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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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4.18 두북 어르신들 봄 나들이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울주군 두동면과 두서면에 살고 계신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순천 선암사로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농촌에서 혼자 사시는 독거노인분들은 무관심 속에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요. 해마다 봄과 가을이 되면 스님은 노인 분들을 모시고 나들이 가는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nbspnbsp스님은 어르신들보다 먼저 두북 정토수련원 운동장에 도착해 어르신들을 맞이했습니다. 어르신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차에 오르는 것을 도왔습니다. 버스가 출발하고 각 버스의 어르신들에게 수신기가 전달된 후 스님의 인사말과 함께 오늘 목적지인 선암사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습니다.nbspnbsp“오늘 가는 순천은 경상도인 하동을 지나 섬진강을 건너 전라도인 광양 다음에 나타나는 도시입니다. 선암사는 순천에 있는 조계산의 동쪽 자락에 있는데, 한국 불교 태고종의 본사예요. 다른 큰 절과 달리 새롭게 불사를 하지 않았어요. 그 덕분에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 옛날의 운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절입니다.nbsp버스에서 내리시면 15분 정도 걷는 길이 있는데, 걷기 힘드신 분들은 절에서 제공해주는 작은 버스를 타고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내려서 걷는 길 중에 있는 승선교가 우리나라 최초의 무지개 다리로 이 절의 유명한 볼거리에요. 또한 600년 된 천연기념물 홍매화와 백매화가 볼만한데 지금은 꽃피는 시기가 지나 꽃은 볼 수 없을 것 같아 아쉽네요.”nbsp11시가 조금 넘어 선암사에 도착하여 미리 안내한 대로 걷거나 차로 이동하여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사찰순례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주차장에서 절까지 15분 정도 걸으면서는 스님의 설명대로 승선교를 볼 수 있었습니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신선이 승천하는 곳이라고 해서 ‘승선교’라고 이름이 지어졌습니다.nbspnbsp▲ 승선교를 지나nbsp바로 연이어서 또 하나의 보물인 ‘강선루’가 나타났습니다. 이곳은 반대로 신선이 내려 앉는다는 곳입니다. 때마침 범종루에서 종이 울렸는데 스님은 “불교에서 종을 울리는 이유는 지옥 중생을 구제하려는 의미이고, 북을 치는 이유는 짐승들을 구제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목어는 물고기를, 운판은 새들을 구제한다고 합니다. 불교는 이렇게 사람뿐만 아니라 지옥중생과 짐승까지도 구원하고자 하는 넓은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법회를 하기 위해 ‘만세루’로 이동하면서는 버스에서 간략하게 소개했던 선암사의 유래에 대해 더욱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선암사의 기원은 신라 진흥왕, 백제 성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도화상이 창건하였고, 이때로부터 1500년이 된 절입니다. 그 이후 통일신라 말에 도선스님에 의해 선암사로 재창건되었는데, 이때로부터는 1200년이 됩니다. 고려시대에 왕자의 신분으로 출가해서 스님이 된 대각국사 의천이 다시 선암사를 크게 중창했는데, 대각암에는 그 스님의 유골을 모신 승탑이 남아 있어서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nbspnbsp선암사도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절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어요.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이유는 일부러 불태웠다기 보다 스님들이 주축이 된 의병들의 본거지가 사찰이었기 때문입니다. 의병을 소탕하려다 보니까 절을 불태웠던 겁니다. 6.25 때도 많은 사찰이 불에 타서 소실되었습니다.”nbspnbsp작은 사찰이지만 담길을 따라 꽃나무 아래를 걸었습니다. 스님은 “절 예쁘죠. 오목 조목하니…” 라며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모퉁이를 돌아 조계산 전경이 펼쳐지자 어르신들은 “아 경치가 끝내주네.” 하고 크게 감탄을 했습니다.nbspnbspnbsp또 스님은 탐스럽게 열매처럼 핀 왕벚꽃이 나타나자 “아따 좋다 좋아” 라고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어르신들도 장면 장면에 따라 터지는 스님의 리액션에 함께 웃으며 기뻐했습니다.nbsp▲ 왕벚꽃nbsp‘신검당’을 지나면서는 현판을 읽으면서 ‘우리의 번뇌를 자르고 지혜를 증득한다’라는 의미라고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원통각’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입니다. 여기서는 옛날 어느 스님이 꼬박 1000일을 기도했는데도 아무 영험이 없자 실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 때 어느 여인이 홀연히 나타나 구해주었는데, 그 여인이 알고 보니 관세음보살이었다는 전설 같은 옛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었습니다. 또 정조대왕이 아들을 한참 동안 얻지 못하다가 이곳에서 기도를 한 후 순조 임금을 낳게 되었다는 영험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만세루에 도착해서는 주지스님인 호명 스님의 인사말씀을 청해 들은 후 이어서 법륜 스님이 어르신들을 위한 법문을 들려 주었습니다.nbspnbspnbsp특히 스님은 늙었을 때 꼭 유의해야 할 점을 어르신들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아주 재미있게 얘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제가 작년에 법회할 때 나이 들어서 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고 했는데, 다들 기억하세요?”nbsp“예.”nbspnbsp“첫째, 과로하면 안 됩니다. 젊을 때와 달라서 이제 과로해서 한번 몸져누우면 건강에 아주 해롭습니다. 그래서 늘 과로를 조심하셔야 합니다. 농사도 재미로 지어야지 돈 생각하고 지으면 안 됩니다. 젊을 때는 악착같이 농사를 지어서 돈을 벌어야 했지만 이제는 운동삼아 지으세요.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건강에 안 좋으니까요.”nbspnbsp“농사는 운동 삼아 지을 수가 없어요.”nbsp“그러니까 농사를 재미삼아 심심풀이로 하시라는 겁니다. 죽기 살기로 하면 힘들어서 못 합니다. 요즘 제가 젊은 사람들을 상담해 보면 이런 하소연을 많이 합니다. ‘부모님께 농사를 짓지 말라고 했는데도 부모님이 농사일을 벌려놓고는 저희더러 주말마다 와서 거들라고 하세요. 그래서 막상 가면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시고, 또 아침이 되면 호미를 찾아 들고 밭에 가세요. 아프다고 할 거면 농사를 짓지 마시고, 농사를 지으려면 아프다고 하지 마시라고 해도 부모님이 말을 안 듣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자식들더러 자꾸 주말에 오라고 하지 마세요. 아셨지요?”nbspnbsp“예.”nbsp“그리고 요즘 같은 세상에는 며느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됩니까? ‘우리 아들 안 버리고 같이 살아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 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요즘에는 여자들의 발언권이 커졌으니까요.nbspnbsp제가 며칠 전에 중국 북쪽 몽고족이 사는 도시에 다녀왔어요. 거기가 바로 우리 조상들이 5000년 내지 6000년 전에 살았던 곳이어서 유물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고 해서 이번에 다녀왔거든요. 그런데 지도만 보고 찾아가려니까 위치를 잘 모르겠기에 그 동네 할아버지께 여쭤보고 찾아갔어요. 유적지를 찾아가는 동안 그 할아버지와 대화하면서 알게 된 걸 여러분께 말씀드려 볼게요.nbspnbsp중국의 시골에는 여자들이 다 도시로 나가버려서 마흔에서 오십 먹은 노총각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 노총각들은 결혼하기가 어려우니까 북한여자라도 데리고 와서 같이 살려고 해요. 또 북한여자들은 중국으로 넘어왔으니까 어디에라도 숨어서 살아야 되잖아요. 그래서 요즘 우리나라에 베트남 여자들이 시집오듯이 북한여자들도 그렇게 중국 시골로 시집가는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 갔더니 결혼하려면 여자 집에 20만 위안, 즉 4,000만 원은 줘야 한 대요. 그래서 제가 ‘촌에 무슨 그런 큰 돈이 있느냐?’고 물으니까 ‘아들들이 촌에 안 있고 다 도시로 나간다. 그래서 돈을 벌어서 그 돈을 마련하면 장가가는 거고, 아니면 못 가는 거다. 그리고 요즘은 도시에 아파트도 마련해줘야 된다’고 말하더라고요. 아파트는 30만 위안, 즉 6,000만 원이 든답니다. 그러니까 아들 장가를 보내려면 얼마나 든다는 거예요?”nbsp“1억 원이요.”nbsp“그래서 제가 ‘그래서야 어떻게 장가를 보내느냐?’고 했더니 ‘그렇기 때문에 못 보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세상이 지금 이렇게 바뀌었어요. 그러니까 며느리를 자꾸 구박하지 마세요. 만약 며느리랑 아들이 싸우면 여러분은 누굴 야단쳐야 됩니까?”nbsp“아들이요.”nbspnbspnbsp“예, 아들을 야단쳐야 돼요. ‘입 다물고 가만 있어라. 며느리가 너랑 살아주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라’ 이래야지, 아들 편만 들면 안 됩니다. 지금 세상이 많이 바뀌었는데, 50년 전, 60년 전 옛날 생각만 하고 살면 안 됩니다.nbspnbsp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농사를 죽기살기로 짓지 마세요. 그냥 놀이 삼아 조금 지어서 본인 드시고 남는 게 있으면 아들딸 왔을 때 상추나 좀 뽑아주고 그러세요. 여러분 입장에서는 아들이 와서 농사일을 도와주면 고맙겠지만 울산이나 부산에 사는 아들 내외가 여기까지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서는 싸웁니다. 싸우는 거 아세요?”nbspnbsp“앞으로는 오라고 안 할게요.”nbsp“예, 자꾸 자식들 더러 오라고 하지 마세요. 알아서 와주면 고맙지만 억지로 오라고 하지는 마세요. 아들이 지금 여러분들 농사 좀 거드는 게 중요해요? 아들 내외가 안 헤어지고 잘 사는 게 중요해요?”nbsp“안 헤어지고 사는 게 중요하지요.”nbsp“예, 농사 좀 거들어주고 사는 게 효자가 아니고, 안 헤어지고 잘 사는 게 효자예요. 저도 촌에 살아봐서 여러분들 입장을 이해는 합니다만 땅을 놀리는 한이 있더라도 무리하지는 마시고, 과로하지도 마세요.nbspnbsp둘째, 과식하지 마세요. 맛있다고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 나면 안 됩니다.nbsp셋째, 술을 몇 잔 마시는 건 괜찮지만 과음하는 건 안 됩니다. 젊을 때는 토하고 자더라도 아침에 일어나면 괜찮았을지 모르지만 연세 들어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이 세 가지는 하지 마시라고 작년에도 말씀드렸는데, 기억하세요?”nbsp“네.”nbsp“그리고 자식이 사업하다가 부도가 나서 어렵다고 하소연 해도 내 집, 내 먹을 것 심을 집앞 땅, 묘자리 할 선산, 이런 것들은 은행에 잡히면 안 됩니다. 부도가 나서 집이 없느니, 길거리에 나앉느니 해도, ‘엄마, 조금 있다가 금방 갚을게’라고 해도, 그런 말은 절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 저희 동네에도 그러다가 집이고, 땅이고, 다 도시 사는 사람들한테 팔고는 고향에 못 돌아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빈터라도 남겨놔야 나중에 아들 딸이 늙어서 고향으로 돌아올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욕심으로 재산을 지키라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나중에 아들 딸을 위해서 고향 땅을 지키라는 겁니다.nbspnbsp또 너무 큰 땅을 갖고 있으라는 게 아니고 누울 묘지 자리랑 식량 일굴 땅 몇 마지기 정도는 남겨놓아야 합니다. 내가 죽고 난 뒤에야 땅을 팔든지 말든지 알게 뭐예요. 그런데 살아있을 때는 꼭 내가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늙어서 집도 땅도 없으면 추해지니까요.nbspnbsp아들 딸들이 안 해 줘도 우리끼리 이렇게 1년에 두 번씩 놀잖아요. 또 동네 청년들이 노인잔치도 해 주잖아요. 그리고 저희 동네에도 보니까 누가 차를 가지고 와서 동네 어르신들을 싣고 목욕도 다녀오더라고요. 그러니까 옛날에 어려울 때도 살았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 왜 못 살겠어요. 그지요? 그러니 부디 편안하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nbsp그리고 화를 버럭버럭 내는 것보다는 참는 게 좋은데, 참기만 하면 병이 됩니다. ‘안 참으면 어쩌냐?’ 하시는데 참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이해하시라는 겁니다. 며느리가 꼴 보기 싫어도 그걸 참을 게 아니라 ‘며느리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내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지만, 며느리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이렇게 이해하세요. 며느리가 옳다는 게 아니고 ‘며느리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이해하면 화가 안 납니다. 화가 나더라도 덜 나요.nbsp며느리가 잘 했다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자식이 ‘선산을 잡히자’고 하면 ‘이놈아, 선산까지 팔아먹으려고 하느냐?’ 하지 말고 ‘자식이 사업을 하다 보니 궁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이렇게 이해하시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주지는 마시고요. 아시겠어요?” nbspnbsp“예.”nbspnbsp“그럴 때는 ‘아이고, 그래. 네 마음 알겠다. 네가 지금 어렵구나’ 이렇게만 얘기해 주세요. 절대로 집문서, 땅문서는 주지 마시고요. 집문서, 땅문서를 주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엄마, 그렇게 내 마음을 이해한다면 선산이라도 잡혀주면 되잖아’라고 해도 ‘너를 이해는 하지만 주지는 못 하겠다’라고 하세요. ‘너 그러면 안 된다’ 하면서 화를 내면 내 건강에 해롭고, ‘네 말이 옳다’고 하면 재산을 줘야 되니까 내 살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러니까 제일 좋은 방법은 뭐겠어요? 내가 자식을 이해하면 화가 안 나고, 자식에게 재산을 안 주면 내가 먹고는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걸 ‘꾀가 많다’고 해요. 꾀가 많다는 건 나쁜 뜻이 아닙니다. 자기 살 궁리는 스스로 한다는 뜻이에요. 스스로 살 궁리는 해야 돼요.nbspnbsp그래서 제가 젊은 사람들한테는 ‘노인을 고치려고 하지 마라. 평생 그렇게 살았는데 어떻게 고치겠느냐? 그러니까 아침에 호미 찾으면 호미 갖다드리고, 저녁에 아프다고 하면 허리 주물러드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합니다. 자식이 아무리 ‘어머니, 이러지 마세요. 아버지, 이러지 마세요’ 해도 노인들은 ‘응. 알았다’고 말만 하지 결국은 당신네들 뜻대로 하니까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노인들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은 젊은 사람들이 아니라 여러분들을 만났으니까 ‘젊은이들을 생각해서 농사 너무 벌이지 마라. 그리고 잔소리 너무 하지 마라’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nbspnbsp자식이 안 찾아오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자식들이 안 오니까 내 살림이 좋구나’라고 고맙게 생각하세요. 또 자식이 찾아오면 ‘그래도 인사라도 오니 고맙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안 그러면 나이 들어서 자식 때문에 속상한 일만 생깁니다.”nbsp어르신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공감했습니다. 어떤 분은 맞장구도 치면서 아주 기뻐했습니다.nbspnbsp이렇게 간단히 법문을 한 후 혹시 질문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모두 같은 동네 사람들이다보니 소문이 날까 걱정되어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더 이상의 질문이 없자 스님은 앞에서 강조한 ‘놀이삼아 해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면서 법회를 마쳤습니다.nbspnbspnbsp“여기 공기 참 좋지요? 또 내가 심은 것 키워서 내가 먹으니까 좋으시지요? 요즘 식재료들이 오염이 되어서 문제가 많은데, 내가 심어서 깨끗하게 키워서 먹으니 얼마나 좋아요?”nbsp“예.”nbsp“여러분들이 사는 곳은 물이 맑기로 유명한 곳이잖아요. 가뫼들 가보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전 거기가 설악산보다 더 좋아요. 최근에 ‘태화강 백리길’이라는 관광상품으로 만든 후부터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다녀서 좀 문제이긴 합니다만, 물이 좋은 데서 사니까 건강에도 좋잖아요. 그렇다고 노인정에서 가만히 놀기만 하면 건강에 안 좋으니까 밭일도 조금씩 하기는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농사로 돈벌이를 하려고 하면 안 되고, 놀이 삼아 소일거리로 하면서 편안하게 생활하셔야 해요.” nbspnbsp스님의 감로 법문에 어르신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nbspnbsp법회가 끝나고 나서는 근처 식당으로 이동해 삼합과 각종 산나물이 곁들여진 점심식사를 함께 했습니다.nbspnbsp점심식사 후에는 야외 평상에 앉아 어르신들과 함께 여흥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 마을에서 한 분씩 나와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신나는 노래 한 곡씩을 불렀습니다.nbspnbsp올해 89세라고 소개한 한 어르신은 “세계적으로 덕 높으신 법륜 스님이 우리 마을 분이셔서 저는 참으로 영광입니다.”라며 노래 한 자락을 멋들어지게 불렀습니다. 또 다른 어르신은 “해마다 봄 가을로 이렇게 나들이와 잔치를 열어주시니 우리 마을 사람들은 너무 너무 행복하고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라고 인사한 후 노래를 불렀습니다. 흥겨운 노래 가락은 쉼없이 계속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여흥을 모두 마치고 나서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두 버스에 다시 탑승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돌아가는 길에도 어르신들이 즐겁고 신나게 즐기시도록 잘 도와주세요” 라고 재차 당부했습니다. 마을 입구 앞까지 길 안내를 하며 한 분 한 분에게 인사를 하며 조심히 내려드린 후 봄나들이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두 번의 즉문즉설 강연이 있습니다. 오전 10시에는 충주시 문화회관에서 충주 시민들을 위해, 저녁 7시에는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에서 목포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릴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4.20. 131,950 읽음 댓글 35개

