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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7 (오전) 남양주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 10시 30분부터 남양주에 위치한 경복대학교에서 남양주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부터는 일산 정발산 성당에서 일산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남양주 즉문즉설 강연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어제밤 진주에서 통일 강연을 마치고 새벽 2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밤을 꼬박 새며 새책 원고 집필 작업을 한 후 새벽 4시부터는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예불과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9시에는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남양주시로 향했습니다. 차 안에서는 밤새 원고를 봤다고 하며 깊이 단잠을 주무셨습니다.nbspnbspnbsp강연이 열리는 남양주시 경복대학교에는 10시 10분에 도착했습니다. 건물 1층 로비에서는 가장 먼저 총장님 이하 몇몇 학교 직원 분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스님을 총장실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담소를 나누기 위해 총장실에 들어가기 전, 정성스럽게 자필로 방명록을 남겼습니다. 미래를 이끌어나갈 청년들이 단순 지식보다 앞을 내다볼 수 있는 현명한 지혜를 쌓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보였습니다.nbspnbspnbspnbsp총장실에서 환담을 나누며 총장님은 “스님을 저희 학교에 모시게 되어서 영광이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스님은 새책 ‘야단법석’을 사인해서 선물했습니다.nbspnbsp▲ 경복대학교 총장님과의 환담nbsp어제 첫눈이 내린 후 갑자기 겨울의 날씨가 된 듯 칼바람이 몰아칩니다. 강연 2시간 전부터 밖에서 피켓을 들고 안내하는 분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며 밝게 웃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이 열린 경복대학교 우당아트홀nbsp추위에도 물러섬 없는 봉사자들의 열정을 보며 오늘 남양주정토회에서 어떤 마음으로 이 강연을 준비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강연은 남양주법당, 구리법당, 양평법당, 포천법당, 의정부법당 5개 법당에서 90여 명의 봉사자들이 준비했습니다.nbspnbsp▲강연 준비로 분주한 봉사자들nbsp이른 시간부터 강연을 기다리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50대 여성 한 분은 “그동안 유투브로만 즉문즉설을 들어왔는데, 오늘 스님께 직접 말씀을 듣고 가정에 돌아가 아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빙그레 웃어보였습니다.nbsp10시 30분이 되자, 사회자의 환영 인사와 스님 소개 영상으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400여 명의 관객들은 열렬한 환호로 뜨겁게 스님을 맞아주었습니다.nbspnbspnbsp무대에 오른 스님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감기 걸리지 않도록 건강을 당부하고, 즉문즉설의 취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오늘은 총 7명의 질문자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질문한 20대 여성 분은 자신은 친구들과 있을 때 고민을 들어주는 입장인데 더 많은 고민을 들어주는 스님은 스스로의 고민을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물었고, 두 번째로 질문자한 60대 남성 분은 7년간 막내아들의 출가를 반대하다 한 순간에 마음이 바뀌어 허락한 자기의 마음을 하소연 한 후 출가한 아들의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세 번째로 질문한 50대 여성 분은 무서움이 많아 집에서 혼자 있지 못한다며 어떻게 이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지 물었습니다.nbspnbsp네 번째로 질문자한 40대 여성분은 호스피스의 직업 상 아무 준비 없이 가족과 이별을 할 때 슬퍼하는 유가족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지 물었고, 다섯 번째로 질문한 중1, 초2의 아들을 둔 엄마는, 아들 둘의 사이가 소원한 것이 큰 걱정이라며 질문했고, 여섯 번째로 질문한 40대 남성분은 개신교에는 헌금, 천주교에는 교무금, 불교에는 보시가 있는데 어떤 마음으로 돈을 내야 하는 것인지 물었습니다.nbspnbsp사전 신청한 질문자의 마지막 질문이 끝나고 2분이라는 시간이 남자, 그 짧은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 스님은 즉석에서 한사람 더 추가 질문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기독교에 회의를 느껴 혼자 절에 다니고 있는데 불교에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명쾌한 스님의 답변에 질문자들의 표정은 밝아졌고, 관객들은 질문자와 함께 울고 웃으며 공감과 감동의 2시간 30분이 금새 지나갔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그 중 기독교에 회의를 느낀 마지막 질문자의 물음과 스님의 답변 내용을 소개합니다. 강연장을 찾은 불교 신자 뿐만 아니라 천주교, 개신교 신자들도 이 질문에 충분히 공감을 하고 이해를 할 수 있어서 너무 명쾌했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nbsp“신앙에 대한 의문입니다. 저희 집안은 다 기독교인데 저 혼자 버티면서 절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에서 하나님한테 빌면 원하든 대로 이뤄진다고 하는 것에 회의를 느꼈고 가족들이 강요하는 것도 싫어서 교회에서 등을 돌렸어요. 그런데 저 역시 염원이 있으면 부처님께 이뤄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그런 기복적인 면이 불교 이치상 어긋난다고 아까 말씀하셔서 지금 혼란스럽습니다.”nbsp“이치로 따지면 기독교나 불교나 다 어긋납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 세상 사람들은 다 복을 받고 싶어 해요. 남의 복을 훔치는 것도 아니고, 복 달라고 한 대서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주는지 안 주는지도 확실치 않으니 그걸 굳이 나쁘다고 말할 필요는 없어요.nbspnbspnbsp기복은 부처님이 가르치신 ‘인연과’에도 어긋나고, 예수님의 원래 가르침에도 어긋나요.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복을 받으려 들기보다는 복을 지어야 해요. 원래 기독교 가르침에 따르면 복을 짓고도 칭찬받으려 들지 말아야죠. 좋은 일을 하고 이 세상에서 대가로 받은 상은 작지만, 천국에 가서 받은 상은 매우 크다고 하잖아요. 이 말의 핵심은 많이 받고 적게 받고에 있지 않아요. 좋은 일을 하고도 칭찬받으려 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셔서 나중에 천국에 오면 큰 상을 내릴 테니 이 세상에서 작은 이득에 연연하지 말라는 가르침이에요. 불교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와 같아요. ‘내가 복을 짓고도 복 받을 생각을 안 하면 그 복은 한량이 없다’ 이걸 무루복이라고 합니다. 표현 방법이 다를 뿐 가르침의 내용은 비슷해요.nbspnbsp복 달라고 빌면서 부르는 이름만 부처님, 하나님이 서로 다르지, 사람의 심리는 똑같아요. 그런데 그거 하려고 굳이 교회에서 절까지 올 필요 있어요? 개인적으로 교회가 싫어서 절에 오는 것은 괜찮지만, 와놓고 하는 행동은 똑같잖아요. nbspnbspnbsp‘하나님, 복 주세요’, ‘부처님, 복 주세요’ 하고 기도하면,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어요. 되면‘ 가피 입었다’, ‘은혜 입었다’ 하고 좋아하지만 안 되면 ‘기도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네. 믿어봐야 소용 없네’라고 해요. 이 말은 자기 신앙을 부정하는 거예요. 하나님이나 부처님에게 나를 바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종 부리듯이 부리려드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걸 내놔라, 안 내놓으면 너를 안 믿겠다’ 그건 신앙이 아니에요. 복을 비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 속내를 살펴보면 참 신앙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라는 겁니다.nbsp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기독교 신자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 오늘도 주님의 은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야죠. 감사 기도를 한다는 것은 복을 이미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게 믿음이에요. 이미 받았기 때문에 감사 기도를 하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몰라서 그렇지, 이미 복을 한량없이 받은 거예요. 이미 복을 받았으니 기도하면서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 없이 감사 기도를 하면 됩니다. 그 분은 모든 걸 다 아시는 분이니까 내 마음도 이미 다 아시거든요.nbspnbspnbsp성경에 ‘기도할 때 은밀히 하라’ 이런 말씀도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걸 조목조목 짚어서 이야기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마이크 대놓고 큰 소리로 기도해요. 그 분이 전지전능하다는 걸 못 믿어서 조목조목 이야기 안 하면 잊어버리고, 크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못 알아듣는 나 같은 수준일 거라고 생각해서 그래요. 그러나 그 분은 이미 내 마음을 다 아시는 전지한 분이시잖아요.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관세음보살님은 눈이 천 개라서 다 보시고, 손이 천 개라서 다 구제하십니다. nbspnbspnbsp그런 분이 왜 내 요구를 안 들어주실까요? 쥐가 쥐약 든 고구마를 먹고 싶어 안달하는데 입이 안 닿아서 ‘하나님, 부처님, 이거 좀 먹게 해주세요’하고 빌면 저렇게 간절히 원하니까 먹도록 그 소원을 들어주어야 할까요?nbsp우리가 원하는 것이 때로는 안 이루어지는 편이 좋을 때가 굉장히 많아요. 간절히 빌어서 결혼했는데 지금 결혼 생활도 골치 아프고, 간절히 빌어서 애 낳았는데 지금 애 때문에 죽겠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기도할 때는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해야 해요. 전지전능하신 분이 보셔서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는 게 나으면 그리 해주시고, 안 이루어지는 게 나으면 또 그렇게 해주세요. 그러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도 감사하고 안 이루어져도 감사하니 신앙에 어긋날 이유가 없어요. 절과 교회를 오락가락하며 전전할 이유가 없습니다.nbspnbsp제가 조계사에서 대학생들 지도 법사로 있을 때 한 학생이 시위를 하다가 3년 형을 구형받았어요. 그 어머니가 날마다 조계사에 와서 ‘우리 아들 빨리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3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나왔습니다. ‘부처님 가피를 입었다’며 어머니가 크게 기뻐했어요. 그런데 그만 3개월 만에 교통사고가 나서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그러자 그 어머니가 저를 붙들고 ‘내가 나오라고 빌어서 아들을 죽였다’며 울었습니다. 이게 ‘인생지사 새옹지마’입니다. 감옥에서 나오는 게 꼭 좋다고 말할 수가 없었어요. 더 큰 재앙을 피하려고 들어가게 된 건지도 모르잖아요.nbspnbsp하나님을 믿고 부처님을 믿어서 기도하는 우리는 부처님 혹은 하나님의 뜻을 모릅니다. 그러니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해요. 이게 신앙 고백이에요. 질문자도 교회 가서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든지, 절에 가서 절하면서 ‘부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계속 행복해지고 고민도 줄어듭니다. ‘문화가 달라서 나는 교회보다 절이 좋다’ 이런 건 자기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거니까 괜찮아요.”nbspnbsp“교회는 사랑이라고들 말하는데 겪어보니 이중적인 느낌이 많이 들어서 싫어요.”nbsp“절에 가도 마찬가지예요.” nbspnbsp“하나님의 가르침이 거짓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용서와 사랑으로 구원한다는 하나님이 안 믿는다는 이유로 불신자들을 불에 던져버리는 이야기를 듣고 환멸을 느꼈어요. 그 신이 과연 자비의 신인가 의문이 계속 들고요.”nbsp“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불교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힌두교이고, 기독교라 하지만 대부분은 유대교에 가깝습니다. 질문자가 다닌 교회는 이름만 기독교일 뿐 유대교라고 생각하면 돼요.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입니다. 참된 크리스천이라면 천당에 갔을 때 스님도 와 있다면 반가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교도가 여기 어떻게 왔지? 안 믿어도 오는데 괜히 믿었다’ 이러기 쉽습니다. 크리스천이라면 천국에서 저를 만나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교도도 구원하시니 참으로 너그러우신 분입니다’ 이렇게 기뻐해야 합니다. 이게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nbspnbspnbsp크리스천들과 기독교가 그리 못 하는 건 현실입니다. 마찬가지로 불교도 원래의 가르침을 잘 따르지 못해요. 그러나 이건 인간의 문제이지, 부처님이나 하나님의 문제는 아니에요. 예컨대 시어머니가 절에 지극정성으로 다니면서 정작 며느리 대하는 건 형편없다면 그 며느리는 절에 안 다닙니다. 반발심으로 교회에 가버려요. 질문자는 가족들이 교회에 극성이면서 실제 말이나 행동은 다른 걸 보고 실망했잖아요. 그건 인간의 죄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래도 다시 돌아간다면 하나님께서 다 용서해주십니다. 질문자가 절에 좀 다닌다고 해서 자비하신 하나님이 벌주시지는 않아요.nbsp옛날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제게 했어요. ‘스님, 하나 물어볼게요. 제가 고3 손녀딸 때문에 입시 합격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성취가 안 될 것 같아요. 손녀딸이 사실은 교회에 다니거든요.’ nbspnbsp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부처님이 아무렴 할머니 마음 같을까요? 고등학생이 교회 좀 다닌다고 해서 붙을 시험도 떨어지게 만드는 건 부처님이 아니에요. 그러면 대자대비하시다는 표현을 안 써야죠.’nbspnbsp그러니 그런 거 걱정 마시고, 교회든 절이든 질문자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세요.”nbsp“주옥같은 말씀 감사합니다.” 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질문자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청중들도 공감이 컸는지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종교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지다 보니 종교의 본질에 대해 많은 것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니 2시간 30분이 지났고 드디어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이 조금 부족했는지,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변화된 시대에 우리는 종교에 대해, 세상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다가가면 좋을지 추가적으로 더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융합의 시대를 설명하면서 ‘크리스천부디스트’라는 사람들의 등장을 이야기한 부분은 청중들의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습니다.nbspnbsp“옛날에는 일단 결혼하면 남편이 신혼 첫날밤에 죽어도 평생 재혼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결혼해서 아이 낳고도 이혼하고, 재혼도 할 수 있어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도 할 수 있어요. 옛날에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 되는 게 불가능했지만 요즘은 다른 나라 사람도 될 수 있고, 다른 나라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낳을 수도 있어요.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미국 가서 살면 ‘코리안아메리칸’이라고 해요. 이렇게 시대가 바뀌고 있습니다.nbspnbsp종교도 마찬가지예요. 옛날에는 기독교 신자는 무조건 기독교만, 불교 신자는 무조건 불교만 믿어야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기독교 신자로 자란 사람이 불교를 믿어도 되고, 그 반대도 됩니다. 그걸 배신이라고 한다면 한국 기독교인들은 전부 배신자입니다. 조상들이 전부 유교 아니면 불교를 믿었으니까요. 나는 배신 안 했어도 어머니나 할머니나 증조할머니처럼 가족이나 조상 중 누구 한 사람은 반드시 배신했어요. 이걸 따지면 말이 안 됩니다.nbsp그러니 여러분들은 뭘 해도 다 괜찮아요. 기독교 믿다가 불교로 바꿔도 되고, 불교 믿다가 기독교로 바꿔도 되고, 기독교와 불교를 동시에 믿어도 돼요. 이중국적과 같습니다. 지금은 한국과 미국 사이에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지만 앞으로는 일부 허용하게 될 거예요. 그것처럼 신앙은 기독교를 믿고 마음공부는 불교를 통해 하면 ‘크리스천부디스트’라고 합니다. nbspnbspnbsp미국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건 너무 가혹해요. 자기가 태어나서 성장해온 토대인 기독교도 소중하고, 불법 공부도 너무 소중한 거예요. 그래서 크리스천부디스트라는 이름이 만들어졌어요. 맨해튼에 있는 유니온 신학대학에 가보면 크리스천부디스트들이 많이들 공부하고 있고, 그 주제에 대한 연구도 활발합니다. 저도 거기서 강연을 했어요. 한편 신앙은 불교로 가지되 기독교 실천 활동이 너무 좋아서 기독교 신자가 된다면 ‘부디스트크리스천’이 되겠죠. 그래도 괜찮아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nbspnbsp제가 20년쯤 전에 중국에 가보니 공산당원들은 종교를 못 가진대요. 그런데 불교사상을 이야기해보면 마르크스 철학하고 유사한 면이 있잖아요. ‘세상이 다 연관되어 있다, 고정불멸하는 것은 없다’ 이런 원리가 비슷하다고 막 감동하기에 불교 믿으라고 했더니 자기는 공산주의자여서 절대로 안 된대요. 불교 신자로서 공산주의자가 될 수도 있고, 공산주의자로서 불교 신자가 될 수도 있지 않냐고 해도 절대로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nbspnbsp‘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옛날에 사회주의는 계획경제, 자본주의는 시장경제라고 해서 사회주의가 시장경제 하면 수정주의자라고 비난받았어요.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사회주의면서도 시장경제를 하잖아요. 그러니 공산당원 하면서도 불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nbspnbsp20년 전 당시에는 말이 안 된다고 했지만 요즘은 중국 공산당원들 중에서도 불교 신자들이 꽤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허용이 안 돼도 실제로는 믿는 사람들이 많아요.nbspnbspnbsp이걸 융합이라고 해요. 미래 학문의 핵심은 융합입니다. 요즘 생물과 화학을 합쳐서 생화학이라고 하듯이 인문학과 자연과학도 융합이 되고, 종교와 과학도 융합되어 새로운 것이 나올 겁니다. 미래의 시대는 새로운 시대, 창조의 시대입니다. 지금까지처럼 분열해서 장벽을 쌓는 시대가 아니라 모든 장벽을 허물고 서로 융합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시대예요. 이미 시대는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여러분들 머릿속은 옛날 그대로 굳어 있어요. 저는 승려이긴 하지만 불교만 고집하지 않고, 종교인이지만 종교만 고집하지 않아요. 이렇게 앞서 나가니까 여러분들이 강연장에 이렇게 찾아들 오잖아요.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도 조금 사고의 폭을 넓히세요. 그런다고 자기 신앙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예요. 불교 신자로서 성경을 얼마든지 볼 수 있어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는 책이 성경인데 그걸 왜 안 봐요? 또 기독교 신자로서 불경을 봐야 해요. 인류의 귀중한 유산을 습득하지 않으면 자기만 손해예요. 앞으로 폐쇄적인 사람들과 개방적인 사람들이 경쟁하면 시간이 좀 걸려도 결국은 개방적인 사람이 승리합니다.nbspnbsp남북도 마찬가지예요. 북한은 폐쇄적이고 남한은 개방적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남한이 유리해져요. 그런데 개신교보다는 천주교가 앞으로 매력이 훨씬 커질 거예요. 천주교는 자기를 지키지만 그러면서도 좀 개방적이니까요. 개방적인 것은 자기와 다른 것 중에서 유리한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계를 벗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서,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있는 거예요. 그렇게 여러분들이 관점을 가져보면 좋겠어요.nbspnbspnbsp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가 약간 복잡할 수 있어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종교 다원주의’라고 해서 기독교 신앙에 어긋난다고들 하거든요. 그러나 그렇게 너무 배타적이 되면 지금 무슬림들의 일부처럼 극단적인 근본주의로 향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제는 한 차원을 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대와 다른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자녀들도 우리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자기 정체성을 갖되 개방적인 사람이 되도록 키워야 합니다. 개방성을 강조하다 자칫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흐지부지되기 쉽고, 정체성을 키운답시고 너무 배타적으로 하면 폐쇄적이 되어 발전하지 못해서 문제가 됩니다. 자기 정체성은 갖되 개방적이어야 해요. 그런 관점을 갖고 여러분 모두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 덕분에 오늘 즉문즉설 강연은 종교학 강의가 된 것 같습니다. 출가한 아들 때문에 근심걱정이 많았던 할아버지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통해서는 불교에서 말하는 출가 정신이 무엇인지 깊이 새겨들을 수 있었고, 마지막 질문자의 기복 신앙에 대한 회의감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이고, 변화된 시대에 어떤 관점을 갖고 종교를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치고 나가는 한 분에게 오늘 강연을 들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저도 어릴 적부터 기독교를 믿어 왔지만 늘 의문이 들었던 점이 있었는데, 오늘 스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본래 가르침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어요. 말끔하고 개운해진 느낌입니다. 크리스천 부디스트가 되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며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nbspnbsp중년의 부부는 “질문 하나하나가 다 우리 사는 이야기라 참 좋았다. 스님께서 명쾌하게 이야기 해주시는 데 속이 시원하고 내 머리가 다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고 말하면서 서로 마주보며 밝게 웃기도 했습니다.nbspnbsp이어진 책 사인회는 난방이 되지 않아 추운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밝은 얼굴로 질서정연하게 사인을 받았습니다. 스님은 한 분 한 분과 눈을 마주치며 정성껏 사인도 해주고, 환한 웃음으로 감사의 마음도 전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오늘은 질문 내용 중에 진정한 보시의 의미를 물었던 내용이 있어서 그런지 준비된 책도 한권도 빠짐없이 완판되었고, 특히 스님의 새책 ‘야단법석’은 일찌감치 완판이 되면서 책을 구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구매한 책을 한아름 든 사람들이 사인을 기다리며 길게 줄을 섰습니다.nbspnbsp사인회가 끝나고 스님은 구리법당, 의정부법당, 양평법당, 남양주법당 순서로 봉사자들과 차례대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 밝은 표정에 보람이 가득해 보였습니다.nbspnbspnbsp봉사자들은 급하게 다음 일정으로 떠나는 스님을 감사한 마음으로 배웅했습니다. 이어 강연장을 뒷정리를 모두 마치고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대부분이 “스님의 말씀을 듣고 가볍고 행복해진 관객들의 표정을 보는 것이 참 좋았다” 라고 하면서 “이보다 더 좋은 전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봉사의 기쁨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남양주를 출발한 스님은 곧바로 저녁 강연이 열리는 일산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3시 쯤 일산 정토법당에 도착해 원고 교정 업무와 각종 보고서들을 체크하며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저녁 7시부터는 정발산 성당에서 일산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nbsp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nbspnbspnbsp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nbsp
