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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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3 (저녁) 통일열린마당 인사말,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졸업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천일 동안 진행되는 통일열린마당의 제1강에 참석해 인사말을 한 후 평화재단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졸업식에 참석해 졸업 특강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아침 7시부터 하루 종일 평화재단에서 연이어 미팅과 회의를 가졌습니다.nbspnbsp회의를 마치고 오후 3시에는 문인협회가 수여하는 ‘한국 문학상’을 김홍신 작가님이 받게 되어 이를 축하해 주기 위해 시상식이 열리는 대한민국예술인센터를 찾아갔습니다. 김홍신 작가님은 통일의병의 고문이시며, 매일 아침 천일결사 정진도 하고 있는 정토행자입니다. 평소에 스님의 다양한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고 계셔서 특별히 시간을 낸 것입니다.nbspnbsp▲ 2015년 한국 문학상을 수상한 김홍신 작가님nbsp스님은 김홍신 작가님에게 축하의 마음을 담아 꽃다발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념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었습니다. 이에 김 작가님은 “그동안 살펴주시고 성원해주신 덕으로 영광을 얻게 되었으니 세세생생 곱게 보답하기 위해 더 정진하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나눠주었습니다.nbspnbsp시상식에 다녀와서는 서울 정토회관에 머물며 원고 교정을 하다가 저녁 7시 30분부터 정토회관에서 열린 ‘통일열린마당’의 제1강에 참석해 인사말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정토회는 지난 8월 27일에 평화 통일을 위한 1000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남북이 평화적으로 합의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1000일 동안 남북 관계가 획기적인 전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한쪽으로는 실천적인 행동을 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천지신명과 불보살이 감응하도록 정성을 기울여 기도하자는 취지입니다. 이와 더불어 오늘을 제1강으로 해서 1000일 동안 매주 한번씩 ‘통일열린마당’을 열기로 했습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들의 의식 전환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nbsp▲ 통일열린마당 제1강을 듣기 위해 서울 정토회관을 찾은 시민들nbsp그래서 오늘은 1000일 동안 진행되는 ‘통일열린마당’의 그 첫 번재 시간입니다. 첫 번째 시간의 강사로는 중용의 철학을 오랫동안 연구해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고, 평화재단의 통일 정책 연구활동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신 최상용 교수님이 맡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회는 통일연구원의 조한범 박사님이 맡아 주었습니다.nbspnbsp최상용 교수님은 대한민국의 학자를 넘어 세계적인 학자입니다. 고려대학교에서 장기간 교수직을 역임했지만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석좌교수를 지냈고, 주일대사도 지냈습니다. 한국에서만 공부한 게 아니라 일본에서 가장 유명다는 동경대학과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하버드 대학에서도 연구를 했기 때문에 연구한 논문들이 한국은 물론 전세계 학계에서 인용되고 있습니다. 1월 초에는 일본에서 출판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해서 출판기념회를 한다고도 합니다.nbspnbsp조한범 박사님은 평화재단에서 많은 통일담론을 주재하고 계신 분인데 이번 통일열린마당의 사회자 역할도 기꺼이 맡아 주었습니다.nbspnbsp첫 번째 시간이다 보니 많은 대중들이 기대감과 설렘을 안고 정토회관을 찾았습니다. 약 200여 명의 대중들이 자리한 가운데 평화 명상과 함께 통일열린마당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1000일 연속 통일열린마당 중 그 첫번째 시간nbsp오늘이 첫 시간인데다 저명하신 최상용 교수님이 그 강사로 나와주셨기에 특별히 스님이 인사 말씀과 함께 강사 소개도 직접 해주었습니다.nbspnbsp“궂은 날씨에 이렇게 많이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녁 식사들은 하셨어요? 그 동안 육신을 위한 저녁은 많이 먹었으니까 오늘 하루는 굶으면 건강에도 좋아요. 그리고 그 동안 굶었던 마음의 양식을 오늘 교수님으로부터 듬뿍 받아 먹어서 균형을 잡아 가시길 바랍니다. nbspnbsp최상용 교수님은 첫째, 평화사상가라고 말할 수 있고, 두 번째, 대표적으로 연구한 게 중용입니다. 즉 평화로 가는 길은 중용의 입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용의 입장에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배타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갖되 이웃 민족과 함께 하는 열린 민족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은 다 자기 정체성이 있어야 하잖아요. 이렇게 인류적인 보편성 위에 평화사상이나 중용 같은 사상을 연구해 확산시키고 계십니다. 특히 중용에 대해서라면 공자의 중용 사상만 연구하거나 플라톤의 중용 사상만 연구하는 게 아니라 부처님의 중도 사상까지 포함해서 중도의 정신을 가장 현실적으로 설명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nbspnbspnbsp우리 불교에서는 중도를 수행적인 관점에서 설명한다면, 최교수님은 사회적 혹은 정치적 의미에서의 중용을 특히 잘 설명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평정, 즉 마음의 평화에 도달하기 위해 중도적인 수행을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사회적 평화도 중용의 관점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저로서는 매우 유사한 관점이어서 이해하기도 쉬웠습니다. 이런 최교수님을 모셔서 수준 높고 품격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nbspnbsp오늘 여러분께 인사도 드릴 겸, 또 첫 강의이기도 해서 이렇게 제가 아는 수준에서 소개를 간단히 드렸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nbspnbspnbsp스님의 설명을 듣고 대중들은 첫시간부터 품격 있는 강의를 듣게 되었다며 오늘 강연을 주재한 스님에게 기쁜 표정으로 감사한 마음을 담아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이어서 최 교수님과 조 박사님이 테이블 위로 걸어나오자 스님은 기립박수로 정중히 두 분을 환영했습니다.nbspnbsp▲ 최상용 교수님과 조한범 박사님을 기립박수로 환영해주고 있는 스님과 청중들.nbspnbsp본격적으로 대화마당이 시작되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다가 스님은 법당을 나왔습니다.nbspnbsp▲ 조한범 박사님과 최상용 교수님nbsp이어서 저녁 8시부터는 평화재단에서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졸업식에 참가해 졸업생을 위한 격려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제13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는 지난 9월 17일에 개강해서 오늘 12월 3일까지 매주 목요일마다 총 12주 간의 일정으로 사회 저명 인사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으며, 또 입학워크샵과 경주워크샵 등 주말 숙박프로그램을 가지며 통일 한국을 이끌어갈 새로운 리더십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성찰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인데요. 먼저 졸업장 수여식이 열렸습니다. 평화연구원 조민 원장님이 모든 졸업생들에게 졸업장을 수여해 주었고, 이어서 한번도 빠지지 않고 수업을 다 들은 사람들에게는 스님이 직접 개근상과 함께 새책 ‘야단법석’을 사인해서 주었습니다.nbspnbsp▲ 개근상을 수여하고 있는 법륜 스님nbsp개근상을 받는 사람들에게 다른 졸업생들은 축하의 박수를 쳐주면서도 모두 너무나 부러워하는 눈치였습니다.nbspnbsp▲ 개근상을 받은 분들을 위해 스님은 기념사진도 함께 찍어 주었습니다.nbspnbsp개근상을 받은 한 분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아카데미를 듣기 전에는 나 자신의 사익 추구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나서는 공공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게 되었다” 면서 “자녀들이나 손자들에게 일절 유산을 물려주지 않고 남은 여생은 평화 통일과 같은 공익 활동에 전념하겠다”는 다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 제13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졸업식nbsp이어서 스님은 졸업 축하 메시지와 더불어 졸업 이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우선 합리적인 판단을 하가 위해서 최소한 6가지 종류의 책은 꼭 읽어야 한다고 하면서 융합의 시대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창조력이 생길 수 있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졸업을 축하드립니다. 3개월간 다니느라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졸업하고 나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선 여러분들은 지난 3개월간 여기를 다니면서 대학 졸업 이후에 잊어버리고 있던 공부하는 재미를 누렸을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의사 선생님은 치료만 생각하고 변호사 선생님은 법률만 생각하는 것처럼 그 동안에는 자기 전공분야밖에 생각을 안 하다가 노동, 정치, 경제, 문화, 역사, 통일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전문가들로부터 들을 수 있어서 식견이 좀 넓어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nbspnbsp지난번에 제가 고등학교 학생들한테 강의를 갔더니 공부하기 힘들다고 해요. 공부하기 힘들어도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꼭 대학 가거나 1등 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삶을 살아보니까 앞으로 직업이 뭐든, 예컨대 종교인이 되든, 농부가 되든, 누구나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과과정 정도는 상식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요. 그랬더니 ‘시간이 있다면 어떤 책을 더 읽으면 좋겠느냐’고 질문하기에, 제가 6가지 종류의 책은 꼭 읽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nbspnbsp첫째,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를 다룬 책, 즉 우주의 시원과 물질의 시원을 다룬 책을 읽어야 합니다. 우주의 시원과 물질의 시원은 동일합니다.nbspnbsp둘째, 생명의 시원과 생물의 구조, 즉 ‘무엇이 생명이냐’라는 문제를 다루는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의 진화 과정을 알아야 해요. 우주의 시원에서 지금까지 오는 물질의 변화 과정을 알아야 하듯이, 그 물질을 기초로 해서 형성된 생명이 어떻게 탄생했고 무엇을 생명이라고 하며 그 생명이 여기까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알아야 해요.nbspnbsp셋째, 인간의 진화과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 생명 가운데 인간 종이 언제 어떻게 출현했는지, 생명을 기초로 소위 정신 작용이라는 게 형성됐는데 그 정신 작용이 어떻게 다시 진화해오게 됐는지 인간의 진화 과정을 알아야 해요.nbspnbspnbsp넷째, 문명사를 알아야 합니다. 이집트 문명이 쇠락하면서 에게 문명으로, 에게 문명이 쇠락하면서 그리스 문명으로, 그리스 문명이 쇠락하면서 로마 문명으로, 로마 문명이 쇠락하면서 오늘의 유럽 문명으로 이동하고, 또 유럽 안에서도 문명이 또 어떻게 변방으로 이동해가게 되는가? 왜 앞섰던 문명이 정체되어 쇠락하고 그 변방에서 다시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는가? 역사를 문명사적인 단위, 즉 민족을 넘어서서 한 문명의 흥망성쇠라는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문명의 충돌’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잖아요. 이런 인류 문화사를 알아야 합니다.nbspnbsp다섯째, 우리 민족사를 알아야 해요. 인류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이 도대체 어떻게 시작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공부해야 합니다.nbspnbsp여섯째,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특히 나의 정신 작용, 즉 정신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정신이라는 것이 어떻게 작용하며, 정신 작용 중 생각과 마음의 차이가 무엇이며,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는 어떤가? 우리의 행복과 자유라는 문제는 이 정신 작용 현상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이런 정신 작용 현상을 알아야 해요.nbspnbsp굉장히 전문적인 책이 아니라 고등학생 정도면 읽을 수 있는 책, 즉 기본서를 통해 이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학교를 다니든 안 다니든 직업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이 정도는 알아야 자기에 대해서 안다고 말할 수 있고 세상에 대해서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치를 하든 종교를 하든 어떤 주장을 하든 편협하게 되지 않는다는 거죠. 정신만 연구하다 보면 물질을 무시한다든지, 육신만 연구하다 보니 정신현상까지도 물질로만 규정하려 한다든지 이런 문제로 인해 편협될 수 있는 걸 극복해야 하거든요.nbspnbspnbsp미래 학문의 핵심은 융합입니다. 마치 우리의 육신이 진화해 오다가 정신작용이 급속도로 발전해온 것과 같습니다. 최근의 만년 동안은 육신이 진화해 온 시기가 아니에요. 진화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그 시간에 정신작용이 급속도로 변화 발전해왔습니다. 그런 변화발전이 일어났듯이 지금 우리의 정신작용도 이제는 신체 내부에 정보를 축적하는 것을 넘어서 신체 밖 컴퓨터에 정보를 축적하는 시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시대에 진입해 있습니다. 기존의 물질 속에서 새로운 물질을 융합해서 만들 수 있고, 종도 유전자를 조작해 없는 종을 생성시킬 수 있고 나아가서는 우리들의 정신작용을 변형시킬 수도 있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의 초입에 들어와 있어요. 융합은 이처럼 획기적인 새로운 도전이자 과제입니다.nbspnbsp이런 융합의 시대에는 하나만 보면 안 됩니다. 종교도 불교만 본다거나 불교 안에서도 한 종파밖에 모른다거나 하면 안 돼요. 불교와 기독교가 융합해야 하고, 나아가서는 종교와 과학이 융합해야 하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융합해야 합니다. 자기 정체성을 갖되 한국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융합하고, 한국과 중국이 융합하고, 동양과 서양이 융합하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융합하는 거예요. 중국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융합이라고 볼 수도 있거든요. 사회주의는 계획경제, 자본주의는 시장경제인데 사회주의 시스템에 시장경제를 도입했으니 이것도 일종의 융합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잡스가 만든 아이폰도 융합의 산물이에요. 아예 없던 기술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 이미 있던 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것을 탄생시켰어요. 이런 새로운 시대의 창조적 인간이 되려면 아까 이야기한 기본 학습이 필요해요. 그런 기본 정보가 없으면 융합적 사고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꼭 무슨 대학 가서 전공하는 수준이 아니더라도 그 정도의 공부는 필요합니다.nbspnbsp그렇게 생각해보면 현재의 남북문제도 ‘대결’로 보는 것은 미래지향적이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것을 융합해서 보는 눈이 필요해요. 그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교사상으로 표현하면 ‘공’ 혹은 ‘중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교수님이 이야기하신 중용도 마찬가지예요. 반대되는 두 가지를 융합하려면 중용적 관점을 기본으로 취해야 하거든요. 정치도 반대되는 정치인 둘이 대결해서 어느 하나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라, 반대되는 것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nbspnbsp‘집 없는 억만장자’로 유명한 리콜라스 베르그루엔 아시죠? 지난번에 내한 했을 때는 여기 평화재단에서 3시간에 걸쳐 저와 대담을 했습니다. 그 분의 관심은 정치 문제에 있어서 동서양의 융합입니다. 미국의 민주주의와 중국의 왕도정치의 융합이에요. 미국이 갖고 있는 민주주의는 장점도 있지만 포퓰리즘이라는 문제도 있어요. 중국의 관료제, 다시 말해 정통적으로 내려오는 왕도정치는 전문성을 갖지만 부정부패라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이 둘을 융합해 장점만을 끌어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미국식 시스템에서의 문제는 대통령이 전문성이 없다는 거예요. 포퓰리즘이 만연하다 보니 영화배우 하다가도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반면 중국의 정치 지도자는 아주 바닥에서부터 수많은 검증 과정을 거쳐서 올라옵니다. 대신 여기는 관료주의다 보니까 부정부패를 막을 길이 없어요. 미국은 포퓰리즘을 막을 길이 없고요. 이 둘을 어떻게 융합해서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만들 거냐는 문제입니다.nbspnbsp이런 새로운 시대에 우리가 들어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단순히 남북통일을 분단된 나라가 하나 되는 정도로 생각하면 1920세기의 통일론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둘을 어떻게 융합해서 그 융합을 더 큰 융합으로 발전시킬지 고민해야 해요. 남북의 융합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쌓는 한편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주변국가와 다시 연대하고, 다시 동서양을 뛰어넘어 동서양이 융합한 새로운 문명의 꽃을 피워야 하는데, 그 꽃이 어디서 피겠어요? 미국은 서양 중심이어서 동서양의 융합을 이룰 곳은 못 됩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나라를 이야기하는 거예요.nbspnbspnbsp우리나라는 대립되는 온갖 것들이 다 있지만 융합을 이룬 사례도 많습니다. 기독교도 그래요. 자기 전통을 굳건히 갖고 있는 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와서 주류 사회가 된 나라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인도에 기독교가 들어와서 300년이 됐는데도 기독교인은 전체의 2, 일본에 기독교가 들어와서 400년이 됐는데도 기독교인은 1 미만이에요. 구교와 신교를 모두 합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천주교가 들어온 지 200년, 개신교가 들어온 지는 100년 밖에 안되었는데도 종교인의 절반 이상이 기독교인이에요. 사회적 영향력은 종교들 중에서는 기독교가 주류라고 볼 수 있어요.nbspnbsp북한은 사회주의가 들어와서 지구상에서 아직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나라에요. 마치 중국에서 주자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뿌리를 내려서 독특한 조선시대 정치를 이룬 것과 비슷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약간 기형이죠. 그런데 다시 살펴보면, 그런 외래의 것을 들여왔는데도 그 핵심 내용은 또 가족주의에 의해 세습을 합니다. 남한도 그래요. 교회마저도 가족세습제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끌고 가는 핵심세력이 재벌입니다. 한국 기업 중 지금 세계적으로 이름나 있는 게 삼성, 현대 같은 재벌인데 이것도 살펴보면 가족주의이고 세습이에요. 정치 역시 세습이 되어서 지금은 남북 모두가 세습제처럼 되었습니다. nbspnbspnbsp급속도로 발전한 측면도 있지만, 급속도로 기형적으로 발전했다고도 볼 수 있어요. 이런 것도 융합하면 창조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창조까지는 못 가고 모방만 하다 보니 좀 기형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정상화시킬지가 과제예요.nbsp우리가 이런 한국의 문제를 푼다면 세계 문제도 풀 수 있습니다. 빈부 격차 문제, 평화 문제, 종교 갈등 문제 등 전 세계가 갖고 있는 문제를 한국은 거의 다 가지고 있어요. 다른 나라는 일부만 가지고 있는 문제를 우리는 다 가지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약에 환경문제를 푼다고 하면, 중국은 환경문제가 갈수록 심각한데 우리의 답이 중국의 답이 된다면 중국은 공짜로 해법을 취할 수 있잖아요. 대신 우리의 문명이 앞서간다는 이야기죠. 중국은 따라배우게 되는 거고요. 이런 것들에 대한 과제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과제들을 푸는 핵심 키가 바로 통일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nbsp나쁘게 보면 ‘지금 우리가 너무 모순이 많다, 쓰레기더미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쓰레기더미를 잘 발효시키면 가장 좋은 거름이 됩니다. 필요 없는 게 쓰레기이고 필요한 게 거름인데 그게 사실은 양면의 모습입니다. 이걸 철학적으로 말하면 ‘번뇌가 곧 보리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오늘날 남북 갈등, 한국 안의 양극화, 지역주의 같은 온갖 것들을 괴로움의 원인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어떻게 양질의 비료를 생산하느냐’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통일의 문제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또 한국의 통일은 세계의 통일이고 한국 문제의 극복은 세계 문제 극복의 실마리를 마련한다고도 볼 수 있어요.nbspnbspnbsp우리는 6천년의 역사 중에서 지난 1000년 동안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특히 최근 100년 동안은 많은 시련을 겪었는데 지난 50년 동안은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1000년의 한을 풀 수 있는 기반을 닦았습니다. 그 기초를 잘 살려 지금의 기회를 잡는다면 지난 1000년의 한을 풀고 과거 인류 문명의 선두에 섰던 선조들의 유산을 계승해 미래에 다가올 아시아 시대에 새로운 등불로 우리가 일어설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치게 되면 분단이 지속화되어 과거 100년과 같은 역사가 반복되는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의 전공을 버리지 말고 잘 살리십시오. 그러나 개인의 삶이나 자기 전공에만 빠지면 안 됩니다. 민족의 정체성을 갖되 배타적 민족주의는 피해야 하듯이, 동양의 정체성을 갖되 배타적 동양주의만 가지면 안 됩니다.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서양을 모방만 한다거나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4대 강국을 추종한다면 이건 모방에 불과할 뿐, 거기에서 창조와 융합은 나오지 않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갖되 바깥 것을 배타해도 안 되고, 자기 것을 버려도 안 되고, 그 둘을 주체적으로 융합해나가야 합니다.nbsp이렇게 볼 때 졸업은 끝이 아니에요. 이제 겨우 한 발 뗀 것에 불과합니다. 한 발 겨우 뗐으니 이제는 걸어야죠. 좀 걷다가 다음으로는 달려야 해요. 졸업은 그런 출발이니까 공부 다 했다며 집에 졸업장만 걸어놓지 말고 잘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nbspnbspnbsp여기 계신 분들이 통일의병에 다 100 동의하지는 않을 거예요. 이곳은 통일의병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도 아니니까요. 그러나 이제 여기에서 좀 더 시각을 넓혀 큰 문제들을 내다보면 일차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통일의병 운동입니다. 통일의병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동문회에 참여하셔서 다른 방식으로도 활동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통일문제를 이렇게 의논해서 극복해 나가듯이 다른 분야에도 우리가 극복하고 창조해야 될 과제가 많습니다.nbspnbsp저는 저대로 제 선에서 일을 해나가는 거고, 여러분들은 통일문제나 정치적인 문제를 맡아주세요. 이런 건 제가 할 일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해야 하는 일이에요. 여러분들이 하도 자기 직분을 안 하니까 제가 약간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걸 저더러 자꾸 하라고 하면 안 돼요. nbspnbspnbsp저는 융합은 하지만, 그건 제 전공이 아닙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사는 세상을 여러분들이 좀 적극적으로, 주인이자 책임자의 자세를 갖고 가꾸어나가시기 바랍니다. 방관자가 되어 비판하고 비난만 하지 말고 내가 이 사회의 실질적 주인으로서, 즉 헌법에 보장된 나라의 주인으로서 책임의식을 좀 가질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 오늘 마지막으로 얼굴 비추지 말고 또 오세요. 눈도장 다 찍어놨으니 스님 눈도장을 벗어나면 극락에 못 간다고 생각하시고 계속 활동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 동문회에서 또 만납시다.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nbsp스님이 이야기 하는 내내 졸업생들은 볼펜으로 메모를 해가며 집중하는 모습이였습니다. 그리고 스님의 주옥 같은 격려 말씀에 환한 웃음을 보이며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무엇보다 스님이 자주 강조하시곤 하는 6가지 종류의 책에 대해서는 정말 꼭 시간을 내어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융합의 시대에 남북의 융합을 더 큰 융합으로 만들어내 세계 문명의 꽃을 피우자는 말씀은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제13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졸업생들은 그동안 소중한 가르침을 준 법륜 스님과 조민 평화교육원장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특히 스님에게는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시라고 회색 내의를 선물해 스님도 아주 만족해 했습니다. 스님은 선물을 받고 나서 “왜 빨간색으로 된 걸 안 줘요?” 하면서 농담을 던져 모두를 웃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 졸업생들로부터 회색 내의를 선물 받은 스님nbsp졸업 특강을 마친 후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13기 파이팅”을 외치며 통일 운동에 대한 굳은 결의를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졸업식을 마치고 이어서 밤 11시 30분부터는 서울 정토회관에서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며 시작한 1000일 기도 중 100일째 날을 맞이하여 기념 법회와 정진이 있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됩니다.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04. 54,104 읽음 댓글 36개

