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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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편은 폭력행사, 현재 남편은 술주정, 인생살이가 너무 힘들어요."

2016.5.31 (오전) 양산 즉문즉설 강연

2016.06.01. 171,659 읽음 댓글 48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기도하는 것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으려면?"

2016.5.29 (오후) 정토회 제8-9차 백일기도 입재식

2016.05.31. 112,540 읽음 댓글 31개

"정토회가 만일결사를 시작한 이유는?"

2016.5.29 (오전) 정토회 제8-8차 백일기도 회향식

2016.05.31. 75,092 읽음 댓글 38개

"경제 위기, 통일이 우리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요?"

2016.5.28 평화재단 국가비전 연구 모임

2016.05.29. 58,977 읽음 댓글 50개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어떡하죠?"

2016.5.27 부천 통일이야기 강연

2016.05.28. 233,058 읽음 댓글 38개

"갈등의 대한민국, 화합과 통합으로 가기 위해서는?"

2016.5.26 (저녁) 평화리더십아카데미 특강

2016.05.28. 57,769 읽음 댓글 42개

"출가를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가요?"

2016.5.26 출가콘서트, ‘청춘, 자유를 향한 날개짓’

2016.05.27. 97,097 읽음 댓글 57개

2016.5.25 대전 청년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대전시청 대강당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어제밤 포항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마치고 새벽 2시에 서울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평화재단에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과 기획회의 일정을 가졌습니다.nbspnbsp오후 3시가 되어서 강연을 하기 위해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항상 여유가 없어서 저녁 식사를 하지 못하고 곧바로 강연장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조금 일찍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근처에 메밀 국수를 맛있게 하는 집이 있다고 해서 모처럼 여유있게 저녁 식사를 한 후 강연장에 들어섰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이 열린 대전시청은 강연 시작 1시간 전부터 많은 청년들이 입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무대 위로 오르자 좌석을 가득 메운 청년들은 열렬한 박수로 스님을 반겨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적나라하게 마음에 있는 고민을 얘기하면 좋겠다고 독려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총 12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것이 없어 성적에 맞춰서 대학에 입학했는데 기대보다 나오지 않는 성적에 스트레스 받고 있다는 간호학과 대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저는 간호학과에 다니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제 고민이 스님께 너무 사소하게 느껴질까봐 걱정이 되지만 저는 요즘 이 문제로 너무 힘들어요. 고3 때 대입 원서를 넣을 때까지 뚜렷하게 가고 싶은 학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적에 맞춰서 과를 썼고, 합격한 국문학과와 간호학과 중에 취업이 쉽다는 간호학과를 선택했어요. 열심히 하면 적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공부가 너무 어렵고 재미없고 의욕이 나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졸업을 해서 백의의 천사라는 간호사가 될 수 있을까요?nbspnbsp벌써 2학년인데 시간이 가는 게 무섭습니다. 그렇다고 그만둘 용기도 없고요. 왜냐하면 그만둔다고 해서 제가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게 없는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부모님께도 죄송하고요.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제 앞날이 걱정됩니다.”nbspnbsp“예, 걱정이 많겠어요. 그런데 제 조언은 그냥 다니는게 좋겠다는 거예요. 간호학과 말고 뚜렷이 꼭 해야 되겠다거나 죽어도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이 없으니까 이럴 때는 하던 일을 그냥 하는 게 좋습니다. 저도 스님 생활이 딱히 재미는 없어요. 저는 이게 좋아서 하는 줄 알아요? nbspnbspnbsp40여 년을 해 왔는데 이제 와서 그냥 그만두기에는 좀 그렇잖아요? 그렇다고 이 생활이 무슨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아무 재미도 없어요. 그렇다고 이것을 놔놓고 다른 것을 뚜렷하게 할 것도 또 없고요. 그러니까 그냥 하는 거예요.”nbsp“제가 고등학생 때는 공부할 때 참고서도 많이 있고, 공부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거든요. 물론 공부가 재미없었지만 그래도 공부를 하려면 할 수가 있었어요. 성적도 올릴 수 있었고요. 그런데 지금 대학교에 올라와보니까 교수님들은 수업을 책을 읽으시면서 그냥 진도를 나가시고, 저는 그 내용을 다 공부해서 시험을 쳐야 되는데 그 방식이 저한테는 너무 버거운 거예요. 그리고 과 특성상 외워야 되는 의학 용어가 많은데 제 머리가 안 좋은 건지 외우면 까먹고, 외우면 까먹고... 너무 성적이 안 나오니까 다른 사람들이 저를 볼 때 공부 못하는 애로 보는 것 같고...”nbsp“못하는 게 사실이잖아요.” nbspnbsp“너무 자존감이 떨어지는 거예요.”nbspnbsp“괜찮아요. 지금 꼴찌해요? 중간쯤 해요?”nbsp“저 정말 못하는 것 같아요.” nbspnbspnbsp“학과에 정원이 몇 명이에요?”nbsp“320명이에요.”nbspnbsp“그 중에 320등이에요?”nbsp“아니오...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제가 잘못 해요.” nbspnbsp“그러니까 ‘못 한다’는 게 1등을 못 한다는 건지, 10등을 못 한다는 건지 100등 안에 못 든다는 건지, 중간도 못 한다는 건지, 꼴찌를 한다는 건지, 그 ‘못 한다’는 기준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 말은 질문자의 기준이 너무 높은 거 아닌지 확인해 보려는 거예요.”nbspnbsp“제가 느끼기에 저는 꼴찌인 것 같아요. 저는 대전 토박이인데, 대학병원에 취업을 하고 싶거든요.”nbspnbsp“그런데 질문자가 서울대학교 들어가고 싶지만 성적이 안 되면 못 들어가는 것처럼 대학병원에 들어가고 싶지만 성적이 안 되면 다른 병원에 가도 돼요. 꼭 대학병원에 가야 될 이유는 없어요. 병원이면 되지요.”nbsp“그럼 제 능력껏 그냥 가면 된다는 말씀이세요?”nbspnbsp“그렇지요. 그리고 간호학과 4년 다니면 저처럼 아무 것도 안 배운 사람보다는 아픈 사람이 생기면 간호를 좀 더 잘 할 거 아니에요? 어떻게 생각해요?”nbspnbsp“아, 그런데 제가 지금 22살인데 2학년이거든요. 1년이 늦어졌어요.”nbspnbsp“그건 인생에서 아무 것도 아니에요.”nbspnbsp“그래요?” nbsp nbsp nbspnbspnbspnbsp“예. 그 나이 때는 1년이 중요하겠지만 나이 들어보면 1년, 2년, 3년, 5년도 아무 것도 아니에요.”nbsp“그런데 저는 1년이 늦어졌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마음이 조급해요.”nbsp“1, 2년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20년도 아무 것도 아닐 수가 있는데 1년 갖고 난리예요. 나중에 돌아보면 아무 것도 아니에요. 1년, 2년, 3년 재수했다고 엄청 늦어진 것 같지만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아무 문제도 없어요. 