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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30 (오전) 연말 명상수련 5일째, 발원문과 활동가 격려말씀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활동가들과 함께한 연말 명상수련 5일째를 맞이하여 그동안 정진한 공덕에 대해 발원을 한 후 대중들의 소감문 발표를 경청하고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새벽 4시, 도량석 소리와 함께 일어난 대중들은 천천히 포행을 하며 명상 장소인 대수련장에 모였습니다. 스님은 대중들보다 먼저 대수련장에 도착해 법상 위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새벽 명상이 끝나고 곧이어 예불과 스님의 발원 기도가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5일 동안 부지런히 수행 정진한 대중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을 담아 발원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스님의 발원 기도를 들으며 곳곳에서 눈물을 닦는 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nbspnbspnbsp“우러러 발원하옵니다. 오늘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저희 정토행자 대중 일동은 5일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정진한 후 이와 같이 부처님께 예배하고 참회하면서 발원하옵니다.nbspnbsp저희들은 어리석어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기억과 상처에 집착하여 그 업식에 충동적으로 반응하며 괴로움과 슬픔과 침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과 온갖 상을 지어 근심하고 걱정하며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몸은 여기 지금 들숨과 날숨 사이에 살아가고 있지만, 생각은 언제나 과거의 영상 속이나 미래의 상상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꿈속에서 강도를 만나 두려움 속에서 도망다니며 이곳 저곳 피할 곳을 찾듯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nbspnbspnbsp부처님이시여, 그러하오나 저희에게 꿈속의 안온한 피신처를 주실 것이 아니라, 비록 매정하다 느끼고 부처님을 외면할지 몰라도 ‘눈 떠라, 꿈을 깨라’고 일갈해 저희가 영원히 강도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일깨워 주옵소서. 강도를 피하는 길은 다만 눈뜨는 것일 뿐임을 예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부처님의 가르침은 변함없이 일관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눈뜨는 소식은 온데간데 없어졌습니다. 게다가 강도를 만나면 어떻게 어디로 피할 것인지 알려주는 가르침으로 변질되어 세간을 풍미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비록 아직 미약하지만 그래도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인 깨달음을 통한 해탈과 열반, 참자유와 참행복을 구하는 이 길을 추구합니다.nbspnbsp오늘 같은 세상에 부처님의 정법을 잊지 않고 그 길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비록 한줌밖에 되지 않아도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소중하고 소중한 일입니다. 이 작은 씨앗들이 아직은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한겨울이라 대지 깊이 숨어 웅크리고 있지만, 이제 곧 봄날이 오면 싹이 트고 쑥쑥 자라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입니다.nbspnbsp저희들은 다가오는 새로운 정법의 시대에 좋은 씨앗이 되고자 가족들의 반대와 친구들의 만류와 세상의 온갖 장애를 무릅쓰고 세상을 거슬러 이같이 정진하고 있사옵니다. 비록 저희들이 아직도 어리석어 꿈에서 깨지 못하여 강도를 두려워하고, 강도가 없는 안온한 땅을 구하기를 그치지 못하고 강도를 탓하는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이 모두가 꿈이어서 눈만 뜨면, 강도도 없고, 피할 것도 없고, 도움을 구할 것도 없고, 도움을 줄 자도 없음을 꿈 속에서라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눈 뜨는 그 깨달음을 얻지 못하여 열반을 체험하지 못한 것일 뿐이니 저희들의 이 길을 불보살님께서는 귀중히 여기시어 격려하고 옹호하여 주시옵소서.nbspnbsp이 험난한 세상에서 온갖 고통을 이기는 힘은 세력도 아니고 돈도 아닙니다. 오직 저희 행자들이 어떠한 경우에도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이 자유와 행복을 우리 주위에 괴로워하고 속박받는 사람들에게 널리 전하여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보다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만이 저희들의 유일한 발원이오니 저희가 이 길을 꾸준히 근면하고 성실하게 갈 수 있도록 제불보살님들은 옹호하여 주시옵소서.nbspnbsp오늘 저희가 정진하고 발원한 이 공덕을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오니 괴로움에 빠진 모든 중생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며,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항구적인 평화가 도래하고, 분단이 극복되어 통일한국이 성취되고, 나아가 주변국들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동아시아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라옵니다.nbspnbspnbsp이 발원 공덕 영가님들께 회향하오니 먼저 돌아가신 조상 영가님과 유주무주 모든 고혼들까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저 극락세계로 왕생하옵소서. 또한 극락에도 머무르지 않고 다시 이 세상에 오시어 저희의 이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옹호하는 신장이 되어 주옵소서.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nbsp스님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며 이런 크나큰 축원을 받기에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대중들은 스님의 발원을 오롯이 가슴에 새기며 108배 정진과 명상, 경전 독송을 함께 했습니다. 이렇게 기도가 끝나고 곧바로 소감문을 작성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소감문을 들으면서 첨언해 줄 내용에 대해 메모를 하면서 한 명 한 명의 발표를 경청했습니다.nbspnbspnbsp각 조를 대표한 19명의 발표를 모두 들은 후 다시 법상에 오른 스님은 소감문을 들으며 느꼈던 소감과 몇 가지 조언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네 가지를 예로 들며 스스로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면 좋겠다고 하면서 내가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것이 가장 큰 경쟁력임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법당 운영하랴 행정 하랴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건 잘 압니다. 물론 직접 경험하고 있는 여러분만큼은 모르겠지만 저도 이야기를 들어서 어느 정도는 알아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웃을 수 있어야 해요. 법당 총무나 부총무를 맡은 내가 바쁘다고 인상 쓰고 힘들어 하고 괴로워 하고 ‘이거 언제 그만둘까’ 이런 생각에 빠진다면 다른 사람이 그런 나를 보면서 왜 정토법당에 계속 나오겠어요? 대중들도 자기가 힘드니까 이 괴로움에서 좀 벗어나 행복하고 싶어서 정토법당에 왔는데 정토법당에서 보는 사람들이 저리 괴로워하면 거기서 뭘 얻겠어요? nbspnbspnbsp여러분들은 나름대로 애쓰고 있지만, 그러나 정토법당을 운영하느라 애쓰는 게 100이라면 힘들어하고 인상 써서 내치는 게 200이에요. nbspnbspnbsp그런 걸 두고 ‘아무런 공덕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힘들다고 하면 제가 늘 이렇게 말하잖아요.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내가 법문 듣는 게 좋은 지를 우선 생각해보세요.’nbspnbsp나도 법문 듣기 싫은데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법문을 들으라고 하는 것이라면 안 됩니다. 우선 내가 노는 것보다 법문 듣는 게 더 좋아야 해요. 그래서 아무도 안 나오면 나 혼자서라도 듣는 겁니다. 어차피 내가 들을 거라 법문을 틀었는데 다른 사람이 와서 같이 들으면 더 좋고, 셋이 들으면 더 좋고요. 길 가다가 누굴 만나면 ‘아이고, 나 오늘 법문 듣는데 오세요. 같이 들읍시다’ 이렇게 할 수 있잖아요. 법문 들어서 행복해진 이 마음을 같이 나눌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찾아온 사람들에게 차 한 잔 줄 수도 있겠지요. 그에 따른 약간의 일거리가 있으면 이런 좋음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니 그 정도 수고는 할 수 있잖아요.nbspnbsp일이 조금 많아진다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야죠. ‘우리가 사람이 많아져서 도움이 조금 필요해졌어요. 조금만 일찍 와서 청소를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이렇게 내가 책임을 지고 해나가면서 ‘좀 도와주세요’ 라고 해야 다른 사람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아요. ‘당신도 법문을 들으니 이걸 책임지고 하시오’ 하니까 상대가 부담스러워 도망가는 거예요. 일이 많아서 나도 모르게 짜증낼 때가 있지만 그건 잠깐이고, 크게는 이게 재미가 있고 기분이 좋아서 힘들어도 보람이 있어야 사람이 모여듭니다. 사람을 모으는 데는 효율적으로 잘 관리하는 경영 마인드도 필요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거예요. 하는 사람이 이 일에 흥이 나 있는 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가장 크고 좋은 힘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보면 민주화 운동이든 통일운동이든 노동자들 투쟁이든 내내 악쓰면서 하잖아요. 악쓰는 걸 보면 안쓰럽긴 한데 나는 거기에 가고 싶지 않는 거예요. 가난하게 사는 걸 보면 불쌍해서 보시는 좀 해도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거예요.nbspnbsp검소하게 살아도 사람들이 얼굴이 밝고 편안해 보이면 나는 가진 게 많은데도 이 사람들보다 덜 행복하니까 ‘여기에 뭐가 있나’ 싶잖아요. nbspnbspnbsp그러니 제일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행복한 것입니다. 여기 사는 여러분들이 서로 흔쾌히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 티격태격하더라도 금방 참회하고 밝게 웃으며 서로 어울리면 바깥의 사람들도 여기에 오면 편안함을 느껴요. 그런데 여기가 좋다고 해서 왔는데, 와서 가만히 보니 팀장이라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성질내고 토라져서 이틀씩 말도 서로 안 하고 있으면 말은 안 하지만 ‘여기서 몇 년을 배웠다는 사람이 저러는데 나머지는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게 마련이에요. 인상쓰고 토라지는 건 내 까르마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아까 성질내서 미안하다’ 이렇게 금방 돌이켜주는 맛이 있어야 함께하지요. 물론 저는 그런 수준 안 되는 사람이라도 데리고 있어야 일이 되니까 데리고 있긴 하지만요. nbspnbspnbsp그래서 첫째, 자기가 행복해야 합니다. 일이 힘들어 불평하다가도 금방 내려놓고 탁 밝아지려면 수행적 관점이 분명해야 해요. 수행자의 기준은 내가 얼마나 행복하냐입니다.nbspnbsp두 번째로 좀 자유로워야 합니다. 원칙을 딱 세워 지키더라도 상대가 뭐라고 하면 ‘그래그래, 알았다’ 이렇게 가끔은 놔주는 것도 좀 있어야 해요. 늘 밧줄에 묶이듯 원칙에만 꽉 묶여서 살면 누가 좋아 보이겠어요? nbspnbspnbsp그렇다고 원칙도 없이 헤벌레 하고 살면 이미 헤벌레 하고 사는 세상과 다를 게 없으니 굳이 여기 올 이유가 없어요. 여기 원칙이 있기 때문에 모이는데, 그게 너무 옥죄이면 사람이 힘들어집니다.nbspnbsp이렇게 자유와 행복이 있어야 해요. 계율을 지키되 거기에 묶이지 않아야 합니다. 즉 나에게는 원칙을 지키되 타인에게는 조금 열어두고, 윗사람들은 원칙을 지키되 아랫사람들에게는 조금 열어두는 것이 필요해요. 가진 사람과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딱 정확하게 법을 적용하되 서민들과 아랫사람들에게는 그걸 곧이곧대로만 적용하지 말고 조금 융통성있게 적용해줘야 세상이 잘 돌아갈 텐데, 위에는 법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만큼 엉망으로 하면서 아랫 사람들은 담뱃값 정도 되는 촌지를 받았다고 목을 치잖아요. 자기들은 수백억 원씩 떼먹고도 들어갔다 3일 만에 나오는데요.nbspnbsp이처럼 질서가 딱 서 있되 약간의 자유로움이 있어야 하고, 내가 아직 부족하여 경계에 끄달려서 성질내더라도 금방 탁 돌이켜서 어우러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게 안 되니까 밖에서 정토회 하는 일을 보고 호감을 느껴 찾아왔던 사람들도 왔다가 다시 가버려요. 법당에 가면 총무란 사람이 성질이나 내고, 수련원에 오니까 팀장이라는 사람이 짜증이나 내면, 월급 받는 것도 아닌데 왜 여기에 붙어 있겠어요? 자기 부족한 걸 누군가로부터 수용받아야 계속 있을 텐데 오히려 자기가 남의 부족함을 다 감당해줘야 하니까요.nbspnbsp우리가 해탈과 열반을 추구하는 사람이니 그에 근접하려면 우리가 먼저 이렇게 해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저돌적으로 투쟁할 땐 투쟁하더라도 평상시로 돌아갈 때는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경쟁력이 있어요. 우리가 다른 뭘로 경쟁하겠어요? 돈으로 경쟁하면 재벌 앞에선 한 주먹도 안 되고, 권력으로 경쟁하면 일개 부대 수준도 안 되는데요.nbsp우리의 힘은 우리 삶의 자유로움과 행복입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의 위대함도 거기에 있습니다. 남의 집에 가서 밥 얻어먹고 나무 밑에서 자고 옷 주워 입는 건 세상에서 가장 천대받을 만한 수준의 거지나 다름없는 행색인데도 그들이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고, 두려움 없이 살았기에 수많은 왕들과 부자들이 귀의한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삶을 보고 사람들이 귀의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불쌍하게 여긴다면 인생 끝이에요. nbspnbsp그리고 우리가 소중하다는 걸 우리 스스로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안이든 밖이든 사람들을 만나보면 관심사가 늘 돈 이야기, 음식 이야기, 옷 이야기, 출세 이야기, 배우자며 자식이 뭐 했다는 이야기뿐입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는 첫째, 적어도 자유와 행복이라는 주제, 즉 해탈과 열반을 향해서 살아가잖아요. 이것만 해도 굉장한 거예요.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떻게 하면 더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는가, 즉 열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도 드물어요. 세상이 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는 해탈과 열반이라는 주제를 갖고 있고, 그래도 매일 아침마다 해탈과 열반에 향해서 수행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잖아요. nbspnbsp두 번째,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열이나 백에 하나 있다손 치더라도 자기 해탈과 열반에만 관심 있지, 이걸 통해 다른 사람도 좀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법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스님들마저도 어디 큰 부자에게서 49재나 생일 불공 하나 받을 궁리, 건물 지을 때 돈 낼 사람을 찾을 궁리만 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젊을 때는 스님들이 그런다고 비난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것도 그냥 세상의 일부일 뿐입니다. 불교라고 해도 이름만 불교지 불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절에 다니는 신도도 마찬가지예요. 다 ‘여기서 빌면 돈 더 많이 버나’에만 관심 있습니다. 누가 교회 다녀서 더 잘됐다고 하면 다들 내일 당장 교회 갈 사람들이에요. 이런 가운데서 이 좋은 법을 혼자 알지 않고 주변에 전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건 굉장한 일입니다.nbspnbsp세 번째, 우리는 여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실천까지 하잖아요. 환경에 대해 생각해서 화장실 휴지라도 덜 써보려고 노력하잖아요. 현실에서 잘 안 되는 건 알지만, 어쨌든 그런 생각이라도 하고, 어디 가서 물건 하나 살 때 ‘포장은 하지 말아 주세요’ 이런 말이라도 할 줄 알잖아요. 불쌍한 사람 돕기 위해서 거리 모금도 나가잖아요. 우리 주변을 둘러보세요. 얼굴도 모르는 아프리카며 인도 사람, 북한 사람을 위해 길거리에서 모금하기는커녕 자기 돈을 내는 사람도 별로 없어요. 평화와 통일에 대해 고민하고 참여하는 것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고요. 이런 생각을 갖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명 안 됩니다. 그런 걸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조차도 대부분은 이름을 어떻게 붙여서 세력을 키울 궁리, 돈을 더 벌 궁리, 더 위로 올라갈 궁리만 합니다.nbspnbsp네 번째, 이렇게 사회적 실천도 하는 가운데 우리는 또 다른 종교와 다른 민족,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포용적이기까지 해요. 여러분들이 여기에 안 다녔다면 자기 까르마에 따라 동성애자를 혐오할 수도 있고,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싫어할 수도 있고, 외국인 노동자를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까르마가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다 해도 적어도 우리가 여기서 공식적으로는 성, 인종, 신체장애 여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하지 말자고 배우잖아요. 나에게 업식이 남아서 못 하는 건 못 하더라도, 그런 것을 배우고 그런 인식을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불교인이나 기독교인 중에서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은 사람은 얼마 없어요. 다만 그 배타성이 강하고 덜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 정도의 수준만 되어도 지성적인 면에서는 대한민국 상위 1퍼센트 안에 들고도 남아요. 대한민국 5천만 인구 중에 이런 사람은 사실 50만 명도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사람이 50만 명만 되면 나라가 바뀐다고 하잖아요. 그게 곧 정토회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이 50만 명, 즉 인구의 1퍼센트만 되면 세상이 바뀌는 거예요.nbspnbsp그러니 우리 개개인이 부족한 건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지금 이 지구의 인류공동체 70억 구성원 중에서도 가장 미래지향적이고 인류 보편적인 것을 지향하며 그 길에 서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에 내가 조금이라도 참여할 수 있다는 걸 보람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밥 한 숟가락 더 먹고 옷 한 벌 더 사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nbspnbsp이렇게 부족한 건 부족하더라도 내면의 가치관이 어느 정도 정립이 되어야 흔들리지 않고 남이 뭐라고 해도 포용성을 발휘할 수 있어요. ‘알았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이렇게 웃어주고 또 내 갈 길은 가는 힘이 생기는 거예요.nbsp저도 여러분도 우리 개개인은 다 부족하지만 우리의 지향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있습니다. 기독교, 불교를 논할 때 말하는 불교가 아니라 부처님의 보편타당한 가르침이에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보편타당한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합리적이고 사실이며 모든 사람에게 다 통할 수 있는 가르침, 그것이 진리입니다. 불교인이 아닌 다른 종교인도 수용할 수 있고, 한국 사람만이 아닌 다른 민족도 수용할 수 있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들으면 다 공감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진리의 길을 우리가 지금 함께 가고 있어요.nbsp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이 이 길을 조금 더 가볍게 가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멀잖아요. 중간에 장애가 생기면 힘들게 갈 때도 간혹 있지만 크게 봐서는 웃으며 자유롭게 이 길을 함께 가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nbsp웃으며 자유롭게 이 길을 함께 가자는 격려 말씀에 모두들 크게 기뻐하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활동가들에게는 정말로 큰 힘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nbspnbspnbsp기쁜 마음과 감동의 여운을 뒤로 하고 대중들은 문경 정토수련원 곳곳에 흩어져 대청소를 했습니다.nbspnbspnbsp마음을 청소하듯이 곳곳을 처음 사용하던 그대로 깨끗하게 돌려놓은 후 다시 대수련장에 모여 회향식을 가졌습니다.nbspnbsp회향식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29 연말 명상수련 4일째, 즉문즉설 제2부 (활동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연말 명상수련 4일째를 맞아 수련에 참가한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해 약 네 시간 동안 즉문즉설을 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앞서 전반부에 있었던 수행과 관련된 즉문즉설에 이어서 활동과 관련한 즉문즉설이 이어졌습니다. 