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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3.6 인도 4일째 전정각산 산행
▲ 부처님께서 6년 간 고행하신 전정각산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인도JTS 활동가들과 함께 전정각산 산행을 하시면서 전정각산 곳곳에 남겨진 부처님의 발자취에 대해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인도의 새해 첫날인 ‘홀리 데이’를 맞이하여 차례상을 올리고 사시예불을 함께 하신 후 활동가들에게 새해 덕담과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일찍 전정각산에 오르기 위해 평소보다 30분 일찍 4시에 기상하여 새벽 예불 및 108배와 명상을 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인도 달력으로 새해 첫날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쁘리앙카님은 인도의 명절 음식인 ‘뿌와’를 새벽부터 만들어서 불단에 올렸고, 예불 후에는 다함께 정초기도를 함께 올렸습니다. nbspnbsp▲ 인도식 새해를 맞이하여 인도 명절 음식인 ‘뿌와’를 새벽부터 만들고 있는 쁘리앙카.nbsp그리고 아침식사를 한 후 6시30분에 수자타아카데미 교문을 나와 전정각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학교 바로 뒤에 전정각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JTS 활동가들은 “스님 오실 때만 올라가지 거의 올라가본 적이 없다”고 하며 다들 좋아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먼저 수자타아카데미 교문 앞에 있는 탑을 가리키며 이 유적지의 유래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부처님께 분소의를 드린 여인을 기념하여 세워진 탑nbsp“이곳은 부처님께서 6년간 고행을 하실 때 버려진 시체더미 가운데서 명상을 하셨다는 곳입니다. 경전을 보면, 어떤 한 여인이 숨이 덜 끊어졌는데 이곳에 버려졌어요. 그런데 그 여인은 부처님을 보고 ‘자신을 덮어 쌌던 분소의를 저 수행자가 입었으면 좋겠다’ 하고 숨을 거두었는데, 부처님이 그 분소의를 입으시자 그 여인은 바로 천상에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nbspnbsp이어서 탑을 향해 삼귀의 반야심경을 한 후 전정각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명절이여서 그런지 늘 북적하던 유영굴 올라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고 한적했습니다.nbspnbsp▲ 유영굴로 올라가는 길nbsp즐겁게 담소를 나누다보니 벌써 유영굴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유영굴을 참배한 후 동굴 속에서 잠시 명상을 하셨습니다.nbspnbsp▲ 유영굴nbsp그리고 유영굴을 나와서는 삼귀의 반야심경을 한 후 유영굴이라고 이름 불리어진 그 유래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당시 수행자들은 인공적인 건물 안에 들어가서 생활하지 않으니까 평상시에는 나무 밑이 머물기 제일 좋은데 혹서기나 혹한기에는 동굴이 머물기에 제일 좋아요. 그래서 수행자들이 동굴에 많이 머물렀어요. 부처님도 수행하실 때 이 산에 있는 동굴에 머무셨는데 이 동굴이 제일 넓고 아늑해서 머물기 좋아요. 총 3개의 동굴이 있는데 다 조금씩 머무셨지 않았나 싶지만, 모양새를 보면 이 동굴이 주동굴이었던 것 같아요.nbspnbspnbsp부처님은 여기에 오래 머무셨으니까 부처님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어요. ‘유영굴’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6년 고행을 하다가 고행의 무익함을 깨닫고 중도를 발견하시고 하산을 하셨어요. 네이란자라 강가에서 목욕을 하시고 수자타의 공양을 받아 건강을 회복하신 뒤에 새로 발견된 중도의 길을 따라 마지막 용맹정진을 하려고 할 때, 둥게스와리 산신은 여기 와서 마지막 성도를 하시라고 부탁하고, 다른 한 신은 네이란자라 강가의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성불을 하라고 권유를 해요.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나무 아래로 가시기로 결정하면서 이 산신의 요청에 따라서 그림자를 남겨 놓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영굴이라고 부릅니다.nbspnbsp이것을 요즘 식으로 해석을 하면 오랫동안 수행을 해왔던 이곳에서 마지막 정진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그러나 이곳은 마을 주민들이 가까이 없으니까 공양 얻기가 어려운 곳이였어요. 그래서 수자타 마을을 지나 강 건너 편으로 가서 정진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 생각하셔서 그리로 가신 것 같아요. 그곳이 보드가야가 되었죠. 당시에는 마음의 작용을 신의 소리로 항상 그렸으니까 기록에는 ‘둥게스와리 산신의 요청에 따라서 그림자를 남겨놓았다’ 이렇게 남은 것입니다. 성도는 보드가야에서 하셨지만 실제 수행은 대부분 이곳에서 하셨기 때문에 이곳이야말로 부처님의 체취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라고 보시면 돼요.”nbsp설명 중에 갑자기 스리랑카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와서 다소 소란스러워지자 스님께서 “저쪽에 부처님이 명상하셨다는 조용한 곳이 있으니 거기로 가자”고 하셔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스님을 따라갔습니다.nbspnbsp산 중턱 즈음에 이르니 작은 샘터가 하나 나타났습니다. 이곳은 부처님께서 물을 마셨다는 곳이라고 합니다.nbspnbsp▲ 부처님이 물을 드셨다는 샘터nbsp원래는 샘터 옆에 이를 기념하여 쌓은 허물어진 탑이 있었는데, 이런 의미를 잘 모르는 정부에서 발굴조사 없이 메워진 연못을 파면서 탑을 모두 허물어 버렸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유적지가 이렇게 무참히 훼손되는 것을 무척 안타까워하셨습니다. nbspnbsp샘터를 지나 바위 언덕을 넘으니 명상하기에 참 좋은 아늑한 공간이 나타났습니다. 사방이 바위로 막혀 있어서 바람을 막아주어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바위 사이의 공터에는 부처님이 명상하셨던 자리를 기념하여 탑을 세운 흔적도 남아 있었습니다.nbspnbsp▲ 부처님이 명상을 하셨다는 곳nbsp스님께서 “명상을 하겠습니다” 하시자 각자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앉아 죽비 소리에 맞춰 명상에 잠겼습니다.nbspnbspnbsp눈을 감고 호흡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데, 산 전체에서 새소리가 아름다운 하모니처럼 들려왔습니다. 곧이어 햇살이 등을 감싸안으며 손끝 발 끝에 찌릿찌릿한 정전기가 돌고 머리도 맑아졌습니다. 부처님이 명상하셨던 자리에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속에서 잔잔한 기쁨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nbspnbsp한 20분 정도 명상을 하고 나서는 칼끝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는 전정각산의 능선을 따라서 계속 걸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와 전정각산의 능선이 한눈에 보이는 곳nbsp봉우리 위에 올라가니 수자타아카데미를 비롯하여 두르가푸르, 자그디스푸르, 수라즈비가, 라르푸르, 쁘레와 등 이 일대 전체 전경이 한눈에 펼쳐졌습니다.nbspnbsp▲ 전정각산에서 수자타아카데미를 바라보고 계신 스님nbspnbsp스님께서는 저 강 건너편에 가야산을 가리키시며 “부처님이 이곳 전정각산에 오시기 전에 저 가야산에 오르셔서 이곳이 수행하기 적당한 곳임을 보셨어요. 또 가야산은 우루벨라 가섭 등 가섭 삼형제와 천명의 제자들에게 탐진치 삼독의 불을 꺼라는 설법을 하여 교화한 곳이기도 합니다” 라고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 손을 가리키는 곳이 가야산.nbspnbsp산 봉우리마다 벽돌로 쌓은 탑무더기가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 곳에서 보면 산봉우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탑” 이라고 하시면서 “이 탑은 2300년 전에 아쇼카왕이 세우고 난 뒤 그 누구도 손을 안 댄 거예요. 그때 그대로 남아 있어요. 사람들이 안 오니까 파괴가 안되었는데 최근 들어와서 사람들이 자꾸 오니까 파괴가 되네요” 라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nbsp nbspnbsp▲ 뒤에 봉우리처럼 보이는 것이 아쇼카왕이 세운 탑nbsp그리고 이 전정각산에는 총 17개의 탑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셨는데, 부처님께서 머무신 흔적이 정말로 많이 남아있는 곳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인도식 새해를 맞이하여 전정각산을 오르며 부처님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곳을 친견하고 나니, 마음이 뿌듯해지고 스님께 감사한 마음도 많이 들었습니다.nbspnbsp전정각산의 칼 능선을 따라 걸으며 시원한 바람을 만끽한 활동가들은 스님과 함께 단체사진을 함께 찍고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내려왔습니다.nbspnbsp▲ 전정각산과 수자타아카데미, 그리고 인도JTS 활동가들▲ 전정각산의 칼 능선nbsp내려오는 길에는 부처님이 명상을 하셨다는 제2유영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유영굴에 들어가셔서 잠시 명상을 하셨습니다.nbspnbsp▲ 제2유영굴nbsp전정각산을 내려와서 10시부터는 새해맞이 사시예불을 함께 올렸습니다. 정성껏 기도를 올리고 나서 활동가들 모두 스님께 삼배로 새해 인사를 드렸습니다.nbspnbsp▲ 스님께 세배를 하는 인도JTS 활동가들nbsp스님께서는 세배를 받으시고는 활동가들에게 격려의 말씀과 더불어 새해 덕담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인도에서 이렇게 새해를 맞이해 본 것은 처음인 것 같아요. 올해 인도에 좋은 일이 생길려고 하나봐요. 다들 건강하시고요. 늘 수행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nbsp부처님께서 이곳에서 6년 고행을 하시면서 해탈과 열반을 위해 정진을 하셨지만, 그렇게 극심한 고행을 하고도 해탈과 열반을 성취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경전 기록을 보면 마왕의 유혹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번뇌가 생겼습니다. ‘이러다가 여기서 죽어버리면 무의미한 것 아닌가’. ‘열반이란 없어. 그런 단어만 존재하지 실제 그런 세상은 없어. 그러니 정진을 그만둬라’. ‘제사를 지내고 신을 찬미하고 복을 구하면 전륜성왕이 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이런 황야에서 혼자 외로이 정진을 하느냐’. 이런 많은 번뇌가 생겼어요.nbspnbsp여러분들도 여기 있어보면 ‘여기 몇 년 있어봐야 인생의 낭비 아닌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번뇌가 생깁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다보면 ‘세월만 보내고 늙으면 후회하지 않을까’ 이렇게 번뇌가 많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 부처님께서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출가하실 때의 원을 생각하고 다시 정진하셔서 마침내 성도를 하셨거든요. 꾸준히 앞으로 간 것도 있지만 무조건 간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나?’,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안풀리나?’ 이렇게 늘 돌아보셨어요. 돌아보니 출가하기 전에는 항상 욕구를 따라갔고, 출가한 이후에는 욕구를 억압하는데 급급했음을 알게 됩니다. 두 길은 정반대의 길이지만 결국 욕구에 메여있었던 것이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기가 경험한 것을 돌이켜보면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욕구에 메이지 않는 길은 다만 욕구를 알아차릴 뿐이지 거기에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억압하는 것도 아닌 제3의 길을 발견하신 겁니다. 이렇게 ‘중도’를 발견하셔서 모든 긴장을 풀고 용맹정진을 하셔서 깨달음을 얻으신 것입니다.nbspnbsp그것처럼 우리가 여기서 일을 할 때도 첫째는, 자기 마음 속에서 늘 번뇌가 생깁니다. 어떤 일이 장애에 막히면 ‘어떻게 이것을 극복해야지?’ 하기 보다는 ‘하면 뭐하냐? 해도 안된다’ 이렇게 좌절과 절망이 오는 것은 욕심에서 비롯됩니다. 그게 그렇게 쉬우면 왜 아직까지 해결이 안되고 이렇게 남아 있겠어요? 어려우니까 과제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항상 연구하고 수행정진하는 자세로 해나가시기 바랍니다.nbspnbsp그래서 여기서 생활한 것이 경험이 되어서 다른 곳에 가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때 내가 그 시절에 인도에서 1년이든, 3년이든, 10년이든 있었던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배우고 깨친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가 만약 그 기간이 없었다면 내 인생이 이렇게 값진 인생이 될 수 있었겠느냐’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정진을 하시기 바랍니다.”nbsp그리고 세배를 올린 활동가 모두에게 세배돈을 주셨습니다. 세배를 받은 활동가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그리고 활동가들 상호 간에도 함께 맞절을 하며 서로 세배를 했습니다.nbspnbsp▲ 인도JTS 활동가들을 격려하며 세배 돈을 주시는 스님nbsp새해 맞이 기도를 마치고 11시부터는 발우공양을 함께 했습니다. 그동안 이곳 전정각사는 발우공양을 하지 않고 지내왔는데 이번에 행자대학원 9기가 보광법사님과 함께 새롭게 파견되어 오면서 발우공양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 발우공양nbsp“불생가비라, 성도마갈다,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를 시작으로 부처님의 일생과 가르침을 게송으로 외우며 여법하게 발우공양이 진행되었고, 발우공양 후 활동가들은 공동체 계본 40가지를 기준으로 각자가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드러내어 참회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발우공양 후 오늘과 내일, 모레 일정에 대해 활동가들에게 자세히 공유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오늘이 인도 달력으로 새해 첫날이여서 마을에서는 홀리 축제가 열렸습니다. 활동가들은 마을로 가서 학생들, 주민들 집을 방문하여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가졌고,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온 이메일과 원고들을 체크하시며 업무를 보셨습니다.nbspnbsp▲ 마을 주민들과 홀리 축제를 함께한 인도JTS 활동가들nbspnbsp인도에서 홀리 날은 나쁜 기운을 멀리 쫓아내는 의미로 형형색색의 물감을 서로에게 발라준다고 합니다. 오늘 하루 둥게스와리 마을 주민들은 울긋불긋한 색깔의 향연 속에 빠져 새해에는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원하였습니다.nbspnbsp저녁7시부터는 전정각사 법당 안에서 한국인 활동가들의 정기 수행법회가 열렸습니다. 한국의 여느 정토법당과 똑같이 삼귀의 반야심경을 한 후 즉문즉설 영상 강의로 법회가 열렸습니다. 활동가들은 스님의 영상 법문을 경청하며 지난 한주를 돌아보고 수행적 관점을 다시한번 가다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인도JTS 활동가 정기 수행법회 및 마음나누기nbspnbsp스님께서는 활동가들이 수행법회를 하는 동안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며 업무도 보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4시에 기상하여 예불 및 108배 정진을 한 후 발우공양을 마치고 보드가야로 가서 대탑을 참배할 예정입니다. 대탑을 참배한 후에는 모레 수자타아카데미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라즈길 소풍 준비를 위해 시장을 본 후 다시 학교로 돌아와 사업논의를 할 계획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3.5 인도 3일째 라즈길 자전거 순례
▲ 둥게스와리에서 라즈길까지 80km 자전거 순례nbsp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부처님께서 걸어가신 옛길을 따라 전정각산에서 라즈길까지 80km의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가셨습니다. 오늘부터 3일간 인도 전역에서는 새해를 맞이하여 홀리 축제가 열리는데 이 기간 동안에는 마을 방문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20년 전부터 꿈꿔오셨던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는 순례를 시도해 보셨습니다.nbspnbsp먼길을 가기 위해 평소보다 1시간 이른 새벽4시에 기상하였습니다. 아침 예불을 드린 후 108배와 명상을 하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6시에 수자타아카데미 운동장에 모두 모였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수자타아카데미 상급생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 중에서 각자 자신의 체격에 맞는 자전거를 고른 후 “자, 가자” 하시는 스님의 구령 소리와 함께 6시30분에 일제히 학교를 출발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이번에 자전거를 타는 것이 고등학교 때 타 본 이후로 40년만에 처음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몇 번 타보시더니 금방 감을 익히시고 아주 빠르게 속도를 내시며 앞으로 나가셨습니다.nbspnbspnbsp자전거가 여학생들이 타고 다니던 것이여서 그런지 많이 불편했습니다. 핸들이 너무 좁아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엉덩이 받침대가 작을 뿐만 아니라 타면 탈수록 자꾸 뒤로 젖혀 졌습니다. 그래도 모두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본다는 설레임에 신나게 패달을 밟았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를 출발하여 둥게스와리를 빠져나오는 길nbsp▲ 마을 주민들에게 물어가며 다시 길을 찾아가는 모습nbsp전정각산에서 라즈길까지는 작은 산들이 길에 늘어서 있는데 산 왼편으로 계속 길이 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아마 부처님은 이 길을 따라 가야에서 라즈길로 가셨을 것이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지금 부처님이 가셨던 그 길을 가고 있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 산 왼편으로 계속 이어진 길nbsp부처님께서 걸어가셨던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은 쉽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곳은 공사가 진행 중이여서 땅을 깊게 파놓아서 자전거를 손으로 들거나 어깨에 메고 가야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 출발한지 1시간 만에 잠깐의 휴식nbsp▲ 공사 중인 움푹 패인 길을 건너는 모습nbsp다시 마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계속 달렸습니다.nbspnbspnbspnbsp비포장 도로를 한참 동안 달리고 나니 이제는 아스팔트 도로가 나타났습니다. 큰 차들이 다니는 도로이지만 내일 홀리 데이를 앞둔 휴일이여서 그런지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스님 일행은 마치 도로를 점거하다싶이 하고 신나게 도로 위를 달렸습니다.nbspnbsp▲ 홀리 데이 기간이라 인적이 드문 도로 위를 신나게 달리는 모습nbsp한 마을 앞에서는 주민들이 포장된 도로를 알려주었으나 스님께서는 “부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가보자” 고 하시면서 산 왼편으로 난 길을 계속 갔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주민들이 포장된 길을 알려준 이유가 있었습니다. 길이 더 이상 연결되어 있지 않았고, 다시 큰 도로를 찾아 나가려고 하니 이번에는 철길이 나타났습니다. 자전거를 들고 철길을 넘고, 움푹 패인 공사 현장을 지나자 드디어 다시 큰 도로가 나타났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철길을 건너고, 공사 중인 둑을 지나 다시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를 만났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를 출발한지 3시간 무렵이 되었을 때 가루하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 마을인데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스님께 그 설명을 들었습니다.nbspnbsp“1960년대에 이 마을에 사는 인도 사람이 아내가 위독한 병에 걸렸는데 산이 길게 가로 막혀 있으니까 아내를 병원에 빨리 데리고 가질 못했어요. 그래서 결국 아내가 죽고 말았는데, 이를 너무나 가슴 아프게 생각한 그 사람은 ‘다시는 나 같은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발원을 하고 산 사이를 파서 길을 내었습니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려 22년 동안 혼자서 망치와 정만 가지고 산을 깍아서 산을 두 동강이를 내고 그 사이에 길을 냅니다. 이런 유명한 일화가 있었던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 이후에 정부가 이 사람에게 표창을 할려고 하니까 ‘나는 다만 내가 해야할 일을 한 것 뿐’이라며 표창을 거절했다고 하지요. 우리도 이런 마음으로 수행정진해야 합니다. 자, 보세요. 저기 산 사이에 길이 난 것이 보이죠?“nbspnbsp▲ 뒤에 보이는 잘라진 산이 아내가 죽은 인도인이 혼자서 만들었다는 길.nbsp자신의 한을 사회적으로 승화시킨 인도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숙연해졌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이동하는 중간에 아이패드를 보시면서 구글 지도로 현재 위치와 앞으로 가야될 길을 계속 점검하셨습니다. 가야에서 라즈길까지 하루에 못간다고 다들 말리고, 또 자전거가 시원찮아서 가야와 라즈길의 중간 정도 되는 지점까지만 갈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하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갈 계획이였습니다. 그런데 중간 지점에 도착하고 나서 시계를 보니 9시30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이 속도면 라즈길까지 갈 수 있겠다” 하시며 라즈길을 향해 힘차게 다시 달렸습니다.nbspnbsp▲ 아이패드로 지도를 확인하시는 스님nbspnbspnbsp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각인 10시30분이 되어서 ‘제띠안’ 이라고 하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제띠안은 부처님께서 라즈길로 오셨을 때 빔비사라 왕이 서문 밖으로 나와서 부처님을 맞이한 곳을 기념하여 아쇼카왕이 큰 탑을 세운 곳입니다. 탑 앞에서 도시락으로 싸온 점심식사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체력을 많이 소진해서 배가 무척 고팠는데 밥만 먹어도 너무나 꿀맛이였습니다. nbspnbsp▲ 제띠안 앞에서 점심 식사nbspnbsp식사를 마치고 제띠안의 탑 위로 올라가서 스님께 이곳 성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nbspnbspnbsp“저희들은 지금 빔비사라 왕이 왕사성 서문 밖으로 나와 부처님을 영접했다고 하는 ‘제띠안’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부처님을 영접한 장소를 기리기 위해 아쇼카왕이 탑을 세운 곳입니다. 부처님은 보드가야에서 성도를 하신 후 바라나시 사르나트로 가셔서 5비구등 60여명의 비구를 교화하고 다시 우루벨라 마을로 오셔서 우루벨라 가섭 등 1000명을 교화하여 오늘 저희가 자전거를 타고 온 바로 이 길로 그 1000명의 비구를 이끌고 왕사성으로 오셨습니다.nbspnbsp▲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영접한 곳을 기념하여 세워진 탑 제띠안nbsp당시 이 소문을 듣고 빔비사라왕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을 영접한게 아니라 당시 유명했던 우루벨라 가섭을 영접하러 온 것이였어요. 우루벨라 가섭을 보자 왕이 먼저 우루벨라 가섭에게 예를 표하고 인사를 드렸어요. 그때 거기에 참가한 대신들은 ‘저 젊은 수행자가 우루벨라 가섭의 제자인가? 정말 우루벨라 가섭이 저 젊은 수행자의 제자인가?’ 이런 의문을 가졌다고 해요. 그 때 왕이 우루벨라 가섭한테 절을 하면서 “제가 믿을 수 없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우루벨라 가섭이 젊은 수행자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는데 저는 믿기가 어렵습니다. 이는 세 살 먹은 어린 아이가 팔십 먹은 노인을 보고 ”너는 내 손자요“ 하는 것보다 더 믿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얘기했더니 우루벨라 가섭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을 세바퀴 돌고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이 분은 저의 스승이고, 저는 이 분의 제자입니다. 제가 이 분을 만나기 전에는 윤회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을 만나고 나서 윤회의 씨앗을 버렸습니다” 라고 말했어요. 