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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11 부천 청년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경기도 부천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어제밤 울산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마치고 새벽 3시에 서울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아침 7시부터 하루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평화재단에서 각종 회의와 미팅을 연이어 가진 후 저녁이 되자 강연을 하기 위해 부천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저녁 7시부터는 ‘예쁜 꽃, 젊은 그대에게’라는 주제로 부천시 복사골 문화센터에서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강연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청년들이 하나 둘 강연장을 채웠습니다. 청년을 위한 강연이었지만, 개중에는 중년의 청중도 몇몇 보였습니다.nbspnbspnbsp스님이 입장하자 모두들 뜨거운 환영의 박수를 쳤습니다. 스님의 환한 미소를 보자 청년들의 얼굴에도 순식간에 밝은 기운이 번졌습니다.nbspnbsp스님은 인사를 건넨 후 즉문즉설은 내가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의 고뇌를 드러내고 대화하는 것이니 아무 이야기나 해도 좋다고 하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총 여섯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가정불화 속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 때문에 엄마를 미워하고 있는 한 청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은 청년이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점을 발견하게 해주어 청년의 마음을 환하게 만들어 주었는데, 이 모습은 청중들에게도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nbsp질문자는 질문 내내 울먹울먹 하였고, 감정에 복받쳐 처음에는 말문이 잘 안 열리는 듯 했습니다.nbspnbspnbsp“제 고민은... 죄송합니다, 스님.” nbspnbsp“괜찮아요. 우세요...”nbsp“어렸을 적에 좀 가정불화가 있어서 남을 쉽게 믿지 못해요.”nbsp“가정불화의 주범이 누구예요?”nbsp“저희 부모님이요.”nbsp nbspnbsp“부모님끼리 싸웠는데 질문자를 뭘 어떻게 했다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기분 나쁘면 질문자를 때리기라도 했어요?”nbsp“때리지는 않았는데, 어렸을 적에 부모님으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많이 못 받고 자랐습니다.”nbsp“저도 부모님으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못 받았어요. 저는 7남매인데다가 부모님이 농사일 때문에 바쁘셔서 우리 남매들 중에 한 명이 밥을 먹었는지 못 먹었는지도 몰랐어요. 질문자의 형제는 몇 명이에요?”nbsp“제 위에 오빠가 있습니다. 남매입니다.”nbspnbsp“오빠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어요?”nbspnbsp“아니오.”nbsp“그럼 질문자는 누구하고 비교해서 사랑을 못 받았다는 거예요? 친구하고 비교한 거예요?”nbspnbsp“주변 사람들과 비교하기보다는 제가 생각하기에 그런 것 같다는...”nbsp“엄마가 질문자를 낳아줬잖아요. 그리고 질문자를 밥 먹여줬잖아요. 학교 보내줬잖아요. 옷 입혀줬잖아요. 남의 집 애를 그렇게 밥 먹여주고, 학교 보내주고, 옷 입혀주는 사람 봤어요?”nbspnbsp“못 봤습니다.”nbspnbsp“엄마가 질문자한테 그렇게 해 줬다면, 그것은 엄마가 질문자를 사랑하니까 그렇게 해 준 겁니다.”nbspnbsp“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저를 거둬주시고 키워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은 해요. 그런데 ‘엄마께 잘해 드려야지’,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지’ 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엄마를 자꾸 미워하게 됩니다.”nbspnbsp“왜 미워하는데요?”nbsp“제가 엄마와 같은 인생을 살까봐 두려웠던 것 같아요.” nbspnbspnbsp“질문자가 보기에 엄마가 인생을 잘 못 산 것 같아요?”nbsp“예.”nbsp“그럼 엄마를 불쌍하게 여겨야지, 왜 두려워 해요?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살았는데요?”nbsp“아버지가 가정폭력이 좀 심하셨습니다.”nbspnbsp“그렇다면 아버지를 미워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그렇게 맞아가면서 이혼도 안 하고 그저 질문자를 껴안고 먹여주고 키워준 엄마를 미워하면 어떻게 해요?”nbspnbsp“그런 걸 생각하니까 제가 되게 나쁜 사람인 것 같아서 많이 괴로웠던 것 같아요.”nbspnbsp“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왜 미워하는데요? 어떤 게 미움의 대상이에요? 아까 질문자는 ‘나를 사랑 안 해 줬다’ 했는데, 보통은 남편이 때리거나 돈만 안 벌어줘도 바로 별거해 버리는데, 질문자의 엄마는 맞아가면서도 애 둘을 이렇게 껴안고 키웠잖아요?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다고 사랑을 못 받았다고 그래요?nbsp남편이 때리면 보통 여자 같으면 도망가 버릴 텐데, 엄마는 결국 질문자 때문에 도망을 못 갔을 것 아니에요? 엄마는 아빠가 좋아서 도망을 안 갔을까요? 아이 둘 때문에 도망을 못 갔을까요?” nbspnbsp“저희 둘 때문이에요.”nbspnbsp“이 세상에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어요?”nbsp“그렇습니다.”nbsp“그런데 왜 미워해요? 질문자의 말이 모순이라서 스님이 물어보는 거예요. 스님 말에 무조건 동조하지 말고요. 방금 질문자는 ‘첫째, 엄마한테 사랑을 못 받았다. 둘째, 엄마가 밉다.’ 이렇게 말했잖아요. 그런데 스님이 보기에는 이렇게 저렇게 따져보니까 질문자는 사랑을 듬뿍 받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엄마가 아빠한테 맞아가면서 지냈다고 하니까 아빠가 밉다는 건 이해가 되는데, 엄마가 미워진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돼요?”nbspnbsp“예.”nbspnbsp“스님이 너무 엉뚱하게 얘기를 하는 것 같아요? 엄마가 아빠한테 맞아가면서도 질문자를 키웠다는 생각을 못 해 봤어요? 다른 여자들 같으면 다 도망갔지요. 엄마가 질문자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아버지의 폭행 속에서도 질문자를 키우려고 했겠어요?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어요?”nbsp“그렇네요. 스님.”nbsp“자, 다시 물을게요. 질문자는 사랑을 듬뿍 받았지요?”nbsp“예.” nbspnbspnbsp“남편이 돈도 벌어다 주고, 껴안아도 주고, 사랑도 듬뿍 주는 그런 엄마가 아이를 껴안아 주고, 학교도 챙겨주는 게 더 한 사랑일까요? 남편의 폭력과 술주정 속에서도 그 압박과 설움을 견디면서 두 아이를 이렇게까지 키워준 것이 더 한 사랑일까요? 스님이 보기에는 질문자가 너무너무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왜 사랑을 못 받았다고 그래요?”nbsp“저와 엄마 사이에 대화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일상적인 대화가 많이 부족한 편이거든요.”nbsp“아빠한테 두드려 맞는 데다가 아이 둘까지 키워내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 대화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요?”nbspnbsp“그것까지는 생각을 못해 봤네요.”nbsp“남편한테 두드려 맞으면 확 뛰쳐나가고 싶었을 건데, 그래도 화를 참고 억누르면서 질문자 밥도 해고, 옷도 다려주고 한 거잖아요. 그런데 질문자와 말할 정신이 어디 있었겠어요? 질문자 같으면 말하고 싶었겠어요?”nbsp“말하기 싫을 것 같습니다.”nbsp“그래요. ‘너희들만 없었으면 나는 벌써 집 나가버렸다. 으이그, 이것들 진짜’ 이러면서 키웠단 말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질문자와 말하고 싶었겠어요? 그리고 엄마 입장에서는 나를 두드려 팬 인간의 피를 절반이나 받은 애가 뭐가 좋다고 말을 하고 싶었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자식이라고 사랑해서 키워놨더니 겨우 한다는 소리가 ‘사랑 못 받았다’는 거잖아요. 질문자는 몇 살이에요?”nbspnbsp“스물일곱 살입니다.”nbsp“엄마가 질문자를 낳았을 때 몇 살이었어요?”nbsp“저를 낳았을 때는 엄마가 스물다섯 살었답니다.”nbsp“그럼 엄마가 질문자를 낳았을 때는 지금의 질문자보다 어렸을 때잖아요. 질문자도 엄마처럼 그 나이에 아이를 낳았다면 지금쯤 다섯 살짜리 아들 하나, 세 살짜리 딸 하나가 있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질문자는 남편한테 두드려 맞아가면서 다섯 살짜리, 세 살짜리 애를 키울 자신이 있어요?”nbsp“없죠.”nbsp“그런 상황에서 애하고 노닥거릴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요? 도망 안 간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고, 밥해 준 것 만해도 엄청난 사랑이지요. 어린 나한테는 엄마가 굉장한 존재였지만 27살이었던 엄마가 그 나이에 무엇을 알았겠어요? 뭣도 모르고 시집가서 애만 둘 낳아놓고, 거기다가 남편한테 맞기까지 했으니까요. 요즘 같으면 다 현명하니까 도망갔을 텐데 옛날에는 도망도 못 가서 붙어살아야 했단 말이에요. 그런 엄마한테 뭘 더 원해요?”nbsp“제가 엄마한테 너무 바라기만 한 것 같네요.”nbsp“‘같네요’가 아니라 ‘바라기만 했다’가 맞지요. 불효막심한 년이지요. ‘년’이라는 말이 듣기 싫은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니은 여 니은’이지요. 그런데 뭘 잘했다고 울고 그래요?nbspnbspnbsp그러니 오늘부터는 어머니께 감사 기도를 하세요. ‘어머니,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시집 가서 애 둘 낳고, 남편이 두들겨패서 사랑도 못 받고 살면서, 그저 우리 남매 버리지 않으려고 그 압박과 설움 속에서 우리를 키우느라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제가 정말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렇게 감사 기도를 하세요. 첫째는 키워주셨으니 ‘감사했습니다’ 하고 기도를 하고요. 둘째는 ‘내 생각만 하느라 엄마 고통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 속에 엄마의 사랑이 가득 차야 해요.nbspnbsp엄마는 그 고통 속에서도 나를 키웠으니 남편이 뭐라고 해도 나를 희망이라고 생각하셨을 것 아니에요? ‘남편에게는 기대할 게 없고, 애들이라도 크면 나도 인생에 좋은 일이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키웠는데, 이것들마저도 이렇게 나오니까 얼마나 가슴 아프겠어요?nbspnbsp그러니 내가 용돈이라도 좀 드릴 수 없다면 말로라도 엄마를 위로해 주세요. 엄마가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그래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런 말씀을 하실까?’ 이런 마음을 가지면,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사람이 엄마가 됩니다. 아빠도 또 따져보면 성질이 급했을 것 아니에요?”nbspnbsp“예.”nbsp“그때 아빠도 서른 몇 살 밖에 안 될 것 아니에요? 요즘은 마흔이나 먹었어도 제 진로도 제대로 못 찾아서 헤매는 사람이 있잖아요. 서른 몇 살 밖에 안 되는 남자가 애는 둘이지, 마누라는 꼬치꼬치 따지지, 성질은 나지, 그러니까 주먹이 먼저 나가고 그랬던 거예요. 사는 게 힘드니까 술 먹고 와서는 ‘에라, 모르겠다. 너 죽고 나 죽자’ 이랬던 겁니다. 그러니 아빠도 아빠 입장으로 돌아가서 보면 그 수준에서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거예요. 어떻게 해야 될지 다른 방법을 몰랐던 겁니다. 그래서 일어난 일이에요. 그래도 마누라하고 안 헤어지고 산 이유는 사랑하는 애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nbspnbsp그러니 질문자는 굉장히 사랑받고 자란 거예요. 부부가 싸운 건 자기네 문제이지 나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많이 싸울수록 자식 사랑이 더 커요. 왜 그럴까요? 그렇게 부부가 싸웠을 때 자식이 없으면 둘이 헤어져야 되잖아요? 그런데 안 헤어지고 살았다는 건 누구 때문일까요? 자식 때문이라는 말이에요. 그러니 자식 입장에서 보면 ‘왜 둘이 싸우나?’ 하면서 ‘양육 과정에서 사랑이 없었다’라고 하지만, 두 부부 입장에서 보면 싸워서 둘이 원수가 됐는데도 같이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식 사랑 때문에 그렇습니다.nbspnbsp그런데도 그렇게 참고 살아서 애들 키워놓으니까 겨우 하는 소리가 ‘부모가 밉다’, ‘사랑을 못 받았다’라고 하니까 배은망덕하지요. 저는 이런 꼴을 안 보려고 장가도 안 가고, 애도 안 낳았습니다.nbspnbsp제가 얼마나 현명합니까?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잘했다 싶습니다. 제가 만약 자식을 낳아서 저런 얘기를 들었다면 속이 뒤집어져서 기절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질문자는 고민이 해결됐어요?”nbsp“예, 해결됐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nbsp“제가 말한대로 기도할 수 있겠어요?”nbspnbsp“예.”nbsp“오늘 얘기를 들을 때는 해결이 된 것 같았는데, 집에 가서 또 둘이 싸우는 꼬라지를 보면 또 본래대로 확 돌아가버려요. 그러니 웃으면서 ‘둘 중에 누가 이길까?’ 하면서 응원도 해 주고, ‘아, 아빠는 엄마한테 말이 딸리네?’, ‘엄마는 아빠 폭력에 못 이기네?’ 이러면서 그냥 구경하세요. 그 사람들은 그러고 몇 십 년을 살았기 때문에 그 천성을 못 고칩니다. 그러니 그것을 내가 구경할 수 있으면 상처도 안 입고, 아빠도 안 미워하고, 엄마도 안 미워할 수 있습니다.nbspnbsp엄마 아빠가 싸우는 걸 그냥 구경하세요. 그걸 내가 해결하려 들면 아빠도 내 말 안 듣고, 엄마도 내 말 안 들으니, 나는 아빠도 미워하게 되고, 엄마도 미워하게 돼요.nbspnbsp엄마, 아빠, 나 이렇게 셋을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형이 있다고 합시다. 엄마와 아빠만 싸우고, 나와 엄마는 좋고, 나와 아빠는 좋은, 즉 두 면이 좋고 한 면만 싸우는 게 좋아요? 말리려다가 엄마도 내 말 안 들으니까 미워하고, 아빠도 내 말 안 들으니까 미워해서 삼 면이 다 싸우는 게 좋아요?”nbsp“한 면만 싸우는 게 좋죠.”nbsp“엄마와 아빠가 싸우면 박수를 치면서 ‘누가 이기노?’ 이렇게 소싸움 구경하듯이 해보세요. ‘자식이 부모에게 어떻게 그래요?’ 하겠지만, 그렇게 하는 게 나한테도 이익이고, 부모한테도 이익입니다. 그런데 도저히 꼴 보기 싫어서 구경하는 것도 힘들다면, 문을 조용히 닫고 나가서 싸움 끝날 때까지 밖에서 노세요. 놀다가 들어와 보니 그릇 깨진 게 있으면 좀 치워주고, 엄마 상처난 곳에 약 좀 발라주면 됩니다.nbspnbsp이 때도 엄마 말 듣고 아빠를 미워하거나, 아빠 말 듣고 엄마를 미워하거나 그러면 안 돼요. 그건 자기네 문제이기 때문에 나는 어느 편도 들어서는 안 됩니다. 대다수는 엄마 편을 들기 때문에 아빠를 미워하게 되고, 아빠를 미워하게 되면 남자도 미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남편한테서 아빠 같은 습성이 조금만 나타나면 확 뒤집어지게 돼요. 그래서 엄마 아빠를 싫어하게 되면 나중에 커서 나도 그걸 꼭 닮게 되는 똑같은 결과가 반복되게 됩니다.nbspnbsp아버지가 술주정하는 걸 보고 ‘나는 절대로 저러지 않아야지’ 하는데, 그 집 아들이 크면 똑같이 술주정을 하게 됩니다. 이것을 ‘내림’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그 부모의 그 자식이다’ 이런 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그런 아빠의 모습을 싫어했던 마음이 나의 무의식 세계에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걸 딱 끊으려면 ‘그런 속에서도 나를 낳고 키워준 부모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절을 해야 합니다.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가져버리면 내 속에 있던 그런 업이 녹아나버려요. 그래야 내가 행복해져요.nbspnbsp그리고 나이 드신 분들도 잘 들으셔야 해요. 지금 젊은이들이 하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가정의 불화가 아이들한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알 수 있잖아요. 자식들이 부모한테 말을 안 해서 그렇죠. 제발 좀 남자들은 술 먹고 와서 주정하고 폭력하지 마세요. 제발 좀 여자들은 남자가 술먹고 들어오면 ‘한잔 드셨네요. 한잔 더 드릴 게요’ 하면서 달래서 재워야지, ‘또 술 처먹고 왔다’ 이렇게 욕하다가 두들겨 맞고, 밤새도록 울고, 애 껴안고 ‘너희 아버지 때문에 못 살겠다’ 그러지 마세요. 그러려면 왜 결혼했어요? 그냥 저처럼 중이나 되지 그랬어요.nbspnbspnbsp제 얘기의 요점은 ‘이런 부모 밑에서도 나는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 입니다. 이 이치를 알고 내가 오히려 참회기도를 하고 감사기도를 해 버리면, 이런 부모 밑에서도 나는 행복하게 살 수가 있어요.nbspnbsp그런데 다른 집을 부러워하면서 ‘저 집 부모는 사이도 좋고 아이들을 위해서 사는데, 우리집은 매일 술 처먹고, 싸우고, 두들겨 패고, 살림살이 던져부시고, 우리는 그냥 온데 간데 신경도 안 쓴다’ 이렇게만 생각했기 때문에 내 인생도 꼭 그렇게 된다 이 말이에요. 오늘부터는 생각을 탁 바꾸세요. ‘아, 저 어려운 속에서도 우리를 안 버리고 키워주셨으니 사랑이 더 깊다’ 이렇게 생각해야 돼요. 따지면 실제로 그래요. 가정불화가 있는 부부가 같이 사는 이유는 남편, 아내 때문이 아니라 오직 자식 때문에 사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자식일수록 부모한테 더 감사기도와 참회기도를 하면, 내 속에 있는 부모의 까르마가 없어지고, 나는 그 내림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참회기도를 하라는 겁니다. 이런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왜 그런 사람한테 참회를 해야 되느냐?’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nbspnbsp“감사합니다.”nbsp조금 전까지만 해도 울먹이던 질문자가 거짓말처럼 환하게 웃자 청중들도 뜨거운 박수갈채로 격려의 마음을 보냈습니다. 질문자는 가정불화만 보고 힘들어 했는데, 따지고 보니 그 속에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크나큰 사랑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자 웃음이 나왔던 겁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대반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다섯 명의 질문이 더 있었습니다. 스물 일곱살 여성은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엄마가 힘들게 살았는데 엄마의 힘듦을 해결해주고 싶지만 그게 어렵고 더 이상 가족을 안 보고 살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들어서 고민이라고 질문했고, 두 명의 어린 자녀를 둔 여성은 남편이 가정에 소홀하고 생활비를 주지 않고 있어 이혼을 고민 중인데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고민이라고 질문했고, 20대 여성 한 분은 강자 앞에서 약한 부모님의 모습이 싫어 집을 뛰쳐나왔지만 막상 자신도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부모님과 똑같이 살고 있는 것 같아 고민이라고 질문했습니다.nbspnbsp마흔 살 남성은 창업을 준비 중 어려움을 겪고 포기했는데 이제는 나이가 많아 취업도 어렵고,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서 막막하다고 질문했고, 마지막으로 손을 든 한 30대 남성은 군대에서 사고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데 취직도 하고 싶고 결혼해서 아이도 갖고 싶다며 어디까지가 욕심인지 질문했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니 어느덧 강연을 마쳐야 하는 9시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강연을 마무리하는 정리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오늘 대화에서는 청년들이 부모님을 미워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럴 때 청년들이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면서 청년들의 마음을 밝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재밌었어요?”nbsp“예.”nbsp“많은 젊은이들이 부모님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고, 심지어 ‘내가 이런 집에 왜 태어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엄마한테 ‘이러려면 왜 나를 낳았느냐?’ 하고 따져 묻기도 하는데, 엄마 입장에서는 ‘그럼 너는 왜 하필 나한테 태어났느냐?’고 말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여러분도 할 말이 없잖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어쨌든 부모가 낳아줬기 때문에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지요?nbspnbsp그리고 자기네야 싸웠든 가난했든 어쨌든 그럴수록 나를 키워준 것이야말로 그들에게는 더 큰 사랑이었던 겁니다. 부잣집에서 아주 편안하게 자란 것보다 그게 사실은 더 진한 사랑이에요. 그 힘든 속에서도 나를 키워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원망하거나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면 자기 자존감이 없어져요. 그러니 항상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어려운 가운데 저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가정불화가 있었다면 진작 헤어졌어야 되는데, 나 때문에 못 헤어진 거잖아요. 그러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부모한테 감사 기도를 해야 그 업으로부터 내가 자유로워집니다.nbspnbsp그리고 그런 집에서 태어났다고 내가 반드시 불행해야 한다면 그건 운명론입니다. 나는 그런 집에서 태어났어도 행복하게 살 수가 있어요. 이럴 때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되는 거예요. 어떤 핑계를 대고 불행을 합리화하면 안 돼요. 이렇게 생각을 딱 바꾸면 나도 행복할 수가 있는 거예요. 장애인이라도 행복할 수가 있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도 행복할 수가 있고, 입양아로 자라도 행복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 건 따질 필요가 없어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겁니다.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할 줄을 안다면, 이 자리에 있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스님 말씀을 듣고 나면 정말로 어떤 경우에서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 집니다. 다만 우리들이 보지 못하고 있던 걸 보게 해 줄 뿐인데 말이죠.nbspnbsp강연 종료 후 강연장 밖에서는 스님의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벅찬 표정으로 나오는 청중들은 길게 줄을 선 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스님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더 보고자 애쓰는 모습이였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오늘 강연을 준비한 청년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강연 타이틀이 ‘예쁜 꽃, 젊은 그대에게’인데, 봉사자들의 얼굴은 예쁜 꽃보다 더 빛나 보였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 10시 30분에 안양 평촌아트홀에서 안양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에는 파주 시민회관에서 파주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 5월 21일 시청광장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청춘콘서트amp청춘박람회가 열립니다. 법륜 스님, 김제동, 박원순 서울시장, 노희경 작가가 펼치는 행복 토크, 뮤지션들의 공연, 150여 개의 청년 단체가 참여하는 박람회 등 세상을 바꾸는 즐거운 축제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티켓신청 바로가기 httpwww.jungto.org nbspnbsp
