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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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9 (오후) 청년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

nbsp안녕하세요. 새벽에 있었던 정토불교대학 가을학기 특강수련 법문에 이어서 낮12시부터는 청년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에 참석해 즉문즉설 강연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새벽 특강수련 법문을 마치고 9시 30분에 문경 정토수련원을 출발한 스님은 11시 50분에 대전 정토법당에 도착해 12시부터 청년들을 위해 특강수련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전국에 새벽부터 출발해 대전 정토법당에 모인 120여 명의 청년들은 오전에 유수 스님으로부터 입재 법문을 들은 후 법당 구석 구석을 깨끗이 청소하고 스님을 기다렸습니다.nbspnbsp▲ 대전 정토법당nbsp12시가 되어 스님이 법상 위에 오르자 죽비 삼성과 함께 모두 눈을 뜨고 본격적으로 스님과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청년들은 사전에 작성한 질문지 없이 현장에서 곧바로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먼저 스님이 환한 웃음과 함께 안부 인사를 하며 말문을 열었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여러분들이 하반기 불교대학에서 불교의 근본교설과 불교변천사 교과 과정을 배우면서 의문 났던 점을 물어보는 시간입니다. 물론 상반기에 배웠던 실천적 불교사상과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도 좋고, 그 동안 수행을 하면서 들었던 의문을 물어도 좋습니다.”nbspnbsp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처음에는 망설이는 듯 하다가 곧이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12시부터 3시까지 3시간 동안 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연이어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불교의 근본교설 중에 ‘무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와닿지가 않는다는 여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의 해박한 지식에 청년들도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오히려 청년들이 스님에게 “도대체 대학교 나온 사람들이 맞아요? 고등학교 학력 수준도 안 되는 사람들 같네요” 라고 핀잔을 들을 정도였습니다.nbspnbsp학생의 솔직한 답변에 스님은 이해하기 쉽게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무아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무아’라고 하는데 저는 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방안에 혼자 있을 때도 내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왜 자꾸 없다고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nbsp“빗대어 설명해보겠습니다. 물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런데 물의 실체가 있습니까? ‘이게 물이다’라고 하는 근본 알갱이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봅시다. 물의 실체, 즉 물의 근본 알갱이를 조사하려면 물을 한 방울 떠서 쪼개보면 되겠죠. 쪼개고 또 쪼개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의 알갱이가 수없이 결합해서 물이 된다고 할 때 그 알갱이를 물 분자라고 부릅니다. 정토 불교대학 와서 공부하려면 이렇게 고등학생 정도의 학식은 갖춰야 해요. nbspnbspnbsp이건 더 이상 쪼갤 수가 없다고 했는데, 나중에 이것도 쪼갤 수 있는 방법이 나와서 쪼개 보니 더 이상은 물이 아닌 게 되어버렸어요. 물 분자의 분자식은 H₂O인데 그걸 한 번 더 쪼개버리면 H₂와 O₂가 됩니다. 이 두 가지는 물이 아니에요. 물은 아무리 분해해도 물이어야 할 텐데, 물 아닌 것으로부터 물이 된 겁니다. 이럴 때 우리가 ‘물의 실체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의 작용은 있지만 물의 실체는 없어요.nbsp물은 있지만 물의 실체는 없고, 산소는 있지만 산소의 실체는 없어요. 산소라는 원자가 단독자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속에는 양성자가 있고 중성자가 있고 전자가 있었습니다 그걸 더 파고들면 소립자가 결합한 것이에요. 소립자가 지금은 이런 형태로 결합해 있지만 달리 결합해버리면 있던 양성자가 몇 개 밖으로 떨어져 나오거나 몇 개가 더 붙어서 다른 원자가 됩니다. 그것을 실험으로 증명한 게 원자량이 제일 많은 92번 우라늄을 붕괴시킨 거예요. 이게 원자탄에 쓰이는 핵분열입니다. 또 제일 작은 중수소 두 개를 융합시켜버린 게 수소폭탄에 쓰이는 핵융합에요.nbspnbsp고정불변한 원자가 결합하는 것은 화학법칙인데, 이 화학법칙에서는 질량 불변의 법칙이 성립합니다. 질량 불변의 법칙, 배수 비례의 법칙, 일정 성분비의 법칙 이런 거 기억나요? nbspnbspnbsp그런데 이 핵의 변화에서는 질량 불변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고 질량 감소가 일어납니다. 물리변화나 화학변화와는 차원이 달라요. 그 감소된 질량은 에너지로 바뀌었습니다. 이게 아인슈타인의 ‘Emc²’이라는 에너지질량 등가 공식이에요. ‘작용은 하지만 그 안에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사실은 물질계에서는 이미 증명이 다 되었어요.nbspnbsp그걸 무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용은 하지만 실체는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작용을 하니까 실체가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이걸 정신세계에 적용하면 이렇습니다. 결혼해 아이가 있는 여성이 아이와 있을 때는 엄마라 불리고, 남편과 있을 때는 아내라 불리고, 부모님을 만나면 딸이라고 불리고, 절에 오면 신도라고 불리고, 가게에 가면 손님이라 불립니다. 인연에 따라 이리도 불리고 저리도 불려요. 엄마의 작용, 딸의 작용, 아내의 작용, 손님의 작용, 신도의 작용은 있지만 그 사람이 그 중 하나인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nbspnbspnbsp그런데 내가 엄마 역할을 오래 하다 보면 내가 엄마라고만 생각하고, 아내 역할을 오래 하다 보면 내가 아내라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나는 더 이상 아내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내 역할을 한 30년 하다가 남편이 죽으면 내가 계속 아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재혼해도 되는데, 자기가 아내라고 생각하니 결혼을 못 하는 거예요. 아내니 딸이니 하는 것은 모두 관계맺음에 의해서 불리는 이름입니다. 역할만 있지 ‘아내’라고 하는 실체는 없어요.nbspnbsp인도에서는 이런 실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 하늘에는 브라만이라는 신이 있고 내 속에는 아트만이라는 작은 신이 있어서 이 둘이 만나 결합하는 것, 즉 범아일여가 곧 해탈이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나에게 그런 고정불변하는 실체는 없다고 했어요. ‘아트만’에 ‘un’을 붙여서 ‘UnAtman’이라고 한 걸 한자로 옮긴 게 ‘무아’입니다.nbspnbsp질문자가 방안에 앉아서 ‘내가 있다’고 하지만 과연 뭐가 있습니까? 몸뚱이가 있다고 대답하겠지만, 그 몸뚱이가 나입니까? 몸은 ‘내 몸’이라고 하지 ‘나’라고 하지 않습니다. 생각 역시 ‘내 생각’이라고 하지 ‘나’라고 하지 않아요. 용어를 ‘나의 몸’, ‘나의 생각’, ‘나의 느낌’, ‘나의 물건’ 이렇게 쓰니까 ‘나’라는 게 있어야 한다고 여겨요. ‘나’라는 것이 있고 나서 그것의 몸, 그것의 생각, 그것의 느낌, 그것의 소유라고 해야 말이 되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뭐예요?”nbsp“모르겠어요.” nbspnbsp“그게 뭔지 연구해보세요. 그래서 유명한 선문답에 ‘Who are you?’라는 것이 있습니다.nbspnbsp‘너 누구냐?’‘아무개입니다.’nbsp‘아무개가 너냐, 너의 이름이냐?’nbsp‘이름입니다.’nbsp‘이름을 물은 게 아니다. 너는 누구냐?’nbsp‘딸입니다.’nbsp‘딸은 네 엄마와의 관계다. 너는 누구냐?’nbsp‘선생님입니다.’nbsp‘그것은 너의 직업이다. 너는 누구냐?’nbspnbsp이렇게 우리가 추구해 들어가야 합니다.”nbspnbsp“인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그 인연은 왜 생기는 거예요?”nbsp“인연이 왜 생기기는요, 살다 보니 생기는 것이죠.” nbsp“네, 감사합니다.” nbspnbsp스님의 쉽고 명쾌한 비유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질문자도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어디 가서 이렇게 좋은 강의를 들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절로 스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스님은 모두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불교의 공사상, 인연과보의 원리, 삼법인, 연기법 등 불교 교리에 대해 아주 쉬운 비유를 들어가며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청년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기뻐하자 스님은 왜 이렇게 재미있고 유익한 불교를 공부하려고 하지 않느냐며 스님이 왜 청소년 시절부터 불교에 매료되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저는 여러분들이 불교 공부 안 하는 걸 보면 안타까워요. 이것은 연구하면 과학이자 철학이고, 이것을 제대로 알면 이것이 곧 인생이고, 이것을 잘 실천하는 것이 곧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인데 왜 안 하려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처음부터 불교를 믿은 게 아니라 친구 따라 간 경우입니다. 경주에 역사 유적지가 많기 때문에 역사 유적지 보호반에 들어갔다가 할 수 없이 절에 다니게 된 거예요. 처음엔 불교가 싫었어요. 애가 태어나자마자 걸었다는 소리나 하잖아요. nbspnbspnbsp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불법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불교문화니 불교 생활 같은 걸 다루었기에 저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법문을 들으면서 불교의 진리에 대해서 알게 됐어요.nbspnbsp제가 제일 혹했던 것은 불교의 우주관이었어요. 저는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으니까요. 불교를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다가 우주관을 접하고 놀랐습니다. 보통은 지구에만 사람이 산다고들 하는데, 불교는 이 우주에 사람 사는 세상이 여기만 있는 게 아니라고 해요. 온 우주에 다 있고, 그것도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 많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게 아인슈타인의 우주론과 거의 비슷한 거예요. 태양계에서 지구 하나에만 생명이 산다고 치더라도 이 은하계에는 태양계 같은 것이 2천억 개가 있어요. 생명이 살 가능성이 있는 곳이 최소 2천억 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대우주에는 이런 소우주, 즉 은하계 우주 같은 것이 1천억 개 이상이라는 거예요. ‘금강경’을 읽어보면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수의 갠지스강이 있고 그 모든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를 합친 만큼 많은 우주, 세계가 있다고 하니 둘이 좀 비슷하잖아요.nbspnbsp각 세계마다 1년의 길이와 각 생명의 수명도 우리와 다르다고 합니다. 천상으로 올라갈수록 1년의 길이가 길고 수명도 길어요. 예컨대 우리 수명이 100년이라면 사왕천에서는 수명이 5백년이고 그 위의 도리천에서는 5천년이고, 그 위로 올라가면 5만년입니다. 반면 지옥 쪽으로 내려가면 수명이 짧아서 찰나에 나고 죽는다고 해요. 그런데 실제로 생명 세계를 보면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건 나고 죽는 주기가 짧고 코끼리나 거북이 같은 것은 길잖아요. 지구만 봐도 이렇게 수명이 다양하니 저 우주로 나가면 훨씬 더 수명이 긴 생명이 있을 거예요. 하루의 길이도 다르고요.nbspnbspnbsp1년과 하루의 길이도 달라요. 1년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것을 기준으로 삼잖아요. 다른 별에 가면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기한이 우리와 달라서 지구보다 태양에 가까운 것은 1년이 짧고, 지구보다 태양에 멀리 있는 것은 1년이 길어요. 하루도 그렇습니다. 지구가 한 바퀴 자전하는 것이 하루인데, 수성이나 화성은 한 바퀴 도는 게 우리와 시간이 달라요. 그러니 하루의 길이도 다르고 1년의 날수도 다르죠.nbspnbsp이런 게 과학에서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어떤 종교도 그런 이야기를 한 데가 없어요. 그런데 불교에서는 수명도 다르고 길이도 다르고 하루의 길이도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혹한 거예요. 저는 처음에 불교 사상보다는 그 우주론 때문에 혹했어요. 그래서 공부하다 보니 철학적인 측면에서도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무아’와 ‘무상’ 같은 것은 사회과학적인 요소예요. 유물론적 변증법의 핵심 사상도 결국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고 그 연관이 변한다’라는 원리예요. 그러니 이것은 철학적으로도 굉장히 심오하고 과학적으로도 모순이 없습니다.nbsp부처님이 뭐 물질을 연구하고 생명을 연구한 건 아닙니다. 부처님은 주로 정신세계만 연구했는데, 이 정신세계의 작용 법칙이 물질세계의 법칙과 근본적으로 같았던 거예요. 아까 이야기한 ‘제행무상’에도 이미 그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제행’이라고 할 때의 ‘행’은 물질, 생명, 정신이라는 세 가지로 나눕니다. 물질세계, 즉 우주는 성주괴공하고 생명은 생로병사하고 정신은 생주이멸합니다. 정신작용도, 생명작용도, 물질작용도 모두 변화해요.nbspnbspnbsp성주괴공을 딱 들었을 때 저는 HR도가 생각났어요. 지구과학 배울 때 접해 봤죠? 별의 빛깔과 밝기, 크기와 거리를 조사해서 우주의 생성과 소멸을 나타낸 표 있잖아요. 우주의 성간물질이 그래프 상 아래쪽에 모여 있다가 태양과 같은 주계열성이 되고 그것이 나중에 거성이 되고 그것이 백색왜성이 돼요. 별의 수명, 즉 별의 생성과 소멸을 나타내는 표입니다. 현재 우리의 태양은 1백억 년 정도 유지되는데 다른 항성이 태양보다 크면 수명이 짧고 태양보다 작으면 수명이 길어요. 스님은 이런 공부를 고등학교 때 다 했어요. nbspnbsp그때 제가 과학을 좋아했기 때문에 불교의 이런 요소를 과학과 비교해보면서 크게 놀랐어요. 처음에는 그래서 좋아하게 됐고,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 불교에 심취하게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믿음이 좋아서, 혹은 복을 받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우주관이 좋아서 호의적이었고, 그 다음으로 ‘너는 누구냐?’ 이런 문답을 하면서 인생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고 파고들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nbspnbsp그러니 이건 젊은 사람들이 공부해볼 만한 가르침이에요. 그리고 이 공부를 하면 고뇌가 많이 없어집니다. 괴로워할 일 같지만 한 발만 떨어져서 보면 별로 괴로울 일이 아니에요. 내가 만나던 애인과 헤어지면 속상하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이 사람이 나가줘야 다른 사람이 또 들어올 수 있잖아요. nbspnbspnbsp이런 것도 다 제행무상에 들어가요. 있는 사람을 일부러 내보내라는 게 아니라,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가지고 그렇게 목매달 필요는 없다는 말이에요. 이 말을 잘못 적용해서 ‘그러면 내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도 되겠네요?’ 하는데 그건 도덕적으로 조금 안 좋아요. 그러나 상대가 알아서 떨어져 나가주는 것은 나한테 도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어요. 내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돌아다닌 것도 아니고, 상대가 떠나 주니까 빈 자리가 생겨서 다른 사람이 또 올 수 있잖아요. 좀 섭섭한 건 있을 수 있지만 크게 보면 별 일 아니고, 오히려 좋은 일이에요. 그러니 떠난 사람에게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자리를 비워놓다 보면 또 새로운 사람이 옵니다.nbspnbsp아무리 비워놔도 안 온다고요? 저도 지금 자리 비워놓고 기다리고 있어요. 하하. nbspnbspnbsp그런데 누가 들어와서 차지해버렸는데 나중에 진짜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그것도 곤란하니까 항상 비워놓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비워놔도 외롭지가 않아요. 비워놓으면 가능성이 늘 열려 있어요. 이렇게 사물을 소극적,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긍정적, 적극적으로 보세요.” nbspnbsp스님의 긍정적인 사고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 했습니다. 한 생각 돌이키면 괴롭지 않을 수 있는데 예전에는 왜 그렇게 사소한 일로 죽는다고 괴로워했을까 되돌아봐졌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이 청소년 시절에 불교를 처음 접하면서 느꼈던 감동을 직접 전해 들으니 나도 스님처럼 정말로 불교를 열정적으로 공부해봐야 겠다는 다짐도 생겼습니다. nbspnbsp스님은 이 외에도 많은 질문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어서 언제 시간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벌써 3시간 다 지났습니다. 마칠 시간이 되자 스님은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배운 것을 사회 변화를 위해 실천하는 것이 잘 되지 않는다는 마지막 질문자의 물음에 답변해 주면서 행동하는 지식인이 될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중도파라는 사람들이 사고도 합리적이고 심성도 좋은데 제일 단점이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은 사실 별 의미가 없습니다.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은 공부를 해서 첫째로 자기를 행복하게 하고, 자기 괴롭히는 데 소모했던 에너지를 세상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좀 쓰세요. 전법도 하고, 자기 분야에서 개선을 위해 노력도 해야 합니다. 화내고 짜증내며 실천하지 말고, 방글방글 웃으면서 해야 해요. 과장님이 ‘미스 리, 커피 한 잔 끓여와’ 이러면 ‘자기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이렇게 욕하지 말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가져다주면서 다음부터는 직접 끓여 드시라고 말해야죠. 그냥 말하지 말고 커피를 가져다주면서 말해야 해요.nbspnbspnbsp‘커피 끓이는 게 제 업무도 아니고, 제가 과장님 비서도 아닙니다. 오늘은 과장님을 위해서 비서 역할도 해드리지만 앞으로는 정신 좀 차리세요. 계속 그런 태도를 보이면 고발당해요.’nbspnbsp이렇게 웃으면서 말해요. 머리를 쓰다듬거나 희롱을 하면 성질내지 말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세요.nbspnbsp‘아이고, 요즘 그렇게 하다가 고발당해서 망신 사는 거 못 봤어요? 우리 과장님 진짜 어리석으시네. 이러다가 망신 사고 성추행범으로 잡혀 들어가면 아이들을 어떻게 보려고 그래요? 오늘은 봐드릴 테니 다음부터는 정신 차리세요.’ nbspnbspnbsp처음부터 난리 피우지 말고 한두 번은 봐줘야 해요. 사람은 살아온 습관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다 나쁜 의도로 그런 것만은 아니고, 바로 고치기도 쉽지는 않거든요. 한두 번 웃으면서 이야기해주되, 그래도 버르장머리를 안 고치면 정당한 권리를 발휘해 고발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정에 휘둘려서 집에서는 매일 울면서 정작 출근해서는 고발도 못 하고 당하면 안 돼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대응하되 고발은 단호하게 해야 합니다. 울어봐야 내 손해예요. 그러나 개선해야겠다, 노동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하면 권리를 단호하게 행사해야 합니다.nbspnbsp이것이 바로 평화적으로 우리 시민의 권리를 신장해나가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를 우리가 행사할 수 없어요. 수행하라니까 ‘뭐든지 내 잘못이오’라고 하는데, 수행은 그저 하인 노릇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주인 노릇 하라고 수행하라는 거지, 하인 노릇 하라고 수행하는 게 아니에요.nbspnbsp부모님을 미워하면 안 돼요. 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의 하인이 아니니까 부모님이 시키는 말을 반드시 따라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집가라’ 하면 방글방글 웃으면서 ‘네’ 하고 안 가면 됩니다. nbspnbspnbspnbsp‘일찍 들어오너라’ 하면 ‘네’ 하고 일 다 본 뒤 늦게 들어오면 돼요. 시키는 대로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는 나를 해칠 의도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니까, 항상 말씀을 들어보고 참고할 만하면 참고하는 게 좋아요. 인생을 많이 살다보면 부모만큼 나를 위해주는 사람이 없어요.nbspnbspnbsp그렇다고 부모 말이 다 맞는 건 아니에요. 또 부모 말이 다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나는 자유인이니까 내 인생은 내가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그걸 갖고 화내거나 짜증낼 이유는 없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으니까 ‘알았어요, 네’ 이러면 되지,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하고 화낼 필요가 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말할 자유가 있잖아요. 귀 기울여 듣고 대답은 깍듯이 하되 따르고 안 따르고는 내가 결정하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훨씬 자유롭게 자기중심적으로 살 수 있고 인간관계도 좋아집니다.”nbsp내 인생은 내가 결정해서 주체적으로 살되, 부모님의 의견은 감사한 마음으로 경청하고, 사회적 실천도 마음껏 해나가되 즐거운 마음으로 해나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스님의 말씀대로 라면 정말 모순된 두가지가 함께 이뤄지는 길로 나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스님의 법문은 언제 들어도 우리들의 마음을 기쁘고 가볍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충전이 된 청년들은 3시간 동안 열강을 해준 스님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를 보내며 감사한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스님은 청년 정토불교대학 학생들 모두와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외치는 청년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오늘 법문을 들은 청년들처럼 더 많은 청년들이 스님의 법문을 만나 조금 더 행복해지는 삶의 길을 찾아갔으면 하고 간절히 바래봅니다.nbspnbspnbsp대전 정토법당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저녁 6시에 서울에 도착한 스님은 국민통합회의 모임에 참석해 여러 사회 인사 분들과 우리 사회의 갈등 통합 방안에 대해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서울에서의 모임을 마치고 밤늦게 다시 울산 두북으로 내려와 새벽 2시에 도착해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정말 오늘은 문경, 대전, 서울, 울산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듯이 바쁘게 움직인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텃밭의 배추와 무를 뽑아서 김장 울력을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감나무에 올라가 감도 따고, 울력을 하며 날씨가 추워지면 군불을 때서 고구마와 감자도 구워 먹을 계획입니다. 저녁에는 7시부터 창원대학교에서 창원 시민들을 위해 ‘통일 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nbsp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nbspnbspnbsp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nbsp

2015.12.01. 61,597 읽음 댓글 44개

