되기를 기원했습니다.nbspnbspnbsp수성대학교 대강당에는 따뜻하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맑은 하늘색 조끼를 입은 봉사자들의 안내에 따라 질서있게 앞자리부터 자리가 채워졌습니다. 시민들은 담소를 나누며 스님을 어서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을 안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0대 여성분은 “스님을 TV에서 한번 보고 직접 스님의 강연을 들으러 온 건 처음”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고,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는 엄마와 함께 왔다며 웃음을 보였고, 40대 남성분은 “정토불교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스님 얼굴을 직접 뵈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설레여 했습니다.nbspnbsp저녁 7시가 되자 500여명이 자리를 모두 채운 가운데 통일의병 백왕순 사무총장의 인사말과 함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법륜 스님이 지난 20여년 간 해온 통일 활동에 관한 소개 영상이 나간 후 큰 박수와 함께 스님이 무대로 올라왔습니다.nbspnbsp▲ 대구 수성대학교 대강당nbsp먼저 스님은 분단이 되고 70년이 지났으니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우리의 생각은 아직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며 변화된 상황 속에서 어떻게 관점을 잡아야 하는지 이야기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죠. 분단된 지 70년이 되었으니까 강산이 변해도 7번은 변했어요. 그런데 우리들의 생각은 안 변하고 그냥 머물러 있어요. 특히 분단 70년을 지나면서 분단 당시와 6.25 전쟁 때의 아픔 같은 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세상이 많이 바뀌었는데도 늘 그 생각을 하게 돼요. 어릴 때 부모님에게 야단맞은 기억은 지금도 여러분들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현실은 많이 바뀌었는데 우리의 생각은 과거에 머물러 현실과 많이 유리되어 있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대화하면서 50년 전, 30년 전과 비교해 지금 얼마나 국제정세가 바뀌었는지 살펴보고, 우리들 내부의 삶도 많이 바뀌었으며 청소년들의 생각도 우리의 생각과 많이 달라진 상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nbspnbsp젊은이들은 통일에 대한 관심도 적고, 통일에 대해서 거부하는 마음이 더 큽니다. 그 첫 번째 이유가 가난한 사람들과 같이 살면 우리 걸 줘야 하니 손해라는 생각을 제일 먼저 하기 때문이에요. 좋다 나쁘다를 떠나 이게 현실이라는 겁니다. ‘이 현실 위에서 우리가 어떻게 할 거냐?’ 이렇게 사물을 봐야지, ‘너 지금 생각 잘못하고 있다’ 이렇게 접근하면 현실에 안 맞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현실과 유리되어 있는 것이 문제지만,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 또한 현실이라는 말이에요. 그러니 이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거냐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어려운 가운데서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nbsp이어서 스님은 남북의 통일 문제를 남녀의 결혼에 빗대어 통일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통일 문제는 좌우, 진보와 보수, 야당과 여당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예요. 통일 없이는 이제 더 이상 국가 발전이나 민족의 비전을 만들기가 굉장히 어려워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요만큼 살게 된 것도 어디냐, 옛날에 비하면 이만큼 살게 된 것만 해도 됐지’ 이렇게 만족한다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아니다, 아직은 더 발전해야 한다. 통일을 발판으로 삼아 고구려의 꿈을 실현하자. 통일을 통해서 자주독립국가를 구성하고 동아시아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국가로 다시 한번 일어서자’ 이렇게 희망을 가지고 접근할 수도 있어요. 천 년 만에 다시 도약할 기회가 왔다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느 쪽으로 갈지는 우리의 선택이에요.nbspnbspnbsp예쁜 여자를 보고 결혼하고 싶어서 결혼하자고 했는데 여자가 콧방귀도 안 뀌어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할 거냐는 겁니다. ‘그래, 너 잘났다’ 하고 혼자 계속 사는 선택을 할 수도 있겠죠. 그래도 꼭 그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면 콧방귀를 뀌더라도 구애를 계속해야죠. 그런데 선물을 사줘도 집어던져버려요. 당연히 기분이 굉장히 나쁘죠. 그래도 참고 다시 사다줬는데 또 집어던져버려요. 심지어 욕까지 해요. 그러면 옆에서 이럽니다. ‘왜 그리 바보처럼 여자에게 질질 끌려다니냐? 한번만 더 그러면 따귀를 때려버려라.’ 그 말도 맞다 싶어서 다음 번에 또 선물을 집어던졌을 때에는 따귀를 때려버렸어요. 그러면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결혼은 안 돼요. nbspnbspnbsp목표가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그래도 그 여자와 결혼하려면 오히려 뺨을 한 대 맞고서라도 ‘그래도 사랑합니다’ 하고 구애를 계속해야 합니다. 때리더라도 결혼식은 올리고 때려야 해요.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그렇게 수모를 겪었지만 일단 결혼하면 내 마누라인데 굳이 때릴 이유도 없잖아요. nbspnbspnbsp제가 이런 비유를 드는 이유는 우리 민족의 살 길이 통일이고 비전이 통일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북한이 통일을 안 하려고 한다, 북한이 이러저러해서 안 되겠다’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북한을 어떻게든 구슬려서 목표를 달성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그건 우리의 선택이에요. 북한이 저런다고 그럼 우리가 일본하고 통일을 할까요? 중국하고 통일을 할까요? 미국하고 잘 지내니까 미국하고 통일할까요? nbsp지금 우리에게 최대의 위협 세력은 북한이지만, 통일할 대상도 북한이에요. 남북 관계에는 그런 이중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지금 나한테 제일 못되게 구는 사람도 저 여자지만 내가 결혼할 여자도 저 여자예요. nbspnbspnbsp그래서 포용이 필요합니다. 내 사람을 만들려면 포용해줘야 합니다. 조그마한 것 하나하나 다 따지면 안 돼요. 주인 된 자세가 아니라면 성질대로 하고 치워버리면 돼요. 성질대로 하면서 저처럼 이렇게 혼자 살아도 돼요. 이것도 뭐 괜찮아요, 하하. 그러나 정말 주인 된 자세를 가진다면 행동이 달라져야 합니다.”nbspnbsp결혼에 임하는 두 남녀의 심리를 남북의 통일 문제로 등치시키니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명쾌하게 다가왔습니다. 어렵고 딱딱한 통일 강연이지만 스님은 이렇게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주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여는 이야기를 마치고 “오늘은 강연의 시간이 아니라 대화의 시간이에요. 질문이 있으면 뭐든지 해보세요.”라며 대중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nbspnbsp50대 남성 분은 매일 새벽과 저녁에 108배 참회 기도를 하고 있고 매일 1000배를 1100일 동안 한 적도 있는데 기도를 시작하고 나서도 내 주장을 계속 내세우다 보니 직장동료들의 미움의 대상이 되고 있어 고민이라고 질문했고, 2년째 육아 휴직 중에 있다는 여성분은 우울증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지금도 가끔 나락으로 빠지는 경우가 있어서 성격이 느긋한 남편이 육아를 하는 것이 나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는 엄마가 육아를 하는 게 나을지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길게 이야기하며 스님에게 하소연을 하던 여성분은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횡설수설을 하기도 했는데 도저히 스님의 답변을 알아듣지 못해 안타깝지만 답변을 멈추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습니다. 마지막으로 대구에 살고 있다는 40대 남성분은 국내적으로는 기득권자들이 통일을 방해하는 요인인 것 같고 국제적으로는 주변 강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통일을 방해하고 있지 않나 싶은데 그렇다면 남은 건 대한민국 국민들이 합심하는 길 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한 분 한 분의 질문에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정성껏 답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새터민이 질문한 통일에 관련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저는 북한에서 탈출한 지 20년이 되었고 한국에 온 지는 5년 좀 넘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국정원과 하나원, 사회 감호소를 거칠 때부터 ‘통일이 10년 내로 될 것’이라고 계속 들어왔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10년이면 된다’고 하니 참 답답합니다. 저는 현재 새터민 봉사단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저희는 정말로 통일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한 번씩 모여서 고향 이야기를 할 때마나 눈물만 앞섭니다. 어떻게 하면 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까요? 얼마나 노력해야 하고 또 어떤 일을 하면 빨리 앞당길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nbsp새터민의 목소리에는 고향의 가족을 만나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묻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새터민들의 마음을 받아주면서 이렇게 답변해 주었습니다.nbspnbsp“남한에 살고 있는 우리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실 겁니다. 우리는 통일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저분들은 통일을 안 하면 안 돼요. 통일을 해야 고향도 가고 가족도 볼 수 있으니까 절박해서 이런 질문도 하시는 것이지요.nbsp그러나 생각해볼 점이 있어요. 첫째, 통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통일이 쉽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쉬웠으면 분단 70년까지 오지도 않았겠지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그렇게 외쳤는데도 지금까지 통일이 안 됐다는 것은 통일이 쉽지가 않다는 겁니다. 산업화도 쉽지 않았지만, 산업화는 그래도 해냈잖아요. 그건 산업화가 통일보다는 쉬웠다는 이야기예요. 민주화도 할 때는 아주 어려웠어요. 감옥 가고 난리도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그런 민주화를 이 정도 해냈다는 것은 민주화가 통일보다는 쉬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통일은 우리 선배들이 한 산업화보다, 우리 선배들이 한 민주화보다 더 어렵기 때문에 안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nbspnbspnbsp그런데 또 뒤집어놓고 보면 오히려 그래서 희망을 가질 수도 있어요. 우리가 1960년대에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고 노래 부를 때 우리가 이만큼 잘 살 거라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어요. 1980년대에 청년 학생들이 감옥 가고 데모할 때 정말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될 거라고 상상 못 했어요. 특히 기성세대들은 모두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민주화가 이루어졌어요.nbspnbsp통일도 그와 비슷합니다. 지금 여러 상황을 보면 통일은 가망이 없어요. 미국이 원하는 것도 아니고 중국이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통일된 한국이 자기 편이 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도와줄 텐데, 통일된 한국이 어느 쪽으로 갈지 자기들은 모르잖아요. 그러니 남북을 갈라서 미국은 남한을, 중국은 북한을 지금처럼 반쪽씩이라도 잡고 있는 게 더 확실하고 유리하다고 보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아주 적극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는 한 미국과 중국은 현상 유지가 목적이에요. 그러니 국제적으로도 별로 안 좋은 상황이지요.nbspnbsp북한은 어떨까요? 질문자도 북한에 살아봤으니 알지만 북한은 입으로는 ‘통일, 통일’ 외쳐도 실제로는 통일할 생각보다는 자기 체제 유지에 급급하지 않을까요?”nbsp“정권은 그렇지만 백성들은...”nbsp“아니, 정권이요. 정권은 말로는 통일을 요구하잖아요. 그렇지만 실제로는 통일이 중요할까요? 자기들 권력 체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할까요?”nbsp“체제 유지를 원합니다.”nbsp“그렇죠. 그러면 또 남쪽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국민도 그렇고 지도자도 그렇고 정말 통일해야 되겠다고 진심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많던가요? 통일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들도 그 사람들이 통일하려고 일합디까, 자기 승진하고 출세해서 돈 벌려고 일합디까?”nbsp“안전하게 승진하는 것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nbsp“공무원들을 나무라는 게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가 그렇다는 거예요. 정말 자기가 희생하더라도 통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없고 다들 어떻게든 승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어요. 통일을 주장해서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으면 통일을 주장하고, 통일을 반대해서 국회의원이 될 수 있으면 통일을 반대하고, 이렇게 지조가 전혀 없고 자기 목표만 중요합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래요.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도 제가 통일 강연 하러 왔다는데도 다들 자기 이야기만 하잖아요. 아이가 어떻고 배우자가 바람 피워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지, 지금 나라가 이런데 나라를 어떻게 살려야 하냐는 이야기는 관심 없어요. 여기서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가버릴 겁니다. nbspnbspnbsp그런 게 현실이기 때문에 현실만 보면 통일이 되기 어려워요. 북쪽의 지배층처럼 남쪽에도 지배층이 있지요? 정권을 잡고 있거나 권력의 핵심에 서 있는 소위 기득권은 분단으로 인해 이익을 본 사람들이어서 통일에 선뜻 나서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어요. 통일하면 요즘은 기업가가 좀 더 이익일 것처럼 되었어요. 자본가가 더 이익을 얻고, 권력도 좀 더 유지할 수 있을 것처럼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금방 통일대박론 주장하고 보수언론까지 통일에 앞장서는 거 봤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이게 다 이해관계로 일어나는 거예요.nbspnbsp그런데 이렇게 해가지고는 좀 어려워요. 어떤 힘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해야 이루어져요. 이런 현상만 본다면 통일하기 어렵다고 봐야 해요. 그러니 너무 ‘5년만 있으면 통일될 거다’ 이런 생각 하지 마세요.nbsp두 번째, 그렇다고 통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산업화도 불가능하다 했는데 되었고 민주화도 불가능하다 했는데 됐어요. 산업화할 때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 하고 엄청나게 노력했잖아요.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1차, 2차, 3차까지 실행하니까 불가능하다고들 하던 것도 이루어졌어요. 민주화 할 때 청년 학생들이 무더기로 감옥 가는 걸 보고 기성세대들은 모두 ‘저놈들이 나라 망친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의 그런 투쟁을 통해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겁니다.nbspnbsp그러면 통일을 이루려면 누군가가 통일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개인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북한 주민들의 생존을 위해서, 인권 개선을 위해서, 남한 젊은이들의 미래 희망을 위해서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는 사람과 집단이 있어서 그게 세력화가 되어야 통일이 이루어지지, 가만히 앉아서 통일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 될 수 있습니다. nbspnbsp국제 환경은 어떨까요? 옛날에는 통일 가능성이 별로 없는 환경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통일하기에 유리해졌어요. 앞에서 통일이 쉽지 않다고 설명한 내용과 모순되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떤 면에서 유리해졌을까요? 전에는 미국 일국 체제였다가 지금은 중국이 부상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존의 질서가 바뀌어야 하잖아요. 변화가 오는 겁니다. 이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분단 고착화로 가지만, 변화에 제대로만 대응하면 현상이 변경되는 과정을 이용해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위기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해요.nbspnbsp국내 분위기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저렇게 굶어죽는데 독재를 하고 권력을 3대 째 세습하는 놈들과 어떻게 통일하느냐? 게다가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통일하면 손해 아니냐?’ 이러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것도 거꾸로 뒤집어 생각해보면 통일하기에 유리한 분위기가 된 셈이에요. 저렇게 독재를 하니까 주민들이 겉으로는 복종해도 속으로는 복종하지 않잖아요. 그러면 통일에 유리해진 거예요. 거기는 거기대로 충성하고 여기는 여기대로 충성하면 끝이 안 날 텐데 한 쪽이 충성도가 약해졌잖아요. 저 사람들이 나쁘게 하면 할수록 통일에 유리해요. 그러니 그걸 욕하지 마세요. 우리가 볼 때 엉뚱하게 하면 할수록 통일에는 가까워지고 있어요. nbspnbspnbsp주민 생활이 어려우면 통일에 유리해요. 그것도 북쪽의 상황이 통일에 유리하게 됐어요. 그런데 유리하다고 힘으로 밀어붙여 통일을 하려 들면 부작용이 생깁니다. 6.25 전쟁이 일어날 당시에는 북쪽이 남쪽보다 유리했어요. 그래서 북쪽이 생각하기에 자기들이 유리하니까 남쪽을 밀어붙이면 통일이 될 거라 생각해서 전쟁을 일으켰잖아요. 그래서 한 달 만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왔는데 미국을 고려 못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다시 수도를 회복했어요. 우리도 밀릴 때는 방어에만 급급했는데 전세가 유리해지니까 올라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중국이 올라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밀고 올라갔잖아요. 우리가 유리한 것만 생각했지 중국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러니 중국이 개입해서 또 밀려 내려오고, 오락가락 하다가 휴전을 했잖아요.nbspnbsp그때처럼 지금 우리가 유리하다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중국이 가만히 있을까요? 중국은 바보가 아니에요. 북한은 군사력으로 보나 뭘로 보나 유리하지 않아요. 그러나 전쟁을 하면 북한이 비록 진다고는 하지만 우리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지 않을까요?”nbsp“피해를 많이 줄 것 같습니다.”nbspnbsp“다 초토화된 뒤에 이기면 뭐 해요? 이기기는 이기는데 피해가 막대합니다. 게다가 북한을 이기더라도 완전히 점령하기는 중국의 개입 때문에 쉽지가 않아요. 그러니 무력으로 밀어붙여 하는 통일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nbsp그러면 통일을 평화적으로 해야겠지요. 평화적으로 한다는 건 상대의 요구도 좀 받아들여줘야 한다는 거예요. 남쪽이 통일을 하려면 무조건 힘으로만 밀어붙이려 들지 말고 북쪽의 요구와 북쪽이 우려하는 요소도 고려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남쪽 정부가 중심이 되되 북쪽을 조금 포용해주면 통일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남쪽이 딱 중심을 잡아서 ‘한반도 문제는 우리의 이익을 우선해다오. 세계의 이익은 우리가 미국에 협조할게’ 이렇게 미국을 설득하고, ‘통일된 한국은 중국을 적대하지 않을게’라고 중국도 설득하는 등 적극적인 외교 정책을 취한다면 생각보다 통일이 빨리 올 수도 있어요.nbspnbsp그런데 꼭 휴전선 무너지고 하나가 되는 통일이 질문자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잖아요. 질문자는 북쪽의 가족들을 마음대로 만나고 왕래할 수 있는 게 지금 제일 급하지 않아요?”nbsp“네.”nbsp“여러분들은 통일이라고 하면 꼭 체제가 하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통일하겠다는 방침만 확실히 정해지면, 즉 ‘저 사람과 결혼하겠다’라는 결심만 딱 서면 상대가 좀 시비를 걸어도 거기에 크게 구애받지 않습니다. 철도 복구하고 나무 심고 농업 지원하면서 지금부터 투자를 해 들어갈 수도 있어요. 그쪽에서 시비 거는 것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 돼요. 다만 앞으로의 행동 계획을 짤 때 고려는 해야지요. 언제쯤 가면 어떤 시비를 걸지 예측해서, 딱 안보를 유지하면서 위험요소는 관리를 해야 해요. 그렇게 해나간다면 질문자에게 필요한 그런 통일은 한국 정부만 제대로 한다면 23년이면 가능해요.nbspnbsp제일 먼저 평소에는 왕래 못 하더라도 추석과 설만에라도 왔다 갔다 하자, 이런 건 할 수 있잖아요. 이산가족 만나듯이 할 수 있어요.nbspnbspnbspnbsp다음으로, 남쪽에서 버는 돈을 북쪽 가족에게 보내줄 수 있도록 하자. 그러면 질문자가 돈 열심히 벌어서 가족들 보내주고 고향에 투자도 할 수 있잖아요. 이 정도만 되어도 질문자에게는 이미 통일이 된 것이지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 이게 통일의 시작이라는 거예요. 이 시작은 우리가 결심만 하면 내일부터 당장 할 수 있어요. 완전히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시간이 10년 걸릴지, 20년 걸릴지, 30년 걸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건 우리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치적 통일은 빨리 할수록 부담이 크고 부작용이 많습니다. 오히려 그건 천천히 해도 아무 경제적 손실도, 사회적 혼란도 없어요.nbspnbspnbsp그러니 통일을 보는 관점만 정확하게 잡으면 23년 안에 사실상 통일의 길에 들어서는 성과를 아주 빨리 이룰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인 것까지 다 이루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질문자는 결과는 별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통일은 멀기도 하지만 또한 바로 눈앞에 와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nbsp“저는 편하게 왔다 갔다 할 수만 있어도 좋겠습니다.”nbsp“그렇죠. 질문자가 대통령 될 것도 아니고 정치할 것도 아닌데 북한이 다 없어지고 하나가 되는 게 뭐 필요해요? 질문자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전쟁이 안 일어나고, 고향에 마음대로 가고, 내가 번 돈 내 가족에게 마음대로 주고, 내가 번 돈으로 가족들이 거기서 사업해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잖아요. 그 정도는 남북 간에 협상을 서두르면, 아니 딱 남쪽만 결심을 한다면 몇 년 안에 할 수 있는 거예요. 빨리 그런 날을 만들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합시다.”nbsp“예. 감사합니다.”nbsp통일은 복잡하고 어렵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막연하게만 다가왔는데 오늘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니 우선 통일을 하자고 방향을 명확히 하기만 하면 지금 당장에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미 통일은 가까이 다가와 있다고 생각이 되니까 가슴이 두근 두근 뛰었습니다. 청중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nbspnbsp강연을 마치고 질문한 분에게 찾아가 스님의 답변을 들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nbspnbsp“오늘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아 그렇구나 저런 것을 하면 좋겠구나.’는 생각이 들었어요. 통일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뭔가가 생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nbsp질문자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특히 새터민들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명쾌한 답변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통일을 위해 가장 중요한 세가지를 이야기해 주면서 그 첫발은 대한민국의 통일에 대한 의지라고 강조한 후 지금 우리가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 우리 대한민국의 의지, 둘째, 남북간의 합의, 셋째, 주변국의 협력입니다. 이 세 가지를 함께 추진해야 통일이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첫발이 되는 대한민국의 통일에 대한 의지예요. 그런 정부를 구성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이건 우리 손가락만으로도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겠어요?”nbspnbsp“네” nbspnbsp“나 혼자 나서 봐야 우리는 소액주주라서 별로 도움이 안 돼요. 1인당 최소한 100명은 투표장으로 함께 가야 합니다. 그러니 평소에 주위 사람들에게 잘 해주세요. 통일이 어떻고 저떻고 설득하려 들면 힘드니까 그러지 말고 밥도 사주고 차도 사주고 이런저런 것을 잘해주면서 ‘신세져서 어떡해?’ 하면 ‘나중에 내가 부탁할 게 있으니까 괜찮아’ 이러세요. 이렇게 우군을 만들어놓고 나중에 ‘야, 밥값 할 때가 왔다. 이렇게 찍어라.’ 하면 됩니다. nbspnbsp여야를 떠나서 통일을 정말 지향하는 지도자, 정당, 세력을 지지하겠다고 마음먹기만 한다면 제가 보기에 23년이면 통일합니다.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요. 그런데 문제는 마음을 안 먹어요. 통일이 되면 청년들이 군대 가서 죽을 일도 없고, 기차 타고 유럽 여행도 갈 수 있고, 혜택이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북한 개발에 돈 들지 않냐고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투자잖아요. 투자는 돈이 없으면 빌려 써도 돼요. 투자를 하면 이익이 막대하게 나오는데요. 철도 놓을 때 돈 드는 건 맞아요. 그러나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결해 화물 운송을 시작하면 10년, 20년 안에 본전 다 뽑습니다.nbspnbsp오늘은 경제적인 면에서 간단히 설명했지만 통일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를 뛰어넘는 우리의 숙원입니다. 지난 천 년 동안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아픈 기억이 참 많습니다. 몽골이 침략했을 때 삼별초가 항몽 투쟁 하다가 다 죽은 거 아시죠? 임진왜란 때 의병들 몰살당한 것도 아시죠? 또 동학 혁명 때 얼마나 많이 죽었어요? 1차, 2차 의병 전쟁 때며 6.25 전쟁 때는 또 얼마나 많이 죽었습니까? 우리는 혁명을 해서 성공한 일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우리 속에 피해의식이 생겼기 때문에 지금도 뭐든지 머리로는 옳다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안 나서려고 합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가 우리 힘으로 통일을 이룬다면 이렇게 쌓여온 천 년의 한을 다 청산할 수 있습니다. 주눅 들어 살던 우리 모습도 극복할 수 있어요. 이처럼 통일은 경제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자신감을 가져옵니다. 미국 사람, 일본 사람, 중국 사람을 만났을 때 절대 기죽을 이유가 없어요. 식민지 지배의 모든 상처도 우리의 힘으로 통일을 이루어낸다면 다 과거의 추억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통일은 해도 그만 말아도 그만인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민족의 발전, 국가의 발전, 후손들의 행복을 위해서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로 다가왔고 그 시기도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기회를 잘 활용하면 통일로 가고, 기회를 놓치면 영구분단으로 가는 길에 서 있습니다. 이런 점을 자각하셔서 통일의병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세요.nbspnbsp통일의병에 참가한다고 손해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손가락만 잘 놀리면 됩니다. 그리고 잘못 놀려도 부작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데모는 잘못하다가 잡히면 감옥에 가야 하지만, 이건 감옥 갈 일도 없고 야단맞을 일도 없어요.nbspnbspnbsp우리가 이렇게 쉽게 통일의병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선배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입니다. 우리 선배들이 총 들고 목숨을 내던져가며 싸워서 나라를 독립시켜 주었고, 우리 선배들이 피 흘리고 투쟁해서 민주화를 이루어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쉽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안 하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어요. 공짜로만 먹으려고 하면 안 돼요. 조금이라도 노력하면서 좋은 세상을 바래야지요. 그런 활동에 여러분들도 같이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통일의 필요성에서 시작해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까지 일목요연하게 딱 정리가 되는 명쾌한 강연이었습니다. 청중들은 통일을 위해 작은 기여라도 반드시 할 것을 다짐하며 큰 박수로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2시간 30분 동안의 강연을 마친 후 사회자의 제안에 따라 대중은 스님과 함께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손잡고 불렀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여자 어린이의 목소리가 애틋한 마음을 더 느끼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 다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nbsp노래를 마치고 나서 스님은 질문했던 분들을 비롯한 청중들에게 악수를 건네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모두들 좋은 강연을 들려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 입구에는 강연을 듣고 나가는 대구 시민들을 향해 ‘통일시민학교 입학생 모집’을 위한 통일의병들의 열띤 홍보전이 펼쳐졌습니다. 대구에서는 10월 17일과 18일 양일 간 대구 수성대학교에서 통일시민학교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이 입학해서 새로운 통일의병으로 거듭나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 통일시민학교 입학생 모집nbsp다른 한쪽에서는 스님의 책 사인회가 펼쳐졌는데, 스님에게 사인을 받고자 많은 분들이 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스님은 한분 한분에게 환한 웃음을 보여주며 강연장까지 찾아와준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 책 사인회nbsp책 사인회를 마치고 시민들이 모두 돌아간 후 강연장 곳곳에서 소임을 맡이 봉사한 통일의병들은 스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통일 의병”을 당당히 외치는 모습에 기쁨과 보람이 가득해 보였습니다.nbspnbspnbsp수성대학교를 빠녀 나온 스님은 곧바로 울산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밤12시에 두북에 도착한 스님은 보고서와 서류들을 읽어보며 업무를 보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 10시 30분에 광주시청 대강당에서 광주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있고, 저녁 7시에는 광양 커뮤니티센터에서 광양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nbspnbsp ※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2015.10.09. 32,577 읽음 댓글 23개

