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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24 (오후) 부산 중구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산 중구와 포항에서 하루에 두 번 즉문즉설 강의가 있는 날입니다. 먼저 오후 1시 30분에는 부산 중구 롯데백화점 문화홀에서 부산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아침 일찍부터 하늘에는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빗방울이 간간히 날렸습니다. 스님은 어제에 이어서 오전 내내 농사일을 했습니다. 특히 장미꽃 가지가 뭉쳐져 있는 것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는 작업을 계속 했는데, 한참 동안 스님의 손길이 닿자 장미꽃 가지들은 마침내 제법 풍성해 보일 정도로 예쁜 모양새가 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어제 스님이 경주 통일암에서 캐어 온 죽순은 밤중에 삶겨서 아침 식사 반찬으로 나왔습니다. 순하고 부드러운 죽순에 초고추장에 버무리니 아주 맛깔스런 밑반찬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스님이 방금 밭에서 따온 상추, 고소와 함께 쌈을 싸서 먹으니 맛이 아주 일품이었습니다.nbspnbspnbsp원고 교정을 본 후 10시 30분이 되어 강연이 열리는 부산으로 출발했습니다. 강연은 부산 중구 남포동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문화홀에서 오후 1시 30분에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부산 중구는 부산항여객터미널, 용두산공원, 번화가인 남포동, 자갈치시장 등이 있어 부산의 경제, 교통, 관광의 중심지입니다. 롯데백화점 13층 전망대에 오르니 저 멀리 부산항 여객터미널과 한진중공업, 각종 화물선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훤히 펼쳐졌습니다.nbspnbspnbsp강연 시작 10분 전이 되자 문화홀에 마련된 500석은 모두 만석이 되었고, 자리가 부족해 입장하지 못한 150여 명의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서 애타게 입장을 원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이 소식을 들은 스님은 입장하지 못하고 되돌아가야 하는 많은 분들에게 직접 사과를 하러 강연장 밖으로 잠시 나왔습니다.nbspnbsp“세월호 사고가 생기고 나서 공연장에는 정원 외에 추가 인원을 일절 받지 못하도록 바뀌었어요. 양해를 좀 해주세요. 다음에 6월 8일 저녁 7시 30분에 KBS홀에서 또 강연이 있으니까 그 때 오세요.”nbspnbspnbsp스님이 직접 양해를 구하자 시민들은 그제서야 웃음을 보이며 스님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가려고 다들 손을 내밀었습니다. 스님은 악수라도 한 번씩 건네준 후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강연장으로 들어왔습니다.nbspnbsp소개 영상에 이어서 스님이 무대 위로 오르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습니다. 스님은 거두절미 하고 곧바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시작했습니다. 총 10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암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데 가족들이 이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할 것을 걱정하는 여성분의 고민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저는 20년 전에 육종암 진단을 받았어요. 방사선치료를 비롯한 항암치료며 개복수술 후유증 때문에 몇 차례 유착 제거 수술을 해서 몸속에 남들에 비해 없는 게 좀 많은 편입니다. 신장이나 비장도 없지만 잘 살아왔어요. 그런데 작년에 또 장유착이 와서 수술을 하러 들어갔더니 이제는 그게 온몸에 전이가 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nbsp어쨌든 20년을 아이들과 잘 살 수 있었던 것은 굉장히 감사하고, 아이들한테도 ‘같이 받아들이고 감사한 것만 생각하면서 살자’고 이야기했어요. 병원에서는 나이가 52살로 젊은 편이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포기하기보다 항암치료를 하자고 해요. 그런데 이전에 방사선치료를 받아본 경험도 있고, 제게 생긴 암에는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가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것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에 거절했어요. 장유착 수술 후에 지금은 잘 먹어서 몸무게도 조금 늘고 컨디션도 좋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nbspnbsp지금은 통증이 없으니까 이전처럼 생활을 잘 하고 있지만, 앞으로 통증이 심해질까 걱정입니다. 누구나 다 가는 길이기 때문에 죽음 자체는 받아들이겠는데 가족들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사실 보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통증이 심해졌을 때 제가 어떻게 생각을 하면 좀 더 지혜롭게 지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이 올 때까지 제가 어떤 노력이나 기도를 하면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nbsp“네. 병을 20년 앓고도 이렇게 밝게 살아오신 걸 우선 축하드립니다. 격려박수 부탁드립니다.nbspnbspnbsp우리가 작은 눈으로 보면 먼저 죽는 건 큰 재앙이고, 늦게 죽는 건 큰 복 같이 보이지만, 좀 큰 눈으로 보면 상황이 전혀 달라요. 하루살이 알죠? 하루밖에 못 산다고 해서 ‘하루살이’예요. 하루살이들은 해가 떴을 즈음에 깨어나 날아다니다가 해가 지는 저녁 6시나 7시쯤에 대부분 죽습니다. 그런데 하루살이를 1,000마리든 10,000마리든 많은 수를 관찰해보면 다 똑같이 저녁 6시나 7시에 죽진 않을 거예요. 관찰해서 분포도를 그려보면 다수가 저녁 6시나 7시에 죽을 확률이 제일 높은 것일 뿐이지, 오후 2시나 3시에 죽는 것도 있고, 밤 11시나 12시까지 살다 죽는 것도 있겠죠. 사람에 비유하면 오후 2시에 죽는 것은 20살에 죽는 것, 오후 4시에 죽는 것은 40살에 죽는 것, 오후 7시에 죽는 것은 70살에 죽는 것, 오후 9시에 죽는 것은 90살에 죽는 것, 저녁 10시에 죽는 것은 100살에 죽는 것이라고 생각해봅시다. 하루살이에게는 ‘3시에 죽느냐, 4시에 죽느냐, 5시에 죽느냐, 6시에 죽느냐’가 엄청나게 중요할 것 같지만, 사람이 볼 때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어차피 하루밖에 못 사니까 사고를 당해서 오후 2시에 죽든 요행히 밤 10시까지 살든 그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nbspnbsp하느님이 계시든 옥황상제가 계시든 또 다른 존재가 있든지 해서 저 하늘 위나 지구 밖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면 인간의 수명 100년이라는 게 아주 잠깐이에요. 찰나에 불과한 시간입니다. 그런 큰 눈으로 보면 그 100년 중에 ‘100살까지 살았다, 90살까지 살았다, 80살 살았다, 60살 살았다’ 이게 하등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사람의 경우에도 많은 수를 조사해보면 20살에 사고가 나서 죽는 사람도 있고, 30살에 죽는 사람도 있고, 40살에 죽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다수는 한 70이나 80살에 죽어서 그래프를 그려보면 거기가 꼭지점이 되고, 또 개중에는 90살이나 100살까지 사는 사람도 간혹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큰 눈으로 보면 이건 하등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주 좁게 보면 하루 더 살고 못 살고가 아주 중요하지만, 큰 눈으로 보면 10년 더 살고 못 살고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nbspnbsp예수님은 33세까지밖에 안 살았잖아요. 게다가 그냥 죽은 게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히는 사형을 당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나이 서른세 살에 뭘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그러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추구해서 보통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일을 했기 때문에 그 분이 곧 하느님의 아들이자 하느님으로 추앙받게 된 거예요. 80살, 90살까지 살아도 이름 없이 죽어간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nbspnbspnbsp전 세계를 통틀어 인류 역사상 지금까지 왕이 되었다가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수십만, 수백만 명이 될지도 몰라요. 부처님도 왕이 되었다면 그 수백만 명 중의 한 명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왕위를 버리고 평생을 맨발로 다니고 나무 아래서 잠자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nbsp것이 참행복인지를 설파했기에 2,6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존경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존경받는다’라는 것도 더 큰 눈으로 보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에요. 5천년 인류 역사라는 것도 지구 전체의 역사에서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불과합니다.nbsp그럼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삶의 중요한 가치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그건 시간도 아니고, 재물도 아니고, 지위도 아닙니다. 내가 하루를 살더라도 행복하게 사느냐, 이게 중요한 거예요. 재물이 많아도 괴롭게 사는 사람이 있고, 지위가 높아도 괴롭게 사는 사람이 있고, 오래 살아도 괴롭게 사는 사람이 있어요. 하루를 살고 죽어도 행복하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nbspnbsp그러니 이 기준을 자꾸 다른 데다 두면 안 돼요. 기준을 확 바꿔버리면 아무 문제도 없어요. 예컨대 암에 걸려 1년밖에 못 산다고 진단을 받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사람은 반드시 불행해야 할까요? 이 사람이 불행한 이유는 ‘나는 1년밖에 못 산다’라는 생각으로 그 1년을 괴롭게 살다 죽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 이 질문자보다 먼저 죽을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nbsp“있어요.”nbsp“질문자보다 젊고 질문자보다 건강한데도 질문자보다 먼저 죽을 사람들이 여기에 많아요. 누구인지를 몰라서 그렇죠.nbspnbspnbsp그런데 그 먼저 죽을 사람들은 웃으면서 사는데, 늦게 죽을 자기는 ‘얼마 못 산다’ 이 생각에 사로잡혀서 괴롭게 살다 죽는다면 이게 불행입니다. 병이 불행이 아니라, 신체장애가 불행이 아니라, 가난이 불행이 아니라, 그걸 핑계로 괴롭게 살다가 죽는 게 불행이라는 거예요.nbspnbsp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 옆에 절이 있었는데 그 절의 스님이 저더러 스님이 되라는 거예요. 저는 절대로 안 한다고 버텼어요. 저는 종교인이 싫었거든요. 허황한 소리, 웃기는 이야기만 하고 돌아다니잖아요. ‘처녀가 애를 낳았다’, ‘애가 태어나자마자 서서 걸었다’ 이런 턱도 없는 소리만 하는데 그걸 제가 왜 믿겠어요. 그냥 종교를 믿으라고 해도 믿기 싫은데 심지어 종교 지도자를 하라니까 하고 싶겠어요? 당연히 거부를 했지요. 어쨌든 1년간 협박, 꼬임을 거듭한 끝에 결국 제가 마음을 바꿔서 절에 들어왔어요.nbspnbspnbsp그랬더니 저희 어머니가 찾아와서 난리가 났어요. 고등학교라도 졸업하면 데려갈 것이지, 고등학교 다니는 애를 데려가면 어떡하느냐는 거예요. 그랬더니 우리 스님이 어머니더러 ‘보살님은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압니까?’라고 했어요. 어머니가 ‘모릅니다’라고 했더니 스님이 이래요. ‘나는 알아요. 그러면 아는 사람이 지도해야 되겠어요? 모르는 사람이 지도해야 되겠어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는 사람이 해야죠’라고 했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궁금하니까 ‘애가 어떻게 되는데요?’ 하고 물었더니 스님이 ‘얘는 밖에 있으면 단명해요’ 그랬어요. 절에 안 들어오고 밖에 있으면 일찍 죽는다는 말이에요. 그러자 저희 어머니가 너무너무 놀라서 ‘아이고, 그러면 스님 아들 하세요’ 하고 가버렸어요.nbspnbspnbsp대학 나온 요즘 엄마들은 그렇게 하기는커녕 멱살 잡고 끌고 가겠죠. 그래서 제가 저희 어머니한테 너무너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어릴 때는 부모님이 무학이라고 해서 부모님에 대한 자긍심이 별로 없었는데, 그때 저를 포기하신 어머니의 결정이 자식에 대한 사랑인 걸 알게 됐습니다. 자식이 살 길이라면 내가 아무리 가슴이 아파도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엄마의 사랑입니다. 여러분들은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자기 욕심이에요. 어쨌든 그렇게 제가 절에 들어와 살게 됐습니다.nbspnbsp그런데 ‘단명한다’고 하면 어느 정도 살다 죽어야 ‘단명’일까요? 이게 참 애매모호해요. 90살을 기준으로 삼으면 80살도 단명이고, 80살을 기준 삼으면 70살도 단명이고, 70살을 기준삼으면 60살도 단명이에요. 그러나 보통은 40살 고비를 못 넘길 때 ‘단명한다’는 말을 씁니다. 질문자처럼 52살에 죽으면 명대로 살고 죽는 사람이에요. 그런 건 단명 축에도 안 들어가요. 아이가 열여덟 살 되기 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셔야 ‘고아’라고 하지, 아이가 20살이 넘었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고아’라고 하지는 않는 것과 같습니다.nbspnbsp그래서 저는 ‘길어야 40살까지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았어요. 그 동안 병치레도 많이 했지만 열심히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80살까지 사는데 저는 40살까지밖에 못 산다 생각하니 놀 여유가 없었어요. 부지런히 살았어요. 그런데 40살을 넘어도 안 죽었어요. 1년 지나도 안 죽고, 2년 지나도 안 죽고, 3년 지나도 안 죽었습니다.nbspnbsp그러니까 사는 게 굉장히 즐거운 거예요. 여러분들은 스님이 너무 열심히 일한다고 걱정하지만 정작 저는 내일 죽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덤으로 사는 거니까요. 덤으로 사는 거야 뭐, 이래 죽으면 어떻고, 저래 죽으면 어떻겠어요? 질문자도 현대 의학이 없었으면 벌써 죽었을 거예요. 안 그래요?”nbsp“그렇죠.”nbsp“그래요. 질문자도 지금 덤으로 사는 거예요. 병을 20년 앓았다면 아이도 지금은 스무 살 넘었겠네요.”nbsp“네. 25세, 27세입니다.”nbsp“25세, 27세면 다 키웠잖아요. 그런데 죽는 게 뭐 겁나겠어요?”nbsp“죽는 건 두렵지 않는데,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nbspnbsp“하루 살든, 이틀 살든, 사흘 살든 즐겁게 살면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 눈떠보고 ‘아이고, 아직도 안 죽고 살았네’ 하고 기뻐하세요.nbspnbspnbsp산 기념으로 오늘 좋은 일도 좀 하고요. 이렇게 살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자꾸 항암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의사 소견이 치료받는 게 좋겠다면 받고, 그래도 본인이 안 받겠다 하면 안 받으면 돼요. 받아야 하는지 안 받아야 하는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치료 받는 게 낫겠다’ 하면 받으면 되고, ‘그거 받아서 괴롭게 오래 살면 뭐 하겠냐? 나는 살 만큼 살았고 애들도 다 키웠으니 됐다’ 이러면 안 받고 살면 돼요. 어느 쪽이든 행복하게 살면 됩니다.nbspnbsp그러다가 통증이 오면 주사를 맞아서 통증을 줄이면 되고요. 주사를 맞아도 못 참도록 아프면 ‘아야야야야야’ 하면 되죠. ‘아야야야 하면 자식이 힘들지 않을까?’ 이 걱정도 할 필요가 없어요. 자식이 부모한테 젖 얻어먹고 밥 얻어먹었으면 엄마가 ‘아야야야’ 하는 것도 좀 들어야죠. 어쩌겠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왜 남 걱정을 하고 있어요? 나는 죽고 자식들은 살 텐데, 내가 걱정이지 자식이 무슨 걱정이에요? 그런 걸 자꾸 따지면 질문자는 말로는 행복하게 산다 하면서도 자꾸 얼굴에 그림자가 끼게 됩니다. 사람들이 ‘아이고, 어떡하냐’ 하고 걱정을 해도 ‘뭐가 걱정이냐? 살 만큼 살았고 애도 다 컸는데’라고 해야 해요.nbspnbsp그러니까 맛있는 거 먹고 즐겁게 사세요. 그렇다고 몸에 안 좋은 걸 굳이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겠죠. 안 좋다는 음식은 안 먹는 가운데서도 그냥 일상적으로 먹고 사는 만큼 사는 거예요. 그러나 과로하면 안 돼요. 그렇다고 아프다고 맨날 누워서 청소도 안 하면 곤란해요. 청소도 하고 밥도 하고 놀러도 가세요. 그러나 몸이 약하면 과로하면 안 됩니다. 과로하면 병을 악화시키니까요. 그래도 적당한 운동은 해주는 게 좋아요. 헬스클럽 가서 운동하는 것만 좋은 게 아니에요. 설거지하고 방 닦는 것도 다 몸을 움직이는 거니까 운동이에요. 그렇게 즐겁게 살면 됩니다.nbspnbspnbsp‘나 죽은 뒤 어쩌냐?’라며 배우자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내가 죽고 나면 남은 사람이야 재혼을 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겠죠. 그걸 왜 ‘재혼을 해라, 하지 마라’, ‘너희는 어떻게 해라’ 하고 골치 아프게 내가 정해요? 많은 사람들이 저더러 ‘스님 돌아가시면 정토회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하고 물으면서 걱정하는데, 그걸 왜 제가 걱정해요? 그건 살아 있는 사람들이 걱정할 일이지요. 지금 저는 살아서 할 일도 바쁜데 뭘 죽은 뒤까지 걱정을 하겠어요?nbspnbsp공부가 덜 돼서 그런 소리를 자꾸 하는 거예요. 저는 이미 20년 전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이미 정리를 다 해놨어요. 내일 죽는다 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아프면 진통제 맞으면 돼요. 저도 아까 들어올 때 몸에 열이 나고 덜덜 떨려서 약을 먹고 들어왔어요. 많이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는 거고요.nbspnbsp그러니 이것저것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하루를 살더라도 재미나게 사세요. ‘재미나게 살고 싶다’ 한다고 재미나지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생각을 놓아버려야 재미나게 살아집니다. 기도문이 꼭 필요하다면 아침에 눈뜰 때마다 이렇게 세 번씩 외치세요. ’오늘도 살았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한번 해보시겠어요?”nbspnbsp“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nbsp“예, 그럼 됐어요.”nbsp“예, 감사합니다.”nbspnbsp질문자는 처음에는 울먹이는 모습이었는데,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선 환하게 웃었습니다. 흐린 하늘이 맑게 개이는 듯한 분위기에 청중들도 뜨거운 격려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8명의 질문이 더 있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친정부모님 제사를 오랫동안 모시고 있었는데 이제는 제사를 그만 모시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가족처럼 일하던 사람이 배신을 하고 떠났는데 자꾸만 화가 나서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스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배신을 했는지 물었으나 밝힐 수가 없다고 해서 아쉽게도 스님으로부터 구체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스님은 이후에도 “얘기해 볼래요?”라고 기회를 주었지만 해결이 되었다며 그냥 넘어갔습니다.nbspnbsp세 번째 질문자는 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가 무엇인지 물었는데, 스님이 “그런 건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더 잘 나와요”라고 대답해 큰 웃음을 주었습니다. 이 분은 결국 다시 질문을 했는데 민주화 과정에서 인권이 유린된 것이나 친일파 청산이 안 된 것이 과연 제대로 회복이 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네 번째 질문자는 올해 나이가 29세인데 아직도 무엇을 하고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며 진로 상담을 요청했고, 다섯 번째 질문자는 약사였는데 똑같은 생약 재료로 약을 지어도 한의사들은 의료보험 지원을 받아서 저렴하게 약을 공급하고, 약사들은 비싸게 공급해야 하는 불평등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질문했도, 여섯 번째 질문자는 기도할 때 집중이 안 되고 자꾸 다른 생각이 나서 어떡하면 좋을지 물었고, 여덟 번째 질문자는 나이 어린 친구들이 인사를 안 하거나 대답을 제대로 안 하면 참지 못하는 성격을 갖고 있는데 계속 참아야 할지, 양해를 구해야 할지 물었고, 아홉 번째 질문자는 가습기로 인해 사람들이 사망한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운데 이것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물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각각에 대해 쉽고 재미있는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니 어느덧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강연을 마무리하며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도 주로 개인의 인생고민을 상담했는데, 스님은 수행과 사회변화를 함께 도모해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자각을 하셔야 합니다. 북한 같은 곳은 나라가 잘못되면 그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책임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 만약 나라가 잘못되면 대통령 책임이 아니라 우리 책임이에요. 그러니 자꾸 욕만 하지 마세요. 책임이 우리 책임이니까요. 우리가 주인입니다. 그리고 이걸 바꾸기 꺼려하면 안 돼요. 