2015.11.29 (오전) 정토불교대학 가을학기 특강수련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열린 정토불교대학 가을학기 특강수련에 참가해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낮 12시부터 3시까지는 대전 정토법당에서 청년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에 참가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새벽에 있었던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강원경기동부, 인천경기서부, 대구경북 3개 지부에서 정토불교대학 수업을 듣고 있는 480여 명의 학생들은 어제부터 1박2일 동안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특강수련을 진행 중입니다. 오늘은 새벽 4시에 기상해 예불과 108배 정진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스님도 새벽 정진을 마치고 6시에 강연이 열리는 대수련장으로 들어왔습니다.nbspnbsp▲ 문경 정토수련원 대수련장nbsp불교대학생들은 각 법당에서 그동안 영상으로 스님의 강좌를 들어왔는데, 평소 궁금한 점이 있었지만 영상 강좌 도중에 그 자리에서 바로 묻고 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무려 3시간 동안 스님과 집중적으로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는 시간을 nbsp가지게 되었습니다.nbspnbsp스님이 법상에 오르자 전국에서 모인 480여 명의 불교대학생들은 무척 기다렸다는 듯 환한 미소와 함께 스님을 맞이했습니다.nbspnbspnbsp법상 위에 오른 스님은 불교대학생들의 얼굴을 한눈에 주욱 살펴본 후 먼저 안부를 물었습니다.nbspnbspnbsp“불교대학 다닌 지 3개월 다 되어 가죠? 즉문즉설보다는 공부가 어렵지요?”nbsp“네.”nbsp“원래 공부란 것은 강의를 듣고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질문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동시에 여러 군데 몸을 나툴 줄은 알지만 아직 도력이 부족해서 여러분들을 제 앞으로 동시에 오게 하는 능력은 없어요. nbspnbsp아직은 쌍방 통화가 아닌 일방 통화만 되고 있습니다. 제가 동시에 여러분들에게 나퉈서 여러 곳에서 강의하는 건 되는데, 여러분들이 수업 끝나자마자 바로 묻는 건 아직 안 돼요. 그래서 오늘, 3개월 만에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그 동안 공부하면서 의문이 생겼지만 못 물어보던 것들을 물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nbsp이렇게 가볍게 인사를 한 후 곧바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불교대학생들은 사전에 질문지로 궁금했던 점들을 모두 써내었습니다. 스님은 올라온 질문지를 하나씩 읽어가며 답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총 15명의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추가 질문이 더 있었지만 시간이 부족해 다 답변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갑작스런 사고를 어떻게 인연과보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지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은 흔히 ‘인연과보’의 원리와 ‘인과응보’의 원리를 혼돈하기 쉽다며 그 차이점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들려주었습니다. nbspnbsp“인연과보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가까운 친인척의 갑작스러운 사망이나 중병은 저의 과보입니까? 아니면 그 분의 과보입니까? 과보가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과보로 보아 기꺼이 받아들이고 무엇을 과보가 아닌 것으로 보아야 합니까? 과보가 아닌 것은 왜 일어나는지요?”nbsp“‘인연과보’와 ‘인과응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제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인연과보와 인과응보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을 겁니다. nbspnbspnbsp잘 하면 상을 주고 잘못하면 벌을 준다는 게 인과응보예요. 모든 자연신앙에는 인과응보 사상이 있습니다. 유럽도 그렇고, 인도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래요.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 ‘천벌 받을 거다’라는 말이죠. 하늘이 가만 두지 않으리라는 뜻입니다.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구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을 안 들으니까 소돔과 유황불로 지져버리고 소금기둥으로 만들어서 응징하는 거예요. 남의 눈을 멀게 했다면 다음 생에 애꾸눈이 된다거나 남의 돈을 훔쳤다면 다음 생에 갚아야 한다는 게 인과응보입니다. 징벌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거예요.nbsp불교의 인연과보는 그런 징벌적 사고가 아니라 원인과 결과의 관계입니다. 쉽게 말하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거예요. 가치관이 개입된 게 아니에요. 콩을 심어야 콩이 나지, 애초에 콩을 안 심었는데 콩이 날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nbsp이것을 가치관적으로 접근해서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생기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생긴다’ 이렇게 적용하면 인과응보와 비슷해집니다. 그래서 혼돈이 생겨요. 그러나 원래 인연과보는 가치관적 접근이 아닙니다. 과학적 접근이죠.nbspnbspnbsp‘내가 어떤 사람에게 기대를 가지면 실망한다.’ 이건 가치관적 접근이 아니라 실제예요. 기대를 많이 가지면 실망이 크고, 기대를 별로 안 가지면 만족이 큽니다. 그러니 내가 어떤 기대를 갖느냐, 내가 어떤 관점을 갖느냐에 따라 그게 괴로울 일이 되기도 하고 괴로울 일이 아니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실망 안 하기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일체유심조라고 합니다. 내가 어떠냐, 내 마음이 어떠냐를 중시하는 거예요.nbsp어떤 물체가 있는데 ‘착한 사람이 밀면 움직이고 나쁜 사람이 밀면 안 움직인다’고 말한다면 가치관적인 접근, 윤리적인 접근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물체가 움직였다는 것은 힘이 가해졌다는 이야기잖아요. ‘힘을 가하면 이 물체는 움직인다’ 이렇게 접근하면 원인과 결과를 보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 현상이 일어나면 반드시 원인이 있고,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습니다. 그것에 다시 윤리 도덕관을 접목하면 인과응보와 비슷해집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인연과보는 윤리 도덕관을 접목하기 이전의 문제입니다.nbspnbsp그럼 그것을 왜 ‘인연과보’라고 할까요? 흔히 ‘인과’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인연과보’예요. 왜 ‘인’이 아니라 ‘인연’일까요?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는 건 인과예요. 그런데 콩을 심었지만 콩이 안 날 수도 있어요. 땅이 건조하거나 흙의 온도가 낮으면 싹이 안 납니다. 그런 밭의 조건을 ‘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만 갖고 되는 게 아니라 인연이 만나야 과보가 생기는 거예요.nbspnbspnbsp인을 직접적 원인, 연을 간접적 원인이라고 합니다. 이 원리는 환경을 중요시합니다. ‘인과’라고 하면 환경을 무시해요. ‘인연과보’라고 하면 인연이 만나야, 즉 인연이 맞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씨앗과 환경 조건이 같이 결합해야 하기 때문에 ‘인연’이라고 말하는 거예요.nbsp예컨대 사람이 나쁜 짓을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나쁜 짓은 나쁜 짓인데, 산속에서 자기 혼자 한다면 별로 과보가 없어요. 인은 있지만 연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남을 주먹으로 한 대 때렸다고 생각해봐요. 길 가다가 남을 한 대 때렸다면 그 조건에서는 나쁜 짓이 돼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덤비는 걸 말리다가 내가 한 대 때려서 그걸 해결했다고 하면 때린 건 똑같지만 과보가 달라요. 때린 행위라는 원인은 똑같지만 그 원인이 발생할 때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과가 아니라 인연과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과학적인 이치예요.nbsp그런데 이걸 가치관적으로 접근해서 ‘좋은 일을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내가 좋은 일을 해도 환경에 따라 좋은 결과가 날 수도 있고 나쁜 결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나쁜 짓을 했다고 반드시 나쁜 결과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조건에서 나쁜 짓을 했느냐에 따라서 우연찮게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제가 아는 사람은 둘이 싸우다가 밀쳤는데 상대가 넘어져서 머리를 다쳤어요. 그래서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했는데 뇌종양이 발견됐습니다. 종양을 발견했으니 넘어져서 다친 것은 오히려 잘 된 일이 되었습니다. 그냥 놔뒀으면 죽을 뻔했는데 조기발견해서 살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이 사람이 밀친 게 처음부터 잘 한 건 아니잖아요. 밀친 건 잘못이지만 결과는 좋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nbsp5.16 쿠데타를 일으킨 건 헌정질서를 문란시킨 것이니 처음부터 법률적으로 잘못된 거예요. 그런데 이걸 잘 됐다고 말하면 앞으로 누구든지 쿠데타를 일으켜도 된다는 뜻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결과가 좋았다고 해서 원인을 미화하면 안 돼요. 그런데 그 결과로 산업화에 성공한 건 사실이에요. 원인이 잘못됐다고 결과가 다 잘못됐다고 말해도 안 되고, 결과가 좋다고 원인이 다 좋다고 말해도 안 됩니다.nbspnbspnbsp의도와 결과는 이처럼 조건이 어떠냐, 어떤 환경에서 작용했느냐에 따라 네 가지 종류로 나타납니다. 의도가 좋았는데 결과도 좋을 수 있고, 의도가 좋았는데 결과는 나쁠 수도 있고, 의도는 별로 안 좋았는데 결과는 좋을 수도 있고, 의도가 별로 안 좋았는데 결과 역시 나쁠 수도 있습니다. 인과응보와는 달라요. 인과응보는 의도가 좋으면 결과가 좋고 의도가 나쁘면 결과가 나쁘다는 이야기예요.nbspnbsp그런데 이 인연과보에서 볼 때는 의도가 좋으면 결과가 좋을 확률이 의도가 나쁠 때에 비해 높아요. 의도가 나쁘면 의도가 좋을 때보다 결과가 나쁠 확률이 높고요. 그래서 우리가 선택을 할 때는 100 결과가 좋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의도를 좋게 갖는 편이 낫습니다.nbsp‘콩을 심으면 싹이 난다’ 이 말은 100 확실한 것은 아니에요. 콩을 심어도 조건이 맞지 않으면 싹이 안 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콩 싹이 났다면 100 콩을 심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런 게 수학에서 말하는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에요.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할 때는 어떤 원인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어떤 원인이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어떤 결과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환경 문제가 작용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반드시 그렇다’고 하지 않고 ‘그럴 확률이 높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nbsp윤회와 인과응보로 따진다면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았을 때 대부분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아이를 낳았을까?’라고 합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어떤 죄의 과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나 장애는 어떤 죄의 과보도 아니에요. 그냥 다를 뿐이죠.nbspnbsp여기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장애인이라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자로 태어난 것은 어떤 죄의 잘못이 아니며, 여자라도 남자와 다름없이 인간다운 존엄과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존엄과 권리가 있어요. 피부가 검은 사람도 흰 사람도 똑같은 존엄과 권리가 있습니다. 이게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nbspnbsp인과응보의 가장 대표적인 게 인도의 윤회사상인데, 우리가 이런 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지금의 불교가 얼마나 세계의 인권 존중 추세에 어긋나는지 몰라요. 설령 불교가 원래 그리 가르쳤다 해도 ‘이건 맞지 않는다’고 해서 고쳐야 할 판인데 부처님이 가르치지도 않은 걸 고집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절에 안 오고 시대에 뒤떨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불교를 잘못 믿었기 때문입니다.nbspnbsp왜 잘못 믿게 되었을까요? 불교가 인도화하면서 힌두적인 걸 받아들이고, 그 상태에서 다시 우리에게 전래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통과 정통을 구분해야 해요. 과거로부터 전수받은 것은 다 전통이에요. 전통에는 좋은 것도 있지만 안 좋은 것도 있습니다. 남녀를 차별하는 전통, 신체 장애를 죄악시 하는 전통은 나쁜 거예요. 그러면 이런 거는 개선해야 해요. 정통은 ‘바른 것’이라는 개념이에요. 우리 정토회는 정통 불교를 계승한다고 하지, 전통 불교를 계승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전통을 다 부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전통은 특별하게 진리에 어긋나지 않으면 가능한 계승하는 게 좋습니다. 제가 입고 있는 승복은 전통이니 바꿔도 됩니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즉 이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진리에 어긋나지 않으면 굳이 바꾸지 않고 전통으로 존중하는 게 좋습니다.nbsp후쿠시마에 지진이 나서 많은 사람이 죽은 걸 보고 ‘일제 강점기 때 못된 짓 한 벌이다’라고 하면 불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전통적인 인과응보 사상에서 본 거예요. 그러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일본 사람들이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위안부 사과도 하지 않고 일제 침략 사과도 안 하는 건 나빠요. 그래도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고 재앙을 입으면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 불교의 자비 사상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잘못 생각해서 ‘천벌을 받았다’, ‘전생에 죄가 많아 쥐로 태어났나 보다’, ‘성질이 독해서 뱀으로 태어났다’ 이러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은 다 제 나름대로 진화해온 거예요. 모든 것은 인연과보로 움직일 뿐입니다. 인연과보에 대해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nbspnbspnbsp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다,nbsp깊은 산속 깊은 바다 속에 숨는다 하더라도.지은 인연의 공덕은 없어지지 않는다,nbsp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nbsp‘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다, 깊은 산속 깊은 바다 속에 숨는다 하더라도’라는 말에는 이어지는 뒷 문장의 말뜻도 이미 들어 있습니다. 지은 인연의 과보라는 것은 좋은 인연, 나쁜 인연을 다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복을 지었으면 복이 따라오고 죄를 지었으면 죄가 따라온다는 의미예요. 그런데 이 말은 ‘나쁜 짓을 했으면 과보가 따른다’라는 의미로 주로 쓰일 때가 많기 때문에 제가 ‘지은 공덕은 없어지지 않는다’라는 뒤 문장을 만들어 추가 설명한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다 저축되어 있어요. 쉽게 이야기해서 지금 돈을 빌려서 썼다면 나중에 갚아야 하고, 지금 저축을 해두면 나중에 목돈을 타게 되는 이치입니다. 그게 달리 되지는 않아요.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이 죄를 지어놓고도 벌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빚을 내서 실컷 써놓고 ‘부처님, 이 돈 안 갚아도 되게 해 주세요’ 하고 비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자꾸 도망가지 말고, 여러분에게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세요. 예쁜 여자 종아리가 만지고 싶어서 만졌으면 감옥 가도 후회하지 말고 ‘그래도 한번 만져봤으니 이런 대가를 치러도 괜찮다’ 이러면 됩니다. 그러나 감옥 가기 싫다면 만지고 싶더라도 만지지 말아야지요. ‘만지고 싶은데 어떻게 안 만져요?’ 이런 소리 하지 말란 말이에요.” nbspnbsp스님의 재미있는 비유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답변을 다 듣고나니 정말 우리는 인연과보와 인과응보를 혼돈해서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불교는 과학적으로 사물을 파악하고 이해하도록 해주는 가르침이라는 것을 명쾌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새벽 6시부터 시작된 강연이라 아무리 좋은 스님의 말씀이지만 눈을 비비며 졸려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조금이라도 잠을 깨어보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서 강연을 계속 듣는 열의를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15개의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어느덧 3시간 20분이 훌쩍 지났습니다. 스님은 3시간 넘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열정적으로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중간에 목이 좀 아프신 듯 기침을 여러 차례 하셨지만, 스님과의 만남을 오랫동안 기다렸던 대중들을 위해 더 힘을 내어 강연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마칠 시간인 9시를 넘기고도 20여 분이 흐르자 스님은 “답변해주지 못한 질문이 더 있지만 어쩔 수가 없다”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깨달음은 아상과 권위를 버려야 한다고 하면서 평범한 여러분들이 가장 공부하기 좋은 것이라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저희 정토회에는 부자나 사회적 지위가 아주 높은 사람, 인기 연예인들이 잘 안 옵니다. 이런 사람들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히려 더 필요하지만 대중과 같이 앉아서 하는 걸 못 견뎌 해요. 그래서 늘 소수만 대상으로 특별 과외 하듯 비공개 법문을 해줄 수 없냐고 졸라요. 깨달음의 장도 이런 데 와서 같이 자면서 하는 거 말고, 돈을 얼마든지 내도 좋으니까 고급 호텔에서 편안하게 할 수 없냐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천만 원쯤 받을 수도 있고, 그런 사람들을 확 교화시켜야 사회에 영향력을 줄 수 있지 않느냐고 하는 권유도 여러 번 들었어요.nbspnbspnbsp그러나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해서는 안 돼요. 자기의 아상과 권위를 버려야 깨치는데 그걸 안 버리는 걸 조건으로 걸어놓으니, 버리라고 한들 버려지겠어요? 불교대학을 다닌다고 하더라도 조금 잘난 사람들은 오늘과 같은 이런 자리에 안 옵니다. nbspnbspnbsp한 방에 같이 자고 화장실에 가면 바람이 들어와서 엉덩이가 시원한 걸 자기 체면에 안 받아들이려고 하거든요. ‘나’라는 것을 내려놔야 깨달음의 길로 가는데 그걸 못 내려놔요.nbspnbsp정토회가 부자나 높은 사람들을 싫다고 내치고 막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이런 환경에 오기가 어려운 거예요. 일반 절에는 갈 수 있습니다. 특별대우를 해주니까요. 여기는 특별대우를 안 해주잖아요. 밖에서 뭘 했든 여기 오면 다 똑같이 해야 하니까 못 와요.nbspnbsp또 너무 가난하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도 여기 오기 힘들어요. 오지 말라는 건 아닌데, 시간을 내어 저녁마다 공부하고 봉사에 참여하거나 지금처럼 1박 2일 프로그램에 오기가 현실적으로 좀 어렵죠. 그래서 이 문제는 좀 특별 대책이 필요해요. 이 사람들의 처지에서는 현재와 같은 정토회 프로그램에 참여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니까요.nbspnbspnbsp그래서 생활이 너무 어려워도 진리를 추구하기가 어렵고, 생활이 너무 좋아도 진리를 추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생활이 적당할 때 공부하기가 좋아요. 그러니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은 딱 공부하기 좋습니다.” nbsp부자나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씀에 모두들 함박 웃음을 지으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3시간이 넘도록 열정적인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 nbspnbspnbsp이렇게 불교대학 특강수련을 마치고, 대수련장을 나와 곧바로 대전으로 출발했습니다.nbspnbsp11시 30분에 대전 시내에 도착해 국수로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12시부터는 대전 정토법당에서 청년 정토불교대학 수강생들을 위한 특강수련에 참가해 즉문즉설 강연을 해주었습니다. 청년들과의 즉문즉설 강연 소식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진행 중입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nbsp

2015.11.30. 67,148 읽음 댓글 45개

