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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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3 경전반 특강수련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경전반 특강수련에 참가해 그동안 수업을 들으며 궁금했던 점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새벽 5시 30분에 아침식사를 한 후 6시에 특강수련이 열리는 문경정토수련원 대수련장에 들어섰습니다.nbspnbsp▲ 문경 정토수련원 대수련장nbsp전국에서 모인 경전반 학생 300여 명도 새벽정진을 마치고 명상을 하며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죽비 삼성과 함께 스님과 경전반 학생들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먼저 스님은 간밤에 잘 주무셨는지, 문경의 겨울 화장실이 재래식이라 불편할 수 있는데 괜찮았는지, 혹시 문경 정토수련원에 처음 와보는 사람은 없는지 등을 물어보며 가볍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의문나는 것을 물어보는 시간이라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이번 시간은 여러분들이 경전반 공부를 하면서 의문 나는 것을 물어보는 시간입니다. 수업 중 의문이 날 때마다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지만, 현재 그럴 형편이 못 돼서 이렇게 한꺼번에 모여서 질문을 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nbsp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사람이 무려 24명이나 된다고 하면서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니 거두절미하고 곧바로 답변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24명의 질문에 대해 물이 흘러내려가듯nbsp막힘없이nbsp차례대로 답해 주었습니다. 약속한 시간은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이었지만, 답변을 모두 끝마치니 9시 30분이 되었습니다. 3시간 30분 동안 스님은 쉼없이 열정적으로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경전반 학생들이다보니 금강경 공부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금강경 중에서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반복되는 질문에도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금강경과 관련된 3명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금강경에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짓지 말라는 내용이 여러 번 나옵니다. 이 상들이 각기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nbsp“수업 중에 한 시간 내내 설명했는데 수업에 빠졌나 봐요. 상은 ‘모양 상’ 자입니다. 모양을 짓는 것을 상이라고 합니다.nbsp예컨대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일 뿐입니다. 내가 보기에,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인식하기에 나쁘게 생각한 것인데 우리는 이걸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니까 내가 나쁘다고 알았다’라고 착각합니다.nbspnbspnbsp알이 붉은 안경을 끼고 흰 벽을 보면 붉게 보입니다. 그럴 때 사실은 ‘내 눈에 붉게 보인다’ 입니다. ‘네 눈에는 어떠냐?’ ‘파랗게 보인다.’ ‘네 눈에는 파랗게 보이는구나. 그런데 왜 내 눈에는 빨갛게 보이지?’ 이렇게 하다 보면 ‘아, 내 안경알은 붉은 색이고 네 안경알은 푸른색이어서 내 눈에는 붉게 보이고 네 눈에는 파랗게 보이는구나’ 이렇게 어떤 해답이 나옵니다. 그런데 ‘저 벽의 색깔이 붉은 거야’ 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그건 푸른 거야’라고 하니까 ‘붉은 걸 어떻게 푸르다고 말하냐’, ‘그게 푸르지 어떻게 붉냐’ 이렇게 갈등이 생깁니다. ‘내 눈에 붉게 보인다’ 이게 실재입니다. ‘저건 붉은 거야’라는 말에는 객관적으로 붉은 색이기 때문에 내가 붉다고 인식했다는 뜻이 숨어 있어요. 푸른 걸 보고 붉다고 인식한 게 아니라, 붉으니까 붉다고 인식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사실은 저게 실제로 푸른지 붉은지 객관적으로는 알 수 없고 아무튼 내 눈에는 붉게 보이는 것뿐입니다. ‘내 눈에 붉게 보인다’, ‘내 생각에는 그 사람이 나쁜 사람 같다’ 이게 진실이에요. 그런데 ‘그 놈이 나쁜 거야’라고 하면 이걸 상이라고 합니다. 객관화시켰다는 거예요.nbsp탁자 위의 이 컵을 마이크와 비교해보면 작지만 녹음기와 비교해보면 큽니다. 그런데 여러분더러 이 컵이 큰지 작은지 물으면 작다고 합니다. 왜 작으냐고 물으면 ‘작으니까 작다고 하죠’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nbspnbspnbsp이 컵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닙니다. 마이크와 비교해서 바라보는 이 인연에서는 나에게 작다고 인식되고, 녹음기와의 인연에서는 크다고 인식되는 것 뿐입니다. 인연에 따라 크다고 인식되기도 하고 작다고 인식되기도 합니다. 즉, ‘크다, 작다’는 나의 인식상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연과 관계없이 이 컵은 작다고 말합니다. ‘작으니까 작다고 하고, 크니까 크다고 하고, 붉으니까 붉다고 하고, 나쁜 사람이니까 나쁜 사람이라고 하지. 내가 그걸 왜 왜곡시키겠어?’ 우리는 지금 이렇게 생각합니다.nbspnbsp그런데 사실은 어떤지 잘 몰라요. 일단 내 눈에는, 내가 인식하기에는, 내 생각에는 그렇게 보일 뿐이에요. 그렇게 하면 한 사람은 작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크다고 해서 서로 생각이 달라도 아무런 문제가 안 돼요. ‘저 사람 입장에서는 저렇게 작게 보이는구나’, ‘저 사람 입장에서는 크게 보이는구나’ 이렇게 서로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자기의 주관적 인식을 객관이라고 생각하면 ‘미친 놈, 어떻게 저걸 크다고 하지?’ 이러고 싸우게 됩니다.nbspnbsp상이라는 것은 주관을 객관화시킨 거예요. 우리가 인식하는 일체가 사실은 다 주관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다 객관화시키기 때문에 시비와 갈등, 즉 분별이 생깁니다. 이걸 두고 ‘상을 짓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상을 짓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상을 짓지 말라는 말은 크다고도 말하지 말고, 작다고도 말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녹음기와 비교해서 보는 이 인연에서는 컵을 작다고 하지, 크다고 하지 않잖아요. 이 컵이 작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작다고 할 수가 없고, 다만 이 인연에서 작다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 논리가 금강경에 계속 나와요. 금강이 금강이 아니라 그 이름이 금강이라고 하잖아요.nbspnbsp‘상을 짓지 말라’ 이게 핵심이에요. 상을 짓기 때문에 온갖 시비분별이 일어나고 갈등과 괴로움이 생깁니다. 나도 모르게 상을 지었다 하더라도 ‘아, 내가 상을 지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게 곧 상을 짓지 않는 것입니다.nbspnbsp아상은 ‘나다’ 하는 것입니다. ‘그건 내 거야’, ‘내가 어디를 갔더니 말이야...’ 이렇게 이 몸뚱이 하나를 가지고 ‘나’라고 고집하는 걸 ‘아상’이라고 합니다. 내 생각, 내 물건, 이렇게 ‘나’를 붙이는 거예요.nbspnbspnbsp그런데 ‘우리’라는 것도 붙이죠. ‘이건 우리 집 거야’, ‘우리 아버지야’ 이렇게 한국 사람들은 ‘나’와 ‘우리’를 같이 씁니다. 미국에서는 ‘내 아버지’라고 하지 ‘우리 아버지’라고는 안 해요, 그런데 우리는 내 동생도 아버지라 부르고 나도 아버지라 부르니까 그냥 ‘우리 아버지’라고 씁니다. 이렇게 우리로 나를 삼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 ‘우리 집안’은 ‘내 나라’, ‘내 집안’과 같은 뜻입니다. 우리로 나를 삼는 것 중 가장 작은 것이 가족이고, 제일 큰 게 인류 즉 인간입니다. 나 중심적 사고가 아상이고 사람 중심적 사고가 ‘인상’입니다. 뭔가 묶어서 ‘우리’라는 한 덩어리를 나로 삼는 거예요.nbsp그 다음에 생명을 가진 존재만 묶어 상을 짓기도 합니다.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해서 생명은 소중하고 무생물은 덜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중생상’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중생’이라고 할 때는 무생물은 포함하지 않고 생물만 포함합니다.nbsp‘수자상’이라고 하면 유형의 존재, 즉 모양 있는 존재만 포함합니다. 보이지 않고 느낄 수도 없는 무형물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유형의 존재는 영원하지 않고 항상 변합니다. 항상 생기고 사라지는 수명을 가진 존재입니다.nbspnbspnbsp이만큼 울타리를 치고 ‘나다’ 하면 아상, 이만큼 더 울타리를 넓혀서 치면 인상, 좀 더 넓혀서 울타리 치면 중생상, 더 넓혀서 울타리를 치면 수자상입니다. 그런데 존재라는 것은 여러분도 알겠지만 모양 있는 것과 모양 없는 것이 오고갑니다. 우주는 성주괴공합니다. 모양 없는 데서 모양 있음이 드러나고, 모양 있는 것이 모양 없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구분할 수가 없어요. 또 형상 있는 것을 유전자의 설계도에 따라 조립해 놓으면 생명이라고 하고 조립을 해체하면 무생물이라고 합니다. 유전자의 설계도에 따라서 물질을 조립하면 생명작용이 일어나고, 조립을 풀면 그냥 물질작용에 머무를 뿐이에요. 또 생명작용 중에서 고도로 발달한 정신작용이 나타나는 존재를 사람이라고 부를 뿐입니다.nbsp그러니까 결국은 구분 짓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사실은 거기에 어떤 구분도 없어요. 구분이 없다고 하니 어떤 경우든 절대로 구분지어 불러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컵이 어떤 인연에서는 작다고 불리고, 어떤 인연에서는 크다고 불리듯이, 근본적으로는 구분 지을 수 없지만 인연에 따라서는 이건 ‘나’라고 부르고 이건 ‘너’라고 부르는 겁니다. 우리와 너희, 우리 나라와 너희 나라,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이라고 인연을 따라 부르지만 엄격하게 따지면 그것은 구분되어진 것은 아니에요. 자석의 양끝을 N극과 S극이라고 이름 붙여 부르지만 사실 N극과 S극은 분리할 수 없어요. 자석을 둘로 자르면 거기서 다시 N극과 S극이 나옵니다. 양극단만 보면 서로 다른 것 같지만 그 작용은 분리되어질 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nbspnbsp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구분해 설명하는 이유의 핵심은 상을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나’라는 상을 짓고 ‘우리’라는 상을 짓고 ‘생명’이라는 상을 짓고 ‘존재’라는 상을 지으니까 구분해 설명했을 뿐, 결국은 그 어떤 상이든 상은 짓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nbsp금강경을 읽을 때마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대한 언급이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데 무슨 뜻이지 잘 이해를 하지 못했던 분들은 아마 답답하셨을 겁니다. 오늘 스님의 명쾌한 설명을 들으니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nbspnbsp이어진 질문에서는 금강경의 핵심 구절인 사구게의 뜻을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수업 시간에 몇 시간에 걸쳐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기 때문에 같은 질문을 계속하니 답답하실 뻔도 한데 웃음으로 받아주면서 자상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금강경에 사구게가 자주 나오는데 그때 법문을 놓쳐서 공부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정토불교대학도 모두 개근했는데 경전반을 그날 딱 한번 결석해서 아쉽습니다. 사구게 법문을 다시 해주시면 열심히 공부해서 수행, 보시, 봉사를 실천하겠습니다.”nbsp“금강경의 첫 사구게는 이렇습니다.nbspnbsp범소유상 게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nbsp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nbsp‘범소유상’은 ‘무릇 모양이 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착하다, 악하다, 길다, 짧다 하는 온갖 분별상은 모양에 들어갑니다. 개시허망, ‘모두 허망한 것이다’라고 했어요. 모든 모양 있는 것은 다 허망한 것입니다. 여기서 허망하다는 것은 허무하다는 게 아니라 텅 비었다, 실체가 없다는 뜻입니다.nbspnbspnbsp‘약견제상비상’은 ‘만약 네가 제상이 비상인 줄 본다면’입니다. 악하니 선하니 옳으니 그르니 하는 모든 상이 비상, 즉 상이라고 할 것이 없어서 작다고 하지만 작다고 할 것이 없고 크다고 하지만 크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걸 안다면 즉견여래라, 곧 부처를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깨달음에요.nbspnbsp금강경 후반부에 가면 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nbspnbsp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nbsp유위법이라는 건 모양 지어서 생긴 거예요. 일체의 유위법은 여몽환포영, 즉 꿈 같고 환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다는 겁니다. 꿈은 뭔가 실체가 있는 것 같지만 깨보면 아무것도 없고, 환상도 있는 것 같지만 신기루처럼 그 자리에 가보면 없고, 물거품도 있는 것 같지만 만져보면 없고, 그림자도 있는 것 같지만 없어요. 실체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nbsp그리고 여로역여전, 아침 이슬 같고 번갯불 같다고 했습니다. 이슬은 아침에는 있지만 금방 낮에 보면 없고 번갯불은 순간 지나고 보면 없습니다.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없다는 걸 여러 비유를 들어 설명한 거예요. 이 말 전체는 허망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심리적으로 허무하다는 개념과는 달라요. 있는 것 같지만 가보니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더라는 이야기입니다. 나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나쁘다고 할 구석이 없는 것처럼, 무릇 상을 지은 것들은 다 실체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nbspnbspnbsp반야심경에도 상의 허망함과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nbsp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nbsp관자재보살은 관세음보살님이고 행심반야바라밀다시는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즉 깨달음을 향해 수행하실 때에’라는 뜻입니다. 조견은 ‘비추어본다’는 뜻이고, 오온개공은 ‘오온이 모두 공하다’는 뜻입니다. 즉 텅 비었다는 뜻이에요. 관세음보살님께서 깨달음을 향해 수행하실 때 오온이 모두 공한 줄 비추어 보니 도일체고액, 즉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났습니다. 열반을 증득했다, 해탈을 증득했다는 뜻입니다. 해탈과 열반을 증득한 자를 부처라고 이름합니다.nbspnbsp제법이 공한 줄 아는 게 곧 부처이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깨달으면 곧 부처라고 말하는 겁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제법의 실상을 안다는 거예요. 제법의 실상을 안다는 것은 텅 빈 줄을 안다, 본래 실체가 없는 줄 안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존재를 크니 작으니 새 것이니 헌 것이니 할 게 없다는 겁니다. 다만 그때그때의 인연을 따라서 그렇게 부르고 그렇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 물건을 물컵이라고 부르지만 물컵이라고 반드시 정해진 건 없습니다. 물을 담으니까 물컵이에요. 커피를 담으면 커피잔이고, 술을 담으면 술잔이고, 밥을 담으면 밥그릇이고, 약을 담으면 약그릇이고, 아이가 오줌을 누려는 걸 얼른 받으면 요강이에요. 이렇게 인연을 따라서 그때그때 나투는 것입니다.”nbsp스님의 명쾌한 설명에 다시 한번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맨 뒤에서 스님의 답변을 경청하던 경전반 학생 한 분은 혼잣말로 “정말 쉽게 설명해주시네. 너무 감사하다” 며 아주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이쯤하면 금강경에 대한 질문이 안 나올줄 알았는데, 또 의문이 난다며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공덕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nbspnbspnbsp“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것만으로도 큰 공덕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공덕이 있는지요?”nbsp“금강경의 내용은 어떤 존재를 우리가 인식할 때 왜곡해서 인식하지 마라, 사실을 사실대로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왜곡해서 인식하기 때문에 모든 고뇌와 번뇌가 생겨요. 사실을 사실대로 인식하게 되면 번뇌는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니 이 진리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공덕이라고 했어요. 돈을 100만원 얻는 게 최고의 공덕이 아니라 번뇌가 사라지는 게 최고의 공덕인 겁니다.nbspnbspnbsp그런데 이 공덕이라는 단어에 혹해서 ‘수백만 원 보시하는 것보다 더 큰 공덕이 된다니 돈도 아끼고 좋다’며 금강경을 다만 읽기만 한다면 금강경의 내용에 어긋납니다. 인쇄기술이 없던 옛날에는 경전 한 권 얻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좋은 내용을 내가 구해서 항상 지니고 다니고, 또 이걸 베껴 써서 남한테 전하면 이 좋은 가르침으로 나와 남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해탈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큰 공덕이 어디 있느냐, 수백만 원 돈을 주고받는 것보다 억만 배 더 공덕이 크다고 한 거예요. 그래서 ‘수지독송 위타인설’이란 말이 나온 거예요.nbspnbsp그런데 복에 미쳐서 ‘돈 천 만원 보시하기 아까운데 잘 됐다. 금강경 100권 딱 찍어서 나누어 주면 공덕이 엄청나게 크고 이걸 주문처럼 달달 외워 읽으면 공덕이 온댄다’ 한다면 이건 금강경의 내용이 아닙니다. 깨달아서 번뇌가 사라지는 것이 나고 죽는 삶을 억천 번 거듭하는 것보다 더 공덕이 크다는 이야기예요. 물량으로 뭘 보시해서 얻는 공덕과 깨달음의 공덕은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차원이 달라요. 이건 무루복이고 저건 유루복이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정토회에서는 복을 빌라고 하지 않고 수행하라고 합니다. 수행의 공덕이 가장 크기 때문이에요. 수행을 하면 내가 자유와 행복으로 나아갑니다.nbsp물질을 얻으면 일시적으로는 행복한 것 같지만 그것이 오래 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돈이 가장 많다는 모 기업 회장이 다른 건 몰라도 돈 때문에 싸울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돈 가지고 싸우잖아요. 그것도 형님과 싸우면서 ‘한 푼도 못 준다’라고 했어요. 인도 아이들이 저한테 ‘박시시, 박시시’ 하고 매달려서 동전을 받아가 놓고 또 달라고 하기를 거듭하기에 제가 바랑에서 발우를 꺼내 아이들 앞에 들이밀면서 ‘박시시, 박시시’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웃으면서 돈을 제 발우에 집어넣었어요. nbspnbspnbsp인도의 거지 아이들도 이렇게 한 푼은 줍니다. 그런데 그 회장은 자기 형님에게 한 푼도 못 준대요. 누가 더 가난합니까? 대한민국 최고 부자라는 사람이, 그것도 자기 돈도 아니고 부모 유산을 가지고, 남도 아닌 형님한테 한 푼도 못 준다는 거예요. 본인이 기자에게 한 말입니다. 심지어는 한 푼도 안주기 위해서 대법원 아니라 헌법재판소까지도 가겠다는 말도 직접 했어요. 그래서 저는 이분이야말로 보살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확 나쁘게 만들어서 세상 사람에게 진실을 보여주는 역행보살이에요.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도움이 안 되는데 최고 부자인 사람이 말했기 때문에 굉장한 교훈이 되는 겁니다.nbspnbsp그러니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가득히 채워 보시한다고 하더라도 이 제법이 공한 이치를 깨쳐서 해탈하는 공덕과는 비교할수 없다고 하는 거예요. 제법이 공한 이치를 깨닫는 그 짧은 문장이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또는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입니다. 그걸 수지독송, 즉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라는 거예요. 그냥 종이에 박아서 품에 넣어 다니고 입으로 읽고 외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이치를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그 이치를 깨친다면 그 공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해탈의 공덕이 있기 때문입니다.”nbsp오늘은 금강경의 핵심 내용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있게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감로의 법문을 설해주신 스님께 모두들 합장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3시간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스님은 긴 시간 동안 법문을 들은 여러분들이야말로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하면서 마지막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부지런히 답변을 해주었는데도 3시간 하고도 30분을 더 했어요. 하는 저도 그렇지만 여러분도 대단합니다. 듣기보다 말하는 게 훨씬 쉬워요. 하다가 조는 사람은 없지만 듣다가 조는 사람은 많거든요. 저도 거기 앉아서 들으면 아마 졸았을 겁니다. nbspnbsp불법을 너무 꽉 막힌 것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부처님은 그렇게 쫀쫀하지 않고 확 트인 분입니다. 확 트였다고 해서 막행막식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질서정연하시고 윤리도덕적인 분이지만 윤리도덕에 묶여 계시는 고지식한 분이 아니고, 그렇다고 방탕하신 분도 아닙니다. 윤리도덕에 맞게 질서정연히 생활하시지만 그런 형식에 묶여 계시지 않는 자유로운 분이라는 이야기입니다.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도 절에 오면 겁먹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자리에 앉을 때 줄을 똑바로 맞추어 앉고 화장실 갈 때도 조용히 질서를 지켜야 해요. 그런데 우리 정토행자들도 이것이 잘 안 되어서 제가 앞으로 생활교육을 좀 시키려고 해요. 법당에도 딱 들어오면 들어오는 순서대로 앉습니다. 어간이라고 하는 전통을 지키는 경우가 아니면 들어오는 순서대로 앞에서부터 앉아요. 가장자리로 들어오게 되어 있으면 안쪽에서부터 앉고 안쪽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으면 가장자리부터 앉아서 뒤에 들어오는 사람이 쉽게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일어날 때는 문쪽에서부터 차례로 빠져줍니다. 벌떼처럼 우르르 들어오고 우르르 나가지 말고요.nbspnbspnbsp그렇다고 군대처럼 누가 매를 쥐고 감독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들 지켜나가는 거예요. 신발도 벗으면 가운데 자리부터 집어넣지 않아요. 항상 먼저 오는 사람이 구석이나 앞에서부터 열을 맞춰 집어넣습니다. 절이라는 게 원래 모든 게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고 조용한 게 기본 특징입니다. 소리 질러 부르지도 않고, 특별한 일 아니면 뛰어다니지도 않고, 조용한 가운데 질서를 지키는 게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그런 자세로 수행정진 잘 하십시오.”nbsp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아무곳에나 넣고 왔던 신발이며, 법당에 들어오면 맨 뒷자리부터 앉았던 버릇이며, 깨어있지 못했던 갖가지 기억들이 생각났습니다. 나도 부처님처럼 탁 트여 있지만 질서정연한 생활을 해나가야겠다는 다짐이 일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긴 시간 동안의 법문을 마친 후 대수련장을 나온 스님은 곧이어 공동체 생활을 책임지는 대중대표단과 함께 간담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토회는 각종 수련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문경공동체와 다양한 사회활동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울공동체로 나뉘어져 있는데, 오늘은 문경과 서울에 각각 대중대표단이 모두 참석했습니다.nbspnbsp▲ 정토회 공동체 대중대표단 회의nbsp대중대표단은 그동안 대중생활을 꾸려가면서 의문이 났던 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스님에게 물어보았고, 스님은 어떻게 대중생활을 이끌어나가야 하는지 스님의 경험담과 더불어 많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대중대표단과의 회의를 마치고 나서는 봉화 정토수련원을 향했습니다. 이곳에서는 희광 법사님이 혼자서 어렵게 수련원을 꾸려가고 있는데 어떤 지원을 해주면 좋을지, 주변에 어떤 땅을 구입해서 농사일을 본격적으로 해볼 수 있을지 등을 점검한 후 함께 점심 식사도 했습니다.nbsp▲ 봉화 정토수련원nbspnbsp그리고 희광 법사님에게는 잘 익은 과일을 건넨 후 수련원을 나왔습니다.nbspnbspnbsp오후 2시에 봉화 정토수련원을 출발하여 5시 2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서울에 도착해서도 찾아온 손님과 연이어 미팅을 갖고, 원고 교정 업무도 본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 법륜 스님의 금강경 강좌를 책으로 만나보세요. 복잡하고 난해한 금강경을 법륜 스님의 설명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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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2 (오후) 제2차 통일의병대회 제2부