2016.5.10 (저녁) 울산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전에 진주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서 저녁 7시 30분부터는 울산 KBS홀에서 울산시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오늘 울산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가 내렸습니다. 강연을 준비한 울산정토회 봉사자들은 혹시 청중들이 많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섰지만, 그럼에도 일찍부터 강연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nbspnbspnbsp다행히 울산 KBS홀은 강연 1시간 전부터 청중이 들어차기 시작했고, 접수처에서 이것저것 문의를 하시는 분, 마음의 답답함을 풀고자 질문지를 작성하고 있는 분, 일찌감치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는 분, 스님의 책을 구입해 반갑게 펼쳐보는 분 등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nbspnbspnbsp저녁 7시 30분이 되자 2000석의 울산 KBS홀은 3층까지 자리를 가득 메웠고, 소개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 위로 오르자 청중들은 큰 함성과 박수로 환영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장에는 울산시민들이 자리했는데, 스님도 고향이 이 지역이다 보니 구수한 경상도식 표현으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비가 오는데도 이렇게 오셨네요. 비가 하루 종일 오기에 저는 오늘 강연 들으러 올 사람이 아무도 없을 줄 알았어요. ‘아무도 안 오면 나도 오늘 하루 놀겠다’ 했는데, 제가 노는 꼴은 못 보겠다는 거지요?nbspnbspnbsp경상도 식으로 ‘고맙다’. ‘반갑다’는 말을 이렇게 합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누가 ‘내일 우리 집에 놀러오너라’ 이러면 ‘응, 갈게’ 하면 되는데, ‘가면 뭐 주는데?’ 이러지요. 약속시간에 좀 늦어서 ‘내가 좀 늦었다. 미안하다’ 이러면 ‘난 너 오다가 죽은 줄 알았다’고 하고요.nbspnbsp저도 여기서 자라서 말투가 그래요. 고마우면 그냥 ‘고맙다’고 하면 되는데, 그렇게 못하고 늘 이렇게 삐딱하게 말해요. 장가 안 가길 천만다행이지 장가 갔으면 못 살 뻔했어요. 이쪽 남자들은 평소에 ‘사랑합니다’는 표현을 안 하지요? 그래서 섭섭하다는 부인들이 많던데, 그런 얘기를 하려면 등에 막 거머리가 기어가는 것 같아서 못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꼭 말로 해야 되나?’ 이러지요.nbspnbspnbsp저도 반갑다는 말을 이렇게 밖에 할 줄 몰라요. 모두 저녁 드시고 오셨어요?”nbsp“아니오.”nbsp“직장인들은 못 드시고 오셨죠? 못 드시고 오신 분, 손 한번 들어보세요. 너무 많아서 제가 못 사드리겠네요. 사실은 저도 못 먹었어요. 그래도 못 먹고 앉아있는 게 낫겠어요? 못 먹고 저처럼 서있는 게 낫겠어요?” nbspnbspnbspnbsp역시 울산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스님의 경상도식 인사가 제대로 먹혀 들었습니다. 시작부터 웃음 소리가 강연장을 가득 메웠습니다.nbspnbsp즉문즉설의 취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언니가 키우는 강아지가 너무 좋아서 언니와 같이 살고 있는데, 언니가 비난과 욕설을 심하게 해서 고민이라는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는 청중들도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문답이 진행될수록 더욱 흥미진진한 대화가 전개되었습니다.nbspnbspnbsp“저는 언니랑 같이 살고 있는데요, 언니는 저한테 말끝마다 비난과 욕설을 해요.”nbspnbsp“언니하고 왜 같이 살아요? 질문자는 지금 나이가 몇이에요?”nbsp“서른넷입니다.”nbsp“서른넷인데 언니하고 같이 살 일이 뭐가 있어요?”nbsp“언니가 키우는 강아지를 제가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를 못 하는 분이 많이 계실 것 같아요.”nbsp“이해 여부를 떠나서, 질문자가 그 강아지를 좋아해서 언니 집에서 사는 것이라면 언니의 그런 욕설은 들어줘야지요. 지금 질문자는 자기 좋은 것만 생각하잖아요. 좋아하는 강아지를 위해서 그 정도의 욕설은 참고 견뎌야지요.”nbspnbsp“그럴까요? 저는 언니와 함께 잘 지냈으면 좋겠거든요.”nbsp“그건 질문자 생각이고요. 언니 입장에서는 다 큰 게 우리 집에 와 있으니까 욕을 좀 해줘야지요. 그래야 질문자가 나갈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인간의 도리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언니는 결혼 했어요?”nbsp“아니오.”nbsp“결혼 안 한 자매가 같이 사는 거예요?”nbsp“예.”nbsp“그래도 따로 살아야지, 같이 사는 건 좋지 않아요. 사이가 아주 좋으면 같이 살아도 되는데, 지금 질문자는 자매 사이가 안 좋다면서요. 그러니 제가 질문자한테 어떻게 하라고 얘기할 필요도 없지요, 뭐. 사이가 안 좋으면 따로 살면 되니까요. 원래 따로 살아야 될 사람들인데 같이 살고 있는 거잖아요.nbspnbspnbsp결혼한 남녀가 서로 사이가 안 좋다고 하면서 ‘따로 살아도 될까요?’라고 묻는다면 아이들 문제가 있으니까 제가 어떻게 하라고 말을 할 수가 없는데, 질문자와 언니는 따로 살아야 할 처지인데 같이 살아서 문제가 생긴 것이니까 제가 같이 살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거예요. 따로 살면 언니로부터 비난이나 욕설을 안 들어도 되기 때문에 질문자가 마음을 어떻게 가져야 된다고 얘기할 필요도 없다는 겁니다.”nbsp“저희가 원래는 따로 살았는데, 제가 언니 집에 들어가게 된 이유 중에 하나가 강아지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따로 살 때도 제가 언니한테 연락을 하면 언니는 항상 저한테 비난과 욕설을 했어요. 저는 언니가 가족이니까 연락까지 끊고 싶지는 않았던 거거든요.”nbsp“그러니 질문자가 언니와 가족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언니의 비난과 욕설을 감수해야지요. 만약 가족인데도 그 사람이 한국말을 못 하고 영어만 한다면, 그 사람은 항상 영어를 할 거 아니겠어요? 그럼 그 영어를 듣는 걸 감수해야지요. 그 영어를 듣기 싫으면 전화를 안 하면 되는 거고, 안 만나면 되는 거예요. 질문자와 언니는 안 만나도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거예요. 질문자가 언니와 관계가 어려우면 같이 안 살면 되고, 또 전화할 때마다 하는 욕설이 듣기 싫다면 전화 안 하면 되는 거예요.”nbspnbsp“예, 그런데 가족행사가 있으면 안 볼 수가 없으니까요.”nbsp“왜 안 볼 수가 없어요? 질문자가 그 행사에 안 가면 되지요. 아니면 행사에 가서 욕을 좀 얻어먹으면 되지요.”nbspnbsp“예.”nbspnbsp“스님이 이상한 얘기를 한다 싶어요? 그것은 마치 사람이 물건을 살 때는 돈을 지불해야 되는 것과 같은 거예요. 언니가 주로 질문자한테 어떤 욕설을 하는데요?”nbspnbsp“음...”nbspnbsp“한번 해 보세요. 우리가 언니를 나쁘게 생각할까봐 그래요? 제가 지금 질문자가 문제라고 얘기하고 있잖아요. 다만, 언니가 어떤 욕설을 하기에 질문자가 못 견디는지 제가 들어보고 ‘그 정도면 들을 만 하다’ 든지 ‘그 정도면 못 견디겠다’ 든지 제3자로서 판단해 주려고 하는 거예요.”nbsp nbsp nbsp nbspnbsp“언니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해요. 만약 저와 연락이 안 되면, 언니는 제가 여자로서 수치심을 느낄 만한 말까지 하면서, 정말 말도 안 되는 망상까지 하면서 저를 비난합니다.”nbsp“질문자가 들었을 때 언니가 말도 안 되는 말을 한다면 언니는 정신질환이지요, 뭐. 그럼 질문자는 ‘언니는 환자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되지요. 어렵지 않잖아요. 예를 들어 실제 비싼 시계인데 언니가 자꾸 ‘그건 싼 시계다’라고 한다면, 언니는 미친 게 아니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비싼 시계를 언니가 자꾸 ‘이건 금이다’ 라거나 ‘이건 총이다’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저게 미쳤나?’ 이런단 말이에요. 그런데 질문자가 ‘언니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하는 걸 보니까 언니가 미쳤네요.nbspnbspnbsp그런데 질문자는 왜 미친 사람하고 같이 살아요? 그리고 미친 사람에게는 시비하면 안 됩니다. 환자에게 왜 시비를 해요?”nbsp“예.”nbspnbsp“언니가 구체적으로 뭐라고 하는데요?”nbsp“저는 언니랑 대화를 통해서 욕은 하지 말고 좋게 얘기를 하자고 말하고 싶어요.”nbsp“그러니까 질문자는 저한테 언니가 욕설을 하지 않게 언니를 좀 바꿔달라는 얘기지요?”nbsp“예.”nbsp“스님이 좋은 방법을 써서 언니가 욕을 안 하게 해달라고 지금 저한테 부탁하는 거예요? 저는 그런 능력은 없어요. 질문자는 스님을 너무 과대평가하나 봐요. 만약 저한테 그런 능력이 있다면 제가 지금 질문자의 언니가 욕하는 걸 고쳐야 되겠어요? 아베 총리가 망언하는 걸 고쳐야 되겠어요?nbspnbsp저는 지금 아베 총리가 망언하는 것도 못 고쳐서 그냥 듣고 사는데, 질문자의 언니가 욕하는 걸 고칠 여유가 있겠어요? 첫째, 저는 고칠 능력이 없고, 둘째, 제가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질문자의 문제가 저에게는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 번지수를 잘못 찾아왔어요. 그럴 땐 갓바위에 가서 ‘우리 언니가 욕설 안 하게 해 주세요’라고 비는 거예요.nbspnbspnbsp질문자는 즉문즉설이 뭔지도 모르고 여기 온 것 같네요. 즉문즉설이란 남을 바꿀 방법을 묻는 게 아니고, ‘내가 어떻게 할 거냐’를 묻는 자리예요. 그러니 질문자는 첫째, 언니가 욕하는 게 듣기 싫으면 같이 안 살면 됩니다. 둘째, 그래도 언니랑 살아야 된다면 욕설 정도는 감수해야 된다는 겁니다. 언니의 욕설을 그냥 영어라고 생각하고 들으면 됩니다.”nbspnbsp“네, 알겠습니다.”nbspnbsp“언니가 ‘이년아’라고 하면 그걸 ‘이 니은 여 니은 아’ 이렇게 파자해서 외국어 듣듯이 들으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들으면 욕처럼 들리지가 않잖아요, 그지요?nbspnbsp그러니 질문자는 언니야 욕을 하든지 말든지 생글생글 웃으면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욕이라고 정해진 건 없기 때문입니다. 듣는 사람이 욕이라고 생각하니까 욕이 되는 거예요.”nbspnbsp“알겠습니다.”nbsp“뭘 알았는지 한번 얘기해 봐요. 스님하고는 얘기해 봐야 말이 안 통한다는 거지요?” nbsp nbspnbspnbsp“아니요, 그게 아니라... 스님 말씀은 저더러 언니의 욕을 감수하라는 말씀이시잖아요.”nbsp“제가 언제 그랬어요? 이사를 나오라고 했지요. 강아지가 좋긴 좋은가 보네요. 그렇게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그 집에 붙어살 만큼 그렇게 강아지가 좋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nbspnbsp“전에 강아지가 수술을 하다가 죽을 뻔한 적이 있어서 강아지한테 애착이 많이 가기도 하고요. 또 강아지가 저를 많이 따르거든요.”nbspnbsp“그러면 언니한테 한 2천만 원이나 3천만 원 주고 그 강아지를 사면 되잖아요.”nbspnbsp“아니오, 언니는 절대 그렇게 안 해줄 거예요.”nbsp“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안 판대요?”nbspnbsp“예. 그리고 언니는 제가 강아지 때문에 언니를 거역하지 못하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걸 빌미로 저한테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nbspnbspnbsp“그러니까 질문자는 언니한테 약점을 잡힌 거네요. 그러면 욕을 좀 얻어먹고 약점 잡힌 대로 그렇게 노예로 사세요. 예를 들어 누가 어디 가서 바람을 피우다가 카메라에 찍혔는데, 어떤 사람이 그 사진을 빌미로 협박을 하면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해야 되듯이, 언니는 질문자가 강아지한테 필이 꽂힌 걸 알고 그걸 빌미로 질문자를 조정하는 거예요. 질문자가 좋아서 그러는 건, 뭐 어쩔 수가 없지요. 감수하고 사는 수밖에요.”nbsp“예, 알겠습니다.”nbsp질문자가 조금은 더 가벼운 마음이 되었길 바래봅니다. 질문자가 갖고 있는 모순을 끊임없이 자각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스님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5명의 질문이 더 있었습니다. 5년 전에 부인과 사별하고 두 아이를 고모에게 맡겼는데 첫째 아이가 현재 초기정신분열로 약을 복용하고 있다며 아이가 원하면 떨어져서 지내야 하는지 물어보는 분, 자동화 관련 부품공장을 운영하는데 경기가 너무 안 좋고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답답하다는 분, 오계만이라도 지키고 싶은데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면 오계를 자꾸 어기게 되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토막 살인 등 윤리적 규범을 깨는 행동에 대해서는 분노가 일어나기 마련인데 과연 분노를 안 할 수가 있는지 묻는 분, 가족 모두가 아버지를 꺼리고 피하고 자신도 아버지를 뵙는 게 불편하다고 묻는 분까지 각각의 질문에 대해 스님은 지혜로운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어느덧 강연을 시작한지 2시간 20분이 넘어 가자 스님은 더 이상 질문을 받지 않고,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앞서 강아지와 언니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성 분의 질문을 소개했는데, 마무리 말씀에서도 스님은 이 분의 질문에 대해 언급하면서 우리들이 왜 괴롭게 살게 되는지 다시 한 번 모순을 지적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재밌었어요?”nbsp“예.”nbsp“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원한다고 세상이 다 내 뜻대로 안돼요. 그런데 안 된다고 괴로워하면 죽을 때까지 괴로운 인생을 살다가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게 어쩌면 정상이에요.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데, 저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된다면 이 세상이 뒤죽박죽이 될 거 아니겠어요?nbspnbsp그리고 남이 원한다고 내가 다 해줄 수도 없어요. 해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해 줄 수가 없어요. 여러분들이 작성한 질문지가 이 질문지 함에 이렇게 꽉 차 있는데, 제가 다 답해 줄 수 있으면 좋지만 그렇게 해 줄 수가 없어요. 이 강연 끝나고 사인회를 할 때도 여러분들이 저한테 ‘사인해 주신 그 옆에 제 이름도 써주세요’ 라고 할 테지만 제가 그런 청을 다 들어줄 수가 없어요. 그러면 줄 선 사람들이 끝도 없이 기다려야 되니까요. 그래서 제가 ‘내 이름은 내가 쓸 테니까, 당신 이름은 당신이 쓰세요’ 라고 하는 겁니다.nbspnbspnbsp사진 촬영하는 것도 그래요. 한꺼번에 다 같이 찍으면 몰라도, 제가 어떻게 한 명씩 다 따로 찍어줄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제가 개별적으로 촬영하는 걸 거절하면 거절당한 사람은 섭섭해 하지요. ‘내가 스님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같이 사진 한 장 안 찍어줄 수가 있느냐?’ 라고 하겠지만 제가 그런 청을 다 들어주면 제 인생은 없어집니다.nbspnbsp그럴 때는 욕먹을 생각을 해야 돼요. 내가 원하는 걸 다 할 수도 없고, 남이 원하는 걸 내가 다 해 줄 수도 없는 게 우리 인생이에요. 그러니 내가 원하는 게 되면 다행이고, 안 돼도 또 해 보고 싶으면 다시 해 보고, 또 다시 해 보는 거고,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고, 그렇게 사는 거예요. 또 남이 원하는 걸 내가 해 줄 수 있으면 해 주고, 못 해 주면 ‘죄송합니다’ 하고 그냥 내 갈 길 가는 거예요. 달리 길이 없습니다.nbspnbsp강아지가 좋으면 언니 잔소리를 듣고 살든지, 잔소리 듣기 싫으면 이사를 나오든지 하면 되는데, 강아지도 갖고 싶고, 언니 욕도 안 듣고 싶다는 거잖아요. 그것은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세상이 간단한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제일 좋은 방법이, 따로 살면서 가끔 강아지 보고 싶을 때 언니 집에 가서 욕을 얻어먹는 길이 있겠네요.nbspnbspnbsp이런 길 외에 다른 길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그런 길은 없어요. 저도 제가 원하는 게 다 됐으면 좋겠고, 남이 원하는 걸 제가 다 해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안 되는 게 현실입니다. 안 되는 현실을 자꾸 괴로워해 봐야 자기 인생만 손해지요. 이런 한계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솔직하게 인정하면 행복하게 살 수가 있지만, 이걸 모르고 무지 속에서 다 하려고 하면 괴롭게 살게 되는 겁니다.nbspnbsp이왕 사는 거 행복하게 사는 게 낫잖아요. 괴롭게 살고 싶으면 그렇게 사세요. 어떻게 살지는 각자 자유니까요. 그런데 저는 굳이 괴롭게 살고 싶지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저의 한계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뭐가 잘났다고 그렇게 자꾸 남을 고쳐서라도 다 하려고 해요?nbspnbsp언니 고쳐야 되고, 아버지 고쳐야 되고, 남편 고쳐야 되고... 고칠 능력이 있으면 고쳐서 사세요. 그런데 저한테 고쳐달라고는 하지 마세요. 저는 그럴 능력이 없다고 일찌감치 선언을 했으니까요. 그래도 꼭 고치고 싶다면 저한테 오지 말고 갓바위를 가세요.nbspnbspnbsp여러분들도 한계를 인정하고, 부족함을 인정하면, 바로 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가 있어요. 그러나 인정을 안 하면 괴롭게 살게 됩니다. 그러니 각자의 한계나 부족함을 좀 인정하면서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스님의 따뜻한 격려 말씀에 청중들도 큰 박수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사인을 받고 길게 줄을 섰는데, 스님은 지지치도 않고 쉼없이 웃음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nbsp사인을 받는 중에는 스님과 악수도 해보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어떻게 사인하면서 악수하노?”라고 하면서도 바쁜 와중에 손을 내밀어 주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주관한 울산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화이팅” 외치는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했습니다. 봉사자들은 비가 오는 날씨에도 2000석이 꽉 찼다는 사실에 모두들 고무된 분위기였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홍보하고 준비했는지 그 노고를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사진을 찍은 후 스님은 법당별로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서 어느 법당에서 봉사자들이 왔는지 직접 확인해 보기도 했습니다. 또 봄불교대학, 가을불교대학, 봄경전반, 가을경전반도 일일이 손을 들어보라고 확인하며 “힘내세요”라고 응원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 울산에서 서울까지 부지런히 달려도 새벽 3시나 되어야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에 잠시 눈을 붙인 뒤 7시부터 평화재단에서 각종 회의와 미팅이 계속 있습니다. 그리고 저녁 7시에는 부천 복사골 문화센터아트홀에서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릴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5.10 (오전) 진주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 10시 30분에 진주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 30분에는 울산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어서 참석자가 적으면 어쩌나 걱정스러웠지만 진주정토회 자원봉사자들은 일찍부터 모여 강연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빠진 것은 없는지, 수정할 것은 없는지 꼼꼼히 챙기면서도 얼굴에서는 즉문즉설 강연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가 한껏 묻어났습니다. 나무와 풀들이 하늘의 단비를 맞아 생기를 찾고 성장을 하듯 오늘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스님 법문의 단비를 맞고 행복한 삶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갖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nbspnbspnbsp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와서 기다리는 분들도 제법 계셨고, 강연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자 많은 분들이 속속 입장하여 600여 명의 참석자와 봉사자가 경남과기대 100주년기념관을 훈훈하게 채웠습니다. nbsp nbsp nbspnbspnbsp사전 노래공연과 스님의 소개영상이 끝나자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청중들의 얼굴에는 비오는 날의 쌀쌀함과 눅눅함을 날려버릴 기대와 열기가 느껴졌습니다.nbsp스님은 비가 내리고 있는 오늘 날씨를 언급하면서 수행이란 좀 더 크고 넓게 멀리 보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강연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nbspnbsp“비가 오는 날씨에도 많은 분들이 와주셨네요. 비가 오면 마음이 좀 불편하죠. 그런데 농사를 지어보면 비가 자주 오는 걸 좋아하게 됩니다. 올해 봄에는 장마철인가 싶을 정도로 비가 너무 자주 오기는 했습니다만, 봄에 비가 오는 것은 도시 사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불편할지 몰라도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는 참 유용합니다.nbspnbsp그러니 어떤 일이 생기는 게 나한테 나쁘다고 해서 꼭 이 세상에도 나쁜 것은 아니에요. 어떤 일이 나한테 손해라고 해서 꼭 이 세상에도 손해인 것도 아니고, 나한테 이익이라고 해서 꼭 이 세상에 좋은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자기한테 이익이 되는 일이 생기면 조금 미안한 마음을 갖고 받아들이고, 자기한테 손해가 일어날 때는 다른 사람이 이익 볼 걸 생각하면 비록 손해는 보더라도 입가에 빙긋이 미소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일을 대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이 되느냐 안 되느냐, 혹은 나한테 이익이냐 손해냐 하는 것에 좀 덜 민감할 수 있습니다. 나만 보지 말고 타인도 보고 우리 모두를 보면 저절로 감정기복이 좀 덜해집니다.nbsp비유를 들어볼게요. 명절 때 집에서 온 가족이 화투치기처럼 약간의 돈을 거는 놀이를 할 때가 있잖아요. 요즘은 안 하나요? 우리가 어렸을 때는 많이 했어요. 그런 걸 하다 보면 형이 좀 따고 동생이 잃거나, 반대로 동생이 따고 형이 잃었을 때, 형제간에 울고불고 싸우며 난리가 납니다. 한쪽은 잃었다고 울고 한쪽은 땄다고 좋아하면서 서로 싸우는 걸 보면 엄마가 뭐라고 해요? ‘아이고, 그만들 해라. 그래봤자 그게 그 돈인데 뭘 그러냐’ 이렇게 말하죠. 엄마, 아빠가 볼 때는 누가 따든 그게 그 돈이죠. 그런데 아이들 입장에서는 절대로 ‘그게 그 돈’이 아니에요. 그와 같다는 이야기입니다.nbspnbsp그래서 부모 입장이 되어보면, 다시 말해 가족 전체를 바라보는 눈을 가지면 조그마한 이익과 손실에 연연하지 않게 됩니다. 그게 그 돈인 줄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좁은 눈으로 바라보면, 다시 말해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면 ‘나는 잃고 형은 땄다’, ‘내가 따고 형이 잃었다’ 이런 것에 기뻐하거나 슬퍼하면서 연연하게 됩니다.nbspnbsp수행이라는 건 다른 게 아니에요. 열심히 빌어서 뭘 이루는 게 수행이 아니라 조금 더 큰 눈을 갖는 것, 조금 멀리 보는 것, 조금 더 넓게 보는 것, 조금 더 깊이 보는 것이 수행입니다. 이런 눈을 갖게 되면 저절로 우리들의 번뇌가 잦아들고 사라집니다.nbspnbsp인생은 정답이 있는 게 아니에요. ‘이혼을 해야 하느냐? 안 해야 하느냐?’, ‘결혼을 꼭 해야 하느냐? 안 해야 하느냐?’ 이런 질문들에 대해 정해진 답이 있을까요? 여러분들은 스님이 답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런 적은 없습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에요. 다만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에 대해 내가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갖게 되면 어느 쪽을 선택하든 삶이 좀 여유로워집니다.nbsp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런 선택을 해도 괴롭고, 저런 선택을 해도 괴로워요. 이러면 이게 문제고, 저러면 저게 문제입니다. 그런데 조금 눈을 크게 뜨게 되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요. 혼자 살아도 좋고 결혼해서 같이 살아도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혼자 살면 외롭고, 같이 살면 귀찮다고 하죠.nbspnbspnbsp그런데 조금만 눈을 크게 뜨면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고, 같이 살아도 귀찮지가 않아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게 되는 거예요. 그것이 소위 진리의 길입니다. 그런 길로 나아가는 것을 절에서는 ‘설법’이라고 하고, 교회에서는 ‘설교’라고 해요. 그래서 ‘즉문즉답’이 아니라 ‘즉문즉설’이라고 말합니다. 자, 그럼 오늘도 여러분과 대화를 시작해보죠.”nbsp스님이 들어준 재미있는 비유에 시작부터 유쾌한 웃음이 곳곳에서 터져나왔습니다.nbspnbsp질문은 선착순으로 세 명을 먼저 받았고, 나머지는 추첨 방식으로 받기로 했는데 질문지함에 질문지를 넣은 분이 두 명 밖에 없어서 모두 다섯 명이 스님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이를 유산한 이후 매사에 불안감이 엄습한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질문자가 처음에는 울먹였지만 스님의 답변을 다 듣고 나서 활짝 웃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nbspnbspnbsp“저는 항상 정성을 다하고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신념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참 감사하게도 원하는 꿈도 이루고 행복하게 가정도 이루어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아이가 생겨서 일도 휴직하고 태교에 전념했는데 원인도 알 수 없고 증상도 없이 아이가 유산됐습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까 내가 노력해도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슬픈 일들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감이 가슴속에 생겼습니다. ‘그런 마음은 부질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하다가도 문득문득 ‘다음에 또 아이가 잘못되면 어떡할까?’, ‘오늘 비가 오는데 남편이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이건 내가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일 텐데’ 이런 생각들이 듭니다. 이런 마음에서 좀 벗어나고 싶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nbsp“누구나 다 그래요. 만약 오늘이 소풍을 가는 날이라면,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 마련입니다. 어제 정토회에서는 애광원 장애우들과 함께 나들이를 가는 행사가 있었는데, 다들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비가 오면 휠체어 타고 내리는 게 굉장히 복잡해지잖아요. 그런데 비가 안 오니까 기독교 재단인 애광원에 계시는 분들은 다 하나님이 자기 기도를 들어줬다며 기뻐하고, 자원봉사자들은 전부 불교인이니까 부처님이 자기 기도를 들어줬다며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나들이 장소였던 순천만 국가정원에 600년 묵은 팽나무가 있는데 거기 가서 빌면 뭐든지 다 들어준대요. 정원을 안내해주는 사람이 말하길 ‘지난번에 답사 왔던 사람이 여기서 기도하고 갔기 때문에 비가 안 왔다’는 겁니다. 이처럼 잘 되면 다 자기 덕이고 못 되면 다 남의 탓이에요.nbsp그런데 서두에서 제가 이야기했지만 비가 오면 꼭 나쁜 것만도 아니에요. 우리 어릴 때를 돌아보면 천수답에 비가 안 와서 모내기를 못하다가 비가 오면 비를 맞아가면서도 즐거이 모내기를 합니다. 비가 안 와서 모내기를 못 하는 게 나아요? 비가 와서 비를 맞으며 일하더라도 모내기를 하는 게 나아요? 연세드신 분들은 비 맞고도 모내기 하는 게 낫다고 대답할 거예요. 또 비 맞고 일도 기쁘게 하는데, 비 맞고 노는 게 무슨 큰일이겠어요? 비 맞고 일하는 것보다 비 맞고 노는 게 쉬워요.nbspnbsp그리고 ‘노는 데 굳이 비 맞고 놀 것까지 뭐 있나?’ 하면 안 놀면 되잖아요. 어디를 가기로 했는데 비가 와서 번거로워지는 게 싫다면 안 가면 되잖아요. 그런데 농사 짓는 사람들은 비가 안 와서 농사를 망치면 먹고 살기가 어려워져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 소풍가는 날 비 왔다고 난리잖아요. 지난번에 소풍 갈 때 비가 왔다고 해서 이번에 소풍 갈 때도 또 비가 올까 싶어 초조불안해 하고요. 이렇게 하는 것은 너무 자기중심적이라는 이야기예요.nbspnbsp질문자는 지금까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 왔기 때문에 더 힘든 거예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지금까지 자기가 원하는 것이 하나도 돼 본 적이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이 사람은 힘들기는 하지만 앞으로 일이 잘 안 돼도 ‘아이고, 나는 원래 재수가 없어서 안 되더라’ 이러고 마는데, 지금 질문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지금까지 다 이루었기 때문에 앞으로 만약 자기가 원하는 게 안 되면 충격이 더 큰 거예요.nbspnbspnbsp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결말은 반드시 실패하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최근의 대통령들이 특히 더 그래요. 이유가 뭘까요? 이 분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 성공 신화를 이뤄낸 사람들이어서 그래요. 즉, 남들이 다 안 된다고 할 때 밀어붙여서 이뤄낸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뭔가 잘못됐을 때 보좌진이나 누가 이야기를 해도 본인이 밀어붙이면 옆에서 말릴 수가 없어요. 옛날에 다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반대할 때 이 분들은 된다고 밀어붙여서 성공한 경험이 있잖아요. 그래서 말리지를 못하는 겁니다. 말려도 듣지 않을뿐더러 말리는 힘이 강하지도 않아요. 왜 그럴까요? 저 분은 늘 세상에서 안 된다는 것을 이뤄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nbspnbsp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성공을 했다가도 항상 막판에 한꺼번에 말아먹어요. 