2016.4.17 (저녁반) 정토불교대학 경주남산순례

nbsp안녕하세요?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스님은 정토불교대학 입학생들과 함께 경주 남산을 순례했습니다. 어제는 주간반 입학생 1200여 명과 함께 했다면 오늘은 저녁반 입학생 1500여 명과 함께 경주 남산에 올랐습니다.nbspnbsp어제밤에 광풍이 불고 비가 내린 탓에 많은 분들이 순례를 취소하였습니다. 원래는 1700여 명이 함께 하기로 하였으나 오늘 아침에 200여 명이 취소를 해서 약 1500여 명이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새벽부터 전국에서 출발한 정토불교대학 저녁반 입학생들은 6시가 되자 대부분 경주 남산에 도착했습니다. 다섯 코스로 나뉘어져 법사님들과 함께 입재식을 가진 후 순례를 시작했는데, 스님은 그 중에서 대구경북, 광주전라지부 입학생 300여명을 인솔하여 어제처럼 삼릉골로 경주 남산을 올랐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삼릉골을 오르며 다소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유물 하나하나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산을 오르는 동안에도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바람을 피해 상사바위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고 간식을 하였습니다. 또 하산길에는 양지 바른 무덤 주위에 모여앉아 휴식 겸 소개의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nbspnbsp대중들이 휴식을 취하는 사이 스님은 “저는 먼저 통일암으로 내려가서 전국에서 온 불교대학생들을 맞이해야합니다”라며 양해를 구하고 먼저 하산했습니다.nbspnbsp통일암에 일찍 내려온 스님은 점심식사를 마친 후 속속 도착하는 대중들과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어제는 1200여 명과 악수를 했는데, 오늘은 1500여 명과 악수를 했습니다.nbspnbspnbsp점심 식사가 모두 끝날 즈음 장기자랑 시간을 가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너도 나도 손을 들고 나와 신나는 춤과 노래를 뽐냈습니다. 흥겨운 노래 자락에 정말로 봄소풍을 왔다는 기분이 절로 들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많은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즉문즉설 시간이 되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리본을 가슴에 달고 법상에 오른 스님은 대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어제가 세월호 참사 2주기였음을 상기시켜 주면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에 대한 대책 수립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nbspnbsp“어제는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고들을 외국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면 제3세계, 즉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날 만한 수준의 사건, 사고가 많아요. 그동안 경제가 성장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는데, 특히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는 우리의 사회제도가 아직도 국민의 안전에 얼마나 무감각한지를 뼈저리게 느끼는 국민적인 좌절을 겪었습니다.nbspnbspnbsp그러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잖아요. 정말로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되려면 진상이 정확히 규명되고, 그 바탕위에 재발방지에 대한 확실한 대책이 세워져야 합니다. 이것이 미흡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쉽게 잊어버리다 보니 중요한 두 가지는 뒷전이 되고 지금은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기억해달라는 울부짖음이 가장 커졌습니다. 그러나 기억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진상규명을 바탕으로 한 재발방지, 즉 안전입니다.nbspnbsp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중에 어떤 어머니가 이렇게 후회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때는 나와 아무 관계없는 일인 줄 알고 외면했었는데, 30년이 지나 내 아들이 세월호 사건으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벌어졌다. 내가 조금이라도 각성을 해서 그때 그 일을 내 일처럼 생각했다면 지금 내가 겪는 이 슬픔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nbspnbspnbsp대구도 옛날에 지하철 참사로 많은 학생들이 희생되는 일이 있었죠. 그러니 이제 우리는 이런 안전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소득 수준이 얼마나 높으냐, 성장이 얼마나 빠르냐’ 이런 것도 물론 필요합니다.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전입니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이하여 다시 한번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이 하루 속히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nbsp스님의 이야기에 순간 분위기가 숙연해졌습니다. 세월호만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저미어 오는지 모두들 표정이 잠시 굳어지기도 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그동안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들었던 의문이나 인생 고민에 대해 많은 분들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에 서울정토회에서 불교대학 수업을 듣고 있는 40대 남성분은 사람들이 불법 주차를 하거나 기초 질서를 어기는 모습을 보면 화가 많이 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질문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서 시작부터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nbspnbsp“저는 서울에 사는 평범한 40대 직장인입니다. 제가 평소에 좀 예민하고, 나름 정의롭고, 고지식한 편이라 뉴스를 잘 보지 못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법 주차 차량을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신고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스님 법문을 듣고부터 신고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nbspnbsp‘아, 내 마음에서 또 분별심이 일어나는구나’ 알아차리기만 하고 부조리를 고치지는 않고 있습니다. ‘나도 잘 못 고치는데 누구를 고치겠는가? 하물며 대통령도 못 고치는 이 사회를 내가 어떻게 고치겠는가?’ 하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행인이 택시가 횡단보도를 침범했다며 기사와 승강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결국 멱살잡이에 경찰까지 출동하는 것을 제3자 입장에서 보니 ‘그냥 지나가면 그뿐인 것을... 저 사람은 지옥에 사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좀 더 대범하게 살자, 너무 사소한 것에 예민하게 굴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nbspnbsp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어졌다고 하지 않습니까? 길거리에서 청소년이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워도 제재하는 사람도 없고, 제재했다가는 오히려 학생들에게 봉변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제가 어릴 때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사회의 부조리나 기초질서 문제에 대해 갖고 있는 아상, 법상, 분별심을 버리고 살아야 할지, 아니면 예전처럼 계속 스마트폰을 가지고 불법차량을 찍어서 신고해야 할지가 정말 궁금합니다.”nbsp“아주 정의로운 분이에요, 하하하. 요즘은 담배 피우는 학생들 보고 ‘조그마한 애들이 어디서 담배를 피워?’ 이렇게 꾸짖으면 오히려 학생들한테 맞기 십상이죠. 그래서 주의를 주려니까 학생들과 싸우게 될까 겁이 나고, 안 하려니까 내가 양심불량이고 정의롭지 못한가 싶어 고민이 되죠. 이것은 분별심을 갖고 접근하기 때문에 그래요.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면 가만히 옆에서 기다렸다가 담배꽁초를 주우면 됩니다.nbspnbspnbsp먼저 담배꽁초를 줍고 난 뒤에 ‘학생들 담배 피우는 건 좋은데 꽁초를 이렇게 아무데나 버리면 안 되지’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아예 이런 말도 안 하면 더 좋아요. 아무 말도 안 하고 딱 앉아 있다가 담배꽁초를 던지면 줍고, 또 던지면 줍고, 또 던지면 주워요.nbspnbspnbsp‘아저씨 뭐예요?’ 이러면 ‘담배꽁초 줍는다. 담배 피우는 건 좋지만 이렇게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자꾸 버리면 길거리가 지저분해지지 않니? 우리나라가 지금 개인소득 수준이 3만 달러로 선진국 수준이 되었으니 사회의 기본질서는 우리가 지켜야 하지 않을까? 내 생각은 그렇다’ 이렇게 말해주면 됩니다. 그러면 싸울 일도 없고, 학생들 기분도 안 나빠요. 학생들이 ‘아저씨, 죄송합니다’ 이러고 그냥 가요.nbspnbsp학교 선생님 말도 안 듣고, 자기 부모 말도 안 듣는 아이들인데, 길가는 아저씨가 담배 피우지 말라고 한다고 해서 들을 아이들이 아니잖아요. 그런 건 속으로 ‘그래 그래, 많이 피우고 빨리 죽어라’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그런 사람들이 해주는 좋은 역할도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세금을 많이 내주잖아요. 그러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자기 건강을 해쳐가면서도 세금을 내겠다는데, 그걸 갖고 그렇게 기분나빠할 게 뭐가 있느냐’ 이렇게 생각을 좀 크게 해야 해요. 담배는 피워 봐야 자기 건강만 손해예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정의하고도 관계가 없습니다.nbspnbsp태국이나 미얀마에 가면 10살짜리 동자승과 70살 쯤 되는 노승이 밥 먹은 뒤에 나란히 계단에 앉아서 담배를 주거니 받거니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처음 가서 보면 이상하게 보입니다. 담배는 이 세상에 나온 지가 400년 밖에 안 되고 부처님의 계율은 2600년 전에 생겼기 때문에 그렇게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는 남방불교에도 ‘담배 피우지 말라’ 이런 계율은 없는 거예요. 우리가 밥 먹은 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껌을 하나 주고 자기도 하나 씹듯이, 그 나라에서는 담배도 그런 거예요. 그렇게 관습이 되어 있으면 그게 아무 문제가 안 돼요.nbspnbspnbsp요즘은 담배가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니까 태국에서도 스님들한테 담배 보시 하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어요. 