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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10 (저녁) 정초순회법회 1일째 대구경북 지부
nbsp오후 2시에 열렸던 주간반 정초법회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대구경북지부의 저녁반 정회원들을 대상으로 정초법회가 열렸습니다.nbspnbsp▲ 대구정토회nbsp저녁 7시가 되자 곧 시작될 법회 참석을 위해 자리가 채워지는 한편으로 ‘오분향 예불문’을 시작으로 저녁예불이 진행되었습니다. 5일 간의 설연휴 동안 조금은 들떠있던 마음이 나지막히 들리는 예불문으로 인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대구정토회 대표를 맡고 있는 전병찬님의 활기찬 인사와 함께 곧이어 포항정토회를 시작으로 경주정토회, 구미정토회, 안동정토회, 달서정토회, 마지막으로 대구정토회를 끝으로 80여명의 저녁반 정회원들이 차례로 인사를 나눴습니다. 저녁반 참석자 수가 적은 것은 휴일이라서 저녁반 회원들이 오후 2시 주간반 법회에 많이 참석했기 때문입니다.nbspnbsp▲ 참가자 소개nbsp그리고 올 1월에 새로이 정회원으로 선임된 대구정토회의 신입 정회원들이 가야금과 장구를 들고 나와 태평가와 아리랑을 기쁜 마음으로 공연했습니다. 마치 봄날 벚꽃잎이 흐드러지게 피듯 부드러운 손사위까지 함께하여 큰 웃음과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nbspnbspnbsp▲ 저녁반 신입 정회원들의 축하 공연nbsp오늘부터 3일 간 정초기도를 시작하기 때문에 스님은 정초기도를 하는 마음자세와 목적에 대해 먼저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우리 속담 중에 ‘시작이 반이다’ 이런 말이 있잖습니까. 왜 시작이 반일까요? 시작을 하려면 굉장히 준비를 많이 해서 시작을 하기 때문입니다. 준비 기간까지 다 고려하면 실제로 시작이 반이에요. 이미 준비를 많이 해서 시작으로 드러난 모습이 벌써 일의 절반이 경과한 것이라는 겁니다.nbspnbsp그래서 새해를 맞을 때도 시작을 잘 해야 되니까 ‘올 한 해도 무사히 잘 보내겠습니다’ 하고 마음을 좀 경건하게 먹어야 됩니다. 그래서 고래로부터 열두 달 중에 1월 한 달은 정진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삶이 바빠지니까 보름 동안 정진을 하다가, 또 1주일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더 짧아져서 정초기도를 5일간 했습니다, 초삼일에 시작해서 초이레까지. 그러다 더 짧아져서 지금은 3일 합니다. 정토회도 정초기도는 3일 합니다. 그런데 더 짧아져서 이제 정초기도를 하루만 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는 그래도 1년을 준비하는 기도이니까 3일은 해야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nbspnbsp그리고 정초기도는 원래 초하루부터 해야 돼요. 제 어릴 때 보면 어머니께서 오전에는 차례를 지내고, 차례가 다 끝나고 점심 먹을 때 쯤이면 옷을 갈아입으시고, 나무 쟁반에 쌀 한 되나 두 되를 담아 머리에 이고, 초 한 갑 넣고, 향 한통 얹어서 절로 가십니다. 그래서 주로 오후에 기도를 시작합니다. 불공 드린다 그러죠. 그런데 정토회는 연휴가 끝나는 초삼일부터 초닷새까지 3일간 정진을 합니다. 오전에는 기도 정진을 하고, 오후 시간을 빌어서 지부별로 정회원들과의 정초 인사 겸 ‘한 해를 우리가 어떻게 시작할 거냐’ 하는 얘기를 나누는 겁니다. 또 각 지부 상임법사님께서 각 법당을 다니시면서 법당의 회원들과 인사도 나누고 함께 기도를 하는 게 정토회의 정초기도입니다.nbsp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도 오늘 정초기도 입재를 다 하셔야 합니다. 시작을 좀 경건하게 준비된 사람으로서 시작을 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준비를 해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착오가 생깁니다. 생각지도 못한 이런 저런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대부분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데, 세상 일이란 게 우리가 일어나지 말라고 한다고 안 일어나고, 일어나라고 한다고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세상이 다 우리 뜻대로 되면 왜 우리가 인생을 힘들게 살겠어요? 통일도 벌써 되었겠지요. 세상 일이라는 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가 없습니다. 될 때도 있겠지만 ‘전부 다 됐으면 좋겠다’ 하는 건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거예요.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내가 그걸 능히 이겨내는 것, 그게 자유와 행복입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서 아무 일도 없는 게 자유와 행복이 아니고,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거기에 내가 구애받지 않는 것, 그걸 능히 이겨낼 수 있는 것, 이게 자유와 행복입니다.nbspnbsp그러려면 내가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아무 준비 없이 산에 갔다가 산이 너무 높거나 날이 너무 춥거나 길이 너무 멀면 낭패잖아요. 고통을 겪게 되죠. 그러나 준비를 잘해서 출발하면 산이 조금 높아서 힘들더라도 능히 오를 수가 있고, 길이 멀어서 힘들더라도 능히 목표지점까지 갈 수가 있고, 날이 춥더라도 능히 감당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준비를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것, 이게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올 1년 동안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잘 감내를 하겠다’ 이게 정초기도를 하는 마음의 자세이자 목적입니다.nbspnbspnbsp그런 것처럼 우리가 인생을 살 때도 이렇게 정초기도처럼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준비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일 하더라도 다 입재식을 하잖습니까. 첫째, 준비를 잘 하는 게 중요합니다. ‘정초기도를 한다, 입재기도를 한다’는 건 준비를 한다는 겁니다. 둘째, 일에 임할 때는 집중해서 정성을 기울여야 됩니다. 셋째, 어떤 사건이 생기면 예측한 대로 일이 안 돼요. 이런 일이 생기면 이렇게 할 것이라고 준비해 놓아도 실제로 일이 닥치면 예측한대로 잘 안 됩니다. 엉뚱한 일, 예외가 자꾸 생깁니다. 그러나 준비된 상태로 어떤 특별한 일이 벌어지는 것과 준비 없이 벌어지는 것은 다릅니다. 준비 없이 벌어지면 경황이 없어서 화가 화를 부르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제1의 화살은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사건이 벌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으니까 우리가 제1의 화살은 맞을지언정 준비된 사람이라면 그것을 원인으로 또 다른 일이 벌어지는 일은 막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nbspnbsp교통사고도 그런 경우가 많잖아요. 교통사고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런데 만약 교통사고가 났다고 경황이 없어서 고속도로에 차를 세워놓고 ‘니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하면서 싸우다가 뒤에 오는 차에 받혀서 더 큰 사고가 나기도 하지요. 첫 번째 사고는 그저 차만 부서졌는데, 두 번째 사고는 인명피해가 생기잖아요. 그러니 예의주시해서 사고가 안 나도록 해야 되지만, 사고가 났을 때는 어떻게 대응을 한다는 게 준비가 돼있어야 된다는 겁니다.nbspnbsp그리고 넷째, 일이 끝난 뒤에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됩니다. ‘이렇게 준비를 했지만 이런 예외가 생기는구나’, ‘이런 준비를 했지만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그래서 이걸 참고로 해서 다음에는 더 준비를 잘 할 수 있게 해야 됩니다. 그래서 다시 현실에 임하고, 또 예상 못한 일이 벌어지고, 그래서 또 거기에서 교훈을 얻으면 그 다음에 더 준비를 잘하게 되지요. 이렇게 점점 경험이 쌓이게 됩니다. 그래서 나중엔 어지간한 일이 생겨도 보통 사람은 막 당황할지라도 이미 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은 예측 못한 일이 벌어져도 금방 대응을 할 수가 있게 됩니다. 이렇게 늘 준비하고, 현실에 임하고, 거기에 수정 보완을 하고, 다시 준비를 하고, 또 현실에 임하고, 또 예외가 발생하면 그걸 또 수정 보완해서 준비를 하는, 이런 과정이 거듭되면 될수록 그 사람의 역량은 점점 커져서 어지간한 예외는 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nbspnbsp그런 의미에서 첫째 준비를 잘 해야 됩니다. ‘준비를 해가도 일이 딱 벌어지니까 당황해서 아무 것도 못 하겠습니다’하는 사람이 있는데,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어요. 그래도 준비를 해야 생각 못했던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교훈으로 삼을 수가 있는 겁니다. 준비를 안 한 사람은 어떤 사건이 생겨도 반복할 뿐이지 거기서 교훈을 얻어서 새로운 준비를 하는, 즉 역량이 점점 더 축적되어서 능력이 커지는, 그런 과정을 쌓아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매년 정초에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정성을 기울여서 기도를 하고 1년을 꾸준히 성실히 살아가고, 그래도 예측 못한 일이 발생한다면 다음에 또 반영을 하면서 준비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게 정초기도의 이유입니다.nbspnbspnbsp복을 비는 기도는 ‘부인이 남편 대신 가서 복을 빌어주고 남편이 복락을 받으면 된다’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정토회에서는 복을 비는 기도를 안 하기 때문에 누가 대신해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 기도는 자기가 해야 됩니다. 주간반은 해야 되고, 저녁반은 안 해도 되고, 이런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 모두 기도에 입재해서 절에 못 나오면 집에서 하든지 해서라도 정초기도를 꼭 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니 오늘부터 3일 동안은 평소보다 더욱더 기도에 집중해봐야겠다는 다짐이 생겼습니다.nbspnbsp그리고 활동과 관련한 또는 개인적인 어려움을 스님께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총 6명의 정회원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매일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 때문에 힘겹다는 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nbspnbspnbsp“저희 신랑이 술을 너무 좋아해서 거의 매일 술을 마시는데, 저는 퇴근시간쯤 되면 남편에게 전화해서 바로 집으로 오는지, 아니면 술 마시고 오는지 물어봅니다. 남편이 술 마시고 온다고 하면 그때부터 저는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제가 집에 있으면 남편이 술을 마시더라도 데리러 갈 수도 있는데, 법당에 봉사하러 나왔을 때는 더 불안해집니다. 어떻게 기도하면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여쭤봅니다.”nbsp“기도할 거 없어요. 먹고 싶어서 먹는 걸 왜 질문자가 간섭해요? 놔둬요. 그냥.”nbspnbsp“예전에 남편이 술 먹고 대리운전을 안 부르고, 조금 마셨다고 그냥 차를 가지고 오다가 사고도 났거든요.”nbsp“그러다가 사고가 나서 죽으면 본인 탓이지요, 뭐. 그럼 질문자는 시집 한 번 더 가고 좋지요.nbspnbspnbsp그렇게 죽으면 질문자 탓도 아니에요. 옛날 같으면 따라죽어야 되니까 조심하도록 해야겠지만 지금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놔두세요.”nbspnbsp“자기가 사고를 내서 자기가 죽는 것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한테도 피해를 입히니까요.”nbspnbsp“피해 입히면 자기가 물어주겠지요, 뭐. 질문자가 지금 술 마시지 말라고 하면 남편이 들을 사람이에요? 안 들을 사람이에요?”nbsp“안 듣습니다.”nbsp“그래서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저는 ‘남편이 술을 마셔도 좋다’, ‘남편이 죽어도 좋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질문자가 고칠 수 없는 일이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질문자가 갑자기 날씨를 따뜻하게 할 수도 없고, 해 뜨는 걸 뜨지 말라고 할 수도 없듯이 말이죠. 그걸 질문자가 질문자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면 스님한테 묻지도 않았겠지요 스님은 어떻게 그렇게 쉽게 얘기하느냐고요? 저한테 물었다는 건 이미 질문자가 남편한테 아무리 얘기해도 해결될 수가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nbspnbsp질문자가 저한테 기대하는 건 ‘스님이 뭔가 나한테 기적이 될 수 있는, 내가 딱 말하면 남편이 그 말을 듣는, 그런 기도문을 하나 주세요’ 하는 것이지요? 저는 그런 능력이 없다고 이미 여러 차례 선포를 했습니다. 그런 능력이 있으면 저는 여기 안 있어요. 제가 그런 능력이 있다면 제일 먼저 고쳐줄 사람은 누구겠어요? 첫 번째가 일본의 아베 수상, 두 번째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 세 번째가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저한테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이 사람들을 속시원하게 고쳐주고 말지 뭣 때문에 놔두고 있겠어요. 지금 개성공단 문 닫으면 곧장 몇 백개의 중소기업이 망하게 되잖아요. 그런 것도 보고 사는데 남편 술 먹는 거 그걸 못 보고 살아요? 개성공단 문 닫는 일은 남 일처럼 보면서 남편 술 먹는 건 내 문제라고 그렇게 난리를 피우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술 먹고 남편이 죽든지 사고를 내든지 그건 큰 틀에서 보면 별일 아닙니다.”nbspnbspnbsp“그럼 남편이 술 마셔도 그냥 둘까요?”nbsp“남편이 술을 먹든지 말든지 일찍 들어오든지 늦게 들어오든지 내버려두세요. 늦게 들어오면 질문자는 자기 공부하면 되잖아요. 질문자는 명상도 하고, 천일기도도 하고, 절에 봉사도 하고, 할 일이 많잖아요. 아이가 몇 살입니까?”nbsp“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3학년입니다.”nbsp“그런 정도면 혼자 충분히 공부할 수 있는 얘들이잖아요. 그러면 질문자는 퇴근 후에 절에 와 있으세요. 남편이 보통 몇 시에 귀가하나요?”nbsp“일찍 들어오면 7시, 늦게 들어오면 12시 정도입니다.”nbspnbsp“그럼 질문자는 항상 1시에 집에 들어가세요. 그리고 절에서 봉사를 실컷 하세요. 그래서 남편이 질문자한테 사니, 못 사니, 난리를 피우도록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남편이 지금 질문자처럼 아내 때문에 못 살겠다고 저한테 물으러 오도록 해야 돼요.nbspnbsp질문자가 남편 때문에 난리를 피우지 말고요. 그러면 질문자만 손해예요. 게임에서 공을nbsp상대에게 넘기지 왜 바보처럼 내가 안고 그렇게 난리를 피우나요? 그건 남편에 대한 사랑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에요. 질문자는 남편에게 ‘너 알아서 술 먹어라’ 그러고, 절에 와서 봉사를 실컷 하세요. 그래서 나중에 남편이 사니, 못 사니 난리를 피우면서 ‘절에 갔다가 일찍 들어오너라’ 그러면 질문자는 12시에 들어가는 것까지만 양보해야 돼요. 절대로 한꺼번에 7시까지 양보하면 안돼요.nbspnbsp12시에 들어가도 남편이 죽네사네 하면 11시까지만 양보하는 식으로 하세요. ‘1시 들어가던 걸 12시에 들어가는 대신에 너는 술 먹고 운전 안 한다고 약속해라’ 하고, 12시에 들어가는데도 남편이 난리를 피우면 ‘그럼 너는 술을 먹지 말라’는 식으로 하면 질문자가 10시에 집에 들어가면서도 남편 술도 못 먹게 할 수 있는 거잖아요.nbspnbsp왜 바보같이 그렇게 끌려다니면서 살아요. 질문자가 절에 와서 수행하고 봉사하고 좋은 일을 하잖아요. 그건 아이들이 보기에도 나쁜 게 아니잖아요. ‘엄마, 왜 늦게 들어와?’ 그러면 ‘엄마는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해 주면 되잖아요.nbsp그렇게 얘들한테도 엄마가 모범이 되어야지요. 질문자가 꼭 퇴근 후에 집에 가야 될 이유가 없잖아요. 물론 집에 가서 아이들하고 있으면 좋지만, 질문자가 남편을 조금이라도 고치려면 그런 방법도 있다는 겁니다. 싸워서 고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내내 을이 되어서 인생을 끌려 다니지 말란 말이에요. 부처님께서 언제 왕한테 가서 싹싹 빈 적이 있었어요? 오히려 왕이 부처님한테 와가지고 ‘왕궁에 좀 와주십시오’ 해도 안 가셨잖아요. 그러니 왕이 부처님을 찾아오고 그랬지요. 아무 것도 없는 거지인 부처님께서 온갖 걸 다 가진 왕한테도 그렇게 소위 ‘갑’의 위치를 지켰는데, 자기가 뭐가 못나서 남편한테 갑질은 못할망정 을로 잡혀서 사나요. 그러니까 그거 신경 쓰지 마세요. ‘남편이 술 먹어도 좋다’가 아니라 남편이 좋아서 먹는 걸 질문자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그냥 두라는 것입니다.nbspnbspnbsp질문자가 고칠 수 있으면 고치세요. 때리든지 묶어놓든지 차를 없애버리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더 이상 할 수 없으면 그 다음에는 포기하라는 거예요. 그것을 가지고 자꾸 애쓰지 말아요. 그러면 질문자만 힘들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고 행복해질 수 있겠어요? 남편이 술 먹고 늦게 들어와도 호호 웃고, ‘남편이 늦게 들어오니 내 시간 많아져서 좋다’ 이렇게 생각하고 지내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은 남편이 그런 데도 어떻게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게 살 수 있소?’ 물을 겁니다. 그러면 ‘저는 불교를 공부해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지요.nbspnbsp이렇게 질문자가 중심을 잡으세요. 왜 남자 하나한테 전전긍긍하고, 애한테 전전긍긍하고, 이렇게 살아요? 그럴 이유가 뭐가 있어요? 질문자가 조금만 풀어주면 되는데요. 뭐 그것 때문에 기도문이 필요하다고요? 머리가 나쁘면 다리가 고생한다니까요.nbspnbspnbsp제가 꼭 300배, 500배를 시켜야 되겠어요? 머리만 탁 깨우치면 기본 108배만 하면 됩니다. 108배를 하면 건강에도 좋고, 또 우리가 자꾸 잊어버려서 마음이 홱 돌아가니까 108배를 하면 더 낫다는 겁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더라도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든지 해야죠. 뭘 바꾸려고 해도 큰 걸 바꾸려고 해야지 그 술 먹는 거 바꿔서 뭐 하게요. 그런 것은 놔둬요.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좀 대범하게 사세요. 어떻게 생각해요?”nbsp“예, 대범하게 생각하겠습니다.”nbsp“하루에 500배 하라는 기도문을 줄까요?”nbspnbsp“아니요. 감사합니다.”nbsp밝아진 질문자의 얼굴을 보고 대중들도 모두 큰 박수를 쳐주었습니다.nbspnbspnbsp법회가 끝나고 질문자는 “모르는 사람들에겐 ‘갑질’을 하면서도, 정작 남편 앞에서는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나를 보게 되었어요. 수행자로써 당당하게 주인된 삶을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참 질문을 잘한 것 같아요”라고 하면서 기뻐했습니다.nbspnbsp이렇게 즉문즉설을 마친 후 작은 퍼포먼스가 펼쳐졌습니다. 촛불로 통일 지도를 밝히고 연꽃등 띄우기를 하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불이 꺼진 법당 안에서 한반도를 밝히는 촛불을 켜는 모습은 짠한 감동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그에 따른 한미 간의 사드 배치 논의까지 그 어느 때보다 국제정세가 칠흙같은 터널로 빨려들어가는 지금 이시에 수행자로써 변화를 기다리기보다 변화를 준비하는 정토행자가 되어보자는 발원을 해봅니다. nbspnbspnbsp▲ 평화의 염원을 담은 퍼포먼스nbsp환하게 밝혀진 통일 지도와 연꽃등을 앞에 두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어두울수록 촛불이 더 밝듯 간절히 통일을 염원하는 정토행자의 삶은 지금 같은 시기에 더욱 빛이 날 것입니다.nbspnbspnbsp법회가 늦게 끝나서 밤 11시가 넘어서 대구정토회를 나왔습니다. 내일은 부산울산지부 정회원들을 대상으로 해운대정토회에서 정초법회가 열립니다. nbspnbsp ※ 2016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nbsp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분들은 지금 신청하세요.nbspnbspnbsp
2016.2.10 (주간) 정초순회법회 1일째 대구경북 지부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초를 맞이하여 전국 8개 지부 순회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날로 대구경북 지부 정회원들을 대상으로 오후 2시에는 주간반을 위해,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을 위해 법회가 열렸습니다.nbspnbsp겨울 날씨답지 않게 볕이 따뜻한 오후. 대구경북 지부의 정토회 정회원들이 쏙쏙 대구정토회로 모여들었습니다. 스님을 뵐 수 있다는 설렘 때문인지 오는 이들의 발길도 가볍고 얼굴도 밝고 화사해 보입니다.nbspnbsp▲ 대구정토회nbsp오후 2시가 되자 대구정토회 3층 대법당은 240여 명이 참석해 운신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득 찼습니다. 먼저 대구경북지부 사무국장 장금옥님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세상을 좁게 보니까 명절 때 시금치의 ‘시’자도 듣기 싫었는데, 정토회를 만나고 나서는 세상을 넓게 보게 되어 별 일이 아닌 것으로 여길 수 있다”며 넉넉한 웃음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장금옥 대구경북지부 사무국장nbsp대구경북지부는 한다면 하는 아주 열정적인 지역입니다. 어떤 과제가 주어질 때 모든 회원들이 한 마음이 되어 열과 성을 다해 실천합니다. 그래서 어떤 실천과제든 전국에서 1등을 하는 경우도 많고, 전국적인 모범사례도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nbsp첫 번째 순서는 정회원들이 공동으로 보여주는 환영 퍼포먼스였습니다. 참석한 모든 회원들이 미리 전광판 앱을 다운받아 ‘스님 사랑해요’ 등의 문구를 만들어 와서 공연을 보러 간 팬들처럼 휴대폰을 흔들어대며 스님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nbsp▲ 스님을 환영하는 문구를 스마트폰에 적어서 보여주고 있는 대중들nbsp이어서 정토회별로 앞에 나가 각자 소임과 이름을 말하며 참가자 소개를 했습니다. 대구경북지부는 대구정토회, 달서정토회, 구미정토회, 포항정토회, 경주정토회, 안동정토회 등 총 6개 정토회가 있습니다. 대구정토회 산하 대구, 태전, 남산, 신서 4개 법당에서 88명이 함께 했습니다. 신서법당은 올해 1월에 개원을 한 따끈따끈한 신생법당입니다. 달서정토회는 송현, 성서, 달성 3개 법당에서 40명이 함께 했습니다. 불교대 입학생 사전밀착관리를 잘해서 출석률을 비롯해 졸업률과 정회원 배출을 많이 해서 전국의 모범이 되는 곳입니다.nbspnbsp▲ 참가자 소개 시간nbsp구미정토회는 구미, 김천, 상주, 문경, 왜관 법당에서 28명이 함께 했습니다. 이 중 김천 법당은 수행법회 활성화하고 모든 회원들이 법당의 활동 하나씩을 담당하는 전국 모범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는 곳입니다. 포항정토회는 덕산, 양덕 2개 법당에서 23명이 함께 했습니다. 경주정토회는 경주, 경산, 영천 3개 법당에서 49명이 함께 했습니다. 안동정토회는 안동, 영주 2개 법당에서 14명이 함께 했습니다. 자주 뵐 수 없는 스님이 가까이 오신다니 부푼 마음을 안고 멀리서 가까이에서 총 242명이 달려왔습니다.nbspnbsp대부분 법당에서 불교대, 경전반, 수행법회 등 하나씩 담당을 맡고 있는 회원들이었고, 갓 불교대를 졸업한 사람, 딱히 법당에 소임을 맡지는 않고 있지만 스님을 뵙고 싶어 온 정회원들도 많이 보였습니다.nbspnbsp소개가 끝난 뒤 경주정토회 신규발심행자들의 퍼포먼스가 이어졌습니다. 북한의 꽃봉오리 합창단처럼 머리와 손에 종이꽃을 꽂고 북한 말투로 “북한에서 KTX 타고 온 연꽃예술단입니다.”며 자신들을 소개한 뒤 ‘반갑습니다’란 북한 노래에 맞춰 율동을 보여준 후 ‘휘파람’ 노래도 불러주어 함께 자리한 이들에게 즐거움을 더해 주었습니다.nbspnbsp▲ 경주정토회 신규 발심행자들의 퍼포먼스nbsp이렇게 한바탕 재미있게 웃은 후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최근 한파가 몰아쳤던 날씨 이야기와 함께 말문을 열었습니다.nbspnbspnbsp“설 연휴 잘 보내셨습니까?”nbsp“예.”nbsp“지난 겨울은 몇 십 년 만에 제일 추웠다는 얘기를 인도에서 들었습니다. 그래도 안 얼어 죽고 모질게 살아남아서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nbspnbspnbsp지난 12월은 겨울인데도 너무 따뜻해서 시골집에 장미꽃이 활짝 피었고, 경주 남산에도 진달래가 피었고, 또 담벼락 밑에는 민들레가 노랗게 피었습니다. 저도 60년을 더 살았는데, 이런 경우를 드물게 봤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1월에는 몇 십 년 만에 가장 큰 추위가 닥쳤습니다.nbspnbsp‘겨울이 따뜻해진다. 지구온난화현상 때문에 그렇다’ 그건 이해가 되는데, 왜 또 갑자기 이런 강추위가 온 걸까요? 제트기류가 지구 북쪽, 즉 극지방을 둘러싸며 돌고 있는데, 그 제트기류는 북극지방의 찬 공기가 남쪽으로 못 내려오도록 담장역할을 해 줍니다. 그런데 북극이 따뜻해지면서 얼음이 녹고, 그 제트기류에도 이상이 생겨서, 다시 말하면, 담장이 일부 무너져서 극지방의 찬 기온이 그 무너진 담장 사이로 빠져 나와서 남쪽으로 내려와 이렇게 극심한 추위가 왔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nbspnbsp우리가 겪고 있는 이상 더위나 이상 추위가 요즘 시대에만 유별난 것인지, 아니면 먼 옛적부터 몇 십 년에 한 번, 몇 백 년에 한 번, 몇 천 년에 한 번은 있었던 현상인지, 아직 정확한 건 모르지만, 아무튼 날씨도 일정한 범위를 넘어서서 더 추워지기도 하고, 더 더워지기도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특별한 경우를 겪게 되면, 우리는 그 현상을 두고 ‘지구 종말이 머지 않았다’, ‘무슨 변고가 생긴다’ 이런 놀람과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nbspnbspnbsp그러나 그 범위를 어디까지로 봐야 할까요? 좀 크게 보면 그것은 일어날 만한 일에 속하게 되고, 좀 좁게 보면 정말 일어날 수 없는 특별한 상황에 속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그와 같지 않을까요? 우리가 삶을 좀 더 큰 마음으로, 큰 눈으로, 넓게, 길게, 깊이 본다면 삶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 심지어 나고 죽는 일까지도 그냥 바다에 파도가 치는 것처럼 세상의 자연스러운 하나의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좁고 짧게 생각하면, 나를 좋아했던 사람이 나를 배신하고, 나한테 이익을 주던 사람이 나한테 손해를 끼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원수가 되고, 내가 낳아서 키운 자식이 나를 해치는, 이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나만 겪는 재앙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천년을 산 사람이 본다면 별일이 아닐 것이고, 10살, 20살 된 사람이 볼 때는 ‘나 태어나고 이런 일은 처음이다’라고 얘기할 것입니다.nbspnbsp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특별한 게 아니고, 이렇게 우리의 시야를 좀 더 넓게, 깊이 보도록 하는 겁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죽느니 사느니 난리 피우는 것을, 그냥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지듯이, 바다에 물결이 일어나듯이, 또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는구나. 또 봄이 오겠구나’ 하는 것을 미리 예측하고 있듯이, 담담히 받아들이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몇 번을 경험하면서 ‘겨울이 오는구나’ 하는 것만 아는 게 아니라 ‘겨울에는 어떤 준비를 해야 되겠구나’ 하는 것까지 알아서, 겨울은 겨울에 맞게, 가을은 가을에 맞게, 여름은 여름에 맞게, 봄은 봄에 맞게, 다만 해야 할 일을 할 뿐인 것입니다.nbspnbspnbsp그러니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성취되면 그것 또한 좋은 일이고, 내가 원하는 일이 성취되지 않는다 해도 마땅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그래도 더 원한다면 다시 준비를 해야 할 일일뿐입니다. 기뻐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때론 기뻐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괴로워하지만 그 기쁨에도 슬픔에도 빠지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계절처럼, 출렁이는 물결처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 삶이 좋았다가, 기뻤다가, 슬펐다가, 괴로웠다가, 널뛰기를 심하게 하는 인생에서 이제는 물결이 잔잔한, 그래서 고요적적한 인생을 우리가 살 수 있게 됩니다,”nbspnbsp이렇게 날씨 얘기와 함께 정회원의 역할 등에 대한 여는 이야기가 있은 후 곧이어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총 6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다양한 질문과 스님의 명쾌한 답변이 이어진 가운데 그 중 세 번째 질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저는 정토회의 86차 백일기도에 입재를 시작했는데 아직도 백일기도를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수준입니다. 입재식은 꾸준히 다니지만 100일 중에 20일에서 80일 정도 밖에 기도를 못하니 늘 성공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부끄럽습니다. 