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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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3 2016년 정토회 시무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2016년 새해를 맞아 ‘정토회 시무식’에 참석해 정토행자들이 새해에 가졌으면 하면 마음자세에 대해 법문 했습니다.nbspnbsp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친 후 아침 7시부터 조찬을 시작으로 각종 회의와 미팅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12시에는 지난 30년 동안 정토회 법사단과 실무자들을 물심양면으로 응원해 주고 계신 연화회 노보살님들이 공동체 전체 성원들을 식사 초대했습니다.nbspnbsp▲ 연화회 노보살님들의 식사 초대nbsp식당에 모인 공동체 성원들을 향해 먼저 스님이 간단히 오늘 식사 초대의 취지를 말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희 정토회는 원래 1인당 1만원 이상 되는 음식은 안 먹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노보살님들이 1년에 한 번만 허락해 달라고 특별히 요청을 하셔서 이곳 식당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드시기 바랍니다.”nbsp이어서 스님이 직접 노보살님들 한 분 한 분을 소개한 후 대표로 한 분에게 소감을 물었습니다. 노보살님은 스님께 특별히 건의를 드리고 싶다며 이야기를 했습니다.nbspnbsp“스님, 법사님, 여러 실무자님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그냥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올해 한 해도 활기찬 한 해가 되시고,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스님에게 특별히 건의드리고 싶은 것은 노인네들이 1년에 딱 한번 공양을 올리고 싶어 하는데 그러지 말라고 자꾸 야단을 치셔서 한 번도 마음 편하게 식사 초대를 못했어요. 정말입니다. 스님이 자꾸 식사 초대를 하지 말라고 그러시면 앞으로는 스님 모르게라도 식사 대접을 해드릴 겁니다.” nbspnbsp노보살님들의 간곡한 요청에는 지난 수십 년 간 헌신하며 살아온 공동체 대중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웃으며 답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율에 얻어먹기만 하고 식사 초대에는 가능한 가지 말라고 되어 있어요. 부처님이 식사 초대에 응하지 말라는 말씀은 안 하셨어요. 너무 자주 가지 말라고 했거든요. 그러니 노보살님들이 1년에 한 번씩 이렇게 대접해 주시는 것은 앞으로도 응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노보살님들의 극진한 마음에 공동체 대중들은 감사한 마음을 느끼며 큰 박수로 고마움을 표했습니다.nbspnbspnbsp절에서 검소하게만 음식을 먹던 대중들은 오랜만에 풍족하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스님은 식사 초대를 해주신 노보살님들에게 직접 사인한 야단법석 책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nbsp오후 3시에는 정토회 수도권 자원활동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2016년 시무식이 열렸습니다. 시무식이 일요일에 진행되다 보니 주간부 활동가 뿐 아니라 청년부, 저녁부 활동가들이 다수 참가하여 법당이 꽉 찼습니다. 공동체, 수도권 대의원, 행정처, 수도권 지부사무국, 서울정토회 활동가들 220여 명이 함께했습니다. 시무식 연례 행사로 자리잡은 부서별 명심문 발표시간을 위해 옷색깔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뛰어 웃음을 짓게 했습니다.nbspnbsp▲ 2016년 정토회 시무식nbspnbsp삼귀의, 반야심경을 봉독한 후, 정토회 대표 이기혜 님의 인사말씀에 이어 소설가 김홍신 님과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장 조민 님의 새해 덕담이 있었습니다. 김홍신 님은 “곧고 바르게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무작정 달려간다고 잘 산 게 아니더라고요. 때론 한눈 파는 것도 좋아요” 라며 “새해에는 통일운동, 참자유, 이런 것에 대해 마음껏 한눈을 팔아보자”고 위트있는 제안을 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nbspnbsp▲ 소설가 김홍신 작가님nbspnbsp소설을 쓰기 위해 관상 공부를 한 적 있다는 작가님은 관상은 생긴 대로가 아닌 그 사람의 분위기라고 하면서 “지금 관상을 바꾸려면 꽤 괜찮은 데에 한눈 팔면서 살면 됩니다. 정토회와 통일의병에 한눈 팔아서 참자유를 느끼는 한해가 되세요”라고 말해 대중들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법륜 스님을 모시고 신년 법문을 청해들었습니다. 새해 첫 희망편지에 붉은 해돋이 사진과 함께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라는 메시지로 많은 이들에게 힘찬 기운을 불어넣어준 스님을 새해 들어 처음으로 뵙는다고 생각하니 대중들도 모두 설레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사실 매일 매일이 새로울 게 없는 똑같은 날이지만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면 새로울 수 있다며 새해에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활동에 임했으면 좋겠는지 재미있게 들려 주었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새해맞이 잘 하셨습니까?”nbsp“네.”nbspnbsp“2016년 새해를 맞아 오늘 첫 업무를 시작하는 시무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매년 이렇게 새해를 맞이하는데 과연 새해란 무엇일까요? 자연적인 현상으로 보면 매일매일 똑같은 날이니 하나도 새로울 게 없어요. 태양이 새 태양인 것도 아니고, 지구가 새로운 지구도 아니고, 공기가 새로이 맑아지거나 나무가 새로이 푸르러진 것도 아니고, 사실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도 매일매일 어제를 그제같이 살았고, 오늘을 어제같이 살고, 내일을 오늘같이 살아가고 있으니 이 또한 새롭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nbsp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은 새로울 수 있습니다. 어제까지 괴로워하며 살다가 오늘부터 행복하게 산다면 새로워진 게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어제까지 온갖 얽매임 속에서 속박받고 살다가 오늘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산다면 새로운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nbspnbsp이처럼 달력의 숫자가 아닌 마음이 새로워져야 새해라고 할 수 있는데, 즐겁던 마음이 괴로워지는 것으로 바뀌었다면 새해라고 할 수 없어요. 괴롭던 마음이 즐거워지고 얽매인 마음이 자유로워진다면 새해 새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늘 사는 게 똑같다 보니 우리가 오늘처럼 특정한 하루를 새해 새날로 정해 ‘오늘부터 나도 한번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보겠다’, ‘나도 업식에 끌려다니던 지금까지의 삶에서 벗어나 업식에 끌려가지 않는 삶, 내가 업식을 굴리는 삶을 살아보겠다’하고 다짐을 하는 게 새해 새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nbsp이렇게 새해 새날에 새로운 각오를 하지만 1년을 살고 돌아보면 각오 하나 안 하나 어느덧 헌 날이 되어 버려요. 그렇다고 몇 번을 해도 늘 마찬가지라는 이유로 포기할 일은 아닙니다. 안 되는 건 이미 지나간 거예요. 올해부터, 오늘부터는 그래도 변화의 희망을 가지고 다시 도전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희망이 없다면 삶이 다른 동물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결과적으로는 그 전과 비슷해졌다고 하더라도 늘 시작은 희망을 가지고 임해보세요. 그렇게 해서 잘 되면 다행이지만 안 되면 또 새롭게 시작해볼 수 있으니 그것 역시 실망할 일이 아닙니다.nbspnbsp그래서 오늘 우리들은 지난해보다는 올해, 어제보다는 오늘 더 자유롭고 더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원을 세워야 하고 결과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과거의 경험 중 좋았던 경험은 살려내서 계속 이어가고, 과거에 어리석어서 실수했거나 실패했거나 과오를 저질렀던 경험은 한탄하는 대신 경험 삼고 뉘우쳐서 다시는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는 쪽으로 다시 시도해볼 수 있어야지요. 새해의 시작에는 이런 다짐을 해야 합니다. 오늘 시무식을 맞는 여러분들에게도 새로운 마음,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nbsp이어서 스님은 어떻게 하면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 스님의 어릴적 경험을 들려주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어떻게 하면 좀 더 자유로워질까요? 작년에 먹던 밥을 올해는 안 먹고, 작년에 자던 잠을 올해는 안 자고, 작년에 입던 옷을 올해 안 입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또 작년에 하던 일을 올해 안 하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하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서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전과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이 밥을 먹고 똑같이 잠을 자고 똑같이 일상을 살아가지만, 이 삶이 남에게는 똑같이 보이더라도 나에게는 좀 달라야 해요. 좀 더 행복해야 하고 좀 더 자유로워야 합니다.nbspnbsp제가 어릴 때 산에 소를 먹이러 가서 놀던 경험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산에 풀어놓은 소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지키면서 너무 멀리 가면 더 못 가게 하고, 가까이 있으면 옆에서 놀아요. 제일 편한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지만, 가만히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장난을 치고 놀아요. 예컨대 소나기가 퍼부어서 길에 물이 흐르면 온 힘을 다해서 작은 댐을 만듭니다. 돌을 가져와 쌓고 흙을 퍼 와서, 몇 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지만 아주 견고한 댐을 만들어요. 그러다가 집에 갈 때가 되면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던 댐을 허물어요. 댐을 허물어서 갇혀 있던 물이 콸콸 흘러내려가는 걸 보면서 박수를 치고 기뻐하고, 남은 흔적까지 발로 이리저리 다 밟아 없애버린 뒤 소를 찾아서 내려갑니다. nbspnbspnbsp이게 수행에서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가 노동을 하는 것도 이와 똑같습니다. 놀이든 노동이든 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노동을 한 것은 항상 성과물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지만, 놀이는 그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모래 위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다가도 놀이가 끝나면 그려놓은 그림을 발로 밟아버리고 돌아가요. 놀이와 일의 차이가 거기에 있어요.nbspnbsp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예쁜 댐을 하나 만들었다, 모래사장에 예쁜 그림을 그렸다는 결과에 집착을 하면 그건 어린아이가 하든 어른이 하든 일이 되어버립니다. 아이가 하든 어른이 하든 끝날 때 발로 밟아버리고 갈 일이라도 하더라도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혼신을 다해서 할 때 그 일이 놀이가 됩니다. 놀이라고 해서 대강 하는 게 아니에요. 놀이도 온 힘을 다해서 죽기살기로 해요. 그런데 그게 놀이가 되는 것은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nbspnbsp그 과정에서, 즉 돌을 가져오고 둑을 쌓고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하며 언성도 높아지지만 놀이는 의견이 달라도 일과 달리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놀이에도 집착하면 놀다가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요. nbspnbsp그러니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놀이가 되어야 해요. 밥 먹고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더 좋으면 그냥 쉬세요. 아무 일도 안 해도 돼요. 그런데 그렇게 심심하게 노는 것보다는 여기 와서 같이 놀아보는 것도 좋잖아요. 이제까지 아무도 해결 못 했던 통일이라고 하는 큰 과제를 우리가 놀이삼아 한번 해보는 거예요. 등산도 그렇잖아요. 아무도 못 올라가봤다는 높은 산을 보고 ‘한번 올라가볼까?’ 하고 올라가는 거예요. 올라가려면 힘들어요. 한번 올라갔다고 해서 거기서 안 내려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힘들게 올라왔는데 왜 내려가’ 하고 정상에 그냥 앉아 있을 건 아니잖아요. 올라가면 다 내려오는 거예요. nbspnbsp똥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그렇습니다. 음식 재료 사와서 요리해서 꼭꼭 씹어 먹어서 소화해서 따끈따끈한 똥 한 무더기를 만들어내기까지 드는 노고가 굉장합니다. 그런데 ‘똥 누고 뒤도 안 돌아본다’라는 말이 있어요. 결과물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시장 보는 과정이 즐겁고 요리하는 과정이 즐겁고 먹는 과정이 즐겁고 소화시키는 과정이 즐거운 거예요. 이 모든 과정에서 이미 에너지를 다 쓰고 재미를 다 누린 뒤에 나오는 똥은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이란 건 늘 과정은 온데간데 없고 그 찌꺼기에만 연연합니다. 복 달라는 말은 곧 똥 달라는 말이에요. 복 짓는다는 말은 ‘똥은 개가 먹든 누가 가져가 밭에 뿌리든 알아서들 해라. 나는 장보고 요리하고 음식 먹고 소화하는 걸 하겠다’라는 뜻입니다. 깊은 산속에서도 똥을 누면 똥파리가 모여들 듯, 원래 복에는 온갖 똥파리들이 복 달라며 덤벼들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그건 그들에게 주고 우리는 이 복을 짓는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nbspnbsp그게 일과 수행의 통일이에요. 일 절반 하고 수행 절반 하고, 한 손은 일하고 한 손은 수행하고, 아침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수행하는 게 아니라 일을 놀이처럼 하는 게 일과 수행의 통일입니다. 일을 놀이화하는 게 노동의 해방이에요. 노동 안 하는 게 노동의 해방이 아니라, 노동을 놀이처럼 하는 게 노동의 해방이에요.nbsp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요지는 삶이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게 재미있어야 해요. 힘이 안 든다는 뜻은 아닙니다. 노는 것도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nbspnbspnbsp그러나 놀이는 힘들어도 기쁨이 있고, 놀고 난 결과라는 건 없어요. 일과 놀이의 차이가 그것입니다. 놀이는 그 과정이 소중한 것이고 일은 그 결과가 소중한 거예요. 새해에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일을 놀이처럼 하길 바랍니다. 다시 말해 그냥 노는 것보다 일하고 노는 게 더 재미있어야 해요.nbsp직장생활을 하든, 결혼생활을 하든, 한 끼의 음식을 먹기 위해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든, 정토회에서 청소를 하든, 통일운동을 하든, 전법을 하든, 설법을 하든, 개인의 삶이 무엇이든 이렇게 접근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육체적으로 피곤할 수 있고, 몸이 너무 아파서 못할 수도 있어요. 노는 것도 너무 아프면 못 놉니다. 어지간히 아픈 정도로는 친구들이 부르면 나가 놀아요. nbspnbsp그럴 때 일하러 가자고 하면 아마 안 나가겠지만, 노는 건 나가 놀다 보면 어지간히 아픈 것도 좀 나아집니다. 그런데 많이 아프면 나가 놀자고 해도 못 놀아요. 그러니 아프면 쉬어야 해요.nbspnbsp그러나 많이 아프고 적게 아프고를 떠나, 삶이란 게 늘 놀이같이 되어야 스트레스를 안 받아요. 실컷 놀고 나서 논다고 받은 스트레스를 푼다며 또 놀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여러분은 일을 힘들게 하니까 스트레스를 풀려면 또 놀아야 하는 거예요. 일이 곧 놀이가 되면 특별히 노는 시간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어요. 육체적으로 피로하면 잠시 쉬면 되고, 배고프면 좀 먹으면 되고, 졸리면 좀 자면 되는 것 외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뭔가 또 새로운 놀이를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남이 보면 놀지도 않고 내내 일만 한다고 하지만, 내내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내내 놀고 있기 때문에 따로 놀 필요가 없어서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편이 굳이 결과를 따진다면 일의 효율성도 높아지고 스트레스도 덜 받습니다.nbspnbsp다만 놀이도 너무 집착하면 싸움 날 수도 있고 병이 날 수도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좋은 것도 너무 집착하면 안 돼요. 놀이도 너무 과하면 병이 나는 것과 같아요. 그러나 놀이는 일보다는 두 배쯤 열심히 해도 어지간해서 병이 안 납니다. 심리적으로 거부하는 것을 노력해서 억지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일은 노력을 하기 때문에 힘들어요. 그러나 노는 것을 노력해서 놀지는 않습니다. 만화책을 보려고 엄청나게 노력하는 사람은 없어요. 자기가 좋아서 노는 건 놀지 말라고 해도 몰래 숨어서 놉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늘 노력한다고 해요. 노력하는 게 좋은 게 아닙니다. 노력한다는 말을 들으면 저는 ‘얼마나 하기 싫으면 노력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nbspnbspnbsp노력할 게 없어야 해요. 일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자기 의미를 가지고 한다면 특별히 노력하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에요. 집중할 것이 없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중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면 저절로 집중이 돼요.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나 영화를 볼 때는 부모가 밥상 차려놓고 불러도 모르다가 소리질러야 겨우 귀에 들어오는 거예요.nbsp그렇게 새해에는 삶이 좀 더 행복하고 자유로워지기를 바랍니다. 누가 간섭을 하지 않아야 삶이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에요.”nbsp어릴 때 소나기가 내리면 계곡에 가서 온 힘을 다해 돌을 쌓아 댐을 만들었다가 집에 갈 때는 다 허물어 버리며 기뻐했다는 스님의 이야기에 무척이나 공감이 갔습니다. 죽기살기로 열심히 논 기억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스님 말씀대로 일을 놀이화, 삶을 놀이화하면 최고로 행복한 삶이 될 것 같습니다. 대중들은 올 한해 신나게 놀아보겠다고 다짐을 한 듯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통일의 기운이 시기적절하게 도래하고 있다며 이 시기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재미있게 일해보자고 당부했습니다. nbspnbsp“사회적인 이런저런 일이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터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가 그 내부의 압력이나 요동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예측이 돼요. 세상이 복잡하다는 말은 세상이 정말 복잡하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에요. 내 고정관념으로는 세상이 이해되지 않으니까 세상이 복잡하다고 느끼는 거예요. 내가 이해하게 되면 세상은 하나도 복잡하지 않습니다.nbspnbsp이치를 안다는 게 지혜입니다. 밝은 지혜로 보면 복잡할 게 없습니다. 늘 날씨 변하듯이 세상이 요동을 치는 것뿐입니다. 날씨가 춥거나 덥다고 꼭 나쁜 게 아니에요. 썰매 타려면 날씨가 추워야 하고 수영하려면 날씨가 더워야 도움이 되듯이 세상의 요동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겨울에 수영하려 들면 날씨가 안 받쳐줍니다. 여름에 썰매 타려고 하면 엄청난 돈을 들여 시설을 만들어야 해요. 그러나 하려는 일을 적절한 시기에 맞춰서 하면 그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nbspnbsp그래서 첫째, 우리가 뭘 원하는지가 확실히 있어야 하고, 둘째, 세상의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잘 살피고 맞추어서 해야 합니다. 원해서 무조건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변화를 완전히 거스르기는 어렵지만 적절히 맞춰서 조금 당기고 조금 늦추는 것은 크게 힘 안 들이고 가능합니다. 봄에 조금 일찍 파종하면 조금 일찍 먹을 수 있는 것과 같아요.nbspnbsp입춘이 지나면 봄이 오는 줄 우리가 모를 뿐이지 봄은 서서이 오고 있듯이, 통일의 기운은 지금 시기적절하게 도래하고 있어요. 그러나 통일은 봄처럼 가만히 놔둬도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봄이 와도 곡식을 안 심으면 싹이 나지 않고, 아무리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와도 곡식을 가꾸지 않으면 추수할 게 없습니다. 아무리 여건이 좋아지고 환경이 유리해진다 해도 곡식을 심을 때 심고 거름을 줄 때 주고 김을 맬 때 매고 수확할 때에 수확할 수 있듯이 우리가 그 변화에 맞추어 적절히 대응해야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어요. 또 상황이 받쳐주지 않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겨울에 아무리 곡식을 심고 노력해도 수확할 것이 없는 것과 같아요.nbsp새해에는 여러분들의 개인사도 그렇고 정토회가 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일들도 그렇고 얼굴에 웃음기를 잃지 말고 일을 하세요. 여러분을 보면 좋은 일 한답시고 엄청나게 인상 쓰면서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nbspnbspnbsp짜증내가면서 싸워가면서 합니다. 그런데 대중이 볼 때는 일을 조금 못 해도 웃는 걸 훨씬 중요하게 여겨요. 인상쓰고 일하는 게 효율적인 것 같아도 안 그래요. 괴로운 사람들이 여기 오면 좀 행복해진다고 홍보해서 모아놨는데 막상 와보니 행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엄청 인상쓰면서 말 하잖아요. 자기는 엄청나게 괴로워하면서 입으로는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하면 앞뒤가 안 맞으니까 찾아왔던 사람들도 떨어져 나갑니다. 설명이 좀 부족하고 뭔가 서툴고 미숙하더라도 우선 찡그린 얼굴을 펴는 게 중요해요.nbspnbsp그러나 인상만 편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왕 만드는 것이니 장난감이라도 좀 잘 만드는 게 좋잖아요. 결과에 연연하면 ‘어차피 대충 쓰고 버릴 장난감인데 잘 만들면 뭐하고 못 만들면 뭐해?’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걸 잘 만들려고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얻는 행복은 대충대충 하면서 얻는 행복과는 차원이 달라요. 늘 대충대충만 해 와서 열심히 할 때 얼마나 기분 좋은지를 잘 모르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온전히 몰두했을 때 얼마나 삶이 행복한지 몰라요.nbspnbspnbsp최선을 다하되 집착이 없어야 합니다. 정토회 시무식이니까 올해는 정토회에서 각자 맡은 일을 팽이 만들고 연 만들듯 진짜 명품으로 만들어보세요. 밥을 먹는지 안 먹는지도 모를 정도로 몰두해보세요. 그렇게 하고 있으면 부모님은 ‘밥도 안 먹고 뭘 하냐? 