그러니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또 질문자가 잘 못 외운다는 문제도 걱정할 것 없어요. 졸업할 수 있는 수준, 즉 간호사 자격증만 따는 수준이면 돼요. 우수한 성적은 아니더라도 그런 수준은 돼요?”nbsp“예.”nbsp“간호대학 졸업했는데 간호사 자격증도 못 따는 수준이예요? 아니면 간호사 자격증 정도는 따는 수준은 되겠어요?”nbspnbsp“예, 자격증은 충분히 딸 수 있는데, 제가 욕심이 많은 건지, 제 성적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nbsp“왜 스트레스를 받느냐 하면, 질문자가 스스로를 너무 높이 평가해서 그래요.”nbsp“아, 그럼 저는 그만한 그릇이 안 되는 거예요?” nbspnbsp“질문자는 간호사 자격증만 따도 굉장히 기뻐해야 돼요.”nbsp“아, 그러면 저는 대학병원에 취업할 그릇은 안 되는 거예요?” nbspnbsp“그건 안 될 수도 있지만 한번 원서를 내보면 재수 없어서 될 수도 있어요. 재수 없어서 되면 다니는 거고, 재수가 좋으면 잘 안 될 거예요.” nbsp nbsp nbspnbsp“제가 졸업까지 2년 남았으니까 참으면서 졸업을 하면 될까요?”nbspnbsp“참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는 재미있게 다니세요. 참지 말고요. ‘스님 얘기 들어보니까 졸업만 하면 되고, 꼴찌라도 자격증만 따면 되는 거였네’ 라고 생각하세요. 운전할 줄 알아요?”nbspnbsp“못 해요.”nbspnbsp“운전을 배우면 한 번 만에 합격하는 사람이 있고, 열 번을 떨어지고 열한 번 만에 합격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누가 운전을 더 할까요?”nbsp“열한 번 만에 된 사람이요.”nbspnbsp“네. 그 사람이 훨씬 안전하게 운전을 해요. 1번 만에 된 사람은 사고가 날 위험이 많고, 열번 떨어진 사람은 사고날 확률이 훨씬 적어요. 왜냐하면 과신을 안 하고 조심을 하니까요. 그리고 일단 열번 떨어졌든 스무번 떨어졌든 합격했으면 운전할 줄 안다는 거예요? 모른다는 거예요?”nbsp“할 줄 안다는 거예요.”nbsp“그래요. 한번 만에 땄느냐, 두번 만에 땄느냐는 게 면허증을 딸 당시에는 굉장히 중요한데, 일단 따고 나면 열번 만에 땄든, 한번 만에 땄든,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질문자도 1등이 됐든 2등이 됐든 10등이 됐든 꼴찌가 됐든 간호사 자격만 따면 되는 거예요. 자격증 딸 때는 1등이냐, 2등이냐가 중요하겠지만, 일단 자격을 따면 ‘간호할 수 있다’는 자격을 획득한 거잖아요. 여기서 몇 등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nbsp“그러면 성적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그냥 공부하라는 말씀이세요?”nbsp“그래요. 이제 머리가 잘 돌아가네요.” nbspnbsp“아하”nbspnbspnbsp“그러니까 일희일비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목표를 어디에 둬야 된다고요? 졸업에 둬야 돼요. 그런데 간호학과는 졸업을 하더라도 자격증을 못 따는 경우도 있으니까 질문자는 자격증 취득에도 목표를 둬야 해요. 꼴찌로 자격증을 따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리고 현장에 가서 간호를 하다 보면 성적과 아무 관계없이 친절하고 상냥하게 잘 하는 사람이 실제로 중요하지, 많이 아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nbspnbsp지식적인 건 아이패드 꺼내놓고 혼자 검색해 보면서 금방 찾으면 돼요. 아직까지는 시험 칠 때 외우는 능력이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다 아이패드 갖다놓고 검색해 가면서 시험을 치게 될 겁니다. 제가 어릴 때는 시험 칠 때 다 전자계산기 없이 암산하거나 계산해서 했는데, 요즘은 다 전자계산기 사용해도 돼잖아요. 그런 것처럼 앞으로 10년만 더 가면 일부러 외우는 건 필요가 없어질 거예요. 앞으로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해 집니다. 간호의 경우 ‘이 사람을 어떻게 치료하느냐?’가 중요하지 ‘이 근육 이름이 뭐냐?’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시대가 바뀔 거예요.”nbsp“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것도 고민이예요.”nbsp“하고 싶은 게 없는 건 굉장히 좋은 소질이에요.”nbsp“아, 그래요?”nbsp“예. 왜냐하면 아무 거나 하면 되기 때문이에요.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은 그 하나밖에 못하고, 그거 안 하면 괴로운데,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은 이거 해도 되고, 저거 해도 되니까요.” nbspnbsp“그런데 제 동생은 뚜렷하게 선생님이 되겠다고 해서 사범대학에 갔거든요.”nbsp“동생은 나중에 임용고시에 떨어지면 굉장히 괴로워할 거예요.”nbsp“그런데 제 동생은 제가 봤을 때 충분히 붙을 거예요.”nbsp“되면 다행인데, 안 될 수도 있죠. 만약에 안 되면 괴로울 거란 말이에요. 선생님밖에 하고 싶은 게 없기 때문예요.”nbsp“그럼 오히려 하고 싶은 게 없는 제가 더 나은 거예요?”nbsp“훨씬 낫지요.” nbspnbsp“저는 이렇게 하고 싶은 게 없으니까 너무 한심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하고 싶은 게 없을 수 있지?’ 하면서요.”nbsp“그런데 그건 학교 선생님들이 자꾸 ‘너는 하고 싶은 게 뭐니? 너가 하고 싶은 걸 해야 된다’ 라고 잘못 교육을 해서 그런 거예요. 마치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은 큰 죄나 짓는 것처럼 됐는데, 토끼도 하고 싶은 게 없는데도 잘 살고, 다람쥐도 하고 싶은 게 없는데도 잘 살고, 노루도 하고 싶은 게 없는데도 잘 사는데, 오히려 하고 싶은 게 있는 인간들만 괴롭게 삽니다. 저도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어요. nbspnbspnbsp그리고 저는 스님이 안 되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우리 은사 스님 때문에 억지로 됐거든요. 억지로 됐어도 한 40년 하다 보니까 이력이 나서 지금 생각해 보면 스님하길 잘한 것 같아요. nbsp그 당시에는 제 인생을 망친 것 같았거든요. nbspnbsp제가 보니까 질문자는 간호사하면 잘 할 것 같아요. 간호사 옷 딱 입고, 모자 쓰고 하면 얼굴도 괜찮고 하니까 잘 할 것 같네요. nbspnbsp자격증 따서 갈 데가 없거든 저한테 오세요. 인도에 가면 가난한 마을에 학교도 있고 병원도 있는데, 그 동네는 의료상태가 무척 열악해요. 그래서 결핵환자도 많고, 애 낳자마자 절반 이상이 죽고 그러는데, 저희가 지난 20년간 열심히 해서 유아사망을 거의 멈추게 했어요. 그러니 거기는 보건소 수준이면 돼요. 보건소 수준이라면 의사 없이 간호사만 있어도 되잖아요. 질문자가 간호대학을 졸업한 수준이면 예방주사는 놓을 수 있을 거고, 예방의학 같은 걸 가르칠 수도 있잖아요. 간호대학 졸업해도 그런 거 못 해요?” nbsp nbspnbspnbspnbsp“할 수 있어요.”nbsp“그래요. 졸업하고 저한테 오면 제가 병원장을 시켜줄 게요.” nbspnbspnbsp“그러면 정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제가 스트레스에 정말 약하거든요. 그래서 탈모도 왔어요.”nbsp“그런데 그건 안 돌아가는 머리를 자꾸 돌리려고 하니까 그래요. 안 돌아가는 머리는 가만히 놔놓으면 돼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질문자도 고등학교 때는 성적에 연연했을텐데, 고등학교 때 월말 고사에 수학성적이 90점이 됐든 80점이 됐든 그게 지금 내 인생에 영향을 줄까요?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그러니 공부를 안 하고 일부러 농땡이 치는 건 영향이 있지만, 질문자가 그냥 최선을 다했는데 성적이 나쁘게 나오는 건 아무 영향이 없어요. 