우리가 주인이니까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개인의 마음을 다스려서 행복해지는 ‘수행’과 우리 사회에 좀 더 좋은 제도를 마련해서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 변화’를 함께 도모해 가야 합니다.nbsp스님의 역할은 이 두 가지 중 지금은 개인의 행복에 대한 것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이 부분에서 주로 제가 역할을 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그래서 불만이에요. ‘스님은 맨날 개인 문제만 다루어서 사람들이 세상 문제를 외면하도록 만든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제가 그걸 외면하는 게 아니라 제 신분과 역할이 이 역할이라서 그런 거예요. 그러나 사회적인 변화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니 수행뿐 아니라 사회 변화도 꼭 함께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열정적으로 강연을 해 준 스님에게 다시 한 번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이 아주 아담하고 좋았고, 스님의 말씀도 너무 재미있어서 모두가 끝까지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치고 무대 위에서 스님의 새책 ‘행복’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얼마 전 노인분들을 위해 ‘행복’ 책의 큰 활자본이 출간되었는데, 오늘 사인회에서는 큰 활자본 책이 아주 인기가 좋았습니다. 스님은 사인을 해주는 가운데 시민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nbsp사인회를 마치고 나서는 강연을 준비한 서면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서면 파이팅”을 외치는 얼굴에는 강연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보람과 기쁨이 가득해 보였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깜짝 이벤트로 케이크와 촛불을 들고 나와 다함께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지난주가 스승의날이었는데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봉사자들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촛불이 그냥 촛불이 아니라 불꽃이 확 일어나고, 회전판에서 여러개의 촛불이 돌아가기도 해서 모두들 환호를 했습니다.nbspnbsp봉사자들 대부분이 정토불교대학 입학생이거나 경전반 재학생들이어서 스님은 “공부 열심히 하세요” 라고 특별히 격려를 더 해주기도 했습니다. 감사 인사를 한 후 부산을 출발했습니다.nbspnbspnbsp잠시 후 저녁 7시부터는 포항 문화예술회관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부산을 출발한 시간이 5시 무렵, 부지런히 달려도 겨우 강연 시작 시간에 맞춰서 강연에 도착할 것 같았습니다. 포항 즉문즉설 강연 소식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5.23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묘역 참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를 맞아 묘역을 참배하고 헌화했습니다.nbspnbsp새벽 5시에 울산 두북을 출발한 스님은 6시에 봉하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매년 5월 23일이 되면 항상 이른 새벽에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날이 밝으면 참배객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새벽에 참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nbspnbsp▲ 봉화산 정토원nbsp이른 아침,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봉화산 정토원입니다. 정토원 대웅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이곳에서 화장한 유골을 안치하고 49재가 치러졌다고 합니다. 스님은 위패를 향해 천도기도를 한 후 대웅전을 나왔습니다.nbspnbspnbsp▲ 대웅전에 모셔진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위패nbsp이곳에는 스님과 오랜 인연을 맺어오고 있는 선진규 법사님이 원장으로 있는 곳입니다. 선 원장님은 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재가 법사로써 포교활동을 시작해 수많은 포교사를 양성한 불교계의 어르신입니다. 스님이 인사를 하자 선 원장님은 맞절을 하며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 봉화산 정토원 선진규 원장님nbsp또 스님이 방문한 걸 환영한다며 쌀눈으로 만든 건강식과 따뜻한 차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불교의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1시간이 넘도록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특히 지금 조계종에서 군법사가 부족해서 군법사가 없는 군법당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만약 군법사가 부족하면 다른 종파 스님이라도 임명이 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는 허용하지 않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면서 선 원장님의 의견에 공감했습니다. 선 원장님은 이런 이야기를 법륜 스님이 더 많은 대중들에게 이야기를 좀 해달라며 부탁을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지난 부처님오신날에 정토원에서는 ‘화합, 상생, 지혜의 정치를 염원하는 300 당선인 축하 기원 점등식’을 거행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연등에 붙인 명패에는 당명이나 무소속을 빼고 ‘국회의원 000’ 식으로 이름만 적었다고 하면서 한국 정치가 제발 화합을 좀 했으면 하는 바람을 얘기했습니다. 더군다나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7주기인데, 이에 대해 스님도 “특정인이 노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러 오는 것을 반대하는 행위는 옳은 태도가 아닌 것 같아요.”라며 화합을 위해서는 나와 다른 상대에 대해 이해하는 자세가 중요함을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 지난 부처님오신날에 화합과 상생의 정치를 염원하며 단 300개의 연등nbsp정토원에서는 정성스럽게 아침식사도 대접해 주었는데, 구수한 숭늉과 갖가지 나물 반찬으로 맛있게 식사를 한 후 감사 인사를 하고 봉화산을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곳인 부엉이 바위와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상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부엉이 바위nbsp햇살이 내리쬐긴 했지만 아직 이른 아침이라 참배객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스님은 국화 꽃을 손에 들고 마음을 정갈히 한 후 중앙 박석을 따라 헌화대로 향했습니다. 헌화대 앞에 선 스님은 헌화를 한 후 합장을 하고 해탈주 삼독을 했습니다.nbspnbsp▲ 헌화대nbsp그리고 무덤 앞으로 다가가 다시 한 번 추모 기도를 한 후 주위를 한바퀴 돌며 추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덤 아래에는 대통령님과 함께 참여정부의 기록과 국민들의 추모 영상 DVD를 함께 안장했다고 합니다.nbspnbsp▲ 무덤nbsp그리고 무덤에는 따로 비문이 새겨져 있지 않고 ‘대통령 노무현’ 여섯 글자만 새겨져 있었고, 박석 하나하나에 새겨진 국민들의 존경과 추모, 애도와 사랑의 글 전체가 비문을 대신했습니다. 추모글이 새겨진 박석과 자연박석이 어우러져 묘역 전체가 사람 사는 세상인 마을, 도로, 냇가 등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듯 했습니다.nbspnbsp참배를 마치고 조용히 묘역을 걸어나온 스님은 다시 울산 두북으로 돌아왔습니다. 도착하니 점심 무렵이 되어서 스님은 곧바로 텃밭에 들어가 상추와 취나물을 뜯고 씻어서 반찬으로 내는 일을 했습니다.nbspnbsp▲ 밭에서 상추를 따고 있는 스님nbsp두북에서는 계속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식사 때마다 방금 밭에서 딴 채소와 나물들을 반찬으로 냅니다. 오늘도 싱싱한 채소로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스님이 밭에서 따온 상추와 고소, 각종 나물nbsp식사 후에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햇살이 누그러질 무렵 경주 통일암으로 향했습니다. 통일암에는 대나무 숲이 있는데, 지금 한창 죽순이 올라오고 있어서 죽순을 캐었습니다. 얼마 전에 이곳에서 누군가가 대나무를 마구 베어갔는데, 베어진 자리에는 항상 새로운 죽순이 마구 올라온다고 합니다. 스님의 예상대로 곳곳에서 죽순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nbspnbsp▲ 땅 위로 막 올라온 죽순nbsp삽을 발로 콱 누르면서 한 번 내지 두 번 정도 땅을 파면 금방 죽순을 캘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땀을 뻘뻘 흘리며 죽순을 캤는데, 어느덧 캔 죽순이 큰 포대 두 개를 가득 채웠습니다. 같이 동행한 분들이 “스님, 그만하고 이제 갑시다”라고 말을 했지만, 스님은 “먹을 것이 이렇게 지천에 깔렸는데 어떻게 그냥 갈 수가 있어?” 하면서 쉼없이 계속 일을 했습니다.nbspnbspnbsp죽순을 다 캐고 나서는 그 자리에서 바깥 껍질을 깨끗이 벗겨내는 일을 했습니다. 포대에 가득 찬 죽순을 바라보며 스님은 “이걸 시장에 내다 팔면 값이 얼마인지 알아? 몇 십만 원도 더 될거야.”라며 웃음을 보였습니다.nbspnbspnbsp오늘 캔 죽순은 나중에 초고추장에 버무려서 반찬으로 내기 위해 밤 늦게까지 뜨거운 물에 푹 삶았습니다. 이 죽순을 누구한테 주려고 하는지 묻자 스님은 “6월초에 동남아에서 스님들이 정토회를 방문하는데, 그 때 내려고 한다”며 더욱더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nbspnbspnbsp죽순 두 포대를 가득 싣고 다시 울산 두북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창밖으로 경주 남산의 전경이 훤히 보였습니다. 경주 남산을 멀리서 보면 바위가 듬성듬성 많이 보이는데, 이 모습을 보고 스님이 퀴즈를 하나 내었습니다.nbspnbsp“경주 남산에 바위가 안 보이면 통일이 될 것이다, 이런 말을 누가 한다면 무슨 뜻이 될 것 같아?”nbspnbsp▲ 경주 남산nbsp한참 생각을 시간을 주었지만 아무도 대답을 못하고 있자 스님이 그 뜻을 말해 주었습니다.nbspnbsp“통일이 되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야.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뜻대로 안 되는 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아. 뜻대로 안되니까 우리의 책임이 더 커지게 되고, 책임이 커지면 더욱더 역량을 키워야 하고, 역량이 커지면 우리의 영향력도 그만큼 커지게 되거든.”nbsp지나가는 말로 하신 말씀이지만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습니다.nbspnbsp울산 두북에 도착한 스님은 어제 마무리짓지 못한 농사일을 더 했습니다. 텃밭에 장미 나무가 여러 개 있는데, 넘어지지 않게 나뭇가지 밑둥을 끈으로 묶어 두었더니 가지들이 서로 엉키고 장미꽃이 너무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모양새가 별로 좋지 않아 보여서 스님은 장미꽃들을 분산시키기 위해 철사로 지지대를 만들어서 엉킨 나뭇가지들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했습니다.nbspnbspnbsp또 키가 큰 나뭇가지들은 끈에다가 돌멩이를 매달아 묶어서 담벼락 너머로 넘기기도 했습니다. 한참 동안 작업을 하고 나니 장미꽃이 제법 분산이 되면서 훨씬 나아 보였습니다.nbspnbspnbsp한편에서는 메마른 작물들에게 물을 듬뿍 주는 일을 했고, 또 한편에서는 방금 따온 죽순을 더욱 깨끗하게 다듬고 뜨거운 물에 삶는 일을 했습니다. 국통이 작아서 여러 차례 나누어 삶다보니 죽순 삶는 일은 밤 11시가 넘어서 끝이 났습니다.nbspnbsp▲ 죽순을 삶고 있는 모습nbsp▲ 초고추장에 버무려서 반찬으로 만든 죽순nbsp그리고 텃밭 곳곳에서는 지난 3월에 심은 작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북한에 보내려다가 못 보낸 씨감자도 이제 제법 무성한 잎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가지, 고추, 토마토, 복숭아, 배, 고소, 겨자채, 당근, 옥수수 등 다양한 작물들이 스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잘 자라나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텃밭의 채소들nbsp내일은 오전에 농사일을 하다가 오후 1시 30분에는 부산 중구 롯데백화점 문화홀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저녁 7시에는 포항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5.22 (오후) 새터민 즉문즉설
nbsp안녕하세요?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정토불교대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해준 스님은 문경 정토수련원을 나와 곧바로 공주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11시 30분에 공주 곰나루 솔밭 쉼터에 도착한 스님은 먼저 점심 식사 장소를 답사했습니다. 스님이 도착했을 때는 대중들이 사좋은벗들 이승용님의 안내로 공주 역사기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님은 점심식사 장소에서 새터민들을 반갑게 맞이할 생각이었습니다nbspnbsp그런데 진행측이 잡은 점심식사 장소에는 나무가 별로 없어서 햇살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본 스님은 식사 준비 봉사자들에게 “이곳은 식사를 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하면서 나무가 무성한 솔숲 쉼터를 찾아주었습니다. nbspnbsp▲ 봉사자들이 잡은 식사 장소nbspnbsp▲ 스님이 다시 답사를 해서 찾아낸 식사 장소nbsp봉사자들과 함께 밥과 국, 반찬을 부지런히 나르고, 책상을 펼쳐 셋팅까지 마치자 드디어 새터민들이 역사기행을 마치고 막 식사장소로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휴일이라 꿀잠을 잘 시간인데 엄마 손에 이끌려 부은 눈으로 나온 어린이, 손을 꼭 잡고 온 연인 등 각양각색의 새터민들이 줄을 지어 솔숲으로 들어왔습니다. 스님은 합장 반배로 인사를 하며 환한 웃음으로 새터민들을 맞이했습니다.nbspnbsp▲ 새터민들에게 환영인사를 하고 있는 스님nbsp오전에는 새터민 600여 명이 사좋은벗들 이승용님의 인솔로 공주 역사기행을 했습니다. 공산성 성곽길을 걸은 후 송산리 고분군으로 이동해 모형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서 이곳 곰나루 솔숲으로 점심을 먹으러 온 것입니다.nbspnbsp새터민들은 돗자리를 펴고 삼삼오오 모여서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 개중에는 북한을 떠나온지 7년 만에 고향 사람을 만났다는 분도 있고, 처음 남한에 와서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을 때 만났던 동기를 만났다며 기뻐하는 분도 보였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은 아이들과 즐거운 게임 한판을 벌이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식사를 하고 있는 새터민들을 한바퀴 둘러보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새터민 여성 한 분이 “정토회가 북한보다 조직성이 더 없는 것 같다” 며 어수선한 행사 진행에 대해 농담조로 스님에게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그래도 남한에서 조직성 하면 정토회가 제일 나은 수준인데, 북한하고 비교하면 어떡해요?” 하며 “그럼 자기가 한번 나서서 딱 질서를 잡아봐요”라고 하며 웃었습니다.nbspnbspnbsp화끈한 성품의 새터민들은 스님을 보자 주저없이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스님도 이런 새터민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어떤 이야기도 잘 받아주었습니다.nbspnbsp점심을 배불리 먹고 공주 문화예술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새터민들은 남한에 정착해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많이 겪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마음껏 자신들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듣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으로 새터민들이 입장하고 있는 동안 무대에 오른 스님은 즉석에서 장기자랑 시간을 가졌습니다. 늘 사회자의 소개를 받고 스님이 무대에 올랐는데, 오늘 새터민들 앞에서는 스님이 사회자 역할을 했습니다.nbspnbsp새터민들은 주저함이 없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와 노래 실력을 뽐냈습니다. 고향 사람들끼리 한자리에 모이니까 고향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는지 모두들 북한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nbspnbspnbsp노래를 부르러 나온 새터민들은 자신의 고향이 어디인지 소개했는데, 무산, 함흥, 혜산, 해주, 회령 등 어떤 곳을 말해도 스님은 그곳이 어디인지 척척 알아듣고 그 도시와 관련된 한마디씩을 들려주었는데 새터민들도 모두 놀라워 했습니다.nbspnbsp고향 생각을 하며 한바탕 신나게 어우러진 후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총 5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는데, 그 중에서 대한민국에 오면 잘 먹고 잘살 거라 생각해서 목숨을 걸고 왔는데 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북한동포돕기 활동을 펼쳐온 스님이기에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어떤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답변이 매우 현실적이면서 구체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새터민들도 아주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저는 북한에서 한국으로 올 때 한국은 지상낙원이고 천국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한국으로 오면 정말 돈이 하늘에서 뚝뚝 떨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와보니 생활이 너무 어렵고, 특히 외래어 능력이 많이 부족해서 정말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정말 마음의 갈피를 못 잡겠습니다. 그래서 저희 이탈주민들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고 지칠 때 법륜 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마음의 상처를 달랠 수 있도록 좋은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nbsp“한국이 지상낙원인 줄 알았다고요? 한국 사람들은 미국이 지상낙원인 줄 알고 200만 명이나 가서 살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매년 한 번씩 미국 전역을 다니면서 교포들을 상담해 보면 다 힘들어서 죽겠대요.nbspnbspnbsp또 한국의 젊은이들은 유럽이 지상낙원인 줄 알아요. 그래서 런던에 한 5만 명, 독일에 한 4만 명, 파리에 한 3만 명이 가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재작년에 전 세계를 한 바퀴 돌아봤거든요. 유럽 29개 도시, 미국 56개 도시, 그리고 캐나다와 남미, 즉 멕시코, 페루,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를 거쳐서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동남아를 거쳐서 일본까지, 장장 115개 도시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중동과 아프리카만 빼고 다 다녔어요. 그렇게 다니기 전에는 저도 잘 사는 일본, 미국, 캐나다, 호주, 유럽 등에 가서 사는 한국 사람들은 참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고, 남미나 동남아 등 가난한 나라에 가서 사는 사람들은 굉장히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nbspnbsp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까 정반대였어요. 우리 나라 사람 중에는 그래도 대학 나오고, 똑똑한 사람들이 주로 유럽에 가잖아요? 그런데 막상 유럽에 가서 살면 우리 나라에서 서울대를 나왔든 연세대를 나왔든 충남대를 나왔든 그게 유럽 사람들한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학벌이 엄청나게 중요하지만 유럽에 가면 하나도 중요하지가 않아요. 거기서 중요한 건 접시를 잘 닦거나 요리를 잘 할 줄 아느냐, 다시 말해서 기술이 있느냐 하는 겁니다. 우리 나라에 와있는 베트남 사람이 하노이 법대를 나왔든 호치민 공대를 나왔든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그저 육체노동을 잘 하거나 기술이 뛰어난 게 중요한 것처럼 말이에요.nbspnbsp한국사람이 유럽에 왜 갈까요? 유럽은 고임금, 즉 우리나라보다 인건비가 몇 배나 비싸니까 거기 가서 일하면 한국의 임금보다 23배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는 거예요. 우리는 최저임금이 약 6불밖에 안 되는데 거기는 15불이니까요. 그러나 그 나라 사람들 중에 우리 교포들이 제일 하층입니다. 이해되세요?”nbsp“예.” nbspnbspnbsp“그러니 교포들이 처음 유럽에 가서 한 3년 벌어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돈 좀 번 격이지만 거기에서 계속 살 거라면 그 나라에서 제일 하층으로 살아야 합니다. 대부분 원룸과 같은 10평이나 15평짜리에 삽니다. 저도 세계 100강을 다닐 때 그런 곳에 침낭 가지고 가서 쪼그리고 자면서 강연을 다녔거든요. 사는 게 굉장히 궁색합니다. 가끔 의사 같이 전문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좀 잘 살지만 90는 그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게 살아요.nbspnbsp그러면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사는 우리 교민들은 어떨까요? 공항에 마중 나올 때부터 다릅니다. 제가 한국에서 타보지도 못한 좋은 차를 끌고 마중을 나옵니다. 그 차를 타고 집으로 가보면 집이 대궐 같아요. 그런 나라에 간 교민들은 노동 이민을 간 게 아니라 주로 투자 이민을 갔기 때문입니다. 다만 얼마라도 돈을 가지고 그 나라로 간 뒤에 작은 가게라도 얻어서 그 나라 사람들을 종업원으로 고용해서 사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가보면 한국사람들은 다 사장입니다.