2015.12.2 성남 통일의병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성남시 수정청소년수련관에서 성남 시민들을 위해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오늘도 스님은 여느 때와 같이 새벽 예불과 정진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정진을 마치고 나서는 하루 종일 집무실에 머물며 새책 원고 집필 작업과 각종 보고서를 체크하며 업무를 보았습니다. 며칠 전부터 잇몸에 통증이 계속 있었지만 강연 일정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했는데 오늘은 치과에서 집중적인 치료를 받고 이비인후과에도 들러 목 치료도 받았습니다. 스님은 “치과 치료를 받을 때는 수행자 품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면서 웃으셨습니다.nbspnbsp비갠 오후의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수정청소년수련관은8232 산자락에 둘러 싸인 아늑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수정청소년수련관nbsp일찌감치 모인 50여 명의 봉사자들은 오랫만에 만난 지인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기도 하며 시민들을 맞을 준비로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잠시 봉사자 모두가 모여 주의 사항을 듣습니다. 세상에는 예비의병과 통일의병만이 있으니 의병이라는 호칭으로 통일하시면 됩니다. nbsp지금 이 순간이 통일의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방긋 웃으며 임하시기 바랍니다.nbsp이미 어두워진 오후 6시가 되자 시민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또렷한 눈망울의 작은 여자 아이 손을 잡고 어쩐지 서두르는 느낌의 여자분이 입구에 들어섰습니다. 질문할 수 있나요? 하고 묻습니다. 급하게 꼭 묻고 싶은 nbsp질문이 있으신 모양입니다.nbspnbsp통일 관련 영상이 나오고 있는 강연장에는 딸아이 둘과 함께 온 남자분이 봉사자에게 사진촬영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여쭤보니 본인은 육남매의 아버지이고, 오늘은 큰딸과 작은딸을 데리고 참석했고, 스님의 팬이라며 기분좋아했습니다. 또 아내와 함께 강연장을 찾은 한 시민은 홍보가 잘 안 된 것 같다며 시민들이 잘 몰라서 많이 참석하지 못한 상황을 아쉬워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강연 시간 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해 6시부터 은수미 의원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은 의원은 우리나라에서 노동문제와 관련해 많은 활동을 해온 노동전문가인데, 최근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스님의 조언을 구했고, 스님은 편안하게 스님의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 은수미 국회의원nbsp이어서 6시 30분부터는 성남시 지역 인사들과 사전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성남시의회 의원, 성남외국인주민복지센터장, 민주시민교육추진위원회 대표, 청소년지도위원장, 기업인 등 총 13명이 함께 자리했습니다.nbspnbsp▲ 성남시 지역인사 사전 간담회nbsp스님은 왜 지금 통일의병 운동을 하고자 하는지 개괄적인 설명을 한 후 통일 문제와 관련해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40여 분간 이어진 대화 도중 한 분은 통일정책이 일관성 있게 나아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스님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어떻게 하면 통일정책이 정치적 논쟁에 이용당하지 않고 일관성 있게 추진될 수 있는지 그동안의 남북 관계를 예로 들어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정부, 전문가들, 스님, 사회단체에서 통일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각자 조금씩은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문제도 함께 공유해서 일관성 있는 방향을 형성한다면 통일로 나아가는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nbsp“옳은 말씀입니다. 통일을 보는 관점은 이념적 지향에 따라 다르고 역사적 상황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예컨대 6070년대의 통일운동세력은 북쪽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중심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북쪽이 남쪽보다 잘 살았고 경제 외 여러 면에서도 긍정적 면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7080년대로 넘어오면서 북은 경제적으로 쇠락하고 남쪽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어서 통일에 대한 시각도 달라졌어요. 남북 중 어느 누구도 상대를 일방적으로 제압할 만한 상황이 안 되었기에 남북이 대등한 입장으로 만나서 통일문제를 다루자는 식이 되었습니다. 70년대 이전까지는 통일문제를 북쪽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기에 남쪽에서도 동조한 성향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그때는 그게 옳았을지 몰라도 지금의 정세에서는 맞지 않다 보니 지금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종북으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30년 전에는 합당했던 관점도 지금 상황에서는 합리적이지 못한 거예요.nbspnbsp김대중 대통령은 남쪽이 우위에 서긴 했어도 통일문제에서는 남북이 서로 대등하게 접근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수세에 몰리면서도 체면을 세웠고, 남쪽은 전에 수세로 몰렸다가 거꾸로 공세적으로 나오면서 균형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북쪽에서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안과 남쪽에서 주장한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의 합의점을 찾은 것이지요. 전자는 연방제이고 후자는 국가연합인데,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국가연합과 내용이 비슷하다고 해서 양쪽이 통일의 1단계 방안에 대해서 합의점을 잡았어요. 김대중 대통령이 마치 우리의 통일정책을 양보한 것처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은 오히려 북한이 약간 양보를 해서 최소 합의점을 잡은 겁니다. 북한이 애국적이라 그렇게 잡은 게 아니라 북한이 약간 열세에 처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남쪽의 통일방안은 각자의 체제를 유지하되 협력하자, 즉 한 개의 국가와 두 개의 독립된 정부를 가지고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북쪽이 거기에 동의했다는 것은 북쪽이 세력이 약화되면서 자기 체제를 지켜야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뜻으로 볼 수 있어요.nbsp거기서 다시 15년이 지난 지금은 국제적 위상을 보나 국력을 보나 남북이 공히 동등하게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지금에 와서 가장 현실적인 통일론은 남쪽이 중심이 되어 북쪽을 포용하는 것입니다. 입장이 이렇다 보니 지금은 보수세력이 더 통일을 주장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보수세력의 입장은 북쪽을 포용하는 게 아니라 북쪽을 붕괴시키고 흡수통일을 하겠다는 것이어서, 전쟁을 유발하거나 실현불가능한 통일론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옛날처럼 남북이 동등하게 결합하는 통일방안을 적용하려니 그때와는 지금 상황이 많이 달라져서 맞지 않습니다.nbspnbsp그러니 우리는 또다시 지금의 현실에 바탕을 두고 통일문제를 풀 수밖에 없습니다. 보수는 남쪽의 진보와 북쪽이 대화하면 남북대화가 아닌 좌파끼리의 대화라고 보는 겁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관점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남한의 보수와 북한이 대화를 해야 진정한 남북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 이상은 남한 안의 좌우 대립이 끝나지 않아요.nbspnbsp그러므로 남한에서 진보가 정권을 잡아서 북한과 대화하려면 남한의 보수와 합의한 만큼만 남북 대화를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남한에 분열이 일어납니다. 반대로 남한의 보수가 정권을 잡으면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하고요. 진보는 북한과의 대화를 반대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하면 저절로 남한의 여론이 통합됩니다. 그런데 과거 김대중 정부는 남북대화의 물꼬는 텄지만 남쪽의 보수와 합의를 이루려는 노력이 좀 부족했어요. 그것이 결국 남한 안에서 남남갈등으로 이어져 지금 같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당시 남한의 야권이나 보수세력과 더 긴밀한 합의를 했어야 하는데 남북관계를 푸는 데만 너무 집중한 거 아니냐는 거예요. 그리고 보수는 정권이 바뀌었을 때 진보세력이 풀어놓은 남북관계와 그 정책을 계승해줘야 하는데 계승은커녕 뒤엎어버리니까 남북관계가 파탄났어요. 이런 것들을 서로 대화하면서 국민합의를 해가야 해요.nbspnbspnbsp남한의 보수세력을 제외시켜버린 상태에서는 남북대화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 국민 여론이 반반이긴 하지만 그래도 보수가 조금 더 많고, 미국이라는 배후가 있기 때문에 남한의 진보세력만 가지고는 현실적으로 남북통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현실을 인식해야 해요. 통일을 하려면 남한의 보수세력이 어느 정도 동의하는 통일론이어야 합니다. 극보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중도보수까지는 동의를 얻어야 해요. 그런 합리적인 안들을 만들어서 실제로 어떻게 대화를 해나갈지 고민해야 합니다. 남북대화만 할 게 아니라 남남대화도 같이 해나가야 해요.nbspnbsp과거에 통일을 주장할 때는 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과거의 이념적 지향으로만 접근하면 아무리 통일을 주장해도 통일의 가능성은 없어요. 남한 안에서 70 정도까지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통일이 실제로 추진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nbspnbsp북한에 더 비중을 두는 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 남한 안에서는 세력이 약해져서 소수가 되었습니다. 통일을 하려면 그런 주장도 다 허용해줘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걸 다 척결하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통일 정책도 합의 통일을 하자는 게 아니라 힘으로 밀어붙여 통일하겠다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65년 전 북한이 저질렀던 과오를 지금 남한이 저지를 위험이 있어요. 그때는 힘이 있는 북한 쪽에서 힘으로 밀어붙여서 통일을 하려 했는데, 지금은 거꾸로 남한이 절대적인 힘의 우위에 섰으니까 또 힘으로 밀어붙여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이건 굉장히 위험한 시각입니다. 북한도 그때 한 달 만에 다 밀어붙였어요. 그런데 미국의 개입이라는 변수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북한을 힘으로 밀어붙이면 중국이 즉각 개입하리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nbspnbsp대통령님이 중국 가서 이야기해 보니 개입 안 할 것 같다고 하지만 턱도 없는 소리예요. 중국의 정책 자체가 그렇게 안 되어 있어요. 휴전선을 넘어오면 이미 침공이라고 보고, 압록강으로부터 200km 안으로 들어오면 중국에 대한 침공이라고 봐서 즉각 군사적으로 개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중국과 싸우면 이기기가 어렵고, 설령 이긴다 하더라도 북한의 화력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어요. 전후복구만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중국 경제가 바로 우리 턱밑까지 추격해 들어왔는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공업 시설이 파괴되면 그걸 복구하는 사이 중국에 뒤처집니다. 무력 통일도 하나의 방식이긴 하지만 위험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굳이 그런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습니다.nbspnbspnbsp평화적으로 통일하려면 합의를 해야 하고, 합의를 하려면 상대가 아무리 약해도 상대의 요구를 어느 정도는 수용해줘야 합니다. 그걸 포용이라고 하잖아요. 김대중 대통령의 좋은 점은 그런 포용정책을 썼다는 겁니다. 북한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 포용해주면서 남북 관계를 풀어나갔어요. 다만 남북관계를 풀 때 남한의 당시 야당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했어야 하는데 그걸 좀 못했기에 야당 측에서 ‘이것은 통일정책이 아니라 북한과의 야합이다’라고 몰아버린 겁니다. 처음에는 다들 통일의 발목을 잡는 턱도 없는 소리라고 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희한하게도 ‘북한에게 끌려다닌다’는 주장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어갔습니다.nbspnbsp인도적 지원 문제도 그렇습니다. 인도적 지원은 사람들이 굶어죽기 때문에 식량을 지원했으니, 굶어죽는 사태가 막아지는 데 도움이 되었느냐는 것만 가지고 평가를 해야 해요. 그런데 ‘굶어죽는 사람들을 위해서 지원했는데 왜 저놈들은 미사일 만들고 핵 개발하느냐’ 이렇게 몰고 가요. 그건 사실 전혀 논리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걸 방어해내지 못했어요. ‘저놈들은 지원 받으면서도 큰소리치는데 우리는 도와주면서 굽실거린다. 또 우리가 이렇게 많이 지원해줬는데 저놈들은 핵무장한다’ 이런 선전이 우리 국민들에게 먹혀들어서 북한에 대한 저항감이 커진 거예요.nbsp그 당시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지금의 25세 이하 젊은이들은 반북적 성향이 굉장히 강합니다. 그 청년들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 북한이 쳐들어온다는 둥 하며 언론에서 이야기하고, 정권을 3대째 세습하는 모습을 보고 해서 북한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머리에 각인되어서 성인이 된 뒤까지 이어지는 거예요. 이걸 두고 종편이 선전을 잘못했다고 비난해본들 시정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과제는 ‘이걸 어떻게 극복할 거냐’인데 자꾸 진영 논리로만 접근하면 해결점이 없습니다. 말로 주장한다고 통일이 되는 건 아닙니다.nbspnbsp어떻게 국민의 다수지지, 즉 50 이상, 적어도 60의 지지를 얻어서 통일을 강력하게 추진할 정부를 구성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진보세력끼리 아무리 모여 봐야 50를 못 넘어요. 그 정책으로는 통일을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조금 합리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김대중 정부 정책에서 정당한 부분은 우리가 계승하고, 국민 통합의 문제에 소홀했던 것은 보완을 해야죠. 독일은 그랬습니다. 사회당 정부가 동독과의 관계를 풀어놓은 상태에서 보수정권이 들어섰는데, 국내 정책은 다 보수로 바꿨지만 대동독 정책은 진보정권이 해놓은 것을 그대로 인수했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이 된 거예요. 보수정권 때 통일이 이루어졌고, 지원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남북 좌파들이 야합했다’ 해서 모든 합의를 다 무시해버렸기 때문에 남북 불신이 극도로 증폭된 것은 물론 남남갈등도 극심해져 버렸습니다.nbspnbsp이게 우리의 현실이에요.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인데,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 통일로 나아갈 것인지를 해결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도 다 대한민국 국민이고 투표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데서 새롭게 좀 접근해보면 좋겠습니다. 한국 안의 정치문제에 통일문제를 자꾸 개입시키면 또 정치싸움밖에 안 돼요. 통일정책은 한국 내 정치적 투쟁을 넘어서는 관점에서 수립해서 앞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계승해갈 수 있는 정책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정부가 추진하는 통일정책은 반드시 여야 합의를 거치도록 하면 정권이 바뀌어도 그 정책이 안 바뀝니다. 한쪽에서만 추진하면 정권이 바뀌었을 때 바로 뒤집어버리거든요.”nbsp스님의 일목요연한 설명을 들으며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가져온 성과와 한계, 이를 계승하여 앞으로는 어떻게 통일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혜안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의 뜻을 내비쳤습니다.nbspnbsp이렇게 사전 간담회를 마치고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은 후 강연장으로 함께 들어갔습니다.nbspnbsp▲ 성남시 지역 인사 분들과 함께nbsp빈자리가 곳곳에 보이는 가운데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나왔습니다.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한 후 “저녁 못 드신 분은 집에 가서 드시라”고 스님이 특유의 위트를 던지자 청중들의 얼굴도 순간 환해졌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오늘 강연의 취지와 성격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nbsp“이번 강연은 통일의병이 주최한 것이니 개인 질문은 적게 다루고 공동체와 nbsp민족,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nbspnbsp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세 명이 손을 들고 질문을 청했습니다. 첫번째 질문자는 가정에 무관심한 남편과 사는 것이 행복하지가 않아 이혼하고 싶은데, 남편은 아이를 절대 줄 수가 없다고 해서 고민이라고 했고, 두번째 질문자는 nbsp본인이 납북자 가족인데 납북자 가족들에 대한 연구 활동을 해보고 싶지만 차일 피일 미루고 있다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고, 세 번째 질문자는 군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요즘은 통일정책이 예전보다 통일에서 멀어지도록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스님께서 보시는 통일의 전망 그리고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또 국민들의 안보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물었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은 비가 와서 그런지 조용하고 가라앉은 듯한 분위기였고 시민들도 한껏 진중하고 집중된 모습으로 강연을 들었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두 번째 질문인 납북자 가족 문제에 대한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은 질문자와의 문답 속에서 분단이 한 개인의 내면과 가족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분단은 사회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내면 깊숙이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nbspnbspnbsp“저는 지금 심리학 박사과정에 있습니다. 그런데 제 문제를 고민하다가 가족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됐어요. 저희는 납북자가족으로 아버지가 외아들이셨어요. 저는 이혼을 했는데 ‘가족이 다 겪은 외상으로 인해서 지금의 내가 고통 받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올라가면서 이 주제를 연구해보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납북자에 대한 관심을 사실 많은 분들이 갖고 있진 않아요. 또 이런 연구는 돈도 명예도 되지 않으니 다른 분들이 나서서 하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일을 겪은 가족의 일원이기도 하고, 제가 성인이 되었으니 아버지나 돌아가신 할머니의 마음을 좀 헤아려보고 싶은 마음에서 이 주제를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시간강사로 일하며 생계를 해결하느라 힘들고 제 그릇이 작다 보니 진척을 잘 못했습니다. 스님의 통일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납북자에 대한 관심이 더 이상 뒤로 미루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통일과 관련된 많은 혜안을 가진 스님께서는 납북자 가족에 대한 생각이 어떠신지요? 스님의 말씀을 듣고 제 연구에 대한 자세와 태도와 생각을 정비하는 기회를 갖고 싶어서 여쭙습니다.”nbsp“어떻게 납북이 되셨어요?”nbsp“아버지가 태어나기 전에 할아버지가 납북되셔서 할머니께서 혼자 아버지를 낳아 키우셨어요. 할머니가 13형제 중 장녀였기에 굉장히 힘들게 살다 18살에 시집갔는데 19살에 남편이 납북되는 일을 당하신 거예요. 아들을 혼자 낳아 키우느라 너무 힘들게 키우셨고, 그런 어려움들 때문에 저희 부모님이 갈등을 겪고, 그러다보니 저도 자라서 부모님을 미워하고 남편과도 이혼하게 된 것 같습니다.”nbsp“할아버지가 6.25 때 납북됐어요, 그 뒤에 납북됐어요?”nbsp“6.25 때로 알고 있습니다.”nbspnbsp“전쟁 중에 그리 되셨다는 이야기네요. 그냥 납북이 된 거예요, 전쟁에 나갔다가 실종이 된 거예요?”nbspnbsp“할아버지가 공무원이셨대요. 그런데 성정이 올곧아서 바른 말씀을 잘 하시다 보니 평소 마을에서 좀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 있었나 봐요. 점심 식사를 하다가 ‘잠깐 가자’는 호출을 받고 ‘죄 지은 것도 없으니 금방 다녀오겠다’ 하고 가셨는데 그 길로 이제...”nbsp“납북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당시 남쪽 정부에서 고위직에 있거나, 과학자거나, 문학가거나, 예컨대 쓸 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데려가서 자기들 정부에 요직으로 앉히거나 중요한 기술자로 쓰기 위해 납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스스로 가는 월북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해방 전후의 그 당시에는 지성인 혹은 지식인 소리 듣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이 사회주의자였습니다. 당시 사회분위기가 그랬어요. 게다가 당시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친일 관료들을 다시 데려다 썼습니다. 경찰을 만들려니 일제시대 때 경찰하던 사람들을 데려다 쓰고, 행정을 하려니 일제시대 때 관리 했던 사람을 데려다 쓰고, 재판을 하려니 일제시대 때 판사 하던 사람을 데려다 쓰고, 군대를 만들려니 일제시대에 일본군인 하다 온 사람을 쓰게 된 거예요. 이렇게 친일파를 전문가라고 해서 복권시켜 등용하니 친일청산을 제대로 못한 겁니다.nbspnbsp그런데 미국이 볼 때는 어쨌든 국가 재건을 하려면 기술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니까 일제 강점기 때 그런 기술을 갖고 일한 사람들을 재등용한 거예요. 미국이 한국의 독립과 자주성에 큰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요즘도 일본 재무장과 관련해 우리한테 ‘위안부니 뭐니 지나간 이야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그만하라’ 이렇게 압력을 가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게 단순히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뼈에 사무친 이야기잖아요. 이렇게 서로 견해가 다른 거예요. 미국은 기술적인 면만 생각해서 등용했고, 우리가 보면 친일파가 죄다 재등용된 거예요. 해방될 때 다 죽을 줄 알고 숨어있던 친일파가 이렇게 등용되고, 또 당시 독립운동 한 사람들이 대부분 사회주의자다 보니 반발이 심했습니다. 그러니 다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 반공으로 분위기를 몰아가서 독립운동 한 사람을 거꾸로 공산주의자로 몰아 척결했어요. 이게 한국사회를 지금까지도 괴롭히는 갈등의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nbsp제가 물어보려고 하는 것은 할아버지가 그런 사람으로서 약간의 자발성을 갖고 북으로 갔는지, 즉 월북인지, 아니면 납치되다시피 끌려간 것인지 입니다. 거기에 따라서 또 평가가 다를 수 있어서 물어보는 겁니다.”nbsp“후자였던 것 같고요. 그때 굉장히 젊으셨기 때문에...”nbsp“북쪽에 간 뒤에는 어떻게 됐는지 연락이 일체 없고요?”nbsp“수년 전 이산가족 찾기를 할 때 아버지께서 찾으려고 노력하셨어요. 처음에는 찾았다고 했는데, 행사 전날 동명이인이라고 통보받아 만남이 무산되고 굉장히 실망하셨어요. 그때까지는 할머니도 살아 계셨기에 마지막 기회라고 했는데 놓쳐서 굉장히 안타까워 하셨어요.”nbsp“알았어요. 그러면 어쨌든 납북인 걸 확인했습니다. 6.25 전쟁 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참 많아요. 노근리 학살 사건이나 4.3 사건 등이 그렇죠. 그걸 지금까지는 ‘4.3 제주 반란’이나 ‘여수 순천 반란’으로 부르면서 죄다 일방적으로 매도했어요. 그래서 오랜 세월을 모함과 오해 속에서 보내야 했지만 억울한 사람들이 수십 년을 꾸준히 노력한 끝에 결국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들어와서 ‘제주도 양민 학살 사건’이라고 복권되었습니다. 광주 민주화 항쟁도 처음에는 폭동이라고 했지만 수십 년간 민주화 투쟁을 거친 끝에 ‘광주 민주화 항쟁’으로 복권되었고, 망월동 묘지도 국립묘지가 되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밝혀진 사건들은 가족이든 동지든 목격자든 너무너무 억울하다는 누군가가 온갖 모함과 핍박을 겪고 오해를 사면서도 남아서 줄기차게 자료를 모으고 증언을 채취했기 때문에 밝혀진 거예요. 이보다 더 많은 사건들은 아직 역사 속에 묻혀 있습니다. 나서서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 때는 진실화해위원회라고 해서 이런 피해자들의 하소연을 받아주고 재조사하고 재판도 다시 하도록 도와주는 국가 부서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명박 대통령 때 와서 다 없애버렸죠.nbspnbspnbsp질문자가 심리학을 전공했다니 납북자 가족들의 심리에 대한 연구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밥벌이는 청소를 하든 심리학 강의를 하든 질문자의 책임이고 자유예요. 밥벌이를 해결한 나머지 시간에는 틈나는 대로 납북자 가족들을 만나 사연도 듣고 심리를 연구해보세요. 그러면 질문자의 연구는 단순히 납북자 가족에서 그치지 않고 이산가족의 문제가 되고, 분단의 문제가 됩니다.nbspnbsp또 질문자는 이산가족이 됨으로 해서 한 가정 안에 이 분단이 미치는 영향을 직접 체험했어요. 할머니가 남편 없이 혼자 사느라 정신적으로 힘들게 살아서 아버지를 키웠어요. 할머니가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힘들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심리적으로 당연히 불안과 억압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성장해 어머니와 결혼하니 자기의 그 업식이 아내를 상대로 폭발했어요. 어머니는 이런 남편을 만난 게 억울하니까 또 힘들어하며 질문자를 키웠고요. 그래서 질문자는 아버지에 대한 저항감이 생겼고, 남편을 만나 살다가 남편의 행동이나 어떤 부분이 계기가 되어 질문자가 아버지에게 가지고 있던 상처가 덧나서 자기도 모르게 저항하게 되고, 그래서 이혼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nbspnbsp이런 가정의 불화를 잘 살펴보세요. 분단이 됨으로 해서 우리가 말하는 여러 가지 국가적 불행만 발생한 게 게 아니라,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그 까르마가 쭉 이어집니다. 한 대로 끝나는 게 아니라, 겉보기에는 멀쩡히 먹고 살지만 내재되어 계속 흘러내려가요. 질문자의 아이에게도, 손자에게도 계속 이어질 겁니다.nbspnbsp질문자는 이런 문제를 심리학적으로 접근해 연구해보세요. 자기 가계니까 조사하기 쉽잖아요. 돌아가시긴 했지만 할머니가 어땠는지 아버지한테 이야기 들어서 조사하고 그것이 아버지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살펴보고요. 아버지의 그런 까르마를 어머니가 이해하고 수용해줬다면 질문자에게 전이가 안 됐을 텐데, 어머니도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저 억울하다고 대응하다 보니 까르마와 상처가 질문자에게 내려왔어요. 남편이 질문자를 수용해주든 질문자가 남편을 수용해줬다면 아이에게는 전이가 안 될 텐데 질문자도 상처를 어쩌지 못해 그게 아이에게 또 전이 되었어요. 아이가 방글방글 웃으니까 내가 이렇게 살아도 애한테 무슨 피해를 주는지 모를 뿐이에요. 조금 전에 스님이 이혼하겠다는 아이 엄마에게 엄마 자격이 없다고 말하니까 여러분들은 ‘스님은 애를 안 낳아봐서, 남자라서 저런 소리 하지’ 이런 생각하면서 억울하게만 여기지, 도대체 이 까르마의 흐름을 모릅니다.nbspnbspnbsp분단으로 인해서 납치가 일어났어요. 그리고 그 상처가 한 대에 끝나는 게 아닙니다. 심리학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는 문제예요. 이것이 요즘 말로 하면 ‘트라우마’입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다리 부러지고 팔 부러져서 돌아온 것만 치료를 했지, 사람을 죽이면서 느꼈던 마음의 충격이나 아픔은 치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군인들이 미국 사회에 적응 못하는 문제가 생겼어요. 그래서 육체의 상처처럼 정신에도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트라우마’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요즘은 무슨 사건이 생기면 몸만 치료하는 게 아니라 다 마음의 치료를 병행합니다. 교통사고가 나도 몸뚱이만 치료하는 게 아니라 놀람병을 치료해야 해요. 운전하다가 한번 사고를 당하면 다음에 운전대를 못 잡거나 차가 덜컹거리기만 해도 놀라는 것은 트라우마, 즉 정신적인 상처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컨트롤이 잘 안되는 거예요. 이런 점을 알아서 상처를 치유해가는 게 우리의 마음 공부입니다.nbspnbsp그러니 질문자가 경험한 자기 가계부터 연구해보고 예컨대 다른 가계 열 가족을 더 연구해보세요. 이 전체의 공통점은 뭐고 차이점은 뭔지, 열 가계 중 한 가계라도 이걸 극복한 사례가 있다면 그걸 어느 어에서 누가 어떻게 극복해냈는지, 나머지는 대부분 극복을 못 하고 유전인자 처럼 상처가 대를 이허 흘러내려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연구해보세요.nbspnbsp그 까르마와 상처가 지금 우리 민족 전체 공동체에도 흘러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에서 태어나서 아버지가 일제시대 판사를 했던 사람의 예를 들어볼게요. 광복된 뒤에 공산주의자들이 들어오더니 ‘친일 청산’이라고 해서 아버지를 잡아가고 재산을 몰수해버렸어요. 아이 혼자 살아남아서 남쪽으로 도망왔습니다. 그러면 이 상처 때문에 ‘공산주의’라고 하면 ‘무조건 때려죽일 놈, 철천지원수’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을 보고 비상식적인 극보수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안 돼요. 그 사람은 그런 상처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제의 지배와 분단, 좌우 대립으로 인한 전쟁, 그 이후 남과 북 모두에 들어선 독재 정권들, 이런 역사가 사람들에게 준 상처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통일이 돼야 역사도 바로잡히고 이 상처도 치유가 되는 거예요. 지금은 그런 이야기 해봤자 동조할 사람이 없으니까 저도 요즘은 통일 되면 경제적으로 큰 이익이라는 이야기를 주로 하지만, 실제로는 이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엄청납니다. 통일은 이걸 청산할 수 있어요.nbspnbspnbsp그러니 질문자가 가족의 입장에서 이것을 연구하는 것은 통일에도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남북의 정치문제 같은 건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질문자는 자기 문제, 즉 나의 상처로부터 출발해보세요. ‘이 상처가 결국은 민족의 상처로부터 왔다. 사회로부터 나에게 오고, 이런 우리들이 모여서 또 사회의 상처를 온존시켜간다’ 이런 것을 연구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연구로 박사 학위 따겠다거나 돈 벌 생각은 하지 마세요. 꾸준히 30년 연구해서 나이가 60, 70 쯤 되면 전문가가 될 수 있어요. 아무도 안 알아줘도 통일된 뒤에는 ‘아, 그 분이 이런 아픔을 연구해서 이렇게 정리해 놓았구나’ 하고 알아줄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걸 해서 밥벌이로 삼겠다고 하면 관심없는 정부에 대해 실망하여 불평하고 자신을 한탄하게 돼요.nbspnbsp소재는 아주 좋습니다. 그건 질문자가 인생을 어떻게 살 거냐 하는 문제예요. ‘그런 거 연구해서 뭐하나. 그건 밥이 안 된다’ 해서 자기 밥벌이만 할 수도 있지만, 요즘은 한국 사회가 그래도 살 만한 사회니까 통일부 같은 곳에 프로젝트를 제출해 볼수도 있어요. 나의 아픔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분단이 가져온 우리의 아픔을 살펴보고, 앞으로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이 사람들의 치유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아우를 수 있잖아요. 통일부나 통일 관련 단체에 그런 프로젝트가 선정되면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되고 연구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프로젝트를 준다는 보장이 전혀 없잖아요. 그러니 먹고 사는 건 질문자가 해결하고, 프로젝트 제출은 nbsp계속하고, 연구도 꾸준히 계속하라는 겁니다. 스님도 이런 통일 강연을 누가 돈 대줘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nbspnbsp“맞는 말씀인데요. 제가 그릇이 좀 작고 불안감이 굉장히 높은 사람이어서 아직은 어렵습니다.”nbsp“그릇이 작으면 안 하면 되죠. 할 수 있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어요. 질문자가 그 연구를 하려면 그런 방향으로 해나가면 되고, 못 하겠다면 그냥 안 하면 됩니다.nbspnbsp그런데 핵심은 이거예요. ‘내 괴로움이 이산가족 때문에 생겼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그 출발점은 맞는 말이긴 하지만, 내가 사생아로 태어났든, 이산가족 집안에서 태어났든, 성추행을 당했든, 과거는 다 지나간 이야기예요. 지금 나는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도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 있어요. 수행자라면 이렇게 해탈을 해야 해요. 내가 먼저 행복해진 뒤에 이런 문제를 연구하는 건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런 배경이 있기에 나는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라고 자기의 괴로움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라면 그런 연구를 맨날 해봐야 나한테 하나도 득이 안 됩니다. 저도 제가 어떻게 고문당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요.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과거에 내가 어떻게 살았든 지금의 나는 행복해야 합니다. 과거는 너무 따질 필요가 없어요.”nbspnbsp“네, 그런 차원에서 그 연구를 하겠다는 쪽으로 생각을 굳히려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길게 보려 하고, 이걸로 돈을 벌거나 하는 건 아예 생각하지 않고요. 스님께서 방금 해주신 말씀도 잘 이해했습니다. 재미있게 연구해 보겠습니다.” nbsp환하게 웃는 질문자를 향해 청중들은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통일 문제를 심리적인 측면과 가족적인 측면에서도 바라볼 수 있어 참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nbspnbspnbsp세 명의 질문 밖에 받지 못했는데 벌써 약속한 2시간이 모두 흘렀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강연을 마치면서 스님은 ‘코리아 리스크’와 ‘코리아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면서 왜 지금 이 시기에 통일의병 운동이 필요한지 다시 한 번 강조해 주었습니다.nbspnbsp“국제사회에서는 ‘코리아 리스크’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괜찮은 나라임에도 국제사회에는 저평가가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투자했다가 한반도에 전쟁이 났다 하면 완전히 죽이 되니까요. 남북 갈등 때문에 제대로 평가를 못받고 있어요. 그런데 만약 통일이 되면 코리아 브랜드가 굉장히 올라갑니다. 삼성, 현대 이런 대기업들은 자기들 이름으로 세계에 알려졌지 코리아 브랜드로 세계에 알려진 게 아니에요. 그런데 코리아 브랜드가 높아지면 우리가 독일제라고 하면 신뢰를 하듯이 세계 사람들이 한국제라고 하면 신뢰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에 있는 모든 중소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지게 됩니다. 지금은 삼성과 현대와 같은 특정한 재벌 기업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지 중소기업은 자기 브랜들를 만들 수 없어요. 코리아 브랜드를 만들어야 전체 산업이 다 살 수가 있습니다.nbspnbspnbsp이런 희망적인 미래는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럴려면 통일을 강력히 추진할 정부를 국민의 힘으로 구성해내야 합니다. 민간이 어떻게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통일은 정치, 외교, 군사, 경제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가 딱 통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치 군사적으로 완전히 통일되는 것은 지금 당장 급한 것이 아니에요. 통일을 하겠다고 정부가 방침을 정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그렇게 되면 바로 교류 협력을 시작할 수 있어요. 정치 군사적인 통일은 시간이 좀 더 걸릴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 우리는 중국을 보고 좀 배워야 해요. 중국은 대만이 독립만 하지 않으면 자유롭게 풀어주고 30년이고 50년이고 기다려 줍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통일된 것과 똑같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도 사실상의 통일을 먼저 하고, 정치 군사적인 통일은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선택할 때까지 시간 여유를 주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경제통합입니다. 남북 경제통합을 해야 남한도 빨리 경제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nbspnbsp정치적으로는 너무 빨리 통합을 하려고 무리수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북한 주민들의 소득수준을 우리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합니다. 하자고 해도 안 할 판입니다. 우선 경제 통합을 해야 됩니다. 경제 통합만 되어도 엄청난 이익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무를 심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에게 일당을 하루 5만원은 줘야 하는데, 지금은 일당이 하루 천원 밖에 안되기 때문에 저렴한 비용으로 북한 전역에 나무를 심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선투자라고 합니다. 통일이 당장 안 되더라도 이렇게 나무 심는 것과 같은 비군사적인 분야에서의 투자는 지금이라도 해야 합니다. 돈도 적게 들 뿐만 아니라 나무가 자라는데는 또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nbspnbsp이런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우리 민족을 이끌도록 여러분들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행동해야 합니다. 이런 입장을 국민들이 가지고 강력하게 요구하면 모든 정치세력들이 통일 방안을 만들어 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특정한 정치 세력의 하수인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북한은 주민이 지도자를 선택할 권한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헌법 제1조 1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잖아요. 국민이 정부를 구성할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바로 국민이 통일 지향적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겁니다.nbspnbspnbsp이제는 평화 통일 정책이 선거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야가 다 평화 통일 정책을 갖고 경쟁을 하게 되어서 그 내용이 비슷해지면 이제는 누가 당선이 되어도 상관이 없게 됩니다. 이렇게 비슷하게 되어야 야당이 여당의 발목을 잡지 않고 국회에서 합의를 해주게 될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으면 한쪽이 추진해도 다른 한쪽이 반대해서 국론 분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니 국민이 각성해야 이 문제가 해결되지 그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통일의병 만들기 운동을 하는 거예요. 국민이 일어나서 나라의 운명을 개척하자는 겁니다.nbspnbsp그러니 여러분 모두 통일의병에 참여해야 되겠죠? 강연장 나갈 때 다 등록하셔서 성남에서부터 통일운동이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알았죠?”nbsp“네” nbspnbsp스님의 간곡한 호소에 모두들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2시간 동안 열정적인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참석한 청중들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nbsp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엄마와 nbsp대학생인 듯한 딸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서로를 따뜻하게 보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습니다.nbspnbsp▲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 합창nbsp강연장을 나가는 시민 한 분은 nbsp밝고 기분 좋은 얼굴로 “좋은 말씀 잘 듣고 갑니다” 며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습니다. 또 다른 분은 “강연은 잘 들었는데 오히려 마음이 무겁다”면서 책임감을 느끼는 표정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nbspnbsp책 사인회가 별도로 없어서 곧바로 무대 앞에서 강연을 준비한 통일의병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활짝 웃는 얼굴에는 보람과 기쁨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다만 이렇게 좋은 강연에 빈 자리가 많이 보여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준비한 통일의병들nbsp수정청소년수련관을 나온 스님은 통일의병들에게 수고했다고 격려를 해준 후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강연이 일찍 끝난 덕분에 스님은 늦은 시간까지 집무실에서 업무를 더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내일은 아침 7시부터 하루 종일 평화재단에서 실무자들과 미팅과 회의를 연이어 가질 예정입니다. 저녁 7시 30분에는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졸업식 행사에 참여해 축하 강연을 해준 후 밤 11시 30분부터는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며 시작한 천일 기도 중 100일째 기도일을 맞이하여 기념 법회를 한 후 릴레이 기도에 함께 동참할 예정입니다.nbsp※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03. 42,748 읽음 댓글 26개