활동가들은 지난 한 해 동안 활동을 하면서 들었던 의문에 대해 다양한 질문들을 쏟아내었습니다.nbsp먼저 얼마전 녹화 촬영한 2차 통일의병교육과 관련해서 왜 통일의병교육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묻자 이런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정회원 여러분들한테 이렇게 통일의병교육을 하는 이유는 앞으로 스님이 혼자서 결정하지 않고 여러분들의 의견을 모아서 결정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세상에 대해서 까막눈이면 의견을 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nbspnbsp여러분들이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우리 사회의 각종 정책에 대해 자기 의견을 낼 수 있고, 각 정당의 통일 정책을 들어보면서 나름대로 판단을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까막눈이면 의견을 물어봐야 아무 도움이 안 되니까 스님 혼자 결정할 수밖에 없잖아요.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니까, 스님 혼자 결정하지 않도록 여러분들이 통일에 대한 식견을 길러 스스로 결정에 직접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공부를 하는 거예요. 알겠지요?”nbsp“예”nbspnbsp이 외에도 많은 질문들이 오가면서 활동가들의 얼굴도 점점 밝아져 갔습니다. 그 중에서 많은 대중들의 공감을 받았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하겠습니다. 법당에서 부총무 소임을 하고 있는 분의 질문에 대해 스님은 어떤 자세로 자원봉사자들을 안내하고 이끌어야 하는지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법당을 운영하면서 모두가 공감이 가는 질문이었고, 스님의 답변도 너무나 명쾌하고 재미있었습니다.nbspnbspnbsp“현재 법당에서 부총무 소임을 맡고 있는데 일을 못하는 편이라 스스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지금 수행법회를 담당하다가 이번에 천일결사 담당까지 맡은 봉사자가 일처리를 너무 잘해서 비교가 됩니다. 주변에서는 그래도 법당이 잘 돌아가고 있으니 괜찮지 않냐고 하지만, 저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그 봉사자를 보면서 주눅이 들어요. ‘일을 잘 하니 부총무를 시켜도 좋겠다’라는 마음도 있지만, 사람들의 호응을 끌어내거나 도반들과의 친목도 잘 다지고 일처리도 세세한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책임감 있게 잘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꾸 비교하게 됩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고, 주눅들고, 부러워하는 마음도 드는 와중에 제가 어떻게 해야 내년 1년을 편안하게 잘 지낼 수 있을까요?” nbsp“잘 알겠습니다.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인데요.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스님이 염불도 잘하고, 법문도 잘하고, 신도관리도 잘해야 절이 잘 운영될 텐데, 이 절은 스님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절이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법문은 법문 잘 하는 스님 부르고, 염불은 염불 잘 하는 스님 부르고, 공양주는 밥 잘하는 보살을 부른 게 비결이에요. 그리고 그날그날 절에 들어오는 수입은 법문하는 날은 법문하는 스님에게, 염불하는 날은 염불하는 스님에게 다 줘버리고 자기는 거의 갖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본인은 아무 능력도 없는데도 시간이 지나니 절이 아주 잘 운영되었습니다.nbspnbspnbsp또 이런 절도 있었어요. 이 절은 스님이 만든 절도 아니고 보살이 만든 절이에요. 절을 지은 보살은 절에서 밥만 해요. 법문은 법사 스님 모셔서 하도록 하고, 염불은 염불하는 스님 모셔서 염불하도록 하고, 자기는 부엌에서 밥만 해서 신도들 오면 대접해주고 안내해주는 것 뿐인데 절이 잘 운영이 돼요. 신도들이 법문하는 사람이나 염불하는 사람 따라갈 것 같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nbsp그러니 재주로 경쟁하려 하면 안 돼요. 자기 심지가 있어서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질문자가 부총무로 있으면서도 그 재주를 새로 온 사람들과 자꾸 비교하니까 열등의식이며 부러움, 질투심이 생기는 거예요. 우리 법당에 재주꾼들이 많이 오도록 해서 무슨 일을 잘하는지 봐두었다가 부총무도 시키고, 법회 담당도 시키고, 노래 잘 하는 사람은 목탁 가르쳐서 염불도 시키면 나는 아무 직책 안 가지고도 법당 운영을 잘 할 수 있어요. 일은 적합한 사람에게 모두 맡기고, 나는 필요 없으면 가만히 있고요. 그래도 법당에는 사람이 필요하게 마련이니까 청소 정도 가볍게 도와주고 간섭하지 않으면 다들 알아서 선배 대우를 해주게 되어 있어요. 자꾸 간섭을 하니까 귀찮다는 거지요.nbspnbsp이게 자기 수행력이에요. 그래서 수행력이 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목표하는 정토세상을 일구려면 사람이 많이 와야 해요. 일 잘하는 사람이 오면 좋아요. 또 일 못하는 사람이 와서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며 투덜거리는데, 그건 그것대로 내 직책을 계속 유지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에요. 잘하는 사람이 오면 우리 단체가 발전해서 좋은 일이니까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면 되고요. 미리 ‘부총무해라, 뭐 해라’ 말할 필요 없이 가만히 봐놨다가 총무님한테 ‘저 보살 똑똑하니까 잘 키우셔서 다음에는 이런 걸 한 번 시켜보세요’ 이렇게 이야기하고요. 나는 일을 못하네 어쩌네 하고 이리저리 비교하는 말을 할 필요 없어요. 절에서는 설거지 할 줄 알고 방청소 할 줄 아는 정도면 아무 문제없어요. 어릴 때 공부를 못했나, 왜 그런 걸 갖고 문제를 삼아요? 그런 건 상관할 필요가 없어요. nbspnbspnbsp좋은 사람들이 많이 오면 이것저것 시킬 수 있으니 좋아요. 뭐 하라고 명령할 필요도 없어요. 저녁반에서 그 사람이 알아서 척척 하고 있으면 내가 안 해도 되니 좋은 일이잖아요. 그런 걸 보고 소외감 느끼지 말고, 열심히 한다고 격려하면서 먹을 거나 슬쩍 갖다 주세요. 일 잘하는 건 칭찬으로 다시 돌려주고, 책임질 일은 내가 책임져주면 다들 좋아해요. 일은 하기 싫고 명예는 제가 갖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기 때문에, 명예는 돌려주고 책임은 내가 져주면 아무 재주 없어도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어요. 경쟁할 걸 경쟁해야죠.” nbsp“고마운 마음도 진짜 크긴 한데, 부족한 줄 알면서도 문득문득 그런 마음이 드니까 이번 해를 편하게 지내고 싶습니다.”nbsp“그러니까 이런 마음으로 한해를 지내라잖아요.” nbsp“알겠습니다. 많이 시원해졌어요. 고맙습니다.”nbsp“질문자가 어쩌면 역대 부총무 중 제일 잘한 부총무로 남을지도 몰라요. 자기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후계자를 잘 정해주는 사람이 역사에 남거든요. 우리 역대 조사님들을 봐도 본인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 스님 밑에 나온 제자가 똑똑해서 그 스승을 떠받들어 훌륭하게 기록해준 사례가 많아요. 그러니 질문자의 능력이 부족해도 괜찮습니다.nbspnbsp법당에서는 내가 잘 해서 자리를 잡아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음 사람을 잘 선택해서 일을 딱 맡기고 물러나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어려울 때 나서서 법당을 개척해 낸 사람이 있으면 처음에는 그 사람의 행동력 덕분에 잘 되었지만 다음에는 그 사람의 독선 때문에 법당이 잘 안 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대차게 밀어부치는 성격을 보면 ‘아이고, 지금은 잘하지만 앞으로 골치깨나 아프겠다’ 이렇게 예측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예측과 다른 경우도 가끔 있었어요. 자기는 총무를 3년만 한 뒤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자기는 뒤로 물러앉은 경우가 있었어요. 그렇게 법당 개척은 그 사람이 하고, 다음 법당 유지발전은 다른 분이 했어요.nbspnbsp반면에 한 사람이 잘 하다가 도리어 그게 독이 돼서 중간에 문 닫은 곳도 많아요. 그 사람의 고집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손드는 거예요. 여간한 고집통이 아니면 못 밀어붙이니까 그렇게 밀어붙여서 개척은 했는데 그 고집통 때문에 앞으로 더 못 나아갑니다. ‘개척하는 건 내가 잘 하지만 유지관리는 내 능력이나 성질로는 어렵다’라고 하면 빠져줘야 하는데, 사람이 그리 하기 쉽지 않죠.nbsp또 유지관리는 잘 하지만 개척은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은 개척하는 사람을 잘 모셔줘야 해요. ‘저 사람이 좀 골치 아프기는 해도 저 사람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이걸 시작할 수 있었겠느냐. 공로를 인정해줘야겠다’ 해서 좀 받들어주면 운영이 잘 되는데, 그것도 시비 삼으면 힘들어요.nbspnbsp억지로 맡으면 문제이긴 하지만, 재주가 없어도 법당 운영을 잘 할 수 있어요. 제가 ‘혼자서 법문 영상 틀어놓고 목탁 쳐도 된다’라고 늘 이야기하잖아요. 내가 법문이 좋고 듣고 싶으니까 듣는데, 한 명 오고 두 명 와서 조금씩 느는 거예요. 네댓 명 정도까지는 어느 정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사람이 많으면 반드시 의논을 해야 하고, 그보다 더 많아지면 조직적인 관리를 해야 해요. 나는 그런 건 좀 안 맞다 싶으면 바톤을 넘겨줄 생각을 해야 해요. 조직적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가만히 지켜보다가 넘겨줘야죠. 그렇다고 ‘나는 못 하니 네가 잘해봐라’ 이런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지켜보니 자네가 하면 나보다 더 잘할 것 같은데 한번 해봐라. 내가 뒤에서 밀어줄게’ 이래야지, ‘잘 하는 네가 해라. 나는 그만두련다’ 하면 그 사람도 안 해요. 앞에 하던 사람이 그만두겠다는데 뒷사람이 무엇 때문에 하겠어요?nbspnbsp일일이 거명은 안 하겠지만 이런 분란이 지금 한둘이 아닙니다. 뒤에 온 사람이 너무 설치니까 앞의 사람들이 기가 죽어 못하겠다며 나가떨어진 데가 지금도 몇 군데나 돼요. 뒷사람이 잘 하면 앞사람이 좀 넘겨주고 칭찬도 해주고, 뒷사람도 앞사람이 개척한 공로를 생각해서 조금 받들어주면 되는데 이게 잘 안 되는 게 중생이잖아요. 우리가 다 그 정도로 깨어있으면 여기 와서 수행할 필요가 없겠지요. 이런 부족함을 우리가 안고 가는 가운데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거예요. 옛날에는 이게 다반사였다면 요즘은 다섯 건 가운 데 한 건 꼴로 줄어들었고, 앞으로 또 좀 더 나아질 거예요.nbspnbsp앞에서도 이야기했듯, 부족한 것은 운영하는 데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부족한 게 너무 잘 하려고 하거나 잘났다고 생각할 때 문제가 되는 거예요. 부족함을 부족한 줄 알면 그냥 다른 사람이 잘 하도록 뒷바라지 해주면 돼요. 그거 잘나서 뭐 하고, 그 일을 꼭 내가 해서 뭐 하겠어요? 그런 자세로 임해보세요. 그래도 내가 처음 시작해서 3년간 개척하고 애쓴 결과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와서 일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았으니 자랑스럽잖아요. 자기를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해요. 질문자 없었으면 법당을 못 열었을 거예요. 창건주잖아요. 정토회에서는 창건주를 굉장히 예우해 줍니다.” nbspnbsp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모두들 큰 위안을 받은 듯 활동가들은 웃으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밤 10시가 다 되어 마칠 시간이 되자 스님은 마지막으로 활동가들을 격려하는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이번 명상수련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하며 밤낮 없이 지난 1년간 일해 왔는데, 다들 원기 회복이 되었는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는지 확인하며 내년에도 힘차게 활동할 수 있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습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 1년 동안 자기 돌아볼 시간도 없이 애썼는데 이번에 좀 자기가 돌아봐졌어요? 원기도 좀 회복됐고요?”nbsp“예.” nbsp“밥을 안 먹어서 목소리 내기는 힘들지만 저도 기운이 조금 났습니다. 4일 전 명상 들어오기까지가 저는 거의 극한 상황이었어요. 하루만 더 가도 병원에 입원해야 할 수준이었는데 어떻게 날짜를 간신히 맞춰 명상 타임에 골인해서 원기를 그나마 회복했어요. 이 기운으로 내년 여름까지 가야 하는데 기간이 좀 멀어요. nbspnbspnbsp마지막에는 해열제를 먹어가며 버텼어요. 그래도 어쨌든 저는 무턱대고 가지 않고 중간 중간 이렇게 쉼터를 둬서 리모델링 해가면서 가요. 명상 수련은 자기를 돌아보고, 휴식도 취하고, 우리가 함께 마음을 모으기도 하는 좋은 시간이니까 다리 좀 아픈 거나 머리에 망상 드는 걸로 시비하지 마세요. 머리에 있던 쓰레기가 자꾸 나오는 걸 어떡하겠어요? nbspnbsp그냥 ‘머리에 쓰레기가 좀 많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옆구리도 쑤시는 등 원래 온갖 통증이 다 생겨요. 그러니 뭐든지 명상을 하는 동안 생겨난 부작용이나 잘잘못을 시비하지 마세요. 늘 이것도 실험해보고 저것도 실험해보고, ‘오, 이건 이러면 되는구나. 저건 저러면 안 되니까 다음부터는 안 그래야겠다’ 이렇게 확인하면서 살아가면 돼요.nbspnbspnbsp잘못한 것도 돌이키기만 하면 엄청난 공덕이 됩니다. 지금 완전해지려고 하지 마세요. 어제보다 삶이 나아지면 됩니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여러분은 미래문명을 생각하고, 통일을 생각하고, 나라와 역사를 생각하잖아요. 스님 안 만났으면 그저 아웅다웅하고 살기 바빴을 텐데, 그래도 세상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우리들의 포부는 크잖아요. 조금만 더 공부하면 세계시민으로 모자람이 없어요. 지금 정토회 회원들의 원과 의식 수준이면 우리나라 국민의 1퍼센트 안에 들어가서 웬만한 지식인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nbspnbsp여러분들의 수준과 사물을 보는 눈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높아진 거예요. 아직 과거의 업이 남아서 어쩔 줄 모르고 좀 헤매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졌어요. 이렇게 조금 더 계속 하면 다들 우리 나라의 지도자가 됩니다. 어떤 지도자가 될지는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때가 되면 어떤 형태로든 여러분들이 다 제 역할을 하게 되어 있어요. 한번 자기를 돌아보세요. 여기 들어올 때 처음부터 총무하려고 들어온 거 아니잖아요. 괴로워서 울고불고 하는 가운데 얼결에 밀려서 총무 되고, 이리저리 밀려서 또 뭐가 되는 거예요. 늘 좋은 방향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지도자가 됩니다. nbspnbsp지도자로 밀려올라갔을 때 똥차가 되면 안 되니까 지금부터 되든 안 되든 교양은 닦아야 해요. 자꾸 지금 잘했느니 못했느니 하지 마세요. 이걸 통해서 내 인생이 훈련되는 거예요. 이런 일을 안 맡으면 애나 남편과 싸우는 거 말고 여러분이 세상 경험할 게 뭐가 있겠어요? 이런 걸 맡아서 도반들하고 찌그럭대고, 잘난 사람도 밑에 두고 부려보고, 못난 사람에게서 배우기도 하면서 리더십이 늘어가는 거예요. 울고불고 못해먹겠다고 하는 가운데서도 자꾸자꾸 성장해가는 중이에요. 농사로 치면 씨를 뿌려놓았는데 잘 자라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정말 소중해요. 그러니 꾸준히 정진해 갑시다.”nbsp스님의 따뜻한 격려 말씀에 활동가들은 박수갈채로 화답했습니다.nbspnbspnbsp대화의 시간이 모두 끝나자 활동가들은 다시 묵언으로 돌아갔습니다. 웃음과 박수 소리를 뒤로 하고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일부는 다시 명상 자리에 앉아 개인 정진을 더 이어갔고, 일부는 숙소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스님도 숙소에서 더 정진의 시간을 가진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활동가 연말 명상수련의 5일째이며 마지막 날입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명상을 한 타임 가진 후 스님의 발원 기도, 소감문 작성과 발표, 회향법문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더불어 명상수련을 마친 후 공동체 실무자들은 스님과 함께 정일사수련을 3일 동안 가질 예정입니다. 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29 연말 명상수련 4일째, 즉문즉설 제1부 (수행편)
nbsp안녕하세요. 지난 12월 26일에 시작한 명상수련이 오늘로서 4일째를 맞이했습니다. 이번 명상수련은 매년 여름에 진행되는 일반인 명상수련과는 달리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활동가들은 일을 많이 하다보니 자칫하면 수행을 놓치기 쉬운데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함께 정진을 하게 되어 다시 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문경 정토수련원 대수련장nbsp첫째날 입재 법문을 시작으로 문경 정토수련원 대수련장은 시작과 끝을 알리는 죽비 소리만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울릴 뿐 고요한 정적만 흐른 채 명상이 계속 되었습니다. 활동가들은 대부분 명상을 꾸준히 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번 명상수련에서는 스님도 법문을 거의 하지 않고 명상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nbsp늘 법문을 들으며 명상을 했는데 법문이 일절 없으니 몇몇 분들이 “너무 지루해요” 라고 답답함을 토로하는 건의를 해서 3일째 저녁에는 스님의 격려 법문이 한 차례 있었습니다. 스님은 명상을 꾸준히 하는 것은 수행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오늘 4일째 저녁에는 이번 명상수련을 마무리하면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즉문즉설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눠서 진행이 되었는데, 전반부에서는 수행과 관계된 질문을 주로 받았고, 후반부에서는 활동하면서 겪는 의문이나 애로점들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먼저 스님이 이번 시간의 취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4일간 정진 잘 했습니까? 이 시간만 묵언을 풀겠습니다. 누구든지 손을 들고 자유롭게 질문하세요. 수행하면서 느낀 점, 교리 상의 의문점, 평소 정진하다가 생긴 문제, 활동하면서 겪는 의문이나 애로점이 있으면 질문하세요.nbspnbsp개인 질문은 하지 말라고는 않겠지만 이렇게 우리 활동가들끼리 모여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제가 보고 한두 마디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면 일단 넘기겠습니다. 하는 것까진 좋지만 제가 듣기만 하고 넘길 테니 그리 이해하고 섭섭해 하지 마세요. 저만 보면 그저 개인사 묻고 싶죠?” nbspnbsp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곧이어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중간에 쉬는 시간 없이 약 네 시간 동안 10여 명이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명상수련의 끝무렵이여서 그런지 선정을 닦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 많은 분들의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선정법과 다른 선정법의 차이점에 대해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머리로는 어느 정도 정리했지만 스님께 명확한 말씀을 듣고 싶어 여쭙니다. 오후 명상 중에 문득 부처님께서 선정주의자들로부터 선정을 배우신 뒤에 다시 나오신 게 생각났습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이라 해서 다 선정 아닌 게 없다고 말하지만, 일상적으로는 고요히 앉아서 선정에 들면 괜찮아졌다가도 선정에서 깨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갑니다. 부처님께도 선정을 늘 할 수가 없고 선정에 들 때만 행복하다면 이건 참된 깨달음이 아니라고 생각하셨기에 선정주의를 부정하고 나오셨다고 배웠습니다. 당시 인도에도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선정법이 많은데, 부처님의 선정법은 다른 것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지요? 부처님의 삶이나 계율, 전법 같은 여러 가지 활동과 결국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져서 여쭙니다.”nbsp“수행을 하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즉 계·정·혜 삼학을 듭니다. 첫째는 바깥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을 정갈하게 하는 것, 즉 계행을 청정히 지키는 것입니다. 다음은 그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 즉 선정을 닦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아는 지혜를 증득하는 것입니다.nbspnbspnbsp그런데 계율을 중시하지 않고 선정만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들어맞지는 않지만 대표적으로 라즈니쉬 계열이 그런 편입니다. 선정을 이야기하기는 하나 계율이 그리 엄격하지 않고 인간의 욕망을 어느 정도 인정하기 때문에 특히 북미·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어요.nbsp다른 한편으로 선정은 있으되 지혜, 즉 깨달음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도 선정주의자들의 대부분이 이렇게 오직 고요함만을 추구했어요. 부처님께서 고요함을 추구하신 것은 인도에 이미 있던 선정의 방법을 배워서 그대로 행하신 거예요. 그런데 고요함만 추구하는 것은 완전한 고요함인 열반이 아닙니다. 깨달음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어진 일정 조건에서만 고요함이 유지되지, 고요함이 일상에서 유지되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은 스승 곁을 나와서 더 깊은 선정을 닦았지만 여전히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어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다가, 우리들 대부분이 스스로에게 일어나는 욕망을 따라간다고 한다면 선정은 그 욕망을 주로 억제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욕망을 지나치게 억제하면 고행주의라 하고, 고행주의가 아니더라도 선정주의 또한 어느 정도 욕망을 억제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이 모두 욕망에 대한 반응이라는 걸 깨닫고 그 고행마저도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중도를 발견하셨습니다.nbsp이 중도는 붓다가 누구한테 배운 게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신 거예요. 