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대다수가 그 사회에서 잘 사는 상류층에 속합니다. 마치 미국인, 프랑스인들이 우리 나라에 외국인촌을 형성해서 부자로 살듯이 우리 교민들도 동남아나 남미에서는 그렇게 살더란 말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저에 대한 접대도 다르지요.nbspnbsp돈 1억 원 가진 사람이 1,000만 원 가진 사람들 동네에 가서 살면 부자이지요? 그런데 100억 원 가진 사람들 동네에 가서 살면 가난뱅이가 됩니다. 그런 것처럼, 여러분들이 북한에서 살다가 남한으로 오니까 환경은 여기가 훨씬 나아도 여러분들이 엄청 가난한 것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북한에서는 한 달에 50불 벌었는데 여기 오면 1,000불 벌잖아요. 북한에 살다가 중국만 가도 어때요? 월급도 많고 좋잖아요.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또 한국에 오고 싶어 해요. 지금 여러분들은 한국에 왔잖아요. 그리고 여기 와서 1년이나 2년 번 돈을 갖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면 형편이 좋은 편에 속하잖아요? 지금 당장 1만 불만 가지고 북한에 들어가면 가게 하나는 할 수 있잖아요.nbspnbsp그러나 여기 계속 산다면 여러분들은 이민자이니까 하층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요. 마치 한국에서 서울대 졸업했어도 유럽에 가서 살면 당분간 하층민으로 살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렇게 10년, 20년 열심히 살다가 운 좋게 성공해서 잘 살게 될 수도 있겠지만, 다수는 어렵게 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에요.nbspnbspnbsp그러니까 여러분이 한국에 와서 힘든 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 인생계획을 잘 세우셔야 해요. 한국에 장기적으로 정착할 거냐? 아니면 빨리 통일을 해서 고향으로 갈 거냐? 만약 통일이 되어서 여러분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고향에서는 좀 잘된 축에 속할 거 아닙니까? 여기에서 살던 아파트 딱 정리해서 그 동안 모은 돈 보태가지고 북한으로 가면, 각자 고향에서는 부자 축에 들어가서 당 간부가 부럽지 않을 거예요. 지금 당장 갈 수 없어서 아쉽지만요.nbspnbsp월남이 패망하고 베트남이 통일될 때 월남 사람 중에 한 400만 명이 전부 외국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우리가 탈북 하듯이 보트피플이라고 해서 미국, 호주, 유럽으로 도망을 나갔단 말입니다. 그래서 엄청나게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베트남이 통일된 지 20년 후에 개방을 해서 투자를 받았는데, 그때 보트피플들이 미국으로 가서 막노동이라도 해서 번 돈을 가지고 다시 베트남으로 들어가면서 베트남 발전의 작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이 공산화될 때 대만이나 홍콩으로 도망갔던 사람들인 화교들이 중국이 개방을 하자 자기네가 번 돈을 가지고 중국으로 들어가서 중국의 외자유치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nbsp여러분들이 지금 한국에서 살기 어려운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합니다. 한국사람이 여기서 서울대 나왔어도 미국에 가서 정착하려면 접시 닦아야 되고, 채소가게에서 일해야 하는 것처럼 너무 당연한 거예요. 정착 초기에는 그런 것밖에는 할 수가 없으니까요. 서울대 나와 봤자 그걸 미국에서 써먹을 데가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김일성대학이나 김책공대를 나왔단들 한국에서 누가 알아주겠어요? 전문기술이 있으면 좀 다르겠지만요.nbspnbspnbsp그러니 여기서 여러분들이 정착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예를 들어 고추 모종도 온실에서 재배한 걸 뽑아다 밭에 옮겨 심으면 ‘사람한다’라고 해서, 잔뿌리 내리고 잎이 파랗게 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거예요. 모내기를 해도 한 열흘은 지나야 빼빼 말라 비틀어졌던 잎이 펴진단 말이에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뿌리를 내리고 살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그건 미국에 가서 살아도 그렇고, 유럽에 가서 살아도 그렇고, 어디 가서 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에서 돈을 엄청나게 가지고 여기 왔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여러분 대부분은 몸만 왔잖아요.”nbsp“주먹만 가지고 왔어요.”nbsp“몸뚱이도 왔겠지, 어떻게 주먹만 와요? 주먹에 발도 안 달렸는데요. 미국 이민 1세대도 전부 몸만 가서 불법체류하면서 살았던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좀 살만 했던 80년대에 광주민주항쟁이 있은 후 군부독재가 들어섰잖아요? 그때 미국으로 간 사람들은 재산을 팔아서 들고 갔기 때문에 미국에 가서도 큰 고생은 안 했어요. 처음부터 돈을 가지고 가서 바로 가게를 얻어 정착을 했기 때문에. 앞으로 북한도 이런 경우가 생길 거예요. 지금 여러분처럼 난민 1세대는 다 몸만 왔지만, 지금 북한에서 간부든 뭐든 돈 좀 번 사람들이 북한에 어떤 정치적 변화가 있거나 해서 돈을 지고 남한으로 도망 오는 사람들이 앞으로 생긴다면, 그 사람들은 여기 오자마자 딱 폼 잡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난민 1세대와 2세대 사이의 갈등이 아주 심해지겠지요. 우리 미국 교민 사회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nbspnbsp몸만 오게 되면 정착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 왜 그럴까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인간관계라는 게 있잖아요. 때로는 돈이 없어도 친인척, 동향, 동문, 군대 가서 사귄 사람 등 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해서 내가 부족하더라도 서로 밀어 주고, 끌어 주면서 살아간단 말이에요. 그런데 여러분은 북한에서는 그런 관계 속에 있다가 나무 한 포기가 뽑히듯이 뽑혀서 여기에 딱 옮겨 심어졌으니까 누구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잖아요. 그러니 고생할 수밖에요.nbspnbspnbsp그런데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베트남에서 왔거나 중국에서 왔거나 외국에서 온 사람에게는 대한민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쉽게 안 주잖아요. 그래서 그런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여기에서 불법체류해 가면서 돈 벌잖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오자마자 시민권, 즉 주민등록증을 딱 내주잖아요. 또 정착금도 주잖아요.nbspnbsp옛날에 탈북이 시작되던 초창기에 여러분들과 같은 분들을 데리고 제 고향인 시골로 수련을 한번 간 적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그 시골 아주머니가 저한테 ‘나는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나이 60이 넘도록 살았어도 정부로부터 땡전 한 닢 지원받은 적이 없는데, 저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뭐 한 게 있다고 오자마자 3,000만 원씩이나 주느냐?’라면서 성질을 내더라고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외국에서 왔다고 정착금 주는 나라는 한 나라도 없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갔다고 정착금 주는 일 없어요. 난민으로 가도 우선 텐트촌에 좀 살도록 하다가 일자리 알선해 주고는 나가서 스스로 벌어먹고 살라고 하지 정착금을 주는 일은 없습니다.nbspnbsp그런데 한국에서는 왜 여러분들께 정착금을 주느냐면, 옛날에 남북이 한참 이념 경쟁할 때 북쪽에서 남쪽으로 간첩을 내려 보냈더니 여기 와서는 전향을 하더란 말이에요. 그럼 남쪽에서는 그 사람한테 포상을 했습니다. 그때 5,000만 원이나 1억 원씩 주던 게 전통처럼 남아서 지금 정착금이라도 주는 겁니다. 정착금뿐만 아니라 직장도 알선 해 주고, 집도 주선해 주지요. 물론 집세는 정착금에서 내지만 서울에서 집 구하기가 어려운데 집을 주선해 주는 게 어디입니까. 요즘 한국에서 태어난 젊은이들도 서울에서 집을 못 구하잖아요.nbspnbspnbsp그러니 불만을 가지면 끝도 없어요.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면, 여러분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충성했고, 김일성, 김정일한테만 충성했지 대한민국에 충성한 적이 없잖아요. 대한민국에 세금 한 푼 낸 적도 없잖아요. 오히려 북한군으로 입대해서 대한민국에 총부리 겨누며 욕했잖아요. 그래 놓고 여기 와서는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더 더 더’ 라고 하면, 그것을 다 들어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 생각을 바꿔야 여기서 살 수가 있습니다.nbspnbsp예를 들어 북한에서 살다가 중국으로 넘어갔을 때는 잡혀서 다시 북한에 넘기지만 않아도 고마운 일이었잖아요. 제가 난민을 많이 돕다 보니까 한 젊은이로부터 이런 얘기도 들은 적이 있었어요.nbspnbsp‘스님, 중국은 사회주의 천국입니다.’nbsp‘왜? 뭘 보고?’‘중국에 와보니 중국에서는 개도 이밥을 먹습디다’nbspnbsp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자기 주인 집 개는 이밥도 아니고, 개밥이라고 아예 따로 정해져 있는 걸 주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성질이 나서 주인 없을 때 ‘이 새끼, 우리도 못 먹는 걸 처먹는다’ 면서 개를 패줬대요. 이게 90년대 후반의 일입니다.nbspnbsp제가 여러분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여기에서 살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유럽에 가도 어렵고, 미국에 가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살려면 각오를 해야 됩니다. 제가 난민들을 도울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돈 억만금을 줘도 북조선에서는 살기 싫고, 자유로운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는 사람은 내가 한국에 갈 수 있게 도와주겠지만, 먹고 사는 게 힘들어서 한국에 가겠다면 내가 지금 돈을 좀 줄 테니까 이 돈을 가지고 도로 북조선으로 들어가거라’라고 말이에요. 제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고향을 떠나면 어디에서 살든 사는 게 너무 피곤한 법입니다. 돈이 좀 없어도 고향에서 살면 그래도 친인척, 친구, 안면 있는 사이, 어쩌고 해서 좀 비빌 언덕이 있지만, 고향을 떠나면 그런 게 없기 때문에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집니다.nbspnbsp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외로움 때문에 거의 정신질환자 수준이 되어 있어요. 여러분들은 한국말이 좀 어눌해서 그렇지 말이라도 통하잖아요. 그런데 미국에서 살려면, 말도 안 통하지, 또 유색인종이라고 차별받지, 너무 힘든 거예요. 여기에서 북한사람들 차별하는 건 차별도 아니라고 할 정도로 인종차별이 심합니다. 그런 속에서도 우리 교민들이 30년이 넘게 살아내면서 지금 교민사회가 자리를 잡은 거예요.nbspnbspnbsp그러니 제가 볼 때는 10년 내지 20년만 지나면 여러분들이 다 한국에서 중산층이 될 겁니다. 왜 그럴까요? 남한의 젊은이들은 직장에서 일이 주어지면 그 일을 할 줄은 알지만 스스로 악착같이 돈 버는 건 할 줄 몰라요.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 세대는 어릴 때부터 밭 매고, 낫질하고, 톱질하고, 지게질 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금방 일해서 먹고 살 궁리를 하는데, 지금의 한국 젊은이들은 태어나서 아무 것도 안 하고 공부만 하면서 스무 살 넘을 때까지 살다 보니까 직장에서 ‘이 일 해라’ 하고 시키는 것만 할 줄 알지, 직장이 없으면 서른 살이 되어도 그냥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부모가 해 주는 밥이나 얻어먹고 살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북한에서 어렵게 자랐기 때문에 단련이 돼 있잖아요. 그러니 여기 살면서 잘 살펴보면 고생이 좀 되더라도 한국사람들이 잘 안 하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처음에만 고생이지 돈 되는 일들이 좀 있어요. 그런 걸 찾아서 악착같이 살아야 합니다.nbspnbsp그렇게 여기서 정착해서 살든지, 안 그러면 돈을 쓰지 말고 모아놨다가 통일되면 북한으로 다 가지고 가세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중에 혹시 남북 간에 무슨 일이 있을 때 북한을 욕하고 데모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제가 볼 때 바보입니다. 남한 사람들은 그렇게 해도 되지만, 북한에서 온 사람이 그렇게 하면 바보예요. 우리 모두가 북한이 나쁘다는 거 알아요. 그렇지만 ‘북한이 나쁘다’ 라고 아무리 얘기한들 북한이 개선되는데 도움이 될까요?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계속 ‘북한이 나쁘다’라고 하니까 북한에서는 여러분들이 가족과 전화도 못 하게 하고, 송금하는 것도 막아버렸잖아요. 여러분들이 가족한테 돈을 보낼 때 옛날에는 수수료를 20만 줘도 됐던 게 지금은 50 줘야 가잖아요.nbspnbsp남북관계가 좋아져서 통일이 되면 제일 이익 보는 사람이 바로 여러분들이에요.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북 간에 자유 왕래만 할 수 있어도, 투자만 할 수 있게 돼도 여러분들이 제일 이익입니다. 남한 사람은 돈이 좀 있어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되는지 모르지만, 여러분들은 그 안에서 살았으니까 잘 알잖아요. 왜 바보같이 북한 욕하고 데모하는 데 끼고 그래요? 남한 사람이 다 통일을 반대해도 여러분들만은 통일하자고 해야 할 판인데요.nbspnbsp또, 전쟁을 통해서 통일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물론 남한이 북한보다 군사력과 경제력이 월등히 앞서고 우방인 미국도 있어서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남한이 이기는 건 당연할지 몰라도, 남북이 모두 피해를 입는 건 피할 길이 없잖아요. 여러분은 북한에 살아봐서 북한이 어떻다는 걸 알잖아요. 북한은 지더라도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이니까, 결과적으로 엄청난 인명피해, 재산피해를 낳을 게 뻔하잖아요. 그러니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북한이 나쁜 건 맞지만, 또 우리가 북한에 굴복해서도 안 되겠지만, 전쟁보다는 살살 달래서 통일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쉽진 않겠죠. 그러나 그것이 올바른 정책이라는 거예요.nbspnbspnbsp한국에 와있는 베트남 노동자나 중국 사람들이 질문자를 보면 엄청나게 부러워할 거예요. 중국에 있을 때는 질문자가 중국 사람을 부러워했겠지만, 질문자가 한국에 오니 이제는 중국 사람이 한국 사람인 질문자를 부러워할 거예요. 여자분들도 중국으로 넘어가서 살 때는 살 방법이 달리 없어서 중국 남자랑 결혼해서 괄세 받고 살았지만, 이제 한국에 오니까 어때요? 중국인 남편이 기죽어 하지요?”nbspnbsp“예.”nbsp“한국에 오면 여자분들은 여기서 말이 통하지만 중국 남편은 말이 안 통하니까 기가 죽을 수밖에요. 그러니 여기서는 여러분들이 유리한 게 많아요. 너무 불리한 것만 생각하지 말고 유리한 걸 생각하세요. 어차피 고향 떠나 살면 괄세를 좀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한국 안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가서 살면 좀 괄세 받고,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 가서 살면 좀 괄세를 받습니다. 북한 안에서도 함경도 사람, 평안도 사람이 서로 텃세 좀 부리잖아요. 제가 여러분들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스님이 그런 마음을 이해 못해서 냉정하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nbsp그러나 여러분이 자꾸 어렵다고 생각해 봐야 여기서 사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러니 첫째, ‘2,000만 북한 사람 중에 내가 중국을 거쳐서 이 대한민국에 오다니 이것만 해도 행운이고 기적이다. 이런 혜택을 입은 김에 나는 악착같이 일해서 꼭 성공하겠다. 그래서 남조선 사람들한테 북조선 사람 좀 깔보지 말라고 확실히 보여주겠다’ 하는 게 필요합니다. 둘째, 그렇게 해서 꼭 성공을 하되 남북관계가 조금 나아져서 북한에 투자할 수 있게 되면, 고향에 투자해서 잘난 척하던 당 간부들한테 본때를 보여주라는 거예요.nbspnbsp그런 목표가 있어야 살맛이 나지, 여기 사람들 쳐다보면서 ‘나는 언제 저렇게 돈 버나?’ 생각하면 힘들고 괴로워서 못 살아요. 질문자는 아직 젊어 보이는데, 몇 살이에요?”nbsp“스물네 살입니다.”nbsp“그렇게 젊은 사람이 그런 소리하면 어떻게 해요. 힘내세요nbspnbsp그리고 누가 물었을 때 북한에서 왔다는 걸 숨길 필요는 없어요. 질문자 스스로 ‘나 북한에서 왔다’는 말을 할 필요도 없지만요. 그래서 누군가 ‘너 어디서 왔니?’라고 묻는다면 ‘천안에서 왔다’라고 하면 되지 ‘함흥에서 왔다’라고 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고향이 어디냐?’라고 물으면 ‘함흥입니다’ 하면 되고, 또 ‘북한에서 왔어?’ 그러면 ‘예’ 하면 되지 그 사람이 이어서 뭐라고 말하든 신경 쓸 거 없습니다.nbspnbsp아이들도 학교에 가면 고향을 숨기고 그런다던데 숨길 필요가 없어요. 미국에 가서도 ‘너 어디서 왔니?’ 물으면 ‘한국에서 왔다’ 라고 당당하게 얘기해야지 얼버무릴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태어난 고향으로 차별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북한에서 태어나서 지금 이럴 뿐이고,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뭐가 잘나서가 아니라 어쩌다 재수 좋게 여기에서 태어나다 보니까 이런 거지요. 그러니 북한 출신이라고 열등의식을 갖거나 숨을 필요가 없고, 당당하게 경쟁해서 살아갈 필요가 있어요. 스님이 너무 인심이 박하게 얘기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힘내세요 알았죠?” nbspnbsp“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nbsp“제가 여러분들 사정을 모르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어렵다’, ‘힘들다’라고 하면서 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 첫째, 여러분은 남한에서 악착같이 노력해서 정착에 성공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둘째, 여러분은 여기서 영원히 살 생각을 하지 마시고, 적절하게 기술도 익히고 자본도 축적해서 고향으로 돌아가 고향을 재건할 꿈을 꾸세요. 여러분들의 힘만으로는 그런 기회를 못 만들겠지만 스님도 힘을 보탤 거니까요. 통일은 좀 놔놓고, 가능하면 평화적으로 전화나 왕래라도 하고, 투자라도 할 수 있게는 해야 되지 않겠어요? 꼭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만 통일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통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으니까요. 한국 안에서도 한번 권력을 잡은 사람은 그걸 안 내놓으려고 저렇게 상대방과 물고 차고 싸우는데, 자기 군대까지 가진 남과 북의 정치지도자들이 쉽게 권력을 내놓으려고 하겠어요? 그래서 저는 통일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말되 준비는 계속 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북한도 언젠가는 변하겠지요. 그것 또한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저렇게 인류문화의 발전에 역행하는 식으로는 오래갈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첫째, 좀 시간을 갖고 기다리는 것, 둘째, 준비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여러분께도 대박 터질 날이 있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nbspnbspnbsp남쪽 사람들은 기회가 와도 개성공단처럼 돈만 엄청나게 집어넣고 별 소득도 없는 일을 잘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돈 조금만 가지고도 효과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잖아요. 여러분들은 북한에 살아봤으니까, 어디 투자하면 잘 될지, 차를 사서 어떻게 굴리면 잘 될지, 집을 어디에 사면 잘 될지, 이런 걸 잘 알잖아요. 기회만 온다면 그런 게 여러분들의 강점이 될 겁니다. 여러분이 지금 너무 힘든 건 알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분명히 기회가 있습니다.nbspnbsp그리고 연세 드신 분들은 ‘밥만 안 굶으면 됐다. 여기서 놀다가 죽기 전에 고향 갈 수 있으면 가고, 못 가면 그만이고’ 이렇게 생각하시는 게 좋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목표를 세워서 살아야 합니다. 남 얘기 듣지 마시고 제 말을 잘 들으면 다 성공할 거예요. 스님이 말을 좀 못되게 해서 그렇지 진심은 있어요.” nbspnbspnbsp스님의 경험 속에서 우러나오는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들 때문인지 새터민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 질문자도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자 다함께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네 명이 더 스님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운칠기삼’이라는 사자성어의 뜻이 무엇인지 묻는 분, 본인은 남한에 와서 잘 살고 있는데 어릴 때 헤어져 지금도 북한에 남겨져 있는 엄마가 힘들게 살 것을 생각하니 무척 가슴이 아프다며 울먹이는 분, 명상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달라는 분, 남한에 정착해서 열심히 일하며 잘살고 있는데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늘 불안하다는 분의 질문까지 약 두 시간 동안 즉문즉설이 진행됐습니다.nbspnbsp특히 오늘은 즉문즉설만 하지 않고 질문 사이 사이에 새터민들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답변 하나가 끝난 후 스님이 “자, 그럼 이번엔 어느 분이 나오셔서 노래를 한번 불러 볼래요?”