2015.12.1 (저녁) 서초구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스님은 오전에 춘천 KBS홀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 저녁 7시부터는 서초구민회관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nbspnbsp손님과의 미팅을 마친 후 평화재단을 출발한 스님은 저녁 6시 50분 즈음에 서초구민회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오늘은 12월의 첫날인데요. 서울은 겨울 날씨답지 않게 하루 종일 맑고 온화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평일 저녁인데도 올해 남은 마지막 한 달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 강연 시작 한참 전부터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즉문즉설 강연장을 찾았습니다.nbspnbspnbspnbsp그중에서 올해 환갑이 되었다는 수원에 사는 조명자 님은 기독교 신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도 강연 시간보다 무려 2시간이나 일찍 강연장에 도착했는데 그 이유를 묻자 “지난번 강연 때 조금 늦게 왔더니 좌석이 없어 강연 시간 내내 통로에 쭈그리고 앉아 강연을 들어야 했어요. 그 이후로는 미리 강연장을 찾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내 종교와 달라도 스님 법문이 성경과 다 일맥상통하니 앞으로도 수도권에서 강연이 있으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참석하고 싶어요.”라며 의욕을 보였습니다.nbspnbsp또 엄마와 함께 강연장을 찾은 초등학교 6학년 남자 어린이에게 어떻게 강연장에 오게 되었는지 묻자 아주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엄마가 오늘 저녁에 햄버거를 사준다고 했어요. 그래서 함께 왔어요. 그래도 혹시 스님에게 질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계기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옆에 있던 아이 엄마의 손에는 아이와 약속한 대로 햄버거 세트가 들려 있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지금 사춘기 남자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평소 문제 극복을 위해 팟캐스트를 찾아서 듣다가 오늘 난생 처음으로 강연장을 찾았어요. 아직 낯선 사람들 앞에서 질문을 할 정도로 용기가 생기지는 않지만 다른 질문자들의 답변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답을 얻어가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nbspnbsp또 어떤 여성분들 대여섯 명은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아 ‘센스쟁이. 스님’, ‘최고예요. 왕짱’이라는 푯말을 계속 들고 있으면서 열정적인 팬임을 드러내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찾는 이유야 각자의 인생만큼 천차만별이고 다를 수 있겠지만 괴로움에서 벗어나 온전히 행복해지고 싶다는 그 마음만큼은 똑같지 않을까 싶었습니다.nbsp오늘 강연은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약 2시간에 걸쳐 서초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있었습니다. 좌석은 총 800석인데요. 저녁 6시 50분경이 되자 강연을 위해 준비한 자리가 모두 차서 조금 늦게 강연장을 찾은 분들은 아쉽게도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동안은 통로에 보조의자를 놓거나 때로는 무대 위에 자리를 잡고 강연을 듣기도 했지만 오늘은 시설관리팀에서 안전상의 이유로 정원수 만큼만 입장할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아쉬울 따름이었습니다.nbspnbsp▲ 서초구민회관nbsp저녁 7시가 되자 스님이 강연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이에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nbspnbspnbsp“여기 강연장 안에 있는 사람보다 조금 늦게 온 사람들 중 많은 분들이 못 들어오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무대 위에도 앉고 그랬는데 안전이 제일 중요해서 정원만 받았으니 깊이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분들은 집에 가셔서 유튜브를 보시면 됩니다. 즉문즉설 어떻게 하는지 잘 알죠? 거두절미하고 시작하죠. 질문 신청하신 분 누굽니까? 손 번쩍 드세요.”nbsp스님의 간단한 인사말이 끝나자 곧바로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첫 번째 질문자는 큰 아이가 평소 공부를 열심히 하고 모의고사에서도 성적이 좋은데 큰 시험만 보면 망쳐서 삼수를 하고 있다며 자책감이 들고 두려울 때가 있는데 엄마로서 어떤 자세를 가지고 기도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 그리고 아내를 둔 가장으로서 주말부부를 하면서 토요일에는 파킨슨병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고, 일요일 단 하루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가족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점차 없어지는 것 같아 걱정된다며 과연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을 방법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세 번째 질문자는 결혼한 지 30년이 되었는데 술만 마시면 시작되는 폭언과 행패, 그리고 처갓집 식구를 무시하는 남편 때문에 가출했는데 최근 들어 용서를 구하는 남편 말을 믿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 할지, 아니면 깨끗이 포기하고 이혼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물었습니다.nbspnbspnbsp네 번째 질문자는 평소 중요한 시험이 있을 때마다 시험불안증이 있어서 시험을 망치곤 했는데 앞으로 시험 공포증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다섯 번째 질문자는 어린 시절부터 일방적으로 가족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며 살아야 했고, 간암이 발병한 지 3년 만에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집안 경제를 책임지다가 도망치듯이 한 결혼에 실패한 후 최근에 재혼할 사람이 생겼는데, 언니가 자기 아이를 돌봐달라고 한다며 이제라도 이기적인 언니와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여섯 번째 질문자는 결혼 초 남편이 외도를 하면서 자신에게 이혼을 요구했는데 억울한 마음에 12년 동안 거부해오다가 5년 전부터 반대로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말하는데 지금은 남편이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양육비를 본인이 전적으로 책임지고서라도 이혼을 감행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물었습니다.nbsp오늘은 그중에서 세 번째 질문자의 질문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nbspnbsp“결혼한 지 30년 동안 남편과 싸워도 대문 밖을 나간 적이 없는데, 어제로 집을 나온 지 100일째 됐습니다. 남편이 술을 좋아하는데 마시면 자기도 기억을 못하는 악담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는 좋은 부모 밑에서 집안 교육을 잘 받았는데 저는 안 그렇다면서 ‘독한 년’이라고 불러요. 또 본인은 좋은 소리라고 하지만 반복하면 듣는 입장에서는 잔소리가 되잖아요. 남편은 술을 먹으면 기본으로 3시간은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들이 다 커서 29살, 25살, 21살이 된 지금까지도 불러서 앉혀놓고 잔소리를 합니다. 저와 싸우면 저녁에만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다음날 아침까지 마시면서 잔소리를 해요. 항상 ‘네가 뭘 알겠느냐’는 식으로 무시하는 말을 하고요.nbspnbsp남편이 갈수록 심해지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친정집 식구들, 돌아가신 지 40년이 된 친정아버지까지 들먹이는 걸 보면서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봐라. 노래방 아니면 네가 갈 데가 어디 있겠냐. 먹고 살 길이 없어서 며칠 안에 돌아올 텐데 나가서 뭐 하냐?’라고 늘 무시하는 것도 화가 났어요. 더 참을 수 없어서 남편이 자는 사이 몰래 가방을 싸서 집을 나오자마자 전화기도 꺼버렸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제가 집을 나온 지 3일 만에 옷이나 이불 등 제 물건을 모조리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내다버렸대요. 그 이야기를 아이들을 통해서 듣고 나니 ‘아, 이제는 내가 진짜 결심을 해야 되겠다’ 싶어서 서울의 큰딸 집에 와 있어요. 남편은 저를 죽인다고 하면서도 큰딸 성격이 자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아직 직접 찾아오지는 않았습니다.nbspnbsp집을 나온 뒤 취직해서 바쁘게 일을 하니까 마음도 좀 놓이고 잊혀졌나 싶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 성인이긴 하지만 걱정됩니다. 남편도 딸 몰래 두 번이나 저를 출근길에 만나러 와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빌어요. 제가 남편 일을 도왔는데 남편도 취하지 않았을 때는 제가 고생하는 줄 알고 인정해줬거든요. 친정어머니는 ‘혼자 사는 것보다는 같이 사는 게 낫다. 술 안 마실 때는 괜찮은 사람이니까 한번 생각을 해 보라’고 하시는데, 동생이나 다른 사람들은 제가 돌아간다면 다시는 절 보지 않겠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아빠를 버리라’고 하더니 이제는 한 번쯤 용서해 주라고 하고, 남편은 자기가 또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면 당신이 집을 나가도 더는 찾지 않을 테니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합니다. 그런 소리를 듣고 살면서도 돌아갈 궁리를 하니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갈등이 심합니다.”nbsp“그런 사람이 뭐가 좋아서 30년을 살았어요? 나빴던 것은 이제 그만 이야기하고 좋았던 것을 이야기해 보세요.”nbspnbsp“그 사람이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10년 전에 시동생이 죽고 난 뒤부터 시동생이 술 먹었을 때 하는 행동을 남편이 똑같이 하기 시작했어요. 점을 보니 ‘동생 귀신이 씌었다고 하기에 제가 시동생을 위해 천도재도 지냈습니다. 그런데 잠시 좋아졌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다시 똑같아졌어요. 무당 말을 안 믿으려고 해도, 술만 마시면 죽은 시동생과 똑같은 행동을 해요.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nbspnbsp“남편이 옛날에는 안 그랬던 게 아닙니다. 시아버지는 어때요?”nbsp“시아버지가 젊었을 때는 이렇게까지는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nbsp“어머니는 살아 계세요?”nbspnbsp“예.”nbsp“남편이 어릴 때 시아버지나 시어머니가 어땠는지 들어봤어요?”nbsp“시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나서 이런 식으로 잔소리를 하면 시어머니는 좀 피해 있곤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제가 나간다면 대문을 걸어 잠글 정도예요. 그리고 제가 좋아서 남편과 결혼을 했으니까, 저는 집을 나가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해봤습니다.”nbspnbsp“시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남편이나 시동생의 속에도 그런 씨앗이 형성이 되어는 있었어요. 시동생이 먼저 발현됐고 시동생이 죽으니까 남편 안에 있던 것도 발현이 된 것이지, 없던 게 생긴 건 아닙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남편이 좋았던 점은 뭐예요?”nbsp“성실합니다. 일단은 일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nbspnbsp“그래서 돈은 잘 벌었겠네요?”nbsp“잘 번 건 아닌데요.” nbspnbsp“어쨌든 먹고 살만큼은 벌었잖아요?”nbsp“예.”nbsp“어쨌든 아내가 번 것으로 먹고 산 게 아니고, 같이 하긴 했지만 남편이 벌어서 식구들을 먹여 살렸네요. 또 뭐가 좋았어요? 애를 셋이나 낳을 정도면 금슬은 좋았나 봐요.”nbsp“예, 좋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술을 안 먹었을 때는 엄청 자상하고 가정적입니다.”nbspnbsp“그러니까 그런 좋은 점이 있기 때문에 술만 안 마시면 좋겠죠? 이제는 안 마시겠다고 하니까 한 번만 믿어볼까 하고 솔깃한 거잖아요.”nbsp“예.”nbsp“그런데 질문자가 집에 들어가면 남편이 술을 마실까요, 안 마실까요?”nbsp“한동안은 안 마셔도 나중에는 마시겠지요.”nbsp“남편이 나중에라도 술을 마시면 그 증상이 이전과 똑같이 나타날까요, 안 나타날까요?”nbsp“안 나타날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집을 나온 지 100일이나 되니까 남편이 엄청 겁을 먹었거든요.”nbsp“아이고, 저렇게 순진해서 어떻게 해요. 질문자가 집에 들어가면 남편은 전과 똑같이 술을 마시고 똑같은 주정을 할 가능성이 99.9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예전처럼은 안 할 거다’라는 걸 전제하고 집에 들어가지 마세요. 그렇게 전제하고 들어가면 또 집을 나와야 돼요. 그러니까 ‘예전처럼 하더라도 들어가자’ 이런 마음이 들면 들어가세요.”nbspnbsp“큰딸은 ‘아빠는 죽을 때까지 안 바뀐다’면서 저를 못 들어가게 합니다.”nbsp“딸이든 엄마든 다른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듣지 마세요. 남편은 어릴 때 억압심리가 생겼기 때문에 술을 먹고 취했을 때 의식은 없어지고 무의식이 작동해서 어린 시절의 억압된 심리가 튀어나오는 거예요. 누구든 붙들고 욕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건 정신질환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고쳐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남편이 안 취했을 때는 ‘내가 고치겠다’고 결심하지만 술에 취하면 그게 안 되잖아요. 남편이 나빠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에요. 어릴 때 심리가 억압되었기 때문에 술을 먹으면 자동으로 그렇게 나오게 돼 있는 거예요. 그러니 남편을 미워할 필요도 없습니다.nbspnbsp그래도 질문자가 남편과 살겠다면 남편에게 술을 먹지 말라든지 주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면 안 돼요. 그러면 더 심해집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술을 마시고 욕을 하면 ‘그래,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아이고, 내가 이렇게 못난이인데 당신 입장에서 우리 부모님이 뭐가 좋겠어? 그래, 그래’ 이렇게 등을 두드려줘야 합니다. 남편의 주정은 일종의 질환이기 때문에 그 주정하는 말에 집착하면 안 됩니다.”nbspnbsp“제가 그리 했기 때문에 여태까지 살아온 거예요. 남이 부끄러워서라도 그렇게 했어요.”nbsp“그건 참아온 거잖아요. 남편 속의 작은 아이를 내 아들처럼 불쌍하게 여기란 말이에요. 남편이 아버지가 주정하고 엄마가 악쓰는 가운데 자라서 술만 먹으면 어릴 때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때 억압된 심리로 이렇게 주정을 하는 거니까 질문자는 남편을 보면서 ‘너무 너무 불쌍하다’ 이런 마음을 내세요. 남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아들을 달래듯 하세요. 질문자의 아들도 이제 또 그렇게 됩니다.”nbsp“그게 걱정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술을 먹으면 그냥 재우기 위해서 제가 항상 다독거려줬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제가 그렇게 한 게 잘못이다 싶어요. 오히려 처음에 확 잡았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것 같아요.”nbsp“확 잡으려 들다가 잘못하면 칼 맞아 죽어요. 질문자가 그렇게 남편을 다독거려줬는데도 효과가 안 나는 것은 참고 했기 때문입니다. 참고 한 것은 성내는 것보다 결과가 더 못합니다. 진짜 불쌍하게 여겨야 됩니다. 남편이 주정하는 게 괘씸하지 않고 너무너무 불쌍해야 됩니다. 질문자의 아들이 그러고 있다면 며느리는 아들과 싸우겠지만 질문자는 아들이 너무너무 불쌍해서 ‘아이고, 저게 제 아버지 닮아서 저렇구나. 내가 악을 써서 저렇구나. 쯧쯧’ 이럴 거 아니에요? 이렇게 아들 보듯이 해야 됩니다. 남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요. 그렇게 등 두드리면서 살려면 집에 들어가도 됩니다. 전제조건은 붙이지 마세요.nbsp그런데 질문자가 ‘내가 이 나이에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 이유가 뭐가 있나? 지금까지 산 것만 해도 다행이고 아이들도 모두 20살이 넘었으니까, 나는 어디 가서 파출부 하면서 살더라도 편안하게 내 인생 살겠다’라고 생각한다면 아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남편이 한 번만 오라고 해도 ‘네, 알았어요. 좀 더 있다가 갈게요’ 이렇게 말하고 안 가면 됩니다. 안 간다고 버티면서 다툴 필요도 없고, 약속 지키네 마네 하는 이야기도 할 필요 없어요. 그냥 ‘조금 더 따로 살아봅시다. 나도 너무 힘들었어요, 여보. 내가 조금 더 살아보고 들어갈 테니 먼저 가세요’ 이러고 그냥 살면 됩니다. 어느 걸 선택할래요? 집에 들어가고 싶으니까 저한테 물었겠지요? 스님한테 ‘가거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여기 온 건데, 저는 그 말을 해 주기가 싫어요. nbspnbspnbsp질문자는 우선 남편은 전과 똑같이 행패를 부릴 거라는 사실을 아셔야 해요. 똑같다는 걸 전제하고, 질문자가 택할 수 있는 길이 두 가지 있습니다. ‘전에는 남편의 주정 때문에 힘들어했지만 이제는 불쌍한 아들로 여기고 다독이며 살겠다. 진짜 관세음보살 같은 마음을 내서 불쌍하게 여기겠다. 얼마나 힘들면 저렇게 술만 마시면 악을 쓸까? 아이고, 저 한을 내가 풀어줘야 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매일 ‘우리 남편한테 내가 관세음보살이 되겠습니다’라고 절하면서 진짜 남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들어가려면 들어가도 됩니다.nbspnbsp그렇지 않고 ‘내가 이 정도 했으니 남편이 이제 정신 차리지 않겠냐?’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안 그렇습니다. 질문자가 집에 들어가면 남편은 더 보복을 할 거예요. 술을 안 마실 때는 괜찮겠지만 술을 마시면 ‘네가 나를 두고 도망을 가? 한 번 더 가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린다.’ 이렇게 나올 겁니다. 남편이 질문자를 찾아갔을 때는 술을 안 마셨으니까 그렇죠. 사람이 똥 누러 갈 때 마음과 똥 누고 온 마음이 달라요. 결혼할 때 그렇게 사랑한다고 해놓고 막상 결혼하니까 딴 짓하는 걸 이미 경험해 놓고 뭘 또 물어요? ‘내가 더 튕기면 남편이 고쳐질 거다’ 이런 생각도 하면 안 됩니다.nbspnbsp어떻게 할래요? 딱 그대로 수용하고 들어가든지, 그냥 끝내든지요. 아이들 모두 20살 넘을 때까지 키웠으니까 이제 남편과 안 살아도 도덕적, 윤리적, 법률적으로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그렇게 마음 졸여가면서 살 필요가 뭐가 있어요? 다 행복하려고 태어났는데 질문자도 행복하게 살아야지요. 그러니 질문자가 자기 인생을 딱 결정하세요. 그 남자가 술 먹고 행패 부려서가 아니라 ‘나도 이제는 내 인생을 살겠다.’ 이렇게 결정하면 돼요. 딸이나 엄마가 뭐라 그러든 남의 말을 들을 필요 없습니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살아가면 됩니다. 남편이 와서 빌면 ‘알겠어요. 먼저 내려가세요. 내가 혼자 좀 더 살아보고 내려갈게요.’ 이렇게 좋게 이야기해 주세요. ‘난 안 간다. 너하고는 다시는 안 산다.’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내일 가겠다.’ 이런 말도 할 필요가 없고요.”nbsp“어제 남편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마지막 기회를 한 번만 달라. 다시 그런 일이 있으면 당신이 나가도 다시는 안 찾겠다’라고 했는데요.” nbspnbsp“그런 말은 믿지 말라니까요. 질문자가 경험을 해봤잖아요. 술 안 마셨을 때 했던 말은 술 마시면 달라진다니까요. 그 말을 믿고는 가지 말라는 겁니다.”nbsp“예, 잘 알겠습니다.”nbsp“가고 싶으면 그냥 가세요.” nbspnbsp“감사합니다.”nbsp“연세가 몇이에요?”nbsp“51살입니다.”nbspnbsp“아이고, 아직 남자가 필요할 나이네요. 이해는 되는데, 남편이 술을 안 마시거나 다시는 주정 안 할 거라고 생각하고 가지는 마세요. 병이기 때문에 못 고쳐요. 앞으로 남편이 어떤 행동을 해도 ‘이건 병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크게 힘이 안 들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두 다리가 부러져서 똥, 오줌 받아내는 것보다는 그래도 잔소리 좀 듣고 사는 게 낫다’는 마음으로 ‘아이고, 여보, 그랬구나. 그래, 그래, 당신 말이 맞다.’ 이렇게 등 두드려주며 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고칠 거라는 전제하에 들어가려면 가지 말라는 거예요.nbspnbspnbsp들어가고는 싶지만 못 들어가고 있었는데 마침 남편이 빌러오니까 그걸 빌미로 들어가려고요? 턱도 없는 소리입니다. 들어가려면 그런 말 믿지 말고 그냥 들어가세요. 남편은 옛날 모습 그대로입니다. 대신에 질문자가 바뀌어야 해요. 남편은 그대로지만 ‘내가 옛날엔 악쓰고 살았지만 이제는 악쓰고 살지는 않겠다. 주정은 병이다. 다른 병 수발하는 것보다는 그 병 수발하는 게 낫다.’ 이렇게 생각하면 괜찮습니다.”nbsp스님의 반복되는 설명 끝에 그제서야 질문자도 수긍이 갔는지 넙죽 감사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은 질문자를 위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질문자들이 모두 연이어서 스님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해서 스님의 답변도 많이 길어졌는데 이 모습을 본 몇몇 청중들은 “이제 그만해” 하며 답답한 마음을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질문자도 얼마나 답답하면 그러겠냐며 그 마음을 대신 헤아려주며 청중들을 진정시켜 주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이 보시기에는 답답할지 몰라도 듣는 우리가 더 답답하겠어요, 질문하는 분이 더 답답하겠어요? 질문하는 분은 더 답답해요. 여러분들은 제3자 입장에서 들으니까 서너번만 들으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는데 자기 문제가 되면 제 얘기가 귀에 안 들려요. 본인도 길게 얘기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러겠어요. 그러니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계속 얘기해도 괜찮아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좋은 게 아니잖아요. 한 사람이라도 답답한 사람의 마음을 해결해주는 것이 중요하지요. 듣는 여러분들은 귀찮을 수 있지만 즉문즉설은 단 한 명을 위해서도 1시간, 2시간을 할 수 있는 겁니다.” nbspnbspnbsp한 사람의 고민이라도 제대로 해결해주고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스님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고, 닫는 말씀을 하면서도 스님은 우리가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행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지 이야기해주었습니다.nbspnbsp“재미있었어요?”nbsp“네.”nbsp“질문하신 분들은 참 고마운 분들이에요. 사실 자기 이야기 꺼내기가 어렵잖아요. 그런데 꺼낸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 이야기하고 비슷한 것도 있어요. 나를 대신해서 질문해 준 셈입니다. 그러니 좋은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주신 6명의 질문자들께 큰 박수 한 번 주세요. 저도 감사드립니다.nbspnbspnbsp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얼굴이 검든 희든, 노인이든 청년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종교가 뭐든, 어릴 때 성추행을 당했든 학대를 받았든, 지금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이혼해서, 애가 있어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이런 핑계를 자꾸 대면서 ‘나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건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겁니다. 이미 지나간 옛날 기억에 사로잡히거나 오지도 않은 미래의 상상에 사로잡혀 꿈속을 헤매면서 괴로워하는 거예요. 그런 과정을 겪고도 지금 안 죽고 살았잖아요. 지금 살아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지만 사는 동안에는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nbspnbspnbsp그러니 자기 괴로움을 자꾸 합리화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자꾸 이유를 대는 건 ‘나는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예요. ‘애가 시험에 떨어져서 괴롭다’, ‘남편이 술을 마셔서 괴롭다.’ 다 이해는 됩니다. 그건 결국 자기가 괴롭고 싶다는 소리일 뿐이에요. 얼마나 괴롭고 싶으면 온갖 이유를 다 갖다 대면서 괴롭다고 그렇게 주장하겠어요? 그러니 그런 핑계 대지 말고 ‘지금부터 나는 행복할 수가 있다’는 걸 아세요. 그걸 두고 부처님은 ‘모든 중생은 다 부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라는 말은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어요. 하나님의 아들이 괴로워해서 되겠어요? 그러니까 자꾸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괴로워하지 마세요. 우리는 다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걸 아시고 모두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자기 권리를 포기하지 마세요. 행복할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nbsp“감사합니다.” nbspnbsp오늘도 6명의 질문자가 우리를 대신해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고 간절하게 답을 구했으며 그 덕분에 우리 또한 인생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오늘 즉문즉설 강연은 서초 정토법당 봄불교대학과 봄경전반, 그리고 가을불교대학과 가을경전반 80여 명이 주축이 되어 진행되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서 봉사자들은 곧바로 팀별로 흩어져 마음나누기를 했습니다.nbspnbsp▲ 강연을 마치고 마음나누기를 하고 있는 봉사자들nbsp그중 봄경전반 소속 박경래 님은 오늘 오후 강연장 물품 나르는 봉사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반가를 내고 일찌감치 강연장으로 달려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동안 스님의 하루에 올라온 글을 스마트폰으로 쉽게 읽으면서도 거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숨어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직접 강연장에 나와 보고서야 법륜 스님은 물론이고, 참으로 많은 봉사자들의 시간과 노력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의 동참이 또 다른 분들에게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nbsp이어서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길게 줄을 서서 스님의 사인을 기다리는 청중들의 얼굴에는 가볍고 행복한 표정이 가득했습니다. 스님은 강연장을 찾아와 준 사람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간혹 어린이들이 보일 때면 “안 지루했어? 엄마가 억지로 데려와서 힘들었겠구나” 하면서 그 마음을 헤아려주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정토회 서울제주 지부에서 주관한 올해 마지막 강연이기에 종강연 기념 행사를 조촐하게 가지려고 했으나 서초구청 측에서 공간 사용을 허락지 않아 그냥 마쳐야 했습니다. 봉사자들은 아쉬움을 달래며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오늘 하루 종일 강연 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던 봉사자들은 스님과의 사진 한 장으로 그 노곤함이 모두 녹아나는가 봅니다. 모두들 얼굴에 환한 웃음이 가득했습니다.nbspnbspnbsp봉사자들을 격려한 후 서초구민회관을 나온 스님은 밤 10시가 다 되어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하루 종일 집무실에서 새책 원고 집필 작업을 한 후 저녁 7시에는 성남시 수정청소년 수련관에서 성남 시민들을 위해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03. 96,005 읽음 댓글 55개