윤회의 씨앗을 심었다는 것은 푸자를 지내고 복을 구했다는 얘기이고, 윤회의 씨앗을 버렸다는 것은 수행 정진해서 해탈 열반의 길을 갔다는 얘기입니다. nbspnbsp그때서야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이 위대하심을 알고 부처님께 절을 하고 법을 청합니다. 그때 대중들의 머리 속에 있던 의심들도 다 사라졌습니다. 부처님이 왕을 위해서 설법을 하자 왕은 그 설법을 듣고 깨달아서 너무 기뻐한 나머지 이렇게 신앙 고백을 했어요. “내가 왕자 때 다섯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첫째, 내가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 때는 왕자라고 왕이 되는 시대가 아니였거든요. 형제가 50명이 되면 그 50명을 다 죽여야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내 나라에 부처님이 출현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내가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내가 그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닫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그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입니다. 네 가지 소원은 이제 다 이루었는데, 이제 마지막 소원을 이루고 싶으니 부처님께서 왕궁으로 오소서.” 하고 식사 초대를 했는데 부처님께서 승낙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왕은 부처님께 왕사성으로부터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위치에 대나무 숲을 기증했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가 생긴 기원입니다.“ nbspnbspnbsp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처음에는 그냥 벽돌 무더기 산 같았는데 이곳에 서린 부처님의 숨결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탑은 아무런 관리가 되지 않고 곳곳이 부서진 채로 방치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더 이상 훼손이 되지 않도록 관리를 해야 할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띠안 위에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탑을 내려왔습니다.nbspnbsp▲ 제띠안을 내려오는 스님 일행. 뒤에 보이는 길게 늘어선 흙길을 따라 14km를 더 가면 구왕사성이 나타납니다.nbspnbsp스님의 설명을 듣고 다시 계산을 해보니 부처님께서는 1000명의 비구를 이끌고 4일 동안 걸어서 이곳까지 왔다고 하는데 오늘 스님 일행은 그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4시간 만에 온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하루 동안 걸은 거리를 1유순이라고 하는데 약 15km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하루 동안 걸은 거리를 저희들은 1시간만에 달려온 것이지요.nbspnbsp제띠안을 내려와서 다시 자전거를 타고 구 왕사성까지 14km에 이르는 산길을 달렸습니다. 가야에서 라즈길까지 전체 80km 구간 중에서 가장 힘든 코스가 이 산길 코스였던 것 같습니다. 오르막이 계속 되는 구간이 있어서 숨을 헐떡이며 겨우 겨우 고개를 넘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 제띠안에서 구왕사성까지 14km에 달하는 산속의 숲길nbsp드디어 산길을 모두 지나고 구왕사성이 있는 라즈길에 도착했습니다. 성벽 터가 남아 있는 유적지가 있어 잠깐 둘러본 후 스님께서는 이곳 라즈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특히 “라즈길은 5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라고 하셨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 가르키는 방향에 보이는 산이 칠엽굴이 있는 산입니다.nbspnbsp라즈길에 도착하니 오후1시가 되었습니다. 아침6시30분에 수자타아카데미를 출발했으니 점식 식사 시간 1시간을 제외하면 여기까지 오는데에 약 6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다들 자전가가 불편했는지 엉덩이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다며 나무 밑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nbspnbsp휴식을 취하는 동안 최동호님과 권도영님이 차량을 한 대 빌려왔습니다. 오늘부터 홀리 축제 기간이 시작되어 운전수를 구하기가 매우 힘들었는데, 운전수를 구하는데만 무려 3시간이나 걸렸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겨우 운전수를 구해 차량에 자전거 9대를 싣고 수자타아카데미로 다시 돌아왔습니다.nbspnbspnbsp▲ 자전거를 모두 지붕에 올리고 차량에 탑승한 스님 일행nbspnbsp차량으로 다시 돌아오는데는 약 2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자전거로 6시간 간 거리를 차량으로는 2시간30분이 걸렸으니 약 2배 정도의 차이가 난 것이죠. 자전거를 타는 것이 결코 느리지 않는 것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홀리 데이를 앞두고 얼굴에 물감을 바른 인도인들nbsp가야로 돌아오는 길에는 곳곳에 시장이 열렸는데, 내일 홀리 데이를 준비하기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 나와 제사 음식과 옷을 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굴에는 벌써부터 형형색색의 물감을 서로 칠해주며 인도 특유의 홀리 축제 분위기를 서서히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내일이 되면 물총에 물감을 넣거나 물통에 물감을 담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물감을 쏘고 던진다고 합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도착nbspnbsp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하니 오후6시가 되었습니다. 먼길을 달려온 피곤함이 몰려오는 가운데 간단히 세면을 하고 저녁식사를 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께서는 오후불식을 하고 계셔서 샤워를 마치시고 바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4시에 기상하여 108배 정진을 한 후 새벽6시에 전정각산에 올라가 볼 예정입니다. 전정각산 산행을 하며 부처님이 머무셨다는 유영굴을 참배하고, 부처님이 물을 드셨다는 샘터, 명상을 하셨다는 바위 등을 차례대로 순례를 한 후, 오후에는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와 사업 논의를 계속 연이어 할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3.4 인도 2일째 두르가푸르 자그디스푸르 마을 방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인도의 불가촉 천민마을 둥게스와리에서의 2일째 일정을 보내셨습니다. 오전에는 두르가푸르 마을 108가구를 방문하였고, 오후에는 자그디스푸르 마을 143가구를 방문하여 집집마다 쌀 20kg씩을 나눠주었습니다.nbspnbsp새벽4시30분 도량석 소리에 일제히 기상하여 전정각사 법당에 모여 다함께 새벽예불과 천일결사 정진을 했습니다. 정진을 하며 어제 저녁에 스님께서 강조하신 ‘수행자의 자세로 봉사를 하는 것이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새겨 보면서 오늘 하루도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근면하게 해나갈 것을 다짐해 보았습니다.nbspnbspnbsp정진을 마치고 6시에는 대중공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동체 40계본을 기준으로 어제 하루 동안 이를 어긴 것이 있으면 대중에게 드러내어 참회한 후, 전체 일정 및 개인 일정을 함께 공유했습니다. 특히 어제 이곳에 도착한 보광 법사님과 쁘리앙카님을 비롯한 9기 행자대학원생들은 기존 활동가들에게 삼배를 하며 새롭게 입방하게 된 예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청소 소임이 발표되자 각자 맡은 구역으로 가서 청소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6시30분부터 보광 법사님과 9기 행자대학원생들은 법당에서 처음으로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스님과 나머지 일행들은 아직 발우가 준비되지 않아 모레부터 발우공양에 함께 하기로 하고 평소대로 식사를 했습니다.nbspnbsp아침식사 후 스님께서는 3월5일부터 7일까지 3일 간 인도 사람들 모두가 새해를 맞이하여 푸자 기간에 들어가는데 이 때는 마을을 방문할 수가 없어 이 기간 동안 어떤 일정을 가질지 스텝들과 의논을 하셨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이번에 인도에 머무시는 동안 둥게스와리 전정각산 주변의 14개 마을 모두를 다 방문하실 계획입니다. 오전9시에는 첫번째 방문 마을인 두르가푸르로 향하셨습니다. 모레가 인도 달력으로 새해 첫날 ‘홀리 데이’ 이기 때문에 스님께서는 방문하는 집집마다 “홀리 데이 준비는 잘 하셨어요?” 라고 물으며 인사를 건내셨습니다.nbspnbsp다들 가난하기 때문에 그런지 큰 명절을 앞두고도 있으면서도 대부분 “준비 아직 안했어요”, “준비할 게 뭐가 있어요?” 하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스님께서 직접 가가호호 방문을 하시며 쌀 20kg씩을 나눠주니 마을 주민들은 무척 고마워 했습니다.nbspnbspnbsp“가족이 몇 명이예요?”nbsp“여섯명이요.”nbsp“카드 번호가 몇 번이예요?”nbsp“96번이요”nbsp“홀리 데이 준비 좀 했어요?”nbsp“아직 못했어요.”“어떤 일 하고 살아요?”“농사 조금 짓고 살아요.”“농사를 얼마나 지어요?”“땅 조금 빌려서 짓고 있어요”“몇 살이예요?”“43세예요.”nbsp“여기 쌀 드릴테니까 이것 가지고 홀리 데이 준비하세요.”nbspnbsp쌀 가마니를 한아름 가득 안은 주민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너무나 고마운지 눈물을 보였습니다.nbspnbspnbsp▲ 쌀을 받고 고마워서 눈물을 보이는 할머니nbsp또 어떤 아주머니는 “단야와드” 라고 몇 번을 반복하면서 고마워 했습니다.nbspnbsp▲ 쌀을 받고 기뻐하는 마을 주민들nbsp집집마다 다 방문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 한명 한명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홀리 데이를 앞두고 가볍게 안부를 묻고, 생활 모습을 둘러보는 정도로 전체 마을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을의 문제점이나 세부적인 내용들에 대해서는 마을 지도자 회의를 할 때 더 자세히 얘기나눠보자” 고 하시면서 오늘은 이렇게 쌀을 나눠주고 집집마다 찾아가 눈을 맞추고 인사를 나누는 정도로 방문을 계속 이어가셨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두르가푸르 마을의 108가구를 모두 다 방문하고 나니 오전11시30분이 되었습니다.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와서 인도 스텝들과 같이 점심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오전 내내 걸어 다녔더니 오랜만에 먹는 인도 음식이 아주 꿀맛 같았습니다.nbspnbsp▲ 인도인 스텝들과 함께 점심 식사nbsp다시 12시45분부터는 자그디스푸르 마을 방문을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 “나마스떼” 하고 인사를 건내자 모두들 대문 앞으로 나와 쌀을 들고 온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자그디스푸르 마을은 두르가푸르 마을에 비해 사는 형편이 조금 더 나아 보였습니다. 곳곳에 흙집이 아닌 벽돌로 지은 집들이 많이 보였는데, 모두 인도 정부로부터 집 짓는 지원금을 일부 받아서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돈이 부족했는지 짓다가 만 집들도 많이 보였습니다.nbspnbsp▲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금으로 집을 지었다는 주민nbsp“집 짓는데 정부로부터 지원을 좀 받았어요?”“네”“얼마나 받았어요?”“3만 루피요.”“그 돈으로 집이 지어집니까?”“그 정도로 어떻게 집을 지어요? 다 못 지었어요”nbsp특히 자그디스푸르는 마을 한 가운데에 아스팔트 도로가 새로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도로가 새로 포장되고 나서 마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궁금해 하셨습니다.nbspnbsp“길이 새로 포장되고 넓어지니까 어떤 점이 좋아요?”“좋은 점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사고가 많이 나고 사람이 교통사고 나서 죽기도 했어요. 아이들은 뛰어다니는데 차는 더 속도를 내게 되니까요.”nbspnbsp좋은 점만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교통사고가 늘어나서 위험성이 더 커졌다는 얘기를 들으니 개발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가게 잘 운영돼요?”nbsp“그저 그래요.”nbsp“아이들이 몇 몇이예요?”“네명이요.”“여기 쌀 드릴테니까 홀리 데이에 쓰세요.”nbspnbsp이렇게 자그디스푸르에서도 홀리 데이를 앞두고 인사를 건내며 집집마다 쌀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어떤 집에서는 나이가 14살이 되었음에도 아직 학교를 한번도 다녀보지 않고 지내고 있는 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직도 학교를 안 다닌 아이가 있네” 하시며 안타까워 하셨습니다.nbspnbsp▲ 집 안에 들어가보니 가구라고는 은색 항아리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nbspnbsp▲ 짐승이 사는 곳인지 사람이 사는 곳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방안nbsp▲ 비가 와서 무너져내린 흙집nbsp그리고 자그디스푸르에는 집집마다 소를 키우는 집이 많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소젖을 잘 짜면 판매를 통한 수익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 하시며 농토가 없는 이곳 마을 사람들에게 어떤 일거리를 제공해주면 주민들의 삶이 더 나아질지 많은 고민을 하고 계셨습니다.nbspnbsp이렇게 스님께서는 잠시 쉬는 시간도 없이 시종일관 차례 차례 가가호호 방문을 계속 하셨습니다. 하루 종일 걸어다느니라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점점 아파오는데 스님께서는 지치는 기색 없이 공정하게 배분이 되고 있는지 꼼꼼히 체크하고 확인을 하셨습니다.nbspnbspnbsp특히 JTS는 그동안 몇차례에 걸쳐 인구조사를 한 후 집집마다 노란색 카드를 나눠주었습니다. 그래서 카드에 가족사항이 기록되어 있어서 카드를 보여줘야지만 쌀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철저하게 지원 사항들이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들이 장성해 결혼을 하게 되면 분가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조금 혼선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분가를 할 때, 카드를 발급해 줄 때는 분명한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며 그 내용을 더욱 보완해 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 JTS가 마을 주민들에게 나눠준 노란색 카드nbspnbsp이렇게 자그디스푸르 마을의 143가구의 방문을 모두 다 마치고 나니 오후4시가 다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다시 수자타아카데미 학교로 돌아오셔서 쌀 배분을 위해 하루 종일 어깨에 쌀을 지고 나른 인도인 선생님들을 모아 놓고 “수고 많았다”고 격려해주시면서 내일 모레에 있을 소풍에 대해 의논을 하셨습니다. nbspnbspnbsp“그래도 홀리 데이 전에 쌀을 줘서 사람들이 더 좋아한 것 같네요.”“네, 맞습니다.”nbsp“그런데 다른 마을은 홀리 데이 전에 줄 수가 없으니까 홀리 데이 끝나고 줘야 할 것 같아요.”“네.”“내일은 집에 가서 뭐해요?”nbsp“시장 보러 갑니다.”nbsp“남자가 시장 보러 가나요?”nbsp“네”nbsp“아무 것도 안 하고 술먹고 노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요.” nbsp“안그래요.”nbsp“시장은 어디로 가요?”“가야로 갑니다.”nbsp“동네 사람들이 말하는 시장은 ‘끼리야마’라고 했는데?”nbsp“네, 맞습니다. 그곳은 하루 임시로 서는 시장입니다.”“3일 동안 잘 쉬고 오면 일요일에는 같이 소풍을 가려고 해요. 어디 가보고 싶어요?“nbspnbsp선생님들은 라즈길, 바이샬리, 파트나 등 여러 곳을 이야기했지만 바이샬리나 파트나는 거리가 멀어 차로 많은 시간 이동을 해야 해서 하루만에 다녀오기에는 무리가 될 것 같았습니다. 긴 시간 토론 끝에 이번에는 하루 코스로 가까운 라즈길을 가기로 하고, 다음에는 1박2일 시간을 내어 파트나와 바이샬리를 함께 가볼 수 있게 하기로 했습니다. nbspnbsp“그러면 이번에는 마을 방문을 다 해야 하니까 가까운 라즈길을 갔다 옵시다. 원래 스님이 오늘 보너스를 좀 주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어제 월급을 받았다면서요? 그래서 지금 보너스를 주면 홀리 데이 때 다 써버린다고 라니 시스터가 주지 말라고 하네요. 그래서 보너스는 홀리 데이 끝나고 수련할 때 드릴게요. 오늘은 설 용돈만 드릴게요.”nbspnbspnbsp그리고 선생님 한명 한명에게 봉투에 용돈을 넣어 나눠주셨습니다. 선생님들은 모두들 기뻐하면서 스님께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어서 노동자들도 퇴근하기 전에 스님께 찾아와서 설 용돈을 받아갔습니다. 홀리 데이 전에 보너스를 주면 다들 더 좋아할 것 같긴 했지만, 저축하는 습관을 갖도록 힘쓰고 있는 JTS의 더 큰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또 오후 늦게 쁘리앙카님의 큰언니 가족들이 수자타아카데미에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셨습니다. 지난 8년 동안 한국에서 박사 공부를 하느라 집에 자주 가질 못했는데 오랜만에 인도에 온 쁘리앙카님을 보고 가족들 모두 반가워 했습니다. 스님께서도 가족 분들을 반갑게 환영해주시면서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nbsp▲ 쁘리앙카님의 큰언니 가족들nbsp그리고 다들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스님께서는 학생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를 점검해 보셨습니다. 특히 내일은 자전거를 타고 라즈길을 가보기로 했기 때문에 자전거에 이상이 없는지 직접 타보시면서 체크를 하셨습니다.nbspnbsp저녁7시부터는 오늘 두르가푸르와 자그디스푸르 마을을 방문한 것에 대한 현지 스텝들이 모두 모여서 평가회의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마을 방문을 하신 소감을 나눠주시면서 몇 가지 연구 과제들과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공유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오늘 두르가푸르와 자그디스푸르 두 개 마을을 아주 빠르게 번개불에 콩 튀겨 먹듯이 한바퀴 둘러보았는데요. 그래도 안 가본 것 보다는 집집마다 체크를 해본 것이 마을의 실정을 아는데는 훨씬 나았던 것 같아요.nbspnbsp돌아보면서 첫 번째 든 생각은 JTS가 특별히 지원하지 않더라도 마을 주민들의 주거 환경은 옛날에 비해서는 많이 개선된 것 같습니다. 많이 받은 사람도 있고 적게 받은 사람도 있겠지만 정부가 3만 루피에서 7만 루피 사이의 재정 지원을 한 것이 주택 개량에 도움이 된 측면이 있고요. 또 인도 전체 경제가 좋아진 것이 개선된 원인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그리고 수자타아카데미에 와서 몇 학년이라도 다녔던 청년들이 아이들 두서너명을 데리고 살게 되니까 아마도 집을 조금이라도 개선해서 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주거 문제는 옛날보다는 좀 좋아진 것 같습니다.nbspnbsp그러나 사람이 조금 더 깔끔하게 살아야 한다는 기준에서 볼 때는 아직도 굉장히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지원하는 그 경비가 주택을 짓기에는 부족한 돈이였고, 그마저도 관리를 할 줄 몰라서 병원비로 써버린다든지 결혼비용으로 써버린다든지 다른 용도로 써버림으로 해서 정부 지원이 주택 개량에 효과적이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정부도 지원을 하고 거기에 민간 단체가 조금 관여를 했으면 그 돈을 주택 개량에 조금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주택을 개량하는 것이 마을개발 사업 중에 중요한 하나의 사업인데 20년 정도 융자를 해준다고 하더라도 주택을 개량했을 때 주민들이 그것을 되갚기가 굉장히 어려워서 지금 20년째 제대로 손을 못 데고 있거든요. 그러나 정부 지원금이 7만 루피 정도 나온다고 한다면 한 3만 루피 정도 융자를 줘서 10만 루피 정도를 갖고 깔끔하게 집을 짓는 것은 해볼만하지 않겠느냐 싶어요. 예전에는 정부 지원금 없이 3만 루피를 갖고 집을 지으려고 연구를 하다보니까 현실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주택 조합 같은 것을 만들어서 정부지원금을 받는 사람은 JTS가 융자를 줘서 집을 지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이 가능할 것 같아요.nbspnbsp두 번째는 조그만 주택 건설회사를 하나 설립해서 건축 장비를 좀 가지고 있으면 개인들이 돈을 저렇게 낭비하지는 않지 않을까 싶어요. 콘크리트를 섞는 기계라든지, 지붕 슬라브를 칠 수 있는 장비들을 갖추고, 기술자들을 구성해서 주택을 건설하면 지금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 더 연구를 해보면 좋겠습니다.nbspnbsp다음은 도로 정비인데요. 주도로는 어차피 정부가 닦아나갈 것이기 때문에 괜찮은데, 마을 골목은 정부 지원이 어렵지 않겠나 싶어요. 그래서 골목 도로들을 벽돌로 포장할 수 있도록 쉬람단을 하고, 약간의 하수구를 낼 수 있게 설계를 해보면 마을이 주택 개량과 동시에 도로 정비까지 되게 되어서 좋을 것 같아요.nbspnbsp주택 개량에 있어서는 두르가푸르와 자그디스푸르를 시범 마을로 운영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럴려면 집들이 너무 자기들 마음대로 들어서 있잖아요. 그래서 이미 지어 놓은 집들은 거기에 맞추고, 흙으로 지은 집들은 다시 지을 때 주도로를 내고 땅을 규격있게 정비를 해서 주택을 짓도록 하면 좋겠어요. 새로 주택 개량을 한다면 도로와 집 짓는 평수를 규격화해서 하는 방법이 있어요. 그럴려면 나름대로 하수 정비도 필요하고요. 그 위에 주택을 다시 앉히는 방법이죠.nbspnbsp그에 따라서 집집마다 핸드펌프를 파주지는 못하지만 근거리로 열 집 단위로 핸드펌프를 파줌으로 해서 식수를 얻기 위해 멀리 가지 않도록 해주면 좋겠어요. 전에는 마을에 하나만 파줘도 너무나 고마워했는데 지금은 벌써 ‘물 푸러 가기가 너무 멀다’ 이런 요구들을 다시 하거든요. JTS가 파준 것인지 정부가 파준 것인지 따지지 말고 핸드펌프를 다 같이 수리해줘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정부가 핸드펌프를 팔 때의 문제점은 형식적으로 대충 파주고 가서 물이 제대로 안나오는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마을에 청년 조직을 만들어서 정부가 핸드펌프를 파줄 때는 제대로 파주도록 요구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누군가가 구글 지도로 마을 도면을 만들어서 집이 배치되어 있는 모습과 현재 핸드펌프 위치를 고려해서 핸드펌프에 대한 수요를 파악해보면 좋겠어요. 그래서 우선 급한 곳부터 연차적으로 핸드펌프를 파주는 것이죠. 그래서 핸드펌프 파주는 회사를 데려와서 한꺼번에 10개씩 20개씩 파주면 훨씬 싸게 할 수 있잖아요.nbspnbsp장기적으로는 작은 회사를 하나 설립해서 회사 안에 한 파트는 주택 개량을 맡고, 한 파트는 도로 정비를 하고, 한 파트는 식수 문제 해결을 위한 핸드펌프를 맡으면 좋죠. 이렇게 자체 건설회사를 가지고 포크레인, 트렉터 같은 것을 구비하고 있어야 하거든요. 이제는 도로 정비하고 집 짓는데 사람 힘만으로는 안되거든요. 원래 JTS는 사람을 고용하면 안돼요. 그래서 이제 이것을 분리시켜서 우리는 고용을 하지 않고, 관리 운영은 우리가 다 하지만 건설 쪽은 회사가 고용을 맡아서 하면 좋겠어요. 작은 건설회사를 하나 차리면 장기적으로도 수요가 많이 늘어날 겁니다.nbspnbspnbsp그리고 공동구매, 공동판매, 마을금고 이 세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어요. 특히 이런 명절 때처럼 수요가 많은 품목에 대해서는 마을 리더들과 공동구매를 해서 필요한 만큼 배분을 하면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을 거예요. 명절에는 뿌리를 가장 많이 만드니까 기름, 밀가루 이런 것들에 대해 시장조사를 해보면 도매를 구입했을 때 가격 차이가 많이 날 수 있어요. 이런 공동 구매의 문제는 일상 생활에서도 필요하지만, 집을 많이 지어야 하니까 건축과 관계되는 것, 농사를 많이 지으니까 비료라든지 농업과 관계되는 것도 공동 구매를 해서 배분할 수 있게 하면 좋겠어요. 일상적으로 하기 어려우면 행사 때나 명절 때만 한다든지 할 수 있습니다. 너무 작은 것까지 다 공동구매를 하면 동네에 있는 가게들이 저항을 할 수 있으니까 동네 사람들의 가게와 관계가 없는 큰 규모에서 공동 구매를 진행하면 좋을 것 같아요.nbspnbsp그리고 두 마을을 살펴보면 공동 판매할 물품은 없거든요. 노동해서 소비하는 사람들이여서 자기가 생산한 것을 팔 것이 없어요. 오늘 자그디스푸르에 가보니까 소가 아주 많던데 그런 경우에는 우유 같은 것은 공동판매를 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아요. 토마토나 감자도 땅이 건조해서 잘 안되는 것 같고요.nbspnbsp▲ 마을개발 담당자 최동호님nbsp카드 발급 문제는 몇 개월 계획을 잡아서 과거 카드와 비교해서 전부 집집마다 방문해서 확인을 다시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분가의 원칙을 정해야 합니다. 자녀가 결혼했을 때,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아이가 생겼을 때 각각에 대해 분가를 어떻게 해줄지 원칙이 필요합니다. 