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2016.2.4 (인도 30일째) 인도인 스텝 소풍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JTS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인도인 스텝과 한국인 스텝 28명과 함께 전정각산 주위에 남아 있는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도보로 성지순례를 했습니다.nbspnbsp새벽 4시 30분, 도량석 소리와 함께 일어난 스님은 새벽예불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예불을 마치고 나서는 곧바로 소풍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주먹밥으로 도시락을 싼 후 인도인 스텝들이 대부분 도착하자 가볍게 짜이 한 잔을 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텝들이 소풍 준비를 하는 사이에 스님은 학교 정문 앞에 쓰레기를 줍고 청소를 했습니다.nbspnbsp▲ 학교 앞을 청소하는 스님nbsp오늘은 도보로 전정각산을 출발해 수자타 마을까지 부처님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을 순례해 볼 예정입니다. 원래는 버스를 대절해서 소풍을 떠나려고 했는데, 인도인 스텝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해 스님의 설명을 자세히 듣고 싶다고 요청을 해서 도보로 마을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이곳 둥게스와리는 부처님이 6년 동안 고행을 하며 오랫동안 머문 곳이기 때문에 곳곳에 성지가 많습니다. 마을에 대한 안내라고 하지만 자연히 성지순례가 되는 셈입니다. nbsp도보 순례를 시작하기 전 스님은 “여러분들이 자기 마을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에요. 저 멀리 전 세계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 자기 마을에 대해 아는 것입니다” 라며 마을을 순례하고 싶다고 요청한 인도인 스텝들을 칭찬해 주었습니다.nbspnbsp▲ 부처님이 6년 동안 고행한 시타림에 세워진 탑nbsp수자타아카데미 정문 바로 앞은 무너진 탑터가 남아 있어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스님은 이 탑터 앞에서 부처님의 6년 고행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이곳은 부처님이 6년 고행을 하신 곳인데, 전 세계에 3억 정도가 되는 불교 신자들 모두가 다 아는 곳입니다. 인도에 있는 어떤 도시도 이렇게 많이 알려진 곳은 드물 겁니다.nbspnbspnbsp부처님은 출가 후 가야에 오셔서 걸식을 하고 지금 이름으로는 ‘브람조니’라고 불리우는 가야산에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주위를 죽 둘러봤더니 네이란자라강 동쪽 편의 이곳이 수행하기에 좋아 보였어요. 이곳은 당시에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갖다 버리는 곳이었어요. 인도 당시의 풍속으로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에서 8킬로미터 쯤 떨어진 지역에 시체를 갖다 버리는 숲이 있었어요.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 바이샤 같은 높은 계급 사람들은 주로 화장을 했지만 노예인 수드라 계급 사람들은 화장을 하지 않고 그냥 시체를 갖다 버렸어요. 시체를 갖다버리는 숲이라고 해서 그 숲을 ‘시타림’이라고 불렀습니다. 주로 강을 건너서 이렇게 갖다 버려요. 바라나시의 경우 바루나강을 건너 북쪽에 있는 사르나뜨가 그런 곳이었어요. 여기는 가야에서 지금의 네란자라강을 건너 이쪽에다가 갖다 버린 거예요.nbspnbsp‘둥게스와리’ 라는 말은 전문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런 뜻이라고 해요. ‘둥그’는 ‘부정하다’라는 뜻입니다. ‘시체를 덮은 천은 부정하다’, ‘똥은 부정하다’ 이렇게 쓰는 표현 있잖아요. 더럽다고 하지만 위생적으로 더럽다는 게 아니라 재수 없다는 뜻을 담은 말이에요. ‘스와리’는 ‘땅’이라는 뜻이었다고 해요. 다시 말해 시체를 갖다 버리는 곳이니까 여기는 부정한 땅이라는 뜻이었습니다.nbsp‘부정하다, 성스럽다’ 하는 건 다 사람의 생각이죠. 땅 자체는 그저 땅일 뿐입니다. 시체를 갖다 버리니까 부정한 땅이라고 했지만, 부처님이 거기에서 설법을 하니까 사르나뜨의 경우 ‘성스러운 곳이다’ 이렇게 돼버리잖아요. 부처님이 여기서 수행하기 전에는 ‘둥게스와리’라는 말이 맞지만, 부처님이 여기서 수행하신 뒤에는 ‘둥게스와리’라는 표현이 맞지 않아요. ‘이곳은 성스러운 곳이다’라고 이야기해야 해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깨닫기 전에 이곳에 계셨다는 뜻을 가진 ‘쁘락보디 힐’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한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여기를 ‘전정각산’이라고 불러요. ‘전’이라는 말은 ‘쁘락’이라는 뜻이고, ‘정각’이라는 말은 ‘깨달음’, 즉 ‘보디’라는 뜻이고, ‘산’은 ‘마운틴’또는 ‘힐’이라는 뜻이에요.nbspnbspnbsp그렇게 부처님이 가야산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여기로 수행하러 오셨어요. 시체를 갖다 버리는 곳에는 더럽다고 사람이 아무도 안 오니까 수행하기 좋잖아요. 그래서 시체를 갖다 버리는 숲은 ‘시타림’이라고도 부르지만 고행자가 수행하는 곳이라고 해서 ‘고행림’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주로 이 근방에서 수행하셨습니다. 저기 티벳 사원 있는 곳을 보면 나무가 많이 자라잖아요. 여기가 돌산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나무가 많이 자랐습니다.nbspnbsp저쪽의 샘터도 지금은 건기가 되면 말라버리지만 당시에는 항상 물이 있었습니다. 이 산에서 물이 자연적으로 샘솟는 곳은 거기뿐이었어요. 두르가푸르, 자그디스푸르, 라르푸르 마을은 물론 저 아래까지 이 지역은 전부 사람이 살지 않는 숲이었어요.nbspnbsp부처님은 여기서 음식을 거의 드시지 않고 이 숲속에서 그냥 명상을 하셨습니다. 이 가까이에는 집이 없으니까 걸식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경전에 보면 대추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는 왜 대추를 먹었을까 궁금했는데 여기 직접 와보니 대추가 자연적으로 많이 나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지금도 둘러보면 대추나무가 많이 보이잖아요.nbspnbsp대추를 나중에는 하루에 한 알 혹은 이틀에 한 알 먹는 식으로 해서 거의 음식을 드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법당에 모셔놓은 불상처럼 뼈만 남아 앙상한 모습이 되었어요. 경전에는 ‘추위도 피하지 않고 더위도 피하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동굴에 계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아마 비가 오면 저 동굴에 들어가셨을 겁니다. 또 겨울에 추울 때나 여름에 더울 때는 저 굽파에 들어가면 덜 덥고 덜 추웠을 거예요. 여러분들 저기 굽파에 들어가 봤어요?”nbsp“예.”nbsp“겨울에 들어가면 따뜻하고 여름에 가면 시원하죠?”nbsp“예.”nbsp“그런 걸 보면 여기 계시면서 동굴에 주로 거처하셨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나무 밑에 계시거나 동굴에 계셨을 겁니다.nbspnbsp사실 이 지역은 제가 옛날부터 이름을 ‘고타마 싯다르타 파크’라고 지어놨어요. 이곳은 다 공원으로 조성해서 사람들이 명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요. 차가 여기까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요. 저 입구 바깥, 그러니까 자그디스푸르 마을 뒤쪽에 주차장을 만들고 나머지는 걸어 들어오도록 해야 해요. 이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면 자전거 릭샤나 전기차처럼 매연 없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도록 하고요.nbspnbsp이처럼 이곳이 중요한 곳인 줄을 알아서 앞으로 잘 관리하고 보호해야 해요. 그래서 지금 우리라도 청소를 깨끗이 하고 울타리를 다시 쳐서 여기를 잘 보호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와서 물으면 저기 동굴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이런 스토리의 일부를 이야기해줘야 해요.nbspnbspnbsp저 동굴은 그림자를 남겨놓은 동굴이라고 해서 ‘유영굴’이라고 불러요. 부처님이 성도하기 전에 수자타의 공양을 받으시고 건강을 회복한 뒤에 다시 이곳으로 와서 수행을 할까, 강 건너 지금의 보드가야로 가서 깨달음을 얻을까 망설였어요. 그때 둥게스와리 산신은 이곳에 와서 하라고 청하고 브라만 신은 저쪽으로 오라고 청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쪽 산신의 요청을 받았지만 이리로 오지 않고 저쪽으로 가시면서 대신 그림자를 남겨놨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유영굴’이라고 부릅니다. 경전에서는 ‘그림자를 남겨놨다’고 묘사하지만 실질적으로 생각해보면 부처님이 이곳에 오래 계셨기 때문에 부처님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nbsp이렇게 스님이 설명을 마치자 인도인 스텝들은 자긍심이 생기는지 아주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전정각산을 둘러싸고 있는 둥게스와리 마을은 인도인 스텝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문자를 읽고 쓸 수 없는 천민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이었기에 인도인 스텝들도 이런 의미들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가 생기고 나서야 스님으로부터 이곳이 얼마나 성스러운 곳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nbspnbspnbsp탑을 향해 삼배를 한 후 드디어 본격적으로 도보 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인도인 스텝들이 많이 살고 있는 방갈비가 마을을 지나는데 방금 전 스님의 설명대로 마을 곳곳에 대추나무가 많이 보였습니다. 모두가 대추나무에 높은 관심을 보이자 이 모습을 본 한 어린이가 뛰어나와 자신이 어제 열심히 주워 놓은 대추 한 봉지를 스님께 건넸습니다. nbspnbsp▲ 아이가 스님에게 준 대추 한 봉지nbsp가난하지만 작은 것도 이렇게 나눌 줄 아는 아이의 마음에 가슴이 짠했습니다. 대추를 한 움큼씩 손에 쥐고 입에 넣으니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nbspnbsp만코시힐 마을을 지나갈 때는 인도인 스텝들이 ‘까후아나무가 바로 아사나나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부처님이 네이란자라강에서 목욕을 하시다가 쓰러지신 후 아사나나뭇가지를 잡고 올라오셨다고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데, 아사나 나무가 힌디어로는 ‘까후아’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에서 나뭇가지를 붙잡고 나오려면 나뭇가지가 아래로 늘어져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스님이 고개를 흔들자 인도인 스텝들은 “계속 가다 보면 다른 까후아 나무도 나온다”며 걸음을 재촉했습니다.nbspnbsp▲ 경전 속의 아사나나무라고 추측되는 까후아나무nbsp네이란자라 강을 건너기 전 이번에는 따르 나무에서 따리를 뽑아 항아리에 담아 가고 있는 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스님이 반가운 표정으로 항아리를 바라보자 청년은 흔쾌히 스님에게 한 잔을 드리겠다며 항아리를 열었습니다. nbspnbspnbsp▲ 스님께 따리를 나눠주는 마을 청년nbsp아침 일찍 갓 채취한 것이어서 그런지 단맛이 많고 아주 시원했습니다. 스님이 먼저 한 잔을 마시고 이어서 돌아가며 모두가 한 모금씩 목을 축였습니다. 다시 가던 길을 계속 가니 네이란자라강이 나왔습니다.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닫기 전 마지막 정진을 하러 가실 때 건너 가신 강인데 건기여서 그런지 바닥이 말라 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nbspnbsp▲ 네이란자라 강nbsp강을 건너자마자 도착한 곳은 나디 가섭의 수행터입니다. 이 지점에서 네이란자라강과 모하나강이 합쳐져서 다시 하나의 네이란자라강이 되는데 두 강이 만나는 이 지점에 나디 가섭의 수행터가 있었습니다.nbspnbsp나디 가섭의 수행터에는 커다란 반얀나무가 있어 그늘이 아주 넓었습니다. 이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 도시락을 함께 먹었습니다. 새벽부터 한참을 걸었더니 허기가 져서 그런지 주먹밥의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nbsp nbspnbsp▲ 나디 가섭의 수행터nbsp식사 후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부처님은 성도 후 가섭 삼형제와 1천명의 제자를 교화했는데 이곳은 그 중 둘째인 나디 가섭의 수행터라고 알려주었습니다. nbspnbsp“부처님은 전정각산에서 정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수행을 했는데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어요. 그래서 좀 절망했던 것 같아요. 물론 경전에는 ‘부처님이 실망했다’라는 말은 없지만 그걸 신이 속삭이는 것으로 묘사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전정각산에서 나오셨는데, 가야 쪽의 시내로는 가지 않고 산기슭을 쭉 따라 가시다가 모레탈 마을이 있는 산 끝에서 강을 건너 이쪽 강가로 와서 목욕을 하셨습니다.nbspnbsp강가에서 목욕을 하다 쓰러지셨다는데, 왜 저쪽 편이 아니라 이쪽 편에서 쓰러졌는지가 저는 옛날에 궁금했어요. 그런데 제가 저 산 위에 올라가 내려다보니까 모래로 된 강바닥이 기울어져 경사가 져 있어요. 여기서도 보이듯이 산 쪽이 높고 이쪽이 낮아요. 우기 때는 전체가 물에 잠기지만 우기가 아닐 때는 이쪽으로 물이 흐르니까 목욕하러 이쪽으로 왔고, 이쪽에서 쓰러지셨던 겁니다. 그러니 부처님이 우기 때가 아니라 우기가 지났을 때 오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물이 아예 없는 건기 때도 아니에요. 목욕하다가 쓰러져서 물에 잠시 떠내려갔다는 기록이 있으니 그래도 물이 좀 많이 있을 때였을 겁니다. 물에 떠내려가다가 나뭇가지를 잡고 기어 올라오셨어요. 저렇게 늘어진 나뭇가지였을 텐데, 경전에는 ‘아사나나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도말이 중국말을 거쳐 한국말로 옮겨지다 보니 발음이 바뀌어버렸어요. 정확하진 않지만 힌디어로는 ‘까후아 트리’, ‘아르주나 트리’라고 추정합니다. ‘아르주나’에서 ‘아사나’가 되지 않았나 해요. 그 자리는 저 위쪽이니까 이따 올라가면서 볼 거예요.nbspnbsp정토회에서 성지순례를 할 때는 모레탈 마을 쪽으로 가서 바로 건너갔지만 오늘은 이리로 온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신 뒤 사르나뜨로 가서 거기서 처음으로 설법을 하시고 이곳으로 다시 오셨습니다. 그 당시 이 지역에는 ‘가섭’이라고 부르는 큰 수행 단체가 하나 있었는데 그 지도자가 삼형제였습니다. 큰 형님이 500명, 둘째가 300명, 셋째가 200명 해서 모두 1,00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어요. 이들은 두 가지를 행했는데 하나는 불을 피워서 기도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큰 뱀을 부리는 것이었어요. 이들이 유명해서 마가다 국왕인 빔비사라 왕도 1년에 한 번씩 공양을 올릴 정도였어요. 부처님은 그때 아직 35살의 이름 없는 젊은 수행자였지만 이 사람들은 이미 유명하고 나이가 80이나 되었어요. 부처님은 이 사람들을 교화하고자 이리로 다시 오신 겁니다. 그 당시에 수자타 여인이 있었던 마을 이름이 우루벨라였나 봅니다. 첫 번째 형은 우루벨라 마을에서 수행한다고 해서 ‘우루벨라 가섭’이라고 불렸습니다.nbspnbsp둘째 형은 바로 여기에 있었는데, 이곳을 ‘나디’라고 불러서 둘째는 ‘나디 가섭’이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한번 연구를 해보세요. 이 ‘나디’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을까요? 지금 ‘나디’라는 이름이 어디에 남아 있나요?”nbspnbspnbsp스님의 질문에 아미타부가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nbspnbsp“이쪽도 나디고 저쪽도 나디여서 ‘나디’라고 합니다. ‘나디’가 힌디어로 ‘강’이라는 뜻이에요.”nbsp“두 강 사이에 있다고 그렇게 불렀다고요? 아주 좋은 아이디어예요. 어쨌든 둘째는 나디라는 곳에서 수행한다고 해서 ‘나디 가섭’이라고 불렸어요.nbsp막내는 가야 마을 가까이에 있어서 ‘가야 가섭’이라고 불렀어요. 가야 가섭이 있었던 데가 가야산이 있는 곳이에요.”nbspnbspnbsp“우리는 그곳을 ‘가야 수르’라고 불러요.”nbsp“경전에는 ‘가야 쉬르사’라고 되어 있어요. 세월이 흐르고 말도 바뀌면서 옛날 이름도 조금씩 달라졌네요. ‘라자그라하’를 지금은 ‘라즈길’이라고 하고, ‘빠딸리푸트라’를 지금은 ‘파트나’라고 하듯이요.nbspnbsp그런데 가야 가섭이며 우루벨라 가섭은 많이들 알지만 나디 가섭이 있었던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들 몰라서 여기 와 본 사람이 별로 없어요. 두 강이 만나는 곳이라고만 알려져 있지, 구체적인 지역이 어딘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아요. 그런데 우루벨라 가섭이 부처님을 만나 크게 깨닫고 불을 섬기던 제구를 강에 버렸는데 그게 떠내려 오는 걸 나디 가섭이 보고 형님에게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찾아갔다고 기록되어 있으니까, 나디 가섭이 있던 곳은 저쪽 강줄기가 아닌 이 강줄기여야 해요. 또 여기 이렇게 신전이 있다는 것은 옛날에 섬기던 풍습을 동네 사람이 계속 해오고 있다는 뜻입니다.nbspnbsp그런데 방금 아미타부가 말해준 내용이 진짜 좋았어요. 왜 나디라고 불렀느냐? 두 강 사이를 의미한다. 굿 nbspnbspnbsp한국 사람들은 불교학박사라고 해도 옛날 기록만 알지, 왜 이런 말이 생겼는지는 잘 몰라요. 그러니 이 동네 사는 여러분들이 이런 걸 연구해야 해요. 그리고 여기가 나디 가섭의 수행터인 줄 아는 사람이 천 명 중 한 명도 제대로 없으니까 그걸 알려주면 여러분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곳의 지금 이름이 뭐라고요?”nbsp“사르사띠입니다.”nbspnbsp“‘사르사띠’가 바로 나디 가섭의 수행터입니다. ‘가야 수르’가 가야 가섭의 수행터이고요. ‘브람조니’가 가야산이고 그 근처가 가야 가섭의 수행터입니다. 그리고 둥게스와리는 ‘쁘락보디힐’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어야 해요. 외국 사람들은 ‘둥게스와리’ 이런 이름을 잘 모르니까요.”nbsp스님은 ‘나디’라는 말의 어원을 인도인 스텝들이 유추해 내자 아주 기뻐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어원이 무엇인지 알아낼 방도가 없지만, 이들은 이곳에서 조상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보니 어원이 무엇인지 금방 찾아내었습니다.nbspnbsp나디 가섭의 수행터를 출발해서 강가비가 마을을 지나 부처님이 쓰러지신 곳을 기념해 세운 탑터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부처님이 목욕을 하다가 쓰러지신 곳을 기념하여 세운 탑nbsp논밭의 한 가운데에 탑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황량하게 흔적만 남아 있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전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스님은 허물어진 탑터를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습니다.nbspnbsp“부처님은 네이란자라 강에서 목욕을 하시다가 쓰러지셨어요. 그래서 아사나나무의 가지를 잡고 기어올라오셨는데 마침 소젖을 짜러 왔던 ‘수자타’라는 소녀가 부처님을 발견했습니다. 수자타는 이 동네 촌장집 딸이었습니다. 집에 소가 460마리가 넘을 정도로 아주 많았대요. 소들이 다 물 마시러 이 강변에 와 있으니까 소젖을 짜러 여기까지 왔는데, 와보니 웬 수행자가 쓰러져 있었어요. 그래서 소젖에 코코넛과 쌀을 갈아서 넣고 유미죽을 끓여 먹였습니다. 기록에는 한 번만 먹은 것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건강이 회복되려면 한 번만 먹은 건 아닐 거예요.nbspnbsp공양을 드셨다는 곳은 저 위쪽이고, 여기는 쓰러져 계셨던 곳입니다. 옛날에는 여기에 스투파가 있었는데 불교가 없어진 뒤 힌두 스투파가 되었다가, 그것도 이제는 파괴되어 저렇게 탑이 허물어진 흔적만 남아 있어요.”nbspnbsp인도인 스텝들은 허물어진 탑터가 부처님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성스러운 곳이라고 알게 되자 모두들 놀라워하는 표정이었습니다.nbspnbsp다시 발길을 재촉해 다다른 곳은 정토회가 구입한 명상센터 부지입니다. 지금은 담장만 쳐져 있는데 스님은 오래 전에 이곳에 땅을 구입하고 전 세계 사람들이 이곳에서 명상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물론 봉사 인력도 부족하고, 몇 가지 제약 조건이 있어서 아직은 공사 시작을 못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정토회 명상센터 부지nbsp명상센터 부지 안으로 들어온 스님은 인도인 스텝들에게 이곳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앞으로 보드가야는 명상하는 곳으로 더 널리 알려질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도 필요하지만, 여길 찾아오는 세계 사람들에게 명상을 가르치는 역할도 해야 해요. 여러분들 자신을 위해서도 명상을 해야 하지만 앞으로는 여러분들이 외국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명상을 가르치는 사람, ‘Meditation teacher’가 되어야 해요.”nbspnbsp‘Meditation teacher’ 라는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수자타아카데미 교사를 하고 있는 ‘아제이’는 “명상하는 방법을 모른다”며 내일 스님께 명상하는 방법을 물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nbspnbsp명상센터 부지를 나와 조금만 더 걸어가니 부처님이 수자타의 공양을 받은 곳에 세워진 탑이 보였습니다.nbspnbsp▲ 수자타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곳에 세워진 탑nbsp마치 무덤처럼 작은 언덕이 되어 있었는데, 탑이 무너져서 지대가 높아진 것 같았습니다.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nbspnbspnbsp“이곳은 부처님이 수자타의 공양을 받은 곳입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스투파가 두 개 있어요. 하나는 부처님을, 하나는 수자타를 기리는 탑입니다. 경전에는 여기에 계시면서 수자타의 공양을 받았다고 간단히 묘사되어 있지만 건강이 회복되려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걸렸을 거예요.nbspnbspnbsp새로운 길인 중도도 발견했고 건강도 회복한 부처님은 이제 깨달음을 얻기 위한 마지막 정진을 하고자 했습니다. 강 건너 보드가야 쪽과 여기 둥게스와리 쪽 중 어디에서 마지막 정진을 할까 생각하다가 보드가야 쪽으로 가셨어요. 경전에는 둥게스와리 산신이 자꾸 청해서 동굴에 그림자를 남겨놓았다는 말이 있습니다.nbspnbsp그리고 여기에 부처님을 기리는 스투파가 있으니까 후세 사람들이 많이들 와서 수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수자타 템플이 생겼어요. 저기 보이죠?nbspnbsp▲ 뒤에 보이는 것이 수자타 템플nbsp그러다가 불교가 없어진 뒤 저 절은 힌두교 사원이 되었어요. 이름은 여전히 ‘수자타 템플’이지만 속은 힌두교 사원입니다. 이 탑도 부처님이 계셨던 곳을 기리는 뜻으로 세운 것인데 힌두교 쪽에서 이렇게 탑 위에 작은 사당을 지은 거예요. 이 지역은 모두 힌두교에서 소유하고 관리하고 있습니다.”nbsp불교인들에게는 부처님의 발자취가 깃든 소중한 곳이지만 힌두교에서 모든 관리 권한을 가져갔다고 하니 무척 아쉽게 느껴졌습니다.nbspnbsp수자타 템플 안에는 수자타가 부처님께 유미죽을 공양 올리는 모습의 조각상을 만들어 놓아 눈길을 끌었는데, 미얀마 절의 스님이 이곳이 성지임을 알리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주위는 모두 힌두교 사원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가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모습을 표현한 조각상nbsp수자타 템플에서 강가 쪽으로 다시 걸어가니 울창한 숲속에 우루벨라 가섭의 수행터가 있었습니다.nbspnbsp▲ 우루벨라 가섭의 수행터 입구nbsp인도인 스텝들은 이미 보광 법사님과 함께 한 차례 다녀간 적이 있기 때문에 직접 들어가보지는 않고 숲속 입구에 그늘이 넓게 드리워진 곳에 앉아 이곳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이곳은 우루벨라 가섭이 수행하던 곳입니다. 부처님은 성도 후 바라나시로 가셔서 처음으로 다섯 친구에게 법을 설하시고, 더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 이곳 우루벨라 가섭의 수행터로 오십니다.nbspnbspnbsp우루벨라 가섭을 교화하기 위해 무려 360가지의 신통력 경쟁을 했다고 해요. 그만큼 우루벨라 가섭이 자존심이 세고 교화하기 어려웠다는 겁니다. 삼형제가 다 합치면 제자도 1,000명이나 되고 나이도 80이나 되었으니 스스로 깨달았다고 하면서 자신만만했어요. 부처님은 이 1,000명을 앞에 두고 그 유명한 ‘불의 설법’을 했습니다.nbsp‘너희들은 밖에 있는 불은 이제 꺼버렸다. 그러나 아직도 마음속 탐진치 삼독의 불은 타고 있다.’nbsp불을 피워놓고 제사하는 의식은 버렸지만 마음속의 불, 다시 말해 욕심 부리는 탐심과 화내는 진심, 어리석은 치심은 아직 버리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러니 앞으로 수행을 해서 마음속의 불까지 꺼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 설법을 하신 장소가 가야쉬르사, 혹은 브람조니 올라가는 산중턱이라고 합니다.nbspnbsp불의 설법을 마친 부처님은 이제 1,000명의 대중을 이끌고 라즈길로 갔습니다. 우루벨라 가섭이 라즈길로 온다니까 빔비사라 왕이 마중을 나왔어요. 옛날에는 큰 스승이 오면 왕이 마중을 나갑니다. 여러분들 작년에 제띠안에 가봤죠? 제띠안에서 라즈길 가는 길에 있는 고개가 외성, 즉 바깥 성의 서쪽 문이 있던 자리에요. 그 안에는 내성이라고 해서 왕성이 따로 있습니다. 왕은 그 서쪽 문으로 나와서 제띠안이 있는 곳까지 마중을 나왔어요. 그래서 부처님과 빔비사라 왕이 제띠안에서 만났습니다. 빔비사라 왕은 아직 부처님은 몰랐기에 우선 우루벨라 가섭에게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어떻게 지냈습니까? 당신이 어떤 젊은이의 제자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마치 세 살 먹은 어린 아이가 팔순 노인에게 “이는 내 손자요”라고 말하는 것을 믿기 어렵듯이 믿기가 어렵습니다.’nbspnbspnbsp그러자 우루벨라 가섭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이마를 부처님 발에 대고 절한 후 부처님을 올려다보면서 이렇게 답했습니다.nbspnbsp‘이분은 나의 스승이고 나는 이분의 제자입니다. 내가 이분을 만나기 전에는 윤회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분을 만나고 나서 그 윤회의 씨앗을 버렸습니다.’nbsp윤회의 씨앗을 버렸다는 말은 니르바나를 얻었다는 뜻이에요. 그러자 빔비사라 왕이 ‘저 분이 바로 그 젊은 스승이구나’ 하고 부처님께 스승의 예를 갖춰 인사를 드리고 법문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그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데 여기서는 제띠안에서의 이야기까지만 할게요. 법문을 들은 왕은 부처님을 왕궁으로 청했지만 부처님이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의 북쪽 문 바깥에 있던 베누반 비하르, 즉 ‘죽림정사’를 부처님께 기증했습니다.nbsp그러니 이곳 가야 지역에서는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첫째,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기 전에 둥게스와리에서 여기 수자타 마을까지 이르는 지역에서 6년간 수행하셨어요. 둘째,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셋째, 깨달음을 얻은 뒤에 사르나뜨로 가셨다가 다시 오셔서 우루벨라 가섭, 나디 가섭, 가야 가섭을 비롯한 사람들을 교화하셨어요.nbspnbspnbsp이곳에 오는 많은 사람들이 ‘보드가야에서 부처님이 깨달았다’라는 하나만 알고 갑니다. 제대로 알려면 ‘수행하고. 깨닫고. 교화했다’라는 세 가지를 다 알아야 해요. 우루벨라 가섭을 비롯한 1,000명을 교화했기 때문에 빔비사라 왕을 교화할 수 있었던 거예요. 부처님 혼자 갔다면 빔비사라 왕이 부처님을 알아볼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러니 이 전체를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보드가야는 그래도 많이들 아니까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한테 물어도 알 수 있지만, 그 외 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여러분들이 잘 알아서 알려줘야 해요. 사무지가 헤?”nbsp“예스” nbspnbsp한 해에도 수 십만 명이 보드가야를 참배하고 가지만 오늘 스님이 알려준 이런 곳들은 대부분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에 인도인 스텝들은 더욱 귀를 쫑긋 세우고 스님의 설명을 경청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마을에서 일어난 일들이니까 자신들이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지만 점심 식사가 식당에 예약되어 있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설명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nbspnbsp마침 저 멀리 네이란자라 강 건너편에 전정각산이 끝나는 부분이 살짝 보였습니다. 스님은 우기 때가 되면 마치 바다 위에 전정각산이 떠 있는 것처럼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전정각산을 배경으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으로부터 마을 주위에 남아 있는 부처님의 발자취에 대해 많은 설명을 들었기에 인도인 스텝들은 고향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히 커진 것 같았습니다. 