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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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8~9 한국 귀국 및 각종 미팅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3월2일부터 8일까지 6박7일 동안의 필리핀, 호주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nbspnbsp어제밤 11시 10분에 호주 멜번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0시간을 비행해서 오늘 새벽 6시에 대만 타이베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밤새 이동을 하는 비행기여서 스님도 비행기 안에서 잠을 청했습니다.nbspnbsp▲ 밤새 10시간 동안 이동하는 비행기 안nbsp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타이베이공항에 내려 2시간을 머물렀습니다. 공항에 머무는 동안 스님은 한국에서 온 보고서를 체크하고, 원고 교정 업무도 보았습니다.nbspnbsp▲ 타이베이 공항nbsp다시 아침 8시에 타이베이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2시간 조금 더 걸려 11시 20분에 대한민국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 창 밖으로 바라본 인천공항은 안개가 많고 무척 흐려 보였습니다.nbspnbsp▲ 인천 국제공항nbsp인천공항에서 짐을 찾고 도착장으로 나오니 수행팀에서 실무자 두 분이 나와 마중을 해주었습니다. 짐을 차에 싣고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공항 마중을 나온 수행팀nbspnbsp인천공항에서 서울 정토회관으로 가는 길에는 그동안 한국에서 진행된 일에 대해 보고를 받은 후 모레부터 3박 4일 동안 있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방문과 신한촌 역사관 기공식 행사와 관련해 점검을 했습니다.nbspnbsp오후 1시 무렵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하자 1층 법당에서는 오늘 입학한 정토불교대학생 서초반 학생들이 입학식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식사 중인 학생들에게 다가가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오늘 입학하셨어요? 결석하지 말고 1년 동안 꾸준히 다니셔야 해요.”nbspnbsp▲ 정토불교대학 서초법당 주간반 입학식nbsp스님의 해맑은 모습에 불교대학 신입생들도 너무나 반가워하며 “네” 하고 크게 대답했습니다.nbspnbsp비행기에서 밤을 꼬박 샌 스님은 간단히 세면을 한 후 곧바로 오후 2시부터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 재단 실무자들과 연이어 미팅을 가졌습니다.nbspnbsp많은 분들이 스님을 뵙고 싶어했지만 스님이 해외에 있었기 때문에 미팅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8일과 9일 양일 간은 스님을 찾아온 손님들, 그리고 정토회 대중 대표들과 연이어 미팅을 계속 가졌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후 1시 30분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출발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합니다. 3월 10일부터 13일까지 3박4일의 방문 기간 동안 스님은 한국과 러시아 교민 사회의 주요 관계자들과 신한촌 역사회복재건을 위한 학술회의를 열고, 신한촌 유적 조형 및 역사관 공사 기공식을 가질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nbsp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분들은 지금 신청하세요.

2016.03.10. 49,928 읽음 댓글 36개

2016.3.7 (호주 2일째) 멜번(Melbourne)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호주 멜번에 살고 있는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점심이 되자 멜번 정토법당에는 몇몇 봉사자들이 단체로 와서 김밥 만드는 일을 함께 했습니다. 오늘 강연 준비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의 저녁 식사를 위해 김밥 150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nbsp▲ 멜번 정토법당nbsp스님은 수고하는 봉사자들을 격려한 후 다함께 마당에서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봉사자들은 일손을 도우려고 법당에 왔다가 뜻밖에 스님을 가까이에서 뵙고 무척 기뻐했습니다.nbspnbsp▲ 김밥을 만들고 있는 봉사자들과 함께nbsp특히 이곳 멜번 정토법당은 김밥으로 유명한 유영진 보살님이 부총무로 있는 곳입니다. 보살님은 연세가 많으시지만 이곳 호주에서 오직 김밥을 맛있게 만드는 것으로 초창기 법당 운영 경비도 마련하고, 봉사자들도 모았기 때문에 ‘김밥 보살님’으로 이곳 봉사자들 사이에서 많은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nbspnbsp오후 5시에 멜번 정토법당을 나온 스님은 강연이 열리는 박스힐 타운홀에 일찍 도착해 먼저 봉사자들과 기념사진부터 찍었습니다.nbsp강연이 끝나면 비행기 출발 시간이 촉박해 곧바로 공항으로 이동해야 해서 미리 사진을 찍어두기로 한 것입니다.nbspnbsp▲ 박스힐 타운홀 nbsp이어서 책 사인회도 강연 전에 먼저 가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님의 환한 얼굴을 보고 반가움을 표했습니다. 어떤 분은 반가운 마음에 “스님, 가까이서 보니 더 잘 생기셨어요” 라고 했는데, 스님은 nbsp“중이 잘 생겨서 뭐하노?” 라고 대답해 큰 웃음을 주기도 했습니다. 또 많은 분들이 “사인하실 때 제 이름도 같이 적어주세요” 라고 요청하면 “내 이름은 내가 적고, 당신 이름은 당신이 적어야지” 라고 응수해서 위트있게 넘어가기도 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이렇게 사인회까지 미리 마치고, 저녁 6시가 되자 소개 영상과 함께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멜번에 살고 있는 300여 명의 교민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스님이 무대 위에 오르자 큰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nbsp먼저 스님은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할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은 학교에도 가고, 공부도 하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취직도 하고, 이민도 가고, 가게도 마련하고, 사업도 하고, 아이도 낳아서 키우고, 이렇게 자기 좋을 대로 하면서 살잖아요. 자기가 좋을 대로 살았으니까 행복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좋을 대로 살아놓고 괴롭다고 그래요. 자기가 좋아서 결혼해 놓고 괜히 결혼했다고 하고, 자기가 좋아서 사업을 벌여놓고 괜히 일을 벌였다고 하고, 자기가 취직해 놓고는 못 다니겠다고 하고, 자기가 아이를 낳아서 키워 놓고는 왜 저런 아이를 낳았는지 모르겠다고 하잖아요. 이것이 인생의 괴로움입니다. 이럴 때 ‘왜 그럴까?’ 하고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좋을 대로 살았는데 왜 괴로울까요?nbspnbsp만약 결혼해서 부부 간에 갈등이 심해서 괴롭다면 그 원인은 뭘까요? 교회를 안 다녀서 하나님한테 벌 받아서 그런 거예요,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런 거예요, 사주팔자가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어리석어서 그런 거예요?”nbsp“어리석어서 그런 거예요.”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내가 어리석어서 이런 괴로움을 자초했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합니다. 대부분 내가 전생에 저 사람과 원수여서 그런가, 궁합이 안 맞아서 그런가, 이렇게 생각을 하잖아요. 그러나 괴로움은 우리들의 어리석음에서 빚어집니다. 어리석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즉 무지라는 뜻입니다.nbspnbsp반면 우리가 바르게 알게 되면 두 가지 삶의 자세가 나타납니다. 첫째, 이미 일어나버린 일에 대해서는 그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내가 모르고 쥐약을 먹었지만 내가 한 일이니까 배가 아픈 것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니까요. 둘째, 대신에 다음에 이런 일이 닥친다면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즉 이미 지은 인연에 대해서는 그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다시는 이런 인연을 짓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먹고 나서 배가 아플 때는 다시는 안 먹겠다고 하지만, 막상 배가 고프면 또 먹게 되고, 그러면 또 배가 아프고, 한번만 살려주면 다시는 안 먹겠다고 해놓고, 배가 고프면 또 먹게 됩니다. 아이한테 화를 내지 않아야겠다고 해놓고 아이가 하는 행동을 보면 또 성질이 확 나고 이렇게 되풀이 됩니다. 이렇게 우리의 어리석음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 괴로움을 능히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다음부터는 아무리 좋아보여도 나쁜 결과가 나타날 것은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삶이 조금 더 행복해지는 쪽으로 개선이 되어갈 수가 있습니다.”nbspnbsp이미 지나간 과거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나쁜 결과가 나타날 것은 하지 않으면 된다는 아주 간명한 메시지에 머리가 시원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비행기 출발 시간 때문에 8시가 되면 딱 강연을 마쳐야 해서 스님은 이렇게 화두를 던진 후 거두절미하고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6명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는데, 그 중에 한 분의 고민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무대 위에서 여는 이야기를 하던 스님은 “무대가 너무 높아서 여러분과 거리가 너무 떨어진 것 같다” 하면서 무대 아래로 내려와 청중과 가까이에서 호흡을 하며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한 남자분이 호주에서 살면서 일을 계속 하고 싶지만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며 막막한 마음을 호소했습니다. 스님의 답변에 청중석은 웃음 바다가 되고, 유쾌한 문답에 질문자의 마음도 아주 가볍게 되었습니다.nbspnbsp“저는 호주에 와서 일을 한 지 7년 정도 되었는데요. 호주에서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했습니다. 저는 호주에 계속 살고 싶지만 타의에 의해서 지금은 어쨌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가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할지 너무 막막해서 스님께 질문을 드립니다.”nbsp“서울역에 가면 노숙자들이 많잖아요? 그분들은 왜 노숙자가 되었을까요?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니까 노숙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노숙자들의 과거 직업을 조사해 보면 농사 짓다가 노숙자가 된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 겁니다. 매일 막노동을 하는 사람이 노숙자가 된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 겁니다. 그 대부분이 첫째, 작은 기업이라 할지라도 사장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IMF 때나 어떤 이유로 사업이 망해서 다시 재기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직장을 다닐 때 간부를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늘 과거를 먹고 살아요. 자신의 과거 때문에 지금 아파트 수위를 하든지 농사를 짓든지 막노동을 하든지 하는 것을 못해요. ‘나도 한 때는 사장을 했는데...’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를 당한 것도 맞지만 이 정신적인 문제도 함께 있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이 사람들을 노숙자의 쉼터라고 해서 수용시설을 마련해 준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노숙자의 쉼터라고 하는 곳에는 규칙이 있어서 술먹고 와서 주정도 하면 안 되고, 밤늦게 와도 안 될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렇게 하라고 하면 답답해서 못 사는 사람들이예요. 차라리 1000원이라도 구걸해서 소주 한 병 마시고 역 앞에 누워 있는 게 숫제 더 편한 겁니다. 도움을 주는 수용시설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만 갖고는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됩니다.nbspnbsp이렇게 과거에 좋았던 기억에 사로잡히면 현재의 삶이 불행해지기가 쉽습니다. 반대로 현재는 결혼도 하고 먹고 살기 괜찮지만 어릴 때 너무 가난해서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든지 하는 상처가 있어서 현재는 남이 봐도 괜찮은 데도 늘 과거의 상처로 인해서 현재의 삶을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nbspnbsp만약 질문자도 지금 그런 경험을 갖고 있다면, 한국에 가면 거의 십중팔구는 불행하게 살 수 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한국 사회가 지금 빡빡하기 때문입니다. 호주도 지금 빡빡해지고 있지만 한국 사회와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러면 취직이 안 되든지 직장 생활이 어렵거나 하면 늘 호주를 그리워하게 됩니다. 거기다가 지금 타의에 의해서 한국에 가게 되었다고 하니까 그 인간에 대한 미움을 저버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질문자는 지금 불행이 이미 예약되어 있는 사람입니다.nbspnbspnbsp교회에 좀 다니세요. 성경 말씀에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주라’ 하는 말이 있잖아요. 어쩔 수 없이 한국에 쫓겨서 가게 되었다는 것이 ‘5리를 가자’는 것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10리를 가줄게’ 한다는 것은 아무리 옆에서 붙잡아도 모든 걸 팽개치고 내가 선택해서 한국에 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미 가게 되었으니까 한국에 가는 것을 누구 때문에 억지로 간다는 이 생각을 하고 있는 한은 필연적으로 과거에 사로잡혀서 미워하고 원망하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한국으로 가야되는 상황이 되었으면 내가 그 상황에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수처작주라고 합니다.nbspnbsp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동남아에 있는 노동자들이 한국에 오고 싶어서 밀입국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한국 시민권이 없어서 잡히면 추방됩니다. 그런데도 한국에 숨어 들어와서 공장에 취직도 하고 잘 살잖아요. 거기에 비하면 질문자는 한국 시민권도 있잖아요. 그러니 사실은 질문자가 한국에 가는 것을 힘들어 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좀 빡빡하긴 하지만 그래도 살만한 나라예요. 요즘 전쟁이 날까 싶어서 겁내는 사람들도 좀 있기는 있지만요.nbspnbsp그러니 생각을 적극적으로 바꾸는 것 밖에는 길이 없어요. 과거에 ‘호주에서는 어땠다’ 이런 생각을 하면 한국에서 못 살아요. 좋은 경험이 자산이 안 되고 추억으로 남으면 미래가 불행해져요. 