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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26 안중근 의사 순국 106주기 추모식
nbsp안녕하세요? 106년 전 오늘,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의 사형집행일이자 순국일입니다. 스님은 안중근 의사 순국 106주기를 맞이하여 남산 자락에 위치한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찾았습니다.nbspnbsp새벽 6시에 울산 두북을 출발한 스님은 10시 30분에 안중근의사기념관에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참배했습니다. 스님이 기념관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정토회 실무자 10명도 함께 동행했습니다.nbspnbsp▲ 안중근 의사 동상 참배nbsp스님 일행 외에도 순국일을 추모하고자 많은 분들이 기념관을 찾았습니다. 마침 10시부터 안중근의사기념관 강당에서는 안중근 의사 숭모회 주관으로 안중근 의사 순국 106주기 추모식이 거행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조용히 행사장 뒤편에 서서 함께 추모하는 시간을 가진 후 기념관을 나왔습니다.nbspnbsp▲ 안중근 의사 순국 106주기 추모식nbsp추모식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남긴 ‘최후의 유언’이 낭독되어서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다시금 새겨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 묻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 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nbspnbsp너희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당부해 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nbspnbspnbsp1879년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난 안중근 의사는 일제가 대한제국 외교권을 박탈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워 민족계몽운동에 힘쓰다가 일제의 강점이 본격화 하자 의병운동에 투신했습니다. 1909년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자르고 일사보국을 맹세한 안 의사는 같은 해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습니다. 뤼순 감옥에 투옥돼 일제의 심문과 재판을 받는 중에도 의연한 태도를 조금도 굽히지 않던 안 의사는 사형을 선고받고 1910년 오늘 3월 26일 32살의 나이로 순국했습니다.nbspnbsp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지만 ‘자유’, ‘독립’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많은 애국지사 분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다시 한 번 새겨보게 됩니다. nbspnbsp▲ 1910년 뤼순감옥 내에서 쓴 옥중유묵nbsp안중근의사기념관을 나오니 앞쪽 너른 언덕에 백범 공원과 한양도성이 잘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먼저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을 참배했습니다.nbspnbsp▲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nbsp동상 앞 비석에는 “나라가 광복된 후에 두 동강으로 끊어진 남북을 통일하려고 노력하셨으나 통일 대업을 이루지 못하신 채 철천의 한을 품고 순국하시니 슬픈 마음 그지 없다”라고 적혀 있어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nbspnbspnbsp김구 선생의 동상 옆에는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이시영 선생의 동상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이시영 선생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을 주도하였으며 1945년 해방시까지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켰으며 제헌국회에서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의하다 부통령직에서 사임된 분입니다. 스님은 묵념으로 선생의 공훈을 기렸습니다.nbspnbsp▲ 이시영 선생의 동상nbsp그리고 백범 공원을 가로지르면서 한양도성이 잘 복원되어 있었습니다.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입니다. 평균 높이 58m에 전체 둘레 길이가 18.6km에 이르며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래도록 성의 역할을 다한 건축물이라고 합니다.nbspnbsp▲ 새로 복원한 한양도성nbsp마침 공원 한쪽 편에 서울시 지도 위에 한양도성의 둘레가 잘 표시된 그림이 있어 스님은 유심히 지도를 살펴보았습니다. 사대문과 사소문의 위치를 각각 확인하고, 전체 구간의 70가 옛 모습에 가깝게 정비되었다는 설명을 들은 스님은 “다음엔 도성 전체 둘레를 한 번 걸어봐야겠다” 며 웃음을 보였습니다.nbspnbsp▲ 한양도성 지도nbsp스님은 “새벽 6시부터 걷기 시작하면 하루만에 다 돌아볼 수 있겠다”고 자신을 했는데, 실무자들은 “저희는 이제 늙어서 어렵습니다”라며 다들 고개를 저었습니다. 실무자들보다 스님이 훨씬 연세가 많은데 말이죠.nbspnbsp남산 자락을 타고 내려가는 성곽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스님은 성곽 앞에서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다시 남산을 내려오는 길에는 곳곳에 개나리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주에는 울산 두북에서 진달래꽃이 활짝 핀 모습을 구경했는데, 오늘 서울에서는 가느다란 가지에 개나리꽃이 줄줄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서울 남산에 핀 개나리꽃nbsp오후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과 미팅을 가진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안산다문화센터 외국인노동자들과 함께 속리산 법주사 나들이를 다녀올 계획입니다.nbspnbsp ※ 스님의 하루 구독자와 함께하는 공개방송을 마련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나도 스님에게 질문을 해보고 싶다 하는 요청이 많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제 직접 스님에게 질문해 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공개방송 신청을 누르시면 됩니다. nbspnbspnbsp
2016.3.24 (오후) 전주우석고 초청, 교사들을 위한 특강
nbsp안녕하세요. 오전 10시에 있었던 경기여고동문회 카톨릭 모임 초청 특강에 이어서 오후 4시 20분부터는 전주 우석고등학교 영성당에서 초청 특강이 있었습니다.nbspnbsp이번 초청 강연은 원불교 김대선 교무님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스님과 김대선 교무님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통해 지난 10여 년 간 인연을 맺어오고 있습니다.nbspnbsp특히 오늘은 우석고등학교, 전북여고, 전북중 3개 학교가 속해 있는 학교법인 훈산학원의 개교 12주년이 되는 날이라고 합니다. 개교기념식을 맞이해 교직원 전체를 위한 특강을 스님에게 요청한 것입니다.nbspnbsp▲ 전주 우석고등학교nbsp오후 4시 무렵 스님이 전주 우석고등학교 교정에 도착하자 원불교 김혜봉 전북교구장님과 김대선 교무님, 훈산학원 윤여웅 이사장님이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주었습니다. 행사 시작 전 이사장실에서 잠깐 차담을 나누는 동안 스님은 김 교구장님과 윤 이사장님에게 새책 ‘행복’을 사인해서 선물했습니니다.nbspnbsp▲ 김혜봉 원불교 전북교구장님에게 새책 ‘행복’을 선물하는 스님nbsp먼저 개교기념식 식전 행사로 음악선생님들이 나와 뱃노래, 새타령, 진도아리랑 노래를 멋지게 불러주었습니다. 이어서 수고한 선생님들에게 공로패를 수여한 후 이사장님이 무대 앞으로 나와 “전북에서 제일가는 학교가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 제일가는 학교를 만들자” 라고 격려사를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개교기념식이 있은 후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행사장 무대 위에는 ‘인재육성을 선도하는 훈산학원’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에 스님은 지금의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진단하면서 인재 육성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스님의 생각을 들려주었습니다. nbspnbsp“지난 50년간 우리 교육은 소위 베끼기 교육, 암기 교육이었습니다. 이런 모방 교육이 효과를 보는 이유는 이미 우리보다 앞선 선진문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위 서구문명, 단적으로 말하면 미국을 따라 배우기 하는 거였어요. 독려하고 독촉하면 성과가 났기에 지난 50년 동안 ‘빨리빨리’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는 성장이 점점 둔화되어서 지금은 거의 정체 국면에 들었습니다. 지금 정부에서는 정체를 극복하려고 막 독려를 하는데, 이 정체를 극복하려면 따라 배우기인 모방 교육과 문화가 아니라 창조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창조적이어야 한다’, ‘서양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nbspnbspnbsp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 지금 정부는 따라배우기 할 때처럼 ‘빨리 창조 안 할 거야?’ 이렇게 독려해서 창조력을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목표가 다른데도 방식은 50년 전 방식과 똑같이 하고 있어서 성과가 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nbspnbsp창조는 긴장해서 노력한다고 나오지 않습니다. 자유로움에서 나옵니다. 방금 전 이사장님 말씀을 들으니까 전북에서 제일가는 학교가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 제일가는 학교를 만들자고 하셨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학교라고 해 봐야 지금 별 볼일 없습니다.nbspnbspnbsp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학교라 해도 따라배우기, 암기, 모방을 하는 방식으로 제일가는 것이지, 창조력을 키우는 학교나 창조하는 교육은 아니기 때문이에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창조입니다. 창조를 하려면 제일 중요한 게 재미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학교가 바뀌려면 우선 선생님부터 수업하는 게 재미있어야 해요. 지금 재미없고 힘드시죠?”nbspnbsp“......” nbsp“그렇다면 안 됩니다. 학생들은 공부하는 게 재미있어요? 솔직하게 말해 봐요. 힘들죠?”nbsp“힘듭니다.”nbspnbsp“힘이 드는 한은 창조가 안 나와요. 첫째, 재미가 있어야 해요. 가르치는 사람도 재미가 있어야 하고, 배우는 사람도 재미가 있어야 하고, 학교를 운영하는 사람도 재미가 있어야 해요. 즐거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냥 노는 것보다는 가르치는 게 더 재미있어야 하고, 그냥 노는 것보다는 배우는 게 더 재미있어야 해요.nbspnbsp재미가 있으면 집중력이 생깁니다. 하기 싫으면 아무리 집중하라 해도 집중이 안 되지만, 재미가 있으면 저절로 집중이 돼요. 어릴 때 보던 만화책은 재미있잖아요. 만화책은 노력해서 열심히 보는 게 아니라 옆에서 보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열심히 봐져요. 부모가 말리거나 야단치면 화장실에 가서 몰래 봐요. 창조가 나오려면 하지 말라고 해도 숨어서 몰래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해요. 그 정도로 재미가 있으면 집중이 돼요. 그렇게 우리의 에너지가 딱 집중돼야 창조가 일어납니다. 집중이 된 상태에서 빵 터지면 그게 창조에요. 선에서는 ‘이 뭣고’라는 화두에 엄청나게 집중이 돼서 빵 터질 때 화두 타파라고 하는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nbsp창조력을 키우려면 유치원이며 초등학교 때부터 OX나 단답형 지식 공부를 가르쳐서는 안 돼요. 과제를 주고 생각을 키워줘야 합니다.nbspnbsp‘너 어떻게 생각하니?’nbsp‘저는 이렇게 생각해요.’nbsp‘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선생님은 그런 생각은 못해 봤는데, 굉장하다.’nbspnbsp이렇게 정답이 없어야 창조가 나와요. 그런데 우리는 늘 정답을 만들잖아요. 사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생각,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접근해야 창조가 나옵니다. 했던 방식 그대로 하는 건 이미 다른 사람이 했다는 뜻이에요.nbsp아까 이야기를 듣다가 두 가지 느낀 게 있어서 지금 말씀드리는 겁니다. 첫 번째, 이사장님이 대한민국에서 최고가 되자고 하셨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최고가 되는 걸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가 되어봐야 아무 의미가 없어요. 두 번째, 무대 위에서 상을 타는 선생님들 얼굴을 보니 도무지 웃질 않아요. 상을 타도 웃지 않는데 수업하면서 웃겠어요?nbspnbsp▲ 뒤늦게 웃음을 띠고 있는 공로상 수상 선생님들nbsp그러니 수업을 재미있게 해야 합니다. 재미가 있어야 건강합니다. 재미있다는 말은 스트레스가 없다는 말이니까요. 스트레스를 만들고, 그걸 푼다고 또 술 마시면서 시간 버리고 돈 버리고 건강 해치고 욕 얻어먹는 건 어리석어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됩니다. 일이 없어서 노는 사람더러 보충 수업 들어가라고 하면 좋아할 거잖아요. 앉아서 놀다가 보충수업 하라는 말을 들으면 얼굴이 확 밝아지면서 재미있게 들어가야 하고, 학생들도 오늘 수업 한 시간 연장한다는 말을 들으면 ‘이야’ 하고 환호해야 해요.nbsp저는 시험을 치기 위해서 억지로 공부한 적이 별로 없어요. 고등학교 1학년 다니다가 절에 들어왔으니까요. 모든 공부는 제가 필요해서, 좋아서, 하고 싶어서 했습니다. 그러니 공부가 재미있죠. 재미가 있으면 집중이 되고, 집중이 되면 기억효과가 굉장히 높아집니다.nbspnbsp중요한 건 머리가 얼마나 좋으냐, IQ가 높으냐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걸 불교용어로 ‘수처작주’라고 해요. 어딜 가든지 자기가 주인 노릇을 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이것을 굉장히 쉽게 표현했습니다. ‘5리를 가자 하면 10리를 가주어라.’ 이런 말 기억나시죠? 원불교 다녀서 모르세요?nbspnbspnbsp성경은 종교와 관계없이 기본 상식으로 우리가 알아야 해요. ‘5리를 가자 하면 10리를 가주어라’,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옷까지 벗어주어라’,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대어주어라’ 이 세 가지가 다 을로 살지 말고 갑으로 살아라, 소극적으로 살지 말고 적극적으로 살라는 말입니다. 누가 5리를 가자고 할 때 그냥 따라가면 내가 을이 되지만, ‘내가 10리 가 줄게’라고 하면 내가 갑이 됩니다. 주기 싫은데 달라고 해서 주면 빼앗기는 것이지만, 주고 싶어서 달라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주겠다고 하면 베품이 되듯이요.”nbspnbsp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지 참석한 선생님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총 4명 선생님들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 중 마지막으로 질문한 선생님은 아이들의 상담 지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경험담을 들려주며 상담자의 기본 자세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학교 현장에서 아이들 상담을 하다 보면 개인적인 고민이나 진로, 생활상담 등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게 되지만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 그렇구나’ 이렇게 들어주고 마음을 풀어주고 공감을 해주는 게 우선적이긴 하지만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보면 아이의 미래를 개척해주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볼 때 그 아이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창의적으로 해결해 나가면 그 미래가 개척이 되는지, 아니면 옛날 방법으로 보면 사주팔자처럼 그 아이의 미래가 정해져 있는지 고민될 때가 많아요.nbspnbsp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그래, 그래’ 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아이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해주기가 정말 겁날 경우가 있어요. ‘어떻게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하는 고민이 나름대로 해소가 안 될 때가 많거든요.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nbsp“제 경우에 이런 즉문즉설을 하면 두 시간 동안 67명씩, 많을 때는 10명 정도와 대화를 나눕니다. 개중 제 이야기에 다 동의했지만 제가 이야기한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딱 질문할 때 벌써 ‘이야기해주면 뭐하나, 어차피 안 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고, 다음으로 ‘이런 강연 하면 뭐해, 어차피 안 할 건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죠. 이렇게 되면 강연을 할 수가 없어요.nbspnbsp이런 걸 욕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내가 말하면 남이 반드시 따라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인생은 다른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내가 뭔가를 해결해 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지금 이 고뇌의 원인입니다. 그는 지금 답답해서 묻는 것이고, 나는 내 능력껏 대화를 하는 것뿐입니다. 하고 안 하고는 본인의 문제예요.nbspnbsp그러니 욕심을 안 내야 해요. 부모도 자식 인생을 마음대로 못하고, 남편도 아내를 마음대로 못하고, 아내도 남편을 마음대로 못 하는데, 한번 봤을 뿐인 제가 그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건 건방져도 너무 건방진 생각입니다. 그러니 들어주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알면 아는 만큼 이야기해주고, 그냥 이렇게 하는 거예요. 저는 이야기할 때 핀잔도 팍팍 줘버리잖아요. 직업 상담사가 이렇게 하면 손님 다 떨어져요.nbspnbspnbsp그런데 저는 돈을 안 받기 때문에 눈치 볼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욕설 빼놓고는 그냥 제 생각대로 다 이야기해요. 예컨대 질문자는 ‘자기 남편이 또라이 같다’ 라고 하는데 저는 ‘얘기를 들어보니 당신이 또라이네’ 라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그 사람더러 무턱대고 또라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먼저 누구를 또라이라고 하면 제가 이야기를 듣다가 ‘당신이 또라이네요’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렇게 저는 대화할 때 자유로운 편이에요.nbspnbsp선생님이 학생들과 대화할 때 나이가 많다고 혹은 선생님이라고 이 아이를 어떻게 해주려고 생각하니까 그게 안 되면 내 능력이 부족하다고 자책하는 생각이 들거나 내가 말한 대로 안 한다고 아이가 얄미워지는 일이 생기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놓아야 해요. ‘누구의 인생에 대해서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게 상담의 가장 기본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첫째,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겁니다. 둘째, 공감해주는 거예요. 그걸로 끝이에요. 그것만 해도 고민의 7080퍼센트는 낫습니다. 그 동안은 말할 사람조차 없었으니까요.nbspnbsp만약 어떤 학생과 상담을 했는데 해결책을 모른다면 ‘그건 나도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이야기하면 돼요. 그걸 무엇 때문에 머리를 써요? 그냥 모르면 ‘나도 모르겠다’ 이러면 돼요. 