2015.11.28 새로운백년 청년학교 졸업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평화재단 청년포럼의 주관으로 열린 ‘새로운백년 청년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청년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아침 일찍부터 원고 교정 업무와 각종 보고서들을 보며 바쁜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원고 교정 업무를 보다가 아침 10시가 되어 서울을 출발해 대전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제6기 새로운 백년 청년학교 졸업식이 열린 대전 충남대학교 산학연 교육연구관 대회의실에는 12시 30분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nbsp충남대학교 산학연 교육연구관nbsp전국 25개 도시에서 청년학교를 수료한 210여 명의 청년들은 새벽부터 전국에서 출발해서 이곳에 모여 스님을 기다렸습니다. 지난 9월 10일부터 11월 28일까지 10주 동안 ‘법륜 스님으로부터 배우는 삶, 사랑, 시대’를 주제로 그룹 세미나, 역사탐방, 청춘캠프, 특강 등 다채로운 학습을 함께해 왔는데 오늘은 그 마지막 결실의 자리여서 모두 설레이는 표정이었습니다. nbspnbsp먼저 지난 10주 간의 청년학교 모습을 담은 영상을 함께 보며 추억을 되새긴 후 두 명의 청춘남녀가 나와 수료 소감문을 발표했습니다. 발표자 중 한 여학생은 “청년학교를 다니면서 가슴에 통일이라는 뜨거운 꿈을 품게 되었다”고 하면서 “앞으로도 통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과 매일 깨어있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며 소감을 발표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이 강당으로 들어서자 청년들은 뜨거운 박수와 함성을 지르며 환호를 했습니다. 영상과 책, SNS를 통해서만 매일 만나오던 스님을 가까이에서 뵙자 모두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다들 점심 식사는 하고 왔는지 안부를 물으며 환한 웃음과 함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대화의 주제는 ‘청년, 법륜 스님에게 길을 묻다’입니다. 스님의 젊은 시절부터 시작해서 스님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보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먼저 사회자가 준비한 질문을 묻고, 이어서 청중석에서 직접 질문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먼저 사회자는 그동안 스님은 늘 대중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느라 스님에 대한 이야기는 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며 오늘은 스님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나가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고 나름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청년, 법륜 스님에게 길을 묻다를 주제로 열린 대담nbspnbsp“스님, 지금까지 즉문즉설을 몇 번이나 하셨어요?”nbsp“세어보지 않아 모르겠어요. 공식적으로는 2011년에 100회, 2012년에 300회, 2014년에 해외강연만 115회이고, 상반기에도 국내에서 50회 했고, 2015년에는 상·하반기 합쳐서 한 100회쯤 될 것 같아요. 공식적으로 한 것만 해도 그러니 실제 한 것은 1,000회는 더 되겠네요. 즉문즉설로 10,000명 이상을 만났다는 뜻이죠.”nbsp“10,000명 이상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느라 스님 이야기를 하실 기회는 많지 않았을 것 같아요.”nbspnbsp“왜요? 질문자가 3분 이야기하면 저는 20분씩 하는 걸요.” nbspnbsp“스님에 관한 이야기요. 저희가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은 스님 이야기가 궁금해서입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이 궁금해하실만한 스님 이야기를 쏙쏙 뽑아내서 스님을 한번 탈탈 털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nbspnbsp가볍게 다양한 질문들이 오고 갔습니다. 스님은 학창시절에 어떤 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지, 스님의 하루를 읽으면서 엇나갔던 생각을 바로잡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는데 이렇게 모든 일과를 공개하는 것이 스님은 부담스럽지 않은지, 작년에 세계 100회 강연을 다니면서 여러 곳을 둘러보았는데 여행을 할 때는 어떤 점을 관심있게 보는지, 여행을 갈 수 있다면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남은 여생에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 스님이 스스로를 돌아볼 때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소수만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 구조 속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희망을 얘기해줄 수 있는지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은 진솔한 경험과 평소의 소신을 편안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강연장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값진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nbspnbsp그 중 정토회 홈페이지에 매일 연재가 되고 있는 스님의 하루와 관련해서는 이런 질문과 대답이 있었습니다.nbspnbspnbsp“저는 요즘 매일 ‘스님의 하루’를 읽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읽고 계시죠?” ‘스님의 하루’를 보면서 좀 엇나갔던 생각을 바로잡거나 자기 모습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돼서 좋아요. 그러나 아무리 공적인 인물이나 인기 있는 연예인들도 일상을 다 공개하지는 않고 어느 정도 사적인 영역을 두는데, 스님께서는 모든 일상이 대중에게 노출되는 셈이니 부담스럽지는 않으신지요? 그리고 이렇게 모든 일상을 투명하게 드러내어 보이고 전해주시는 의도나 뜻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nbsp“특별한 의도는 없어요. 전에는 기록하는 사람이 없었을 뿐입니다. 처음에는 매일 하는 법문을 전하려고 기획했다가 기록하는 사람이 생기다 보니 일상까지 전하게 되었어요. 그래도 전하지 않는 일정이 조금씩은 있습니다. 예컨대 최근 연예인들 몇 명이 찾아와 함께 산책한 것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의 방문도 너무 구체적으로 알려지면 약간 오해를 살 수 있고요. 물론 다 공개해버려도 되긴 해요. 그러나 제가 예컨대 국회의장실을 찾았다거나 하는 공적인 방문은 공개하되, 사적으로 찾아와 자기 고민을 이야기하고 간 것은 그 사람을 위해서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 외에는 화장실 다녀오거나 하는 게 아니면 특별히 공개 안 할 이유가 없지요.” nbspnbsp“네, 감사합니다. 별 의도가 없으셨군요. 어쨌든 저는 매일 이렇게 스님의 일상과 법문을 접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nbsp스님의 일상이 모두 공개되는 점이 청년들은 무척 궁금했나 봅니다. 특별히 공개 안 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nbspnbsp특히 사회자와의 대화 중에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스님은 말이 나온 김에 평소에 어떤 것을 해보고 싶었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스님 입에서 통일 이야기를 빼고 하고 싶다거나 가고 싶다는 말씀은 처음 나온 것 같아서 반가웠어요.” nbspnbsp“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저는 하고 싶은 게 좀 있어요. 아마 이생에는 어렵겠지만 시간이 나면 인류문화사를 연구하고 싶어요. 인류 문명이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는 제 중요한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정신이 발생하고 발전해가는 것과도 관계가 깊은 문제거든요. 앞일은 모르겠지만 만일결사를 은퇴하게 되면 꼭 육로로 실크로드 답사를 해보고 싶어요. 그 다음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에게 문명 쪽을 좀 더 살펴보고요. 특히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터키 남부 및 시리아 쪽에 번성했던 히타이트 문명을 답사해서 문명의 원천을 자세히 살펴보고 싶습니다.nbspnbspnbsp자연 환경으로는 안데스 산맥과 바이칼 호, 동아프리카 탕가니카 호 근방, 킬리만자로 산 쪽을 가보고 싶어요. 특히 아프리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비롯해 인류 조상의 원뿌리가 있는 곳이니까요.nbsp또 정토회에서 해보고 싶은 것 중 두 가지가 아직 자리를 못 잡았어요. 하나는 청소년 교화소를 세우는 것입니다. 민간에서 교화소를 하나 인수해서, 문제아나 수감된 아이들을 데리고 깨달음의 장이나 나눔의 장을 열어서 완전히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소위 불법에서 말하는 ‘번뇌즉보리’처럼 쓰레기가 거름이 되는, 가장 잘못된 것이 가장 잘 되는 길이 되는 원리를 쉽게 보여주고 싶어요. 이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과연 실제로 그렇게 되는지를 증명해서 보여줄 필요가 크거든요. 일종의 대안학교부터 해서 창조교육 시스템을 실험해보는 셈인데, 대상이 사람이다 보니 실험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나 이렇게 일단 팽개쳐진 사람들은 앞으로 좋아질 길밖에 없으니 위험 부담이 덜합니다. 이미 나빠진 상태니까 더 나빠질 일은 없잖아요.nbspnbsp또 하나는 노동과 수행의 통일입니다. 결국 행복의 핵심은 정신적, 육체적 건강입니다. 건강하려면 마시는 물과 먹는 음식, 적절한 운동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건강한 작물을 생산하되 그 생산 활동이 곧 우리의 수행이 되도록 해보고 싶습니다. 농장 수련원의 구상과 설계는 벌써 되어 있어요. 여러분이 주말에 돈을 내고 농장 수련원에 와서 법문을 듣고 마음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배운 뒤, 마음공부의 방식으로 절이나 참선을 하는 게 아니라 노동을 하는 겁니다. 풀을 뽑든지 작물을 심든지 하고, 그렇게 일해 본 것에 대해 나누기를 하고, 명상도 하고요. 노동 수련이라고 할 수 있겠죠.nbspnbspnbsp우리는 여가를 대부분 낭비적으로 보냅니다. 그러나 노동 수련원은 노동을 놀이화하고 그것을 통해 생산을 하는 시스템이에요. 그렇게 우리가 생산한 결과물을 또 우리가 먹습니다. 무농약 혹은 유기농산물이 시중에서는 예컨대 일반농산물의 2배 정도로 비싸다면, 우리가 생산한 것은 수련에 참여해 일하고 받은 티켓을 첨부하면 물건 값의 절반으로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안전한 식품을 시중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데 그것은 남이 생산한 게 아니라 자기가 생산한 것이니 보람도 크지요.nbspnbsp제가 만약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면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생산하도록 할 거예요. 최소한 하루 2시간씩은 누구나 다 노동을 해서 자기 먹을 것 정도는 생산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육체 뿐 아니라 정신이 건강해집니다. 우리는 지금 완전히 남의 노동 위에 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노동에 치어서 고통을 받고 상류층은 쾌락에 빠지잖아요. 할 일이 없으니 자꾸 쾌락 쪽으로 흘러가요. 낭비적으로 쓰이는 주말노동을 생산 놀이로 어떻게 전환해서 이런 인간 문명의 한계를 극복할 것인지도 미래 문명의 주요한 과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가 실험을 해서 깨달음의 장이나 청년 학교 같은 프로그램으로 정착시킬 수 있으면 좋겠어요.nbspnbsp그래서 제가 큰 농장 부지를 찾아다니는데 남한에서는 찾기가 힘들어요. 한반도에서 하려면 휴전선 안 비무장지대나 북한에 미리 자리를 잡고, 아니면 연해주나 미국 같은 곳에 농장 터를 잡는다면 해볼 만합니다.nbspnbspnbsp미국 갔을 때 제가 늘 마음에 짐이 되었던 것은 흑인 청년들이었어요. 일거리가 없는 흑인 청년들이 어슬렁거리며 다니고, 전체 인구 중 흑인은 20가 안 되는데 수감 중인 범죄자들은 80가 흑인이에요. 이런 사람들도 이런 삶의 기회, 자기가 노동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이제는 인종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말만 해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머리로 이해는 했지만 실제 우리 삶에서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계속 개발하고 개척할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미 있는 것, 남이 해도 되는 걸 하면서 돈 조금 더 받는 데만 자기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어서 안타까워요. 먹고 사는 최소한의 생존은 어쩔 수 없이 누구나 다 해야 하지만, 저는 우리의 에너지를 그런 데 다 쓰는 것은 좀 낭비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각자가 어떤 직업에 있든, 지금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과제를 어떻게 극복할 건지 늘 생각해야 합니다. 예컨대 사람들이 화장실을 쓰고 휴지를 아무데나 버린다면 이게 교육 문제로 해결할 것인지, 시설 문제로 해결할 것인지, 다른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봐야죠. 이렇게 우리가 한계를 극복할 방법과 새로운 가능성을 늘 찾아봐야 합니다.nbspnbsp안정된 직장은 자리가 한정되어 있으니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러나 저 같으면 예컨대 공무원 해서 월급을 받기보다는 새로운 길을 연구할 것 같아요. 김치 한 가지를 담더라도 배추는 어떤 종류를 심어야 맛있는지, 절일 때는 얼마나 어떻게 절여야 하는지, 양념은 어떻게 해야 하고 발효는 어떻게 시켜야 맛있는지 연구할 거예요. 이것 하나만 잘 해도 인류 문화 발전에 기여하거든요. 유명한 왕이 되는 것보다는 독초나 약초를 하나 발견한 게 인류가 여기까지 오도록 기여한 중요도가 더 큽니다. 왕은 대부분 물자 낭비하고 사람 죽이는 것만 했을 뿐 인류 문명 전체로 보면 크게 기여한 게 없어요. 물론 왕들 중에는 제도를 개발하고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은 안주하잖아요. 그렇게 살아서 뭐가 좋은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게 저와 다른 사람의 차이점일지 몰라요. 매일 술 마시고 가만히 앉아서 놀면 자기 몸 건강도 해치고 정신건강도 해칩니다. 우선 자기에게 좋을 게 없어요. 그것보다는 산에 가서 바람 쐬고 다리 힘도 기르며 사는 게 낫죠.nbspnbspnbsp그래서 저는 가치관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삶을 추구할 건지 방향을 먼저 잡아야 하거든요. 그런 게 없다 보니 아까운 청춘들을 낭비하는 것 같아요. 자살을 생각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당장 길 가다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죽음이야 언제든 올 수 있어요. 죽음의 순간이 오면 죽으면 되는데 그걸 미리 죽으려고 발버둥칠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또 반대로, 죽음이란 늘 우리 속에 있는 것인데 안 죽으려고 악을 씁니다. 자살의 유혹을 이해 못해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그건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해야 하고, 또 여러분들이 무기력해지는 것은 삶의 가치관과 좀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자, 이렇게 생각해 볼 때 할 일은 무궁무진하지 않을까요?” nbsp“네, 잘 들었습니다. 문명 극복을 위한 스님의 비밀 프로젝트를 엿들은 것 같은 느낌이에요.”nbsp스님은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은 젊은 청춘 같아 보였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열정이 가득 느껴졌습니다.nbspnbsp이어서 소수만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 구조 속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희망을 얘기해줄 수 있는지 물었던 질문 내용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스님, 요즘 ‘헬조선’, ‘금수저’란 말 들어보셨죠? 청년들이 느끼기에는 지금 한국의 현실이 더 이상 개인의 노력으로는 빈부격차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자조적인 탄식이 섞인 말이거든요. 학교도 사실 공부 잘 하는 소수를 위해 굴러간다고 느껴지니까 대부분의 학생들은 굉장히 무기력해요.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인데, 이 친구들에게 제가 어떤 가치를 보여주고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위로가 되고 힘이 될지 개인적으로 고민됩니다. 예전처럼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 열심히 하면 성공할 거야, 보답이 있어’라고 이야기하기가 굉장히 미안해요.”nbsp“그런데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 할 때 그 ‘성공’의 개념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다르지 않아요? 지금은 대부분 ‘공부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 할 때 ‘성공’의 개념은 돈 많이 번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지금은 열심히 한다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에요. 조선시대에 신분제 사회에서 하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열심히 해도 과거급제를 할 수 없는 것처럼 이미 돈의 흐름이 거의 정해졌기 때문에 개인에게 아직 기회는 있지만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은 이해됩니다.nbspnbspnbsp그런데 저는 신분제 사회라 해도 종이 왕의 가치나 양반의 가치를 추구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왜 여러분들이 그 사람들이 정해놓은 가치를 따라가야 하는지, 투덜거리고 힘들어하면서도 굳이 뒤꽁무니를 쫓아가야 합니까? 그러면 늘 열등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잖아요. 누군가가 짜놓은 질서에 내가 노예근성으로 참여하면서 헐떡거리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보세요.nbsp지금 청년들이 느끼는 감정을 저도 30여 년 전에 느꼈습니다. 1980년이니까 35년 전이네요. 광주 민주화 항쟁이 났을 때 제가 처음으로 한국과 한국 불교에 실망해서 미국으로 갔습니다. 미국이 꼭 좋아서가 아니라, 마침 거기에 형님이 계시니까 거기 가서 제가 원래 하려고 하다가 접었던 천문학이나 물리학 공부를 다시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미국, 특히 맨해튼과 뉴욕 주위를 둘러보면서 좀 무기력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은 제가 나고 자란 곳이라 그런지 뭘 하든 마음만 먹으면 하겠다 싶은 게 한손에 잡혔는데 여기는 규모가 너무 커서 내 손으로는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nbsp뉴저지와 뉴욕을 잇는 조지워싱턴 브리지에서는 맨해튼이 한눈에 보여요. 수십 층짜리 고층빌딩들이 대나무숲 마냥 빽빽이 들어서서 스카이라인을 이룹니다. 그런데 제가 미국에서 450년을 전적으로 돈벌이에 집중해서 성공하더라도 그 맨해튼에서 빌딩 한 채를 사기가 쉽지 않아요. 살 가능성부터 1도 안 되지만, 설령 샀다손 치더라도 그 맨해튼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수많은 대나무 중 대나무 한 그루를 잡았을 뿐인데 그걸로 뭘 하겠어요? 다리에서 맨해튼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인생을 이렇게 투자할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하나는 광주항쟁 때 학살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보고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결국 6개월쯤 있다가 돌아오게 됐습니다.nbsp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30년 전 제가 미국 가서 느꼈던 막막함, ‘내가 이걸 어떻게 해볼 수 없다’는 절망이나 좌절감 같은 게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의 청년 여러분들에게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그 동안 규모가 엄청나게 성장하면서 사회 시스템이 짜여졌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개인이 이 거대한 사회에서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어요. 무슨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 성공한다 해도 길이 고만고만하고, 취직을 해도 길이 고만고만합니다. 게다가 이미 돈 번 사람, 지위 높은 사람, 출세한 사람, 유명한 사람은 곳곳에 널려 있어요. 이렇게 쳐다보는 눈은 높고 현실은 너무 밑에 있으니 그 갭을 극복하기가 좀 절망적일 거예요. 제가 그때 미국 가서 느낀 게 그거였거든요. 이건 내가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한국이 좋았어요. nbspnbspnbsp한국은 뭔가 내 손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이곳은 말이 통하고 내가 나고 자라서 잘 아는 환경이니까 목표와 각오를 세우고 10년이든 20년이든 목표로 잡아 어떻게 시도해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미국은 말도 안 통하고 규모도 너무 크니까 막막했어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여러분들이 30년 전 제가 미국에서 느꼈던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아요. 이해는 됩니다. 좀 막막하겠다 싶어요.nbspnbsp그러나 막막해진다는 건 이 가치를 따른다고 할 때 막막해지는 거예요. 쉽게 이야기하면 후발주자니까요.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의 그 시스템을 따른다는 입장에서는 당 간부의 자녀가 아닌 이상은 있어봐야 전망이 없어요. 그러나 북한의 그 가치를 떠나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습니다. 현재 북한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없는 게 아닙니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김일성 대학을 나와서 당 간부가 되는데 집중하지만, 지금 북한 젊은이가 아예 시장통으로 나가면 더 성공할 거예요. 북한 사회가 지금은 꽉 막혀 있지만 다음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있잖아요.nbspnbsp그런 것처럼 우리가 우리 사회의 다음을 어떻게 예측하고 움직일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이 시스템이 앞으로 아직 수십 년 더 가는 게 아니라, 지금 한계에 다다라 막혀 있잖아요. 그러면 그 다음에 어떤 길을 우리가 뚫고 나가야 하는지를 고민해서 길을 좀 달리 찾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스템에서 내가 올라갈 수 있는 층층다리를 만들 수 없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어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필요합니다.nbsp다음으로, 이 시스템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손으로 바꿔가야 합니다. 비정규직 문제라든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라든지 자본과 노동의 격차 같은 문제가 많잖아요. 조선시대에도 혁명을 했어요. 그런데 왜 여러분들은 ‘군도’나 ‘암살’ 같은 영화를 보면서 좋아만 하고, 직접 해 볼 생각은 하지 않아요? nbspnbspnbsp우리 힘없는 사람들이 연대를 해야 합니다. 그때는 반란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잖아요. 지금의 대한민국 헌법을 살펴보면 현재의 대한민국 현실이 잘못됐다고 써놨어요.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해놨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지금의 현실이 오히려 반란이고 반동이라는 거예요. 헌법에 근거해서 국민에게 주어진 권리를 행사하고 우리 대한민국을 어떻게 만들자고 할 때 우리가 훨씬 더 정당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연대와 행동은 헌법에 어긋나는 어떤 반란이 아니에요. 이렇게 막막해하며 ‘헬조선’이라고 자조만 할 게 아니라 그런 어떤 변화를 꿈꿀 수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nbsp조선시대에는 10의 양반이 90의 양민과 상민을 지배했다면 지금은 1의 소수자가 99를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왜 99가 침묵하고 거기에 노예처럼 매여 사는지 저는 그 자체가 좀 이해되지 않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아예 그런 신분 교육을 받아서 그렇다지만 지금 교육은 모든 국민이 다 권리가 있다고 받는데도 왜 이렇게 1에 눌려서 살아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면 되죠. 그런데 그걸 누가 해주기만을 바라면 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부처님이 와도 구제할 방법이 없어요. 본인들이 안 하겠다는데 누가 구제해주겠어요? 폭력적인 행동을 하자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합법적인 권리를 행사해서 불법적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들을 추방하는, 다시 말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합법화시키는 운동을 하면 되지 않냐는 겁니다. 요즘은 그게 목숨 걸 일도 아니고 밥 굶을 일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현실의 삶에 안주해 있는 건 아닐까 싶어요. 투표를 통해서 보이든 여론을 통해 보이든 뭔가 행동을 해야 변화가 오지, 아무 행동도 않은 채 절망만 하고 있다면 아무런 변화도 오지 않습니다.nbspnbsp제 요점은 두 가지입니다. 막막하다는 건 이해됩니다. 저도 겪었으니까요. 그러나 길을 뚫는다면 하나는 아예 이 가치가 아닌 다른 가치로 개인적으로 길을 뚫고 가는 게 있습니다. 남이야 돈을 많이 벌든 아파트를 사든 그걸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집 넓으면 청소하기 힘들고, 승진하면 골치 아픈 일이 많이 생깁니다. 예컨대 시골에 내려가서 ‘나는 과수원을 하겠다’, ‘나는 목축을 하겠다’, ‘나는 도예를 하겠다’ 이렇게 전혀 다른 가치에 따라 자기 나름대로 길을 뚫는 거예요. 결혼도 자기 가치관에 맞는 사람을 만나서 하고 함께 그 가치를 추구하면 돼요. 지금처럼 얼굴이나 학벌을 기준 삼아 고르지 말고요.nbspnbspnbsp아니면 지금의 이 가치 속에서도 이렇게 ‘헬조선’이라며 절망만 하지 않고 행동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지옥이라면 지옥을 정토로 만들어야죠. 저는 그런 어떤 운동에 청년포럼이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지금까지는 개인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역할을 했다면 이제 상처를 치유해서 뭘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공유하면서 확대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 길은 여러 가지입니다.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니에요.”nbsp“네, 감사합니다. 청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답변이었어요.”nbsp스님의 답변을 들으며 청년들은 보다 더 적극적이고 주인된 자세를 가져야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사회자와의 대담을 마무리 짓고, 이어서 청중석으로부터 직접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에 자신이 묻고 싶은 질문을 종이에 써서 질문지함에 넣어 둔 상태였습니다. 