그 때는 그 때이고 나는 다시 또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이 중요하지 과거를 늘 생각하면 불행을 자초합니다. 그래서 한국에 가게 되었다면 한국에 가고 싶지만 못 가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쉽게 갈 수 없는 한국에 가게 되었다고 생각을 바꾸어야 해요. 그런데 가기 싫은데 쫓겨 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질문자는 불행을 예약해 놓은 사람입니다. 불행하지 않으려면 과거를 잊어야 합니다. 저도 오늘밤에 한국에 가는데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똑같이 한국으로 가는데 자기는 왜 죽을 것처럼 힘들어해요?”nbspnbspnbsp“아직 직장을 잡은 것은 아니여서 한국에 가면 먼저 백일출가를 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nbsp“아주 잘 생각하셨어요. 백일출가를 하면 취직이 금방 됩니다. 백일 동안이나 출가 승려 생활을 했으니까 부처님의 가피로 취직이 된다고 보통 말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에는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맞아요. 그런데 중소기업이라든지 생산직이라든지 저임금에 좀 일하기 힘든 직장은 한국에도 많습니다. 그런 곳은 사람을 못 구해서 전부 동남아에서 외국인들이 와서 그 일들을 합니다. 지금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100만 명 이상 들어와 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인력이 부족합니다. 중소기업 사장들을 만나보면 직원 50명이 필요한데 30명 밖에 못 구한 곳이 대부분이예요.nbspnbsp백일출가를 하게 되면 먼저 3일 동안 만배를 해야 돼요. 1분이라도 초과하면 무효가 되어서 새로 만배를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야 해요. 절 하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이 무거운 몸을 들어다가 놓았다가 하는 동안에 번뇌가 치성합니다. ‘이러다가 다리 병신 되는 거 아닌가’, ‘이게 무슨 불교냐’, ‘부처님은 고행을 버리라고 했는데 이건 고행이다’ 이런 생각부터 시작해서 옛날에 누구한테 맞았던 기억, 질문자 같으면 나를 한국으로 오게 한 사람 등 온갖 생각이 일어나서 절을 하다가 집어치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요. 그렇게 중간에 가버리는 사람이 꼭 생깁니다. 그러나 충동이 일어나지만 그래도 계속 절을 하다보면 이런 충동이 일어났다가 가라앉고, 저런 충동이 일어났다가 가라앉고, 이렇게 수십 수백 가지 충동이 일어났다가 가라 앉습니다. 그렇게 만배를 하고 나면 최소한 백일은 절에서 살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nbspnbsp처음에는 자기가 좋아서 들어왔지만 살아보면 힘드니까 중간에 도망을 가고 싶어지는데 그런 것에 대한 예방이 이미 만배를 하는 동안에 이뤄지는 겁니다. 못 견딜 사람들은 만배 할 때 이미 다 가버리거든요. 이런 심리적인 이유 때문에 만배 프로그램을 둔 겁니다. 중간에 그만두고 가버리면 본인도 손해고 저도 손해잖아요.nbspnbsp그리고 백일 동안 새벽 4시에 일어나서 300배를 한 후 바로 부엌에 가서 밥을 지어야 해요. 또 하루 종일 막노동을 합니다. 막노동을 하는 중간중간에는 일을 하면서 일어났던 분별심을 다 드러내야 합니다. ‘성질이 나서 죽여버리고 싶었다’, ‘집에 가버리고 싶었다’ 하는 마음나누기를 계속 합니다. 저녁에는 10시가 되면 무조건 자야 하는데, 한 방에 20명, 30명이 다같이 자니까 코를 고는 사람도 있고 온갖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잠을 못 잔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왜냐하면 눈을 붙이자 마자 벌써 눈을 떠야 하는 새벽이거든요.nbspnbspnbsp세상 일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세상에서는 고생만 하지 고생하면서 일어나는 마음을 자기가 자각하도록 해주는 것이 없는데, 백일출가는 딱 하나 그것이 더 추가되어 있어요. 거기다가 어떤 일도 방긋 웃으며 ‘예’ 하고 해야 한다는 것이 과제로 주어집니다. 명심문이 그렇게 정해져 있어요. 그렇게 잘 될까요? 당연히 잘 안 되지요. 안 되는 과정 속에서 그것이 될 때까지 계속 연습합니다. 그렇게 백일을 생활하고 나오면 지천에 깔린 게 직장이예요. 여기서는 월급도 안 받고 오히려 자기 돈을 내고 와서 막노동을 했는데, 밖에 나가면 아무리 아르바이트라고 해도 돈을 주잖아요. 직장을 구하는 기준이 ‘300만원을 주느냐, 400만원을 주느냐’ 하는 것에서 ‘절에서는 한 푼도 안 주는데 여기서는 주네’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일이 많아도 밖에서는 새벽 4시에 깨우지는 않아요. 밤 10시까지 일을 시키지는 않아요.nbspnbspnbsp그래서 밖에 나가서 사는 것이 아주 쉬워집니다. 무슨 일을 하든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돼요. 백일출가를 해서 행자로 산다는 것은 가장 낮은 자세로 하심을 해서 마치 하인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무슨 일을 해도 행자로 살 때 보다는 존중 해줘요. 그래서 취직이 잘 되는 겁니다. 이것을 ‘법의 가피’라고 합니다. 원하는 것을 이뤄지게 해준다는 신의 가피와는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nbspnbsp그리고 이런 생활이 체질에 맞다고 생각이 되면 정토회에 들어와서 평생 무보수로 살면 돼요. 그러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돈을 갖겠다고 하니까 살기가 힘들지 내가 갖겠다는 생각만 놓아버리면, 인도에 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고, 필리핀에 가서 원주민들도 도울 수 있고, 무슬림 지역에 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고, 얼마든지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어요. 그렇게 살아도 하루 세 끼 밥은 다 먹어요. 벌거벗고 다니지 않고 옷은 다 입고 다녀요. 침대에서 자느냐 바닥에서 자느냐의 차이 밖에 없지 잠은 다 자요. 되게 졸리면 굿을 해도 잔다 하잖아요.nbspnbsp저도 지금 3일 연달아서 밤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 하루종일 생활하거든요. 피곤해서 어떡하냐고 그러시는데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순 없잖아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몸이라는 게 자기도 살아야 하니까 비행기만 타면 잠을 자게 돼요. 여러분들은 비행기를 타면 잠이 안 온다고 하는데 그것은 집에 와서 잠을 잘 수 있으니까 잠을 안 자는 거예요. 저는 비행기에서 내리면 바로 가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몸이 이 때 안 자면 자기는 죽는 거예요. 그러니 몸이 알아서 다 자게 되어 있어요. 자는 것은 앉아서 자나 누워서 자나 별 차이가 없어요. 자는 게 중요하지요. 누워서 잠이 안 오고 뒤척거리는 것보다 앉아서 자는 게 더 잘 잘 수도 있어요.nbspnbspnbsp인생이라는 것이 궁하면 통하게 되어 있듯이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어요. 이런 공부를 하면 삶이 자유로워집니다. 저는 여러분보다 더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제가 하는 일이 여러분들이 하는 일보다 쉬운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저는 어떤 일이든지 재미있게 합니다. 이것도 나쁘게 생각하면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가령 즉문즉설을 매일 하다 보면 매일 똑같은 질문들을 하잖아요. 그래서 365일 매일 똑같은 얘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질문을 하고 나서는 제가 얘기한 대로 아무도 안 해요. 묻기만 하지 제가 얘기한 대로 안 한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어요. 묻기만 하고, 물어놓고는 얘기한 대로 하지는 않고, 그러니 얼마나 재미없겠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걸 안 따져요. 묻는다는 것은 그 개인에게는 다 애절한 사정이 있는 거잖아요. 그 한 사람의 고민은 항상 처음 듣듯이 듣고, 또 제가 얘기한 대로 하고 안 하고는 그 사람의 인생이니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라고 여깁니다. 제가 관여하는 것은 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걸 조금 터치한 정도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임하니까 재미있게 할 수 있지요.nbspnbsp이렇게 즉문즉설을 하루에 두 번씩 할 때마다 10명의 고민을 들으면 얼마나 많이 듣게 됩니까. 제작년에 세계 100회 강연 할 때는 1000명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생이 괴로운 1000명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이 저한테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까. 자신이 평생 살아온 엑기스를 저한테 얘기해 주니까 그것들을 연구하면서 저의 능력도 점점 더 커져가는 겁니다. 이것을 좋게 생각하면 정말 좋은 일이고, 이것도 지겹게 생각하면 하루도 못할 일이 되는 겁니다. 생각하기 나름이예요.nbspnbspnbsp그러니 참 좋은 생각을 하셨어요.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백일출가를 하고 사회로 나가면 호주만 좋은 나라가 아니고 대한민국도 좋은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천당만 좋은 세상이 아니라 이생도 좋은 세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렇지 않고 호주만 자꾸 생각하게 되면 평생 불행이 예약된다는 점을 꼭 명심하세요.”nbsp“네, 감사합니다. 많이 가벼워졌습니다.”nbsp백일출가를 하게 되면 어떤 심리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지 적나라한 비유에 모두들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뒤바뀌는 것이 인생이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약속한 2시간이 다 지나가고 8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몇몇 분들이 손을 들고 더 질문을 하고 싶어 했지만,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어서 마지막으로 한 분의 질문만 더 받고 8시 30분이 되어 강연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치면서 스님은 오늘 얘기나눈 모든 이야기의 요점이 무엇인지 정리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 이 사람 저 사람의 많은 고민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는데 제 얘기의 요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남자든 여자든 늙었든 젊었든 장애가 있든 없는 성적 취향이 동성애든 양성애든 피부가 검든 희든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거잖아요. 내가 지금 어떤 처지에 놓였든 살아 있는 사람은 다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우리는 자꾸 불행할 수밖에 없는 핑계를 자꾸 댑니다. 왜냐하면 ‘엄마 때문에, 남편 때문에, 누구 때문에...’ 하면서 불행이 밖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니다. 그러나 불행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불행의 원인은 자기에게 있는데 그 이유를 밖에서 찾는 겁니다. 자기가 불행하고 싶어서 불행하다면 자기가 좋아서 그러는 거니까 그렇게 살라는 겁니다. 그러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핑계를 대는 조건을 떼야 합니다. 남편이 일찍 들어오면 일찍 들어와서 힘들다고 하고, 늦게 들어오면 늦게 들어와서 힘들다고 하고, 부모가 없으면 없어서 효도할 수가 없다고 힘들어하고, 부모가 있으면 있어서 못살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은 불행하다고 이미 결정해 놓고 ‘있으면 있어서 불행하다’, ‘없으면 없어서 불행하다’ 자꾸 이럽니다.nbspnbsp항상 좋게 생각해야 해요. 시부모님이 안 계시면 시집살이 안 해서 좋다고 생각하고, 부모님이 계시면 효도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고, 아이가 있으면 아이 키우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아이가 없으면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생각해 보세요. 저는 혼자 사는 것을 즐겨요. 이렇게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밤에 늦게 들어가도 잔소리하는 마누라가 없잖아요. 이것만 생각해도 얼마나 좋아요. 제가 만약 결혼을 했으면 이런 상황을 용납 안하겠지요. 맨날 싸우고 있을 거예요.nbspnbspnbsp그러니 자기에게 주어진 장점을 늘 좋게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을 ‘긍정적 사고’라고 합니다. 긍정적 사고는 ‘무조건 잘 될 것이다’ 라고 하는 낙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나버린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호주에 이민을 와서 사기를 당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것을 붙들고 괴로워 하고만 있지 말고 ‘남의 나라에 왔으니 학습비를 좀 내었다’ 하고 여기는 겁니다. 이렇게 이미 일어나버린 일은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실수마저도 경험으로 자꾸 축적이 되어서 결국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됩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스님의 열정적인 말씀에 힘이 절로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2시간 30분 동안 중간에 자리를 뜨는 사람 없이 오롯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 멜번 교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강연이 30분 늦게 끝났지만, 교통 안내를 하느라 강연 전에 미처 사진을 같이 찍지 못한 봉사자들이 있다고 해서 스님은 조금 더 시간을 내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 멜번 정토법당 회원들과 함께사진을 찍고 나서는 한국에서 가져온 단주를 스님이 직접 봉사자들의 손목에 걸어주었습니다. 해외에서는 단주를 구하기 어려운 데다 스님이 직접 걸어주신다고 하니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 봉사자들에게 단주를 선물하는 스님차량에 올라타고 박스힐 타운홀을 출발하여 9시 30분 무렵에 멜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나서는 이번 시드니 강연과 멜번 강연을 총괄한 정은지 시드니정토회 총무님, 운전을 해주신 김삼구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특히 운전을 해주신 분에게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사인한 책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 공항 마중을 해준 운전봉사자 김삼구님과 정은지 시드니정토회 총무님nbsp밤 11시 10분에 멜번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8시간 30분을 비행하여 타이베이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타이베이공항에서 2시간을 머문 후 아침 8시에 다시 출발하여 인천공항에는 낮 11시 무렵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한국에 귀국한 후에는 평화재단에서 연이어 손님들과 미팅을 가질 예정입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3.08. 105,638 읽음 댓글 38개