그 다음에 내 경험이 있으면 이야기해 주면 됩니다. ‘나는 옛날에 이렇게 해봤더니 이런 도움이 되더라.’ 그런데 이 때도 ‘이러면 된다’ 라고 이야기하면 안 돼요. ‘내가 이랬으니까 너도 하면 된다’ 이건 위험한 생각입니다. 사람마다 상황과 기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이랬다, 나도 어릴 때는 너처럼 이러저러했는데 그러다가 이렇게 했더니 도움이 되더라’ 이렇게 이야기해주면 됩니다.nbspnbsp이건 이사장님께 부탁드려야 할 것 같은데, 학교 다니다가 술 마시고 싸우고 사고 치고 하다가 정신 차리고 공부하는 애들을 사범대에 보내야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부분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 하고 착실했던 사람이 선생님이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되고 나면 공부 안 하고 농땡이치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어요. 도무지 왜 그러는지를 모르니 선생 자격이 없습니다.nbspnbspnbsp지적인 자격만 있지 진정한 교사 자격이 없어요. 이해하려고는 하지만 경험적으로 거부 반응이 생겨요. 머리로는 이해가 되더라도 마음에서는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이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치 못하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거든요. 그러니 편안하게 듣고 그냥 내가 생각한 대로 이야기하면 돼요. ‘나도 다 맞는 건 아니지만 이러면 좋겠다.’ 이렇게요.nbsp그리고 부모를 떠나 혼자 사는 아이들은 보살펴주면 해결이 될 것 같지만 너무 이렇게 감정적으로 쉽게 접근하면 안 돼요. 특히 여자 선생님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엄마로부터도 버림을 받은 상처가 있어서 사랑을 갈구하는데 책임을 못 져주잖아요. 내 말대로 하면 책임져 주겠지만 내 말대로 안 하면 힘들다고 팽개칠 거잖아요. 내 자식도 팽개치는 세상이니까요. 그러면 이 아이들에게는 또 상처가 돼요. 그래서 쉽사리 자선을 베풀면 안 되고, 쉽사리 고치려고 해도 안 돼요. 한번 마음을 줬으면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길게 보고, 최악의 경우만 막아주는 역할을 하면 돼요.nbspnbsp‘아, 내가 좀 술 마신 게 좀 문제다’ 이렇게 자기가 자각을 하면 금방은 안 고쳐지더라도 고쳐지는 쪽으로 첫 발을 내딛습니다. 우리 인간의 뇌에는 그런 기능이 있어요. 사람의 뇌를 닮게 만드는 인공지능이 자가발전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기준이 되는 분기점이 여기예요. 그 지점을 넘어가면 이제 자동으로 업그레이드되고, 그걸 못 넘어가면 업그레이드를 계속 사람이 시켜줘야 해요.nbspnbsp그런데 우리가 흔히 사주팔자라고 하는 건 실제로는 생년월일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인공지능에 마치 프로그램을 깔듯, 엄마가 아이를 낳아 키울 때 프로그램이 깔린다는 뜻입니다. 특정한 가족의 상황에서 태어나서 주로 세 살 무렵까지 자라는 동안 심리적 바탕에 엄마의 프로그램이 깔리고,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기본형의 프로그램이 깔려요. 그래서 예부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천성은 못 고친다,’ ‘천성이 바뀌는 걸 보니 죽을 때가 다 됐나보다’ 라고 해요. 형성된 천성을 바꾸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nbspnbspnbsp천성이란 실제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에요. 생년월일시를 가지고 생성되는 게 아니고, 전생이 있어서 생성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게 워낙 잘 안 바뀌니까 중국에서는 생년월일을 가지고, 인도에서는 전생을 가지고, 다른 데서는 하느님이 조정한다는 것을 가지고 옛날 사람들이 그렇게 추론했던 거예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nbsp업이라는 것은 원래 정해진 게 아니라 이렇게 프로그램이 깔리면서 형성되는 거예요. 그렇게 기본 프로그램이 한번 깔리면 변경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주라는 말도 나오고 천성이라는 말도 나와요. 그렇다고 바뀌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그러나 쉽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바뀌는 것 같다가 또 돌아오고, 바뀌는 것 같다가 또 돌아와요. 여러분들 경험을 생각해보세요. 어머니가 점점 늙어서 70살, 80살이 되면 어릴 때 봤던 외할머니 모습과 비슷해지잖아요. 쏙 빼닮아요. 잘 관찰해보세요. nbsp콩이 싹터서 자라는 동안은 콩 모습이 없다가도 열매 맺을 때가 되면 콩이 딱 달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학교 교육 같은 것은 지적인 문제예요. 기본 기질은 말년에 이르면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그래서 ‘운명이 정해져 있다’라고들 말하는 거예요.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프로그램이 딱 깔리면 이대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사주란 말도 나오고 전생이란 말도 나오는 거예요. 이걸 바꿀 수는 있지만 쉽게는 안 바뀝니다. 이것까지 바꾸려면 한번 죽었다가 살아날 정도가 돼야 해요.nbspnbspnbsp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간 금식하시면서 한 번 죽었다가 거듭났기 때문에 하느님의 음성을 들은 거예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라’라는 성령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이 바로 업이 바뀐 거예요. 부처님은 6년 고행을 하면서 환골탈태한 거예요. 병으로 그랬든, 잡혀가서 감옥에서 죽을 뻔했든, 성인들은 다 한번 죽었다가 거듭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야 업이 바뀌는데, 여러분들은 지금 그렇게까지 수행할 생각은 없잖아요. 사실은 바꾸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아요. 화 잘 내는 걸 못 바꿔서 고민인 사람은 화낼 때마다 전기충격기로 지져버리면 10번만 해도 딱 고쳐집니다.nbspnbsp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서 바꿀 생각은 없기 때문에 못 바꾸고, ‘못 바꾼다’ 라고들 말한는 거예요. 절대로 안 바뀐다는 게 아니라, 바꿀 수는 있는데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욕심을 내면 안 돼요. 못 바꾼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해도 안 되고 뭘 하면 바뀐다고 낭만적으로 이야기해도 안 됩니다.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므로 바뀔 수는 있지만, 바뀌기는 어려워요.nbspnbsp이걸 바꾸려면 두 가지가 중요해요. 첫 번째,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지속적이 돼야 합니다. 계속 반복해야 그게 바뀌어요. 이게 천성을 바꾸는 방법이에요. 그렇다고 꼭 바꿔야 되는 건 아니에요. 예컨대 불끈불끈하는 성질이 통제가 안 된다는 경우에 내가 성질이 더러운 줄을 알면 안 바꿔도 돼요. 성질 확 냈다가도 아내한테 ‘아이고, 여보, 미안해요. 내가 성질이 좀 더러워서.’ 이렇게 사과하면 이혼 안 하고 살 수준은 돼요. 자기를 못 바꿔도 살기는 살 수 있어요.nbspnbsp이런 원리를 알아서 첫째, 조급하게 바꾸려고 들면 안 돼요. 이건 원래 잘 안 바뀌는 거예요. 그러니 조금 장기적으로 봐야 합니다. 두 번째, 의지가 굳세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자꾸 작심삼일이 되거든요.nbspnbsp그러니 아이들을 좀 느긋하게 봐줘야 해요. 이미 집에서 까르마, 즉 기본 프로그램이 깔려서 학교에 온 아이들을 내가 바꾸려고 하면 안 바뀝니다. 그 아이는 그런 성격과 그런 프로그램이 깔린 거예요.nbspnbsp그러나 어떤 프로그램이 깔린 아이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이게 제일 중요해요. 피부가 검은 아이도 행복할 수 있고, 신체장애를 가진 아이도 행복할 수 있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도 그 수준에서 행복할 권리가 있고, 공부를 못 하는 아이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부모님이 안 계신 아이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측면에서 보세요. ‘그래, 너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아이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일하면 큰 문제가 없습니다. 지금 한 반에 몇 명이에요?”nbsp“35명입니다.”nbsp“35명 중에 바꿀 아이는 크게 없어요. 그런데 꼭 한 아이 때문에 선생 하기 싫죠. ‘저 놈만 없으면 선생 할 만한데’ 라고 생각하지만 그 학생이 없어지면 또 그런 학생이 생겨요. 길거리에 ‘때려 주세요’ 라고 써놓은 두더지 게임과 똑같아요. 이걸 때리면 저기서 튀어나오고, 저길 때리면 여기서 튀어나와요. 인생을 살면서 ‘이것만 어떻게 하면 내가 살만한데’라고 하지만 그게 안 없어져요. 그게 없어지면 배우자한테, 자식한테, 부모한테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인생이란 늘 이렇게 여기저기서 두더지가 튀어나오는 가운데 사는 거예요. 아까 갈등 속에서 산다고 한 것처럼 이런 건 늘 있어요.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저 아이가 있음으로 해서 그 아이가 나머지 34명을 좋은 아이로 만들어주는 거예요. 1등 하는 아이를 기준으로 보면 35명이 모두 모자란 아이가 되지만, 35등 하는 아이를 기준으로 잡으면 앞의 34명이 다 좋은 아이예요. 그 35등 하는 아이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예요.nbspnbspnbsp그러니 그걸 고치려고 해도 안 되고, 그 아이를 내쳐서도 안 됩니다. 그런 기질을 가진 속에서도, 즉 공부를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약간 성질이 있으면 있는 대로 그 아이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선생으로서 차단을 해줘야 합니다. 이렇게 느긋하게 생각하면 화가 안 나는데, 여러분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교육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성질나서 때리거나, 야단치면서 자기 성질을 푸는 것 아니에요? 솔직하게 말해보세요.”nbsp“네.”nbsp“그렇게 스트레스를 푸는 식으로 하면 교육 효과는 안 납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수행을 좀 해야 해요. 수행이라고 해서 절을 하라는 게 아니라, 사물을 조금 폭넓게 보고 느긋하게 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특히 상담하시는 분들은 그런 자세가 더욱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들 가르치는 것을 재미있게 생각하세요.”nbsp스님이 얘기해 준 상담하는 자세가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많았는지 선생님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기뻐했습니다.nbspnbsp네 분의 질문에 모두 답변을 마치고 나니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늦게 마쳤습니다. 훈산학원 교직원들과 원불교 관계자들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명강연을 들었다며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저녁 6시 30분에 우석고등학교를 나온 스님은 스님을 뵙기 위해 찾아온 손님과 저녁식사를 한 후 서울로 출발해 10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 7시부터 평화재단에서 연이어 미팅과 회의를 가진 후 저녁 7시에는 전북 익산 솜리문화예술회관 중공연장에서 익산시민들과 함께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 스님의 하루 구독자와 함께하는 공개방송을 마련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나도 스님에게 질문을 해보고 싶다 하는 요청이 많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제 직접 스님에게 질문해 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공개방송 신청을 누르시면 됩니다. nbspnbspnbsp
2016.3.24 (오전) 경기여고 동문회 카톨릭 모임 초청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70대 어르신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아침 10시에 경기여고동문회 카톨릭 모임에서 초청한 강연에서 ‘행복’을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오후 4시에는 전주 우석고등학교 초청으로 교사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했는데요. 먼저 70대 어르신들과 함께한 카톨릭 모임 초청 강연 소식부터 전해 드립니다.nbspnbsp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서울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법당에서 예불을 함께 올린 후 아침 9시 30분에 초청 강연이 열리는 경기여고 100주년 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이 기념관 앞에 도착하자 경기여고 카톨릭 모임의 우선희 회장님이 반갑게 스님을 마중해 주었습니다. 우선희 회장님의 남편 되시는 분이 윤여준 전 장관님인데 스님과 윤 전 장관님은 한반도의 평화와 사회적인 진보를 위해 십 수 년째 활동을 함께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봄에 사모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오늘 초청 강연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nbspnbsp강당을 가득 메운 100여 명의 동문회 참석자들은 스님이 들어서자 열렬한 박수로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들이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어르신들에게 옛날 기억을 한번 떠올려 보라고 하면서 옛날보다 지금이 경제적으로 더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행복한지 질문을 던지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저는 어떤 지식적인 것을 갖고 여러분들과 얘기할 만큼 수준이 깊지 않습니다. 저는 산골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 다니다가 절에 들어왔기 때문에 세상의 교육을 많이 받지 않았습니다. 소위 신부님들은 유학도 다녀오고 하잖아요. 다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해 대화를 해보고자 합니다.nbspnbspnbsp돈이 많으면 행복하다는 말이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돈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던가요? 저도 돈 많은 사람들을 상담해 보지만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짧게만 보면 지위가 높으면 행복할 것 같은데,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만나보면 행복하다고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많은 괴로움을 갖고 있습니다.nbspnbsp다들 연세가 있으시니까 50년 전을 기억하시죠? 1960년대에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1인당 100불 정도 되었습니다. 지금은 2만 8천불까지 되었지 않습니까. 약 300배 가까이 늘었잖아요. 그런데 우리 삶이 300배 행복해졌습니까? 여러분들 할머니보다 여러분들이 300배 행복해졌습니까. 300배는 고사하고 30배 행복해졌습니까? 30배는 고사하고 3배는 행복해졌습니까?nbspnbspnbsp여러분들도 오래 사셨으니까 과연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까, 어떻게 해야 자유로워질까, 죽음 앞에서도 두렵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눠보았으면 합니다.”nbsp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대화를 연 후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3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참석자들이 모두 천주교 신자들이어서 그런지 모두 윤리 도덕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선의의 거짓말을 해도 되는지, 거짓말로 인해 가족이 고통을 당하게 되는 일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는 것인지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 등 각각에 대해 스님은 윤리 도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그 중 첫 번째 질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저는 보기에는 솔직 담백한 것 같아도 지난 77년 동안 거짓말을 참 많이 하고 자라왔어요. 거짓말이라고 하면 빨간 거짓말, 하얀 거짓말이 있다고 하잖아요. 이 거짓말을 해서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고요. 저희 옆집에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사는데 어제가 자기네들 예수 신앙 기념일이라고 해요. 그래서 저보고 같이 가자고 하기에 저는 천주교인이니까 가기가 싫었어요. 그 때 제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성당에서 특강이 있어서 못간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사실은 가기가 싫었는데 말이죠. 이럴 때 제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이 괜찮은지요?” nbsp“괜찮아요. 왜 괜찮냐 하면 베드로님께서도 하루 저녁에 세 번이나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nbsp부인했는데 그래도 성인이 되셨잖아요. 그 때 ‘나는 예수님의 제자이다’ 하고 말하고 죽는 것이 나았을까요? ‘아니다’ 라고 부정하고 살아서 이 진리를 조금 더 널리 전하는 게 나았을까요?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반드시 말할 수는 없어요.nbspnbspnbsp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첫째, 상대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말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에게 괴로움이나 손해를 끼칠 자유는 없어요. 만약 산 속에서 혼자 산다면 욕을 하든지 무슨 말을 해도 괜찮습니다. 욕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이 안 되니까요. 만약 외국 사람이 운전하는 자동차와 충돌해서 기분이 나쁠 때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 새끼, 저 새끼’ 그러면 어떨까요? 그 외국 사람한테는 욕이 안 됩니다. ‘이 새끼’ 라는 것이 욕이 아니라 내가 욕이라고 느껴야 욕이 되는 겁니다. ‘이 새끼’라는 말은 하나의 언어일 뿐입니다. 욕이라고 정해진 것이 없어요. 말일 뿐이에요. 말인데 그것을 내가 욕이라고 생각하면 욕이 되는 거예요.nbspnbsp남이 나를 욕해도 내가 욕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욕이 안 되고, 남이 나한테 욕을 안 해도 내가 욕이라고 생각해버리면 욕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는 내가 욕을 안 했는데도 욕을 했다고 시비가 일어날 때도 있고, 내가 욕을 했는데도 상대가 웃으면서 그냥 농담으로 받아들이면 아무런 문제도 안 생길 때가 있습니다. 욕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상대에게 들리느냐의 문제입니다.nbspnbsp외국에 가보면 외국의 중요한 언어가 우리말 발음으로 하면 욕이 되는 언어가 있잖아요. 반대로 우리말로는 좋은 말인데 그 나라 발음으로는 욕이 되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오해가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욕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먼저 접근을 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러면 내가 욕을 안 했는데도 상대가 나보고 욕을 했다고 하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될까요? ‘나는 욕을 안 했다’ 라고 말해야 됩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내가 미안하오’ 이렇게 얘기해야 합니다. 