그걸 해서 밥이 생기냐, 돈이 생기냐?’라고 야단들입니다. 저도 그런 꾸중을 많이 들었어요. 우리가 하는 걸 보고 남들은 ‘그거 해서 돈이 되냐, 뭐가 되냐? 아무 것도 안 되는 걸 굳이 왜 네가 나서서 하냐?’라고 하지만 그건 남들의 시각입니다. 어린아이는 그 순간 몰입해서 만드는 게 중요하지, 그게 뭐가 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세상 사람의 평가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런 재미를 잘 몰라요.nbspnbsp그래서 우리가 세운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되 그게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걸 더 세심하게 다듬는 게 피곤하지 않고 재미있어야 해요. 앞뒤 순서를 짜고 효과를 살펴서 조정하는 모든 과정이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조금만 이야기하면 ‘골치 아프고 피곤한데 꼭 그렇게 해야 합니까? 대강 하면 되지요’라고 합니다. nbspnbsp어떤 프로그램 하나를 짜더라도 어떤 노래가 앞에 가고 뒤에 가느냐에 따라 사람들 기분이 달라져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게 재미있어야 하는데 골치 아파하니까 발전이 안 되고 늘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거예요. 늘 하면서 성공했던 실수했던 잘했던 못했던 ‘이번에는 이렇게 해보고 다음에는 저렇게 해보자. 야, 이러니 낫네’ 이렇게 평가해서 조정하고 살피는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들 일하는 재미를 잘 모르고 노는 재미만 아는 것 같아요. 일을 놀이화할 때 일하는 재미가 있습니다.nbsp이 정도 되면 새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요? 확실히 지금까지와는 다른 해가 될 겁니다. nbspnbspnbsp세상이 어떻고, 삶이 어떻고, 남편이 어떻고, 아내가 어떻고, 그런 이야기를 만 번 해봐야 나에게 아무 도움이 안 돼요. 세상이 그렇다면 이런 세상을 어떡할 겁니까? 그냥 놔둘래요, 바꿀래요? 바꾸려면 어떻게 바꿀래요? 이런 가정에서 내가 태어났는데 어떡하겠어요? 여기서 그냥 울고 살래요, 아니면 여기서도 웃으면서 살래요?nbspnbsp‘그래, 그렇다. 그런데 어떡할래?’ 이건 결국 내 선택이에요. 남의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이고 내 삶이기 때문이에요. 여기 앉아서 우는 것보다는 웃는 게 낫고, 주저앉아 있는 것보다는 장애를 극복하는 게 낫잖아요. 그런 자세로 임한다면 정토행자라 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nbspnbsp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니 새해에는 정말로 신나게 일해봐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일었습니다. 모두 크게 공감하며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대중들은 소중한 가르침을 들려 준 스님에게 새해를 맞이하여 세배를 올리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법당이 빈틈 없이 꽉 차 있어서 대중들은 세배 대신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며 스님에게 “사랑합니다”를 외쳤습니다. 200여 명의 하트 세례를 받자 스님은 환한 웃음을 하며 합장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 삼배 대신 스님에게 하트를 만들어 보이는 대중들nbsp다음은 기다리던 부서별 명심문을 퍼포먼스로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난해는 법륜 스님의 통일의병 강연 20강을 비롯한 국내외 즉문즉설 103강과 1, 2차 통일의병대회를 통한 1,813명의 통일의병 배출, 천일 통일 기도를 시작하는 등 통일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한 해였습니다. 2016년은 그 마음이 모여서 큰 나무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박차를 가하고 통일의병, 나아가 세계시민으로서의 의식을 더욱 고양하는 나날이 될 것 같습니다. 퍼포먼스에서는 2016년을 준비하는 이런 각 부서의 힘찬 결의들이 가득 묻어 났습니다.nbspnbsp첫 순서로 공동체 식구들이 나왔습니다. “병신년”을 목에 걸고 “외세”, “종북몰이” 등과 힘겨루기를 해서 물리치는 모습을 재미있게 연출한 뒤, “병신년을 통일년으로”라는 구호를 외쳐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nbspnbsp▲ 공동체 식구들의 병신년을 통일년으로 퍼포먼스nbsp다음은 수도권 대의원들이 나와 미래에 통일이 된 이후 어느 학교의 역사수업 장면을 상상해서 연극으로 표현했습니다. 한국전쟁 모습, 집회에서 물대포를 쏘는 장면을 자료화면으로 보여 준 뒤, 통일을 이룬 사람들은 이렇게 싸우지 않고, 손가락 운동을 잘 해서 마침내 통일을 이루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nbspnbsp▲ 수도권 대의원들의 손가락으로 통일을 퍼포먼스nbspnbsp“선생님. 그 분들 혹시 마술사예요?”하고 학생이 질문하니 선생님은 “아니야. 자기가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걸 알고 있는 평범한 시민이야. 자 통일 의병들이 활동했던 역사 현장으로 가볼까?”라고 안내했습니다. 그러자 직장인, 주부들이 나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을 흉내 내며 총 없이 손가락으로 통일을 이루었다는 것을 재미있게 표현해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청년대학생들이 나와 평화 통일은 우리가 이룩하겠다는 의지를 독수리 오형제 노래에 맞춰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고, 서울제주, 강원경기동부, 인천경기서부 지부사무국, 서울정토회 순으로 재미있는 발표가 계속 이어졌습니다.nbspnbsp▲ 청년대학생들의 독수리오형제 퍼포먼스nbspnbsp특히 서울정토회에서는 70여 명의 활동가들이 모두 나와 “서울에서 평양까지”라는 노래에 맞춰 통일기차를 만들어 법당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노래 가사처럼 경적을 울리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신명나게 달려보는 그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 서울정토회의 서울에서 평양까지 기차놀이 퍼포먼스nbspnbsp마지막에는 행정처 활동가들의 신명나는 풍물놀이가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풍물도 흥이 났지만 개사한 가사가 좋아서 더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nbspnbsp▲ 행정처 활동가들의 풍물놀이nbspnbsp“흙수저가 똘똘 뭉쳐 금수저가 되면은 한반도 새날이 찾아올까.nbsp어야디야 어기야디야nbsp♬nbsp통일의 나라 언제오나. 정토회에 딱 붙어서 우리 모두 주인 되면 통일의 새나라 밝아온다. 어야디야 어기야디야nbsp♬nbsp통일아 어서 오소.”nbspnbsp통일을 주제로 한 부서별 각오가 어느 해보다 뜨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한 도반은 “자알 놀았습니다. 올해는 이렇게 노는 기분으로 일하면 되겠어요.”라며 오늘 스님의 시무식 법문에서 얻은 기운을 쭉 이어갈 것을 다짐했습니다.nbsp마지막으로 다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가자 통일로”를 외치는 대중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오늘 퍼포먼스 발표 준비를 다들 얼마나 재미있게 했는지, 스님이 앞서 법문에서 강조한 ‘일과 수행의 통일’, ‘일의 놀이화’를 첫날부터 바로 실천한 기분이었습니다. nbspnbspnbsp이렇게 시무식을 마치자 곧바로 떡국 공양이 나왔습니다. 대중들은 떡국을 한그릇씩 먹으며 오늘 시무식 참가 소감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정겨운 대화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nbspnbsp▲ 떡국 공양nbsp이어서 스님은 곧바로 2층 다담실로 이동해 오는 1월말에 결혼하게 되는 청년정토회 이효상 국장과 진주정토회 강다영님으로부터 삼배로 인사를 받고 격려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리는 날 스님은 인도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결혼식에 참석 못하는 대신 ‘스님의 주례사’ 책을 사인해서 선물로 준 다음 가볍게 덕담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 결혼을 앞두고 인사를 하러 찾아온 청년정토회 이효상, 강다영님nbsp“첫째로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편을 서로 이해하는 것이예요. 자기 요구, 자기 생각만 하면 천하 누구와 같이 살아도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고, 상대편을 이해하고 살면 천하 누구하고도 같이 살 수 있으니까 이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nbspnbsp두 번째는 두 분 다 정토행자이기 때문에 결혼을 하든, 하기 전이든, 삶이 여일해야 합니다. 인도에 가면 음식은 다른 것을 먹되 사는 것은 똑같고, 미국에 가면 문화가 조금 다르되 사는 것은 똑같듯이, 결혼 하고 안 하고에 관계 없이 내가 세운 원은 그대로 지속이 되어야 해요. 원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수행자가 속퇴를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진을 해나가야 하는데, 속퇴를 하면 수행을 그만둔다든지 하면 수행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세운 원은 그대로 가져가고, 둘이 살든 혼자 살든 그것은 삶의 조건이 바뀌는 것일 뿐이라는 자세를 딱 가졌으면 합니다.”nbspnbsp스님의 따뜻한 격려 말씀에 두 사람은 큰 목소리로 “예”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두 사람과 같이 기념 사진을 찍어 준 후 “행복하게 사세요” 라고 악수를 건넸습니다.nbspnbspnbsp저녁에는 내일 인도로 출국하기 전에 사회 인사 몇 분들과 미팅을 가진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부터 2월7일까지는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해외 일정을 가질 예정입니다. 우선 내일은 인도로 들어가는 길에 방콕을 경유하여 가는데, 방콕에서는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해줄 예정입니다. 그리고 1월 6일부터는 인도성지순례가 시작됩니다...※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1.04. 56,589 읽음 댓글 57개

2016.1.2 실무자 수련 2일째 (활동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실무자 수련 2일째를 맞이하여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정토회의 사회 활동 전반에 대해 함께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치고 아침 7시에 두북 정토수련원에 도착한 스님은 어제에 이어서 실무자 수련 2일째 시간을 함께 가졌습니다. 어제는 주로 개인 수행과 관련해서 스님께 묻고 답하는 시간이었다면 오늘은 사회 활동 전반에 대해 스님께 건의하고, 조언을 듣고, 방향에 대해 이야기 듣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 두북 정토수련원nbsp먼저 스님은 “어제는 바다와 산에 다녀와서 피곤했는데 눈치도 없이 늦게까지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잘들 주무셨어요?” 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어젯밤 잠을 충분히 자서 그런지 대중들이 환한 얼굴로 “네”라고 대답하자 “피곤하면 언제든지 이야기하세요. 쉬어 가면서 할게요” 라며 곧바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많은 질문과 대답,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건의를 하고 답변이 돌아오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또 정토회의 중요한 역사적 자료들을 어떻게 안전하게 보관할 것인지, 사회적으로 노인층이 점점 많아지는데 이 분들이 어떻게 자원봉사를 많이 하도록 할지, 청년들이 활력있게 활동할 수 있게 해주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각종 사고가 일어났을 때 위기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중이 점점 많아지는데 교육 시설을 어떻게 마련해 갈지, 시민사회 단체들과는 어떻게 연대를 해나갈지, 야권이 분열되는 한국 정치 형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남북관계 단절로 창고에 쌓여가고 있는 북한 구호물품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통일의 필요성을 알리는 컨텐츠 제작 방안,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통일의병들을 더욱더 확대 모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 갖가지 건의사항, 질문, 대답이 오갔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통일 운동에 대한 건의사항과 질의응답이 가장 열띠게 이뤄졌는데요. 그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특히 청년들은 통일의 혜택을 가장 많이 입는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통일에 무관심한 세대가 되어가고 있는데, 스님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사회 활동을 하면 좋을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청년들은 통일 문제 보다는 오히려 일반적인 정치나 사회 영역 쪽으로 접근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통일 문제를 보는 접근방식도 달리 해야 할 것 같아요. 스님의 통일 강의를 들으면 통일의 필요성은 다 이해하지만 본인들이 지금 겪고 있는 현실 문제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 듯합니다.nbsp또 투표율 현황을 보니까 거의 전국 모든 지역, 모든 선거에서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이 투표를 제일 안 하더라고요. 19세는 첫 투표기 때문에 오히려 투표를 많이 하는데,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이 전 연령층에서 가장 투표율이 떨어지는 걸 보니 그만큼 정치적인 관심이 확실히 적은 것 같아요.”nbsp“그렇게 따지면 일반인들이 청년들보다 이해하고 움직이기가 더 어렵죠. 아이 키우고 직장 생활하고 은퇴 고민하는 등 개인의 현실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하잖아요. nbspnbspnbsp20대 초반이 지금 보수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현재 25살 정도까지는 8년 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할 때 중고등학교를 다닌 학생들이 올라온 세대인데, 이 세대가 북한에 대해 굉장히 반감이 큽니다. 정부와 언론에서 계속 북한을 악의 축으로 묘사했던 시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으니까요.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20대 전체가 반북 정서를 소지해 더욱더 보수화될 수 있습니다.nbspnbsp30대는 조금 사회의식이 높은 편이고, 40대 정도 되면 진보적인 성향이긴 해도 현재와 같은 운동권 진보로는 안 되겠다는 의식이 있고, 50대부터는 운동권이든 아니든 이미 보수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양하겠지만 연령별 전체 분포는 현재 대체로 그런 것 같아요.nbsp그래서 지금까지와 같은 사회운동적인 진보의 관점으로는 청년들 다수의 관심을 끌어서 역동적으로 움직여가기에는 지금의 시대 상황과 좀 안 맞아요. 어떤 방식과 어떤 지향을 가지고 활동할 때 청년들이 자기 요구와 사회적인 희망을 가지고 사회운동에 동참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전에는 우리 세대만 해도 나름대로 사회혁명적인 열기가 있었어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 우리나라를 한번 자유로운 나라로 만들어보자, 통일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대학 다니는 사람들이 농촌에 내려가거나 공장에 가서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대는 그런 분위기가 거의 없어진 상태예요.nbspnbsp그렇다고 지금의 젊은이들이 꿈이 없지는 않습니다. 어떤 것들이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꿈인지를 발견하고 개발해야지, 기존의 진보적 개념만 가지고 마냥 계속하면 지금 청년들과는 안 맞을 겁니다. 청년들의 사회 활동은 이런 걸 고려해서 이끌어야 해요.nbsp또 말로는 다 같은 청년이라고 하지만, 자라온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지금 25세 이하와 25세 이상 사이에 인식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납니다. 청년정토회에 동참하겠다고 오는 사람들이 주로 25세가 넘지요? 대부분 30대 초반이라고 알고 있습니다.nbspnbsp교육이 잘못되는 등 여러 가지 요인 때문에 청년들이 문제가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며칠 전에는 이런 견해도 들었어요. 평균 수명이 60살에서 80살로 늘어났기 때문에 청년들의 평균 연령이 20살에서 30살로 높아졌대요. 그래서 우리가 보통 말하는 ‘성인’의 기준을 20살에서 30살로 높여야 한다는 거예요. 전체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연령대를 높여서 봐야지, 자꾸 20대 청년들이 문제라고만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였어요. nbspnbsp이렇게 될 때 발생하는 문제는 신체와 정신의 성장 사이에 간극이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신체는 옛날보다 생육이 빨라 15세쯤에 이미 성인의 몸이 되는데, 사회적으로는 성인이라는 책임의식을 30살에 둔다면 육체는 어른인데 정신적으로는 무책임한 상태가 15년이나 지속되는 셈이잖아요. 그러면 성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부터 시작해 모든 분야에서 굉장한 사회적 문제가 새롭게 발생할 거예요. 신체적 성인이 되면서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줘야 하는데 그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거예요.nbsp그래서 우리가 지금 통일하자는 것만 내세워서는 안 돼요. 8년 전 광우병 촛불시위 때도 시위가 불붙는 과정을 보면 자기의 건강이라고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와 연관되어 움직였습니다. 그게 훼손된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문제의식까지 갔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시작은 자기하고 연결된 것이니까 움직였잖아요. 그런 전례를 참고하면 우리가 지금 하는 통일운동도 통일이 내 건강, 내 아이, 내 가족 등 나의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주는 방법을 고민하고 개발해야 합니다. 막연히 국가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이 문제가 나와 당장 어떻게 연결되느냐, 즉 좀 더 가까이 와 닿도록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다면 좀 더 많은 대중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nbsp“예를 들어 ‘통일되면 연애할 수 있다’ 이런 구호를 만들어 볼까요? 통일이 안 되면 당장 내 가정에, 내 자녀한테, 나한테 어떤 손해가 생긴다는 걸 쉽고 재미있게 보여줘서 설득하면 어떨까요?”nbsp“손해가 생기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인데다가 지난 50년간 통일 안 되고도 이미 잘 살았다는 게 문제예요. 지난 50년간 통일 안 된 상태에서도 다 시집장가 가고, 경제도 발전하고, 정치도 민주화되고, 안보도 튼튼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통일에 관심이 없어요. 앞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을 위기가 왔는데 위기의식을 못 느끼는 이유는 과거의 성공적인 경험 때문입니다.nbspnbspnbsp통계를 보니 2014년도 세계 무기 수입 1위가 대한민국이었어요. 그것도 세계 전체 무기 수입액의 10퍼센트가 넘어요. 전 세계 무기 수입액이 약 781억 달러인데 우리나라가 78억 달러, 즉 9조 2천억원을 썼습니다. 2014년도에 계약이 이루어진 건을 따지면 그래요. 그 전에도 3, 4위를 유지하면서 항상 5060억 달러는 쓰다가 이번에 1위가 되었는데, 그 78억 달러 중 70억 달러가 미국산 무기를 수입하는 데 들어갔습니다. 원화로는 8조원이에요. 이 정도 돈이면 지금 이야기하는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실현뿐 아니라 청년 실업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부분은 좀 구체적으로 연구를 해야 해요. 10조 정도의 돈이면 우리 사회의 복지문제나 어떤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예측을 보여주며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으로 인해 들어가는 국방비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면 어떤 걸 할 수 있는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해요.nbspnbsp지금 정부가 거액으로 사들이는 무기의 대부분이 미국산이라는 점도 주목할 점이에요. 지금 사드 배치도 결국에는 돈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드 배치를 안 하는 대신 첨단무기를 엄청나게 수입해줘야 미국과 타협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겁니다.nbspnbsp얼마전 한일간 위안부 문제 타결도 사실은 미국의 집요한 요구에 의해서 이루어지다시피 한 겁니다. 국제 여론들은 모두 미국과 일본이 이익을 봤다고 평가하거나, 한국이 그동안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 있다가 이번에 완전히 미국 쪽으로 끌려온 셈이라고 평가합니다. 일본 내에서도 ‘우리는 돈 10억 엔 말고는 손해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조롱조의 기사도 나왔을 정도예요.nbsp그러니 이런 문제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접근해야 해요. 통일문제와 관련해서 칼럼을 쓰고 여러 곳에 공유하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그럴 때 칼럼 내용이 너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정확해야 합니다.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식으로 감정적으로 접근하면 안 돼요.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건 좋지만 이 사안에서는 뭐가 문제고, 뭐가 잘못됐고, 관점이 어떻게 됐다’는 식으로 짚어나가야죠. 신문에서도 ‘부녀가 대를 이어 나라를 말아먹었다’ 이런 감정적인 기사를 쓰면 안 돼요. 이웃 나라와 계속 싸울 수는 없는 거잖아요. 이웃 나라와 협력해서 나아가야 하는 건 맞는데, 이런 식으로 타협하는 게 과연 민족적인 자존심이나 역사의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맞느냐를 따져야 합니다. 가령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지난 몇 년간 한일 관계를 완전히 파탄내서 일본에서 일던 한류 열풍도 다 죽여놓았을 정도로 몰아붙여 놓았는데 겨우 돈 100억 원 받으려고 그랬냐?’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거예요. 타협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지만, 그 동안 위안부 문제를 내세워서 한일 관계를 엄청나게 악화시켜 놓고 그 결과로 지금 굉장한 걸 얻은 양 굴지만 실제로는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nbspnbsp또 이렇게 타협할 수 밖에 없다면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여 먼저 상황을 알려드리며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받으려고 했지만 현 일본정부 하고는 타협이 안 되니, 이 정도 선에서 한일 관계를 정상화시키고, 완전한 문제 해결은 다음 정부 또는 역사에 맡기자.”