2015.12.1 (오전) 춘천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춘천 KBS홀에서 춘천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서울로 이동해 저녁에는 서초구민회관에서 서울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춘천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nbspnbsp오늘은 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치자 마자 5시 30분에 울산 두북을 출발해 춘천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도중 소백산을 지나갔는데, 소백산 정상에는 몇 일 전 내린 눈이 아직도 하얗게 쌓여 절경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울산에서는 아침 기온이 0도였는데, 점점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추워지더니 영하 4도까지 떨어졌습니다. 바야흐로 겨울 초입에 들어선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소백산nbsp스님은 어제 하루 종일 김장 준비와 농사일을 하고, 밤에도 밤새 원고 집필 작업을 하셔서 그런지 차 안에서 깊은 숙면을 취하셨습니다.nbspnbspnbsp아침 7시에는 휴게소에 들러 간단히 식사를 한 후 10시가 조금 넘어서 춘천 nbspKBS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춘천 KBS홀nbsp12월의 첫날. 한 달 전부터 춘천정토회 산하의 정토법당에서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오늘 강연을 홍보하기 위해 전단지와 현수막을 들고 춘천 시내 전역을 누비고, 카카오톡으로 지인들에게 열심히 홍보 메시지를 전했다고 합니다. 그 노력의 결실이 바로 오늘입니다.nbspnbsp▲ 시민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춘천정토회 자원봉사자들nbsp호수의 도시 춘천은 안개가 많은 도시인데 오늘도 영하의 날씨에 약간의 안개가 끼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강연장에 모인 봉사자들의 얼굴엔 약간의 긴장감이 묻어났습니다. 긴장 속에서도 서로를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 짓는 모습에 금세 긴장과 추위도 녹아나는 듯 했습니다.nbspnbsp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20대 대학생들, 현수막을 보고 오신 60대 남성분, 지인의 소개로 오셨다는 분, 부모님의 권유로 오셨다는 분 등 많은 분들이 강연장을 찾아 관중이 자리를 꽉 채웠습니다. nbspnbspnbsp총 55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스님 소개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등장하자 관객들은 박수로 스님을 반겼습니다.nbspnbsp먼저 스님은 즉문즉설은 곧 야단법석이라고 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야단법석은 법상을 법당이 아닌 바깥에 내어놓고 불교라는 좁은 주제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 대해 자유로이 이야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다보니 엄숙하기보다는 웃기도 울기도 하며 좀 시끌벅적합니다. 조용해야 할 절이 시끌벅적해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면 ‘지금 야단법석을 하고 있다’고 대답하니까 시끌벅적하면 ‘야단법석이다’고들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곳에서 그렇게 야단법석을 해봅시다. 거룩하고 고상한 이야기만 하지 말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고민이나 의문이 있다면 무엇이든 이야기해봅시다. 그런 대화의 광장이 즉문즉설입니다.”nbsp스님의 말씀대로 오늘은 정말 고상한 법당이 아니라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공개홀에서 야단법석이 펼쳐진 셈입니다. 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마자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총 5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첫번째 질문자는 돈까스 식당을 10여 년 간 운영하고 있는 여성분으로 신 메뉴나 새로운 광고를 제안하면 늘 반대하는 남편에게 화가 나는 자신을 보며 참회의 기도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습니다. 두번째 질문자는 홀시아버지 봉양 문제로 마음의 괴로움을 느낀 여성분이었는데 해결책을 질문했고, 세번째 질문자는 올 2월에 남편의 불륜을 알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갖느라 4살짜리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그 원망을 남편에게 돌리며 화를 내는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네번째 질문자는 외국 항공사에서 10년 정도 승무원으로 일하다 퇴사를 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어떤 곳에 취직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다섯 번째 질문자는 한글 천수경을 읽다가 ‘죄무자성 종심기’로 시작하는 구절이 궁금하다며 그 뜻을 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첫 번째 질문인 식당을 운영하면서 생긴 남편과의 갈등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질문자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 주면서 괴롭지도 않으면서 변화도 가져올 수 있는 일거양득의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참회의 의미도 함께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남편과 작은 식당을 10년째 운영하고 있는데 제가 새로운 메뉴나 광고 방법에 대해 의견을 낼 때마다 남편이 항상 ‘그건 안 돼’라는 말을 먼저 합니다. 어떤 이유를 들어서든지 계속 안 된다고만 하니 저는 변화를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많았지만 거의 해보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맞서 싸워도 보았지만 이제는 제가 점점 포기하다 보니 남편에게 불만이 쌓여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게 됩니다. 어떨 때는 아이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물건을 집어던질 정도로 화를 주체하기 어렵고, 화가 날 때 아이들이 옆에 오면 아이들에게도 화를 냅니다. 스님 법문을 들어보면 남편에게 참회기도를 하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다른 분들의 상황은 이해가 되는데, 제 상황에서는 어떻게 참회 기도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기에 여쭙습니다.”nbsp“남편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질문자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솔직하게 말해보세요.”nbsp“둘 다 있다고 생각합니다.”nbsp“질문자의 문제는 뭐예요? 남편의 문제는 뭐고요?”nbsp“저는 제 주장을 많이 하려는 게 문제인 것 같고, 남편은 제 주장을 꺾으려 하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nbsp“남편이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데 질문자가 참회를 한들 어떻게 참회가 되겠어요? 참회한답시고 절하다가 ‘왜 내가 참회를 해야 돼? 남편이 문제지’ 해서 염주를 집어던지게 될 텐데요.” nbspnbsp“어떻게 참회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세세생생 지은 제 죄를 참회합니다’ 하고 30일 동안 아침에 기도하긴 했어요.”nbsp“그렇게 엉뚱하게 기도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억지로 하면 반발심만 생깁니다. 죄 안 지은 걸 지었다, 내가 잘못 안 한 걸 잘못했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염주 집어던지는 건 물론이고 스님까지 미워져요.nbspnbsp그 사람은 그 사람의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지,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라는 것이 참회가 아닙니다. 인천 사람이 서울 가는 길을 묻기에 동쪽으로 가라 했는데, 그걸 본 춘천 사람이 서울 간답시고 동쪽으로 가면 바다에 빠져 죽어요. 참회는 그렇게 무턱대고 흉내 내는 게 아니에요. 인천 사람이 서울 가려면 동쪽으로 가야 하지만 춘천 사람은 정반대인 서쪽으로 가야 하잖아요. 그렇게 섣불리 접근하면 안 돼요.nbspnbsp우선 물어볼게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지난 10년 동안 남편이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장사를 했는데 가게가 망했어요? 안 망했어요?”nbsp“아직 망하지는 않았어요.” nbspnbsp“망하지는 않았지만 질문자에게는 자기 의견대로 했으면 가게가 더 잘 됐겠다는 생각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남편은 자기 생각대로 했기 때문에 안 망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수많은 가게가 장사를 접는 가운데서도 우리가 이나마 안정되게 사는 것은 내가 고집해서 이렇게 꾸려온 덕분이다’라는 생각이 있어요. 그런데 질문자 생각대로 해서 잘 됐을지, 망했을지, 남편 생각대로 해서 발전을 못한 것인지, 안 망하고 유지된 것인지는 지금 알 수 없어요. 누가 옳은지 객관적으로 증명할 길이 없잖아요.nbsp그러니 이 문제만을 놓고 볼 때 남편 입장에서는 그래도 자기 생각대로 해서 아내를 말렸기 때문에 이만큼 유지한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아요. 남편하고 살아보지도 않고 가게를 10년간 지켜보지도 않은 스님이 어떻게 잘 아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오늘 집에 가서 술상을 잘 차려 대접하고 남편이 취기가 돌 때 슬쩍 말을 붙여보세요.nbspnbsp‘여보, 나는 그 동안 내 식대로 했으면 가게가 잘 되었을 거라는 생각밖에 안 해서 당신한테 화도 내고 당신을 미워도 했는데, 오늘 스님하고 대화하다 보니 내 생각대로 해서 오히려 망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어요. 나는 변화를 추구하고 당신은 안전을 추구했는데 지금 가게가 안전한 것은 당신 덕택인 것 같아요.’ 이렇게 반성하는 자세로 말을 붙여보세요. 꼭 ‘내가 뭘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당신 마음을 몰라줬다’는 뜻에서 이렇게 이야기해보세요. 그러면 ‘그걸 이제야 알았냐? 당신은 스님 말은 들으면서 내 말은 아무리 해도 안 듣더라.’ 십중팔구 이렇게 나올 겁니다.nbspnbsp남편이 가게의 발전을 반대하거나 가게가 망하기를 바랄 아무런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도 질문자를 말린다는 것은 남편의 성격이나 가치관이 모험보다 안전을 중요시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이미 장사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안전하리라는 것을 전제로 두고 변화와 도전을 중요시하는 편입니다. 질문자가 나쁜 건 아니에요. 그러니 반성할 이유는 없습니다.nbspnbsp이 세상에서는 안정과 변화가 모두 필요해요. 안전을 중요시하는 쪽을 보수, 좀 바꿔보자는 쪽을 진보라고 합니다. 한쪽이 옳고 다른 쪽이 그른 게 아니에요. 안전 위에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안전만 고집하면 사회가 정체되고, 변화만 주장하면 사회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이든 사람은 대체로 안정을 추구하려 들고, 젊은 사람은 변화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대체로 변화를 추구하고, 내륙에 사는 사람은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이 큰 편입니다. 가진 게 좀 있는 사람은 안정을 추구하고, 아직도 더 가지고 싶은 사람은 변화를 추구합니다. 어차피 지금도 불안정하기는 매한가지니까 이리 되든 저리 되든 한번 도전해보자고 생각하거든요.nbspnbsp북한 안에서도 일반 국민들은 변화를 추구하고 권력자들은 안정을 추구합니다. 남북을 비교해 보면 삶이 불안정한 북한 쪽이 훨씬 더 변화를 추구하고요. 8월 25일에 남북 협상이 타결되었을 때 우리는 전쟁을 피했다고 안도했지만 북한 주민들은 엄청나게 실망했어요. 꼭 전쟁을 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워낙 살기가 힘드니까 남북 갈등으로 꽉 짜인 조직이 느슨해지면 전쟁을 하든 중국으로 도망가든 어떤 변화든 시도하고 싶었으니까요. 전쟁이 나면 지금의 삶조차 보전이 안 되는 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심리가 그렇습니다.nbspnbspnbsp질문자는 변화를 추구하고 남편은 안전을 추구합니다. 아마 가족 전체 분위기나 자라난 환경도 많이 달랐을 거예요. 이럴 때 둘이 갈등을 일으키면 변화를 추구하는 쪽이 안달하게 됩니다. 지금 정계를 봐도 야당 의원들이 안달하지, 대통령과 여당은 느긋하잖아요. 안정을 추구하는 쪽은 이미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상대편이 뭐라고 해도 신경을 안 씁니다. 바깥에서는 변화를 추구해야 된다고 애쓰다가 안 되면 좌절하고 화도 내게 되죠.nbspnbsp그러나 이러면 요란하기만 하지 실제 변화가 거의 없어요. 질문자가 화를 내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성질을 부리는 것은 질문자가 원하는 식당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어요. 변화를 추구할 수 없으니까 스트레스를 받아서 화가 난다는 심정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식당에 변화를 가져오기는커녕, 오히려 아내가 하자는 대로 하면 식당이 망할 것이라는 남편의 불신을 강화할 뿐입니다. 물건을 집어던진다는 것은 자기 성질대로 안 되면 미쳐 날뛴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식당을 맡기겠어요?nbspnbsp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남편 말을 따라도 지난 10년간 식당은 유지되어 왔으니 앞으로 남편 말을 따르면 10년은 더 유지될 거예요. 이 사람은 안전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니까 질문자가 원하는 만큼 변화는 못 시켜도 안전은 장담할 수 있잖아요. 새로운 안을 낼 때는 항상 안전을 기본으로 해서 변화를 추구해야 해요. 그러니 남편의 반대에는 안전을 중요시한다는 좋은 점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럴 수 있겠다’ 하고 받아들이는 게 필요합니다. 질문자의 의견이 안 받아들여져도 나쁜 게 아니라는 점을 알고, 지금처럼 미쳐 날뛰는 것을 그만둬야 해요.nbsp질문자의 화는 남편의 고마운 역할에 대한 질문자의 이해 부족으로 생겨난 화입니다. 질문자가 뭘 해보려는 게 잘못된 게 아니라, 남편의 성질을 질문자가 이해하지 못해서 남편을 나쁘게 생각하는 게 잘못됐다는 겁니다. 이제 뭘 참회해야 하는지 이해하시겠지요? 잘못이 반반씩이라며 참회를 하면 절을 하다가도 ‘나만 잘못했냐? 너도 잘못했잖아’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회가 안 돼요.nbsp두 번째, 변화를 추구하지 않더라도 남편을 미워할 일은 아닙니다. 어차피 지난 10년간 변화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화하기 어렵다면 싸우면서 변화 안 하는 것보다 안 싸우면서 변화 안 하는 게 나아요. nbspnbspnbsp질문자는 변화도 못 시키면서 싸움만 일으켰으니 어리석다고 할 수 밖에요. 지혜로운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냥 살든지, 싸우지 않고도 변화를 이루어냅니다. 나도 좋고 너도 좋은 최상책은 싸우지 않고 변화시키는 것이에요. 중책은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싸우지는 않는 것이고, 하책은 싸우면서 그대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건 아무 쓸모없는 짓이에요. 질문자는 지금까지 쓸모없는 짓을 해온 셈입니다.nbsp남편 말을 들어서 지금까지 안 망하고 잘 해왔으니 고맙게 생각하고, 이제 내가 어떤 시도를 해도 남편이 항상 안전은 담보해주겠거니 하고 고맙게 생각하세요. ‘남편은 사실 고마운 사람인데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뭘 반성해야 할지 알 수 있어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하면 그게 나한테 받아들여지지 않아요.nbspnbspnbsp변화를 시도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 조금씩, 편안하게 시도해 보세요. 메뉴가 10가지 있다면 한꺼번에 3가지를 바꾸자고 하지 말고 하나만 실험삼아 해보자고 제안하는 겁니다. 기간도 한 달이든 석 달이든 정해서 딱 그만큼만 해보고 별로 손님이 없으면 그만두겠다거나, 주문이 복잡해지면 질문자가 시험 메뉴를 맡겠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안전에 위험을 주지 않는 선에서 실험적인 방법을 제시하면 남편이 생각하기에 조금 쓸데없다 싶더라도 그 정도로는 가게가 어려워지지 않겠다 싶어서 허락해줄 겁니다. 그렇게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게 좋아요. 하나도 안 된다는데 한꺼번에 3개를 바꾸려 들면 안 돼요. 그러니 처음에는 하나만, 그것도 기한을 정해두고 제안하세요. 재료 양도 하루 몇 인분만 준비해서 팔겠다고 제한하고, 바깥에 홍보하지 말고 식당 안에 ‘특별 메뉴’라고만 붙여놓고 실험삼아 해보는 거예요. 그래야 실패해도 부담이 적어요. 괜히 떠벌려서 했다가 실패하면 ‘내 말 안 듣고 까불더니 그것 봐라’ 이런 소리 듣습니다. nbspnbspnbsp그렇게 실험적으로 해보고, 하나가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 봐라, 되지? 내 말대로 하면 다 됐을 텐데 당신 때문에 못 했잖아.’ 이러고 성급히 일을 벌리면 안 돼요. ‘실험해보도록 허용해줘서 고마워. 당신 협력 덕분에 잘 됐네’ 이렇게 칭찬해주고, 정식 메뉴로 올리고 좀 지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여보, 이런 것도 실험 한번 해볼까?’하고 다음 안을 내야죠.nbspnbsp지난 10년 동안 이렇게 했다면 벌써 메뉴를 다 바꾸고도 남았어요. 싸울 필요도 없고 애들한테 성질낼 필요도 없었는데 질문자가 바보같이 한 거예요. 그러니 ‘내가 어리석어서 괜히 분란을 일으켰습니다. 남편 마음을 몰랐습니다’ 이렇게 참회를 해야 해요. 남편이 적도 아닌데 내 인생을 왜 반대하겠어요?nbspnbsp아이가 강가에서 놀고 싶다고 하면 부모가 허락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잘 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더 많이 살아본 부모가 보면 위험해 보이니까요. 부모는 항상 자식의 안전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어릴 때는 부모 말을 듣는 게 좋아요. 그런데 나이 들면 부모 말을 들으면 망해요. 부모는 안전밖에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이란 때로는 도전도 해야 하고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데, 자식에게 위험을 감수하라는 부모는 하나도 없습니다. 나이 80인 어머니가 나이 60인 아들더러 길조심하라고 하잖아요. 그러니 부모 말을 다 들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부모가 그 말을 잘못 한 건 아닙니다. 그게 바로 부모의 심정이란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다녀오겠습니다’ 이렇게 말해야지 ‘제가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그러세요’하고 화를 내면 안 돼요. 그러나 부모가 시키는대로 늘 조심만 하면 인생에 비전이 없죠. 그러니 좀 거역해도 괜찮습니다.nbspnbsp거기다가 부모가 아닌 남편과는 의견이 다를 때 더 조율하기가 어렵죠. 그래서 질문자가 가끔 의견을 내서 실험삼아 해보자고 제안하고, 그것마저 못하게 하면 질문자가 하고 싶은 요리를 집에서 그냥 만들어 식탁에 올리세요. 만들겠다고 미리 말하면 또 수작부린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냥 요리해서 내놓고 남편이 ‘이거 맛있네’ 하면 ‘그래? 그럼 우리 가게에서 잠깐 해볼까?’ 이렇게 접근해야죠.”nbspnbsp“네. 감사합니다.” nbsp스님이 얘기해 준 갈등하지 않고 변화시켜 나가는 방법에 대해 질문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반가운 화색을 내비쳤습니다. 청중들도 스님이 제시한 방법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공감의 박수를 쳤습니다. nbspnbspnbspnbsp스님은 마지막 다섯번째 질문자의 ‘죄무자성종심기’라는 표현이 포함된 천수경 한 구절의 뜻을 질문한 내용에 답하면서 앞에서 질문한 남편과의 갈등 해결법이 어떤 교리와 원리에 따라 설해진 것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남편과의 갈등과 이에 대한 스님의 처방이 불교 교리와 이치적으로 딱 맞아떨어지면서 그 명쾌함에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nbspnbspnbsp“천수경을 읽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 질문드립니다. ‘죄업이란 자성이 없어 마음따라 일어남에, 마음 자체가 멸한다면 죄도 또한 사라지니, 죄도 없고 마음도 멸해 한적해진 본래 자리, 이 도리를 증득하면 참된 참회가 되오리다.’ 이 구절의 뜻을 도저히 모르겠습니다.”nbsp“여기 있는 컵을 물병과 비교해보면 컵이 작습니다. 이 뚜껑과 비교해본다면 컵이 큽니다. 그런데 컵만 딱 들고 보면 이 컵은 커요? 작아요?”nbspnbsp“잘 모르겠습니다.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합니다.”nbspnbsp“질문을 잘 듣고 다시 대답해보세요. 이 컵이 커요? 작아요?”nbsp“뭐와 비교하느냐에 따라... 잘 모르겠습니다.”nbsp“질문을 잘 들으세요. ‘이 컵이 커요? 작아요?’라고 물었으니 답은 ‘크다’, ‘작다’ 둘 중 하나잖아요. 뚜껑과 비교해 물으면 크다고 대답하고, 물병과 비교해 물으면 작다고 대답할 텐데, 컵만 갖고 물으면 크다 할 수도 없고 작다 할 수도 없으니까 그대로 대답하면 되죠.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닙니다’ 또는 ‘크다 할 수도 없고 작다 할 수도 없습니다’라는 대답이 됩니다. 이것이 묻는 질문의 언어를 빌려서 대답하는 방식이에요. 이걸 한자로 표현하면 ‘비대비소’입니다.nbspnbsp우리가 일상생활을 할 때는 ‘큰 컵’ 혹은 ‘작은 컵’이라는 표현을 일상적으로 씁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을 할 뿐이지, 실제로 이 컵은 크다 할 수도 없고 작다 할 수도 없습니다. 그때그때의 인연을 따라 크다고도 불리고 작다고도 불리는데 그것은 그런 인연에서 내가 인식을 어떻게 했느냐를 표현한 거예요. ‘크다’, ‘작다’, ‘잘했다’, ‘못했다’, ‘잘생겼다’, ‘못생겼다’ 이런 표현들은 모두 객관적인 상황이 아니라 인식상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일체유심조라고 합니다. 다 마음이 짓는 바, 즉 인식상의 문제란 말입니다.nbsp아까 질문하신 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내가 의견을 냈는데 남편이 안 받아줍니다. 내 입장에서 보면 내가 옳고 남편이 틀렸어요. 이는 지금 컵과 물병을 놓고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크기가 다른 것과 같습니다. ‘이쪽이 옳으냐, 저쪽이 옳으냐’는 어느 쪽을 기준으로 해서 보느냐에 따라 인식이 달라요. 그래서 실제로는 옳다 할 것도 없고 그르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 컵이 크다고도 할 수 없고 작다고도 할 수 없다는 것과 같아요.nbspnbsp‘이 컵이 새 것이냐, 헌 것이냐’라고 물어도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인연이 되느냐에 따라서 새 것이라고도 말하고 헌 것이라고도 말하지만, 이 자체만 가지고 물으면 새 것이라 할 수도 없고 헌 것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무겁다고도 할 수 없고 가볍다고도 할 수 없고요. 뭘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옳으니 그르니, 맞느니 틀리느니, 잘했느니 잘못했느니 하는 게 다 마음이 짓는 바입니다. 인식상에서 생겨나는 문제이지, 존재 자체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nbspnbsp그러면 이 존재 자체를 두고는 뭐라고 할까요? 묻는 말을 따라서 표현하자면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라 해서 금강경에서는 ‘비대비소’라고 표현합니다. ‘반야심경’에서는 이를 ‘공’이라고 표현합니다. ‘크냐, 작냐?’라고 물으면 ‘공하다’라고 대답합니다. 이건 철학적인 용어예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다, 옳은 것도 아니고 그른 것도 아니다, 이런 모든 것을 한 마디로 ‘공이다’라고 표현하는 거예요. 선에서는 이것을 두고 ‘다만 그것이다’라고 표현합니다. ‘크냐, 작냐?’라고 물어도, ‘옳으냐, 그르냐?’라고 물어도 ‘다만 그것이다’라고 해요. 묻는 말에 끌려가지 않습니다.nbsp질문한 ‘천수경’의 구절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nbspnbsp죄무자성종심기 심약멸시죄역망nbsp죄망심멸양구공 시즉명위진참회nbsp죄라고 하는데 죄라고 할 실체가 없어요. 무자성, 즉 ‘이것이 무엇이다’라고 할 스스로의 성품이 없다는 말입니다. 죄라는 것은 마음을 따라서 생겼습니다. 종심기, 즉 마음에서 생겨난 거라는 말이에요. ‘크다’, ‘작다’가 다 마음에서 생긴 거예요. 이 마음은 어리석은 마음이에요. 딱 깨쳐서 어리석은 마음이 사라지면 죄라고 할 것 또한 사라집니다. 그래서 심약멸시죄역망이라고 해요. 또 죄망심멸양구공이라 합니다. 어리석은 마음도 사라지고 죄도 사라져서 그 자리가 텅 비었다는 말이에요. 즉 제법이 공하다는 말입니다. 시즉명위진참회, 즉 이를 일러 진정한 참회라고 합니다.nbspnbspnbsp‘내가 잘못했습니다’ 하는 게 참회가 아니에요. ‘내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하면 참회가 안 돼요. 아까 질문자가 ‘남편도 반 잘못하고 나도 반 잘못했다’라고 이야기하잖아요. 내가 99개 잘못하고 남편이 1개 잘못했다 해도, 이렇게 서로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내가 99번 참회할 때 남편도 1번 해야 하는 거예요. ‘나는 하는데 너는 안 하냐?’ 이런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참회가 되겠어요? 그러니 남편이 옳다 할 것도 없고 내가 옳다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나를 기준으로 해서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이렇게 잘못 생각하고 상대를 미워한 겁니다. 이건 내 잘못입니다.nbspnbsp새로운 메뉴를 만들겠다고 한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남편을 미워한 게 잘못됐다는 거예요. 미움은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어요. 그러니 ‘내가 어리석어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했습니다. 참회합니다’ 이렇게 참회해야 합니다. 내가 변화를 바라고 시도했다고 해서 잘못했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nbspnbsp그래서 ‘내가 어리석어 잘못 알고 내 생각을 고집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참회해야 해요. 그게 ‘죄무자성종심기 심약멸시죄역망 죄망심멸양구공 시즉명위진참회’입니다. 잘못을 서로 반반씩 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참회가 되겠어요? nbspnbspnbsp그리고 사람이 살다 보면 한쪽이 죄다 잘못하고, 다른 한쪽이 죄다 옳은 일을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본질은 옳고 그름이 없고 다 제 식대로 하는데 내 기준에서 보니까 잘못돼 보여서 내가 미워한 거예요. 그렇게 미워하면 어리석은 짓일 뿐더러 자기가 괴로워요.nbsp오늘 질문자들에게 이야기한 것도 모두 사실은 이 교리를 쉽게 설명해서 현실적으로 이해하도록 한 겁니다. 자기 입장만 생각하던 것에서 벗어나 남편의 입장에서, 시아버지의 입장에서,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지 돌아보게 한 거예요. 이렇게 자기 자리에서 한 발 물러나서 전체를 보고 ‘아, 그게 아니네’ 하고 알아야 합니다. 원리를 직접 깨쳐야만 마음의 괴로움이 없어집니다.” nbsp질문자의 구체적인 사례에 스님의 교리 설명까지 함께 합해지니 이치가 딱 들어맞아졌습니다. 청중석에서는 절로 탄성과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자 2시간 10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강연을 마치면서 이런 원리를 알아서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nbsp“재미있었어요? 겉으로는 그냥 인생 상담 같지만 다 이렇게 굉장한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원리와 지식을 배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것을 내가 삶 속에서 체득하는 게 중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할 수 있으니까 여러분들도 그렇게 해서 행복하게들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모두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스님의 간곡한 호소에 청중들도 감사의 마음을 담아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이어서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길게 늘어선 줄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스님은 손가락에 불이 날 정도로 사인을 쉬지 않고 해주면서도 강연장을 찾아와 준 한 명 한 명에게 일일히 눈을 마주쳐주며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nbsp사인하는 도중에 아기를 엎고 온 엄마가 보이자 “아기를 기쁜 마음으로 키워야 해요” 라고 응원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스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오늘 강연을 준비한 춘천정토회 소속의 자원봉사자들 모두와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활짝 웃는 얼굴에는 보람과 기쁨이 가득 묻어 났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준비한 춘천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nbspnbsp오늘 춘천 즉문즉설 강연은 강원경기동부지부에서 준비한 올해의 마지막 강연이었습니다. 무사히 강연을 마친 것을 축하하며 봉사자들은 스님과 종강연 기념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정토불교대학에서 가장 최고령 학생인 조연정님이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꽃다발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 스님께 꽃다발을 전달하는 조연정님nbspnbsp이어서 춘천정토회의 한 봉사자가 집에서 직접 만들어 온 떡케이크를 컷팅하며 축하의 마음을 함께 나누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께 올리는 감사편지를 춘천정토회 김영선님이 읽었습니다. 김영선님은 “스님의 법문을 듣고 어머니, 동생과의 흐트러진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었고, 깊은 참회와 더불어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삶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하면서 눈물을 글썽였고, “스님의 하루를 읽으며 어리석은 중생을 깨우쳐주고자 하는 스님의 간절한 마음을 매일 느낄 수 있었다”고 하면서 “이제는 저희들이 스승님의 뒤를 따라 전법과 평화통일의 원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다짐을 말했습니다. 감사편지를 다 읽고 울먹이며 자리에 앉으려는데 스님은 이리 오라고 부르며 함께 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nbspnbsp▲ 감사 편지를 낭독하는 김영선님nbspnbsp이어서 스님은 회원 수가 많지 않고 열악한 조건에서 활동하고 있는 춘천정토회 봉사자들을 위해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이렇게 활동하는 것은 장한 일이에요. 겨울이 없으면 좋을 것 같지만 겨울이 없으면 오히려 성장에 장애가 됩니다. 제가 이번에 고소며 달래, 상추 등을 키워봤는데 요즘 날이 따뜻해서 그런지 가을 상추를 먹어보니 향기가 없어요. 고소도 원래 먹기 힘들 만큼 향이 강한 채소인데도 아무런 향기가 없었습니다. 겨울을 지나고 봄에 올라오는 첫 잎이어야 향기가 강합니다. 부추도 그래요. 그래서 봄에 첫 수확한 부추는 사위도 안 준다고들 하지요. 그처럼 우리가 겨울, 즉 고난을 한번 겪어야 합니다. 부처님뿐 아니라 위대한 고승들도 다 한 번씩은 죽을 만큼 어려운 경우를 겪고 나서 새로 태어났습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자면 거듭났어요.nbspnbspnbsp우리 정토회도 처음 시작할 때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처음 포교당을 열고 강의를 시작했을 때 두 명이 왔는데, 첫날 강의를 듣고 한 명이 떨어져나가서 남은 한 명만 데리고 석 달을 강의했어요. 그 사람이 친구들 몇 명을 데려오고 광고도 내어서 다음 석 달은 다섯 명을 데리고 하고, 이렇게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여러분은 그것보다는 낫잖아요. 정토회가 그렇게 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법륜 스님 죽으면 정토회도 허물어질 거다’라고 하지만 그리 쉬이 허물어지지 않습니다.nbspnbsp게다가 처음 시작할 때는 제가 스님이 아니라 머리를 기른 법사인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참여한 사람들은 신심이 굉장히 굳습니다. ‘법륜 스님’이 약간 유명해진 뒤에 온 여러분은 스님에게 무슨 스캔들이라도 생기면 주르륵 떨어져나갈 거예요. 그러나 처음부터 세상에서 안 알아주고 아무것도 없는데도 신뢰를 한 것은 오래 갑니다. 춘천정토회 상황이 어렵다고 나쁘게만 생각하지 마세요. 어려운 가운데서 이렇게 도반들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면 신뢰가 생깁니다. 그런데 어려우면 서로 싸워서 떨어지기도 쉬워요. 세상이 그렇습니다. 동업을 해보면 잘 돼도 싸우고, 안 돼도 싸웁니다. 그런데 동업자들이 일이 안 풀리는 과정을 겪으면서 함께 극복했다면 그게 겨울을 난 뿌리처럼 굉장한 힘이 됩니다.nbspnbsp한국에서 천주교가 좀 강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천주교는 박해와 순교라는 고난을 겪으면서 정착했기 때문에 그 뿌리가 튼튼합니다. 불교도 조선조 500년 간 고난을 겪었지만, 그 고난이 너무 길다보니 자포자기해 버렸어요. 너무 오랫동안 어렵다보니 피폐해져버린 경우이지만 그래도 그 밑바탕에는 고난을 겪은 경험의 힘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 불교도 살아나면 아주 굳건할 거예요. 신라는 불교를 150년간 탄압했습니다. 그 고난을 겪고 일어났기 때문에 신라 불교가 백제나 고구려 불교보다 발전한 거예요. 고구려와 백제는 불교가 처음부터 왕궁으로 들어와 환영받았기 때문에 위기가 닥치자 금방 훼손되었어요.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이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 성장하는 게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정토회 40여 개 지부 중 춘천정토회가 규모 면에서는 끝에서 순위를 다툴 만큼 작지만 정토회 수행의 묘미와 신뢰도는 으뜸이다’ 이런 자세로 단결해서 해나가시기 바랍니다.nbsp그리고 신구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뒤에 온 사람들은 먼저 와서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들을 존중해주고, 먼저 온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이 참여한 것을 기뻐하며 새로운 사람들이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줘야 해요. 오늘 함께한 홍천 법당이나 인제에서 오신 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어려운 데서 시작한 사람들은 참 소중한 사람들입니다.nbspnbspnbsp그런데 이렇게 사람 수가 작고 어려운 조건에서는 고집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걸 일으켜 세워내지 못해요. 어떤 경우에는 고집불통이 나쁜 역할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고집불통이 좋은 역할을 합니다. 고집한다는 자체가 나쁜 게 아니에요. 주먹을 무뢰배에게 쓰면 정의의 주먹이 되지만 아내에게 쓰면 폭력이 되는 것과 같아요. 어떤 인연에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역할이 되기도 하고 나쁜 역할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연이 소중합니다. 그런 걸 명심하시고, 춘천정토회가 오늘을 계기삼아 잘 해나가시길 바랍니다. 춘천정토회 화이팅”nbsp“화이팅” nbsp▲ 다함께 화이팅을 외치는 춘천정토회 자원봉사자들nbsp스님의 파이팅 구호에 봉사자들도 큰 힘을 받았는지 함박 웃음을 머금으며 화이팅을 함께 외쳤습니다. 이 기세라면 춘천정토회도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복전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고난을 겪으며 거듭나야 강해질 수 있다는 말씀이 계속 가슴에 남았습니다.nbspnbsp이렇게 종강연 기념식을 마친 후 스님은 곧바로 춘천을 출발했습니다. 서울에는 오후 3시 20분에 도착해서 연이어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가졌습니다. 3시간 동안 미팅을 갖다보니 오히려 강연을 할 때보다 목이 더 아픈 것 같아 보였습니다.nbspnbsp평화재단에서의 미팅을 마치고 저녁 7시부터는 서초구민회관에서 서울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 nbsp※ 2015년nbsp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이제 마지막 3개 도시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올해 마지막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nbspnbspnbsp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nbsp