이번 공천 때 누가 봐도 저렇게 밀어붙여서는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잖아요. ‘야, 저건 해도 너무했다. 좀 심하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하면 안 될 텐데, 왜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을까요? 늘 세상 사람이 안 된다고 한 걸 밀어붙여서 된 경험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이번에 반쪽박을 찼잖아요. 여기서도 제대로 반성하면 되겠지만 안 그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럴 때 반성을 하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이걸 다시 더 세게 밀어붙여서 뒤집으려고 해요. 그러면 이제 완전히 쪽박을 차게 되겠죠. 그래서 위험하다는 거예요. 이렇게 늘 자기 뜻대로 인생이 이루어진 사람은 항상 막판에 패가망신합니다. 질문자도 그럴 위험이 있어요. 앞에서 질문할 때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늘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됐다고 했잖아요.nbspnbsp건강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예순이어도 병원 한 번 안 가고, 감기 한 번 안 걸렸다’ 이런 사람은 다 일찍 죽습니다. 늙어서 몸이 쇠해지면 그에 맞게 조절을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평생 살아왔던 대로 힘을 쓰다가 한꺼번에 팍 꺾여요. 반면 어릴 때부터 계속 여기저기 아픈 사람은 남이 볼 때는 ‘저게 제 명대로 살겠나’ 싶지만 오히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삽니다. 이런 사람은 늘 조심하거든요. ‘아이고, 또 아프다’ 이러면서 절대로 무리하지 않으니까요.nbspnbspnbsp그러니 질문자가 한번 생각해보세요.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 유산되는 게 질문자한테 나을까요? 낳아서 일주일 안에 죽는 게 나을까요? 세 살 때까지 크다가 죽는 게 나을까요? 열 살이나 스무 살쯤까지 크다가 죽는 게 나을까요? 일단 안 죽는다는 선택지는 빼고 생각해보세요. 어느 게 나을까요?”nbsp“뱃속에 있을 때가 더 나을 것 같아요.”nbsp“그러니 아이가 유산된 것은 질문자에게 큰 복이라는 걸 질문자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걸 지금 불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중에 질문자가 겪어야 할 큰 아픔을 미연에 방지해준 셈이에요. 그러니 앞으로 아기가 또 생겼다가 유산을 하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명을 제대로 타고 나지 못했으면 미리 뱃속에서 정리돼야 엄마를 덜 아프게 만들어요.nbspnbsp누가 발로 찼다거나 약을 잘못 먹었다든지 해서 유산된 것은 사고에 속하니까 경우가 좀 달라요. 그러나 자연유산은 아이가 형성은 되었지만 너무나 약해서 자궁 안에서조차 생존을 잘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설령 태어나더라도 장애를 안게 되거나 제대로 건강하게 살지 못하고 죽기 쉽기 때문에 자궁 안에서 자연유산된 것은 털끝만큼도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유산이 안 되고 살아난 아이 중에서도 세상에 나와서는 제대로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마의 자궁 안에서조차 제대로 적응을 못 하는 아이는 슬퍼할 일이 아니에요. 아이와 엄마 모두에게 큰 불행을 미연에 방지한 것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nbspnbsp그러니 앞으로도 병원 검진은 잘 받되 자궁에서 아이가 미성숙 상태에서 유산되는 걸 두려워하지 마세요. 호랑이 새끼도 언덕에서 새끼를 떨어뜨려서 살아남는 놈만 키운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게 모질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자연의 법칙이에요.nbspnbsp이건 누구의 죄도 아니에요. 하나님의 벌도 아니고 과거전생의 인연도 아닙니다. 관점을 그렇게 가지셔야 해요. 그렇게 안 가지면 앞으로 더 힘들어집니다. ‘아기를 낳고 싶다’ 하고 바랬더니 금방 아기가 낳아지고, 이렇게 늘 질문자가 원하는 대로 되면 나중에 오히려 더 큰 불행이 옵니다. 생명을 존중한다면 여러 가지 장애를 갖고 아이가 태어났다 해도 기꺼이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질문자의 수준은 아이가 여러 가지 장애를 갖고 태어나느니보다는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낫잖아요. 어떤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태어난 뒤에는 그 아이도 생존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권리가 있기에 당연히 돌봐야 하지만, 태어나지 않았다고 슬퍼할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걸 슬퍼하는 것은 관점이 옳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nbsp“네, 감사합니다.”nbsp울먹이던 질문자가 비로소 환하게 웃자 청중들도 박수를 보내며 위로의 마음을 보태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덧붙여 추가 설명을 이어가며 마무리 말씀을 대신했습니다.nbspnbsp“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인 거에요. 유산이 되는 것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사실 불행이 아닙니다. 엄마의 자궁에서조차 생존을 하지 못한 아이이니 만약 요행히 태어난다 해도 생존하기가 어렵습니다. 자궁 안에서 건강해도 나온 뒤에 생존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잖아요. 그러니 그것을 슬퍼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다만 사고, 예를 들어 넘어졌거나 배를 걷어채였거나 어떤 충격을 받아서 유산한 경우는 다르죠. 아이가 충분히 건강한데도 불구하고 보호가 안 되어서 유산된 것이니까요. 우리가 건강한데도 교통사고 같은 사고가 나서 죽을 수도 있는 것과 같습니다.nbspnbspnbsp그러나 자연유산은 그걸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자연유산은 세 번, 네 번까지 하다가 제대로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병원에서 검진을 통해 몸 상태를 잘 살펴보세요. 검진 결과에 따라 어떤 부분이 약하니까 무리하면 안 된다거나 뭐 하면 안 되는 식의 주의를 줄 테니까 그대로 따르면 됩니다. 보통 자연에서 동물들을 보면 아기 낳는 날까지 움직여도 됩니다. 자연 생태계가 그래요. 그래서 옛날에는 콩밭 매다가 아기 낳고, 여행하다가 비행기 안에서도 아기 낳고, 기차 안에서도 아기 낳고 이런 일들이 많았잖아요. 부처님도 마야 부인이 길을 가다가 낳았어요.nbspnbsp그러니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 합니다. 아기에 대해서 너무 신경을 쓰면 오히려 건강한 아기를 낳기 어려워요. 아기를 가졌다고 해서 너무 조심하고 일일이 조바심을 내도 아기 건강에 안 좋습니다. 그러니 그런 걱정 하지 마세요. 낳기도 전에 벌써 저런 걱정을 하는데 아기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겠어요? 아기가 들어서면 기뻐하고, 행여 유산이 되면 나중에 힘든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조금 있다가 또 새로 생기면 감사히 받아들이고, 그래도 안 생기면 인공수정을 시도해보면 되고, 그래도 안 되면 입양을 하면 됩니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좋은데 그런 걸로 걱정하고 그래요? 조금 더 편안하게 생활해야 해요.nbspnbsp아이를 키울 때 엄마가 고생하면 아이는 대부분 부모의 기대에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아이 키우는 게 힘들수록 아이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기 때문이에요. 부모의 기대가 크기 때문에 아이가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켜주지 못하니까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나빠지고 아이는 나중에 부모에게 저항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 키우는 게 힘들지 않아야 해요. 있는 젖 그냥 물리고, 있는 밥 먹이고, 있는 옷 입히고, 바쁘면 잠시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이렇게 대충 키워야 해요. 그래서 아이 키우는 게 별로 힘들지 않아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아이와 같이 있는 게 재미있어야 해요. ‘내가 너 키우는 게 힘들다. 너만 없었으면...’ 이런 게 아니라 ‘네가 있어서 내가 참 행복해졌다. 네가 없었으면 내가 무슨 재미로 살았겠니?’ 이렇게 엄마가 싱글벙글하면서 별로 힘을 안 들이고 아이를 키우면 아이한테 기대도 그리 크지 않고, 아이의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해집니다.nbspnbsp제가 쓴 책 ‘엄마수업’의 핵심은 엄마가 행복해야 한다는 거예요. 엄마가 지극정성으로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행복하라는 거예요. 옛날에 시골분들을 보면 자식이 이미 대여섯씩 되어도 또 아이가 태어나면 다 귀하게 여깁니다. 몸이 좀 고단하긴 하지만 밭 매다가도 아이가 울면 젖먹이고, 밥하다가도 젖먹이고, 자다 깨서도 젖을 먹이지 ‘아이고, 이놈의 자식아 잠 좀 자야 하는데 왜 일어나서 우니? 젖 달라면 아까 달라고 하지 왜 한밤중에 달라고 하냐?’ 이러지 않아요nbspnbspnbsp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키웠기 때문에 아이들이 다 건강한 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아이를 한둘씩 낳아서 키우지만 대여섯씩 키우던 옛날보다 아이 키우기가 더 큰일이 되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어제 한 통계를 봤는데, 지금 장애아가 태어날 확률이 100명당 5.5명이래요. 20년 전보다 3배 정도 늘었어요. 우선 우리가 먹는 음식이나 생활환경이 문제겠지요.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주 원인이 산모의 스트레스 같아요. 산모가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 자궁이 긴장되니까요.nbsp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이 ‘토끼도 새끼 낳아서 키우고, 다람쥐도 새끼 낳아서 키우는데, 사람이 새끼 낳아서 못 키울 이유가 없다’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마음을 편안히 가져야 오히려 아이들이 더 건강해집니다. 아이를 가진 엄마가 힘들어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더 즐겁고 행복하다고 여겨야 아이들도 건강해져요.”nbsp오늘은 마치 태교 수업과 육아 수업을 들으러 왔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엄마는 아이를 어떤 마음으로 잉태해야 하고, 태어난 아기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들이 강연 말미에 주욱 이어졌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네 명의 질문이 더 있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임용시험에서 여러 차례 떨어졌고, 창업하려고 해도 주변에서 만류하고, 맘대로 되는 것도 없고 계획대로 되는 것도 없어서 점집에 갔는데, 점집에서 들었던 말들이 자꾸 신경이 쓰인다며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별거했던 남편이랑 재결합해서 현재 3년이 됐다는 분이었는데, 불쑥불쑥 남편이랑 살기 싫다는 마음이 다시 올라와서 힘들다고 질문했고, 세 번째 질문자는 26살 된 발달장애아를 혼자서 키워 온 여성분이었는데, 자신의 양육방법이 잘못됐다는 생각에 우울증이 겹쳐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자주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고, 네 번째 질문자는 현재 직장생활이 힘들어서 사직을 결심했는데, 회사에서는 인력수급문제로, 집안에서는 동생 재수 문제로 1년 정도 더 근무하라고 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물었습니다.nbspnbsp스님과 질문자와의 대화는 한편의 코미디나 드라마처럼 많은 웃음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이야기엔 같이 웃고, 아픈 이야기엔 함께 아파하고, 슬픈 이야기엔 눈물지으며 듣다 보니 어느새 시야가 툭 트이고, 주변이 환해지고, 삶이 가벼워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무겁고 절박하던 질문자들의 표정이 환해지고 밝아지면서 저절로 “감사합니다”를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진주 시민들도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다섯 분의 대화를 들으며 웃고 감동하는 사이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여러 경험과 비유를 들어가며 자유로움과 행복의 본질을 꿰뚫어 드러내주시는 스님의 말씀이 오랜 가뭄 끝의 단비와 같이 마음 밭에 아낌없이 스며든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유산 후 불안증이 왔다는 질문자에게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난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스님과의 대화 후에 너무나 가벼워졌다.”며 환하게 웃었습니다.nbsp스마트 폰을 최근에 갖게 되어 유튜브로 매일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다는 50대 어르신은 “그 동안 잘못 살았구나, 잘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고 하면서 “내 인생에 어떤 복이 있어서 저런 분을 가까이서 뵐 수 있는지..” 하면서 고마워했습니다. 강연 내용을 꼼꼼히 적으면서 들었다는 한 남자분은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계속 떠올랐다. 남들이 보기엔 대단치 않은데 세상의 짐을 다 진 것처럼 그동안 살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라고 소감을 얘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치자마자 책 사인회가 열렸는데, 복도에 줄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상기된 얼굴로 책을 들고 서 있는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며 정성껏 사인해 주었습니다.nbspnbsp사인회가 끝나고 오늘 행사를 위해 수고한 많은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환하게 웃는 표정 속에는 행복이 가득해 보였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봉사자들은 다가오는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작은 꽃다발을 스님에게 전달한 후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차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nbspnbsp스님은 봉사자들을 둘러보며 “수고했다”고 듬뿍 격려를 해준 후 다음 일정을 위해 출발했습니다. nbspnbsp저녁 7시 30분부터는 울산 KBS홀에서 울산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5.9 지적장애인거주시설 애광원 봄나들이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지적장애인거주시설 애광원 식구들과 송광사와 순천만 국가정원으로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nbspnbsp2003년부터 시작된 애광원 김임순 원장님과 법륜 스님의 인연은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씩 거동이 불편한 거주인들의 바깥나들이를 지원해주는 모습으로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행사가 10여 년 이어지다 보니 이제 경남 지방의 웬만한 장소는 한번쯤 다녀온 터라 매번 나들이 계획을 세우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경상도 땅을 벗어나 전라남도 순천에 있는 송광사와 순천만 국가정원을 나들이 장소로 정했습니다.nbspnbsp오전 10시 30분, 송광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날씨가 잔뜩 흐리고 간간이 가랑비까지 흩뿌려서 nbsp걱정부터 앞섰습니다. 하지만, 먼저 도착해 있던 정토회 경남지부와 마산정토법당에서 온 40명 가량의 봉사자들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같이 사진촬영을 하고 인사를 나누는데 봄에 입학한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스님이 웃으면서 “이제 정토회 온 지 두 달 밖에 안 된 사람들이 봉사는 할 줄 아나?” 하고 핀잔을 주니 봉사자들은 “초발심으로 더 잘 할 수 있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대답하며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오늘은 원생들 중에서 중증 장애인들과 나들이를 하는 날이라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집중해야 한다”며 휠체어를 다룰 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습니다.nbspnbsp곧바로 애광원 식구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하여 25명의 원생들과 김임순 원장님, 송우진 이사님, 그리고 9명의 선생님들이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원생 한 명마다 봉사자 12명이 하루를 책임지는 친구로 배정되어 반갑게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10여 년 간 매년 스님을 만나와서 그런지 이제는 스님을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반가워 하는 장애인들도 있었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몇몇 장애인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땅바닥에 드러누워서 봉사자들을 힘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사정을 알아보니 중증 장애인들은 거의 바깥나들이를 못하다보니 야외로 나가는 것 자체에 너무 들떠서 버스에서 내리기 싫어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 합니다. 한참을 달랜 후 몇몇 원생들은 휠체어에 태운 후에야 겨우 송광사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nbspnbsp궂은 날씨에 버스를 타고 송광사까지 올라갈까 하다가 스님은 “그래도 절은 걸어 올라갈 때 제대로 느낄 수 있다”며 내려올 때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마음먹고 걷기 시작하니 마침 빗줄기도 점점 가늘어졌고 어느덧 우산을 접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송광사에 이르는 아름다운 계곡길과 상쾌한 편백나무 숲길을 제대로 느끼며 나들이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송광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곳은 송광사입니다.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중요 문화재가 가장 많이 있는 곳이에요. 국보가 4개, 보물이 21개나 있어요. 법정 스님이 머무셨던 불일암이 이 산 내에 있어요. 자, 그럼 한 바퀴 돌아보겠습니다.”nbsp숲길을 한참 걷고 나니 일주문이 나타났습니다.nbspnbsp“지금 우리가 지나가는 곳이 일주문이예요. 세속 세계와 부처의 세계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으로 일주문이라고 부릅니다.”nbspnbspnbsp일주문을 지나자 척추당과 세월각이 나타났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생소한 이름인데, 스님은 이곳은 불교에서 천도재를 지낼 때 영가를 목욕시키는 곳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죽은 영가도 남녀 구분이 있나봐요. 척추당은 남자 영가의 관욕처이고, 세월각은 여자 영가의 관욕처입니다. 관욕이라는 것은 영혼을 목욕시켜서 깨끗하게 모신다는 뜻이예요.”nbsp세월각을 지나자 애광원 식구들을 환영하기 위해 올해 새로 송광사 주지에 임명된 진화 스님과 교무국장 소임을 맡고 있는 정응 스님이 마중을 나와 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두 스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애광원 식구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자, 여기서 사진 찍겠습니다. 카메라를 보세요. 빠이 빠이.”nbspnbsp원생들은 모두 각기 다른 곳을 보고 있었지만 모두들 오랜만의 나들이에 즐거워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원생들을 매일 돌보는 일을 하고 있는 한 선생님은 “오늘처럼 날씨가 궂으면 원생들이 정말 다운되거든요. 그런데 봉사해주시는 분들이 너무 잘해주시니까 이런 날씨에도 지금 굉장히 표정이 밝아요.”라고 놀라워하기도 했습니다. nbspnbsp사천왕문에 이르니 양 옆으로 무시무시한 표정을 한 네 명의 조각상이 원생들을 무섭게 했습니다. 스님은 웃으면서 가볍게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희는 지금 사천왕문을 지나고 있습니다. 하늘 나라 중에 첫 번째 하늘이 사왕천인데, 거기에서 동서남북을 각각 담당하는 네 분의 신이에요. 인도의 전설에 의하면 이 분들이 늘 인간 세상을 돌아보면서 나쁜 일을 한 사람은 벌을 주고, 좋은 일을 한 사람은 칭찬한다고 해요. 인도의 신들입니다.”nbsp사천왕문을 지나니 계단이 나타났습니다. 원생들이 계단을 오르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스님도 팔을 걷고 원생들의 손을 잡아주며 으라찻 힘을 주며 거들었습니다. nbspnbsp“자, 계단을 올라가겠습니다. 으라찻. 아이고, 잘 한다.”nbspnbsp스님의 따뜻한 목소리에 원생들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소리를 “끼약” 하고 지르기도 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교무 스님인 정응 스님이 대웅전까지 직접 안내도 해주었습니다. 한국 불교에는 삼보사찰이 있는데,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있는 통도사가 불보사찰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의 경판이 모셔져있는 해인사가 법보사찰, 그리고 한국불교의 승맥을 잇고 있다고 해서 송광사가 승보사찰이라고 합니다. 송광사가 승보사찰인 이유는 고려 때 보조 국사가 정혜결사를 통해 한국 불교의 전통을 확립했고, 그 이후에도 열다섯 명의 국사가 더 나와 그 전통을 면면히 이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스님은 휠체어를 탄 김임순 원장님 곁에서 같이 걸으면서 송광사 경내의 문화재와 약사전, 지장전 등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습니다. 특히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지장보살이 무엇인지 처음 들어보는 원장님에게 재미있는 설명을 해주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지장전은 지장보살을 모신 곳이에요. 지장보살이라는 분은 전설에 따르면 부처님이 돌아가실 때 ‘내가 없는 세상에 다음 부처님이 오실 때까지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다 구제하라’는 명을 받고 지금도 지옥 중생을 구제하고 있는 보살이예요.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지옥갈까봐 겁을 내잖아요. 그러나 지장보살이 다 구제를 해준다고 하니까 주로 영가를 천도하거나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이 지장보살을 부릅니다.nbspnbsp그리고 지장보살은 ‘지옥 중생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나는 부처가 되지 않겠다’라고 큰 원을 세운 분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죽어서 지옥갈까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이유는, 나를 구제해줘야 저 분이 부처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옥에 있는 한 저 분도 부처가 못 되니까 우리는 마음 놓고 살아도 돼요. 하하하.” nbspnbsp김 원장님도 스님의 설명을 듣고 크게 웃었습니다. 두 분은 종교를 뛰어넘어 어떤 이야기도 거리낌이 없이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다음은 약사전에 도착했습니다. 약사전에 대해서도 원장님이 생소해하자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nbspnbsp“저 분은 ‘약사여래불’이라고 해서 손에 약그릇을 쥐고 있어요. 저 그릇에 담긴 것이 약탕입니다. 그래서 이곳은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곳이에요. 애광원에는 아픈 사람들이 많으니까 ‘아픈 상태에서도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하고 다함께 기도를 하고 가겠습니다.”nbspnbsp스님의 제안에 다함께 합장하고 정성껏 기도를 한 후 송광사 경내를 나왔습니다.nbspnbsp법당을 나오자 마자 짙은 밤색 차림의 법복을 입은 베트남 스님들을 만났습니다. 베트남 스님들과 함께 인천에서 왔다는 한국 스님이 법륜 스님을 알아 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하며 이분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베트남 노동자들 중 불자들을 모아서 법회를 해주기 위해 한국에 머물고 있는 스님들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스님도 반가워 하면서 “정토회에서도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해 안산에 다문화센터를 열고 있다”며 “꼭 필요한 일을 잘 하고 계시네요” 라고 격려와 공감을 표해주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송광사 순례를 마치고 이어서 순천만 국가정원으로 향했습니다. 버스 타고 30분 가량을 이동하자 순천만 국가정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정원 안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모두 중증 장애인들이라 간단한 비빔밥으로 식사를 준비했는데도 식사를 원할히 하기가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습니다. 많은 원생들이 휠체어에 탄 채로 식사를 해야 하고, 몇몇 원생들은 일반 식사가 불가능해 따로 죽을 먹어야 했습니다.nbspnbspnbsp거동이 불편한 원생들은 대부분 스스로 식사를 할 수가 없어 대부분의 봉사자들이 본인의 식사는 건너뛰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원생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봉사자들 모두가 자기 배고픈 줄은 하나도 모르겠다는 듯 밝게 웃기만 했습니다.nbspnbsp봉사자들이 휠체어를 밀며 꽃이 만발한 정원을 걸어가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스님도 걸을 수 있는 원생 한 명과 손을 잡고 정원을 걸었습니다.nbspnbspnbspnbsp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 하니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순천만 국가정원의 경우 맑은 날씨에는 햇빛을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더운 날씨에 휠체어를 밀어가면서 넓은 정원을 느긋하게 관람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휠체어를 타지 않은 원생들도 모두 중증의 상태여서 봉사자들이 늘 곁에 바짝 붙어서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낀 채 안다시피 걸어야 했기 때문에 모두들 흐린 날씨를 고마워했습니다. 