기념 사진을 찍는데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nbspnbsp다시 논두렁 길을 따라 보드가야 대탑이 있는 쪽으로 걸었습니다. 이제 인도인 스텝들은 이 마을이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일 것입니다. 신이 났는지 얼마전 정토회 성지순례단의 스텝으로 참여했었던 아미타부는 자신이 본 여러 성지의 모습을 재미있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논두렁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볏집이 어마어마하게 쌓여져 있었는데 그 앞에는 엄청난 규모로 수자타의 공덕을 기리는 탑이 세워져 있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의 공양을 기념하여 세워진 탑nbsp볏짚의 양을 보니 수자타가 그 당시에도 부자였지만 지금까지도 그 후손들이 조상대대로 풍족하게 살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수자타의 공덕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수자타가 부처님께 공양 올린 것이 훌륭한 줄은 불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죠. 특히 이것은 부처님이 되신 뒤에 공양 올린 것이 아니라 그냥 한 수행자로 쓰러져 계실 때 공양을 올린 것이기 때문에 더욱 칭송받을 만합니다. 요즘에 비하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대접했는데 그 사람이 그걸 먹고 살아나서 부처가 된 거예요.nbspnbspnbsp우리 학교 이름이 ‘수자타 아카데미’인 이유도 우리가 여러분 같은 동네 아이들에게 음식을 먹이고 교육을 시키면 여러분들이 커서 다들 부처님 같이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부처님 같이 돼야 저도 수자타처럼 공양 올린 사람이 되어 칭송받는 거예요. 사무지가 헤?”nbsp“예스”nbsp왜 학교 이름이 ‘수자타 아카데미’가 되었는지 설명을 듣자 모두 활짝 웃었습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nbspnbsp수자타의 수투파 앞에는 작은 학교가 하나 세워져 있는데, 학교 앞에서 법륜 스님의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가 수자타아카데미라고 선전하면서 구걸을 하는 청년들이 일부 있다는 제보가 많이 있었습니다. 인도인 스텝들이 저 사람이라고 알려주어서 찾아가서 그러면 안 된다고 설득을 시도했는데, 자신은 아니라고 발뺌을 하고 다른 사람이 더 있다고 얘기해서 다음에 다시 오기로 하고 지나갔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해서 전정각산에서 수자타 마을까지의 도보 순례를 모두 마쳤습니다. 보드가야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는 중에 오토릭샤를 잡아 타고 다함께 점심식사 장소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 보드가야로 넘어가는 다리nbsp인도인 스텝들은 돈을 절약하려고 오토릭샤 한 대에 건장한 청년 15명이 탑승하는 진기명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오토릭샤가 앞바퀴를 휘청하면서 울퉁불퉁한 길을 무사히 지나가는 모습은 절로 감탄이 나오게 했습니다.nbspnbsp▲ 작은 오토릭샤에 장정 15명이 탑승nbsp오늘 점심 식사는 스님이 특별히 허락해 주셔서 풍족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한해 동안 학교 운영을 위해 고생이 많았던 인도인 스텝들과 한국인 스텝들, 새로 파견을 온 행자대학원생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더군다나 인도JTS의 이사 중 한 명인 나레스지가 운영하는 곳이어서 저렴한 가격에 아주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식사를 마치고 나서 스님은 인도인 스텝들에게 내일 오후에 두르가푸르자그디스푸르 청년팀과 축구 시합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인도인 스텝들은 이길 자신이 있다며 흔쾌히 수용을 했습니다. 무슨 근거로 자신 있어 하는지 몰라서 스님도 쁘리앙카도 모두 웃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혹시나 승부가 과열되어서 싸우게 될 것을 우려했는지 “일부러 질 필요는 없지만, 너희가 지는 것 또한 마을 청년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일이 되니 좋은 것 아니냐”며 경쟁하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다시 학교로 돌아오자 인도인 스텝들은 그동안 아이들 가르치고 공부하느라 축구 연습을 오랫동안 못했다며 막판 집중 연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평소 실력대로 해야지” 라며 웃음을 보인 후 숙소로 들어왔습니다.nbspnbsp저녁 7시부터는 목요 수행법회가 열렸습니다. 사무실 한 쪽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법복을 수한 채 여법하게 법문을 듣는 모습 속에서 수행의 자세를 놓치지 않으려는 행자님들의 의연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목요 수행법회가 열리는 동안 스님은 인도를 떠나기 전 처리해야 할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보면서 일찍 휴식을 취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 8시부터 인도인 스텝들과 집중 수련을 할 예정입니다. 학교를 운영하면서, 함께 일하면서, 공부하면서 들었던 여러 가지 의문과 고민들을 스님께 묻고 답변 듣는 시간을 가진 후 오후에는 마을 청년팀과 축구 시합을 할 계획입니다.nbsp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는 인도 불가촉 천민 마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수자타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nbspnbsp
2016.2.3 (인도 29일째) 수자타아카데미 개교 22주년 기념식 및 마을잔치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수자타아카데미 개교 22주년을 맞이해 내빈과 마을주민들 2천여 명을 초대해 마을 잔치를 열었습니다.nbspnbsp새벽 5시, 스님은 원고 교정을 보느라 조금 늦게 새벽예불에 참석했습니다. 예불과 기도를 한 후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예불nbsp기도 후에는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 스님은 오늘 있을 개교 22주년 기념식의 각 분야에서 역할을 담당한 대중들에게 행사에 임하는 마음 자세에 대해 말씀해 주었습니다.nbspnbsp“오늘 마을잔치를 하는 취지는 마을사람들을 손님으로 초대해서 잔치를 베풀어주기 위해서예요. 마을 사람들이 무질서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통제는 필요하지만 오늘은 구호활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호품 나눠주듯이 쿠폰을 준다고 하는데, 이것은 마을사람들을 구호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주민들이 무대 위에 올라와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는 잔칫날입니다.nbspnbspnbsp처음에는 노인들만 초대해서 잔치를 했어요. 그런데 15살 된 소년이 참석을 해서 ‘너 왜 왔니?’ 물어보니 ‘아버지를 대신해서 왔습니다’ 했어요. 이곳은 우리들의 기준과는 달리 15살만 넘으면 어른이 되니까 아무도 이것을 문제삼는 사람이 없었어요. 여기 문화가 그렇다는 것을 이해한 다음부터는 15세 이상을 모두 초대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그러니 오늘은 통제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중심을 통제에 두면 안 됩니다. 일찍 문을 열고 문앞에서 인사하며 정성껏 맞이하고, 쿠폰이 아닌 초대장을 나눠주어야 합니다. 점심 식사도 원래는 차려주어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패킹을 해서 나눠주기로 한 겁니다.nbspnbspnbsp우리는 마을 주민들을 구호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데 우리가 이 마을에 온 목적은 마을주민들에게 갑질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게 잘 안 되죠. 자꾸 통제를 하다보면 갑을 관계가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 만큼이라도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서 같이 식사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하고자 하는 겁니다. 개교기념식은 학교 행사이지만 마을잔치는 주민을 위한 행사입니다. 이 날은 우리가 베풀어서 선물도 주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손님을 접대하는 마음으로 임해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우리가 이 마을에 온 목적은 갑질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는 말씀은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스텝들은 각자 행사 준비를 하러 흩어졌습니다.nbspnbsp9시가 되자 주민들이 조금씩 입장을 하기 시작했고, 10시가 되자 거의 2천여 명에 육박하는 많은 사람들이 쁘락보디홀 대강당에 가득 모였습니다.nbspnbsp▲ 쁘락보디홀nbsp스님은 9시 30분부터 내빈들을 맞이했습니다. 이곳 가야지역의 연방국회의원인 하르만지, nbsp주의원인 사르와드지, YMCA 회장, 유영굴 앞 티벳절 주지스님 등 많은 내빈들이 참석해 개교 22주년을 축하해 주었습니다.nbspnbsp▲ 하르만지 MPnbsp식전에 다과를 하며 담소를 나누다가 10시가 되자 함께 행자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세계공용 예불문을 함께 한 후 학생들의 교가 및 구호 제창과 함께 개교기념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쁘리앙카 교장선생님이 내빈들과 마을주민들을 맞이하는 환영사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 쁘리앙카 수자타아카데미 교장선생님nbsp“오늘 처음으로 개교기념식과 마을잔치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같이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풍족한 환경에서 공연 연습을 하지 못해서 많이 서툽니다. 그렇지만 열심히 준비했으니 기쁜 마음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nbspnbsp개교기념식과 마을잔치를 함께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내빈들과 마을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자 모두들 더 좋다며 반가워 했습니다.nbspnbsp주요 내빈들에 대한 소개가 있은 후 본격적으로 학생들의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중등 여학생들의 댄스를 시작으로, 초등 남학생 댄스, 초등 여학생 댄스가 연이어 이어지자 모두 환호를 하며 기뻐했습니다. 특히 마을 주민들은 자기 아이가 무대 위에 오르자 너무나 기뻐하며 어쩔줄 몰라 했습니다.nbspnbsp▲ 중등 여학생 댄스nbsp▲ 초등 여학생 댄스nbsp▲ 태권도 시범nbsp이어서 인도JTS 이사장으로 보드가야에 거주하며 법인 운영 등과 관련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쁘리야팔 스님이 격려사를 해준 후 이번에는 마을주민들의 공연이 펼쳐졌습니다.nbspnbsp바가히 마을을 시작으로 자그디스푸르, 안투비가, 까나홀, 힌두 사두들로 구성된 팀까지 총 5개의 공연팀이 평소 갈고 닦은 노래와 연주 실력을 뽐내었습니다. 대부분 동네 어르신들이다보니 흥에 겨우면 막춤을 추거나 신들린 듯이 북을 두드리는 모습에 내빈들도 크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또 중간에 남자가 여자 분장을 하고 나와 춤을 출 때는 마을주민들도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nbspnbsp▲ 마을 주민들의 코믹하고 열정적인 공연nbsp▲ 힌두 사두들로 구성된 특별팀nbspnbsp▲ 마을 주민들의 공연을 보며 기뻐하는 스님nbsp신나게 펼쳐지고 있던 공연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 오늘의 주요 내빈인 국회의원 하르만지가 무대 앞으로 나와 축사를 해주었습니다. 하르만지는 축하의 마음을 전함과 동시에 학부모들이 교육의 눈을 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nbspnbsp▲ MP 하르만지nbspnbsp“22주년 기념식 뿐만 아니라 마을잔치도 한자리에서 하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학교를 설립한 법륜 스님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을 위해 교사들을 훈련시키고 부모님들도 깨우칠 수 있게 해준 쁘리앙카 교장선생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nbspnbsp둥게스와리 아이들이 교육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일은 너무나 훌륭한 일입니다. 지금 인도는 아직도 많은 지역에서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둥게스와리에는 수자타아카데미와 같은 좋은 학교가 있으니까 마을에서 온 학부모들께 특별히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매일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서 꼭 교육을 받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nbspnbsp밥 한끼 덜 먹이더라도 학교는 꼭 보내야 합니다. 조금 전 처럼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멋진 춤과 공연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교육의 효과입니다. 교육에 대해서 눈을 뜨십시오. 아이들이 공부를 하게 되면 수상이 될 수도 있고, 의사가 될 수도 있고, 기술자가 될 수도 있고, 공무원도 될 수 있습니다.”nbspnbsp마을주민들의 큰 박수가 쏟아졌고, MP 하르만지도 주민들의 환대와 아이들의 멋진 공연에 무척 감명을 받은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선물 증정식이 열렸습니다. 공연을 보여준 마을팀과 학생팀을 위해 스님이 무대로 나와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특히 마을팀에게는 큰 물통이 선물로 주어져서 웃음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nbspnbsp▲ 선물 증정식nbsp이어서 수자타아카데미의 설립자인 법륜 스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참석한 내빈들과 주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모두가 함께 둥게스와리를 멋진 마을로 만들어나가 보자고 했습니다.nbspnbspnbsp“나마스떼 오늘은 수자타 아카데미가 개교한 지 22주년째 되는 날입니다. 처음 이곳에서 수업을 시작했던 어린아이들이 이제는 다 자라서 청년이 됐습니다. 학부형 여러분, 아까 자녀들이 올라와서 멋있게 춤추는 거 보셨죠? 자랑스러워요?”nbsp“예”nbsp“오늘 행사뿐 아니라 평소에도 늘 참여해주시는 MP 하르만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큰 박수로 다시 한 번 환영해 주십시오. nbspnbsp보드가야 MLA님께서도 오늘 처음 참석해주셨으니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nbsp우리 인도JTS 대표를 맡고 계시는 쁘리야팔 스님께도 박수 부탁드립니다.nbspnbsp그 외에도 티벳 스님과 YMCA 회장님을 비롯해 많은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한 분 한 분 다 말씀드리지는 못하지만 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nbspnbsp지난 22년을 돌아보면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2002년에는 한국에서 자원봉사 오셨던 설성봉 거사님이 강도들이 쏜nbsp총에 맞아 돌아가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물론 아직 마을의 가난을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의 문맹퇴치는 거의 이루어졌습니다. 이 주위에서 이제는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는 없어졌습니다. 정부 학교도 조금씩 생겨나 이제는 잘 운영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JTS와 정부는 서로 협력해서 아이들의 교육을 잘 이끌어나갈 것입니다.nbspnbsp우리가 교육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방금 전처럼 귀여운 아이들의 재롱을 보겠습니까? 좀 더디기는 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보다 우리의 미래에 더 큰 희망은 없습니다. 교육이 없다면 이 아이들은 여기서 구걸하는 것 외에 다른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아이들은 교육을 받게 되었고, 여러분이 보셨다시피 수많은 재주를 발현시켜 보여주고 있습니다.nbspnbsp인도 정부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이제 경제개발을 하면서 인도 전체가 많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인도는 오랜 역사를 가진 문화국가입니다. 지난 100200년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제 인도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교육이며 마을 개발을 비롯한 많은 부문에 정부의 역할과 지원이 있을 겁니다.nbspnbspnbsp그러나 우리들의 삶은 외부의 지원만으로 변화되지는 않습니다. 우리 자신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사는 우리 마을은 우리가 힘을 합쳐 개발해나가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 공부를 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아픈 사람이 치료받지 못하는 불행은 없어져야 합니다. 부유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건강하게는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둥게스와리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우리 마을을 만들어 봅시다.nbspnbsp처음 이곳에 학교를 만들 때 마을 사람들이 땅을 보시했습니다.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작은 보시를 한 것입니다. 지금은 마을마다 유치원이 있습니다. 그것도 모두 가난하지만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땅을 보시해준 덕분입니다. 이렇게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nbspnbsp이제는 마을개발을 위해서 우리가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안도 연구해야 합니다. 지금은 형편이 조금 힘들지만, 우리가 힘을 합쳐 함께 노력한다면 아이들이 이렇게 성장해나가듯 우리의 삶도 훨씬 더 좋아지고 개선될 것입니다.nbspnbspnbsp오늘은 학교 개교기념일인 동시에 마을 잔칫날입니다. 음식 준비가 다소 넉넉하지 못하더라도 잘 드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와주신 내빈들과 마을 주민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nbsp힘을 합쳐 함께 노력한다면 아이들이 성장하듯 주민들의 삶도 개선되어나갈 것이라는 이야기에 주민들은 기쁜 마음으로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nbspnbsp스님의 말씀이 끝나자 곧이어 오늘의 하이라이트 공연인 개교 22주년 메모리얼 댄스가 펼쳐졌습니다. ‘Heal the world’는 노래가사와 학생들의 멋진 춤동작이 어우러지며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아이들은 무대 아래로 내려가 학교 설립자인 법륜 스님을 비롯해 주요 내빈들을 무대 위로 모셨습니다. 폭죽이 터지자 공연은 절정에 다달았습니다.nbspnbsp▲ 개교 22주년 메모리얼 댄스nbsp아이들은 학교의 설립자와 도움주시는 분들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 개교기념식 때마다 이렇게 메모리얼 댄스를 연습하고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nbspnbsp이렇게 모든 행사가 끝나고 내빈들은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nbsp그리고 마을 주민들은 점심 식사와 선물을 학교 정문에서 받아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가난한 마을에서 선물을 배분할 때는 보통 질서가 무너지고 아수라장이 되기 쉬운데 둥게스와리 마을 주민들은 그동안 훈련이 잘 되어서 그런지 차례대로 줄을 서서 질서정연하게 선물을 받아갔습니다.nbspnbspnbsp▲ 패킹된 점심 식사와 선물을 받아가는 마을주민들nbsp학교 아이들도 집에 가져다 줄 식사 끼니를 푸짐하게 받아갔습니다.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손에 들고 교문을 향해 걸어나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너무나 신나보였습니다.nbspnbspnbsp선물을 받아든 주민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패킹된 선물 주머니 속에는 뿌리 15장, 사브지와 달 등이 푸짐하게 담겨 있어 온 가족이 함께 먹을 수 있게 했는데, 오늘 마을에는 오랜만에 집집마다 웃음이 넘쳐날 것 같습니다.nbspnbspnbspnbsp주민들이 집으로 향하는 사이 스님은 학교를 지을 때 처음으로 땅을 보시해 준 사람들에게 찾아가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매년 스님은 땅을 보시한 분들을 알뜰히 챙기시는데, 그 이유는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마을 전체를 위해 보시하는 마음을 내었다는 것은 설령 그것이 작은 돈일지라도 무척 값지기 때문일 겁니다.nbspnbsp▲ 처음 학교를 세울 때 땅을 보시해 준 주민들nbsp이렇게 개교기념식과 마을잔치를 성대하게 잘 마친 후 곧이어 오후 1시 30분부터는 인도JTS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이사회 구성원들은 대부분이 인도 사람들인데, 모두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스텝으로 일하고 있거나 가야와 보드가야 등 인근 지역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시는 분들입니다.nbspnbsp▲ 인도JTS 이사회nbsp먼저 스님이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인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수자타아카데미가 개교 22주년이 되었는데요. 지금까지가 1단계였다면 이제 2단계는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함께 의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자라나서 이제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쁘리앙카도 다시 인도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이사회 회장님도 인도 분이고, 교장선생님과 교감 선생님도 인도 분입니다.nbspnbsp이제 저희 한국 사람들은 여러분들이 현장에서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적극 돕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정말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협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1년 동안 여러 부분에서 협력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nbsp▲ 이사회의 대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인도인들nbsp스님은 지난 22년은 한국 사람들이 주축이 되었지만 지금부터는 인도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나아가고 있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는 점을 짚어 주자 인도 사람들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 몇 년만 더 흘러가면 정말로 한국 사람들은 보조 역할만 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JTS의 사업목표는 마을주민들이 자립하는 것이니까요.nbspnbsp이어서 쁘리앙카 교장선생님의 사회 2015년 사업 보고와 2016년 사업계획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있었습니다. 초등과정, 중등과정, 교사 파트, 시설, 행사, 정부 사립학교 인준, 마을 청년회 조직, 병원 파트, 주민생활 개선, 소득증대 사업 개발, 마을 리더 양성, 재정, 홍보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사업 보고와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nbsp토론하는 모습 속에서 정말로 이제는 이곳 인도인들이 주인이 되어 학교 운영과 마을개발이 이뤄져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이사회를 마치고 나서는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돌아가는 이사회 분들에게 양말, 달력, 담요 등 선물도 알뜰히 챙겨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사회가 이뤄지고 있는 사이에 수자타아카데미 중학생들은 열심히 행사장 뒷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후 늦게까지 남아서 깔끔하게 청소를 하고, 마무리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주인이 되어가고 있는 아이들의 변화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마을주민들과 학생들이 모두 돌아가고 스님은 개교 1주년 기념식 때 심은 보리수 나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올해 22주년이니까 벌써 22년의 세월을 수자타아카데미의 역사와 함께한 나무인 셈입니다.nbspnbsp▲ 22년 전 스님이 마을주민들과 함께 처음 학교를 지을 때의 모습nbsp▲ 개교 1주년에 심은 나무가 22년이 흘러 큰 고목이 되었습니다.nbspnbsp나무가 저렇게 커갔던 만큼 아이들도 쑥쑥 자라 의젓한 선생님이 되었고, 학교와 마을에도 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었습니다. 나무에 짙게 드리운 주름을 보며 수자타아카데미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역경과 고난이 있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다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nbspnbsp학교 옥상에 올라가니 한낮을 뜨겁게 비추던 태양이 뉘엿뉘엿 지평선 너머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가 지지만 내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해가 다시 뜨듯이 둥게스와리 마을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한 많은 JTS의 노력도 쉼없이 계속 될 것입니다.nbspnbspnbsp저녁 7시부터는 오늘 행사를 준비한 한국인 스텝들이 모여 행사 평가회의를 가졌습니다. 마을주민들이 입장할 때와 퇴장할 때의 개선점, 내빈들에게 선물을 나눠줄 때 유의해야 할 사항, 점심 식사 준비, 학생들과 주민들의 공연 준비와 행사 프로그램 등 다양한 측면에서 개선점이 도출하고 의견을 모아나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 행사 평가 회의nbsp스님은 “평가 내용을 잘 기록해 두었다가 내년에 행사를 담당하는 사람이 꼭 읽어보고 준비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당부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인도인 스텝, 한국인 스텝 모두가 다함께 부처님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전정각산을 시작으로 수자타 마을을 지나 보드가야 대탑까지 도보로 성지순례를 다녀올 예정입니다. 원래는 멀리 소풍을 갈 계획이었는데 인도인 스텝들이 자신들도 자신들의 마을에 대해 잘 모른다며 부처님의 발자취에 대한 설명을 스님께 요청했기 때문입니다.nbsp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는 인도 불가촉 천민 마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수자타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nbspnbsp
2016.2.2 (인도 28일째) 둥게스와리 마을 리더, 유치원 교사, 청년회 미팅