2015.11.26 진주 통일의병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경남정보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진주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했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예불과 108배 정진,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평화재단에서 아침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오전 내내 회의 및 미팅을 연이어 가졌습니다.nbspnbsp오후 1시 30분에는 서울을 출발해 진주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도중 하늘에서 펑펑 눈이 내렸습니다.nbspnbspnbsp첫눈이 내린다며 모두가 기뻐하는 순간이었지만, 스님은 창밖 구경을 하지 못하고 계속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nbsp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풍경은 감탄사를 절로 자아내게 했습니다. 첫눈을 만끽하며 부지런히 내려온 까닭에 약속 시간인 6시 20분에 무사히 진주 경남정보고등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진주 경남정보고등학교nbsp먼저 교장실로 이동해 이순덕 교장선생님과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장소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했고, 교장선생님도 “스님께서 학교를 방문해 주신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영광”이라며 기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 경남정보고등학교 이순덕 교장선생님nbsp교장선생님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며 학생들 지도의 어려움을 이야기했고, 스님은 “오래 전부터 청소년 교화소를 대안학교처럼 운영해보는 것을 계획했었다”고 하면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보다는 부적응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내년에 기회가 되면 이 학교 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최근 들어 가장 추웠던 오늘, 저녁 7시가 되자 경남정보고등학교 대강당에는 300여 명의 진주 시민들이 자리한 가운데 큰 박수와 함성으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통일의병 백왕순 사무총장의 인사말과 장소를 대여해준 경남정보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인사말, 내빈소개, 통일시민학교 안내에 이어 통일의병 고문인 법륜 스님의 활동 소개 영상을 끝으로 스님이 큰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올라왔습니다.nbspnbsp스님은 날이 추운데도 불구하고 강연장에 오신 분들에게 인사를 한 후, 오늘 강연은 주관 단체의 입맛에 맞게 공동체의 미래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늦가을 날씨가 봄 날씨처럼 계속 따뜻하다가 어제, 그제부터 갑자기 추워졌어요. 추운데 오신다고 수고들 하셨습니다.nbspnbspnbsp오늘 저를 강사로 초청한 통일의병이라는 단체는 ‘한반도에 다시 전쟁은 없어야 되겠다. 평화가 정착되도록 해야 되겠다’ 하는 목표와 ‘우리가 이 평화를 딛고 통일을 이룸으로써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조직된 단체입니다. 그 단체에서 주관해서 오늘 이 강연회가 마련된 것이니까 오늘은 우리들의 관심사인 통일에 관해 함께 대화하는 시간입니다.”nbspnbsp그리고 혹시 질문자 중에 개인적인 고민이 너무 커서 꼭 질문을 해야겠다면 통일의병학교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질문을 받겠다고 하자 청중도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nbspnbsp첫 번째 질문자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으로 삼촌이 자신에게 욕설과 막말을 한 이후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통일이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느끼면서도 북한의 핵 개발, 군사훈련을 보면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고, 북한의 인권 문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세 번째 질문자는 통일에 관심이 많은 30대 아가씨였는데, 통일에 관련된 서적이나 자료를 찾아가다 보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나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과연 통일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며 30대 청년으로써 무엇을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nbsp개인적 고민에 대한 질문보다 통일에 대해 궁금해하는 질문이 많았던 탓에 간단히 웃음이 터져나오긴 했지만 다소 진지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nbspnbsp특히 스님은 두 번째 질문자의 답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인도적 지원에 대한 관점과 함께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도 한민족으로서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북한의 핵개발 모습이나 남침을 위한 군사 훈련을 보면 왜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과연 인도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는지 스님께 속시원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nbspnbsp“첫째, 비록 적국의 국민이라도 굶어죽게 되었을 때는 지원을 해서 굶어죽는 건 면하게 하자. 둘째, 병들어 죽어간다면 약품을 지원해줘서 죽는 것은 막도록 하자. 또 아이들이 전쟁 통에 배우지 못하면 비록 적국의 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기초적인 교육은 받을 수 있도록 학습 자료는 지원하자. 전 세계가 이렇게 합의를 본 것이 UN 인권 헌장입니다. 내 형제나 내 나라 사람, 우방국의 경우에는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어요. 위에서 이야기한 경우는 모두 ‘우리와 적대적인 나라의 사람들이라 하더라도’라는 게 전제입니다.nbspnbspnbsp‘적국 사람이라도 전쟁 중에 민간인은 공격하지 말자. 적국의 병사라도 부상을 당했으면 치료해 주자. 포로는 보호하다가 돌려주자. 적진에 있는 사람들이 굶어죽으면 식량을 지원하자. 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으면 약품을 지원하자. 물이 없으면 물을 지원하자.’nbspnbsp옛날엔 적국에 물이 떨어지거나 양식이 떨어지면 공급을 봉쇄해서 죽이는 전략으로 이용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물이나 약은 주자고 합니다. 이를 가리켜 ‘인도적 지원’이라고 해요. 이것의 전제는 ‘종교가 다르더라도, 나라가 다르더라도, 적이라도 그렇게 하자’입니다. 사람이 굶어죽어가는지만 보지 그 사람이 불교인인지 기독교인인지, 흑인인지 백인인지, 중국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아군인지 적군인지는 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게 인도적 지원의 원칙입니다. UN에 가입한 나라들이 그렇게 하자고 합의를 본 것이 UN 인권 헌장입니다.nbspnbsp인도적 지원의 원칙은 딱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정말 굶어죽느냐? 정말 병들어죽느냐? 정말 물이 떨어졌느냐?’ 하는 인도적 위기, 즉 생존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정말로 사실일 때만 지원합니다. 두 번째, 위기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냥 지원해 주면 중간에 다 새어나가서 정말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도달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그래서 우리가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게 그 문제를 개선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는지 확인하는 검증, 즉 모니터링이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조건만 갖춰지면 적이라도 지원을 해야 합니다.nbspnbsp예를 들어 내가 우리나라의 고아원에 먹을 것을 가져다주면 그것은 인도적 지원이라고 안 합니다. 누군가 자기 아들을 도왔다고 해서 그것을 인도적 지원이라고는 안 해요. 인도적 지원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도와야 할 아무런 의무가 없는 상대가 위와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도와서 같이 문제를 푸는 것을 말합니다. 이게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니까, 혹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니까 이렇게 하자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사람답기 위해서 이렇게 하자는 겁니다. 성질이 나서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사람답게 하자는 거예요.nbspnbsp부부가 머리채 잡고 멱살 잡아가며 싸우더라도 밥 먹을 때 되면 휴전하고 애 밥은 해 준 뒤 싸우자는 겁니다. 안 싸우면 더 좋지만, 싸우게 된다면 싸우더라도 아이들은 보호하자는 거예요.nbsp그러니 인도적 지원을 하는데 있어서 ‘북한이 핵을 개발했느냐?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냐? 북한이 독재국가냐?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했느냐? 북한이 군비를 증강했느냐?’ 이런 건 논할 필요가 없어요. ‘북한 사람들이 정말 굶어죽을 위기에 처했느냐? 아이들과 노인, 임산부의 영양실조가 심각해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느냐? 북한에 정말 콜레라나 성홍열이나 장티푸스가 발생했느냐? 약이 없다는 것도 정말이냐?’ 이게 첫 번째로 검토가 되어야 하고, 두 번째로 ‘우리가 보낸 식량과 약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됐느냐?’가 검증이 되어야 합니다.nbspnbspnbsp우리는 주로 첫 번째 기준을 두고 논쟁을 해요. ‘굶어죽기는 뭘 굶어죽어? 군량미 비축하려고 일부러 거짓말한다.’ 주기 싫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말이 무조건 틀렸다는 게 아니라 확인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 확인이 되면 보내고, 보낸 뒤에는 그게 어떻게 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nbsp북한에 식량 100㎏을 보냈는데, 군인이 20㎏을 가져가버리고, 20㎏는 중간에 누가 시장에 팔아버리고, 나머지 60㎏는 고아원에 전달이 되어서 아이들이 그것을 먹고 영양실조를 극복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지원에 대한 평가는 다 다릅니다.nbspnbsp‘우리가 준 식량이 군대로 갔다.’‘우리가 준 식량을 간부들이 시장에 팔아서 돈벌이를 했다.’‘우리가 준 식량이 고아원에 잘 전달되어서 아이들의 영양실조가 개선이 되었다.’nbsp모두 각자 원하는 부분만 보려고 들어요. 지원을 해야 한다는 사람은 ‘우리가 보낸 식량이 고아원에 전달되어서 아이들의 영양실조가 개선되었다’고 강조하고, 지원을 하기 싫은 사람은 ‘그것 봐라, 우리가 보낸 식량이 군대로 가고 시장에 풀렸다’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nbspnbspnbsp그래서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데 조금 관심을 갖고 있는 대통령한테는 지원해서 효과가 난 것만 계속 보고하고, 지원에 조금 부정적인 입장인 대통령한테는 지원 물자가 군대나 시장으로 흘러들어간 것만 계속 보고하니까 ‘줄 필요 없네. 주지 마라’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북한의 사정을 보면 군인도 굶어죽었습니다. 군인도 사람이니까 굶고 있다면 인도적 지원의 대상이에요. 또 생각해보면 내가 보낸 100㎏이 고아원에 전량 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지원을 함으로 해서 굶어 죽어가던 아이들의 영양실조 문제 개선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습니다.nbsp저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활동을 1996년부터 시작했어요. 1994년부터 1998년 사이 북한에서는 식량부족과 질병으로 인해 300만 명이 죽는 대량 아사 사태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두고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처음에는 국제 사회가 북한을 탐탁찮게 여겨서 안 주려고 했는데, 사태가 너무 심각하니까 지원을 했어요. 남한에서도 지원을 했고요. 그렇게 3년 정도 지원을 해서 1999년부터 대량 아사는 막았습니다. 아직도 굶어죽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2000년대 들어오면서 대량 아사는 멈췄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평가가 이렇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식량지원도 하고 쌀과 비료도 주었는데 북한은 미사일 만들고 핵 개발했다. 북한은 정책이 하나도 안 변했다.’ 그래서 지원을 끊은 겁니다.nbspnbsp그런데 이런 평가는 맞지 않습니다. 인도적 지원의 평가 기준에 따르면 ‘우리가 이렇게 인도적 지원을 했더니 아사 사태가 어느 정도 멈췄고 병이 어느 정도 잡혔다’ 이렇게 되어야 해요. 인도적 지원의 목표에 따른 성과가 평가가 되고, 지원을 했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안 된 이유를 분석해봐야 합니다. 지원한 양이 적었기 때문인지, 중간에서 다 빼돌렸기 때문에 아무리 지원해 봐야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인지를 확인하는 식으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해요. ‘우리가 지원을 했는데 북한은 미사일 쏘고 핵무기를 개발한다’ 이렇게 결론내려 버리는 것은 인도적 지원의 목적과 안 맞는 평가입니다.nbspnbspnbsp국제 사회에서는 지금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압력수단으로 삼아 무기화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각국은 무기화를 합니다. 미국도 늘 인도적 지원은 정치와 관계없다고 주장하지만, 제가 미국에 20년째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인도적 지원을 무기화합니다. 대화가 되면 지원을 하고, 말 안 들으면 끊어요. 그 때는 모니터링에 문제가 있어서 지원을 끊는다고 말하죠. 그래도 미국에서는 누구도 ‘말 안 듣기 때문에 인도적 지원을 끊는다’는 노골적인 말은 하지 않습니다. UN 인권 헌장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nbspnbsp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은 솔직해서 좋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국가지도자나 종교지도자가 ‘말도 안 듣는 사람들한테 왜 주나?’, ‘공산주의자들한테 왜 주나?’, ‘하나님도 안 믿는데 왜 주나? 굶어죽어도 싸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의식 수준이 아주 전근대적인 겁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시민의식의 측면에서 보면 그냥 강남에서 땅 좀 가지고 있다가 졸부 된 수준입니다. GDP만 세계 선진국 대열에 들어있지, 시민 의식 수준은 후진국 수준이에요.nbspnbsp모든 사람이 ‘저 놈 죽여야 한다’라고 해도 불교 신자라면 자비로 감싸야지요. 기독교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매단 사람을 보고도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라고 하셨어요. 종교 없는 사람들이 ‘저 놈 죽이자’고 아우성쳐도 불교 신자나 개신교 신자나 천주교 신자는 나서서 ‘인도적 지원은 신앙과 일치하는 것이니까 지원을 하자’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게 많은 불교 신자들이 많은데 악을 쓰면서 지원을 반대하고, 서울의 대형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이 깊다는 개신교인들도 악을 쓰면서 반대합니다. 그걸 보면 그 사람들의 신앙이 뭔지, 과연 신앙이 있기는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nbspnbspnbsp대한민국의 발전 정도로 볼 때 시민의식이 인도적 지원은 찬성하는 수준이 되어야 해요. 시민의식 수준이 그 정도 못 된다면 적어도 종교인들만이라도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나서는 의식 수준은 되어야 합니다. 종교의 원래 가르침을 이해한다면 그래야 할 텐데, 종교인들이 더 나서서 반대합니다. 북한의 정치를 비난하는 건 괜찮습니다. 그런데 인도적 지원을 반대하는 것은 본인의 신앙과 시민의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거예요.nbsp우리나라 사람들이 ‘미워서 못 주겠다’고 말하는 건 화끈하고 솔직하긴 합니다. 미국처럼 미워서 안 주면서도 ‘모니터링이 잘 안 돼서 못 준다.’ 하고 괜히 딴 소리 하는 것보다 나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미국은 북한하고 저렇게 적대적이지만 지금 인도적 지원이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 금지할 수도 없습니다. 미국의 정체성과 미국적 가치가 훼손되기 때문에 금지하지 못합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나라는 인도적 지원을 금지시켜 버립니다. 김영삼 대통령 때 강릉 잠수함 사건이 나자마자 지시를 내려 적십자 지원을 중지시켜 버렸어요. 그래서 우리가 문제제기 했더니 6개월 후에 다시 열어놨어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들어와서는 천안함 사건이 나니까 5.24조치를 내려서 인도적 지원을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로는 지금까지 우리가 대북 인도적 지원을 단 한 번도 못했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이명박 대통령 당시에는 비판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구관이 명관이다 싶어요. 그때는 중간 중간 중단되긴 했지만 그래도 하긴 했거든요. 중단시키면 우리 종교인들이 청와대에 찾아가서 대통령이나 수석 면담 요청해서 항의하고, 통일부 장관을 설득해서 허용을 받아낼 수 있었어요. 그렇게 우리가 한 번 지원하면 다음에는 막히고, 또 그러면 찾아가서 설득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 문제를 들고 청와대 문 앞에도 못 갑니다. 나서서 이야기하는 종교인도 아무도 없습니다. 지레 겁을 먹었는지, 이야기해 봐야 귀에 안 들어가리라 생각해서 포기한 건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전에는 지원을 신청해놓고 허가가 안 되면 ‘왜 허용을 안 해 주느냐? 대한민국이 이거 밖에 안 되느냐?’면서 항의라도 했는데 이 정부 들어선 신청도 한 번 못했습니다. 분위기를 보니까 도무지 될 것 같지 않아서요. 이런 식으로 가는 건 옳지 않습니다.nbspnbsp북한의 행태를 갖고 인도적 지원을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국제적인 의식 수준에 비해 너무 떨어지는 것입니다. 또 인도적 지원은 첫째, 우리나라의 도덕성을 위해서 해야 됩니다. 이웃에 있는 같은 민족도 안 도우면서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에 가서 돕는다고 하는 걸 보면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우습겠어요?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조선일보가 언젠가 1면에 이런 기사를 실었습니다. 우리가 해외에 지원한 ODA 자금 중에 북한에 지원한 금액이 1.68라는 거예요. 조선 일보가 나서서 비판할 정도예요. 제가 옛날에는 미국이나 UN기구에 가면 인도적 지원 좀 하라고 요청도 하고 설득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가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말만 꺼낼라치면 ‘한국정부는 얼마나 합니까? 당신은 얼마나 합니까?’라고 물으니까요. 거리도 가깝고 같은 민족인데 왜 너희는 안 하면서 나한테 하라고 하냐는 거지요. 우리도 지원을 하면서 좀 부족할 때는 요청하기가 쉬운데, 우리가 하나도 안 하고 있으니까 뭐라 말할 입장이 안 됩니다.nbspnbsp두 번째, 통일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대로 북한 정부에 불만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남한에서 지원하면 ‘아이고, 그래도 동족이 낫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자기들이 굶어죽든지 말든지 한국은 아무 관심이 없으니까, 북한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컸다가 요즘은 식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건 다 중국 덕분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시장의 모든 물건이 다 중국제이니까요. 북한이 굉장히 민족주의적이긴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중국으로 경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사람들은 ‘중국은 사회주의 천국이다’라고 합니다. 중국에 가보니까 개도 이밥, 즉 쌀밥을 먹더라는 거예요.nbspnbspnbsp인도적 지원은 통일로 가는 굉장히 중요한 수단입니다. 북한의 민심을 얻는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에요. 우리와 미국과 중국이 협력해서 핵 문제를 막고자 북한을 봉쇄하더라도, 그런 중에도 인도적 지원은 열려 있어야 합니다. 봉쇄하면 할수록 인도적 지원의 효과는 더 나잖아요. 그러니 한쪽은 막더라도 한쪽은 열어줘야 그걸로 민심을 잡는데, 우리는 봉쇄만 하고 있어요. 중국은 북한을 봉쇄하면서 뒷문은 열어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흐르면 북한은 더 중국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이건 통일전략적으로도 올바른 방법이 아니에요.nbspnbsp감정적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요. ‘얻어먹었으면 고맙다고 인사는 해야 되는데 이 사람들은 인사도 할 줄 모른다. 달라는 놈들이 엎드려 절해야 되는데, 우리는 거꾸로 주는 놈이 절하고 얻어먹는 놈이 큰소리친다. 그런 놈들한테 왜 주느냐?’nbspnbsp저도 이해가 갑니다. 굶어죽는 주민들만 아니면 팍 끊어버리고 싶고 만나고 싶지도 않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 지도부를 보고 주는 게 아니라 그 지도부 뒤에 있는 북한주민을 보고 주는 거예요. 그런데 수행을 안 하는 사람들은 그 지도부를 탁 보고는 북한 지원을 하다가도 다 반대로 돌아서버렸습니다. 특히 종교인들이 그랬습니다. 자기가 저보다 먼저 북한 돕기를 시작해서 열정적으로 하다가 저까지 끌어들여놓고 정작 자기는 지금 북한 돕기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몇 번 북한을 가보고는 화가 나버린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간부들의 행태를 보는 게 아니라 그 뒤에 말 못하고 고통받는 국민들을 보고 ‘그들의 처지가 어떤가? 이 지원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나?’ 이런 관점에서 인도적 지원을 결정해야 합니다.nbspnbspnbsp반대로, 아무리 같은 동족이고 아무리 북한이 달라고 조르더라도 인도적인 위기상황이 아니면 인도적 지원을 안 해야 합니다. 인도적 위기상황이 아니라면 인도적 지원이 아닌 개발 지원을 해야 합니다. 북한에 수로를 판다든지, 저수지를 만든다든지 하는 걸 개발지원이라고 해요. 개발지원은 서로 합의가 되어야 하는 것이에요. 인도적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아무리 사이가 좋고 친해도 인도적 지원이 아니라 개발 지원으로 지원 형태를 바꿔야 합니다.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인도적 위기 상황이 닥치면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하고요. 이렇게 인도적 지원과 개발지원은 다릅니다.”nbsp“감사합니다.”nbspnbsp인도적 지원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 필요성, 효과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인도적 지원을 해도 군대에 가기 때문에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니 이것은 한쪽 측면만 바라본 것에 불과했음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세 명의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벌써 2시간이 다 지났습니다. 마칠 시간이 되자 마지막으로 스님의 당부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합의 통일을 하려면 상대인 북한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가 노력한 만큼 통일은 빨리 올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통일의병 활동에 적극 참여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북한을 설득해서 남북이 합의통일을 하면 중국이 우리에게 간섭할 이유도 없고, 또 남북은 중국하고도 일본하고도 미국하고도 관계를 다 잘 개선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합의통일을 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런데 합의통일을 하려면 상대의 요구를 좀 들어줘야 해요. 지원도 좀 해 줘야 하고, 신분도 보장해 줘야 합니다. 지배층은 신분을 보장해 줘야 하고, 밑에 있는 사람은 득이 되도록 해 줘야 됩니다. 동독 국민이 통일에 동의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통일 되면 자가용을 가질 수 있다. 통일되면 우리도 유럽으로 여행할 수 있다’ 이게 통일의 가장 큰 요인이었어요. 대한민국이 가난한 사람도 좀 잘 살도록 하는 복지국가가 돼야 북한사람들이 볼 때 ‘따로 살 거 뭐 있어? 남한 가면 제일 못 살아도 저 정도로는 사니까 우리도 같이 사는 게 좋겠다’ 이렇게 되어서 통일의 유인효과가 됩니다. ‘거기도 못 사는 사람은 굶어죽더라. 남한이 잘 살면 뭐해? 우리가 남한 가면 거지될 텐데’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통일하기도 그만큼 어려워집니다.nbsp통일이 되면 남한에도 이익입니다. 우선 경제적으로 이익입니다. 또 우리 대한민국을 좋은 나라로 만드는 것이 북한주민이 통일에 동조하게끔 하는 데 유리해요. 따라서 nbsp‘대한민국을 복지국가로 만들 거냐’ 하는 것과 ‘통일할 거냐’ 하는 것은 배치되는 게 아니라 상생의 요인으로써 같이 가야 하는 겁니다.nbspnbsp우리가 이런 걸 두루 생각하고 강력하게 통일을 추진하면 통일이 빨리 올 겁니다. 더 많이 노력하면 더 빨리 올 것이고, 조금 노력하면 천천히 올 것이고, 노력 안 하면 안 오겠지요. 아무 노력도 안 했는데 통일이 온다면 통일은 될지 몰라도 통일로 인한 새로운 고통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나라가 독립할 때 겪었던 아픈 경험들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지금 정신을 좀 차려야 합니다.nbspnbspnbsp그리고 앞으로 선거 때마다 여러분은 어느 당의 공천만 받으면 그냥 뽑아주는, 그래서 주민이 투표할 필요도 없는, 그런 국민이 되지 마세요. 적어도 우리가 선출할 수 있는 권리,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시민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통일의병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통일 문제를 바라보며 답답했던 부분들에 대해 쉽게 풀어준 스님에게 청중들은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교복 차림으로 강연에 참석한 중학생에게 오늘 강연을 듣고 난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친구들과 통일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답변하기 어려웠는데 강연을 듣고 나니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명쾌해졌다”고 했습니다. 50대 남성도 “오늘 강연을 들으니 앞으로 어떤 자세로 통일을 대해야 할지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통일에 대한 가슴 뛰는 설렘을 갖게 되었다며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친 후 대중과 스님은 함께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불렀습니다. 오늘 강연이 진주 지역에서 많은 통일의병들이 나오도록 하는 작은 계기가 되길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nbsp이어 책 사인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은 강연장을 찾아준 분들에게 정성껏 사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사인회를 마치고 스님은 오늘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밝은 표정의 얼굴 속에는 통일의 희망을 만들어간다는 보람과 기쁨이 가득해 보였습니다.nbspnbspnbsp사진 촬영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는 봉사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를 건네며 격려도 해주었습니다.nbspnbsp추위에 떨며 외부에서 안내 봉사를 한 분부터 오늘 행사 준비를 도와주기 위해 멀리서 달려와 준 통일의병들의 모습을 보며, 통일은 먼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작은 노력으로 시작된다는 다짐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언론에 크게 기사화되지도 않고,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도 않고, 그저 미미한 움직임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정성을 다해 한발 한발 내딛는 통일의병들의 모습이 오늘은 유난히도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nbspnbsp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진주를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습니다. 밤새도록 고속도로를 달려 새벽 2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 10시 30분에 남양주 경복대 우당아트홀에서 남양주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저녁 7시에는 정발산 성모성탄성당에서 일산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 nbsp※nbsp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nbspnbspnbsp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nbsp