nbsp오전에 있었던 경주역사기행에 이어서 오후 1시 30분부터는 동국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제2차 통일의병대회가 열렸습니다.nbspnbsp먼저 제3기 통일의병학교에서 졸업작품으로 선보였다고 하는 광명정토법당의 축하공연이 있었습니다. 남색 통일의병 티셔츠와 빨간색 코팅 장갑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통일을 향한 염원을 표현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대전 정토법당에서는 태극기를 들고 나와 신명나는 무대를 보여주었습니다. 아직은 모임의 초창기여서 일사분란함이 조금 떨어져 보일지 몰라도 통일을 향한 열정만큼은 아주 뜨거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의병인가 봅니다.nbspnbspnbsp먼저 지난 5주 동안 진행된 통일의병학교에 대해 김은숙 행정처장님의 경과 보고가 있은 후 정토회 이기혜 대표님의 통일의병대회 대회사가 있었습니다. 대표님은 분단의 역사를 넘어 이제 새로이 희망의 역사를 쓰자며 통일의병이 함께 만들어가는 통일코리아의 희망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 정토회 이기혜 대표님nbsp오늘 같이 역사적인 날 만세 삼창을 함께 하자고 제안해 모두 함께 통일을 염원하며 힘껏 두 손을 들어올려 보기도 했습니다.nbspnbsp다음은 법륜 스님의 은사 스님인 불심도문 큰스님이 통일을 발원하는 법문과 기도를 함께해 주었습니다. 불심도문 큰스님은 석가여래부촉법 제 70세로서 용성조사 탄생성지 장수 죽림정사 조실이시고, 현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큰스님입니다. 대중들이 삼배로 법을 청하자 큰스님은 1시간 동안 통일을 발원하는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불심도문 큰스님nbsp도문 큰스님의 법문이 모두 끝나자 법륜 스님은 지난 1차 통일의병대회 때 대한민국 국민 5천만 명의 통일기원의 뜻을 담아 보시한 5천만원에 이어서 오늘은 보시하지 못하는 북한 주민들 2천3백만 명과 해외에 있는 교포들 7백만 명의 통일기원의 뜻을 담아 3천만원을 불심 도문 큰스님께 통일발원 공양으로 올렸습니다. 큰 스님은 그 뜻을 받아 지극 정성을 다해 한반도 통일을 발원하는 기도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큰스님이 행사장을 나가신 후 큰스님이 불어넣어 주신 기운을 받아서 드디어 통일의병 임명장 및 뺏지 수여식이 열렸습니다. 먼저 2기 통일의병학교를 대표하여 서초법당 박현진님을 시작으로 모든 통일의병들이 법륜 스님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습니다. 모두들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 통일의 주역으로서 통일운동에 적극 동참할 것을 결의하며 기쁜 마음으로 임명장을 받았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nbsp그리고 무대 아래에서는 법사님들이 통일의병 뺏지와 통일돼지저금통을 나눠주었습니다. 저금통에는 통일을 향한 염원이 가득 담겨 북한으로도 그 정성이 보내질 것입니다.nbspnbsp▲ 법사님으로부터 통일저금통을 받고 있는 통일의병들nbsp환한 웃음으로 통일의병 뺏지를 받아든 대중들은 자리에 앉아 가슴에 뺏지를 달고, 임명장을 서로 보여주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뺏지nbsp여기저기서 역사적인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서로 사진을 찍어주느라 바쁜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법륜 스님의 ‘통일의병이 길’을 주제로 한 법문이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정토행자가 하는 사회실천 활동은 무엇을 추구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통일의병은 또한 모두 정토회의 정회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nbspnbsp“정토행자가 되려면 첫째, 수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정토회에서는 사회활동이든 구호활동이든 평화운동이든 환경운동이든 모두 수행자로서 하는 거예요. 그냥 ‘나는 평화운동가다’, ‘나는 통일운동가다’, ‘나는 환경운동가다’, ‘나는 사회 복지활동 한다’ 이런 건 정토회와 관계가 없습니다. 정토회에서는 먼저 수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수행자가 된다는 것은 먼저 내가 행복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괴로워하면서 통일운동하면 안 돼요. 불쌍한 아이들 돕는다고 맨날 울고 다니면 수행자는 안 됩니다. 우리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통일운동도 웃어가면서 해야 합니다. 총 맞아 죽을 때도 웃으면서 죽어야 해요. nbspnbspnbsp그런데 또 수행만 한다면 그것도 정토행자가 아닙니다. 정토행자는 수행자로서 수행을 기초로 해서 세상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은 뭐든지 합니다. 세상에 이로운 것, 도움이 되는 건 우리는 뭐든지 해요. 전쟁이 나면 평화운동을, 사람들이 굶어죽으면 구호를, 환경이 오염되면 환경 개선을, 사람들이 싸우면 갈등 해소를, 뭐든지 필요에 따라서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 자신이 기뻐할 수준까지는 못 되더라도 괴롭지는 않아야 해요. 그런데 아까 보니 여러분은 날씨가 좀 추워서 그런지 별로 안 기뻐 보이고, 괜히 왔다고 후회하는 듯 보였어요. nbspnbsp두 번째, 우리는 불자로서 정법의 역사를 계승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제자로서는 역대 부처님의 법, 조사의 정법을 계승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큰스님께서 그것을 증명해주고 계시는 거예요. 과거 일곱 분의 부처님, 또 그 전의 수많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을 계승해서 석가모니 부처님께 이르렀고,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마하가섭 존자에게로 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정법을 계승했습니다.nbsp세 번째,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 적어도 정토행자라면 민족사의 정통을 계승해야 합니다. 그래서 환인의 한나라를, 환웅의 배달나라를, 단군왕검의 조선나라를, 해모수의 부여나라를, 주몽의 고구려 나라를 이렇게 계승해 가야 합니다. 부여,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로 민족사의 정통이 잠시 흩어져 있다가 다시 신라와 발해로, 고려로, 조선으로, 대한제국으로, 대한민국으로 내려왔습니다. 지금은 남북이 분단돼 있어서 일반인은 북한을 적으로 보지만 우리는 적인 동시에 통일해야 할 우리의 형제들이라고 봐야 합니다. 우리는 해외에 나가 있는 동포들과 북한까지 포함한 전민족적인 생각을 가져야 해요. 우리 민족의 어느 한 부분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남한에 소속되어 있지만 남한 편만 들면 안 돼고, 내가 북한에 소속되어 있지만 북한 편만 들어도 안 돼요. 내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든 그건 현실의 내 소속이고, 우리의 마음은 전민족적 정통성을 계승해서 나아가는 입장이어야 합니다.”nbspnbsp수행자로서의 자세를 견지하되 불자로서 정법의 역사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민족사의 정통을 계승해 나가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이것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보여주신 용성조사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서 그 속에서 배울 수 있는 통일의병 길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나라를 일제를 빼앗겼을 때는 나라의 독립이 시대적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용성진종 조사님께서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기독교, 천도교 등 다른 종교인들과도 힘을 합쳐서 33인이 모여 나라의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그 이후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불교의 중흥을 위해서 평생을 바친 동시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평생을 바쳤습니다. 광복되기 얼마 전에는 많은 독립운동 동지들이 거의 포기하고 친일로 돌아섰습니다. 일본이 중국도 점령하고 태평양도 점령했으니 더 이상 일본을 이기는 건 불가능해보였거든요. 그런데도 용성스님께서는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고 하시며 중국으로 건너가셔서 ‘우리 대한독립군과 모택동 군대와 장개석 군대가 힘을 합쳐서 일본제국주의를 물리치자’ 이런 제안도 하셨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우리가 광복 후 분단이 된 것은 우리 이름으로 독립된 군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한제국, 대한민국, 혹은 조선 국가의 이름으로 독립되어 활동한 군대가 없었어요. 우리 선조들이 해외에서 많은 독립운동을 했지만 모택동 부대 동북항일연군의 일부, 러시아 적군의 일부로, 장개석 부대의 일부로 참여했지 우리 이름으로는 참여를 못 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볼 때는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를 패망시키는데 기여한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광복의 기쁨은 잠시였고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를 분할되어 받다가 결국은 분단이 되어버렸습니다.nbspnbsp용성 큰스님의 제안대로 우리의 이름으로 독립투쟁을 했다면 그 성과를 앞세워 자주독립국가가 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통일도 우리가 자주적으로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통일이 안 되거나, 된다 하더라도 그 통일을 이루어준 나라의 종속국가로 다시 전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통일됐다는 기쁨은 잠시고 결국은 옛날 청나라며 명나라, 혹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듯 다시 속국이 될 위험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통일도 해야 하지만 반드시 우리 힘으로 통일을 해서 자주 국가를 형성해야 합니다.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지금 우리 국민이 다 함께 일어서야 해요.nbspnbspnbsp이런 일을 실제로 진행하는 것은 정치인들의 역할이긴 합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외적이 쳐들어왔을 때 그걸 막아야 하는 것은 관군이었지만 관군이 제대로 역할을 못 하니까 할 수 없이 민간에서 의병을 일으켜서 국난을 막았어요.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을 때 나라의 녹을 먹고 산 관리들이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며 용성스님이 관리들을 찾아다녔지만 호응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걸 보고 이제 이 나라는 더 이상 왕의 나라가 아닌 백성의 나라라고 해서 국호를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바꾸자고 제안하고 대한제국 부흥운동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운동을 이끌었습니다.nbspnbsp그런 것처럼 오늘날 정치지도자들이나 소위 관병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나라의 평화나 통일을 위해서 헌신하기보다는 남북 가릴 것 없이 정치권력과 제 이익을 지키기에만 급급합니다. 이대로 간다면 분단이 영구히 고착되거나 강대국의 예속국가로 전락할 위험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의병의 전통을 계승해서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반드시 달성하고자 일어났고, 여러분이 동의해서 참여한 거예요.nbspnbsp그런데 정말로 동의하고 참여한 거예요? 강의 다섯 번 다 듣긴 했어요?” nbspnbsp“네” nbsp“남이 장에 갈 때 거름지고 따라가듯 그냥 정토회에서 통일의병 한다니까 별 생각없이 따라나선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좀 있던데요. 지금 누군지 솎아내 볼까요? nbspnbsp그래서 우리는 선조들이 못 다 이룬 자주독립을 기필코 이루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해도 먼저 선조들의 상처 입은 한을 다 우리가 추슬러야 해요. 남한에서는 북한과 중국이 침공해와서 많이들 죽었으니 거기에 한이 있고, 북한에서는 남한 군인이나 미군 폭격에 죽은 사람이 많으니 또 거기에 한이 있어요. 이렇게 서로 원수가 되어 있는데 화해와 통일을 하려면 북한이 남한에게 ‘우리가 6.25 전쟁을 일으킨 건 잘못했다’라고 참회를 해주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 해요. 일본도 우리한테 사과를 안 하잖아요. 그렇다고 서로 미워하고 살면 안 돼요.nbspnbsp그러니 우리가 북한 군인이 되어서 남한 주민에게 참회를 대신 해주고, 또 남한이나 미국 군인이 되어서 북한 주민들에게 참회해주어서 한을 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기도할 때도 8천만 우리 민족의 조상을 천도하고 축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6.25때 죽어간 한국군인, 북한군인, 중국군인, 미국군인, 유엔군들, 그리고 한국 민간인, 북한 민간인 등 한을 품고 죽어간 사람들의 한을 우리가 풀어주고, 이산가족의 눈물과 한과 슬픔도 풀어줘야 합니다.nbspnbsp우리가 그냥 통일을 바라기만 하면 복 지을 생각은 않고 복만 바라는 거예요. 우리는 8천만 우리 동포들이 받을 복을 짓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우리는 농사지어 놓으면 그 사람들이 겨울에 밥 좀 먹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농사는 우리가 지었는데 밥만 축낸다고 기분 나빠 하면 안 돼요. 농사짓는 게 훨씬 재미있다는 마음으로 우리가 복을 지어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오늘 이렇게 통일의병 과정을 마치면 다시 우리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공부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과거 분단된 상태로도 50년간 발전했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경제가 발전했는데도 점점 살기 힘들다고들 하고, 정치가 발전해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데도 민주주의가 거꾸로 간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국방력이 튼튼해졌는데도 전쟁 난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잖아요. 양은 성장했는데 질에 문제가 있어요.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통일만이 해답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어떤지, 통일하면 어떤 좋은 일이 있는지 통계와 도표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접근해서 자기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스님이 좋은 일 하니까 나도 따라간다’는 식의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스님이 죽고 없어도 나는 수행자이고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어내겠다’ 하고 굳게 결심해야 해요.nbsp첫째, 수행자로서 항상 자기를 기쁘게 해나가야 합니다. 수행자에게는 희생이라는 게 없습니다. 세상을 위해서 나를 헌신한다면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내 삶이 그걸로 만족스럽다고 받아들여야 해요. 수행자라고 해서 가만히 앉아서 참선이며 염불과 같은 개인 수행만 하는 수행자가 되면 안 됩니다. 내 에너지, 내 기쁨을 이웃과 세상과 함께 나눠 쓰는 활동가여야 해요. 특히 지금은 나라가 분단이 영구화되느냐, 통일로 가느냐 하는 분기점에 서 있기 때문에 요 몇 년 간은 나라의 평화를 지키고 통일을 이루는 데 우리가 에너지를 쏟아 기여해봅시다. 그런 뜻으로 오늘 여러분들이 통일의병에 가입해서 발대식을 하는 거예요. 아시겠지요?”nbsp“네”nbspnbsp스님의 간곡한 호소에 통일의병들도 아주 씩씩하고 우렁차게 대답했습니다. 아침부터 시작된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용성조사님의 삶, 또 이를 계승한 오늘날 통일의병의 길에 대해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되새겨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스님의 법문을 다 듣고 나니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통일의병으로 거듭난 것 같습니다. 모두 얼굴에 화색이 돋고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습니다.nbspnbsp다음은 이 자리에 모인 통일의병 모두의 의지를 모아 통일의병 선언문 낭독을 함께 했습니다. 정토회 행정처장인 김은숙님의 선창에 따라 모두 오른손을 든채 함께 따라했습니다.nbsp▲ 통일의병 선언문을 낭독하는 김은숙 행정처장님nbsp“통일의병은 다음 10가지 선언문을 실현하기 위해서 함께 할 것을 서약한다.nbspnbsp1. 우리는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체제를 구축한다.nbsp2. 우리는 미래 100년을 결정하는 통일시대를 연다.nbsp3. 우리는 주변국과 상생하는 동아시아공동체를 지향한다.nbsp4. 우리는 대한민국을 통일국가의 모델로 발전시킨다.nbsp5. 우리는 기존의 남북한 간 당국의 합의를 존중한다.nbsp6. 우리는 진영논리를 뛰어넘는 새로운 통일운동을 펼친다.nbsp7. 우리는 민족구성원 중심의 ‘화해상생’의 통일방안을 추구한다.nbsp8. 우리는 남한이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북한과 합의하는 통일을 추진한다.nbsp9. 우리는 생명존중, 평화, 인권, 민주주의, 환경보호의 정신과 가치를 수호한다.nbsp10. 우리는 백의종군, 공공성, 자발성, 헌신성의 의병정신을 계승한다.nbsp정토회 통일의병 일동.”nbsp선언문 낭독이 끝나자 통일의병들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함께 기뻐했습니다. 지난 1차 통일의병대회에서 1500여 명, 오늘 2차 통일의병대회에서 400여 명을 포함해 이제 거의 2000여 명의 통일의병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nbspnbspnbsp통일의병이 된 기쁜 마음을 대표해서 원주 정토법당에서 조연서님이 나와 통일의병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 발원문을 낭독했습니다. 통일을 향한 굳은 결의에 모두들 박수를 보내며 공감했습니다.nbspnbsp이에 질세라 이번에는 각 지부별로 준비해 온 구호를 함께 외쳐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울제주 지부를 시작으로 전국을 한 바퀴 돌고, 마지막으로 공동체와 청년들도 힘찬 구호와 함성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 순서는 오늘의 이 함성을 노래로 그 뜻을 모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용성조사님이 작사했다고 하는 ‘온겨레의 노래’, 우리 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터’, 마지막으로 온 겨레의 통일 염원이 담긴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연달아 부르면서 통일을 향한 간절한 염원을 함께 모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부르는 통일의병들nbsp감정이 무르익자 통일의병들 모두가 다함께 손을 흔들며 파도타기를 하는 모습이 펼쳐져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이 마음 그대로 내년에도 통일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nbspnbspnbsp이렇게 제2차 통일의병대회를 모두 마친 후 각 지부별로 스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통일이 미래의 희망이다” 라는 문구의 현수막 앞에서 모두들 함박 웃음을 머금었습니다.nbspnbsp▲ 각 지역별 기념 사진 촬영nbsp정말로 통일이 우리의 미래임을 오늘 스님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볼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nbspnbsp행사를 모두 마치고 스님은 오늘 행사를 준비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간단히 평가회의를 하였습니다. 스님은 다른 업무도 많고 바쁜 가운데도 이렇게 행사를 무사히 치른 것에 대해 수고가 많았다며 격려를 한 후 3차 통일의병대회 때는 다만 이런 점은 좀 보완하면 좋겠다고 조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특히 “여러분들을 가만히 보면 다 잘하는데 나머지 5 정도의 디테일이 항상 떨어지는 것 같아요. 어떤 일을 하든 항상 연구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수행입니다.” 라며 일 속에서도 얼마든지 수행을 해나갈 수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nbspnbsp동국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을 빠져나온 스님은 곧바로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밤 9시 무렵에 문경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경전반 학생들 300여 명을 위해 특강수련 법문을 해준 후 봉화 정토수련원에 잠시 들렀다가 서울로 올라갈 예정입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14. 35,126 읽음 댓글 28개

2015.12.12 (오전) 정토회 제2차 통일의병대회 제1부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제2차 통일의병대회에 참가한 400여 명의 대중들과 함께 경주 역사기행을 한 후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을 했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아침 7시에 통일의병대회가 열리는 경주로 향했습니다.nbspnbsp아침 7시 30분이 되자 전국에서 새벽부터 출발한 통일의병들이 법흥왕릉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1차 통일의병대회는 참가인원이 1500여 명이나 되다보니 법흥왕릉에 모두 집결할 수가 없어 황룡사지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 2차 통일의병대회는 인원이 400여 명 밖에 되지 않아 법흥왕릉에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법흥왕릉에서 통일의병대회를 시작하는 이유는 오늘날 남북이 통일하기 위해서는 법흥왕의 업적에서 배울점이 많기 때문입니다.nbspnbspnbsp법흥왕릉 앞에 400여 명의 대중들이 모두 도착하자 스님은 환한 웃음과 함께 송수신기로 대중들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nbspnbsp▲ 법흥왕릉nbsp서울에서 출발한 통일의병들은 새벽 3시에 출발했다고 합니다. 스님은 모두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했다고 격려한 후 오늘 통일의병대회를 하게 된 취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지금까지 우리는 개인이 어떻게 수행할 거냐는 문제를 고민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자 하는 과제는 개인을 넘어서서 함께 사는 공동체, 즉 민족공동체 및 국가공동체를 어떻게 더 발전시킬 수 있느냐입니다. 공동체가 발전하면 그 구성원인 우리 개개인들도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지만, 공동체의 안전이 허물어지고 경제가 붕괴되고 정치가 혼란해지면 그 속에 사는 개개인들도 불행해집니다.nbspnbspnbsp조선 말엽에 국가가 혼란스러울 때 얼마나 백성들이 힘들었고, 일제의 침략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2천만 동포가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지 알잖아요. 그 피해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빼앗기니까 젊은 여성들이 군인들의 노리개로 잡혀가고, 청년 학생들이 일본군에 징집되어 목숨을 잃고, 젊은이들이 탄광 등지에 강제 징용되어 시달리다 죽어가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평상시에는 공동체가 우리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잘 모르지만, 공동체가 붕괴되면 개인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nbspnbsp요즘 시리아나 이라크를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종교며 정치적 이념 차이로 내전이 일어나니까 국민들이 힘들어지고, 또 그 내전을 틈타 세계 강대국들이 다 개입하잖아요. 전란을 피해 조국을 떠나 남의 나라로 피난을 가면서 각국으로부터 또 얼마나 천대를 받고 범죄자 취급을 당합니까?nbspnbspnbsp지금 우리는 우리 개인, 우리 집, 우리 가족, 우리 아이들 공부만 중요하게 여기지만, 공동체가 붕괴되면 우리가 지금 소중히 하는 것들이 훨씬 더 어려워집니다. 우리 개개인이 조금만 공동체를 위해 관심을 갖고 힘을 쏟으면 우리 가족, 우리 개인의 안전도 함께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은 우리 국가 공동체 및 민족 공동체의 안전과 평화, 발전을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겠습니다.”nbsp이렇게 공동체의 발전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 한 후 본격적으로 역사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이곳 법흥왕릉에 온 이유와 법흥왕의 업적이 지금의 남북 통일에 시사하는 점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nbspnbsp“불교가 공인되고 4년 만에 신라와 가야가 통합을 하게 됩니다. 이 때 큰 쟁점이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가야의 왕족, 즉 지배층의 신분을 어떻게 할 거냐는 문제였어요. 통합된 나라에서 가야 출신이라도 하등 출세에 장애가 없도록, 즉 가야의 왕족을 신라의 왕족으로 받아들여 신분 보장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가 요즘 말로 종교, 믿음, 사상에 대한 보장입니다. 즉 불교를 공인하는 거예요.nbspnbspnbsp통합하는 두 나라 중 신라가 더 힘이 세니까 신라가 통일의 중심이 되고 가야가 신라의 일부로 통합되는 대신, 가야 측에서는 가야 사람들에게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첫째, 믿음, 즉 신앙에 대한 불이익이 없어야 하고 두 번째, 신분에 대한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고 했어요. 이것을 신라가 받아들인 거예요.nbspnbsp이게 지난 뒤에는 쉬워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쉽지가 않습니다. 요즘 남북관계에 비유한다면 남한이 중심이 되어 남북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북한의 공산주의 정치활동을 전부 허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공산주의 활동을 전면적으로 허용해서 북한 출신도 통일된 나라에서 어떤 정치적인 활동, 권리 행사에 장애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신분 보장도 북한에서 군 장성으로 있었던 사람이라면 통일한국의 군대에서 사단장도, 사령관도 맡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거예요. 함경북도처럼 지금 북한에 해당하는 지역은 통일 후에도 북한 출신이 지사를 맡고요. 이렇게 모든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공무원을 비롯한 어떤 신분에서도 과거의 전력을 갖고 차별하지 않는 걸 현재 우리가 실현하기 쉽지 않습니다.nbspnbsp우리나라 보수 세력은 ‘빨갱이’라면 무조건 없애야 한다고만 하잖아요. 반대로 북한 안에도 북한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힘이 만만치 않습니다. 일반 주민들이야 통합하자고 하지만, 권력층은 ‘우리가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이걸 잃느냐’고 이야기할 거예요. 북한은 역사가 70년인데도 그러니 500년 역사를 가진 가야 내의 반발은 굉장했겠지요. 그런데도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신라와 통합하는 결단을 내리고, 신라는 가야의 옛 땅을 가야 왕이 다스리도록 자치권을 보장해주는 관용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조상이 물려준 나라를 지키지 못했다 해서 구형왕의 무덤은 가야 땅인 김해가 아닌 산청군 금서면 지리산 자락에 있습니다. 조상이 물려준 나라를 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보여주는 일화예요.nbspnbspnbsp어쨌든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신라와 가야는 합의통일을 했습니다. 합의통일의 결과 손실은 하나도 없고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거두었어요. 첫째, 가야는 철기문화가 아주 발달했습니다. 물금 철광이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거예요. 이런 가야의 야금술, 즉 철을 다루는 기술이 신라에 보급되면서 신라의 무기와 농기구가 급속도로 좋아졌습니다. 두 번째, 낙동강 유역의 김해평야를 차지하게 되면서 농산물이 엄청나게 풍부해졌습니다. 세 번째, 가야의 인재들이 신라에 대거 들어오면서 인재 풀이 급격히 넓어졌어요. 훗날 삼국통일의 주역이 되는 김유신 이하 많은 대장군들이 다 가야 출신입니다. 이렇게 1과 1을 더해 2가 아니라 3, 5, 10이 되는 현상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법흥왕 다음인 진흥왕 대에 오면 신라는 백제와 연합해서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서 오늘날 강원도와 함경남도 함흥까지 점령하게 됩니다.nbsp우리는 늘 통일의 문제를 다룰 때 자꾸 독일 통일을 이야기하는데, 남북의 통일과 관련해 우리 역사 속에서는 신라와 가야의 통합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둘이 어떻게 통합했으며, 그 통합의 방식에 따라 통일의 효과가 얼마나 컸고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봐야 해요. 옛 역사를 보면서 당연히 그랬을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지금 그 현실에 놓인다면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고, 옛 역사를 보면서 바보같이 왜 그랬냐고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당해보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현실에 자꾸 안주하게 되면 결국은 실패한 역사로 흘러가게 됩니다. 우리가 현실을 극복 과제로 볼 거냐, 그냥 현실에 따라갈 거냐가 매우 중요합니다.nbspnbspnbsp지난번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황룡사에서 출발했습니다만, 오늘은 인원이 적어서 신라 통일만 볼 게 아니라 신라가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출발점이 되었던 가야와의 합의통합부터 살펴보고자 법흥왕릉을 출발점으로 잡았습니다.nbspnbsp우리도 남북통일만 생각할 게 아니라 남북통일을 첫 단계로 삼아 더 나아가야 해요. 통일을 통해 주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가 되고, 주변 국가와 협력해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루고, 다시 세계 문명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시너지 효과를 생각하면서 통일을 해야지, 그냥 통합해서 영토 조금 넓어지는 정도의 남북통일에만 매달려서는 안 돼요.nbspnbspnbsp그러니 이곳 법흥왕릉에서 그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결단을 내린 법흥왕과 당시의 역사의 주역들을 다시 한 번 새겨봅시다. 여러분이 이차돈은 못 되더라도 그 당시 가야 쪽이나 신라 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의 후손일 수도 있습니다.” nbspnbspnbsp우리가 가야와 신라의 통합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의 후손일 수도 있다고 하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nbspnbsp스님은 동쪽에 치우친 작은 부족 국가에 불과했던 신라가 어떻게 삼국 통일의 주역으로 등장할 수 있었는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런 후 이곳에 왔으니 법흥왕에게 인사를 드리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대중들을 모두 일으켜 세우고 능을 향해 다함께 합장하고 삼배를 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돌아서서 다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통일의병 화이팅”을 외치며 삼국 통일의 기틀을 닦은 법흥왕처럼 통일의병들도 남북 통일의 기틀을 닦을 것을 다짐해 보았습니다.nbspnbspnbsp다음은 황룡사지로 향했습니다. 스님은 차 안에서 이동 중인 잠깐 사이에 계속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nbsp스님이 처음 출가를 하신 곳이라고 하는 분황사를 지나 황룡사지 9층 목탑이 자리했었다고 하는 넓은 터에 도착했습니다. 