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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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4.9 사해 유적과 조양 북탑과 남탑

요하문명 답사 1일째

2016.04.10. 56,522 읽음 댓글 41개

2016.4.8 (오후) 최치원 선생 문집 출판기념회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고운 최치원 선생 문집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축사를 한 후 고운국제교류사업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습니다.nbspnbsp고운 최치원 선생은 신라의 대학자이자 당나라에서 이름을 떨친 명문장가로 귀국 직후 당에서 쓴 글을 모아 헌강왕에게 바쳤던 ‘계원필경’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개인 문집으로 꼽힙니다. 얼마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최치원의 시 ‘범해’ 일부를 소개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을 정도로 중국에서 최치원에 대한 평가는 대단히 높습니다. 경주 최씨 후손들은 해마다 선생의 뜻을 기리는 행사를 열어오고 있습니다. nbspnbsp새벽 6시에 서초3동 사전투표소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를 마친 스님은 서울 정토회관에서 발우공양을 한 후 최치원 선생 문집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종로구 천도교 수운회관 대교당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수운회관 대교당nbsp스님이 수운회관에 도착하자 고운국제교류사업회 최병주 이사장님이 가장 먼저 나와 환영을 해주며 ‘현묘지도’라고 적힌 노란색 띠를 목에 걸어주었습니다. 스님도 밝게 웃으며 환대에 감사를 표했습니다.nbspnbsp▲ 고운국제교류사업회 최병주 이사장nbsp2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행사가 시작되자 주요 내빈들의 축사가 이어졌습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 이수성 전 국무총리, 이어령 전 문화체육부 장관의 축사가 있은 후 마지막 순서로 법륜 스님의 축사가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사실은 주최측으로부터 축사 요청을 받았을 때 스님은 ‘제가 설 수 없는 자리’라며 여러 차례 사양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님도 최치원 선생의 후손이다 보니 계속 사양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나오게 된 것입니다. 앞서 어르신들의 좋은 축하말씀이 있었기에 스님은 간단 명료하게 고운 최치원 선생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오늘 고운 최치원 선생님의 문집 발간과 학술대회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 날 우리가 ‘세계화’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신라 당시로 본다면 당나라 문화가 바로 세계화된 문화였습니다. 당시 당나라 문화는 중국적 전통을 기본으로 선진적인 인도문명과 서역문명을 받아들인 세계문명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치원 선생님께서는 당나라로 유학을 가셨고, 바로 그곳에서 이름을 떨치셨지요. 최치원 선생님만 그랬던 게 아니라 신라의 많은 학자들이 당나라에 가서 빈공과에 급제를 했습니다. 이렇게 최치원 선생님을 포함한 신라의 많은 학자들이 당시 세계 문화의 중심인 당나라에서 세계적인 학자로 이름을 빛냈습니다.nbspnbspnbsp그러나 그 중에서 지금도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최치원 선생님의 이름이 빛날 수 있는 이유는 최치원 선생님의 창조성 때문입니다. 창조성의 조건은 첫째, 자기중심성, 둘째, 대외문화에 대한 개방적 태도, 즉 배움, 셋째, 그 둘의 융합입니다. 그래야 창조성이 나올 수 있습니다. 당시 유학파의 대부분 사람들은 배움은 있었지만 자기중심성이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지 않습니까. 한국의 학자들 중에는 각 분야에서는 세계적 수준의 석학이 많습니다만 앞선 문명을 배우는 데만 급급하거나 혹은 그 수준에 근접했다고 하더라도 서양문명을 뛰어넘지는 못했는데 저는 그 이유가 바로 자기중심성의 결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nbsp최치원 선생님 이전에 신라로부터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쳤던 분으로는 원효 대사가 있습니다. 원효 대사는 중국에 유학을 가지도 않은, 시쳇말로 국내파임에도, 자기중심성을 가지고 중국 문명을 수용해서 새로운 이론을 창조해냈습니다. 당시 중국불교는 갖가지 종파로 발전했는데, 그것이 신라에도 물밀듯이 밀려들어와서 신라불교에 온갖 종파가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원효대사는 ‘그 종파의 갖가지 요점을 뽑아서 보니 결국은 모두 깨달음, 즉 부처가 되는 한 가지 길만 가리키고 있으니 열 가지 문호를 열어서 서로 쟁을 하지만 근본을 바라보면 쟁을 할 이유가 없다’며 화쟁사상을 세상에 내놓으셨던 것입니다. 화쟁사상은 바로 중도적 관점에서 서로 다른 것들을 융합해낸 것으로써, 원효의 글이 한국을 넘어서서 중국에까지도 널리 읽히며 존경을 받게 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nbspnbspnbsp오늘날 한국은 지난 100년간, 짧게는 50년간 서양 문물을 열심히 따라 배워서 서양의 수준에 근접한 지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럼에도 지금 한국은 모든 면에서 정체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모방, 즉 ‘따라 배우기’에만 급급해서 자기중심성을 놓쳐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최치원 선생님의 발자취를 다시 살펴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nbspnbsp지금 우리는 동양적 전통 및 국학이라는 자기중심성을 갖고 서양의 앞선 문물을 융합해서 서양이 갖는 한계를 뛰어넘어야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앞두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세계문명을 선도할 것인가, 아니면 따라만 가다가 정체될 것인가의 분기점에 서있는 것입니다.nbspnbspnbsp최치원 선생님께는 ‘당시 중국 전통의 유와 인도에서 온 불과 중국 전통의 도를 어떻게 융합할 것인가’가 과제였고, 결국 그것을 뛰어넘어 환웅과 단군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발전된 우리의 전통문화의 입장에 서서 유불선을 융합하여 ‘현묘지도’라는 새로운 길을 여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학문분야는 첫 번째가 자연과학, 두 번째가 사회과학, 세 번째가 철학, 네 번째가 종교입니다. 그런데 이 네 개의 학문분야가 각자 따로 놀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하나로 융합해낼 것인가, 특히 동양적 전통, 한국적 전통을 바탕으로 우리가 이 네 개의 학문분야를 어떻게 하나로 융합해 것인가에 주목한다면 포퓰리즘에 빠진 서양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도 있고, 지금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도 융합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nbspnbsp사실 우리는 ‘갈등’을 쉽게 ‘분열’이라고 보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원래 세상이란 다양한데nbsp이 다양한 것들을 자기 식으로만 통일하려고 하니까 분열과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융합한다면, 이것은 ‘다양성의 조화’로 승화되어 오히려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nbspnbspnbsp오늘 우리가 최치원 선생님의 문집 발간과 학술대회를 개최하면서 선생님의 뜻을 되새겨본다면, 정체되어가는 한국이 그 정체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한국이 대중예술분야에서 ‘한류’라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이유가 바로 서양 것을 배우되 우리 것을 중심에 두고 그 둘을 융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통의 무거운 짐도 벗어던지고, 서양을 모방하는 데만 급급했던 것에서도 벗어나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힘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런 힘이 대중예술분야를 넘어서서 철학, 종교, 정치, 과학 분야까지 점차 확대된다면, 우리 민족에게는 새로운 서광이 비칠 것이라고 봅니다. 감사합니다.”nbsp최치원 선생이 가졌던 창조성을 오늘날 한국 상황에 견주어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새롭게 해석해낸 것에 대해 참석자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 법륜 스님의 축사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이홍구, 이수성, 이어령nbsp오후에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를 하기로 예정된 학자들도 스님의 관점에 매우 신선해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자기중심성을 토대로 한 개방적 태도’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최치원 문집 출판을 기념하는 축하 케익 컷팅식이 있었습니다. 참석한 내빈들이 모두 앞으로 나와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했습니다.nbspnbsp▲ 케익 컷팅식nbsp마지막으로 감사패 증정이 있었습니다. 고운국제교류사업회 최병주 이사장이nbsp축사를 한 내빈들을 비롯해 한 분 한 분에게 감사패를 건네자 청중석에서는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 감사패 수여식nbsp이렇게 1부 프로그램을 마친 후 참석한 내빈들은 점심 식사를 하러 함께 이동했습니다. 오후 1시 30분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학자들의 주제 발표와 종합토론 등 국제학술대회가 2부 프로그램으로 열렸습니다. 스님은 2부 프로그램에는 참석하지 않고 어르신들, 내빈들에게 인사를 한 후 평화재단으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평화재단에서는 오후 2시부터 연이어 회의와 미팅이 계속 있었습니다. 내일은 아침 8시 비행기로 중국으로 출국해 4박 5일 간의 일정으로 조양시, 적봉시 일대의 요하 문명 유적지를 답사할 계획입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4.09. 49,225 읽음 댓글 27개

2016.4.8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 참여

▲ 서울 서초3동 사전투표소nbsp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일을 맞아 서울 서초3동 사전투표소를 방문해 귀중한 한 표를 행사했습니다.nbsp nbsp 새벽 6시, 서울 서초3동 사전투표소인 서울고등학교 강당의 문이 열렸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새벽부터 고생하는 투표소 직원들을 격려하며 신분증을 제시했습니다.nbsp nbsp 사전투표를 마치고 나와서는 정토행자들과 희망편지 구독자들을 위해 투표독려 동영상을 촬영한 후 투표인증샷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투표를 독료하는 한말씀 해달라는 부탁에 이렇게 말씀해 주었습니다.nbsp nbspnbsp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전투표일입니다. 8일과 9일 양일 간입니다. 4월 13일날 투표하기가 어려우신 분은 사전투표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투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이고 의무이기도 합니다. 꼭 투표하셔서 주권을 행사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 nbsp 투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 하는 ‘정당 투표’가 있고, 하나는 우리 지역구를 대표해 줄 개인을 선출하는 ‘후보자 투표’가 있습니다. 두 가지 투표를 잊지 마시고 바르게 투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꼭 투표합시다.”nbsp nbsp 동영상은 카카오스토리 ‘희망편지’와 페이스북 ‘희망편지’를 통해 구독자들에게 생생히 전달되었습니다.nbsp nbsp 새벽녘이라 아직 투표소가 붐비지는 않았습니다. 신분증만 제시하면 금방 투표용지가 출력이 되었고, 투표 접수부터 투표용지를 기표함에 넣는 데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정도로 아주 가볍게 투표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nbsp nbsp 한편 스님처럼 새벽 일찍 투표를 하러 온 몇몇 시민들은 스님을 보고선 깜짝 놀라하며 스님과 같이 인증샷을 찍고 싶다며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스님은 밝게 웃으며 같이 인증샷을 찍어 주었습니다.nbsp nbsp ▲ 투표인증샷을 같이 찍고 싶어하는 시민들과 함께 nbsp 사전투표를 마치고 다시 서울 정토회관으로 돌아온 스님은 서울공동체 대중들과 함께하는 발우공양에 참석했습니다.nbsp nbsp ▲ 서울공동체 발우공양 nbsp 발우공양을 마친 후에는 사전투표를 하고 온 소감을 나눠주면서, 대중들도 꼭 투표에 참여할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 nbsp “저는 오늘 아침 6시에 투표소가 문을 열자마자 사전투표를 하고 왔습니다. 여러분들도 신분증을 가져가면 가까운 투표소에서 누구나 투표할 수 있어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되어 있고, 제2항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권자이기 때문에 투표를 꼭 해야 합니다.nbsp nbsp nbsp 그런데 문제는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고, 어느 당이 잘하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겠죠. 또 많은 분들이 ‘이 놈도 저 놈도 다 싫다’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해야 합니다. 기권을 하더라도 투표장에 가서 기권을 해야 합니다.nbsp nbsp 물론 내가 좋아하는 후보자나 정당이 있으면 투표하기가 쉽죠. 그러나 좋아하는 후보와 정당이 없거나 그렇지 않으면 ‘둘 다 꼴보기 싫다’ 이럴 때는 투표를 포기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기권도 권리 행사에 속하니까 현장에 가서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nbsp nbsp nbsp 그리고 굳이 투표소까지 갔다면 이렇게 투표를 하면 좋겠습니다. 어느 당이 더 좋은지 모르겠다면 ‘어느 당이 더 나쁘냐’를 따져서 그걸 빼고 나머지 중에 하나를 찍든지, 후보들을 비교했을 때 ‘적어도 이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하고 따져서 그 사람을 빼고 나머지 중에서 찍으면 됩니다. 즉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nbsp nbsp 이어서 대중들로부터 투표에 대해 궁금한 점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대중들은 선거 당일 투표하는 것보다 사전투표를 하는 게 더 나은지, 투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물었습니다.nbsp nbsp nbsp 먼저 “당일 투표보다 사전 투표가 더 좋은가요?”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nbsp nbsp “사전투표는 아무 데서나 가까운 투표소에서 할 수 있는데, 당일 투표는 자신의 주소지에 가서 해야 합니다. 주소지가 현 거주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사전투표를 하는 것이 낫겠죠. 반대로 주소지가 현 거주지인 경우에는 투표 당일날 별다른 일이 없으면 굳이 사전투표를 할 필요는 없겠죠.”nbsp nbsp 그리고 “투표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런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 nbsp “이번 총선은 두 가지 투표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정당 투표입니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 있으면 그 정당을 찍으면 됩니다. 그러나 어느 당을 특별히 선호하는 것이 없다면 소수 정당을 찍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나라의 선거 제도가 승자 독식 시스템으로 되어 있어서 소수자의 의견이 국정에 반영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독일의 경우 정당이 득표한 수만큼의 의석을 배분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그 정당의 전국 지지율에 비슷하게끔 의원을 배정해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표라도 더 얻은 쪽만 당선이 되고 나머지의 의사는 다 소멸되도록 되어 있습니다.nbsp nbsp nbsp 특히 이번에는 여야 간의 합의가 안 되면서 정당명부제에 의한 비례대표 의석수가 더 줄었습니다. 소수자의 의견을 더 많이 받아들여야 하는데 더 안 받아들이는 쪽으로 되어 버렸어요. 그러니 진보 정당이라든지 환경 정당의 경우에는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 의견이 국정에 반영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nbsp nbsp 이럴 때 우리가 진보 성향을 갖고 있거나 환경 지향적인 사람들은 정당 투표에서만이라도 그런 지향을 가진 소수 정당을 많이 지지해줘서 3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 의석 1개를 배정 받을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특별히 선호하는 정당이 없으면 가능하면 진보 성향의 정당을 지지해 주거나, 또 우리는 환경운동을 하고 있으니까 환경운동을 하는 정당을 지지해 주면 좋겠죠.nbsp nbsp 둘째는 후보자 투표입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있으면 그 사람을 찍으면 됩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고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할 때는 이렇게 하면 됩니다. 