상대가 그렇게 들었다고 하니까 그것은 인정을 해야 합니다. ‘욕으로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라고 말한 후에 ‘그러나 저 입장에서는 그런 뜻으로 한 얘기는 아닙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앞에서 ‘죄송하다’라고 말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욕을 했기 때문에 죄송하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욕이라고 받아들이니까 일단 내가 사과부터 먼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도 해명할 기회가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먼저 말을 하고 그 다음에 ‘그러나 저의 입장에서는 그런 뜻으로 한 얘기는 아닙니다’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nbspnbsp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내일 교회에 갑시다’ 라고 얘기하면 ‘저는 천주교 신자이니까 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라고 내 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나는 가기 싫어’ 라고 화를 낼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겁니다. 상대를 시비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렇다고 표현하는 겁니다.nbspnbsp거짓말이라고 정해진 것은 본래 없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말이라는 것은 상대에게 의사를 전달하고, 남을 위로하고, 남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는 것이 원래의 성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을 통해 남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가장 근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다른 강의가 있어서 참가를 못하겠습니다’ 라고 말한 것은 거짓말이 절대적으로 있다고 생각하면 거짓말이 되는 것이지만, 그 말이 상대에게 피해를 주었나요? 아무런 피해를 안 주었잖아요. 그래서 괜찮다고 말한 겁니다.nbspnbspnbsp이 말은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케이스는 첫째, 상대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둘째, 본인한테도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 문제를 갖고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겠다 싶습니다. 즉 언어의 절대성은 없다는 것이고요. 그 다음에 상대에게 피해를 준 것 같지도 않고, 본인한테도 특별히 피해를 주지는 않았으니까 제가 느끼기에는 그 정도 말에는 너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되겠다 싶습니다.nbspnbsp그러나 이건 조심해야 합니다. 나는 그때 그때 별것 아닌 듯이 거짓말을 했는데 상대가 볼 때는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안 된다는 겁니다.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nbspnbsp예를 들어 남녀가 결혼을 했는데 상대가 묻지도 않는데 당신하고 만나기 전에 어떤 여자, 어떤 남자와 연애를 했었다고 하는 얘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어요. 그 얘기를 안 했다고 거짓말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부부 사이에서 상대가 ‘결혼하기 전에 연애해 본 적 있어요?’라고 묻는데, ‘없다’ 라고 대답하면 그것은 거짓말이 됩니다. 이 때는 ‘있다’ 라고 얘기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로 연애했냐?’ 라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연애를 했었다’라고 솔직하게 얘기해도 괜찮아요. 그것 때문에 상대가 ‘나는 너하고 못 살겠다’라고 한다면 그런 사람하고는 같이 살 필요가 없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nbspnbspnbsp이렇게 사실대로 얘기하는 게 좋기는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 앞의 경우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옛날 얘기는 서로 묻지 맙시다. 우리의 만남은 지금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고 좋으냐의 문제이지 옛날에 너가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은 옳지 않지 않느냐?’nbspnbsp그런 사실이 실제로 있었고 없었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해서 지금을 부정하거나, 그런 사실이 없는 것이 좋다고 한다면, 이 사랑 자체가 불안전한 사랑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사실은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당신이 과거에 어떤 경험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그 모든 것을 포함한 당신을 지금 나는 사랑한다.’nbsp그래서 이런 과거는 얘기를 해도 되지만, 상대의 성숙도를 봤을 때 조금 힘들어하겠다 싶으면 ‘연애 안 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보다는 ‘그런 얘기는 안 하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설령 실제로 연애를 안 했다 하더라도, 자신있게 ‘나는 안 해 봤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자꾸 정답 맞추기를 하는 것은 좋은 대화의 방식이 아닙니다.nbspnbspnbsp그런데서 거짓말의 성격을 너무 절대화시키지 마세요. 그렇다고 해서 빨간 거짓말이 있고, 하얀 거짓말이 있다고 하면서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여기면 너무 주관주의에 빠지게 돼요. 술 먹고 취한 사람들 중에 자신이 취했다고 얘기하는 사람 못 봤잖아요. 그런 것처럼 주관주의가 되어 버립니다. 결론적으로 이 케이스에 대해서는 그렇게 너무 죄의식을 안 가져도 될 것 같습니다.”nbspnbsp스님의 답변에 질문한 할머니는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어제 거짓말을 한 것이 마음에 많이 걸려 있었는데 이제 말끔히 해소된 것 같았습니다.nbspnbsp질문은 3명 밖에 안 했지만 스님은 각각의 답변 속에서 성소수자 문제, 인도에서의 계급 차별 문제, 예수님의 가르침과 당시 유대교의 신앙,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불교에서는 계율을 어떻게 보는지 등 많은 이야기들을 함께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젊었든, 늙었든, 결혼했든, 안 했든, 혼자이든, 둘이든, 아기가 있든, 없든, 신체 장애가 있든, 건강하든, 어릴 때 가난한 집에 태어났든, 성추행을 당했든, 어떤 경험을 했든, 성적 취향이 어떻게 태어났든, 피부 빛깔이 어떻든, 어느 나라에 태어났든, 지금 살아 있다면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로 문제를 삼지 말아야 합니다.nbspnbspnbsp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 우리는 그 권리를 행사해야 될 것 아니에요? 그래서 행복하셔야 해요. 윤리 도덕을 무시했던 게 아니라 그 윤리 도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던 예수님, 그 분께서 우리에게 이런 자유를 주셨잖아요. 그러니 여러분들도 자유로운 삶을 사시길 진정으로 바랍니다.nbspnbsp‘나이가 조금만 젊었으면’ 이런 얘기는 지금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지금 연세가 80이라면 ‘내 나이가 70만 되었어도’ 이런 얘기는 하지 말고, ‘옛날에는 80까지 못 살았는데, 지금 80까지 살고 있다는 것만 해도 큰 복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몸이 좀 아프면 ‘옛날 같으면 아프면 죽었는데,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살았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몸이 좀 아프고 여러 가지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이렇게 살아있는 것 자체가 복인 줄 알면 여러분들이 지금보다는 좀 더 행복할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항상 불행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항상 ‘남편이 없어서 불행하다’,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 ‘애가 말을 안 들어서 불행하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여러분들은 ‘나는 불행해야 한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불행해야 한다고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이유를 자꾸 가져다 붙여요. 그런데 남편이 없는 것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지 불행해야 할 조건이 아니에요. 이 나이가 되어서 또 남편 시중들 이유가 뭐가 있어요?nbspnbsp‘있으면 있어서 행복하다’, ‘없으면 없어서 행복하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이예요.”nbsp긍정적인 생각으로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스님의 열정적인 말씀에 모두들 환한 웃음으로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강연을 마친 후 잠깐 기념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장소가 비좁아 전체가 같이 사진을 찍지는 못하고, 삼삼오오 앞으로 나와 원하는 사람들만 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경기여고 100주년 기념관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전주로 향했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원불교 김대선 교무님의 요청으로 전주 우석고등학교에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3.22~23 부처님 열반일 기념법회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것을 기념하는 불기 2559년 열반일입니다. 스님은 열반일을 맞이해 서울 정토회관에 모인 300여 명의 대중들을 위해 ‘열반의 의미’에 대해 기념법문을 했습니다.nbspnbsp어제 새벽 1시에 울산 두북을 출발한 스님은 5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곧바로 아침 7시 30분부터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연이어 미팅과 회의를 가졌습니다. 오후 1시에 미팅과 회의를 모두 마친 후 오후에는 치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nbspnbsp오늘은 아침 7시 30분부터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이 있었습니다. 종교인 모임을 마친 후 10시부터는 서울 정토회관 1층 법당에서 부처님 열반일을 맞이해 기념법회가 열렸습니다. 법당을 가득 메운 300여 명의 대중들은 청법가와 삼배로 스님에게 법을 청했습니다.nbspnbspnbsp법상에 오른 스님은 “지난 일주일 동안 정진 잘 하셨습니까?”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대중들이 큰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하자, 스님은 “수고 많으셨어요” 라고 격려하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대중들은 지난주 부처님 출가 기념일로부터 오늘까지 8일 동안 매일 스님의 영상 법문을 듣고 300배 정진을 함께 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열반’이라는 용어가 일반인들에게는 많이 낯선 용어인데 ‘열반’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불기 2559년 음력 2월 15일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열반절입니다. 열반이라는 용어는 두 가지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첫번째 의미는 모든 고뇌가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는 ‘니르바나’, 빨리어로는 ‘닙빠나’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을 우리식 한문으로 옮겨서 표현하다보니 ‘열반’이라고 부르게 된 겁니다. 인도말을 발음을 따서 옮긴 것이기 때문에 무슨 ‘열’자인지 무슨 ‘반’자인지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 뜻을 풀이하자면, 모든 고뇌가 소멸하고 아주 고요한 상태에 있다고 해서 ‘적멸’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nbspnbsp두 번째 의미는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것을 뜻합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것은 완전한 고요함에 드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완전한 열반, 즉 ‘반열반에 드셨다’라고 표현합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는 모든 고뇌가 사라진 경지에 이르셨다고 해서 ‘열반을 증득하셨다’ 라고 말한다면, 부처님께서 돌아가실 때는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고 해서 ‘반열반에 드셨다’라고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살아있을 때도 이미 열반적정의 경지에 있으셨기 때문에 돌아가시는 것이나 살아있을 때나 아무런 차이가 없으셨어요. 우리는 어려움에 처하거나 죽음 앞에 이르면 두려움이 생기잖아요.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죽음 앞에서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으셨어요. 이미 모든 고뇌가 사라진 경지에 드셨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저녁에 잠잘 때 편안하게 쉬는 것처럼 부처님께서는 생의 마지막을 그렇게 보내셨어요.nbspnbspnbsp그런데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있으면 병이 들잖아요. 통증도 있고 밥을 안 먹으면 배도 고프고요. 또 친한 사람이 죽거나 어려움에 처하면 슬픔에 빠지지는 않더라도 약간의 슬픔은 일어날 수 있지요. 고뇌가 사라졌다고 해서 돌멩이처럼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육신을 버림으로 해서 어떤 흔들림도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서 열반에 드셨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그래서 ‘열반을 증득했다’는 것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뜻이고, ‘열반에 드셨다’는 것은 한 생을 마쳤다는 뜻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것은 기쁨을 뜻하고 죽는 것은 슬픔을 뜻하니까 열반이라는 용어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지 않나 싶지만 모두 같은 뜻으로 쓰인 겁니다.nbspnbsp부처님은 항상 고요 적정에 있었기 때문에 돌아가신다고 해서 흔들림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오실 때나 가실 때나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고 해서 ‘타타가타’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가고 옴이 여여하다라고 해서 이것을 한문으로 옮기면 ‘여래’ 라고 표현합니다. ‘오늘이 열반절이다’ 하는 말은, 세속으로 말하면 ‘부처님이 돌아가신 날이다’ 하는 뜻이고, 원래의 의미는 ‘부처님이 고요적정함에 드셨다’ 하는 뜻입니다.”nbspnbsp열반의 의미를 이해한 대중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한 해를 자세히 기록해 놓은 열반경의 내용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열반경에 드러난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스님은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nbspnbsp“여러 경전들 중에 ‘열반경’이라는 경전이 있습니다. 열반경에는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한 해가 일기처럼 기록되어 있어요. 부처님이 쿠시나라가에 도착할 때까지의 하루하루 생활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 출발점이 당시 최대의 제국인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그라하’, 즉 왕사성입니다. 왕사성 밖에 언덕이 있는데 그 언덕 이름이 ‘그리드라쿠타’예요. 우리말로 옮기면 ‘독수리봉’인데, 한문으로 옮기면 ‘영축산’이라고 불리우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설법하는 장면으로 경전이 시작됩니다. nbspnbspnbsp열반경 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 중에 하나가 500명의 유녀를 거느린 암나팔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갖고 있던 망고 동산에 부처님이 와 계신다고 하자 암나팔리가 마차를 타고 와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자 부처님께서 좋은 법문을 해주었어요. 이 법문을 듣고 암나팔리가 크게 깨달았어요. 너무 기뻐서 다음날 아침에 부처님과 제자들을 자신의 집에 식사 초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바이샬리의 리차비족 왕족들도 부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오다가 암나팔리와 마주치게 됩니다. 암나팔리는 먼저 와서 친견하고 돌아가는 길이었고, 리차비족 왕족들은 친견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암나팔리는 내일 아침 공양을 준비해야 하니까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보니 서로 부딪치게 되었어요. 진흙이 튀고 해서 옷을 다 버리게 되니까 왕족들이 화가 나서 야단을 치면서 이렇게 문답이 오갑니다.nbspnbsp“버릇없이 왜 그러느냐?”nbsp“아이고, 어르신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급한 일이 있어서 실례를 했습니다.” nbsp“뭐가 그리 급하냐?”“내일 아침에 제가 부처님을 식사 초대 했습니다.”nbsp그런데 왕족들이 생각해보니까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부처님인데 당연히 왕족들이 제일 먼저 초대하는 것이 맞잖아요. 그런데 기생이 먼저 초대를 했으니 자신들의 체면이 구겨졌다고 여긴 겁니다.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nbspnbsp“그 초대권을 우리한테 넘겨주면 어떻겠느냐?”nbsp“싫습니다.”nbspnbsp그러자 다시 묻습니다.nbspnbsp“10만금을 주겠다. 초대권을 넘겨 주겠느냐?”nbspnbsp그러나 암나팔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nbspnbsp“10만금이 아니라 이 나라를 다 준다고 해도 싫습니다.”nbsp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제자들이 가진 당당함이었습니다. 왕족들이 보기에는 도대체 무엇을 깨달았기에 몸을 팔아 돈을 버는 기생 주제에 왕족의 요청을 안 듣는 정도가 아니라 나라를 준다고 해도 싫다는 정도의 당당함이 있는 것인가 싶었던 겁니다. 이런 재미있는 스토리가 열반경 속에는 주욱 펼쳐집니다.nbspnbsp그렇게 해서 부처님께서는 쿠시나가라에 도착한 뒤 사라나무 숲으로 들어가셔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사라나무는 느티나무나 보리수처럼 옆으로 가지가 뻗는 큰 나무가 아니고, 미루나무처럼 위로 키만 크는 나무입니다. 그런 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진 나무와 나무 사이의 그늘에 자리를 깔았던 거예요. 두 그루 사이에 드리워진 그늘에 웃옷을 벗어서 네 겹으로 깔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얼굴은 서쪽, 머리는 북쪽, 다리는 남쪽을 향하게 누우신 뒤 ‘오늘 저녁에 여기서 열반에 들겠다’고 선언을 하셨어요.nbspnbsp그러자 아난존자가 너무 슬퍼서 혼자 울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부처님께서는 아난존자를 위로하는 설법을 하셨습니다.nbspnbsp“아난다여, 슬퍼하지 마라.