초겨울이었지만 날씨는 제법 따뜻해서 법문을 듣고 함께 기도를 하기에는 딱 안성맞춤인 날씨였습니다. nbspnbsp▲ 황룡사라는 이름의 연원인 황룡이 나왔다는 우물nbsp황룡사지에는 민족의 역사와 의병의 역사를 상징하는 28개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며 통일의병대회를 장엄하고 있었습니다. 가운데에는 청룡과 황룡의 깃발이, 왼쪽으로는 한나라로부터 시작해 배달나라, 단군 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고려, 조선, 대한민국, 북한을 모두 계승하는 마음을 담아 통일코리아 깃발을 그 마지막에 세웠고, 오른쪽으로는 다물군, 고구려 부흥군, 백제 부흥군, 고려 항몽의병, 임진의병, 병자의병, 동학혁명군, 을미의병, 정미의병, 독립군, 순국열사, 산업역군, 민주투사를 모두 계승하는 마음을 담아 통일의병 깃발을 그 마지막에 세워서 통일에 대한 염원을 표현했습니다. 펄럭이는 깃발 속에는 통일의병들의 역사 의식이 담겨져 있었습니다.nbspnbspnbsp신라시대 당시에도 이곳에서 법회가 열렸다고 하는 황룡사지 금당터 위에 400여 명의 통일의병들이 빼곡이 자리하자 스님이 다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장엄하게 늘어서 있는 깃발들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여기 제 뒤에 서 있는 깃발들을 한번 보세요. 우리나라 역사가 여기에 있습니다. 9천 년 전 환인 하나님께서 처음 세우신 한나라, 환인의 아들인 환웅천황께서 6천 년 전 세운 최초의 우리 나라인 배달나라, 배달의 후예로서 단군왕검께서 세우신 조선나라, 해모수가 세운 부여나라, 부여를 계승한 고구려, 부여를 계승한 백제,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 다음이 신라, 가야, 그리고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로 나뉘어졌다가 다시 고려로 통합되고, 조선으로, 현재 남북이 분단되어 북한과 대한민국으로 이어지고, 지금 우리가 통일 코리아를 염원하고 있습니다.nbspnbspnbsp나라가 어려움에 처했는데 관군이 힘이 없고 부족할 때마다 우리는 국민이 일어나서 나라를 구한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첫 번째 의병이 다물군입니다. 한나라에게 고조선의 영토를 일부 빼앗기고 한사군이 설치됐을 때 한나라 군대의 침공을 막고 쫓아내고자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의병이 다물군입니다. 다물군의 후예가 주몽이고, 다물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 고구려예요. 고구려는 고조선의 옛 영토를 되찾자고 해서 세운 나라입니다. 고구려가 망했을 때는 고구려 부흥군, 백제가 망했을 때는 백제 부흥군이 일어났습니다. 원나라, 몽골이 침입했을 때 고려에서는 제주도까지 가서도 끝까지 저항한 삼별초군, 항몽의병이 있었어요. 조선시대에 왜가 침입했을 때는 임진의병이 일어났고, 임진의병 중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승병이 있었습니다. 청나라가 침입했을 때 청나라에 대항하고자 병자의병이 일어났고, 그 다음에 동학혁명군이 있었고, 명성황후 시해 당시 전국에서 일어난 을미의병이 있었고, 군대가 해산 당했을 때 다시 전국에서 정미의병이 일어났습니다. 나라가 망했을 때는 독립군이 활동했고, 나라를 지키기 위한 전쟁 속에서 순국열사들이 있었고, 가난을 극복하고자 나선 산업역군이 있었고, 독재에 항거해서 민주화를 달성한 민주투사가 있었고, 이제 여러분들이 통일의병이 되어 남북을 통일하고자 나섰습니다.nbspnbspnbsp우리 통일코리아는 이렇게 한나라로부터 계승되어 면면히 이어온 나라이고, 우리 통일의병은 이렇게 다물군으로부터 면면히 이어온 의병의 전통을 계승했습니다. 그러니 자랑스럽게 생각하세요.” nbsp이어서 황룡사가 지어진 연원과 그 과정에 대해 설명한 후 저 뒤에 9층 목탑을 보라고 하면서 우리도 당시의 신라인들처럼 통일 발원 기도를 함께 하자고 했습니다.nbspnbsp“뒤를 돌아보면 황룡사 9층 목탑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하게 큰 목탑지가 있습니다. 가운데에서 9층목탑의 중심을 잡아주는 심초석에 쇠기둥을 높이 박고 전체를 엮어서 9층탑을 쌓았습니다. 이 탑이 남아 있었다면 중국이나 일본에 못지않은 거대한 탑이겠지만 몽골 침입 때 불타서 사라졌어요. 제가 분황사에 살 때 이 금당과 황룡사 9층탑을 복원하겠다는 원을 세웠지만 아직 이루지를 못 했습니다. 통일을 기원하면서 우리가 이 탑을 다시 세우고 통일을 맞이한다면 참 좋겠죠.nbspnbsp▲ 황룡사지 9층목탑이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며nbsp이 탑을 세우면서 신라인들은 국난을 극복하게 해 달라, 즉 적의 침공을 막아달라며 평화를 발원했습니다. 나아가서는 삼국이 통일이 돼서 지속적 평화가 유지되도록 해 달라고 발원했어요. 그래서 이 목탑은 통일을 발원한 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덕여왕 때 이렇게 탑을 세우고 통일을 발원했고,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에 통일이 이루어졌습니다.nbspnbsp우리도 여기에서 통일 발원 기도를 할 텐데, 우선 통일에 앞서 평화를 기원해야 합니다.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평화에 대한 기도를 해야 해요. 그러나 전쟁만 없다고 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희망을 가지려면 나아가서 통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남북통일 발원을 신라가 그랬듯 이곳에서 우리가 하도록 하겠습니다.nbspnbsp지금 우리도 나라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북한도 국가의 붕괴 위기를 맞았고, 남한은 그동안의 발전이 정체되면서 여러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어요. 발전해 왔는데도 희망이 없어요. 새로운 희망을 가지려면 통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여기서 신라인들이 그랬듯 이 탑을 향해 평화와 통일을 함께 기원하겠습니다.nbsp▲ 금당터에 앉아 스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통일의병들nbsp기도는 당시 신라인들이 했던 기도를 따라하겠습니다. 모든 부처님의 법신인 비로자나 여래불을 염원하는 다라니가 ‘비로자나 여래불 총귀다라니’인데 여기서 10분간 총귀다라니를 염송하며 나라의 통일을 발원하겠습니다.”nbsp목탁 소리와 함께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두들 간절한 마음으로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발원하며 총귀다라니를 염송했습니다.nbspnbsp“나무 마하 비로자나 여래불 총귀다라니. 나무 이바이바제 구하구하제 다라니제 니하라제 비니마니제 사바하...”nbspnbspnbsp두 손을 모으고 간절한 마음으로 10분간 염송을 한 대중들은 기도를 마치고 이어서 28개의 깃발을 앞세우고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염불을 하면서 황룡사 9층 목탑지 주위를 돌았습니다.nbspnbsp“나무 도량교주 관세음보살, 나무 도량교주 관세음보살...”nbspnbspnbsp긴 행렬이 질서정연하게 나란히 줄을 서서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황룡사지를 나와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낭산으로 향하는 길은 논두렁 길이었는데 추수를 마친 논이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반갑게 통일의병들을 맞이해주는 것만 같았습니다.nbspnbsp▲ 황룡사지에서 낭산으로 향하는 길nbsp행진을 하는 동안에는 라디오방송을 듣듯 각 지역별로 통일의병들이 나와 오늘 통일의병이 된 소감과 더불어 구호를 외치고 통일 노래를 불렀습니다.nbspnbspnbsp우리에게 익숙한 가요를 통일을 염원하는 내용으로 가사를 바꿔불러서 큰 웃음을 주는 분도 있었고, ‘서울에서 평양까지’ 노래를 부르며 정말로 서울에서 평양까지 오늘처럼 행진을 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원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힘차게 “통일, 해버리자” 라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행진을 하면서 통일의병들의 목소리를 송수신기로 함께 전해 들으며 통일에 대한 염원도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nbspnbspnbsp1시간 정도의 행진이 끝날 무렵 낭산 기슭에 위치한 능지탑에 도착했습니다. 능지탑 주위를 하나의 원으로 빙 둘러선 후 다함께 탑을 향해 선 채로 합장 삼배를 했습니다.nbspnbsp▲ 능지탑nbsp이어서 이곳 능지탑은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 스님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nbspnbsp“668년에 고구려가 멸망하고, 676년에 당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통일을 달성한 후 왕위에 오른 지 20년 만인 680년에 문무대왕이 운명하게 됩니다. 그때는 백제도 멸망했고, 고구려도 멸망했고, 당나라와는 화친을 했기에 위협적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바다 건너 왜는 건재해 있었어요. 그래서 문무왕이 이런 유언을 남겼어요. ‘내가 동해바다 용이 되어서 왜구의 침략을 막겠으니 나를 화장해서 내 뼈를 동해바다에 묻어 달라.’nbspnbspnbsp옆에서 스님이 ‘아무리 용이 힘이 있다 해도 축생인데 사람이 어찌 축생계로 가겠습니까?’ 하고 말리니 ‘나라만 지킬 수 있다면 내가 축생이 된들 어떠랴’라고 했어요. 왕의 유언에 따라 왕의 시신을 성스러운 이곳에서 화장하고, 그 유골을 모아 동해바다 바위에 안치했습니다. 그게 대왕암이에요.nbspnbsp그리고 용이 된 왕이 늘 부처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도록 그 가까이에 감은사라는 절을 지었습니다. 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의 이름이에요. 감은사는 대웅전까지 용이 된 왕이 올 수 있도록 물길을 내어 특이하게 지은 절입니다. 그리고 화장을 한 이곳에는 화장한 재를 가지고 왕의 뜻을 기리는 탑을 쌓았는데 이것은 부처님을 위한 탑이 아니라 능 대신 쌓은 탑입니다. 그래서 능지탑이라 부릅니다.nbspnbspnbsp원래는 허물어져 있었는데 저희 스승이신 불심도문 큰스님께서 이 땅을 구입해서 탑을 복원했어요. 참고로 할 모형이 없어서 문화재 전문가들도 원형이 어떤지를 잘 몰라요. 그래서 현재의 모양 같은 탑을 쌓았는데, 뒤쪽을 보면 탑재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원래는 이런 모양이 아니고 2층이나 3층이 아니었을까 추정하고 있습니다.”nbsp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문무대왕의 애국심이 가슴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문무대왕처럼 백성들의 안위를 깊이 헤아리는 지도자들이 요즘은 보기 드문 현실이 안타깝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허물어져 방치된 문화재를 한 스님이 사재를 들여 복원했다는 사실도 무척 감명깊게 다가왔습니다. 법륜 스님의 역사 의식도 이런 스승의 모습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능지탑을 한바퀴 돌고 선덕여왕릉으로 향했습니다. 울창한 솔숲을 지나자 선덕여왕릉이 보였습니다.nbspnbsp▲ 선덕여왕릉nbsp선덕여왕릉에서는 모두들 삼삼오오 자리를 펴고 앉아 점심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자 싸 온 도시락을 꺼내 함께 나눠먹으며 행진을 하느라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nbspnbspnbsp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선덕여왕릉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고 참배만 하고 곧바로 사천왕사로 내려왔습니다.nbspnbsp▲ 사천왕사지nbsp사천왕사에 모든 대중들이 자리하자 스님은 먼저 앞서 하지 못한 선덕여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사천왕사가 지어지게 된 배경과 이곳에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특히 신라의 삼국통일이 갖는 성과와 한계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날 남북통일에도 많은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nbspnbsp“당나라가 2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신라 안에서는 엄청난 내분이 일어났습니다. 싸워 이길 수도 없는 당나라를 왜 건드려서 공연히 나라를 위태롭게 만드느냐는 쪽과, 아무리 그래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신라까지도 집어삼키려 드는 당나라에 굴복할 수 없다는 쪽이 맞섰습니다. 그런데 문무대왕이 소위 강경파 민족주의자들의 편을 들어서 당나라와 싸우는 쪽으로 결정이 났어요.nbspnbspnbsp그런데 싸운다 해도 실제로 무력을 갖고는 이길 수가 없잖아요. 그때 신라인들은 신앙으로 이 위기를 극복한 겁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신라가 당나라를 이길 수 없으니 신불, 즉 부처님과 보살님과 신들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이런 쪽으로 정통하다고 하는 명랑법사를 청해서 상의를 했더니 이건 신들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명랑법사의 지시에 따라 당시 신라에서 제일 성스럽다고 여겼던 신유림에 절을 지었어요. 신들이 노니는 곳이라 하여 신유림인데, 바로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nbspnbsp신유림에 사대 천왕의 힘을 빌리는 사천왕사를 지어서 기도를 하면 당나라 군대를 물리칠 수 있다고 해서 여기다가 터를 닦고 기도를 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터를 다 닦기도 전에 벌써 당나라에서 군대가 출발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다가 급히 임시로 절을 꾸몄습니다. 대나무 기둥을 세우고 비단을 쳐서 벽을 만들고, 짚으로 신상을 엮어 오방신을 모셨어요. 사방에 사천왕이 있고 가운데에 제석천이 있는 거예요. 이렇게 오방신을 모시고 12명의 유가승 승려들이 문두루비법을 행했더니 신라를 침공하려고 산둥반도에서 배를 타고 오던 20만 당나라 대군이 서해에서 폭풍을 만나 죄다 물에 빠져 죽어버리고 한 명도 상륙을 못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신라가 위기를 극복했다고 전해집니다.nbspnbsp이런 신라의 삼국통일에서 얻는 교훈을 잘 새겨야 합니다. 우선 동맹관계, 외교관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당시 중국이 통일되면서 당나라가 요즘의 미국처럼 급성장하는 국제정세를 잘 살펴서 최강대국과 동맹관계를 맺음으로써 나라의 위기를 오히려 통일의 기회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한편 민족사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역사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민족사를 축소시켜버린 단점도 있습니다. 우리도 지금처럼 너무 남한 중심적 사고만 하게 되면 민족사가 반토막이 날 위험이 있습니다. 요즘은 ‘못사는 북한과 통일해서 뭐 하나?’, ‘중국에서 북한을 관할해도 상관없다’ 이런 의식이 팽배해 있잖아요. 신라가 잘한 건 본받고, 신라가 실수한 것은 우리가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nbspnbsp그런 면에서 우리는 신라를 비판하지만 지금 살펴보면 우리가 신라보다 못해요. 신라가 당나라와 8년 전쟁을 해서 결국은 자주국가를 건설한 것 같은 끈기와 의지를 우리도 가져야 합니다. 반미를 하자는 게 아니라 한미동맹을 견고하게 하되 어느 정도 자주성을 갖는 한미동맹을 해야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에서만큼은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이익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아주 분명히 가져야 해요.nbspnbsp그런데 현재 우리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그런 사람들이 드물죠. 그래서 미국이 중국 봉쇄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을 이용하는 데 휩쓸리거나, 미국의 봉쇄를 뚫고 나가려는 중국의 요구에 휘둘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의 자주권을 잃고 여기저기 휘둘리다가 북한은 중국의 하위변수가, 우리는 미국의 하위변수가 되어서 새로운 미중 패권경쟁시대에 또다시 분단과 갈등을 겪어야 해요.nbspnbspnbsp지금 처한 이 위기를 잘 활용해서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통일 한국을 이루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음으로 해서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를 평화지대로 만드는 역할을 우리가 해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우리가 통일 한국을 만들고자 하는 중요한 목표예요.nbspnbsp그런 논지에서, 우리가 여기서 올리는 기도는 통일을 발원하는 기도일 뿐만 아니라, 통일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불상사를 미연에 막고, 또 일어나더라도 그 장애를 능히 극복해 내고자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되, 사람의 힘이 부족하면 하늘의 힘이라도 빌려야 해요. 도와만 준다면 모든 힘을 빌려서 통일을 하고 통일의 장애를 극복해야 합니다.nbspnbsp그래서 우리는 첫째로 환인 하나님, 환웅 천황님, 단군 왕검님부터 해모수, 고주몽 등에 이르는 조상신의 옹호를 받고, 둘째로 신라인들이 여기서 기도했던 제석천, 사왕천, 팔부신장의 옹호를 받아야 합니다. 부처님에게까지 빌 필요는 없겠죠. 부처님처럼 점잖으신 분이 뭐 이런 데까지 관여하시겠어요? 이런 건 신들에게 맡겨야 해요. nbspnbspnbsp그래서 여기 사천왕사에서 민족의 자주독립,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고 거기에 장애되는 요인이 생기지 않도록 10분 정도 간절한 마음을 모아 기도를 하겠습니다.”nbspnbsp스님의 설명에 이어서 곧바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사천왕사에서는 제석천왕 제구예진언을 함께 염송했습니다.nbspnbsp“나무 제석천왕 제구예진언. 아지부 뎨리나 아지부 뎨리나 미아 뎨리나 오소 뎨리나 아부다 뎨리나 구소 뎨리나 사바하”nbspnbsp기도하는 통일의병들의 간절한 마음이 역대 조상신과 제석천, 사왕천, 팔부신장에게도 전달이 되어 이들의 옹호 속에서 하루 빨리 남북 통일이 성취되기를 기원해 봅니다.nbspnbsp이렇게 경주역사기행을 모두 마치고 다함께 버스를 타고 동국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오후 1시 30분부터는 동국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통일의병학교 경과 보고와 통일의병 임명장 및 뺏지 수여, 도문큰스님의 통일 발원 법문과 기도, 법륜 스님의 ‘통일의병의 길’에 대한 법문, 통일의병 선언문 낭독 등의 실내 프로그램이 이어졌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됩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13. 46,132 읽음 댓글 43개

2015.12.11 불심도문 큰스님 친견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은사 스님인 불심도문 큰스님을 친견했습니다. 스님은 그동안 대중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설해 주었는데, 오늘은 도문 큰스님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해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아침 식사 후 원고 교정과 보고서를 읽으며 업무를 보다가 8시에 도문 큰스님을 친견하기 위해 부산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도문 큰스님은 스님이 고등학생었을 때 스님을 출가시킨 은사 스님입니다. 스님은 오랜만에 큰스님을 찾아 뵙고 법문을 청했습니다. 부산 서구에 위치한 중생사에서 10시 20분부터 시작된 친견은 오후 6시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큰스님이 평소 하시고 싶었던 말씀을 청해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정토회 법사단을 대표해 유수 스님이, 통일의병을 대표해 김홍신 작가님이 함께 자리해 큰스님의 가르침을 경청했습니다. 우선 큰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린 후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nbspnbsp▲ 도문 큰스님에게 삼배를 올리는 법륜 스님과 유수 스님nbsp그러자 큰스님은 마음을 산란치 않게 머무르게 해주는 아홉 가지 마음인 ‘구주심’에 대해 설명해 주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 불심도문 큰스님nbspnbsp이어서 불교의 정법이 지금까지 있게 한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과거 일곱 부처님과 석가모니 부처님 이후의 서역인도 조사 원류인 제1세 마하가섭 존자로부터 제28세 보리달마 대사까지, 또 동토중국 조사 원류인 제29세 혜가 대사로부터 제56세 석옥청공 조사까지, 또 해동 조사 원류인 제57세 태고보우 조사로부터 제70세 불심도문 법사에 이르기까지 전법의 역사를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그러면서 큰스님은 이렇게 수많은 조사들로부터 면면히 이어온 전법의 역사를 잘 계승해 나가야할 막중한 책임이 법륜 스님에게 있다고 강조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하루 종일 설법이 계속 이어졌고, 큰스님의 설법을 다 듣고 난 법륜 스님은 큰스님이 하루 종일 하신 말씀을 다시 요약하면서 그 뜻을 오늘날에 맞게끔 잘 계승할 것을 이야기하였습니다.nbspnbsp“큰스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다시 정리해보면요. ‘일체지의 총상관으로 불교의 세계관을 먼저 관하라’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우주 법계를 10법계라고 해서 열 가지 세계로 나눕니다. 부처님의 세계, 보살의 세계, 연각의 세계, 성문의 세계, 천상계, 인간계, 아수라계, 축생계, 아귀계, 지옥계, 이렇게 열 가지 세계로 나누고, 그 중에 부처님의 세계에는 다시 300만의 불국토로 그리고, 그 중에 다시 줄여서 1만 불명호의 1만 불국토를 잡고, 그 중의 하나인 사바세계의 남염부주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 세계는 성주괴공하는데 우리는 현재세 주겁의 네 번째 부처님인 석가모니불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nbspnbspnbsp이 세계는 이루어지고, 머무르고, 붕괴되고, 사라지는데, 과거세에도 한번 성주괴공했고, 현재세에 이루어지고 머무르는 동안에 1천 부처님이 출현하고, 미래세에 다시 성주괴공 할 때 또 1천 부처님이 출현하십니다. nbspnbsp이 3천명의 부처님부터는 공간 개념이 아니고 시간 개념입니다. 과거세 1천불, 현재세 1천불, 미래세 1천불이 있는데, 그 중에서 과거 7불은 과거세 1천불 중에 맨 끝에 998번째, 999번째, 1000번째 세 분의 부처님과 현재세 1천불 중에 1번째, 2번째, 3번째, 4번째 네 분의 부처님을 말합니다. 현재는 4번째 부처님인 석가모니 부처님까지 지금 와 있고, 5번째 오실 부처님이 미륵 부처님입니다.nbspnbsp석가모니 부처님은 윗대로 여섯 부처님을 이어서 일곱 번째 부처님이 되신 것이고, 여덟 번째 부처님이 바로 다음에 오실 미륵 부처님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미륵 부처님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죠.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다시 인도에서 법을 계승한 28명의 조사가 있고, 중국에서 법을 계승한 28명의 조사가 있고, 한국에서 법을 계승한 11명의 조사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11명 다음에는 환성지안 조사님께서 순교하셔서 법을 계승하지는 못했지만 제자로서 대를 이어온 7명의 대사님이 있습니다. 이것을 8번째로 계승한 분이면서 환성지안 조사로부터 건너뛰어서 바로 법을 계승한 분이 용성진종 조사이고, 용성진종 조사 다음에 동헌완규 조사가 법을 계승했고, 그 다음에 불심도문 법사까지 계대법과 부촉법이 나뉘어져 내려왔고요. 그 다음에 법륜 스님부터는 계대부촉법 78세가 되는데 이 때부터는 부촉법과 계대법을 합해서 이어나가라는 말씀입니다.nbspnbsp▲ 김홍신 작가님nbsp공간적으로는 우주적인 공간 위에서, 시간적으로는 과거 아주 오랜 세월 전에서부터 부처의 역사가 있었고, 석가모니 부처님과 미륵 부처님의 역사 사이에서 지금 우리가 법을 계승해 오고 있고, 이 역사는 다음에 미륵 부처님에게 계승됩니다. 미륵 부처님이 오면 다시 새로 시작하게 되는 것이죠.nbspnbsp한 사람의 인생을 설계할 때 그 한 사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공간과 시간 속에서 이 한 사람이 있다고 보고, 그 과정을 기술하는 겁니다. 각각의 부처님에 대해 간단하게 기술을 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해서는 좀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역대 조사들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분이 있고, 간단하게 기술하는 분이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경우 보리달마 대사, 한국의 경우 태고보우 조사와 용성진종 조사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야겠죠. 이렇게 과거 부처님으로부터 현재 부처님에게로, 과거 역대 조사로부터 현재 법륜 스님에게 이르기까지 전법이 어떻게 면면이 이어지고 있는지를 담으라는 말씀입니다. 또 이 법이 법륜 스님으로부터 미래로 세계화해 가는 과정을 가정하고 계시고 있습니다. nbspnbsp그리고 이것은 단지 법륜 스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이렇게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니까요. 우리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무한한 우주 속에 무한한 시간 속에 이렇게 길고 긴 인연을 이어서 왔다는 것이죠. 이런 구상을 큰스님이 말씀하신 겁니다.nbspnbspnbsp전반부는 적어도 세 가지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첫째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현하기 이전의 우주에 대한 이야기와 과거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이고요. 둘째는 석가모님 부처님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고요. 셋째는 석가모니 부처님에서부터 법륜 스님에게 이르기까지의 법맥에 대한 이야기이고요. 후반부는 법륜 스님이 하고 있는 현재에 대한 이야기이고요.”nbsp스님의 요약 정리를 듣고 나니 그제서야 명쾌하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희는 그동안 스님으로부터 우주의 역사, 물질의 역사, 생명의 역사, 인류의 역사, 민족의 역사에 대해 주욱 배워 왔는데, 그 방식은 다르지만 큰스님은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관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수많은 우주 중에서 한 세계인 부처의 세계를, 수많은 부처의 역사 속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을, 석가모니 부처님 이후의 역사 중에서 현재 법륜 스님의 이야기를. 이 열매가 있기까지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씨앗이 있고, 씨앗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전에 또 열매가 있고 하듯이 우리들 한 명 한 명도 수많은 인연 연기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자 전율이 일 정도로 모두가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nbspnbsp긴 시간 동안의 큰스님 말씀을 스님이 다시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내용은 일반 대중들이 관심도 적을 뿐더러 쉽게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오늘날 젊은이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지 스님의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특히 현대인들은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요구가 더 크기 때문에 그에 따라 설법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nbspnbsp“큰스님은 긴 시간 동안 이렇게 설법을 하시고, 저희들은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기 얘기가 아닌 것은 잘 안 듣습니다. 반면 자기가 고민하고 있는 것을 질문하게 하고 그것에 대해 대답을 해주면 잘 듣거든요.nbsp예를 들어 현재의 고민에 대해 고집멸도 방식으로 설명해주면 잘 듣는데, ‘고가 무엇이냐’, ‘집이 무엇이냐’ 이렇게 설명을 하면 대부분 설명을 안 듣고 자고 있어요. nbspnbspnbsp그래서 저도 예전에는 금강경을 읽고 해설을 해주면서 그 내용을 생활 속에 적용을 시켜주니 대중들이 아주 좋아했는데, 아무리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설법을 잘해줘도 여기에 감동하는 대중들은 불교를 좋아하는 소수였습니다. 다수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해 해법을 찾아줘야 아주 좋아해요. 예를 들어 남편이 죽어서 괴롭다, 시험에 떨어져서 힘들다, 이렇게 구체적인 자기 문제에 대해 상담을 해줘야 귀기울여 듣습니다. 물론 대답해주는 그 내용은 다 불법을 토대로 대답을 해주지만요. 그래서 불법을 대중화 하기 위해선 이 불법을 현재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옛날 이야기가 지금 시점에서 재해석되어 이야기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nbspnbsp큰스님은 근본이 되는 내용을 이야기해주셨고요. 이제 그 내용을 어떤 형식에 담아야 하는지는 새로운 연구 과제인 것 같아요. 불교방송에서 큰스님들이 법문하는 것을 한번 보세요. 스님이 법문을 하면 눈을 보면서 호응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법상 위에서 스님은 스님대로 이야기하고 있고, 밑에서는 참선 자세로 떡 앉아서 호응이 전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문을 하면, 다시 질문을 하고, 문답이 이어지고, 반론도 제기하고 해야 재미가 있는데 말이죠.nbspnbsp그저께는 제가 강연을 했더니 청년 한 명이 손을 번쩍 들고 ‘스님은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절망을 주러 왔습니다’ 이러기도 했어요. ‘무슨 얘기냐?’ 