라고 말하면, 서너 분이 무대 위로 뛰어 나와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며 흥을 돋우었습니다.nbspnbspnbsp자작시를 암송한 70대 후반의 어르신은 많은 공감을 얻어 큰 박수를 받았고, 남한의 대중가요인 ‘내 나이가 어때서’를 열창한 여성분은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을 보여주어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nbspnbsp유익한 강연도 듣고, 신나게 노래도 불러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약속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오늘 만남을 마무리하며 스님은 다시 한 번 새터민들을 위한 격려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방금 전에 젊은 사람이 질문한 것에 대해서는 제가 답변을 해드렸는데, 연세 드신 분들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연세 드신 분들은 언제 돈 벌어서, 언제 고향에 투자하시겠어요?nbspnbsp그러니 아까처럼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이렇게 재미나게 그냥 사는 거예요. 아시겠죠? 대한민국에 충성은 안 했지만, 그래도 북한에서 충성하며 사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어요. 북한도 우리나라이고, 남한도 우리나라잖아요. 그러니 고생 많으셨어요. 그러니 한국에 살면서 절대로 기죽으면 안돼요. 아시겠죠?”nbsp“예.” nbsp nbspnbsp“각 정토회에서 여러분께 자원봉사하시는 분들도 오늘 이 자리에 많이 와 계신데, 그분들 평소에 수고가 많으시지요? 그분들을 위해서 박수 한번 쳐주세요.nbspnbspnbsp그리고 스님이 여러분과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모두 후원금 덕분인데요, 여러분, 혹시 배우 신민아 씨를 아세요? 여러분들의 아이들 공부 가르치는 사이숲 활동에 신민아 씨가 많은 후원을 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물론 신민아씨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지원을 해주고 계십니다.nbspnbspnbsp지금 대한민국에서 사는 게 좀 빡빡할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도 지금 죽겠다고 아우성이니까요. 그래도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이렇게 좋은 마음으로 보시도 하면서 우리와 함께 하려는 사람들도 많아요. 어디든 다 좋은 사람만 사는 것도 아니고, 다 나쁜 사람만 사는 것도 아니고,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이 섞여있어요. 그러니 예전에 나쁜 사람들 만나서 피해 입고 차별 당한 것 떠올리면서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세상이라는 게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섞여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시고, 너그럽게 이해하며 사시기 바랍니다.”nbsp새터민들은 정토회 봉사자들과 배우 신민아씨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가슴이 훈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nbspnbsp강연의 마지막도 역시 노래로 갈무리했습니다. 스님이 “노래 한 곡 부르고 헤어지자”고 하니 세 명이 무대 위로 올라와 노래를 불렀습니다.nbspnbspnbsp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새터민들의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슬픔과 한이 느껴졌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개개인이 다 얼마나 많은 고통과 한스러움을 겪었을까요? 다행히 좋은벗들의 봉사자들이 해마다 이런 시간을 마련해준 덕분에 그나마 새터민들이 답답함을 풀어놓고 갈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다함께 손에 손을 잡고 부른 노래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었습니다. 새터민들은 이 노래를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분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지금도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이 살아있기 때문에 통일은 고사하고 자유 왕래만이라도 간절히 바라는 것이 바로 새터민들일 겁니다.nbspnbspnbsp이렇게 강연을 모두 마친 후 다함께 문화예술회관 앞 계단에 올라서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만남이 너무나 좋았는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nbspnbspnbsp새터민들과 작별 인사를 한 후 오후 5시에 공주를 출발한 스님은 곧바로 울산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7주기를 맞이하여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고 헌화할 예정입니다.nbspnbsp※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5.22 (오전)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에 참가해 즉문즉설 시간을 가진 후 오후에는 새터민들과 함께 봄나들이겸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어제 서울시청광장에서 청년들 1만 명과 함께한 청춘콘서트를 마치고 새벽 2시에 문경 정토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눈을 붙인 스님은 새벽 6시에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이 열리고 있는 대수련장에 들어섰습니다.nbspnbsp오늘 특강수련은 경상남도, 강원도, 경기도 동부 지역에서 정토불교대학을 수강하고 있는 4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청법가와 삼배로 스님에게 법을 청하자 스님이 법상 위에 올라 법문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먼저 스님은 이곳 대수련장에서 하룻밤을 숙박한 대중들에게 “잘 주무셨어요? 이런 곳에서도 한번 자보는 것은 좋은 수행이예요” 라는 인사말로 잠자리가 불편했을 대중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오늘처럼 이렇게 꼭두새벽에 강연이 잡히게 된 까닭에 대해 위트있게 설명을 해주면서 대중들의 양해를 구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실천적 불교사상’에 해당하는 10회분 강의를 다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평소 궁금했던 것을 모아서 오늘 한꺼번에 질문을 받겠습니다. 사실은 매번 강의가 끝난 뒤에 바로 질문을 받는 게 제일 좋아요. 제가 여러분들 앞에 수십 군데 동시에 몸을 나퉈서, 즉 분신을 해서 강의를 하는 것은 현재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서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 수백 수천 명을 동시에 제 앞에 나타나게 하는 기술은 아직 제가 터득을 덜 했어요. 수행을 조금만 더 하면 곧 될 거예요.nbspnbspnbsp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이 공부하다가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에서 송신기능을 활용해서 ‘질문 있습니다’ 하고 메신저 같은 걸로 보낼 수가 있어요. 제가 그걸 보고 ‘질문하세요’ 이러면 여러분들은 자기 얼굴을 보여주면서 궁금한 걸 질문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을 해주는 거예요. 제 수행이 조금만 더 되면 곧 이렇게 할 수 있을 거예요.nbspnbsp그런 기술은 이미 개발되어 있어요. 어떻게 상용화할 거냐가 문제인데, 국제회의 같은 데서는 이미 활용하고 있지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정토불교대학에서도 학생들과의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질 겁니다. 그래도 아직은 쌍방향 소통이 어려우니까 오늘 이렇게 모여서 열 번 강의한 내용 중에서 궁금한 내용들을 한꺼번에 질문받는 거예요.nbspnbsp수업 들을 당시에는 질문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오늘 질문을 적으려니 생각이 안 나죠?”nbsp“네.”nbsp“그런 질문은 원래 질문거리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런 건 분별이라고 해요. 들을 때 ‘에이, 뭐 저래. 저게 뭐야’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 생각이 안 드는 것은 물을 필요가 없는 거예요. 오늘도 법문 듣는 동안 무슨 생각이 떠오를 텐데 그것도 물을 필요가 없어요. 우리는 자극을 받으면 항상 생각이 일어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잘 때마다 꿈을 꾸는 것과 똑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게 뭐지?’ 하고 계속 남아 있는 것은 의문에 속합니다. 그런 의문은 반드시 물어서 해소해야 해요. 자, 그러면 여러분들이 써낸 질문을 하나씩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질문이 서른 개가 넘어요.nbsp어떤 분이 또 이런 이야기를 해요. ‘스님, 왜 새벽 4시부터 깨워가지고 피곤해 죽겠는데 강의까지 합니까? 집에 있으면 아직 잘 시간이라 졸려 죽겠습니다.’ 라고요. 그런데 어쩔 수가 없어요. 선택을 해야 해요. 이렇게라도 강의를 들으실래요? 그냥 강의를 듣지 않고 잠을 잘 수 있게 해줄까요? 둘 중 어느 게 나아요?”nbsp“강의 듣는 게 나아요.” nbspnbsp“예, 이렇게라도 듣는 게 낫죠. 이렇게 새벽에 강의를 해야 하는 이유는 제가 바쁜 몸이라서 그래요.nbspnbsp저는 하루에 두 탕, 세 탕씩 강의를 뛰어야 하는데, 여러분들은 여기서 하룻밤을 묵으니까 새벽에 해도 되잖아요. 집에서 오는 사람더러 새벽 6시부터 오라고 할 수는 없는데, 여러분들은 지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에요. 스님이 여러분들을 애먹이려고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니에요.”nbsp“예”nbspnbsp다들 새벽 4시에 일어나보거나 새벽 6시에 강의를 들어보는 경험은 처음인 분들이 많았는지 스님의 위트있는 설명에 공감을 하며 활짝 웃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학생들이 써낸 질문지를 하나씩 읽어내려 가며 답변을 시작했습니다. 총 32개의 질문지가 올라왔지만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동안 15개의 질문에 대해서만 답변을 해줄 수가 있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고 지켜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은 일상 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쉽고 재미있게 비유를 들어주어 대중들도 즐겁게 답변을 들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의 정토불교대학 강의내용 중에 궁금한 것이 있어 질문드립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라고 했던 어린 장금이의 대사처럼, 저는 제 뜻대로 되면 즐거운 ‘락’이 생기고 제 뜻대로 안 되면 괴로운 ‘고’가 저절로 생겨납니다. 스님께서는 이 때 ‘아, 일어나는구나’라고 가만히 지켜보라고 하셨지만, 저는 ‘아, 화가 나네’ 생각만 할 뿐 화가 나는 상대에게 뭐라고 말은 하지 않아도 가슴 속에는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는 제 자신을 느낍니다. 고락에 집착하지 않고 지켜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nbspnbsp“이 질문은 ‘윤회’와 ‘해탈’에 대한 것입니다. 윤회는 돌고 돈다는 뜻이에요. 흔히들 생각하듯이 사람이 죽어서 소 되고, 말 되고, 개 되고, 부자 되고, 가난한 사람 되고, 남자 되고, 여자 되면서 돌고 돈다는 것은 인도의 전통문화입니다. 태어난 생년월일시에 따라서 운명이 정해진다는 게 중국의 전통문화인 것처럼 윤회도 인도의 전통사상이에요.nbspnbspnbsp부처님의 일생을 쓰는 사람들도 인도 사람들이었으니까 자기들의 문화 양식대로 기록을 한 거예요. 자기들 생각에서는 이렇게 위대하신 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고작 6년간 수행해서 깨달았다는 건 말이 안 되었던 거예요. 그래서 우리 눈에만 이렇게 보일 뿐이지 사실은 과거 생에 한량없이 수행을 해왔기에 부처님이 이생에 깨닫게 된 것이라고 기록한 겁니다.nbspnbsp이렇게 기록한 건 거짓말로 과장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 역사적 사실도 아니고, 단지 그들의 표현 방법일 뿐인 겁니다. 그렇게 표현할 때는 그 사람들 나름대로 뭔가 우리에게 교훈을 주려고 그렇게 표현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취득하면 되지, 그것을 객관적 사실이라고 믿어도 안 되고, 다 거짓말이라고 말해도 안 됩니다. 그건 문화이기 때문이에요.nbsp부처님은 ‘윤회’나 ‘까르마’ 같이 인도 전통문화에서 사용하고 있던 용어를 쓰셨습니다. 그러나 용어는 같지만 부처님이 쓰신 용어의 의미는 인도 전통으로 내려오는 의미와는 다를 때가 많아요. 인생을 살면서 자기 마음을 잘 관찰해보세요. 내가 원하는 게 이루어졌을 때 어때요? 나도 모르게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죠. 그런데 내 뜻대로 안 되면 기분이 나빠요. 이 기분 좋은 것을 ‘즐거움’, 한자로는 ‘락’이라고 해요. 기분이 나쁜 것을 ‘괴로움’, 한자로는 ‘고’라고 합니다. 이게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를 반복하면서 즐거운 게 곧 괴로움이 되기도 하고, 괴로운 게 곧 즐거움이 되기도 하면서 늘 바뀌는 거예요. 오늘만 해도 그래요. 처음에는 ‘야, 문경에 수련하러 간다’ 하고 기분이 좋았죠? 그런데 와서 새벽에 절하라니까 기분이 나쁘죠? 법륜 스님을 직접 보니까 또 기분이 좋죠? 지금은 졸리니까 ‘아이고, 빨리 안 끝나나’ 하고 또 기분이 나쁘죠? 이렇게 늘 고락이 돌고 도는 것을 윤회라고 해요. nbspnbspnbsp사람이 나고 죽고, 나고 죽고, 사람이 되고, 개 되고 하는 것을 반복하다가 그 반복이 멈춰서 더는 안 태어나는 것을 인도에서는 ‘윤회에서 벗어났다’고 해요. 그런데 부처님이 말하는 ‘윤회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 이렇게 반복되는 것이 끝났다는 거예요. 즉, 즐거움과 괴로움이 되풀이 되는 것이 멈추었다는 겁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즐거움은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조금 유지하다가 괴로움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즐거움으로 올라왔다가 또 떨어지면서 돌고 도는 것입니다. 그러나 ‘열반’이란 말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말해요. 그래서 이 즐거움이 지속가능합니다. 즐겁거나 괴롭다고 할 때 말하는 즐거움이 지속가능하려면 원하는 욕구가 100퍼센트 다 채워져야 하는데 그렇게는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말은 즐거움으로부터도 벗어나버린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반복하며 돌고 도는 즐거움과 괴로움, 이 둘 모두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이름 하여 ‘열반’ 혹은 ‘열반적정’이라고 합니다.nbspnbsp진정한 행복은 내가 바라는 무엇이 이루어져서 ‘야, 기분 좋다’ 하는 것이 지속되는 걸 말하지 않습니다. ‘기분 좋다’ 하는 건 마음이 들뜨는 거예요. ‘기분 나쁘다’ 하는 건 마음이 가라앉는 거예요. 이렇게 들뜨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파도타기를 하는 걸 ‘윤회’라고 하고, 이 파도타기가 없어진 걸 ‘고요적정하다’라고 표현합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죠? 그렇다면 공부 좀 더해야 해요.nbspnbspnbsp그래서 이런 즐거움에 의미를 부여하면 즐거움에 빠져서 공중에 붕 떴다가 가라앉을 때는 툭 떨어지니까 또 죽는다고 아우성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늘 ‘산다’, ‘죽는다’를 반복합니다. 부부관계도 조금만 잘해주면 ‘다음 생에도 너와 살겠다. 내가 결혼 잘 했지’라고 하고, 조금만 못해주면 ‘다음 생에는 너와는 안 만나겠다. 이런 인간과 결혼하다니 내가 미쳤지’라고 합니다. 자식도 ‘내가 왜 저 자식을 낳았나’ 하다가도 ‘아이고, 그래도 자식 덕분에 산다’라고 해요. 요사스럽기 그지없어요.nbspnbsp여러분들도 지금 불교대학 다니면서 그러고 있는 줄 뻔히 알아요. ‘불교대학 잘 들어왔다’ 했다가, ‘괜히 시작했다’ 했다가, 법륜 스님 법문 듣고 ‘좋다’ 했다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이야기를 해서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스님이 왜 쓸데없이 정치 이야기 하느냐’라고 했다가, 그래서 며칠 동안은 ‘스님의 하루’도 안 보다가 또 즉문즉설 하나 읽어보고 나면 ‘아, 그래도 훌륭한 사람이다’ 하면서 좋아하고, 이렇게 늘 왔다 갔다 하고 있죠? nbspnbspnbsp이걸 ‘윤회한다’고 해요. 이런 것으로부터 벗어나버린 상태가 해탈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해서 벗어날까요? ‘나는 안 즐거워야지’, ‘나는 안 괴로워야지’ 이런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이건 내가 의도적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각자에게는 업식이라는 게 있어요. 이게 바깥 경계에 탁 부딪히면 북을 쳤을 때 자동적으로 울리듯이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거예요. 여기에서 나의 의지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늘 이 업식에 끌려서 삽니다. 기분이라는 것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자기가 알아서 반응해요.nbspnbsp내가 여기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이렇게 기분 좋음이 일어나도 그저 빙긋이 웃어야 해요. ‘아이고, 또 반응이 일어나는구나.’ 하면서요. 기분 나쁨이 일어나도 그 좋고 나쁘고에 비중을 두지 않고 ‘또 반응하는구나’ 이렇게 아는 거예요. 좋은 반응도 나쁜 반응도 다만 반응일 뿐이에요. 이런 반응을 ‘음, 또 그러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려야 해요.nbspnbspnbsp물론 우리가 알아차려도 반응은 여전히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건 포물선하고 똑같아요. 돌멩이를 던지면 이렇게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떨어지죠? 그냥 가만히 놓아두면 올라가던 돌멩이도 이윽고 떨어집니다. 여러분의 화 역시 가만히 놔둬도 언젠가는 가라앉아요. 수행을 안 해도 가라앉아요. 죽을 때까지 그 화가 지속되진 않습니다. 그런데 수행을 안 할 때는 화가 이만큼 높이 올라왔다가 가라앉는다면, 수행을 할 때는 조금 달라요. 알아차려도 화가 올라가긴 하지만 조금만 올라왔다가 금방 가라앉아요. 올라가기는 올라가지만 딱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올라가는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해요. 이렇게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는 걸 ‘지켜본다’ 라고 해요.nbspnbsp여러분들은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억누르고 있는 거예요. ‘화내지 말아야지’ 하고 억누르는 건 지켜보는 게 아니라 억압하는 거예요. 그러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여러분들은 성질대로 했다가, 참았다가, 성질대로 했다가, 참았다가, 이렇게 하는 거예요. 참으면 영원히 참으면 되는데 세 번밖에 못 참아요. 삼세번이라고 하죠? ‘두고 보자’, ‘두고 보자’ 이러다가 세 번째가 되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이렇게 펑 터지는 거예요.nbspnbspnbsp참지 말고 지켜보세요. ‘내 업식이 또 내 의지와 관계없이 자동 반응하는구나’, ‘화가 나는구나’ 이렇게 그냥 ‘봄이 오는구나’ 하듯이 바라보세요.nbspnbsp그러면 여러분은 ‘그래도 화가 나던데요’라고 하겠죠. 맞아요. 그게 쉬우면 누가 못 하겠어요? 그러니 연습을 해야 해요. 원리는 원리이고, 배운 원리에 따라 연습을 자꾸 하면 상대가 화를 내도 나는 빙긋이 웃을 수가 있게 됩니다. 지금은 잘 안 돼요. 원리를 알아도 상대가 성질을 내면 나도 같이 성질이 나버려요. 저쪽에서 화를 딱 내면 이쪽에서는 자동으로 팍 하고 반응을 하게 돼요. 그런데 이걸 자꾸 연습하면 상대가 화를 내는데도 빙긋이 웃게 됩니다. ‘오, 저 사람이 저런 인식 상의 오류로 화를 내는구나. 저러면 자기 몸에만 나쁠 텐데...’ 이런 생각이 드니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거예요. 욕을 얻어먹고 참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참으면 터지는 거예요.”nbsp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니 어떻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지 명쾌하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제 직접 부딪히면서 계속 연습을 해봐야겠지요.nbspnbsp스님의 답변에 대중들은 웃음을 빵빵 터뜨렸습니다. 졸린 눈도 금새 떠지고, 옆 사람의 웃음 소리에 깜짝 놀라 졸음이 달아난 사람도 몇몇 보였습니다.nbspnbsp그런데 다시 1시간이 지나자 졸음을 깨우기 위해 측면으로 걸어나와 서서 법문을 듣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이런 분들이 10명을 넘어서자 스님은 “자, 그러면 모두 제자리에서 일어나세요. 기지개를 주욱 펴 봅니다.”라며 대중들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nbspnbspnbsp대중들은 “아이고, 시원하다” 하면서 한바탕 스트레칭을 한 후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대중들 중에 노래 한 곡 불러볼 사람 있으면 앞으로 나와 보세요.” 라며 분위기를 전환시켰습니다. 그런데 다들 망설이기만 하고 한참 동안 앞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한 분이 번쩍 손을 들고 나와 “제가 노래를 잘 못 부르더라도 이해해 주세요.”라며 노래 한자락을 불러 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노래는 정말 잘 불렀는데 늦게 나온 것 때문에 스님이 한 소리를 했습니다.nbspnbsp“노래는 잘 하셨는데, 그렇게 노래를 잘 하면 빨리 나와서 부르지 뭣 때문에 우물쭈물 했어요? 노래를 못 불러도 이해해 달라고 그러셨는데, 우리는 자기가 노래를 못 불러도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요. nbspnbspnbsp왜냐하면 자기가 가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거든요. 스님이 ‘노래를 잘 하세요’ 라고 안 했잖아요. 그냥 ‘노래를 해보라’ 라고 했죠. 산토끼 노래를 불러도 되고, 태극기 노래를 불러도 되고, 뭐든지 부르기만 하면 되는데... 좀 잘나 보이고 싶었어요? nbsp이렇게 시킬 때 안 하려고 하는 건 대부분 ‘내가 잘났다’ 하는 거예요. 노래 한번 해보라고 했는데 ‘못한다’고 하면서 10분씩 끌다가 노래하는 사람들 중에는 산토끼 노래 부르는 사람이 없어요. ‘비목’처럼 아주 어려운 노래를 해요. nbspnbsp이건 무슨 뜻이냐면 ‘내가 잘 났는데, 노래를 하게 되면 내가 잘난 것에 좀 흠이 간다’ 는 뜻이예요. 그러니 앞으로는 ‘노래 한번 해보세요’ 라고 하면 그냥 앞에 나가서 아무거나 부르면 되는 거예요. 부르다가 가사를 모르면 그냥 그만두면 되는 거예요. 중간에 그냥 ‘아이고, 모르겠다’ 하고 그냥 그만두면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노래를 끝까지 부르세요’ 라는 말을 안 했잖아요.nbspnbsp그냥 아는 데까지 부르다가 그만두면 되는 거예요. 인생을 그렇게 복잡하게 사니까 괴롭죠. 제가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은 ‘그럼 스님은 왜 안하세요?’ 라고 따지는데, 저는 스님이기 때문에 계율에 음주가무를 하지 말라고 되어 있어요.” nbspnbsp스님의 이야기에 대중들은 또한번 박장대소를 하며 배꼽을 잡았습니다. 노래 한 곡 부르는 것 속에서도 수행을 배울 수 있다는 말씀에 ‘정말 수행이 아닌 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이후 계속된 법문에서는 대중들이 조금이라도 졸지 않게 하려고 평소에 강연할 때보다 더 큰 목소리로, 더 실감나게 비유를 들어가며 답변하는 스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까운 시간을 내어 이곳에 모인 대중들이 조금이라도 삶의 변화를 얻게 되기를 바라는 스님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3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답변을 해준 스님은 마칠 시간이 되자 다시 한 번 새벽부터 강연을 열심히 들어 준 대중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이 강연이 끝나면 공주로 가야 돼요. 한국에 들어와 있는 새터민들이 살기가 무척 힘든데, 그 분들의 이야기도 들어줘야 해서 오늘 새벽부터 강연을 하게 됐어요. 양해를 바랍니다. 혹시 졸려서 죽을 뻔 했다는 분들 있었어요?”nbsp“아니요.”nbsp“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nbspnbsp대중들도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대수련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공주로 이동했습니다. 공주에서는 낮 12시부터 새터민들과 함께 숲속에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한 후 오후 2시에는 인생 고민에 대해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5.21 (저녁) 2016 청춘콘서트