남편은 바람도 안 피우고, 돈도 잘 벌고, 책임감도 엄청 강하고, 밤일도 남들만큼은 하고, 다만 성질이 더럽고 고집불통입니다. 늘 매사에 불평불만이라 같이 있으면 힘들고, 제가 기가 죽습니다. 그런 남편을 저는 ‘못난 놈’이라고 끊임없이 비난합니다. 비난을 멈추려면 기도 정진을 하면 될 것 같은데, 이놈의 기도가 될 듯 하다가도 잘 안 됩니다. 이런 저는 어떤 기도문으로 기도해야 할까요?”nbsp“그런데 기도라는 건 뭐 꼭 백일 중에 백일을 다해야 되는 건 아니에요. 하루 빠지고, 안 빠지고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닌데, 자기와의 약속이니까 자기가 그걸 지키는 게 좋지요. 기도를 하면 자기가 자기 성질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를 꾸준히 못 한다는 것은 자기가 어떤 일을 할 때 꾸준히 못 한다는 것을 나타내줍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를 꾸준히 하거나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인간관계도 꾸준히 하거나 약속도 꾸준히 지키는 게 있고, 했다 말았다 하는 사람은 다른 것도 그런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니 기도 하루 빠지고 안 빠지고가 핵심은 아니에요.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일수록 꾸준히 하라는 것입니다.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뜻으로 하는 거니까 그렇게 목 매달 일은 아니에요.nbspnbspnbsp그러나 자기가 꾸준히 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이번에 입재해서 하면 되지요. 뭐 못 할 아무런 이유가 없잖아요. ‘그거 뭐, 꼭 해야 되나?’ 하고 생각해서 자기가 빼먹는 거는 자기가 선택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지만, 자기가 ‘정말 내가 꾸준히 한번 해 보겠다. 한 번도 안 빠지고 해 보겠다’ 그러면 하면 되잖아요. 그래 놓고도 기도를 안 했으면 안 할 때의 자기를 보란 말이에요. ‘어, 너, 꾸준히 하고 싶다면서 오늘은 안 할 거야? 나중에 후회하면서 그때 왜 그랬지 그런 소리 안 할 거지?’ 이렇게 자기한테 물어보면 돼요. ‘그래, 후회 안 할 거야’ 한다면 나중에 기도 빼 먹었다고 후회하지 말고, ‘아니야, 나는 또 지나가면 후회할 거야’ 이러면 벌떡 일어나서 기도를 하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백일을 ‘여행을 하든지 사람이 죽었든지 관계없이 그냥 호텔이든 여관방이든 공황이든 장례식장이든 어디서든 무조건 한다’ 이렇게 정해 놓고 해 보면 됩니다.nbspnbsp자기 스스로 무의식 속에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가 있나?’ 이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안 하는 겁니다. 해야 된다면 장소가 어디든 남이 뭐라고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저도 옛날에 기도에 대해서 약간 그렇게 생각했는데, 무슬림을 보고서 감동을 했어요. 택시 기사가 손님을 태워가다가 길 가에 차를 딱 세워놓고 그냥 내리는 거예요. 아무 얘기도 안 하고요. 저는 바빠 죽겠기에 택시를 탔는데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어서 가만히 보니까 자리를 딱 깔아놓고 거기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택시 승객으로서 항의를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저 사람들은 다 저렇게 한다’ 생각하니까 항의할 생각도 없어지는 거예요. 그건 제가 감수해야 돼요. 불평하면 그 사람은 뭐라고 했을까요? ‘다른 차 타고 가세요’ 그럴 거 아니겠어요? 그럴 정도로 자기 중심이 딱 잡혀있으면 우리가 다 그 사람한테 맞출 수밖에 없는 거예요.nbspnbsp그러니 이것은 자기가 하기 나름이에요. 자기가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그렇게 산다’ 이렇게 하면 주위 사람들이 다 자기한테 맞춰요. 기도하는 걸 남편이 반대하고 때려도 맞아가면서도 하고, 그것만은 하늘이 두 쪽 나도 한다는 걸 보이면, 그것도 다른 건 다 잘해 주고 그러면 어떻게 하겠어요? 다른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이것까지 마음에 안 들면 이걸 핑계삼아서 문제를 삼지만, 기도는 반드시 하고 다른 걸 양보하면 다른 건 다 자기 마음에 드는데 기도하는 것 하나 때문에 못 살겠다는 말은 못 하잖아요. nbspnbsp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회사에서 잘릴 각오로 ‘제가 수요일은 법회 갑니다. 회사에서 회식을 하든 야근을 하든 저는 수요일은 법당에 가야 됩니다’ 하고, 대신 다른 날은 아주 성실히 일하면 회사에서도 계산해 봅니다. ‘수요일만 빼주면 되는데, 저렇게 성실하고 착한 사람을 어디 가서 구하노?’ 라고 생각해서 회사 안에서 ‘아이고, 그 사람은 수요일은 안 되니까 그 사람 빼고 하자. 회식도 앞으로는 수요일에 잡지마라. 저 친구 못 오잖아’ 이렇게 자기들이 정리합니다.nbspnbsp그러니까 첫째, 자기가 그걸 한번 지켜서 해 볼 것. 기도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은 하루도 안 빠지고 해 본다는 게 중요합니다. 시간까지 지키면 더 좋고요. ‘깜빡 졸고 일어났더니 30분이 지났다’ 할 때도 있기 때문에 그럴 때는 좀 늦었더라도 무조건 합니다. 밥을 안 하더라도 기도는 반드시 하고, 직장을 안 나가더라도 기도는 꼭 한다고 정하면 됩니다. 기도하고 직장 간다는 것을 지키기 위해 30분을 지각하기도 하고, 얘들 밥도 못 해 줄 때는 남편한테 ‘여보. 오늘 내가 기도를 빠져서 밥은 좀 당신이 해 주세요. 내가 다른 거 잘해 줄게요’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기도를 딱 챙겨보는 게 필요합니다.nbsp남편이 미운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누구나 인간에 대해서 선입관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것을 ‘까르마’라고 합니다. 속된 말로 ‘필이 꽂힌다’고 하잖습니까. 어떤 사람을 한 번 좋게 보면 세상 사람들이 욕해도 늘 좋게 보인다든지, 자기 마음에 한 번 딱 찍혀서 싫어지면 아무 이유 없이 그 인간이 싫습니다. 옷을 잘 입어도 ‘아이고, 바보 같은 게 옷만 잘 입는다’, 웃으면 ‘에이그, 웃는다고 니가 뭐’, 옷을 못 입고 다니면 ‘아이고, 저 바보 같은 게 옷도 못 입고 다닌다’ 이렇게 온갖 게 다 시비거리가 됩니다. 반면 그 사람 하는 행동이 좋으면 ‘아이고, 옷도 저렇게 검소하게 입네’ 이렇게 되죠.nbspnbspnbsp그러니까 자기가 남편에 대해 한번 나쁜 이미지로 딱 필이 꽂히니까 매사 하는 일이 못마땅하게 보이는 습이 생긴 겁니다. 그러니 절을 하면서 ‘남편은 나의 은인입니다. 내가 그동안 은혜를 몰랐습니다. 은혜 갚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 세 구절을 가지고 기도를 해보세요.”nbsp“네, 감사합니다.”nbspnbspnbsp질문자는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법회가 끝나고 소감을 물어보니 “스님께서 주신 기도문이 마음에 쏙 들어와서, 기도문만 되뇌이는 데도 마음이 차분해지며 감사하는 마음이 올라온다”며 무척 고마워 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통일을 염원하는 퍼포먼스가 있었습니다. 한반도 지도에 촛불을 켜고 다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백두산에 촛불을 켜자 각 법당 총무님들이 나와서 한번도 전체에 불을 밝혀 주었습니다.nbspnbsp▲ 한반도에 평화의 염원을 담은 촛불 켜고 있는 대중들nbsp설 연휴 기간 동안 남북 관계가 더욱 꽁꽁 얼어붙었는데 통일을 염원하는 정토행자들의 염원이 조금이라도 온기를 불어넣어주기를 간절히 기원해 보았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께 삼배로 세배를 올리고 각 정토회 별로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것으로 대구정토회 주간반 정초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 각 정토회별 기념사진 촬영nbsp마치고 돌아가는 분들의 소감을 들어봤습니다. 경주정토회 신규 발심행자인 박신정님은 “우리 인생을 크게 보면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니 담담히 받아들이라는 말씀이 가장 와 닿았다”고 하면서 “정회원으로서 지금 발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잘 지켜나갈 수 있도록 수행정진하겠습니다.”라고 하였고, 대구정토회의 최성희님은 “발심행자는 내 짐을 지속적으로 가볍게 하고 남의 짐도 덜어주는 마음을 내야한다는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즐거이 맡은 바 소임을 잘 해야겠고, 수행은 자기 내면을 충실하게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되어 좋았다”라고 하였습니다.nbspnbsp스님과 악수하는 시간이 있었으나 약속한 시간보다 한 시간 가량 늦어지는 바람에 생략이 되어 몇몇 분들이 아쉬워하기도 했지만, 다들 내가 질문하여 답을 얻은 듯 밝고 가벼운 얼굴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nbsp이어서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저녁반을 대상으로 정초법회가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 2016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nbsp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분들은 지금 신청하세요.nbspnbspnbsp
2016.2.6~7 (인도 32일째) 인도인 스텝들과 미팅 그리고 한국 도착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인도인 활동가들과 함께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운영 방향과 둥게스와리 마을 개발에 대해 의논한 후, 두르가푸르 마을의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쌀을 나눠주는 것을 끝으로 32일 동안의 인도 방문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오늘은 인도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수자타아카데미를 떠나는 날이라 새벽부터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았습니다. 새벽 1시 30분까지 보광법사님, 쁘리앙카 교장선생님과 회의를 한 후 날이 밝아올 때까지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빴습니다.nbspnbsp6시 30분에는 발우공양에 참석했습니다. 공양을 마친 후 대중공사 시간에는 중요한 결정 사항에 대해 의논을 했습니다.nbspnbsp▲ 대중공사nbspnbsp원래 계획은 내년부터 인도인 스텝들에 의해 학교가 운영되도록 하자는 계획이었는데, 1년을 앞당겨 올해부터 바로 시행하면 좋겠다는 스님의 제안이 있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는 개교 이래 지난 22년간 한국인들의 책임하에 운영되어 왔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인도인 스텝들을 팀장으로 임명하자는 것이었습니다.nbspnbsp지난 1년 동안 인도인 스텝들과 함께 일했던 행자님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최종 결정은 이후에 열린 인도인 활동가들과의 미팅에서 발표가 되었습니다.nbspnbsp발우공양 후 아침 8시에는 두르가푸르 마을 리더인 ‘사르판지’와 잠깐 미팅을 가졌습니다. 그저께 수자타아카데미 개교기념식에서 만났을 때 두르가푸르 마을 어르신들이 스님을 찾아와 이렇게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학교를 세울 수 있게 맨 처음 땅을 보시한 사람들이잖아요. 이제 우리는 늙었습니다. 일도 못 하겠고, 자식들도 우리를 잘 돌보지 않아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좀 도와주세요.”nbsp이 분들은 22년 전에 스님이 둥게스와리에 처음 학교를 세울 때 마을에서 같이 의논했던 사람들입니다. 스님은 옛날의 공을 생각해서 그냥 듣고만 지나가기에는 마음이 많이 쓰였는지 사르판지와 이번 요청에 대해 의논을 했습니다.nbspnbspnbsp“그저께 동네 노인들이 저한테 와서 ‘우리는 늙어서 일도 못하고 있으니 좀 도와주세요’ 이런 하소연을 했잖아요. 그런데 무엇을 도와드릴까요?”nbsp“노인들이 정부에서 한 달에 500루피씩 지원금을 받아요. 그런 지원을 JTS에서도 좀 받고 싶어요.”nbspnbsp▲ 두르가푸르 마을 리더 사르판지nbsp“정부에서 500루피나 받으면 됐지 왜 JTS에도 달라고 해요?”nbsp“스님이 정부보다 우리 마을을 더 많이 도와주고 계시잖아요.”nbspnbsp“그러면 우선 쌀을 25kg씩 노인들한테만 줄게요. 65세 이상만 드릴까요? 70세 이상만 드릴까요?”nbsp“65세 이상은 모두 도움이 필요합니다.”nbspnbsp“65세 이상은 두르가푸르 마을에 총 19가구가 있네요. 제가 명단을 한 명씩 불러볼테니까 맞는지 보세요. 수나데비 71살, 방갈파스 67세, 바잔만지 65세...”nbspnbsp“네, 모두 맞아요.”nbspnbsp“그럼 9시 30분까지 학교로 오면 제가 쌀을 한 포대씩 드릴게요. 이건 이번에 특별히 주는 것이지 전체 마을 주민들에게 주는 구호품이 아니예요. 노인만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마을에 가서 노인들을 데려오세요.”nbsp“감사합니다.”nbspnbsp사르판지는 아주 기쁜 표정을 지으며 노인들을 데리러 마을로 갔습니다.nbspnbsp스님은 곧바로 법당으로 올라가 어제에 이어 인도인 활동가들과 학교 운영에 대한 논의를 계속했습니다. 원래 중학교 1교시 수업을 해야 하는데 수업을 잠시 미루고 미팅 시간을 더 가졌습니다.nbspnbsp▲ 인도인 활동가들과 회의nbsp먼저 최종 결정된 수자타아카데미의 운영 방향에 대해 스님이 정리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정부에서 앞으로 초등학교를 더 늘리고 잘 운영할 테니까 우리는 정부 학교와 서로 겹치지 않도록 교육하면 좋겠습니다. 이미 작년에 우리가 그렇게 하자고 결정했어요. 옛날에 초등학교를 통해 문맹퇴치하던 것은 이제 유치원을 잘 운영해서 문맹퇴치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이 이제 우리가 할 일이에요. 초등학교는 가능하면 정부 학교로 많이 보내도록 합시다.nbspnbspnbsp그리고 우리가 운영하는 초등학교는 두 가지 성격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하나는 아예 공부 잘 하는 아이들에게 시내의 좋은 사립학교보다 더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체능 방면과 체육 방면에서 특기를 키울 수 있도록 교육하면 좋겠습니다.nbspnbsp한 반은 공부를 지금보다 더 많이 가르치되, 그건 성적이 되는 사람만 하는 거예요. 나머지는 크게 둘로 나눠서 한 반은 어릴 때부터 예술을 가르칩니다. 오전에는 물론 공부를 하고요. 뭘 하든지 기초 학습은 해야 해요. 우선 힌디어를 읽고 쓸 줄 알아야 하고,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 같은 기본 셈본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사회 상식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에게 계속 공부만 가르친다면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러니 노래를 잘 부르거나 춤을 잘 추는 사람은 아예 1학년 때부터 오후에는 계속 예능을 가르쳤으면 좋겠습니다. 예능 분야에서는 가야는 물론 비하르주에서도 제일 가는 학교를 만들면 어떻겠습니까?nbsp다른 한 반은 체육을 좀 많이 가르치면 좋겠습니다. 태권도, 풋볼, 크리켓 등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서 선수로 길러낼 필요가 있어요. 오전은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23시간씩 매일 그렇게 특별수업을 하면 어떻겠어요?nbspnbsp대신에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을 앞으로 우리가 형편이 되면 아예 영어 수업으로 바꾸든지 하고요. 지금 당장 하자는 게 아니라 그런 방향으로 운영을 해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일단 큰 원칙을 이렇게 정하면 어떻겠어요? 다들 괜찮아요?”nbsp“예스”nbspnbsp“알겠어요. 그런데 이런 교육 방향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마을에 정부학교가 운영이 되고 있으니까 정부학교에 가도록 안내해 주세요.”nbspnbsp학교의 운영 방향이 크게 바뀌는 것에 대해 인도인 활동가들도 모두 동의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많은 토론이 있었던 컴퓨터 도난 사건으로 인해 대학생인 주니어 교사들을 그만두게 한 문제에 대해서도 스님이 최종 결론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어제 미팅 이후 이 문제와 관련해 밤새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았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두 번째는 이런 방향으로 교육을 한다면 특수학교를 운영하는 데 선생님이 더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외부에서 그 분야에 전문가를 시간 강사로 받는 게 나아요. 어제 우리가 의논해봤지만, 노트북 도난 사건으로 그만두게 한 주니어 교사를 그냥 다시 다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몇 명만 받아들이기도 어려우니 아예 이대로 가면 어떨까 해요. 여러분들이 한 6개월만 고생하면 될 것 같은데, 한번 해볼 수 있겠어요?”nbspnbsp“할 수는 있는데 많이 힘들 것 같습니다.”nbsp“그래도 그 정도는 한 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오전에는 초등학생들 가르치고, 오후에는 초등학생들이 다 특별수업을 할 테니까 중학생을 가르치면 되고요. 우리가 특별히 하기 어려운 과목은 외부 전문 강사를 초청해 가르치면 되고요. 그래도 부족하다면 스텝을 한 두 명만 더 뽑으면 될 것 같아요. 어제 만장일치로 다시 복직을 시키자는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었잖아요. 우선 한 명은 더 뽑을 수 있을 것 같아요.”nbsp“어떻게 한 명만 다시 불러요? 부르면 다른 주니어 선생들이 뭐라고 할 겁니다. 전체가 다 다시 참여하면 좋겠습니다.”nbsp“어제 세 번이나 투표를 했지만 모두 좋다고 하는 사람이 한 명 밖에 없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다 받아들여요? 학교 운영에 당장 필요해서 한 명만 다시 부른다고 이야기하면 되죠. 눈치 볼 것 없어요. 이 학교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지 선생님들을 위한 학교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자신이 별로 없는 눈치네요.”nbspnbsp“자신 있어요.”nbspnbspnbsp“나 혼자서라도 다 가르치겠다 이런 자신감이 필요해요. 주니어 교사들을 그만두게 한 문제는 아직 풀리지 않았으니 원칙적으로는 일단 안 받는 것으로 하되 학교 교육 담당자들과 교장 선생님이 의논해서 결정하면 좋겠습니다.”nbspnbsp스님의 결정에 인도인 활동가들도 모두 동의를 표했습니다. 그러나 표정은 담담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주니어 교사들이 그만둔 후 시간제 교사들이 충원될 때까지 앞으로 최소 6개월은 인도인 스텝들이 본래 업무와 겸임해서 모든 수업을 도맡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은 그동안 수자타아카데미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을 만한 중요한 발표를 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중요한 결정사항을 말씀드릴게요. 닥터 쁘리앙카가 인도로 돌아오면서 이제 전체 운영의 중심을 한국 사람에서 인도 사람으로 바꿀 계획입니다. 지금까지는 각 부문 책임을 한국 사람이 졌는데 앞으로는 인도 스텝이 맡으면 좋겠어요. 원래 계획은 내년에 바꾸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이 다들 건강하고 일도 잘 하니까 1년 당겨서 올해부터 해도 될 것 같아요. 자신 없어요?”nbsp“자신 있어요.”nbspnbsp“일단은 기본안을 내볼 테니 한번 들어보세요. 이렇게 바꾸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까, 올해는 1년간 연습삼아 한번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그래도 당분간 전체 총괄은 보광 법사님이 하실 겁니다. 한국과 연락을 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현장에서의 전체 책임은 닥터 쁘리앙카가 맡을 거예요. 학교 교장뿐 아니라 인도 JTS 책임자로서의 역할도 함께 합니다.nbspnbsp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더 내서 같이 연구해봅시다. 우선 1년 이상은 훈련을 계속 더 해야 해요. 꾸준히 훈련하면서 같이 해봅시다.”nbsp이제부터는 인도JTS와 수자타아카데미가 인도 현지 스텝들이 책임자가 되어 운영하기로 한 것입니다. 물론 보광법사님이 한국 연락 업무와 관련해 당분간 총괄 역할을 할 수 밖에 없겠지만 이제 명실 상부하게 닥터 쁘리앙카 교장선생님의 진두 지휘하에 인도인 스텝들이 각 분야의 팀장으로 임명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파견되어 온 봉사자들은 인도인 스텝들을 돕는 보조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nbspnbsp이렇게 학교 운영에 대해 큰 틀에서 중요한 결정을 한 후 스님은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인도인 스텝들은 주로 학교 운영에 필요한 일들을 스님에게 요청했습니다. 먼저 마을개발 파트를 담당하는 바브랄지가 트랙터가 필요하다며 구입을 건의했습니다.nbspnbspnbsp“트랙터가 없어서 자재들을 운반하는데 돈이 많이 들고 있습니다. 트랙터를 구입하면 어떻겠습니까?”nbsp“아직은 공사가 많지 않아서 트랙터가 지금 필요한지 잘 모르겠어요. 우선은 트랙터보다 트럭이 한 대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지금 같은 오토바이 트럭 말고 정식 트럭으로요. 마을 개발을 하려면 벽돌이며 시멘트며 뭘 좀 싣고 다닐 일이 많으니까요. 트랙터는 빌려서 쓰고, 여기 공사가 좀 더 많아졌을 때 트랙터를 구입하면 좋겠습니다. 그 때까지는 트랙터를 빌려서 써보면서 한 달에 몇 번 빌리는지 조사를 해보세요. 예컨대 한 달에 1주일이나 10일을 빌리는데 이게 우리가 구입하는 것보다 더 비싸다고 하면 구입하는 게 낫겠지요. 그런데 한 달에 5번 이하로 쓴다면 빌리는 게 더 쌀 수도 있고요. 이런 식으로 계산해서 해야 합니다. 사무지가 헤?”nbsp“예.”nbsp“그런데 이런 문제도 있어요. 우리 학교가 이렇게 커지는 건 좋은 일이지만, 우리 주위의 마을은 아직 가난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차를 비롯해 이것저것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으면 학교와 마을이 자꾸 멀어집니다. 스님이 여기에 좋은 승용차를 타고 보드가야 사람처럼 다니면 어떻겠어요? 그래서 스님은 항상 오토릭샤를 타고 다니잖아요. 어제도 나레스지가 자기 차를 준다고 했지만 안 탔잖아요. 우리한테는 오토릭샤라는 좋은 자가용이 있잖아요.nbspnbsp그래서 우리 수행자는 조금 사는 방식이 달라야 해요.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마을 주민들을 가난하고 무식하다고 무시하지 않고 항상 함께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이라도 경우에 없이 막 떼쓰는 것은 받아주면 안 돼요. 예를 들어 노동자들을 무시하지 않고 잘 대우해줘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안 하는 것은 정확하게 지적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경우에 맞지 않는데도 막 항의한다고 겁을 내서 그냥 내버려두면 나중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다고 마을 사람들을 무시해버리면 마을 사람들과 오해가 빚어져서 또 불만이 생깁니다. 우리는 이 마을을 도와주기 위해서 일하는 것인데 마을 사람들과 싸우면 안 되잖아요.nbspnbsp그러니 어떤 불만을 제기하면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는 원칙에 맞게 해야 해요. 나이가 많다고 원칙을 무시해도 안 되고, 한국 사람이라고 원칙을 무시해도 안 되고, 계급이나 직책이 높다고 원칙을 무시해도 안 돼요. 예를 들어 내가 팀장이라면 나이가 적거나 경험이 짧아도 어쨌든 내가 이 일을 행정적으로 처리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이 많은 사람은 항상 존경해야 합니다.nbsp그런데 이걸 잘못 이해하면 자기 책임을 다 못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자기 책임을 다 한답시고 막 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병원에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은 까미스와르지가 있지만 삼부가 책임을 맡게 되면 행정적인 책임은 삼부가 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까미스와르지도 행정적인 것은 삼부의 방침을 따라야 합니다. 카필데오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삼부는 까미스와르지를 어른으로써 존중해 주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인드라짓도 마찬가지로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은 카필데오지를 어른으로써 존중해야 합니다. 사무지가 헤?”nbsp“예스.”nbspnbsp“우리가 살다 보면 이런 게 잘 안 돼요. 연방 수상이나 주 수상이 나이가 젊어도 그 사람이 책임을 맡게 되면 행정적인 건 그 사람을 따라야 해요. 그렇다고 그 사람도 자기가 잘난 척 하면 또 안 돼요. 그건 다만 자기 업무상의 책임이고 직책이기 때문입니다.”nbsp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과 어른을 공경하되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말씀에 인도인 활동가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nbspnbsp다음은 이번에 새로 마을개발 파트 총괄을 맡게 된 파완이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오늘 노인들에게만 쌀을 나눠주기로 했는데, 학교 급식 때 가끔씩 남는 밥을 노인들에게 나눠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 아까 마을 사람에게 쌀을 나누어 준다고 이야기하셨는데, 쌀을 줘도 한 달 치 식량밖에 되지 않으니 이 사람들이 한 달 뒤에는 다시 먹는 형편이 어려워질 것 같아요. 학교에서 우리가 밥 지어서 남는 걸 이 사람들에게 주면 어떨까요? 남는 밥은 지금 학생들한테 한 번 더 주고 있는데, 그 두 번째로 주는 밥을 학생들 대신 이 노인들에게 주면 어떻겠습니까?”nbsp“아주 좋은 생각이에요. 그러나 그것은 좀 신중히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노인들은 지금 정부에서 500루피씩 지원금을 받는다고 해요. 그러니 그건 조금 더 검토해 봅시다. 한번 시작하면 계속 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요. 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계속 줘야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그 사람들까지 계산해서 밥을 더 해야 해요. 밥이 남을 때만 주면 어떤 날은 주고 어떤 날은 안 주게 되어서 오히려 문제가 있어요. 그러니 이건 조금 더 의논해보세요. 어쨌든 좋은 아이디어입니다.nbspnbspnbsp오늘 제가 쌀을 주는 것은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게 아니라 홀리도 있고 하니까 동네 어르신들에게만 한 번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곧 홀리니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따로 구호활동이 있지 않아요?”nbsp“1, 2분기 극빈자 지원이 홀리 전에 있습니다.”nbsp“그래요. 극빈자들은 홀리 전에 이것과 관계없이 전체적으로 지원을 해야 할 거예요. 그리고 마을 개발 부문에서 올해 농사가 잘 안 됐다고 하니까, 마을에 쉬람단을 하면서 식량을 좀 공급하는 방안도 생각해 보세요. ‘빠완’이 이제 마을개발 책임을 맡았으니까 잘 해봐요.nbspnbsp우리가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건 좋지만 그게 구걸처럼 되면 문제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되지 않도록만 한다면 저는 어떤 것도 오케이입니다. 둥게스와리에서 자가디스푸르, 두르가푸르 사람들을 우리가 제일 많이 도와주는데도 불구하고 제일 불만이 많은 게 두르가푸르와 자가디스푸르입니다. 기대가 크기 때문이에요. 도와주는 건 좋지만, 그게 기대를 자꾸 높여버리면 나중에는 이게 오히려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그러니 그걸 잘 생각해서 해야 해요. 사무지가 헤?”nbsp“예스.”nbsp“자기가 이제 책임자니까 맡아서 한번 해보세요. 처음에는 도와주면 좋다고 인사하지만 나중에는 막 욕합니다. 이제 욕 잔뜩 얻어먹게 생겼어요. 이런 걸 어떻게 할 건지가 굉장히 어려운 문제예요. 이제 자기도 한번 해보고 욕을 얻어먹어야 해요. 주고도 욕 얻어먹습니다.nbspnbspnbsp그러면 이번에는 주기 싫다는 마음이 들 거예요. 한국 사람들도 전에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 중에 무상으로 지원해줬는데 오히려 와서 막 항의하니까 ‘도와주고 욕 먹는 짓을 왜 하느냐?’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어요.nbspnbsp돈 주고 물건을 사는 것은 자기가 돈 있으면 사고 없으면 안 사면 되지만, 구호라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그저께 마을 개발 건으로 마을 리더들이 왔는데, 지난 1년 간 44회 열린 회의에 40번 나온 사람도 있고 4번 나온 사람도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40번 나온 사람은 1,000루피를 주고, 나온 회수에 따라 금액을 조금씩 낮춰서 4번 나온 사람은 500루피를 줬어요. 그냥 500루피를 줬으면 ‘감사합니다’ 했을 텐데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너 얼마 받았어?’ 하고 물어보니까 ‘나는 600루피 받았다’ 한 거예요. 그래서 ‘어, 나는 왜 500루피예요? 