물어보니 ‘욕망이 있어야 꿈을 꾸는데 욕망을 버리라고 하면 어떡해요’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런 질문에 대해서도 웃으면서 서로 대화를 해야 하거든요. nbspnbsp그리고 요즘은 법문이 길면 잘 안 듣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보기 때문에 법문이 10분만 넘어가도 벌써 닫아버리고 다른 것을 보거든요. 그래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주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마치 선문답처럼 해줘야 해요. 아주 짧으면서도 탁 가슴에 꽂히고, 재미도 있고, 깨닫게도 해주고, 그래야 좋아하거든요. nbspnbspnbsp물론 큰스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항상 사물을 크게 봐야 합니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눈만 갖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먼저 이야기하고, 얼굴을 먼저 이야기한 후에 그 가운데 눈을 이야기하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요즘은 다들 눈만 이야기하고, 코만 이야기하고, 입만 이야기를 하니 눈, 코, 입이 발에 붙었는지, 등허리에 붙었는지도 모르고 세상 사람들이 살거든요.nbspnbsp그래서 큰스님께서 얘기하시는 이 법을 어떻게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전할 것인가가 과제입니다. 저는 즉문즉설에서 고집멸도라는 용어도 일절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고민을 질문하면 ‘너는 뭐가 괴롭니?’ 라고 물어보는데 이것이 사실은 ‘고’이거든요. 그리고 ‘네가 보기에는 무엇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니?’ 라고 물어보지 ‘집’이 무엇인지 이런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뭐가 문제니?’라고 몇 번 물으면 ‘이게 문제입니다’ 라고 대답하고, 그러면 ‘그게 왜 문제이니?’ 라고 접근하고, 대화를 계속 하다보면 ‘아무 문제가 아니었네요’ 라고 하거든요. 이렇게 원리는 고집멸도에 따라서 접근을 하되, 고집멸도라는 용어는 안 씁니다.nbspnbsp‘공’이라는 것도 공이라는 용어를 안 쓰고 이렇게 질문합니다. 어떤 학생이 키가 작아서 고민이라고 질문하면 ‘너는 키가 작은 것이 아니다. 자꾸 너보다 키 큰 사람과 비교하니까 괴로운 것이지 너는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다.’ 이렇게 말해주거든요. 그래서 질문한 학생이 ‘아, 내가 키가 작은 것이 아니었네’ 하고 깨닫게 하거든요. ‘키가 작은 것이 아니었네’ 이 말이 곧 ‘공’을 말하는 것이잖아요. 공이라는 용어를 써버리면 이미 지식이 되어버리거든요. 키가 작다고 생각해서 열등의식을 가졌는데 ‘내가 작은 것이 아니네’ 하고 깨달으면 얼굴이 밝아지면서 ‘스님, 잘 알겠습니다. 별 문제 아니네요’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제가 ‘그래, 별 문제 아니야. 괜찮아’ 라고 말해줍니다.nbspnbspnbsp지금의 전법은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교리는 몰라도 그 교리의 내용을 체득하도록 해줘야 얼굴이 밝아집니다. 교리는 지식이 되니까 마음을 변하게 하지는 못하거든요. 그러나 경험으로 체득하게 되면 얼굴이 확 밝아집니다. 그래서 불교에 대한 접근도 새롭게 해야 하는 시점에 지금 와 있습니다. 상대가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무교이든 그건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독교인에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신앙은 기독교를 믿든 너가 알아서 해라. 그러나 자유롭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불법을 공부해야 한다.’nbspnbsp기독교 신자든 카톨릭 신자든 불교로 개종을 하라고 하면 부담이 되는데, 믿는 것은 너가 믿고 싶은 것을 알아서 믿어라고 하니까 부담이 없죠. 대신에 수행은 해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무교인 사람들에게도 ‘종교가 없어도 되는데 마음 공부는 해야 된다’고 말해줍니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은 종교를 뛰어넘는 가르침이라고 말해줍니다. 대신에 저는 큰스님께서 말씀해주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겉으로 표현하는 것은 더 이상 경전을 인용하지 않고 그냥 생활 속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사람들이 ‘스님이 법문은 안 하고 왜 인생 상담만 하시냐?’고 묻는데 그럴 때는 제가 무유정법과 중도의 원리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곤 합니다.nbspnbsp큰스님께서 저희들에게 근본을 던져 주셨으니까 이것을 저희들은 지금의 세대들에게 맞도록, 또 전 세계의 각 나라 문화에 맞도록 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문화를 갖고 미국에 적용하면 안 맞거든요. 불법인 담마는 전 세계에 보편적이지만, 이것을 미국 사람에게 얘기할 때는 미국 문화라는 형식에 담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주로 한국에서만 사니까 미국 사람들에게 즉문즉설을 할 때는 가끔 안 맞을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에게는 어떤 형식에 담아야 전달이 잘 되는지 파악이 되는데 미국 사람들에게는 가끔 이것이 안 될 때가 있어요. 가령 우리 나라 사람들은 부모가 자식에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미국 사람들은 집착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이렇게 미국 사람들의 고민과 한국 사람들의 고민이 조금 달라요. 그런데 한국에서와 똑같이 이야기를 하면 안 맞죠.nbspnbsp큰스님께서 얘기해주신 것과 자료들을 토대로 연구를 더 해보겠습니다.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든 불교의 원리를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정리를 하고, 요점 정리를 먼저 해서 근본 알갱이는 만들어놓고, 그 다음에 현대인에 맞게끔 풀어서 쓰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nbsp법륜 스님의 이야기에 큰스님도 아주 기뻐하면서 공감을 표했습니다.nbspnbspnbsp여기에 큰스님은 특히 법륜 스님의 저서 중에 베스트셀러가 된 ‘스님의 주례사’라는 책도 ‘장아함선생경’ 이라는 경전에 근거한 것인데 법륜 스님은 어려운 경전도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잘해준다며 이것은 누구도 흉내를 못낼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nbspnbsp이렇게 큰스님은 쉬지 않고 큰 목소리로 법문을 계속 하셨고, 법륜 스님은 오늘 하루 종일 큰스님의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오후 6시가 되어 큰스님도 흡족해하며 법문을 마쳤고, 법륜 스님과 나머지 일행 분들도 80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열정적으로 가르침을 설해 준 큰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린 후 중생사를 나왔습니다.nbspnbspnbsp저 연세에 저만한 체력과 열정을 유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가까이에서 본 것만으로도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nbspnbsp오후 6시 30분에 부산을 출발하여 8시가 다 되어 울산 두북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아침 7시 40분부터 정토회 제2차 통일의병대회가 경주에서 열립니다. 스님은 늦은 시간까지 내일 있을 통일의병대회 준비 상황을 점검한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12. 77,185 읽음 댓글 94개

2015.12.10 발우공양 후 26기 백일출가 행자들을 위한 법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NGO탐방차 서울에 와 있는 26기 백일출가 행자들을 위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어제밤 12시에 울산 두북을 출발한 스님은 새벽 4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차 안에서 충분히 쉬었다”고 하며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새벽 4시 30분, 도량석을 시작으로 서울공동체 상주대중들과 백일출가 행자들의 우렁찬 염불 소리가 법당에 가득 울려퍼집니다. 백일출가 행자들은 JTS, 평화재단, 좋은벗들 등 정토회 내 다양한 사회활동단체들을 견학하기 위해 5박 6일간 서울에 머무는 중입니다.nbspnbsp이어서 6시 30분부터는 발우공양을 함께 했습니다. 백일출가 행자들과 함께한 덕에 평소보다 꽤 많아진 인원으로 경건하게 발우공양을 마쳤습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발우공양을 마치고 대중공사 시간이 되자 스님은 백일출가 행자들이 많이 참석한 것을 확인한 후 가볍게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갑자기 전환이 되었습니다. 먼저 백일출가 행자들이 누구인지 직접 손을 들어보게 했습니다.nbspnbsp“백일출가생들 몇 명이나 왔어요? 손 들어봐요. 어디 앉았나요?”nbsp행자들이 손을 번쩍 들자 스님은 행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모두 14명이 함께 자리했습니다.nbspnbsp“백일출가 회향이 1월 2일이면 연말은 정토회에서 보내야 되겠네요. 누가 소감 한마디 해봐요. 대표를 맡고 있는 행자님은 어떻게 오셨어요?”nbsp백일출가 대표를 맡고 있는 여자 행자님이 씩씩하게 답합니다.nbsp“백일출가 전에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사표내고 왔어요.”nbsp“요즘 직장 구하기 어렵다던데 왜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왔어요?”nbsp“백일출가 너무너무 오고 싶어서요.”nbsp“해보니까 어떤가요? 괜히 왔다 싶어요?”nbsp“잘 모르겠어요.”nbsp“후회하는구나. 백일출가 끝나면 직장 다시 다닐 거예요?”nbsp“아니요.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어요.”nbsp“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정토회에서 살면 되겠네요. 오갈 데도 없는데, 먹여주고 재워주는 정토회가 있잖아요.” nbspnbsp이번에는 맨 끝줄에 앉은 여자 행자에게 물어봅니다.nbspnbsp“저기 맨 끝에 행자님은 뭐하다 왔어요?”nbsp“저는 1월 달에 직장 그만두고 문경수련원에서 바라지생활 계속 하다가 들어왔습니다.”nbsp“바라지생활 하면서 왔다갔다 하다가 직접 들어와서 살아보니 어때요?”nbsp“들어와서 사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nbsp“여기 오래 산 실무자들은 어때요? 살아보니까 좋아요?” nbsp스님 옆자리에 앉아있는, 20년이 넘게 정토회에서 일해 온 실무자를 향해 가볍게 농담조로 물어보니 모든 대중은 빵하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자 실무자 분이 환한 웃음과 함께 대답했습니다.nbspnbsp“얼굴이 좀 환해졌다고 하더라구요.” nbsp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되어 또 다른 행자에게 물어봅니다.nbspnbspnbsp“이번엔 남자 행자님도 한번 이야기 해봐요. 저기 키 큰 남자 행자님은 뭐하다 왔어요?”nbsp“호텔에서 25년간 요리사로 일하다 왔습니다.”nbsp“25년이나... 그럼 무슨 요리 잘해요?”nbsp“다 잘합니다.”nbsp“다 잘하는 거 보니 특별히 잘하는 건 없나 봐요. 그럼 왜 그만 뒀어요?”nbsp“나 자신에게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요.”nbsp“백일출가 해보니 나 자신에게 줄 시간이 더 없지 않아요?”nbsp“그렇지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요.”nbsp그리고 스님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긴장을 한 탓에 밤에 잠을 못자는 사람은 없는지 확인을 했습니다.nbspnbsp“백일출가하면서 밤에 잠 안 오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코고는 소리 때문에 못자고 이런 사람 없고요? 눈 감았는데 뜨면 바로 새벽이지요? 회향 때까지 앞으로 1달도 안 남았네요. 뭐가 제일 궁금해요? 살아보니 ‘이런 것 좀 고치면 어떠나’ 이런 것 없어요? 문경에 화장실 고쳐줄까요?” nbspnbsp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제서야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회향할 때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보내면 좋을지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태국에 가면 전통적으로 남자들이 3년간 출가생활을 하게 되어있어요. 우리 나라 남자들이 군대 가는 것과 비슷하죠. 그런데 요즘은 점점 변해서 1년 하다가, 6개월 하다가, 언제 가서 얘기 들어보니까 이런 사람도 있데요. 오늘 아침에 출가 의식을 거창하게 하고 내일 회향한대요. 성인식처럼 요식 행위로 하는 것이지요. 어찌됐든 그래도 머리를 한번 깎아보고, 가사를 한번 입어보고 벗고, 그렇게 출가를 한 번은 해봐야 사람이 된다 이거예요. 요즘은 하나의 문화처럼 돼서 그렇게 요식행위로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보통 6개월, 1년 이렇게 출가생활을 하게 돼요.nbspnbsp그것처럼 여러분들이 이렇게 3개월 정도 출가 생활을 해보는 건 인생에 아주 좋습니다. 원래 한 3년 정도 해야 돼요. 돈이나 대가를 받고 자기의 기술, 재능을 파는 것에 너무 익숙해지면 뭐든지 돈으로 계산하거든요. 삶의 가치가 뭐든 게 다 돈이 되는 거예요. 어떤 일을 하다가도 ‘어이구 이렇게 하는 게 이게 돈이 얼만데.’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 부모가 선물을 사줘도 ‘얼마짜리냐?’ 묻고, 시골에서 부모들이 상추나 배추를 뽑아다 주면 ‘이게 몇 푼 된다고 이렇게 들고 오세요. 사먹으면 되는데.’ 하지요. 이런 것들은 정성이 깃든 거라 돈으로 계산할 수 없어요.nbspnbsp그래서 자기의 하루 노동에 드는 재능이나 기술을 돈을 받고 팔지 않고, 그냥 필요에 따라서 사용해봐야 해요. 마치 내가 내 얼굴 세수하고, 내 빨래 내가 빨듯이 살아보는 거에요. 이렇게 살면, 첫째, 세상일을 내가 주인이 되어서 하는 거예요. 주인이 아닐 때에는 반드시 돈을 받아야 되는데 주인이면 돈 계산을 안 하잖아요. 두 번째는, 이렇게 살아본 경험이 있으면 세상에 나가서 직장 구하기가 아주 쉬워져요. 전에는 일은 적게 하고 돈은 많이 받는 직장을 구하려니 구하기도 어렵고, 설령 구하더라도 눈치보고 살고 그러는데, ‘돈을 안 받고도 일했는데 다만 몇 푼이라도 주면 좋지.’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면 직장 구하기가 쉬워져요. 백일출가를 했기 때문에 부처님이 예뻐해서 직장을 쉽게 구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니까 직장 구하기가 쉬워지는 거예요.nbspnbsp또 어떤 모임이나 남의 집이나 어디를 가도 부엌에 쉽게 들어가서 거들어 줄 수도 있고, 남들이 일할 때 뻘쭘하게 서있지 않고 거들어 줄 수 있어요. 등산을 가더라도 휴식시간에 농민들이 무를 뽑던지 벼를 베든지 하면 10분이라도 거들어 줄 수 있는 거지요. 세상살이가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늘 관객처럼 구경꾼으로 있는 게 아니라. 놀이가 있을 때 그 속에 들어가서 잠시라도 같이 어울려서 놀아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거예요.nbsp그게 자기가 주인이 되어가는 삶이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돈을 받고 요리를 해주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먹는 모습이 좋아서 요리를 하는 이런 자세가 필요하지요. 그런 연습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늘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살았잖아요.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도 어린애예요. 지금까지 늘 누군가가 챙겨주는 걸 받고 살았는데 이제 내가 늘 챙겨주는 연습을 해보는 거예요.nbsp이 연습은 절에 들어와서 행자생활을 하며 할 수도 있고, 또 결혼을 해서 내 아이를 갖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해야 돼요. 아이를 낳자마자 입양시키지 않는 이상 아이가 있으면 기저귀도 갈아야 되고 여러 가지를 해야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아이를 낳아서 길러봐야 사람이 된다, 어른이 된다, 보살이 된다.’ 이런 말을 하지요.nbspnbsp그런데 그렇게 해보지 않고도 백일출가를 하든, 3년을 출가해 공부를 하든, 뒷바라지 해보는 게 참 중요해요. 우리는 늘 얼굴이 되려고 하지 손발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옛날에 ‘절에서 100명의 대중에게 밥을 해먹일 능력이 돼야 도를 이룬다.’ 이런 말이 있어요. 공양주가 되어서 100인 분의 밥과 반찬을 해먹일 역량이 돼야 수행을 해서 도를 이루지, 그런 수준이 안 되면 공부 하나마나라는 거예요.nbsp옛날에는 경전을 읽고 얼마나 잘 이해를 했느냐, 이렇게 스님을 평가하지 않았어요. 절에 오면 바로 공양주를 시키든 머슴살이를 시켜서 일하는 걸 보고 오히려 ‘저거 크게 되겠다, 안 되겠다.’ 평가했거든요. 남을 뒷바라지 해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보살의 길로 갈 수 있지, 자꾸 뺀질거리면 자기도 살기 피곤하고 큰 뜻을 이루기가 어려워요.nbspnbsp그러니 농사일이든 설거지든 밥이든 즐거운 마음을 내서 하면 재미가 있어요. 그런데 자꾸 ‘내가 왜 이거 하고 있나’, ‘내가 공부하러 왔는데 이것만 하고 있어야 하나’, ‘내가 이 일을 할 바에야 직장 다니는 게 낫지’ 자꾸 이런 생각을 하면 여기 살기가 힘들어져요. 그래서 예전에 선사들이 수행한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다 큰 스승을 찾아와서 뭘 배우려고 왔는데 가르쳐 주진 않고 몇 번 문제제기 해도 계속 일만 시켰다고 해요.nbspnbsp그래서 깨달은 사람 중에는 이런 사람이 있었어요. 큰스님을 찾아 공부를 배우러 왔는데 일만 시켜서 가버릴까 하니 이제껏 참아온 게 아깝고, 있으려니 공부는 안 알려주고. 결국 3년을 견디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가겠다고 하니까 잡을 줄 알았는데 안 잡고 ‘그래 잘가라’ 이래요. 너무 섭섭한 거예요. ‘이번에는 아무리 잡아도 가겠다’ 결심을 하고 갔는데 안 잡으니까 도로 섭섭한 거예요. 절을 나와 내려오면서 부르나 싶어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하면서 내려오는데 그래도 안 부르니 포기하고 한 5리 정도 내려와서 개울가에 앉아 있는데 스승이 ‘아무개야’ 하고 쫓아 내려오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지.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데 나를 안 불러?’ 이렇게 생각하고 속으로 웃고 있는데, 스승이 가까이 오더니 ‘내가 상추를 씻다가 한 장이 물에 떠내려 갔는데 그것 못 봤냐?’ 하더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깨쳤다고 해요. nbsp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느냐 하는 도리를 깨달은 거에요. 잡으면 뿌리치고 싶고, 안 잡으면 섭섭해 하는 마음의 이치. 그러니 스승이 부를 때 ‘옳거니’ 했는데 ‘상추 하나 떠내려 온 것 못봤냐.’ 라고 한 순간 자기가 자기 마음을 봤다 이런 얘기예요.nbspnbsp그러니까 여러분들도 학습이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라, 너무 학교공부하듯 생각하지 말고 첫째는 그런 헌신적인 자세로 일하고, 두 번째는 마음을 늘 살펴야해요. 마음에 온갖 분별이 일어나는 걸 살필 줄 알아야 해요. ‘분별이 일어나면 안 된다’가 아니라 ‘마음이 어떻게 서로 모순되게 일어나느냐’ 하는 것을 살피는 겁니다. 그 모순된 마음을 내려놓는 것을 경험해 봐야 여러분들이 자기 업식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어요.nbsp그렇게 출가하고 싶어서 직장 다닐 때는 늘 백일출가 노래를 부르다가, 백일출가를 하니까 이제 또 ‘언제 끝나나, 끝나야 빨리 나가서 뭘 할텐데.’ 이런 건 모순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만 그런 건 아니에요. 부처님도 10년을 애타게 기다리며 출가를 원했는데 출가 후 며칠 만에 후회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자기를 보고 크게 재발심을 했다고 해요.nbsp‘그런 마음이 일어나면 안 된다, 잘못됐다’ 가 아니라 그런 자기를 자기가 알아야 돼요. 모순을 터득하는 순간 얼굴이 밝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져요. 그러니 끝나는 날짜만 세고 이런 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아침에 ‘끝났다, 가라’ 하면 그때 가서 ‘아, 끝났나보다.’ 하면 돼요.nbspnbsp처음 입재해서 보내는 하루나 마지막 회향할 때 하루나 똑같은 하루에요. 그런데 우리는 입재해서 처음 들어올 때는 소중한 하루가 되고 끝날 때 하루는 지루한 하루가 돼요. 그러면 자기 인생을 낭비하는 거예요. 보통 세속에도 이런 말이 있어요. ‘사람이 갈 때 어떻게 뒷정리를 하고 가느냐, 그걸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지요. 우리는 많은 과정을 거쳐서 만나는데 헤어질 때는 안면몰수하고 헤어지잖아요. 연애할 때나 사람을 만날 때는 여러 과정을 거쳐서 만나놓고 헤어질 때는 원수가 되고 딱 그걸로 끝나버리지요.nbsp그래서 마무리를 잘해야 해요. 남은 3주만 해도 깨닫고도 남을 소중한 시간이니까 열심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스님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던 백일출가 행자들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습니다. 스님이 들려준 법문을 가슴깊이 새기고 NGO 탐방과 남은 백일출가 기간을 아주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이렇게 대중공사를 마치고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아침 7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실무자들과 미팅과 회의를 연이어 가졌습니다. 특히 오늘은 다음주부터 시작하는 통일의병 2차 교육 내용에 대한 집중적인 검토가 있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오후 2시부터는 국제한민족재단의 이창주 박사님 일행과 연해주 신한촌역사회복재건위원회 관련 회의가 진행됐습니다.nbspnbsp▲ 연해주 신한촌역사회복재건위원회 관련 회의nbsp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신한촌은 한인독립운동의 기지였습니다. 러시아 지역의 한인독립운동을 대표하는 1910년대의 권업회, 권업신문, 대한광복군정부, 한인신보사, 한민학교 등이 이곳에 있었으며, 이동휘 등 수많은 한인 애국 지사들이 신한촌에 거주하며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일제의 무자비한 공격과 학살에 의해 참담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1920년 4월에 연해주 신한촌에서 일본군이 조선인을 대량 학살한 사건을 신한촌참변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신한촌에서 있었던 역사적 아픔을 회복하고 재건하기 위해 스님과 이창주 교수님은 그동안 많은 교류를 해왔습니다.nbspnbsp오늘 회의에서는 신한촌 역사회복재건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어떤 분들을 집행위원으로 모시면 좋을지, 집행위원들을 모시는 방법 등에 대해 세세하게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nbspnbspnbsp또 신한촌 역사회복재건을 위해 집행위원 33인을 모시는 작업이 끝나는 대로 후원금을 모으고 공사에 착수하는 동시에, 2016년 2월 29일에는 프레스센터 19층에서 기자회견도 갖기로 했습니다.nbspnbsp이어 3월 11일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기공식을 하기로 했는데, 관련 업무를 어떻게 진행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평화재단과 국제한민족재단의 실무단위에서 역할분담을 해서 추진해나가기로 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신한촌역사회복재건위원회를 통해 신한촌 등 러시아 전역에서 이루어진 항일투쟁의 역사가 새로이 평가되고 부활되기를 기원해 봅니다.nbspnbsp이렇게 회의를 마치고 치과에 들러 치료를 받고, 오후 6시에 서울을 출발해 밤 10시에 울산 두북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11. 64,531 읽음 댓글 72개

2015.12.8 (저녁) 진주 청년 즉문즉설 강연

nbsp오후에 영남대병원에서 열린 초청강연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진주교대 대강당에서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대구 영남대병원에서 오후 5시에 출발한 스님은 2015년 마지막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 위해 진주교대로 향했습니다. 대구에서 진주로 가는 길에는 지평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뉘엇뉘엇 넘어가면서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스님은 올 한해에도 100여 회의 즉문즉설 강연을 했는데, 오늘이 마지막 강연이라고 태양도 수고했다고 축하를 해주는 것만 같았습니다.nbspnbspnbsp진주시내에서 차가 많이 밀리긴 했지만 다행히 오후 6시 30분에 진주교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진주교대 대강당nbsp먼저 강연장으로 들어서며 수고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저녁 7시가 되자 520여 명의 청중들이 자리한 가운데 사회자의 밝은 목소리와 함께 드디어 2015년 스님의 마지막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이번 강연은 진주 청년정토회와 진주교대 불교동아리 ‘선각회’ 학생들이 함께 모여 강연 준비부터 홍보, 진행까지 서로 도와가며 만들었습니다. 대학생 봉사자들이 많아 연신 발랄하고 즐거운 분위기로 접수부터 안내까지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저녁 식사는 하셨어요?”라는 가벼운 인사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번 강연은 청년들을 위한 강연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자리에 참석하였습니다.nbspnbsp“오늘은 2015년 마지막 강의입니다. 청년정토회에서 주관하는 청년들을 위한 강의도 오늘이 마지막이고요.nbspnbspnbspnbsp올해는 정토회가 주관하는 희망세상만들기 강연, 통일의병이 주관하는 통일이야기, 청년포럼이 주관하는 청춘콘서트, 청년정토회에서 주관하는 희망강연, 이렇게 이 4개 단체에서 강연을 열다보니 진주에 저도 여러 번 오게 되었어요. 진주가 좋긴 좋은가 봐요. 네 개 단체가 다 진주를 한 번씩 넣다 보니 올해 네 번이나 오게 됐습니다. 얼마 전에도 오더니 또 왔나 싶어서 식상하죠? 그런데 오늘은 청년들을 위한 강의예요. 청년들이 마음껏 질문할 수 있도록 기회를 좀 열어주세요.nbspnbsp제가 보기에는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청년이라는 점만으로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가끔 물어봅니다.nbspnbsp‘공부도 해야 하고, 취직도 해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고 일이 많은 건 알겠다. 나처럼 60대 되면 공부도, 취직도, 결혼도, 아이 키우기도 안 해도 된다. 지금 그런 일 다 하면서 2030대 할래, 한가로이 지낼 수 있는 6070대 할래?’nbspnbsp그러면 다들 2030대 하겠대요. nbspnbspnbsp그러니 6070대도 잘 사는데 2030대가 왜 못 살까요? 바꾸자고 해도 안 바꿀 정도로 그게 더 좋다면서요.nbsp그래서 제가 볼 때는 별로 걱정이 없을 것 같은데, 자기들은 힘들다고 야단입니다. 돈이 없어서 데이트도 못 한 대요. 데이트를 돈이 없어서 못 해요? 애인이 없어서 못 하죠. nbspnbsp저는 이해가 안 돼요. 여자와 남자만 있으면 나무 밑에 앉아서도 데이트 할 수 있고 진주성 산책하면서도 할 수 있는데요. 그러면 품위가 없어서 안 된대요. 멋진 카페에도 가야 하다 보니 데이트하는 경비가 많이 든대요. 요즘 세대는 우리 때와 다른가 봐요.nbspnbsp어쨌든 젊은이들은 고민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기준을 우리 세대에 두고 보면 걱정거리가 아니고, 자기 세대에 두고 보면 엄청난 걱정거리예요. 누구 기준으로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도 가난을 겪어본 670대 사람들을 기준으로 보면 문제가 아니지만 젊은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큰 문제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이념적, 지역적인 차이보다 세대적인 견해 차이가 굉장히 커요. 여론 조사를 해보면 세대에 따른 여론 차이가 굉장히 큽니다. 세대 간의 단절이지요.nbspnbsp그래서 서로 이해하는 자세가 좀 필요합니다. 상대가 옳다고는 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 시대에 자라고 보고 들으며 살았으니 그럴 수 있겠다’ 이렇게 청년들은 부모 세대를 이해하고 부모 세대들은 청년들, 자녀들을 이해해야합니다. 항상 자기 기준만 세워서 ‘그게 뭐가 문제냐’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소통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nbspnbspnbsp그러니 오늘도 젊은이들은 자기 이야기와 고민을 실컷 편안하게 토로하고, 청년 아닌 분들은 우리 자녀들이 어떤 문제로 고민하는지 듣고 참고해서 이해의 폭을 넓혔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러면 시작해보죠. 질문자들 손들어보세요.”nbsp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을 하고자 했습니다. 