2016.3.6 (호주 1일째_오후) 시드니(Sydney) 즉문즉설 강연

nbsp오전 11시부터 오후에 3시까지 진행되었던 시드니와 멜번 정토불교대학 졸업식에 이어서 오후 4시부터는 시드니에 살고 있는nbsp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강연이 열린 시드니대학교 이스턴 에비뉴 오디토리엄에는 시드니정토회 회원들이 일찍부터 와서 곳곳을 장식하고 안내 표지를 붙이며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시내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장소를 찾아오기가 어려워 여러명의 봉사자들이 곳곳에서 안내를 도맡아 주었습니다.nbspnbsp▲ 시드니대학교 이스턴 에비뉴 오디토리엄nbsp특히 어제 저녁에는 오페라하우스 앞에도 찾아가 전단지를 돌리는 등 많은 사람들이 오늘 강연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의 노력 덕분에 강연장은 좌우에 빈자리를 조금 남기고 거의 만석이 되어 350여 명이 자리했습니다. 특히 젊은 청년들이 많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습니다.nbspnbspnbsp소개 영상에 이어서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교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스님을 반겼습니다. 스님은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은 교민 사회의 여건을 헤아리며 오전에 교회는 잘 다녀왔는지 물어보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nbspnbspnbsp“오전에 교회는 다 잘 다녀오셨어요? 왜 강연시간을 오후 4시로 잡았을까요? 여러분들이 오전에는 교회에 다녀오라고 그런 거예요. 강연을 오전에 하면 ‘교회 가야 되나? 강연 가야 되나?’ 고민할까 싶어서요.nbspnbsp저는 한국에서 4일 전에 출발해서 필리핀에 들렀다가 왔습니다. 저희 JTS가 필리핀 민다나오에 있는 산악지대의 원주민 마을과 무슬림 분쟁지역에서 구호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산악지역에는 공산반군인 신인민군이 있고요, 무슬림지역에는 MILF라는 모로이슬람민족해방전선이 있습니다. 두 곳 모두 분쟁지역이다 보니까 학교가 제대로 운영이 안 됩니다. 학교 건물도 없지만 선생들도 안 가려고 하고요. 그래서 저희 JTS에서는 2003년부터 1년에 3개 내지 5개의 학교를 계속 지어왔습니다. 그렇게 저희가 학교를 지어주면 교육청에서는 선생님을 파견해 주겠다고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필리핀에 47번째와 48번째 학교의 준공식을 하고 이곳으로 온 겁니다...” nbspnbspnbsp필리핀 민다나오에 48번째 학교를 준공했다는 소식에 모두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렇게 안부를 전한 후 곧이어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nbsp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스님께 자신의 고민을 말했습니다.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대부분 청년들이었는데, 아주 솔직한 질문에 대중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재미있게 법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엄마가 동생을 너무 편애해서 힘들다고 하소연했던 한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질문한 분은 대구에서 온 여성이었는데, 경상도 사투리로 아주 솔직한 표현들을 거침없이 해서 대중들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nbspnbspnbsp“엄마는 제 동생을 너무 편애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편애라고 생각을 안 하세요. 제 동생이 어릴 때부터 엄청 왕따를 당했는데, 저는 동생이 맞고 들어오면 때린 애를 찾아가서 두들겨 패줬습니다. 어릴 때부터 대학 때까지 그랬어요. 그런데 어릴 때부터 엄마가 남동생을 너무 편애하시니까 저는 독립적으로 제 일은 제가 다 알아서 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동생이 20살이 넘은 다음에도 계속 편애하시더라고요. 동생이 오토바이를 사달라고 하면 사주고, 차도 사달라면 사주고, 졸업할 때 60만 원짜리 신발도 사주고, 120만 원짜리 옷도 사주고요. 그러니까 제가 ‘왜 동생한테만 해 주고 나는 안 해 주느냐?’고 했더니 엄마는 ‘너는 돈 벌잖아’라고 하셨습니다. 동생과 저는 2살 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요.nbspnbsp동생은 군대에 갔을 때도 불쌍한 척하면서 ‘아, 다른 애들은 다 사먹는데, 나만 못 먹고 있다’며 전화를 해서 저는 미칠 지경이었지만 1, 2만 원씩 보태줬습니다. 그렇게 받기만 했으면 엄마한테도 그만큼 해 드려야 되는데, 동생은 전혀 신경을 안 씁니다. 그러니까 동생은 고마운 마음이 없는 겁니다. 동생이 머리는 좋아서 대기업에 취직을 했는데, 입사하자마자 차를 샀습니다. 그런데 차 보험료가 비싸니까 엄마한테 달라고 했나 봐요. 그 얘기를 들으니까 제가 돌겠더라고요. 동생은 완전 ‘또라이’에요.”nbspnbsp“동생이 좀 얄미운 짓을 한다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질문의 요점이 뭐예요?”nbsp“얼마 전에 남편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남편 친구 때문에 제가 법원에 가야 될 상황이 된 거예요. 그런데 벌써 그런 일이 두 번째입니다. 제가 속상해서 엄마한테 말씀드렸더니 항상 하던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참아야 된다고. 제가 결혼한 지 거의 2년째인데, 무조건 참으라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요.” nbspnbspnbsp“그러니까 질문자는 지금 남편이 문제예요? 엄마가 문제예요?”nbsp“엄마요. 엄마는 전혀 공감을 못 하세요. 제 얘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동생한테만 관심이 있어요.”nbspnbsp“질문자의 아이가 몇 살이에요?”nbsp“아직 아이는 없어요.”nbspnbsp“그러면 질문자가 아직 아이를 못 낳아봐서 그래요. 아이를 낳아서 키워보면 엄마가 왜 그렇게 하는지 알게 됩니다. 부모가 관심을 갖고 예뻐하는 아이는 스스로 알아서 잘 하는 아이가 아닙니다. 부모는 뭘 잘 못해서 ‘아이고, 저게 나 없으면 어떻게 살까’ 하고 걱정되는 자식한테 더 정을 갖는 법이에요. 그러니까 엄마는 동생이 남자아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동생이 어릴 때부터 왕따 당하고 자기 일을 잘 못 챙기기 때문에 더 신경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제 자식을 아끼는데, 그걸 왜 질문자가 질투해요?”nbsp“제가 한국에 살았을 때는 100만 원씩 꼬박꼬박 저금을 해서 엄마한테 한꺼번에 천만 원씩 드렸어요. 저는 필요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돈이 다 동생한테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짜증이 났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저보다 더 많이 벌어요. 월급이 400만 원인데, 왜 엄마가 걔한테 돈을 주는지 저는 도대체 이해가 안 갑니다.”nbspnbspnbsp“그건 질문자가 엄마가 안 되어 봐서 그래요. 큰아들은 돈을 잘 벌고 작은아들은 돈벌이가 시원찮으면, 큰아들한테 받은 돈을 작은 아들한테 주는 거예요. 큰아들이 노름을 해서 빚을 지면 엄마가 큰아들에게 욕은 해도, 작은 아들한테 돈을 얻어서 큰아들 빚을 갚아주고 그러는 거예요. 그게 부모의 심정이에요. 그건 옳다 그르다고 따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게 엄마의 인생이니까 질문자는 엄마에게 간섭을 안 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질문자가 엄마한테 돈을 줬으면 그 돈으로 엄마가 엿을 사먹든 빵을 사먹든 동생을 주든 그건 엄마의 자유입니다.”nbsp“그게 문제가 아니라 동생은 ‘나는 결혼을 하면 엄마를 안 모시고 살 거다. 내가 왜 모시고 사냐?’ 라고 말합니다.”nbsp“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건 동생의 자유입니다.”nbsp“그건 자식의 도리가 아니잖아요.”nbsp“20살이 넘으면 부모의 짐을 안 져도 됩니다.”nbsp“엄마는 20살이 넘은 동생한테 계속 지원을 하고 있는데요.”nbsp“그건 엄마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질문자가 상관할 일이 아니에요.”nbsp“그래서 제가 동생과 근 5년간 연락을 안 했습니다.”nbsp“제가 보기에는 질문자가 또라이네요. 질문자가 힘들어하는 핵심 원인은 엄마의 사랑에 대한 질투심이에요. 그건 안 좋은 거예요. 질투할 사람이 없어서 동생한테 질투를 해요?”nbspnbsp“제 고민이 질투심 때문이라는 건 한 번도 생각 안 해 봤어요.”nbsp“그걸 질문자가 모르니까 저한테 질문하는 것이지요. 첫 번째, 20살이 안됐을 때 부모가 나를 도와주는 건 부모의 책임과 의무이고, 내가 그런 부모의 말을 들어야 되는 것도 하나의 책임과 의무에 속합니다. 그런데 20살이 넘으면 자식이 어떻게 하든, 부모가 어떻게 하든, 서로 간섭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엄마한테 천만 원을 줬다는 건 자기가 좋아서 준 거잖아요. 질문자도 스스로 얘기했듯이 ‘필요 없어서 줬다’고 했잖아요. 자기가 돈이 필요 없으니까 엄마한테 갖다 버린 거란 말이에요. 엄마는 큰딸이 갖다버린 걸 주워서 작은 아들을 줬는데, 그게 뭐가 문제예요?”nbsp“제가 경상도 사람이다 보니 부끄러우니까 ‘아, 필요 없다. 가져라’고 말했던 거지요.”nbspnbsp“그래도 그렇게 말한 책임을 져야지요. 질문자가 엄마한테 돈을 줄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하는 게 스스로에게 더 낫고 기분이 더 좋으니까 그렇게 한 거잖아요. 그리고 엄마는 그걸 받아서 자기가 주고 싶은 사람이나 자기가 봤을 때 ‘안됐다’ 싶은 사람한테 주는 거지요.nbspnbsp많은 분들이 저한테 ‘이건 꼭 스님 쓰세요’라고 말하면서 돈이나 옷, 음식을 줍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만 실제로 사람들이 주는 걸 제가 다 먹었으면 저는 벌써 배가 터져서 죽었을 거고, 제가 다 입었으면 매일 10겹은 껴입고 다녀야 할 겁니다. 그래서 제가 주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 중에 필요한 사람들과 나눠서 씁니다.nbspnbsp그러니까 질문자가 ‘내가 준 돈은 엄마가 썼으면 좋겠다’ 하는 건 질문자의 마음이고, 그 돈을 자기가 쓰는 게 좋을지, 아들한테 주는 게 좋을지는 엄마가 결정할 일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자꾸 엄마를 간섭하잖아요.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질문자는 엄마한테 돈을 준 걸 여기서 막 자랑하는 것 같아요.”nbsp“제가 엄마한테 돈을 드리는 이유는 엄마 집이 전셋집입니다. 한국에서는 2년마다 전셋집 계약을 갱신하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일부러 목돈을 만들어서 드리는 거예요. 한국의 전세가가 얼마나 오르는지 제가 모르니까요. 그런데 엄마는 반찬도 허름하게 드시면서, 돈은 외제차 끌고 다니는 아들한테 다 주니까 제 마음이 안 좋아요.”nbspnbsp“질문자는 엄마가 선택한 인생에 자꾸 간섭하고 있어요. 부모가 자식을 간섭해도 자식이 싫어하는데, 자식이 왜 엄마를 간섭해요? 엄마에게 돈을 안 주는 건 불효가 아닌데, 엄마 인생에 간섭하는 건 불효에 속합니다.”nbsp“그럼 얼마 정도 드려야 돼요?” nbspnbsp“천만 원을 주든 1억 원을 주든 10원 한 장 안 주든 그건 질문자의 자유예요. 제 말은 준 것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말라는 거예요.nbsp질문자의 동생이 굉장히 현명한 거예요. 약간의 보호 본능을 일으켜서 엄마로부터도 도움을 받고, 또 취직을 해서 돈도 벌고, 또 결혼해서는 엄마도 안 모시고요. 그런데 질문자는 돈 벌어서 엄마한테 주고, 나중에 또 엄마 모셔야 되고... 제가 볼 때는 질문자가 엄마를 모실 것 같아요.”nbspnbsp“예, 맞아요. 이리로 모시고 오려고요.”nbsp“좋은 거예요. 동생이 안 모시겠다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내 엄마 내가 모시는데, 누가 모시든 무슨 상관이에요. 스님이 보기엔 동생이 또라이가 아니라 질문자가 또라이에요.nbspnbspnbsp자기 모습을 자기가 못 보고 있어요. 영리한 척 잔머리는 굴리지만요. 질문자의 고민은 동생 문제도 아니고, 엄마 문제도 아니고, 자기 문제입니다. 자유로운 인간사를 자기 생각대로 규정짓고 있거든요. 늙은 부모를 자꾸 자기의 가치기준으로 어떻게 해 보려고 하는 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지금 질문자도 생각을 잘못하고 있어요. 그런 마음으로 엄마를 모시면 같이 살면서 서로 원수가 됩니다.nbspnbsp어린 자식한테는 모범을 보여야 되고, 늙은 부모한테는 맞춰야 됩니다. 그저 부모가 하자는 대로 따르고, 마음대로 하시도록 배려해야 됩니다. 엄마가 주고 싶은 대로 주고, 살고 싶은 대로 살겠다는데, 왜 질문자가 그걸 보고 미쳐서 날뛰고 그래요? 질문자의 생각이 잘못된 거예요. 정말 고쳐야 해요. 계속 그러면 부모형제 사이에 서로 감정이 상해서 질문자만 외로워집니다. 엄마하고도 연락 안 하고, 동생하고도 연락 안 하고 살면 자기만 외롭지요.”nbsp“그런데 저는 이렇게 연락 안 하고 사는 게 오히려 편하기도 합니다. 진짜 편해요.”nbsp“편하면 그렇게 사세요. 그런데 자기가 진짜 편하면 저한테 왜 질문을 할까요? 안 편하니까 묻겠지요. 아이고, 진짜로 질문자가 또라이 맞네요.”nbspnbspnbsp“예, 엄마하고 연락 안 하는 건 불편하더라고요. 엄마랑 연락 안 한지 8개월쯤 되니까 남편이 ‘이건 아닌 것 같다’면서 스님께 한번 여쭤보라고 하더라고요.”nbsp“남편이 답을 몰라서 스님한테 물어보라고 한 게 아니에요. 남편이 말해 봐야 질문자가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까 그나마 질문자가 좋아하는 법륜 스님이 말하면 좀 알아들을까 싶어서 물어보라고 한 거예요. 제가 한 얘기를 남편한테 전해 보세요. 그럼 남편이 ‘내가 똑같은 얘기를 벌써 몇 번이나 했잖아’ 라고 할 거예요.”nbspnbsp“속이 시원합니다. 이제 해결됐어요. 감사합니다.”nbspnbsp스님의 물음에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로 꼬박꼬박 대답을 잘 하던 질문자는 마침내 활짝 웃었습니다. 스님도 경상도 출신이어서 경상도 사투리로 대답을 해주었는데 사투리가 죽이 척척 맞아들어가는 모습에 대중들은 박장대소를 했습니다.nbsp질문자가 웃으며 자리에 앉자 청중석에 앉아 있던 다른 한 분이 질문자에게 응원의 한 마디를 해주고 싶다며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nbspnbsp“스님, 제가 질문자에게 응원의 한 마디를 해 드리고 싶어서요. 조금 창피할 수도 있을 텐데 저렇게 용기 내어서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까 질문하신 분은 참 순수한 분이세요.”nbsp아마도 질문자에게 스님이 또라이라고 농담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 응원의 마음을 보내고 싶었나 봅니다. 그러자 스님은 경상도 사투리를 잘 이해해야 한다고 하면서 몇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더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예, 맞아요. 제가 질문자한테 농담으로 또라이라고 그랬는데 그게 순수하다는 뜻입니다. 결혼생활 20년이 됐는데도 남편이 아내한테 항상 ‘아이고, 못 생긴 게. 나나 너를 데리고 살지 누가 너를 데리고 살겠어’ 라고 하는 건 ‘예쁘다’는 뜻입니다. 경상도 남자들은 ‘예쁘다’는 말을 하려면 머리에 개미가 기어가는 것 같아서 제대로 못합니다.nbspnbsp그러니까 질문자도 ‘엄마, 이거 엄마 용돈으로 쓰세요’라고 예쁘게 말을 못 하고 ‘나 필요 없으니까 엄마 가져라’라고 했다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걸 잘 알아들어야 해요. 질문한 당사자는 제가 ‘또라이’라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아 하잖아요. nbspnbsp경상도 사람들은 말을 삐딱하게 하는 습관이 있어요. 그래서 울산, 경주 쪽은 이럽니다. ‘내일 우리 집에 놀러와라’ 그러면 ‘응, 갈게’ 하고 대답하면 될 텐데, ‘가면 뭐 주는데?’라고 말합니다. 약속시간에 좀 늦으면 ‘좀 늦었구나’ 하면 될 텐데, ‘난 니 오다가 뒈진 줄 알았다’ 그래요.nbspnbspnbsp말투가 그래요. 저도 그럴 때가 있어요. 공양간 봉사자들이 설거지를 끝내고 뒤늦게 밥 먹는 걸 보면 ‘아이고, 수고했다. 다른 사람 공양할 수 있도록 다 준비해 주느라 이제야 먹는구나’ 하면 좋을 텐데, 저도 어렸을 때부터 자라온 내력이 그래서 ‘아직도 먹나? 몇 그릇 째고?’ 라고 말이 나가요. 경상도 사람들은 제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듣는데 서울 사람들은 못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 공양간 뒷정리까지 다 하고 이제 겨우 숟가락 들었는데 몇 그릇 째냐고요?’ 라고 항의를 합니다. 그래서 저도 참회한 적이 있습니다.”nbspnbsp경상도 사투리가 쏟아지면서 강연장은 웃음 바다가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보다 더 웃기는 코메디가 없다며 박수를 쳤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니 벌써 약속한 2시간 30분이 다 되었습니다. 정말 유익하고 재미있고, 너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젊은 청년들이 오늘 강연에 많이 참석한 것을 헤아리며 너무 눈치보면서 살지 말고 조금 더 유연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nbspnbsp“젊을 때는 욕도 좀 얻어먹고, 실수도 하면서 살아야지, 실수를 안 하려고 하면 아무 일도 못 해요. 실수도 하고, 반성도 하고, 사과도 하면서 살 생각을 해야 자유롭게 살 수 있어요. 살얼음판 걷듯이 세상을 살다 보면 평생 내 인생을 못 삽니다. 이렇게 자유로운 세상에 태어나 무엇 때문에 그렇게 눈치 보며 살아요?nbspnbspnbsp오히려 살아가면서 조정을 하세요. 그냥 덜렁덜렁 살면서 ‘저 사람은 서울 사람이라 이런 얘기를 못 알아듣는구나. 그러니까 말조심을 해야 되겠다’, ‘저 사람 하는 말에 내가 상처를 입었는데, 저 사람이 경상도 남자라 저러지 속마음은 안 그렇구나’ 하는 걸 알아 가면 됩니다. 정토회에서 오래 수행한 보살님이 말하길, 자기 남편이 ‘내가 못 생긴 너하고 살아준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알아라’고 하는 말이 ‘예쁘다’는 뜻인 줄 알아듣기까지 20년이 걸렸답니다. 그 보살님이 절에 간다고 할 때마다 남편이 ‘가지 마라’ 라고 하니까 보살님이 ‘그래도 가야 된다’ 고 했대요. 그러니 남편이 ‘가려거든 다시는 들어오지 마라’ 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보살님이 ‘예, 알겠어요. 빨리 들어올게요’ 라고 웃으며 대답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남편이 거칠게 말은 하지만 그 말이 ‘빨리 들어오라’는 뜻임을 헤아린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알아들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nbspnbsp그냥 살아가면서 맞춰가면 되는 거예요. 요즘은 너무 존중하고 또 존중받으려니까 결혼생활이 피곤해서 오래 같이 못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겁니다. 그러니 그냥 대충 사세요. 대충 살면서 맞춰 가면 됩니다. 시댁에 가보면 대강 시댁 분위기가 파악되잖아요. nbsp‘남편만 봐서는 이해가 잘 안 됐는데, 시댁에 가보니까 집안의 분위기가 이래서 남편이 저렇다는 걸 알겠다’ 이렇게 헤아리면서 이해하고 맞춰 살면 됩니다. 사람이 한 번에 탁 바뀔 수는 없어요.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은 다 이기적이에요? 안 이기적이에요?”nbsp nbsp“이기적이에요.”nbspnbsp“그런데 왜 자꾸 남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해요? 모든 인간이 이기적인데요. 그 이기적인 인간들끼리 서로 적절하게 이익을 공유하는 게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다 성격도, 생각도, 믿음도 다르니까 그 다름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조절해 가면서 살아야 하는 거예요. 극단주의는 우리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자기만 옳다고 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삶을 조금 유연하게 사세요.nbspnbsp내일 당장 천국에서 기차가 와서 ‘데려가겠다. 가자’고 하면 당장 따라갈 거예요? 아마 안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죽겠다, 못 살겠다’고 하지만 여기서 더 살고 싶지요? 그러니 조금만 양보하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이왕 사는 거 조금 더 행복하게 삽시다.”nbspnbsp스님의 마무리 말씀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와 함성이 오랫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그만큼 오늘 강연이 참 감동적이었고 좋았다는 대중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이 되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친 후 책 사인회가 무대 앞에서 열렸습니다. 먼 길을 달려온 스님을 가까이에서 뵙고자 많은 교민들이 길게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스님은 환한 웃음과 함께 교민들 한 명 한 명과 눈도 맞추어 주고 “힘내세요” 라고 격려 말씀도 해주었습니다. nbspnbspnbsp교민들이 모두 강연장을 빠져나가자 행사장 뒷정리를 하고 있던 시드니정토회 회원들 모두가 함께 모여서 스님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강연장 곳곳에서 보여준 모습처럼 회원들 모두가 열정적으로 활동을 해서 그런지 1년 사이에 봉사자들이 부쩍 늘어난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준비한 시드니정토회 회원들nbsp스님은 봉사자들 모두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단주를 하나씩 손목에 걸어주었습니다. 단주가 동그란 알맹이로 되어 있어서 공항 검색대에 걸려서 갖고 나오는데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너무나 기뻐하는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니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가져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 단주를 선물하고 있는 스님nbsp수고한 봉사자들에게 합장으로 감사 인사를 한 후 스님은 다시 시드니공항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공항으로 가는 길에는 운전 봉사를 해주는 거사님이 가는 길에 오페라하우스가 보인다며 데려다 주었습니다. 스님은 해외에 어디를 가도 늘 공항에서 강연장만 왔다가기 바쁜데, 오늘은 조금 여유가 생겨서 오페라하우스를 잠시 거닐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nbspnbsp▲ 하버 브릿지의 야경nbsp바닷가에 다다르니 저 멀리 하버 브릿지가 보이고, 그 옆에 웅장한 규모의 오페라하우스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바닷 바람이 강해서 아주 시원했습니다. 사진 한 장만 간단히 찍고 다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오페라하우스nbsp밤 10시에 시드니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1시 40분에 멜번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어제도 밤 비행기, 오늘도 밤 비행기를 탔는데, 내일도 밤 비행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제 밤 비행기가 점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nbspnbsp▲ 밤 11시 40분. 멜번공항 도착nbsp멜번공항을 나오니 멜번정토회에서 김승주님이 마중을 나와 스님 일행을 안전하게 멜번 정토법당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새벽 1시에 멜번 정토법당에 도착하니 늦게까지 집에 가지 않고 기다리던 멜번정토회 회원들이 스님에게 삼배를 올렸습니다.nbspnbsp▲ 멜번 정토법당nbsp스님은 “수고 많으셨다”고 감사 인사를 한 후 휴식을 취하러 방으로 들어갔습니다.nbspnbsp내일은 멜번 정토법당에 머물다가 오후 5시에 강연이 열리는 박스힐 타운홀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멜번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밤 11시 비행기로 한국으로 출발합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3.07. 126,596 읽음 댓글 54개