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또 돈을 받기 보다는 그 정도 돈이라면 우리 정부가 대신 지불하고, 배상 문제는 역사적 미해결로 남겨 두어야 하지 않았을까 해요.nbspnbspnbsp이처럼 ‘국제사회의 암투’라는 소용돌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고 앞으로도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될 겁니다. 지금은 중국과 미국이 경쟁하는 구도 속에서 일본이 미국 편에 붙어 있고 우리가 거기에 끼어있는 형국이라 우리는 대통령을 욕하지만, 사실 미국은 우리 나라 대통령을 의심해서 완전히 포위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거든요. 그러니 이 외교 전쟁이 간단하지가 않아요. 특정인물 한 사람을 욕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과거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 끼었던 것처럼 지금은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 낀 여기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해요. 미국의 한 대통령 후보는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을 위해서 여러 가지를 도와줬는데 한국은 우리를 위해서 해주는 게 뭐가 있느냐’라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잖아요. 미국 안에서도 ‘안보 무임승차’라는 여론이 일어나고 있어서 우리는 앞으로 돈도 더 내야 하고 무기도 엄청나게 사야 할 거예요.nbsp이런 식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처럼 한미관계를 계속 이어가면 앞으로는 득 볼 일이 거의 없고 오히려 옛날 득 봤던 걸 내놓으라는 압력에 시달리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남북 간의 대치가 우리에게 굉장한 장애로 등장하게 될 거예요. 지금 이것은 총만 안 들었을 뿐 거의 전쟁과 다름없어요. 그래도 민주주의 사회니까 미국은 한국 대통령이 자기 말을 안 들으니 총 대신 국민 여론을 움직이려 하는 겁니다. 그러자면 보수를 증강시켜야 하는 거예요. 지난번에 이야기 들으니까 7대 종단 수장을 미국대사가 불러서 대화란 이름으로 설득하는 일도 있었다고 해요. 종교계 최고 지도자들을 그것도 대사가 한꺼번에 대사관저에 부른 겁니다. 이건 일제 강점기에 총독부가 할 법한 일이에요. 그러니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문제에 있어서는 한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자주적 한미 관계로 재정립 해야 합니다.nbspnbsp이런 걸 국민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으니 국민들에게만 의지해서는 통일운동이 좀 어려워요. 국민이 이런 문제에까지 각성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은 복지 등 국내의 문제에만 관심이 있으니까요.nbsp지금 북한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가운데서도 핵개발을 계속 하고, 한국은 북한 핵개발을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무기를 사들입니다. 그러면 북한은 남한의 이런 엄청난 무기 확산에 대응해서 핵개발이든 생화학무기 개발이든 미사일 준비든 더욱더 많이 해야 하고, 남한도 또 거기에 대비해서 또 증강을 해야 해요. 이렇게 악순환을 거듭하다 보니 남북 간의 군비증강 경쟁이 굉장히 과열되어 있어요. 일본과 중국 사이뿐 아니라 남북 간에서도 긴장이 계속 증폭되고 있어요.nbspnbsp북한 핵무기의 실질적 위협보다는 이런 긴장이 더 큰 불안요소입니다. 북한 핵무기 보유량이 얼마로 추산되고 핵무기 소형화에 성공했다는 둥 미국에서 자꾸 과장되게 발표해서 한반도 안전에 긴장을 고조시키니까 신무기 구입에 대한 우리 전체의 여론도 거기에 따라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국회에서 야당도 반대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지는 거예요. 반대하면 ‘안보를 외면한다’는 비난을 들으니까 다들 동조하지 않을 수 없어요. 정치라는 건 전부 여론에 의해 이루어지는 여론전이니까 정치인이 그걸 넘어서서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정치인들이 투철한 애국심을 갖고 있으면 괜찮겠지만 다들 자기 야망을 갖고 정치를 하고 있으니까요.nbspnbspnbsp북한을 포용한다는 것도 사실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2천만 명이나 되는 인구가 이미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70년을 살아왔어요. 이 사람들이 지금 그냥 다 몰려오면 국가적 부담이 엄청날 테니 어떻게 조율하고 의견을 맞추어 상호 협력해나갈지 고민해야 해요. 자칫 잘못하면 ‘분단된 채 사는 게 낫다’라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거든요. 이런 문제를 감당하려면 정치적 역량이 대통령 한 명 정도로는 안 됩니다. 지자체와 국회의원들은 물론 전체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이 높아져야 이 문제가 감당이 되고, 나아가 상승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겁니다.”nbsp스님과 대화를 주고 받다 보니 점점 더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많은 점들에 대해 실무자들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nbsp엊그제 송년회에서 2016년 새해는 통일을 향한 교두보를 마련하는 해로 만들자고 다함께 뜻을 모았는데,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우리들이 정말 많은 일들을 해나가야겠고, 다른 시민 단체와의 연대도 모색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긴 시간의 토론은 오후 3시가 되어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아니 시간이 부족해서 더 논의하지 못하고 마쳐야 했습니다. 스님은 “다음에 또 이런 자리를 가져보자”고 하면서, 연말 연초에 수련에 열심히 임해 준 실무자들을 다시 한 번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nbsp실무자들도 지난 8일 동안 수행의 원칙과 활동 방향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전해 준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삼배를 올렸습니다.nbspnbspnbsp사홍서원을 끝으로 실무자 수련을 모두 마친 후 대중들은 언양에 가서 스님이 사주신 저녁 식사를 맛있게 먹은 후 서울과 문경 각각의 처소로 향했습니다.nbspnbsp▲ 회향식nbsp스님도 저녁 8시가 다 되어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아무튼 오늘 하루는 통일운동을 어떻게 더 국민적으로 확산시킬지, 특히 청년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어떻게 이끌어낼지, 많은 연구 과제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들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아래에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nbspnbsp내일은 2016년 정토회 시무식이 서울 정토회관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nbsp

2016.01.03. 35,615 읽음 댓글 44개

2016.1.1 새해 일출, 실무자 수련 1일째 (수행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동해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서 수행공동체 정토회에서 상주하고 있는 실무자들과 함께 2016년 새해 첫 일출을 함께 본 후 기림사, 오어사, 나원리 5층석탑을 찾아가 발원 기도를 하고, 저녁에는 수행과 관련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새벽 예불과 기도, 아침 식사를 마치고 새벽 6시 20분에 두북 정토수련원을 출발한 공동체 대중 일동은 해가 뜨기 30분 전인 7시 무렵에 동해 바닷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nbsp인파가 몰리는 유명한 곳을 벗어나 비교적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가 해가 뜨기를 기다렸습니다. 예상보다 날씨가 따뜻해서 추위에 떨지 않고 정겹게 대화를 나누며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아침 7시 40분, 드디어 해가 손톱만큼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가 탄성을 지르며 환호했습니다. 정말로 2016년 새해가 밝은 것입니다. 모두들 가슴 속에 소원 한 가지씩은 떠올렸을 텐데, 정토회 실무자들이다 보니 대부분 남북의 평화통일을 간절히 발원했을 것입니다.nbspnbspnbsp자연스럽게 손을 맞잡고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불렀습니다. 익숙한 노래이지만 오늘만큼은 더욱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불러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터” 등 노래들을 열창하며 기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nbspnbspnbspnbsp모두가 설레임을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 스님이 공동체 대중들을 위해 새해 덕담을 들려주었습니다. 스님은 깨달음과 통일을 일출 보는 것에 빗대어 아주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해뜨기 전에 늘 그 징조로 여명이 먼저 밝아오지요. 그처럼 이미 통일의 여명은 밝았다고 nbsp할 수 있지만, 아직 해가 보이진 않았어요. 원래 해뜨기 직전에는 해가 잘 안 보이다가 ‘안 뜨려나’ 싶을 때 쑥 올라옵니다. 통일도 그렇게 오지 않을까 해요.nbspnbsp깨달음도 그렇게 옵니다. 딱 그만둬버리고 싶을 때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지만 안 돼요. 3년 내내 붙어 있다가 도저히 안 돼서 완전히 그만두고 돌아서면 그 순간 해가 뜹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가면 뜨고, 안 가면 계속 안 뜹니다. nbspnbspnbsp뜨기를 기대하면서 하면 안 되고 무조건 그냥 해야 생각지도 않은 어느 순간에 떠요. 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올해 통일의 해는 아직 눈에는 보이지 않고 지금의 여명처럼 뜰 듯 말 듯 해서, 가버리는 사람들도 꽤 생길 거예요. nbspnbspnbsp그래서 제가 붙어만 있으라고 늘 이야기합니다. 새해에는 모두 건강하십시오.”nbsp스님의 유쾌한 덕담에 모두들 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각 부서별로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어떤 분은 오늘 스님과 찍은 사진을 사무실 책상 앞에 꽂아 두겠다며 무척 좋아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새해 일출을 본 후 곧바로 ‘기림사’로 향했습니다. 경주 함월산 자락에 위치한 기림사는 ‘임정사’라고 불리우던 절을 신라 643년에 원효 스님이 중창을 하면서 기원정사에서 ‘기’자를 따와 ‘기림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원효 스님과 인연이 깊은 절입니다. 특히 임진왜란 때는 전략적 요충지라 승병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라고 합니다.nbspnbsp▲ 기림사nbsp특히 스님은 임진왜란 때 무기를 보관하던 곳을 가리키며 “산에 있는 절이 대부분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이유는 일본 사람들이 볼 때는 산이 전부 군사기지로 보였기 때문” 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nbspnbspnbsp경내에는 감나무가 몇 그루 보였는데, 아직 따지 않은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어 운치를 더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대적광전으로 들어가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간절히 통일 발원 기도를 했습니다. 세 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어서 한 번은 “나무 비로자나불”을 염하고, 한 번은 “나무 아미타불”을 염하고, 마지막 한 번은 “나무 약사여래불”을 염하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온 정성을 기울여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nbspnbspnbsp다음은 포항 근교에 위치한 ‘오어사’로 향했습니다. 오어저수지를 옆에 끼고 길가에 주차한 수많은 차들을 지나 깊숙이 들어가니 오어사가 나타났습니다. 원효대사와 혜공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실 때 서로의 법력을 겨루고자 개천의 고기를 한 마리씩 삼키시고 변을 보았는데 한 마리는 죽고 한 마리는 살아서 힘차게 헤엄치는 것을 보고 서로가 자기 고기라고 해서 나 ‘오’, 고기 ‘어’자를 써서 ‘오어사’라 명명했다고 합니다.nbspnbspnbsp천도재를 지내고 있어서 대중전 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하고 먼 발치서 둘러보고 있는데, 스님은 “이곳은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이라고 하면서 절벽 꼭대기에 있는 작은 암자를 가리켰습니다.nbspnbsp▲ 절벽 꼭대기에 있는 것이 오어사 자장암nbspnbsp성큼성큼 걸으니 금새 암자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오어사의 산내 암자로서 ‘자장암’이라 이름 붙어져 있었습니다. 깍아지른 기암 절벽을 이루는 바위 봉우리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듯한 모양새로 지어져 있었습니다.nbspnbsp자장암으로 올라가는 산길에는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 있어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옛말에 한겨울에 꽃이 피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있듯이 상서로운 징조를 보니 새해에는 우리 나라가 통일을 향해 진일보하는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감도 가져 보았습니다.nbspnbspnbsp자장암에서 내려다 보니 오어사를 감싸 안은 오어지의 큰 호수는 경치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nbspnbspnbsp법당, 삼성각, 요사, 보탑을 차례로 둘러본 후 법당에 들어가 간절한 마음을 담아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며 통일 발원기도를 했습니다.nbspnbspnbsp높은 절벽 위에 세워져 하늘과 가까운 곳이라서 그랬는지 누구라도 이곳에서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면 모두 성취가 된다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합니다. 암자의 신도님들이 스님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자 스님은 “영험있는 곳이라서 해서 통일 기도를 하러 왔다”며 웃음을 보였습니다.nbspnbspnbsp다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한 후 스님은 대중들에게 오어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어사에는 신라의 4대 고승이 머물렀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요. 우리가 잘 아는 자장, 원효, 의상, 혜공, 네 분이 있죠. 원래는 저수지가 아니라 깊은 계곡이었어요. 그런데 저수지로 막으니까 물이 고여서 물 아래의 절경들이 모두 수장되어 버렸습니다. 옛날부터 경치가 아주 좋아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제가 학창 시절에 수련을 하기 위해서 권선을 하러 다녔는데, 그 때 와 본 기억이 있어요.”nbsp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나원리 5층탑을 찾아가 참배하고 역시 다함께 통일 발원 기도를 했습니다.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다니느라 다소 지친 대중들을 향해 스님은 “통일을 하려면 지극정성을 기울여야지” 하며 웃었습니다.nbspnbsp▲ 나원리 5층탑nbsp나원리 5층탑은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지만 국보 제39호로 지정된 유물이었습니다. 보기 드문 거대한 규모인데다가 각 부의 구조도 정연하고, 비례도 아름다우며 다소 높은 둔턱에 세워져 있어 주위를 압도하는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어릴 적에 이 탑을 그냥 ‘백탑’이라고 불렀다고 소개해 주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정말로 빛깔이 빼어나게 하얀 것 같았습니다.nbspnbsp마침 오후 햇살이 포근하게 비춰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곳곳을 찾아가 정성껏 기도한 공덕으로 새해에는 통일의 초석이 튼튼히 다져지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이렇게 오늘은 가는 곳곳마다 통일 발원 기도를 했는데, 스님이 얼마나 통일 문제를 풀려고 정성을 쏟고 있는지 그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오후 3시가 다 되어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다시 돌아온 대중 일동은 점심 겸 저녁 식사를 한 후 5시부터는 스님과 함께 수련을 함께 했습니다.nbspnbsp먼저 새해를 맞이하여 언제나 우리들을 바른 가르침으로 이끌어주시는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지난 5일 동안 명상 수련을 하고 나서 썼던 소감문과 2일 동안 정일사 수련을 하고 나서 썼던 소감문을 돌아가며 발표했습니다. 특히 정일사 수련에서는 각 개인들에게 ‘이런 점은 좀 고치면 좋겠다’는 도반들의 애정어린 비판을 모아서 선물로 건네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선물로 받은 그 내용들이 모두 공개가 되면서 큰 웃음을 자아내었습니다.nbspnbsp먼저 스님은 소감문을 발표를 경청한 후 이에 대한 스님의 소감을 나누어 주었습니다.nbspnbsp“전체적으로 느낀 소감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이렇게 우리가 조금씩 좋아지는 원동력은 같이 산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nbspnbspnbsp인류 문명의 발전이나 진화도 이렇게 사람이 한 군데 모여 사는 데서 일어납니다. 언어도 발달하고, 기술 전파도 빠르게 이루어지고, 정보가 축적되는 가운데 새로운 아이디어도 더 나옵니다. 수행도 이렇게 문명사적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같이 살면서 늘 싸워대면 분열과 파괴로 가겠지만, 이렇게 마음을 모으게 되면 특별한 노력 없이도 서로 탁마하면서 조금씩 좋아져갑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좋은 도반은 수행의 전부다’라고 말씀하신 것 같아요. 특히 불교로 말하자면 말법 시대라고 하는 지금, 탁월한 스승이 없더라도 부족하나마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함께 수행생활을 해나간다면 시간이 흐르며서 조금씩 개선되어 가지 않겠나 생각합니다.nbsp공동체 안에서 길게는 1030년씩 함께 산 사람도 있고, 저와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들 중 공동체에 안 들어오고도 그만큼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공동체에 안 들어오고, 수행도 안 했는데 공동체 생활하며 수행하는 사람보다 더 자기중심이 잡혀 있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그건 처음부터 자기 토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걸 갖고 ‘수행한다는 사람이 왜 저것 밖에 안 되나? 수행 안 해도 저렇지 않느냐?’ 이렇게 비교하는 건 온당치 않은 것 같아요. 그러나 비슷한 기질, 성질, 까르마를 가진 사람들을 놓고 수행공동체에 사느냐, 밖에 사느냐, 공동체 생활한 기간이 얼마나 됐느냐를 비교해보면 대체로 차이가 납니다. 물론 우리 공동체에 갓 들어온 사람이 여기서 20년 산 사람보다 인격적으로나 능력면에서나 잘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죠.nbspnbsp그러나 그 사람의 업식이라는 걸 고려해서 공동체 생활을 5년, 10년씩 했을 때 일어나는 변화를 살펴보면 차이가 납니다. 처음에는 ‘5년 지나도 저 모양인데 수행자라고 할 수 있겠냐? 변하기나 하겠냐?’ 이렇게 느낄지 모르지만, 더 길게 보면 변화가 확연합니다. 그 변화는 일직선상이 아니라 계단 모양으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거의 안 변하는 것 같다가 어느 날 훅 자각해서 변화하고, 변하는 것 같다가도 멈춰 서서 몇 년씩 그대로 있고, 또 그래서 안 되는 줄 알았더니 다시 어느 날 변화가 생겨요. 길게 보면 그런 과정을 거듭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좋아져갑니다.nbspnbsp여기 공동체에 우리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 있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가능한 것 같습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과 특히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이 함께 살잖아요. 부부나 부모자식만 되어도 자기 자식, 자기 부모, 자기 배우자라는 집착 속에서 살기 때문에, 같이 살더라도 상대나 자기를 객관적으로 비춰보기가 좀 어려워요. 자기가 보는 자식, 자기가 보는 부모, 자기가 보는 남편, 자기가 보는 아내라는 자기 주관이 더 강하게 비춰져서 객관적 현실이 오히려 남보다 더 왜곡되기 쉽습니다.nbspnbsp그런데 여기 사는 우리들은 경제적인 이해관계도 없고, 가족 사이의 집착이나 정에 끄달리는 것도 비교적 적은 편입니다. 물론 서로에게 애정이 있어야 하지만 그게 집착과 결부된 애정과는 조금 다르니까요. 그러다보니 상대를 보는 것도 처음에는 자기 감정과 분별심에 따라 보지만 10년, 20년씩 지나면 비교적 집착에서 자유로운 애정을 가지고 상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거울 같은 도반들이 있기에 이번에 함께한 ‘선물주기’와 같은 수련 프로그램이 생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nbsp불교의 오랜 수행 전통 중 최고의 수행 가운데 하나가 도반들과 함께 자자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르침을 청하고, 상대가 보기에 내가 어떤 면에서 개선되면 나를 위해서 좋을지 말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지적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위해 이야기하기보다는 평소 자기 속에 있던 감정을 드러내거나 자기 맺힌 걸 이야기하며 시비하기 쉽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잘못을 지적하거나 비난하거나 힐난하는 것처럼 들리기 쉬워요. 그래서 자자를 하다 보면 울거나 상처가 남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 수행자라면 도반이 거울이기 때문에 자자보다 더한 스승은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스승’이라고 하면 항상 어떤 신통력을 가진 것처럼 생각합니다. 스승이라고 하면 나를 안 보고도 내 마음을 다 알고 내 이야기 안 듣고도 내 본질을 다 알아서 지적을 다 해줄 거라는 환상이 좀 있어요. nbspnbsp스승은 점쟁이나 도사가 아니라 바른 길을 안내해주는 분이고, 그 길을 따라서 내가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문화적으로 익숙해진지 오래 되었기에 스승을 점쟁이처럼 여기고, 또 자기가 법사나 스승이 되면 그런 역량이 있어야 할 것처럼 여기는 잘못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함께 오래 정진한 도반들은 내 모습을 비춰주는 가장 좋은 거울이자 나를 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인도해주는 최고의 스승입니다.nbsp사실 세속에서도 수행적 관점만 딱 잡히면 아내에게는 남편 이상의 거울이 없고, 남편에게는 아내 이상의 거울이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약간의 집착이 섞이게 마련이라 그 거울이 때로는 흐려지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초기에는 자기감정이 배어있기 때문에 거울이 거울 역할을 하더라도 그냥 비춰지는 게 아니라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여러분들이 이제 조금씩 그 감정을 넘어서게 되면서 서로의 거울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습니다. 