다음부터는 안 나올래요’ 이러는 일이 생겼습니다.nbspnbsp이처럼 균등하게 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오늘도 쌀을 주면 또 문제가 생길 거예요. 한 집에 한 포대씩 주면 혼자 사는 할머니도 한 포대 받고 부부가 있는 집도 한 포대 받으니까 ‘우리 집에는 두 개 줘야 하지 않느냐’ 하면서 따져요. 그래서 사람마다 한 포대씩 주면 ‘왜 저 집에는 두 포대고 우리 집은 한 포대냐’ 이렇게 나와요. 파완은 이제 그런 책임을 맡았으니 고생 좀 하게 생겼어요.nbspnbspnbsp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베풀어주고도 칭찬 들으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욕 얻어먹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사무지가 헤?”nbsp“예스”nbsp스님이 그동안 어떤 관점에서 구호 활동을 해왔는지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인도인 활동가들은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에 모두 감탄을 하며 합장을 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이렇게 질의응답까지 모두 마치니 출발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주니어 교사들이 부재한 가운데 수고가 많았던 인도인 활동가들을 격려하면서 모두에게 용돈을 주었습니다.nbspnbsp“보광 법사님한테 들으니까 주니어 교사들이 그만둔 후에 여러분들이 수업도 많이 하고, 마을 개발팀은 성지순례객 맞는다고 일을 많이 맡아 고생했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JTS에서 주는 게 아니고 스님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주는 거예요. 감사합니다.”nbsp“스님지, 단야바드”nbspnbspnbsp10시가 다 되어 바쁘게 법당을 나와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르가푸르 마을 노인들에게 쌀 25kg 씩을 나눠주었습니다.nbspnbspnbsp노인들은 스님께 감사 인사를 한 후 머리에 쌀자루를 이고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교문을 나갔습니다.nbspnbspnbsp▲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쌀 선물nbsp스님이 오토릭샤에 타고 학교를 떠날 채비를 하자 운동장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중학생들이 교문 앞으로 뛰어 나왔습니다. 오토릭샤가 시동을 걸고 출발하자 스님은 “잘 지내요” 하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를 출발하는 스님nbsp교사들과 학생들, 한국인 스텝들도 손을 흔들며 반갑게 스님을 배웅했습니다. 몇몇 학생들이 눈물을 보이자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nbspnbspnbsp수자타아카데미를 출발한 오토릭샤는 먼지를 풀풀 날리며 보드가야에 있는 쁘리야팔 스님의 절에 도착했습니다. 쁘리야팔 스님은 인도JTS의 이사장으로 수자타아카데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계신 분입니다. 스님은 쁘리야팔 스님에게 이번에 새롭게 결정된 학교 운영 방향에 대해 보고하고 쁘리야팔 스님의 더 많은 관심과 지도 편달을 부탁했습니다.nbspnbsp▲ 인도JTS 이사장 쁘리야팔 스님nbsp“학교 운영의 전체 책임을 인도 사람들에게 넘기기로 했어요. 쁘리앙카가 전체 책임을 맡고, 그 밑에 인도 사람들이 팀장을 하고, 한국 사람들은 이제 서포트 하는 역할을 하기로 했습니다. 회계와 재정은 아직 한국 사람들이 맡기로 했고요. 보광 법사님은 행정적인 업무 보다는 수행 지도를 중심으로 하게 될 것 같아요.nbspnbsp인도인 스텝들이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지만, 조금씩 훈련시키고 교육시켜 나가겠습니다. 학교는 쁘리앙카가 책임지지만 인드라짓이 교감이 되어서 사실상 교육을 책임지고, 유치원은 반제이지가, 초등학교는 아제이가, 산너머 분교는 카필데오지가, 기획과 대외활동은 아미타부가 맡기로 했어요. 병원은 삼부가 팀장을 맡고, 까미스와르지는 선배이지만 행정 업무가 어려워서 의사로서 역할만 하기로 했어요. 마을 개발은 빠완이 책임을 맡고, 그 밑에 건축 파트는 바브랄지가, 마을 개발은 아룬지가 맡았습니다. 이렇게 임명을 마쳤습니다.nbspnbsp물론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들끼리 좀 갈등이 있지 않겠나 싶어요. 그러나 그런 과정 속에서 어쨌든 업무를 익혀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학교 운영에 대한 원칙도 전에는 초등학교 중심으로 운영했는데 초등학교는 이제 정부학교에 역할을 대부분 넘기고, 전체 둥게스와리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는 유치원을 집중적으로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15개 마을에서 14개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조금 더 지원도 하고 운영도 잘 하겠습니다. 정부학교가 있는 곳은 모두 정부학교로 보내고, 정부학교가 없는 곳만 수자타아카데미에서 받기로 했어요.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집중적으로 공부를 시키고, 나머지는 공부를 많이 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하나는 예술 학교로 운영해서 오전에는 수업하고 오후에는 외부에서 강사를 데려와서 예술을 배우는 겁니다. 그래서 가야나 비하르주에서 공연을 가장 잘 하게 되면 프라이드가 좀 생기기 않겠습니까. 다른 하나는 체육 교육을 강화하려고 해요. 태권도, 축구, 크리켓을 많이 연습해서 대회에 나가 상도 받으면 자존심을 키워줄 수 있을 것 같아요.nbspnbsp그리고 중학교에 들어갈 때도 공부할 아이들은 계속 공부를 시키고, 예술이나 체육을 할 아이들은 그 쪽으로 계속 재능을 개발할 수 있게 진로를 열어주는 겁니다. 그리고 취직을 시켜주기 위해서는 기술을 가르쳐주면 좋겠어요. 중학교부터는 컴퓨터를 가르치는 교실을 운영하고, 학교 안에 예술이나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요. 큰 방향은 이렇게 잡았습니다.”nbsp“스님이 생각하시는 방향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nbspnbsp“그래서 쁘리야팔 스님이 두 달에 한 번씩은 학교에 오셔서 사업보고도 받으시고 지도도 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스님이 바쁘셔서 못 오시면 팀장들이 스님께 찾아와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nbsp스님의 요청에 쁘리야팔 스님은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스님이 안 계시는 동안 쁘리야팔 스님이 그 역할을 대신해 주실 것을 기대하니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스님은 쁘리야팔 스님에게 보시금을 전달한 후 합장으로 인사를 하고 절을 나왔습니다.nbspnbspnbsp다음은 인도JTS의 이사 중 한 명인 나레스지가 운영하는 불교 상점과 호텔에 잠시 들렀습니다. 스님은 수자타아카데미의 입구 쪽에 선물 가게를 하나 오픈하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나레스지의 가게를 둘러보며 각종 기념품들의 종류와 가격, 모양 등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nbspnbsp▲ 나레스지가 운영하는 불교 상점nbsp그리고 나레스지가 점심 식사를 대접해 주어서 감사히 먹은 후 나레스지와의 오랜 인연에 대해 잠시 담소를 나누다가 보드가야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nbspnbspnbsp보드가야 공항에는 보광 법사님과 닥터 쁘리앙카 교장선생님이 마지막까지 스님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스님이 게이트로 들어가려고 하자 갑자기 닥터 쁘리앙카지가 눈문을 보였습니다. 옆에서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가보다”라고 하자 스님은 “고생은 무슨 얼마나 재미있어” 하고 웃으며 닥터 쁘리앙카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습니다.nbspnbsp▲ 울먹이는 쁘리앙카지를 격려해주는 스님nbsp오후 2시 45분에 보드가야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바라나시 공항에 잠시 머물렀다가 약 4시간을 비행하여 방콕 공항에 도착했고, 방콕 공항에서 2시간을 보낸 후 밤 11시 10분에 다시 인천행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nbspnbspnbsp새벽 6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스님은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인천공항 도착nbsp인천공항에서 서울 정토회관으로 향하는 길에는 한강 위로 막 뜨기 시작한 아침 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인도에서 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활동을 했는데, 이제 다시 한국에서는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법바퀴를 힘차게 굴릴 것입니다.nbspnbspnbsp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하자 공동체 상주 대중들이 마당까지 나와 스님을 마중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법당에서 스님께 삼배로 새해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 서울공동체 대중들의 새해 인사nbsp스님은 잘 다녀왔어요 하고 인사를 한 후 곧바로 9시부터 스님을 뵙고자 찾아온 손님들이 있어 연이어 미팅 일정을 가졌습니다.nbspnbsp대중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 덕분에 32일 동안의 기나긴 인도스리랑카 방문 일정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모두 설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설 연휴 기간에도 스님의 하루는 계속 되지만, 글을 쓰는 수행팀은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연휴가 끝나고 내일 모레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nbspnbsp▼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는 인도 불가촉 천민 마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수자타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nbspnbsp
2016.2.5 (인도 31일째) 인도인 활동가 수련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인도인 활동가들과 함께 하루 종일 집중 수련을 했습니다.nbspnbsp새벽 4시 30분, 오늘도 도량석 소리와 함께 일어나 새벽예불과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기도를 마치고 법당을 나오니 전정각산 너머로 그믐달이 지면서 날이 점점 밝아오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발우공양을 함께한 후 스님은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우선 자연 채광을 최대한 활용해서 전기를 절약할 것, 학교 교문 앞과 탑터가 있는 성지 주위가 지저분한 경우가 많은데 당번을 정하든지 해서 항상 청소를 해줄 것 등을 이야기한 후 특히 인도인들과 일할 때는 문화를 존중해 주는 자세가 매우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nbspnbsp“같이 살면 서로의 먹는 음식이나 생활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한테 누가 와서 자기는 개고기를 좋아하니 같이 먹자고 하면 질겁할 사람 많잖아요. 그런 것처럼 인도 사람들은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안 먹어요. 그러니 한국에서 음식을 가져오더라도 소고기나 소가 그려진 라면, 소고기 스프 같은 건 안 돼요. 이미 가져와버린 건 어쩔 수 없이 우리끼리 먹더라도 가능하면 아예 가져오지 마세요. 지난번에 이야기 들으니까 애들이 한국 라면을 잘 먹었다가 나중에 소고기 스프가 든 줄 알고 다시는 한국 라면 안 먹으려고 했다는데,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하세요.nbspnbspnbsp거꾸로 한번 생각해봐요. 누가 와서 자기 식성이라며 개고기를 먹고 권하면 민감한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러니 소고기라면 같은 건 한국에서 성지순례 올 때도 가져오지 않도록 앞으로 꼭 공지해 주세요. 고추장에 소고기 넣은 것도 가져오지 않도록 하고요. 그것도 가져와서 밥에 비벼 맛있게 먹었는데 나중에 소고기 들었다는 걸 알고 질겁했다고 들었어요. 우리는 그저 웃으면서 ‘지금까지 잘 먹다가 왜 그러냐’고 놀리듯 넘겨버리지만 그건 굉장히 실례입니다.nbspnbsp음식 문화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의 문화를 자꾸 거스르는 건 안 좋아요. 다른 사람들의 문화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 문화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변화시킨다면 몰라도 우리 외국인이 와서 문화를 흐트러뜨리는 건 안 좋아요.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우스갯거리로 만들고 제사 지내는 건 죄다 미신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 번은 웃고 넘어갔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한번 그런 경험을 하면 다시는 신뢰하기 어렵거든요.nbspnbsp여기는 자이나교뿐 아니라 브라만 중에도 채식하는 사람이 많아서 채식 문화가 강합니다. 그러니 그런 걸 항상 존중해줘야 해요. 식성이 어떤지 늘 먼저 확인해서 그 사람한테는 그 사람의 식성에 맞도록 배려하는 걸 잊지 마세요. 여기 힌두문화는 일단 소고기를 안 먹으니까 그걸 꼭 지켜주세요. 나름대로 수천 년을 내려온 자기네 전통이 있는데 그걸 막 무시해버리면 안 돼요. 우리가 다른 문화에 속박 받을 필요는 없지만 그 문화를 존중해줘야 합니다.nbspnbspnbsp자칫 잘못하면 외국인이 들어와서 남의 문화를 파괴할 수 있어요. 세월이 흘러서 자기들이 스스로 변화시키는 것은 괜찮지만 우리가 문화를 함부로 흩트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 계급차별이나 성차별 같은 것도 우리가 나서서 철폐해야 한다고 함부로 주장하면 안 돼요. 화장실 청소를 안 한다고 막무가내로 야단쳐도 안 됩니다. 우리가 먼저 청소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같이 하자, 화장실 청소를 직접 해도 괜찮다’ 이렇게 설명을 해줘야죠. 자기들은 부모 대대로 평생 내려온 습관이기 때문에 그걸 함부로 가볍게 여기면 안 돼요. 여기도 처음에 화장실 청소를 절대로 안 하려고들 하고, 화장실 청소에 참여한 애들이 집에 가서 야단맞는 일도 많았어요. 화장실은 더럽다고 해서 천민 중에서도 가장 낮은 천민이 청소해야 한다고 믿는 거예요. 계급 중에서도 제일 낮은 게 화장장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그 다음이 화장실 청소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우리가 먼저 다 같이 청소를 하면서 설득하니까 애들이 조금씩 따라하게 된 겁니다.nbspnbsp20년 동안 그런 게 굉장히 많았어요. 교육을 통해서 애들이 계급이 달라도 같이 어울리고, 남녀가 학교 안에서는 그래도 평등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학교 안에서 똑같이 대우를 해주고 차별을 못하게는 하지만, 우리가 나서서 바꾸자고 막 주장하지는 말라는 겁니다. 그건 여기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즉 자연스럽게 부처님 가르침을 들으면서 변화하도록 해야 하니까요. 다만 우리는 이 안에서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nbspnbsp옛날에 여기서 천민 교사가 양민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라르푸르 사람들이 몰려와서 시위를 하고 난리가 났을 때 제가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nbsp‘좋습니다. 그러면 이 학교를 인도식으로 운영할까요, 한국식으로 운영할까요?’‘인도식 운영과 한국식 운영이 어떻게 다릅니까?’‘제가 인도 학교를 보니까 교사가 11시나 12시에 와서 2시간 정도 수업하고는 가버리고, 일주일에 34일 정도 문을 안 열던데요. 그렇게 인도식으로 운영할까요? 한국식은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수업하고, 교사도 학생도 수업에 빠지면 안 되게끔 운영합니다.’‘한국식으로 운영해 주십시오.’‘그런데 한국에서는 교사가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만 따지지, 그 사람의 계급이 무엇이고 성별이 무엇인지는 따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계급을 따지려면 인도식으로 운영을 하고, 여러분이 한국식으로 운영하기를 원한다면 계급을 따지거나 여자가 선생님 되는 걸 반대하면 안 됩니다.’nbsp그렇게 해서 그 문제를 풀었어요. 주민들에게 ‘계급 차별은 나쁜 것이니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 게 아니라,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하자’라고 했을 때 ‘그러면 한국식으로 해달라’고 해서 해결이 된 겁니다.nbspnbspnbsp쁘리앙카가 들어올 때는 또 여기 천민들이 반대를 했어요. 왜 우리 천민들을 위해 학교를 지었는데 우리 동네 천민들을 놔두고 밖에서 브라만을 데려오느냐고 항의했습니다. 그때는 또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가르쳐야지, 가르칠 수 없는 사람이 가르쳐서 되겠습니까? 여기 천민들은 아직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잖아요. 천민, 양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를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합니다.’nbspnbsp반대로 천민 교사를 채용하면 또 말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이 동네 천민들을 위해서 지은 학교였는데 급식을 시작한 이후로 양민 아이들이 대거 몰려와서 학생의 상당수가 양민이 됐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천민 아이들은 많이 떨어져나가서 동네 아이의 절반도 학교에 안 오고 양민 애들이 학교를 주름잡게 되다 보니 이런 불상사가 생겼어요.nbspnbsp이 지역은 혈연이나 가족주의가 굉장히 강해요. 교사 한 명이 문제가 있어서 선생 자격을 해고하니까 그 가문 전체 아이들이 학교를 다 안 나와 버렸어요. 원래 라르푸르 학생들이 여기에 제일 많이 다녔는데 그런 과정에서 라르푸르가 완전히 떨어져 나가서 이제는 라르푸르 학생이 하나도 없잖아요.nbspnbsp그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게 한 20년 됐으니 이제 학교 안에서는 밥도 같이 먹지만 아직도 다른 교사들과 같이 안 먹는 교사들이 있어요. 여기 예능 선생들이 주로 브라만, 우리로 치자면 양반이 많잖아요. 원래 높은 계급의 사람이 낮은 계급의 사람에게 물을 떠다 줄 수는 있지만, 낮은 계급이 높은 계급의 사람에게는 물을 안 떠주게 돼 있어요. 암베드카르 법무부 장관이 호텔에 식사하러 갔는데 서빙하는 사람이 브라만 출신이어서 서빙을 안 하고 거부해 버렸다잖아요.nbspnbsp특히 이런 시골에는 계급의식이 굉장히 강해요. 우리가 그걸 굳이 따를 필요는 없지만, 그런 문화를 함부로 여기면 안 됩니다. 쁘리앙카도 여기 와서 봉사할 때 오빠가 가장 크게 화를 낸 것은 봉사하는 것 자체를 두고 그런 게 아니에요. 브라만인데 천민 아이들 목욕시켜주고 밥 먹여주면 집안 체면이 뭐가 되냐며 화를 내고 난리를 피운 거예요. 계급과 관련된 건 좋은 문화는 아니니까 굳이 우리가 따를 건 아니에요. 그렇다고 그걸 우리가 막 나서서 어떻게 할 것도 아닙니다. 교육을 받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스스로 변화되어 가는 거예요.nbspnbspnbsp음식 문화를 비롯한 다른 문화도 함부로 다루지 않아야 해요. 생활을 같이 하려면 서로 존중해야 하잖아요. 우리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여기서 살면 우리도 모르게 소위 ‘갑질’을 하게 되어 있어요. 모르게 생겨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항상 유의해서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평등하게 한다며 업무를 제대로 진행시키지 않거나 하면 안 돼요. 업무는 엄격하게 원칙대로 진행하되 나머지는 배려하고 조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nbsp문화 존중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이 이렇게 강조한 것은 그만큼 우리가 이곳에서 간과하기 쉽기 때문일 것입니다.nbspnbsp이어서 아침 8시 30분부터는 스님과 인도인 활동가들의 수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인도인 활동가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포함해 부처님에 대해, 학교 운영에 대해, 마을 개발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고 하루 종일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풍성한 하루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우선 스님은 어제 도보로 전정각산에서 보드가야까지 다녀오면서 시간이 부족해 보드가야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못했다며 그 부분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어제 보드가야 지역에서 부처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보드가야 자체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못 했어요. 그래서 오늘 보드가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nbspnbspnbsp부처님께서 수자타의 공양을 받아 건강을 회복하시고 수행에 대해서도 중도를 발견하셨기에 이제는 좀 더 집중해서 정진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네이란자라강을 건너서 강 서편으로 가니 한 그루 큰 핍팔라나무가 있는데 아주 그늘이 좋았어요. 부처님은 이곳에서 정진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마침 옆에서 어떤 목동이 풀을 베고 있었습니다. 풀이름을 물어보니 ‘쿠스’라고 해서 그걸 한 아름 얻어다가 나무 밑에 깔았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nbsp핍팔라나무를 서쪽으로 등지고 동쪽을 바라보고 앉으셨어요. 우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코끝에 집중해서 들숨을 들숨으로 알아차리고 날숨을 날숨으로 알아차렸습니다. 바깥의 소리에도 신경 쓰지 않고, 몸의 어떤 감각에도 신경 쓰지 않고, 머릿속에서 과거의 생각이나 미래의 걱정 같은 것도 모두 내려놓고, 다만 코끝에 마음을 집중해서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가는 자연 상태의 호흡에만 깨어 있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도 앞으로 어디를 가든, 언제든, 자리를 잡고 앉아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한 후에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을 코끝에 딱 모아서 숨이 들어가고 숨이 나오는 것을 다만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세요. 그러면 시간이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관계없이, 장소가 보드가야든 둥게스와리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관계없이 다만 살아 있는 한 생명의 호흡만이 존재할 뿐입니다.nbspnbspnbspnbsp부처님은 이렇게 조용히 명상에 들었습니다. 긴장하지도 않고, 나태하지도 않고, 졸지도 않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지 않고, 다만 호흡에 깨어있었습니다. 편안한 가운데 아주 분명한 알아차림을 유지했어요. 이게 말이 쉽지, 우리가 해보면 잘 안 됩니다. 졸거나, 머릿속에서 옛날 생각이 자꾸 떠오르거나, 미래의 이런 저런 생각이 들거나, 몸의 감각에 신경을 쓰거나, 바깥의 소리에 신경을 쓰거나 해서 집중이 잘 안 됩니다. 또 집중을 하려고 신경을 곤두세우면 몸과 마음이 긴장됩니다. 긴장이 된다는 것은 편안한 상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게 말은 쉽지만 실제로 해보면 우리는 이렇게 혹은 저렇게 치우치기가 쉽습니다.nbspnbsp명상 이야기는 지금 길게 하기 어려우니 다음에 할게요. 어쨌든 부처님은 그렇게 깊이 정진을 할 때 이런 마음을 가졌습니다.nbspnbsp‘내가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nbsp그렇게 정진에 들어가서 1주가 지나고, 2주가 지나고, 3주가 지나고, 4주가 지나고, 이렇게 7주 가까이가 되었어요. 그 때 마음속에서 어떤 번뇌가 일어났는데, 그것을 경전에서는 ‘마왕의 유혹’이라고 표현했어요. 첫째, 마왕이 세 딸에게 명령합니다. ‘저놈이 지금 욕망을 버리려고 하니 저놈의 욕망을 부추겨서 수행을 포기하도록 만들어라.’ 그래서 아름다운 세 신녀가 부처님 앞에 나타난 거예요. 부처님 앞에서 춤을 추면서 ‘고타마여, 우리의 아름다운 몸을 보소서. 젊을 때 오늘같이 따뜻한 봄날에 젊음을 만끽하는 게 좋소. 이렇게 수행을 하다가 죽어버리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소?’ 이렇게 앞에서 유혹했습니다. 여러분들 같았으면 수행이고 뭐고 포기하고 갔겠죠?nbspnbspnbsp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미 모든 욕망으로부터 떠났기 때문에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채색된 항아리에 똥만 가득한 것들아’.nbspnbsp잘 채색된 항아리라는 것은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 얻어지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안에 똥만 가득하다는 것은 그 욕망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는 괴로움이 온다는 것을 말해요. 얼른 보면 즐거움 같지만 사실은 그게 괴로움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는데, 우리의 욕망이 충족되면 즐거움이 생기고 충족되지 않으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 바람대로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으니까 괴로웠다가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 즐거웠다가 할 수밖에 없어요.nbspnbsp이것을 불교에서는 윤회라고 합니다. 힌두교에서는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죽고 하며 돌고 도는 것을 윤회라고 해요. 그러나 부처님은 그런 나고 죽는 것의 반복이 아니라 괴로움과 즐거움이 반복되며 돌고 도는 것을 윤회라고 해요. 우리가 즐거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자동으로 따라와서 돌고 돌 수밖에 없는 겁니다.nbspnbsp우리가 바라는 즐거움이라는 것이 사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드시 괴로움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서 괴로움은 없고 즐거움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즐거움만 100퍼센트 있는 게 아까 말한 자재천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즐거움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동전의 양면처럼 늘 같이 돌게 되어 있어요. 우리는 즐거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항상 함께 따른다는 거예요. 그러니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라는 걸 꿰뚫어 알아버리는 게 ‘일체가 고’인 줄 아는 겁니다.nbspnbspnbsp너무 어려운 이야기인가요? 이게 사실은 수행의 핵심이에요. ‘야, 이 채색한 항아리에 똥만 가득한 것들아’ 이 말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아름다움을 즐거움이라고 한다면, 더럽다는 것은 괴로움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라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붓다는 즐거움이 괴로움인 줄 알기 때문에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여인들을 가리키자 아름다운 여인들이 갑자기 노파로 바뀌어 버렸어요. 그러자 그들이 부끄러워서 도망가버렸습니다.nbspnbsp그건 뭘 의미할까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은 즐거움을, 늙고 추한 노파는 괴로움을 말합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니까 아름다운 여인이 노파로 바뀌었다는 것은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라는 것을 꿰뚫어 알았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 즐거움이 부처님을 유혹할 수 없다는 이야기예요. 부처님의 내면에 있던 욕망의 뿌리가 그때 완전히 뽑혀 없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nbspnbsp이 모든 게 우리 동네에서 있었던 옛날 이야기입니다. 둥게스와리, 보드가야, 가야 디스트릭트, 비하르주, 힌두스탄 평원, 이런 걸 우리가 알아야 해요. 너무 많이 공부했나요? 머리가 아프죠?”nbsp“아니오, 재미있어요.”nbspnbsp이 외에도 스님은 법당 안쪽 벽면에 그려진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서도 주욱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법문을 마치면서는 앞으로 스님처럼 이렇게 붓다 담마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인도인 활동가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러주었습니다.nbspnbsp“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분들이 지금은 잘 모르지만 5년이나 10년 뒤에는 그 중요성을 알게 될 거예요. 