마을 리더가 분가 신청을 받아주는 것도 이해에 관계되잖아요. 그래서 특혜를 줘서 어떤 집은 지나치게 세분화해줄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새로 조사를 다 해서 카드를 갱신해 줘야 할 것 같아요.nbspnbsp그리고 집집마다 소득 수준을 조사해서 적어도 상중하 정도는 나눠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상중하로 나누어서 카드 색깔을 달리해서 상황에 따라 달리 지원을 하는 겁니다. 오늘처럼 식량 같은 경우는 ‘상’ 정도에는 나눠줄 필요가 없거든요. 흉년이 들었을 때는 ‘하’ 정도만 나눠준다든지 하는 게 필요할 거 같아요. 지금까지는 무조건 똑같이 나눠줬는데 오늘 방문을 해보니까 여기도 이제 빈부격차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nbspnbsp이곳에 한국에서 의료봉사를 온다면 어떤 수요가 많을까요? 이빨을 보니까 치과 수요는 엄청나게 많을 것 같네요. 그리고 언챙이는 별로 없는데 백내장은 많은 것 같네요. 또 아까전에 애기를 낳다가 문제가 생겨서 입원해 있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지이바카 병원에 조산원 같은 것이 있어서 애기 낳을 때 연락하면 산파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nbspnbsp▲ 병원 파트 담당자 박종화님nbsp현재 결핵 퇴치는 이제 2명만 남았네요. 저체중아를 지원하고 있고, 까미스와르지가 이동진료 하고 있고요. 그런데 지금 동네 마다 집에서 야매로 진료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이것은 지금 우리 병원이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얘기인 건가요?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낮에는 일을 해야 하니까 밤에 진료를 받아야 해서 그런지, 실력이 좋아서 그런지 그 이유를 한번 파악해 보세요. 이걸 알아야 병원이 보건소 역할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주민들의 수요를 알 수 있거든요. 만약에 야매 진료 받는데에 100루피가 든다면, 우리 병원에서는 무료로 해줄 수가 없는 경우라면 30루피에 치료를 해줄 수 있으면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잖아요. 그래서 꼭 의사가 파견되지 않더라도 병원 경영을 효과적으로 잘 해서 주민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든요.nbspnbsp그리고 제가 한국에 2,3년 안에 JTS가 관활하는 병원을 하나 만들려고 해요. 한국은 과잉진료가 심하니까 병원을 믿을 수가 없거든요. 또 외국인 노동자들처럼 보험 혜택을 못받는 사람에 대한 의료 수가가 워낙 높아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도 하고, 또한 한국에 병원이 있어야 여기 인도에 물자를 보내거나 하는 것이 수월할 수 있어요. 또 외국에는 간호사나 약사들이 은퇴한 사람들이 많아요. 65세에 은퇴를 해도 요즘은 다들 건강하니까 여기 와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아직도 열네살 열다섯살이 되었는데 학교에 안가고 자란 청년들이 있네요. 그리고 초등학교 졸업하고 아직 결혼 안 간 여자 아이들을 학교에서 적당하게 훈련시킬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초등학교 졸업하면 돌을 깨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돈을 벌잖아요. 그런데 여자 아이들은 전혀 돈을 버는 일이 없잖아요. 미싱 교육을 시키든 하면 시집가기 전에 한 3년 정도는 안정되게 일을 시킬 수 있거든요. 그래서 약간의 직업 교육을 이곳에서 시행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고등학교 가기 위한 중학교가 아니라 직업교육을 시켜주는 중학교를 개설하면 좋겠어요. 한 1년 정도 직업교육을 해서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차원이라면 계속 교육을 시켜줄 수 있잖아요. 영어 교육을 해주든, 글쓰기 교육을 해주든, 컴퓨터 교육을 해주든 취직을 위해서 해주면 써먹을 수가 있는데, 그냥 교육을 시켜주면 나중에 써먹을 데가 없거든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통해서 문맹 퇴치는 어느 정도 성공을 했는데, 그 이후에 기술학교나 노동학교는 계속성을 가지지 못했거든요.nbspnbspnbsp대학 가는 아이들은 결국 이 동네를 떠날 아이들이잖아요. 오히려 초등학교 4학년 5학년까지만 다니다가 그만두고 자란 청년들을 중심으로 마을 청년회를 구성하고, 청년회가 중심이 되어서 주택 개량 사업이든 마을 금고 사업이든 공동 구매든 진행하면 좋겠습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아이들의 진로를 위해서는 가야와 보드가야 사이의 도시 외곽에 신식 슈퍼마켓을 하나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주요 고객은 오토바이나 자가용이 있는 사람입니다. 고등학교 못 간 아이들을 훈련시켜서 슈퍼마켓에서 진열, 판매, 관리를 하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인도의 발전 속도를 보면 반드시 도시 외곽에 있는 슈퍼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거든요. 그리고 가야와 보드가야에 수자타아카데미를 지원해주는 후원그룹을 유지들로 구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것들이 백그라운드에 있어 주면 강도나 깡패들의 횡포를 막는 역할도 해주거든요. 그리고 학교가 장기적으로는 자립 구조가 되어야 하거든요. 또 공동구매, 공동판매를 하다보면 틀림없이 이해관계 때문에 충돌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백그라운드가 있어야 합니다. 당장 급한 건 아니지만 이런 것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처녀들이나 부녀들은 외부로 못나가니까 마을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주면 좋습니다.nbspnbsp오늘 두 개 마을을 둘러보면서 느낀 점은 이런 정도인데, 핵심은 젊은 청년회 조직, 젊은 부녀회 조직,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하고 시집 안 간 아이들에 대한 훈련, 이런 것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더 연구하면 좋겠습니다. 학교 운영은 여학생들을 위한 직업 훈련 학교를 검토해보고요. 학교 전체 사업은 더 살펴보고 의논해 봅시다.”nbsp스님께서 주택 개량, 도로 정비, 식수 사업, 병원 운영, 학교 운영 등 전반에 대해서 많은 아이디어들을 들려주셔서 활동가들 모두 깊이 공감하고 새로운 과제들을 받아 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을을 다닐 때는 잘 몰랐는데, 스님 말씀을 듣고 나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정말 많구나 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지금까지 마을주민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연구하고 고민해 오셨는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평가회의를 마치고 간단히 내일 일정에 대해 의논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6시에 수자타아카데미를 출발하여 자전거를 타고 라즈길까지 갈 수 있는 만큼 가다가 다시 돌아올 예정입니다. 스님께서는 20년 전부터 텐트를 메고 자전거를 타고 부처님이 가신 길을 따라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부처님과 관련된 전설을 모아봐야겠다는 계획을 세우셨는데 아직까지 실행에 옮겨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길게 인도에 온 만큼 내일 하루 시간을 내어 일부분이나마 시도를 해보시려고 하셨습니다. 내일 또 생생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nbspnbsp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nbspnbsp
2015.3.2~3 인도 1일째 한국인 활동가 법회
▲ 인도JTS 한국인 활동가 법회nbspnbsp안녕하세요. 3월2일 한국 인천공항을 출발한 스님께서는 3월3일 인도 가야에 도착하셔서 둥게스와리 마을 수자타아카데미로 들어가셨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한지 1일째인 오늘, 스님께서는 이곳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인 활동가들을 위해 법회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2일 오전7시에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에 참석하셔서 김명혁 목사님, 김대선 교무님, 김홍진 신부님, 박경조 주교님, 박남수 교령님과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 문제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시고 종교인 모임의 역할에 대해 의논하셨습니다. 이어서 오전10시에는 윤여준 전 원장님과 교육원 운영에 대해서, 12시에는 기획위원회 회의를 오후4시까지 연달아 가지셨고, 오후4시에는 비자 발급 업무로 한국에 잠깐 귀국한 필리핀JTS 김희자님이 스님께 인사를 하러 찾아와서 지난주에 파견된 행자님들이 잘 도착했는지 안부를 물으시고 격려도 해주셨습니다.nbspnbsp이어서 오후4시30분에는 김명혁 목사님이 회장으로 계신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서 오는 13일에 nbsp‘3.1정신을 이어받아 남북한의 평화통일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종교인의 사명과 역할’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는데 스님께서 인도에 방문하셔서 참석하지 못하는 관계로 대신 발표 내용에 대해 영상 촬영을 하셨습니다.nbspnbsp오후5시30분에는 지난 일주일 동안 전국으로 정초법회를 연이어 다니시느라 목을 많이 무리하셔서 이비인후과에 들러 진료를 받으셨습니다.nbspnbsp오후6시에는 인도로 출국하시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가셨습니다. 인도JTS 활동가들에게 전해줄 짐을 수하물로 다 부치고 나니 시간 여유가 생겨 스님의 하루 원고 교정을 보시다가 오후9시20분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출발하셨습니다.nbspnbsp5시간 55분을 비행한 후 현지 시간으로 3일 새벽1시20분에 방콕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밤이 깊어서 그런지 늘 인파로 북적이던 방콕공항이 너무나 한산했습니다. 가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려면 12시간을 공항에서 더 기다려야 해서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공항에서 숙박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공항이야 말로 최고의 호텔이지” 하시며 의자에 몸을 눕히신 채 그대로 잠을 청하셨습니다.nbspnbsp▲ 방콕 공항nbsp의자 위에서 단잠을 자다가 갑자기 주위에 사람들 목소리가 웅성거려 일어나 보니 아침 해가 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시계를 보시더니 “늘 시간에 쫓기는데 비행기 시간이 이러니까 시간이 남아도는 일도 생기네”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그리고 “왜 이렇게 공항에서 잠을 자보냐면 내년부터는 주로 이 비행기로 인도성지순례를 갈거거든. 내가 직접 여기서 자봐야 어떤 문제점이 생기는지 파악할 수 있지” 하시며 공항에서 잠을 청하신 이유를 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의자에서 자보니까 좀 불편하네. 은박지를 가져와야 바닥에서 편안하게 잘 수 있겠다” 하시며 공항 이곳저곳을 둘러보시고 대중들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불편함이 없을지를 연구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법문하실 때 대중들을 인솔하는 지도자는 사전답사를 꼼꼼히 해야함을 자주 말씀 하셨는데, 스님께서 보여주시는 모습도 말씀 그대로였습니다.nbspnbsp12시간 동안의 공항 체류를 끝내고 다시 비행기에 탑승해 12시40분에 방콕을 출발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늘 저가항공을 타고 다니시는데 이번 가야행 비행기 탑승석은 맨 끝좌석이여서 의자가 젖혀지지가 않고, 앞좌석과의 간격이 너무 좁아서 다리를 온전히 펼 수가 없었습니다. 접이식 책상을 펴고 서류를 얹으니 이마가 앞좌석에 닿았습니다. 이 자세로 어떻게 3시간20분 동안이나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스님께서는 무릎을 앞좌석 밑으로 넣으신 채 단잠을 주무셨습니다.nbsp▲ 방콕에서 가야로 가는 비행기 안nbsp오후2시30분에 가야 공항에 도착해 수하물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인도JTS 활동가 최동호님, 김신아님과 방금 전 델리에서 가야 공향에 도착한 보광 법사님, 쁘리앙카님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스님께 합장하며 인사를 드린 후 승합차 2대에 나눠타고 수자타아카데미로 향했습니다.nbspnbsp▲ 가야 공항nbsp전정각산이 보이고 둥게스와리 마을 입구에서 수자타아카데미로 들어가는데, 대부분의 길이 도로 포장을 하기 위해 길이 넓혀져 있었고 어떤 구간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곳도 있었습니다. “둥게스와리에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가 생기다니..” 하며 놀라워 하고 있는데 스님께서는 “이렇게 되면 앞으로 관광객은 점점 더 많아지고 또 구걸하는 사람은 더 많이 몰려오지” 하시며 걱정을 내비치셨습니다.nbspnbsp▲ 둥게스와리 마을 입구에 드러선 아스팔트 도로nbsp아니나 다를까 최근 인도 정부에서는 전정각산을 관광지로 개발하려고 수자타아카데미 바로 옆에 큰 건물과 공원을 지을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해서 보니 벌써 담벼락 앞에 건물을 짓기 위한 기초공사가 이미 진행 중에 있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담벼락을 경계로 건물을 짓기 위해 기초 공사가 진행 중인 모습nbsp스님께 “앞으로 둥게스와리에 호텔이 생길 수도 있겠네요” 라고 물어보니 스님께서도 “그렇지” 라고 하셨습니다. 개발의 물결이 들이닥치면 앞으로 둥게스와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많은 걱정이 되었고, 또 이에 따라서 인도JTS의 사업은 어떻게 변해나가야 하는지 염려가 되었습니다. nbspnbsp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한 스님 일행은 간단히 짐정리를 한 후 오후4시에 모두 법당에 모여 서로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스님께서 불상을 향해 삼배를 올리셨고, 이어서 활동가들 모두가 스님께 삼배를 올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아픈 사람은 없어요?” 라고 안부를 물으셨고, 활동가들 모두 “없습니다” 라며 우렁차게 대답했습니다.nbspnbsp▲ 서로 맞절을 하는 기존 활동가들과 새로 파견 온 활동가들nbsp이어서 기존 활동가들과 이번에 새로 파견된 행자대학원 9기 행자님들과 보광 법사님, 쁘리앙카님이 서로 맞절을 했습니다.nbspnbsp▲ 인도에서 1년간 파견 근무를 하게 된 행자대학원 9기 정유진, 김미정, 김민경, 박영민, 강명희, 신애남 행자님, 그리고 인도 사업 책임자로 파견을 온 보광 법사님과 쁘리앙카님nbspnbsp▲ 현재 인도JTS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신아님, 마을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최동호님, 시설을 맡고 있는 주연우님, 지이바카 병원 담당자 박종화님, 학교와 유치원을 담당하고 있는 권도영님, 회계와 총무를 맡고 있는 신예슬님nbspnbspnbsp그리고 인도인 교사들이 와서 스님께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께서는 다들 잘 지냈는지 안부를 물으신 후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쁘리앙카님이 이번에 같이 왔다”고 소개하자 인도인 교사들은 축하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새로 파견된 활동가들도 인도인 교사들에게 각자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새로 파견온 한국인 활동가들과 인도인 교사들은 서로 맞절을 하며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 서로 맞절을 하고 있는 새로 파견을 온 한국인 활동가들과 인도인 교사들nbsp또 인도인 교사들은 모두 어릴 때 쁘리앙카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인데 8년 만에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온 쁘리앙카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 8년 만에 돌아온 쁘리앙카님에게 삼배를 올리는 인도인 교사들nbsp이렇게 기존 활동가들, 새로 파견 온 활동가들, 인도인 교사들 모두는 설레이기도 하고 조금은 어색하기도 한 첫대면식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더 자세한 소개는 수련을 같이 하면서 나누자고 하시며 짧게 대면식을 마쳤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주로 머무시는 이번 3월까지는 이곳 소승불교의 계율에 따라 오후 불식을 하시기로 하셔서 활동가들이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스님께서는 학교 주위를 산책하시며 공간 사용에 대한 점검을 하셨습니다.nbspnbsp오후6시45분부터는 한국인 활동가들을 위해 스님께서 법회를 해주셨습니다. 활동가들이 삼귀의, 반야심경, 청법가, 삼배로 스님께 법을 청하자 스님께서는 정토회의 설립 취지에서부터 시작해서 인도에 파견 온 활동가들은 어떤 마음 자세로 지내야 하는지, 스님께서 머무시는 이번 20일 동안 어떤 것을 주안점으로 살펴봐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nbspnbspnbsp“부처님께서 6년 간 수행하신 이곳 전정각산 아래 전정각사에서 인도 달력으로 새해를 맞을 즈음에 이렇게 다시 만나 이야기할 수 있어 참 좋네요. 제가 인도에 많이 다녔지만 인도의 설날에 있어본 것은 처음인 것 같네요.nbspnbsp오늘은 한국에서 9기 행대생 중에 6명이 1년 동안 봉사하려고 왔고, 쁘리앙카 시스터가 인도를 떠난지 8년 만에 다시 인도로 돌아왔습니다. 또 장도연 행자님이 3월1일날 법사 수계를 받고 보광 법사님이라는 법호를 받아서 인도로 파견 왔습니다. 또 김신아님은 여기서 8년 동안 근무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렀고, 최동호님은 올해로 4년째 일하고 있고, 주연우님은 3년째 일하고 있고, 권도영님은 1년 6개월째 일하고 있고, 박종화님은 1년 5개월째 일하고 있고, 신예슬님은 6개월이 되었네요. 이렇게 해서 오늘 우리가 만났습니다.nbspnbspnbsp정토회가 설립되고 27년이 지났고 우리가 만일결사를 시작한지도 22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어떤 법문을 하더라도 늘 한결같이 ‘우리는 수행자로써 봉사도 하고 사회활동도 하는 것’이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학교를 짓고 병원을 세우고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수행자여야 합니다. 수행자는 첫째, 자기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는 것에 가장 큰 비중을 두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자기가 감당을 못합니다. 그래서 늘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잖아요. 사람이든 신이든 자기 밖의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요. 돈 좀 많이 있는 사람과 만나서 혜택을 좀 볼까, 성격 좋은 사람 만나서 위로를 좀 받을까 그러는데 이것은 자기가 자기 인생을 못산다는 얘기예요. 저 산에 있는 토끼나 노루도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데 사람이 되어서 자기가 자기 인생도 못 살고 늘 누구에게 의지해서 껄떡거리며 살아요.nbspnbsp그러니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입니다. 수행은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남탓하거나 의지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nbspnbsp두 번째는 세상 사람들이 다 도와달라고 아우성이니까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든, 물질적으로 도움이 되든,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든, 아픈 환자를 치료해주든, 배고픈 사람에게 밥 한 숟가락을 주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하나 주든, 어리석은 자를 깨우쳐주든 남한테 도움을 주는 자가 되자는 것입니다.nbspnbsp그러니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첫째 내 인생은 내가 산다는 것을 기본에 깔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못 먹는 사람들에게 밥도 좀 주고, 옷 없는 사람들에게 옷도 좀 주고, 아픈 사람 치료도 해주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 공부 좀 하도록 해주자 이런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하면서 괴로워 죽겠다고 하면 수행자라는 기본 바탕이 무너진 것입니다. 기초는 수행으로 쌓고 그 위에 봉사의 탑을 하나씩 쌓자 했는데 탑을 쌓기는커녕 지반이 무너진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파견을 오든 어떤 경우에도 항상 수행을 기초로 해야 한다고 계속 얘기하지만 소귀에 경읽기입니다.nbspnbspnbsp남을 돕는 것은 플러스 알파에 해당하기 때문에 역량이 되면 하고 역량이 못되면 못하는 겁니다. 최선을 다하되 역량이 되는 만큼 하는 것이지 역량이 안되면서 더 많은 일을 하려는 것은 욕심입니다. 욕심을 내는 것은 수행이 아니예요. 그러면 괴로워집니다. 내 능력은 다섯명 밖에 못 돕는데 어려운 사람이 열명이나 있다고 하면서 밤잠 못자고 울고 있으면 일반 세상에서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지 몰라도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수행이 안된 사람입니다. 수행자는 다섯명 밖에 도울 능력이 없으면 다섯명을 돕고, 앞으로 다섯명을 더 도와야 한다면 어떻게 더 도울 수 있는지 연구를 해서 능력을 키우는 사람입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우는 사람이 수행자가 아닙니다.nbspnbsp우리는 수행자로써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항상 자기를 돌이켜서 자유와 행복으로 나아가도록 끊임없이 살피고, 그 다음에 이웃과 세상에 보탬이 되도록 재정적인 보시를 하든, 재능을 가지고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발우공양을 하거나 절을 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고 수행자들이 모여서 수행을 하면서 그 다음에 봉사를 해나가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곳에 온 것은 봉사를 하러 온 것이 아니고 수행을 하러 와 있다는 것을 명심하셨으면 합니다. 더군다나 이 곳은 부처님이 깨닫기 전에 수행하신 곳이고, 부처님이 깨달은 곳이고, 부처님이 깨닫고 교화하신 곳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수행상, 성도상, 설법상 이렇게 삼존불을 모신 것이예요.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안 전정각사에 모셔진 삼존불nbsp그러므로 이곳은 수행도량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곳은 수행자로써 수행을 하면서 어려운 사람을 돕기만 하면 되는데, 이곳은 그 일도 하면서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수행의 길을 열어주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즉 불법을 공부하고 수행할 사람을 안내하는 역할까지 앞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곳은 그런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 법인을 두 개를 설립했습니다. 하나는 어려운 주민을 돕는 인도JTS이고, 다른 하나는 수행자의 길을 열어주는 인도정토회입니다.nbspnbsp이제는 여기도 문경공동체 살이와 똑같이 수행도량으로 가꾸어가야 합니다. 낮에는 밖으로 나가서 병원과 학교 운영, 마을개발을 하고, 저녁에는 돌아와서 정진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을개발이든 학교든 병원이든 운영한다고 하면서 괴롭다고 껄떡거리고 울면 수행자가 안된 것입니다. 수행한답시고 여기 앉아서 절만 하고 책이나 보고 있고, 마을 주민들이 아파서 죽는다고 해도 그런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핸드펀프가 고장난지 한달이 넘었는데도 모르고 있으면 이것은 보디사트바가 아닙니다. 대중에 대한 아무런 연민이 없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내내 그런 일들만 하러 다니고, 자기를 돌아보는 것도 없고, 힘들다고 울고, 말 안듣는다고 인도 사람들에게 화내면 이것은 수행자가 아닙니다. 여기 온 목적은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것인가 늘 연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는 나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늘 보면서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일과 수행의 통일입니다. 