▲ 둥게스와리 마을리더들과 함께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둥게스와리 마을유치원을 둘러본 후 오후에는 마을리더, 유치원교사, 마을청년회 멤버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새벽 4시 30분, 아직 해가 뜨지 않아 껌껌한 가운데 수자타아카데미 전정각사에 도량석 소리가 울려퍼집니다. 스님은 9기 행자대학원생들과 함께 예불과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2600년 전 부처님도 이곳 어딘가에서 명상을 하며 정진을 하셨을 것입니다.nbspnbsp▲ 새벽예불nbsp이어서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 스님은 어제에 이어서 전기를 아껴서 사용할 것을 다시 한 번 당부했습니다. 마을에는 아직 전기가 안 들어오는데 항상 마을 사람들과 비교해서 너무 격차가 나지 않도록 살고, 자연 채광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아침 8시 30분에는 산 너머 마을에 있는 유치원 4곳을 방문했습니다. 산 너머에는 양민들이 비교적 많이 살고, 정부학교가 들어서 있어서 JTS가 직영하는 유치원을 졸업하면 대부분이 정부학교로 입학하게 됩니다. 물론 까나홀 마을에는 JTS가 운영하는 수자타아카데미 분교가 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관리가 소홀해지기가 쉬워서 스님은 직접 방문해서 살펴보기로 했습니다.nbspnbsp▲ 산 너머 마을로 가는 도로nbsp먼저 스리람푸르 유치원을 방문했습니다. 출근해야 하는 교사가 2명인데 1명 밖에 없었습니다. 나머지 1명은 어디 갔냐고 물으니 출근을 안 했다고 하고, 오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주 출근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실하지 못한 교사 한 명을 금세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나머지 한 명의 선생님에게 매일 나오도록 잘 얘기하라고 당부한 후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었습니다.nbspnbspnbsp▲ 스리람푸르 마을유치원nbsp특히 유치원 마당이 고르지 못하고 울퉁불퉁 했는데 스님은 마당을 시멘트로 깔아주면 좋은지, 아이들이 놀 수 있게 고운 모래를 깔아주면 좋을지 나중에 체크해 보기로하고 스리람푸르유치원을 나왔습니다.nbspnbsp다음은 바가히유치원을 방문했습니다. 이곳에는 수자타아카데미 출신의 결혼한 여성이 유치원 교사를 하고 있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 바가히 마을유치원nbsp먼저 스님은 교사들이 보고한 학생수와 오늘 출석한 학생수를 비교해보았는데 차이가 너무 많이 났습니다. 즉 결석한 학생 수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일부가 사립학교로 옮기거나 부모님을 따라 벽돌공장에 갔다는 대답을 했습니다.nbspnbspnbsp대화를 더 해보면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첫째, 양민들이 사는 곳이다 보니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면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사립학교에 보낸다는 것이고, 둘째, 아직도 가난한 부모들 중에는 교육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아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마을에도 빈부 격차가 커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유치원을 나오니 교사가 개선점을 한 가지 더 요구했습니다. 앞마당이 조금 더 지대가 높아서 비가 오면 물이 교실 쪽으로 들어온다는 것이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앞마당에 흙을 더 파내어서 지대를 낮추고 핸드펌프가 있는 플랫폼의 둔턱을 높여서 물이 흘러 넘치지 않도록 하고 마당에 수로를 깊이 파서 물이 잘 빠지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한 후 유치원을 나왔습니다. nbspnbsp다음은 가왈비가유치원을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교실 전체가 많이 어두웠습니다. 창문을 열고 자연 채광을 최대한 활용하면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보고,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고 선생님들을 격려해준 후 유치원을 나왔습니다.nbspnbspnbsp▲ 가왈비가 마을유치원nbspnbsp다음은 까나홀유치원과 까나홀분교를 방문했습니다. 두 곳은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운영하고 있는 곳입니다. 운동장에 도착하고 나서는 가장 먼저 학교 앞마당 주위에 담장을 어떻게 칠지 둘러보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자꾸 학교 앞마당에 와서 똥을 누고 가기 때문에 학교가 점점 화장실이 되어간다며 교사가 개선점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nbspnbsp▲ 동네 화장실이 되어가고 있는 까나홀 분교 운동장nbspnbsp스님은 교사에게 담장을 제대로 쳐주겠다고 약속을 한 후 우물 앞에 핸드펌프가 고장난 곳을 살펴보았습니다.nbspnbsp▲ 고장난 핸드펌프와 우물nbsp핸드펌프가 고장이 난 것도 있었지만,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우물 안에는 각종 쓰레기들이 버려져 굉장히 지저분했습니다. 스님은 핸드펌프는 수리를 해줄테니 학교 앞마당에 담장을 칠 때 우물 안도 깨끗이 청소해줄 것을 부탁한 후 교실을 둘러보았습니다.nbspnbsp2학년 교실에 들어가서는 스님이 직접 수학 문제를 칠판에 써서 아이들의 실력이 어느정도 되는지를 테스트해 보았습니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자 여러 명이 자신있게 손을 들었지만 막상 문제를 풀도록 시켜보면 오답을 적거나 계산이 무척 느린 경우가 많았습니다.nbspnbsp▲ 아이들의 실력을 체크하기 위해 수학 문제를 칠판에 적고 있는 스님nbsp반면 노트 필기도 아주 깔끔하게 하고, 계산도 쑥쑥 잘하는 아이들도 있어서 개별적으로 학습 수준의 편차가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1학년 교실에는 영어 알파벳을 배우는 수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스님이 한 학생을 가리키며 알파벳을 읽어보라고 하자 앞으로 나와 아주 큰 목소리로 읽었습니다.nbspnbsp▲ 초등학교 1학년의 알파벳 수업nbspnbsp그런데 “H”, “F”, “X”의 발음이 모두 비슷해서 아직 이 아이는 그냥 소리만 흉내낼 뿐 정확히 구분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스님이 환하게 웃으면서 “내일 수자타아카데미에서 개교기념식과 마을잔치 하는 것 알고 있죠? 예쁘게 옷입고 와서 맛있는 거 많이 드세요” 라고 하자 아이들은 아주 기뻐하며 “스님지, 단야와드” 라고 하며 합장하고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nbsp자르하르마을에도 유치원이 하나 더 있는데 시간이 부족해 방문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산 너머 마을유치원과 까나홀 분교 방문을 모두 마치고 스님은 까나홀분교 교무실에서 산 너머 마을유치원과 학교 운영을 총괄하고 있는 카필데오지 선생님과 잠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결석하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됩니까?”nbsp“입학생이 총 111명이었는데 그 중에 자르하르에 사는 6명이 학교를 그만두었어요. 나머지는 하루 이틀씩 결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학생들이 결석하면 왜 안 왔는지 제가 확인하러 찾아가 보기도 합니다.”nbspnbsp“방금 유치원을 방문해보니까 한달에 400루피씩 주고 다른 사립 유치원에 간다는 학생들이 있던데요.”nbsp“까나홀은 사립 유치원보다는 정부 유치원이 있어서 거기에 대부분 다녀요. 작년에 수자타 분교 2학년을 마치고 대거 정부 학교로 보내면서 3학년 인원이 유독 많습니다. 까나홀마을은 정부 학교가 있지만 자르하리와 가왈비가마을은 정부 학교가 없어서 대부분 까나홀분교로 옵니다.”nbspnbsp“수자타 분교에서 2학년을 마치면 전부 정부학교로 보내는 것이 나아요? 수자타아카데미로 좀 보내는 것이 나아요?”nbsp“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수자타아카데미에 다니기를 원합니다.”nbsp스님이 처음 수자타아카데미를 세울 때는 학교가 전혀 없었지만, 이 둥게스와리 지역에도 이제 정부 학교가 6개나 운영되고 있어서 JTS에서는 정부 학교가 있는 마을 아이들은 모두 인근에 있는 정부 학교에 다니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nbspnbsp대화를 마치고 스님은 카필데오지가 연세도 있는데다가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수업은 하지 말고 관리만 하고 건강에 무엇보다 유념해줄 것을 당부한 후 인사를 하고 학교를 나왔습니다.nbspnbsp학교에 도착하고 나서는 학교 담벼락을 살펴보았습니다. 정부에서 공원 조성을 한다고 학교 담벼락 바로 앞에 1미터도 채 안되게 바짝 붙여서 땅을 파고 담장을 높게 쌓아서 우기 때 비가 오면 담장 붕괴가 우려되었습니다.nbsp▲ 학교 담장과 정부에서 공원 조성을 위해 새로 쌓은 담장nbspnbsp점심 시간에는 학교 주위를 더 둘러본 후 오후 1시부터는 마을리더, 마을유치원 선생님들과 함께 둥게스와리 마을 발전을 위해 다양한 의견을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먼저 스님이 “작년 3월에 방문하고 1년 만에 왔는데, 그동안 잘 지냈어요?”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마을리더들은 “올해 비가 적게 와서 벼농사와 밀농사 모두 잘 안 되었다”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어서 어느 마을에서 누가 참석했는지 일일이 확인한 후 마을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건의를 받고 스님의 생각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 마을리더, 마을유치원 교사들과의 미팅nbsp마을유치원을 오전에 방문해 보니 운영비를 안 내는 학부모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스님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먼저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nbspnbspnbsp“다른 사립 유치원에 가면 한달에 400루피, 800루피씩 돈을 내야 하는데 왜 마을 어머니들이 10루피, 20루피 밖에 안 하는 유치원 운영비도 안 내려고 해요? 등록한 학생들이 다 운영비를 내요? 안 내는 사람들이 많아요?nbspnbsp“이때까지 유치원이 다 무료였는데 왜 이제 와서 돈 달라고 하느냐며 안 줍니다. 운영비 안 내는 아이들에게 운영비 가져오라며 집에 보내면 가서 그냥 안 돌아온대요. 왜 이렇게 가난한 아이들에게 돈 달라고 하느냐며 항의해요.”nbspnbsp“지금까지는 무료로 했는데 10루피를 받는 이유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는지 안 가르치는지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10루피라도 내어서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가지라고 그렇게 한 거예요. 또 마을유치원 선생님들도 아이들을 잘 가르치면 수입이 조금이라도 늘어나기 때문에 열심히 가르치라고 이렇게 해본 거잖아요.nbspnbsp산 너머 마을유치원은 중학생들이 가기가 어렵고, 마을에 맡겨 놓으니 유치원 문을 열지 않는다는 민원이 많은데, 학교에서 거리가 멀어서 매일 감독하기도 어렵고 해서 작년에 많은 의논을 한 끝에 만든 제도인데 또 이런 문제가 있군요.nbsp그러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유치원을 새롭게 수리하고 단장을 해서 좀 더 좋게 만들고, 교육 기자재도 좀 더 갖추고, 여러분들도 더 열심히 가르쳐서 다른 사립유치원 보내는 것만큼이나 좋다는 생각이 들면 돈을 더 내라 해도 내지 않겠어요? 아무리 가난해도 한달에 20루피, 30루피 정도는 낼 수 있지 않아요? 그 정도도 못 낼 만큼 어려워요?”nbsp“낼 수 있습니다. 한 달에 30루피라 해도 하루 1루피밖에 안 돼요. 지원 받는 게 얼마나 많은데 돈이 문제가 아니라 관심이 없어서 그래요.”nbsp이어서 핸드펌프가 고장났다며 새로 더 만들어달라는 건의가 있었습니다. 스님은 이에 대해 답해주면서 책임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유치원이 있는 마을에 10가구가 사는데, 물을 풀 수 있는 다른 핸드펌프가 없어서 유치원 안의 핸드펌프를 같이 쓰느라 고장이 잦습니다. 전에 수리 다 해놓고 잠금장치를 설치했더니 잠금장치도 다 부숴버렸어요. 다른 가구들이 쓸 수 있도록 유치원 밖에도 핸드펌프를 하나 더 설치해주시면 좋겠습니다.”nbspnbsp“지금 마을마다 핸드펌프 하나 당 대략 몇 가구가 써요?”nbsp“10가구 정도는 충분히 씁니다. 그러나 많이 쓰면 자꾸 고장 납니다.”nbspnbsp“왜 자기들이 마실 물을 얻는 핸드펌프를 스스로 고장 내는지 이해가 안 돼요. 고장 내서 못 쓰면 자기 손해잖아요. 살살 쓰도록 교육을 좀 시켜야 해요. 이렇게 자꾸 고장을 내니까 제가 수리비를 마을에서 절반 내면 JTS에서 절반 내겠다고 한 거예요. 돈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책임을 좀 지라는 뜻입니다.”nbsp스님은 마을 사람들이 더욱더 책임감을 갖고 참여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연구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천민들이 모여 사는 가장 가난한 마을인 아자드비가와 안투비가에서 최근에 먹고 살기가 무척 어려워졌다며 하소연을 했습니다.nbspnbspnbsp“지금 아자드비가와 안투비가 마을에 문제가 많습니다. 2년 전부터 여기 벽돌 깨는 작업이 금지되어서 우리들이 먹고 사는 게 너무 어려워졌어요. 가족들이 애들까지 데리고 다른 데 가버리기 때문에 아이들이 지금 제대로 공부도 못 하고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가 아직 마을에서 소득이 될 만할 걸 만들 방법이 없잖아요.”nbsp“분교 건물이 그냥 잠겨 있습니다. 분교 건물을 열어 뭔가 작은 사업 같은 걸 시작해서 생활비를 좀 벌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나왔습니다.”nbsp“거기에서 마을 전체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nbsp“물레 같은 걸 놔두면 마을 사람들이 그걸로 생활비를 좀 벌 수 있을 겁니다.”nbsp“물레 교실을 운영한다 해도 그 기계를 밤에 누가 훔쳐가 버리면 어떻게 지켜요? 그 문제만 아니면 물레 교실을 운영할 수도 있어요.”nbspnbsp“우리 이익을 위해 사용할 우리의 물건이니까 이 문제는 마을에서 다시 회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관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따로 이야기를 더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nbsp“학교에 이렇게 담장이 높게 쳐져 있는데도 넘어 들어와서 병원 옥상에 있는 태양열 집열판까지 떼어 가잖아요.nbspnbspnbsp지금은 물레가 학교 안에 있지만, 사실은 두르가푸르 마을이나 자그디르푸르 마을에 두는 게 우리도 여러분들도 훨씬 나아요. 원래는 학교 안에 있을 시설이 아니지만 훔쳐가는 문제 때문에 할 수 없이 학교 안에 두고 있거든요. 마을에서 보호만 할 수 있다면 이걸 마을로 옮기는 게 더 좋아요. 여러분들이 사용하기에도 더 가깝고요.nbspnbsp물레 말고 다른 아이디어는 또 뭐 있어요? 제가 지난번에 마을을 돌아보면서 염소를 먹이는 것도 생각해봤는데, 풀이 별로 없어서 힘들 것 같았어요.”nbsp“맞아요. 풀이 아예 없습니다. 그리고 염소를 그나마 풀이 좀 있는 곳에 매어놓으면 또 다 훔쳐갑니다.”nbspnbspnbsp“어쨌든 마을에서 아이디어를 내어 가져오면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지금 마을에서 집 짓는다고 시멘트 많이 쓰죠? 시멘트 한 포대에 얼마 주고 사요?”nbsp“질에 따라 달라요. 310루피부터 500루피까지도 있습니다.”nbsp“같은 질이라면 한꺼번에 살 때와 집집마다 따로따로 살 때의 가격이 다르잖아요. 그러면 전체가 쓸 양을 우리가 한꺼번에 많이 사서 창고에 넣어놓고 좀 싼 값에 공급하면 주민들에게 이익이 되겠네요. 마을 사람들이 시장에 가면 제일 많이 사오는 게 뭐예요? 시멘트, 벽돌? 또?”nbsp“철근과 자갈이요.”nbsp“돌은 동네에서 깨서 쓰잖아요.”nbspnbsp“정부에서 깨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몰래 깨는 사람들은 있어요. 집 옆에 돌을 깨서 부순 티가 많이 나면 바로 와서 감독하고 막 잡아가요.”nbspnbsp“농사짓는 일반적인 시골이라면 염소나 소를 먹여서 수익이 되겠지만, 여기는 그런 농사짓는 데가 아니다 보니 염소나 소를 많이 먹일 수 없다는 게 문제예요. 여기에서 어떤 걸 하면 수입이 될 만할까요?nbspnbsp우선 물레는 얼마나 수입이 되는지 우리가 실험적으로 해보고 있는 거예요. 수입이 된다면 조금 보완을 해서 마을마다 할 수도 있지만 물레가 지금 확실히 수입이 되는지 안 되는지 아직 평가를 못 하겠어요. 이익이 아주 조금밖에 안 남아서 그래요.”nbsp“물레를 하면 10시에 와서 3시에 가고 중간에 점심 먹는 식으로 대충 해도 한 달에 1,500루피 법니다. 더 많이 하면 더 많이 벌 수 있습니다.”nbsp“그러면 이 앞에서 구걸하는 것보다는 못하겠는데요. 어쨌든 좋은 아이디어를 내보세요.nbspnbsp물레질 하는 것을 더 살펴보고 그게 과연 수입이 될 만한지도 잘 알아보고요. 물레질을 하려면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해요. 첫째, 그 정도 수입을 얻고자 이걸 할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둘째, 시설이나 여러 가지 보안을 유지하려면 누구 한 명이 지켜야 하고, 그 사람에게 월급도 줘야 해요. 학교는 그런 게 필요 없지만, 이걸 누가 할 것이며 월급을 어떻게 얼마나 줄 건지도 생각해야 합니다.nbspnbsp다른 할 만한 건 없어요? 어떤 걸 하면 수입이 될 수 있을지 여러분들이 아이디어를 주면 좋겠어요.”nbspnbsp스님은 마을 주민들의 아이디어를 최대한 끌어내며 대화를 하였지만 아직 시원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각자 따로 살던 마을 주민들이 이렇게 함께 고민하고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는 그 무엇보다 큰 성과로 느껴졌습니다.nbspnbsp스님은 이 외에도 다양한 건의 사항들에 대해 약 2시간 동안 마을 리더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마을 리더들은 스님의 명쾌한 해법에 아주 기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을 리더들에게 스님은 수자카아카데미에서 제작한 달력과 담요, 숄을 선물로 나눠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마을 리더들과 한 번, 마을 유치원교사들과 한 번,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활짝 웃는 모습 속에서 둥게스와리마을의 희망 찬 미래가 가득 느껴졌습니다.nbspnbsp▲ 마을유치원 선생님들과 함께nbsp이어서 오후 3시 30분부터는 수자타아카데미가 자리하고 있는 마을인 두르가푸르, 자그디스푸르 마을에서 청년회 멤버들이 찾아와 스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이곳 청년들은 대부분 유영굴 아래에서 돌라를 들고 나르며 생계를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오토릭샤를 운전하거나, 농사를 짓거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대학 공부를 하고 있는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청년들이 함께 자리했습니다.nbspnbsp▲ 마을청년회 멤버들과 미팅nbsp스님은 각각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한 명 한 명에게 모두 물어보고 확인하며 청년들이 어떻게 살고있는지 전체적인 정황을 파악하고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이번에 ‘마을 청년회’가 새롭게 조직되면서 마을 발전을 위해 청년들이 나서겠다고 발심을 했는데, 청년들이 마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스님은 많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청년 활동 하는 데 어떤 지원이 필요해요?”nbsp“저희는 활동을 많이 안 해봤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만 잘 다닐 수 있으면 됐습니다. nbsp마을에 어떤 문제가 있으면 우리 청년회 전체가 모여서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우리 선에서 안 되는 큰 문제는 JTS에 가져와서 의논해 오고 있습니다.”nbspnbsp“알았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 제가 조언을 해드릴게요. 첫째, 여러분들이 이렇게 축구를 하거나 해서 일단 친목을 다지기 바랍니다. 둘째, 마을에 어떤 문제가 있으면 쉬람단 같은 걸 해서 해결해 보세요. 샛째, 마을 전체에 이익이 되는 게 무엇이 있을지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어요.nbspnbspnbsp아까 마을리더들과 이야기해보니까 생활이 조금 나아지고 있고 정부 지원도 있어서 집을 많이 짓느라 시멘트, 벽돌, 철근 이런 게 많이 필요하대요. 그걸 개인이 가게에서 구하는 것보다 우리가 한꺼번에 좀 싸게 구입하면 차익을 남길 수 있어요. 차익을 남겨서 나누면 5퍼센트든 10퍼센트든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데 이런 아이디어들을 우리가 내볼 수 있겠습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한 발전은 여러분들 개인이 알아서 하되 우리 마을 또는 이 지역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아이디어를 내서 우리가 같이 해볼 수 있겠습니다. JTS는 개인적으로는 도와줄 수 없지만 전체 이익을 위하는 것은 지원해줄 수 있어요. 그러니 그런 아이디어가 있으면 이야기해 주세요.nbspnbsp또 여러분들이 이렇게 청년이 되었으니까 앞으로 우리가 협동조합 같은 걸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협동조합을 하면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어요. 첫째, 공동구매를 통해 우리가 필요한 물건을 싸게 구매할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가 생산한 어떤 것을 팔 때 공동판매를 하면 조금 더 비싸게 팔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은 생산되는 게 별로 없어서 문제이긴 해요. 일반적인 농촌이라면 예를 들어 과일이나 우유를 공동으로 판매할 수 있어요. 개인이 조금씩 갖다 팔면 싸게 팔게 되지만 한꺼번에 많이 갖다 팔면 좀 더 비싸게 받을 수 있어요. 셋째, 마을금고, 즉 마을은행을 만들 수 있어요. 지금 마을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면 빌리기 힘들잖아요. 그렇다고 동네에서 빌리면 이자가 너무 높습니다. 또 돈을 가지고 있으면 금방 써버리기 쉬워요. 우리들의 돈을 조금씩이라도 모아서 마을 은행을 만들면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줄 때 이자율을 확 낮춰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마을 은행도 꼭 필요합니다. 제가 마을에서 확인해보니 개인적으로 빌렸을 때 이자율이 너무 높아요. 한 달에 10퍼센트라면서요? 1년에 10퍼센트 정도가 되어야 정상이에요. 돈을 빌리면 이자가 원금보다 더 많아지잖아요.”nbspnbsp“맞습니다. 1년만 안 갚으면 빌린 돈보다 이자가 더 많아집니다.”nbsp“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는 거예요. 돈을 빌려서 염소나 소를 장만하려 할 때도 이자율이 너무 높아요.”nbsp스님의 조언에 청년들도 모두 공감을 하며 웃음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더 나은 방향을 계속 알려주는 스님이 있어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무엇보다 이제 마을마다 청년회가 조직되어서 협동조합 운동을 하게 되면 둥게스와리는 또한번 큰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습니다.nbsp이 외에도 스님은 2시간 동안 청년들과 많은 대화를 주고 받았습니다. 스님은 이제 청년들이 앞장 서서 둥게스와리를 멋지게 만들어보라고 당부를 하면서 모임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뭐 하고들 사나 궁금했는데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앞으로 우리 모두 협력해서 마을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봅시다. 지금까지 JTS는 아이들 교육시키는 것, 아픈 사람 치료하는 것, 마을에 우물 파주고 핸드펌프 설치해주는 것 같은 일을 주로 해왔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마을에서 리더가 되어가니까, 앞으로는 의논을 해서 아까 이야기한 협동조합 운동을 함께 해나가면 좋겠습니다.”nbspnbsp청년들은 힘차게 박수를 쳤습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스님은 청년들에게 달력과 양말을 선물로 나눠주며 열심히 해보라며 기운을 북돋워 주었습니다. nbspnbspnbsp이어서 마을 청년들과도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청년들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 봅니다.nbspnbsp▲ 마을 청년회 멤버들과 함께nbsp회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수자타아카데미 학교 스텝들이 마침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웃으면서 “마을 청년들이 너네 학교 스텝들과 축구 시합이나 크리켓 시합을 하면 이길 수 있다고 자신있어 하는데 한번 경기를 해보지?” 라고 물었습니다. 학교 스텝들이 “아닙니다. 저희가 이깁니다” 라며 당당하게 얘기하자 스님은 크게 웃었습니다. 앞서 청년들과의 모임에서 가야에서 열리는 축구나 크리켓 대회에 둥게스와리팀이 출전하면 3등 안에 들 수 있는지 스님이 물어보았는데, 조만간 둥게스와리 베스트 팀이 구성되어 수상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nbspnbsp▲ 축구와 크리켓 시합을 제안하는 스님nbsp저녁 시간에는 잠시 싣다르타하우스 옥상에 올라가서 수자타아카데미 뒤쪽에 nbsp구입해 둔 땅에 어떻게 담장을 치고 어떤 건물들을 더 지을지 스님의 구상을 들려주었습니다. 쁘리앙카 교장선생님과 보광 법사님은 스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수자타아카데미의 미래를 함께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세 분이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저녁 노을이 아주 아름답게 드리워지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저녁 7시부터는 한국인 봉사자 모두가 홀에 모여 집중 회의를 했습니다. 우선 내일 있을 수자타아카데미 개교 22주년 기념식과 마을잔치 프로그램을 점검한 후, 음식 배분 계획, 내외빈 선물 준비 상황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했습니다. 그리고 모레 인도인 스텝들과 함께 소풍을 떠날 계획인데 어디로 떠날지 무엇을 준비할지 역할 분담을 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nbspnbsp마지막에 컴퓨터 교실 운영 방안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면서 스님은 컴퓨터의 경우 도난 사고에 대한 우려 때문에 보안 장치가 중요한데, 숫제 여학생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컴퓨터 교육을 받도록 하면 어떤지 새로운 방안을 제안해 주었습니다.nbspnbsp“앞으로 중학교부터는 숫제 남학생보다는 여학생들을 기숙사 생활을 하도록 하면서 여러 가지 훈련을 시키면 좋을 것 같아요. 어제 중등학생들과 얘기를 나눠보니까 집에서 나와서 결혼도 안 하고 JTS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여학생들이 열 명이 넘게 있었어요. 그러면 아이들 부모들과 직접 얘기를 해서 괜찮다고 하면 기숙사에서 생활하도록 하면 어떨까요?nbspnbspnbsp앞으로 수자타아카데미도 행정 업무가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거든요. 그러면 이 아이들이 일을 맡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기숙사 생활을 하면 저녁에 공부할 시간도 많아지고요. 기숙사 생활을 하면 굉장히 많은 소임들을 나눠서 할 수 있거든요. 왜냐하면 출근한다고 시간 보내고 퇴근한다고 시간 보내고 낭비가 많거든요. 또 집에 가면 집안일도 해야죠. 그런데 아예 공동체 생활을 하면 밥은 돌아가면서 당번을 정해서 해먹으면 되고, 여유 시간도 훨씬 많이 생기거든요. 사실 지금 마을에는 부모가 너무 가난해서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고, 고아들도 많거든요. 학교 안에 고아원도 있긴 있어야 해요. 또 여러 가지 사업을 하려면 활동가가 많아져야 합니다.nbspnbsp그런데 남자 아이들은 좀 곤란해요. 똑같은 인간인데 남자들은 혼자는 못 사는가봐요. 꼭 장가를 가더라고요. 아니면 돈 더 버는 곳에 취직을 하거나요. 그런데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고등학생 쯤 되면 결혼 안 한 아이가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절반 이상이 결혼을 아직 안 했더라고요.nbspnbsp불교용품을 판매하는 기념품가게 운영, 신용협동조합 등 여러 사업들을 하려면 행정 업무가 많아지고 컴퓨터도 잘 해야 하거든요. 컴퓨터 교육은 중학교부터 가르쳐야지 늙으면 습득이 잘 안 돼요. 그러면 컴퓨터 교실은 기숙사 안에 두고, 항상 컴퓨터로 공부하고 문서 쓰도록 교육하면 될 것 같아요.nbspnbsp학교 전체를 봉사 시스템으로 가져가면서 고급 학교로 만들어가려면, 월급이 없는 대신에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해줘야 해요. 또 여기 있는 동안에는 봉사를 하지만 밖에 나가면 언제든지 취업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갖춰주면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고 싶어할 것 같아요.nbspnbspnbsp앞으로 20년 정도를 내다보면 인도 여성들의 활동이 굉장히 활발해질 겁니다. 한국의 경우 이제 남자보다 여성의 활동이 더 활발하잖아요. 이렇게 학교의 종합적인 변화 방향에 대해서는 내일 또 더 의논합시다.”nbsp스님의 제안에 모두들 공감을 했습니다. 항상 현실을 자세히 파악하고, 변화된 상황에 맞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는 스님의 모습에서 오늘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있었습니다.nbspnbsp회의는 밤 9시가 넘어서 마쳤습니다. 오늘은 회의가 빨리 끝난 덕분에 내일 큰 행사를 앞두고 다들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어제는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해 점검해 보았다면, 오늘은 마을 개발 전반에 대해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내일은 마을 주민들과 학생들을 모두 수자타아카데미로 초대해 개교 22주년 기념식과 둥게스와리 마을 잔치를 열 예정입니다.nbsp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는 인도 불가촉 천민 마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수자타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nbspnbsp