스님이 질문지함에 손을 넣어 질문지를 무작위로 고르면 해당하는 사람이 일어나서 스님과 대화를 주고 받은 방식으로 즉문즉설이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nbsp첫 번째 질문자는 사귄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 친구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24년 동안 연애를 한번도 못해 봤는데 어떻게 하면 남자 친구를 사귈 수 있는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다며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물었고, 네 번째 질문자는 청년학교를 통해 통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며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주변에 쉽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을 물었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네 번째 질문인 어떻게 하면 통일의 필요성을 주변에 쉽게 알릴 수 있는지 물었던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통일이나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었는데 청년학교를 통해 통일과 사회문제에 대해 나누기를 하다 보니 재미도 있고 관심이 갑니다. 직접 참여하는 방법, 자연스럽고 쉽게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법을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nbsp“처음부터 통일을 전파하겠노라며 접근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낼 계기가 있어야 해요. 예컨대 ‘새로운 100년’을 질문자가 먼저 한번 읽어보고 사람들에게 큰 부담 없이 권할 만하다 싶으면 ‘내가 읽어보니 참 재미있더라. 너도 읽어봐라’ 이렇게 주변에 권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읽어봤더니 좋은 면도 있지만 친구들은 안 읽을 것 같다면 권유하기 어렵죠. ‘암살’ 같은 영화를 같이 보러 가서, 영화에 나오는 역사가 발생한 배경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 수도 있습니다. 청년 실업 문제를 두고 대화하다가 통일 이야기로 이어갈 수도 있어요.nbspnbspnbsp지금 우리의 인구구조나 사회구조, 기계화, 자동화를 비롯한 여러 여건 상 일자리가 더 이상 늘어나기 힘들어요. 아주 창조적인 발상을 해서 새로운 직업을 스스로 만들어나가지 않는 이상 기존의 직종은 점점 줄어들지, 늘어나기가 어렵습니다. 기존의 직종에서 일자리를 늘리는 방법은 통일이에요. 북한 개발이라는 프로젝트가 생기면 수요가 늘어나거든요. 철도를 놓든 건물을 짓든 제방을 쌓든 도로를 닦든 아이들 교재를 만들든 농산물을 더 생산하든 모든 분야에서 양이 확대됩니다. 북한의 소비수준이 지금은 굉장히 낮지만 일단 통일이 되면 소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물자 수요가 많아져서 결국 우리의 고용과 매출도 늘어납니다. 그래서 북한 개발은 우리들이 지금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정체를 뚫고 나갈 사실상 유일한 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nbspnbsp저라면 창조성을 발휘해서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까 말한 것처럼 청소년 교화소를 만들어 운영할 수 있어요. 대안학교를 만들면 거기서 아이들을 가르칠 선생님이 필요하고, 농업 수련원을 만든다면 수련생들을 지도할 지도사가 또 필요합니다. 김치를 시범적으로 담아서 공급한다면 그걸 판매할 사람도 필요하지요. 이런 식으로 우리가 뭘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그 밖에도 버려진 산이나 땅, 창고를 가지고 뭐든지 만들어볼 수 있습니다.nbspnbsp최첨단 산업이나 우주 개발까지 나아갈 필요 없이 지금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이렇게 개발할 수 있는 것이 굉장히 많아요. 이런 것을 우리가 찾아내면 새로운 직종, 새로운 직업,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게 창조경제예요. 이것이 청년 실업을 해결할 한 길입니다.nbsp두 번째가 북한개발이에요. 기존의 기술과 방식을 갖고 일자리를 늘리려면 북한개발 밖에 길이 없어요. 수출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중국에 수출하는 것도 더는 힘들어요. 아직은 흑자지만 중국에서 수입하는 양이 더 많이 늘어나 무역역조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옷이나 신발은 중국 제품을 쓰듯 앞으로 핸드폰, 냉장고 같은 것도 중저가 상품은 전부 중국 제품을 쓰게 될 거예요. 거꾸로 안전한 식품, 고급 식품은 중국 수출 길이 열립니다. 지금은 농업이 손해를 보고 있지만 10년만 지나면 오히려 농산물과 식품류는 중국에 대량 수출이 가능해질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나 이런 일부를 제외하면 우리는 거의 한계점에 도달해서 무역량의 증가 속도가 크게 줄어들고 있어요.nbspnbsp그런데 북한 개발이라고 하는 프로젝트가 있으면 무역량과 생산량이 늘어납니다. 전에는 통일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면 지금은 어쩌면 통일만이 우리에게 희망이고 비전입니다. 이산가족이 만나거나 분단의 정신적 피해나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는 등 비경제적 면에서의 이익도 물론 어마어마하지만 경제적으로도 굉장한 이익입니다. 그리고 통일이 돼야 우리가 미래에 더 나은 비전을 만들 수 있지, 분단된 상태에서는 발전의 한계가 왔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한계점에 도달했어요.nbspnbspnbsp이런 것들을 꼭 전문가인 제가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여러분들이 조금만 공부하게 되면 우리 생활과 통일이 직결되는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막연히 ‘같은 민족이니 통일하자’ 이런 게 아니라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제예요.nbsp안전 문제도 그렇습니다. 지금 유럽의 IS 문제를 보세요. 자꾸 때려잡는다 하니 더 확산되잖아요. 불났을 때 불 끈답시고 때리면 불티가 날려서 급속도로 확산되듯 지금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어요. 난민 사태, 폭격과 테러에 의한 고통이 엄청납니다. 우리는 6.25를 제외하면 그런 고통을 비교적 안 겪은 편이지만, 남북이 충돌한다면 힘이 약한 북한은 힘이 강한 우리에게 대응하려면 당연히 게릴라전에 나설 겁니다. 그러면 전면전이 아니어도 사회 불안 요소가 됩니다. 미국이 그런 식으로 늘 불안에 시달렸는데 이제는 유럽까지도 번져서 지금은 집회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어요. 그러니 무조건 강경대응 하지 말고 그 사람들을 조금만 포용해줘서 더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 좋겠어요. 이라크 침공할 때 후세인을 제거했더라도 추종자들과 군대를 해산시키지 말고 조금만 아울렀다면 지금 이런 부작용은 없었을지 모릅니다. 증오심으로 때려잡으니까 처음에는 상대가 어쩔 수 없이 진 것처럼 보이지만 증오심을 갖고 다시 저항하고, 저항하는 걸 때려잡으니까 더 격렬해지죠. 우리도 다 겪었잖아요. 일본이 침략해 와서 처음에는 졌다가 10년 뒤인 1920년대에 청산리 전투, 봉오동 전투를 통해 저항했고, 저항했을 때 일본이 섬멸작전으로 탄압하니까 죽은 사람들의 자손, 형제, 친구들이 다 독립운동가가 되어서 저항을 하는 식으로 수가 늘어났어요.nbspnbsp우리가 남북문제를 ‘저놈은 약하니까 그냥 때려잡아버리면 된다’ 이렇게 안이하게만 본다면 앞으로 올 사회적 혼란과 저항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항상 이렇게 긴장을 조성해야 정치적 권력을 유지할 수 있어요. 북쪽도 남쪽도 긴장을 고조시켜야 독재 통치가 가능합니다. 남쪽 안에도 또 여야의 대립이 있어요. 여당과 야당이 서로 막 싸워줘야 새누리당이 싫다며 다른 사람을 찍으려던 경상도 사람이 결국은 또 새누리당을 찍고, 다른 당을 찍으려던 전라도 사람도 새누리당에 지면 안 된다며 돌아와 찍거든요. 이걸 적대적 공존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와 불교도 막 부딪히면 종교 간의 융화가 없어지는 대신 내부적으로 더 뭉쳐요. 진보와 보수도 이렇게 막 싸우면 결국 합리적 보수인 사람들은 진보를 지지할 수는 없으니까 보수로 돌아오고, 합리적 진보인 사람들도 극보수를 지지할 수는 없으니까 진보로 돌아오게 됩니다. 사회를 계속 이렇게 분리시키는데, 이런 것도 우리가 그냥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좀 더 나은 사회,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가려면 반드시 분단의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nbspnbsp그런 면에서 우리가 평화와 통일로 간다는 건 우리들의 삶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 평화롭고 희망이 있는 세계로 가는 길입니다. 지난 50년간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이해는 되지만, 이제는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서로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해요.nbspnbspnbsp그런데 좋은 이야기도 너무 그것만 하면 저항을 받아요. 그러니 관련된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거나, 관련된 영화를 보면서 대화를 나누거나, 실업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북한의 광산 개발이나 시베리아 철도 연결 이야기를 하는 등 생활 속의 이야기를 하면서 통일이 되는 게 낫다고 이야기해줄 수 있겠죠. 좀 가볍게 접근하면서 조금씩 대화의 폭을 넓혀 가면 좋겠습니다.”nbsp“네, 감사합니다.” nbsp통일 문제도 좀 가볍게 접근하면서 대화의 폭을 넓혀 가보라는 말씀에 모두 공감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니 약속한 3시간이 다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자가 “오늘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청년학교를 수료하게 되었는데 격려 말씀을 해달라”고 요청하자 스님은 청년들을 위해 이렇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기운을 차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어렵다는 것은 저도 이해해요. 어렵고, 힘들고, 막연하고, 나 혼자서 뭘 어떻게 해볼 수 없을 것 같은 심정은 이해가 됩니다.nbspnbspnbsp그런데 뒤집어서 생각해보세요. 지금 우리 사회가 혼자서 어떻게 해볼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조직이 됐으니까 오히려 우리가 조금 힘을 합치면 도전해볼 만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힘을 합치면 미래의 비전을 세우고 나라의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청년들이 몇 천 명씩 되는 조직들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나라에는 몇 백 명 되는 조직조차 잘 없으니까 몇 천 명 되는 조직을 만들면 사회에 큰 영향을 줄 거예요. 자본가들, 가진 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민중이 뭉쳐서 저항을 했던 시대에는 권력과 자본이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지 못했지만 오늘날 전부 개별화된 시대에는 부랑배라도 몇 명만 모이면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요. 몇 명이라도 조직을 이루면 힘이 있는 거예요. 세상이라는 게 그래요. 그래서 우리가 조금만 서로 힘을 모아 결집시키면 오히려 지금 시대에는 사회에 큰 영향력을 줄 수 있습니다.nbsp또 크게 헌신하는 사람이 많을 때는 조금 헌신해도 표가 안 나지만, 전부 이기주의적으로 굴 때는 내가 조금만 헌신해도 표가 납니다. 한국 스님들이 다 착실히 수행하면 법륜 스님 정도는 표가 안 날 텐데 대부분 농땡이를 부리니 저 같은 사람도 표가 나는 거예요.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농땡이 부리고 이기적으로 구는 게 다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다른 애들이 공부를 안 해야 내가 조금만 잘 해도 성적이 오를 수 있잖아요.nbspnbspnbsp이런 시대를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좋은 기회가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셔서 조금 기운을 차리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저기는 눈 감고 자네요.” nbsp스님은 마지막에 보통 ‘감사합니다’로 마무리하시는데 오늘은 농담으로 끝내며 웃는 모습을 보니 스님의 청년들에 대한 애정이 많이 느껴졌습니다.nbspnbsp제6기 청년학교 수료생들은 스님의 격려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큰 박수와 함께 더욱더 적극적인 실천활동을 다짐했습니다. 스님도 밝아진 청년들의 얼굴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6기 청년학교 수료증 수여식이 열렸습니다. 수료증과 개근상을 각각 대표로 수여한 후 올해 청년학교를 빛낸 ‘청학인의 상’이 발표되었습니다. 청학인의 상은 드러나진 않았어도 누구보다도 가장 열심히 활동을 한 자원활동가에게 수여되는 상입니다. 특별한 상이다 보니 활동 모습을 담은 영상과 함께 수상자가 발표되었습니다.nbspnbsp▲ 청학인의 상을 받고 있는 박선희님nbsp이어서 수료생 200여 명 모두에게 수료증을 나눠주었습니다. 스님은 무대로 올라온 한 명 한 명 모두와 직접 눈을 맞추고 악수를 건넨 후 수료증을 수여했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따뜻한 눈빛과 보드라운 손을 잡고선 기쁜 마음을 감추질 못했습니다.nbspnbsp▲ 새로운백년 청년학교 수료증 수여식nbspnbsp그리고 각 지역별로 스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은 후 마지막으로 전체가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밝고 늠름한 표정의 청년들은 “화이팅” 우렁차게 외쳤습니다. 새로운 백년을 열어가는 청년 통일의병 200여 명이 새롭게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nbspnbsp▲ 제6기 새로운백년 청년학교 졸업생 모두 함께nbspnbsp스님은 청년들에게 다시 한 번 합장하며 인사를 한 후 강당을 빠져나왔습니다. 대전을 출발한 스님은 곧바로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열리는 정토불교대학 가을학기 특강수련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오후 1시에는 대전 정토법당으로 이동해 청년 정토불교대학 봄학기 특강수련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저녁에는 서울로 이동해 국민통합회의 모임을 가질 예정입니다. nbsp nbsp※nbsp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nbspnbspnbsp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nbsp

2015.11.29. 52,306 읽음 댓글 35개

2015.11.27 (저녁) 일산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전에 남양주에서 있었던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정발산 성당에서 일산 시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올 들어 가장 추운 밤, 체감 온도가 영하 10도에 육박하는 매서운 날씨에도 성당 주변은 봉사자들과 속속 모여드는 청중들의 열기로 가득했습니다.nbspnbsp▲ 정발산 성당nbsp강연준비 총 책임을 맡은 오흥란 님은 “7시 강연인데 4시 40분경부터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며 “김밥 100줄이 모자랐다. 공식적인 봉사자는 75명이지만 더 많이 온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성당 밖에서 안내를 맡은 류신애 님은 “팟캐스트에 올라온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들었지만 강연장은 처음”이라면서 “설레고 떨려서 추운 줄도 모르겠다”며 활짝 웃었습니다.nbsp그런데 어떻게 성당이 스님의 강연장소가 된 것일까요? 과거 일산 부근에 있는 화정 성당에서 성당 측 주최로 스님의 즉문즉설을 연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일이 인연이 되어 이번에 이 성당을 소개 받을 수 있었다 합니다. 장소 섭외를 담당한 박지영 님은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차였는데 주임 신부님께서 정말 흔쾌히 허락해주셨다”며 인연과보의 오묘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했습니다.nbsp저녁 7시가 되자 어느새 성당은 800여 명이 넘는 청중이 1층부터 3층까지 가득 메웠습니다. 자리가 부족해 플라스틱 의자를 가지고 와 복도에도 나란히 앉았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예정보다 5분 정도 늦게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주임 신부님은 외부에 피정을 나간 상황, 스님은 성당 사무실에서 윤관영 시몬 보좌신부님과 사목회장님 등과 인사를 나누고 장소를 제공해 준 성당측에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일찍 부근에 도착해 있었는데, 꼭 학교 가까이 사는 아이가 지각한다고, 5분이면 간다고 해서 늦게 출발했더니 그만 차가 막혀 늦었다”고 말해 일동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nbspnbsp▲ 윤관영 시몬 보좌신부님nbsp시몬 신부님은 스님에게 프란체스코 교황님의 책을 선물하며 반가운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청중의 열띤 박수를 받으며 단상에 오른 스님. 스님의 뒤편엔 커다란 십자가상이 걸려 있었습니다. 스님은 다시금 장소를 제공해준 성당측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사실 처음 천주교가 이 땅에 전파될 때 절에서 장소를 제공한 일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절도 함께 많은 핍박을 받았다고 했습니다.nbspnbsp“오늘 우리가 대화할 수 있는 좋은 장소로 성당을 사용하도록 허락해주신 신부님과 여기 성당에 나오시는 형제자매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작년에 전 세계 115개 도시를 115일간 다니면서 강의를 할 때 미국과 중남미에서는 성당에서 제일 많이 강의를 했습니다. 거기는 따로 공공장소가 없어서 주로 성당을 많이 이용했어요.nbspnbspnbsp그때 제가 ‘성당을 빌려서 강의를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빚진 건 아닙니다’ 하고 농담을 했어요.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올 때 탄압을 피해 산속 암자에 가서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첫 전래지가 천진암입니다. 천주교가 탄압받을 때 불교인들도 장소 제공자라 해서 피해를 많이 입었습니다. 그런 역사가 있기 때문에 스님이 성당을 좀 사용해도 큰 빚이 아니라고 농담하고 웃었습니다. nbspnbspnbsp오늘 이렇게 성당에서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더욱 반갑습니다. 오늘은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특정 종교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 이야기를 하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이런저런 인생의 애환이나 인생에 대한 의문을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해보는 시간이에요.”nbsp스님의 여는 이야기에 뭔가 시작부터 흐뭇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아, 그렇게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사이였구나’ 하고 빙긋이 미소가 지어졌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쓰레기가 곧 거름이라고 하면서 번뇌가 곧 깨달음이라는 즉문즉설의 취지를 알려주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우리는 쓰레기라고 하면 버려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쓰레기가 곧 거름입니다. 거름은 가장 요긴한 것이고 쓰레기는 가장 쓸모없는 것인데, 쓰레기가 곧 거름이에요. 그것을 ‘번뇌즉보리’라고 해요. ‘번뇌’는 ‘고뇌’를 뜻합니다. ‘보리’는 인도 말 ‘보디’에서 왔는데 ‘깨달음’이란 뜻이에요. 번뇌가 곧 깨달음이다, 쓰레기가 곧 거름이라는 이야기입니다.nbspnbspnbsp똑같은 똥이라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져요. 오물이라고 보면 갖다 버려야 하고, 거름이라고 보면 주워 와야 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이웃집에 가서 놀다가도 똥오줌이 마려우면 자기 집에 가서 누고 왔어요. 거름이기 때문입니다. nbspnbsp오늘 대화에서 쓰레기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나와도 그걸 잘 살펴보면 쓰레기가 아니라 거름입니다. 자, 이야기를 시작해보죠.”nbsp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여러명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하고자 했습니다.nbspnbsp오늘은 총 5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교회 목사님의 아내였습니다. 어렵게 신학을 공부하고 정성을 다해 목회일을 했지만 핍박받고 교회에서 내쫓겼다 했습니다. 남편의 고난을 지켜보기 괴롭다 하였습니다. 성당에서 진행되는 즉문즉설에 첫 질문자는 독실한 기독교인, 흔히 보기 힘든 광경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졌습니다.nbspnbsp두 번째는 간호사가 될 것인가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할 것인가 고민중인 간호대학생의 질문이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올바른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가 궁금한, 아주 조숙한 중학 3년생이었습니다. 네 번째는 이혼하고 홀로 힘들게 사남매를 키워온 친정어머니에게 사랑한다, 감사한다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자꾸 화를 내는 것이 괴로운 40대 주부였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밀린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계속 재판에서 지면서 정신적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진 안타까운 사연이었습니다.nbspnbsp스님의 얼굴을 볼 수 없는 3층 끝자리까지 꽉 들어 찬 청중들... 모두들 분명 오늘 하루, 바쁘고 힘들게 살았겠지요. 어떤 이들은 그저 스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한참을 서서 듣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졸음을 쫓기 위해 선 채로 스님 법문을 들었습니다. 모두들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때론 눈물 지으며 스님과 질문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목사님을 남편으로 둔 아내의 고민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질문자는 남편이 교회 재건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지만 늘 핍박을 받았다며 안타까워 했습니다.nbspnbsp“지혜롭고 자애로우신 스님께 여쭐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nbspnbsp“시작이 좋습니다.”nbsp“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남편에게 길이 열리지 않고 악한 일을 겪으니 괴롭습니다. 남편은 개신교 목사님인데 국내에서 석사를 마치고 세계 유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형제 많은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남편에게는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유학길에 오르기 전에 모 단체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으나 결국은 장학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선발자가 자기 지인으로 장학금 수여자를 변경해서 가로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실망이 컸지만 꿈이 있었기에 열심히 했습니다. 학위를 취득한 후에 돌아와 연구하며 강사 생활을 하다가 교수로 임용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연구 실적이나 심사기준에서 1등이였던 남편이 아니라 2등인 사람이 인맥을 내세워 임용되었습니다. 많이 울고 절망했지만 하나님의 뜻이 다른 곳에 있으리라 믿고 견뎠습니다.nbspnbsp그러다가 어떤 교회에 초빙이 되어 목회를 하게 되었는데 제 남편 전에 여러 명의 목사님을 핍박해서 내쫓은 전력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교회 역사가 그렇다 보니 성도님들이 다 떠나버리고 시골의 집성촌처럼 한 일가를 중심으로 하는 소수만 남아 있었고, 개중 대부분이 장로님과 권사님들이었습니다. 남편은 6년 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최선을 다하면서 사랑으로 성도들을 보살피고 교회 재건에 힘썼습니다. 그런데 장로들이 5년째 되던 해부터 1년 동안 핍박과 조롱과 멸시와 인격모독을 비롯한 온갖 악랄한 방법으로 괴롭혀 결국 남편은 올해 3월에 사임했습니다. 용서하자 마음먹다가도 장로며 교회가 어찌 이리 악할 수 있나 싶어 참담하고 억울합니다. nbspnbsp이런 나날이 2년 정도 계속되다 보니 마음도 몸도 많이 상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기도해야 남편의 길이 열릴까요? 어떻게 해야 늘 최선을 다하지만 빼앗기기만 하는 남편한테 하나님께서 교회를 교회 되게 하고 성도를 성도 되게 하는 지도자로서의 길을 열어주실까요?nbspnbsp더불어 여쭙고 싶은 한 가지는 가족과의 관계입니다. 