이런 과제를 안고 정진을 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nbsp이번에 3주 동안 머물면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고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본 후에 지금까지 해온 일들 중에서 어떤 일이 정말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당장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그것이 꼭 도움이 된다고는 볼 수 없어요. 미래의 방향은 가난하지만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행복한 사람, 내가 살고 있는 이 마을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 부자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이곳에 와도 그들은 삶이 헐떡 거리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들에게 위로를 주는 사람, 이런 수행자의 지향에 맞는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저의 꿈이예요. 마을개발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성장 속도에 뒤쫓아가는 그런 마을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닙니다. 아이들 공부시켜서 대학에 보내 돈에 껄떡거리며 살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수행자이잖아요. 우리는 그런 것이 다 주어졌지만 다 버리고 여기 와서 있는데, 그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뭐가 그리 좋다고 우리가 버리고 온 것을 다시 먹으라고 줄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nbspnbsp당장 아픈 사람들이나 굶는 사람들에게는 약을 주고 밥을 줘야 하겠지만, 어떻게 사람들이 수행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도 서로 협동하고, 가난하지만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런 마을을 만들 것인가? 이런 목표의식을 뚜럿이 갖고 마을을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을에 가서 길이 지저분하니 길을 닦자, 집이 부서졌으니 집을 고쳐주자, 아이들 공부시켜서 취직시켜주자, 이렇게 몇 년을 했는데도 잘 안된다고 ‘한 것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수행자적 관점도 확실하지 않고, 그런 관점에서 개발한 어떤 모델도 아직 없다 보니까 늘 서구에서 해왔던 또는 기존 단체들이 해왔던 모습들이 늘 우리에게 모델이 됩니다.nbsp그래서 앞으로 정토회에서는 첫째, 수행적 관점이 잡힌 서원행자 이상은 누구나 이곳에 와서 살 수 있고, 발심행자는 그렇게 살겠다고 약속은 한 사람들이니까 이런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봉사를 하게 할 계획입니다. 두 번째는 일반인들이 와서 봉사를 하겠다고 하면, 이곳에 행자원을 만들어서 행자원에 소속되어서 봉사를 하게 할 계획입니다. 수행자들을 모아서 수행하면서 봉사를 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봉사만 하기 위해서 온다, 이것은 이제 허용이 안됩니다. 이제 여기는 수행도량이니까 하루를 살더라도 수행자로 와서 살면서 봉사를 해야 합니다.nbspnbspnbsp앞으로 이곳은 수행도량이 되는 공동체로 운영합니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수행자적 원칙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늘 같이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학교를 운영하거나 병원을 운영하거나 마을개발을 하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세속적인 욕망을 끊임없이 추구하는데 도와주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정말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끊임없이 보장해주는 것이 복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 힘든 사람들은 도와주어야 하겠지만, 여기에 참여하는 많은 주민들이 이러한 가치관을 갖도록 여기서 훈련이 되어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물질에 껄떡거리는 주민들을 보고 ‘저건 안된다’ 하면 여러분들은 자비심이 없는 것이고, 불쌍히 여겨서 하자는 대로 자꾸 주기만 하면 여러분들은 JTS 사업의 원칙을 놓친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수행을 해야 중심을 잡아나갈 수 있습니다. nbspnbsp이제 우리는 힘을 합쳐서 첫째, 우리가 수행 정진하고, 두 번째는 학교도 인도 정부 학교가 생기니까 현실을 감안해서 어떤 학교는 하고 어떤 학교는 안할 것인지, 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할 것인지 검토가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 병원도 너무 욕심을 내어서도 안되고 너무 방치해도 안되고 병원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짓고 운영할 것인지, 네 번째, 마을개발도 우리가 지향하는 것들을 마을 주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사업은 어떤 것인지 검토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개발에 대해서는 인도 정부가 우리보다 100배의 힘으로 밀고 들어올 겁니다. 그렇게 개발이 되면 남이 와서 보면 마을이 개발이 되었지만 정작 마을 주민들은 개발업자들의 하인으로 전락되어 그 이익이 주민들에게는 하나도 돌아와 있지 않거든요. 한번 개발이 시작되면 이 흐름을 막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이제 마을에 도로가 들어오고 상가가 들어서고 관광객이 몰려오면 땅값이 오르고 주민들의 민심이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대응하면 아직은 여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공부한 아이들이 마을마다 몇 명씩 배치되어 있으니까요.nbspnbsp그러니 20일 있으면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도 전체적으로 한번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 봅시다. 처음에 이 마을에 와서 발원을 한지 20년이 지났고, 이것을 기초로 해서 다음 20년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계획을 세워 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이 지역의 변화나 인도 경제의 변화를 예측하면서 다음 20년이 지나서 돌아봤을 때 ‘그 때 우리가 준비를 제대로 했었다’ 이렇게 되어야 하거든요. 이번에 방향을 세운 것이 앞으로 20년 계획의 기초가 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nbsp스님께서는 목이 많이 잠기셨음에도 불구하고 2시간 동안 자상하게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수행공동체로 가꾸어나가야 한다는 것, 마을개발을 하더라도 공동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어떻게 지원을 할지 등에 대해 조목조목 큰 과제들을 던져 주셔서 관점을 분명하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이번에 새로 법사 수계를 받고 인도JTS 책임자로 파견되어 수행공동체를 가꾸어나가는 일과 JTS 사업을 함께 이끌어줄 보광 법사님에게 공동체 대중들 모두 삼배의 예를 올렸습니다.nbspnbsp▲ 보광 법사님에게 삼배를 예를 올리는 대중들.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내일 일정에 대해 간단히 의논을 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주위 마을인 두르가푸르의 108가구와 자그디스푸르의 143가구를 모두 다 방문하시면서 주민들의 이야기도 듣고, 생활 모습도 직접 다 둘러보실 예정입니다. 그리고 인도의 새해 명절인 홀리데이를 맞이하여 방문하는 집집마다 쌀 20kg씩을 나눠주고 저녁에는 현지 활동가들과 평가회의를 갖습니다. 내일 또 생생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2015.3.1 삼일절 기념식 및 법사수계식
▲ 제4차 정토회 법사수계식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제96회 3.1절 기념법회 및 정토회 법사 수계식이 용성 진종조사 탄생성지인 전북 장수 죽림정사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특히 올해는 분단 70년이 되는 해인데 전국의 정토회 정회원들이 모여 독립운동을 했던 선조들의 얼을 되새기며 통일한반도를 향한 힘찬 출발을 발원하는 날이기도 하고, 또 정토회가 이 땅에 불교 중흥을 발원하고 창립된지 22년 만에 법사 수계식이 열리는 날이기도 해서 더욱더 뜻깊은 날입니다.nbspnbsp이런 기쁜 날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 전국에서 정토회 정회원 700여명이 아침 일찍부터 먼 길을 달려와 함께 했습니다. 특히 3.1절 기념법회에는 평화재단에서 통일의병 활동을 하고 있는 30여명과 우리나라에 백용성 부대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장병 30여명도 함께 자리해 큰 박수와 환영을 받았습니다.nbspnbsp또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 신봉수 이사님, 정문엽 이사님, 광주 선덕사 행법스님, 남원시 국회의원 강동원님, 장수군 번암면 차주호 면장님, 신라불교 초전 법륜성지 아도 모래원 신영근 추진위원장 등이 함께 하셔서 자리를 빛내 주셨습니다. nbspnbsp먼저 오전9시30분부터는 3.1절 기념법회가 열렸습니다. 스님께서 죽림정사 조실인 도문 큰스님을 모시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오자 대중들은 모두 일제히 일어났고, 이어서 삼귀의, 반야심경,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 영령에 대한 묵념 순서로 여법하게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3.1 독립만세운동 민족 대표 33인께 헌화를 했습니다. 참석한 내빈들은 차례대로 앞으로 나와 개인의 안위보다는 조국과 민족을 먼저 생각하신 천도교 대표 손병희, 기독교 장로회 대표 길선주, 기독교 감리회 대표 이필주, 불교계 대표 백용성 등 민족대표 33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에 꽃을 한 송이씩 올렸습니다.nbspnbsp다음은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 신봉수 이사님이 나오셔서 3.1절 경과보고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 신봉수 이사님nbsp용성 진종조사는 나라를 잃고 6여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조선왕조 시대에 3정승과 6판서 8도감사 360고을 수령방백을 지낸 이들이나 그 아들을 만나 독립운동에 앞장서거나 후원자가 되어줄 것을 간청하였지만 응하는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민족대표 33인을 설득하여 경성 종로 인사동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삼창을 하게 하여 조선총독부 경찰에게 체포 구금이 되도록 함으로써 이 소식은 2천만 동포에게 전해저 전국민이 독립운동의 물결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됩니다. 신 이사님은 이외에도 용성조사님의 독립운동을 위한 보이지 않는 많은 업적들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이어서 용성조사님의 적법손이요, 정법안장 석가여래부촉계대법 제77세이시며, 용성조사 탄생성지 죽림정사의 조실이시며, 법륜 스님의 은사 스님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께서 나오셔서 1919년 당시에 낭독되었던 기미독립선언서를 우렁찬 목소리로 직접 낭독해 주셨습니다. 특히 큰스님은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하게 발표하라”는 공약삼장 부분을 대중들이 함께 따라할 것을 요청하시며 다시한번 당시 선조들의 기상을 느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nbspnbsp▲ 기미독립선언서를 우렁차게 낭독하는 도문 큰스님nbsp그리고 ‘조선의 독립은 조선 사람의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과 중국으로 하여금 평화를 가져오게 하고 세계 평화와 인류의 행복에도 필요한 일’이라는 구절을 들으면서는 이것은 비록 당시에는 독립운동이었지만, 지금의 분단된 현실에서는 통일이 곧 그러한 일임을 되새겨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독립선언서 낭독을 마치시고 큰스님께서는 대중들에게 만세삼창을 다같이 크게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대한독립 만세 남북통일 만세 세계평화 만세” 힘차게 만세삼창을 하고나니 마치 당시의 그 모습으로 다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nbspnbsp▲ 도문 큰스님의 선창에 다같이 만세삼창을 외치는 대중들nbsp다음은 청년들이 나와서 ‘삼일절 노래’와 용성조사께서 직접 작사하신 ‘온겨레의 노래’를 힘차게 불렀습니다. 노래를 부르며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인 1919년 3월 1일, 96년 전 그날의 선조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nbspnbsp▲ 온겨레의 노래를 힘차게 부르는 청년들과 대중들.nbspnbsp이어서 죽림정사 주지이시고 정토회 지도법사이신 지광당 법륜스님이 나오셔서 3.1절 기념사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안녕하세요. 아침에 눈이 많이 오고 날씨도 추운데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곳까지 와주셔서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기미3.1독립선언이 있은지 9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이제 100주년을 맞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10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분단 70년의 역사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직도 미완성의 독립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나라가 일본에 빼앗기고 식민 지배 하에 있는 것도 큰 고통이었지만, 나라가 두 동강이 나고 분단 70년의 고통도 그에 못지 않은 큰 고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통일은 커녕 평화마저도 위태로운 남북 대결 국면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3.1운동 96주년을 맞는 우리들은 기쁘기 보다는 아픈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nbspnbsp지금으로부터 96년 전 1919년 3월1일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한 이후로 전국 방방곡곡에서는 독립만세운동이 요원의 물결처럼 일어났습니다. 일본은 조선을 지배한지 10년 정도 지나자 이제 조선 백성들이 일본 천왕을 모시고 그 지배를 받아들이는양 생각을 했는데 전혀 뜻하지 않게 2천만 동포가 하나같이 일어나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니 너무나 놀랐고, 그런 놀란 가슴에 이런 비폭력적인 운동을 가장 무자비하고 폭력적으로 진압을 했습니다. 수많은 재산이 불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상이 되고 감옥으로 갔습니다.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만 우리 국민들은 거기에 굴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1919년 한해 동안 nbsp여기저기 끊임없이 만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에는 경상도니 전라도니 함경도니 평안도니 하는 지역적 차별도 없고, 양반이니 쌍놈이니 하는 계급의 차별도 없고, 남자니 여자니 하는 성적 차별도 없고, 기독교니 불교니 하는 종교 차별도 없이 조선 백성이면 누구나 다 한마음이 되어서 민족의 염원인 독립만세를 불렀습니다.nbspnbspnbsp역사란 것은 늘 드러난 것만 갖고 얘기를 합니다. 이렇게 국민의 염원에 불을 지르고 독립운동이 전국민적으로 일어난 그 불씨는 3월1일 민족대표들이 독립을 선언한 것이지만, 그 어떤 것도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나오듯이 저절로 시작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3.1독립선언이 있고 난 이후의 드러난 현상만 갖고 얘기합니다만 그에 못지 않게 아니면 그보다 더 많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준비 기간이 있었습니다. 봄이 되어 날이 따뜻해지고 봄비가 내리면 싹이 트고 자랍니다. 봄비와 따뜻한 기온이 싹을 틔운 것 같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온 겨울 땅속에서 견뎌낸 씨앗이 있기 때문에 이런 봄을 맞아서 싹이 돋아난 것입니다. 바로 3.1운동에서도 이 씨앗과 같은 역할을 누군가는 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그 짧은 시간에 모일 수 있으며, 어떻게 국민들이 일시에 독립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겠습니까?nbspnbsp이를 위한 씨앗과 같은 역할을 하신 분이 독립운동가 백용성 조사이십니다. 조사께서는 조선조 500년 동안 나라의 녹을 먹고 그 혜택을 입고 온갖 이익을 보고 권세를 누린 고위관료로부터 지방관리까지 찾아갔습니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열성적으로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일을 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하시고 그들을 찾아다니고 그들이 돌아가셨으면 그들의 후손까지 찾아다니시면서 그 은혜를 갚을 것을 호소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사께서는 나라로부터 아무런 혜택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나라의 주인은 백성들이고 이제는 백성들이 일어서지 않으면 나라를 되찾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보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뜻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생존에 급급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서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 중간인 나라로부터 혜택은 못 얻었지만 조금은 먹고 살 만하고 국제 정세도 알만한 지식인 계층인 종교 지도자들을 찾아갔습니다. 전 민족 운동이 되게 하려면 모든 종교가 크든 작든 다 참여해야 한다고 보시고 천도교, 기독교, 불교 세 종교가 힘을 모으도록 보이지 않은 많은 역할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의 준비가 있었기에 그런 결과가 있었던 것입니다.nbspnbspnbsp올해로 분단 70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온갖 사회적 갈등의 그 밑바닥에는 분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 분단 극복 없이 민족의 번영은 어렵습니다. 성장은 둔화되고 국제 환경은 중국의 부상으로 미묘하게 다시 큰 세력 사이에서 분단고착화가 될 수 있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남북 갈등이 심화되니까 북한으로부터의 방위라는 명목으로 우리를 36년 간 지배한 일본과도 군사협력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려도 아무 반대도 없이 넘어가지 않습니까. 남북 갈등이 전쟁을 초래할만큼 긴장이 되니까 일본과의 군사협력까지도 우리가 용인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조금 더 진척이 된다면 결국 남한은 미일 군사동맹체제 하로 들어가고 북한은 중러 군사동맹체제 하로 들어가서 우리는 또 강대국의 앞잡이가 되어서 새로운 갈등 상황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북한은 굶어 죽으면서도 군사비를 확충하고, 남한은 복지비의 수요가 많은데도 군사비 증강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런 시기에 3.1독립선언서에 나온 것처럼 우리는 전국민의 뜻을 모아서 ‘우리의 살 길은 통일이다. 통일만이 우리 민족의 기상을 바로 세우는 길이고, 민족의 번영을 추구하는 길이고, 북한 동포들의 굶주림을 신속하게 nbsp해결하는 길이고, 북한의 침해된 인권을 하루 빨리 개선하는 길이고, 남한의 제 갈등을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길이다’ 하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nbspnbsp그러니 오늘날 우리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의병 정신을 계승해서 이제는 나라의 통일을 위하는 통일 의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또한 이름을 내지 않고 보이지 않게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있었기에 통일이 이루어졌지만 역사적으로는 정부나 누가 나서서 통일이 이루어졌다고만 기록될 수 있습니다. 역사적 기록에 남지 않는 일일지라도 그런 일이 되도록 준비하는 일, 종교 간 협력을 구하고 정부와도 협력하고, 지역 간의 협력도 도모하는, 누군가는 보이지 않게 이런 통합을 위해서 뜻을 모을 수 있도록 준비해주어야 통일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이곳 용성조사 탄생성지에 모인 여러분들은 당시의 독립운동가들처럼 우리들도 통일의병이 되자는, 그런 다짐을 하시기 바랍니다. 환영을 받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받도록 하고 우리는 뒤에서 밀어주는, 이런 보이지 않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nbspnbspnbsp오늘 이 자리가 96년 전에 있었던 3.1운동을 생각하고, 그 일이 있게 하기 위해서 준비했던 용성조사의 활동을 생각하고, 또 우리는 그 법을 계승한 사람들이니까, 그것을 본받아서 종교와 지역, 민관, 좌우를 떠나서 나라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서 모두가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그 기초를 마련하는데 우리가 헌신해야 되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nbsp스님께서 기념사를 마치자 대중들 모두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봄의 따뜻함 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은 추운 겨울을 이겨낸 씨앗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런 씨앗 같은 역할을 한 용성조사님을 본받아 우리 모두 통일의병이 되자는 스님의 간곡한 호소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nbspnbspnbsp다음은 남원시 국회의원이신 강동원 의원님이 나오셔서 축사를 해주셨습니다. 평소 법륜 스님을 무척 존경하는데 그 뜻을 받들어 남북의 통일에 작은 기여를 하고 싶다는 바램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 “강 의원님이 이번에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게 되었다”고 추가 소개를 해주자 대중들은 더 큰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게 된 강동원 남원시 국회의원님nbsp이렇게 3.1독립운동의 정신을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을 가진 후 11시30분부터는 점심 공양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중들은 각자 싸온 도시락을 들고 지역별로 타고 온 차량에 탑승해 맛있게 식사를 하였습니다. 700여명의 많은 대중들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락을 지참해서 먹으니 식사 시간이 전혀 소란스럽지 않고 아주 질서있고 조용했습니다. ‘역시 정토회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공양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오후12시40분부터는 제4차 정토회 법사 수계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먼저 사회를 맡은 유수 스님은 “1993년 3월7일 제3차 법사수계식 이후 22년 만에 법사수계식을 거행하게 되기에 오늘은 정토행자들에게 참 뜻깊은 날” 이라며 이를 축하하기 위해 참여해준 대중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무변심 법사님이 나오셔서 정토회 행자교육과 법사수계식 경과 보고를 해주셨습니다. 1991년 6월에 유수, 보수, 묘덕, 묘수 법사님을 대상으로 제1차 법사수계식이 시작된 이래 같은해 12월에는 묘당, 무변심 법사님을 대상으로 제2차 법사수계식이, 1993년 3월에는 덕생, 선주, 자재 법사님을 대상으로 제3차 법사수계식이 거행되었던 그동안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지난 2011년 3월 문수팀 5명과 관음팀 5명을 대상으로 4년 동안의 화엄반 행자교육이 시작되었고, 바로 오늘 제4차 법사수계식이 열리게 되었습니다.nbspnbsp다음은 법사단 단장인 묘수법사님이 나오셔서 오늘 수계를 받으시는 수계자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대부분 정토회의 창립시기인 제1차 천일결사 때 수행을 시작하셨고, 정토회의 각 부서의 요직에서 두루 근무해본 경험을 가지셨고, 법륜 스님과의 인연도 20년이 넘으신 분들이셨습니다. 