지금 ‘선물 주기’라는 부드러운 표현을 빌렸지만 엄격히 말하면 이것은 자자와 같은 성격입니다. 형식을 살짝 바꾸어서 전통적인 의식을 행하는 부담을 덜고 좀 편하고 가볍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것 뿐이에요.nbsp지난 여름 수행 뒤에도 느꼈고 이번에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우리는 좋아지고 있습니다. 본인들은 부족한 게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자기가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잘 몰라서 그래요.nbspnbspnbsp빨리 못 가는 것만 생각하고 자기 출발점이 어디였는지를 모르니까 자꾸 자기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제가 좀 위에서 내려다보면 어디서 출발하는지를 대강 아니까 나름대로 잘 가고 있는 게 보입니다. 채소로 치면 잘 자라고 있는데 자기 생각에 자꾸 못 자란다고 여기는 게 아닌가 해요. 그렇게 좋아지는 가장 큰 힘은 여러분들은 ‘스승의 은혜’라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런 건 부차적이고, 결국 첫째는 자신이고 둘째는 도반들이라고 생각합니다.”nbspnbsp지난 2일 동안 ‘선물주기’를 하면서 도반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는데, 스님의 말씀을 통해 다시 명쾌하게 듣게 되니 도반의 소중함이 더욱 크게 와 닿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같이 생활하고 업무를 하다보면 자기 상태를 가볍게 드러내고, 상대의 상태를 알아주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점이 부족해 보인다고 하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명상을 할 때 ‘통증을 통증으로만 느껴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서 참지 말고 느껴라’ 하지만 잘 안 돼서 억지로 참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것처럼 여러분들은 지금 수행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참는 거예요. 그래서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표현할 때 툭 튀어나옵니다.nbspnbsp생각대로 마구 말하는 건 물론 나쁘지만, 그렇다고 말 없는 게 꼭 좋은 것도 아닙니다. 내부에 억누르고 있기 때문에 소통만 안 되는 게 아니라 갈등이 심화돼요. 그래서 우리가 감정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상태를 적절하게 알려나가는 것, 즉 자기 표현하기가 필요한 거예요.nbspnbsp내 상태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은 요구하는 것과 다릅니다. ‘내가 이러니까 이거 해주세요. 내가 이러니까 이거 봐주세요’ 이렇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면 내가 좀 불편합니다. 이러저러해서 내가 몸이 좀 아픕니다’ 이렇게 자기 상태를 알리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이걸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달라 해도 안 줄 것이고 봐달라고 해도 안 봐줄 것이니 말해봤자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을 참게 되고, 참다가 도를 넘어서 터지면 입이 나오고 말이 세지는 거예요.nbspnbsp아픈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프다고 해서 동정심을 구하거나 아프다는 핑계로 쉬려 하는 게 아니라, 아픈 것에 대해서 자기가 적절하게 표현하는 거예요. ‘제가 지금 몸이 좀 불편합니다’라고 이야기했는데도 상대가 ‘아, 그렇지만 이 일은 지금 해야 합니다’ 하면 그 일을 해야죠. 이럴 때 ‘이야기 해봤자 자기 생각만 하는 걸’ 이렇게 섭섭하게 생각하면 안 돼요. 내가 적절하게 표현을 했는데도 해야 한다면 좀 아파도 할 수는 있잖아요. 졸린다고 말 했지만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해야죠. 그러나 지레짐작해 입을 닫아버리거나 쌓아두지는 말고 적절한 표현을 해줘야 합니다. 굳이 안 해도 되는 상황이라면 조금 쉬라거나 조금 자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늘 적절하게 자기 표현하기를 해야 합니다.nbspnbsp이걸 알림이라고 하죠. 이렇게 우리가 서로에게 알려야 해요. ‘이 정도 하는 걸 보면 상대가 알지 않겠냐’라고 하지만 인간 존재가 그렇지 않아요. nbspnbspnbsp자기가 자기도 잘 모르는데 남의 마음을 헤아리기는 불가능해요. 다 자기 생각만 하지, 남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자기가 누굴 사랑해준다고 해도 사실은 그 사람을 생각해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마음, 자기 욕구를 채우는 것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사랑이라는 게 사실 받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그러니까 상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거든요.nbspnbsp그러니까 이렇게 자기의 상태를 늘 적절히 표현해야 합니다. 다만 자기표현은 요구가 아니어야 하는데, 우리는 표현하면 반드시 요구를 하게 되고, 요구가 들어지지 않을 상황에서는 아예 표현을 안 합니다. 어릴 때부터 ‘말해봤자 야단만 맞지’ 이렇게 입 다문 적이 많잖아요.nbspnbsp수행자들은 감정을 꾹꾹 쌓아뒀다가 어느 순간에 터뜨리지 말고 이렇게 자기 상태를 적절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하고, 상대에 대해서는 상대가 말을 꺼내기 전에 적절하게 알아줘야 합니다. ‘네가 말 안 했잖아’ 이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상태를 봐서 적절하게 알아주기가 필요해요. 그러나 가장 기본적으로는 자기가 자기에 대해서 적절하게 표현하기를 해야 합니다.”nbsp이 외에도 스님은 실무자들이 더욱더 용기와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은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신년초부터 스님으로부터 애정이 가득 담긴 말씀을 듬뿍 들으니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지금 여기 깨어있기’를 늘 실천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해 주었습니다.nbspnbsp“오늘 아침에 ‘새해에는 행복합시다’라고 새해 인사를 드리면서, ‘내가 어떻게 태어났다 하더라도, 내가 지난날 어떤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라는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어떻게 태어났느냐, 즉 내가 사생아로 태어났느냐, 내가 아버지 없이 태어났느냐, 내가 가난한 집에 태어났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가 태어나 보니 그 집에 태어난 것이고 내가 태어나 보니 피부 빛깔이 그렇게 되어 있었던 것뿐이지, 그건 나와 아무 관계없는 일이에요.nbspnbspnbsp내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오면서 성추행을 당했든, 가난한 집에서 자랐든, 여자여서 차별을 당했든,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했든, 대학을 못 갔든, 신체에 장애가 있든, 키가 작든 다 지나간 일이에요. 그게 지금 나한테 뭐가 문제예요? 뭘 기준으로 해서 지금 문제를 삼느냐는 거예요. 키 작은 걸 두고 ‘나는 키가 작다’라고 한탄한다고 지금 뭐가 해결되겠어요? 키가 작으면 작은 상태, 학교를 못 갔으면 못 간 상태, 여자면 여자인 상태, 가난하게 자랐으면 가난한 상태가 현재의 나의 상태잖아요. ‘지금 내 상태가 어떠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떻게 할 거냐?’가 중요합니다.nbspnbsp그러니 이미 지나가버린 일을 가지고 자꾸 문제 삼지 마세요. 그걸 어떻게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냐는 말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걸 문제 삼아봤자 아무런 득이 없잖아요. 그건 이미 다 지나가버린 일이어서 지금 어떻게 돌이킬 수도 없고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어요. 아직 안 죽고 살아 있는 이 상태, 지금 여기에서 내가 어떡할 건지가 문제입니다. 장애가 있다면 극복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nbspnbsp그런 관점을 갖는다면 여러분들의 삶이 한결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해요. ‘지금 여기 깨어있다’라는 건 그저 앉아서 코끝에 드나드는 숨만 지켜보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다는 건 지금이잖아요. 과거와 미래라는 것은 머릿속에서 흘러가는 영상일 뿐이에요. 지금 산다는 건 지금 여기서 숨 쉬고 사는 이거예요.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nbspnbspnbsp그런 데서 우리가 ‘지금 여기 깨어있기’의 문제를 조금 더 깊이 살펴봐서 삶을 좀 가볍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nbsp지금 여기 깨어있어야 한다는 스님의 강조에 모두들 합장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이렇게 약 2시간 동안 스님의 조언을 들은 후, 잠시 쉬었다가 다시 약 1시간 동안은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로 개인 수행을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과 궁금함을 스님에게 묻고 대답을 듣는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3명으로부터 질문이 있었고, 답변을 마치고 나서 더 이상 질문이 없자 밤 10시가 되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 예불과 기도 후 아침 7시부터 다시 수련을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오늘은 주로 개인 수행에 대해 집중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면 내일은 활동과 관련해서 집중적으로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1.02. 56,783 읽음 댓글 43개

2015.12.31 공동체 송년회

nbsp안녕하세요? 병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먼저 2016년 1월 1일 0시에 스님께서 직접 적어주신 새해 희망편지를 여러분께 전합니다.nbspnbsp“새해에는 행복 하십시오.nbspnbspnbsp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nbspnbsp어떤 경우에도 이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nbspnbspnbsp내가 어떻게 태어났다 하더라도nbsp내가 지난날 어떤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nbsp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nbsp내가 행복할 권리를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nbspnbspnbsp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nbspnbsp불행을 합리화하지 마십시오.nbspnbsp이유를 대며 괴로워 하지 마십시오.nbspnbspnbsp그런 과정을 겪고도nbspnbsp이런 상황에서도nbspnbsp나는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 행운입니다.nbspnbsp나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nbspnbspnbsp새해 새날이 밝았습니다.nbspnbsp매일 매일 같은 날이지만nbspnbsp오늘부터 나는 행복하게 살기로 했기에nbsp그래서 새해 새날입니다.nbspnbspnbsp새해에는 행복 하십시오.nbspnbsp그 행복을 다른 이에게도 좀 나누어주어nbsp그들도 행복하도록 작은 도움을 줍시다.nbspnbsp그럼 이 세상이 함께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nbspnbspnbsp새해에는 우리 함께 행복합시다.”nbsp오늘부터 어떠한 경우에도 행복할 수가 있다는 말씀과 이 행복을 다른 이들과 나눠 함께 행복한 삶을 살자는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 봅니다. 여러분들도 스님이 전해주신 희망편지 그대로 새해에는 함께 행복한 길을 향해 나아가시길 기원합니다.nbspnbsp2015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스님은 수행공동체 정토회에서 상주하며 살아가는 대중들과 함께 2015년 한 해를 보내는 송년회를 하였습니다.nbspnbsp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치고 원고 교정 업무를 본 후 오전에는 어제 답사한 법흥왕릉에서 태종무열왕릉에 이르는 산길을 반대 방향으로 올라 다시 답사를 했습니다. 어제 했었던 답사가 조금 미진했는지 스님은 다시 그곳으로 가서 대중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는지 더 점검해 보았습니다.nbspnbsp저녁 7시 30분부터는 두북 정토수련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함께 하고 있는 실무자들 30여 명과 함께 송년회 모임을 가졌습니다. 실무자들은 어제부터 오늘 오후까지 한해를 마무리하는 정일사 수련을 함께했는데, 그 기운을 이어받아 저녁부터는 스님을 모시고 친목을 도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먼저 다함께 경상도 사투리로 “간데이 을미년 온네이 병신년”을 외치며 송년회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송구영신의 의미를 담아 케익 컷팅식을 했습니다. 케익에 정토회의 모토인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새긴 채 다함께 “송년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병신년. 새해 축하합니다” 라고 축하 노래를 부르자 스님이 직접 ‘후’ 하고 초를 껐습니다. 모두들 크게 박수를 치며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공동체 실무자들은 약 3시간 동안 송년 퀴즈왕 대결, 송년 메들리, 선물 교환의 시간을 가지며 오랜만에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중에서 선물 교환의 시간에는 공동체 실무자들 모두가 각자 3시간을 할애해 도반 한 명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을 선물로 적어 내었습니다. 그리고나서 한 명씩 나와 무작위로 하나씩 뽑아서 각각의 선물을 가져갔습니다. 그러면서 ‘2015년 가장 잘 한 일’과 ‘2016년에 이것만은 꼭 하겠다’는 발표했습니다.nbspnbsp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킨 선물은 법륜 스님이 내어 준 선물이었습니다. 스님의 선물은 “2시간 동안 경주 남산을 같이 산책하고 1시간 동안 칼국수 한 그릇 같이 먹기” 였습니다. 매년 봄과 가을에 가는 경주역사기행 코스와 너무 비슷해서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nbsp또 2015년에 가장 잘 한 일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스님은 “계획된 강의 안 빼먹고 다 했다”고 대답했고, 2016년에 무엇을 꼭 해보고 싶냐는 질문에는 “2016년에는 통일에 진일보하는 교두보를 확보하겠다”고 대답해 대중들도 함께 할 것을 다짐하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이렇게 한껏 어우러진 후 마지막으로 귀한 시간을 내어 준 스님으로부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격려 말씀을 청해 들었습니다. 스님은 건강을 잘 챙길 것과 극한 상황에서 백척간두 진일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여러분과 같이 연말을 웃고 보내서 참 좋았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수고들 많이 하셨는데, 다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자꾸 아픈 사람이 생기는 것 같네요. 법사님들도 그렇고 실무자들도 그렇고 아픈 사람들이 많이 생겼어요. 다들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이겠죠.nbspnbspnbsp그러나 이렇게 비실비실 하더라도 오래도록 가야하지 않겠어요? 최소한 만일결사 끝날 때까지는 함께 가야 해요. 그리고 그 전에 꼭 통일이 되어야 해요. 제가 말하는 통일은 정치·군사적인 통일이 아니라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통일의 길에 들어서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되면 정토회의 설립 목적 중 1차 만일결사의 목표는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볼 수 있어요. nbspnbsp다만 제가 주욱 살펴보니까 기한을 딱 지키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즉 1차 천일결사의 목표가 2차 천일결사의 중반 쯤에 이뤄진다든가, 7차 천일결사의 목표가 8차 천일결사의 중반 쯤에 이뤄진다든가 하는 것을 볼 때, 1차 만일결사도 만일 안에 딱 이뤄지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2차 만일결사의 초반부에는 이뤄질 수 있겠다고 대략 짐작을 하고 있습니다.nbspnbsp그래서 저를 비롯한 법사단과 1세대의 역할은 1차 만일결사까지 원만성취 하고, 2차 만일결사의 주인공들이 잘 출발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주는 게 아니겠나 생각합니다. 그런 여정 가운데에서 올 한 해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가장 큰 과제는 두가지입니다. 첫째, 정토회의 설립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속도가 좀 늦어진다 하더라도 원래 세운 계획대로 착실하게 나아가느냐 하는 문제이고요. 둘째,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 제대로 역할을 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불교 중흥이라는 첫 번째 목표는 부족한 대로 우리가 설계해서 해나갈 수 있는 문제라면, 두 번째 목표인 통일은 우리가 세운 계획대로만 되지 않고 정세의 변화에 따라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토회는 외부 상황과 관계없이 우리가 세운 목적대로 꾸준히 해나가면 됩니다. 외부 상황이 때로는 우리가 설정한 목적과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지만 거기에 너무 연연해 할 것은 없겠다 싶어요. 우리가 세운 목표대로 꾸준히 해나가면 짧게 보면 상황이 잘 안 맞지만 길게 보면 상황도 맞아 떨어지지 않겠나 싶습니다.nbspnbsp그래서 첫째, 건강을 잘 챙기세요. 둘째, 조금 어려움이 있더라도 물러나는 마음 없이 잘 극복해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면 약간 안쓰러움도 있고, 안타까움도 있고, 이해되는 면도 있지만, ‘수행자’라는 원칙적은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이것을 보호하려고 한다든지 안주하도록 도와줄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내 인생은 누구도 대신 할 수가 없고,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는 것이거든요. 주변 상황은 어느 정도 도와줄 수 있지만 최종적인 극복은 자기 스스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nbspnbsp‘정말 힘들다’, ‘정말 이건 아니다’, ‘정말 못하겠다. 때려치우겠다’ 하는 극한 상황에 가서 한 생각을 돌이킬 때 깨달음의 문턱이 바로 앞에 있습니다. 밤이 깊어야 새벽이 가까워지는 것처럼 그런 극한적인 상황일 때 나가 떨어지지 말고, 거기서 백척간두 진일보 해서 한 발 더 나가면 곧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이런 믿음을 갖고 정진을 했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2015년 지난 한해 동안 수고들 많이 하셨고요. 2016년에도 변함 없이, 내일도 오늘과 같이 여일하게 정진해 갔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공동체 실무자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스님의 격려 말씀을 가슴에 잘 새기면서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 순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불러야 마땅하지만 이 노래는 내일 일출을 보면서 부르기 위해 아껴두기로 하고, 북한 노래인 ‘다시 만납시다’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노래 가사를 곱씹으며 북녘 동포들을 생각하고 통일의 꿈을 다시 새겨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백두에서 한라로 우린 하나의 겨레 ♬헤어져서 얼마냐 눈물 또한 얼마였던가잘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가시라 다시 만나요목메어 소리 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nbsp부모형제 애타게 서로 찾고 부르며 ♬통일아 오너라 불러 또한 몇해였던가잘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가시라 다시 만나요목메어 소리 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nbsp꿈과 같이 만났다 우리 헤어져 가도 ♬해와 달이 찬란한 통일의 날 다시 만나자잘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가시라 다시 만나요목메어 소리 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nbsp다함께 두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르면서 새해는 통일을 향해 진일보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보았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송년회 모임을 모두 마치고, 스님은 1월 1일 0시가 되자 새해 첫날 아침에 대중들에게 전할 희망편지를 직접 작성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 일찍 정토회 실무자들과 함께 동해 바다로 가서 새해 첫 일출을 본 후 감은사, 기림사, 오어사, 나원리 5층탑을 참배한 후 저녁에는 다시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돌아와 수행과 관련된 즉문즉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nbsp

2016.01.01. 65,457 읽음 댓글 83개

2015.12.30 (오후) 연말 명상수련 5일째, 회향식