총 7명이 스님께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nbspnbspnbsp첫 번째 질문자는 3년째 원하는 곳에 취업을 하고자 취업 공부를 하고 있는 27살의 취업준비생인데 집에서는 그냥 평범한 곳에 취직하라고 한다면서 27살이나 돼서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하려고 하는 것이 철없고 불효하는 것인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행복이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우리가 행복하다고 하는 순간이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행복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해야 현재에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살다보면 무기력해지는 때가 있는데 그때 스님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네 번째 질문자는 2년 동안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취업준비생인데 현재 아르바이트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하였고, 다섯 번째 질문자는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고 집에 어머니가 아프신데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싶다는 질문을 하였고, 여섯 번째 질문자는 중국, 미국, 러시아 강대국들 사이에서 갈 길을 잃은 듯 보이는 한국의 통일 전망에 대해 질문했습니다.nbspnbsp특히 마지막 질문으로는 곧 직장에 들어가는데 형편이 안 되지만 외제차를 사고 싶은 욕심이 든다는 질문과 함께 스님의 희망 강연이 청년들에게 꼭 희망을 주는 것 같지 않다는 당돌한 질문이 나오면서 청중이 모두 크게 웃기도 했습니다. nbsp nbsp nbsp nbspnbspnbsp오늘은 여러 질문들 중에서 스님에게도 무기력한 시기가 있었고 그 극복 방법을 들을 수 있었던 질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또 당돌했던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철없는 청춘이 질문하겠습니다. 살다 보면 하루나 이틀, 길게는 일주일까지 무기력해져서 자기 생각에 빠져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무기력함에 빠져들 때 어떻게 벗어나오거나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요? 스님께서는 보통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nbsp“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20대에 약간 무기력해지면 이렇게 했습니다. 무기력한 정도가 비교적 덜할 때는 제가 주로 활동했던 경주로 가서 황룡사 터나 김유신 장군 묘 옆, 혹은 무열왕릉 묘 옆에 몇 시간이고 누워 있었어요. 눈 감고 가만히 누워서 1,300년 전에 그 사람들이 활동했던 모습을 영화 보듯이 주욱 상상해보는 겁니다. 그러면 그 시대에 좋았던 것도 지나고 봤을 때 반드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예컨대 연애하다가 헤어진 일이 역사 속 인물에게 더 잘된 일일 때도 있고, 어떤 사람이 실패한 게 결과적으로 잘 된 일인 경우가 역사에는 많습니다. 그렇게 옛일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자각이 되기도 했습니다. nbspnbspnbsp간단한 무기력은 그렇게 해결을 했는데, 심한 무기력은 단식을 했습니다. 5일 이상 굶으면 몸뚱이가 ‘뭘 먹어야지, 어떻게 해 봐야지’하고 살려고 합니다. 살려고 하는 욕구야말로 무기력을 극복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무기력은 배부를 때 생기지, 배고프면 절대로 안 생깁니다.nbspnbsp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배가 고파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일어날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 일어납니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나지요. 자살을 하려고 산에 올라가서 나뭇가지에 줄을 매고 목에 딱 거는 순간 호랑이가 나타나면 ‘아이고, 잘 됐다. 안 그래도 죽으려던 참이니 나를 물어 죽여라’ 이러지 않아요. ‘사람 살려’ 소리지르며 줄행랑을 치지요. 자살하려고 목을 매달려는데 옆에서 폭탄이 터지면 도망갑니다. nbspnbspnbsp무기력한 것은 의식의 문제지만 살고자 하는 욕구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어떤 의식도 생존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생존의 욕구가 더 근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정신이 약간 무기력해지면 자기 목숨을 자기가 죽일 수 있습니다. 남도 죽일 수 있듯이 자기도 죽일 수 있는 겁니다. 남을 죽이면 살인이고 자기를 죽이면 자살인데, 그건 정신이 약간 고장나서 그런 거예요. 그런데 생존 자체가 위협에 부딪치면 무기력은 날아가 버립니다. 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겁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까요.nbspnbsp그래서 제 경험에 비추어서 말해 보자면, 질문자가 좀 굶어보면 어떨까요? 제가 직접 굶어 봤는데 45일을 넘어가면 ‘살아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몸이 저절로 ‘살아야 되겠다’ 하는 게 일어납니다. 그러면 무기력이 극복됩니다.nbspnbsp그런데 제가 그 이후에 몸의 한계를 시험해본 적이 있습니다. 무기력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북한 동포들이 굶어 죽어가는데도 제가 외면한 것을 생각해서 ‘저들은 굶어죽는데 어떻게 나만 밥을 먹을 수가 있겠어? 나도 같이 굶어야겠다’ 해서 30일 굶다가 중지한 적도 있어요. 최대로 굶어본 건 2008년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던 때에 북한에서 또 대량아사사태가 일어나서 70일을 굶은 일입니다. 그래도 안 죽었습니다.nbspnbspnbspnbsp70일까지 굶어도 안 죽더라고요. 대신, 그렇게 굶을 때는 정신이 맑아야 됩니다. 일상생활은 nbsp아무 문제가 없는데, 심한 노동을 하거나 극심하게 분노하면 에너지 소모가 많아서 기력이 빨리 소진됩니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단식을 하면 일상생활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해 보니까 말이 잘 안 나와서 강연은 조금 힘들더라고요. 49일이 넘어가니까 기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명상을 하면서 단식을 계속 했습니다. 명상을 하면 에너지 소모가 적거든요.nbspnbsp또 여러분들은 단식이라고 하면 굶는다고만 생각하는데 안 그렇습니다. 단식을 하면 하루에 300그램의 순수한 살코기만 먹고 삽니다. 무슨 말일까요? 자기 살코기를 먹고 산다는 겁니다. 그래서 단식은 채식이 아니라 육식입니다. 몸무게를 재보면 하루, 이틀, 삼일은 무게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대변이 빠지니까요. 그 다음부터는 하루 평균 300그램씩 몸무게가 빠집니다. 매일 똑같지는 않고, 몸의 수분 함유량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 소변이 잘 안 빠지면 어제와 몸무게가 똑같고, 소변이 빠져버리면 500그램이 빠집니다. 그래서 사람이 기초 체온을 유지하고 생각을 하고 약간 움직이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주는 게 300그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nbspnbsp그런데 명상을 시작하니까 평균 200그램씩 빠지고, 조금 더 명상을 하니까 평균 150그램씩 빠졌습니다. 머리 쓰는 데 에너지가 많이 드는데, 명상을 하면 머리도 거의 안 쓰고 대화도 안 하니까 에너지 소모량이 적어져서 체중감량의 정도도 덜했던 겁니다.nbspnbsp저는 굶으면 굶을 때 몸에 어떤 현상이 생기고 그로 인해 마음에는 어떤 현상이 생기는지 늘 연구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단식할 때 뭘 먹느냐? 복식은 언제 하느냐?’ 이런 연구를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굶는 데 무슨 방법이랄 게 있겠습니까? 안 먹으면 되는 거지요. 그런데 ‘복식’은 문제입니다. 음식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하면 욕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생명과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심리가 어떻게 변화하고, 몸이 어떻게 작용하고, 뭘 먹으면 설사를 하고, 뭘 먹으면 속이 불편한지, 양이 어떻게 느는지, 이런 걸 본인이 체험해 보면서 연구하는 게 제일 확실합니다.nbspnbspnbsp질문자 나이에 한 5일 굶으면 아마 일어날 거예요. 무기력 할 때 제일 좋은 것은 굶는 거예요. 무기력하다는 건 살고 싶지가 않다는 거예요. 그러면 약 먹거나 목매서 죽지 말고 그냥 굶어 죽으려고 해보면 됩니다. nbspnbspnbsp정신이 확 사로잡혀서 목을 매거나 약을 먹고 죽으면 돌이킬 수 없게 되지만, 굶으면 서서히 죽어가는 동안 죽을지 살지를 자기가 다시 판단하게 되니까 ‘아이고, 살아야지’ 하면서 기력이 다시 돌아올 거예요.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질문자가 찾아서 해 보세요.”nbsp“감사합니다.”nbspnbsp정말 무기력해 보였던 질문자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스님의 경험을 진솔하게 들려주어서 더 가슴에 와 닿았던 답변이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자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강연을 막 치려고 하는 찰나에 맨 앞에 앉아서 열심히 강연을 듣던 여학생이 번쩍 손을 들고 꼭 질문을 받아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스님은 시계를 보더니 웃으면서 질문을 받아주었습니다.nbspnbsp학생의 질문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외제차를 사고 싶다는 다소 엉뚱해보이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답이 계속되면서 욕심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그 과정에서 청중들도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곧 직장을 갖게 되는데, 저는 욕심이 많습니다. 저는 제가 욕심이 많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욕심이 많으니까 이룬 것도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외제차를 사고 싶은데 살 능력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되는지 궁금합니다.”nbsp“안 사면 되지요.”nbspnbsp“그런데 제가 욕심이 있어요.”nbsp“사고 싶어도 안 사면 된다는 겁니다.”nbsp“출근을 해야 하니까요.”nbspnbsp“걸어서 출근하면 되지요.” nbspnbspnbsp“거리가 멀면 차를 타야 될 거 같은데요.”nbspnbsp“버스를 타면 되지요. 제가 지금 질문자의 질문을 농담으로 넘기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묻고 답하는 것과 같은 거예요.nbspnbsp‘지하철을 탔는데, 앞에 앉은 여학생의 종아리가 너무너무 예뻐서 만지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될까요?’nbsp‘만지지 말아야지요.’nbsp‘그래도 만지고 싶은데요?’nbsp‘그래도 만지지 말아야지요.’nbsp‘한번만 만지면 안 될 까요?’nbsp‘그래도 만지지 말아요.’nbspnbsp스님이 ‘그래, 만져라’라고 하겠어요?” nbspnbspnbsp“그런데 그건 부도덕한 질문이었고, 저는 부도덕한 것은 아니잖아요.”nbspnbsp“맞아요. 질문자가 외제차를 살 형편이 되면 사세요. 형편이 안 되니까 못 사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고 싶긴 한데 못 사니까 질문자 자신도 모르게 점점 부도덕한 짓이나 불법행위를 해서라도 사는 쪽으로 가게 돼요. 그래서 제가 사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살 형편이 안 되는데 계속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외제차를 살 수만 있다면 누군가가 부도덕한 행위나 불법적인 행위를 요구해도 질문자가 그것을 감수하게 됩니다. 지금이야 누군가 부도덕한 행위나 불법적 행위를 요구해도 안 하겠지만, 어머니가 편찮으시거나 수술을 해야 하는 것처럼 돈이 간절히 필요한 상황이 되면 응하게 됩니다.nbspnbsp요즘 보이스피싱 많지요? 은행에 가서 한번만 돈을 찾아오면 몇 십만원을 주겠다는 사기꾼의 전화에 응하는 사람들은 형편이 풍족한 사람들이 아니라 궁한 사람들이에요. 그게 부도덕하거나 범법행위라는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겁니다. ‘통장 줄 테니까 은행에 가서 돈만 찾아오면 된다. 한 번만 다녀오면 30만 원 주겠다’라고 하니까 ‘그게 뭐가 문제겠어?’라고 생각해서 요구에 응하다가 돈도 못 받고 체포되어 후회를 하게 되잖아요. 나중에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알게 되지요.nbspnbspnbsp며칠 전 TV를 보니까 노인 두 명이 사기를 치는 내용이 나와요. 술 마신 사람에게 일부러 부딪혀 넘어져놓고 다리가 부러졌다며 치료비를 내놓으라고 하거나, 젊은 사람을 약 올려서 욕을 유도해 놓고 옆에서 그 욕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노인한테 막말하는 젊은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리는 식으로 협박해서 300만 원씩 뜯더라고요.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봤더니 할머니가 궁하니까 할아버지를 도와서 그렇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다 궁해서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nbspnbsp질문자처럼 형편이 안 되는데도 너무 욕심에 집중하면 그렇게 끌려가기 쉬워요. 지금은 당연히 ‘내가 왜 그런 짓을 해?’라고 생각하겠지만 눈에 뭐가 씌면 아무 것도 안 보여요. 은행 직원이 5억 원을 빼돌려서 썼다거나 경찰이 사기꾼 뒤를 봐주고 몇 억 원을 받았다는 사건 기억나지요?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생각에는 굉장히 나쁜 사람들 같지만 저는 그런 사람들을 면회하고 상담하잖아요. 집에 환자가 생겼거나, 주식에 실패해서 집을 날렸거나, 알고 보면 다 그런 유혹에 빠질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nbspnbsp질문자가 외제차를 사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건 좋아요. 그러나 그 욕심이 어느 순간에 쥐약처럼 되어서 질문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그러니 욕심을 버리세요. 욕심을 버리라는 건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을 전혀 내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대통령 되고 싶다’, ‘내가 외제차를 사고 싶다’ 이런 건 욕심이 아니에요.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서 노력을 안 하고, 외제차를 사고 싶다면서 노력을 안 하는 걸 욕심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외제차를 사고 싶다.’nbsp‘사라.’nbsp‘그런데 살 형편이 안 된다.’nbsp‘그럼 사지 마라.’nbspnbsp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거기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이런 덫에 걸려들 위험이 있다는 걸 자각하라는 겁니다.”nbsp“그럼 욕심을 가져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nbsp“욕심은 가지면 안 됩니다. 질문자가 ‘뭘 하겠다’ 하는 건 욕심이 아니에요. ‘외제차를 사고 싶다’ 이것도 욕심이 아닙니다. 그런데 ‘외제차를 살 형편이 안 되는데 사겠다’라고 하면 그건 욕심입니다.”nbspnbsp“그럼 살 형편을 만들면 되나요?”nbsp“그렇지요. 혹시 부모님이 재산이 좀 있나요?”nbsp“예.”nbspnbsp“그럼 부모님께 잘 하세요. 아침에 밥상도 차려드리고, 저녁에 안마도 해 드리고, 예쁘게 아양도 떨면서 ‘어머니, 아버지, 외제차 사주세요’ 하세요. 그게 밖에 나가 돈 버는 것보다 훨씬 돈 벌기가 수월할 겁니다. 돈 있는 남자를 만나든지, 직접 돈을 벌어서 사든지,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다만 돈 있는 남자를 만나더라도 부인 있는 남자는 안 돼요. 그건 부도덕한 일이기 때문에 비난을 받아요. 욕심이 많으면 그런 덫에 걸릴 확률이 높아요. 당시에는 본인이 굉장히 잘한 것 같지만 나중에 보면 큰 위험을 자초하는 법이에요. 그래서 스님이 ‘욕심은 내려놔라’라고 말하는 겁니다.”nbspnbsp조금 당돌하게 질문을 던졌던 이 여학생은 곧이어 또다른 질문을 당돌하게 던졌습니다. 오늘 강연을 들은 소감을 말하면서 왜 이 강연을 희망 강연이라고 부르는지 물었습니다. 답변을 주욱 들어보니 스님이 청년들의 희망을 오히려 꺾은 것 같다는 것이였습니다.nbspnbsp청중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지만 스님은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청중들의 전체 평가를 확인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 후 차분하게 설명을 덧붙여 주었습니다.nbspnbspnbsp“강연을 처음부터 들었는데, 제 생각에 스님은 고민이 있는 청년들에 대해서 희망을 주는 게 아니라 희망을 꺾는 것 같습니다. 계속 ‘하지 말라’고 하시니까요. 어떤 점에서 스님의 강연이 ‘희망강연’이라고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nbspnbsp“질문자는 그렇게 생각했군요. 스님은 질문한 각각의 질문자에게 희망을 주는 게 목적이겠어요? 지금 질문하고 있는 질문자한테 희망을 주는 게 목적이겠어요?”nbspnbsp“질문한 사람한테 희망을 주는 게 목적이겠지만 또한 듣는 사람들한테도 희망을 줘야 되는 거 아닌가요?”nbspnbsp“질문자한테 물어봤을 때 ‘나한테는 도움이 됐다’ 그러면 된 거 아닐까요?”nbsp“예. 그런데 이 강연의 방청객 중에도 질문자들의 처지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이 있다면 스님의 답에 영향을 받을 텐데, 저는 그게 좀 걱정이 됩니다.”nbspnbsp“좋은 아이디어네요. 저는 지금 질문자의 질문이 굉장히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 강연을 평가를 해봐야겠어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스님이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약간 거짓말을 섞더라도 격려를 해 주는 게 낫겠다. 그게 오히려 희망이 되겠다’라고 평가한다면 저도 앞으로는 강연하는 태도를 바꾸겠습니다. 질문자는 뒤로 돌아 방청객들을 향해 서보세요. 자, ‘오늘 스님이 즉문즉설을 통해 젊은이의 기를 팍 꺾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nbsp“저기 젊은이 2명이 손을 들었는데요.”nbspnbsp“자, 그럼 ‘스님이 젊은이의 기를 꺾은 것도 아니고, 기를 살린 것도 아니고, 사실대로 말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 nbspnbspnbsp손을 내리세요. 보세요. 그러니 그 질문은 당신의 생각인 것 같아요. nbspnbsp100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꿈을 갖고 있다가도 부모님이나 은사님에게 찾아가 조언을 구할 때 ‘현실적으로 보고 꿈을 좀 포기하라’는 말을 듣는 사례가 많아서 이런 의문이 들지 않을까 싶은데요. 스님은 ‘부모의 말을 들어라’라는 말을 안 하잖아요. ‘부모의 희생 위에 살지 말라’고 하지요.nbspnbspnbsp다시 말해 자기가 뭘 하고 싶다고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 내 이익을 위해서 남에게 손해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아까 ‘자립해서 살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스님은 ‘그래, 네 맘대로 하라’고 했잖아요. 자립해서 살기 위해서는 부도덕하거나 범법 행위만 아니라면 무엇을 해도 좋고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어요. 그런데 부모의 지원을 받으면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은 범법 행위에 버금갈 만큼 아주 나쁜 행위입니다. 그건 빚지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nbsp“예,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nbsp당돌했던 여학생은 그제서야 수긍을 하며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도 명쾌한 답변에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은 참 다이나믹했던 것 같습니다. 청년들이여서 그런지 마음껏 질문하는 분위기였고, 스님도 편안하게 이야기해 주어서 아주 솔직한 대화가 오갔고, 그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nbspnbsp강연이 끝나고 곧장 책 사인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은 청년들과 함께 눈인사를 하며 차분하게 사인회를 마쳤습니다.nbspnbspnbsp강연이 끝난 뒤 무기력증에 대해서 질문했던 참가자에게 다가가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난 소감이 어떤지 물어보았습니다. “참 현실적인 답변을 해주신 것 같고, 무기력은 배부른 상황에서나 할 수 있는 생각인 것 같다. 내년에 스님이 강연을 오시면 꼭 다시 참여하고 싶다”며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사인회를 마친 스님은 희망강연을 준비한 청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한 명 한 명 손을 잡고 악수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자원봉사를 했던 진주교대 학생은 “스님의 손이 아기 손처럼 부드러워 놀랐다”며 무척이나 설레어 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오늘은 2015년 마지막 즉문즉설 강연이었습니다. 진주청년정토회 봉사자들은 둥그렇게 서서 스님을 모시고 조촐하게 축하 이벤트를 했습니다.nbspnbspnbsp먼저 청년들이 준비한 작은 선물 전달식이 있었습니다. 선물을 받고 곧바로 포장지를 뜯어 보았는데, 작은 주머니 속에는 겨울을 따뜻하게 나게 해 줄 회색 장갑, 손목 토시, 양말이 가지런하게 담겨 있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선물이네” 하면서 감사히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15년 한해 동안 100여 회의 즉문즉설 강연을 하느라 수고한 스님에게 한반도가 그려진 편지지에 통일의 염원과 감사의 메시지를 적어 건넸습니다.nbspnbspnbsp특히 편지 내용 중에는 평양이 위치한 곳에 점을 콕 찍고 “스님, 통일 되어 요기 평양에서 강연 들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라고 적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nbspnbspnbsp이 외에도 “올 한해 강연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스님, 저 인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인생에 희망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통일을 향해 계속해서 노력해 나가는 진주 통일 아가씨가 되겠습니다” 등의 메시지가 청년들의 강연 준비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nbspnbsp작은 선물에도 좋아해 주는 스님을 보면서 다함께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 nbsp nbsp nbsp nbsp nbspnbspnbsp청년들에게 “수고했다”고 격려를 한 후 진주교대를 나온 스님은 곧바로 울산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밤 12시가 다 되어 도착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이렇게 2015년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이 모두 끝났습니다. 무엇보다 전국을 누비며 잠도 거의 차 안에서 주무시며 강행군을 하며 많은 대중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설해준 스님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스님은 오늘도 강연을 마치고 나서 몸이 좀 안좋으신지 차 안에서 단잠을 주무셨습니다.nbspnbspnbsp내일은 오랜만에 강연이 없는 날입니다. 스님도 내일 하루 만큼은 아무런 약속을 잡지 않으시고 휴식을 취할 예정입니다. 물론 휴일에도 이것저것 소일거리를 만들어 하시는 스님의 일상은 그대로일 테지만. 운전하고, 촬영하고, 글을 쓰고, 식사를 챙기는 수행팀도 내일은 하루 휴식을 취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스님의 하루’도 내일 하루만 잠시 쉬어 가겠습니다. 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10. 137,125 읽음 댓글 133개

2015.12.8 (오후) 영남대병원 초청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후 3시 30분에 영남대병원 초청 강연에서 의사와 환자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에는 진주교대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영남대병원 초청 강연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어제밤 관악구청에서 올해 마지막 통일 강연을 마친 스님은 서울 정토회관에서 하룻밤 주무신 후 새벽 4시에 법당에 내려와 새벽 예불과 108배 정진을 마친 후 4시 30분에 서울을 출발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새벽녘 고속도로 위에는 그믐달이 선명하게 떠서 탄성을 자아내었습니다. 미소짓는 표정의 그믐달의 향기를 은은하게 받으면서 부지런히 고속도로 위를 달려서 아침 8시 30분에 울산 두북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새벽녘 고속도로 위에 보이는 그뭄달nbsp스님은 아침 식사를 하고 9시부터 곧바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담벼락 주위에 있는 나무들을 겨울이 오기 전에 정비하는 일을 했습니다.nbspnbsp엄나무 하나가 썩어가고 있었는데 전기톱으로 잘라내는 일을 했습니다. 혹시나 잘라진 가지가 지붕 기와를 쳐서 떨어뜨릴까봐 나무에 밧줄을 묶어 안전 장치를 하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윗가지부터 하나씩 잘라서 가볍게 한 후 마지막으로 밑둥을 잘랐습니다.nbspnbspnbsp베어낸 나무는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다시 더 잘게 잘랐습니다. 또 잘라진 나무토막은 장작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끼질을 해서 더 가늘게 쪼개었습니다.nbspnbspnbsp옹이가 있는 나무는 너무 단단해서 도끼질을 여러 번 해도 쪼개지지 가 않아서 애를 먹었습니다. 스님은 “으라찻” 하고 힘을 모아서 갈라진 틈을 여러번 반복해서 찍었고, 마침내 반으로 갈라지자 “아이고, 힘들다” 하며 땀을 닦았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오전 내내 장작을 팬 후 갈라진 장작들은 한켠에 가지런히 쌓아두었습니다. 오늘 스님은 전기톱도 사용하고, 도끼질을 하느라 힘을 많이 썼는데 “그러시다가 앓아 누우시면 어쩌시려고요?” 라고 물으니 “아니야, 옛날에 늘 하던 일인데 뭐.” 하며 웃으셨습니다. 스님은 아직도 혈기왕성한 청춘인 것 같았습니다.nbspnbsp▲ 겨울에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지런히 쌓아둔 장작nbsp마당에 소나무도 잔가지가 많아져서 가지를 쳐주었고, 대문 앞에 감나무도 잔가지가 많아서 가지를 쳐주었습니다. 톱질을 할 때도 스님은 다람쥐처럼 나무 위에 성큼 올라갔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나무에서 자른 잔가지들과 톱질을 하고 남은 토막들은 모두 한데 쓸어모아 아궁에 넣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곳곳을 가지런하게 정비를 하다가 강연을 위해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 다 되어 일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울산 두북을 출발해 오후 3시에 영남대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병원 입구에 도착하니 스님을 초청한 영남대 의과대학 김성규 교수님이 나와 반갑게 환영해주었습니다.nbspnbsp▲ 영남대병원nbsp김교수님과 함께 의료원장실로 이동해 잠시 의료원장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최병연 의료원장님은 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고 초청 강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고, 스님도 감사한 마음을 표하며 새책 ‘야단법석’을 사인해서 선물했습니다.nbspnbsp▲ 최병연 의료원장님과 김성규 교수님nbspnbsp의료원장님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강연이 열리는 본관 1층 이산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대강당에는 100여 명의 환자들과 의사들이 자리해 있었는데, 스님이 얼굴을 비치자 모두들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먼저 의료원장님이 나와 스님을 간단히 소개해 주었습니다. 오늘 강연 주제는 ‘환자와 의료인에게 편안을’ 이라고 소개해 주면서, 환자들도 심적 어려움이 많고, 의사들도 여러 가지 고민이 많은데 오늘 스님을 모시고 뜻깊은 시간을 갖게 되어 무척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며 스님을 무대로 모셨습니다.nbspnbsp스님은 먼저 오늘은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 함께 모였다고 하면서 눈치 보지 말고 서슴없이 편안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살다 보면 다칠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고, 내가 간호할 수도 있고, 간호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 함께 모였습니다. 서로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어요. 환자가 와야 의사 선생님들도 먹고 살 수 있고, 의사 선생님이 계셔야 환자가 병을 치료할 수 있잖아요. 이렇게 서로 돕는 상생, 공생 관계인데 또 어떤 때는 서로 상대방 때문에 힘들어하는 일도 있는 것 같아요.nbspnbsp오늘은 여러분들의 속마음을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여기 의료원장님도 계시고 의사 선생님도 계시지만, 즉문즉설이란 그런 데에 구애받지 않아요. 