2016.3.6 (호주 1일째_오전) 시드니 멜번 정토불교대학 졸업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시드니와 멜버른에서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을 위해 수계식 법문을 해준 후 오후에는 시드니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어젯밤 10시 비행기로 필리핀 마닐라 공항을 출발한 스님은 밤새 8시간을 비행하여 아침 9시에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 의자에 앉아 잠을 잔 셈입니다.nbspnbsp▲ 8시간 동안 비행기에서 앉아 잠을 자는 스님nbsp다만 에어콘 바람이 너무 강해서 몸에 한기가 들었는지 갑자기 콧물과 기침이 나와 조금 힘들어 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와중에도 원고 교정을 계속 하였습니다.nbspnbspnbsp입국 수속을 밟고 아침 10시가 넘어 공항 밖으로 나오니 시드니정토회 정은지 총무님과 운전봉사자 정귀수님이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강연장인 시드니대학교로 향했습니다.nbspnbsp▲ 공항 마중을 나온 정은지 총무님과 운전봉사자 정귀수님nbsp11시부터 곧바로 정토불교대학 수계식이 예정되어 있어서 아침 식사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먹었습니다. 시드니정토회에서 정성껏 도시락을 싸주어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 이동하는 차 안에서 아침 식사nbsp수계식이 열리는 시드니대학교 이스턴 에비뉴 오디토리엄에 도착하자마자 스님은 곧바로 화장실에서 세수만 하고 행사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먼저 오전에는 수계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시드니정토회 총무 소임을 맡고 있는 정은지님의 경과 보고와 함께 수계식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경과보고를 하고 있는 시드니정토회 정은지 총무님nbsp시드니 정토불교대학은 2010년 2월에 처음 시작되어 지금까지 74명이 졸업을 하였으며, 오늘은 시드니에서 15명, 멜번에서 7명, 총 22명이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졸업생 중에서 오늘 수계를 받는 사람은 시드니 정토법당 12명, 멜번 정토법당 4명을 포함해 총 16명입니다.nbspnbsp▲ 시드니, 멜번 정토불교대학 수계식nbsp이렇게 16명이 가사를 여법하게 수하고 자리한 가운데 수계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대중들에게 삼귀의 오계 수계를 하기에 앞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떤 역사를 거쳐 오늘의 나에게 이르렀는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런 후 오계를 지키는 것이 왜 소중한 것인지 그 의미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한국에서 학교 선생님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불교신자인 선생님들은 확실히 아이들을 때리는 비율이 낮다는 통계가 나올까요? 술주정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까 불교신자들은 확실히 적다는 통계가 나올까요? 폭행하는 사람을 경찰이 잡아서 조사해 보니까 불교신자는 거의 없다는 통계가 나올까요? 도둑을 잡아서 조사해 보니까 불교신자는 특별히 적다는 통계가 나올까요? 성추행범을 잡아서 전부 조사해 보니까 불교신자는 거의 없다는 통계가 나올까요?nbspnbspnbsp만약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불교신자라는 게 무슨 대수겠어요? 불교신자면 뭐하고 기독교신자면 뭐하고 무교면 어떻겠어요? 그런 불교신자는 아무런 불교적 가치가 없는 그냥 부처님한테 복 빌기 위해서 신자가 된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런 불교신자의 수가 늘든 줄든 이 세상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습니다.nbspnbsp그렇게 이름만 불교신자인 사람들에게 수계하려고 제가 밤새도록 비행기 타고 와서 아침부터 이렇게 강단에 앉아 있겠어요? 한 명이라도 불교 수행자가 늘어나는 만큼 세상이 좋아져야 된다는 믿음 때문에 이러는 겁니다.nbspnbspnbsp불자들이 다섯 가지 기본계율, 즉 오계만 지켜도 이 세상은 정말 좋아질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친구들이 ‘야, 너는 좋겠다. 엄마가 불자여서 공부하라는 잔소리 들을 일은 없겠네’, 학생들이 ‘야, 올해는 선생님이 불자여서 매 맞을 일은 없겠다’, 사업가들이 ‘거래처 사장이 불자라고 하니까 사기당할 일은 없겠다’, 환자들은 ‘의사가 불자라니 과잉진료 받을 일은 없겠다’ 이렇게 말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오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됩니다. 오계를 잘 지키면 세상에 살면서도 부처의 길을 갈 수가 있는 거예요.”nbspnbsp다섯 가지 계만 잘 지켜도 우리 사회가 참 좋아질 것이라는 말씀이 오랫동안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들이 이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왜 오계를 지켜야 하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오계를 하나 하나 읊어 주면서 수계 대중들이 잘 지킬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nbspnbspnbsp“이것이 우바새, 우바이들의 계이니 그대들은 몸과 목숨을 다하여 능히 잘 지키겠습니까?”nbsp“잘 지키겠습니다.”nbspnbsp대중들이 큰 목소리로 잘 지킬 것을 약속하자 스님은 모두에게 불명과 수계증을 수여했습니다. 한 명 한 명 앞으로 나오게 해서 수여한 불명의 의미를 모두 해석해 주었습니다.nbspnbsp▲ 불명과 수계증 수여식nbsp“앞에 서 계신 분의 불명은 ‘능인화’ 입니다. 만불 가운데 세 번째 부처님의 명호가 ‘능인’ 여래불입니다. 능인이란 ‘어질고 전능하다’는 뜻인데 이것은 모든 중생을 어질게 두루 보살피시는 부처님이란 뜻이 됩니다. 부처님의 이름인 ‘능인’을 따서 ‘능인화’라는 불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별로 어질게는 안 생겼네요? 앞으로는 어질게 살아야 해요. 알았지요?”nbsp“예.”nbspnbsp“두루뭉술하게 모든 사람을 좋게 봐줘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처지에서 보면 다 불쌍한 사람이에요. 우리 눈으로 보면 술 먹고 행패부리는 사람이 나쁜 인간이지만 그 사람의 까르마,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어릴 때 그런 부모 밑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자기도 자기를 어쩌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그 까르마를 봤을 때는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능인화 보살님은 앞으로 상대의 입장에서 보고 능히 다 구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nbspnbsp스님의 짧고 명쾌한 해설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리며 기뻐했습니다. 이번에는 남자 분이 불명을 받았습니다.nbspnbspnbsp“거사님의 불명은 ‘덕주’입니다. 만불 가운데 1543번째 부처님의 명호가 덕주여래불입니다. ‘베푸는 자 가운데에 주인이다’ 하는 뜻입니다. 집에 쌓아둔 게 많이 있어요? 재물이 없으면 마음으로도 베풀고, 몸뚱이로도 베풀어야 돼요. 그래서 거사님은 항상 사람들에게 뭘 얻을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거사님이 바로 베푸는 자의 주인이기 때문에. 알았죠?”nbsp“예.”nbsp“물이 고이면 썩지만 물을 자꾸 퍼내면 새물이 나오듯이, 자꾸 베풀면 영원히 베푸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분이 바로 덕주 거사님입니다.”nbspnbspnbsp이렇게 스님은 수계를 받은 16명에게 불명의 의미를 자상하게 일러주었습니다. 수계식을 마치고 나서 대중들 모두 하나같이 “스님은 속마음을 꿰뚫어보시는지 딱 저 사람에게 맞도록 불명을 해설해 주셨다”며 아주 좋아했습니다.nbspnbsp10분 간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오후 1시부터는 정토불교대학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졸업식에는 경전반 졸업자까지 포함해 총 26명이 참석했습니다. 졸업생들이 스님께 법문을 청하자 스님은 졸업생들을 격려해주면서 조금 더 포용적이고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이 되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불자는 사회의식 수준이 보통 사람보다는 높아야 됩니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의 불교신자는 일반 국민들보다 의식수준이 높을까요? 그건 학벌하고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nbspnbsp▲ 정토불교대학 졸업식nbsp예를 들어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반대해도 종교인은 용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인과 그 부모는 얼마나 가슴 아프겠어요? 또 얼굴이 검다고, 여자라고, 장애가 있다고 차별받으면 얼마나 가슴 아프겠어요? 다 자기가 선택한 게 아니잖아요. 태어났는데 그렇게 돼있는 걸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 차별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가 않습니다.nbspnbsp기독교 신앙에 비추어서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첫 번째로 기독교에서는 천하 만물을 다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하잖아요. 그럼 그 사람들도 하나님이 창조한 거잖아요.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만 창조했지 그런 사람들은 창조를 안 했대요. 그럼 ‘하나님이 천하 만물을 창조했다’는 말은 맞는 말이 아니잖아요. 두 번째로 그들도 하나님이 창조한 게 맞다면 하나님이 소위 불량품을 창조했다는 거잖아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다면서 왜 불량품을 만드나요? 그러니까 일부 기독교인들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건 곧 자기 신앙을 부정하는 게 됩니다.nbspnbsp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시대를 초월하는 의식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2,600년 전에 태어나셨는데도 계급차별과 남녀차별을 부정하셨습니다. 요즘도 아니고 2,600년 전에 말이에요. 그러니까 당시에 사회적 저항을 많이 받으셨지요.nbspnbspnbsp우리는 그런 부처님이 가셨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의 마음이 닫혀있으면 안 됩니다. 열려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정체성은 확고히 갖되 타인에 대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길을 가는 게 수행자입니다. 여러분, 수행자로서 자랑스럽게 이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졸업을 축하합니다.”nbsp스님의 따뜻한 격려말씀에 모두들 크게 박수를 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의 감로 법문이야말로 졸업생들에게는 가장 큰 졸업 선물인 것 같았습니다.nbspnbsp졸업장 수여를 마친 후 졸업생들은 머나먼 이국땅에 살고 있는 26명을 위해 밤새 비행기를 타고 와서 4시간에 걸쳐 수계식과 졸업식을 해준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꽃다발을 건네고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손수건을 꺼내nbsp눈물을 닦는 분들이 많았습니다.nbspnbsp▲ ‘스승의 은혜’를 부르는 졸업생들nbsp스님의 법문에 모두들 들뜬 마음이 되어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제 오늘부터 진정한 수행자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뒤에 자리한 선배 도반들과 가족들이 큰 박수로 격려의 마음을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 시드니, 멜번 정토불교대학, 경전반 졸업생 모두 함께nbsp수계식과 졸업식은 오후 3시가 넘어서 끝났습니다. 30여 분 동안 여유가 생겨 늦은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스님은 한국과 계속 전화 연락을 하며 필요한 업무를 챙기셨습니다.nbspnbsp이어서 오후 4시부터는 시드니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35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감동적이고 재미가 넘쳐나는 대화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다음 이야에 계속 됩니다.nbsp ※ 2016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nbsp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분들은 지금 신청하세요.nbspnbspnbsp

2016.03.07. 53,537 읽음 댓글 38개

2016.3.5 (필리핀 4일째) 아시아 지역 정토불교대학 졸업식 및 수계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마닐라 정토법당에서 마닐라, 세부, 홍콩, 방콕 등 아시아 지역에서 각각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졸업한 11명을 위해 수계식 및 졸업식 기념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전에 원고 교정 작업을 한 후 이원주 회장님 댁을 출발한 스님은 12시에 마닐라 정토법당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법당에 들어서자 일찍 도착한 정토불교대학 졸업생들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nbspnbsp▲ 마닐라 정토법당nbsp그리고 대중들이 메밀국수를 정성껏 차려놓아서 스님도 함께 맛있게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nbspnbspnbsp대중들 중에는 외국인 한 사람이 있었는데, 부인이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너무나 행복해져서 스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방콕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합니다. 외국인들에게는 이렇게 배우자의 변화를 통해 스님의 가르침이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가웠습니다.nbspnbspnbsp가사를 수하고 여법하게 자리에 앉은 정토불교대학 졸업생들은 청법가와 삼배로 스님에게 수계 법문을 청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부처님의 법이 어떻게 지금의 나에게까지 이르렀는지, 끊겼던 재가수행자의 길이 어떻게 복원이 되었는지 설명하면서 수계 대중들도 이제는 법을 전하는 일을 해나가야 함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우리나라는 불교가 A.D 48년에 처음 인도로부터 가야로 전래되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의 일이었고, 그때 전래된 불교는 소승불교였습니다. 그로부터 약 300년 후에 중국을 거쳐서 우리나라에 온 인도의 전법자들에 의해서 372년에는 고구려에 순도화상이, 384년에는 백제에 마라난타 대사가 불법을 전래했습니다.nbspnbspnbsp신라에는 아도화상이 불법을 전래하러 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불교 신앙을 금지했습니다. 그래서 불법을 공식적으로는 전하지 못하고 국경 근처 모례 장자의 집에 숨어서 비밀리에 전했을 뿐입니다. 결국 신라는 신라와 가야의 합병을 둘러싸고 가야의 신앙인 불교를 용인할지 말지에 대해서 국론이 분열되자 527년에 이차돈의 순교로써 528년에 불교를 공인하였고, 결국 532년에는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면서 불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국교로서 공인되다가 조선조 500년 간은 유교가 국교가 되면서 유교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삼귀의와 오계를 받는, 즉 재가수행자가 되는 길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결국 조선시대에는 복을 비는 신자만 있게 되고, 재가수행자의 길은 없어진 것입니다.nbspnbsp또 부처님의 정법도 역대 조사로 계승되어 오다가 조선조에 극심한 탄압을 받게 되자 그 법맥이 끊어져서 결국 소멸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50여 년 전에 태어난 용성진종조사에 의해서 그 끊긴 법맥이 회복되어서 용성진종조사가 석가여래부촉법 제68세, 석가여래계대법 제75세로 등단을 하신 뒤 다시 재가수행자의 길인 삼귀의 오계를 복원하셨습니다. 