2015.11.25 (저녁) 광주 청년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스님은 오전에 전남지방경찰청 초청강연과 오후에 목포해양대학교 초청강연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전남대학교 컨벤션홀에서 광주 지역의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연이어 3번의 강연을 했기 때문에 피곤할 법도 한데 스님은 더 힘을 내어서 전남대학교 컨벤셜 홀로 들어섰습니다. 곳곳에 서 있는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봉사자들을 보고선 금새 환한 웃음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전남대학교 컨벤션홀nbsp이번 강연은 청년정토회와 광주 지역의 청년들이 서포터즈가 되어 한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모두들 3시부터 강연 준비를 시작해 신속하게 일 나누기를 하고 무대 점검과 사전 리허설을 마친 후 밝은 표정으로 찾아오는 청년들을 맞이했습니다.nbspnbspnbsp저녁 6시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지만 청년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의 청중들도 많이 참석해 400석의 자리를 꽉 채우고도 자리가 부족해 계단에 앉아야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nbspnbsp강의가 시작되자 스님은 청중들에게 “저녁식사는 하셨어요?”라며 안부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청중석을 살펴보더니 늙은 청년들이 보인다고 하면서 웃음을 보인 뒤 오늘 청년 강연의 취지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은 청년정토회가 주관하는 강연입니다. 일반인들이 매일 시부모 모시는 문제, 고부 갈등, 부부 갈등 같은 이야기만 하니까 청년들한테 안 맞는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런 자리에 청년들이 들어가서 배울 것도 있지만 청년들에게 따로 시간을 내어서 청년들의 고민만 집중적으로 다뤄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오늘 광주에서 청년 즉문즉설 강연이 잡힌 겁니다. 오늘 참석하신 분들 중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참관만 하세요. 원래는 참석도 안 시켜야 되지만 자리가 비어서 참석은 허용했으니 그렇게 아시고 오늘은 35세 이하 청년 대학생들만 질문할 수 있도록 양해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괜찮으시죠?”nbsp“예.”nbspnbsp스님이 질문할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자 총 6명이 손을 들었습니다.nbspnbsp첫 번째 질문자는 21살 남학생이였는데 꿈을 크게 잡았지만 이게 허황된 것인지 아닌지 확인받고 싶어 하였고, 두 번째 질문자는 23살 여학생으로 주변 상황에 의해 마음이 불편해져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생각이 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전남대학교 1학년 재학중인 남학생으로 부모님께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물었고, 네 번째 질문자는 31살 한국으로 유학 온 중국인 여학생으로 부모님이 있는 중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한국에 남아서 취직을 해야 할지 걱정이라며 질문했고, 다섯 번째 질문자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으로써 매사에 부정적이고 죽음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 남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물었고, 여섯 번째 질문자는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여성으로써 사주를 보러 가서 안 좋은 이야기를 듣고 와 신경이 계속 쓰인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사전에 신청했던 질문자들의 질문이 모두 끝나고 시간이 남자 스님은 즉석에서 추가 질문을 받았습니다. 일곱 번째 질문자는 남자 교사로써 꿈이 없이 살아왔는데 주변에서 꿈을 갖고 살라는 말 때문에 자신이 잘 살고 있는 건지 궁금하고 또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을 물었고, 여덟 번째 질문자는 27살 직장인 여성으로 자신이 결혼하고자 하는 사람이 도인의 길을 가려고 하는데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함께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꿈이 없어서 고민이고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에 대해 물었던 남자 교사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지금까지 꿈이 없이 살아온 게 고민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은 장래희망을 쓸 때 다 자기의 꿈이며 진짜 원하는 걸 적던데, 저는 꿈이 없어서 부모님의 기대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그냥 제 꿈이라고 적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할 때도 다른 친구들은 정말 자기가 원하는 전공에 따라 진학하는데 저는 그냥 수능성적에 맞춰서 대학을 갔습니다.nbspnbsp어쩌다 보니 제 꿈도 아니었지만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35세인 지금은 학교 교사가 되었는데 이제 와서 딜레마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강연을 다녀봤지만, 흔히 말하는 성공하거나 행복하다는 사람들은 우선 꿈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일단 꿈이 없어 고민입니다.nbspnbsp두 번째로, 저는 교사로서 학생한테 ‘너는 꿈을 가져야 된다. 너의 꿈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이런 단계를 밟으면 좋겠다’는 등의 말을 하지만 정작 교사인 저는 꿈이 없습니다. 과연 꿈을 갖는 것만이 정말 행복한 길인지, 또 꿈을 갖지 않는다면 실패한 삶인지 고민입니다.”nbsp“그렇지 않아요. 꿈은 없을수록 좋아요. 있는 게 병입니다. 질문자는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토끼며 노루며 다람쥐는 다 꿈이 있어서 저렇게 살고, 나무는 뭐 꿈이 있어서 저렇게 자는 게 아니에요. 없는 게 자연스러운 겁니다.”nbsp“그런데 모든 책에서는 꿈이 있는 게 정상이라고 하니까요.”nbsp“그것은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니까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nbspnbsp“많은 사람들도 ‘항상 꿈을 가지라. 꿈을 좇아서 살라’고 하니까요.”nbsp“부처님은 그런 이야기 안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뭘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질문자가 자기 반에서 조사해보면 ‘선생님, 저는 꿈이 없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아이가 있었나요? 없었나요?”nbsp“사실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더 많긴 합니다.”nbspnbspnbsp“그래요,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더 많잖아요. 그런 아이들에게 질문자는 용기를 줘야 합니다. ‘꿈이 있는 게 문제지, 꿈이 없는 건 아무 문제도 안 된다. 선생님도 꿈이 없었지만 이렇게 선생님이 되어서 너희들을 가르치지 않니? 걱정하지 마라’ 이렇게 격려를 해 줘야합니다.nbsp현재 한국 사회의 교육이 잘못되어서 많은 젊은이와 아이들이 질문자처럼 ‘저는 꿈이 없어요’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고민이 지금 사회적으로 큰 문제입니다. 교육이 잘못돼서 그래요.nbspnbsp질문자는 교사가 되길 잘했습니다. 반에서 조사를 해 보세요. 3분의 1, 심하면 절반 이상은 꿈이 없습니다. 그게 지극히 정상적이에요. 학교 교육이 제대로 있기 전인 옛날에 시골 농가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은 특별히 따로 꿈이 없었어요. 그냥 자라서 시집가고, 자라서 농사지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잘못된 교육 때문에 사람들이 병들게 됐어요.nbspnbsp제가 학교 다닐 때 운동을 굉장히 하고 싶어 하는 아이가 한 반에 한둘씩 있었어요. 소위 딴따라라고 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도 한 반에 한둘씩 있었고, 미술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었어요. 이렇게 특별한 아이들이 60명 중 부문별로 1, 2명 꼴로 있었어요. 그런 특기 있는 아이들이 중학교 때까지는 그 특기를 살리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부모가 그걸로 못 먹고 산다며 강력하게 반대해서 그 특기를 못 살리고 다 이과로 진학해 공대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시절에는 문과보다 이과가 우세했거든요.nbspnbsp그런데 우리가 이제는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해졌어요. 사람들이 먹고 사는 데만 전전긍긍해서는 행복하지가 않으니까 이제 ‘꿈’을 생각하게 된 겁니다. ‘나는 의사지만 사실은 음악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는 음악을 해서는 못 먹고 살기 때문에 의사가 되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 어릴 때 못 이룬 꿈을 생각해서, 자녀 세대에는 뭘 하고 싶은 사람은 그걸 할 길을 열어주자고 하게 됐어요.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있으면 그걸 해라’ 이런 분위기가 된 겁니다.nbspnbsp그런데 최근에 운동이나 예술을 해서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번 사람들이 많다 보니 부모나 교사들이 돈 욕심에 미쳐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골프를 시킨다, 테니스를 시킨다, 피아노를 시킨다 해요. 그러면서 자꾸 꿈이 없는 애들한테 ‘꿈을 가지라고 강요하니까 아이들이 도로 고민에 빠졌습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억지로 배우고 있는지 몰라요. 집중적으로 지도하면 아이들은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쯤 올라가서 진짜 본격적으로 자기 선택을 해야 될 때가 되면 다 지쳐서 나가떨어집니다. 그래서 다시 갈등이 시작돼요. 이게 잘못된 욕심이라는 겁니다. 전체가 미쳐서 ‘꿈을 가져라 꿈을 가져라’ 이렇게 강요하는 게 잘못됐다는 거예요.nbspnbsp물론 아이들 중에는 어릴 때부터 독특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고,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어요. 제가 시골에서 살 때 우리 윗집 총각은 학교도 안 다니면서 그렇게 노래를 잘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런 걸 아무도 안 알아줬기 때문에 그 재능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했어요. 그런 특별한 ‘끼’는 극소수에게 있고, 다수에게는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거 하라면 이거 하고 저거 하라면 저거 해요.nbspnbsp질문자는 특별한 ‘끼’가 없으니까 뭘 해도 됩니다. 선생님 하라면 선생님하고 공무원 하라면 공무원하고,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한 가지밖에 못하는 사람이 좋아요? 이것저것 다 하는 사람이 좋아요? 스님이 딱 불경밖에 모르는 게 좋아요? 성경 이야기도 하고 불경 이야기도 하고 과학 이야기도 하는 게 좋아요?”nbsp“여러 가지 하는 게 좋아요.”nbsp“그래요. 미래의 학문은 융합적인 게 좋아요. 그러니 질문자는 아무 문제가 없고, 선생님으로서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가져라’ 이런 이야기도 절대 하지 마세요. 다른 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해서 아이들이 질문자에게 물으면 이렇게 말해주세요.nbspnbsp‘꿈이라는 건 없어도 돼. 그런데 너 뭐 좋아하니?’nbsp‘좋아하는 거 없어요.’nbsp‘너는 욕심이 없구나. 아주 훌륭하다’nbspnbsp이렇게 격려를 해줘야 합니다.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면 ‘좋다. 한번 해 봐라’ 이렇게 격려해주면 됩니다. 꿈이 있는 아이가 인생이 괴로운 법입니다. 야구선수 되고 싶은데 집에서 뒷바라지해줄 형편이 안 되면 괴로워해야 하잖아요. 특별히 되고 싶은 게 없는 것보다 좋은 게 없어요.nbspnbspnbsp그러니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질문자는 ‘‘저는 걱정 없는 게 걱정이에요’ 이러는 것과 같아요. 질문자는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이 그렇게 ‘꿈이 없어요’ 할 때는 공감하지 못하는 다른 선생님들보다 훨씬 더 잘 격려해 줄 수 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갖고 있는 고민은 ‘저는 이런 꿈이 있는데 실현을 못해요’가 아니라 ‘저는 꿈이 없어요’인 사회가 됐습니다. 교육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몰라요. 꿈이 없는 게 왜 문제고, 고민 없는 게 왜 고민입니까? 자꾸 ‘고민해라. 꿈을 가져라’ 하고 몰아붙이니까 그래요.nbspnbsp도의 최고 경지는 할 일이 없어지는 거예요. 할 일이 없어진다고 해서 논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가자’ 하면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가는 겁니다. ‘안 하겠다’하는 것은 그걸 안 하고 대신 해야 할 다른 일이 있다는 뜻이에요. 다시 말하면 이건 할 일이 있는 사람입니다. 할 일이 없는 사람은 ‘가자’ 하면 가고, 가다가 중간에 ‘돌아 가자’ 하면 도로 옵니다.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느냐고 화내지 않습니다. 다른 할 일이 없으니까 ‘이거 하자’ 하면 이걸 하고, ‘이거 그만 두고 저거 하자’ 하면 이걸 계속할 이유가 없으니 그만두고 저걸 합니다. 그게 도인입니다.nbspnbspnbsp물을 네모난 그릇에 부으면 네모가 되고, 둥근 그릇에 부으면 둥글게 되듯이, 정해진 모양 없이 형편에 따라 되는 겁니다. 이게 최고의 경지입니다. 질문자는 최고의 경지, 도인의 경지에 이를 소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알았습니까?”nbspnbsp“예, 알았습니다.” nbspnbsp“아무 문제가 없고, 선생님으로서도 아주 좋아요. 그런데 질문자가 헛된 생각으로 만들어 놓은 책이니 교육이니 하는 상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지금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없는 꿈을 만들려고 몸부림치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 질문자가 ‘나를 봐라. 나는 꿈 없이도 교사가 되었고, 꿈이 없기 때문에 꿈속에 살지 않고 항상 현실에 깨어있다. 괜찮다.’ 이래야 해요. 그래서 질문자는 내일이라도 선생님 하라면 선생님 하고, 공무원 하라면 공무원 하고, 농사지으라면 농사지으면 됩니다. 이게 도예요.nbspnbsp그래서 저도 여러분한테 주제를 정해주지 않고 아무거나 물으라고 하잖아요. 이거 물으면 이거 이야기하고 저거 물으면 저거 이야기하니 얼마나 좋아요? 그러니 질문자는 아주 훌륭한 선생님입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사세요. 더 이상 엉뚱한 소리는 듣지 말고요.” nbspnbsp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연이어 박수가 계속 쏟아져 나왔습니다. 질문자의 인상도 활짝 펴졌습니다. 특히 물이 그릇의 모양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는 것이 도의 최고 경지라는 설명을 하면서 질문자는 그런 경지에 이를 소질 있다고 하자 청중도 웃고, 질문자도 활짝 웃었습니다. 무엇보다 잘못된 교육이 얼마나 아이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지 되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nbspnbsp마음이 가벼워진 질문자는 질문이 한가지 더 있다면 또 다른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굉장히 안 좋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억압 속에서 자랐고, 저는 말씀드렸다시피 꿈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산 경향이 있었어요. 그런데 20살 넘어 대학생이 되고 자기 정체성이 생기면서 보니까 아버지와 굉장히 안 맞아서 충돌이 잦아졌어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말을 섞다 보면 서로 감정이 상하고 말싸움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말을 안 하고 있습니다.”nbspnbsp“그건 잘못됐어요. 아버지와 말을 안 하면 불효지요.”nbsp“모르겠습니다. 그걸 알지만 말을 하면 더 감정이 악화되니까요.”nbspnbspnbsp“말을 하는데 왜 감정이 악화됩니까?”nbsp“표현방법이 잘못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nbspnbsp“아니오, 질문자가 아버지한테 감히 주장하고 나서니까 그래요. 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네, 알았습니다, 아버지. 네, 네’ 이러면 되지요.”nbsp“그런 말씀을 스님 책에서 읽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직 스님의 경지에 오르지 못해서 그런지 생각처럼 잘 안 되더라고요.”nbsp“질문자는 꿈이 없다더니 꿈이 있네요. 아버지하고 싸워서 이기려는 꿈이 있잖아요.” nbspnbsp“그 꿈을 가지고 살면 될까요?”nbsp“아니오, 그 꿈은 헛된 꿈이니까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버지와의 갈등에는 질문자가 배울 점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완고한 게 질문자는 좋았어요?”nbsp“좋지 않았습니다.”nbsp“그러면 질문자가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대할 때 완고한 게 좋을까요?”nbsp“안 좋습니다.”nbsp“그런데 질문자는 아이들한테 완고한 편이지요?”nbsp“예.” nbspnbspnbsp“질문자는 아버지가 완고한 것을 싫어하면서도 그대로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아버지를 싫어하면서 아버지를 그대로 흉내 내고 살게 될 겁니다. 질문자가 정말 해야 할 일은 아버지와 싸우는 게 아닙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완고한 게 싫었다면 ‘나는 학생들이나 내 아이에게 완고하지 않아야 하겠다’ 이렇게 자기를 점검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내 인생에 너무 간섭해서 내가 억압을 받았다면 ‘나는 학생들이나 내 아이들에게 절대로 간섭하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배울 수가 있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게 싫었다’면서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그대로 따라 하고 있잖습니까. 아버지가 뭐라고 했을 때 아버지에게 반발하면 할수록 질문자는 아버지의 붕어빵이 될 겁니다.nbspnbsp아버지를 안 닮으려면 아버지를 안 미워해야 해요. 아버지가 완고하다는 사실을 알면서 거기에 대응을 한다는 건 질문자가 더 완고하다는 듯입니다. 그 완고한 영감한테 이기려 드니 얼마나 시건방진 생각입니까?nbspnbspnbsp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성격이 저런 줄을 아니까 이제는 기죽지 말고 ‘알겠습니다, 아버지 네, 그렇게 하지요’ 이렇게 말씀드리고 질문자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됩니다. ‘빨리 들어오너라’ 하시면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일 다 본 뒤에 늦게 들어가면 됩니다. ‘왜 늦게 들어왔니?’ 하면 ‘아이고, 오늘 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내일은 빨리 들어와’ 하면 ‘알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내일 늦게 들어가면 됩니다. 질문자가 질문자 인생의 주인이니까 구애받을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부모의 걱정은 질문자가 받아줘야 합니다.nbsp아버지가 나한테 지나치게 간섭해서 내가 어릴 때 참 안 좋았다 본인도 앞으로 아이들한테 간섭하지 마세요. 아버지가 엄마한테 너무 완고하게 하는 게 안 좋았으면 질문자도 결혼하면 아내한테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마세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상태로는 그렇게 할 확률이 100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nbsp“고치겠습니다.”nbspnbspnbsp“오늘 질문 잘 하셨어요. 고치는 방법은 아버지한테 대들지 않는 것입니다. 아직도 질문자의 마음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질문자도 똑같은 업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짜 아버지 안 닮았나, 닮았나?’ 하는 걸 알 수 있는 건 아버지를 대면했을 때 알 수 있어요. 질문자가 아버지를 만났을 때 자연스러우면 안 닮아져가는 것이고, 아버지를 만났을 때 반발이 생기면 똑같이 닮아간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뭐라 그러든 질문자는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이렇게 하세요. 옛날처럼 비굴하게 복종도 하지 말고, 반발도 하지 말고, 그냥 아버지 말씀은 아버지 말씀으로 받아들이되 나는 내 인생을 살면 됩니다.”nbsp“감사합니다.”nbspnbsp대화 중에 스님이 ‘결국 아버지의 성질을 고치려고 하는 것이 질문자의 꿈이였군요’ 라고 하자 더 큰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아버지의 완고한 고집을 꺽으려는 질문자는 아버지보다 더 완고한 고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이 뒷통수를 한 대 툭 치는 것 같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우리들도 평소에 그렇게 남을 탓하고만 있지 않았는지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무거운 문제도 가볍게 만드는 스님의 재치 있는 답변에 질문자는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와 밝아진 얼굴로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청중들도 스님과 질문자가 대화를 나누는 중에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에 시원함을 느꼈는지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벌써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평소와 달리 약속한 2시간 보다 10분 일찍 강연을 마친 스님은 마지막으로 지금이 좋은 줄을 아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면서 청년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청년 여러분, 지금 공부하려니 힘들지요?”nbsp“네.”nbsp“취직도 어렵지요?”nbsp“네.”nbsp“연애도 하고 싶은데, 못하지요?”nbsp“네.”nbsp“결혼도 못하고 있지요?”nbsp“네.”nbspnbsp“아이고, 불쌍하네요. 저는 늙어서 연애 안 해도 되고, 결혼 안 해도 되고, 취직 안 해도 되고, 공부 안 해도 되니 참 좋아요. 그런데 누가 여러분한테 ‘공부도 연애도 취직도 결혼도 할 필요 없는 70대 노인 할래? 아니면 연애도 공부도 취직도 결혼도 해야 하는 20대 청년 할래?’ 하고 물으면 어느 걸 할래요?”nbsp“20대 청년이요.”nbsp“그래요, 그러니까 젊은 여러분들은 저보다 지금 좋은 조건에 있다는 겁니다. 늙은 저도 이렇게 웃으면서 사는데 젊은 여러분이 왜 인상 쓰며 살아요? 지금 충분히 좋은데요. 그래도 저보단 나으니까 저 같은 처지를 하라면 안 하잖아요.nbspnbspnbsp연애 고민, 취직 고민, 공부 고민 모두 다 젊은 시절에 할 수 있는 거예요. 늙으면 그런 고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고민 안 할 수 있는 늙은이가 되라면 다 안 한다잖아요. 그런데 저는 늙은 게 좋아요. 그런 거 하기 싫기 때문이에요. nbspnbsp그러니 늙은 사람은 늙은 게 좋아야 하고, 젊은 사람은 젊은 게 좋아야 합니다. 자기 세대와 자신에 대한 긍정성을 가져야 해요. 우리는 몇 살이고 어떤 처지이든 누구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힘겹게 생각하지 마세요. 도저히 못 하겠으면 와서 저랑 바꿔요. nbspnbspnbsp나이든 사람의 입장에서는 ‘20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공부도 하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취직도 하겠다. 막노동을 해도 그게 낫겠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면 여러분들은 결코 불행한 세대가 아닙니다. 그러니 다 좋을 때인 줄 알고 행복하게 사세요. 감사합니다.”nbsp스님의 유머가 섞인 따뜻한 격려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리며 기쁜 마음으로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후 강연장 밖에서는 스님의 책이 구비 되어있는 도서 부스에서 책을 사려는 사람들과 스님의 책에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특히 스님의 신간 ‘야단법석’은 모두 완판이 되어서 책을 구매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강연장을 나가는 한 청년은 중국인 유학생의 질문에 대한 답변 중에서 “자신이 좋다고 생각해서 한 선택이 항상 좋지만은 않다. 상황에 따라 좋아질 수도 있고 안 좋아질 수도 있다. 그래서 어느 한 선택만이 꼭 옳은 선택이라 할 수 없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며 소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또 질문을 했던 한 학생은 “질문하기 전에는 매우 답답했는데, 지금은 괜한 것으로 힘들어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며 한층 밝아진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nbsp책 사인회가 끝나고 강연을 준비했던 서포터즈들과 함께 단체사진 촬영이 있었습니다. 청년들답게 광주 청년 파이팅을 신나고 우렁차게 외쳤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준비한 청년정토회 광주전라 지부 자원봉사자들nbsp스님이 수고했다고 악수를 건네자 다들 신나서 스님의 손을 잡아보고자 아우성이었습니다. 스님과의 악수 한 번에 너무나 기뻐하는 봉사자들을 보니 서포터즈 역할을 하느라 강연을 자세히 들을 수는 없었지만 누구보다도 주인된 마음으로 강연에 함께한 그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전남대학교를 빠져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하루 종일 3번의 강연을 연이어 하느라 많이 피곤하셨는지 차 안에서는 깊은 잠에 드셨습니다. 밤새 고속도로를 달려 밤 12시 30분이 되어서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해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 7시부터 오전 내내 평화재단에서 실무자들과 회의와 미팅을 가진 후 저녁 7시에는 진주 경남정보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진주 시민들을 위해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nbsp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nbspnbspnbsp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nbsp