스님이 법문 때 늘 하시는 말씀처럼 날씨가 흐리면 흐린 대로 이 상황에 맞게 즐길 뿐입니다.nbspnbspnbsp모두가 홍학이 무리지어 모여 있는 연못에서 한참 쉬었습니다. 홍학들이 있는 연못 옆 호수에는 고니 무리가 멀찌 감치 있었는데 해설사가 “곤” 하고 부르면 온다고 해서 모두 소리모아 “고오온” 하고 부르니 정말로 두 마리의 고니가 앞으로 다가와서 꽥꽥 거리며 반겨주었습니다.nbspnbspnbsp순천만 국가정원을 만들게 된 취지를 설명하는 해설사의 이야기가 정말 멋있었습니다. “순천만 글자의 받침을 보시면 ‘ㄴ’이 세 개입니다. 이것은 자연, 인간, 공존의 3받침을 뜻합니다. 세계 5대 연안 습지인 순천만으로 도심이 점점 침입해 오고 있는데, 이것을 막기 위해 그 중간 지대에 국가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환경적 의미에 공감한 세계적인 정원 설계자 찰스젱스가 자원봉사로 이 정원을 설계해 주었습니다.”nbspnbsp수많은 사람들의 자원봉사와 자원 재활용으로 이루어진 정원이라는 해설을 들으니 정토회에서 하고 있는 쓰레기제로운동의 의미가 더욱더 뜻깊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순천만 국가정원은 넓고도 길었습니다. 길마다 각 국가가 조성해놓은 색다른 정원들이 줄지어 있었고, 온갖 색깔과 모양의 꽃, 이름 모를 나무들이 빈틈없이 드넓은 대지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휠체어를 앞세우고 JTS의 파란조끼와 애광원의 빨깐조끼를 입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무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오후의 정원을 수놓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원생들과 오소리, 거북이, 미어캣, 왈라비 등이 있는 작은 동물원도 관람하고, 뒤이어 15분짜리 3D 입체영화 ‘달의 정원’도 보았습니다. 입체 영화를 잘 접하지 못한 원생들에게는 아마도 오래도록 남을 좋은 추억이 되었을 것입니다.nbspnbsp동문 근처 잔디밭에 이르러서는 간식을 먹으며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서 연잎으로 ‘컵등’을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비록 대부분의 작업은 봉사자들의 손으로 이루어졌지만 함께 무릎을 맞대며 눈을 맞추어 본 것만으로도 교감할 수 있는 게 많았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순천만 국가정원을 한바퀴 돌고나니 벌써 오후가 저물었습니다. 아쉽지만 더 지치기 전에 마무리를 하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식당에서는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함께 가졌습니다. 신이 난 원생들이 앞에 나와 노래를 한 곡씩 부르자 식당 안은 웃음이 넘쳐 흘렀습니다.nbspnbspnbsp먼저 김임순 원장님이 정토회의 매년 계속되어 온 지원활동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오늘 하루의 추억이 원생들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정토회와의 나들이를 원생들이 얼마나 기다리는지에 대해서 가감없이 소개하며 고마워 했습니다.nbspnbsp“지적장애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이 오늘 여러분들을 보내주신 것 같습니다. 오늘 좋은 구경 많이 하고,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고 돌아갑니다. 우리 애광원 직원들은 여러분들이 전해준 이 사랑 잊지 않고 우리 식구들을 더욱더 열심히 돌보겠습니다. 가정에 늘 하느님의 축복이 같이 하시기를 바랍니다.”nbspnbsp하느님의 축복을 내려주심에 정토회 봉사자들은 환호를 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이어서 법륜 스님이 앞으로 나와 마무리 인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의 환한 웃음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습니다.nbspnbspnbsp“애광원 식구 여러분, 재미있게 놀았어요?”nbsp“예.”nbsp“또 봉사자들은 봉사하는 것이 보람 있었어요?”nbsp“예.”nbspnbspnbsp“솔직하게 말해서 애광원 식구들 덕택에 구경 잘 했지요? 저도 덕택에 순천만 국가정원은 처음 구경했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저도 사실 이런 곳에 올 시간이 없어요. ‘올 봄에는 애광원 식구들과 순천만 국가정원에 가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제가 와보지도 않았으니 안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리 둘러볼 시간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난번에 여수에 강의하러 온 김에 이곳을 들렀습니다. 그런데 안까지 들어오지는 못 했고 바깥에서 이 안쪽만 쳐다보다 갔어요. 그 때 안이 잘 안 보여서 서운했는데, 오늘 이렇게 안쪽까지 들어와서 저도 구경을 잘 했습니다.nbspnbsp송광사도 지난번에 시골 어르신들 모시고 가긴 했는데, 차타고 올라갔기 때문에 계곡 길은 걸어보지 못 했어요. 그런데 오늘 여러분과 같이 계곡 길을 걸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다 여러분들 덕택입니다.”nbspnbsp“저희도 좋았습니다.”nbsp“그런데 우리는 오늘 하루만 이렇게 따라다녔는데도 힘들잖아요. 그렇죠?”nbsp“예.”nbspnbsp“그런데 애광원 선생님들은 이런 일을 365일 하시니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월급이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 우리가 시간을 좀 내어서 오늘처럼 이렇게 함께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구나 싶습니다. 이런 기회를 빌어서 애광원 원장님 이하 직원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말씀 드립니다.nbspnbsp원장님, 정말 참 애쓰셨습니다. 스물 몇 살 때 학생 몸으로 전쟁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하셨고, 그 일이 다 끝났으면 쉬셔야 되는데 또 이렇게 지적장애인들을 돌보느라 평생을 보내시고 계시네요. 그래도 만약 원장님이 결혼하셔서 가정을 꾸렸으면 자녀를 많이 낳아봐야 대여섯 명이었을 건데, 지금 원장님이 돌본 자녀가 천 명도 넘잖아요.”nbspnbsp“예.”nbsp“오늘 원장님과 함께 하면서 한 사람의 원이 얼마나 큰 일을 해내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작지만 원을 세워서 오늘처럼 이분들을 돕는 일이라도 계속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오늘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애광원 선생님들도 박수를 치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고, 원생들도 끼약 하고 소리를 지르며 기쁜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다함께 원장님과 스님에게 드리는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두 분의 스승님이 있었기에 오늘 봉사자들과 원생들의 만남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애광원과 정토회가 서로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증정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스님이 새책 ‘행복’을 직접 사인해서 건네자 애광원 선생님은 무척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공식적인 행사를 마무리하고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저녁을 다 먹고나면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한 숟가락 챙겨먹이는 봉사자들의 손길도 간절해지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nbsp짧은 만남이었지만 울컥하는 봉사자도 보였습니다. 애틋한 마음에 “내년에도 꼭 봉사올테니 그때 봐요” 하는 얘기들을 서로 주고 받았습니다. 말 못하는 원생들의 눈빛만 메아리처럼 돌아왔습니다.nbspnbspnbsp멀리 산그림자가 길어질 무렵 원생들 모두가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스님과 봉사자들도 모두 배웅을 나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원생들은 차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애광원 봄, 가을 나들이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지만 늘 헤어지는 순간은 이렇게 짠합니다.nbspnbsp스님은 남은 봉사자들에게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수고가 많았다”고 하면서 격려를 듬뿍 해준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 10시 30분에 진주 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 30분에는 울산 KBS홀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nbsp 애광원 봄나들이 풍경을 영상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스님의 하루를 영상으로 더욱 생생하게 만나 보세요.nbspnbsp nbsp글을 읽은 소감은 댓글로 남겨주시고, 감동은 SNS로 통해 주위에 널리 전하세요
2016.5.8 (오후) 저녁부 정토불교대학 담당자 봄나들이
nbsp안녕하세요? 스님은 새벽 6시에 있었던 청년·대학생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을 마친 후 아침 9시 30분부터는 정토회 저녁부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에서 교실 운영을 맡고 있는 담당자 및 모둠장들과 문경 용추계곡으로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nbspnbsp오늘 봄나들이 행사는 그동안 저녁부에서 봄학기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준비하고 운영하느라 수고한 봉사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입니다. 9시가 되자 입재식이 열리는 용추계곡 주차장에는 전국에서 260여 명의 봉사자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과 함께 봄나들이가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지난 주에 봄비가 흠뻑 대지를 적신 뒤라 하늘은 높고 바람은 시원하며 풀과 나무는 싱그러웠습니다. 스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은 표정으로 대중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어왔습니다.nbspnbsp“그늘진 곳으로 몇 걸음 물러나 깔판을 깔고 앉으세요.”nbspnbspnbsp스님의 배려에 시작부터 마음이 훈훈해졌습니다. 스님은 지부별로, 정토회별로 손을 들어보라고 한 뒤 멀리 제주도와 강릉에서도 참가한 것을 확인하고선 “아이구, 제주에서도 오셨네요. 감사합니다.” 라며 더욱더 반겨 주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용추계곡의 지리적 환경을 설명하면서, 과거 용추계곡 밑에 있는 유원지가 경치가 좋아서 정토수련원 자리로 검토했었던 적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결국 지금의 정토수련원 자리를 선택했는데, 이유인 즉, 그곳은 500년이 지나도 관광지가 될 가능성이 없는 곳이어서 누가 팔아먹을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먼 훗날까지도 내다보고 수행도량을 지으려고 했던 스님의 의지와 혜안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습니다.nbspnbsp10시부터 용추계곡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가는 분들에게 불편을 끼칠세라 한 줄로 서서 길을 올랐습니다. 스님은 “오늘 나들이의 목적은 친목과 산책, 그리고 소풍이니 천천히 오세요”라고 당부에 당부를 했습니다. 푸르른 나무 사이로 긴 행렬을 이루는 모습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nbspnbspnbsp계곡을 따라 둘레길처럼 편안하고 사람이 거의 없는 호젓한 산길을 오르니 넓고 큰 바위를 타고 맑은 물이 힘찬 소리를 내며 흐릅니다. 물이 엄청 깊어 보이는 폭포를 만나자 저절로 탄성이 나옵니다.nbspnbspnbspnbsp대중들이 걸음걸이를 늦추며 사진을 찍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분위기가 되자, 스님은 “용추계곡은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좋다”며 올해 봄나들이의 주제곡이 되다시피한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을 대중들이 다같이 따라 부르게 했습니다. 순간 동심으로 돌아가 어린 아이처럼 자연과 하나가 됩니다.nbspnbspnbsp계곡을 따라 월령대까지 오르다가 계곡 반대편 길을 따라 선유동 계곡으로 내려가니 넓은 바윗돌이 있고 그 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 모였다가 다시 흐릅니다. 대중은 가장자리의 바윗돌에 정토회별로, 법당별로 둘러앉아 맛있게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2시간 가까이 산행을 한 뒤라 밥맛이 꿀맛 같았습니다.nbspnbsp즉문즉설 시간이 되자 모두 스님을 향해 앉았습니다. 먼저 스님이 “저녁부 부장님이 여러분이 그동안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운영하느라 수고가 많았으니 격려를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면서 “격려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하자 대중들도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누가 나와서 노래 좀 불러보세요”라고 하자, 보살님 한 분과 거사님 한 분이 나와 각각 노래를 불렀습니다. 거사님은 장기자랑을 위해 작은 앰프까지 준비해 왔습니다.nbspnbspnbsp장기자랑이 끝나자 계곡물 소리를 배경음으로 명상을 했습니다. 계곡물, 시원한 바람과 하나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nbspnbsp즉문즉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청년정토회 경전반 담당자 한 분이 “오늘이 어버이날이고 다음 주가 스승의 날이니 노래 한 곡 불러드리겠다”고 하면서 “스승의 은혜”를 불렀습니다. 대중들 모두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자, 겉옷 속에 살포시 감추고 있었던 카네이션을 떼어 스님의 가슴에 달아드렸습니다. 모두가 ‘아, 우리 모두가 놓친 걸 챙겨주셨네...’ 하는 마음으로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즉문즉설 시간에는 모두 9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처남과 동종 업계에서 사업을 하게 되면서 사이가 계속 안 좋아지고 있는데 어떻게 관계를 풀면 좋을지 물었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질문한 분은 ‘소양강 처녀’ 노래를 멋드러지게 부르며 여흥을 돋운 후 질문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저는 15년 동안 처남 밑에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이제는 처남이 자기 아들한테 업을 물려주겠다고 하고 있고, 제 아내도 거기에 지분이 좀 있었습니다. 저도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하는데 기여를 했는데, 처남이 회사를 자기 아들한테 물려준다고 하면서 저와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바로 근처에 있는 동종 업체를 인수해서 운영해 보겠다고 나섰는데, 처남은 제가 자기를 배신했다면서 ‘그동안 내가 돌봐줬는데, 너가 나가서 얼마나 잘 되나 보자’는 식으로 경쟁심을 보이더라고요. 그래도 처음에는 저를 좀 도와줄 것처럼 하더니 결국 안 도와줘서 제가 2년간 엄청 고생했어요. 그렇게 고생하는 동안 저는 정토회를 알게 되어서 스님의 즉문즉설도 많이 들었습니다.nbspnbsp지금도 처남은 거래처가 넘쳐나도 다른 사람한테는 줄지언정 저한테는 주지 못하겠다고 하고 있고, 제 아내가 갖고 있던 지분도 나눠주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형님이 처남한테 얘기도 해 봤지만 처남은 ‘내 밑에 있어야 될 사람이 왜 배신하고 나가서 나를 힘들게 만드느냐? 앞으로 안 보고 살아도 좋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답니다. 저도 제 사업을 하면서 금전적으로 많이 어려웠는데, 이제야 조금 손익분기점을 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15년간 처남 밑에서 일할 때 알았던 거래처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이런 문제로 마찰이 심해지니까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nbsp“그냥 경쟁하세요. 질문자가 도둑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빼앗아오는 것도 아닌데, 경쟁하면 되지 고민할 게 뭐가 있어요? 우리나라의 어떤 대기업 회장도 자기 형님과 싸우면서 ‘한 푼도 못 준다’고 하는 거 못 봤어요? 그런 경우도 있는데, 처남이 자기 거래처를 안 나눠주겠다고 한다고 뭘 그렇게 신경을 써요? 질문자는 벌써 동종의 사업장을 인수했다면서요? 그것은 처남과 경쟁관계에 놓였다는 거잖아요. 질문자가 일을 저질러놓고 뭘 그래요? 경쟁을 시작했으면 정당하게,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마음껏 경쟁하면 되지요.nbspnbspnbsp어쨌든 질문자는 처남 회사에 있다가 동종 업체를 차린 거니까 처남으로서는 질문자가 배신했다고 여길만하잖아요. 그러니 처남이 욕을 하면 ‘그래, 네 입장에서는 배신이라고 여길만하다. 그러나 나도 먹고 살아야 되는데, 내가 배운 게 이 일밖에 없지 않느냐? 어쩔 수 없다’라고 하면 됩니다.nbspnbsp만약 제가 미국에서 어렵게 어렵게 절을 하나 냈다고 칩시다. 한 10년 운영하니까 절이 조금 커졌는데, 더 이상은 혼자 못 하겠는 거예요. 형편이 어려울 때는 저 혼자 죽기 살기로 해 보겠지만 절이 좀 커지고 수입이 되면, 저 혼자 그렇게까지 힘들게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면 한국에 있는 젊은 스님 한 명을 구해 와서 비자를 내주고 미국에 있는 절에 데려다 놓으면, 저는 그 스님한테 절을 좀 맡겨놓고 돌아다닐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한 1년 지났더니 젊은 스님을 따라서 신도도 많이 늘고 했는데, 모든 권한은 여전히 주지인 제가 갖고 있다면 자연히 젊은 스님도 불만이 생길 거 아니겠어요? 게다가 신도들도 그 옆에서 ‘스님, 뭣 때문에 그 절에 붙어서 그렇게 삽니까? 나와서 따로 하시면 되지요’라고 부추기면 갈등이 생겨서 결국 그 스님이 나가서 절을 세울 거 아니겠어요? 그럼 그 스님이 LA에 있다가 뉴욕까지 가서 절을 세우겠어요? LA에다 절을 세우겠어요?”nbsp“LA에 세우겠죠.”nbspnbspnbsp“또 그 스님이 이 절에서 알던 신도들 중 일부를 데리고 갈 수밖에 없잖아요. 그 스님 처지로 보면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제 절 신도 중에 3분의 1이 됐든 절반이 됐든 그 절로 갔다고 해서 제가 그 스님한테 ‘네가 나를 배신했다. 나는 처음에 혼자 LA에 와서 10년을 고생한 끝에 절을 이만큼 만들어놨는데, 네 놈은 내가 내준 비자로 LA에 와놓고, 1년 만에 우리 절 신도까지 데리고 나가서 바로 옆에 절을 새로 차리다니...’라고 하면 서로 원수가 되어 왕래를 안 하게 되는 겁니다.nbspnbsp그런데 LA에 한국 절이 처음에는 하나로 시작해서 또 나눠지고, 또 나눠지고 하면, 결과적으로 LA에 절이 10개나 생기게 되는 거잖아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nbspnbsp“예.”nbspnbsp“처음에는 신도 100명이 있었지만 제가 혼자 관리를 못해서 스님을 1명 더 데리고 와서 관리를 하다가 50명이 떨어져 나가서 50명씩 2개의 절이 되었는데, 각각 또 잘 운영하면 신도가 100명으로 늘게 될 거잖아요. 그러면 또 스님을 각각 1명씩 더 데리고 와서 관리를 시키게 되겠죠. 그러면 벌써 신도 50명 규모의 절이 4개나 됐잖아요. 그러니 결국 이런 ‘분열’이 바로 절이 더 커지는 길 아니에요?nbspnbspnbsp절이 꼭 하나만 있어야 될 이유는 없잖아요. 힘을 합해서 신도 400명 규모의 절 하나만 운영해도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잖습니까? 그런데 ‘내가 어떻게 고생했는데...’ 하면서 항상 자기 생각만 하니까 원수가 되는 거예요. 현실적으로는 교회도 그렇고, 절도 그렇고, 세탁소도 그렇고, 다 마찬가지입니다.nbspnbsp미국의 세탁소는 대부분 한국사람이 잡고 있는 거 아세요? 왜 그렇게 됐을까요? 전부 질문자와 같은 이유로 그렇게 된 거예요. 미국으로 이민 가서 세탁소 하나 내서 운영하다가 보니까 세탁소가 잘되자 한국에 사는 동생 부부를 미국으로 데려와서 세탁소 하나를 맡기고 자기는 또 세탁소 하나 더 내서 운영하는 겁니다. 그렇게 3, 4년 하다 보면 동생이 아니라 누구라도 오빠 밑에서 말뚝 박고 계속 월급쟁이만 하겠어요? 안 하지요. 그럼 싸우고 나간단 말이에요. 그럼 나갈 때는 자기가 맡아서 운영하던 세탁소를 가지고 나가든지, 아니면 어떻게 하겠어요? 미국에 와서 4년 동안 배운 건 세탁소 일이고, 아는 고객이라고는 그 동네 사는 고객밖에 없는데, 다른 동네로 가서 업종을 바꿔 일을 시작하겠어요? 그렇게 안 하겠죠? 그런데 거기다 대고 ‘세탁소를 차리려면 다른 데 가서 차리든지 하지 어떻게 옆에 차리느냐?’면서 난리를 치는 거예요.nbspnbsp그런 게 세상사입니다. 선임자 입장에서는 질문자를 배신자라고 볼 수 있는 것이고, 그러나 또 질문자 입장에서는 ‘배신을 하려는 게 아니라 나도 먹고 살아야 되지 않느냐’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질문자는 ‘아, 처남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라고 이해를 하세요.nbspnbsp또 질문자는 ‘처남 회사에서 15년간 일을 해줬다’고 했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자 입장에서는 ‘내가 15년 간 너를 도와줬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처남 입장에서는 ‘내가 15년 간 너 밥 먹여줬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 관점이 다른 겁니다. 그러니 그런 것을 자꾸 생각해 봐야 소용없어요. 이왕 벌인 일이니까 그냥 경쟁을 하세요.nbspnbsp그런데 처남은 질문자를 배신자로 생각하니까 혼내주려고 하겠지만, 질문자는 처남을 굳이 혼낼 이유도 없잖아요. 또 덕 보려는 생각도 하지 마세요. 질문자 입장에서는 ‘그래도 너는 내 처남이고, 내가 네 회사에서 15년간 너를 도와줬는데, 거래처 남는 거 있으면 나한테 좀 넘겨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처남은 갖다버릴지언정 절대로 질문자한테는 안 줄 거예요. 그러니 그냥 열심히 일이나 하세요. 사업이 안 되면 접으면 되지 처남을 욕할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질문자는 ‘아내의 지분’에 대해서는 얘기하면 안 됩니다. 그건 자기 형제들끼리의 문제이니까요.nbspnbspnbsp질문자는 처남에게 ‘15년간 네 회사에서 잘 지냈다. 덕분에 기술도 배웠고, 고객도 확보할 수 있었으니 고맙다’라고 하면 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해서 고객을 유치하세요. 그런데도 처남이 계속 욕을 하면 ‘그래도 내가 아는 게 이 일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나? 미안하다’ 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면 됩니다.nbspnbsp“제가 처남한테 ‘서로 좋은 방향으로 가자’며 6개월을 쫓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이제 처남은 저를 아예 안 보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계속 마음이 상합니다.”nbsp“질문자가 어리석은 거지요. 자기 밑에 있다가 나가서 딴 살림 차린 사람이 ‘같이 하자’라고 하면 누가 같이 하겠습니까? ‘지사를 하나 내달라’ 그래도 줄까 말까 한데요. 그러니까 욕을 하면 실컷 얻어 드세요. ‘그래, 네 집에 있다가 딴 살림을 차리니까 네가 그럴 만하다’라고 마음을 먹어요. 상대가 아무리 나를 욕하고 비난해도 질문자는 아무 상관하지 말고 인사도 하면서 인간적으로 지내세요. 그런데 ‘같이 하자’라고는 하지 마세요. 아직은 질문자가 부족한 입장이니까 도울 일도 없겠지만 앞으로 혹시 도울 일 있으면 돕고 그러세요.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면 풀리게 돼있습니다.”nbspnbsp“처남은 아예 제 인사를 안 받습니다. 저를 쳐다보지도 않아요.”nbsp“그래도 질문자가 ‘잘 있었나?’ 하면서 인사하면 되지요. 우리가 여기 계곡에 와서 ‘계곡이 좋다’라고 아무리 인사해도 계곡이 ‘고맙다’고 인사하던가요? 안 하잖아요. 상대가 인사 안 한다고 질문자도 인사를 안 하면 질문자가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상대야 인사하든지 말든지, 불편해 하든지 말든지, 질문자는 자기 볼일 보면서 ‘잘 있었나?’ 하고 다니면 질문자는 자유롭고, 처남은 불편한 겁니다. 처남은 질문자 안 보려고 도망가야 되고, 피해야 되고, 악 써야 되고 하니까, 상대가 과보를 받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과보 받을 일을 하지 마세요.”nbspnbspnbsp걱정스런 눈빛이 역력했던 질문자는 그제서야 편안하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대중들도 큰 박수로 함께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나 중심으로 좁게만 보던 시야를 더 크게 넓히게 되니 ‘별일 아니네’ 할 수 있었던 명쾌한 답변이었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많은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가을 불교대학, 봄 불교대학 담당이면서 불교대학 팀장까지 맡았는데 일은 힘들지 않지만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흔쾌하지 않다는 분, 불교대학을 담당하는 분과 관계가 불편하다는 법당 부총무님, ‘도솔이 무슨 뜻이냐?’는 학생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했다며 그 의미를 묻는 분, 불교대학 모둠장을 처음 하는데 사람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해 상대하기가 어렵다는 분, 불교대학 담당을 맡기 전에는 수행을 열심히 했는데 담당을 맡고부터는 수행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분, 수행정진을 강조하니까 학생 2명이 카톡방을 나갔다며 수행정진을 강조하지 말아야 하는지 묻는 분, 탐진치 삼독심 중 치심의 개념에 대해 묻는 분, 경전반 담당인데 스님은 스승님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 묻는 청년, 불교대학 수업에 들어갈 때 항상 쫓기는 마음이 들어 불편하다는 분 등 질문자도 많았고 그 내용도 다양했습니다.nbspnbsp대중들이 계곡의 나무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서 법문을 듣는 모습을 둘러 보니, 부처님 당시에도 많은 제자들이 이렇게 숲속에서 설법을 들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펼쳐진 셈입니다.nbspnbsp스님은 이렇게 2시간 넘게 즉문즉설을 한 후 마무리 말씀을 했습니다. 앞에서 질문자에게 답변한 내용을 다시 상기시켜 주면서 인생을 조금 더 크게 보고, 가볍게 살면 좋겠다고 당부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재밌었어요?”nbsp“예.”nbspnbsp“사는 걸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산에 사는 한 마리 토끼처럼 그냥 가볍게 사세요. 여러분들이 굉장한 거 같지만 지구 전체로 보면 별거 아니에요. 네팔에도 어느 동네에 가면 부자라고 굉장히 잘난 척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nbsp“있어요.”nbsp“방글라데시에도 동네마다 계급이 높다며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한둘은 꼭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지구적인 차원에서 보면 사람이란 그냥 지구에 붙어사는 개미처럼 바글바글한 것에 불과하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아무 것도 아니니까 다 죽어야 된다는 게 아니라 그냥 살면 된다는 겁니다.nbspnbsp어떻게 사는 게 그냥 사는 걸까요? 