2015.10.6 (오후) 동대문구 청년 즉문즉설 강연

nbsp오전에 백담사 기본선원 초청법회에 이어서 저녁 7시 30분부터는 동대문구민회관에서 청년들을 위한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오후 6시에 평화재단을 출발한 스님은 7시에 동대문구민회관에 도착하였지만, 차 안에서 보던 원고 교정 업무가 아직 끝나지 않아 7시30분까지 차 안에서 계속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 차 안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스님nbsp저녁 7시부터 입장이 시작되어 많은 청년들이 입장하기 시작했지만, 7시 30분이 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준비된 객석의 절반 정도만 채워진 상태여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강연 장소가 지하철역과는 먼 외진 곳이기도 했지만, 직장생활로 바쁜 청년정토회 봉사자들이 평소보다 홍보활동을 많이 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nbspnbsp꽉 차지 않은 강연장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00여명의 청년들이 자리한 가운데 큰 박수와 함께 단란한 분위기 속에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동대문구민회관nbsp스님이 “저녁은 먹고 왔어요?” 라고 웃음을 띠며 묻자 일하고 오느라 못 먹고 온 분들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저도 저녁을 안 먹었어요. 한끼 정도는 안 먹어도 괜찮아요” 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은 “대중부에서 주관하는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에 청년들이 참석해도 되는데 요즘 청년들이 많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청년들만을 위해 특별히 오늘 강연이 별도로 마련되었다”고 하면서 청년들을 향한 애정을 듬뿍 내비쳐 주었습니다.nbspnbsp먼저 스님은 개인의 행복과 사회 제도의 개선을 함께 병행해 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긍정적 사고를, 사회 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는 현재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제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개선해 나가야 하는 핵심 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는 긍정의 기반 위에 비판 의식을 가져나가야 함을 강조했습니다.nbspnbsp“우선 대한민국이 살 만한 나라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버리고 이민 갈 나라도 아니고, 자살할 나라도 아니고, 자포자기 할 것도 아니에요. 살 만한 나라라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문제가 아주 많아요. 특히 코리안 리스크라고 해서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황에 있지요. 그러니 평화가 정착되도록 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는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 경제력을 골고루 분산시켜 국민의 행복도가 높아질 수 있도록 분배 정책을 바꿔줘야 해요. 정치적으로는 중앙에 너무 집중된 권력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고,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권력을 내각으로 옮겨서 그 권력이 시민들에게 가까이 오도록 ‘주민자치’라는 직접민주주의가 일부 실현될 수 있도록 해줘야 우리 사회가 보다 살 만한 사회가 됩니다.nbspnbspnbsp‘그래도 50년 전에 비하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안보 면에서나 좀 나아졌다’고 하는 긍정을 바탕으로 해서 ‘그러나 아직 개선할 점이 많다’고 하는 비판의 정신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긍정의 정신이 없이 부정적인 시각만 강해요. 부정적인 시각 위에 비판을 하면 파괴적으로 가기 쉽습니다. 긍정적으로 보라고 하면 반대로 비판 정신이 또 없어져서 안주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긍정적 시각 위에 비판 의식을 가지면 혁신적 에너지가 나오게 됩니다. 자, 이 정도로 하고 여러분들 개인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보세요.”nbsp여는 말씀을 마치자 여기 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을 하고자 했습니다.nbspnbsp총 7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20대 여성분은 10년을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져는데 나 자신에게도 참회하고 남자친구에게도 참회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고 물었고, 역시 20대 여성분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한 상태인데 부모님 얼굴을 볼 때마다 자꾸 금전적인 것을 원하시니까 힘이 드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고, 30대 남성 분은 외가집이 제사를 지내지 않고 나서부터 집안에 안 좋은 일이 계속 생기는데 제사와 인과응보가 관계가 있는 것인지 물었습니다. 20대 남성분은 지금 노인 빈곤율이 심각한 수준인데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노후를 살아가려면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 물었고, 직장을 다니는 20대 여성분은 제멋대로 하는 경향이 강하고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지 못해 앞으로 점점 고독하게 지내게 될 것 같아 불안한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각각의 질문에 대해 스님은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마지막 질문자가 한명 더 있었지만 강연장의 문을 닫아야 하는 시간이 되어서 질문을 더이상 받지 못했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7개월 된 아이를 계속 키우는 것과 돈을 더 벌기 위해 직장에 복직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이 자꾸 생긴다는 아기 엄마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어린 아기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말 못하는 아기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자 목소리가 많이 높아졌습니다.nbspnbspnbsp“7개월 된 아기 엄마입니다. 육아 휴직을 하고 아기를 키우고 있는데, 저희 회사는 1년만 쉴 수 있어서 2월에는 복직해야 합니다. 휴직 시작할 때는 무조건 회사를 그만두고 3년은 제 손으로 키우겠다고 생각했는데, 복직할 때가 점점 다가오니까 그만두기 아까운 마음이 들어요. 아기와 지내는 것이 즐거워서 회사 생활에 미련에 남진 않지만 돈에 미련이 생기고, 요즘 외벌이로는 절대 아기 못 키운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걱정이 됩니다. 아기를 제 손으로 3년 키운 뒤 돈을 다시 벌고 싶지만, 지금도 취업이 이렇게 어려운데 3년 뒤에 과연 40대의 경력단절 주부를 써줄 직장이 있을지도 고민되고요. 남의 이야기일 때는 쉬웠지만 막상 제 이야기가 되니 마음이 갈팡질팡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질문드립니다.”nbsp“돈을 빌리고 싶으면 빌려도 되지만, 빌린 돈은 갚아야 합니다. 돈은 빌리고 싶고 갚기는 싫은 것은 욕심이에요. 욕심이 결국 고통을 가져옵니다. 지금 빌릴 때는 좋지만 나중에는 갚아야 할 빚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그때 좀 참고 안 빌릴 걸’하고 후회하기 쉽습니다. 그럴 때는 후회하지 말고, 이미 인연을 지었기 때문에 기꺼이 과보를 받아야 합니다. ‘안 빌릴 걸’ 하고 지나간 일을 후회해봤자 아무 도움이 안 돼요. 그러나 겪어보고 ‘다시는 빌리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지금뿐 아니라 미래까지 바라봐서 ‘앞으로는 좀 궁하더라도 다시는 빌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게 해줄 경험은 필요합니다. 다만, 한번만 실수하지 두 번은 안 해야죠. 이걸 두고 부처님께서 ‘제1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말라’고 이야기하셨어요. 그런데 우리는 실수를 반복합니다. 조금만 어려우면 빌리고, 나중에는 갚느라 괴로워하고 후회합니다. 그래놓고 또 조금 궁하면 빌리고 갚느라 괴로워하기를 반복해요. 빌리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빌렸으면 갚으라는 겁니다. 갚을 때 괴로워하거나 후회하지 말고, 내가 지은 인연의 과보니까 기꺼이 받으라는 이야기예요.nbspnbsp아이라는 존재의 성격을 이해해야 합니다. 큰 부잣집에 사는 것과 작은 집에 사는 것, 큰 자동차를 타는 것과 작은 자동차를 타는 것의 차이가 한 살짜리 어린아이에게는 중요하지 않아요. 기저귀가 일제인지 한국제인지가 아기에게 중요할까요? 이건 아이가 아닌 엄마에게 중요할 뿐이에요. 엄마가 아이 유모차를 좋은 걸로 해놓으면 기분이 좋고, 기저귀를 좋은 걸로 갈면 기분이 좋고, 큰 자동차를 타면 기분이 좋은 거예요. 그게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엄마에게 좋다고는 할 수 있지만, 아이에게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nbsp아이의 입장에서는 엄마 젖꼭지를 무는 게 우유병 꼭지를 무는 것보다 나아요. 또 말랑말랑한 엄마 가슴 만지고 심장박동 들으면서 젖 먹는 게 좋지요. 아이 입장에서는 사랑해주는 사람의 품에 안겨서 자라는 것이 심리적으로도 훨씬 안정이 됩니다.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 품에 안겨 자라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안는 사람 마음이 엄마처럼 되기가 쉽지 않아요. 자기가 낳아서 안는 마음과 남의 돈을 받아서 봐주는 마음은 같기가 어렵습니다.nbspnbsp유아원에 자기 애를 맡긴다고요? 맡기는 건 자기 자유예요. 그러나 질문자는 나의 미래, 나의 삶을 생각하는 것이지 아이의 행복,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 질문자는 엄마가 아니에요. 아이를 위해서 나의 목숨도 버리는 존재가 엄마예요. 건물이 무너졌다면 아이를 껴안아서 애는 살리고 나는 죽는 게 엄마란 말이에요. 그런 마음일 때 아이가 그 마음을 먹고 자라서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문제인 것은 그걸 제대로 못 먹어서예요. nbspnbspnbsp옛날 사람들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옷도 제대로 못 입었지만 3살 때까지 엄마 품에서 자라면서 엄마의 그 정성을 먹고 자랐는데, 지금 사람들은 우선 젖부터 소의 젖을 먹고 자랐잖아요. ‘엄마가 젖이 안 나와서 굶어죽는 것보다는 소젖이라도 먹는 게 낫다’는 것과 ‘젖 먹이면 몸매 가꾸는데 장애가 되어 귀찮으니 소젖을 먹인다’는 것을 비교해보세요. 후자는 아이가 최고의 가치가 아니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키운다면 애초에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나 엄마가 키우나 별 차이가 없어요.nbspnbsp그러니 이건 비교할 대상이 아니에요. 직장을 다녀야 한다면 ‘나는 내 아이를 어떻게든 3년은 내 손으로 키우겠다’ 하고 내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싸워야죠. ‘1년은 유급 휴가 썼지만 2년은 무급 휴가라도 달라’ 이렇게요. 싸운다는 건 화내고 싸우라는 게 아니라 내 권리를 주장하라는 거예요. 요청해서 안 들어주면 또 요청하고 또 요청하고, 아기 업고 가서 이야기하고 또 업고 가서 이야기하고, 예외가 만들어지도록 감동을 시키세요. 아니면 아기를 업고 근무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 아니면 재택근무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해야죠. 왜 자기 권리를 못 찾아요? ‘내가 지금 나쁜 짓 합니까? 지금 출산률이 이렇게 낮은 가운데 애를 낳아 키우는데, 애를 잘 키워야 국민이 건강하고 대한민국이 좋아질 거 아니에요.’ 이렇게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요청해야 해요. 무급휴가를 달라, 안 되면 재택근무하게 해 달라, 그것도 안 되면 아기 업고 근무하게 해 달라, 그것도 안 되면 아기 업고 근무하는 동안에는 월급 절반만 달라, 이렇게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세요. 3년 뒤에 복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에 핵심을 두고 투쟁을 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래도 도저히 안 된다면 아무리 아까워도 직장을 버려야죠. 3년 후에 이만한 직장 없는 거야 당연하죠. 그게 희생이지, 다 보장되면 그게 무슨 희생이에요? 지금 아이를 내가 돌보지 않고 직장에 돌아갈 경우 월급 300만원이 보장되어 있다면 앞으로 내가 아이를 키워놓고 직장에 갈 때는 100만원쯤 깎이는 것은 감수해야죠. 한 달에 100만원씩 손해 본다면 1년에 1200만원, 10년에 1억 2천만원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아이가 커서 문제가 생기면 1억 2천이 아니라 10억을 주고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가려고 들 겁니다. 그러니 그것을 머리로 장사꾼처럼 계산하면 안 돼요. 아이 키우는 것을 왜 자꾸 계산하려 들어요? 아이 낳아서 장사할 일 있어요?nbspnbsp무조건 아이를 키우라는 게 아니라,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권리를 얻어야 한다는 겁니다. 왜 24조원이나 되는 돈을 강에다 쏟아 부어서 녹조를 만드는 일을 합니까? 그걸 이런 데 쓰도록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어마어마한 사내 보유금이 있는데 그걸 사람 키우는데 쓰도록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왜 남자는 군대에 가면 경력을 인정하는데 여자는 이 소중한 아이를 키우는 것을 사회의 공적으로 인정을 안 해줍니까? nbspnbspnbsp비싼 외제 무기, 그것도 전부 고장 나서 쓸모없는 걸 사들이느라 돈을 쓰는 건 내버려두고, 이 소중한 아이 키우는 데 예산이 덜 배정되는 건 왜 방치하느냐는 말입니다. 그 돈 모두 여러분들이 내는 세금이잖아요. 이런 것까지 애 없는 제가 가서 싸워줘야겠어요? nbspnbsp제가 다 해주면 여러분은 뭐 할래요? 왜 자기 권리도 못 찾아먹어요? 왜 국민이 자기 권리를 행사하지 못해요? 나라가 대통령 것입니까? 시장 것입니까? 그러니 주주총회가 열릴 때 CEO가 회사 운영을 잘못하면 갈아버리듯 선거 때 갈아버리면 되잖아요. 그런데 왜 선거 때는 선거 안 하고 다들 놀러다니느냐는 말입니다. 도무지 자기 권리를 찾아먹을 줄 몰라요. 그러면서 불평만 하면 뭐 해요? nbspnbsp모든 보육 정책은 아이를 위한 정책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부 엄마를 위한 보육정책이에요. 아이를 자기가 직접 키우면 아무 도움이 없고, 보육원에 갖다 맡기면 무상으로 지원해주니까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는 사람들까지도 갖다 맡기잖아요. 아이를 엄마로부터 빼앗는 게 무슨 보육정책이에요?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람에게는 키울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돈이 없는데 어떡하느냐?’ 그러면 저처럼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독신세를 거둬야 합니다. 결혼했지만 아이 안 낳는 사람들에게서도 세금을 거둬서 아이 키우는 사람에게 줘야 미래 사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어요. 사회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려면 아이가 있어야 하잖아요.nbspnbsp사람 하나 키우는데 얼마나 정성을 기울여야 해요? 20년을 키워야 하고 하나하나 다 손이 들어가요. 이건 기계로 할 수도 없고 자동화할 수도 없는 일이에요. 그런데 이걸 그냥 방치하니까 지금 사회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세요. 지금 젊은 세대를 보면 유치원,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갈수록 예전보다 정신질환이 많습니다. 이것저것 잘 먹어서 키는 크고 덩치도 좋지만 심리는 갈수록 불안정해져서 조금 더 가면 미국처럼 조그만 애들부터 ‘묻지마 폭력’이니 ‘묻지마 총격’이니 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날 겁니다. 엄마부터 자기 출세, 자기 이익을 위해 아이를 남에게 갖다 맡기잖아요.nbspnbsp여러분들은 나름 잘 사는지 몰라도 제가 보면 다들 정신 나간 사람들이에요. 사는 게 뭐예요? 아이를 하나 낳아서 잘 키우는 게 진짜 사는 거지, 뭐가 잘 사는 거예요? 집이 크고 차가 좋으면 잘 사는 겁니까? 향수 갖다 뿌리고 턱 깎고 눈꺼풀 크게 만드는 게 잘 사는 거예요?nbspnbspnbsp아이를 낳아서 제대로 키우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겁니다. 여기 기독교 신자가 있다면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의 은총이 그 아이에게 있지 어디 다른 사람에게 있겠어요? 그런데 아이를 방치하는 사회잖아요. 아이가 무슨 장애물인 양 이쪽에 갖다 맡겼다가 저쪽에 갖다 맡겼다가 합니다.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그러면 친정어머니는 또 못 살겠다고 야단이에요. 자기가 낳아놓고 친정어머니에겐 왜 맡겨요? 친정어머니는 나 키워준 것만 해도 얼마나 고생하셨는데요. 자기가 키워야 자기 아이지 남이 키우면 남의 아이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키우면 엄마가 여러 명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안이 생깁니다.nbspnbsp제 이야기는 엄마가 키우면 가장 좋지만 그게 불가능하면 최소한 3살까지는 엄마가 키우라는 거예요. 3살까지가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는 엄마가 키우되, 엄마가 집에 앉아서 맨날 울고 직장 못 간다고 성질내면서 키울 거면 그냥 남이 키우는 게 낫습니다. 엄마가 키우라는 건 필요조건입니다. 충분조건이 되려면 헌신적으로 키워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유치원에 들어가면 이제 정을 떼 줘야 합니다. 그런데 다들 얼마나 거꾸로들 사는지 몰라요. 경상도 말로 ‘디비쫀다’고 하죠. 어릴 때는 오히려 아무 데나 맡겨서 키우고, 아이가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들어가서 문제가 나타나면 그제야 법문 찾아 듣고 ‘아이고, 내가 잘못해서 아이가 이리 되었구나. 지금부터라도 돌봐야지’ 해서 직장 그만두고 아이에게 돌아가요. 그때는 아이로부터 떨어져줘야 하는데 말입니다. 겨울에 춥다고 불 때주라 할 때는 불 안 때서 아이가 얼도록 내버려두더니 뒤늦게 여름에 와서 불 땐다고 난리를 피우는 거예요. nbspnbspnbsp그러니 3살 때까지는 헌신적으로 키우고, 만 4살이 되어 유치원에 갈 때부터는 엄마가 돌볼 수 있으면 돌보되 못 돌보면 낮에는 직장 가고 저녁에 와서 돌보면 됩니다. 초등학교 가면 가능하면 자기 알아서 살도록 하면서 관심을 줄여주고, 사춘기가 되면 거의 놓아두고, 20살 넘으면 완전히 정을 끊어서 남처럼 대해줘야 합니다. 완전히 남처럼 대해줘야 제대로 자라는 거예요. 한겨울에는 장작을 10개 때고, 2월 되면 7개 때고, 4월 되면 5개 때고, 5월 되면 3개 때고, 67월 되면 장작을 안 때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관점을 딱 가지면 혼란이 안 와요.nbspnbsp좋은 건 알지만 현실이 여의치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돈을 안 빌려도 되면 안 갚아도 되니까 좋아요. 그런데 살다보면 돈을 꿔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갚으면 됩니다. 1년 아이 키우고 ‘직장 다니고 싶어서 도저히 안 되겠다’ 하면 유아원에 갖다 맡겨도 아무 문제없어요. 대신, 나중에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후회하지 말고 참회해야 합니다. ‘아이고, 내가 제대로 돌보지도 못했는데 네가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다.’ 이렇게 아이 보고 나무라지도 말고 후회하지도 말고 과보를 기꺼이 받으세요. ‘내가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는데도 네가 그 정도라도 되어주니 다행이다’ 이렇게 항상 아이를 보면서 고마워하면 아이와 싸울 일이 없어요.nbspnbsp엄마는 아이와 싸우면 안 돼요. 엄마가 애와 싸우면 아이는 힘에 부쳐서 못 이기기 때문에 심리가 억압됩니다. 그 억압된 심리가 사춘기에 폭발하기 때문에 엄마를 때리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앞으로 갈수록 자식이 부모 때리는 게 심해질 거예요. 어떤 경우에도 엄마는 아이에게 화내거나 싸울 필요가 없어요. 마냥 내버려두란 말이 아니에요. 말 안 들으면 엄마는 밥을 안 주든 빨래를 안 해주든 여러 가지 수단이 많으니 굳이 화를 낼 필요가 없잖아요. 애가 뭐라고 해도 ‘그래, 네 생각이 그러면 네가 알아서 해라’ 하면 되지 무엇 때문에 애와 싸워요? 하고 싶으면 해보라고 하면 돼요. ‘유학가고 싶어’ 하면 ‘가라’ 하면 돼요. ‘돈은?’ ‘돈은 네 알아서 해라.’ nbspnbspnbsp‘밥 안 먹을래’ 하면 ‘그래, 먹지 마라’ 하고 상을 치워버리면 돼요. 나중에 ‘엄마, 밥 줘’ 하면 ‘네가 찾아 먹어’ 하고요. 수단이 얼마든지 있는데 왜 싸워요? 그러면 이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어도 엄마에게는 어떤 잘못도 하지 않습니다. 심리가 엄마로부터 억압받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깡패라도 엄마 앞에서는 기가 팍 죽어요. 아이들이 말 안 듣고 엄마한테 대드는 것은 다 엄마가 아이들과 싸웠기 때문에 생긴 문제예요. 여러분들 지금 심리를 보세요. 부모가 화내고 짜증내고 아버지가 고함치고 해서 심리가 억압되어 있으면 점점 더 아버지가 미워지잖아요. 한쪽이 억압하면 다른 한쪽은 저항하고 싶어집니다. 억압하지 않는데 무엇 때문에 저항을 해요?nbsp그러니까 ‘이렇게 해야 좋다’고 제가 이야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인생에 길이 정해진 건 아닙니다. 최선책이 없으면 차선책을 선택하면 됩니다. 1년은 키우고 2년은 그냥 맡기자 결정했으면 그렇게 하세요. 대신 나중에 후회하지는 말라는 말입니다. 항상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라주어 고맙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리 해도 된다는 거예요. 아이를 이 nbsp사람 저 사람에게 자꾸 뺑뺑이 돌리지는 말라는 말이에요. 그건 적어도 자아가 확실히 형성된 후에 하세요.nbspnbsp모성애는 자기가 없는 거예요. ‘남자는 되는데 왜 여자는 안 되느냐’고 남녀관계로 비교할 문제가 아니에요. 아이와 엄마의 관계는 생물학적인 거예요. 어미가 이렇게 해야 그 생물 종이 지속적으로 번성할 수 있어요. 이건 자연의 질서란 말입니다. 싫으면 안 낳으면 돼요. nbspnbsp그러나 아기를 낳으면 아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아이는 엄마로부터 보호받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왜 자기 권리만 중요하고 아이 권리는 생각 안 해요? 아이 권리를 무시하는 게 여성운동이에요?nbspnbspnbsp나중에 엄마 나이가 40살이 넘고 아이가 사춘기 넘어가면 여성분들도 대부분 제 의견에 동의를 합니다. 그 결과를 보거든요. 그런데 30대 여성분들은 아직 아이의 결과를 보지 못했어요. 돈 빌리기만 했지 아직 빚 갚을 때가 안 된 사람들이라 ‘그럴듯하긴 한데 좀 그렇다. 스님이 남자라서 저러나, 아기를 안 키워봐서 저러나’ 합니다. 질문자도 안 키울 땐 동조했는데 키워보니까 동조 못 하겠죠? 그래서 이 문제는 질문자의 선택이에요. 저는 그러는 게 좋다고 권유하는 것이지요.”nbspnbsp“네, 감사합니다.”nbsp스님의 단호한 이야기에 질문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이 뉘우쳐졌는지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청중들 중에 어머니 또래의 연세를 가진 분들도 눈물을 보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아기 엄마는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 많은 것을 반성하게 해주는 말씀이었습니다.nbspnbsp스님의 간곡한 호소에는 말 못하는 아기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자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님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울컥한 감동이 함께 일어났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균형잡힌 관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야기의 흐름이 대충 이해되지요? 여러분들이 부모를 위하는 행동을 하면 효자이지만 안 해도 그만이에요.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식을 돌보지 않는 것은 죄가 됩니다. 그건 안 하면 안 되는 일에 속합니다. 하는 것이 당연하고, 안 하면 죄가 됩니다. 자식을 돌보는 것은 책임과 의무에 들어가고, 부모를 모시는 것은 선택에 들어갑니다. 부모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성인이라서 부모와의 관계는 성인과 성인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유교적 윤리도덕을 따르던 옛날에는 너무 이것을 부모 중심으로 보았어요.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것은 하늘의 뜻이고 애를 갖다버리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했어요. 그건 자연의 질서에 맞지 않아요. 효도하지 말란 이야기가 아닙니다.nbspnbspnbsp효도를 하면 선행입니다. 아기를 돌보는 것은 선행이 아닙니다. 부모를 돌보지 않는 것은 악행은 아니지만, 아기를 돌보지 않는 것은 악행입니다. 그러니 지악수선, 악은 멈추고 선은 행해야 합니다. 아이를 돌보지 않는 것은 금기에 들어가고, 부모를 모시는 것은 선택에 들어갑니다. 그건 여러분들이 선을 행할 권리를 행사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아기를 돌보는 것은 악을 멈출 책임과 의무에 들어갑니다.nbspnbsp이렇듯 사물에는 딱 균형 잡힌 관점이 있어야 해요. 부모는 모시지 않아도 되지만, 부모를 원망하는 것은 죄에 들어갑니다. 그 어떤 부모라도 자식이 부모를 원망할 이유는 없어요. 모시지 않는 것은 괜찮지만 원망하는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잘못이에요. 원망할 아무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화를 낸 것은 부모의 성질이지, 내가 원망할 대상이 아니에요. 부모가 나에게 뭘 달라고 하는 것은 부모의 요구일 뿐입니다. 듣고 안 듣고는 내가 결정하면 되지 그게 부모를 원망할 일은 아닙니다. 이렇게 관점을 딱 잡으면 삶이 편한데, 여러분들은 그렇지 못해 혼란스러워 하는 거예요.nbspnbsp자기를 너무 높이 평가하면 자기학대로 가게 됩니다. 자기를 높이 평가하면 우월주의에 빠지는데, 우월주의는 곧 열등의식으로 떨어집니다. 자기 기대만큼 되지 못하는 자기를 자학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우월의식과 열등의식을 모두 버려야 해요. 나를 존중하고 남도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다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nbsp청년들은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웃음과 감동,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들을 번갈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온 스님은 질문자들 모두에게 악수를 건내며 격려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강연장 입구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2명을 추첨하여 스님 책을 선물하였는데 책을 받고 뛸듯이 기뻐하며 사인회장으로 뛰어가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웃기도 하였습니다. 스님은 사인을 받는 분들의 눈을 한명 한명 마주치며 환한 웃음을 보여 주었고, 청년들도 강연 내내 좋은 말씀을 해준 스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nbspnbspnbsp▲ 책 사인회nbsp사인회를 마치고 강연장 곳곳에서 수고한 청년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한마음이 되어 일사분란하게 강연을 진행하게 할 수 있게 되어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눈치였습니다. “청년 파이팅”을 외치는 얼굴 속에는 행복이 가득했습니다.nbspnbsp▲ 청년정토회 봉사자들과 기념 사진nbsp강연장을 시간 내에 비워줘야 하기 때문에 봉사자들은 빠른 속도로 강연장을 정리하였고,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돌아오는 차안에서 스님은 사인회 할 때 어떤 분이 건네준 편지를 읽어 보았습니다. 스님은 편지를 다 읽고 나서 간단히 내용을 들려주었습니다. 노원구청에서 열렸던 강연에서 시누이가 미워서 힘들다고 어떤 분이 질문했는데 그 분이 쓴 감사 편지라고 했습니다. 스님의 답변을 듣고 처음에는 화가 나고 울고불고 했는데 집에 가서 스님 말씀대로 다시 생각해보니 시누이가 너무 고맙게 느껴지고 가슴 한켠이 시원해지고 지금은 너무나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감사 인사가 담겨 있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의 답변은 오늘 아기 엄마에게 답변해 준 것처럼 아픈 곳을 콕 찔러서 고름을 팍 짜내기 때문에 처음에는 납득이 안 되지만 근본 처방을 알려주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nbsp밤 10시가 넘어서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집무실에서 업무를 더 보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에 손님과 미팅을 한 후 오후 1시에는 대구로 내려가서 저녁 7시부터는 통일의병에서 주최하는 통일이야기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2015.10.08. 46,487 읽음 댓글 28개