한분 한분 소개될 때마다 대중들의 큰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습니다.nbspnbsp이어서 지난 20여년간 수행을 지도하셨고 최근 4년간 수행지도를 해주신 스님께서 나오셔서 인사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수계식의 의미와 참석한 대중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잘 일러주셨습니다. nbspnbspnbsp“정토회는 1989년에 홍제동의 정토포교원에서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1993년에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정토로 만들자는 큰 서원을 세웠는데, 그 하나는 이 땅에 부처님의 정법을 구현하자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민족의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자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를 동시에 처음으로 방향을 제시하신 분이 이곳에서 탄생하신 용성 진종조사님이십니다. 오늘 4차 법사수계식을 계기로 용성조사님의 이런 뜻을 계승해서 앞으로 많은 법사님들이 쏟아져 나와서 시군구마다 정토법당을 만들어가는 일을 해나가셨으면 합니다. 또 많은 통일의병들이 출현해서 우리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는 일에 앞장 섰으면 합니다.nbspnbsp3차 법사수계식이 있고 22년 만에 오늘 4차 법사수계식이 열리게 되었는데, 왜 22년 동안 법사 수계가 중단이 되었냐 하면요. 행자 때는 수행을 잘 했는데 법사 수계를 받고 출가 승려가 되면서 오히려 출가 정신을 망각하고 세상에 물들어서 불법의 정수를 잃어버리는 아픔을 저희들이 겪었습니다. 그래서 22년간 법사 수계가 중지되고 그냥 일반인으로 정진하도록 해왔습니다. 오늘 수계 받으시는 분들 중에는 22년 전에 행자교육을 마쳤지만 평범하게 인도로 가서 봉사하면서 정진을 해오신 분도 있습니다. 또 대중 법사님이 되실 분들 중에는 대구 법당의 시작을 여신 분도 있고, 대전 법당의 시작을 여신 분도 있고, 마산 법당의 시작을 여신 분도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보시기에는 능력도 부족하고 여러 가지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큰스님께서 ‘부족한 것은 살아가면서 닦아나가면 되니까. 이렇게 22년 간 변치않고 정진해 온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냐’ 하셔서 행자교육을 받은 대상자 10명이 전원 다 법사 수계를 받게 되었습니다.nbspnbsp▲ 법사 수계를 받는 열분의 행자님들nbsp저희들이 한달 간 대중들에게 공지를 해서 법사로써 부족한 것이 있다면 이의를 제출하라고 했더니 많은 점들을 지적해 주셨습니다만, 계율 면에 있어서 흠결이 지적된 것은 없었고요. 또 수행적 관점에 있어서 어긋난 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법사 수계를 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이것이 바로 여러분들의 미래의 모습입니다. 여러분들도 재가와 출가를 따지지 말고 오직 부처님 법에 귀의해서 부지런히 정진하셔야 합니다. 세속에 있으면서도 출가한 승려와 똑같은 모습으로 세상의 탐욕에 껄떡거리지 않고 화를 내지 않고 정말 원을 세워서 정진을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우리의 스승님들께서 하고자 하셨던 원을 실현하는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참여토록 한 이유는 오늘 수계 받는 이분들이 바로 3년 후, 5년 후, 10년 후 여러분들의 표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축하도 해주시지만 큰 발심도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nbsp오늘 법사 수계자들이 곧 정회원들의 미래의 모습이라는 말씀에 오늘 수계식이 갖는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이어서 오늘 수계를 해주실 수계 법사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이 법상에 올라오셔서 수계자들이 수행자로서 부처님의 삶을 닮아가도록 설법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법상에 오르신 도문 큰스님께 삼배를 올리는 법사단nbsp“모든 악을 짓지 말아라.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 그 마음을 청정히 하여 깨달아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 나고 죽는 괴로움을 여의고 열반의 즐거움을 얻으려면 이고득락의 신앙생활을 할지어다. 미혹을 여의고 깨달음을 여는 전미개오의 수행생활을 할지어다. 참선 수행을 하여서 깨칠지어다. 염불 수행을 하여서 삼매에 들지어다. 간경 수행을 하여서 지혜의 안목을 가질지어다. 주력 수행을 하여서 업장 소멸을 할지어다. 불사 수행을 하여서 복덕구족 할지어다.nbspnbsp첫째, 불살생인 산 목숨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nbsp둘째, 불투도인 훔치는 도둑질을 하지 말라.nbsp셋째, nbsp불사음인 사악하게 음란하지를 말라.nbsp넷째, 불망어인 거짓말을 하지 말라.nbsp다섯째, 불기어인 교묘하게 꾸미는 말을 하지 말라.nbsp여섯째, 불양설인 이간질 하는 말을 하지 말라.nbsp일곱째, 불악구인 험악한 말을 하지 말라.nbsp여덟째, 불탐애인 탐착과 애욕을 부리지 말라.nbsp아홉째, 불진애인 짜증과 성을 내지 말라.nbsp열째, 불우치인 인연법과 근본법에 어리석지 말라.nbspnbsp오늘 수계하신 분들께는 이러한 내용의 십선수계첩을 드리겠습니다. 여기에 공부할 내용이 잘 들어 있으니까 자신이 살아온 나이 수만큼 읽으시길 바랍니다.”nbsp수계자들 뿐만 아니라 대중들도 큰스님의 설법을 그대로 다시 따라 외우며 가슴에 새겼습니다. 이어서 큰스님은 “옛날 부처님 당시에는 법을 전할 때에 공양하시는 발우와 가사를 전함으로써 마하가섭 존자에게 법을 전하셨습니다.” 라고 하시면서 새로 마련한 발우를 법륜스님을 비롯한 법사단과 수계자들 모두에게 전하셨습니다. 오늘 이 발우는 도문 큰스님과 인연이 있는 선법행 보살님이 얼마전 딸이 결혼하게 되는데 딸이 잘 되게 하려면 108 선지식에게 발우 한 개씩을 공양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큰스님의 뜻을 받들어 보시해 주신 것입니다. 큰스님께서 법사님 한분 한분의 공덕을 찬탄하시자 선법행 보살님이 앞으로 나오셔서 법사님 한분 한분에게 발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용성조사님의 사상이 담긴 책 묶음인 용성조사님의 번역본 상역광해금강경, 그 어록인 기원정종, 불교 5대 수행이 들어있는 합본, 용성 동헌 불심 3대 조사 연보, 연기법의 생활, 이렇게 다섯권도 함께 전하셨습니다.nbspnbsp▲ 법을 전하는 징표로 발우를 받는 신규법사님들nbsp대중들은 스승이 제자들을 위해 애정을 듬뿍 담아 찬탄 공경하고 또 발우를 건내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큰 박수를 치며 함께 축하해 주었습니다. 또 큰스님께서 발우를 받는 법사님들의 머리를 보시곤 “이제 흰 머리가 나는구나” 하시자 대중들은 크게 웃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대승보살 법사수계첩을 전해주시면서 한명 한명에게 법사로서의 법호를 주신 후 법문을 설해주셨습니다.nbspnbsp“소승 10선계와 대승 48경계를 읽고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자신의 육체는 계체가 되고, 이 계체가 수행을 해나가게 되면 다시 법체가 됩니다. 위대하셔라. 육체에서 계체로, 계체에서 법체로, 그 법체가 오늘 법사님이 되셨다 이 말씀입니다. 오늘 이렇게 대승보살계를 받으셨으니까 계체가 되신 것이고, 이제 계체가 되셔서 수행을 오래 하셔서 법체가 되셔서, 부디 위대한 법사로서 중생구제에 이바지하시기 바랍니다. 이 10선계와 대승보살 48경계를 항상 간직하고 있으면서 몸이 아플 때 마음이 괴로울 때는 계체를 불러들여서 법체가 될 수 있도록 하세요.nbsp▲ 10선계와 대승보살 48경계를 읽는 신규법사님들nbsp열분의 정토회 제4차 법사 수계의 공덕이 일체에 보급이 되어져서 이러한 공덕으로 삼계 사생 육도 일체중생이 모두 다 성불하여지이다.nbspnbsp▲ 흐트러짐 없이 정진해 온 수계자들을 지켜보며 기뻐하는 도문 큰스님nbsp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한분도 흐트러짐이 없고 초롱초롱한 정신을 갖고 임하는 걸 보니 우리나라가 흥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5천만이 흐트러져도 여러분들만 딱하니 정신을 또릿또릿 차리면 나라는 편안하겠구나 세계 평화가 이루어지겠구나 중생은 편안하겠구나 이 느낌을 갖고 저는 자리에서 물러납니다.”nbsp큰스님의 우렁찬 목소리에 대중들의 뜨거운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큰스님께서는 수계자들에게 이제 법사가 되셨으니 앞으로 어떻게 상구보리 하화중생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지 한번 이야기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모두들 법륜 스님과의 첫인연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어떻게 마음 공부를 해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보살행을 할 것인지 각자의 다짐을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 ‘여광’ 이라는 법호를 받은 장영주 행자님nbsp큰스님으로부터 “여광”이라는 법호를 받은 장영주 행자님은 “법륜 스님을 만나 행복해졌고, 계가 나를 보호해주는구나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더 정진하겠습니다”고 인사했고, “자광”이라는 법호를 받은 정안숙 행자님은 “저는 정토회에 잠깐 쉬었다 가려고 왔는데 벌써 23년이 되었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였던 저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었고, 이제는 정토회가 제 삶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오늘을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받아들이고 근면하게 수행정진하겠습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nbspnbsp▲ ‘자광’ 이라는 법호를 받은 정안숙 행자님nbsp“희광”이라는 불명을 받은 윤영실 행자님은 “동생이 가져다 준 반야심경 책을 읽고 찾아온 것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수행하면서 저의 껍질이 너무나 단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계속적인 격려와 기다림 덕분에 이제는 제 마음을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런 가르침을 회향하는 삶을 살겠습니다”고 인사했고, “대광”이라는 불명을 받은 박애란 행자님은 “대학생불교연합회 활동을 하면서 법륜 스님과 인연이 되었고, 세상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오늘을 시작점으로 더욱더 근면하고 성실하게 수행하겠습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보광”이라는 불명을 받은 장도연 행자님은 “대학교 1학년때 불교학생회에 들어갔다가 유수스님과 보수법사님의 지도를 받으며 활동을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주신 이름으로 20년을 살았고요. 법륜스님께 받은 불국화라는 법명으로 또 20년을 살았고요. 앞으로는 큰스님께 받은 보광이라는 법호를 가지고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이는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보광 법사님은 내일부터 인도로 파견되어 새로운 장소에서 활동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nbspnbsp▲ ‘화광’ 이라는 법호를 받은 정경숙 행자님nbsp이어서 대중법사가 되신 분들 중에서는 “화광”이라는 법호를 받은 정경숙 행자님은 “저는 이 절 저 절을 찾아다니다가 25년 전에 법륜스님의 강의를 듣고 이를 미묘하게 생각하여 신앙대회에 참가한 것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이 법을 놓치면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겠다는 마음이 간절하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화광이라는 법호처럼 이 세상의 아픈 사람들을 비추고 끌어안아 가면서 살겠습니다.” 라고 인사했습니다. 특히 화광 법사님은 “그동안 형제 자매들을 불법 인연을 맺게 하지 못한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는데, 오늘 형제 자매들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법광”이라는 법호를 받은 오정숙 행자님은 “어리석어서 괴롭게 살다가 정토회에서 젊은 법사님과 실무자들이 아름답게 사시는 모습을 보고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일자무식이였지만, 오로지 봉사를 하기 위해서 글을 배웠고, 지금은 이메일도 보낼 수 있고 카톡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수계를 받으면서 수행 관점을 바로 잡아서 부족한 점을 잘 개선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발원했습니다. “묘광”이라는 법호를 받은 전외자 행자님은 “어머니 49재를 지내러 절에 갔다가 스님께서 던져주신 월간 정토지를 보고 인연이 되었습니다. 그 때 원을 세우고 가정법회를 시작했습니다. 힘들 때도 많았지만 스승님, 도반들, 남편과 가족들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의지하지 않고 의지처가 되겠습니다.” 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 ‘묘광’ 이라는 법호를 받은 전외자 행자님nbsp“선광”이라는 법호를 받은 허영숙 행자님은 “월간 정토지를 보고 인연이 되었습니다. 저는 무남 독녀 외딸이여서 항상 받기만 하고 자라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봉사하면서 나만 생각하던 삶에서 주위를 살피는 삶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쓰이는 삶을 살겠습니다” 며 다짐을 이야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월광”이라는 법호를 받은 유애경 행자님은 “대학을 가지 못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온갖 것을 배우러 다니다가 월간 정토지에서 인도의 구걸하는 여인에게 분유값을 주기 위해서 찾아다니는 법륜 스님의 이야기를 읽고 함께하겠다는 원을 세웠습니다. 시집 식구들을 미워했는데 스님의 금강경 강의를 듣고 그분들이 문제가 아니라 불법을 모르는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 행복해졌습니다. 이렇게 받은 은혜를 월광이라는 법호처럼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달빛처럼 은은하게 회향하겠습니다.”라고 발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nbspnbspnbspnbsp이어서 신규법사님들이 불단 앞으로 나와서 수계를 받은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모아 부처님께 꽃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여광 장영주 법사의 선창으로 다함께 법사수계자의 서원을 낭독했습니다.nbspnbsp“저희 법사 수계자 대중 일동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따라 법다이 수행하고 생활하며 실천할 것을 다음과 같이 서원합니다.nbspnbsp▲ 법사 수계자의 서원을 낭독하는 신규법사님들nbsp1. ‘나다’하는 잘못된 생각을 버림으로써 원만한 깨달음을 얻겠습니다.nbsp2. ‘내 것이다’하는 소유욕을 버림으로써 걸림이 없는 자유의 행을 닦겠습니다.nbsp3. ‘내가 옳다’는 아집을 버리고 화내지 않는 열반을 얻겠습니다.nbsp4.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림으로써 검소한 삶을 살겠습니다.nbsp5. 내가 잘 낫다 하는 교만을 버림으로써 겸손한 삶을 살겠습니다.nbsp6.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고 의지처가 되겠습니다.nbsp7. 복 받으려는 마음을 버리고 복 짓는 삶을 살겠습니다.nbsp8. 가족, 이웃, 겨레, 인류, 만중생에 불법을 전하여 일체 중생의 복전이 되겠습니다.nbsp9. 병든 사회의 원인인 각종 차별을 없애고 인권이 존중되는 정토사회를 이루겠습니다.nbsp10. 자연과의 조화를 통하여 일체만물이 하나되는 정토세계를 이룩하겠습니다.nbspnbsp이 서원이 성취될 때까지 이 마음과 몸을 다 바쳐 용맹정진 하겠습니다. 제불 보살님들이시여 증명하여 주업소서.”nbsp신규법사님들의 서원에 대중들도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신규법사님들은 수계법사이신 도문 큰스님께 법을 받아 부지런히 정진하고 교화할 것을 다짐하며 감사의 삼배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은사스님이신 법륜스님에게도 삼배를 올렸습니다. 또 선배 법사님들에게도 1배를 올렸습니다.nbspnbsp▲ 가르침을 주신 스승께 삼배를 올리는 신규법사님들nbsp이어서 대중들이 신규법사님들에게 가르침을 잘 따라 배워 우리들도 법을 계승하고 전하는 법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담아 축하의 삼배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전국의 정토행자들을 대표해서 각 정토회 대표님들과 행정 책임자분들이 나오셔서 신규법사님들에게 꽃다발과 선물을 증정하였습니다. 대중들도 큰 박수로 축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 신규법사님들에게 축하의 꽃다발과 선물을 증정하는 정토회 대표단nbsp그리고 지난 4년간의 수행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정진해왔던 공동체 정토행자들이 기쁜 마음을 담아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는 축가를 불러주었습니다. 또 전국에서 온 정토행자들도 장미처럼 향기가 나는 분들이 되시라는 마음을 담아 “장미”라는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대중들이 노래를 불러주는 동안 신규법사님들은 감사한 마음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nbspnbsp▲ 감사한 마음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유애경 행자님nbspnbsp신규법사님들의 가족들도 법사님 한분 한분을 두 팔로 안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대중들도 그동안 신규법사님들과 함께한 시간들을 떠올리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더욱 한가족처럼 느껴지는 애틋한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 수계를 받은 신규법사님들을 따뜻이 감싸 안으며 기쁨을 나누는 가족들nbspnbsp이어서 묘수법사님이 신규법사님들을 맞이하는 환영사를 해주셨습니다. 법사님은 “여기 앉으신 여러분들 모두가 1차 만일결사가 끝나기 전에 법사 수계를 받게 되겠죠? 그 출발이 오늘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며 함께 참여한 대중들 모두를 환영하는 인사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 선배 법사로써 환영사를 하고 있는 법사단장 묘수 법사님nbsp그리고 정토회 이기혜 대표님도 축사를 해주셨습니다. 대표님은 “20년 전 저는 저의 괴로움의 원인이 아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상실감과 불안한 미래 앞에 떨고 있었을 때 보수법사님과의 수련을 통해 내가 어른이라는 생각이 강했음을 깨닫고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으로 크게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수행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어리석은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대중주체라는 큰 방향 속에서 저희들을 끊임없이 놓지 않고 지도해주신 법륜 스님의 가르침과 법사님들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런 법사님들이 22년만에 다시 배출되는 이 순간이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간절한 마음으로 축하드립니다. 특히 오늘 열분 법사님의 탄생은 앞으로 5천명 법사님의 탄생을 예견하는 큰 원력이 담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정회원들도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 사회에 도움이 되는 큰 원을 키워나가겠습니다.” 라며 감사의 마음과 발원의 마음을 나눠주셨습니다. 대표님의 떨리는 목소리와 눈물을 보며 많은 분들이 함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nbspnbsp▲ 축사를 해주시는 정토회 이기혜 대표님nbsp이렇게 법사 수계식을 모두 마치고, 신규법사님들과 선배법사님들은 대중전 앞 계단에 서서 불심 도문 큰스님과 법륜 스님을 모시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오늘, 법사님들의 얼굴에는 쉼없이 활짝 웃음꽃이 피었습니다.nbspnbsp▲ 도문 큰스님을 모시고 신규법사님들과 선배법사님들이 다함께nbspnbsp이어서 오후4시부터는 법륜 스님으로부터 정회원의 역할과 자세에 대해 법문을 듣는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법문을 청해 듣기에 앞서 경남지부 신규 정회원들이 준비한 축하 공연이 있었습니다. 한반도기를 들고 나와 ‘나성에 가면’ 이란 노래를 ‘윗동네에 가면’으로 개사해서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표현해서 대중들의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nbspnbspnbsp이어진 법문 시간에는 지난 설연휴 이후 일주일 동안 스님께서는 전국을 순회하시며 정회원의 역할에 대해 관점을 잡아주셨는데, 오늘 3.1절을 맞이하여 앞으로 정회원들이 어떻게 내적 역량을 키워서 한반도 통일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그 방향과 마음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이제 정회원들은 통일의병 활동을 올해부터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은 그 출발이 되는 날입니다.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이 시작은 독립운동가 백용성 조사의 탄생성지인 이곳 죽림정사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또 통일은 독립운동의 연장선 상에서 독립을 완성시키는 일이니까 그 출발인 3.1절 기념식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그래서 오늘 이 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일단 내 수행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정토회는 수행자의 모임입니다. 정토 건설이니 중생 구제이니 민족 통일이니 하는 것 이전에 나부터 구제해야 합니다. 수행을 기초로 해서 수행자로서 우리는 통일 운동도 하고, 포교도 하고, 환경운동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업장을 녹이는 정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수행적 관점을 놓치면 뭐든지 막막해집니다. 그러나 수행적 관점으로 탁 돌아오면 겁낼 것이 하나도 없어집니다. 수행은 장애가 있어야 해탈이 되는 것이거든요. 수행자에게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닙니다.nbspnbsp그래서 첫째는 수행이고요. 둘째는 이 좋은 법을 널리 전하기 위해서 현실적인 목표로 8차 천일결사 기간 중에 정회원 1만명을 모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공간적으로는 시군구에 법당을 내고, 불교대학생을 모집하고 잘 관리해야 합니다. 셋째는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사회 문제들 중에서 그 근본이 되는 문제가 분단 극복과 평화 통일 문제입니다. 이 세가지 방향을 딱 잡고 이웃과 세상에 대한 책임을 져나가야 합니다.nbspnbsp옛날에는 독립운동을 하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 되었죠. 민주화 운동을 할 때는 감옥 갈 각오를 해야 되었죠. 그런데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수행하고 전법하고 통일운동 하면서는 죽을 일도 없고 감옥 갈 일도 없어요. 회사에서 친구들이 같이 놀지 않는다고 좀 싫어하고, 집에서 가족들이 함께 안한다고 조금 싫어하는, 이런 부작용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nbspnbsp우리가 껄떡거리는 것이 없어지면 어떤 경우에도 비굴해지지 않고 어떤 사람 앞에서도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겸손한 사람이 되어 검소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재산이 많더라도 검소하게 살아야 하는데 재산이 적다면 검소하게 사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죠. 있는 사람이 검소하게 살려면 좀 힘들잖아요. 그런데 없는 사람이 검소하게 사는 건 쉽잖아요. 노력할 것도 없이 저절로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없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지위가 높은 사람이 겸손해지려면 굉장히 힘든데 지위가 별로 높지도 않으면 겸손해지기가 아주 쉬워요. nbspnbspnbsp그래서 정초법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올해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최소한 열가지 계율은 반드시 지키자는 것입니다.nbspnbsp첫째, 때리지 않는다. nbsp둘째, 훔치지 않는다.nbsp셋째, 성추행 하지 않는다.nbsp넷째, 술 먹고 주정하지 않는다.다섯째, 욕설하지 않는다.nbsp여섯째, 속이지 않는다.nbsp일곱째, 잔소리하지 않는다.nbsp여덟째, 짜증내지 않는다.아홉째, 음식에 탐착하지 않는다.nbsp열째, 사치하지 않는다.nbspnbsp혹시나 어겼을 시에는 진실한 마음으로 참회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열가지 계율을 잘 지켜서 인격이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명품 가방을 찾지 말고 명품 인격이 되자는 것입니다. 사람이 형편 없는데 옷만 명품이여서 되겠어요? 옷이야 지저분하게 걸려있다 하더라도 사람이 명품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명품이 되면 아무 옷이나 주워 입어도 칭찬을 받습니다.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있어도 ‘그분 참 검소하다’ 그럽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인 ‘수행’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나간다면 올해와 내년에는 개인의 인생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를 위해서도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nbspnbspnbsp제가 작년에는 다음 만일을 위해 전세계에 씨앗을 뿌리고 왔고요. 3월에는 인도에 다녀온 후, 4월부터는 여러분들과 통일 강좌도 하고, 순회강연도 해나갈 테니까 우리 함께 열심히 정진해서 기적을 만들어 봅시다.”nbsp대중들은 큰 박수로 법문을 해주신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께서 주신 열가지 계율을 잘 받들어 지킬 것을 다짐하며 수행자로서의 관점을 다시한번 가슴에 새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오늘 하루 긴 시간 함께 했음에도 막상 마칠 시간이 되니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사회자의 선창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서로 손잡고 부르며 다시한번 마음을 모아 보았습니다.nbspnbsp그리고 오늘 함께한 700여명의 정회원들이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가 활짝 웃으며 다함께 “정회원, 통일의병, 1만 파이팅”을 외쳤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제96주년 삼일절을 맞이하여 독립운동가 용성조사의 탄생성지에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발원하고, 정토회 창립 이후 22년 만에 열분의 법사님 탄생을 시작으로 앞으로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길을 오롯이 걸어갈 5천명의 법사가 출현하길 발원하면서, 너무나 뜻깊은 하루를 보낸 것 같습니다.nbspnbsp죽림정사에서 나눠준 떡과 귤을 먹으며 집으로 돌아가는데, 발걸음은 너무나 가볍고 가슴은 뿌듯함으로 충만해졌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행사를 모두 마치고 죽림정사에서 신규 법사님들을 비롯한 법사단 전체와 미팅을 더 가지신 후 서울로 올라 오셨습니다. 서울 정토회관에서 밤늦게까지 업무를 보시다가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셨습니다.nbspnbsp▲ 죽림정사 앞마당에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싹을 틔우고 있는 새싹들. 어려운 이 시기에 불교 중흥과 한반도의 통일을 준비하는 오늘의 정토행자들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nbspnbsp내일은 평화재단에서 아침부터 몇 차례의 미팅을 가지신 후 저녁에는 인도JTS 사업을 점검하기 위해 인도로 출국하십니다. 3월2일부터 22일까지 약 3주간 인도의 천민마을 둥게스와리에 머무시며 마을 방문 및 현지 활동가들과의 회의를 통해 인도JTS의 사업방향을 전체적으로 새롭게 수립하실 예정이십니다. 내일부터는 인도에서 스님의 하루를 전해드리겠습니다.nbsp