2016.2.1 (인도 27일째) 수자타아카데미 초등 중등 학생들과 대화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수자타아카데미 초등학생들과 중등학생들을 위해 법회를 했습니다.nbspnbsp어제 오전 11시 30분에 이따와역을 출발해 기차로 16시간을 달려 오늘 새벽 3시 30분에 가야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가야역에 내리자 수자타아카데미에서 두 명의 스탭이 오토릭샤를 몰고 와서 마중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오토릭샤를 타고 가야역에서 수자타아카데미로 향하는 스님nbsp덜컹 거리는 오토릭샤에 몸을 싣고 캄캄한 어둠과 새벽 안개를 가르며 4시 30분에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예불을 하러 가는 길이던 행자님들이 반갑게 스님 일행을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 새벽 4시 30분, 수자타아카데미 도착nbsp새벽 예불 후 6시 30분부터는 행자님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함께 했습니다. 행자님들은 매일 아침 이렇게 발우공양으로 여법하게 하루를 시작한다고 합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발우공양 후 스님은 몇 가지 당부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우선 오늘 오전에 학교와 병원 전체를 둘러볼 예정인데 스님이 방문한다고 해서 특별한 준비를 하지 말고 평소대로 그냥 업무를 할 것과 점심 식사도 특별히 준비하지 말고 그냥 학생들과 같이 먹을 수 있게 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학교 정문을 지키는 수위와 운전수, 급식 노동자들은 정복을 갖추고 업무를 할 수 있게 해서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고, 학생들에게 무시를 받지 않도록 해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정부 전기가 들어왔는데, 전기 사용에 낭비가 없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nbsp“정부 전기가 들어왔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기를 낭비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새벽에 예불하러 갈 때도 불을 켜놓고 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다니는 통로는 불을 켜놓되 나머지는 모두 불을 끄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일할 때 사용하는 등과 평소에 켜놓는 등을 구분해서 배치해 놓은 것이 필요해요. 평소에 너무 밝게 켜놓아도 안 되고, 그렇다고 일할 때 너무 어둡게 해놓아도 안 되니까요.” nbspnbsp발우공양이 끝나자 행자님들은 곧바로 각자 맡은 일을 하러 흩어졌고, 스님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10시 30분이 되어 학교와 병원 전체를 한 바퀴 둘러보기 위해 숙소를 나왔습니다.nbspnbsp▲ 지이바카병원nbsp먼저 지이바카병원을 둘러보았습니다. 병원 앞에는 아침 일찍부터 많은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접수 창구 앞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어디서 왔는지 어디가 아픈지를 물어보았습니다.nbspnbsp▲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 먼 길을 걸어온 주민들nbsp무려 1시간 동안 걸어서 찾아온 사람, 손바닥이 갈라져서 아프다고 하는 사람, 귀와 허리가 아프다고 하는 사람 등 다양한 환자들이 병원을 찾았습니다.nbspnbsp호모페틱과 알로페틱 두 가지 방식으로 진료를 하고 있었는데, 각각 의사 선생님이 어떻게 진료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스님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 호모페틱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선생님nbsp그런데 진료 도구나 침대 등이 낡은 것들이 많이 보여서 우선 도구들부터 새 것으로 교체하면 좋겠다, 환자들이 접수대에서 아우성을 치더라도 절대 화내지 말고 친절하게 대하면 좋겠다 등 여러 의견을 준 후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nbsp이동 중 학교 곳곳에 나무들을 보면서는 가지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모양이 깔끔하지 못한 나무들이 많아서 베어야 할 나무와 다듬어야 할 나무를 전체적으로 구분해서 정리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짜르카 교실에서는 부녀자들이 와서 열심히 짜르카를 돌리며 실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또 바로 옆 공간에서는 재봉틀을 배우고 있는 여성들도 있어서 스님은 특별히 여성들에게 부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 가사가 오래되고 낡아서 찢어진 곳이 있는데 수선을 좀 해주실 수 있어요?” 그러자 모두들 웃으며 흔쾌히 해줄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nbspnbsp▲ 짜르카 교실nbsp▲ 재봉틀 교실nbsp한쪽에서는 목수들이 나와서 열심히 문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또 공양간에서는 점심식사 준비를 위해 뜨거운 열기 속에서 밥을 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공양간에서는 설거지를 할 수 있게 물을 담아두는 통이 지저분한 것과 식당 테이블 위에 먼지가 많은 것을 보고 “아무리 인도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까지 인도식으로 살면 안 되지 않느냐?”며 조금 더 깔끔하고 청결하게 생활할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 목공소nbsp▲ 공양간nbsp이렇게 학교 전체를 한 바퀴 다 돌고 나자 3교시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수업 중인 교실 모두를 한 번씩 들어가 보고 아이들의 학습 모습을 둘러보았습니다.nbspnbspnbsp수학 수업을 하고 있는 교실에서는 직접 스님이 문제를 내어 아이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테스트해 보았습니다.nbspnbsp▲ 1학년 교실nbsp그런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작은 수에서 큰 수를 뺄 때 일일이 작대기를 그어보면서 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스님은 작은 수에서 큰 수를 뺄 때는 앞자리 수에서 10을 빌려와야 한다고 개념을 설명해 주자 아이들은 그제서야 조금 이해가 갔는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특히 반마다 몇몇 아이들이 교과서를 잊어버리고 가져오지 않았거나 아예 분실을 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또 교과서를 함부로 다루어서 표지가 찢어지거나 지저분해진 경우도 많이 보였습니다. 한 두명이 아니라 반마다 이런 경우가 있어서 스님은 특별히 주의를 당부했습니다.nbspnbsp▲ 교과서를 분실한 아이nbsp또 화장실에 들어가보니 지린내가 진동했는데 아이들이 화장실 청소는 많이 꺼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 학교 화장실nbsp그리고 학교 건물이 지은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서 낡은 곳이 많았는데 스님은 리모델링 공사도 필요한지 검토해 보자고 했습니다.nbspnbsp4교시부터는 병원 2층 컬쳐홀에서 전교생이 모여 스님과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초등학교 전교생 350여 명이 자리에 앉은 가운데 학생들이 ‘나마스떼’ 하고 인사를 하자 스님이 말문을 열었습니다.nbspnbsp▲ 초등학생들과의 대화 시간nbsp스님은 각 학년별 인원 수를 확인한 후 올해로 수자타아카데미가 개교한지 몇 주년이 되는지 물어보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수자타아카데미가 생기게 되었는지 그 역사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nbspnbspnbsp“수자타 아카데미가 생긴 지 올해로 몇 년 됐는지 아는 사람 있어요? 내일 모레 기념식 할 텐데 몇 주년 기념식인지 몰라요?”nbsp“몰라요.”nbsp“개교 기념식이 몇 주년인지도 몰라요? 그냥 밥 먹는 날인 줄만 알아요?”nbsp“22주년입니다.” nbspnbsp“맞아요. 1994년 1월에 개원해서 올해 22주년이 되었어요. 제가 1993년도 12월에 이곳 둥게스와리를 방문했는데 아이들이 다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일요일이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래요. 그런데 왜 학교 안 가고 여기서 구걸을 하느냐고 했더니 학교가 없대요.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학교가 없다니 말이 되냐고 하니 정말 없대요. 그래서 이곳 유영굴을 참배하고 내려오면서 두르가푸르에서 마을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여기 근방에 몇 개의 마을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자그디스푸르, 두르가푸르, 방갈비가 이렇게 3개가 있대요. 몇 명이 사느냐고 물으니 두르가푸르에 400명, 자그디스푸르에 600명, 방갈비가에 300명이 산대요. 모두 해서 1,300명이나 사는데 어떻게 학교가 없을 수 있냐고 했더니 그래도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nbspnbsp‘무엇이 필요합니까?’‘학교가 필요합니다.’‘그러면 당신들이 학교를 지으면 되잖습니까.’‘우리는 가난해서 지을 수가 없습니다. 스님이 지어줬으면 좋겠습니다.’‘나는 인도 사람도 아니고 결혼도 안 했기 때문에 아이도 없는데 왜 내가 짓습니까? 이 아이들은 당신들의 아이들이니 당신들이 지어야지, 왜 나더러 지어달라고 합니까?’‘우리는 가난해서 그렇습니다.’‘그러면 학교 지을 재료를 주면 당신들이 짓겠습니까?’‘예, 그렇게 하겠습니다.’‘좋습니다. 마을에 땅이 있으면 내어주십시오.’nbsp그러자 10명이 땅을 1가타씩 내줬어요. 그게 초등학교를 처음 지은 자리예요. 그렇게 학교를 짓기 시작하면서 1994년 1월에 일단 개교를 먼저 했어요. 동네 아이들을 다 모아 보니 100명이 되었어요. 동네에 학교 졸업한 아이가 있는지 확인해봤더니 두르가푸르에서 한 명이 초등학교를 나왔대요. 또 고개 너머 까나홀에 사는 청년이 한 명 초등학교를 나왔어요. 그래서 이 두 명더러 선생을 하라고 해서 나무 밑에서 수업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1월달에 나무 밑에서 학교를 개원하고 수업을 하면서 학교 건물을 짓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그런데 학교를 짓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상카시아에 있는 청년들이 와서 공부를 가르치고 학교를 짓는 것을 감독하는 총책임을 맡았어요. 이렇게 해서 시작이 된 거예요.nbsp1995년도에는 강도가 들어와서 학교가 문을 닫았어요. 그래서 제가 와서 다시 열었어요. 그리고 아침 조례를 하면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쓰러졌어요. 의사선생님을 데려와서 건강상태를 확인해보니 영양실조가 심하대요. 의사선생님이 약보다 음식을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해서 점심 급식을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학생이 150명 정도 되리라 생각하고 교실을 만들었는데 급식을 하게 되니까 학생 수가 갑자기 300명이 됐어요. 그래서 또 건물을 2층으로 짓게 된 거예요.nbspnbspnbsp그래서 개교하고 3년 만인 1997년 1월에 초등학교 준공식을 했어요. 그때 또 강도가 들었어요. 2002년도에는 세번째 강도가 또 들어서 한국 사람 한 명이 죽기까지 했습니다. 설성봉 거사님 아시죠?”nbsp“예.”nbsp“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 이 학교가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처럼 여기 학교를 다닌 선배들은 이제 다 선생님이 됐어요.nbspnbsp왜 이렇게 사람이 죽어가면서까지 학교를 만들었을까요? 여러분들 공부하라고 그런 거예요. 그런데 아까 제가 교실에 가보니까 책도 집에서 안 가져오고 받은 책도 잃어버리는데 어떻게 공부해요? 여러분들에게 책도 주고, 공책도 주고, 옷도 주고, 신발도 주고, 다 무료로 지원해 주잖아요. 여러분들 부모님도 안 해주는 걸 왜 이렇게 해줍니까? 모두 여러분들 공부하라고 그런 거예요. 그러니 공부 열심히 해야 해요.”nbsp“예.”nbsp“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도와주고 있기 때문에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비록 어리지만 교실 청소도 해야 하고 학교를 깨끗이 해야 해요. 아까 화장실에 가봤는데 냄새가 심했어요. nbspnbspnbsp청소를 깨끗이 하고, 볼일을 본 뒤에는 물을 부어서 내려 보내야 해요. 책상 같은 것도 부러뜨리지 않도록 조심해서 써야 해요. 책도 그래요. 보면 깔끔하게 쓰는 사람도 있고, 벌써 다 찢어지도록 지저분하게 쓰는 사람도 있어요. 책을 깨끗하게 써야 해요. 이 하나 하나가 다 누군가의 도움에 의해서 만들어진 거니까요. 여러분들은 어리니까 남의 도움을 받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면 여러분도 이제 남을 도와야 해요. 집에서 동생들 돌볼 수 있죠?”nbsp“예”nbsp“그러니 앞으로 여러분들도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마을에 가서 동생 또래인 유치원 아이들을 돌봐야 해요. 그렇게 할 수 있어요?”nbsp“예”nbsp“초등학교 때는 그냥 도움만 받았지만 중학생이 되면 오전에는 어린 아이들을 돌보고 오후에는 공부해야 합니다. 할 수 있어요?”nbsp“예”nbsp“제가 아까 수업 시간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걸 봤는데 공부를 잘 하는지 못 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몇 가지 물어보니까 잘 몰라요. nbspnbspnbsp공부 잘 하는 방법을 지금부터 설명해줄 테니까 잘 들으세요. 우선은 아침 일찍 학교에 와야 해요. 수업 시작하기 1시간 전에 와서 오늘 배울 공부를 조금씩 다 확인해봐야 해요. 오늘 수학은 뭘 배우고, 힌디어는 뭘 배우고, 영어는 뭘 배우고, 사회는 뭘 배우는지, 오늘 배우는 부분에 대해서 예습을 해야 해요. 그래서 수업시간에 들어가면 선생님이 말씀을 하실 때 바로 알아들어야 해요. 뭘 배우는지 내가 미리 알고 준비를 해서 수업에 들어가야 선생님 설명이 머리에 딱 들어와요. 정신없이 놀다가 급하게 들어가면 선생님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못 알아들어서 멍해요. 그러면 집중도 안 되고 재미도 없어요. 그러니 미리 뭘 배울 건지 사전에 조금이라도 예습을 해서 들어가야 해요. 그래야 선생님이 수업할 때 집중이 됩니다. 첫째, 예습을 해야 한다는 말이에요.nbspnbsp둘째, 수업을 들을 때는 선생님 얼굴을 쳐다보면서 들어야 해요. 고개는 책상에 숙이고 귀로만 듣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설명하는 내용이 귀에 덜 들어와요. 선생님 말씀하시는 얼굴을 보면서 귀로 들어야 잘 들어와요.nbspnbsp셋째, 잘 모르는 게 있으면 손을 들고 질문을 해야 해요. 질문을 너무 많이 한다고 선생님한테 야단을 맞을 정도로 많이 해야 해요. 모르면서 그냥 넘어가면 안 돼요.nbsp넷째, 수업이 끝나면 바로 책을 덮어놓고 나가 놀지 말고 오늘 배운 걸 간단하게 복습해야 해요. 사무지가 헤?”nbsp“예.”nbspnbsp“네 가지를 설명했어요. 첫째, 예습을 할 것, 둘째, 수업시간에 선생님 얼굴을 보고 집중해서 들을 것, 셋째, 모르는 것은 반드시 질문할 것, 넷째, 수업이 끝나면 바로 복습을 할 것. 하루 수업이 다 끝나면 학교에 잠시 남아서 오늘 배운 것을 복습하거나 내일 배울 것을 예습해야 해요. 아니면 집에 돌아가서 오늘 배운 걸 복습하거나 내일 배울 것을 예습해야 해요. 집에서 바쁜 일이 있어 못 했으면 아침에 일찍 학교에 와서 어제 배운 걸 복습하고 오늘 배울 것을 예습해야 합니다. 그냥 수업만 한 번 들은 것에 비해 한 번 복습을 해서 배운 내용을 확인하면 기억력이 5배로 높아져요. 알았어요?”nbsp“예”nbsp아이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몇몇 아이들은 대답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대답을 안 하는 아이들만 골라 일으켜 세우고 다시 공부 잘하는 방법 네가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아이가 대답을 못하자 스님은 반복해서 다시 네가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러나 또 다시 질문을 하자 대답을 못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스님은 다시 반복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다섯 번을 반복하자 대부분의 아이들이 큰 목소리로 대답을 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4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님의 애정이 깃든 반복된 설명으로 아이들은 이 네가지 만큼은 꼭 명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공부, 학교, 불교 등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도 손을 드는 친구가 없었는데,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한 명이 뒤늦게 건의사항을 말했습니다. “컴퓨터를 배울 수 있게 주세요.”nbspnbspnbsp스님은 알았다고 하면서 선생님들과 논의해보고 결정하겠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지금은 태권도부, 댄스부가 특별반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컴퓨터를 배우고 싶어하는 요구도 많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점심식사는 스님도 아이들과 똑같이 인도 쌀에 사부지와 달을 버무려서 식사를 했습니다.nbspnbsp▲ 점심식사nbsp식사를 하면서는 쁘리앙카 교장선생님이 “학년마다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있는데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요?”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대답했습니다.nbspnbspnbsp“아무리 지능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초등학교는 졸업시켜 주어야 해요.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무조건 해주어야 합니다. 자기 이름 쓸 수 있고, 글을 읽을 수 있고, 더하기 빼기 같은 셈본은 할 수 있게 가르쳐주어야 해요. 아무리 저능아라고 하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기본적은 교육은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nbspnbsp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아이인데 공부를 안 해서 점수가 낮은 아이들은 낙제를 시켜서 다시 공부를 시켜야 하지만,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자꾸 낙제를 시키면 나이는 많은데 학년은 낮기 때문에 친구들과 못 어울려서 학교를 그만두게 돼요. 그래서 이런 아이들은 가능하면 학년을 정상적으로 올려주고, 가르쳐 주기는 하되 너무 공부에 압력을 주면 안 됩니다. 공부 말고 춤이나 노래나 다른 것을 자꾸 시켜보는 등 가능한 기술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 좋아요.”nbsp이렇게 문맹 퇴치를 위한 기본 교육을 강조하면서도 스님은 중학교부터는 조금 더 고급반을 편성해서 전문화된 교육을 해야 함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오후 2시부터는 중등학생들과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중등학생들은 오전에는 봉사활동을 하고, 오후에 수업을 합니다. 중학생 대부분이 9개 마을 유치원으로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산너머에 있는 마을 유치원 5개는 그 동네에서 교육 받은 부녀자들이 유치원 선생님을 합니다. 이 외에도 병원 파트, 급식 파트, 정원 파트, 목욕 봉사 파트에서 각각 한가지 소임씩은 맡아서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각 파트에서 누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하나 하나 다 확인을 했으며,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어느정도 책임감이 있는지 몇 가지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nbspnbsp▲ 중등학생들과의 대화 시간nbsp중등학생들은 모두가 이렇게 봉사활동과 학교 수업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다며 하소연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먼저 학생들의 이런 불평에 대해 확인을 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유치원 선생 역할도 해야 하고, 아이들 목욕도 시키줘야 하고, 정원도 가꾸어야 하고, 병원에 가서 일도 해야 한다고 공부할 시간이 없죠. 그래서 다들 불만이 조금씩 있죠?” nbsp“예.”nbsp“왜 불만인데요?”nbsp“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공부할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nbspnbsp“수자타아카데미가 생기고 나서 처음에는 남학생 3명, 여학생 4명이 초등학교를 졸업했어요. 1학년부터 시작한 게 아니라 다른 학교를 다니다가 중간에 왔으니까 3년 만에 졸업을 하게 된 거예요. 남학생 3명은 정부 중학교로 갔어요. 여학생 4명은 중학교에 못 갔어요. 그래서 저한테 중학교를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제가 못 만든다고 했어요.nbspnbsp‘초등학교까지는 우리가 뭐든지 무상으로 지원하지만 그 이상은 할 수 없어요. 저도 초등학교까지만 무상으로 다녔어요. 중학교부터는 아침에 우유를 배달하거나 신문을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 수입으로 학교를 다녔어요. 그렇기 때문에 중학교는 그냥 무상으로 해줄 수 없습니다.’nbsp그렇게 1년이 지나고 다음에 와보니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중학교에 못 간 여학생이 3명 더 생겼어요. 그래서 7명이 와서 저한테 울면서 중학교를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그때 마침 학교에 어린 동생들을 안고 오는 학생들이 많아서 문제가 생겼을 때예요. 그래서 제가 ‘초등학생들이 방해받지 않고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너희가 오전에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 그러면 중학교를 만들어 주겠다’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유치원과 중학교가 같이 생긴 거예요.nbspnbspnbsp그러니 수자타아카데미 중학교를 다니려면 반드시 그만큼 일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볼 수 있도록 여기 건물 1층에다가 유치원을 만들었어요. 그러자 여기가 멀어서 어린애들이 올 수 없는 다른 마을에서도 유치원을 지어달라고 했어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가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니까, 그 중학교에 입학해 공부하는 대신 유치원 선생을 하기로 한 겁니다. 그래서 유치원이 지금처럼 많이 생긴 거예요. 초등학교에서는 여러분들에게 옷도 주고, 신발도 주고, 책도 주고, 공책도 주고, 식사도 주고, 모든 게 다 무상이잖아요. 대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려면 여러분들도 어린 아이들을 돌봐야 해요. 유치원 다니는 조그마한 애들은 여러분들이 가르칠 수 있잖아요.”nbsp“예”nbsp“또 병원에도 돕는 이가 필요하니까 일부는 병원에 가서 돕게 된 거예요. 또 옛날에는 음식만 전문으로 만들어주는 요리사가 없었어요. 전부 중학생들이 음식을 만들어서 초등학생들에게 줬어요. 그러다 학생이 많아져서 이제 전문 요리사들이 오게 된 거예요.nbspnbsp그리고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나 대학교 가고 싶은 학생이 있으면 학비를 대주는 대신 여기서 초등학생을 가르치도록 해서 지금 학교가 운영이 되고 있는 거예요. 초등학생은 무상으로 다니고, 중학생은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고, 고등학생과 대학생은 초등학생을 가르치고,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중학생을 가르칩니다. 이렇게 우리가 서로 도우면서 학교가 운영되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남을 돕기 위해 이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지, 어떤 이익을 추구하는 게 없습니다.nbspnbsp그런데 최근 들어 정부 학교가 조금씩 운영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다 정부 학교에 가라고 학생들을 보냈습니다. 학교는 원래 정부가 운영해야 하는 거니까요. 사립학교는 개인이 돈 벌려고 운영하는 학교여서 학비가 비싼데, 우리는 학비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정부 학교가 운영이 되니까 전부 정부 학교에 가라고 보낸 거예요. 그래서 수자타아카데미가 학생이 제일 많을 때는 1,000명까지도 되었는데 정부 학교에 다 보낸 지금은 300명 정도 된 거예요. 여러분들이 이런 학교의 설립 취지를 알아야 해요.nbspnbspnbsp그러니까 수자타아카데미에 다닌다는 것은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면서도 남을 돕고 나도 또 배우는 거예요. ‘나는 이렇게 봉사하기 싫다’ 그러면 정부 학교로 가면 돼요. 이 주위에 정부 중학교도 있고 정부 고등학교도 생겼잖아요. 인터칼리지도 이제 생기고요. 매일 반나절 봉사하지 않으려면 그냥 거기 정부 학교에 다니면 돼요. 그러나 수자타아카데미에 다니려면 반드시 봉사하고 공부를 해야 해요.”nbsp수자카아카데미 중학교에서는 왜 봉사활동이 의무 사항인지 자세히 설명을 해주자 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습니다. 불평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고 그 취지를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스님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두 가지 사항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중학생들은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인 동시에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병원에서 사람들을 돌보는 선생님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역할에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nbsp많은 질문과 건의사항들이 쏟아졌는데, 그 중에 한 학생은 컴퓨터 교실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그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수긍을 하면서도 얼마전 있었던 도난 사건을 예로 들며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습니다.nbspnbspnbsp“컴퓨터 교실을 만들어 주세요.”nbspnbsp“컴퓨터 교실은 만들면 좋지만, 교실에 놔둔 컴퓨터를 누가 가져가버리면 어떡해요?”nbsp“우리는 안 훔쳐갈 거예요.”nbspnbspnbsp“컴퓨터가 없어져서 주니어 선생님들이 지금 힘든 거 알잖아요. 선생님들도 컴퓨터를 가져가버리는데 어떡해요. 누가 가져가면 누가 가져갔는지 저한테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nbsp“예”nbsp“얼마전 선생님들 중에 컴퓨터 하나를 훔쳐간 것 다들 알고 있죠? 여기가 학교잖아요.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이렇게 물건을 훔치는 것은 좋지 않아요. 아무리 공부를 잘 가르쳐도, 물건을 훔치는 사람이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옳지 않아요. 그래서 그만두게 한 거예요. 누가 가져갔는지 알려주면 그 사람만 그만두면 되는데 다들 말을 서로 안 하니까 전체가 다 그만두게 됐어요. 자기가 순간적으로 갖고 싶어서 가져갔다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면 돌려줘야 합니다. 자기를 밝히지 못해도 돌려줄 수는 있잖아요.nbspnbsp바깥 세상에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만 여기는 학교잖아요. 또 가져간 사람이 선생님이잖아요. 그래서 이게 큰 문제가 된 거예요. 앞으로 여러분들이 필요한 건 컴퓨터뿐 아니라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옛날에는 학교에 총 든 강도가 들어와 다 가져가 버리기 때문에 못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건 없어졌어요.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 좋은 물건을 뒀을 때 누군가가 훔쳐가게 된다면 훔쳐간 사람도 문제지만 좋은 물건이 또한 문제가 되는 거예요. 컴퓨터 교육이 필요하다는 건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이 해결돼야 해요. 선생님들이 늘 보안을 신경쓰는 교무실 안쪽에다가 컴퓨터를 설치했는데도 그게 없어져 버렸어요. 그러니까 이건 문을 잠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어쨌든 여러분들이 컴퓨터 수업을 하게 해달라고 건의하니까 의논해 보겠습니다.nbspnbsp내가 순간적으로 욕심을 내면 모든 사람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이런 것은 여러분들이 잘 생각해야 해요. ‘내가 갖고 싶다’라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게 돼요. 그래서 부처님이 다섯 가지를 꼭 지키라고 했어요. 첫째, 남을 때리거나 죽이면 안 돼요. 둘째, 물건을 빼앗거나 훔치면 안 돼요. 셋째, 다른 사람, 특히 여성을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면 안 됩니다. 인도 남자들이 여자를 성추행해서 신문에 난 거 봤죠? 그것 때문에 전 세계에서 인도의 이미지가 많이 나빠져 버렸어요. 여성을 존중하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 강제로 그렇게 하는 것은 나빠요. 신문에 나서 알려진 것만 해도 1년에 몇 만 건인데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하면 훨씬 많아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절대로 이건 하면 안 돼요. 