nbsp오후 내내 무교로 일대에서 펼쳐졌던 청춘박람회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서울시청광장에서 청춘콘서트가 열렸습니다.nbspnbsp어슴푸레 저녁이 되자 청년들은 오늘의 메인 행사인 청춘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 시청광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미 6시부터 많은 인파가 모여들면서 인산인해를 이루기 시작했고, 6시 30분이 되자 드디어 1만명의 청년들이 시청광장 드넓은 잔디밭을 가득 메웠습니다.nbspnbspnbsp첫 번째 무대에 오른 인디밴드 ‘요술당나귀’가 카페라떼 노래를 시작하자 시청광장은 순식간에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이어서 인디밴드 ‘버스트리드’, ‘아마다스’의 공연이 계속되면서 청춘콘서트는 축제의 기운을 한껏 뿜어내었습니다.nbspnbspnbsp오프닝 영상에서는 청춘콘서트를 준비한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이 비춰졌는데, 오늘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청년 사회자 두 명이 무대에 올라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1만 청춘들의 염원을 담은 신비한 주문을 청중들에게 소개했습니다. 사회자가 “세상을 바꾸는 우리의 주문” 이라고 선창을 하자 1만명의 청춘들도 큰 소리로 함께 외쳤습니다.nbspnbsp“얄리얄리 얄라셩”nbspnbspnbsp한국 사회의 현실은 갈수록 청년들이 희망을 갖고 살기가 어려워지고 있는데요. 청년 자살률 세계 1위, 출산율 세계 최저, 줄어드는 청년 일자리,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사회 등 답답한 현실로부터 잠시 벗어나 시청광장에 모인 1만 청년들은 한 목소리로 희망을 염원하는 듯 했습니다. nbspnbsp이어서 오늘 청춘콘서트를 준비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뛰어준 청년단체 대표 4인의 여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청년포럼 대구 대표인 손주희님은 “5년 전에 소박하게 시작했던 청춘콘서트가 오늘 1만명의 청춘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시청광장에서 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라고 소감을 말하면서 “아직도 대구와 같은 지역에서는 이런 기회가 적어요. 청년포럼은 지역에 있는 청년들과도 희망을 만들어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하고 다짐을 말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nbspnbspnbsp선선한 초여름 밤, 푸른 잔디밭에 모여 앉아 있으니까 기분도 참 좋고, 낭만적인 느낌도 들었는데요. 이렇게 좋은날 더욱더 감성적이고 로맨틱한 이야기 보따리를 펼쳐주기 위해 노희경 작가님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행복 토크의 첫 번째 게스트로 나온 노 작가님은 “사랑과 연애”를 주제로 청년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작가님은 최근 새로운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로 우리 곁에 다시 찾아와서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데요. 사회자가 “잠시 후면 본방 할 시간인데 청년들이 모두 여기에 와 있어서 큰일났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유쾌한 웃음 속에 대화가 진행됐습니다.nbspnbspnbsp사회자가 “사랑을 할 때도 밀당을 하면서 자꾸 계산을 하게 되는데, 사랑이 너무 어렵다”라고 질문하자 노 작가님은 “우리는 상대를 자극하고, 나도 자극받는 것에 너무 길들여져 있는 것 같아요. 쉽게 말해서 잘해줘도 지랄, 못해줘도 지랄, 끊임없이 지랄하는데...”라며 “자기가 지랄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멈추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내가 지랄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차릴 수 있어도 극복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말해 청년들의 속을 후련하게 해주었습니다.nbsp노희경 작가님과의 토크가 끝나자 1만 청년을 깜짝 놀라게 할 특별 게스트가 무대로 올라왔습니다. 특별 게스트는 바로 인기 절정의 여배우 한지민씨와 신민아씨였습니다. 두 여배우가 나타나자 청년들은 열렬히 환호를 하며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두 분은 청년들을 응원하기 위해 특별히 시청광장을 찾았다고 하면서, 응원의 메시지를 한마디씩 해주었습니다. 먼저 한지민씨는 “저도 20대 때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항상 현재를 즐기지 못했던 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 현재에 늘 깨어 있고 즐기시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라고 응원해 주었고, 신민아씨는 “삶이 힘들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가까운 사람들을 챙기면서 소소한 행복들을 느끼면서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행복하세요.”라고 응원해 주어서 청년들의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nbspnbspnbspnbsp스님은 노 작가님에 이어서 두 번째 행복토크 게스트로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늘 해오던 방식 그대로 즉문즉설 방식으로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즉문즉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 스무살 성년이 된 분들을 위해 축하 인사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5월 16일이 무슨 날이었는지 아세요? 성년의 날입니다. 성년이 되었다는 것은 한 사람으로서의 완성된 인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nbspnbspnbsp성년의 날을 맞는 분들이 여기 계시면 손 한번 들어보세요. 우리 모두 이분들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박수 한번 보내줍시다.nbspnbspnbsp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났다고 다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직 완성이 안 됐다’는 의미에서 미성년이라고 하지요. 미성년일 때는 스스로 삶을 다 책임지고 살지 못 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미성년자에게는 보호자가 필요하지요. 주로 부모님이 보호자가 됩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안 계시면 삼촌 등 제3자가 보호자가 됩니다. 미성년자는 보호자의 도움과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동시에 보호자의 말을 들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그런데 20세, 보통 만 18세가 넘으면 육체적으로는 거의 다 성장을 해서 완성된 사람이 됩니다.nbspnbsp이 때 육체적으로만 성년이 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 또한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누구로부터 보호받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인생을 책임져야 하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부모나 보호자에게 위탁했던 권리를 가져와서 이제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합니다. 성년이 되어서 좋은 점은 결정을 스스로 한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인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년은 권리와 책임을 모두 갖습니다.nbspnbsp오늘부터 성년이 되시는 분들은 이제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야 합니다. 꼭 집을 나가는 것만 독립이 아니라 같은 집에 살더라도 방값, 밥값, 옷값을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집 밖에서 돈을 벌어서 값을 지불하는 방법도 있지만, 집 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2시간 동안 밥하고 청소해 놓고 부모님 깨워서 ‘식사하십시오’ 하고, 저녁에 귀가해서도 1시간 정도 청소를 하는 겁니다. 지금 최저임금이 약 6,000원이니까 하루에 3시간 이렇게 하면 18,000원이 되고, 그렇게 30일을 하면 540,000원이 되니까 그 정도면 자립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최저임금을 조금 더 올려야 되겠지요? 그래야 자립하기도 더 쉬워지니까요.nbspnbspnbsp또 이렇게 하면 부모님이 ‘우리 아이에 대해서는 내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내가 신경 안 써도 잘 살아 가겠다’ 하고 생각하시게 되기 때문에 명실상부한 자립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부모님의 말씀을 더 이상 들어야 할 의무도 없어지는 거예요.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은 참고만 하면 됩니다. 부모님은 자식을 사랑하시니까 자식한테 좋은 말씀을 해 주시잖아요. 가능하면 부모님의 말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되 결정은 스스로 하면 됩니다. 그러니 더 이상 어떤 일의 결과를 두고 ‘어머니가 그렇게 하라고 하셨잖아요’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됩니다. ‘부모가 반대해서 결혼 못 한다’ 이렇게 얘기해도 안 됩니다. 물론 부모님도 반대할 권리가 있어요. 그러나 성년이 된 사람은 그런 부모의 의견을 수용할 권리도 있고, 수용하지 않을 권리도 있어요. 성년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견을 받아들이든 안 받아들이든 스스로 결정권을 갖는 게 성년입니다. 그래서 성년이 되면 나라에서도 그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인정하는 의미에서 투표권을 주지 않습니까. 투표를 한다는 것은 나라의 주인이 된다는 의미이니까요.nbspnbsp오늘 성년이 되신 분들께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성년이 되신 분들을 위해 큰 박수를 보내드립시다.” nbspnbsp1만 청년이 스무살 청년들에게 보내는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이 질문을 받겠다고 하자 번쩍 손을 든 4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중에서 한 젊은 여성 분은 아기를 낳지 않기로 남편과 합의하고 결혼을 했다고 하면서 그런데도 주위에서 자꾸 왜 아기를 낳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꾸 받아서 고민이 된다고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답변을 듣고 나서 질문자는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습니다.nbspnbspnbsp“새벽같이 울산에서 청춘버스를 타고 왔어요. 반갑습니다. 결혼 3년차인데 제 나이도 있고 해서 주변에서 아이를 언제 가질 거냐는 질문을 많이 하세요. 저희 부부는 결혼 초에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고 합의했는데 사람들이 왜 그러냐며 이유를 굉장히 많이 물어봐요. 사회통념적으로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서 길러야 한다고들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그냥 ‘하나의 인격체를 책임지기에는 제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습니다’ 혹은 ‘아이에게 희생하기보다는 제 삶을 살고 싶어요’ 이렇게 답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은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아이를 낳아서 길러야겠다’는 마음이 잘 안 일어납니다.nbspnbsp돌아보면 제가 두 돌 되기 전에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셔서 모성이라는 걸 가까이에서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제가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가 싶기도 해요. 그래서 제 생각 너머의 진짜 마음이 어떤 건지 궁금하고, 제 마음을 몰라서 스님께 질문 올립니다.”nbsp“네 마음 네가 알지, 제가 어떻게 당신 마음을 알겠어요? 질문이 좀 이상해요. 제가 질문자도 아닌데 어떻게 질문자 마음을 알겠어요? 자기 마음을 자기가 딱 살펴보면 알 수 있지, 그걸 저한테 물으면 곤란하죠. 그러면 제가 점쟁이가 돼야 하는데 저는 점쟁이는 되기 싫거든요.”nbspnbsp“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서 저도 많이 고민을 했는데요. 사람들이 이걸 정상이 아니라고 보니까 저도 깊이 생각을 하다가 ‘내가 잘못된 건가? 어렸을 때 그런 기억 때문인가?’ 하고 생각을 하게 돼서 ‘진짜 그런 걸까요?’라고 여쭤보고 싶었습니다.”nbsp“그럴 수도 있어요. 아닐 수도 있고요.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기 때문에 무의식 세계에 부모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나도 그럴까?’ 하는 두려움이 생겨서 자꾸 망설여질 요소가 충분히 있어요. 그러나 본인이 살아온 삶의 경험을 제가 다 듣지 못했잖아요. 그것 이외에도 자식에 대해 약간 부정적인 까르마가 있는지, 즉 마음 속에 무엇 무엇이 있는지는 제가 더 들어봐야 알겠죠. 여기서는 멀어서 제가 질문자의 얼굴을 볼 수도 없고, 질문자와 제가 대화를 자세히 해본 것도 아니거든요. 그러나 질문자가 이야기한 대로만 듣고 판단해보자면 그럴 수 있는 요소는 충분히 있어요.nbspnbsp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문제는 질문자의 선택의 문제라는 겁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안 하고는 내 자유에 속하는데, 사람이 태어나면 다 결혼하는 관습을 갖고 있는 사회에서 볼 때는 만약 결혼을 하지 않으면 뭔가 장애가 있거나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될 수 있겠죠. 그러나 현대 사회는 결혼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됐습니다. 그것처럼 결혼을 한 뒤에 자식을 낳고 안 낳고의 문제도 선택의 문제입니다.nbspnbsp그런데 문제는 질문자가 자꾸 ‘나는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문제제기를 받게 되는 거예요. 저라면 아이를 안 낳기로 확실히 결정했다면 이렇게 이야기하겠어요. ‘저와 남편은 신체적 장애가 있어서 아이를 갖지 못합니다’라고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훨씬 간단하잖아요. 그렇게는 말하기 싫다는 거죠?”nbspnbsp“제 신체는 건강하니까요.”nbspnbsp“질문자가 뚜렷한 이유가 있다면 ‘저는 이러저러해서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 돼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뚜렷한 이유가 없는데 자꾸 사람들이 물어서 곤란하다니까 저처럼 말해버리면 된다는 거예요.nbsp그리고 또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어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나이가 많든 적든 생물학적으로 모성애라는 게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닭이든 쥐든 토끼든 다람쥐든 어떤 동물도 새끼가 없는 상태에서는 자기 생명을 우선시합니다. 즉 개체보존의 본능을 우선시해요. 그런데 일단 새끼를 갖게 되면 종족보존의 본능을 우선시하게 됩니다. 모든 생물은 생태적으로 그렇게 형성되어 있어요. 그래야 종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아이를 안 낳겠다’ 이런 질문자의 생각은 아이를 낳기 전에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질문자뿐 아니라 누구나 다 그래요. 그런데 아이를 일단 낳게 되면 종족보존의 본능 쪽으로 생각이 바뀌어버려요. 즉 모성애가 저절로 일어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아이를 낳으면 잘못 키우지 않을까?’, ‘집이 가난해서 아이를 키우기 어려울 거야’ 이런 건 낳기 전의 생각이에요. 낳아버리면 그런 생각이 없어지고, 어떻게든 아기를 보호하고 키우려는 쪽으로 사고와 행동이 바뀌어버리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요.nbspnbsp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안 낳기로 결정했다면 ‘아이고, 저도 낳고 싶은데 몸에 약간 이상이 있어서 못 낳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그러면 계속 질문에 시달릴 필요 없이 간단하게 한방에 딱 끝내버릴 수 있어요.nbspnbspnbsp둘째,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일어나는 대로 맡기는 겁니다. ‘생기면 낳고, 안 생기면 안 낳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다 아기가 생기게 되면 ‘이러저러해서 아기를 키울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이런 생각은 아기를 낳는 순간 모두 없어져버려요. 그건 한번 낳아보면 알아요. 그렇게 안 되면 그때 다시 저한테 찾아와서 항의를 하세요.”nbsp“네. 제가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스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스님의 답변에 1만 청춘들의 박수 소리가 태평로 일대를 가득 울렸습니다.nbspnbspnbsp즉문즉설을 마치면서 스님은 청년들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것을 다시 한 번 당부했습니다.nbspnbsp“배고파요?”nbsp“예.” nbspnbsp“우리가 육체를 위해서는 매일 밥을 먹여주잖아요. 그런데 우리들의 정신적인 기쁨을 위해서는 꾸준히 밥을 먹여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청년 여러분들은 우리가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 매일 하루 세 끼 밥을 먹듯이, 우리들의 정신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도 매일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청춘은 아름답다’, ‘청춘은 행복하다’, ‘미래가 우리들의 것이다’, ‘미래는 희망이다’ 하는 생각을 갖고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멘토들의 행복 토크 중간 중간에는 청년 뮤지션들의 공연이 펼쳐져서 청년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힙합부터 락까지 장르도 다양했습니다. 빅베이비드라이버, 김지수, 볼 빨간 사춘기, 조문근 밴드, 아웃사이더의 이어진 공연들은 청년들의 어깨와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며 시청광장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nbspnbspnbsp다음은 박원순 서울시장님이 무대 위에 올라 “청춘아, 상상하자”란 주제로 행복 토크를 이어갔습니다. 