상대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내가 괴롭다는 문제니까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어보겠습니다.”nbsp그리고 스님은 병원 측에서 초청 강연에 대한 요청이 여러번 있었지만 강연 일정이 이미 다 잡혀 있어 약속을 하지 못했는데, 마침 오후 시간 밖에 시간이 나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이렇게 일정이 잡히게 되었다며, 낮시간이라 근무 중인 의사와 간호사들은 많이 참석하지 못한 점에 대해 양해를 구했습니다. nbs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중석에는 많은 환자들과 의사, 간호사가 함께 자리했습니다. 어떤 환자 한 분은 닝겔을 꽂은채 휠체어를 타고 강연장을 찾기도 했습니다. 다소 아픈 표정의 환자들도 많이 보였지만 모두들 스님의 말씀에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했습니다. 환자들은 환자복을 입고, 간호사들은 간호사 복장을 입고, 의사 선생님들은 흰 가운을 입고 자리했습니다. 그야말로 의사, 간호사, 환자가 함께한 야단법석인 셈입니다.nbspnbspnbsp이어서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흰색 의사 가운을 입고 앞자리에 앉은 교수님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업무보다 인간관계가 더 힘들다며 소통을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직장인 모두가 힘들어하는 것이 업무가 아닌 인간관계, 소통의 문제라고들 합니다. 저도 업무보다는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어서 고민도 많이 해봤지만 쉽게 풀어지지가 않습니다. 이런 인간관계와 소통을 어떻게 하면 잘 풀어지게 할 수 있는지 질문 드립니다.”nbsp“교수님이라 그런지 너무 막연한 질문을 하십니다. 인간관계라는 게 구체적으로는 스승과의 관계일 수도 있고, 제자와의 관계일 수도 있고, 동료와의 관계일 수도 있고, 부모와의 관계일 수도 있고, 부부 간의 관계일 수도 있고, 자식과의 관계일 수도 있고, 상사와의 관계일 수도 있고, 부하와의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nbspnbspnbsp‘인간관계가 어떻다’라고 한 마디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관계에서 생겨나는 문제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예컨대 배우자가 용건만 말하는 걸 좋아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귀찮아한다면 딱 용건만 이야기해주면 됩니다. 간섭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내버려두면 되고요. 반대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별로 할 말이 없어도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되는 거예요.nbspnbsp질문에 굳이 답을 한다면 상대에게 맞추면 됩니다. 사람마다 각각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에 따라 하면 돼요. 그런데 내가 맞추기가 좀 어렵죠. 사람은 다 자기를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고집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성향, 자기 성질, 자기 취향을 자꾸 주장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맞추기가 어려운 거예요.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상대에게 내가 잘 맞춰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맞추려면 상대를 알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다 자기 식대로만 생각하니까 상대에 대해서 잘 모르죠.nbspnbsp사랑하는 부부도 같이 살면 갈등이 생기거든요. 상대가 어떤 성질인지, 뭘 원하는지를 살펴서 거기에 맞춰주면 특별히 문제가 없어요. 처음부터 잘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살아보면서 맞추는 것이지요.nbspnbspnbsp같이 길을 갈 때 내가 조금 빨리 가면 상대가 ‘뭘 그리 급하다고 빨리 가느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속도를 늦추면 ‘그렇게 천천히 가면 언제 가느냐?’ 또 이렇게 아이기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사람, 성질이 뭐 이래? 조금 빨리 가면 빨리 간다고 그러고, 느리게 가면 느리게 간다고 그러고, 나한테 어떻게 하라는 거냐?’ 이러기가 쉽습니다. 조금 느리게 간다고 하면 조금 빨리 가면 되고, 조금 빨리 간다고 하면 조금 느리게 가면 되고, 또 느리다고 하면 조금 빨리 가면 되고, 빨리 간다고 하면 조금 느리게 가면 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적절하게 맞아집니다. 그렇게 적절히 맞아지는 것을 불교용어로 중도라고 해요.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상태입니다.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처럼 딱 정확하게 맞는 거예요. 현실 속에서는 아주 정확하게는 안 되지만, 약간 넘쳤다가 모자랐다가를 반복하며 몇 번 조율하다 보면 비교적 과녁에 맞게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렇게 잘 안 맞추지요?”nbsp“예, 그러기가 상당히 힘듭니다.”nbspnbsp“그게 왜 힘들어요? ‘조금 느리게 간다’ 그러면 조금 빨리 가면 되고, ‘조금 빨리 간다’ 그러면 조금 느리게 가면 되는데요. 질문자는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냐?’라는 마음이니까 안 맞아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구하고 안 맞는지, 뭐가 안 맞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봐요.”nbspnbspnbsp“조직사회에서 제일 안 맞는다고 느끼는 게 대화의 단절입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방은 나의 이야기를 전혀 수용하지도 않고 표현도 하지 않는 그런 대화의 단절이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nbspnbsp“사람 중에는 자기의 속을 드러내놓고 대화하는 사람도 있고, ‘내 이야기를 해 봤자 세상 사람 누구도 나에게 도움이 안 되더라’ 해서 용건만 이야기하고 마음의 문을 안 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네가 마음의 문을 안 연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내’가 마음의 문을 안 열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안 여는 사람은 안 여는 대로, 여는 사람은 여는 대로, 그냥 거기에 맞추면 됩니다.nbspnbspnbsp예를 들어 ‘강연은 어떻게 해주실 거예요?’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 강연하는 사람이 복잡해지지요. 그런데 저는 강연하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묻는 대로 이야기하면 되니까요. 보통 강연을 하는 사람들은 준비를 하잖습니까. 저는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뭘 물을지 모르니까 미리 준비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둘째, 모르면 모른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즉문즉설을 하면서 해본 가장 짧은 답은 ‘모른다’입니다. nbspnbspnbsp모를 때 모른다는 말을 안 하려고 하니까 긴장이 되고 노력이 많이 드는 거예요. 모르면 그냥 ‘제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하고, 다음에 설명해 줘도 되는 사람이면 ‘제가 다른 데 가서 물어보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면 됩니다. 틀리면 ‘틀렸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고치겠습니다’ 라고 하면 됩니다. 이렇게 상대의 필요에 따라서 응하면 됩니다.nbspnbsp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하면 이런 겁니다. 인천 사람이 서울 가는 길을 물으면 동쪽으로 가라고 말해줘야 합니다. 그러나 강릉 사람이 서울 가는 길을 묻는데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 그 사람은 바다에 빠져 죽습니다. 강릉 사람에게는 서쪽으로 가라고 해야죠. 이렇게 인연에 따라서 대응해야 합니다.nbspnbsp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정해진 원칙은 없고, 인연에 따라서 대응하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한다며 ‘1원칙, 2원칙, 3원칙, 4원칙’을 정하려 들기 때문에 오히려 대화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 보고 ‘어른한테 인사 안 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사는 먼저 본 사람이 하는 겁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인사를 하면 아이가 그 모습을 보고 인사하는 법을 배우지요. 그런데 우리는 자기는 안 하면서 아이한테 ‘임마, 왜 어른을 보고도 인사를 안 해?’라고 야단치잖아요. 그렇게 억지로 하는 인사는 생활화가 안 돼요. 아이한테 먼저 인사하라고 말할 필요가 없고, 누구든지 먼저 보는 사람이 인사하면 됩니다. 내가 인사를 했는데 상대가 인사를 안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인사라는 것은 받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내가 반가우면 ‘반갑습니다’하면 됩니다. 상대가 말하기 싫으면 그냥 지나갈 것이고, 받을 사람은 받을 거예요.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라며 계산적으로 생각하니까 자꾸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nbspnbspnbsp그러니 질문자도 그냥 자기 편할 대로 하면 됩니다. ‘안녕?’ 이러고 그냥 들어가면 되고, 학생이 물으면 대답해 주면 되고, 말 안 하면 놔두면 돼요. 그걸 내가 문제 삼지 말아야 합니다. ‘너는 소통이 안 된다’, ‘너는 말이 없다’, ‘너는 왜 인사를 안 하니?’, ‘너는 왜 말을 안 듣니?’ 자꾸 이렇게 하니까 오히려 인간관계가 복잡해지는 것이지요. 그냥 학생들이 알아서 살도록 내버려 두고, 꼭 필요한 것만 이야기하고, 학생들이 질문자의 업무 중에 와서 묻더라도 시간이 있으면 이야기해 주고, 시간이 없으면 ‘지금은 업무시간이니까 이따 휴식시간에 보자’라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질문자의 질문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인연에 따라서 대응을 하시면 좋겠습니다.”nbsp“예, 제 마음과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고맙습니다.”nbspnbsp교수님은 환한 표정을 지으며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함께 강연을 들은 의사, 간호사, 환자들 모두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인간 관계의 갈등은 모두 비슷하기 때문일 겁니다.nbspnbspnbsp이어서 교수님이 한가지 질문을 더 했고, 환자 가족분의 질문도 추가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3명의 질문에 모두 답하고 나니 벌서 1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nbspnbsp스님은 세 번째 질문자가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힘이 든다고 질문한 것에 대해 답해 주면서 마지막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즉문즉설 시간 동안에는 제가 최선을 다해서 시간을 할애해 답하지만 딱 그 시간 끝나고 밖에 나갔을 때 누군가 제 소맷자락을 붙잡고 ‘한 가지 더 물어보겠습니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하고 쌩하니 찬바람을 일으키며 가버립니다. 나도 살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nbspnbsp이처럼 남이 하는 이야기에 너무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습니다. 귀담을 이야기인지 살펴봐서 들을 만한 이야기라면 내가 바꾸면 되고, 그냥 그 사람의 기분을 이야기하는 것이면 흘려야지요. 누군가가 ‘스님, 훌륭하십니다’, ‘스님 좋아요’ 라고 하는 건 그냥 그들의 생각이나 기분이 그렇다는 뜻일 뿐, 저와는 아무 관계없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진짜 자기가 잘난 줄 착각하면 연예인이나 인기 탤런트처럼 정신질환이 생겨요. 영화를 한 편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사람을 보고 기분 안 좋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 것은 그들의 기분이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이야기이다’라고 해야 칭찬에 들뜨지 않고 비난에 괴로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들이 그렇다는데 내가 어떻게 할 거예요? ‘아, 상대는 그렇게 느끼나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됩니다.”nbspnbsp“예, 고맙습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니까 제가 너무 그런 데에 신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nbspnbspnbsp“왜 신경을 썼을까요? 잘 보이려고 신경을 썼던 겁니다. 뭐 잘났다고 잘 보이려고 그럽니까? 생긴 대로 살면 되지요.”nbspnbsp“예, 고맙습니다.”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질문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습니다. 닝겔을 꽂고 있던 환자 분도 마침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nbspnbspnbsp스님이 “더 질문하실 분이 있어요?” 라고 여러 차례 물었지만 더 이상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스님은 방금 마지막 질문자에게 대답해준 대로 더 이상 질문이 없자 곧바로 강연을 마쳤습니다.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강연이 끝나서 당황해하는 분도 몇몇 보였지만 스님은 다음 일정이 바빠 웃으면서 양해를 구하고 강연장을 나왔습니다.nbspnbsp▲ 스님을 초청해준 김성규 교수님과 최병연 의료원장님nbsp그리고 스님은 강연을 주관한 김성규 교수님에게 “근무 시간인 오후 밖에 시간이 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이렇게 되었는데, 내년에는 저녁 시간에 꼭 시간을 내어주겠다”고 하면서 다음 초청강연 일정을 의논한 후 오후 5시에 병원을 출발했습니다.nbspnbspnbsp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저녁 7시에 진주에서 예정되어 있는데, 시내에서 교통 체증을 감안하면 대구에서 진주까지 부지런히 달려야 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강연이 일찍 끝나는 바람에 다행히 무사히 제 시간에 진주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진주교대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 소식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09. 72,261 읽음 댓글 54개

2015.12.7 서울 관악구 통일의병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관악구청 8층 강당에서 서울 시민들을 위해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전국 순회 강연을 시작한지 20번째를 맞이한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통일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면서 아침 일정을 보냈습니다. 두북 정토수련원에 잠시 들러 선물용 김장 김치를 추가로 발송할 것을 마지막으로 점검한 후 시골 형님이 농사를 지어 보시한 쌀 여러 포대를 가정 형편이 어려운 봉사자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차에 실었습니다.nbspnbsp▲ 어제 추가로 포장한 선물용 김장 김치nbsp▲ 가정 형편이 어려움에도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선물할 쌀포대nbsp그리고 그동안 선물용 김장 김치를 담그기 위해 수고가 많았던 화광 법사님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울산 두북을 출발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후 치과에 들러 치료를 받은 후 오늘 강연이 있는 관악구청으로 갔습니다.nbspnbsp▲ 관악구청nbsp저녁 6시 30분에 관악구청에 도착한 스님은 접견실에서 머물며 유종필 관악구청장님을 비롯해 통일의병 대표를 맡고 있는 김홍신 작가님과 환담을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유 구청장님에게 강연 장소를 마련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새책 ‘야단법석’을 선물했고, 유 구청장님도 스님에게 책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 유종필 관악구청장님nbsp한편 일찌감치 관악구청 8층 강당에 모인 통일의병들은 서울시민들을 맞이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특히 오늘은 올해 마지막 강연이라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기념 촬영을 잊지 않았습니다.nbsp82328232▲ 추운 날씨에 서울대입구역에서 안내 푯말을 들고 있는 통일의병nbsp강연장 입구에서 60대 남성 분은 열심히 질문을 적고 있었습니다.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스님께 꼭 nbsp여쭙고 싶다고 합니다. 사촌 3명이 함께 온 분들도 있었습니다. 각자의 종교는 천주교, 기독교, 불교라며 웃음을 내비칩니다. 그 중에 한 분은 천주교도인데 스님의 팬이라고 하면서 매일 아침을 카카오스토리에 올라오는 ‘스님의 하루’로 시작한다고 기분 좋게 말했습니다.nbspnbspnbsp네 대의 nbsp엘리베이터가 바삐 오르내리며 시민들을 nbsp8층으로 실어나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350개의 좌석이 다 채워졌습니다. 7시가 되자 만석을 넘어 입추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강연장 문을 열어주면 밖에 서서라도 듣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nbsp없어서 8232죄송한 마음으로 양해를 구하고 되돌아가시도록 안내를 해야 했습니다.nbsp82328232nbsp오늘은 올해 마지막 강연이라 통일의병 대표를 맡고 있는 김홍신 작가님이 특별히 참석해 환영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작가님은 오늘 강연을 듣고 모두 대한민국을 밝히는 찬란한 꽃이 되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대표 김홍신 작가님nbsp“옛날에는 귀신이 정말 많았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귀신이 없어졌어요. 그 많던 귀신이 어디로 갔죠? 바로 전기불 때문입니다. 거리가 밝아지고 세상이 밝아지니 귀신이 사라져 버렸어요. 지금도 아프리카나 동남아처럼 척박하고 가난한 지역은 아직도 귀신이 무지하게 많아요. 대한민국은 살기 좋아져서 많이 밝아졌는데 아직도 전기불이 비춰지지 않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바로 우리의 북녘 형제들입니다. 이제는 평화적인 통일이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통일이 되면 우리나라가 지구 상에서 가장 사람이 살만한 땅이 될 것입니다. 그 때를 우리는 대비해야 합니다. ‘광명’ 이라고 할 때 ‘명’은 자기를 밝히는 것이고 ‘광’은 남을 밝히는 것입니다. 광명을 밝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nbsp강연이 끝나고 며칠 후에 통일시민학교가 열리는데 이것을 수강하면 통일의병 군번이 나옵니다. 나중에 통일이 되면 ‘당신은 통일을 위해 무엇을 했냐?’ 고 반드시 물을텐데 그 때 ‘나는 통일의병 군번 몇 번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nbspnbsp그런데 저는 통일의병 대표인데 아직 군번이 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군번이 1000번으로 예약해 두었는데, 아직 통일의병이 1000명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모두 통일의병이 되셔서 저를 빨리 통일의병 군번을 받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스님 말씀을 새겨 들어서 모두들 대한민국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찬란한 꽃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nbsp청중들은 작가님의 간곡한 호소에 화답하며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강연이 시작되고 nbsp밝은 얼굴로 스님이 무대로 걸어 나왔습니다. 강연 후 통일의병들과 쫑파티가 예정되어 있어서 강연을 일찍 마치기 위해 강연 취지에 대해서만 잠깐 소개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은 ‘통일의병’이 주관한 강연입니다. 그래서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라고 저를 데려온 거예요. 항상 저만 보면 아이나 배우자와 관계된 개인의 인생 고민을 묻고 싶어 하시지만 오늘은 좀 참아주세요. 그런 이야기로 시간이 다 가버리면 주관한 단체에서 다시는 저를 안 불러줄 겁니다. ‘스님이 오시면 사람은 많이 오는데 도무지 우리가 목적하는 통일 이야기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통일 이야기로 질문을 받겠습니다.”nbsp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통일 강연이었지만 그래도 개인 고민을 묻는 분이 한 분이 있었습니다. 첫번째 질문자였는데요. nbsp화를 잘 내고 못된 오기가 있어서 8232상대가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8232해도 마음에 안들면 그 이야기를 틀렸다고 하는 습관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개인 고민을 묻는 사람은 통일시민학교를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해서 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nbsp두 번째 질문자부터 네 번째 질문자까지는 통일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통일이 되면 좋을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오는지 막연하다며 통일이 되면 우리에게 어떤 이익과 변화가 오는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미국 중국 등 주변국은 현상 유지가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되기 때문에 통일을 원하지 않는 것 같은데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주변국과 어떻게 관계를 풀어야 하는지 물었고, 네 번째 질문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이야기하고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어서 통일을 적극 추진할 것을 기대했지만 남북관계에 변화가 별로 없다며 현 정부에 어떤 입장과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질문자의 대답과 nbsp스님의 말씀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착착 맞아 nbsp들어 가고 순간순간 터져나오는 시민들의 웃음 소리는 강연장을 더욱 훈훈하게 해주었습니다. 강연장 여기 저기에는 필기를 열심히 하시는 분, 연신 고개를 끄덕이시는 분 등 스님 말씀을 잠시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시는 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통일은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지 물었던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올해 마지막 통일 강연이니 만큼 스님은 그동안 진행된 강연을 총정리하면서 가슴 뛰는 통일 비전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너무나 명쾌하게 종합적으로 설명을 해주었기에 듣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nbspnbspnbsp“통일이 되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한데 그 변화가 좀 막연하고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통일이 되면 우리에게 어떤 이익과 변화가 오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nbsp“통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생각은 않고 통일된 뒤의 떡고물부터 탐내시네요.” nbspnbsp“질은 일단 놔두고 양적으로 우선 설명해 보면 경제와 정치, 안보 모든 측면의 돌파구가 됩니다. 현재의 대한민국, 즉 남한만 보면 인구가 5천만이고 국토가 9.8만 제곱킬로미터입니다. 1인당 GDP는 약 3만 달러 가까이 되고, 총 GDP는 세계 13위 정도예요. 노무현 대통령 때 11위로 가장 순위가 높았습니다.nbspnbsp그런데 이명박 후보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 ‘경제를 모르는 사람이 연이어 대통령이 되어서 우리나라 경제를 망쳤다’라고 주장하면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기를 가리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 말을 한 근거가 있긴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18년 동안에 평균 GDP 성장, 즉 경제성장률이 11퍼센트였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때 정치는 문제가 많았지만 경제만큼은 비약적으로 성장해서 7년 동안 연 평균 10퍼센트씩 성장했어요. 노태우 대통령 5년 동안에는 9퍼센트, 김영삼 대통령 5년 동안에는 7퍼센트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 5년 동안에는 5퍼센트, 노무현 대통령 5년 동안에는 4퍼센트 성장했어요. 그러니 이명박 후보가 그렇게 말할 만 했어요. ‘그 전에는 아무리 못해도 7퍼센트 성장했는데 저 두 사람 때문에 우리나라가 10년을 잃어버렸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아무리 못 해도 7퍼센트 성장을 달성하겠다. 그러면 1인당 GDP 4만 달러 시대가 도래해서 세계 경제 11위에서 7위로 올라설 수 있다’고 큰소리 친 게 소위 747 정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BBK며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도 이명박 대통령을 밀어줬어요. 경제 성장의 향수 때문이었습니다.nbspnbsp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5년 동안에 3퍼센트 성장했습니다. 7퍼센트는 고사하고 전대 대통령들 만큼도 달성하지 못했어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2.8퍼센트예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3.8퍼센트 정도를 목표로 세웠지만, 임기 끝날 때까지 2.5퍼센트 정도 하면 잘 한 축에 들 겁니다.nbspnbspnbsp그러나 이것은 특정한 대통령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다음 선거에 어떤 대통령 후보든 ‘내가 당선되면 5퍼센트 성장시키겠다’라고 주장해도 믿으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이 소진됐기 때문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3퍼센트 이상은 더 끌어올리기 어려워요. 앞으로 20년 이상은 갈수록 성장이 둔화되어 평균 2퍼센트 성장도 어렵다고 이미 국제기구에서 예측하고 있습니다. 20년 전 일본이 걸었던 길인 장기불황에 우리도 들어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못 받아들이죠. 왜? 지난 50년 동안 분단된 상태로도 이렇게 성장해왔기 때문입니다. 분단된 상태로도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고, 정치 민주화를 이루었고, 국방력도 크게 증가시켰기 때문에 지금 조금 문제가 있긴 하지만 우리가 잘 하면 다시 경제도 성장하고, 정치 민주화도 더 나아가고, 안보도 튼튼해지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건 과거의 향수 때문에 착각하는 거예요.nbspnbsp현실을 보면 국내적으로 이미 성장 동력이 소진됐어요. 첫째 원인은 모방 시스템의 한계입니다. 미국이 100이라면 유럽이 93, 일본이 90, 우리가 한 83까지 따라왔어요. 그 차이가 클 때는 따라잡는 성장속도가 빠르지만 차이가 좁혀질수록 성장속도도 느려집니다.nbspnbspnbsp중국도 차이가 많이 날 때는 두 자리 수 성장하다가 차이가 줄어드니 7퍼센트 아래로 떨어졌잖아요. 조금 더 가면 5퍼센트 대로 떨어질 겁니다. 갈수록 둔화되고 정체되는 것이 우리만 겪는 현상이 아니라 정상이라는 겁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가다가 이미 20년 전에 저성장에 돌입한 거예요.nbspnbsp그래서 우리도 장기불황에 대비책을 세워야 합니다. 계속 잘 되리라고 아무리 믿어도 실제로는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인구 구성을 봐도 노령 인구가 많아지고 출산율은 떨어집니다. 국제산업구조를 봐도 뒤에서는 중국이 바짝 추격해오고 앞에는 일본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 모든 조건이 이제 더 이상 고성장은 어렵다는 겁니다. 국제적인 상황도 그렇습니다. 한때 수출이 매년 2, 30퍼센트씩 늘었지만 지금은 줄어들잖아요. 작년보다 올해는 더 많이 줄었습니다. 이게 지금 우리가 놓여 있는 상황입니다.nbspnbsp문제는 경제만이 아닙니다. 정치며 안보도 그래요. 