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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21 태화강 100리길 산책 및 농사일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복안저수지, 가뫼들계곡 등 백운산 자락에 있는 태화강 100리길 중 일부 구간을 산책한 후 탑곡 정토수련원 농토를 둘러보고 내려와 어제에 이어서 텃밭 농사 준비를 마무리 했습니다.nbspnbsp어제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함께 한 법사님들은 새벽 예불을 마치고 5시 30분에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법사님들이 모두 떠난 후 아침 해가 뜨자마자 스님은 지팡이 하나를 들고 산책길에 나섰습니다.nbspnbspnbsp먼저 뒷산에 있는 부모님 산소를 참배했습니다. 무덤 앞 비석에는 돌아가신 연도가 표기되어 있었는데 올해 1월이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3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스님은 해마다 1월에는 인도 성지순례 안내를 해야하기 때문에 어머니 제사에 한번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절을 하고 문안 인사를 올린 후 산소가 햇살을 잘 받기 위해서는 주위에 나무들을 어떻게 정비해야 할지 둘러 보았습니다.nbspnbsp이렇게 뒷산을 넘어오니 미호리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소똥 냄새가 진동하는 미호리 들녘의 봄풍경을 구경하며 시골길을 따라 한참 걸으니 앞에 아미산이 보였습니다. 스님은 아미산 중턱에 보현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 절이 어렸을 때 어머님이 다니시던 절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가끔 법문에서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재일이 되면 목욕재계하고 절에 가서 정성을 기울이던 모습을 예로 들며 어떤 일을 할 때는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곤 하는데 바로 그 절을 먼 발치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미호리 마을nbsp미호리 마을을 지나 오르막길을 따라 걸으니 복안저수지 둑이 나타났습니다. 입구에는 태화강 100리길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어 지도와 함께 구간 별로 잘 안내가 되어 있었습니다. 바다와 만나는 명촌교에서부터 태화강의 최장 발원지 백운산 탑골샘까지 47.54km가 한 길로 이어진 것이 태화강 100리길이라고 합니다. 오늘 스님은 그 중에서 미호리에서 복안저수지, 가뫼들 계곡, 탑골샘에 이르는 제4구간의 7km를 걸었습니다.nbspnbsp▲ 복안저수지nbsp복안저수지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서 그런지 모처럼 수량이 아주 풍부해 보였습니다. 조금만 수위가 더 올라가면 길 위로 물이 넘칠 것만 같았습니다. 스님은 “이 정도 수량이면 올해 농사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고 하면서 흡족해 했습니다.nbspnbspnbsp콘크리트로 포장된 저수지 둑길은 저수지가 끝나는 지점까지 평탄해서 걷기에도 아주 좋았습니다. 저수지가 끝나는 지점부터는 좁은 계곡이 나타났습니다. 이 계곡을 사람들은 ‘가뫼들’ 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nbspnbsp▲ 가뫼들 계곡nbsp가뫼들 계곡도 수량이 많아서 경치가 일품이었습니다.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절로 발걸음을 경쾌하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 스님이 어릴 때 목욕을 했다고 하는 선녀탕nbsp가뫼들 계곡에 대한 안내 표지판에는 웅덩이마다 얽힌 전설 이야기로 관광 해설이 잘 되어 있다고 하는데, 스님은 “나는 그런 건 모르고 그냥 나무하러 왔던 기억 밖에 없다”고 하며 웃었습니다. 이곳까지 나무를 하러 올 정도였다고 하니 아마도 당시에는 민둥산이 대부분이었나 봅니다.nbspnbsp계곡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를 30여 분. 골짜기마다 곳곳에 봄 소식이 가득했습니다. 양지 바른 곳에는 진달래가 이미 만개한 곳이 많았고, 생강나무꽃은 곳곳에서 노란색 불빛을 발하고 있었고, 개울가에는 버들강아지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지팡이로 버들강아지를 가리키며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봄의 시작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이 버들강아지야. 설이 지나고 얼음이 성성한 개울가에 벌써 피어나기 시작하거든.”nbsp▲ 버들강아지nbsp▲ 진달래nbsp▲ 생강나무꽃nbsp계곡을 조금 벗어났나 싶었는데 다시 논이 보이고 멀리 백운산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오르막을 한 번 더 오르니 영남알프스 둘레길 구간인 내와길과 만났습니다.nbspnbsp내와길에서 백운산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니 ‘탑골’이 나왔습니다. 이 계곡 절터에 홍수로 탑이 굴러 내려와 아랫마을을 탑골이라 부르게 됐다는 데서 ‘탑골’이라는 지명을 얻었다고 합니다. 탑골 상류에는 태화강의 발원지인 탑골샘도 있습니다.nbsp또한 탑골에는 ‘탑곡 정토수련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2시간의 산행 끝에 탑곡 정토수련원에 도착한 스님은 먼저 감자가 심어진 밭을 둘러보았습니다. 북한에 씨감자를 보내기 위해 작년에 연구소에서 씨감자를 대량 주문했는데, 이번에 유엔안보리 제재로 보내지 못하게 되어 이곳 탑곡 수련원에서 실험재배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한 고랑은 씨감자로, 한 고랑은 일반 감자로, 번갈아가며 감자를 심어서 생산량을 비교해 볼 계획입니다.nbspnbsp▲ 씨감자를 심은 밭. 탑곡 정토수련원nbsp감자 밭만 대충 둘러보고 가려는데 갑자기 스님이 멈춰 서면서 외쳤습니다.nbspnbsp“저기 원추리 나물 봐라.”nbsp▲ 원추리 나물nbsp밭두렁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곳곳에 원추리 나물이 가득했습니다. 스님은 “먹는 것을 보고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가 있니?” 라고 웃으면서 나물을 캐기 시작했습니다. 이쪽 밭두렁에도 소복히 있고, 저쪽 밭두렁에도 소복히 있어서 스님은 나물을 캐는데 한참을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시나무가 가득한 밭두렁에도 원추리 나물이 소복히 있는 것을 발견한 스님은 낫으로 가시 나무까지 모두 베어내고 나물을 캤습니다.nbspnbspnbsp원추리 나물을 한 움큼 안고 탑곡 정토수련원을 내려왔습니다. 원추리 나물은 점심 식탁에 아주 맛있게 양념으로 버무려져 올라왔습니다. 야생에서 자란데다 돋아난지 얼마 안 된 새순이어서 그런지 정말 순하고 부드러웠습니다.nbspnbsp▲ 원추리 나물 무침nbspnbsp오후에는 다시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장작을 패는 일을 했습니다. 스님은 “으라찻차” 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나무를 반으로 갈랐습니다. 나무가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마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갈라진 나무들은 장작으로 쓸 수 있게 아궁이 앞에 가지런히 쌓아 두었습니다.nbspnbspnbsp▲ 장작패기nbsp이어서 어제 마무리하지 못한 텃밭 농사일을 했습니다. 음식물쓰레기와 함께 한쪽 구석에 모아두었던 거름을 퍼와서 화분 모종을 만들었습니다. 어제는 배추, 무, 상추, 당근 등 밭에 바로 심어도 잘 자라는 것을 위주로 심었다면, 오늘은 모종으로 먼저 키운 후 옮겨심으면 더 잘 자라는 것을 심기로 했습니다.nbspnbsp▲ 거름 퍼오기nbsp채로 걸러서 고운 흙을 만든 후 모두 화분에 담았습니다. 다양한 크기의 화분 수십 개가 순식간에 만들어졌습니다. nbspnbsp▲ 화분 모종 만들기nbsp화분에는 갖가지 채소 씨앗을 심었습니다. 옥수수, 완두콩, 토마토, 쥬키니, 근대, 아욱, 단호박, 얼룩이 호박, 애호박 등 심은 씨앗의 종류가 정말 다양했습니다.nbspnbsp▲ 채소 씨앗 심기nbsp스님은 같은 종류의 씨앗을 심은 화분끼리 구분을 해둔 후 물뿌리개로 듬뿍 물을 주었습니다. 마침 유수 스님도 오랜만에 찾아와서 같이 농사일을 거들어 주었습니다.nbspnbsp▲ 물주기nbsp마지막으로 작년 가을에 통일의병대회를 하기 위해 칠백의총에 갔다가 주변 공원에서 얻어 온 코스모스 씨앗을 담벼락 밑에 심었습니다. 스님은 “코스모스는 생명력이 강해서 아무렇게 심어도 잘 자란다”고 하면서 호미로 땅을 일직선으로 파고 코스모스 씨앗을 줄지어 뿌렸습니다. nbspnbsp▲ 코스모스 심기nbsp올 가을에는 담벼락 밑에 코스모스가 만발한 모습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nbsp삽과 호미, 장갑을 깨끗이 씻고 남은 씨앗은 봉인을 한 후 마당 곳곳에 듬성 듬성 보이는 잡초를 뽑았습니다. 잡초까지 말끔히 뽑고 나니 아주 개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해서 올 봄농사 준비를 잘 마쳤습니다. 지난주 월요일에 처음 농사 준비를 시작해서 서울을 왔다갔다 하는 가운데 총 4일이 걸린 셈입니다. 스님은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농사 준비를 마쳤다”고 하면서 흐뭇해 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 2시에 울산 두북을 출발해 6시에 서울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아침 7시 30분부터는 평화재단에서 연이어 미팅과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3.20 농사일 그리고 경주 남산 산책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인도·필리핀에서 잠시 귀국한 두 분의 국장님, 깨달음의장 진행을 하고 있는 법사님들과 함께 텃밭을 가꾸고 농사일을 한 후 경주 남산 자락에 위치한 통일암을 깜짝 방문해 부지 정비를 하고 있던 봉사자들을 격려했습니다.nbspnbsp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친 후 신규 법사님들이 텃밭에서 스님이 직접 키운 원추리 나물과 취나물, 돌미나리를 뽑아 왔습니다. 깨끗하게 씻어서 약간의 간을 치니 아주 먹음직스런 나물 반찬이 만들어졌습니다.nbspnbsp▲ 원추리 나물nbsp▲ 나물을 씻고 있는 모습nbsp▲ 텃밭에서 뽑아온 나물 반찬nbsp나물 반찬으로 맛있게 아침 식사를 한 후 스님이 필리핀 민다나오 원주민 마을에서 가져온 커피를 우려내어 주었습니다. 신규 법사님들은 “스님, 오늘 바리스타로 데뷔하셨네요” 라고 하면서 스님이 타 준 커피를 맛있게 마셨습니다. 필리핀 민다나오 고산지대에 위치한 알라원 마을에서는 원주민들이 커피를 재배하는데 이번에 필리핀JTS에서 원주민들의 소득 증진을 위해 커피를 많이 구매해 주었습니다. 법사님들은 스님 덕분에 알라원 커피를 맛보았다며 모두들 기뻐했습니다.nbspnbsp▲ 민다나오에서 가져온 커피를 우려내고 있는 스님nbspnbsp또 스님은 오랜만에 인도와 필리핀에서 두 분의 국장님이 온 것을 환영하며 지난 가을에 스님이 직접 딴 감을 꺼내 주었습니다. 겨울 동안 잘 익어서 단맛이 가득한 홍시가 되어 있었습니다.nbspnbsp▲ 홍시nbsp이렇게 시골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법사님들과 개울에 가서 반듯한 돌들을 주워 왔습니다. 그리고 마당에 일구어놓은 텃밭에 경계를 만들기 위해 벽돌을 나란히 세우는 일을 지난번에 마치지 못했는데, 드디어 오늘 완성시켰습니다. 스님은 벽돌이 일직선이 되는지 여러 차례 확인을 해가며 아침부터 굵은 땀을 흘렸습니다.nbspnbsp▲ 고소를 심은 밭nbsp▲ 감자와 상추를 심은 밭nbsp마당 곳곳에서는 봄이 오는 소식이 가득했습니다. 우물 앞에는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는가 하면, 담벼락 밑에는 봄의 시작을 알린다고 하는 산수유꽃이 노랗게 모습을 드러내었고, 텃밭 어귀에는 진달래가 분홍색 꽃망울을 막 터뜨리려 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매화꽃nbspnbsp▲ 산수유꽃nbsp▲ 진달래 꽃봉오리nbsp한편, 모두가 마당 곳곳에서 땀흘려 일하고 있는 사이 앞산 자락에 쑥을 뜯으러 갔던 자광 법사님이 양은 소쿠리에 쑥을 소복이 담아 나타났습니다. 쑥내음을 한껏 맡고선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저녁에는 쑥국을 끓여먹자”고 한마디씩 합니다. nbspnbspnbsp▲ 쑥을 뜯어 온 자광법사님nbsp이렇게 오전 일을 모두 마치고 11시가 되어 경주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등산하면서 간식으로 챙겨 먹기 위해 삶은 감자를 락앤락 통에 두둑히 넣어 가방에 챙겼습니다. nbspnbsp경주 남산 자락에는 통일암이 있는데, 오늘 대구, 부산, 마산에서 10여 명의 봉사자들이 와서 통일암 주위의 부지 정리를 한다고 합니다. 수고하는 봉사자들을 격려 방문하고자 길을 나섰는데, 간 김에 남산 등산을 겸하기로 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오늘은 용장골로 올라가서 이영재를 지나 통일암으로 내려가자”며 용장골로 차를 향하게 했습니다. 스님은 이 코스가 남산을 넘어가는 최단 코스라고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 용장골을 오르기 시작하는 스님 일행nbsp산길로 접어든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활짝 핀 진달래꽃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법사님들에게 “진달래꽃 핀 것 좀 봐라” 하면서 어린 아이 마냥 해맑은 미소를 보였습니다.nbspnbspnbsp▲ 경주 남산에 핀 진달래꽃nbsp특히 인도와 필리핀에 파견되어 일하다가 1년만에 한국을 찾은 보광 법사님과 안병주 국장님은 오랜만에 고국의 자연을 느끼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nbspnbsp한참을 올라가니 저 멀리 산 꼭대기에 용장사 삼층석탑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멀리서나마 먼저 삼배를 드렸습니다.nbspnbsp▲ 용장사 삼층석탑nbsp용장사 삼층석탑은 해발 400미터의 바위산 전체를 기단으로 삼아서 세워졌기에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계곡에서 올려다보니 자연과 탑이 일체가 되어 있어 하늘을 배경으로 부처님 세계에 다다른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맑고 깨끗한 부처님 세계를 동경했던 신라인들의 신앙심과 정열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습니다.nbspnbspnbsp가파른 산길을 아주 빠른 걸음으로 앞장 서서 오르던 스님이 법사님들에게 웃으며 물었습니다. “내가 너희들보다 앞장서서 이렇게 산을 오를 수 있는 날이 이제 몇 년 남았을까?” 법사님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앞으로 10년은 가능할 것 같은데요.” 라고 하자 스님이 고개를 흔들며 답했습니다. “한 3년 정도 밖에 안 남았을거야.”nbspnbsp스님도 이제 세월의 무게를 느끼나 봅니다. 하루 농사일을 하고 나면 “손발이 저리다”고 하고,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오르고 나면 “숨이 차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람쥐처럼 산을 휘젓고 다니는 스님의 모습을 앞으로 3년 밖에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살짝 슬퍼졌습니다. nbspnbsp어찌나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올랐는지 용장골에서 이영재까지 2.1km의 산길을 40분 만에 올랐습니다. 스님도 시계를 보더니 “이렇게 빨리 올라와 본 건 오늘이 처음인 것 같다” 며 가쁜 숨을 몰아 쉬었습니다.nbspnbsp이영재를 지나 내리막길로 접어들 무렵 드디어 가방 속에 있던 삶은 감자를 꺼내어 먹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토실토실한 감자를 한 입 물으니 허기진 배가 금새 불룩해 지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nbsp지암골로 내려와 12시 15분 쯤에 드디어 통일암에 도착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통일암 주변 부지를 정비하고 있던 거사님들은 마침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스님이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무척 반가워 했습니다.nbspnbspnbsp▲ 통일암nbsp스님은 “격려 방문 왔어요” 라며 거사님들 모두에게 악수를 건냈습니다. 또 경주 시내에서 사온 황남빵과 삶은 감자, 그리고 안병주 국장님이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가져온 망고 말린 것도 함께 전해주었습니다.nbspnbsp통일암 부지는 매년 봄과 가을에 정토불교대학생들이 경주 남산 순례를 할 때나 통일의병대회를 할 때 전체 집결 장소로 사용되는 곳입니다. 봉사자들은 이곳에서 대중 행사를 할 때 불편함이 없도록 소나무의 아래쪽 잔가지 치는 일을 오전 내내 했다고 합니다. 스님은 말끔하게 정비된 공간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스님도 긴 톱을 들고 잔가지들을 쳐보았습니다.nbspnbspnbsp그런 후 스님은 이곳 통일암 부지 전체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 주위를 한바퀴 둘러보았습니다. 곳곳에 지난번에 측량한 붉은 말뚝이 박혀 있었습니다. 앞에 토함산이 보이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공간도 넉넉히 있어서 스님은 “내가 여기에 머물면서 농사를 지을까?” 하며 이곳을 만족스러워 했습니다. 또 한쪽으로는 계곡이 있어서 낮은 폭포가 흐르고 있어 운치를 더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본 후 봄에 있을 경주남산순례와 통일의병대회 때 스님이 법문할 자리를 선정하고, 그곳에 평상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평상이 수평이 되도록 각 기둥마다 돌을 박은 후 스님이 그 위에 올라가 이곳에서 전체 대중이 잘 보이는지를 점검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하루 종일 고생한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봉사자들은 이렇게 격려 방문까지 해준 스님에게 무척 고마워하면서 활짝 웃었습니다.nbspnbsp▲ 통일암 주변 정비를 도맡아 해준 거사님들과 함께nbsp다시 두북으로 돌아와서는 농사일을 계속 했습니다. 