현 정부의 국정을 지지한다면 여당 성향의 사람을 찍으면 됩니다. 그런데 올해는 공천 파동이 생기면서 여당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무소속으로도 후보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몇 곳은 여당끼리도 경쟁하는 곳이 생겼죠. 이런 곳은 자신이 여당 쪽을 지지하더라도 공천 파동에 대해 자신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투표를 하면 됩니다. nbsp nbsp nbsp 반대로 현 정부의 국정을 반대해서 국민의 힘으로 현 정부의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싶다면 야당 성향의 후보에게 투표하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야당이 3개로 분리되어 있잖아요. 이럴 때도 야당을 지지하는 표가 분산이 되어버려서 국민 지지는 야당이 더 많은데 투표 결과는 여당이 더 많이 당선되는 결과가 빚어질 수 있습니다. 현재의 정치 구조에서는 이렇게 민의가 왜곡될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nbsp nbsp 이것을 조금이라도 막으려면 야당이 각자의 당을 가지고 있더라도 선거에서는 연대를 해서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데, 현재까지 선거 연대가 안 되고 있죠. 그렇다면 국민들이 이것을 좀 조정해줘야 합니다. 그럴려면 마지막에 표를 찍을 때 당선 가능성이 제일 높은 쪽의 야당 성향 후보를 찍어주어야 합니다. 사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겁니다.nbsp nbsp 다시 정리하면, 사표가 되든지 말든지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있으면 그 정당을 찍으면 됩니다. 그러나 특별히 지지하는 정당이 없으면 가능한 소수 정당을 찍으면 좋습니다. 그리고 후보자 투표는 현재의 국정 운영에 대해 평가를 해서 그것을 반영하고 싶다면 사표가 되지 않도록 당선 가능성이 높은 쪽을 지지하는 것이 그래도 국민의 의사를 덜 왜곡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걸 헤아려서 투표를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해하셨어요?” nbsp “예.” nbsp nbsp “그러니 투표하러 가기 전에 신문 기사나 그 지역 후보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참고해서 ‘나는 현재의 국정 운영에 반대한다’라고 한다면 야권 성향의 후보 중에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찍고, 또 정당 투표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있으면 그 정당을 찍고, 없으면 가능한 소수당을 찍어서 소수자들도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양당 구조로 되어 있어서 다양한 국민의 의사를 수용하는데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다당제 구조로 가고, 소수자의 의견도 반영될 수 있는 선거법 개정과 같은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 제도 하에서도 투표를 해야 하니까 미래의 제도 개혁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의사를 지금 투표로 반영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투표 꼭 하시기 바랍니다.”nbsp nbsp 누구를 찍어야 할지 막막했는데, 스님의 얘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nbsp nbsp 서울 공동체에 상주하는 대중들은 대부분 주소지가 지방인 경우가 많아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선 “오늘 중으로 사전투표를 하러 가겠다” 며 사전투표소가 어디인지를 확인했습니다.nbsp nbsp 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 원고 교정을 보던 스님은 9시 30분이 되어 서울 정토회관을 나왔습니다. 10시 30분부터는 ‘최치원 선생 문집 출판기념회’가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열렸습니다.nbsp 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4.08. 52,626 읽음 댓글 38개

2016.4.6 희망편지, 스님의하루 구독자와 함께하는 공개방송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SNS를 통해 ‘희망편지’와 ‘스님의하루’를 읽고 있는 구독자들과 nbsp함께 공개방송을 했습니다.nbspnbsp그동안 ‘희망편지’와 ‘스님의하루’ 구독자들로부터 ‘나도 스님에게 질문을 해보고 싶다’ 는 요청이 많았습니다. SNS를 통해 스님의 법문을 읽으면서 나날이 행복해져 가고 있지만 일상 생활로 돌아와 자신의 문제에 직면하면 여전히 힘들다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죠. 또 아기를 키워야 하는 여성들, 퇴근이 늦은 직장인들, 해외에 사시는 분들 등 즉문즉설 강연장에 오지 못하는 많은 분들도 같은 요청을 자주 했습니다. 오늘은 이런 분들을 위해 화상 채팅 방식을 도입한 대화도 새롭게 시도되었습니다.nbspnbsp카카오스토리 ‘희망편지’와 카카오톡 ‘스님의하루’를 통해 전세계에서 300여 명의 구독자들이 공개방송에 참여해 질문해보고 싶다고 신청을 했습니다. 그 중 40여 명이 채택되어 정토회 별관 4층 스튜디오에 모두 모였습니다.nbspnbsp▲ 정토회 별관 4층 스튜디오nbsp참석자들은 대부분 SNS를 통해서만 스님을 만나왔던 분들이라 “오늘 법륜 스님을 가까이서 본 것이 처음이예요” 라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참석자들이 “법륜스님” 하고 환호하자 스님이 웃음을 머금고 무대로 걸어나왔습니다.nbspnbsp먼저 사회를 맡은 최현태님이 마음이 들뜨는 봄날에는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지 여쭤보며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세상은 봄으로 가득합니다. 이렇게 들뜨기 쉬운 봄날에도 수행은 해야 되는 거겠죠?”nbspnbsp“봄날에는 노세요. 무슨 수행을...”nbspnbsp“아... 그런가요? 봄날에는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지 여쭙고 싶었는데.” nbspnbsp“봄날은 밖에 나가서 봄놀이 하는 게 수행이에요. 이런 봄날에는 이렇게 답답한 공간에 앉아있을 게 아니라 밖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도 보고, 대지로부터 솟아오르는 새싹들도 보고, 봄나물도 뜯어서 맛있게 먹고, 그러면서 마음을 기쁘게 갖는 게 공부예요. 자연스럽게 봄은 봄으로서 만끽하고, 여름은 여름으로서 만끽하고, 가을은 가을로서 만끽하고, 겨울은 겨울로서 만끽하는 게 수행입니다.”nbspnbsp“저희들도 오늘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모였으니까 그것도 자연스러운 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겠죠?”nbsp“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좋은데, 그것도 지나치면 욕심인 거예요.”nbspnbsp이렇게 유쾌하게 웃는 가운데 촬영장 분위기는 벌써 후끈 달아올랐습니다.nbspnbsp참석자들은 방송 시작 전에 포스트잇으로 미리 자신의 질문을 적어서 칠판에 부착해 두었는데, 스님과 사회자가 번갈아가며 포스트잇을 무작위로 뽑는 방식으로 방송은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 방송을 시작하기 전에 받은 질문지nbsp무엇보다 이번 공개방송에서는 화상채팅 방식의 즉문즉설이 새롭게 시도되었는데요. 두 명이 화상채팅으로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일본인과 결혼해서 일본에서 아이를 낳아 살고 있는 임산부 여성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살아야 하지만 한국이 자꾸 그리워서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젊은 시절 번 돈을 아버지에게 위탁해 놓았는데 지금에 와서 아버지가 그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화상으로도 재미있게 대화가 오고가는 모습을 청중들도 아주 흥미롭게 지켜보았습니다. nbspnbsp▲ 화상 채팅으로 즉문즉설을 하고 있는 모습nbsp또 촬영장에서 즉석 질문을 받았습니다. 참석한 모든 분들이 질문을 적어서 포스트잇에 붙였지만 그 중에 6명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 중에 한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성분은 스님을 보자 “그동안 스님의 법문을 읽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질문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저는 작년에 아이 아빠와 이혼을 해서 아이와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아이는 선천적으로 심장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 아빠가 아이 안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고, 왕래도 안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이런 상황을 아이한테 어떻게 설명을 하고, 나중에 아이가 아빠를 찾으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또 어떻게 하면 아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을지 생각하니 답답합니다.”nbsp“지금 엄마는 행복한가요?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가 행복할 수 없어요.”nbsp nbsp“그동안 SNS로 스님 법문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많아서 예전보다 재밌고 행복하게 살고는 있어요.” nbspnbsp“그런데 무슨 일로 그렇게 우세요. 남편과 헤어진 게 슬퍼요?”nbspnbsp“제가 눈물이 좀 많습니다.”nbspnbsp“그럼 아이도 나중에 눈물 많은 아이가 되지요.” nbsp nbspnbsp“그 동안 저에게 위로가 되어주신 스님을 직접 만나 뵈니까 저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나요.”nbspnbsp“그럼 웃어야지 왜 울어요. 아이가 몇 살이에요?“nbsp“3살입니다.”nbsp“질문자가 행복하게 살면 아이는 저절로 행복해진다는 걸 알고는 있지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아이가 행복하기를 원한다고 말로만 하는 것과 같아요. 신체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엄마 때문입니다. 아이의 장애를 보고 엄마가 아이 앞에서 자꾸 ‘어쩌나, 어쩌나’ 하면서 근심 걱정하니까 아이의 성격이 왜곡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아이를 보고도 엄마가 ‘너는 하느님이 주신 나의 사랑이야. 너야말로 나의 인연이다.’라며 즐겁게 키우면 아이가 비록 신체에 장애가 있더라도 정신적으로는 아주 명랑하게 자랍니다.nbspnbsp가장 대표적인 예가 ‘닉 부이지치’라는 호주 사람이에요. 닉 부이지치는 두 팔, 두 다리가 없이 태어났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런 아이가 태어난 걸 보고 통곡할 때 그 엄마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이다’라고 기뻐하면서 키웠기 때문에 중증장애인인데도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며 본인도 행복하게 사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도 행복할 수 없다는 걸 명심하세요.nbspnbsp그리고 남편이 없는 게 무슨 걱정이에요? 질문자는 남편이 맘에 안 들어서 헤어졌을 거 아니에요?”nbspnbsp“행복한 가정을 보면 많이 부럽더라고요.”nbsp“그러면 성질 좀 죽이고 살지, 왜 성질을 부려서 헤어졌어요?”nbspnbspnbsp“아이 아빠와 사는 게 행복하지 않았거든요.”nbsp“행복하지 않아서 싹 정리했으면 이제부터 행복해야 되잖아요. 남편과 살 때는 같이 살아서 행복하지 않았고, 헤어진 후에는 헤어져서 행복하지 않다는 얘기 아닙니까?”nbsp“저는 아이 아빠의 모난 성격이 아이한테 해가 된다고 생각했고, 그게 아이한테 전이될까봐 걱정이 많았습니다.”nbspnbsp“남편이 모났기 때문이 아니라 질문자가 남편과 싸우기 때문에 아이한테 전이가 되는 겁니다. 아이는 엄마로부터 영향을 받는 존재예요. 지금이라도 질문자가 행복하게 살면 아이한테는 아무 문제가 안 생깁니다. 나중에 아이가 아빠는 어디 있냐고 물으면 ‘미국에 있다’거나 ‘돌아가셨다’고 하면 되지요.”nbsp“그러면 아이한테 거짓말을 하는 게 되잖아요.”nbsp“그런 거짓말은 해도 괜찮아요. 아이가 나중에 다 크면 ‘네가 걱정할까봐 거짓말 했는데, 사실 네 아빠는 살아있다’ 라고 얘기해 주면 됩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았다고 하면 아이도 좋아할 거예요. 죽었는데 살아있다고 했다가 나중에 사실은 죽었다는 걸 알게 되면 슬프겠지만 그 반대는 괜찮아요. 살아있다는 건 기쁜 일이잖아요.”nbsp“저는 아이 아빠와 같은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는 상황이에요.”nbsp“그러면 거짓말하지 말고 애가 아빠 어디 있냐고 물으면 ‘저기 있다’고 가르쳐주면 되잖아요.”nbspnbsp“저는 아이 아빠가 친자식을 외면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됩니다.”nbspnbsp“자연 세계에 있는 강아지나 소, 개나 토끼를 한번 보세요. 수컷이란 건 교미 한 번 하면 끝이에요. 새끼는 다 암컷이 키웁니다. 자연의 질서를 닮는 건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질문자만 이해가 안 된다고 할 뿐이에요.”nbspnbsp“아이가 아픈데다가 모자 가정이 정상적인 가정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제가 아이한테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nbsp“괜찮아요.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는 아이를 갖고 싶지만 결혼하기는 싫은 여성들이 정자 은행을 이용한다고 해요.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그 여성들은 질문자처럼 울면서 지낼까요? 아니에요. 아이가 아빠 찾을까봐 걱정할까요? 아니에요. 그저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기 때문에 아빠가 있건 없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또 고주몽도 아빠 없이 컸지만 나중에 한 나라의 왕이 됐잖아요. 질문자의 아이도 고주몽처럼 될지 누가 알아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런 건 걱정거리가 아닙니다.nbspnbsp그리고 이혼했더라도 아이 아빠에게 아이 양육비는 청구할 수 있잖아요. 청구해서 받을 수 있는 건 받고, 못 받으면 포기하세요. 그러나 받을 수 있는 건 계속 요청해서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질문자에게 주어진 권리니까요. 주어진 권리도 못 찾는 건 바보예요.”nbspnbsp“나중에 아이가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아빠가 그렇게 가까이 사는 데도 자기를 외면하고 살았잖아요.”nbspnbsp“상처를 안 받을 수 없지요. 아빠가 아이를 외면한 건 외면한 거니까요. 그런데 그럴 바에야 아빠가 죽었다고 거짓말하는 게 나아요. 굳이 사실대로 얘기하려면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빠는 외국에 갔다’고 거짓말했다가 그 이후에 ‘저 동네에 산다’고 얘기하세요. 아이가 묻지도 않는데 질문자가 미리 얘기하지는 말고요. 아이가 ‘그런데 왜 나는 아빠를 볼 수 없었느냐?’고 물으면 ‘엄마가 잘못해서 아빠와 헤어졌기 때문에 그렇다’고 얘기하면 되지요.”nbsp“아이가 나중에 아빠를 보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요?”nbsp“당연히 보여줘야지요. 부처님도 아이를 낳자마자 버리고 가셨다가 12년 만에 아들을 만났어요. 그 사이에 아이를 찾지도 않았습니다. 야소다라 공주가 아들한테 ‘저기 부처란 분이 네 아버지이다. 그러니 가서 상속물을 달라고 해라’라고 했어요. 그 말속에는 남편에 대한 야속한 마음이 들어있어요. ‘말도 없이 가서 나를 고생 시키더니 깨달았는지 뭐했는지 알 게 뭐냐?’ 하는 마음이었겠죠. 그래서 아들은 엄마가 시키는 대로 부처님한테 가서 인사를 하고 ‘당신의 아들 라훌라입니다. 저에게 상속물을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잠시 계시다가 옆에 있던 사리불존자에게 ‘이 아이를 출가시켜라’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 라훌라도 출가를 하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으로서는 최고의 상속물을 준 것이지요.nbspnbspnbsp물론 아이에게는 가능하면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지요. 그러나 예를 들어서 2살짜리 아이가 ‘엄마, 나 어디서 나왔어?’라고 물으면 ‘이리로 나왔어’라고 다리 사이를 가리키지 않고 ‘배꼽으로 나왔어’라고 얘기하잖아요. 우리가 그런 거짓말을 나쁜 거짓말이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그 아이의 수준을 봤을 때 달리 말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런 것처럼 ‘아빠가 미국에 있다’고 얘기해 뒀다가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사실은 엄마와 아빠가 헤어졌고, 아빠는 지금 저기 살고 계신다. 아빠한테 우리 같이 가볼까?’라고 해서 아이가 아빠를 보고 싶어 하면 남편한테 연락해서 ‘아이가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데 보낼까요?’라고 물어서 ‘싫다’고 하면 사실대로 ‘아빠가 안 보겠다고 한다. 