당시 인도 사회의 주류였던 브라만교에서는 수행을 하더라도 욕망을 충족시키는 게 복이고 은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에 반대해서 일어난 사문류에서는 욕망에 대한 절제와 억제를 중시했습니다. 부처님은 이 비주류에서 출발했지만, 주류의 모순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비주류에도 역시 편견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셨어요. 그래서 주류를 무조건 반대하는 개념도 놓아버리고 오직 진실이 어떠냐는 관점에서 접근하신 결과 소위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다’는 중도를 발견하시고, 중도의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nbsp그런데 깨달음을 얻으신 뒤의 부처님의 행보를 살펴보면 계율도 또한 잘 지키셨습니다. 불교는 계율을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그런데 이 계율은 단순히 보여주기 위해서 욕망을 억압하고 억제하는 계율이 아니에요. 그래서 부처님은 보여주기 위한 계율, 예컨대 밥을 안 먹거나 잠을 안 자는 것으로 대중의 신비주의를 자극하는 계율을 금하셨습니다.nbspnbspnbsp특히 데바닷타와의 토론을 보면 이런 뜻이 잘 드러납니다. 당시의 고행주의자들은 반드시 걸식을 해야 하고, 식사 초대를 받으면 안 되며, 하루 한 끼만 먹어야 하고, 고기도 먹으면 안 됐어요. 옷은 시신을 싸서 버린 분소의만 입어야 했어요. 잠은 나무 아래나 동굴처럼 자연적인 곳에서만 자야지, 인공적으로 만든 처소에서 자면 안 돼요. 이게 당시 수행자의 기본자세인데 이제 부처님의 제자들 중에는 때로는 식사 초대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두 끼 먹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고기 든 음식을 먹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새 옷을 입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집에서 자는 사람도 있었습니다.nbspnbsp그래서 데바닷타가 계율을 좀 더 엄격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문제제기를 했을 때, 부처님은 걸식을 하는 건 수행자로서 참 모범적이고 훌륭한 일이지만 ‘걸식만 해야 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어요. 이게 차이점이에요. 계율을 지키는 건 좋지만 그 계율에 대해서 단정해버리거나 경직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는 그걸 지키는 게 옳지만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에요. ‘걸식할 필요 없다. 밥을 사먹어도 되고 식사 초대를 받아도 된다’라고 말씀하셨다면 nbsp계율을 흩트리는 쪽으로 갔겠지만 이렇게 말씀하신 게 아니에요. 걸식하는 것은 수행자로서 참 훌륭한 일이라고 붓다도 권유하셨고, 붓다 자신도 평생 그렇게 하셨어요. 그러나 때로는 식사 초대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식사 초대를 받았다고 해서 그걸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nbspnbsp마찬가지로, 하루 한 끼만 먹는 것은 수행자로서 참 잘하는 일이지만 그걸 딱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성년이 되기 전에 출가한 사미들처럼 아직 신체적으로 더 자라야 하는 아이들이나 영양분이 필요한 환자는 하루 두 끼를 먹을 수도 있잖아요. 채식을 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걸식을 하는데 상대가 준 음식에 예컨대 생선이 들었다고 해서 먹지 않고 버릴 수는 없잖아요. 걸식은 주는 대로 먹는 게 핵심이지, 음식에 뭐가 들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래서 불교는 채식을 주로 하지만 채식주의는 아닙니다. 채식주의는 채식 외에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니까요. 주로 걸식을 하니까 대부분 채식을 하는 편이긴 하지만, 채식만 해야 한다고 단정지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육식을 하지 말라’ 혹은 ‘채식만 하라’ 이런 계율은 없고, ‘맛에 집착하지 말라’라는 계율이 있습니다. ‘한 끼만 먹어라’ 이런 계율은 없고, ‘때 아닌 때에 먹지 말라’ 이런 계율만 있습니다. 하루에 한 끼를 먹더라도 때가 아닌 때에 먹어서는 안 돼요. 몇 끼를 먹느냐는 형식보다는 음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서 음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nbsp옷과 잠자리도 그렇습니다. 분소의를 입는 것은 아주 훌륭한 일이지만 분소의가 없다면 새 옷을 입을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예컨대 분소의는 열 벌뿐인데 출가한 사람이 스무 명이라면 열 명은 옷이 없어서 수행자가 못 되거나, 벌거벗고 다녀야 하거나, 새 옷을 가져와 시신을 한번 덮었다가 벗겨서 입어야 하잖아요. nbspnbspnbsp그렇게 형식적으로 할 필요는 없으니 분소의가 없을 때는 새 옷을 입어도 좋다는 겁니다. 일부러 새 옷을 입으라는 게 아니에요. 나무 아래나 동굴에서 자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만 비가 오거나 할 때는 사람이 없는 빈 집의 처마 밑에서 자도 좋다고 했습니다. 수행자가 밖에서 잔다는 것은 안온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지, 잠자리가 인공적인지 여부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nbspnbsp부처님은 계율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계율을 잘 지키되, 이렇게 열려 있다는 점에서 다른 고행주의나 율법주의와 달랐어요. 계행을 안 지켜도 안 되고, 계행을 경직시켜도 안 되는 가운데 중도를 지키는 것이 부처님의 위대함이에요. 이렇게 계율에도 다 중도가 적용되어 있습니다.nbsp선정을 닦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정을 닦을 때는 욕망을 따라가도 안 되고, 욕망을 억압해도 안 되고, 다만 욕망을 욕망인 줄 알아차리라는 거예요. 따라가지는 않지만 억압하면서 안 따라가는 게 아니라 다만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가지 않는다는 형식에서는 고행주의와 같고 계율을 지킨 것과 같지만, 억압하지 않고 있다는 데서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않고 즉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선정도 집중하거나 호흡을 관찰하거나 시신을 보며 명상하는 부정관처럼 바깥에서 보이는 형식은 다른 선정주의와 같지만 그 관점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nbspnbsp그래서 수행에서 관점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렇게 할 때만 자기 상태는 물론 모든 사물에 대해 있는 그대로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사물이 움직이는 법칙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것을 다른 말로 ‘바르게 사물을 알아차리고 사유한다’라고 합니다. 법칙과 이치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에 따른 사유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불교와 당시 다른 종교의 차이라고 볼 수 있어요.nbspnbsp그러나 불교가 종교화되는 과정에서 이런 근본불교의 수행법과 계율에 담긴 원래 가르침은 대부분 없어지고 그냥 ‘불살생’이라는 계율이나 종교의식의 형식만 남아 전해지게 되었어요. 불교의 본질 중 아주 핵심에 해당하는 10퍼센트는 잃어버리고 90퍼센트의 형식만 남으니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자이나교나 불교나 비슷해져 버렸어요. 인도에서는 힌두교나 불교도 별 차이가 없어요. 같은 인도식 건물이니까 사원 모양도 비슷해 보입니다. 외국인이 보면 우리 서원이나 절이나 다 똑같은 기와지붕 건물로 보이잖아요. 자세히 보면 물론 다르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단청이 있고 없고 정도밖에 구분 못 하는 수준이에요.nbsp그래서 그런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은 현실입니다. 이미 이렇게 혼용되어버렸기에 정체성을 상당부분 잃어버렸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nbspnbsp불교는 인도의 전통 브라만교를 반대해서 일어난 가르침이었지만, 후대의 인도 불교는 시간이 흘러 민중화되는 과정에서 인도 문화를 도로 흡수하게 됩니다. 중국 불교가 중국 문화를 흡수하고 한국 불교가 한국 문화를 흡수한 것도 마찬가지예요. 같은 문화권에 있는 형식이다 보니 자연적으로 종교화되는 과정에서는 힌두교와 큰 차이가 없어져서 수행법도 계율도 유야무야 되고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습니다.nbspnbsp소승불교라고 해서 반드시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소승불교 역시 대부분 인도 문화권이기 때문이에요. 경전이나 계율 같은 것은 소승불교가 불교 중에서 제일 원칙을 지키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신도들이 신앙 생활하는 형태는 힌두교와 거의 비슷해요. 예를 들어 스리랑카에 가 보면 복식 같은 건 힌두교와 완전히 달라보일지 몰라도 신자들이 지내는 제사 의식은 거의 힌두교 문화예요. 그게 곧 인도 문화니까요. 우리 한국 불교인들이 유교의 영향을 받아서 제사지내는 것처럼, 그런 문화적인 요소는 거의 비슷합니다.nbspnbspnbsp독자적인 문화를 따로 유지하지도 못했고, 인도 내에서는 이슬람교의 침입을 받으면서 원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어요. 출가해서 승려가 되는 길을 막아버리니까 자연히 토속신앙인 힌두교로 흡수되어 버렸어요. 조선시대에 출가를 못하게 막은 결과 오늘날 우리 한국 불교도 산신이나 칠성 운운하는 민속신앙과 융합해 비슷해져 버렸잖아요. 또 우리나라에 유교와 불교만 있을 때는 차이가 크다고 해서 유교가 불교를 탄압했는데, 훗날 기독교가 들어오니까 유교와 불교가 비슷해졌어요. 유교는 자체적인 유지를 못하고 지금은 불교 안으로 들어오다시피 해버렸습니다. 인도에서도 출가를 막고 절을 파괴해버리니까 불교가 이렇게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렸어요. 힌두교는 따로 출가를 하거나 교육을 받는 게 아니라 누구나 다 나무 밑에 가서 빌 수 있잖아요. 그러니 사람들을 다 죽이지 않는 이상은 없애려야 없앨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서양 달력을 들여와서 음력설을 없앤다 해도 농민들이 계속 지키니까 어쩔 수 없이 음력설로 돌아간 것처럼, 현재 인도에서는 불교가 힌두교 안으로 흡수되어 버렸어요.nbspnbsp정리하자면 첫 번째로는 정체성을 상실했고, 두 번째로는 외적인 탄압에 의해 다른 신앙에 흡수되어 버렸습니다. 이 두 가지 요인 때문에 인도의 불교가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궁금함이 모두 해소되자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부처님이 알려준 명상법은 계율과 선정, 지혜를 함께 추구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게 된 역사를 들으면서 가슴 한 켠이 씁쓸하기도 했습니다.nbsp이렇게 수행에 대해 질문한 전반부 시간이 다 지나가고 이어서 활동과 관련해 들었던 의문에 대해서 묻고 답하는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법사님, 처장님, 각 부서 국장님, 각 법당 총무님 등 정토회의 주요 간부들이 모인 자리여서 그런지 일반 법회와는 달리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nbsp후반부에 이어진 정토회 활동과 관련된 즉문즉설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25 쑥고개 성당 성탄절 미사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성탄절을 맞이하여 쑥고개 성당에서 열린 성탄절 미사에 참석해 축하 인사와 더불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참뜻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친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아침 10시 20분에 정토회관에서 쑥고개 성당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정토회 새벽 예불nbsp쑥고개 성당 입구는 성탄 미사를 드리기 위해 찾아온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nbspnbsp대기실에서는 쑥고개 성당의 김홍진 신부님을 비롯해 박남수 천도교 교령님, 김대성 원불교 교무님이 속속 도착해 스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미사가 시작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차담을 나누면서 스님은 어제 경동교회 성탄전야 예배에서 목사님이 해준 설교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었다며 소개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아기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이 최근 IS 테러로 인해 관광객이 대거 줄어든 반면 근방에 있는 산부인과를 찾는 사람들은 더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원정 출산하려는 사람들 때문인데, 그 중 상당수가 한국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고난의 길을 간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성지에서 아이를 낳으면 축복 받는다는 생각에 IS 테러의 위협도 아랑곳하지 않는 기복 신앙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꼬집었습니다. 신부님과 교령님, 교무님도 모두 공감하면서 지금 한국에는 오직 한 가지 신앙인 ‘돈교’만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nbspnbsp11시가 되자 드디어 성탄 축하 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2층에서는 성가대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가운데 신부님, 스님, 교령님, 교무님이 차례대로 입장을 했습니다.nbspnbsp▲ 쑥고개 성당nbsp김홍진 신부님의 안내로 아주 거룩하게 성탄절 미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적절한 시간이 되자 신부님이 “오늘은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오셨다”며 스님, 교령님, 교무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웃 종교인 세 분이 나란히 십자가 앞에 서자 열렬한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 성탄절을 맞아 함께 자리한 이웃 종교인들. nbspnbsp신부님까지 포함하면 4대 종교가 함께 어우러져 성탄을 축하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화합이 무엇인지 행동으로 보여주는 네 분의 모습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먼저 박남수 교령님이 성탄 축하 인사를 한 후 이어서 스님이 앞으로 나와 성탄 축하 메시지와 함께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참뜻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성탄 축하드립니다. 한 사람의 삶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특히 성인들의 경우는 태어날 때와 죽을 때 가장 상징적으로 묘사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어떻게 했느냐를 보면 그 삶을 알 수 있습니다. 태어나실 때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으며 돌아가실 때 어떤 모습으로 돌아가셨는지를 보면 그 분의 삶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지금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지만, 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오실 때는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환영받지 못해도 제 부모에게는 환영받게 마련인데 예수님은 제 부모에게도 처음에는 환영받지 못했어요. 결혼을 하지도 않았는데 아기를 가졌으니 그 어머니가 너무나 놀랐고, 결혼을 하지도 않았는데 아내 될 사람이 아기를 가졌으니 그 아버지도 매우 놀랐습니다. 그 어머니가 놀라서 거부하고, 그 아버지가 놀라서 파혼을 하려고 할 때, 천사가 나타나서 이것은 ‘하느님의 뜻이다’라고 전했는데, 두 분은 원치 않았지만 주님의 뜻이라면 세상의 어떤 비난과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신앙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nbspnbsp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의 자연적, 사회적 환경도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따뜻한 봄날이 아니라 추운 겨울날에, 게다가 밝은 낮이 아니라 어두운 밤에, 그것도 따뜻한 방이 아니라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어요. 또 로마의 지배를 받는 변방의 작은 나라에서, 그 속국의 왕이 자기 백성을 억압하는 나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의 탄생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이방인인 동방 박사들이 주님의 오심을 가장 먼저 알아본 것도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nbspnbspnbsp하느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이 이 땅에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동박 박사들로부터 듣고 놀란 헤롯왕이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 주변의 갓난 애기들을 모두 죽이는 대참극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품에 안겨서 애굽까지 피난길에 올랐다가 간신히 돌아올 수 있었어요. 태어나실 때부터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nbspnbsp이야기를 하다 보니 오늘 아침에 본 뉴스가 생각납니다. 이스라엘 극우 세력들이 어린 아기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일가족을 불질러 학살하고, 죽은 아기의 사진을 들고 아기가 죽은 것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었다는 기사를 보고 증오와 미움이 사람을 얼마나 타락시키는지 알 수 있었어요. 오늘 그 뉴스를 보면서, 마치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이처럼 예수님은 결코 오늘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축하 받으면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어요. 성경 말씀대로 표현하자면 ‘가장 작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셔서 가장 핍박을 받다가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가셨어요. 세상 이치로 보면 실패한 인생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그런데도 결국은 부활하셔서 가장 높은 자가 되셨습니다. 긴 역사 속에서 보면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훌륭하고 성공적인 삶을 사신 것으로 만인이 추앙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이런 예수님의 탄생 모습을 생각해보면, 하느님의 축복이 우리가 생각하듯 꼭 영광으로만 오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온갖 수난과 장애로 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수난이 하느님의 축복인 줄 알지 못해서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수난을 피해가려 합니다. 실제로는 그 수난과 고통이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축복이고 하늘 나라로 가는 유일한 길인데도 오늘 우리는 그 길을 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nbspnbsp마태복음 25장 31절부터 보면 최후의 심판 날 천국과 지옥에 가는 심판의 그 기준이 무엇인지 나옵니다. ‘주께서 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느냐?’,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느냐?’,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혀주었느냐?’,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했느냐?’, ‘병들었을 때 보살폈느냐?’,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 면회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생존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 다시 말해 굶주리는 사람, 병든 사람, 고향을 떠나 피난길에 오른 난민들, 죄 없이 감옥에 갇혀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했느냐가 기준이에요.nbspnbsp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그런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이 기독교 국가라고 하지만 오늘날 유럽을 향해 오는 중동 난민들을 유럽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유럽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이 땅에 온 많지 않은 무슬림, 이주민들을 벌써 잠재적 테러범으로 취급하면서 테러방지법을 만든다며 난리를 피우는 것을 보면 이것은 종교와 관계없는 인간의 어떤 야만성을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nbspnbsp예수님의 오심은 우리들에게 분명히 구원의 희망을 주는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구원의 희망과는 다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오심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구원의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nbspnbspnbsp지금 실패하고 패배하고 큰 어려움에 처한 처지가 단기적으로 보면 실패지만, 주님의 삶을 생각하며 길게 본다면 이것은 결코 실패한 삶이 아니고 패배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성공으로 가는 어떤 출발점일지 모릅니다. 