nbsp오전에 소감문 발표와 이에 대한 격려 말씀에 이어서 오후에는 연말 명상수련을 마무리하는 회향식이 열렸습니다.nbspnbspnbsp대중들은 지난 5일 동안 가르침을 잘 설해준 스님께 청법가를 부른 후 삼배를 하며 회향 법문을 청했습니다.nbspnbspnbsp대중들이 명상을 하고 있는 가운데 죽비 삼성이 끝나자 곧이어 스님은 대념처경을 읽어주었습니다. 지난 4박 5일 동안 몸으로 행한 그 내용이 담긴 경전이었습니다.nbspnbsp대념처경을 다 읽고 난 후 스님은 부처님이 살았던 삶과 비교해보면 오늘날 우리는 무엇이든 기쁜 마음으로 해나갈 수 있다고 하면서 회향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지난 5일 동안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대념처경, 즉 사념처관을 행했습니다. 계율을 청정히 지키고, 한적한 곳에 와서 먹고 입고 자는 집착을 놓아버리고, 오직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한 가운데 코끝에 집중해서 들숨과 날숨에 온전하게 깨어 있었어요. 눈을 감고 편안하게 앉아 있어도 졸음이 오지 않고,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영상이나 미래의 이런저런 상상들이 일어나더라도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지금 여기 호흡에 깨어 있는 연습을 했습니다.nbspnbsp물론 잘 되진 않았지만, 잘 안 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그런 방향으로 이미 출발해서 열반이라는 목표점을 향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목표지점까지는 아직 까마득하지만 그래도 되돌아보면 출발점에서 한참 멀리까지 왔어요. 출발점에서 한참 왔다는 것은 앞으로 계속 가면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모두 꾸준히 정진해나가시기 바랍니다.nbsp정토수련원에서는 부처님의 ‘고행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전정각산 아래 시타림에서 홀로 외로이 정진하실 때, 비록 고행이 깨달음의 근원은 아니지만 저런 고행의 과정을 통해 삶과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셨어요.nbspnbspnbsp저런 고행 생활을 경험하셨기에 깨달음을 얻으신 이후에도 그 분은 먹는 음식에 집착하지 않고 여느 수행자와 다름없이 걸식을 해서 드셨고, 저런 고행을 이미 경험하셨기에 여느 수행자나 다름없이 분소의를 걸치고 생활하셨고, 이미 저런 고행을 겪었기에 여느 수행자나 다름없이 나무 아래나 동굴이나 처마 아래에서 한가히 잠들 수 있었습니다.nbspnbsp그랬기에 아무리 돈이 많은 부자가 와도 아무리 지위가 높은 왕이 와도 부처님이 보시기에는 그들이나 그저 매일매일 걸식할 때 만나는 일반인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어요. 그들을 특별히 우대하지도 않고 그들을 특별히 배척하지도 않고, 그냥 평등하게 보셨습니다. 그들이 괴로워하며 물으면 친절하게 깨우쳐 주셨고, 그들이 잘난 척 하더라도 거기에 추호도 굴함이 없었어요. 부처님은 진리의 가르침대로 여법하게 올곧게 살아가셨지만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배척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깨우쳐 주셨습니다.nbspnbsp그러나 계급 차별을 하거나 성차별을 하는 등 우월주의에 빠진 사람에게는 날카롭게 그 허구성을 비판하시고, 제자들 중에 그런 흔적이 남은 사람에게는 아주 냉정하게 세속으로 돌아가거나 그 허물을 버리기를 요구하며 분명하게 가르침을 펴셨습니다. 세상을 다 정화시키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부처님 법 안에서, 상가 안에서는 부처님의 법이 실현되었어요.nbspnbspnbsp부처님께서 이미 가르침을 주시고 모델을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의 사명은 그 모델을 이 세상에 실현시키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남녀니 승속이니 하는 차별이 없도록 하는 것, 이 법이 이 세상 속에서 모든 사람에게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들의 전법의 목표입니다.nbsp여러분들은 항상 저 부처님의 고행상을 보면서 내가 아무리 못 먹어도 부처님보다 잘 먹고, 내가 아무리 못 입어도 부처님보다 잘 입고, 내가 사는 집이 아무리 허름해도 부처님보다 좋은 곳에 살고 있고, 내가 아무리 불편한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걸어다니셨던 부처님보다는 편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아무리 힘든 일을 하고 어떤 불행을 겪더라도 부처님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에서 살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생전에 자기의 종족이 전멸하는 참사를 겪으셨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올곧게 그 분의 길을 가셨고 대중에게 항상 바른 법을 펼치셨습니다.nbspnbsp그러니 우리가 진정 부처님을 내 삶의 모델로 생각한다면 마음을 기쁘게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훌륭하신 분도 비난을 받고 가족의 불행을 겪었는데, 우리처럼 부족한 사람이야 하물며 더한 비난과 더한 재앙이 따르더라도 감내하지 못할 이유가 뭐 있겠어요? 이렇게 생각한다면 오늘 우리들이 하는 일이 비록 작고, 힘들고, 앞으로 갈 길이 멀다 하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가볍게 갈 수 있습니다.nbspnbspnbsp이 길은 반드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길입니다. 우리 인류에게 이 희망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인류는 결국 공멸로 가게 될 것입니다. 공멸로 가지 않으려면 어차피 이 길로 갈 수밖에 없어요. 이 길이 아니고는 인류에게 지금 문명의 대안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nbsp그러니 여러분들은 지금은 비록 작아 보여도 시간이 흐른 뒤 되돌아보면 우리가 참으로 큰일을 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결과가 어떻게 되든 이 길이 바르기 때문에, 우리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자부심을 가진 채 꿋꿋이 이 길을 갈 수 있어야 합니다.nbsp지난 한 해 수고하셨습니다. 그 동안 지쳤다면 이번 수련을 통해서 원기를 회복하셔서 내년 한 해도 꾸준히 이어서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행복해야 한다는 거예요. 웃으면서 가볍게 해야 합니다. 내가 넘어져서 다른 사람이 나를 일으켜줄 때 우는 얼굴이 아니라 빙긋이 웃는 얼굴로 놀래켜줄 수 있어야 해요. nbspnbspnbsp무슨 기적으로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저건 인간도 아니다’ 이런 소리를 들을 만큼 우리가 행복하고 자유로워야 합니다. 남이 볼 때는 많은 계율의 속박 속에 사는 것 같지만 우리는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야 해요. 그러니 어떤 문제를 자꾸 남 탓으로 돌리지 마세요. 결국은 그런 세상, 그런 사람,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할 거냐’라는 것이 문제입니다.nbspnbsp‘상황이 이러니 나는 울 거냐?’nbsp‘상황이 이러니 나는 괴로워할 거냐?’nbsp‘상황이 이러니 나는 포기할 거냐?’nbsp‘아니면 상황이 이렇더라도 나는 웃을 거냐?’nbsp‘이런 상황을 나는 극복의 대상으로 삼을 거냐?’nbsp‘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한 발 앞으로 나아갈 거냐?’nbspnbsp말로는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좋은 일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내 인생의 문제예요.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떤 인생을 살 거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수행자의 자세로 일해 나가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nbspnbspnbsp우리는 자기가 대단한 일을 하는 양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 모두는 이 세상 만 중생과 천지만물의 은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첫째, 내가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은 보잘것없음을 알아 대단한 척 하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둘째,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내가 하는 일이 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 하나가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 당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검소하게 살되 풍요로워야 하고, 겸손하게 살되 당당해야 한다’고 하셨어요.nbspnbsp그런 마음으로 새로운 한 해도 행복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늘 부처님 법 안에서 우리는 수행자로서 행복해야 합니다.”nbsp수련을 마치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금이라도 더 대중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고자 하는 스님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부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떠올리면 오늘날 우리들은 정말 기쁜 마음으로 이 일을 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지난 5일 동안 활동가들이 용맹 정진을 하는 동안 공양간에서 방송실에서 수련장 뒤편에서 조용히 대기하며 수련이 잘 진행될 수 있게 뒷바라지해준 봉사자분들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30여 명의 봉사자들이 차례로 줄을 지어 무대 앞으로 걸어나오자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nbsp많은 분들의 소감문 발표 속에는 바라지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내용이 많았는데, 실제로 그 분들의 얼굴을 확인하자 더욱더 고마운 마음이 일었습니다. 보이지 않았지만 많은 분들의 은혜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음을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회향 법문까지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대중들을 위해서 스님은 한 명씩 손을 잡아주며 “한해 동안 수고하셨어요” 라는 말을 환한 웃음과 함께 건네 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다시 가정과 직장으로 하산하는 대중들을 위해 정토수련원에서는 떡과 귤을 나눠주며 내려가는 길에 행여 허기가 질 것까지 알뜰히 챙겨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5일 동안의 연말 명상수련을 모두 마친 후 스님은 곧바로 경주로 향했습니다. 법흥왕릉에서 태종무열왕릉으로 넘어가는 산길이 있는데, 내년 봄에 청년들을 데리고 경주역사기행을 할 때 이 길을 한번 가보려고 답사를 나선 것입니다. 아무리 답사 일정을 잡아보려 해도 일정이 도저히 나오지가 않아 오늘 특별히 시간을 내어 한번 가보았습니다.nbspnbspnbsp법흥왕릉을 시작으로 경주대학교를 지나 선도산을 넘어 태종무열왕릉이 있는 곳까지 약 1시간을 등산했습니다. 스님은 명상수련을 시작하면서부터 단식을 시작해서 오늘로 단식 5일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씩씩하게 산을 올랐습니다. 법흥왕릉을 오르면서도 “답사도 하고 운동도 하고 일석이조이지?” 하며 기운을 내어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시골길이며 산길이며 인적이 드문 길을 금새 찾아 내었습니다. 스님께 “길을 정말 잘 찾으시네요” 라고 하자 스님은 “나는 시골 사람이여서 이런 길을 갈 때는 거의 인간 네비게이션 수준이야” 라며 웃으셨습니다.nbspnbspnbsp이 길, 저 길, 갈림길, 길의 너비, 이동시간 등 곳곳을 꼼꼼하게 점검한 후 산을 내려왔습니다. 대중을 인솔할 때는 항상 꼼꼼하게 미리 답사를 해놓아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이 절로 생각이 났습니다.nbspnbsp답사를 마치고 나서 스님은 경주에서 옛날 불교학생회와 불교청년활동을 같이한 분들, 옛 고향 친구분들에게 연말 인사를 나눈 후 울산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와서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nbspnbsp내일부터 연말과 새해를 겸해 3일 동안은 정토회 실무자들과 함께 수련과 연찬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nbsp

2015.12.31. 55,301 읽음 댓글 70개

2015.12.30 (오전) 연말 명상수련 5일째, 발원문과 활동가 격려말씀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활동가들과 함께한 연말 명상수련 5일째를 맞이하여 그동안 정진한 공덕에 대해 발원을 한 후 대중들의 소감문 발표를 경청하고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새벽 4시, 도량석 소리와 함께 일어난 대중들은 천천히 포행을 하며 명상 장소인 대수련장에 모였습니다. 스님은 대중들보다 먼저 대수련장에 도착해 법상 위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새벽 명상이 끝나고 곧이어 예불과 스님의 발원 기도가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5일 동안 부지런히 수행 정진한 대중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을 담아 발원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스님의 발원 기도를 들으며 곳곳에서 눈물을 닦는 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nbspnbspnbsp“우러러 발원하옵니다. 오늘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저희 정토행자 대중 일동은 5일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정진한 후 이와 같이 부처님께 예배하고 참회하면서 발원하옵니다.nbspnbsp저희들은 어리석어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기억과 상처에 집착하여 그 업식에 충동적으로 반응하며 괴로움과 슬픔과 침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과 온갖 상을 지어 근심하고 걱정하며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몸은 여기 지금 들숨과 날숨 사이에 살아가고 있지만, 생각은 언제나 과거의 영상 속이나 미래의 상상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꿈속에서 강도를 만나 두려움 속에서 도망다니며 이곳 저곳 피할 곳을 찾듯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nbspnbspnbsp부처님이시여, 그러하오나 저희에게 꿈속의 안온한 피신처를 주실 것이 아니라, 비록 매정하다 느끼고 부처님을 외면할지 몰라도 ‘눈 떠라, 꿈을 깨라’고 일갈해 저희가 영원히 강도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일깨워 주옵소서. 강도를 피하는 길은 다만 눈뜨는 것일 뿐임을 예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부처님의 가르침은 변함없이 일관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눈뜨는 소식은 온데간데 없어졌습니다. 게다가 강도를 만나면 어떻게 어디로 피할 것인지 알려주는 가르침으로 변질되어 세간을 풍미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비록 아직 미약하지만 그래도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인 깨달음을 통한 해탈과 열반, 참자유와 참행복을 구하는 이 길을 추구합니다.nbspnbsp오늘 같은 세상에 부처님의 정법을 잊지 않고 그 길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비록 한줌밖에 되지 않아도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소중하고 소중한 일입니다. 이 작은 씨앗들이 아직은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한겨울이라 대지 깊이 숨어 웅크리고 있지만, 이제 곧 봄날이 오면 싹이 트고 쑥쑥 자라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입니다.nbspnbsp저희들은 다가오는 새로운 정법의 시대에 좋은 씨앗이 되고자 가족들의 반대와 친구들의 만류와 세상의 온갖 장애를 무릅쓰고 세상을 거슬러 이같이 정진하고 있사옵니다. 비록 저희들이 아직도 어리석어 꿈에서 깨지 못하여 강도를 두려워하고, 강도가 없는 안온한 땅을 구하기를 그치지 못하고 강도를 탓하는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이 모두가 꿈이어서 눈만 뜨면, 강도도 없고, 피할 것도 없고, 도움을 구할 것도 없고, 도움을 줄 자도 없음을 꿈 속에서라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눈 뜨는 그 깨달음을 얻지 못하여 열반을 체험하지 못한 것일 뿐이니 저희들의 이 길을 불보살님께서는 귀중히 여기시어 격려하고 옹호하여 주시옵소서.nbspnbsp이 험난한 세상에서 온갖 고통을 이기는 힘은 세력도 아니고 돈도 아닙니다. 오직 저희 행자들이 어떠한 경우에도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이 자유와 행복을 우리 주위에 괴로워하고 속박받는 사람들에게 널리 전하여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보다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만이 저희들의 유일한 발원이오니 저희가 이 길을 꾸준히 근면하고 성실하게 갈 수 있도록 제불보살님들은 옹호하여 주시옵소서.nbspnbsp오늘 저희가 정진하고 발원한 이 공덕을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오니 괴로움에 빠진 모든 중생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며,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항구적인 평화가 도래하고, 분단이 극복되어 통일한국이 성취되고, 나아가 주변국들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동아시아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라옵니다.nbspnbspnbsp이 발원 공덕 영가님들께 회향하오니 먼저 돌아가신 조상 영가님과 유주무주 모든 고혼들까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저 극락세계로 왕생하옵소서. 또한 극락에도 머무르지 않고 다시 이 세상에 오시어 저희의 이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옹호하는 신장이 되어 주옵소서.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nbsp스님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며 이런 크나큰 축원을 받기에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대중들은 스님의 발원을 오롯이 가슴에 새기며 108배 정진과 명상, 경전 독송을 함께 했습니다. 이렇게 기도가 끝나고 곧바로 소감문을 작성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소감문을 들으면서 첨언해 줄 내용에 대해 메모를 하면서 한 명 한 명의 발표를 경청했습니다.nbspnbspnbsp각 조를 대표한 19명의 발표를 모두 들은 후 다시 법상에 오른 스님은 소감문을 들으며 느꼈던 소감과 몇 가지 조언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네 가지를 예로 들며 스스로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면 좋겠다고 하면서 내가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것이 가장 큰 경쟁력임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법당 운영하랴 행정 하랴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건 잘 압니다. 물론 직접 경험하고 있는 여러분만큼은 모르겠지만 저도 이야기를 들어서 어느 정도는 알아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웃을 수 있어야 해요. 법당 총무나 부총무를 맡은 내가 바쁘다고 인상 쓰고 힘들어 하고 괴로워 하고 ‘이거 언제 그만둘까’ 이런 생각에 빠진다면 다른 사람이 그런 나를 보면서 왜 정토법당에 계속 나오겠어요? 대중들도 자기가 힘드니까 이 괴로움에서 좀 벗어나 행복하고 싶어서 정토법당에 왔는데 정토법당에서 보는 사람들이 저리 괴로워하면 거기서 뭘 얻겠어요? nbspnbspnbsp여러분들은 나름대로 애쓰고 있지만, 그러나 정토법당을 운영하느라 애쓰는 게 100이라면 힘들어하고 인상 써서 내치는 게 200이에요. nbspnbspnbsp그런 걸 두고 ‘아무런 공덕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힘들다고 하면 제가 늘 이렇게 말하잖아요.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내가 법문 듣는 게 좋은 지를 우선 생각해보세요.’nbspnbsp나도 법문 듣기 싫은데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법문을 들으라고 하는 것이라면 안 됩니다. 우선 내가 노는 것보다 법문 듣는 게 더 좋아야 해요. 그래서 아무도 안 나오면 나 혼자서라도 듣는 겁니다. 어차피 내가 들을 거라 법문을 틀었는데 다른 사람이 와서 같이 들으면 더 좋고, 셋이 들으면 더 좋고요. 길 가다가 누굴 만나면 ‘아이고, 나 오늘 법문 듣는데 오세요. 같이 들읍시다’ 이렇게 할 수 있잖아요. 법문 들어서 행복해진 이 마음을 같이 나눌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찾아온 사람들에게 차 한 잔 줄 수도 있겠지요. 그에 따른 약간의 일거리가 있으면 이런 좋음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니 그 정도 수고는 할 수 있잖아요.nbspnbsp일이 조금 많아진다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야죠. ‘우리가 사람이 많아져서 도움이 조금 필요해졌어요. 조금만 일찍 와서 청소를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이렇게 내가 책임을 지고 해나가면서 ‘좀 도와주세요’ 라고 해야 다른 사람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아요. ‘당신도 법문을 들으니 이걸 책임지고 하시오’ 하니까 상대가 부담스러워 도망가는 거예요. 일이 많아서 나도 모르게 짜증낼 때가 있지만 그건 잠깐이고, 크게는 이게 재미가 있고 기분이 좋아서 힘들어도 보람이 있어야 사람이 모여듭니다. 사람을 모으는 데는 효율적으로 잘 관리하는 경영 마인드도 필요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거예요. 하는 사람이 이 일에 흥이 나 있는 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가장 크고 좋은 힘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보면 민주화 운동이든 통일운동이든 노동자들 투쟁이든 내내 악쓰면서 하잖아요. 악쓰는 걸 보면 안쓰럽긴 한데 나는 거기에 가고 싶지 않는 거예요. 가난하게 사는 걸 보면 불쌍해서 보시는 좀 해도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거예요.nbspnbsp검소하게 살아도 사람들이 얼굴이 밝고 편안해 보이면 나는 가진 게 많은데도 이 사람들보다 덜 행복하니까 ‘여기에 뭐가 있나’ 싶잖아요. nbspnbspnbsp그러니 제일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행복한 것입니다. 여기 사는 여러분들이 서로 흔쾌히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 티격태격하더라도 금방 참회하고 밝게 웃으며 서로 어울리면 바깥의 사람들도 여기에 오면 편안함을 느껴요. 그런데 여기가 좋다고 해서 왔는데, 와서 가만히 보니 팀장이라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성질내고 토라져서 이틀씩 말도 서로 안 하고 있으면 말은 안 하지만 ‘여기서 몇 년을 배웠다는 사람이 저러는데 나머지는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게 마련이에요. 인상쓰고 토라지는 건 내 까르마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아까 성질내서 미안하다’ 이렇게 금방 돌이켜주는 맛이 있어야 함께하지요. 물론 저는 그런 수준 안 되는 사람이라도 데리고 있어야 일이 되니까 데리고 있긴 하지만요. nbspnbspnbsp그래서 첫째, 자기가 행복해야 합니다. 일이 힘들어 불평하다가도 금방 내려놓고 탁 밝아지려면 수행적 관점이 분명해야 해요. 수행자의 기준은 내가 얼마나 행복하냐입니다.nbspnbsp두 번째로 좀 자유로워야 합니다. 원칙을 딱 세워 지키더라도 상대가 뭐라고 하면 ‘그래그래, 알았다’ 이렇게 가끔은 놔주는 것도 좀 있어야 해요. 늘 밧줄에 묶이듯 원칙에만 꽉 묶여서 살면 누가 좋아 보이겠어요? nbspnbspnbsp그렇다고 원칙도 없이 헤벌레 하고 살면 이미 헤벌레 하고 사는 세상과 다를 게 없으니 굳이 여기 올 이유가 없어요. 여기 원칙이 있기 때문에 모이는데, 그게 너무 옥죄이면 사람이 힘들어집니다.nbspnbsp이렇게 자유와 행복이 있어야 해요. 계율을 지키되 거기에 묶이지 않아야 합니다. 즉 나에게는 원칙을 지키되 타인에게는 조금 열어두고, 윗사람들은 원칙을 지키되 아랫사람들에게는 조금 열어두는 것이 필요해요. 가진 사람과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딱 정확하게 법을 적용하되 서민들과 아랫사람들에게는 그걸 곧이곧대로만 적용하지 말고 조금 융통성있게 적용해줘야 세상이 잘 돌아갈 텐데, 위에는 법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만큼 엉망으로 하면서 아랫 사람들은 담뱃값 정도 되는 촌지를 받았다고 목을 치잖아요. 