2015.11.25 (오후) 목포해양대학교 초청강연
nbsp안녕하세요. 스님은 오전에 전남지방경찰청 초청 강연에 이어서 오후 3시부터는 목포해양대학교에서 마련한 초청강연에 참석해 대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후 3시가 되자 목포해양대학교 제2공학관 대강당에는 스님의 강연을 듣고자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어 빈자리 없이 빼곡이 앉아 있었습니다. 자리가 부족해 많은 학생들이 뒤에 서서 강연을 함께 들었습니다.nbspnbsp▲ 목포해양대학교 제2공학관nbsp그동안 스님은 외부 초청 강연에 응해 오지 않았는데, 목포해양대학교는 전체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니 단체 생활을 통해 겪는 어려움이 많다며 간절히 강연 요청을 해와서 광주에 내려온 김에 특별히 시간을 내게 되었습니다.nbspnbsp스님의 소개 영상에 이어 사회자가 스님을 소개했습니다. 400여 명의 학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로 스님을 반겼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환한 웃음과 함께 인생은 다섯가지 제약을 제외하고는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된다고 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인생에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은 없습니다.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돼요. 그런데 ‘자기 좋을 대로’에는 다섯 가지 제한이 있습니다. 첫째, 태어난 사람은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되지만 남을 해칠 자유는 없어요. 죽이거나 때리면 안 됩니다. 둘째, 누구나 다 이익을 추구할 자유는 있지만 남에게 손해를 끼칠 자유는 없습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으면 안 됩니다. 셋째, 행복을 추구할 자유는 있지만 남을 괴롭힐 자유는 없습니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하면 안 돼요. 넷째, 말할 자유는 있지만 말로 남을 괴롭힐 자유는 없어요. 욕설하거나 사기 치거나 거짓말하면 안 돼요. 다섯째, 술 마실 자유는 있지만 술 마시고 취해서 행패부릴 자유는 없습니다. 술 마시고 취해서 남을 괴롭히면 안 돼요. 이 다섯 가지를 제외하고는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원하는 대로 생활하면 됩니다. 남도 그렇게 사는 것을 간섭하면 안 됩니다.nbspnbspnbsp그런데 우리는 깨우쳐주는 것과 잘못을 지적해서 야단치는 것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서너 살짜리 어린아이라도 친구의 장난감을 빼앗으면 야단을 쳐야 하는데 그건 내버려두고, 공부를 못하면 야단을 치니까 가치관에 혼란이 생기고 사회가 혼란스러운 거예요. 소위 청소년 학교폭력이라고 하는 게 별 거 없어요. 다른 아이를 때리는 것, 다른 아이의 물건을 빼앗는 것, 성추행하는 것, 욕설하는 것밖에 더 있어요?nbspnbsp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너무 남의 눈치 보고 살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 인생에 너무 간섭할 필요도 없습니다. 누구나 다 어떤 사람을 좋아할 권리가 있어요. 어떤 사람이 나를 좋아해서 나도 같이 좋아했는데 그에게는 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할 권리가 있는 거예요. 그걸 가지고 배신이라고 하면 안 돼요. 그러니 ‘그 동안 나와 재미있게 지내줘서 고맙다. 잘 가라’ 이렇게 말해줘야 합니다. 그걸 못 놓고 끈적끈적하게 붙어서 울고불고 하지 마세요.nbspnbspnbsp그리고 내가 상대를 아무리 좋아해도 상대가 싫다고 하면 따라다니지 말고 그만둬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남을 괴롭힐 자유는 없습니다.nbspnbsp이렇게 인생을 조금 교통정리하면 사는 게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산 속의 작은 다람쥐도 잘 사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힘들어하며 사는 건 사람의 존엄을 해치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고뇌하는 게 있으면 마음껏 이야기를 하세요. 함께 이야기하면서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건 고뇌할 일이 아니구나’, ‘이건 이렇게 하면 해결되겠구나’ 하고 스스로 답을 찾거나 애초에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찌푸렸던 얼굴이 좀 펴질 거예요.nbspnbspnbsp이렇게 여러분들이 문제제기하는 내용에 따라 대화를 하는 것이지, 정답은 없습니다. 다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돼요. 부모님이 나를 20살까지 키워준 것은 고마운 일이니까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20살이 넘었으면 독립된 인간이에요. 20살이 넘었는데도 내내 부모 밑에서 시키는 대로 살면 그건 부모의 노예지 자유인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다 20살이 넘은 대학생이니까 자유인이에요. 자유롭게 살되,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자기 인생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아닙니다. 자, 그런 관점을 가지고 대화를 해봅시다.”nbsp스님은 서두에서 먼저 인생을 어떻게 살면 좋은지 관점을 명확히 잡아주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스님이 이야기한 다섯가지 제약에 대해 공감을 하면서도 의문이 드는 점을 서슴없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nbspnbsp총 14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첫 번째 학생은 스무살이 안 된 청소년들이 학교 폭력이나 성폭력 범죄를 일으키면 어떻게 처벌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고, 두 번째 학생은 내 실력이 남들보다 뒤쳐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원하는 꿈이라면 끝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물었고, 세 번째 학생은 사회에 대해서 배우면 배울수록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데 곧 사회로 진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물었고, 네 번째 학생은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니 서로의 취향과 생각이 달라 갈등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해결해 갈 수 있는지 물었고, 다섯 번째 학생은 대학생활의 즐거움 중에 하나가 연애인데 얼굴이 못 생겨서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며 그냥 미래를 위해 공부에 집중할지 그럼에도 연애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여섯 번째 학생은 대화를 하다가 상대가 상처를 받으면 그것은 말하는 사람의 잘못인지 듣는 사람의 잘못인지 물었고, 일곱 번째 학생은 기숙사에서 잠을 자다가 수업에 늦는 경우가 많아서 손해가 심하다며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물었고, 여덟 번째 학생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살다보니 착하면 손해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었고, 아홉 번째 학생은 다음학기부터 선상 실습을 하게 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데 월급을 받게 되면 자산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열 번째 학생은 스님이 생각하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nbspnbsp열한번째 학생은 시력이 안 좋고 잔병치레가 많았음에도 가족들이 제대로 돌봐주지 않은 것 때문에 많이 서운하고 지금도 불편하다며 어떻게 관계를 풀어야 할지 물었고, 열두번째 학생은 휴대폰이나 친구 관계를 모두 끊고 목표에만 올인하는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고, 열세번째 질문자는 지금 다니고 있는 학과가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아서 자퇴를 하고 새로 대입을 준비할지 망설여진다며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었고, 열네번째 질문자는 스님이 인생의 멘토로 삼고 있는 분이 누구인지 물었습니다.nbspnbsp각각의 질문에 대해 스님은 재치있고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특히 목표에만 올인하는 삶에 대해 질문한 학생은 얼굴에 화기가 많고 무척 상기되어 있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서로 다른 생각과 기준으로 갈등하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물었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목포해양대학교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니 많은 학생들이 이 답변이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nbsp“1학년 학생입니다. 기숙사를 비롯해 폐쇄적인 공간에서 단체 생활을 하다보면 사람 관계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다들 자기만의 생각과 기준이 있어서 상대방 의도와 달리 서운해지거나 감정의 충돌이 생겨요.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자 내가 숙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nbsp“저는 숙이고 살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요. 아까 이야기했듯이 첫째, 한 방에 있는 사람을 때리지는 마세요. 물건 훔치지 말고, 성추행하지 말고, 욕하지 말고, 취해서 행패 부리지 말고요. 이것 외에는 눈치 볼 필요 없습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상대가 불편한 점을 말할 거예요. ‘야, 청소 좀 하자’ 이러면 ‘알았다’ 하고 개선하면 돼요. nbspnbspnbsp굳이 상대의 비위를 미리 완벽하게 맞추려 들면 내가 피곤해서 못 살아요. 다섯 가지를 제외하고는 그냥 편한 대로 살다 보면 상대가 불편할 경우에 문제제기를 해옵니다. 문제제기하는 내용을 들어보고 저 사람 입장에서는 불편하겠다고 동의가 되면 맞춰주면 됩니다. 나도 불편한 게 있으면 이야기해서 서로 맞춰가고요.nbsp그런데 나는 불편하지만 상대가 괜찮다고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예컨대 나는 추위를 많이 타서 히터를 좀 틀고 싶은데 상대는 덥다고 하지 말라고 할 수 있어요. 같이 살다 보면 이렇게 작은 걸로 부딪힙니다. 그러면 기숙사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의논해 방을 바꿔서 체질이 비슷한 사람끼리 함께 쓰면 돼요. 이런 길도 하나 있고, 둘이 원하는 온도의 중간으로 온도를 맞추는 방법도 있어요. 나는 약간 춥지만 견딜 만하고, 상대는 약간 덥지만 견딜 만한 겁니다. 추우면 스웨터를 한 장 더 껴입고, 더우면 벗는 식으로 해서 상대에게 내가 맞추는 방법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길 중 선택해서 하면 됩니다.nbspnbsp이 친구와 서로 너무 좋아해서 헤어지기 싫다면 방 바꾸는 것보다는 내가 스웨터 한 장 더 입고 맞춰주는 게 낫고, 굳이 둘이 한 방을 쓸 이유가 없다면 방을 바꾸면 돼요. 학교 규칙상 바꾸는 게 불가능하면 스웨터를 입고요. 이렇게 조정을 하는 거예요.nbspnbspnbsp서로 견해나 취향이 다른 것은 서로 조율을 해야 해요. 그럴 때 내 것만 고집하면 안 됩니다. 제일 쉬운 건 상대에게 맞춰주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맞춰주기 어려울 때는 내 의견도 내서 조율을 해야지, 고집하면 안 됩니다. 고집하지 말라는 말은 의견도 내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언제든지 의견은 낼 수 있지만,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럴 때 고집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렇게 조정해나가면 돼요. 지금 기숙사 방 하나 당 몇 명씩 살아요?”nbsp“세 명이요.”nbsp“그렇게 함께 살아보는 경험이 굉장히 좋아요. 옛날에는 형제가 보통 다섯에서 일곱쯤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사탕을 하나씩 나눠줬는데 막내가 징징거리면서 사탕 더 달라고 하면 엄마는 큰 애 보고 ‘너는 다음에 사 줄게, 내놔’ 이렇게 해서 막내에게 줘버립니다. 엄마는 이렇게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엄마가 밖에 나가면 큰 애가 바로 막내에게 가서 사탕을 빼앗아버립니다. nbspnbspnbsp그러면 형제 사이에 질서가 딱 잡혀요. 사회성을 갖추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요구가 다 관철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익히게 됩니다.nbspnbsp그런데 지금은 다 아이가 하나 아니면 둘이다 보니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부모하고만 관계를 맺습니다. 자기가 울거나 고집하면 부모가 뭐든지 해주는 게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학교에 가면 자꾸 부딪힙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렇게 자라서 습관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혼한 뒤에도 이혼율이 자꾸 높아져요. 조그마한 차이도 못 견디거든요.nbspnbsp기숙사 생활은 그런 면에서 결혼 연습과도 비슷합니다. 얼굴 예쁜 것은 하루 보기에는 좋지만 룸메이트로 함께 사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돼요. 부잣집 자식이라는 점도 기숙사 생활에는 크게 도움이 안 돼요. 그것보다는 방 청소하기로 한 약속을 잘 지키는지가 훨씬 중요하죠. 결혼 생활은 룸메이트와의 생활과 같습니다. 약속을 지키고 서로 생활을 존중하면서 맞춰나가는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같이 못 살 만한 사유가 없어도 자잘한 것들이 안 맞아서 결국은 갈라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권투 경기에서 잔 펀치를 많이 맞으면 기절하는 것과 같아요. 갈라서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성격 차이요’라고 대답해요. 몸이 아픈데 병원에 가서 진찰해 봐도 병명이 안 나오면 의사들이 ‘신경성입니다’ 하는 것처럼요.nbspnbspnbsp그래서 그걸 연습하는데 룸메이트가 굉장히 좋아요. 특히 까다로운 사람과 살아보면서 맞춰낸다면 앞으로 회사 생활도 잘 할 수 있고 결혼 생활도 잘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지금 당장 편하게 살려고 하지 말고 좀 멀리 보세요. 서로 맞춰가는 연습을 지금 룸메이트와 한다고 생각하면 쉬워요.”nbsp“예, 감사합니다.”nbsp질문자는 답변이 마음에 들었는지 활짝 웃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옆에 앉은 친구들도 함께 웃음을 띠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이어진 질문에서는 학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일어나 스님의 행복론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명쾌한 답변에 모두가 깊이 공감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이 생각하시는 행복과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nbsp“우리가 말하는 행복은 별 게 아니라 기분이 좋은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내가 원하는 대로 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원하는 대로 안 되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래서 이 기분 좋음의 첫째 조건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될 때’예요. 그런데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가 없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며 널뛰는 것이 반복됩니다.nbspnbspnbsp그래서 이 기분 좋음은 분명 행복의 한 요소이지만, 기분 좋음만이 행복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기분 좋음은 지속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 즉 고와 락이 반복돼요. 이걸 윤회라고 합니다. 사람이 죽어서 소가 되고 개가 되는 게 윤회가 아닙니다. 즐거움과 괴로움, 기분 좋음과 기분 나쁨이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기를 하고, 오늘은 좋았다가 다른 날은 나쁘고, 올해는 좋았다가 내년에는 나쁘고, 이생에는 좋았다가 다음 생엔 나빠지는 식으로 반복해서 돌고 도는 것을 윤회한다고 합니다.nbspnbsp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려면 이렇게 오가는 진폭이 줄어들어야 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기분 좋음과 나쁨 사이의 진폭이 너무 크잖아요. 내가 원하는 대로 됐다고 해서 너무 좋아하면 그게 원인이 되어서 앞으로 괴로울 일이 생깁니다. 애인 생겼다고 좋아하지만 그러다가 헤어지면 엄청난 충격이 됩니다. nbspnbspnbsp결혼했다고 좋아하지만 결혼해 살다 보면 모든 고민이 결혼 때문에 생기고, 자식을 낳았다고 좋아하지만 나이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죄다 자식 때문에 머리아파 죽겠다고 해요. 괴로움 속에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 속에 괴로움이 있기 때문에 즐겁다고 해서 너무 막 좋아하면 안 돼요. 그 속에 괴로움을 품고 있기 때문에 곧 괴로움으로 바뀌거든요.nbspnbsp원하는 대로 됐다고 너무 좋아하지도 말고, 원하는 대로 안 됐다고 너무 기분 나빠할 필요도 없어요. 원하는 대로 안 된 게 오히려 복일 수도 있어요. 예컨대 비행기표가 취소돼서 공항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 돌아왔는데 그 비행기가 사고로 추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못 탄 게 잘 된 일이잖아요. 세상을 살다 보면 그런 경우가 허다합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뭐가 뜻대로 안 됐다고 너무 동동거릴 필요가 없어요. 그게 나를 살리는 경우도 굉장히 많아요.nbsp그렇기 때문에 너무 좋거나 나쁜 것 사이의 널뛰기를 좀 줄이는 게 행복으로 가는 길이에요. 행복을 정의한다면 즐거움이 지속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행복은 지속될 수가 없어요. 기분 좋음을 행복으로 삼으면 반드시 동전의 양면처럼 기분 나쁨이 같이 붙어 다니기 때문에 윤회고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nbsp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은 좋다고 너무 흥분하지도 말고 나쁘다고 침체하지도 말고, 좋을 때 벌써 그 안에 나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아서 진정을 하고, 나쁠 때 이게 도로 좋은 원인이 된다는 걸 알아서 가라앉지 마세요. 감정을 조절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진폭을 조금 줄이면 세상살이가 뜻대로 되든 되지 않든 어느 정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게 행복이라고 봅니다.”nbsp좋고 나쁨의 진폭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씀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그동안 기분 좋음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그 기분 좋음은 언제든지 괴로움으로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nbspnbsp이렇게 14명의 질문에 대해 모두 답변을 마치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언제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업 시간 때문인지 마지막에 일부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들어오기를 반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양한 질문들과 풍성한 답변 속에서 학생들은 모두 가벼운 마음이 되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우리들은 지나놓고 나서 그 때가 좋았다고 하면서 늘 후회한다고 하면서 지금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학생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20대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많다며 지금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볼 것을 당부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nbspnbspnbsp“재미있었어요?”nbsp“예.”nbsp“청춘이 힘들죠? 공부도 해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취직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해요. 늙으면 공부도, 연애도, 취직도, 결혼도 안 해도 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70대 노인하고 이것저것 다 해야 하는 20대 청년 중에 선택하라면 여러분은 뭘 할래요?” nbsp“20대요.”nbspnbsp“그것 보세요. 힘들지만 그래도 이게 좋다는 거잖아요. 여러분이 생각할 때는 공부하기도 힘들고 연애하기도 힘들고 취직도 힘들지만 제가 볼 때는 그게 다 ‘좋다’는 소리예요. 밥만 먹고 공부만 해도 아무도 잔소리하지 않는 시기는 여러분 때밖에 없어요.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도 밥만 먹고 공부만 하겠다면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그러면 밥만 먹고 공부만 할 수 있었던 시기를 또 그리워합니다. ‘그때 공부 좀 더 할 걸’ 하고요.nbspnbsp초등학교 다닐 때는 중학교 다니는 언니가 부럽고, 중고등학교 때는 대학생들이 부러워요. 대학 가면 취직한 선배가 부럽고, 취직하면 결혼한 선배가 부럽습니다. 결혼해서 아기 키울 때는 아이 다 키워놓고 여유로운 사람들이 또 부러워요. 그러다 40대, 50대가 되면 아이들을 보면서 ‘그래도 너희 때가 좋다’ 이러면서 부러워합니다. 경주에 가 보면 중년 어른들이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모여서 학창 시절을 그리워하며 노는 걸 볼 수 있어요.nbspnbsp이게 인생을 거꾸로 사는 거예요. 당시에는 죽겠다 하고, 지난 뒤에는 그때가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도는 학교 다닐 때는 학생인 때가 좋은 줄 알고, 직장 다닐 때는 직장 있는 게 좋은 줄 알고, 신혼은 신혼이 좋다는 걸 알고, 미혼이면 미혼일 때가 좋은 줄 알고, 스님이 되면 스님이 좋다는 걸 알고, 늙으면 늙은 게 좋다는 걸 아는 거예요.nbspnbsp제가 낸 책 중에서 ‘인생 수업’ 이라는 책의 원래 제목이 lt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gt입니다. 잘 늙으면 청춘 못지않으니 한탄할 필요가 없습니다. 늙으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공부할 일도, 결혼할 일도, 취직할 일도 없이 한가롭습니다. 그런데 늙은이는 젊은이를 쳐다보며 부러워하고, 청년들은 또 나이든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합니다. 이런 걸 경상도 사투리로 ‘디비쫀다’고 해요. nbspnbspnbsp인생을 거꾸로 산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은 아까 물어보니 20대 하겠다고 했잖아요. 부부싸움 하는 사람한테 ‘그러면 머리 깎고 스님 될래요?’ 하고 물어보면 ‘아니요’ 이래요. 스님 되는 것보다는 그렇게 싸우면서 같이 사는 게 낫다는 소리예요. 그러면서 저한테 하소연하면 제가 저보다 나은 사람을 왜 동정하겠어요?nbsp이런저런 불평불만을 늘어놓지만 조금만 돌아보면 지금이 좋은 시절이에요. 우리는 지금이 좋은 시절이라는 걸 지난 뒤에야 압니다. 그 시절은 괴롭게 보내고, 지난 뒤에는 또 그 시절이 좋았다 그리워 하고, 그러면서 또 지금 시간은 괴롭게 보내고, 또 지난 뒤에 그때가 좋았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여든이 넘은 사회 저명인사를 만났어요. 올해 제 나이를 묻기에 예순 셋이라고 했더니 ‘아이고, 한창 좋을 때네요’ 이래요. nbspnbsp저는 이제 은퇴하려는데 저더러 한창 좋을 때라는 거예요. 80살이 되어서 보면 60살이 한창 좋을 나이고, 60살이 보면 40살이 한창 좋을 나이고, 40살이 보면 20살이 한창 좋을 나이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다 한창 좋을 나이입니다.nbspnbspnbsp그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여기에 재미를 붙여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고민은 20대만이 할 수 있는 기회이고 고민입니다. 그걸 낭비할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들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걸 뒤집어놓고 보면 그것마저도 좋은 겁니다. ‘그것마저도 좋다’ 이렇게 자기를 긍정적으로 보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힘차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스님에게 학생들도 큰 박수갈채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오늘 강연은 행복이란 무엇인지 많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요즘 대학생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들어볼 수 있어서 참 유익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강연을 마치고 오후 5시가 넘어서 목포해양대학교를 빠져나왔습니다. 학생들은 환한 웃음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수업을 들으러 교실로 향했습니다.nbspnbsp저녁 7시부터는 광주 전남대학교에서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목포에서 광주까지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불안했습니다. 원래는 저녁을 간단히 먹고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 곧장 광주로 내달렸습니다. 다행히 30분 전에 전남대학교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nbspnbsp전남대학교 컨벤셜홀에서 열린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진행 중입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nbsp