우리들이 겪고 있는 이 고난은 그 분이 겪으신 고난에 비하면 고난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그러니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이 어려움 속에서 신앙의 힘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해내야 합니다. 즉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만 희망을 갖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절망에 빠진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희망의 메시지인 복음을 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nbsp또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의 마지막 모습, 즉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두고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저는 깊은 영감과 믿음을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유대교에서 전해 내려오는 하느님은 죄를 응징하는 하느님이었는데,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죄를 응징하는 하느님에서 죄를 용서하는 하느님이 되셨어요.nbspnbsp또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서 보면 유대인만을 구원하는 폐쇄적 구원관이 아닌 이방인까지도 구원하는 열린 하느님과 개방된 구원관을 보여 줍니다. 나만을 사랑하는 하느님에서 만백성을 똑같이 사랑하는 하느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또한 예수님을 통해 신앙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의 오심을 통해서도 자기성찰을 하지 못하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기에 신앙이 바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그 땅에는 미움과 증오, 복수가 계속되는 게 아닐까 합니다.nbspnbsp오늘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기독교인 중에서도 일부이기는 하지만 증오와 복수로 신앙을 삼는 사람들이 아직 많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북한을 미워하더라도 신앙인들은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더 나서서 미워하고 증오하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이해하고 포용해야 할 텐데 오히려 더욱 배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위배된다고 생각합니다.nbsp그래서 저는 기독교냐 불교냐 하는 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불교인들도 다 하느님의 창조물이고 하느님의 백성이지 않습니까? 문제는 ‘신앙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어떤 신앙을 갖느냐’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정말로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질 수 있는 신앙인지를 성탄절을 맞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nbsp제가 어릴 때 배운 찬송가 중에 이런 찬송가가 있습니다. 초등학생 때 배워서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고 곡도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불러보겠습니다.nbsp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nbsp♬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nbsp♬주께 더 나아가기 원합니다.nbspnbspnbsp노랫말에서 보듯이 우리가 주를 가까이 한다는 것은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는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지, 물질적인 축복을 받는 데서 행복을 찾는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기 어렵습니다.nbspnbsp어릴 때 배운 노래니까 잊히지 않는데, 저는 통일운동을 하니까 통일운동을 하는 자세도 이 노랫말과 같다고 생각해요. 통일을 원한다면 분단의 갈등 속에서 뿌리내려온 증오와 미움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질 각오를 해야 합니다. 증오하는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통일 조국을 건설하는 것이 진정한 소원이라면, 그걸 기쁜 마음으로, 찬송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이 운동을 꾸준히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통일에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서 그만두게 됩니다.nbspnbsp가톨릭 순교의 역사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아무 죄도 안 지었는데, 다시 말해 남을 때리지도 않고, 도둑질하지도 않고, 성추행하지도 않고, 거짓말하지도 않고, 술에 취해서 행패부리지도 않았는데, 그저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는 한 가지 이유로 죽임을 당하면 억울하고 분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그런데도 사형당하는 형제들 간에 웃으면서 ‘잘 가라. 천국에서 점심 먹을 때 보자’라고 인사나눌 수 있는 이것이야말로 위대한 신앙입니다. 과연 우리가 죽음 앞에서 이렇게 원망 없이 웃으며 우리의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요?nbspnbspnbsp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권세 있는 자를 위에서 내리치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셨습니다. 그래서 만인을 평등하게 하셨어요. 오늘날 이 땅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는데 권세 있는 자에게 빌붙는 비굴한 삶보다는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람과 함께함으로 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누리는 삶을 우리가 함께 실천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며 오늘 예수님 오신 뜻을 다시 한 번 새겨봅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스님의 성탄절 축하 강론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참뜻이 무엇인지 가슴 절절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말씀이었습니다.nbspnbsp신부님은 스님의 강론을 열심히 경청한 후 “스님께서 예수님 탄생의 의미와 십자가의 신비에 대한 신학적 고찰에 대해 주임 신부인 저보다 더 잘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라며 웃었습니다.nbspnbsp▲ 쑥고개 성당 김홍진 신부님nbspnbsp함께 자리한 교인들도 웃음을 띠며 다시 한 번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김대성 원불교 교무님의 축한 인사가 이어졌고, 세 분의 종교지도자의 말씀이 모두 끝나자 신부님은 스님과 함께 온 정토회 식구들, 교령님과 함께 온 천도교 식구들을 모두 불러 일으켜서 인사를 시켜 주었습니다. 환영의 박수가 계속 이어졌습니다.nbspnbsp▲ 성당 식구들에게 인사하는 정토회 회원들nbsp이렇게 성탄절 미사에 4대 종교가 함께하는 모습은 그 모습 자체만으로 참 감동이었습니다.nbspnbsp이웃종교인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훈훈한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가운데 드디어 본격적인 미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가장 눈에 띈 건 세례명을 주는 의식이었는데 총 19명의 천주교인들이 대부, 대모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거룩한 의식을 가졌습니다. 웅장한 찬송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여러 차례 십자가 앞으로 나오게 하여 한 명 한 명을 예수님이 가신 그 길로 인도해주는 모습은 아주 거룩한 분위기를 자아내었습니다.nbspnbsp▲ 세례를 받고 있는 천주교인들nbsp이렇게 2시간 동안의 성탄절 미사를 모두 마치고 오후 1시부터는 성당 2층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성당에서는 몇몇 분들이 아침 일찍부터 떡국과 갖가지 반찬을 정성껏 준비했다고 합니다.nbsp맛있게 떡국을 먹으며 신부님이 주신 미사주를 잔에 붓고 다함께 건배를 했습니다.nbspnbspnbsp특히 성당에서도 청년들이 20여 명 참께 했고, 정토회에서도 20여 명이 함께 자리해 서로 마주 앉아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분위기가 무르익자 김홍진 신부님은 “이웃 종교에 대해 서로 궁금한 것이 많으시죠?” 라며 잠시 즉문즉설의 시간을 갖자고 했습니다. 각자의 종교에 대해 궁금한 점에 대해 끼리 끼리 대화를 나누던 청년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스님과 신부님, 교령님, 교무님 네 분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먼저 쑥고개 성당에 다니는 한 분은 “요즘 저희 성당에서는 서로 일을 도맡아 하려고 하지 않고, 앞에서 끌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힘듭니다. 스님의 조언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질문했습니다.nbspnbspnbsp그러자 스님은 망설임 없이 곧바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희 정토회도 똑같아요. 방법이 없어요. 쑥고개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책임지고 하는 일은 가능한 안 하려고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해답이 있으면 누가 저한테도 좀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어요.” nbspnbsp예상치 못한 짧은 대답에 모두가 크게 웃었습니다. nbsp질문자가 “알겠습니다.”하고 자리에 앉자 스님도 “이것 봐요. 답을 주지 않아도 해결이 되어버리잖아요.” 하며 웃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성당과 정토회의 청년들 간의 교류와 친목의 시간이 펼쳐졌습니다. 스님은 교류의 시간을 갖기에 앞서 오늘의 만남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종교 지도자 간의 교류는 예전부터 많이 있어 왔지만 오늘처럼 신자들 간의 교류는 거의 없었어요. 종교 지도자들이 신자들을 못 믿었나 봐요. 혹시 교류하다가 양떼 잃어버릴까 걱정이 되어서요. nbspnbspnbsp그러나 이제는 지도자 간에만 이루어지는 제한된 교류가 아니라 좀 더 전면적인 교류가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사월 초파일과 크리스마스에 서로 오가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교류를 더 넓혀 나가면 공동 활동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구 환경을 살리는 운동에서 공통점을 찾아 함께 할 수도 있고, 국제 구호활동도 선교나 전법이라는 목적을 떠나 인류애로서 함께 할 수 있고, 공동 바자회를 함께 열거나 통일운동을 함께 해볼 수도 있어요.nbspnbsp불교인이냐 기독교인이냐를 떠나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면서 겪어야 하는 공통의 문제와 해결과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간다면 그 과정에서 각자의 신앙도 더 깊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교리를 비교해서 공통점이 있네 없네 따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예요. 믿음은 각자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그 속에서 같이 살아가는 것이니까 머리를 맞대고 함께 의논해볼 수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이런 교류 활동들이 더 넓어지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신자님들이 더 많이 오시면 좋았겠지만 공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오늘은 우선 양쪽의 젊은이들만 20여 명씩 초대해 이렇게 모였습니다. 그러니 청년 여러분들은 대화를 활발히 나눠주세요.nbspnbsp오늘은 신부님이 식사도 술도 다 내주십니다. 다이어트는 잊고 실컷 먹으면서 대화 나누고, 무엇이든 질문도 하세요. 질문하는 사람은 질문하기 전에 노래 한 곡을 하면 더 좋겠습니다.” nbsp스님의 제안에 먼저 정토회에서 온 청년들이 미리 준비해 온 크리스마스 캐롤송과 율동을 보여주었습니다. 두 곡을 준비했는데 첫곡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아주 멋지게 불러주었습니다. 이어서 경쾌한 멜로디의 “울면 안돼” 노래를 재미있는 율동과 함께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크리스마스 캐롤송에 맞춰 율동을 보여주고 있는 청년정토회 멤버들nbsp불자 청년들이 부르는 크리스마스 캐롤송과 재미있는 율동에 성당에서 온 청년들과 신부님, 수녀님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웃고 즐거워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쑥고개 성당 청년들도 즉석에서 답가를 해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 이라는 노래를 반주에 맞춰 멋지게 불러주었습니다. 성가대를 하는 청년들이 많아서 그런지 다들 평범한 실력이 아니었고, 노래가 끝나자 정토회에서 온 청년들도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nbspnbsp▲ 답가를 부르고 있는 쑥고개 성당 청년연합회 멤버들nbsp청년들끼리 이렇게 교류하는 모습을 보고 박남수 천도교 교령님은 짧게 소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종교 간의 화합이 바로 이것입니다. 책에서 보거나 법문이나 강론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었잖아요. 정토회에 다니시는 분들이 남의 성당에 와서 이렇게 춤추고 노래하고 서로 대화하는 이런 모습이 바로 젊은이의 용기입니다. 이런 젊은이들의 용기야 말로 종교 간의 평화도 만들도 남북의 평화와 세상의 평화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nbsp교령님은 큰 감동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김대성 원불교 교무님도 “정말 감동적인 모습이었다”고 소감을 이야기해 주자 양쪽 청년들은 모두 공감을 표하며 함께 박수를 쳤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한껏 어우러진 후 즉문즉설의 시간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누구는 원불교에 대해, 누구는 천주교에 대해, 누구는 불교에 대해 허심탄회한 질문들이 쏟아졌고, 각 종교 지도자들은 알기 쉽게 대답을 해주어 청년들도 무척 좋아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오후 3시부터 또다른 미팅 일정이 약속되어 있어 양해를 구하고 중간에 자리를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웃종교인들의 아름다운 만남은 오후 늦게 까지 계속 되었습니다.nbspnbsp평화재단으로 온 스님은 국제한민족재단 이창주 교수님과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 위치한 신한촌의 독립운동역사 재건을 위해 어떻게 모금을 해나갈지 회의를 한 후 오늘 공식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 연해주 신한촌 독립운동역사 재건을 위한 모금 준비 회의nbsp저녁에는 집무실에서 명상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밤늦게까지 보았습니다.nbspnbsp내일을 시작으로 스님은 12월26일부터 30일까지 5일 동안 정토회 활동가들과 함께 한해를 마무리하는 명상수련을 할 예정입니다. 명상수련을 마치고 12월31일부터 1월2일까지는 3일 동안 정토회 실무자 수련이 있을 예정입니다.nbspnbsp※ 12월 26일부터 30일, 명상수련을 하는 기간 동안은 ‘스님의 하루’도 묵언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명상을 모두 마치고 12월 31일 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24 경동교회 성탄전야 예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경동교회 성탄전야 예배에 참석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쁜 마음을 함께 나누었습니다.nbspnbsp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친 후 아침 7시부터 조찬 모임과 각종 회의를 오전 내내 가졌습니다. 오후 4시에는 치과에 들러 치료를 받았고, 6시에는 병문안을 잠시 다녀왔습니다. 이동 중에는 차 안에서 계속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nbspnbsp저녁 7시에는 경동교회를 찾아가 성탄전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경동교회는 박종화 목사님이 담임 목사로 계신 곳인데, 스님과 박 목사님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활동을 함께 해오며 수년간 좋은 인연을 맺어오고 있습니다. 매년 부처님오신날에는 박 목사님이 정토회를 방문해 석탄일 기념 법문을 해주고, 오늘처럼 성탄전야에는 스님이 경동교회를 찾아 축하 인사를 해주고 있습니다.nbspnbsp▲ 경동교회nbsp교회 식당에서 박종화 목사님과 담소를 나누던 스님은 7시 30분이 되어 목사님과 함께 예배당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nbspnbsp정면에는 십자가가 높이 솟아 있고, 파이프오르간 반주가 예배당 안에 가득히 울려퍼지는 가운데 들려오는 찬송가는 절로 마음을 숙연하게 했습니다.nbspnbspnbsp행사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1부에서는 주일학교 학생들이 준비한 성탄 축하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유치부에서는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서도 통솔되지 않는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어린이부에서는 성탄 메들리를 들려주어 흥을 돋우워 주었고, 중고등부에서는 ‘해피 크리스마스’라는 노래를 멋진 율동으로 표현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nbspnbspnbsp주일학교 학생들의 공연이 모두 끝나자 박종화 목사님이 앞으로 나와 동방박사로 온 사람들을 소개시켜 주었습니다nbspnbspnbsp“예수님 탄생 때 전혀 다른 곳에서 살던 사람들도 말구유에서 나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저 멀리서 별만 보고 찾아온 동방박사들이 있었어요. 오늘날 21세기에 경동교회에서 태어나신 예수들을 찾아온 동방박사를 소개하겠습니다. nbspnbsp대표로 두 분이 오셨는데 두 분과 함께 온 동방박사 무리들이 많습니다. 천도교에서 오신 동방박사 분들 일어나 주십시오. 다음은 정토회에서 오신 동방박사 여러분들입니다. nbspnbsp이 땅에 평화와 화해를 나눠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찾아 다른 동네에서 이곳까지 오셨어요. 동방박사를 대표해 오신 두 분을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먼저 천도교 박남수 교령님이, 다음으로는 정토회의 법륜 스님이 나오셔서 동방박사 이야기를 해주시겠습니다.”nbspnbsp이어서 박남수 교령님이 앞으로 나와 축하 말씀을 한 후 다음으로 법륜 스님이 축하 말씀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어렸을 때 교회에 다녔다고 하면서 그 때 배운 찬송가 한 구절을 불러주었습니다. 열렬한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nbsp“메리 크리스마스”nbspnbsp“메리 크리스마스” nbsp“성탄을 축하드립니다. 저도 어렸을 때 교회에 다녔습니다. 교회 다닐 때 성극에서 동방박사 역을 했는데, 아직도 동방박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nbspnbspnbsp그때 제가 아기 예수 역할을 맡았으면 혹시 지금 목사님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박남수 교령님께서 좋은 말씀 다 해 주셨기 때문에 다른 말 길게 하지 않고 저는 어릴 때 교회에서 불렀던 찬송가 한 곡 하고 들어가겠습니다. nbsp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nbsp아멘.nbspnbspnbspnbsp어릴 때 교회에 나갔던 것을 제외하고 다시 교회에 오게 된 계기는, 고 강원룡 목사님이 운영하던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 사회교육을 받게 되면서 입니다. 강원룡 목사님과의 인연을 계기로 종교 간의 대화모임에도 참여하게 되었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활동도 함께 하면서 박종화 목사님과도 인연이 되었습니다. 제가 강원룡 목사님을 존경했던 이유는 사람이 나이가 들면 보통 보수화되기 마련인데 그분은 영원한 청년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희보다 더 새로운 것을 추구하시는 진보적인 분이셨습니다.nbspnbsp또 박종화 목사님을 뵈면서는 균형 감각에 놀랐습니다. 항상 회의 진행을 하실 때 정말로 균형을 잘 잡으세요. 좌우 사상에 관련된 것이든 어떤 주제에서든 감탄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늘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균형감각을 유지하시는데, 이것을 불교에서는 ‘중도’라고 합니다. 인격적으로 중도가 체화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도 항상 존경합니다.nbspnbspnbsp목사님께서 곧 은퇴하신다고 들어서 저도 은퇴식에 오려고 알아보니까 외부 사람을 일절 초청하지 않고 아주 간소하고 조용히 하신다기에 이 자리를 빌어 인사 드립니다. nbspnbsp목사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목사님이 은퇴하시더라도 은퇴는 하나의 형식이니까 여러분께서는 변함없이 목사님을 사랑해 주시고 또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 계속해 나가시기 바랍니다.nbspnbsp나라를 일본에 빼앗겼을 당시에는 천도교의 교세가 제일 컸습니다. 