나는 잠깐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지만 당하는 여성은 평생 고통을 겪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남을 괴롭힐 아무런 권리가 없습니다. 넷째, 거짓말하거나 욕설해서는 안 돼요.nbspnbspnbsp다섯째, 술을 취하도록 마셔서는 안 됩니다. 동네에 술 마시고 취해서 행패부리는 사람 많죠. 여러분들 아버지나 오빠가 그러면 얼마나 힘들어요? 앞으로 안 마시는 게 제일 좋지만, 마시더라도 조금만 마셔야지 취하도록 마시면 절대 안 돼요. ‘홀리’ 때 한 잔씩 마시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절대 취하면 안 돼요.”nbsp학생들은 간절히 요청을 했지만, 스님 또한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얼마전 컴퓨터 도난 사건으로 인해 대학생 교사들을 모두 학교를 그만두게 했는데, 오계를 어긴 것에 대해서는 스님이 얼마나 단호한 입장을 갖고 있는지,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스님의 애정이 얼마나 큰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nbsp오늘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중등학생들과의 대화 모임을 모두 마쳤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학생들은 많은 것을 느낀 것 같았습니다.nbspnbsp스님은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앞으로 불러내어 용돈과 더불어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제작한 달력을 선물했습니다. 학생들은 스님이 주신 용돈과 달력을 받아들고 아주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달력과 용돈을 받고 기뻐하는 아이nbsp그리고 모두 계단 위에 서서 스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환하게 웃는 학생들의 얼굴 속에서 둥게스와리의 희망찬 미래가 보였습니다.nbspnbsp▲ 수자타아카데미 중학생들과 함께nbsp저녁 6시 30분에 예불을 모신 후 7시부터는 한국인 봉사자들만 모두 모여 실무 점검 회의를 했습니다. 모레 있을 22주년 개교기념식과 마을잔치 프로그램, 내외빈 선물 준비 상황, 행사 당일 식사 배분 계획, 인도인 스텝들과 함께 떠날 소풍 장소 선정, 산 너머 마을 유치원과 학교 방문 계획 등에 대해 각 담당자들의 보고를 듣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특히 스님은 회의를 마치면서 앞으로 학교를 월급 시스템으로 운영할지 자원봉사 시스템을 더욱 확대해 갈지에 대한 장기적 전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제 문맹 퇴치는 거의 마무리되었다고 봅니다. 이제 다음 단계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일반 학교에서 이제는 기술학교로 갈 것인가, 문화예술체육을 가르치는 특별학교로 갈 것인가, 아예 고급 사립학교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을 고민해서 세 가지를 겸하거나 한 가지를 선택하거나 해야 합니다.nbspnbspnbsp학교 스텝들의 월급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인도 사람들의 월급이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어요. 월급 시스템으로는 정토회의 설립 취지를 살릴 수 없어요. 그러나 마을 청년들이 먹고 살아야 하는 생활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스텝으로 일하되 월급은 없고, 그러나 주택, 식량, 보건 의료 문제 등은 보장되는 시스템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연구가 필요합니다.nbspnbsp제가 처음 시작할 때는 건축 노동자들도 월급을 주지 않고 봉사자로 참여했습니다. 필요하면 식량만 나눠주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한국에 다녀오면서 가야에 있는 대학교수에게 일을 맡겨 두었는데 그 사람이 귀찮으니까 전부 월급 시스템으로 바꿔 버렸어요. 한 명도 월급 주는 직원이 없었는데 지금은 선생님들만 월급 시스템이 아니지 건축 노동자들은 다 월급 받는 직원이 되어버렸잖아요. 이렇게 해서 자꾸 봉사 시스템에서 월급 시스템 쪽으로 점점 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우리가 가고자 하는 이상은 아닙니다.nbspnbspnbsp한국에서 봉사자들을 충분히 파견할 수 있으면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인도 사람들을 봉사자로 키워서 배치를 시킬 수 있으면 극복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파견할 봉사자도 부족하고, 현장에서 교육시켜서 봉사자 확보하는 것도 안 되고 있는 가운데 현상 유지는 계속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가난한 마을이지만 봉사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여기에 관건이 달려 있습니다.nbspnbsp결국 우리들이 어떤 방침을 세울 건지의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정토회의 원칙은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다’입니다. 적어도 우리들의 생활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느 절을 가도 다 주방 아주머니를 고용해서 식사 문제를 해결하잖아요.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요. 이 원칙까지 포기하고 살 것 같으면 굳이 정토회를 만들 이유가 없잖아요. 그냥 기존 절로 가서 살면 되지요. 안 그렇게 살려고 정토회를 만든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식사는 여러분들이 당번을 정해서 하도록 하는 겁니다.nbspnbsp부처님이 하인을 두고 살지는 않으셨잖아요. 출가하기 전에는 하인을 많이 두고 살았는데, 출가한 뒤에는 평생 동안 하인을 두고 살지 않으셨어요. 물론 아난다 존자가 시봉을 했지만 그것은 하인이 아니라 같은 수행자로서 시봉을 한 것이지 월급을 주고 종을 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nbspnbspnbsp여기서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은 신분사회에서 종을 부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자나 신분사회에서의 종이나 사실은 같습니다. 사람을 돈으로 부리느냐, 신분을 갖고 부리느냐의 차이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해야 된다, 안 된다’ 하는 얘기가 아니고 ‘우리의 기본 정신도 살리면서 현실도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내일 더 점검해 보고 의논해 봅시다.”nbspnbsp현재 수자타아카데미 운영에 관련된 스님의 깊은 고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마을 리더들, 학교 스텝들과 미팅이 있기 때문에 더 현황을 파악해보면 좋은 방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며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오늘은 교실도 둘러보고, 학생들도 만나보고, 학교 문제와 관련해 회의도 하는 등 학교 운영에 대해 충분히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에 전정각산을 넘어가 마을 유치원과 분교를 방문해 마을개발 상황을 살펴보고, 오후에는 학교 스텝들, 마을 리더들과 연이어 미팅을 가질 예정입니다.nbspnbsp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는 인도 불가촉 천민 마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수자타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nbspnbsp
2016.1.31 (인도 26일째) 석가족이 운영하는 불교 학교 방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석가족이 운영하는 불교학교를 방문하여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 후 이따와에서 가야로 기차를 타고 16시간을 이동했습니다.nbspnbsp어제 스님은 상카시아에서 석가족 청년회 회원들과 회의를 한 후 청년회 회장인 수바스지의 집에서 하룻밤을 주무셨습니다. 아침에는 짜이 한 잔과 식빵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수바스지 가족과 기념사진을 찍고 감사 인사를 한 후 집을 나왔습니다.nbspnbsp▲ 수바스지 가족과 함께nbsp오늘은 특별히 수바스지의 어머님도 함께 배웅을 나와서 오랜만에 가족 사진을 함께 찍었다며 모두들 기뻐했습니다.nbspnbsp아침 9시에는 석가족 청년회의 멤버 중 한 명인 ‘미끄람지’가 운영하는 불교학교가 있다고 해서 방문했습니다. 학교를 둘러보기에 앞서 먼저 미끄람지의 집에 들러 아침 식사를 대접 받았습니다.nbspnbsp▲ 석가족 청년 ‘미끄람지’의 아침 식사 초대nbsp아침 식사를 하며 학교의 규모나 운영 현황에 대해 간단히 얘기를 들은 후 학교로 향했습니다. 학교 이름은 ‘다이나믹 퍼브릭 스쿨’. 힌디어 과목을 제외하고 전 과목을 영어교과서로 수업을 하는 학교로 현재 350여 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으며, 정부 학교가 아닌 사립 학교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이 교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 다이나믹 퍼브릭 스쿨nbsp학교 운영자인 미끄람지가 스님께 꽃목걸이를 걸어주자 큰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이어서 아이들이 나와 환영의 마음을 담은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nbspnbsp▲ 환영의 노래를 불러주는 학생들nbsp스님은 아이들의 환영에 환한 웃음을 보이며 앞으로 나와 학생들을 위해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나마스떼. 일요일인데 나왔어요? 일요일에 집에서 놀아야 하는데 스님 때문에 나오게 돼서 불편하겠어요.”nbsp“아니오, 좋아요.” nbspnbsp“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한국 알아요? 한국은 중국의 동쪽, 일본의 서쪽에 있어요. 일본과 중국 사이에 있어요.nbspnbsp여러분들이 사는 인도는 5천년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나라입니다. 세계 최고 문명이 4군데가 있는데 첫 번째가 이집트문명, 두 번째가 메소포타미아문명, 그 다음이 인더스문명, 마지막이 중국의 황하문명이에요. 인더스문명은 세계 4대 문명 가운데 하나예요. ‘모헨조다로하라파’ 유적에 대해서 들어봤을 거예요. 델리에 있는 국립박물관 가봤어요?“nbsp“아뇨.”nbspnbsp“델리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들어가면 제일 첫 번째로 보게 되는 전시관이 인더스문명관이에요. 다음에 꼭 가보세요. 인더스문명은 4,500년에서 5,000년 전의 문명이에요.nbsp그리고 3,500년 전에 아리안족이 인도로 들어왔어요. 강가강 유역의 힌두스탄평원으로 들어와 브라만문명을 일으켰는데 브라만문명의 마지막 시기인 2,600년 전에 부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부처님은 지금의 네팔 땅인 카필라바스투에서 태어나셔서 지금의 비하르주인 마가다국의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으셨어요. 부처님의 법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서, 여기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한국까지 전해졌습니다. 약 2,000년 전의 일이에요. 인도의 ‘아유디아’라는 곳 알아요?”nbsp“예”nbsp“2,000년 전에 아유디아 왕국의 공주님과 스님이 배를 타고 한국까지 왔어요. 공주님은 한국의 임금님과 결혼을 했습니다. 지금 한국 사람 10명 중 1명, 즉 10퍼센트가 그 후손들입니다. 한국과 인도는 2,000년 전부터 그만큼 교류가 있었습니다.nbspnbspnbsp지금부터 1,300년 전인 78세기 경에는 날란다대학이 세계에서 가장 큰 대학이었어요. 그때 한국의 혜초 스님이 날란다대학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이렇게 인도와 한국은 옛날부터 교류가 있었습니다.nbspnbsp한국과 인도는 지금 다시 아주 긴밀하게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게 뭐 있어요? KPOP 알아요? 태권도 알아요? 태권도 할 줄 아는 사람 여기에 없어요? 올림픽 종목 가운데 하나예요. 현대 자동차는 알아요? LG, 삼성은 알아요?”nbsp“예”nbsp“모두 한국 회사예요. 한국은 옛날에는 큰 나라였는데 지금은 조그마한 나라가 됐어요. 인도가 파키스탄과 분리되었듯이 한국도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어요.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람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해외에 많이 나가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공부를 많이 해서 인도 안에서도 훌륭한 사람이 되고, 유럽이나 아메리카나 한국 같은 외국에 가서도 활동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공부해야겠어요, 놀아야겠어요?”nbsp“공부해야 해요.”nbsp이렇게 간단히 인도와 한국의 교류에 대해 이야기를 한 후 스님은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기 저기서 학생들이 손을 번쩍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첫번째 학생은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음식이 무엇이고 그 재료는 무엇인지 질문을 했고, 스님은 김치, 비빔밥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아마도 요리에 관심이 많은 학생 같았습니다. 두 번째 학생은 한국의 유명한 명절에 대해 질문을 했고, 스님은 설날, 추석, 부처님오신날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한국은 부처님오신날이 휴일이라고 하자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세 번째 학생은 한국에 너무 가보고 싶은데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질문했고, 스님은 간단하게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네 번째 학생은 이곳 다이나믹 퍼브릭 스쿨 학생들을 위해 좋은 말씀을 들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nbspnbsp스님은 네 번째 학생의 질문에 대해 학생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익이 된다고 답하면서 ‘공부를 잘하는 방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여기 학생들을 위해서 한 마디 해주세요.”nbsp“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게 많을 거예요.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놀고도 싶고, 좋은 옷도 입고 싶고, 게임도 하고 싶겠죠. 그러나 여러분들이 10년이 지난 뒤에 지금을 돌아보면 ‘아, 그때 그것을 더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 걸’하고 제일 크게 후회하는 것이 공부일 겁니다. 그러니 지금은 공부를 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공부하기 싫죠? nbspnbspnbsp하기 싫어도 미래를 위해서 해야 해요. 지금 좋다고 미래도 좋은 게 아니에요. 지금은 노는 게 좋지만, 미래에는 손해예요. 그러나 지금 공부하는 건 당장은 좀 힘들어도 미래에는 큰 이익이 됩니다.nbsp그러면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예습을 해야 합니다. 오늘 뭘 배울 건지는 알고 가야 선생님 말씀이 머리에 쏙쏙 들어와요. 공부할 내용을 미리 다 알고 가라는 게 아니라, 뭘 배울 건지를 파악하고 수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거예요.nbspnbspnbsp두 번째, 선생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해요. 고개 숙이고 소리만 듣지 말고, 눈으로 선생님을 보면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nbspnbsp세 번째,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질문을 해야 해요. 질문을 많이 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귀찮아서 야단을 치더라도 계속 물어야 해요. 질문을 해서 알아야 내 것이 돼요.nbspnbsp네 번째, 수업이 끝난 뒤에는 복습을 해야 해요. 배운 것을 한 번 더 확인하면 기억력이 5배로 높아집니다. 그래야 배움이 효과적이에요.nbspnbsp이렇게 공부하면 공부를 조금 해도 잘 할 수 있어요. 공부를 하는 게 재미 있어야 합니다. 막 궁금해서 안달이 날 정도가 되어야 해요. 좋아하면서 공부를 하면 집중력이 생깁니다. 집중하면 기억력이 훨씬 높아져요.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면 시간을 아무리 많이 쏟아 부어도 효과가 안 나요. 사무지가 헤?”nbsp“예스” nbsp스님이 인도말로 ‘사무지가 헤?’ 라고 하자 아이들은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박수를 쳤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은 학생들, 선생님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똘망똘망한 아이들의 눈망울 속에 활력이 가득 느껴져서 참 좋았습니다.nbspnbsp▲ 학생들과 함께 기념사진 촬영nbsp스님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석가족 청년인 ‘미끄람지’를 격려해 준 후 마당 가운데에 불상이 조성되어 있어서 불상을 참배한 후 학교를 나왔습니다.nbspnbsp예정된 기차 출발 시간보다 늦게 기차역에 도착했는데, 다행히 기차가 연착이 되어서 한참을 기다린 후 기차에 탑승했습니다. 기차역에는 석가족 청년들이 나와 스님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특히 다이나믹 퍼브릭 스쿨을 운영하는 미끄람지는 학교 수업을 뒤로 하고 기차역까지 쫓아와 스님께 부인이 싸준 점심 도시락을 전달해 주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 점심 도시락을 건네는 석가족 청년들nbsp그러면서 보시금도 스님께 전달했는데, 인도 사람들이 스님께 보시를 하는 것은 처음보는 모습이어서 잠시 놀라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기차 타고 가면서 일행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사주겠다”며 감사히 보시금을 받았습니다.nbspnbsp▲ 이따와에서 가야로 가는 기차nbsp스님이 기차에 올라타자 수바스지와 석가족 청년들은 손을 흔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20년이 넘도록 인연을 맺어오고 있는 석가족 청년들의 스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작별 인사를 하는 석가족 청년들nbsp이따와역에서 오전 11시 30분에 출발한 기차는 안개 때문에 서행을 반복하며 4시간이 연착이 되어 새벽 3시 30분에 가야역에 도착했습니다. 무려 16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스님은 감기 기운이 있다며 약을 먹고 대부분의 시간을 주무셨습니다.nbspnbsp내일은 수자타아카데미에서 공동체생활을 하고 있는 행자님들과 발우공양을 함께하는 것을 시작으로 오전에는 학교와 병원을 둘러본 후 초등학생들을 위해 법회를 하고, 오후에는 중등학생들을 위해 법회를 할 예정입니다. nbspnbsp※nbsp2016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nbsp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분들은 지금 신청하세요.nbspnbspnbsp
2016.1.30 (인도 25일째) 석가족 불상 점안식 및 담마센터 회의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석가족이 살고 있는 마을 두 곳에 불상 점안식을 한 후 저녁에는 석가족들과 함께 인도불교 부흥을 위한 회의를 했습니다.nbspnbsp석가족 청년회 회장인 수바스지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 스님은 수바스지의 가족이 차려준 아침 식사를 드시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수바스지 가족이 차려준 아침 식사nbsp아침 식사 후 원고 교정 업무를 마치고 8시 30분에 불상 점안식이 열리는 석가족 마을로 향했습니다. 스님은 인도에 올 때 마다 석가족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는 마을에서 법당이 지어지면 매년 불상을 기증하고 점안식을 해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군데 마을에 불상 점안식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1시간 넘게 논밭 사이로 난 시골길을 달려 먼저 이타와 디스트릭에 있는 우스라하르읍의 인근에 다라나가라 마을에 도착했습니다.nbsp절 이름은 ‘레스마 보드 비하르’. 다라나가라 마을에서 사립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산트 꾸마르 사캬’라는 분이 학교 정문 옆에 작은 공간을 마련하여 절로 운영할 수 있게 보시를 해주었다고 합니다.nbspnbspnbsp아침 10시가 되자 드디어 불상 점안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불상이 아직 흰 천으로 가려져 있는 가운데 스님은 팥을 뿌려 재앙을 쫓고 천을 걷어내고 불상을 향해 붓을 들고 한국식으로 먼저 점안식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한국식과 인도식으로 예불 공양을 한 후 예불이 끝나자 스님은 이곳에 불상을 조성할 수 있게 법당 공간을 보시한 ‘산트 꾸마르 사캬’라는 분에게 앞에 나와 불상을 향해 삼배를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이 분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머리 위에 손을 대고 축원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점안식을 하는 이유와 앞으로 이곳 법당을 어떤 마음으로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스님의 기념법문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경전에 나온 부처님의 말씀을 토대로 의미가 분명하면서도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늘 다라나가라 마을에 절을 창건하고 부처님을 모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에 보면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 때 부처님을 그리워하면서 부처님의 형상을 조성해서 마치 부처님이 계시듯이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예배 올리고 공양 올리면 큰 공덕이 있다고 하셨습니다.nbspnbspnbsp부처님이 계실 당시에는 물론 사람들이 부처님께 예배하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실 수는 없었습니다. 부처님이 라자그라하에 계시면 쉬라바스티 사람들이 부처님을 뵙지 못하고, 부처님이 쉬라바스티에 계시면 바이샬리 사람들이 부처님을 뵙지 못하는 등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을 항상 뵐 수는 없었습니다. 쉬라바스티 사람들은 부처님이 항상 제따바나에 계시기를 원했지만 부처님은 한 곳에 계시지 않고 늘 옮겨다니셨기에 항상 뵐 수는 없었습니다.nbspnbsp그래서 아난드핀디카 장자가 아난다 존자에게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의 보리수를 쉬라바스티의 젯따바나에 심어주면 부처님이 안 계실 때는 우리가 보리수를 부처님이 계시듯이 생각하겠습니다’라고 부탁했고, 그래서 아난다 존자는 보드가야에서 보리수를 가져와서 제따바나에 심었습니다. 지금도 제따바나에 가면 아난다 존자가 보드가야에서 가져와 심었다는 보리수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참배를 합니다.nbspnbsp제가 어제 스리랑카에서 여기로 왔습니다. 스리랑카에 가면 ‘아누라다푸라’라고 하는 도시가 있는데 그곳이 스리랑카의 불교가 처음 전래된 곳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300년 전에 아쇼카왕이 인도를 통치하던 시절, 아쇼카왕의 아들이 출가해 스님이 돼서 스리랑카에 처음 불교를 전하러 갈 때 보드가야에 있는 보리수 한 포기를 가져갔습니다. 2,300년 전에 심은 그 보리수가 지금도 아누라다푸라에 남아 있어요. 큰 가지가 무너지고, 작은 가지가 나고, 또 가지가 나고 해서 아직도 한 가지가 남아 있습니다. 저도 거기에 어제 참배하고 왔습니다. 보드가야에 있던 보리수는 150년 전쯤에 큰 폭풍에 부러져서 죽었습니다. 그때 아누라다푸라에서 다시 보리수를 가져와 심은 것이 지금 보드가야에 있는 보리수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실 때 앉았던 그 보리수의 맥이 지금도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nbspnbspnbsp부처님이 돌아가시고 부처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탑을 세우고 조각이며 그림으로 장식할 때 처음에는 부처님을 사람 모양으로는 그리지 못하고 보리수로 상징해 표현했습니다. 다시 말해 초기에는 이런 모양의 불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을 감히 사람 모양으로 그릴 수 없다고 해서 모양을 그리지 않았어요. 모양을 그려 표현할 때는 두 가지로 했습니다. 첫 번째로는 부처님이 밟았던 발자국 무늬가 남아 있기에 그것을 그려서 섬겼습니다. 두 번째로는 보리수를 그려놓고 그것을 부처님처럼 섬겼습니다. 부처님을 사람 모양으로 그리거나 이런 불상을 만들어 표현하게 된 것은 한참 지난 뒤의 일입니다.nbspnbsp여기에 계시는 불상은 부처님이 아니라 부처님 모양을 새긴 조각입니다. 조각품에게 절을 할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부처님 당시의 사람들이 보리수가 나무지만 부처님처럼 보리수를 공경했듯이, 우리도 ‘이것이 조각이지만 오늘부터 부처님처럼 공경하겠습니다’라는 뜻을 담아 점안식을 하는 것입니다. 점안은 부처님이 눈을 뜬다는 뜻입니다. 스님이 이 붓을 들고 여기에 점을 찍는 것은 ‘이것은 조각이지만 우리는 이 불상을 이제부터 부처님으로 생각하겠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눈을 뜨셨다’ 이런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처음에 만든 것은 조각품이지만 지금부터는 부처님으로 모시겠다고 우리가 약속한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앞으로 여기 와서는 부처님이 계신 듯이 기도해야 합니다.nbspnbsp여기에 이 다섯 가지 색깔의 실은 부처님이 점안식을 통해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나신 셈이니까 여러분들도 이 부처님과 연결되어서 ‘나도 오계를 잘 지켜고 수행 정진해서 부처가 되겠다’ 이렇게 발원하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nbspnbsp▲ nbsp오색 실을 잡고 있는 마을 주민들nbsp부처님께서는 ‘담마를 보는 자가 나를 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병든 비구가 부처님 뵙기를 원했습니다. ‘나는 지금 죽어도 아무런 후회가 없다. 다만 나에게 소원이 하나 있다면 부처님을 마지막으로 한번 뵙고 죽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가 부처님께 이 이야기를 전했고, 부처님이 이 병든 비구를 찾아왔습니다. 병든 비구가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자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부처님이 그냥 누워 있으라고 하셨어요. 그러자 비구가 말했습니다.nbspnbsp‘저는 지금 죽어도 아무 후회가 없습니다. 저에게 마지막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부처님을 한 번 더 뵙는 것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부처님을 뵙게 돼서 저는 이제 아무런 여한이 없습니다.’nbsp그러자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비구여, 이 늙은 육신을 보아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이 육신은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 육신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바로 여래의 가르침을 간직해야 한다. 그대가 nbsp여래의 가르침을 간직하고 있으면 늘 여래와 함께 있는 것이다.’nbspnbsp부처님이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실 때, 부처님이 돌아가신다는 생각에 아난존자가 슬피 울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nbspnbsp‘아난다여, 슬퍼하지 마라.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다. 육신은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깨달음은 영원히 너희 곁에 남아 있으리라.’nbsp또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nbsp‘나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지킨다면 항상 나와 함께 있는 것이고, 설령 내 옆에 있다 하더라도 나의 가르침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니라.’nbsp이런 말씀을 종합해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붓다의 가르침을 배우고,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불교가 없던 곳에 여러분들이 힘을 모아 이렇게 법당을 마련한 것은 참 훌륭한 일입니다. 이렇게 불상을 모신 것도 아주 훌륭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만 멈춰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멈춘다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붓다 담마가 나에게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괴로움이 없고 평화로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부디스트,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달라야 합니다.nbspnbspnbsp부처님의 말씀은 종교를 넘어섭니다. 