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다. 육신은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너희 곁에 남아 있으리라.”nbsp이후 아난존자의 질문과 부처님의 답이 계속됩니다.nbsp“지금까지 우리는 늘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부처님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까?”“4대 성지를 생각하라”nbsp4대 성지는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룸비니,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신 보드가야,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법하신 사르나트,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쿠시나가라를 말합니다. nbspnbsp“우리는 늘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셨는데,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 우리는 누구를 스승으로 삼아야 합니까?”“나의 가르침인 계를 스승으로 삼아라. 계를 지니고 있으면 나와 함께 있는 것과 같고, 비록 나와 같이 있다 하더라도 계를 지키지 않으면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니라.”nbsp“우리는 늘 부처님을 의지하고 살았는데, 부처님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무엇을 의지해야 됩니까?”nbsp“사념처에 의지하라.”nbspnbsp사념처란 첫째, 관신부정, 즉 몸이라는 것은 청정한 것이 아니다. 둘째, 관수시고, 즉 느낌이라는 것은 사실 괴로움이다. 셋째, 관심무상, 즉 마음이라는 것은 늘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으로써 항상한 게 아니다. 넷째, 관법무아, 즉 모든 존재는 실아가 없다. 이렇게 네 가지를 말합니다. 이것을 관하는 것이 명상이고 위빠싸나입니다.nbspnbsp“우리는 늘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서 큰 공덕을 지었는데,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 때 우리는 어디에 공양을 올려야 큰 공덕을 지을 수 있습니까?”“네 가지를 공양하라.”nbsp네 가지는 첫째,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공양해서 배불리 먹게 하고, 둘째, 병든 자에게 약을 공양해서 병을 낫게 하고, 셋째,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며, 넷째, 청정하게 수행하는 자를 잘 외호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이 네 가지 중에 앞에 있는세 가지를 따서 만든 게 JTS의 슬로건이에요. ‘배고픈 자는 먹어야 하고, 병든 자는 치료받아야 하며,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한다’는 게 그것입니다. 굶고, 병드는 건 생존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들을 제외하고 가난을 가장 뚜렷하게 상징하는 징표가 바로 제 아이를 가르치지 못하는 거예요. 얼마나 가난하면 제 아이를 공부시키지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그게 누구의 아이든 아이들은 모두 기초교육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nbspnbspnbsp그렇듯이 남북관계가 나쁠지라도 북한 사람들이 굶어죽으면 음식을 지원해야 되고, 병들면 치료약을 보내야 되고, 아이들은 모두 초등학교까지는 공부할 수 있도록 교육교재 등을 지원해야 됩니다. 그래서 JTS를 만들어서 필리핀의 무슬림 지역이나 원주민 지역, 인도의 불가촉천민 마을처럼 가난한 곳에 지원을 하는 겁니다. 심지어 불상을 막 때려 부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한테도 지원을 해야 합니다. 불상을 때려 부순 건 어른들이지 그 아이들이 아니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막 흥분을 해서 “그놈들은 굶어죽어도 싸”라고 하던데, 폭언을 하는 그 감정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문명인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nbspnbsp그 옛날 봉건제 사회에서도 부처님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예요. 예수님은 천국에 가는 기준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과 같다”고 하셨잖아요. 가장 작은 자에 대해서 여섯 가지로 설명합니다.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것,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주는 것, 헐벗은 자에게 옷을 주는 것, 병든 자에게 약을 주는 것, 나그네 된 자를 영접하는 것, 감옥에 갇힌 자를 면회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나그네 된 자’란 요즘 말로 난민, 이주노동자를 뜻하고, ‘감옥에 갇힌 자’란 양심과 신념을 지키다가 부당하게 옥살이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솔직히 우리 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종교인이고, 그 중에 불교와 기독교가 제일 많은데, 각기 가르침대로만 산다면, 지금 이 나라가 이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무엇을 위해서 절에 다니고, 교회에 다니는지 모르겠어요.nbspnbsp부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아난존자의 질문에 하나하나 설해주시기를 마치신 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에 뵈려고 온 많은 사람들의 인사도 다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밤이 깊어지자, 부처님께서 편안하게 열반에 드시게 하려고 모두 조용히 하며 밖에서 기다리는데, 120세의 수바드라가 와서는 “나는 부처님을 만나야 되겠다. 나한테 의문이 있는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못 물어보니까 지금 꼭 물어봐야 되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난존자는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하며 수바드라와 실랑이를 하게 됐습니다. 부처님께서 “웬일이냐?”고 물어서 아난존자가 “영감 하나가 와서 죽기 살기로 뵙자고 청합니다. 제가 안 된다고 했는데도 고집을 부립니다” 라고 하니까 부처님께서 “들여보내라. 그는 나에게 법을 물으러 왔다”고 하신 뒤 수바드라에게 “무슨 일인지 얘기하시오” 라고 말합니다. 수바드라가 “누구는 이렇게 주장하고, 누구는 저렇게 주장하는데, 이 사람은 저 사람이 틀렸다고 하고, 저 사람은 이 사람이 틀렸다고 하니 어느 게 맞고 어느 게 틀렸습니까? 아니면 다 틀렸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수바드라는 자기의 질문을 하지 않고 세상의 논쟁에 대해 질문을 했던 건데,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nbspnbsp“수바드라여, 나는 그들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 마음 속에 욕심과 질투를 품고 얘기하면 그가 무슨 얘기를 하든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러니 옳으니 그르니 따질 필요가 없다. 여덟 가지 삿된 것을 버리고, 여덟 가지 바른 길을 실천하라.”nbsp그런 후 팔정도를 설해 주시고, 사성제를 설해 주셨는데, 수바드라는 그것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이 분이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되신 분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시고 열반에 드십니다.nbspnbsp“나는 집을 나와서 51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근면 성실하게 부지런히 정진하고 살았다. 그러니 너희들도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해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nbsp그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법문의 핵심은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꾸준히 근면하게 성실하게 정진해야 합니다. 된다, 안 된다에 너무 치우치지 말고, 자기가 지은 업은 태산 같은데 며칠 정진해서 다 없앨 것처럼 난리 피우지 말고, 그저 ‘이렇게 하루 사는 것만 해도 고맙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죄인을 이렇게 살아있게 해 주는 것만 해도 고맙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정진하세요. 늙었다고 한탄하지도 말고, 병 좀 들었다고 한탄하지도 말고, 재산 없다고 한탄하지도 말고, 혼자라고 한탄하지도 말고, 그저 ‘살아있는 것만 해도 참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해 나가면 누구나 다 안온의 경지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nbspnbsp이렇게 부처님 한 분의 편안함이 우리 모두의 편안함으로, 부처님 한 분의 열반이 우리 모두의 열반으로, 마치 한 알의 씨앗이 썩어서 수많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 모든 중생들에게도 부처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런 뜻으로 열반일을 기리는 것이니 그 뜻을 잘 아시고, 그 소중함을 잘 아셔서, 오늘 출가열반일 1주일 정진은 회향하더라도 부처님의 열반 당시 마지막 말씀인 부지런히 근면하고 성실하게 정진하라는 말씀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nbsp오늘은 부처님 한 분의 열반이 우리 모두의 열반으로 열린 날이라는 말씀에 모두들 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법문을 마치면서 스님은 품위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nbspnbsp“세상살이에 대해서 조금 품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유행 따라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처럼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고 그러지 말고, 돈이 좀 있어도 수수하게 살면 좋잖아요. 없는 사람이 그렇게 살면 ‘극빈’이라 말하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살면 ‘청빈’이라고 말합니다. 속에 좀 들었는 데도 이렇게 안 내세우고 목에 힘 빼고 살면 ‘겸손하다’ 라고 말하고, 그저 없는 주제에 눈치 살펴가면서 굽신거리면서 살면 ‘비굴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비굴해서는 안 되고, 당당해야 되고, 그렇다고 교만하면 안 되고 겸손해야 합니다. 늘 마음은 부자로서 풍요로운 마음을 가지되 사는 모습은 청빈하게 사세요. 그렇다고 부처님처럼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나무 밑에서 자라고는 안 할 테니까, 돈 좀 있다고 무조건 집 큰 것 사고, 차 큰 것 사고 그러지 마세요. 또 가방에 물건만 담기면 되지 몇 백 몇 천 만원짜리 명품 가방 사서 들고 다니지 말고요. 자기가 속이 허하니까 물건으로 자꾸 채우려고 하는 거예요.nbspnbspnbsp그러니 이제는 사는 품위가 달라져야 돼요. 나쁜 의미의 귀족이 아니라 좋은 의미의 귀티를 내면서 사세요. 마음을 좀 풍요롭게 가지고요. 늘 쪼들리고 비굴하고 눈치 보며 살지 말고요.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 뭐가 겁날 게 있어서 그래요? 암나팔리와 같이 그렇게 당당하게 사세요. ‘내가 비록 기생을 하더라도 인간적으로 비굴하게 살진 않는다’ 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열반일을 기해서 부처님으로부터 이런 좋은 선물을 받아 지니기 바랍니다.”nbsp부처님의 마지막 열반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늘 감동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말씀,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말씀, 마음은 풍요롭게 가지되 청빈한 삶을 살아라는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겨 봅니다.nbsp법문이 끝나자 대중들은 지난 8일 동안 계속 해온 300배 정진을 이어서 했습니다. 한 배 한 배 절을 하면서 오늘 스님이 법문해 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오롯이 새겨보았습니다.nbspnbsp열반일 기념법회를 모두 마친 후에는 실무자들과 함께 여름에 있을 동북아 역사기행, 겨울에 있을 인도 성지순례에 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또 저녁에는 불교계 관계자들이 찾아와서 스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진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 10시에 카톨릭 월례모임 초청으로 강연을 한 후 오후 4시에는 원불교 김대선 교무님의 요청으로 전주에서 초청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3.21 태화강 100리길 산책 및 농사일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복안저수지, 가뫼들계곡 등 백운산 자락에 있는 태화강 100리길 중 일부 구간을 산책한 후 탑곡 정토수련원 농토를 둘러보고 내려와 어제에 이어서 텃밭 농사 준비를 마무리 했습니다.nbspnbsp어제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함께 한 법사님들은 새벽 예불을 마치고 5시 30분에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출발했습니다. 법사님들이 모두 떠난 후 아침 해가 뜨자마자 스님은 지팡이 하나를 들고 산책길에 나섰습니다.nbspnbspnbsp먼저 뒷산에 있는 부모님 산소를 참배했습니다. 무덤 앞 비석에는 돌아가신 연도가 표기되어 있었는데 올해 1월이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3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스님은 해마다 1월에는 인도 성지순례 안내를 해야하기 때문에 어머니 제사에 한번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절을 하고 문안 인사를 올린 후 산소가 햇살을 잘 받기 위해서는 주위에 나무들을 어떻게 정비해야 할지 둘러 보았습니다.nbspnbsp이렇게 뒷산을 넘어오니 미호리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소똥 냄새가 진동하는 미호리 들녘의 봄풍경을 구경하며 시골길을 따라 한참 걸으니 앞에 아미산이 보였습니다. 스님은 아미산 중턱에 보현사라는 절이 있는데 그 절이 어렸을 때 어머님이 다니시던 절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가끔 법문에서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재일이 되면 목욕재계하고 절에 가서 정성을 기울이던 모습을 예로 들며 어떤 일을 할 때는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곤 하는데 바로 그 절을 먼 발치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미호리 마을nbsp미호리 마을을 지나 오르막길을 따라 걸으니 복안저수지 둑이 나타났습니다. 입구에는 태화강 100리길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어 지도와 함께 구간 별로 잘 안내가 되어 있었습니다. 바다와 만나는 명촌교에서부터 태화강의 최장 발원지 백운산 탑골샘까지 47.54km가 한 길로 이어진 것이 태화강 100리길이라고 합니다. 오늘 스님은 그 중에서 미호리에서 복안저수지, 가뫼들 계곡, 탑골샘에 이르는 제4구간의 7km를 걸었습니다.nbspnbsp▲ 복안저수지nbsp복안저수지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서 그런지 모처럼 수량이 아주 풍부해 보였습니다. 조금만 수위가 더 올라가면 길 위로 물이 넘칠 것만 같았습니다. 스님은 “이 정도 수량이면 올해 농사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고 하면서 흡족해 했습니다.nbspnbspnbsp콘크리트로 포장된 저수지 둑길은 저수지가 끝나는 지점까지 평탄해서 걷기에도 아주 좋았습니다. 저수지가 끝나는 지점부터는 좁은 계곡이 나타났습니다. 이 계곡을 사람들은 ‘가뫼들’ 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nbspnbsp▲ 가뫼들 계곡nbsp가뫼들 계곡도 수량이 많아서 경치가 일품이었습니다.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절로 발걸음을 경쾌하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 스님이 어릴 때 목욕을 했다고 하는 선녀탕nbsp가뫼들 계곡에 대한 안내 표지판에는 웅덩이마다 얽힌 전설 이야기로 관광 해설이 잘 되어 있다고 하는데, 스님은 “나는 그런 건 모르고 그냥 나무하러 왔던 기억 밖에 없다”고 하며 웃었습니다. 이곳까지 나무를 하러 올 정도였다고 하니 아마도 당시에는 민둥산이 대부분이었나 봅니다.nbspnbsp계곡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를 30여 분. 골짜기마다 곳곳에 봄 소식이 가득했습니다. 양지 바른 곳에는 진달래가 이미 만개한 곳이 많았고, 생강나무꽃은 곳곳에서 노란색 불빛을 발하고 있었고, 개울가에는 버들강아지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지팡이로 버들강아지를 가리키며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봄의 시작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이 버들강아지야. 설이 지나고 얼음이 성성한 개울가에 벌써 피어나기 시작하거든.”nbsp▲ 버들강아지nbsp▲ 진달래nbsp▲ 생강나무꽃nbsp계곡을 조금 벗어났나 싶었는데 다시 논이 보이고 멀리 백운산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오르막을 한 번 더 오르니 영남알프스 둘레길 구간인 내와길과 만났습니다.nbspnbsp내와길에서 백운산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니 ‘탑골’이 나왔습니다. 이 계곡 절터에 홍수로 탑이 굴러 내려와 아랫마을을 탑골이라 부르게 됐다는 데서 ‘탑골’이라는 지명을 얻었다고 합니다. 탑골 상류에는 태화강의 발원지인 탑골샘도 있습니다.nbsp또한 탑골에는 ‘탑곡 정토수련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2시간의 산행 끝에 탑곡 정토수련원에 도착한 스님은 먼저 감자가 심어진 밭을 둘러보았습니다. 북한에 씨감자를 보내기 위해 작년에 연구소에서 씨감자를 대량 주문했는데, 이번에 유엔안보리 제재로 보내지 못하게 되어 이곳 탑곡 수련원에서 실험재배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한 고랑은 씨감자로, 한 고랑은 일반 감자로, 번갈아가며 감자를 심어서 생산량을 비교해 볼 계획입니다.nbspnbsp▲ 씨감자를 심은 밭. 탑곡 정토수련원nbsp감자 밭만 대충 둘러보고 가려는데 갑자기 스님이 멈춰 서면서 외쳤습니다.nbspnbsp“저기 원추리 나물 봐라.”nbsp▲ 원추리 나물nbsp밭두렁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곳곳에 원추리 나물이 가득했습니다. 스님은 “먹는 것을 보고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가 있니?” 라고 웃으면서 나물을 캐기 시작했습니다. 이쪽 밭두렁에도 소복히 있고, 저쪽 밭두렁에도 소복히 있어서 스님은 나물을 캐는데 한참을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시나무가 가득한 밭두렁에도 원추리 나물이 소복히 있는 것을 발견한 스님은 낫으로 가시 나무까지 모두 베어내고 나물을 캤습니다.nbspnbspnbsp원추리 나물을 한 움큼 안고 탑곡 정토수련원을 내려왔습니다. 원추리 나물은 점심 식탁에 아주 맛있게 양념으로 버무려져 올라왔습니다. 야생에서 자란데다 돋아난지 얼마 안 된 새순이어서 그런지 정말 순하고 부드러웠습니다.nbspnbsp▲ 원추리 나물 무침nbspnbsp오후에는 다시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장작을 패는 일을 했습니다. 스님은 “으라찻차” 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나무를 반으로 갈랐습니다. 나무가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마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갈라진 나무들은 장작으로 쓸 수 있게 아궁이 앞에 가지런히 쌓아 두었습니다.nbspnbspnbsp▲ 장작패기nbsp이어서 어제 마무리하지 못한 텃밭 농사일을 했습니다. 음식물쓰레기와 함께 한쪽 구석에 모아두었던 거름을 퍼와서 화분 모종을 만들었습니다. 어제는 배추, 무, 상추, 당근 등 밭에 바로 심어도 잘 자라는 것을 위주로 심었다면, 오늘은 모종으로 먼저 키운 후 옮겨심으면 더 잘 자라는 것을 심기로 했습니다.nbspnbsp▲ 거름 퍼오기nbsp채로 걸러서 고운 흙을 만든 후 모두 화분에 담았습니다. 