용성진종조사의 법을 동헌 완규조사가 잇고, 동원 완규조사의 법을 불심도문 대사가 잇고, 불심도문 대사의 법을 계승한 석가여래부촉 계대법 제78세 지광 법륜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nbspnbsp그런 과정을 거쳐서 재가수행자의 길이 복원이 되었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들은 부처님 당시의 구리가장자 부부처럼 재가수행자가 될 수 있는 삼귀의 오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계를 받는 여러분들은 더 이상 복을 비는 신자의 길이 아닌 스스로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괴로움이 없는 열반과 속박이 없는 해탈을 증득하기 위한 수행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여러분은 재가수행자의 길을 가겠다고 발원해서 이렇게 수계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가르침을 잘 받아 지녀서 해탈과 열반을 증득할 때까지 수행 정진을 하는 건 물론이고, 이 좋은 법을 널리 세상에 전파해서 괴로운 사람들이 기쁨을 만끽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셔야 합니다. 또 이 법을 전 세계로 그리고 미래로 전하셔야 합니다. 마치 역대전등 제대조사들이 부처님으로부터 이 지광 법사에 이르도록 이어왔듯이 여러분들도 이 법을 전 세계로 미래로 이어가야 합니다. 이런 연유로 오늘 삼귀의 오계 수계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nbspnbsp이어서 스님은 지난 1년 동안 정토불교대학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상기시켜 주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은 지난 1년 동안 정토불교대학에서 공부를 하신 끝에 오늘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의 교과과정을 살펴보면, 첫 번째 과정은 ‘불교란 무엇인가’였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복을 비는 신자의 길이 아니고, 수행 정진을 통해 해탈과 열반을 성취하는 수행자의 길입니다. 두 번째 과정은 ‘부처님은 누구인가’ 였습니다. 부처님은 우리가 복을 빌면 복을 주는 신적 존재가 아니고, 우리를 해탈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위대한 스승, 즉 사람과 신들의 스승인 천인사이십니다. 세 번째 과정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팔만대장경이라고 불릴만큼 많은데 그 가르침의 요지인 근본불교에 대한 공부였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과정은, 이러한 불교가 2,600년 동안 내려오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어떤 연유로 세속에 물들어 종교화됐는지, 그걸 새롭게 일어난 대승불교가 어떻게 다시 바로 세웠는지, 또 선불교가 일어나면서 어떻게 불교가 수행자의 길로 되돌아 왔는지에 대한 불교의 역사를 공부했습니다.nbspnbsp그동안 여러분들은 붓다의 근본 가르침, 즉 테라밧다를 계승하면서 또한 마하야나와 선불교를 계승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는 걸 공부해 온 것입니다. 공부를 마치고 나서 여러분들 스스로 ‘아, 나도 부처의 길을 가겠다’ 하고 마음을 내셨기 때문에 오늘 수계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수계를 받게 되면 여러분은 이제 부처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모임인 상가, 즉 부처 클럽의 회원이 되는 겁니다.”nbspnbsp이제 부처 클럽의 회원이 되었다는 말에 수계 대중들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다음은 연비 시간이 되었습니다. 대중들이 지난 세월 오계를 어기고 살면서 지은 죄업을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는 시간입니다. 호궤합장을 하고 참회 진언을 외우자 스님이 향으로 불을 피워 따끔하게 연비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 연비를 하고 있는 스님nbsp이어서 스님은 다섯 가지 계율을 하나씩 설하고 그 의미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준 후 대중들에게 오계를 잘 지킬 것인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첫째,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nbspnbsp둘째, 도둑질을 하지 말라.nbspnbsp셋째,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nbspnbsp넷째, 거짓말을 하지 말라.nbspnbsp다섯째, 술을 먹지 말라.nbspnbsp이것이 우바새, 우바이들의 계이니 그대들은 몸과 목숨을 다하여 능히 잘 지키겠습니까?”nbsp“잘 지키겠습니다.”nbspnbsp대중들은 스님의 질문에 크게 대답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불명 및 수계증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수계를 받는 9명 모두에게 각기 수여한 불명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매 학기마다 2천여 명이 수계를 받기 때문에 대표로 한 명만 불명의 의미를 설명해주는데, 오늘은 9명이 수계를 받다 보니 모두에게 불명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 불명과 수계증 수여nbsp한 명씩 앞으로 나와 불명과 수계증을 받자 대중들은 큰 박수로 함께 축하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수계식을 모두 마친 후 화장실도 다녀올 겸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휴식 시간을 마친 후에는 졸업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대중들은 청법가와 삼배를 하며 스님께 졸업 기념 법문을 청했습니다.nbspnbspnbsp그러자 스님은 졸업은 부처로 나아가는 첫 출발이라고 하면서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삶을 부지런히 살아갈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오늘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졸업하신 분들께 먼저 축하말씀을 드립니다. 또 불교대학을 졸업하도록 도와주신 담당자 분들께도 감사말씀을 드립니다.nbspnbspnbsp정토불교대학은 원래 2년제였어요. 1년은 예비과정이었는데, 첫 번째는 nbsp‘불교란 무엇인가?’ 하는 실천적 불교사상, 두 번째는 ‘부처님은 누구인가?’, 세 번째는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은 무엇인가?’, 네 번째는 ‘불교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가?’였습니다. 나머지 1년이 본과정이었는데, 거기서는 아함경, 금강경, 반야심경, 선불교의 육조단경을 공부했습니다. 이렇게 2년제로 하니까 입학생에 비해서 졸업생 비율이 너무 낮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불교대학과 경전반으로 나누었습니다. 마치 대학과 대학원처럼 된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정토회에서 학벌 인플레가 심해졌습니다.nbspnbsp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원래대로라면 ‘불교대학 졸업’이란 ‘경전반 졸업’을 의미한다는 말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불교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반드시 경전반에 진학해야 합니다. 알았지요?”nbspnbsp“예.”nbspnbspnbsp“그래야 불교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거든요. 졸업이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졸업은 우리가 해탈과 열반으로 나아가는, 즉 부처의 길로 나아가는 첫 출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오늘 계를 받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들은 아직 헤매고 있지만 미래세에 부처가 되리라는 것을 오늘 예약하고 불명도 미리 받았습니다. 이렇게 한 발을 디디셨으니 꾸준히 수행 정진해서 모두들 열반의 언덕에 도달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nbsp스스로 부자라고 자부하며 계속 쓰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창고가 다 비게 되겠지요? 그래서 ‘아무리 부자라도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면 쓸 줄만 알지 모을 줄은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가난해서 베풀기 어렵다’는 말도 들어봤나요? 가난하면 제 살기가 바빠서 남에게 베풀 여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현재 여유가 있는 데도 베풀지 않으면 나중에 가난해지고, 현재 가난하다고 베풀지 않으면 나중에도 가난해진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그러니 여유가 있을 때 미리 공덕을 쌓아두어야 그 여유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nbspnbsp까르마라는 건 ‘이렇게 가면 어떻게 될 거다’ 하는 걸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걸 또 바꾸려면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심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또한 복을 지어야 될 일을 조급한 마음으로 받으려고만 하면 결국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자기가 복 좀 있다고 까불다가 그 복을 까먹지도 말고, 어렵다고 너무 쪼들리지도 말고, 그럴수록 더 기도하고 봉사를 해보세요. 여러분들은 절에 와서 자기가 보시, 봉사 좀 했다고 생색내고 까불잖아요.nbspnbspnbsp엉뚱한 곳에 돈을 쓰느니 이런 좋은 일에 돈을 쓰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이 세상을 위해서 쓴 건 몇 배가 되어서 다 자신에게 공덕으로 되돌아옵니다. 불자라면 그 공덕마저도 바라지 말라는 뜻에서 ‘무주상 보시’라는 말이 있지만요. 여태까지 정토회 봉사자들 중에서 ‘수행, 보시, 봉사 많이 했다고 집구석 망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습니다.nbspnbsp요즘은 집안 형편이 조금 어려우면 아내들도 주로 나가서 벌잖아요. 우리 정토회 봉사자들 중에 그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제가 ‘그렇게 하지 마라. 그러면 평생 거기에 매어 살게 된다. 남편이 적게 주면 적게 먹고, 많이 주면 많이 먹으면서 그냥 봉사해라’고 합니다. 그래서 꾸준히 봉사를 하면 처음에는 남편들이 ‘집안 살림도 부족한데 그렇게 일하고 네가 10원이라도 받나? 집안 살림 퍼가기만 하지’ 라면서 난리를 칩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면 그게 공덕이 된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수행, 보시, 봉사를 꼭 손해인 것처럼 이해하는 건 잘못된 것입니다.nbspnbsp스님이 이렇게 베푸는 게 스님한테도 손해가 아닙니다. 저는 다음 생까지 보고 있거든요. 제가 다음 생에는 인도에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 저는 미리 인도 아이들한테 사탕 주는 걸로 최소한의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항상 사탕을 주면서 ‘이거 먹고 다음 한 생은 스님이 되어 부처님께 바쳐라’ 하고 있거든요.nbspnbspnbsp제가 일부러 인도 아이들에게 사탕을 준 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먼저 사탕을 달라고 하니까 저는 ‘좋다. 너는 다음 한 생은 출가해서 수행해라. 알았지?’ 하면서 줍니다. 그렇게 하면 그 아이들한테도 좋은 거예요.nbspnbsp여러분들도 인생을 조금 더 길게 보고 사세요. 너무 눈앞에 보이는 즐거움과 이익만 보지 말고요. 인생을 조금 길게 보고 살면 마음의 기복이 적어집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들어봤지요? 사람들은 인생을 짧게 보고 ‘그건 불행이다’, ‘그건 행이다’ 하며 말이 많은데, 길게 보면 다 괜찮은 일입니다. 스님도 짧게 보면 매일 실패의 연속이지만 길게 보면 그 실패한 것이 다 저를 성공하는 안내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법문으로 오늘 졸업선물을 대신합니다. 감사합니다.”nbsp스님의 격려 말씀에 대중들은 큰 박수를 보내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졸업장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졸업장을 받아들자 대중들은 서로 축하의 박수를 크게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바른 가르침을 대중들을 안내해 준 스님께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노래가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정토불교대학을 최고령으로 졸업하신 노보살님이 꽃다발을 스님에게 건넸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으로 감사히 꽃다발을 받았습니다.nbspnbspnbsp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는 대중들의 눈시울은 점점 붉게 변하고, 몇몇 분들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손수건을 적셨습니다. 스님과의 소중한 인연에 대해 감사해하는 마음의 표현이겠지요.nbspnbsp▲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록 있는 대중들nbsp졸업식을 모두 마친 후에는 스님을 가운데로 모시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먼저 전체가 다함께 찍고, 수계자들만 따로 찍고, 경전반 수료생들만 따로 찍고, 마지막으로 개별적으로 스님과 일 대 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 다함께 기념 촬영nbsp또 한국에서는 지부 별로 수십명이 한꺼번에 사진을 찍는 것이 전부인데, 여기는 인원이 작다보니 스님과 일 대 일로 사진을 찍는 호강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nbspnbsp사홍서원을 끝으로 졸업식까지 모두 마치자 필리핀정토회 총무님이 집에서 케익을 직접 만들어 왔다며 촛불을 켰습니다. 대중들은 케익을 가운데에 놓고 다함께 졸업식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nbspnbsp“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물합니다 ♬nbspnbsp물려받은 책으로 공부 잘하며 우리도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nbsp▲ 졸업을 축하하는 케익 컷팅 이벤트nbsp스님은 “이 노래는 진짜 오랜만에 불러본다”고 하면서 웃음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졸업식을 무사히 마치고, 다함께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nbspnbsp그런데 졸업생 중에는 한 번도 수업에 빠지지 않고 출석한 분이 두 분에게는 개근상이 수여되었습니다. 그런데 준비된 선물이 달랑 손수건 한 장 뿐이어서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래서 졸업식을 마치고 나서 스님이 개인 돈으로 스님의 책을 1400페소를 주고 두 권 구입해서 개근상 수상자 두 분에게 선물했습니다. nbspnbsp▲ 스님이 직접 구입해서 선물한 개근상nbsp책 첫 페이지에 스님이 직접 ‘개근상’ 이라고 써주자 두 분은 “아주 특별한 선물이예요” 라고 하면서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저자가 자신의 책을 직접 구입해서 선물로 주었으니 참 특별한 선물이지요.nbspnbsp마닐라 정토법당을 나온 스님은 필리핀정토회 이원주 대표님 댁으로 가서 저녁 식사를 한 후 밤 8시가 되자 호주로 출발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공항에서는 이번 민다나오 방문 일정과 즉문즉설 강연, 불교대학 졸업식까지 많은 분들이 여러 모로 고생이 많았던 것에 대해 이원주 대표님 이하 필리핀정토회 회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nbspnbsp밤 10시 비행기로 필리핀 마닐라 공항을 출발한 스님은 8시간을 비행하여 내일 아침 9시에 호주 시드니 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시드니에 도착해서는 곧바로 정토불교대학 수계식과 졸업식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 밤에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멜버른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nbspnbsp ※ 2016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nbsp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분들은 지금 신청하세요.nbspnbspnbsp