시어머니는 삶이 힘들다 보니 제게 악담을 퍼붓거나 화풀이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 동안은 이해하고 살았는데 우리 부부가 이렇게 어려운 일을 겪고 나니 부모 형제가 다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어 서운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부끄럽게도 가끔은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제가 너무 가치 없는 존재로 느껴집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nbsp“이분을 위해 큰 격려의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 nbspnbspnbsp“이건 어떤 인생의 길을 선택하는냐의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따를 것인지, 세상의 길을 따를 것인지를 먼저 선택하셔야 해요. 관점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기 때문에 지금 혼란스럽지 않나 싶거든요.nbspnbsp그리스도의 길을 따른다는 관점에서 보면 지금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세상의 길을 따른다는 관점에서 보면 굉장한 고난을 겪고 있지요. ‘내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라는 문제인데, 질문자는 지금 세상의 길이라는 관점을 갖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 일이 뜻대로 안 되고,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느라 원망도 생깁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질문자의 신앙은 그저 어려울 때 하나님이 돌봐주기를 바라는, 즉 나를 중심으로 놓고 하나님의 복을 비는 신앙의 틀을 못 벗어나고 있어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까지도 원망스럽습니다.nbspnbsp그런데 남편이 목사의 길을 갈 때는 세속의 이익이나 명예나 직위를 추구하는 길을 간 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길, 즉 고난의 길을 선택한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 이 길은 축복받은 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섞어서 생각하니까 혼란스러운 거예요.nbspnbsp예수님은 고난의 길을 가신 분이잖아요. 한 번도 사회 기득권층으로부터 예수님이 인정받거나 환영받은 적이 없고, 마지막에는 혹세무민했다는 모함을 받아 사형 언도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잖아요. 그런데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하셨습니다.nbsp저는 어릴 때 교회를 다녀서, 크리스마스 연극을 할 때마다 동방박사 역을 했습니다. 아기 인형을 구유에 뉘어 놓고 ‘동방 박사 세 사람 귀한 예물 가지고’ 이렇게 노래부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렇게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와서 가장 높은 지위로 올라가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평생을 고난의 길만 걸으셨어요. 한 번도 환영받는 길을 걸은 적이 없어요.nbspnbsp제가 1980년대에 고문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무턱대고 잡아가서 ‘네 죄를 네가 알렷다‘ 하고 때리다가 물고문도 했어요. 영문도 모른 채 고문당하는 게 너무너무 억울해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제 손에 총이 있었으면 그 사람들을 다 쏴 버렸을 겁니다. 저는 그때 나를 봤어요. 그 사람들은 말로는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해도 나를 때리고 고문할 뿐이지 실제로 죽이려고는 안 했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로 다 죽여 버리려 했거든요. 총이 없어서 못 쐈을 뿐이죠. 그때 그런 나를 보고 제가 굉장히 놀랐습니다. ’내가 엄청나게 독한 사람이구나‘ 하고 알게 됐어요.nbspnbspnbsp전에는 성경을 늘 읽어도 눈에 안 띄었는데, 그런 자기 모습을 본 뒤 성경을 읽었을 때 제일 눈에 띄는 말이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였습니다. 저는 감히 흉내낼 수도 없는 말이었어요. 기독교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 무릎을 꿇었을 정도로 예수님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사람의 몸을 가진 분이 한 말씀이지만 사람으로서는 그런 마음을 낼 수가 없어요. 저는 평소에 도인인 척 살다가 당해보니까 악심이 마구 솟구치는데, 맞는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벌써 신성이에요.nbsp그리고 또 하나 고문당하면서 얻은 깨달음이 있어요. 그렇게 괴로워하고 분노하는 중에는 저를 고문하는 세 명의 장정이 악마 같은 사람들로 보였어요. 예수님을 못 박은 사람은 둘이었지만 저를 고문한 사람은 셋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문하다가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어요. 저를 위해서 쉬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힘들어서 쉬면서 담배도 피우고 잡담을 나눕니다. 그런데 그 날이 마침 11월 15일, 예비고사일이었어요. 요즘 말로 하면 수능시험날이죠. 제가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고 있는데, 옆에서 자기들끼리 앉아서 담배를 피우면서 한 명이 동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야, 오늘 우리 딸이 시험을 잘 쳐야 할 텐데. 잘못 쳐서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못 가고 지방대에 가면 내 박봉에 그걸 어떻게 뒷바라지하겠어? 그래도 서울 시내 대학에는 붙어야 어떻게 공부를 시키지 않겠냐.’nbsp그때 제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악마인 줄 알았더니 악마가 아니고 그냥 우리 주위에 있는 애들 아빠인 거예요. 아까 저한테 그렇게 악독하게 굴던 사람들이 앉아서 담배 피우면서 하는 이야기가 딸 걱정인 거예요. 퇴근하고 집에 가면 저 사람도 한 아이의 사랑하는 아버지, 한 여인의 사랑하는 남편, 한 노인의 사랑하는 아들일 겁니다. 고문실을 나가서 사무실에 앉으면 착실한 직장인이고요.nbspnbsp그때 제 속에 있던 분노와 증오심이 확 녹아내렸어요. 제가 그 경험을 안 했다면 아마 고문당한 경험이 굉장한 상처가 되어서 ‘이 놈의 자식들, 나가기만 해봐라. 다 죽여버린다’ 이러거나 나중에 민주화가 된 뒤에 그 명단을 찾아서 처벌하려 들었을 거예요. 수행자가 증오심을 갖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그 경험을 통해서 제가 증오심을 내려놓게 됐어요.nbspnbsp이 경험을 하고 나니 그 전에는 아무리 읽어도 안 보이던 성경 구절이, 그리고 그 뒤 구절이 눈에 딱 들어왔어요. 예수님 말씀을 보면 그 뒤 구절이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입니다. 고문당하는 제게는 죽일 놈들이지만, 그 사람들은 자기가 죄를 짓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공무 집행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nbspnbsp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은 요즘 말로 하면 교도관들입니다. 사형 선고를 내렸으니 그 사람들이 집행을 하는데, 그 당시 사형 집행 방식이 교수형도 아니고 총살형도 아니고 십자가형이였어요. 거기 매달아뒀다가 죽으면 내리고 다시 새로운 사형수를 매다는 일을 어부가 물고기를 잡듯이 매일 출근해서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때 예수님은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신 겁니다. 그러니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이런 말이 가능한 거예요. 저도 그 악심이 내려놓아진 것은 용서해 주고 싶어서 혹은 용서를 하려고 해서 된 것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이해를 했기 때문이었어요. 딸 입학시험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냥 평범한 시민이었구나. 나에게는 악마 같지만 자기들은 전혀 모르고 그냥 공무 집행하는 중이구나’하고 알게 된 거예요.nbsp남편이 그리스도의 길을 간다면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미움도 아니고 불교로 말하면 전생의 죄도 아니고, 또 사주팔자 탓도 아닙니다. 이 길을 선택하면 이렇게 가는 거예요. 이때 이런 고난을 딛고 가지 않고 대형 교회의 목사님처럼 환영받고 간다면 예수님께서 채찍으로 쫓아낸 유대의 랍비나 율법주의 학자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제가 볼 때는 남편은 지극히 정상적인 길을 가고 있어요.nbspnbsp그러니 질문자가 ‘내 남편’이라는 생각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분’으로 바라보도록 관점을 좀 바꿔야 이 문제가 해결됩니다. 관점을 바꿔버리면 아무것도 문제가 안 돼요. 시어머니도 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자로 보지 않고 아들로 보니까 그래요. 섭섭하니까 nbsp‘우리 아들은 원래 똑똑하고 착했는데 며느리 때문에 그리 되었다. 네가 들어와서 이 모양이 됐다’ 이렇게 생각해서 문제가 발생하거든요. 아내인 나도 남편의 삶 때문에 이렇게 힘든데 자기 아들이 그 길을 가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얼마나 힘드실지 이해해 드려야 합니다. 내 힘듦을 어머니가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말고요. 남편이 겪는 어려움을 아내가 보는 것보다는 아들이 겪는 어려움을 어미가 보는 게 훨씬 더 힘듭니다. 질문자도 자식이 있으니 알 거예요. 그러니 ‘아이고, 나도 이런데 어머니는 얼마나 힘드실까?’ 하고 어머니를 이해하면 좋겠습니다.nbspnbsp기도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부처님이나 하나님한테 기도하는 방식이 조금 잘못되었어요.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비는 걸 기도라고 생각하는데,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 ‘은혜를 입었다’고 하고 안 해주면 ‘기도해봐야 소용없더라. 믿어봐야 소용없더라’라고 합니다. 그러면 자기 신앙을 자기가 부정하는 게 됩니다.nbsp‘이렇게 해주세요’ 라는 말은 굉장히 정중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명령입니다. ‘내가 이게 필요하니 가져와라. 안 가져오면 안 믿을 테다’ 이런 뜻이거든요. 이건 신앙이 아니에요. 그 분은 나보다 훨씬 지혜로운 분입니다. 그래서 전지하신 그분께서 다 아신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그 분께서 다 아셔서 이게 나한테 좋다면 그 쪽으로 인도하실 거예요. 시험에 합격하는 게 나한테 좋다면 합격하는 쪽으로 인도하실 테고, 합격하는 게 당장은 좋아보여도 사실은 안 좋다면 또 합격하지 않는 쪽으로 인도하실 거예요. 그건 그 분한테 맡겨야 해요. 이것을 뜻하는 신앙고백이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입니다. 항상 어떤 어려움이 생겨도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항상 감사 기도만 해야 합니다. ‘해주세요’라는 기도는 해주면 고맙고 안 해주면 미운 거예요. ‘주님,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 기도를 하면 이미 은혜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 둘에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은혜를 받을 수도 있고 안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나는 이미 은혜를 받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는 거예요. 주님의 은총이 항상 나와 함께 하기 때문에, 주어진 이 길은 모두 주님의 뜻이라고 여기고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감사하게 받아들이면 자연히 물 흐르듯이 좋은 길로 이어지게 되어 있어요.nbsp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관점을 잘못 잡아서 세속의 관점에서 보다 보니까 힘이 들어요. 물론 사연을 들으면 절절히 이해가 됩니다. 참으로 어려운 고비를 건너왔고, 건너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쪽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길을 아주 순조로이 잘 따라가고 있는 거예요. 몇 년이나 일한 사람을 쫓아냈다고 하지만 그래도 십자가에 못 박은 건 아니잖아요.” nbspnbsp“그렇죠.”nbspnbsp“십자가에 못 박아도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하는데 교회에서 쫓아내는 것쯤이야 어때요. 게다가 별로 좋지도 않은 교회라면서요. 좋지 않다고 해서 내가 나와버리면 사랑이 아니라 분별이에요. 그런데 자기들이 싫다고 가라고 했으니 내 잘못은 없어요. 그러니 그것은 주님께서 오히려 길을 열어주신 거예요. 내가 못 견뎌서 나오면 내 공부가 덜 된 것이지만 그쪽에서 나가라고 하니 아주 잘 된 겁니다. 생각을 이렇게 좀 바꾸시면 좋겠습니다. 이 정도 말씀드리고 이제 질문자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봅시다.”nbsp“남편은 제게 스님이 해주신 말씀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하면서 십자가를 거부하고는 살 수가 없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복은 그런 게 아니다. 이 길도 십자가의 길인데 거부하고 순종하지 않는 건 신앙인의 양심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합니다. 오늘 스님 말씀을 들어보니 제가 그런 관점으로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사실은 남편이 저를 가장 불편해하는 것 같아요. 본인은 본인의 신앙 고백대로 양심적으로 그 길을 갔는데, 저는 남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학식이 너무 아깝다고 여겼거든요.” nbsp“그 재능이 속인으로서는 아까운 게 맞지만 한번 생각해보세요. 제게 만약 부인이 있어서 이러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잔소리를 할까요? 안 할까요? nbspnbspnbsp대기업이든 관공서든 요청받아서 강의를 해주면 2300만원씩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강의를 그렇게 많이 하면서도 저는 강의료를 안 받아요. 초청 강의는 안 가고 무료 강의만 합니다. 그런데 마누라가 있으면 잔소리하겠죠. ‘왜 그렇게 밤잠도 못자고 종일 차로 돌아다니면서 자기 몸을 혹사하고, 준다는 돈도 안 받느냐?’ nbsp맞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원래 부처님 가르침이 그렇습니다. 절을 짓는 거야 원하는 신도들이 알아서 짓는 것이지만, 수행자 개인이 받을 수 있는 것은 입는 옷과 먹는 음식과 아플 때 쓰는 약과 잘 때 바닥에 까는 자리뿐입니다. 다른 건 못 받게 되어 있어요. 물론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좀 달라지긴 했지만요. 그러니 그걸 누가 보느냐에 따라 다른 거예요.nbsp부모의 야단이나 주변의 유혹에 넘어가면 이 길을 못 갑니다. 어머니가 ‘네가 꼭 내 죽는 꼴을 봐야 되겠냐’ 이러다가 설령 정말로 돌아가신다 해도, 이 길을 가려면 ‘네. 어머니는 성인이시니까 어머니 알아서 하십시오. 장례는 치러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해야 해요. 제가 지금 웃고 있지만 아주 냉정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길을 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질문자의 남편인 목사님은 한 가지 잘못한 게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의 길을 가려면 혼자 가지, 왜 이렇게 예쁜 여성을 데려다가 고생을 시켜요? 두 가지 길을 다 가려니까 그 분도 힘든 거예요.” nbspnbsp“그런 것 같습니다.”nbsp“그래도 이왕 갔으니까, 이제 질문자가 ‘남편’이라는 생각을 잊어버려야 돼요. 자꾸 ‘남편’을 내세우면 죽을 때까지 이 번뇌가 끝이 안 나요. 부처님은 결혼해도 부인을 버리고 갔다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부인이 출가해서 비구니가 됐어요. 질문자도 그냥 목사가 돼버리세요. nbspnbsp그렇게 관점을 딱 바꿔주는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같이 사는 것만 해도 고맙게 여기세요. 그리고 신부님이나 스님들처럼 그냥 자기 길 가도록 항상 응원해주세요. 아무 관계없는 신자들도 응원해주는데 하물며 함께 사는 아내가 응원해주지 못할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아이고, 저렇게 좋은 재능을 썩히니 아깝다. 제대로 하면 총장도, 교수도, 유명한 목사도 될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 하면 안돼요. 그런 재능을 다 버리고 가장 작은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길이 막혔다고 하지만 정작 이야기를 들어보니 질문자의 남편은 굉장히 훌륭한 분입니다. nbspnbsp아내로서는 좀 맘에 안 드는 게 이해는 됩니다. 안타까운 것도 이해는 돼요.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그리스도의 길로 잘 가는 길이에요. 한방에서 자는 사이면 목사님이 하는 이야기도 남편 이야기로 들리지 목사님 이야기로 안 들려요. 질문자가 자꾸 남편으로 보고 이야기를 하면 질문자도 힘들고 남편도 힘드니까 그냥 목사님으로 보세요.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한 목사님이잖아요.nbspnbsp저는 그런 목사님을 눈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없던데요. 그러니 좋은 목사님을 존경하는 자세로 뒷바라지 해주세요. 그렇다고 뭐 재물 같은 것으로 뒷바라지하려 생각하면 안 돼요. 고난을 묵묵히 감내함으로 해서 영성이 더 성숙하는 쪽으로 가도록 도와드리세요. 그렇게 관점을 바꾸셔서 이미 하느님의 은총을 듬뿍 받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게 좋습니다.”nbsp“네, 스님. 감사합니다.” nbspnbsp울먹이며 질문하던 여성 분은 스님의 답변을 듣고 마침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성당에서 이뤄진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에서 목사인 남편으로 인한 괴로움을 물었고, 스님은 예수님의 본래 가르침이 무엇인지 상기시켜 주며 질문자와 청중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감동적인 설법의 현장이었습니다. 정말로 종교의 구분을 초월한 야단법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약속한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질문을 하고 싶다고 손을 들었으나 기회를 얻지 못한 한 명이 더 있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만 강연을 마쳐야 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오늘의 대화를 통해 각자의 신앙이 좀 더 돈독해졌기를 바라면서 장소를 마련해준 성당 측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부처님이나 예수님은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했기에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니 오늘 대화를 통해 여러분들 각자의 자기 신앙이 좀 더 돈독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성당 측과 교우들, 신부님께 큰 감사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nbsp마침내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이 끝났습니다. 9시 반을 훌쩍 넘긴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스님의 싸인을 받고자 기다렸습니다. 한결 후련하고 편안해진 얼굴들... 밝은 미소가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nbspnbsp첫 번째 질문했던 목사님의 부인은 처음엔 스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좀 어리둥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 듣고 나니 “아, 내가 그동안 잘못 기도해 왔구나”라고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님 말씀대로 관점을 바꿔 보니 나의 고민이 고민이 아닌 것 같다. 목회자의 아내로서 거부할 수 없는, 거부해서는 안 되는 나의 십자가를 냉정하고 준엄하게 일러주신 것 같다”며 “스님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셨음 좋겠다”고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시했습니다.nbspnbsp윤시몬 신부님은 “스님 자신의 깊고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하시니까 더 힘이 실리는 것 같다. 종교를 떠나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예를 드시는 것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고 강연 소감을 말해 주었습니다. 특히 “낮부터 와서 준비하는 정토회 봉사자들을 보면서 진실한 종교 지도자 한 분의 영향력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 실감했다”며 “어렵고 힘든 분들이 와서 희망을 찾아가는 자리였던 것 같아 종교를 떠나 기쁘고 좋았다”고 말했습니다.nbsp이어서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에게 사인을 받고자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습니다. 사인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으로 그 마음을 받아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오늘 강연을 준비한 일산정토회 소속 봉사자들 모두가 십자가 아래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어 행사 진행이 만만치 않았을텐데 힘든 기색은 찾아보기 어렵고 다들 보람되고 기쁜 표정입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준비한 일산정토회 자원봉사자들nbsp이 날은 인천경기서부지역에서 올해의 마지막 강연이었습니다. 책 사인회와 기념 사진 촬영이 끝나자 10시가 다 된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스님은 함께 케익 커팅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봉사자들을 격려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을 총괄한 일산정토회 총무님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꽃다발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봉사자들이 스님에게 격려말씀을 부탁하자 스님은 오늘 강연 분위기가 참 좋았다고 칭찬을 한 후 낮에 일산 정토법당에 머물면서 남자 화장실을 사용한 소감을 이야기해 주면서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지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nbspnbsp“제가 오늘 일산 정토법당에 가보니 같은 층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에서 냄새가 너무 많이 나고, 휴지를 휴지통에 안 버려요. 변기 옆에 휴지통이 있고, 문에도 ‘휴지를 변기에 넣어주세요’라고 써 붙여놓았던데, 휴지를 변기에 넣거나 휴지통 안에 안 넣고 맨바닥에 마구 버려 놓았더라고요.nbspnbspnbsp정토회는 환경운동을 하는 단체인데 화장실에 휴지가 이렇게 널려 있으면 안 되겠지요. 우리가 늘 청소해서 깨끗하게 하든지, 건물에서 우리와 같은 층을 쓰는 사람들을 모아 교육을 시켜서 깨끗이 하든지 해야죠. 정토회가 없는 건물에 있는 공중 화장실 마냥 쓰고 있었어요. 우리가 사는 데를 늘 돌보고 가꿔야 합니다.nbsp절하고 참선한다고 수행자가 아닙니다. 항상 ‘지금, 여기’에 깨어있어야 해요. 누구든지 흐트러진 수건을 보면 바로잡아놓을 수 있어야죠. 공중화장실에 가더라도 휴지가 지저분하게 떨어져 있으면 정리해서 집어넣고요. 저는 비행기를 타면 화장실 청소를 할 때가 많아요. nbspnbspnbsp비행기 화장실에서는 휴지를 변기에 집어넣으면 안 되는데도 꼭 변기에 집어넣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변기에 바람이 빠져나갈 때 휴지가 거기에 붙어서 안 떨어집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걸 끄집어내서 휴지통에 집어넣고 손을 씻은 뒤 나옵니다.nbsp그런데 우리는 그런 일상생활이 잘 안 돼요. 꼭 청소하는 사람이 청소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유럽에서도 널려 있는 쓰레기를 주워서 휴지통에 넣으니까 유럽 사람들은 이래요. ‘스님, 하지 마세요. 그래야 청소하는 사람이 밥 먹고 살아요.’ 그런데 그건 제가 듣기엔 좀 엉뚱하고 안 맞는 소리 같아요. 일부러 어지르고 그걸 또 치우는 사람을 만들어서 일자리를 늘릴 필요가 뭐 있어요? 담배꽁초 버리지 말라고 써놓은 표지판 바로 밑에 보란 듯이 꽁초 한 개를 딱 갖다놨어요.nbspnbsp▲ 일산정토회 회원들과의 간담회nbsp수행은 고상하고 특별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수행이라고 하면 절을 몇 배 했느니 참선을 어떻게 얼마나 했느니 하는 걸 따지지만 이런 건 주로 기복적인 것을 따질 때 그렇게 하는 거예요. 수행이란 늘 일상에 깨어있고 자기 마음에 깨어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슬프거나 화가 날 때 자기가 사로잡힌 줄 바로 알아차리고 마음을 가볍고 기쁘게 갖는 게 수행이에요. 때로는 절도 하고 명상도 하지만 일상사에서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평소의 생활을 보면 깨어있는지 여부를 금방 알 수 있어요. 