오전에 경계석을 세워서 아주 깔끔한 모양으로 텃밭을 만든 스님은 이제 본격적으로 상추, 배추, 무, 당근, 고소를 심었습니다.nbspnbsp▲ 당근을 심기 위해 고랑을 만들고 있는 스님nbsp먼저 배추, 무, 당근을 심는 곳에는 고랑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고랑을 만들지 않은 나머지 곳에는 상추와 고소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고추와 옥수수는 모종을 가져와 심을 예정인데, 그 자리는 씨를 뿌리지 않고 그냥 비워 두었습니다. nbspnbspnbspnbsp▲ 배추, 무, 고소 등을 곳곳에 심고 있는 모습nbsp씨뿌리기까지 다 마치고 나니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스님은 해가 다 질 때까지 마당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잡초를 뽑았습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일을 찾아 하고 있는 스님의 모습을 보니 ‘정말로 농사일을 좋아하시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저녁 6시에는 멀리서 손님이 찾아와 스님을 뵙고 갔습니다. 손님을 보낸 후 저녁 8시에 법사님들과 함께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면서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오늘 농사일을 그렇게 많이 한 것도 아닌데 손이 퉁퉁 부었다”며 손을 오무렸다 폈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여러분들이 수고한 덕분에 오늘 텃밭 정비를 거의 다 마쳤다”고 하면서 법사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오늘 씨를 잘 뿌려 놓았으니 이제 비와 바람, 햇볕, 흙이 싱싱한 채소로 키워줄 것입니다. 나중에 잘 자란 각종 채소들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드릴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내일도 스님은 농사일을 계속 할 예정입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3.19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입학 워크샵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입학워크샵에서 ‘진정한 성공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입학 특강을 했습니다.nbspnbsp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휴전선이 바라다보이는 경기도 파주 민족화해센터에서는 어제부터 1박2일 동안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입학워크샵이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일째 날 오전 프로그램으로 법륜 스님의 입학 특강이 있었습니다.nbspnbsp▲ 일출nbsp아침 7시에 서울 정토회관에서 경기도 파주로 출발했는데, 한강 위로 아침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스님은 이동하는 차 안에서 계속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nbsp8시에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입학생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한 후 8시 50분부터 ‘진정한 성공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입학 특강이 있었습니다. 입학생들은 의사, 변호사, 시민단체 대표, 교사, 언론인, 기업인 등 각기 다양했는데 우리 사회 곳곳에서 오피니언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입학생 35명은 스님이 무대 위에 자리하자 뜨거운 박수갈채로 환영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입학 워크샵nbsp스님은 어제밤 청주에서 통일 강연을 마치고 자정이 넘어 서울에 도착했다며 이곳 입학 워크샵에 바로 와서 인사를 나눴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양해를 구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자며 일제시대 때 살았던 한 사람의 사례를 예로 들었습니다. nbspnbspnbsp“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뤘을 때 그것을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사업가가 돈을 벌면,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따면, 고시에 합격해서 변호사나 판사가 되면, 정치인이 시의원이나 시장이나 국회의원이 되면, 우리는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게 정말 성공입니까? 정말 그럴까요?nbspnbspnbsp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부터 한 100년 전 일제시대에 태어난 한 아이가 있습니다.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소학교에 다녔는데 제법 공부를 잘 했어요. 그래서 부모가 형편이 어려운데도 뒷바라지를 해서 아이는 지방에 있는 좋은 중학교에 가게 됐고, 또 거기서 공부를 제일 잘 하니까 서울에 있는 좋은 고등학교를 가게 됐고, 또 거기서도 공부를 잘해서 경성제대 법학부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졸업하기 전에 사법고시에 패스해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검사로 부임을 하게 됐습니다. 시골에서는 검사와 군수를 ‘영감님’이라고 부르는데, 나이 24살에 벌써 ‘검사영감’이 된 거예요. 그는 10년도 안 지나서 지방검찰청의 검사장이 됐습니다. 검사장이라면 굉장한 권력이 주어지는 자리이지요. 그는 30대 초반에 소위 출세를 한 겁니다. 대성공을 한 거지요. 그렇게 해서 자녀도 낳고, 부모도 잘 모시면서 집안을 살렸는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까 해방이 된 겁니다.nbspnbsp해방이 되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친일매국노라고 해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게 되겠지요. 남한에서는 친일세력을 제대로 척결하지 못 했지만 북한 같았으면 그 사람은 벌써 재산이 몰수되고, 수용소에 끌려가서 강제노역을 당하는 등 고통을 겪었을 겁니다. 그 집 아이들도 하루아침에 거지가 됐겠지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 중 일부는 북한의 탄압을 피해서 nbsp6.25전쟁을 틈타 남쪽으로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일제시대에 부유하게 살다가 어느 날 공산당이 와서는 아버지 잡아가고, 재산을 몰수당하니까 공산당에 대한 증오심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겠지요. 그래서 북한에서 지주의 아들, 또는 친일후손으로 살다가 6.25전쟁 당시 남쪽으로 피난 내려와서 정착한 사람들이 북한을 증오하는 소위 극우세력의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면 다 양면성이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 개인적 입장에서만 보면 그 원한이 뼈에 사무쳤을 거예요.nbspnbspnbsp그래서 역사를 이해하는 것과 개인을 이해하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개인으로 보면 대성공의 인생을 살았는데, 역사적 눈으로 봤을 때는 대실패의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제까지 성공이었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까 실패가 된 거예요. 그것은 역사적으로 단죄되는 일이니까 사업하다가 돈 좀 잃은 정도의 실패가 아니잖아요. 그 후손까지도 고개를 들고 살기 어려울 정도의 대실패란 말이에요.nbspnbsp그런데 그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지도 않았고,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지도 않았고, 성추행하거나 성폭행도 안 했고, 남을 속여서 사기친 적도 없고, 욕설한 적도 없고, 술 먹고 취해서 행패부린 것도 없잖아요. 만약 그 사람이 불교인이라면 그는 계율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고, 따라서 윤리, 도덕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오히려 성실하게 살면서 자기 직업에 최선을 다했고, 가정 잘 돌보면서 살았는데, 왜 그 사람의 인생이 실패하게 되는 걸까요? 그 이유를 알지 못해서 기독교인들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안 믿어서 벌 받았다’, 불교에서는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과보를 받았다’, 도교나 유교에서 보면 ‘사주팔자가 나빠서 그렇다. 사주를 보니까 초년에 성공하다가 노년이 안 좋고, 관재수도 있다고 나온다’ 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nbspnbspnbsp아무 죄도 짓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온 그 사람의 인생을 대실패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우리는 사회적, 역사적 존재로서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은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우리는 개인으로 살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우리는 개별적 존재가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내가 공동체의 일원이다. 사회적, 역사적 존재다’ 하는 것을 망각하고 삽니다. 그걸 망각하고 살다보면 어느 날 우리는 위에서 말한 사람과 같이 벼락 맞는 일, 뜻하지 않은 일, 예측 불가능한 일을 맞게 되는 겁니다. 그 사람과 같은 일은 우리의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북한의 최고지도부나 그 관계되는 사람이나 자녀들은 북한에서 제일 좋은 계급으로 살고 있는데, 지금 북한의 체제가 약간 불안정하잖습니까. 그래서 만약 북한체제가 붕괴라도 된다면 그 사람들이 가장 나쁜 상황을 맞게 되겠지요.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가 사회적, 역사적 존재라서 그렇습니다.nbspnbspnbsp일제시대 때 개인들에게 있어서 성공이란, 농부는 농사 잘 되는 것, 장사꾼은 장사 잘 되는 것, 사업가는 사업 확장하는 것, 선생님은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 학생은 공부 잘 하는 것이 되겠지요. 그런데 직업이나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삼천만 민중 전체가 바라는 일, 삼천만 전체에게 이익이 되는 일은 뭐였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나라의 독립입니다. 우리 삼천만 민족 전체가 일본이라는 이민족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압박을 받으며 살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일부는 그것을 통해서 이익을 보기도 했겠지만 일본의 식민지라는 조건은 우리 공동체의 이익을 일본 제국주의가 빼앗아 갔기 때문에 우리 공동체 전체가 손해를 보는 시스템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나라의 독립은 그 자체가 삼천만 국민 전체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nbspnbsp일제 강점기 때 성실히 살아서 검사가 된 사람이 해방 후 친일매국노로 치부된 예는 무엇이 진정한 성공인지, 우리가 시대적 과제를 인식하고 있느냐의 여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은 다소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한편으론 스님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점점 강연에 집중해 들어갔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이 시대적 과제였는데,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이 시대적 과제인지 질문을 던지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nbspnbsp“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 민족 전체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과제는 뭘까요? 통일입니다. 통일이 우리의 시대적 과제입니다.nbspnbspnbsp지금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고도성장기가 끝났고 저성장기로 접어들었습니다. 더 이상 고도성장은 어렵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걸 막아야 합니다. 올해 국민들의 실질소득이 줄어든 거 알아요? 명목상 GDP는 2.6 성장했다고 합니다. 원래 계획은 3.8였는데 2.6 성장했고, 재고분이 1.1라니까 실질적으로는 1.5 성장한 거죠. 그런데 환율이 인상되면서 달러로 표시된 GNI가 28,000달러 대에서 27,000달러 대로 내려앉았습니다. 그런데 재벌은 10 이상 성장했으니 저소득층의 소득이 고소득층으로 더 쏠려간 것입니다. 국민들이 먹고살 만한데도 ‘어렵다’고 하는 건 이렇게 실제 소득이 줄었기 때문입니다.nbspnbsp이걸 해결하자는 것이 ‘경제민주화’입니다. 경제민주화는 첫째, 경쟁이 공정해야 된다는 겁니다. 지금 경쟁이 너무 불공정하니까 흙수저, 금수저 얘기를 하는 거잖아요. 둘째, 경쟁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회보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회보장은 좁은 의미의 복지이고, 큰 의미의 복지는 정치, 경제적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서유럽이나 북유럽에서는 이 두 가지가 함께 잘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복지사회’라고 하는 겁니다.nbspnbsp박근혜 대통령도 지금 경제를 성장시키겠다고는 하는데, 통계를 보면 2.5 내지 2에 그칠 겁니다. 이런 한국의 저성장은 비단 대통령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그건 우리 사회의 성장 동력이 소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저성장의 시대에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서 분배구조를 조정하여 더 이상 서민들이 피해를 안 입도록 막아줘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국민들이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겁니다. 사회현상적으로 봤을 때 이런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못 먹고 사는 절대빈곤의 사회에서는 그 분노가 혁명적으로 일어나는데, 먹고 살만한 발전된 나라에서는 그 분노가 극우적으로 기울게 됩니다. nbspnbsp우리가 계속 성장에 목매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성장을 조금 더 원한다면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선발주자를 뛰어넘는 창조력을 키우는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경제가 모방시스템이다 보니까 창조적이지 못하잖아요. 창조력을 키우려면 교육부터 시작해서 사회시스템이 완전히 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는 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두 번째, 좀 손쉬운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양적 확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분단은 우리 역사의 질곡이었지만 남한의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기회예요. 예전에 미국이 동부에서 유럽을 모방하다가 한계에 부딪쳤을 때 서부 개척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서 활력을 찾았듯이 북한개발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에 북한의 자원과 노동력이 결합하게 된다면 말이에요.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도 벌써 인건비가 비싸져서 제조업 등은 모두 인도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북한이 제조업 기지가 되지 말란 법도 없지요. nbspnbsp그런데서 우리 개인의 인생을 위해서든 우리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든 이 시대의 과제는 국내적으로는 ‘복지사회 만들기’이고, 민족 전체로는 ‘통일’입니다.nbspnbspnbsp복지와 통일은 별개의 모순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복지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통일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면서 성장을 도모해야 되고, 또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도 남한을 복지사회로 만들어야 돼요. 남한 사회의 민주주의가 더 발전돼 있고, 복지가 더 실현돼 있으면 북한 주민들이 볼 때 남한이 좋아 보이니까 ‘같이 살지 남북이 따로 살 이유가 뭐냐?’ 라고 생각할 거예요.”nbspnbsp복지사회를 만드는 일과 통일을 이루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고 함께해 나가면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정치지도자들이 이런 국가적 목표와 비전을 좀 명확하게 가져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지금 우리가 개인적 성공에만 매몰되어서 공동체의 변화와 위기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며 얼마전 논란이 되었던 ‘8월15일 건국절 추진 논란’을 예로 들었습니다. nbspnbspnbsp“얼마 전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정해서 기념하자는 문제로 논란이 있었는데, 그건 사실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8월 15일이 건국절이 되면 친일세력은 더 이상 친일세력이 아니라 자동으로 건국공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더 이상 대한민국의 건국을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 때를 그 연원으로 하지 못 하게 되는 거죠. 1948년 8월 15일은 건국절이 아니라 정부수립일입니다. 그날을 건국절로 하게 되면 대한민국 건국 이전에 했던 독립운동은 대한민국과 별 관계가 없는 역사가 됩니다.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정부를 구성한 사람들 대부분은 친일 기술관료들이었는데, 건국절을 8월 15일로 공인하게 되면 이 사람들은 다 건국공신이 됩니다.nbspnbspnbsp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모두 개인적 성공에만 정신이 팔려서 우리가 사는 이 공동체가 어떻게 서서히 변해가고 있는지, 공동체를 둘러싼 주변 강국들은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 모르고 있어요. 