그동안 우리는 분단된 속에서도 독재에서 민주화를 이루었고, 지방 자치도 이루었어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오고,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오면서 민주화가 느리더라도 조금씩 더 나아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간다는 인식들이 팽배합니다. 지금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이야기도 나와요. 지방 자치단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방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들 할 정도입니다. 국회도 지역주의에 뿌리를 둔 양당구조가 국민의 정치수요를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질적인 줄 세우기를 벗어나지 못합니다.nbspnbsp이런 게 꼭 대통령 개인이나 특정 정당의 문제라고만 하긴 어렵습니다. 분단된 상태에서의 민주주의는 여기서 더 이상 나아가기가 어렵게 되어 있어요. 안보도 국방력이 엄청나게 강해졌는데도 최근 56년 사이에 전쟁 직전까지 간 위기가 벌써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 전에 국방력이 그리 튼튼하지 않을 때도 전쟁 위험을 이렇게 걱정하지는 않았잖아요. 물리력은 엄청나게 강해졌는데도 실질적인 전쟁 위험은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nbspnbspnbsp앞서 말했듯 경제도 성장했는데 내적인 질은 안 좋고요. 겉으로는 살기 좋은 편인 것 같이 보이지만 국민 행복도는 세계 117위여서 카메룬, 말리 같은 나라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성 평등도는 115위이고 자살률과 저출산율은 세계 1위입니다. ‘헬조선’의 악명을 세계적으로 떨치는 항목이 60여 가지나 된다고 할 정도입니다. 외적인 규모는 커졌지만 내부 질은 굉장히 부실한 거예요. 그런데 그 양의 성장마저 이제는 거의 멈췄습니다.nbspnbsp전에는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였어요. 미국이 전 세계 부의 30퍼센트와 전 세계 국방예산의 50퍼센트 정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누구도 미국과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미국과 동맹을 맺고 가장 가까이에 있었기에 안보도 안심할 수 있었고, 과학기술도 바로 받아들일 수 있었고, 경제도 성장했고, 정치도 어느 정도 민주화가 된 거예요. 그런데 최근 들어 중국의 급격한 부상으로 G2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제는 일극이 아닌 양극 체제로 가게 됐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현재 안보는 미국에 의지해있고 경제는 중국에 의지해 있어요. 중국에의 수출량이 미국에의 수출량 두 배가 넘고, 우리의 흑자는 대부분 중국에서 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갈등을 하니까 어느 한 발을 떼야 하는데, 안보도 못 떼고 경제도 못 떼는 진퇴양난에 빠졌어요. 그래서 지금 미국이 한국더러 대중 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안보 면에서 계속 압력을 넣는 거예요. 한미일 군사동맹에 참여해라, 사드 배치하라는 게 그래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 들어가면 중국과는 갈등관계가 됩니다. 지금은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유지하고자 친중 외교를 하려고 하다 보니 또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고 불신을 제기해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어떻게 줄타기를 해왔지만, 이게 올해까지 갈지 내년까지 갈지 모릅니다.nbspnbsp이런 속에서는 우리의 안보도, 경제도, 정치도 더 이상 성장과 발전은 없다는 현실진단이 우선돼야 합니다. 그렇다고 일본처럼 그냥 정체국면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 일본과 달리, 우리의 정체국면은 곧 불안정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에게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거나 몰락하는 양 길밖에 없어요. 정체상태를 유지하는 것만도 어렵습니다.nbspnbsp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통일이라는 돌파구가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일단 인구가 7천3백만, 영토가 21만 제곱킬로미터로 늘어납니다. 여기에 정치적 갈등과 군사적 갈등이 사라지고 북한의 저렴한 양질의 노동력과 한국의 자본력과 기술이 결합한다면 우리는 다시 세계적인 생산기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때 세계적인 생산기지였다가 중국에 그것을 넘겨줬잖아요. 지금은 중국에서 인도로 이동해가고 있는데, 그만한 규모는 아니지만 다시 한국이 생산기지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북한개발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1020년 동안은 다시 57퍼센트 대의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철도, 도로와 항만, 비행장, 공장 등 인프라 건설만 하더라도 북한개발에는 엄청난 수요가 있습니다. 미국이 동부가 정체국면에 빠졌을 때 서부개척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듯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일본은 이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100년 전에는 위기 극복을 노리고 한국을 침략해서 실제로 위기를 극복했지만, 지금은 침략을 할 수 없으니까 길이 없어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정체국면을 당분간 해소할 새로운 길이 있습니다. 그게 통일이에요.nbspnbspnbsp통일은 남한에게만 좋은 게 아니에요. 북한도 생존의 위기에서 탈출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남북한이 통합경제, 즉 통일경제로 간다면 북한은 연 10퍼센트 이상 성장은 당연하고 연 100퍼센트 성장도 가능합니다. 국제통계학에서 이미 관련 예상 수치가 다 나와 있어요. 통일하고 20년만 지나면 통일한국의 인구, 규모, 영토, 경제력은 세계 7위권까지 올라간다고 보고들 있어요. 남북한과 동북 3성, 연해주, 일본까지 결합하는 환동해권 인구만도 3억 5천만 명 가까이 됩니다. 그 영토는 유럽과 맞먹습니다. 거기에 시베리아나 사할린의 가스가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바로 들어와요. 그러면 중동이 저렇게 불안해도 걱정 없이 값싼 에너지원을 들여와 이용할 수 있어요. 경제적으로 활력이 생기고, 청년들의 일자리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물론입니다.nbsp그러면 여러분들은 돈이 많이 들지 않냐고 우려하겠죠. 돈이 많이 드는 건 맞아요. 그런데 이 돈은 전부 투자비용입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 비용이 몇 년 전 계산으로 4조원이었으니 지금은 56조 정도 될 겁니다. 그런데 이 돈은 1020년 안에 회수할 수 있어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연결되면 한국에는 물류혁명이 일어납니다. 물류가 부산항에서 유럽까지 바로 연결되는 거예요. 이렇게 투자비용이기 때문에, 돈이 있으면 우리 돈으로 하고 없으면 외자 유치해서 하면 됩니다. 세계에 투자처를 찾는 자본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나머지도 다 그냥 허공에 뿌리는 돈이 아니라 투자비용이에요.nbspnbsp북한의 2천만 인구까지 먹여 살려야 한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먹여 살린다는 측면에서는 돈이 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양질의 값싼 노동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북한의 2천만 인구 자체가 엄청난 자산입니다. 그리고 북한에 묻혀 있는 희귀 금속과 각종 지하자원은 적게 잡으면 4조 달러, 많이 잡으면 8조 달러의 가치를 지닙니다. 매장량의 가치가 남한의 30배에 달해요. 그러니 하나하나 이야기할 것도 없이 완전히 새로운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nbsp그리고 통일이 되면 우리의 사고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지금은 무슨 이야기하다가도 ‘그런 이야기 하면 종북으로 몰린다’ 이럴 정도로 사고에 늘 어떤 벽이 있잖아요. 통일되면 그런 벽이 다 허물어져서,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어떤 사상이든 자유로이 토론하고 연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젊은이들의 사고의 창의성이 굉장히 발달합니다. 특히 미래에는 모방이 아니라 창조가 과제잖아요.nbspnbsp그리고 한국 브랜드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성장합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 들어봤죠? 한국은 지금은 잘 나갈지 몰라도 언제든 전쟁이 나서 국가기반 시설 몇 개만 폭격당해버리면 하루아침에 경제가 붕괴되는 위험을 안고 있어요. 이걸 ‘코리아 리스크’라고 해요. 우리의 실력이 100이라면 국제사회에서는 70밖에 평가를 안 해줍니다. 언제든 위험 부담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해서 값어치가 저평가 되어 있는데, 통일이 되면 코리아라는 상표가 제 값어치를 발휘하게 됩니다. 우리는 북한을 생각하지 않으니 잘 모르지만, 국제사회에서 ‘코리아’라고 하면 핵, 전쟁, 기아, 독재, 인권문제 같은 이미지가 지배적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삼성, 현대가 한국 기업인지 아는 사람들은 의외로 적습니다. 코리아 상표가 아닌 자기 상표로 자리 잡은 거예요.nbsp그런데 통일이 되어 코리아의 이미지가 좋아지면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코리아 상표에 힘입어 살아날 수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면도날은 독일제가 좋더라’ 하지 않고 ‘뭐든지 독일제면 좋더라’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듯, 한국도 그리 될 수 있어요. 대기업은 자기 상표를 갖고 국제 사회에서 경쟁력이 있지만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자기 상표를 가질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코리아 상표가 좋아져버리면 모든 중소기업이 다 살아납니다. 그냥 화장지 하나, 드라이버 하나도 한국제라고 하면 무조건 좋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돼요. 통일되기 전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nbspnbspnbsp이렇듯 통일 뒤에 얻어지는 부가가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여기에 더해 이산가족의 아픔 같은 우리들의 오래된 한을 풀 수도 있고, 진정한 역사 바로 세우기도 할 수 있습니다. 남북한이 적대적으로 경쟁하다 보니 북한도 역사가 왜곡돼 있고 남한도 역사가 왜곡돼 있어요. 지금 교과서 논란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엄청난 역사 왜곡이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부정해야 하다 보니 독립운동할 때 사회주의 계열에 섰거나 훗날 북한 정부 수립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 제외시켜버려서 독립운동사가 빈약합니다. 북한은 또 독재를 해야 하다 보니 중요한 독립운동은 김일성과 주변 인물들이 다 했다 하고 북한정부 수립에 참여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역사에서 죄다 제거해버렸어요. 이런 역사적 왜곡이 아주 심한데, 통일되면 이런 역사가 전부 복원될 수 있어요.nbspnbsp통일의 효과는 문학과 예술 면에도 미칠 겁니다. 제가 보기에 남북 평화 통일을 이루면 우리가 가장 빨리 받을 수 있는 노벨상이 평화상과 문학상입니다. 이 분단의 고통, 전쟁의 고통을 승화시켜서 낸 소설이 지금 노벨상을 받는다면 남쪽에서 나온 작품은 북쪽에서 반대할 테고 북쪽에서 나온 작품은 남쪽에서 반대할 겁니다. 받을 만한 사람들은 이미 대략 윤곽이 나와 있어요. 통일이 되면 그런 걸림돌이 없으니 바로 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할 겁니다.nbsp외교 면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지금은 미중이 각축하는 가운데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데 우선 목적이 있으니까 일본을 내세워요. 전후 패전국의 이미지를 다 지우고 재무장시켜서 미국의 대리인으로 내세우고, 거기에 한국도 붙으라고 압력을 가하는 거예요. 한일 간에 군사협력을 하라는 게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중국과 완전히 적대 관계에 놓여야 해요. 통일 한국은 어디로 갈지 모르니까 지금 미국은 남한만 떼 와서 미국의 대중 방어선에 붙이려 들어요. 중국은 지금 남한을 거기 못 들어가게 하려고 잡아당기고는 있지만 안 되겠다 싶으면 북한을 껴안을 겁니다. 그러면 북한은 중국의 아래에, 남한은 미국의 아래에 붙어서 미중의 싸움 속에서 다시 서로 갈등해야 합니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남북이 갈등하고 전쟁했던 것과 별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남북이 통일국가를 형성해서 어느 정도 규모가 생기면 한국이 중국 쪽으로 협력하느냐 미국 쪽으로 협력하느냐에 따라 동아시아의 질서, 판도가 달라져요. 그래서 우리만 중심을 잡으면 오히려 우리 덕분에 동아시아가 평화지대가 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통일한국에 중국과 일본, 미국까지 손을 잡아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형성하면 그 규모가 유럽이나 미국을 훨씬 능가합니다. 그러면 일부 학자들이 이야기하듯이 문명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갔다가 동아시아로 다시 옮겨올 가능성이 있어요. 그런데 동아시아가 지금처럼 민족적인 갈등을 하고 있으면 문명의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문명의 중심이 되려면 경제 규모나 군사 규모만 커져서 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발전, 인권의 신장, 학문의 창조성, 이런 많은 요소가 다 결합해야 하잖아요.nbsp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약 21세기 초반에 통일을 하고 중반에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해서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나간다면, 21세기 후반에는 세계 문명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오고 우리가 그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이 됨으로 해서 결국은 세계 문명의 중심국가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지금 열려 있는데 그 첫 발이 통일입니다.nbspnbsp우리가 미중의 하위 변수로 전락해서 갈등의 분쟁 지역이 될 것이냐, 아니면 통일국가를 형성해 미중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나아가 동아시아 번영의 중심이 될 거냐를 가르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예요. 위기를 극복하면 기회가 되고 기회를 놓치면 위기가 됩니다. 이런 새로운 변화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에 우리가 더 큰 이익을 생각해서 작은 감정이나 손실, 즉 북한을 포용할 때 일어나는 문제를 감수해내야 해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과거에 입었던 피해에 대한 복수심에 너무 사로잡혀서 미래의 큰 이익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nbsp우리의 통일은 단순히 남북한의 통일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남북한의 통일 자체로도 의미가 크지만, 그 통일이 합의통일이 되면 시너지 효과가 나서 일본 및 중국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 문명의 중심국가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러나 무력으로 북한을 굴복시켜 통일하게 되면 통일은 될지 몰라도 중국과 우리는 갈등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면 통일의 시너지 효과가 없어집니다.nbspnbspnbsp그러니 통일이 돼야 하지만 통일이 어떻게 되느냐는 방법론도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남북이 대등하게 통일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한쪽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을 거예요. 남한 사람인 제가 이런 주장을 하니 북한 입장에서는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대등하게 통일하기가 어려워요. 남한도 문제가 없진 않지만 남한을 좀 리모델링해서 통일의 중심을 삼을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북한의 요구를 좀 들어줘야 해요. 경제만 먼저 통합하되 정치는 10년이든 20년이든 중국처럼 여유를 두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북한 자체에 어떤 변화가 올 때까지 좀 열어둬야 해요. 그러나 경제 문제는 내일이라도 당장 통합경제, 통일경제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민족이 살 수 있습니다.nbspnbsp통일의 이익이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통일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확신이 없어요. 미래는 불안정하잖아요. 미국 가서 이야기해봐도 그래요. 자기들이 봐도 통일된 한국이 미국 편에 딱 붙는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쉽게 도와주지 않으려 합니다. 중국에서도 손을 쉽게 내밀어주지 않아요. 지금의 한국이 미국과 군사며 뭐며 전부 결합되어 있는데 통일됐다고 해서 중국과 협력관계가 되리라고 확신하기 어렵잖아요. 자기 쪽으로 온다는 게 확실하면 지지하겠지만, 미래의 불확실성보다는 현실에 주어진 확고한 것을 확실히 가지려 드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미국은 남한을 확실하게 끌어오는 쪽으로 관심을 갖고, 중국은 남한이 미국과 결합하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만 일본까지 결합하지는 않도록 잡아당기고 있어요. 중국이 지금은 우리에게 잘 해주지만,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북한을 잡을 겁니다. 지금은 한국을 잡으려고 북한과 거리를 좀 두고 있다는 거예요.nbspnbsp이런 위태로운 균형이 유지되는 것도 몇 년 안 남았습니다.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가서 사드 배치에 사인을 안 했기 때문에 그나마 아직 시간이 좀 있는 거예요. 사드 배치에 사인하면 대세가 거의 기울어진다고 봐야 해요. 그리고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아직은 중국에 고개를 안 숙이고 버티고 있으니 시간을 번 겁니다. 그런데 저걸 얼마나 더 버티겠어요? 고개 숙여버리면 끝나요. 남쪽이든 북쪽이든 아직은 통일의 기회가 있는데, 어느 쪽이든 더 이상 못 견뎌서 이쪽이든 저쪽으로든 기울어지면 통일은 어려워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미중의 하위변수로 편제되어 장기간 분단 상태로 가야 합니다. 미중의 패권 경쟁은 앞으로도 몇 십 년은 이어질 거예요. 그러면 미래의 100년 역시 과거의 100년과 다름없는 상태로 가야 해요.nbspnbspnbsp이렇게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 우리가 놓여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알아서, 국민이 뜻을 모아야 합니다. 현재의 정부가 통일을 강력하게 추진하도록 여론을 조성하고 압력을 가하고, 현 정부가 그리 하지 못하면 다음에는 통일을 확실하게 추진할 정부를 구성한다든지 하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국민의 행동 없이 현재의 정치인들만 가지고는 마치 임진왜란 때 관군만 가지고는 안 되었듯이 통일도 좀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의병운동이 일어나는 거예요. 여러분은 시험이 중요하고 결혼이 중요하고 자녀 문제가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사는 전체 공동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분단된 상태에서도 여기까지 온 것은 잘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굉장히 불확실한 조건에 놓여 있는데, 이걸 지금 안 보고 그 안에서 자기 개인 문제에만 안주해 있으면 미래는 어둡습니다. 조선말엽에 소위 서세동점이라는 국제적인 위기에 처했는데도 아무런 방비 없이 내부에서 사색당쟁만 하다가 중국에서 일본으로 세력 교체 되는 시기에 결국은 나라를 잃고 식민 지배를 겪었잖아요. 지금 그와 비슷한 새로운 위기이자 새로운 기회가 우리에게 오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통일의 이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nbsp스님의 가슴 뛰는 통일 이야기에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가 쏟아져 나왔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통일이 가져다 줄 이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그동안 통일에 대해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어떤 이익이 있는지 너무나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들으니 새로운 기운이 약동하는 듯한 희망찬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불안해 하고만 있는 우리들의 앞길에 대해 이렇게 멋진 청사진을 그려주시는 어른이 있어 너무나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벌써 약속한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통일 대박론을 내세우면서도 아무런 진전이 없는 현 정부에 대해 어떤 태도와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 물었던 마지막 질문에 대해 답하면서 지금 통일을 위해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갖고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지 강조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우리는 주권자입니다. 우리는 국가의 이익과 발전,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했기 때문에 그렇게 선출된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실행해야 해요. 만약 대통령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우리가 임명해야 합니다. 회사에 위기가 닥치면 주주들이 모여 주주총회를 열고 CEO를 새로 뽑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대주주는 사람 수는 적지만 표를 많이 가지고 있는 데 반해, 소액주주는 힘을 많이 모아야 해요.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거나 언론을 장악한 사람들은 몇 십만 표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아요.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으니 우리가 각성해서 다음 선거에는 반드시 국가의 목표를 평화와 통일에 두고 국가의 비전을 만들어갈 지도자를 뽑아야 합니다. 그렇게 투표의 기준을 세워야 해요. ‘우리 지역 발전을 위해 공장을 세운다’ 이런 공약에는 그만 현혹되고요.nbspnbspnbsp‘사실상 통일에 준하도록 해서 북한 개발을 하면 우리는 최소한 5 이상의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라고 말하면 진짜지만, 무턱대고 그냥 경제 발전시키겠다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피땀 흘려 이뤄온 발전,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안전수칙이 평화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평화를 기초로 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는 비전을 가지려면 통일이 있어야 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nbspnbsp우리의 공동체인 국가는 발전계획이 있어야 하고 그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은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국가는 발전했을지 몰라도 국민은 행복하지 않아요. 아까 국민 행복도가 세계 117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국가운영체계가 마련돼야 합니다. 그런 쪽으로 여러분이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nbspnbsp의병은 반군이 아닙니다. 반군은 정부군과 싸우지만, 의병은 정부군과 손잡아서 외세와 싸우는 거예요. 국가의 목표인 평화와 통일을 해나가는데 정부만으로는 힘이 미약하니까 우리가 밀어줘서 그 목표를 이루자는 의미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해나간다면 대한민국에게 새로운 희망, 비전이 있지 않겠는가 합니다.nbsp그러니 여기서 이념이나 지역, 종교 같은 논쟁은 이제 좀 빼면 어떨까 해요. 국가 전체의 목표를 설계하려면 과거를 떠나 다 같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정치 민주화를 이룬 사람들도, 경제 산업화를 이룬 사람들도 모두 힘을 모아야 해요. ‘저 사람들은 친일 후손이다’, ‘저 사람은 빨갱이 후손이다’ 이런 말 너무 하지 마세요. 그 사람도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의해서 해야지, 자꾸 과거 따지고 연좌제 따지지 마세요. 과거가 어땠든 지금 그가 이 평화와 통일 대의에 동의한다면 그 누구도 함께할 수가 있다는 관점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지도자를 우리가 뽑아줘야 해요. 그게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합니다. 그런 관점을 갖고 평가를 하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다음 대선까지는 아직 2년이 남았습니다. 현 정부가 남은 2년 동안 통일을 위해 일하도록 강력한 지원과 압력을 넣고, 현 정부가 그걸 못 하면 다음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정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nbsp스님의 간곡한 호소는 언제 들어도 새롭게 들리고, 정신도 번쩍 차릴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는 정부 정책이 정말로 통일지향적이 되도록 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정부는 반드시 통일지향적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다함께 손에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스님의 말씀 중에 와닿는 것이 너무 많았던지 오늘따라 가사가 더욱 간절하게 다가왔습니다.nbspnbspnbsp▲ 함께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nbsp강연이 끝나고 나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길게 늘어선 줄이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님 건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고, 스님도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환한 웃음으로 강연장을 찾아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몇몇 분들에게 오늘 강연을 들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한 분은 “오늘 스님 말씀 중에 이제는 성장이 한계에 다달았다, 통일만이 유일하게 남은 길이라는 말씀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며 강연 내용 전반에 대해 아주 만족해 했습니다. 또 한 분은 “내일 스님의 하루에 오늘 강연 소식이 올라가면 주변 친구들에게 열심히 전달을 할 것이다” 라며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nbspnbsp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가운데서도 통일의병들은 ‘통일시민학교’ 참가자 모집 에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들고 열정적으로 홍보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오늘 강연을 계기로 관악구에서도 많은 통일의병들이 탄생해서 통일을 위한 작은 초석이 되어주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 통일시민학교에 접수 신청을 하고 있는 시민들nbsp오늘은 올해 마지막 통일 강연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이 모두 돌아가고 텅빈 강연장에 다시 통일의병들이 모두 모여 조촐하게 쫑파티를 가졌습니다.nbspnbsp강연장의 불을 끄고 어둡게 한 상태에서 스님과 김홍신 작가님이 들어오자 통일의병들은 모두 핸드폰 불빛을 비추며 두 분을 반겼습니다.nbspnbsp▲ 2015년 통일이야기 20회 순회 강연을 마무리하는 쫑파티nbsp‘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부르는 동안 스님과 김홍신 작가님이 무대 위로 올라왔고, 이어서 지난 전국 순회 20회 강연 모습이 담긴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을 보니 보이지않는 곳곳에서 수고해 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다시 한 번 애틋하게 느껴졌습니다.nbspnbsp▲ 20회 강연을 돌아보는 영상 상영nbsp곧이어 통일의병들은 전국을 다니며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내년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더 많은 곳을 종횡무진 다니시라고 운동화를 선물했습니다.nbspnbsp▲ 스님에게 선물을 건네는 통일의병nbsp선물을 받고 나서 스님은 수고한 통일의병들에게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올 한해 20회 강연을 준비하느라 수고들 많이 하셨어요.