우리 여태 아빠 없이도 잘 살아왔으니까 앞으로도 우리 둘이 잘 살자’ 라고 하면 됩니다.nbspnbsp그런데 질문자가 남편으로부터 그런 얘기를 듣고 남편을 미워하거나 슬퍼서 울거나 하면 아이까지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그런 얘기를 듣고 아무렇지도 않아야 합니다.”nbsp“그런데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nbspnbsp“그래서 질문자는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남편을 찾아가서 다시 같이 살자고 얘기해 봐요.”nbsp“저는 헤어지게 된 이유가 반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잘못한 부분이 있다고 인정을 하는데, 그 사람은 ‘쟤는 변하지 않을 사람이니까 같이 살기는 힘들 것 같다’고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고요.”nbsp“그럼 질문자가 변해서 찾아가면 되잖아요.”nbsp“그런데 제 기준에서는 ‘나도 잘못이 있고, 너도 잘못이 있으니까 우리 서로 변해 보자’ 하는 것이 되어야지, 한쪽만 변한다고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nbsp“서로 반반씩 변하자는 건 불가능한 요구예요. 그렇게 요구할 거면 애초에 같이 안 사는 게 나아요. 질문자가 ‘너는 그대로라고 하더라도 내가 100 변하겠다.’ 하는 자신이 있으면 남편한테 같이 살자고 하세요. 그게 아니라면 같이 안 사는 게 나아요. 아니면 ‘너도 변하지 말고, 나도 변하지 말고, 우리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살자’라고 하든지요. 상대한테 10분의 1이라도 변하라고 요구해도 상대는 그게 안 되는 걸 어떻게 하겠어요? 요즘 부부가 싸우는 것도 다 그것 때문이에요.nbspnbsp상대한테 요구하지 말고, 본인이 결정을 하세요. 지금 이대로 생긴대로 내가 받아들이고 살겠다면 살고, 그렇게는 못 살겠다면 헤어지면 되지, ‘너도 반만 바꿔라. 그러면 살겠다’ 라거나 ‘너만 바꾸면 살겠다’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은 ‘그게 왜 불가능해요?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바뀌어야 되는 것 아니에요?’라고 하겠지만, 사람이 바뀌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에요?nbspnbsp바뀌는 게 그렇게 쉽다면 본인부터 바뀌면 되잖아요. 질문자는 우선 자꾸 우는 것부터 바꿔보세요. 그 심정은 내가 충분히 이해하는데, 어쨌든 질문자의 마음에 스트레스가 쌓여있으니까 눈물이 자꾸 나는 거예요.nbspnbsp귀찮은 남편 떼어놓았겠다 아이 하나 데리고 재미있게 살면 되지 스트레스 받을 이유가 없잖아요. 6822825전쟁 때 애기 하나 업고, 하나는 손에 잡고, 하나는 뱃속에 있고, 피난 보따리 하나 이고 내려와서도 산 우리 할머니 세대도 있는데요. 그런데 질문자가 왜 못 살겠다는 거예요?nbspnbsp‘못 살겠다’고 생각하면 아이 없이 혼자서도 못 사는 것이고, ‘살겠다’고 생각하면 토끼도 살고 다람쥐도 사는데 왜 사람이 못 사냐 하면서 재미있게 살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그렇게 맨날 울고 살면 곱게 늙을 수가 없어요.”nbsp그제서야 울먹이던 질문자는 웃음을 보였습니다. 청중들도 밝아진 질문자를 위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그런데 질문자가 한 가지 질문이 더 있다며 다시 물었습니다. 마지막 대화에서 질문자는 자신이 그동안 왜 남편과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었는지 좀 더 본질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한 가지 더 질문이 있는데요, 제가 혼자 아이와 어렵게 살고 있는데 저 모르게 부모님이 남동생한테 많은 재산을 줬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어요. 저는 그게 너무 섭섭합니다. ‘남동생 보다는 제가 더 힘든 처지인데, 도와주시려면 저를 도와주셔야지 왜 남동생을 도와줬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남동생이 부모님의 돈을 그렇게 함부로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고, 거기에 응한 부모님도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남동생과는 거의 말을 안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nbsp“질문자는 진짜 웃기는 사람이네요. 부모님이 자기 돈을 누구에게 주든 그건 부모님의 자유잖아요. 또 자기 부모님한테 돈을 얻어내는 것도 남동생의 재주이고요. 자기도 필요하면 가서 달라고 해보고 안 주면 그만이지 왜 남을 미워해요?”nbspnbsp“부모님이 그렇게 힘들게 모은 재산을 자식이 그렇게 가져가면 안 되는 거잖아요.”nbspnbsp“그런 생각을 하니까 질문자가 남편과 못사는 겁니다. 질문자는 ‘너는 남자니까 어떻게 해라’, ‘너는 아이 아빠니까 어떻게 해라, ’너는 부모니까 어떻게 해라’라고 하는데, 그렇게 정해진 건 이 세상에 없습니다. 부모님이 자기 돈을 길 가는 사람에게 주든, 절에 보시를 하든, 남동생을 주든, 그건 부모님의 자유예요. 질문자는 왜 남의 돈에 그렇게 욕심을 내요? 질문자한테나 남동생이지, 부모님 입장에서는 자기 아들한테 준 거예요.”nbspnbsp“돈을 조금은 줄 수 있겠지만 너무 많은 돈을 주셨어요.”nbsp“많이 주든 적게 주든 질문자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nbspnbsp“저는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부모님이 힘들게 번 돈인데 내가 이렇게 하면 안 되겠지. 나중에 정 힘들면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라고 했던 건데, 남동생은 마치 맡긴 돈을 찾아가듯이 그렇게 쉽게 받아갔다는 게 저는 너무 이해가 안 갑니다.”nbsp“자기 엄마 돈을 아들이 가져간다는데 질문자가 무슨 상관이에요. 저야말로 질문자가 도대체 이해가 안 됩니다.nbspnbsp질문자가 엄마를 걱정해서 돈을 안 가져갔다고 해서 남동생도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게 바로 독재에요, 사람은 다 달라요. 질문자는 그런 거고, 남동생은 그렇지 않은 거예요.”nbsp“그런데 제 기준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nbspnbsp“질문자 기준에서는 그러면 안 되는 게 맞는데,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가 괴로운 거예요. 질문자는 항상 자기 기준에 의해서 남편을 보고, 부모를 보고, 남동생을 보니까 남편과도 원수가 되고, 부모와도 원수가 되고, 남동생과도 원수가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는 나중에 아이하고도 원수가 됩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든 신경 쓰지 마세요.nbspnbsp남편도 남편 좋을 대로 사는 거고, 부모님이야 돈을 어떻게 쓰든 당신들 알아서 쓰는 거고, 남동생이야 돈을 어떻게 얻어서 쓰든 그건 자기 재주껏 사는 거고, 질문자는 자기 아이 데리고 알아서 살면 되는 거예요.”nbspnbsp“그렇지만 섭섭합니다. 저도 딸인데, 제가 더 힘든데, 왜 저를 안 도와주시고 남동생을 도와주시나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nbspnbsp“질문자는 몇 살이에요?”nbsp“39살입니다.”nbsp“39살이나 된 딸을 부모가 왜 생각해야 돼요? 짐승들도 보면, 새끼가 젖을 뗀 후에는 다 스스로 알아서 삽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돈을 어디에 쓰든 그건 부모님의 자유입니다. 지금 질문자는 자기 인생도 똑바로 안 살면서 끊임없이 남의 인생에 간섭하고 있어요. 질문자부터 독립을 하세요. 지금 질문자는 유아적인 사고를 하고 있어요. 7살짜리 애가 3살짜리 애를 키우려니까 애는 먹겠어요.nbspnbspnbsp지금 질문자는 덩치만 컸지 사고방식이 그렇다는 거예요. 어른다운 사고를 해야지요. 질문자는 지금 아이 엄마잖아요. 본인이 엄마면서 왜 자꾸 엄마를 찾아요? 부모한테는 ‘나한테 돈 안 달라는 것만 해도 고맙다. 안 돌아가신 것만 해도 고맙다’라고 생각해야지, 부모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건 벌 받을 일입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아이 하나 데리고 재밌게 잘 사세요. 이 좋은 세상에서 그렇게 못 살 이유가 없잖아요.”nbsp“예, 감사합니다.”nbsp본인의 문제점을 발견한 질문자는 한층 더 밝은 얼굴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뜨거운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방송 촬영이라 평소 강연장에서와는 달리 한 명당 10분 내외로 아주 간명하게 문답이 오갔습니다. 여덟 명의 질문을 받고도 2시간 밖에 시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마칠 시간이 되자 사회자가 마무리 말씀을 부탁했습니다. 스님은 2시간 동안의 문답을 총정리하면서 왜 우리가 불행한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nbspnbsp“사는 게 힘들다고 생각하면 끝이 없어요. ‘시어머니 모시고 살기 힘들다’, ‘결혼해서 살기 힘들다’, ‘애 둘 키우기 힘들다’, ‘직장 다니기 힘들다’ 라고 생각하면 이 세상에는 힘들고 괴로운 조건밖에 없어요. 그런데 반대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래도 부모님이 살아계셔서 행복하다’, ‘다른 사람은 결혼도 못 했는데 나는 결혼해서 행복하다’, ‘애가 둘이나 있어서 행복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늘 행복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옛날 여성들은 직장에 다니고 싶어도 다닐 권리가 없었잖아요. 지금도 사우디 같은 데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직장 다닐 권리가 있잖아요. 또 옛날에는 애 엄마가 되면 직장을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남자들과 똑같이 애도 키우면서 직장도 다닐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또 옛날에는 남자가 죽으면 여자 혼자 살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지금은 남편과 헤어지거나 남편이 죽어도 여자 혼자 살림 꾸리며 살 수 있잖아요. 재혼하고 싶으면 재혼할 수도 있고요. 그러니 좋게 보면 다 좋은 조건밖에 없어요.nbspnbsp‘이래서 불행하다’ 그러면 세상만사가 다 불행할 조건이고, ‘이래서 행복하다’ 그러면 모든 게 행복할 조건입니다. ‘이래서 불행하다’ 라고 하면서 불행의 조건을 찾는 걸 부정적 사고라고 합니다. ‘이래서 행복하다’ 라고 하면서 행복의 조건을 찾는 걸 긍정적 사고라고 합니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조건 때문이 아니라 부정적 사고 때문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부정적 사고를 긍정적 사고로 바꿔야 해요. 매사를 ‘아, 그래서 좋은 일이다’ 이렇게 여겨보세요. ‘오늘 저녁을 못 먹어서 힘들다’ 라고 하지 말고 ‘저녁을 안 먹었으니 다이어트에 참 좋겠다’ 라고 해 보세요. 있는 거 안 먹으려면 힘든데 없으니까 안 먹기가 쉽잖아요.nbspnbsp이렇게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그러면 늘 입가에 미소를 띌 수밖에 없습니다. ‘늙어서 힘들다’ 라고 하지 마세요. 늙어 보면 좋은 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늙으면 공부 안 해도 되고, 결혼 안 해도 되고, 애 안 키워도 되고, 직장 안 다녀도 되고, 버스 타면 자리도 양보받고 좋은 점이 많아요. 실제로는 늙었는데 자꾸 젊은 애들처럼 뛰어다니려고 하니까 ‘늙어서 나무에도 못 올라가고, 뛰지도 못 한다’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늙은 게 한스러워집니다.nbspnbspnbsp그러니 지금부터는 주어진 조건의 좋은 점만 자꾸 보세요. 긍정적 사고를 하세요.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 수가 있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행복하지 못할 조건 때문에 불행한 게 아니고, 조건은 다 똑같은데 본인이 부정적 사고를 하니까 괴로워지는 거예요. 긍정적 사고를 하면 행복해지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긍정적 사고로 봄날처럼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nbsp스님의 얘기만 듣고 있는데도 벌써 입가에 미소가 돌고 얼굴이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늘 스님으로부터 긍정적 사고가 무엇인지 잘 배웠으니 이 기운을 듬뿍 받아서 ‘무조건 행복하기’를 다짐해 봅니다.nbspnbsp공개 방송을 마치고 참석자들 모두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을 가까이에서 뵌 것이 처음인 분이 많아 모두들 어쩔 줄 몰라하며 기뻐했습니다.nbspnbsp▲ 공개방송 참석자들과 함께nbsp촬영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울산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모종을 심는 등 농사일을 한 후 다시 서울로 올라갈 예정입니다.nbspnbsp오늘 촬영한 공개방송은 유튜브, 카카오TV, 카카오스토리 희망편지, 카카오톡 스님의하루, 희망편지 앱,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다음주에 하나씩 공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nbspnbsp※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4.07. 143,777 읽음 댓글 54개

2016.4.4 (저녁) 방송, 연극, 문화, 예술인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전에 문경 봉암사에서 열렸던 서암대종사 열반 13주기 추모법회에 이이서 저녁 7시부터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을 주제로nbsp방송ㆍ연극ㆍ연예ㆍ작가ㆍ문화 예술인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길벗 모임 주관으로 열렸습니다. 길벗은 정토회에서 마음 공부를 하고 있는nbsp방송ㆍ연극ㆍ연예ㆍ작가ㆍ문화 예술인들의 모임입니다.nbspnbsp여의도 한국화재보험협회 1층 강당 앞에서는 몇몇 방송인들이 강연 포스터를 들고 반갑게 참석자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수고하는 봉사자들의 손을 잡아주며 격려를 한 후 강연장에 들어섰습니다.nbspnbsp▲ 여의도 한국화재보험협회 1층 강당nbsp먼저 길벗 대표 소임을 맡고 있는 노희경 작가님이 무대에 올라와 참석자들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하였습니다. nbspnbsp▲ 길벗 대표 노희경 작가nbsp“오늘 강연장으로 오면서 무척 설레었어요.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많이 참석했는데, 동료들이 그동안 했던 고민들을 쪽팔려 하지 않고, 민망해하지 않고, 숨기지 않고, 마음껏 터놓는 자리로 오늘 강연을 마련했습니다. 어떤 질문이 나와도 함께 경청해보면 좋겠습니다. 좋은 스승이 있다는 것은 참 기쁜 일입니다. 좋은 스승님에게 좋은 말씀 듣고 봄날처럼 화사한 마음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nbspTV에서 자주 보았던 인기 연예인, 배우, 방송국 PD, 작가 등 많은 분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편안한 분위기에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큰 박수로 환영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인생의 겨울을 따뜻한 봄날로 전환하는 것이 수행이라고 봄날씨를 언급하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요즘 같이 이렇게 좋은 봄날에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시간을 좀 내서 서울 근교라도 가서 자연 속에 있어보세요. 그래서 봄에 피어오르는 식물들을 한번 보세요. 굉장히 작고 여린 새싹이 대지를 뚫고 올라오지 않습니까? 그 힘이 굉장한 겁니다. 대나무를 집 가까이에 심어놓으면 죽순이 구들을 뚫고 올라온다고 하잖아요. 그런 생명력을 느껴보는 게 필요합니다. 또 그런 생명력 강한 나물을 먹으면 우리 건강에도 아주 좋대요. 영양가를 분석해 보면 다른 채소와 별 차이는 없지만 그 기운이 다르다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시골에서는 봄에 맨 처음 올라오는 부추는 사위도 안 준다고 하잖아요. 그만큼 봄나물은 고기 부럽지 않은 음식입니다.nbspnbspnbsp그러니 여러분도 그런 나물을 먹고, 대지도 밟고, 손으로 흙도 만져보세요. 도시 사람들은 거름에서 냄새가 난다고 약간 거북할지 몰라도 시골에서 그런 냄새를 오래 맡다보면 그것도 구수하게 느껴져요. 거름 냄새가 나야 농사짓는 것 같거든요. 그렇게 자기가 씨앗 심고 거름 뿌린 데서 새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기분이 굉장히 좋아집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그런 것을 느껴봤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더 잘살 거라고,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무실에만 앉아서 태양도 못 보고 전깃불 밑에서만 삽니까. 요즘 별 본 적 있어요? 밤하늘에 달이 있는지도 모르지요? 봄이니까 여유를 가져보세요. 집에서 키운 예쁘게 다듬은 인공 꽃 말고 자연에서 제멋대로 피어있는 꽃들을 보는 그런 여유 말이에요.nbspnbspnbsp이제 즉문즉설 시간을 가질 텐데, 이런 봄날에도 여러분들은 저한테 ‘괴롭다’는 얘기를 하겠지요? 인생의 겨울을 따뜻한 봄날로 전환하는 게 수행입니다. 여러분은 수행이란 경전을 외고, 밥 굶고, 고기 안 먹고, 결혼도 안 하는 ‘금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욕망이 지나쳐서 화근이 될 때 그것을 멈추는 게 수행이지, 뭘 하지 말라는 것이 수행이 아닙니다. 괴로운 마음을 행복한 마음으로 전환시키는 것, 그것이 수행입니다.nbspnbsp우리가 오늘 대화하는 목적은, 우리들 각자 마음의 어려움을 나누면서 ‘이게 정말 어려워 할 일인가, 아닌가?’를 살피고, 어려워하지 않아도 될 일임을 발견해서, 같은 조건에서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자는 겁니다.”nbsp스님의 환한 웃음에 청중들도 마음이 활짝 열린 상태가 되었습니다. 2시간 남짓한 동안 5명이 스님께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방송 쪽 관계자들이여서 그 쪽 업무와 관련된 질문이 많았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가정과 직장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드라마 담당 PD님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아마도 많은 직장인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스님은 우리가 돈을 버는데 정신이 팔려서 무엇을 놓치고 사는지 일깨워 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는 드라마 담당 프로듀서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방송 일을 시작한지는 10년이 넘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다섯 살짜리 아이를 둔 가장이기도 하고요. 