여러분들이 여기서 10년까지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10년 이후부터는 법을 전하는 ‘담마 티처’가 되어야 해요. 외국인들이 오면 여기 숲에서 강의하고, 명상도 가르치고, 옷도 수행자 옷을 갖춰 입고 구루 역할을 해야죠.nbspnbspnbsp몸만 치료해주지 말고 마음도 치료해줘야 합니다. 지금은 몸이 아픈 사람이 많지만 앞으로 경제가 좋아지면 잘 사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인도에도 많아질 겁니다. 마음 치료가 큰 과제가 될 거예요. 앞으로 10년, 20년 후의 이야기입니다.nbspnbsp그러니 그렇게 될 때를 여러분들이 대비해서, 지금 20대니까 40살이 넘으면 그런 사람이 돼야 해요. 머리도 허옇고, 수염도 허옇고, 옷도 수행자복을 입고, 나무 밑에서 이렇게 법문을 하면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감동해서 귀의한다고 할 거예요. 돈 벌려고 막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돈이 들어와요.nbspnbspnbsp그러니 어디 가서 돈 벌려고 그렇게 너무 애쓰지 마세요. 지금은 조금 가난해도 여기에 좀 오래 있으면 달라집니다. 지금은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10년쯤 뒤에는 한국 같은 데 가서 불교 공부 더 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붓다 담마를 가르쳐야 합니다. ‘내 친구는 취직해서 5,000루피 버는데, 10,000루피 버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여기 일 못해요. 지금 조금 어려워도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알았죠?”nbsp“예스”nbsp스님의 이야기에 모두 가슴을 설레여 하며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조금씩 변해가는 인도인 활동가들의 모습은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점심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수련에 참여하러 들어왔기 때문에 점심은 간단히 라면을 끓여 먹어습니다. 아침에 발우공양 때 스님이 말씀하셨듯이 “오늘은 라면을 먹을 건데 소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채식 라면이니 마음껏 드세요” 라고 알려주자, 인도인 활동가들은 즐겁게 라면을 먹었습니다.nbspnbspnbspnbsp오후에는 학교 운영과 마을 개발 전반에 대해서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떻게 힘을 모아 학교를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어갈지, 마을 개발은 우선 무엇부터 시작해 볼 수 있을지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안 되었고, 스님은 각각에 대해 때론 더 큰 그림을 그려주기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특히 둥게스와리가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에 대해서 말씀하신 부분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곳은 사실 다 공원으로 만들어야 해요. 지금은 난장판이잖아요. 여기 오면 정말로 조용히 명상하고 담마 공부하고 갈 수 있도록 해야 해요.nbsp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이 땅을 자꾸 외부 사람에게 팔아버리면 나중에 이걸 전부 장사꾼이 차지해버리게 됩니다. 땅값이 오르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비싸져 버리면 우리가 도로 살 수가 없으니까요. 우리가 팔 수도 있고 살 수도 있어야 하는데, 땅값이 너무 높아져버리면 팔 때는 좋지만 다시 사는 건 불가능해집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20년 전부터 했는데 제 말이 벌써 현실화되기 시작하고 있어요.nbspnbsp그래서 여기 마을마다 땅을 많이는 못 사더라도 값 쌀 때 우리가 조금씩이라도 사놔야 해요. 앞으로 우리가 협동조합 같은 걸 만들면 창고도 지어야 하고 사무실도 만들어야 해요. 마련해둔 땅이 있어야 시설도 짓고 우리가 새마을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생기고 외부 사람이 자꾸 들어오면 이 지역은 발전할지 몰라도 그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 외부 사람입니다. 주인이 우리가 아니면 발전을 해도 우리에게 이익이 오기 어렵고, 우리는 오히려 쫓겨나게 됩니다.”nbsp스님의 우려에 모두가 공감을 했습니다. 이렇게 둥게스와리 마을의 미래에 대해 늘 걱정하고 챙겨주는 스님이 있어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인도인 활동가들은 평소 궁금하던 것을 마음껏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대화는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nbspnbspnbsp특히 얼마 전 주니어 교사들 중에 한 명이 노트북을 훔쳐가는 일이 발생해서 주니어 교사들 전체를 학교를 그만두게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교사 수가 부족해져서 남은 스텝들이 수업을 대신 하느라 과부하가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오랜 시간 토론이 있었습니다.nbspnbsp더 이야기할 주제가 많았는데 마쳐야 할 시간이 되어서 내일 아침 일찍 한번 더 모여서 마저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모두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nbspnbsp오후 3시에는 옆 마을인 두르가푸르와 자그디스푸르에서 청년들과 함께 축구 시합을 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스님이 ‘학교 스텝팀 vs 마을 청년팀’ 이렇게 축구 시합을 하면 누가 이기냐고 물었을 때 서로 자신들이 이긴다고 자신했기 때문에, 오늘은 친목을 도모할 겸 실제 경기를 해보기로 한 것입니다.nbspnbspnbsp양팀 선수들이 모두 입장하자 스님이 공을 들고 와서 서로 인사시킨 후 너무 과열 경쟁을 하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자칫하면 싸움이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도인 스텝들에게는 스님이 ‘저주는 것이 더 낫다’고 귀뜸해 주기도 했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모두 이기려고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스님이 하늘 위로 공을 던지자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서로 실력이 비슷해서 전반전과 후반전 모두 팽팽한 접전을 벌였는데, 결국은 1대 1로 비긴 상태에서 경기를 마쳤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양팀을 모두 격려해주며 참가한 선수들 모두에게 비누 세트를 선물로 하나씩 나눠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러면서 “내년에는 상품을 더욱 푸짐하게 준비할 테니 더욱 재미있게 해보자”며 환하게 웃음을 지었습니다. 청년들도 함께 즐거워하면서 1년 동안 열심히 연습하겠다는 다짐을 보였습니다. 둥게스와리의 드림팀이 구성되면 이제 가야지역 전체 리그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되는 날이 곧 올 것 같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친선 경기를 한 기념으로 다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축구 시합으로 인해 학교 스텝들과 마을 청년들은 한층 더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습니다.nbspnbspnbsp축구 경기가 끝나고 다시 법당에 모여 잠깐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주니어 교사들의 복귀 문제에 대해 내일 아침 일찍 한번 더 모여서 더 의논하자고 한 후 인도인 활동가들 모두에게 선물과 용돈을 나눠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녁 7시부터는 한국인 활동가 전체가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내일 스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때문에 오늘은 각 파트별로 건의할 점을 모두 이야기하면서 전체적으로 크게 결정할 것들을 의논했습니다. 많은 논의 사항들이 제기 되면서 회의는 3시간 30분 동안이나 계속 되었습니다.nbspnbspnbsp내일은 오전 8시부터 9시 30분까지 인도인 활동가들과 한 차례 더 모임을 가진 후 10시에는 수자타아카데미를 출발해 보드가야에 들러 지역 인사 분들을 찾아뵌 후 오후 2시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내일을 끝으로 스님은 31일 동안의 인도, 스리랑카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치게 됩니다.nbsp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는 인도 불가촉 천민 마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수자타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nbspnbsp
2016.2.4 (인도 30일째) 인도인 스텝 소풍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JTS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인도인 스텝과 한국인 스텝 28명과 함께 전정각산 주위에 남아 있는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도보로 성지순례를 했습니다.nbspnbsp새벽 4시 30분, 도량석 소리와 함께 일어난 스님은 새벽예불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예불을 마치고 나서는 곧바로 소풍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주먹밥으로 도시락을 싼 후 인도인 스텝들이 대부분 도착하자 가볍게 짜이 한 잔을 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텝들이 소풍 준비를 하는 사이에 스님은 학교 정문 앞에 쓰레기를 줍고 청소를 했습니다.nbspnbsp▲ 학교 앞을 청소하는 스님nbsp오늘은 도보로 전정각산을 출발해 수자타 마을까지 부처님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을 순례해 볼 예정입니다. 원래는 버스를 대절해서 소풍을 떠나려고 했는데, 인도인 스텝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해 스님의 설명을 자세히 듣고 싶다고 요청을 해서 도보로 마을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이곳 둥게스와리는 부처님이 6년 동안 고행을 하며 오랫동안 머문 곳이기 때문에 곳곳에 성지가 많습니다. 마을에 대한 안내라고 하지만 자연히 성지순례가 되는 셈입니다. nbsp도보 순례를 시작하기 전 스님은 “여러분들이 자기 마을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에요. 저 멀리 전 세계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 자기 마을에 대해 아는 것입니다” 라며 마을을 순례하고 싶다고 요청한 인도인 스텝들을 칭찬해 주었습니다.nbspnbsp▲ 부처님이 6년 동안 고행한 시타림에 세워진 탑nbsp수자타아카데미 정문 바로 앞은 무너진 탑터가 남아 있어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스님은 이 탑터 앞에서 부처님의 6년 고행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이곳은 부처님이 6년 고행을 하신 곳인데, 전 세계에 3억 정도가 되는 불교 신자들 모두가 다 아는 곳입니다. 인도에 있는 어떤 도시도 이렇게 많이 알려진 곳은 드물 겁니다.nbspnbspnbsp부처님은 출가 후 가야에 오셔서 걸식을 하고 지금 이름으로는 ‘브람조니’라고 불리우는 가야산에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주위를 죽 둘러봤더니 네이란자라강 동쪽 편의 이곳이 수행하기에 좋아 보였어요. 이곳은 당시에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갖다 버리는 곳이었어요. 인도 당시의 풍속으로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에서 8킬로미터 쯤 떨어진 지역에 시체를 갖다 버리는 숲이 있었어요.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 바이샤 같은 높은 계급 사람들은 주로 화장을 했지만 노예인 수드라 계급 사람들은 화장을 하지 않고 그냥 시체를 갖다 버렸어요. 시체를 갖다버리는 숲이라고 해서 그 숲을 ‘시타림’이라고 불렀습니다. 주로 강을 건너서 이렇게 갖다 버려요. 바라나시의 경우 바루나강을 건너 북쪽에 있는 사르나뜨가 그런 곳이었어요. 여기는 가야에서 지금의 네란자라강을 건너 이쪽에다가 갖다 버린 거예요.nbspnbsp‘둥게스와리’ 라는 말은 전문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런 뜻이라고 해요. ‘둥그’는 ‘부정하다’라는 뜻입니다. ‘시체를 덮은 천은 부정하다’, ‘똥은 부정하다’ 이렇게 쓰는 표현 있잖아요. 더럽다고 하지만 위생적으로 더럽다는 게 아니라 재수 없다는 뜻을 담은 말이에요. ‘스와리’는 ‘땅’이라는 뜻이었다고 해요. 다시 말해 시체를 갖다 버리는 곳이니까 여기는 부정한 땅이라는 뜻이었습니다.nbsp‘부정하다, 성스럽다’ 하는 건 다 사람의 생각이죠. 땅 자체는 그저 땅일 뿐입니다. 시체를 갖다 버리니까 부정한 땅이라고 했지만, 부처님이 거기에서 설법을 하니까 사르나뜨의 경우 ‘성스러운 곳이다’ 이렇게 돼버리잖아요. 부처님이 여기서 수행하기 전에는 ‘둥게스와리’라는 말이 맞지만, 부처님이 여기서 수행하신 뒤에는 ‘둥게스와리’라는 표현이 맞지 않아요. ‘이곳은 성스러운 곳이다’라고 이야기해야 해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깨닫기 전에 이곳에 계셨다는 뜻을 가진 ‘쁘락보디 힐’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한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여기를 ‘전정각산’이라고 불러요. ‘전’이라는 말은 ‘쁘락’이라는 뜻이고, ‘정각’이라는 말은 ‘깨달음’, 즉 ‘보디’라는 뜻이고, ‘산’은 ‘마운틴’또는 ‘힐’이라는 뜻이에요.nbspnbspnbsp그렇게 부처님이 가야산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여기로 수행하러 오셨어요. 시체를 갖다 버리는 곳에는 더럽다고 사람이 아무도 안 오니까 수행하기 좋잖아요. 그래서 시체를 갖다 버리는 숲은 ‘시타림’이라고도 부르지만 고행자가 수행하는 곳이라고 해서 ‘고행림’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주로 이 근방에서 수행하셨습니다. 저기 티벳 사원 있는 곳을 보면 나무가 많이 자라잖아요. 여기가 돌산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나무가 많이 자랐습니다.nbspnbsp저쪽의 샘터도 지금은 건기가 되면 말라버리지만 당시에는 항상 물이 있었습니다. 이 산에서 물이 자연적으로 샘솟는 곳은 거기뿐이었어요. 두르가푸르, 자그디스푸르, 라르푸르 마을은 물론 저 아래까지 이 지역은 전부 사람이 살지 않는 숲이었어요.nbspnbsp부처님은 여기서 음식을 거의 드시지 않고 이 숲속에서 그냥 명상을 하셨습니다. 이 가까이에는 집이 없으니까 걸식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경전에 보면 대추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는 왜 대추를 먹었을까 궁금했는데 여기 직접 와보니 대추가 자연적으로 많이 나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지금도 둘러보면 대추나무가 많이 보이잖아요.nbspnbsp대추를 나중에는 하루에 한 알 혹은 이틀에 한 알 먹는 식으로 해서 거의 음식을 드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법당에 모셔놓은 불상처럼 뼈만 남아 앙상한 모습이 되었어요. 경전에는 ‘추위도 피하지 않고 더위도 피하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동굴에 계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아마 비가 오면 저 동굴에 들어가셨을 겁니다. 또 겨울에 추울 때나 여름에 더울 때는 저 굽파에 들어가면 덜 덥고 덜 추웠을 거예요. 여러분들 저기 굽파에 들어가 봤어요?”nbsp“예.”nbsp“겨울에 들어가면 따뜻하고 여름에 가면 시원하죠?”nbsp“예.”nbsp“그런 걸 보면 여기 계시면서 동굴에 주로 거처하셨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나무 밑에 계시거나 동굴에 계셨을 겁니다.nbspnbsp사실 이 지역은 제가 옛날부터 이름을 ‘고타마 싯다르타 파크’라고 지어놨어요. 이곳은 다 공원으로 조성해서 사람들이 명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요. 차가 여기까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요. 저 입구 바깥, 그러니까 자그디스푸르 마을 뒤쪽에 주차장을 만들고 나머지는 걸어 들어오도록 해야 해요. 이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면 자전거 릭샤나 전기차처럼 매연 없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도록 하고요.nbspnbsp이처럼 이곳이 중요한 곳인 줄을 알아서 앞으로 잘 관리하고 보호해야 해요. 그래서 지금 우리라도 청소를 깨끗이 하고 울타리를 다시 쳐서 여기를 잘 보호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와서 물으면 저기 동굴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이런 스토리의 일부를 이야기해줘야 해요.nbspnbspnbsp저 동굴은 그림자를 남겨놓은 동굴이라고 해서 ‘유영굴’이라고 불러요. 부처님이 성도하기 전에 수자타의 공양을 받으시고 건강을 회복한 뒤에 다시 이곳으로 와서 수행을 할까, 강 건너 지금의 보드가야로 가서 깨달음을 얻을까 망설였어요. 그때 둥게스와리 산신은 이곳에 와서 하라고 청하고 브라만 신은 저쪽으로 오라고 청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쪽 산신의 요청을 받았지만 이리로 오지 않고 저쪽으로 가시면서 대신 그림자를 남겨놨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유영굴’이라고 부릅니다. 경전에서는 ‘그림자를 남겨놨다’고 묘사하지만 실질적으로 생각해보면 부처님이 이곳에 오래 계셨기 때문에 부처님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nbsp이렇게 스님이 설명을 마치자 인도인 스텝들은 자긍심이 생기는지 아주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전정각산을 둘러싸고 있는 둥게스와리 마을은 인도인 스텝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문자를 읽고 쓸 수 없는 천민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이었기에 인도인 스텝들도 이런 의미들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가 생기고 나서야 스님으로부터 이곳이 얼마나 성스러운 곳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nbspnbspnbsp탑을 향해 삼배를 한 후 드디어 본격적으로 도보 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인도인 스텝들이 많이 살고 있는 방갈비가 마을을 지나는데 방금 전 스님의 설명대로 마을 곳곳에 대추나무가 많이 보였습니다. 모두가 대추나무에 높은 관심을 보이자 이 모습을 본 한 어린이가 뛰어나와 자신이 어제 열심히 주워 놓은 대추 한 봉지를 스님께 건넸습니다. nbspnbsp▲ 아이가 스님에게 준 대추 한 봉지nbsp가난하지만 작은 것도 이렇게 나눌 줄 아는 아이의 마음에 가슴이 짠했습니다. 대추를 한 움큼씩 손에 쥐고 입에 넣으니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nbspnbsp만코시힐 마을을 지나갈 때는 인도인 스텝들이 ‘까후아나무가 바로 아사나나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부처님이 네이란자라강에서 목욕을 하시다가 쓰러지신 후 아사나나뭇가지를 잡고 올라오셨다고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데, 아사나 나무가 힌디어로는 ‘까후아’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에서 나뭇가지를 붙잡고 나오려면 나뭇가지가 아래로 늘어져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스님이 고개를 흔들자 인도인 스텝들은 “계속 가다 보면 다른 까후아 나무도 나온다”며 걸음을 재촉했습니다.nbspnbsp▲ 경전 속의 아사나나무라고 추측되는 까후아나무nbsp네이란자라 강을 건너기 전 이번에는 따르 나무에서 따리를 뽑아 항아리에 담아 가고 있는 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스님이 반가운 표정으로 항아리를 바라보자 청년은 흔쾌히 스님에게 한 잔을 드리겠다며 항아리를 열었습니다. nbspnbspnbsp▲ 스님께 따리를 나눠주는 마을 청년nbsp아침 일찍 갓 채취한 것이어서 그런지 단맛이 많고 아주 시원했습니다. 스님이 먼저 한 잔을 마시고 이어서 돌아가며 모두가 한 모금씩 목을 축였습니다. 다시 가던 길을 계속 가니 네이란자라강이 나왔습니다.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닫기 전 마지막 정진을 하러 가실 때 건너 가신 강인데 건기여서 그런지 바닥이 말라 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nbspnbsp▲ 네이란자라 강nbsp강을 건너자마자 도착한 곳은 나디 가섭의 수행터입니다. 이 지점에서 네이란자라강과 모하나강이 합쳐져서 다시 하나의 네이란자라강이 되는데 두 강이 만나는 이 지점에 나디 가섭의 수행터가 있었습니다.nbspnbsp나디 가섭의 수행터에는 커다란 반얀나무가 있어 그늘이 아주 넓었습니다. 이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 도시락을 함께 먹었습니다. 새벽부터 한참을 걸었더니 허기가 져서 그런지 주먹밥의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nbsp nbspnbsp▲ 나디 가섭의 수행터nbsp식사 후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부처님은 성도 후 가섭 삼형제와 1천명의 제자를 교화했는데 이곳은 그 중 둘째인 나디 가섭의 수행터라고 알려주었습니다. nbspnbsp“부처님은 전정각산에서 정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수행을 했는데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어요. 그래서 좀 절망했던 것 같아요. 물론 경전에는 ‘부처님이 실망했다’라는 말은 없지만 그걸 신이 속삭이는 것으로 묘사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전정각산에서 나오셨는데, 가야 쪽의 시내로는 가지 않고 산기슭을 쭉 따라 가시다가 모레탈 마을이 있는 산 끝에서 강을 건너 이쪽 강가로 와서 목욕을 하셨습니다.nbspnbsp강가에서 목욕을 하다 쓰러지셨다는데, 왜 저쪽 편이 아니라 이쪽 편에서 쓰러졌는지가 저는 옛날에 궁금했어요. 그런데 제가 저 산 위에 올라가 내려다보니까 모래로 된 강바닥이 기울어져 경사가 져 있어요. 여기서도 보이듯이 산 쪽이 높고 이쪽이 낮아요. 우기 때는 전체가 물에 잠기지만 우기가 아닐 때는 이쪽으로 물이 흐르니까 목욕하러 이쪽으로 왔고, 이쪽에서 쓰러지셨던 겁니다. 그러니 부처님이 우기 때가 아니라 우기가 지났을 때 오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물이 아예 없는 건기 때도 아니에요. 목욕하다가 쓰러져서 물에 잠시 떠내려갔다는 기록이 있으니 그래도 물이 좀 많이 있을 때였을 겁니다. 물에 떠내려가다가 나뭇가지를 잡고 기어 올라오셨어요. 저렇게 늘어진 나뭇가지였을 텐데, 경전에는 ‘아사나나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도말이 중국말을 거쳐 한국말로 옮겨지다 보니 발음이 바뀌어버렸어요. 정확하진 않지만 힌디어로는 ‘까후아 트리’, ‘아르주나 트리’라고 추정합니다. ‘아르주나’에서 ‘아사나’가 되지 않았나 해요. 그 자리는 저 위쪽이니까 이따 올라가면서 볼 거예요.nbspnbsp정토회에서 성지순례를 할 때는 모레탈 마을 쪽으로 가서 바로 건너갔지만 오늘은 이리로 온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신 뒤 사르나뜨로 가서 거기서 처음으로 설법을 하시고 이곳으로 다시 오셨습니다. 그 당시 이 지역에는 ‘가섭’이라고 부르는 큰 수행 단체가 하나 있었는데 그 지도자가 삼형제였습니다. 큰 형님이 500명, 둘째가 300명, 셋째가 200명 해서 모두 1,00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어요. 이들은 두 가지를 행했는데 하나는 불을 피워서 기도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큰 뱀을 부리는 것이었어요. 이들이 유명해서 마가다 국왕인 빔비사라 왕도 1년에 한 번씩 공양을 올릴 정도였어요. 부처님은 그때 아직 35살의 이름 없는 젊은 수행자였지만 이 사람들은 이미 유명하고 나이가 80이나 되었어요. 부처님은 이 사람들을 교화하고자 이리로 다시 오신 겁니다. 그 당시에 수자타 여인이 있었던 마을 이름이 우루벨라였나 봅니다. 첫 번째 형은 우루벨라 마을에서 수행한다고 해서 ‘우루벨라 가섭’이라고 불렸습니다.nbspnbsp둘째 형은 바로 여기에 있었는데, 이곳을 ‘나디’라고 불러서 둘째는 ‘나디 가섭’이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한번 연구를 해보세요. 이 ‘나디’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을까요? 지금 ‘나디’라는 이름이 어디에 남아 있나요?”nbspnbspnbsp스님의 질문에 아미타부가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nbspnbsp“이쪽도 나디고 저쪽도 나디여서 ‘나디’라고 합니다. ‘나디’가 힌디어로 ‘강’이라는 뜻이에요.”nbsp“두 강 사이에 있다고 그렇게 불렀다고요? 아주 좋은 아이디어예요. 어쨌든 둘째는 나디라는 곳에서 수행한다고 해서 ‘나디 가섭’이라고 불렸어요.nbsp막내는 가야 마을 가까이에 있어서 ‘가야 가섭’이라고 불렀어요. 가야 가섭이 있었던 데가 가야산이 있는 곳이에요.”nbspnbspnbsp“우리는 그곳을 ‘가야 수르’라고 불러요.”nbsp“경전에는 ‘가야 쉬르사’라고 되어 있어요. 세월이 흐르고 말도 바뀌면서 옛날 이름도 조금씩 달라졌네요. ‘라자그라하’를 지금은 ‘라즈길’이라고 하고, ‘빠딸리푸트라’를 지금은 ‘파트나’라고 하듯이요.nbspnbsp그런데 가야 가섭이며 우루벨라 가섭은 많이들 알지만 나디 가섭이 있었던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들 몰라서 여기 와 본 사람이 별로 없어요. 두 강이 만나는 곳이라고만 알려져 있지, 구체적인 지역이 어딘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아요. 그런데 우루벨라 가섭이 부처님을 만나 크게 깨닫고 불을 섬기던 제구를 강에 버렸는데 그게 떠내려 오는 걸 나디 가섭이 보고 형님에게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찾아갔다고 기록되어 있으니까, 나디 가섭이 있던 곳은 저쪽 강줄기가 아닌 이 강줄기여야 해요. 또 여기 이렇게 신전이 있다는 것은 옛날에 섬기던 풍습을 동네 사람이 계속 해오고 있다는 뜻입니다.nbspnbsp그런데 방금 아미타부가 말해준 내용이 진짜 좋았어요. 왜 나디라고 불렀느냐? 두 강 사이를 의미한다. 굿 nbspnbspnbsp한국 사람들은 불교학박사라고 해도 옛날 기록만 알지, 왜 이런 말이 생겼는지는 잘 몰라요. 그러니 이 동네 사는 여러분들이 이런 걸 연구해야 해요. 그리고 여기가 나디 가섭의 수행터인 줄 아는 사람이 천 명 중 한 명도 제대로 없으니까 그걸 알려주면 여러분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곳의 지금 이름이 뭐라고요?”nbsp“사르사띠입니다.”nbspnbsp“‘사르사띠’가 바로 나디 가섭의 수행터입니다. ‘가야 수르’가 가야 가섭의 수행터이고요. ‘브람조니’가 가야산이고 그 근처가 가야 가섭의 수행터입니다. 그리고 둥게스와리는 ‘쁘락보디힐’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어야 해요. 외국 사람들은 ‘둥게스와리’ 이런 이름을 잘 모르니까요.”nbsp스님은 ‘나디’라는 말의 어원을 인도인 스텝들이 유추해 내자 아주 기뻐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어원이 무엇인지 알아낼 방도가 없지만, 이들은 이곳에서 조상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보니 어원이 무엇인지 금방 찾아내었습니다.nbspnbsp나디 가섭의 수행터를 출발해서 강가비가 마을을 지나 부처님이 쓰러지신 곳을 기념해 세운 탑터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부처님이 목욕을 하다가 쓰러지신 곳을 기념하여 세운 탑nbsp논밭의 한 가운데에 탑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황량하게 흔적만 남아 있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스님은 허물어진 탑터를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습니다.nbspnbsp“부처님은 네이란자라 강에서 목욕을 하시다가 쓰러지셨어요. 그래서 아사나나무의 가지를 잡고 기어올라오셨는데 마침 소젖을 짜러 왔던 ‘수자타’라는 소녀가 부처님을 발견했습니다. 수자타는 이 동네 촌장집 딸이었습니다. 집에 소가 460마리가 넘을 정도로 아주 많았대요. 소들이 다 물 마시러 이 강변에 와 있으니까 소젖을 짜러 여기까지 왔는데, 와보니 웬 수행자가 쓰러져 있었어요. 그래서 소젖에 코코넛과 쌀을 갈아서 넣고 유미죽을 끓여 먹였습니다. 기록에는 한 번만 먹은 것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건강이 회복되려면 한 번만 먹은 건 아닐 거예요.nbspnbsp공양을 드셨다는 곳은 저 위쪽이고, 여기는 쓰러져 계셨던 곳입니다. 옛날에는 여기에 스투파가 있었는데 불교가 없어진 뒤 힌두 스투파가 되었다가, 그것도 이제는 파괴되어 저렇게 탑이 허물어진 흔적만 남아 있어요.”nbspnbsp인도인 스텝들은 허물어진 탑터가 부처님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성스러운 곳이라고 알게 되자 모두들 놀라워하는 표정이었습니다.nbspnbsp다시 발길을 재촉해 다다른 곳은 정토회가 구입한 명상센터 부지입니다. 