2015.10.6 (오전) 백담사 조계종립 기본선원 초청법회

▲ 백담사nbspnbsp안녕하세요. 오늘 법륜 스님은 오전에 조계종립 기본선원인 백담사에서 교과 안거를 하고 있는 사미, 사미니 스님들이 초청한 법회에 참석해 법문했습니다. 오후에는 동대문구민회관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백담사 기본선원 초청법회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nbsp새벽 4시에 일어나 대중들보다 일찍 예불과 기도를 마친 스님은 5시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해 백담사로 향했습니다. 백담사 기본선원은 비구게를 받기 전 4년 과정으로 공부를 하는 곳입니다. 갓 출가한 스님들에게 참선, 간경, 예경, 의식, 가람수호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곳인데 오늘은 일과 수행이 하나된 삶을 몸소 실천하며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법륜 스님을 특별 초청해 법문을 듣는 시간으로 마련되었습니다.nbspnbsp백담사로 향하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국수 한그릇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아침 7시 20분 무렵에 백담사에 도착했습니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벌써 온 산을 수놓기 시작하고 있었고, 특히 백담사로 들어가는 계곡은 크고 작은 연못과 햐얀색의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절경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가뭄으로 인해 계곡이 바닥을 드러낸 곳이 곳곳에 보여 많이 아쉽기도 했습니다.nbspnbsp▲ 백담사 계곡nbsp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다리를 건너 일주문을 지나자 시봉 스님이 마중을 나와 선원장 스님이 머무르는 방으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이곳 기본선원의 선원장인 선룡 스님은 반가운 표정으로 스님 일행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담소를 나누다가 경내를 둘러본 후 선방으로 들어갔습니다.nbspnbspnbsp기본선원 안에 큰 선방인 검인당에는 교과안거 중인 120여명의 스님들이 장삼을 입고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스님은 약간 경직된 분위기를 의식했는지 환한 웃음을 내보이며 “공부 잘 하고 계세요?” 라고 물음을 던졌습니다. 그러면서 편안한 가운데 이야기를 해보자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nbspnbsp“오늘 여러분들과 편안한 가운데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요즘 일반 대중들과도 일방적인 강의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인생살이에서 어렵거나 궁금한 점을 먼저 물으면 거기에 맞춰서 대화를 합니다. 부처님이 초기에 대기설법을 하신 게 다 그랬어요. 대중의 자기 고뇌에 따라 부처님께서 응답하셨다고 하지요. 선불교의 초기 취지도 현란한 교리나 사상이 아니라 삶 속에서 생겨나는 의문을 바로 주고받으면서 마음에 계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화 된달까, 형식화 되면서 자꾸 복잡해지고 제도화 되다 보니 권위주의적이 된 것 같아요. 그러니 오늘만큼은 가능하면 불교의 원형의 모습을 어떻게 닮을까, 어떻게 원형으로 돌아갈까를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nbsp오늘은 불교의 원형으로 돌아가보는 시간이 되자는 말씀으로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법문을 듣는 스님들의 모습은 아주 장엄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nbspnbsp우선 스님은 전 세계에는 ‘테라바타’, ‘마하야나’, ‘탄트라’, ‘선’이라는 네 종류의 불교가 있는데 이런 다양한 불교를 포용해 내려면 부처님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살펴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nbspnbsp“다양한 불교를 하나로 이해하고 포용하려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뿌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뿌리로 돌아간다는 건 부처님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고, 어떤 말을 하셨고, 어떤 행동을 하셨느냐? 어떤 환경에 처한 사람에게 어떤 설법을 하셨느냐? 다시 말해 역사적, 사회적, 자연적 조건 속에서 그 분과 그 분의 삶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또 그 분에게 질문하는 대중들도 그냥 대중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 처한 어떤 고뇌를 가진 사람이었는지 살펴야 붓다께서 내린 처방의 맥락과 그 가르침을 비교적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게 잘 안 되면 언어에 집착해서 글자나 말에 끄달리게 됩니다. 언어나 말을 절대화시키면 삶의 현실과 점점 유리되고 맙니다. 관념적이 되거나, 권위주의가 되거나, 형식화되어서 결국에는 껍데기만 남고 말아요.nbsp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공부하셨는지에 관계없이 이런 문제의식을 가져주면 좋겠습니다.nbsp‘부처님이 어떤 분이신가? 인도의 자연환경은 어떻고, 부처님이 태어나실 때의 사회적인 조건은 어땠는가? 남녀 차별과 계급 차별은 어떤 상태였고 정치적 조건은 어땠는가? 이런 환경에서 그 분이 태어나서 어떤 고뇌를 했고, 어떤 문제의식을 가졌는가? 왕자로 태어나서 왕이 될 예정이었고 결혼해서 자식까지 둔 사람이 왜 출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nbspnbsp이렇게 그 분의 고뇌를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그 고뇌가 이해되어야 출가의 의미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가한 뒤에는 6년간 어떤 수행을 했는가. 스승을 찾아다녔고, 또 스승을 떠났습니다. 그냥 ‘6년 고행했다’고 하지만 그 6년의 고행 기간 동안 어떤 삶의 여정을 겪었는지를 우리가 이해해야 해요.nbspnbsp인류 역사상 붓다가 가장 독특하다고 손꼽히는 것은 바로 중도를 발견하셨다는 거예요. 다른 건 다 인도에 있던 것을 그 분도 따라 하셨어요. 그러나 이런 삶과 고행 끝에 붓다는 중도를 발견하셨고, 그 중도에 의한 정진을 통해서 마침내 자신의 모든 번뇌가 사라지는 열반, 니르바나를 경험하셨습니다. 그래서 붓다는 ‘이것이 고뇌의 최후라 선언하노라’라고 말씀하시고, 여전히 깨닫기 전의 자신처럼 고뇌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서 다른 사람들도 그 고뇌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하셨어요. 이렇게 해서 우리가 말하는 소위 불교라고 하는 것이 형성되었습니다.nbsp제가 보기에 초기의 상가는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불교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불교는 제도화되고 종교화된 불교지만, 부처님과 초기 제자들은 아직 제도화되기 전, 종교화되기 전에 그냥 수행자로 출발했습니다. 부처님은 사제, 즉 제사장이 아니고 수행자였습니다. 부처님은 신이 아니고 스승이었습니다. 우리를 열반의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이자 스승이었지, 우리에게 어떤 힘을 주는 신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이렇게 불교의 정체성과 수행자의 정체성을 우선 여러분들이 확보해야 합니다.”nbsp불교가 종교화되기 전에 부처님과 초기 제자들은 사제가 아닌 수행자로 출발했고, 부처님은 ‘중도’를 발견해서 해탈과 열반을 성취했으며, 이런 부처님의 초기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불교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nbspnbsp사미·사미니 스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점점 스님의 법문에 몰입해 들어갔습니다. 특히 세속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던 분이 왜 출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하는 질문은 진정한 출가의 의미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부처님의 일생과 선불교의 역사를 주욱 짚어 주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부처님이 발견했다고 하는 ‘중도’란 무엇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춰 많은 비유를 들어가며 그 원리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욕계 중생이란 말도 있듯이 우리는 누구에게나 다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욕구를 대하는 방법은 따라가거나 억압하는 두 가지 길밖에 없어요. 명상하다가 다리가 아프면, 아프니까 펴거나 아니면 참을 수밖에 없잖아요. 하고 싶을 때는 하든지 참든지 두 길밖에 없어요. 따라 하면 쾌락주의가 되고 참으면 고행주의가 됩니다. 드러난 현상은 정반대지만 그 뿌리는 욕망에 따른 대응이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nbspnbsp참는다는 건 긴장하는 거예요. 통증을 참든, 먹고 싶은 것을 참든, 갖고 싶은 것을 참든, 참는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긴장한다는 뜻이에요. 긴장하면 선정에 깊이 못 들어갑니다. 붓다도 6년의 고행 기간 동안 밖에서 보기에는 엄청난 고행을 했지만, 마음의 평정이란 측면에서 보면 어릴 때 농경제에 참석해서 새가 벌레를 쪼아 먹는 모습을 보고 ‘왜 하나가 살기 위해서는 하나가 죽어야 할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나무 아래에서 명상하던 때 만큼의 선정 수준도 안 되었던 겁니다. 바로 여기에서 붓다가 중도를 발견하신 거예요. 욕망을 따라가는 것도, 욕망을 억제하는 것도 모두 욕망의 노예입니다. 그래서 그 욕망을 다만 알아차릴 뿐이에요. 저항하지도 않고 따라가지도 않고요. 그래서 위빠사나에서 가장 중요한 수행이 알아차림이잖아요. ‘다만 알아차림’, ‘다만 바라보기만 해라’, ‘다만 그것이다’ 이런 식으로 많이 표현되어 있죠. 이게 가장 중요한 원칙이에요.nbsp군인이 보초를 설 때는 적이 오는지 신경을 딱 써야 하잖아요. 그러면 알아차림은 있지만 긴장 상태가 되어 편안하지 못해요. 반면에 긴장을 풀고 편안하면 번뇌가 생기거나 졸거나 멍청해지죠. 이 양쪽을 모두 극복해야 해요. 편안하고 고요한 가운데 뚜렷이 깨어있으면서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게 선정의 요체예요.nbspnbsp붓다는 이 중도를 처음으로 발견한 거예요. 이것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위대한 발견입니다. 붓다의 중도, 공자의 중용,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이라고 하는 중도가 모두 거의 BC 5세기에 나왔어요. 서로 다른 문명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거의 같은 진리를 발견했다는 것도 세계 철학사에 굉장한 성과지요. 물론 공자는 그 중도를 주로 정치에다 적용했지만요. 중도는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고 적절한 것, 이쪽에도 기울어지지 않고 저쪽에도 기울어지지 않는 알맞음을 뜻합니다.nbspnbsp그런데 이 중도는 상황에 따라 늘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도라 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 라고 합니다. 이걸 ‘시중’이라고 해요. 그때그때 조건에 따라서 적절함이 늘 변하는 거예요. 두 사람이 같이 살 때를 예로 들어보면, 내가 관심을 가져줘야 상대가 좋아한다면 관심을 가져주는 게 중도이고, 관심을 가져줬더니 간섭이라고 싫어하면 덜 가져주는 것이 중도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좋도록 유지하는 데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안 가져야 한다’를 절대적으로 말할 수 없어요. 그건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 다르니까요.nbspnbsp붓다의 대기설법은 다 그 중도를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졌습니다. 항상 질문한 그 사람에게 적절한 것, 이것을 붓다가 처음으로 보였습니다. 열반이니 붓다니 하는 온갖 용어는 원래 인도 철학에 있던 용어예요. 그러나 중도는 붓다가 처음으로 발견한 진리입니다.”nbsp중도에 대해 너무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주니 법문을 듣던 스님들도 밝은 표정을 지으며 큰 박수로 그 감동을 표현했습니다. 스님은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법문을 마치고 나서 20분 정도 여유 시간이 생겼습니다. 스님은 사미·사미니 스님들에게 “혹시 수행을 하시면서 힘든 점이나 궁금한 점, 오늘 강의를 들으며서 의문이 들었던 점이 있으면 무엇이든 질문해 보세요” 라며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뒤쪽에 앉은 사미니 스님 한 분이 번쩍 손을 들고 두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nbspnbspnbsp“수행 과정 중 윗반 스님들이나 도반 스님들이 저에게 하는 좋은 말이든 저를 경책하는 말이든 거기에 끄달리지 말라는 내용이 스님의 강연 내용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중도와 연결이 되는 것인가요?”nbsp“그것은 중도라기 보다는 경계에 끄달리는 거예요. 칭찬하면 약간 기분이 좋고 비난하면 기분이 좀 나쁜 것은 내가 말에 끄달리는 것입니다. 이걸 경계에 끄달린다고 해요. ‘그 사람이 좋은 말 했다, 나쁜 말 했다’ 하면 시비가 되고요. 수행은 내 마음이 끄달릴 때 끄달리는 나를 보는 거예요. ‘아, 내가 칭찬에 들뜨는구나. 내가 비난을 싫어하는구나. 내가 지금 좋고 싫고에 마음이 끄달리고 있구나.’ 이걸 내가 알아차려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이건 내 문제입니다. 조언하고 싶어서 하든, 비난하고 싶어서 하든, 칭찬하고 싶어서 하든 그 사람이야 자기 좋을 대로 말 하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내가 끄달리면 그 사람과 시비가 일어납니다. 내 마음만 보라는 거예요. ‘아, 내가 지금 말에 끄달리고 있구나.’ 하고 알라는 겁니다.nbspnbsp‘끄달리지 말아야지’라고 하면 고행이 됩니다. 화를 내든 들뜨든 끄달리면 쾌락주의가 돼요. ‘끄달리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도 끄달리지 말고, 다만 끄달리고 있는 나와 이 현상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내가 저 말에 끄달리고 있구나. 칭찬에 들뜨고 있구나. 비난에 시비하고 있구나.’ 이렇게 자기를 알아차리면 금방은 없어지지 않더라도 알아차린 거기에서부터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증폭되는 쪽으로는 가지 않아요.”nbspnbsp스님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인 사미니 스님은 이어서 한 가지 질문을 더 추가했습니다.nbspnbsp“같은 맥락에서 이어지는 질문을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자기를 알아차리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해서 어느 정도 중심이 잡힌다면, 나중에 자기만의 수행이 아니라 바깥의 중생들을 위한 현실적인 문제에도 관심이 생겨서 사회 실천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될까요? 저는 차후에 공부를 더 해서 가난한 학생들이나 부모 잃은 아이들을 위한 활동을 하고 싶은데, 그럴 때 자기 관찰을 깊이 하는 것이 도움 되는지 궁금합니다.”nbsp“우선 자기가 끄달리고 있는 줄 알아차려서 비난이나 칭찬에 덜 흔들리게 되면 끄달림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됩니다. 우리의 사고 구조는 내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반복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됩니다. 붓다가 발견한 위대한 정신작용의 특징이에요. 우리는 거의 늘 끄달리고 있습니다. 한번 습관이 된 까르마는 계속 반복됩니다. 이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첫 발은 내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거예요. 자각한다고 바로 벗어나는 건 아니지만, 반복에서 벗어나는 첫 시작이 됩니다. 내가 윤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자각하면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첫 발을 딛게 되는 거예요. 전에는 모두가 운명론을 믿었어요. 그런데 붓다는 우리가 운명 지어진 존재임을 알아차림으로써 운명론을 극복하는 길을 발견했습니다. 고락이 윤회하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고락에서 벗어나는 실마리를 찾은 거예요.nbspnbsp좋고 싫음, 즉 애가 일어나면 좋은 건 가지려 들고 싫은 건 버리려 드는 취가 일어나는데, 거기서 멈추도록 하는 게 계율이에요. 그래서 수행자는 첫째,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그리로 따라가지 않아야 해요. 그런데 이 욕망, 갈애는 계속 일어나기 때문에 계율만 지킨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갈애의 뿌리는 뭡니까? 이건 좋고 싫음이 일어나기 전에 기분의 호불호가 있어요. 그게 먼저 일어나고, 거기에 충동적으로 심리가 결합한 게 좋고 싫음이에요. lt신심명gt에서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말라’는 말은 좋고 싫음에 끄달리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좋고 싫음에 끄달리는 자기를 알아차리는 것은 바로 그런 마음을 자기가 보는 거예요. 그 뿌리는 ‘수’, 기분입니다. 그래서 ‘수’를 알아차리는 게 위빠사나예요. 그걸 딱 알아차리면, 내 까르마로부터 ‘수’가 일어나더라도 ‘갈애’라는 좋고 싫음으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어요. 그건 힘이 들지 않습니다. 아주 초기에 알아차리면 쉽게 멈출 수가 있지만 이미 흥분이 되어버리고 나면 알아차려도 쉬이 멈춰지지가 않아요.nbspnbsp갈애가 일어나도 갈애에 끄달리는 말과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게 계율이에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말과 행위를 해버렸다, 즉 계율을 어겼다고 하면 어긴 줄을 알아차려서 반성을 해야 합니다. 이게 참회입니다. 참회도 안 하는 건 수행자가 아니에요. 원칙을 어겼으면 어긴 줄을 알아서 참회를 해야 하고, 다음으로는 계율을 어기지 않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nbspnbsp계율을 지킨다는 것도 사실은 긴장이에요. 그래서 알아차림으로 가야 해요. 이것이 선정입니다. 선정은 고요함이 바탕이에요. 고요하기만 하면 그건 꿔다놓은 보릿자루예요. 거기에는 알아차림이 아주 선명해야 합니다.nbspnbsp그렇다고 여기까지만 가면 공부를 다 한 것이냐? 아니에요. 바로 이런 원리와 법을 알아야 해요. 이게 지혜입니다. 그래서 ‘계율을 지키고 선정을 닦고 지혜를 증득한다’ 이렇게 말하잖아요.nbsp질문자가 지금 이렇게 자기를 알아차리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 훗날 복지사업을 할 때 어떤 도움이 될까요? 예를 들어 어린애들이 밥을 못 먹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너무 불쌍해요. 그 불쌍함이 일어나는 것은 자비심인데, 그 불쌍한 모습을 보고 돌아와서도 잠을 못 이루고 괴로워한다면 어떨까요? 그 열 명을 내가 다 도와줘야 할 텐데 내 능력으로는 두 명밖에 도울 수밖에 없어서 나머지 여덟 명이 자꾸 생각나서 가슴이 아프다면 그것은 경계에 끄달리는 거예요. 내 가슴만 아프지 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울고 슬퍼하고 잠 못 이룰 시간에 한 명을 도울 수 있으면 한 명을 돕는 게 낫지요. 마음이 슬프다는 것은 이미 수행자가 자기 본분을 잃은 거예요. 이미 마음이 가라앉거나 흥분되어 있다는 뜻이거든요. 비심이 일어나되 마음이 아프면 안 돼요.nbspnbsp그럼 바로 뭘 해야 할까요? 나머지를 도울 수 있는 일을 해야지요.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청하든 다른 어떤 일을 하든 해서 한 명에서 두 명, 두 명에서 세 명, 세 명에서 네 명을 돕는 구체적 행위를 해야 합니다. 이게 원력이에요. 비심이 원력으로 가야지, 비심이 그냥 주저앉고 끝나면 그냥 속인이에요. 경계에 부딪혔을 때 경계에 빠지지 않고 아픔을 원으로 승화시키는 자기 수행을 해야 합니다.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자기를 유지해야 가능한 일이에요. 안 그러면 경계에 놀아나서 울고불고 하며 괴로워 하지요. 세상에서는 ‘저 스님 훌륭하다’ 할지 몰라도 수행적 관점에서는 아니에요. 자기를 희생하고 남을 도우면 세상에서는 훌륭한 사람이 되지만, 수행자는 자기를 희생하는 게 없어야 합니다. 희생은 반드시 칭찬이든 뭐든 대가를 받아야 해요. 그런데 대가가 없으면 나중에 섭섭해지고 괴로움에 빠지게 됩니다.nbspnbsplt금강경gt 대승정종분에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을 항복받느냐’고 물으니까 ‘일체 중생을 구제하라. 구제를 마쳤다 하더라도 내가 구제했다는 생각을 가지면 보살이 아니다.’ 이렇게 나오잖아요. 보살이 아니라는 말은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다, 수행자로서의 마음을 놓쳐버렸다는 거예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안 하고는 내 자유지만, 내가 그 가난이라는 데 빠져서 분노를 일으킨다면 그건 수행자가 아니에요. 분노하는 건 수행자가 아닙니다. 살다 보면 분노가 안 일어나진 않아요. 그러나 분노가 일어났을 때 그 분노가 상대방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계에 끄달려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분노를 잠재울 수 있어야 수행이에요.nbsp수행자의 수행은 다음 두 가지라 하겠습니다. 우선은 이렇게 자꾸 정진해서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단계까지 가는 거예요.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단계까지 가면 아라한이에요. 두 번째는 경계에 끄달리더라도 경계에 끄달리는 줄을 알아서 그 경계에 빠지지 않는 거예요. 이렇게 경계에 끄달리는 줄을 알아차리는 게 수다원이에요. 알아차리긴 하지만 이게 반복되고 있지요. 끄달리고 다시 알아차리고, 끄달리고 알아차립니다. 끄달리지 않는 것이 제일 좋긴 하지만, ‘끄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서 끄달리지 않는 것은 아니잖아요. 우리는 끄달리는 존재예요.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끄달릴 때 끄달리는 줄을 알아서 거기에 빠지지 않는 거예요. 명상을 하면 상념이 일어나요. 안 일어나면 좋지만, 일어납니다.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어도 일어날 때 거기에 따라가지는 않아야 해요. 망상을 피우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걸 지금 연습하는 거예요.nbspnbsp그래서 여러분이 화두를 참구하든, 수식관을 하든, 생활 속에서 분별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든, 이 모두가 다 수행이에요. 걷거나 앉거나 서는 순간순간을 항상 알아차리는 거예요. 그래서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다 선이다’라고 말하는 거예요.nbspnbspnbspnbsp복잡한 세상을 떠나서 고요한 가운데 딱 집중하면 알아차림이 유지되지만, 여러 가지 상황에 직면하면 알아차림을 놓치기 쉬워요. 앉아서 하는 공부는 운전으로 말하자면 운전교습소에서 면허증을 따기 위해 정해진 코스를 도는 것과 같습니다. 진짜 운전은 도로주행을 해야 합니다. 도로주행은 나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차선을 지키더라도 상대가 쑥 끼어들어오고 급정거 해요. 그걸 탓하면 운전 못 해요. 그런 것까지 대비해서 운전을 해야 하는 겁니다. 이 세상은 늘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고, 살다 보면 이런 사람도 만나고 저런 사람도 만납니다. 이런 속에서 내가 어떻게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자유로우냐, 이게 해탈이에요.nbspnbsp분별이 나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에 그걸 먼저 봐야 합니다. 시선을 안으로 향해서 나로부터 일어나는 걸 늘 주시해야 해요. 그런데 실제로 살아보면 이걸 놓치고 자꾸 눈이 상대 쪽으로 나가요. 겉으로 말은 안 해도 마음으로는 ‘네가 그러니까’ 이렇게 되잖아요. 그럴 때 ‘어, 내가 또 놓쳤구나’ 이렇게 되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를 유지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젊을 때 혹은 초심에 신통이 생기거나 강의를 잘 해서 인기가 있거나 재능이 많으면 대부분 수행에 실패합니다. 칭찬에 들떠버리거든요. 그래서 시련이 좀 많아야 합니다. 시련이 많아야 오히려 자기 내면에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어요. 육조혜능 대사도 이치는 몇 개월 만에 깨쳤지만 보림을 16년이나 했잖습니까. 그것도 도망다니면서 사냥꾼들 속에 섞여 지내셨어요.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은 여기서 기초를 잘 익혀야 합니다. 조용한 곳에서 생활하며 온갖 분별이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정확하게 점검한 뒤에, 밖에 나가 경계에 부딪혀 가면서 연습을 또 해야 해요. 그런데 밖에 안 나가고 이 안에 있는 동안에도 내내 연습은 됩니다. 도반을 봐도 그렇고, 분별심이 늘 생기잖아요. 여러분이 세상을 어떻게 고칠 거냐는 다음에 생각할 문제이고, 우선은 이 속에서 내가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먼저 해야 합니다. 자기가 힘을 딱 얻어야 해요. 이걸 득력이라고 합니다. 자기 힘이 없으면 세상에 금방 휘둘립니다. 그렇게 정진을 해나가시면 좋겠습니다.”nbsp수행은 사회적 실천을 더 잘하기 위한 토대가 됨과 동시에 우리의 일상 생활 모두가 수행이 될 수 있으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가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먼저 해야 세상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감로와 같은 법문을 설해준 스님에게 사미·사미니 스님들은 박수갈채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법문을 마친 스님에게 선원장인 선룡 스님은 “백담사에 기본선원이 생긴 이후 150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법문을 해준 경우는 오늘이 처음이다” 며 깊이 있는 가르침을 설해준 스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nbsp선방을 나온 스님은 시자 스님의 안내로 점심 공양을 하러 이동했습니다. 선원장 스님과 함께 점심 공양을 하면서는 기본선원의 운영과 관련해 여러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다시 백담사를 나온 스님은 단풍이 물들고 있는 산을 보면서 잠시라도 걸어보고 싶어 했으나 서울로 곧바로 올라가야 해서 차창 밖으로만 가을 단풍과 백담사 계곡을 감상하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nbspnbspnbsp오후 3시 무렵 평화재단에 도착한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원래 회의 시간을 잡으려고 했는데 건강이 좋지 않다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저녁 7시30분부터는 동대문구민회관에서 청년들을 위해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됩니다...nbspnbsp ※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2015.10.08. 55,607 읽음 댓글 56개