제가 출퇴근시간이 불규칙한 직업에 종사하다 보니 가정에 충실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시간이 남더라도 가족과 함께 있기보다는 새로운 일을 계획하거나 일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마음이 더 편합니다. 그러니 가족들은 불만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정과 일 사이에 균형을 잘 맞출 수 있을까요?”nbsp“가정과 일 사이에서 어떤 일을 더 중요시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된 때가 언제입니까?”nbsp“오늘 같이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일찍 귀가해서 아이와 아내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한데, ‘일을 해야 할 것 같다’거나 ‘커리어를 더 쌓아놔야 한다’는 강박도 있고, 솔직히 ‘드라마를 연출하는 일은 생존율이 길지 않다’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래서 쉽사리 귀가하지 못합니다.”nbspnbspnbsp“질문자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면 새로운 걸 개발할 수 있을까요?”nbspnbsp“아니오, 어려울 것 같습니다.”nbspnbsp“예, 오히려 가족과 함께 있어서 마음이 편안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일과 가정은 서로 모순되는 게 아닙니다.nbspnbsp예를 들어, 오늘 가족하고 보낼 것이냐? 아니면 스님 강연을 들을 것이냐? 둘 중에서 가족하고 보내는 게 좋겠다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되지만 번뇌가 많아서 스님 강연을 듣는 게 좋겠다 판단이 되면 아내한테 전화해서 ‘오늘 내가 일찍 귀가하려고 했는데, 요즘 내가 좀 불안해서 스님 강연을 듣고 도움을 받아야겠다. 강연 듣고 귀가 하겠다’라고 얘기하면 됩니다. 질문자의 아내 입장에서도 남편이 강연을 듣는 게 자신한테도 좋은 일이니까요. 아내한테는 불이익이 되고 질문자만 이익인 것도 아니잖아요. 설령 아내가 이해를 못 해 주더라도 질문자 스스로 강연을 듣는 게 내 심리안정에 도움이 되고 그건 아내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강연을 들으면 됩니다. 이렇게 질문자 혼자 결정하지 말고, 아내한테 이야기를 하세요. 아내가 이해를 못 하면 질문자가 조금 인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nbspnbsp그러니까 아내의 요구를 들어주는 방법이 있고, 아내의 불평을 듣는 방법이 있어요. 요구를 들어주면 당연히 아내는 아무 말을 하지 않겠지요. 중요한 것은 불평을 듣는 경우인데, 그 때는 질문자가 그 불평에 너무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됩니다. 질문자 스스로 떳떳하면 ‘내가 강연을 듣고 좋아지면 당신의 오해는 한 달이나 두 달 후에 풀어지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스스로 떳떳하면 상대가 오해하더라도 두려움은 안 생깁니다.nbspnbsp여러분들은 상대가 오해하면 빨리 설득해서 오해를 풀려고 조급하지요? 그건 본인의 심리가 불안하기 때문인데, 본인이 안정되면 상대의 오해를 지켜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아내가 오해하는 것을 알아도 본인의 문제를 해결할 동안에는 그 오해를 좀 받으면서 갈 길을 가는 거예요.nbspnbsp그런 관점을 가지면 가정과 일은 절대 상충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질문자가 지금 직장생활에 충실하려고 하는 이유가 뭡니까?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잖아요. 그런데 아내가 ‘나는 당신이 돈 버는 것도 싫고, 유명해지는 것도 싫다. 가정에 충실하면 좋겠다’라고 요구한다면 질문자는 아내의 요구를 더 중요시해야 합니다. 질문자는 강연을 듣거나 일을 열심히 해서 성공하는 게 가정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내는 정작 그런 것 필요 없다는데도 계속 자기 생각만 고집한다면, 어느 날 귀가했을 때 아내가 떠나버리고 집에 아무도 없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nbspnbsp제가 한 20년 전에 부부 열 쌍을 모아서 상담한 일이 있었어요. 먼저 남편들만 모아서 ‘아내가 당신한테 제일 원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더니 다섯 명이 ‘돈’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아내가 어떻게 할 때 당신이 제일 위축되느냐?’라고 물었더니 ‘돈을 못 벌 때’라고 대답했어요. 반대로 아내들에게 ‘당신은 남편이 어떻게 할 때 제일 위축되느냐?’라고 물었더니 ‘아이 앞에서 질책할 때’라는 겁니다. 요즘은 그렇게 간 큰 남자가 별로 없지만 옛날 우리 아버지 세대만 하더라도 애들 앞에서 아내에게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애들한테 엄마는 하늘인데, 애들 앞에서 자신을 깔아뭉개버릴 때 아내들은 자신을 굉장히 하찮은 존재로 느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엄마들은 아이들 앞에서 존중받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남편들 중에 이런 아내들 마음을 인식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또 아내들은 남편이 돈 벌어오는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게 첫 번째는 아니었습니다. 돈보다는 존중을 중요시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입장이 서로 다른 거예요.nbspnbspnbsp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만 어느 정도로 서로 다르냐 하면, 제가 아는 여자분 중에 서울대학교 출신으로 대기업 다니는 남편과 사는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나한테 상담을 신청했는데 들어보니 이혼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저는 비오는 날 커피숍 창가에 앉아서 내리는 비를 보며 커피 한 잔 마시고 음악 듣는 게 좋아요. 그래서 제가 여러 번 남편한테 얘기했지만 남편은 청승맞게 뭐하는 짓이냐고 비오는 날 왜 밖에 나가냐고 그냥 집에서 커피 마시라고 해요.’라는 겁니다. 그런데 밖에서 보면 그 남편은 학벌 좋고, 직장 좋고, 가정적이어서 집에도 일찍 들어오는 사람인데, 여자분이 그런 남편과 못 살겠다고 하니 시댁은 물론이고 친정집에서도 ‘미쳤다. 네가 호강에 받쳐서 요강깨는 소리를 한다.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디 있느냐?’며 자기를 비난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답답해서 못 살겠다는 거예요. 결국 여자분은 온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혼한 뒤에 한 남자를 사귀었는데, 그 남자는 나이가 여자분 보다 열 살 이상 많고, 직업도 불분명한 사람이었어요. 그렇지만 그 여자분은 그 남자랑 비 오는 날 커피숍에서 커피 마시는 것이 통한다는 이유로 사귄 거예요. 어떻게 이런 것을 윤리·도덕적으로만 설명할 수 있겠어요.nbspnbsp또 제가 미국의 어느 주에 법회를 갔다가 어떤 의사 집에서 하룻밤 묵게 됐어요. 그 댁 남편은 외국인 의사이고 부인은 65세의 한국인이었어요. 그 댁 부인이 저한테 ‘스님 아니면 제가 어떻게 이 마음을 이야기하겠습니까. 저는 남편이 의사라 집도 크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고, 무엇보다도 남편이 제게 잘해 줍니다. 남이 봤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저는 가슴이 답답합니다. 저에게 소원이 있다면 죽기 전에 한국 영감과 6개월만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거예요.nbspnbspnbsp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세요? 아마 안 될 거예요. 외국인과 결혼생활을 하면서 서로 말은 주고받겠지만 정서적 교감이 안 되니까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분이 먹고살기 어려웠으면 정서적 교감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여유가 있다 보니 그런 것도 생각하게 됐을 거예요. 우리의 행복은 정서적인 것, 감정적인 것이거든요 정서적인 교감이 안 되니까 사는 게 답답했을 거예요. 무슨 문제라고 할 만한 게 있어야 남한테 가서도 ‘남편이 이런저런 능력이 없어서 힘들다’는 하소연이라도 하고 상대로부터 위로라도 받을 텐데, 질문자의 속마음을 남한테 얘기하면 ‘미쳤다’ 소리만 들을 것 같으니 스님한테 하소연을 한 거예요.nbspnbsp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성향이 다양하기 때문에 ‘사람은 다 이럴 거다’라고 일률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의 아내가 ‘집에 일찍 들어오고 아이와도 좀 놀아주라’고 요구하면 질문자가 거기에 맞추는 게 좋습니다. 직장만 너무 신경 쓰지 말고요.nbspnbsp그리고 질문자가 이러다간 직장에 정말 문제가 생기겠다 싶으면 아내한테 ‘나도 가족과 함께 하고 싶은데, 내가 맡은 일에 집중을 안 하면 회사에서 잘릴 위험이 있다. 그러니 당신이 조금 힘들더라도 내가 직장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달라’ 하고 의논을 하세요. 그럼 아내가 당연히 이해할 거 아니겠어요. 그러면 아내가 ‘아쉽지만 당신 사정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래도 주말에는 조금 시간을 내주라.’라고 하면 질문자가 받아들이면 되지요. 이렇게 서로 대화를 통해 조정해야 합니다. 대개 여자들은 남자가 의논 안 하고 일에만 집중하면 나중에 대놓고 ‘내가 좋냐, 직장이 좋냐? 양자택일하라’라고 합니다. 사실 아내와 직장은 비교할 일이 아닌데도 사람 마음이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nbspnbspnbsp그러니 질문자는 아내와 의논을 하세요. 만약 질문자가 ‘그런 걸 왜 아내와 의논하느냐’고 생각한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돈을 벌어다 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삶에 대해 서로 의논하는 게 부부이고, 그게 부부의 사랑입니다. 그렇다고 질문자가 아내한테 가서 자기 걱정을 계속 토로해서 아내 머리를 아프게 하라는 건 아닙니다. 아내가 걱정할까봐 말을 안 하는 것이 사랑은 아니에요. 서로 소통하는 게 사랑입니다.nbspnbsp예를 들어 가장이 직장을 그만뒀다면 자녀들을 모아놓고 ‘아빠가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 그러니 아빠가 새 직장을 구할 때까지 너희 용돈을 조금 줄여서 절약하면 좋겠다. 어떠냐.’라고 말하는 게 사랑입니다. 아이들이 어려서 뭘 모르니까 불평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이들을 가족구성원이 되게 하는 방법이고, 아이가 어른이 되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려고 하니까 서울역 앞에 노숙자가 되는 겁니다.nbspnbsp그러니까 질문자는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또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편안하게 아내와 대화하세요. 질문자가 직장에 충실해야겠다 싶으면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또 아내가 돈보다는 가정을 우선시 해달라면 직장에 대해서 너무 미련을 갖지 말고요. 질문자가 PD로서 성공하려는 건 질문자의 욕망일 뿐, 삶에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nbspnbsp지금 국회의원 출마한 사람들은 국회의원 되는 게 엄청난 일인 양 그러지만 옆에서 우리가 볼 때는 누가 당선되든 말든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초선한 사람은 재선에 목숨을 걸고, 2선하면 3선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우리가 볼 때는 그게 중요한 문제도 아니잖아요. 3선하면 뭐하고, 4선하면 뭐하겠어요. 그러니까 욕망을 탁 놓은 상태에서 최선을 다한 뒤에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면 그 역할을 하고, 안 되면 그만이고. 이래야 하는데 거기에 목숨을 걸고 살잖아요.nbspnbspnbsp그런데 인생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그렇게 살면 긴장하고 괴로워하다가 인생이 끝나요. 소중한 자기 아이와 재밌게 손잡고 놀던 추억 하나 못 만들고 말이에요. 세월호로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죽은 뒤에 더 슬퍼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부모들은 악착같이 돈 벌어서 애들 공부시키는 데만 신경 썼지, 애하고 밥 한 끼 따뜻하게 먹고, 손잡고 놀러가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거예요. 악착같이 돈 버는 게 아이를 위하는 것인 줄 알고 그랬던 건데, 지나 보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잖아요. 어릴 때 뭘 먹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엄마, 아빠와 쌓은 추억이 더 중요한 겁니다. 그렇다고 꼭 비싼 놀이시설에 데리고 간 것만 추억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오히려 엄마 아빠와 같이 고생한 건 더 좋은 추억이 됩니다. 산에 갔다가 길을 잃었는데 같이 의논해서 길을 찾아 내려왔다는 게 더 좋은 추억이 될 수도 있어요.”nbsp“네, 감사합니다.” nbsp“질문자는 일이 없어도 약간 초조, 불안하다고 했는데, 그건 약간 정신질환이에요. ‘정신질환’이라고 했다고 너무 나쁘게 듣지 마세요. 감기 같은 거예요. 병원에 가서 의사와 얘기해 보세요. 그게 긴장의 문제라면 질문자가 긴장을 풀어야 하고, 호르몬의 문제라면 약으로 금방 해결됩니다.nbsp술 마시면 약간 마음이 들뜨고, 없던 용기도 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지요? 그게 왜 그럴까요? 물질의 영향 때문입니다. 잠이 안 올 때 수면제를 먹으면 잠이 오는 것과 같은 거예요. 그런 것처럼 질문자의 몸에서 어떤 물질이 분비되면 불안심리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 건 자기가 결심하고 마음을 다진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간단하게 진료하고 그것을 중화시키는 물질, 약을 투여하면 금방 안정이 될 수 있는 겁니다.nbspnbsp그리고 그런 불안증은 봄과 가을, 즉 계절 변화기에 더 쉽게 많이 생깁니다. 그런 문제로 병원에 가는 걸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볼 때는 병원에 갈 수준이 아니더라도 가서 체크해 보고 괜찮다면 더 좋고, 초기증상이라고 진단이 나오면 처방을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금방 좋아지는데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고 지내다가 병을 키웁니다. 감기가 심해지면 폐렴이 될 수도 있으니까 감기는 초기에 잡는 게 좋은 것과 같은 원리예요.nbspnbspnbsp질문자는 아까 일이 없는데도 집에 가려면 불안하고, 직장에 있기는 뭐하다고 했는데, 그건 제가 봤을 때 이미 병증에 들어간 수준입니다. 그러니 ‘내가 일 때문에 이렇다’ 라고 꼭 생각하지 마세요. 몸에서 그런 반응이 오는 건데도 그걸 모르니까 질문자가 일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 한번 체크를 해 보세요.”nbspnbsp“네, 감사합니다.”nbspnbsp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하다가 정작 그 돈을 벌어서 쌓고자 했던 가족들과의 소중한 추억은 잃어버리게 된다는 말씀은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병원 진료에 대한 조언까지 듣고 난 질문자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답변을 마치고 나니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참석자들이 인기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방송인들이라는 점을 헤아리며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강조한 후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어떤 상황에 처하든, 어떤 조건에 처하든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어릴 때 성추행을 당했다고, 동성을 좋아한다고, 얼굴이 검다고, 다리가 하나 없다고 불행할 이유는 없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다 행복할 권리가 있고, 실제로 행복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 자꾸 ‘나는 이래서 불행하다’고 불행할 이유를 찾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누가 저한테 불행하다고 말하면 ‘그렇게 불행하고 싶니? 그렇다면 불행해라.’라고 하는 겁니다. ‘불행하고 싶다’고 정해 놓고 그 이유를 찾는 사람한테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nbspnbsp그렇다면 반대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행복하다’고 정해 놓고 행복할 이유를 찾아보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불행해야 할 이유만큼이나 행복해야 할 이유도 똑같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작품을 써야 하니까, 연기를 해야 하니까’ 힘들다고 하지만 똑같이 ‘작품을 써야 하니까, 연기를 해야 하니까’ 행복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nbspnbsp그런데 그냥 작품을 쓰고 연기를 하면 되지, 왜 잘 썼는지, 잘 했는지까지 여러분이 신경을 씁니까. 그건 독자나 시청자가 결정할 문제잖아요. 스스로 ‘나는 연기를 잘 해야 해’ 한다고 잘하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법문 잘 해야겠다’ 라고 결심한다고 잘 하게 될까요? 