2015.11.25 (오전) 전남지방경찰청 초청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하루 동안 2시간씩 세 차례에 걸쳐 연이어 강연을 했습니다. 오전 10시 30분에는 전남지방경찰청 초청강연을, 오후 3시에는 목포해양대학교 초청강연을, 저녁 7시에는 청년정토회 주관으로 전남대학교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전남지방경찰청 강연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오늘은 서울에서 목포로 먼 길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새벽 5시 20분에 기도와 예불을 마친 후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을 나왔습니다.nbspnbsp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아침 식사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며 잠시 쉬었다가 10시에 목포시에 위치한 전남지방경찰청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전남지방경찰청nbsp경찰청사 1층 로비에는 전자식으로 방명록을 남기는 기계 장치가 있었는데, 스님은 방명록에 “국민의 안전을 내 몸 지키듯이” 라고 쓴 후 경찰청장님과 차담을 나누기 위해 청장실로 향했습니다.nbspnbsp▲ 경찰청 입구에서 전자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있는 스님nbsp백승호 전남지방경찰청장님은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스님을 맞이하면서 바쁜 가운데도 불구하고 특별히 초청 강연에 응해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의 청장님의 환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사실은 이렇게 동일집단을 대상으로 한 강연 초청에는 응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광주에 온 김에 함께 하게 되었다며 즉문즉설의 취지에 대해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 백승호 전남지방경찰청장님과 환담nbsp동일집단이기 때문에 소문이 날까봐 개인 고민을 마음껏 이야기하지 못하게 되는데, 대신에 경찰청에서도 즉문즉설의 취지를 잘 살리고자 신분이 공개되지 않는 서면 질의를 사전에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님이 질문지를 읽고 그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10시 30분이 되자 경찰청 1층 대강당은 빈자리 없이 빼곡이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사회자의 스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은 후 본격적으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경찰청에서는 매달 한번씩 명사 초청 특강을 해오고 있는데 오늘처럼 빈자리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nbspnbspnbsp330개의 좌석이 꽈 차고 몇 명은 보조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앉았습니다. 경찰청 직원들의 스님에 대한 높은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박수와 함께 무대에 오른 스님은 가볍게 인사말을 건네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여기는 시설이 최신식으로 되어 있네요. 처음으로 전자 방명록을 써봤습니다. 저는 ‘국민의 안전을 내 몸 지키듯이’라고 썼어요. 여러분들이 이미 나라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자 불철주야 수고하시는데 거기다가 더 강조해서 ‘내 몸 지키듯이 해주십시오’라고 부탁 말씀을 드렸어요. nbspnbspnbspnbsp이 강의는 제가 여러분께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어떤 애로나 고뇌, 의문이 있으면 먼저 문제를 제기한 뒤 그걸 가지고 대화를 하는 자리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해결책을 찾든지, ‘문제가 아니구나’ 해서 문제가 없어지든지 해서 지금보다는 조금 좋아지게 됩니다.nbsp다만 청중이 동일집단일 때 제일 어려운 문제는 체면 때문에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다고들 하는 게 배우자나 자식과의 관계와 같은 개인 문제이고 두 번째가 직장에서의 사람 관계입니다. 상사나 동료, 후배들과의 사이에서 여러 가지 애로가 있잖아요. 아마 오늘 여러분들은 고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이야기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집안 이야기도 못 하겠고, 그렇다고 직장 이야기도 못 하겠고요.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주로 지식적인 것을 묻기 때문에 재미가 좀 없어져요. 제가 이런 동일직장에 강의를 잘 안 가려 하는 이유가 그런 데 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무료강의라고 너무 좋아들 하지 마세요. 저는 선불제가 아니라 후불제입니다. 강의를 듣고 자기가 좋았던 만큼 나중에 다 갚으시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듣고 도움이 되었다면 대가를 지불하는데, 꼭 저에게 지불할 필요는 없습니다. 연말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보시를 해도 제게 지불한 것과 동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짜라고 하지만 사실은 공짜가 아니예요.” nbspnbspnbsp스님의 강연은 후불제라는 이야기에 모두들 웃음을 빵 터뜨렸습니다. 이어서 강연 전 질문지함에 넣어 둔 질문지들이 스님에게 전달이 되었고, 스님은 한 장씩 읽어가며 답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플라스틱함에 비공개로 사전 질문지를 받았습니다.nbspnbsp총 12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부모님이 시골에 계시는데 서로 사이가 안 좋다며 자식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물었고, 두번째 질문자는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아이에게 자꾸 화내고 짜증을 내게 되어 어떻게 하면 이런 자기를 고칠 수 있을지 물었고, 세번째 질문자는 결혼하고 20년 동안 시댁을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요즘 시어머니가 손아래 동서를 너무 편애해서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네 번째 질문자는 아내가 초산을 했는데 육아를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고, 다섯번째 질문자는 매사에 화를 자주 내게 되는데 넓은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여섯번째 질문자는 괴롭힘을 계속 당하다 보니 상대가 싫은데 어떡해야 하는지 물었고, 일곱번째 질문자는 계급이 높거나 본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막말을 자꾸 해서 심리가 위축되는데 즐거운 마음을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고, 여덟번째 질문자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건 알겠는데 그 과정이 너무 싫다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방법을 물었고, 아홉번째 질문자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감사함을 느끼면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감사하며 살 수 있는지 물었고, 열번째 질문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배려심은 작아지고 욕심이 커지는데 어떡해야 하는지 물었고, 열한번째 질문자는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물었고, 열두번째 질문자는 스님은 어쩜 그렇게 잘 생겼는지 짧은 편지글을 남겨 주었습니다. nbspnbsp그 중에서 계급이 높은 사람들이 막말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강연이 끝나고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이 너무 좋았다며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nbspnbspnbsp“저는 직장 생활도 즐겁게 하고 직원들과 즐겁게 지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계급이 높거나 본청에 근무하는 직원들 중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잘 지내려는 마음이 위축되는 것은 물론이고 막말에 상처받지 않으려고 저도 차갑게 사무적으로 대하게 됩니다. 다른 직원들의 어떤 말에도 동요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법을 알려주시면 남은 20년 직장생활이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어떤 사람이 나한테 ‘야, 이 자식아’ 하고 큰 소리를 치면 기분이 나빠져서 그 말을 계속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아무리 자기가 지위가 높다 해도 그렇게 막말을 할 수 있어?’ 이렇게요. 이것은 남이 던져주는 쓰레기 봉지를 받은 것과 같아요. 받아보고 쓰레기인 줄 알았으면 버려버리면 될 텐데 계속 쓰레기 봉지를 안고 다니면서 ‘이 자식, 이게 뭐야. 이건 과자 먹고 나온 쓰레기이고, 이건 사과 먹고 나온 쓰레기네. 이걸 네가 어떻게 나한테 줄 수 있어?’ 하는 것과 같아요. 계속 안고 다니면서 욕하고, 조금 있다가 또 꺼내보고 또 꺼내보는 거예요. 이러면 어리석은 사람이에요.nbspnbspnbsp받아보고 쓰레기 봉지면 그냥 던져버리면 됩니다. ‘그 사람이 막말을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이 말은 너무 심하지 않느냐?’ 하며 화를 내는 것은 쓰레기 봉지를 계속 뒤지고 있는 것과 같아요. 자기는 똑똑하다 생각하지만 옆에서 보면 바보예요. 쓰레기면 버려야지, 왜 계속 쥐고 있어요?nbspnbsp이게 싫으면 사표 내고 나가면 됩니다. 나갈 형편이 못 되면 위에 진정서를 내서 상사를 바꾸세요. 바꿀 형편이 못 되면 나서서 싸워가지고 말버릇을 고치세요. 그럴 형편도 못 되면 ‘저 사람은 말버릇이 저렇구나’ 하고 귓등으로 듣고 넘기세요. 그것도 힘들면 우리말이 아닌 영어라고 생각하세요. nbspnbspnbsp‘이 새끼’는 ‘너’를 의미하는 영어라고 생각하고 그냥 들으면 돼요. ‘저 사람 성격이 저렇다. 말버릇이 저렇다. 그냥 저 사람의 까르마, 업식이다’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라는 건 좋게 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게 좋다고 칭찬할 일은 아니잖아요. 그냥 말버릇이 저렇다고 이해하세요. 이해하면 상대가 아니라 내가 편하고 좋아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 이러는 건 이해를 못 해서 내가 답답하니까 나오는 말이에요. ‘아, 오늘 아침에 부부싸움을 해서 성질이 나니까 나한테 그랬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내가 편안해집니다.nbspnbsp‘아니, 내가 경찰 하려고 왔지, 상사 이해하려고 여기 왔나?’ 이렇게 생각하면 사표 내는 수밖에 없어요. 다른 길이 있으면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표도 못 내면서 ‘사표 낼까, 사표 낼까’ 끊임없이 생각하고, 교체도 못하면서 ‘위에 확 찔러서 교체해버릴까’ 내내 벼르고, 대들지도 못하면서 ‘확 대들어버릴까’ 하고 속으로만 곱씹습니다. 이게 바로 쓰레기통을 들고 내내 뒤지는 것과 같아요.nbspnbspnbsp그러니 그러지 말고 받자마자 그냥 버려버리세요. ‘알고 보니 사람은 괜찮은데 말버릇이 저렇구나’ 혹은 ‘아이고, 오늘 기분이 안 좋은가 보다’ 이렇게 넘어가면 돼요. 웃으면 ‘오늘은 기분이 좋은가 보다. 애인 만났나?’ 하면 되지, 그걸 갖고 ‘저 성질 봐라. 아까는 성질내더니 금방 헤헤거리긴 왜 헤헤거리냐. 아까 야단을 치지 말았어야지’ 이러면 안 돼요. 남의 성질을 고치려다 내가 죽습니다. nbspnbspnbsp자기 성질도 자기가 고치기가 어렵고, 내가 낳아서 키운 자식도 성질 고치기가 어렵고, 내 부모도 성질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남의 성질을 고치려고 하면 안 돼요. 그건 그 사람의 가족이 고치든 본인이 고치든 알아서 고치도록 놔두세요.nbsp다만 그게 공무원 수칙이나 노동 규율에 어긋나는 경우에는 대응하십시오. 아랫사람이라 해도 인권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면 안 되잖아요. 그 규칙에 어긋나면 자기 권리를 행사해야 합니다. 바로 고발이나 고소를 해야 해요. 그렇게 대응하는 것을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에게는 노동을 할 때 노동 이외의 다른 것을 억압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권리가 침해당할 때는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건 아닙니다. 당신은 아래에서 일하는 제게 명령할 권리는 있지만 제게 욕할 권리는 없습니다.’ 이렇게 딱 이야기를 하세요.nbspnbspnbsp그럼 잘리지 않겠냐고요? 세상을 바꾸려면 그 정도 피해를 각오해야 합니다. 독립운동 할 때는 나라를 되찾으려고 목숨까지 걸어야 하고, 민주화 운동할 때는 감옥 갈 각오를 해야 바뀌잖아요. 세상을 더 낫게 바꾸려면 그 정도 불이익은 감수해야죠. 나는 불이익 하나도 안 당하고 세상은 좋아지는 경우는 없어요.nbspnbspnbsp그러니 고치려면 불이익을 감수하세요.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으려면 자기가 적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억울하고 분해 하면 자기만 손해라는 이야기입니다.”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모두가 빵빵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망론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던 답변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명령하달식 계급 체제로 유지되는 곳이다보니 다들 조금씩 억누르는 감정이 많았는데, 오늘 스님의 답변을 듣고 많이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nbspnbsp12명의 질문에 대해 모두 답하고 나니 벌써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마칠 시간이 되자 스님은 직업도 오래 하다 보면 습관이 된다며 수사하는 경찰관이라 하더라도 국민들을 너무 범죄자 보듯이 하지 말고 업무가 끝나면 평범한 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재미있었어요?”nbsp“네.”nbsp“손들고 질문하면 더 재미있을 거예요. 다음에 제가 다시 올 기회가 있으면 그때는 이렇게 종이에 써서 질문하지 말고 손들고 이야기해도 되겠죠?”nbspnbsp“네.”nbsp“눈치 볼 것 없어요. 누군가를 나무라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이렇다고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너무 기죽어 살지 말고 좀 더 활기 있게 사시기 바랍니다. 이왕 하는 일이니 기분 좋게 하고요.nbspnbspnbsp아무리 내가 수사를 하는 사람이라 해도 국민들을 자꾸 범죄자 보듯 하지 마시고요. 경찰하고 기자가 제일 문제예요. 사람만 보면 ‘정체가 뭘까, 꿍꿍이가 뭘까’ 하고 살피는 일을 너무 오래 하다 보니 습관이 돼요. 직업상 할 수 없긴 하지만, 업무가 끝나면 그냥 한 사람으로 딱 돌아와야 해요. 직업도 오래 하다 보면 습관이 되거든요. 그렇게 해서 자기를 아름답게 가꾸며 한 사람으로서 행복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nbsp스님의 따뜻한 격려에 모두들 큰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특수한 직업이다 보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가 끝나면 그냥 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 가슴에 오래 남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참석한 분들 중에 추첨을 통해 스님이 직접 사인한 ‘새로운 100년’ 책을 선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첨된 한 분 한 분에게 스님은 정성껏 사인을 해주며 격려의 말도 함께 해주었습니다.nbspnbsp▲ 추첨 이벤트에 당첨된 경찰관에게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하고 있는 스님nbsp그리고 많은 분들이 스님과 기념 사진을 찍고 싶어 해서 여러 차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매일 스님의 하루, 희망편지, 즉문즉설을 스마트폰으로 받아보면서 많은 용기와 힘을 얻고 있다며 감사 인사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nbspnbspnbsp원래 스님은 강연을 준비한 측에서 식사 준비는 하지 않도록 요청했지만, 준비 측에서 구내 식당에서 본청 직원들과 3500원 짜리 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해서 승낙을 했습니다.nbspnbsp식판을 들고 차례대로 줄을 서서 밥과 반찬을 담은 후 경찰청 직원들과 가볍게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경찰들의 고민은 무엇인지 편안하게 경청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구내 식당에서 강연을 들은 경찰관들과 함께 점심 식사nbspnbsp강연을 준비한 경찰청 교육계 직원들에게 “수고하셨습니다” 라며 인사를 건네고 새책 ‘야단법석’을 선물한 후 전남지방경찰청을 나왔습니다.nbspnbsp경찰청을 출발하여 이곳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곧바로 목포 정토법당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목포 정토법당nbsp작고 아담한 법당에 도착하자 목포정토회 회원들 몇 분이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한 후 정성껏 우려낸 대추차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잠깐의 여유 시간 동안 법당 한켠에 앉아서 원고 교정 작업을 했습니다.nbspnbspnbsp오후 3시부터는 목포해양대학교에서 스님의 초청강연이 열렸습니다. 목포해양대학교는 전체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단체 생활을 하는 학생들의 고민과 어려움이 크다고 해서 스님도 흔쾌히 강연을 해주게 되었습니다. 목포해양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 소식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nbsp ※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진행 중입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nbsp
2015.11.24 (저녁) 원주 통일의병 강연
nbsp아침에 발우공양을 마친 후 하루 종일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던 스님은 오후 4시 30분에 서울을 출발해 원주로 향했습니다.nbspnbsp통일의병에서 주최한 오늘 강연은 원주시 치악예술관 공연장에서 저녁 7시부터 열렸습니다.nbspnbsp▲ 원주시 치악예술관nbspnbsp강연에 들어가기에 앞서 대기실에서는 6시 20분부터 원주시의 지역 인사 분들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간담회에는 특히 6.15 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강원본부에서 지도부를 맡고 있는 다섯 분이 함께 참석해 통일 문제에 대해 스님과 허심탄회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 간담회nbsp간담회에서는 통일이 되면 강원도민들이 얻게 되는 이익, 통일의 가능성은 어느정도 되는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어떻게 봐야하는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서 북한 인도적 지원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내년도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어느정도 되는지 등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졌고 스님은 그동안 보고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스님의 생각을 편안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한 분이 “통일의 가능성이나 시기, 조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라고 하자 스님은 이렇게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내외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해나가야 하는지 일목요연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조금 기울기는 했지만 객관적으로 향후 5년까지는 통일의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봅니다. 미국과 중국의 세력 판도가 아직 다 짜이진 않았거든요. 판이 꽉 짜여버리면 우리 힘으로는 꼼짝을 못하겠지만 아직은 판을 짜들어가는 중이니까요. 이미 미국이 일본을 동아시아의 주력군으로 편재해서 좀 더 어려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통일의 가능성이 있습니다.nbspnbspnbsp예를 들어 사드 배치 같은 게 아직 확정이 안 났어요. 지금 대통령이 여러 가지를 잘못했다 해도 사드 배치에 사인을 안 한 것 하나는 잘 했어요. 박 대통령 정도의 고집이 있으니까 그걸 버틴 거지, 딴 사람 같았으면 미국에 갔을 때 그 압력에 못 버텼을 겁니다. 만약 이번에 사인을 해 버렸다면 판이 거의 짜여져 버렸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안 한다’고 완전히 결정한 건 아니지만 ‘하겠다’고 결정을 안 한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지금 사인을 해버리면 앞으로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뒤집기는 굉장히 어렵거든요. 이미 예산이 다 편성되어 버리니까요. 그런 면에서 아직 통일의 여유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nbspnbsp문제는 국내입니다. 국제적인 상황은 아직 괜찮지만, 남한에 통일을 하겠다고 확고히 결심한 정부가 들어서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통일은 어렵습니다. 북한이 통일하겠다고 아무리 결심해 봐야 북한은 실질적인 통일을 할 능력도 안 되고 국제사회를 움직일 능력도 안 돼요. 그런데 남한이 결심을 하면 우선 미국을 움직일 수가 있고, 중국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nbspnbsp첫째, 미국에 대해서는 한미동맹을 견고하게 유지하되 종속적 한미동맹에서 자주적 한미동맹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자주적 한미동맹이라는 건 ‘적어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한반도 이익문제는 한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한다’는 자세가 중심이 돼야 해요. 지금 미국의 대중국 봉쇄정책은 미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고 있어요. 여기에 우리가 끌려가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지금은 반미를 해서 될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이렇게 미국에 대한 외교적 입장이 분명해야 됩니다.nbspnbsp둘째, 중국에 대해서는 ‘적어도 통일에 방해는 하지 않는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게 어렵지요. 우리가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게 되면 중국과는 어차피 틈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중국을 지나치게 고려하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배척당하기 쉬우니까요. 미국과 벌어지면 국내에서는 정권이 견디지를 못합니다. 미국이 우리를 잘라내는 게 겁나는 게 아니라 미국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권으로 교체해서 자기들의 의도를 관철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nbspnbsp셋째, 북한을 포용해 줘야 합니다. 이 세 가지 정책만 세우면 통일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민간과의 경제·문화 교류는 활발하게 하되 ‘어떤 이유로든 한반도에 군사적인 도움은 필요 없다’고 선을 확실히 그어놓는 게 좋습니다.nbspnbspnbsp이런 입장만 확실하면 사실 통일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닙니다. 통일이라고 해도 내일 당장 정치·군사적으로 통일하는 게 아니니까, ‘통일하겠다’는 입장만 정하면 북한이 어떻게 하든 조건을 맞춰가면서 유연하게 진행할 수 있어요.nbsp제일 중요한 건 경제적 통합입니다. 중국처럼 경제적인 통합을 해야 남한도 살고 북한도 삽니다. 지금 ‘북한개발’이라는 전략을 안 세우면 남한 경제는 더 이상 성장이 어려워요. 전에는 통일 안 하고도 남한이 발전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통일 없이 더 이상의 발전은 어렵다고 봐야 해요. 북한은 우리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에요. 통일 안 하고는 최소한의 생존권 유지도 어렵기 때문에, 지금처럼 해서는 오래 못 갑니다.nbspnbsp제일 큰 변수는 ‘남한이 미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 얼마나 버티느냐’ 하는 것이고, 북한의 변수는 ‘북한정부가 중국에 고개를 안 숙이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이 정부는 버틸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북한 상황이 조금 더 어려워지면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금 그럴 가능성을 이 잡듯이 잡아서 통제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북한의 현재 상황은 중국의 말을 안 듣고는 오래 버티기가 어려워요.nbspnbsp그러니 국제사회가 북한을 봉쇄해도 우리는 인도적 지원이란 이름으로 통로를 열어줘야 만약 북한이 넘어지더라도 우리 쪽으로 넘어집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압력만 가해서는 북한 정부가 도저히 못 견딜 상황까지 갔을 때 중국으로 넘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지도부는 중국 쪽으로 기울어야 자기네 체제도 지키고, 권력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통일은 어려워집니다. 그게 지금 가장 큰 문제입니다.nbspnbspnbsp그런데 지금 우리 정부는 줄타기를 하는 중입니다. 박 대통령은 미국의 사드 배치 압력에 일단 버티고 있긴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중국에게는 ‘너희가 북핵 문제만 좀 책임지고 관리해주라. 그러면 사드 배치 안 하겠다’고 압력을 넣고 있고, 미국에게는 ‘북핵을 해결하려면 중국의 협조를 얻어야 되는데, 사드를 배치하면 중국의 협조를 얻기가 어렵다’며 버티고 있는 것 같습니다.”nbsp간담회에 참석한 분들은 스님의 명쾌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강연 시간이 다 되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은 후 곧바로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다소 쌀쌀한 초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총 420명이 객석을 가득 채워주었습니다. 