그래서 천도교가 중심이 되어 불교, 개신교, 이렇게 세 종교가 함께 3.1 독립운동에 참여했어요. 오늘도 그때와 똑같이 이렇게 저희들 셋이서 그 당시를 생각하며 종교의 벽을 넘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함께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nbspnbsp nbspnbsp스님은 이렇게 성탄 축하 인사를 한 후 은퇴를 하시는 박종화 목사님에게 꽃다발을 건넸습니다. 마음이 훈훈해지는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 은퇴하시는 박종화 목사님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법륜 스님nbsp또한 종교의 벽을 넘어선 세 분의 만남은 더욱더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100년 전처럼 다시 세 종교가 힘을 합했으니 남북의 통일도 곧 이뤄지지 않을까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nbspnbsp박 목사님은 스님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후 그 답례로 간단히 소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세월이 많이 흘러서 요즘의 동방박사는 찬송도 하시네요. 우리가 이렇게 성탄 예배를 함께 드리고 있는데, 오늘 이분들은 경동교회에 오신 예수님을 축하하고자 함께 자리해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답례를 드려야겠는데, 뭘 드릴까 생각해 보니까 주님께서는 당신 방식대로, 다시 말해 하나님 방식대로 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님께서 천도교에도 오시고, 정토회에도 오셔서, 하나님의 평화와 화해로 아름다운 일을 이루시기 기원합니다. 성탄의 은총이 온누리에 가득하길 바랍니다. 다함께 성탄을 찬송하십시다.”nbsp다함께 ‘아멘’을 외치며 이어서 찬송가를 함께 불렀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며 함께 어우러지는 이 모습은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진 2부 행사에서는 본격적으로 성탄전야 예배를 함께 했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찬송을 일어서서 함께 부르는 가운데, 목사님과 촛불을 든 어린이들, 성가대가 차례대로 입장했습니다. 어린이들과 목사님이 제단에 촛불을 밝히자 예배당도 환하게 밝아지고, 목사님의 인도가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오늘밤 탄생하시는 주님을 송축하나이다. 오늘 주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옵소서. 하늘이 땅이 되고, 하나님이 인간 되어 오시는 축제의 예배를 하나님께 바치나이다. 하늘 천사들이 전해준 성탄의 기쁜 소식을 우리 함께 온 세계에 전합시다.”nbspnbsp목사님의 인도에 스님도 “할렐루야. 아멘” 하고 응답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마태복음서 1장 18절에서 24절까지를 함께 봉독한 후 다함께 성 프란시스의 ‘평화의 기도’를 하면서 예배를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nbsp“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십시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해주십시오.nbspnbsp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게 해주십시오.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십시오. 아멘.”nbsp예배당을 나와 경동교회 정문 앞에서 스님과 목사님, 교령님 세 분이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목사님이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외치자 스님과 교령님도 함박 웃음을 머금었습니다.nbspnbsp▲ 성탄전야 예배에 함께한 박남수 교령님, 박종화 목사님, 법륜 스님nbsp부처님과 예수님이 동시대에 살았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도 여야, 진보와 보수, 종북이니 친일이니 하면서 서로 갈등하지 말고, 더 큰 미래를 그리며 국민 통합을 해나간다면 국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오늘 세 분의 모습을 정치인들이 좀 본받았으면 하는 바랍을 가져봅니다.nbspnbsp목사님과 인사를 나눈 후 경동교회를 출발한 스님은 밤 10시 30분에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앞마당에는 송년법회를 마치고 청년들이 대거 나와서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손을 흔들자, 모두들 “스님과 사진 찍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며 너무나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청년들은 맑은 눈망울과 환한 얼굴로 이 땅에 예수님 오심을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덕담으로 “내년에는 청년법회에 한 300명이 오도록 해보라”며 기운도 불어 넣어주었습니다.nbsp▲ 송년법회를 마친 청년들과 함께nbsp스님은 집무실에서 늦은 밤까지 업무를 보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성탄절인 내일은 오전 11시에 쑥고개성당에서 천주교인들을 위해 성탄절 기념 강론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23 (저녁) 저녁반 송년법회
nbsp오전에 있었던 주간반 송년법회에 이어서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저녁반 송년법회가 열렸습니다.nbspnbsp저녁에도 스님이 직접 법문을 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저녁반 대중들이 서울 정토회관에 모여 들었습니다. 신발장이 부족해 신발을 둘 곳이 없을 정도로 대중들이 법당에 들어찼습니다.nbspnbspnbsp청법가와 삼배에 이어서 죽비 삼성과 함께 명상이 끝난 후 스님의 송년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젊은 시절에 감옥에 갔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수행적 관점을 가지면 언제 어디서나 깨달음과 배움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nbspnbsp“제가 젊은 시절에 감옥에 갔을 때 이런 걸 깨달았어요. 들어갈 때는 ‘나는 들어갈 이유가 없다’라고 생각했는데 내 의지와 관계없이 집어넣었고, 들어가서 지내다 보니 생각이 바뀌어서 안 나오려 했는데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내보내더라는 겁니다. 안 들어가려 하니까 안 들어갈 자유를 빼앗고, 안 나오려고 하니까 안 나올 자유를 빼앗아서 늘 속박받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깨닫고 보니까 들어갈 때는 들어갈 자유를 누렸고, 안에 있을 때는 안에 있을 자유를 누렸고, 나올 때는 나올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래서 도무지 그들이 나를 속박할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안에서의 경험은 이 바깥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 것에 비해 10배는 더 많은 학습이라면 학습, 수행이라면 수행이었어요.nbspnbspnbsp그 학습을 하기 위해서 일부러 들어가려고 했다면 들어가기가 굉장히 어려웠을 거예요. 남을 두들겨 패서 폭행죄로 들어가거나, 남의 물건을 훔쳐서 절도범으로 들어가거나, 싫다는 사람에게 추근거려서 성추행범으로 들어가거나, 돈을 빌려놓고 안 갚아서 사기죄로 들어가거나, 술 마시고 행패 부려서 주폭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것도 한 번 만에는 못 들어가잖아요. 초범은 내보내버리니까 재범, 삼범까지 해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데, 그걸 아무런 계율도 어기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으니 굉장한 특혜죠. nbsp저처럼 집회시위법 위반으로 들어간 사람은 ‘우리는 죄가 없다’ 이런 뜻으로 양심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말을 안 들으니까 소위 온갖 죄가 있다는 사람들을 모아놓은 잡범방에 집어넣어요. 그 방에 처음 들어갈 때는 조금 겁이 났지만 막상 들어가서 생활해보니 그것도 축복이었어요. 양심수라고 하는 사람들은 같은 감방에 있어도 다른 사람들 보고 잡범이라고 합니다. 도둑질한 죄, 폭행한 죄, 성폭행한 죄, 간통한 죄, 교통사고 낸 죄 등 온갖 죄가 많으니까 잡범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런 잡범 12명과 한 방에서 지냈는데 막상 그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니 아무도 죄가 없어요. 전부 다 억울하거나 재수가 없어서 들어왔대요. nbspnbsp이건 제게 대단한 발견이었어요. 제가 감옥에 안 가봤다면 그들이 죄 없다는 사실을 몰랐을 거예요. 제가 감옥에 가기 전에는 교도소 법회를 가면 ‘여러분들이 죄를 지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진실하게 참회하면 다 새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법회를 했어요. 그런데 감옥에서 나온 뒤부터 교도소 법회를 갈 때는 완전히 관점이 달라졌어요. ‘다들 억울하시죠?’ 이렇게 법문을 시작하면 다들 얼굴이 환해져서 어떤 법문을 해주는 것보다, 간식을 가져다주는 것보다 훨씬 더 좋아들 합니다. nbspnbsp자기 답답한 마음이 풀어지니까요. 제가 감옥에 직접 들어가 보지 않았다면 그걸 어찌 알았겠어요? 책 같은 데서 보고 ‘그런가보다’ 해도 그렇게 읽어서는 가슴에 다가오질 않아요. 그리고 제가 감옥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너무너무 억울해 했는데, 알고보니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억울하다는 걸 알았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배우려고 하면 어디서나 배울 수 있습니다. 소위 관재수에 걸린 것이 인생에서 큰 복이 되었어요. 같은 기간에 그보다 더 많이 배울 수 없고, 그보다 더 많이 경험할 수 없고, 그보다 더 깨달을 수 없는 거예요.”nbsp재앙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성찰과 배움이 있을 수 있음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다사다난 했던 한 해였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고,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음이 되짚어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 관점을 딱 바꾸니 지난 과거의 경험들이 너무나 소중한 자산으로 다가왔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송년의 의미에 대해 오전에 주간반을 위해 해주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저녁반을 위해서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감사한 마음을 갖자며 마지막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또 수고한 정토회 회원들 모두를 위해 격려 말씀도 함께 해주었습니다.nbspnbsp“우선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지난 한 해 잘 살았음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부모님도 감사하고, 형제들도 감사하고, 직장 동료들도 감사하고, 식당에서 상한 재료 안 쓰고 밥 차려준 사람도 감사해요. 불보살과 천지신명, 일체 많은 중생의 은혜 속에 올 한 해도 잘 살았으니 감사하는 마음이 좀 있어야 해요.nbspnbspnbsp불평불만이 많다는 건 감사할 줄 모른다 거예요. 자기를 낳아 키워준 부모님에게, 같이 사는 남편이며 아내에게, 자기가 낳아 키운 자식에게, 자기가 속한 조직이며 나라에 불평불만인 사람들은 천국에 데려다놔도 금방 불평불만을 할 거에요. ‘여기는 술집도 없냐, 노래방도 없냐’ 하고 3일 안에 다시 나오거나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어버릴 겁니다. nbspnbsp또 연말을 마무리하면서 지난 경험은 발전의 바탕으로 삼아야 합니다. 올해 산 건 다 잘 산 거예요. 엎어져도, 자빠져도, 놀아도, 밤낮으로 일했어도 다 잘 산 겁니다. 그건 모두 이미 지나가버리고 없어요. 그렇게 잘 산 것을 경험이자 재산으로 삼고, 내년에 그걸 밑천으로 더 잘 살겠다는 마음으로 한해를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nbsp정토회에서도 여러분 모두 올해 1년 동안 일 많이 하셨죠? 불교대학 다니는 분들은 공부하느라 고생하셨고, 불교대학 졸업한 분들은 아는 것도 없는데 불교대학 담당이 되어서 조교 노릇 하느라 고생하셨고, 경전반 다니는 분들은 또 불교대학 담당하랴, 깨달음의 장 다녀오랴, 전법하랴, 즉문즉설 강연 준비하랴 애쓰셨어요. 모두 수고들 하셨습니다.nbspnbsp경기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여러분들이 아껴서 생활하고 내어준 보시금 덕분에 정토회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감사드립니다. 특히 정토회는 자원봉사들을 많이 해주셨어요. 방석 하나 옮기는 것부터 모두 여러분들이 자원봉사를 통해 정토회가 유지, 발전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에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감사드립니다.nbsp정토회에서 보시하고 봉사하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 다른 절이나 성당, 교회에서는 돈도 낼만하고 봉사도 할 만합니다. 나중에 이자 쳐서 돌려받는다, 즉 복 받는다고 하니까 당장 좀 아까워도 미래를 위해 투자할 만해요. 이생에 못 받으면 천국에 가서 받는다는 보장도 해주잖아요. 그런데 정토회는 아무런 보상을 준다는 이야기가 없어요. 우리가 어려서 절에 다닐 때는 절 촛대를 닦으면 다음 생에 눈이 맑아지고 뭐 하면 다음 생에 뭐가 좋아진다고 해서 다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몰라요. nbspnbspnbsp뭘 하면 보상을 받는다는 당근이나 뭘 하면 지옥 간다는 채찍이 있어야 할 텐데, 아무런 당근도 채찍도 없는 가운데서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가능하면 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다른 교회나 절에도 이보다 더 보시와 봉사를 많이 하는 단체들이 있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당근과 채찍이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말이 아니기 때문에 정토회에서는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nbspnbspnbsp여러분이 어린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심부름 다녀오면 뭘 준다며 어르지도 않아요.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마땅히 행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을 뿐입니다.nbsp우리는 워낙 노예로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이렇게 주인으로 살려하면 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여기는 주인 되기 운동하는 곳입니다. 신자 되기가 아니라 수행자 되기 운동을 하는 곳이에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정치인이 아닌데도 나라를 생각하고, 스님이 아닌데도 수행을 하잖아요. 이렇게 해서 내 인생을 내가 책임져야 해요. 내 인생을 두고 남을 원망하고 ‘너만 잘 하면 내가 이러겠냐’라고 하는 소리가 딱 끊어져야 해요. ‘내가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라는 명심문대로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내 인생의 희망이 되어야 해요. 내가 우리 가족의 희망이 되어 화목하게 살고, 내가 이 사회의 희망이 되고, 내가 이 나라의 희망이 되어야 해요.nbspnbsp그래서 우리가 우선 수행정진해서 나부터 행복하고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다음으로 이 좋은 법을 이웃에 널리 전해서 그 사람들도 수행자가 되도록 해야 해요. 그러려면 우리 생활공간 가까이에 수행도량이 있어야 하니 여기저기 법당을 내는 겁니다. 이런 일을 하려면 연수원도 있어야 하고, 활동을 뒷받침해줄 물적 토대도 있어야 해요. 또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 있는 교포들에게도 법을 전해서 그들도 혜택을 보도록 해줘야 합니다.nbspnbspnbsp또 지구적으로는 환경을 잘 보존하고, 굶어죽거나 병들어 죽는 일이 없고, 어린아이들은 제때 배우도록 하자는 거예요. 또 먹고는 살만하지만 다들 자기 믿음과 생각만 옳다고 고집해서 그저 증오심으로 싸우고 죽이잖아요. 문명사회인데도 자기 종교, 자기 인종, 자기 나라 아닌 소수자에 대한 저주와 증오가 갈수록 심해집니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해서 평화롭게 살아가자는 뜻에서 우리가 우선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도록, 또 남북이 통일되도록 노력하는 겁니다. 나아가 우리 정토회에만 국한되지 않고 불교 안의 다른 사람들, 불교뿐 아니라 다른 종교의 사람들, 종교를 넘어서서 시민 단체의 사람들, 우리나라를 넘어서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도 이런 삶의 방향이 같다면 함께 나아가야 해요. 이것이 우리 정토행자의 10대 목표입니다.nbspnbsp이렇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는데 여러분들이 보시와 봉사를 해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매일매일 수행을 하기 때문에 보시와 봉사도 할 수 있었어요. 수행자로서는 이 모든 게 다 학습이 되고 수행이 되지만, 수행적 관점을 안 가지면 이런 경험이 오히려 지옥이 됩니다. 직장 다니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죽겠는데 봉사까지 하라고 하고, 가정생활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런저런 일을 하라고 해요. 월급도 안 주면서 단순 봉사가 아닌 책임자를 하라고 하고, 올라가봐야 월급은커녕 내는 돈만 많아지고 책임만 늘어나는데 팀장 하라고 하니 불만이 많아요. nbspnbspnbsp그러나 수행자라면 감옥 가는 것도 수행이고, 또 이런 일을 맡아서 해봐야 수행이 됩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항상 수행자 모임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해요. 수행자가 아니라면 여기서 살기 힘들어요. 여러분들이 수행자라는 사실을 늘 잊어버리지 않고, 놓쳐도 다시 환기한다면 올 연말은 저절로 가을걷이가 잘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nbspnbsp이루 말할 수 없이 수고하신 행자님들, 법사님들을 한 명 한 명 거명하면 밤을 꼬박 새도 모자랄 거예요. 그런데 이런 건 드러내지 않고 묻어놔야 나중에 복 된다고 하니 복 되도록 묻어두겠습니다.” nbspnbsp정토회 회원들은 모두 대가가 없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기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만둘까 말까 많은 고민들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수행자임을 자각하면 모든 고민이 해결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들이니 절로 힘이 다시 났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테니까요.nbspnbsp특히 억울하게 감옥에 붙잡혀 갔던 경험조차도 수행자의 관점을 가졌더니 그 어떤 경험보다도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는 말씀은 많은 여운을 남겨 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은 20분 정도 더 시간을 갖자고 하면서 “지난 한해 동안 정토회가 하는 일에 대해 혹시 의혹이 있거나 개선했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이야기해보라” 며 건의를 받았습니다. 총 5명이 스님에게 몇가지 건의를 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각각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주고, 개선점은 수용을 했으며, 혹시 오해가 있는 부분은 시원하게 설명해 주기도 했습니다.nbspnbsp이렇게 송년법회를 마치고 이어서 대중을 대표하여 가을 불대 담당을 맡고 있는 안은정님이 스님께 감사 편지를 읽었습니다.nbspnbspnbsp안은정님은 청춘콘서트에서 스님을 처음 뵈었지만 잊고 지내다가 직장생활로 한참 힘들 무렵에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만난 어떤 분을 통해 다시 정토회를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불교대학과 깨달음의장을 하면서 직장생활에서 일어나는 잦은 화가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자각하고 매일 아침 기도를 한 결과 지금은 편안해졌다며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 내용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마지막에는 “스님의 가르침으로 인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고, 내가 나를 사랑하니 남의 눈치를 볼 일이 없어졌으며,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인정하니 마음도 편안해졌다”고 하면서 “생활 속에서 법을 전하는 수행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말해 주었습니다.nbspnbsp편지 낭독을 마치고 편지지를 고이 접어서 봉투에 담아 스님께 직접 건네자 대중들도 박수를 함께 쳐주며 공감의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nbspnbsp2015년 한해 동안의 활동 모습이 담긴 영상을 함께 시청한 후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공로가 많았던 분들에 대한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서울정토회 마경숙 대표님은 총 14개 부문에서 26명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건넸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한해 동안 차 안에서 쪽잠을 주무시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소중한 가르침을 설해 준 법륜 스님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전달했습니다.nbspnbspnbsp유수 스님이 대중을 대표하여 법륜 스님에게 선물을 건네자 대중들도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사홍서원을 끝으로 송년법회를 마친 후 스님은 집무실로 올라가고, 대중들은 법당에 그대로 남아 2부 프로그램을 함께 했습니다. 