2015.2.28 서울제주지부 정회원의 날
nbsp nbsp오늘은 정초순회법회 마지막 순서인 서울제주지부 정회원의 날 행사가 서울정토회 서초법당에서 있었습니다. nbspnbspnbsp 오전 10시와 저녁 7시에는 서울제주지부 주간부와 저녁부 정회원을 대상으로, 낮 2시에는 전국의 청년 정회원을 대상으로 열렸습니다. 서울제주지부 내 7개 정토회와 산하 15개의 법당의 정회원들이 함께 했는데요. 서울제주지부에는 정회원이 총 551명이 있고 정토회별로는 서울 299명, 서대문 62명, 노원 64명, 양천 51명, 성동 35명, 송파 37명, 제주 3명이 있습니다. 오전 10시 법회에는 주간부 157명이, 오후 2시 법회에는 전국의 청년들 40명이, 저녁 7시 법회에는 저녁부 80명의 정회원이 참석하여 법륜스님을 친견하여 정토행자로서의 삶의 방향을 단단히 잡아가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오늘의 주요 프로그램은 각 정토회별로 참가한 정회원의 소개가 있은 후, 스님께서 정회원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궁극적으로 정회원이 추구하는 목표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신 후 정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궁금한 점이나 의문나는 것에 대한 즉문즉설의 시간, 그리고 스님께 새해 세배를 드리고 단체사진촬영을 하면서 마무리 하였습니다. nbsp 먼저 오전 10시 법회에서는 이성미 서울제주지부 사무국장님의 여는 말씀이 있은 후, 정토회별로 정회원 한명 한명이 나와서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규발심행자들의 가슴에는 정회원이 된 것을 축하하는 연분홍꽃이 한송이씩 곱게 달렸습니다. 한두 해 전에 정토회 새내기였던 보살님, 거사님들이 이제 의엿하게 법당의 주인이 되어 불대담당, 활동팀장, 법당지기, 새벽기도 담당, 법회 담당 등의 소임으로 자기 소개를 합니다. 몇글자 소임 뒤에 얼마나 많은 좌충우돌의 시기들이 있었을까 싶으니 한 분 한 분이 모두 부처로 보입니다. nbsp 법륜스님은 연신 빙긋이 웃으며 정토행자들의 소개를 듣고 사전출석부에서 빠진 사람들을 챙기기도 하셨습니다. 이어 서울제주지부의 밝은 미래, 신규 발심행자 88명과 신규 서원행자 6명의 얼굴과 각오 한마디가 담긴 영상을 감상하고, 법륜스님께 법문을 청하여 들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오늘이 ‘정회원의 날’인데 정토회에서 아직 정회원이라는 의미 규정을 한 지가 얼마 되지가 않아 왜 정회원을 따로 모으고 천일결사 모둠을 따로 하는지 의구심들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스님은 우리가 매일 아침에 읽는 정토행자의 서원을 가만히 읊어 주셨습니다. nbsp “지금 우리 인류는 인간성 상실·공동체 붕괴·자연환경 파괴라는 중대한 위기에 처해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 속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nbsp 이 두 문장 안에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 우리가 정토행자가 된 이유, 정토회가 가고자 하는 바가 다 들어 있는데,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까막눈이가 된 마냥 부끄럽고 화끈거립니다. 스님은 정토회의 설립취지는 부처님의 정법, 즉 초기 근본불교의 모습, 석가모니 부처님의 인격에 근접한 모습을 현대 사회에서 구현해 보자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정회원의 단계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서 정회원의 마지막 단계인 법사에 대해서는 “법사되는 건 능력하고는 특별히 상관이 없습니다. 계율적 결격이 있으면 안되고, 지향이 붓다의 법에 귀의한 것이 아니면 결격사유가 됩니다. 법과 율에 근거해서는 문제가 되지만, 능력이 문제가 있거나 성격이 문제다 하면 고치려고 노력하고 개선이 돼 간다 하면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여러분이 법사가 다 되어야 하니까요. 문턱이 너무 낮아서 ‘법사되서 뭐하노’ 해도 안 되고, 너무 높아서 나는 안되겠다고 지레 포기해도 안 되니까, 적절해야 합니다.” nbsp 스님은 “나의 제자들아, 비굴하지 말고 당당 하라, 교만하지 말고 겸손 하라.” 는 부처님 말씀으로 법문을 마치셨습니다. 정회원의 자세에 대한 스님의 세심한 법문을 듣다보니 어느새 훌쩍 두 시간이 다 지났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즉문즉설은 세분께만 받았습니다. 인도성지순례 영상을 보며 너무 가슴이 아파 성지 보존을 위한 제안을 하신 보살님, 정토회 통일 활동을 하면서 지역 시민단체와의 연대에 대한 바램이 생기신 거사님, 법당불사를 맡으면서 힘든 점을 호소하시는 보살님의 질문에 스님은 귀한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nbsp 이 중 노원정토회에서 성북불사 담당하는 보살님의 질문을 소개합니다. “불사정진 중인데요, 불대생이 의외로 접수가 많이 되었어요. 그런데 오늘 법회 중에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3월 2일 계약 예정인데 건물주는 정확한 이유 없이 계약을 안하겠다고 한답니다. 추측으로는 실내 철거문제나 정토회의 요구가 까다로워서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면서 불협화음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불대생은 많이 접수되었고, 장소는 없어지고 하니 막막하고 스님 법문도 귀에 들어오지 않아 잘 못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며 다급하게 질문하시는 보살님께 스님께서는 nbsp “정토회에서 불사를 맡아서 봉사로서 해주는 건 고마운 일이에요. 그런데 항상 ‘수행자로서 일을 해라.’고 하잖아요. 수행자가 전화 한 통화에 정신이 없으면 수행자도 아니고 불사하는 봉사자 밖에 안 됩니다. ‘내가 전화 한 통화에 수행적 관점을 놓치고 있구나.’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바깥 문제를 내 고민의 원인으로 합리화해서 얘기하면 수행자 관점을 놓쳐버린 사람에 속합니다. 세상에서 좋은 사람이라고 수행자는 아니에요. 착한 것과 지혜로운 것은 다릅니다. 사람이 죽거나 건물이 무너진 것도 아니고, 계약해서 돈 떼인 것도 아니고, 아직 계약서도 안 썼는데 계약을 전제로 일을 추천했으면 실수를 한 것에 속합니다. 계약을 했다가도 파기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 장소를 꼭 해야겠다면 먼저 계약을 취소하는 이유를 알아보고 계약과정에서 우리가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도 안되면 접수된 불대생들은 근처 공간을 돈을 주고 임시로 빌려서라도 하던지, 가까운 법당으로 안내해서 올 사람은 오고, 안 올 사람은 입학금을 내주면 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방안을 연구하면 됩니다. nbsp 그리고 불사 담당 상임법사와 상의를 하면 될 일이지, 그것을 가지고 정신이 없어지고 법문도 귀에 안 들어온다면 딱 정신 차리고 ‘전화 한 통화에 마음을 놨구나.’하고 돌이켜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어떻게 하면 될까하고 향후 대처를 하면 됩니다. 큰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물이 엎질러졌는데 흥분을 해서 해결이 되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하는 관점에서 고민을 해야 합니다. 아쉬워하면 내가 괴롭고, 또 서로 책임을 전가하면 내부에 분열이 일어납니다. 벌어진 일은 적절히 대응하는 게 중요합니다.” 라며 우리가 일을 하다가 위기가 왔을 때 어떻게 수행적 입장에서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nbsp 법문 후 정토행자들은 법륜스님과 유수스님께 새해 인사를 하고 정토회별로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도반들은 스님의 오늘 법문이 너무너무 명쾌했다고 기뻐하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정회원의 날’ 마다 보석 같은 법문을 들으니 벌써부터 내일 죽림정사의 행사가 기다려집니다. nbsp 오후 2시부터는 청년정회원을 대상으로 한 법회가 있었습니다. 전국적으로 119명의 청년정회원이 활동하고 있는데, 오늘 법회에는 서울지역 청년정회원 35명, 인천경기서부 지역 2명, 대전충청지역 3명이 참가하여 총 40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그 외 청년정회원들은 각 지역법당에서 열리는 정회원의 날 행사에 참석했었습니다. nbsp 특히 청년정토회 초기부터 활동해 온 정회원 법우들도 오래간만에 함께 해 주어서 반가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지역별 참가자 인사 후,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원을 세운 신규 서원행자와 초발심시변정각의 마음으로 발심한 신규 발심행자의 개인사진에 각자의 각오와 다짐을 담은 신규 정회원 소개 영상 상영으로 감동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신규 발심행자들이 양의 해를 맞아 수건으로 양머리를 만들어 각오를 다지는 퍼포먼스도 보여 주었습니다. nbspnbspnbsp 신규정회원 소개 후 먼저 스님께서는 청년들이 불교의 4대 명절이나 각종 기도에 참석하는 것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상세히 일러 주시고 복을 비는 것이 아닌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다지는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셨습니다. nbsp 이후에는 정회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정회원이 왜 봉사활동을 하는가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도록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또한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 법을 따르던 젊은 수행자들이 많았음을 언급하시면서 현 시대에도 청년들이 부처님 법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서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문명, 새로운 세대를 열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정토회의 정회원으로서, 또한 부처님 법을 따르는 이 시대의 청년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점검해 볼 수 있었습니다. nbsp 법문에 이어진 즉문즉설 시간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공부해야 할 분량이 많아 조급한 마음이 들고 조급함 때문에 정작 공부는 안 된다는 분, 평소 소심한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 계속 청년정토회 활동을 하는 것이 나을지 백일출가를 가는 것이 나을지 고민이라는 분, 지인의 힘든 이야기를 들을 때 부담스러운 마음이 올라온다는 분, 직장생활을 3개월하고 그만두었는데 정토회나 여자 친구에게 의지하고 일을 꾸준히 하지 못하는 자신의 업식을 알게 되었다는 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강의를 할 때 어렵다는 분, 새로 온 도반과 나누기를 할 때 긴장이 되고 불편하다는 분 등의 다양한 고민에 스님께서는 친절하고 따스하게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그 중 한 대학생 활동가의 고민을 소개합니다. “저는 대학생 정토회 활동을 한지 2년 반 정도 되었는데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저 스스로 잘했다 생각한 적이 없고 약간 실패한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특히 사업을 진행하면서 참가자가 없을 때에 마음이 무겁고 잘할 수 없을 것 같고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대학생 사업 준비하는데 목표가 커지니까 위축되는 마음이 있는데 그 마음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라며 질문했습니다. nbsp “질문자가 사업에 대해 보고 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 청년국 국장님 맞지요? 자기가 볼 때 국장님이 좀 똑똑해요, 멍청해요? 본인이 국장님이 똑똑하다고 믿는다면 걱정할 게 없어요. 자기가 실력이 없으면 ‘니 그만둬라.’ 할 거예요. 그런데 그만두고 다른 일 해라 하지 않고 같이 일하고 있잖아요? 국장이 보기에는 법우가 딴 사람보다 낫다 생각하는 거 아니겠어요? 본인은 본인이 잘하니 못하니 해도 국장님 보기에 그래도 괜찮으니 놔둔 거예요. 내가 사업에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나는 능력이 없다, 이런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믿고 있는 담당법사님이나 국장님이 알아서 하겠지요. 위에서 보기에 지금 상황에서 나 빼고는 대안이 없고 내가 지금 자리에서 잘하고 있으니 그냥 놓아 두는 거구나 하고 자부심을 느껴야 합니다. 사업에 대해서는 국장이 알아서 책임질 일이지, 법우님 책임이 아니니까 자기는 편안하게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nbsp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본인이 욕심이 많아서 그래요. 내 능력은 100인데 목표를 200으로 정해 놓고 욕심 부리니 아무리 해도 내가 부족하다 싶어 자학증이 생기는 거예요. 우리는 본인의 능력의 100만큼만 해도 그 자체가 좋고 아무도 200만큼 하라고 하지 않는데 본인이 혼자 200을 목표로 세워놓고 난리피우는 거예요. 내가 가진 능력으로 ‘최선을 다 한다.’ 그런 마음으로 하세요. 자기를 과대평가 하지도 말고, 학대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알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수행자로 돌아가세요.” 라며 답을 해 주셨습니다. nbsp 습관처럼 잘해야 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활동에 부담을 가지고 있었던 청년 정회원들에게 가볍게 있는 그대로만 최선을 다하는 수행자가 되라는 말씀은 큰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nbsp 마지막으로 유수스님께서 그 동안 청년정토회가 서울을 중심으로 운영되었지만 향후 점점 지역으로 확대되리라 기대하며, 좋은 법을 전하기 위해 청년들이 힘써 나가자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청년정회원들은 스님께 새해인사를 드리고, 스님께서는 한 명 한 명 악수로 격려해 주셨습니다. 스님과 청년정회원이 처음 만난 오늘 자리는 정회원으로서, 청년으로서, 수행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nbsp 저녁 7시에는 서울제주지부 대표소임을 맡고 있는 마경숙보살님의 인사 말씀으로 저녁부 정회원의 날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80여명의 저녁부 정회원이 모였지만, 주말이라 저녁부도 낮에 많이 참여해서 평소보다 참여인원이 조금 적었습니다. nbsp 각 지역법당별로 참가자 소개가 있었습니다. 한명 한명 소속과 소임을 밝히고 서로 인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신규발심행자들의 소개영상을 시청 한 후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설 잘 보냈는지, 정초기도는 잘 했는지 물으시고 오늘 정회원의 날 행사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정토회는 단체의 이름이에요. 정토회의 설립취지는 부처님의 정법을 이 땅에 한번 구현해 보자는 겁니다. 정법이란 말은 추상적인 단어죠. 너도 나도 정법을 주장하는데, 우리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규정해서,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루고자 했던 것, 깨달음, 설법한 것, 실행한 것의 범주에 맞는 불교단체를 만들자. 그 정신을 오늘날 다시 재현해보자는 것이 구체적 내용입니다. 그것이 근본불교입니다.” nbsp 어떤 일을 하든 정토회가 어떤 단체인지 설립취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씀해주시고, “어떤 법당이든 책임 있게 운영해야 합니다. 혼자 운영해도 아무렇지도 않아야 합니다. 대신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일반회원들과 달리 여러분은 수행자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우리가 일반회원들에게‘고맙습니다.’라고 인사 할 수 있어야 합니다.”고 하시며 정회원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불교의 역사 속에서 변질된 수행자의 모습과 사제와 신도에 대한 긴 법문이 이어졌고, 스님의 재치 있는 말씀에 모든 정회원들은 쑥스러운 웃음으로 신자가 아닌 수행자가 되기를 다시 한 번 다짐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nbsp 법문 후 즉문즉설이 이어졌습니다. 그 중 인사동 거리모금 담당하시는 보살님의 질문을 소개합니다. “인사동 거리모금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금에 학생참여가 많습니다. 그런데 작년 가을부터 무주상보시의 정신으로 봉사하자고 봉사 확인서 발급이 중지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동아리에서 봉사확인서 발급이 안 된다며 타 단체로 갈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웠습니다. 처음에 말도 제대로 못하고 빈 모금함으로 오던 학생들이 회를 거듭할수록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참 뿌듯하고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미 스님 법문에서 정토회가 지향하는 바를 들어서 저는 이해가 되었지만, 많은 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설명을 부탁드립니다.”라며 활동하면서 든 의문에 대해 스님께 질문하였습니다. nbsp nbsp “원래 정토회는 자기 수행으로 참여하는 거라 봉사증 발급과 같은 것이 없었어요. 정부차원에서 인정해주는 봉사 확인서를 격려차원으로 발급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계속되다 보니 부작용도 있습니다. 엄마가 봉사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고, 봉사는 조금하고 봉사 시간만 많이 받으려 하고, 이렇게 남발하다 보니 서류 처리하는데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요. 봉사에는 관심이 없고 봉사점수에 관심이 있어서 오는 사람이 생기다 보니 JTS의 정신에 맞지 않아 봉사확인서의 발급이 중지 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점수보다는 봉사의 의미를 설명해서 모금으로 인도하고, 나중에 점수를 지원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nbsp 이런 유사한 경우가 몇 가지 있는데, 정토회에서는 해외봉사 나가는 비용도 자기비용으로 갑니다. 1년 후에 계속 봉사활동을 하려고 할때 JTS에서 지원해줍니다. 정부에서 민간단체에서 해외 봉사를 나가는 경우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어서 JTS도 KOICA의 지원을 받게 되었어요. 처음 1, 2년에는 받은 돈을 본인들이 다시 JTS에 보시하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지원받는 것이 오히려 봉사에 좋지 않는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KOICA의 지원을 받는 것을 폐지하게 되었습니다. nbsp 또, 정토회에서 사회운동을 하면서 평화재단이나 에코붓다, 좋은벗들 같은 법인 단체 활동 중에 정부에서 사업비를 지원해주는 경우가 있어요. 정부지원금으로 식비를 정산 할 경우 카드로 계산을 해야 하는데, 두북이나 시골의 경우 카드결재가 어려운 상황도 있고, 얼마 이상 되는 식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렇게 비용지불을 하면서 정토회 돈, 정부지원금을 분리해서 써야 되는데 이것은 수행에는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일체 지원을 받지 않는 걸로 결정했습니다. nbsp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사업의 확대가 아니라 원칙을 지키고자 함이에요. 조금 늦게 되더라도, 사람 한명 적더라도, 기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방침입니다. 봉사점수를 준다는 것보다 먼저 봉사를 하고나서 후에 지원해 주는 방향으로 해야 하는데, 봉사점수를 받기 위해서 봉사를 하는 것처럼 변질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부작용을 줄이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함께 연구해봅시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법사단에서 다시 한 번 이 문제에 대해서 논의 하라는 말씀을 전하시고 수행자로서 사는 기본정신은 살리고 그 과보로 인정해주는 것으로 운용해야한다는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nbsp 일반 신도가 아니라 정토행자로서, 수행자로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깊이 새기는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nbsp 스님의 법문과 즉문즉설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세 시간 반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남은 질문이 더 있었으나 내일 행사를 위해 새벽에 죽림정사로 움직여야하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사진촬영을 마지막으로 정회원의 날 행사를 마쳤습니다. nbsp nbsp늦은 시간까지 우리를 위해 성심으로 법문해 주시는 스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토행자들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nbsp
2015.2.27 대전충청지부 정회원의 날