2015.10.5 (오후) 안산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전에 성남시청에서 진행된 성남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서 저녁에는 한양대 ERICA 캠퍼스 컨퍼런스홀에서 안산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강연 사전 준비를 위해 안산정토회 회원들은 아침 9시부터 모여서 역할분담과 리허셜을 하는 등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고 합니다. 오늘 강연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신 분들 중에는 직장생활을 하는 가운데 반차 휴가를 내고 와서 접수대를 지키는 분도 있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의 땀과 정성으로 오늘 강연이 열리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안산 한양대 ERICA 캠퍼스 컨퍼런스홀nbsp강연장에는 600여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자리가 부족해 계단에도 많은 분들이 앉았습니다. 저녁 7시가 되자 스님 소개 영상과 함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대학교에서 진행되는 강연이여서 그런지 대학생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엄마와 이모의 손을 잡고 온 초등학교 3학년 아이부터 중년의 부부, 머리가 희끗하신 어르신들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라는 말이 생각나게 했습니다. 낮의 차가운 기운과는 다르게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습니다.nbspnbspnbsp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습니다. 조금은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법문을 듣기를 기다리고 있는 청중들의 얼굴을 보자 스님의 얼굴은 금새 환한 웃음으로 바뀌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먼저 추석 인사와 함께 말문을 열었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을 예로 들며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nbspnbsp“작년에는 제가 유럽, 미주, 남미, 오세아니아, 일본까지 전 세계를 다니며 강연을 했어요. 115개 도시를 115일 동안 하루에 한 개 도시를 찾아다니며 강연을 했는데,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사람들은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남자든 여자든 무엇을 하든 관계없이 다 괴로워해요. 혼자 살다가 괴로워서 ‘결혼하면 나을까’ 싶어 결혼을 해도 별로 나아지지는 않고, ‘애 낳으면 나을까’ 싶어서 애를 낳아보면 골치가 더 아프고, ‘이혼하면 될까’ 해서 이혼을 해봐도 해결이 안 되고, ‘미국 가서 살면 나을까’ 싶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봐도 해결이 안 되고, ‘직장을 그만두면 나을까’ 싶어서 그만둬도 해결이 안 돼요. 그래서 인생은 괴로움이라고 하지요.nbspnbspnbsp산에 사는 다람쥐도 별로 괴로워하지 않고 사는데 왜 만물의 영장인 사람으로 태어나서 괴로워하며 살아야 할까요? 이것은 좀 생각해볼 문제예요. 여러분들이 요즘 쓰는 스마트폰은 옛날 전화기보다 유용하죠? 그런데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그것 때문에 공부를 더 안 해요. 기기가 좋을수록 잘 쓰면 좋지만 잘못 쓰면 더 나빠요. 쓰기에 따라 스마트폰이 옛날 2G폰보다 못할 수 있어요. 그것처럼 인간은 동물보다 더 진화했어요. 다시 말해 정신 작용이 더 뛰어납니다. 스마트폰의 예처럼 뛰어난 정신 작용을 잘 쓰면 동물보다 낫지만 잘못 쓰면 동물보다 못합니다.nbspnbsp그럼 마음을 어떻게 쓰면 동물보다 낫고 어떻게 쓰면 동물보다 못할까요? 어떤 사건이나 일에 임할 때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면 만족이 크고 기쁨이 생깁니다. 반면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면 불만이 크고 괴로움도 커요.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지금 괴로운 거예요. 부정적으로 보는 사고 방식을 긍정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것만 바꿔도 행복도가 훨씬 높아집니다.”nbspnbspnbsp스마트폰을 예로 들어주니 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작용하는 이치에 대해 요점을 이야기한 후 곧바로 청중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스님은 문답의 과정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고의 경향을 긍정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총 7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6살의 아이를 둔 엄마는 아이에게 자꾸 욕심이 생겨 학습지도 시키고 이것 저것 요구를 하는데 아이가 응하지 않아 화가 난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38살의 치킨집을 운영하는 청년은 자신의 의심병과 집착으로 여자 친구와 갈등이 생겨 결국 결혼식도 취소되고 이별 통보도 받았는데 부모님께도 죄송하고 자신도 자존감이 많이 낮은 것 같다며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20대 여성은 결정 장애가 있고 행동이 많이 느린 편인데 어떻게 하면 더 빨라질 수 있는지 물었고, 현재 해양융합과학과를 다니고 있는 한양대 학생은 학과가 적성이 맞지 않고 고위 공무원이 되고 싶어 편입을 하거나 학교를 옮기고 싶은데 어떡해야 하는지 물었고, 한 남성 분은 아이의 엄마가 일본인인데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 교육에는 일본에 대한 반감이 많이 들어 있어서 이 부분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하는지 물었고, 또 다른 한양대 학생은 세월호 사고를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어떤 마음으로 이들을 위로해야 할지 물었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남편이 갑자기 가출을 한 이후 관계 회복과 자녀 양육 때문에 고민인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여성 분은 울먹이며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저는 초등학교 1학년, 3학년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지난 6월에 차안에서 남편과 말다툼을 하다가, 남편이 가던 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이들에게 ‘아빠는 엄마가 할머니랑 아빠 형제들을 싫어하는 게 싫어서 앞으로 말을 안 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로 남편이 지금까지 어디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몰라요. 집으로 전화를 해서 아이들과는 연락을 하고, 월급 통장도 원래 제가 관리하던 대로 관리 중입니다. 얼마 보내달라고 문자를 보내오면 그 금액만 남편 통장에 다시 보내주고, 몇 달 간 부부 간에는 전혀 연락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nbspnbsp원래 화가 나면 얘기를 잘 안 하는 성격인데, 여러 번 대화를 시도했지만 저와의 대화를 계속 거부하고 있어요. 추석 전에는 옷을 챙기러 오겠다고 문자가 오길래 대화를 해볼까 싶어서 밥을 차려놓고 기다렸는데, 역시 밥도 먹지 않고 이야기도 하지 않고 옷만 챙겨서 나갔습니다. 추석에도 아이들은 시댁에 갔지만 저는 오지 말라고 하고요. 주로 문자로 대화하지만 그나마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남편이 답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옷 챙기고 나간 후 ‘나를 너무 미워하지 마라.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참 힘든 일이다’라는 문자를 제가 보냈더니 ‘이제는 미워하는 마음은 없는데 앞으로 예전처럼 살 수 있을지 고민이다. 당분간 더 시간을 갖고 싶다’는 답이 왔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떤 방법으로든 대화를 시도해봐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지요? 그리고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제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nbspnbsp질문자가 계속 울먹이자 청중들은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분위기를 전환시키며 즉설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저는 저런 이야기를 들을 때 제가 결혼 안 한 게 얼마나 잘 했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여러분의 고통을 먹고 살아요. 그래도 질문자는 결혼해봤잖아요?”nbsp“예, 아이도 있습니다.”nbsp“그래요. 아이도 있잖아요. 그런데 상처를 질문자가 받았을까요? 아이들이 받았을까요?”nbsp“아이들이 더 많이 받았겠죠.” nbspnbsp“그런데 왜 질문자가 받은 것처럼 울어요? 질문자가 상처받았으면 아이들도 상처받고, 질문자가 상처 안 받았으면 아이들도 상처 안 받습니다. 아이들은 항상 자기의 거울이에요. 아이들을 정말로 걱정한다면 질문자가 상처를 안 받아야 해요. 그런데 질문자는 상처를 받았어요. 상처를 안 받았다면 울 일이 없잖아요. 이야기만 꺼내도 운다는 건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예요. 그러면 아이들도 상처를 받은 거예요. 자기 아이들한테 상처를 주니까 좋은 엄마는 아니죠. 밥은 다른 사람도 해줄 수 있어요. 엄마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안 주는 게 중요해요. 질문자는 아이들한테 상처를 주면서 밥은 해주고 빨래는 해주죠? 밥이나 빨래는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엄마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정작 안 하는 거예요.nbspnbspnbspnbsp질문자가 재미나게, 즐겁게, 쾌활하게 살면 아이들은 상처 안 받아요. 아빠에 대해서 물을 때 ‘엄마가 잘못해서 그래, 아빠는 참 좋은 사람이야. 엄마가 성질이 더러워서 그래’ 하고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너희 아빠가 문제다, 연락도 없다’ 자꾸 이러면 아빠가 나쁘다는 소리잖아요. 그러면 아이들은 상처 받아요.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는데 그 자식인 자기 자신이 좋을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그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엄마가 했으니 더욱더 사실이 되잖아요.nbspnbsp여기서 두 가지 모순이 생겨요. 엄마 말이 사실이라고 하면 아빠는 나쁜 사람이 되고, 아빠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 엄마가 거짓말쟁이가 돼요. 그것도 자기 자식한테 거짓말 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엄마든 아빠든 둘 중 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에요. 아니면 둘 다 나쁘든가요. 그러면 아이들이 자존감이 없어져요.nbspnbspnbspnbsp그러니 아이들이 아빠를 원망하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질문자는 항상 ‘그런 소리 하면 안 된다. 아빠는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다’ 하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럼 왜 안 오냐고 하면 ‘엄마가 잘못해서 그래. 아빠가 엄마 때문에 상처를 입어서, 너희들은 보고 싶지만 엄마가 보기 싫어서 안 오는 거야. 그러니 아빠를 나무라면 안 돼. 아빠가 너희들을 사랑하니까 월급도 이렇게 다 보내주잖니.’ 그러면 좋은 아빠를 가진 아이들은 자존감도 생기고 상처를 안 입어요. 그리고 엄마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엄마가 자기 문제를 알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질문자가 상처를 안 받으면 아이들도 문제가 없어요.nbsp질문자가 상처를 안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이 많이 힘들겠구나. 혼자서 저렇게 밖에서 빙빙 돌려면 얼마나 힘들까.’ 이렇게 생각하고, 남편에게 연락이 오면 남편 입장을 생각해서 받아주세요. 지금 질문자 이야기를 죽 들어보면 자기 답답한 말만 하려 들지, 남편이 어떻게 힘든지는 관심 없잖아요.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면서 접근하잖아요. ‘옷 가지러 가겠다’ 문자 오면 ‘그러세요’ 이러면 되죠. 와서 편안하게 옷 챙기고 밥 먹고 갈 수 있도록 밥상 딱 차려놓고 질문자는 안 보이는 데에 있으면 되잖아요. 먹고 간 뒤에는 ‘고마워요’ 하고 문자 보내주고요. ‘맛있었지?’ 이러면 안 돼요. nbspnbspnbspnbsp그건 생색내는 거예요. ‘먹어줘서 고마워요’ 하면 돼요. 그리고 또 추석날 와서 옷 가져가겠다 하면 ‘그러세요, 챙겨 놓을게요’ 하고, 가져가면 ‘그래도 추석날 와줘서 고마워요’ 이렇게 보내주세요. 그래도 아직 미련이 남아 있으니 월급을 보내주는 것이예요. 저 같으면 안 보내줄 텐데요. 하하.” nbspnbsp“그건 무척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nbsp“그런데 그게 뭐 울 일이에요? 반성할 일이죠. 대화를 하고 싶다고 ‘왜 대화를 안 하니?’ ‘언제 들어오니?’ 하는 건 모두 내 상처, 내 문제의식이에요. 자기 걱정만 하지 말고 ‘저렇게 밖에 다니느라 얼마나 힘들까’ 하고 남편 걱정도 좀 하세요. 질문자가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원래 사람은 자기 걱정부터 하게 되어 있어요. 제가 남편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장례식에 가보면 아내 되는 분이 저를 붙들고 이렇게 말하면서 울어요. ‘아이고, 스님. 이제 남편 죽고 저 혼자 어떻게 살아요? 아이들은 혼자 어떻게 키워요?’nbspnbsp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좀 이상해요. 이 여성 분은 지금 죽은 남편 걱정 안 하고 자기 살 걱정만 하잖아요. 상대가 죽었는데도 죽은 사람은 걱정 안 하고 자기를 걱정하고, 아이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아이 키워야 하는 자기를 걱정하는 거예요. 이게 인간이에요. 인간은 남 걱정할 줄 몰라요. 길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도 다친 사람보다 자기 걱정부터 해요. 존재 자체가 이래요. 그러니 질문자도 정상적인 사람이에요. 그러나 그것이 사랑은 아니에요.nbspnbspnbspnbsp교회에 좀 다니세요. 예수님이 자기를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을 보고 뭐라고 했어요? 저라면 ‘주여,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둘은 지옥에 확 처넣어버리세요.’ 했을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이랬어요. 죽는 순간까지도 자기 걱정이 아닌 남 걱정을 하셨어요. 예수님이 있기 전까지의 하나님은 징벌의 하나님이었어요. 하나님 말 안 듣는다고 유황불로 확 지져버리고 소금 기둥으로 만들어버린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 들어봤죠? 그런데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에요. 말은 똑같은 하나님이지만 성격이 180도 달라요. 어떤 기독교인들이 저에게 ‘하나님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하는데 이건 징벌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유대교 신자이지 기독교 신자가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 말을 해놓고 자기는 크리스천이래요. 이렇게 교회를 다녀도 성경을 모르듯이 절에 다녀도 불교를 모르는 거예요.nbspnbsp지금 질문자는 자기 걱정 하지 말고 ‘얼마나 힘들까, 밥이나 제대로 먹을까’ 이렇게 남편 걱정을 해야 해요. ‘나는 애 둘 키우느라 힘든데 이 놈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안 돼요. 불평할 게 없어야 해요. 남편 걱정을 조금이라도 해주세요. 대부분의 남자들이 돈을 봉투째로 주면 큰소리 치면서 돈값을 하잖아요. 그런데 자기는 얼마나 좋아요? 혼자 살면서 돈은 돈대로 받고 잔소리도 안 듣고요. nbspnbspnbspnbsp좀 시간이 지나서 남편이 집으로 들어오면 또 귀찮아져요. 들어온 뒤에 나가라고 하지 말고, 없을 때 혼자 사는 즐거움을 만끽하세요. 또, 남편과 같이 살 때는 자주 싸웠는데 막상 남편 없이 살아보니 아쉽지요? 쓸모가 없으면 그냥 그대로 혼자 살면 되지만, 쓸모가 있다면 귀한 존재인 줄 알아서 다음부터는 잘 해주면 돼요. 걱정할 문제는 아니에요. 언제 들어올 거냐 하는 건 자기 걱정이지요. 점 보러 가지도 말고 그냥 들어올 때까지 놔두세요. ‘나가신 김에 실컷 놀다 들어오세요’ 이러고요.nbspnbsp돈도 10만원 보내 달라 하면 20만원 보내주고, 50만원 보내 달라 하면 70만원 보내주세요. ‘밖에서 혼자 사는데 얼마나 힘드세요? 우리야 집 있으니 괜찮아요. 조금 더 쓰세요.’ 이렇게 문자 보내주고요. nbspnbsp그런 수준에서 왜 결혼을 했어요? 안 한 나도 이 정도는 아는데요. 이만큼 아는 나도 결혼 안 하고 사는데 그것도 모르면서 왜 그리 겁도 없이 결혼을 했어요? 반성 좀 하세요. 하하하.” nbspnbsp“예, 잘 알겠습니다. 겁이 없어서 결혼을 했어요.” nbsp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엄마가 상처를 받지 않으면 아이들도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말씀에 질문자도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헤아리게 되면 미움과 원망이 사라지고 질문자가 받은 상처도 근본적으로 치유될 것이라는 말에 다시 용기를 얻은 눈빛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울먹이며 질문을 했지만 자리에 앉으면서는 편안한 웃음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질문자는 남편이 시부모님을 너무 챙기는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고, 스님은 시어머니, 며느리, 남편 삼자가 각자 어떻게 입장을 가져야 모두가 화합할 수 있는지 지혜로운 방법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답변을 모두 마치니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스님은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친 후 청중들에게 이렇게 질문하며 마지막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nbspnbspnbsp“재미있었어요?”nbsp“네”nbspnbsp“유익했어요?”nbsp“네”nbspnbspnbsp“재미만 있고 유익하지 않으면 여기서는 다 웃지만 문 열고 나가면 허전합니다. 요즘 억지로 웃기는 코미디 프로들이 그렇잖아요. 유익하긴 한데 재미가 없으면 지루해서 졸아요. 재미도 있으면서 유익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아요. 재미있으면 지금 좋고, 유익하면 나중에 좋거든요.nbspnbsp그리고 나만 좋고 남에게 손해인 것은 오래 못 가요. 상대가 참지 못하기 때문에요. 남이 좋고 내가 손해인 것도 오래 못 가요. 나도 세 번 이상 못 참거든요. 그래서 이 이익이 지속되려면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리예요. 불경이 어떻고 성경이 어떻고 하는 게 진리가 아니라,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재미도 있고 유익하고,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게 진리입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그랬다면 진리의 바다에서 놀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날이 행복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청중들도 정말로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는지 스님을 향한 박수 소리가 아주 크고 오래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무대에서 내려와 청중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었고 무대로 다시 올라가 책 사인회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무대에서 입구까지 사인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오랜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다들 차분하고 여유롭게 서 있는 모습은 스님 강연의 덕분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을 마치고 질문을 했던 한 여성 분에게 가서 오늘 소감을 물어보니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며 “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 같다” 고 하며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nbsp사인회를 마치고 나서는 이곳 안산에 있는 JTS 다문화센터에서 월광 법사님을 비롯해 미얀마 스님과 청년이 강연을 모두 듣고 스님에게 찾아왔습니다. 스님이 “한국말을 못 알아들어서 답답하지 않았어요?”라고 묻자, “모두 다 잘 알아들었다”며 “감명 깊은 법문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다행히 두 분은 한국에 온지 오래 되어서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했습니다.nbspnbsp▲ 안산 JTS 다문화센터에서 법문을 들으러 온 미얀마 스님과 청년nbsp그리고 오늘 강연을 준비한 안산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한 후 스님은 강연장 밖으로 나왔습니다.nbspnbspnbsp봉사자들은 다들 처음 맡아보는 소임들이라 긴장을 많이 했는데,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나가는 안산 시민들을 보며 강연이 잘 마무리되어 뿌듯해 했습니다. 스님의 말씀처럼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nbspnbsp스님은 안산을 출발하여 서울 정토회관에 밤 10시가 넘어서 도착했습니다. 집무실에서 업무를 더 보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에 백담사로 출발해 선방 스님들을 위해 법문을 해준 후 오후에는 다시 서울로 돌아와 저녁 7시부터 동대문 구민회관에서 서울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