그동안 여법하게 법회가 이뤄졌던 법당은 오늘 하루만큼은 시끌벅적한 놀이판이 되었습니다. 대중 가요 반주에 맞춰 율동을 하는 팀, 기타 연주를 하는 팀, 가야금 연주를 하는 팀, 합창을 하는 팀 등이 어우러져 서로 친목을 도모하며 흥겨운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집무실에서 늦게까지 업무를 보다가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조찬 모임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해 저녁 7시 30분부터는 경동교회에서 열리는 성탄전야 예배에 참석해 축하 인사를 할 예정입니다. 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23 (오전) 주간반 송년법회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서울 정토회관에서 오전에는 주간반 회원들을 대상으로, 저녁에는 저녁반 회원들을 대상으로 송년법회를 함께 했습니다.nbspnbsp아침 7시부터 조찬 모임을 마치고 서울 정토회관으로 돌아온 스님은 10시부터 송년법회에 참석했습니다. 오늘도 스님이 직접 강의를 하는 날이라 많은 대중들이 참석해 정토회관은 발디딜 틈 없이 자리가 가득 찼습니다.nbspnbspnbsp죽비 삼성과 함께 명상이 끝나고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약 1시간 동안 수행자는 어떤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지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어제의 결과이고 내일의 원인입니다. 지금은 지나간 과거의 결과이고, 앞으로 올 미래의 원인이 됩니다. 인생은 시작과 끝이 있는 듯 보이지만 본래 시작과 끝이 없어서 늘 흘러가는 물처럼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현존하는 것은 늘 현재만 있습니다. 지난 뒤에 보면 성공한 일이든 실패한 일이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과거의 일이고, 과거의 일은 내 인생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과거의 일은 성공이든 실패든 하나의 경험에 불과합니다.nbspnbspnbsp일이 일어날 그때 그때에는 성공하는 일은 좋고 실패하는 일은 나쁘게 보입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그때 좋은 일이 지금도 반드시 좋다고 할 수 없고, 그때 나쁜 일이 지금도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때 실패한 것이 오히려 지금은 더 큰 발전의 바탕이나 새로운 기회가 되어주기도 하고, 그때 성공했던 것이 지금 큰 낭패나 실패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미 지나가버린 것은 성공이든 실패든 현재의 나에게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현재의 나에게는 그냥 하나의 경험일 뿐이에요.nbspnbsp이 경험을 나의 자산으로 만들 지, 빚으로 만들 지는 그 사건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결정하는 거예요. 과거의 성공에 도취되어 자만하게 되면 지금 실패의 원인이 되고, 과거의 성공을 잘 살려서 계승한다면 지금 성공의 원인이 됩니다. 과거에 실패했던 것을 잘 반성하고 실패의 원인을 규명해서 경험화한다면 그것은 지금 성공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과거의 실패에 상처를 입어서 좌절하고 절망해 버리면 지금 실패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순간순간은 성공과 실패, 좋음과 나쁨이 있지만, 지나가버린 일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좋은 일, 나쁜 일, 성공, 실패가 없습니다. 그것이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는 지금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렸습니다. 지금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서 경험의 자산으로 삼을 지, 상처로 간직해서 지금 내 인생의 큰 빚으로 남길 것인지는 지금 나의 시각에 달린 거예요.nbspnbsp올 한해를 되돌아보면 좋은 일과 나쁜 일, 성공과 실패가 수없이 반복되었을 겁니다. 다사다난이라는 표현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건 흘러간 물처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현재에 어떻게 남아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지나가버리고 없지만 뭔가 흔적이 남아 있거든요. 그 흔적이 어떻게 남아 있느냐에 따라서 이게 미래의 좋은 자산이 되기도 하고 엄청난 빚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지금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성공했다고 자만하거나 교만하거나 들뜨지 말고, 실패했다고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마세요. 실패했든 성공했든 그건 그냥 내 인생의 일부입니다. 성공했다면 그 성공의 좋은 점들을 지금 간직해서 미래에 계승하고, 실패했다면 실패의 원인을 잘 규명해서 다시는 그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미래에 예비를 하세요. 그러면 그것도 소중한 내 인생의 자산이 됩니다.nbspnbspnbsp농사를 지을 때는 봄에 밭갈고 씨뿌리고, 여름에 김매고 거름 주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가을에 추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아무리 많이 했더라도 가을에 추수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앞서 해 놓은 일들이 다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마무리를 잘해야 해요.nbspnbsp우리가 부지런히 사는 가운데 내가 원하는 대로 된 것도 있고, 안 된 것도 있고,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때는 그것 때문에 헐떡거렸다 해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지나간 실패를 상처로 간직하지 마세요. 실패한 게 상처가 되는 것은 좌절하고 절망하기 때문입니다. 그 좌절과 절망은 욕심 때문에 생겨요. 한번 해 보고 안 되면 ‘이러면 안 되니까 저렇게 해 봐야지’, ‘이렇게 해도 안 되네? 또 다르게 해봐야지’ 이렇게 오히려 계속 연구를 하면 더 좋은 방법을 새로 발견해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안 된다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은 연구하거나 노력하지 않고 공짜로 먹으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그러면 실패가 상처로 남아서 다음에 할 때 두렵거나 망설이게 돼요.nbspnbsp겪었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게 있고, 겪었기 때문에 오히려 두려움이 없어지는 게 있습니다. 처음 할 때 두렵지, 한두 번 해보면 ‘까짓 거, 전에도 해 봤는데’ 이런 경우가 있고, 처음 할 때는 오히려 괜찮았는데 한동안 해본 사람이 오히려 더 겁을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실패가 거듭되더라도 해볼수록 두려움이 없어지고 능수능란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욕심을 내면 마음에 상처를 입기 때문에, 즉 좌절과 절망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실패가 쌓여서 큰 빚이 됩니다. 어린 아이가 자전거를 배울 때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것은 자전거를 못 타는 게 아니라 곧 탈 수 있게 되는 과정입니다. 많이 넘어졌다는 것은 곧 잘 탈 때가 다 되어간다는 뜻이에요.nbsp이렇게 지나간 1년을 돌아보고 마무리할 때 실패한 것을 경험화해서 내년에는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 또는 참고사항이 되도록 하세요. 그러면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됩니다. 또 성공했던 것에 들뜨거나 교만에 빠지지 말고, 그것을 잘 계승해 나간다면 그것 또한 내년에 성공의 기초가 될 겁니다.nbspnbsp산다는 것은 다 수행이에요. 앞으로 엎어져도 수행이고, 뒤로 자빠져도 수행입니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순간순간이 다 똑같은 시간이에요. 군대 입대하는 날이나 제대하는 날이나, 그믐날이나 초하룻날이나 다 같은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초하루는 여유가 있다며 낭비하고, 그믐날은 다 지나갔다며 포기합니다. nbspnbspnbsp똑같은 날이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것을 경험화해서 축적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이, 하루하루가, 매년 매년이 늘 새로운 시작이에요. 이제까지는 다 연습이고, 그 연습을 기초로 해서 이번에는 제대로 하도록 노력하는 것의 반복입니다. 여태까지 100번을 했다면 101번째는 제대로 해 보고, 그 다음에 101번 연습한 걸 갖고 102번째는 더욱 제대로 해 보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하루는 그냥 하루가 아니라 이제껏 살아온 총 날수에 더해진 하루입니다.nbspnbsp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삽니까? 그냥 수학적으로 하루하루 살아요. 어제 것을 버리고 오늘 하루를 살고, 오늘 것을 버리고 내일 하루를 삽니다. 그러나 오늘 하루는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 위에 또 얹어진 하루이기 때문에 오늘 하루는 어제 하루보다 훨씬 값져요. 10년 전의 하루보다는 오늘 하루가 훨씬 값집니다.nbspnbsp그런데 그렇게 살지 않으니까 인생에서 비약이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어느 정도 경험이 축적되면 문리가 터지듯이 비약이 일어나야 해요. 아이들이 공부해서 시험 치고 나면 쓰레기통에 버리고, 시험 치고 나면 쓰레기통에 버리기를 반복하니까 대학 졸업한 사람에게 뭘 물어봐도 중학교 수준이 안 돼요. 그게 계속 축적이 되어서 올라온 게 아니라서 그래요. 자기 필요에 의해서 공부하지 않고 억지로 했기 때문에 시험만 통과하면 그냥 버려버렸어요. 시험은 통과하기 위한 서류에 불과했거든요.nbspnbsp그나마 인생에서 다 버린 것까지는 괜찮은데, 그걸 또 녹화해 놨다가 내내 다시 틀어보면서 괴로워해요. 오지도 않은 10년 후, 20년 후의 일도 상상의 녹화를 해 놨다가 틀어보면서 ‘죽으면 어떡하나? 애가 어찌 되면 어떡하나?’라고 근심 걱정해요. 미래의 일을 근심 걱정하고 과거의 일을 괴로워 하느라 현재는 허수아비로 사는 거예요. 머릿속에는 내내 과거나 미래의 테이프를 틀어놓고 슬픔과 괴로움, 초조와 불안, 근심과 걱정 속에 인생을 사느라고 지금 여기 깨어있지 못한 겁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미 과거는 지나가버려서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서 없고, 지금만 존재하니까요.nbspnbsp그리고 이 ‘지금’은 과거의 결과요, 미래의 시작입니다. 이미 지나가버리고 없는 과거를 우리가 돌이켜보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아파하려는 게 아니라 그것을 경험화해서 그 교훈으로 미래를 잘 살기 위해서여야 합니다. 그래서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가 달라요. 오늘의 하루는 그만큼 축적된 하루예요. 우리가 인생의 계단을 올라갈 때, 10년 전의 한 층이 9층에서 10층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한층은 100층에서 101층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보이는 전망이 달라요. 그리고 우리가 미래를 생각하는 이유는 내일이라는 게 내일이 되면 또 지금이 되니까 준비를 하는 거예요. 근심하고 걱정하라고 미래를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nbspnbsp그러니 2015년을 마무리 하면서 개인적으로 인생을 잘 정리하세요. 실패든 성공이든 관계없이 다 정리해서 추수를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내년 1년을 간단히 설계해야 합니다. 멍하게 시작하지 말고요. nbspnbspnbsp처음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시작해도 시간이 흐르면 멍청해지기가 쉬운데 대부분 새해를 멍청하게 시작하잖아요. 공부 잘 하는 아이는 공부를 많이 하는 아이가 아니라 오늘 뭘 배우는지 미리 알고 수업에 들어가는 아이예요. 그 시간에 배울 지식을 다 알고 들어간다는 게 아니라, 뭘 배울 예정이고 내가 뭘 모르는지를 알고 수업에 들어가야 선생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이번 시간에 뭘 배우는지,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고 들어가면 들은 내용이 기억에 남지도 않고, 이해도 잘 안 되고, 끝난 뒤 복습을 아무리 해도 별로 효과가 없어요. 공부할 줄도 모르면서 괜히 책상에 앉아 애만 쓰는 꼴이에요. 그러니 한 해 마무리를 잘하고, 새해 기본준비를 해서 새해를 맞으세요. 항상 현재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즉 지금에 충실해야 해요.”nbsp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할지 명쾌하게 정리가 되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주옥 같은 말씀을 해준 스님에게 대중들도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내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지난 1년을 돌아보며 모두들 만족스러운지 물어본 후 스님 자신은 대만족이라고 하며 그 이유를 아주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우리들은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측면에서 한해를 평가하는 스님의 모습을 보며 스님이 늘 웃음을 머금고 사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nbspnbspnbsp“1년을 돌아보니 여러분 개인의 삶은 만족스러웠어요?”nbsp“......” nbspnbsp“저는 대만족입니다. 첫째, 올 한해도 안 죽고 살았거든요. 지구상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가운데 안 죽고 이렇게 살아남았잖아요. 둘째,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큰 사고도 안 나고 살아남았어요. 깁스하고 병원에서 수액 맞아가며 살아남은 게 아니잖아요. 그런 것에 비하면 저는 이렇게 큰 사고 없이 살아남았어요. 또 신체 검사도 했는데 몇 가지 병명이 나오긴 나왔지만 암이나 무슨 큰 병은 아니고 사는 데 별 지장 없는 병들이었어요. 이것도 지난 한 해 동안 제가 잘 살았다는 거예요. 아프거나 사고 당해서 휴가 낸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지난 한 해 동안 휴가도 안 내고 잘 살았어요. 그런데 제가 한 해 잘 살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지난 한 해도 지루하지도 않았고 ‘죽겠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힘들 때도 있었고 아플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다 지났습니다.nbspnbsp그런데 인생이 60살이 되면 시속 60㎞로 가고 70살이 되면 시속 70㎞로 간다더니, 빨리 가기는 확실히 빨리 가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설을 기다리는 열흘도 엄청나게 길었는데, 저는 벌써 내년이 다 가버렸습니다. 10월에 내년 수첩을 미리 받아서 강의 일정을 적어 넣어보니까 일정 없는 날이 열흘이 안 돼요. 수첩 일정에서 벌써 1년이 다 가버려서 저는 이미 꼼짝달싹 못합니다. 자유롭게 살라고 중이 됐는데, 이게 노예보다도 더 꽉 짜인 일정으로 살고 있어요. 다만 ‘내가 정했다’ 하는 정보 하나 때문에 자유롭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노예예요. 짜인 대로 사는 기계나 다름없는데 ‘내가 정했다’는 그 정보 하나 때문에 노예이면서도 노예가 아니라 주인인 양 착각하고 살아가게 하는 것 같아요. nbspnbsp여러분들은 어때요? 첫째, 개인수행도 좀 발전했어요? 수준이야 비슷비슷하겠지만 작년보다는 나아졌어요? ‘작년보다 나아졌다’, ‘아니다. 올해가 작년보다 못하다’, ‘작년이나 올해나 비슷하다’ 셋 중 어느 쪽이에요? 사람이 수행이 됐느냐는 걸 묻는 건 아니에요. 다들 형편없지만 그래도 작년하고 비교해서는 나아졌어요?”nbspnbsp“네.”nbspnbsp“작년하고 똑같아요?”nbsp“아니오.”nbspnbsp“더 못 해졌어요?”nbsp“아니오.”nbsp“그럼 나아졌다는 거네요.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우리가 이렇게 자기만 수행할 게 아니라 이 기쁜 소식을, 즉 복음을 전파를 해야 해요. 주위 인연들에게 정토불교대학을 소개하고, 천일결사에 입재하게 하고, ‘깨달음의 장’에도 가게 하고, 수행법회도 오게 하고, 즉문즉설 강연에도 참여하게 하고, 카카오스토리에서 희망편지도 읽게 하고, 카카오톡으로 스님의하루도 구독하게 해서 이 기쁜 소식을 주위에 널리 전파하는 전법을 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수행자가 너무 칭찬에 신경을 써서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송년법회를 통해서 서로가 고생한 것을 알아주고, 성과도 알아주는 것은 참 좋은 것 같아요. ‘우리가 늘 먹는 밥은 누가 해 줬지?’, ‘누가 늘 스님을 따라다니면서 스님의 하루를 매일 써서 올려주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면 좋잖아요. 법륜 스님은 얼굴 같고 나머지 정토행자는 다 몸 같아요. 손발 같은 사람이 몇 명 있어서 고생하는 게 남들 눈에도 보이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옷에 가려져서 안 보이고 생색은 얼굴이 다 내요. nbspnbspnbsp법륜 스님 혼자 다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지요. 그러니까 이럴 때 옷을 홀랑 벗고 각각의 역할과 속을 다 보여주면서 ‘아, 법륜 스님은 얼굴 마담이고 우리 정토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손발이 되고 장기며 기관이 되어주었기에 정토회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게 송년법회의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신년을 맞을 때는 지나간 것 중 나쁜 기억들은 다 털어버리고 교훈으로만 남겨서 그것을 경험삼아 새 출발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요. 그래서 이런 송년법회가 열리게 된 겁니다.nbsp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송년회는 ‘지긋지긋한 한해 잘 갔다. 그러니 한잔 먹고 놀자’는 의미이기 쉽습니다. 사실 올해도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안 죽고 산 것만 해도 축배 들 만해요. 그런데 우리는 너도 살고 나도 살았는데 새삼스럽게 축배까지 할 건 없고 이런 의미로 송년법회를 열었어요.nbsp여러분 모두, 특히 임원단들, 지난 한 해 동안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일일이 제가 거명해서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한 사람 한 사람 다 불러서 치하할까요,? 그냥 다 한 걸로 해요?” nbspnbsp“네.”nbspnbspnbsp“굳이 옷 벗어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지요? 수고하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말씀 드립니다. 표가 나든 안 나든 여러분들의 노고와 아껴서 보시한 돈에 의해 정토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요즘 경제가 안 좋아서 어려운 속에서는 보시하기가 더 어려울 텐데, 감사합니다. 또 경제가 안 좋으니 일하러 가서 자기 재능을 한 푼이라도 받고 팔아야 할 텐데 그걸 가지고 봉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보시와 봉사로 정토회가 유지되는데, 그 보시와 봉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수행이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이 안 되면 얼마 안 돼서 다 떨어져 나가는데 장기간 보시와 봉사를 한다는 것은 수행이 기초가 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의 수행, 보시, 봉사 덕분에 오늘날 정토회가 이렇게 유지 발전되고 있습니다. 거기에 관여한 우리 모두는 바로 모자이크 붓다입니다. 비록 작지만 붓다를 이루는 작은 한 조각으로써 활동하고 있는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말씀을 드리며 한 해를 마무리하겠습니다.”nbsp한해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갖 일들을 도맡아 준 정토회 자원봉사자들의 노고를 깊이 헤아려 볼 수 있었고, 이런 노고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는 스님께도 존경의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지금 대중들이 편안하게 법회를 듣고 있는 중에도 지하 공양간에서 열심히 밥을 하고 있는 분들이 앞치마를 입고 불단 앞으로 걸어나왔습니다. 많은 대중들이 늘 밥만 먹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 같이 공양을 지어준 분들의 얼굴을 직접 보고 소감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공양팀장을 맡고 있는 이보경님은 “공양간에만 있다 보니까 스님 얼굴을 볼 기회가 없는데 오늘 이렇게 보게 되어서 너무 좋다”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늘 음식을 준비해 놓는데 법회만 듣고 공양은 안 드시고 가는 분들이 많아서 아쉬울 때가 있다”며 대중들이 공양을 꼭 드시고 가주실 것을 부탁했습니다. 대중들도 그렇게 하겠다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공양팀 한 분 한 분의 손을 꼭 잡아준 후 함께 기념 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대중들의 박수갈채가 계속 이어지면서 순식 간에 법당 안은 감동의 물결로 넘쳐 흘렀습니다.nbspnbsp▲ 한해 동안 대중들을 위해 공양간에서 밥을 해준 공양팀 자원봉사자들nbsp지난 한해 동안 서울정토회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영상을 시청한 후 특별히 수고한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유수 스님이 나와서 한 분 한 분에게 선물을 전달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올해도 대중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많이 설해 주신 법륜 스님께도 대중들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과 꽃다발을 전달했습니다. 