2016.03.06. 39,518 읽음 댓글 29개

2016.3.4 (필리핀 3일째_저녁) 마닐라(Manila) 즉문즉설 강연

nbsp민다나오 가가얀데오로 공항에서 갑자기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는 바람에 저녁 7시부터 예정된 마닐라 즉문즉설 강연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nbspnbsp강연을 취소할 수는 없으니 급히 국적기인 필리핀 에어라인으로 비행기편을 변경하여 새로 티켓팅을 했습니다. 늦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강연 시간 전에 도착하기 위해 우선 스님과 이원주 필리핀JTS 대표님만 먼저 민다나오를 출발했습니다.nbspnbsp▲ 마닐라로 먼저 출발하는 스님과 이원주 대표님nbsp스님을 먼저 보내고 난 후 나머지 일행들은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마닐라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 2시에 출발 예정이었으니 2시간이나 연발이 된 것입니다.nbspnbsp마닐라공항도 활주로가 하나 밖에 없는데다 도착하는 비행기들이 많아서 비행기는 관제탑의 명령을 기다리며 주위를 한참동안 돌았습니다. 저녁 6시에 무사히 마닐라 공항에 내리긴 했지만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도로도 정체가 심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스님은 저녁 식사도 하지 못하고 겨우 강연 시간에 맞춰 도착했습니다. nbspnbsp강연은 마닐라nbsp도심에 위치한 마카티 스포츠클럽에서 필리핀정토회 주관으로 열렸습니다. 약 200여 명의 교민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스님 무대 위에 오르자 뜨거운 박수갈채로 환영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강연장 뒤편에는 필리핀JTS의 민다나오 활동 모습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오늘 민다나오에서 마닐라로 오면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저녁 못 드시고 오신 분들 있으시죠? 저도 그랬어요. 피장파장이예요. 민다나오에 갔다가 오늘 마닐라로 들어오는데 비행기가 연발을 해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왔는데도 공항에서 또 길이 막혀서 겨우 시간 맞춰 오느라고 저도 밥을 못 먹었습니다.nbspnbspnbsp우리는 몸의 건강을 위해서는 매일 밥을 먹어주는데,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는 좋은 말씀을 잘 안 들어요. 밥은 오히려 너무 많이 먹어서 건강에 해롭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오늘 저녁 한끼 정도는 안 드셔도 괜찮아요.nbsp외국인들은 종종 저한테 ‘한국은 살만한데 왜 한국 사람들의 행복도가 세계에서 최하위 수준입니까? 한국 사람들이 성격이 급해서 그럴까요? 욕심이 많아서 그럴까요?’ 라고 묻습니다. 왜 그럴까요?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해 보면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제법 잘 사는 나라에 속한다고 평가가 되는데, 한국은 청소년 불행도 1위, 어린이 불만족도 1위, 자살률도 1위, 저출산율도 1위입니다. 자살률이 높다는 건 지금의 삶에 희망이 없다는 의미이고, 아이를 안 낳는다는 건 미래에도 희망이 없다는 의미거든요.nbspnbsp이런 한국병을 치유할 수 있는 약이 아직도 경제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물론 그런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경제 때문에 불행도 1위라면 필리핀 사람들은 어떻겠어요? 물론 경제 발전도 필요합니다. 빈부격차를 줄이고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건 정신적인 건강인 행복입니다. 기독교식으로 말해서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 수 없고, 말씀으로도 산다’, 즉 정신적인 문제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우리가 너무 물질에서만 행복을 찾기 때문에 불행한 거예요.nbspnbspnbsp그래서 오늘은 우리의 이런 번뇌, 즉 괴로움, 초조, 불안, 미움 등의 정신적인 아픔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서 여러분과 함께 대화하고자 합니다.”nbspnbsp스님이 환한 웃음으로 말문을 열자 어색했던 분위기도 금새 따뜻하게 달구어졌습니다. 교민들은 스님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며 연이어 스님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2시간 30분 동안 10명이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두 번째로 질문한 대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반대하는 부모님 때문에 고민이라며 스님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저는 음악을 전공하고 싶은데, 아버지와 오빠는 위험성이 높다며 굉장히 반대합니다. 아버지가 지원을 안 해 주신다면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도 포기하고 아버지 말을 따라야 할까요? 아니면 제가 가출을 해서라도 하고 싶은 걸 해야 할까요?”nbsp“가출해서 하고 싶은 걸 하면 돼요.”nbsp“그런가요?”nbsp“질문자는 솔직히 독립해서 혼자 살 자신이 없지요?”nbsp“네.”nbspnbspnbspnbsp“준비가 덜 됐다면 아버지한테 의지하고 살아야 되고, 의지하고 살려면 아버지 의견도 좀 존중하는 수밖에 없지요. 질문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려면 자립해야 합니다. 그러니 아버지가 질문자의 의견을 반대한다는 것 때문에 질문자가 괴로워할 필요는 없어요. 아버지는 자식이 음악을 하면 인생이 평탄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는 거니까요. 그런데 질문자가 아버지 말을 안 들으면 지원을 끊을 수도 있겠지요. 그건 아버지의 권한이니까 그걸 가지고 아버지를 미워할 필요는 없어요.nbspnbsp그러니 질문자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는 이제 스스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지원해 줄 의무가 있지만 그 이상은 부모의 의무가 아니거든요. 그 이상은 부모와 자식이 성인 대 성인의 관계가 됩니다. 부모는 20살이 넘은 자녀를 지원해 주고 싶으면 지원해 주고, 안 해 주고 싶으면 안 해 줘도 돼요. 질문자도 부모 말을 듣고 싶으면 듣고, 안 듣고 싶으면 안 들어도 됩니다. 질문자가 선택할 문제예요.nbspnbspnbsp만약 질문자가 스님이 되겠다고 하면 부모가 반대하겠지요. 하지만 반대하는 부모를 원망할 이유는 없잖아요. 부모가 봤을 때 그 길은 너무 어려운 길이다 싶어서 반대 의견을 낸 것이니까요. 그러니 부모의 의견은 존중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무조건 부모 말만 따른다면 나는 부모의 노예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nbsp“예, 그렇습니다.”nbsp“그러니까 질문자가 자신의 길을 가려면 부모의 지원을 안 받고 갈 수 있는 길로 가야 된다는 겁니다. 단, 지원 안 해 주는 부모를 원망하는 건 안 된다는 거예요. 부모한테 지원도 받고, 내가 살고 싶은 대로도 살겠다는 건 욕심이에요. 제가 스님도 하고, 결혼도 하고, 부자도 되고, 사람들한테 존경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걸 욕심이라고 하는 겁니다.nbspnbsp그러니 질문자는 스스로 선택을 해야지요. 질문자가 ‘스님의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는 부모가 ‘너 내 죽는 꼴 보고 싶니?’ 라고 해도 질문자가 가고 싶은 길을 가려면 ‘그건 어머니의 인생이니까 알아서 하세요’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길을 가지, 안 그러면 어떻게 자기 길을 가겠어요?nbspnbspnbsp질문자가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가는 게 불효는 아니라는 거예요. 20살이 넘으면 누구든 자기 인생을 살 권리가 있습니다. 단, 반대하는 부모를 원망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부모는 부모의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부모가 질문자를 해치려고 그러는 게 아니고, 당신들 인생 경험에 비춰봤을 때 질문자가 가려는 길이 어렵다는 걸 아니까 걱정하는 거예요. 일반 학문을 전공해서 취직을 하면 삶이 무난하잖아요. 그런데 음악가가 되거나 스님이 되면 어쩌다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기복이 심하잖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생각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게 안전입니다. 자녀가 음악을 전공해서 성공하면 당연히 부모도 기쁘겠지만 성공 못할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 그것보다는 위험부담이 없는 게 좋은 거예요. 부모는 아무리 자식이 나이 들어 쉰이 되고, 예순이 되어도 ‘길조심해라’, ‘차조심해라’ 하면서 자식의 안전을 걱정하는 겁니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에요.nbspnbsp그러나 우리들 인생에서 안전이 유일한 가치는 아니잖아요? 모험도 하고 실패도 해야 인생이 성장하지요. 이제 질문자는 20살이 됐으니까 부모님과 협상을 해야지요. 질문자가 독립을 하든지,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려면 부모가 시키는 대로 일반 학교를 다니면서 질문자 나름대로 시간을 내어 음악 공부를 하든지, 아니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아버지를 설득해서 일정한 기간까지 지원을 받든지, 선택을 하세요. ‘무조건 내가 원하는 대로 해 달라’ 하는 건 어리광입니다. 질문자 스스로 해결해야 되는 겁니다.”nbsp“알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질문한 학생은 큰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도 박수를 보내며 학생을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은 강연 말미에 다시 한번 질문한 학생을 언급하며 욕심을 내려놓은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어떤 학생이 ‘어떻게 하면 스님처럼 지혜를 가질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하기에 제가 ‘고생을 많이 하면 된다. 한번 해 볼래?’ 그러니까 ‘아니오’ 하더라고요.nbspnbspnbsp고생을 많이 한다고 무조건 득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굶어보면 한 술의 밥이 얼마나 귀한 줄을 알게 되고, 아프가니스탄 같은 데 가서 어려움 속에서 위험을 겪어보면 공항에서 쪽잠을 자도 그곳이 얼마나 편안한 곳인지를 알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질문자가 혼자 살아보면 부모의 따뜻한 손길이 얼마나 귀한 줄을 알게 될 거예요. 사람이 젊어서 고생을 좀 해 보면 세상이 고마운 줄 알게 됩니다. 질문자처럼 떼쓴다고 다 해결되는 그런 인생이란 없어요. 어릴 때는 떼쓰는 게 통할지 몰라도 커보면 세상이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 세상은 다 서로 주고받게 돼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공짜로 먹으려고 하니까 사는 게 힘든 거예요.nbspnbsp그렇다고 반드시 고생을 하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도 고행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니 고행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욕심을 내려놓는 게 중요합니다. 돈을 만지지 않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집착은 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nbspnbsp오늘은 스님의 답변을 들으며 우리가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고 욕심이 많았는지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nbsp10명의 질문에 모두 답하고 나니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스님은 시계를 잠시 본 후 마지막으로 필리핀 교민들을 위해 어떤 마음으로 살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격려 말씀을 해주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첫째,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하지 못한 건 누구 책임입니까?”nbsp“내 책임입니다.”nbspnbsp“예, 그러니 행복하게 사셔야 돼요. 자꾸 ‘누구 때문에’라는 조건을 붙이면 끝이 없습니다. 그건 ‘난 불행하고 싶다. 엄마 핑계, 남편 핑계, 세상 핑계 대면서 불행하게 살고 싶다’ 하는 뜻입니다. 불행하고 싶어서 그렇게 사는 분은 계속 그렇게 사세요.nbspnbspnbsp그러나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밥 먹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스님은 결혼도 못 하고 애도 없는데, 우리는 결혼도 하고 애도 있으니까 행복하다. 스님은 늙었는데도 저렇게 웃으면 사는데, 나처럼 젊은 사람이 불행할 이유가 뭐가 있나?’ 이렇게 돌이키면서 행복하게 사셔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이왕 살 바에야 남한테 빚지고 사는 것보다는 돕고 사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그게 예뻐 보이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예쁘게 볼 만한 일을 하는 게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이잖아요. 천국으로 가는 길에 대해서 뭐라고 써놨는지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세요. ‘교회에 열심히 다녀라’ 하는 말은 없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을 보면 ‘너희는 내가 나그네 됐을 때 영접했느냐? 내가 목마를 때 마실 물을 줬느냐? 내가 배고플 때 먹을 음식을 줬느냐?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걸 줬느냐? 내가 병들었을 때 약을 줬느냐?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 나를 면회 왔느냐?’ 이렇게 딱 6가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주가 언제 그런 적이 있었습니까?’ 라고 물으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는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는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잖아요.nbspnbsp무엇보다 첫 번째, 내가 기뻐야 돼요. 남을 위해서 희생하면 원망이 생깁니다. 두 번째, 남에게 조금 도움이 되면 좋습니다. 세 번째, 이 세상에는 구조적, 제도적 문제가 많잖아요. 계급차별이나 인종차별, 전쟁 등의 문제를 우리가 개선하면 개선하는 만큼 우리에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시리아가 긴 내전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900년 만에 찾아온 가뭄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뭄이 지난 30년 간 지속되면서 농민들이 농사를 다 파하고 도시로 몰려들어 빈민이 되었고,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하면서 갈등이 지속되다가 정치 문제와 종교 문제로 비화되었다고 해요. 가뭄이 내전의 원인 중 하나라는 겁니다. 그런 것처럼 기후환경의 변화는 우리들에게 굉장히 새로운 위기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대량생산해서 대량소비하는 삶의 패턴을 바꿔야 합니다. nbspnbspnbsp또 지구에는 아직도 제 때 배우지 못하고, 간단한 질병도 치료받지 못하고, 식량이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건 우리가 해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꼭 내 나라, 내 종교, 내 아이가 아니라도 말이에요. 또 오랜 시간 인류는 사상, 이념, 종교가 다른 사람들끼리 갈등하고 심지어는 전쟁까지 해 왔으니까 이제는 서로를 좀 존중하면 좋지 않을까요?nbspnbsp남한과 북한도 서로 조금씩만 존중하면 좋을 텐데, 오히려 지금은 서로 보복하겠다고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건 증오심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와 다른 상대방을 증오하는 건 5,000년 전 사람들이 했던 일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에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쓰여 있잖아요. 지금 북한과 남한도 서로에게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라며 악을 쓰고 있는 형국입니다. 여기에 종교인까지 개입해서 부추기고 있어요. 우리의 문명 수준이 5,00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인간의 감정적인 측면에서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그게 바람직한 건 아니에요. 그래 봤자 우리끼리 싸워서 서로 이 뽑고, 눈 파내는 거 아니겠어요? 시간이 흐른 후에 보면 다 바보 같은 짓이에요.nbspnbsp그러니 우리는 이 세상을 좀 더 평화롭게, 친환경적으로 만드는데 에너지를 좀 쏟아야 합니다. 필리핀에 와서 너무 돈만 벌려고 하지 말고요. 어려운 사람을 좀 도우세요.nbspnbspnbsp그리고 여기서 번 돈이 있다면 그 중에 10는 십일조 내듯이 이런 좋은 활동에 좀 써야 돼요. 그런 생각을 안 하니까 하나님이 복을 주려고 해도 줄 수가 없는 거예요. 주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그렇게 우리 삶의 모순들을 좀 바꿔가면서 살면 우리가 조금은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마음으로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nbsp너무 돈만 벌려고 하지 말고 세상을 평화롭고 친환경적으로 만다는데 에너지를 좀 쓰자는 말씀에 교민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nbspnbsp특히 최근 남북의 대립을 보면서 우리의 문명 수준이 5천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씀하신 부분은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오늘 강연 제목이 ‘살맛나는 세상 만들기’였는데, 정말 그런 기운을 듬뿍 받을 수 있는 강연이었던 것 같습니다.nbspnbsp강연이 끝나자 필리핀정토회 회원들은 일사분란하게 흩어져서 집으로 향하는 교민들을 배웅했습니다. 한 팀은 모금함을 들고 JTS의 민다나오 구호활동 성금을 모았고, 한 팀은 스님의 책을 부지런히 판매했고, 한 팀은 질서정연하게 책 사인회가 열릴 수 있게 안내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줄을 선 교민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악수를 하며 반가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사인회를 마친 후 오늘 강연을 준비한 모든 봉사자들과 함께 무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활짝 웃는 모습에 기쁨과 보람이 가득해 보였습니다.nbspnbspnbsp오늘 밤은 필리핀정토회 이원주 대표님 댁에서 잔 후 내일은 오후 1시부터 마닐라 정토법당에서 동남아시아 지역 정토불교대학 졸업생들을 위해 수계식 및 졸업식을 가질 예정입니다. 수계식 후에는 공항으로 이동해 밤 비행기를 타고 호주 시드니로 이동할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nbsp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분들은 지금 신청하세요.nbspnbspnbspnbspnbsp