그러다가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대한제국 말기처럼 돼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조선조 말 때 우리 선조들은 세상이 변하는 것도 모르고, 왜 그렇게 바보 같았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을 경험하고 보니 ‘우리도 지금 눈 번히 뜨고 당하고 있는데, 그분들이라고 별 수 있었겠나?’ 싶습니다.nbspnbspnbsp평화리더십아카데미의 설립 취지는 국민의 각성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주권자인 국민이 각성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걸 잘 아시고, 바쁘시더라도 강의 빼먹지 말고 잘 나오셔서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국민 각성이 평화리더십아카데미의 설립 취지라는 말씀에 모두 큰 박수를 보내며 공감을 표했습니다.nbspnbspnbsp앞으로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입학생들은 오늘부터 6월 9일 수료식 때까지 12주 동안 역사 인식, 정의, 경제, 리더십, 정치, 문화, 헌법, 과학, 국제, 사회통합 등 각 분야의 저명한 강사들로부터 수업을 듣고 토론의 장을 가질 예정입니다. 12번의 강의가 이뤄지는 동안 오늘 스님이 강조한 시대적 과제인 ‘복지사회’와 ‘통일한국’이 중요한 화두가 될 것입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자 모두들 큰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받자 개근상 하자 통일” 정말로 모든 분들이 수료식날 개근상을 받으시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민족화해센터를 나온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파주에서 자유로에 접어들 때 잠시나마 철책선 너머로 임진강과 북한 땅이 보였습니다. 분단 70년이 넘어가도록 아직도 철책선을 걷어내지 못하고 전쟁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게만 다가왔습니다. 스님이 늘 강조하듯 통일 한국은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엄청난 꿈과 희망을 가져다 줄텐데 말이죠.nbspnbsp스님은 아침 8시부터 진행되고 있던 정토회 결사행자 회의에 오후 1시부터 결합해서 함께 했습니다. 오후 5시에 결사행자 회의를 마친 후 곧바로 울산 두북으로 향해 밤 9시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깨달음의장을 진행하고 있는 신규 법사님들, 인도·필리핀에 파견된 두 분 국장님들이 귀국해서 함께 울산 두북에서 농사일을 할 예정입니다. 아침에는 텃밭 가꾸는 일을 하고, 점심 때는 경주 통일암 주위를 대구경북 거사님들이 정비하는 일을 하는 데 그곳에 잠시 방문해 함께 일을 한 후 간 김에 남산도 함께 둘러보고 내려올 예정입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3.18 청주 즉문즉설 강연
nbsp저녁 7시부터 청주 CJB미디어센터에서는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청주 시민들을 위한 강연이 열렸습니다. 앞서 통일에 관한 질문 내용과 법륜 스님의 답변을 전해드렸는데요.nbspnbsp▲ 청주 CJB미디어센터nbsp이어서 개인 고민에 대한 질문과 답변도 계속 있었습니다. 먼저 스님은 강연의 취지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의 주제는 통일이지만 그래도 ‘법륜 스님’ 하면 인생 상담의 이미지가 크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반반씩 하려고 해요. 개인 고민도 받아주면서 통일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고민인 인생 문제에도 도움이 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변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두 가지 목표를 갖고 대화를 시작하겠습니다.”nbspnbsp스님은 한 번은 통일 질문, 한 번은 개인 질문 하는 식으로 번갈아가며 답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여러 질문 중에서 바람피우는 모습이 아내에게 발각되어 이혼 위기에 처한 남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비록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가정만큼은 지키고 싶어하는 남성 분의 하소연에 스님은 지혜로운 답변을 들려주어 참석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었습니다.nbspnbspnbsp“제가 바람을 피우다가 모텔에서 나오는 모습을 아내에게 카메라로 찍혔습니다. 그 뒤로 저 혼자 술도 많이 마시고, 자학도 많이 하고, 절에 가서 기도도 하고, 108배도 지금 137일째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절을 하다보니 미운 감정이 올라옵니다. ‘평생 동안 잘해주다가 그거 한 건이 걸렸을 뿐인데, 그 한 번을 용서해 주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마음에 가슴이 아픕니다. 30년을 같이 살아주었는데 재산 때문에 이러는 건가 싶어서 ‘가져갈 것 다 가져가라’ 했습니다. 어제 223일 만에 처음으로 아내와 통화를 했습니다. 27살, 28살 딸이 있고, 22살 아들이 있고, 막둥이가 고1인데 아이들이 너무 마음에 걸립니다. 그냥 이혼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가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nbspnbsp그리고 이렇게 가정에 문제가 있어서 작년 3월경에 점을 봤는데, 점쟁이가 ‘사장님은 카메라에 찍힐 겁니다. 그리고 10월경에 날아오는 문서를 받게 될 겁니다. 조심하세요’ 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조심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이거 참 요지경인데, 이런 일치도 있나 싶게 점쟁이의 예언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 하늘에서 이런 벌도 주는구나’ 했거든요. 지금은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바람 피우다가 걸려서 이혼소송을 당했습니다. 이혼소송은 지금 진행 중입니다. 재판을 두 번 했고 어제가 세 번째 재판인데 제가 법정에 안 갔습니다.”nbsp“왜요?”nbsp“‘당신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안 갔습니다. 저는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았어요. 저쪽에서 원하는 대로 다 해 주려고 합니다.”nbsp“질문자는 뭘 원해요?”nbspnbsp“이혼을 안 하길 원합니다.”nbsp“부인은 뭘 원해요?”nbsp“이혼을 원하는 것 같아요.”nbsp“그럼 재산을 절반으로 갈라서 주면 되잖아요.”nbsp“저는 ‘원하는 대로 다 가져가라’ 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마음이 좀 아픕니다.”nbspnbsp“그러면 부인이 이혼 안 하겠다고 나올까 싶어서 그랬지요?”nbsp“예, 솔직히 그랬습니다.”nbspnbsp“질문자가 꼼수를 부렸네요. 그렇게 꼼수 부리다가 당합니다. 재산도 다 가져가고, 이혼도 해 버릴 수가 있어요.”nbspnbsp“그렇겠지요. 그래도 줘야지요. 뭐.”nbsp“저처럼 한 번도 결혼 안 해 보고 혼자 사는 사람도 있는데, 질문자는 결혼도 해 보고 아이도 낳아 키워 봤잖아요. 그러니 저 같은 사람을 생각하면 앞으로 혼자 사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nbspnbsp“그런데 스님, 도리어 혼자 살아왔다면 습관이 박혀서 수월했을 건데, 저는 아이들과 같이 살아봤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게 더 힘든 것 같습니다. 남들은 혼자 사는 게 편하다고 하던데 저는 상당히 어려운 것 같아요.”nbsp“객관적으로 봤을 때 결혼도 한번 못 해 본 사람하고, 결혼 한 번 해서 잘 살다가 그만 둔 사람 중에 누가 더 조건이 나아요?”nbsp“제가 좀 더 좋은 조건인 것 같습니다.”nbspnbsp“그런데 왜 힘들어요? 한 번도 안 해 본 저도 이렇게 싱글싱글 웃으면서 사는데요. 제가 볼 때는 별일 아니에요. 질문자는 지금 선택의 여지가 많잖아요. 다 넘겨주고 혼자 자유롭게 살든지요. 스님도 혼자 사니까요. 아니면 이혼은 했어도 전 부인한테 좋은 감정이 남아있다면 가끔 연락을 해서 연애를 하자고 하든지요. 결혼하자고 하지는 말고요. 아니면 또 다른 그 여자와 자유롭게 연애하든지요. 이혼했으니까 더 이상 부인 눈치 안 봐도 되잖아요. 아니면 부인이 마음을 바꿔서 ‘다시 집으로 오너라’ 할 수도 있으니까 다시 가서 살든지요. 길은 여러 가지인데 뭐가 걱정이에요?”nbsp“아이들의 결혼도 앞으로 남아있는데 울타리라는 게 필요하잖습니까?”nbsp“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어요. 질문자가 재혼을 해서 산다면 몰라도 혼자 있으면 아이들이 결혼할 때만 가서 부인과 함께 쇼윈도우 부부 역할을 하면 됩니다. 그런 건 큰문제가 안 됩니다.nbspnbsp그런데 부인이 질문자한테 독하게 하는 건 부인이 질문자를 너무 믿었기 때문입니다. 부인이 평소에 질문자를 안 믿고 의심을 자주 했다면 이렇게까지 충격을 안 받았을 겁니다. 부인이 너무 질문자만 쳐다보고 살았기 때문에 충격이 너무 커서 지금 독하게 나오는 거예요.nbspnbsp그리고 사람마다 다 성격이 다르거든요. 여자분들 중에는 ‘다른 여자랑 살림을 차린 것도 아니고, 밖에 자식을 낳아둔 것도 아니고, 그냥 한번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니까 바가지만 좀 긁고 봐주자’ 하는 사람도 있고, 반면에 ‘나를 두고 딴 여자를 봐? 나는 혼자 살면 혼자 살았지 바람피운 인간과는 절대로 같이 살 수가 없다’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사람마다 다 가치관이 다르니까요. 지금 질문자는 ‘내가 평생 돈 벌어서 다 보살펴주고 그랬는데, 한 번 실수한 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가혹할 수가 있느냐’ 하며 억울해 하는 것 같아요. 자기 잘못은 하나도 생각 안 하고 말이에요. 예를 들어 남의 뺨을 다섯 대나 때려놓고 항의를 받으니까 ‘미안하다’ 하고 한 번 사과를 했는데, 상대가 더 화를 낸다고 자기도 화를 내면서 ‘내가 미안하다고 그랬는데 왜 너는 계속 이렇게 항의를 하느냐?’ 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nbspnbsp그러니까 질문자는 ‘아내에게 그것이 참 큰 충격이었구나. 나는 안 들키면 그만이고, 설사 들킨다고 해도 작은 문제겠지 하면서 가볍게 생각했는데, 부인한테는 큰 충격이었구나. 나는 돈 잘 벌어주는 게 중요한 줄 알았더니 아내는 그런 것보다는 자기만을 쳐다보기를 더 원하는 여자였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nbspnbsp그런데 질문자는 왜 그런 여자와 결혼을 했어요? 남자가 바람을 피워도 바가지만 좀 긁다가 그만두는 여자를 사귀지 그랬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이번 사건 이전에는 부인을 좋아했어요?”nbsp“그냥저냥 살았던 것 같습니다.”nbsp“그냥저냥 한데다가 이렇게까지 난리 피우는 여자랑 굳이 살려는 이유가 뭐예요? 그냥저냥 한다고 질문자가 먼저 이혼하자고 했다면 아이들한테 참 체면이 안 섰을 텐데, 이렇게 부인이 난리를 피우니까 오히려 질문자는 나중에 아이들한테 할 말이 있잖아요. ‘물론 내가 잘못은 했지만 너희 엄마가 저렇게까지 하니까 내가 무슨 방법이 있겠냐? 내가 어떻게 하겠냐?’ 하고 얘기하면 되지요. 오히려 마누라가 극성을 피울수록 질문자한테는 유리하네요.nbspnbspnbsp그러면 아이들한테 체면도 서잖아요. 아이들도 ‘아빠가 잘못했다’고 하다가도 엄마가 너무 극성을 부리면 나중에 ‘아무리 아빠가 잘못했지만 엄마도 너무 한다’ 라고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부인이 극성을 부리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판사도 너무 그렇게 극성을 부리는 사람을 보면 판결에 반영을 합니다. 질문자는 법정에 가서 ‘판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우리 부인은 정말 저를 사랑했고, 저도 부인을 사랑했는데, 친구들과 술 먹다가 이렇게 실수를 했습니다’라고만 말하세요.nbspnbsp그런데 질문자는 술 먹다가 딱 한 번 실수를 한 거예요? 아니면 원래 하나 봐뒀다가 따로 살림을 차린 거예요?”nbsp“고민이 있을 때 같이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nbsp“그 정도면 부인의 입장에서는 화날 만하네요. ‘고민이 있으면 30년 같이 산 나하고 얘기해야지 어떻게 딴 여자한테 얘기를 하느냐? 몸은 나한테 있었지만 마음은 딴 데 가 있었네?’ 하니까 얼마나 섭섭하고 화나겠어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만약 이혼을 안 하고 싶다면 계속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만 용서해주면 가정을 잘 지키고 살겠습니다’라고 하세요. 그러면 판사가 중재를 합니다. 최종적으로 이혼을 하라고 판결을 내리더라도 질문자가 진심으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면 판사는 보이지 않게 질문자에게 유리하게 해 줍니다. 질문자가 바람을 피워서 이혼 사유를 제공을 했기 때문에 조금 불리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사과를 해야지 ‘네가 재산 다 가져가라’라고 하면서 법정에 출석도 안 하면 질문자는 재산도 날리고 외로워집니다. 재산분할 됐어요?”nbsp“아니오.”nbsp“그냥 재산을 주는 건 바보입니다. 그렇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오늘 질문 잘 했어요. 오늘 질문해서 딴 건 못 찾을지 몰라도 재산의 반은 찾았습니다.nbspnbspnbsp성질이 나서 어떤 걸 결정하면 안 돼요. 그렇다고 이해를 따져서 부인한테 하나도 양보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나쁘지만요. 질문자도 다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권리가 있습니다. 그걸 못 찾아먹는 건 바보이지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정당하게 주어진 권리를 찾는 건 나쁜 게 아닙니다.nbspnbsp그렇다고 질문자가 변호사를 살 이유는 없습니다. 질문자가 뭘 잘 했다고 변호사를 사겠어요? 질문자는 그저 법정에 나가서 ‘잘못했습니다. 용서를 빕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만 하세요. 그렇다고 이혼을 안 당하는 건 아닙니다. 바람을 피운 건 이혼 사유에 해당되기 때문에 질문자가 불리하니까요. 그러니 질문자는 자기를 내세우지 말고 무조건 용서를 비세요. 그런데 ‘잘못 했습니다’ 라고 하는 것과 ‘내가 잘못했으니까 재산은 다 네가 가져라’ 라고 하는 건 다릅니다. 재산은 분할해서 부인을 드리세요. 그런데 질문자도 재산을 좀 가지고 있어야 나중에 아이들을 지원해 줄 수도 있고, 또 부인에게 다만 얼마라도 생활비로 보내줄 수 있지요. 그렇게 해야 좋지 지금 한꺼번에 다 주면 상대는 고마운 것도 모를 겁니다. 질문자는 실수를 한 번만 한 게 아니라 연속해서 하고 있어요. 질문자가 바보같은 거죠.”nbspnbsp“솔직히 얼마나 욕심 내는지 한번 보고 싶어서 다 가져가라고 얘기한 겁니다.”nbsp“그런 꼼수를 쓰면 안 되지요. 질문자는 지금 자기가 잘못했다는 마음이 전혀 없네요. ‘한 번 바람 피운 것 같고 그러냐?’ 하는 마음 뿐이네요. 만약 반대로 질문자가 부인이 오랫동안 외간 남자를 두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 부인을 그냥 놔두었겠어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세요. 질문자는 그냥 이혼만 청구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두드려 팰 사람이에요. 배우자를 두고 바람을 피우는 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기분 나쁜 일입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해야 됩니다. 그러나 사과는 하되 법에 보장된 권리는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얼마나 가져가는지 한번 보자’ 하는 건 또 무슨 태도예요? 그게 잘못한 사람의 반성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겠어요?”nbsp“죄송합니다.”nbsp“일은 이미 벌어진 일이잖아요. 그죠?”nbsp“예.”nbsp“그래서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어요. 부인한테 비굴하게 빌 건 아니지만 항상 ‘여보, 당신한테 너무 큰 충격을 줘서 미안해요. 힘들겠지만 한번만 용서해 준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게요. 나는 정말 당신과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지내고 싶어요’ 라고 해야 됩니다. 빈말이라도 자꾸 그렇게 해야 본인에게 유리해요.nbspnbsp그런데 그렇게 잘 안 될 거예요. 보면 성질이 나니까요. 그러니 질문자는 매일 108배를 하면서 ‘여보, 미안해요. 그게 당신한테 그렇게 큰 충격이 될지 내가 어리석어서 몰랐어요. 정말 미안해요’라고 하세요. 부인이 독하게 나올수록 질문자는 ‘재산 탐내나?’ 하고 생각하지 말고 ‘정말 충격이 컸나 보구나’ 하세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말이 있듯이 착한 사람이 독심을 품으면 무서운 거예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은 약자를 밟으면 그런 문제가 생긴다는 겁니다.nbspnbsp질문자가 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걸 참회하는 절을 자꾸 하다보면 부인이 화를 내고, 되지 않는 소리를 해도 질문자가 그걸 들을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질문자도 부인에게 잘못했다고 하다가 부인이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세게 나오면 ‘나만 잘못했냐? 너는 잘했냐?’ 라고 하게 될 텐데, 그럼 사과했던 게 다 수포가 되니까 그럴 때일수록 10번 100번이라도 ‘미안하다’ 라고 해야 합니다. 그럴 힘을 키우려면 절을 해야 돼요. 그리고 법정에 가서는 ‘판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정을 지키고 싶습니다. 제가 가정을 지킬 수 있게 좀 도와주세요’ 라고 말하세요.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반이라도 주워 담을 수 있어요. 그마저도 ‘반 가지고 뭐 하느냐?’ 하면서 발로 차면 질문자만 손해에요.nbspnbsp여성분들, 남자 심정이 어떤지 이해가 돼요? 여기 여성분들만 손들어 봐요. ‘그래도 30년 살았는데 바람 한 번 피웠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 좀 심하다’ 하는 남자들의 얘기가 이해가 된다 싶은 사람은 손 한번 들어봐요. 질문자는 한번 둘러보세요. 손든 여자가 한 명도 없잖아요. 