힌두교는 인도 사람은 믿어도 한국 사람이나 중국 사람은 믿지 않고, 크리스트교는 유럽에서는 믿지만 인도 사람은 잘 안 믿어요. 부처님 당시에도 여러 종교가 있었어요. 그때 가장 강력한 신이 브라만과 인드라였습니다. 부처님이 상카시아로 내려오실 때 옆에서 브라만과 인드라가 부처님을 받들었다는 것은 부처님은 종교보다 위에 있다는 뜻입니다. 불교는 불교, 기독교, 힌두교 등 많은 종교 중 하나지만, 붓다 담마는 이런 종교를 넘어서서 그 위에 있어요. 그래서 제가 불교를 믿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지만 부디스트가 된다면 반드시 붓다 담마를 공부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nbsp스님이 법문을 마치자 다라나가랴 마을 주민들은 무척 기뻐하며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이 “그러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라며 질문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두 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한 분은 술을 먹지 말라는 계율에 대해서 불자라면 무조건 술을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인데, 왜 스님께서는 취하지 말라고 하느냐며 물었고, 다른 한 분은 붓다 담마와 붓다 담마가 아닌 것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이 각각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자 마을 주민들은 다시 한번 기뻐하며 스님께 합장 공경의 예를 취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마을 주민들이 잡고 있던 오색 실을 가위로 모두 잘라 주었습니다. 오색 실은 앞서 스님이 설명했듯이 오계를 지킬 것을 다짐하는 것을 뜻합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다시 점안식을 마친 불상을 향해 삼배로 인사를 올린 후 점안식 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나서는 참석한 주민들 모두에게 기념 선물을 나눠주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단주를 한 명 한 명에게 걸어준 후 이어서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직접 제작한 달력과 볼펜을 하나씩 나눠주었습니다.nbspnbspnbsp좋은 법문도 듣고 선물까지 받으니 모두들 너무나 기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nbspnbsp밖으로 나오자 넓은 마당에 이곳 사립학교 주인인 ‘산트 꾸마르 사캬’ 씨가 내외빈들이 점심 공양을 할 수 있게 대접을 해주었습니다.nbsp스님도 인도 음식으로 공양을 한 후 마을 주민들에게 붓다 담마를 더 열심히 배우고 공부할 것을 당부한 후 점안식이 열리는 다음 마을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nbsp다시 논밭 사이로 난 시골길을 약 2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니 메인뿌리 디스트릭에 있는 ‘사마드푸르’ 라는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논밭 한 가운데에 작은 마을이 있었고, 마을의 한 귀퉁이에 작은 법당이 정성스럽게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법당 바로 옆에 소가 여러 마리 자리잡고 똥을 누고 있어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논밭 한가운데에 자리한 절, 샤캬무니 부드 비하르.nbspnbsp절 이름은 ‘샤캬무니 부드 비하르’. 이곳을 법당으로 사용할 수 있게 보시한 사람은 ‘비리하므 라치트’ 라는 분입니다. 이곳 점안식에는 많은 인도 스님들이 함께 참석했습니다. 점안식을 할 수 있게 장엄을 준비하고 있는 사이에 스님은 인도 스님들과 잠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인도 스님들은 어떤 권위 의식도 없이 참 소박하고 편안해 보였습니다. 특히 매년 스님이 법당을 개원하고 불상을 기증해 주는 것에 대해 무척 고마워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오후 1시가 되자 드디어 점안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한국식으로 정성스럽게 점안식을 했습니다. 스님은 불상을 향해 팥을 던지며 재앙을 쫓고, 불상을 덮고 있던 천을 벗긴 후 붓으로 불상의 미간을 겨냥하고 점안을 하였습니다. nbspnbspnbsp먼저 한국식으로 예참 불공을 올리고 이어서 인도 스님들이 인도식으로 예참 불공을 올렸습니다. 법당이 좁아서 마을 주민들은 법당 밖에서 스님들이 불공 올리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nbspnbspnbsp점안식을 마치고 모두 밖으로 나와 넓은 마당에서 법회가 열렸습니다. 석가족 청년회 회장인 수바스지가 오늘 법륜 스님을 모시고 점안식을 하게 된 의미에 대해 마을 주민들에게 설명을 한 후 스님의 설법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법당을 개원하고 불상을 모신 공덕에 대해 알려주면서 이제는 불상을 모시고 정성껏 기도를 하면서 ‘다섯 가지 계율’을 꼭 지킬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오늘 사마드푸르 마을에 ‘샤캬무니 부드 비하르’ 절을 개원하고 부처님을 모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또 이 절을 창건하신 ‘비리하므 라치트’ 씨에게 깊이 감사말씀을 드립니다. 이렇게 절을 짓고 부처님을 모신 공덕으로 다음 생에는 꼭 부처를 이룰 것입니다. 오늘 이 행사에 참여해주신 여러분들도 참여한 공덕으로 모두 건강하시고 마음이 행복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저 불상은 조각품이지만 이제 점안식을 했기 때문에 지금부터 여러분들에게는 부처님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요?nbspnbsp첫째, 여러분들이 법당에 가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불상을 모셔도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둘째, 붓다 담마를 배워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의 살아 있는 육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붓다 담마를 배운다는 것은, 첫 번째로 담마를 믿고, 두 번째로 담마를 이해하고, 세 번째로 담마를 실천하고, 네 번째로 담마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담마를 자기 것으로 하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머리가 맑아져서 괴로움이 없어지고 행복해집니다. 마음이 더 가벼워지고, 입에서는 부드럽고 좋은 말이 나오고, 남을 위하는 행동을 하게 되고, 지혜가 생깁니다. 그러니 반드시 붓다 담마를 공부해서 그것을 실천해야 합니다.nbspnbsp붓다 담마를 공부하려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계율을 잘 지켜야 합니다. 두 번째가 선정을 닦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지혜를 증득해야 합니다. 불자라면 붓다, 담마, 상가에 귀의하고 실라, 사마디, 빤야를 수행해야 합니다.nbsp그러면 어떻게 계율을 지켜야 할까요? 우리는 살다보면 마음에서 욕심이 일어납니다.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지위도 높아지고 싶고, 인기도 얻고 싶어요. 여기 있는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욕망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자기 주장과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되면 성질이 나고, 화가 치솟고, 짜증이 나게 되어 있어요. 짜증이 나면 말과 행동을 거칠게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습니다. 쥐가 쥐약을 먹는 것과 같아서 먹을 때는 좋지만 나중에는 죽게 됩니다. 물고기가 낚싯밥을 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먹을 때는 좋지만 나중에 죽게 됩니다. 이걸 어리석음이라고 해요. 지금은 좋은데 그것이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나중에는 오히려 손해가 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알지 못하고 스스로 재앙을 자초합니다. 이걸 어리석음이라고 해요.nbspnbspnbsp술 마실 때는 좋지만 나중에 취해서 건강도 나빠지고 주위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잖아요. 그래서 술을 깨고 나면 후회합니다. 이처럼 지금 좋은 것이 반드시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리석어서 항상 자기 원하는 대로 다 하려고 해요. 우리 중생에게 나쁜 점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가 탐심, 즉 욕심을 내는 거예요. 두 번째가 진심, 즉 성질을 내는 것입니다. 세 번째가 치심, 즉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고통을 겪는 거예요.nbspnbsp그러니 이 괴로움에서 우리가 벗어나려면 첫째, 계율을 잘 지켜야 합니다. 계율의 첫번째는, 아무리 욕심이 나고 아무리 화가 나도 남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nbspnbsp두번째, 아무리 내가 욕심이 나도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훔쳐서는 안 됩니다.nbspnbspnbsp세번째,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상대가 싫다는데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즉 여자를 강제로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인도에서 여성을 성추행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인도에서 일어난 이런 사건들 때문에 세계적으로 인도의 이미지가 굉장히 나빠졌어요. 외국 사람들이 인도 남성들은 다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지금 인도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내가 좋다고 다른 사람을 강제로 만지거나 껴안으면 안 돼요.nbspnbsp네번째, 말로도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거짓말을 해서 남을 속이거나, 화가 난다고 욕을 해서는 안 돼요.nbspnbsp다섯번째, 술을 마시고 취해서는 안 됩니다. 술이라는 것은 좀 많이 마시게 되면 취해서 정신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남과 주먹질하고 싸우고, 욕설을 하고, 남의 물건을 부수고, 여자를 성추행해요. 술에 취하게 되면 앞에 있는 네 가지 계율을 다 어기게 됩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한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다 술 마시죠? nbspnbspnbsp술을 안 마시는 게 제일 좋아요. 그러나 농사를 짓거나 빨래를 하다 보면 술을 좀 마시게 될 때가 있어요. 그러나 그렇게 마시더라도 술을 마시고 취해서는 안 됩니다. 취하도록 마셔서는 안 돼요. 여기 취하도록 마시는 사람 있죠?nbspnbsp술 마시고 취해서 길거리에 쓰러져 있거나, 술 마시고 들어와서 아내를 때리거나, 옛날에 했던 말을 계속 하고 또 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돼요. 마시는 것은 자유지만, 남을 괴롭힐 자유는 없습니다. 남편이나 아버지가 술 마시고 취해서 들어오면 얼마나 괴로운지 여자들에게 물어보세요. 여기에는 그런 사람 없어요? 한국에는 그런 사람이 많아요. 인도 사람도 제가 전에 물어보니까 많다던데요. 그러면 안 돼요. nbspnbspnbsp다시 이야기하지만, 술은 안 마시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마시더라도 취해서는 안 됩니다. 마시는 것은 내 자유라 하더라도 마시고 남을 괴롭힐 권리는 없습니다. 자, 술을 아예 안 마시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술을 마시더라도 절대로 취할 정도로는 안 마시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nbspnbsp손 안 든 사람들은 취하도록 마시겠다는 거예요? 한 번 더 이야기합니다. 술을 안 마시면 가장 좋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마신다 하더라도 절대로 취하도록 마셔서는 안 됩니다. 몸이 흔들리거나 정신이 오락가락하거나 말이 자꾸 나오도록 술을 마신다면 부디스트라고 할 수 없습니다.nbspnbsp불자라면 엄마들도 아이가 말 안 듣는다고 때리면 안 돼요. 남자들도 술 마시고 취하거나 해서 여자를 때리면 절대로 안 돼요. 사무지가 헤? nbspnbspnbsp불자라면 불자 아닌 사람과 차이가 나야 해요. 여성이 낯선 남자와 같이 있다 하더라도 상대가 불자라고 하면 안심할 수 있어야 해요. 불자라면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고, 나에게 손해 끼치지 않을 것이고, 나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고,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고, 술 마시고 취해서 나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니까요. 그런데 내 남편, 내 아들이라고 해도 자기가 성질나면 나를 때리고, 집안의 물건을 훔쳐가고, 괴롭히고, 욕설하고, 술 마시고 취해서 행패 부리면 싫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이 다섯 가지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다섯 가지만 지켜지면 세상의 갈등과 혼란의 90퍼센트는 가라앉고 조용해져요.nbsp둘째, 사마디, 즉 명상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늘 들떠 있기 때문에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최소한 30분이라도 이렇게 편안하게 마음을 안정시켜야 해요. 욕심이 나거나 짜증이 날 때일수록 마음을 더 편안하게 가져야 합니다. 하던 일을 잠시 쉬고, 자세를 바로 하고, 마음을 콧구멍 끝에 집중해서 숨이 들어가고 숨이 나오는 것을 가만히 알아차립니다. 그렇게 10분, 20분, 30분이 지나면 흥분되거나 들떴던 마음이 편안해집니다.nbspnbsp셋째,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지혜를 얻으려면 붓다 담마를 공부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절에 오셔서 한 시간이라도 공부를 하세요. 자기가 지난 일주일 동안 계율을 어긴 게 있으면 참회를 하고, 다시는 계율을 어기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서 삶의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금보다 번뇌나 괴로움은 훨씬 더 줄어들고, 훨씬 더 행복해집니다. 다른 이웃 종교인들보다 비록 재산은 좀 적더라도, 지위는 좀 낮더라도, 내가 훨씬 더 행복해져요. 다른 사람들에게 ‘야, 너는 그런 일을 당했는데도 화가 안 나고 안 괴롭냐? 너는 어떻게 그렇게 행복하냐?’ 이런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행복하다는 것에서만큼은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이다.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 이런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러니 부디스트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야 해요. 열반이란 것은 행복하다는 거예요. 괴로움이 없는 거예요. 괴로움이 있더라도 작고, 조금 있다 하더라도 금방 극복한다는 거예요. 괴로움이 없는 아라한이 되는 것은 어렵지만,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는 것은 쉬워요. 미국이나 유럽에 가면 여러분보다 경제적으로 사는 형편이 훨씬 좋지만 행복하지는 못해요. 붓다 담마를 몰라서 그래요. 앞으로 경제가 많이 성장한다 해도 붓다 담마를 모르면 행복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붓다 담마가 더 많이 전파돼야 합니다.”nbsp스님은 여러 차례 다섯 가지 계율을 강조하며 마을 주민들이 잘 지킬 수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주민들은 스님의 설명을 듣고 다섯가지 계율을 지키겠다고 흔쾌히 마음을 내었습니다.nbspnbsp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스님은 “질문 있으면 하세요. 아무 것이나 물어도 됩니다.”라며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두 가지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내생에 대한 질문에 스님이 너무나 짧고 명쾌하게 대답해 주어 주민들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nbsp“다시 태어나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nbsp“다시 태어나면 어떻고, 안 태어나면 어때요? 안 태어나면 안 태어나서 좋고, 태어나면 또 살면서 불법 만나 수행하면 되잖아요. 태어나든지 말든지 저에게는 그게 아무 문제가 안 돼요. 태어나면 태어난 대로 좋고, 안 태어나면 안 태어난 대로 좋고, ‘노 프라블럼’이에요.” nbspnbspnbsp질문한 할아버지는 스님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고민이 금방 해결되었다며 환하게 웃었습니다.nbspnbsp다음은 귀신이 정말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nbspnbspnbsp“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어 집에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특히 여자들이 많이 하던데, 진짜로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어서 이렇게 찾아옵니까?”nbsp“모든 것은 다 마음에 달렸습니다. 신이 있다고 믿으면 그 사람에게는 신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없다고 믿으면 그 사람에게는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신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라는 것입니다. ‘귀신이 있어서 찾아온다’라고 강하게 믿으면 정말로 귀신이 오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느냐, 안 오느냐가 핵심이 아니에요. 마음을 그렇게 쓰면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이 중요합니다.nbspnbspnbsp그래서 사람이 죽었을 때 하루나 이틀만 울고 그만 울어야 해요. 만약에 귀신이 있다고 치면, 계속 슬퍼하면 귀신이 떠나지를 못해요. 계속 운다는 건 가지 말라고 계속 잡아당기는 셈이니까요. 그러면 ‘귀신이 든다’는 말과 같은 경험을 하게 돼서 정신이 약간 이상해집니다. 그러니 죽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잠시만 슬퍼하고 그만둬야 해요. 인도 사람들이 믿듯이 윤회를 한다면 내가 놓아줘야 빨리 윤회하잖아요. 또 기독교 식으로 말해서 천당에 간다면 내가 놓아줘야 빨리 천당에 가잖아요.nbspnbsp다시 말하면 천당에 가든 윤회를 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죽음을 갖고 슬퍼하지 말라는 게 중요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지, 천당에 간다거나 윤회를 한다거나 하는 게 아닙니다. 천당에 가든 윤회를 하든 그건 상관없어요. 니르바나를 추구하는 불자는 고뇌가 없기 때문에 태어나도 좋고, 안 태어나도 좋고, 천당 가도 좋고, 안 가도 좋아요. 그건 별로 중요한 관심사가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하나의 자연현상이기 때문에 그 슬픔에 빠지지는 마세요.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입니다.nbsp사람이 죽었는데도 슬프지 않다면 헤어졌다고 슬플 게 뭐 있으며 재산을 잃었다고 슬플 게 뭐 있겠어요?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진찰을 해보고 ‘암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nbsp“슬플 겁니다.”nbspnbsp“죽어도 안 슬픈데 병이 뭐가 슬퍼요? 여러분들은 웃으면서 ‘의사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찾아냈군요. 아이고, 축하합니다’ 이렇게 말해야 해요. 없던 암이 오늘 갑자기 생긴 게 아니잖아요. 어제도 그제도 있었습니다. 오늘 일어난 일은 애초에 있던 것을 발견한 것뿐이에요. 발견한 건 좋은 일인데 왜 울어요? nbspnbsp의사가 ‘제가 지금까지 많은 환자를 대했지만 암이라고 하는데도 빙긋이 웃으면서 축하한다고 하는 사람은 처음 만났습니다’ 이러고 놀라면 ‘아, 저는 부디스트입니다’ 이러세요. 그러면 의사가 ‘와, 불교 신자는 다르구나’라고 생각해서 다음에 절에 올 거예요. nbspnbspnbsp그런데 암이라고 하니까 ‘아이고, 암이라고요?’하고 울고불고 하면 부디스트라고 해서 다른 종교인들과 다른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러니 절에만 다니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붓다 담마를 알아서 여러분들의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삶이 더 행복해져야 해요. 이건 스님이 안 되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스님이 되고 안 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담마를 실천하느냐 못 하느냐가 중요해요. 그렇다고 스님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도 아니에요. 물론 스님은 중요하지만, 여러분들도 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우리는 재가신자니까 안 해도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마을 주민들은 크게 환호하고 박수를 치며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더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하고 싶어했으나 더 길게 시간을 가질 수 없어 법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참석한 마을 주민들 모두에게 단주, 수자타아카데미 달력, 볼펜을 차례대로 나눠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 선물을 받은 주민들은 스님의 발에 이마를 대고 합장 공경의 예를 취하며 감사한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nbsp마을 주민들은 점안식을 하기 위해 저 멀리 한국에서 온 스님 일행을 위해 짜이와 간식을 나눠주었습니다. 잠시 담소를 나누다가 스님이 차에 다시 타려고 하자 주민들은 스님을 에워싸고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nbsp이렇게 불상 점안식 두 차례를 모두 무사히 마쳤습니다. 스님의 간절한 염원대로 석가족 마을주민들로 인해 인도에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 다시 흥기하게 되는 날이 빨리 도래하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다음은 상카시아로 향했습니다. 상카시아에는 정토회가 석가족들의 불교 교화활동을 돕기 위해 담마센터를 지으려고 구입해 놓은 넓은 부지가 있어서 그곳에 잠시 들렀습니다.nbspnbsp▲ 담마센터 부지nbsp스님은 부지를 한 바퀴 둘러보며 곳곳에 어느 위치에서 어떤 건물들을 지으면 좋을지 대략적인 구상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또 승려들을 교육시키는 불교학교를 운영하자는 제안도 있어서 불교학교는 어떤 곳에 지으면 좋을지도 함께 검토했습니다.nbspnbsp담마센터 옆에는 석가족 출신인 담마팔 스님이 운영하는 법당이 있는데, 오후 6시부터는 이곳 법당에서 석가족 청년회 간부들과 작년 사업과 올해 사업계획에 대해서 보고 받고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약 2시간 30분 동안 많은 토론과 제안이 있었습니다. 지난주에는 수바스지가 석가족 청년회를 대표해서 정토회 성지순례단에 참여했는데 다녀온 소감도 잠시 들어보았고, 더불어서 석가족들을 위한 인도 성지순례를 언제 어떻게 다녀올 수 있을지 그 방안을 함께 검토해 보기도 했습니다.nbspnbsp또 스님은 담마센터를 짓는 것과 관련해 이야기가 나오자 스님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스님이 어떤 관점에서 인도 불교 부흥 사업을 펼치려고 하는지, 담마 센터가 한국인의 센터가 아니라 정말로 인도 사람들의 센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의 고민을 충분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우리가 처음에 세웠던 원래 계획은 맨 안쪽에 명상센터와 숙소를 짓고, 가운데에 대강당을 짓고, 입구 쪽에 상카시아를 상징하는 수투파를 짓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직 못했지만, 우리가 건축을 시작하기 전에 혹시 다른 계획을 제안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요?”nbspnbsp“이곳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왜 법륜 스님이 왔다 가셨는데, 아무것도 지어지지 않을까. 스님은 둥게스와리에서는 수자타아카데미 학교도 짓고 병원도 짓고 많은 일을 하시는데 왜 상카시아에는 아무 일도 안하시는지 사람들이 얘기하는데 듣기에 별로 좋지 않습니다.”nbsp“수자타아카데미를 지은 이유는 불가촉 천민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돕기 위해서 지은 겁니다. 그런데 상카시아는 여러분들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돈을 모아서 하겠다고 하면 저는 항상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이 안 하니까 지금 몇 년이 그냥 흘러가고 있습니다.nbspnbsp이곳에는 한국절을 지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담마 센터를 지으려고 합니다. 그것도 이 주위에 살고 있는 석가족들이 중심이 된 담마센터를 지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쨌든 밥은 먹고 살잖아요. 그래서 같이 짓자는 겁니다. 지난번에 와서는 제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스승입니까? 사장입니까?’ nbspnbsp그래서 저를 사장으로 생각하지 않고 스승으로 생각한다면 절반은 여러분들이 나서서 하고 나머지 절반은 제가 도움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계속 기다리고 있어요. 붓다 담마를 전하는 일은 건물만 짓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예요. 무엇이든 같이 해야 해요. 그런데 같이 하는 것이 잘 안 되고 있어요.nbspnbsp선택은 두 가지에요. 하나는 여러분들이 준비될 때까지 계속 기다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분들을 무시하고 그냥 제가 지어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이곳은 여러분들의 절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절이 되는 거예요. 물론 여러분들이 이 절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한국 사람들이 운영할 수 밖에 없게 돼요. 여러분들은 사용만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만약 여러분들의 힘으로 짓게 된다면 앞으로 운영도 여러분들이 하게 되는 거예요. 저는 지원만 하고 끝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곳이 인도 사람들의 절이 되려면 여러분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우리는 못하겠습니다’ 하고 포기할 거예요? nbsp그러면 저 혼자 하는 수밖에 없어요. 제가 절을 다 지어서 만약 여러분들에게 넘겨준다면 이 절을 갖고 여러분들이 싸우게 될 거예요. 저는 안 봐도 다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절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서로 화합을 이뤄내야 해요. 여기 와서 일도 하고, 도네이션도 하고, 서로 의논도 하면서 상가처럼 만들어가야 해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미래에도 운영을 잘 해나갈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스님이 계속 기다리는 거예요.nbspnbspnbsp그러나 스님도 계속 나이가 들어가고 있어요. 만약에 스님이 갑자기 죽는다고 하면 이 프로그램을 계속 끌고 갈 사람이 없어져요. 한국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아요. 실무자들도 다 자기 일 하기 바빠요. 사람을 파견하려고 해도 보낼 사람이 없어요. 둥게스와리는 이미 학교를 지어놓았기 때문에 운영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거기도 사람이 없어서 제대로 운영을 못했어요. 이제 쁘리앙카가 돌아왔기 때문에 제대로 운영되기 시작한 겁니다. 또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이제 커서 선생님이 되었기 때문에 자체적인 운영이 가능해졌어요. 그런데 상카시아는 지금 이 일을 할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스님도 고민이예요.”nbsp스님의 고민에 석가족 청년들도 모두 공감을 표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 담마센터가 인도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 운영되도록 하려는 스님의 애정을 많이 느낄 수 있어서 무척 감명 깊었습니다.nbs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석가족 청년들은 자신들의 여건도 그리 녹록치 않아서 선뜻 나서지는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석가족 청년들이 더욱 마음을 내어서 이제 곧 담마 센터 공사가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의 기운들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회의를 마친 후 스님은 회의에 참가한 모두에게 수건, 양말, 달력을 선물로 주었습니다.nbsp또 석가족 청년회와 담마팔 스님에게는 각각 올해 1년 동안의 활동에 보태어 쓰라고 지원금도 전달했습니다.nbspnbsp스님으로부터 하루 종일 법문도 듣고, 활동에 대한 조언도 듣는 등 행복한 시간을 보낸 석가족 청년들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스님이 이렇게 한번씩 오셔서 기운을 듬뿍 주시는 것에 대해 무척 기뻐했습니다.nbspnbsp석가족 청년회와 회의를 마친 후 스님은 다시 수바스지의 집으로 돌아와서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석가족 청년회 멤버 중 한 사람이 운영하는 학교를 잠시 방문한 후 이타와 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야까지 12시간 동안 이동할 예정입니다.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해서는 앞으로 일주일 동안 학생들, 교사들을 위한 법문과 회의 일정 등을 가집니다.nbsp ※ 2016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nbsp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분들은 지금 신청하세요.nbspnbspnbsp