2015.10.07. 42,933 읽음 댓글 41개

2015.10.5 (오전) 성남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는 성남시청에서 성남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고, 저녁에는 한양대 ERICA 캠퍼스에서 안산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성남 즉문즉설 강연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오늘도 스님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nbsp아침 7시에는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찾아온 손님들과 함께 조찬 모임을 가진 후 9시에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성남시청으로 향했습니다. 어젯밤에도 미국에서 귀국한 시차 적응 때문에 밤을 샌 스님은 차를 타자 마자 단잠을 주무셨습니다.nbspnbsp▲ 성남시청nbsp성남시청에 도착하자 이재명 성남시장님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시장님이 목 기브스를 하고 안대를 차고 나타나자 스님은 “신문에서 소식은 들었는데 많이 다쳤나 보네요” 라며 걱정을 내비쳤습니다. 시장님은 “동 체육대회를 방문했다가 승진 누락에 불만을 품은 시청 직원으로부터 피습 봉변을 당했다” 며 “몰골이 이래서 강연장까지 배웅을 못해줘서 죄송하다”며 양해를 구했습니다.nbspnbsp▲ 이재명 성남시장님nbsp스님과 시장님은 예산 절약을 통한 복지 혜택 확대, 기본권 보장을 위한 청년 지원 정책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10시 30분이 다 되어 시장님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난 뒤 곧바로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기온이 제법 쌀쌀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2015년 하반기 첫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이 성남시청 온누리홀에서 열렸습니다. 일찍 서둘러 오신 분 중에는 책 판매 부스와 환경상품 부스, 또 JTS부스가 차려진 곳을 둘러보며 스님의 책을 미리 구매하시는 분, 환경상품을 구매하시 분들이 많았고 봉사자들은 모두가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 시작 10분 전에 좌석은 가득 메워졌고, 늦게 온 분들은 계단에 앉은 가운데 900여명의 환호와 박수 속에서 성남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무대에 올라온 스님은 먼저 똑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도 사고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한다며 여러 가지 비유를 들며 청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지금 대부분 괴로운 이유는 매사에 부정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에요. 저도 물론 부정적 사고를 할 때도 있지만 여러분보다는 긍정적 사고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nbspnbspnbsp혼자 사는 걸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나이가 63살인데도 아직 장가도 못 가보고...’ 이러면 부정적 사고예요. 그런데 중이 된 입장에서 보면 63살 될 때까지 장가를 안 간 것은 잘 한 거예요. 게다가 키울 자식이 있나, 바가지 긁는 마누라가 있나, 홀가분하죠. 결혼이나 자식 키우는 것 때문에 힘든 문제로 여러분과 상담을 많이 하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혼자 더 잘 살 수 있었어요. 여러분들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아이고, 나는 정말 잘 선택했다’ 하는 거예요. nbspnbsp그런데 개개인은 그렇게 긍정적 사고를 해야 하지만, 제도적인 개선도 필요해요. 제가 한 사람한텐 만원을 주고 다른 사람한테는 10만원 줬다고 해 봅시다. ‘왜 저한테는 적게 주고 저 사람한테는 많이 줍니까?’ 이렇게 항의를 할 때 제가 ‘공짜로 주는데 주는 대로 받을 것이지, 시끄럽다. 얼마를 주든 그건 내 마음이야’ 이렇게 이야기하면 안 돼요. 인간의 심리가 이렇게 작용하니까 베푸는 사람은 아주 똑같이는 못 주더라도 가능한 한 격차를 줄여줘야 합니다. 돈이 없어서 밥을 못 먹는 것은 절대적 빈곤이에요. 내가 만원 가지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10만원 가지고 있어서 내가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은 상대적 빈곤이에요. 북한은 지금 절대적 빈곤이에요. 우리는 상대적 빈곤입니다. 지금 상대적 빈곤 때문에 여러분이 경제적인 문제로 힘들어하는 거예요. 이런 것은 제도적으로 개선해 주어야 합니다.”nbsp긍정적 사고를 통해서 제도가 변하지 않더라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과 제도 개선을 통해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 이 두가지를 함께 해나가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특히 스님이 “현재 자살률이 우리나라가 세계 1위이고 그것도 20대 사망원인의 50가 자살이며 국민 행복도는 세계 117위”라고 하자 대중들은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이 되기도 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사물의 전모를 살펴볼 줄 알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즉문즉설이 어떤 원리에서 이루어지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질문자가 어떤 사물의 앞만 보고 ‘이렇다’ 주장했는데 제가 ‘뒤는 어때요?’ 하고 뒤도 보도록 해주고, 왼쪽을 보고 ‘어떻다’ 했는데 ‘오른쪽은 어때요?’ 하고, 위만 보고 뭐라고 하는데 ‘아래는 어때요?’ 했어요. 그래서 앞만 보던 것을 뒤와 옆과 위와 아래까지 다 봤어요. 사물의 전체 모습을 본 거예요. 전체 모습을 보는 것을 통찰력이라고 해요. 이것을 지혜라고 합니다.nbspnbspnbsp남편에게 불만이 가득했던 분이 저와 대화를 하는 중에 남편의 전체 모습을 보게 되는 거예요. ‘나한테 돈 안 준다’는 한 면만 보고 부정적으로 봤는데, 이것도 보고 저것도 다 살펴보니까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러면 괴로움이 사라지지요. 제가 괴로움을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자가 통찰력이 생기니까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저는 ‘결혼했으니 이혼하지 마라’ 하는 이야기를 안 합니다. 살든지 말든지 자기 문제지, 혼자 사는 제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요. nbspnbspnbsp제가 해결책을 주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지혜의 눈을 떠야 합니다. 지혜의 눈을 뜨려면 한쪽만 보지 말고 다른 쪽도 같이 봐야 합니다. 앞만 보지 말고 뒤도 보고, 위만 보지 말고 아래도 보고, 이렇게 여러 각도에서 보면 ‘아, 이게 별 문제가 아니구나’ 하고 알게 돼요. 이 괴로움은 나로부터 생긴 거예요. 나의 무지, 나의 편견으로부터 생긴 겁니다.“nbsp한 면만 보지 말고 다른 면도 볼 줄 알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고 보니 모든 즉문즉설이 이런 관점에서 설해지고 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nbspnbsp또 스님은 우리가 그러려니 하는 것에 무지가 있다고 하며 탐구를 해서 문제의 원인을 잘 살펴보라고 일러주었습니다.nbspnbsp“탐구를 좀 해야 해요.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고 하는 분 예를 들어봅시다. 제가 볼 때는 좀 이상하잖아요. 남편이 말을 안 듣는 것은 이해가 돼요. 남의 집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자랐으니까요. 그런데 아이는 자기가 낳고 키우면서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 했잖아요. 그런데 자기 말을 안 듣는다면 누구 문제일까요? nbspnbspnbsp정말로 따져보면 누구한테도 덤터기 씌울 수 없어요. 그런데 애 보고 ‘저희 할아버지 닮았다, 삼촌 닮았다’ 이럽니다. 탐구를 하면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어요. 얼마 전 워싱턴 DC에서 기자들, 특파원들 하고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북한하고 미국 문제며 미국 국내 정치적인 문제 같은 걸 주로 묻고 이야기하는데, 기자 중 한 사람이 유튜브에서 즉문즉설 동영상을 봤나 봐요. ‘스님은 결혼도 안 해보고 애도 안 키워봤는데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그냥 조금 아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꿰뚫어 아시던데.’ 하고 물었어요. ‘스님이 저걸 어떻게 알까?’ 이렇게 묻는 뜻은 두 가지입니다. ‘저게 몰래 해 본 거 아닌가?’ 아니면 ‘저거 완전히 뻥 아니냐?’ nbspnbsp자기가 해보고 자기가 탐구해봤다면 여러분들이 저보다 훨씬 더 잘 알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탐구를 안 해요. 탐구를 안 하는 건 인생이 게으르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자기 인생에 게을러요. 자기에게 관심이 없어요. 남한테는 관심이 그렇게나 많으면서 자기한테는 관심이 없어요. ‘왜 이런 마음이 일어나지?’ 관심을 갖고 탐구를 해봐야 해요. 탐구를 하면 ‘아, 이래서 이랬구나. 그래서 미움이 생겼구나.’ 이렇게 원인이 밝혀져요. 그걸 딱 시정하면 해소되잖아요. 원인을 알았지만 당장 해결이 안 된다 해도 조금 연습을 하면 해결이 되고요.nbspnbsp그래서 수행은 탐구입니다. 믿음이 아니라 탐구예요. 과학자처럼 아주 깊이 탐구하면 딱 원인이 밝혀집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원인 없는 결과가 없다’고 했어요. 그게 인과입니다. 불교의 핵심사상이 인과설입니다. 결과가 있다면 원인이 있고,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따른 결과가 생겨요. 돈을 빌렸으면 나중에 갚아야 하고, 갚기 싫으면 빌리지 말아야 해요. 그걸 알면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정하기는 쉽습니다. 돈을 빌렸다가 갚자니 힘들었다면 ‘다음부터는 빌리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딱 결론이 나니까 인생길이 열리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부처님, 돈 좀 빌리게 해주세요. 그리고 안 갚아도 되도록 해주세요.’ 이러잖아요. 이것은 인과설과 완전히 어긋나요.nbspnbsp자기는 온갖 못된 짓을 해놓고 뭐라고 기도해요? ‘하나님, 죄는 다 용서해주시고 하늘로 보내주세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 시비를 가려서 벌 주세요.’ 자기 건 다 눈감아주길 바라고 남은 없는 죄도 만들어주길 바래요. 자기 심보가 얼마나 더러운지를 지금 봐야 합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이 조금만 탐구하면 인생은 어렵지 않습니다. 산에 가서 다람쥐 보면 잘 살잖아요. 다람쥐가 괴롭다고 자살하는 거 봤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다람쥐보다 못해요. 다람쥐가 힘들어 해도 사람은 괜찮아야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죠. 얼마나 사람이 잘 못 살면 다람쥐며 산짐승이며 하늘의 새를 보고 ‘너는 좋겠다’ 하고 부러워 합니까? 탐구를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nbsp수행은 탐구이며 조금만 탐구하면 인생이 어렵지 않다는 말씀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nbspnbsp스님은 이렇게 여는 이야기 속에서 다채롭고 풍성한 이야기를 많이 풀어내어 주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의 풍성한 이야기가 끝나고 대중들의 큰 박수소리와 함께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즉문즉설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관계로 8명의 질문자 중 2명의 질문만 받았습니다.nbsp아버지 때문에 분노, 화, 짜증이 나에게 생긴 것 같아 아버지가 원망스러워 힘들다는 40대 여성분, 장성한 자녀 둘이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결혼 시킬 수 있게 스님에게 기도문을 얻고 싶다는 어르신, 이렇게 2명의 질문에 대해 스님은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심으로 힘들어하는 40대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질문할 때는 어두운 표정이었던 질문자는 스님의 답변을 듣고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nbspnbspnbsp“저는 맞벌이 부부이고, 초등학생인 딸이 둘 있고, 친정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굉장히 무섭고 싫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부모가 돼서 자식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이렇게 생각이 바뀌면서 아버지가 더 싫어졌어요. 이제는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다가도, 아버지 때문에 제 성격이 이렇게 분노와 화, 짜증이 많아져서 괴롭다고 여겨져서 아버지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어 힘들어요. 감사기도, 참회기도를 하려고 해도 화만 나고 ‘자식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으니까 마음에 상처가 되고요. 부모를 좋게 생각해야 제 자존감이 높아져서 괴롭지 않을 텐데 그게 안 되니까 너무 힘들어서 스님께 말씀 듣고 싶습니다.”nbsp“아버지가 어떻게 하는데요?”nbsp“옛날에는 화내고 혼내고 욕하고 그랬죠.”nbsp“지금은요?”nbsp“지금은 서로 말을 안 하니까...”nbsp“그럼 따로 살면 되잖아요.”nbspnbsp“따로 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아버지 때문에 내 성격이 이렇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까 굉장히 원망스러워요. 그 원망을 떨쳐버리기가 힘들더라고요.”nbsp“그러면 그 생각을 안 하면 되잖아요.” nbsp“자꾸 생각이 나는 걸 어떻게 해요?”nbsp“술을 자꾸 마시니까 건강이 안 좋아진다고 하면 술을 안 마시면 되고, 담배를 피우니까 폐가 안 좋아진다고 하면 담배를 안 피우면 되듯이, 그 생각을 해서 자꾸 괴로우면 그 생각을 안 하면 되잖아요. 질문자는 그게 재미있으니까 자꾸 보는 거예요. 약간의 고통이 있어야 쾌감을 느끼는 매저키즘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영화를 틀어서 괴롭다면 그 영화를 안 틀면 돼요. 아버지가 지금 화내는 것도 아닌데 옛날에 야단맞았던 기억을 지금 혼자서 영화처럼 계속 틀고 있는 거예요. 기억을 한다는 건 영상을 트는 거예요. 그만 틀면 됩니다. 봐서 슬프다면 안 봐야죠. 그런데 또 틀어놓고 보면서 또 울고, 저한테 와서 ‘그것만 보면 슬픈데요’ 이러고 있어요. ‘그러면 보지 마라’ 하니까 ‘보고 싶은데 어떡해요’ 이러니까 저도 ‘그럼 봐라’ 이러죠. nbspnbspnbsp나도 모르게 자꾸 생각이 난다면 이 생각이 딱 들 때, 그러니까 영화가 틀어질 때 ‘아, 이러면 또 괴로워지겠구나’ 하고 알아차려서 영화를 꺼야죠. 내가 켜려고 해서 켜는 게 아니라 자동으로 켜진다 해도 보는 즉시 꺼버리면 되죠.“nbsp“그러면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은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nbsp“영상을 꺼버리는데 원망할 게 뭐 있어요? 그걸 볼 때 원망하는 게 나오지, 아버지 생각을 안 하는데 왜 원망이 일어요? 그걸 굳이 보니까 화가 나는 거죠. 생각한다는 것은 영화를 틀어서 본다는 거예요. 틀어서 보니까 화가 나고 원망이 생기는데, 그걸 아예 틀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틀고 싶어서 트는 게 아니라 저절로 틀어지는데 어떡해요?’ 그러는데 틀어지는 즉시 딱 끄라는 거예요. 트는 건 내 마음대로 못 해도 틀어지는 즉시 끄는 건 할 수 있잖아요. 고개 딱 흔들어버리고 밖에 나가서 100미터 달리기를 하든지 108배 절을 하든지 해서 그걸 끊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절하면서도 그걸 또 틀어서 보겠죠, 뭐. nbspnbspnbsp죽고 죽이는 영화도 재미있다고 자꾸 보는 사람들이 있듯이, 울면서도 또 보고 울면서도 또 보잖아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영상을 돌려놓고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거예요. 아버지가 괴롭히는 게 아니에요. 아버지는 옛날에 나를 괴롭혔다면, 그 영상을 지금 계속 틀어서 자기를 괴롭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예요. 그러니까 영상을 끄세요. 자동으로 틀어져서 딱 보일 때마다 ‘어’ 하고 고개를 확 돌려버려서 생각을 바꾸세요. 벌떡 일어나든지 다른 걸 보든지 해서 생각을 바꾸면 돼요. 어렵지 않습니다.nbspnbsp그런데 이렇게 자동으로 틀어질 때 끄는 방법은 영화 테이프는 그대로 두는 거예요. 가능하면 테이프를 지워버리는 게 더 좋겠죠. 그러면 안 틀어질 거 아니에요? 테이프를 지우는 방법은 우선 아버지를 이해하는 거예요. 나를 야단칠 때 아버지는 몇 살쯤 되었을까요?”nbsp“30대 중반이요.”nbsp“질문자는 지금 나이가 얼마예요?”nbsp“45살이요.”nbsp“그럼 질문자보다 10살이나 어린 남자잖아요. 35살의 인간이란 건 내가 어릴 때 보면 굉장한 어른 같지만 커서 보면 완성된 존재가 아닌 불완전한 존재예요. 질문자 어머니는 어때요?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고분고분하고 잘 했어요? 어머니가 고집이 좀 셌어요?”nbsp“어머니는 굉장히 인자하신 편이세요...”nbsp“인자한데 어떻게 아버지가 화를 내겠어요, 아이고 참. 여자가 착해도 말을 했을 때 상냥하게 ‘네, 여보.’ 하지 않고 입 꾹 다문 채 대답을 안 하면 답답해서 성질이 나요. 질문자도 애 키워보면 그렇잖아요. 야단쳤을 때 대들어도 화가 나지만, 엄마가 뭐라 하는데도 아무런 대꾸를 않고 방에 팩 들어가 버리면 더 성질나잖아요. 그런 것처럼 35살 때의 아버지는 아직 인격도 덜 성숙했고 뭔가 사업이 안 풀리거나 부부 갈등이 있거나 해서 자기 성질을 부린 것 뿐이지, 질문자를 일부러 괴롭히려고 한 건 아니에요. 질문자가 거기에 상처를 입은 거예요. 이제 다 컸으니 이해가 될 거예요.nbspnbsp그러니까 ‘아이고, 뉘 집 아들인지 몰라도 결혼해서 그 나이에 참 힘들었겠구나’ 하고 생각하면 별 거 아니에요. 어리다는 건 어리석다는 이야기거든요. 어렸을 때 이해하지 못해서 상처 입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그런데 이젠 다 컸으니 ‘아버지도 그때 참 힘들었겠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을까’하고 이해하는 게 첫 번째입니다.nbsp다음은 감사하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버리지 않고 키워준 건 고맙잖아요. 법륜 스님은 질문자에게 화는 안 냈지만 질문자를 키워주진 않았잖아요. nbspnbspnbsp아버지는 화를 벌컥벌컥 내긴 했어도 재워주고 먹여주고 키워줬잖아요. 옛날 며느리들도 그래요. 맏며느리는 부모를 모시고 살지만 나머지 며느리는 명절 때만 오잖아요. 명절 때만 와서 하루 있다 가니까 시어머니한테 잘 해줘요. 그런데 시어머니는 이걸 몰라요. 그래서 둘째, 셋째 며느리는 착하게 여기고 맏며느리는 욕합니다. 사실은 일상적으로 돌봐주는 사람이 제일 효자예요. 불평도 좀 하고 성질도 좀 내지만 그 사람이 제일 효자예요. 배우자가 성질 버럭버럭 내고 좀 골치 아파도 이혼하고 보면 그만한 인간이 없어요. nbspnbsp어떤 사람이 돈 벌어주고, 어떤 사람이 밥해주겠어요? 세상 일이 뭐든지 다 내 마음대로는 될 수가 없어요. 그걸 고치려 들지 말고 ‘그래, 내가 원하는 대로 100퍼센트는 안 되지만 그래도 돈 벌어주는 사람, 밥 해주는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잖아. 내가 아파서 병원 가면 걱정해주는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지’ 이렇게 생각하세요. 내가 여기까지 오도록 키워준 사람이 성질은 좀 버럭거릴지언정 그 사람밖에 없단 말이에요. 법륜 스님은 겉으론 좋아보여도 질문자가 자라는 데 털끝 하나 보태준 게 없는데, 왜 그걸 다 보태준 아버지는 미워하고 해준 것도 없는 법륜 스님은 좋아해요? nbspnbsp영화 테이프를 지우는 방법은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때의 아버지 나이를 생각하면서 ‘아버지가 그때 참 힘들었나 보다’ 하고 이해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를 키워줘서 감사하다’ 하고 고맙게 여기는 것입니다. 물론 화 안 내고 잘 해줬다면 더 좋았겠지요. 그러나 세상이 다 내 원하는 대로 만은 안 돼요. 내 원하는 대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요.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필요합니다. 지금 질문자는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살아 계시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죠. 돌아가시고 나면 뭘 어떻게 해드리고 싶어도 해드릴 수가 없잖아요. 살아 있으니까 그래도 뭔가 해드릴 수 있어요.nbspnbsp그러니 부모님 계신 것을 고맙게 생각하세요. 돌아가시면 또 후회합니다. 사람 심리가 희한해요. 있을 때는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없으면 또 후회가 됩니다. 그래서 불효자가 많이 운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죽은 뒤에 울지 말고, 살아 있을 때 고맙게 여기세요. 최소한 미워는 하지 말아야죠. 저는 효도하란 이야기는 절대로 안 합니다. 그런데 미워는 하지 마세요. 부모가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줬지 나한테 손해 끼친 게 없으니까요. 야단친 건 ‘야단은 쳤지만 먹여줬다’고 생각해야 해요. 질문자는 야단치고 먹여주는 사람이 나아요? 야단은 안 쳐도 굶겨 죽이는 사람이 나아요? nbspnbspnbsp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절을 하면서 ‘아, 아버지도 힘들었겠다’ 하고 이해하는 것이 하나이고 ‘그래도 나를 이렇게 키워주셨다’ 하고 감사하는 것이 둘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좋아져요. 그리고 자꾸 생각나면 생각날 때마다 빨리빨리 전원을 끄세요. 리모콘을 하나 사 줄까요?” nbsp“네, 고맙습니다.”nbsp질문자는 큰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화를 내던 아버지는 그 당시엔 35살의 불완전한 사람이지 않았느냐’, ‘야단은 쳐도 먹여주고 키워주지 않았느냐’ 는 말씀에 질문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눈물이 맺힌 질문자에게 청중들은 박수를 보내며 격려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살아있다는 기적이 매일 매일 일어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라고 하면서 “아, 오늘도 살았네” 라는 기도문을 주면서 2시간 동안의 강연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질문을 하지 못한 분들은 아쉬움이 남았겠지만 오늘은 스님의 여는 말씀 속에 많은 가르침이 설해졌기 때문에 강연장을 나가는 대중들 모두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며 가벼운 발걸음이었습니다.nbspnbsp강연 직후 로비에서는 스님의 책 사인회가 있었습니다. 준비된 책이 모두 팔려서 책을 못 산 분들이 많았고, 책 판매를 담당한 봉사자들도 책을 더 많이 준비하지 못한 것에 많이 미안해 했습니다.nbspnbspnbsp▲ 책 사인회nbsp책 사인회를 마치고 나서는 분당정토회 산하에 속한 4개 법당의 봉사자들과 함께 각 법당별로 기념 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 스님을 보고 너무나 기뻐하는 봉사자들의 표정을 보니 봉사를 하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 모든 일을 놓고 스님과 함께 사진을 촬영하는 바로 이 시간이 아닌가 싶었습니다.nbspnbsp▲ 봉사자들과 기념 사진 촬영nbsp오전에는 이렇게 분당정토회의 80여명의 봉사자들이 한 마음으로 모자이크 붓다가 되어 성황리에 강연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친 스님은 다시 이재명 성남시장님의 초대로 시청 구내 식당에서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은 후 시청사를 나왔습니다.nbspnbsp다시 평화재단으로 와서 오후 2시부터는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한 후 오후 5시에는 저녁 강연이 열리는 안산시의 한양대 ERICA 캠퍼스로 향했습니다.nbspnbsp저녁 강연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에 계속 됩니다...