박 시장님도 사회자의 여러 가지 질문에 답변을 이어가다가 마지막에는 객석에서 직접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nbspnbsp손을 번쩍 든 한 시민은 “뉴스에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들을 보게 되는데,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박 시장님은 “오늘 청춘콘서트에 온 것부터가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격려하면서 “얼마 전 강남역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 사건의 희생자에 대한 추모 물결도 한 시민의 이메일에서 비롯된 것이예요. 누구나 문제의식을 느낀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부터 한다면 세상을 바꿀수가 있어요”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마지막 공연자로 나온 가수 김태우씨는 ‘사랑비’ 노래를 열창했는데, 이 순간 청춘콘서트는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급기야 잔디밭에 앉아 있던 1만 청년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nbsp뜨겁게 달아오른 무대를 이어 받아 드디어 김제동씨가 행복 토크의 마지막 게스트로 걸어나왔습니다. ‘김제동’을 외치는 청년들의 함성 또한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nbspnbsp김제동씨는 ‘청춘아, 세상과 어깨동무하자“라는 주제로 35분 동안 재치있는 입담을 쏟아내며 청년들의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특히 김제동씨는 청년들로 하여금 통일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희망과 비전에 대한 상상력을 무한히 확장시켜 주었는데, 청년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nbspnbspnbsp“여러분 통일이 되면 어떨지 한번 상상해 보세요. 결혼을 하면 부부싸움의 스타일 자체가 달라집니다. ‘에이씨, 집 앞에 가서 맥주 한잔 해야지’ 이렇게 하는 게 아니고 ‘에이씨, 택시 타고 대동강 가서 맥주나 한잔 먹어야겠다’ 이렇게 변합니다. 아이들도 가출을 할 때 이제 금강산으로 하게 됩니다. 일주일 가출하고 오면 도를 닦아 나옵니다.nbspnbsp여러분의 아이들은 이제 전국 어디에서나 기차를 잡아 타면 신의주와 블라디보스톡을 거쳐서 유럽으로 수학여행을 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런 나라를 좀 만들어 줍시다.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겠어요?nbspnbspnbsp소풍가기 전날이 소풍가는 날보다 훨씬 더 즐겁듯이 우리가 이런 통일에 대해서 꿈꾸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산업화를 이뤄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우리 형님 세대들은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그러나 지금의 10대와 20대는 이런 세대적 자부심이 보이지 않아요. 그것은 여러분들의 잘못이 아니고 지금까지 그럴 수 밖에 없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예요. 그러나 이제 여러분들은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통일 세대가 될 수 있어요. 만약 여러분들이 통일을 이룩해낸다면 한반도가 생긴 이래로 역사상 가장 큰 일을 해낸 세대가 될 겁니다. 그 꿈을 향해 함께 나아가 봅시다.”nbsp통일의 희망에 대해 실감나고 재치있는 이야기가 계속되자 청년들은 쉴새없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nbspnbspnbsp이 외에도 김제동씨는 청년들 스스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고, 청년들은 더욱더 환호했습니다. 또 세월호 희생자들을 언급하면서 높으신 분들이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하는데 여기 모인 청년들, 아기 엄마, 아이들이 바로 지켜야 할 국가라고 힘주어 말하는 대목에선 많은 청년들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nbspnbsp이제 시간은 10시가 다 되었고, 1만여 명이 함께한 축제도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법륜 스님, 김제동씨가 무대 위로 올라와 올해 스무 살 성년이 된 청년들을 축하하는 성년 이벤트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사회자가 “97년생 소띠분들은 모두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라고 하자 많은 청년들이 김제동씨와 법륜 스님 앞으로 달려나왔습니다. 축하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두 분은 직접 사인한 책 꾸러미와 장미를 한 송이씩을 청년들에게 선물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출연진과 서포터즈 모두가 무대 위로 올라온 가운데 대망의 엔딩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1만명의 청춘들이 양손을 하늘 위로 흔들며 합창하는 장관이 펼쳐졌습니다. 소름이 돋을 정도의 장관이었습니다.nbspnbsp합창을 하는 1만 청춘들을 향해 스님이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청년 여러분, 실패해도 좋고, 방황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일단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새롭게 출발합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으니까요.”nbspnbspnbsp청년들은 또다시 환호했습니다. 이제 청년들은 무대 가까이로 바짝 다가와서 밤새 뛰어놀 기세로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노래 두 곡을 더 부른 후 청춘콘서트를 모두 마쳤습니다. 아쉬움이 컸지만 내년을 기약하며 스님과 김제동씨가 손을 흔들자, 청년들도 마침내 작별의 손을 흔들었습니다.nbspnbspnbspnbsp1만명의 청년들은 사회자의 공지에 따라 그리고 서포터즈들의 안내를 받아가며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중이 모두 사라지고 텅빈 시청광장에서는 500여 명의 봉사자들이 다시 모여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줍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메뚜기떼가 지나가듯이 시청광장과 무교로 일대를 깨끗이 청소해 마치자 드디어 통제되었던 교통도 해제되었고, 무사히 청춘콘서트를 치러낸 500여 명의 서포터즈들도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 주며 가슴에 보람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nbspnbspnbsp청춘콘서트 행사가 뒷정리까지 잘 마무리되는 모습을 지켜본 스님은 함께해 준 김제동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서울시청광장을 출발했습니다.nbspnbspnbsp밤 11시 40분에 서울을 출발한 스님은 곧바로 문경으로 이동해 새벽 2시에 문경 정토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눈을 붙인 스님은 내일 새벽 6시부터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에 참석해 법문을 한 후 낮 12시부터는공주에서 새터민들과 함께 봄나들이를 하고 즉문즉설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5.21 (오후) 2016 청춘콘서트 청춘박람회 편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서울시청광장에서 청춘콘서트가 열리는 날입니다. 1만 명의 청년들이 가득 자리를 메운 가운데 김제동씨, 노희경 작가,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청춘콘서트 무대에 오른 스님은 ‘즉문즉설’을 통해 청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nbspnbsp자원봉사자만 500명, 시청광장을 찾은 청년들은 1만 명, 청춘박람회에 참여한 청년단체는 150개... 대한민국에서 지금껏 이렇게 큰 규모의 청년 행사는 없었다고 할 정도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오늘 행사를 위해 평화재단 청년포럼, 김제동과어깨동무, 서울시, 청년허브 4개 단체는 6개월 전부터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했습니다.nbspnbsp무교로 일대는 어제밤부터 300여 개의 부스가 설치되고, 교통이 통제되었습니다. 오늘 오전에는 아침 일찍부터 자원봉사자 500여 명이 각자의 위치에서 1만 명의 청춘들을 맞이할 채비를 마쳤습니다.nbspnbsp▲ 무교로 일대에 마련된 청춘박람회 입구nbsp낮 12시가 되자 법륜 스님과 김제동씨가 무교로 특설무대에 도착하면서 드디어 청춘박람회 개막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청춘박람회에는 150여 개 청년 단체와 150여 명의 청년창업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서로 간의 교류 뿐만 아니라 청년들을 위한 풍성한 놀거리와 먹을거리를 선보였습니다.nbsp오프닝 공연에 이어서 먼저 법륜 스님이 무대에 올라 개막식 축하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청년들이 누구한테 의지하고 바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날이 아니고, 청년들이 우리 힘으로 우리끼리 모여서 즐겁게 놀아보는 날입니다.nbspnbsp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미래에 가능성이 있다거나 지금은 고생이 되지만 나중에는 괜찮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면, 현재를 이겨내기가 굉장히 수월합니다. 그래서 미래의 희망이야말로 청년들이 품어야 할 단어라고 할 수 있지요. 이것을 우리 사회에 적용해 보면 우리 사회의 미래 희망은 바로 통일입니다.nbspnbsp그래서 오늘은 청년 여러분들이 먼저 청춘에 대한 자긍심과 긍정성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요즘 청년들이 많이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아무리 힘들어도 늙은 저보다는 낫지 않아요? 힘드니까 아예 그냥 자고 일어나면 내일 나이 육십이 넘어 있도록 만들어 드릴까요?”nbspnbsp아니요.”nbspnbsp“고생이 좀 되더라도 그래도 청년이 더 좋잖아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잖아요. 그 미래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 되도록 합시다. 또 우리에게는 통일이라는 희망이 있잖아요. 이런 희망을 향해서 우리 모두 손잡고 함께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들이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도록 하겠습니다.nbsp청년들은 큰 박수로 청춘박람회의 개막을 기뻐했습니다. 이어서 김제동씨의 개막식 축하 인사가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법륜 스님도 손님이고, 저도 손님이에요. 여러분들이 저희를 부른 것이잖아요. 오늘은 여러분들이 주인인 날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박수를 치지 마시고, 오늘의 주인인 옆 사람들에게 박수를 쳐주십시오. 여러분들이 상 차리고 여러분들이 직접 해 보고, 그 경험을 통해서 이제 진짜 대한민국의 주인이 여러분이 되는 계기를 오늘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멘토들의 얘기를 듣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여러분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멘토가 되어주는 계기가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손님인 저보다 주인인 여러분들이 더 즐겁게 노세요.”nbsp오늘은 청년들이 주인이라는 얘기에 또한번 청년들이 환호했습니다.nbspnbsp다음은 개막식 퍼포먼스로 우리의 희망을 적은 종이를 비행기로 접어서 날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회자가 법륜 스님과 김제동씨에게 종이비행기에 어떤 희망을 적었는지 묻자, 법륜 스님은 미래, 청년, 우리의 희망, 통일 이라고 말했고, 김제동씨는 마음에 드는 곳으로, 마음이 나는 곳으로, 늘 당신이 옳다라고 말해 청년들의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법륜 스님과 김제동씨가 함께 종이비행기를 힘차게 날리는 것과 동시에 청춘박람회 300여 개의 부스들도 일제히 문을 열었습니다.nbspnbsp▲ 희망을 적은 종이를 비행기로 접어서 날리고 있는 스님과 청년들nbsp법륜 스님은 무대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면서 300여 개의 부스를 모두 방문한 후 청년들을 격려했고, 김제동씨는 무대 왼쪽으로 한 바퀴 돌면서 청년들을 격려했습니다. 부스를 운영한 청년 단체들은 참으로 다양했고, 일부는 정말 참신한 내용도 많았습니다.nbspnbspnbsp청년들의 부채 상담을 해주는 활동을 하는 단체는 부채를 들고 부채도사가 되어 상담을 했고, 학교밖 청소년들은 학교를 떠나 다양한 미디어 활동을 하고 있다고 소개해 주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학교밖 청소년들이 운영하는 부스에 관심을 내비쳤는데, 학생들이 모두 중학교 내지 고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두고 지금은 새로운 미디어 활동을 하고 있다고 자신들을 소개하자, 스님도 “나도 학교밖 청소년 출신인데 반갑다”라고 말해 다같이 크게 웃기도 했습니다. 스님도 고등학교 시절에 출가를 했기 때문입니다.nbspnbsp▲ 학교를 그만두고 대안적인 미디어 활동을 하고 있는 학교밖청소년들nbspnbsp▲ 청년들의 목돈 마련을 도와주고 있는 청년통장nbsp무교로 한 가운데에는 청년들이 창업한 푸드 트럭이 모여 있었습니다. 스님은 모든 부스에 들러 물건을 하나씩 구입해 주며 격려의 말씀도 해주었습니다. 플리마켓 코너에서는 많은 청년들이 직접 좌판을 펼쳤는데, 톡톡 튀는 아이디어 상품들이 정말 많았습니다.nbspnbsp▲ 플리마켓nbspnbsp▲ 봉사활동을 즐겁게 떠나보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는 어떤 버스nbsp특히 김제동씨는 무교로 일대를 수놓은 부스들을 모두 한바퀴 돈 후 입구에 서서 소프트콘을 직접 만들어 청년들에게 나눠주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청년들은 김제동씨가 만든 소프트콘 아이스크림을 ‘청콘’이라고 부르며 즐거워 했습니다. nbspnbsp청춘박람회가 한창 열기를 더해 가고 있는 가운데 오후 4시부터는 무교로 특설무대에서 스님의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야외에 단을 마련하고 어떤 주제의 얘기도 마음껏 펼쳐놓는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펼쳐진 것입니다.nbspnbsp▲ 무교로 특설무대에서 진행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nbsp청춘박람회를 구경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던 청년들은 스님의 목소리가 무교로 일대에 울려퍼지자 무대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즉문즉설의 취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nbsp총 5명이 스님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중에 한 청년은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게 되었지만 마음이 너무 힘들고 답답하다며 직장을 그만둬야 할지 질문했습니다. 마침 객석에는 직장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공감이 가는 주제여서 그런지 집중해서 스님의 답변을 경청했습니다.nbspnbspnbsp“직장을 다닌 지 5개월 됐습니다. 돈도 잘 주고, 밥도 주고, 집도 주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면서도 너무 답답합니다. 일도 하기 싫고, 짜증도 나고, 모니터만 보면 숨이 막혀옵니다. 머리로는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하지만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요즘은 성질도 부려요. 다들 야근하는데도 그냥 혼자 퇴근해 버렸다가 엄청 혼나고, 오늘도 주말에 일하러 나오라고 했는데, 성질나서 여기에 와버렸어요. 회사에서 어떻게 하면 이런 답답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요?”nbsp“그렇게 답답한 원인이 뭐라고 생각해요? 첫째, 일이 내 적성에 안 맞다. 둘째, 월급 좀 주고 조건이 좋다고는 하지만,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개인 생활도 없이 일을 너무 많이 시켜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셋째, 조건도 좋고 시간도 여유로운데 상사가 왕조시대 사람처럼 너무 독선적이어서 인간적인 대우를 못 받고 자존심이 상해서 못 견디겠다.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있으면 말해보세요.”nbsp“말씀하신 세 가지가 다 합쳐져 있습니다. 전공도 안 맞고, 상사도 부하 직원을 굉장히 거칠게 다루고요. 저한텐 아직 안 그러지만 제가 좀 더 적응이 되면 그렇게 할 것 같아요. 야근도 잦고요. 세 가지가 다 해당됩니다.”nbspnbsp“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왜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니는 것 같아요? 월급이 많고 조건이 좋은 것 때문에 사람들이 불만이 있어도 계속 다니는 것 같아요?”nbsp“좀 안정적인 직장이거든요. 회사가 탄탄하니까 다니는 것 같아요.”nbsp“그러면 질문자가 이제 선택을 해야 해요. 다니면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포기하고 나오면 그만한 직장이 없었다고 계속 후회하게 될 거예요. 후회하는 게 나아요? 스트레스 받는 게 나아요?”nbsp“선택하기가 좀 힘든데요. 둘 다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아요.”nbsp“그런데 질문자에게는 지금 그 두 가지 길밖에 없잖아요.”nbsp“후회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nbsp“지금 마음이 그렇다는 거겠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100퍼센트 후회하면서 잘못 선택했다고 여길 것 같아요. 지금은 다니고 있으니까 스트레스가 무거워서 ‘차라리 후회되더라도 그만두는 게 낫겠다’라는 쪽으로 쏠려요. 그러나 질문자가 그만두고 직장을 새로 구해보니 월급도 턱없이 부족하고, 여러 가지 조건도 안 좋으면 ‘내가 호강에 겨워서 요강을 깼네. 정말 잘못 선택했다. 조금만 더 견딜 걸’ 이렇게 될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싶은데요.”nbsp“그래도 회사에서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그렇게 계속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있으면...”nbspnbsp“물론 저 같으면 그만둘 거예요. 저는 월급이 많은 걸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질문자 이야기를 들어보면 질문자는 그걸 중요시 할 것 같아요.”nbsp“네.”nbsp“그래서 제가 눈치를 보아하니 질문자는 투덜투덜하면서라도 그냥 다니는 게 나을 것 같아요.”nbsp“일단 그렇게 해보겠습니다.”nbsp“다니고 안 다니고는 자기 선택이에요. 지금은 ‘후회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만두겠다’라는 마음이 강한 것 같은데, 만약 양쪽의 마음이 비슷비슷해서 고민이 되는 것이라면 항상 현재를 고수하는 게 좋습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70쯤 되고, 다니고 싶은 마음은 30밖에 안 될 정도이거나 그 미만이라면 그만둬도 되는데, 지금 질문자 정도의 수준에서는 그냥 다니는 게 나아요. 왜냐하면 인간의 심리가 지금 좋은 것은 잘 안 보이고, 나쁜 것만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딱 그만두면 지금 좋은 게 그때 가서 새롭게 인식이 됩니다. 그러니 양쪽이 비슷비슷할 때는 항상 현재를 고수하는 게 나아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그만둬도 되는데, 지금은 그만두기 보다는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보는 기간이 조금 더 필요해 보여요.nbspnbsp저는 ‘돈도 많이 주고, 조건도 좋으니까 힘들더라도 다녀라’ 이런 조언을 하지는 않아요. 그런 조언을 하면서 제가 인생을 이렇게 살겠어요? 저는 돈 같은 것에 너무 구애받지 말고 자유롭게 살자는 주의지만, 현재 세상 사는 사람들의 처지와 질문자의 현재 상황을 고려하라는 거예요. 결혼 했어요?”nbsp“안 했습니다.”nbsp“결혼하면 이제 더 그만두기 힘들 거예요.”nbsp“그럴까봐 결혼하기도 좀 겁나요.”nbspnbsp“질문자가 직장을 그만둘 가능성이 있다면, 결혼을 하더라도 직장을 그만둔 뒤에 결혼을 해야 해요. 왜냐하면 그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에 좋은 조건의 결혼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상대 여성은 질문자가 그 직장에 다니는 것을 전제로 해서 결혼을 했기 때문에 질문자가 그 직장을 그만두면 반드시 부부 갈등이 생기거나 심하면 이혼까지 갈 수도 있어요.nbspnbsp반대로 질문자가 만약 그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결혼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져요. 그러나 그 때 결혼한 여성은 그런 어려움을 처음부터 감수하고 질문자를 선택해서 결혼한 사람이기 때문에 비교적 결혼생활을 잘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처지가 약간이라도 좋을 때 결혼을 하려고 해요. 그러면 결혼하기는 쉬울지 몰라도 결혼한 뒤에는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혼하고 나서 직장을 그만두면 굉장한 어려움이 초래돼요. 그러니 직장을 12년 더 다녀보고 도저히 못 다니겠다 싶으면, 직장을 그만둔 뒤에 결혼을 해야 행복도를 더 높일 수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직장을 조금 더 다녀보시면 좋겠습니다.nbspnbsp그리고 이왕 직장에 다닐 바에는 좋게 생각하는 게 좋아요. 세상에는 월급도 못 받는 사람도 있고, 이런저런 악조건에 처한 사람도 많은데, 잔소리 좀 듣는 게 뭐가 큰 문제예요? 이렇게 자기 조건을 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다녀야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가 있습니다. 직장을 다닐 바에야 스트레스 덜 받는 게 낫잖아요.nbspnbsp그리고 직장 다니면서 자꾸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중간에 나와 버리고 하면 잘릴 위험이 있어요. 제가 이럴 때는 어떤 권유를 하는지 아세요? 사표 내고 나오는 게 좋을까요? 잘릴 때까지 다니는 게 좋을까요?”nbsp “잘릴 때까지 다니는 게 좋아요.”nbspnbsp“예. 항상 살아보면 그래요. 질문자가 그만둘 각오가 되어 있다면, 사표 내지 말고 이렇게 자유롭게 다니고 눈치도 보지마세요. 회사에서 자를 때까지 그렇게 있으면 됩니다. 