다양한 크기의 화분 수십 개가 순식간에 만들어졌습니다. nbspnbsp▲ 화분 모종 만들기nbsp화분에는 갖가지 채소 씨앗을 심었습니다. 옥수수, 완두콩, 토마토, 쥬키니, 근대, 아욱, 단호박, 얼룩이 호박, 애호박 등 심은 씨앗의 종류가 정말 다양했습니다.nbspnbsp▲ 채소 씨앗 심기nbsp스님은 같은 종류의 씨앗을 심은 화분끼리 구분을 해둔 후 물뿌리개로 듬뿍 물을 주었습니다. 마침 유수 스님도 오랜만에 찾아와서 같이 농사일을 거들어 주었습니다.nbspnbsp▲ 물주기nbsp마지막으로 작년 가을에 통일의병대회를 하기 위해 칠백의총에 갔다가 주변 공원에서 얻어 온 코스모스 씨앗을 담벼락 밑에 심었습니다. 스님은 “코스모스는 생명력이 강해서 아무렇게 심어도 잘 자란다”고 하면서 호미로 땅을 일직선으로 파고 코스모스 씨앗을 줄지어 뿌렸습니다. nbspnbsp▲ 코스모스 심기nbsp올 가을에는 담벼락 밑에 코스모스가 만발한 모습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nbsp삽과 호미, 장갑을 깨끗이 씻고 남은 씨앗은 봉인을 한 후 마당 곳곳에 듬성 듬성 보이는 잡초를 뽑았습니다. 잡초까지 말끔히 뽑고 나니 아주 개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해서 올 봄농사 준비를 잘 마쳤습니다. 지난주 월요일에 처음 농사 준비를 시작해서 서울을 왔다갔다 하는 가운데 총 4일이 걸린 셈입니다. 스님은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농사 준비를 마쳤다”고 하면서 흐뭇해 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 2시에 울산 두북을 출발해 6시에 서울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아침 7시 30분부터는 평화재단에서 연이어 미팅과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3.20 농사일 그리고 경주 남산 산책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인도·필리핀에서 잠시 귀국한 두 분의 국장님, 깨달음의장 진행을 하고 있는 법사님들과 함께 텃밭을 가꾸고 농사일을 한 후 경주 남산 자락에 위치한 통일암을 깜짝 방문해 부지 정비를 하고 있던 봉사자들을 격려했습니다.nbspnbsp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친 후 신규 법사님들이 텃밭에서 스님이 직접 키운 원추리 나물과 취나물, 돌미나리를 뽑아 왔습니다. 깨끗하게 씻어서 약간의 간을 치니 아주 먹음직스런 나물 반찬이 만들어졌습니다.nbspnbsp▲ 원추리 나물nbsp▲ 나물을 씻고 있는 모습nbsp▲ 텃밭에서 뽑아온 나물 반찬nbsp나물 반찬으로 맛있게 아침 식사를 한 후 스님이 필리핀 민다나오 원주민 마을에서 가져온 커피를 우려내어 주었습니다. 신규 법사님들은 “스님, 오늘 바리스타로 데뷔하셨네요” 라고 하면서 스님이 타 준 커피를 맛있게 마셨습니다. 필리핀 민다나오 고산지대에 위치한 알라원 마을에서는 원주민들이 커피를 재배하는데 이번에 필리핀JTS에서 원주민들의 소득 증진을 위해 커피를 많이 구매해 주었습니다. 법사님들은 스님 덕분에 알라원 커피를 맛보았다며 모두들 기뻐했습니다.nbspnbsp▲ 민다나오에서 가져온 커피를 우려내고 있는 스님nbspnbsp또 스님은 오랜만에 인도와 필리핀에서 두 분의 국장님이 온 것을 환영하며 지난 가을에 스님이 직접 딴 감을 꺼내 주었습니다. 겨울 동안 잘 익어서 단맛이 가득한 홍시가 되어 있었습니다.nbspnbsp▲ 홍시nbsp이렇게 시골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법사님들과 개울에 가서 반듯한 돌들을 주워 왔습니다. 그리고 마당에 일구어놓은 텃밭에 경계를 만들기 위해 벽돌을 나란히 세우는 일을 지난번에 마치지 못했는데, 드디어 오늘 완성시켰습니다. 스님은 벽돌이 일직선이 되는지 여러 차례 확인을 해가며 아침부터 굵은 땀을 흘렸습니다.nbspnbsp▲ 고소를 심은 밭nbsp▲ 감자와 상추를 심은 밭nbsp마당 곳곳에서는 봄이 오는 소식이 가득했습니다. 우물 앞에는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는가 하면, 담벼락 밑에는 봄의 시작을 알린다고 하는 산수유꽃이 노랗게 모습을 드러내었고, 텃밭 어귀에는 진달래가 분홍색 꽃망울을 막 터뜨리려 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매화꽃nbspnbsp▲ 산수유꽃nbsp▲ 진달래 꽃봉오리nbsp한편, 모두가 마당 곳곳에서 땀흘려 일하고 있는 사이 앞산 자락에 쑥을 뜯으러 갔던 자광 법사님이 양은 소쿠리에 쑥을 소복이 담아 나타났습니다. 쑥내음을 한껏 맡고선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저녁에는 쑥국을 끓여먹자”고 한마디씩 합니다. nbspnbspnbsp▲ 쑥을 뜯어 온 자광법사님nbsp이렇게 오전 일을 모두 마치고 11시가 되어 경주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등산하면서 간식으로 챙겨 먹기 위해 삶은 감자를 락앤락 통에 두둑히 넣어 가방에 챙겼습니다. nbspnbsp경주 남산 자락에는 통일암이 있는데, 오늘 대구, 부산, 마산에서 10여 명의 봉사자들이 와서 통일암 주위의 부지 정리를 한다고 합니다. 수고하는 봉사자들을 격려 방문하고자 길을 나섰는데, 간 김에 남산 등산을 겸하기로 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오늘은 용장골로 올라가서 이영재를 지나 통일암으로 내려가자”며 용장골로 차를 향하게 했습니다. 스님은 이 코스가 남산을 넘어가는 최단 코스라고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 용장골을 오르기 시작하는 스님 일행nbsp산길로 접어든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활짝 핀 진달래꽃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법사님들에게 “진달래꽃 핀 것 좀 봐라” 하면서 어린 아이 마냥 해맑은 미소를 보였습니다.nbspnbspnbsp▲ 경주 남산에 핀 진달래꽃nbsp특히 인도와 필리핀에 파견되어 일하다가 1년만에 한국을 찾은 보광 법사님과 안병주 국장님은 오랜만에 고국의 자연을 느끼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nbspnbsp한참을 올라가니 저 멀리 산 꼭대기에 용장사 삼층석탑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멀리서나마 먼저 삼배를 드렸습니다.nbspnbsp▲ 용장사 삼층석탑nbsp용장사 삼층석탑은 해발 400미터의 바위산 전체를 기단으로 삼아서 세워졌기에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계곡에서 올려다보니 자연과 탑이 일체가 되어 있어 하늘을 배경으로 부처님 세계에 다다른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맑고 깨끗한 부처님 세계를 동경했던 신라인들의 신앙심과 정열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습니다.nbspnbspnbsp가파른 산길을 아주 빠른 걸음으로 앞장 서서 오르던 스님이 법사님들에게 웃으며 물었습니다. “내가 너희들보다 앞장서서 이렇게 산을 오를 수 있는 날이 이제 몇 년 남았을까?” 법사님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앞으로 10년은 가능할 것 같은데요.” 라고 하자 스님이 고개를 흔들며 답했습니다. “한 3년 정도 밖에 안 남았을거야.”nbspnbsp스님도 이제 세월의 무게를 느끼나 봅니다. 하루 농사일을 하고 나면 “손발이 저리다”고 하고,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오르고 나면 “숨이 차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람쥐처럼 산을 휘젓고 다니는 스님의 모습을 앞으로 3년 밖에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살짝 슬퍼졌습니다. nbspnbsp어찌나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올랐는지 용장골에서 이영재까지 2.1km의 산길을 40분 만에 올랐습니다. 스님도 시계를 보더니 “이렇게 빨리 올라와 본 건 오늘이 처음인 것 같다” 며 가쁜 숨을 몰아 쉬었습니다.nbspnbsp이영재를 지나 내리막길로 접어들 무렵 드디어 가방 속에 있던 삶은 감자를 꺼내어 먹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토실토실한 감자를 한 입 물으니 허기진 배가 금새 불룩해 지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nbsp지암골로 내려와 12시 15분 쯤에 드디어 통일암에 도착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통일암 주변 부지를 정비하고 있던 거사님들은 마침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스님이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무척 반가워 했습니다.nbspnbspnbsp▲ 통일암nbsp스님은 “격려 방문 왔어요” 라며 거사님들 모두에게 악수를 건냈습니다. 또 경주 시내에서 사온 황남빵과 삶은 감자, 그리고 안병주 국장님이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가져온 망고 말린 것도 함께 전해주었습니다.nbspnbsp통일암 부지는 매년 봄과 가을에 정토불교대학생들이 경주 남산 순례를 할 때나 통일의병대회를 할 때 전체 집결 장소로 사용되는 곳입니다. 봉사자들은 이곳에서 대중 행사를 할 때 불편함이 없도록 소나무의 아래쪽 잔가지 치는 일을 오전 내내 했다고 합니다. 스님은 말끔하게 정비된 공간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스님도 긴 톱을 들고 잔가지들을 쳐보았습니다.nbspnbspnbsp그런 후 스님은 이곳 통일암 부지 전체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 주위를 한바퀴 둘러보았습니다. 곳곳에 지난번에 측량한 붉은 말뚝이 박혀 있었습니다. 앞에 토함산이 보이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공간도 넉넉히 있어서 스님은 “내가 여기에 머물면서 농사를 지을까?” 하며 이곳을 만족스러워 했습니다. 또 한쪽으로는 계곡이 있어서 낮은 폭포가 흐르고 있어 운치를 더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본 후 봄에 있을 경주남산순례와 통일의병대회 때 스님이 법문할 자리를 선정하고, 그곳에 평상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평상이 수평이 되도록 각 기둥마다 돌을 박은 후 스님이 그 위에 올라가 이곳에서 전체 대중이 잘 보이는지를 점검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하루 종일 고생한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봉사자들은 이렇게 격려 방문까지 해준 스님에게 무척 고마워하면서 활짝 웃었습니다.nbspnbsp▲ 통일암 주변 정비를 도맡아 해준 거사님들과 함께nbsp다시 두북으로 돌아와서는 농사일을 계속 했습니다. 오전에 경계석을 세워서 아주 깔끔한 모양으로 텃밭을 만든 스님은 이제 본격적으로 상추, 배추, 무, 당근, 고소를 심었습니다.nbspnbsp▲ 당근을 심기 위해 고랑을 만들고 있는 스님nbsp먼저 배추, 무, 당근을 심는 곳에는 고랑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고랑을 만들지 않은 나머지 곳에는 상추와 고소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고추와 옥수수는 모종을 가져와 심을 예정인데, 그 자리는 씨를 뿌리지 않고 그냥 비워 두었습니다. nbspnbspnbspnbsp▲ 배추, 무, 고소 등을 곳곳에 심고 있는 모습nbsp씨뿌리기까지 다 마치고 나니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스님은 해가 다 질 때까지 마당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잡초를 뽑았습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일을 찾아 하고 있는 스님의 모습을 보니 ‘정말로 농사일을 좋아하시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저녁 6시에는 멀리서 손님이 찾아와 스님을 뵙고 갔습니다. 손님을 보낸 후 저녁 8시에 법사님들과 함께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면서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은 “오늘 농사일을 그렇게 많이 한 것도 아닌데 손이 퉁퉁 부었다”며 손을 오무렸다 폈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여러분들이 수고한 덕분에 오늘 텃밭 정비를 거의 다 마쳤다”고 하면서 법사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오늘 씨를 잘 뿌려 놓았으니 이제 비와 바람, 햇볕, 흙이 싱싱한 채소로 키워줄 것입니다. 나중에 잘 자란 각종 채소들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드릴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내일도 스님은 농사일을 계속 할 예정입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3.19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입학 워크샵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입학워크샵에서 ‘진정한 성공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입학 특강을 했습니다.nbspnbsp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휴전선이 바라다보이는 경기도 파주 민족화해센터에서는 어제부터 1박2일 동안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입학워크샵이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2일째 날 오전 프로그램으로 법륜 스님의 입학 특강이 있었습니다.nbspnbsp▲ 일출nbsp아침 7시에 서울 정토회관에서 경기도 파주로 출발했는데, 한강 위로 아침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스님은 이동하는 차 안에서 계속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nbsp8시에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입학생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한 후 8시 50분부터 ‘진정한 성공은 무엇인가’ 라는 주제로 입학 특강이 있었습니다. 입학생들은 의사, 변호사, 시민단체 대표, 교사, 언론인, 기업인 등 각기 다양했는데 우리 사회 곳곳에서 오피니언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입학생 35명은 스님이 무대 위에 자리하자 뜨거운 박수갈채로 환영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입학 워크샵nbsp스님은 어제밤 청주에서 통일 강연을 마치고 자정이 넘어 서울에 도착했다며 이곳 입학 워크샵에 바로 와서 인사를 나눴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양해를 구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자며 일제시대 때 살았던 한 사람의 사례를 예로 들었습니다. nbspnbspnbsp“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뤘을 때 그것을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사업가가 돈을 벌면,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따면, 고시에 합격해서 변호사나 판사가 되면, 정치인이 시의원이나 시장이나 국회의원이 되면, 우리는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게 정말 성공입니까? 정말 그럴까요?nbspnbspnbsp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부터 한 100년 전 일제시대에 태어난 한 아이가 있습니다.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소학교에 다녔는데 제법 공부를 잘 했어요. 그래서 부모가 형편이 어려운데도 뒷바라지를 해서 아이는 지방에 있는 좋은 중학교에 가게 됐고, 또 거기서 공부를 제일 잘 하니까 서울에 있는 좋은 고등학교를 가게 됐고, 또 거기서도 공부를 잘해서 경성제대 법학부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졸업하기 전에 사법고시에 패스해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검사로 부임을 하게 됐습니다. 시골에서는 검사와 군수를 ‘영감님’이라고 부르는데, 나이 24살에 벌써 ‘검사영감’이 된 거예요. 그는 10년도 안 지나서 지방검찰청의 검사장이 됐습니다. 검사장이라면 굉장한 권력이 주어지는 자리이지요. 그는 30대 초반에 소위 출세를 한 겁니다. 대성공을 한 거지요. 그렇게 해서 자녀도 낳고, 부모도 잘 모시면서 집안을 살렸는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까 해방이 된 겁니다.nbspnbsp해방이 되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친일매국노라고 해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게 되겠지요. 남한에서는 친일세력을 제대로 척결하지 못 했지만 북한 같았으면 그 사람은 벌써 재산이 몰수되고, 수용소에 끌려가서 강제노역을 당하는 등 고통을 겪었을 겁니다. 그 집 아이들도 하루아침에 거지가 됐겠지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 중 일부는 북한의 탄압을 피해서 nbsp6.25전쟁을 틈타 남쪽으로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일제시대에 부유하게 살다가 어느 날 공산당이 와서는 아버지 잡아가고, 재산을 몰수당하니까 공산당에 대한 증오심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겠지요. 그래서 북한에서 지주의 아들, 또는 친일후손으로 살다가 6.25전쟁 당시 남쪽으로 피난 내려와서 정착한 사람들이 북한을 증오하는 소위 극우세력의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면 다 양면성이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 개인적 입장에서만 보면 그 원한이 뼈에 사무쳤을 거예요.nbspnbspnbsp그래서 역사를 이해하는 것과 개인을 이해하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개인으로 보면 대성공의 인생을 살았는데, 역사적 눈으로 봤을 때는 대실패의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제까지 성공이었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까 실패가 된 거예요. 그것은 역사적으로 단죄되는 일이니까 사업하다가 돈 좀 잃은 정도의 실패가 아니잖아요. 그 후손까지도 고개를 들고 살기 어려울 정도의 대실패란 말이에요.nbspnbsp그런데 그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지도 않았고,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지도 않았고, 성추행하거나 성폭행도 안 했고, 남을 속여서 사기친 적도 없고, 욕설한 적도 없고, 술 먹고 취해서 행패부린 것도 없잖아요. 만약 그 사람이 불교인이라면 그는 계율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고, 따라서 윤리, 도덕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오히려 성실하게 살면서 자기 직업에 최선을 다했고, 가정 잘 돌보면서 살았는데, 왜 그 사람의 인생이 실패하게 되는 걸까요? 그 이유를 알지 못해서 기독교인들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안 믿어서 벌 받았다’, 불교에서는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과보를 받았다’, 도교나 유교에서 보면 ‘사주팔자가 나빠서 그렇다. 사주를 보니까 초년에 성공하다가 노년이 안 좋고, 관재수도 있다고 나온다’ 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nbspnbspnbsp아무 죄도 짓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온 그 사람의 인생을 대실패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우리는 사회적, 역사적 존재로서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은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우리는 개인으로 살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우리는 개별적 존재가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내가 공동체의 일원이다. 사회적, 역사적 존재다’ 하는 것을 망각하고 삽니다. 그걸 망각하고 살다보면 어느 날 우리는 위에서 말한 사람과 같이 벼락 맞는 일, 뜻하지 않은 일, 예측 불가능한 일을 맞게 되는 겁니다. 그 사람과 같은 일은 우리의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북한의 최고지도부나 그 관계되는 사람이나 자녀들은 북한에서 제일 좋은 계급으로 살고 있는데, 지금 북한의 체제가 약간 불안정하잖습니까. 그래서 만약 북한체제가 붕괴라도 된다면 그 사람들이 가장 나쁜 상황을 맞게 되겠지요.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가 사회적, 역사적 존재라서 그렇습니다.nbspnbspnbsp일제시대 때 개인들에게 있어서 성공이란, 농부는 농사 잘 되는 것, 장사꾼은 장사 잘 되는 것, 사업가는 사업 확장하는 것, 선생님은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 학생은 공부 잘 하는 것이 되겠지요. 