2016.1.29 (스리랑카 5일째) 아리야라트네 박사(Dr.Ariyaratne) 만남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사르보다야 운동을 이끌며 스리랑카 국민들의 존경을 받아온 아리야라트네 박사님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린 후 인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nbspnbsp새벽 5시에 숙소를 출발해 아리야라트네 박사님이 머물고 있는 콜롬보 근교의 ‘모라투라’로 향했습니다. 새벽에 차가 막히지 않아 1시간 일찍 박사님 댁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박사님은 올해 85세이신데, 스님은 1993년 보스톤에서 열린 ‘기독교불교의 대화’ 모임에서 처음 만난 후 지금까지 깊은 인연을 맺어오고 있습니다. 박사님의 연세가 많으셔서 오늘이 아니면 다시 얼굴을 못 볼수도 있다며 스님은 오늘 특별히 시간을 내어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nbspnbsp▲ 사르보다야 센터nbsp스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박사님은 매우 반가워하며 포옹을 하고 스님의 두 손을 꼭 잡았습니다. 스님은 박사님의 건강을 여쭌 후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 아리야라트네 박사님nbspnbsp“스리랑카까지 왔는데 박사님 얼굴을 안 보고 갈 수가 없어서 찾아왔습니다. 3년 전에 뉴욕 맨하탄에 있는 유니온 신학대학에서 뵈었었죠. 지금 스리랑카 상황은 어때요?”nbspnbsp“지금 스리랑카는 변화기에 있습니다. 새 대통령은 자기 권력을 내려놓고 다시 민주주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일절 돈을 받지 않고 대통령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힘을 갖게 되면 사람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저는 그동안 좋은 일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은 무척 행복합니다.”nbsp“박사님은 정치적 대통령이 아니라 정신적 대통령이 되셨잖아요. 그게 훨씬 더 나은 거예요. 이번에 와서 둘러보니까 도로도 깨끗해지고 경제도 좋아지고 사회 전체적인 환경이 많이 좋아진 것 같네요.nbspnbsp지난번에 전해주신 부처님 사리는 아직 탑을 세워서 모시지 못하고 있어요. 절이 새로 지어지면 모시려고 해요.“nbsp“부처님의 사리를 제대로 모시지 않으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 버려요.” nbsp“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담마를 보는 자가 나를 본다’고 하셨잖아요. 저에게는 담마가 항상 함께 있기 때문에 사리도 저와 함께 있을 것이어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nbspnbsp“언젠가 우리는 부처가 될 것입니다. 매일 아침 1시간씩 명상을 하면서 스님도 생각하고 모든 친구들을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제가 그동안 썼던 책을 다시 편집하고 있어요. 젊은 세대들이 우리가 했던 것들을 알아야 하니까요. 지금 인도에는 암베드카르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늘어났지만 그들은 아직 불법을 잘 모르고 있어요. 이제 인도에는 간디가 없고 암베드카르만 있는 것 같아요.nbspnbsp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부처님 말씀 밖에 없습니다. 더 많은 스님들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몇몇 스님들은 부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nbsp“붓다 담마를 가르쳐야 하는데 대부분의 스님들이 복을 빌어주는 일만 하고 있으니 그것이 문제입니다. 타밀 문제는 끝이 났어요? 아직도 남았어요?”nbsp“훨씬 많이 좋아졌어요. 이제는 타밀 사람들이 대통령을 서포터해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과 스님들은 아직도 타밀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도 합니다. BBS 그룹이 그러한데, 지금 그들 중 일부는 감옥에 있습니다.nbspnbsp지금 ‘사르보다야’는 저를 대신해 아들 한 명과 딸 둘이서 운영하고 있어요. 여기 뒤에 고아원을 지어서 일곱, 여덟 살 된 아이들 60명도 돌보고 있어요. 더 큰 아이들은 여기서 1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서 26명을 키우고 있어요. 그 아이들은 제 아내가 돌보고 있어요. 제가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데 지금 보시다 싶이 걷는 것도 이제는 힘들어요. 하지만 저는 죽기 직전까지 이 일을 할 겁니다.”nbspnbsp“박사님이 이미 하신 일만 해도 엄청난 일을 많이 하셨어요. 이제 남은 일은 저희가 하겠습니다.” nbspnbsp스님의 이야기에 박사님은 너무나 기뻐하면서 아침 식사도 대접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박사님의 거동이 불편해서 이렇게 인사만 드린 후 스님은 ‘사르보다야’ 안에 세워진 건물들을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가족 모임을 하는 오픈 강당, 법회가 열리는 곳, 외국인들을 위한 유스호스텔, 사무실 등을 차례대로 보았습니다.nbspnbspnbsp건물 뒤쪽에는 아이들에게 영양식을 공급해주는 고아원이 있다고 해서 방문해 보았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박사님 부부의 보살핌을 받으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nbspnbspnbsp▲ 아리 박사님이 운영하는 고아원nbsp또 사무실에는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아리야라트네 박사님의 큰 아드님이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큰 아드님은 스님을 보자마자 포옹을 하며 무척 반가워 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여러 격려 말씀을 들려준 후 방명록에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 주었습니다. nbspnbspnbsp“아리야라트네 박사님의 뜻과 삶이 담겨있는 이곳 사르보다야를 방문하게 되어 기쁩니다. 아리 박사님이 하셨던 마을개발 사업을 전 세계로 확산하는데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2016. 1. 29 법륜.”nbsp같이 기념사진을 찍고 사무실을 나오는데, 복도에는 아리 박사님이 그동안 활동해온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청년 시절에는 정말 열정적으로 마을개발 운동을 하셨음을 사진 속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그 당시에는 아리 박사님이 국민적으로 추앙을 받았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 아리 박사님의 젊은 시절 활동 모습nbsp아리 박사님께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려고 찾아갔더니 이번엔 박사님이 서재로 스님을 안내했습니다. 서재에는 작은 불상이 모셔져 있었는데, 박사님은 향에 불을 붙인 후 간절히 기도를 하시더니 스님에게 부처님의 사리를 전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스님의 머리에 부처님의 사리를 올린 후 다시 한 번 간절히 기도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부처님의 사리를 감사히 받아들고 박사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nbspnbsp“박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 세상에 널리 전하겠습니다.”nbsp이렇게 인사를 드리고 떠나려는 찰나에 박사님은 이곳에서 5분 떨어진 곳에 평화 명상센터를 지어 놓았다며 다시 그곳으로 스님 일행을 안내했습니다. 아주 조용한 가운데 새소리가 간간히 들리고, 연못도 잘 조성해 놓았으며, 걷기 명상을 할 수 있게 숲길도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nbspnbsp▲ 평화 명상센터nbsp아리 박사님은 아주 단정하고 곱게 옷을 차려 입고 나와서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마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르기에 기념사진을 꼭 남기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 아리야라트네 박사님과 법륜 스님nbsp스님은 평화 명상센터까지 모두 둘러본 후에야 아리 박사님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박사님은 스님이 떠나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깊은 애정을 보였습니다.nbspnbsp아침 8시 30분에 모라투라를 출발하여 잠시 콜롬보에도 들렀습니다. 콜롬보에는 제작년 INEB 정토회 방문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왔었던 스리랑카 스님이 있었는데, 얼마전 어떤 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잠시 방문하여 위로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스리랑카 스님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nbspnbsp“어떤 경우에도 불자는 화를 내서 폭력을 쓰거나 폭언을 해서는 안 됩니다. 또 나도 모르게 그랬다면 깊이 참회를 해야 합니다. 억울하다는 것은 내가 지은 인연을 모를 때 생기므로 지은 인연을 알아 깊이 참회하면 언제나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nbsp언제 어디서나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라는 말씀에 어려움을 당한 스리랑카 스님도 무척 고마워하며 감사해 했습니다.nbspnbsp잠깐의 여유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힘을 실어주고 격려를 해주려는 스님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져서 가슴이 찡 했습니다.nbspnbsp12시에 공항에 도착해 일찍 출국 수속을 밟은 후 기다리는 시간에는 원고 교정을 보았습니다. 오후 2시에 콜롬보 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오후 5시 30분이 되어 델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콜롬보 국제공항을 이륙하는 비행기nbspnbsp델리 공항을 나와서는 차를 대절해 곧바로 ‘이따와’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퇴근 시간에 교통 체증이 무척 심해 델리 시내를 빠져나오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운전 기사가 길을 헤매자 스님이 길안내를 일일이 해주어서 겨우 델리 시내를 빠져나왔습니다. 스님은 “인도에 와서도 지도 법사 역할을 해야하나?”라고 해서 모두 웃었습니다.nbspnbsp▲ 델리 시내의 퇴근길 교통 체증nbsp약 6시간 30분 동안 차를 타고 새벽 1시가 다 되어 ‘이따와’에 있는 석가족 청년회 대표 수바스지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수바스지의 집에서는 간단히 수바스지와 인사만 나눈 후 곧바로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스리랑카의 콜롬보에서 인도의 이따와까지 정말 먼 거리를 부지런히 달려왔네요.nbspnbsp내일은 상카시아로 이동해 새로 개원하는 석가족의 법당 개원식에 참가해 기념 법문을 해준 후 저녁에는 석가족 청년회 회원들과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nbsp ※ 2016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nbsp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분들은 지금 신청하세요.nbspnbspnbsp
2016.1.28 (스리랑카 4일째) INEB 이사회, 스리 마하보디트리 참배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스님이 스리랑카에 머문지 4일째 되는 날입니다. 오전에는 INEB 이사회에 참여하였고, 오후에는 불교인들이 성지로 여기는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보리수나무를 참배했습니다.nbspnbsp새벽 6시, 이곳 일정에 따라 명상시간이 되자 스님은 홀에 앉아 1시간 동안 명상을 했습니다. 어제 INEB 폐회식을 하고 대부분이 고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오늘 아침 명상에는 스님을 비롯해 세 명만 참석을 했습니다.nbspnbspnbsp9시 30분부터는 INEB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먼저 이번 대회에 대한 간략한 평가가 있었고, 이어서 명예회원과 자문위원 등의 명단을 검토하고 새로운 회원 영입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특히 젊은 불교 지도자들을 더욱 양성해야 한다는 의견은 모두에게 공감을 얻어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nbspnbsp▲ INEB 이사회nbsp그리고 INEB 원로이신 슐락 박사님과 INEB 현 회장을 맡고 있는 하르샤 씨는 이번 회의에 법륜 스님이 특별히 참가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이사회가 진행되는 동안 특별히 의견을 내지는 않고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지 경청만 했습니다.nbspnbspnbsp무엇보다 이사회에서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은 INEB 2015년 활동 보고와 2016년 사업 계획이었습니다. 우선 다음 INEB 컨퍼런스는 2017년 11월 대만에서 하기로 하였고, 2018년 이사회는 부탄에서 열기로 했습니다. 이 외에도 불교와 무슬림 간의 교류 행사, 불교와 힌두교 간의 교류 행사, 기후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네트워크 구축, 리더십 양성을 위한 교육 등을 다양하게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사회적 실천을 위한 영어 학교도 열 예정인데 각국의 불교 지도자들은 영어 학교에 대해서는 무척 높은 관심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INEB 이사회를 모두 마치고 회의 참가자들 모두 다같이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벌써부터 다음 행사에 대한 기대로 설레여 하는 듯 ‘원, 투, 쓰리’ 하자 환하겟 웃었습니다.nbspnbspnbsp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는 대만에서 온 전커 션 비구니 스님이 찾아와 “어제 불교의 근본 가르침을 잘 짚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라며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자 스님은 앞에 앉으라고 한 후 담소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 대만에서 온nbsp전커 션 비구니 스님nbsp“사회활동에 참여하다 보면 불교의 근본 가르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nbsp“불자라면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해서 해나가야죠.”nbsp“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부처님 가르침만 미화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nbsp“대부분은 부처님께 복을 비는 것이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죠. 그러나 붓다 담마를 공부한다면 개인수행과 사회활동이라는 두 가지가 함께 갑니다. 보살은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한다고 하잖아요.”nbspnbsp“上求菩堤 下化衆生?” nbspnbspnbsp“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하는 두 가지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게 아니에요.”nbspnbsp“스님의 법문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되어 있나요?nbsp“예, 일주일에 한 번씩 2년에 걸쳐 수업을 듣도록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로 배우는 주제는 ‘불교란 무엇인가?’예요. 다른 종교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배웁니다.”nbspnbsp“올바른 관점을 갖는 게 굉장히 중요하지요.”nbsp“맞습니다. 일단 붓다 담마에 대해서 알아야 해요. 불교는 종교로서의 불교가 있고, 진리로서의 불교가 있어요. 우리 정토회에서 배우는 불교는 종교로서의 불교가 10퍼센트 정도, 진리로서의 불교가 90퍼센트 정도 되기 때문에 타 종교인들도 모두 와서 공부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두 번째로는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 배웁니다. 붓다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배웁니다.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인격에 대해 잘 몰라서 부처님을 그저 신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 번째로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 즉 테라바다에 대해 배웁니다.네 번째로는 ‘불교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배웁니다. 테라바다, 마하야나, 바즈라야나, 선불교를 차례로 살펴봅니다. 그래서 선불교로서의 정체성도 가지면서 다른 불교의 갈래도 모두 포용할 수 있도록 해요. 그게 첫 1년에 해당하는 불교대학 과정에서 배우는 내용이에요.nbsp다음 해는 경전반 수업입니다. 경전반에서는 ‘반야심경’, ‘금강경’, 6조 혜능대사가 남긴 ‘육조단경’, ‘법성게’를 차례로 배웁니다. ‘화엄경’이 너무 길고 방대하기 때문에 의상조사라는 스승이 그 내용을 요약해 놓은 것이 ‘법성게’입니다. 그리고 3대 승찬조사가 쓴 ‘신심명’을 배웁니다.nbspnbsp첫 해는 근본불교와 불교의 역사에 대해 주로 공부하고, 다음 해는 대승불교와 선불교에 대해 주로 배웁니다. 대승·소승 불교와 선종·교종에 대해서 서로 반대되는 내용이 아니라 공통되는 부분, 다시 말해 전체에서 통일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배웁니다.”nbspnbsp“강의하는 다른 스님들이 계시는지요? 아니면 스님 혼자 가르치시는지요?”nbspnbsp“수업은 저 혼자 가르칩니다.”nbsp“공부 외에 명상이나 다른 수련도 하나요?”nbsp“예, 졸업하려면 반드시 수행과정을 거쳐야 해요. 또 다양한 분야의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면서 생활 속에서 실천을 해야 합니다. 학기 중에도 일주일에 몇 시간, 혹은 한 달에 몇 시간씩 자원봉사 활동을 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nbspnbsp“2년 과정을 마치면 졸업장을 받을 수 있습니까?”nbsp“예. 그리고 계를 받습니다.”nbsp“불교대학과 경전반에 참여하는 일반 신도들이 많습니까?”nbsp“예. 봄과 가을, 1년에 두 번 입학식이 있는데 한 번에 3천 명 정도가 등록합니다.”nbsp“그 많은 사람들을 혼자서 어떻게 가르치세요?”nbsp“영상강의이기 때문에 다들 자기 동네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nbsp“그렇군요. 대단합니다. 대화 감사합니다.”nbspnbsp스님은 ‘정토불교대학’의 학사 과정에 대해 설명을 한 것이었는데, 이를 듣고 대만 비구니 스님은 매우 놀라워습니다. 한번에 그렇게 많은 대중이 불법을 공부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나 봅니다.nbspnbsp이어서 슐락 박사님이 찾아와 스님에게 “일찍 가봐야 할 것 같다”고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의 가르침과 활동에 대해 항상 존경합니다.”라며 합장을 하자, 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슐락 박사님의 두 손을 꼭 잡았습니다.nbspnbspnbsp두 분은 20년 전 INEB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교류와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데, 변치 않는 두 분의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nbspnbsp원래는 내일 아침에 이곳 세바란카 파운데이션에서 공항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는데, 스님은 “행사가 모두 끝났으니 오늘 공항 근처로 이동했다가 내일 아침은 닥터 아리예야트네 박사님을 뵙고 가야겠다”고 하시며 곧바로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닥터 아르야트네 박사님은 스리랑카에서 ‘사르보다야’ 운동이라는 마을개발 운동을 통해 INEB 초창기에 많은 감동을 보여주면서 INEB를 태동시킨 원로 중 한 분입니다.nbspnbsp짐을 모두 챙기고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자, 지난 4일 동안 스님 일행의 숙소와 식사를 꼼꼼히 잘 챙겨준 세바란카 파운데이션의 스탭 ‘지나’ 씨가 눈물을 보이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짧인 기간이었지만 정이 많이 들었나 봅니다. 스님 일행도 아쉬움을 달래며 버스 창 밖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nbspnbspnbsp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아누다라푸라에 있는 스리 마하보디 사원에 nbsp잠시 들렀습니다. 원래 방문이 예정된 곳이 아니었지만 스님은 “아쇼카대왕 때 그 아들이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하기 위해 보드가야에 있는 보리수나무를 가져와 심었는데, 그 나무가 바로 이 나무”라고 소개하며 “잠시 참배하고 가자”고 했습니다.nbspnbsp▲ 스리 마하보디 트리nbsp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자 보리수 나무 주변으로 축대가 둘러쳐져 있어 나무를 직접 만져보지는 못하게 되어 있고, 멀리서 바라보며 둘레를 돌 수 있도록만 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합장을 하고 보리수 나무 주위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그리고 법당으로 들어가 헌화를 한 후 잠시 예불을 올렸습니다.nbspnbspnbsp이 사원의 보리수 나무는 기원전 3세기 경, 인도 비하르주에 있는 보드가야에서 묘목을 가져온 것이라서 불교도들에게 큰 의미를 가지는 곳입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 하는 바로 그 보리수 나무의 직계 혈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원의 보리수 나무를 보디 트리라고 부르는데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이 나무에게 기도를 하며 주변을 돌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nbspnbspnbsp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설이 있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기원전 3세기 경 아쇼카왕의 아들이 출가하여 스님이 되어 이곳으로 묘목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드가야에 있던 그 보리수 나무는 1876년 폭풍우로 쓰러져 죽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 여기서 다시 묘목을 가져가서 보드가야에 보리수 나무를 새로 심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쓰러져 죽은 나무에서 씨앗을 채취해 다시 심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nbspnbsp▲ 사원 입구에 아쇼카왕의 아들이 보리수나무의 묘목을 들고오는 모습이 조각된 모습nbsp어떤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스리 마하보디 사원‘의 보리수 나무가 석가모니의 보리수 나무의 혈통을 이었다는 것이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보리수 나무로 알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보드가야에서 가져와서 심었다고 하는 원줄기가 되는 나무가지는 황금색 받침대로 떠받치고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nbspnbspnbsp밤 9시가 다 되어 공항 근처의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해가 저물었습니다. 붉은 태양이 지평선으로 사라지는 찰나에 도로 양쪽에 호수가 나타나 장관을 이루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조금 더 가니 해가 지기 전에 바다도 잠깐 볼 수 있어서 스님 일행 모두 웃음을 띠며 피곤함을 녹일 수 있었습니다. nbspnbspnbsp숙소에서는 늦게까지 이번 INEB 행사에 대해 평가회의를 했습니다. 여러 의견들이 있었는데, 특히 스님은 “지하수 오염으로 인한 주민들의 질병 문제가 지금 스리랑카에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며 “나중에 JTS에서 다시 답사를 와서 어떻게 도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파악하고, 한국에서도 더욱 조사를 해보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또 매년 6월마다 동남아 스님들을 초청해 정토회를 견학하고 방문할 수 있게 하고 있는데, 올해는 비구니 스님들도 소외되지 않도록 더 잘 챙길 것을 당부하면서 이번 INEB 행사에서 경험한 것을 교훈으로 삼을 것을 일러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이번 행사 기간 동안 통역 자원봉사를 해준 이진아씨가 공항으로 먼저 출발을 해야 해서 다함께 배웅을 해주며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스님은 “수고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기념사진도 함께 찍어주었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 5시에 숙소를 출발해 스리랑카에서 사르보다야 운동을 이끌었던 닥터 아리야트네 박사님을 찾아뵌 후 콜롬보에 들러 재작년에 INEB 정토회 방문단에 참여한 인연이 있었던 스님을 만나고 곧바로 공항으로 이동해 인도로 다시 들어갈 예정입니다. 인도에서는 상카시아에서 석가족들을 위한 수련이 있습니다. nbsp nbspnbsp ※ 2016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nbsp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분들은 지금 신청하세요.nbspnbspnbsp