2015.10.07. 43,623 읽음 댓글 41개

2015.10.4 새터민과 함께하는 통일체육축전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남북한 동포가 함께하는 ‘통일체육축전’에 참가하여 추석 명절에 고향에 가지 못한 새터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4시에 기상하여 대중들보다 30분 일찍 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치고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아침 7시에 평화재단으로 이동하여 찾아온 손님들과 조찬 모임을 가졌습니다. 모임 후에는 남북한 동포가 함께하는 ‘통일체육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양강초등학교로 향했습니다.nbspnbsp아침 10시 무렵 양강초등학교에 스님이 도착하자 오랜만에 스님 얼굴을 뵌 많은 새터민들과 좋은벗들의 자원봉사자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도 환한 웃음을 보이며 본무대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오늘 통일체육축전은 서울과 울산 두 군데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서울에서는 총 1200여명이 참석했고, 울산에서는 600여명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nbspnbsp▲ 양강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인 새터민들과 좋은벗들 회원들nbsp먼저 사회를 맡은 ‘좋은벗들’의 회원이자 방송인인 김병조씨가 “윗동네, 아랫동네 여러분 그 동안 건강하게 무사히 잘 지내셨나요?” 하며 큰 목소리로 행사에 참여한 새터민들과 좋은벗들 회원들을 환영해 주었습니다.nbspnbsp해마다 이렇게 윗동네와 아랫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잔치를 시작한 지도 어느새 13년이 되었습니다. 윗동네에서 오신 분들은 낯선 남쪽 땅에 정착하느라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고단함을 잊고 즐겁고 당당하게 즐기라고 사단법인 좋은벗들에서 해마다 추석 명절 즈음에 여는 행사가 바로 ‘통일체육축전’입니다. 올해로 벌써 13번째를 맞이하는 행사이다 보니 해가 갈수록 더욱더 아기자기하고 재미있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지난주에는 한가위 큰 명절이었습니다. 한가위는 한해의 추수로 풍성한 수확과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족 친지 이웃 분들과 함께 나누는 날인데요. 풍성한 남쪽 분위기와는 달리 많은 새터민들이 고향에 가지 못하고 애닯은 마음을 속으로만 삭혀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체육축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런 새터민들의 무거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합동차례를 지냈습니다.nbspnbsp▲ 추석맞이 합동차례nbsp오늘 행사에는 지역 인사 분들도 많이 오셨는데, 이 지역의 국회의원인 새누리당 길정우님, 새정치연합 양천을 위원장 이용선님, 양천구청장 김수영님, 전 하나원 원장인 고경빈님, 정토회 대표 이기혜님, 서울정토회 대표 마경숙님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먼저 제례를 올렸습니다.nbspnbsp내외빈들의 차례가 끝나고 나서는 함경북도 온성이 고향이고 좋은벗들의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이길웅 선생님이 나와 축문을 낭독했습니다. 축문에 이어서 새터민들이 무대로 나와서 제례를 올렸습니다.nbspnbsp▲ 고향을 생각하며 큰 절을 올리는 새터민들nbsp새터민들은 술잔을 올리며 북녘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목이 메어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가운데 큰 절을 올리며 고향에 계신 가족과 친척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또 기원했습니다.nbspnbsp▲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눈물을 훔치고 있는 새터민들nbsp이 모습을 지켜보는 좋은벗들 회원들도 함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새터민들이 해마다 아픈 가슴을 어루만지지 않아도 되도록 하루 빨리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 세상이 오길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nbspnbsp이어서 좋은벗들의 이사장인 법륜 스님이 무대로 올라와 환영 인사를 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안녕하세요. 추석 잘 지내셨습니까?”라고 말문을 열자, 새터민들은 “네” 하고 환호하듯이 대답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고향을 떠나 이주해서 살면 기가 죽기 마련이라고 하면서 통일에 대한 꿈과 자신감을 갖고 살아갈 것을 당부해 주었습니다.nbspnbsp“추석날 달이 밝으면 고향 생각이 나게 마련이에요. 그러니 고향 가서 차례를 지내는 게 제일 좋은데, 북쪽에서 오신 분들은 고향 가서 차례를 지내지 못해서 섭섭했을 것 같습니다. 남쪽 사람들이 다 자기 고향 가듯이 북쪽 분들도 추석 때나 설 때만이라도 휴전선이 열려서 5일씩만이라도 다녀올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nbspnbspnbsp통일되면 더 좋지만 통일되기 전까지만이라도, 평상시에도 열리면 더 좋지만 최소한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나 설에라도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문을 열고 서로 고향을 방문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지금은 그런 일도 안 되고 있기 때문에 추석을 맞아서 고향을 생각하는 이런 통일체육축전을 열고 있어요.nbsp현재 한국에서 태어나서 외국에 가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제 시대와 그 전까지 다 계산하면 한 700만 명 정도 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간 사람들만 해도 한 400만 명 정도 됩니다. 제가 미국에 가 보면 처음에 이민가서는 살기 바빠서 다른 생각을 못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고향이 그리워진대요. 그래서 늘 추석 전후로 ‘한국의 날’이라는 걸 마련해서 공원을 빌려가지고 이런 축제를 해요. 거기 가보면 송편 빚어먹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엿장수가 엿판도 들고 다니고, 지게도 만들어서 지고 다니고, 우리 노래도 부릅니다. 어릴 때 고향에서 했던 온갖 것들을 다시 되살려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행사예요. 제가 그걸 보면서 ‘북쪽에서 와서 남쪽에 사는 분들에게도 이런 행사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nbspnbspnbsp고향을 떠나 이주해서 살다 보면 다소 기가 죽기 쉽습니다. 그러나 기죽지 말고 오늘만큼은 고향에서 즐기던 것을 이 자리에서 즐겨보자는 취지입니다. 북쪽 노래도 부르고, 거기서 추던 춤이 있다면 춤도 추고, 거기서 먹던 음식도 만들어 먹으면서 즐겨봅시다.nbspnbsp인간이 태어남에 의해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태어나보니 여자인데 여자라고 차별받으면 안 되고, 태어나보니 북쪽에서 태어났는데 북쪽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차별받아서도 안 되고, 태어나보니까 몸에 장애가 있을 뿐인데 이걸 이유로 차별받아서도 안 됩니다.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태어나보니까 성적 취향이 소수자에 속한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지으심인데 그걸 개인이 어떻게 하겠어요? 이런 걸 가지고 차별을 해서는 안 돼요. 그래서 피부색이나 고향이나 종교로 차별하지 말자고 하잖아요.nbspnbs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같은 민족인데도 단지 태어난 고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여기 살면서 보이지 않게 많은 차별을 받게 됩니다. 이런 것을 좀 뛰어넘어서 하나로 어울려보자 해서 이 축전을 마련했습니다. 오늘만큼은 그런 모든 것들을 잊고 마음껏 기쁘고 즐겁게 놀아봅시다.nbsp그리고 앞으로 이걸 조금 더 발전시켜서 여러분들이 이날만큼은 남쪽을 흉내내기보다는 북쪽에서 가지고 온 좋은 것들을 함께 즐겨보면 좋겠습니다. 북쪽이라고 나쁜 점만 있는 게 아니라 좋은 점도 많잖아요. 고향에서 먹던 음식도 각자 마련해 와서 나누어 먹고, 어릴 때 좋은 추억거리로 남은 것이 있으면 여기에서 시연하면서 우선 위로를 좀 받으시길 바랍니다.nbspnbspnbsp그리고 여기서 계속 살아도 좋지만, 교류가 되고 통일이 되면 고향에 돌아가서 고향을 발전시키겠다는 꿈을 갖고 남쪽의 생활은 그걸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자신감을 갖고 살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기쁜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nbsp스님의 반가운 인사와 격려 말씀에 새터민들도 기쁜 마음이 되어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이 얼마나 새터민들의 아픔을 잘 헤아리고 있는지 애정이 듬뿍 담긴 말씀 속에서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향을 발전시키겠다는 꿈을 갖고 그 준비 기간으로 지금의 남쪽 생활을 받아들여 보라는 말씀은 가슴 속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새터민들의 통일을 향한 이 열망이 스님이 지금 하고 있는 통일운동에도 보태어진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nbspnbsp이어서 전 하나원 원장을 지냈고 지금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에서 통일 관련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고경빈 이사님이 나와 환영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내외빈 중에서 길정우 새누리당 국회의원님, 이용선 새민련 양천을 위원장님, 김수영 양천구청장님이 차례로 나와 새터민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합동 차례를 모두 마치고 즐거운 운동회와 점심식사, 분산놀이, 부스체험, 대동놀이 등 다채로운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새터민들은 맛난 음식도 먹고 그동안 못 보았던 고향 분들도 만나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한 하루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 환영 인사를 하러 온 길정우 새누리당 국회의원님과 김수영 양천구청장님과 이용선 새민련 양천을 위원장님nbsp스님은 참석한 내외빈들 한분 한분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오랜만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특히 이 지역 국회의원과 구청장님에게는 이번에 통일체육축전 행사 장소를 구하느라 어려움이 많았다는 봉사자들의 어려움을 전하면서 내년에는 이런 좋은 취지의 행사를 잘 도와줄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은 운동장 구석 구석을 한바퀴 둘러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새터민들과 좋은벗들 봉사자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nbspnbspnbsp▲ 구석구석을 돌며 새터민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스님nbsp새터민들은 스님에게 합장을 하며 인사를 하기도 하고 과일을 건네기도 하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며 모두들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어떤 분은 스님을 보자 넙죽 바닥에 엎드리며 큰절을 올렸는데, 스님은 감사히 절을 받고 나서 “너무 그러면 광신도라는 소릴 들어요” 라며 농담을 던졌습니다.nbspnbsp▲ 스님을 보자마자 넙죽 큰절을 하는 분nbsp많은 분들이 스님과 사진을 함께 찍고 싶어 하였지만 다른 일정이 있어 오랫동안 운동장에 머무를 수가 없어 양해를 구하고 스님은 다시 평화재단으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 새터민들이 고향 친구를 찾을 수 있게 ‘친구찾기’ 이벤트를 하고 있는 봉사자들과 함께nbsp스님이 자리를 떠난 후에도 통일체육축전은 신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연이어 계속 이어졌습니다. 백두, 한라, 평화, 통일 4개 팀으로 나뉘어져 단체 게임도 신나게 하고, 운동장 곳곳에 나뉘어져 전통놀이를 즐겼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만두, 시루떡을 나눠주는 코너, 북한낱말퀴즈를 열어 상품을 주는 코너, 팔씨름을 겨뤄 이기는 사람에게 상품을 주는 코너, 음향 측정기로 목소리 크기를 겨루는 게임, 제기 차기, 그림으로 심리 치료를 해주는 부스, 법률 상담을 해주는 변호사들, 의료 상담을 해주는 의사들, 제기 차기 등 민속놀이 코너, ‘이대로 통일해도 괜찮을까요?’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는 코너 등 정말 다양한 게임들이 곳곳에 마련되어 새터민들은 하루종일 웃으며 신나게 놀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만두를 시식하는 코너nbsp▲ 북한말퀴즈 코너nbsp▲ 설문조사 코너nbsp▲ 각종 민속 놀이nbsp그리고 마지막 피날레는 노래자랑 대회였습니다. 남한 노래, 북한 노래가 연이어 불러지며 무대를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그리고 좋은벗들 회원들로부터 많은 상품들이 기부되어서 바자회에서 아주 값싸게 나눠지기도 하였고, 집으로 돌아가는 새터민들에게는 양손 가득이 선물 상자가 한 개씩 선물되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날만 같아라’는 말처럼 오늘 하루 새터민들은 풍성한 하루를 즐겼습니다.nbspnbsp오후 3시에 다시 평화재단에 도착한 스님은 집무실에 머물며 밀린 보고서와 서류들을 검토하고, 다음주에 출간되는 신간 ‘야단법석’ 책의 원고 교정 등의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저녁 6시에는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9시까지 회의를 한 후 연이어 9시부터는 정토회 법사단과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였습니다.nbspnbsp내일은 2015년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의 하반기 첫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오전 10시 30분에는 성남시청 온누리홀에서 성남 시민들을 위해, 저녁 7시에는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 컨퍼런스홀에서 안산 시민들을 위해 열릴 예정입니다.nbsp

2015.10.05. 37,152 읽음 댓글 38개

2015.10.3 (오후) 평화재단 제1회 통일의병대회

nbsp오전에 칠백의총에서 ‘평화통일 기원제’를 모두 마치고 오후에는 통일의병대회를 하기 위해 대전 가오중학교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1시 30분부터 가오중학교 체육관에서는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에서 개최하는 제1회 통일의병대회가 열렸습니다.nbspnbsp▲ 대전 가오중학교 체육관nbspnbsp통일의병이 창립되고 2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대중들에게 부여된 의병 번호가 700번을 넘었습니다. 통일의병 백왕순 사무총장이 나와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해 주었고, 이어서 영남본부, 호남본부, 충청본부, 수도권본부를 대표하는 본부장들이 나와 그간의 활동을 보고해 주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노력과 활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각 본부의 활동 보고를 경청한 후 무대 위에 올라와 ‘통일 의병이 가야할 길’을 주제로 강의를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통일 한국의 비전과 통일 한국으로 가기 위한 방법과 그 중심 역할을 해야 할 통일의병의 자세에 대해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 중 일부분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이제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의 가장 큰 틀이 통일이라는 뜻이지 통일만 하면 다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통일이라고 하는 큰 틀 안에서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크게는 헌법이 바뀌어야 해요. 다시 말하면 지방분권과 다당제를 토대로 하는 연방과 연정을 기반으로 하되, 그 속에 북한도 들어올 수 있도록 북한주민들에게도 권리를 보장해줘야 합니다. 통일에 대비한 정치 시스템을 먼저 운용하고 북한도 그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이런 통일전략이 바로 ‘준비’예요.nbspnbspnbsp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정치 시스템이 다르더라도 북한 개발은 당장 시작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성장 돌파구를 열고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럴려면 통일을 추구하는 강력한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야 해요. 외세의 간섭을 받는 정부는 안 돼요. 통일 한국이 주변국의 이익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득하는 동시에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북한 지도층에게도 통일 후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는 신분 보장을 해줘서 함께 이익을 추구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중심이 되어서 통일을 해야 해요. 북한은 통일할 능력이 안 됩니다. 우리의 사회 시스템은 지금 문제가 많긴 해도 조금만 개선하면 그래도 통일의 기초로 쓸 만하지만, 저쪽은 이미 폐차해야 될 수준이지 수리해서 쓸 수준이 아니에요. 그러니 승객을 옮겨 태워야 해요. 다치지 않도록 함께 가면서 서로의 신뢰를 기초로 해서 옮겨 태워야 합니다.nbspnbsp100년 전처럼 나라를 또 혼란에 빠뜨려서 우리 후손들이 우리의 잘못으로 인한 후유증을 안고 온갖 불행 속에 살도록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먼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정부가 이걸 제대로 하면 스님은 정신 문제를 다루고 여러분들은 자기 직업에 충실하면 되는데,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도 그렇게 안 되고 있으니까 우리가 지역과 직업에 관계없이 곳곳에서 일어나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해보자고 이렇게 모인 겁니다.nbspnbsp이렇게 모여서 무얼 할까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정부를 구성해내야 해요. 그 정부가 밖으로는 주변국과 외교를 잘 하고 안으로는 국민들을 잘 통합시키고, 북한을 대할 때는 위험을 잘 관리하면서 대화를 통해 설득해서 통일국가로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그런 정부를 강력하게 뒷받침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후손들은 수모 받고 상처 입은 국민, 트라우마를 가진 국민이 아니라, 정말 자랑스럽고 건강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 안에 못 들어가도 행복도는 세계 1위라고 내세울 수 있는 자긍심 있는 국가를 우리가 만들어내야 해요. 그럴려고 우리가 지금 이렇게 모인 거예요.nbspnbsp각자의 생각은 달라도 이 뜻만큼은 같다고 하여 모였지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조헌 선생은 의병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라고 했어요. 나라를 위해서 좋은 일 한다고 해서 가난한 집에 가서 ‘양식 달라’, ‘곡괭이 달라’ 하면서 자꾸 민폐 끼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첫째, 우리도 의병 활동 한다고 하면서 주위에 민폐를 끼치면 안 돼요. 자발적으로 식량 주고 헌금하면 고맙게 받지만, 좋은 일 한다고 다니면서 협박해서 돈 뜯으면 안 된다는 말이에요. nbspnbspnbsp둘째, 서로가 공을 시기 질투해서 분열하면 안 됩니다. 서로 시기 질투하고, 모함하고, 이것도 벼슬이라고 지역 본부장 하겠다 뭐 하겠다 하면서 내분이 일어나면 안 됩니다. 관군이라는 게 다 내분 때문에 망하는 거예요. 의병은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였기 때문에 대의를 빼버리면 내분이 일어날 확률이 제일 높죠. 그러나 우리의 대의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지 사익을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므로 여기 와서 사익을 추구하면 안 됩니다. 뭘 얻으려고 눈치 보고, 이걸 가지고 정치적 기반을 삼아서 한 자리 하려는 사람들이 이런 곳에는 꼭 끼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우리가 서로 견제해 나가야 해요.nbsp셋째, 내부에는 의견 차이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제가 제일 우려하는 게 이거예요. 과거의 의병들도 그랬지만 의견 차이는 분열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이거 하자 하고 저 사람은 저거 하자 하고 모아놓기는 모아놓았는데, 이걸 끌고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이게 제일 폐해가 크고 그렇게 되면 실패 확률이 높습니다. 여러분들이 이걸 딱 주의하셔야 합니다. 자칫하면 안하느니보다 못한 결과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항상 민주적으로 의논해서 결정하되, 의병이라면 의논해서 결과가 났을 때 군말 없이 지지해야 돼요. 안 그러면 조용히 의병을 탈퇴하든지요. 그런데 그냥 조용히 탈퇴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꼭 분란을 일으킵니다.nbspnbsp대한민국 사람들끼리 이야기할 때 종교 이야기,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하잖아요. 친구지간에 술 마시며 이야기할 때도 이런 얘기는 하면 싸우게 되고 결론도 안 난다고 해요. 의병은 정말로 이 사색당쟁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병 속에서도 양반 따지고 상놈 따지는 거 봤잖아요.nbspnbsp승병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여기서 전투 중에 실제로 이 조헌 선생과 700명의 의병만 죽은 게 아닙니다. 승병도 800여명이 싹 다 죽었어요. 그런데 왜 칠백의총이라고 할까요? 중은 사람이 아니니까 빼버리고 유생들만 넣어서 칠백의총을 만든 거예요. 같이 싸웠어도 양반만 골라서 의총을 만들고 상놈은 버렸습니다. 그럼 왜 불교는 이런 것을 안 따질까요? 중은 그런 거 안 따져요. 나라만 잘 되면 되지 죽은 뒤에 명예가 있으면 뭐하고 없으면 뭐 하겠어요?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는 말이에요. nbspnbsp그러니 우리는 정말 대의를 위해서 활동해야 합니다. 회의 때는 자유로이 의견을 낼 수 있지만 결정이 되면 딱 승복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오합지졸이 안 되고 의기충천한 의병이 되지요. 안 그러면 진짜 적진 앞에서 오합지졸이 됩니다. 제가 볼 때는 솔직히 말해서 80퍼센트는 분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다들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주장이 강하니까요.nbspnbsp그러나 이걸 극복해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숫자 늘리고 뭐 하는 것은 모두 우리가 노력하면 다 됩니다. 하지만 이 분열 문제는 성질에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에 간단하지는 않아요. 그러니 이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의병 모임 안에서 자리 다툼을 하거나 분열하는 일이 없도록 해서 내분을 극복해야 합니다. 사적으로 이걸 이용해서 물건을 팔려 들고 뭘 주장하려 하고 개인 이익을 취하려 드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모임 안에서 돈 거래, 물건 거래를 일체 금지하는 이유도 그래서예요. 그런 정도의 원칙은 좀 지켜야 해요.nbspnbsp우리는 정말 나라를 위해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랫사람 한 명은 전쟁터에서 이탈하거나 낙오해도 문제가 안 됩니다. 병사가 낙오하는 것은 전쟁에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백 명이 떨어져 나가도 괜찮아요. 항상 장군 한 명이 상대에게 넘어가 항복해서 그쪽에서 깃발 들고 쳐들어오는 게 문제죠. nbspnbspnbsp앞으로 백만 명의 의병을 모으는 일은 크게 걱정 안 해도 돼요. 그건 순식간에도 모을 수 있어요. 문제는 여러분들이 바로 의병장이 될 사람들이란 점입니다. 그러니 여기에는 적어도 이런 정도의 규칙이 필요합니다. 조헌 선생은 오합지졸들을 모았는데도 ‘민폐 끼치면 안 된다’ 부터 시작해서 열 몇 가지 규칙을 딱 정했어요. 우리도 그런 자세로 임한다면 대한민국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희망을 함께 만들어봅시다.” nbsp스님의 소중한 가르침에 통일의병들은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한다는 대의를 위해 모였다는 것을 늘 자각할 수 있으면 의견 충돌도 극복할 수 있고, 오합지졸의 한계도 넘어설 수 있다는 말씀이 감명 깊게 다가왔습니다.nbspnbsp이어서 통일의병들의 마음을 모으고 다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통일의병 뱃지를 다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의병 번호를 이미 받은 분들입니다. 의병 번호를 받는다는 것은 의병으로 새로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의병 뱃지를 다는 것은 바로 내가 통일의병임을 당당하게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그들도 통일의병이 되도록 통일의 필요성을 적극 알려나가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입니다.nbspnbsp통일의병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병 뱃지를 달아주었습니다. 먼저 스님과 조성식 대표님이 무대 위로 올라와 서로에게 의병 뱃지를 달아주었습니다.nbspnbsp▲ 조성식 대표에게 뱃지를 달아주고 있는 스님nbsp스님과 대표님은 서로에게 뱃지를 달아준 후 두 손을 번쩍 머리 위로 들어올리며 함박 웃음을 머금었습니다.nbspnbsp▲ 스님의 가슴에 달린 통일의병 뱃지nbsp나머지 통일의병들도 서로가 서로에게 의병 뱃지를 달아주었는데 그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였습니다. 관군은 나라가 임명하지만 의병은 내 가슴의 양심이 임명하는 것이라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가 뱃지를 다 달자 사회자가 “나는” 하고 외치니 의병들도 “통일의병이다” 라고 힘껏 외쳤습니다.nbspnbsp▲ 서로에게 뱃지를 달아주고 인사하는 통일의병들nbsp이어서 통일의병이 된 한 명 한 명의 얼굴과 목소리, 마음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 참석한 230여명의 통일의병들이 ‘내가 통일의병이 된 이유’와 ‘통일의병이 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2가지 주제로 20초 동안 발표하는 ‘20초 스피치’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nbsp▲ 230여명이 모두 참여한 20초 스피치 시간nbsp모든 사람의 발표를 다 듣는데는 약 2시간이 넘게 소요되었지만, 스님은 한 명 한 명의 발표를 집중해서 경청했습니다.nbspnbspnbsp너무나 다양한 사연과 이유로 통일의병이 되었고, 각자가 통일의병이 되어 하고 싶은 일도 너무나 다양했습니다. 이런 다양성이 잘 조화를 이루면 정말 큰 힘을 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230여명의 발표가 끝난 후 제일 마지막으로 스님도 무대 위로 올라와 20초 스피치에 함께 동참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스님도 무대 위로 올라오자 통일의병들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보냈습니다. nbspnbsp▲ 통일의병 0번으로써 20초 스피치를 하고 있는 스님nbsp“제가 통일의병이 된 것은 통일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통일이 자주적으로 되지 않으면 통일된 나라가 통일시켜준 나라의 종속국이 될 수 있으므로 우리 힘으로 통일을 하고자 해서 통일의병이 되었습니다. 의병으로서 통일을 하는 데 필요한 일이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nbspnbsp스님은 통일의병 번호 0번이면서 고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스님도 통일의병의 한 일원으로서 소개를 한 것이지요.nbspnbsp이어서 스님은 230여명의 발표 모습을 보면서 든 소감을 나누어 주었습니다.nbspnbsp“말씀 잘 들었고요, 정말 감동적입니다. 처음에는 20초씩 230명이 발표한다고 해서 좀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지났지만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아주 감동적이어서 때로는 눈물까지 났습니다. 특히 장애를 갖고 계신 분이 북한의 장애인들을 돕고 싶다 하는 게 기억에 남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북한에서는 먹고 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장애인은 아예 보살핌에서 제외됩니다. 현재 농아만 그나마 보호받고 있고, 나머지 장애인들은 보호받을 수 있는 시설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형편인데 장애인들을 특별히 생각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nbspnbsp스님은 이 대목에서 울먹이듯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북한 주민들도 많은 고통을 받고 있지만 장애인들은 그 속에서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데 누구도 그들의 아우성에 응답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은 오늘 행사를 마치며 한번 더 통일의병들을 위해 격려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지난 천년 동안의 한을 푸는 길은 바로 통일이며, 통일은 반드시 될 수 있다고 믿고 힘차게 활동해 나갈 것을 강조했습니다.nbspnbsp“지난 천 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한이 많습니다. 몽골항쟁 때 얼마나 피해가 컸습니까? 삼별초의 항쟁도 실패했잖아요. 임진왜란 때도 얼마나 슬픈 역사가 많습니까? 동학혁명군 학살은 얼마나 슬픕니까? 의병들은 또 얼마나 고통을 겪었습니까?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얼마나 많이 죽고 피해를 입었는지 모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위안부, 학도병, 강제 징용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고요. 분단된 이후에는 6.25 전쟁으로 쌍방 간에 얼마나 희생이 컸어요? 빨치산들은 얼마나 비참하게 죽었고요? 제주도 4.3사건, 여수순천사건, 이렇게 이쪽저쪽 가리지 않고 몰살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4.19도 그렇고, 광주항쟁도 그렇습니다. 너무나 많은 실패의 역사, 한의 역사를 갖고 있어서 우리들 마음 속에는 늘 망설임이 있습니다. 옳기는 옳다고 생각해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망설여집니다. 그래도 한번 불붙으면 또 걷잡을 수 없이 타오릅니다.nbspnbsp이제 우리 개개인 속에, 우리 민족 속에 있는 이 상처와 한을 우리 손으로 씻어내야 합니다. 이 한을 못 풀게 되면 오늘날 지구촌의 시민이 되기가 좀 어렵습니다. 우리는 민족주의를 말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면 세계 시민으로서는 아직은 조금 수준이 떨어져 보여요. 그래서 우리가 이 한을 좀 씻어내야 합니다. 소위 한풀이를 좀 해야 하는데 최고의 한풀이가 뭘까요?nbspnbsp우리 힘으로 통일을 해야 실패의 역사가 끝나고 과거의 상처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어요. 그래야 일본 사람 만나고 중국 사람 만나도 미움이 안 생기고 주눅도 안 듭니다. 그렇게 해서 심리적으로 정상적인 사람이 되고, 민족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배달나라의 후손으로서 당당함을 찾아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통일은 통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100년 후 동아시아 시대가 도래할 때 우리가 중심이 되어 문명의 새로운 꽃을 피울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우리 후배들, 후손들에게 정말 희망의 길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nbspnbspnbsp그러니 더 이상 한탄만 하지 말고, 좌절만 하지 말고, 죽어서 좋은 데 가려고만 생각하지 말고, 과거 청산도 미래 개척도 우리 손으로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안 되면 천지신명의 보호도 받고, 조상신의 도움도 받고, 기독교 하나님의 도움도 다 받읍시다. 못 받을 이유가 없어요. 저는 원래 수행자이기 때문에 뭘 믿거나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통일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면 제사도 지내고 뭐든지 다 해요.nbspnbsp종교가 다르다, 신분이 다르다 따지는 걸 훌쩍 넘어서서 목표지향적으로 가야 합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필요합니다. 방금 보니까 재미있는 사람들 많잖아요. 어떤 사람도 다 필요합니다. 의병에 양반과 상놈을 따질 수 없고, 포수니 선비니 농사꾼이니 따질 수 없습니다. 의사가 오면 치료하는 데 쓰이고 포수가 오면 총 쏘는 데 쓰이고 농사꾼이 오면 음식 거두는 데 쓰여요. 어떤 사람도 필요없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습니다. 아까 ‘또라이 같은 사람’ 어쩌고 하는데, 또라이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너무 영악하고 똑똑해서 잔머리 굴리다가 안 되잖아요. 이 길은 남이 뭐라고 하든 꿋꿋이 가서 ‘저거 또라이 아니냐’ 하는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어도 괜찮습니다. nbspnbspnbsp이렇게 우리가 해나간다면 비록 출발은 작지만 그 끝은 장대할 것입니다. 다 이뤄놓고 보면 사람들이 ‘그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래요. 그러나 안 되면 다들 ‘처음부터 안 되는 일이었다’라고 말하지요, 그러니 그 결과를 논하지 맙시다. 우리는 장사꾼이 아니잖아요. 목표를 향해서 일단 발을 디뎠으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날아갈 뿐입니다. 화살이 이미 떠나버렸는데 맞을 건지 안 맞을 건지 논할 필요가 없지요. 결과는 그때 가보면 압니다. 그러니까 교회 다니시는 분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시리라’ 이렇게 맡겨야지, 잔머리 굴리면 신앙에 어긋납니다. nbspnbspnbsp딱 믿고 우리의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면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제 스승님이 미래 800년을 이어갈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서 이미 수십 년 간 온갖 기도를 했고, 저도 통일을 위해서 2012년도에는 남한의 모든 시, 군, 구, 대학에 가서 300회 강연을 했습니다. 북한의 모든 시, 군, 구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을 다니며 옥수수 100톤씩을 나눠줄 계획도 세웠지만 남북관계가 안 좋아서 그건 못 했어요. 대신 작년에는 전 세계 우리 교포가 있는 115곳을 다니면서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졌습니다. 제가 이 정도 정성을 쏟아야 하나님이 계신다면 감응하시지 않겠어요? 하늘만 쳐다보고 ‘해주세요’ 하면 해줄 것 같지 않잖아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우리가 뭔가 정성을 쏟아야 이루어질 테고, 감응할 신이 있다면 마땅히 감응하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믿습니다’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시겠어요?”nbsp“예”nbsp“우리가 간절히 통일을 원한다면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믿습니까?”nbsp“네, 믿습니다” nbsp“예, 그런 마음으로 해나갑시다.” nbspnbsp스님의 힘찬 물음에 통일의병들도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오늘은 230여명이 함께 했는데 다음 통일의병대회에는 천명이 넘는 대중들이 함께 하기를 기원해 봅니다.nbspnbsp이어서 이춘삼 의병이 나와 전퉁무예를 접목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통일을 향한 통일의병들의 열망을 표현해 주었습니다.nbspnbsp▲ 통일을 향한 열망을 표현한 전통무예nbsp마지막 순서로 ‘통일의병 선서’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먼저 통일의병 1번인 조성식 대표님이 앞으로 나와 선창을 하였습니다. 통일의병들도 큰 목소리로 함께 따라 했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선서nbspnbsp“하나, 우리는 미래 100년을 결정하는 통일의 시대를 열어간다.nbsp하나, 우리는 대한민국이 주도하고 북한이 선택하는 평화통일을 추진한다.nbsp하나, 우리는 항구적 평화와 공동번영이 보장되는 동아시아공동체를 지향한다.nbsp하나, 우리는 화해8228협력8228상생의 세계관으로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열어간다.nbspnbsp하나, 우리는 생명존중, 평화애호, 민주주의, 환경보호의 가치를 실천한다.nbsp하나, 우리는 백의종군, 공공성, 자발성, 헌신성의 의병정신을 실천한다.nbsp하나, 우리는 대한민국을 통일코리아의 모델로 변화8228발전시킨다.nbsp하나, 우리는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 새로운 통일운동을 실천한다.nbsp하나, 우리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을 적극 실천한다.”nbspnbsp의병 선서를 모두 마치고 나서는 신명나는 대동놀이가 한판 펼쳐졌습니다. 230여명이 두 손을 맞잡고 강강수월래 노래에 맞춰 큰 원을 그리며 걷다가 꾕과리, 장구, 북, 징 소리가 흥겨움을 더해주자 순식간에 행사장은 축제의 한마당이 되었습니다. 덩실 덩실 어깨춤을 추며 통일을 향한 열정을 불태웠습니다.nbspnbspnbsp▲ 대동놀이nbsp스님은 의병들이 신명나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행사장을 나왔습니다. 대전을 출발하여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밤 9시가 좀 넘어서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비롯해 여러 보고서와 서류들을 읽으며 업무를 보다가 오늘 하루를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양강초등학교에서 열리는 남북한 동포가 함께하는 통일체육축전에 참석해 축사를 한 후 참석한 새터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nbsp