그런데 직업이나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삼천만 민중 전체가 바라는 일, 삼천만 전체에게 이익이 되는 일은 뭐였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나라의 독립입니다. 우리 삼천만 민족 전체가 일본이라는 이민족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압박을 받으며 살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일부는 그것을 통해서 이익을 보기도 했겠지만 일본의 식민지라는 조건은 우리 공동체의 이익을 일본 제국주의가 빼앗아 갔기 때문에 우리 공동체 전체가 손해를 보는 시스템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나라의 독립은 그 자체가 삼천만 국민 전체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nbspnbsp일제 강점기 때 성실히 살아서 검사가 된 사람이 해방 후 친일매국노로 치부된 예는 무엇이 진정한 성공인지, 우리가 시대적 과제를 인식하고 있느냐의 여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은 다소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한편으론 스님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점점 강연에 집중해 들어갔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이 시대적 과제였는데,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이 시대적 과제인지 질문을 던지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nbspnbsp“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 민족 전체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과제는 뭘까요? 통일입니다. 통일이 우리의 시대적 과제입니다.nbspnbspnbsp지금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고도성장기가 끝났고 저성장기로 접어들었습니다. 더 이상 고도성장은 어렵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걸 막아야 합니다. 올해 국민들의 실질소득이 줄어든 거 알아요? 명목상 GDP는 2.6 성장했다고 합니다. 원래 계획은 3.8였는데 2.6 성장했고, 재고분이 1.1라니까 실질적으로는 1.5 성장한 거죠. 그런데 환율이 인상되면서 달러로 표시된 GNI가 28,000달러 대에서 27,000달러 대로 내려앉았습니다. 그런데 재벌은 10 이상 성장했으니 저소득층의 소득이 고소득층으로 더 쏠려간 것입니다. 국민들이 먹고살 만한데도 ‘어렵다’고 하는 건 이렇게 실제 소득이 줄었기 때문입니다.nbspnbsp이걸 해결하자는 것이 ‘경제민주화’입니다. 경제민주화는 첫째, 경쟁이 공정해야 된다는 겁니다. 지금 경쟁이 너무 불공정하니까 흙수저, 금수저 얘기를 하는 거잖아요. 둘째, 경쟁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회보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회보장은 좁은 의미의 복지이고, 큰 의미의 복지는 정치, 경제적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서유럽이나 북유럽에서는 이 두 가지가 함께 잘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복지사회’라고 하는 겁니다.nbspnbsp박근혜 대통령도 지금 경제를 성장시키겠다고는 하는데, 통계를 보면 2.5 내지 2에 그칠 겁니다. 이런 한국의 저성장은 비단 대통령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그건 우리 사회의 성장 동력이 소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저성장의 시대에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서 분배구조를 조정하여 더 이상 서민들이 피해를 안 입도록 막아줘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국민들이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겁니다. 사회현상적으로 봤을 때 이런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못 먹고 사는 절대빈곤의 사회에서는 그 분노가 혁명적으로 일어나는데, 먹고 살만한 발전된 나라에서는 그 분노가 극우적으로 기울게 됩니다. nbspnbsp우리가 계속 성장에 목매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성장을 조금 더 원한다면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선발주자를 뛰어넘는 창조력을 키우는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경제가 모방시스템이다 보니까 창조적이지 못하잖아요. 창조력을 키우려면 교육부터 시작해서 사회시스템이 완전히 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는 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두 번째, 좀 손쉬운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양적 확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분단은 우리 역사의 질곡이었지만 남한의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기회예요. 예전에 미국이 동부에서 유럽을 모방하다가 한계에 부딪쳤을 때 서부 개척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서 활력을 찾았듯이 북한개발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에 북한의 자원과 노동력이 결합하게 된다면 말이에요.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도 벌써 인건비가 비싸져서 제조업 등은 모두 인도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북한이 제조업 기지가 되지 말란 법도 없지요. nbspnbsp그런데서 우리 개인의 인생을 위해서든 우리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든 이 시대의 과제는 국내적으로는 ‘복지사회 만들기’이고, 민족 전체로는 ‘통일’입니다.nbspnbspnbsp복지와 통일은 별개의 모순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복지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통일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면서 성장을 도모해야 되고, 또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도 남한을 복지사회로 만들어야 돼요. 남한 사회의 민주주의가 더 발전돼 있고, 복지가 더 실현돼 있으면 북한 주민들이 볼 때 남한이 좋아 보이니까 ‘같이 살지 남북이 따로 살 이유가 뭐냐?’ 라고 생각할 거예요.”nbspnbsp복지사회를 만드는 일과 통일을 이루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고 함께해 나가면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정치지도자들이 이런 국가적 목표와 비전을 좀 명확하게 가져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지금 우리가 개인적 성공에만 매몰되어서 공동체의 변화와 위기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며 얼마전 논란이 되었던 ‘8월15일 건국절 추진 논란’을 예로 들었습니다. nbspnbspnbsp“얼마 전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정해서 기념하자는 문제로 논란이 있었는데, 그건 사실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8월 15일이 건국절이 되면 친일세력은 더 이상 친일세력이 아니라 자동으로 건국공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더 이상 대한민국의 건국을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 때를 그 연원으로 하지 못 하게 되는 거죠. 1948년 8월 15일은 건국절이 아니라 정부수립일입니다. 그날을 건국절로 하게 되면 대한민국 건국 이전에 했던 독립운동은 대한민국과 별 관계가 없는 역사가 됩니다.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정부를 구성한 사람들 대부분은 친일 기술관료들이었는데, 건국절을 8월 15일로 공인하게 되면 이 사람들은 다 건국공신이 됩니다.nbspnbspnbsp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모두 개인적 성공에만 정신이 팔려서 우리가 사는 이 공동체가 어떻게 서서히 변해가고 있는지, 공동체를 둘러싼 주변 강국들은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 모르고 있어요. 그러다가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대한제국 말기처럼 돼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조선조 말 때 우리 선조들은 세상이 변하는 것도 모르고, 왜 그렇게 바보 같았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을 경험하고 보니 ‘우리도 지금 눈 번히 뜨고 당하고 있는데, 그분들이라고 별 수 있었겠나?’ 싶습니다.nbspnbspnbsp평화리더십아카데미의 설립 취지는 국민의 각성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주권자인 국민이 각성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걸 잘 아시고, 바쁘시더라도 강의 빼먹지 말고 잘 나오셔서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국민 각성이 평화리더십아카데미의 설립 취지라는 말씀에 모두 큰 박수를 보내며 공감을 표했습니다.nbspnbspnbsp앞으로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입학생들은 오늘부터 6월 9일 수료식 때까지 12주 동안 역사 인식, 정의, 경제, 리더십, 정치, 문화, 헌법, 과학, 국제, 사회통합 등 각 분야의 저명한 강사들로부터 수업을 듣고 토론의 장을 가질 예정입니다. 12번의 강의가 이뤄지는 동안 오늘 스님이 강조한 시대적 과제인 ‘복지사회’와 ‘통일한국’이 중요한 화두가 될 것입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자 모두들 큰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받자 개근상 하자 통일” 정말로 모든 분들이 수료식날 개근상을 받으시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민족화해센터를 나온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파주에서 자유로에 접어들 때 잠시나마 철책선 너머로 임진강과 북한 땅이 보였습니다. 분단 70년이 넘어가도록 아직도 철책선을 걷어내지 못하고 전쟁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게만 다가왔습니다. 스님이 늘 강조하듯 통일 한국은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엄청난 꿈과 희망을 가져다 줄텐데 말이죠.nbspnbsp스님은 아침 8시부터 진행되고 있던 정토회 결사행자 회의에 오후 1시부터 결합해서 함께 했습니다. 오후 5시에 결사행자 회의를 마친 후 곧바로 울산 두북으로 향해 밤 9시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깨달음의장을 진행하고 있는 신규 법사님들, 인도·필리핀에 파견된 두 분 국장님들이 귀국해서 함께 울산 두북에서 농사일을 할 예정입니다. 아침에는 텃밭 가꾸는 일을 하고, 점심 때는 경주 통일암 주위를 대구경북 거사님들이 정비하는 일을 하는 데 그곳에 잠시 방문해 함께 일을 한 후 간 김에 남산도 함께 둘러보고 내려올 예정입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3.18 청주 즉문즉설 강연
nbsp저녁 7시부터 청주 CJB미디어센터에서는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청주 시민들을 위한 강연이 열렸습니다. 앞서 통일에 관한 질문 내용과 법륜 스님의 답변을 전해드렸는데요.nbspnbsp▲ 청주 CJB미디어센터nbsp이어서 개인 고민에 대한 질문과 답변도 계속 있었습니다. 먼저 스님은 강연의 취지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의 주제는 통일이지만 그래도 ‘법륜 스님’ 하면 인생 상담의 이미지가 크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반반씩 하려고 해요. 개인 고민도 받아주면서 통일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고민인 인생 문제에도 도움이 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변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두 가지 목표를 갖고 대화를 시작하겠습니다.”nbspnbsp스님은 한 번은 통일 질문, 한 번은 개인 질문 하는 식으로 번갈아가며 답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여러 질문 중에서 바람피우는 모습이 아내에게 발각되어 이혼 위기에 처한 남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비록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가정만큼은 지키고 싶어하는 남성 분의 하소연에 스님은 지혜로운 답변을 들려주어 참석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었습니다.nbspnbspnbsp“제가 바람을 피우다가 모텔에서 나오는 모습을 아내에게 카메라로 찍혔습니다. 그 뒤로 저 혼자 술도 많이 마시고, 자학도 많이 하고, 절에 가서 기도도 하고, 108배도 지금 137일째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절을 하다보니 미운 감정이 올라옵니다. ‘평생 동안 잘해주다가 그거 한 건이 걸렸을 뿐인데, 그 한 번을 용서해 주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마음에 가슴이 아픕니다. 30년을 같이 살아주었는데 재산 때문에 이러는 건가 싶어서 ‘가져갈 것 다 가져가라’ 했습니다. 어제 223일 만에 처음으로 아내와 통화를 했습니다. 27살, 28살 딸이 있고, 22살 아들이 있고, 막둥이가 고1인데 아이들이 너무 마음에 걸립니다. 그냥 이혼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가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nbspnbsp그리고 이렇게 가정에 문제가 있어서 작년 3월경에 점을 봤는데, 점쟁이가 ‘사장님은 카메라에 찍힐 겁니다. 그리고 10월경에 날아오는 문서를 받게 될 겁니다. 조심하세요’ 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조심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이거 참 요지경인데, 이런 일치도 있나 싶게 점쟁이의 예언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 하늘에서 이런 벌도 주는구나’ 했거든요. 지금은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바람 피우다가 걸려서 이혼소송을 당했습니다. 이혼소송은 지금 진행 중입니다. 재판을 두 번 했고 어제가 세 번째 재판인데 제가 법정에 안 갔습니다.”nbsp“왜요?”nbsp“‘당신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안 갔습니다. 저는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았어요. 저쪽에서 원하는 대로 다 해 주려고 합니다.”nbsp“질문자는 뭘 원해요?”nbspnbsp“이혼을 안 하길 원합니다.”nbsp“부인은 뭘 원해요?”nbsp“이혼을 원하는 것 같아요.”nbsp“그럼 재산을 절반으로 갈라서 주면 되잖아요.”nbsp“저는 ‘원하는 대로 다 가져가라’ 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마음이 좀 아픕니다.”nbspnbsp“그러면 부인이 이혼 안 하겠다고 나올까 싶어서 그랬지요?”nbsp“예, 솔직히 그랬습니다.”nbspnbsp“질문자가 꼼수를 부렸네요. 그렇게 꼼수 부리다가 당합니다. 재산도 다 가져가고, 이혼도 해 버릴 수가 있어요.”nbspnbsp“그렇겠지요. 그래도 줘야지요. 뭐.”nbsp“저처럼 한 번도 결혼 안 해 보고 혼자 사는 사람도 있는데, 질문자는 결혼도 해 보고 아이도 낳아 키워 봤잖아요. 그러니 저 같은 사람을 생각하면 앞으로 혼자 사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nbspnbsp“그런데 스님, 도리어 혼자 살아왔다면 습관이 박혀서 수월했을 건데, 저는 아이들과 같이 살아봤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게 더 힘든 것 같습니다. 남들은 혼자 사는 게 편하다고 하던데 저는 상당히 어려운 것 같아요.”nbsp“객관적으로 봤을 때 결혼도 한번 못 해 본 사람하고, 결혼 한 번 해서 잘 살다가 그만 둔 사람 중에 누가 더 조건이 나아요?”nbsp“제가 좀 더 좋은 조건인 것 같습니다.”nbspnbsp“그런데 왜 힘들어요? 한 번도 안 해 본 저도 이렇게 싱글싱글 웃으면서 사는데요. 제가 볼 때는 별일 아니에요. 질문자는 지금 선택의 여지가 많잖아요. 다 넘겨주고 혼자 자유롭게 살든지요. 스님도 혼자 사니까요. 아니면 이혼은 했어도 전 부인한테 좋은 감정이 남아있다면 가끔 연락을 해서 연애를 하자고 하든지요. 결혼하자고 하지는 말고요. 아니면 또 다른 그 여자와 자유롭게 연애하든지요. 이혼했으니까 더 이상 부인 눈치 안 봐도 되잖아요. 아니면 부인이 마음을 바꿔서 ‘다시 집으로 오너라’ 할 수도 있으니까 다시 가서 살든지요. 길은 여러 가지인데 뭐가 걱정이에요?”nbsp“아이들의 결혼도 앞으로 남아있는데 울타리라는 게 필요하잖습니까?”nbsp“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어요. 질문자가 재혼을 해서 산다면 몰라도 혼자 있으면 아이들이 결혼할 때만 가서 부인과 함께 쇼윈도우 부부 역할을 하면 됩니다. 그런 건 큰문제가 안 됩니다.nbspnbsp그런데 부인이 질문자한테 독하게 하는 건 부인이 질문자를 너무 믿었기 때문입니다. 부인이 평소에 질문자를 안 믿고 의심을 자주 했다면 이렇게까지 충격을 안 받았을 겁니다. 부인이 너무 질문자만 쳐다보고 살았기 때문에 충격이 너무 커서 지금 독하게 나오는 거예요.nbspnbsp그리고 사람마다 다 성격이 다르거든요. 여자분들 중에는 ‘다른 여자랑 살림을 차린 것도 아니고, 밖에 자식을 낳아둔 것도 아니고, 그냥 한번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니까 바가지만 좀 긁고 봐주자’ 하는 사람도 있고, 반면에 ‘나를 두고 딴 여자를 봐? 나는 혼자 살면 혼자 살았지 바람피운 인간과는 절대로 같이 살 수가 없다’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사람마다 다 가치관이 다르니까요. 지금 질문자는 ‘내가 평생 돈 벌어서 다 보살펴주고 그랬는데, 한 번 실수한 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가혹할 수가 있느냐’ 하며 억울해 하는 것 같아요. 자기 잘못은 하나도 생각 안 하고 말이에요. 예를 들어 남의 뺨을 다섯 대나 때려놓고 항의를 받으니까 ‘미안하다’ 하고 한 번 사과를 했는데, 상대가 더 화를 낸다고 자기도 화를 내면서 ‘내가 미안하다고 그랬는데 왜 너는 계속 이렇게 항의를 하느냐?’ 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nbspnbsp그러니까 질문자는 ‘아내에게 그것이 참 큰 충격이었구나. 나는 안 들키면 그만이고, 설사 들킨다고 해도 작은 문제겠지 하면서 가볍게 생각했는데, 부인한테는 큰 충격이었구나. 나는 돈 잘 벌어주는 게 중요한 줄 알았더니 아내는 그런 것보다는 자기만을 쳐다보기를 더 원하는 여자였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nbspnbsp그런데 질문자는 왜 그런 여자와 결혼을 했어요? 남자가 바람을 피워도 바가지만 좀 긁다가 그만두는 여자를 사귀지 그랬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이번 사건 이전에는 부인을 좋아했어요?”nbsp“그냥저냥 살았던 것 같습니다.”nbsp“그냥저냥 한데다가 이렇게까지 난리 피우는 여자랑 굳이 살려는 이유가 뭐예요? 그냥저냥 한다고 질문자가 먼저 이혼하자고 했다면 아이들한테 참 체면이 안 섰을 텐데, 이렇게 부인이 난리를 피우니까 오히려 질문자는 나중에 아이들한테 할 말이 있잖아요. ‘물론 내가 잘못은 했지만 너희 엄마가 저렇게까지 하니까 내가 무슨 방법이 있겠냐? 내가 어떻게 하겠냐?’ 하고 얘기하면 되지요. 오히려 마누라가 극성을 피울수록 질문자한테는 유리하네요.nbspnbspnbsp그러면 아이들한테 체면도 서잖아요. 아이들도 ‘아빠가 잘못했다’고 하다가도 엄마가 너무 극성을 부리면 나중에 ‘아무리 아빠가 잘못했지만 엄마도 너무 한다’ 라고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부인이 극성을 부리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판사도 너무 그렇게 극성을 부리는 사람을 보면 판결에 반영을 합니다. 질문자는 법정에 가서 ‘판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우리 부인은 정말 저를 사랑했고, 저도 부인을 사랑했는데, 친구들과 술 먹다가 이렇게 실수를 했습니다’라고만 말하세요.nbspnbsp그런데 질문자는 술 먹다가 딱 한 번 실수를 한 거예요? 아니면 원래 하나 봐뒀다가 따로 살림을 차린 거예요?”nbsp“고민이 있을 때 같이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nbsp“그 정도면 부인의 입장에서는 화날 만하네요. ‘고민이 있으면 30년 같이 산 나하고 얘기해야지 어떻게 딴 여자한테 얘기를 하느냐? 