질문자 부인이 독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nbspnbsp“예, 잘 알았습니다. 많이 반성이 됩니다.”nbspnbsp근심이 가득했던 남성 분도 얼굴이 붉어지며 자신의 모습을 깊이 뉘우치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청중들은 큰 박수를 보내며 질문자를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이어서 스님은 청중석에 있는 여성 분들에게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뉘우치고 반성하는 질문자는 그렇다치고, 여성들도 이런 남자를 좀 이해해주면 어떻겠는지 예수님을 예로 들며 물어보았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해해 줄 수 있다는 여성이 한 명도 없어요. 예수님은 당신을 십자가에 매단 사람을 위해서도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라고 하셨는데, 여러분은 바람 한 번 피운 남자 한 명을 용서 못한다는 거예요?”nbspnbsp “용서가 안 돼요. 저는 기독교인이 아니라서요.”nbsp“그러니까 교회를 좀 다니세요. 교회에 다니면 용서가 될 텐데 왜 교회를 안 다녀요. 일요일에 뭐해요? 교회에 좀 가세요.”nbspnbsp청중석은 순식간에 웃음 바다가 되었습니다. nbspnbsp이어서 다시 통일 문제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동서독 통일을 예로 들며 서독은 동독을 포용했는데, 남한은 어떻게 북한을 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한 청년의 질문이 있었고, 마지막으로 스님은 모든 면에서 앞서고 있는 남한이 자신감을 갖고 포용해줘야 하는 이유를 신라와 가야의 합의통일을 예로 들어 답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모두 마치고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질문했던 분들은 사인을 받으며 스님에게 거듭 감사 인사를 했고, 청중들도 강연이 너무 좋았다며 기뻐했습니다. 스님도 환한 웃음을 보여주며 인사에 답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준비한 대전충청지역 통일의병들과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기 전 통일의병 김진태 충청본부장님이 스님에게 2016년 첫번째 통일이야기 강연을 축하하며 꽃다발을 건넸습니다. nbspnbspnbsp또한 통일의병들은 “통일 해버리자”라는 푯말을 들고 힘차게 “화이팅”을 외쳤습니다. 통일의병들의 염원이 국민의 염원으로 확대되어 통일에 대한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준비해 준 충청본부 통일의병들nbsp강연을 마치고 차를 타러 이동하는 중에 늦게까지 주차봉을 들고 교통 안내를 하는 통일의병 봉사자들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늦게까지 고생하시네요. 기념사진 같이 못 찍으셨죠?” 하면서 특별히 같이 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해주는 사람들까지 알뜰히 챙겨주고자 하는 스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nbspnbsp▲ 밤늦게 까지 교통 안내를 맡아준 봉사자들과 함께nbsp청주에서 밤 10시에 출발한 스님은 12시가 다 되어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아침 8시부터 파주 민족화해센터에서 제14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입학생들을 위해 위크숍 특강을 한 후 오후에는 정토회 결사행자회의에 참석할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3.18 5대 종단 조찬 기도회 및 청주 통일이야기 강연
nbsp오늘 스님은 아침 7시에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서 주최한 3.1운동 기념 조찬기도회에 참석해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에는 청주 시민들을 위해 통일이야기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새벽 공기가 어느덧 포근하게 달라졌습니다. 스님은 아침 일찍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주최 3.1운동 기념 조찬기도회가 열리는 경동교회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일꾼들로서 종교인들의 역할은?’이라는 주제로 5대 종단의 종교인들이 모이는 자리입니다. 교회당 안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80여 명의 청중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경동 교회nbspnbsp지난 2월 29일,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3.1운동의 정신을 이어 민족의 평화와 화해, 신뢰회복을 위한 종교인 기자회견’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도 함께 다녀왔지만, 스님은 오랜 지인을 만나듯 반갑게 김명혁 목사님, 박종화 목사님, 김대선 교무님, 박남수 교령님 등 이웃종교인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행사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인 김명혁 목사님의 사회로 아침 7시부터 시작됐습니다.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말씀을 읽고, 전병금 목사님의 말씀에 이어 유관지 목사님과 통일연구원의 허문영 박사님의 기도가 이어졌습니다. 내용은 조금씩 달라도, 어려워진 남북관계를 풀고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나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nbspnbspnbsp특별찬양과 특별연주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힘차면서도 경건하고, 또 우렁차면서도 감성을 울리는 아름다운 곡이었습니다. 스님은 찬양과 연주가 끝난 뒤 타종교인으로서는 첫 번째로 연단에 나와 “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일꾼들로서 불교 신자들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요즘같이 대립과 갈등, 분열과 보복이 판치는 이런 사회에서 이렇게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위한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한국복음주의협의회 김명혁 목사님을 비롯한 여러 목회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말씀을 드립니다.nbspnbspnbsp우리가 화해를 추구한다는 것은 ‘대립하고 갈등하고 있다, 미워하고 보복하고 있다, 서로를 못 믿는다’ 이런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하지만 미움으로는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미워할 수밖에 없는 그 사람들을 우리는 미워하지 않고 감싸안아야 화해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야 평화를 이룰 수 있고 통일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 사회 곳곳을 보면, ‘어떻게 저런 놈을 용서하느냐, 어떻게 저런 사람과 교류하고 지원하느냐, 저런 사람들은 단죄를 하고 보복을 해서 아예 전멸시켜야 한다’는 등의 공격적 언사들이 점점 사회의 중요한 여론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점점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고, 보복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우리 종교인들이 자기의 사명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니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일부 종교인들을 보면 대립과 갈등을 더 부추기는 그런 행동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nbspnbsp서로 대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립을 완화시키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상대에 대한 인정인 것 같습니다. 종교가 서로 다를 때 ‘아, 저 사람과 나는 신앙이 다르다’ 라고 하고, 사상이 서로 다를 때는 ‘사상이 서로 다르다’, 신념이 다를 때는 ‘신념이 서로 다르다’, 또 ‘민족이 서로 다르구나’ 등등 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nbspnbsp‘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같아야 한다는 기준을 ‘나와 같아야 한다. 네가 변해서 나처럼 돼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대립과 갈등이 끝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서로 다름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옳다는 게 아니라 저들은 우리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 입장에서 볼 때는 저런 말과 행동을 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이해하는 것, 즉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바탕이 될 때, 시각이 다른 사람끼리, 민족이 다른 사람끼리, 이념이 다른 사람끼리 대화가 될 수 있습니다. 일단 서로 같이 앉아서 대화를 해야 어떤 문제를 풀어갈 수 있으니까요. nbspnbsp대화를 할 때 서로 조금씩 양보해야 하지만, 좀 더 우선적으로 양보해야 하는 것은 힘 있는 자, 강한 자입니다. 힘 있는 자가 조금 양보를 하면 세상은 이것을 ‘포용’이라고 합니다. ‘아 저 사람 참 포용력 있다’ 이렇게 좋게 말하죠. 그런데 힘없는 자가 힘에 눌려서 양보를 하게 되면 그것은 굴복했다고 얘기합니다. 굴복은 힘이 없어서 굴복한 것이라서 반드시 나중에 저항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평화가 오는 것일 뿐 온전한 평화가 될 수는 없습니다. 갈등과 분쟁이 잠시 잠복할 뿐입니다.nbspnbspnbsp오늘날 한일관계에서 보면 일본이 강자 입장이라고 보면 일본이 조금만 한국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포용을 하면 한일관계가 아주 좋아질 겁니다. 그런데 일본이 절대로 포용을 안 하고 양보를 안 하는 상태에서 우리가 약간 양보해서 문제를 푼다고 하면, 결국 한국 사람들이 저항하고 분노하게 됩니다. 남북관계도 남한이 북한보다 국력이 세고, 또 배후에 미국까지 고려한다면 훨씬 힘이 센데, 조금만 북한의 처지를 고려하고 양보해주면 남북 대화의 물꼬가 트일 텐데, 꼭 굴복을 시키려고 하니까 저항을 받게 됩니다.nbspnbsp여야 사이에도 여당이 조금 양보를 하면 국민 합의가 쉬울 텐데, 하나도 양보를 안 하고 그대로 하려니까 야당이 굴복하지 않겠다고 저항을 해서 갈등이 끝이 없고, 여당 안에서도 권력을 쥐고 있는 주류가 비주류에게 조금만 양보하면 될 텐데 끝까지 양보를 안 하니까 분열이 생기고, 야당도 큰 세력이 작은 세력한테 조금 양보해주면 되는데 통째로 굴복을 시키려니까 끝까지 저항을 하고, 전체 사회가 이런 식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nbspnbsp우리가 화해와 평화로 가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하고, 이해가 필요하고, 포용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힘이 있으면 양보가 잘 안되는 게 세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우리가 원하는 평화와 통일로 가려면 우선 우리부터 이런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 정부도 남북한의 긴장을 국가의 위기라고 하는데, 정말 위기이면 여당 안에서부터 주류가 비쥬류를 포용하고, 대통령이 국회를 포용하고, 여당이 야당을 포용하고 통합을 해나가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3.1운동 때는 최대 종단인 천도교가 그 세력이 10분의 1도 안 되는 개신교를 포용해서 종교 간의 연대를 이루었듯이 오늘 우리 종교인들도 다시 세력이 큰 개신교가 천도교 등 작은 교단을 포용해서 함께 나라와 민족의 통일과 평화를 이루어간다면 3.1정신을 오늘에 살리는 것이 될 것 같습디다.nbspnbsp김명혁 목사님이 초대해주시고, 강원룡 목사님께서 대화를 주선하시고, 당시 어려웠던 농민들, 노동자들, 여성들 교육을 위해 크리스찬아카데미를 창립하셔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많은 역할을 해준 이 뜻깊은 교회에서 여러분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nbsp불교인의 역할에 국한하지 않고,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또 힘있는 자가 좀 더 양보하고 포용하는 마음을 내면서 화해와 통합으로 나가도록 하자”는 말씀을 다시금 곱씹어 보았습니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힘 있는 쪽일수록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인데, 못한다고 그들을 욕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자리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말씀이었습니다.nbspnbsp스님 말씀에 이어 박남수 교령님과 김대선 교무님, 그리고 박종화 목사님이 차례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의 역할에 대해 발표를 해주었습니다. 종교는 각기 달라도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든든하고 감사했습니다. 3.1운동의 정신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도 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때, 서로 다른 종교의 모습일지라도, 혹은 종교가 없을지라도, 한데 마음을 모아 온 정성을 다해 하늘을 감동시키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 각자의 소명이지 않을까 싶습니다.nbspnbsp행사는 예정시간보다 30분 늦은 9시에야 끝났는데, 경동교회에서 정성껏 차려주신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은 후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돌아오는 차량 안에서 스님은 다음 주말에 탑곡수련원에 감자를 심으려고 한다며, 공동체 대중들더러 내려오지 않겠느냐고 가볍게 물어보았습니다. 집에 복사꽃이 피기 시작했다고 하시더니, “어제 냇가에서 돌멩이를 주워와 경계석을 세웠는데 한 번 와봐라, 얼마나 깔끔하고 예쁜지 모른다”며 시골로 내려오라고 유혹했습니다. 업무들이 있어서 선뜻 내려가겠다는 말씀을 못 드렸지만, 내려오라는 말씀에 그저 기분이 좋아져서 다들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nbsp오전 10시에 평화재단에 도착해서는 곧이어 찾아온 손님들과 연이어 미팅과 회의를 가졌습니다. 미팅과 회의는 오후 4시 30분이 되어서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곧바로 통일이야기 강연이 열리는 청주 CJB미디어센터로 향했습니다. 청주 시내에서 차량이 막혀 지역인사 분들과의 사전 간담회에 20분 늦게 도착했습니다.nbspnbsp▲ 청주 CJB미디어센터nbsp외교관, 시의원, 기자, 교사, 시민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분들이 참석한 가운데 스님은 비록 늦게 도착했지만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nbspnbsp▲ 청주 지역 인사들과 사전 간담회nbsp이어서 스님이 ‘통일의병’의 활동 취지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었습니다.nbspnbsp“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은 다 자기들 나름대로의 이해관계가 철저합니다. 어느 나라도 한반도의 통일에는 관심이 없어요. 결국 통일은 우리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주변국들의 이해관계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북한은 체제유지 때문에 핵무장을 하게 되고, 남한은 거기에 대응해서 군비 증강을 할 뿐만 아니라 미·일의 요구에 부흥하다보니 중국과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되고, 작년에는 중국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했다가 미국과 갈등을 일으키게 되고, 이렇게 해서 지금 중심을 제대로 못잡고 있어요.nbspnbspnbsp이 때 우리는 무엇을 국가의 최고 목표로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북한처럼 지금 남한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국가의 최고 목표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위상에 맞지가 않습니다. 적어도 지금의 남한 정도라면 첫째, 한반도에 전쟁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둘째, 이 기회를 활용해서 통일을 해야 한다는 국가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통일정책은 하나 하나가 남북관계를 파탄내고, 미·일 군사동맹체제에 한발한발 들어가서 중국과 갈등을 불러오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nbspnbsp특히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것은 일본과의 군사협력과 사드 배치 두 가지인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까지도 이 두 가지 사안만은 쉽게 수용하지 않고 버텼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는 한·일 간의 군사정보교류협정도 체결하고, 사드 배치는 대중국 압박 카드로 사용하다가 도리어 중국이 미국과 직접 협상을 해버려서 우리의 안보문제가 미·중의 이해관계에 좌지우지 되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만 믿고 있기에는 국가의 안위가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이런 국가위기상황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각성해서 나라의 주인으로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통일의병’의 설립 취지입니다.nbspnbspnbsp이것은 여당, 야당, 진보, 보수의 문제를 뛰어 넘어야 합니다. 그런데 재벌이든 노동조직이든 정당이든 모두 다 국가가 어떻게 되느냐에 대한 생각은 아무도 안 하고 오직 자기 집단의 이익만 챙기고 있는 것 같아요. 