모두들 스님께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든 표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대중을 대신해서 신성숙님이 꽃다발을 전하자 모두들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함께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는 2015년을 마무리하고 2016년 새해를 맞이하는 발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중들이 모두 일어서서 마주보고 합장을 하자 봄 불교대학을 다니고 있는 권혜진님이 발원문 낭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권혜진님은 도박 중독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 황폐한 삶을 살고 있는 남편, 이런 아들을 보며 점점 야위어가는 시어머니, 주말이면 교회에 갈 것을 강요하는 시어머니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 이렇게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상황 속에서 친구의 권유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24층 아파트 창문이 삶과 죽음의 경계로 느껴질 즈음에 만난 스님의 법문은 인생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고 하면서 수행은 참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는 것이라는 스님의 법문을 아침마다 가슴에 새기며 기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아침 기도 시간이 매일 기다려질 정도라며 이제는 남편과 시어머니, 아이들을 큰 분별심 없이 편안하게 바라보게 되었다고 하면서 앞으로는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삶을 주위에 더 널리 전하는 일을 하겠다는 발원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발원문을 들으며 많은 분들이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행복은 스님의 법문을 만나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에 모두가 공감을 했기 때문입니다.nbspnbsp바로 이어서 스님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간절한 발원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거룩하신 부처님,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 대원본존 지장보살님. 오늘 저희 정토행자들은 2015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두 손 모아 합장하며 발원하옵니다.nbspnbspnbsp이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뜻하는 대로 다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원하는 대로, 뜻하는 대로 다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원망하고 괴로워합니다.nbspnbsp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이 원하는 것을 다 해 줘야 한다는 의무감과 부담을 갖고 살아가기에 해 줄 수 없는 나를 초라하게 여기고, 해달라는 그들을 원망합니다.nbspnbsp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다행이고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만인, 남들이 원하는 것을 해 줄 수 있으면 좋고 해 줄 수 없으면 ‘죄송합니다’ 하면 그만인, 그러면 우리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자유롭고 행복할 수가 있는데, 우리는 어리석음에 사로잡혀, 욕망에 사로잡혀, 자기견해에 사로잡혀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nbspnbsp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기에 내가 그를 사랑할 수 없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기에 내가 그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 이 세상사람 모두가 다 하고 있는 일입니다. nbsp다른 사람이 사랑할 수 없을 만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때,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용납할 수 있을 때, 그럴 때 우리가 다른 사람과 달리 좀 더 수행자다운 삶, 다른 사람보다도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nbspnbsp그런데도 우리는 늘 비교를 합니다. ‘동네사람한테 물어봐라’,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하신다’ nbsp이렇게 남을 핑계 대며 자기를 합리화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 어떤 경험을 했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우리의 괴로움을, 불행을 합리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고 그 가운데에서 나는 행복의 길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을 행복으로 이끄는 것도 내가 행복한 가운데 해야 합니다. 그들을 행복하게 이끌기 위해서 내가 불행하다는 것은 자신을 학대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항상 자기 먼저 행복하기, 자기 먼저 희망 갖기, 자기 먼저 사랑하기, 자기 먼저 나눠주기를 행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nbspnbspnbspnbsp이 자유의 길, 행복의 길, 주인의 길, 부처의 길을 열어주시고 보여주시고, 우리 또한 그 속에 들게 하여 주신 부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우리 또한 그 받은 은혜를 우리 이웃에게 나눠줄 것을 다짐하면서 한 해 동안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있고 행복할 수 있도록 돌봐주신 불보살님과 일체중생, 모든 천지만물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nbsp스님의 간곡한 발원에 더욱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스님의 발원을 가슴에 새기며 한해를 감사한 마음으로 마무리 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nbspnbsp이렇게 송년법회를 모두 마친 후 스님은 정토회를 창립할 때인 20여년 전부터 법당을 지켜주고 계신 연화회 노보살님들을 챙겼습니다. 노보살님들만 따로 불러 모아서 함께 기념 사진을 찍어주니 노보살님들도 무척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30대의 젊은 수행자에게 큰 신심을 보여주시고 오늘날 정토회가 있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마음을 써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은 스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주간반 송년법회를 마친 후에는 내년 2월에 졸업하는 불교대학 학생들을 위한 졸업 축하 영상과 다다음주에 출발하는 인도성지순례 참가자들을 위한 환영 인사 영상을 함께 촬영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오후에도 손님들과 미팅을 갖거나 원고 교정 업무를 하며 바쁜 일정을 보냈습니다. 대중들은 점심 식사 후 2부 프로그램을 가지며 서로 장기자랑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등 여흥을 즐겼습니다.nbspnbsp저녁 7시 30분부터는 저녁반 자원활동가들을 위한 송년법회가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됩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22 동지법회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동지날을 맞이하여 동지에 담긴 수행의 의미에 대해 법문해 주었습니다.nbspnbsp아침 일찍 조찬부터 종교인 모임이 있었습니다. 각 종교계 대표들이 모여 3.1 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신한촌 독립운동 유적지 재건 문제, 남북관계 개선 방안 등에 대해 많은 의견을 서로 나누며 회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정토회관에는 동지날을 맞이하여 아침부터 많은 대중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300여 명이 법당을 가득 메운 가운데 자리가 부족해 2층과 3층에서 영상으로 법문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nbspnbspnbsp죽비 삼성과 함께 명상이 끝나자 스님은 빼곡이 들어찬 대중들을 보며 “동짓날인데 왜 이렇게 많이들 오셨어요?” 하고 웃으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왜 동지가 불교의 큰 명절이 되었는지, 동짓날이 가지는 수행적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아주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불교의 4대 명절은 부처님이 태어나신 사월 초파일, 출가하신 출가일, 성도하신 성도절, 열반하신 열반절입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 불교에서 행하는 불교 명절에는 민속명절이 불교에 들어 온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 정초기도와 입춘기도가 있고, 다음으로 백중기도가 있습니다. 백중기도는 원래 인도의 민속명절인데 불교를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불교 명절이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의 불교문화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 다음으로 백중을 다른 명절보다 크게 행하는 편입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동지기도가 있습니다. 정토회에 비해 전통 절에서는 동지기도를 아주 중시합니다. 정토회에서는 하지 않지만, 전통 불교문화에서는 ‘동지 건대’라고 해서 동지 때는 반드시 주머니에 쌀을 담아가지고 절에 보시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렇게 보시를 받으면 절에서는 그걸로 내년 봄까지, 즉 사월 초파일까지 먹고삽니다. 그리고 사월 초파일에 또 보시 받아서 백중까지 먹고살고, 백중 때 보시 받아서 동지까지 먹고살아요. nbspnbsp사계절 중 겨울에 있는 동지를 이렇게 중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년 중에 해가 가장 짧은 날이 동짓날입니다. 주식으로 말하면 가장 주가가 떨어졌을 때를 ‘최저점을 찍었다, 바닥이다’라고 하잖아요. 동지가 그렇습니다. ‘인생에서 오늘이 바닥이다. 더 이상 나쁠 수 없다’, 즉 ‘나쁜 건 끝이다’는 뜻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점점 더 좋아진다’, ‘내리막으로 갔다가 바닥을 치고 오늘부터 올라간다’ 이런 뜻입니다.nbspnbsp서양에서는 태양이 다시 살아났다고 해서 이 때를 태양절이라고 불렀어요. 드러난 현상만으로 이야기하면 태양이 작열할 때인 하짓날로 태양절을 잡아야 해요. 그런데 동짓날을 태양절로 잡은 것은 ‘해가 새로 생겼다. 다시 부활한다’ 이런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비유하면 ‘우리의 재앙은 이걸로 끝이다. 앞으로 불행이 없진 않겠지만 적어도 이보다 더한 불행은 없다. 이미 최고의 불행을 겪었기 때문에 설령 어떤 불행이 닥친다 하더라도 능히 이겨낼 만하다. 그리고 갈수록 불행이 줄어든다’라는 개념입니다.nbspnbsp그래서 동짓날 재앙을 쫓는 행사를 하는 거예요. ‘잡귀들은 이걸로 끝났다’ 해서요. 옛날부터 잡귀 쫓는데는 붉은 팥이 좋다고 했는데, 붉은 색은 옛날부터 ‘금지’를 의미했습니다. 중국의 자금성, 불국사의 자하문의 ‘자’자도 붉은 색을 의미하는데, 붉은 색은 전통적으로 재앙, 귀신, 악귀를 쫓는 색깔이에요. 그래서 붉은 색의 팥죽을 쑤어서 뿌리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리고 팥죽을 끓일 때 새알을 집어넣어 자기 나이만큼 먹습니다. 저는 옛날에는 항상 ‘나이가 빨리 차야 새알을 더 많이 먹을 텐데’ 했는데, 이제는 주어진 것도 다 못 먹는 수준이 됐습니다. nbspnbspnbsp이렇게 한 해가 끝나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이 되는 날이 동지입니다. 달도 기울었다가 다시 차기 시작하는 날이 초하루예요. 그러니 태양의 길이로만 말하면 오늘이 초하루와 같아서 신년이 돼야 해요. 그래서 동지를 ‘작은 설’이라고 하고, 팥죽을 먹어야 나이를 먹는다는 풍속도 있는 겁니다.nbspnbsp이렇듯 이치로만 따지면 새해의 시작을 동짓날로 잡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치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이치가 눈에 보이면 우리가 어리석을 이유가 없지요. 해가 점점 길어지면 날도 따뜻해져야 되는데, 실제 현상은 전혀 그렇지 않고, 오늘부터 앞으로 더 추워지거든요. 편차가 있긴 하지만 평균적으로는 동짓날부터 한 달 지난 때가 제일 춥습니다. 여름은 하지 지나고 한 달 이후가 제일 덥고요. 그러니까 여름은 하지 지난 뒤가 오히려 더 덥고, 겨울은 동지 지나고 한 달 전후가 제일 추워요. 그래서 동지 뒤에 소한, 대한이 있습니다. 동지로부터 딱 한 달 뒤가 대한이에요. 지구가 데워지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지구가 식는데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지금까지는 해가 짧아지면서 지구가 식었기 때문에 앞으로 해가 길어지더라도 그 식는 속도가 그대로 한참은 더 가요. 그래서 한 달 지나서야 제일 추운 데서 다시 따뜻한 데로 움직입니다. 하지도 마찬가지예요. 그때까지 지구가 데워지는데 한 달이 걸리니까 하지 지나고 한 달 이후는 더 덥다가 조금씩 다시 식어가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우리가 현상으로 느끼기로는 대한을 지나야 ‘날씨가 이보다 더 추워지는 날은 없다. 앞으로도 춥지만 이보다 더 추워진 않는다’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것이 봄의 소식, 입춘입니다.nbsp입춘이라고 해서 바로 따뜻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소한, 대한 지나면 얼어 죽을 사람 없다’고 하잖아요. 그 말은 대한을 넘으면 안 춥다는 뜻이 아니라, 가장 추운 시기를 지났기 때문에 앞으로 추운 것 정도는 견딜 만하다는 겁니다. 대한을 넘겼다는 건 나머지는 견딜만하다는 겁니다.nbspnbsp대한을 지나고 맞는 첫 번째 절기는 ‘봄이 왔다. 봄에 들어간다’는 뜻을 가진 입춘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곧 따뜻하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더 이상 이보다 더한 추위는 없다’는 정도의 뜻이니까요. 참 재밌지요? ‘아직도 춥지만 벌써 봄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표현인 것입니다.nbspnbsp봄이 올 첫 번째 징조는 해가 길어지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새해의 시작이 동지라는 겁니다. 두 번째 징조는 우리가 피부로 느낄 때 ‘이보다 더 추워질 날은 없다. 앞으로는 점점 따뜻해질 거다’ 하는 것이 입춘입니다. 그래서 입춘과 가장 가까운 음력 달을 정월로 잡았어요. 음력설은 입춘을 기준으로 해서 입춘과 비슷한 날이거나 열흘 전후입니다. 1월 하순에 빠른 설이 오고, 입춘 전후로 중간 설이 오고, 입춘하고도 한 열흘 뒤에 늦은 설이 오고, 다시 또 빠른 설이 오는 게 3년 주기로 반복됩니다. 음력은 3년마다 윤달이 드니까요.nbspnbsp이렇듯 입춘을 전후로 한 달이 정월이고, 그 첫날이 설날입니다. 그러니까 입춘하고 설은 같은 거예요. 그래서 중국에서는 설을 춘절이라고 하잖아요. 계절로 따지면 입춘을 새해의 시작으로 잡고, 그것을 음력으로 잡은 것이 음력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 해의 시작이 양력과 음력하고 다른데, 양력 1월도 왜 추울 때로 잡을까요? 양력은 태양력이니까 동지를 지나고 첫 시작을 정월로 잡은 겁니다. 그래서 1월 1일 새해를 추울 때 맞게 되는 거예요.nbsp그런데 실제로 누구나 다 ‘진짜 추위가 가고 따뜻해졌다’고 느끼는 건 입춘이 지나고도 거의 두 달이 지나야 됩니다. 즉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을 지나야 이제 꽃이 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춘분 지나야 개나리며 벚꽃, 진달래 같은 꽃이 피니까 그때는 너도 나도 다 봄인 줄을 알 수 있습니다.nbspnbspnbsp이걸 우리 수행에 비유하면, 오늘 부처님 법문 듣고 ‘아, 모든 것이 다 내 마음이 짓는 거구나. 내가 미워하고 원망하고 괴로운 건 누가 나를 괴롭혀서가 아니라 내가 마음으로 짓는 것이구나’ 하고 자각해서 ‘오늘부터 나도 수행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입재하는 날이 바로 동짓날입니다. 그래서 동짓날 기도를 열심히 하라는 거예요.nbsp그런데 동짓날 입재하면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까요? 아니에요. 동지 지나고 날씨가 더 추워지듯이, 기도는 시작했지만 한 달을 해도 좋아지기는커녕 더 힘들어져요. 예컨대 부부갈등은 더 심해지고, 남편은 더 성질을 부리고, 애는 말을 더 안 듣고, 나는 더 괴로워집니다. 그러면 대부분 하다가 그만두지요. 이걸 마장이라 그래요. 그러나 이치적으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거예요. 이런 장애는 기도를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라, 그 전에 어리석게 살았던 것의 과보가 늦게 나타나는 거예요. 그런데 나타나기는 기도한 뒤에 나타나니까 여러분은 기도를 잘못 했나 싶어서 자꾸 묻잖아요. 첫째는 ‘기도해 봐야 소용 없더라’ 싶어 그냥 집어치워버리고, 둘째는 자꾸 ‘기도가 잘못 됐느냐?’고 물어요. 기도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고비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십중팔구는 이 고비를 못 넘기고 그만둡니다.nbspnbsp지구가 데워지는 데는 한 달이 걸리는데, 우리의 업식과 관계 있는 이 고비는 보통 백 일이 걸려요. 백 일을 해야 고비를 넘기는데 대부분 그 백 일을 못 채워요. ‘백일기도해서 고비를 넘겼다’는 것은 날씨에서 ‘대한을 지났다’는 것과 같은 말이에요. 가장 큰 어려움을 이겨냈기 때문에, 아직도 어려움이 많이 남아있고 수행하기 싫은 마음도 들지만 백 일이 넘으면 자기 꼬라지를 자기가 좀 알 게 돼요. ‘아이고, 내가 성질이 더럽구나. 내가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구나’ 이런 걸 좀 알게 되니까 그게 수행을 이어갈 동력이 되는 거예요.nbspnbsp그래서 백일기도를 회향하면 그게 곧 입춘을 맞고 설을 맞는 것과 같아요. 그렇다고 괴로움이 다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더 정진을 해서 춘분을 지나야 합니다. 그래서 꽃도 피고 누가 봐도 ‘봄이 왔구나’ 하고 알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천 일이 지나야 됩니다. 그래서 천일기도를 하는 겁니다. 기도를 하려면 3년은 하라고 많이들 얘기하잖아요. 천일기도를 해야 변화가 일어나요. 자기가 생각해도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았지만 내가 조금 변한 것 같다’고 느껴져집니다. 그리고 남이 옆에서 나를 보고 ‘요새 당신 보니까 화가 좀 줄어든 것 같아’라고 이야기해 주기도 하는데, 그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천 일입니다. 그러면 벚꽃도 피고 개나리도 피는 걸 볼 수 있어요.nbspnbspnbsp그런데 진달래, 개나리가 핀 뒤에도 또 한 번 추위가 찾아옵니다. 꽃샘 추위가 와서 꽃이 얼어 죽는 경우도 많잖아요. 수행을 하다 보면 그런 때가 역시 옵니다. 그러면 수행하기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때 또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요. 수행해서 좋아졌다고 까불다가 꽃샘 추위 한번 맞고 나면 정이 뚝 떨어져서 수행을 관두는 사람이 많아져요. 그럴 때도 일시적인 장애를 넘어서야 합니다. 날씨가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하다가 점점 따뜻해지듯, 수행을 계속하면 수행이 된 것 같다가 후퇴하는 것 같기를 몇 번 반복해야 해요.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면 드디어 따뜻한 봄날을 맞게 됩니다.nbsp절에서 24절기 중 동지와 입춘을 명절로 삼은 이유는 이런 원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동지기도는 입재와 같고, 입춘기도는 백일기도를 회향하고 3년 기도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을 예로 들면 그 3년 기도하는 동안 불교대학도 졸업해야지, 천일결사에 입재해야지, ‘깨달음의 장’도 갔다 와야지, 경전반도 졸업해야지, 명상수련도 해야지요. 그러다 보면 안 변할래야 안 변할 수가 없어요. 자기도 모르게 수행자가 되어서 우리 인생의 봄날을 맞게 됩니다. 그 시작이 바로 동지가 되기 때문에 동지를 중요시하는 겁니다. nbspnbspnbsp그래서 동지는 우리의 전통문화로 잘 유지해나가야 할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발렌타인데이보다 훨씬 의미가 있어요. 이런 중요한 민속은 앞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 정토회에서도 전법 같은 건 초현대적으로 잘 해가더라도 우리의 전통문화 중에 아주 소중한 것은 다시 되살리는 활동도 함게 해나가면 좋겠습니다.”nbsp수행을 날씨와 절기에 비유해서 한 설명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대중들은 스님의 법문을 가슴에 새기며 동짓날을 계기로 다시 한번 발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nbspnbsp동지날의 수행적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을 마친 후 다음으로는 이런 수행을 통해 내가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가장 큰 경쟁력은 행복이라고 하면서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빙긋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며 법문을 마쳤습니다.nbspnbsp“여러분이 먼저 행복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아무리 부처님의 좋은 법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려 해도 ‘그러는 너는?’이라는 반응이 돌아오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래,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내일 죽어도 좋다. 스님 법문을 약으로 먹어보니까 정말 좋아졌다’ 이래야 전달할 때 경쟁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부처님 말씀 어쩌고저쩌고 할 때 아들이나 딸, 남편이 ‘너나 잘해라’라고 하면 딱 막혀서 할 말이 없어지잖아요. nbspnbspnbsp여러분이 아직 부족한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짜증도 내고, 성도 내고, 욕심도 내지만 ‘그래도 남보다는 내가 더 행복하다. 