오늘은 대전충청지부 정회원의 날입니다.nbspnbsp nbsp 스님께서는 서울을 출발하여 대전법당으로 가시기 전 계룡산 동학사 계곡으로 가벼운 산책을 하셨습니다. 오후 1시에는 대전법당에서 통일의병운동을 하는 지역 인사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과 함께 하는 대전충청지부 정회원 날을 위해 대전법당에서는 봉사자들이 대청소를 하고 부지런히 꽃잎을 비비고 등을 만들어 달아 법당 분위기가 봄날처럼 산뜻하고 밝았습니다. 고운 연등이 먼저 정토행자들을 환히 맞이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대전충청지부에는 총 3개의 정토회와 10개의 법당이 있습니다. 그 중 오늘 회합장소인 대전법당은 99년도까지 전외자 보살님의 아파트에서 가정법회로 이어지다, 중구 부사동에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5층에 법당을 마련하여 12년 동안 수많은 대중들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수행도량으로 잘 가꾸었습니다. nbsp 그러다 2011년도, 부사법당은 그대로 두고, 지금의 시청 인근 자리에 대전법당을 크게 마련하여 대전충청지역 정토회원들 뿐만 아니라 영남, 호남, 수도권 회원들이 함께 모이는 정토회 전국 회합의 장소로 아주 잘 쓰이고 있습니다. nbsp 오늘 낮에는 총 10개 지역에서 95명의 정토행자들이 반가운 발걸음을 해 주셨습니다. 당진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한 분 이상 참석하여 한 분 한 분 맡은 봉사소임과 함께 소개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대전법당 보살님들 중 부사법당 5층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리던 분들이 이제는 무릎이 아파 계단 오르내리기도 어려운 연배가 되어서 어느새 “연화회”보살님들로 함께 자리 해 주시니 반가움과 감사한 마음이 교차 합니다. nbsp nbsp 소개시간에 대중들을 자세히 관찰하신 스님께서 참가예정 숫자와 실제로 참가한 사람의 숫자가 다른 지역에는 왜 다른지를 물어보는 바람에 몇몇지역 활동가들은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nbsp 지역별 참가자 인사 후에는 대전법당 신규 발심행자들의 심정과 일상, 기쁨을 담은 ‘렛잇비’개사곡에 맞춘 발랄한 공연으로 잠시 웃을 수 있었구요, 이어진 ‘2014년을 빛낸 정회원’ 들을 영상으로 만들어 각 법당별로 지난 한해 수행·보시·봉사로 행복했던 정토행자들의 사연과 얼굴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nbsp 각 정토회별 소개의 시간이 끝난 후 스님께서는 정토회 정회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부터 처음부터 말씀 해 주시면서 행여라도 정토행자들이 놓치고 있거나 간과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다시 잘 짚어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다시한번 정토회의 창립 취지에 대해 말씀 해 주셨고, 정토회가 애초의 뜻대로 잘 가도록 스님과 정토행자들이 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nbsp 1시간 넘게 이어진 법문이 끝나고 이어진 즉문즉설 중 봉사활동을 하다 몸을 다쳐 주춤대는 마음이 있다는 분, 아이 아빠만 보면 순간 올라오는 화를 참을 수 없다는 분의 질문, JTS캠페인 활동에 청소년 자원봉사 확인서를 발급해주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분의 질문과 답변 세 가지를 공유 해봅니다. nbsp 질문 1 작년까지는 희망강연과 세월호 서명, 연말 송년캠페인 등을 맡아 하면서 힘든 줄 모르고 하나하나 마무리되면 뿌듯하고 몸을 사리지 않고 했습니다. 올 1월 3중추돌 교통사고로 통원치료를 바다 보니 법당 나오는 날도 줄어들고, 정기 캠페인 얘기에 덜컥 겁이 나면서 몸을 사리게 됩니다.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nbsp nbsp 스님 우선 몸을 다쳐 아프면 휴가를 내고 쉬세요. 그런데 절도 매일 하면 힘이 안들다가 안하다가 하려면 다리가 아프고 슬슬 겁이 납니다. 그럴 때는 3천배를 해버리면 됩니다. 그러나 다리가 정말 아플때 그러면 안됩니다. 몸이 아프면 10배, 20배쯤 늘려가는 방법이 있고, 거꾸로 한1000배쯤 해서 까무라칠 정도로 해 버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어느 게 옳다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몸이 안좋으니까 10배식 늘리는 방법으로 하고 자꾸 장애가 생기면 일을 왕창 맡아서 해 버리면 나머지는 쉽습니다. nbsp 질문 2 아이들이든 일이든 어떤 상황에서든 화가 나는구나, 싫어 하는구나가 잡히면서 마음도 생활도 안정이 되는데, 유독 아이들 아빠만 보면 화가 나고 거친 말이 나갑니다. 사업이 부도나고 본의 아니게 이혼도 하게 되고, 그 와중에 몇 년 사귄 여자도 알게 되었는데 잘 헤쳐 나왔습니다. 어제는 아이들 아빠에 대한 참회 기도중에 아이들 아빠가 불쑥 방에 들어오는데 나도 모르게 소리를 쳤습니다, 왜 들어오느냐고. 참회기도 중에도 이렇게 화가 올라오는데 평상시에 얼마나 올라올까, 이 올라오는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요? nbsp 스님 다스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남편 보면 자기도 모르게 확 돌아버리기 때문에 자기가 통제를 못합니다. 무의식에 어릴때 아버지나 오빠에 대해서 상처 입은 게 있을 거예요. 두번째는 남편이 부도내고 바람피우고 그러면서 남편에 대해서 ‘당신이 인간인가, 짐승이지.’ 하는 게 깔려있으니 의식은 남편을 존중해도 상처입은 무의식에서는 그렇게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탁 입에서 말이 나가더라도 ‘내 업식에 사로잡혔구나.’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나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안나가려 해도 안나가지지가 않습니다. 나갈 때 마다 하나는 ‘사로 잡혔구나’, 또 하나는 ‘또, 놓쳤구나’ 해야 합니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면 ‘넘어졌구나’하고 다시 일어나 타고, ‘넘어졌구나’ 또 다시 일어나 타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안 놓치는 경험이 한두번 쌓아져 갑니다. 백번에 한번, 열번에 한번 알아차려집니다. nbsp 도저히 안되면 ‘당신은 남이다.’이렇게 한번 기도문을 잡고 해보세요. 남인데 생활비를 주니 고맙고, 남이다 하는 기준에서 보면 고마워할 일은 많고 미워할 일은 없습니다. 의식에서라도 우선 ‘당신은 남입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면 어느 순간에 정말 딱 다가와집니다. 알아차리면 놓쳤구나, 놓쳤구나 하시면 됩니다. nbsp nbsp JTS캠페인 때 학생들에게 자원봉사 확인서를 발급해 주지 않는다해서 이유가 궁금하다는 한 거사님의 질문에는, 더디더라도 어려운 사람들 돕기 위해 하자하고, 필요하면 나중에 봉사점수를 보태주는 거는 모르겠지만 봉사점수를 내걸고 인센티브처럼 보상이 전제가 되면 수행의 원칙에 맞지 않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활동비 지원을 받으며 해 보았던 JTS해외 사업장에서의 사례나 정부 프로젝트로 진행된 사업 운영에서의 예를 말씀하시면서 자발성과 투명성, 수행단체로서의 원칙 등을 다시한번 정리 해 주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정토회에 꼭 필요한 것은 봉사자 한분 한분이라면서, 청소 등의 작은 소임부터 작더라도 꼭 한 꼭지씩 봉사를 맡아 함께 해 나갈 것을 당부하시면서 마무리되었습니다. nbsp 이어서 가정법회부터 지금까지 성실하게 정토행자의 길을 걸어오며 행자교육을 마치고 법사수계를 받으실 선주왕 전외자 보살님의 인사와 지부 담당법사님이신 덕생법사님의 격려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nbsp nbsp 사진촬영과 정회원들과 스님의 악수시간을 마치고 대전충청지부 정회원의 날이 원만히 마무리되었습니다. nbsp 저녁 7시에는 저녁반을 위한 정회원의 날 법회가 이어졌습니다. 소임을 맡은 봉사자들은 6시에 모여서 일 나누기를 한 후 법회 준비를 하였습니다. 각자 소임에 따라 접수 봉사자는 대전 이외의 지역에서 오시는 도반들을 반갑게 맞이하여 공양 안내를 하고, 내부 안내 봉사자는 청소기로 법당을 깨끗이 한 후 방석을 깔고, 사회자와 영상 봉사자는 음향과 영상 시설을 점검한 후 리허설을 하였습니다. nbsp 평소 7시에 하던 예불을 오늘은 법회가 있어서 20분 전에 여러 지역에서 먼저 도착한 도반들과 함께 여법하게 저녁예불을 올렸습니다. 지부 소속 정회원들의 정성 담긴 목소리가 대법당에 울리고 법회 준비로 약간 들뜨고 산란했던 분위기가 가라앉고 조용해졌습니다. nbsp 홍성, 천안, 청주, 제천에서 대전충청지부 소속 정회원 62명이 저녁법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서로 환영하는 박수로 법회가 시작되었고 지부 사무국장 소임 강명숙 보살님은 “우리 모두는 부처클럽 회원입니다. 오늘 이 자리를 통해서 정회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마음을 모아 정토회의 주인, 법당의 주인,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시며 환영인사를 하였습니다. nbsp 환영인사가 끝난 후 각 소속 법당의 정회원이 앞으로 나와 소개를 갖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대전에서 2시간 정도 걸리는 홍성법당에서는 저녁반 팀장 소임 이근우 거사님 한 분이 오셨는데 “오늘 비록 제가 혼자 왔지만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홍성법당이 아니라 홍성지부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것입니다.”라고 인사를 하셔서 대중 모두가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nbsp 소개가 끝난 후에는 2014년에 새롭게 정회원이 된 신규 발심행자들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즐겨 부르시는 ‘고향의 봄’을 두 손을 모으고 율동을 하며 신규 정회원답게 귀엽게 불러서 대중들도 신나게 웃고 박수를 치며 함께 불렀습니다. nbsp 이렇게 즐겁게 사전 순서가 끝난 후 스님께서는 2시 법회와 마찬가지로 정회원의 자세에 대한 법문을 해주신 다음 즉문즉설이 이어졌습니다. nbsp nbsp 회의란 것이 무엇이고 쟁점이 있는 경우 어떻게 결정을 해야 하는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그냥 바라만 보고 있는데 이래도 괜찮은지, 지인이 외진 곳에 한의원을 개원하는데 그 곳에서 일을 해도 되는지, 어떤 방법으로 왜 평화통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평화통일이 된 후의 세상은 어떠한지, 정회원의 날에도 일반 신도가 스님의 뵙기 위해 참가하면 안 되는지등 총 다섯 분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nbsp “대의원 소임을 하면서 회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또한 회의를 할 때 쟁점이 있는 경우 어떤 과정을 거쳐서 결정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 궁금합니다.”란 질문에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변을 하셨습니다. nbsp “회의란 대중의 뜻을 모으는 것입니다. 여기서 대중이란 수행자입니다. 절에서는 대중의 뜻을 모으는 것을 대중공사라고 합니다. 회의는 대중공사입니다. nbsp 정토회가 회칙 상의 설립취지에 맞게 운영이 되어야 하는데 사람들 사이에 뜻이 다른 경우 그것을 모아가는 과정입니다. nbsp 그런데 이 회의가 일반인들이 모여서 하는 회의가 아니고 수행자들이 모여서 하는 회의입니다. 회의를 할 때 수행자가 아닌 세속적 관점에서 문제 제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점은 경계를 해야 합니다. 아무리 다수가 뜻을 모아도 세속적 관점에서 뜻을 모으면 안 됩니다. 견해 차이가 있으면 정토회에서는 ‘삼의제’라는 방법으로 뜻을 모읍니다. 처음에 충분히 토론을 해서 표결을 했는데 찬성과 반대가 반반으로 나오면 계속 토론을 합니다. 3분의 2이상 찬성이나 반대가 나올 때까지 결정을 하면 안 됩니다. nbsp 완전히 확 기울어져서 표결을 했는데 3분의 2가 찬성이 되고 3분의 1이하가 반대로 나오면 1차 투표가 되고 소수자에게 물어봅니다. ‘다수가 이렇게 동의하니까 소수 의견을 철회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어서 ‘철회한다.’면 통과가 되는 것입니다. nbsp 그런데 ‘철회 못하겠다.’하면 소수자에게만 발언권을 줍니다. 그리고 소수자는 왜 우리가 찬성을 못하는지 설명을 합니다. 소수자의 설명을 듣고 그 설명이 일리가 있어서 다시 투표한 결과 찬성과 반대가 반반이 되거나 5분의3, 5분의2가 되면 계속 토론을 합니다. nbsp 그런데 토론을 했는데 설명을 듣고도 투표한 결과 마찬가지로 소수자가 3분의 1 이하라면 철회할지 다시 물어보고 ‘철회 안 하겠다’하면 한 번 더 발언할 기회를 줍니다. 해명하는 사람들은 고집을 하면 안 되고 자기 의견을 두 번이나 설명해도 3분의 1 이하의 지지를 받는다면 좀 더 충분히 설명을 해야 합니다. nbsp nbsp 충분히 설명을 듣고도 또 3분의 1 이하로 떨어지면 철회해야 합니다. 철회가 의무입니다. 나는 ‘못 하겠다’하면 이것은 수행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nbsp 아무리 자기가 확신하고 옳다하더라도 대중의 뜻이 세 번이나 결정되었는데도 고집하면 안 되고 옳고 그름을 떠나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게 잘못됐다 할지라도 ‘봐라 내가 맞잖아.’ 이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nbsp 왜냐면 이미 결정된 것은 ‘우리 모두의 의견’이기 때문이다. 결정이 된 후에는 ‘나의 의견’은 없어지는 겁니다. 이것이 삼의제이다. 현실적으로 사실은 ‘만장일치제’입니다. nbsp 그런데 만장일치제라고 정해버리면 한 명이라도 끝까지 반대하면 통과가 안 되는 맹점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만장일치제로 끌고 가되 일률적으로 세속처럼 3분의2 찬성이면 통과 이런 것이 아니고 삼의제를 통해서 반대 의견도 수용을 해줘야합니다. 이것이 대중의 뜻을 모아가는 과정입니다. nbsp 쟁점이 생겼을 때는 이렇게 하면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확인하고 의논해서 문제없으면 결정을 하면 됩니다.” nbsp 대전지역에서 통일의병 활동을 하는 오수진 거사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왜 평화통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평화통일이 된 후의 세상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는 질문을 하였는데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변을 하셨습니다. nbsp “제가 인도에 갔다 와서 3월 하순이나 4월 초에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제 정세는 어떤지 등 5개의 강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녹화를 해서 전국에서는 4월 말이나 5월 초에 통일강좌를 열 계획입니다. 정회원은 모두 통일강좌를 들어야 합니다. nbsp nbsp 통일강좌를 듣고 ‘통일이 꼭 되어야 되겠구나’, ‘통일이 우리 사회에 중요한 문제구나’라고 인식이 되면 통일의병 활동을 하게 됩니다. 외부에서는 평화재단이 중심이 되어 통일 의병을 양성하고, 내부에서는 정회원이 통일의병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다시 “정토회원인 여러분들은 정토회 안에서 강좌를 들을 수 있지만 지인들 중에 정토회원이 아닌 분들께는 평화재단에서 ‘시민학교’라는 이름으로 열리고 있는 통일학교로 안내해 주세요.”하시며 대중들께 부탁하셨습니다. nbsp 즉문즉설을 마친 후에는 대전충청지부 상임 담당 법사이신 덕생 법사님께서 “저 자신을 돌아보면 어떤 일을 할 때 대충대충 하면 재미가 없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때 신이 나고 의미 부여가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저녁반의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본분이 수행자임을 놓치지 말고 살아나갔으면 좋겠습니다.”하시며 정리 인사 말씀을 하셨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대전 이외의 지역에서 직장을 마치고 오느라 늦게 도착한 정회원 분들을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게 하신 후 법회를 마치시고 새해 인사를 받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모두 다 행복하세요.”하시며 덕담을 해주셨습니다. nbsp 새해 인사가 끝난 후에는 기념 촬영을 하고 정회원 한 명 한 명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저녁반 정회의 날 행사를 마쳤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법회후에 원고 교정을 보신 후 11시가 넘어서 내일 서울제주지부 정회원의 날 법회를 위해 서울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2015.2.26 강원경기동부 지부 정회원의 날
nbsp nbsp 오늘은 분당정토회 분당법당에서 강원경기동부 지부 정초 정회원의 날이 있는 날입니다. 강원경기동부 지부는 총 7개의 정토회와 18개의 법당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정회원은 총 339명이 있으며 정토회별로 살펴보면 분당 89명, 수원 87명, 용인 56명, 남양주 55명, 춘천 11명, 원주 28명, 강릉 13명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오후 2시 법회에는 101명이, 저녁 7시 법회에는 73명의 정회원이 참석하였습니다. nbsp nbsp 주간 법회는 강원경기동부 지부 사무국장 이연옥 보살님, 저녁 법회는 분당정토회 대표 박기범 거사님의 인사 말씀을 듣고 정토회별 참가자 소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한분 한분이 소개될 때마다 스님의 따뜻한 눈길과 밝은 인사를 보내주시는 스님 앞에서 한 보살님은 발심행자가 되니 스님 앞에서 소개를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nbsp 떨리는 마음으로 스님께 인사드린 후 신규 발심행자를 환영하는 꽃다발 증정식과 신규 발심행자 소개 영상 및 축하 공연으로 여는 의식을 마무리하고 법문을 청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법문을 통해 정토회의 회원 제도와 정회원의 의미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누가 정회원 되면 무엇이 좋나요? 질문하면 “부처되는 길이 좀 빠르다.”라고 이야기하면 된다는 말씀에 “네”라고 대답하는 참가자의 목소리에서 결연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nbsp 세속적 가치로 살아가는 우리네 중생의 어리석음을 일깨워주는 법문을 통해 정토회 정회원의 책임과 의무 그리고 수행자로써 검소하게 봉사하면서 살아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nbsp 법문 후 즉문즉설을 진행하였습니다. 주간 법회는 7명이 저녁 법회는 11명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주간 법회에서는 보살님들만 질문을 하셨는데 그 중 몇 가지를 소개드리겠습니다. nbsp 분당 법당에서 활동하는 보살님이 남편과의 문제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남편이 희망편지를 읽고 ‘20살이 넘으면 자기가 살 걸 책임져야 한다는데 너도 이제 돈을 벌어라’ 라고 하는데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여쭈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남편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남편한테 봉사를 안 해서 그렇습니다. 집에서 봉사 좀 해주세요. 아양도 떨고 정성스럽게 말로도 해주세요.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남편 옆에 붙어서 먹고 살겠습니다.’ 하면서 그럴 때일수록 더 숙여야 됩니다. 남편을 어린 아이처럼 생각하고 남편의 그런 마음에 대응하지 말고 엄마 기다리는 아이처럼 생각하세요. 그런 걸 두려워하면 수행자가 아닙니다. 심리적으로 당당해야 합니다. 노예처럼 그 사람 때문에 법당에 가지도 못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남편의 마음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는 되니까 ‘여보 미안해’ 하고 받아주면 됩니다.” 라고 남편과의 부딪힘에서 가져야 할 마음 자세에 대해 일러주셨습니다. nbsp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남편과의 관계 문제로 힘들어하는 다른 보살님께서도 질문을 했습니다. 남편을 설득해 명상수련이나 나장을 가고 싶은데 허락을 안해줍니다. 그동안 거짓말을 하면서 다녔고 성도재일 때 거짓말을 했다가 들켰다는 보살님에게 스님께서는 “수행자는 자기가 하고 싶다고 다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고 하시면서 nbsp “장애가 있는 가운데서 극복하는 것을 수행이라고 합니다. 가고 싶은데 포기하는 것도 수행이고, 가지말라고 하는데 갔다 와서 한 대 맞는 것도 수행입니다. 못 가면 속박, 가면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가고 싶을 때 갔다면 과보가 따릅니다. 갔으면 두들겨 맞든지 ?겨나든지 과보를 받아야 합니다. 그걸 피하려니 머리가 아픈 거죠. 가더라도 속박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되는 쪽으로 계속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아양도 떨어보고, 말로도 해보고, 그냥도 가보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서 방법을 찾는 게 수행입니다.” nbsp nbsp 힘들 때 밖으로 나가려는 경향이 있고 집안일을 힘들어하며 게으른 습이 잘 안 바뀐다는 추가 질문에 “남편이 볼 땐 집안 일을 해놓고 정토회를 나가든 해야 하는데, 정토회도 가고, 집안일도 안하고 하니 남편이 잔소리를 하지요. 정토회에 나와서 일을 하고 싶으면 일찍 일어나서 집안일을 하든가, 아니면 정토회를 포기하든가 해야 합니다.” 라며 원하는 바가 있을 때 모든 것을 다 쥘 수는 없다는 점을 꼬집으셨습니다. nbsp 무릎이 아파 병원에서 절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보살님의 질문에는 “병원에서 명백하게 절하면 안된다고 얘기하면 그에 따라 절 대신 앉아서 주력을 1080번 하면 됩니다. 관세음보살에 집중하는 겁니다. 망상을 피우고 따라가지 말고 주력에만 집중해서 합니다. 호흡에, 참선에, 염불에 집중해서 하면 됩니다. 의사한테 얘기해서 천천히 108배를 하면 괜찮은지를 물어보고 의사의 소견에 따라서 하면 됩니다.”는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nbsp 의정부 법당의 한 법우님은 정토회에서 이야기하는 ‘수행공동체’라는 개념과 ‘통일의병’ 사이에서 혼란을 느껴 정리가 필요하다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께서는 “정토회는 2가지 목표가 있는데, 하나는 부처님의 정법을 구현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와 인연 지어진 이땅에 보답하는 민족중흥입니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 분단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는 원을 세운 사람이 정회원인데 정회원은 정토회의 설립취지에서 이 땅의 통일을 이루는 것에 도움이 되자는 것이 포함이 된다는 것입니다. nbsp 그러나 정토회는 가장 근본은 수행입니다. 수행자로서 뭔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는 분단이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북한의 굶어죽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도 통일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통일 없이는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1차 만일은 한국통일이 먼저인 거예요. 정회원 중에서도 통일의병을 안 해도 됩니다. 그런데 한국에 살면서 통일을 안 하겠다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나요?” nbsp nbsp nbsp 다음은 용인법당 보살님의 질문에 대한 스님의 법문입니다. “저는 기독교 집안에서 모태 신앙으로 태어났습니다. 친정어머님은 독실한 신자로 집사님이신데 제가 1년 전 부터 정토회를 다니면서 관계가 불편합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 때 새벽에 어머님은 교회에, 저는 법당에 새벽 기도 갈 때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하게 만나면, 어머님께서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바로 “그게 왜 괴로워요?”라고 물으시니 질문자는 “저도 옆집 할머니께서 교회가시는구나 라고 머리로는 생각을 하려고 합니다만 어렵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니 스님께서는 “남편은 저 회사, 아내는 이 회사로 출근하듯 어머님은 교회가시고 본인은 법당에 오면 됩니다. 그리고 모태 신앙이라고 하지만, 어머님께 여쭤 봐요. 할머니, 증조할머니께서도 기독교 신자였는지? 분명 불교신자였을 것입니다. 그렇듯이 나도 어머님과 다르게 불교신자가 될 수 있어요. 그게 뭐 큰 문제라고 그래요. 모태 신앙이 어디 있어요? 뱃속의 아이가 어떻게 알아요? 아침에 어머님 교회에 모셔다 드리고 법당에 오면 됩니다. 어머님께서 불편해하는 것은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불편한 것은 자신의 수행문제로 봐야 합니다.” nbsp 질문자는 해소되지 않는 것이 남았는지 스님께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nbsp “그런데 얼마 전 막내 아이가 엄청 아팠습니다. 근데 제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더라고요. 위기 상황 때 저도 모르게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라는 질문에 스님의 말씀이 너무나 큰 가르침으로 다가왔습니다. nbsp “아무 문제없습니다. 기독교 신자였으니 급박한 순간에 하나님을 찾는 것은 당연할 수 있습니다. 아직 수행이 부족하니 하나님도 찾고, 부처님도 찾는 것은 아무 모순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신자와 수행자를 구분하라고 법문 했잖아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수행은 아무 상관없습니다.” nbsp nbsp nbsp “근데 제가 불대 진행자로써 찔리는 마음이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스님께서는 “기독교 신앙이 마음바탕에 있고 겉은 수행자라서 그런 것입니다. 수행자가 마음바탕에 있고 겉에 종교가 있으면 괜찮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심리 현상입니다. 부모, 형제가 교회 다니면 기분 나쁘고, 법당에 오면 기쁘고 이것은 정토회의 수행자가 아닙니다.” nbsp 즉문즉설을 마치고 주간 법회에 참석한 정회원들은 스님께 삼배로 새해인사를 드리고 각 정토회별로 기념 촬영을 하고 법회를 마무리 하니 저녁 6시가 다 되었습니다. 봉사자들의 빠른 손놀림으로 저녁 법회를 준비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주간 법회와 마찬가지로 각 정토회별 저녁부 정회원 소개를 꼼꼼하게 챙겨주셨고, 신규 정회원들은 스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nbsp 법문을 통해 다시금 정회원의 의미와 수행자로써의 정체성과 중요함을 일러주시면서 부지런히 수행하고 봉사하여 이 생에서는 최소한 법사까지는 되어야 함을 강조하신 후 즉문즉설에 주간 법회보다는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nbsp 저녁부이다보니 직장 생활과 관련된 질문을 소개드립니다. nbsp “몸이 피곤하면 회사에서 고객에게 밝게 대응하지 못하고 불친절합니다.”라는 질문에 스님께서는 분명하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nbsp “잠이 부족해 피곤한 것은 본인 문제입니다. 고객에게 화내면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는 것이니, 자신이 자각해서 분리해서 행해야 합니다. 몸이 아픈 것은 내 사정이고 오히려 상대방에게 사과하고 양해를 구해야 할 상황입니다. 본인이 피곤한 것은 고객과는 관련 없는 것인데, 왜 고객에게 불친절합니까? nbsp 스님이 법문하기로 했으면 편두통이 생겨도 법문을 하고 병원에 가서 치료 받고 해야지, 아프다고 약속한 법문을 취소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죠. 도저히 안 되면 고객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몸이 아프다고 사과하고 양해를 구해야죠.” nbsp nbsp nbsp 한 거사님께서는 ‘정말 수행자로써 술을 마시면 통제가 안되는데 그래도 괜찮은 것인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셔도 됩니다. 사는데 아무 지장 없어요. 그런데 해탈은 못합니다. 수행자가 되려면 이런 이야기 하면 안됩니다. 과음하지 말라. 취하지 말라고 하잖아요. 술자리에 따라가서 앉아 대화하고 술값도 내 주고, 술을 주면 못 마신다고 하면 됩니다. 그럼 친구들이 온갖 소리 다 하겠지만, 그래도 술 안 마시면 됩니다. 자기가 결정을 했으면 그것을 못 이기면 어떻게 서원행자가 되고 법사가 되겠어요? nbsp 인간 팔자 자기하기 나름이고 운명을 내가 정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우리가 편한 거 하려고 수행하는 것 아니잖아요?” 라는 말씀에 질문하신 거사님은 더욱 수행정진하겠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nbsp 정토행자의 중심은 수행이고, 우리는 수행자로서 통일의 원을 갖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는 것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nbsp nbsp nbsp 정토회별로 사진촬영과 새해 인사를 드린 후 ‘우리는 신도가 아니고 정토행자 즉 수행자이다’라는 말씀을 새기며 오늘 정회원의 날을 마무리하였습니다.nbsp nbsp