지금 질문자가 생각하기에 질문자의 인생에 대학병원 간호사로 취업하면 길이 활짝 열리고, 다른 병원에 가면 안 열릴 것 같겠지만 실제 살아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학병원에 간호사로 갈 수 있는데 일부러 가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거기 안 간다고 질문자의 인생에 특별한 영향이 없다는 거예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절에 들어가서 학교를 그만뒀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잘 살잖아요.”nbspnbsp“그러면 그냥 그런 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고,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말씀이세요?”nbsp“생각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생각은 해도 좋은데,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라는 건 뭔가 되고 싶은데 안 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다는 거 아니에요?”nbsp“예.”nbsp“그러니까 ‘안 되도 괜찮다’ 라는 거예요.nbsp성적을 1등 나오게 하려면 지금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니까 스트레스를 받게 되지만 ‘졸업만 하면 된다. 낙제만 안 하면 된다. 꼴찌라도 간호사 자격증만 따면 된다’ 이러면 마음에 여유가 생길 거 아니에요. 그러면 스트레스를 안 받지요.nbspnbsp그리고 탈모는 괜찮아요. 탈모를 막으려면 머리카락을 저처럼 깎아버리면 돼요. 저는 머리카락을 깎아버리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지는지, 안 빠지는지,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는지, 어떤지도 모르고 살아요. 그래서 젊게 살잖아요. 왜냐하면 저는 그런 걱정을 전혀 안하거든요. 질문자는 지금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거예요.” nbspnbsp“제가 하는 게 쓸데없는 걱정이라고요?”nbsp“질문자가 처음부터 ‘스님 보시기에 쓸데없는 걱정인 것 같지만 저한테는 큰일이다’라고 하면서 질문을 시작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들어보니까 진짜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말해주는 거예요. nbspnbspnbsp그리고 질문자는 공부머리가 부족한 것도 아니에요. 딱 그만하면 됐어요. 저보다도 나아요.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는 거예요. 1등 할 수준이 안 되는데 1등을 목표로 하니까 늘 스스로가 못하는 것 같은 거예요.“nbsp“제가 제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한다는 거예요?”nbsp“예.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하는데, 현실은 그 평가를 따라가지 못 하니까 스스로가 못난이처럼 느껴지는 거예요.”nbsp“아, 그럼 차라리 제 그릇을 그냥 작게 두라는 말씀이세요?”nbsp“작게 두는 게 아니라 원래 작아요.”nbsp“아, 원래 작아요?” nbspnbsp“작은 게 좋은 거예요. 왜 꼭 큰 게 좋다고 생각해요?”nbspnbsp“그런데 왜 사람들이 다 ‘그릇이 큰 사람이 되라’라고 말하는 걸까요?”nbspnbsp“그런 얘기는 다 헛소리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사는 게 다 힘든 거예요.”nbsp“아, 그릇이 작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건 아니라는 말씀이세요?”nbsp nbsp nbsp“예, 작은 건 좋은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가 자꾸 커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지금 문제가 되는 거예요.nbsp자, 여기에 물병, 컵, 뚜껑이 나란히 있어요. 컵이 물병보다 크기가 커요? 작아요?”nbspnbsp“작아요.”nbsp“그럼 컵이 뚜껑보다는 커요? 작아요?”nbsp“커요.”nbsp“그럼 이 컵 하나만 놓고 봅시다. 이 컵은 큰 거예요? 작은 거예요?”nbsp“몰라요. 기준이 없으니까 큰지 작은지 말할 수가 없어요.”nbspnbsp“맞아요. 그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데 왜 스스로를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 컵은 원래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고, 다만 그것이에요. 그러나 뭔가와 비교를 했을 때 작은지 큰지 우리에게 인식이 됩니다. 그러니 이 컵이 크다고 인식될 때도 컵 자체는 큰 게 아니고, 작다고 인식될 때도 컵 자체는 작은 게 아니에요. 내가 인식할 때 크다고 인식되기도 하고, 작다고 인식되기도 하는 겁니다.nbsp그런데 이 컵이 이 물병 옆에만 계속 같이 있다보면 이 컵은 계속 작다고 인식이 되게 됩니다. ‘이 컵 자체가 크냐? 작으냐?’ 라고 물어도 ‘작다’라고 하게 되는 거예요. 거의 습관처럼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컵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닌데 ‘이 컵이 작기 때문에 내가 작다고 인식했다’ 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만약에 컵이 뚜껑하고만 계속 오래 있다 보면 나는 항상 이 컵에 대해서 ‘컵은 크다, 크다, 크다’ 라고 인식하게 돼요. 컵은 뚜껑하고 관계없이 컵 자체가 큰 것이라고 착각을 일으킨다는 거예요. 인식 상에서 크다, 작다고 여겨질 뿐이고, 객관적 존재는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닌데, 그 인식이 지속되다 보면 마치 그 자체가 크거나 작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nbspnbsp그것처럼 질문자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잘난 사람도 아니고, 못난 사람도 아니고, 키가 큰 사람도 아니고, 작은 사람도 아닌데,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하고 늘 같이 있다 보면 못하는 것처럼 인식이 되고, 못하는 사람하고 늘 같이 있다 보면 잘하는 사람으로 착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우월감과 열등감은 이렇게 해서 생기는 것이지, 우리의 존재는 그 누구도 우월한 사람도 없고, 열등한 사람도 없는 거예요.nbspnbsp전국에서 1등하는 애만 30명을 딱 모아서 한 반을 편성하면 거기에서도 꼴찌가 나오겠죠. 반대로 전국에서 꼴찌 하는 애만 30명 모아서 한 반 편성하면 거기에서도 1등이 나오겠죠. 그러니까 1등이다 꼴찌다 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nbspnbsp그러니 질문자가 지금 이렇게 자신을 못나게 생각하는 건 기준을 너무 높이 설정해 놓았기 때문이에요. 질문자는 그냥 자기일 뿐이에요. 시험에 떨어졌다고 그게 못난이도 아니고, 시험에 걸렸다고 그게 잘난 이도 아니에요.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의 문제예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못난 존재도 아니고, 하고 싶은 게 있다고 잘난 존재도 아니고, 질문자는 그냥 질문자로서 완전한 존재예요.”nbsp“마지막 말씀이 제일 좋아요.” nbspnbspnbsp“그 말은 앞에 얘기해준 건 별 볼일 없다는 얘기예요?”nbsp“아니오. 뭔가 확 다가오는 게 앞에서는 없었거든요.”nbspnbsp“그 얘기가 그 얘기지요.” nbsp“스님 말씀 듣고 정말 느끼는 게 많았어요. 감사합니다.” nbspnbsp“학교 계속 다닐 거예요? 안 다닐 거예요?”nbsp“다닐 거예요.”nbspnbsp“그래요. 지금 그만 두고 재수해서 또 시험 쳐서 입학하는 것보다 그게 낫지 않아요? 간호사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그때 간호사 일을 하면서 다른 걸 찾아봐도 되잖아요. 그래서 다른 사무직 일을 하게 되더라도, 만약 질문자가 비행기 타고 여행 가다가 어떤 사람이 아프다면 질문자는 간호사 경력이 있으니까 그 사람을 간호해 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 간호학은 직업으로 안 써먹더라도 익혀놓으면 좋은 걸까요? 안 좋은 걸까요?”nbsp“좋아요.”nbsp“맞아요. 그러니 간호학은 익혀놓으면 꼭 간호사를 안 하더라도 평생 유용한 기술이에요.”nbsp“예. 