정토회는 생활불교를 하는 곳이니까 여러분들도 생활에서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nbsp강연 준비에 여념이 없어서 생활이 흐트러지지는 않았는지 모두들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강연이 끝났다고 모두가 들떠 있는 사이에도 행여 수행을 놓칠까봐 따끔한 일침을 놓아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어떻게 하면 작은 법당이라 하더라도 화합하는 법당이 될 수 있는지, 나날이 발전하는 법당이 될 수 있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먼저 배운 사람들은 많이 배웠으니 더 깨어있어야 하는데, 많이 배웠다고 꼭 더 나은 건 아니에요. 타성에 젖기 때문입니다. 늘 먼저 다닌 사람이 낫고 나중에 다닌 사람이 못하다면 발전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에 세웠던 모범을 유지하려면 먼저 다니는 사람이 모범이 돼야 해요. 먼저 다니는 사람이 모범이 됨으로 해서 뒤에 다니는 사람들이 따라배우면 사람이 아무리 많이 와도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일산정토회를 예로 들면 만약 일산정토회가 갈수록 나쁜 방향으로 간다면 먼저 다닌 사람이 모범이 못 됐다는 뜻이에요.nbspnbspnbsp점점 좋아지지 않는 건 새로 온 사람의 책임입니다. 먼저 다닌 사람보다 새로 온 사람이 더 잘 하면 갈수록 개선이 되는데, 시간이 흘러도 개선이 안 된다면 뒤에 온 사람들이 깨어있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먼저 다닌 사람들은 수준이 원래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니까 새로 온 사람들이 그것보다 나아져야 해요. 그래서 제자가 스승보다 늘 못하면 그 학파나 집단은 갈수록 쇠퇴합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나아야 발전해요. 그러니 ‘먼저 다니는 사람만 잘 하고 뒤에 다니는 사람은 못해도 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돼요. 앞서 다니는 사람들이 못 지킨 규칙을 뒤에 다니는 사람이 더 잘 지켜야 개선이 됩니다.nbspnbsp그리고 먼저 다니는 사람들은 모범을 보이되 자꾸 자기를 고집하면 안 돼요. ‘우리는 늘 그렇게 해왔으니 괜찮아’ 이러면 안 됩니다. 새로운 사람이 문제 제기를 해도 그게 원칙에 맞고 합당하면 ‘맞아, 그러네. 우리는 그저 다니기만 했지 제대로 못 했네’ 이렇게 받아줘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선후배가 조화를 이루어 발전할 수 있습니다. 선배가 자기를 고집하면 후배들이 답답해지고, 후배들이 우리는 책임 없다고 해서 무책임 의식을 갖게 되면 관계가 자발적이지 못하고 자꾸 명령조가 돼요. 자꾸 애들처럼 가르치려고 하다 보니 ‘요새 온 사람들은 수행을 안 해’라는 식으로 말하게 됩니다.nbspnbsp수행은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창조성도 있고 행복해지지, 시킨 대로 억지로 따라가는 방식은 활력도 떨어지고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렇게 선후가 잘 조화를 이루어 하도록 합시다.nbsp그리고 책임을 맡은 사람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책임 진 사람에게 무조건 복종하라는 게 아니에요. 어떤 일을 옆에서 비판하기는 굉장히 쉽지만 막상 책임 맡아서 해보면 쉽지가 않아요. 우리가 정부 비판은 많이 하지만 막상 정부 일을 맡아서 해보면 간단하지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총무니 팀장이니 해서 책임을 맡은 사람들을 소중히 여겨줘야 합니다. 다소 부족함이 있더라도 소중하게 여기고 항상 협조를 잘 해줘야 해요. 그리고 총무나 팀장들은 그게 특별한 지위가 아니라 대중에게 봉사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대중의 여론을 잘 수렴해줘야 합니다. ‘예 하고 합니다’라는 수행문을 명령조로 써먹으면 안 돼요. nbspnbsp임원은 항상 자발성에 기초하도록 북돋아주는 역할을 해야 하고, 대중은 임원의 이야기를 가능하면 잘 따라주고 협조해주는 분위기가 되면 조화를 이룰 수 있어요. 그렇게 안 되면 화합이 깨지고 분위기가 자꾸 경직돼요. 아래에서는 민주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항의하고, 위에서는 말 안 듣는다고 해서 서로 충돌하게 됩니다. 우리는 수행 공동체이니까 이런 것도 함께 살펴서 조화를 이루며 해나가시기 바랍니다.”nbsp늦은 시간까지 봉사자들을 위해서도 소중한 가르침을 들려 준 스님에게 모두들 큰 함성과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뒷모임을 마쳤습니다.nbspnbsp결국 스님은 10시 반을 넘겨서야 다시 차를 타고 서초법당으로 향했습니다. 강연은 끝났지만 이날따라 유난히, 예수님이 남긴 사랑과 희생, 부활의 메세지가 자꾸 마음 속에 되새김 되었습니다. 기도는 항상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그리고 “오직 그저, 사랑하라, 사랑하라...” 추운 밤이지만 스님이 뿜어내어 주신 따뜻한 기운이 몸과 마음을 포근히 감싸안아 주는 것만 같았습니다.nbspnbsp서울 정토회관에 11시가 넘어서 도착한 스님은 밤늦게까지 업무를 보다가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무척 피곤해 보여서 스님의 건강이 다소 염려가 되었습니다.nbspnbsp내일은 평화재단 청년포럼 주관으로 대전 충남대학교에서 열리는 전국 청년학교 수료식에 참가해 졸업 특강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nbsp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nbspnbspnbsp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nbsp

2015.11.29. 146,858 읽음 댓글 134개

2015.11.27 (오전) 남양주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 10시 30분부터 남양주에 위치한 경복대학교에서 남양주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저녁 7시부터는 일산 정발산 성당에서 일산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남양주 즉문즉설 강연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어제밤 진주에서 통일 강연을 마치고 새벽 2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밤을 꼬박 새며 새책 원고 집필 작업을 한 후 새벽 4시부터는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예불과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9시에는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남양주시로 향했습니다. 차 안에서는 밤새 원고를 봤다고 하며 깊이 단잠을 주무셨습니다.nbspnbspnbsp강연이 열리는 남양주시 경복대학교에는 10시 10분에 도착했습니다. 건물 1층 로비에서는 가장 먼저 총장님 이하 몇몇 학교 직원 분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스님을 총장실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담소를 나누기 위해 총장실에 들어가기 전, 정성스럽게 자필로 방명록을 남겼습니다. 미래를 이끌어나갈 청년들이 단순 지식보다 앞을 내다볼 수 있는 현명한 지혜를 쌓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보였습니다.nbspnbspnbspnbsp총장실에서 환담을 나누며 총장님은 “스님을 저희 학교에 모시게 되어서 영광이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스님은 새책 ‘야단법석’을 사인해서 선물했습니다.nbspnbsp▲ 경복대학교 총장님과의 환담nbsp어제 첫눈이 내린 후 갑자기 겨울의 날씨가 된 듯 칼바람이 몰아칩니다. 강연 2시간 전부터 밖에서 피켓을 들고 안내하는 분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며 밝게 웃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이 열린 경복대학교 우당아트홀nbsp추위에도 물러섬 없는 봉사자들의 열정을 보며 오늘 남양주정토회에서 어떤 마음으로 이 강연을 준비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강연은 남양주법당, 구리법당, 양평법당, 포천법당, 의정부법당 5개 법당에서 90여 명의 봉사자들이 준비했습니다.nbspnbsp▲강연 준비로 분주한 봉사자들nbsp이른 시간부터 강연을 기다리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50대 여성 한 분은 “그동안 유투브로만 즉문즉설을 들어왔는데, 오늘 스님께 직접 말씀을 듣고 가정에 돌아가 아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빙그레 웃어보였습니다.nbsp10시 30분이 되자, 사회자의 환영 인사와 스님 소개 영상으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400여 명의 관객들은 열렬한 환호로 뜨겁게 스님을 맞아주었습니다.nbspnbspnbsp무대에 오른 스님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감기 걸리지 않도록 건강을 당부하고, 즉문즉설의 취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오늘은 총 7명의 질문자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질문한 20대 여성 분은 자신은 친구들과 있을 때 고민을 들어주는 입장인데 더 많은 고민을 들어주는 스님은 스스로의 고민을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물었고, 두 번째로 질문자한 60대 남성 분은 7년간 막내아들의 출가를 반대하다 한 순간에 마음이 바뀌어 허락한 자기의 마음을 하소연 한 후 출가한 아들의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세 번째로 질문한 50대 여성 분은 무서움이 많아 집에서 혼자 있지 못한다며 어떻게 이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지 물었습니다.nbspnbsp네 번째로 질문자한 40대 여성분은 호스피스의 직업 상 아무 준비 없이 가족과 이별을 할 때 슬퍼하는 유가족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지 물었고, 다섯 번째로 질문한 중1, 초2의 아들을 둔 엄마는, 아들 둘의 사이가 소원한 것이 큰 걱정이라며 질문했고, 여섯 번째로 질문한 40대 남성분은 개신교에는 헌금, 천주교에는 교무금, 불교에는 보시가 있는데 어떤 마음으로 돈을 내야 하는 것인지 물었습니다.nbspnbsp사전 신청한 질문자의 마지막 질문이 끝나고 2분이라는 시간이 남자, 그 짧은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 스님은 즉석에서 한사람 더 추가 질문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기독교에 회의를 느껴 혼자 절에 다니고 있는데 불교에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명쾌한 스님의 답변에 질문자들의 표정은 밝아졌고, 관객들은 질문자와 함께 울고 웃으며 공감과 감동의 2시간 30분이 금새 지나갔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그 중 기독교에 회의를 느낀 마지막 질문자의 물음과 스님의 답변 내용을 소개합니다. 강연장을 찾은 불교 신자 뿐만 아니라 천주교, 개신교 신자들도 이 질문에 충분히 공감을 하고 이해를 할 수 있어서 너무 명쾌했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nbsp“신앙에 대한 의문입니다. 저희 집안은 다 기독교인데 저 혼자 버티면서 절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에서 하나님한테 빌면 원하든 대로 이뤄진다고 하는 것에 회의를 느꼈고 가족들이 강요하는 것도 싫어서 교회에서 등을 돌렸어요. 그런데 저 역시 염원이 있으면 부처님께 이뤄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그런 기복적인 면이 불교 이치상 어긋난다고 아까 말씀하셔서 지금 혼란스럽습니다.”nbsp“이치로 따지면 기독교나 불교나 다 어긋납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 세상 사람들은 다 복을 받고 싶어 해요. 남의 복을 훔치는 것도 아니고, 복 달라고 한 대서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주는지 안 주는지도 확실치 않으니 그걸 굳이 나쁘다고 말할 필요는 없어요.nbspnbspnbsp기복은 부처님이 가르치신 ‘인연과’에도 어긋나고, 예수님의 원래 가르침에도 어긋나요.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복을 받으려 들기보다는 복을 지어야 해요. 원래 기독교 가르침에 따르면 복을 짓고도 칭찬받으려 들지 말아야죠. 좋은 일을 하고 이 세상에서 대가로 받은 상은 작지만, 천국에 가서 받은 상은 매우 크다고 하잖아요. 이 말의 핵심은 많이 받고 적게 받고에 있지 않아요. 좋은 일을 하고도 칭찬받으려 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셔서 나중에 천국에 오면 큰 상을 내릴 테니 이 세상에서 작은 이득에 연연하지 말라는 가르침이에요. 불교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와 같아요. ‘내가 복을 짓고도 복 받을 생각을 안 하면 그 복은 한량이 없다’ 이걸 무루복이라고 합니다. 표현 방법이 다를 뿐 가르침의 내용은 비슷해요.nbspnbsp복 달라고 빌면서 부르는 이름만 부처님, 하나님이 서로 다르지, 사람의 심리는 똑같아요. 그런데 그거 하려고 굳이 교회에서 절까지 올 필요 있어요? 개인적으로 교회가 싫어서 절에 오는 것은 괜찮지만, 와놓고 하는 행동은 똑같잖아요. nbspnbspnbsp‘하나님, 복 주세요’, ‘부처님, 복 주세요’ 하고 기도하면,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어요. 되면‘ 가피 입었다’, ‘은혜 입었다’ 하고 좋아하지만 안 되면 ‘기도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네. 믿어봐야 소용 없네’라고 해요. 이 말은 자기 신앙을 부정하는 거예요. 하나님이나 부처님에게 나를 바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종 부리듯이 부리려드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걸 내놔라, 안 내놓으면 너를 안 믿겠다’ 그건 신앙이 아니에요. 복을 비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 속내를 살펴보면 참 신앙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라는 겁니다.nbsp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기독교 신자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 오늘도 주님의 은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야죠. 감사 기도를 한다는 것은 복을 이미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게 믿음이에요. 이미 받았기 때문에 감사 기도를 하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몰라서 그렇지, 이미 복을 한량없이 받은 거예요. 이미 복을 받았으니 기도하면서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 없이 감사 기도를 하면 됩니다. 그 분은 모든 걸 다 아시는 분이니까 내 마음도 이미 다 아시거든요.nbspnbspnbsp성경에 ‘기도할 때 은밀히 하라’ 이런 말씀도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걸 조목조목 짚어서 이야기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마이크 대놓고 큰 소리로 기도해요. 그 분이 전지전능하다는 걸 못 믿어서 조목조목 이야기 안 하면 잊어버리고, 크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못 알아듣는 나 같은 수준일 거라고 생각해서 그래요. 그러나 그 분은 이미 내 마음을 다 아시는 전지한 분이시잖아요.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관세음보살님은 눈이 천 개라서 다 보시고, 손이 천 개라서 다 구제하십니다. nbspnbspnbsp그런 분이 왜 내 요구를 안 들어주실까요? 쥐가 쥐약 든 고구마를 먹고 싶어 안달하는데 입이 안 닿아서 ‘하나님, 부처님, 이거 좀 먹게 해주세요’하고 빌면 저렇게 간절히 원하니까 먹도록 그 소원을 들어주어야 할까요?nbsp우리가 원하는 것이 때로는 안 이루어지는 편이 좋을 때가 굉장히 많아요. 간절히 빌어서 결혼했는데 지금 결혼 생활도 골치 아프고, 간절히 빌어서 애 낳았는데 지금 애 때문에 죽겠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기도할 때는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해야 해요. 전지전능하신 분이 보셔서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는 게 나으면 그리 해주시고, 안 이루어지는 게 나으면 또 그렇게 해주세요. 그러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도 감사하고 안 이루어져도 감사하니 신앙에 어긋날 이유가 없어요. 절과 교회를 오락가락하며 전전할 이유가 없습니다.nbspnbsp제가 조계사에서 대학생들 지도 법사로 있을 때 한 학생이 시위를 하다가 3년 형을 구형받았어요. 그 어머니가 날마다 조계사에 와서 ‘우리 아들 빨리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3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나왔습니다. ‘부처님 가피를 입었다’며 어머니가 크게 기뻐했어요. 그런데 그만 3개월 만에 교통사고가 나서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그러자 그 어머니가 저를 붙들고 ‘내가 나오라고 빌어서 아들을 죽였다’며 울었습니다. 이게 ‘인생지사 새옹지마’입니다. 감옥에서 나오는 게 꼭 좋다고 말할 수가 없었어요. 더 큰 재앙을 피하려고 들어가게 된 건지도 모르잖아요.nbspnbsp하나님을 믿고 부처님을 믿어서 기도하는 우리는 부처님 혹은 하나님의 뜻을 모릅니다. 그러니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해요. 이게 신앙 고백이에요. 질문자도 교회 가서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든지, 절에 가서 절하면서 ‘부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계속 행복해지고 고민도 줄어듭니다. ‘문화가 달라서 나는 교회보다 절이 좋다’ 이런 건 자기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거니까 괜찮아요.”nbspnbsp“교회는 사랑이라고들 말하는데 겪어보니 이중적인 느낌이 많이 들어서 싫어요.”nbsp“절에 가도 마찬가지예요.” nbspnbsp“하나님의 가르침이 거짓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용서와 사랑으로 구원한다는 하나님이 안 믿는다는 이유로 불신자들을 불에 던져버리는 이야기를 듣고 환멸을 느꼈어요. 그 신이 과연 자비의 신인가 의문이 계속 들고요.”nbsp“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불교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힌두교이고, 기독교라 하지만 대부분은 유대교에 가깝습니다. 질문자가 다닌 교회는 이름만 기독교일 뿐 유대교라고 생각하면 돼요.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입니다. 참된 크리스천이라면 천당에 갔을 때 스님도 와 있다면 반가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교도가 여기 어떻게 왔지? 안 믿어도 오는데 괜히 믿었다’ 이러기 쉽습니다. 크리스천이라면 천국에서 저를 만나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교도도 구원하시니 참으로 너그러우신 분입니다’ 이렇게 기뻐해야 합니다. 이게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nbspnbspnbsp크리스천들과 기독교가 그리 못 하는 건 현실입니다. 마찬가지로 불교도 원래의 가르침을 잘 따르지 못해요. 그러나 이건 인간의 문제이지, 부처님이나 하나님의 문제는 아니에요. 예컨대 시어머니가 절에 지극정성으로 다니면서 정작 며느리 대하는 건 형편없다면 그 며느리는 절에 안 다닙니다. 반발심으로 교회에 가버려요. 질문자는 가족들이 교회에 극성이면서 실제 말이나 행동은 다른 걸 보고 실망했잖아요. 그건 인간의 죄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래도 다시 돌아간다면 하나님께서 다 용서해주십니다. 질문자가 절에 좀 다닌다고 해서 자비하신 하나님이 벌주시지는 않아요.nbsp옛날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제게 했어요. ‘스님, 하나 물어볼게요. 제가 고3 손녀딸 때문에 입시 합격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성취가 안 될 것 같아요. 손녀딸이 사실은 교회에 다니거든요.’ nbspnbsp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부처님이 아무렴 할머니 마음 같을까요? 고등학생이 교회 좀 다닌다고 해서 붙을 시험도 떨어지게 만드는 건 부처님이 아니에요. 그러면 대자대비하시다는 표현을 안 써야죠.’nbspnbsp그러니 그런 거 걱정 마시고, 교회든 절이든 질문자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세요.”nbsp“주옥같은 말씀 감사합니다.” 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질문자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청중들도 공감이 컸는지 크게 박수를 쳤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종교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지다 보니 종교의 본질에 대해 많은 것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니 2시간 30분이 지났고 드디어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이 조금 부족했는지,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변화된 시대에 우리는 종교에 대해, 세상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다가가면 좋을지 추가적으로 더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융합의 시대를 설명하면서 ‘크리스천부디스트’라는 사람들의 등장을 이야기한 부분은 청중들의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습니다.nbspnbsp“옛날에는 일단 결혼하면 남편이 신혼 첫날밤에 죽어도 평생 재혼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결혼해서 아이 낳고도 이혼하고, 재혼도 할 수 있어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도 할 수 있어요. 옛날에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 되는 게 불가능했지만 요즘은 다른 나라 사람도 될 수 있고, 다른 나라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낳을 수도 있어요.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미국 가서 살면 ‘코리안아메리칸’이라고 해요. 이렇게 시대가 바뀌고 있습니다.nbspnbsp종교도 마찬가지예요. 옛날에는 기독교 신자는 무조건 기독교만, 불교 신자는 무조건 불교만 믿어야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기독교 신자로 자란 사람이 불교를 믿어도 되고, 그 반대도 됩니다. 그걸 배신이라고 한다면 한국 기독교인들은 전부 배신자입니다. 조상들이 전부 유교 아니면 불교를 믿었으니까요. 나는 배신 안 했어도 어머니나 할머니나 증조할머니처럼 가족이나 조상 중 누구 한 사람은 반드시 배신했어요. 이걸 따지면 말이 안 됩니다.nbsp그러니 여러분들은 뭘 해도 다 괜찮아요. 기독교 믿다가 불교로 바꿔도 되고, 불교 믿다가 기독교로 바꿔도 되고, 기독교와 불교를 동시에 믿어도 돼요. 이중국적과 같습니다. 지금은 한국과 미국 사이에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지만 앞으로는 일부 허용하게 될 거예요. 그것처럼 신앙은 기독교를 믿고 마음공부는 불교를 통해 하면 ‘크리스천부디스트’라고 합니다. nbspnbspnbsp미국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건 너무 가혹해요. 자기가 태어나서 성장해온 토대인 기독교도 소중하고, 불법 공부도 너무 소중한 거예요. 그래서 크리스천부디스트라는 이름이 만들어졌어요. 맨해튼에 있는 유니온 신학대학에 가보면 크리스천부디스트들이 많이들 공부하고 있고, 그 주제에 대한 연구도 활발합니다. 저도 거기서 강연을 했어요. 한편 신앙은 불교로 가지되 기독교 실천 활동이 너무 좋아서 기독교 신자가 된다면 ‘부디스트크리스천’이 되겠죠. 그래도 괜찮아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nbspnbsp제가 20년쯤 전에 중국에 가보니 공산당원들은 종교를 못 가진대요. 그런데 불교사상을 이야기해보면 마르크스 철학하고 유사한 면이 있잖아요. ‘세상이 다 연관되어 있다, 고정불멸하는 것은 없다’ 이런 원리가 비슷하다고 막 감동하기에 불교 믿으라고 했더니 자기는 공산주의자여서 절대로 안 된대요. 불교 신자로서 공산주의자가 될 수도 있고, 공산주의자로서 불교 신자가 될 수도 있지 않냐고 해도 절대로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nbspnbsp‘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옛날에 사회주의는 계획경제, 자본주의는 시장경제라고 해서 사회주의가 시장경제 하면 수정주의자라고 비난받았어요.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사회주의면서도 시장경제를 하잖아요. 그러니 공산당원 하면서도 불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nbspnbsp20년 전 당시에는 말이 안 된다고 했지만 요즘은 중국 공산당원들 중에서도 불교 신자들이 꽤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허용이 안 돼도 실제로는 믿는 사람들이 많아요.nbspnbspnbsp이걸 융합이라고 해요. 미래 학문의 핵심은 융합입니다. 요즘 생물과 화학을 합쳐서 생화학이라고 하듯이 인문학과 자연과학도 융합이 되고, 종교와 과학도 융합되어 새로운 것이 나올 겁니다. 미래의 시대는 새로운 시대, 창조의 시대입니다. 지금까지처럼 분열해서 장벽을 쌓는 시대가 아니라 모든 장벽을 허물고 서로 융합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시대예요. 