저녁 7시가 되자 통일의병을 소개하는 영상과 스님 소개 영상이 연이어 상영되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나오자 모두들 환호와 함께 박수갈채로 스님을 반겼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오늘 강연을 주관한 단체가 ‘통일의병’이기 때문에 정토회에서 주관하는 강연처럼 인생 상담만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오늘은 통일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대화를 나눠보자고 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총 4명의 질문자가 인생 상담 및 통일과 관련하여 질문을 하였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젊은 여성이었는데, 주변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살다보니 오히려 사람들이 자신을 만만하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아서 고민이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원주에서 직장을 다니는 30대 미혼의 남성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한 가지 일을 꾸준하게 하지 못하고 주기적으로 다른 분야의 일로 진로를 바꾸면서 살다보니 사는 것이 고단하고 앞으로 힘든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두렵다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 질문자는 50대 남성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비극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과연 불교의 인연과보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지, 그들의 죽음이 개인의 잘못에서 발생되었다기에는 억울한 점이 있지 않은지를 질문하며 불교의 교리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질문자는 통일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통일을 위해서 개인이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은 잘 모르겠다며 이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마지막 통일을 위한 개인의 실천을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답변 내용이 길었기에 모두 다 소개하지는 못하고 일부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예전에는 통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별로 안 했지만 최근 들어서 관심이 좀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뭘까 궁금해 졌습니다. 생각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 행동을 하면 통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질문 드립니다.”nbspnbsp“일본 제국주의와 싸우는 독립운동을 한다면 내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뭘 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길이 있겠지요. 우선 내가 독립군이 되는 길이 있어요. 그런데 독립군이 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다 독립을 원한다 해도 다 목숨을 걸 수는 없어요. 100명 중 1명도 목숨을 걸지 못 할 겁니다. 우리가 2천 만 동포인데 개중 1인 20만 명만 목숨을 걸었다면 독립되고도 남았을 거예요. 그런데 20만 명이 목숨을 못 걸었기 때문에 200만 명이 넘게 희생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위안부로 20만 명, 학도병으로 20만 명, 징용으로 100만 명이 끌려갔고 그 외에도 희생된 사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그렇게 수학적으로 계산이 안 되는 게 인간이잖아요. 실질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은 인구의 1가 안됐습니다. 물론 일제 식민지 36년 동안 전체적으로 보면 1가 넘지만, 계속 유지됐느냐가 문제였습니다. 초기의 1920년까지는 저항이 심했지만 민족주의자들의 저항이 실패로 끝나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어요. 그 다음에 사회주의 계열이 독립운동에 많이 참여했는데, 이 계열은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독자적 군대를 조성해 싸운 부대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 동북항일연군이나 러시아, 혹은 장개석 군대의 일부로 참여했기 때문에 광복이 되었어도 연합군으로부터 인정을 못 받은 겁니다. 그래서 신탁통치인 미·소 군정으로 들어가게 되어서 결국 분단이 됐어요.nbsp독립운동은 그만큼 어려웠어요. 그러나 독립된 후에는 당시에 그렇게 어렵게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을 우리가 추앙합니다. 일제침략 당시에 독립운동을 하는 건 쉬운 일도 아니었고, 사람들이 모두 독립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어요. 농사짓는 사람은 독립보다 한해 농사가 더 중요하고,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가 더 중요하고, 기업하는 사람은 기업이 더 중요하고, 학생은 공부가 더 중요하다고 했어요. ‘직업을 어떻게 갖든 우리의 시대적 과제는 나라의 독립이다’라는 인식을 대부분이 하지 못했습니다.nbspnbspnbsp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각자 경제도 발전시켜야 하고 복지도 해야 하고 교육도 해야 하는 등 온갖 할 일이 있겠지만, 50년 뒤 혹은 100년 뒤에 돌아보면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의 시대적 과제가 뭘까요? 제가 볼 때는 통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을 사는 우리 입장에서는 그게 잘 눈에 안 띄어요. 그래서 시대인식, 역사인식이 필요합니다. 시대적 과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이 문제를 볼 수 있거든요.nbspnbsp통일이 시대적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걸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우리 한국 정부의 문제나 한국 교육의 문제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짧게는 50년, 길게는 70년 동안 분단된 상태에서도 남한이 계속 발전해 왔기 때문입니다. 분단된 상태로도 우리가 발전해 왔다는 사실이 문제예요. 지금 1인당 GDP가 1960년의 100불에서 30,000불 정도로 300배 성장을 했고, 정치 민주화도 발전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중에 산업화와 민주화가 모두 성공한 유일한 나라라고 할 정도입니다. 이건 사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196070년대에 비해서 국방력도 엄청나게 증강됐어요. 한 나라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는 정치, 경제, 안보가 통일을 안 하고도 모두 발전을 이룬 것입니다.nbspnbsp이렇게 지난 50년 간 꾸준히 발전해 왔기 때문에 우리는 이 분단된 상태로도 계속 발전할 수 있으리라는 사고의 관성을 갖게 됐어요. 지금은 조금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노력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분단된 상태로 더 이상 성장은 안 된다, 정치, 경제, 안보, 모든 측면에서 더 이상 발전은 안 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요. 많은 사람들이 통일의 중요성을 주장했지만, 지난 50년간 발전해 왔기 때문에 오히려 분단된 상태로도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쪽의 주장이 결과적으로는 승리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사회 전체가 우경화된 겁니다.nbspnbsp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계가 보입니다. 우리 경제는 박정희 정권 18년간 연 평균 11, 전두환 정권 7년 동안 연 평균 10, 노태우 정권 때 연 평균 9, 김영삼 정권 때 연 평균 7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 때는 5, 노무현 정부 때는 4 성장했어요.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성장 7를 들고 나온 이유가 여기 에 있습니다. 민주정부가 들어서기 전을 보면 최소한으로 잡아도 김영삼 정부 때 7 성장했으니까 자기가 하면 다시 최소한 7는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 거예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성장율이 떨어져서 사람들이 답답해 했거든요. 이명박 대통령이 청렴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돈이 우선이라서 ‘할 수 있다고 하니까 맡겨보자’ 했던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747을 주장했습니다. 경제가 7 성장하면 앞으로 4만불 시대가 도래하고 세계경제 7위에 오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끝날 때까지 5년 동안 성장률은 2.8였습니다. 그리고 세계경제 11위에서 14, 15위로 밀려났어요.nbsp그렇다고 이명박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거나 능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성장 동력이 소진된 거에요. 앞으로 누가 대통령을 해도 3 성장하기가 어려워요.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3.8 성장하겠다고 목표를 세웠다가 3.1로 수정하고, 다시 3 이하로 수정하고 있잖아요. 임기 마칠 때까지 평균 2.5 성장하면 잘했다고 평가받을 겁니다. 절대로 못 올라갑니다. 그리고 다음 대통령 때는 성장율이 2로 내려갈 거예요.nbspnbsp지금 국제기구에서 2020년 내지 2025년까지 경제성장률을 최대 2.5로 잡고 있습니다. 한국의 성장동력이 소진되어서 더 이상 성장은 없다고 보는 거예요. 우리가 그걸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계속 성장해 오던 습관이 있다 보니, 성장을 안 하니까 지금 힘들어 해요. 이건 우리만 그런 게 아닙니다. 일본도 옛날에 이랬습니다. 일본이 한참 성장할 때는 미국을 능가하리라고들 했는데 턱걸이에 걸려서 20년 동안 저성장을 해왔고, 우리는 20년 전 일본의 전철을 밟는 초입에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가 김영삼 정부 시절 성장률이 6.8였는데, 두 자리 성장률을 보이던 중국이 우리가 그랬던 때로 지금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건 모방해서 따라 배우기한 결과예요. 간격이 많이 벌어질 땐 고속으로 따라가지만 근접할수록 자꾸자꾸 성장률이 떨어지는 게 자연의 이치예요.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nbspnbspnbsp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저성장에 있는 와중에 재벌, 즉 대기업들은 자기네만 고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전체 파이는 저성장인데 그 안의 일부 세력은 고성장을 하니까 우리가 2.22.4의 성장을 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마이너스입니다. 돈이 그 일부 세력 쪽으로 몰려버리니까 나머지는 빈부격차가 급격하게 벌어지잖아요. 빈부격차는 언제나 있게 마련이지만, 지금은 나라 안에서 빈부격차가 급격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체 파이가 커지는 가운데 빈부격차가 생기는 것은 내 수입도 늘면서 격차가 생기는 것이니까 괜찮은데, 내 수입은 줄면서 빈부격차가 생기니까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2030년 전보다 훨씬 먹고 사는 게 나은 지금 느끼는 불안이 오히려 그 때보다 훨씬 큽니다. 이렇게 정체된 성장을 다시 한 번 높이는 유일한 길은 통일 밖에 없습니다.nbspnbsp그러나 만약 통일을 하게 되면 남북한의 전체적인 시너지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요. 전에는 하나의 민족이니까 통일하자고 하고, 이산가족 만나서 한을 풀자는 식으로 통일의 필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건 물론이고, 경제적으로 봐도 큰 이익이에요. 요즘 젊은이들은 손해나는 건 안 하려고 하잖아요. 하지만 통일은 돈으로 따져도 손해가 아니라 엄청난 이익이 됩니다. 그런데 이 통일은 미래의 일이니까 이익이라 해도 가능성이지 확실한 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망설이는 거예요. 적대관계로 지내온 상대에 대한 한도 아직 가슴에 남아 있고요. 그러니 우리가 나서서 이 문제를 풀어야 됩니다.nbspnbsp우선 북한 돕기도 해야 하고, 북한에 나무도 심어야 하고, 지금 할 일이 많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지금 식량이 없어서 굶어죽는데 돈을 공짜로 주지 말고 1인당 하루에 2천원만 주면 하루 종일 나무를 심을 수 있어요. 그런데 통일된 뒤에 그만큼 나무를 심으려면 하루 일당을 10만원씩 줘야 해요. 그러면 나무 심는 시기를 당기는 것은 물론이고 특히 그 비용이 지금 심는 것에 비해 천문학적으로 차이가 나요. 그러니 지금 지원하는 것은 북한 주민의 건강을 회복하는 역할도 하지만 엄청나게 효과적인 선투자가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할 게 엄청나게 많아요.nbspnbspnbsp문제는 우리의 감정입니다. ‘저 자식들 좋아하는 꼬라지 보기 싫다’는 겁니다. 태국이나 하와이 가서 돈 쓰는 건 괜찮고, 북한 가서 돈 쓰는 건 ‘저 자식들 그 돈 갖고 군대는 무기 만들고, 지도자는 호화판 요트 사는 거 아냐? 기분 나빠서 주기 싫다’ 이래요. 꼭 돈을 따로 지원하지 않아도 어차피 놀러갈 거 금강산 놀러가서 쓰면 그 돈이 다 투자로 사용되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감정이 문제가 돼요. 그리고 못 믿겠다고 하는 불신이 문제가 됩니다.nbsp이런 문제는 민간에서 아무리 오랫동안 열심히 노력해 봐도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가 ‘통일하는 것이 우리 대한민국이 살 길이다’ 해서 통일을 하겠다는 쪽으로 확실히 방침을 정하는 겁니다. 그러면 실제 통일은 5년 후에 되든, 10년 후에 되든, 20년 후에 되든 아무 상관이 없어요. 우선 인도적 지원과 산림 회복 등을 비롯해 서로 상부상조하는 투자로 들어가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nbsp통일은 첫째로 정치적인 문제이고, 둘째로 외교적인 문제입니다. 미국을 어떻게 하고 중국을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예요. 이 모든 것은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만 딱 중심을 잡으면 돼요.nbspnbspnbsp그럼 우리 국민이 할 일은 없을까요? 지금 정부가 제대로 안 해서 통일의병이 일어난 것이잖아요. 그러니 첫째는 현 정부가 통일을 추진하도록 견인하고, 그래도 안 되면 다음 정부라도 통일을 추진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진보니 보수니 따지지 말고, 옛날 이야기도 그만합시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지금과 미래의 관점에서 강력하게 통일을 추진할 정부를 우리 손으로 구성하자. 이것만이 우리가 재도약할 길이다’ 이렇게 목표를 세우자는 거예요.nbspnbsp독립운동할 때는 총 들고 싸우다가 죽었고, 민주화 투쟁할 때는 잡혀서 감옥 갔지만, 통일을 지향하는 정부를 구성하는 운동은 헌법에 보장이 돼 있어요. 손가락을 어느 쪽에 찍을지만 문제일 뿐 이걸로 불이익을 당할 이유도 없고 감옥 갈 이유도 없습니다. 이 정도도 하기 싫어서 안 하겠다면 통일을 못 해요. 우리 선조들이 일제 강점기 때 목숨 걸고 싸워서 나라를 독립시켰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구어준 덕분에 지금 우리가 웬만큼 밥 먹고 살면서 투표만 해도 되는 거예요. 그런데 투표조차 안 하겠다면 할 수 없죠. 눈앞에 먹음직스러운 감이 떨어져도 안 집어먹겠다는데 어떻게 하겠어요?nbspnbspnbsp찍어도 나만 가서 찍는 것에 그치지 마세요. 우리는 한표 밖에 없는 소액주주예요. 재벌이나 권력자들은 언론매체를 쥐고 흔들면 한꺼번에 수십만 표를 움직일 수 있지만 우리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동조하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nbspnbsp그러니 질문자가 정말 통일을 원한다면 우선 북한 돕기나 북한에 나무심기 이런 운동이 있으면 돈을 좀 내세요. 두 번째, 지금부터 통일지향적 정부를 수립하는 데 찬성하는 사람을 100명이라도 모으는 게 필요합니다. 이념적으로 설명하면 반대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평소에 술 사주고 밥 사주면서 잘 해주세요.nbspnbsp애인이 있다면 우선 애인의 표부터 얻으려면 애인한테 잘 보여야 해요. 그래야 나중에 ‘네가 나한테 그렇게 잘해줬으니 나는 뭐해 줄까?’ 그러면 ‘다른 건 필요 없고 투표만 잘 찍어줘’라고 할 수 있어야 해요. nbspnbsp투표할 때 어느 당 밑에 줄서라고 하면 정치운동이 돼버려요. 우리는 끝까지 지켜보면서 ‘누가 가장 통일을 확실하게 추진하겠느냐’를 잣대삼아 평가를 하면 됩니다. 통일정책을 가지고 오면 보고 ‘이건 부족하니까 좀 고쳐라’ 지적해서 조금씩 고쳐가다 보면 경쟁하는 양쪽이 점점 비슷해질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세력만 있으면 어느 쪽을 찍을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둘이 비슷하면 둘 중 누가 되든 상관이 없잖아요. 국민이 주인인데 무엇 때문에 정치인 밑에 붙어서 하수인 노릇을 하겠어요?nbspnbsp이런 자세로 질문자가 마음을 딱 굳히면 지금부터 사는 게 달라집니다.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도움도 주면서 공덕을 많이 쌓으세요. 답례로 뭐 해줄까 물으면 2년 뒤에 도와달라고 하고요.nbspnbsp생각해 보면 강원도는 남북이 평화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통일되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곳이에요. 그런데 왜 강원도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서 무관심합니까? 적극적으로 나서야 해요.nbspnbspnbsp그리고 앞으로 지방분권이 확대되서 8도 연방제까지 가야 합니다. 전라도, 충청도, 경상남도, 경상북도, 경기도도 크다 싶으면 2개로 자르든지 해야 하는데, 강원도는 오히려 남북 통합을 해야 돼요. 나라만 통일해야 하는 게 아니라 강원도도 통일해야 합니다. 인구가 남쪽은 120만인데 북쪽은 180만입니다. 모두 합친 300만도 전라도나 충청도에 비하면 적긴 하지만, 엄청난 관광자원이 큰 힘이 될 거에요. 앞으로 강원도가 금강산까지 연계가 잘 되어서 원산 명사십리부터 죽 이어지면 중국관광객이 엄청나게 올 겁니다. 중국 사람만 와도 먹고 살아요. 그러니 우리 지역의 이익을 위해서도,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도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nbspnbsp또 남북한이 통일되면 우리나라의 이익으로 끝나지 않아요. 일본과 중국이 다 협력하면서 동북아 3국은 물론 나아가 세계인류 전체에 이익이 됩니다. 남북이 합의통일을 하면 통일된 한국은 중국과 일본과 협력해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 수 있어요. 그러면 세계 최대 경제 규모가 됩니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성장이 중국에 영향을 줬듯이 한국의 통일과 민주주의 발전은 중국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러니 우리의 꿈은 통일에 끝나는 게 아닙니다. 통일을 딛고 동아시아 공동체로, 동아시아 공동체의 발전에서 다시 세계문명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목표를 한 세기 정도 기간을 잡아 세워볼 수 있어요. 그게 ‘새로운 백년’입니다.nbspnbsp그런데 통일을 못하면 미중의 패권 다툼 속에 남북이 미·중의 하위 변수로 전락해서 또 분쟁의 백년을 겪어야 하니까 지난 백년과 별 차이가 없어집니다. 어떤 백년을 우리가 선택해야 되겠습니까?nbspnbspnbsp핵심은 통일이고, 그 통일을 향한 열쇠는 통일을 강력하게 추진할 대한민국 정부를 만들어내는 게 출발점이 됩니다. 이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nbsp“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스님의 통일 비전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뛰는 것 같습니다. 막힘없이 쏟아지는 스님의 통일 이야기 속에서 간절한 염원을 가득 느낄 수 있었습니다. 2시간 30분 동안 강연장은 열기가 가득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을 비롯한 모든 참가자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청중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 속에 통일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찼습니다.nbspnbsp▲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 합창nbsp강연 후에는 스님의 사인회가 있었습니다. 스님의 사인을 받기를 기다리며 줄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와 웃음이 가득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한쪽에서는 원주 통일시민학교 참가신청서와 통일의병 후원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봉사자들이 열심히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봉사자들은 많은 분들이 오늘 강연을 듣고 통일시민학교 신청서를 썼다며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 원주시에서 열리는 통일시민학교를 알리고 있는 통일의병들nbsp끝으로 봉사자들은 스님과 함께 오늘 강연 날짜인 11월 24일이라는 글자가 적힌 종이를 들고서 스님과 단체 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다 같이 주먹을 불끈쥐고 “통일 의병 의병 의병” 외치며 통일에 대한 결의를 다시 한번 다졌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수고한 봉사자들에게 악수를 건네며 “수고하셨어요”라는 말을 여러차례 하면서 감사 인사를 하고, 강연장을 나왔습니다.nbspnbsp곧바로 원주를 출발한 스님은 밤 11시가 넘어서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 10시 30분에 전남지방경찰청에서 초청 강연을 한 후, 오후 3시에는 목포해양대학에서 초청 강연을 하고, 저녁 7시에는 전남대학교에서 청년대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하루 종일 연이어 세 차례나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nbspnbsp※nbsp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nbspnbspnbsp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nbsp
2015.11.24 (오전) “처음 일을 맡을 때, 그리고 천일 통일 기도를 하는 자세”
nbsp안녕하세요. 오늘도 스님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108배 정진, 10분 명상, 경전독송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 새벽 예불nbsp정진을 마치고 나서는 6시 30분부터 정토회 서울 공동체의 발우공양에 참석해 공양을 드셨습니다.nbspnbsp▲ 발우공양nbsp공양을 마치고 대중공사 시간이 되자 대중들의 참회 내용과 오늘 필리핀 민다나오로 3개월 간 해외 봉사활동을 떠나게 되는 두 부부의 인사말을 듣고 몇가지 당부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필리핀으로 봉사활동을 가는 두 부부 봉사자에게는 날씨 적응, 일할 때의 자세 등에 대해 지침이 될 수 있는 말씀들을 자세히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거사님과 보살님,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필리핀 민다나오JTS 센터는 해발 고도가 1,000미터쯤 되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밤과 새벽에 구름이 낄 때가 많고 좀 습합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은 괜찮지만 노인들이 살기에는 조금 부족함이 있어요. 날씨가 기본적으로 더운 나라지만 해발 고도가 높다 보니 선선하고 밤에는 추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좀 쌀쌀하니 잠바를 반드시 가져가세요. 손바닥만 한 전기방석이 있으면 하나씩 가져가세요. 잘 때 엉덩이 밑에 넣으면 좀 나아요. 나이 드신 분은 한기가 들면 뼛골이 쑤시니까요. nbspnbspnbsp공기도 맑고 기온도 선선하고 낮에는 따뜻하니 다른 건 다 좋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선선한 곳을 찾는다고 너무 높은 곳을 잡다 보니, 안개가 계속 산에 걸려서 전체적으로 습하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따뜻한 나라인데도 약간 으슬으슬해서 불편한 점이 있으니 주의하시고요.nbsp사람은 어떤 일이든 오래 해보고 익숙해져야 잘 할 수 있게 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하고 익숙하기 때문에 개선점이 안 보인다는 특성도 있어요. 타성에 젖어서 뭐가 문제인지 잘 못봅니다.nbspnbsp또 처음 가면 문제가 무엇인지 금방 보입니다. 하지만 처음 가면 자기 식대로 볼 수 있다는 위험이 있어요. 현지의 기후와 자연 환경, 사회 환경 등을 다 고려해서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정해져 있는데, 처음 가서 딱 보고 내 식대로 ‘이게 문제고 저게 문제다’ 하고 분별이 일어나요. 그건 살아보면 사실이 아닐 때가 아주 많습니다. 우리가 인도에 처음 가면 온갖 게 다 문제로 느껴지지만 경험해보면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에 그들의 오랜 삶의 지혜가 깃든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처음 가는 분들은 처음부터 자기 생각대로 주장하면 안 됩니다. 그게 객관성이 있는지 시간을 좀 두고 살펴서 검증을 해봐야 해요.nbspnbspnbsp정토회에도 처음 들어온 사람에게는 개선할 점이 잘 보입니다. 여기에 오래 살아서 익숙해진 사람은 여기에 젖어 있어서 좋은 점은 물론 문제점도 다 습관이 되어 있기 쉬워요. 즉 관습이 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뭔지를 잘 모릅니다. 계급 차별과 여성 차별이 오래된 사회에서는 태어나서부터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이런 게 차별이라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그럴 때는 오히려 처음 간 사람이 더 예리하게 잘 볼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그게 분별심인지 사실대로 본 건지 구분하기가 어려워요. 평균적으로는 아무래도 오래된 사람이 잘 보고 처음 본 사람이 자기 식대로 분별을 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예컨대 1년간 파견된다면 첫 3개월은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문제다 싶은 점은 메모해놓지, 그걸 가지고 문제제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로마에 오면 일단 로마법을 익히는 게 우선이어야 합니다. 내 생각을 앞세워 이러쿵저러쿵 하거나 어느 쪽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일단 현장의 규칙이나 관습을 따라해 봅니다. 그곳의 관습과 습관을 다 익힌 뒤에 ‘그래도 이게 더 효율적이다’ 싶으면 문제제기를 해야 해요. 그래야 새로운 사람에 의해서 모순이 극복되고 개선점이 생겨납니다.nbsp3개월밖에 안 계시니까 가능하면 문제제기를 하지 마시고 ‘여기 필리핀은 이렇게 사는구나. 이 사람들은 농사를 이런 식으로 짓는구나. 여기는 이렇게 생활하는구나’ 이렇게 그냥 배운다는 정도로 생각하세요.nbspnbspnbsp그리고 농사일을 하러 가는 것이니까 농사와 관련해서는 실험적으로 해보는 겁니다. ‘이 부분은 내 식으로, 혹은 한국식으로 실험을 좀 해보겠습니다’ 하는 것은 그렇게 해보되, 나머지는 거기 대부분 그 사람들이 사는 대로 따라서 먼저 해봅니다. 바깥에서 얼핏 보면 모순되어 보여도 그 사람들이 몇백 년 간 그렇게 살아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nbspnbsp낫이나 호미 같은 연장도 그래요. 외국 가서 보면 연장이나 사용 방식이 영 달라서 발달이 안 된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자기들은 거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걸 더 잘 씁니다. 