몸은 나한테 있었지만 마음은 딴 데 가 있었네?’ 하니까 얼마나 섭섭하고 화나겠어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만약 이혼을 안 하고 싶다면 계속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만 용서해주면 가정을 잘 지키고 살겠습니다’라고 하세요. 그러면 판사가 중재를 합니다. 최종적으로 이혼을 하라고 판결을 내리더라도 질문자가 진심으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면 판사는 보이지 않게 질문자에게 유리하게 해 줍니다. 질문자가 바람을 피워서 이혼 사유를 제공을 했기 때문에 조금 불리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사과를 해야지 ‘네가 재산 다 가져가라’라고 하면서 법정에 출석도 안 하면 질문자는 재산도 날리고 외로워집니다. 재산분할 됐어요?”nbsp“아니오.”nbsp“그냥 재산을 주는 건 바보입니다. 그렇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오늘 질문 잘 했어요. 오늘 질문해서 딴 건 못 찾을지 몰라도 재산의 반은 찾았습니다.nbspnbspnbsp성질이 나서 어떤 걸 결정하면 안 돼요. 그렇다고 이해를 따져서 부인한테 하나도 양보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나쁘지만요. 질문자도 다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권리가 있습니다. 그걸 못 찾아먹는 건 바보이지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정당하게 주어진 권리를 찾는 건 나쁜 게 아닙니다.nbspnbsp그렇다고 질문자가 변호사를 살 이유는 없습니다. 질문자가 뭘 잘 했다고 변호사를 사겠어요? 질문자는 그저 법정에 나가서 ‘잘못했습니다. 용서를 빕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만 하세요. 그렇다고 이혼을 안 당하는 건 아닙니다. 바람을 피운 건 이혼 사유에 해당되기 때문에 질문자가 불리하니까요. 그러니 질문자는 자기를 내세우지 말고 무조건 용서를 비세요. 그런데 ‘잘못 했습니다’ 라고 하는 것과 ‘내가 잘못했으니까 재산은 다 네가 가져라’ 라고 하는 건 다릅니다. 재산은 분할해서 부인을 드리세요. 그런데 질문자도 재산을 좀 가지고 있어야 나중에 아이들을 지원해 줄 수도 있고, 또 부인에게 다만 얼마라도 생활비로 보내줄 수 있지요. 그렇게 해야 좋지 지금 한꺼번에 다 주면 상대는 고마운 것도 모를 겁니다. 질문자는 실수를 한 번만 한 게 아니라 연속해서 하고 있어요. 질문자가 바보같은 거죠.”nbspnbsp“솔직히 얼마나 욕심 내는지 한번 보고 싶어서 다 가져가라고 얘기한 겁니다.”nbsp“그런 꼼수를 쓰면 안 되지요. 질문자는 지금 자기가 잘못했다는 마음이 전혀 없네요. ‘한 번 바람 피운 것 같고 그러냐?’ 하는 마음 뿐이네요. 만약 반대로 질문자가 부인이 오랫동안 외간 남자를 두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 부인을 그냥 놔두었겠어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세요. 질문자는 그냥 이혼만 청구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두드려 팰 사람이에요. 배우자를 두고 바람을 피우는 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기분 나쁜 일입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해야 됩니다. 그러나 사과는 하되 법에 보장된 권리는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얼마나 가져가는지 한번 보자’ 하는 건 또 무슨 태도예요? 그게 잘못한 사람의 반성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겠어요?”nbsp“죄송합니다.”nbsp“일은 이미 벌어진 일이잖아요. 그죠?”nbsp“예.”nbsp“그래서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어요. 부인한테 비굴하게 빌 건 아니지만 항상 ‘여보, 당신한테 너무 큰 충격을 줘서 미안해요. 힘들겠지만 한번만 용서해 준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게요. 나는 정말 당신과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지내고 싶어요’ 라고 해야 됩니다. 빈말이라도 자꾸 그렇게 해야 본인에게 유리해요.nbspnbsp그런데 그렇게 잘 안 될 거예요. 보면 성질이 나니까요. 그러니 질문자는 매일 108배를 하면서 ‘여보, 미안해요. 그게 당신한테 그렇게 큰 충격이 될지 내가 어리석어서 몰랐어요. 정말 미안해요’라고 하세요. 부인이 독하게 나올수록 질문자는 ‘재산 탐내나?’ 하고 생각하지 말고 ‘정말 충격이 컸나 보구나’ 하세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말이 있듯이 착한 사람이 독심을 품으면 무서운 거예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은 약자를 밟으면 그런 문제가 생긴다는 겁니다.nbspnbsp질문자가 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걸 참회하는 절을 자꾸 하다보면 부인이 화를 내고, 되지 않는 소리를 해도 질문자가 그걸 들을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질문자도 부인에게 잘못했다고 하다가 부인이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세게 나오면 ‘나만 잘못했냐? 너는 잘했냐?’ 라고 하게 될 텐데, 그럼 사과했던 게 다 수포가 되니까 그럴 때일수록 10번 100번이라도 ‘미안하다’ 라고 해야 합니다. 그럴 힘을 키우려면 절을 해야 돼요. 그리고 법정에 가서는 ‘판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정을 지키고 싶습니다. 제가 가정을 지킬 수 있게 좀 도와주세요’ 라고 말하세요.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반이라도 주워 담을 수 있어요. 그마저도 ‘반 가지고 뭐 하느냐?’ 하면서 발로 차면 질문자만 손해에요.nbspnbsp여성분들, 남자 심정이 어떤지 이해가 돼요? 여기 여성분들만 손들어 봐요. ‘그래도 30년 살았는데 바람 한 번 피웠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 좀 심하다’ 하는 남자들의 얘기가 이해가 된다 싶은 사람은 손 한번 들어봐요. 질문자는 한번 둘러보세요. 손든 여자가 한 명도 없잖아요. 질문자 부인이 독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nbspnbsp“예, 잘 알았습니다. 많이 반성이 됩니다.”nbspnbsp근심이 가득했던 남성 분도 얼굴이 붉어지며 자신의 모습을 깊이 뉘우치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청중들은 큰 박수를 보내며 질문자를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이어서 스님은 청중석에 있는 여성 분들에게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뉘우치고 반성하는 질문자는 그렇다치고, 여성들도 이런 남자를 좀 이해해주면 어떻겠는지 예수님을 예로 들며 물어보았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해해 줄 수 있다는 여성이 한 명도 없어요. 예수님은 당신을 십자가에 매단 사람을 위해서도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라고 하셨는데, 여러분은 바람 한 번 피운 남자 한 명을 용서 못한다는 거예요?”nbspnbsp “용서가 안 돼요. 저는 기독교인이 아니라서요.”nbsp“그러니까 교회를 좀 다니세요. 교회에 다니면 용서가 될 텐데 왜 교회를 안 다녀요. 일요일에 뭐해요? 교회에 좀 가세요.”nbspnbsp청중석은 순식간에 웃음 바다가 되었습니다. nbspnbsp이어서 다시 통일 문제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동서독 통일을 예로 들며 서독은 동독을 포용했는데, 남한은 어떻게 북한을 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한 청년의 질문이 있었고, 마지막으로 스님은 모든 면에서 앞서고 있는 남한이 자신감을 갖고 포용해줘야 하는 이유를 신라와 가야의 합의통일을 예로 들어 답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모두 마치고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질문했던 분들은 사인을 받으며 스님에게 거듭 감사 인사를 했고, 청중들도 강연이 너무 좋았다며 기뻐했습니다. 스님도 환한 웃음을 보여주며 인사에 답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준비한 대전충청지역 통일의병들과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기 전 통일의병 김진태 충청본부장님이 스님에게 2016년 첫번째 통일이야기 강연을 축하하며 꽃다발을 건넸습니다. nbspnbspnbsp또한 통일의병들은 “통일 해버리자”라는 푯말을 들고 힘차게 “화이팅”을 외쳤습니다. 통일의병들의 염원이 국민의 염원으로 확대되어 통일에 대한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준비해 준 충청본부 통일의병들nbsp강연을 마치고 차를 타러 이동하는 중에 늦게까지 주차봉을 들고 교통 안내를 하는 통일의병 봉사자들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늦게까지 고생하시네요. 기념사진 같이 못 찍으셨죠?” 하면서 특별히 같이 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해주는 사람들까지 알뜰히 챙겨주고자 하는 스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nbspnbsp▲ 밤늦게 까지 교통 안내를 맡아준 봉사자들과 함께nbsp청주에서 밤 10시에 출발한 스님은 12시가 다 되어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아침 8시부터 파주 민족화해센터에서 제14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입학생들을 위해 위크숍 특강을 한 후 오후에는 정토회 결사행자회의에 참석할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3.18 5대 종단 조찬 기도회 및 청주 통일이야기 강연
nbsp오늘 스님은 아침 7시에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서 주최한 3.1운동 기념 조찬기도회에 참석해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에는 청주 시민들을 위해 통일이야기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새벽 공기가 어느덧 포근하게 달라졌습니다. 스님은 아침 일찍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주최 3.1운동 기념 조찬기도회가 열리는 경동교회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일꾼들로서 종교인들의 역할은?’이라는 주제로 5대 종단의 종교인들이 모이는 자리입니다. 교회당 안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80여 명의 청중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경동 교회nbspnbsp지난 2월 29일,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3.1운동의 정신을 이어 민족의 평화와 화해, 신뢰회복을 위한 종교인 기자회견’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도 함께 다녀왔지만, 스님은 오랜 지인을 만나듯 반갑게 김명혁 목사님, 박종화 목사님, 김대선 교무님, 박남수 교령님 등 이웃종교인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행사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인 김명혁 목사님의 사회로 아침 7시부터 시작됐습니다.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말씀을 읽고, 전병금 목사님의 말씀에 이어 유관지 목사님과 통일연구원의 허문영 박사님의 기도가 이어졌습니다. 내용은 조금씩 달라도, 어려워진 남북관계를 풀고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나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nbspnbspnbsp특별찬양과 특별연주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힘차면서도 경건하고, 또 우렁차면서도 감성을 울리는 아름다운 곡이었습니다. 스님은 찬양과 연주가 끝난 뒤 타종교인으로서는 첫 번째로 연단에 나와 “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일꾼들로서 불교 신자들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요즘같이 대립과 갈등, 분열과 보복이 판치는 이런 사회에서 이렇게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위한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한국복음주의협의회 김명혁 목사님을 비롯한 여러 목회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말씀을 드립니다.nbspnbspnbsp우리가 화해를 추구한다는 것은 ‘대립하고 갈등하고 있다, 미워하고 보복하고 있다, 서로를 못 믿는다’ 이런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하지만 미움으로는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미워할 수밖에 없는 그 사람들을 우리는 미워하지 않고 감싸안아야 화해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야 평화를 이룰 수 있고 통일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 사회 곳곳을 보면, ‘어떻게 저런 놈을 용서하느냐, 어떻게 저런 사람과 교류하고 지원하느냐, 저런 사람들은 단죄를 하고 보복을 해서 아예 전멸시켜야 한다’는 등의 공격적 언사들이 점점 사회의 중요한 여론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점점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고, 보복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우리 종교인들이 자기의 사명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니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일부 종교인들을 보면 대립과 갈등을 더 부추기는 그런 행동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nbspnbsp서로 대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립을 완화시키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상대에 대한 인정인 것 같습니다. 종교가 서로 다를 때 ‘아, 저 사람과 나는 신앙이 다르다’ 라고 하고, 사상이 서로 다를 때는 ‘사상이 서로 다르다’, 신념이 다를 때는 ‘신념이 서로 다르다’, 또 ‘민족이 서로 다르구나’ 등등 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nbspnbsp‘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같아야 한다는 기준을 ‘나와 같아야 한다. 네가 변해서 나처럼 돼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대립과 갈등이 끝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서로 다름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옳다는 게 아니라 저들은 우리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 입장에서 볼 때는 저런 말과 행동을 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이해하는 것, 즉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바탕이 될 때, 시각이 다른 사람끼리, 민족이 다른 사람끼리, 이념이 다른 사람끼리 대화가 될 수 있습니다. 일단 서로 같이 앉아서 대화를 해야 어떤 문제를 풀어갈 수 있으니까요. nbspnbsp대화를 할 때 서로 조금씩 양보해야 하지만, 좀 더 우선적으로 양보해야 하는 것은 힘 있는 자, 강한 자입니다. 힘 있는 자가 조금 양보를 하면 세상은 이것을 ‘포용’이라고 합니다. ‘아 저 사람 참 포용력 있다’ 이렇게 좋게 말하죠. 그런데 힘없는 자가 힘에 눌려서 양보를 하게 되면 그것은 굴복했다고 얘기합니다. 굴복은 힘이 없어서 굴복한 것이라서 반드시 나중에 저항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평화가 오는 것일 뿐 온전한 평화가 될 수는 없습니다. 갈등과 분쟁이 잠시 잠복할 뿐입니다.nbspnbspnbsp오늘날 한일관계에서 보면 일본이 강자 입장이라고 보면 일본이 조금만 한국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포용을 하면 한일관계가 아주 좋아질 겁니다. 그런데 일본이 절대로 포용을 안 하고 양보를 안 하는 상태에서 우리가 약간 양보해서 문제를 푼다고 하면, 결국 한국 사람들이 저항하고 분노하게 됩니다. 남북관계도 남한이 북한보다 국력이 세고, 또 배후에 미국까지 고려한다면 훨씬 힘이 센데, 조금만 북한의 처지를 고려하고 양보해주면 남북 대화의 물꼬가 트일 텐데, 꼭 굴복을 시키려고 하니까 저항을 받게 됩니다.nbspnbsp여야 사이에도 여당이 조금 양보를 하면 국민 합의가 쉬울 텐데, 하나도 양보를 안 하고 그대로 하려니까 야당이 굴복하지 않겠다고 저항을 해서 갈등이 끝이 없고, 여당 안에서도 권력을 쥐고 있는 주류가 비주류에게 조금만 양보하면 될 텐데 끝까지 양보를 안 하니까 분열이 생기고, 야당도 큰 세력이 작은 세력한테 조금 양보해주면 되는데 통째로 굴복을 시키려니까 끝까지 저항을 하고, 전체 사회가 이런 식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nbspnbsp우리가 화해와 평화로 가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하고, 이해가 필요하고, 포용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힘이 있으면 양보가 잘 안되는 게 세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우리가 원하는 평화와 통일로 가려면 우선 우리부터 이런 자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 정부도 남북한의 긴장을 국가의 위기라고 하는데, 정말 위기이면 여당 안에서부터 주류가 비쥬류를 포용하고, 대통령이 국회를 포용하고, 여당이 야당을 포용하고 통합을 해나가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3.1운동 때는 최대 종단인 천도교가 그 세력이 10분의 1도 안 되는 개신교를 포용해서 종교 간의 연대를 이루었듯이 오늘 우리 종교인들도 다시 세력이 큰 개신교가 천도교 등 작은 교단을 포용해서 함께 나라와 민족의 통일과 평화를 이루어간다면 3.1정신을 오늘에 살리는 것이 될 것 같습디다.nbspnbsp김명혁 목사님이 초대해주시고, 강원룡 목사님께서 대화를 주선하시고, 당시 어려웠던 농민들, 노동자들, 여성들 교육을 위해 크리스찬아카데미를 창립하셔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많은 역할을 해준 이 뜻깊은 교회에서 여러분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nbsp불교인의 역할에 국한하지 않고,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또 힘있는 자가 좀 더 양보하고 포용하는 마음을 내면서 화해와 통합으로 나가도록 하자”는 말씀을 다시금 곱씹어 보았습니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힘 있는 쪽일수록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인데, 못한다고 그들을 욕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자리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말씀이었습니다.nbspnbsp스님 말씀에 이어 박남수 교령님과 김대선 교무님, 그리고 박종화 목사님이 차례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의 역할에 대해 발표를 해주었습니다. 종교는 각기 달라도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든든하고 감사했습니다. 3.1운동의 정신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도 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때, 서로 다른 종교의 모습일지라도, 혹은 종교가 없을지라도, 한데 마음을 모아 온 정성을 다해 하늘을 감동시키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 각자의 소명이지 않을까 싶습니다.nbspnbsp행사는 예정시간보다 30분 늦은 9시에야 끝났는데, 경동교회에서 정성껏 차려주신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은 후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돌아오는 차량 안에서 스님은 다음 주말에 탑곡수련원에 감자를 심으려고 한다며, 공동체 대중들더러 내려오지 않겠느냐고 가볍게 물어보았습니다. 집에 복사꽃이 피기 시작했다고 하시더니, “어제 냇가에서 돌멩이를 주워와 경계석을 세웠는데 한 번 와봐라, 얼마나 깔끔하고 예쁜지 모른다”며 시골로 내려오라고 유혹했습니다. 업무들이 있어서 선뜻 내려가겠다는 말씀을 못 드렸지만, 내려오라는 말씀에 그저 기분이 좋아져서 다들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nbsp오전 10시에 평화재단에 도착해서는 곧이어 찾아온 손님들과 연이어 미팅과 회의를 가졌습니다. 