어차피 그만둘 각오를 했으니까 잘린다고 질문자가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잖아요. 오히려 그렇게 과정을 겪어보는 게 나아요. ‘말을 좀 안 듣기는 하지만 그래도 놔두는 게 낫겠다’고 회사가 판단하면 놔둘 테고, ‘안 되겠다’ 하면 그때 가서 회사가 자르겠죠. 잘리면 ‘어차피 그만두려고 했는데 그 동안 잘 다녔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오면 됩니다.nbspnbspnbsp결혼이나 회사, 인간관계가 인생의 전부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어요. 죽고 사는 것도 어느 순간 갑자기 들이닥칠 수 있는 문제이거든요. 그러나 우리 인생의 목표는 조건에 상관없이 행복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 다니든 안 다니든,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이혼을 하든 안 하든, 교통사고가 나서 신체 불구가 되든 안 되든, 내가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건이 바뀌어도 나는 내 행복을 지속할 수 있도록 관점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걸 놓치게 되면 인생이 허무해지는 거예요. 그렇게 한번 해보시죠.”nbsp“감사합니다.”nbsp처음에는 질문자가 떨면서 질문했는데, 마지막에 밝은 어조로 감사 인사를 하는 모습에 청중들은 박수를 치며 격려의 마음을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스님은 약 1시간 20분 가량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마음이 가벼워진 청년들은 스님이 강연을 마치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오후 5시 30분부터는 무교로 특설무대에서 청춘박람회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시상식에는 김제동씨가 무대에 올라 상을 수여했습니다. 수상은 5개 단체에게 돌아갔습니다.nbspnbsp▲ 청춘박람회 시상식nbspnbsp청년부채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협동조합인 ‘청년지갑트레이닝’, 아기자기한 블록으로 부스를 가장 아름답게 꾸민 ‘동네형들’, 청년 스스로가 스스로를 돕기 위한 재능나눔 운동을 벌이고 있는 ‘청년나눔큐브’,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고등학생들이 운영하고 있는 ‘평화나비’가 수상을 했습니다. 특히 ‘평화나비’를 운영하는 고등학생들은 청주에서 올라왔다고 해서 더 큰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nbspnbsp▲ 최우수상에 해당하는 취향저격상을 받은 우마미틴nbsp그리고 참가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우마미틴’이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김제동씨는 ‘우마미틴’이 중학생들의 모임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 자리에서 홍보대사를 맡아 주겠다고 하면서 홍보 멘트를 즉석에서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응원의 말도 남겨 주었습니다. nbspnbsp“우마미틴은 중학생들이 직접 만드는 미디어 팟캐스트예요. 중학생이 되면 교육감을 뽑는 투표권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자기들의 인생을 자기가 결정 할 수 있게 해줘야죠. 우마미틴,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nbsp청년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던 청춘박람회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참여한 청년단체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 청춘박람회에 참가한 청년단체들 기념 촬영nbsp올해가 제1회 청춘박람회였는데, 내년에는 또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많은 단체들이 참여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습니다.nbsp이렇게 청춘박람회가 모두 끝이 나고 잠시 후 저녁 7시부터는 서울시청광장으로 이동해 2016 청춘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청춘콘서트에서는 김제동, 법륜 스님, 박원순 시장, 노희경 작가가 행복 토크에 나섰고, 다양한 청년 뮤지션들의 신나는 공연과 함께 특별 게스트의 축하 방문도 이어져 서울시청광장은 뜨겁게 열기가 달아올랐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5.20 죽순 캐기, 토마토 모종심기 등 농사일
nbsp 안녕하세요?nbsp오늘 스님은 죽순을 캐고 삶아서 바로 먹을 수 있게 준비하는 일과 토마토 모종 심기, 파종 상자 만들기 등 농사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nbsp 아침 공양 후 통일암으로 죽순을 캐러 갔습니다. 스님은 삽으로 죽순을 밑뿌리부터 캐는 작업을 하였고, 다른 한 명은 캐낸 죽순을 옮기는 작업, 또 다른 한 명은 삶기 좋게 겉껍질을 까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nbsp nbsp nbsp죽순이 지난번 보다 더 굵었고, 또nbsp여기저기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오늘은 죽순을 많이 캐서 그동안 활동에 도움을 주신 몇몇 어르신들에게 선물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nbsp 또nbsp여러 작물들의 지지대를 해주기 위해 대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가져오기도 하였습니다. nbsp nbsp 죽순을 캐고 돌아오는 길에 간단히 칼국수로 점심 공양을 한 후 도착하자마자 죽순을 삶았습니다. 죽순을 삶는 동안 잠시 휴식을 한 후, 다 삶아진 죽순을 꺼내서 껍질을 까고 질긴 부분을 잘라내는 등 손질을 하였습니다.nbsp nbsp nbsp nbsp죽순 손질을 다한 후 오는 길에 구입한 토마토 모종을 심었습니다. 퇴비를 체에 치고 스티로폴 상자로 만든 화분에 모종을 심었습니다. 또 남은 화분에 언제든지 무엇이든 파종할 수 있게 흙을 채워 넣었습니다.nbsp nbsp nbsp nbsp마당 한 곳에는 지난번에 심은 당근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또 새롭게 겨자채를 심었는데, 이제 싹이 터서 새 잎이 조금 커져 있었습니다.nbspnbsp여기저기 새롭게 돋아나는 작물들을 보면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재미와 신기함에 절로 기운이 밝아지고 가벼워집니다. nbsp nbsp 며칠 동안 폭염주의보가 있다는 일기예보가 있어서 미리 물을 충분히 주면서 오늘 농사일을 마쳤습니다. 저녁 공양을 한 후에는 서울로 이동하였습니다. nbsp 내일은 서울시청광장에서 제1회 청춘콘서트와 청춘박람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2016.5.19 정토회 서원행자 임원단 수련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정토회의 서원행자 중 대표, 총무, 상임위원 등의 소임을 맡고 있는 임원진들과 함께 정토회의 미래에 대해 회의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정토회에서는 법사단 회의, 실무자 안거 회의, 상임위 회의, 전국대의원대회, 집행위 회의, 총무단 회의, 국장단 회의 등 다양한 회의 기구가 있어서 각 부서별로는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해오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서를 넘어서서 임원들 전체가 모여서 정토회의 미래를 구상하는 공식 회의가 아직 없습니다. 물론 결사행자대회와 전국대의원대회에서 큰 방향이 논의가 되지만 실무적인 논의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수련이 마련되었습니다.nbspnbsp새벽부터 전국에서 출발한 대중들은 화창한 봄날씨에 소풍가는 마음으로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저 멀리 희양산의 암벽과 뇌정산의 짙은 녹음이 병풍처럼 멋진 풍경으로 대중들을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 문경 정토수련원nbsp아침 10시가 되자 정토회 대표단과 총무단, 상임위원회 위원, 행정처 국장단과 부장단, 지역사무국 부장단, 저녁부 선임 팀장단, 청년국, 대중부 법사단 등 총 100여 명이 대수련장에 자리했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정토회 이기혜 대표님의 인사말씀으로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대표님은 “오늘은 정토회가 설립취지에 맞게 계속 나아가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하는 것이 무엇인지 큰 틀에서 논의가 될 것이다”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진지하게 회의에 임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하면서 회의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이 법상에 올라 정토회의 설립취지에 대해 입재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정토회는 무엇을 하고자 설립되었는지 스님의 자세한 설명이 있었습니다.nbspnbsp“198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이렇게 변화된 세상에서 앞으로 우리 사회가 갈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연구와 토론을 한 끝에 정토회가 설립되었습니다. 당시에 대안을 얘기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렴했고, 수많은 의견을 검토하고 토론을 거친 결과 저희는 네 가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nbspnbspnbsp첫째, 전지구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환경 문제’라고 봤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문명은 결국 환경 문제에 의해서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생태적 가치를 기반으로 해야 지속가능한 문명이 될 수 있지 생태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문명은 유한한 문명일 수밖에 없다고 보고 환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nbspnbsp둘째, 세계가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지구상에는 인구의 20가 절대 빈곤 선상에 놓여 있는 이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굶어서 죽는다든지, 간단한 질병으로 죽는다든지, 초등교육도 받지 못한다든지, 이런 절대 빈곤 상태에 놓인 사람들의 문제는 내 나라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야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 때 당시만 해도 다들 우리나라 문제에만 신경을 썼지 남의 나라의 고통에는 신경쓸 형편이 못 되었어요. ‘선진 강대국들이 우리를 착취해서 우리가 못 사는 것이다’ 이런 생각만 가졌는데, 이미 우리나라도 지구 전체로 보면 상위 20의 기득권층에 속하게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나라도 하위 20에 대해서 나라와 민족을 떠나서 인류적 관점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빈곤퇴치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nbspnbsp셋째, 갈등을 해결하는 평화 문제가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밥 먹고 살만 함에도 불구하고 이념적 충돌, 종교적 충돌로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남한과 북한, 중국과 대만,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의 민다나오, 스리랑카의 타밀족, 북아일랜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 전세계 40여 곳에서 끊임없이 충돌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1,2위를 다투는 가장 큰 갈등이 우리의 처지이기도 한 남북분단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평화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nbspnbspnbsp넷째, 그 당시에 제일 잘 사는 나라가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살율이 제일 높은 나라가 또한 북유럽이었어요.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데 자살율은 제일 높은 겁니다. 이런 사실을 접하면서 아무리 환경이 좋더라도 인간이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행복해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 사회를 바꾸는 운동만 했지 인간의 마음을 잘 관리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되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앞으로 마음을 잘 관리하는 것이 인류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재앙이 초래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그래서 수행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nbspnbsp수행에 대한 노하우는 불교가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기존의 불교는 용어만 수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실제로는 수행적 관점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복을 비는 것에만 치우쳐져 있던 불교의 모습은 부처님이 왕위와 재물을 버리고 출가한 정신과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복을 빈다는 것은 결국 ‘왕위를 달라’, ‘재물을 달라’, ‘인기를 달라’ 하는 얘기 아닙니까? 부처님은 그것을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처님의 이름으로 그것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이름만 불교이지 불교라고 할 수가 없는 겁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세계 불교인들이 대부분이 그렇다고도 볼 수 있어요. 그 중에 개인 몇 명은 수행적 관점을 가진 분들이 우리나라 안에도 다른 나라에도 존재할 수가 있겠죠. 그러나 불교를 믿는 대중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전혀 근접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서 이 수행을 새로운 문명의 한 요소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대중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특정한 한 사람이 위대한 수행자가 되어서 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누구나 일상 속에서 그렇게 수행하자는 것이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세상을 파악한 것이 정토회가 설립되기 전에 저희가 세상을 바라본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출발했는데, 이 때도 ‘불교’란 이름을 쓸 거냐 안 쓸 거냐의 문제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불교’란 이름을 쓰는 순간 그 틀에 갇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불교가 경전, 교리, 복을 구하는 것, 사회에는 관여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만 찾는 이런 이미지가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불교란 이름을 쓰게 되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전혀 맞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종교로 출발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불교가 아닌 것으로 출발한다면 그것은 또 도대체 무엇이냐는 문제도 제기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는 ‘종교 단체냐?’, ‘시민단체냐?’ 하고 물을 텐데, 시민단체라고 하기에는 수행이 중심인 곳이고, 종교 단체라고 하기에는 환경운동, 구호활동, 평화운동 같은 사회실천활동들이 담겨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문제의식을 갖지만 일단 새로운 불교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하는 곳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길게 설명을 할 수밖에 없게 되고, 말이 길면 오해가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종교의 한 형태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nbsp nbspnbspnbspnbsp지금 우리는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놓여 있습니다. 예전에는 종교와 철학, 인문학, 사회학, 자연과학, 정치 등이 각기 다 구분되는 사회였다면, 지금은 종교 안에서도 불교니 기독교니 내가 잘났느니 네가 잘났느니 하고 따지는 것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됐습니다. 서로 좋아서 결혼한 두 부부가 갈등을 일으켜서 원수가 되고, 자기 몸으로 낳은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엄마와 아이가 원수가 되는 이런 문제들을 과연 누가 해결해줄 수 있느냐는 겁니다.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면서 겪는 구체적인 고통들, 즉 개인적으로는 부부 간의 갈등, 부모 자식 사이의 갈등, 직장 동료 사이의 갈등, 사회적으로는 남북의 충돌, 여야의 충돌, 진보와 보수의 충돌, 노동과 자본의 충돌 등 여러 갈등을 도대체 무엇으로 해결하느냐는 겁니다. 지금 종교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과연 이런 개인적 고뇌와 사회적 고뇌들을 해결하는데 얼마나 효용성이 있느냐는 것이죠.nbspnbsp예전에는 사회적 리더십을 종교가 다 갖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주와 천체에 대한 것은 과학이 다 가져가버렸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치와 사회과학이 다 가져가버렸고, 육체의 아픔을 치료하는 것은 의학이 다 가져가버렸고, 정신적인 아픔을 치료하는 것은 정신분석학과 상담심리가 다 가져가버렸잖아요. 지금 종교가 갖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종교에 남은 것이라곤 네 가지 밖에 없어요. 첫째, 권위주의에요. 둘째, 조직이 갖고 있는 힘이에요. 셋째, 신비주의에요. 넷째, 그들이 갖고 있는 돈이에요.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다 배격하시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비굴하지 말고 당당해라’라고 하셨잖아요.nbspnbsp그런데서 우리는 만 명 중에 한 명 어쩌다가 나타나는 그런 수행자를 지향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가 다 붓다처럼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에 있어서 ‘대중주체’입니다. 이제는 더이상 스님이나 종교라는 형식과 이름을 갖고 사람을 줄세우는 문화는 없어져야 합니다. 필요에 의해서 역할이 나눠지는 것일 뿐인데, 스님, 법사, 처장, 국장 하는 역할이 지위가 되어 귄위주의로 흘러가서는 안 됩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죠. 우리들의 오랜 습관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수행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역할은 역할대로 하면서 평등성은 평등성대로 보장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행이 부족하면 역할이 차별로 가고, 평등성이 무질서로 갈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nbspnbsp먼 미래를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붓다의 길로 간다는 이런 대중주체의 길이 맞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길을 가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숫제 승려나 종교지도자라는 이름으로 대중을 확 이끌고 가는 것이 사람들을 더 많이 결집시킬 수 있고 파워도 있지 않느냐, 지금의 현실에서는 대중주체를 실현해내기가 굉장히 비효율이지 않느냐, 하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부처님도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지만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서는 다시 종교화 되었고, 이것을 다시 극복하기 위해 ‘보디사트바’란 새로운 이름을 갖고 대승불교 운동을 일으켰지만 다시 또 종교로 돌아갔죠. 대승불교도 처음에는 재가자가 중심이 되어 출발했는데, 대중들로부터 권위가 안 서니까 다시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게 됩니다. 처음에는 자기 실력을 갖고 지도자가 되었지만, 나중에는 실력만으로는 안 되니까 권위주의로 돌아간 겁니다.nbsp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도 종교지도자에 대한 권위의식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직분에 따른 역할분담을 할 뿐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겸손하되 당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계속 가져나가려면 우리가 같이 모여서 함께 수행해 나가야지, 함께 하지 않으면 이런 관점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nbspnbsp이런 꿈을 갖고 우리가 모인 겁니다. 이런 꿈이 없으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모였겠습니까? 스님들은 사찰에서 스님 생활을 오래하면 종회 의원도 하고 본사 주지도 하는 그런 꿈이 있을 수가 있는데, 여러분들처럼 이렇게 정토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면 그런 게 없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과는 다른 이러한 꿈을 갖고 출발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남편이 반대하고, 부모가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겁니다. 