2016.03.05. 84,532 읽음 댓글 42개

2016.3.4 (필리핀 3일째_오전) JTS센터 실무자 기숙사 준공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필리핀 민다나오를 방문한 지 3일째 날을 맞이하여 JTS 실무자 기숙사 준공식을 한 후 기념법문을 하였습니다.nbspnbsp새벽 4시 30분에 기상해 예불과 108배 정진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108배를 하며 어제 하루를 돌아보니 무심코 생각했던 것들이 다시 되돌아봐지는 것이 참 많았습니다.nbspnbsp▲ 새벽 정진 시간nbsp아침 8시에는 JTS센터 실무자 기숙사 준공식을 했습니다. 기숙사가 완공되기까지 지난 3년 동안 우여곡절이 참 많았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고요. 입구에 조촐하게 현수막을 걸고 리본 컷팅식을 하자 모두들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박수와 함께 환호를 터뜨렸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이 완공된 기숙사 곳곳을 돌며 축원을 하고 물을 뿌리며 재앙을 쫓는 의식을 했습니다. 활동가들도 스님의 뒤를 따라 줄을 지어가며 정성을 다해 염불을 하며 마음을 모았습니다.nbspnbsp▲ 축원을 해주고 있는 스님nbspnbsp다시 기숙사 홀로 들어와서는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으로부터 그간의 경과 보고를 들었습니다.nbspnbsp▲ 경과 보고를 하고 있는 이원주 필리핀JTS 대표님nbspnbsp“그동안 JTS센터를 실무자들의 숙소로 함께 사용해 왔는데, 방문이 한쪽으로만 나 있어서 습기가 많이 차다 보니 활동가들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는 문제가 생겼어요. 또 여기는 경사가 심해서 별도의 건물을 지을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원래는 작게 지으려고 했고요. 그런데 스님께서 먼 미래를 내다보고 공간을 크게 마련하면 좋겠다고 제안해 주셔서 토목 공사를 하게 되었고요. 2013년은 토목 공사 하느라 시간을 다 보낸 것 같아요. 2014년부터 건물을 짓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담당자가 세 번이나 바뀌면서 애로사항이 많았어요. 수로를 만들고, 축대를 쌓고, 진입로를 만드는 등 주변 환경을 정비하는 데에도 많은 사람들의 애씀이 있었고요.”nbsp대중들도 기숙사가 완공되기까지 그동안의 노고에 대해 큰 박수를 함께 보냈습니다. 이어서 스님께 기숙사 준공식 기념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기숙사를 어떤 취지로 짓게 되었는지, 기숙사에서 생활할 때는 어떤 마음 자세로 지내야 하는지 생활 원칙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JTS센터 실무자 기숙사 준공식을 축하드리며 함께 기뻐합니다. 지난 3년 동안 애 많이 쓰셨습니다. 특히 이원주 회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생한 거 생각하면 눈물이 날 지경일 거예요.nbspnbspnbspnbspJTS센터는 앞으로 교사 연수, 마을리더 훈련, 농업기술자 훈련을 하는 용도로 쓰일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명칭을 ‘농업기술센터’로 할까 했는데, 실무자들도 살아야 되니까 그냥 ‘JTS센터’라고 정했습니다. 그런데 숙소로 쓰기에는 생활 문제, 건강 문제 등이 많았어요. 그래서 센터는 연수시설로서 그대로 두고, JTS 실무자들이 생활하는 공간은 작더라도 따로 있는 게 좋겠다고 해서 기숙사를 짓게 되었습니다.nbspnbsp그런데 혹시라도 센터 건물을 증축하게 될 때를 대비해서 그 옆을 좀 비워두려다 보니까 경사가 심한 이쪽에 건물을 짓게 됐습니다. 처음엔 작게 짓자고 했는데, 제가 생각해 보니까 ‘JTS 실무자 숙소가 결국 수련장 기능을 하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니 수련장에 준하는 시설을 갖춰야 되지 않겠느냐’ 싶었어요. 마침 그때 필리핀에서 해외총무단 수련을 한번 하자는 얘기도 나왔고, 필리핀정토회가 앞으로 여기 와서 수련하게 될 것도 감안해야 하니까, 그런 용도를 두루 생각해서 조금 규모 있게 짓기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렇게 설계 변경을 하다 보니까 터를 더 넓히게 되어서 완공하는데 시간도 더 걸리고 돈도 처음 예산보다 많이 들어가게 되었네요. nbspnbsp정토회 산하에는 여러 사회활동기구가 있습니다. 환경운동을 하는 에코붓다, 평화인권운동을 하는 좋은 벗들, 평화통일운동을 하는 평화재단, 어려운 사람을 돕는 JTS. 그런데 JTS는 그동안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 하는 봉사마인드만 있으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수행자가 아닌 일반 봉사자도 JTS의 활동가로 참여를 했던 것인데, 그러다 보니까 내부에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활동가들이 힘들어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인생도 잘 못 살면서 남을 돕는다, 저 멀리 있는 사람을 돕는다면서 가까이 있는 사람끼리 미워하고 다툰다는 모순이 생기고, 또 일부에서는 재정 사용에 대한 오류도 생겼습니다. 그렇게 사업이 점점 커짐에 따라 처음에 가졌던 우리의 순수한 뜻과는 점점 다른 모습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재작년 가을에 정토회 법사단 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한 깊은 논의가 있었고, 다시 설립 원칙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구호 사업을 얼마나 많은 나라에서 얼마나 많이 하느냐 하는 규모에 자꾸 끌려가면 JTS와 일반 자선단체가 다를 게 뭐가 있느냐? 우리가 처음에 시작할 때는 수행으로 하자고 한 거 아니냐?’ 그래서 당시에는 JTS가 인도네시아, 미얀마, 캄보디아, 스리랑카에도 활동가가 파견되어 있었는데, 그곳에 있던 해외 파견자들이 임기를 마치면 당분간 철수하기로 하였습니다.nbspnbsp특히 문제가 됐던 것은 우리가 KOICA로부터 일부 활동가들이 인건비를 조금 지원받다 보니까 해원협이 우리 JTS 활동가들에 대해 인력관리를 하겠다는 문제가 생기기도 했고, 또 JTS 안에서 같이 활동하는데 누구는 돈을 받고 하고, 누구는 돈을 안 받고 하는 문제로 갈등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외사업을 축소하지 않는 한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평화재단을 포함해서 정토회 산하 단체 모두가 KOICA 등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nbspnbsp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정부 지원금은 우리가 아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서류를 잘 갖추어야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점심으로 2,000원짜리 김밥을 먹었다면 이건 지원하는 측에서 봤을 때 규정에 어긋난 잘못된 일이고, 8,000원짜리 점심을 먹고 카드로 계산한 영수증을 첨부해야 잘된 일입니다. 왜냐하면, 첫째는 식비로 봉사자 1인당 8,000원을 지원해 줬는데 왜 규정에 따르지 않느냐는 것이고, 둘째는 간이 영수증은 식비 사용의 근거 자료로 받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돈은 아껴 쓰고, 외부 지원금은 많이 써야 하는 모순이 생기는 겁니다. 이것은 수행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해외사업을 하면서 프로젝트 기금을 지원 받다 보니까 첫째, 늘 시간에 쫓겨서 ‘마을주민들과 합의해서 한다’는 우리의 원칙을 어기고 주민들에게 인건비를 지급해서라도 기간 안에 맞추어 해내야 하는 일이 생기고, 둘째, 우리가 정한 원칙을 지키려니까 정부가 정한 기간 내에 프로젝트를 끝내지 못해서 KOICA로부터 지적을 받고 돈을 돌려줘야 되는 문제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분간 우리 원칙대로 하다가 그게 자리가 잡히면 다시 확대하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학교와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인도사업장과 이미 JTS센터가 지어져서 사업을 계속할 수 밖에 없는 필리핀사업장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사업장은 당분간 정리하기로 한 겁니다.nbspnbsp그리고 ‘인도사업장과 필리핀사업장을 수행도량화 한다’는 원칙에 따라 작년 봄에 인도는 보광 법사님이, 여기는 안병주 국장님이 파견되었고, 두 분을 돕는 행자들도 파견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미 와 있던 봉사자들 중 일부는 nbsp‘지금까지는 우리 마음대로 생활했는데 왜 갑자기 수행도량화 하느냐?’며 불평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nbsp이런 과정을 거쳐서 ‘수행자들이 모여 봉사한다’는 원칙을 다시 세우게 되었습니다. 단, 수행자라는 것이 불교 신자란 뜻은 아닙니다. 개인의 종교에 관계없이 항상 자신을 행복하게 가꾸는 수행자들이 모여서 봉사활동을 하자는 원칙이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럼 생활의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문경공동체를 기본으로 해서 공동체생활을 한다’고 정했습니다.nbspnbsp그래서 오늘 필리핀JTS 활동가 여러분들께도 말씀드립니다. 저쪽은 필리핀 사람들을 연수시키는 JTS센터이고, 여기는 우리 수행자들이 사는 수행 도량입니다. 이렇게 구분해서 생활하시면 좋겠습니다. 옛날 같으면 어제 저녁에 파티를 열어서 기분을 좀 풀었을 건데 이제는 원칙이 바뀌었다는 걸 이해해 주세요. 혹시나 내부에서 간단한 파티가 필요하더라도 여기 기숙사 공간은 쓰지 마시고, 저쪽 연수원 공간을 사용해 주세요. 연수원은 필리핀 사람들이 연수받는 곳이니까 채식만 공급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연수원은 어차피 채식에 대한 원칙을 풀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같은 울타리 안에 있지만 이쪽은 절이고, 저쪽은 산문 밖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혹시 필리핀정토회에서 이 센터에 오시더라도 그런 원칙을 주지시켜서 파티가 필요하다고 하면 저쪽 연수원으로 안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nbspnbspnbsp그러니 이곳 기숙사는 수행 공간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갖고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반드시 예불과 정진을 하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침은 발우공양을 하고요. 또 정해진 시간에 같이 공양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공동체생활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생활 원칙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nbspnbsp수행자들이 모여서 봉사를 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분명하게 강조한 것에 대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 그래서 기숙사 또한 수행도량으로 가꿔나가야 한다는 말씀에도 더욱더 공감이 되었습니다. nbspnbsp이렇게 생활 원칙에 대해 강조한 후 사업을 할 때는 어떤 관점을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사업을 너무 힘에 부치게 진행하지 마세요. 그러면 또 사람이 더 필요하게 되고, 또 뭘 해야 되니까 돈이 더 필요하게 되고 이러면서 늘 헐떡거리다가 인생을 다 보내게 됩니다. 그러니까 좀 벅차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사업을 진행하세요. 인력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만큼 다시 일을 벌이더라도 이런 원칙을 갖고 사업을 진행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안병주 국장님은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을 거예요. 안 국장님이 해외 사업장에 파견될 때는 ‘해외 사업장이 수행공동체로서의 원칙을 지키면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이 원칙을 지키려면 개인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힘들어 합니다. 그러다 그 사람들이 가버리면 사업이 안 되잖아요. 그렇다고 사업이 되게 하겠다고 그 사람들의 취향을 다 따라가다 보면 수행공동체의 원칙을 못 지키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지금 딜레마입니다. 그 둘을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중도를 찾는 길이 될 것입니다. 원칙은 지키되 다양성을 포용할 줄 알아야 되고, 각각의 개성을 포용하되 원칙을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길을 찾아야지요.nbspnbsp아마 시행착오를 거듭 할 것입니다. 원칙을 안 지키면 일이 안 되는 한이 있더라도 원칙대로 정리해 버리면 제일 편하지요. 아니면 일을 하기 위해서 원칙은 제쳐두고 일을 우선시 하면 아주 간단하지요. 그런데 인생 자체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수행 도량으로서의 원칙을 지키되 일도 되도록 해야 됩니다. 일이 되도록 하려면 원칙에서 조금 벗어난 것들을 어떻게 포용해 낼 것인지, 또 포용을 하면서도 어떻게 원칙을 지켜나갈 것인지, 그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곧 수행입니다.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냐?’ 라고 하면 수행자가 아닙니다. 그걸 해내는 게 수행자입니다. 그것을 능히 해 나가야 수행자가 세상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nbspnbsp또 원주민과 무슬림은 자기들 고유의 문화나 신앙을 지키려다 보니까 저렇게 산속에 숨어서라도 사는 것 아니겠어요? 그걸 안 지키려면 뭣 때문에 저렇게 총 들고 싸우면서 살겠어요. 산을 내려가서 살거나 시내에 가서 살겠지요. 그러니 그 두 지역에서 일할 때는 그들에게 우리가 끌려 다닐 필요는 없지만 그들의 문화에 대한 존중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런 소통이 잘 안 되어서 분쟁이 생길 뻔한 적이 몇 번 있었거든요. 우리의 사업 원칙과 안 맞는다면 우리가 사업을 포기하는 게 낫지, 우리 원칙을 관철시키려다가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이 있으면 안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절하고 명상하는 것도 수행이지만 어떤 과제가 생겼을 때 그걸 합리적으로 풀어나가는 것도 수행입니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면 수행삼아 그 문제를 풀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nbspnbspnbsp반대로 ‘정해진 수행법은 너무 형식적이지 않느냐’ 라고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해외에 봉사자를 많이 파견해 보았는데, 아프가니스탄에 파견이 되든 인도에 파견이 되든 아침에 일어나서 1시간 기도하는 걸 안 놓치는 사람은 헤매다가도 제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보통 마음이 틀어지거나 슬럼프에 빠지면 아침 기도를 안 해 버려요. 그런데 한 번 안 하면 쭉 안 하게 되거든요. 그럼 헤매다가 제 자리로 못 돌아옵니다. 그러니 아침에 하기로 한 건 하기 싫어도 해야 합니다. 하기 싫은 걸 하다 보면 ‘이거 너무 형식주의 아니냐?’는 부정적인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는 그런 형식도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nbsp정토행자라면 반드시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1시간 수행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정기법회에 참여하고, 한 달에 한 번 포살하고, 1년에 한 번은 깨달음의 장이나 나눔의 장이나 명상수련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것이 핵심적인 수행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보시, 봉사도 해야 합니다. 절에 살다 보면 행자님들은 돈이 없으니까 보시를 안 하는데, 안 하는 습관이 생기면 나중에 돈이 생겨도 보시가 잘 안 됩니다. 그러니까 단 1페소라도 법회가 끝나면 보시를 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이렇게 수행, 보시, 봉사라는 3대 원칙을 꼭 지켜가도록 하세요.nbsp그렇게 해서 이곳이 수행 도량이 되도록 힘써보세요. 그렇다고 경직되어서 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환경운동을 하는 수행자이니까 물, 에너지, 물품, 이 세 가지는 꼭 아껴 써야 합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낮에는 자연채광을 최대한 활용하고 전기를 쓰지 않도록 하세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낮에도 전기 불을 켜놓는 습관이 들었는데 여기서는 쓰지 않는 전기불이나 코드는 꼭 끄거나 빼놓도록 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그리고 여기는 물도 아껴 쓸 수 있게 해주시고요. 또 물품을 아껴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창고나 냉장고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버리는 게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창고에 쌓아둔 자재가 비를 안 맞도록 하거나 어지럽게 늘어놓지 말고 늘 깔끔하게 정리해 두어서 낭비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nbspnbspnbsp여기는 수행도량이니까, 또 여러분들이 직접 사는 곳이니까, 그런 원칙을 지켜가면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정토회에서도 여기 자주 오셔서 수련도 좀 많이 하면 좋겠습니다.”nbsp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니 마음이 참 가벼워졌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 속에서 활동가들을 향한 스님의 애정도 많이 느껴졌고요. 활동가들은 큰 박수로 법문을 설해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법회를 모두 마치고 밖으로 나와서는 기념 식수를 함께 했습니다. 스님, 박지나 JTS 대표님, 이원주 필리핀JTS 대표님이 삽을 들고 정성껏 나무를 심자 대중들은 큰 박수로 함께 기뻐했습니다.nbspnbsp▲ 기숙사 준공 기념 식수nbsp그리고 신축 기숙사를 뒤로 하고 다함께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마음이 가벼워진 활동가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했습니다.nbspnbspnbsp많은 분들의 노력과 정성으로 이렇게 멋진 건물이 지어졌으니, 이제 남은 일은 많은 활동가들이 이곳에 와서 부지런히 수행하고 활동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nbspnbsp8시 40분에 JTS센터를 출발한 스님은 가야가얀데오로로 향했습니다. 10시 30분부터 비숍 토니 대주교님과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주교님이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면서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공항에서 만나는 것으로 약속을 변경했습니다. 대신 예약한 식당에서는 필리핀 JTS의 초창기에 사업을 도맡아 준 도동과 트렐 부부를 만났습니다. 도동과 트렐 부부는 스님을 보자 너무나 반가워하면서 기뻐했습니다. 스님은 근황을 물어보면서 대화를 나누다가 선물을 건넨 후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도동과 트렐 부부nbsp공항에서는 비숍 토니 대주교님을 만났습니다. 주교님은 스님이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할 때 스님이 민다나오의 평화를 위해서도 활동해 줄 것을 요청하며 그 인연을 맺어준 분입니다. 주교님은 비행기가 연착이 되었다며 양해를 구하면서 스님의 근황을 물어보았습니다.nbspnbsp▲ 비숍 토니 대주교님nbsp그러자 스님은 어제 학교 2개를 더 준공해서 지금까지 총 48개 학교를 지었다고 소개하면서 올해는 어떤 사업계획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주교님은 “학교를 짓는 일은 필리핀 사회의 각종 범죄율을 낮춰주는 일이기도 하다” 면서 스님과 JTS의 노력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러자 스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다 주교님이 인연을 맺어준 덕분” 이라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주교님과 인사를 나눈 후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스님의 마음이 느껴져 뭉클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필리핀JTS 현지 활동가들에게 악수를 건네며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스님의 환한 웃음만으로도 벌써 기운을 듬뿍 받은 느낌이었습니다.nbspnbsp▲ 필리핀JTS 활동가들을 격려해주고 있는 스님nbspnbsp출국 수속을 다 밟고 마닐라로 가기 위해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비행기가 연발하게 되었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사태 파악을 하기 위해 몇몇 분들이 동분서주 했지만 결국 비행기는 2시간이나 늦게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마닐라 공항의 활주로에 비행기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저가 항공을 이용하다 보니 출발 순서가 뒤로 밀린 것 같았습니다. 저녁 7시부터 마닐라에서 열릴 예정인 즉문즉설 강연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겁니다.nbspnbsp▲ 비행기가 2시간 연착되어 비상 상황 발생...nbsp그래서 급하게 스님과 이원주 대표님만 다시 표를 끊고 필리핀 에어라인을 타고 마닐라로 먼저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일행들은 2시간이 연발되어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마닐라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nbspnbsp▲ 세부 퍼시픽에서 필리핀 에어라인으로 급히 비행기를 갈아타고 있는 스님nbsp일단 스님은 급하게 비행기표를 새로 끊어서 마닐라로 출발했는데, 저녁에 예정되어 있던 마닐라 즉문즉설 강연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음 이야기에 계속 됩니다.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는 인도 불가촉 천민 마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수자타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nbspnbsp