스님들이 담배 피우는 걸 좋아하니까 신도들이 담배를 자꾸 보시하거든요. 여러분도 스님이 커피 좋아한다면 커피 보시하고 차 좋아한다면 차 보시하잖아요. 마찬가지로 담배를 좋아한다니 담배를 보시하는 거예요. 계율에 없거든요. 우리 생각에는 스님들이 담배 피우는 걸 보면 좀 꺼림칙해요. 숫제 술을 한 잔 마시는 것이 더 괜찮게 느껴질 정도예요.nbspnbsp여러분들이 생각할 때는 스님이 술 한 잔 마시는 게 보기 괜찮아요? 담배 피우는 게 보기 괜찮아요? 술 한 잔 마시는 건 ‘곡차’라고 해서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잖아요. 저와 여러분이 농사짓다가 맥주나 막걸리를 한 잔 마신다고 해서 ‘저 스님, 안 되겠다’ 이러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 담배 피우는 모습은 이상하잖아요. 그런데 남방 쪽은 그 반대예요. 맥주든 막걸리든 스님이 술을 마셨다 하면 완전히 난리가 납니다. 그러나 담배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nbspnbsp방금 전 이곳에 들어올 때 제가 여러분과 악수했죠?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태국, 스리랑카 사람들이 고생을 많이 한다고 얼마 전에 제가 법주사를 구경시켜줬거든요. 집으로 돌아갈 때 제가 일일이 악수를 해주려고 하니까 태국 여성들은 다 도망을 갔어요. 태국이나 스리랑카에서는 절대로 여성이 스님의 몸에 손을 대거나 신체적 접촉을 가지면 안 되거든요. 비행기 탈 때도 여성은 스님 옆에 앉지도 못하게 해요. 좌석을 배정하지 않고 딱 비워버립니다. 거기서는 옷자락도 스치면 안 되고, 악수나 손닿는 건 당연히 안 돼요. 그쪽에 가서 여기처럼 하면 계율을 크게 파하는 게 됩니다. 그러나 담배 피우는 건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방금 전에 어떤 여자분은 ‘한번 껴안아도 돼요?’ 이렇게 덤볐는데 임자 없다고 그렇게 함부로 하는 거 아니에요.nbspnbspnbsp물론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면 건강에 해롭긴 하죠. 게다가 담배는 일종의 마약성이 있어서 크게 보면 계율에 어긋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형식적 계율에는 문제가 없어요.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오계 중 다섯 번째 계율인 ‘술 마시지 말라’를 현대에 맞게끔 ‘중독성 물질을 섭취하지 말라’라고 바꾸었습니다. 그러면 계율 속에 담배를 피지 말아야 하는 것도 들어갈 수 있는데, 그냥 ‘술 마시지 말라’고 하면 담배는 다 빠지게 되거든요.nbspnbsp그래서 질문자는 그런 문제를 조금 융통성 있게 대할 줄 알아야 해요. 지금처럼 늘 잔소리를 하면 자기 아들한테도 ‘꼰대’라는 소리를 들어요.nbspnbsp불법주차 차량을 찍어서 신고해도 괜찮아요. 그런데 정말 얌체 같은 사람도 있지만, 질문자도 운전을 하다 보면 급해서 그럴 때가 있잖아요. 그러니 무조건 봐줘도 안 되고, 무조건 찍어서 신고해도 안 돼요. 몇 번 얌체짓을 반복하면 그 때 찍어서 신고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운전자가 나와서 성질을 부려도 빙긋이 웃으면서 ‘다 대한민국 잘 되자고 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돼요.nbspnbsp소소한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소소한 데 너무 얽매이면 안 돼요. 대한민국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런 사람들 신고하는 것보다 이번 총선 때 투표 잘 하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nbspnbsp그런데 제가 미국 가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아, 미국은 지는 해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화장실에 가보면 휴지가 있잖아요. 손 씻고 나면 한 장만 떼서 닦으면 되고, 대변을 보고도 조금만 쓰면 되는데, 미국 사람들은 옆 칸에서 들어보면 ‘두루룩, 두루룩, 두루룩’ 소리가 납니다. 한꺼번에 몇 장씩 막 빼서 써요. 한국도 지금 그렇죠? 밑 닦는데 서너 칸이면 되지 뭐가 그리 많이 필요해요? 손도 한 장만 빼서 닦고, 그래도 물기가 좀 남으면 그때 한 장 더 빼면 되잖아요.nbspnbsp목욕탕에 가도 수건을 한 장만 쓰면 될 텐데, 제가 갔었던 어떤 목욕탕에서는 수건을 두 장씩 줘요. 그래서 제가 ‘저는 두 장 필요없어요. 하나면 되지 왜 두 장이나 줘요? 그냥 두면 한 장만 가져다 쓸 텐데 두 장을 주면 두 장 다 쓰게 되잖아요’ 라고 했더니 ‘아이고, 스님, 두 장만 쓰면 왜 이러겠어요?’ 라고 해요. 세 장, 네 장씩 쓰니까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 아예 두 장씩 준다는 거예요. 이런 걸 보면 ‘아, 벌써 사람의 기본자세가 틀렸다. 이러면 나라가 망한다’ 싶거든요. 미국은 아마 앞으로 국운이 내려갈 거예요.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일회용 케첩이 있는데 한 두 개 먹을 만큼 가져가는 게 아니라 한줌씩 쥐고 갑니다. 냅킨도 두세 장이면 충분할 텐데 한 뭉치씩 가져가요. 그런 걸 보면 국민들의 생활습성이나 나라의 앞날을 짐작할 수 있어요.nbsp그러니 작은 것도 중요해요. 목욕탕에서도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교육을 시키면 좋겠지만, 그걸 보고 성질내서 말하면 오히려 싸움이 됩니다. ‘네가 목욕탕 주인이냐?’ 이러면서 싸우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가능한 말을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히려 스님 같은 사람이 오늘처럼 이렇게 계속 일상교육을 통해서 해결 해 나가야 해요. 개인을 두고 시비를 하면 법에 정해진 범위 밖이기 때문에 싸움만 나요. 법에 정해진 것은 법집행을 강화시키면 개선이 됩니다. 예컨대 과속 같은 건 자꾸 신고하면 개선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기본 생활습관은 좀 달라요. 내가 기본을 지키고 실천하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남이 안 하는 걸 가지고 너무 시비하지는 마세요. 이것은 삶의 습관이기 때문에 쉽게 잘 안 바뀌거든요.nbspnbsp그래서 어릴 때부터 가정교육이 중요한 거예요. 없어서 못 쓰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항상 이치에 맞게 쓰도록 훈련을 해야 해요. 화장실에 가면 요즘은 손 말리는 온풍기가 다 있죠? 그런데 막상 써보면 잘 안 말라요. 휴지로 닦으면 휴지를 너무 많이 쓰게 되고요. 그런데 제가 써보니까 휴지와 냉풍기를 같이 달아놓으면 제일 효과적인 것 같아요. 휴지로만 닦으면 두 장 쓰게 되고 온풍기만 쓰면 한참 말려야 하는데, 휴지 한 장으로 큰 물기를 닦아내고 온풍기를 쓰면 2, 3초만 틀어도 다 마르거든요. 이런 건 자꾸 교육시키고 훈련해야지 짜증내고 야단친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nbspnbspnbsp그래서 자기 성격을 부지런히 고쳐나가되 사회 개선을 위한 우리들의 노력까지 포기하면 안 돼요. 노력을 하되 시비조로 하지 말고 이렇게 조금 더 유머러스하게 재미있게 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nbsp스님의 유머러스한 대처법에 대중들 모두가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습니다. 답변이 무척 재미있기도 했지만, 상황에 맞는 적절한 대처법 속에서 중도의 관점을 배울 수도 있었습니다.nbspnbsp여러 사람이 더 손을 들고 질문을 하고 싶어 했지만 약속한 2시간이 다 되어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법회를 마치면서 사회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우리들의 마음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정리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다음의 부처님 말씀을 따라해 보세요.nbspnbsp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nbsp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nbsp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nbspnbsp남 탓 하지 말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되, 사회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꿔야 해요. 그러나 성질을 내면서는 하지 마세요. 담배를 피워도 성질을 내면서 이야기하지 말고, 담배꽁초를 먼저 주워주세요. 이렇게 접근을 하는 게 수행자입니다. 앉아서 명상만 하는 게 수행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nbspnbsp우리는 항상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는 연기적 세계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정치인이나 사회지도층 인사가 잘못하면 지적하고 비판해야 해요. 그 사람이 잘못하도록 계속 내버려두면 역사적으로 그 사람한테도 손해에요. 그 사람이 미워서 성질을 내고 화를 내고 욕을 하면 그건 수행자가 아니에요. 그러나 그 사람을 위해서도 이걸 개선하는 게 좋잖아요. 그러니 우리는 감정을 다스리면서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행동을 해서 개선도 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더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막아야 하니까요.nbspnbspnbsp예를 들어 내 어머니를 호랑이가 물어죽였다고 합시다. 내 어머니를 물어죽였기 때문에 호랑이를 죽이면 안 돼요. 그건 보복살생이에요. 이웃집 할머니까지 물어 죽이려고 하니까 호랑이를 죽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호랑이를 죽이면 과보를 안 받을까요?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랑이를 죽이는 것은 내가 과보를 받더라도 이웃집 할머니를 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난을 받더라도 사람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길을 가는 거예요. 이것이 보디사트바, 보살의 길입니다. 아시겠어요?”nbsp“네”nbsp스님의 명쾌한 설명에 대중들은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스님도 활짝 웃으면서 대중들에게 인사를 한 후 다함께 줄을 서서 염불사로 내려왔습니다.nbspnbsp염불사 앞에는 두 개의 탑이 우뚝 솟아 있는데, 두 탑 사이에 1500여 명의 대중들이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다섯 개의 코스로 흩어져서 경주 남산 순례를 정성껏 안내해 준 법사님들과 통일암 주위를 법회 장소로 사용할 수 있게 깨끗이 정비해준 대구경북, 경남지부 거사님들이 소개되자 큰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습니다.nbspnbspnbsp사홍서원으로 회향식을 한 후 탑 앞에서 각 지역별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후 햇살이 따뜻하게 비춰서 그런지 대중들의 표정도 더욱 밝게 빛났습니다.nbspnbspnbsp내일은 두북 정토수련원과 인연이 있는 두동면, 두서면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어르신 잔치를 여는 날입니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순천 선암사로 가서 사찰순례를 시켜 드린 후 어르신들을 위한 법문도 스님이 해줄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4.19. 83,741 읽음 댓글 56개