우리는 고기를 칼로 써는데 인도에 가보면 칼은 세워두고 고기를 들고 썰어요. nbspnbspnbsp빨래도 우리는 빨래방망이로 빨래를 때리는데 인도 사람들은 빨래를 들고 돌에다 때립니다. 처음에 보면 좀 이상하죠. 그런데 그게 실제로는 발달이 덜 된 경우도 있지만 그 환경에서는 연장이 그렇게 생긴 것이, 또 그런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산에 가면 우리는 낫이나 톱을 갖고 가는데 필리핀 원주민들은 큰 칼을 하나씩 차고 다녀요. 그런데 그 열대우림의 풀숲을 헤쳐 나가기에는 낫보다 칼이 훨씬 더 편리합니다.nbspnbsp그러니 나한테 익숙한 게 모든 사람에게 익숙하지는 않다는 점을 생각해서 현지에서 하는 방식을 먼저 익혀보세요. 그런 뒤에 이것도 좋지만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예컨대 ‘한국식 연장이 더 낫겠다’ 해서 오히려 보급할 수도 있습니다. ‘이거 한번 써보세요. 처음에는 좀 서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게 더 효과적입니다.’ 이렇게 외래문물이 들여옴으로 해서 그 사회가 더 발전할 수도 있거든요. 그러나 외래문물이 그 사회의 좋은 점을 파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단 파견 초기에는 현지 사람들의 규칙, 문화, 습관을 먼저 수용하는 게 우선입니다. 계속 그대로 따르라는 건 아니에요. 한 3개월 해본 뒤에는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낫지 않느냐, 이건 이렇게 개선하는 게 어떻겠느냐’ 하고 문제제기를 해도 됩니다.nbspnbspnbsp따라 배우지 않고 자기 식대로 해도 갈등이 생기고, 무조건 따라만 하다 보면 변화와 발전이 없어집니다. 새로운 사람이 왔으면 더 나은 쪽으로 개선하는 게 있어야 새로 간 의미가 있잖아요. 그러니 이 두 가지 성질을 잘 익혀서 다녀오시기 바랍니다.”nbsp필리핀으로 떠나는 두 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식대로 해서도 안 되고, 무조건 따라만 해서도 안 된다는 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대중들도 낯선 곳에 처음 파견이 되었을 때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지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nbspnbsp이어서 스님은 오늘 새벽에 예불하러 내려오면서 화장실 앞에 발닦이 걸레가 흐트러져 있었음에도 아무도 정돈하지 않는 모습을 지적하며 우리들이 타성에 젖어서 수행자의 본분을 놓치고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상기시켜 주었습니다.nbspnbsp“오늘 3층 화장실 입구에 발닦이 수건이 단정하게 개켜져 있지 않고 흐트러져 있었는데 제가 몇 번씩 오가면서 지켜봤지만 들락날락하는 사람 중 누구 한 사람도 그것을 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스님이 좀 하시지 왜 안 하셨어요’ 하겠죠. nbspnbspnbsp맞는 말이에요. 아침기도 하러 내려오는 길에 봤는데, 기도를 마치고 다시 올라가면서 보니까 흐트러진 그대로였어요. 여기 여성 수행자들은 모두 3층 화장실을 쓰는 사람들이잖아요. 그걸 제가 일찍 봤는데도 계속 그냥 있었어요.nbspnbsp이런 모습이 바로 타성에 젖은 거예요. 깨어있지 못하거나 무관심한 겁니다.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게 깨어있는 것입니다. 수건이 흐트러져 있으면 누구든 딱 펴서 가지런히 해놓고 쓰레기가 보이면 치워놔야 해요. 내부에 사는 사람들끼리는 대충 이해하고 살지만, 바깥에서 온 수행자가 본다면 ‘말은 거창한데 실제 생활은 못 따라간다’고 바로 생각할 거예요.nbspnbsp제가 옛날에 만행을 할 때 수행 평판이 좋은 절들을 여러 곳 가봤습니다. 마당에서 그 사람들 하는 대로도 따라해 보고, 식당 가서 밥도 먹어보고, 처마 밑에서 잠도 자 봤어요. 처마 밑에서 자거나 법당에 가서 있어도 아무 관심들이 없어요. 우리도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목 생활할 때 쓰레기장을 치우면서 보면, 쓰레기 상태를 통해 그 안에서 공부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선방에서 수행한다는 사람들이 빵도 먹다가 절반 남겨서 버려놓고, 수박도 절반씩 버려놓고, 멀쩡한 양말도 그냥 버려놨어요. 그저 폼으로 어떻게 하루 종일 앉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기본적으로 수행자의 자세가 아닙니다.nbspnbsp여기 계시는 분들이 그냥 세상에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될 수 있어요. 요즘 같은 이기주의적인 사회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의 온 삶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쓰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니까 그것만 해도 칭찬받을 만해요. 그러나 수행자인지는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합니다. 늘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수행자로서 공공의 일을 하는 거예요. ‘수행자냐?’라는 관점에서 보면 수행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말로 늘 삶에 깨어 있는지 살펴야 해요.nbspnbsp‘눈치 보고 사느냐? 정말 스스로 자발적으로 사느냐?’ 이런 것도 자기 점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정말 몸이 피곤해서 쉬는지를 살피라고 한 거예요. 새벽 1시까지 들어오고 1시 이후에 들어오는 사람은 아침 예불을 안 해도 된다고 할 때 단순히 ‘나는 오늘 1시 넘어서 들어왔으니 아침에 빠져도 돼’ 이러면 수행자의 자세는 아닙니다. ‘새벽 1시에 들어왔든 새벽 2시에 들어왔든 나는 기도 시간에 기도한다’ 이게 수행자의 자세예요.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는 없잖아요. 때로는 몸이 아플 수도 있고 늦게 들어와서 잠을 못 잘 수도 있기 때문에 ‘새벽 1시 이후에 들어오는 사람은 아침 예불에 빠져도 좋다’ 이렇게 허용해준 겁니다. 허용한 범위 안이라면 참여는 안 해도 돼요. 그러나 그 허용하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어떤 자세로 사는지는 개인 수행의 문제입니다.”nbsp스님의 따끔한 일침에 모두들 정신이 번쩍 차려졌습니다. 일만 열심히 하고 있지 수행은 놓치고 있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몇몇 대중들은 비단 발닦이 걸레 뿐만 아니라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신발이며 다각실에 놓여있는 공용컵이며 곳곳에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많다며 스님의 말씀에 공감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은 대중들이 참회하는 내용을 들으며 한 분이 평화통일 발원 천일 릴레이 기도를 하면서 졸았다고 이야기한 부분을 언급하면서 천일 통일 기도와 천일 개인 기도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임을 거듭 강조했습니다.nbspnbsp“아침 기도 시간에 조는 것은 개인의 문제입니다. 과보가 자기에게 돌아와요. 그런데 천일 통일 기도를 하면서 졸았다면 천일 통일 기도 전체의 문제가 됩니다. 천일 통일 기도를 시작할 때는 ‘천일 동안 1초도 쉬지 않고 깨어있어서 통일을 염원하자’ 이렇게 원을 세웠잖아요. 한 명이 잠깐 졸아버리면 예불 시간에 존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러면 천일 통일 기도의 첫날부터 새로 해야 해요. 오늘까지 한 것을 다 포기하고 새로 입재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예요. 한 사람의 잘못을 모든 사람이 연대책임을 져야 해요. 이렇게 성격이 다른 것을 똑같이 보면 안 돼요.nbspnbspnbsp나무라는 게 아닙니다. 혼자서 졸았든지 안 졸았든지 참회를 안했다면 아무도 몰랐을 텐데 고백한 것은 참 잘하신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천일 정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주의해야 할 점입니다. 천일 통일 기도에 들어갔을 때는 그 기도를 잘못하면 전체의 기도를 망칩니다. 내가 개인기도 하는 것은 잘못하면 나만 그 기도에 흠이 생기는 것이지만, 천일 통일 기도는 달라요. 그걸 모르는 사람은 천일 통일 기도에 들어가면 안 돼요. 그러니 몸이 안 좋거나 졸 소지가 있는 사람은 신청을 하지 마세요. 우리 전체의 염원을 망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참여해야 해요. 개인 기도와 차원이 다른 문제를 똑같이 여긴다면 문제의식이 없거나 경솔한 자세입니다.nbspnbsp연대해서 릴레이로 천일 기도를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곧 한 사람이 되는 입장입니다. 그것은 마치 400미터 경주를 혼자 하는 것과 4명이 릴레이로 하는 것과의 차이와 같습니다. 혼자 하는 경주는 자기가 잘못하면 자기만 늦으면 되는데 릴레이 경주는 한 사람이 잘못하면 전체가 다 늦어 버립니다. 그러니 자기가 힘들면 연락을 해서 교체를 요청하세요. 꼭 명심하세요.nbspnbspnbsp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천일 통일 정진은 원래 처음 시작할 때 세운 원이 ‘천일 동안 통일의 염원을 1초도 쉬지 않고 이어가고, 그 힘으로 우리가 함께가자’는 것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통일 정진하는 그 기간은 꼭 깨어서 정진하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nbsp평화통일을 발원하는 천일 기도에 동참하는 대중들 중에는 스님이 강조하는 이런 취지를 잘 모르고 참여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정말 유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 기도와 공동체를 위한 기도는 그 성격이 많이 다르고, 참여하는 자세도 남달라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발우공양을 마친 후 스님은 하루 종일 집무실에 머물며 새책 원고 집필 작업과 각종 보고서를 검토하며 업무를 보았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는 며칠 전에 이가 하나 썩어 떨어져서 잠시 치과에 들러 부서진 부분을 때웠습니다.nbspnbsp원고 교정을 모두 마친 후 오후 4시 30분에는 서울을 출발해 통일 강연이 열리는 원주로 향했습니다. 차 안에서는 늘 그렇듯 밤새 일하느라 못다한 잠을 보충하며 휴식을 취했습니다.nbspnbsp원주에서는 저녁 7시부터 치악예술관 공연장에서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원주 시민들을 위해 강연이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됩니다...nbsp※nbsp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nbspnbspnbsp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nbsp
2015.11.23 (저녁) 강서구 즉문즉설 강연
nbsp오전에 인천시 평생학습관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강서구민회관에서 서울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오후 5시 30분에 평화재단을 출발한 스님은 6시 30분에 강서구민회관이 위치한 우장산 기슭에 도착했습니다. 출발 전 병원에 들러 치료를 받았지만 건강이 계속 좋지 않으신지 차 안에서는 내내 쓰러져 주무셨습니다.nbspnbsp▲ 강서구민회관nbsp이번 강연은 양천정토회 산하 강서, 양천, 구로, 영등포 4개의 정토법당에서 110여 명의 봉사자가 함께 모여 준비를 하였습니다. 강연장 앞에서 봉사자들은 안내, 접수, 책 판매, JTS 모금 활동 등 각자의 역할을 분주히 하는 가운데 환한 미소로 강연장을 찾는 시민들을 반겼습니다.nbspnbsp▲ 양천정토회 자원봉사자들nbsp스님은 강연 전 내빈실에서 노현송 강서구청장과 상해 총영사를 지냈던 구상찬 전 국회의원님과 최근 일어나고 있는 정국 현안에 대해 잠시 환담을 나눈 후 새책 ‘야단법석’을 사인해서 선물한 후 강연장으로 들어왔습니다.nbspnbsp▲nbsp노현송 강서구청장과 상해 총영사를 지냈던 구상찬 전 국회의원님nbsp강서구민회관에는 1100여 명 이상의 청중들이 몰리는 바람에 2층까지 좌석을 다 채우고도 사람이 넘쳐나 어쩔 수 없이 일부는 돌아가고 많은 분들이 뒤쪽에 서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노현송 강서구청장의 인사말씀에 이어 스님 소개 영상이 끝나고 드디어 법륜 스님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등장했습니다.nbspnbsp▲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nbsp청중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박수를 치며 스님을 맞았습니다. 스님은 “저녁식사는 하셨어요?”라고 인사말을 가볍게 던진 후 “뒤에 서 계시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요. 저도 서 있는데요”라며 청중들을 웃게 한 뒤 서있는 청중을 앞으로 오게 와서 바닥에라도 앉게 하여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만든 후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즉문즉설이란 부처님을 이야기한 다음에 그걸 중생에게 적용하는 게 아니라 그와 정반대로 우리 이야기, 즉 중생의 이야기를 먼저 한 다음에 부처의 세계로 올라가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고뇌하는 게 곧 부처의 세계로 통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번뇌즉보리’라고 말합니다. ‘번뇌’라는 것은 우리들의 고뇌이고, ‘보리’라는 것은 깨달음을 뜻합니다. ‘번뇌에서부터 깨달음의 길이 열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예토즉정토’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니 본인의 의문이나 괴로움에 대해서 망설이지 말고 편안하게 무엇이든 서슴없이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nbsp스님이 시작을 알리자 총 6명의 질문자가 차례로 질문을 하였습니다. nbsp첫 번째 질문자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진짜 이해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직장생활하면서 상사 때문에 욱하고 화날 때가 많은데 참는 것이 능사인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자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신감이 부족한 것 같다면서 어려서부터 닥치지도 않는 일에 대한 불안이 많았는데 어떻게 하면 스스로에 대한 불신을 떨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nbspnbspnbsp네 번째 질문자는 주부인데 2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첫째 질문은 최근에 아버지 같은 오빠를 잃었는데 그것이 요즘 제일 괴롭고 둘째 질문은 두 번째 질문자가 상사와의 관계가 괴롭다고 했는데 그것이 부부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서 자신과 성격이 맞지 않는 남편 때문에 괴롭다고 질문을 하였고, 다섯 번째 질문자는 미혼 여성인데 처음에는 적극적이었던 8세 연하 남친이 점차 자신을 멀리하는 것 같아서 그 마음을 알 수 없어서 괴롭고 답답하다고 질문을 하였고, 여섯 번째 질문자는 40대 주부인데 예민해서 잠이 잘 안 오고 자다가도 자주 깨니 건강도 상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잡념과 잡생각을 떨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지를 질문하였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자기에게 기분을 맞춰줄 것을 강요하는 직장 상사 때문에 화날 때가 많은데 참는 것이 능사인지 질문하였던 남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욱’ 하고 화나는 일이 많습니다. 참을수록 화는 더 쌓이는데, 꼭 참는 것만이 화를 다스리고 직장생활을 잘하는 것인지가 궁금합니다.”nbspnbsp“질문을 들어보니 이미 답을 정해놓고 묻고 있어요. 질문자는 지금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지요?”nbspnbsp“네.”nbsp“그런데 왜 저한테 물어요?”nbsp“직장은 계속 다녀야 되니까요.”nbsp“직장에 안 다니면 되잖아요. 미우면 직장을 그만두면 됩니다. 마음에 안 들면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나오라고 스님이 늘 이야기하잖아요.nbspnbsp그런데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할 상황이 안 되면 그 상황을 수용해야 합니다. ‘사람은 좋은데 술을 먹고 가끔 주정을 해서 못 살겠다’ 이렇게 상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정하는 사람이 정말 싫으면 저한테 묻기 전에 알아서 헤어졌겠지요. 다른 건 다 좋은데 주정하는 것만 싫으니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묻는 거예요.nbspnbsp그러니까 질문자가 결정을 해야 해요. 사람들은 대개 ‘고쳐가지고 살겠다’, ‘이것만 고치면 살겠다’고 미련을 갖는데 그건 불가능하거나 아주 어렵습니다. 사람이 자기 천성을 고치면 그걸 ‘기적’이라고 부를 정도예요. 고치는 걸 전제로 하면 죽을 때까지 거기에 매달려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안 고쳐진다는 걸 미리 알아야 합니다. 고쳐서 살겠다, 혹은 고치면 살겠다는 건 그냥 질문자의 바람이에요. 안 고쳐진다고 딱 전제했을 때 ‘못 살겠다’ 싶으면 빨리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안 고쳐진다’고 전제해도 아직 다른 게 좋은 게 많아서 ‘이건 손실이지만 좋은 게 많다’ 싶으면 수용해야지요. 이것도 저것도 다 내 뜻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세상살이가 안 그래요. 이것이 좋으면 저것은 문제가 있는 법입니다. 내 마음에 드는 이것을 받아들이면 마음에 안 드는 저것까지도 수용을 해야 됩니다.nbspnbspnbsp‘주정은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같이 살겠다’고 결론을 냈다면 이왕 사는 거 괴롭게 사는 게 좋아요? 행복하게 사는 게 좋아요?”nbspnbsp“행복하게 사는 게 좋겠지요.”nbsp“행복하게 살려면 술 마시는 걸 그냥 수용해야 합니다. 수용해 버리면 오히려 상대가 술을 마셔도 안 괴롭거든요. 술을 마시는 게 좋다는 게 아니라, 어차피 같이 살기로 결정을 했으면 술 마시는 걸 수용하라는 겁니다. 이걸 잘못 듣고 ‘스님은 자꾸 술 마시는 걸 놔두라고 하냐’ 이렇게 이해하시면 안 됩니다. 그걸 안 놔두겠다면 매일 싸워야 해요. 어차피 같이 살 거면 싸우면서 사는 것보다 안 싸우고 사는 게 낫잖아요. 질문자는 회사에서 누구 때문에 화가 나요? 회사 때문에 화가 나요? 동료나 상사 때문에 화가 나요?”nbsp“상사 때문입니다.”nbsp“상사를 쫓아낼 방법이 있어요?” nbspnbspnbsp“아니요. 없습니다.”nbsp“그러면 질문자가 회사를 나오면 되겠네요. 나오는 건 질문자가 결정할 수 있잖아요. 그게 ‘안녕히 계십시오’라는 겁니다. 그건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전략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전략이자 최후의 전략입니다. 36가지 전략 중에 온갖 것을 다 해봐도 안 될 때 마지막으로 쓸 수 있는 전략이기 때문에 그 카드를 미리 꺼낼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 질문자는 가장 먼저 ‘수용하는 전략’을 써봐야 해요. 그 상사가 밉다고 회사를 그만 둘래요? 아니면 그래도 다닐래요?”nbsp“다니겠습니다.” nbspnbspnbsp“회사를 다니는 데는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그 상사를 쫓아내는 방법이 있고, 그 상사를 바꾸는 방법이 있고, 그 상사를 수용하는 방법이 있어요. 첫째, 질문자가 그 상사를 쫓아낼 수 있어요? 없어요?”nbsp“없습니다.”nbsp“둘째, 질문자가 그 상사를 바꿀 능력이 돼요? 안돼요?”nbsp“안 됩니다.”nbspnbsp“그러면 수용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스님은 뭐든지 다 수용하라고 가르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제가 현실을 모르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회사를 그만두는 길도 있고 상사를 내보내거나 바꾸거나 수용하는 길도 있어요. 지금 질문자가 회사를 그만두는 길은 선택하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그 다음으로 상사를 내보내거나 바꿔보라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되겠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남은 길이 수용하는 길뿐이에요.nbspnbspnbsp질문자도 생각해보세요. 본인이 상사를 내보내거나 바꾸지 못 한다는 걸 알면서도 상사를 내보내거나 바꾸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어요. 회사를 그만두지도 못 하면서 계속 그만두려는 생각을 하잖아요. 그러니 본인만 피곤한 겁니다. 그 상사가 뭐가 문제예요?”nbsp“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nbsp“말해도 관계없어요. 질문자가 그 상사에 대해서 뭐라고 말해도 그건 ‘그 상사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질문자하고 어떤 점이 안 맞는다’는 뜻이니까요.”nbsp“모든 게 다 안 맞습니다.” nbspnbsp“그 사람과 모든 게 다 안 맞다는 건 질문자 본인이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안 맞는 건 뭐예요?”nbsp“기분을 못 맞추겠습니다. 저에게 자기 기분을 맞춰줬으면 하고 바랍니다.”nbsp“상사가 바라든지 말든지 내가 안 맞추면 되잖아요. 지금 질문자는 기 싸움에서 지고 있네요. 상사의 기분을 질문자가 맞춰줘야 할 이유가 없어요. 상대가 화를 내고, 짜증을 낼 때 질문자는 오히려 빙긋이 웃어야 해요. 그러면 그 사람이 질문자 때문에 나갈 거예요. nbspnbspnbsp그 사람이 뭐라고 하면 질문자가 죽을만치 괴로워하니까 결국은 질문자가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상사가 화를 내면 질문자는 ‘화를 낼 일이 있나 보다. 오늘 집에서 마누라랑 싸웠나?’ 이렇게 생각하고, 그 사람이 웃으면 ‘뭐 좋은 일이 있나? 어젯밤에 애인 만났나?’ 이렇게 생각하세요. 그냥 ‘그 사람의 성질이 그렇구나’ 이렇게만 받아들이라는 겁니다. 그 사람이 질문자한테 화를 내도 ‘좋다’, ‘나쁘다’를 따지지 말고 ‘오, 화가 나셨네. 오늘은 기분이 안 좋으신가 보다’ 이렇게 받아들이세요. 그 사람이 ‘이리 가져와라’ 그러면 가져오고, ‘가져가라’ 하면 다시 가져가고, 갖고 가는데 ‘다시 가져와라’ 그러면 또 다시 가져오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왜 가라 그랬다가 오라 그랬다가 변덕을 부리나’라고 생각하니까 피곤한 겁니다. 그냥 ‘가라’고 하면 ‘네’ 하고 가고, ‘오라’고 하면 ‘네’ 하고 오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그 사람이 자기 성질을 못 견디고 그 사람이 오히려 제게 상담을 하러 올 겁니다. nbspnbspnbsp‘밑에 들어온 직원이 마음에 안 들어서 도저히 못 살겠다’ 하고 상담하면 제가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나오라고 조언해줄게요. nbspnbsp질문자는 지금 기에서 밀려서 그러는 거예요. 그건 윗사람이니 아랫사람이니 하는 것과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그러니 거기에 말려들지 말고, 그냥 ‘아, 성격이 저러시구나. 오늘 기분이 좀 저러시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nbsp오늘 가서 한번 연습해 보세요. 그렇게 이해를 하면 내가 답답하지 않고, 입가에 미소가 빙긋이 번지게 됩니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기분이 나쁘신 걸까?’ 하면서요. ‘이 분은 감정기복이 심한 분이구나’ 하고 알고, 그냥 연구를 한번 해 보세요. 그러면 ‘이 분의 성향은 이렇구나. 이 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기본 까르마가 이렇게 형성되어서 기분파가 되었구나.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면서 널을 뛰는 거구나’ 이렇게 이해를 하게 돼요. 사람이 원래 그렇게 생겨서 그 사람도 자기를 어떻게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냥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아니라 질문자한테 좋아요. 절에 다녀요? 교회 다녀요?”nbsp“교회 다닙니다.”nbspnbsp“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이 십자가 정신입니다. 모든 교회에 예수님이 매달린 십자가를 걸어놓는 것은 그걸 보고 크리스천으로서 삶의 기준을 삼으라는 겁니다. 질문자가 크리스천이라면 십자가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어요. 재판정에서 ‘혹세무민한다’고 하여 사형판결을 내리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비난하고, 자기를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을 향해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하셨어요. 우리 같으면 그런 마음을 못 내요. 평상시에 용서 잘 하더라도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들에게는 ‘주여, 다른 건 몰라도 저 두 놈은 지옥에 확 처넣어 주십시오’라고 할 거예요. 감정으로 하면 그렇게 할 텐데, 예수님은 그 감정을 뛰어넘으셨던 겁니다. 그러니까 성인이시지요.nbspnbspnbsp그런데 그 두 사람은 그냥 사형집행인이었습니다. 아침 먹고 나와서 하는 일이 판결 받은 사람을 십자가에 매다는 거예요. 자기들이 십자가에 매단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창으로 찔러보기도 하지요. 매단 사람이 죽었으면 십자가에서 내린 뒤 거기에 다른 사람을 또 매달고요. 그 두 사람은 아침마다 출근해서 하는 일이 그런 일이었기 때문에 자기들이 뭘 잘못했는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 감정에 휩싸이면 내가 그 사람들을 미워하게 되는데, 예수님은 감정에 휩싸이지 않았기 때문에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매단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미움이 없었던 겁니다. 그들의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서,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셨기 때문에 미워하지 않으셨던 거예요. 이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우리 같으면 증오할 텐데, 예수님은 증오하거나 미워하지 않았습니다.nbspnbsp예수님 이전의 하나님은 징벌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을 안 들었다고 유황불로 지져버리고, 소금 기둥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게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이야기잖습니까. 그런데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징벌의 하나님이 아니라 용서의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잘못한다고 벌을 주는 하나님이 아니라 다 용서해주는 하나님입니다. 용서를 해 주시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어요.nbspnbsp그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크리스천인데, 크리스천들이 저한테 와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러면서 ‘네가 아무리 좋은 일하고 돌아다녀도 하나님 안 믿으면 지옥 간다’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도 용서해 주시는데, 제가 뭘 잘못했다고 용서를 안 해 주시겠어요? nbspnbspnbsp그 사람이 말하는 하나님은 예수님 이전 유대교의 하나님입니다. 즉 구약의 하나님, 징벌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크리스천이 아니에요.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제가 끄떡도 안 하는 이유는 저와 종교가 달라서가 아니라,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이 크리스천 흉내를 내는 게 우습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가 빙긋이 웃을 수밖에요.nbspnbsp질문자가 크리스천이라면 십자가 정신을 살려야 해요. 질문자가 예수님을 털끝만큼이라도 따라가려면 상사가 질문자의 목을 쳐도 ‘주여, 저 사람을 용서하소서’ 이래야 합니다. 