지금은 담장만 쳐져 있는데 스님은 오래 전에 이곳에 땅을 구입하고 전 세계 사람들이 이곳에서 명상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물론 봉사 인력도 부족하고, 몇 가지 제약 조건이 있어서 아직은 공사 시작을 못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정토회 명상센터 부지nbsp명상센터 부지 안으로 들어온 스님은 인도인 스텝들에게 이곳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앞으로 보드가야는 명상하는 곳으로 더 널리 알려질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도 필요하지만, 여길 찾아오는 세계 사람들에게 명상을 가르치는 역할도 해야 해요. 여러분들 자신을 위해서도 명상을 해야 하지만 앞으로는 여러분들이 외국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명상을 가르치는 사람, ‘Meditation teacher’가 되어야 해요.”nbspnbsp‘Meditation teacher’ 라는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를 하고 있는 ‘아제이’는 “명상하는 방법을 모른다”며 내일 스님께 명상하는 방법을 물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nbspnbsp명상센터 부지를 나와 조금만 더 걸어가니 부처님이 수자타의 공양을 받은 곳에 세워진 탑이 보였습니다.nbspnbsp▲ 수자타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곳에 세워진 탑nbsp마치 무덤처럼 작은 언덕이 되어 있었는데, 탑이 무너져서 지대가 높아진 것 같았습니다.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nbspnbspnbsp“이곳은 부처님이 수자타의 공양을 받은 곳입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스투파가 두 개 있어요. 하나는 부처님을, 하나는 수자타를 기리는 탑입니다. 경전에는 여기에 계시면서 수자타의 공양을 받았다고 간단히 묘사되어 있지만 건강이 회복되려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걸렸을 거예요.nbspnbspnbsp새로운 길인 중도도 발견했고 건강도 회복한 부처님은 이제 깨달음을 얻기 위한 마지막 정진을 하고자 했습니다. 강 건너 보드가야 쪽과 여기 둥게스와리 쪽 중 어디에서 마지막 정진을 할까 생각하다가 보드가야 쪽으로 가셨어요. 경전에는 둥게스와리 산신이 자꾸 청해서 동굴에 그림자를 남겨놓았다는 말이 있습니다.nbspnbsp그리고 여기에 부처님을 기리는 스투파가 있으니까 후세 사람들이 많이들 와서 수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수자타 템플이 생겼어요. 저기 보이죠?nbspnbsp▲ 뒤에 보이는 것이 수자타 템플nbsp그러다가 불교가 없어진 뒤 저 절은 힌두교 사원이 되었어요. 이름은 여전히 ‘수자타 템플’이지만 속은 힌두교 사원입니다. 이 탑도 부처님이 계셨던 곳을 기리는 뜻으로 세운 것인데 힌두교 쪽에서 이렇게 탑 위에 작은 사당을 지은 거예요. 이 지역은 모두 힌두교에서 소유하고 관리하고 있습니다.”nbsp불교인들에게는 부처님의 발자취가 깃든 소중한 곳이지만 힌두교에서 모든 관리 권한을 가져갔다고 하니 무척 아쉽게 느껴졌습니다.nbspnbsp수자타 템플 안에는 수자타가 부처님께 유미죽을 공양 올리는 모습의 조각상을 만들어 놓아 눈길을 끌었는데, 미얀마 절의 스님이 이곳이 성지임을 알리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주위는 모두 힌두교 사원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가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모습을 표현한 조각상nbsp수자타 템플에서 강가 쪽으로 다시 걸어가니 울창한 숲속에 우루벨라 가섭의 수행터가 있었습니다.nbspnbsp▲ 우루벨라 가섭의 수행터 입구nbsp인도인 스텝들은 이미 보광 법사님과 함께 한 차례 다녀간 적이 있기 때문에 직접 들어가보지는 않고 숲속 입구에 그늘이 넓게 드리워진 곳에 앉아 이곳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이곳은 우루벨라 가섭이 수행하던 곳입니다. 부처님은 성도 후 바라나시로 가셔서 처음으로 다섯 친구에게 법을 설하시고, 더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 이곳 우루벨라 가섭의 수행터로 오십니다.nbspnbspnbsp우루벨라 가섭을 교화하기 위해 무려 360가지의 신통력 경쟁을 했다고 해요. 그만큼 우루벨라 가섭이 자존심이 세고 교화하기 어려웠다는 겁니다. 삼형제가 다 합치면 제자도 1,000명이나 되고 나이도 80이나 되었으니 스스로 깨달았다고 하면서 자신만만했어요. 부처님은 이 1,000명을 앞에 두고 그 유명한 ‘불의 설법’을 했습니다.nbsp‘너희들은 밖에 있는 불은 이제 꺼버렸다. 그러나 아직도 마음속 탐진치 삼독의 불은 타고 있다.’nbsp불을 피워놓고 제사하는 의식은 버렸지만 마음속의 불, 다시 말해 욕심 부리는 탐심과 화내는 진심, 어리석은 치심은 아직 버리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러니 앞으로 수행을 해서 마음속의 불까지 꺼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 설법을 하신 장소가 가야쉬르사, 혹은 브람조니 올라가는 산중턱이라고 합니다.nbspnbsp불의 설법을 마친 부처님은 이제 1,000명의 대중을 이끌고 라즈길로 갔습니다. 우루벨라 가섭이 라즈길로 온다니까 빔비사라 왕이 마중을 나왔어요. 옛날에는 큰 스승이 오면 왕이 마중을 나갑니다. 여러분들 작년에 제띠안에 가봤죠? 제띠안에서 라즈길 가는 길에 있는 고개가 외성, 즉 바깥 성의 서쪽 문이 있던 자리에요. 그 안에는 내성이라고 해서 왕성이 따로 있습니다. 왕은 그 서쪽 문으로 나와서 제띠안이 있는 곳까지 마중을 나왔어요. 그래서 부처님과 빔비사라 왕이 제띠안에서 만났습니다. 빔비사라 왕은 아직 부처님은 몰랐기에 우선 우루벨라 가섭에게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어떻게 지냈습니까? 당신이 어떤 젊은이의 제자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마치 세 살 먹은 어린 아이가 팔순 노인에게 “이는 내 손자요”라고 말하는 것을 믿기 어렵듯이 믿기가 어렵습니다.’nbspnbspnbsp그러자 우루벨라 가섭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이마를 부처님 발에 대고 절한 후 부처님을 올려다보면서 이렇게 답했습니다.nbspnbsp‘이분은 나의 스승이고 나는 이분의 제자입니다. 내가 이분을 만나기 전에는 윤회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분을 만나고 나서 그 윤회의 씨앗을 버렸습니다.’nbsp윤회의 씨앗을 버렸다는 말은 니르바나를 얻었다는 뜻이에요. 그러자 빔비사라 왕이 ‘저 분이 바로 그 젊은 스승이구나’ 하고 부처님께 스승의 예를 갖춰 인사를 드리고 법문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그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데 여기서는 제띠안에서의 이야기까지만 할게요. 법문을 들은 왕은 부처님을 왕궁으로 청했지만 부처님이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의 북쪽 문 바깥에 있던 베누반 비하르, 즉 ‘죽림정사’를 부처님께 기증했습니다.nbsp그러니 이곳 가야 지역에서는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첫째,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기 전에 둥게스와리에서 여기 수자타 마을까지 이르는 지역에서 6년간 수행하셨어요. 둘째,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셋째, 깨달음을 얻은 뒤에 사르나뜨로 가셨다가 다시 오셔서 우루벨라 가섭, 나디 가섭, 가야 가섭을 비롯한 사람들을 교화하셨어요.nbspnbspnbsp이곳에 오는 많은 사람들이 ‘보드가야에서 부처님이 깨달았다’라는 하나만 알고 갑니다. 제대로 알려면 ‘수행하고. 깨닫고. 교화했다’라는 세 가지를 다 알아야 해요. 우루벨라 가섭을 비롯한 1,000명을 교화했기 때문에 빔비사라 왕을 교화할 수 있었던 거예요. 부처님 혼자 갔다면 빔비사라 왕이 부처님을 알아볼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러니 이 전체를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보드가야는 그래도 많이들 아니까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한테 물어도 알 수 있지만, 그 외 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여러분들이 잘 알아서 알려줘야 해요. 사무지가 헤?”nbsp“예스” nbspnbsp한 해에도 수 십만 명이 보드가야를 참배하고 가지만 오늘 스님이 알려준 이런 곳들은 대부분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에 인도인 스텝들은 더욱 귀를 쫑긋 세우고 스님의 설명을 경청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마을에서 일어난 일들이니까 자신들이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지만 점심 식사가 식당에 예약되어 있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설명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nbspnbsp마침 저 멀리 네이란자라 강 건너편에 전정각산이 끝나는 부분이 살짝 보였습니다. 스님은 우기 때가 되면 마치 바다 위에 전정각산이 떠 있는 것처럼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전정각산을 배경으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으로부터 마을 주위에 남아 있는 부처님의 발자취에 대해 많은 설명을 들었기에 인도인 스텝들은 고향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히 커진 것 같았습니다. 기념 사진을 찍는데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nbspnbsp다시 논두렁 길을 따라 보드가야 대탑이 있는 쪽으로 걸었습니다. 이제 인도인 스텝들은 이 마을이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일 것입니다. 신이 났는지 얼마전 정토회 성지순례단의 스텝으로 참여했었던 아미타부는 자신이 본 여러 성지의 모습을 재미있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논두렁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볏집이 어마어마하게 쌓여져 있었는데 그 앞에는 엄청난 규모로 수자타의 공덕을 기리는 탑이 세워져 있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의 공양을 기념하여 세워진 탑nbsp볏짚의 양을 보니 수자타가 그 당시에도 부자였지만 지금까지도 그 후손들이 조상대대로 풍족하게 살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수자타의 공덕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수자타가 부처님께 공양 올린 것이 훌륭한 줄은 불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죠. 특히 이것은 부처님이 되신 뒤에 공양 올린 것이 아니라 그냥 한 수행자로 쓰러져 계실 때 공양을 올린 것이기 때문에 더욱 칭송받을 만합니다. 요즘에 비하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대접했는데 그 사람이 그걸 먹고 살아나서 부처가 된 거예요.nbspnbspnbsp우리 학교 이름이 ‘수자타 아카데미’인 이유도 우리가 여러분 같은 동네 아이들에게 음식을 먹이고 교육을 시키면 여러분들이 커서 다들 부처님 같이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부처님 같이 돼야 저도 수자타처럼 공양 올린 사람이 되어 칭송받는 거예요. 사무지가 헤?”nbsp“예스”nbsp왜 학교 이름이 ‘수자타 아카데미’가 되었는지 설명을 듣자 모두 활짝 웃었습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nbspnbsp수자타의 수투파 앞에는 작은 학교가 하나 세워져 있는데, 학교 앞에서 법륜 스님의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가 수자타아카데미라고 선전하면서 구걸을 하는 청년들이 일부 있다는 제보가 많이 있었습니다. 인도인 스텝들이 저 사람이라고 알려주어서 찾아가서 그러면 안 된다고 설득을 시도했는데, 자신은 아니라고 발뺌을 하고 다른 사람이 더 있다고 얘기해서 다음에 다시 오기로 하고 지나갔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해서 전정각산에서 수자타 마을까지의 도보 순례를 모두 마쳤습니다. 보드가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는 중에 오토릭샤를 잡아 타고 다함께 점심식사 장소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 보드가야로 넘어가는 다리nbsp인도인 스텝들은 돈을 절약하려고 오토릭샤 한 대에 건장한 청년 15명이 탑승하는 진기명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오토릭샤가 앞바퀴를 휘청하면서 울퉁불퉁한 길을 무사히 지나가는 모습은 절로 감탄이 나오게 했습니다.nbspnbsp▲ 작은 오토릭샤에 장정 15명이 탑승nbsp오늘 점심 식사는 스님이 특별히 허락해 주셔서 풍족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한해 동안 학교 운영을 위해 고생이 많았던 인도인 스텝들과 한국인 스텝들, 새로 파견을 온 행자대학원생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더군다나 인도JTS의 이사 중 한 명인 나레스지가 운영하는 곳이어서 저렴한 가격에 아주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식사를 마치고 나서 스님은 인도인 스텝들에게 내일 오후에 두르가푸르자그디스푸르 청년팀과 축구 시합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인도인 스텝들은 이길 자신이 있다며 흔쾌히 수용을 했습니다. 무슨 근거로 자신 있어 하는지 몰라서 스님도 쁘리앙카도 모두 웃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혹시나 승부가 과열되어서 싸우게 될 것을 우려했는지 “일부러 질 필요는 없지만, 너희가 지는 것 또한 마을 청년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일이 되니 좋은 것 아니냐”며 경쟁하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다시 학교로 돌아오자 인도인 스텝들은 그동안 아이들 가르치고 공부하느라 축구 연습을 오랫동안 못했다며 막판 집중 연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평소 실력대로 해야지” 라며 웃음을 보인 후 숙소로 들어왔습니다.nbspnbsp저녁 7시부터는 목요 수행법회가 열렸습니다. 사무실 한 쪽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법복을 수한 채 여법하게 법문을 듣는 모습 속에서 수행의 자세를 놓치지 않으려는 행자님들의 의연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목요 수행법회가 열리는 동안 스님은 인도를 떠나기 전 처리해야 할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보면서 일찍 휴식을 취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 8시부터 인도인 스텝들과 집중 수련을 할 예정입니다. 학교를 운영하면서, 함께 일하면서, 공부하면서 들었던 여러 가지 의문과 고민들을 스님께 묻고 답변 듣는 시간을 가진 후 오후에는 마을 청년팀과 축구 시합을 할 계획입니다.nbsp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는 인도 불가촉 천민 마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수자타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nbspnbsp
2016.2.3 (인도 29일째) 수자타아카데미 개교 22주년 기념식 및 마을잔치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수자타아카데미 개교 22주년을 맞이해 내빈과 마을주민들 2천여 명을 초대해 마을 잔치를 열었습니다.nbspnbsp새벽 5시, 스님은 원고 교정을 보느라 조금 늦게 새벽예불에 참석했습니다. 예불과 기도를 한 후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예불nbsp기도 후에는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 스님은 오늘 있을 개교 22주년 기념식의 각 분야에서 역할을 담당한 대중들에게 행사에 임하는 마음 자세에 대해 말씀해 주었습니다.nbspnbsp“오늘 마을잔치를 하는 취지는 마을사람들을 손님으로 초대해서 잔치를 베풀어주기 위해서예요. 마을 사람들이 무질서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통제는 필요하지만 오늘은 구호활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호품 나눠주듯이 쿠폰을 준다고 하는데, 이것은 마을사람들을 구호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주민들이 무대 위에 올라와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는 잔칫날입니다.nbspnbspnbsp처음에는 노인들만 초대해서 잔치를 했어요. 그런데 15살 된 소년이 참석을 해서 ‘너 왜 왔니?’ 물어보니 ‘아버지를 대신해서 왔습니다’ 했어요. 이곳은 우리들의 기준과는 달리 15살만 넘으면 어른이 되니까 아무도 이것을 문제삼는 사람이 없었어요. 여기 문화가 그렇다는 것을 이해한 다음부터는 15세 이상을 모두 초대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그러니 오늘은 통제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중심을 통제에 두면 안 됩니다. 일찍 문을 열고 문앞에서 인사하며 정성껏 맞이하고, 쿠폰이 아닌 초대장을 나눠주어야 합니다. 점심 식사도 원래는 차려주어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패킹을 해서 나눠주기로 한 겁니다.nbspnbspnbsp우리는 마을 주민들을 구호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데 우리가 이 마을에 온 목적은 마을주민들에게 갑질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게 잘 안 되죠. 자꾸 통제를 하다보면 갑을 관계가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 만큼이라도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서 같이 식사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하고자 하는 겁니다. 개교기념식은 학교 행사이지만 마을잔치는 주민을 위한 행사입니다. 이 날은 우리가 베풀어서 선물도 주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손님을 접대하는 마음으로 임해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우리가 이 마을에 온 목적은 갑질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는 말씀은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스텝들은 각자 행사 준비를 하러 흩어졌습니다.nbspnbsp9시가 되자 주민들이 조금씩 입장을 하기 시작했고, 10시가 되자 거의 2천여 명에 육박하는 많은 사람들이 쁘락보디홀 대강당에 가득 모였습니다.nbspnbsp▲ 쁘락보디홀nbsp스님은 9시 30분부터 내빈들을 맞이했습니다. 이곳 가야지역의 연방국회의원인 하르만지, nbsp주의원인 사르와드지, YMCA 회장, 유영굴 앞 티벳절 주지스님 등 많은 내빈들이 참석해 개교 22주년을 축하해 주었습니다.nbspnbsp▲ 하르만지 MPnbsp식전에 다과를 하며 담소를 나누다가 10시가 되자 함께 행자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세계공용 예불문을 함께 한 후 학생들의 교가 및 구호 제창과 함께 개교기념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쁘리앙카 교장선생님이 내빈들과 마을주민들을 맞이하는 환영사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 쁘리앙카 수자타아카데미 교장선생님nbsp“오늘 처음으로 개교기념식과 마을잔치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같이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풍족한 환경에서 공연 연습을 하지 못해서 많이 서툽니다. 그렇지만 열심히 준비했으니 기쁜 마음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nbspnbsp개교기념식과 마을잔치를 함께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내빈들과 마을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자 모두들 더 좋다며 반가워 했습니다.nbspnbsp주요 내빈들에 대한 소개가 있은 후 본격적으로 학생들의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중등 여학생들의 댄스를 시작으로, 초등 남학생 댄스, 초등 여학생 댄스가 연이어 이어지자 모두 환호를 하며 기뻐했습니다. 특히 마을 주민들은 자기 아이가 무대 위에 오르자 너무나 기뻐하며 어쩔줄 몰라 했습니다.nbspnbsp▲ 중등 여학생 댄스nbsp▲ 초등 여학생 댄스nbsp▲ 태권도 시범nbsp이어서 인도JTS 이사장으로 보드가야에 거주하며 법인 운영 등과 관련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쁘리야팔 스님이 격려사를 해준 후 이번에는 마을주민들의 공연이 펼쳐졌습니다.nbspnbsp바가히 마을을 시작으로 자그디스푸르, 안투비가, 까나홀, 힌두 사두들로 구성된 팀까지 총 5개의 공연팀이 평소 갈고 닦은 노래와 연주 실력을 뽐내었습니다. 대부분 동네 어르신들이다보니 흥에 겨우면 막춤을 추거나 신들린 듯이 북을 두드리는 모습에 내빈들도 크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또 중간에 남자가 여자 분장을 하고 나와 춤을 출 때는 마을주민들도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nbspnbsp▲ 마을 주민들의 코믹하고 열정적인 공연nbsp▲ 힌두 사두들로 구성된 특별팀nbspnbsp▲ 마을 주민들의 공연을 보며 기뻐하는 스님nbsp신나게 펼쳐지고 있던 공연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 오늘의 주요 내빈인 국회의원 하르만지가 무대 앞으로 나와 축사를 해주었습니다. 하르만지는 축하의 마음을 전함과 동시에 학부모들이 교육의 눈을 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nbspnbsp▲ MP 하르만지nbspnbsp“22주년 기념식 뿐만 아니라 마을잔치도 한자리에서 하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학교를 설립한 법륜 스님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을 위해 교사들을 훈련시키고 부모님들도 깨우칠 수 있게 해준 쁘리앙카 교장선생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nbspnbsp둥게스와리 아이들이 교육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일은 너무나 훌륭한 일입니다. 지금 인도는 아직도 많은 지역에서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둥게스와리에는 수자타아카데미와 같은 좋은 학교가 있으니까 마을에서 온 학부모들께 특별히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매일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서 꼭 교육을 받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nbspnbsp밥 한끼 덜 먹이더라도 학교는 꼭 보내야 합니다. 조금 전 처럼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멋진 춤과 공연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교육의 효과입니다. 교육에 대해서 눈을 뜨십시오. 아이들이 공부를 하게 되면 수상이 될 수도 있고, 의사가 될 수도 있고, 기술자가 될 수도 있고, 공무원도 될 수 있습니다.”nbspnbsp마을주민들의 큰 박수가 쏟아졌고, MP 하르만지도 주민들의 환대와 아이들의 멋진 공연에 무척 감명을 받은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선물 증정식이 열렸습니다. 공연을 보여준 마을팀과 학생팀을 위해 스님이 무대로 나와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특히 마을팀에게는 큰 물통이 선물로 주어져서 웃음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nbspnbsp▲ 선물 증정식nbsp이어서 수자타아카데미의 설립자인 법륜 스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참석한 내빈들과 주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모두가 함께 둥게스와리를 멋진 마을로 만들어나가 보자고 했습니다.nbspnbspnbsp“나마스떼 오늘은 수자타 아카데미가 개교한 지 22주년째 되는 날입니다. 처음 이곳에서 수업을 시작했던 어린아이들이 이제는 다 자라서 청년이 됐습니다. 학부형 여러분, 아까 자녀들이 올라와서 멋있게 춤추는 거 보셨죠? 자랑스러워요?”nbsp“예”nbsp“오늘 행사뿐 아니라 평소에도 늘 참여해주시는 MP 하르만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큰 박수로 다시 한 번 환영해 주십시오. nbspnbsp보드가야 MLA님께서도 오늘 처음 참석해주셨으니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우리 인도JTS 대표를 맡고 계시는 쁘리야팔 스님께도 박수 부탁드립니다.nbspnbsp그 외에도 티벳 스님과 YMCA 회장님을 비롯해 많은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한 분 한 분 다 말씀드리지는 못하지만 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nbspnbsp지난 22년을 돌아보면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2002년에는 한국에서 자원봉사 오셨던 설성봉 거사님이 강도들이 쏜nbsp총에 맞아 돌아가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물론 아직 마을의 가난을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의 문맹퇴치는 거의 이루어졌습니다. 이 주위에서 이제는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는 없어졌습니다. 정부 학교도 조금씩 생겨나 이제는 잘 운영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JTS와 정부는 서로 협력해서 아이들의 교육을 잘 이끌어나갈 것입니다.nbspnbsp우리가 교육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방금 전처럼 귀여운 아이들의 재롱을 보겠습니까? 좀 더디기는 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보다 우리의 미래에 더 큰 희망은 없습니다. 교육이 없다면 이 아이들은 여기서 구걸하는 것 외에 다른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아이들은 교육을 받게 되었고, 여러분이 보셨다시피 수많은 재주를 발현시켜 보여주고 있습니다.nbspnbsp인도 정부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이제 경제개발을 하면서 인도 전체가 많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인도는 오랜 역사를 가진 문화국가입니다. 지난 100200년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제 인도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교육이며 마을 개발을 비롯한 많은 부문에 정부의 역할과 지원이 있을 겁니다.nbspnbspnbsp그러나 우리들의 삶은 외부의 지원만으로 변화되지는 않습니다. 우리 자신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사는 우리 마을은 우리가 힘을 합쳐 개발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 공부를 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아픈 사람이 치료받지 못하는 불행은 없어져야 합니다. 부유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건강하게는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둥게스와리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우리 마을을 만들어 봅시다.nbspnbsp처음 이곳에 학교를 만들 때 마을 사람들이 땅을 보시했습니다.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작은 보시를 한 것입니다. 지금은 마을마다 유치원이 있습니다. 그것도 모두 가난하지만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땅을 보시해준 덕분입니다. 이렇게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nbspnbsp이제는 마을개발을 위해서 우리가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안도 연구해야 합니다. 지금은 형편이 조금 힘들지만, 우리가 힘을 합쳐 함께 노력한다면 아이들이 이렇게 성장해나가듯 우리의 삶도 훨씬 더 좋아지고 개선될 것입니다.nbspnbspnbsp오늘은 학교 개교기념일인 동시에 마을 잔칫날입니다. 음식 준비가 다소 넉넉하지 못하더라도 잘 드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와주신 내빈들과 마을 주민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nbsp힘을 합쳐 함께 노력한다면 아이들이 성장하듯 주민들의 삶도 개선되어나갈 것이라는 이야기에 주민들은 기쁜 마음으로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nbspnbsp스님의 말씀이 끝나자 곧이어 오늘의 하이라이트 공연인 개교 22주년 메모리얼 댄스가 펼쳐졌습니다. ‘Heal the world’는 노래가사와 학생들의 멋진 춤동작이 어우러지며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아이들은 무대 아래로 내려가 학교 설립자인 법륜 스님을 비롯해 주요 내빈들을 무대 위로 모셨습니다. 폭죽이 터지자 공연은 절정에 다달았습니다.nbspnbsp▲ 개교 22주년 메모리얼 댄스nbsp아이들은 학교의 설립자와 도움주시는 분들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 개교기념식 때마다 이렇게 메모리얼 댄스를 연습하고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nbspnbsp이렇게 모든 행사가 끝나고 내빈들은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nbsp그리고 마을 주민들은 점심 식사와 선물을 학교 정문에서 받아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가난한 마을에서 선물을 배분할 때는 보통 질서가 무너지고 아수라장이 되기 쉬운데 둥게스와리 마을 주민들은 그동안 훈련이 잘 되어서 그런지 차례대로 줄을 서서 질서정연하게 선물을 받아갔습니다.nbspnbspnbsp▲ 패킹된 점심 식사와 선물을 받아가는 마을주민들nbsp학교 아이들도 집에 가져다 줄 식사 끼니를 푸짐하게 받아갔습니다.