정말 모르겠다 싶으면 스님 찾아가서 인도에 스님이 세운 보건소로 갈게요.” nbsp nbsp nbsp nbsp nbspnbsp“그래요, 자격증 따서 오세요.” nbspnbspnbsp질문한 대학생의 해맑은 반응에 청중들은 박수를 치며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궁금한 것을 서슴없이 되묻는 대학생 덕분에 오랜만에 아주 유쾌한 문답이 이뤄졌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12명의 질문이 더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이슬람교를 배격하는 문화가 있는데 스님의 생각은 어떠한지 묻는 30대 청년, 어릴 때 가정에서 겪은 아픈 일들로 인해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려 밤이 너무나도 무서운 20대 청년, 매사에 늘 자신감이 없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걱정하는 20대 청년, 사모임에서 옳지 못한 행동을 한 사람에게 바른 말을 한 뒤 상처 받아 마음이 불편한 20대 여성, 어떤 것을 시작하면 그만두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자신감을 잃고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는 청년, 국제봉사는 길이 좁다고 생각하여 미국유학을 고려중인 고등학교 2학년 학생,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것이 없어 어느 자리에 지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취업준비생, 자살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묻는 청년, 전공이 안 맞아 자퇴 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4년제 대학 졸업장이 마음에 걸리는 청년,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꿈도 없고 하루하루가 다 귀찮고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다는 20대 여성, 사랑하는 사람을 하늘나라에 보내 갑작스런 이별에 적응 못해 힘들어하는 청년까지 스님은 각각에 대해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어느 강연보다 많은 12명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으며 울고 웃고 하다 보니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스님은 청년들을 위해 10시가 넘어서까지 고민에 대해 아낌없이 말씀해 주었습니다. 아무래도 요즘 청년들이 힘들게 사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한 사람이도 더 도움을 주고자 하는 스님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치면서 스님이 재미있었어요? 유익했어요?라고 물으니 청년들 모두 네, 좋았어요 하고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청춘을 만끽하며 살라고 힘을 북돋여 주며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진리의 길을 가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수행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현재의 종교는 문제해결능력이 없는 종교예요. 관념화 되어 있고, 권위주의화 되어 있어요. 재미도 없고요. 무언가를 주입하려고만 하고, 옭아매려고만 해요. 이런 종교는 성경에도 어긋나요. 성경에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했단 말이에요. 부처님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표도 해탈과 열반인, 즉 자유와 행복입니다. 돈을 구하고,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에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 이것이 목표입니다.nbspnbsp그런데 오늘도 여러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다람쥐보다도 못하잖아요. 사람이 다람쥐보다도 못해서야 되겠어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조금 더 가뿐하게 살아갔으면 해요. 실패했다고 울고 있으면 안 돼요. 넘어지면 일어나서 가면 돼요. 또 넘어지면 또 일어나서 가면 돼요. 다리가 아프면 쉬었다가 다시 가면 돼요.nbspnbsp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가 좋아서 가버리면 나는 다른 남자를 또 찾아서 가면 돼요. 왜 울고 불고 그래요? 다른 남자를 만나면 되잖아요. 다른 남자가 만나기 싫으면 정토회로 오세요. 스님하고 같이 살면 돼요. nbspnbspnbsp여러 가지 길이 있어요. 왜 한가지 길만 붙들고 애를 쓰고 그래요? 그러지 말고 청춘을 좀 만끽하고 사세요. 알았죠?”nbsp“네”nbspnbsp스님이 불어넣어 준 기운을 듬뿍 받았는지, 청년들의 목소리도 어느때보다 우렁찼습니다.nbspnbsp강연이 끝난 후 로비에서는 스님의 책 사인회가 이어졌습니다. 신간 행복을 비롯해 부스에서 구매한 따끈따끈한 새 책에 스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서는 청년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머물렀습니다.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것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고 질문한 첫 번째 질문자에게 스님의 말씀을 듣고 어땠는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nbspnbsp지난 충남대 강연에서 질문지가 뽑히지 않았는데 한 달을 기다려 기회를 잡아서 좋았어요. 스님 말씀을 듣고 나니 이제는 최선을 다해보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 안 하고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다잡어요.nbspnbsp대답하는 학생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했습니다. 이 분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스님에게 책 사인도 받아 갔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주관한 대전 청년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대전 청년 파이팅 이라고 외치는 얼굴에는 예쁜 꽃보다 아름다운 미소가 가득했습니다.nbspnbspnbsp봉사자들 대부분이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 학생들이였는데, 스님은 불교대학과 경전반 학생들에게 꼭 졸업하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지난주에 스승의날이 있었는데, 봉사자들은 늦었지만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스승의 은혜를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둥글게 원을 그리고 서서 기타 반주에 맞춰 정겹게 노래가 흘러나오자 스님도 웃음을 보였습니다.nbspnbspnbsp대전 청년정토회 팀장 소임을 맡고 있는 진승연 님이 꽃다발을 전하자 청년들은 큰 목소리로 환호했습니다. 꽃다발을 받아 든 스님은 웃으면서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학교 공부가 하기 싫으면 그만 두세요. 왜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고 있어요? 어쩌면 인생공부가 더 중요해요. 그러니 다들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 열심히 다녀서 인생이 행복해지는 공부를 꼭 챙겨서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nbspnbsp대전시청을 빠져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내일도 아침 7시부터 평화재단에서 미팅과 회의가 있은 후 오후 4시에는 동국대에서 열리는 ‘출가콘서트’에 참석해 청년들과 대화할 예정입니다. 저녁 7시 30분에는 평화재단에서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nbsp‘대한민국 화합과 통합의 길찾기’란 주제의 강연이 있습니다.nbsp※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5.26. 117,063 읽음 댓글 61개