2015.10.05. 33,893 읽음 댓글 29개

2015.10.3 (오전) 칠백의총 참배 및 평화통일 기원제

▲ 칠백의총 참배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전국에서 모인 통일의병들과 함께 의병 정신이 깃든 충남 금산의 칠백의총을 참배하고 평화통일 기원제에 참석한 후 오후에는 ‘통일의병’에서 주관한 통일의병대회에 참석해 ‘의병이 가야할 길’에 대해 강연했습니다.nbspnbsp오늘은 지금으로부터 5913년 전 배달나라의 환웅 천왕이 새 나라를 건설한 신시 개천의 뜻깊은 날입니다. 그 의미를 되살려 스님은 통일의병들과 함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간절한 뜻을 담아 통일의병대회를 하였습니다.nbspnbsp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발우공양에 참석해 공양을 드시고 아침 7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오늘 행사가 열리는 충남 금산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차 안에서 스님은 미국에서 귀국 후 시차 때문에 밤새 한 숨도 못 잤다고 하며 단잠을 주무셨습니다.nbspnbspnbsp오전 10시가 되자 칠백의총 입구에는 전국에서 모인 통일의병들로 북적거렸습니다. 경기도 파주와 고양에서, 강릉에서, 부산에서, 창원에서, 순천에서, 광주에서 모두들 새벽 일찍 출발해 총 230여명이 자리한 가운데 드디어 통일의병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칠백의총 안으로 입장하는 통일의병들nbsp통일의병들은 먼저 1592년 왜적과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700명의 임진 의병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그 뜻을 마음 속에 새기기 위해 칠백의총을 참배했습니다. 제일 선두에는 조성식 통일의병 대표님과 스님이 앞장서고 뒤이어 각 지역 의병들의 행렬이 이어졌습니다.nbspnbsp우선 위패가 안치되어 있는 ‘종용사’ 앞에 서서 조성식 대표님이 헌향을 한 후 나머지 의병들도 다함께 선열들의 뜻을 기리며 묵념을 올렸습니다.nbspnbsp▲ 칠백의병의 위패가 안치된 종용사nbsp묵념을 마친 통일의병들을 위해 스님은 ‘칠백의총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왜적을 막을 임무를 맡은 사람은 관군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월급과 무기를 받고 여러가지 배려를 받은 사람들이죠. 그런데 국방을 맡아야 할 관군들이 나라를 지키는 역할을 제대로 못 했습니다. 그래서 왜군이 침입하자 순식간에 영남이 초토화 되고 결국은 수도가 함락되어서 왕이 백성을 버리고 혼자만 살려고 의주까지 피난을 가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바로 그 때 백성들이 일어났어요. 조선시대의 백성들은 나라로부터 보호받기보다는 주로 착취를 당했습니다. 그렇게 가렴주구를 당하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거예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군사적인 지식이나 무기를 갖춘 것도 아니고,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라를 지키겠노라 스스로 일어난 사람들을 ‘의병’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의병은 국가에 불만이 있어서 관군과 싸우는 반군이 아니라, 관군을 도와서 나라를 지키고자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 역사를 보면 관군이 제대로 못 싸웠어요. 제대로 못 싸운 정도가 아니라 아주 사기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의병의 도움을 필요로 하면서도 의병을 무시하고, 협동 작전을 약속해놓고도 세가 불리하면 도망을 가버렸기 때문에 대부분의 희생자는 민간인들, 즉 의병들이었습니다.nbspnbsp여기 모셔진 조헌 선생을 비롯한 칠백여 분 뿐만 아니라 고경명 선생 휘하에 있었던 분들도 관군과 협동 작전을 펴다가 관군이 중간에 도망가 버려서 결국은 전투에서 패배하고 큰 희생을 치렀습니다.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권율 장군과 합동 작전을 하기로 했지만 결국은 왜군의 위세에 눌린 관군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아 무고한 희생을 당했습니다. 설령 의병이 참가하지 않더라도 관군이야말로 끝까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텐데 정작 관군은 세가 불리하다고 참가를 하지 않은 반면 의병은 끝까지 한 사람도 도망가지 않고 싸워서 전원이 순국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비록 전투에서는 졌다고 하더라도 그 기상이 참으로 높았습니다.nbspnbspnbsp그 당시 조선군은 일본군에 비해 세가 어림도 없이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은 삽시간에 한국을 점령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7년 전쟁으로까지 가면서도 조선 점령에 실패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왜군이 계산 못 한 건 딱 한가지였습니다. 이렇게 민간인이 의병이란 이름으로 일어나고, 산속에 있던 스님들마저도 계율을 어기고 승병을 일으킬 줄 일본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결국 우리나라를 지킨 것은 백성들이었던 셈입니다. 군사적 훈련도 못 받았고, 무기도 변변찮아 낫이나 쇠스랑 같은 농기구를 들고 싸워야 했고, 식량 보급도 원활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백성들이 일어났어요. 특히 지리를 잘 알다 보니 잘 훈련되고 좋은 무기를 갖고 있는 왜병마저도 이들의 엄청난 자발적 기상에 눌려서 결국은 침략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습니다.”nbsp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관군이 다 무너져도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를 지킨 칠백의병들의 기개가 더 가슴 깊이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과연 우리는 이런 순국선열들의 정신을 잘 되살려서 살고 있는지 반문하며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한일 간의 군사협력 움직임에 대해 우려했습니다.nbspnbsp“우리는 이렇게 오늘 행사를 통해 의병정신을 기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정신을 본받아서 더 이상 우리나라가 이런 불행에 처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는 늘 기념식만 하고 과거만 기리지, 우리 스스로는 잘 행동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혼란을 겪고 간신히 나라를 유지했지만 300여 년이 지난 뒤 또다시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이곳에서도 칠백의총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순의비가 일본에 의해 폭파당하는 수모를 겪었어요. 그래도 항일독립운동을 통해 독립군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서 나라를 되찾았죠. 하지만 작년부터 한국과 일본이 북한을 상대로 군사협력을 맺고 앞으로 군사적인 동맹 관계로 발전하려는 움직임이, 우리가 상상도 못할 그런 일이 현실에서 또다시 진행되고 있습니다.nbspnbsp이런 움직임은 우리의 의병 정신과 역사의식에 맞지 않아요. 아무리 북한이 우리를 위협하더라도 우리 힘으로 조국을 지키고 체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행여 부족하면 동맹국인 미국의 협력을 얻으면 되지, 굳이 여기에 일본을 다시 참여시켜서 일본의 도움을 얻겠다는 것은 아무리 북한에 대한 경고의 뜻이라고는 해도 이런 발상을 하는 사람들은 도무지 민족 정신도 없고 혼도 없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광복 70년이 채 안 되었는데 옛 역사를 잊어버리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게다가 일본이 이제 전후 체제를 벗어던지고 군비를 증강하면서 한반도에 언제든지 군사작전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겨우 한다는 소리가 ‘우리의 허락 없이는 한국에 못 온다’입니다. 그걸 말이라고 해요? nbspnbspnbsp이렇게 말해야죠. ‘우리의 강토는 우리가 지킨다. 우리 힘으로도 능히 지키고, 부족하다면 맹방인 미국의 도움을 얻어서 지키겠다. 민간교류나 협력은 좋지만 일본의 군사적 도움은 필요 없다. 어떤 이유로든 일본군은 한반도에 한 발도 들여놓을 수 없다.’ 이렇게 단호하게 이야기해야죠. 어느 나라든 다 영해 안에서 작전 하려면 당사국의 허락을 받는 게 당연하잖아요.nbspnbsp그런데 왜 이런 문제가 생길까요? 사실 일본은 우리의 허락 없이도 우리 영해 안에서 군작전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시작전권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에 미국이 허락하면 전쟁을 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은 단호하게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미국에게 여러 가지 신세진 것이 있으니까 세계적인 견지에서는 우리가 미국의 맹방으로서 미국의 이해에 협력하며 한미동맹을 견고하게 해야 되지만, 적어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고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의 이익을 우선해야 합니다. 한반도에서마저도 미국의 이익이 우선되는 동맹을 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이 분단을 고착화시키겠다고 하면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최소한 한반도에 있어서는 우리의 이익이 우선하는 한미동맹을 만들어나가야 해요. 이렇게 지금까지의 종속적 한미동맹에서 앞으로는 자주적 한미동맹으로 관계를 바꾸어가야 합니다. 패전국인 일본도 자주적으로 미일동맹을 바꾸고 있는데, 미국의 패전국도 아니고 일본의 피해자인 우리가 아직도 종속적 한미동맹 관계에 있다 보니 이런 비극이 다시 또 시작되려는 것입니다.nbspnbsp오늘 우리가 이런 행사를 할 수 있는 것도 다 선조들이 희생하신 결과입니다. 그동안 찾아뵙지 못한 것도 죄스럽지만, 찾아뵙는 것뿐만 아니라 이런 정신을 우리가 이어받아 되살려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다음으로는 하루빨리 통일을 해야 합니다. 통일한국이 되면 일본과도 군사적 협력을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제 동족을 상대로 일본과 군사협력을 한다는 것은 이 칠백의총 선조들의 뜻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뜻을 좀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nbspnbspnbsp원래 스님들은 출가하면 개미 한 마리도 안 죽입니다. 스님들이 창과 활을 든다는 것은 사실 승려로서의 본분을 저버린 겁니다. 그런데 왜 승병이 일어났을까요? 백성들을 살리려고 승려들이 지옥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일본군이라면 죽여도 된다는 계율은 없습니다. 일본군도 생명입니다. 생명을 죽이면 과보로 지옥을 가지만 ‘내가 지옥 가는 한이 있더라도 백성과 나라를 살려야 한다’고 해서 일어난 것이 승병입니다.nbspnbsp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이렇게 나라를 지켜도 양반이 아니기 때문에 관직을 줘서는 안 된다고들 했어요. 사명대사 같은 경우는 워낙 공로가 크다 보니까 선조가 사명대사에게 왕의 특사 자격을 주고 일본에 보내 희생자들의 유골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왕의 특사니까 왕을 대신한 것이지요. 그런데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왔을 때 동래부사가 사명대사가 중이라는 이유로 마중을 안 나갔어요. 당시에 중은 천민이었거든요. 왕의 특사를 영접하지 않는 것은 처형감입니다. 개인이 미워서가 아니라, 나라의 법도를 지키려고 처형을 했어요. 그래서 그 자손들이 원한을 품었습니다. 사명대사가 정승의 직위를 받았는데 서산대사가 ‘나라를 지킬 때 그런 직책이 필요하지, 전쟁이 끝났는데 네가 왜 거기 있느냐’ 해서 일주일 만에 그만두고 절로 돌아왔어요. 그 후에 원한에 맺힌 그 자손들이 사명대사를 독살해버렸어요. 이렇듯 양반이라는 관념에만 젖어서 나라가 위급하면 도망가고, 나라를 살려놓으면 자기들끼리 다해먹으려 들었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나라를 일본에게 또 빼앗기는 비극을 겪었습니다.nbspnbspnbsp이곳에서 장렬히 순국한 의병들의 넋을 오늘 기리면서 우리도 그 정신을 잊지 말고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전쟁이 난 뒤에 나라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쟁이 없도록 하는 게 최고의 승전입니다. 그리고 단순한 평화를 넘어서서 남북을 통일해야 합니다.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이웃나라에게도 얕보이지 않는 통일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하겠다고 오늘 이 순국 선열들 앞에서 굳게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nbsp스님의 설명을 통해 칠백의총을 참배하는 의미를 다시 되새기니 더욱 경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라의 위기 앞에 분연히 일어났던 의병들과 불살생을 최고의 계율로 여기는 승려들도 의병에 참여한 이야기를 들으니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통일의병 운동은 이런 선조들의 넋을 계승한 것임을 더욱 분명하게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한일 군사협력의 움직임에 대해 어떤 역사적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단호한 입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nbspnbsp참배를 마치고 나서는 칠백의병이 묻혀 있는 묘지로 이동했습니다. 묘지 앞에서 조성식 대표님이 먼저 헌화를 하고, 이어서 모두가 함께 묵념을 했습니다. 단순히 그 뜻만 기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통일의병이 되어 그 뜻을 오늘날에 되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였기에 오늘의 참배가 더욱 뜻깊게 다가왔습니다.nbspnbspnbsp▲ 칠백의병이 묻힌 봉분 앞에서 헌화nbsp칠백의총을 나가는 길에는 기념관에 들러 칠백의병의 전투 모습 등 행적을 그린 7폭의 기록화와 유물이 전시된 것을 둘러보았습니다.nbspnbsp▲ 기념관nbsp그리고 맞은편에 있는 중봉 조헌 선생의 일군순의비를 참배했습니다. 순의비에는 의병장 조헌 선생이 이끄는 칠백의사가 순국하기까지의 사적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폭파된 것을 주민들이 일제의 눈을 피하여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광복 후에 다시 파내어 보관하다가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nbspnbsp▲ 조헌 선생의 일국순의비nbsp칠백의총을 나온 통일의병들은 ‘평화통일 기원제’를 지내기 위해 칠백의사순의탑으로 향했습니다. 순의탑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1952년 조헌 의병과 영규 승병이 합군하여 청주성을 수복하고 금산으로 진격하다 왜군과 혈전을 벌여 전원이 순절한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진 탑입니다.nbspnbsp평화통일 기원제는 고구려 때부터 해왔던 천제의 형식을 현대적으로 살려 진행되었습니다. 통일의병을 대표하여 제주로서 각 지부를 대표한 의병들이 나와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의 순서에 따라 술잔을 올리고 큰 절을 했습니다. 나머지 의병들은 뒤에 선 채로 큰절 대신 목례로 그 뜻을 기렸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을 대표해 탑 앞에서 큰 절을 올리는 조성식 대표nbsp위패에는 9000년 전 세계최고 문명을 창조했던 한나라 환인님, 6000년 전 요하문명을 창조한 배달나라의 환웅님, 4000년 전 조선의 단군왕검님, 부여의 왕 해모수님, 고구려의 동명성왕님, 이렇게 다섯분의 조상을 차례로 모신 후 마지막으로 칠백의병의 위패를 모셨습니다.nbspnbsp▲ 순의탑 앞에 모신 위패. 왼쪽에서부터 한인, 환웅, 단군, 해모수, 동명성왕, 칠백의병.nbsp조성식 대표님의 축문 낭독에 이어 충청본부 오수진 의병의 발원문 낭독이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스님의 평화통일 발원문 낭독이 있었습니다.nbspnbsp▲ 충청, 전라, 영남, 수도권을 대표하여 순의탑을 참배하고 있는 통일의병 본부장들nbsp스님은 통일 한국을 이룩하여 우리 민족의 번영 뿐만 아니라 인간성 상실, 공동체 붕괴, 자연환경 파괴라는 현대 문명의 위기도 함께 극복하여 인류의 공영에 이바지할 것을 발원해 주었습니다.nbspnbsp“이 세상에서 가장 크신 환인 하느님, 이 땅에 처음 하늘의 뜻을 기리어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배달나라를 창건하신 환웅 천왕님, 우리 민족의 조상신이며 신시를 새롭게 하신 단군왕검님, 부여의 해모수님, 고구려의 고주몽님, 백제의 온조님, 신라의 박혁거세님, 발해의 대조영님, 가야의 김수로님, 고려의 왕건님, 조선의 이성계님, 이렇게 우리 민족 우리나라를 면면히 이어오신 하늘의 천신과 조상님들께 두 손 모아 합장하며 발원하옵나이다.nbspnbspnbsp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 땅의 주인인 백성들이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구하였습니다. 고조선의 옛 땅을 되찾고자 일어난 다물 의병, 고구려의 기상을 회복하고자 한 고구려 부흥군, 백제 부흥군, 발해 부흥군, 고려 시대 민족의 기상을 지키고자 항몽 투쟁을 했던 항몽 의병군, 임진의병, 병자의병, 1차 의병, 2차 의병,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광복군, 고통 받는 민족을 구제하고자 했던 동학혁명군 등,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늘 백성이 일어나서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구했습니다. 또한 한국전쟁을 겪고 초토화되었던 우리 대한민국의 경제를 부흥시킨 산업역군, 사람답게 살고자 민주화를 이끌어낸 민주투사들이 있었습니다.nbspnbsp저희들은 우리 시대의 시대적 사명이자 우리 민족의 비전인 통일을 위하여, 과거 역사의 혼을 계승한 통일의병이 되어 반드시 이 땅에 통일을 이루고자 이렇게 칠백의총 순국선열 앞에서 발원하고 맹세하옵니다.nbspnbspnbsp대륙의 변방으로 전락하여 약소국으로 살아온 지 1천여 년, 나라를 빼앗기고 두 동강이 난지 1백여 년입니다. 나라의 자주독립과 통일국가를 이룩하여 천 년의 한을 풀고 백 년의 한을 치유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다가오는 동아시아 시대에 주변국들과 힘을 합쳐 새로운 문명의 꽃이 되고자 합니다. 과거 인류 최고의 문명이었던 배달문명을, 조선의 옛 문명을 다시 한 번 일으키고자 합니다. 단지 우리 민족의 번영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에게 닥쳐온 환경 위기, 공동체 붕괴 위기, 자아 상실 위기라고 하는 현대문명의 위기 속에서 그 대안을 만들어 새로운 문명의 꽃을 피우고 그 중심이 되고자 합니다. 우리 민족을 넘어, 온 인류를 평화롭고 행복하게 하여 함께 번영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nbspnbsp그런 우리의 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천신과 조상신들은 우리를 보호하소서. 통일의병들 개개인을 모두 보호하소서. 이들의 뜻이 성취될 수 있도록 옹호하여 주옵소서.”nbsp통일의병들도 스님의 간절한 발원을 들으며 두손 모아 합장하며 그 뜻을 함께 새겼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충청본부의 김란 의병이 나와 왜군에 의해 장렬히 산화한 칠백의병의 영혼을 달래는 진혼무를 추었습니다. 애절한 진혼무를 보니 순국 선열들의 넋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듯 했습니다.nbspnbsp▲ 진혼무nbsp마지막으로 다함께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른 후 조성식 대표님이 지방을 소지하는 것으로 기원제를 모두 마쳤습니다. 순의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통일 의병 의병’을 외치는 목소리에는 아주 늠름한 기상이 살아있었습니다.nbspnbspnbsp▲ 칠백의사 순의탑nbsp순의탑에서 내려와 넓은 잔디밭에 앉아 각자 집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을 펼쳐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시원한 가을 하늘 아래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밥과 반찬은 꿀맛이었습니다.nbspnbsp▲ 점심 식사 시간nbsp스님은 점심 식사 후 화장실 뒤편에 코스모스 길이 있다고 해서 잠시 산책을 했습니다. 막상 가보니 코스모스가 거의 다 지고 몇 송이만 남아 있었습니다. 스님은 “씨를 가져가서 시골집에 뿌려두면 내년에 코스모스가 잘 자랄 것 같다” 며 씨를 주섬주섬 한 손 가득이 담았습니다. 넓직한 공터는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는데 스님은 “정토회도 이런 평지에 수련장이 하나 있으면 참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nbspnbsp▲ 코스모스 길nbsp▲ 시골집에 가져다 심으려고 모은 코스모스 씨앗nbsp이어서 오후에는 대전 가오중학교로 이동해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에서 개최하는 제1회 통일의병대회가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됩니다...