자기들은 수백억 원씩 떼먹고도 들어갔다 3일 만에 나오는데요.nbspnbsp이처럼 질서가 딱 서 있되 약간의 자유로움이 있어야 하고, 내가 아직 부족하여 경계에 끄달려서 성질내더라도 금방 탁 돌이켜서 어우러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게 안 되니까 밖에서 정토회 하는 일을 보고 호감을 느껴 찾아왔던 사람들도 왔다가 다시 가버려요. 법당에 가면 총무란 사람이 성질이나 내고, 수련원에 오니까 팀장이라는 사람이 짜증이나 내면, 월급 받는 것도 아닌데 왜 여기에 붙어 있겠어요? 자기 부족한 걸 누군가로부터 수용받아야 계속 있을 텐데 오히려 자기가 남의 부족함을 다 감당해줘야 하니까요.nbspnbsp우리가 해탈과 열반을 추구하는 사람이니 그에 근접하려면 우리가 먼저 이렇게 해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저돌적으로 투쟁할 땐 투쟁하더라도 평상시로 돌아갈 때는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경쟁력이 있어요. 우리가 다른 뭘로 경쟁하겠어요? 돈으로 경쟁하면 재벌 앞에선 한 주먹도 안 되고, 권력으로 경쟁하면 일개 부대 수준도 안 되는데요.nbsp우리의 힘은 우리 삶의 자유로움과 행복입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의 위대함도 거기에 있습니다. 남의 집에 가서 밥 얻어먹고 나무 밑에서 자고 옷 주워 입는 건 세상에서 가장 천대받을 만한 수준의 거지나 다름없는 행색인데도 그들이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고, 두려움 없이 살았기에 수많은 왕들과 부자들이 귀의한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삶을 보고 사람들이 귀의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불쌍하게 여긴다면 인생 끝이에요. nbspnbsp그리고 우리가 소중하다는 걸 우리 스스로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안이든 밖이든 사람들을 만나보면 관심사가 늘 돈 이야기, 음식 이야기, 옷 이야기, 출세 이야기, 배우자며 자식이 뭐 했다는 이야기뿐입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는 첫째, 적어도 자유와 행복이라는 주제, 즉 해탈과 열반을 향해서 살아가잖아요. 이것만 해도 굉장한 거예요.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떻게 하면 더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는가, 즉 열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도 드물어요. 세상이 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는 해탈과 열반이라는 주제를 갖고 있고, 그래도 매일 아침마다 해탈과 열반에 향해서 수행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잖아요. nbspnbsp두 번째,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열이나 백에 하나 있다손 치더라도 자기 해탈과 열반에만 관심 있지, 이걸 통해 다른 사람도 좀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법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스님들마저도 어디 큰 부자에게서 49재나 생일 불공 하나 받을 궁리, 건물 지을 때 돈 낼 사람을 찾을 궁리만 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젊을 때는 스님들이 그런다고 비난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것도 그냥 세상의 일부일 뿐입니다. 불교라고 해도 이름만 불교지 불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절에 다니는 신도도 마찬가지예요. 다 ‘여기서 빌면 돈 더 많이 버나’에만 관심 있습니다. 누가 교회 다녀서 더 잘됐다고 하면 다들 내일 당장 교회 갈 사람들이에요. 이런 가운데서 이 좋은 법을 혼자 알지 않고 주변에 전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건 굉장한 일입니다.nbspnbsp세 번째, 우리는 여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실천까지 하잖아요. 환경에 대해 생각해서 화장실 휴지라도 덜 써보려고 노력하잖아요. 현실에서 잘 안 되는 건 알지만, 어쨌든 그런 생각이라도 하고, 어디 가서 물건 하나 살 때 ‘포장은 하지 말아 주세요’ 이런 말이라도 할 줄 알잖아요. 불쌍한 사람 돕기 위해서 거리 모금도 나가잖아요. 우리 주변을 둘러보세요. 얼굴도 모르는 아프리카며 인도 사람, 북한 사람을 위해 길거리에서 모금하기는커녕 자기 돈을 내는 사람도 별로 없어요. 평화와 통일에 대해 고민하고 참여하는 것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고요. 이런 생각을 갖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명 안 됩니다. 그런 걸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조차도 대부분은 이름을 어떻게 붙여서 세력을 키울 궁리, 돈을 더 벌 궁리, 더 위로 올라갈 궁리만 합니다.nbspnbsp네 번째, 이렇게 사회적 실천도 하는 가운데 우리는 또 다른 종교와 다른 민족,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포용적이기까지 해요. 여러분들이 여기에 안 다녔다면 자기 까르마에 따라 동성애자를 혐오할 수도 있고,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싫어할 수도 있고, 외국인 노동자를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까르마가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다 해도 적어도 우리가 여기서 공식적으로는 성, 인종, 신체장애 여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하지 말자고 배우잖아요. 나에게 업식이 남아서 못 하는 건 못 하더라도, 그런 것을 배우고 그런 인식을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불교인이나 기독교인 중에서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은 사람은 얼마 없어요. 다만 그 배타성이 강하고 덜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 정도의 수준만 되어도 지성적인 면에서는 대한민국 상위 1퍼센트 안에 들고도 남아요. 대한민국 5천만 인구 중에 이런 사람은 사실 50만 명도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사람이 50만 명만 되면 나라가 바뀐다고 하잖아요. 그게 곧 정토회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이 50만 명, 즉 인구의 1퍼센트만 되면 세상이 바뀌는 거예요.nbspnbsp그러니 우리 개개인이 부족한 건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지금 이 지구의 인류공동체 70억 구성원 중에서도 가장 미래지향적이고 인류 보편적인 것을 지향하며 그 길에 서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에 내가 조금이라도 참여할 수 있다는 걸 보람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밥 한 숟가락 더 먹고 옷 한 벌 더 사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nbspnbsp이렇게 부족한 건 부족하더라도 내면의 가치관이 어느 정도 정립이 되어야 흔들리지 않고 남이 뭐라고 해도 포용성을 발휘할 수 있어요. ‘알았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이렇게 웃어주고 또 내 갈 길은 가는 힘이 생기는 거예요.nbsp저도 여러분도 우리 개개인은 다 부족하지만 우리의 지향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있습니다. 기독교, 불교를 논할 때 말하는 불교가 아니라 부처님의 보편타당한 가르침이에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보편타당한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합리적이고 사실이며 모든 사람에게 다 통할 수 있는 가르침, 그것이 진리입니다. 불교인이 아닌 다른 종교인도 수용할 수 있고, 한국 사람만이 아닌 다른 민족도 수용할 수 있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들으면 다 공감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진리의 길을 우리가 지금 함께 가고 있어요.nbsp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이 이 길을 조금 더 가볍게 가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멀잖아요. 중간에 장애가 생기면 힘들게 갈 때도 간혹 있지만 크게 봐서는 웃으며 자유롭게 이 길을 함께 가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nbsp웃으며 자유롭게 이 길을 함께 가자는 격려 말씀에 모두들 크게 기뻐하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활동가들에게는 정말로 큰 힘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nbspnbspnbsp기쁜 마음과 감동의 여운을 뒤로 하고 대중들은 문경 정토수련원 곳곳에 흩어져 대청소를 했습니다.nbspnbspnbsp마음을 청소하듯이 곳곳을 처음 사용하던 그대로 깨끗하게 돌려놓은 후 다시 대수련장에 모여 회향식을 가졌습니다.nbspnbsp회향식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31. 48,601 읽음 댓글 46개

2015.12.29 연말 명상수련 4일째, 즉문즉설 제2부 (활동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연말 명상수련 4일째를 맞아 수련에 참가한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해 약 네 시간 동안 즉문즉설을 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앞서 전반부에 있었던 수행과 관련된 즉문즉설에 이어서 활동과 관련한 즉문즉설이 이어졌습니다. 활동가들은 지난 한 해 동안 활동을 하면서 들었던 의문에 대해 다양한 질문들을 쏟아내었습니다.nbsp먼저 얼마전 녹화 촬영한 2차 통일의병교육과 관련해서 왜 통일의병교육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묻자 이런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정회원 여러분들한테 이렇게 통일의병교육을 하는 이유는 앞으로 스님이 혼자서 결정하지 않고 여러분들의 의견을 모아서 결정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세상에 대해서 까막눈이면 의견을 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nbspnbsp여러분들이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우리 사회의 각종 정책에 대해 자기 의견을 낼 수 있고, 각 정당의 통일 정책을 들어보면서 나름대로 판단을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까막눈이면 의견을 물어봐야 아무 도움이 안 되니까 스님 혼자 결정할 수밖에 없잖아요.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니까, 스님 혼자 결정하지 않도록 여러분들이 통일에 대한 식견을 길러 스스로 결정에 직접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공부를 하는 거예요. 알겠지요?”nbsp“예”nbspnbsp이 외에도 많은 질문들이 오가면서 활동가들의 얼굴도 점점 밝아져 갔습니다. 그 중에서 많은 대중들의 공감을 받았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하겠습니다. 법당에서 부총무 소임을 하고 있는 분의 질문에 대해 스님은 어떤 자세로 자원봉사자들을 안내하고 이끌어야 하는지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법당을 운영하면서 모두가 공감이 가는 질문이었고, 스님의 답변도 너무나 명쾌하고 재미있었습니다.nbspnbspnbsp“현재 법당에서 부총무 소임을 맡고 있는데 일을 못하는 편이라 스스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지금 수행법회를 담당하다가 이번에 천일결사 담당까지 맡은 봉사자가 일처리를 너무 잘해서 비교가 됩니다. 주변에서는 그래도 법당이 잘 돌아가고 있으니 괜찮지 않냐고 하지만, 저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그 봉사자를 보면서 주눅이 들어요. ‘일을 잘 하니 부총무를 시켜도 좋겠다’라는 마음도 있지만, 사람들의 호응을 끌어내거나 도반들과의 친목도 잘 다지고 일처리도 세세한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책임감 있게 잘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꾸 비교하게 됩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고, 주눅들고, 부러워하는 마음도 드는 와중에 제가 어떻게 해야 내년 1년을 편안하게 잘 지낼 수 있을까요?” nbsp“잘 알겠습니다.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인데요.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스님이 염불도 잘하고, 법문도 잘하고, 신도관리도 잘해야 절이 잘 운영될 텐데, 이 절은 스님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절이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법문은 법문 잘 하는 스님 부르고, 염불은 염불 잘 하는 스님 부르고, 공양주는 밥 잘하는 보살을 부른 게 비결이에요. 그리고 그날그날 절에 들어오는 수입은 법문하는 날은 법문하는 스님에게, 염불하는 날은 염불하는 스님에게 다 줘버리고 자기는 거의 갖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본인은 아무 능력도 없는데도 시간이 지나니 절이 아주 잘 운영되었습니다.nbspnbspnbsp또 이런 절도 있었어요. 이 절은 스님이 만든 절도 아니고 보살이 만든 절이에요. 절을 지은 보살은 절에서 밥만 해요. 법문은 법사 스님 모셔서 하도록 하고, 염불은 염불하는 스님 모셔서 염불하도록 하고, 자기는 부엌에서 밥만 해서 신도들 오면 대접해주고 안내해주는 것 뿐인데 절이 잘 운영이 돼요. 신도들이 법문하는 사람이나 염불하는 사람 따라갈 것 같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nbsp그러니 재주로 경쟁하려 하면 안 돼요. 자기 심지가 있어서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질문자가 부총무로 있으면서도 그 재주를 새로 온 사람들과 자꾸 비교하니까 열등의식이며 부러움, 질투심이 생기는 거예요. 우리 법당에 재주꾼들이 많이 오도록 해서 무슨 일을 잘하는지 봐두었다가 부총무도 시키고, 법회 담당도 시키고, 노래 잘 하는 사람은 목탁 가르쳐서 염불도 시키면 나는 아무 직책 안 가지고도 법당 운영을 잘 할 수 있어요. 일은 적합한 사람에게 모두 맡기고, 나는 필요 없으면 가만히 있고요. 그래도 법당에는 사람이 필요하게 마련이니까 청소 정도 가볍게 도와주고 간섭하지 않으면 다들 알아서 선배 대우를 해주게 되어 있어요. 자꾸 간섭을 하니까 귀찮다는 거지요.nbspnbsp이게 자기 수행력이에요. 그래서 수행력이 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목표하는 정토세상을 일구려면 사람이 많이 와야 해요. 일 잘하는 사람이 오면 좋아요. 또 일 못하는 사람이 와서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며 투덜거리는데, 그건 그것대로 내 직책을 계속 유지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에요. 잘하는 사람이 오면 우리 단체가 발전해서 좋은 일이니까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면 되고요. 미리 ‘부총무해라, 뭐 해라’ 말할 필요 없이 가만히 봐놨다가 총무님한테 ‘저 보살 똑똑하니까 잘 키우셔서 다음에는 이런 걸 한 번 시켜보세요’ 이렇게 이야기하고요. 나는 일을 못하네 어쩌네 하고 이리저리 비교하는 말을 할 필요 없어요. 절에서는 설거지 할 줄 알고 방청소 할 줄 아는 정도면 아무 문제없어요. 어릴 때 공부를 못했나, 왜 그런 걸 갖고 문제를 삼아요? 그런 건 상관할 필요가 없어요. nbspnbspnbsp좋은 사람들이 많이 오면 이것저것 시킬 수 있으니 좋아요. 뭐 하라고 명령할 필요도 없어요. 저녁반에서 그 사람이 알아서 척척 하고 있으면 내가 안 해도 되니 좋은 일이잖아요. 그런 걸 보고 소외감 느끼지 말고, 열심히 한다고 격려하면서 먹을 거나 슬쩍 갖다 주세요. 일 잘하는 건 칭찬으로 다시 돌려주고, 책임질 일은 내가 책임져주면 다들 좋아해요. 일은 하기 싫고 명예는 제가 갖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기 때문에, 명예는 돌려주고 책임은 내가 져주면 아무 재주 없어도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어요. 경쟁할 걸 경쟁해야죠.” nbsp“고마운 마음도 진짜 크긴 한데, 부족한 줄 알면서도 문득문득 그런 마음이 드니까 이번 해를 편하게 지내고 싶습니다.”nbsp“그러니까 이런 마음으로 한해를 지내라잖아요.” nbsp“알겠습니다. 많이 시원해졌어요. 고맙습니다.”nbsp“질문자가 어쩌면 역대 부총무 중 제일 잘한 부총무로 남을지도 몰라요. 자기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후계자를 잘 정해주는 사람이 역사에 남거든요. 우리 역대 조사님들을 봐도 본인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 스님 밑에 나온 제자가 똑똑해서 그 스승을 떠받들어 훌륭하게 기록해준 사례가 많아요. 그러니 질문자의 능력이 부족해도 괜찮습니다.nbspnbsp법당에서는 내가 잘 해서 자리를 잡아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음 사람을 잘 선택해서 일을 딱 맡기고 물러나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어려울 때 나서서 법당을 개척해 낸 사람이 있으면 처음에는 그 사람의 행동력 덕분에 잘 되었지만 다음에는 그 사람의 독선 때문에 법당이 잘 안 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대차게 밀어부치는 성격을 보면 ‘아이고, 지금은 잘하지만 앞으로 골치깨나 아프겠다’ 이렇게 예측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예측과 다른 경우도 가끔 있었어요. 자기는 총무를 3년만 한 뒤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자기는 뒤로 물러앉은 경우가 있었어요. 그렇게 법당 개척은 그 사람이 하고, 다음 법당 유지발전은 다른 분이 했어요.nbspnbsp반면에 한 사람이 잘 하다가 도리어 그게 독이 돼서 중간에 문 닫은 곳도 많아요. 그 사람의 고집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손드는 거예요. 여간한 고집통이 아니면 못 밀어붙이니까 그렇게 밀어붙여서 개척은 했는데 그 고집통 때문에 앞으로 더 못 나아갑니다. ‘개척하는 건 내가 잘 하지만 유지관리는 내 능력이나 성질로는 어렵다’라고 하면 빠져줘야 하는데, 사람이 그리 하기 쉽지 않죠.nbsp또 유지관리는 잘 하지만 개척은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은 개척하는 사람을 잘 모셔줘야 해요. ‘저 사람이 좀 골치 아프기는 해도 저 사람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이걸 시작할 수 있었겠느냐. 공로를 인정해줘야겠다’ 해서 좀 받들어주면 운영이 잘 되는데, 그것도 시비 삼으면 힘들어요.nbspnbsp억지로 맡으면 문제이긴 하지만, 재주가 없어도 법당 운영을 잘 할 수 있어요. 제가 ‘혼자서 법문 영상 틀어놓고 목탁 쳐도 된다’라고 늘 이야기하잖아요. 내가 법문이 좋고 듣고 싶으니까 듣는데, 한 명 오고 두 명 와서 조금씩 느는 거예요. 네댓 명 정도까지는 어느 정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사람이 많으면 반드시 의논을 해야 하고, 그보다 더 많아지면 조직적인 관리를 해야 해요. 나는 그런 건 좀 안 맞다 싶으면 바톤을 넘겨줄 생각을 해야 해요. 조직적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가만히 지켜보다가 넘겨줘야죠. 그렇다고 ‘나는 못 하니 네가 잘해봐라’ 이런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지켜보니 자네가 하면 나보다 더 잘할 것 같은데 한번 해봐라. 내가 뒤에서 밀어줄게’ 이래야지, ‘잘 하는 네가 해라. 나는 그만두련다’ 하면 그 사람도 안 해요. 앞에 하던 사람이 그만두겠다는데 뒷사람이 무엇 때문에 하겠어요?nbspnbsp일일이 거명은 안 하겠지만 이런 분란이 지금 한둘이 아닙니다. 뒤에 온 사람이 너무 설치니까 앞의 사람들이 기가 죽어 못하겠다며 나가떨어진 데가 지금도 몇 군데나 돼요. 뒷사람이 잘 하면 앞사람이 좀 넘겨주고 칭찬도 해주고, 뒷사람도 앞사람이 개척한 공로를 생각해서 조금 받들어주면 되는데 이게 잘 안 되는 게 중생이잖아요. 우리가 다 그 정도로 깨어있으면 여기 와서 수행할 필요가 없겠지요. 이런 부족함을 우리가 안고 가는 가운데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거예요. 옛날에는 이게 다반사였다면 요즘은 다섯 건 가운 데 한 건 꼴로 줄어들었고, 앞으로 또 좀 더 나아질 거예요.nbspnbsp앞에서도 이야기했듯, 부족한 것은 운영하는 데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부족한 게 너무 잘 하려고 하거나 잘났다고 생각할 때 문제가 되는 거예요. 부족함을 부족한 줄 알면 그냥 다른 사람이 잘 하도록 뒷바라지 해주면 돼요. 그거 잘나서 뭐 하고, 그 일을 꼭 내가 해서 뭐 하겠어요? 그런 자세로 임해보세요. 그래도 내가 처음 시작해서 3년간 개척하고 애쓴 결과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와서 일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았으니 자랑스럽잖아요. 자기를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해요. 질문자 없었으면 법당을 못 열었을 거예요. 창건주잖아요. 정토회에서는 창건주를 굉장히 예우해 줍니다.” nbspnbsp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모두들 큰 위안을 받은 듯 활동가들은 웃으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밤 10시가 다 되어 마칠 시간이 되자 스님은 마지막으로 활동가들을 격려하는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이번 명상수련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하며 밤낮 없이 지난 1년간 일해 왔는데, 다들 원기 회복이 되었는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는지 확인하며 내년에도 힘차게 활동할 수 있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습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 1년 동안 자기 돌아볼 시간도 없이 애썼는데 이번에 좀 자기가 돌아봐졌어요? 원기도 좀 회복됐고요?”nbsp“예.” nbsp“밥을 안 먹어서 목소리 내기는 힘들지만 저도 기운이 조금 났습니다. 4일 전 명상 들어오기까지가 저는 거의 극한 상황이었어요. 하루만 더 가도 병원에 입원해야 할 수준이었는데 어떻게 날짜를 간신히 맞춰 명상 타임에 골인해서 원기를 그나마 회복했어요. 이 기운으로 내년 여름까지 가야 하는데 기간이 좀 멀어요. nbspnbspnbsp마지막에는 해열제를 먹어가며 버텼어요. 그래도 어쨌든 저는 무턱대고 가지 않고 중간 중간 이렇게 쉼터를 둬서 리모델링 해가면서 가요. 명상 수련은 자기를 돌아보고, 휴식도 취하고, 우리가 함께 마음을 모으기도 하는 좋은 시간이니까 다리 좀 아픈 거나 머리에 망상 드는 걸로 시비하지 마세요. 머리에 있던 쓰레기가 자꾸 나오는 걸 어떡하겠어요? nbspnbsp그냥 ‘머리에 쓰레기가 좀 많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옆구리도 쑤시는 등 원래 온갖 통증이 다 생겨요. 그러니 뭐든지 명상을 하는 동안 생겨난 부작용이나 잘잘못을 시비하지 마세요. 늘 이것도 실험해보고 저것도 실험해보고, ‘오, 이건 이러면 되는구나. 저건 저러면 안 되니까 다음부터는 안 그래야겠다’ 이렇게 확인하면서 살아가면 돼요.nbspnbspnbsp잘못한 것도 돌이키기만 하면 엄청난 공덕이 됩니다. 지금 완전해지려고 하지 마세요. 어제보다 삶이 나아지면 됩니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여러분은 미래문명을 생각하고, 통일을 생각하고, 나라와 역사를 생각하잖아요. 스님 안 만났으면 그저 아웅다웅하고 살기 바빴을 텐데, 그래도 세상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우리들의 포부는 크잖아요. 조금만 더 공부하면 세계시민으로 모자람이 없어요. 지금 정토회 회원들의 원과 의식 수준이면 우리나라 국민의 1퍼센트 안에 들어가서 웬만한 지식인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nbspnbsp여러분들의 수준과 사물을 보는 눈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높아진 거예요. 아직 과거의 업이 남아서 어쩔 줄 모르고 좀 헤매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졌어요. 이렇게 조금 더 계속 하면 다들 우리 나라의 지도자가 됩니다. 어떤 지도자가 될지는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때가 되면 어떤 형태로든 여러분들이 다 제 역할을 하게 되어 있어요. 한번 자기를 돌아보세요. 여기 들어올 때 처음부터 총무하려고 들어온 거 아니잖아요. 괴로워서 울고불고 하는 가운데 얼결에 밀려서 총무 되고, 이리저리 밀려서 또 뭐가 되는 거예요. 늘 좋은 방향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지도자가 됩니다. nbspnbsp지도자로 밀려올라갔을 때 똥차가 되면 안 되니까 지금부터 되든 안 되든 교양은 닦아야 해요. 자꾸 지금 잘했느니 못했느니 하지 마세요. 이걸 통해서 내 인생이 훈련되는 거예요. 이런 일을 안 맡으면 애나 남편과 싸우는 거 말고 여러분이 세상 경험할 게 뭐가 있겠어요? 이런 걸 맡아서 도반들하고 찌그럭대고, 잘난 사람도 밑에 두고 부려보고, 못난 사람에게서 배우기도 하면서 리더십이 늘어가는 거예요. 울고불고 못해먹겠다고 하는 가운데서도 자꾸자꾸 성장해가는 중이에요. 농사로 치면 씨를 뿌려놓았는데 잘 자라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정말 소중해요. 그러니 꾸준히 정진해 갑시다.”nbsp스님의 따뜻한 격려 말씀에 활동가들은 박수갈채로 화답했습니다.nbspnbspnbsp대화의 시간이 모두 끝나자 활동가들은 다시 묵언으로 돌아갔습니다. 웃음과 박수 소리를 뒤로 하고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일부는 다시 명상 자리에 앉아 개인 정진을 더 이어갔고, 일부는 숙소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스님도 숙소에서 더 정진의 시간을 가진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활동가 연말 명상수련의 5일째이며 마지막 날입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명상을 한 타임 가진 후 스님의 발원 기도, 소감문 작성과 발표, 회향법문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더불어 명상수련을 마친 후 공동체 실무자들은 스님과 함께 정일사수련을 3일 동안 가질 예정입니다. 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31. 51,970 읽음 댓글 41개