여러분들이 ‘스님, 오늘 법문 잘 하더라, 못 하더라’ 하고 판단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니까 제가 거기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지요. 제가 거기에 구애를 받으면, 즉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에 대해서 자꾸 신경 쓰면 저는 여러분의 노예가 됩니다. 제가 왜 여러분의 노예로 삽니까? 저는 제 인생의 주인으로 살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도 각자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사세요.nbspnbsp여러분의 직업이 인기에 민감한 직업이라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그런데 작가든 배우든 누구나 다 자기가 좋아서 그 길을 선택한 거잖아요. 다들 열심히 하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인기라는 건 원래 영원한 게 아닌 일장춘몽이에요. 1년 열두 달 하는 해수욕장이 어디 있나요. 여름에 반짝하고 마는 거지요. 그래도 그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것처럼 여러분들도 인기가 있는 기간을 딱 3년으로만 잡으세요. 그 후에도 인기가 유지되면 재수 없어서 그런 줄 알고요.nbspnbspnbsp그 다음부터는 즐기세요. 거기에 매달리지도 말고요. 그리고 감사하세요. ‘3년이 지났는데도 여태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세요.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내고,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기면서 살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행복하게 살아보세요. 감사합니다.”nbspnbsp스님의 축복과 같은 격려 말씀에 방송문화예술인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강연장이 혼잡스러워질 것을 우려해 인기 연예인들은 스님께 인사만 하고 곧바로 강연장을 빠져나갔고, 강연을 준비한 정토회 방송문화예술인들의 모임 ‘길벗’ 식구들만 남아서 스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방송, 문화, 예술을 통해 행복을 널리 전파하는 사람들이 되어주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 방송, 연극, 문화, 예술인들을 위한 마음공부 모임nbsp‘길벗’ 봉사자들과 함께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길벗 대표 소임을 맡고 있는 노희경 작가님을 격려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밤 10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4.07. 86,828 읽음 댓글 25개

2016.4.4 (오전) 서암대종사 열반 13주기 추모법회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서암대종사 열반 13주기를 맞이하여 봉암사에서 열린 추모법회에 참석한 후 저녁에는 여의도에서 방송문화예술인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오늘은 서암대종사의 열반 13주기 추모법회가 있는 날입니다. 오전 9시 30분에 봉암사에 도착한 스님은 가장 먼저 서암대종사의 부도탑을 참배했습니다. 봉암사 경내로 들어가기 전 오른쪽으로 난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가면 한적한 곳에 부도탑과 탑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nbspnbspnbsp서암대종사는 법륜 스님이 정토회의 고문으로 모셨던 큰스님이십니다. 젊은 시절 불교계의 현실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법륜 스님은 1980년대 미국 LA의 작은 사찰에서 서암큰스님을 만납니다. 한국 불교의 문제점에 대해 하소연을 털어놓으니 큰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nbsp“여보게, 어떤 한 사람이 논두렁 밑에 조용히 앉아서 그 마음을 스스로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바로 중이요, 그곳이 바로 절이지. 그리고 그것이 불교라네.”nbsp이 말씀은 법륜 스님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불교라는 것은 그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인데 불교를 말하면서도 눈은 밖을 향해있던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지금껏 불교를 개혁한다고 했는데 이제 보니 불교 아닌 것을 불교라고 착각하고 개혁하려 했음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이때부터 법륜 스님의 삶과 불교 운동은 큰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싸우는 데 에너지를 쏟기 보다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먼저 실천하고 불교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nbspnbsp▲ 서암 큰스님의 영정nbsp또 서암 큰스님은 겉치레에 연연하지 않고 한평생 문중도, 자기 절도 없이 수행자로만 사셨습니다. 어디를 가시든 언제나 통일호 기차나 버스를 타고 다니셨고, 어쩌다 새마을호 표를 끊어드리려 하면 마다하며 꼭 통일호를 타고 가겠다 하셨다고 합니다. 이유를 여쭈어보면 “통일호 타는 노인에게는 승차비를 할인해 준다. 통일호 의자는 딱딱해서 참선하기에 좋다”라며 아주 단호하셨다고 하는유명한 일화도 있습니다.nbspnbsp또 봉암사와 가은 버스터미널은 20리가 넘는 거리인데 큰스님은 늘 그 길을 걸어다니셨습니다. 어쩌다 선방 수좌들이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들어오다가 큰스님이 앞에 가시면 지나칠 수도 없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내려서 걸어갔다 합니다. 또 대중이든 신도든 음료수를 마시는 것을 보면 “왜 맑은 물 놔두고 썩은 물을 돈 주고 사 마시나?” 하셨고, “공부하는 사람은 차 달여 마시는 것도 엉뚱한 짓”이라고 질책하셨다고 합니다. 쓸데없는 일에 욕심 안 부리고 공부에만 전념하면 저절로 수행이 된다는 것을 큰스님께서는 늘 생활 속에서 깨우쳐주셨습니다.nbspnbsp법륜 스님도 항상 해외에 가실 때는 저가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운동화도 10여 년이 넘도록 신고, 1만 5천원 짜리 시계를 10년 이상 차고 다니는데, 아마도 이런 큰스님의 소박한 삶이 스님에게도 많은 귀감이 되었을 것입니다.nbspnbsp2003년 3월 29일, 세수 90세의 나이로 봉암사에서 입적하실 때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라고 남긴 열반송은 검소하고 진솔한 삶을 그대로 보여주어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nbspnbsp오늘 서암대종사 열반 13주기를 맞아 스님은 부도탑 앞에 삼배를 한 후 큰스님의 검소한 삶과 깨달음의 말씀을 다시 한번 가슴에 되새겼습니다. nbspnbsp▲ 서암대종사 부도탑nbsp부도탑 참배를 마치고 나서는 조실채에 들러 수좌 스님인 적명 스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오늘 열반 13주기를 맞이해 정토출판에서 새로 출간한 서암큰스님의 법어집 3권 ‘그대 안의 부처를 보라’ 책을 건넸습니다.nbspnbsp▲ 서암대종사 열반 13주기에 맞춰 오늘 출간된 법어집 ‘그대 안의 부처를 보라’.nbsp일찍 도착한 덕분에 추모법회가 시작할 때까지 시간 여유가 생겼습니다. 먼저 위패가 모셔져 있는 대웅보전을 참배한 후 왼쪽에 있는 조사전, 금색전을 차례로 참배했습니다. 또 대웅전 앞마당에는 9세기 통일신라 때 세워진 삼층석탑이 적절한 균형과 비례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삼층석탑 뒤로는 안개 사이로 희양산의 기암괴석이 모습을 드러내 멋진 풍광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봉암사 삼층석탑과 희양산nbsp이어서 스님은 봉암사 뒤쪽으로 아주 좋은 계곡이 있다며 산책을 가보자 했습니다. 계곡물이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바닥이 투명하게 보였습니다.nbspnbspnbsp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조금 올라가니 산 자락 곳곳에 진달래가 가득 피어있는 곳이 나타났습니다. 스님은 “아이고, 예뻐라” 감탄사를 연발하며 진달래를 구경했습니다.nbspnbspnbsp진달래 꽃구경을 실컷 한 후 산을 내려오면서 스님은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깊은 산속에서 살면 세상 걱정이 뭐 있겠어. 세상이 온갖 가지로 변해도 전혀 모르고 살 것 아니야. 그래서 옛날에도 선각자들은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 이렇게 산속에서 고요히 정진하고 있으면 존경받을 수가 있을 텐데, 그렇다고 암울한 시대를 가만히 보고만 있자니 양심이 허락하지 않고, 또 사회를 변화시켜보자니 그 힘이 너무 미약하고...”nbsp스님의 얘기를 듣다보니 그래도 우리들에게는 시대적 과제인 통일이 선조들이 처했던 조건에 비해서는 더 나은 것이 아닌가 싶어 용기가 생기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추모법회가 곧 시작되려고 하는 찰나 남방 가사를 하고 다니시는 것으로 유명한 도성 큰스님을 만났습니다. 도성 큰스님은 한국 남방 불교의 승왕으로 추대받는 분이신데 1972년에 태국 승단에서 정식 계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남방 가사를 수하고 위빠사나 수행에 매진해오신 분입니다. 올해로 세납이 98세라고 하지만 아주 정정해 보이셨습니다. 스님은 도성 큰스님과 잠시 차담을 나눈 후 큰스님을 부축하고 추모법회가 열리는 대웅보전에 들어섰습니다. nbspnbsp▲ 한국 남방불교의 상징인 도성 큰스님과 봉암사 적명 수좌스님nbsp서암 큰스님을 위한 제사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천도재와는 달리 관음 시식이 아닌 화엄 시식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nbsp문중을 대표해서 수좌 스님들이 먼저 잔을 올린 후 이어서 곳곳에서 참석한 스님들과 신도님들이 잔을 올렸습니다. 죽비 삼성으로 간결하게 추모법회를 마친 후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봉암사를 나왔습니다.nbspnbsp▲ 서암대종사 열반 13주기 추모제nbsp저녁에 서울에서 방송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예정되어 있어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nbspnbsp서울로 향하는 길에는 봄꽃 구경을 하기 위해 바로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일부러 선유동 계곡과 용추 계곡 쪽을 거쳐서 올라갔습니다. 곳곳에 노랗게 핀 개나리, 붉게 물든 진달래가 눈을 즐겁게 했습니다.nbspnbsp※nbsp법륜 스님의 인생의 전환기를 마련해준 정신적 스승, 서암큰스님의 법어집 제3권이 출간되었습니다. 자비롭고 명쾌하게 공부 길로 이끌어주시는 선지식의 가르침 지금 인터넷서점에서 만나보세요.nbspnbsp

2016.04.06. 42,185 읽음 댓글 24개

2016.4.3 청년대학생 경주역사기행 2일째(2) 즉문즉설 개인고민편

nbsp청년대학생 경주역사기행의 2일째 날이 밝았습니다. 아침 일찍 동해 바닷가로 가서 ‘대왕암’과 ‘감은사지’를 참배한 참배한 청년대학생들은 마지막으로 불국사 사찰 순례를 끝으로 경주역사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역사기행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12시 30분부터는 약 2시간 동안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원래는 점심 식사 후 반월성과 첨성대를 둘러보고 그곳에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 아쉽지만 실내에서 강연이 이뤄졌습니다.nbspnbsp강연장을 가득 메운 400여 명의 청년대학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통일과 역사’를 주제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다면, 오늘은 ‘개인 고민’을 주제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강연 전 점심 시간에 질문이 있는 사람은 종이에 미리 질문을 적어 내었습니다. 그 중 스님이 제비 뽑기 방식으로 하나씩 뽑으면서 대화가 오갔습니다.nbspnbsp▲ 질문자 사전 신청 코너nbsp총 여덟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 두 명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먼저 첫 번째로 질문한 여학생은 상대를 이해하지 않고 오만하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싫은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자신이 경험한 세계만을 바탕으로 확신을 가지고 오만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싫습니다. 그 싫어함이 트라우마가 될 정도여서 고민입니다. 각자가 모두 다른 경험을 하고 살아왔는데 상대방이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왜 이해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nbspnbsp“렌즈에 붉은 색을 약간 넣은 안경을 만들어서 쓰고 이 천장을 보면 붉게 보이겠죠. 파란색을 넣어 만든 안경을 쓰고 벽을 보면 파랗게 보이겠죠. 안경을 쓴 사람이 볼 때는 ‘천정이 파랗다’, ‘천정이 붉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렇게 느낄 수 있어요. 붉은 색을 넣은 안경을 낀 사람은 ‘아니, 붉은 걸 저 사람은 어떻게 파랗다고 하느냐’라고 하지만 파란 안경을 낀 사람은 ‘파란 걸 파랗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릴 한다’ 해서 갈등을 일으킵니다.nbspnbspnbsp이처럼 붉게 보이거나 파랗게 보이는 것은 붉은 안경이나 파란 안경을 끼고 있어서 생긴 문제입니다. 이 안경과 같은 것이 ‘업식’이에요. 그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그 사람은 확신에 차서 ‘천정이 붉다’ 혹은 ‘천정이 파랗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예요.nbspnbsp지금 질문자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라고 하는 것도 자기 확신이에요. 이런 걸 ‘피장파장’이라고 해요. 질문자도 자기 확신에 차서 단죄를 하잖아요. ‘어떻게 네가 확신을 가질 수 있느냐?’라는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nbspnbsp이건 질문자만 그런 게 아니고, 그 사람만 그런 것도 아니고, 우리 모든 인간이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어요.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이 있다는 안경을 끼고 있는 셈이에요. 우리가 볼 때는 ‘어디에 뭐가 있냐? 아무것도 없는데’ 이러지만, 그 사람이 느끼기에는 하느님의 존재가 늘 자기 마음속에 작동을 하니까 ‘이렇게 느낄 수 있는데 너는 왜 이걸 못 느끼냐?’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nbspnbsp그래서 이런 논쟁은 아무리 해봐야 소용이 없어요. 어떤 사람이 자기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면 ‘아, 저 사람은 저런 확신을 가지고 있구나’ 이렇게 그냥 이해하면 돼요. 그건 옳다고도 할 수 없고 그르다고도 할 수 없어요. 그냥 ‘저 사람은 저런 믿음을 갖고 있구나,’ ‘저 사람은 저런 생각을 갖고 있구나,’ ‘저 사람은 저런 사상을 갖고 있구나’ 하는 것이 객관적 진실이에요. ‘벽이 파랗다’라고 하면 ‘저 사람 눈에는 파랗게 보이는구나’ 하고 이해하면 돼요. ‘그건 파란 색깔이야’라고 하면 ‘그게 어떻게 파랗지?’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아, 저 사람 눈에는 파랗게 보이는구나’하고 이해하는 거예요. 이것만이 진실이에요. 빨갛다고 하면 ‘아, 저 사람 눈에는 빨갛게 보이는구나’ 하는 거예요.nbspnbsp그러면 진짜는 어떤 색깔일까요? 진짜가 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진짜를 알려면 안경을 벗어야 하는데, 안경을 벗었을 때 희게 보인다고 ‘하얀 색이 진짜다’ 이렇게 말할 수도 없어요. 우리 모두가 다 자기의 업식을 통해서 세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짜가 뭐냐?’ 이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 서로 다르구나’ 이것만이 진실이에요. 한 사람은 빨갛다 하고 한 사람은 파랗다 할 때 안경을 벗고 ‘희구나’ 해야 둘이 서로 통하는 게 아니라 ‘아, 저 사람 눈에는 파랗게 보이는구나. 그런데 내 눈에는 붉게 보이네’ 하고 아는 게 중요합니다.nbspnbsp그렇게 되면 이제 ‘아, 네 눈에는 파랗게 보이냐? 그런데 내 눈에는 희게 보이네’ 이렇게 대화가 이어지겠죠. 대화를 하다 보면 ‘우리가 안경을 껴서 그런가? 안경을 한번 벗어보자’ 이렇게 함께 벗어보고 ‘아, 하얗구나’ 이렇게 합의를 볼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합의를 안 봐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내가 화를 벌컥벌컥 잘 낸다면 화를 안 내야만 둘이 잘 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화를 내도 ‘저 사람 때문에 화가 났다’라고 하면 싸우게 되지만, 화가 벌컥 나도 ‘아이고, 내 까르마가 또 작동하네’ 그러면서 금방 ‘여보. 내가 또 성질냈지? 미안해. 내가 성질이 더럽잖아’ 이렇게만 해줘도 둘이 살 수는 있어요.nbspnbsp화를 내고도 살 수는 있어요. 생각이 달라도 살 수는 있어요. 상대가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질문자가 그걸 용납 못 한다는 것도 자기 확신이에요.”nbsp“감사합니다.”nbspnbsp“만약 ‘우리 남편은 고집이 너무 세’ 라고 말하면 자기도 고집이 세다는 이야기예요. 이 말 이해하시겠어요?”nbsp“예.”nbsp“상대에게 ‘너는 고집이 너무 세’라고 말할 때는 내가 그 고집을 꺾으려 하기 때문에 상대의 고집이 세다고 내가 느끼는 거예요. 남편이 뭐라고 할 때 ‘응, 그래요, 그래요’ 이렇게 내 고집이 없으면 상대가 고집 있는 게 나에게 아무 장벽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상대를 고집 세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때 자기를 돌아봐야 합니다. 