미팅과 회의는 오후 4시 30분이 되어서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곧바로 통일이야기 강연이 열리는 청주 CJB미디어센터로 향했습니다. 청주 시내에서 차량이 막혀 지역인사 분들과의 사전 간담회에 20분 늦게 도착했습니다.nbspnbsp▲ 청주 CJB미디어센터nbsp외교관, 시의원, 기자, 교사, 시민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분들이 참석한 가운데 스님은 비록 늦게 도착했지만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nbspnbsp▲ 청주 지역 인사들과 사전 간담회nbsp이어서 스님이 ‘통일의병’의 활동 취지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었습니다.nbspnbsp“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은 다 자기들 나름대로의 이해관계가 철저합니다. 어느 나라도 한반도의 통일에는 관심이 없어요. 결국 통일은 우리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주변국들의 이해관계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북한은 체제유지 때문에 핵무장을 하게 되고, 남한은 거기에 대응해서 군비 증강을 할 뿐만 아니라 미·일의 요구에 부흥하다보니 중국과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되고, 작년에는 중국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했다가 미국과 갈등을 일으키게 되고, 이렇게 해서 지금 중심을 제대로 못잡고 있어요.nbspnbspnbsp이 때 우리는 무엇을 국가의 최고 목표로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북한처럼 지금 남한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국가의 최고 목표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위상에 맞지가 않습니다. 적어도 지금의 남한 정도라면 첫째, 한반도에 전쟁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둘째, 이 기회를 활용해서 통일을 해야 한다는 국가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통일정책은 하나 하나가 남북관계를 파탄내고, 미·일 군사동맹체제에 한발한발 들어가서 중국과 갈등을 불러오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nbspnbsp특히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것은 일본과의 군사협력과 사드 배치 두 가지인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까지도 이 두 가지 사안만은 쉽게 수용하지 않고 버텼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는 한·일 간의 군사정보교류협정도 체결하고, 사드 배치는 대중국 압박 카드로 사용하다가 도리어 중국이 미국과 직접 협상을 해버려서 우리의 안보문제가 미·중의 이해관계에 좌지우지 되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만 믿고 있기에는 국가의 안위가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이런 국가위기상황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각성해서 나라의 주인으로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통일의병’의 설립 취지입니다.nbspnbspnbsp이것은 여당, 야당, 진보, 보수의 문제를 뛰어 넘어야 합니다. 그런데 재벌이든 노동조직이든 정당이든 모두 다 국가가 어떻게 되느냐에 대한 생각은 아무도 안 하고 오직 자기 집단의 이익만 챙기고 있는 것 같아요. 마치 난파선에서 자기들만 혼자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과 같은 형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일어나서 의병과 같은 자세를 가져주지 않으면 이런 난국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nbspnbsp스님의 설명을 듣고 모두들 통일의병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실천을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사전 간담회를 짧게 마치고 7시 10분부터 ‘통일이야기’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통일’ 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45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워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먼저 스님은 최근 전쟁 위기에까지 내몰린 남북관계로 인한 시민들의 절망스런 감정을 어루만져 주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요즘 남북관계가 꽉 막혀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상식으로 볼 때는 굉장히 나쁜 현상인데,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 하는 말이 있듯이 어쩌면 통일이 임박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마지막 발버둥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위안이 되지요.nbspnbsp우리가 겨울을 따뜻하게 할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봄을 대비해서 겨울에 농사 준비를 잘 해놓으면 막상 봄이 왔을 때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우리가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더 정성을 기울여 기도하면서 오히려 지금은 통일을 준비하는 기간이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언제나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희망이 샘솟는 기분이 듭니다. 청중들은 한층 밝아진 얼굴로 즉문즉설 강연을 경청했습니다.nbspnbsp지금까지는 손을 들어서 스님에게 질문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질문하고 싶은 사람들의 수요를 충분히 해결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좀 특별한 방식으로 해 보자는 주최측의 제안이 있어서 색다르게 해 보았습니다. 질문이 있는 사람들은 쪽지에 자기 이름을 써내었고, 스님이 그 쪽지 중에 아무 거나 하나를 뽑아서 쪽지의 주인에게 마이크를 건넸습니다. 새로운 방식에 모두들 흥미로워하자 스님도 웃으며 쪽지를 한 장 뽑았습니다.nbspnbsp▲ 오늘 새롭게 시도된 질문자 선정 방식nbspnbsp통일 이야기가 길어진다 싶으면 다시 개인 고민이 튀어나와서 재미를 더해주고, 너무 재미 위주로 간다 싶으면 다시 통일 이야기가 나와서 유익함을 더해주어서 재미와 유익함을 모두 얻을 수 있는 강연이 되었습니다. 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지금 박근혜 정부가 북한 붕괴에 의한 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물었던 50대 남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통일의 방법에는 무력에 의한 통일, 평화적인 통일, 또 북한 붕괴에 의한 통일이 있는데, 현 정부는 압박을 통해 북한이 붕괴하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과연 북한 붕괴에 의한 통일이 있을 수 있는지, 또 만약 북한이 붕괴된다면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대처방안은 무엇인지, 또 현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스님의 견해는 어떠신지 궁금합니다.”nbspnbsp“현 정부의 대북 압박과 북한붕괴에 의한 통일 방안에 저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저는 찬성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통일이 이루진다면 통일 이후에 우리가 지불해야 될 후과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nbspnbspnbsp북한에 대해서는 경우의 수가 많지요. 첫째, 우리가 봉쇄에 의해서든 군사 작전에 의해서든, 어쨌든 힘으로 북한을 압박해서 북한을 붕괴시키는 식으로 통일을 할 수도 있겠지요. 현 정부 정책의 기본은 일단 봉쇄에 의한 붕괴이고, 거기다 필요하다면 군사작전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 군이 훈련하는 내용 중에 ‘참수작전’이라는 훈련이 들어있어요. ‘참수’란 목을 벤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북한 지도부를 무인기로 폭격하든 특공대로 폭격하든 잡겠다는 것이거든요. 이건 무력에 의한 붕괴 전략인데 현실적으로 집행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첫째. 미국이 허용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실행하기 어렵죠. 북한 지도부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파악하려면 위성탐사기술이 필요하고, 무인기나 특공대로 폭격할 수 있는 장비도 필요한데, 아직 우리 군이 그런 기술이나 장비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독자적으로 하는 건 쉽지 않고, 미군의 허락과 협력을 얻어서 해야 되는데, 미국이 그런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쉽지 않다는 겁니다.nbspnbsp둘째, 그렇게 공격을 하면 중국이 개입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것은 남북한만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국지전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국제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충돌과정에서 북한은 패배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면 핵무기를 쏠 수도 있을 겁니다. 핵무기 기술의 보유 여부는 아직 신뢰하기 어렵지만 그것은 우리가 확인할 수가 없어요.nbsp또 북한은 소형잠수함이 많다고 하잖아요. 천안함 사건의 경우, 반잠수정이 우리 해역까지 들어와서 움직이는 배를 두 동강 냈다는 건데, 그게 사실이라면 굉장히 위협적인 일이에요. 우리 나라의 원자력발전소가 다 바닷가에 있는데, 50정이나 되는 잠수정이 내려와서 공격을 하든지 미사일을 쏴서 파괴하면 막을 길이 없습니다. 또 장거리미사일보다 무서운 건 300미리 방사포입니다. 장거리미사일은 곡선을 그리면서 내려오기 때문에 방어를 할 수 있는데, 방사포는 직선으로 때리니까 방어가 어렵거든요. 북한이 전쟁에 이기지는 못할지라도 우리한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는 무력은 갖추고 있습니다.nbspnbsp그러니 그런 충돌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얻는 이익이 뭐냐는 겁니다. 충돌이 일어나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조선소, 원자력발전소가 파괴된 후에 통일이 된다면, 우리가 전후 폐허를 복구하는 동안 중국은 우리보다 앞서 가버리겠지요. 그럼 우리가 통일은 할지 몰라도 국가의 비전은 없어져 버립니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 통일만 하면 된다는 통일지상주의자들이라면 그렇게라도 통일을 해볼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통일을 하려는 궁극적인 이유가 뭐예요? 경제성장이나 국가안보를 더 확충하고 국민을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통일을 하려는 거지, 망하자고 통일을 하려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해서는 얻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그건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겁니다.nbspnbspnbsp우리가 힘으로 억압해서 봉쇄를 하면 북한이 스스로 붕괴되지 않겠느냐는 건데, 물론 봉쇄를 하면 북한은 굉장히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런데 김일성이 죽었을 때도 북한붕괴를 얘기했고, 김정일이 죽었을 때도 북한붕괴를 얘기했고, 김정은이 권력을 잡았을 때도 1년 안에, 3년 안에 북한이 붕괴될 거라고 얘기를 했지만 벌써 5년이 넘었습니다. 5년이 넘었다는 건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입니다. 북한이 아주 어렵다는 건 맞지만 붕괴될 가능성은 적습니다.nbspnbsp그리고 만약 북한이 붕괴된다면 그건 뭘 의미하느냐 하는 겁니다. 북한이 붕괴된다는 것이 북한이란 국가가 없어지는 것이냐, 김정은 정권이 교체되는 것이냐 하는 문제이지요. 북한이 어려워서 내부에 불만이 생기면 군부 구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북한이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 정권이 교체될 뿐입니다. 우리도 박정희 정권이 붕괴되고 전두환 정권으로 교체가 되었지 대한민국이 망한 건 아니었잖아요. 또 북한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면 그 정권이 지금 정권보다 더 강경한 정권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그 정권이 존립하기 위해서 개혁 개방을 해야 되겠지요. 그럼 중국이 원하는 정도의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하는 친중 정권이 될 거예요. 그러면 북한은 지금처럼 자주적으로 자기 권리를 자기가 결정하는 나라가 아니라 중국의 안보 우산 하에, 중국의 경제적 지원 하에, 중국의 정치적인 후원 하에 있는 정부가 될 거예요. 남한이 뭐든 결정하려면 미국과 의논해야 되듯이 말이에요. 이렇게 됐을 때 남북관계가 좀 개선되고, 북한의 경제성장은 좀 될지 몰라도, 통일이라는 목표로부터는 더 멀어집니다. 그러면 두 개의 국가로 더 오래 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nbsp그리고 군사력으로 밀어붙이면 중국이 반드시 개입할 겁니다. 우리가 무력으로 북한을 통일하는 것은 중국의 정책에서는 용납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연초에 신문에 북한분할론에 대해 보도한 기사 보셨어요? 이런 중국의 요구를 감안한다면, 황해도와 평안남도는 남한이 관리하고, 평안북도와 자강도, 양강도, 함경남도는 중국이 관리하고, 함경북도는 러시아, 강원북도는 미국이 관리한다는 시나리오까지 나왔잖아요.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그것을 보고 놀라지도 않습니다. 지금 시리아에 대해서도 내전의 끝이 안 나니까 분할론이 나오잖아요. 그런 것처럼 북한이 붕괴된다면 지금 이러한 여러 경로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 통일의 기대에 아무 것도 부응하지 않아요. 그리고 설령 성공을 해서 우리가 흡수 통일을 이루었다고 해도 그러면 압록강,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군사적으로 대립을 해야 돼요. 그러면 우리가 비록 통일은 했지만 미래의 비전은 없어집니다. 통일을 해서 남북한을 합해 봐야 중국에 비하면 아주 작은 나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nbspnbspnbsp그러니 우리가 남북 간에 평화적으로 통일을 하면, 첫째, 전쟁의 위험과 손실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둘째, 남북 간에 합의통일을 하면 중국이 개입할 명분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합의된 통일이라면 통일한국은 중국과 일본, 미국과 중국 사이에 양쪽 모두와 선린우호관계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럼 이것은 동아시아 평화지대와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건 통일이 통일로만 그치지 않고 시너지효과까지 낸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평화적 통일은 그 통일 과정에서의 손실을 방어하고 통일을 용이하게 할 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에 시너지 효과까지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력통일이나 강제적 흡수통일은 통일 자체도 불확실하고, 위험부담이 많고, 또 설령 된다고 하더라도 통일의 시너지 효과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현정부의 통일정책은 가능성도 낮고, 성공해도 이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청중들은 큰 박수를 보내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북한 붕괴론에 근거한 통일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이고 무지의 소산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이런 평화적인 통일과 백년의 미래는 바로 지금 우리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통일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입니다. 통일은 북한사람을 위해서도 아니고, 우리의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북한은 통일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어요. 해결한다면 남한만이 할 수가 있어요. 남한이 국가목표를 통일에 두고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고 북한을 포용해서 이 문제를 풀 건지는 우리 선택의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통일을 선택하면 우리는 통일된 국가가 된 후에 주변 국가와 연대를 해서 동아시아시대를 열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 백년의 미래를 건설할 건지, 안 그러면 미중 사이의 분쟁에 휘말려가지고 늘 이런 갈등과 불안 속에 살다가 결국 몰락의 길을 갈 건지는 우리 선택의 문제예요.nbsp그러니 우리 국민들이 조금 더 지혜로워지고 영리해져서 우리의 희망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정부가 그런 길로 갈 수 있도록 국민들이 정치적인 영향력, 즉 투표권을 nbsp행사해 줘야 합니다. 우리가 주권자로서 행사할 수 있는 건 투표밖에 없잖아요. 지역이 같다고, 사돈의 팔촌이라고, 성이 같다고 투표하지 말고, ‘과연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겠느냐’ 하는 걸 염두에 두고, ‘저 사람은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의 소양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걸 봐서 결정한다면 조금이라도 국가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 희망을 우리가 함께 만들어봅시다. 감사합니다.”nbspnbsp이렇게 오늘은 스님의 통일강연을 들으며 가슴 설레이는 희망을 가져보았습니다. 비록 지금은 남북 관계가 전쟁의 위기까지 내몰렸지만 위기가 곧 기회임을 다시 되새기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해나가봐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언제나 희망을 주고자 온 힘을 기울이는 스님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든 하루였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개인 고민에 대한 질문도 통일에 대한 질문 사이에 하나씩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스님의 위트 있고 명쾌한 답변에 청중들은 박장대소를 했습니다.nbspnbsp스님과 청중들은 다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부르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스님의 열강을 들어서 그런지 늘 익숙한 노래가 오늘따라 가슴 뜨겁게 다가왔습니다.nbspnbsp▲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부르는 청중들nbsp한편 강연이 끝나고 나가는 길에 로비에서는 ‘청주 통일시민학교’ 참가자 모집이 한창이었습니다. 강연을 듣고 감동을 받은 많은 대중들이 참가 신청을 하며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통일시민학교 참가신청nbsp청주 통일시민학교는 3월 26일 오후 2시7시에 충청북도 NGO센터에서 열립니다. 통일시민학교를 수료하면 통일의병 임명장을 수여받고 법륜 스님으로부터 의병 번호도 부여 받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통일의병 홈페이지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nbsp개인 고민에 대한 질문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nbsp※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