이미 시대는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여러분들 머릿속은 옛날 그대로 굳어 있어요. 저는 승려이긴 하지만 불교만 고집하지 않고, 종교인이지만 종교만 고집하지 않아요. 이렇게 앞서 나가니까 여러분들이 강연장에 이렇게 찾아들 오잖아요.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도 조금 사고의 폭을 넓히세요. 그런다고 자기 신앙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예요. 불교 신자로서 성경을 얼마든지 볼 수 있어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는 책이 성경인데 그걸 왜 안 봐요? 또 기독교 신자로서 불경을 봐야 해요. 인류의 귀중한 유산을 습득하지 않으면 자기만 손해예요. 앞으로 폐쇄적인 사람들과 개방적인 사람들이 경쟁하면 시간이 좀 걸려도 결국은 개방적인 사람이 승리합니다.nbspnbsp남북도 마찬가지예요. 북한은 폐쇄적이고 남한은 개방적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남한이 유리해져요. 그런데 개신교보다는 천주교가 앞으로 매력이 훨씬 커질 거예요. 천주교는 자기를 지키지만 그러면서도 좀 개방적이니까요. 개방적인 것은 자기와 다른 것 중에서 유리한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계를 벗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서,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있는 거예요. 그렇게 여러분들이 관점을 가져보면 좋겠어요.nbspnbspnbsp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가 약간 복잡할 수 있어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종교 다원주의’라고 해서 기독교 신앙에 어긋난다고들 하거든요. 그러나 그렇게 너무 배타적이 되면 지금 무슬림들의 일부처럼 극단적인 근본주의로 향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제는 한 차원을 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대와 다른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자녀들도 우리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자기 정체성을 갖되 개방적인 사람이 되도록 키워야 합니다. 개방성을 강조하다 자칫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흐지부지되기 쉽고, 정체성을 키운답시고 너무 배타적으로 하면 폐쇄적이 되어 발전하지 못해서 문제가 됩니다. 자기 정체성은 갖되 개방적이어야 해요. 그런 관점을 갖고 여러분 모두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 덕분에 오늘 즉문즉설 강연은 종교학 강의가 된 것 같습니다. 출가한 아들 때문에 근심걱정이 많았던 할아버지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통해서는 불교에서 말하는 출가 정신이 무엇인지 깊이 새겨들을 수 있었고, 마지막 질문자의 기복 신앙에 대한 회의감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이고, 변화된 시대에 어떤 관점을 갖고 종교를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치고 나가는 한 분에게 오늘 강연을 들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저도 어릴 적부터 기독교를 믿어 왔지만 늘 의문이 들었던 점이 있었는데, 오늘 스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본래 가르침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어요. 말끔하고 개운해진 느낌입니다. 크리스천 부디스트가 되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며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nbspnbsp중년의 부부는 “질문 하나하나가 다 우리 사는 이야기라 참 좋았다. 스님께서 명쾌하게 이야기 해주시는 데 속이 시원하고 내 머리가 다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고 말하면서 서로 마주보며 밝게 웃기도 했습니다.nbspnbsp이어진 책 사인회는 난방이 되지 않아 추운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밝은 얼굴로 질서정연하게 사인을 받았습니다. 스님은 한 분 한 분과 눈을 마주치며 정성껏 사인도 해주고, 환한 웃음으로 감사의 마음도 전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오늘은 질문 내용 중에 진정한 보시의 의미를 물었던 내용이 있어서 그런지 준비된 책도 한권도 빠짐없이 완판되었고, 특히 스님의 새책 ‘야단법석’은 일찌감치 완판이 되면서 책을 구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구매한 책을 한아름 든 사람들이 사인을 기다리며 길게 줄을 섰습니다.nbspnbsp사인회가 끝나고 스님은 구리법당, 의정부법당, 양평법당, 남양주법당 순서로 봉사자들과 차례대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 밝은 표정에 보람이 가득해 보였습니다.nbspnbspnbsp봉사자들은 급하게 다음 일정으로 떠나는 스님을 감사한 마음으로 배웅했습니다. 이어 강연장을 뒷정리를 모두 마치고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대부분이 “스님의 말씀을 듣고 가볍고 행복해진 관객들의 표정을 보는 것이 참 좋았다” 라고 하면서 “이보다 더 좋은 전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봉사의 기쁨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남양주를 출발한 스님은 곧바로 저녁 강연이 열리는 일산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3시 쯤 일산 정토법당에 도착해 원고 교정 업무와 각종 보고서들을 체크하며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저녁 7시부터는 정발산 성당에서 일산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nbsp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nbspnbspnbsp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nbsp

2015.11.28. 72,602 읽음 댓글 57개

2015.11.26 진주 통일의병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경남정보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진주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했습니다.nbspnbsp오늘도 새벽 예불과 108배 정진,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평화재단에서 아침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오전 내내 회의 및 미팅을 연이어 가졌습니다.nbspnbsp오후 1시 30분에는 서울을 출발해 진주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도중 하늘에서 펑펑 눈이 내렸습니다.nbspnbspnbsp첫눈이 내린다며 모두가 기뻐하는 순간이었지만, 스님은 창밖 구경을 하지 못하고 계속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nbsp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풍경은 감탄사를 절로 자아내게 했습니다. 첫눈을 만끽하며 부지런히 내려온 까닭에 약속 시간인 6시 20분에 무사히 진주 경남정보고등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진주 경남정보고등학교nbsp먼저 교장실로 이동해 이순덕 교장선생님과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장소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했고, 교장선생님도 “스님께서 학교를 방문해 주신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영광”이라며 기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 경남정보고등학교 이순덕 교장선생님nbsp교장선생님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며 학생들 지도의 어려움을 이야기했고, 스님은 “오래 전부터 청소년 교화소를 대안학교처럼 운영해보는 것을 계획했었다”고 하면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보다는 부적응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내년에 기회가 되면 이 학교 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최근 들어 가장 추웠던 오늘, 저녁 7시가 되자 경남정보고등학교 대강당에는 300여 명의 진주 시민들이 자리한 가운데 큰 박수와 함성으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통일의병 백왕순 사무총장의 인사말과 장소를 대여해준 경남정보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인사말, 내빈소개, 통일시민학교 안내에 이어 통일의병 고문인 법륜 스님의 활동 소개 영상을 끝으로 스님이 큰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올라왔습니다.nbspnbsp스님은 날이 추운데도 불구하고 강연장에 오신 분들에게 인사를 한 후, 오늘 강연은 주관 단체의 입맛에 맞게 공동체의 미래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늦가을 날씨가 봄 날씨처럼 계속 따뜻하다가 어제, 그제부터 갑자기 추워졌어요. 추운데 오신다고 수고들 하셨습니다.nbspnbspnbsp오늘 저를 강사로 초청한 통일의병이라는 단체는 ‘한반도에 다시 전쟁은 없어야 되겠다. 평화가 정착되도록 해야 되겠다’ 하는 목표와 ‘우리가 이 평화를 딛고 통일을 이룸으로써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조직된 단체입니다. 그 단체에서 주관해서 오늘 이 강연회가 마련된 것이니까 오늘은 우리들의 관심사인 통일에 관해 함께 대화하는 시간입니다.”nbspnbsp그리고 혹시 질문자 중에 개인적인 고민이 너무 커서 꼭 질문을 해야겠다면 통일의병학교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질문을 받겠다고 하자 청중도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nbspnbsp첫 번째 질문자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으로 삼촌이 자신에게 욕설과 막말을 한 이후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통일이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느끼면서도 북한의 핵 개발, 군사훈련을 보면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고, 북한의 인권 문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세 번째 질문자는 통일에 관심이 많은 30대 아가씨였는데, 통일에 관련된 서적이나 자료를 찾아가다 보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나 많다는 걸 알게 되었고, 과연 통일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며 30대 청년으로써 무엇을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nbsp개인적 고민에 대한 질문보다 통일에 대해 궁금해하는 질문이 많았던 탓에 간단히 웃음이 터져나오긴 했지만 다소 진지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nbspnbsp특히 스님은 두 번째 질문자의 답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인도적 지원에 대한 관점과 함께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도 한민족으로서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북한의 핵개발 모습이나 남침을 위한 군사 훈련을 보면 왜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과연 인도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는지 스님께 속시원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nbspnbsp“첫째, 비록 적국의 국민이라도 굶어죽게 되었을 때는 지원을 해서 굶어죽는 건 면하게 하자. 둘째, 병들어 죽어간다면 약품을 지원해줘서 죽는 것은 막도록 하자. 또 아이들이 전쟁 통에 배우지 못하면 비록 적국의 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기초적인 교육은 받을 수 있도록 학습 자료는 지원하자. 전 세계가 이렇게 합의를 본 것이 UN 인권 헌장입니다. 내 형제나 내 나라 사람, 우방국의 경우에는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어요. 위에서 이야기한 경우는 모두 ‘우리와 적대적인 나라의 사람들이라 하더라도’라는 게 전제입니다.nbspnbspnbsp‘적국 사람이라도 전쟁 중에 민간인은 공격하지 말자. 적국의 병사라도 부상을 당했으면 치료해 주자. 포로는 보호하다가 돌려주자. 적진에 있는 사람들이 굶어죽으면 식량을 지원하자. 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으면 약품을 지원하자. 물이 없으면 물을 지원하자.’nbspnbsp옛날엔 적국에 물이 떨어지거나 양식이 떨어지면 공급을 봉쇄해서 죽이는 전략으로 이용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물이나 약은 주자고 합니다. 이를 가리켜 ‘인도적 지원’이라고 해요. 이것의 전제는 ‘종교가 다르더라도, 나라가 다르더라도, 적이라도 그렇게 하자’입니다. 사람이 굶어죽어가는지만 보지 그 사람이 불교인인지 기독교인인지, 흑인인지 백인인지, 중국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아군인지 적군인지는 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게 인도적 지원의 원칙입니다. UN에 가입한 나라들이 그렇게 하자고 합의를 본 것이 UN 인권 헌장입니다.nbspnbsp인도적 지원의 원칙은 딱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정말 굶어죽느냐? 정말 병들어죽느냐? 정말 물이 떨어졌느냐?’ 하는 인도적 위기, 즉 생존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정말로 사실일 때만 지원합니다. 두 번째, 위기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냥 지원해 주면 중간에 다 새어나가서 정말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도달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그래서 우리가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게 그 문제를 개선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는지 확인하는 검증, 즉 모니터링이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조건만 갖춰지면 적이라도 지원을 해야 합니다.nbspnbsp예를 들어 내가 우리나라의 고아원에 먹을 것을 가져다주면 그것은 인도적 지원이라고 안 합니다. 누군가 자기 아들을 도왔다고 해서 그것을 인도적 지원이라고는 안 해요. 인도적 지원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도와야 할 아무런 의무가 없는 상대가 위와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도와서 같이 문제를 푸는 것을 말합니다. 이게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니까, 혹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니까 이렇게 하자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사람답기 위해서 이렇게 하자는 겁니다. 성질이 나서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사람답게 하자는 거예요.nbspnbsp부부가 머리채 잡고 멱살 잡아가며 싸우더라도 밥 먹을 때 되면 휴전하고 애 밥은 해 준 뒤 싸우자는 겁니다. 안 싸우면 더 좋지만, 싸우게 된다면 싸우더라도 아이들은 보호하자는 거예요.nbsp그러니 인도적 지원을 하는데 있어서 ‘북한이 핵을 개발했느냐?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냐? 북한이 독재국가냐?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했느냐? 북한이 군비를 증강했느냐?’ 이런 건 논할 필요가 없어요. ‘북한 사람들이 정말 굶어죽을 위기에 처했느냐? 아이들과 노인, 임산부의 영양실조가 심각해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느냐? 북한에 정말 콜레라나 성홍열이나 장티푸스가 발생했느냐? 약이 없다는 것도 정말이냐?’ 이게 첫 번째로 검토가 되어야 하고, 두 번째로 ‘우리가 보낸 식량과 약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됐느냐?’가 검증이 되어야 합니다.nbspnbspnbsp우리는 주로 첫 번째 기준을 두고 논쟁을 해요. ‘굶어죽기는 뭘 굶어죽어? 군량미 비축하려고 일부러 거짓말한다.’ 주기 싫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말이 무조건 틀렸다는 게 아니라 확인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 확인이 되면 보내고, 보낸 뒤에는 그게 어떻게 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nbsp북한에 식량 100㎏을 보냈는데, 군인이 20㎏을 가져가버리고, 20㎏는 중간에 누가 시장에 팔아버리고, 나머지 60㎏는 고아원에 전달이 되어서 아이들이 그것을 먹고 영양실조를 극복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지원에 대한 평가는 다 다릅니다.nbspnbsp‘우리가 준 식량이 군대로 갔다.’‘우리가 준 식량을 간부들이 시장에 팔아서 돈벌이를 했다.’‘우리가 준 식량이 고아원에 잘 전달되어서 아이들의 영양실조가 개선이 되었다.’nbsp모두 각자 원하는 부분만 보려고 들어요. 지원을 해야 한다는 사람은 ‘우리가 보낸 식량이 고아원에 전달되어서 아이들의 영양실조가 개선되었다’고 강조하고, 지원을 하기 싫은 사람은 ‘그것 봐라, 우리가 보낸 식량이 군대로 가고 시장에 풀렸다’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nbspnbspnbsp그래서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데 조금 관심을 갖고 있는 대통령한테는 지원해서 효과가 난 것만 계속 보고하고, 지원에 조금 부정적인 입장인 대통령한테는 지원 물자가 군대나 시장으로 흘러들어간 것만 계속 보고하니까 ‘줄 필요 없네. 주지 마라’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북한의 사정을 보면 군인도 굶어죽었습니다. 군인도 사람이니까 굶고 있다면 인도적 지원의 대상이에요. 또 생각해보면 내가 보낸 100㎏이 고아원에 전량 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지원을 함으로 해서 굶어 죽어가던 아이들의 영양실조 문제 개선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습니다.nbsp저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활동을 1996년부터 시작했어요. 1994년부터 1998년 사이 북한에서는 식량부족과 질병으로 인해 300만 명이 죽는 대량 아사 사태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두고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처음에는 국제 사회가 북한을 탐탁찮게 여겨서 안 주려고 했는데, 사태가 너무 심각하니까 지원을 했어요. 남한에서도 지원을 했고요. 그렇게 3년 정도 지원을 해서 1999년부터 대량 아사는 막았습니다. 아직도 굶어죽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2000년대 들어오면서 대량 아사는 멈췄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평가가 이렇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식량지원도 하고 쌀과 비료도 주었는데 북한은 미사일 만들고 핵 개발했다. 북한은 정책이 하나도 안 변했다.’ 그래서 지원을 끊은 겁니다.nbspnbsp그런데 이런 평가는 맞지 않습니다. 인도적 지원의 평가 기준에 따르면 ‘우리가 이렇게 인도적 지원을 했더니 아사 사태가 어느 정도 멈췄고 병이 어느 정도 잡혔다’ 이렇게 되어야 해요. 인도적 지원의 목표에 따른 성과가 평가가 되고, 지원을 했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안 된 이유를 분석해봐야 합니다. 지원한 양이 적었기 때문인지, 중간에서 다 빼돌렸기 때문에 아무리 지원해 봐야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인지를 확인하는 식으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해요. ‘우리가 지원을 했는데 북한은 미사일 쏘고 핵무기를 개발한다’ 이렇게 결론내려 버리는 것은 인도적 지원의 목적과 안 맞는 평가입니다.nbspnbspnbsp국제 사회에서는 지금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압력수단으로 삼아 무기화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각국은 무기화를 합니다. 미국도 늘 인도적 지원은 정치와 관계없다고 주장하지만, 제가 미국에 20년째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인도적 지원을 무기화합니다. 대화가 되면 지원을 하고, 말 안 들으면 끊어요. 그 때는 모니터링에 문제가 있어서 지원을 끊는다고 말하죠. 그래도 미국에서는 누구도 ‘말 안 듣기 때문에 인도적 지원을 끊는다’는 노골적인 말은 하지 않습니다. UN 인권 헌장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nbspnbsp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은 솔직해서 좋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국가지도자나 종교지도자가 ‘말도 안 듣는 사람들한테 왜 주나?’, ‘공산주의자들한테 왜 주나?’, ‘하나님도 안 믿는데 왜 주나? 굶어죽어도 싸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의식 수준이 아주 전근대적인 겁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시민의식의 측면에서 보면 그냥 강남에서 땅 좀 가지고 있다가 졸부 된 수준입니다. GDP만 세계 선진국 대열에 들어있지, 시민 의식 수준은 후진국 수준이에요.nbspnbsp모든 사람이 ‘저 놈 죽여야 한다’라고 해도 불교 신자라면 자비로 감싸야지요. 기독교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매단 사람을 보고도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라고 하셨어요. 종교 없는 사람들이 ‘저 놈 죽이자’고 아우성쳐도 불교 신자나 개신교 신자나 천주교 신자는 나서서 ‘인도적 지원은 신앙과 일치하는 것이니까 지원을 하자’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게 많은 불교 신자들이 많은데 악을 쓰면서 지원을 반대하고, 서울의 대형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이 깊다는 개신교인들도 악을 쓰면서 반대합니다. 그걸 보면 그 사람들의 신앙이 뭔지, 과연 신앙이 있기는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nbspnbspnbsp대한민국의 발전 정도로 볼 때 시민의식이 인도적 지원은 찬성하는 수준이 되어야 해요. 시민의식 수준이 그 정도 못 된다면 적어도 종교인들만이라도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나서는 의식 수준은 되어야 합니다. 종교의 원래 가르침을 이해한다면 그래야 할 텐데, 종교인들이 더 나서서 반대합니다. 북한의 정치를 비난하는 건 괜찮습니다. 그런데 인도적 지원을 반대하는 것은 본인의 신앙과 시민의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거예요.nbsp우리나라 사람들이 ‘미워서 못 주겠다’고 말하는 건 화끈하고 솔직하긴 합니다. 미국처럼 미워서 안 주면서도 ‘모니터링이 잘 안 돼서 못 준다.’ 하고 괜히 딴 소리 하는 것보다 나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미국은 북한하고 저렇게 적대적이지만 지금 인도적 지원이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 금지할 수도 없습니다. 미국의 정체성과 미국적 가치가 훼손되기 때문에 금지하지 못합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나라는 인도적 지원을 금지시켜 버립니다. 김영삼 대통령 때 강릉 잠수함 사건이 나자마자 지시를 내려 적십자 지원을 중지시켜 버렸어요. 그래서 우리가 문제제기 했더니 6개월 후에 다시 열어놨어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들어와서는 천안함 사건이 나니까 5.24조치를 내려서 인도적 지원을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로는 지금까지 우리가 대북 인도적 지원을 단 한 번도 못했습니다.nbspnbspnbsp그래서 이명박 대통령 당시에는 비판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구관이 명관이다 싶어요. 그때는 중간 중간 중단되긴 했지만 그래도 하긴 했거든요. 중단시키면 우리 종교인들이 청와대에 찾아가서 대통령이나 수석 면담 요청해서 항의하고, 통일부 장관을 설득해서 허용을 받아낼 수 있었어요. 그렇게 우리가 한 번 지원하면 다음에는 막히고, 또 그러면 찾아가서 설득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 문제를 들고 청와대 문 앞에도 못 갑니다. 나서서 이야기하는 종교인도 아무도 없습니다. 지레 겁을 먹었는지, 이야기해 봐야 귀에 안 들어가리라 생각해서 포기한 건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전에는 지원을 신청해놓고 허가가 안 되면 ‘왜 허용을 안 해 주느냐? 대한민국이 이거 밖에 안 되느냐?’면서 항의라도 했는데 이 정부 들어선 신청도 한 번 못했습니다. 분위기를 보니까 도무지 될 것 같지 않아서요. 이런 식으로 가는 건 옳지 않습니다.nbspnbsp북한의 행태를 갖고 인도적 지원을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국제적인 의식 수준에 비해 너무 떨어지는 것입니다. 또 인도적 지원은 첫째, 우리나라의 도덕성을 위해서 해야 됩니다. 