2016.4.16 (주간반) 정토불교대학 경주남산순례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정토불교대학 입학생들과 함께 경주 남산 순례를 하는 날입니다. 전국에서 밤중부터 버스를 타고 출발한 대중들은 새벽 6시경에 대부분 경주에 도착했습니다. 모두 이번 봄에 입학한 주간반 정토불교대학생들인데 이번 순례에는 12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nbspnbsp정토회에서는 법사단도 모두 참석해 각 골짜기마다 안내를 맡았습니다. 스님은 정토회 대구경북지부, 광주전라지부 소속의 정토불교대학 입학생들과 함께 삼릉골을 선택해서 올라갔습니다. 원래 삼릉골 코스는 보수법사님이 안내할 계획이었으나 보수법사님이 발을 다쳐서 산행을 하기 어려워 스님이 대신해서 안내를 하게 되었습니다.nbsp대구경북지부에서 173명, 광주전라지부에서 95명, 모두 268명이 스님과 함께 삼릉골을 오르면서 곳곳에 있는 불상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nbsp스님은 내려오는 길에 잠시 휴식하면서 어느 지역에서 몇 명이 왔는지 손을 들어 확인하기도 하였습니다.nbspnbsp대중들이 휴식을 하고 있는 사이 스님은 “저는 순례를 마치고 내려오는 다른 대중들도 맞이해야 해서 먼저 내려가겠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한 후 먼저 산을 내려왔습니다.nbspnbsp통일암 너른 터에 도착한 스님은 통일암 주위를 둘러보고 난 후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대중들보다 1시간 일찍 식사를 마친 후 막 내려오기 시작한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를 건넸습니다. 약 1시간 동안 무려 1200여 명과 악수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대중들이 식사를 모두 마칠 때까지 기다리면서는 장기자랑 시간을 가졌습니다. 춤과 노래 실력을 뽐내는 대중들을 보니 정말 소풍을 온 것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식사가 모두 끝나자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불교대학생들은 영상강의로 스님의 법문을 듣다 보니 궁금한 점을 물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는데, 오늘은 그동안 공부하면서 들었던 의문, 인생살이에서 겪는 고충들에 대해 스님에게 마음껏 물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했는데, 그 중에서 한 가지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저는 64세, 남편은 67세입니다. 남편은 기계를 다루는 엔지니어로 30여 년째 자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있어 그런대로 운영은 하였으나 늘 힘들었어요. 남편의 꿈은 큰 공장을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56년 주기로 시설을 인수받거나 일을 벌이고, 잘 안 되어서 집을 팔고 빚을 지고, 열심히 일해 빚을 다 갚을만 하면 또 크게 일을 벌이는 생활을 계속 했습니다. 실속 없는 생활이었지만 주변에서는 저희가 아직 잘 살고 있는 줄 알았고요. 남편은 최근에 아이들에게 명의를 빌려달라고 합니다. 법인체를 하나 꾸려서 일을 시작하고 주식을 나눠주겠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거절하니까 저더러 ‘뒤에서 아이들을 조종한다, 용서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인감을 떼놓으라고 말하고 나갔습니다. 저는 의무감으로 밥은 해주지만 어이가 없어서 6개월 전부터는 따로 생활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1년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남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너무 답답합니다.”nbsp“이야기를 들어보면 돈을 벌었다 망했다를 거듭했다는 게 요점이네요. 벌었다가 망했다가를 반복하더라도 한번 벌어본 게 나아요? 아예 한 번도 못 벌고 사는 게 나아요?” nbsp“한 번이라도 벌어본 게 낫죠.”nbsp“남편이든 자기든 크게 한번 벌어서 비까번쩍한 집을 사본 적이 없는 사람들 손들어 보세요.”nbspnbspnbsp“어찌저찌 돈을 벌어서 큰 집을 샀다가, 망해서 팔아먹었다가, 어찌저찌 또 벌어서 한 번 더 해봤다가 또 망한 건 지금 손든 사람들보다는 나아요? 안 나아요?”nbsp“나아요.”nbsp“예, 나아요. 걱정할 것 없어요.”nbspnbsp“앞으로 어떻게 살까 걱정입니다. 지금 또 일을 벌이고 있으니까요.”nbspnbsp“제가 말씀드리려는 요지는 이거예요.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면 크게 나쁜 건 아니에요. 번 돈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서 보면 나쁘게 보이는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애초에 그런 큰 집도 한번 못 가져보고, 사업도 한번 비까번쩍하게 못 해본 사람에 비하면 이건 오르락내리락해도 좋은 편에 속해요. 사람 욕심이 한번 올라간 걸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데 유지를 못 해서 인생이 피곤한 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래도 제법 사는 집 마나님 소리를 듣고 살았던 때도 있잖아요. 지나간 일을 자꾸 생각하면 지금 아르바이트 하는 생활이 너무 힘들게 느껴지긴 하겠지만, 그보다 훨씬 전부터 내내 아르바이트하면서 살아온 사람들도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그래도 한번 잘 살아본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세요.nbsp첫째, 남편을 미워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내가 당신 덕분에 큰 집에서도 살아보고 마나님 소리도 들어봤으니 고맙소’ 이렇게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nbspnbsp둘째, 질문자는 예순넷이고 남편은 예순일곱 살이라고 했죠. 예순일곱 살쯤 되면 사업을 계속 벌여야 할 때가 아니라 있는 사업도 정리할 때잖아요. 요즘은 80세까지 건강한 경우도 많긴 하지만 어쨌든 일반적으로는 조금씩 정리를 해야 할 때인데 지금 사업을 새로 벌이겠다고 하는 거잖아요. 그나마 자기 돈으로 벌여도 말려야 할 때인데 자기 돈도 없으면서 아이들 명의까지 동원해서 사업을 벌이는 건 위험합니다. 그렇게 해서 요행히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실패하면 남편과 질문자만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 아이들까지 어렵게 만들 일이에요. 명의를 내어줘라 마라 하는 건 내 자식이라도 강요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nbspnbsp질문자가 조정했느니, 어떻게 하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남편이 할 때 그 말에 끌려가서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것 자체가 질문자의 심지가 굳지 않은 거예요. ‘아,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심지가 굳은 사람은 남편이 ‘꼭 해와’라고 하면 ‘네, 알겠습니다’ 이러면 돼요. ‘왜 그걸 해오라 그래’ 이러고 싸우면 심지가 안 굳은 사람이에요. 심지가 굳은 사람은 ‘네, 알겠습니다’ 이러고 안 해주면 돼요. 심지가 굳지 않아서 자꾸 흔들리기 때문에 혼자서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안 해주면 저 인간이 화를 내고 난리를 피울 테고, 해주면 아이들까지 어려워질 텐데’ 이런 머리를 굴리는 거예요.nbspnbsp수행자라면 남편이 아무리 난리를 피워도 ‘그것은 합당하지 않다’ 이렇게 생각하면 흔들리지 않아야 해요. 흔들리지 않으면 남편이 그럴 때 맞서 싸울 필요도 없고 ‘여보. 알겠어요.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애들이 안 해줍니다.’ 이렇게 말하면 돼요.nbsp‘알겠다’라는 말이 곧 ‘해주겠다’라는 뜻은 아닙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고 싶은 건 알겠다’라는 뜻이에요. ‘그건 잘못됐어요. 미쳤소? 나이가 지금 몇인데’ 이러지 말고요. ‘알겠습니다’라는 말은 ‘당신 마음을 알겠다’라는 말이에요. 그러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되잖아요. ‘알겠어요. 그러나 그 말은 당신이 직접 하면 몰라도 나는 못 하겠습니다’ 이러든지, ‘한번 말해보니까 애들이 안 된다고 합니다’ 이러고 웃으면서 그만두면 돼요. 그러면서 밥도 착실히 해주고 ‘아이고, 그래도 당신 덕에 이렇게 지금까지 잘 살았으니 고맙습니다’ 이렇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지세요.nbspnbsp지금 보니까 질문자는 이 인간이 안 고마워요. 그러면서 또 마음 한켠으로는 ‘해줘야 하나?’ 이 생각이 드는 거예요. 부모가 자식에게 집착하면 ‘너 같은 걸 누가 데려가냐’ 하며 욕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시집보낼 준비를 하는 거랑 똑같아요. 저한테 와서 ‘딸이 나이가 스물 몇인 게 말도 안 듣고 어쩌고저쩌고’ 하며 욕을 실컷 해놓고는 ‘스님, 어디 좋은 총각 없어요?’ 이래요.nbspnbspnbsp제가 바보 멍청이가 아닌 이상 자기 엄마도 싫어하고 못 믿는 처녀한테 좋은 총각을 소개시켜줄 리 없잖아요. ‘스님, 우리 딸은 착하고 이러저러한 게 참 좋아요. 어디 못난 남자 있으면 복 짓게 붙여주세요’ 이래도 해줄까말까 한데요. 그런데 이런 모순을 스스로는 몰라요. 집착이 되어 있으니까요.nbsp그러니 첫째, 남편한테 고맙게 생각하세요. 두 번째, 남편이 뭐라 그러든 그냥 ‘알았습니다, 네, 네’ 하고 넘어가세요. 미워도 밥은 해 준다느니 어쩐다느니 말하는 건 사실 밥도 해주기 싫고 빨래도 해주기 싫다는 심보예요. 내가 아르바이트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지금의 처지에 화가 나는 거예요.nbspnbsp그런데 한번 남편 입장을 생각해보세요. 잘 살다가 못 살다가를 반복하더라도 그래도 한 때 잘 살아본 사람들은 지금 자기가 사업에 조금 실패하면 자존심이 상해요. 바깥에 가서 기죽기가 싫으니까 뭔가 비까번쩍하게 보이고 싶어서 자꾸 시도하다가 또 실패하거든요. 그러니까 밖에서 자존심 상한 걸 집에서 부인이 왕처럼 대접하면서 좀 다독거려줘야 해요. 그러면 그게 좀 해소가 됩니다. 밖에서도 기를 못 펴는데 마누라도 돈 없다고 자기를 깡그리 무시하니까 밖에서는 큰소리 못 쳐도 마누라한테는 악을 쓰고 큰소리를 치며 행패를 부리는 거예요. 인간 심리가 그래요. 객관적으로 보면 나쁘지만, 그 사람의 심정에서 보면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nbspnbspnbsp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첫째, 고맙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둘째, ‘아이고, 저 인간이 얼마나 힘들까’ 이렇게 이해해서 위로를 해주는 거예요. 그리고 셋째, 일을 벌이는 것에는 냉정하게 도움을 주지 않는 겁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애초에 도움을 줄 형편도 안 되잖아요. 내가 지금 아르바이트 하는 처지인데 어디 가서 돈을 꾸어오겠어요? 이제는 일을 벌이기보다는 인생을 조금씩 정리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에 질문자는 편안하게 생각하면 돼요. 남편이 자기 혼자 난리 피우다가 집 나가버려도 어차피 내가 아르바이트 해서 먹고 사니까 걱정할 것도 없어요.nbspnbsp남자가 돈 못 번다고 해서 이사 갈 때 버리고 가는 건 안 되지만, 자기가 성질나서 나가는 건 상관할 필요가 없어요. 안 그래도 떼버리고 싶은데 알아서 나가주면 오히려 고맙죠. 뭘 그걸로 신경을 써요? 그래도 고민이 남았어요?”nbsp“감사합니다.”nbspnbsp“이렇게 기도하세요. ‘당신 덕분에 내가 그동안 잘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내면 오히려 내 심지가 굳지 못하고 자꾸 흔들려요. 그저 감사하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어쨌든 옛정을 생각해서 고마워하는 마음을 내면 오히려 이런 데 안 흔들리게 됩니다. 기도를 그렇게 한번 해보세요. ‘돈 빌려와라, 문서 가져와라, 인감 떼 와라’ 이래도 웃으면서 ‘알았어요’ 하세요. 이튿날 ‘떼 왔나?’ 하면 ‘어제 못 갔어요’ 하고, 또 ‘떼 왔나?’ 하면 ‘오늘 아르바이트 한다고 바빴어요’ 하고, 성질내면 ‘아이고, 늙어서 화내면 중풍 걸린다는데 조심하세요’ 이렇게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심지가 굳어야 해요.nbspnbsp감사하다는 기도를 꾸준히 하면 성질이 안 나요. 고마운 줄을 모르면 ‘네가 잘 했냐, 내가 잘 했냐’ 이렇게 화를 내고 싸우게 되는데, 고마운 마음이 딱 들면 절대로 화를 내며 맞싸우지 않습니다. 그러니 고맙다고 더 기도를 해야 해요.”nbsp질문자가 웃으며 자리에 앉자 대중들도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스님이 어투까지 리얼하게 흉내 내며 답변을 해주어서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면 절대로 맞싸우지 않게 된다는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nbsp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니 약속한 2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어서 불안했는데, 법회가 모두 끝나고 나서야 빗방울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마지막으로 질문한 분에게 답변을 해주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수행을 해나가야 하는지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법회를 마쳤습니다.nbspnbspnbsp“천성은 못 고친다고들 하죠? 얼마나 고치기 어려우면 ‘천성’, 하늘이 내린 성품이라고 했겠어요? ‘천성은 못 고친다’라는 말은 고치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라, 고칠 수는 있지만 고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고치기 어려운 줄 애초에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 너무 쉽게 시작하면 하다가 그만두는 작심삼일이 됩니다. 이건 원래 고치기 어려운 것이니까, 고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꾸준히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결심이 아주 강해야 합니다. 쉽게 타협하면 안 돼요. 그래서 ‘죽어도 좋다’는 각오의 대결정심을 내야 하고, 또 꾸준히 해야 합니다. 며칠, 몇 달 하고 그만두는 게 아니라 꾸준히 해나가면 누구나 고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습니다.nbspnbsp특히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의 경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이해입니다. 화가 잘 난다는 것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에요.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라고들 하잖아요. 모른다는 말은 무지를 뜻합니다. ‘내가 이해를 못 하겠다’라는 뜻이에요.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어요. 화를 내고 괴로워하면 내가 손해이니까 나를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해하는 마음을 내되,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면 단호하게 자르면 돼요.nbspnbsp그리고 천성은 고치기 어려운 줄을 알아야 해요. ‘생긴 대로 살겠다’ 이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고치기 어려운 줄을 알고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선은 ‘아, 내가 상대를 이해 못하는구나. 그래서 화가 나는구나’라고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이게 내 습이 된 줄을 알아서, 화가 날 때 ‘어, 화가 난다’라는 걸 스스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 순간에 놓쳐버렸다면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고 뒤에 참회해야 합니다. 이렇게 알아차리기와 참회하기를 꾸준히 하면 개선이 됩니다. 뭐든지 조급하게 생각하고 쉽게 생각하기 때문에 안 된다며 좌절하고 포기하게 돼요. 그러니 꾸준히 해 나가십시오.”nbsp알아차리기와 참회하기, 꾸준히 하기 등 스님이 이야기한 수행법에 대중들도 공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모두 법회를 듣기 전보다 홀가분해진 마음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nbspnbspnbsp법회를 마치고 통일암을 내려 온 대중들은 다시 염불사 앞에 모여서 경주남산순례를 마무리하는 회향식을 가졌습니다.nbspnbsp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수많은 불교 유적이 계곡마다 조성된 경주남산은 신라인들의 역사와 문화, 신앙이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는 영산입니다. 이곳 염불사지도 그러한데 삼국유사에는 ‘한 스님이 하루에 몇 번씩 시간을 정해 염불을 외우셨다. 법당에 앉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그 소리가 당시 서라벌 360방 7만호에 들리지 않는 곳이 없어 사람들은 그를 공경하여 염불사라 불렀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nbspnbspnbsp염불사지 앞에는 석탑 2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그 앞에서 각 지역별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하루가 무척 유익했는지 다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nbspnbspnbsp내일은 전국에서 모인 정토불교대학 저녁반 입학생들과 함께 경주남산순례를 할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4.18. 121,485 읽음 댓글 38개