2015.12.02. 78,297 읽음 댓글 61개

2015.11.30 농사일 그리고 창원 통일의병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새벽부터 오후까지 김장 준비와 농사일을 한 후 저녁 7시부터는 창원대학교 종합교육관에서 창원 시민들을 위해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서울에서 미팅을 마치고 새벽 2시에 울산 두북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눈을 붙인 뒤 4시에 일어나 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치고 곧바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아침 식사를 간단히 한 후 7시부터 김장 준비를 했습니다. 먼저 그동안 텃밭에서 농사 지은 배추와 무를 뽑았습니다. 스님은 배추와 무를 뽑아 김장을 언제할 수 있을지 시간을 내어보려고 여러 차례 기회를 엿보았는데 드디어 오늘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농사일을 위해 묘당 법사님과 자광 법사님, 여광 법사님, 희광 법사님도 함께 했습니다.nbspnbspnbsp배추를 쑥쑥 뽑아내는 스님의 얼굴에는 보람과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은퇴하면 농사꾼이 되는 것이 꿈이라는 스님의 말씀은 정말로 말씀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nbspnbsp스님이 뽑은 배추를 법사님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칼로 썰어서 소금에 절였습니다. 배추를 반으로 가르자 속에 노란 잎들이 꽉 찬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스님은 매일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해야하기 때문에 배추를 심어 놓고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는데 법사님들은 속이 노랗게 잘 익은 모습을 보고 “다행이다” 라며 반갑게 웃었습니다.nbspnbsp▲ 소금에 절이기 위해 배추를 자르고 있는 법사님들nbsp큰 대야가 없어서 배추는 욕조에 소금물로 재워 두었습니다. 김장을 하려면 배추를 최소 24시간 이상 소금에 절여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본격적인 김장은 내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nbsp그리고 무를 뽑았습니다. 스님은 무를 뽑으면서 “둔턱을 더 높이 만들어주지 못해서 더 클 수 있는데 못 컸다”며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내년엔 더 잘해보자” 며 웃음을 머금고, 뽑은 무를 가지런히 모아서 흙을 털어내고 씻었습니다. 아직 더 클 수 있을 것 같은 몇몇 작은 무는 잎을 더 솎아주고 그대로 두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오늘의 가장 큰 일감은 김치를 보관할 장독을 땅에 묻는 일이었습니다. 냉장고에 공간이 부족해 장독을 땅에 묻기로 한 것입니다. 장독이 생각보다 길쭉해서 꽤 깊이 땅을 파야 했습니다.nbsp▲ 김치를 보관할 장독 구덩이를 팠습니다.nbspnbsp땀을 뻘뻘 흘리며 부지런히 땅을 팠습니다. 스님은 일일이 손으로 돌을 고르고 대야로 흙을 퍼내면서 “완전히 인도식이지” 라고 하면서 웃었습니다. 장독을 땅에 잘 묻고 나니 어서 빨리 김장 김치를 넣어 두고 싶어졌습니다.nbspnbsp▲ 열심히 땅을 팠더니 장독이 들어가기에 안성맞춤이 되었네요nbsp바깥 날씨가 너무 추워서 손이 얼얼 했는데 추위에 떠는 법사님들을 위해 스님은 장작을 가져와서 불을 지펴 주었습니다. 장작이 타오르자 감자와 고구마도 함께 구웠습니다.nbspnbsp▲ 추위를 피하기 위해 장작불을 지펴주고 있는 스님nbspnbsp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몸을 따뜻이 하다가 감자와 고구마를 꺼내었습니다. 김이 모락 모락 나는 고구마를 한 입 물으니 단맛이 일품이었습니다.nbspnbsp▲ 맛있게 구워진 고구마nbspnbsp이렇게 김장을 위한 준비가 일단락 되자 법사님들은 탑곡 정토수련원으로 감을 따러 갔고, 스님은 텃밭을 정비하는 일을 했습니다. 우선 화분에 담긴 국화가 모두 꽃이 져서 땅으로 옮겨 심는 일을 했습니다. 꽃이 피었던 부분을 모두 가위로 잘라 내고, 뿌리만 살려서 화단에 나란히 심었습니다. 내년에 다시 예쁜 꽃으로 피어나주길 바래봅니다.nbspnbspnbsp▲ 철 지난 국화 화분을 다시 땅에 심어주었습니다.nbspnbspnbsp정성껏 심은 국화에 물도 시원하게 뿌려주었습니다. 마음이 가볍고 시원해지는 것을 보니 농사일이야 말로 정말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해준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거리를 만들며 하나씩 하나씩 정돈을 해나갔습니다. 창고에 불이 안 들어온다고 하자 드라이버를 가져와서 차단기를 열고 전선의 연결 부위를 수리했습니다.nbspnbsp▲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아서 차단기를 점검했습니다.nbspnbsp빨래줄이 헐렁하다고 하자 더 팽팽한 줄을 가져와 못을 박고 줄을 이었습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뭐든지 뚝딱 뚝딱 일사천리로 일을 하시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부지런함이 몸에 배어 있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 빨래줄을 설치하기 위해 나무에 못을 박았습니다.nbspnbspnbsp오후에는 뒷 담벼락에 있는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땄습니다. 스님은 다람쥐처럼 날렵하게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주전자에 밧줄을 묶어서 주전자가 다 채워지면 아래로 내려주었습니다.nbspnbsp▲ 순식간에 감나무에 올라간 스님nbspnbsp가지가 꺾어지는 소리가 몇 번 나더니 금새 주전자가 가득 채워졌습니다. 아주 숙련된 솜씨가 느껴졌습니다. 스님은 어릴적부터 이 감나무에서 열린 감을 매년 맛있게 먹었다고 합니다.nbspnbspnbsp드디어 감나무 위에 달린 감을 모두 따내고 마지막으로 까치밥 하라고 하나를 남겨 둔 뒤 나무에서 내려왔습니다.nbspnbsp마당에서는 스님이 딴 감과 법사님들이 탑곡 정토수련원에서 따온 감을 품질에 따라 분류를 한 뒤 등급을 매기고 박스에 가지런히 담는 일을 했습니다. 순식간에 56개의 박스가 만들어 졌습니다.nbspnbsp▲ 마당에서 감을 분류하고 있는 법사님들nbspnbsp스님은 김치며, 감이며 모두 정성껏 포장해서 인연이 닿는 몇몇 분들에게 선물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냥 도움만 받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감사한 마음을 정성으로 표하고자 하는 스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모든 일을 마치고 법사님들은 문경으로 돌아가시고 스님은 몸을 씻고 머리를 깍은 후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오후 5시가 되어 저녁 강연이 열리는 창원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울산에서 창원으로 가는 차안에서는 계속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11월까지 집필을 끝내주기로 약속한 원고여서 11월의 마지막날인 오늘까지 많은 부담이 되었나 봅니다. 강연장에 조금 일찍 도착했지만 차에서 내리지 않고 강연 직전까지 원고를 보았습니다.nbspnbsp▲ 차를 타고 이동하며 원고 교정에 여념이 없는 스님nbspnbsp가을의 끝자락 11월의 마지막 날인 30일입니다. 다행히 갑자기 몰려왔던 매서운 추위도 잠시 풀리고 가을 날씨답게 청명한 날이었습니다. 강연장에 일찍부터 모인 통일의병 봉사자들은 ‘지금 이 순간이 통일의 시작입니다. 방긋 웃으며 일하겠습니다.’ 라는 명심문을 합창한 후 차분히 자신의 자리에서 강연 준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nbspnbsp▲ 창원대학교 종합교육관nbspnbsp창원대학교 종합교육관에는 오후 6시가 되어 시민들의 입장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을 동반한 젊은 부부, 대학생인 듯한 젊은이들, 손주와 손잡고 함께 온 할머니, 성인이 된 아들 둘을 데리고 온 아버지 등등 성별도 다양하고, 세대도 다양한 사람들이 입장하였습니다. 500석이 빈자리 없이 모두 들어찼습니다. 보통은 여성 관객이 많았었다면 이번 강연은 성별도 세대도 골고루 섞여 있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의 강연을 듣기 전 먼저 구성진 소리공연이 있었습니다. 춘향가와 진도아리랑 소리에 공연장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었습니다. 특히 아리랑은 청중과 함께 박수치며 불렀는데 시작부터 세대와 성별을 뛰어넘는 통일의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nbspnbspnbsp통일의병 영남본부장의 인사말이 있고 나서, 드디어 박수와 함께 스님이 등장하였습니다. 먼저 스님은 자리가 없어 2층으로 올라간 청중들을 올려다 보며 “거기 있으면 내 머리통밖에 안 보일텐테” 하며 청중을 웃게 하더니, 오늘은 통일이야기가 주이고 인생 이야기는 부수적인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저녁식사는 다들 했는지 안부를 물어본 후 오늘 스님도 바쁘게 일하다가 저녁도 못 먹고 왔노라며 가볍게 인사를 건넸습니다.nbspnbsp“저녁식사는 하셨어요? 못 드신 분도 계시네요. 집에 가서 드세요. 저도 저녁 못 먹고 왔어요. 오늘은 종일 열심히 일하다가 왔습니다. 제가 일하길 좋아하면서도 매일 강의 다닌다고 못 했는데, 오늘은 제가 그간 농사지은 무도 뽑고, 배추도 뽑아서 절이고, 감나무에 감도 따고, 땅 파서 독도 묻고, 꽃이 진 국화도 화분에서 땅으로 옮겨 심었어요. 새벽부터 종일 일하다가 강의시간 맞춰서 세수하고, 머리 깎고, 급하게 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저녁을 못 먹었습니다.” nbsp스님의 환한 웃음과 함께 분위기도 밝아지고 드디어 본격적으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첫 번째 질문자는 20대의 청년이었는데 지금 용접 일을 배우고 있으며 의지가 약해 무엇이든 중간에 포기하는 것이 고민이라고 하였습니다. 두번째 질문자는 스님이 덕을 바라고 결혼하지 마라고 했지만 현실은 결혼이 비즈니스인 것 같다고 스님에게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 질문자는 아버지와의 갈등이 고민인 30대 남성이었습니다. 현재 가게를 꾸리며 가족의 생계를 도맡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계속 되어온 아버지의 질책과 간섭이 고민이라고 하였습니다.nbspnbsp네 번째 질문자는 핵발전소 반대 운동을 하고 있는데 대중들의 관심이 없어 고민이라며 스님의 핵발전소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법륜 스님을 알고 나서 자신이 많이 바뀌었고 부인에게 법륜스님 얘기도 많이 하고 스님의 법문을 권하기도 하는데 부인이 안티 법륜이라며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스님이 선거를 잘 하면 통일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공약대로 실천하지 않는 후보가 많기 때문에 어떤 후보가 가장 통일 지향적인 사람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nbsp각각의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지만 오늘은 통일 강연이었기 때문에 마지막 통일에 대한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국민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통일지향적인 정부가 들어설 수 있는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통일을 하자는 쪽으로 좋은 공약을 내는 사람을 우리가 투표해서 뽑고 그 사람이 잘 하도록 하면 통일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항상 말씀하셨는데, 공약을 지키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지난 대선에 지금 대통령이 후보로 나왔을 때도 공약은 굉장히 좋았지만 지금은 잘 지키지 않는다고 봅니다. 다음 대선에서도 후보들이 공약은 잘 내었다가도 막상 대통령이 되면 ‘내가 언제 그랬느냐’며 공약과는 전혀 반대로도 갈 수 있을 겁니다. 저희가 어떤 마음의 눈을 가져야 그런 사람을 잘 구별해 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nbsp“우리가 정치를 전문으로 하는 정치조직이 아닌데 현실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치인 아무개가 좋다고 따라다니면 그 정치인의 지지자가 됩니다. 질문자 개인이 ‘나는 정말 아무개가 좋다’라고 하면 개인으로서 자기 마음 따라 하면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정치적 지지 의사를 밝힐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정치인의 지지모임에 들어가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든 통일의병은 시민단체, 즉 공식조직이기 때문에 특정 정치인을 지지할 수는 없습니다. 첫째, 그 사람이 통일을 잘 할 거라는 아무런 보장이 없어요. 게다가 둘째, 선거법을 위반할 수도 있으니까 현실적으로 지지할 수도 없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치활동하려고 의병을 만든 게 아니잖아요. 통일하려고 만든 것이지요. 그러니까 ‘누가 되든 통일을 가장 강력하게 추진할 정부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다 동의합니까?”nbsp“예.”nbspnbspnbspnbsp“지금 스님이 통일을 위해서 막 뛰어다니는 것보다 통일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정부가 더 중요해요. 그러면 외교정책도 통일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됩니다. 중국이나 미국이나 러시아가 통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 되고, 일본과 위안부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본이 통일에 방해가 되지 않고 통일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을 더 우선시해야 합니다. 중국과 경제교류도 중요하지만 중국이 적어도 통일을 방해하지는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nbsp지금 미국 입장에서는 대중봉쇄가 가장 큰 과제니까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자기들 편에 서서 큰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자기네 힘만으로는 좀 달리니까요. 그러려면 일본을 패전국으로 묶어놓은 걸 좀 풀어줘야 해요. 미국만으로는 돈이 부족하니 일본을 재무장시켜서 일본 돈도 좀 쓰고, 일본 군인도 좀 써먹어야죠. 그러니 한국을 비롯한 옆 나라의 우려는 안중에도 없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엄청난 위협이 되는데도 자기네 필요에 의해서만 일본을 재무장시키는 거예요. 그게 끝이 아니라 한국도 미일동맹에 결합하라고 압력을 가하잖아요. 한국과 일본이 원수라서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따로 하려니 미국 입장에서는 작전이 잘 안 되거든요. 그러니 미국이 자꾸 ‘한일 간에 정상회담해라, 군사협력하라’며 엄청나게 압력을 넣고 그 결과 지금 일본과 군사정보교류협정을 맺었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일본이 참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열려 있게 됐어요. 우리로서는 용납이 안 되는 일인데도 미국의 입장에서는 그렇습니다.nbspnbsp이렇게 말려들어서 한반도에 사드까지 배치된다면 중국이나 러시아에게 한국은 이미 미국 편에 섰다고 보일 테고, 중국은 한국과의 경제적 교류나 협력을 다시 고려하겠지요. 또 자기네 말 안 듣는다고 좀 멀리했던 북한을 달래서 자기네 편으로 끌어들일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2, 30년을 내다보면 세계패권을 둔 미중의 경쟁이 강화될 텐데 그 가운데 한국은 미일의 하위변수로, 북한은 중국의 하위변수로 전락해 과거 미소가 경쟁할 때 남북이 그 아래에 있다가 6.25전쟁이 일어났듯이 또 새로운 갈등이 생길 거예요. 그러면 통일은 고사하고 평화조차 유지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6.25전쟁 때보다 화력이 발전했고 집중돼있기 때문에 전쟁이 나면 피해도 엄청나게 더 클 거예요. 이는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우리 민족의 이익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일입니다.nbspnbsp그렇다고 반미를 해도 우리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 지금 중국이 부상하고 있고 미국이 좀 하향세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미국이 더 셉니다. 그러니 지금 중국 편에 서는 게 유리한지도 불확실하고, 지난 50년 간 동맹 관계를 맺어온 미국에 반대하겠다면 여론이 따라주지도 않아요. 반미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습니다.nbspnbsp그러니까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은 자주적 한미동맹을 더 견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관련된 일에서만큼은 우리의 입장을 우선시해 달라. 나머지는 미국의 입장을 따르겠다’라고 해야 합니다. 이게 자주적 한미동맹입니다. 반미하지도 말고, 종속적 친미도 하지 말고, 종속적 한미동맹에서 자주적 한미동맹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통일에 대한 입장만 분명하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nbspnbspnbsp이런 외교적인 문제부터 정부가 통일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야 문제가 풀립니다. 어차피 통일을 남한 중심으로 한다면 첫째, 미국과는 자주적 한미동맹을 해야 하고, 둘째, 북한은 포용해줘야 합니다. 여러 가지 문제와 상황을 객관적으로 고려해보면 남북을 반반 섞어서 통일하는 것보다는 한국을 좀 더 리모델링해서 통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럴려면 북한을 좀 더 포용해 줘야 합니다. 한국이 중심이 된다고 해서 북한 것을 다 무시해 버리면 북한이 무엇 때문에 통일에 참여하려고 하겠어요? 끝까지 대항하지요.nbspnbsp이곳 창원은 옛날에는 가야 땅이었습니다. 가야하고 신라하고 통합할 때 신라 중심으로 통일을 했어요. 대신 가야 측에서는 2가지 요구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첫째는 ‘신분을 보장하라’, 즉 ‘우리 왕족을 다 신라왕족으로 해 달라’였습니다. 둘째는 ‘우리 신앙을 보장하라’, 즉 ‘불교를 공인하라’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신라는 불교를 금지했어요. 신라 안에서는 불교를 요즘 말로 하면 국가보안법으로 금지했으니까 보수세력은 불교 허용을 반대했고 젊은 세력은 찬성해서 갈등을 빚은 끝에 벌어진 일이 이차돈의 순교였습니다. 이차돈이 527년에 순교하고, 528년에 불교가 공인되고, 532년에 가야와 신라가 통일했어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한국 내 사회주의 운동을 먼저 허용해서 북한 사람이 통일 후 여기에서 자기네 정치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또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네 나라 법률에 따라 애국했던 군인이며 경찰을 다 처벌한다면 통일하자고 안 할 거예요. 그러니 신분 보장도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그걸 남한의 보수세력이 엄청나게 반대합니다. 그걸 반대하면 통일은 안 돼요. 그러니까 그것을 수용해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여기서 그만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nbspnbsp그러면 어떻게 설득해야 됩니까? ‘남한 중심으로 통일하면 이런 이점이 있으니 이 정도는 허용해야 한다’는 식으로 설득해서 국민통합으로 가야 해요. 중국한테는 ‘통일 한국은 완전히 친미일변도로 가지는 않겠다. 즉 반중대열에는 서지 않고, 최소한 한일군사동맹은 안 맺겠다’는 약속을 해줘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잘 했니 못 했니 하지만 이번에 미국에 갔을 때 미국이 사드 배치하라고 엄청나게 압력을 넣었는데도 서명하지 않았어요. ‘안 한다’고 결론을 내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한다’는 결론은 안 낸 채 돌아왔어요. 이번에 한다고 결론을 내버렸다면 정권이 바뀌어도 그 결정을 못 뒤집습니다. 그러면 반미가 되니까요. 그러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잘했다고 평가해줘야 합니다. 대통령이 이번에 한 일은 국가를 위해서 잘 한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 정도의 고집이니까 그걸 막아냈지, 보통 사람 같았으면 막아내기 어렵습니다. 내년에는 또 어떻게 넘어갈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번에 서명 안 한 건 잘한 일이에요. 거기에 서명했으면 통일도 물 건너갈 뿐더러 동아시아의 정세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되었을 겁니다.nbspnbspnbsp이렇게 국가가 입장을 확실히 해서 중국, 북한, 미국, 러시아를 설득해야 합니다. 일본하고도 관계를 잘 맺어야 됩니다. 일본하고는 절대로 군사협정을 하면 안 되지만 민간교류 같은 다른 영역은 더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외교든 국방이든 경제든 통일을 우선시하는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를 세워야 합니다.nbsp통일된 뒤에 북한을 개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식목 사업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지금 한국의 인건비는 공공근로를 해도 일당 5만원은 됩니다. 일당 5만원을 주고 북한에 나무를 심으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듭니다. 그런데 지금 북한주민들은 일당이 보통 1달러, 천 원 남짓합니다. 2천원만 주면 북한에 나무도 심고 북한 주민들이 먹고도 살 수 있게 되니 얼마나 효과적입니까? 이처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연결하려면 3조 원이나 5조 원이 든다고 하는데, 그 돈은 향후 10년, 20년 간 물류혁명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본전을 다 뽑을 수 있어요. 돈이 드는 건 맞는데, 그 돈은 다 투자이지 소비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인건비가 비싸서 생산기지 역할을 거의 못 합니다. 생산기지였던 중국도 인건비가 비싸져서 생산기지가 인도로 옮겨가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북한의 저렴한 인건비와 한국의 자본 및 기술이 결합한다면 인도만큼의 규모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생산기지 역할은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nbspnbsp이런 걸 다 정부가 해야 합니다. 우리 같은 민간인이 북한에 가서 누구를 만나고 축구대회를 하는 것은 다 낭만적인 일부분이고, 실제로는 거의 99의 일을 정부가 해야 해요. 그래서 우리가 통일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정부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런 정부를 구성하는 데에 우리의 미래가 달렸으니까 여러분들이 지금부터 전부 각성을 해서 2017년도만큼은 통일을 강력하게 추진할 정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통일을 우선하고 강력하게 추진하는 정치적 발언을 할 만한 정치인을 뽑는다’는 원칙을 가지면 됩니다. 창원에 뭘 유치하겠다는 공약 같은 건 보지 말고요. 우리가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통일의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다음 정부 들어왔을 때 사드 배치를 하기로 한다든지, 북한이 더 이상 혼자 못 버텨서 중국에 고개를 숙여버리면 통일은 물 건너가는 겁니다. 중국과 미국 간에 세력균형이 일어나서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이 몰락해서 다시 세계의 판도가 바뀌는 기회가 온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러기 전에는 통일의 기회가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국가적으로 봤을 때 지금이 기회이자 위기입니다. 위기를 극복하면 기회가 되고, 기회를 놓치면 위기가 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래서 ‘정부한테만 맡겨서는 안 되겠다. 임진왜란 때처럼 의병을 일으켜 구국운동을 좀 하자’ 이렇게 된 겁니다. 우리가 정부군하고 싸우겠다는 게 아니라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자는 거예요. 국가를 구하자는데 여당 편들고, 야당 편들고, 진보 편 들고, 보수 편들면 안 돼요. 진보와 보수, 여와 야, 경상도와 전라도를 떠나서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통일정책을 어느 당이 잘 하겠다거나 누가 잘 하겠다고 따지지 말자는 거예요. 과거는 더 이상 묻지 말고, 누구든 앞으로 통일정책을 가장 확실하게 추진할 사람을 우리가 밀어주자는 겁니다. 그건 우리 국민의 당연한 권리니까요.nbspnbsp그렇게 하자는 거니까 누가 잘 할지 지금 결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여당에서도 야당에서도 대통령 후보들이 나오겠지요. 그때 우리 통일의병 세력이 전국에 100만 표, 200만 표를 갖고 있다면 당선되고 싶은 사람은 우선은 립 서비스라도 우리 주장에 맞게 통일정책을 바꾸겠다고 약속할 겁니다. 다른 당 후보도 마찬가지로 우리 주장에 맞게 바꾸겠다 하겠죠. 그렇게 서로 지지받으려고 경쟁하다 보면 양측의 정책이 엇비슷하게 우리의 주장에 가까워집니다. 그러면 누굴 선택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엇비슷해지면 어느 쪽이 돼도 상관없잖아요. nbspnbspnbsp미리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하려고 하지 마세요. 중심을 딱 잡고 후보들이 끝까지 우리에게 근접해 오도록 양쪽을 끌어당기면 누가 돼도 이미 공약이 비슷해져서 결국 우리가 원하는 통일의 길로 가게 됩니다. 그럴 때 최종적인 판단을 해야겠지요. 최종적인 판단은 여러 가지를 고루 봐야 해요. 결혼할 때도 얼굴만 보거나 언변만 보면 안 되잖아요. 선거기간 동안 겪어보면서 ‘이 쪽은 말은 그럴듯하지만 과거 경력을 보면 나중에 뒤집을 가능성이 있겠다’, ‘이 쪽은 말은 좀 어수룩하지만 진실성이 있어 추진하긴 하겠다’든지 해서 최종 판단을 내려야지요. 그런데 지금은 누가 후보로 올라올지도 모르고 어느 세력이 지지를 받을지도 모르는데 ‘누구 찍자’고 이야기할 상황도 아니니까 지금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지향적 정부를 구성하자’는 것만 확실히 해두면 됩니다.nbspnbsp아내 표 1장도 못 얻는 사람 되지 말고 오늘부터라도 아내에게 잘해줘서 남편 말이라면 아내도 지지하도록 만들어보세요. 지금은 주위 사람들에게 정치 이야기하지 말고 통일 이야기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일단 주위 사람으로부터 호감을 먼저 얻으세요. 스님도 이렇게 즉문즉설 하면서 호감을 얻으면 사람들이 스님 이야기를 더 신뢰해주잖아요.nbspnbspnbspnbsp2017년까지 2년 밖에 남지 않았으니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나 혼자만 하지 말고, 한 사람이 최소한 100명의 지지를 받아와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의병 1만 명을 모으면 100만 명은 움직일 수 있어요. 그런데 원래 진보였던 사람들은 모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굳이 모으려고 하지 않아도 찍을 사람들이니까요. 원래 극보수인 사람도 모을 필요가 없어요. 아무리 설득해도 안 찍을 사람이니까요. 그러니 중도에 있는 사람, 좌와 우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잡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커피 한 잔에도 생각을 바꿀 사람이니까 데려오기도 쉬워요. 데려오기 쉬운 사람이든 어려운 사람이든 표는 똑같이 1표니까 그런 관점을 가지고 하시면 됩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자기 나이 또래의 사람들을 잘 설득해 보세요. 나이 육십을 훌쩍 넘겨버리면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 사람들은 전쟁의 피해를 직접 겪었기 때문에 북한이라고 하면 진절머리가 나는 거예요. 사실 전쟁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전쟁을 더 막아야 하고 평화를 더 사랑해야 하지만, 경험했을 당시에 생긴 증오심과 복수심 때문에 이런 내용을 이해하고 동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nbspnbsp그러니 지금부터 너무 그렇게 미리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큰 틀에서 ‘첫째, 전쟁은 절대로 없어야 된다. 둘째, 통일이 돼야 한다’ 이것만 명심하세요. 통일이 돼야 경제도 살고, 청년 일자리도 생기고, 국제적으로도 자주외교가 가능해지지, 분단된 상태로는 대한민국은 더 이상 전망이 없습니다. 지난 50년 동안은 분단된 상태로도 정치도 발전하고, 경제도 성장하고, 국방도 튼튼해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거의 성장이 끝났습니다. 경제성장 동력이 없어서 경제발전도 둔화되고 있잖아요.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특정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분단된 상태에서 체제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이기 때문에 헌법을 개정해서 권력 구조를 바꾸어서 풀어야 할 문제예요.nbspnbspnbsp안보도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우리의 국방력은 옛날보다 튼튼해졌는데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여러 번 있었습니다. 국방예산이 크게 늘고 신무기도 많고 장병들 훈련도 열심히 하는데 전쟁위험이 오히려 고조된다는 것은 그만큼 안보가 불안해져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모두가 지금 우리가 한계상황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안전도 도모하고 경제도 성장시키고 정치적인 민주화도 심화시키려면 통일의 길로 가야만 합니다.”nbsp스님의 간곡한 호소와 열정적인 강연에 모두들 공감과 지지를 표하며 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국민이 정치인에게 종속적으로 따라가는 모양새가 되면 안 되고, 정치인들이 국민의 눈치를 보고 통일 지향적이 되지 않을 수 없게 해야 한다는 주인된 자세와 관점이 정말 필요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차려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nbspnbsp다소 무거웠던 통일 이야기였는데 스님의 쉽고 명료한 설명 덕분에 청중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연에 잘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약속한 2시간이 모두 지나고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너무 목숨걸고 하려고 애쓰지 말고 웃으면서 통일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당부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재미있었어요?”nbspnbsp“예.”nbspnbsp“통일이야기 하니까 지루했어요?”nbsp“아니오.”nbspnbspnbsp“통일을 너무 목숨 걸고 하려 들지 마세요. 독립운동은 목숨 걸고 했고 민주화운동은 감옥 갈 각오를 하고 했지만 통일운동은 웃으면서 손가락만 가지고 하면 됩니다. 어느 쪽으로 찍을지만 결정하면 돼요. 통일운동이 이렇게 쉬워진 것은 우리 선배들이 독립된 나라도 만들어주고 민주화된 사회도 만들어준 덕분입니다. 그런데 이것조차 안 하겠다면 대안이 없습니다. 의식 있는 사람들이라면 최소한 행동을 해줘야지요. 극단적인 사람은 행동을 잘 하는데, 합리적인 사람은 행동을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아무리 지식이 많고 지성이 뛰어나더라도 행동하지 않는 지성인은 세상의 변화에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nbspnbsp통일은 극단적으로 투쟁할 일도 아니고, 우리가 그렇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혁명이 필요한 게 아니라 혁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합법적으로, 평화적으로, 그리고 대중의 정서에 맞도록 해야 합니다. 자꾸 30년 전 방식으로 하면 대중이 다 떨어져 나갑니다.nbspnbspnbsp그리고 지지의 핵심은 중간층 사람들입니다. 양다리 걸치고 있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야 실질적 승리가 가능해요. 한쪽으로 자꾸 편중되면 선거에서는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념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반대하는 상대편의 이야기도 들어가면서 해야 해요. 반대도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니까요. 상대의 입장을 인정하고 상대의 주장을 귀 기울여 듣되, 본인은 신념대로 자기 갈 길을 간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의견이 다른 사람을 탓하고 욕할 일은 아니에요. 우리는 웃으면서 통일 대한민국을 만듭시다. 감사합니다.”nbsp다시한번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이어서 참여한 모든 청중이 손에 손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불렀습니다. 초등학생 어린이가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선창을 불러주자 청중들도 흐뭇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함께 따라 불렀습니다.nbspnbsp▲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는 어린이nbspnbsp어린이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보니 통일은 우리 자녀 세대의 미래를 위해 우리 세대가 꼭 이뤄내야 하는 일이라는 다짐이 절로 일었습니다. 스님도 어린이의 손을 꼭 잡고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nbspnbsp예상시간 보다 30분 늦게 강연이 끝났지만 많은 시민들이 스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섰습니다. 스님의 책을 사려는 사람들, 강연장 뒷정리에 정신이 없는 봉사자들이 섞여서 조금은 혼란한 분위기였지만 모두들 재미있고도 유익한 강연에 만족하는 얼굴이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nbsp특히 오늘 강연에 뒤이어 창원에서도 통일시민학교가 열리게 되는데, 참가 신청서를 받기 위해 곳곳에서 통일의병들이 홍보 피켓을 들고 목청껏 소리를 외쳤습니다. 창원 지역에서도 통일의병 모임이 새로 생겨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해주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 창원 통일시민학교를 열심히 홍보하고 있는 통일의병들nbspnbsp서둘러 돌아서는 몇몇 청중들에게 오늘의 강연에 대한 소감을 물었습니다. “스님 강의는 언제 들어도 명쾌한 강연이다”고 하시는 분, “대중에게 통일의 필요성을 잘 전달해주시는 것 같다”는 분, “어느 한 극단이 아니라 중도의 입장에서 통일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분,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분 등 많은 분들이 기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준비한 통일의병들 모두가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늠름하고 씩씩하게 “통일 의병” 외치는 모습이 아주 활기차 보였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준비한 창원 지역 통일의병들nbspnbsp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돌아가는 창원 시민들의 가슴에 아직은 작지만 뜨거운 통일의 불씨가 살아났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그 불씨가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 넷이 여덟으로 계속 퍼져 나가길...nbspnbspnbsp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수고한 봉사자들에게 악수를 건네며 감사 인사를 한 후 곧바로 창원을 출발했습니다. 차 안에서도 계속 원고 집필 작업을 하다가 밤 12시가 다 되어 울산 두북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 10시 30분에 춘천 KBS홀에서 춘천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저녁 7시에는 서초 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서울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nbsp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nbspnbspnbsp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nbsp

2015.12.01. 42,628 읽음 댓글 26개

2015.11.29 (오후) 청년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

nbsp안녕하세요. 새벽에 있었던 정토불교대학 가을학기 특강수련 법문에 이어서 낮12시부터는 청년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에 참석해 즉문즉설 강연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새벽 특강수련 법문을 마치고 9시 30분에 문경 정토수련원을 출발한 스님은 11시 50분에 대전 정토법당에 도착해 12시부터 청년들을 위해 특강수련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전국에 새벽부터 출발해 대전 정토법당에 모인 120여 명의 청년들은 오전에 유수 스님으로부터 입재 법문을 들은 후 법당 구석 구석을 깨끗이 청소하고 스님을 기다렸습니다.nbspnbsp▲ 대전 정토법당nbsp12시가 되어 스님이 법상 위에 오르자 죽비 삼성과 함께 모두 눈을 뜨고 본격적으로 스님과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청년들은 사전에 작성한 질문지 없이 현장에서 곧바로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먼저 스님이 환한 웃음과 함께 안부 인사를 하며 말문을 열었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여러분들이 하반기 불교대학에서 불교의 근본교설과 불교변천사 교과 과정을 배우면서 의문 났던 점을 물어보는 시간입니다. 물론 상반기에 배웠던 실천적 불교사상과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도 좋고, 그 동안 수행을 하면서 들었던 의문을 물어도 좋습니다.”nbspnbsp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처음에는 망설이는 듯 하다가 곧이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12시부터 3시까지 3시간 동안 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연이어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불교의 근본교설 중에 ‘무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와닿지가 않는다는 여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의 해박한 지식에 청년들도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오히려 청년들이 스님에게 “도대체 대학교 나온 사람들이 맞아요? 고등학교 학력 수준도 안 되는 사람들 같네요” 라고 핀잔을 들을 정도였습니다.nbspnbsp학생의 솔직한 답변에 스님은 이해하기 쉽게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무아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무아’라고 하는데 저는 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방안에 혼자 있을 때도 내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왜 자꾸 없다고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nbsp“빗대어 설명해보겠습니다. 물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런데 물의 실체가 있습니까? ‘이게 물이다’라고 하는 근본 알갱이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봅시다. 물의 실체, 즉 물의 근본 알갱이를 조사하려면 물을 한 방울 떠서 쪼개보면 되겠죠. 쪼개고 또 쪼개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의 알갱이가 수없이 결합해서 물이 된다고 할 때 그 알갱이를 물 분자라고 부릅니다. 정토 불교대학 와서 공부하려면 이렇게 고등학생 정도의 학식은 갖춰야 해요. nbspnbspnbsp이건 더 이상 쪼갤 수가 없다고 했는데, 나중에 이것도 쪼갤 수 있는 방법이 나와서 쪼개 보니 더 이상은 물이 아닌 게 되어버렸어요. 물 분자의 분자식은 H₂O인데 그걸 한 번 더 쪼개버리면 H₂와 O₂가 됩니다. 이 두 가지는 물이 아니에요. 물은 아무리 분해해도 물이어야 할 텐데, 물 아닌 것으로부터 물이 된 겁니다. 이럴 때 우리가 ‘물의 실체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의 작용은 있지만 물의 실체는 없어요.nbsp물은 있지만 물의 실체는 없고, 산소는 있지만 산소의 실체는 없어요. 산소라는 원자가 단독자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속에는 양성자가 있고 중성자가 있고 전자가 있었습니다 그걸 더 파고들면 소립자가 결합한 것이에요. 소립자가 지금은 이런 형태로 결합해 있지만 달리 결합해버리면 있던 양성자가 몇 개 밖으로 떨어져 나오거나 몇 개가 더 붙어서 다른 원자가 됩니다. 그것을 실험으로 증명한 게 원자량이 제일 많은 92번 우라늄을 붕괴시킨 거예요. 이게 원자탄에 쓰이는 핵분열입니다. 또 제일 작은 중수소 두 개를 융합시켜버린 게 수소폭탄에 쓰이는 핵융합에요.nbspnbsp고정불변한 원자가 결합하는 것은 화학법칙인데, 이 화학법칙에서는 질량 불변의 법칙이 성립합니다. 질량 불변의 법칙, 배수 비례의 법칙, 일정 성분비의 법칙 이런 거 기억나요? nbspnbspnbsp그런데 이 핵의 변화에서는 질량 불변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고 질량 감소가 일어납니다. 물리변화나 화학변화와는 차원이 달라요. 그 감소된 질량은 에너지로 바뀌었습니다. 이게 아인슈타인의 ‘Emc²’이라는 에너지질량 등가 공식이에요. ‘작용은 하지만 그 안에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사실은 물질계에서는 이미 증명이 다 되었어요.nbspnbsp그걸 무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용은 하지만 실체는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작용을 하니까 실체가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이걸 정신세계에 적용하면 이렇습니다. 결혼해 아이가 있는 여성이 아이와 있을 때는 엄마라 불리고, 남편과 있을 때는 아내라 불리고, 부모님을 만나면 딸이라고 불리고, 절에 오면 신도라고 불리고, 가게에 가면 손님이라 불립니다. 인연에 따라 이리도 불리고 저리도 불려요. 엄마의 작용, 딸의 작용, 아내의 작용, 손님의 작용, 신도의 작용은 있지만 그 사람이 그 중 하나인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nbspnbspnbsp그런데 내가 엄마 역할을 오래 하다 보면 내가 엄마라고만 생각하고, 아내 역할을 오래 하다 보면 내가 아내라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나는 더 이상 아내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내 역할을 한 30년 하다가 남편이 죽으면 내가 계속 아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재혼해도 되는데, 자기가 아내라고 생각하니 결혼을 못 하는 거예요. 아내니 딸이니 하는 것은 모두 관계맺음에 의해서 불리는 이름입니다. 역할만 있지 ‘아내’라고 하는 실체는 없어요.nbspnbsp인도에서는 이런 실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 하늘에는 브라만이라는 신이 있고 내 속에는 아트만이라는 작은 신이 있어서 이 둘이 만나 결합하는 것, 즉 범아일여가 곧 해탈이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나에게 그런 고정불변하는 실체는 없다고 했어요. ‘아트만’에 ‘un’을 붙여서 ‘UnAtman’이라고 한 걸 한자로 옮긴 게 ‘무아’입니다.nbspnbsp질문자가 방안에 앉아서 ‘내가 있다’고 하지만 과연 뭐가 있습니까? 몸뚱이가 있다고 대답하겠지만, 그 몸뚱이가 나입니까? 몸은 ‘내 몸’이라고 하지 ‘나’라고 하지 않습니다. 생각 역시 ‘내 생각’이라고 하지 ‘나’라고 하지 않아요. 용어를 ‘나의 몸’, ‘나의 생각’, ‘나의 느낌’, ‘나의 물건’ 이렇게 쓰니까 ‘나’라는 게 있어야 한다고 여겨요. ‘나’라는 것이 있고 나서 그것의 몸, 그것의 생각, 그것의 느낌, 그것의 소유라고 해야 말이 되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뭐예요?”nbsp“모르겠어요.” nbspnbsp“그게 뭔지 연구해보세요. 그래서 유명한 선문답에 ‘Who are you?’라는 것이 있습니다.nbspnbsp‘너 누구냐?’‘아무개입니다.’nbsp‘아무개가 너냐, 너의 이름이냐?’nbsp‘이름입니다.’nbsp‘이름을 물은 게 아니다. 너는 누구냐?’nbsp‘딸입니다.’nbsp‘딸은 네 엄마와의 관계다. 너는 누구냐?’nbsp‘선생님입니다.’nbsp‘그것은 너의 직업이다. 너는 누구냐?’nbspnbsp이렇게 우리가 추구해 들어가야 합니다.”nbspnbsp“인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그 인연은 왜 생기는 거예요?”nbsp“인연이 왜 생기기는요, 살다 보니 생기는 것이죠.” nbsp“네, 감사합니다.” nbspnbsp스님의 쉽고 명쾌한 비유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질문자도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어디 가서 이렇게 좋은 강의를 들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절로 스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스님은 모두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불교의 공사상, 인연과보의 원리, 삼법인, 연기법 등 불교 교리에 대해 아주 쉬운 비유를 들어가며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청년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기뻐하자 스님은 왜 이렇게 재미있고 유익한 불교를 공부하려고 하지 않느냐며 스님이 왜 청소년 시절부터 불교에 매료되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저는 여러분들이 불교 공부 안 하는 걸 보면 안타까워요. 이것은 연구하면 과학이자 철학이고, 이것을 제대로 알면 이것이 곧 인생이고, 이것을 잘 실천하는 것이 곧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인데 왜 안 하려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처음부터 불교를 믿은 게 아니라 친구 따라 간 경우입니다. 경주에 역사 유적지가 많기 때문에 역사 유적지 보호반에 들어갔다가 할 수 없이 절에 다니게 된 거예요. 처음엔 불교가 싫었어요. 애가 태어나자마자 걸었다는 소리나 하잖아요. nbspnbspnbsp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불법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불교문화니 불교 생활 같은 걸 다루었기에 저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법문을 들으면서 불교의 진리에 대해서 알게 됐어요.nbspnbsp제가 제일 혹했던 것은 불교의 우주관이었어요. 저는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으니까요. 불교를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다가 우주관을 접하고 놀랐습니다. 보통은 지구에만 사람이 산다고들 하는데, 불교는 이 우주에 사람 사는 세상이 여기만 있는 게 아니라고 해요. 온 우주에 다 있고, 그것도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 많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게 아인슈타인의 우주론과 거의 비슷한 거예요. 태양계에서 지구 하나에만 생명이 산다고 치더라도 이 은하계에는 태양계 같은 것이 2천억 개가 있어요. 생명이 살 가능성이 있는 곳이 최소 2천억 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대우주에는 이런 소우주, 즉 은하계 우주 같은 것이 1천억 개 이상이라는 거예요. ‘금강경’을 읽어보면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수의 갠지스강이 있고 그 모든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를 합친 만큼 많은 우주, 세계가 있다고 하니 둘이 좀 비슷하잖아요.nbspnbsp각 세계마다 1년의 길이와 각 생명의 수명도 우리와 다르다고 합니다. 천상으로 올라갈수록 1년의 길이가 길고 수명도 길어요. 예컨대 우리 수명이 100년이라면 사왕천에서는 수명이 5백년이고 그 위의 도리천에서는 5천년이고, 그 위로 올라가면 5만년입니다. 반면 지옥 쪽으로 내려가면 수명이 짧아서 찰나에 나고 죽는다고 해요. 그런데 실제로 생명 세계를 보면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건 나고 죽는 주기가 짧고 코끼리나 거북이 같은 것은 길잖아요. 지구만 봐도 이렇게 수명이 다양하니 저 우주로 나가면 훨씬 더 수명이 긴 생명이 있을 거예요. 하루의 길이도 다르고요.nbspnbspnbsp1년과 하루의 길이도 달라요. 1년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것을 기준으로 삼잖아요. 다른 별에 가면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기한이 우리와 달라서 지구보다 태양에 가까운 것은 1년이 짧고, 지구보다 태양에 멀리 있는 것은 1년이 길어요. 하루도 그렇습니다. 지구가 한 바퀴 자전하는 것이 하루인데, 수성이나 화성은 한 바퀴 도는 게 우리와 시간이 달라요. 그러니 하루의 길이도 다르고 1년의 날수도 다르죠.nbspnbsp이런 게 과학에서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어떤 종교도 그런 이야기를 한 데가 없어요. 그런데 불교에서는 수명도 다르고 길이도 다르고 하루의 길이도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혹한 거예요. 저는 처음에 불교 사상보다는 그 우주론 때문에 혹했어요. 그래서 공부하다 보니 철학적인 측면에서도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무아’와 ‘무상’ 같은 것은 사회과학적인 요소예요. 유물론적 변증법의 핵심 사상도 결국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고 그 연관이 변한다’라는 원리예요. 그러니 이것은 철학적으로도 굉장히 심오하고 과학적으로도 모순이 없습니다.nbsp부처님이 뭐 물질을 연구하고 생명을 연구한 건 아닙니다. 부처님은 주로 정신세계만 연구했는데, 이 정신세계의 작용 법칙이 물질세계의 법칙과 근본적으로 같았던 거예요. 아까 이야기한 ‘제행무상’에도 이미 그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제행’이라고 할 때의 ‘행’은 물질, 생명, 정신이라는 세 가지로 나눕니다. 물질세계, 즉 우주는 성주괴공하고 생명은 생로병사하고 정신은 생주이멸합니다. 정신작용도, 생명작용도, 물질작용도 모두 변화해요.nbspnbspnbsp성주괴공을 딱 들었을 때 저는 HR도가 생각났어요. 지구과학 배울 때 접해 봤죠? 별의 빛깔과 밝기, 크기와 거리를 조사해서 우주의 생성과 소멸을 나타낸 표 있잖아요. 우주의 성간물질이 그래프 상 아래쪽에 모여 있다가 태양과 같은 주계열성이 되고 그것이 나중에 거성이 되고 그것이 백색왜성이 돼요. 별의 수명, 즉 별의 생성과 소멸을 나타내는 표입니다. 현재 우리의 태양은 1백억 년 정도 유지되는데 다른 항성이 태양보다 크면 수명이 짧고 태양보다 작으면 수명이 길어요. 스님은 이런 공부를 고등학교 때 다 했어요. nbspnbsp그때 제가 과학을 좋아했기 때문에 불교의 이런 요소를 과학과 비교해보면서 크게 놀랐어요. 처음에는 그래서 좋아하게 됐고,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 불교에 심취하게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믿음이 좋아서, 혹은 복을 받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우주관이 좋아서 호의적이었고, 그 다음으로 ‘너는 누구냐?’ 이런 문답을 하면서 인생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고 파고들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nbspnbsp그러니 이건 젊은 사람들이 공부해볼 만한 가르침이에요. 그리고 이 공부를 하면 고뇌가 많이 없어집니다. 괴로워할 일 같지만 한 발만 떨어져서 보면 별로 괴로울 일이 아니에요. 내가 만나던 애인과 헤어지면 속상하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이 사람이 나가줘야 다른 사람이 또 들어올 수 있잖아요. nbspnbspnbsp이런 것도 다 제행무상에 들어가요. 있는 사람을 일부러 내보내라는 게 아니라,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가지고 그렇게 목매달 필요는 없다는 말이에요. 이 말을 잘못 적용해서 ‘그러면 내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도 되겠네요?’ 하는데 그건 도덕적으로 조금 안 좋아요. 그러나 상대가 알아서 떨어져 나가주는 것은 나한테 도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어요. 내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돌아다닌 것도 아니고, 상대가 떠나 주니까 빈 자리가 생겨서 다른 사람이 또 올 수 있잖아요. 좀 섭섭한 건 있을 수 있지만 크게 보면 별 일 아니고, 오히려 좋은 일이에요. 그러니 떠난 사람에게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자리를 비워놓다 보면 또 새로운 사람이 옵니다.nbspnbsp아무리 비워놔도 안 온다고요? 저도 지금 자리 비워놓고 기다리고 있어요. 하하. nbspnbspnbsp그런데 누가 들어와서 차지해버렸는데 나중에 진짜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그것도 곤란하니까 항상 비워놓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비워놔도 외롭지가 않아요. 비워놓으면 가능성이 늘 열려 있어요. 이렇게 사물을 소극적,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긍정적, 적극적으로 보세요.” nbspnbsp스님의 긍정적인 사고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 했습니다. 한 생각 돌이키면 괴롭지 않을 수 있는데 예전에는 왜 그렇게 사소한 일로 죽는다고 괴로워했을까 되돌아봐졌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이 청소년 시절에 불교를 처음 접하면서 느꼈던 감동을 직접 전해 들으니 나도 스님처럼 정말로 불교를 열정적으로 공부해봐야 겠다는 다짐도 생겼습니다. nbspnbsp스님은 이 외에도 많은 질문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어서 언제 시간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벌써 3시간 다 지났습니다. 마칠 시간이 되자 스님은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배운 것을 사회 변화를 위해 실천하는 것이 잘 되지 않는다는 마지막 질문자의 물음에 답변해 주면서 행동하는 지식인이 될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중도파라는 사람들이 사고도 합리적이고 심성도 좋은데 제일 단점이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은 사실 별 의미가 없습니다.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은 공부를 해서 첫째로 자기를 행복하게 하고, 자기 괴롭히는 데 소모했던 에너지를 세상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좀 쓰세요. 전법도 하고, 자기 분야에서 개선을 위해 노력도 해야 합니다. 화내고 짜증내며 실천하지 말고, 방글방글 웃으면서 해야 해요. 과장님이 ‘미스 리, 커피 한 잔 끓여와’ 이러면 ‘자기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이렇게 욕하지 말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가져다주면서 다음부터는 직접 끓여 드시라고 말해야죠. 그냥 말하지 말고 커피를 가져다주면서 말해야 해요.nbspnbspnbsp‘커피 끓이는 게 제 업무도 아니고, 제가 과장님 비서도 아닙니다. 오늘은 과장님을 위해서 비서 역할도 해드리지만 앞으로는 정신 좀 차리세요. 계속 그런 태도를 보이면 고발당해요.’nbspnbsp이렇게 웃으면서 말해요. 머리를 쓰다듬거나 희롱을 하면 성질내지 말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세요.nbspnbsp‘아이고, 요즘 그렇게 하다가 고발당해서 망신 사는 거 못 봤어요? 우리 과장님 진짜 어리석으시네. 이러다가 망신 사고 성추행범으로 잡혀 들어가면 아이들을 어떻게 보려고 그래요? 오늘은 봐드릴 테니 다음부터는 정신 차리세요.’ nbspnbspnbsp처음부터 난리 피우지 말고 한두 번은 봐줘야 해요. 사람은 살아온 습관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다 나쁜 의도로 그런 것만은 아니고, 바로 고치기도 쉽지는 않거든요. 한두 번 웃으면서 이야기해주되, 그래도 버르장머리를 안 고치면 정당한 권리를 발휘해 고발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정에 휘둘려서 집에서는 매일 울면서 정작 출근해서는 고발도 못 하고 당하면 안 돼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대응하되 고발은 단호하게 해야 합니다. 울어봐야 내 손해예요. 그러나 개선해야겠다, 노동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하면 권리를 단호하게 행사해야 합니다.nbspnbsp이것이 바로 평화적으로 우리 시민의 권리를 신장해나가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를 우리가 행사할 수 없어요. 수행하라니까 ‘뭐든지 내 잘못이오’라고 하는데, 수행은 그저 하인 노릇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주인 노릇 하라고 수행하라는 거지, 하인 노릇 하라고 수행하는 게 아니에요.nbspnbsp부모님을 미워하면 안 돼요. 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의 하인이 아니니까 부모님이 시키는 말을 반드시 따라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집가라’ 하면 방글방글 웃으면서 ‘네’ 하고 안 가면 됩니다. nbspnbspnbspnbsp‘일찍 들어오너라’ 하면 ‘네’ 하고 일 다 본 뒤 늦게 들어오면 돼요. 시키는 대로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는 나를 해칠 의도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니까, 항상 말씀을 들어보고 참고할 만하면 참고하는 게 좋아요. 인생을 많이 살다보면 부모만큼 나를 위해주는 사람이 없어요.nbspnbspnbsp그렇다고 부모 말이 다 맞는 건 아니에요. 또 부모 말이 다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나는 자유인이니까 내 인생은 내가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그걸 갖고 화내거나 짜증낼 이유는 없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으니까 ‘알았어요, 네’ 이러면 되지,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하고 화낼 필요가 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말할 자유가 있잖아요. 귀 기울여 듣고 대답은 깍듯이 하되 따르고 안 따르고는 내가 결정하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훨씬 자유롭게 자기중심적으로 살 수 있고 인간관계도 좋아집니다.”nbsp내 인생은 내가 결정해서 주체적으로 살되, 부모님의 의견은 감사한 마음으로 경청하고, 사회적 실천도 마음껏 해나가되 즐거운 마음으로 해나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스님의 말씀대로 라면 정말 모순된 두가지가 함께 이뤄지는 길로 나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스님의 법문은 언제 들어도 우리들의 마음을 기쁘고 가볍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충전이 된 청년들은 3시간 동안 열강을 해준 스님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를 보내며 감사한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은 청년 정토불교대학 학생들 모두와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외치는 청년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오늘 법문을 들은 청년들처럼 더 많은 청년들이 스님의 법문을 만나 조금 더 행복해지는 삶의 길을 찾아갔으면 하고 간절히 바래봅니다.nbspnbspnbsp대전 정토법당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저녁 6시에 서울에 도착한 스님은 국민통합회의 모임에 참석해 여러 사회 인사 분들과 우리 사회의 갈등 통합 방안에 대해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서울에서의 모임을 마치고 밤늦게 다시 울산 두북으로 내려와 새벽 2시에 도착해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정말 오늘은 문경, 대전, 서울, 울산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듯이 바쁘게 움직인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텃밭의 배추와 무를 뽑아서 김장 울력을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감나무에 올라가 감도 따고, 울력을 하며 날씨가 추워지면 군불을 때서 고구마와 감자도 구워 먹을 계획입니다. 저녁에는 7시부터 창원대학교에서 창원 시민들을 위해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nbsp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nbspnbspnbsp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nbsp