나도 똑같이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요.”nbsp질문한 학생이 큰 목소리로 대답하고 활짝 웃자 청년들도 격려의 박수를 함께 보내주었습니다. 청년들은 ‘피장파장’ 이라는 표현에 박장대소를 하며 스님의 답변에 공감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이번에는 대학생이 일어나 질문을 했습니다. 어제 저녁 강연에서 스님은 대한민국이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창조력을 가져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면 창조력이 생길 수 있는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여학생은 스님의 답변에 아주 만족해 하면서 특별히 대학생 참가자들을 위해 격려 말씀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nbspnbsp“전국에서 대학생들이 함께 온 여행인 만큼 혹시 대학생들에게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nbsp“할 이야기가 없어요. 자기 인생 자기가 알아서 살면 되죠, 하하. 어떤 사람은 일률적으로 ‘대학생은 이래야 한다’, ‘학생은 이래야 한다’ 라고 하지만 정답은 없습니다. 다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돼요, 알았죠?”nbsp“네.”nbspnbsp“그냥 살고 싶은 대로 사세요. 살아 있는 생명이니까 살고 싶은 대로 살되, 남을 때리거나 죽이면 안 돼요. 이익을 추구하는 건 좋지만 남에게 손해 끼치면 안 됩니다. 쾌락을 즐기는 건 좋지만 남을 괴롭히면 안 돼요. 남을 괴롭히면서 자기 쾌락을 즐기면 안 된다는 말이에요. 말은 뭐든지 해도 좋지만 남을 괴롭히는 말을 해서는 안 돼요. 이게 살아가는 최소한의 기준이에요.nbspnbsp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 훔치거나 빼앗아서는 안 된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안 된다. 욕설과 거짓말은 안 된다, 이것 빼고는 남이 뭐라 그러든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또 남이 무슨 짓을 하든 앞서 말한 게 아니거든 관여하지 마세요. 남편이라고 관여하고 자식이라고 관여하고 그러지 마세요.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어요.nbspnbsp그런 속에서 조율해보면 내가 내 마음대로 사는 게 나한테 유리할 수도 있지만 불리할 수도 있어요. 이런 걸 살아가면서 경험해봐야 해요. ‘아, 이건 하고 싶지만 하면 나한테 손해다’ 하면 안 해야 하고, ‘이건 하기 싫지만 하는 게 나한테 유리하다’ 그러면 해야 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린애처럼 ‘하기 싫은데 어떻게 해요?’ ‘하고 싶은 걸 왜 못하게 해요?’ 이래요. 그러면 스님이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이러죠. 그러면 자기 손해니까요. 그건 어린애들이 하는 이야기예요. 그러니 우리는 감정대로만 살 수 없고 어느 정도 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해요.nbspnbsp이처럼 일정한 자기의 원칙이 있어야 해요. ‘내가 내 마음대로 사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 이렇게 말할 수가 없어요. 그 원칙은 크게는 방금 전 예로 든 다섯 가지예요. 작게는 그 속에서 또 자기의 사회적인 조건과 처지를 좀 고려해야 해요. 그런데 이걸 너무 신경쓰다 보면 노이로제에 걸립니다. 자기 인생이 없고 세상의 눈치만 보며 살게 돼요. 그러니 자유롭게 생활하세요.nbspnbsp다만 대학생들은 지금 하는 공부가 재미있는지를 우선 점검해 보세요. 재미가 없거든 빨리 학교를 그만둬야 해요. 억지로 할 필요가 없어요.nbspnbspnbsp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관습이 대학 안 나오면 어디 가서 명함도 도저히 내밀 수가 없다고 한다면 빨리 졸업을 해버려야 해요. 하고 싶은 공부를 해야 창조력이 생기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면 안 생겨요. 그런데 간판 때문에 공부가 꼭 필요하다면 대충대충 하고 빨리빨리 졸업해서 간판만 만들고 치우는 게 좋아요. 저는 간판 같은 건 별로 중요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치워버린 거예요. 학문이라는 것은 자기가 궁금해서 해야 성과가 나지, 억지로 하는 건 성과가 안 나요. 그러면 박사학위를 따더라도 따는 동안에 너무너무 힘들고 딴 뒤에도 별로 써먹을 일이 없어요. 그러니 어차피 해야 한다면 재미를 찾으세요. 재미있다고 자기한테 자꾸 세뇌를 하세요.nbspnbsp공부도 해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술도 마셔야 하는데 어느 걸 해야 할지 모르겠죠? 그건 괜찮아요. 공부하는 사람을 사귀어서 술 마시면서 학문 토론하면 세 가지가 다 되잖아요.nbspnbspnbsp그걸 뭐 어렵게만 생각해요? ‘나는 너 좋아, 너는 나 좋아’ 이런 이야기를 해야만 연애가 아니에요. 우주의 원리가 어떻고 이런 걸 둘이서 토론하는 것도 연애예요.nbsp정토 건설을 어떻게 할 건지 밤새도록 토론하면 그것도 연애예요. ‘술을 마시느냐, 안 마시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술을 마시고 뭘 하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그러나 취하도록 마셔서는 안 돼요. 농사꾼이 농사짓다가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일하는 걸 갖고 ‘술 마셨다’ 이렇게 말하면 안 돼요. 그 사람은 그 노동을 하기 위한 에너지원으로 술을 마신 거지, 우리처럼 쾌락을 즐기려고 마신 술이 아니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학창생활을 하면 재미가 있지 않을까 해요.nbsp또 연애를 해도 너무 심각하게는 하지 마세요. 심각하게 연애하니 첫사랑을 못 잊어서 죽는다고 난리잖아요. 서로 좋아하면 좋지만 상대가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싫다고 상대가 떠나주면 또 다른 남자 다른 여자를 만나면 돼요. 계속 만나면 좋겠지만, 싫다는데 그걸 어떡하겠어요.nbspnbspnbsp방법이 없잖아요. 자기 생각만 자꾸 고집하고 자기 감정에만 너무 집착하면 인생이 피곤하고 괴로워집니다.”nbsp“감사합니다.”nbsp질문한 여학생은 활짝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의 법문이 점점 무르익어 갈수록 청년대학생들의 마음도 활짝 열려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분위기가 한층 깊어진 모습을 보고선 활짝 웃으면서 “누가 나와서 노래 한번 불러 보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대여섯 명이 번쩍 손을 들었습니다. 그 중 세 명이 무대로 나와 노래 실력을 뽐냈습니다.nbspnbsp한 남학생은 “스님의 법문을 듣다 보니 너무 기분이 좋아져서 노래 한곡 부르고 싶습니다”라며 발라드곡 한 곡을 열창했습니다. 강연장은 순간 열기가 달아올랐고, 앉아 있던 청년대학생들은 법문을 들은 기쁨을 노래로 표현하는 친구에게 뜨거운 공감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nbspnbspnbsp▲ 법문을 들은 기쁨을 노래로 표현하는 청년nbsp여덟 명의 질문에 모두 답하고 나니 벌써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청년들은 더 많은 법문을 듣고 싶어했지만 서울까지 올라가야 하는 참가자들도 있어 아쉽지만 강연을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청년들이 좀 더 행복하고 자유로워지고 사회에 유용한 일들을 했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씀을 덧붙였습니다.nbspnbsp“너무 우울하게 살지 마세요. 공부를 해야 한다면 ‘공부하는 게 재미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하기 싫으면 집어치워버려요. 알겠죠?”nbsp“네.”nbsp“너무 부모한테 의지해서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말고요. 이렇게 조금 가볍고 행복하게 살고, 이것저것 다 별 볼 일 없으면 정토회로 오세요.nbspnbspnbsp정토회에 오면 참 좋아요. 사회 민주화를 위한 운동도 하고, 조국통일을 위한 운동도 하고, 인도나 필리핀에 가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도 합니다. 이런 일은 직장생활 하면서 해도 좋고, 공무원 하면서 해도 좋아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다 필요해요. 앞으로 새로운 나라가 되려면 국정원도 제대로 돼야 하니까 거기에도 근무해야 하고, 군인도 제대로 돼야 하고, 경찰도 있어야 하고, 여러 가지 공무원들이 있어야 해요. 교수도 있어야 하고요. 그러니 다 버리고 절에 들어오라는 게 아니에요. 자기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열심히 해야 해요.nbsp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세요. 정치인보다는 청소부가 더 필요하고, 식당 주방장이 더 필요해요. 그런 사람이 있어야 우리가 밥도 먹고 이렇게 살잖아요. 그러니 직업을 너무 따지지 말고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세요.nbspnbsp그래도 살기 싫다 하면 제발 자살하지 말고, 자살할 목숨을 저한테 주면 어떨까요? 저한테 주면 아주 잘 쓸 수 있어요. 죽고 싶은 사람은 스님한테 와요. ‘오갈 곳 없으면 절로 간다’ 이렇게 조금 가볍게 생각하고,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고 안 되면 절로 오세요. nbspnbspnbsp이렇게 한쪽에 빠져나갈 구멍이 있으니까 가볍게 생각하세요. 아까 봤죠? 사람이 많이 모이니까 노래 잘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노래든 그림이든 여러분 누구나 한 가지 재능, 한 가지 기술은 다 가지고 있어요. 그걸 잘 모아서 우리가 잘 쓰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어요. ‘꼭 불교 믿어야 된다’ 이런 건 없어요. 어릴 때부터 교회 다녔으면 그냥 다녀도 상관없고, 종교가 싫으면 종교가 없어도 돼요. 정토회는 종교활동 하자고 모인 건 아니에요. ‘좀 행복하게 살자. 자유롭게 살자. 사회에 좀 유용한 인간이 되자. 우리가 조금 힘을 모아서 유의미한 일들을 해보자’ 이런 취지예요.nbspnbspnbsp이 좋은 봄날에 좀 더 가벼운 마음이 됐으면 합니다. 다음에 이런 모임이 또 있으면 많이 참여하세요.”nbsp“네”nbsp스님의 격려에 청년대학생들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환호와 박수는 스님이 강연장을 나갈 때까지 오랫동안 계속 되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오니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원래 오늘은 찾아온 손님들과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사기행 안내 때문에 손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어서 저녁을 먹고 23 시간 동안만이라도 벚꽃과 진달래가 가득 핀 곳을 찾아가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nbsp비가 내리고 있긴 했지만 “산 전체에 진달래가 핀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며 손님들도 아주 좋아했습니다.nbspnbsp손님들을 떠나보내고 스님은 곧바로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스님의 은법 스승이신 서암대종사님의 열반 13주기 추모제가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봉암사에서 열리는 추모제에 참석한 후 저녁에는 서울로 올라가 방송문화예술인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4.06. 74,685 읽음 댓글 36개

2016.4.3 청년대학생 경주역사기행 2일째(1) 대왕암, 감은사지, 불국사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경주역사기행 2일째를 맞이하여 오전에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 불국사를 차례로 안내한 후 오후에는 청년대학생들의 개인 고민에 대해 상담해주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새벽 6시 30분에 경주에서 문무대왕릉으로 출발했습니다. 문무대왕릉은 경주시 양북면 앞바다에 있습니다. 바닷가에 도착한 청년대학생들은 눈 앞에 펼쳐진 바다를 보자 환호를 했습니다. 어제는 벚꽃 구경, 오늘은 바다 구경, 청년대학생들은 연일 자연과 마주하는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nbspnbsp▲ 문무대왕릉nbsp어제 하루 종일 스님으로부터 통일과 역사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늘 아침 문무대왕의 무덤 앞에 당도한 청년대학생들은 먼저 눈을 감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발원문’을 낭독했습니다.nbspnbspnbsp“잠시 헤어진 시간은 70년이지만 우리 핏줄 속에 면면이 이어져 온 신시 개천 6천 년의 역사 속에서 찬란한 민족 문화를 꽃피웠던 웅대한 그 기상을 민족의 평화와 통일로 되살리고자 합니다. 청년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미래의 통일코리아로 거듭나게 하소서. 선조들의 민족혼을 등불로 삼아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길을 밝혀 한 걸음 한 걸음 서로 의지하며 함께 나아가게 하소서.”nbspnbspnbsp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대학생들이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대왕의 무덤 앞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nbspnbsp이어서 스님이 문무대왕릉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미리 진행측에서 문무대왕릉을 위에서 찍은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공유해 놓아서 대중들은 그 사진을 보며 스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nbspnbsp“저기 보이는 강이 대종천입니다. 대종천이 바다와 만나는 이곳에 바위섬이 하나 있는데 이 바위섬에 문무대왕의 유골을 묻었어요. 저 바위를 ‘대왕암’이라고 부릅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저 바위를 대왕암이라고 불렀고, 문무대왕의 수중능이라고 익히 알려져 있었습니다.nbspnbspnbsp문무대왕은 661년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660년에 백제가 멸망했는데 그때까지는 태종무열왕이 집권을 했고, 백제가 멸망하고 이듬해에 태종무열왕이 죽고, 첫째 아들 법민 태자가 왕위에 올라서 문무왕이 되었습니다. 문무왕은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당나라와 8년 간 전쟁을 한 끝에 676년에 당나라 군대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통일국가를 만들었습니다. 681년에 돌아가셨으니까 해수로는 21년 간 왕위에 있었고 실제로는 통일이 되자마자 돌아가신 택이에요. 돌아가실 때 유훈을 이렇게 남겼다고 해요.nbspnbsp‘우리 민족이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전쟁을 해서 백성들이 늘 불안하고 삶이 고달팠다. 이제 삼국이 하나로 통일이 되어서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들도 편안해졌다. 그렇지만 아직도 바다 건너에는 왜구가 있어서 늘 우리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내가 죽어서 동해바다 용이 되어 왜구의 침략을 막겠다. 그러니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그 유골을 동해 바다에 묻어다오. 그리고 장례 절차는 아주 간소하게 해라. 공연히 장례 절차를 복잡하게 한다고 해서 영혼이 좋은 곳에 가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녹을 낭비하지 말고 장례 절차를 아주 간소하게 하고 무덤 같은 것도 만들지 말고 바다에 유골을 묻어다오.’nbspnbsp문무대왕이 이런 신앙을 갖게 된 것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삼국통일의 과정에서 당나라와 전쟁을 했을 때 도저히 승리가 불가능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잖아요. 이것은 사람의 힘보다는 부처님과 호국 선신의 도움으로 막아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이후 불교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강해진 거에요. 그래서 불교식으로 자신을 화장해 달라고 한 겁니다. 그리고 태풍이 두 번이나 일어나서 당나라 군대가 수장되었기 때문에 용왕에 대한 신앙도 깊어진 거에요. 그래서 자기 스스로 용왕이 되어서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겁니다. nbspnbsp앞에서 보면 바위가 두쪽으로 나뉜 것 같은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바위가 십자 모양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큰 바위를 십자 모양으로 파서 수로를 낸 겁니다. 그래서 물길이 동서남북에서 다 들어갈 수 있게 했고, 가운데에는 다시 연못을 동그랗게 팠어요. 거기에 큰 돌을 하나 얹어서 눌러 놓았습니다.nbspnbspnbsp사진으로 보면 손으로 들 수 있을 것처럼 작아 보이지만 길이가 3.6m 폭이 1.9m, 두께가 0.7m 가 되는 큰 돌입니다. 발굴할 때 그 돌을 기중기로 들어올렸는데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해요. 원래는 그곳에 유골이나 유골함을 넣어야 맞겠죠. 왜냐하면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사리탑과 양식이 비슷하기 때문이에요. 인도의 사리탑도 사리를 모시는 탑에 사람이 들어가는 문이 동서남북으로 다 있거든요. 그것처럼 문무대왕의 무덤도 사리탑처럼 물길이 동서남북으로 들어가게 만든 겁니다. nbspnbspnbsp문무왕의 다음 왕이 신문왕입니다. 저기 산이 하나 보이죠? 어느날 신문왕이 저 산 위에서 보니까 움직이는 바위섬이 하나 떠내려오는 거에요. 바위섬 위에 대나무가 있었는데 낮이 되면 두 개가 되었다가 밤이 되면 합해서 하나가 되는 겁니다. 그것을 기이하게 생각해서 그 대나무를 잘라 피리를 만들었는데 그게 ‘만파식적’입니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 피리를 불면 파도도 잠자고 모든 세상이 평화로워졌다고 해요. 