2016.4.15 수행공동체 경주남산 봄소풍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공동체에서 상주하는 대중들과 함께 경주 남산으로 봄소풍을 다녀온 후 오랜만에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아침 8시에 두북 정토수련원에 도착한 스님은 곳곳에 흩어져 있던 공동체 대중들을 운동장으로 불러 모았습니다.nbspnbsp▲ 두북 정토수련원nbsp대중들이 모두 모이자 오늘 봄소풍 일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다들 안 죽고 살아 있네요. 반갑다는 표현을 경상도 식으로는 이렇게 말해요. 오늘 봄소풍 일정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전에는 경주 남산을 종주할 거에요. 그런데 몸이 아픈 환자들이 있으니까 오후에는 차를 타고 백운산 자락을 한 바퀴 돌 예정입니다. 소방도로가 나 있어서 차를 타고 가면서도 꽃구경을 할 수 있어요.nbspnbsp그러니까 우리는 남산의 북쪽 상서장에서 출발해서 남쪽 끝 새갓골로 내려오겠습니다. 환자들은 상서장에서 같이 출발을 하되 남산 아래를 차를 타고 돌면서 부처 바위 보고, 보리사 보고, 창림사지 보고, 포석정 보고, 삼불사 보고 오면 되겠습니다. 아시겠죠? 자, 그럼 출발하겠습니다.”nbsp몸이 아픈 환자들까지 배려하는 스님의 깨알 같은 배려에 대중들은 기쁜 마음으로 환호를 했습니다. 또 오랜만에 사무실을 벗어나 자연을 만끽한다는 설레임에 모든 대중들이 들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차량 여러 대에 나눠서 탑승한 후 상서장으로 향했습니다. 대중들이 모두 도착하자 스님은 경주 남산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우선 해주었습니다.nbspnbsp▲ 상서장nbsp경주 남산은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면 봄과 가을마다 순례를 오게 되는데, 공동체에 상주하는 대중들은 오래 전에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한 경우가 많아 오랜만에 스님의 안내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며 무척 기뻐했습니다.nbspnbsp“지금 우리가 가는 남산은 경주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산이라 부릅니다. 2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하나는 금오산, 하나는 고위산이에요. 고위산과 금오산 사이로 흐르는 계곡이 용장계곡이고, 남북으로 8㎞, 동서로 4㎞로 뻗어 있는 산입니다.nbspnbsp옛날엔 남산에서 옥돌이 많이 났다고 해서 속담에 ‘남산 돌이라고 다 옥돌인가?’ 하는 말도 있습니다. 아무리 남산에서 옥돌이 많이 난다고 해도 남산 돌이 다 옥돌은 아니라는 뜻인데, 쉽게 설명을 드리면 ‘정토행자라고 해서 다 정토행자인가?’ 하는 뜻입니다. 정토행자라고 해도 그 중에는 정토행자가 아닌 사람도 좀 섞여있다는 겁니다.nbspnbspnbsp보통은 주로 남산의 서쪽으로 올라가서 동쪽으로 내려오든지, 동쪽으로 올라가서 서쪽으로 내려오든지 합니다. 동서의 종단 길이가 4㎞로 비교적 짧으니까, 주로 등산을 동서로 하는 겁니다. 그리고 남북은 길다 보니까 남쪽과 북쪽은 골짜기 수가 적어요. 그러다 보니 대중들을 데리고 남북으로 종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남쪽으로 올라가는 건 부처바위 골이 거의 유일합니다.nbspnbsp그리고 남산은 현재 47개의 골짜기가 있고, 각 골짜기마다 절터, 탑, 불상, 무덤, 민속신앙, 전설 등 약 700개의 문화유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유네스코에도 등록된 자연박물관입니다. 지금 우리가 서있는 곳은 북쪽 끝으로서, 시내 쪽으로 가장 튀어나온 부분입니다. 우리는 여기로부터 출발해서 올라갈 겁니다.”nbsp스님의 설명대로 일반 사람들은 거의 가지 않는 코스를 선택해서 가게 되었지만, 막상 걸어보니 코스가 완만해서 정말 산책하듯이 걷기에 아주 좋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우리가 출발하는 이곳이 상서장인데, 상서장에 대한 설명도 해주었습니다. 상서장은 신라 말기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 선생이 나랏일을 걱정하여 시무십여조의 글을 진성여왕에게 올렸던 곳입니다. 최치원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데, 매년 4월에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nbspnbsp더욱이 스님은 최치원 선생의 후손인지라 얼마 전에 최치원 선생 문집 출판 기념회에 초청을 받아 축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스님의 최치원 선생의 삶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현재의 상서장은 조선 말에 지었는데, 최치원이 진성여왕에게 시무십여조를 건의한 곳이라고 합니다. 왕궁이 바로 앞이니까 여왕이 산책을 나오거나 하는 자리에서 건의를 했는지도 모르겠네요.nbspnbspnbsp최치원은 신라 말에 6두품으로 태어나서 12살에 당나라로 유학을 갔습니다. 신라 말에는 골품제도라는 신분제도가 있어서 재주가 있어도 등용이 잘 되지 않으니까 최치원의 부친이 아들의 미래를 걱정해서 당나라에 유학을 보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치원은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6년 만에 외국인을 위한 ‘빈공과’라는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당시 당나라 안에는 자국민을 위한 과거가 있고, 외국인을 위한 과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이란 신라인, 발해인 및 티벳인 등 여러 동남아인들을 뜻하는데, 당시 외국인이 당나라에서 과거급제를 한다는 것은 요즘 우리가 미국에 유학 갔다가 거기 정부 관리가 된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과거급제 후 지방관리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높은 관리까지 올라간 겁니다. 병마도총 고변 대장군의 막후로 들어가서, 주로 당나라 말에 있었던 ‘황소의 난’에 대해서 ‘토황소격문’이라는 글도 쓰는 등 해서 당나라에서 출세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최치원이 외국인이니까 당나라에서 출세하는 데 한계가 있었는지, 신라에서 불렀는지, 어쨌든 29살의 젊은 나이에 이미 당나라에서 문장가로서 이름을 날린 뒤 귀국을 했습니다. 당시 신라에는 신분제도, 즉 골품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인재등용이 제대로 안 됐습니다. 특히 당시는 신라 말 진성여왕 때였는데, 최치원은 당시의 정국 혼란을 개혁하기 위해 시무십여조를 왕에게 바쳤습니다. 6두품으로서 가장 출세하는 게 지방군수 수준이었는지, 최치원은 당시 두 군데의 지방군수를 하다가 관직을 그만두고 해인사로 들어가서 평생을 보내셨습니다.nbspnbsp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중국에 널리 이름을 알린 사람 중에 신라시대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원효와 최치원입니다. 그런데 원효는 국내파로서 외국의 문물을 국내에서 연구하여 깨달은 뒤 중국에까지 이름이 난 세계적인 불교학자가 되었고, 최치원은 유학파로서 중국으로 가서 유학을 전공한 뒤 신라로 들어왔는데, 선진 문물인 당나라 문화를 익힌 후에 우리의 전통사상적 입장에서 재해석함으로써 중국에까지 널리 이름을 떨친 분입니다.nbspnbsp시진핑 주석이 우리나라 대통령을 만났을 때 최치원의 시를 읊고 얘기했는데, 대통령이 못 알아들었다고 해요. 또 옛날에 일본 총리가 한국에 와서 불국사를 가고 싶다고 해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데리고 갔는데, 일본 총리는 불국사 법당에 가서 절을 하고 우리나라 대통령은 기독교인이라고 밖에 서있었다는 우스운 일화도 있습니다.nbspnbsp반면에 인도의 모디 총리는 중국을 방문할 때 제일 먼저 백마사를 찾아갔습니다. 즉 인도에서 불경을 처음으로 중국에 가져와서 세운 절인 ‘백마사’를 제일 먼저 방문한 후 그 다음으로 현장법사가 경전을 번역한 곳을 방문했습니다. 그 의미가 뭐겠습니까? ‘너희 중국이 아무리 잘났다 해도 우리가 옛날에 불교라는 선진 문물을 전해준 덕분이다’ 라는 뜻이 있겠고, 또는 문화교류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먼저 문화를 내세우고, 그 다음에 북경에 가서 정치를 논하고, 상해에 가서 경제를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대통령마다 외국에 가면 경제문제부터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문화국가에서는 경제가 중요하긴 하지만 문화도 굉장히 중요시 합니다. 문화는 품위의 문제이거든요. 우리의 수준이 아직 그 수준이에요.nbspnbsp최치원이 당나라에서 쓴 시들을 모아서 국내에서 최초로 만든 개인 문집이 ‘계원필경’입니다. 최치원 선생은 원래 유학자이지만 도교와 불교를 같이 공부해서 유불선 3교를 융합했는데, 그것을 또 우리의 전통신앙인 선도의 입장에서 융합했기 때문에 ‘풍류도’, ‘현묘지도’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워낙 명문장가였기 때문에 신라 말에 유명한 스님들인 국사들이 돌아가시면 비문을 다 써주셨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사산비문’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지요.nbspnbspnbsp최치원 선생은 불교에도 굉장히 조예가 깊은 분이라 이황 등 유학자들은 고운 선생을 별로 안 좋아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불교를 배척했기 때문에 최치원 선생은 유교의 시조임에도 불구하고 불교와 타협했다는 이유로 한때 서원에 모셔진 최치원의 위패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편협하고 배타적인 생각입니까? 그런 면에서 원효가 화쟁사상으로 불교의 제 종파를 통합하는 관점을 가졌다면, 최치원은 유불도선 사상을 융합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동양과 서양, 종교와 과학을 융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하나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nbspnbsp스님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다함께 상서장을 참배했습니다. 영정이 모셔져 있는 영정각 앞에 선 대중 일동은 합장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nbspnbsp이어서 경주 남산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의 설명대로 남산의 북쪽 끝에서 출발해 남쪽 끝으로 내려오는 종주 산행이 되겠습니다.nbspnbsp▲ 경주 남산. 상서장에서 새갓골까지.nbsp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성처럼 쌓여진 둑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이것이 신라 시대 때 서라벌을 지켰던 ‘남산신성’ 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산성을 가로지르도록 만들어진 산길을 지나갈 때는 양 옆으로 높이 쌓은 산성의 윤곽을 더욱 확연히 볼 수 있었습니다. 비교적 야트막한 산봉우리와 계곡을 이어 쌓은 성인데, 울창한 나무들이 없었을 당시에는 왕성인 월성과 경주평야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nbspnbsp▲ 남산신성nbsp상서장을 출발해 이영재를 지나 새갓골로 내려오는 길은 약 4시간이 소요 되었습니다. 산길에는 진달래 꽃잎이 흩뿌려져 있어서 마치 꽃길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스님은 “산에 나무들도 우리가 온 것을 축하해 주려고 이렇게 꽃비를 내려주었네요” 하며 웃음을 보였습니다.nbspnbspnbsp어느 시 구절처럼 진달래 꽃잎을 사뿐히 즈려 밟으면서, 도반들과 정다운 이야기도 나누며 오랜만에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경주 남산을 내려와서는 다시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묘덕 법사님과 최말순 보살님이 정성껏 국과 반찬을 준비해주어 맛있게 식사를 한 후 오후 소풍을 위해 다시 차량에 올라탔습니다.nbspnbsp오후에는 백운산 자락에 진달래가 산 전체를 물들인 곳이 있는데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환자들을 배려해서 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마침 소방도로가 산 주위를 빙 돌 수 있게 잘 정비가 되어 있어서 차를 타고 가면서도 봄구경을 실컷 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진달래는 이미 꽃이 진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연달래는 이제야 곳곳에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연달래를 바라보며 스님은 진달래와 연달래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말해주기도 했습니다.nbspnbsp“저도 젊을 때는 진달래를 더 좋아했어요. 색깔이 더 진하고 예뻐보이잖아요.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요즘은 연달래가 더 좋아 보여요. 왜냐하면 연달래는 약간 색이 연하긴 하지만 잎이 진달래처럼 뾰족하지 않고 둥글거든요. 