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힘들다고 하더니 20회를 진행해 보고 나니 이력이 좀 생겼죠? 오늘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왔네요. 내년 일정을 잡아보니까 상반기에 9회, 하반기에 9회, 총 18회 강연 일정이 나와요.nbspnbspnbsp어떤 일이든 처음에 굴릴 때가 어려워요. 왔다갔다 할 때는 미는 게 무척 힘이 드는데, 한번 굴러가기 시작하면 잘 굴러가요. 아직은 저절로 굴러가는 수준까지는 안 된 것 같아요. 아직 좀 더 밀어야하지 않나 싶은데, 이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개인적인 다른 일들이 장애가 되더라도 이 일에 조금 더 정열을 바쳐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어도 독립운동을 하거나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수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직장 생활하면서 이 일을 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요. 그러나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세상이 변하지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서는 변하지 않잖아요.nbspnbspnbsp극단적인 사람들의 장점은 행동한다는 겁니다. 죽기 살기로 싸우든지, 인터넷에 댓글 다는데 목을 매든지, 데모를 하든지 하는데, 합리적인 사람들은 사람만 신사이지 행동을 잘 안하니까 역사를 바꾸는데 큰 도움이 안 돼요. 그러니 우리는 행동하는 신사가 되어야 합니다. 행동하는 중도, 행동하는 합리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행동할 수 있어야 시민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민에 불과한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은 행동하는 시민이 되기를 바랍니다.”nbspnbsp행동하는 시민이 되어달라는 당부 말씀에 모두들 힘찬 박수로 결의를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nbsp다음은 통일 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봉고차 한 대에 짐을 싣고 유랑극단처럼 전국을 누비고 다닌 ‘즉통팀’의 소감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짧은 한마디 속에 그동안 수고로움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nbspnbsp▲ 20회 강연을 하는 동안 봉고차 한 대에 짐을 싣고 전국을 누빈 즉통팀 nbspnbsp“통일을 알리는 일에 미력하나마 보탬이 되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니 뿌듯합니다. 우리가 뿌린 이 씨앗을 잘 가꾸어서 풍성한 결실을 맺도록 내년에도 열심히 하겠습니다.”nbsp“평생 못해본 현수막 아줌마, 전단지 아줌마도 해보면서 덕분에 세상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nbsp“처음에는 얼떨결에 시작했는데 어느새 제 가슴 속에 통일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새겨졌습니다.”“정말 재미있었어요. 내년에도 스타렉스에 몸을 맡기고 전국을 누비고 싶습니다.”nbspnbsp특별히 고생한 ‘즉통팀’을 위해 모두들 더 큰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스님도 소감 한 마디 한 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하면서 박수를 쳐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숫자 ‘20’ 이 꽂혀 있는 케익이 무대 가운데에 자리했습니다. ‘20’은 올 한해 진행된 통일 강연 20회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박수와 함성 속에서 스님과 김홍신 작가님이 함께 ‘후’하고 촛불을 끈 후 케익 컷팅을 했습니다.nbspnbsp▲ 20회 강연 마치며 기념 케익을 자르는 스님과 김홍신 작가님nbsp이어서 통일의병 노래팀인 ‘학수고대’가 20회 강연을 원만히 마친 것을 기념하여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노래를 열창해 주었습니다.nbspnbsp▲ 통일의병 노래팀 학수고대의 축하 공연nbsp“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nbsp기타 반주에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를 불러주며 그동안 수고했던 서로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언젠가 학수고대가 노래를 잘 하면 통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스님께 노래를 들은 소감을 여쭈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통일이 다 되어 간다” 라고 말해 큰 웃음을 주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서로 웃으며 쫑파티를 마무리한 후 다함께 오늘의 역사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통일의병들은 글자 하나씩을 들고 “통일이야기 20강 완수. 의병아 통일 해버리자” 는 문장을 만든 후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통일 의병”을 외쳤습니다.nbspnbspnbsp우렁찬 목소리를 들으니 내년에는 정말 통일로 성큼 다가서게 해줄 기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포크로 케익을 서로 먹여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며 스님은 강연장을 나왔습니다.nbspnbsp스님은 관악구청을 나와 서울 정토회관에 밤 10시가 넘어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 4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울산 두북에 들렀다가 오후 3시 30분에 영남대병원에서 초청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에는 진주교대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08. 59,506 읽음 댓글 47개

2015.12.6 (오전) 제8기 행자대학원 졸업수련

nbsp새벽 6시부터 3시간 30분 동안 있었던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에 이어서 오전 10시에는 정토회 행자대학원을 졸업하는 행자님 한 분이 찾아와 스님께 인사 드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정토회 ‘행자대학원’ 과정은 3년 교육과정으로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1년, 서울 공동체에서 사회실천 활동 6개월, 인도JTS에 파견되어 1년, 다시 문경 행자원에서 6개월을 지내며 일과 수행의 통일을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입니다.nbspnbsp오늘 스님에게 인사를 하러 찾아온 행자님은 제8기 행자대학원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오늘 2월에 졸업을 하게 됩니다. 원래 처음 시작할 때는 7명이 함께 시작했지만 모두 도중에 그만두는 바람에 이 행자님 한 분만 끝까지 남아서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행자반장과 졸업하는 행자님이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nbsp두 분은 졸업 수련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난 일주일 동안 스님과 동행을 하며 스님 가까이에서 일상 속에서의 수행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먼저 스님이 일주일 동안 같이 다녀보니 어땠는지 소감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행자님은 “법문에서 하시는 말씀 그대로 소박하게 사시는 모습을 보니 금강경 제1분에 나오는 부처님의 일상이 떠올랐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의 도리를 깨우쳐주기 위해 같은 원리를 지치지 않고 수없이 반복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 것이 가슴에 많이 남는다”고 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혹시 개인적인 고민이 있다면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행자님은 두 가지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먼저 남을 포용하지 못하고, 또 포용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이 자주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자상하게 조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는 남을 못 봐주는 마음, 그래서 갈구는 마음, ‘악심’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라든지 행자대학원 도반들도 못 봐줬습니다. 그리고 자책의 정도나 빈도가 강합니다. 지난번에 정진을 하다가 그런 제 마음을 알아차리니까 스스로가 무서웠습니다. 그게 ‘살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강도가 세다’, 그래서 ‘두렵다’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쭤봅니다.”nbspnbsp“그런 마음은 누구에게나 다 있어요. 스님도 고문을 당할 때 ‘이 자식들,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하는 독한 마음이 있었는데, 그 마음이 누그러진 이유는, 그 사람들이 나한테 사과를 해서도 아니고, 내가 참선해서 깨친 것도 아니에요. ‘그 사람들도 그냥 일반 사람이구나’ 하는 걸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고문하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이 인연에서는 저 사람들이 나한테 악마 같은 역할을 하지마는, 집에 가면 자상한 남편이고, 사랑스러운 아들이고, 직장에서는 동료들이구나’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미움과 증오심이 많이 사라졌던 겁니다.nbspnbsp그러니까 악심이 생기는 건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나?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나?’ 하고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질문자가 그 사람의 까르마를 보면서, 그 사람이 자란 환경에 비추어서 그 사람의 살아온 습관이나 사고방식을 보면서 ‘아,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할 수 있겠다’, ‘저런 경우에 저 사람은 저런 행동을 할 수도 있겠구나’, ‘저 사람이 저래서 저런 말을 했겠구나’ 이렇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이해하면 악심이 없어지는 거예요.nbspnbsp그렇다고 ‘그게 옳다’ 라든지 ‘그렇게 해도 된다’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내가 ‘그 사람이 그렇게 하는 행위나 말은 이해가 된다’ 하면 내 속의 악심은 없어진다는 거예요. 다만 내가 생각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 싶으면 개선하려고 노력을 해야지요. ‘내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하면 어떻겠느냐? 내가 옳고 너는 그르다는 게 아니라 이게 더 합당하고 이치에 맞는 거 아니냐? 더 효율적인 거 아니냐?’ 이렇게 접근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린 늘 자기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주장하거나 상대를 비난하는 쪽으로 가게 되지요. 그러나 우리의 습관이 그런 거니까 그런 내 모습도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런 나마저도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나한테도 이런 모습이 있는 거구나’ 하고 스스로 이해해야 합니다. 상대가 나한테 이해받을 권리가 있듯이 나 또한 이해받을 권리가 있으니까요.nbspnbsp그러나 ‘내가 이해하는 것’과 ‘바람직한 것’은 다릅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건 개선을 해 나가야 됩니다. 그러나 개선이 잘 안 된다고 질문자가 나쁜 인간은 아니고, 다만 좀 이해가 부족할 뿐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기 옳다는 생각이 너무 강한 것이지요. 대신 행자님은 일은 잘할 겁니다. 우리 정토회에서 일을 빨리빨리 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옳다는 생각이 강하고, 다른 사람이 일을 못하는 걸 못 봐내고, 소통이 잘 안 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걸 과제로 삼아야지요. ‘간섭하지 마라’ 하니까 외면한다든지, ‘외면하지 마라’ 하니까 간섭하는 식으로 가면 안 되고, 간섭도 외면도 다 버려야 됩니다. 미워하는 것도 버리고, 외면하는 것도 버려야지요. 상대를 이해하게 되면 나한테 있는 증오심이나 미움은 사라집니다. 또 행자님은 ‘정토를 만들겠다’는 원이 있으니까, 그들을 인도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잖아요.nbspnbspnbsp반면 그렇게 안 되는 것도 내 현실이니까, 목표를 분명히 하면서 꾸준히 해 나가면 올해보다는 내년이, 내년보다는 내후년이 나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해를 거듭 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건 좀 문제입니다. 그런데 한꺼번에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아직 습관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작년보다는 조금 나아졌다’ 이렇게 가면 됩니다.”nbsp행자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보였습니다. 목표를 분명히 하고 앞으로 나아가되 잘 안되는 현실 또한 수용하면서 가야 한다는 말씀이 많은 위안이 된 것 같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행자님은 두 번째 고민을 물었습니다. 주인된 마음으로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눈치를 자주 보게 된다는 고민이었습니다. 스님은 이에 대해서도 자상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제가 일을 할 때는 남 눈치 살살 봐가면서 욕먹지 않을 만큼만 하고, 대충 하고, 그러면서 집중을 잘 못하더라고요. 그리고 항상 주인된 마음 없이 눈치만 보며 적당히 하니까 흥미도 없고 기분도 쳐집니다. 서울공동체에서 지낼 때도 그랬고, 인도에서 지낼 때도 그랬습니다. 지금은 행자원으로 다시 돌아왔는데도 계속 그런 식으로 살고 있더라고요. 제가 그런 줄 잘 몰랐는데, 이번 학기 들어서 ‘패턴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줄 알게 되었는데도 개선이 잘 안 됩니다. 계속 다른 데 기웃거리고,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말 거는 식으로 집중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다른 곳에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nbspnbsp“그것을 업이라고 합니다. 108배를 할 때 가만히 자기를 살펴보세요. 예를 들어 ‘절반만 하면 하기 싫고 꾀가 나고 안 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70배쯤 하면 그런 생각이 든다’는 등의 동일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1000배를 한다면 한 500배에서 그렇다든지, 700배에서 그렇다든지, 시작할 때는 주로 그렇지만 하다 보면 괜찮다든지, 시작할 때 약간 거부반응이 있지만 해 버리면 괜찮다든지, 시작할 때는 좋은 마음으로 하는데 중간쯤 가면 꼭 그렇다든지, 중간만 넘어서면 마무리할 때까지 꼭 집어치워버린다든지 하는 자기 패턴을 알아야 되거든요. 그게 업입니다.nbspnbsp어릴 때부터 살아오면서 형성된 것이기도 하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분명한 극복과제로 삼아버리면 그런 일이 일어날 때 극복이 됩니다. 모를 때는 하다가 그만 두는 쪽으로 가게 되는데, 알고 있으니까 ‘아, 이거 극복대상이다’ 하면서 뛰어넘을 수 있게 되는 거예요. 내가 눈치 보는 까르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눈치 보게 될 때 마다 ‘아, 또 업식이 나타나는구나’ 하며 눈치 보는 자기를 알아차리면 됩니다.nbspnbsp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기 업식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어떤 심정이나 성질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아서 거기에 맞춰서 살 수도 있겠지만, ‘이건 극복해야 되겠다’ 싶다면 그것을 과제로 분명히 삼고 정진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에서 분별심이 많다면 ‘이 정도 수준의 분별심은 그냥 갖고 살지, 뭐’ 이렇게 받아들이고 그걸 문제 삼지도 말고, 분별심 낸 걸 참회만 하고 그 과보를 받으면 됩니다. 하지만 ‘그걸 고쳐야겠다’고 생각하면 계속 지켜보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날 때 이것을 극복하는 훈련을 해야지요. 동일한 패턴이 열 번, 스무 번 반복된다면 그건 윤회이지만 그렇게 반복되더라도 극복하려는 목표를 세워놓고 지켜본다면 그건 연습이거든요.”nbsp스님은 고민이 더 있는지 물었고, 행자님은 더 이상 고민이 없다고 말하며 밝게 웃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행자님이 행자대학원을 졸업하면 정토회의 사회활동 부서에 배치되어 다양한 실천 활동을 하게 될 것을 헤아리며 사회 활동을 하면서도 어떻게 수행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지 그 자세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정토회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수행자로서 사회활동을 하는 것이지, 개인으로서 사회활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군데에 앉아서 평생 선정을 닦다가 죽는 것도 ‘수행자’라고 할 수 있지만, 꼭 앉아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평정심만 유지한다면 움직일 수도 있고, 오고 갈 수도 있고, 일할 수도 있고, 사람을 만날 nbsp수도 있는 거예요. 그랬을 때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괴로움, 분별심, 분노 등은 수행의 과제로 삼으면 됩니다. 그것을 뛰어넘어서 사회활동을 하는 건 수행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nbspnbspnbsp일상이 다 수행이 되는 거예요. 일을 할 때는 일을 맵시 있게 하는 것도 수행입니다. 맵시 있게 하려고 하는데 집착이 되고, 또 집착하는 자기를 한탄하면 그건 수행을 놓치는 겁니다. 또 안 된다고 포기를 해 버려도 그건 수행을 놓치는 겁니다.nbspnbsp수행이라는 것은 꾸준히 연구하는 자세입니다. 농사를 지어도 수행자가 농사를 지으면 농사의 결과, 즉 ‘잘 지었나, 못 지었나’가 우선이 아니고, 일단 준비를 해서 농사를 짓고, 거기서 발생하는 부족한 점을 발견하면 보완해서 다음에 또 해 보고, 다시 또 해 보면서 농사짓는 겁니다. 그냥 ‘농사짓는 게 재밌다’ 해서 쾌락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그런 이치를 터득해 가면서 하는 겁니다. 마음에 호기심이 있으면 재미있어집니다. 그렇지요?”nbsp“예.”nbspnbsp“노래하고 춤추니까 재미있다고 하는 것과 성격이 다른 거예요. 이런 자세를 유지하면 일상에서도 수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불교지식은 필요 없다’거나 ‘불교지식을 가져야 된다’가 아니고, 필요한 지식은 틈틈이 습득해 나가는 겁니다.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지식습득을 못해서 문제가 있다’면 지식에 집착하는 거고, ‘할 필요가 뭐 있어?’ 한다면 이것은 무식으로 가는 길입니다. 학습할 생각이 없는 것이니까요.nbspnbsp이 세상에 필요한 일을 우리가 다 할 순 없는 겁니다. 정토회도 농장을 만들어야 된다는 필요성을 진작부터 갖고 있었지만 20년이 되도록 아직 못하고 있잖아요. 현실적으로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못 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그런 목표를 없애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리해서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꾸준히 ‘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를 생각하면서 조금씩 하다가, 이제 기회가 오면 하면 되는 겁니다. 저도 지금 작은 텃밭을 경작하고 있는데, 이런 것을 ‘실험’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심심하니까 소일거리로 해 보는 게 아니라 터도 조금 밖에 없고, 시간도 조금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시간이 되는 만큼 연습을 해 보는 겁니다. 그런 자세로 공부를 해 나가면 됩니다.nbsp수행이라는 것은 이치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치를 파악하고 그 이치를 이용해서 효율을 높이는 게 과학이잖습니까.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이렇게 저렇게 작용하는 걸 파악해서 그걸 가지고 삶을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때로는 아무 것도 안 하고 한 달 동안 가만히 있어 볼 수도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아무 것도 안 할 때도 편안해야지 ‘심심하구나’ 하면 그건 일에 집착하는 거예요.nbspnbsp이것을 물에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물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기 때문에 그릇 따라 모양이 변하고, 경사가 완만하면 천천히 흐르고, 경사가 급하면 빠르게 흐르며, 웅덩이를 만나면 고이고, 낭떠러지를 만나면 떨어집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도 주어진 환경 따라 적응할 수 있어야 됩니다. 자기를 고집하기 때문에 그게 잘 안 되는 거거든요. 또 반대로 우리는 필요하면 환경을 바꿀 수도 있는 겁니다.nbspnbsp예를 들어 아무 데나 감자 심고, 고구마 심는 게 아니라, 토질을 조사해서 토질에 맞게 곡식을 심는 경우가 있을 테고, 고구마를 심기는 해야겠는데 토질이 고구마에 적당하지 않다면 토질을 개선해야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개선을 하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토질에 딱 맞춰서 곡식을 심는 게 제일 간단합니다. 환경에 적응하는 게 제일 쉬운 길이에요. 그러나 그것만 길은 아니에요. 때로는 감자 심을 모래땅에 고구마를 심어야 될 때도 있을 텐데, 막상 심어보니 고구마가 잘 안 된다면 다른 데 가서 찰흙을 파다가 넣어준다든지, 거름을 더 집어넣든지 해서 토질을 개선해야 됩니다.nbspnbsp환경을 하나도 훼손하지 않고, 나무로 집을 지으면 일손이 적게 들겠지요? 그러나 건물에 필요한 땅이 하필 둔덕이라면 땅을 깎아서라도 지어야 되지요.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과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늘 중도적이어야 됩니다. 치우치면 안 돼요. 치우치면 ‘적응’만 주장하거나 ‘개발’만 주장하게 되는 겁니다. 적응과 개발이라는 것은 같이 가야 됩니다.”nbspnbsp수행은 이치를 터득해가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면서 스님은 다양한 비유를 들려주었습니다. 스님은 생활 속에서 모든 일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경험과 사례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행자님에게 언제 졸업하는지 물어본 후 졸업을 하게 되더라도 수행하는 자세는 똑같은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책임을 맡아서 일을 하게 되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주인된 자세가 중요함을 덧붙이며 행자대학원 졸업에 대한 격려 말씀을 마쳤습니다.nbspnbsp“2월에 졸업인가요?”nbsp“예.”nbsp“졸업이라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고 일상과 똑같은 겁니다. 다만 일정한 학습기간을 마치고 졸업하게 되면 학생신분을 벗어나서 한 부서에서 뭐든 책임을 맡아서 일을 하게 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수행을 꾸준히 같이 해나가야 됩니다.nbspnbsp예를 들어 ‘밥하라’ 그러면 밥하는 것도 수행입니다. 밥을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쌀을 먼저 씻어 놓아보기도 하고, 불을 크게 대거나 작게 대보기도 해 보고, 찹쌀을 섞어 보기도 하고 안 섞어 보기도 하면서 연구를 하는 게 수행입니다. 김치를 담글 때도 배추가 맛있어야 되는 건지, 절일 때 잘 절여야 되는 건지, 양념을 뭘로 해야 맛있게 되는 건지, 어떤 온도가 보관하기에 적당한지를 연구하면서 김치를 담그는 게 수행입니다. 행자님에게 김치공장을 맡기면 김치를 연구하고, 농사를 맡기면 농사에 대해서 연구하고, 통일 운동을 맡기면 통일을 연구하고, 아이들 가르치는 걸 맡기면 아이들 가르치는 걸 연구하면, 그게 수행입니다.nbspnbsp성과를 자꾸 내려고 하면 욕심에 치우치고, 주어진 것만 한다면 그건 게으른 겁니다. ‘주인’은 종과 다른 겁니다. 주인은 자기 농사이니까 열심히 지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더라도 아프다면 쉬겠다고 결정할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종은 그게 안 되고, 아파도 나가서 일해야 되고, 건강해도 오늘 휴일이라면 놀아야 됩니다. 그러나 주인은 휴일이라고 놀 이유가 뭐가 있어요? 안 아프면 일하는 것이지요. 휴일이라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면 집에서라도 일을 하잖아요. 그게 주인과 종업원의 차이입니다. ‘놀아라’ 한다고 노는 주인은 없습니다. 일을 하지요. 그러나 일해야 되는 상황인데도 좀 아프다면 스스로 휴식을 결정할 수도 있는 겁니다. 정토회에서 ‘수행자’는 ‘주인’이라는 뜻입니다.nbspnbsp그런 관점에서 행자님은 정토회에 살고 있으니까 여기서 주어진 규칙을 지키기도 해야겠지만 본인이 주인 입장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인이라고 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규칙을 따르다 보면 종속적으로 되기가 쉽고, ‘주인 되라’ 그러면 자기 마음대로 하기가 쉽습니다. 행자님은 정토회에서 혼자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전체가 잘 되도록 하는 자기 역할이 있겠지만, 그러나 또 그 안에서 주인으로서 연구하고, 아이디어도 내고, 조정도 하고, 그래서 건의도 하고, 안 되면 또 다시 조정해서 해 보고 이래야 합니다.nbspnbsp종업원들은 한두 번 해 보고 안 되면 ‘거, 뭐,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내가 머리 쓸 이유가 뭐가 있나?’ 하고 포기해 버리잖아요. 일이라는 것은 늘 연구를 해야 됩니다. 김치를 저장하기 위해서 비닐로 포장을 하더라도 어떻게 포장해야 효과적인가를 연구하고, 또 포장한 김치를 들 때도 탁 들다가 약간 삐끗하면 ‘아, 포장할 때는 안전하게 한다고 했지만 이렇게 밑이 터질 염려도 있겠구나’ 알아차려서, 더 연구를 해서 포장에 신경을 쓴다든지 이렇게 자꾸 해 보면서 터득을 하는 겁니다.nbspnbspnbsp그래서 수행자는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일을 하면서 늘 이치에 맞게 연구하고, 실수가 있었다면 그에 대해서 욕할 게 아니라 그 실수의 원인을 연구해야 되고, 또 실수를 했을 때 지적을 받으면 ‘아, 감사합니다’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죽어라고 김치 담가서 포장해 놨더니 그 밑이 좀 터졌다고 야단치느냐 ’는 식으로 접근하면 공부에 진척이 생기지 않습니다.”nbsp스님의 애정이 깃든 말씀에 행자님은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특히 지난 일주일 동안 스님 가까이에서 김치를 포장하고 배달하는 일을 함께 하면서 직접 피부로 느낀 점이 많기에 스님의 말씀이 더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nbspnbsp행자님과의 일문일답 형식으로 모임이 진행되었지만 스님의 말씀은 직장생활을 하든, 가정생활을 하든, 언제 어느 곳에서든 적용할 수 있는 소중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삶의 나침반이 되길 바랍니다.nbspnbsp▲ 스님의 낡고 해진 신발. 밑창이 떨어진 것을 스님은 본드로 다시 붙여서 신고 있습니다. 행자님은 이런 검소한 삶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nbspnbsp행자반장과 행자님은 감사한 마음을 담아 스님에게 합장으로 인사를 한 후 문경 정토수련원을 출발하는 스님을 배웅했습니다. 곱게 차수를 한 채 스님의 차량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nbspnbsp문경 정토수련원을 출발한 스님은 오후 1시가 되어 울산 두북에 도착했습니다. 두북에 도착해서는 아랫방에 보관하고 있던 감 상자에서 홍시가 된 것을 분류해 모으는 등 소일을 한 후 오늘은 수행팀 전체가 휴식을 취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밤늦게 다시 새책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내일까지 끝내야 한다면서 늦게까지 일하시는 것을 보니 약간 마음에 부담을 갖고 계시는 듯 했습니다.nbsp내일은 두북 정토수련원에 들러 선물용 김장김치의 포장상태와 택배 주문을 살펴본 후 서울로 올라갈 예정입니다. 저녁 7시부터는 관악구청 8층 대강당에서 서울시민들을 위해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이 열립니다.※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5.12.08. 57,506 읽음 댓글 48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