마치 난파선에서 자기들만 혼자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과 같은 형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일어나서 의병과 같은 자세를 가져주지 않으면 이런 난국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nbspnbsp스님의 설명을 듣고 모두들 통일의병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실천을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사전 간담회를 짧게 마치고 7시 10분부터 ‘통일이야기’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통일’ 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45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워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먼저 스님은 최근 전쟁 위기에까지 내몰린 남북관계로 인한 시민들의 절망스런 감정을 어루만져 주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요즘 남북관계가 꽉 막혀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상식으로 볼 때는 굉장히 나쁜 현상인데,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 하는 말이 있듯이 어쩌면 통일이 임박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마지막 발버둥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위안이 되지요.nbspnbsp우리가 겨울을 따뜻하게 할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봄을 대비해서 겨울에 농사 준비를 잘 해놓으면 막상 봄이 왔을 때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우리가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더 정성을 기울여 기도하면서 오히려 지금은 통일을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언제나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희망이 샘솟는 기분이 듭니다. 청중들은 한층 밝아진 얼굴로 즉문즉설 강연을 경청했습니다.nbspnbsp지금까지는 손을 들어서 스님에게 질문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질문하고 싶은 사람들의 수요를 충분히 해결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좀 특별한 방식으로 해 보자는 주최측의 제안이 있어서 색다르게 해 보았습니다. 질문이 있는 사람들은 쪽지에 자기 이름을 써내었고, 스님이 그 쪽지 중에 아무 거나 하나를 뽑아서 쪽지의 주인에게 마이크를 건넸습니다. 새로운 방식에 모두들 흥미로워하자 스님도 웃으며 쪽지를 한 장 뽑았습니다.nbspnbsp▲ 오늘 새롭게 시도된 질문자 선정 방식nbspnbsp통일 이야기가 길어진다 싶으면 다시 개인 고민이 튀어나와서 재미를 더해주고, 너무 재미 위주로 간다 싶으면 다시 통일 이야기가 나와서 유익함을 더해주어서 재미와 유익함을 모두 얻을 수 있는 강연이 되었습니다. 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지금 박근혜 정부가 북한 붕괴에 의한 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물었던 50대 남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통일의 방법에는 무력에 의한 통일, 평화적인 통일, 또 북한 붕괴에 의한 통일이 있는데, 현 정부는 압박을 통해 북한이 붕괴하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과연 북한 붕괴에 의한 통일이 있을 수 있는지, 또 만약 북한이 붕괴된다면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대처방안은 무엇인지, 또 현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스님의 견해는 어떠신지 궁금합니다.”nbspnbsp“현 정부의 대북 압박과 북한붕괴에 의한 통일 방안에 저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저는 찬성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통일이 이루진다면 통일 이후에 우리가 지불해야 될 후과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nbspnbspnbsp북한에 대해서는 경우의 수가 많지요. 첫째, 우리가 봉쇄에 의해서든 군사 작전에 의해서든, 어쨌든 힘으로 북한을 압박해서 북한을 붕괴시키는 식으로 통일을 할 수도 있겠지요. 현 정부 정책의 기본은 일단 봉쇄에 의한 붕괴이고, 거기다 필요하다면 군사작전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 군이 훈련하는 내용 중에 ‘참수작전’이라는 훈련이 들어있어요. ‘참수’란 목을 벤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북한 지도부를 무인기로 폭격하든 특공대로 폭격하든 잡겠다는 것이거든요. 이건 무력에 의한 붕괴 전략인데 현실적으로 집행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첫째. 미국이 허용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실행하기 어렵죠. 북한 지도부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파악하려면 위성탐사기술이 필요하고, 무인기나 특공대로 폭격할 수 있는 장비도 필요한데, 아직 우리 군이 그런 기술이나 장비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독자적으로 하는 건 쉽지 않고, 미군의 허락과 협력을 얻어서 해야 되는데, 미국이 그런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쉽지 않다는 겁니다.nbspnbsp둘째, 그렇게 공격을 하면 중국이 개입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것은 남북한만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국지전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국제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충돌과정에서 북한은 패배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면 핵무기를 쏠 수도 있을 겁니다. 핵무기 기술의 보유 여부는 아직 신뢰하기 어렵지만 그것은 우리가 확인할 수가 없어요.nbsp또 북한은 소형잠수함이 많다고 하잖아요. 천안함 사건의 경우, 반잠수정이 우리 해역까지 들어와서 움직이는 배를 두 동강 냈다는 건데, 그게 사실이라면 굉장히 위협적인 일이에요. 우리 나라의 원자력발전소가 다 바닷가에 있는데, 50정이나 되는 잠수정이 내려와서 공격을 하든지 미사일을 쏴서 파괴하면 막을 길이 없습니다. 또 장거리미사일보다 무서운 건 300미리 방사포입니다. 장거리미사일은 곡선을 그리면서 내려오기 때문에 방어를 할 수 있는데, 방사포는 직선으로 때리니까 방어가 어렵거든요. 북한이 전쟁에 이기지는 못할지라도 우리한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는 무력은 갖추고 있습니다.nbspnbsp그러니 그런 충돌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얻는 이익이 뭐냐는 겁니다. 충돌이 일어나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조선소, 원자력발전소가 파괴된 후에 통일이 된다면, 우리가 전후 폐허를 복구하는 동안 중국은 우리보다 앞서 가버리겠지요. 그럼 우리가 통일은 할지 몰라도 국가의 비전은 없어져 버립니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 통일만 하면 된다는 통일지상주의자들이라면 그렇게라도 통일을 해볼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통일을 하려는 궁극적인 이유가 뭐예요? 경제성장이나 국가안보를 더 확충하고 국민을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통일을 하려는 거지, 망하자고 통일을 하려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해서는 얻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그건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겁니다.nbspnbspnbsp우리가 힘으로 억압해서 봉쇄를 하면 북한이 스스로 붕괴되지 않겠느냐는 건데, 물론 봉쇄를 하면 북한은 굉장히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런데 김일성이 죽었을 때도 북한붕괴를 얘기했고, 김정일이 죽었을 때도 북한붕괴를 얘기했고, 김정은이 권력을 잡았을 때도 1년 안에, 3년 안에 북한이 붕괴될 거라고 얘기를 했지만 벌써 5년이 넘었습니다. 5년이 넘었다는 건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입니다. 북한이 아주 어렵다는 건 맞지만 붕괴될 가능성은 적습니다.nbspnbsp그리고 만약 북한이 붕괴된다면 그건 뭘 의미하느냐 하는 겁니다. 북한이 붕괴된다는 것이 북한이란 국가가 없어지는 것이냐, 김정은 정권이 교체되는 것이냐 하는 문제이지요. 북한이 어려워서 내부에 불만이 생기면 군부 구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북한이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 정권이 교체될 뿐입니다. 우리도 박정희 정권이 붕괴되고 전두환 정권으로 교체가 되었지 대한민국이 망한 건 아니었잖아요. 또 북한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면 그 정권이 지금 정권보다 더 강경한 정권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그 정권이 존립하기 위해서 개혁 개방을 해야 되겠지요. 그럼 중국이 원하는 정도의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하는 친중 정권이 될 거예요. 그러면 북한은 지금처럼 자주적으로 자기 권리를 자기가 결정하는 나라가 아니라 중국의 안보 우산 하에, 중국의 경제적 지원 하에, 중국의 정치적인 후원 하에 있는 정부가 될 거예요. 남한이 뭐든 결정하려면 미국과 의논해야 되듯이 말이에요. 이렇게 됐을 때 남북관계가 좀 개선되고, 북한의 경제성장은 좀 될지 몰라도, 통일이라는 목표로부터는 더 멀어집니다. 그러면 두 개의 국가로 더 오래 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nbsp그리고 군사력으로 밀어붙이면 중국이 반드시 개입할 겁니다. 우리가 무력으로 북한을 통일하는 것은 중국의 정책에서는 용납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연초에 신문에 북한분할론에 대해 보도한 기사 보셨어요? 이런 중국의 요구를 감안한다면, 황해도와 평안남도는 남한이 관리하고, 평안북도와 자강도, 양강도, 함경남도는 중국이 관리하고, 함경북도는 러시아, 강원북도는 미국이 관리한다는 시나리오까지 나왔잖아요.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그것을 보고 놀라지도 않습니다. 지금 시리아에 대해서도 내전의 끝이 안 나니까 분할론이 나오잖아요. 그런 것처럼 북한이 붕괴된다면 지금 이러한 여러 경로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 통일의 기대에 아무 것도 부응하지 않아요. 그리고 설령 성공을 해서 우리가 흡수 통일을 이루었다고 해도 그러면 압록강,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군사적으로 대립을 해야 돼요. 그러면 우리가 비록 통일은 했지만 미래의 비전은 없어집니다. 통일을 해서 남북한을 합해 봐야 중국에 비하면 아주 작은 나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nbspnbspnbsp그러니 우리가 남북 간에 평화적으로 통일을 하면, 첫째, 전쟁의 위험과 손실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둘째, 남북 간에 합의통일을 하면 중국이 개입할 명분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합의된 통일이라면 통일한국은 중국과 일본, 미국과 중국 사이에 양쪽 모두와 선린우호관계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럼 이것은 동아시아 평화지대와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건 통일이 통일로만 그치지 않고 시너지효과까지 낸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평화적 통일은 그 통일 과정에서의 손실을 방어하고 통일을 용이하게 할 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에 시너지 효과까지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력통일이나 강제적 흡수통일은 통일 자체도 불확실하고, 위험부담이 많고, 또 설령 된다고 하더라도 통일의 시너지 효과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현정부의 통일정책은 가능성도 낮고, 성공해도 이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청중들은 큰 박수를 보내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북한 붕괴론에 근거한 통일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이고 무지의 소산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이런 평화적인 통일과 백년의 미래는 바로 지금 우리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통일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입니다. 통일은 북한사람을 위해서도 아니고, 우리의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북한은 통일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어요. 해결한다면 남한만이 할 수가 있어요. 남한이 국가목표를 통일에 두고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고 북한을 포용해서 이 문제를 풀 건지는 우리 선택의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통일을 선택하면 우리는 통일된 국가가 된 후에 주변 국가와 연대를 해서 동아시아시대를 열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 백년의 미래를 건설할 건지, 안 그러면 미중 사이의 분쟁에 휘말려가지고 늘 이런 갈등과 불안 속에 살다가 결국 몰락의 길을 갈 건지는 우리 선택의 문제예요.nbsp그러니 우리 국민들이 조금 더 지혜로워지고 영리해져서 우리의 희망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정부가 그런 길로 갈 수 있도록 국민들이 정치적인 영향력, 즉 투표권을 nbsp행사해 줘야 합니다. 우리가 주권자로서 행사할 수 있는 건 투표밖에 없잖아요. 지역이 같다고, 사돈의 팔촌이라고, 성이 같다고 투표하지 말고, ‘과연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겠느냐’ 하는 걸 염두에 두고, ‘저 사람은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의 소양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걸 봐서 결정한다면 조금이라도 국가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 희망을 우리가 함께 만들어봅시다. 감사합니다.”nbspnbsp이렇게 오늘은 스님의 통일강연을 들으며 가슴 설레이는 희망을 가져보았습니다. 비록 지금은 남북 관계가 전쟁의 위기까지 내몰렸지만 위기가 곧 기회임을 다시 되새기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해나가봐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언제나 희망을 주고자 온 힘을 기울이는 스님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든 하루였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개인 고민에 대한 질문도 통일에 대한 질문 사이에 하나씩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스님의 위트 있고 명쾌한 답변에 청중들은 박장대소를 했습니다.nbspnbsp스님과 청중들은 다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부르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스님의 열강을 들어서 그런지 늘 익숙한 노래가 오늘따라 가슴 뜨겁게 다가왔습니다.nbspnbsp▲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부르는 청중들nbsp한편 강연이 끝나고 나가는 길에 로비에서는 ‘청주 통일시민학교’ 참가자 모집이 한창이었습니다. 강연을 듣고 감동을 받은 많은 대중들이 참가 신청을 하며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통일시민학교 참가신청nbsp청주 통일시민학교는 3월 26일 오후 2시7시에 충청북도 NGO센터에서 열립니다. 통일시민학교를 수료하면 통일의병 임명장을 수여받고 법륜 스님으로부터 의병 번호도 부여 받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통일의병 홈페이지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nbsp개인 고민에 대한 질문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nbsp※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3.17 텃밭 가꾸기 및 농사 준비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선거로 인해 즉문즉설 강연이 취소되는 바람에 텃밭을 가꾸는 등 농사를 짓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nbspnbsp아침에 봉오리 져 있던 매화꽃이 오후에는 활짝 필 정도로 오늘은 햇살이 따뜻한 완연한 봄날이었습니다.nbspnbsp어제 밤 늦게 울산 두북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한 후 오늘 아침 공양을 마치자마자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상추, 고추 등 각종 채소를 심기위한 준비작업을 하였습니다.nbsp마당의 잔디밭 일부분을 밭으로 사용하기 위해 먼저 잔디를 뽑아내고 채소밭과의 경계를 나누기 위해 고랑을 판 후 개울에 가서 얕은 돌멩이를 주워 와서 잔디가 채소밭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경계석을 세웠습니다. 스님은 여러 가지 돌을 가지런하게 경계석 쌓는 일에 전념하였는데 정말 가지런하고 예쁘게 잘 쌓았습니다. 