신문왕이 바위섬을 내려다 보았던 그 자리에 지은 정자가 ‘이견대’입니다.”nbspnbsp nbspnbsp철석이는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스님의 구수한 목소리가 더욱더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nbspnbsp막 출발하려는 찰나 청년대학생들 모두가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싶어 했습니다. 대왕암을 배경으로 400여 명의 청년대학생들이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며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대왕암을 출발한 청년대학생들은 대종천을 따라 5분 거리에 있는 ‘감은사지’로 향했습니다. 주차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저 멀리 높이 솟은 감은사지 삼층석탑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nbspnbsp▲ 감은사지nbsp스님은 먼저 도착해 청년대학생들을 기다리다가 모두 도착하자 설명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이곳이 ‘감은사지’입니다. 이곳은 일반 절과 비교해서 특이한 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법당의 바닥 구조에요. 여러분이 올라온 계단, 그 앞에 연못이 있어요. 연못 앞으로 도로가 나 있는데요, 그 쪽으로 대종천이 흘렀는데 거기서 물을 끌어와서 연못을 만들었어요. 그 연못으로부터 이 법당 밑까지 용이 올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용이 저 바다에서 대종천을 타고 이 연못으로 들어와서 법당 밑에서 법문을 들을 수 있도록 한 겁니다. 보통 법당 바닥은 흙으로 채워져 있는 데 여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밑에 물이 있는 것처럼 물 위에 징검다리를 놓고 마루를 걸쳐놓은 격으로 지었어요. 여기 와서 보시면 그렇게 돼 있습니다.nbspnbspnbsp이 절은 682년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니까 681년에 문무대왕이 죽고 그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 신문왕이 세운 거예요. 감은사지의 이 탑은 우리나라 석탑 중에 제일 큰 것에 속합니다. 조금 후에 불국사에 가보시면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는 데 그것보다 이 탑이 규모가 더 큽니다. 꼭대기의 상륜부가 다 부서졌지만 그 철심은 그대로 남아 있잖아요. 이것까지 포함하면 제일 큰 탑에 속합니다. 신라의 탑 중에 큰 규모로 꼽는 탑이 3개 있는데 지금 보고 있는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고선사지 삼층석탑, 나원리 오층석탑이 그것입니다.nbspnbspnbsp또 하나는 절이 지어진 계기인데요. 이 감은사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서 세운 절입니다. 어제 말씀드렸는데 통일을 발원하며 지은 탑이 황룡사 9층탑이라고 했지요? 이 황룡사가 신라에서 제일 큰 절이면서 호국사찰이었습니다. 우리가 가보려고 했는데 길이 막혀서 못 갔어요. 어제 우리가 갔던 사천왕사는 통일 전쟁 후 당나라를 물리치기 위해서 세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러니까 이 절들은 포교를 위해서 세운 절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정신으로 세운 절이기 때문에 호국사찰이라고 합니다. 신라의 3대 호국사찰은 황룡사, 사천왕사, 감은사입니다.”nbsp스님의 설명이 끝나자 청년대학생들은 우람한 삼층석탑과 법당 밑까지 용이 들어올 수 있게 했다는 흔적을 자세히 살펴보며 사진도 찍고 잠시 자유시간도 가졌습니다.nbspnbsp▲ 용이 들어올 수 있게 만든 법당 터nbsp법당 터 뒤쪽에 큰 나무 아래에서는 기타 연주를 하며 흥겨운 마당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만파식적 이야기를 들었으니 세상을 평화롭게 해줄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는가 싶어 잔뜩 기대를 했는데 싱겁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서로의 웃음에 취해 봄날씨를 즐겼습니다.nbspnbspnbsp감은사지를 출발해 다음은 불국사로 향했습니다. 청년대학생들이 모두 불국사 입구에 도착하자 스님은 ‘불국사 안내도’를 가리키며 불국사의 독특한 가람 배치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 정토삼부경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를 형상화하여 각각 건물이 지어졌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왜 절의 이름이 불국사인지 알겠고, 각 건물들도 새롭게 보였습니다. 불국사에 자주 왔던 청년들도 사진만 찍고 가기 바빴는데 이제는 제법 그럴듯하게 설명도 할 수 있을 듯 하다며 좋아했습니다.nbspnbsp▲ 불국사nbsp불국사에 오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곳인 청운교와 백운교 앞에서 스님은 다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불국사가 어떤 사연으로 창건이 되었는지 창건주인 김대성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삼국유사에 따르면 불국사는 751년에 짓기 시작해서 774년에 완공을 했다고 하니까 한 23년 걸린 셈입니다. 절을 완성시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요. 현재 우리가 둘러보고 있는 부분은 원래 절의 4분의 1 규모입니다. 임진왜란 때 다 불타버린 후 복원한 게 4분의 1정도 밖에 안 된 겁니다. 왜 그랬느냐 하면 처음에 절을 지을 때는 국가적인 지원을 받고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에는 정부가 불교를 탄압하던 시기였으니까 국가적 지원을 받지를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나무를 베고 직접 목수가 되어 지어야 하니까 다 복원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nbspnbspnbsp그러면 이 절을 창건한 창건주는 누구일까요? 보통 어느 절이나 창건설화가 있잖아요. 불국사는 재가신자가 창건주입니다. 불국사를 지은 사람은 김대성입니다. 왕족으로서 진골 출신인데, 신라의 재상인 중시, 요즘 말로 국무총리를 지낸 분이에요. 김대성이 출생하게 된 일화는 이렇습니다. 김대성의 아버지도 재상이었는데 자식이 없었습니다. 옛날에는 자식이 없으면 큰일이었잖아요. 그래서 자식 낳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를 했어요. 그때 한 고승이 얼마 있으면 자식이 생길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정말 얼마 후에 아이가 생겨서 낳게 됐는데 태어난 아이가 한 손을 꼭 쥐고 펴지 않고 있었어요. 아무리 그 손을 펴려고 해도 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스님을 초청해서 아이를 보였더니 스님이 말하기를 사연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스님이 염불을 하시니 손이 펴졌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손바닥에는 ‘대성’이라고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사유란 이렇습니다.nbspnbsp경주 건천 모량리에 아주 가난한 종 신분의 모자가 살았어요. 아들은 ‘대성’이라는 이름으로 어머니와 토굴에 살면서 주인집에 가서 일해 주고 밥이나 얻어먹고 살았는데 어느 날 주인집에 어떤 스님이 와서 절을 짓는다고 시주하라고 했어요. 그러자 주인은 쌀 몇 섬과 비단 몇 필을 시주했습니다. 종은 ‘주인은 참 좋겠다.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이생에도 부자이고 또 이생에서 저렇게 복을 지으니 다음 생에도 부자가 되겠구나. 그런데 나는 전생에 지은 복이 없어서 이렇게 가난하고, 또 이생에서도 가난하니 복을 못 짓고 다음 생에도 가난하게 살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너무 슬픈 나머지 토굴로 돌아와 어머니께 그 얘기를 하면서 ‘어머니 우리도 복을 좀 지읍시다.’라고 하니 어머니는 ‘네 말은 맞는 말이지만 한 끼 먹을거리도 없는 데 어떻게 복을 짓겠느냐. 정신 차려라.’라고 말했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다음 날, 주인집에서 시주를 요청했던 그 스님이 자기네 토굴에 와서도 요령을 흔들며 시주를 요청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가 먹을 양식도 없다며 줄 게 없다고 하니까 아들이 ‘어머니, 우리 시주합시다. 저 강변에 뙈기밭이 좀 있지 않습니까? 그걸 드립시다.’라고 말했어요. 어머니는 아쉬웠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서 전 재산을 시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진 것을 모두 털어 시주를 했는데 일주일 만에 아들이 죽어버렸어요. 그러니까 동네사람들은 ‘그것 봐라. 사람이 다 분수에 맞게 살아야하는데 제 분수도 모르고 허튼 짓을 하니 명대로 못살았다’ 라고 비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죽어서 바로 이 재상집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자기 손에 ‘대성’이라고 쥐고 태어났다는 겁니다.nbspnbsp그런데 그런 사유를 재상집에서 들으니까 안 믿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토굴에 사람을 한번 보내봤어요. 그랬더니 정말 그 마을에 그 nbsp젊은이가 1년 전에 죽었고 이름이 대성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기 이름을 대성이라고 짓고 그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아이의 유모로 삼았습니다. 그러니 김대성은 이생의 부모님과 전생의 부모님을 다 모시고 산 격입니다. 신기하지요?nbspnbspnbsp시간이 흘러 아이가 자라 청년이 되어 토함산에 사냥을 나갔는데 활로 곰을 쏘아 죽였어요. 그런데 꿈에 그 곰이 계속 나타나 쫓아오는 악몽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곰의 원혼을 달래려고 이 불국사에 시주를 했습니다. 여기 불국사는 김대성이 처음 지은 절이 아니고 이미 절이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김대성이 성장해서 재상까지 지내고 은퇴하자 전 재산을 쏟아서 현생의 부모 은혜를 갚기 위해 이 불국사를 중창하고, 전생의 부모 은혜를 갚기 위해 석굴암을 짓습니다. 그러니 불국사는 효사상과 관계가 깊은 절입니다. 그런데 김대성은 이것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죽게 되자 공사비가 너무 많이 들어 감당이 안 되니 국가에 헌납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국가에서 완성을 했어요.”nbspnbsp스님이 옛날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해주어서 어떤 청년은 입을 헤벌리고 있었는데 스님이 이를 보며 한마디 하자 순식간에 웃음 바다가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생의 부모님과 전생의 부모님을 함께 모시고 살았다는 이야기는 정말 신기했습니다.nbspnbsp불국사는 산중에 사찰을 지으면서 평지 사찰처럼 가람 배치를 하기 위해 축대를 많이 쌓았는데 스님은 이 축대를 쌓은 방식에서도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며 그 내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여기 보이는 것이 축대입니다. 맨 밑에는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쌓았어요. 자연석도 큰 것만 사용하지 않고 작은 것도 사용했어요. 언뜻 보기에는 좀 이상하게 쌓았지요. 그런데 이것이 상징하는 바가 있습니다.nbspnbspnbsp이 세상에는 큰 나무도 있고 작은 나무도 있고, 큰 돌도 있고 작은 돌도 있고,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고, 넉넉한 사람도 있고 좁은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까 맨 밑에는 ‘세계의 기초는 다양하다’ 즉 다양성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하면 중생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똑같이 만들려고 하잖아요. 똑같이 좋게 다듬으려고 해요. 그러면 안 됩니다. 생긴 게 다 다르듯이 서로 다 달라요.nbspnbsp중생의 세계 위에 있는 축대가 보살의 세계입니다. 보살의 세계란 무엇인가요? 저기 가운데에 기둥이 하나씩 있지요. 그 기둥들 사이에 돌들이 주욱 끼어 있어요. 여기서 보면 다듬은 것 같은데 가까이 가서 보면 자연석입니다.nbspnbspnbsp그런데 강변에 가보면 네 면이 모두 판판한 돌은 드문데 한 면이 판판한 돌들은 많아요. 그 판판한 쪽 한 면을 밖으로 보이게 쌓은 겁니다. 그러니 자연석인데 인공적인 것처럼 보여요. 저렇게 쌓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핵심은 기둥입니다. 잘 다듬은 기둥이 딱 자리를 잡고 있으면 그 사이에 끼워 넣는 돌은 아무 돌이나 가능하되 한 면만 딱 맞춰서 끼워 넣으면 저런 모양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 사바세계에는 온갖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이 사바세계가 부처의 세계가 되려면 여러분들이 다 깨달아야 하는 게 아니고 100명 가운데 1명, 1000명 가운데 1명만 딱 중심을 잡아줘도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중간에 끼어있는 사람들은 흐리멍텅하게 살아도 세상이 바르게 됩니다.nbspnbsp그러니 모든 사람을 다 똑바르게 만들려고 하면 안 됩니다. 100명 가운데 한 명, 1000명 가운데 한 명인 사람이 바로 리더인데, 리더만 이렇게 딱 자리를 제대로 잡으면 남아있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살아도 괜찮아요.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이 돌처럼 한 면은 괜찮은 면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 가지 측면에서는 괜찮은 면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친구들을 한번 보세요. 저 친구는 다른 건 몰라도 노래 하나는 잘한다, 저 친구는 정직하다, 이런 경우가 있지요?”nbsp“예”nbspnbsp“그런 장점들을 모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기둥은 수행을 해서 딱 중심을 잡아주는 보살을 뜻하고, 나머지 돌들은 한 가지 측면은 똑바른 일반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들이 어우러진 것이 보살의 세계입니다. 그러니까 축대를 쌓은 방식을 보면 맨 아래는 중생의 세계를 표현했고, 그 위에 보살의 세계를 표현했고, 또 그 위에 부처의 세계인 불국사를 지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을 완벽하게 만들려고 하면 살기가 힘들어져요.nbsp그것처럼 우리는 규칙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규칙을 무조건 강제하면 사람이 숨이 막혀서 못 살아요. 그렇다고 규칙을 풀어놓으면 혼란스러워서 못 삽니다. 그러니 나는 규칙을 지키되 남에 대해서는 조금 열어놓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만약 리더가 된다면, 자기는 모범적으로 규칙을 지키고 살되 다른 사람들은 조금 흐트러져도 봐줘야 된다는 겁니다. 친하다고 봐주라는 게 아니라 사람이니까 다 100 규칙을 지키기가 어렵잖습니까. 그런 자유로움을 ‘중도’라고 합니다. 질서가 있어 강하되 부드러워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제 맘대로 살든지, 아니면 내가 지키면 남도 꼭 지키라고 너무 잔소리를 해서 못살게 하잖아요.nbspnbsp여기는 돌 하나 쌓는 데도 이렇게 다 경전의 내용을 가지고 쌓았어요. 이런 곳을 그저 휙 둘러보고 사진만 찍으면 안 되겠지요.”nbsp축대를 쌓는 방식에 이렇게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청년들은 스님의 설명에 감탄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청년들이 앉아 있는 이곳 청운교·백운교 앞마당에 ‘구품연지’라고 부른 연못이 있었다고 하면서 그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여러분들이 지금 앉아있는 여기는 ‘구품연지’라는 연못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다시 태어날 때 극락세계에 태어난다고 하잖아요. 그 때 9등급으로 나눠서 태어난다고 해서 ‘구품’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모든 사람이 다 극락에 태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nbspnbsp▲ 구품연지가 있었던 자리nbsp그러나 수행한 사람은 즉시 태어나는 1등급인 상상품입니다. 이 방에서 문 열고 저 방에 가듯이 이생을 마치면 저 생에 바로 태어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죽었다고 울 필요가 없겠지요. 그러니 우는 건 우리가 몰라서 우는 거예요. 2등급은 12시간 안에, 3등급은 하루 만에, 4등급은 3일 만에, 5등급은 일주일 만에, 6등급은 21일 만에, 7등급은 49일 만에 다시 태어납니다. 이 7등급이 보통 사람들입니다. 아주 악독한 사람은 아니고, 술도 한 잔 하고 싸움도 하는 그런 보통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7등급까지는 그래도 참회하고 옆에서 도와주면 극락왕생하는 사람들이에요. 지옥까지는 안 갔다 와도 됩니다.nbspnbsp그런데 8등급부터는 조금 다릅니다. 8등급은 스님이 되거나 불교신자이면서도 절에 와서 절 돈을 훔쳐가고 절에 있는 보물도 훔쳐가는 등 나쁜 짓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것보다도 못 합니다. 그래서 지옥에 가서 뜨거운 맛을 좀 보고 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9등급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부모를 죽인 사람, 불상을 파괴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극악무도하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nbsp“있다는 겁니다.”nbsp“네. 그러나 무조건 가는 건 아니고, 지옥에 가서 3겁 정도 고통을 겪고 난 후에 왕생극락한다는 식입니다. 그렇게 해서 9품의 중생을 다 구제한다는 뜻으로 ‘구품연지’ 라고 부른 겁니다.”nbsp어떤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설명이 무척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큰 의미를 담고 있는 구품연지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복원이 되지 못하고 그냥 흙으로 덮어져 있어서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nbspnbsp이렇게 설명을 모두 마치고 불국사 경내로 들어갔습니다. 먼저 다보탑을 보고, 자하문을 나와 청운교와 백운교를 내려다 본 후 석가탑을 둘러보고, 대웅전과 무설전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nbspnbsp▲ 무설전nbsp무설전 뒤로 경사가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관음전이 나타났습니다. 관음전 담벼락에 서서 다시 무설전 쪽을 바라보는데 그 풍경이 정말 멋스러웠습니다. 스님은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한국의 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 관음전에서 바라본 풍경nbsp관음전을 내려와 비로전을 참배한 후 마지막으로 극락전과 안양문, 연화교와 칠보교를 둘러보고 불국사를 나왔습니다. 스님은 가는 곳마다 그곳에 얽힌 설화와 의미들을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청년들은 “다른 건 몰라도 불국사만큼은 꼭 법륜 스님의 설명을 들어야 할 것 같다”며 아주 만족스러워 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불국사의 경치를 가장 잘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을 알려주면서 이곳에서 조별로 사진을 찍으라고 안내한 후 먼저 주차장으로 내려왔습니다.nbspnbspnbsp불국사 사찰순례 후에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 한 후 12시 30분부터 개인 고민에 대해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2시간 남짓 가졌습니다. 어제는 ‘역사와 통일’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면 오늘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인생 고민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즉문즉설 이야기는 다음 글에 계속 이어집니다.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4.05. 50,319 읽음 댓글 20개