2015.12.01. 61,293 읽음 댓글 44개

2015.11.29 (오전) 정토불교대학 가을학기 특강수련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열린 정토불교대학 가을학기 특강수련에 참가해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낮 12시부터 3시까지는 대전 정토법당에서 청년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에 참가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새벽에 있었던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강원경기동부, 인천경기서부, 대구경북 3개 지부에서 정토불교대학 수업을 듣고 있는 480여 명의 학생들은 어제부터 1박2일 동안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특강수련을 진행 중입니다. 오늘은 새벽 4시에 기상해 예불과 108배 정진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스님도 새벽 정진을 마치고 6시에 강연이 열리는 대수련장으로 들어왔습니다.nbspnbsp▲ 문경 정토수련원 대수련장nbsp불교대학생들은 각 법당에서 그동안 영상으로 스님의 강좌를 들어왔는데, 평소 궁금한 점이 있었지만 영상 강좌 도중에 그 자리에서 바로 묻고 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무려 3시간 동안 스님과 집중적으로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는 시간을 nbsp가지게 되었습니다.nbspnbsp스님이 법상에 오르자 전국에서 모인 480여 명의 불교대학생들은 무척 기다렸다는 듯 환한 미소와 함께 스님을 맞이했습니다.nbspnbspnbsp법상 위에 오른 스님은 불교대학생들의 얼굴을 한눈에 주욱 살펴본 후 먼저 안부를 물었습니다.nbspnbspnbsp“불교대학 다닌 지 3개월 다 되어 가죠? 즉문즉설보다는 공부가 어렵지요?”nbsp“네.”nbsp“원래 공부란 것은 강의를 듣고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질문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동시에 여러 군데 몸을 나툴 줄은 알지만 아직 도력이 부족해서 여러분들을 제 앞으로 동시에 오게 하는 능력은 없어요. nbspnbsp아직은 쌍방 통화가 아닌 일방 통화만 되고 있습니다. 제가 동시에 여러분들에게 나퉈서 여러 곳에서 강의하는 건 되는데, 여러분들이 수업 끝나자마자 바로 묻는 건 아직 안 돼요. 그래서 오늘, 3개월 만에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그 동안 공부하면서 의문이 생겼지만 못 물어보던 것들을 물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nbsp이렇게 가볍게 인사를 한 후 곧바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불교대학생들은 사전에 질문지로 궁금했던 점들을 모두 써내었습니다. 스님은 올라온 질문지를 하나씩 읽어가며 답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총 15명의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추가 질문이 더 있었지만 시간이 부족해 다 답변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갑작스런 사고를 어떻게 인연과보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지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은 흔히 ‘인연과보’의 원리와 ‘인과응보’의 원리를 혼돈하기 쉽다며 그 차이점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들려주었습니다. nbspnbsp“인연과보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가까운 친인척의 갑작스러운 사망이나 중병은 저의 과보입니까? 아니면 그 분의 과보입니까? 과보가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과보로 보아 기꺼이 받아들이고 무엇을 과보가 아닌 것으로 보아야 합니까? 과보가 아닌 것은 왜 일어나는지요?”nbsp“‘인연과보’와 ‘인과응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제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인연과보와 인과응보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을 겁니다. nbspnbspnbsp잘 하면 상을 주고 잘못하면 벌을 준다는 게 인과응보예요. 모든 자연신앙에는 인과응보 사상이 있습니다. 유럽도 그렇고, 인도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래요.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 ‘천벌 받을 거다’라는 말이죠. 하늘이 가만 두지 않으리라는 뜻입니다.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구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을 안 들으니까 소돔과 유황불로 지져버리고 소금기둥으로 만들어서 응징하는 거예요. 남의 눈을 멀게 했다면 다음 생에 애꾸눈이 된다거나 남의 돈을 훔쳤다면 다음 생에 갚아야 한다는 게 인과응보입니다. 징벌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거예요.nbsp불교의 인연과보는 그런 징벌적 사고가 아니라 원인과 결과의 관계입니다. 쉽게 말하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거예요. 가치관이 개입된 게 아니에요. 콩을 심어야 콩이 나지, 애초에 콩을 안 심었는데 콩이 날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nbsp이것을 가치관적으로 접근해서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생기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생긴다’ 이렇게 적용하면 인과응보와 비슷해집니다. 그래서 혼돈이 생겨요. 그러나 원래 인연과보는 가치관적 접근이 아닙니다. 과학적 접근이죠.nbspnbspnbsp‘내가 어떤 사람에게 기대를 가지면 실망한다.’ 이건 가치관적 접근이 아니라 실제예요. 기대를 많이 가지면 실망이 크고, 기대를 별로 안 가지면 만족이 큽니다. 그러니 내가 어떤 기대를 갖느냐, 내가 어떤 관점을 갖느냐에 따라 그게 괴로울 일이 되기도 하고 괴로울 일이 아니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실망 안 하기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일체유심조라고 합니다. 내가 어떠냐, 내 마음이 어떠냐를 중시하는 거예요.nbsp어떤 물체가 있는데 ‘착한 사람이 밀면 움직이고 나쁜 사람이 밀면 안 움직인다’고 말한다면 가치관적인 접근, 윤리적인 접근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물체가 움직였다는 것은 힘이 가해졌다는 이야기잖아요. ‘힘을 가하면 이 물체는 움직인다’ 이렇게 접근하면 원인과 결과를 보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 현상이 일어나면 반드시 원인이 있고,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습니다. 그것에 다시 윤리 도덕관을 접목하면 인과응보와 비슷해집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인연과보는 윤리 도덕관을 접목하기 이전의 문제입니다.nbspnbsp그럼 그것을 왜 ‘인연과보’라고 할까요? 흔히 ‘인과’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인연과보’예요. 왜 ‘인’이 아니라 ‘인연’일까요?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는 건 인과예요. 그런데 콩을 심었지만 콩이 안 날 수도 있어요. 땅이 건조하거나 흙의 온도가 낮으면 싹이 안 납니다. 그런 밭의 조건을 ‘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만 갖고 되는 게 아니라 인연이 만나야 과보가 생기는 거예요.nbspnbspnbsp인을 직접적 원인, 연을 간접적 원인이라고 합니다. 이 원리는 환경을 중요시합니다. ‘인과’라고 하면 환경을 무시해요. ‘인연과보’라고 하면 인연이 만나야, 즉 인연이 맞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씨앗과 환경 조건이 같이 결합해야 하기 때문에 ‘인연’이라고 말하는 거예요.nbsp예컨대 사람이 나쁜 짓을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나쁜 짓은 나쁜 짓인데, 산속에서 자기 혼자 한다면 별로 과보가 없어요. 인은 있지만 연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남을 주먹으로 한 대 때렸다고 생각해봐요. 길 가다가 남을 한 대 때렸다면 그 조건에서는 나쁜 짓이 돼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덤비는 걸 말리다가 내가 한 대 때려서 그걸 해결했다고 하면 때린 건 똑같지만 과보가 달라요. 때린 행위라는 원인은 똑같지만 그 원인이 발생할 때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과가 아니라 인연과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과학적인 이치예요.nbsp그런데 이걸 가치관적으로 접근해서 ‘좋은 일을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내가 좋은 일을 해도 환경에 따라 좋은 결과가 날 수도 있고 나쁜 결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나쁜 짓을 했다고 반드시 나쁜 결과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조건에서 나쁜 짓을 했느냐에 따라서 우연찮게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제가 아는 사람은 둘이 싸우다가 밀쳤는데 상대가 넘어져서 머리를 다쳤어요. 그래서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했는데 뇌종양이 발견됐습니다. 종양을 발견했으니 넘어져서 다친 것은 오히려 잘 된 일이 되었습니다. 그냥 놔뒀으면 죽을 뻔했는데 조기발견해서 살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이 사람이 밀친 게 처음부터 잘 한 건 아니잖아요. 밀친 건 잘못이지만 결과는 좋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nbsp5.16 쿠데타를 일으킨 건 헌정질서를 문란시킨 것이니 처음부터 법률적으로 잘못된 거예요. 그런데 이걸 잘 됐다고 말하면 앞으로 누구든지 쿠데타를 일으켜도 된다는 뜻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결과가 좋았다고 해서 원인을 미화하면 안 돼요. 그런데 그 결과로 산업화에 성공한 건 사실이에요. 원인이 잘못됐다고 결과가 다 잘못됐다고 말해도 안 되고, 결과가 좋다고 원인이 다 좋다고 말해도 안 됩니다.nbspnbspnbsp의도와 결과는 이처럼 조건이 어떠냐, 어떤 환경에서 작용했느냐에 따라 네 가지 종류로 나타납니다. 의도가 좋았는데 결과도 좋을 수 있고, 의도가 좋았는데 결과는 나쁠 수도 있고, 의도는 별로 안 좋았는데 결과는 좋을 수도 있고, 의도가 별로 안 좋았는데 결과 역시 나쁠 수도 있습니다. 인과응보와는 달라요. 인과응보는 의도가 좋으면 결과가 좋고 의도가 나쁘면 결과가 나쁘다는 이야기예요.nbspnbsp그런데 이 인연과보에서 볼 때는 의도가 좋으면 결과가 좋을 확률이 의도가 나쁠 때에 비해 높아요. 의도가 나쁘면 의도가 좋을 때보다 결과가 나쁠 확률이 높고요. 그래서 우리가 선택을 할 때는 100 결과가 좋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의도를 좋게 갖는 편이 낫습니다.nbsp‘콩을 심으면 싹이 난다’ 이 말은 100 확실한 것은 아니에요. 콩을 심어도 조건이 맞지 않으면 싹이 안 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콩 싹이 났다면 100 콩을 심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런 게 수학에서 말하는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에요.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할 때는 어떤 원인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어떤 원인이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어떤 결과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환경 문제가 작용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반드시 그렇다’고 하지 않고 ‘그럴 확률이 높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nbsp윤회와 인과응보로 따진다면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았을 때 대부분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아이를 낳았을까?’라고 합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어떤 죄의 과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나 장애는 어떤 죄의 과보도 아니에요. 그냥 다를 뿐이죠.nbspnbsp여기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장애인이라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자로 태어난 것은 어떤 죄의 잘못이 아니며, 여자라도 남자와 다름없이 인간다운 존엄과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존엄과 권리가 있어요. 피부가 검은 사람도 흰 사람도 똑같은 존엄과 권리가 있습니다. 이게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nbspnbsp인과응보의 가장 대표적인 게 인도의 윤회사상인데, 우리가 이런 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지금의 불교가 얼마나 세계의 인권 존중 추세에 어긋나는지 몰라요. 설령 불교가 원래 그리 가르쳤다 해도 ‘이건 맞지 않는다’고 해서 고쳐야 할 판인데 부처님이 가르치지도 않은 걸 고집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절에 안 오고 시대에 뒤떨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불교를 잘못 믿었기 때문입니다.nbspnbsp왜 잘못 믿게 되었을까요? 불교가 인도화하면서 힌두적인 걸 받아들이고, 그 상태에서 다시 우리에게 전래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통과 정통을 구분해야 해요. 과거로부터 전수받은 것은 다 전통이에요. 전통에는 좋은 것도 있지만 안 좋은 것도 있습니다. 남녀를 차별하는 전통, 신체 장애를 죄악시 하는 전통은 나쁜 거예요. 그러면 이런 거는 개선해야 해요. 정통은 ‘바른 것’이라는 개념이에요. 우리 정토회는 정통 불교를 계승한다고 하지, 전통 불교를 계승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전통을 다 부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전통은 특별하게 진리에 어긋나지 않으면 가능한 계승하는 게 좋습니다. 제가 입고 있는 승복은 전통이니 바꿔도 됩니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즉 이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진리에 어긋나지 않으면 굳이 바꾸지 않고 전통으로 존중하는 게 좋습니다.nbsp후쿠시마에 지진이 나서 많은 사람이 죽은 걸 보고 ‘일제 강점기 때 못된 짓 한 벌이다’라고 하면 불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전통적인 인과응보 사상에서 본 거예요. 그러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일본 사람들이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위안부 사과도 하지 않고 일제 침략 사과도 안 하는 건 나빠요. 그래도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고 재앙을 입으면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 불교의 자비 사상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잘못 생각해서 ‘천벌을 받았다’, ‘전생에 죄가 많아 쥐로 태어났나 보다’, ‘성질이 독해서 뱀으로 태어났다’ 이러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은 다 제 나름대로 진화해온 거예요. 모든 것은 인연과보로 움직일 뿐입니다. 인연과보에 대해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nbspnbspnbsp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다,nbsp깊은 산속 깊은 바다 속에 숨는다 하더라도.지은 인연의 공덕은 없어지지 않는다,nbsp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nbsp‘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다, 깊은 산속 깊은 바다 속에 숨는다 하더라도’라는 말에는 이어지는 뒷 문장의 말뜻도 이미 들어 있습니다. 지은 인연의 과보라는 것은 좋은 인연, 나쁜 인연을 다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복을 지었으면 복이 따라오고 죄를 지었으면 죄가 따라온다는 의미예요. 그런데 이 말은 ‘나쁜 짓을 했으면 과보가 따른다’라는 의미로 주로 쓰일 때가 많기 때문에 제가 ‘지은 공덕은 없어지지 않는다’라는 뒤 문장을 만들어 추가 설명한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다 저축되어 있어요. 쉽게 이야기해서 지금 돈을 빌려서 썼다면 나중에 갚아야 하고, 지금 저축을 해두면 나중에 목돈을 타게 되는 이치입니다. 그게 달리 되지는 않아요.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이 죄를 지어놓고도 벌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빚을 내서 실컷 써놓고 ‘부처님, 이 돈 안 갚아도 되게 해 주세요’ 하고 비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자꾸 도망가지 말고, 여러분에게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세요. 예쁜 여자 종아리가 만지고 싶어서 만졌으면 감옥 가도 후회하지 말고 ‘그래도 한번 만져봤으니 이런 대가를 치러도 괜찮다’ 이러면 됩니다. 그러나 감옥 가기 싫다면 만지고 싶더라도 만지지 말아야지요. ‘만지고 싶은데 어떻게 안 만져요?’ 이런 소리 하지 말란 말이에요.” nbspnbsp스님의 재미있는 비유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답변을 다 듣고나니 정말 우리는 인연과보와 인과응보를 혼돈해서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불교는 과학적으로 사물을 파악하고 이해하도록 해주는 가르침이라는 것을 명쾌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새벽 6시부터 시작된 강연이라 아무리 좋은 스님의 말씀이지만 눈을 비비며 졸려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조금이라도 잠을 깨어보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서 강연을 계속 듣는 열의를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15개의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어느덧 3시간 20분이 훌쩍 지났습니다. 스님은 3시간 넘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열정적으로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중간에 목이 좀 아프신 듯 기침을 여러 차례 하셨지만, 스님과의 만남을 오랫동안 기다렸던 대중들을 위해 더 힘을 내어 강연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마칠 시간인 9시를 넘기고도 20여 분이 흐르자 스님은 “답변해주지 못한 질문이 더 있지만 어쩔 수가 없다”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깨달음은 아상과 권위를 버려야 한다고 하면서 평범한 여러분들이 가장 공부하기 좋은 것이라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저희 정토회에는 부자나 사회적 지위가 아주 높은 사람, 인기 연예인들이 잘 안 옵니다. 이런 사람들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히려 더 필요하지만 대중과 같이 앉아서 하는 걸 못 견뎌 해요. 그래서 늘 소수만 대상으로 특별 과외 하듯 비공개 법문을 해줄 수 없냐고 졸라요. 깨달음의 장도 이런 데 와서 같이 자면서 하는 거 말고, 돈을 얼마든지 내도 좋으니까 고급 호텔에서 편안하게 할 수 없냐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천만 원쯤 받을 수도 있고, 그런 사람들을 확 교화시켜야 사회에 영향력을 줄 수 있지 않느냐고 하는 권유도 여러 번 들었어요.nbspnbspnbsp그러나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해서는 안 돼요. 자기의 아상과 권위를 버려야 깨치는데 그걸 안 버리는 걸 조건으로 걸어놓으니, 버리라고 한들 버려지겠어요? 불교대학을 다닌다고 하더라도 조금 잘난 사람들은 오늘과 같은 이런 자리에 안 옵니다. nbspnbspnbsp한 방에 같이 자고 화장실에 가면 바람이 들어와서 엉덩이가 시원한 걸 자기 체면에 안 받아들이려고 하거든요. ‘나’라는 것을 내려놔야 깨달음의 길로 가는데 그걸 못 내려놔요.nbspnbsp정토회가 부자나 높은 사람들을 싫다고 내치고 막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이런 환경에 오기가 어려운 거예요. 일반 절에는 갈 수 있습니다. 특별대우를 해주니까요. 여기는 특별대우를 안 해주잖아요. 밖에서 뭘 했든 여기 오면 다 똑같이 해야 하니까 못 와요.nbspnbsp또 너무 가난하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도 여기 오기 힘들어요. 오지 말라는 건 아닌데, 시간을 내어 저녁마다 공부하고 봉사에 참여하거나 지금처럼 1박 2일 프로그램에 오기가 현실적으로 좀 어렵죠. 그래서 이 문제는 좀 특별 대책이 필요해요. 이 사람들의 처지에서는 현재와 같은 정토회 프로그램에 참여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니까요.nbspnbspnbsp그래서 생활이 너무 어려워도 진리를 추구하기가 어렵고, 생활이 너무 좋아도 진리를 추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생활이 적당할 때 공부하기가 좋아요. 그러니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은 딱 공부하기 좋습니다.” nbsp부자나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씀에 모두들 함박 웃음을 지으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3시간이 넘도록 열정적인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 nbspnbspnbsp이렇게 불교대학 특강수련을 마치고, 대수련장을 나와 곧바로 대전으로 출발했습니다.nbspnbsp11시 30분에 대전 시내에 도착해 국수로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12시부터는 대전 정토법당에서 청년 정토불교대학 수강생들을 위한 특강수련에 참가해 즉문즉설 강연을 해주었습니다. 청년들과의 즉문즉설 강연 소식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진행 중입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nbsp