2016.5.24 (저녁) 포항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후에 부산 중구 남포동에서 열렸던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서 저녁 7시에는 포항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부산 강연을 마치고 나온 시간이 오후 5시. 포항까지 부지런히 달려도 겨우 제시간에 맞춰 도착할 것 같았습니다. 저녁 식사를 따로 할 겨를이 없어 이동하는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식사를 대신했습니다.nbspnbsp▲ 이동하는 차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스님nbsp포항에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며칠 기온이 갑자기 올라서 마치 여름 같은 더위가 이어졌는데 대지에 촉촉이 내리는 비가 아직은 봄의 한가운데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포스코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포항문화예술회관은 비 덕분에 먼지를 씻은 양 정갈했고, 곳곳에 아기자기한 꽃들이 방문객에게 미소를 띄우고 있었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을 위해 포항정토회에서 나온 봉사자 75명은 일찌감치 강연장에 집결해 준비를 했습니다. 도서판매, 안내팜플렛, 내부와 외부 안내, 좌석표 배부, 주차안내 등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많은 분들이 행복을 얻어가기를 바라는 마음과 설레임이 봄날 새순처럼 피어나는 것 같은 모습이였습니다. nbspnbsp9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스님이 무대 위로 오르자 대중들은 큰 함성과 박수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저녁은 드셨어요?”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질문을 더 많이 받기 위해 거두절미하고 곧바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총 여섯 분이 질문을 했는데요. 오늘은 그 중에서 고2 아들이 이혼한 전 남편과 닮은 모습을 보여서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데 아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물었던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문답이 조금 길어지긴 했지만 그 내용은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 질문하기까지 10여 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가 없어서, 지금도 도망가고 싶지만 크게 용기 내어 질문해 봅니다.nbspnbsp저는 18년간의 결혼 생활을 4년 전에 정리하고 지금은 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고2 아들과의 갈등 때문에 이혼 후 사라졌던 화가 다시 살아나 숨을 쉴 때마다 저려옵니다. 중3 때 시작한 아들의 사춘기 때문에 저도 많이 당황했지만, 그럼에도 정토회를 다니며 제 감정을 조절했고, 힘들어하는 아들을 이해하려고도 노력했습니다. 아들은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자기 일을 잘하여 칭찬을 받으며 자랐는데, 물론 지금도 행동이 많이 거칠거나 무질서하게 생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점점 엄마를 무시하고, 급기야는 저더러 자기 틀에 맞춰 고치라고 합니다. 저는 아들의 그런 태도가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자꾸 헤매다가 지난 주말에는 결국 언쟁을 했습니다. 현재 아들은 엄마에 대한 거부감이 분명하고, 제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틀에 맞지 않게 말을 하면 그 즉시 표시를 합니다. 저는 엄마로서 당당하기보다는 힘든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제가 오히려 아들한테 맞추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애쓰다 보니까 오래 가지 못하고 ‘내가 너한테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하면서 서운해집니다.nbspnbsp어제 저녁에 ‘스님께 질문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며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지금 이 문제가 아들과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들의 행동에서 남편의 모습이 보여질 때마다 저는 많이 불안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저와 전 남편 사이에 있었던 상황이 저와 아들 사이에도 생길 것 같아 두려운 마음도 들고, 나중에 내가 덜 힘들려면 ‘아들한테 정을 떼야 하나’ 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스님께서는 항상 ‘남편에게 참회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전 참회를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어제야 비로소 저 스스로에게 왜 하기 싫은지를 물어봤고, ‘너무 무서웠다’는 답을 얻었습니다. ‘무서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눈물이 흘렀고, 예전에 제가 많이 외로웠던 그 상황을 생각하기가 싫었습니다. 제가 아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스님의 답변 부탁드립니다.”nbspnbsp“남편은 나와 다른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성격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습관도 다르고, 입맛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이렇게 다 다릅니다. 그래서 그 갈등이 다 남편 책임이라고 할 수가 없고 내 책임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질문자는 ‘내가 왜 참회를 해야 되느냐? 참회를 해야 된다면 쌍방 과실로써 너도 절반은 참회해야 되지 않느냐?’ 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저도 그건 인정합니다. 그런데 아들은 질문자가 낳았지, 데려온 자식이 아니잖아요?”nbsp“예.”nbspnbspnbsp“질문자가 자기 뱃속에서 만들어서, 낳아서, 젖을 먹여서, 질문자의 품에서 키웠잖아요. 그럼 그 아이의 모든 행동은 다 질문자를 본받지, 다른 사람을 본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질문자의 문제입니다. 그건 다른 사람한테 책임을 물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늘 이렇게 얘기하잖아요.nbspnbsp‘누가 낳았니?’‘제가요.’nbsp‘누가 키웠니?’‘제가요.’nbsp‘그럼 누구 닮았겠니?’‘저요.’nbspnbsp그러니까 아들의 모습은 질문자의 모습입니다. 아들의 모습에서 문제가 발견됐다면 그건 질문자에게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자신을 모르지요. 그래서 자기가 다 옳은 줄 아는 데, 질문자가 거울을 한번 보세요. 질문자가 거울에 딱 비추인 모습이 아들로 나타난 거예요. 그런데 그게 싫다면 질문자가 싫은 거예요. 그게 잘못됐다면 질문자가 잘못된 거예요. 그게 저항을 한다면 질문자가 저항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이것은 마땅히 질문자가 받아야 할 과보입니다.nbspnbsp남남끼리 만나서 서로 사랑했지만 갈등 때문에 서로 원수가 되었을 때도 그 헤어지는 과정에는 아픔이 있는 법인데, 이건 제 몸으로 낳아서 제가 키워서 제 품에 있던 게 저항을 해서 갈등이 생겼기 때문에 그 아픔은 부부 간의 갈등에서 생긴 아픔보다 10배 더 큽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과보를 나중에 안 받으려면 남편에게 참회를 해서 미리 그런 인연의 씨앗을 없애라고 얘기하는 겁니다.nbspnbsp그런데 질문자는 참회는 죽어도 하기 싫다니까 10배의 과보를 받으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10배는커녕 2배도 아직 안 받은 것 같네요. 아들이 조금 더 크면 10배를 받을 겁니다. 질문자가 그 인연의 과보와 원리만 알아도 이것은 큰 문제가 안 됩니다. 아이가 하는 행동을 보고 ‘내가 지은 인연의 과보는 10배라고 했는데 아직 10배는 안 된다. 아직 2배 밖에 안 된다’, ‘고통이 크기는 커도 아직 3배 밖에 안 된다’, ‘고맙다. 내가 10배를 받아야 되는 데 네가 아직 나한테 2배밖에 안 주니까 우리 아들 역시 착하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아이의 행동이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nbspnbspnbsp우리가 어떤 일이 일어날 걸 미리 예상만 할 수 있어도 사실은 그 일이 일어나도 큰 문제가 안 생겨요. 10배를 받으려고 각오를 했는 데 2배밖에 안 오니까 고맙잖아요.”nbsp“예.”nbsp“10배를 받아야 되는데, 안 오기를 원하는 것은 심보가 나쁜 거예요. 빚을 졌으면 빚을 갚아야지 그것을 하나도 안 갚겠다면 말이 안 되잖아요. 이자를 쳐서 좀 갚아야지요. 누군가가 빚을 받으러 오면 ‘왜 돈 달라고 그러느냐’ 라고 악 쓰지 말고 ‘그동안 잘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이자 쳐서 돈을 갚아야 되는 것처럼 항상 아이에게 ‘고맙다. 고맙다. 그래도 내가 받아야 할 과보에 비해서는 절반도 안 되네. 고맙다. 그래도 네가 그만한게 다행이다’ 이렇게 자꾸 기도를 하세요. 그럼 큰 문제 없어요.nbspnbsp귀가 했을 때 아들이 밤 10시에 들어오면 ‘네 아버지는 12시에 들어왔는데, 너는 10시에 들어오네. 고맙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남편은 내가 뭐라고 잔소리를 하면 주먹을 휘둘렀는데 그래도 너는 말로만 대드는구나. 고맙다. 네 아버지가 한 것 10배를 해도 내가 다 받아야 되는데 그래도 네 아버지보다는 아직 적다. 