2016.4.2 청년대학생 경주역사기행 1일째(2) 즉문즉설 사회문제편

nbsp안녕하세요? 하루 종일 계속 되었던 경주역사기행에 이어서 저녁 7시 30분부터는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강연장에 도착하기 전 불국사 공원에 잠시 내려 벚꽃이 만개한 모습을 구경했습니다. 벚꽃 물결이 일러이는 숲길 사이를 걷는 동안 청년대학생들은 환상적인 풍경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nbspnbspnbsp▲ 벚꽃이 활짝 핀 불국사 공원nbsp강연장 앞에서는 미리 질문자 신청을 받았습니다. 쪽지에 질문을 적어서 질문지함에 넣으면 강연 중에 스님이 질문지를 뽑아서 답변을 해주기로 했습니다.nbspnbsp▲ 질문자 사전신청nbsp대강당을 가득 메운 380여 명의 청년대학생들은 스님이 무대 위로 오르자 큰 박수로 반겼습니다. 저녁 강연은 먼저 스님이 1시간 동안 기조 강연을 한 후 이어서 궁금한 점을 묻는 시간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스님은 오늘 하루 종일 경주 역사기행을 진행하면서 작은 부족국가에 불과했던 신라가 어떻게 삼국 통일의 주역이 되었는지 그 원동력은 신라와 가야의 합의통일에 있었다는 이야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의식의 부족으로 발해와 나뉘어져 이국 시대를 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제 저녁 강연에서는 청년대학생들의 문제의식을 오늘날의 남북 분단문제로 확장시켜 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분단 상황에서 남북 간의 격돌은 우리 사회 전체를 굉장히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최소한 남북 간의 긴장을 풀고 평화협력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게 대통령과 국가가 해야 할 일이에요. 그래서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담보해줘야 해요. 그리고 국가가 더 발전하려면 남북 간 협력을 강화해 통일을 지향하면서 북한 개발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nbspnbsp북한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북한과 통합 관계를 맺으려면 신라가 자기성장의 필요에 의해서 가야와 통합할 때 가야의 요구를 들어주었듯이 북한을 포용해야 해요. 강자가 약자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을 포용이라고 해요. 약자가 강자의 요구를 들으면 굴복이라고 합니다. 굴복한 쪽은 나중에 자기가 힘이 생기면 또 저항을 해요. 그것을 항구적 평화가 아니에요. 그러니 포용을 해야 하는데, 그걸 가지고 자꾸 북한에 끌려다닌다느니 북한 좋은 일 시킨다느니 하는 식의 논리는 결국 북한과 적대적으로 지내자는 이야기밖에 안 됩니다. 이것은 남북이 적대적 관계에 있을 때 이득을 보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nbspnbsp이것이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이에요. 물론 여기에 크게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걸려 있습니다. 미국은 미·중의 경쟁에서 한국을 한·미·일 삼각동맹 체제에 끌어넣으려 하고, 중국은 한국이 거기 못 들어가게 막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한국을 두고 미국과 중국이 치열하게 외교전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분단된 상태다 보니 우리는 북한과의 갈등이 심해지면 우리도 모르게 미·일 군사협력체계에 참여하는 쪽으로 가게 되죠. 지금 그렇게 남북 간의 긴장을 고조시켜서 우리를 한·미·일 군사협력 체계로 몰아가고 있는 거예요. 오늘도 워싱턴에서 그냥 한·미 정상 회동만이 아닌 한·미·일 정상 회동을 했고, 한일 간에는 최근에 군사정보교류협정도 맺었잖아요. 그래서 지금 중국이 발끈하는 거예요.nbspnbspnbsp사드 배치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사드 배치가 순수한 군사적 면에서만 보면 방어적인 측면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도 있어요. 들인 돈만큼 도움이 되느냐 하는 효용성의 문제는 전문가들 사이에도 논쟁이 있긴 합니다. 어쨌든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중국까지 고려했을 때는 사드 배치가 과연 안보상 도움이 되느냐는 의문입니다. 첫째, 중국은 사드를 배치하면 원점 타격을 하겠다고까지 나오잖아요. 우리는 북한에 대한 방어라고 하지만 중국은 자기들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거예요. 그리고 중국과의 갈등은 우리 경제를 굉장히 어렵게 만듭니다. 우리가 중국과의 갈등 관계가 이어지면 동아시아공동체를 통해서 우리가 구현하려고 하는 우리의 미래 발전 전략에 장애가 됩니다.nbspnbsp이처럼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통일은 지금 여러분들의 삶에 직결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회사에서 월급 10만원 더 주고 덜 주는 게 여러분들의 인생을 좌우하는 게 아니에요. 한반도의 미래 발전 전략이 그 속에 있는 여러분들의 삶을 훨씬 더 좌우하는 큰일이에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그걸 염두에 두고 국가 발전 계획과 맞추어서 자기 인생을 설계를 해야 합니다.nbspnbsp예컨대 투표를 하더라도 정부 정책이 그런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투표를 해야 합니다. 동쪽에 치우친 조그마한 나라였던 신라는 이런 발전 전략을 가지고 가야와 통일을 이루고 그 자원을 함께 활용해서 결국은 삼국의 일원으로 성장했습니다. 남북이 통일되면 우리는 동아시아의 한중일 구도에서 밀리지 않는 명실상부한 국가로 등장할 수 있고, 그러면 미·중 사이에서 캐스팅보드를 쥘 수 있습니다.nbspnbspnbsp그렇게 생각해볼 때 통일 문제는 매우 중요하고, 그 전에 평화 문제는 더더욱 중요합니다. 개인문제가 누구나 다 중요하긴 하지만, 자꾸 개인문제만 보지 말고 이렇게 큰 문제를 여러분들이 좀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nbsp이 외에도 스님은 통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는 점들을 하나 하나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통일한국이 되었을 때 우리가 실현할 수 있는 비전에 대해 1시간이 넘도록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궁금한 점을 묻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질문을 하고 싶은 학생들은 미리 강연장 입구에서 질문지를 써내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질문지를 하나씩 고르면서 청년들과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8명의 청년들이 질문을 했는데 그 중 한 가지 질문을 소개합니다. 스님의 통일 이야기에 본인은 너무나 공감이 가지만 집에 돌아가서 보수적인 아버지는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nbspnbspnbsp“법륜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통일에 대해서 깜깜했던 게 좀 명확해진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 가족은 저랑 약간 의견이 다르고, 특히 아버지께서는 통일에 반대하시고 무척 보수적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좀 열린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어떻게 아버지와 대화를 하면 좋을지 방법을 여쭙고 싶습니다.”nbspnbsp“아버지와 통일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스님이 질문자의 아버지와 대화를 해도 아버지가 스님의 말을 들을까말까 한데, 자기 고정관념이 딱 있는 분이 자기보다 아랫사람인 딸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바꿀까요?”nbsp“안 바꿔요.”nbspnbsp“바꾼다는 건 질문자의 희망사항이지만 그건 에너지 낭비예요. 내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고 아버지 생각이 잘못됐다 해도 아버지를 설득하기는 어려워요. 아버지 생각을 조금이나마 바꿔주려면 법륜 스님의 책 중에 ‘새로운 100년’ 같은 걸 사드려서 읽게 해 보든지요. 스님이 가도 바꾸기 어려운데 질문자가 뭐 대단하다고 아버지를 바꾸려 들어요? 그건 불가능해요.nbsp그러니 이런 걸 갖고 어른들과 싸울 필요가 없어요. 젊은 여러분들은 생각을 바꿀수가 있지만, 어른들은 때를 기다려야 해요. 이 ‘때’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죽을 때를 기다리는 겁니다. 즉 세월이 흘러야 해요.nbspnbspnbsp그 다음 하나는 대세가 기울어지도록 하는 거예요. 사람이란 대세가 기울어지면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이렇게 해서 정권이 바뀌고, 바뀐 정권이 좀 포용적인 대북정책을 써서 통일의 희망이 오면 대부분은 따라와요. 그래도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극소수는 있겠지만 나머지는 대세에 따라갑니다. 인간이라는 게 그래요.nbspnbsp우리가 지금 해야 할 제일 중요한 일은 통일을 추구하는 정부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 일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가 없어요. 국민 대다수가 다 통일을 지지할 수가 없어요. 일제 강점기 때도 전 국민이 모두 독립운동을 한 게 아니었어요. 10명 중에 1명도 안 됐습니다. 100명 중 1명, 1000명 중 1명 꼴이었어요.nbspnbsp우리가 지금 노력을 해서 대세가 바뀌면 반대하던 사람들도 저절로 동조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아버지와 통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세요. 지금은 아버지가 이야기를 하시면 반론을 제기하지 말고 그냥 들어드리세요. 그러면서 ‘어, 그런데 내가 존경하는 스님은 아빠 이야기하고 비슷한 듯하면서도 조금 다른 것 같던데, 이 책 한번 읽어보세요. 이 책 읽고 아빠 견해를 말씀해주시면 좋겠어요’ 이렇게 해보세요. ‘아빠, 이 책 좋아 이 책이 내 생각하고 똑같아.’ 이러면 아버지가 안 읽어요.nbspnbspnbsp그러니 그냥 ‘아빠 이야기 들으니까 법륜스님 책하고 내용이 좀 비슷한 것 같아요.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한데 한번 읽어보세요’ 이렇게 넌지시 권해야 합니다. 이런 걸 영리하다고 해요. ‘아빠, 그거 틀렸어 스님 이야기 들으면 안 그렇지’ 이렇게 막 싸우는 건 정의로운 게 아니라 바보 같은 거예요. 문제가 해결되도록 하지 않고 악화되도록 하니까요. 그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바보 같은 짓이에요. 알았죠?”nbsp“네.”nbsp“어른들하고는 너무 이런 이념 논쟁, 정치 논쟁 같은 것을 안 하는 게 좋아요. 그렇다고 꿀리거나 피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니 말씀을 하시면 들어드리고, 말 될 만한 것만 슬쩍 꺼내서 한두 마디 해보고, 안 되면 ‘알았어요, 아버지. 네’라고 하세요. 아버지는 나한테 공부할 수 있게 돈 대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분이에요.nbspnbspnbsp정치적 견해가 다른 건 너무 따질 필요가 없어요. ‘낳고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러고 넘어가는 게 좋아요. 우리 에너지를 안 되는 데다가 너무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nbsp그러면 여러분들은 ‘스님도 통일처럼 안 되는 일에 너무 에너지를 낭비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죠?nbspnbsp그런데 저는 통일이 안 된다는 생각을 안 해요. 막힌 이 물꼬를 조금만 트면 통일이 된다고 봅니다. 지금 북한도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고 한국도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어요. 북한은 굶어죽는다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고, 우리는 성장의 고비가 꺾인다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어요. 이제 더 이상 좋아질 수 없고 오히려 갈수록 나빠질 수 있는 지점에 몰렸기 때문에 누군가가 통일에 대한 길을 조금만 열어서 동조 세력이 모이면 분위기가 변하면서 대세가 확 바뀔 수도 있어요.nbspnbspnbsp이 마중물 같은 역할을 우리가 한번 해보자는 이야기에요. 국민을 다 설득할 필요가 없어요. 물꼬가 딱 트여서 물줄기가 바뀌고 대세가 기울어지면 사람들은 또 대부분 따라옵니다. 그때 질문자의 아버지는 자기가 처음부터 통일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처럼 말할 거예요. ‘내가 뭐라 그랬니? 옛날부터 내가 이렇게 된다고 이야기했잖아’ 그러면 ‘그래요, 아빠 말이 맞아요’ 이렇게 대답해야지, ‘아빠가 언제 그랬어? 전에 반대했잖아’ 이러면 안 돼요. ‘아, 아빠 말이 맞았네요’ 이렇게 해줘야죠. 인간이라는 존재가 본래 그래요. 제 말 이해가 돼요?”nbsp“네.”nbsp“안 되는 것에 억지로 매달려서 너무 에너지를 소모하지 마세요. 완전히 생각이 굳은 어르신들을 진보 세력으로 만들려고 애쓰면 안 돼요. 반면 중간에 있는 사람은 끌어오기가 쉬워요. 투표는 51퍼센트의 지지만 받으면 되지 100퍼센트의 지지를 다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중간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만 더 데려오면 돼요.nbspnbsp지금 우리가 노력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48 대 52입니다. 여기서 2퍼센트만 가져오면 50 대 50이 되고 3퍼센트만 가져오면 51 대 49가 되죠. 다시 말해 10명 중 중간에 있는 1명만 설득하면 되지 다 설득할 필요가 없어요.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아이고, 50퍼센트나 반대하는 저걸 언제 다 설득하나’ 이러면 안 돼요. 51퍼센트만 되도록 하면 되지, 꼭 70퍼센트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어요. 쉬운 데를 우선 집중해야 해요. 그리고 이미 같은 편인 사람들끼리 맨날 앉아서 이야기할 필요도 없어요. 그거 이야기해봐야 자기들끼리 기분만 좋지 아무 도움이 안 돼요.nbspnbspnbsp이렇게 사물을 보는 영리함이 있어야 해요. 옛날 사람 말로 꾀가 좀 있어야 해요. ‘꾀’라는 게 나쁜 뜻이 아니에요. 이런 영특함 혹은 영리함이 있어야 해요. 착하기는 착한데 앞뒤 안 재고 무식하게 덤비면 힘만 많이 빠지지 효과가 안 납니다. 알았어요?”nbsp“네. 감사합니다.”nbspnbsp스님의 명쾌하고 재치있는 답변에 청년대학생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니 어느덧 2시간 30분이 지나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오늘은 여기까지 대화를 하고 내일도 시간이 있으니 내일 또 만납시다” 하고 강연을 마쳤습니다. 청년대학생들은 스님의 통일 강연이 너무나 감명 깊었는지 오랜 시간 열렬히 환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박수갈채가 멈추지 않는 가운데 스님은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강연장을 나왔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 6시 30분에 경주를 출발해서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를 둘러보고, 다시 경주로 와서 불국사 사찰순례를 한 후 오후에는 개인 고민을 주제로 즉문즉설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4.04. 49,982 읽음 댓글 32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