상사가 가끔 짜증 좀 냈다고 해서 ‘저 인간 팍 지옥에 처넣어버릴까?’라고 생각한다면 질문자는 교회를 다닐 필요가 없으니 개종을 하세요. nbspnbspnbsp그러니 그 분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를 안 하면 결국 질문자가 손해예요. 본인이 괴로워지는 거예요. 어차피 회사를 그만두지도 못할 처지이고, 그럴 용기도 없고, 상사를 쫓아내거나 고칠 능력도 없잖아요. 질문자의 처지에서는 용서해 주는 길밖에 없어요. 질문자의 처지가 형편없기 때문이 아니라, 질문자가 크리스천이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나는 뭐도 못하고 뭐도 못하니까 할 수 없이 용서해 줘야겠다’가 아니라 ‘나는 크리스천이니까 그를 이해하고 용서해야지’ 이렇게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세요. 그래서 상사가 화낼 때마다 ‘아이고, 화나셨구나. 저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타고난 성질이, 직위가 저러니까 어떡하겠어?’ 이렇게 생각하고 빙긋이 웃으세요.nbspnbsp그게 잘 안 되면 십자가 붙들고 계속 기도하세요. ‘주여 주님은 당신을 죽이는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게 화내는 사람 하나도 용서 못하고, 사랑도 못해서 오늘 또 성질내고 짜증냈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정말 부끄럽습니다. 오늘은 이 수준밖에 안 되지만 내일은 제가 주님의 제자답게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겠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해 보고, 안 되면 또 하고, 안 되면 또 하면 됩니다. 안 된다고 드러누워서 울면 안 돼요. 그렇게 해 보세요.”nbspnbsp“감사합니다.”nbspnbsp질문자는 환하게 웃으며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자기를 죽인 자조차 용서하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 마음을 화 좀 내는 직장 상사에게 적용하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명쾌하게 답변하였습니다. 종교를 초월하여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강조한 스님의 답변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였고 질문자의 환해진 얼굴을 보면서 함께 감동받은 청중들도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강연을 마치면서 스님은 다음과 같이 닫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다보니 그 의미에 갇혀서 괴로움을 자초할 때가 많다고 하면서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nbspnbsp“재미있었어요? 사는 게 별 거 아니에요. 우리는 울고불고 난리지만 그렇게까지 살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인생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는 내가 만들어서 부여하는 거예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예수님, 천당’ 이런 의미를 부여하고 불교신자들은 ‘깨달음, 극락’ 이런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에 매달려서 사는 겁니다. 마치 누에고치가 자기 입에서 낸 실로 고치를 만들어놓고 그 속에 갇혀가지고 ‘죽네, 사네’ 하듯이, 우리는 자기 생각으로 일으켜서 만든 상에 갇혀서 스스로 속박 받고 살아요. 그러나 고치를 뚫고 나오면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것처럼, 이 상을 깨고 나가면 이 세상은 자유로운 세상입니다.nbspnbspnbsp토끼도 살고 다람쥐도 사는 세상인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토끼나 다람쥐보다는 더 재미있게, 더 잘 살아야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다람쥐보다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드물어요. 얼마나 사는 게 괴로우면 날아가는 새를 보고 ‘아이고, 너는 좋겠다. 훨훨 날아가서’ 이러고, 다람쥐를 보고 ‘아이고, 너는 좋겠다. 근심, 걱정이 없어서’ 이러고 부러워하겠어요? 그렇게 동물을 좋아하면 다음 생에 동물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내가 아무리 못 살아도 새보다는 낫고, 다람쥐보다는 나아야 돼요.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일으킨 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그 환상 속에 묶여서 고통 받고 삽니다.nbspnbsp과거는 아무 상관없어요. 그건 다 지나간 일이에요. 제일 중요한 건 지금 살아있다는 점입니다. 아시겠어요? 내가 사생아로 태어났든, 고아로 자랐든, 남편과 사별했든 어쨌든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인간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수가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그 행복을, 내 권리를 찾는 게 중요해요. 자꾸 지난 이야기하면서 ‘내가 태어날 때 어땠고, 아버지가 어땠고, 남편이 어땠고, 부모가 어땠고’ 이러면서 자기 괴로움을 합리화하지 마세요.nbspnbspnbsp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제가 몇 번씩 이야기해줘도 자꾸 괴로워하면 ‘그래, 괴로워해라. 자기가 괴롭고 싶다는 데 뭐 어떡할 거야?’라고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우리는 누구나 다 긍정적 사고를 가지면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 점을 명심해서 모두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한마디 한마디 주옥같은 말씀에 감동을 받은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습니다.nbspnbspnbsp강연을 마치니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스님은 평소보다 30분 일찍 강연을 마쳤음에도 많은 시민들이 스님의 책 사인을 받고자 북새통을 이루는 바람에 사인회는 30분 이상 계속되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조용히 미소 지으며 사인 받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든 스님에게 말 한번 붙여보려고 이런 저런 질문을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함께 데리고 온 가족도 많았습니다. 모두 활짝 웃으며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nbsp생각과 마음의 차이를 질문하였던 첫 번째 질문자에게 스님의 말씀을 듣고 어땠는지 소감을 물어보니 “평소 궁금했던 것이 풀렸고 유튜브로 즉문즉설 영상도 많이 보았지만 직접 질문하니 속이 더 편안하고 후련하고, 직접 온 보람도 느껴진다.”라고 답해주셨습니다. 이 분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스님에게 책 사인도 받았습니다.nbspnbsp사인회를 마치고 스님은 양천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환한 미소로 사진 촬영을 하였습니다. 자원봉사자 수가 너무 많아서 사진에서 잘리지 않으려고 봉사자들 모두가 스님을 중심에 두고 가운데로 마구 몰려들었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준비한 양천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nbsp봉사자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음꽃을 터뜨리면서 강연장을 나가는 스님에게 마지막까지 악수라도 한번 더 해보려고 안간 힘을 쓰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이 떠난 뒤 봉사자들은 끝까지 남아 뒷마무리를 깔끔하게 하고 행사를 잘 마무리 하였습니다. 오늘은 즉문즉설을 들었던 청중과 자원봉사자들이 스님을 직접 뵌 감동과 함께 행복이라는 선물도 가득 가져갈 수 있었던 날인 것 같습니다.nbspnbsp▲ 강연장 뒷정리를 하는 봉사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는 스님nbsp강서구민회관을 빠져나온 스님은 서울 정토회관에 밤 10시가 다 되어 도착했습니다. 집무실에서 원고 교정 업무와 보고서를 체크하며 늦은 시간까지 업무를 보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하루 종일 새책 원고 집필 업무를 보다가 저녁 7시부터는 원주 치악예술관 공연장에서 원주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nbsp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nbspnbspnbsp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nbsp
2015.11.23 (오전) 인천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인천 시민들을 위해 인천 평생학습관 미추홀 공연장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어제밤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하룻밤을 잔 스님은 새벽 예불과 기도를 한 후 5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하고 강연이 열리는 인천으로 향했습니다. 봄 날씨처럼 포근했던 며칠이 지나고 오늘은 아침부터 비와 함께 제법 쌀쌀한 기운이 감돕니다.nbspnbsp10시 무렵 강연이 열리는 인천시 평생학습관에 도착하니 두꺼운 겨울 잠바를 입은 시민들이 삼삼오오 입장하고 있었습니다. 한 봉사자는 찬 바람을 맞으며 1시간 째 안내 푯말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nbspnbsp▲ 인천시 평생학습관 미추홀nbsp이번 강연은 인천 정토법당, 송도 정토법당, 부평 정토법당, 강화 정토법당 등 인천정토회 봉사자들 총 70여 명이 합심하여 준비했다고 합니다. 오전 7시 30분부터 강연장에 모여 마음나누기를 하고 각자 위치에서 환한 미소로 시민들을 맞이했습니다. 입구에서 어서오세요 하고 반기는 봉사자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밝고 경쾌했습니다. 그 기운에 더불어 들어오는 사람들의 기분까지 밝아집니다.nbspnbsp강연시작 1시간 전부터 길게 줄이 이어졌습니다. 힐링캠프, 유튜브, 스님의 하루, SBS스페셜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법륜 스님을 알게 되었고, 법문을 통해 삶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nbspnbsp일찍부터 제일 앞자리에 앉은 30대 중반의 남자분은 서울경기 지역에서 열리는 스님의 강연은 모두 찾아다닌다며, 세어보니 이번 강연이 10번째라면서 스님 강연에 큰 관심과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nbsp강연 시작 전에는 무대에서 한 봉사자가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거위의 꿈”을 불러 쌀쌀한 날씨에 차가워진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풀어주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강연 전 오늘 강연장을 대여해 주신 인경식 관장님과 가벼운 담화를 나누었습니다. 관장님은 매일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중들의 고뇌를 해결해주는 스님의 노고에 깊은 존경의 마음을 표했고, 스님은 강연을 열릴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새책 ‘야단법석’을 사인해서 선물했습니다.nbspnbsp▲ 평생학습관 인경식 관장님nbspnbsp스님의 소개 영상이 끝나고 500석을 가득 채운 객석을 가로질러 스님이 무대 위로 올라오자 인천 시민들은 우레와 같은 환호와 박수로 스님을 반겼습니다.nbsp스님은 “아침에 비가 많이 쏟아졌는데 오는데 불편하진 않으셨나요? 라며 따뜻하게 안부를 물었고 청중들은 네 하고 씩씩하게 답했습니다. 스님은 다행이네요 라며 활짝 웃어보인 후 오늘 즉문즉설 강연의 취지에 대해 일러주었습니다.nbspnbspnbsp“방금 평생학습원 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왔는데, 평생학습원에서 공부하는 내용과 즉문즉설 강연 내용이 일치해요. 둘다 성인 교육이잖아요. 인생공부라는 것은 학교 다닐 때만 하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한 평생 해야 합니다. 늘 연구하는 자세로 삶을 산다면 삶이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nbspnbsp보통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짜증내고 성내고 좌절하고 절망할 줄만 알지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까?’ 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부족한 것 같아요. 어제도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에서 학생들이 스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어떻게 그걸 다 아시나요?” 하고 물었어요. 그래서 ‘저는 평생을 연구하면서 살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이 모르는 건 맹하게 살기 때문이에요’ 라고 했습니다. nbspnbsp자기가 결혼해서 살면서 겪는 결혼의 문제점은 본인들이 더 잘 알아야 하는데 연구를 안 하니 몰라요.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를 키우면서 연구를 하면 나보다 더 잘 알아야 하는데, 연구를 안 하니 스님인 저에게 그런 것까지 물어요. 수학선생이 수학을 다른 수학선생에게 묻는 건 흉이 아닌데, 수학선생이 수학을 영어선생한테 물으면 흉이지 않을까요? 안 그래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저한테 부부관계, 자녀문제 묻는 건 사실 흉이에요. 물으니 대답은 해주지만요. nbsp원인이 뭘까 찾아보면서 연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연구를 해야 해요. 그래서 평생교육의 핵심은 연구하는 자세, 탐구하는 자세예요. 이것은 수행자의 자세와 똑같습니다. 수행자의 자세라는 것은 어떤 어려움이 부딪혔을 때, 힘들어 하지 않고 그것을 연구해서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에요.nbspnbsp오늘도 살아가면서 겪는 이런저런 문제를 내어놓고, 그걸 저하고 대화를 해보면서 연구를 해나가 봅시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이건 어떻게 봐야할까?’ 하고 연구를 해보는 거예요. 연구를 해보면 문제로 삼았는데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고, 이런 문제는 이렇게 보면 되지 않을까 하고 방향을 찾을 수도 있을 거예요.”nbsp평생 교육이란 별다른 게 아니라 늘 연구하는 자세로 삶을 살아나가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이 곧 수행자의 자세라는 이야기로 강연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곧이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오늘은 총 6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직장에서 부하 직원에게 자꾸 화를 내는 성격을 고치고 싶은 40대 직장인, 직장 때문에 18개월 된 아이를 부모님께 맡겼는데 지금 6살이 된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아 걱정인 30대 여성 분, 전역을 앞둔 직업군인으로 진로 선택의 갈등을 겪고 있는 25살 남성 분, 새로운 직장에서 업무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 우울하고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40대 직장인 여성 분, 올 2월에 돌아가신 아내의 묘 자리를 이장한 후 마음이 불편하신 70대 남성 분, 올케가 너무 일방적으로 동생을 고생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픈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40대 여성분 등 다양한 연령대의 가지각색의 사연이 담긴 질문이 있었습니다.nbspnbsp그 중 최근 새 직장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자꾸 자존감이 낮아지고 우울해진다며 이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 지 물었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세상사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상 속 나와 현실 속 나 사이의 괴리 속에서 이를 어떻게 조절해야할지 배울 수 있는 유익하고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nbsp“저는 최근에 새 직장, 새 업무를 시작했는데요. 업무성과도 안 나고, 내가 일을 제일 못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자존감이 떨어져요. 그 생각에 생활 전반이 우울해졌어요. ‘내가 이 정도 사람이었나?’ 라는 생각에 많이 힘듭니다.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고... ”nbsp“직장에서 나가라고 그래요?”nbsp“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데 ‘내가 이렇게 무능한 사람이었나’ 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nbsp“제가 보기에 질문자가 조금 시건방진 것 같아요. 조금 과대망상증이 있는 것 같아요. 본인이 굉장히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환영을 갖고 있어요. 뭐 그렇게 잘났어요? nbspnbspnbsp질문자는 ‘나는 굉장히 능력 있는 사람이다’ 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거나,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착각을 하거나 둘 중에 하나예요.nbspnbsp예를 들어, ‘나는 키가 180은 되어야 해’ 이렇게 생각해서 그게 나인 줄 착각하면 현실의 나를 보면 키가 170밖에 안돼요. 그럼 자기를 보고 ‘키가 너무 작다. 난 왜 이렇게 키가 안 크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상이라고 해요. 그 아상을 현실보다 높게 잡아놓은 상태에서 현실의 자기를 보니까 너무 못마땅한 거예요. 마음에 안 드는 것이지요.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nbspnbspnbsp그래서 노력을 해서 현실의 나를 끌어올려서 내가 만들어놓은 아상과 일치시키려고 하는데, 이게 그렇게 쉽게 안 끌어 올라가져요. 그럼 끌어올려서 맞추는 게 해결책이냐. 아니에요. 그렇게 되면 늘 자기 학대를 하게 되요. 그러니까 이 아상을 버려야 돼요. 환상을 버려야 해요. 꿈에서 깨라는 거예요. ‘지금 있는 그대로의 이게 나다’ 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야 해요.nbspnbsp키가 170이면 170이다, 이렇게 받아들여야 해요. 즉, 내 능력은 100인데 ‘150의 능력을 갖고 있는 나’를 나라고 생각하니까 늘 내가 못마땅한 거예요. 내 능력이 100인 걸 인정해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어져요. 그래서 제가 늘 얘기하는 거예요. ‘꿈 깨라’, ‘네가 뭐 잘났니?’.nbsp두 번째로는, 이렇게 그 꿈에서 깨면 질문자가 못난이가 아니란 걸 알게 되요.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사람이에요. 요새 취직난인데, 취직 했어요? 못했어요?”nbsp“했어요”nbspnbsp“그러니까 자기 혼자서만 이렇게 속을 끓이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질문자의 실력이 그 정도 되는걸 다 알아요. 상사도 알고, 동료도 알고, 다 알고 있어요. 자기 혼자만 그러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질문자 보고 나가라 소리 안하는 건 그렇게까지 만족은 안한다 하더라도 ‘너 그 정도 되는 줄은 알았다’ 이런 거예요. 그래서 쫓겨날 가능성은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그냥 편안하게 다니세요. 쫓겨나면 ‘감사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저를 봐줘서 감사합니다’ 하고 나오면 되지 미리 발버둥 칠 필요가 없어요.nbspnbsp아무 문제가 없어요. 문제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게 문제예요. 이 격차가 너무 많이 벌어진 사람들이 있어요. 너무 많이 벌어지면 한편으로는 잘난 맛에 우쭐대고, 다른 한편으로는 못났다고 자기 학대를 해요. 현실에 있는 자기가 너무 못마땅한 거예요. 자기가 봐도 자기가 부끄러워요. 그래서 방안에서 안 나오게 됩니다. 이게 심해지면 자기가 너무 부끄러워서 남한테 보여주기가 싫어요. 나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간격이 너무 벌어지면 결국에는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지금 질문자는 그 정도는 아니에요.nbspnbsp우린 누구나 다 그런 분열이 있습니다. 나를 현실보다 조금 더 높게 생각하고 그게 나인 줄 착각하고 있어요. 나를 높게 생각하는 상태에서 현실의 나를 보니까 자꾸 못마땅한 거예요. 남한테 ‘제가 부족합니다.’ 말해도 그건 다 거짓말이에요. 속으로는 다 잘났어요. 그래서 잘난 척하면 남이 보기에 약간 눈꼴시럽고, 또 한편으로 자기가 못났다고 자신을 미워해요.nbspnbspnbsp이 둘을 다 버려야 해요. 있는 그대로, 실수하면 실수한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모른다고 ‘이것도 모르다니 부끄럽다’ 이렇게 생각할 게 아니라 모를 수도 있는 거예요. 모르면 ‘아이구, 제가 몰랐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나요?’ 하고 물어서 알면 되고, 틀리면 ‘아이구, 제가 틀렸네요.’ 하고 고치면 되고, 잘못했으면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했습니다.’ 하고 뉘우치면 돼요. 따라해 보세요. 모르면 물어서 알면 되고, 틀리면 고치면 되고, 잘못했으면 뉘우치면 된다.”nbsp모르면 물어서 알면 되고, 틀리면 고치면 되고, 잘못했으면 뉘우치면 된다.”nbsp질문자는 큰 목소리로 스님이 준 명심문을 따라했습니다. 그러자 청중들도 큰 목소리로 다 같이 명심문을 따라해 주며 격려의 마음을 모아주었습니다. 답변을 잘 이해한 질문자를 보며 스님도 빙긋이 웃음을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질문자가 이해하기 쉽게 조금 더 부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조마조마하게 인생을 살 필요 없어요. 그냥 되는대로 사세요. ‘그것도 모르나?’ 하면 ‘죄송합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하고, ‘야, 또 틀렸잖아’ 하면 ‘죄송합니다. 고치겠습니다.’ 하면 되고, ‘너 잘못했잖아’ 하면 ‘죄송합니다’ 하고 뉘우치면 돼요.nbspnbsp그런데 내가 100가지 다 틀릴 수도 없고, 100가지 다 모를 수도 없어요. 그래도 평균적인 수준의 사람이라면 10개 중에 67개는 알 수 있어요. 그리고 10개 중에 다 틀리지는 않을 수 있어요. 그런데 내가 완벽한 존재라고 여기면 10개 중에 1개만 틀려도 자기를 막 학대해요. 10개 중 1개 정도는 틀릴 수 있는 거예요.nbspnbsp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어떤 사람은 10개를 다 맞추고, 어떤 사람은 1개도 못 맞추고 그런 게 아닙니다. 못한다고 해도 10개 중에 67개는 맞추고, 잘한다고 하더라도 9개를 맞추는 이 정도의 차이밖에 없어요. 사실은 별 차이가 없어요. 그걸 갖고 비교하니까 자꾸 힘든 거예요. 괜찮아요. 어때요? 질문자는 괜찮은 사람이죠?nbsp“예”nbspnbsp스님이 묻자 질문자도 활짝 웃으며 큰소리로 답했습니다.nbsp요즘 같은 세상에 취직이라도 했다는 것은 괜찮은 사람인 거예요. 그러니까 편안하게 다니세요. 질문자는 교회 다녀요? 절에 다녀요? 아니면 종교가 없어요?”nbsp종교는 따로 없어요.nbspnbsp그럼 하느님, 부처님 빼고, ‘저는 이대로 괜찮습니다.’ 하고 절을 해보세요. 한번 따라해 보세요. 저는 이대로 괜찮습니다.”nbsp저는 이대로 괜찮습니다.nbsp질문자는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자긍심을 가지고 사세요. 환상에 사로잡히니까 자기를 자꾸 못난이로 보는 거에요. 나를 내가 못난이로 보는데 누가 나를 잘 봐주겠어요. 남이 나를 못난이로 봐도, 니가 몰라서 그래, 나는 괜찮아 이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야 돼요. 그래도 무의식 중에서는 자꾸 그런 생각이 드니까 저는 이대로 괜찮습니다. 라고 기도를 하면서 자꾸 자기 암시를 줘야 해요.nbsp네, 스님 감사합니다.“ nbspnbsp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모자란 나를 인정하는 것부터가 괴로움을 해결하는 첫걸음임을 알려준 스님에게 모두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문제라 공감이 많이 되었나 봅니다.nbsp질문자 역시 말을 꺼낼 때만 해도 어둡게 드리웠던 표정이 스님과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얼굴이 밝아졌습니다.nbspnbsp이렇게 연령대도, 입장도, 처한 처지도 각양각색이었던 여러 질문에 스님의 지혜로운 답변을 듣다보니 어느새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자기 인생을 행복하고 자유롭게 이끌어가길 바란다”는 희망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전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서는 20대 여성분은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며 질문에 크게 공감을 했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많은 도움을 얻었다”며 벅찬 표정으로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또 진로 고민을 물었던 25살 직업군인 남자 분은 복잡했던 머리가 덜 아프다. 스님이 명쾌하게 방향을 제시해줘 한결 가볍다. 며 기쁜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 책 사인회nbspnbsp강연이 끝나고 곧장 로비에서 사인회가 이어졌습니다. 신간 ‘야단법석’을 비롯해 부스에서 구매한 책에 스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줄을 선 사람들 중 책을 4권이나 가슴에 안고 있는 아주머니가 눈에 띄었습니다. “오늘 강연을 들으며 너무 행복했어요. 스님의 말씀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책을 4권이나 샀어요.”라며 기쁨이 가득 담긴 표정을 내비쳤습니다.nbspnbspnbsp책 사인회가 끝나고 강연을 준비했던 봉사자들과의 단체 사진촬영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만족감과 뿌듯함이 흘러넘치는 얼굴로 인천 강연 파이팅하고 우렁차게 외쳤습니다. 유달리 씩씩하고 밝은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준비한 인천정토회 자원봉사자들nbspnbsp스님은 수고했다며 봉사자들에게 악수를 건네고는 또 다음 일정을 위해 바삐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nbspnbspnbsp인천을 출발한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차 안에서는 원고 교정을 보거나 전화 연락을 하며 바쁘게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평화재단에 도착한 후 오후 2시부터는 김제동씨와 주진우 기자와 함께 늦은 점심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비롯해 최근의 많은 사회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내년에는 청년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청춘콘서트를 어떻게 할지 함께 계획을 세우기도 했습니다.nbspnbsp▲ 김제동, 주진우 기자와 점심식사nbsp그리고 연일 계속된 강연 일정으로 목소리가 갈라지고 목이 붓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들러 진료를 받았습니다. 스님은 왠만해선 병원에 잘 가지 않으시는 편인데 “이러다가 악화되면 나중에 강연도 못하게 되고 큰일난다”고 하면서 조기에 처방을 받아서 안정을 시키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강서 구민회관에서 강서구민을 비롯해 서울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됩니다... nbsp※nbsp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nbspnbspnbsp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