마치 귀부인을 보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은 어때요?”nbspnbspnbsp스님의 진달래와 연달래 사랑은 언제 들어도 대중들을 웃음 짓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행자님은 꽃을 보고 좋아하는 스님을 보고 “그럼에도 우리들에겐 꽃보다 스님”이라며 웃기도 했습니다.nbspnbsp이렇게 오늘은 하루 종일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으로부터 그 어떤 비싼 선물보다 더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nbspnbsp저녁 7시부터는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토회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작년 8월부터 24시간 1초도 쉬지 않는 1000일 기도를 시작했고, 또 평화재단을 통해 많은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데, 수행자로서 공동체 대중들은 어떤 마음으로 사회 활동에 임해야 하는지 소중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특히 그저께 총선이 끝나고 투표 결과에 대해 수많은 평가와 예측이 난무하고 있지요. 이에 대한 스님의 견해도 함께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봄을 맞아서 이렇게 같이 산책도 하고 식사도 하니 참 좋습니다. 업무가 나뉘어 있다 보니까 한꺼번에 만나서 생활하기가 조금 어려워지네요. 정토회가 커갈수록 더할 것입니다. 해외에 나가 계신 분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앞으로 우리가 큰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면, 가능한 도시생활은 대중부에서 하고, 본부는 산속이나 농촌에서 농사지으면서 같이 모여 살면 제일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꼭 결혼을 해서 애기를 낳아야 가족이 되는 게 아니라 같이 밥 먹고 살면 가족이 되는 거니까요.nbspnbspnbsp그런데 우리가 속한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서 우리가 수행공동체를 구성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 없는, 즉 우리가 우리들의 삶만을 위해 살 수 없는,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까지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되는, 이런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우리가 태평성대에 태어났다면 수행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 테지만, 물이 고이면 수평을 이루다가 경사가 지면 졸졸졸 흐르듯이,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사회는 아직 분단이 극복되지 못한 상태이고, 여러 사회적 문제들도 있어서 우리가 거기에 대응을 하다 보니 사회적인 실천 활동도 함께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nbspnbsp그런데 수행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혹시 어떤 분들은 ‘우리가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게 과연 수행인가?’ 이렇게 달리 생각하는 분도 물론 있겠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저희가 이 공동체를 구성할 때는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외면하지 말고,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서 문제들을 풀어가자’ 하는 원을 세웠습니다. 그 ‘원’이란 사회적으로는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이루는 것이고, 불교적으로는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에 충실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공동체에 참여하는 분들은 이런 방향으로, 즉 이 두 개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시기에는 백성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지옥으로 떨어질 과보를 각오하고 창과 활을 들어 전투를 했지 않습니까. 그런 때에 비하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평화롭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nbspnbsp이런 관점하에서 현재 우리 사회의 어떤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현 시스템에서 그 변화의 계기는 독립운동 같은 무장투쟁도 아니고 투표, 즉 선거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옛 선조들에 비해 우리는 훨씬 더 적법하고, 지옥 갈 각오까지는 안 해도 되는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께 투표를 통해서 우리들의 권리를 최대한 행사해 봤습니다.nbspnbsp보름 전까지만 해도 힘을 가진 사람들은 그 힘을 지나치게 믿고서 우리가 ‘대한민국이 과연 민주공화국인가?’ 하는 회의를 할 만큼 지나친 권력행사를 해 왔는데, 그것이 선거를 통해서 보름 만에 국민의 심판을 받는 걸 볼 수 있었죠. 역시 우리가 민주공화국인 게 맞긴 맞는 것 같습니다. 만약 권력이 국민들에게 있지 않고 특정한 계급이나 사람에게 있다면 국민이 이렇게 반대한다고 해도 눈도 깜짝 안 했겠지만, 현재의 제도가 국민의 의사를 따라야 한다는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선거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nbspnbsp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제도적 권리를 최대한 활용해서 결국 조금 개선될 가능성은 열어놓은 셈입니다. 진짜 개선될지, 안 될지는 이제부터 지켜봐야 하겠지만요. 그러나 힘을 가진 자들이 국민을 두려워하는, 그래서 만용을 부릴 수 없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또 지나치게 실망해서 의기소침해 있던 사람들로 하여금 ‘가능성이 있겠다. 희망을 가져도 되겠다’라고 하는 계기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nbspnbsp그런 일에 여러분들이 작은 기여라도 하게 된 것이고, 그 힘이 미약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민심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민심이 있어도 그게 효과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이번에도 아주 절묘하게 민심이 드러났는데, 사실 교차투표를 하지 않았다면 결과적으로 정부 여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컸거든요. 그래서 이번 선거결과는 기적이라고 할 만합니다. 종교적으로 말하면 기도의 공덕이라고 볼 수 있고, 사회적으로 말하면 국민의 올바른 주권행사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nbspnbsp앞으로 가야 할 길은 더 험난할 것입니다. 선거결과를 봤을 때 누가 승리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누가 가장 나빴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첫 번째로 정부여당이 최악의 행패를 부렸기 때문에 국민은 일단 그것을 견제해서 여당에게 표를 안 줬다고 볼 수도 있고요. 두 번째로 야당도 정말 꼴불견이었습니다. 지역주의에 안주한 야당에게 전라도에서는 ‘이건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의사표시를 했잖습니까. 또 경상도에서는 그렇게까지 표현은 안됐지만 20년 만에 처음으로 대구에서 야당이 당선되고, 경상도 전체에서는 무소속 야당이 17명이나 당선됐잖습니까. 이것은 전라도에서 국민의 당이 이긴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nbsp수도권에서도 최악을 막기 위해서 차악인 야당을 선택했을 뿐이지, 야당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당투표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습니까. 국민들은 ‘너희가 좋아서 투표한 거 아니다’라는 말을 정당 투표로 표현한 겁니다. 그러면 제3당인 국민의당이 정말 잘해서 그렇게 높은 지지를 받았을까요? 아니지요. 새로 생긴 정당이라 아직 구체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기에, 또 최악과 차악을 피하다 보니까 국민의당도 마음에 안 들지만 선택했을 뿐입니다. 그것을 국민들이 국민의당을 지지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만약 그렇게 오해한다면 짧게는 1년, 길게는 4년 안에 그 결과가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nbspnbsp그러니 모든 정당은 반성하면서 겸손한 자세로 길을 모색해야 할 텐데, 제가 볼 때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 실망해서 ‘진짜 꼴보기 싫다’ 라고 할 게 아니고, 다음 대선에서 다시 심판해서 확실하게 국민의 뜻을 보여줘야 합니다.nbspnbsp그래서 다음 대선에서는 좀 더 좋은, 국민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결과가 나왔으면 합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 지금 남북 간의 극단적 안보위기, 즉 전쟁위기까지 거론되는 작금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 미중 또는 중일이 벌이는 강대국의 각축전 속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우리의 운명을 강대국 손에 쥐어주고 있는데, 우리가 오히려 강대국들의 힘의 역학관계를 이용해서 평화통일도 달성하고, 또 우리로 인해서 주변국들의 갈등이 오히려 융화되는, 그래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가져오고 동아시아 공동체의 번영을 가져올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면, 작은 힘이지만 오히려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중생을 편안하게 하는 중요한 방법인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깨우치게 하여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생이 사는 환경 자체를 개선해 줌으로써 그 속에 사는 중생들의 고통이 덜어지도록 하는 게 중요할 때도 있거든요.nbsp다시 강조하지만 사회변화와 개인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게 정토회의 설립 목표이자 취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수행을 통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으로 거듭 나야 하고, 동시에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보다 평화롭고, 보다 평등하고, 보다 자유로운 곳으로 만드는 일도 꾸준히 해 나가야 합니다. nbspnbspnbsp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서 다들 많은 것을 느끼셨을 텐데요. 조금 잘 됐다고 들뜨거나 조금 안 됐다고 가라앉는 것은 수행의 원칙에 맞지가 않습니다. 성공했을 때는 들뜨지 않고 오히려 그 성과를 바탕으로 해서 더 큰 성공을 향해 노력하는 게 필요하고, 실패했을 때는 실패한 것을 교훈삼아 다음에 성공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게 수행자의 본분입니다.”nbsp선거 결과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관점이 명확히 잡히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앞으로 남은 과제가 무엇인지도 다시 정리해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며 대중들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중들은 그동안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한국사회의 모습을 보며 들었던 많은 의문들을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각각의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밤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모임을 마치면서 스님은 “내일은 세월호 참사가 있은지 2주기가 되는 날”이라며 “내일은 정토불교대학생들과 함께 경주 남산순례를 하게 되는데, 순례를 시작하기 전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의식을 꼭 하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스님의 제안에 따라 법사님들은 세월호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단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정토불교대학생들과 함께 봄소풍을 겸한 경주 남산순례를 할 예정입니다. 오후에는 통일암에 모여서 장기자랑 한마당과 즉문즉설 시간도 가질 예정입니다. nbsp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4.17. 94,303 읽음 댓글 38개