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손에 들고 교문을 향해 걸어나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너무나 신나보였습니다.nbspnbspnbsp선물을 받아든 주민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패킹된 선물 주머니 속에는 뿌리 15장, 사브지와 달 등이 푸짐하게 담겨 있어 온 가족이 함께 먹을 수 있게 했는데, 오늘 마을에는 오랜만에 집집마다 웃음이 넘쳐날 것 같습니다.nbspnbspnbspnbsp주민들이 집으로 향하는 사이 스님은 학교를 지을 때 처음으로 땅을 보시해 준 사람들에게 찾아가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매년 스님은 땅을 보시한 분들을 알뜰히 챙기시는데, 그 이유는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마을 전체를 위해 보시하는 마음을 내었다는 것은 설령 그것이 작은 돈일지라도 무척 값지기 때문일 겁니다.nbspnbsp▲ 처음 학교를 세울 때 땅을 보시해 준 주민들nbsp이렇게 개교기념식과 마을잔치를 성대하게 잘 마친 후 곧이어 오후 1시 30분부터는 인도JTS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이사회 구성원들은 대부분이 인도 사람들인데, 모두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스텝으로 일하고 있거나 가야와 보드가야 등 인근 지역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시는 분들입니다.nbspnbsp▲ 인도JTS 이사회nbsp먼저 스님이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인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수자타아카데미가 개교 22주년이 되었는데요. 지금까지가 1단계였다면 이제 2단계는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함께 의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자라나서 이제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쁘리앙카도 다시 인도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이사회 회장님도 인도 분이고, 교장선생님과 교감 선생님도 인도 분입니다.nbspnbsp이제 저희 한국 사람들은 여러분들이 현장에서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적극 돕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정말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협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1년 동안 여러 부분에서 협력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nbsp▲ 이사회의 대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인도인들nbsp스님은 지난 22년은 한국 사람들이 주축이 되었지만 지금부터는 인도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나아가고 있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는 점을 짚어 주자 인도 사람들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 몇 년만 더 흘러가면 정말로 한국 사람들은 보조 역할만 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JTS의 사업목표는 마을주민들이 자립하는 것이니까요.nbspnbsp이어서 쁘리앙카 교장선생님의 사회 2015년 사업 보고와 2016년 사업계획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있었습니다. 초등과정, 중등과정, 교사 파트, 시설, 행사, 정부 사립학교 인준, 마을 청년회 조직, 병원 파트, 주민생활 개선, 소득증대 사업 개발, 마을 리더 양성, 재정, 홍보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사업 보고와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nbsp토론하는 모습 속에서 정말로 이제는 이곳 인도인들이 주인이 되어 학교 운영과 마을개발이 이뤄져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이사회를 마치고 나서는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돌아가는 이사회 분들에게 양말, 달력, 담요 등 선물도 알뜰히 챙겨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사회가 이뤄지고 있는 사이에 수자타아카데미 중학생들은 열심히 행사장 뒷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후 늦게까지 남아서 깔끔하게 청소를 하고, 마무리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주인이 되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변화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마을주민들과 학생들이 모두 돌아가고 스님은 개교 1주년 기념식 때 심은 보리수 나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올해 22주년이니까 벌써 22년의 세월을 수자타아카데미의 역사와 함께한 나무인 셈입니다.nbspnbsp▲ 22년 전 스님이 마을주민들과 함께 처음 학교를 지을 때의 모습nbsp▲ 개교 1주년에 심은 나무가 22년이 흘러 큰 고목이 되었습니다.nbspnbsp나무가 저렇게 커갔던 만큼 아이들도 쑥쑥 자라 의젓한 선생님이 되었고, 학교와 마을에도 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었습니다. 나무에 짙게 드리운 주름을 보며 수자타아카데미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역경과 고난이 있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다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nbspnbsp학교 옥상에 올라가니 한낮을 뜨겁게 비추던 태양이 뉘엿뉘엿 지평선 너머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가 지지만 내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해가 다시 뜨듯이 둥게스와리 마을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한 많은 JTS의 노력도 쉼없이 계속 될 것입니다.nbspnbspnbsp저녁 7시부터는 오늘 행사를 준비한 한국인 스텝들이 모여 행사 평가회의를 가졌습니다. 마을주민들이 입장할 때와 퇴장할 때의 개선점, 내빈들에게 선물을 나눠줄 때 유의해야 할 사항, 점심 식사 준비, 학생들과 주민들의 공연 준비와 행사 프로그램 등 다양한 측면에서 개선점이 도출하고 의견을 모아나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 행사 평가 회의nbsp스님은 “평가 내용을 잘 기록해 두었다가 내년에 행사를 담당하는 사람이 꼭 읽어보고 준비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당부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인도인 스텝, 한국인 스텝 모두가 다함께 부처님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전정각산을 시작으로 수자타 마을을 지나 보드가야 대탑까지 도보로 성지순례를 다녀올 예정입니다. 원래는 멀리 소풍을 갈 계획이었는데 인도인 스텝들이 자신들도 자신들의 마을에 대해 잘 모른다며 부처님의 발자취에 대한 설명을 스님께 요청했기 때문입니다.nbsp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는 인도 불가촉 천민 마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수자타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nbspnbsp
2016.2.2 (인도 28일째) 둥게스와리 마을 리더, 유치원 교사, 청년회 미팅
▲ 둥게스와리 마을리더들과 함께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둥게스와리 마을유치원을 둘러본 후 오후에는 마을리더, 유치원교사, 마을청년회 멤버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새벽 4시 30분, 아직 해가 뜨지 않아 껌껌한 가운데 수자타아카데미 전정각사에 도량석 소리가 울려퍼집니다. 스님은 9기 행자대학원생들과 함께 예불과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2600년 전 부처님도 이곳 어딘가에서 명상을 하며 정진을 하셨을 것입니다.nbspnbsp▲ 새벽예불nbsp이어서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 스님은 어제에 이어서 전기를 아껴서 사용할 것을 다시 한 번 당부했습니다. 마을에는 아직 전기가 안 들어오는데 항상 마을 사람들과 비교해서 너무 격차가 나지 않도록 살고, 자연 채광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아침 8시 30분에는 산 너머 마을에 있는 유치원 4곳을 방문했습니다. 산 너머에는 양민들이 비교적 많이 살고, 정부학교가 들어서 있어서 JTS가 직영하는 유치원을 졸업하면 대부분이 정부학교로 입학하게 됩니다. 물론 까나홀 마을에는 JTS가 운영하는 수자타아카데미 분교가 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관리가 소홀해지기가 쉬워서 스님은 직접 방문해서 살펴보기로 했습니다.nbspnbsp▲ 산 너머 마을로 가는 도로nbsp먼저 스리람푸르 유치원을 방문했습니다. 출근해야 하는 교사가 2명인데 1명 밖에 없었습니다. 나머지 1명은 어디 갔냐고 물으니 출근을 안 했다고 하고, 오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주 출근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실하지 못한 교사 한 명을 금세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나머지 한 명의 선생님에게 매일 나오도록 잘 얘기하라고 당부한 후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었습니다.nbspnbspnbsp▲ 스리람푸르 마을유치원nbsp특히 유치원 마당이 고르지 못하고 울퉁불퉁 했는데 스님은 마당을 시멘트로 깔아주면 좋은지, 아이들이 놀 수 있게 고운 모래를 깔아주면 좋을지 나중에 체크해 보기로하고 스리람푸르유치원을 나왔습니다.nbspnbsp다음은 바가히유치원을 방문했습니다. 이곳에는 수자타아카데미 출신의 결혼한 여성이 유치원 교사를 하고 있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 바가히 마을유치원nbsp먼저 스님은 교사들이 보고한 학생수와 오늘 출석한 학생수를 비교해보았는데 차이가 너무 많이 났습니다. 즉 결석한 학생 수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일부가 사립학교로 옮기거나 부모님을 따라 벽돌공장에 갔다는 대답을 했습니다.nbspnbspnbsp대화를 더 해보면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첫째, 양민들이 사는 곳이다 보니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면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사립학교에 보낸다는 것이고, 둘째, 아직도 가난한 부모들 중에는 교육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아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마을에도 빈부 격차가 커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유치원을 나오니 교사가 개선점을 한 가지 더 요구했습니다. 앞마당이 조금 더 지대가 높아서 비가 오면 물이 교실 쪽으로 들어온다는 것이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앞마당에 흙을 더 파내어서 지대를 낮추고 핸드펌프가 있는 플랫폼의 둔턱을 높여서 물이 흘러 넘치지 않도록 하고 마당에 수로를 깊이 파서 물이 잘 빠지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한 후 유치원을 나왔습니다. nbspnbsp다음은 가왈비가유치원을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교실 전체가 많이 어두웠습니다. 창문을 열고 자연 채광을 최대한 활용하면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보고,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고 선생님들을 격려해준 후 유치원을 나왔습니다.nbspnbspnbsp▲ 가왈비가 마을유치원nbspnbsp다음은 까나홀유치원과 까나홀분교를 방문했습니다. 두 곳은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운영하고 있는 곳입니다. 운동장에 도착하고 나서는 가장 먼저 학교 앞마당 주위에 담장을 어떻게 칠지 둘러보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자꾸 학교 앞마당에 와서 똥을 누고 가기 때문에 학교가 점점 화장실이 되어간다며 교사가 개선점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nbspnbsp▲ 동네 화장실이 되어가고 있는 까나홀 분교 운동장nbspnbsp스님은 교사에게 담장을 제대로 쳐주겠다고 약속을 한 후 우물 앞에 핸드펌프가 고장난 곳을 살펴보았습니다.nbspnbsp▲ 고장난 핸드펌프와 우물nbsp핸드펌프가 고장이 난 것도 있었지만,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우물 안에는 각종 쓰레기들이 버려져 굉장히 지저분했습니다. 스님은 핸드펌프는 수리를 해줄테니 학교 앞마당에 담장을 칠 때 우물 안도 깨끗이 청소해줄 것을 부탁한 후 교실을 둘러보았습니다.nbspnbsp2학년 교실에 들어가서는 스님이 직접 수학 문제를 칠판에 써서 아이들의 실력이 어느정도 되는지를 테스트해 보았습니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자 여러 명이 자신있게 손을 들었지만 막상 문제를 풀도록 시켜보면 오답을 적거나 계산이 무척 느린 경우가 많았습니다.nbspnbsp▲ 아이들의 실력을 체크하기 위해 수학 문제를 칠판에 적고 있는 스님nbsp반면 노트 필기도 아주 깔끔하게 하고, 계산도 쑥쑥 잘하는 아이들도 있어서 개별적으로 학습 수준의 편차가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1학년 교실에는 영어 알파벳을 배우는 수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스님이 한 학생을 가리키며 알파벳을 읽어보라고 하자 앞으로 나와 아주 큰 목소리로 읽었습니다.nbspnbsp▲ 초등학교 1학년의 알파벳 수업nbspnbsp그런데 “H”, “F”, “X”의 발음이 모두 비슷해서 아직 이 아이는 그냥 소리만 흉내낼 뿐 정확히 구분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스님이 환하게 웃으면서 “내일 수자타아카데미에서 개교기념식과 마을잔치 하는 것 알고 있죠? 예쁘게 옷입고 와서 맛있는 거 많이 드세요” 라고 하자 아이들은 아주 기뻐하며 “스님지, 단야와드” 라고 하며 합장하고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nbsp자르하르마을에도 유치원이 하나 더 있는데 시간이 부족해 방문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산 너머 마을유치원과 까나홀 분교 방문을 모두 마치고 스님은 까나홀분교 교무실에서 산 너머 마을유치원과 학교 운영을 총괄하고 있는 카필데오지 선생님과 잠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결석하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됩니까?”nbsp“입학생이 총 111명이었는데 그 중에 자르하르에 사는 6명이 학교를 그만두었어요. 나머지는 하루 이틀씩 결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학생들이 결석하면 왜 안 왔는지 제가 확인하러 찾아가 보기도 합니다.”nbspnbsp“방금 유치원을 방문해보니까 한달에 400루피씩 주고 다른 사립 유치원에 간다는 학생들이 있던데요.”nbsp“까나홀은 사립 유치원보다는 정부 유치원이 있어서 거기에 대부분 다녀요. 작년에 수자타 분교 2학년을 마치고 대거 정부 학교로 보내면서 3학년 인원이 유독 많습니다. 까나홀마을은 정부 학교가 있지만 자르하리와 가왈비가마을은 정부 학교가 없어서 대부분 까나홀분교로 옵니다.”nbspnbsp“수자타 분교에서 2학년을 마치면 전부 정부학교로 보내는 것이 나아요? 수자타아카데미로 좀 보내는 것이 나아요?”nbsp“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수자타아카데미에 다니기를 원합니다.”nbsp스님이 처음 수자타아카데미를 세울 때는 학교가 전혀 없었지만, 이 둥게스와리 지역에도 이제 정부 학교가 6개나 운영되고 있어서 JTS에서는 정부 학교가 있는 마을 아이들은 모두 인근에 있는 정부 학교에 다니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nbspnbsp대화를 마치고 스님은 카필데오지가 연세도 있는데다가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수업은 하지 말고 관리만 하고 건강에 무엇보다 유념해줄 것을 당부한 후 인사를 하고 학교를 나왔습니다.nbspnbsp학교에 도착하고 나서는 학교 담벼락을 살펴보았습니다. 정부에서 공원 조성을 한다고 학교 담벼락 바로 앞에 1미터도 채 안되게 바짝 붙여서 땅을 파고 담장을 높게 쌓아서 우기 때 비가 오면 담장 붕괴가 우려되었습니다.nbsp▲ 학교 담장과 정부에서 공원 조성을 위해 새로 쌓은 담장nbspnbsp점심 시간에는 학교 주위를 더 둘러본 후 오후 1시부터는 마을리더, 마을유치원 선생님들과 함께 둥게스와리 마을 발전을 위해 다양한 의견을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먼저 스님이 “작년 3월에 방문하고 1년 만에 왔는데, 그동안 잘 지냈어요?”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마을리더들은 “올해 비가 적게 와서 벼농사와 밀농사 모두 잘 안 되었다”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어서 어느 마을에서 누가 참석했는지 일일이 확인한 후 마을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건의를 받고 스님의 생각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 마을리더, 마을유치원 교사들과의 미팅nbsp마을유치원을 오전에 방문해 보니 운영비를 안 내는 학부모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스님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먼저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nbspnbspnbsp“다른 사립 유치원에 가면 한달에 400루피, 800루피씩 돈을 내야 하는데 왜 마을 어머니들이 10루피, 20루피 밖에 안 하는 유치원 운영비도 안 내려고 해요? 등록한 학생들이 다 운영비를 내요? 안 내는 사람들이 많아요?nbspnbsp“이때까지 유치원이 다 무료였는데 왜 이제 와서 돈 달라고 하느냐며 안 줍니다. 운영비 안 내는 아이들에게 운영비 가져오라며 집에 보내면 가서 그냥 안 돌아온대요. 왜 이렇게 가난한 아이들에게 돈 달라고 하느냐며 항의해요.”nbspnbsp“지금까지는 무료로 했는데 10루피를 받는 이유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는지 안 가르치는지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10루피라도 내어서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가지라고 그렇게 한 거예요. 또 마을유치원 선생님들도 아이들을 잘 가르치면 수입이 조금이라도 늘어나기 때문에 열심히 가르치라고 이렇게 해본 거잖아요.nbspnbsp산 너머 마을유치원은 중학생들이 가기가 어렵고, 마을에 맡겨 놓으니 유치원 문을 열지 않는다는 민원이 많은데, 학교에서 거리가 멀어서 매일 감독하기도 어렵고 해서 작년에 많은 의논을 한 끝에 만든 제도인데 또 이런 문제가 있군요.nbsp그러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유치원을 새롭게 수리하고 단장을 해서 좀 더 좋게 만들고, 교육 기자재도 좀 더 갖추고, 여러분들도 더 열심히 가르쳐서 다른 사립유치원 보내는 것만큼이나 좋다는 생각이 들면 돈을 더 내라 해도 내지 않겠어요? 아무리 가난해도 한달에 20루피, 30루피 정도는 낼 수 있지 않아요? 그 정도도 못 낼 만큼 어려워요?”nbsp“낼 수 있습니다. 한 달에 30루피라 해도 하루 1루피밖에 안 돼요. 지원 받는 게 얼마나 많은데 돈이 문제가 아니라 관심이 없어서 그래요.”nbsp이어서 핸드펌프가 고장났다며 새로 더 만들어달라는 건의가 있었습니다. 스님은 이에 대해 답해주면서 책임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유치원이 있는 마을에 10가구가 사는데, 물을 풀 수 있는 다른 핸드펌프가 없어서 유치원 안의 핸드펌프를 같이 쓰느라 고장이 잦습니다. 전에 수리 다 해놓고 잠금장치를 설치했더니 잠금장치도 다 부숴버렸어요. 다른 가구들이 쓸 수 있도록 유치원 밖에도 핸드펌프를 하나 더 설치해주시면 좋겠습니다.”nbspnbsp“지금 마을마다 핸드펌프 하나 당 대략 몇 가구가 써요?”nbsp“10가구 정도는 충분히 씁니다. 그러나 많이 쓰면 자꾸 고장 납니다.”nbspnbsp“왜 자기들이 마실 물을 얻는 핸드펌프를 스스로 고장 내는지 이해가 안 돼요. 고장 내서 못 쓰면 자기 손해잖아요. 살살 쓰도록 교육을 좀 시켜야 해요. 이렇게 자꾸 고장을 내니까 제가 수리비를 마을에서 절반 내면 JTS에서 절반 내겠다고 한 거예요. 돈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책임을 좀 지라는 뜻입니다.”nbsp스님은 마을 사람들이 더욱더 책임감을 갖고 참여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연구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천민들이 모여 사는 가장 가난한 마을인 아자드비가와 안투비가에서 최근에 먹고 살기가 무척 어려워졌다며 하소연을 했습니다.nbspnbspnbsp“지금 아자드비가와 안투비가 마을에 문제가 많습니다. 2년 전부터 여기 벽돌 깨는 작업이 금지되어서 우리들이 먹고 사는 게 너무 어려워졌어요. 가족들이 애들까지 데리고 다른 데 가버리기 때문에 아이들이 지금 제대로 공부도 못 하고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가 아직 마을에서 소득이 될 만할 걸 만들 방법이 없잖아요.”nbsp“분교 건물이 그냥 잠겨 있습니다. 분교 건물을 열어 뭔가 작은 사업 같은 걸 시작해서 생활비를 좀 벌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나왔습니다.”nbsp“거기에서 마을 전체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nbsp“물레 같은 걸 놔두면 마을 사람들이 그걸로 생활비를 좀 벌 수 있을 겁니다.”nbsp“물레 교실을 운영한다 해도 그 기계를 밤에 누가 훔쳐가 버리면 어떻게 지켜요? 그 문제만 아니면 물레 교실을 운영할 수도 있어요.”nbspnbsp“우리 이익을 위해 사용할 우리의 물건이니까 이 문제는 마을에서 다시 회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관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따로 이야기를 더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nbsp“학교에 이렇게 담장이 높게 쳐져 있는데도 넘어 들어와서 병원 옥상에 있는 태양열 집열판까지 떼어 가잖아요.nbspnbspnbsp지금은 물레가 학교 안에 있지만, 사실은 두르가푸르 마을이나 자그디르푸르 마을에 두는 게 우리도 여러분들도 훨씬 나아요. 원래는 학교 안에 있을 시설이 아니지만 훔쳐가는 문제 때문에 할 수 없이 학교 안에 두고 있거든요. 마을에서 보호만 할 수 있다면 이걸 마을로 옮기는 게 더 좋아요. 여러분들이 사용하기에도 더 가깝고요.nbspnbsp물레 말고 다른 아이디어는 또 뭐 있어요? 제가 지난번에 마을을 돌아보면서 염소를 먹이는 것도 생각해봤는데, 풀이 별로 없어서 힘들 것 같았어요.”nbsp“맞아요. 풀이 아예 없습니다. 그리고 염소를 그나마 풀이 좀 있는 곳에 매어놓으면 또 다 훔쳐갑니다.”nbspnbspnbsp“어쨌든 마을에서 아이디어를 내어 가져오면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지금 마을에서 집 짓는다고 시멘트 많이 쓰죠? 시멘트 한 포대에 얼마 주고 사요?”nbsp“질에 따라 달라요. 310루피부터 500루피까지도 있습니다.”nbsp“같은 질이라면 한꺼번에 살 때와 집집마다 따로따로 살 때의 가격이 다르잖아요. 그러면 전체가 쓸 양을 우리가 한꺼번에 많이 사서 창고에 넣어놓고 좀 싼 값에 공급하면 주민들에게 이익이 되겠네요. 마을 사람들이 시장에 가면 제일 많이 사오는 게 뭐예요? 시멘트, 벽돌? 또?”nbsp“철근과 자갈이요.”nbsp“돌은 동네에서 깨서 쓰잖아요.”nbspnbsp“정부에서 깨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몰래 깨는 사람들은 있어요. 집 옆에 돌을 깨서 부순 티가 많이 나면 바로 와서 감독하고 막 잡아가요.”nbspnbsp“농사짓는 일반적인 시골이라면 염소나 소를 먹여서 수익이 되겠지만, 여기는 그런 농사짓는 데가 아니다 보니 염소나 소를 많이 먹일 수 없다는 게 문제예요. 여기에서 어떤 걸 하면 수입이 될 만할까요?nbspnbsp우선 물레는 얼마나 수입이 되는지 우리가 실험적으로 해보고 있는 거예요. 수입이 된다면 조금 보완을 해서 마을마다 할 수도 있지만 물레가 지금 확실히 수입이 되는지 안 되는지 아직 평가를 못 하겠어요. 이익이 아주 조금밖에 안 남아서 그래요.”nbsp“물레를 하면 10시에 와서 3시에 가고 중간에 점심 먹는 식으로 대충 해도 한 달에 1,500루피 법니다. 더 많이 하면 더 많이 벌 수 있습니다.”nbsp“그러면 이 앞에서 구걸하는 것보다는 못하겠는데요. 어쨌든 좋은 아이디어를 내보세요.nbspnbsp물레질 하는 것을 더 살펴보고 그게 과연 수입이 될 만한지도 잘 알아보고요. 물레질을 하려면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해요. 첫째, 그 정도 수입을 얻고자 이걸 할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둘째, 시설이나 여러 가지 보안을 유지하려면 누구 한 명이 지켜야 하고, 그 사람에게 월급도 줘야 해요. 학교는 그런 게 필요 없지만, 이걸 누가 할 것이며 월급을 어떻게 얼마나 줄 건지도 생각해야 합니다.nbspnbsp다른 할 만한 건 없어요? 어떤 걸 하면 수입이 될 수 있을지 여러분들이 아이디어를 주면 좋겠어요.”nbspnbsp스님은 마을 주민들의 아이디어를 최대한 끌어내며 대화를 하였지만 아직 시원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각자 따로 살던 마을 주민들이 이렇게 함께 고민하고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는 그 무엇보다 큰 성과로 느껴졌습니다.nbspnbsp스님은 이 외에도 다양한 건의 사항들에 대해 약 2시간 동안 마을 리더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마을 리더들은 스님의 명쾌한 해법에 아주 기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을 리더들에게 스님은 수자카아카데미에서 제작한 달력과 담요, 숄을 선물로 나눠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마을 리더들과 한 번, 마을 유치원교사들과 한 번,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활짝 웃는 모습 속에서 둥게스와리마을의 희망 찬 미래가 가득 느껴졌습니다.nbspnbsp▲ 마을유치원 선생님들과 함께nbsp이어서 오후 3시 30분부터는 수자타아카데미가 자리하고 있는 마을인 두르가푸르, 자그디스푸르 마을에서 청년회 멤버들이 찾아와 스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이곳 청년들은 대부분 유영굴 아래에서 돌라를 들고 나르며 생계를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오토릭샤를 운전하거나, 농사를 짓거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대학 공부를 하고 있는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청년들이 함께 자리했습니다.nbspnbsp▲ 마을청년회 멤버들과 미팅nbsp스님은 각각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한 명 한 명에게 모두 물어보고 확인하며 청년들이 어떻게 살고있는지 전체적인 정황을 파악하고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이번에 ‘마을 청년회’가 새롭게 조직되면서 마을 발전을 위해 청년들이 나서겠다고 발심을 했는데, 청년들이 마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스님은 많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청년 활동 하는 데 어떤 지원이 필요해요?”nbsp“저희는 활동을 많이 안 해봤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만 잘 다닐 수 있으면 됐습니다. nbsp마을에 어떤 문제가 있으면 우리 청년회 전체가 모여서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우리 선에서 안 되는 큰 문제는 JTS에 가져와서 의논해 오고 있습니다.”nbspnbsp“알았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 제가 조언을 해드릴게요. 첫째, 여러분들이 이렇게 축구를 하거나 해서 일단 친목을 다지기 바랍니다. 둘째, 마을에 어떤 문제가 있으면 쉬람단 같은 걸 해서 해결해 보세요. 샛째, 마을 전체에 이익이 되는 게 무엇이 있을지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어요.nbspnbspnbsp아까 마을리더들과 이야기해보니까 생활이 조금 나아지고 있고 정부 지원도 있어서 집을 많이 짓느라 시멘트, 벽돌, 철근 이런 게 많이 필요하대요. 그걸 개인이 가게에서 구하는 것보다 우리가 한꺼번에 좀 싸게 구입하면 차익을 남길 수 있어요. 차익을 남겨서 나누면 5퍼센트든 10퍼센트든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데 이런 아이디어들을 우리가 내볼 수 있겠습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한 발전은 여러분들 개인이 알아서 하되 우리 마을 또는 이 지역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아이디어를 내서 우리가 같이 해볼 수 있겠습니다. JTS는 개인적으로는 도와줄 수 없지만 전체 이익을 위하는 것은 지원해줄 수 있어요. 