놀면서 살아도 돼요. 괜찮아요. 그런데 놀기만 하면 지루하잖아요. 예를 들어 70년 가까이 우리는 통일을 못 해 봤잖아요. 그런데 통일하면 좋을 것 같으니까 그거나 한번 해본다든지, 또 이 부처님 법이 참 좋은데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으니까 이걸 한번 알려본다든지, 이런 소일거리를 하나 마련해서 노는 게 좋지 않아요?nbspnbsp정토불교대학 안 나왔으면 언제 모둠장 해보고, 앞으로 어디 가서 총무도 해보고 그러겠어요? 학교 다닐 때 반장도 한번 못 해봤는데, 언제, 어디 가서 그런 걸 해보겠어요? 그리고 대구정토회나 동래정토회 같이 큰 법당에는 가봤자 내 차례 돌아오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신생 법당이니까 수준도 안 되는데도 중책을 맡겨주고 그러는 거예요. nbspnbspnbsp제가 시골에 있는 학교를 다녔고, 학교에 선생님이 부족했으니까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험도 해 볼 수 있었지, 도시에 있는 학교를 다녔으면 어떻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겠어요. 그리고 제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니까 아르바이트 한다고 아이들을 가르쳐보려고 했지, 부자 집에서 태어났으면 어떻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겠어요? 그때는 힘든 일이었지만 지나고 보면 다 도움이 되는 일이었어요.nbspnbsp예를 들어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님이 혼자서 일하게 되면, 자식은 엄마를 도와서 식당 일을 하느라 다른 집 애는 공부할 시간에 나는 식당 일을 해야 했다고 하소연 할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사는 데 겁이 없을 수 있잖아요. 여차 하면 식당 하나 내면 되니까요. 안 해본 사람은 식당 내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대학 나온 건 써먹을 데가 그리 많지 않지만, 어릴 때 농사일을 해보거나 식당 일을 해본 경험은 언제든지 여차하면 써먹을 수가 있는 거예요. 그게 진짜 공부예요. 스님이 다른 사람보다 생존력이 더 있다면, 그건 수행했기 때문도 아니고, 학교를 더 다녀서도 아니고, 어릴 때 촌에서 밥 한 숟가락 얻어먹으려고 죽기 살기로 일한 덕분이에요.nbspnbsp그러니 인생이라는 게 별 게 아닙니다. 제가 꿈꾸던 물리학자가 돼서 미국으로 가서 유명해져봤자 무기 공장에 가서 미사일 만드는데 재능을 팔든지 했겠지요. 안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럴 확률이 더 높다는 겁니다. 그 길로 갔으면 그렇게 됐을 거고, 이 길로 왔으니까 이렇게 된 거예요. 인생이라는 게 이렇게 따져보고 저렇게 따져봐야 별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인생이 별 거 아닌 줄 알면 그렇게 목에 힘줄 것도 없어요.nbspnbspnbsp여러분들도 가정생활을 좀 가볍게 하세요. 남편이 성질을 내면 ‘좀 성질 날 일이 있으시구나’ 하면서 ‘죄송합니다. 맛있는 밥 지어 줄게요’ 하고 슬쩍 넘어가세요. ‘내가 놀다 왔나? 내가 정토회 다니면서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르나?’ 하면서 따지지 말고요.nbspnbsp또 정토회에 와서도 가볍게 생활하세요. 농땡이 치라는 게 아니라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하라는 거예요. 신생법당 하나 내면 혼자 부총무에다가 팀장에다가 담당에다가 청소까지 자기가 혼자 다 할 수 있잖아요. 좋잖아요. 그런데 그게 뭐가 힘들다는 거예요? 청소가 좀 힘들면 다른 사람이 왔을 때 ‘청소 좀 해 주세요’ 하고 적당하게 나눠서 하면 되지요. 혼자 청소 다 해 놓고, 준비 다 해 놓으려면 너무 힘이 드니까 하는 만큼만 하고, 못 하는 일은 다른 사람과 나누세요.nbspnbsp또 실수하는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비판하면 솔직하게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하고 인정하고요. 이렇게 좀 모자라는 척하고 살면 사는 게 편안합니다. 모자라는 게 안 모자라는 척 하려니까 힘든 거예요. 완벽하지만 모자라는 척 하라는 게 아니라 원래 모자라잖아요.nbspnbspnbsp우리가 이렇게 모자라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활동을 해도 사회에 변화를 조금씩 가져오고 있잖아요. 그렇지요?”nbspnbsp“예.”nbspnbsp“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정토회만 좋게 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도 바꿀 수가 있습니다. 굳이 총 들고 안 싸워도, 두 손만 가지고도 변화를 가져올 수가 있는 거예요. 다만 여러분이 지금 별 거 아닌 인생에 너무 투자를 많이 해서 지금 지쳐있는 겁니다.nbspnbsp아까 질문하신 분도, 남 밑에서 일하다가 새로 살림을 낼 때는 원래 동종업을 하면 안 됩니다. 그것도 형제간에 그러는 게 말이 돼요? 그러니까 처남 아들이 회사를 인수하면 한 발 물러나서 무슨 허드렛일이나 하다가 아내가 주식이 있다니까 배당이나 좀 받아서 살고 그러면 되는데, 질문자도 배운 게 있으니까 ‘한번 해 보겠다’ 했던 것 아니에요? 그렇다면 욕 얻어먹을 각오를 해야 되는데, 욕은 안 얻어먹으려니까 골치가 아픈 겁니다. ‘당연히 욕하겠지. 원수 되겠지. 그래 원수 좀 되지, 뭐. 나도 살아야 되니까 어떡해. 너만 사장하라는 법 있냐? 나도 사장 한번 해 보자’ 하는 배짱이라도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경제적으로도 좋아지고, 지위도 높아지고, 인기도 좋아지고, 욕도 안 먹는 길은 없어요. 그러니 인생을 조금 더 가볍게 생각하고 삽시다.”nbspnbsp“예.”nbspnbspnbsp“그리고 정토회 운영도 잘 해야겠지만, 올해와 내년에는 나라가 잘 되는데 좀 더 힘을 씁시다.”nbsp“예.”nbspnbsp“나라가 잘 되도록 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얼마나 답답하면 제가 이러겠어요? 내버려둬도 잘 되면 저도 편하고 좋지요. 그런데 중은 원래 옛날부터 좀 먼 데를 보잖아요. 지금 우리나라의 기운이 좀 안 좋아요. 100년 전에 겪었던 불행을 안 겪게 하려고 저도 이렇게 노력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개인사는 좀 접어두고, 필요할 때는 나라를 위한 일도 해야 합니다. 알았지요?”nbspnbsp“예.” nbsp스님의 격려말씀 중간중간에 ‘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쉼없이 계곡에 울려 퍼졌습니다. 웃음소리 만큼이나 유익하고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사홍서원으로 행사를 마치고 다함께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맑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 몸을 힐링하고, 스님의 감로 법문을 들으며 마음을 힐링한 시간이었습니다. 모두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nbspnbspnbsp산에서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몇몇 참가자들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오늘 하루 너무 행복했다”라고 하면서 “앞으로는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운영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대중이 탑승한 차량이 모두 출발하자 스님도 울산 두북으로 향했습니다.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5.8 (오전) 청년·대학생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새벽 6시 20분부터 9시 20분까지 청년·대학생 정토불교대학 입학생들을 위한 특강수련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10시부터는 정토회 저녁부 정토불교대학 담당자들과 함께 용추계곡으로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nbspnbsp어제부터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1박 2일 간의 일정으로 특강수련을 하고 있는 청년·대학생 정토불교대학 입학생들은 오늘 새벽 4시에 일어나서 108배와 명상으로 둘째날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명상을 마치고 새벽 6시가 되자 스님이 법상 위에 올라 환한 웃음과 함께 인사말을 건넸습니다.nbspnbspnbsp“연휴라서 다들 놀러가기 바쁜데 그래도 수행하겠다고 놀러 안 가고 이렇게 온 것만 해도 대단합니다. 오기는 왔는데 수행은 제대로 하는 거예요? 지금 불교대학 어디까지 배웠어요? 실천적 불교사상 끝났어요?”nbspnbsp“아뇨.”nbsp“아직 안 끝났어요?”nbsp“네.”nbsp“그러면 모두 초짜들이구나. 어제 300배는 해 봤어요?”nbsp“108배 했어요.”nbsp“108배 하고 나니까 어때요? 아침에 걸을 때 다리 아팠어요?”nbsp“네.”nbsp“원래 학습을 제대로 하려면 수업 듣고 나서 바로 그 자리에서 질문해야 하는데, 제가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도 능력이 거기까진 아직 안 됩니다. 저를 동시에 여러 곳에서 여러분 앞에 나투는 것까지는 되지만 여러분들이 저한테 동시에 나타나게 하는 것은 아직 못 하고 있어요.nbspnbspnbsp그래서 여러분들이 수업 끝나자마자 바로 질문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아직 갖추어지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대략 8강까지 수업을 들었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수업을 들으면서 들었던 의문이 있다면 오늘 한꺼번에 모아서 답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nbsp스님이 힘찬 기운을 불어 넣어 준 덕분에 청년·대학생들은 새벽 잠이 확 달아난 듯한 눈빛으로 스님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nbspnbsp사전에 쪽지로 적어낸 질문지가 9장 있었고, 이어서 현장에서 직접 손을 들고 질문한 사람도 추가로 생기면서 십여 명의 청년·대학생들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108배를 왜 하는지 그 이유를 물었던 것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어제 특강 수련 프로그램 중에서 108배를 해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108배를 해보는 사람들도 많았나 봅니다. 스님의 답변에 대해 많은 청년들이 공감하고 좋아했습니다.nbspnbspnbsp“108배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nbspnbsp“우리는 살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특히 하고 싶은 욕구가 억제될 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여행가고 싶는데 못 가서 스트레스 받고, 여자친구나 남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는데 없어서 스트레스 받고, 성적 욕구를 참는 것도 스트레스이고,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는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요.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것도 스트레스이고,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는 것도 스트레스예요. 이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내가 옳다’, 즉 자기가 옳다는 생각과 관계가 있습니다. 내 생각이 관철이 안 될 때 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nbspnbsp몸과 마음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알 수 있어요. 두 사람이 누워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하다가 의견 차이가 생겼어요. ‘그거 아니야’, ‘맞다니까?’, ‘아니라니까 그러네’ 이렇게 의견 차이가 계속되면 계속 누워서 목소리를 높일까요? 벌떡 일어나 앉을까요? 누워서 이야기하다가 벌떡 일어나 앉겠지요. 앉아서 둘이 이야기하다가 자꾸 의견 차이가 생기면 어떻게 될까요? ‘뭐? 이게 진짜 두고 보자니까’ 이러면서 벌떡 일어서죠. 그러면 고개를 숙이고 이야기합니까? 고개를 쳐들고 이야기합니까?”nbsp“고개를 쳐들고 이야기합니다.”nbsp“내가 옳다는 생각이 강할수록 ‘뭐?’ 하면서 이렇게 고개를 쳐들고 눈을 부릅뜹니다. 이게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에요.nbspnbsp반면에 ‘어, 내가 생각을 잘못했다’ 이런 생각이 탁 들면, 우선 부릅떴던 눈이 약간 내리감기고, 쳐들었던 고개가 약간 숙여져요. 그러면서 ‘미안합니다’라고 하게 되죠. 미안하다고 할 때 눈을 딱 부릅뜨고 ‘미안합니다’ 이러는 사람은 없잖아요.nbspnbspnbsp미안하다고 할 때는 다 고개를 숙이면서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럽니다. 더 잘못했다 싶으면 허리를 굽힙니다. ‘죄송합니다’ 하고요. 그보다 더 잘못했다 싶으면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댑니다. 즉 절을 한다는 거예요.nbspnbsp이렇게 절을 한다는 건 ‘정말 내가 옳다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이럴 때 우리 몸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댑니다. 전쟁을 묘사한 영화를 보면, 적장을 사로잡았을 때 항복하라고 해도 안 하고, 무릎 꿇으라 해도 안 꿇어요. 그러면 몽둥이로 무릎을 때려서 억지로 무릎을 꿇리고, 고개를 안 숙이니까 목을 억지로 내리눌려서 이마를 땅에 대게 하잖아요. 이렇게 강제로 하면 굴복이 됩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면 겸손이 되고 승복이 됩니다. nbsp자발적으로 ‘아, 내가 잘못했구나’, ‘아, 내가 몰랐구나’ 이렇게 내려놓으면 스트레스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억지로 내리눌리면 스트레스가 더 강해집니다. 그래서 굴복을 하게 되면 반드시 다음에 기회가 왔을 때 저항을 하거나 복수를 하게 됩니다. 국가도 그렇고 개인도 그래요. 그런데 스스로 ‘아, 내가 잘못했구나. 내가 몰랐구나’ 이렇게 엎드려 절을 하면 자기 몸과 마음에 있던 스트레스가 해소됩니다. 절하는 것은 ‘제가 부족합니다’, ‘제가 몰랐습니다’, ‘제가 잘못 알았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런 표현이에요. 그래서 절을 하는 거예요.nbsp그러면 왜 108배를 하는가? 꼭 108배를 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보통 ‘100번은 해야 된다’, ‘1,000번은 해야 한다’, ‘10,000번은 해야 한다’ 이런 의미로 쓰여요. 그럼 100번 하면 되지 왜 108번일까요? 전통적으로 ‘108번뇌’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수많은 고뇌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번뇌’라고 말하고, 다른 말로는 ‘4고, 8고, 108번뇌’라고 말합니다. 그보다 더 많은 수를 말할 때는 ‘팔만사천 번뇌 망상’이라고 말해요. 다시 말해 108번뇌라는 말은 모든 고뇌라는 뜻이에요. 108배 절을 한다는 것은 108번뇌를 없앤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고뇌에서 벗어난다는 뜻입니다.nbspnbsp그러면 ‘왜 108이라는 숫자가 생겨났습니까? 우리 번뇌가 108가지입니까?’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죠. 번뇌가 어떻게 108가지뿐이겠어요? 훨씬 많아요. 불교대학 수업 2학기에 가면, 번뇌가 어떻게 생기는지를 배우게 될 겁니다. 우리들의 번뇌라는 것은 눈이 없어서 보지 못하면 안 생겨요. 귀가 없어서 듣지 못하면, 코가 없어서 냄새 맡지 못하면, 혀가 없어서 맛보지 못하면, 손이나 피부가 없어서 감촉하지 못하면, 머리가 없어서 생각하지 못하면 번뇌가 생기지 않아요. 번뇌가 생기는 이유는 우리 몸에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안이비설신의’라고 해요.nbspnbsp설령 ‘안이비설신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빛이 없으면 보이지 않고, 소리가 없으면 들리지 않고, 냄새가 없으면 냄새를 맡지 못하고, 맛이 없으면 맛을 보지 못하고, 부딪히지 않으면 느끼지 못 하겠죠. 이런 대상, 다시 말해서 보는 대상, 듣는 대상, 냄새맡는 대상 등 여섯 가지 인식대상을 ‘색성향미촉법’이라고 해요. 근본 불교교리 시간에 배우게 될 내용입니다. 눈이 보려면 그 대상인 모양과 빛깔이 있어야 하는데 이 모양과 빛깔을 한자로는 색이라고 해요. 귀의 감각 대상인 소리를 성이라고 하고, 코의 대상인 냄새를 향, 혀의 대상인 맛을 미라고 합니다. 감각의 대상을 촉, 생각의 대상을 법이라고 해요. 그래서 감각기관인 안이비설신의와 감각 대상인 색성향미촉법이 서로 부딪혀서 소위 말하는 온갖 번뇌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안이비설신의의 6에 색성향미촉법의 6을 곱하면 36가지의 번뇌가 생기게 되죠.nbspnbsp그런데 우리들의 번뇌는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 과거에 일어난 것, 지금 일어나는 것, 미래에 일어날 것이 있어요. 그래서 앞의 36가지에 이미 지나가버린 일, 현재 일어나는 일, 미래에 예상되는 일, 이렇게 3을 곱하면 108가지가 돼요. 그래서 ‘번뇌는 이렇게 해서 형성되는 것으로 그 외에 따로 없다’라고 해서 모든 번뇌를 지칭할 때 ‘108번뇌’라고 부릅니다.nbspnbspnbsp그러니 108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모든 번뇌’라는 뜻이 중요합니다. 108배를 하고, 염주도 108개의 알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108배를 하는 겁니다.nbsp아침에 일어나서 108배를 하면, 우선 ‘내가 옳다’라고 하는 몸에 밴 아상을 내려놓게 되고, 동시에 마음에 밴 아상도 내려놓게 되어서 머릿속에 있는 번뇌를 소멸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nbspnbsp그리고 108배를 하면 건강에도 좋아요. 종교와 상관없이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108배만 해도 전신 운동이 됩니다. 특별한 병이 없는 보통 사람이라면 매일 108배만 하면 1,000미터 높이의 산을 5시간 정도 등산하는 데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산에 가서 걸을 때 여러분들이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제가 ‘너 108배 안 하지?’ 이렇게 물어요. 그러면 거의 100퍼센트 맞습니다.nbspnbspnbsp이처럼 108배는 첫째, 건강에 좋아요. 그러니 운동 삼아서라도 해야 합니다. 3,000배를 한다, 10,000배를 한다, 이건 극기훈련도 될 수 있어요. 108배는 그냥저냥 하면 되지만 3,000배나 10,000배를 하려면 힘이 들잖아요. 힘들면 대부분 중도에 다 포기하게 되는데 그 하기 싫은 마음을 이겨내는 극기훈련의 대상으로 좋기에 3,000배를 하기도 하고, 10,000배를 하기도 합니다.nbspnbsp그러나 진짜 108배를 하는 이유는 이런 게 아니에요. ‘내가 옳다’라는 생각을 내려놓기 위해서 108배를 하는 거예요. 설령 다리가 아파서 절을 못 해도 ‘아, 내가 또 고집했구나’, ‘아, 내가 또 잘못 알았구나’ 이렇게 마음을 돌이킬 수 있으면 참회가 된 거예요. 108배는 참회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108배를 하는 거예요. 108배를 처음에는 운동삼아 했다 하더라도, 몸을 억지로 숙이다 보면 마음도 같이 숙여져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굉장히 맑아집니다.nbspnbsp또 어떤 한 가지를 꾸준히 하면 사람이 덜 흔들리게 됩니다. 어떤 일을 좀 하다가 마는 것을 반복하는 사람은 108배를 100일, 1000일 동안 꾸준히 하면 소위 ‘끈기’, ‘꾸준함’이라고 하는 것이 형성됩니다. 여러분들의 제일 큰 문제가 재능은 있는데 끈기가 부족해요. 지속성이 없습니다. 뭐든지 하다가 말고 하다가 말아요. 연애도 금방 하다가 말고, 직장도 다니다 말고, 학과도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금방 그만두고요. 그래서 108배를 시켜도 젊은 사람은 사흘 하다가 그만두고, 일주일 하다가 그만두고 그래요.nbspnbspnbsp아침에 일어나서 108배를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평생 동안 밥 먹듯이 꾸준히 실천하면, 여러분들의 삶에 흔들림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nbsp“네,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nbsp질문자가 큰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하자 청중들도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nbsp오늘 새벽기도 시간 때까지만 해도 왜 108배를 해야하는지 거부감이 있었던 청년들도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시원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nbspnbsp강연이 끝나고 몇몇 청년들에게 소감을 물어보니 대부분 “108배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 부분이 너무 좋았다”고 하면서 “오늘부터 매일 108배를 해보기로 했어요”, “그동안 108배를 하다가 말다가를 반복했는데, 꾸준히 해보는 것을 실천해 볼 거예요”라고 각오를 말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차 어느덧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스님은 9시 30분부터 다른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면서 곧바로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마무리 정리 말씀으로는 5월 21일에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청춘콘서트가 열린다고 소개하면서 많은 청년들의 참여를 당부했습니다. nbspnbsp“5월 21일에 서울시청 앞에서 1만 청년이 모이는 청춘 박람회와 청춘콘서트가 열립니다. 출연진은 김제동씨, 박원순 시장, 노희경 작가, 법륜스님 이렇게 네 명이고, 한 사람당 30분 정도씩 대화하는 시간이 있고, 밴드들의 공연도 많이 보실 수 있어요. 행사를 하게 된 목적은 ‘청춘의 날’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왜 꼭 5월이냐고 묻는다면, 여러분들이 처음으로 20살이 되어서 성인이 되는 ‘성년의 날’에 맞춘 거예요. 성인이 된 사람들을 위한 기념 축제를 앞에 잠시 해준 후에 여러분들처럼 35세까지의 청년들을 위한 행사가 펼쳐집니다. 요즘 청년들이 약간 기가 죽어 있으니까 기를 좀 살리자는 뜻이에요.nbspnbspnbsp또 무교동 골목에는 150여 개의 청년단체들이 참여하는 부스를 설치해서 장사도 하고, 자기들 단체를 선전도 하는 청춘박람회를 12시부터 6시까지 하고,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는 청춘콘서트를 시청광장에서 하게 됩니다. 그러니 친구들과 와도 좋고, 그 누구와 와도 좋습니다. 청년이면 다 돼요.nbsp첫째는 청년들이 희망을 좀 가지자는 겁니다. 둘째는 청년들이 더 이상 지금처럼 기성 세력에게 ‘청년들을 위해서 뭘 베풀어주세요’라고 구걸만 할 게 아니라 앞으로는 청년들이 직접 자기들의 요구를 사회적으로 관철시켜 나가자는 겁니다. 이번 총선에서 여러분들이 투표를 조금이라도 많이 하니까 변화가 일어나는 걸 봤잖아요. 이런 계기를 점점 더 많이 마련하기 위해서 하는 거니까 일가 친척 친구는 물론 화장실 갔다가 마주친 사람까지도 다 함께 데려오세요.”nbspnbsp“네. 그렇게 하겠습니다.”nbspnbsp스님의 당부에 청년들은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스님으로부터 청춘콘서트의 취지에 대한 설명을 직접 듣고 나니 5월 21일이 벌써부터 기다려졌습니다.nbsp청년들이 오늘 들은 법문을 가슴에 새기며 명상을 하고 있는 사이 스님은 법상에서 내려와 곧바로 다음 행사 장소인 용추계곡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아침 9시 30분부터는 용추계곡에서 정토회 저녁반 불교대학 담당자들과 함께 봄나들이 및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5월 21일 시청광장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청춘콘서트amp청춘박람회가 열립니다. 법륜 스님, 김제동, 박원순 서울시장, 노희경 작가가 펼치는 행복 토크, 뮤지션들의 공연, 150여 개의 청년 단체가 참여하는 박람회 등 세상을 바꾸는 즐거운 축제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티켓신청 바로가기 httpwww.jungto.org nbspnbsp