2016.4.14 서울 공동체 발우공양, 투표 후 격려 말씀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서울 공동체 발우공양에 참석해 어제 투표에 모두 참여해준 대중들을 격려한 후 이번 선거 결과를 지켜본 소감을 말해주었습니다.nbspnbsp새벽 4시 30분에 1층 법당에 내려와 새벽 예불을 마친 스님은 6시 30분에는 서울 공동체 발우공양에 참석했습니다. 오랜만에 대중들과 함께 둘러앉아 발우를 펴고 공양을 드셨습니다.nbspnbspnbsp공양을 마친 후에는 지난 5일 동안 요하문명 답사를 다녀온 것에 대해 간단히 안부를 전한 후 어제와 지난 8일 사전투표에 모두 참여해 준 대중들을 격려도 해주었습니다. 또 오늘 새벽에는 어제 전국에서 치러진 총선거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이번 선거 결과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해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저는 중국에 잘 다녀왔습니다. 내몽고 자치주인데도 복사꽃도 피고 봄이 와 있었어요. 그러나 황사의 진원지답게 흙먼지가 많이 일어났습니다.nbspnbspnbsp어제 투표는 잘 하셨어요? 그동안 여러분들이 통일 염원 기도를 정성껏 해주셨기에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아무리 자신이 있어도 너무 교만하면 항상 재앙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약한 자도 너무 박대하면 악심이 받치게 됩니다. 예부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정부 여당이 지나치게 국민을 무시하고 마치 국가 권력을 자기들의 것인 양 마구 휘둘렀는데, 국민들 한 표 한 표가 이런 태도에 반대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해 준 것 같습니다. 또 야당이 분열되어 있어서 정부 여당에 반대하는 국민들은 많은데 선거 결과로는 여당이 이기는 것으로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어서 ‘후보는 될 사람은 밀고, 정당은 소수당을 찍자’라고 강조했는데, 제가 얘기하지 않아도 국민들이 잘 알아서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거 결과는 야당도 정신 차리라고 질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지역에 뿌리를 박고 안주하던 야당에게 따끔하게 혼을 내 준 것 같습니다.nbspnbsp여러분들도 이런 것을 보면서 ‘어떤 일이 잘 될 때 너무 들뜨지 말고 겸손해야 하고, 또 어떤 일이 안 된다고 너무 좌절하고 절망해서 포기할 것이 아니라 희망을 보고 그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하는 교훈을 배울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nbspnbsp국제 정세 상황이나 여러 조건을 봤을 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점점 멀어져 가는 것 같지만, 만약 우리 내부에서 어떤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다면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어떤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믿음을 갖고 시류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꾸준히 평화통일 운동을 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어떤 일이든 정성을 기울여서 해나가는 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nbspnbsp그래서 부지런히 정진해 나갑시다. 여기서나 저기서나 때와 장소가 다를 뿐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면 때와 장소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시공간을 초월해서 산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여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nbspnbsp봄도 왔으니 내일과 모레는 같이 대화도 나누고 산책도 할 겸 울산 두북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가서 쉬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서울에 있는 것보다 더 고단할 수도 있어요. 천천히 걸어서 남산을 한번 종주해 보려고 하니까요. 그래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nbsp봄이 왔으니 같이 대화도 나누고 산책도 하자는 스님이 제안에 대중들은 활짝 웃으며 반겼습니다. 오랜만에 스님과 함께 봄꽃 구경도 하고, 도반들과 정겨운 얘기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nbspnbsp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는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아침 7시부터 하루 종일 연이어 미팅과 회의를 가졌습니다. 저녁 8시까지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가진 후 8시 30분이 되어 평화재단을 나와 울산 두북으로 출발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하루 종일 공동체 실무자 및 상근자원활동가들과 함께 경주 남산을 순례한 후 저녁에는 대화의 시간도 가질 예정입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4.15. 62,005 읽음 댓글 51개