2015.2.25 인천경기서부 지부 정회원의 날
nbsp nbspnbsp 어제 밤 늦게 광주에서 출발하여 새벽에 서울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오전에는 정토회관에서 업무를 보시고 오전 12시에는 김장훈씨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김장훈씨는 스님과 만남이후 평화재단 활동가들과 기념촬영을 하기도 한 후 돌아가서는 자신의 트위터에 스님께서 힘내라서 밥상을 차려주셨다면서 마, 더덕이 맛있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nbsp nbsp 오후 2시부터 정토회 서초 법당에서 인천경기서부 정회원의 날 법회가 있었습니다. 인천경기서부 정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정회원으로서의 권리, 책임과 의무에 대한 스님의 말씀 듣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 가졌습니다. 인천경기서부 지부는 넒은 지역에 법당이 포진되어 있어서 교통편이 나쁘고 아직 많은 인원을 수용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서초 법당에서 진행되었습니다. nbsp nbsp 인천경기서부 지부는 2014년에 출범했고, 일산 정토회가 93명, 인천 정토회가 62명, 안양 정토회가 54명, 부천 정토회가 42명으로 총 251명의 정회원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오늘 오후 2시 법회에는 인경지부, 서울 및 문경 공동체, 행자대학원생, 시드니와 해외지부사무국에서 오신 두 분등 모두 115명의 정회원들이 참석해주셨습니다. 행사 시작에 앞서 송순애 인경지부 국장님의 여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정회원들이 함께 모일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인경지부는 이번에 102명의 정회원이 참여함으로써 전체 회원의 41에 해당합니다. 역사가 짧은 법당과 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활동가들이 많은데 활동가들의 노고가 이 수치에 모두 담긴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재미있고 활기찬 인경지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nbsp 여는 말씀이 끝난 후 인경지부의 2014년 활동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영상이 준비되어 모두 흥미롭게 우리의 모습과 이야기가 담긴 영상을 감상했습니다. 그 후 각 정토회별 참가자 소개가 있었습니다. nbsp 약간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인경지부의 각 정토회별로 각자 자기소개를 한 뒤 신규 발심행자들에 대한 환영 박수가 있었고 조금은 급하게 준비한 티가 나지만 활기를 띄우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한분 한분이 어느 법당에서 어떤 소임을 맡고 있는지 많은 관심을 보이셨고 일일이 배치된 자리 정돈을 해주시고 각 정토회별로 몇 명이 참석했는지도 확인하시는 등 빈틈없이 챙기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어서 서울과 문경 공동체, 행자대학원생들, 호주 시드니 법당에서 오신 구본승, 해외지부사무국에서 불교대 팀장 소임을 맡고 계신 임금이 법우님의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nbsp nbsp 이렇게 각 정토회별로 각자의 소임, 이름등의 소개를 마친 후 스님께서는 정초 기도와 새해 시작의 사전 준비, 초발심의 중요성에 대한 법문을 들려주셨습니다. nbsp “정초기도 잘하셨어요? 정초에 기도를 하는 것은 앞으로의 한해를 위해 정초에 정성을 기울여 준비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준비하지 않을때에 비해서는 사고가 줄어들고 사고가 나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세월호도 제대로 준비 안 해서 사고가 생겼고, 사고 후 신속하게 대응을 못해서 피해가 커졌습니다. nbsp 어떤 일이든 아무리 준비해도 예상대로 안 되기도 하지만 준비가 잘 될수록 실패율이 낮아지고 또, 실패해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습니다. 정초기도 제대로 안 한 사람, 꼭 하세요. 정초기도 뿐 아니라 불사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준비 과정에 함께 함으로써 화합을 도모하고 사고를 미리 예방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를 잘 하고 연구해 가면서 공부해야 합니다. 또한 수행이란 탐구하는 것입니다. 초발심자들은 아직 서투르지만, 정신을 딱 차려서 정성을 기울여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오랫동안 하고 있어서 업무에는 익숙하지만 타성에 젖어있는 사람들보다 더 수행자다울 수 있습니다. 타성에 젖으면 수행에 진척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먼저 간 자가 나중에 간다.’는 말도 있지요. 무난하기 때문에 자극 받기가 어렵고 그래서 초심자들보다 못할 수 있습니다. nbsp nbsp 우리가 100일 마다 입재식을 하는 이유도 타성에 젖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늘 처음 하는 것처럼 오류를 발견하고 시정해 가야 창조가 있고 발전이 있습니다. 생물도 늘 새로 바뀌고 진화하듯이 이는 자연의 원리이자 우주의 질서입니다. 늘 똑같은 날인데도 새해라 하는 이유는 인생살이가 늘 반복되어 타성에 젖기 쉬운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지난해의 오류를 시정하고 새해에는 새로 다짐하고 출발하면 전 해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듯 해도 조금씩 발전이 있습니다. 인생은 우리의 업식, 즉 카르마가 반복되는 것이고 이를 벗어나는 게 해탈입니다. 수행자는 이것을 목표로 나아가야 합니다.” nbsp 이어서 정토회 행자와 정회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nbsp “정회원은 뭐냐? 정토회는 신자, 신도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정토 행자, 정토 회원이란 용어만 있습니다. 정토회원에는 후원회원, 일반회원, 정회원이 있는데 모두 정토회 안에서의 혜택은 같지만 일정한 책임과 의무가 정회원에게만은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정회원이라 해서 별다른 혜택이 있는 건 아니고 다만 해탈과 열반을 인생 목표로 삼아 적극적으로 활동해서, 부처가 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정토 세상을 만들어가는 부처 클럽회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nbsp 그리고 정회원이라면 자신이 수행자라는 중심이 딱 잡혀있어야 하고 뚜렷한 자부심과 목표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만약 사이비라고 해도 눈도 깜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준이 잡히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습니다. 머리를 자르지 않고 자꾸 법당에 가니 집에 가면 가족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만, 관점을 딱 잡으면 문제가 없습니다. 기존 종교의 문화는 인정하고 존중하고 예를 갖추되, 정토회 안에서는 수행자여야 합니다. 정토회는 오직 수행자들의 모임입니다.” nbsp nbsp 다음은 즉문즉설 시간이었는데, 본래 질문이 많았던 인경지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자세한 법문 때문인지 질문하시는 분이 계시지 않아 착하다는 칭찬까지 듣고 스님께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있는 1분 스피치로 바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지정된 시간 안에 질문이 없는 것을 보시고 정회원에게는 정을 끊어줘야 훈련이 된다고 하시며 바로 1분 스피치로 이어졌습니다. nbsp 그중에는 즉문즉설의 질문 타임을 놓쳐서 아쉬운 마음에 1년 동안 정토회 활동 했던 소감과 질문과 섞인 스피치를 하신 분, 3년간 기도 정진하시다가 요즘 쉬고 있는데 솔직히 쉬니까 몸은 편하고 친구들 만나는 게 좋지만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들기도 하신다는 인천의 보살님들, 인도에서 수자타 아카데미 교장을 하고 있다가 쉬고 싶어서 한국으로 왔는데, 동국대에서 8년 만에 박사 과정까지 하루도 못 쉬다가 어제 졸업하니 이제야 정말로 쉬는 것 같다는 쁘리앙카님, 최근 JTS에 인력이 부족하니 봉사자를 모신다고 하셨던 JTS 사무국장님, 처음에 스님 뵈었을 때 너무 표정이 무서워서 마음에 안 들었지만 뵐수록 명쾌한 말씀이 좋았고 수행자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는 분, 발심행자로서의 긍지를 심어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전하신 분, 활동한지 4년이 됐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내가 수행자임을 다시 깨닫게 되어 기쁘다는 분, 오는 3월부터 발대식을 하는 군포 법회 불사팀의 응원을 부탁하신 분등의 발표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마지막 스피치에 대한 조언으로 “좋은 법당자리를 얻는 것은 일반적인 회사 사무실 얻는 것과는 다릅니다. 발품을 많이 팔아 위치 좋고 깨끗하고 값도 싸고 목탁을 두드려도 시비가 없을 만한 곳으로 정성을 다해 골라야 합니다. 저는 2차 만일결사때는 본부를 미국에 두려는 생각으로 22년 전부터 땅을 보고 있는데도 아직도 구하지 못했어요. 시작이 반이니 이렇게 출발하면 절반은 한 것이니까 계속 정성을 다해 준비하시면 됩니다.”며 22년째 불사를 준비하고 있는 스님의 예를 들면서 불사에 임하는 분들을 격려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마지막으로 인경지부 상임법사이신 묘수법사님께서 “수행자로서 이 세상에 뭔가 해보려는 이들이 모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정회원들이 출발점이 되어 모범을 보이면서 함께 원을 세우고 나아가면 될 것 같습니다. 함께 해주신 스님께 감사드리고 기쁩니다.”라고 하시며 마무리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nbsp 모든 법회를 마치고 참석한 인경지부 정회원들은 스님께 새해 세배를 드렸고, 지역정토회별로 기념촬영을 한 후 스님과 악수를 하면서 오후 5시가 되어 인경지부 정회원의 날 법회를 마쳤습니다. nbsp 이어서 저녁 7시부터 인경지부 저녁반 정회원들을 위한 법회가 서초법당 2층 소강당에서 있었습니다. 6시가 넘어서부터 출입구 앞에는 봉사자들이 분주히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소강당 앞에는 소담스럽게 담긴 현미가래떡과 귤이, 퇴근 후 인천경기서부 각 지역에서 스님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달려오시는 정회원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에 이어 참으로 바쁘시고 힘든 일정을 보내시고 계신 스님과의 만남이 인천경기서부 정회원들을 설레게 하였습니다. 일산, 인천, 안양, 부천 각 정토회순으로 각각 도반들의 자기소개와 정토회 별 구호가 이어지기도 하였습니다. nbsp nbsp 각 지역정토회별 소개가 끝난 후 스님께서는 정토회 정회원이 무엇인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등 정회원의 자격요건, 책임과 의무, 모든 일에 임하는 자세등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시면서 모두가 법사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부지런히 수행정진 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nbsp 이어진 즉문즉설에서는 정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든 의문이나 고민등이 다양하게 이어졌습니다. 인경지부 정회원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nbsp 첫 번째 질문자는 “도반들이 스님 건강이 어떠신지 걱정을 많이 하고 여쭈어보라 하셨습니다. 또 저희가 임진각 통일정진기도를 인경지부에서 법당들끼리 모여서 하는데 북한 아이들도 아침밥을 먹었으면 좋겠습니다는 플랭카드를 들고 합니다. 2014년 사회활동과제 수행 중 새터민 초청강연을 들었는데, 사람들은 다 죽고 호랑이와 늑대만 남았다. 먹는 것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 겉으로만 봐서는 위기는 지났다고 하는데 점검이 필요합니다. 또 새로운 백년을 읽으면서 역사상 평가를 못 받았던 지리산 남부군에 대해서 통일 정진을 하면서 가서 천도재를 지내드려야 제 맘이 편해질 것 같다는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 생태계에서 모든 수컷들이 자식을 돌보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황제펭귄과 가시물고기는 열심히 돌보는데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여쭈어봅니다.”라며 평소 활동하면서 든 의문에 대해 질문을 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특정한 한 개의 예를 들어서 비유하면 안됩니다. 남자가 여러여자 데리고 살면 저 수컷 짐승들을 봐라하고, 반대로 여자가 남자 여러명을 거느리면 여왕벌을 예로 듭니다. 생태계에는 수많은 종이 있습니다. 자연생태계에서 볼 때 어미는 목숨을 걸고 새끼를 지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크면 죽던지 말던지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고 정을 딱 끊어버립니다. nbsp nbsp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것은 선행이고, 부모가 어린 자식을 돌보지 않는 것은 나쁜 행위입니다. 그런 기준을 얘기할 때 생태계의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윤리적 개념이나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안됩니다.”라며 뒷 질문부터 이어서 지리산 남부군, 북한의 식량사정에 대해 차례로 답을 해주셨습니다. nbsp “지리산 남부군 천도재는 2030년전부터 어느 편을 떠나서 천도재를 지냈습니다. nbsp 북한의 식량사정은 예전에는 북한은 지위여하를 불문하고 모두가 식량사정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에 배급제도가 거의 없어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개개인의 빈부격차가 심합니다. nbsp 아직도 가난한 사람중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북한을 방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양시내나 보지 뒷골목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렇습니다. 탈북자라고 해도 굶어죽는 사람들에 대해서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평양에서 온 사람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nbsp 지금 북한의 식량사정은 개선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평양만은 옛날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다들 방문하는 사람들을 좋은 곳으로만 안내하기 때문에 어려운 사정을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nbsp 북한의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을 북한정부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도와주려면 조용히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굶어죽는다고 너무 떠벌리지 말고 사진도 못찍게 하고, 그러나 북한 사정이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요즘 탈북자들은 먹고 살만한 사람들입니다. 국경경비가 워낙 삼엄해서 국경을 넘어올 때 돈을 주고 넘어오기에 굶어죽을 사람이 넘어올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중국돈 몇 만원을 외부로부터 지원받든 본인이 주든 해야 넘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사람들 만난다고 어려운 사정을 다 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nbsp 우리는 북한의 모든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북한사람들의 생존과 인권이 개선되도록 하는 통일염원 참회정진 기도를 계속해야 합니다.”라며 통일을 위해 우리가 계속 북한을 지원하고 통일염원 기도를 계속해 나가야 함을 강조해 주셨고, 이어서 “스님 건강은 원래 태생적으로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건강 나쁜 것은 나쁜 거고, 내 할 일은 할 뿐입니다. 스님이 내일 죽었다 해도 울 필요는 없습니다. 열심히 살다가 가셨구나, 이러면 됩니다. 수명이 다 되어 가는 걸 안타까워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단명한다고 해서 40살까지 살거라 했는데, 벌써 살만큼 살았습니다. 더 연연할게 무엇이 있나요? 법사님들이 계시고, 시스템이 있으니 괜찮습니다. 걱정되는 건 이해되지만 괜찮습니다.”라며 스님의 건강에 대해서도 괜찮다는 답을 해주셨습니다. nbsp 다음 질문은 “경전반 졸업하고 소임을 맡아서 일을 하고 있는데 불대는 열심히 했는데 소임이 어렵습니다. 거리모금도 나가기 전에는 분별심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여기 오면서 질문을 하는 것도 수행으로 삼아 해야지, 잘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고 돌이키고는 있지만 이렇게 불대 다닐때는 분별심이 없었는데 오히려 지금 더 생기고 있습니다.”는 고민에 대해 스님께서는 nbsp nbsp “그 정도는 모든 사람이 하는 고민입니다. 나도 어릴 때 100미터 달리기 하기 전에 화장실을 세 번이나 갔다와야 했어요. 누구에게나 모든 일에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거리모금도 그렇고, 여기 오는 것도 그렇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그렇게 고민이 되지만 일어나서 기도하면 괜찮습니다. 그런 경험을 살려서 처음에는 싫지만 하고 나면 좋으니까,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바랍니다.”며 모든 것을 경험으로 삼아 부지런히 해 나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nbsp 세 번째 질문자는 “작년 10월에 법당에서 활동가들 사이에 일이 좀 있었는데 아직도 도반들을 보면 서먹서먹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며 도반들과의 갈등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공부를 하니까 생각은 내려놓아야 하는데, 업식은 아직 그대로 거부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생각이라도 알아차리면 아직은 거부반응이 있지만, 자꾸 하다보면 괜찮아집니다. 불편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업식이 반응하구나’ 이것을 보면서 자꾸 만나면 적응이 됩니다. 지나놓고 보면 별거 아니예요. nbsp 마음이라는 것이 좁아지면 바늘하나 꽂을 자리가 없고 탁 터 놓으면 드넓은 우주보다 넓어집니다. 내가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자각을 해야 합니다. 딱 일어나면 일어나야지 하는 생각이 없어집니다. 불편한 사람과 자주 만나보세요. 혼자서 기도하는 것 보다 직접 만나서 불편하는 것도 지켜보고 그렇게 부딪혀 보세요. 부딪혀서 아무렇지도 않아야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만나서 얘기하다보면 ‘별거 아니네...’그렇게 될 것입니다.”며 갈등에 대해서도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돌파해 보기를 조언해 주셨습니다. nbsp 네 번째 질문자는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강조하셨는데 괜히 정회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도로서 기도하고 부처님 매달릴 때와 수행자로 기도할 때가 같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부처님께 기도할 때 신도로서 비는 마음이 큰데, 굳이 수행자로서의 자세로 바꿔라는 것이 이해가 안됩니다.”며 정회원이 수행자라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질문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신도로서 의문을 가지고 지켜보세요. 나의 운명을 관장하는 어떤 존재가 있으니까 부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원래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운명은 자기 업식에 의해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에 의해서 변화하는 것이지, 제사를 지낸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nbsp 불법에 귀의한다는 것은 내 운명을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원래 부처님이 가신 길을 한번 가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도로서 그렇게 기도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인도성지순례 갈 때 부처님을 신처럼 생각하고 복 빌던 사람은 헷갈립니다. 그래서 인도성지순례는 불교대학 졸업한 사람들만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며 우리가 왜 신도가 아니고 수행자인지에 대해 다시한번 짚어주셨습니다. nbspnbsp 이렇게 모든 즉문즉설을 마치고 스님께 세배를 드리고 기념촬영을 하였고 스님께서는 악수로 회원들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nbsp 오랜만에 스님과 함께 보낸 시간은 지혜의 가르침으로 환해졌으며, 귀가길이 멀어도 가슴 한가득 희망을 안은 채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도반님들의 뒷모습은 봄비를 가르며 희망을 전하듯 행복해 보였습니다. 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