또 일부분은 남은 벽돌로 경계석을 쌓기도 했습니다.nbspnbsp그런 후 땅을 뒤집으며 돌 등을 골라내고 작물을 심기 좋게 땅을 고르고 두둑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nbspnbspnbsp장독대가 있던 자리에는 흙을 더 채우고 밭을 만들었는데, 작년에는 이곳에 배추를 심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상추를 심기 위해 흙과 모래를 더 붓고 발효퇴비를 넣어 골고루 섞고 고르게 갈아서 두둑을 만들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장독대 밑에 고소를 심었던 땅에도 경계석을 놓는 작업을 했습니다.nbspnbsp원래는 상추, 고추 등 작물을 심는 것까지 마치려 했으나 경계석 쌓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작물을 심는 것은 이번 주말에 하기로 하고 물을 주고 연장을 정리한 후 작업을 마무리하였습니다.nbsp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쉼없이 계속 농사일만 한 하루였습니다.nbsp저녁 공양을 마치고 나서 원고 교정 업무를 본 후 밤 11시에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내일은 아침 7시에 경동교회에서 열리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조찬 기도회에 참석해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에는 청주 CJB 미디어센터에서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2016년 첫 번째 통일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3.16 부처님 출가일 기념법회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서울 정토회관에서 부처님이 출가하신 날을 맞이해 기념법문을 했습니다.nbspnbsp불교에서는 4대 명절이 있는데, 첫째가 부처님이 탄생하신 날인 음력 4월 8일이고, 둘째가 출가하신 날인 음력 2월 8일, 셋째가 성도하신 날인 음력 12월 8일, 넷째가 열반하신 날인 음력 2월 15일입니다. 오늘은 그 중 출가하신 음력 2월 8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nbspnbspnbsp새벽 기도 후 아침 7시부터 스님은 평화재단에서 조찬 모임을 하느라 바쁜 아침을 보냈습니다. 조찬 모임을 마치고 아침 10시가 되어 출가일 기념법회를 하기 위해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스님이 법상에 오르고 10시 정각에 출가일 기념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지하철 3호선이 갑자기 멈추는 사고가 생겨서 유난히 늦게 도착하는 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스님은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왜 그래요?” 하며 환한 웃음과 함께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출가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재미있게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불기 2559년 부처님 출가 기념일입니다. 제가 ‘불기 2559년이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눈치가 ‘2560년인데요’ 하는 것 같네요. 제가 왜 2559년이라고 했을까요? 아직 4월 초파일이 지나지 않았거든요. 4월 초파일이 지나야 2560년이 되는 거예요. 몰랐지요?”nbspnbsp“예.”nbspnbsp“2600여 년 전에 부처님께서는 인도 북쪽 히말라야 산 기슭 카필라바스투라는 작은 나라의 왕자로 태어나셔서 태자로 명명이 되고, 29년간 왕궁에서 살다가 오늘, 음력으로 2월 8일 밤에 아무도 몰래 동쪽 성문을 나와서 출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출가일’, 또는 ‘출가절’이라고 합니다.nbspnbsp출가란 뭘까요? 글자 그대로만 따지면 집을 나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가출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숨은 뜻은 다릅니다. 여기 사는 게 힘들어서 못 살겠다고 집을 뛰쳐나가는 건 가출이에요. 그래서 가출은 더 좋은 집으로 가고 싶은 게 전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남자하고 못 살겠다고 나가서 저 남자하고 살겠다는 격이지요. 그런데 출가는 집이 굴레임을 깨닫고 집을 불살라버리는 거예요. 가출과는 차이가 큽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들이 결혼생활해 보니까 ‘아, 결혼생활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구나’, 직장에 다녀보니까 ‘아, 직장이 모든 고뇌의 원인이구나’, 돈 벌어보니까 ‘돈이 모든 번뇌의 원인구나’ 해서 그만둬버리는 게 출가입니다. 이 직장 나와서 며칠 있다가 또 저 직장 구해서 들어가고, 이혼했다가 또 다른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부모 속박이 싫어서 집 나왔다가 외로우니까 도로 집에 기어들어가고 이렇게 윤회하는 건 가출이에요.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건 가출이고, 출가는 오고감이 없어지는 겁니다.nbspnbsp그럼 왜 이렇게 집을 나가거나 들어오는 일을 반복하게 되는 걸까요? 집은 2가지 모순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집은 우리를 보호해 주는 보금자리입니다. 지붕이 있어서 비와 햇빛을 막아주고, 벽이 있어서 바람과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고, 도둑도 막아줍니다. 그리고 집이라는 말 속에는 부모, 아내, 남편, 자식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보호해 주는 보금자리가 집입니다. 그런데 둘째로, 집은 나를 가두기도 합니다. 천장도 막혀있고 벽도 막혀있으니까 못 나가잖아요. 또 부모는 나를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나를 속박하는 굴레이기도 합니다. 남편이나 아내도 마찬가지로 나를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나를 속박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집은 감옥, 굴레예요.nbspnbsp고향도 집과 그 뜻이 비슷합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떠도는 사람을 ‘나그네’라고 하지요. 나그네는 보호받을 데가 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나그네는 다 고향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고향으로 돌아가면 그곳에서의 삶은 또 감옥살이에요. 고향에 가면 양반, 상놈 따지고, 형님, 동생 따지고, 부모 자식 따지고, 예의 따지고, 윤리 따지고, 이렇게 구속받는 게 많잖아요. 이렇게 우리는 집이 감옥이나 굴레 같기 때문에 뛰쳐나가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막상 뛰쳐나가면 보금자리가 없어지니까 외로워서 또 고향을 찾고, 집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들어가면 얼마나 편안합니까? 대신에 또 조금 있으면 다시 감옥이나 굴레처럼 느껴져서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또 뛰쳐나가는 겁니다.nbspnbsp이렇게 계속 들어갔다가 나왔다가를 반복하는데 집은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뭐가 잘 안 되면 이사를 하잖아요. 한국에서 뭐가 잘 안 되면 외국으로 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에서 안 되면 지방으로 가고, 지방에 있던 사람은 또 서울에서 한번 살아보기를 원하지요. 또 요즘은 도시 사는 사람들이 귀농한다고 난리고, 결혼한 사람들은 ‘못 살겠다. 이혼하겠다’ 하는데, 또 결혼 못한 사람은 결혼한 게 부러워서 ‘어떻게 나도 결혼 한번 해 볼까’ 그러고, 자식 없는 사람은 자식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자식 있는 사람은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합니다. 이렇게 오고가는 게 윤회입니다. 그것처럼 집도 굴레로만 생각하고 집을 나가면 보금자리도 없어지니까 외로워져서 다시 찾아들어옵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또 굴레의 성격이 들어있는 거예요. 이렇게 집은 두 가지 모순된 성격을 같이 품고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의 관념에는 ‘집은 보금자리다’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박혀 있잖아요. 그래서 보금자리는 원하지만 굴레는 싫은 거예요. 같이는 살되 간섭은 안 했으면 좋겠고, 지원은 해 주되 간섭은 안 하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건 없습니다. 누군가가 나와 같이 살면서 나를 지원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나를 간섭하게 돼있어요. 그래서 스님은 누가 날 좋아한다고 하면 겁이 납니다. 뭘 또 간섭하겠다고 덤빌지 모르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달콤함 때문에 독도 같이 받아 마시려고 하지요.nbspnbspnbsp경전에 보면, 부처님께서 출가하려고 뜻을 밝히면 부모가 말리고, 또 밝히면 부모가 말리기를 한 열 번쯤 하느라고 한 10년의 세월을 보낸 것 같아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그 10년을 단순히 방황만 하면서 보냈겠어요? 아닙니다. 그래도 이 세상에서 답을 찾아보려고 수행을 하신 거예요. 진짜 자발적으로 하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가하셔서 스승을 만난 뒤 3개월 만에 스승의 경지까지 오르셨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게 아니라 스스로 많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미 정진하신지가 오래 됐기 때문에 금방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왕궁이 안온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모든 고통의 핵심임을 꿰뚫어보신 거예요. 그래서 새로운 길이 뭔지는 미처 몰랐지만 적어도 ‘이건 아니다’ 하는 건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미련 없이 떠났던 것입니다.nbspnbsp부처님은 부모님 허락을 받고 출가해 보려는 시도를 여러 번 해 보셨어요. 그러나 이 길은 허락받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아셨습니다. 왜냐하면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부처님께서는 어렵사리 출가를 하셨는데, 동문을 나가면서 ‘내가 깨닫기 전에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돌아오지 않겠다.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지언정, 극약을 먹고 죽을지언정, 깨닫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답을 찾으면 다시 돌아와서 당신의 가족들에게도 그 좋은 법을 알리겠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시종을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시종에게 ‘왕궁으로 돌아가서 아버님께 전해라. 내가 불만이 있어서 왕궁을 나간 것도 아니고, 나 혼자만의 이익을 위해서 나간 것도 아니며 나 혼자 천상에 태어나려고 궁을 나온 것도 아니라고 전해라. 일체 중생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서 나는 궁을 나왔다. 내가 만약 이 답을 찾는다면 반드시 궁으로 돌아가서 부왕을 뵙고 좋은 법을 나눠가지겠다’ 라고 하셨습니다.nbspnbsp여러분들도 만약 집에 아들이나 딸이 갑자기 없어지거든 ‘이게 누구 꼬임에 빠졌나? 이게 불만이 있어서 그러나?’ 하고 생각할 거 아니겠어요? 우리 문경에도 가끔 그런 부모님들이 찾아오십니다. 부처님의 부모님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 부처님께서 그렇게 해명을 하고자 하신 겁니다. 그렇게 해서 부처님께서는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났습니다.nbspnbsp부처님께서 6년 고행을 통해서 성도한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부처님께서 성도할 수 있었던 건 출가라는 시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새로운 길을 아직 못 찾았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길은 아니라는 확실한 답을 얻고 나갔던 것이니까요. 그런데 오늘 우리는 아직도 ‘이게 아니다’는 결론을 못 내렸어요. 그래서 늘 미련을 못 버리는 거예요.nbspnbsp그런데 부처님은 깨닫고 나서 ‘꼭 집을 떠나야 되거나 결혼을 안 해야 되는 건 아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거지요. 즉 마음에서 집착이 끊어져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 당신은 그 당시 풍속대로 출가수행자의 길을 걸으셨지만, 또한 새롭게 재가수행자의 길도 열어 주셨습니다.nbspnbsp재가수행자가 된다는 것은 몸은 세속에 있더라도 마음은 욕망의 가치관으로부터 떠나야 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재가수행자는 그냥 욕망대로 살아도 되는 게 아닙니다. 출가수행자는 돈을 자꾸 만지면 돈에 욕심을 내고 돈에 대한 집착을 못 버리니까 못 만지게 하는 것이고, 여러분들은 만져도 집착을 안 하니까 재가수행자로 살도록 놔둔 거예요. 그러니 자기가 수준이 안 된다 싶으면 다들 출가를 하세요.nbspnbspnbsp스스로 점검했을 때 여자를 만나거나 돈을 만지거나 하면 거기에 집착한다든지, 높은 지위에 올랐을 때 그 지위를 자기 것이라고 착각한다든지, 자식이 다 컸는데도 집착을 한다면 ‘아, 나는 재가수행자 수준은 안 되는구나’하고 출가수행자의 길을 가세요. 그걸 제가 ‘안녕히 계십시오’ 하라고 표현한 겁니다. 가끔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던데, ‘안녕히 계십시오’라는 건 ‘이혼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너는 자꾸 때가 묻어서 이 진흙탕 속에 살 수준이 안 된다’, 즉 ‘출가수행자가 되라’ 하는 뜻입니다. 웃는 걸 보니 여러분들도 재가수행자의 길을 엄청 좋아하네요.nbspnbsp그래요. 저는 도저히 수준이 안 되어서 지금 이렇게 출가수행자의 길을 가는데, 여러분은 얼마나 복을 많이 지었으면 이렇게 재가수행자의 길을 가십니까? 다들 훌륭하십니다.nbspnbspnbsp만약에 수행자가 정치를 하면 권력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단지 권력이나 지위가 세상과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그 권력이나 지위를 마땅히 쓰는 겁니다. 또 돈을 가졌다면 그 돈을 사유화하는 게 아니라 그 돈을 세상에 필요한 곳에 마땅히 쓰는 겁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을 우리가 재가수행자라고 말합니다. 뭘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하는 나의 마음의 자세가 어떠냐가 중요합니다.nbspnbsp항상 우리는 부처님의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나무 밑에서 잠자고, 길거리에서 얻어먹고도 당당하셨고, 행복하셨고, 심지어 늘 남을 위해서 베풀고 사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겉모습만 보면 거지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부처님께서는 어디 가서 ‘달라’는 소리를 안 하셨기 때문에 거지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 먹고 살만하면서도 늘 의식주를 걱정하잖습니까? 얼마나 많이 먹어야, 얼마나 잘 입어야, 얼마나 큰 집에 살아야 이 걱정이 끝이 날까요? 그건 끝이 안 나는 걱정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늘 이 정도 먹는 것, 이 정도 입는 것, 이 정도 자는 것만 해도 고맙게 여기면서 생활하면 우리가 부처님보다 행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요.nbspnbsp그러니 수행자는 첫 번째, 당당해야 됩니다. 비굴해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 겸손해야 됩니다.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아닌 것으로 자기를 삼는 게 교만입니다. 돈으로 자기를 삼고, 인물로 자기를 삼고, 지위로 자기를 삼는 게 교만입니다. 그리고 항상 자유롭고 행복해야 합니다. 부처님만큼 그렇게 원만한 성격으로 완전히 자기의 업식을 고치지는 못 하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성질을 내더라도 제자리로 얼른 돌아와야 합니다.nbspnbsp그것을 계속 붙들고 합리화하면 안돼요. ‘내가 또 업식에 끌렸구나’ 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입이 한번 쑥 나왔다가도 금방 들어가야 되는데, 3일이고 4일이고 꽁 해서 있으면 곤란합니다. 그런 걸 두고 ‘사로잡혀서 수행자임을 망각했다’ 라고 합니다. 그렇게 빨리 돌아오다 보면 사로잡히는 횟수가 줄어들고, 업식이 일어나더라도 그 유지기간이 짧아집니다. 그래서 늘 행복하게 편안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한테 의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오히려 남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의지처가 되어주려는 주인의 자세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것의 출발이 출가입니다.nbspnbspnbsp오늘 출가절을 맞아서 앞으로 기도할 때는 ‘복 주세요’ 하지 말고, 주인의 자세로 돌아가셔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 아닌 것에 의지하고 살았던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마치 나비가 고치를 뚫고 나오듯이 집에서 나오세요. 그게 출가입니다. 이런 출가의 의미를 오늘 다시 한번 새겼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재가수행자의 길을 갈 수준이 안 되면 빨리 출가를 하라는 말씀에 모두들 웃음을 빵 터뜨렸습니다. 스님이 이야기해 준 출가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고 나니 마음이 참 가벼워졌습니다.nbspnbsp대중들은 출가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으며 300배 정진을 함께 했습니다. 정토회는 오늘 출가일을 시작으로 다음주 수요일인 열반일까지 전국 법당에서 8일 동안 용맹정진 기간을 갖습니다. 매일 300배 정진을 하고 영상으로 스님의 법문을 듣습니다. 스님은 다음 열반일에 다시 서울 정토회관에서 기념법문을 직접 해줄 예정입니다.nbspnbsp출가일 기념법회를 마친 후 스님은 찾아온 손님과 몇 차례 미팅을 가진 후 오후 4시가 되어 울산 두북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 밤에는 두북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내일은 선거로 인해 희망강연이 취소되어 하루종일 농사일을 할 예정입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3.15 BTN 방송 녹화 및 의정부 즉문즉설 강연