그러니 그런 아이디어가 있으면 이야기해 주세요.nbspnbsp또 여러분들이 이렇게 청년이 되었으니까 앞으로 우리가 협동조합 같은 걸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협동조합을 하면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어요. 첫째, 공동구매를 통해 우리가 필요한 물건을 싸게 구매할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가 생산한 어떤 것을 팔 때 공동판매를 하면 조금 더 비싸게 팔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은 생산되는 게 별로 없어서 문제이긴 해요. 일반적인 농촌이라면 예를 들어 과일이나 우유를 공동으로 판매할 수 있어요. 개인이 조금씩 갖다 팔면 싸게 팔게 되지만 한꺼번에 많이 갖다 팔면 좀 더 비싸게 받을 수 있어요. 셋째, 마을금고, 즉 마을은행을 만들 수 있어요. 지금 마을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면 빌리기 힘들잖아요. 그렇다고 동네에서 빌리면 이자가 너무 높습니다. 또 돈을 가지고 있으면 금방 써버리기 쉬워요. 우리들의 돈을 조금씩이라도 모아서 마을 은행을 만들면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줄 때 이자율을 확 낮춰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마을 은행도 꼭 필요합니다. 제가 마을에서 확인해보니 개인적으로 빌렸을 때 이자율이 너무 높아요. 한 달에 10퍼센트라면서요? 1년에 10퍼센트 정도가 되어야 정상이에요. 돈을 빌리면 이자가 원금보다 더 많아지잖아요.”nbspnbsp“맞습니다. 1년만 안 갚으면 빌린 돈보다 이자가 더 많아집니다.”nbsp“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는 거예요. 돈을 빌려서 염소나 소를 장만하려 할 때도 이자율이 너무 높아요.”nbsp스님의 조언에 청년들도 모두 공감을 하며 웃음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더 나은 방향을 계속 알려주는 스님이 있어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무엇보다 이제 마을마다 청년회가 조직되어서 협동조합 운동을 하게 되면 둥게스와리는 또한번 큰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습니다.nbsp이 외에도 스님은 2시간 동안 청년들과 많은 대화를 주고 받았습니다. 스님은 이제 청년들이 앞장 서서 둥게스와리를 멋지게 만들어보라고 당부를 하면서 모임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뭐 하고들 사나 궁금했는데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앞으로 우리 모두 협력해서 마을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봅시다. 지금까지 JTS는 아이들 교육시키는 것, 아픈 사람 치료하는 것, 마을에 우물 파주고 핸드펌프 설치해주는 것 같은 일을 주로 해왔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마을에서 리더가 되어가니까, 앞으로는 의논을 해서 아까 이야기한 협동조합 운동을 함께 해나가면 좋겠습니다.”nbspnbsp청년들은 힘차게 박수를 쳤습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스님은 청년들에게 달력과 양말을 선물로 나눠주며 열심히 해보라며 기운을 북돋워 주었습니다. nbspnbspnbsp이어서 마을 청년들과도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청년들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 봅니다.nbspnbsp▲ 마을 청년회 멤버들과 함께nbsp회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스텝들이 마침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웃으면서 “마을 청년들이 너네 학교 스텝들과 축구 시합이나 크리켓 시합을 하면 이길 수 있다고 자신있어 하는데 한번 경기를 해보지?” 라고 물었습니다. 학교 스텝들이 “아닙니다. 저희가 이깁니다” 라며 당당하게 얘기하자 스님은 크게 웃었습니다. 앞서 청년들과의 모임에서 가야에서 열리는 축구나 크리켓 대회에 둥게스와리팀이 출전하면 3등 안에 들 수 있는지 스님이 물어보았는데, 조만간 둥게스와리 베스트 팀이 구성되어 수상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nbspnbsp▲ 축구와 크리켓 시합을 제안하는 스님nbsp저녁 시간에는 잠시 싣다르타하우스 옥상에 올라가서 수자타아카데미 뒤쪽에 nbsp구입해 둔 땅에 어떻게 담장을 치고 어떤 건물들을 더 지을지 스님의 구상을 들려주었습니다. 쁘리앙카 교장선생님과 보광 법사님은 스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수자타아카데미의 미래를 함께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세 분이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저녁 노을이 아주 아름답게 드리워지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저녁 7시부터는 한국인 봉사자 모두가 홀에 모여 집중 회의를 했습니다. 우선 내일 있을 수자타아카데미 개교 22주년 기념식과 마을잔치 프로그램을 점검한 후, 음식 배분 계획, 내외빈 선물 준비 상황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했습니다. 그리고 모레 인도인 스텝들과 함께 소풍을 떠날 계획인데 어디로 떠날지 무엇을 준비할지 역할 분담을 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nbspnbsp마지막에 컴퓨터 교실 운영 방안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면서 스님은 컴퓨터의 경우 도난 사고에 대한 우려 때문에 보안 장치가 중요한데, 숫제 여학생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컴퓨터 교육을 받도록 하면 어떤지 새로운 방안을 제안해 주었습니다.nbspnbsp“앞으로 중학교부터는 숫제 남학생보다는 여학생들을 기숙사 생활을 하도록 하면서 여러 가지 훈련을 시키면 좋을 것 같아요. 어제 중등학생들과 얘기를 나눠보니까 집에서 나와서 결혼도 안 하고 JTS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여학생들이 열 명이 넘게 있었어요. 그러면 아이들 부모들과 직접 얘기를 해서 괜찮다고 하면 기숙사에서 생활하도록 하면 어떨까요?nbspnbspnbsp앞으로 수자타아카데미도 행정 업무가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거든요. 그러면 이 아이들이 일을 맡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기숙사 생활을 하면 저녁에 공부할 시간도 많아지고요. 기숙사 생활을 하면 굉장히 많은 소임들을 나눠서 할 수 있거든요. 왜냐하면 출근한다고 시간 보내고 퇴근한다고 시간 보내고 낭비가 많거든요. 또 집에 가면 집안일도 해야죠. 그런데 아예 공동체 생활을 하면 밥은 돌아가면서 당번을 정해서 해먹으면 되고, 여유 시간도 훨씬 많이 생기거든요. 사실 지금 마을에는 부모가 너무 가난해서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고, 고아들도 많거든요. 학교 안에 고아원도 있긴 있어야 해요. 또 여러 가지 사업을 하려면 활동가가 많아져야 합니다.nbspnbsp그런데 남자 아이들은 좀 곤란해요. 똑같은 인간인데 남자들은 혼자는 못 사는가봐요. 꼭 장가를 가더라고요. 아니면 돈 더 버는 곳에 취직을 하거나요. 그런데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고등학생 쯤 되면 결혼 안 한 아이가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절반 이상이 결혼을 아직 안 했더라고요.nbspnbsp불교용품을 판매하는 기념품가게 운영, 신용협동조합 등 여러 사업들을 하려면 행정 업무가 많아지고 컴퓨터도 잘 해야 하거든요. 컴퓨터 교육은 중학교부터 가르쳐야지 늙으면 습득이 잘 안 돼요. 그러면 컴퓨터 교실은 기숙사 안에 두고, 항상 컴퓨터로 공부하고 문서 쓰도록 교육하면 될 것 같아요.nbspnbsp학교 전체를 봉사 시스템으로 가져가면서 고급 학교로 만들어가려면, 월급이 없는 대신에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해줘야 해요. 또 여기 있는 동안에는 봉사를 하지만 밖에 나가면 언제든지 취업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갖춰주면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고 싶어할 것 같아요.nbspnbspnbsp앞으로 20년 정도를 내다보면 인도 여성들의 활동이 굉장히 활발해질 겁니다. 한국의 경우 이제 남자보다 여성의 활동이 더 활발하잖아요. 이렇게 학교의 종합적인 변화 방향에 대해서는 내일 또 더 의논합시다.”nbsp스님의 제안에 모두들 공감을 했습니다. 항상 현실을 자세히 파악하고, 변화된 상황에 맞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는 스님의 모습에서 오늘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있었습니다.nbspnbsp회의는 밤 9시가 넘어서 마쳤습니다. 오늘은 회의가 빨리 끝난 덕분에 내일 큰 행사를 앞두고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어제는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해 점검해 보았다면, 오늘은 마을 개발 전반에 대해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내일은 마을 주민들과 학생들을 모두 수자타아카데미로 초대해 개교 22주년 기념식과 둥게스와리 마을 잔치를 열 예정입니다.nbsp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는 인도 불가촉 천민 마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수자타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nbspnbsp
2016.2.1 (인도 27일째) 수자타아카데미 초등 중등 학생들과 대화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수자타아카데미 초등학생들과 중등학생들을 위해 법회를 했습니다.nbspnbsp어제 오전 11시 30분에 이따와역을 출발해 기차로 16시간을 달려 오늘 새벽 3시 30분에 가야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가야역에 내리자 수자타아카데미에서 두 명의 스탭이 오토릭샤를 몰고 와서 마중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오토릭샤를 타고 가야역에서 수자타아카데미로 향하는 스님nbsp덜컹 거리는 오토릭샤에 몸을 싣고 캄캄한 어둠과 새벽 안개를 가르며 4시 30분에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예불을 하러 가는 길이던 행자님들이 반갑게 스님 일행을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 새벽 4시 30분, 수자타아카데미 도착nbsp새벽 예불 후 6시 30분부터는 행자님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함께 했습니다. 행자님들은 매일 아침 이렇게 발우공양으로 여법하게 하루를 시작한다고 합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발우공양 후 스님은 몇 가지 당부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우선 오늘 오전에 학교와 병원 전체를 둘러볼 예정인데 스님이 방문한다고 해서 특별한 준비를 하지 말고 평소대로 그냥 업무를 할 것과 점심 식사도 특별히 준비하지 말고 그냥 학생들과 같이 먹을 수 있게 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학교 정문을 지키는 수위와 운전수, 급식 노동자들은 정복을 갖추고 업무를 할 수 있게 해서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고, 학생들에게 무시를 받지 않도록 해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정부 전기가 들어왔는데, 전기 사용에 낭비가 없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nbsp“정부 전기가 들어왔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기를 낭비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새벽에 예불하러 갈 때도 불을 켜놓고 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다니는 통로는 불을 켜놓되 나머지는 모두 불을 끄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일할 때 사용하는 등과 평소에 켜놓는 등을 구분해서 배치해 놓은 것이 필요해요. 평소에 너무 밝게 켜놓아도 안 되고, 그렇다고 일할 때 너무 어둡게 해놓아도 안 되니까요.” nbspnbsp발우공양이 끝나자 행자님들은 곧바로 각자 맡은 일을 하러 흩어졌고,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10시 30분이 되어 학교와 병원 전체를 한 바퀴 둘러보기 위해 숙소를 나왔습니다.nbspnbsp▲ 지이바카병원nbsp먼저 지이바카병원을 둘러보았습니다. 병원 앞에는 아침 일찍부터 많은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접수 창구 앞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어디서 왔는지 어디가 아픈지를 물어보았습니다.nbspnbsp▲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 먼 길을 걸어온 주민들nbsp무려 1시간 동안 걸어서 찾아온 사람, 손바닥이 갈라져서 아프다고 하는 사람, 귀와 허리가 아프다고 하는 사람 등 다양한 환자들이 병원을 찾았습니다.nbspnbsp호모페틱과 알로페틱 두 가지 방식으로 진료를 하고 있었는데, 각각 의사 선생님이 어떻게 진료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스님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 호모페틱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선생님nbsp그런데 진료 도구나 침대 등이 낡은 것들이 많이 보여서 우선 도구들부터 새 것으로 교체하면 좋겠다, 환자들이 접수대에서 아우성을 치더라도 절대 화내지 말고 친절하게 대하면 좋겠다 등 여러 의견을 준 후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nbsp이동 중 학교 곳곳에 나무들을 보면서는 가지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모양이 깔끔하지 못한 나무들이 많아서 베어야 할 나무와 다듬어야 할 나무를 전체적으로 구분해서 정리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짜르카 교실에서는 부녀자들이 와서 열심히 짜르카를 돌리며 실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또 바로 옆 공간에서는 재봉틀을 배우고 있는 여성들도 있어서 스님은 특별히 여성들에게 부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 가사가 오래되고 낡아서 찢어진 곳이 있는데 수선을 좀 해주실 수 있어요?” 그러자 모두들 웃으며 흔쾌히 해줄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nbspnbsp▲ 짜르카 교실nbsp▲ 재봉틀 교실nbsp한쪽에서는 목수들이 나와서 열심히 문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또 공양간에서는 점심식사 준비를 위해 뜨거운 열기 속에서 밥을 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공양간에서는 설거지를 할 수 있게 물을 담아두는 통이 지저분한 것과 식당 테이블 위에 먼지가 많은 것을 보고 “아무리 인도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까지 인도식으로 살면 안 되지 않느냐?”며 조금 더 깔끔하고 청결하게 생활할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 목공소nbsp▲ 공양간nbsp이렇게 학교 전체를 한 바퀴 다 돌고 나자 3교시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수업 중인 교실 모두를 한 번씩 들어가 보고 아이들의 학습 모습을 둘러보았습니다.nbspnbspnbsp수학 수업을 하고 있는 교실에서는 직접 스님이 문제를 내어 아이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테스트해 보았습니다.nbspnbsp▲ 1학년 교실nbsp그런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작은 수에서 큰 수를 뺄 때 일일이 작대기를 그어보면서 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스님은 작은 수에서 큰 수를 뺄 때는 앞자리 수에서 10을 빌려와야 한다고 개념을 설명해 주자 아이들은 그제서야 조금 이해가 갔는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특히 반마다 몇몇 아이들이 교과서를 잊어버리고 가져오지 않았거나 아예 분실을 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또 교과서를 함부로 다루어서 표지가 찢어지거나 지저분해진 경우도 많이 보였습니다. 한 두명이 아니라 반마다 이런 경우가 있어서 스님은 특별히 주의를 당부했습니다.nbspnbsp▲ 교과서를 분실한 아이nbsp또 화장실에 들어가보니 지린내가 진동했는데 아이들이 화장실 청소는 많이 꺼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 학교 화장실nbsp그리고 학교 건물이 지은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서 낡은 곳이 많았는데 스님은 리모델링 공사도 필요한지 검토해 보자고 했습니다.nbspnbsp4교시부터는 병원 2층 컬쳐홀에서 전교생이 모여 스님과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초등학교 전교생 350여 명이 자리에 앉은 가운데 학생들이 ‘나마스떼’ 하고 인사를 하자 스님이 말문을 열었습니다.nbspnbsp▲ 초등학생들과의 대화 시간nbsp스님은 각 학년별 인원 수를 확인한 후 올해로 수자타아카데미가 개교한지 몇 주년이 되는지 물어보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수자타아카데미가 생기게 되었는지 그 역사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nbspnbspnbsp“수자타 아카데미가 생긴 지 올해로 몇 년 됐는지 아는 사람 있어요? 내일 모레 기념식 할 텐데 몇 주년 기념식인지 몰라요?”nbsp“몰라요.”nbsp“개교 기념식이 몇 주년인지도 몰라요? 그냥 밥 먹는 날인 줄만 알아요?”nbsp“22주년입니다.” nbspnbsp“맞아요. 1994년 1월에 개원해서 올해 22주년이 되었어요. 제가 1993년도 12월에 이곳 둥게스와리를 방문했는데 아이들이 다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일요일이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래요. 그런데 왜 학교 안 가고 여기서 구걸을 하느냐고 했더니 학교가 없대요.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학교가 없다니 말이 되냐고 하니 정말 없대요. 그래서 이곳 유영굴을 참배하고 내려오면서 두르가푸르에서 마을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여기 근방에 몇 개의 마을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자그디스푸르, 두르가푸르, 방갈비가 이렇게 3개가 있대요. 몇 명이 사느냐고 물으니 두르가푸르에 400명, 자그디스푸르에 600명, 방갈비가에 300명이 산대요. 모두 해서 1,300명이나 사는데 어떻게 학교가 없을 수 있냐고 했더니 그래도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nbspnbsp‘무엇이 필요합니까?’‘학교가 필요합니다.’‘그러면 당신들이 학교를 지으면 되잖습니까.’‘우리는 가난해서 지을 수가 없습니다. 스님이 지어줬으면 좋겠습니다.’‘나는 인도 사람도 아니고 결혼도 안 했기 때문에 아이도 없는데 왜 내가 짓습니까? 이 아이들은 당신들의 아이들이니 당신들이 지어야지, 왜 나더러 지어달라고 합니까?’‘우리는 가난해서 그렇습니다.’‘그러면 학교 지을 재료를 주면 당신들이 짓겠습니까?’‘예, 그렇게 하겠습니다.’‘좋습니다. 마을에 땅이 있으면 내어주십시오.’nbsp그러자 10명이 땅을 1가타씩 내줬어요. 그게 초등학교를 처음 지은 자리예요. 그렇게 학교를 짓기 시작하면서 1994년 1월에 일단 개교를 먼저 했어요. 동네 아이들을 다 모아 보니 100명이 되었어요. 동네에 학교 졸업한 아이가 있는지 확인해봤더니 두르가푸르에서 한 명이 초등학교를 나왔대요. 또 고개 너머 까나홀에 사는 청년이 한 명 초등학교를 나왔어요. 그래서 이 두 명더러 선생을 하라고 해서 나무 밑에서 수업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1월달에 나무 밑에서 학교를 개원하고 수업을 하면서 학교 건물을 짓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그런데 학교를 짓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상카시아에 있는 청년들이 와서 공부를 가르치고 학교를 짓는 것을 감독하는 총책임을 맡았어요. 이렇게 해서 시작이 된 거예요.nbsp1995년도에는 강도가 들어와서 학교가 문을 닫았어요. 그래서 제가 와서 다시 열었어요. 그리고 아침 조례를 하면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쓰러졌어요. 의사선생님을 데려와서 건강상태를 확인해보니 영양실조가 심하대요. 의사선생님이 약보다 음식을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해서 점심 급식을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학생이 150명 정도 되리라 생각하고 교실을 만들었는데 급식을 하게 되니까 학생 수가 갑자기 300명이 됐어요. 그래서 또 건물을 2층으로 짓게 된 거예요.nbspnbspnbsp그래서 개교하고 3년 만인 1997년 1월에 초등학교 준공식을 했어요. 그때 또 강도가 들었어요. 2002년도에는 세번째 강도가 또 들어서 한국 사람 한 명이 죽기까지 했습니다. 설성봉 거사님 아시죠?”nbsp“예.”nbsp“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 이 학교가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처럼 여기 학교를 다닌 선배들은 이제 다 선생님이 됐어요.nbspnbsp왜 이렇게 사람이 죽어가면서까지 학교를 만들었을까요? 여러분들 공부하라고 그런 거예요. 그런데 아까 제가 교실에 가보니까 책도 집에서 안 가져오고 받은 책도 잃어버리는데 어떻게 공부해요? 여러분들에게 책도 주고, 공책도 주고, 옷도 주고, 신발도 주고, 다 무료로 지원해 주잖아요. 여러분들 부모님도 안 해주는 걸 왜 이렇게 해줍니까? 모두 여러분들 공부하라고 그런 거예요. 그러니 공부 열심히 해야 해요.”nbsp“예.”nbsp“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비록 어리지만 교실 청소도 해야 하고 학교를 깨끗이 해야 해요. 아까 화장실에 가봤는데 냄새가 심했어요. nbspnbspnbsp청소를 깨끗이 하고, 볼일을 본 뒤에는 물을 부어서 내려 보내야 해요. 책상 같은 것도 부러뜨리지 않도록 조심해서 써야 해요. 책도 그래요. 보면 깔끔하게 쓰는 사람도 있고, 벌써 다 찢어지도록 지저분하게 쓰는 사람도 있어요. 책을 깨끗하게 써야 해요. 이 하나 하나가 다 누군가의 도움에 의해서 만들어진 거니까요. 여러분들은 어리니까 남의 도움을 받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면 여러분도 이제 남을 도와야 해요. 집에서 동생들 돌볼 수 있죠?”nbsp“예”nbsp“그러니 앞으로 여러분들도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마을에 가서 동생 또래인 유치원 아이들을 돌봐야 해요. 그렇게 할 수 있어요?”nbsp“예”nbsp“초등학교 때는 그냥 도움만 받았지만 중학생이 되면 오전에는 어린 아이들을 돌보고 오후에는 공부해야 합니다. 할 수 있어요?”nbsp“예”nbsp“제가 아까 수업 시간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걸 봤는데 공부를 잘 하는지 못 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몇 가지 물어보니까 잘 몰라요. nbspnbspnbsp공부 잘 하는 방법을 지금부터 설명해줄 테니까 잘 들으세요. 우선은 아침 일찍 학교에 와야 해요. 수업 시작하기 1시간 전에 와서 오늘 배울 공부를 조금씩 다 확인해봐야 해요. 오늘 수학은 뭘 배우고, 힌디어는 뭘 배우고, 영어는 뭘 배우고, 사회는 뭘 배우는지, 오늘 배우는 부분에 대해서 예습을 해야 해요. 그래서 수업시간에 들어가면 선생님이 말씀을 하실 때 바로 알아들어야 해요. 뭘 배우는지 내가 미리 알고 준비를 해서 수업에 들어가야 선생님 설명이 머리에 딱 들어와요. 정신없이 놀다가 급하게 들어가면 선생님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못 알아들어서 멍해요. 그러면 집중도 안 되고 재미도 없어요. 그러니 미리 뭘 배울 건지 사전에 조금이라도 예습을 해서 들어가야 해요. 그래야 선생님이 수업할 때 집중이 됩니다. 첫째, 예습을 해야 한다는 말이에요.nbspnbsp둘째, 수업을 들을 때는 선생님 얼굴을 쳐다보면서 들어야 해요. 고개는 책상에 숙이고 귀로만 듣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설명하는 내용이 귀에 덜 들어와요. 선생님 말씀하시는 얼굴을 보면서 귀로 들어야 잘 들어와요.nbspnbsp셋째, 잘 모르는 게 있으면 손을 들고 질문을 해야 해요. 질문을 너무 많이 한다고 선생님한테 야단을 맞을 정도로 많이 해야 해요. 모르면서 그냥 넘어가면 안 돼요.nbsp넷째, 수업이 끝나면 바로 책을 덮어놓고 나가 놀지 말고 오늘 배운 걸 간단하게 복습해야 해요. 사무지가 헤?”nbsp“예.”nbspnbsp“네 가지를 설명했어요. 첫째, 예습을 할 것, 둘째, 수업시간에 선생님 얼굴을 보고 집중해서 들을 것, 셋째, 모르는 것은 반드시 질문할 것, 넷째, 수업이 끝나면 바로 복습을 할 것. 하루 수업이 다 끝나면 학교에 잠시 남아서 오늘 배운 것을 복습하거나 내일 배울 것을 예습해야 해요. 아니면 집에 돌아가서 오늘 배운 걸 복습하거나 내일 배울 것을 예습해야 해요. 집에서 바쁜 일이 있어 못 했으면 아침에 일찍 학교에 와서 어제 배운 걸 복습하고 오늘 배울 것을 예습해야 합니다. 그냥 수업만 한 번 들은 것에 비해 한 번 복습을 해서 배운 내용을 확인하면 기억력이 5배로 높아져요. 알았어요?”nbsp“예”nbsp아이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몇몇 아이들은 대답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대답을 안 하는 아이들만 골라 일으켜 세우고 다시 공부 잘하는 방법 네가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아이가 대답을 못하자 스님은 반복해서 다시 네가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러나 또 다시 질문을 하자 대답을 못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스님은 다시 반복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다섯 번을 반복하자 대부분의 아이들이 큰 목소리로 대답을 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4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님의 애정이 깃든 반복된 설명으로 아이들은 이 네가지 만큼은 꼭 명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공부, 학교, 불교 등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도 손을 드는 친구가 없었는데,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한 명이 뒤늦게 건의사항을 말했습니다. “컴퓨터를 배울 수 있게 주세요.”nbspnbspnbsp스님은 알았다고 하면서 선생님들과 논의해보고 결정하겠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지금은 태권도부, 댄스부가 특별반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컴퓨터를 배우고 싶어하는 요구도 많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점심식사는 스님도 아이들과 똑같이 인도 쌀에 사부지와 달을 버무려서 식사를 했습니다.nbspnbsp▲ 점심식사nbsp식사를 하면서는 쁘리앙카 교장선생님이 “학년마다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있는데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요?”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대답했습니다.nbspnbspnbsp“아무리 지능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초등학교는 졸업시켜 주어야 해요.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무조건 해주어야 합니다. 자기 이름 쓸 수 있고, 글을 읽을 수 있고, 더하기 빼기 같은 셈본은 할 수 있게 가르쳐주어야 해요. 아무리 저능아라고 하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기본적은 교육은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nbspnbsp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아이인데 공부를 안 해서 점수가 낮은 아이들은 낙제를 시켜서 다시 공부를 시켜야 하지만,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자꾸 낙제를 시키면 나이는 많은데 학년은 낮기 때문에 친구들과 못 어울려서 학교를 그만두게 돼요. 그래서 이런 아이들은 가능하면 학년을 정상적으로 올려주고, 가르쳐 주기는 하되 너무 공부에 압력을 주면 안 됩니다. 공부 말고 춤이나 노래나 다른 것을 자꾸 시켜보는 등 가능한 기술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 좋아요.”nbsp이렇게 문맹 퇴치를 위한 기본 교육을 강조하면서도 스님은 중학교부터는 조금 더 고급반을 편성해서 전문화된 교육을 해야 함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오후 2시부터는 중등학생들과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중등학생들은 오전에는 봉사활동을 하고, 오후에 수업을 합니다. 중학생 대부분이 9개 마을 유치원으로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산너머에 있는 마을 유치원 5개는 그 동네에서 교육 받은 부녀자들이 유치원 선생님을 합니다. 이 외에도 병원 파트, 급식 파트, 정원 파트, 목욕 봉사 파트에서 각각 한가지 소임씩은 맡아서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각 파트에서 누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하나 하나 다 확인을 했으며,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어느정도 책임감이 있는지 몇 가지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nbspnbsp▲ 중등학생들과의 대화 시간nbsp중등학생들은 모두가 이렇게 봉사활동과 학교 수업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다며 하소연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먼저 학생들의 이런 불평에 대해 확인을 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유치원 선생 역할도 해야 하고, 아이들 목욕도 시키줘야 하고, 정원도 가꾸어야 하고, 병원에 가서 일도 해야 한다고 공부할 시간이 없죠. 