2016.5.7 평화리더십아카데미 힐링 동문회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평화재단 평화리더십아카데미를 졸업한 동문들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힐링 야유회를 다녀왔습니다. 동문들은 오랜만에 스님과 함께 산책도 하고, 즉문즉설 시간도 가지면서 에너지를 듬뿍 받았습니다. nbspnbsp오전 11시, 남한산성 어귀의 숲속 너른 공터에 100여 명의 평화리더십아카데미 동문들이 모였습니다. ‘힐링 야유회’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대부분의 동문들이 가족들까지 함께 데려와서 행사장은 아이들의 목소리까지 더해져 시작부터 아주 화기애애한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nbsp평화리더십아카데미는 남한 사회 전체를 포용하고 남북통일을 이뤄낼 통합의 리더십을 가진 리더 그룹을 양성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활동을 전개하고자 지난 2009년 12월에 제1기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현재는 제14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가 진행 중이며 졸업생들은 한국 사회 곳곳에서 통일 비전을 실현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동문회에도 1기 졸업생부터 14기 졸업생까지 다양한 기수에서 많은 분들이 참석했습니다.nbspnbsp먼저 스님이 환한 웃음과 함께 동문들에게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오늘 아침 뉴스에 황사가 심하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는데, 날씨와 환경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습니다.nbspnbspnbsp“오늘 날씨 좋죠? 정부에서 여러분들 좀 놀러다니라고 4일간 휴일도 만들어줬는데 왜 놀러 안 가고 여기 오셨어요? 돈이 없어요?”nbsp“딱히 갈 곳이 없어요.”nbspnbsp“갈 곳이 없어서 여기로 오셨군요. 잘 오셨어요. 오늘 남부지방은 황사가 아주 심하다는데 서울은 좀 괜찮은 것 같네요. 광주는 황사 경보까지 발령되었던데요.nbspnbsp지난달에 제가 요하문명을 답사한다고 황사의 진원지인 내몽고에 가봤더니 바람이 부니까 먼지가 엄청나게 일어나더라고요. 곡식을 심으려고 땅을 갈아놓아서 그런지 먼지가 더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았어요. 답사를 다니는데 입안에 모래가 가득했어요. 모래에 차바퀴가 빠져서 가지도 못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나무를 많이 심기는 심었어요. 농부들한테 땅의 10는 의무적으로 나무를 심도록 하고 있었고, 주로 미루나무처럼 건조한 땅에도 잘 사는 나무들을 많이 심었더라고요. 세계가 하나의 나라가 되다보니까 이제 중국에서 공해를 일으키면 한국에서 그 공기를 맡아야 하고, 중국에서 바람이 불면 한국에서 그 먼지를 맡아야 되는 이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nbspnbsp이런 걸 보면 이제는 우리가 환경을 보존하는 의식을 좀 더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개발만 중심에 뒀는데, 맑은 공기, 맑은 물, 깨끗한 음식, 이런 것들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각박해지겠습니까?nbspnbsp오늘 같이 좋은 날, 건물 안 보다는 밖에 나와서 이렇게 대화를 나누니까 참 좋네요. 자, 시작하시죠.”nbspnbsp스님의 인사말을 듣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니 나뭇잎들은 초록색 불빛을 발하며 싱그러운 녹음을 자랑하고 있었고,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함을 더해 주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하지 말고 후손들에게 잘 물려줘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본격적으로 즉문즉설에 집중했습니다.nbspnbsp손을 드는 방식으로 즉석에서 질문을 받았는데, 총 5명이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은 최근 미국 대선이 진행되는 상황을 보며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걱정을 내비쳤는데, 그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최근 미국 대선이 보여주는 모습은 미국 국민들의 어떤 심리를 말해주는 것인지, 각각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지금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대선 후보로 나왔는데요. 미국 대선의 전망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이에 대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스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nbsp“지금 미국의 가장 큰 사회적 문제는 빈부격차가 너무 심각하다는 거예요. 제가 작년에 미국에 갔을 때 왜 ‘트럼프 현상’이나 ‘샌더스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학자들과 토론해보니까 트럼프가 뜰 거라는 예측들을 많이 했어요.nbspnbsp왜 그러냐고 했더니 미국에서 직장 다니는 보통 사람의 소득이 30년 전보다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여기서 말하는 소득은 명목상 소득이 아닌 구매력 기준의 실질소득을 말합니다. 자기가 받은 월급으로 집을 사거나 물건을 사거나 자동차를 샀을 때의 값어치가 5년 전이나 10년 전이 아니라 30년 전보다 못하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미국의 일반 서민들은 지난 30년 동안 실질소득이 하나도 안 올랐다는 거예요. 반면에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의 부는 몇 배로 늘었습니다. 즉, 지난 30년 동안 국가 전체의 부는 몇 배로 늘었지만 서민들의 부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것은 부의 대부분이 소수에게로 집중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nbspnbspnbsp노무현 대통령 때 극심한 빈부격차 문제를 두고 ‘10대 90’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구의 10퍼센트가 전체 부의 절반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였는데, 재작년부터 ‘월가를 폭파하라’ 이런 구호를 외치며 미국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났을 때는 ‘1대 99’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구의 1퍼센트가 소유한 부가 인구 99퍼센트의 부와 맞먹는다는 거예요. 이렇게 빈부격차가 극심하게 벌어졌습니다.nbsp이렇게 빈부격차가 벌어지는데도 기존의 워싱턴 정가, 즉 소위 기득권 세력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어요. 정권이 이리저리 아무리 바뀌어도 아무런 변화가 안 일어나니까 워싱턴 정가 혹은 기득권 전체에 대해서 국민들의 저항이 일어나는 겁니다.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라고는 하지만 거기에도 사회적 기득권층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갖추어져 있어 그에 대한 저항이 시위나 폭동으로 일어나봐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그 저항이 합법적인 통로를 통해서 지금 선거에 분출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nbspnbsp양 진영에서 뜻밖의 돌풍을 일으켜서 주목받은 후보가 샌더스와 트럼프였습니다. 샌더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미국 백인 중에서도 화이트칼라, 주로 사무직 노동자들입니다. ‘빈부격차가 너무 심하니까 이걸 좀 완화시켜라’, 우리 사회의 이슈로 말하자면 ‘경제민주화를 좀 이루어라’ 이렇게 요구하는 사람들이에요. 샌더스가 빈부격차는 우리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가 사회제도를 개선하면 이 문제는 얼마든지 바꿀 수가 있다고 계속 용기를 불어넣으니까 많은 시민들이 샌더스를 지지하게 된 거예요.nbsp그런데 트럼프 지지 세력은 미국 백인 중에서도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사실 트럼프는 기득권층의 일부죠. 그런데 미국 사회의 성격을 살펴보면,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한편으로 저소득층의 저항을 막기 위해서 공짜로 돈을 주는 게 많습니다. 아이를 낳아도 돈을 지원하고, 웰페어도 주고, 인디언이라고 지원해주고, 이런 식으로 해서 사회를 유지합니다. 그리고 인권이 신장되면서 ‘인종차별 하지 말라’, ‘낙태도 허용하자’, ‘동성애도 허용하자’라고 하니까 거기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은 차마 말로 표현은 못했지만 불만이 계속 쌓였어요. 예컨대 미국 백인 건설노동자들은 ‘우리는 도로를 닦고 건물을 짓고 이렇게 죽어라고 일해도 먹고 살기가 어려운데, 흑인들이나 히스패닉은 아무것도 안 하고 놀면서 내가 국가에 낸 세금으로 산다’ 이런 불만이 있는 거예요. 사회 전체를 못 보고 눈앞의 것만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걸 트럼프가 막 이야기해주는 거예요. 여성비하 발언 이런 것도 많지만 개중에는 ‘여자들은 별로 하는 것도 없이 대우만 받는다’라는 얘기에 지지하는 사람도 있는 겁니다. nbspnbspnbsp이런 건 사회적으로 보면 사회 복지에 대한 하나의 저항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나는 죽어라고 일해서 겨우 먹고 사는데 저놈들은 가만히 앉아서 그냥 먹고 산다는 거죠. 히스패닉이나 유색 인종, 여성들, 장애인들에 대한 불만을 트럼프는 까놓고 막 이야기하잖아요. 우리가 보기에는 상식이 없는 사람 같지만 그게 미국 사람들의 일부에게는 자기 속마음을 바깥으로 솔직하게 드러내주는 것이기에 더 열광하는 거예요.nbspnbsp이건 미국만 그런 것도 아니에요. 요즘 유럽에도 무슬림들이 들어오고 난민들이 들어오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싫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면 인류애니 도덕이니 하면서 인종차별이라거나 성차별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말을 못하고 있다가, 이제는 막 까놓고 ‘싫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유럽의 극우세력입니다.nbspnbsp최근에 프랑스에서 선거가 있었어요. 10년 전만 하더라도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을 만든 르펜은 완전히 돈키호테 같은 인물로 취급을 받았어요. 그런데 지난 지방선거에서 15군데나 국민전선이 1위를 했어요. 이것도 기성에 대한 저항이죠. 그런데 프랑스에는 결선투표제가 있어요. 그래서 중도우파와 중도좌파가 힘을 합쳐서 결선투표에서는 15군데 모두에서 극우정당을 이기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극우세력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고 있다는 거예요.nbspnbsp독일에서도 난민 문제 때문에 극우세력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고, 일본도 지금 장기적 침체가 되다 보니 아베 총리 같은 인물을 보면 일본의 전체 민심이 극우세력으로 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한국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고 있어요. 일본 사람 중에는 ‘우리가 한국을 식민지배 했었던 것은 잘못이다.’라고 인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다 옛날에 학교 만들어주고 철도 놔주고 도로 닦아주고 공장 지어준 덕에 한국 사람들이 지금 잘 사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또 ‘맨날 사죄하라 하는데 한번 했으면 됐지 왜 자꾸 걸고 넘어지냐?’ 이런 불만이 있어도 그 동안에는 이걸 말로는 못하다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말하는 분위기로 넘어간단 말이에요. 도쿄 같은 경우에는 아예 사죄 안 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서 다 나가’라고 하는 혐한파들이 길거리에서 데모를 하잖아요. 옛날에는 이런 행동은 어림도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일베에서 보여주는 막말들은 예전에는 몰래 숨어서 했는데 요즘은 대학에서 동아리까지 만들려고 한다잖아요. 이렇게 뻔뻔스러워졌어요. 전에는 극우 활동이나 친일 행위 같은 것은 숨어서 했는데 요즘은 나서서 공개적으로 합니다.nbspnbsp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회가 오랫동안 정체되면 불만이 쌓이게 되는데 이 때 합리적으로 제도를 개선해서 불만을 해소하기보다는 화풀이 하는 쪽으로 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학교 가면 아이들도 만만해 보이는 아이 한 명을 왕따 시키듯이, 사회적 약자를 겨냥해서 막 공격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푸는 거예요. 우리나라의 일베 같은 경우도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 중 일부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너무 혜택을 많이 받는다’ 라고 하면서 여성을 미워합니다.nbspnbsp즉 ‘약자 보호라는 미명으로 공짜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라고 하는 이런 저항이 주로 극우세력으로 모이게 되는데, 트럼프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그런 성향이 강합니다. 공화당이 자기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트럼프는 사실 공화당이 아닙니다. 그냥 자기가 대통령 경선 후보를 공화당에 등록을 했을 뿐이에요. 샌더스도 원래 무소속이였는데 민주당 후보로 참여했을 뿐이고요. 이런 현상들은 모두 그동안 워싱턴DC를 중심으로 한 정치 기득권에 대한 하나의 저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런 면에서 볼 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주의’를 우선할 겁니다. 국내적으로는 ‘우리가 못사는 건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공짜로 먹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하잖아요. 국외적으로는 중국처럼 미국에 대해 무역 흑자를 보고 있는 나라들을 공격하겠죠. ‘저들이 미국에다가 물건 팔아먹어서 우리 일자리와 우리 공장을 다 빼앗아갔다’는 겁니다. 실제로는 중국에서 생필품을 값싸게 공급해주는 덕분에 빈부격차가 극심해도 미국이란 나라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인데 그렇게만 인식하는 거예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블루칼라, 즉 공장노동자들은 자기들이 일자리를 빼앗긴 것이라고 확 받아들이게 됩니다.nbsp다음으로는 방위비 관련 문제를 들고 나올 겁니다. ‘왜 우리가 전 세계에 군대를 주둔시켜가면서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같은 남의 나라를 지켜줘야 하느냐? 우리가 군대를 파견하려면 돈을 받고 파견해야지, 왜 우리 돈 내가면서 저 사람들을 지켜주느냐? 당장 TV를 사려고 해도 전부 삼성, LG와 같은 한국 대기업 제품인데 한국은 잘 사는데도 불구하고 안보무임승차를 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주둔비는 말할 것도 없고 군대파견 비용을 도로 받아야 한다. 용역비를 받아야 한다’ 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nbspnbsp이런 걸 보면 미국이 점점 경제적으로 어려워진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려워진 게 아니라 미국 국민들의 다수가 지금 굉장히 살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샌더스가 주장하는 관점에서 보면 사회의 불평등 구조 때문에 살기가 어려워진 것인데, 이것을 ‘방위비 지출 때문에 그렇다’라고 인식해버리는 거예요. 또 ‘무역 역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 지금 FTA고 뭐고 다 폐지해야 된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민자들 때문에 그렇다’, ‘웰페어 같은 걸 주는 복지제도 때문에 그렇다’ 라고 하죠. 이런 주장들이 블루칼라, 즉 약간 저학력인 백인 노동자들에게는 굉장히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집니다.nbspnbspnbsp반대로 기득권층에 저항한다는 입장은 트럼프 지지층과 같지만 대학을 나오고 합리적이고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사회 구조를 바꿔야 이 문제가 해결된다는 샌더스의 주장에 동조하는 편입니다. 이런 현상도 소위 ‘변방의 반란’이라고 볼 수 있어요.nbspnbsp그런데 민주당의 정책은 그동안 히스패닉이나 이민자, 여성 등을 대상으로 한 사회복지를 비교적 확대해 왔어요. 이민자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샌더스의 주장이 실제로 훨씬 더 이익이 되지만, 이건 최근에 갑자기 나온 주장이니까 백인 남성들이나 백인 노동자들이 많이 지지하고, 유색 인종이나 히스패닉 같은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력이다 보니 이 사람들이 지금 힐러리 클린턴의 지지기반이 되는 거예요. 백인들만 보면 샌더스에 대한 지지가 조금 더 높지만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세력은 다 클린턴을 지지하다 보니까 클린턴이 앞서게 된 겁니다.nbspnbsp그리고 민주당에는 슈퍼 대의원이라는 게 있어요. 예컨대 선거로 뽑힌 대의원이 2,000명이라면 과거에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등을 지내서 지위가 높았던 사람들은 자동으로 대의원이 되는데 그 수가 400여 명 정도 됩니다. 이 사람들이 몰표로 클린턴을 지지하니까 샌더스가 이길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nbspnbsp이런 상황에서 만약 클린턴과 트럼프가 본선 경쟁에 가게 되면 공화당의 기득권층 중에서 일부가 민주당 쪽으로 이동해서 클린턴을 지지할 확률이 높습니다. 반대로 샌더스를 지지했던 사람들중 일부가 트럼프 쪽으로 갈 수 있어요. 샌더스와 트럼프는 정반대 같지만 둘 다 기득권에 반대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샌더스 지지층이 트럼프로 옮겨가거나 기권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거예요. 그래서 얼핏 보면 트럼프가 불리한 것 같지만 막상 본선에 가면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샌더스를 지지하는 소위 아웃사이더들이 그냥 기권을 할지, 클린턴을 지지할지, 아니면 거꾸로 트럼프 지지로 옮겨가게 될지에 따라 돌풍이 불 가능성이 있어요.nbspnbsp그래서 민주당에서는 샌더스에게 ‘가능성이 낮으니 그만두라’ 라고 압력을 넣지 못하는 거예요. 지지층이 실망해서 저쪽으로 옮겨가버리면 안 되니까요. 미국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 선거만 있는 게 아니라 하원 의원과 상원 의원 선출이 다 함께 있잖아요. 이 지지층이 옮겨가버리면 대통령 선거도 위험할 뿐 아니라 상하원 선거 모두에 엄청난 영향을 줄 소지가 있기 때문에 섣불리 행동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nbspnbsp힐러리 클린턴은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는 견해도 많이 있었습니다. 왜냐 하면 호감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똑똑하고 일 잘하는 이미지는 있지만 사람들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거든요. 트럼프는 사람이 좀 망나니 같아도 솔직하고 화통한 면이 있다고 해서 서민들이 좋아하는데, 클린턴은 아주 냉정하고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미국 대선은 혼재가 거듭되는 양상입니다. nbspnbspnbsp트럼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도 있고, 아니면 그걸로 협박을 해서 우리가 주한미군이 있어야 한다며 바짓가랑이를 잡으면 주둔비 전액을 물어내라고 나올 가능성이 있어요. 지금 우리가 부담하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이 9천 몇 백억원 정도 되는데 아마 2조나 3조를 내라고까지 나올 가능성이 있겠죠. 이런 가능성은 그동안 무조건 미국에만 의지하고 살았던 한국사람들에게 심각한 경종을 울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지도자가 바뀌고 미국의 정책이 바뀌어버리면 미국에만 의지하고 있던 우리는 굉장히 어려워지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미국을 반대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미국만 믿고 있다가는 매우 우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가 불리하지요.nbspnbsp그러나 꼭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북한 공격론이 나올 수도 있지만, 반대로 트럼프 같은 사람이 북한과 평화협정이나 핵 협상을 누구보다도 잘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막 협박하면서 전쟁 할 듯이 굴다가 그냥 뒤로 악수해서 풀어버릴 소지도 있는데, 그게 북한의 기질과 매우 비슷하거든요.nbspnbspnbsp그래서 제가 볼 때는 트럼프 같은 사람이 됐을 때 한반도 상황이나 남북관계가 반드시 나빠진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트럼프는 극우파여서 미국에 이익이 되는 것을 중요시하지 한국은 별로 중요시하지 않으니까 ‘아, 그건 뭐 평화협정 맺고 해결해버리지’ 라고 할 수도 있어요. 미국에 이익만 된다면 이런저런 걸 따지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이에요. 실리적으로 접근을 하니까요. 옛날에 어쨌다거나 체면을 따지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잖아요. 어쩌면 쇼를 할 수도 있어요. 갑자기 북한에 가서 악수하고 전격적으로 해치워버리고는 ‘봐라, 천하가 해결 못하던 걸 내가 해결하지 않았냐’ 이럴 수 있는 스타일이에요. 전 세계가 다 푸틴을 싫어하는데 트럼프는 푸틴을 좋아하잖아요.nbspnbsp이렇게 심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편에서는 우려도 되지만 또 다른 편에서는 반드시 우려할 일만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nbspnbsp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면 전통적으로 해오던 대로 한·미 방위 공약은 유지할 수 있겠지만 남북 관계가 획기적으로 풀릴 가능성은 더 낮습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대북 정책들이 다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을 지낼 때 만들어진 것이거든요.nbspnbsp이런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미국 선거를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전통적인 방위 질서가 지켜진다면 그에 따라 우리는 어떻게 할 건지를 생각해야겠지요. 또 트럼프 같은 사람이 등장한다면 바짓가랑이를 잡고 돈을 내는 쪽으로 갈 건지, 우리가 나가라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가겠다고 하니까 차라리 ‘아, 그러면 그렇게 해라. 앞으로 우리의 방위는 우리가 책임지고 하겠다’ 라고 할 건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죠. 돈을 주고 용병을 둘 게 아니라 ‘미국은 전 세계의 다른 일도 많이 해야 하니까, 이제 우리 것은 우리가 책임지고 하겠다. 다만 비상시에는 서로 긴밀히 협력하자’ 라고 해서 한미동맹을 재정립하는 방식이 있을 수도 있겠죠.nbspnbsp이것은 변화된 정세에 맞게 어떻게 대응할 거냐 하는 우리의 문제이지, 굳이 우리가 미국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누구는 안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요.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꼭 나쁜 점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결과를 봐서 우리가 거기에 맞게 대응하면 돼요. 미국 대통령은 미국 국민들이 선택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 선택을 존중하고 그런 미국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 나가야겠지요.nbsp다만 한국의 정치권이 이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미국의 바짓가랑이만 잡고 매달리는 쪽으로 일관한다면 앞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죠. 돈도 많이 들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겁니다. 약점을 잡히니까요.nbspnbspnbsp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민의 각성입니다. 이것이 한국의 다음 대통령 선거에 어떤 바람으로 불어와서 영향을 줄 건지, 다시 말해 더 자주성을 갖는 쪽으로 불어올 건지, 더 엎드리는 쪽으로 불어올 건지는 국민이 어느 정도 각성이 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nbsp“네, 감사합니다.”nbspnbsp스님의 쉽고 명쾌한 설명에 동문들 모두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마지막에 국민의 각성이 중요하다는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스님이 매일같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즉문즉설 강연을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nbspnbsp이 외에도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손을 든 분은 ‘스님의 하루’를 읽으며 다양한 인생문제와 사회문제에 대해 즉석에서 해답을 말하는 모습에 매일 감탄하고 있다면서 스님이 건강을 잘 유지하셔서 좋은 말씀을 더 많이 들려주실 것을 당부했고, 두 번째 분은 얼마 전에 정토회에서 하는 명상수련을 다녀왔는데 명상과 간화선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질문했고, 세 번째 분은 금강경을 공부하고 있는데 ‘보살은 보살이 아니고 보살이 아님도 아니다’라는 구절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질문했고, 네 번째 분은 통일의병 활동을 하게 되면서 가정에 점점 소홀해지게 되는데 두 가지를 어떻게 함께 잘해 나갈 수 있을지 질문했고, 다섯 번째 분은 언니의 딸이 과잉행동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 사실을 언니와 어떻게 상의해야 할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각각의 질문에 대해 자상한 답변을 들려주어 참석자들 모두가 기뻐했습니다.nbspnbsp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의 즉문즉설이야말로 최고의 힐링이 되었겠지요. 활짝 웃는 모습에서 행복의 기운을 가득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오후 1시에 즉문즉설 강연을 모두 마치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며 스님이 재미있게 점심시간임을 알려주자 모두 즐거운 표정으로 식사를 하러 이동했습니다.nbspnbsp강의 후 스님은 남한산성의 성곽 위에 잠시 올라 주위의 조망을 살펴보았습니다. 성곽 둘레를 수놓는 여장과 울창한 나무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남한산성의 대부분을 승려들이 축성했고, 이후 보수와 방어까지 도맡도록 했다고 합니다. 당시는 숭유억불 정책을 펴던 시대라 승려의 사회적 지위가 가장 낮았을 텐데, 나라가 위급할 때 분연히 일어났던 사람들은 힘없는 백성들로 이루어진 의병들과 천대받았던 승병이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저려왔습니다.nbspnbspnbsp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즐거운 분위기 속에 식사를 마친 동문들은 모두 4개조로 나뉘어서 해설사의 설명도 듣고 남한산성 둘레길을 산책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내일 문경에서 정토회 저녁부 활동가들과 함께 7km를 걷는 일정이 예정되어 있어 둘레길은 가지 않고 행궁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황금연휴라서 그런지 관람료도 무료였고 안쪽 너른 마당에서는 무예 공연이 한창이었습니다. 유사시에 피신해 있는 산성의 행궁인데도 꽤 반듯한 건물들이 지어져 있는 것을 보자 조선이 왕의 나라라는 것이 실감이 났습니다.nbspnbspnbsp전쟁이 났을 때 백성들은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울텐데 이런 행궁을 짓는데도 백성들이 동원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스님도 행궁의 규모를 보고선 고생했을 백성들에 대한 연민이 느껴졌는지 “임시 거처인데 천막치고 살면 되지, 뭐 이리 크게 지었노”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잘 꾸며진 건물과 무예 공연이 펼쳐진 마당을 지나 담으로 막힌 곳 너머까지 꼼꼼하게 둘러보고는 만해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한평생을 만해 한용운 연구에 몰두한 전보삼 교수가 원력을 세워 꾸민 기념관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기념관에는 ‘님의 침묵’, ‘조선불교유신론’의 초간본과 친필유묵, 만해의 옥중 투쟁을 보여주는 각종 신문자료와 관련 학술 논문이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만해 스님은 용성 스님과 함께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세간에는 용성 스님보다 만해 스님의 독립운동이 더 알려져 있는 이유를 스님에게 질문해 보았습니다. 스님은 “만해 스님의 제자들은 사회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았고 용성 스님의 제자들은 산중의 스님들이 많아서 용성 스님의 행적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스승의 유지를 따르고 이어나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했지만 당시에는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역사를 살필 때는 이런 부분도 깊이 헤아려야 한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만해기념관을 나온 스님은 전승문쪽으로 향했습니다. 어제 비가 와서인지 하늘은 청명하고 주위 나무들의 빛도 정말 고왔습니다.nbspnbspnbsp북문으로 오르는 길 양편으로 음식점과 까페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스님은 “30여 년 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며 세월의 변화를 놀라워 했습니다. 전승문까지의 기분 좋은 산책을 마치고 내려와서 스님은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바로 출발했습니다.nbspnbsp저녁 8시에는 문경 정토수련원 대웅전에서 해외에 있는 각 정토법당에 영상으로 보내줄 부처님오신날 기념법문 촬영이 있었습니다.