고맙다’ 이렇게 자꾸 기도를 해야 돼요. 그럼 아무 문제가 없어요.nbspnbsp아들이 아침에 안 일어나도, 안 일어날 뿐이지 일어나서 밥상을 걷어차는 건 아니니까 그것도 고마운 일이고, 밥상을 걷어차야 되는데 반찬투정만 해서 고맙고, 학교를 안 가야 되는데 학교라도 가 주니까 고맙다고 생각하면 아들한테 잔소리 할 게 없지요. 비위를 맞출 것도 없고요.nbspnbspnbsp왜 엄마가 되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아의 비위를 맞춰요? 엄마는 늘 아이한테 당당해야 돼요. 아이한테 비굴하게 보이면 안돼요. 그럼 아이도 나중에 비굴해 져요. 항상 당당하되 보살펴는 줘야지요. ‘고맙다. 내가 받아야 될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너 키울 때 심보를 생각하면 진짜 네가 잘못돼야 되는데, 그래도 네가 타고 난 복이 있었는지 그 정도하고 마네. 고맙다’ 이렇게 생각하면 당장 지금부터 아무 걱정이 없어지지요. 질문자는 아이하고 싸울 때 주로 무슨 일로 싸워요?”nbsp“지난 주말에 아들이 저한테 다 고치라고 하더라고요. 제 나름대로는 아들을 이해하고, 아들이 힘든 상황인 걸 분명히 아니까...”nbsp“질문자가 아들한테 자꾸 잔소리를 하니까 아들이 그런 말을 했겠지요. 질문자가 가만히 있는 데 아들이 그런 말을 했겠어요? 질문자가 가만히 자는 데 와서 ‘고쳐라’ 라고 하겠어요? 그렇게 받아들이니까 남편하고도 싸울 수밖에 없었지요.”nbspnbsp“예, 아들이 저한테 용돈을 가불해 달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저는 가불한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 건지 아들이 얘기라도 하면 좋겠더라고요. 그런데 아들이 짧게 ‘줘’라고만 했거든요.”nbsp“그럼 질문자도 짧게 ‘없다’라고 하면 되잖아요. 질문자가 바보네요. 자기 돈인데 자기 마음대로 하면 되잖아요.” nbspnbspnbsp“제가 미처 그 생각을 못 했네요. 아들의 문자메시지 때문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서 집에서 돈을 찾아 아들한테 주면서 ‘엄마가 이번에는 주는데 다음에는 어디에 어떻게 쓰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좀 해줬으면 좋겠다’ 라고 했습니다. 제 딴에는 최선을 다해서 웃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nbsp“그러니까 질문자가 바보라는 거예요. 남편한테도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남편하고 사이가 안 좋을 수밖에요. 아이가 문자로 ‘돈 줘’ 라고 보내면, 질문자는 ‘없다’ 라거나 ‘못줘’ 라고 보내고, ‘엄마, 좀 주세요’ 라고 보내면 ‘생각해 보고’ 라고 보내고, 또 ‘엄마 좀 주세요’ 라고 하면 ‘용건을 말해’ 라고 보내면 되지요. 질문자가 돈을 쥐고 있는 갑의 입장인데 왜 을한테 쩔쩔 맵니까? 그러니까 아들이 엄마를 만만하게 보는 거예요.”nbsp“그런 것 같습니다.”nbsp“예, 질문자가 바보같이 사니까요. 그리고 아이 마음에는 이미 질문자가 남편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형성된 저항감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질문자를 무시했듯이 아이도 그런 걸 다 봤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습니다.”nbsp“그래서 지금 제 마음이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아이가 그걸 다 보고 엄마를 어떻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저를 대하는 것 같아요.”nbspnbspnbsp“그건 모든 인간이 다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시장에 가서 사람들이 어떻게 물건값을 깎는지 다 살펴보고 본받아서 하잖아요. 그게 세상을 배운다는 거잖아요. 아이한테 그런 능력이 없었다면 바보가 됐겠지요. 질문자는 계속 바보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요. 그럴 때는 아들을 보면서 ‘우리 아들이 똑똑하네. 그걸 금방 배웠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nbspnbspnbsp아이들의 특징은 ‘따라 배우기’이니까, 아들도 당연히 따라 배운 거예요. 그래서 남편이 아내를 존중하면 그런 집에서 자란 아이들은 여자를 존중하고, 남편이 여자를 무시하는 집에서 자란 아이들은 여자를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게 그 아이의 잘못은 아니잖아요. 아이는 배운 대로 하는 거니까요. 미국에서 자란 아이가 한국에 온다고 갑자기 한국말을 할 수 없어요. 한국에서 1년 살고, 2년 살면서 한국말이 조금씩 늘다가 나중에는 능숙해지는 거예요.nbspnbsp그러니 제가 얘기했듯이 ‘우리 아들 똑똑하다. 배움이 빠르네. 한 번 보고 딱 배웠나 보네’ 이렇게 생각하면 그게 화날 일이에요? ‘애들 보는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더니 옛말이 맞구나. 아이들은 그저 본대로 배워서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되지요. 아이가 본대로 배워서 하는데 질문자는 왜 그걸 기분 나쁘다고 해요? 아이가 어렸을 때 그런 모습을 봤기 때문에 그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았겠어요? 그저 ‘엄마를 다루려면 저렇게 하는 거구나’ 하고 배워서 나오는 행동인데요. 만약 아들이 결혼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제 마누라한테도 똑같이 하겠지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저 집 내력이 저렇구나. 저 집 남편이 저러더니 그 아들도 똑같이 하는구나’ 하는 겁니다.nbspnbsp아이가 그렇게 배운 건 누구 때문이겠어요? 엄마가 그렇게 배우도록 한 거예요. 엄마가 남편한테 항상 공손하게 ‘여보, 알겠습니다’ 그랬다면 아이는 그런 공손한 태도를 배웠겠지요. 예를 들어 남편이 술주정을 한다고 아내가 악을 쓰게 되면 그것은 곧 부부싸움이 되니까 아이는 그 주정하는 모습을 그대로 배우는 겁니다. 그러나 남편이 술주정을 해도 아내가 ‘여보, 오늘 술 드셨네요’ 하면서 등을 두드려 주면서 재우면 아이는 ‘우리 엄마 아빠는 사이가 참 좋구나’ 하게 되니까 술주정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술주정이 아들한테 바로 가는 게 아니라 항상 엄마라는 거울에 비춰서 가는 겁니다. 아버지의 모습은 엄마의 거울에 반사되어서 아이에게 가기 때문에 엄마가 그걸 안 비춰버리면 아이는 몰라요. 그런데 질문자는 남편의 행동을 자기 거울에 반사해서 비췄기 때문에 아이가 그대로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 질문자가 책임을 져야지요. 아무튼 질문자의 아들이 똑똑하네요. nbspnbspnbsp많은 엄마들이 아이한테 ‘너는 네 아버지 술주정은 배우지 마라’ 라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안 배우겠어요? 엄마가 맛있는 걸 늘 숨겨두고 혼자 먹으면서 ‘여기 맛있는 거 있으니까 너는 먹지 마. 이건 엄마 혼자 먹는 거야’ 라고 얘기해 보세요. 아이가 엄마 없을 때 금방 찾아서 먹습니다. 그것도 못 찾아서 먹는 아이는 바보입니다. 나쁜 아이가 아니고요.nbspnbsp지금 질문자는 아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전혀 없는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는 남편과 갈등을 일으키며 살았던 그 과보를 자식을 통해서 2배, 3배, 아니 10배를 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비로소 ‘아, 내가 잘못했구나. 사람이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구나. 내 성질대로 살면 문제가 되는구나’ 라고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nbspnbsp사실은 남편하고 갈등을 일으키면서 성질을 바꿨어야 했는데, 질문자는 헤어지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제 성질 안 고치고도 살 것 같았겠지만 결국 아들이 애를 먹이는 거예요. 아들은 남편처럼 그렇게 딱 떼어내지도 못할 거고, 그렇게 딱 떨어지지도 않을 겁니다. 거머리처럼 딱 붙어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살 길은 스스로 성질을 바꾸는 길밖에 없습니다. 아들이 엄마한테 ‘고쳐라’ 라고 했다면서요? 아이가 똑똑하네요. 아이 말이 진리예요. nbspnbsp질문자가 딱 받아들여서 지금이라도 바꾸겠다는 태도를 취하면 가볍게 과보를 받으면서 살 것이고, 질문자가 남편에게 저항했듯이 아들에게도 저항을 해서 문제를 풀거나 버릇을 고치는 쪽으로 간다면 무거운 과보를 받으면서 살 거예요. 남편과는 헤어지기라도 할 수도 있지만 아들과는 어떻게 헤어질래요?”nbspnbsp“그런데 스님, 아들과 이런 상황이 될 때마다 아들은 자꾸 ‘그럼 나를 아빠한테 보내라’ 라고 합니다. 제가 보내겠다는 말도 안 했는데요.”nbspnbsp“그럼 보내세요.”nbsp nbsp“그래서 제가 그동안은 아들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그렇게는 안 한다’ 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그래. 그럼 가거라’ 라고 했더니 아들이 ‘알았다’고 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지금 안 가고 집에 있기는 있는데요.”nbsp“가겠다는 아이한테 ‘가라’고 말하는 게 지금은 수월한 것 같지요?”nbsp“아니요. 그게 또 아들한테는 상처가 될 것 같아서 걱정됩니다.”nbsp“당연히 상처가 되지요. 그래서 아들은 ‘엄마는 나를 귀찮게 여기는구나’ 싶어서 남편한테 안 가고 엄마한테 붙어서 보복을 할 겁니다.” nbspnbspnbsp“그럴 때는 제가 어떻게 답변을 하는 게 아들한테 도움이 될까요?”nbsp“아이가 ‘아빠한테 가겠다’고 하니까 질문자가 ‘가라’고 말하는 건, 아이를 위해서예요? 질문자가 힘드니까 그러는 거예요?”nbsp“아들이 저를 떠보는 식으로 말을 그렇게 하니까요.”nbspnbsp“그건 남편이 자꾸 ‘이혼하자’ 라고 했던 말과 같은 거예요. 남편이 이혼하자는 건 진짜 이혼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고, ‘네가 무릎 꿇고 좀 빌어라’는 뜻에서 이혼하자는 말을 꺼냈던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는 ‘그래. 