그래서 다들 불만이 조금씩 있죠?” nbsp“예.”nbsp“왜 불만인데요?”nbsp“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공부할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nbspnbsp“수자타아카데미가 생기고 나서 처음에는 남학생 3명, 여학생 4명이 초등학교를 졸업했어요. 1학년부터 시작한 게 아니라 다른 학교를 다니다가 중간에 왔으니까 3년 만에 졸업을 하게 된 거예요. 남학생 3명은 정부 중학교로 갔어요. 여학생 4명은 중학교에 못 갔어요. 그래서 저한테 중학교를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제가 못 만든다고 했어요.nbspnbsp‘초등학교까지는 우리가 뭐든지 무상으로 지원하지만 그 이상은 할 수 없어요. 저도 초등학교까지만 무상으로 다녔어요. 중학교부터는 아침에 우유를 배달하거나 신문을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 수입으로 학교를 다녔어요. 그렇기 때문에 중학교는 그냥 무상으로 해줄 수 없습니다.’nbsp그렇게 1년이 지나고 다음에 와보니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중학교에 못 간 여학생이 3명 더 생겼어요. 그래서 7명이 와서 저한테 울면서 중학교를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그때 마침 학교에 어린 동생들을 안고 오는 학생들이 많아서 문제가 생겼을 때예요. 그래서 제가 ‘초등학생들이 방해받지 않고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너희가 오전에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 그러면 중학교를 만들어 주겠다’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유치원과 중학교가 같이 생긴 거예요.nbspnbspnbsp그러니 수자타아카데미 중학교를 다니려면 반드시 그만큼 일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볼 수 있도록 여기 건물 1층에다가 유치원을 만들었어요. 그러자 여기가 멀어서 어린애들이 올 수 없는 다른 마을에서도 유치원을 지어달라고 했어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가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니까, 그 중학교에 입학해 공부하는 대신 유치원 선생을 하기로 한 겁니다. 그래서 유치원이 지금처럼 많이 생긴 거예요. 초등학교에서는 여러분들에게 옷도 주고, 신발도 주고, 책도 주고, 공책도 주고, 식사도 주고, 모든 게 다 무상이잖아요. 대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려면 여러분들도 어린 아이들을 돌봐야 해요. 유치원 다니는 조그마한 애들은 여러분들이 가르칠 수 있잖아요.”nbsp“예”nbsp“또 병원에도 돕는 이가 필요하니까 일부는 병원에 가서 돕게 된 거예요. 또 옛날에는 음식만 전문으로 만들어주는 요리사가 없었어요. 전부 중학생들이 음식을 만들어서 초등학생들에게 줬어요. 그러다 학생이 많아져서 이제 전문 요리사들이 오게 된 거예요.nbspnbsp그리고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나 대학교 가고 싶은 학생이 있으면 학비를 대주는 대신 여기서 초등학생을 가르치도록 해서 지금 학교가 운영이 되고 있는 거예요. 초등학생은 무상으로 다니고, 중학생은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고, 고등학생과 대학생은 초등학생을 가르치고,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중학생을 가르칩니다. 이렇게 우리가 서로 도우면서 학교가 운영되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남을 돕기 위해 이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지, 어떤 이익을 추구하는 게 없습니다.nbspnbsp그런데 최근 들어 정부 학교가 조금씩 운영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다 정부 학교에 가라고 학생들을 보냈습니다. 학교는 원래 정부가 운영해야 하는 거니까요. 사립학교는 개인이 돈 벌려고 운영하는 학교여서 학비가 비싼데, 우리는 학비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정부 학교가 운영이 되니까 전부 정부 학교에 가라고 보낸 거예요. 그래서 수자타아카데미가 학생이 제일 많을 때는 1,000명까지도 되었는데 정부 학교에 다 보낸 지금은 300명 정도 된 거예요. 여러분들이 이런 학교의 설립 취지를 알아야 해요.nbspnbspnbsp그러니까 수자타아카데미에 다닌다는 것은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면서도 남을 돕고 나도 또 배우는 거예요. ‘나는 이렇게 봉사하기 싫다’ 그러면 정부 학교로 가면 돼요. 이 주위에 정부 중학교도 있고 정부 고등학교도 생겼잖아요. 인터칼리지도 이제 생기고요. 매일 반나절 봉사하지 않으려면 그냥 거기 정부 학교에 다니면 돼요. 그러나 수자타아카데미에 다니려면 반드시 봉사하고 공부를 해야 해요.”nbsp수자카아카데미 중학교에서는 왜 봉사활동이 의무 사항인지 자세히 설명을 해주자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습니다. 불평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고 그 취지를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스님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두 가지 사항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중학생들은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인 동시에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병원에서 사람들을 돌보는 선생님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역할에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nbsp많은 질문과 건의사항들이 쏟아졌는데, 그 중에 한 학생은 컴퓨터 교실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그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수긍을 하면서도 얼마전 있었던 도난 사건을 예로 들며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습니다.nbspnbspnbsp“컴퓨터 교실을 만들어 주세요.”nbspnbsp“컴퓨터 교실은 만들면 좋지만, 교실에 놔둔 컴퓨터를 누가 가져가버리면 어떡해요?”nbsp“우리는 안 훔쳐갈 거예요.”nbspnbspnbsp“컴퓨터가 없어져서 주니어 선생님들이 지금 힘든 거 알잖아요. 선생님들도 컴퓨터를 가져가버리는데 어떡해요. 누가 가져가면 누가 가져갔는지 저한테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nbsp“예”nbsp“얼마전 선생님들 중에 컴퓨터 하나를 훔쳐간 것 다들 알고 있죠? 여기가 학교잖아요.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이렇게 물건을 훔치는 것은 좋지 않아요. 아무리 공부를 잘 가르쳐도, 물건을 훔치는 사람이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옳지 않아요. 그래서 그만두게 한 거예요. 누가 가져갔는지 알려주면 그 사람만 그만두면 되는데 다들 말을 서로 안 하니까 전체가 다 그만두게 됐어요. 자기가 순간적으로 갖고 싶어서 가져갔다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면 돌려줘야 합니다. 자기를 밝히지 못해도 돌려줄 수는 있잖아요.nbspnbsp바깥 세상에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만 여기는 학교잖아요. 또 가져간 사람이 선생님이잖아요. 그래서 이게 큰 문제가 된 거예요. 앞으로 여러분들이 필요한 건 컴퓨터뿐 아니라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옛날에는 학교에 총 든 강도가 들어와 다 가져가 버리기 때문에 못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건 없어졌어요.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 좋은 물건을 뒀을 때 누군가가 훔쳐가게 된다면 훔쳐간 사람도 문제지만 좋은 물건이 또한 문제가 되는 거예요. 컴퓨터 교육이 필요하다는 건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이 해결돼야 해요. 선생님들이 늘 보안을 신경쓰는 교무실 안쪽에다가 컴퓨터를 설치했는데도 그게 없어져 버렸어요. 그러니까 이건 문을 잠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어쨌든 여러분들이 컴퓨터 수업을 하게 해달라고 건의하니까 의논해 보겠습니다.nbspnbsp내가 순간적으로 욕심을 내면 모든 사람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이런 것은 여러분들이 잘 생각해야 해요. ‘내가 갖고 싶다’라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게 돼요. 그래서 부처님이 다섯 가지를 꼭 지키라고 했어요. 첫째, 남을 때리거나 죽이면 안 돼요. 둘째, 물건을 빼앗거나 훔치면 안 돼요. 셋째, 다른 사람, 특히 여성을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면 안 됩니다. 인도 남자들이 여자를 성추행해서 신문에 난 거 봤죠? 그것 때문에 전 세계에서 인도의 이미지가 많이 나빠져 버렸어요. 여성을 존중하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 강제로 그렇게 하는 것은 나빠요. 신문에 나서 알려진 것만 해도 1년에 몇 만 건인데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하면 훨씬 많아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절대로 이건 하면 안 돼요. 나는 잠깐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지만 당하는 여성은 평생 고통을 겪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남을 괴롭힐 아무런 권리가 없습니다. 넷째, 거짓말하거나 욕설해서는 안 돼요.nbspnbspnbsp다섯째, 술을 취하도록 마셔서는 안 됩니다. 동네에 술 마시고 취해서 행패부리는 사람 많죠. 여러분들 아버지나 오빠가 그러면 얼마나 힘들어요? 앞으로 안 마시는 게 제일 좋지만, 마시더라도 조금만 마셔야지 취하도록 마시면 절대 안 돼요. ‘홀리’ 때 한 잔씩 마시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절대 취하면 안 돼요.”nbsp학생들은 간절히 요청을 했지만, 스님 또한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얼마전 컴퓨터 도난 사건으로 인해 대학생 교사들을 모두 학교를 그만두게 했는데, 오계를 어긴 것에 대해서는 스님이 얼마나 단호한 입장을 갖고 있는지,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스님의 애정이 얼마나 큰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nbsp오늘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중등학생들과의 대화 모임을 모두 마쳤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학생들은 많은 것을 느낀 것 같았습니다.nbspnbsp스님은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앞으로 불러내어 용돈과 더불어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제작한 달력을 선물했습니다. 학생들은 스님이 주신 용돈과 달력을 받아들고 아주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달력과 용돈을 받고 기뻐하는 아이nbsp그리고 모두 계단 위에 서서 스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환하게 웃는 학생들의 얼굴 속에서 둥게스와리의 희망찬 미래가 보였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중학생들과 함께nbsp저녁 6시 30분에 예불을 모신 후 7시부터는 한국인 봉사자들만 모두 모여 실무 점검 회의를 했습니다. 모레 있을 22주년 개교기념식과 마을잔치 프로그램, 내외빈 선물 준비 상황, 행사 당일 식사 배분 계획, 인도인 스텝들과 함께 떠날 소풍 장소 선정, 산 너머 마을 유치원과 학교 방문 계획 등에 대해 각 담당자들의 보고를 듣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특히 스님은 회의를 마치면서 앞으로 학교를 월급 시스템으로 운영할지 자원봉사 시스템을 더욱 확대해 갈지에 대한 장기적 전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제 문맹 퇴치는 거의 마무리되었다고 봅니다. 이제 다음 단계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일반 학교에서 이제는 기술학교로 갈 것인가, 문화예술체육을 가르치는 특별학교로 갈 것인가, 아예 고급 사립학교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을 고민해서 세 가지를 겸하거나 한 가지를 선택하거나 해야 합니다.nbspnbspnbsp학교 스텝들의 월급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인도 사람들의 월급이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어요. 월급 시스템으로는 정토회의 설립 취지를 살릴 수 없어요. 그러나 마을 청년들이 먹고 살아야 하는 생활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스텝으로 일하되 월급은 없고, 그러나 주택, 식량, 보건 의료 문제 등은 보장되는 시스템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연구가 필요합니다.nbspnbsp제가 처음 시작할 때는 건축 노동자들도 월급을 주지 않고 봉사자로 참여했습니다. 필요하면 식량만 나눠주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한국에 다녀오면서 가야에 있는 대학교수에게 일을 맡겨 두었는데 그 사람이 귀찮으니까 전부 월급 시스템으로 바꿔 버렸어요. 한 명도 월급 주는 직원이 없었는데 지금은 선생님들만 월급 시스템이 아니지 건축 노동자들은 다 월급 받는 직원이 되어버렸잖아요. 이렇게 해서 자꾸 봉사 시스템에서 월급 시스템 쪽으로 점점 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우리가 가고자 하는 이상은 아닙니다.nbspnbspnbsp한국에서 봉사자들을 충분히 파견할 수 있으면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인도 사람들을 봉사자로 키워서 배치를 시킬 수 있으면 극복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파견할 봉사자도 부족하고, 현장에서 교육시켜서 봉사자 확보하는 것도 안 되고 있는 가운데 현상 유지는 계속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가난한 마을이지만 봉사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여기에 관건이 달려 있습니다.nbspnbsp결국 우리들이 어떤 방침을 세울 건지의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정토회의 원칙은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다’입니다. 적어도 우리들의 생활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느 절을 가도 다 주방 아주머니를 고용해서 식사 문제를 해결하잖아요.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요. 이 원칙까지 포기하고 살 것 같으면 굳이 정토회를 만들 이유가 없잖아요. 그냥 기존 절로 가서 살면 되지요. 안 그렇게 살려고 정토회를 만든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식사는 여러분들이 당번을 정해서 하도록 하는 겁니다.nbspnbsp부처님이 하인을 두고 살지는 않으셨잖아요. 출가하기 전에는 하인을 많이 두고 살았는데, 출가한 뒤에는 평생 동안 하인을 두고 살지 않으셨어요. 물론 아난다 존자가 시봉을 했지만 그것은 하인이 아니라 같은 수행자로서 시봉을 한 것이지 월급을 주고 종을 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nbspnbspnbsp여기서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은 신분사회에서 종을 부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자나 신분사회에서의 종이나 사실은 같습니다. 사람을 돈으로 부리느냐, 신분을 갖고 부리느냐의 차이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해야 된다, 안 된다’ 하는 얘기가 아니고 ‘우리의 기본 정신도 살리면서 현실도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내일 더 점검해 보고 의논해 봅시다.”nbspnbsp현재 수자타아카데미 운영에 관련된 스님의 깊은 고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마을 리더들, 학교 스텝들과 미팅이 있기 때문에 더 현황을 파악해보면 좋은 방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며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오늘은 교실도 둘러보고, 학생들도 만나보고, 학교 문제와 관련해 회의도 하는 등 학교 운영에 대해 충분히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에 전정각산을 넘어가 마을 유치원과 분교를 방문해 마을개발 상황을 살펴보고, 오후에는 학교 스텝들, 마을 리더들과 연이어 미팅을 가질 예정입니다.nbsp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는 인도 불가촉 천민 마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수자타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nbspnbsp
2016.1.31 (인도 26일째) 석가족이 운영하는 불교 학교 방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석가족이 운영하는 불교학교를 방문하여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 후 이따와에서 가야로 기차를 타고 16시간을 이동했습니다.nbspnbsp어제 스님은 상카시아에서 석가족 청년회 회원들과 회의를 한 후 청년회 회장인 수바스지의 집에서 하룻밤을 주무셨습니다. 아침에는 짜이 한 잔과 식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수바스지 가족과 기념사진을 찍고 감사 인사를 한 후 집을 나왔습니다.nbspnbsp▲ 수바스지 가족과 함께nbsp오늘은 특별히 수바스지의 어머님도 함께 배웅을 나와서 오랜만에 가족 사진을 함께 찍었다며 모두들 기뻐했습니다.nbspnbsp아침 9시에는 석가족 청년회의 멤버 중 한 명인 ‘미끄람지’가 운영하는 불교학교가 있다고 해서 방문했습니다. 학교를 둘러보기에 앞서 먼저 미끄람지의 집에 들러 아침 식사를 대접 받았습니다.nbspnbsp▲ 석가족 청년 ‘미끄람지’의 아침 식사 초대nbsp아침 식사를 하며 학교의 규모나 운영 현황에 대해 간단히 얘기를 들은 후 학교로 향했습니다. 학교 이름은 ‘다이나믹 퍼브릭 스쿨’. 힌디어 과목을 제외하고 전 과목을 영어교과서로 수업을 하는 학교로 현재 350여 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으며, 정부 학교가 아닌 사립 학교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이 교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 다이나믹 퍼브릭 스쿨nbsp학교 운영자인 미끄람지가 스님께 꽃목걸이를 걸어주자 큰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이어서 아이들이 나와 환영의 마음을 담은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nbspnbsp▲ 환영의 노래를 불러주는 학생들nbsp스님은 아이들의 환영에 환한 웃음을 보이며 앞으로 나와 학생들을 위해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나마스떼. 일요일인데 나왔어요? 일요일에 집에서 놀아야 하는데 스님 때문에 나오게 돼서 불편하겠어요.”nbsp“아니오, 좋아요.” nbspnbsp“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한국 알아요? 한국은 중국의 동쪽, 일본의 서쪽에 있어요. 일본과 중국 사이에 있어요.nbspnbsp여러분들이 사는 인도는 5천년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나라입니다. 세계 최고 문명이 4군데가 있는데 첫 번째가 이집트문명, 두 번째가 메소포타미아문명, 그 다음이 인더스문명, 마지막이 중국의 황하문명이에요. 인더스문명은 세계 4대 문명 가운데 하나예요. ‘모헨조다로하라파’ 유적에 대해서 들어봤을 거예요. 델리에 있는 국립박물관 가봤어요?“nbsp“아뇨.”nbspnbsp“델리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들어가면 제일 첫 번째로 보게 되는 전시관이 인더스문명관이에요. 다음에 꼭 가보세요. 인더스문명은 4,500년에서 5,000년 전의 문명이에요.nbsp그리고 3,500년 전에 아리안족이 인도로 들어왔어요. 강가강 유역의 힌두스탄평원으로 들어와 브라만문명을 일으켰는데 브라만문명의 마지막 시기인 2,600년 전에 부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부처님은 지금의 네팔 땅인 카필라바스투에서 태어나셔서 지금의 비하르주인 마가다국의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으셨어요. 부처님의 법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서, 여기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한국까지 전해졌습니다. 약 2,000년 전의 일이에요. 인도의 ‘아유디아’라는 곳 알아요?”nbsp“예”nbsp“2,000년 전에 아유디아 왕국의 공주님과 스님이 배를 타고 한국까지 왔어요. 공주님은 한국의 임금님과 결혼을 했습니다. 지금 한국 사람 10명 중 1명, 즉 10퍼센트가 그 후손들입니다. 한국과 인도는 2,000년 전부터 그만큼 교류가 있었습니다.nbspnbspnbsp지금부터 1,300년 전인 78세기 경에는 날란다대학이 세계에서 가장 큰 대학이었어요. 그때 한국의 혜초 스님이 날란다대학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이렇게 인도와 한국은 옛날부터 교류가 있었습니다.nbspnbsp한국과 인도는 지금 다시 아주 긴밀하게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게 뭐 있어요? KPOP 알아요? 태권도 알아요? 태권도 할 줄 아는 사람 여기에 없어요? 올림픽 종목 가운데 하나예요. 현대 자동차는 알아요? LG, 삼성은 알아요?”nbsp“예”nbsp“모두 한국 회사예요. 한국은 옛날에는 큰 나라였는데 지금은 조그마한 나라가 됐어요. 인도가 파키스탄과 분리되었듯이 한국도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어요.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람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해외에 많이 나가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공부를 많이 해서 인도 안에서도 훌륭한 사람이 되고, 유럽이나 아메리카나 한국 같은 외국에 가서도 활동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공부해야겠어요, 놀아야겠어요?”nbsp“공부해야 해요.”nbsp이렇게 간단히 인도와 한국의 교류에 대해 이야기를 한 후 스님은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기 저기서 학생들이 손을 번쩍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첫번째 학생은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음식이 무엇이고 그 재료는 무엇인지 질문을 했고, 스님은 김치, 비빔밥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아마도 요리에 관심이 많은 학생 같았습니다. 두 번째 학생은 한국의 유명한 명절에 대해 질문을 했고, 스님은 설날, 추석, 부처님오신날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한국은 부처님오신날이 휴일이라고 하자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세 번째 학생은 한국에 너무 가보고 싶은데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질문했고, 스님은 간단하게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네 번째 학생은 이곳 다이나믹 퍼브릭 스쿨 학생들을 위해 좋은 말씀을 들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네 번째 학생의 질문에 대해 학생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익이 된다고 답하면서 ‘공부를 잘하는 방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여기 학생들을 위해서 한 마디 해주세요.”nbsp“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게 많을 거예요.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놀고도 싶고, 좋은 옷도 입고 싶고, 게임도 하고 싶겠죠. 그러나 여러분들이 10년이 지난 뒤에 지금을 돌아보면 ‘아, 그때 그것을 더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 걸’하고 제일 크게 후회하는 것이 공부일 겁니다. 그러니 지금은 공부를 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공부하기 싫죠? nbspnbspnbsp하기 싫어도 미래를 위해서 해야 해요. 지금 좋다고 미래도 좋은 게 아니에요. 지금은 노는 게 좋지만, 미래에는 손해예요. 그러나 지금 공부하는 건 당장은 좀 힘들어도 미래에는 큰 이익이 됩니다.nbsp그러면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예습을 해야 합니다. 오늘 뭘 배울 건지는 알고 가야 선생님 말씀이 머리에 쏙쏙 들어와요. 공부할 내용을 미리 다 알고 가라는 게 아니라, 뭘 배울 건지를 파악하고 수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거예요.nbspnbspnbsp두 번째, 선생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해요. 고개 숙이고 소리만 듣지 말고, 눈으로 선생님을 보면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nbspnbsp세 번째,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질문을 해야 해요. 질문을 많이 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귀찮아서 야단을 치더라도 계속 물어야 해요. 질문을 해서 알아야 내 것이 돼요.nbspnbsp네 번째, 수업이 끝난 뒤에는 복습을 해야 해요. 배운 것을 한 번 더 확인하면 기억력이 5배로 높아집니다. 그래야 배움이 효과적이에요.nbspnbsp이렇게 공부하면 공부를 조금 해도 잘 할 수 있어요. 공부를 하는 게 재미 있어야 합니다. 막 궁금해서 안달이 날 정도가 되어야 해요. 좋아하면서 공부를 하면 집중력이 생깁니다. 집중하면 기억력이 훨씬 높아져요.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면 시간을 아무리 많이 쏟아 부어도 효과가 안 나요. 사무지가 헤?”nbsp“예스” nbsp스님이 인도말로 ‘사무지가 헤?’ 라고 하자 아이들은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박수를 쳤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은 학생들, 선생님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똘망똘망한 아이들의 눈망울 속에 활력이 가득 느껴져서 참 좋았습니다.nbspnbsp▲ 학생들과 함께 기념사진 촬영nbsp스님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석가족 청년인 ‘미끄람지’를 격려해 준 후 마당 가운데에 불상이 조성되어 있어서 불상을 참배한 후 학교를 나왔습니다.nbspnbsp예정된 기차 출발 시간보다 늦게 기차역에 도착했는데, 다행히 기차가 연착이 되어서 한참을 기다린 후 기차에 탑승했습니다. 기차역에는 석가족 청년들이 나와 스님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특히 다이나믹 퍼브릭 스쿨을 운영하는 미끄람지는 학교 수업을 뒤로 하고 기차역까지 쫓아와 스님께 부인이 싸준 점심 도시락을 전달해 주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 점심 도시락을 건네는 석가족 청년들nbsp그러면서 보시금도 스님께 전달했는데, 인도 사람들이 스님께 보시를 하는 것은 처음보는 모습이어서 잠시 놀라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기차 타고 가면서 일행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사주겠다”며 감사히 보시금을 받았습니다.nbspnbsp▲ 이따와에서 가야로 가는 기차nbsp스님이 기차에 올라타자 수바스지와 석가족 청년들은 손을 흔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20년이 넘도록 인연을 맺어오고 있는 석가족 청년들의 스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작별 인사를 하는 석가족 청년들nbsp이따와역에서 오전 11시 30분에 출발한 기차는 안개 때문에 서행을 반복하며 4시간이 연착이 되어 새벽 3시 30분에 가야역에 도착했습니다. 무려 16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스님은 감기 기운이 있다며 약을 먹고 대부분의 시간을 주무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수자타아카데미에서 공동체생활을 하고 있는 행자님들과 발우공양을 함께하는 것을 시작으로 오전에는 학교와 병원을 둘러본 후 초등학생들을 위해 법회를 하고, 오후에는 중등학생들을 위해 법회를 할 예정입니다. nbspnbsp※nbsp2016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nbsp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분들은 지금 신청하세요.nbspnbsp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