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상주하고 있는 대중들이 모두 자리한 가운데 약 50분 동안 법문이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법문 촬영을 마치고 나서는 상주 대중 모두가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상주 대중을 대표하여 두 분의 행자님이 다음주에 있을 스승의날을 기념하여 미리 스님께 꽃다발을 건넸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으로 꽃다발을 받은 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내일은 새벽 6시 20분부터 9시까지 대수련장에서 청년 정토불교대학 입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9시 30분부터는 용추계곡으로 정토회 저녁부 불교대학 담당자들과 함께 봄나들이를 다녀올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5.6 목포 통일이야기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목포 시민들을 위해 강연했습니다.nbspnbsp기분 좋은 햇살이 따뜻하게 온 몸을 감싸는 봄날입니다.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 소공연장에서는 저녁 7시부터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오늘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은 모두 서울, 익산,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통일시민학교를 수료하고 통일의병이 되신 분들입니다. 봉사자들은 이른 오후부터 차분하게 강연을 준비했습니다.nbspnbspnbsp저녁이 되자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러 많은 분들이 강연장을 찾아주셨습니다. 통일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고 싶어서 왔다는 일란성 쌍둥이 아가씨들도 계셨고, 통일에 대한 본인의 관점은 뒤로 미루고 스님의 시각을 한 번 들어보고자 왔다는 노부부도 계셨습니다.nbsp스님은 지난 번 통일강연에 늦은 것을 기억하여 오늘은 연휴 정체를 감안해 일찍 출발한 덕에 6시 전에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간단하게 과일을 드시면서 휴식을 취하다가 6시 30분에 간담회 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장만채 전라남도교육감님을 비롯하여 목포시의 교육계와 문화계에서 10여 분이 찾아와 스님과 함께 차담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한 의병이 꽂아놓은 해당화의 은은한 향과 차의 그윽한 향이 서로 어우러진 가운데 통일의병이 왜 생기게 되었고,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스님의 대답이 오고 갔습니다. 특히 장만채 교육감님은 통일에 대한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며 통일의 명분에 대한 개인의 견해를 분명히 밝히기도 했으며, 한 교육 관계자는 목포시가 학생들 대상으로 통일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기회가 되면 스님이 협조해 주시기를 부탁했습니다.nbsp7시가 되자 안내 영상을 시작으로 통일의병 호남본부장 이신님과 전라남도교육감 장만채님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통일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바쁜 스님이 무대 위로 등장하자 대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깜짝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통일의병 호남본부에서는 곧 다가올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꽃다발로 표현했습니다. 안개꽃에 쌓인 빨간 카네이션이 눈에 띄었는데 통일의병들의 스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담겨 있어서인지 더욱 예뻐 보였습니다.nbspnbsp먼저 스님은 저녁을 먹지 않은 사람들에게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서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강연의 취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습니다.nbspnbspnbsp“저녁은 드셨어요? 못 드신 분 손들어 보세요?”nbspnbsp“저요.”nbsp“오늘은 저녁을 좀 굶어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통일이 밥 먹여 준다’는 주제로 강연을 하니까요. 비록 오늘 저녁은 굶지만 미래에는 계속 먹을 수 있는 밥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이런 얘기를 한번 나눠봅시다.nbsp오늘 강연을 주최한 곳은 정토회가 아니라 통일의병입니다. 정토회에서 주최하는 강연은 주로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개인적인 문제 또는 인생의 고뇌에 대해서 저와 대화하면서 살펴보는 자리라면, 통일의병에서 주최하는 강연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나라, 민족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고뇌, 의문을 가지고 대화해보는 자리예요. 그렇게 알고 오셨어요? 또 ‘법륜 스님’ 하면 ‘인생 상담’ 떠올리고 오셨겠죠, 뭐.nbspnbspnbsp‘왜 인생에 대한 얘기는 안 해주고 나라에 대한 얘기만 하느냐?’ 하는 분이 계시다면 오늘 번지수를 잘못 찾아오신 거에요. 그러나 개인 문제도 전혀 외면할 수는 없겠지요. 왜냐하면 개개인이 짊어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우리 모두를 위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고뇌에 대한 질문도 일부 받겠다고 주최 단체에서 양해를 해주셨어요. 그러니 통일문제나 사회문제에 대해 질문하시는 분들은 그냥 자리에 앉으시면 되는데, 개인적인 질문을 하시는 분은 오늘 나가실 때 반드시 통일시민학교에 참가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죠?”nbsp“네.”nbspnbsp스님의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역시 오늘도 많은 분들이 통일 문제가 아닌 개인 질문을 했는데 실제로 나갈 때 통일시민학교 신청서를 작성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강연의 취지에는 모두들 공감하는 눈치였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교회에 다닌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으로서 통일의 씨앗을 뿌리고, 내년 대선 때 통일의 붐을 일으킬 수 있는지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내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전국적으로 통일의 붐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저는 기독교인이고 교우들과 함께 스님의 강연을 들으러 왔습니다. 호남인들의 정신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한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20대 총선에서 호남인들은 기존과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소위 말해서 전략적 투표라는 것을 했는데, 그 속에는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며 통일을 염원하는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런 호남인들의 마음을 대변해줄 후보를 찾아야 하는데 어떻게 그런 후보를 알아볼 수 있고, 또 통일운동의 붐은 어떻게 일으킬 수 있을까요?nbspnbsp사실은 저만 보더라도 통일을 의례적으로 바라왔지 마음 속에 씨앗 같은 것이 심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특히 교우들과 같이 왔으니까 기독교인으로서 종교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nbsp“하나씩 하나씩 얘기해 보겠습니다. 우선 종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학교 선생님들을 전국적으로 다 모아서 학생들을 때리는지 안 때리는지 조사를 했을 때 개신교인들은 거의 때리지 않고 불교인들은 대부분 때린다고 하는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종교만 갖고는 그런 차이가 안 나타날까요?”nbspnbsp“안 나타날 것 같습니다.”nbspnbsp“남자들이 술먹고 주정을 많이 하잖아요. 술주정 하는 사람들만 전국적으로 1만 명을 모아서 종교 분석을 해보니까 불교인들의 비율이 엄청나게 높고, 천주교인들은 조금 밖에 안 된다는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별 차이가 없을까요?”nbspnbsp“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습니다.”nbsp“연말에 자기 월급의 일부를 기부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자신의 종교 단체에 기부하는 것 말고 사회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에 기부하는 것을 놓고 봤을 때, 기부를 얼마나 했는지 종교인별로 조사를 해봤더니, 기독교인들은 월등하게 많이 기부하고, 불교인들은 조금만 기부한다든지 하는 차이가 크게 있을까요?”nbsp“크게 차이가 나진 않을 것 같아요.”nbsp“전국에서 도둑질 하거나 폭행하는 사람들을 전부 잡아서 조사를 해봤더니 불교인들은 거의 없는데 기독교인들이 대부분이라든지, 종교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든지, 이런 차이가 확실히 나타날까요? 통계적으로도 오차 범위 안에서 별 차이 없이 그만그만 할까요?”nbspnbsp“그만그만 할 것 같습니다.”nbsp“그렇다면 ‘불교인이다’,‘ 개신교인이다’, ‘천주교인이다’, ‘무교이다’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개인이 ‘나는 하느님 믿는다’, ‘나는 부처님 믿는다’ 하는 것이야 개인의 마음의 문제일 수가 있는데, 사회적으로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부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과연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올 것이며, 국민의 90가 불교인이 된다고 해서 과연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오겠느냐 하는 겁니다. 종교를 확대해 나간다는 것이 단지 패거리 경쟁밖에 안 된다고 할 때, 본인에게는 그 믿음이 소중하다 할지라도 사회적으로는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겁니다. 그러니 불교인이 몇 명이다, 개신교인이 몇 명이다, 천주교인이 몇 명이다 하는 숫자가 과연 중요한지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nbspnbsp비록 그 숫자가 적더라도 조사를 해봤더니 개신교인들은 확실히 범죄율이 떨어진다든지, 불교신자들은 특별히 기부를 많이 한다든지, 사회적인 준법 정신이 확실히 차이가 난다든지 해서 이런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다면 우리 사회 전체가 좋아지겠다 하는 정도가 되어야 종교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아니겠어요?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많으면 뭐하고, 절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으면 뭐합니까? 그래서 종교는 필요없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개인이 종교를 믿는 건 믿더라도 지금과 같이 믿는 것은 사회적인 기여도가 별로 없다는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종교인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질문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nbspnbspnbsp북한이 저렇게 못된 행동을 할 때, 세속 사람들은 ‘저런 놈들은 굶어 죽어야 돼’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기독교 정신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해선 안 되지요. 자신을 십자가에 매단 사람에 대해서 저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주여,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두 놈은 지옥에 확 쳐넣어 버리세요’ 이렇게 할 텐데, 예수님께서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이렇게 말했단 말이에요. 보통 사람은 그렇게 할 수가 없죠. 그래서 저는 그 분이 하느님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 분이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고 그 분이야말로 하느님인 이유는 하느님만이 그런 마음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이전의 하느님은 어땠습니까? 자기 말 안 들었다고 유황불로 확 지져버리고 소금 기둥으로 만들어버리고 보복을 했잖아요. 그러니 예수님 이후의 하느님은 징벌의 하느님이 아니고 사랑의 하느님이고 용서의 하느님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런 용서의 하느님을 믿고 있나요?nbspnbsp북한이 저렇게 못된 짓을 하더라도 거기 사는 아이들이 굶어죽는다면 마땅히 인도적 지원을 해야잖아요. 이것은 종교에 관계없이 유엔 헌장에도 ‘인도적인 지원은 정치, 이념, 사상, 종교에 관계없이 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도적 지원을 못한다 할지라도 종교인들은 해야할 것 아니에요?nbspnbsp그럼 불교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우리 아들이 전교에서 1등을 한다고 하면, 자기 실력으로도 명문 대학에 갈 수가 있겠죠. 이런 아들을 둔 부모가 ‘우리 아들 명문 대학에 보내주세요’ 하면서 하루에 천배씩 기도를 할까요? 안 하겠죠. 그런데 아이의 성적은 턱없이 못 미치지만 명문대학에는 꼭 보내고 싶은 부모는 어떨까요? 절에 가서 죽기 살기로 기도를 합니다. 만약에 부처님이 그런 기도를 들어줬다고 합시다. 저는 그런 기도는 안 들어주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부처님이 이런 기도를 들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원 외에 입학을 시켜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정원 외에 받아주는 경우는 없잖아요. 그러니 성적이 되는 아이는 교회 다닌다는 이유를 들어서 빼버리고, 이 아이는 절에 다닌다는 이유로 넣어 주어야 하는 겁니다. 그럼 이것은 부정입학이잖아요. 돈을 받거나 해서 부정입학시켜주는 방법밖에 없는데, 이것은 입시 브로커들이 하는 행동이잖아요.nbspnbsp그러니까 부처님이 입시 브로커가 되어야 이 소원이 성취된다는 겁니다. 부처님이 입시 브로커가 안되면 이 소원은 도저히 성취될 수가 없는 거에요. 그런데 교회나 절마다 ‘기도해서 이런 소원이 성취되었다’고 하면서 자랑을 하잖아요. 이런 걸 써서 붙여 놓으면 저는 금방 ‘아, 저기에 모신 부처님은 입시 브로커구나’ 하고 알아봅니다. 이런 걸 부처님의 가피다, 하느님의 은혜라고 말한다는 겁니다.nbspnbsp옛날에는 부정입학을 많이 했는데, 요즘에는 인간 세상에서도 부정입학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있더라도 공개적으로 하지 못하고 숨어서 하잖아요. 그런데 아직도 종교에서만 부정입학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예 모집을 하잖아요. ‘여기 와서 기도하면 좋은 대학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고요.nbspnbspnbsp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또 이렇게 말해요. ‘그런 기도도 안 들어주면 종교를 왜 믿느냐?’.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믿는 부처님과 하느님은 다 입시 브로커 수준에 불과한 거에요. 저는 이렇게 보는 것이 훨씬 솔직하다고 봐요. 스님이라고 불교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불교나 기독교나 다 똑같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nbspnbsp그러니 오늘날 북한이 저렇게 나쁜 행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굶어 죽는다면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것을 반성하지 않고, 독도를 아직도 자기네 땅이라고 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도 제대로 안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일본에 지진이 나서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는다면 그런 일본에 대해서도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은 그렇게 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누구든 관계 없이 인간이 고통에 처하면 도와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내 형제가 아니고, 내 나라 사람이 아니고, 나와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불행에 처했을 때는 도우라는 것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입니다.nbspnbsp그래서 여러분들이 이제는 생각을 좀 바꾸셔야 해요. 현재와 같은 종교는 오히려 통일에 도움이 되기 보다는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종교인들이 이런 반성을 한다면, 이제는 종교의 본분으로 좀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5리를 가자 하면 10리를 같이 가주어라’ 하는 정도는 고사하고 문지방이라도 넘는 시늉을 좀 해주면 좋겠다 싶어요. 그런데 지금은 노골적으로 내가 왜 가야 하느냐고 항의하는 수준입니다.nbspnbsp다음으로는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이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젊은이고 늙은이고 할 것 없이 다 제 살기 바빠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봤을 때는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각기 개인들에게 물어보면 쪼들려서 죽겠다고 그래요. 쪼들려서 죽겠다고 하면서도 TV는 좋은 TV를 사고, 좋은 신발을 사고, 그러면서 또 죽겠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래서 저 또한 죽겠다는 말이 별로 믿어지지는 않는데, 아무튼 죽겠다고 그래요. nbsp nbspnbspnbspnbsp또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죽겠다고 그래요. 결혼한 사람은 남편과의 갈등 때문에 못 살겠다고 난리에요. 또 부모님 모시고 사는 분들은 부모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고 그래요. 경제적으로나 인간 관계에서나 전부 자기 살기도 힘들어 해요. 이렇게 자기도 못 살아서 죽겠다고 하는데 지금 통일 이야기한다고 해서 귀에 들어오겠습니까. 그런데 질문자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얘기를 지금 전국적으로 어떻게 확산시키느냐 물은 거잖아요. 그런 방법은 없어요. 이 질문은 너무 과대망상적인 질문이에요.nbspnbsp그러나 아무리 사람들이 힘들고, 자기 살기도 바쁘지만,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통일 문제를 해결하면 우리에게 굉장한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바빠서 신경을 못 써서 그렇지 조금만 따져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다만 국민의 1만이라도 각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이렇게 묻는다면 ‘그건 방법이 있을 수 있다’라고 제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전국민이 통일에 관심을 갖는 그런 방법은 없겠느냐?’ 라고 묻는다면 그건 저도 몰라요. 그런 방법이 있었으면 지난 대선에서 벌써 해결해 버렸겠죠. 그 때 못해서 오늘도 여기까지 내려와서 강의를 하잖아요. 저도 내년 대선에서 통일에 대한 불길이 확 붙었으면 좋겠지만 그 방법을 저도 모르겠어요.nbspnbspnbsp다만 저는 질문자처럼 ‘바람이 확 불어라’ 하는 건 안 바라고, ‘100명 중에 1명 정도는 동조를 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 명이니까 그 중에 50만 명만 ‘통일이 되어야 우리가 발전할 수 있고, 우리의 미래가 있다’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면, 내년 대선에서 이 50만명이 커피를 사주든 밥을 사주든 해서 1명만 더 방향을 바꾸게 하면 100만표가 될 수 있죠. 지금까지 대선을 보면 늘 근소한 차이로 승부가 결정났는데, 100만표 정도면 당락을 좌우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내년 대선에 대한 꿈을 이 정도로 소박하게만 가져요. 그런데 이것도 잘 안 돼요. 질문자가 원하는 것처럼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는 방법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nbsp“예. 잘 알겠습니다.”nbspnbspnbsp“너무 비관적으로 얘기해서 죄송합니다. 우리의 성격도 마찬가지에요. 너무 쉽게 바꾸려고 하기 때문에 작심삼일이 되는 겁니다. 성격은 바꾸기가 어려운 건데 너무 쉽게 바꾸려고 생각하니까 삼일만 하다가 관두게 됩니다. 그렇다고 ‘성격은 못 바꾼다’라고 단정을 해버리면 운명론에 빠지게 됩니다.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얘기가 되니까요. 그러나 성인의 가르침은 ‘성격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쉽지가 않다’라는 겁니다. 바꿀 수 없다고 하면 희망이 없어지고, 바꿀 수 있다고 단정하면 누구나 노력을 하게 되는데 그게 잘 안 바꿔지니까 좌절을 해서 그만두게 됩니다. 그러나 ‘바꿀 수 있지만, 바꾸기가 어렵다’라고 안다면, 3일만 계획을 세울 게 아니라 적어도 3년 계획은 세우게 됩니다. 그것도 바뀐다는 것이 아니라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로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대신 꾸준히 해야 되겠죠. 그렇게 하면 안 바뀐다고 좌절하지 않고, ‘쉬운 게 아니야’ 하면서 꾸준히 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그것처럼 통일운동도 단박에 하려고 하면 안 되고 꾸준히 해야 합니다. 개인의 운명도 바꾸기가 어려운데 통일은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문제잖아요. 사람에 비유하면 개과천선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라의 운명을 바꾸려면 그 목표를 향해서 꾸준히 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nbspnbsp왜 지난 수십 년 간 통일운동을 해오던 사람들이 다 나가떨어졌을까요? 욕심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확 해버리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되고 또 안 되고, 반복이 되니까 ‘안 되나 보다’ 하고 다 나가떨어진 겁니다. 독립운동도 처음에는 여기저기서 열심히 했지만, 일본이 점점 강해지니까 1940년대에 와서는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동안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도 전부 친일을 하게 됩니다. 사실은 그 때야말로 독립이 가장 가까워진 때였는데 말이죠. 즉,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새벽이 가까워진 것이듯이 어쩌면 통일의 희망을 잃은 지금이야말로 통일에 더 가까이 다가와 있는 건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잃지 말고 꾸준히 해야 됩니다.nbspnbsp선거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좋은 사람인가’ 하고 살피면 찍을 사람이 없기 때문에 투표를 안 하러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제가 뭐라고 강조했나요? ‘어느 후보가 더 나쁜가’ 하고 살피면 금방 구분이 된다고 강조했잖아요. 가장 나쁜 사람 한 명을 빼고 아무나 찍으면 된다고 하니까 쉽잖아요. 그래서 꼭 ‘이 사람이 최고다’ 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결과가 좋아지는 게 아니에요.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야, 이 정도만 되면 좋겠다’ 싶은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투표하러 가는 것도 얼마나 신이 날까요. 그러나 그런 사람이 없어도 나라가 좋아지는 길이 있다는 겁니다. ‘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이것만 분명히 해도 더 나빠지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이번 20대 총선 결과가 좋았다고 이후에도 더 좋아질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멈춰세웠을 뿐입니다. 잘못된 정책을 계속 밀고나가는 것은 일단 막았어요. 이것만 해도 성공이에요. 그렇다고 앞으로도 잘 갈 건지는 섣불리 말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정치인들이 선거결과를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선거가 말해주는 표심이 무엇인지를 딱 직시할 수 있다면 금방 정신을 차리고 거품도 꺼지게 되는데, 반성을 하지 않으니까 나쁜 쪽으로 계속 갈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최악을 막았다는 것만 해도 대성공이에요.nbspnbsp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번 성공을 잘 기억한다면 다음 대선에서도 최악을 막기 위한 차악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해요. 틀림없이 내년 대선에서도 세 명이 나와서 경쟁하게 될 거에요. 민심을 생각해서 두 명이 손을 잡아주면 좋은데 지금까지 보여준 성질들을 보면 아마 이번에도 세 명이 끝까지 갈 겁니다. 세 명 다 각자가 성공한 경험들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혼란스러워질 겁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은 이번 선거 때처럼 어부지리로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잘 찍어야 됩니다. 그렇게 투표를 하면 국민이 결정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헤아려야 하는데 그들은 자기 이익에 눈이 멀어서 국민을 편안하게 안 해주니까 방법은 국민들이 머리를 굴려서 교통정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지금 이렇게 강연회를 열고 있는 거예요. 무슨 큰 희망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 최악을 막기 위해서는 이렇게 정리를 해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nbspnbsp지금은 춘추전국시대가 되었잖아요. 예전처럼 뚜렷한 대선 후보가 있고 그것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는 게 아니라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다들 도토리 키재기 하는 식으로 나오게 됐으니까 앞으로 조금 더 지켜보면서 이런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nbspnbsp주권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국민에게 있습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기 때문에 나라가 잘못되면 대통령이 비판을 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들도 책임을 져야 해요. 