nbsp오늘 스님은 오후 2시에nbspBTN에서 대담 프로그램 녹화 촬영을 한 후 저녁 7시 30분에는 의정부 예술의전당에서 2016년 첫번째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어제 농사일을 마치고 새벽 2시에 울산 두북을 출발한 스님은 6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치과에 들러 치료를 받은 후 곧바로 대담 프로그램 녹화가 예정된 BTN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BTN에서는 작년 11월 1일부터 매주 방송된 ‘법륜 스님이 안내하는 붓다의 길 깨달음의 길’ 20부 작, 마지막 녹화 촬영이 오후 2시부터 있었습니다. 인도성지순례를 통해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내용이 매주 방송되었는데 오늘은 그 뒷이야기와 방송을 보며 궁금했던 내용들을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 BTN 법륜스님이 안내하는 붓다의 길 깨달음의 길 녹화 현장nbsp오후 2시부터 시작된 대담의 사회는 지난 2009년에 스님이 안내하는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는 배우 김여진씨가 해주었습니다. 김여진씨는 그동안 방송 출연을 쉬면서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출산 이후 3년 동안 아기를 키우는데 전념했는데, 오랜만에 스님을 만나 뵙고 너무나 반가워 했습니다.nbspnbsp▲ 대담 사회를 맡은 배우 김여진씨nbsp스님은 방송을 어떻게 보셨는지, 순례지에서 하는 법문의 포인트나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점은 무엇인지, 순례지에서 경전독송을 하는 이유, 사르나트에서 오계를 받고 가사를 수하도록 하는 이유, 밥통을 들고 다니는 까닭, 왜 그렇게 고생을 사서 하는지, 빡빡한 일정인데 개인적으로 힘들지 않은지, 성지마다 갖고 계신 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스님이 가장 사랑하는 부처님의 성지는 어디인지, 전정각산 아래 수자타아카데미를 세웠고 22년이 지났지만 아직 불교를 가르치지 않았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 많은 질문에 대해 스님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대담을 마치면서 김여진씨가 “지난 5개월 간 인도성지순례를 함께했던 시청자들에게 순례를 마무리하는 한 말씀을 부탁한다”고 하자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을 ‘구체적인 사회와 역사 속에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셨고 깨달으신 분’이라고 보지 않고 ‘하늘에 계신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고 추상적인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부처님은 그런 분이 아니고 우리와 똑같이 이 세상을 사신 분이에요. 부처님께서는 먹는 건 매일 얻어 드셨어요. 또 인도에서는 죽은 시신을 화장할 때 덮는 천을 분소의라고 하는데, 부처님께서는 그걸 주워서 입으셨어요. 자는 건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주무셨고요. 우리가 아는 ‘절’이라는 건물은 모두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부처님 당시에는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청빈한 생활을 하셨는데도 늘 행복하셨고, 마음이 편안하셨고, 자유로우셨고, 어떤 두려움도 없으셨습니다. 또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었는데도 많은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nbspnbspnbsp그 당시 인도에는 300여개의 나라가 있었는데, 그 중에 제일 큰 나라가 마가다국이었습니다. 그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당시 제일 크고 좋은 집과 제일 좋은 마차를 가졌고, 제일 좋은 옷을 입었고, 제일 좋은 음식을 먹었고, 제일 아름다운 여인들을, 그것도 여러 명을 부인으로 두었고, 제일 값나가는 보석으로 치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온갖 걸 다 가진 빔비사라왕은 늘 번뇌와 두려움과 괴로움으로 삶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아무 것도 갖지 않았던 부처님은 늘 행복하셨습니다.nbspnbsp그래서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찾아와 ‘인생이 괴롭다’며 하소연을 하니 부처님께서는 좋은 법문을 해 주셨고, 그 법문을 들은 왕은 기뻐하면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빔비사라왕을 찾아가서 절 하나 지어달라든지 좋은 옷이나 마차를 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부처님은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청빈하게 사셨으면서도 가장 당당하고 풍요롭게 세상의 주인으로서 사셨습니다.nbspnbsp여러분들도 그런 부처님의 삶을 생각하면서 여러분들도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베풀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베풀지 못할 아무런 이유 또한 없습니다. 무엇으로든 베풀 수가 있습니다. 말 한 마디로도 베풀 수 있고,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는 것으로도 베풀 수 있고, 작은 돈으로도 가난한 아이들에게 음식을 베풀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행복하게 살고, 자유롭게 살고, 베풀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여러분들께서도 성지순례를 시청하는 동안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고 느끼셨다면, 그것은 성지순례의 공덕이자 성지순례를 5개월간 시청하신 공덕일 것입니다.”nbspnbsp이렇게 약 1시간 30분 동안의 녹화 촬영을 마치고 스님은 그동안 촬영하고 편집하고 방송하느라 고생이 많았던 BTN 관계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건네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방송국을 나왔습니다. 오늘 녹화한 내용은 3월 28일 오전 11시 20분에 BTN에서 방영됩니다.nbspnbspnbsp저녁 7시 30분부터는 의정부 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800여 명이 가득 자리를 메운 가운데 2016년 첫 번째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 의정부 예술의전당 대극장nbsp아직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평일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강연장을 찾아준 분들에게 스님은 환한 웃음으로 인사말을 건네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오늘이 2016년도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의 첫날입니다. 그 첫 강연을 의정부에서 하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nbspnbspnbsp2016년이 시작되자마자 북한에서 핵실험을 하니까 남한에서는 강경대응을 표명하고, 다시 북한에서 로켓을 발사하니까 남한에서는 개성공단을 폐쇄했습니다. 이렇게 소란스러운데 도망도 안 가고, 라면 사재기도 안 하고 이렇게 사는 걸 보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참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6.25전쟁을 치르는 등 지난 70년을 갈등과 분쟁 속에 살다 보니까 좋게 말하면 면역력이 생긴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좀 무뎌진 것이겠지요.nbspnbsp이렇게 갈수록 통일의 희망은 멀어지고, 평화는 위태로워지고, 경제는 어려워지고, 빈부격차도 심해지니까 ‘살기가 너무 어렵다. 미래의 희망이 없다’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 말들을 하는 게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연세 드신 분들은 과거를 한번 돌이켜 보세요. 우리가 지금 살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30년 전이나 50년 전에 비하면 그래도 더 낫지요? 의식주 모든 면에서 더 낫습니다. 또 요즘 민주주의가 후퇴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때 독재시대 보다는 지금이 낫습니다.nbspnbsp이런 제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가 어디를 기준으로 볼 것이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좋을 때를 기준으로 하면 지금이 굉장히 어려운 시기이고, 나쁠 때를 기준으로 하면 지금이 훨씬 좋은 시기입니다. 저도 지금 이 시대가 좋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시기가 좋거나 안 좋거나, 경제사정이 좋거나 어렵거나, 날씨가 따뜻하거나 춥거나 하는 차이는 있을지라도 ‘시기가 안 좋다고 괴로워 할 일인가?’ 하는 건 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물론 겨울보다는 봄이 좋지요. 그렇다고 겨울에는 우울하게 지내고, 봄에만 즐겁게 지내야 될까요? 그건 아니에요. 겨울은 날씨가 좀 안 좋은 건 맞지만 우리는 겨울에도 웃으며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 경제사정이 좀 안 좋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우울하고 괴롭게 살아야 할까요? 그건 아니지요. 왜냐하면 옛날에 비하면 훨씬 낫거든요. 옛날에도 즐겁게 살았는데, 지금 즐겁게 살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nbspnbspnbsp제 얘기를 듣고 ‘스님은 세상이 어떻게 되든 그저 나 하나 마음만 잘 먹으면 된다고 얘기하는데, 그런 태도는 세상의 정의를 외면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 말의 요지는 이겁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다 안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어릴 때 각자 꿈이 있었을 텐데, 지금 다 그때 원하던 대로 됐어요?”nbspnbsp“아니오.”nbsp“그때 꿈꾸었던 결혼생활을 지금 누리고 있어요?”nbsp“아니오.”nbsp“애를 키워보니까 애가 내 뜻대로 크던가요?”nbsp“아니오.” nbspnbsp“그렇게 뜻대로 안 되는 게 이 세상살이입니다. 그러면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인생을 괴롭게 살아야 할까요? 그래야 된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은 괴롭게 살다가 죽어야 합니다. 그러니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된다고 반드시 괴로워할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힘들다고 난리를 피우면 인도나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은 왜 저렇게 힘들다고 난리일까? 한국 가보니까 먹고 살만 하던데’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된다고 반드시 괴로워 할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nbspnbsp어차피 세상은 내 뜻대로 다 안 됩니다. 내 뜻대로 되면 즐겁고 내 뜻대로 안 되면 괴롭다면, 우리는 늘 즐거웠다가 괴로웠다, 즐거웠다가 괴로웠다, 이렇게 널뛰기 하듯이 살다가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내 뜻대로 다 되면 좋겠지만 내 뜻대로 안 되어도 괜찮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깨닫기가 힘든 거지요.nbspnbsp옛말에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했잖아요. 내 뜻대로 됐다고 좋아하고, 내 뜻대로 안 됐다고 울고불고 할 일이 아니라 ‘좀 더 지켜봐야 된다. 안 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고, 되는 게 더 나쁠 수도 있으니 내 뜻대로 되고, 안 되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마라’ 하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걸 깨달으면 살기가 훨씬 좋아집니다.nbspnbspnbsp또 실제로 세상이 좀 더 좋게 되면 더 좋겠지요. 겨울보다는 봄이, 독재보다는 민주주의가, 빈부격차가 심한 것보다는 빈부격차가 작은 게, 긴장이 고조되는 것보다는 평화로운 게 살기가 낫다는 건 맞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안 된다고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늘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제 말은 그렇게 행복하게 살면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것이지,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괴로워하면서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웃으면서 즐겁게 이 세상을 좋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먼 길도 웃으면서 갑시다.”nbspnbsp스님은 시작부터 즉문즉설 강연의 핵심이 되는 내용을 명쾌하게 일러주었습니다. 이미 청중들의 마음은 많이 가벼워져 보였습니다.nbspnbsp이어서 약 2시간 30분 동안 5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의 명쾌하고 속 시원한 답변에 강연장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동생들이 너무 미워서 괴롭다고 하소연한 할머니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할머니는 며칠에 걸쳐 질문 내용을 종이에 적었다며 꼬깃꼬깃해진 종이를 펼치며 질문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저는 형제가 많았지만 아무리 힘들고 배고파도 10원 한 장 빌리거나 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nbsp그런데 동생들이 말하기를 빚을 얻어 장사를 해 보았더니 잘 되어서 조금만 돈이 있으면 다시 해 보겠다고 해서 제가 ‘한 번에는 못 주고 나누어서 주겠다. 너희들도 내 사정을 잘 알지 않느냐. 이자는 안 주어도 좋으니 본전은 꼭 갚아라. 잘 살아봐라’ 하고 약속한 지가 벌써 오래 됐습니다. 강산이 몇 번 변했어요. 그런데 그런 저에게 동생들은 본전도 갚지 않으면서 오히려 ‘욕심 많다. 지독하다. 죽으면 갖고 가느냐’ 하면서 여기저기 입질을 하고 다니니... 저는 다투기도 싫고 해서 왕래를 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안 보고, 안 들으면 편할 줄 알았는데, 분노가 치밀고 한이 쌓입니다. 남편은 악하거나 나쁜 사람은 아닌데, 속을 뒤집는 말만 던지며 책임을 질 줄 모릅니다. 저는 여태 참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억울하고, 분하고, 서럽기만 한지 모르겠습니다. 인덕이 없으면 좋은 일을 해도 지탄만 받는다던데 제가 팔자를 그렇게 타고 났을까요? 제가 속이 좁고, 이해만 바라기 때문일까요? 스님, 저 좀 깨우쳐주세요.”nbsp“올해 연세가 어떻게 nbsp되세요?”nbsp“73세입니다.”nbspnbsp“제가 하나씩 물어볼 테니까 대답을 해 보세요. ‘돈을 빌려줬다, 그런데 못 받았다’ 이게 요점이지요? 어쨌든 동생들한테 돈을 빌려주고 이자는 그만두고 본전만 갚으라고 했는데, 동생들이 안 갚았다는 게 요점이잖아요 그런데 빌려간 돈을 안 갚았으면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해야 되는데, 동생들이 ‘돈 좀 준 걸 갖고 뭘 그러느냐? 동생한테 줬으면 그만이지’ 그런다는 거예요?”nbspnbsp“그런 것도 아니고요. 아주 정말 화나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욕심이 많다. 지독하다. 죽을 때 돈 가지고 가느냐, 그것 없어도 사는데’라고 한대요. 또 중간에서 이리저리 말을 전하며 입질하는 동생이 형제간에 이간질을 하고 다니니까 제가 미쳐서 죽을 지경입니다.”nbspnbsp“그러니까 질문자가 동생한테 돈을 주면서 이자는 됐고, 본전만 달라고 했는데, 본전을 안 주는 것까지도 괜찮지만 동생들이 질문자더러 욕심이 많다며 도리어 욕을 한다는 거네요. 안 갚는 것까지는 좋은데 거기다가 욕심이 많으니 어쩌니 하면서 내 욕까지 해서 분하다는 것이지요?”nbsp“예. 분하다기보다도 화가 나요.”nbsp“그런데 그 얘기를 듣고 남편이 뭐라고 그럽니까?nbspnbsp“남편은 뭐 그냥... 앞에서 말했잖아요. 대화도 안 된다고요. 남편은 그냥 놀기만 좋아하시고, 양반이라 편하게 사시거든요.”nbsp“질문자가 벌어서 남편도 먹여 살렸어요?”nbsp“예, 그랬으니까 남편이 이런 문제에 관여를 못 하지요. 얼마가 있는지도 잘 몰라요.”nbsp“남편 모르게 동생들한테 빌려줬어요?”nbsp“몰래 빌려주지는 않았어요. 줬다고는 했어요. 액수만 말 안 했지요.”nbsp“남편은 얼마 줬는지를 모르니까 ‘그걸 갖고 뭘 그러냐?’고 하는 거지요. 자기하고 상의하고 준 것도 아니고, 질문자 마음대로 줬으니까요. 그냥 잊어버리는 게 낫겠네요.” nbspnbspnbsp“그런데요, 이게 벌써 강산이 몇 번 변했다고 했잖아요. 그때는 서운한 걸 몰랐는데요, 이제는 제가 이렇게 주저앉아서 일을 못 하고 있으니까요, 코드를 안 꽂아도 앉아있으면 머리속에서 영화 필름이 저절로 돌아갑니다.”nbsp“늙으면 자꾸 옛날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외국인이랑 결혼해서 외국 가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 젊을 때는 외국 남자랑 살아도 되고, 외국에서 살아도 괜찮다가, 나이가 들어 60이 넘고, 70이 넘으면 음식도 옛날보다 밥이나 김치나 된장찌개를 더 먹게 된다고 합니다. 그럼 외국인인 남편도 나이가 들수록 치즈나 고기를 더 먹겠지요? 그러다 대부분 먹는 것 때문에 싸우고 이혼을 합니다. 그걸 ‘회귀 본능’ 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어릴 때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부모님 모셔봐서 아시겠지만 늙으면 늘 옛날 얘기만 하잖아요.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또 한단 말이에요. 질문자는 73세라고 했는데 만약 83세가 되거나 93세가 되면 계속 이 얘기만 할 거예요.nbspnbspnbsp그래서 아들도 ‘듣기 싫다’, 손자도 ‘듣기 싫다’고 하게 될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내가 한 맺힌 일이 있으면, 그걸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이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업식이라고 하는데, 그 상처는 계속 덧납니다. 