짜증을 내지만 너보다는 덜 낸다. 나도 괴롭지만 너보다는 덜 괴롭다’ 이런 게 하나라도 있어야 경쟁력이 있지요. 이런 행복 무기를 하나 가져야 이 세상에 법을 전파할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게 있는 한은 전파력이 있고 이게 점점 줄어들면 전파력이 없어져요. 기성의 종교는 이게 없기 때문에 전파력이 없어요. 일부 기독교에서도 복음을 전할 도덕성이 없으니까 신도 수로, 돈으로, 거대한 건물로, 권력과 결탁한 파워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잖아요. 자신이 행복한 것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아닙니다.nbspnbsp조선시대 때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초기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받다가 죽게 되더라도 웃으면서 죽었답니다. 같이 사형당하는 형제들끼리 ‘천국에 가서 보자. 우리 천국에 가서 점심 먹자’라고 인사하면서 죽었다고 해요. 그러니 죽이는 사람도 그 모습을 보고 감화를 받았다는 겁니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 당하게 되었을 때 그 어머니는 아들에게 수의를 준비해 주면서 ‘1심 재판 결과에 불복해서 항소하거나 상고를 하지 마라. 침략자를 상대로 무슨 재판을 하느냐. 천국에 가서 보자’라고 했답니다. ‘이 옷 입고 죽어라. 이 세상에서 너와는 더 이상 볼 일이 없다’라는 건데, 엄마가 아들한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 같으면 울고불고 야단이었을 겁니다.nbspnbsp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박해를 받으면서도 200년 만에 이렇게 큰 교파를 형성한 것은 그런 신앙심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도 아무리 못해도 그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법이 훌륭하다 말하면서도 실제로 하는 행동은 영 다르니까 다른 사람들로부터 ‘너나 잘 해라’라는 말을 듣는 거예요. 그러니 오늘 동지를 맞아서 다시 발심을 하셔야 해요. nbspnbsp똑같은 일을 당했는데도 다른 사람들은 ‘죽네 사네’ 야단이더라도 우리는 빙긋이 웃어야 해요. 예를 들어 병원에서 암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빙긋이 웃으면서 의사 선생님한테 ‘아이고,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발견하셨네요’라고 할 수 있어야 해요. nbspnbspnbsp의사가 그거 발견한다고 애썼잖아요. 환자가 돈을 들였는데, 뭐라도 발견이 안 되면 돈만 많이 쓰게 한 것 같아서 괜히 미안할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병난 몸으로 의사를 교화할 수도 있어요. 굳이 ‘불교 믿으세요’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 수준이 될 때까지 수행하셔야 합니다. 어떤 일을 당해서 처음에는 화나 슬픔이 올라오더라도 금방 정신을 차리고 ‘아, 그래’ 할 수 있어야 돼요. 암이 오늘 갑자기 생긴 건 아니잖아요. 내 몸에 이미 있던 거예요. 그러니 오늘 발견한 건 잘 된 거예요. 오늘 발견하지 못했으면 암덩어리가 계속 커져서 나중에 더 큰일이 되었을 텐데, 지금 발견해서 더 커지기 전에 치료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그러니 죽겠다고 인상 쓰지 말고, 오늘 발견한 걸 축하하면서 건배를 해야 해요.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nbspnbsp암 선고를 들었을 때 슬픔이 올라오더라도 ‘아, 그래. 발견했으니 잘된 거야’ 이렇게 생각을 돌이켜서 얼른 표정을 바꾸고 웃으면서 ‘축하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같이 수행해봅시다.”nbsp암 선고를 받아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수행을 해보자는 말씀에 대중들은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너무나 적나라한 비유였지만 그 어떤 비유보다 수행이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동지 법회를 모두 마치고 곧 이어 정진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대중들은 스님의 법문을 가슴에 새기며 처음 수행을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한 배 한 배 절을 했습니다. 내년 봄에 입춘이 되면 제8차 백일기도 입재식이 열리는데 스님 말씀대로 그 때가 되면 여러 고비를 넘기고 곳곳에서 봄소식을 접하며 따듯한 날을 맞이하게 되겠지요.nbspnbsp한편 공양간에서는 동지 날을 맞이하여 많은 봉사자들이 아침 일찍 나와서 팥죽을 쑤어 주었습니다. 오늘은 팥죽을 먹고자 평소보다 많은 대중들이 배식대 앞에 길게 줄을 섰습니다.nbspnbspnbspnbsp팥죽을 먹으며 한 해의 액운을 모두 떨쳐내고 내년에는 더욱더 수행정진을 많이 할 수 있기를 다짐해 보았습니다. 농담삼아 새알을 나이 수만큼 먹으려고 하는 대중들도 보였는데, 새알이 부족해서 웃으면서 아쉬움을 달래야 했습니다.nbspnbspnbsp동지 법회 후 스님은 찾아온 손님들과 연이어 미팅을 가지면서 오후 내내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내일은 오전 10시에 주간반 대중들을 위해 송년법회를, 저녁 7시에 저녁반 대중들을 위해 송년법회를 할 예정입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21 김제동과 어깨동무 창립총회
nbsp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김제동씨가 새롭게 시작하는 사단법인 ‘어깨동무’ 창립총회에 참석해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 nbsp 어젯밤 장례 염불을 마치고 울산 두북에서 주무신 스님은 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친 후 휴식과 더불어 몇 가지 남은 겨울 준비를 했습니다. 오후에는 다시 서울로 와서 김제동씨와 청년들이 스스로 어려운 청년들을 돕고자 설립하는 사단법인 ‘어깨동무’ 창립총회에 참석해 격려 말씀과 더불어 응원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 nbsp ‘어깨동무’ 창립총회가 열린 서초동 카페50에는 저녁 7시부터 청년들 50여 명이 빼곡이 자리를 메워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열기로 가득찼습니다.nbsp nbsp ▲ 카페50. 대안적인 삶을 고민하는 50명의 청년들이 출자자가 되어 만든 협동조합형 카페. nbsp 김제동씨는 오래 전부터 소외된 청년·청소년을 위한 자립 지원 활동을 전개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쳐 왔는데, 드디어 오늘 자산의 일부를 출현하여 본격적으로 공익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동안 곳곳에서 의미있는 기부활동을 꾸준히 해왔지만, ‘어깨동무’ 창립을 통해 이제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더 빨리 제대로 지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nbsp nbsp nbsp ‘어깨동무’는 앞으로 크게 세가지 방향에서 일을 해나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청년 대상 공익 문화콘서트 개최, ▶청소년 대상 공익 문화콘서트 개최, ▶소외된 청년,청소년 자립 지원 활동 등을 통해 새로운 청년 문화를 만들고, 공익을 위해 헌신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어려움에 빠진 청년들을 스스로 만나서 돕고, 후배들인 청소년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새로운 희망을 나눠줄 예정입니다.nbsp nbsp 창립총회가 열리는 오늘도 세월호 사고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안산지역 고등학교에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지원금을 전달하고 왔다고 합니다. 창립하는 첫날부터 훈훈한 소식과 함께 창립총회가 시작되었습니다.nbsp nbsp 먼저 김제동씨와 청년들이 뜻깊은 일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먼길을 달려온 스님이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청춘콘서트를 하면서 김제동씨와 함께 청년들을 응원하는 일을 수년째 같이 해오고 있는데 창립 취지를 전해 듣고나서 스님도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스님은 도움 받으려고만 하는 청년이 되지 말고, 자립하고 남을 도울 줄 아는 청년이 되라며 nbsp‘어깨동무’의 창립 멤버들을 격려했습니다. nbsp nbsp nbsp “드디어 일을 벌렸네요. 지금 우리나라는 특이하게도 청년이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나라가 되었어요. 마치 노인하고 청년이 누가 먼저 보호를 받아야 하나를 두고 경쟁을 하고 있고 있는 것 같아요. 청년들에게는 좀 창피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 스스로 벌어먹고 살고, 우리가 이웃을 돕는 사람이 되자, 저는 이런 자세가 청년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어깨동무’의 설립 취지를 들어보니 그와 부합하는 것 같아서 참 좋았어요. 여러분들도 이제 도움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자립하고 나아가 베푸는 삶의 자세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nbsp nbsp nbsp 첫째, ‘내가 막노동을 해서라도 내 삶은 내가 영위하고, 우리의 일은 우리가 한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nbsp 둘째, 여러분과 같은 청년들 중에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을 좀 도왔으면 좋겠어요. 지금 우리 사회에는 많은 구호단체와 지원단체가 있습니다. 정부에도 있고, 민간에도 있고, 돈도 많습니다. 그런데 모든 지원은 ‘폼’ 나는데 씁니다. 신문에 나거나 TV에 나오거나 성과가 나는 데만 쓰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돈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틈새공략’입니다. 그렇게 폼 나는 데만 쓰려고 하다 보니까 진짜 도움이 필요한 데는 도움을 못 주는 경우가 있잖습니까.nbsp nbsp 얼마 전에 놀랄 일이 있었잖아요. 군대에서 지뢰를 밟아서 다쳤는데, 정부가 치료비를 지원 안 해 준다는 일이 있었지요. 저는 그런 얘기를 그 때 처음 알었어요. 상상도 못한 일이에요. 그런 일에 대해 법적으로 보장이 안 되어 있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소방관이 말벌을 제거하러 갔다가 사망했는데, 장비를 안 갖췄다고 순직으로 인정을 못 받은 일도 있었지요. 그 소방관이 악의가 아닌 선의로 일을 했는데,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고 그렇게 되었다 하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이웃으로서 도움을 줘야 되지 않겠어요? 즉, 우리가 먼저 자립하고, 그 다음으로 우리 주위에 있는 어려운 청년들도 돕자는 겁니다.nbsp nbsp 셋째, 여러분에게도 다음 세대가 있잖아요. 바로 청소년들입니다. 그들의 어려움도 돕자는 겁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소년이 있다면 그들을 경제적으로도 도와야 되겠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부하라며 억압하는 부모 때문에 얼굴에 웃음기를 잃어버린지 오래된 청소년들에게 여러분들이 웃음을 좀 되찾아줄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웃음기를 잃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자살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여러분들이 후배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nbsp nbsp nbsp 넷째, 여러분들은 세계시민으로서도 교양을 갖춰야 해요. 우리나라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주변에 있는 나라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돕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 안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북한동포들, 조선족들, 동남아 등에서 온 이주여성들, 외국인 노동자들, 이 분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제가 5, 6년 전에 안산시장을 만났을 때 얘기 듣기로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자녀 중에 10명에 3명은 초등학교에 못 들어가고, 중학교 안 다니는 아이는 50, 고등학교 안 다니는 아이는 70라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고등학교까지는 졸업을 하잖습니까. 물론 약간 문제가 있어서 검정고시를 치는 사람도 있지만요. 설령 부모가 불법체류자라고 하더라도 아이에게는 아무 죄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아이가 이 땅에 사는 한은 ‘교육의 혜택’을 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nbsp nbsp 제가 중국에서 북한난민들을 돕다보니까, 그분들은 아이를 낳아도 호적에 못 올리니까 그 아이들도 교육의 혜택을 못 받는 걸 보고 무척 안타까웠던 적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인종이나 종교나 국적으로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교육의 혜택만큼은 모든 아이들이 평등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법이 잘못 됐다면 법을 개정하도록 하거나 법이 없다면 법을 재정할 수 있도록 하는 일도 우리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아이들을 직접 돕는 운동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결혼을 통해서 한국으로 이주해 온 여성들을 돕는 일은 청년들이 하기가 좀 어려우니까, 청년들은 주로 청년들의 후배들을 돕는 일을 하면 될 것 같아요. 그것이 곧 세계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와 가까운 동남아에는 여러 가지 긴급재난상황이 발생하지 않습니까. 그런 일이 있을 때 우리가 가서 도울 수도 있을 겁니다. nbsp 그리고 청년들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어른들이 감동을 받아서 어깨동무 법인에 도네이션을 하는 것은 좋지만, 청년들이 ‘우리 이렇게 좋은 일을 하니까 기부를 좀 해주십시오’ 하는 건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을 일을 하는데 구걸 할 이유는 없습니다. 좋은 일을 할 때는 내 힘이 닿는 데까지 하면 됩니다. 그러나 누가 도와준다면 안 받을 이유는 없겠지요. 선의의 지원은 받되 “우리가 좋은 일을 하니까 너도 좀 내놔라” 하고 요구하는 건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nbsp nbsp nbsp ‘우리가 이런 좋은 일을 하고 있다’ 하고 알리는 건 좋아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몰라서 후원을 못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구걸할 이유는 없어요.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는 겁니다. 몸으로 할 수 있는 건 몸으로 하고, 이후에 모금이 조금 더 되면 지원사업도 하겠지만,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건 마음으로 하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이 사회의 책임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nbsp 제가 인도에서 구호사업을 해보면서 놀라운 현상을 봤어요. 처음에는 ‘초등학교까지만 무상교육이고, 나머지는 나는 못한다’고 했더니 초등학교 졸업한 아이들이 자꾸 찾아와서 ‘중학교 보내주세요’ 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건 내 능력에 안 맞다’고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졸라서 타협한 내용이 이렇습니다.nbsp nbsp ‘네가 중학생이면,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지 않느냐?’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동생 돌보는 거니까요.’ ‘그럼, 좋다. 네가 오전에는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중학교 과정 공부를 하면 어떻겠느냐?’ ‘좋습니다.’ nbsp 그래서 유치원이 동네마다 생겨났어요. 중학생들이 아침에는 자전거 타고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오후에는 자기네가 중학교 수업을 받는 식으로 시스템이 돌아갔습니다. 인도는 초등학교가 5학년까지 있는데, 5학년은 아직 어린 아이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1년을 지내고 나면 어른이 되어 있습니다. 손도 안 씻던 아이가 저보다 어린 아이한테 ‘너 손 씻어라’고 가르치다 보니 자기 손을 안 씻을 수가 없잖습니까. nbsp nbsp nbsp 그런데 거기도 지금은 변화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중학교 1학년이 유치원 보조선생, 중학교 2학년은 유치원 담임선생, 중학교 3학년은 유치원 원장을 했습니다. 지금은 중학교 2학년이 보조선생, 3학년이 담임선생, 고등학생이 원장을 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면서 교육을 받는 학생 수는 늘었지만 학생들의 의식 수준은 점점 어려져요. 어른이 되는데 전보다 더 시간이 걸리는 겁니다. 참 묘한 현상입니다. 우리 한국사회는 어떻습니까? 대학생이라 하더라도 어린애 같잖습니까. 그래서 인도에서의 제 경험으로 봤을 때 나이가 어려도 돕는 자가 되면 저절로 어른이 됩니다.nbsp nbsp 제가 옛날에 이런 실험을 해 본 적이 있어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수련을 할 때 지도만 주고 야간에 ‘어디까지 갔다 오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어린 아이에 불과했는데, 밤에 길을 잃고 그 길을 찾다보면 초등학교 6학년짜리가 완전히 동생들을 책임지는 리더가 됩니다. 그리고 1학년, 2학년짜리는 대원이 되고요. 그렇게 확 변합니다. 그러니 방에서 100번을 가르치는 것보다 한번 경험을 하는 게 훨씬 낫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nbsp nbsp nbsp 그래서 저는 무기력한 청소년 아이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에게는 아이를 데리고 인도여행을 가라고 하거나 고비사막에 같이 갔다가 버리고 오라고 권합니다. 버리고 오는 게 제일 좋은데, 그러면 아이가 조금 원망할 수도 있으니까 부모가 같이 가서 부모가 아파버리면 됩니다. 엄마나 아빠가 아파서 아이가 스스로 차표도 구하고, 오히려 엄마나 아빠를 보살피는 역할을 해보게 되면 아이는 변합니다. 부모가 정말 자식을 위한다면 이렇게 자기 희생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자식은 변합니다. 베푸는 일을 하면 인간의 의식구조가 그렇게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nbsp nbsp 옛날에 가난해서 못 배운 아이들은 12살만 되어도 어른이 되었는데, 왜 지금은 대학을 나오고 30살이 되어도 어른이 안 될까요? 어른 역할을 안 해 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실험해 보기는 어려울 텐데, 이렇게 김제동씨를 선장으로 해서 끼리끼리 모여서 해 보면 어른 되는 훈련을 많이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 가정의 어른이 되는 훈련이 아니라 ‘이 나라를 우리가 돌본다’ 하는 나라의 주인이 되는 훈련입니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재능을 살려서 일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여러분에게 있으니까 그 권리를 위해서 투쟁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일들을 여러분들이 함께 해 나가면 좋겠습니다.nbsp nbsp nbsp 어른들의 그늘에 있다가 이제 광야로 나오게 되었는데 어떨지 모르겠어요. 광야에 나가면 처음에는 힘들지만 조금 지나면 괜찮습니다. 밝은 불에 있다가 불을 탁 끄면 어둡지만, 조금만 있으면 눈이 적응해서 다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사회 활동을 잘 함으로 해서 많은 청년들에게 용기가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nbsp 스님의 힘있는 격려사에 함께 자리한 청년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기뻐했습니다. 김제동씨도 큰 박수로 스님의 격려 말씀에 공감의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 nbsp nbsp 이어서 창립총회를 통해 ‘어깨동무’ 법인의 이사장으로 선출된 김제동씨가 간단히 소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미처 고백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며 한마디 덧붙이기도 했습니다.nbsp nbsp nbsp “예전부터 제가 해보고 싶었던 일을 이제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여러분들도 신나게 해볼 수 있는 일이 생겼네요. ‘이사장’으로서가 아니라 똑같이 ‘청년’의 이름으로 함께 어깨동무하며 즐겁게 해나가면 좋겠습니다.nbsp nbsp 한 가지 고백하자면, 늘 ‘나는 안 그렇다’ 그러면서도 여러분들을 가르쳐야 할 대상, 뭔가 더 배워야 될 대상으로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방금 총회에 임하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제가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내가 그런 선입견이 있었구나’ 하면서 자기성찰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자꾸 보살펴야 될 존재로만 봤던 것 같아서 무척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여러분들이 저를 좀 잘 보살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nbsp 청년들은 김제동씨의 솔직한 이야기에 모두 웃음을 터뜨리며 환호를 보냈습니다.nbsp nbsp nbsp 창립 총회는 계속 진행이 되고 있었고, 스님은 격려사를 마친 후 곧바로 행사장을 나왔습니다.nbsp nbsp 밤늦게까지 집무실에서 원고 교정 업무와 보고서를 체크하며 업무를 본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nbsp 내일은 동지날을 맞이하여 오전 10시부터 서울 정토회관에서 동지법회가 열릴 예정입니다.nbsp 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