2015.12.29 연말 명상수련 4일째, 즉문즉설 제1부 (수행편)

nbsp안녕하세요. 지난 12월 26일에 시작한 명상수련이 오늘로서 4일째를 맞이했습니다. 이번 명상수련은 매년 여름에 진행되는 일반인 명상수련과는 달리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활동가들은 일을 많이 하다보니 자칫하면 수행을 놓치기 쉬운데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함께 정진을 하게 되어 다시 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문경 정토수련원 대수련장nbsp첫째날 입재 법문을 시작으로 문경 정토수련원 대수련장은 시작과 끝을 알리는 죽비 소리만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울릴 뿐 고요한 정적만 흐른 채 명상이 계속 되었습니다. 활동가들은 대부분 명상을 꾸준히 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번 명상수련에서는 스님도 법문을 거의 하지 않고 명상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nbsp늘 법문을 들으며 명상을 했는데 법문이 일절 없으니 몇몇 분들이 “너무 지루해요” 라고 답답함을 토로하는 건의를 해서 3일째 저녁에는 스님의 격려 법문이 한 차례 있었습니다. 스님은 명상을 꾸준히 하는 것은 수행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오늘 4일째 저녁에는 이번 명상수련을 마무리하면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즉문즉설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눠서 진행이 되었는데, 전반부에서는 수행과 관계된 질문을 주로 받았고, 후반부에서는 활동하면서 겪는 의문이나 애로점들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먼저 스님이 이번 시간의 취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4일간 정진 잘 했습니까? 이 시간만 묵언을 풀겠습니다. 누구든지 손을 들고 자유롭게 질문하세요. 수행하면서 느낀 점, 교리 상의 의문점, 평소 정진하다가 생긴 문제, 활동하면서 겪는 의문이나 애로점이 있으면 질문하세요.nbspnbsp개인 질문은 하지 말라고는 않겠지만 이렇게 우리 활동가들끼리 모여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제가 보고 한두 마디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면 일단 넘기겠습니다. 하는 것까진 좋지만 제가 듣기만 하고 넘길 테니 그리 이해하고 섭섭해 하지 마세요. 저만 보면 그저 개인사 묻고 싶죠?” nbspnbsp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곧이어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중간에 쉬는 시간 없이 약 네 시간 동안 10여 명이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명상수련의 끝무렵이여서 그런지 선정을 닦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 많은 분들의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선정법과 다른 선정법의 차이점에 대해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머리로는 어느 정도 정리했지만 스님께 명확한 말씀을 듣고 싶어 여쭙니다. 오후 명상 중에 문득 부처님께서 선정주의자들로부터 선정을 배우신 뒤에 다시 나오신 게 생각났습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이라 해서 다 선정 아닌 게 없다고 말하지만, 일상적으로는 고요히 앉아서 선정에 들면 괜찮아졌다가도 선정에서 깨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갑니다. 부처님께도 선정을 늘 할 수가 없고 선정에 들 때만 행복하다면 이건 참된 깨달음이 아니라고 생각하셨기에 선정주의를 부정하고 나오셨다고 배웠습니다. 당시 인도에도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선정법이 많은데, 부처님의 선정법은 다른 것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지요? 부처님의 삶이나 계율, 전법 같은 여러 가지 활동과 결국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져서 여쭙니다.”nbsp“수행을 하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즉 계·정·혜 삼학을 듭니다. 첫째는 바깥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을 정갈하게 하는 것, 즉 계행을 청정히 지키는 것입니다. 다음은 그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 즉 선정을 닦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아는 지혜를 증득하는 것입니다.nbspnbspnbsp그런데 계율을 중시하지 않고 선정만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들어맞지는 않지만 대표적으로 라즈니쉬 계열이 그런 편입니다. 선정을 이야기하기는 하나 계율이 그리 엄격하지 않고 인간의 욕망을 어느 정도 인정하기 때문에 특히 북미·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어요.nbsp다른 한편으로 선정은 있으되 지혜, 즉 깨달음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도 선정주의자들의 대부분이 이렇게 오직 고요함만을 추구했어요. 부처님께서 고요함을 추구하신 것은 인도에 이미 있던 선정의 방법을 배워서 그대로 행하신 거예요. 그런데 고요함만 추구하는 것은 완전한 고요함인 열반이 아닙니다. 깨달음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어진 일정 조건에서만 고요함이 유지되지, 고요함이 일상에서 유지되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은 스승 곁을 나와서 더 깊은 선정을 닦았지만 여전히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어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다가, 우리들 대부분이 스스로에게 일어나는 욕망을 따라간다고 한다면 선정은 그 욕망을 주로 억제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욕망을 지나치게 억제하면 고행주의라 하고, 고행주의가 아니더라도 선정주의 또한 어느 정도 욕망을 억제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이 모두 욕망에 대한 반응이라는 걸 깨닫고 그 고행마저도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중도를 발견하셨습니다.nbsp이 중도는 붓다가 누구한테 배운 게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신 거예요. 당시 인도 사회의 주류였던 브라만교에서는 수행을 하더라도 욕망을 충족시키는 게 복이고 은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에 반대해서 일어난 사문류에서는 욕망에 대한 절제와 억제를 중시했습니다. 부처님은 이 비주류에서 출발했지만, 주류의 모순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비주류에도 역시 편견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셨어요. 그래서 주류를 무조건 반대하는 개념도 놓아버리고 오직 진실이 어떠냐는 관점에서 접근하신 결과 소위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다’는 중도를 발견하시고, 중도의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nbsp그런데 깨달음을 얻으신 뒤의 부처님의 행보를 살펴보면 계율도 또한 잘 지키셨습니다. 불교는 계율을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그런데 이 계율은 단순히 보여주기 위해서 욕망을 억압하고 억제하는 계율이 아니에요. 그래서 부처님은 보여주기 위한 계율, 예컨대 밥을 안 먹거나 잠을 안 자는 것으로 대중의 신비주의를 자극하는 계율을 금하셨습니다.nbspnbspnbsp특히 데바닷타와의 토론을 보면 이런 뜻이 잘 드러납니다. 당시의 고행주의자들은 반드시 걸식을 해야 하고, 식사 초대를 받으면 안 되며, 하루 한 끼만 먹어야 하고, 고기도 먹으면 안 됐어요. 옷은 시신을 싸서 버린 분소의만 입어야 했어요. 잠은 나무 아래나 동굴처럼 자연적인 곳에서만 자야지, 인공적으로 만든 처소에서 자면 안 돼요. 이게 당시 수행자의 기본자세인데 이제 부처님의 제자들 중에는 때로는 식사 초대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두 끼 먹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고기 든 음식을 먹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새 옷을 입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집에서 자는 사람도 있었습니다.nbspnbsp그래서 데바닷타가 계율을 좀 더 엄격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문제제기를 했을 때, 부처님은 걸식을 하는 건 수행자로서 참 모범적이고 훌륭한 일이지만 ‘걸식만 해야 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어요. 이게 차이점이에요. 계율을 지키는 건 좋지만 그 계율에 대해서 단정해버리거나 경직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는 그걸 지키는 게 옳지만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에요. ‘걸식할 필요 없다. 밥을 사먹어도 되고 식사 초대를 받아도 된다’라고 말씀하셨다면 nbsp계율을 흩트리는 쪽으로 갔겠지만 이렇게 말씀하신 게 아니에요. 걸식하는 것은 수행자로서 참 훌륭한 일이라고 붓다도 권유하셨고, 붓다 자신도 평생 그렇게 하셨어요. 그러나 때로는 식사 초대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식사 초대를 받았다고 해서 그걸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nbspnbsp마찬가지로, 하루 한 끼만 먹는 것은 수행자로서 참 잘하는 일이지만 그걸 딱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성년이 되기 전에 출가한 사미들처럼 아직 신체적으로 더 자라야 하는 아이들이나 영양분이 필요한 환자는 하루 두 끼를 먹을 수도 있잖아요. 채식을 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걸식을 하는데 상대가 준 음식에 예컨대 생선이 들었다고 해서 먹지 않고 버릴 수는 없잖아요. 걸식은 주는 대로 먹는 게 핵심이지, 음식에 뭐가 들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래서 불교는 채식을 주로 하지만 채식주의는 아닙니다. 채식주의는 채식 외에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니까요. 주로 걸식을 하니까 대부분 채식을 하는 편이긴 하지만, 채식만 해야 한다고 단정지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육식을 하지 말라’ 혹은 ‘채식만 하라’ 이런 계율은 없고, ‘맛에 집착하지 말라’라는 계율이 있습니다. ‘한 끼만 먹어라’ 이런 계율은 없고, ‘때 아닌 때에 먹지 말라’ 이런 계율만 있습니다. 하루에 한 끼를 먹더라도 때가 아닌 때에 먹어서는 안 돼요. 몇 끼를 먹느냐는 형식보다는 음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서 음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nbsp옷과 잠자리도 그렇습니다. 분소의를 입는 것은 아주 훌륭한 일이지만 분소의가 없다면 새 옷을 입을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예컨대 분소의는 열 벌뿐인데 출가한 사람이 스무 명이라면 열 명은 옷이 없어서 수행자가 못 되거나, 벌거벗고 다녀야 하거나, 새 옷을 가져와 시신을 한번 덮었다가 벗겨서 입어야 하잖아요. nbspnbspnbsp그렇게 형식적으로 할 필요는 없으니 분소의가 없을 때는 새 옷을 입어도 좋다는 겁니다. 일부러 새 옷을 입으라는 게 아니에요. 나무 아래나 동굴에서 자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비가 오거나 할 때는 사람이 없는 빈 집의 처마 밑에서 자도 좋다고 했습니다. 수행자가 밖에서 잔다는 것은 안온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 잠자리가 인공적인지 여부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nbspnbsp부처님은 계율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계율을 잘 지키되, 이렇게 열려 있다는 점에서 다른 고행주의나 율법주의와 달랐어요. 계행을 안 지켜도 안 되고, 계행을 경직시켜도 안 되는 가운데 중도를 지키는 것이 부처님의 위대함이에요. 이렇게 계율에도 다 중도가 적용되어 있습니다.nbsp선정을 닦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정을 닦을 때는 욕망을 따라가도 안 되고, 욕망을 억압해도 안 되고, 다만 욕망을 욕망인 줄 알아차리라는 거예요. 따라가지는 않지만 억압하면서 안 따라가는 게 아니라 다만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가지 않는다는 형식에서는 고행주의와 같고 계율을 지킨 것과 같지만, 억압하지 않고 있다는 데서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않고 즉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선정도 집중하거나 호흡을 관찰하거나 시신을 보며 명상하는 부정관처럼 바깥에서 보이는 형식은 다른 선정주의와 같지만 그 관점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nbspnbsp그래서 수행에서 관점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렇게 할 때만 자기 상태는 물론 모든 사물에 대해 있는 그대로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사물이 움직이는 법칙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것을 다른 말로 ‘바르게 사물을 알아차리고 사유한다’라고 합니다. 법칙과 이치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에 따른 사유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불교와 당시 다른 종교의 차이라고 볼 수 있어요.nbspnbsp그러나 불교가 종교화되는 과정에서 이런 근본불교의 수행법과 계율에 담긴 원래 가르침은 대부분 없어지고 그냥 ‘불살생’이라는 계율이나 종교의식의 형식만 남아 전해지게 되었어요. 불교의 본질 중 아주 핵심에 해당하는 10퍼센트는 잃어버리고 90퍼센트의 형식만 남으니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자이나교나 불교나 비슷해져 버렸어요. 인도에서는 힌두교나 불교도 별 차이가 없어요. 같은 인도식 건물이니까 사원 모양도 비슷해 보입니다. 외국인이 보면 우리 서원이나 절이나 다 똑같은 기와지붕 건물로 보이잖아요. 자세히 보면 물론 다르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단청이 있고 없고 정도밖에 구분 못 하는 수준이에요.nbsp그래서 그런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은 현실입니다. 이미 이렇게 혼용되어버렸기에 정체성을 상당부분 잃어버렸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nbspnbsp불교는 인도의 전통 브라만교를 반대해서 일어난 가르침이었지만, 후대의 인도 불교는 시간이 흘러 민중화되는 과정에서 인도 문화를 도로 흡수하게 됩니다. 중국 불교가 중국 문화를 흡수하고 한국 불교가 한국 문화를 흡수한 것도 마찬가지예요. 같은 문화권에 있는 형식이다 보니 자연적으로 종교화되는 과정에서는 힌두교와 큰 차이가 없어져서 수행법도 계율도 유야무야 되고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습니다.nbspnbsp소승불교라고 해서 반드시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소승불교 역시 대부분 인도 문화권이기 때문이에요. 경전이나 계율 같은 것은 소승불교가 불교 중에서 제일 원칙을 지키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신도들이 신앙 생활하는 형태는 힌두교와 거의 비슷해요. 예를 들어 스리랑카에 가 보면 복식 같은 건 힌두교와 완전히 달라보일지 몰라도 신자들이 지내는 제사 의식은 거의 힌두교 문화예요. 그게 곧 인도 문화니까요. 우리 한국 불교인들이 유교의 영향을 받아서 제사지내는 것처럼, 그런 문화적인 요소는 거의 비슷합니다.nbspnbspnbsp독자적인 문화를 따로 유지하지도 못했고, 인도 내에서는 이슬람교의 침입을 받으면서 원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어요. 출가해서 승려가 되는 길을 막아버리니까 자연히 토속신앙인 힌두교로 흡수되어 버렸어요. 조선시대에 출가를 못하게 막은 결과 오늘날 우리 한국 불교도 산신이나 칠성 운운하는 민속신앙과 융합해 비슷해져 버렸잖아요. 또 우리나라에 유교와 불교만 있을 때는 차이가 크다고 해서 유교가 불교를 탄압했는데, 훗날 기독교가 들어오니까 유교와 불교가 비슷해졌어요. 유교는 자체적인 유지를 못하고 지금은 불교 안으로 들어오다시피 해버렸습니다. 인도에서도 출가를 막고 절을 파괴해버리니까 불교가 이렇게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렸어요. 힌두교는 따로 출가를 하거나 교육을 받는 게 아니라 누구나 다 나무 밑에 가서 빌 수 있잖아요. 그러니 사람들을 다 죽이지 않는 이상은 없애려야 없앨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서양 달력을 들여와서 음력설을 없앤다 해도 농민들이 계속 지키니까 어쩔 수 없이 음력설로 돌아간 것처럼, 현재 인도에서는 불교가 힌두교 안으로 흡수되어 버렸어요.nbspnbsp정리하자면 첫 번째로는 정체성을 상실했고, 두 번째로는 외적인 탄압에 의해 다른 신앙에 흡수되어 버렸습니다. 이 두 가지 요인 때문에 인도의 불교가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궁금함이 모두 해소되자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부처님이 알려준 명상법은 계율과 선정, 지혜를 함께 추구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게 된 역사를 들으면서 가슴 한 켠이 씁쓸하기도 했습니다.nbsp이렇게 수행에 대해 질문한 전반부 시간이 다 지나가고 이어서 활동과 관련해 들었던 의문에 대해서 묻고 답하는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법사님, 처장님, 각 부서 국장님, 각 법당 총무님 등 정토회의 주요 간부들이 모인 자리여서 그런지 일반 법회와는 달리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nbsp후반부에 이어진 정토회 활동과 관련된 즉문즉설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30. 53,215 읽음 댓글 30개