2016.4.13 (요하문명 답사 5일째) 흥성고성(興城古城), 한국 귀국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지난 4일 간의 요하문명 답사를 모두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했습니다. 심양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명나라와 청나라 시기에 요서 지방의 중심도시였던 흥성에 잠시 들러 흥성고성을 둘러보았습니다.nbspnbsp어제 저녁 늦게 홍산문화 유적 답사를 마친 스님은 건천현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오늘은 심양공항까지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해서 새벽 5시에 숙소를 출발했습니다.nbspnbsp원래는 오전에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을 둘러본 후 심양공항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5시 30분에 톨게이트에 도착하니 안개가 너무 심해서 출입이 통제되어 버렸습니다.nbspnbsp▲ 안개 때문에 통제된 고속도로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도를 타고 계속 이동을 했지만 안개가 너무 자욱해서 속도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시간을 계산해보니 산해관을 보고 갈 수 있는 시간이 도저히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결국 계획을 변경하여 흥성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10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안개nbsp흥성은 요서지역의 구릉지대를 뒤로 하고 남으로는 발해만에 인접한 도시입니다. 예로부터 요서지역의 요충지로 꼽혔으며 요동지역에서 중원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던 곳입니다. 중국인 운전기사님이 흥성에는 흥성고성이 유명하다며 스님이 꼭 보고 갔으면 좋겠다고 제안해서 이곳을 잠깐 들르기로 한 것입니다. nbspnbsp흥성고성은 서안고성, 형주고성, 산서 평요고성과 함께 중국에서 지금까지 완전하게 보존된 4대 고성으로 평가받는 곳이라고 합니다.nbsp차에서 내리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남문을 둘러싸고 있는 옹성이었습니다. 옹성은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성문을 둘러싸고 원형 모양으로 다시 성을 쌓은 것을 말합니다. 옹성 위에서 활이나 대포를 쏘면 성문을 부수려고 하는 적을 여러 방면에서 방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nbspnbsp▲ 남문과 남문을 둘러싸고 있는 옹성nbsp스님은 “옹성이 이렇게 원형 그대로 잘 남아있는 것은 보기 드물다” 라며 아주 반가워 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심히 옹성을 살펴보았습니다.nbspnbsp남문으로 들어가서는 입장료를 내고 성벽 위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성벽 위에서는 성내에 빼곡히 자리한 집들의 지붕이 훤히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한양도성 안에도 아마 이런 모습으로 사람들이 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nbspnbsp▲ 남문 위에서 바라본 성내의 집과 가게들nbsp옹성 위로는 대포도 있고, 몸을 은폐하고 총이나 화살을 쏠 수 있도록 일정한 간격으로 틈이 벌어져 있는 여장도 있었습니다.nbspnbsp▲ 옹성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스님nbspnbsp안내 표지판에 적힌 설명에 따르면 이 성은 정방형으로 되어 있고, 그 둘레의 길이가 3200미터이며, 한쪽 성벽의 길이는 800미터, 성벽의 높이는 8.8미터라고 합니다. 또 동서남북으로는 난 성문은 옛 모습 그대로 복원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성벽을 유심히 보더니 “고구려와는 성벽을 쌓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지?” 라며 웃음을 보였습니다.nbspnbspnbsp성의 중앙에는 종고루가 있는데 이곳의 종과 북은 평시에는 시간을 알렸고, 전시에는 진군을 알리는 신호용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남문을 출발하여 중앙에 있는 종고루까지 걸어 보았습니다.nbspnbsp▲ 남문에서 바라본 거리와 성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종고루nbsp성내에는 흥성문묘, 성황묘, 장군부, 주씨저택 등 볼거리들이 다양했는데, 스님은 그 중 입장료가 가장 저렴한 장군부에 잠깐 들어가서 내부를 들여다 본 후 나왔습니다.nbsp성벽은 500여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지만, 성내에는 형형색색의 옷가게, 옷수선점, 식당이 들어서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풍경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nbspnbsp▲ 고풍을 자랑하는 돌로 된 패방nbsp▲ 패방을 지키는 돌사자nbsp안개가 자욱해서 그런지 날씨도 갑자기 추워서 온 몸이 으슬으슬 떨렸습니다. 그리고 공항에 여유있게 도착해야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어서 성 전체를 다 둘러보지는 못하고 다시 성밖으로 나왔습니다.nbspnbsp스님은 성을 나오면서 “동서남북으로 4대문이 이렇게 잘 남아있는 곳은 보기 드물다” 면서 “한국 사람들이 이곳을 보면 볼만하다고 할 것 같다”고 짧은 소감을 말했습니다.nbspnbsp아침 10시 흥성을 출발하여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오니 안개가 많이 걷혀서 그런지 톨게이트 문이 열렸습니다. 고속도로를 타고 심양공항을 향해 부지런히 달렸습니다.nbspnbsp고속도로를 타고 오는 동안에 잠시 요하강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요하강은 중국말로 ‘랴오허’ 라고 부르는 강인데, 중국 7대 강 중의 하나입니다. 내몽골 자치구에서 발원해서 라오닝성을 지나 황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입니다. 이 강을 경계로 서쪽 지역을 요서라 부르고 동쪽 지역을 요동이라 불렀으며, 이 강 상류 유역은 고조선의 발상지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과거 고구려 시절에도 고구려 서부의 주요한 하천이었습니다. 이번에 스님이 답사한 유적지들도 다 이 요하강 상류 일대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에 ‘요하문명’이라고 불리웁니다. 그런 요하강을 만나서 너무나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 요하강nbsp운전기사님이 부지런히 차를 운전해 준 덕분에 4시간 만인 오후 2시에 심양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4일 동안 새벽부터 저녁까지 장거리 운전을 해준 중국인 운전기사님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기사님은 여행사에서 오랜 세월 운전업을 해오신 분입니다.nbspnbsp“제가 지금껏 살아온 경험으로는 중국 학자들 조차도 이렇게 고생하고 다니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온 스님이 이렇게 고생하며 다니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nbsp▲ 4박 5일 동안 하루 종일 운전을 해 준 기사님nbsp운전기사님은 스님과 함께 동행한 것 자체만으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답했습니다.nbspnbsp“무언가를 재미있어 하고 그것을 연구하는 자세는 좋은 거에요. 제가 이렇게 고생하며 다니는 이유는 이것을 연구하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이에요.”nbspnbsp운전기사님은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며 “오케이, 오케이” 하며 웃었습니다.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출발해서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요하강 유역 곳곳을 구석구석 누볐습니다. 정해진 일정도 없이 이곳저곳을 다녔기 때문에 보통의 운전수였다면 화를 내며 몽니를 부렸을 겁니다. 그런데 이 운전기사님은 “오늘까지 2600km를 달렸다”며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nbspnbsp그러면서 “스님, 저는 성질이 강해서 회사에서 내 뜻을 따라주지 않는 직원들을 보면 화를 자주 내게 됩니다.”라며 상담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이렇게 답변해 주었습니다.nbspnbsp“성질은 고치기가 어려워요. 고치기가 어려운데 자꾸 고치려고 하면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 성질이 올라올 때마다 ‘아, 내 성질이 이렇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보세요. 그러면 성질이 점점 잦아듭니다.nbspnbsp간단한 방법은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겁니다. 그러면 화가 안 나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면 상대를 설득하기도 더 쉬워요. 그러면 별도의 수행을 따로 하지 않아도 돼요. 운전기사를 해봤으니까 밑에서 일하는 운전 기사들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이해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러지 않고 계속 성질을 내게 되면 혈압이 높아져서 나중에 늙으면 혈압이 터져서 중풍에 걸릴 확률이 높아져요.nbsp참으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참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 참지 말고 ‘아이고,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마음을 내면 저절로 화가 내려가요. 상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의 말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민주적인 지도자가 되어야지 독재자가 되면 안 돼요.”nbspnbsp스님의 따뜻한 조언에 운전기사님은 더 기쁜 마음이 되었습니다. 스님 덕분에 역사 공부도 실컷 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법도 배웠으니 이 보다 좋은 일이 없겠지요. 고생이라고 생각하면 무척 힘든 일일 수 있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함께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심양공항 앞에서 통역을 해준 조춘호 선생님, 운전을 해준 기사님에게 스님은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악수를 건내며 “고마워요”라고 말한 후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nbspnbsp▲ 작별 인사nbsp이렇게 4박 5일 동안의 요하문명 답사 일정을 모두 마치고 오후 4시 35분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공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안개가 너무 심해 이륙 시간이 계속 연장이 되었습니다. 결국 1시간 늦게 5시 20분이 되어서야 심양공항을 출발했습니다.nbspnbsp▲ 인천공항 도착nbsp저녁 8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스님은 곧바로 업무보고를 받으며 서울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오늘이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었던 날이어서 각종 TV와 인터넷 매체에서 선거 개표 결과가 발표되고 있었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 6시 30분에 서울 공동체 발우공양에 참석해 요하문명 답사를 다녀온 것과 관련해 간단히 안부를 전하고, 소중한 한 표를 잘 행사해 준 대중들을 격려한 후 7시부터는 하루종일 평화재단에서 미팅 및 회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nbspnbsp nbsp※ 민족의 역사를 올바르게 정립하고, 연해주 독립운동의 성지인 신한촌의 역사 회복과 재건을 위해 대중 여러분들의 후원금을 받습니다. 소정의 기금 출연으로 역사 회복에 동행하는 마음과 정성을 함께 담아 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 계좌번호 국민은행 57860101272869 예금주 좋은벗들nbsp

2016.04.14. 47,867 읽음 댓글 21개

2016.4.12 홍산 문화, 삼좌점 석성

요하문명 답사 4일째

2016.04.13. 52,458 읽음 댓글 36개

2016.4.11 성자산 산성 및 소하서 문화, 소하연 문화

요하문명 답사 3일째

2016.04.12. 41,669 읽음 댓글 23개

2016.4.10 흥륭와 문화와 조보구 문화

요하문명 답사 2일째

2016.04.11. 44,631 읽음 댓글 27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