2015.11.30. 66,800 읽음 댓글 45개

2015.11.28 새로운백년 청년학교 졸업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평화재단 청년포럼의 주관으로 열린 ‘새로운백년 청년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청년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아침 일찍부터 원고 교정 업무와 각종 보고서들을 보며 바쁜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아침 10시가 되어 서울을 출발해 대전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제6기 새로운 백년 청년학교 졸업식이 열린 대전 충남대학교 산학연 교육연구관 대회의실에는 12시 30분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nbsp충남대학교 산학연 교육연구관nbsp전국 25개 도시에서 청년학교를 수료한 210여 명의 청년들은 새벽부터 전국에서 출발해서 이곳에 모여 스님을 기다렸습니다. 지난 9월 10일부터 11월 28일까지 10주 동안 ‘법륜 스님으로부터 배우는 삶, 사랑, 시대’를 주제로 그룹 세미나, 역사탐방, 청춘캠프, 특강 등 다채로운 학습을 함께해 왔는데 오늘은 그 마지막 결실의 자리여서 모두 설레이는 표정이었습니다. nbspnbsp먼저 지난 10주 간의 청년학교 모습을 담은 영상을 함께 보며 추억을 되새긴 후 두 명의 청춘남녀가 나와 수료 소감문을 발표했습니다. 발표자 중 한 여학생은 “청년학교를 다니면서 가슴에 통일이라는 뜨거운 꿈을 품게 되었다”고 하면서 “앞으로도 통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과 매일 깨어있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며 소감을 발표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이 강당으로 들어서자 청년들은 뜨거운 박수와 함성을 지르며 환호를 했습니다. 영상과 책, SNS를 통해서만 매일 만나오던 스님을 가까이에서 뵙자 모두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다들 점심 식사는 하고 왔는지 안부를 물으며 환한 웃음과 함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대화의 주제는 ‘청년, 법륜 스님에게 길을 묻다’입니다. 스님의 젊은 시절부터 시작해서 스님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보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먼저 사회자가 준비한 질문을 묻고, 이어서 청중석에서 직접 질문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먼저 사회자는 그동안 스님은 늘 대중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느라 스님에 대한 이야기는 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며 오늘은 스님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나가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고 나름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청년, 법륜 스님에게 길을 묻다를 주제로 열린 대담nbspnbsp“스님, 지금까지 즉문즉설을 몇 번이나 하셨어요?”nbsp“세어보지 않아 모르겠어요. 공식적으로는 2011년에 100회, 2012년에 300회, 2014년에 해외강연만 115회이고, 상반기에도 국내에서 50회 했고, 2015년에는 상·하반기 합쳐서 한 100회쯤 될 것 같아요. 공식적으로 한 것만 해도 그러니 실제 한 것은 1,000회는 더 되겠네요. 즉문즉설로 10,000명 이상을 만났다는 뜻이죠.”nbsp“10,000명 이상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느라 스님 이야기를 하실 기회는 많지 않았을 것 같아요.”nbspnbsp“왜요? 질문자가 3분 이야기하면 저는 20분씩 하는 걸요.” nbspnbsp“스님에 관한 이야기요. 저희가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은 스님 이야기가 궁금해서입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이 궁금해하실만한 스님 이야기를 쏙쏙 뽑아내서 스님을 한번 탈탈 털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nbspnbsp가볍게 다양한 질문들이 오고 갔습니다. 스님은 학창시절에 어떤 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지, 스님의 하루를 읽으면서 엇나갔던 생각을 바로잡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는데 이렇게 모든 일과를 공개하는 것이 스님은 부담스럽지 않은지, 작년에 세계 100회 강연을 다니면서 여러 곳을 둘러보았는데 여행을 할 때는 어떤 점을 관심있게 보는지, 여행을 갈 수 있다면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남은 여생에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 스님이 스스로를 돌아볼 때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소수만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 구조 속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희망을 얘기해줄 수 있는지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은 진솔한 경험과 평소의 소신을 편안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강연장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값진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nbspnbsp그 중 정토회 홈페이지에 매일 연재가 되고 있는 스님의 하루와 관련해서는 이런 질문과 대답이 있었습니다.nbspnbspnbsp“저는 요즘 매일 ‘스님의 하루’를 읽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읽고 계시죠?” ‘스님의 하루’를 보면서 좀 엇나갔던 생각을 바로잡거나 자기 모습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돼서 좋아요. 그러나 아무리 공적인 인물이나 인기 있는 연예인들도 일상을 다 공개하지는 않고 어느 정도 사적인 영역을 두는데, 스님께서는 모든 일상이 대중에게 노출되는 셈이니 부담스럽지는 않으신지요? 그리고 이렇게 모든 일상을 투명하게 드러내어 보이고 전해주시는 의도나 뜻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nbsp“특별한 의도는 없어요. 전에는 기록하는 사람이 없었을 뿐입니다. 처음에는 매일 하는 법문을 전하려고 기획했다가 기록하는 사람이 생기다 보니 일상까지 전하게 되었어요. 그래도 전하지 않는 일정이 조금씩은 있습니다. 예컨대 최근 연예인들 몇 명이 찾아와 함께 산책한 것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의 방문도 너무 구체적으로 알려지면 약간 오해를 살 수 있고요. 물론 다 공개해버려도 되긴 해요. 그러나 제가 예컨대 국회의장실을 찾았다거나 하는 공적인 방문은 공개하되, 사적으로 찾아와 자기 고민을 이야기하고 간 것은 그 사람을 위해서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 외에는 화장실 다녀오거나 하는 게 아니면 특별히 공개 안 할 이유가 없지요.” nbspnbsp“네, 감사합니다. 별 의도가 없으셨군요. 어쨌든 저는 매일 이렇게 스님의 일상과 법문을 접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nbsp스님의 일상이 모두 공개되는 점이 청년들은 무척 궁금했나 봅니다. 특별히 공개 안 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nbspnbsp특히 사회자와의 대화 중에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스님은 말이 나온 김에 평소에 어떤 것을 해보고 싶었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스님 입에서 통일 이야기를 빼고 하고 싶다거나 가고 싶다는 말씀은 처음 나온 것 같아서 반가웠어요.” nbspnbsp“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저는 하고 싶은 게 좀 있어요. 아마 이생에는 어렵겠지만 시간이 나면 인류문화사를 연구하고 싶어요. 인류 문명이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는 제 중요한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정신이 발생하고 발전해가는 것과도 관계가 깊은 문제거든요. 앞일은 모르겠지만 만일결사를 은퇴하게 되면 꼭 육로로 실크로드 답사를 해보고 싶어요. 그 다음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에게 문명 쪽을 좀 더 살펴보고요. 특히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터키 남부 및 시리아 쪽에 번성했던 히타이트 문명을 답사해서 문명의 원천을 자세히 살펴보고 싶습니다.nbspnbspnbsp자연 환경으로는 안데스 산맥과 바이칼 호, 동아프리카 탕가니카 호 근방, 킬리만자로 산 쪽을 가보고 싶어요. 특히 아프리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비롯해 인류 조상의 원뿌리가 있는 곳이니까요.nbsp또 정토회에서 해보고 싶은 것 중 두 가지가 아직 자리를 못 잡았어요. 하나는 청소년 교화소를 세우는 것입니다. 민간에서 교화소를 하나 인수해서, 문제아나 수감된 아이들을 데리고 깨달음의 장이나 나눔의 장을 열어서 완전히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소위 불법에서 말하는 ‘번뇌즉보리’처럼 쓰레기가 거름이 되는, 가장 잘못된 것이 가장 잘 되는 길이 되는 원리를 쉽게 보여주고 싶어요. 이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과연 실제로 그렇게 되는지를 증명해서 보여줄 필요가 크거든요. 일종의 대안학교부터 해서 창조교육 시스템을 실험해보는 셈인데, 대상이 사람이다 보니 실험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나 이렇게 일단 팽개쳐진 사람들은 앞으로 좋아질 길밖에 없으니 위험 부담이 덜합니다. 이미 나빠진 상태니까 더 나빠질 일은 없잖아요.nbspnbsp또 하나는 노동과 수행의 통일입니다. 결국 행복의 핵심은 정신적, 육체적 건강입니다. 건강하려면 마시는 물과 먹는 음식, 적절한 운동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건강한 작물을 생산하되 그 생산 활동이 곧 우리의 수행이 되도록 해보고 싶습니다. 농장 수련원의 구상과 설계는 벌써 되어 있어요. 여러분이 주말에 돈을 내고 농장 수련원에 와서 법문을 듣고 마음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배운 뒤, 마음공부의 방식으로 절이나 참선을 하는 게 아니라 노동을 하는 겁니다. 풀을 뽑든지 작물을 심든지 하고, 그렇게 일해 본 것에 대해 나누기를 하고, 명상도 하고요. 노동 수련이라고 할 수 있겠죠.nbspnbspnbsp우리는 여가를 대부분 낭비적으로 보냅니다. 그러나 노동 수련원은 노동을 놀이화하고 그것을 통해 생산을 하는 시스템이에요. 그렇게 우리가 생산한 결과물을 또 우리가 먹습니다. 무농약 혹은 유기농산물이 시중에서는 예컨대 일반농산물의 2배 정도로 비싸다면, 우리가 생산한 것은 수련에 참여해 일하고 받은 티켓을 첨부하면 물건 값의 절반으로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안전한 식품을 시중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데 그것은 남이 생산한 게 아니라 자기가 생산한 것이니 보람도 크지요.nbspnbsp제가 만약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면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생산하도록 할 거예요. 최소한 하루 2시간씩은 누구나 다 노동을 해서 자기 먹을 것 정도는 생산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육체 뿐 아니라 정신이 건강해집니다. 우리는 지금 완전히 남의 노동 위에 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노동에 치어서 고통을 받고 상류층은 쾌락에 빠지잖아요. 할 일이 없으니 자꾸 쾌락 쪽으로 흘러가요. 낭비적으로 쓰이는 주말노동을 생산 놀이로 어떻게 전환해서 이런 인간 문명의 한계를 극복할 것인지도 미래 문명의 주요한 과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가 실험을 해서 깨달음의 장이나 청년 학교 같은 프로그램으로 정착시킬 수 있으면 좋겠어요.nbspnbsp그래서 제가 큰 농장 부지를 찾아다니는데 남한에서는 찾기가 힘들어요. 한반도에서 하려면 휴전선 안 비무장지대나 북한에 미리 자리를 잡고, 아니면 연해주나 미국 같은 곳에 농장 터를 잡는다면 해볼 만합니다.nbspnbspnbsp미국 갔을 때 제가 늘 마음에 짐이 되었던 것은 흑인 청년들이었어요. 일거리가 없는 흑인 청년들이 어슬렁거리며 다니고, 전체 인구 중 흑인은 20가 안 되는데 수감 중인 범죄자들은 80가 흑인이에요. 이런 사람들도 이런 삶의 기회, 자기가 노동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이제는 인종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말만 해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머리로 이해는 했지만 실제 우리 삶에서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계속 개발하고 개척할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미 있는 것, 남이 해도 되는 걸 하면서 돈 조금 더 받는 데만 자기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어서 안타까워요. 먹고 사는 최소한의 생존은 어쩔 수 없이 누구나 다 해야 하지만, 저는 우리의 에너지를 그런 데 다 쓰는 것은 좀 낭비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각자가 어떤 직업에 있든, 지금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과제를 어떻게 극복할 건지 늘 생각해야 합니다. 예컨대 사람들이 화장실을 쓰고 휴지를 아무데나 버린다면 이게 교육 문제로 해결할 것인지, 시설 문제로 해결할 것인지, 다른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봐야죠. 이렇게 우리가 한계를 극복할 방법과 새로운 가능성을 늘 찾아봐야 합니다.nbspnbsp안정된 직장은 자리가 한정되어 있으니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러나 저 같으면 예컨대 공무원 해서 월급을 받기보다는 새로운 길을 연구할 것 같아요. 김치 한 가지를 담더라도 배추는 어떤 종류를 심어야 맛있는지, 절일 때는 얼마나 어떻게 절여야 하는지, 양념은 어떻게 해야 하고 발효는 어떻게 시켜야 맛있는지 연구할 거예요. 이것 하나만 잘 해도 인류 문화 발전에 기여하거든요. 유명한 왕이 되는 것보다는 독초나 약초를 하나 발견한 게 인류가 여기까지 오도록 기여한 중요도가 더 큽니다. 왕은 대부분 물자 낭비하고 사람 죽이는 것만 했을 뿐 인류 문명 전체로 보면 크게 기여한 게 없어요. 물론 왕들 중에는 제도를 개발하고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은 안주하잖아요. 그렇게 살아서 뭐가 좋은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게 저와 다른 사람의 차이점일지 몰라요. 매일 술 마시고 가만히 앉아서 놀면 자기 몸 건강도 해치고 정신건강도 해칩니다. 우선 자기에게 좋을 게 없어요. 그것보다는 산에 가서 바람 쐬고 다리 힘도 기르며 사는 게 낫죠.nbspnbspnbsp그래서 저는 가치관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삶을 추구할 건지 방향을 먼저 잡아야 하거든요. 그런 게 없다 보니 아까운 청춘들을 낭비하는 것 같아요. 자살을 생각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당장 길 가다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죽음이야 언제든 올 수 있어요. 죽음의 순간이 오면 죽으면 되는데 그걸 미리 죽으려고 발버둥칠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또 반대로, 죽음이란 늘 우리 속에 있는 것인데 안 죽으려고 악을 씁니다. 자살의 유혹을 이해 못해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그건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해야 하고, 또 여러분들이 무기력해지는 것은 삶의 가치관과 좀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자, 이렇게 생각해 볼 때 할 일은 무궁무진하지 않을까요?” nbsp“네, 잘 들었습니다. 문명 극복을 위한 스님의 비밀 프로젝트를 엿들은 것 같은 느낌이에요.”nbsp스님은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은 젊은 청춘 같아 보였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열정이 가득 느껴졌습니다.nbspnbsp이어서 소수만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 구조 속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희망을 얘기해줄 수 있는지 물었던 질문 내용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스님, 요즘 ‘헬조선’, ‘금수저’란 말 들어보셨죠? 청년들이 느끼기에는 지금 한국의 현실이 더 이상 개인의 노력으로는 빈부격차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자조적인 탄식이 섞인 말이거든요. 학교도 사실 공부 잘 하는 소수를 위해 굴러간다고 느껴지니까 대부분의 학생들은 굉장히 무기력해요.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인데, 이 친구들에게 제가 어떤 가치를 보여주고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위로가 되고 힘이 될지 개인적으로 고민됩니다. 예전처럼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 열심히 하면 성공할 거야, 보답이 있어’라고 이야기하기가 굉장히 미안해요.”nbsp“그런데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 할 때 그 ‘성공’의 개념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다르지 않아요? 지금은 대부분 ‘공부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 할 때 ‘성공’의 개념은 돈 많이 번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지금은 열심히 한다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에요. 조선시대에 신분제 사회에서 하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열심히 해도 과거급제를 할 수 없는 것처럼 이미 돈의 흐름이 거의 정해졌기 때문에 개인에게 아직 기회는 있지만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은 이해됩니다.nbspnbspnbsp그런데 저는 신분제 사회라 해도 종이 왕의 가치나 양반의 가치를 추구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왜 여러분들이 그 사람들이 정해놓은 가치를 따라가야 하는지, 투덜거리고 힘들어하면서도 굳이 뒤꽁무니를 쫓아가야 합니까? 그러면 늘 열등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잖아요. 누군가가 짜놓은 질서에 내가 노예근성으로 참여하면서 헐떡거리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보세요.nbsp지금 청년들이 느끼는 감정을 저도 30여 년 전에 느꼈습니다. 1980년이니까 35년 전이네요. 광주 민주화 항쟁이 났을 때 제가 처음으로 한국과 한국 불교에 실망해서 미국으로 갔습니다. 미국이 꼭 좋아서가 아니라, 마침 거기에 형님이 계시니까 거기 가서 제가 원래 하려고 하다가 접었던 천문학이나 물리학 공부를 다시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미국, 특히 맨해튼과 뉴욕 주위를 둘러보면서 좀 무기력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은 제가 나고 자란 곳이라 그런지 뭘 하든 마음만 먹으면 하겠다 싶은 게 한손에 잡혔는데 여기는 규모가 너무 커서 내 손으로는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nbsp뉴저지와 뉴욕을 잇는 조지워싱턴 브리지에서는 맨해튼이 한눈에 보여요. 수십 층짜리 고층빌딩들이 대나무숲 마냥 빽빽이 들어서서 스카이라인을 이룹니다. 그런데 제가 미국에서 450년을 전적으로 돈벌이에 집중해서 성공하더라도 그 맨해튼에서 빌딩 한 채를 사기가 쉽지 않아요. 살 가능성부터 1도 안 되지만, 설령 샀다손 치더라도 그 맨해튼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수많은 대나무 중 대나무 한 그루를 잡았을 뿐인데 그걸로 뭘 하겠어요? 다리에서 맨해튼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인생을 이렇게 투자할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하나는 광주항쟁 때 학살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보고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결국 6개월쯤 있다가 돌아오게 됐습니다.nbsp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30년 전 제가 미국 가서 느꼈던 막막함, ‘내가 이걸 어떻게 해볼 수 없다’는 절망이나 좌절감 같은 게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의 청년 여러분들에게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그 동안 규모가 엄청나게 성장하면서 사회 시스템이 짜여졌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개인이 이 거대한 사회에서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어요. 무슨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 성공한다 해도 길이 고만고만하고, 취직을 해도 길이 고만고만합니다. 게다가 이미 돈 번 사람, 지위 높은 사람, 출세한 사람, 유명한 사람은 곳곳에 널려 있어요. 이렇게 쳐다보는 눈은 높고 현실은 너무 밑에 있으니 그 갭을 극복하기가 좀 절망적일 거예요. 제가 그때 미국 가서 느낀 게 그거였거든요. 이건 내가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한국이 좋았어요. nbspnbspnbsp한국은 뭔가 내 손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이곳은 말이 통하고 내가 나고 자라서 잘 아는 환경이니까 목표와 각오를 세우고 10년이든 20년이든 목표로 잡아 어떻게 시도해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미국은 말도 안 통하고 규모도 너무 크니까 막막했어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여러분들이 30년 전 제가 미국에서 느꼈던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아요. 이해는 됩니다. 좀 막막하겠다 싶어요.nbspnbsp그러나 막막해진다는 건 이 가치를 따른다고 할 때 막막해지는 거예요. 쉽게 이야기하면 후발주자니까요.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의 그 시스템을 따른다는 입장에서는 당 간부의 자녀가 아닌 이상은 있어봐야 전망이 없어요. 그러나 북한의 그 가치를 떠나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습니다. 현재 북한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없는 게 아닙니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김일성 대학을 나와서 당 간부가 되는데 집중하지만, 지금 북한 젊은이가 아예 시장통으로 나가면 더 성공할 거예요. 북한 사회가 지금은 꽉 막혀 있지만 다음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있잖아요.nbspnbsp그런 것처럼 우리가 우리 사회의 다음을 어떻게 예측하고 움직일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이 시스템이 앞으로 아직 수십 년 더 가는 게 아니라, 지금 한계에 다다라 막혀 있잖아요. 그러면 그 다음에 어떤 길을 우리가 뚫고 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해서 길을 좀 달리 찾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스템에서 내가 올라갈 수 있는 층층다리를 만들 수 없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어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필요합니다.nbsp다음으로, 이 시스템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손으로 바꿔가야 합니다. 비정규직 문제라든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라든지 자본과 노동의 격차 같은 문제가 많잖아요. 조선시대에도 혁명을 했어요. 그런데 왜 여러분들은 ‘군도’나 ‘암살’ 같은 영화를 보면서 좋아만 하고, 직접 해 볼 생각은 하지 않아요? nbspnbspnbsp우리 힘없는 사람들이 연대를 해야 합니다. 그때는 반란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잖아요. 지금의 대한민국 헌법을 살펴보면 현재의 대한민국 현실이 잘못됐다고 써놨어요.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해놨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지금의 현실이 오히려 반란이고 반동이라는 거예요. 헌법에 근거해서 국민에게 주어진 권리를 행사하고 우리 대한민국을 어떻게 만들자고 할 때 우리가 훨씬 더 정당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연대와 행동은 헌법에 어긋나는 어떤 반란이 아니에요. 이렇게 막막해하며 ‘헬조선’이라고 자조만 할 게 아니라 그런 어떤 변화를 꿈꿀 수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nbsp조선시대에는 10의 양반이 90의 양민과 상민을 지배했다면 지금은 1의 소수자가 99를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왜 99가 침묵하고 거기에 노예처럼 매여 사는지 저는 그 자체가 좀 이해되지 않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아예 그런 신분 교육을 받아서 그렇다지만 지금 교육은 모든 국민이 다 권리가 있다고 받는데도 왜 이렇게 1에 눌려서 살아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면 되죠. 그런데 그걸 누가 해주기만을 바라면 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부처님이 와도 구제할 방법이 없어요. 본인들이 안 하겠다는데 누가 구제해주겠어요? 폭력적인 행동을 하자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합법적인 권리를 행사해서 불법적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들을 추방하는, 다시 말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합법화시키는 운동을 하면 되지 않냐는 겁니다. 요즘은 그게 목숨 걸 일도 아니고 밥 굶을 일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현실의 삶에 안주해 있는 건 아닐까 싶어요. 투표를 통해서 보이든 여론을 통해 보이든 뭔가 행동을 해야 변화가 오지, 아무 행동도 않은 채 절망만 하고 있다면 아무런 변화도 오지 않습니다.nbspnbsp제 요점은 두 가지입니다. 막막하다는 건 이해됩니다. 저도 겪었으니까요. 그러나 길을 뚫는다면 하나는 아예 이 가치가 아닌 다른 가치로 개인적으로 길을 뚫고 가는 게 있습니다. 남이야 돈을 많이 벌든 아파트를 사든 그걸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집 넓으면 청소하기 힘들고, 승진하면 골치 아픈 일이 많이 생깁니다. 예컨대 시골에 내려가서 ‘나는 과수원을 하겠다’, ‘나는 목축을 하겠다’, ‘나는 도예를 하겠다’ 이렇게 전혀 다른 가치에 따라 자기 나름대로 길을 뚫는 거예요. 결혼도 자기 가치관에 맞는 사람을 만나서 하고 함께 그 가치를 추구하면 돼요. 지금처럼 얼굴이나 학벌을 기준 삼아 고르지 말고요.nbspnbspnbsp아니면 지금의 이 가치 속에서도 이렇게 ‘헬조선’이라며 절망만 하지 않고 행동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지옥이라면 지옥을 정토로 만들어야죠. 저는 그런 어떤 운동에 청년포럼이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지금까지는 개인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역할을 했다면 이제 상처를 치유해서 뭘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공유하면서 확대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 길은 여러 가지입니다.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니에요.”nbsp“네, 감사합니다. 청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답변이었어요.”nbsp스님의 답변을 들으며 청년들은 보다 더 적극적이고 주인된 자세를 가져야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사회자와의 대담을 마무리 짓고, 이어서 청중석으로부터 직접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에 자신이 묻고 싶은 질문을 종이에 써서 질문지함에 넣어 둔 상태였습니다. 스님이 질문지함에 손을 넣어 질문지를 무작위로 고르면 해당하는 사람이 일어나서 스님과 대화를 주고 받은 방식으로 즉문즉설이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nbsp첫 번째 질문자는 사귄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 친구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24년 동안 연애를 한번도 못해 봤는데 어떻게 하면 남자 친구를 사귈 수 있는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다며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물었고, 네 번째 질문자는 청년학교를 통해 통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며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주변에 쉽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을 물었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네 번째 질문인 어떻게 하면 통일의 필요성을 주변에 쉽게 알릴 수 있는지 물었던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통일이나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었는데 청년학교를 통해 통일과 사회문제에 대해 나누기를 하다 보니 재미도 있고 관심이 갑니다. 직접 참여하는 방법, 자연스럽고 쉽게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법을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nbsp“처음부터 통일을 전파하겠노라며 접근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낼 계기가 있어야 해요. 예컨대 ‘새로운 100년’을 질문자가 먼저 한번 읽어보고 사람들에게 큰 부담 없이 권할 만하다 싶으면 ‘내가 읽어보니 참 재미있더라. 너도 읽어봐라’ 이렇게 주변에 권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읽어봤더니 좋은 면도 있지만 친구들은 안 읽을 것 같다면 권유하기 어렵죠. ‘암살’ 같은 영화를 같이 보러 가서, 영화에 나오는 역사가 발생한 배경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 수도 있습니다. 청년 실업 문제를 두고 대화하다가 통일 이야기로 이어갈 수도 있어요.nbspnbspnbsp지금 우리의 인구구조나 사회구조, 기계화, 자동화를 비롯한 여러 여건 상 일자리가 더 이상 늘어나기 힘들어요. 아주 창조적인 발상을 해서 새로운 직업을 스스로 만들어나가지 않는 이상 기존의 직종은 점점 줄어들지, 늘어나기가 어렵습니다. 기존의 직종에서 일자리를 늘리는 방법은 통일이에요. 북한 개발이라는 프로젝트가 생기면 수요가 늘어나거든요. 철도를 놓든 건물을 짓든 제방을 쌓든 도로를 닦든 아이들 교재를 만들든 농산물을 더 생산하든 모든 분야에서 양이 확대됩니다. 북한의 소비수준이 지금은 굉장히 낮지만 일단 통일이 되면 소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물자 수요가 많아져서 결국 우리의 고용과 매출도 늘어납니다. 그래서 북한 개발은 우리들이 지금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정체를 뚫고 나갈 사실상 유일한 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nbspnbsp저라면 창조성을 발휘해서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까 말한 것처럼 청소년 교화소를 만들어 운영할 수 있어요. 대안학교를 만들면 거기서 아이들을 가르칠 선생님이 필요하고, 농업 수련원을 만든다면 수련생들을 지도할 지도사가 또 필요합니다. 김치를 시범적으로 담아서 공급한다면 그걸 판매할 사람도 필요하지요. 이런 식으로 우리가 뭘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그 밖에도 버려진 산이나 땅, 창고를 가지고 뭐든지 만들어볼 수 있습니다.nbspnbsp최첨단 산업이나 우주 개발까지 나아갈 필요 없이 지금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이렇게 개발할 수 있는 것이 굉장히 많아요. 이런 것을 우리가 찾아내면 새로운 직종, 새로운 직업,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게 창조경제예요. 이것이 청년 실업을 해결할 한 길입니다.nbsp두 번째가 북한개발이에요. 기존의 기술과 방식을 갖고 일자리를 늘리려면 북한개발 밖에 길이 없어요. 수출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중국에 수출하는 것도 더는 힘들어요. 아직은 흑자지만 중국에서 수입하는 양이 더 많이 늘어나 무역역조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옷이나 신발은 중국 제품을 쓰듯 앞으로 핸드폰, 냉장고 같은 것도 중저가 상품은 전부 중국 제품을 쓰게 될 거예요. 거꾸로 안전한 식품, 고급 식품은 중국 수출 길이 열립니다. 지금은 농업이 손해를 보고 있지만 10년만 지나면 오히려 농산물과 식품류는 중국에 대량 수출이 가능해질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나 이런 일부를 제외하면 우리는 거의 한계점에 도달해서 무역량의 증가 속도가 크게 줄어들고 있어요.nbspnbsp그런데 북한 개발이라고 하는 프로젝트가 있으면 무역량과 생산량이 늘어납니다. 전에는 통일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면 지금은 어쩌면 통일만이 우리에게 희망이고 비전입니다. 이산가족이 만나거나 분단의 정신적 피해나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는 등 비경제적 면에서의 이익도 물론 어마어마하지만 경제적으로도 굉장한 이익입니다. 그리고 통일이 돼야 우리가 미래에 더 나은 비전을 만들 수 있지, 분단된 상태에서는 발전의 한계가 왔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한계점에 도달했어요.nbspnbspnbsp이런 것들을 꼭 전문가인 제가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여러분들이 조금만 공부하게 되면 우리 생활과 통일이 직결되는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막연히 ‘같은 민족이니 통일하자’ 이런 게 아니라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제예요.nbsp안전 문제도 그렇습니다. 지금 유럽의 IS 문제를 보세요. 자꾸 때려잡는다 하니 더 확산되잖아요. 불났을 때 불 끈답시고 때리면 불티가 날려서 급속도로 확산되듯 지금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어요. 난민 사태, 폭격과 테러에 의한 고통이 엄청납니다. 우리는 6.25를 제외하면 그런 고통을 비교적 안 겪은 편이지만, 남북이 충돌한다면 힘이 약한 북한은 힘이 강한 우리에게 대응하려면 당연히 게릴라전에 나설 겁니다. 그러면 전면전이 아니어도 사회 불안 요소가 됩니다. 미국이 그런 식으로 늘 불안에 시달렸는데 이제는 유럽까지도 번져서 지금은 집회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어요. 그러니 무조건 강경대응 하지 말고 그 사람들을 조금만 포용해줘서 더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 좋겠어요. 이라크 침공할 때 후세인을 제거했더라도 추종자들과 군대를 해산시키지 말고 조금만 아울렀다면 지금 이런 부작용은 없었을지 모릅니다. 증오심으로 때려잡으니까 처음에는 상대가 어쩔 수 없이 진 것처럼 보이지만 증오심을 갖고 다시 저항하고, 저항하는 걸 때려잡으니까 더 격렬해지죠. 우리도 다 겪었잖아요. 일본이 침략해 와서 처음에는 졌다가 10년 뒤인 1920년대에 청산리 전투, 봉오동 전투를 통해 저항했고, 저항했을 때 일본이 섬멸작전으로 탄압하니까 죽은 사람들의 자손, 형제, 친구들이 다 독립운동가가 되어서 저항을 하는 식으로 수가 늘어났어요.nbspnbsp우리가 남북문제를 ‘저놈은 약하니까 그냥 때려잡아버리면 된다’ 이렇게 안이하게만 본다면 앞으로 올 사회적 혼란과 저항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항상 이렇게 긴장을 조성해야 정치적 권력을 유지할 수 있어요. 북쪽도 남쪽도 긴장을 고조시켜야 독재 통치가 가능합니다. 남쪽 안에도 또 여야의 대립이 있어요. 여당과 야당이 서로 막 싸워줘야 새누리당이 싫다며 다른 사람을 찍으려던 경상도 사람이 결국은 또 새누리당을 찍고, 다른 당을 찍으려던 전라도 사람도 새누리당에 지면 안 된다며 돌아와 찍거든요. 이걸 적대적 공존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와 불교도 막 부딪히면 종교 간의 융화가 없어지는 대신 내부적으로 더 뭉쳐요. 진보와 보수도 이렇게 막 싸우면 결국 합리적 보수인 사람들은 진보를 지지할 수는 없으니까 보수로 돌아오고, 합리적 진보인 사람들도 극보수를 지지할 수는 없으니까 진보로 돌아오게 됩니다. 사회를 계속 이렇게 분리시키는데, 이런 것도 우리가 그냥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좀 더 나은 사회,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가려면 반드시 분단의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nbspnbsp그런 면에서 우리가 평화와 통일로 간다는 건 우리들의 삶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 평화롭고 희망이 있는 세계로 가는 길입니다. 지난 50년간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이해는 되지만, 이제는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서로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해요.nbspnbspnbsp그런데 좋은 이야기도 너무 그것만 하면 저항을 받아요. 그러니 관련된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거나, 관련된 영화를 보면서 대화를 나누거나, 실업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북한의 광산 개발이나 시베리아 철도 연결 이야기를 하는 등 생활 속의 이야기를 하면서 통일이 되는 게 낫다고 이야기해줄 수 있겠죠. 좀 가볍게 접근하면서 조금씩 대화의 폭을 넓혀 가면 좋겠습니다.”nbsp“네, 감사합니다.” nbsp통일 문제도 좀 가볍게 접근하면서 대화의 폭을 넓혀 가보라는 말씀에 모두 공감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니 약속한 3시간이 다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자가 “오늘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청년학교를 수료하게 되었는데 격려 말씀을 해달라”고 요청하자 스님은 청년들을 위해 이렇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기운을 차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어렵다는 것은 저도 이해해요. 어렵고, 힘들고, 막연하고, 나 혼자서 뭘 어떻게 해볼 수 없을 것 같은 심정은 이해가 됩니다.nbspnbspnbsp그런데 뒤집어서 생각해보세요. 지금 우리 사회가 혼자서 어떻게 해볼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조직이 됐으니까 오히려 우리가 조금 힘을 합치면 도전해볼 만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힘을 합치면 미래의 비전을 세우고 나라의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청년들이 몇 천 명씩 되는 조직들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나라에는 몇 백 명 되는 조직조차 잘 없으니까 몇 천 명 되는 조직을 만들면 사회에 큰 영향을 줄 거예요. 자본가들, 가진 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민중이 뭉쳐서 저항을 했던 시대에는 권력과 자본이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지 못했지만 오늘날 전부 개별화된 시대에는 부랑배라도 몇 명만 모이면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요. 몇 명이라도 조직을 이루면 힘이 있는 거예요. 세상이라는 게 그래요. 그래서 우리가 조금만 서로 힘을 모아 결집시키면 오히려 지금 시대에는 사회에 큰 영향력을 줄 수 있습니다.nbsp또 크게 헌신하는 사람이 많을 때는 조금 헌신해도 표가 안 나지만, 전부 이기주의적으로 굴 때는 내가 조금만 헌신해도 표가 납니다. 한국 스님들이 다 착실히 수행하면 법륜 스님 정도는 표가 안 날 텐데 대부분 농땡이를 부리니 저 같은 사람도 표가 나는 거예요.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농땡이 부리고 이기적으로 구는 게 다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다른 애들이 공부를 안 해야 내가 조금만 잘 해도 성적이 오를 수 있잖아요.nbspnbspnbsp이런 시대를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좋은 기회가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셔서 조금 기운을 차리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저기는 눈 감고 자네요.” nbsp스님은 마지막에 보통 ‘감사합니다’로 마무리하시는데 오늘은 농담으로 끝내며 웃는 모습을 보니 스님의 청년들에 대한 애정이 많이 느껴졌습니다.nbspnbsp제6기 청년학교 수료생들은 스님의 격려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큰 박수와 함께 더욱더 적극적인 실천활동을 다짐했습니다. 스님도 밝아진 청년들의 얼굴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6기 청년학교 수료증 수여식이 열렸습니다. 수료증과 개근상을 각각 대표로 수여한 후 올해 청년학교를 빛낸 ‘청학인의 상’이 발표되었습니다. 청학인의 상은 드러나진 않았어도 누구보다도 가장 열심히 활동을 한 자원활동가에게 수여되는 상입니다. 특별한 상이다 보니 활동 모습을 담은 영상과 함께 수상자가 발표되었습니다.nbspnbsp▲ 청학인의 상을 받고 있는 박선희님nbsp이어서 수료생 200여 명 모두에게 수료증을 나눠주었습니다. 스님은 무대로 올라온 한 명 한 명 모두와 직접 눈을 맞추고 악수를 건넨 후 수료증을 수여했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따뜻한 눈빛과 보드라운 손을 잡고선 기쁜 마음을 감추질 못했습니다.nbspnbsp▲ 새로운백년 청년학교 수료증 수여식nbspnbsp그리고 각 지역별로 스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은 후 마지막으로 전체가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밝고 늠름한 표정의 청년들은 “화이팅” 우렁차게 외쳤습니다. 새로운 백년을 열어가는 청년 통일의병 200여 명이 새롭게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nbspnbsp▲ 제6기 새로운백년 청년학교 졸업생 모두 함께nbspnbsp스님은 청년들에게 다시 한 번 합장하며 인사를 한 후 강당을 빠져나왔습니다. 대전을 출발한 스님은 곧바로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열리는 정토불교대학 가을학기 특강수련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오후 1시에는 대전 정토법당으로 이동해 청년 정토불교대학 봄학기 특강수련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저녁에는 서울로 이동해 국민통합회의 모임을 가질 예정입니다. nbsp nbsp※nbsp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nbspnbspnbsp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nbsp