이혼하자’ 라고 하고선 헤어졌지요?nbspnbsp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이 아빠한테 가겠다는 건 진짜 가겠다는 게 아니라 ‘엄마가 잘못했다’ 하는 말을 듣고 싶어서인데, 질문자는 ‘가라’라고 한 거예요. 질문자는 아들하고 싸워서 이겨보겠다고 그러는 건데, 아들한테 이겨서 뭐할 거예요?”nbspnbsp“그럼 그럴 때 구슬리는 게 더 나은 건가요?”nbsp“엄마가 돼서 왜 아들을 구슬려요?”nbsp“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nbspnbsp“빌어야지요.”nbsp“아들한테요?”nbsp“그럼요. 아들이 ‘아빠한테 간다’고 하면, 속으로는 보내고 싶더라도 ‘엄마는 널 사랑하는데, 네가 가버리면 엄마는 아들이 보고 싶어서 어떻게 살지?’ 라고 말해줘야 돼요. 아들이 간 뒤에 혼자 웃더라도 그렇게 말해야 된다는 거예요.” nbspnbsp“제가 계속 그렇게 말해 왔어요. 그런데 아들이 자꾸 그렇게 말하니까요.”nbsp“아들이 자꾸 그렇게 말하면 질문자도 자꾸 그렇게 말하면 되지요. 아들이 똑같은 말을 자꾸 하면 질문자도 똑같은 말을 자꾸 하면 되지요. nbspnbsp옛말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잖아요. 질문자의 아들이 지금은 그 정도일지 몰라도 이제 조금 더 있으면 ‘집 나간다’라는 정도가 아니라 ‘콱 죽어버린다’라고 할 겁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아들한테 ‘그러면 안 되지’ 하겠지만, 아들이 자꾸 그런 말을 한다고 ‘그래, 팍 죽어버려라’ 라고 할 거예요?”nbsp“아니오.”nbspnbsp“그러다가 만약 아들이 죽어버리면 어떻게 할래요? 지금 질문자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스님 말의 뜻을 못 알아듣고, 스님이 물어도 즉시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왜 말이 안 나올까요? 아이하고 싸워서 이기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아이하고는 싸울 필요가 없는 거예요. 왜 사랑하는 자기 아이랑 싸워요? 이겨서 뭐하려고요?nbspnbsp왜 제 자식한테 어미가 비굴하게 싹싹 빌고 그래요? 질문자는 싸워서 이기려다가 안 되면 싹싹 빌고, 또 싸워서 이기려다가 안 되면 싹싹 빌고, 그렇게 교만했다 비굴했다, 교만했다 비굴했다 그러니까 아이는 정신분열이 일어날 정도로 힘들게 되는 거예요. 아이가 뭐라 그러든 엄마는 ‘그래, 그래, 알았다, 알았다’ 이러면서 당당해야지 아이 말에 왜 그렇게 끌려 다녀요?nbspnbsp그리고 엄마는 아들을 사랑하니까 뭐든지 좋게 얘기해 줘야지요. 예를 들어 아들이 ‘엄마, 나 아빠한테 갈래’ 그러면 ‘왜? 아빠가 보고 싶니?’라고 대화를 해야지요. 그런데 질문자는 남편을 미워하니까 대화가 안 되는 거예요. 질문자가 진짜 남편에 대해서 참회를 해서 ‘내가 잘못해서 헤어졌구나. 내가 헤어져서 자식들이 고생하는구나’ 싶으면 아이가 ‘아빠한테 갈래’ 했을 때 ‘아빠가 보고 싶니? 엄마가 잘못해서 너희가 아빠랑 헤어져 사니 얼마나 아빠가 보고 싶겠니? 며칠 다녀오너라’ 하고 얘기하고 용돈도 주면서 ‘아빠한테 갈 때 빈손으로 가지 말고 과일이라도 좀 사가거라’ 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아들이 할머니 댁에 간다고 하면 질문자는 그렇게 말할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남편이 미우니까 그렇게 말을 못 하는 거예요. 그러니 남편에 대한 미움이 해결되지 않으면 아들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가 없는 겁니다. 용돈 문제에 대해서도 그렇고, 아빠 집에 간다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렇고요.nbspnbspnbsp그러니 질문자가 아들과 근본적으로 문제를 풀려면, 첫째, 남편한테 참회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nbsp‘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다 맞는 얘기이네요. 당신한테 내가 악심을 품었더니 그게 멀리 안 가고 아들한테로 와서 그대로 저한테 돌아오네요. 제가 어리석어서 하나하나 악심을 갖고 따지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nbspnbsp둘째, 아들한테 이런 마음을 가지세요.nbspnbsp‘내가 지은 인연의 과보를 생각하면 네가 나한테 10배로 해야 되는데, 그래도 엄마라고 나한테 그렇게 안 하는 게 참 고맙다. 아들아, 참 고맙다.’nbspnbsp그러면 아들이 어떤 말을 해도 질문자가 태연하게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더 할 말이 있으면 해 보세요.” nbsp nbspnbsp“아들과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는 스님 말씀과 같은 말이 잘 생각이 안 나요.”nbsp“남편에게 참회를 하면 그런 말이 잘 생각이 날 겁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미움이 없으면 아들과도 대화가 자연스럽게 될 거예요. 그리고 아이가 어떻게 해도 과보로 받겠다는 마음을 내고, 그저 고맙게만 생각하면 더 자연스럽게 대화가 될 거예요. 스님은 지금 아무런 미움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예요.”nbspnbsp“그런데 제가 남편과 살면서 아주 긴 시간동안 너무 많이 억압을 받아서 억울한 마음이 많이 쌓여있거든요.”nbspnbsp“질문자도 지금 억울한 마음이 쌓여서 안 풀린다는 것처럼, 아이도 지금 엄마한테 억울한 마음이 쌓여 있는 겁니다. 아이가 엄마한테 대든다는 건 아이도 엄마로부터 심리적 억압을 받았다는 거예요.nbspnbsp질문자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서 부모한테 대들면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했는데, 그동안 아이는 심리적 억압을 받았나 보구나’ 하고 금방 알아차려야 합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엄마가 야단치면 속으로는 ‘그건 아닌데, 너나 잘해라’ 라고 해도 겉으로는 ‘예’ 하거나, 말을 하기 싫으면 그냥 따릅니다.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가 그러는 게 말을 잘 듣는 것처럼 보이겠지요. 그런데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달라져요. 사춘기는 어른이 되는 과정이니까 당연히 저항을 밖으로 표현하거든요. 그럼 초등학교 때는 저항심이 없었을까요? 있었어요. 저항심이라는 게 사춘기가 되었다고 갑자기 생긴 게 아니고, 그 동안 표현을 안 하다가 사춘기 때부터 표현하기 시작하는 겁니다.nbspnbsp그러니 질문자가 중심만 딱 잡고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안 돼요. 질문자가 엄마로서 아이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지극하면 아무런 문제가 안 돼요. 남편은 아이의 아버지이잖아요. 아이의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면 아이가 나쁜 사람의 자식이 되잖아요. 아이의 아버지가 용서도 못할 나쁜 사람이니까 아이는 진짜 나쁜 사람의 자식이 된단 말이에요. 그런 마음이 어떻게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가 가질 수 있는 마음이예요? 부부 관계로는 나와 좀 안 맞았지만, 아이의 아버지로는 참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겨줘야 합니다. 내가 잘 맞춰주지 못해서 그렇지 그 분은 참 훌륭한 사람이다, 이런 마음이 들어야 아이도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nbspnbsp그러니 남편에게는 ‘내가 고집이 세서 당신의 비위를 다 맞춰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고, 아이가 뭐라고 해도 ‘아이고, 너희 아빠가 화를 내는 것은 엄마가 아빠의 성질을 건드려서 그래. 그러니 드러난 현상만 보지 말거라. 너희 아빠는 훌륭한 사람이야’ 이렇게 얘기해 줄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진심으로 그런 마음이 들어야 이렇게 말이 나오지 진심이 아니면 그런 말이 안 나와요. 그래야 내 아이도 훌륭한 아이가 될 수 있어요. 엄마는 자식을 nbsp훌륭하게 키우기 위해서라도 아이의 아빠 또한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줘야 하는 겁니다. 그럴 정도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금 질문자에게는 없잖아요. 그저 내 잘났다는 생각에 자기 성질 못 이겨서 남편의 비위도 못 맞춰주고, 자식에게도 못 맞춰주고, 그렇게 계속 살면 나중에 혼자 외로워지죠 뭐.nbspnbsp그러면 또 이렇게 물을 거예요. ‘그러면, 스님은 할 수 있어요?’ 네, 저는 못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결혼도 했고 자식도 있잖아요. 저는 그렇게 못하는 줄을 미리 알고 아예 결혼을 안 했잖아요. 이것이 여러분과 저의 차이입니다. nbspnbspnbsp못 하는 건 못한다고 미리 아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현명한 겁니까. 질문자는 부부 생활도 제대로 할 줄 모르면서 뭣 때문에 결혼을 했고, 아이도 사랑할 줄 모르면서 왜 아이를 낳아서 키우긴 키웠어요?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안 지고 있잖아요. 결혼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 되고, 자식을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 되는데, 지금 질문자는 남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아이한테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겁니다. ‘아, 내가 한 행위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져야 되겠다’nbspnbsp장애를 가진 아이를 가져도 어떻게든 훌륭하게 키우려고 하고, 지적으로 부족한 아이를 가져도 어떻게든 훌륭하게 키우려고 그러는데 , 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왜 아이와 싸우고 그래요? 