2015.10.04. 35,629 읽음 댓글 35개

2015.10.2 인천 청춘콘서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김제동씨와 함께 인천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청춘콘서트에 참석해 청춘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어젯밤 미국에서 귀국한 후 여독이 채 풀리기도 전에 오늘부터 다시 본격적인 강연 일정이 nbsp시작되었습니다. 서울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새벽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발우공양에 참석해 공양을 드셨습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nbsp공양을 마치고 나서 먼저 지난 2주일 동안의 미국 방문 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간단히 공유를 해주었습니다. 이어서 대중공사 시간에는 대중들이 업무 때문에 규칙을 지키지 못한 nbsp것에 대해 참회하는 내용들을 경청한 후 바쁜 업무 속에서도 수행의 자세를 놓치지 않으려면 어떤 마음 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여러분들 얘기를 들어보니, 출장도 자주 가고, 아침에 조찬이 있어서 발우공양도 빠지고, 저녁 예불이며 법회며 심지어 포살까지 빠질 때도 있는 것 같네요. 문경에서처럼 한 곳에 가만히 앉아서 생활할 때는 모든 것을 규칙적으로 할 수 있지만 이렇게 돌아다니며 생활하다 보면 규칙이 흐트러지고 자연히 방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수행이란 것은 때와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여일하게 해야 합니다. 환경이 조용해서 마음을 조용히 갖고, 부딪힐 일이 없어서 분별심이 없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주위 환경이 소란스러우면 마음이 산란해지고 주위 환경이 조용하면 마음도 조용해져요. 특별히 수행하지 않아도 우리의 정신적, 신체적 구조가 자연히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nbspnbsp주위 환경이 조용한데도 정신적으로 번뇌가 많다면 비정상이에요. 이렇게 보면 사람은 크게 셋으로 나뉩니다. 주위가 조용한데도 정신이 산만하거나 몸이 아프면 환자에 속합니다. 주위 환경이 조용하면 마음도 조용하고 환경이 산란하면 마음도 산란하다면 보통 사람입니다, 주위 환경이 조용하든 산란하든 규칙적이든 불규칙적이든 구애됨이 없이 항상 고요한 마음과 자기의 원을 유지해 나가고, 번다한 환경 속에서도 정해진 목표를 향해 규칙적으로 자기 삶을 꾸려간다면 수행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nbsp여러분 대다수를 보면 이동하느라, 혹은 다른 곳에 여행 가느라 뭘 빼먹었다, 일회용을 썼다, 비닐에 든 음식을 먹었다, 때 아닐 때 먹었다 하는 경우가 많아요. 누구나 다 환경에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거기에 구애받지 않을 때 스스로 수행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아무도 담배를 안 피운다면 내가 굳이 담배를 피울 일이 없지만,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권하면 나도 담배를 피울 가능성이 높아지죠. 마약이나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담배 피우고 마약을 하더라도 나는 안 피우고 안 하고, 다른 사람이 술을 마시고 취하더라도 나는 마시지 않거나 마시더라도 취하지 않도록 자기를 조절하고, 다른 사람이 과식하더라도 나는 과식을 하지 않을 때 ‘수행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경직되게 하라는 게 아니라, 인연을 따라서 거기에 맞게끔 하되 방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nbspnbspnbsp부처님도 매일매일 이동하며 사셨어요. 1년 중 3개월만 한 군데에 정착해서 살고 나머지는 원래 삶 자체가 유행이었습니다. 자는 곳도 매일 달라지고 먹는 것도 매일 얻어먹는 집이 달라지고 그렇게 매일 이동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여일함을 유지하는 것이 수행자의 목표입니다. 오히려 한 곳에 머물면 집착하고 안주하기가 쉽습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경계가 바뀌면 마음도 경계에 따라 흔들려서 수행자의 본분을 잃어버립니다. 문경에 가서 고요한 환경 속에 놓이면 규칙적으로 수행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방심하지요. 특히 추석이나 설을 맞아 집에 가면 이 사람이 수행자인지 보통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집에 가서 명상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속에서도 수행자의 본분을 조용히 지켜나갈 때 나중에 가족으로부터 더 존경받는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표를 내지 않고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가서 노는 모양이 다른 식구와 똑같으니까 오히려 안쓰럽게 보여요. 퍼질러 자고 맛있는 거 탐내어 먹는 모습을 가족들이 보고 불쌍하게 여깁니다. 불쌍하게 여겨지면 동정을 받고 돈을 몇 푼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거지나 다름없는 것입니다.nbspnbspnbsp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려고 노력하라는 게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면 다른 사람들 보기에 저절로 존경심이 나도록 생활해야 하는 것이 수행자입니다. 수행자로서의 본분과 품위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특히 가을에는 여러 활동들을 진행하느라 이동이 많으니 그런 가운데서도 늘 수행자의 본분을 잘 지켜나가도록 유의해서 정진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이동이 많고 번다한 환경 속에서도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수행자의 본분을 지켜나가면 좋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스님의 애정어린 말씀을 들으며 대중들은 주위 환경을 핑계 삼아 계율을 어기는 것을 합리화 해오지는 않았는지 깊이 돌아보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환절기에 행여 감기 환자가 생길 것까지 세심히 챙겨 주었습니다.nbspnbspnbsp“건강에도 유의해야겠습니다. 환절기라서 덥다가 춥다가 하다 보니, 덥다고 이불 걷어차고 자다가 아침 되면 추워서 감기 걸리기 쉽습니다. 몸을 사리는 것은 아니더라도, 몸을 함부로 하다가 건강을 해쳐서 일이나 정진에 장애되는 일이 없도록 자기 건강도 잘 챙겨 나가길 바랍니다.”nbsp아침 일찍부터 스님의 소중한 가르침을 듣고 나니 한결 정갈해진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아침 7시 30분부터 하루 종일 연이어 회의와 미팅을 가졌습니다. 특히 오후 2시에는 최근 새롭게 통합되어 서로 손발을 맞추어 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 컨텐츠사업국과 평화재단, JTS의 실무자들과 함께 하반기 활동 계획에 대해 실무 점검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컨텐츠사업국, JTS, 평화재단 실무자들과 회의nbsp조만간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내용을 담은 새책을 출간하게 되는데 이와 관련하여 컨텐츠사업국에서는 어떤 것이 준비되고 있는지, 또 얼마전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정진을 시작하면서 3년 동안 매주 한번씩 통일 강좌를 열기로 했는데 전체 기획을 어떤 방향으로 하면 좋을지 등에 대해 실무자들의 의견을 경청한 후 스님의 조언도 함께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미국에 다녀온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쉼없이 미팅과 회의가 이어진 까닭에 조금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각 부서 사업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오후 3시에는 대중부 행정처와 하반기 사업에 대해 회의 시간을 더 가진 후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5시에 평화재단을 출발하여 인천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저녁 7시부터는 송도 국제도시에 위치한 인천대학교 대강당에서 김제동씨와 함께하는 청춘콘서트에 참석했습니다. 장소가 인천시의 중심가에서 많이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있어서 객석에 빈자리가 많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는데 다행히 700여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습니다.nbspnbsp▲ 인천대학교 대강당nbsp청춘콘서트와 함께 전국을 순회하고 있는 인디밴드 요술당나귀의 신나는 노래 공연에 이어 사회자가 법륜 스님을 소개하자 큰 함성과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나왔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먼저 추석 안부 인사를 건내며 말문을 연 후 지난 2주 동안 미국 방문 때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과 나눈 대화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추석 잘 보냈습니까? 올해는 슈퍼 문이라고 특별히 달이 컸다던데, 저는 미국에 있느라 달도 못 보고 송편도 못 얻어먹고 어젯밤에야 들어왔습니다. 미국에서는 교민들을 위해 명상수련을 지도하고 워싱턴 DC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여러 싱크탱크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또 국무성 관계자를 비롯한 대사 및 관리들과 만나서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통일을 위해서 좋은 일 좀 같이 하자고 했어요.nbspnbspnbsp‘한미 동맹이 미국의 입장에서 미국의 이익만을 위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의 이익을 먼저 보장해야 합니다. 나머지 세계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미국의 입장에 협력할 테니까 한반도 문제는 너무 미국의 입장에서만 추진하지 말아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한국 국민들에게 반미 감정이 생겨 장기적으로 미국에 손해가 생길 것입니다.’nbsp이렇게 얘기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후세인이나 카다피가 문제가 있긴 했지만 후세인과 카다피를 제거한 결과가 지금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무조건 단기적으로만 해결하려 들면 안 된다, 좀 더 장기적으로 보고 대응하면 좋겠다’는 말도 했어요. 오늘날 유럽의 난민 사태도 다 미국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리바아에 대한 공격과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일은 미국이 저지르고 난민 사태는 유럽이 덮어 쓴 셈이잖아요.nbspnbspnbsp우리도 우리 문제를 좀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으로만 따지면 북한과 한 판 붙어서 혼내주고 싶지만, 그렇게 해서 전쟁이 나고 원자력발전소가 미사일 폭격을 당해 방사능 오염사태가 발생해서 피난 보따리 들고 다니게 된다고 생각해보세요. 중동 난민들도 제 땅에서 잘 살다가 전쟁이 나고 장기전이 된 탓에 난민이 되었잖아요. 내전은 장기전이 되게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그 삶이 얼마나 고달픕니까? 이렇듯 내 개인의 삶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안전과 평화의 유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니 우리 공동체의 발전을 위하는 길도 생각해야 해요. 장기적으로 평화가 정착되고 우리가 발전하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긴 해도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렇게 잘 사는 가운데서도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늘 안고 살아야 합니다.”nbspnbsp미국에서 있었던 따끈따끈한 소식을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미국이 한반도의 통일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을 만나가며 노력을 기울이는 스님의 노고가 고스런히 전해져서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이 “평소 살아가면서 겪는 이런저런 어려움에 대해 누구든지 이야기하고 싶은 분은 손을 드세요.” 라고 하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습니다.nbspnbspnbsp총 4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한 남학생은 최근에 북한의 대남 도발이 있었는데 스님은 지금도 평화 통일이 가능하다고 보는지, 어떻게 평화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또 다른 남학생은 아빠가 북한에서 연탄을 수입하는 무역업을 하다가 남북관계 때문에 갑자기 망한 적이 있는데 통일이 되는 쪽으로 교류협력이 잘 이루어지다가 갑자기 어긋나면 결국 북한 좋은 일만 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물었습니다. 또 30대 아이 엄마는 딸아이가 손톱을 무는 버릇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각각에 대해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건망증이 심하고 덜렁대는 성격을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특히 명상의 원리에 대해 설명해준 부분이 많은 유익함을 주었습니다.nbspnbspnbsp“사회생활에 어리버리해서 고민입니다. 건망증이 심하고 덜렁대는 통에 필요한 것들을 잘 빠뜨리고 상대방의 말을 잘못 이해해서 일을 그르칠 때가 잦습니다. 숫자에도 약해서 숫자 관련 작업은 검토를 여러 번 하느라 마감을 넘기기 일쑤입니다. 저 때문에 동료들도 불편을 겪을 때가 많고요. 이런 성격을 어떻게 고쳐야 할까요? 고칠 수는 있을까요?”nbspnbsp“와,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런 걸 고치는 기술이 있으면 제가 돈을 많이 벌었을 텐데요. 그건 병원에 가 봐야죠. nbspnbspnbsp화를 낸다거나 하는 것은 모르겠지만 기억력이 부족한 걸 제가 어떻게 해주겠어요? 저도 못 고치고 있는데요. 하하하. 저는 누가 와서 인사하면 항상 ‘누구세요?’하고 물어봐요. 그리고 제 전화번호도 수첩에 안 적어놓으면 몰라요. 저랑 비슷하네요. 내 병도 못 고치는데 남의 병을 어떻게 고치겠어요? 그냥 그런 대로 사세요. 저도 잘 살잖아요.nbspnbspnbsp특별한 방법은 없고, 조금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알려드릴게요. 명상을 좀 하면 좋아요. 명상은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합니다. 그냥 앉아만 있으면 명상이 아니라 나무토막이고 꿔다놓은 보릿자루예요.nbspnbsp첫째, 마음이 편안해야 돼요. 마음이 불안해서 들뜨면 안 됩니다. 마음이 긴장되어도 안 돼요. ‘잘 해야지’ 하면 긴장하는 겁니다. 뭘 해야겠다는 의도가 들어가면 안 돼요. 아무 할 일 없이 편안하게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가지되, 들뜨거나 불안해하거나 긴장하지 않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nbsp둘째, 어느 한 군데에 딱 집중해야 해요. 가장 쉬운 게 호흡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다들 눈을 감고 자기 마음을 콧구멍 끝에 딱 집중시켜 보세요.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알겠어요?”nbspnbsp스님의 안내에 따라 청중들도 눈을 감고 명상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연장에는 순식간에 고요한 정적이 감돌았습니다.nbspnbsp▲ 스님의 안내에 따라 명상을 해보는 청년들nbsp“알아차려지는 사람들은 손 들어봐요. 내가 숨 쉬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 손 들어봐요. 이 사람들은 강시예요. 중국 귀신 강시 아시죠? nbspnbsp살아 있는 사람 치고 숨 안 쉬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내가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평소에 자각을 못 해요. 조금만 딱 집중해보면 숨을 쉬고 있는 줄 알게 됩니다.nbspnbspnbsp셋째, 알아차림이 있어야 해요. 숨을 쉰다는 건 숨이 들어가고 나온다는 거예요. 그런데 호흡 관찰 명상을 수식관이라고 부른다 해서 수를 헤아리는 것이라 생각하면 안 돼요. 수식관은 숨이 들어갈 때 들어가는 줄 알고, 숨이 나올 때 나오는 줄 아는 거예요. 숨이 가쁘면 가쁜 줄 알고, 숨이 고요하면 고요한 줄 아는 거예요. 숨을 빨리, 천천히, 혹은 깊이 쉬어야겠다며 어떤 의도를 하는 게 아니라 숨을 내버려 두는 겁니다. 숨은 가만히 내버려둬도 알아서 쉬어지잖아요. 바쁘게 뛰어다니거나 흥분하면 빨리 쉬어집니다. 빨리 쉬어졌다가, 천천히 쉬어졌다가, 규칙적이었다가, 불규칙적이었다가... 알아서 저절로 바뀌는데 그걸 ‘숨을 편안하게 쉬겠다, 고르게 쉬겠다’ 하며 의도하면 피곤합니다. 명상은 피곤하면 안 돼요.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에서 눈을 감고 코 끝에 마음을 딱 집중해보면 ‘숨 쉬고 있구나’ 알아집니다. 숨이 빨리 드나드는지, 천천히 드나드는지, 규칙적으로 드나드는지, 불규칙적으로 드나드는지는 상관 할 필요 없어요. 그 상태를 내가 알아차리는 겁니다. 알아차림이 있어야 해요.nbsp그런데 보통은 눈 감은 상태에서 편안하고 고요하면 3분 이내로 잠이 오죠. 잠이 올 때는 또렷하게 깨어 있는 것이 아니라 멍청한 상태가 돼요. 고요하면 금방 멍청해져 버립니다. 그래서 안 자려고 정신을 차려서 ‘호흡을 알아차려야지’ 하고 코끝에 딱 집중하면 애쓰는 게 됩니다. 긴장해버리는 거예요. 정신을 차리려 들면 긴장되어서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해야 한다’는 조건에 어긋납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하면 졸아서 멍청해져버립니다. 졸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을 해요. ‘어제 누가 뭐라고 했더라’, ‘커피 한 잔 마시면 좋겠다’, ‘내일 뭐 해야지’ 이렇게 과거의 생각이나 미래의 생각으로 오락가락하느라 호흡을 놓쳐버립니다.nbspnbspnbsp편안하면 졸리거나 망상을 피워요. 그래서 정신을 차리면 긴장합니다. 이 둘을 다 뛰어넘어야 해요. 첫 번째, 편안하고 고요한 가운데, 두 번째, 마음을 코끝에 딱 집중해서, 세 번째, 들숨과 날숨을 분명히 알아차려야 합니다. 들숨을 들숨인 줄 알고 날숨을 날숨인 줄 알아야 해요. 길면 긴 줄 알고 짧으면 짧은 줄 알아야 합니다.nbspnbsp이렇게 알아차리는 훈련을 명상이라고 하고, 이렇게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는 명상법을 수식관이라고 합니다. 관이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는 뜻이에요. 수식관은 가장 보편적인 명상법입니다. 단전호흡이나 복식호흡과는 다릅니다. 단전호흡이나 복식호흡은 의도적으로 숨을 길게 들이쉬어서 횡격막을 내리고 잠시 참았다가 천천히 내쉬는 것으로 수련에 속합니다. 기를 한쪽에 모았다가 큰 힘을 내는 거예요. 그러나 수행은 수련이 아닙니다. 의도를 일으키면 안 돼요. 모든 의도를 내려놓고, 고요하고 편안한 가운데 코끝에 딱 집중해서 들숨과 날숨을 뚜렷이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뚜렷이 알아차림이 유지돼야 합니다. 아주 맑아야 해요. 번뇌가 막 일어나도 거기에 끌려가지 않고 호흡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돼요. 질문자처럼 그렇게 멍청한 상태에 있으면 더 안 돼요. nbspnbspnbsp이렇게 계속 연습하면 집중력이 키워집니다. 옛날에 활 쏘는 사람들 보면 30미터 앞에 솔방울을 매달아놓고, 활을 바로 쏘지 않고 노려봅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열흘, 한 달 보면서 솔방울이 북만큼 커져 보일 때까지 계속 집중하는 거예요. 드디어 솔방울이 커다랗게 보일 때 활을 딱 쏘면 조그만 솔방울에 화살이 딱 맞습니다. 그렇게 집중력을 키워주는 연습방법 중 제일 쉬운 게 자기 호흡을 알아차리는 거예요. 호흡은 항상 있어서 화장실 갈 때, 목욕할 때, 잘 때도 쉬지 않잖아요. 24시간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예요. 그래서 ‘목숨’이라고들 그래요. 살아 있는 한은 늘 호흡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딱 집중해서 알아차리는 훈련을 하면 조금은 나아져요. 저도 원래 멍청했는데 조금 개선이 되었어요.” nbsp“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nbspnbsp짧은 순간이었지만 스님의 안내에 따라 명상을 해보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집중력이 조금 더 높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자상하게 명상의 원리와 방법을 설명해준 스님에게 질문자와 청중들은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은 연달아 통일 문제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지자 통일이 우리들에게 가져다 줄 희망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70분 동안의 즉문즉설이 끝나고 다음은 김제동씨가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나왔습니다.nbspnbspnbsp김제동씨는 부모와 갈등없이 잘 지내려면 어떻게 대처하면 좋은지,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통일 한국을 꼭 이룩해내야 한다는 점, 역사의 위기 때마다 나라를 구한 의병들의 이야기 등을 재미있게 들려주며 70분 내내 청중들을 웃고 울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의병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감명을 주기도 했습니다. nbspnbspnbsp“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할 때 무조건 이길 것이라 생각했는데 딱 하나 예상하지 못했던 게 있었어요. 바로 의병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노비들이, 백정들이, 백성들이 일어났어요. 관리들은 다 도망가고 임금도 도망갔는데, 탄압받고 살던 사람들은 나라를 지켰습니다. 선조 임금은 도망갈 때도 가마를 타고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왜 백성을 두고 도망가십니까’ 했더니 ‘나는 죽더라도 천자의 나라에 가서 죽겠다’라고 했어요. 죽더라도 중국에 가서 죽겠다는 거예요. 그런 인간을 믿고, 그래도 내 나라라고, 백성들이 모두 일어나 나라를 지켰습니다.nbspnbspnbsp그렇게 그 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뒤 나라에서 한 일이 뭔지 아십니까? 평민 출신 의병장들은 공로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지금 이 나라가 그 때의 조선과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르긴 다르죠. 앞에 ‘헬’자가 붙었어요. 그 때의 조선과는 완전히 달라져서 이제는 헬조선입니다. 국호가 바뀌었어요. nbspnbsp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조선하고 비교하는 게 말이 되냐? 지금은 그래도 민주공화국 아니냐?’ 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환상이에요. 제가 봤을 때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nbsp의병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김제동씨는 국회의원이나 대사, 정치인 이런 사람들이 세월호에 타서 똑같은 사고를 당했다면 과연 국가의 대응이 똑같을지 반문했습니다. 잊혀져 가고 있던 세월호 이야기를 상기시켜주자 순간 강연장은 숙연함이 흘렀습니다. 70분 동안 진행된 김제동씨의 열정적인 강연에도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과 김제동씨가 함께 무대 위에 올라와 오늘의 콘서트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회자가 두 분에게 질문했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지만 강연장 밖을 나가면 또다시 막막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nbspnbsp먼저 스님이 답변했습니다.nbspnbsp“나가면 어떡하겠느냐고들 하는데, 저는 결과도 중요하겠지만 과정도 소중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20대인 여러분들, 지금 힘들지요? 학생은 공부하느라 힘들고 직장인은 직장 다니느라 힘들고 결혼 못한 사람은 결혼 못해서 힘들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30대, 40대, 50대를 지나 저처럼 나이가 들어서 20대를 보면 좋아 보여요. 밥 먹고 공부만 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 학생이 부러워요. 결혼한 사람들이 보면 처녀 총각이 부럽지만, 지나고 보면 그때가 좋아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에는 그때가 좋은 줄 모릅니다.nbspnbspnbsp작은 셋방을 얻은 신혼부부가 전세방을 얻으려고 열심히 돈을 아끼고, 전세 살던 사람이 10평짜리라도 자기 집을 마련하려고 아끼고 노력하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좀 궁해 보여요. 그런데 그렇게 돈을 아끼면서 서로를 위하는 게 행복입니다. 남편이 결혼기념일이라고 외식하자는데 ‘여보, 그 돈 나 줘’ 해서 절반의 돈으로 재료 사와서 집에서 요리해 먹고 나머지 절반은 저축하는 모습은 일견 궁색해보이지만, 그래도 지난 뒤에 보면 그때가 행복이에요.nbspnbspnbsp행복이라는 것은 어떤 결과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그 과정이 참 행복이에요. 우리가 살면서 겪는 이런저런 시행착오들을 돌아보면 그게 다 내 인생에 경험을 축적해가는 과정이에요. 그런 것들이 모여서 인생이 되지, 인생이 따로 있고 행복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nbspnbsp우리가 어떤 꿈이 있다면 그 꿈이 반드시 실현되어야만 행복이 아니라 그 꿈을 향해서 우리가 노력해가는 이 삶의 과정, 넘어지고 자빠지는 그 삶의 과정이 다 행복이라는 거예요. 이걸 ‘유심정토’라고 합니다. 저 편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정토는 ‘타방정토’라고 해요. 그 타방정토를 가기 위해서, 혹은 미래정토를 이루기 위해서 힘들어도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지금의 내 마음이 보람으로 충만한 것을 ‘유심정토’라 해요. 아기를 낳아서 키우는 과정이 힘들지만 엄마에게 기쁨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nbspnbspnbsp밖에 나가서도 이런 관점만 분명히 갖는다면 문제가 없어요. 너무 결과 지향적으로만 가지 않고 항상 ‘지금, 여기’ 이 순간의 소중함을 알고 사는 청년들, 그런 기쁨을 갖는 청년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nbsp과정이 곧 행복임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스님의 이 말씀이 감명 깊었는지 여러 사람에게 소감을 물어보니 모두 이 구절을 언급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김제동씨도 스님의 이야기에 덧붙여 청년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nbsp“사실 잘 안 될 때가 많지요. 잘 안 되는 것은 저희들끼리 여기서 털어놓고 가면 좋겠습니다. 그런 말도 있잖아요. ‘너도 안 괜찮고 나도 안 괜찮다. 그래서 괜찮은가 보다.’ nbspnbspnbsp스님 말씀 들으면서 생각했어요. 여행갈 때를 보면 여행 다니는 순간도 좋지만 제일 좋을 때는 표 끊어놓고 예약하고 단톡방 들어가서 그날 기다리지 않게 일찍 오라고 서로 얘기하고, 여기저기 정보를 공유하며 여행을 준비하는 날들입니다. 막상 여행 가보면 고생길인데, 그렇게 준비하면서 기대하는 순간들이 여행의 반을 차지하잖아요. 그런 것이 우리의 유심정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기독교 말씀대로 하면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는 것, 성모님의 은총이 이 땅에 내리는 것입니다. .nbspnbspnbsp기쁨도 중요하지만 슬픔도 함께 나누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들 마음 속에 지금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이 다 행복의 씨앗이 되리라고 감히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감사합니다.”nbsp마지막까지 웃음을 안겨주는 김제동씨에게 청중들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렇게 울고 웃다 보니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행복의 나라로 떠난 여행의 마지막은 노래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nbspnbspnbsp인디밴드 요술당나귀와 오늘 콘서트를 준비한 평화재단 청년포럼 스텝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스님과 김제동씨와 함께 손을 맞잡고 ‘행복가’ 노래를 불렀습니다.nbspnbspnbsp“마음껏 웃고 꿈꾸고 사랑하자”는 후렴구 가사가 잔잔하게 울려퍼지자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모두가 하나가 된 듯 다같이 양손을 좌우로 펄럭이며 감동의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스님도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양손을 함께 흔들었습니다.nbspnbspnbsp노래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사회자가 나와 행복으로 가는 꿀팁 2가지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하나는 10월9일11일 2박3일 동안 예정된 ‘법륜스님 김제동과 함께하는 행복의 나라 청춘캠프’이고, 다른 하나는 11월1일에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리는 2015 청춘콘서트 피날레 무대 ‘행복의 나라 페스티발’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지역으로 찾아가는 콘서트였는데, 두 행사는 전국에서 한 곳으로 모이는 콘서트여서 더욱더 기대가 되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 입구 로비에서는 스님의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청년들은 긴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스님, 건강하세요” 라고 인사하자 스님도 환한 웃음으로 “고마워요”라고 대답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그러면서도 스님은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이 사인은 받아서 어디에 쓸려고 다들 그러노?” 라며 반문했는데, 청년들이 아무 대답을 안하자 “하긴 100년 동안 보관할 수 있으면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지” 하며 다시 웃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오늘 콘서트를 위해 수고한 서포터즈 봉사자들이 모두 모여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행복의 나라로 놀러와” 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아주 우렁찼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수고한 봉사자들 한 명 한 명의 손을 꼭 잡아주며 격려해 주었고, 김제동씨도 한 명 한 명을 꼭 안아주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nbsp스님은 김제동씨에게 “그럼 10월 9일 청춘캠프 때 경주에서 봐요” 하며 인사를 건낸 후 행사장을 나왔습니다. 밤 11시가 다 되어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미국에서 귀국한 시차를 극복해보고자 곧바로 잠자리에 들려고 방으로 들어갔지만 잠이 계속 오지 않아서 밤새 보고서와 서류들을 읽었습니다. 스님이 시차 적응을 마치려면 아마 몇 일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nbspnbsp내일은 충북 금산에서 평화재단 통일의병들이 결집하는 통일의병대회가 있을 예정입니다.nbsp ※ 법륜 스님과 김제동이 함께하는 2015 청춘콘서트가 10월 전국 곳곳에서 열립니다. 참가를 원하는 분들은 티켓을 사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lt티켓 사전 신청하기gtnbspnbspnbsp우리 지역 콘서트 일정을 nbsp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nbsp

2015.10.03. 65,716 읽음 댓글 4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