2015.11.29. 51,947 읽음 댓글 35개

2015.11.27 (저녁) 일산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전에 남양주에서 있었던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정발산 성당에서 일산 시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올 들어 가장 추운 밤, 체감 온도가 영하 10도에 육박하는 매서운 날씨에도 성당 주변은 봉사자들과 속속 모여드는 청중들의 열기로 가득했습니다.nbspnbsp▲ 정발산 성당nbsp강연준비 총 책임을 맡은 오흥란 님은 “7시 강연인데 4시 40분경부터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며 “김밥 100줄이 모자랐다. 공식적인 봉사자는 75명이지만 더 많이 온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성당 밖에서 안내를 맡은 류신애 님은 “팟캐스트에 올라온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들었지만 강연장은 처음”이라면서 “설레고 떨려서 추운 줄도 모르겠다”며 활짝 웃었습니다.nbsp그런데 어떻게 성당이 스님의 강연장소가 된 것일까요? 과거 일산 부근에 있는 화정 성당에서 성당 측 주최로 스님의 즉문즉설을 연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일이 인연이 되어 이번에 이 성당을 소개 받을 수 있었다 합니다. 장소 섭외를 담당한 박지영 님은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차였는데 주임 신부님께서 정말 흔쾌히 허락해주셨다”며 인연과보의 오묘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했습니다.nbsp저녁 7시가 되자 어느새 성당은 800여 명이 넘는 청중이 1층부터 3층까지 가득 메웠습니다. 자리가 부족해 플라스틱 의자를 가지고 와 복도에도 나란히 앉았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예정보다 5분 정도 늦게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주임 신부님은 외부에 피정을 나간 상황, 스님은 성당 사무실에서 윤관영 시몬 보좌신부님과 사목회장님 등과 인사를 나누고 장소를 제공해 준 성당측에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일찍 부근에 도착해 있었는데, 꼭 학교 가까이 사는 아이가 지각한다고, 5분이면 간다고 해서 늦게 출발했더니 그만 차가 막혀 늦었다”고 말해 일동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nbspnbsp▲ 윤관영 시몬 보좌신부님nbsp시몬 신부님은 스님에게 프란체스코 교황님의 책을 선물하며 반가운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청중의 열띤 박수를 받으며 단상에 오른 스님. 스님의 뒤편엔 커다란 십자가상이 걸려 있었습니다. 스님은 다시금 장소를 제공해준 성당측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사실 처음 천주교가 이 땅에 전파될 때 절에서 장소를 제공한 일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절도 함께 많은 핍박을 받았다고 했습니다.nbspnbsp“오늘 우리가 대화할 수 있는 좋은 장소로 성당을 사용하도록 허락해주신 신부님과 여기 성당에 나오시는 형제자매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작년에 전 세계 115개 도시를 115일간 다니면서 강의를 할 때 미국과 중남미에서는 성당에서 제일 많이 강의를 했습니다. 거기는 따로 공공장소가 없어서 주로 성당을 많이 이용했어요.nbspnbspnbsp그때 제가 ‘성당을 빌려서 강의를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빚진 건 아닙니다’ 하고 농담을 했어요.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올 때 탄압을 피해 산속 암자에 가서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첫 전래지가 천진암입니다. 천주교가 탄압받을 때 불교인들도 장소 제공자라 해서 피해를 많이 입었습니다. 그런 역사가 있기 때문에 스님이 성당을 좀 사용해도 큰 빚이 아니라고 농담하고 웃었습니다. nbspnbspnbsp오늘 이렇게 성당에서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더욱 반갑습니다. 오늘은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특정 종교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 이야기를 하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이런저런 인생의 애환이나 인생에 대한 의문을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해보는 시간이에요.”nbsp스님의 여는 이야기에 뭔가 시작부터 흐뭇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아, 그렇게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사이였구나’ 하고 빙긋이 미소가 지어졌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쓰레기가 곧 거름이라고 하면서 번뇌가 곧 깨달음이라는 즉문즉설의 취지를 알려주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우리는 쓰레기라고 하면 버려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쓰레기가 곧 거름입니다. 거름은 가장 요긴한 것이고 쓰레기는 가장 쓸모없는 것인데, 쓰레기가 곧 거름이에요. 그것을 ‘번뇌즉보리’라고 해요. ‘번뇌’는 ‘고뇌’를 뜻합니다. ‘보리’는 인도 말 ‘보디’에서 왔는데 ‘깨달음’이란 뜻이에요. 번뇌가 곧 깨달음이다, 쓰레기가 곧 거름이라는 이야기입니다.nbspnbspnbsp똑같은 똥이라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져요. 오물이라고 보면 갖다 버려야 하고, 거름이라고 보면 주워 와야 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이웃집에 가서 놀다가도 똥오줌이 마려우면 자기 집에 가서 누고 왔어요. 거름이기 때문입니다. nbspnbsp오늘 대화에서 쓰레기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나와도 그걸 잘 살펴보면 쓰레기가 아니라 거름입니다. 자, 이야기를 시작해보죠.”nbsp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여러명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하고자 했습니다.nbspnbsp오늘은 총 5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교회 목사님의 아내였습니다. 어렵게 신학을 공부하고 정성을 다해 목회일을 했지만 핍박받고 교회에서 내쫓겼다 했습니다. 남편의 고난을 지켜보기 괴롭다 하였습니다. 성당에서 진행되는 즉문즉설에 첫 질문자는 독실한 기독교인, 흔히 보기 힘든 광경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졌습니다.nbspnbsp두 번째는 간호사가 될 것인가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할 것인가 고민중인 간호대학생의 질문이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올바른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가 궁금한, 아주 조숙한 중학 3년생이었습니다. 네 번째는 이혼하고 홀로 힘들게 사남매를 키워온 친정어머니에게 사랑한다, 감사한다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자꾸 화를 내는 것이 괴로운 40대 주부였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밀린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계속 재판에서 지면서 정신적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진 안타까운 사연이었습니다.nbspnbsp스님의 얼굴을 볼 수 없는 3층 끝자리까지 꽉 들어 찬 청중들... 모두들 분명 오늘 하루, 바쁘고 힘들게 살았겠지요. 어떤 이들은 그저 스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한참을 서서 듣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졸음을 쫓기 위해 선 채로 스님 법문을 들었습니다. 모두들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때론 눈물 지으며 스님과 질문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목사님을 남편으로 둔 아내의 고민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질문자는 남편이 교회 재건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지만 늘 핍박을 받았다며 안타까워 했습니다.nbspnbsp“지혜롭고 자애로우신 스님께 여쭐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nbspnbsp“시작이 좋습니다.”nbsp“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남편에게 길이 열리지 않고 악한 일을 겪으니 괴롭습니다. 남편은 개신교 목사님인데 국내에서 석사를 마치고 세계 유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형제 많은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남편에게는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유학길에 오르기 전에 모 단체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으나 결국은 장학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선발자가 자기 지인으로 장학금 수여자를 변경해서 가로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실망이 컸지만 꿈이 있었기에 열심히 했습니다. 학위를 취득한 후에 돌아와 연구하며 강사 생활을 하다가 교수로 임용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연구 실적이나 심사기준에서 1등이였던 남편이 아니라 2등인 사람이 인맥을 내세워 임용되었습니다. 많이 울고 절망했지만 하나님의 뜻이 다른 곳에 있으리라 믿고 견뎠습니다.nbspnbsp그러다가 어떤 교회에 초빙이 되어 목회를 하게 되었는데 제 남편 전에 여러 명의 목사님을 핍박해서 내쫓은 전력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교회 역사가 그렇다 보니 성도님들이 다 떠나버리고 시골의 집성촌처럼 한 일가를 중심으로 하는 소수만 남아 있었고, 개중 대부분이 장로님과 권사님들이었습니다. 남편은 6년 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최선을 다하면서 사랑으로 성도들을 보살피고 교회 재건에 힘썼습니다. 그런데 장로들이 5년째 되던 해부터 1년 동안 핍박과 조롱과 멸시와 인격모독을 비롯한 온갖 악랄한 방법으로 괴롭혀 결국 남편은 올해 3월에 사임했습니다. 용서하자 마음먹다가도 장로며 교회가 어찌 이리 악할 수 있나 싶어 참담하고 억울합니다. nbspnbsp이런 나날이 2년 정도 계속되다 보니 마음도 몸도 많이 상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기도해야 남편의 길이 열릴까요? 어떻게 해야 늘 최선을 다하지만 빼앗기기만 하는 남편한테 하나님께서 교회를 교회 되게 하고 성도를 성도 되게 하는 지도자로서의 길을 열어주실까요?nbspnbsp더불어 여쭙고 싶은 한 가지는 가족과의 관계입니다. 시어머니는 삶이 힘들다 보니 제게 악담을 퍼붓거나 화풀이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 동안은 이해하고 살았는데 우리 부부가 이렇게 어려운 일을 겪고 나니 부모 형제가 다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어 서운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부끄럽게도 가끔은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제가 너무 가치 없는 존재로 느껴집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nbsp“이분을 위해 큰 격려의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 nbspnbspnbsp“이건 어떤 인생의 길을 선택하는냐의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따를 것인지, 세상의 길을 따를 것인지를 먼저 선택하셔야 해요. 관점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기 때문에 지금 혼란스럽지 않나 싶거든요.nbspnbsp그리스도의 길을 따른다는 관점에서 보면 지금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세상의 길을 따른다는 관점에서 보면 굉장한 고난을 겪고 있지요. ‘내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라는 문제인데, 질문자는 지금 세상의 길이라는 관점을 갖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 일이 뜻대로 안 되고,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느라 원망도 생깁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질문자의 신앙은 그저 어려울 때 하나님이 돌봐주기를 바라는, 즉 나를 중심으로 놓고 하나님의 복을 비는 신앙의 틀을 못 벗어나고 있어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까지도 원망스럽습니다.nbspnbsp그런데 남편이 목사의 길을 갈 때는 세속의 이익이나 명예나 직위를 추구하는 길을 간 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길, 즉 고난의 길을 선택한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 이 길은 축복받은 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섞어서 생각하니까 혼란스러운 거예요.nbspnbsp예수님은 고난의 길을 가신 분이잖아요. 한 번도 사회 기득권층으로부터 예수님이 인정받거나 환영받은 적이 없고, 마지막에는 혹세무민했다는 모함을 받아 사형 언도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잖아요. 그런데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하셨습니다.nbsp저는 어릴 때 교회를 다녀서, 크리스마스 연극을 할 때마다 동방박사 역을 했습니다. 아기 인형을 구유에 뉘어 놓고 ‘동방 박사 세 사람 귀한 예물 가지고’ 이렇게 노래부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렇게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와서 가장 높은 지위로 올라가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평생을 고난의 길만 걸으셨어요. 한 번도 환영받는 길을 걸은 적이 없어요.nbspnbsp제가 1980년대에 고문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무턱대고 잡아가서 ‘네 죄를 네가 알렷다‘ 하고 때리다가 물고문도 했어요. 영문도 모른 채 고문당하는 게 너무너무 억울해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제 손에 총이 있었으면 그 사람들을 다 쏴 버렸을 겁니다. 저는 그때 나를 봤어요. 그 사람들은 말로는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해도 나를 때리고 고문할 뿐이지 실제로 죽이려고는 안 했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로 다 죽여 버리려 했거든요. 총이 없어서 못 쐈을 뿐이죠. 그때 그런 나를 보고 제가 굉장히 놀랐습니다. ’내가 엄청나게 독한 사람이구나‘ 하고 알게 됐어요.nbspnbspnbsp전에는 성경을 늘 읽어도 눈에 안 띄었는데, 그런 자기 모습을 본 뒤 성경을 읽었을 때 제일 눈에 띄는 말이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였습니다. 저는 감히 흉내낼 수도 없는 말이었어요. 기독교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 무릎을 꿇었을 정도로 예수님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사람의 몸을 가진 분이 한 말씀이지만 사람으로서는 그런 마음을 낼 수가 없어요. 저는 평소에 도인인 척 살다가 당해보니까 악심이 마구 솟구치는데, 맞는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벌써 신성이에요.nbsp그리고 또 하나 고문당하면서 얻은 깨달음이 있어요. 그렇게 괴로워하고 분노하는 중에는 저를 고문하는 세 명의 장정이 악마 같은 사람들로 보였어요. 예수님을 못 박은 사람은 둘이었지만 저를 고문한 사람은 셋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문하다가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어요. 저를 위해서 쉬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힘들어서 쉬면서 담배도 피우고 잡담을 나눕니다. 그런데 그 날이 마침 11월 15일, 예비고사일이었어요. 요즘 말로 하면 수능시험날이죠. 제가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고 있는데, 옆에서 자기들끼리 앉아서 담배를 피우면서 한 명이 동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야, 오늘 우리 딸이 시험을 잘 쳐야 할 텐데. 잘못 쳐서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못 가고 지방대에 가면 내 박봉에 그걸 어떻게 뒷바라지하겠어? 그래도 서울 시내 대학에는 붙어야 어떻게 공부를 시키지 않겠냐.’nbsp그때 제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악마인 줄 알았더니 악마가 아니고 그냥 우리 주위에 있는 애들 아빠인 거예요. 아까 저한테 그렇게 악독하게 굴던 사람들이 앉아서 담배 피우면서 하는 이야기가 딸 걱정인 거예요. 퇴근하고 집에 가면 저 사람도 한 아이의 사랑하는 아버지, 한 여인의 사랑하는 남편, 한 노인의 사랑하는 아들일 겁니다. 고문실을 나가서 사무실에 앉으면 착실한 직장인이고요.nbspnbsp그때 제 속에 있던 분노와 증오심이 확 녹아내렸어요. 제가 그 경험을 안 했다면 아마 고문당한 경험이 굉장한 상처가 되어서 ‘이 놈의 자식들, 나가기만 해봐라. 다 죽여버린다’ 이러거나 나중에 민주화가 된 뒤에 그 명단을 찾아서 처벌하려 들었을 거예요. 수행자가 증오심을 갖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그 경험을 통해서 제가 증오심을 내려놓게 됐어요.nbspnbsp이 경험을 하고 나니 그 전에는 아무리 읽어도 안 보이던 성경 구절이, 그리고 그 뒤 구절이 눈에 딱 들어왔어요. 예수님 말씀을 보면 그 뒤 구절이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입니다. 고문당하는 제게는 죽일 놈들이지만, 그 사람들은 자기가 죄를 짓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공무 집행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nbspnbsp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은 요즘 말로 하면 교도관들입니다. 사형 선고를 내렸으니 그 사람들이 집행을 하는데, 그 당시 사형 집행 방식이 교수형도 아니고 총살형도 아니고 십자가형이였어요. 거기 매달아뒀다가 죽으면 내리고 다시 새로운 사형수를 매다는 일을 어부가 물고기를 잡듯이 매일 출근해서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때 예수님은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신 겁니다. 그러니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이런 말이 가능한 거예요. 저도 그 악심이 내려놓아진 것은 용서해 주고 싶어서 혹은 용서를 하려고 해서 된 것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이해를 했기 때문이었어요. 딸 입학시험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냥 평범한 시민이었구나. 나에게는 악마 같지만 자기들은 전혀 모르고 그냥 공무 집행하는 중이구나’하고 알게 된 거예요.nbsp남편이 그리스도의 길을 간다면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미움도 아니고 불교로 말하면 전생의 죄도 아니고, 또 사주팔자 탓도 아닙니다. 이 길을 선택하면 이렇게 가는 거예요. 이때 이런 고난을 딛고 가지 않고 대형 교회의 목사님처럼 환영받고 간다면 예수님께서 채찍으로 쫓아낸 유대의 랍비나 율법주의 학자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제가 볼 때는 남편은 지극히 정상적인 길을 가고 있어요.nbspnbsp그러니 질문자가 ‘내 남편’이라는 생각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분’으로 바라보도록 관점을 좀 바꿔야 이 문제가 해결됩니다. 관점을 바꿔버리면 아무것도 문제가 안 돼요. 시어머니도 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자로 보지 않고 아들로 보니까 그래요. 섭섭하니까 nbsp‘우리 아들은 원래 똑똑하고 착했는데 며느리 때문에 그리 되었다. 네가 들어와서 이 모양이 됐다’ 이렇게 생각해서 문제가 발생하거든요. 아내인 나도 남편의 삶 때문에 이렇게 힘든데 자기 아들이 그 길을 가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얼마나 힘드실지 이해해 드려야 합니다. 내 힘듦을 어머니가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말고요. 남편이 겪는 어려움을 아내가 보는 것보다는 아들이 겪는 어려움을 어미가 보는 게 훨씬 더 힘듭니다. 질문자도 자식이 있으니 알 거예요. 그러니 ‘아이고, 나도 이런데 어머니는 얼마나 힘드실까?’ 하고 어머니를 이해하면 좋겠습니다.nbspnbsp기도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부처님이나 하나님한테 기도하는 방식이 조금 잘못되었어요.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비는 걸 기도라고 생각하는데,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 ‘은혜를 입었다’고 하고 안 해주면 ‘기도해봐야 소용없더라. 믿어봐야 소용없더라’라고 합니다. 그러면 자기 신앙을 자기가 부정하는 게 됩니다.nbsp‘이렇게 해주세요’ 라는 말은 굉장히 정중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명령입니다. ‘내가 이게 필요하니 가져와라. 안 가져오면 안 믿을 테다’ 이런 뜻이거든요. 이건 신앙이 아니에요. 그 분은 나보다 훨씬 지혜로운 분입니다. 그래서 전지하신 그분께서 다 아신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그 분께서 다 아셔서 이게 나한테 좋다면 그 쪽으로 인도하실 거예요. 시험에 합격하는 게 나한테 좋다면 합격하는 쪽으로 인도하실 테고, 합격하는 게 당장은 좋아보여도 사실은 안 좋다면 또 합격하지 않는 쪽으로 인도하실 거예요. 그건 그 분한테 맡겨야 해요. 이것을 뜻하는 신앙고백이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입니다. 항상 어떤 어려움이 생겨도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항상 감사 기도만 해야 합니다. ‘해주세요’라는 기도는 해주면 고맙고 안 해주면 미운 거예요. ‘주님,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 기도를 하면 이미 은혜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 둘에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은혜를 받을 수도 있고 안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나는 이미 은혜를 받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는 거예요. 주님의 은총이 항상 나와 함께 하기 때문에, 주어진 이 길은 모두 주님의 뜻이라고 여기고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감사하게 받아들이면 자연히 물 흐르듯이 좋은 길로 이어지게 되어 있어요.nbsp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관점을 잘못 잡아서 세속의 관점에서 보다 보니까 힘이 들어요. 물론 사연을 들으면 절절히 이해가 됩니다. 참으로 어려운 고비를 건너왔고, 건너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쪽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길을 아주 순조로이 잘 따라가고 있는 거예요. 몇 년이나 일한 사람을 쫓아냈다고 하지만 그래도 십자가에 못 박은 건 아니잖아요.” nbspnbsp“그렇죠.”nbspnbsp“십자가에 못 박아도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하는데 교회에서 쫓아내는 것쯤이야 어때요. 게다가 별로 좋지도 않은 교회라면서요. 좋지 않다고 해서 내가 나와버리면 사랑이 아니라 분별이에요. 그런데 자기들이 싫다고 가라고 했으니 내 잘못은 없어요. 그러니 그것은 주님께서 오히려 길을 열어주신 거예요. 내가 못 견뎌서 나오면 내 공부가 덜 된 것이지만 그쪽에서 나가라고 하니 아주 잘 된 겁니다. 생각을 이렇게 좀 바꾸시면 좋겠습니다. 이 정도 말씀드리고 이제 질문자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봅시다.”nbsp“남편은 제게 스님이 해주신 말씀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하면서 십자가를 거부하고는 살 수가 없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복은 그런 게 아니다. 이 길도 십자가의 길인데 거부하고 순종하지 않는 건 신앙인의 양심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합니다. 오늘 스님 말씀을 들어보니 제가 그런 관점으로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사실은 남편이 저를 가장 불편해하는 것 같아요. 본인은 본인의 신앙 고백대로 양심적으로 그 길을 갔는데, 저는 남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학식이 너무 아깝다고 여겼거든요.” nbsp“그 재능이 속인으로서는 아까운 게 맞지만 한번 생각해보세요. 제게 만약 부인이 있어서 이러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잔소리를 할까요? 안 할까요? nbspnbspnbsp대기업이든 관공서든 요청받아서 강의를 해주면 2300만원씩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강의를 그렇게 많이 하면서도 저는 강의료를 안 받아요. 초청 강의는 안 가고 무료 강의만 합니다. 그런데 마누라가 있으면 잔소리하겠죠. ‘왜 그렇게 밤잠도 못자고 종일 차로 돌아다니면서 자기 몸을 혹사하고, 준다는 돈도 안 받느냐?’ nbsp맞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원래 부처님 가르침이 그렇습니다. 절을 짓는 거야 원하는 신도들이 알아서 짓는 것이지만, 수행자 개인이 받을 수 있는 것은 입는 옷과 먹는 음식과 아플 때 쓰는 약과 잘 때 바닥에 까는 자리뿐입니다. 다른 건 못 받게 되어 있어요. 물론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좀 달라지긴 했지만요. 그러니 그걸 누가 보느냐에 따라 다른 거예요.nbsp부모의 야단이나 주변의 유혹에 넘어가면 이 길을 못 갑니다. 어머니가 ‘네가 꼭 내 죽는 꼴을 봐야 되겠냐’ 이러다가 설령 정말로 돌아가신다 해도, 이 길을 가려면 ‘네. 어머니는 성인이시니까 어머니 알아서 하십시오. 장례는 치러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해야 해요. 제가 지금 웃고 있지만 아주 냉정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길을 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질문자의 남편인 목사님은 한 가지 잘못한 게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의 길을 가려면 혼자 가지, 왜 이렇게 예쁜 여성을 데려다가 고생을 시켜요? 두 가지 길을 다 가려니까 그 분도 힘든 거예요.” nbspnbsp“그런 것 같습니다.”nbsp“그래도 이왕 갔으니까, 이제 질문자가 ‘남편’이라는 생각을 잊어버려야 돼요. 자꾸 ‘남편’을 내세우면 죽을 때까지 이 번뇌가 끝이 안 나요. 부처님은 결혼해도 부인을 버리고 갔다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부인이 출가해서 비구니가 됐어요. 질문자도 그냥 목사가 돼버리세요. nbspnbsp그렇게 관점을 딱 바꿔주는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같이 사는 것만 해도 고맙게 여기세요. 그리고 신부님이나 스님들처럼 그냥 자기 길 가도록 항상 응원해주세요. 아무 관계없는 신자들도 응원해주는데 하물며 함께 사는 아내가 응원해주지 못할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아이고, 저렇게 좋은 재능을 썩히니 아깝다. 제대로 하면 총장도, 교수도, 유명한 목사도 될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 하면 안돼요. 그런 재능을 다 버리고 가장 작은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길이 막혔다고 하지만 정작 이야기를 들어보니 질문자의 남편은 굉장히 훌륭한 분입니다. nbspnbsp아내로서는 좀 맘에 안 드는 게 이해는 됩니다. 안타까운 것도 이해는 돼요.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그리스도의 길로 잘 가는 길이에요. 한방에서 자는 사이면 목사님이 하는 이야기도 남편 이야기로 들리지 목사님 이야기로 안 들려요. 질문자가 자꾸 남편으로 보고 이야기를 하면 질문자도 힘들고 남편도 힘드니까 그냥 목사님으로 보세요.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한 목사님이잖아요.nbspnbsp저는 그런 목사님을 눈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없던데요. 그러니 좋은 목사님을 존경하는 자세로 뒷바라지 해주세요. 그렇다고 뭐 재물 같은 것으로 뒷바라지하려 생각하면 안 돼요. 고난을 묵묵히 감내함으로 해서 영성이 더 성숙하는 쪽으로 가도록 도와드리세요. 그렇게 관점을 바꾸셔서 이미 하느님의 은총을 듬뿍 받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게 좋습니다.”nbsp“네, 스님. 감사합니다.” nbspnbsp울먹이며 질문하던 여성 분은 스님의 답변을 듣고 마침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성당에서 이뤄진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에서 목사인 남편으로 인한 괴로움을 물었고, 스님은 예수님의 본래 가르침이 무엇인지 상기시켜 주며 질문자와 청중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감동적인 설법의 현장이었습니다. 정말로 종교의 구분을 초월한 야단법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약속한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질문을 하고 싶다고 손을 들었으나 기회를 얻지 못한 한 명이 더 있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만 강연을 마쳐야 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오늘의 대화를 통해 각자의 신앙이 좀 더 돈독해졌기를 바라면서 장소를 마련해준 성당 측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부처님이나 예수님은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했기에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니 오늘 대화를 통해 여러분들 각자의 자기 신앙이 좀 더 돈독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성당 측과 교우들, 신부님께 큰 감사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nbsp마침내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이 끝났습니다. 9시 반을 훌쩍 넘긴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스님의 싸인을 받고자 기다렸습니다. 한결 후련하고 편안해진 얼굴들... 밝은 미소가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nbspnbsp첫 번째 질문했던 목사님의 부인은 처음엔 스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좀 어리둥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 듣고 나니 “아, 내가 그동안 잘못 기도해 왔구나”라고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님 말씀대로 관점을 바꿔 보니 나의 고민이 고민이 아닌 것 같다. 목회자의 아내로서 거부할 수 없는, 거부해서는 안 되는 나의 십자가를 냉정하고 준엄하게 일러주신 것 같다”며 “스님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셨음 좋겠다”고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시했습니다.nbspnbsp윤시몬 신부님은 “스님 자신의 깊고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하시니까 더 힘이 실리는 것 같다. 종교를 떠나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예를 드시는 것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고 강연 소감을 말해 주었습니다. 특히 “낮부터 와서 준비하는 정토회 봉사자들을 보면서 진실한 종교 지도자 한 분의 영향력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 실감했다”며 “어렵고 힘든 분들이 와서 희망을 찾아가는 자리였던 것 같아 종교를 떠나 기쁘고 좋았다”고 말했습니다.nbsp이어서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에게 사인을 받고자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습니다. 사인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으로 그 마음을 받아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오늘 강연을 준비한 일산정토회 소속 봉사자들 모두가 십자가 아래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어 행사 진행이 만만치 않았을텐데 힘든 기색은 찾아보기 어렵고 다들 보람되고 기쁜 표정입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준비한 일산정토회 자원봉사자들nbsp이 날은 인천경기서부지역에서 올해의 마지막 강연이었습니다. 책 사인회와 기념 사진 촬영이 끝나자 10시가 다 된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스님은 함께 케익 커팅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봉사자들을 격려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을 총괄한 일산정토회 총무님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꽃다발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봉사자들이 스님에게 격려말씀을 부탁하자 스님은 오늘 강연 분위기가 참 좋았다고 칭찬을 한 후 낮에 일산 정토법당에 머물면서 남자 화장실을 사용한 소감을 이야기해 주면서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지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nbspnbsp“제가 오늘 일산 정토법당에 가보니 같은 층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에서 냄새가 너무 많이 나고, 휴지를 휴지통에 안 버려요. 변기 옆에 휴지통이 있고, 문에도 ‘휴지를 변기에 넣어주세요’라고 써 붙여놓았던데, 휴지를 변기에 넣거나 휴지통 안에 안 넣고 맨바닥에 마구 버려 놓았더라고요.nbspnbspnbsp정토회는 환경운동을 하는 단체인데 화장실에 휴지가 이렇게 널려 있으면 안 되겠지요. 우리가 늘 청소해서 깨끗하게 하든지, 건물에서 우리와 같은 층을 쓰는 사람들을 모아 교육을 시켜서 깨끗이 하든지 해야죠. 정토회가 없는 건물에 있는 공중 화장실 마냥 쓰고 있었어요. 우리가 사는 데를 늘 돌보고 가꿔야 합니다.nbsp절하고 참선한다고 수행자가 아닙니다. 항상 ‘지금, 여기’에 깨어있어야 해요. 누구든지 흐트러진 수건을 보면 바로잡아놓을 수 있어야죠. 공중화장실에 가더라도 휴지가 지저분하게 떨어져 있으면 정리해서 집어넣고요. 저는 비행기를 타면 화장실 청소를 할 때가 많아요. nbspnbspnbsp비행기 화장실에서는 휴지를 변기에 집어넣으면 안 되는데도 꼭 변기에 집어넣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변기에 바람이 빠져나갈 때 휴지가 거기에 붙어서 안 떨어집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걸 끄집어내서 휴지통에 집어넣고 손을 씻은 뒤 나옵니다.nbsp그런데 우리는 그런 일상생활이 잘 안 돼요. 꼭 청소하는 사람이 청소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유럽에서도 널려 있는 쓰레기를 주워서 휴지통에 넣으니까 유럽 사람들은 이래요. ‘스님, 하지 마세요. 그래야 청소하는 사람이 밥 먹고 살아요.’ 그런데 그건 제가 듣기엔 좀 엉뚱하고 안 맞는 소리 같아요. 일부러 어지르고 그걸 또 치우는 사람을 만들어서 일자리를 늘릴 필요가 뭐 있어요? 담배꽁초 버리지 말라고 써놓은 표지판 바로 밑에 보란 듯이 꽁초 한 개를 딱 갖다놨어요.nbspnbsp▲ 일산정토회 회원들과의 간담회nbsp수행은 고상하고 특별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수행이라고 하면 절을 몇 배 했느니 참선을 어떻게 얼마나 했느니 하는 걸 따지지만 이런 건 주로 기복적인 것을 따질 때 그렇게 하는 거예요. 수행이란 늘 일상에 깨어있고 자기 마음에 깨어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슬프거나 화가 날 때 자기가 사로잡힌 줄 바로 알아차리고 마음을 가볍고 기쁘게 갖는 게 수행이에요. 때로는 절도 하고 명상도 하지만 일상사에서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평소의 생활을 보면 깨어있는지 여부를 금방 알 수 있어요. 정토회는 생활불교를 하는 곳이니까 여러분들도 생활에서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nbsp강연 준비에 여념이 없어서 생활이 흐트러지지는 않았는지 모두들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강연이 끝났다고 모두가 들떠 있는 사이에도 행여 수행을 놓칠까봐 따끔한 일침을 놓아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어떻게 하면 작은 법당이라 하더라도 화합하는 법당이 될 수 있는지, 나날이 발전하는 법당이 될 수 있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먼저 배운 사람들은 많이 배웠으니 더 깨어있어야 하는데, 많이 배웠다고 꼭 더 나은 건 아니에요. 타성에 젖기 때문입니다. 늘 먼저 다닌 사람이 낫고 나중에 다닌 사람이 못하다면 발전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에 세웠던 모범을 유지하려면 먼저 다니는 사람이 모범이 돼야 해요. 먼저 다니는 사람이 모범이 됨으로 해서 뒤에 다니는 사람들이 따라배우면 사람이 아무리 많이 와도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일산정토회를 예로 들면 만약 일산정토회가 갈수록 나쁜 방향으로 간다면 먼저 다닌 사람이 모범이 못 됐다는 뜻이에요.nbspnbspnbsp점점 좋아지지 않는 건 새로 온 사람의 책임입니다. 먼저 다닌 사람보다 새로 온 사람이 더 잘 하면 갈수록 개선이 되는데, 시간이 흘러도 개선이 안 된다면 뒤에 온 사람들이 깨어있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먼저 다닌 사람들은 수준이 원래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니까 새로 온 사람들이 그것보다 나아져야 해요. 그래서 제자가 스승보다 늘 못하면 그 학파나 집단은 갈수록 쇠퇴합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나아야 발전해요. 그러니 ‘먼저 다니는 사람만 잘 하고 뒤에 다니는 사람은 못해도 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돼요. 앞서 다니는 사람들이 못 지킨 규칙을 뒤에 다니는 사람이 더 잘 지켜야 개선이 됩니다.nbspnbsp그리고 먼저 다니는 사람들은 모범을 보이되 자꾸 자기를 고집하면 안 돼요. ‘우리는 늘 그렇게 해왔으니 괜찮아’ 이러면 안 됩니다. 새로운 사람이 문제 제기를 해도 그게 원칙에 맞고 합당하면 ‘맞아, 그러네. 우리는 그저 다니기만 했지 제대로 못 했네’ 이렇게 받아줘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선후배가 조화를 이루어 발전할 수 있습니다. 선배가 자기를 고집하면 후배들이 답답해지고, 후배들이 우리는 책임 없다고 해서 무책임 의식을 갖게 되면 관계가 자발적이지 못하고 자꾸 명령조가 돼요. 자꾸 애들처럼 가르치려고 하다 보니 ‘요새 온 사람들은 수행을 안 해’라는 식으로 말하게 됩니다.nbspnbsp수행은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창조성도 있고 행복해지지, 시킨 대로 억지로 따라가는 방식은 활력도 떨어지고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렇게 선후가 잘 조화를 이루어 하도록 합시다.nbsp그리고 책임을 맡은 사람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책임 진 사람에게 무조건 복종하라는 게 아니에요. 어떤 일을 옆에서 비판하기는 굉장히 쉽지만 막상 책임 맡아서 해보면 쉽지가 않아요. 우리가 정부 비판은 많이 하지만 막상 정부 일을 맡아서 해보면 간단하지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총무니 팀장이니 해서 책임을 맡은 사람들을 소중히 여겨줘야 합니다. 다소 부족함이 있더라도 소중하게 여기고 항상 협조를 잘 해줘야 해요. 그리고 총무나 팀장들은 그게 특별한 지위가 아니라 대중에게 봉사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대중의 여론을 잘 수렴해줘야 합니다. ‘예 하고 합니다’라는 수행문을 명령조로 써먹으면 안 돼요. nbspnbsp임원은 항상 자발성에 기초하도록 북돋아주는 역할을 해야 하고, 대중은 임원의 이야기를 가능하면 잘 따라주고 협조해주는 분위기가 되면 조화를 이룰 수 있어요. 그렇게 안 되면 화합이 깨지고 분위기가 자꾸 경직돼요. 아래에서는 민주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항의하고, 위에서는 말 안 듣는다고 해서 서로 충돌하게 됩니다. 우리는 수행 공동체이니까 이런 것도 함께 살펴서 조화를 이루며 해나가시기 바랍니다.”nbsp늦은 시간까지 봉사자들을 위해서도 소중한 가르침을 들려 준 스님에게 모두들 큰 함성과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뒷모임을 마쳤습니다.nbspnbsp결국 스님은 10시 반을 넘겨서야 다시 차를 타고 서초법당으로 향했습니다. 강연은 끝났지만 이날따라 유난히, 예수님이 남긴 사랑과 희생, 부활의 메세지가 자꾸 마음 속에 되새김 되었습니다. 기도는 항상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그리고 “오직 그저, 사랑하라, 사랑하라...” 추운 밤이지만 스님이 뿜어내어 주신 따뜻한 기운이 몸과 마음을 포근히 감싸안아 주는 것만 같았습니다.nbspnbsp서울 정토회관에 11시가 넘어서 도착한 스님은 밤늦게까지 업무를 보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무척 피곤해 보여서 스님의 건강이 다소 염려가 되었습니다.nbspnbsp내일은 평화재단 청년포럼 주관으로 대전 충남대학교에서 열리는 전국 청년학교 수료식에 참가해 졸업 특강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nbsp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nbspnbspnbsp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nbsp

2015.11.29. 146,424 읽음 댓글 134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