아이가 좀 부족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훌륭하게 키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야죠. 그래서 제가 보기에 질문자는 사랑이 부족하다는 겁니다.”nbsp“네. 스님 말씀을 듣고 나니 저도 지금 그런 느낌이 듭니다.”nbspnbsp“그래서 어떻게 할 거예요?”nbsp“남편에게 참회를 하겠습니다.” nbspnbsp“제가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도 아직 벽에 금도 안 간 것 같아요. 참회가 과연 될까요? 참회를 하다보면 성질이 나서 염주를 그냥 짚어 던지면서 ‘내가 미쳤나. 니가 나한테 참회를 해도 용서해줄까 말까 한텐데 내가 왜 그 인간한테 참회를 해야 하나?’ 하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겁니다. 그 고비를 넘겨야 해요.nbspnbsp게다가 오늘부터 참회 기도를 시작해서 아이가 더 고분고분해지면 이 고비를 쉽게 넘길 수가 있는데, 오늘부터 100일까지는 아이가 지금보다 10배 더 애를 먹입니다. 그러면 기도할 마음이 안 들어요. ‘기도가 잘못 되었나, 기도를 하니 더 설치네’ 이렇게 됩니다. nbspnbspnbsp이 과정을 이겨내야 해요. 그래서 제가 ‘10배의 과보를 받는데 아직 2배 밖에 안 받았네’ 하면서 이걸 이겨내야 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야 고비를 넘길 수 있어요. 기도하면 할수록 업장이 더 날뛰어요. 그래서 대부분 기도를 하다가 그만두게 됩니다. 업장도 자기 나름대로 살아야 하니까요. 내 입장에서는 업장을 소멸하면 좋지만, 업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죽게 되니까 안 죽으려고 발버둥을 쳐야 되는 겁니다.nbspnbsp그래서 질문자는 오늘부터 남편에게는 ‘여보, 제가 당신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당신이 화가 났지요.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참회를 해야 되고, 아이에게는 ‘그만큼이라도 해주니 고맙다. 엄마가 잘못한 것에 비해서는 니가 진짜 잘한다. 고맙다’ 이렇게 감사해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해도 ‘아이고, 고맙다’ 이렇게요. 고마운 마음을 가지더라도 내 형편이 용돈 10만원을 줄 형편밖에 안 되는데 100만원을 달라고 하면, ‘아이고, 미안하다’ 하면서 10만원만 주면 됩니다. 100만원 달라고 한다 해서 돈을 빌려와서 100만원을 주지 말고요. 그냥 10만원만 주면 되는 겁니다. 때려 부수고 해도 ‘아이고, 미안하다. 엄마가 돈이 없어서 그렇다. 이거라도 써라’ 이러면 되는 거예요 즉 흔들리지 말라는 겁니다.nbspnbspnbsp이렇게 엄마로서는 딱 중심을 잡고 살아야 돼요. 그러나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는 아이의 행동을 문제삼지 말고요. 그렇게 매일 기도를 해서 100일이 넘고 고비를 넘겨야 아이가 어떻게 하든 스님이 말한 내용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할 거예요.”nbsp“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질문자가 스님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 문답이 조금 길어지긴 했지만, 마침내 질문자는 그 뜻을 이해하고 밝은 미소를 내비쳤습니다. 이 모습을 본 청중들도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아이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을텐데요. 스님의 답변은 무엇이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것인지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해준 것 같습니다.nbsp이 외에도 5명이 더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세 아이의 엄마인데 막내인 아들을 낳기 전에 딸이라는 이유로 유산시킨 경험으로 생긴 죄책감을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이 진행되는데 인연이라는 것이 있는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초발심의 ‘초’라는 글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고, 네 번째 질문자는 갑자기 연락을 끊은 친구가 연락이 왔는데 과거의 나쁜 기억이 떠올라서 괴롭고, 서울에서 포항에 온지 5일 되었는데 아직 방을 못 구했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식구들이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어서 본인과 종교가 다른 것 때문에 죄의식을 느낀다며 이런 죄의식이 어디에서 오는지 질문했습니다.nbsp때로는 준엄하게 때로는 익살스럽게 질문자의 형편에 맞추어 진행되는 답변을 들으며 청중들은 시간가는 줄을 몰랐습니다.nbspnbsp2시간 10분 동안의 강연이 끝나고 마칠 시간이 되자 스님이 정리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질문자 중에 기독교 신앙에 대해 질문한 분도 있었고, 청중들 중에도 기독교 신앙을 가진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스님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자기 권리를 찾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우리가 찾아야 하는 권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권리는 행복할 권리예요. 그래서 늘 웃고 살아야 돼요. 남들이 ‘너는 뭐가 좋다고 웃노?’ 그러면 이렇게 도로 물어야 돼요. ‘안 웃을 일이 뭐가 있노?’ 라고요. ‘안 웃을 일이 뭐가 있는지 한 번 말해봐라’ 라고 물으면 그 사람은 아마 대답을 못할 겁니다. 만약 ‘한쪽 다리를 다쳤다’ 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해야 해요. ‘다리 다친 게 왜 울어야 할 일이니? 나머지 한 쪽 다리는 안 다친 것을 생각해봐라. 두 다리 다 다치는 것보다 한쪽 다리만 다치는 것이 더 낫지 않냐? 이렇게 생각하면 웃을 수 있잖아.’nbspnbsp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겁니다.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이 말을 잘 아시죠? 매사에 감사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주님,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면 안 되고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해요.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늘 가지면 누가 행복해질까요?”nbsp“내가 행복해져요.”nbsp“그런데 앞에서 질문한 분들처럼 맨날 상대를 미워하고 성질을 내면 자기만 괴로운 거예요. 저렇게 사니까 얼마나 인생이 피곤해요. 어릴 때는 부모와 싸워서 힘들었고, 그래서 부모로부터 도망가려고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이 인간하고도 또 싸워서 못 살겠다고 하면서 집을 나왔더니 이제는 자식과도 싸워서 못 살겠다는 것 아닙니까. 이 정도가 되면 이제 인생이 한탄스러워지는 겁니다. 그래서 ‘내 인생은 왜 이러노’ 하면서 점을 보러 가게 되는데, 인연 과보를 알면 그럴 필요가 없어요.nbspnbspnbsp살아있는 것부터가 얼마나 감사한 일이예요? 남편이 안 죽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좋은 일이예요? 그러니 남편도 고맙고요. 아이들이 안 죽고 학교에라도 다녀주는 것만 해도 고맙고요. 세월호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것이 아침에 가방 들고 나가는 아이가 없다는 것이예요. 이걸 생각하면 지금 아이가 공부 잘 하고 못 하고가 뭐가 중요해요? 아침에 가방 들고 나가고, 저녁에 가방 들고 들어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요.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사는 게 행복해요. 행복하게 사십시오.” nbsp온갖 사연을 가진 질문자들과의 기나긴 문답 내용을 듣고 나서 그런지 마지막에 행복하게 살라는 스님의 말씀이 어느 때보다 깊게 울림으로 남았습니다.nbspnbsp스님은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로비에 마련된 책 사인회 부스로 이동했습니다. 로비에는 벌써 많은 분들이 책을 들고 스님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한 분 한 분과 눈을 맞추며 정성껏 싸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을 격려하며 단체 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포항정토회, 좋아요” 라고 외치며 활짝 웃는 모습에는 보람이 가득차 보였습니다.nbspnbspnbsp사진을 찍고 뒤돌아선 스님은 봉사자들이 각각 어디에서 왔는지 확인을 하며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대부분 덕산 정토법당과 양덕 정토법당에서 정토불교대학을 듣고 있는 학생들이였습니다. 영상 수업으로만 스님을 만나뵙다가 스님을 가까이에서 직접 본 건 처음이라는 대부분의 봉사자들은 스님의 감사 인사에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환호를 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밤 10시에 포항을 출발했습니다. 부지런히 고속도로를 달려 새벽 2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잠시 눈을 붙인 스님은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연이어 미팅 및 회의 일정을 가진 후 저녁 7시 30분에는 대전시청 대강당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5.26. 160,860 읽음 댓글 57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