주위에서도 자꾸 ‘네가 그런다고 돈이 벌어지냐, 출세를 하냐, 인기가 있어지냐?’ 라고 묻잖아요. 그래서 만약 여러분들이 우리의 행복과 미래 사회에 대한 이런 원을 잃어버리게 되면, 이렇게 주위에서 문제제기하는 것들을 이겨낼 수가 없게 돼요.nbspnbsp그런데서 환경운동, 구호활동, 평화운동, 수행, 이 네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역시 ‘수행’입니다. 수행은 나머지 세 가지와 맞먹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은 이것을 ‘상구보리’와 ‘하화중생’ 두 가지로만 나누었어요. 즉 ‘하화중생’ 속에는 환경운동, 구호활동, 평화운동이 다 들어가 있는 겁니다. ‘수행을 기초로 한다’, ‘수행을 근본으로 한다’ 하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 겁니다. 그러면 수행만 하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분리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nbspnbsp그러나 정토회는 불교라는 형식을 빌리고 있기 때문에 사회 실천을 할 때마다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굶주리면 먹을 것을 주고, 아프면 치료를 해주고, 학교에 못가면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고, 독재를 하면 독재에 저항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면 전쟁을 막고, 이런 실천들은 인연 따라 할 뿐인데, 이런 모습을 보고 대중들은 ‘왜 정치에 관여하느냐’라고 시비할 수밖에 없거든요. 세상은 그런 시비를 할 수가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들마저 이런 시비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정토회의 설립취지를 모르는 겁니다. 우리의 사회 실천은 인연을 따라서 몸을 나투는 것에 불과한 겁니다. 그런데서 개개인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관점을 잘 잡아서 그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행과 전법 활동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고통이 줄어들 수 있도록 환경을 잘 만들어주는 사회실천활동도 함께 중요한 겁니다.nbspnbsp1차 만일결사를 마무리짓고 2차 만일결사를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2차 만일결사에서는 세계적인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우리가 당장 사회적인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역량이 안 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인 수행 문제에 초점을 두면서 환경운동과 구호활동, 평화운동을 해나가야 할 겁니다.nbspnbspnbsp그러면 지금 하고 있는 1차 만일결사에서 우리의 과제는 무엇일까요? 1차 만일결사에서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해결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장 국면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정체와 쇠락의 길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어요. 이 몰락을 조금 더 늦추든지, 상황을 개선해서 성장 국면으로 약간 방향을 전환하든지 해야 하는데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통일은 이런 정체 국면을 전환시키는 역할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통일은 지금까지 생각해 온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문제가 됐습니다.nbspnbsp통일은 첫째, 경제적인 성장과 직결된 문제이고, 둘째, 국제관계의 역학 변화 속에서 우리의 자주성을 확보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점점 갈등 국면으로 나아가는 형국에서 지금과 같은 분단 상태로는 아무런 전망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반 국민들은 이런 정세를 읽기가 힘듭니다. 어떤 이유로 전쟁이 안 일어난 것인지, 어떤 이유로 경제적인 붕괴가 안 일어난 것인지, 개인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그러나 국민들이 알든 모르든 예견된 위기를 막아내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보살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nbspnbsp우리가 장기적으로 보고 멀리 내다보면서 이뤄나가야 할 목표는 ‘문명 전환’이고, 이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불교중흥’, ‘정토구현’이라고 할 수 있겠죠. 반면에 우리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인연으로 단기적으로 해나가야 할 일은 ‘남북의 평화적인 통일’입니다. 이것은 통일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라 통일을 통해서 평화문제도 풀고, 경제성장도 도모하고, 정치 갈등도 풀어나가는 계기를 만들고, 이 기운을 통해서 지금까지 서양을 모방해오던 시스템에서 새로운 창조시스템으로 전환해나가는 기회도 만들어내자는 뜻입니다.nbspnbspnbsp이것이 1차 만일결사의 목표라면, 2차 만일결사가 되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대한민국의 문제에만 머물러서만 안 됩니다. 인류 전체를 보고 인류의 행복을 위한 구상을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세대에서 빨리 대한민국의 문제를 해결해줘서 다음 세대들은 세계의 문제를 갖고 정토회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세대는 통일 문제의 해결에 조금 더 집중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주위 상황도 더 이상 방치할 수가 없게 되었고, 기회도 놓쳐서는 안 되는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조금 더 깊이 있는 토론을 해봤으면 합니다.”nbsp스님이 그려준 큰 그림에 대중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고, 특히 통일 문제는 더 이상 놓칠 수 없는 기회이자 위기로 다가왔다는 얘기에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nbspnbsp이렇게 입재식을 마치고 다함께 점심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엊그제 스님과 법사님들이 경주 통일암에서 죽순을 가득 따왔는데, 부드러운 죽순이 맛있는 초고추장에 버무려져 반찬으로 나왔습니다. 스님이 “고생해서 따왔으니까 맛있게 드세요”라고 하자 대중들은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nbspnbsp점심식사 후에는 휴식 시간이 여유롭게 주어져서 문경 정토수련원 곳곳을 산책하며 꽃구경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꽃들을 보며 감탄사를 자아내기도 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nbspnbspnbspnbsp산책 시간을 뒤로 하고 오후 1시부터 본격적으로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회의 시작에 앞서 졸음도 쫓을 겸 참가자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 정토회를 대표하는 대표님들, 법당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총무님들, 행정처 국장단과 부장단, 법사단에 이르기까지 각 직급별로 앞으로 나와 한 명씩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한 명 한 명 모두 너무나 소중한 분들이기에 대중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로 환영의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nbsp▲ 자기 소개를 하고 있는 각 정토법당 총무님들nbsp참가자 소개 시간을 마치고 곧바로 스님의 기조 발제가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과제에 대해 진단한 후 정토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방향을 잡아 주었습니다. 특히 남북이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각성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를 위해 정토회가 어떤 활동들을 펼치면 좋을지 대중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대중들은 현장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았습니다. 오후 1시에 시작된 토론은 오후 6시가 다 되어서 일단락 되었습니다. 저녁 식사와 저녁 예불을 한 후 7시부터 다시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저녁 회의에서도 많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저녁 회의에서는 불교의 사회적 실천 활동에 대해 일부 대중들의 거부감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nbspnbsp스님이 전국을 순회하며 통일 강연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스님이 인생 상담만 하면 정말 좋겠는데, 왜 통일 이야기를 자꾸 하느냐?’ 하는 얘기가 심심찮게 제기 되곤 합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단호하게 입장을 얘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지금 미국이나 유럽에서 불교가 유행하는 것은 신비주의, 즉 불교를 믿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정도의 수준이지 사회적인 실천에 대한 관점이 없어요. 그리고 과거에는 훌륭한 스님들이 사회 의식이 있었다 하더라도 당시 사회는 왕조 사회였기 때문에 어떤 행동도 할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나라의 주인이 백성이 아니라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조 사회에서는 왕이 부르면 ‘네’ 하고 가서 무조건 왕을 칭송하든지, 아니면 아프다고 핑계대고 안 가든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두 가지 밖에 없었잖아요. 그런 시대에 있었던 불교를 자꾸 생각하면서 ‘불교는 이래야 한다’고 하는 얘기를 이제 더 이상 해서는 안 돼요. 우리는 지금 왕이 주인인 시대에 사는 게 아니라 국민이 주인인 시대에 살고 있단 말이에요. 우리나라 헌법에는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고 되어 있어요.nbspnbsp부처님은 왕이 주인인 시대에도 계급 차별과 여성 차별은 옳지 않다며 사회 변화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전통을 계승한 우리들이 우리가 주인인 시대에 살면서도 사회 변화를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보다 못한 것이죠. 그런데도 왕조 시대에 왕에게 복종해서 국사의 칭호를 받거나, 여기에 저항해서 죽림칠현처럼 산속에 숨어서 안 나오거나 했던, 이런 전통을 갖고 ‘지금의 불교가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전혀 불법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생각도 확 바뀌어야 해요.nbspnbspnbsp사람이 주인된 세상, 사람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제도를 바꿔야 하면 제도를 바꾸고, 이 속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잘못 되었으면 마음가짐을 바꾸고, 관계가 잘못 되었으면 관계를 개선하고, 몸이 아프면 약을 먹어서 치료하고, 이렇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죠.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모든 지혜를 다 사용해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길이 무엇이겠느냐, 이것을 찾아가는 것이 불교입니다.nbsp사회적 모순을 합리화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단박에 고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개선해야 할 목표를 향해서 점진적으로, 평화적으로, 꾸준히 나아가서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비교적 괜찮은 사회가 되면 그곳이 바로 ‘극락’입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저 멀리 타방세계나 먼 미래의 이상세계를 그렸겠어요? 옛날에는 그 고통을 없앨 역량이 안 되니까 그리워만 하거나, 죽어서 가겠다고 꿈만 꾸었는데, 지금은 우리가 주인인 시대이니까 우리가 그런 사회를 만들면 됩니다. 전쟁의 위협이 있다면 우리가 평화롭게 관계를 개선할 수가 있잖아요. 부처님이 말씀하신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개념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nbsp스님의 단호한 말씀에 대중들도 모두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진 토론에서는 각 법당의 현황에 대한 얘기를 자세히 들었습니다. 각 법당별로 앞으로 사회적인 실천활동을 더욱 늘려 나가기 위해서는 법당 운영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모든 토론을 마치고 나니 저녁 8시가 다 되었습니다. 해가 지고 가로등 불빛이 켜진 가운데, 마지막으로 오늘 회의를 마무리하는 회향식을 가졌습니다.nbspnbsp회향 법문을 통해 스님은 다시 각 법당으로 돌아가 왕성하게 활동을 해나갈 정토회 임원들을 위해 격려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nbspnbsp“3년 후인 2019년이 되면 3.1독립운동 100주년이 됩니다. 우리의 스승이신 용성조사께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독립운동을 시작한 지가 올해로 100년이 넘은 셈입니다. 용성조사께서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산 속에서 나오셔서 전국을 다니면서 민심을 살피셨고, 78년을 준비해서 시절 인연이 도래하자 3.1운동을 주선하셨습니다. 그 이후 평생 독립운동을 하셨지만 모두 실패하고, 결국 열 가지 유훈만 남기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용성조사님이 남기신 미완성의 독립을 완성하는 길은 우리가 통일 국가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에는 통일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통일로 갈 수 있는 남북 간의 징검다리라도 꼭 만들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런 우리들의 원을 오늘 다함께 가슴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이제는 수행자의 상이 달라져야 합니다. 과거 왕조 시대에 수행자들이 어쩔 수 없이 걸었던 그런 모습을 잣대로 해서 지금 이 시대의 수행자 상을 그려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지위, 권력, 돈에 집착하는 기성 종교에 희망을 걸어서도 안 됩니다.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닥칠 위기에 대비해서 대안적인 사회 모델을 만드는 것은 이제 우리들의 일입니다.nbspnbsp이것을 여러분들이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일을 한 번 해보다가 죽는다는 것은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요? 그냥 밥만 먹다가 죽는 것은 좀 재미가 없지 않아요? 조금 힘이 들긴 하지만, 이런 꿈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들이라면 정말 의기투합할만 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개인으로 보면 조금씩 부족한 면이 있다 하더라도,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정도의 헌신성을 갖고, 이 정도의 순수성을 갖고 의기투합할 만한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고 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정말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첫째, 자신이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하고, 동시에 도반들에 대해서도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셨으면 합니다.nbspnbsp그런 면에서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으면 해요. 그러나 현실에 머물지 말고 우리가 세운 원을 기필코 이루리라 하는 큰 원을 가지고 함께해 나갔으면 합니다. 넘어야 할 산이 조금 크기는 하지만 능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우리의 활동이 바깥으로 볼 때는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러나 긴 역사에서 보면 성공입니다. 3.1운동 자체는 그 당시에 실패했지만, 우리 역사에서 3.1운동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뿌리가 없는 것과 다름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활동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관계 없이 역사적으로는 성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nbspnbspnbsp세 명만 힘을 합해도 천하를 움직인다고 하는데, 우리는 오늘 100명이 힘을 합했는데 무엇을 못하겠어요? 다음에는 통일의병 1000명이 모여서 희망을 만들고, 그 다음에는 1만명이 힘을 모아낸다면 우리들도 능히 통일 대한민국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런 희망을 갖고 함께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nbsp스님의 따뜻한 격려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오늘 대중들은 스님으로부터 용기와 희망을 듬뿍 받아가는 것 같습니다.nbspnbspnbsp끝으로 사홍서원을 한 후 정토회 임원단 회의를 모두 마쳤습니다. 다함께 고행상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통일을 향한 염원을 가득 담아 “가자 통일로”를 크게 외쳤습니다.nbspnbsp대수련장을 걸어나오자 뇌정산 위로 보름달에 가까운 둥근 달이 휘영청 밝아 있었습니다. 모두들 “우와 보름달 좀 보세요” 하면서 하늘을 가리키며 기뻐했습니다. 원래 스님은 회의가 일찍 끝나면 문경 용추계곡으로 대중들을 데리고 달구경을 가려고 했는데, 회의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대중들은 뇌정산 보름달로 아쉬움을 달래며 정토수련원을 즐겁게 내려왔습니다.nbspnbsp스님은 대중들을 모두 떠나보낸 후 울산 두북으로 이동했습니다.nbsp nbsp 오늘 5월 21일 저녁 7시, 서울시청광장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청춘콘서트amp청춘박람회가 열립니다. 법륜 스님, 김제동, 박원순 서울시장, 노희경 작가가 펼치는 행복 토크, 뮤지션들의 공연, 150여 개의 청년 단체가 참여하는 박람회 등 세상을 바꾸는 즐거운 축제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nbspnbsp
2016.5.18 농사일
nbsp 안녕하세요?nbsp어제까지 이틀간 법사단 회의를 마친 스님은 오늘은 농사일을 한 후 옛 지인들을 만났습니다. nbsp 두북에서 일정을 보낼 때마다 스님은 농사 지은 상추, 고소 등을 바로 따서 아침식사를 합니다. 바로 딴 채소로 차려진 아침 밥상은 신선하기도 하고, 상큼하기도 합니다. 스님은 아침 식사를 하면서 공동체가 제대로 살려지기 위해서는 농사를 함께 지으며 살아야 한다라고 하면서 농사와 공동체의 밀접한 관련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nbsp 아침식사 후에는 텃밭의 여기저기에 퍼지고 있는 풀을 뽑고,nbsp삐쭉삐쭉 뻗치고 있는 소나무의 수형을 보면서 전정을 하기도 했습니다.nbsp또 담 위로 굵은 가지가 보이는 뽕나무의 가지를 잘라 높이를 낮추기도 했습니다. nbsp nbsp nbspnbsp 청경채는 뽑아서 김치로 담았고, 그저께 법사님들이 뽑아낸 무와 배추밭에는 다시 채소를 심기 위해 밭을 갈고 골을 만들었습니다. 오전 농사일을 마친 후에는 경주 시내로 나갔습니다. 경주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옛 지인들을 만나서 서로 안부를 나누고, 지역에서 활동하는데 따르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nbsp nbsp지인들과의 만남 후에는 통일암에 잠시 들러 계속 자라고 있는 죽순들을 캐왔습니다. 지난번 법사단 회의 때 캔 죽순과 오늘 캔 죽순은 내일 문경에서 열리는 서원행자 임원단 회의 때 먹을 수 있도록 삶아 놓았습니다.nbsp 죽순을 캐고 돌아오는 길에 망월사에 들러서 절을 지키고 있는 노보살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20대 시절에 이곳 망월사에서 방 한 칸을 빌려서 영남불교 교육원을 운영하며 청년포교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을 지나갈 때는 꼭 들러서 옛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nbsp nbsp 두북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철물점에 들러서 포도 넝굴이나 더덕 넝굴을 들어올릴 재료들을 구입하였습니다.nbsp도착하자마자 나무와 대를 연결해서 줄을 쳐서 포도, 더덕 등이 잘 타고 오를 수 있도록 했습니다. nbsp nbsp또nbsp오전에 갈아 놓은 땅에 알타리 무와 배추, 겨자채를 심었습니다.nbsp해질녁이 되자 채소와 화초에 물을 주면서 오늘 농사일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후에는 스님의 속가 누님이 다리와 허리를 다쳐서 수술 후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어서 병문안 차 병원에 들러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nbsp nbsp스님은 한 병실에 여섯 분의nbsp노인이 환자로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선 다른 환자 분들에게도 과일과 음료를 함께 나눠드리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농사일과 지인들과의 만남, 병문안을 다녀오는 등 오랜만에 편안한 하루를 보냈습니다.nbsp nbsp nbsp내일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서원행자 중 임원을 맡은 분들과 하루 종일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