2015.12.25 쑥고개 성당 성탄절 미사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성탄절을 맞이하여 쑥고개 성당에서 열린 성탄절 미사에 참석해 축하 인사와 더불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참뜻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친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아침 10시 20분에 정토회관에서 쑥고개 성당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정토회 새벽 예불nbsp쑥고개 성당 입구는 성탄 미사를 드리기 위해 찾아온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nbspnbsp대기실에서는 쑥고개 성당의 김홍진 신부님을 비롯해 박남수 천도교 교령님, 김대성 원불교 교무님이 속속 도착해 스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미사가 시작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차담을 나누면서 스님은 어제 경동교회 성탄전야 예배에서 목사님이 해준 설교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었다며 소개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아기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이 최근 IS 테러로 인해 관광객이 대거 줄어든 반면 근방에 있는 산부인과를 찾는 사람들은 더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원정 출산하려는 사람들 때문인데, 그 중 상당수가 한국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고난의 길을 간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성지에서 아이를 낳으면 축복 받는다는 생각에 IS 테러의 위협도 아랑곳하지 않는 기복 신앙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꼬집었습니다. 신부님과 교령님, 교무님도 모두 공감하면서 지금 한국에는 오직 한 가지 신앙인 ‘돈교’만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nbspnbsp11시가 되자 드디어 성탄 축하 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2층에서는 성가대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가운데 신부님, 스님, 교령님, 교무님이 차례대로 입장을 했습니다.nbspnbsp▲ 쑥고개 성당nbsp김홍진 신부님의 안내로 아주 거룩하게 성탄절 미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적절한 시간이 되자 신부님이 “오늘은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오셨다”며 스님, 교령님, 교무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웃 종교인 세 분이 나란히 십자가 앞에 서자 열렬한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 성탄절을 맞아 함께 자리한 이웃 종교인들. nbspnbsp신부님까지 포함하면 4대 종교가 함께 어우러져 성탄을 축하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화합이 무엇인지 행동으로 보여주는 네 분의 모습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먼저 박남수 교령님이 성탄 축하 인사를 한 후 이어서 스님이 앞으로 나와 성탄 축하 메시지와 함께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참뜻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성탄 축하드립니다. 한 사람의 삶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특히 성인들의 경우는 태어날 때와 죽을 때 가장 상징적으로 묘사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어떻게 했느냐를 보면 그 삶을 알 수 있습니다. 태어나실 때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으며 돌아가실 때 어떤 모습으로 돌아가셨는지를 보면 그 분의 삶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지금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지만, 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오실 때는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환영받지 못해도 제 부모에게는 환영받게 마련인데 예수님은 제 부모에게도 처음에는 환영받지 못했어요. 결혼을 하지도 않았는데 아기를 가졌으니 그 어머니가 너무나 놀랐고, 결혼을 하지도 않았는데 아내 될 사람이 아기를 가졌으니 그 아버지도 매우 놀랐습니다. 그 어머니가 놀라서 거부하고, 그 아버지가 놀라서 파혼을 하려고 할 때, 천사가 나타나서 이것은 ‘하느님의 뜻이다’라고 전했는데, 두 분은 원치 않았지만 주님의 뜻이라면 세상의 어떤 비난과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신앙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nbspnbsp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의 자연적, 사회적 환경도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따뜻한 봄날이 아니라 추운 겨울날에, 게다가 밝은 낮이 아니라 어두운 밤에, 그것도 따뜻한 방이 아니라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어요. 또 로마의 지배를 받는 변방의 작은 나라에서, 그 속국의 왕이 자기 백성을 억압하는 나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의 탄생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이방인인 동방 박사들이 주님의 오심을 가장 먼저 알아본 것도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nbspnbspnbsp하느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이 이 땅에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동박 박사들로부터 듣고 놀란 헤롯왕이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 주변의 갓난 애기들을 모두 죽이는 대참극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품에 안겨서 애굽까지 피난길에 올랐다가 간신히 돌아올 수 있었어요. 태어나실 때부터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nbspnbsp이야기를 하다 보니 오늘 아침에 본 뉴스가 생각납니다. 이스라엘 극우 세력들이 어린 아기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일가족을 불질러 학살하고, 죽은 아기의 사진을 들고 아기가 죽은 것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었다는 기사를 보고 증오와 미움이 사람을 얼마나 타락시키는지 알 수 있었어요. 오늘 그 뉴스를 보면서, 마치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이처럼 예수님은 결코 오늘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축하 받으면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어요. 성경 말씀대로 표현하자면 ‘가장 작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셔서 가장 핍박을 받다가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가셨어요. 세상 이치로 보면 실패한 인생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그런데도 결국은 부활하셔서 가장 높은 자가 되셨습니다. 긴 역사 속에서 보면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훌륭하고 성공적인 삶을 사신 것으로 만인이 추앙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이런 예수님의 탄생 모습을 생각해보면, 하느님의 축복이 우리가 생각하듯 꼭 영광으로만 오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온갖 수난과 장애로 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수난이 하느님의 축복인 줄 알지 못해서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수난을 피해가려 합니다. 실제로는 그 수난과 고통이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축복이고 하늘 나라로 가는 유일한 길인데도 오늘 우리는 그 길을 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nbspnbsp마태복음 25장 31절부터 보면 최후의 심판 날 천국과 지옥에 가는 심판의 그 기준이 무엇인지 나옵니다. ‘주께서 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느냐?’,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느냐?’,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혀주었느냐?’,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했느냐?’, ‘병들었을 때 보살폈느냐?’,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 면회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생존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 다시 말해 굶주리는 사람, 병든 사람, 고향을 떠나 피난길에 오른 난민들, 죄 없이 감옥에 갇혀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했느냐가 기준이에요.nbspnbsp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그런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이 기독교 국가라고 하지만 오늘날 유럽을 향해 오는 중동 난민들을 유럽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유럽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이 땅에 온 많지 않은 무슬림, 이주민들을 벌써 잠재적 테러범으로 취급하면서 테러방지법을 만든다며 난리를 피우는 것을 보면 이것은 종교와 관계없는 인간의 어떤 야만성을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nbspnbsp예수님의 오심은 우리들에게 분명히 구원의 희망을 주는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구원의 희망과는 다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오심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구원의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nbspnbspnbsp지금 실패하고 패배하고 큰 어려움에 처한 처지가 단기적으로 보면 실패지만, 주님의 삶을 생각하며 길게 본다면 이것은 결코 실패한 삶이 아니고 패배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성공으로 가는 어떤 출발점일지 모릅니다. 우리들이 겪고 있는 이 고난은 그 분이 겪으신 고난에 비하면 고난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그러니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이 어려움 속에서 신앙의 힘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해내야 합니다. 즉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만 희망을 갖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절망에 빠진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희망의 메시지인 복음을 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nbsp또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의 마지막 모습, 즉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두고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저는 깊은 영감과 믿음을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유대교에서 전해 내려오는 하느님은 죄를 응징하는 하느님이었는데,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죄를 응징하는 하느님에서 죄를 용서하는 하느님이 되셨어요.nbspnbsp또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서 보면 유대인만을 구원하는 폐쇄적 구원관이 아닌 이방인까지도 구원하는 열린 하느님과 개방된 구원관을 보여 줍니다. 나만을 사랑하는 하느님에서 만백성을 똑같이 사랑하는 하느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또한 예수님을 통해 신앙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의 오심을 통해서도 자기성찰을 하지 못하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기에 신앙이 바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그 땅에는 미움과 증오, 복수가 계속되는 게 아닐까 합니다.nbspnbsp오늘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기독교인 중에서도 일부이기는 하지만 증오와 복수로 신앙을 삼는 사람들이 아직 많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북한을 미워하더라도 신앙인들은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더 나서서 미워하고 증오하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이해하고 포용해야 할 텐데 오히려 더욱 배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위배된다고 생각합니다.nbsp그래서 저는 기독교냐 불교냐 하는 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불교인들도 다 하느님의 창조물이고 하느님의 백성이지 않습니까? 문제는 ‘신앙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어떤 신앙을 갖느냐’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정말로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질 수 있는 신앙인지를 성탄절을 맞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nbsp제가 어릴 때 배운 찬송가 중에 이런 찬송가가 있습니다. 초등학생 때 배워서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고 곡도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불러보겠습니다.nbsp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nbsp♬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nbsp♬주께 더 나아가기 원합니다.nbspnbspnbsp노랫말에서 보듯이 우리가 주를 가까이 한다는 것은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지, 물질적인 축복을 받는 데서 행복을 찾는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기 어렵습니다.nbspnbsp어릴 때 배운 노래니까 잊히지 않는데, 저는 통일운동을 하니까 통일운동을 하는 자세도 이 노랫말과 같다고 생각해요. 통일을 원한다면 분단의 갈등 속에서 뿌리내려온 증오와 미움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질 각오를 해야 합니다. 증오하는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통일 조국을 건설하는 것이 진정한 소원이라면, 그걸 기쁜 마음으로, 찬송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이 운동을 꾸준히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통일에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서 그만두게 됩니다.nbspnbsp가톨릭 순교의 역사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아무 죄도 안 지었는데, 다시 말해 남을 때리지도 않고, 도둑질하지도 않고, 성추행하지도 않고, 거짓말하지도 않고, 술에 취해서 행패부리지도 않았는데, 그저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는 한 가지 이유로 죽임을 당하면 억울하고 분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그런데도 사형당하는 형제들 간에 웃으면서 ‘잘 가라. 천국에서 점심 먹을 때 보자’라고 인사나눌 수 있는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신앙입니다. 과연 우리가 죽음 앞에서 이렇게 원망 없이 웃으며 우리의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요?nbspnbspnbsp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권세 있는 자를 위에서 내리치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셨습니다. 그래서 만인을 평등하게 하셨어요. 오늘날 이 땅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는데 권세 있는 자에게 빌붙는 비굴한 삶보다는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람과 함께함으로 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누리는 삶을 우리가 함께 실천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며 오늘 예수님 오신 뜻을 다시 한 번 새겨봅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스님의 성탄절 축하 강론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참뜻이 무엇인지 가슴 절절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말씀이었습니다.nbspnbsp신부님은 스님의 강론을 열심히 경청한 후 “스님께서 예수님 탄생의 의미와 십자가의 신비에 대한 신학적 고찰에 대해 주임 신부인 저보다 더 잘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라며 웃었습니다.nbspnbsp▲ 쑥고개 성당 김홍진 신부님nbspnbsp함께 자리한 교인들도 웃음을 띠며 다시 한 번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김대성 원불교 교무님의 축한 인사가 이어졌고, 세 분의 종교지도자의 말씀이 모두 끝나자 신부님은 스님과 함께 온 정토회 식구들, 교령님과 함께 온 천도교 식구들을 모두 불러 일으켜서 인사를 시켜 주었습니다. 환영의 박수가 계속 이어졌습니다.nbspnbsp▲ 성당 식구들에게 인사하는 정토회 회원들nbsp이렇게 성탄절 미사에 4대 종교가 함께하는 모습은 그 모습 자체만으로 참 감동이었습니다.nbspnbsp이웃종교인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훈훈한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가운데 드디어 본격적인 미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가장 눈에 띈 건 세례명을 주는 의식이었는데 총 19명의 천주교인들이 대부, 대모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거룩한 의식을 가졌습니다. 웅장한 찬송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여러 차례 십자가 앞으로 나오게 하여 한 명 한 명을 예수님이 가신 그 길로 인도해주는 모습은 아주 거룩한 분위기를 자아내었습니다.nbspnbsp▲ 세례를 받고 있는 천주교인들nbsp이렇게 2시간 동안의 성탄절 미사를 모두 마치고 오후 1시부터는 성당 2층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성당에서는 몇몇 분들이 아침 일찍부터 떡국과 갖가지 반찬을 정성껏 준비했다고 합니다.nbsp맛있게 떡국을 먹으며 신부님이 주신 미사주를 잔에 붓고 다함께 건배를 했습니다.nbspnbspnbsp특히 성당에서도 청년들이 20여 명 참께 했고, 정토회에서도 20여 명이 함께 자리해 서로 마주 앉아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분위기가 무르익자 김홍진 신부님은 “이웃 종교에 대해 서로 궁금한 것이 많으시죠?” 라며 잠시 즉문즉설의 시간을 갖자고 했습니다. 각자의 종교에 대해 궁금한 점에 대해 끼리 끼리 대화를 나누던 청년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스님과 신부님, 교령님, 교무님 네 분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먼저 쑥고개 성당에 다니는 한 분은 “요즘 저희 성당에서는 서로 일을 도맡아 하려고 하지 않고, 앞에서 끌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힘듭니다. 스님의 조언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질문했습니다.nbspnbspnbsp그러자 스님은 망설임 없이 곧바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희 정토회도 똑같아요. 방법이 없어요. 쑥고개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책임지고 하는 일은 가능한 안 하려고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해답이 있으면 누가 저한테도 좀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어요.” nbspnbsp예상치 못한 짧은 대답에 모두가 크게 웃었습니다. nbsp질문자가 “알겠습니다.”하고 자리에 앉자 스님도 “이것 봐요. 답을 주지 않아도 해결이 되어버리잖아요.” 하며 웃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성당과 정토회의 청년들 간의 교류와 친목의 시간이 펼쳐졌습니다. 스님은 교류의 시간을 갖기에 앞서 오늘의 만남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종교 지도자 간의 교류는 예전부터 많이 있어 왔지만 오늘처럼 신자들 간의 교류는 거의 없었어요. 종교 지도자들이 신자들을 못 믿었나 봐요. 혹시 교류하다가 양떼 잃어버릴까 걱정이 되어서요. nbspnbspnbsp그러나 이제는 지도자 간에만 이루어지는 제한된 교류가 아니라 좀 더 전면적인 교류가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사월 초파일과 크리스마스에 서로 오가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교류를 더 넓혀 나가면 공동 활동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구 환경을 살리는 운동에서 공통점을 찾아 함께 할 수도 있고, 국제 구호활동도 선교나 전법이라는 목적을 떠나 인류애로서 함께 할 수 있고, 공동 바자회를 함께 열거나 통일운동을 함께 해볼 수도 있어요.nbspnbsp불교인이냐 기독교인이냐를 떠나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면서 겪어야 하는 공통의 문제와 해결과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간다면 그 과정에서 각자의 신앙도 더 깊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교리를 비교해서 공통점이 있네 없네 따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예요. 믿음은 각자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그 속에서 같이 살아가는 것이니까 머리를 맞대고 함께 의논해볼 수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이런 교류 활동들이 더 넓어지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신자님들이 더 많이 오시면 좋았겠지만 공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오늘은 우선 양쪽의 젊은이들만 20여 명씩 초대해 이렇게 모였습니다. 그러니 청년 여러분들은 대화를 활발히 나눠주세요.nbspnbsp오늘은 신부님이 식사도 술도 다 내주십니다. 다이어트는 잊고 실컷 먹으면서 대화 나누고, 무엇이든 질문도 하세요. 질문하는 사람은 질문하기 전에 노래 한 곡을 하면 더 좋겠습니다.” nbsp스님의 제안에 먼저 정토회에서 온 청년들이 미리 준비해 온 크리스마스 캐롤송과 율동을 보여주었습니다. 두 곡을 준비했는데 첫곡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아주 멋지게 불러주었습니다. 이어서 경쾌한 멜로디의 “울면 안돼” 노래를 재미있는 율동과 함께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크리스마스 캐롤송에 맞춰 율동을 보여주고 있는 청년정토회 멤버들nbsp불자 청년들이 부르는 크리스마스 캐롤송과 재미있는 율동에 성당에서 온 청년들과 신부님, 수녀님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웃고 즐거워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쑥고개 성당 청년들도 즉석에서 답가를 해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 이라는 노래를 반주에 맞춰 멋지게 불러주었습니다. 성가대를 하는 청년들이 많아서 그런지 다들 평범한 실력이 아니었고, 노래가 끝나자 정토회에서 온 청년들도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nbspnbsp▲ 답가를 부르고 있는 쑥고개 성당 청년연합회 멤버들nbsp청년들끼리 이렇게 교류하는 모습을 보고 박남수 천도교 교령님은 짧게 소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종교 간의 화합이 바로 이것입니다. 책에서 보거나 법문이나 강론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었잖아요. 정토회에 다니시는 분들이 남의 성당에 와서 이렇게 춤추고 노래하고 서로 대화하는 이런 모습이 바로 젊은이의 용기입니다. 이런 젊은이들의 용기야 말로 종교 간의 평화도 만들도 남북의 평화와 세상의 평화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nbsp교령님은 큰 감동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김대성 원불교 교무님도 “정말 감동적인 모습이었다”고 소감을 이야기해 주자 양쪽 청년들은 모두 공감을 표하며 함께 박수를 쳤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한껏 어우러진 후 즉문즉설의 시간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누구는 원불교에 대해, 누구는 천주교에 대해, 누구는 불교에 대해 허심탄회한 질문들이 쏟아졌고, 각 종교 지도자들은 알기 쉽게 대답을 해주어 청년들도 무척 좋아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오후 3시부터 또다른 미팅 일정이 약속되어 있어 양해를 구하고 중간에 자리를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웃종교인들의 아름다운 만남은 오후 늦게 까지 계속 되었습니다.nbspnbsp평화재단으로 온 스님은 국제한민족재단 이창주 교수님과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 위치한 신한촌의 독립운동역사 재건을 위해 어떻게 모금을 해나갈지 회의를 한 후 오늘 공식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 연해주 신한촌 독립운동역사 재건을 위한 모금 준비 회의nbsp저녁에는 집무실에서 명상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밤늦게까지 보았습니다.nbspnbsp내일을 시작으로 스님은 12월26일부터 30일까지 5일 동안 정토회 활동가들과 함께 한해를 마무리하는 명상수련을 할 예정입니다. 명상수련을 마치고 12월31일부터 1월2일까지는 3일 동안 정토회 실무자 수련이 있을 예정입니다.nbspnbsp※ 12월 26일부터 30일, 명상수련을 하는 기간 동안은 ‘스님의 하루’도 묵언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명상을 모두 마치고 12월 31일 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26. 107,504 읽음 댓글 128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