왕조 사회는 왕이 국가의 주인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다 왕의 책임이었는데, 대한민국은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니까 우리가 투표를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에 정치인들만 욕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책임이에요. ‘나는 그 사람 안 찍었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연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인이다’ 하는 자각이 필요합니다.nbspnbspnbsp그동안 경상도와 전라도는 이런 주인의식이 좀 부족했어요. 무조건 특정 정당의 말뚝만 보고 찍어주었어요. 그런데 이번 총선의 가장 큰 성과는 주인의식이 생겼다는 거에요. 결정은 국민이 하지 말뚝이나 깃발만 꽂으면 결정되도록 하지 않았거든요. 깃발이 결정을 하도록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지난 공천 파동처럼 난장판이 된 겁니다. 어느 당에서 공천받느냐에 따라서 선거결과에 관계 없이 결정되어 버렸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선거 개표할 때 재미있었죠? 누가 될지 몰랐잖아요. 그게 바로 여러분들이 결정권을 되찾은 결과입니다. 예전에는 개표를 하나마나 전라도와 경상도는 그 결과를 볼 필요가 없었잖아요. 북한은 99를 지지하고, 경상도와 전라도는 70 정도 지지하는 차이 밖에 없었지 당이 그냥 내리꽂으면 된다는 측면에서는 같았어요. 그래서 이번에야 비로소 여러분들이 주권을 되찾은 겁니다. 축하를 드립니다.”nbsp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오랫동안 박수갈채가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이 외에도 많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한 30대 여성분은 언제, 어떻게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질문했고, 또 다른 젊은 여성분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있는지 물었고, 40대 여성분은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사업을 위해 아버지의 수술비도 가져가는 형제들이 자신에게 욕설을 하는데 어떻게 견뎌야 할지 질문했고, 30대 남성분은 본인은 중국을 거치지 않고 백두산에 가는 상상과 통일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는 상상을 하면 가슴이 뛰는데 요즘 청년들은 이러한 상상만으로는 통일을 가슴에 와 닿을 정도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청년들의 가슴에 와 닿는 통일의 필요성이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nbspnbsp강연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통일의 시기와 방안, 그리고 필요성에 대한 스님의 이야기를 들은 청중들의 눈에는 아쉬운 마음이 역력했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마칠 시간이 되자 부족한 것은 통일시민학교를 통해 더 해소할 것을 당부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경제성장을 시켜주겠다고 많이들 얘기하죠. 그러나 통일지향적인 정책을 세우면 경제성장은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통일은 비용이 아니고 우리의 밥이 되고 직장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해야 한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통일은 손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이익도 된다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니까 어떤 분은 ‘통일을 꼭 이익만 따져서 해야 됩니까’라고 하던데, 네 맞아요. 통일은 손해가 나도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실제로 따져보면 통일은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라 이익까지 되니까 우리가 통일을 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다만 우리의 감정은 좀 극복을 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러니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도, 연세가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직업이 무엇이든 관계 없이 ‘통일시민학교’에 참여하셔서 ‘통일의병’이 좀 되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통일은 우리 모두의 미래에 해당되니까요. 의병이라 부르는 이유는 우리가 이 일을 해서 나중에 뭔가 한자리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꾸는 정치적 변화를 이뤄낸 후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자는 취지입니다. 그런 일을 해서 한자리 차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전문꾼들이라면, 의병은 임무를 완수하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nbspnbsp지금 이 시기는 농사꾼이 농사만 지어서 되는 상황이 아닙니다. 국가 위기의 상황에서는 농사꾼도 선비도 다 총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정치적인 변화를 도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나라의 운명이 걸린 문제이고, 국민들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통일시대를 함께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nbsp스님의 강연은 무려 2시간 동안 쉼없이 계속 되었습니다.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 준 스님에게 목포시민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스님을 비롯한 모든 청중과 봉사자들은 일어나서 서로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뛰었던 가슴이 노래를 부르면서 더 뜨거워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강연을 듣고 나가는 목포시민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었고, 책 사인회도 해주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님의 사인을 받아 갔고, 통일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어 기쁘다는 분도 있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에게 직접 질문을 했던 분은 “제 질문이 선택되었을 때 정말 로또를 맞은 기분이었고, 답을 듣고 나니 가슴이 후련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많은 분들이 통일의병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습니다.nbsp책 사인회가 끝나고 봉사자들은 스님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카메라가 제법 여러 대 있었지만 큰 소리로 ‘통일 의병’을 외친 까닭에 찰칵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nbspnbspnbsp활기로 가득 찬 강연장을 뒤로하고 스님은 다음날 일정을 위해 서울로 바쁜 걸음을 옮겼습니다.nbspnbsp내일은 평화재단 평화교육원 주관으로 평화리더십아카데미 힐링 동문회가 남한산성 일대에서 열릴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5.5 경주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경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경주시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어린이날이라 경주지역 공원과 체육관에서도 갖가지 행사가 열린 가운데 서라벌문화회관에도 스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많은 분들이 자리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을 준비한 경주정토회 봉사자들은 전날 강풍으로 인해 꽃가루와 먼지로 하늘이 흐렸는데, 오늘은 하늘이 한층 더 푸르고 청명하다며 모두들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 시작 1시간 전부터 많은 사람들로 붐비더니 6시 30분이 되자 530석의 강연장은 2층까지 가득 찼습니다. 소개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청중들은 큰 박수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오늘부터 연휴가 시작되었는데 다들 놀러 안 가고 왜 여기 왔냐고 농담을 던지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부터 4일간 연휴인데, 이렇게 좋은 기회에 다들 놀러 안 가고 왜 여기에 오셨어요? 갈 데가 없어요?”nbspnbsp“하하하.”nbspnbsp“하긴 경주사람들은 어디 갈 필요가 없지요? 전국에서 이곳으로 놀러 오는 그런 곳에 사니까요. 그래서 오늘 경주를 강연 장소로 잡았나봐요. 만약에 오늘 같은 날 다른 도시에서 강연을 했다면 강연이 취소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다 놀러가 버려서요.”nbsp스님의 환한 웃음에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에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즉문즉설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대화라고 간단히 소개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예정된 강연 시간이 2시간이었으나 질문자가 많아 스님은 30분을 더 연장하여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한 분이라도 더 인생의 고뇌를 해결했으면 하는 스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총 9명이 질문을 했는데, 그 중에서 남편이 서울로 발령이 났는데 남편을 따라가야 할지 아니면 아이들과 경주에 남아야 하는지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마침 오늘은 어린이날이라 질문자와 청중들은 가정교육의 중요성과 더불어 부모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해 소중한 가르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결혼 15년 차이고요. 큰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이고, 작은 아들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현재 경주에서 살고 있는데 신랑이 서울로 발령이 나서 3년 후에나 돌아올 예정이에요. 지금 큰 아들이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데, 제가 신랑을 따라 서울로 가야 할지, 아니면 저랑 아이들만 여기에 남아있어야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든 다 장단점이 있을 것 같아서 결정을 못 내리고 있습니다.”nbspnbsp“결혼한 지 몇 년 됐다고요?”nbsp“15년이요.”nbsp“15년 같이 산 질문자가 잘 알지, 결혼도 안 해 본 제가 뭘 알겠어요? 지금 둘이 산다고 저한테 자랑하는 거예요?nbspnbspnbsp따라가고 싶으면 따라가고, 여기 있고 싶으면 남으면 되지요. 그런데 저는 혼자 살고 싶어서 혼자 살지만, 질문자는 남편과 같이 살려고 결혼했어요, 떨어져 살려고 결혼했어요?”nbsp“같이 살려고요.”nbsp“그런데 뭘 물어요? 무조건 따라가야지요.”nbsp“남편이 돌아오게 될 쯤엔 큰아들이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게 될지도 모르는데요?”nbsp“그럼 아이만 여기 남겨두고 가면 되지요. 그게 뭐 걱정이에요? 아이를 여기 남겨둬야 될 필요가 있으면 남겨두고 질문자는 남편을 따라가면 되고요.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게 좋겠다 싶으면 데리고 가면 되고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여기 있어야 될 이유가 있다고 해서 엄마도 여기 같이 남아있는 건 도리에 안 맞는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nbsp“무조건 남편을 따라가라는 말씀이신가요?”nbsp“무조건 남편을 따라가라는 말은 아니에요. 질문자가 못 따라갈 형편이면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여기에 있는 다른 회사에 취직해서 가족과 함께 여기에서 지내면 되지요. 남편이 반드시 가야 될 형편일 때 질문자가 가는 것이지 질문자가 무슨 종이에요? 따라다니게요?nbspnbspnbsp그러니까 부부가 결혼을 했으면 같이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남편은 직장이 있고 질문자는 직장이 없는데 남편이 서울로 가야 된다면 질문자가 그냥 가면 되는 거고, 아이는 여기 남아서 학업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면 여기서 자취하라고 하면 되는 겁니다. 집도 있겠다 왜 자취를 못 하겠어요? 제가 학생 때는 셋방 얻어서도 지냈는데요.nbspnbsp질문자가 저한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벌써 질문자의 결혼관이 잘못됐다는 걸 말해 주는 거예요. 지금 남편과 아이를 두고 우선순위를 고민하고 있는데, 이건 털끝만큼도 고려의 대상이 될 게 아닙니다. 부부가 행복하게 살면 아이는 매년 전학을 다녀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nbsp“저는 아이가 잘됐으면 좋겠거든요.”nbsp“부부가 행복하면 아이는 저절로 잘됩니다. 자식이 잘되라고 온갖 공을 다 들여도, 부부가 싸우거나 헤어져서 살면 아이는 잘 안 됩니다. 자식을 위해서 부모가 고생하면 고생할수록 자식이 안 됩니다. 자식은 내버려두고 부부가 재미있게 살면 자식은 저절로 잘돼요.”nbspnbsp“...”nbsp“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되는 것 같네요? 질문자는 지금 아들과 남편 중에 어떤 남자를 선택할래요?”nbspnbsp“둘 다 소중합니다.”nbspnbspnbsp“지금 어느 남자가 질문자에게 더 우선순위냐는 거예요.”nbsp“남편이요.”nbsp“그럼 저한테 물을 것도 없지요. 요즘은 자식 교육이 중요하다는 사고방식 때문에 기러기 아빠가 많이 생기는데, 이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남편이 군대에 징집이 되어서 중동으로 파병을 가게 되었다면 거기에는 여자가 따라갈 수가 없으니 그땐 어쩔 수 없이 여자가 아이들과 여기에 남아야겠지요.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혼을 했다면 국내든 해외든 아이는 내버려두고 부부는 무조건 같이 가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알아서 잘 큽니다. 저도 초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는 혼자 자취하면서 공부했는데요. 뭐. 그러니 아이들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nbspnbsp질문자처럼 자식에 집착하는 부모가 없으면 아이들은 더 빨리 성인이 될 수 있어요. 남편과 아들을 다 끼고 살고 싶으면 사세요. 그거야 질문자의 자유이니까요. 그런데 질문자가 저한테 물었으니까 저는 제 견해를 얘기하는 겁니다. 저는 인간의 도리를 얘기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사업이 망해서 원룸에 살게 되었을 때, 아이들은 방에 재우고 부부는 거실에서 자면 자식들이 잘 안 됩니다. 부부는 안방의 침대에서 자고, 아이들은 거실에 재워야 자식들이 잘 크는 거예요.nbspnbsp그런데 지금 질문자의 사고방식으로는 자식 농사가 별로일 겁니다. 한번 자기 생각대로 해 보세요. 그런 관점을 갖고 있으면 고생만 하지 결과는 별로 안 좋을 거예요. 사람이 사는 데는 다 삶의 원리가 있는 겁니다.nbspnbspnbsp제가 어떤 집에 갔더니 자식을 서울로 유학 보냈는데, 부모는 같이 갈 형편이 못되니까 할머니께 ‘아이 좀 돌봐주세요’라며 아들이 있는 서울로 할머니를 모신 거예요. 그런데 제가 우연히 그 집 아들이 있다는 서울 집에 가보게 됐어요. 큰방 하나, 작은방 하나 해서 방이 2개인 작은 아파트였는데, 큰방에는 책상과 침대를 넣어서 아이가 쓰도록 하고, 할머니는 가정부가 쓰는 것처럼 작은방에서 지내고 계셨어요. 그래서 제가 ‘방 배정을 왜 이렇게 했느냐?’고 물으니까 할머니가 ‘아이는 책상도 있어야 되고 침대 생활을 해야 되는데, 나는 원래 방바닥에서 잤으니까 이렇게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 이 집구석 안 되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공부를 잘 시켜도 자식 농사가 안 됩니다. 할머니를 밥 해 주는 식모 취급을 하는데 어떻게 질서가 잡히겠어요?nbspnbsp자식을 둔 부모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할머니께는 큰 방을 드리고, 아이는 작은 방에서 지내도록 해야 되는 겁니다. 부모가 그렇게 방 배치를 해 놓고 갔다면 부모가 돌아간 뒤에 할머니께서 ‘얘야, 네가 큰 방에서 공부하며 지내라. 나는 작은 방에서 지내도 된다’라고 하셨다면 그건 할머니께서 손자한테 베푸는 ‘선의’가 됩니다. 그런데 설사 할머니께서 그렇게 하셨더라도, 나중에 부모가 올라와서 바뀐 방 배치를 보게 되면 ‘이놈의 자식 아무리 할머니께서 그러자고 하셨어도 그렇지 어떻게 네가 버르장머리 없이 큰방을 차지하고 있느냐?’라고 하면서 방 배치를 바로 잡아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삶의 질서가 잡힙니다. 그러니 이런 원리를 염두에 두시고 질문자가 알아서 결정을 내려서 사세요.” nbspnbsp“예. 잘 알겠습니다.”nbspnbsp“질문자가 물으니까 제 의견을 얘기했을 뿐이에요.”nbspnbspnbsp“두 번째 질문 드리겠습니다. 제 주변을 보면 아직 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인데도 형제들끼리 한 집안에 살면서 몇 년 동안 서로 말 한마디 안 하고 사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TV를 봐도 가끔 그런 경우가 있고요.”nbspnbsp“남의 집 얘기를 하는 거예요?”nbsp“예.”nbsp“남들이야 어떻게 살든지 질문자는 신경 끄세요. 나 살기도 바쁜 세상에 남의 집 사정을 뭐 하러 신경 쓰나요?”nbspnbsp“제 아이들도 형제인데, 나이 차가 좀 나거든요. 일곱 살 차이가 나요.”nbspnbsp“나중에 문제가 생기거든 그때 가서 질문하세요. 질문자의 집에 지금 그런 문제가 생겼다는 거예요?”nbsp“아니오.”nbsp“우리 아이들도 나중에 그럴까봐 걱정이라는 거예요?”nbsp“아이들이 사이좋은 형제로 자랐으면 하는데, 엄마가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지 궁금합니다.”nbsp“둘이야 싸우든지 말든지 내버려두면 저절로 질서가 잡힙니다.”nbspnbspnbsp“동생이 형을 무시하고 그래도요?”nbsp“동생이 형을 무시하면 형한테 두들겨 맞겠지요, 뭐. 그럴 때 질문자가 싸움을 말리면 안 됩니다. 형의 편을 들어줘도 안 되고, 동생의 편을 들어줘도 안 됩니다. 둘이 알아서 질서를 잡도록 그냥 두세요. 일곱 살 차이가 나면 엄마 없을 때 형이 동생을 두들겨 패주겠죠. 그런 건 관여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끼리의 문제는 아이들끼리의 문제이니까요.nbspnbsp마찬가지로 아빠가 아이를 야단칠 때 엄마가 관여해도 안 되고, 엄마가 아이를 야단칠 때 남편이 관여해도 안 됩니다. 그러면 아이는 ‘봐. 엄마는 내가 잘했다고 하잖아. 그런데 아빠는 왜 내가 문제라는 거야?’라고 하면서 자기 잘못을 모르게 됩니다. 아빠가 아이를 야단칠 때 질문자가 관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외출했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들어오면 됩니다.nbspnbsp부자끼리, 모녀끼리, 형제끼리 싸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뭐라고 하면서 싸우든 다른 사람은 거기에 관여하는 게 아닙니다. 폭력을 행사해서 상처를 입히거나 하는 것처럼 아주 심한 경우가 아니면 관여하지 말아야 해요. 그러면 형제끼리 저절로 우애가 좋아질 겁니다. 대부분 부모가 형제의 일에 관여하기 때문에 우애가 안 좋아지는 거예요. 부모가 자꾸 동생을 두둔하면 형이 동생을 미워하게 되고, 부모가 자꾸 형을 두둔하면 동생이 형을 미워하게 됩니다.nbspnbsp이런 질문을 하는 거 보니까 질문자는 집에서 할 일이 별로 없나보네요? 집에 있으면서 그런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집 밖으로 나와서 봉사도 좀 하고 그러세요. 정토회에 오시면 봉사를 많이 하실 수 있어요. 그러면 그 공덕으로 아이들이 다 좋아집니다.”nbsp“잘 알겠습니다.”nbspnbsp“오형제를 키우려면 부모들이 좀 힘들긴 하겠지만 형제끼리는 같이 사는 것 자체가 가정교육이 되고 사회교육이 됩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과자를 한 봉지씩 나눠줬는데 막내가 ‘엄마, 난 두 봉지 주세요’라고 하면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니까 첫째한테 ‘넌 나중에 줄 테니까 내놔라’라고 해서 막내한테 ‘그래, 두 봉지 먹어’ 라고 하게 됩니다. 그게 부모 마음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방을 나가면 첫째가 막내한테 ‘내놔’ 하면서 빼앗아 가버립니다. 그런 식으로 그 안에서 질서가 잡히는 겁니다. 그게 사회교육이에요.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학교에 가도 선후배 관계에 잘 적응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요즘은 자식을 하나만 낳거나 둘만 낳아서 키우니까,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부모와 자식 관계밖에 못 맺어보고 삽니다. 수평적인 관계를 맺어볼 기회가 없어요. 또 요즘 부모들은 자식을 적게 낳는데다가 자식한테 뭐든지 다 해주면서 키우잖아요. 그렇게 키워서 학교에 보내기 때문에 아이가 사회성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학교 선생님들이 수업을 진행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아이들 가르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해 주곤 합니다. ‘자기가 낳아서 자기가 키운 제 자식도 말을 안 들어서 부모들이 힘들다고 하는데, 그 아이들이 선생님 말을 들을 거라곤 아예 기대를 하지 마세요. 그러니 그냥 월급 받은 만큼 가르치고 마세요. 그런 아이들을 고쳐보려고 덤비면 여러분들의 머리만 아픕니다. 그래야 선생님도 살지, 안 그러면 스트레스 받아서 못 삽니다.’nbspnbspnbsp요즘은 가정교육이 근본적으로 잘못됐습니다. 그러니까 학교교육도 제대로 되기가 어려운 거예요. 질문자는 자신의 지나친 관심이 아이를 나쁘게 한다는 걸 명심하세요. 그러니까 아이가 네 살 정도 되면 방청소도 시키고, 이불도 정리하도록 해야 합니다. ‘밥 안 먹어’ 라고 하면 바로 밥상을 치워버리고, 다시 ‘밥 달라’ 라고 하면 ‘네가 찾아 먹어라’라고 해야 질서가 잡히는 겁니다. 어릴 때 배운 게 평생 가거든요. 우리가 사는 힘은 대부분 어릴 때 생활 속에서 배운 것들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배운 수학이나 영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에요. 책으로 배운 건 다 허례허식에 불과하고, 진짜 삶의 동력은 어릴 때 생존과 관련해서 배운 생활교육의 힘입니다. 요즘 왜 유학까지 다녀온 젊은이들이 제대로 못 사는 줄 아세요? 삶의 기초교육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서 그런 거예요.” nbspnbsp질문자가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자리에 앉자 청중들도 큰 박수로 격려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아이에게 가정교육을 제대로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속시원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많은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55세 한 주부는 시댁 형제들이 시부모님에게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않는 모습에 배신감과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생기는데 어떻게 해야하는지 질문했고, 남편과 오랜 시간 별거중인 여성분은 사춘기가 된 아이들 때문에 힘들다며 어떻게 해야하는지 질문했고, 우울증 치료를 받고있는 한 여성은 많이 호전은 되었으나 그래도 가끔 우울감이 들 때가 있어 어떻게 해야하는지, 일은 하기 싫고 봉사활동은 하고 싶은데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질문했고, 작은 공동체에서 일하고 있다는 여성분은 신입구성원과 기성구성원과의 중재역할을 어떻게 해야할 지 질문했습니다.nbspnbsp또 아들이 대학졸업 후 직장을 다니는데 6년 내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니 본인도 괴롭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알려달라는 분도 있었고, 엄마가 열 번이나 바뀌었다며 버림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한 남성분은 무의식 속에 있는 이 두려움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지 질문했고, 한 할머니는 아들은 우울증이고 딸은 직장에서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질문했고, 고1 남학생은 매일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경쟁하며 공부해야하는데 왜 공부해야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질문했습니다.nbspnbsp각각의 질문에 대해 스님은 때론 자비롭게 감싸주기도 하고, 때론 엄중하게 꾸짖기도 하면서 질문자의 상황에 맞게 행복을 찾아가도록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자의 답변까지 마치니 거의 3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오늘 강연이 재미있고 유익했는지 물어보며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재밌었어요?”nbspnbsp“예.”nbsp“유익했어요?”nbsp“예.”nbsp“재미도 있고 유익한 게 진리입니다. 스님들이 하는 얘기는 유익하기는 한데 재미가 없고, 코미디언들이 하는 얘기는 재미는 있는데 유익하지 못하기도 하죠. 그런데 오늘 강연은 재미도 있고 유익하기도 했다니 다행입니다. nbspnbsp그리고 무엇보다 나한테 좋아야 합니다. 나한테 좋을 뿐 만 아니라 상대한테도 손해가 안 되어야 합니다. 마치 부모한테 좋은 게 자식한테 좋듯이 말이에요. 이렇게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게 진리입니다. 나한테 좋아야 한다는 것은 이기주의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부터 먼저 행복하고, 다른 이의 행복에도 도움을 좀 주자는 뜻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재미있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스님의 강연이 너무 좋았는지 경주시민들은 오랫동안 박수갈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 밖에서는 스님의 새책 ‘행복’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섰습니다. 스님은 한 분 한 분 눈을 마주치며 미소로 반겨주었고, 질문했던 분이 앞에 서면 “행복하게 사세요”라며 기운을 북돋워주었습니다. 한 질문자는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눈물을 보이긴 했지만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니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진행하기 위해 곳곳에서 역할을 맡아 준 경주 정토법당, 영천 정토법당, 경산 정토법당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경주 좋아요”를 외치는 봉사자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넘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저녁 7시에 목포 시민문화체육센터에서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목포 시민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nbsp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