2016.1.27 (스리랑카 3일째) INEB 기조발제 ‘총체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INEB 컨퍼런스에서 ‘총체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주제로 기조 발제를 했습니다.nbspnbsp어제 INEB 참가자들은 구조적 폭력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우리 개인의 일상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에 대해 토론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총체적 개발’에 대해, 그리고 ‘총체적 개발을 가시적으로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주제로 이번 INEB의 핵심적인 토론이 이뤄졌습니다.nbsp먼저 컨퍼런스를 시작하기에 앞서 중국 스님들과 대만 스님들이 함께 앞으로 나와 챈팅을 함께 해주었습니다. 중국과 대만은 우리 나라의 남한과 북한처럼 양국 사이가 좋지 않은데 오늘 행사장에서 스님들이 함께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모두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남한과 북한도 국제 행사에 이렇게 함께 자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상상도 해보았습니다.nbspnbsp▲ 중국 스님들과 대만 스님들이 함께 기도하는 모습nbspnbsp예불을 마치고 곧바로 컨퍼런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사회자는 미얀마에서 온 ‘사이 샘 캄’ 씨. 먼저 사회자가 스님을 소개했습니다. 알고보니 이미 법륜 스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분이어었습니다.nbspnbspnbsp“오늘 기조 발제를 해주실 분은 우리에게 큰 영감을 주시는 분입니다. 한국의 정토회에서 오신 법륜 스님을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법륜 스님은 아주 저명한 스님이십니다. 우리 미얀마에서는 매년 미얀마 스님들이 정토회를 방문합니다. 방문을 마친 뒤 한 유명 미얀마 작가가 법륜 스님과 정토회에 대한 기고문을 써서 미얀마 사람들에게 전했는데, 법륜 스님의 업적을 소개하는 서문의 제목을 ‘A Simple Monk’라고 붙였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총체적 발전에 대한 스님의 관점을 오늘 나누어주실 것입니다.”nbsp사회자의 소개가 끝나자 국제 불교 지도자들은 큰 박수로 스님을 맞이했고, 이어서 스님의 기조 발제가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 앞에서 발표하게 되어 대단한 영광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주제는 ‘총체적 발전’입니다. 아마 우리가 사는 세계가 총체적으로 발전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데 대한 문제제기인 것 같습니다. 물질적인 발전이 빠르게 진행되는 데 비해 우리의 영적 개발, 즉 정신적 발전이 더딘 것도 문제입니다. 지역적으로도 일부 지역은 빠르게 발전하는 데 비해 다른 지역은 낙후되어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불균형 발전도 문제가 됩니다. 또 ‘오늘날 우리의 발전이 과연 지속 가능한가?’도 큰 문제입니다.nbspnbspnbsp붓다의 말씀을 종합해 생각해보면 ‘총체적 발전’, 다시 말해 ‘지속 가능한 발전’이야말로 우리들의 행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행동 동력은 욕구입니다. 사람들은 욕구를 따라 행동합니다. 사람들은 욕구가 충족되면 즐거워하고 충족되지 않으면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욕구가 다 충족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또 그 욕구가 충족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들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얻는 즐거움에만 너무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즐거움과 괴로움’이라고 하는 고와 락이 계속 되풀이됩니다. 이것을 붓다께서는 윤회, ‘삼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nbsp어떻게 하면 이 즐거움이 지속 가능해질 수 있는지가 붓다의 과제였습니다. 이 윤회에서 벗어나서 열반, ‘닙바나’를 얻는 것이 목적입니다. 열반이라는 것은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함께 행복을 누리되 그 행복이 미래에도 괴로움에 빠지지 않는 지속가능한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가 욕구를 따라가서 얻는 만족을 통한 즐거움은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욕구를 따라 만족을 얻기를 추구하는 것을 쾌락주의라고 합니다. 여기에 반대해서, 욕구를 억제하고 억압하는 것을 고행주의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긴장을 초래하기에 이것 또한 열반에 이르는 길이 아닙니다.nbspnbspnbsp붓다는 보드가야 근교에서 6년 동안 고행하면서 이 두 가지 모순에 대해서 새로이 중요한 발견을 했습니다. 욕구를 따라가는 것도, 억압하는 것도 다만 욕구에 속박되고 있다는 뜻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둘을 떠난 제3의 길을 발견했는데 이것을 ‘중도’라고 합니다. 그것은 욕구를 따르지도 억압하지도 않고, 욕구를 욕구로서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 붓다는 이 중도를 통해 결국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가 얻은 깨달음을 ‘연기법’이라고 합니다. 연기법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개별적인 독립체로서 함께 모여 있는 집합이 아니라 모든 존재들이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부분적으로 관찰하면, 다시 말해 일부분만 바라보면 독립된 존재인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혹은 총체적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nbspnbspnbsp이것은 붓다가 고타마 싯다르타로 살았던 어린 시절에 가졌던 의문에 대한 답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고타마는 농경제에 참여했다가 새가 벌레를 쪼아 먹는 것을 보고 ‘왜 하나가 살기 위해서는 하나가 죽어야 하는가? 함께 사는 길은 없는가?’라는 큰 의문을 가졌습니다. 스승과 부모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거기에 답을 하지 못했기에 그는 스스로 사색했습니다. 성 밖으로 나가 세상을 보았을 때 그런 현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동쪽 문으로 나가서는 늙었지만 보호받지 못하고 버려진 사람을 보았습니다. 남쪽 문으로 나갔을 때는 병들었지만 보호받지 못하고 치료받지 못한 채 버려진 사람을 보았습니다. 서쪽 문으로 나갔을 때는 죽었음에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길거리에 버려진 시체를 보았습니다. 붓다는 단순히 사람이 늙고 병들어 죽는 모습을 본 것에 그치지 않고, 보호받지 못하고 버려진 사람, 즉 그 당시에 사회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아픔과 연민을 가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궁중 안에서 누리는 풍요가 성 밖 노예들의 그런 고통 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훗날 코살라국의 빠세나디 왕이 질문했을 때 붓다가 이렇게 답합니다. ‘타인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지 마십시오.’ 이런 대답은 그의 어릴 때 겪고 깨달은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nbspnbspnbsp붓다가 자란 전통적인 브라만 문명의 가치관과 신앙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북쪽 문으로 나갔다가 브라만 문명에 반대하는 비주류 문명인 사문류의 수행자를 만나고, 그를 통해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문류에 합류하고자 출가했고, 6년의 수행 끝에 결국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나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 속에 있고 가족의 일부라는 것, 우리 가족이라는 것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관계 맺은 마을의 일부라는 것, 우리 마을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 마을과 함께 이 지역의 일부라는 것, 이 지역이라는 것이 다른 지역과 더불어 이 나라의 일부라는 것, 우리 나라라고 하는 것이 이웃 나라와 더불어 인류의 일부라는 것, 사람들이라는 것도 결국은 다른 생명과 더불어 전체 생명의 일부라는 것, 생명이라는 것 또한 생명 아닌 것과 더불어 함께 있다는 것, 존재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것과 더불어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사물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nbspnbsp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붓다의 가르침, 즉 붓다 담마를 따른다면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볼 게 아니라 우리 삶의 토대로 봐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을 정복과 개발의 대상으로만 봤기 때문에 오늘날의 환경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우리는 공기를 오염시키고, 물을 오염시키고, 우리가 먹는 음식을 오염시켜서 결국 우리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나라만의 발전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웃 나라와 전쟁을 벌이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결국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자기중심의 욕망, 자기중심의 주장과 견해, 자기주장과 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 ‘탐진치’가 우리 고통의 원인이라고 붓다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nbspnbspnbsp따라서 오늘날의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소위 말하는 소비주의, 즉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버려야 합니다. 소비주의를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소비를 줄이면 가난한 사람들과 나눠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소비를 줄이면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 우리 개인적으로는 삶에 헐떡거리지 않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명상만 한다고 마음에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올바른 이해 위에 우리 삶을 실천해가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 불교인들마저도 불교의 발전이 마치 이 세상의 물질의 발전과 같은 것인 양 여기며 소비주의에 휩쓸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삶을 좀 더 총체적으로, 종합적으로 보고 생활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nbsp이번 컨퍼런스의 핵심 주제가 되는 근원적인 내용을 말씀해주신 것에 대해 참가자들 모두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사회자는 “아주 심오한 메시지를 전해주셨습니다.”라고 하며 스님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공감했습니다.nbsp심포지엄이나 포럼에 가면 교육이니 뭐니 하는 분야별 이야기를 흔히 듣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스님은 소비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그것을 붓다의 가르침에 비교함으로써 우리가 배워야 할 근원적인 부분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오늘 INEB 참가자들이 ‘총체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고민하려면 스님이 지적한 ‘인간의 욕망과 소비주의’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첫 번째 패널로 스리랑카의 현재 국회의원이면서 스님이기도 한 ‘챔피카 라나와카’ 스님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영성을 강조해 마을 단위에 있는 스님들의 지지를 얻어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다”고 소개하면서, “총체적인 개발을 실현하려면 영성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더불어 현재 스리랑카에서 화학비료를 많이 사용해 지하수가 오염되고 있는 문제 등 영성의 부족으로 인해 생긴 많은 문제들을 열거해 주었습니다. nbspnbsp▲ 첫 번째 패널, ‘챔피카 라나와카’ 스님nbsp두 번째 패널로는 스웨덴의 아리가또 단체에서 온 ‘한스 우코’님이었는데, 아이들을 위한 여러 활동들을 하면서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취약한지 알게 되었다며, 타인을 보살피고자 하는 마음을 아이들을 돕는 활동들을 하면서 일깨울 수 있다고 소개해 주었습니다.nbspnbsp세 번째 패널로는 미얀마의 Development Foundation에서 온 ‘한스 반 윌런스워드’님이었는데, 대안적인 삶을 이야기할 때 비즈니스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그 대안을 논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자신은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대안으로 ‘사회적 기업’을 생각하게 되었다며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불교 지도자들이 기업인들도 불교를 배울 수 있게 인도해야 하며,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은 소비행위 자체가 또다른 투표권의 행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환경을 파괴하거나 불공정한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 제품에 대해 불매 운동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nbspnbsp▲ 세 번째 패널, 한스 반 윌런스워드nbsp이렇게 기조발제와 패널들의 발표가 있은 후 간단히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러 가지 질문들이 오간 후 오전 세션을 마쳤습니다.nbspnbsp식사를 하러 이동하기 전 참가자 단체사진 촬영이 있었습니다. 언어와 국적, 문화가 서로 다른 곳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참여 불교’를 주제로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것을 기뻐하며 환한 웃음을 띠었습니다.nbsp▲ 다 함께 기념사진 촬영nbsp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 시간이 주어지자 스님은 nbspINEB의 현재 회장이면서 이번 대회를 주관한 세바란카 재단의 ‘하르샤’ 님과 INEB의 창립 원로인 ‘술략 시바락사’ 박사님과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하르샤님은 한국 방문 일정 때 법륜 스님을 꼭 뵙고 싶다며 스님의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문의했고, 술략 박사님은 스님의 바쁜 해외 일정들을 듣고선 “유명한 사람은 원래 전세계를 돌아다니고, 나처럼 유명하지 않은 사람은 집에만 머무른다”고 웃으며 농담을 했습니다.nbspnbsp▲ 술략 시바락사 박사님과 하르샤 씨.nbspnbsp그러자 스님이 “박사님처럼 유명한 사람은 사람들이 박사님을 찾아오기 때문에 집에만 머무르시면 되는데, 저처럼 유명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안 찾아오기 때문에 제가 직접 다 돌아다녀야 하는 것”이라고 말해 더 큰 웃음을 주었습니다.nbspnbsp낮에는 무척 덥기 때문에 점심 식사 시간을 여유롭게 가진 뒤 오후 1시 30분부터 오후 세션이 시작되었습니다. 오후에는 ‘오픈 스페이스’라는 제목으로 자유롭게 토론하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nbspnbspnbsp먼저 오전에 패널들의 발표를 들은 후 자신이 가장 열정적으로 토론해보거나 활동해보고 싶은 내용을 각자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가자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둥글게 앉았습니다. 사회자가 “물건을 판매하듯이 자신의 의견을 잘 포장해서 시장에 내어놓아 보라”고 하자 다양한 주제들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nbspnbsp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미래에는 로봇과 싸워야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지적하는 사람, 닭고기 1kg을 먹기 위해서는 곡식 7kg이 필요하다며 채식의 중요성을 말하는 사람, 파리 협약은 불충분하다며 탄소 방출을 줄이는 적극적인 방인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 등 모두가 한 가지씩 의견을 내어놓았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50여 명의 참가자들의 발표가 있은 후 거의 마지막 즈음에 스님도 함께 대화해보고 싶은 주제 한 가지를 발표했습니다.nbspnbsp“저도 물건을 만들었는데 판매는 포기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스님이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물건은 판매할 수 없어요. nbspnbspnbsp저는 ‘까르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 까르마를 얼마만큼 변화시킬 수 있고, 얼마만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입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엄마의 상태가 어떠한지가 아이에게는 굉장히 큰 영향을 줍니다. 자살이라든지 여러 가지 우리들의 번뇌의 문제가 여기서부터 비롯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nbsp스님의 발표에 많은 참가자들이 관심을 보였지만 워낙 다양한 제안들이 많이 나와서 이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해보지는 못했습니다. 농담이긴 하지만 스님도 판매를 포기했고요.nbspnbsp이어서 50여 명의 발표 내용을 비슷한 주제끼리 다시 합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크게 6가지 주제로 그룹이 만들어졌는데, 스님은 종교 간의 차별 문제를 주제로 한 그룹에 들어가 함께 토론을 했습니다.nbspnbspnbsp그룹 참가자들은 처음에는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하나의 공감대를 찾았습니다. 각 나라마다 종교 구성이 다수와 소수를 점유하는 정도가 각기 다른데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일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분은 영국 식민지 시절 땅을 강제로 빼앗기고 이주하는 과정에서 무슬림과 불교 간의 갈등이 빚어졌고 지금 불교는 소수가 되어 차별받고 있다고 했고, 인도네시아에서 온 분은 무슬림이 다수인데 다수인 무슬림이 소수인 기독교를 탄압하는 경우가 많았음을 이야기하면서 법규정을 통해서라도 이런 차별을 철폐시켜 나갈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또 이런 변화를 위해 INEB에 정부 단체 관계자를 다 참가시킬 필요가 있음도 덧붙였습니다. 특히 무슬림은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는데 지역에 따라 소수가 되기도 하고 다수가 되는 점을 이야기해 모두가 흥미롭게 들었습니다.nbspnbsp토론 내용을 경청한 스님은 여러 가지 의견들을 하나의 관점으로 다시 정리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종교 차별은 종교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다수가 소수를 어떻게 포용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미얀마, 스리랑카, 태국에서는 불교가 다수이지만 방글라데시에는 불교가 소수이죠. 또한 인도에서도 소수입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는 무슬림이 다수이지만 필리핀에서는 무슬림이 소수예요.”nbsp그리고 다시 많은 토론이 있은 후 한 사람이 스리랑카에도 급진적인 행동을 하는 BBS라는 단체가 있음을 이야기하자 모두가 놀라하며 순식간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리랑카 불교인들도 상처가 있음을 이해해야 해요. 우선 영국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불교의 자기 정체성을 탄압받았습니다. 그런 후 기독교가 갑자기 들어와서 확대가 되었어요. 거기에 대한 스리랑카 불교인들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지금은 다수의 기득권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탄압받았던 기억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nbspnbsp그리고 스리랑카 불교인들은 타밀족에 대해서도 저항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타밀족이 인도로부터 스리랑카로 침범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지금만 생각하면 다수 기득권인데 과거에 소수자로서 겪었던 피해의식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BBS와 같은 승려들의 극단적인 행동들이 나오는 겁니다. 미얀마도 그런 성격이 있어요. 불교가 민족주의와 결합이 되어 있어서 종교의 형식을 빌리지만 사실은 민족주의적인 저항과 관계가 있습니다.”nbsp스님의 이야기에 모두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여기에 한 분은 “미얀마의 경우 불교의 정체성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함께 지적해 주었고, 또 한 분은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종교 간에도 서로 교류를 하면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신 그 방법이 폭력적이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여 주었습니다. 스님은 이 이야기들을 듣고 다시 스님의 생각을 나누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다수가 소수를 포용해야 한다는 것은 잘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은 대부분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소수자들에게도 ‘분노를 갖고 저항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분노를 통해서는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습니다.”nbsp스님의 이야기에 모두가 공감하자 캐나다에서 오신 분은 “소수가 오히려 포용적인 자세를 취할 때 감동을 주고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의견을 덧붙여 주었습니다.nbspnbsp토론을 곧 마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방글라데시에서 온 분은 더 많은 이야기를 토로하고 싶어 했습니다. 시간 제약이 있음에도 너무 길게 이야기하려는 이 분을 모두가 꺼려하는 눈빛을 보내자 스님은 “방글라데시 불자들은 상처가 많아요.”라고 하면서 이 분을 감싸주고 마음을 진정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nbspnbsp▲ 답답함을 토로하고 싶어하는 방글라데시 참가자nbsp토론을 마치면서는 한 명씩 돌아가며 총체적인 발전과 구조적인 폭력을 없애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씩 만을 말해보기로 했습니다.nbspnbsp“가능한 많은 다양한 그룹들에게 손을 뻗어서 다가가는 것이 중요합니다.”“종교 간 대화를 할 때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를 위해 같이 행동하는 것과 같이 실제로 협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nbsp“불법에 기초해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다양성을 수용하면서 함께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nbspnbsp긴 시간의 토론 내용이 짧은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언인지 한 마디로 정리해 주었습니다.nbspnbsp“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nbspnbsp참가자들은 스님이 아주 중요한 점을 이야기해 주었다며 공감을 표하면서 토론을 마쳤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는 전체 참가자가 한 자리에 모여서 소감을 한마디씩 나누는 것으로 폐회식을 갈음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이 감동받은 것을 이야기했는데, ‘참여 불교’를 주제로 전세계의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함께 행동할 수 있음을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스님의 차례가 되자 스님도 짧게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nbsp“저는 한국에서 왔고요.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더 좋았습니다. 특별히 좋았던 것은 이슬라믹 부디스트를 만난 것입니다.” nbspnbsp이슬라믹 부디스트는 어제와 오늘 스님과 함께 토론한 ‘야야 키스비야’씨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슬라믹 부디스트란 표현에 참가자들도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nbsp그러자 참가자 중에 한 분이 번쩍 손을 들면서 “여기 스리랑카에도 이슬라믹 부디스트가 있어요” 라고 외쳐서 또한번 웃었습니다.nbspnbsp▲ INEB 폐회식nbsp이렇게 소감 발표를 끝으로 INEB 대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어제 만난 중국인 교수님이 스님을 또 찾아와 ‘스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며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중국인 교수님은 막시즘을 신봉하다가 최근에 불교공부를 시작한 분인데 스님은 이 분의 어깨를 토닥이며 다시 한 번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 어제에 이어 다시 스님을 찾아온 중국인 교수님nbsp“중국이 옛날에는 마오이즘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마오이즘도 거의 없어졌잖아요. 그래서 텅빈 머리를 이제 불교로 채워야 해요.” nbsp“최근에는 미국이 중국의 모델이 되어버렸어요. 이제 중국을 지배하는 것은 물질주의입니다.”nbsp“그래요. 더군다나 중국 불교도 지금 문제가 많아요. 오직 복을 빌기만 하잖아요. 그것만 가지고는 중국을 변화시킬 수 없어요. 붓다 담마를 공부하고 체득해야 해요. 그래야 중국도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인 빈부격차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nbspnbsp중국이 힘은 세어지고 머리는 텅 비어가기 때문에 큰 문제예요. 그래서 붓다 담마로 머리를 다시 채워야 해요. 미국만 따라가서는 안 돼요.”nbsp“미국을 따라가면서 중국은 많은 대가를 치렀어요. 미국을 모델로 하면 성공할 수 없어요. 성공해도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nbspnbsp“한국이 그러했어요. 경제는 성장했는데 사람들은 그만큼 행복해지지 않았어요. 자살율이 세계 1위이고, 불만족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아요. 출산율은 세계 최저이고요.nbspnbsp한국은 지금 온갖 문제들이 뒤섞여 있어요. 나쁘게 생각하면 혼란스럽고, 좋게 생각하면 앞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항상 서양 문명을 극복할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고 노력합니다. 따라 배우는 것은 이제 끝났어요. 어떻게 이것을 넘어설 것이냐의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nbsp이렇게 격려를 해준 후 스님이 다시 한번 “몸은 중국, 머리는 대만, 이렇게 함께 가야 한다” 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대만에서 온 닥터 요요씨가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말해주었다”며 크게 웃었습니다. 닥터 요요씨는 “2003년도에 INEB 한국 행사 때 임진각에 갔는데, 그 때 스님이 말해준 남북 평화의 메시지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하면서 “오늘도 스님의 강력한 파워를 느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nbspnbsp▲ 대만에서 온 닥터 요요씨.nbspnbspnbsp또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인도네시아에서 온 무슬림인 ‘야야’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야야’씨가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면서 “불교로 개종하는 것을 고민하면서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자 스님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고개를 흔들면서 “이슬라믹 부디스트가 되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슬람교를 버리지 말고 이슬람교를 믿으면서 붓다 담마도 함께 공부하면 된다”고 하자 ‘야야’씨는 더욱 기쁜 표정을 지으며 스님에게 감사함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 무슬림인 야야씨를 격려해 주고 있는 스님nbsp스님은 한국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하면서 연락처를 건넨 후 ‘야야’씨와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저녁에는 이번 INEB 행사에 참가한 한국인들끼리만 모여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스님은 통역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한국에서 직접 비행기 티켓을 끊고 온 이진아씨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스님이 “저는 한 가지 주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 이야기하다가 과학 이야기하다가 환경문제 이야기하다가 통일 이야기가 나오면 사드 배치 문제를 이야기하니까 한국말로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생길 수 있는데 그것을 통역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라고 하자 이진아씨는 “스님이 오히려 저의 수준을 헤아려서 말씀해 주신 덕분에 무사히 마쳤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금세 밤이 깊어졌습니다. 내일은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INEB 총회가 열릴 예정입니다.nbsp ※ 2016년 법륜 스님의 정토불교대학이 신입생을 모집합니다.nbsp불교에 대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분들은 지금 신청하세요.nbspnbsp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