육체도 다치고 난 뒤 날이 흐리면 쑤시고 저리듯이 늙으면 늙을수록,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생각이 떠오르고, 갈수록 화는 더 납니다. 그래서 건강만 나빠집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 돈 안 받고도 지금까지 살았잖아요.”nbsp“잘 살았지요. 그런데 괘씸해서 그렇죠..”nbsp“왜 괘씸해요?”nbsp“하는 짓이 너무 미워요. 내 것 주고도 뺨맞는 격이니까요. 그래서만 미운 것도 아니고, 남편과 대화도 안 되는데, 어쩌다가 남편이 막 내 속을 뒤집는 엉뚱한 소리를 하면 제가 화가 치밀어서 제 머릿속이 또 돌아가기 시작한다는 말씀입니다.”nbsp“제가 보기에는 질문자가 동생한테 돈을 줄 때 자기가 번 돈이라고 영감하고 의논도 안 하고 턱 줘놓고 얼마 줬다고 말도 안 하니까 영감님은 그게 섭섭해서 질문자가 동생들한테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nbspnbsp“아이고, 스님. 제가 돈 액수를 안 밝혔으니까 다행이지, 밝혔다면 남편이 저한테 돈을 더 뜯어내려고 했을 겁니다. 그랬으면 저는 벌써 죽었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남편한테는 ‘조금만 줬다’ 라고만 얘기했던 거예요.”nbsp“질문자가 그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자꾸 화를 내면, 남편은 돈을 조금 주었다고 들었기 때문에 벌써 잊어버렸는데, 늙어서 자꾸 그 얘기를 꺼내니 남편도 점점 듣기가 싫어지는 겁니다.”nbsp“아니오, 남편이 듣는 데서는 얘기를 안 합니다. 저 혼자 문 닫고 지랄을 하지요.”nbspnbsp“그럼 솔직히 생각해 보세요. 첫째, 내 돈을 줬지요? 둘째, 그 돈 생각하느라고 계속 괴롭지요? 그럼 누구 손해예요?”nbsp“그래서 스님한테 찾아 왔지요.”nbspnbsp“질문자가 바보예요. 형제간에는 원래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에요. ”nbsp“제가 원체 바닥부터 기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동생들의 힘든 사정이 너무 잘 이해가 됐거든요.”nbsp“그럼 질문자는 동생들이 지금까지 계속 힘들어서 밥도 못 먹고 사는 게 좋아요? 그래도 좀 먹고 사는 게 좋아요?”nbsp“먹고 사는 게 좋죠.”nbsp“그럼 동생들이 전부 밥도 못 먹고 구걸하면서 살면, 질문자는 동생들한테 ‘왜 너희들, 그 돈 안 돌려주느냐?’ 라고 할까요? 안 할까요? 만약에 동생들이 지금도 갚을 형편이 못 된다면, 질문자가 동생들한테 섭섭할까요? 안 섭섭할까요? 동생이 돈 줄 형편이 못 될 정도로 가난하다면 질문자가 동생한테 이렇게 화가 날까요? 안 날까요?”nbsp“그런데 제 형편이 지금 형편만 같으면 안 줘도 상관없는데, 그때는 제가 정말 살기가 힘들었는데도 돈을 줬거든요. 그게 너무 답답해요.”nbspnbsp“질문자는 형편이 어려운 동생한테 돈을 빌려줬는데, 그 동생이 지금은 잘 살면서도 질문자의 돈을 안 갚고, 고맙다는 소리도 안 하니까 화가 난다는 건데, 질문자 생각대로라면 동생이 쫄딱 망해서 거지가 돼버려야 속이 시원하겠네요. ‘거봐라 내 돈 안 갚으니까 네가 그렇게 됐지 하면서 속이 시원할 거 아닙니까?”nbsp“그건 아닙니다.”nbspnbsp“뭘요, 지금 보니까 심보가 그런데요. 질문자는 동생이 싹 망해 버리면 좋겠어요? 아니면 내 돈을 안 갚더라도 동생이 밥 먹고 사는 게 좋아요? 동생이 내 돈을 안 갚을 바에야 싹 망해 버리는 게 속이 시원하겠어요? 내 돈을 못 갚더라도 내 동생이니까 잘 사는 게 좋겠어요?”nbsp“제 욕만 안 하면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nbsp“그러니까 동생이 자꾸 질문자를 욕하니까 동생이 싹 망해 버리면 좋겠어요?”nbsp“그건 아니지요.”nbsp“그래도 밥 먹고 사는 게 좋겠죠?”nbsp“그러니까 저도 그걸 잊어버리려고 하는데 잘 안 돼요.”nbspnbsp“그러니까 그냥 내 돈 안 갚는 동생이 벼락 맞아서 팍 죽어버리면 좋겠어요?”nbsp“아닙니다.”nbsp“그래도 재산 좀 가지고 사는 게 좋겠어요?”nbsp“그래도 사는 게 좋지요.” nbspnbspnbsp“그러면 됐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세요. ‘동생이 내 돈 안 갚는 거는 괘씸하지만 벼락 맞아서 팍 망해 버리는 거보다는 그래도 내 돈 가져가서 저렇게 먹고 사는 게 좋은 일이다’ 하면서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질문자의 공덕으로 동생들이 그렇게 잘 살면 좋잖아요. 그걸 질문자가 자꾸 괘씸하게 생각하면 동생들이 망해요.”nbspnbsp“그래서 제가 어떻게 기도하면 좋겠어요?”nbsp“‘내 덕에 동생들이 잘 사는 건 참 보기 좋다’ 하는 마음으로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내 덕에 동생들이 잘 사는 게 보기 좋구나. 우리 어머니가 보시면 나를 얼마나 예뻐하시겠느냐?’ 하고 기도를 하면 돌아가신 어머니도 질문자를 보면서 ‘네가 동생들을 잘 거둬서 동생들이 잘 사니 고맙다. 나는 너한테 잘 못해 줬는데 너는 동생들한테 잘해 줘서 고맙다’라고 하실 거예요.”nbsp“어머니가 다 보시고 돌아가셨는데요.”nbsp“돌아가신 어머니가 귀신이 되어서 질문자를 보고 좋아할 거라고요.”nbsp“아버님도 ‘그만 좀 줘라. 너도 망한다’고 말씀하시고 돌아가셨어요. 제가 너무 주니까요.”nbsp“어쨌든 그렇게 줬는데도 못 사는 게 나아요? 준 거 받아서 잘 사는 게 나아요?”nbsp“제가 그렇게 기도하면 화나는 마음이 없어지겠습니까?”nbspnbsp“내가 도와줬는데도 못 사는 게 좋아요? 내가 도와준 걸 근거로 해서 잘 사는 게 좋아요?”nbsp“아,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잘 사는 게 좋지요.”nbsp“그렇게 알면 기도할 게 뭐 있어요? ‘아이고, 좋다’ 그러면 되지요. 아직도 분이 안 풀려요?”nbsp“아니에요. 분이 안 풀린다기보다도 진짜 너무 화가 나요.”nbsp“이 세상은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잘 안 된다고 했지요. 내 자식도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는데, 동생들이 어떻게 내가 원하는 대로 되겠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는 게 부처님, 하나님이 아니에요. 지금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 위기인데도 내 뜻대로 바로 잡지 못 하고 살고 있는데, 질문자한테 돈 좀 빌려서 안 갚는 동생들 고치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 일이겠어요? 별로 중요한 일 아니에요. 그러니 그걸 고치려고 하지 말고, ‘내가 조금 도와줬는데 너희가 그렇게 잘 사니 참 고맙다. 내가 도와준 보람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한번 따라해 보세요.nbsp나는 너희를 생각해서 조금 도와줬는데, 너희가 그것을 잘 활용해서 잘 사니 너무 너무 고맙다.”nbsp“나는 너희를 생각해서 조금 도와줬는데, 너희가 그것을 잘 활용해서 잘 사니 너무 너무 고맙다.” nbspnbsp“용서를 하라는 얘기가 아니예요. 용서를 할 게 없다는 걸 깨우쳐야 됩니다. 제가 ‘동생들을 용서하시라’ 하는 얘기를 한 게 아니에요. ‘동생들이 망해 버린 것보다는 그래도 내가 준 돈 받아서 잘 사니까 좋구나’라고 생각을 바꿔버리면 용서해 줄 게 없다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진실을 딱 깨우치면 그냥 한 여름밤 꿈에 불과합니다. 그걸 깨우쳐야 합니다. 그러니 ‘네가 잘못했지만 내가 용서해 준다’는 말은 영원히 용서가 안 된다는 말이나 똑같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했던 건 ‘저들은 못된 놈들이지만 용서해 주시라’ 하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뜻이에요. 질문자도 그런 경지에 이르러야 되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 머리에는 ‘옳다, 그르다’는 관념이 꽉 박혀있으니까요.”nbsp스님의 답변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답답함을 하소연하던 할머니는 마침내 활짝 웃었습니다.nbsp하소연이 계속 되자 청중석에서 눈살을 찌푸리는 분도 있었지만 마지막에 할머니가 활짝 웃자 강연장은 순식간에 웃음 바다가 되었습니다.nbspnbsp답변을 마친 후 스님은 “공개된 강연 자리가 아니라면 사실 할머니의 답답함을 더 들어드려야 하는데...” 하며 미안한 마음을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nbspnbsp5명의 질문에 대해 모두 답변을 하니 이제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직 질문을 신청한 3명이 더 남아 있었지만 스님은 양해를 구하고 다음 강연장에 다시 찾아오라고 당부한 후 강연을 모두 마쳤습니다. 열정적인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다시 한번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nbsp강연이 끝나자 곧바로 책 사인회가 로비에서 열렸습니다. 작년 이후 오랜 만에 열린 강연인데다가 얼마전 새책 ‘행복’이 새로 나오면서 사인회를 기다리는 줄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30분이 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주면서도 스님은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nbspnbsp▲ 책 사인회nbsp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nbspnbsp▲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 촬영nbsp내일은 부처님이 출가하신 날입니다.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서울 정토회관에서는 출가재일 기념 법문이 있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부처님의 열반기념일인 다음주까지 일주일 동안 정토회의 전국 법당에서는 ‘8일 출가열반 용맹정진’ 기간을 갖습니다.nbsp※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3.14 감자 심기 및 농사일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겨우내 언 땅을 갈아 엎고, 여러 해 묵은 발효된 똥을 퍼서 텃밭에 뿌린 후 씨감자를 심고 봄농사를 위한 텃밭 정비를 했습니다.nbspnbsp평화와 통일을 위한 천일기도 200일째 정진을 마친 후 서울에서 밤새 차를 타고 내려와 새벽 4시 30분 울산 두북에 도착했습니다. 잠깐 눈을 붙인 후 곧바로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원래 스님은 올해 봄에 씨감자를 북한에 보내서 식량 증산을 도모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유엔 안보리 제재로 인해 씨감자를 북한에 보낼 수 없게 되어 국내에서 먼저 실험 재배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두북수련원과 문 수련원에서 실험 재배를 하기로 했지만, 스님은 “텃밭에서 얼마라도 직접 재배해봐야 하는데, 오늘이 아니면 감자를 심을 시간이 없다” 하며 작업복으로 갈아 입고 나와 일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먼저 작년 겨울 뒷뜰에 묻어 둔 장독대에서 김장 김치를 꺼내 통에 담았습니다. 한 줄기 집어서 맛을 보니 입 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그 맛이 일품이었습니다.nbspnbsp▲ 작년 겨울 땅속 장독대에서 묵힌 김장 김치nbsp그런데 묻을 때 날씨가 따뜻하더니 공기가 들어간 채로 겨울을 나서 그런지 약간 시큼한 맛이 있긴 했습니다. 이 배추와 무는 작년 가을에 스님이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것입니다. 작년에 수확이 쏠쏠 했기 때문에 올해도 스님은 배추를 여러 포기 심을 작정입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작년 가을에 고소를 꺾어 말린 것을 마당에 가지고 나와 고소 씨앗을 훑어 내었습니다. 텃밭에 다시 심기 위해 우수수 떨어진 씨앗을 잘 긁어모아 두었습니다.nbspnbsp▲ 고소 씨앗 털기nbsp작년에 고소를 심었던 곳에는 겨울 동안 얼지 않도록 부직포를 덮어 두었는데, 부직포를 걷어 내자 푸릇푸릇한 잎들이 그대로 살아 있었습니다. 스님은 푸른 잎들을 어루만지며 환하게 웃었습니다.nbspnbspnbsp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서 그런지 고소의 향이 아주 강했습니다. 스님은 “새로 씨앗을 심어서 키우는 것보다 얼지 않도록 살려 두었다가 그것을 다시 키우면 봄에 훨씬 빨리 먹을 수 있다”고 하면서 유난히 푸른 몇 개의 잎을 따서 점심 때 먹을 수 있게 씻었습니다.nbspnbsp▲ 고소밭 잡초 제거nbsp그런데 고소밭에 잡초가 많이 섞여 자라고 있었습니다. 고소와 잡초가 잎모양이 비슷해서 분간이 잘 되지가 않았는데 스님은 용케도 잡초를 쑥쑥 뽑아내었습니다. “잡초 뽑으라고 아무나한테 맡기면 고소도 다 뽑아버린다”면서 웃음을 머금었습니다.nbspnbsp잡초를 깨끗이 뽑아낸 후 꽃샘추위에 얼지 않도록 남은 비닐을 재활용해서 살포시 덮었습니다. 며칠 후 다시 오면 새순이 많이 돋아나 있을 것입니다.nbspnbspnbsp한편 텃밭 한쪽에는 메마른 가지에 복숭아꽃이 분홍색 새순을 활짝 드러냈습니다. 스님은 “아이고, 이거 봐라” 하면서 무척 반가워 했습니다. 봄이 오는 소식을 자연은 온 몸으로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nbspnbsp▲ 복숭아꽃 새순nbsp복숭아꽃 새순이 전해주는 봄소식에 한층 마음도 즐겁고 가벼워졌습니다. 스님은 겨울 동안 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국화 화분과 도토리나무 모종 화분을 가져왔습니다. 국화 화분은 이미 새싹이 많이 나와 있었는데 스님이 물을 두어 차례 듬뿍 주자 메마른 흙이 쏴 하고 물을 빨아들이며 새싹이 더 살아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 국화, 도토리 화분 물주기nbsp몇 가지 일을 마친 후 이제 본격적으로 감자를 심을 준비를 했습니다. 먼저 화장실에서 몇 년 묵은 발효된 똥을 펐습니다. 이곳을 다녀간 많은 분들이 차곡차곡 잘 쌓아두었는데, 오늘은 그 결실을 보는 날입니다. 발판으로 쓰는 나무를 걷어내지 못해 삽질을 하기가 무척 어려웠지만 요령껏 조금씩 수 차례를 푸니 발효되어 흙 같이 된 똥을 일부 들어낼 수 있었습니다.nbspnbsp▲ 화장실 똥 퍼서 거름 만들기nbsp화장실에서 푼 똥은 곧바로 텃밭의 거름으로 뿌렸습니다. 똥과 흙을 잘 섞어 텃밭 전체를 한번 갈아 엎은 후 고랑을 만들었습니다. 감자를 심으려면 턱이 조금 높아야 한다고 해서 땅을 조금 깊이 팠습니다.nbspnbsp▲ 감자 심을 밭고랑 만들기nbsp땀을 뻘뻘 흘리며 삽질을 한 결과 제법 높이가 있는 밭고랑이 만들어졌습니다. 오늘 심는 감자는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전북 순창에 있는 씨감자 연구소에서 가져온 1세대 씨감자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재배해서 거둔 씨감자의 눈을 칼로 딴 2세대 씨감자입니다. 물론 1세대 씨감자가 병충해도 없고 튼튼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조건과 방식으로 씨감자를 심어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실험 재배를 해볼 계획입니다.nbspnbsp스님은 씨감자를 올해 북한에 보내어 각 도별로 실험 재배를 해보고, 내년부터는 북한에서 씨감자 생산을 직접 하려고 씨감자연구소 측과 이미 협의를 다 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보낼 수 없게 되자 많이 아쉬워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nbspnbsp“우선 한국에서라도 먼저 실험 재배를 해 보면 내년에 북한에서 재배할 때 어떤 문제점이 생길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거름을 한 땅과 안 한 땅, 비닐을 씌운 땅과 그냥 노지, 일반 감자와 씨감자, 추운 문경이나 봉화와 따뜻한 두북, 이렇게 서로 다른 조건과 방식으로 재배해 보면서 그 차이를 알면 내년에 북한 실정에 맞게 어떤 종류를 얼마만큼 지원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nbspnbsp이렇게 해서 실험 재배의 시작을 오늘 텃밭에서 하게 된 것입니다.nbspnbsp▲ 1세대 씨감자. 원래는 반듯했는데 싹이 나서 조금 쭈글해진 모습.nbspnbsp▲ 감자의 눈 주위를 잘라내서 심어야 하는 2세대 씨감자.nbspnbsp땅이 얼지 않고 습기를 유지하도록 비닐 멀칭을 한 후 25cm 간격으로 감자를 하나씩 심었습니다. 쑥쑥 잘 자라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 감자 심기nbsp감자 심기를 모두 마치고 나니 시간이 좀 남았습니다. 내친 김에 앞 마당에도 채소를 심기 위해 땅을 갈아 엎었습니다. 작년에 국화를 심었던 자리는 고스란히 남겨 두고, 열심히 땅을 뒤집은 후 마당에 난 잔디와 구분되게 낮은 둔턱을 만들었습니다.nbspnbspnbsp▲ 채소밭 만들기nbsp이곳에는 무엇을 심을지 아직 스님도 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뒤뜰에 감자를 심었으니 작년에 뒤뜰에 심었던 상추, 고추, 가지, 토마토, 깻잎 등을 앞마당에 심지 않을까 싶습니다.nbspnbsp마당 옆쪽 담벼락 밑에는 원추리가 많이 심어진 길죽한 땅이 있는데, 여기도 새싹이 빨리 돋아 나도록 비닐을 덮어 두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시골에 내려오면 원추리 나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nbspnbsp▲ 원추리가 심어진 밭nbsp스님은 농사일이 무척 재미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며 삽질 하고, 호미로 땅을 고르고, 잡초를 뽑고, 물을 주고 했는데도 아주 가볍고 즐거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봄 농사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텃밭이 깔끔하게 정비된 모습을 보며 스님은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밥을 먹고 있는데 마당을 내다보니 저 멀리 나무들이 촘촘하게 들어선 앞산이 보였습니다. 스님은 앞산을 보며 한마디 했습니다.nbspnbsp“저기 산에 나무들 좀 봐라. 울창하지? 내가 어렸을 때는 저 산이 민둥산이었어. 그런데 저렇게 울창해졌네.”nbsp자연 속에서 마음껏 땀흘려 일한 오늘 하루야말로 스님에게는 가장 큰 휴식이 된 것 같습니다. 언젠가 법문에서 “인생의 마지막 모습이 농사꾼이었으면 한다”라고 했던 스님의 말씀이 유난히 귓전을 맴도는 하루였습니다.nbspnbsp하루 종일 웃으며 일하던 스님도 저녁이 되자 “아야야” 하며 결린 어깨와 다리를 어루만졌습니다. 매일 이동하며 강연만 하다가 오랜만에 몸을 써서 그런 것 같습니다. 농사일만 하면서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스님의 하루엔 이보다 더 급한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nbspnbsp내일은 새벽 3시에 울산 두북을 출발해 서울로 올라가 불교TV에 출연해 ‘붓다의 길 깨달음의 길’을 주제로 대담 프로그램 녹화를 한 후 저녁 7시 30분에는 의정부 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올해 첫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