2016.03.05. 49,426 읽음 댓글 18개

2016.3.3 (필리핀 2일째) 콘솔라시온, 키한아이 학교 준공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필리핀 민다나오를 방문한 지 2일째를 맞이하여 콘솔라시온 마을과 키한아이 마을에 각각 초등학교 준공식을 하며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새벽 3시에 일어난 스님은 원고 교정을 먼저 본 후 4시부터 민다나오를 함께 방문한 일행들과 다같이 새벽 예불과 108배 정진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정진을 마치고 나서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잠시 JTS센터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JTS센터는 해발 1000미터 고지에 자리잡고 있는데 아침 햇살이 비치자 산 아래로 난 골짜기가 뭉게뭉게 피어나는 안개와 더불어 절경을 드러냈습니다.nbspnbsp▲ 민다나오 JTS센터 앞에 펼쳐진 풍경nbsp스님은 센터 앞에 핀 붉은 색 부겐빌리아 꽃이 참 예쁘다며 잠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런 꽃들이 곳곳에 심어져 있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했습니다.nbspnbspnbsp6시가 되어 임차한 차량이 도착하자 각종 행사물품을 싣고 첫 번째 준공식이 열리는 콘솔라시온 마을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두 군데에서 준공식을 해야 해서 아주 바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nbspnbsp해발 1000미터 지대의 실리폰 마을을 출발해 점점 아래로 내려가더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파인애플 농장이 펼쳐졌습니다. ‘델몬트’ 라고 하는 유명한 외국계 기업이 운영하는 농장인데, 이 지역의 3개 군에 걸쳐 광대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nbspnbsp▲ 델몬트 파인애플 농장nbsp중간에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것을 포함해 약 3시간 20분 동안 비포장 도로를 부지런히 달린 끝에 콘솔라시온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중간에 몇 차례 개울을 만나기도 했지만 사륜구동 차를 탄 덕분에 물살도 거뜬히 가로질렀습니다.nbspnbspnbsp엉덩이에 불이 날 정도로 요동이 심한 비포장도로를 달리기도 했고, 끝이 보이지 않는 언덕 길을 쉼없이 올라온 끝에 저 멀리 콘솔라시온 마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작년 2월에 스님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길이 닦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며 반나절을 걸어서 도착했던 곳입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길이 모두 닦여져서 차를 탄 채 학교 앞까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콘솔라시온 마을로 가는 길nbsp스님이 차에서 내리자 먼저 도착해 있던 마놀로폴티치에서 온 끼노 시장님이 스님에게 목걸이를 걸어주며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콘솔라시온 초등학교nbspnbsp주민들도 환호와 박수로 스님을 반겨주었습니다. 먼저 리본 커팅식을 가졌습니다. “원, 투, 쓰리” 구호에 맞춰 리본을 자르자 더 큰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습니다.nbspnbsp▲ 리본 컷팅식nbsp시장님과 마을 주민들이 비록 가난하지만 아이들만큼은 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간곡한 요청을 해와서 JTS는 학교 건축 자재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대신 시청에서는 기술자를 제공하고, 마을 주민들은 노동력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2015년 5월에 건축을 시작하여 9개월이 지난 오늘 드디어 준공식을 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마을 주민들이 열심히 함께 일해준 덕분에 오늘 준공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민들 모두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자신들이 함께 학교를 지었으니까요.nbspnbspnbsp스님은 축원을 한 후 학교 안팎을 돌며 물을 뿌리고 재앙을 쫓는 의식을 했습니다. 또 필리핀 국가를 함께 제창하고 이어서 애국가도 함께 제창했습니다.nbspnbspnbsp특히 동판 제막식에서 가렸던 천을 걷으니 동판이 반짝이며 그 모습을 드러내자 준공식의 열기는 절정에 다달았습니다. 아이들도 오늘은 신이 났는지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습니다.nbspnbsp▲ 시장님과 동판 제막식을 하고 나서 악수하는 스님nbsp기뻐하는 마을 주민들을 바라보며 스님이 무대로 나와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학교가 준공되기까지 수고한 모든 분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말씀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콘솔라시온 초등학교의 준공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학교를 짓기 위해서 수고하신 마을 주민 여러분들께 먼저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학부형 여러분의 노력으로 이렇게 학교가 지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자재를 운반할 수 있도록 도로도 내주고, 여러 가지 행정적 지원을 해 주신 시장님, 부시장님 이하 시 관계자 여러분들, 그리고 바랑가이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학교에 선생님을 파견해 주기로 약속한 교육청 관계자 여러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이곳을 여러 차례 답사하시고 학교를 짓는 과정도 일일이 체크해 주신 필리핀 JTS 이원주 대표님 이하 JTS 활동가 여러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 말씀 드립니다.nbspnbspnbsp여러분께서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지만 제가 1년 전에 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는 여기가 제가 태어난 마을보다 더 오지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1년 후에 와보니 여기가 제가 태어난 마을보다 더 좋은 마을이 되어있네요.nbspnbsp무슨 말이냐 하면, 제가 태어난 마을은 제가 어릴 때만 해도 3㎞나 걸어 나가야 도로가 나오는 시골이었거든요. 제가 1년 전에 이 마을까지 걸어온 거리는 그보다 더 됐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길이 잘 닦여서 차를 타고 여기까지 왔어요. 이제 이 마을은 제가 태어난 마을보다 더 좋은 마을이 됐다는 겁니다. 이렇게 도로를 내주신 시장님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nbspnbsp10년 전에 저 언덕 위에 보이는 가가후만 마을에 초등학교를 지었습니다. 그때 이 아래 쪽을 내려다보면서 ‘저기도 사람들이 사는구나. 저기 사는 사람들이 여기까지 오려면 너무 멀겠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저희들은 이미 10년 전에 이 마을을 봤습니다. 그때는 저희가 10년 후에 이곳에 학교를 짓게 될 거란 생각은 못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준공식을 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교육이 이루어지려면 첫 번째, 학생이 있어야 하고, 두 번째, 선생님이 있어야 하고, 세 번째, 학교가 있어야 하고, 네 번째, 학생들을 뒷바라지해 줄 학부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학교도 지어졌고, 선생님도 오시게 됐고, 학부형들도 많이 계셔서 교육의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어린이 여러분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일 뿐입니다. 이 학교에 다닐 어린이 여러분, 손 한번 들어보세요.”nbspnbspnbspnbsp“네, 어린이 여러분은 저와 약속을 해 주세요. 첫 번째, 매일매일 학교에 옵니다. 결석하지 않습니다. nbsp약속할 수 있어요?”nbspnbsp“예.”nbspnbsp“두 번째,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약속할 수 있어요?”nbsp“예.”nbsp“세 번째, 교과서나 노트 등을 잘 보관하면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약속할 수 있어요?”nbsp“예.”nbspnbsp“학부형 여러분도 약속해 주세요. 농사가 바쁘다고, 집안에 일이 생겼다고, 집안에 잔치가 생겼다고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고 집안일을 거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을 반드시 학교에 보내야 합니다. 약속할 수 있어요?”nbsp“예.”nbsp“제가 태어난 마을도 이 마을과 비슷한 시골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초등학교 6년을 다니면서 한 번도 결석을 안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이곳까지 와서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어린이 여러분들도 열심히 공부해야 여기 계시는 교장선생님이나 다른 선생님들처럼 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반드시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됩니다. 어린이 여러분, 알겠지요? 학부형 여러분들도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셨지요?”nbsp“예.”nbspnbsp“이 마을 아이들이 자라서 앞으로 필리핀의 훌륭한 국가 지도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nbspnbsp스님의 격려 말씀에 마을 주민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이 나와 준공 증서와 시계를 전달했습니다. 준공증서와 시계를 받은 시장님은 환하게 웃음을 머금었고, 마을 주민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다시 쏟아졌습니다.nbspnbsp▲ 시장님에게 준공증서를 전달하는 이원주 필리핀JTS 대표님nbspnbsp이번에는 준공증서를 전달받은 시장님이 학교 열쇠를 선생님에게 전달했습니다. 선생님은 학교를 열심히 운영하겠다며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기쁜 마음으로 열쇠를 전달 받았습니다.nbspnbsp▲ 선생님에게 열쇠를 전달하는 시장님nbspnbsp이로써 JTS가 민다나오에 세운 47번째 학교 준공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처럼 기쁜 날이 또 있을까요. 모두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nbspnbsp▲ 콘솔라시온 마을 주민들, 어린이들 다함께nbspnbsp준공식 후에는 주민들이 차려준 삶은 고구마와 수박으로 간단히 요기를 했습니다. 날이 무척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며 먹어서 그런지 고구마와 수박은 아주 꿀맛이었습니다.nbspnbsp▲ 마을 주민들이 정성껏 차려준 고구마와 수박nbspnbsp이렇게 콘솔라시온 학교 준공식을 모두 마친 후 곧바로 키한아이 학교 준공식을 하기 위해 다시 이동했습니다. 키한아이 마을은 콘솔라시온 마을보다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학교가 자리한 언덕 위에 올라가니 주위 전경이 한 눈에 다 들어왔습니다.nbspnbsp▲ 가가후만 마을nbsp특히 저 멀리에는 스님이 10년 전에 방문했었다고 이야기한 가가후만 마을도 함께 보였습니다. 정말 산 꼭대기에 작은 마을이 있는데, 저런 곳에 어떻게 학교를 지었을까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정말로 차가 접근하지 못하는 곳만 찾아다녔기에 건축 자재도 마을 주민들이 모두 어깨에 지고 날랐다고 합니다.nbspnbsp▲ 키한아이 초등학교nbspnbsp오전 11시 20분이 되자 리본 컷팅식과 함께 준공식이 시작되었습니다. 학교 준공식을 보기 위해 많은 학부형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습니다.nbspnbsp▲ 리본 컷팅식nbspnbsp앞서 콘솔라시온 학교에서처럼 키한아이 학교에서도 스님의 축원과 기도, 필리핀 국가와 애국가 제창, 필리핀JTS 이원주 대표님의 경과보고, 동판 제막식이 연달아 있었습니다.nbspnbsp▲ 동판 제막식nbspnbsp특히 키한아이 마을에서는 축하와 격려 말씀을 스님이 더욱 자세히 해주었습니다. 키한아이 학교는 JTS가 민다나오에 세운 48번째 학교라고 알려주면서 왜 JTS가 민다나오로 오게 되었는지 그 배경까지 거슬러 올라가 말문을 열었습니다.nbspnbsp“오늘 키한아이 초등학교 준공식을 하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지금 저도 여러분과 똑같이 무척 기쁩니다. 이 학교는 JTS가 민다나오에 48번째로 지은 학교입니다. 여러분들은 JTS가 어떻게 민다나오에 오게 되었는지 아세요?”nbspnbsp“모릅니다.”nbsp“2002년도에 제가 막사이사이 상을 수상했는데, 그때 저를 안내하신 분이 가가얀데오로에 계시는 토니 주교님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저에게 ‘스님께서 남한과 북한이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셨듯이 이곳 민다나오의 평화를 위해서도 역할을 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2003년도에 민다나오를 방문했습니다. 현장을 방문해 보니 민다나오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은 바로 산에 사는 원주민들과 분쟁이 있는 무슬림 지역의 아이들, 즉 학교가 없어서 배울 수 없는 아이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nbsp평화는 ‘서로 평화롭게 살자’라고 말만 한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종교나 인종이 다르다고 차별하면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먼저 그런 차별을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살기 어려운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지원해야만 평화가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민다나오에서 어떤 정치적 활동을 하기보다는 먼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이 평화로 가는 첫 걸음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원주민 마을과 무슬림 지역에 지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nbspnbsp그때 토니 주교님을 돕고 있던 사람이 저를 학교가 없는 시골 마을로 안내하겠다고 했는데, 그곳은 가가얀데오로에서 차를 타고 1시간 정도 가야 하는 외곽이었습니다. 그때 그분이 ‘스님께서는 외국인이니까 멀리 못 가실 것 같아서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 중에 제일 어려운 지역으로 안내했습니다’ 라고 말하기에 제가 ‘이렇게 도시로부터 가까운 데 말고, 아주 먼 데로 데려가 달라. 걸어서 1시간 내지 3시간을 가야 하는 곳, 학교도 없는 곳으로 안내해 달라’ 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세 군데에 학교를 짓고 ‘걸어서 갈 수밖에 없는 더 어려운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다시 요청해서 네 번째로 찾아간 곳이 바로 저 산꼭데기에 있는 가가호만 마을었습니다.nbsp제가 가가호만 마을에 처음 갔을 때 통역해 주시는 남자분이 저를 위해서 같이 가주었는데 중간에 ‘도저히 못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가호만에 가기는 갔는데 통역 없이 갔기 때문에 사람들 얼굴만 보고 온 적이 있었습니다.nbspnbspnbsp그렇게 시작해서 고산 지대에 있는 원주민 마을, 그리고 라나오 델 수르, 고따바또, 라나오 델 노르떼와 같은 무슬림 지역에 학교를 지어오다가 오늘 이곳에 48번째 학교가 지어지게 된 것입니다.nbsp왜 스님은 이렇게 고산 지대나 어려운 지역에 다닐까요? 그것은 저도 이곳처럼 도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병든 사람은 치료받아야 하고,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조건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와 종교나 국적이 다르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하고, 그들 또한 그런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nbspnbspnbsp이런 일들을 함께 하자는 의미에서 저희는 단체 이름을 ‘Join Together Society’의 약자, JTS라고 지었습니다. JTS는 학교를 지어주지 않고,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함께 짓자고 합니다. JTS는 자재를 제공하고, 마을 주민들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시청에서는 기술자를 제공하고, 교육청에서는 선생님을 보내는 식으로 ‘우리 모두 함께 하자’는 의미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원칙 때문에 JTS가 마을주민들이나 시로부터 오해를 살 때도 많습니다. ‘왜 JTS는 직접 학교를 지어주지 않고, 가난한 우리한테 노동을 제공하라고 하느냐? 다뚜이나 마을 리더가 JTS에서 돈 받아먹고 우리한테 노동시키는 것 아니냐?’ 하는 거지요. 그래서 공사가 중단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nbspnbsp마을 주민 여러분, 이 아이들은 바로 여러분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가난하지만 가난한 여러분도 자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함께 희망을 만들어 보자’는 큰뜻에 동참하신 것입니다.nbspnbsp어린이 여러분, 잠깐 일어나주세요. 여러분의 부모님께서 힘들게 일하신 덕분에 이 학교가 지어질 수 있었습니다. 왜 여러분의 부모님께서 힘들게 일하셔서 이 학교를 지었을까요? 여러분들이 열심히 공부하라고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린이 여러분은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나요?”nbspnbsp“예.”nbspnbspnbsp“그럼 어린이 여러분들은 뒤로 돌아서서, 여러분에게 학교를 지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세요.”nbspnbsp“엄마, 아빠, 감사합니다.”nbsp“그리고 여기 계시는 시장님 이하 시청 직원 여러분, 기술자 여러분 등 많은 분들이 이 학교를 짓는데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분들께도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하세요.”nbsp“감사합니다.”nbspnbsp“그리고 필리핀 JTS 이원주 대표님 이하 JTS 활동가들도 이 학교를 짓기 위해서 많은 지원을 했습니다. 이분들께도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세요.”nbsp“감사합니다.”nbsp“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앞으로 학교에 오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한번 따라해 보세요.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해 보세요.” nbspnbsp“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nbspnbspnbsp“이 학교를 짓기 위해서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말씀을 드립니다. 저희가 이렇게 노력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지금은 작지만 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한다면 10년, 20년 후에는 반드시 필리핀의 중요한 사회구성원이 되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서 믿는 신들의 가호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라며,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이렇게 좋은 학교를 지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말씀을 드립니다.”nbsp스님의 거듭된 감사 인사, 또 아이들로 하여금 수고한 이들의 노고를 알도록 수차례 문답을 주고 받는 모습은 크나큰 감동이었습니다. 무엇보다 JTS가 민다나오에 처음으로 학교를 짓기 시작했을 때 어떤 자세로 출발했는지 들을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nbspnbsp학부형들은 스님의 말뜻을 진심으로 이해를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마지막엔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며 학교를 잘 가꿔나갈 것을 다짐했습니다.nbspnbspnbsp준공증서와 시계, 열쇠를 전달하자 더 큰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기쁨이 또 있을까요. 마음 같아서는 신나는 춤판이라도 벌어질 기세였습니다.nbspnbspnbsp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가운데 다같이 기념사진을 찍은 후 준공식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 키한아이 마을 주민들, 어린이들 다함께nbspnbsp교실 안으로 들어가니 갖가지 정성스런 음식들로 식사가 차려져 있었습니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학교를 나온 스님은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는 이곳의 산악 지형을 한 눈에 보여주는 듯한 멋진 바위가 있어서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nbspnbspnbsp또 저 멀리에는 산꼭대기에 자리한 가가후만 마을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스님에게는 추억이 많이 남은 학교이지요. 가가후만 마을을 비롯한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후 키한아이 학교를 출발했습니다.nbspnbspnbsp다시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3시간 넘게 달린 끝에 오후 4시가 다 되어 다시 JTS 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예상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해서 센터 주변을 함께 둘러보려고 했는데, 소나기가 막 쏟아지기 시작해서 아쉽게도 내일로 미루고각자 개인 정비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저녁 식사 후 6시부터는 필리핀JTS 현지 활동가들과 함께 2016년 사업 계획에 대해 함께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16년에는 수밀라오 지역에 장애인 학교를 짓고, 무슬림 지역인 마긴다나오에는 4칸짜리 학교를 지어줄 계획입니다. 또 라나오 델 노르떼는 보수 공사를 추가로 진행할 예정이며, 알라원에는 새롭게 개교를 추진하고, 커피 수매 활동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nbsp▲ 필리핀JTS 2016년 사업계획 논의nbspnbsp다만 자급자족 농장 운영 등 기타 여러 사업들을 추진할지 여부에 대해 의논이 되었는데 필리핀JTS 활동가들은 “절대적으로 인력이 부족하다”며 추가 인력 파견 요청을 스님에게 건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이런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지금 인력 상황을 보니 자급자족 농장은 꿈도 못 꿀 것 같네요. 그냥 상추 정도나 심어 먹어야겠네요. 지금 행자대학원에 입학한 다음 학기 파견자들이 3명이거든요. 3명 모두 인도로 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다음에는 행자들 파견도 어려울 수 있어요. 더군다나 올해와 내년에는 통일문제를 풀기 위해 집중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기존 인력을 억지로 빼내 오기도 어렵고요. nbspnbsp젊은 인력이 파견되어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은퇴한 노부부가 올 수 있는지 한번 알아보면 좋겠어요. 은퇴하신 분들 중에 기술이 있는 분들이 있는지 찾아보면 오히려 가능성이 있어요. 노부부가 와서 밥만 해줘도 얼마나 좋아요. 농사일도 크게 벌이지 말고 채소나 좀 심어서 키우고, 설거지만 좀 해줘도 젊은 사람들이 훨씬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거든요. 대신 노인들은 일을 많이 못하니까 예불 정도만 같이 하고 나머지는 쉬어도 좋고 여유롭게 지낼 수 있게 해주면 되고요. 인력 충원은 도저히 방법이 없어요.”nbspnbsp스님 말씀처럼 현재 정토회 내부에서 새롭게 활동가들이 대거 파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 많은 분들이 마음을 좀 내어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nbspnbsp▲ “여러분 필리핀JTS로 봉사활동 좀 와 주이소”nbsp이 외에 출장을 다닐 때 식비를 60페소에서 100페소로 인상하자는 건의, JTS센터에 5명 이하로 거주하게 될 시에는 일인당 식비를 1불에서 2불로 인상해 달라는 건의, 계란과 라면을 부분적으로 먹을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요청, 오신채가 들어간 음식이 보시로 들어왔을 때는 좀 먹을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요청 등 생활 관련 요청들이 있었고, 스님은 각각의 사안에 대해 원칙을 정해 주었습니다.nbspnbsp약 3시간 동안의 긴 회의를 마치고 밤 10시가 다 되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새벽 3시 30분에 하루 일과를 시작해 참으로 기나긴 하루를 보낸 것 같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 일찍 JTS 기숙사 준공식을 가진 후 오전 8시 40분에 JTS센터를 출발해 가가얀데오로로 이동합니다. 가가얀데오로에서는 토니 주교님을 찾아 뵙고 인사를 나눈 후 오후 2시 비행기로 마닐라로 향합니다. 저녁에는 필리핀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nbsp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는 인도 불가촉 천민 마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수자타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nbspnbsp

2016.03.04. 39,120 읽음 댓글 29개

2016.3.2 (필리핀 1일째) 민다나오 JTS센터 도착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한국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필리핀 마닐라를 경유해 민다나오에 있는 JTS센터에 도착했습니다.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머무르며 길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nbspnbsp새벽 5시 20분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한 스님은 인천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은 후 필리핀 방문 일정을 동행하는 일행들과 함께 죽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nbspnbspnbsp식사 후 출국심사대를 통과해 게이트까지 가는 동안에는 걸으면서,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앉아 있는 동안, 비행기 안에서도 계속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 탑승 수속을 밟는 동안 원고 교정 업무를 보고 있는 스님nbspnbsp▲ 이동하면서도 쉼 없이 원고 교정nbsp아침 8시 1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필리핀 현지 시간으로 11시 20분에 마닐라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는nbsp한금화nbsp정토회 동아시아 지구장님이 마중을 나와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 공항 마중을 나온 한금화 정토회 동아시아 지구장님nbsp마닐라 국제공항을 나온 스님 일행은 곧바로 국내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터미널3으로 향했습니다. 터미널3에는 스님과 민다나오 방문 일정에 동행하기 위해 필리핀정토회에서 5명의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탑승 수속을 밟는 사이 스님은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마침 필리핀정토회에서 김밥을 준비해 주어서 공항 바닥에 앉아 식사를 대신했습니다.nbspnbspnbsp▲ 스님의 점심 식사nbsp그리고 스님은 항상 저가 항공을 타고 다니시는데 그러다보니 비행기가 연착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도 연착이 되겠거니 예상하고 일행 모두 카페에 자리를 잡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다행히 제시간에 비행기가 출발해 일행 모두 예정된 오후 4시에 무사히 민다나오 가가얀데오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nbsp▲ 민다나오nbsp짐을 모두 찾아서 나오니 필리핀JTS 안병주 사무국장님이 반갑게 스님 일행을 환영해 주었습니다.nbspnbsp민다나오의 날씨는 우리나라 한여름처럼 열기가 후끈 했습니다. 가가얀데오로 공항을 출발하여 바닷가를 따라 약 2시간을 차로 달리니 고산 지대로 난 도로가 나타났습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올라가 해발 1000미터 지점에 다다르자 JTS센터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nbspnbsp▲ 민다나오 JTS센터 신축 기숙사nbsp최근에 기숙사 건물이 완공되어 일행 모두 신축 기숙사에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밤이어서 건물 전체가 한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부는 아주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건물 중앙에는 모임을 할 수 있는 넓은 홀이 있었는데 천장에 멋지게 JTS 로고 문양이 장식되어 있어 모두들 보자마자 감탄사를 자아내었습니다. 이원주 필리핀JTS 대표님은 “여기는 이런 고급 기술이 없는 곳인데 이 문양을 만드느라 엄청 애를 먹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 홀 천장에 장식된 JTS 로고 문양nbsp스님이 건물 안에 들어서자 얼마 전 이곳에 새로 파견을 온 행자님 두 명을 포함해 현지 활동가들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은 “고생이 많다”고 격려를 해준 후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도 해주었습니다.nbspnbsp▲ 필리핀JTS 현지 활동가들nbsp한편에서는 한국에서 가져온 각종 지원품들을 펼쳐놓자 필리핀JTS 활동가들은 기쁜 마음을 감출 줄 몰라 했습니다. 또 부엌에서는 부지런히 저녁 식사가 준비되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 저녁 식사nbsp필리핀JTS 활동가들이 정성껏 차려준 음식들로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한 후 8시부터 홀에 모여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에서 법륜 스님을 비롯해 6명이 함께 동행해 왔고, 필리핀정토회에서 이원주 대표님을 비롯해 4명, 방콕정토회 홍정혜 대표님, 필리핀JTS 현지 활동가가 안병주 사무국장님을 비롯해 5명, 총 16명이 원으로 둘러 앉아 각자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소개가 끝날 때마다 크게 박수를 쳐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nbspnbsp▲ 참가자 소개 시간nbsp마지막으로 필리핀JTS 안병주 사무국장님이 2박 3일 동안의 민다나오 방문 일정과 생활 안내에 대해 브리핑을 한 후 밤 9시가 되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이동만 하는 일정이었네요.nbspnbsp▲ 필리핀JTS 안병주 사무국장님nbsp내일은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해 천일결사 기도를 한 후 JTS센터를 출발해 오전 9시 30분에 콘솔라시온 마을에서 학교 준공식, 오전 11시에 키한아이 마을에서 학교 준공식을 갖고, 다시 JTS센터로 돌아와 저녁 7시부터 활동가 수련 및 2016년 사업 논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nbspnbsp※nbsp2016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nbsp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분들은 지금 신청하세요.nbspnbspnbsp

2016.03.03. 56,072 읽음 댓글 37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