이웃에 있는 같은 민족도 안 도우면서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에 가서 돕는다고 하는 걸 보면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우습겠어요?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조선일보가 언젠가 1면에 이런 기사를 실었습니다. 우리가 해외에 지원한 ODA 자금 중에 북한에 지원한 금액이 1.68라는 거예요. 조선 일보가 나서서 비판할 정도예요. 제가 옛날에는 미국이나 UN기구에 가면 인도적 지원 좀 하라고 요청도 하고 설득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가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말만 꺼낼라치면 ‘한국정부는 얼마나 합니까? 당신은 얼마나 합니까?’라고 물으니까요. 거리도 가깝고 같은 민족인데 왜 너희는 안 하면서 나한테 하라고 하냐는 거지요. 우리도 지원을 하면서 좀 부족할 때는 요청하기가 쉬운데, 우리가 하나도 안 하고 있으니까 뭐라 말할 입장이 안 됩니다.nbspnbsp두 번째, 통일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대로 북한 정부에 불만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남한에서 지원하면 ‘아이고, 그래도 동족이 낫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자기들이 굶어죽든지 말든지 한국은 아무 관심이 없으니까, 북한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컸다가 요즘은 식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건 다 중국 덕분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시장의 모든 물건이 다 중국제이니까요. 북한이 굉장히 민족주의적이긴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중국으로 경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사람들은 ‘중국은 사회주의 천국이다’라고 합니다. 중국에 가보니까 개도 이밥, 즉 쌀밥을 먹더라는 거예요.nbspnbspnbsp인도적 지원은 통일로 가는 굉장히 중요한 수단입니다. 북한의 민심을 얻는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에요. 우리와 미국과 중국이 협력해서 핵 문제를 막고자 북한을 봉쇄하더라도, 그런 중에도 인도적 지원은 열려 있어야 합니다. 봉쇄하면 할수록 인도적 지원의 효과는 더 나잖아요. 그러니 한쪽은 막더라도 한쪽은 열어줘야 그걸로 민심을 잡는데, 우리는 봉쇄만 하고 있어요. 중국은 북한을 봉쇄하면서 뒷문은 열어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흐르면 북한은 더 중국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이건 통일전략적으로도 올바른 방법이 아니에요.nbspnbsp감정적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요. ‘얻어먹었으면 고맙다고 인사는 해야 되는데 이 사람들은 인사도 할 줄 모른다. 달라는 놈들이 엎드려 절해야 되는데, 우리는 거꾸로 주는 놈이 절하고 얻어먹는 놈이 큰소리친다. 그런 놈들한테 왜 주느냐?’nbspnbsp저도 이해가 갑니다. 굶어죽는 주민들만 아니면 팍 끊어버리고 싶고 만나고 싶지도 않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 지도부를 보고 주는 게 아니라 그 지도부 뒤에 있는 북한주민을 보고 주는 거예요. 그런데 수행을 안 하는 사람들은 그 지도부를 탁 보고는 북한 지원을 하다가도 다 반대로 돌아서버렸습니다. 특히 종교인들이 그랬습니다. 자기가 저보다 먼저 북한 돕기를 시작해서 열정적으로 하다가 저까지 끌어들여놓고 정작 자기는 지금 북한 돕기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몇 번 북한을 가보고는 화가 나버린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간부들의 행태를 보는 게 아니라 그 뒤에 말 못하고 고통받는 국민들을 보고 ‘그들의 처지가 어떤가? 이 지원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나?’ 이런 관점에서 인도적 지원을 결정해야 합니다.nbspnbspnbsp반대로, 아무리 같은 동족이고 아무리 북한이 달라고 조르더라도 인도적인 위기상황이 아니면 인도적 지원을 안 해야 합니다. 인도적 위기상황이 아니라면 인도적 지원이 아닌 개발 지원을 해야 합니다. 북한에 수로를 판다든지, 저수지를 만든다든지 하는 걸 개발지원이라고 해요. 개발지원은 서로 합의가 되어야 하는 것이에요. 인도적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아무리 사이가 좋고 친해도 인도적 지원이 아니라 개발 지원으로 지원 형태를 바꿔야 합니다.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인도적 위기 상황이 닥치면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하고요. 이렇게 인도적 지원과 개발지원은 다릅니다.”nbsp“감사합니다.”nbspnbsp인도적 지원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 필요성, 효과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인도적 지원을 해도 군대에 가기 때문에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니 이것은 한쪽 측면만 바라본 것에 불과했음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렇게 세 명의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벌써 2시간이 다 지났습니다. 마칠 시간이 되자 마지막으로 스님의 당부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합의 통일을 하려면 상대인 북한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가 노력한 만큼 통일은 빨리 올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통일의병 활동에 적극 참여해줄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북한을 설득해서 남북이 합의통일을 하면 중국이 우리에게 간섭할 이유도 없고, 또 남북은 중국하고도 일본하고도 미국하고도 관계를 다 잘 개선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합의통일을 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런데 합의통일을 하려면 상대의 요구를 좀 들어줘야 해요. 지원도 좀 해 줘야 하고, 신분도 보장해 줘야 합니다. 지배층은 신분을 보장해 줘야 하고, 밑에 있는 사람은 득이 되도록 해 줘야 됩니다. 동독 국민이 통일에 동의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통일 되면 자가용을 가질 수 있다. 통일되면 우리도 유럽으로 여행할 수 있다’ 이게 통일의 가장 큰 요인이었어요. 대한민국이 가난한 사람도 좀 잘 살도록 하는 복지국가가 돼야 북한사람들이 볼 때 ‘따로 살 거 뭐 있어? 남한 가면 제일 못 살아도 저 정도로는 사니까 우리도 같이 사는 게 좋겠다’ 이렇게 되어서 통일의 유인효과가 됩니다. ‘거기도 못 사는 사람은 굶어죽더라. 남한이 잘 살면 뭐해? 우리가 남한 가면 거지될 텐데’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통일하기도 그만큼 어려워집니다.nbsp통일이 되면 남한에도 이익입니다. 우선 경제적으로 이익입니다. 또 우리 대한민국을 좋은 나라로 만드는 것이 북한주민이 통일에 동조하게끔 하는 데 유리해요. 따라서 nbsp‘대한민국을 복지국가로 만들 거냐’ 하는 것과 ‘통일할 거냐’ 하는 것은 배치되는 게 아니라 상생의 요인으로써 같이 가야 하는 겁니다.nbspnbsp우리가 이런 걸 두루 생각하고 강력하게 통일을 추진하면 통일이 빨리 올 겁니다. 더 많이 노력하면 더 빨리 올 것이고, 조금 노력하면 천천히 올 것이고, 노력 안 하면 안 오겠지요. 아무 노력도 안 했는데 통일이 온다면 통일은 될지 몰라도 통일로 인한 새로운 고통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나라가 독립할 때 겪었던 아픈 경험들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지금 정신을 좀 차려야 합니다.nbspnbspnbsp그리고 앞으로 선거 때마다 여러분은 어느 당의 공천만 받으면 그냥 뽑아주는, 그래서 주민이 투표할 필요도 없는, 그런 국민이 되지 마세요. 적어도 우리가 선출할 수 있는 권리,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시민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통일의병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통일 문제를 바라보며 답답했던 부분들에 대해 쉽게 풀어준 스님에게 청중들은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교복 차림으로 강연에 참석한 중학생에게 오늘 강연을 듣고 난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친구들과 통일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답변하기 어려웠는데 강연을 듣고 나니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명쾌해졌다”고 했습니다. 50대 남성도 “오늘 강연을 들으니 앞으로 어떤 자세로 통일을 대해야 할지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통일에 대한 가슴 뛰는 설렘을 갖게 되었다며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친 후 대중과 스님은 함께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불렀습니다. 오늘 강연이 진주 지역에서 많은 통일의병들이 나오도록 하는 작은 계기가 되길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nbsp이어 책 사인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은 강연장을 찾아준 분들에게 정성껏 사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사인회를 마치고 스님은 오늘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밝은 표정의 얼굴 속에는 통일의 희망을 만들어간다는 보람과 기쁨이 가득해 보였습니다.nbspnbspnbsp사진 촬영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는 봉사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를 건네며 격려도 해주었습니다.nbspnbsp추위에 떨며 외부에서 안내 봉사를 한 분부터 오늘 행사 준비를 도와주기 위해 멀리서 달려와 준 통일의병들의 모습을 보며, 통일은 먼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작은 노력으로 시작된다는 다짐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언론에 크게 기사화되지도 않고,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도 않고, 그저 미미한 움직임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정성을 다해 한발 한발 내딛는 통일의병들의 모습이 오늘은 유난히도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nbspnbsp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진주를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습니다. 밤새도록 고속도로를 달려 새벽 2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 10시 30분에 남양주 경복대 우당아트홀에서 남양주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저녁 7시에는 정발산 성모성탄성당에서 일산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 nbsp※nbsp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nbspnbspnbsp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nbsp

2015.11.27. 40,178 읽음 댓글 36개

2015.11.25 (저녁) 광주 청년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스님은 오전에 전남지방경찰청 초청강연과 오후에 목포해양대학교 초청강연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전남대학교 컨벤션홀에서 광주 지역의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연이어 3번의 강연을 했기 때문에 피곤할 법도 한데 스님은 더 힘을 내어서 전남대학교 컨벤셜 홀로 들어섰습니다. 곳곳에 서 있는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봉사자들을 보고선 금새 환한 웃음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 전남대학교 컨벤션홀nbsp이번 강연은 청년정토회와 광주 지역의 청년들이 서포터즈가 되어 한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모두들 3시부터 강연 준비를 시작해 신속하게 일 나누기를 하고 무대 점검과 사전 리허설을 마친 후 밝은 표정으로 찾아오는 청년들을 맞이했습니다.nbspnbspnbsp저녁 6시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지만 청년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의 청중들도 많이 참석해 400석의 자리를 꽉 채우고도 자리가 부족해 계단에 앉아야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nbspnbsp강의가 시작되자 스님은 청중들에게 “저녁식사는 하셨어요?”라며 안부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청중석을 살펴보더니 늙은 청년들이 보인다고 하면서 웃음을 보인 뒤 오늘 청년 강연의 취지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은 청년정토회가 주관하는 강연입니다. 일반인들이 매일 시부모 모시는 문제, 고부 갈등, 부부 갈등 같은 이야기만 하니까 청년들한테 안 맞는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런 자리에 청년들이 들어가서 배울 것도 있지만 청년들에게 따로 시간을 내어서 청년들의 고민만 집중적으로 다뤄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오늘 광주에서 청년 즉문즉설 강연이 잡힌 겁니다. 오늘 참석하신 분들 중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참관만 하세요. 원래는 참석도 안 시켜야 되지만 자리가 비어서 참석은 허용했으니 그렇게 아시고 오늘은 35세 이하 청년 대학생들만 질문할 수 있도록 양해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괜찮으시죠?”nbsp“예.”nbspnbsp스님이 질문할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자 총 6명이 손을 들었습니다.nbspnbsp첫 번째 질문자는 21살 남학생이였는데 꿈을 크게 잡았지만 이게 허황된 것인지 아닌지 확인받고 싶어 하였고, 두 번째 질문자는 23살 여학생으로 주변 상황에 의해 마음이 불편해져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생각이 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전남대학교 1학년 재학중인 남학생으로 부모님께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물었고, 네 번째 질문자는 31살 한국으로 유학 온 중국인 여학생으로 부모님이 있는 중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한국에 남아서 취직을 해야 할지 걱정이라며 질문했고, 다섯 번째 질문자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으로써 매사에 부정적이고 죽음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 남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물었고, 여섯 번째 질문자는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여성으로써 사주를 보러 가서 안 좋은 이야기를 듣고 와 신경이 계속 쓰인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사전에 신청했던 질문자들의 질문이 모두 끝나고 시간이 남자 스님은 즉석에서 추가 질문을 받았습니다. 일곱 번째 질문자는 남자 교사로써 꿈이 없이 살아왔는데 주변에서 꿈을 갖고 살라는 말 때문에 자신이 잘 살고 있는 건지 궁금하고 또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을 물었고, 여덟 번째 질문자는 27살 직장인 여성으로 자신이 결혼하고자 하는 사람이 도인의 길을 가려고 하는데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함께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오늘은 그 중에서 꿈이 없어서 고민이고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에 대해 물었던 남자 교사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지금까지 꿈이 없이 살아온 게 고민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은 장래희망을 쓸 때 다 자기의 꿈이며 진짜 원하는 걸 적던데, 저는 꿈이 없어서 부모님의 기대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그냥 제 꿈이라고 적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할 때도 다른 친구들은 정말 자기가 원하는 전공에 따라 진학하는데 저는 그냥 수능성적에 맞춰서 대학을 갔습니다.nbspnbsp어쩌다 보니 제 꿈도 아니었지만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35세인 지금은 학교 교사가 되었는데 이제 와서 딜레마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강연을 다녀봤지만, 흔히 말하는 성공하거나 행복하다는 사람들은 우선 꿈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일단 꿈이 없어 고민입니다.nbspnbsp두 번째로, 저는 교사로서 학생한테 ‘너는 꿈을 가져야 된다. 너의 꿈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이런 단계를 밟으면 좋겠다’는 등의 말을 하지만 정작 교사인 저는 꿈이 없습니다. 과연 꿈을 갖는 것만이 정말 행복한 길인지, 또 꿈을 갖지 않는다면 실패한 삶인지 고민입니다.”nbsp“그렇지 않아요. 꿈은 없을수록 좋아요. 있는 게 병입니다. 질문자는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토끼며 노루며 다람쥐는 다 꿈이 있어서 저렇게 살고, 나무는 뭐 꿈이 있어서 저렇게 자는 게 아니에요. 없는 게 자연스러운 겁니다.”nbsp“그런데 모든 책에서는 꿈이 있는 게 정상이라고 하니까요.”nbsp“그것은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니까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nbspnbsp“많은 사람들도 ‘항상 꿈을 가지라. 꿈을 좇아서 살라’고 하니까요.”nbsp“부처님은 그런 이야기 안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뭘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질문자가 자기 반에서 조사해보면 ‘선생님, 저는 꿈이 없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아이가 있었나요? 없었나요?”nbsp“사실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더 많긴 합니다.”nbspnbspnbsp“그래요,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더 많잖아요. 그런 아이들에게 질문자는 용기를 줘야 합니다. ‘꿈이 있는 게 문제지, 꿈이 없는 건 아무 문제도 안 된다. 선생님도 꿈이 없었지만 이렇게 선생님이 되어서 너희들을 가르치지 않니? 걱정하지 마라’ 이렇게 격려를 해 줘야합니다.nbsp현재 한국 사회의 교육이 잘못되어서 많은 젊은이와 아이들이 질문자처럼 ‘저는 꿈이 없어요’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고민이 지금 사회적으로 큰 문제입니다. 교육이 잘못돼서 그래요.nbspnbsp질문자는 교사가 되길 잘했습니다. 반에서 조사를 해 보세요. 3분의 1, 심하면 절반 이상은 꿈이 없습니다. 그게 지극히 정상적이에요. 학교 교육이 제대로 있기 전인 옛날에 시골 농가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은 특별히 따로 꿈이 없었어요. 그냥 자라서 시집가고, 자라서 농사지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잘못된 교육 때문에 사람들이 병들게 됐어요.nbspnbsp제가 학교 다닐 때 운동을 굉장히 하고 싶어 하는 아이가 한 반에 한둘씩 있었어요. 소위 딴따라라고 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도 한 반에 한둘씩 있었고, 미술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었어요. 이렇게 특별한 아이들이 60명 중 부문별로 1, 2명 꼴로 있었어요. 그런 특기 있는 아이들이 중학교 때까지는 그 특기를 살리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부모가 그걸로 못 먹고 산다며 강력하게 반대해서 그 특기를 못 살리고 다 이과로 진학해 공대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시절에는 문과보다 이과가 우세했거든요.nbspnbsp그런데 우리가 이제는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해졌어요. 사람들이 먹고 사는 데만 전전긍긍해서는 행복하지가 않으니까 이제 ‘꿈’을 생각하게 된 겁니다. ‘나는 의사지만 사실은 음악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는 음악을 해서는 못 먹고 살기 때문에 의사가 되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 어릴 때 못 이룬 꿈을 생각해서, 자녀 세대에는 뭘 하고 싶은 사람은 그걸 할 길을 열어주자고 하게 됐어요.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있으면 그걸 해라’ 이런 분위기가 된 겁니다.nbspnbsp그런데 최근에 운동이나 예술을 해서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번 사람들이 많다 보니 부모나 교사들이 돈 욕심에 미쳐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골프를 시킨다, 테니스를 시킨다, 피아노를 시킨다 해요. 그러면서 자꾸 꿈이 없는 애들한테 ‘꿈을 가지라고 강요하니까 아이들이 도로 고민에 빠졌습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억지로 배우고 있는지 몰라요. 집중적으로 지도하면 아이들은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쯤 올라가서 진짜 본격적으로 자기 선택을 해야 될 때가 되면 다 지쳐서 나가떨어집니다. 그래서 다시 갈등이 시작돼요. 이게 잘못된 욕심이라는 겁니다. 전체가 미쳐서 ‘꿈을 가져라 꿈을 가져라’ 이렇게 강요하는 게 잘못됐다는 거예요.nbspnbsp물론 아이들 중에는 어릴 때부터 독특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고,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어요. 제가 시골에서 살 때 우리 윗집 총각은 학교도 안 다니면서 그렇게 노래를 잘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런 걸 아무도 안 알아줬기 때문에 그 재능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했어요. 그런 특별한 ‘끼’는 극소수에게 있고, 다수에게는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거 하라면 이거 하고 저거 하라면 저거 해요.nbspnbsp질문자는 특별한 ‘끼’가 없으니까 뭘 해도 됩니다. 선생님 하라면 선생님하고 공무원 하라면 공무원하고,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한 가지밖에 못하는 사람이 좋아요? 이것저것 다 하는 사람이 좋아요? 스님이 딱 불경밖에 모르는 게 좋아요? 성경 이야기도 하고 불경 이야기도 하고 과학 이야기도 하는 게 좋아요?”nbsp“여러 가지 하는 게 좋아요.”nbsp“그래요. 미래의 학문은 융합적인 게 좋아요. 그러니 질문자는 아무 문제가 없고, 선생님으로서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가져라’ 이런 이야기도 절대 하지 마세요. 다른 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해서 아이들이 질문자에게 물으면 이렇게 말해주세요.nbspnbsp‘꿈이라는 건 없어도 돼. 그런데 너 뭐 좋아하니?’nbsp‘좋아하는 거 없어요.’nbsp‘너는 욕심이 없구나. 아주 훌륭하다’nbspnbsp이렇게 격려를 해줘야 합니다.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면 ‘좋다. 한번 해 봐라’ 이렇게 격려해주면 됩니다. 꿈이 있는 아이가 인생이 괴로운 법입니다. 야구선수 되고 싶은데 집에서 뒷바라지해줄 형편이 안 되면 괴로워해야 하잖아요. 특별히 되고 싶은 게 없는 것보다 좋은 게 없어요.nbspnbspnbsp그러니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질문자는 ‘‘저는 걱정 없는 게 걱정이에요’ 이러는 것과 같아요. 질문자는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이 그렇게 ‘꿈이 없어요’ 할 때는 공감하지 못하는 다른 선생님들보다 훨씬 더 잘 격려해 줄 수 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갖고 있는 고민은 ‘저는 이런 꿈이 있는데 실현을 못해요’가 아니라 ‘저는 꿈이 없어요’인 사회가 됐습니다. 교육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몰라요. 꿈이 없는 게 왜 문제고, 고민 없는 게 왜 고민입니까? 자꾸 ‘고민해라. 꿈을 가져라’ 하고 몰아붙이니까 그래요.nbspnbsp도의 최고 경지는 할 일이 없어지는 거예요. 할 일이 없어진다고 해서 논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가자’ 하면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가는 겁니다. ‘안 하겠다’하는 것은 그걸 안 하고 대신 해야 할 다른 일이 있다는 뜻이에요. 다시 말하면 이건 할 일이 있는 사람입니다. 할 일이 없는 사람은 ‘가자’ 하면 가고, 가다가 중간에 ‘돌아 가자’ 하면 도로 옵니다.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느냐고 화내지 않습니다. 다른 할 일이 없으니까 ‘이거 하자’ 하면 이걸 하고, ‘이거 그만 두고 저거 하자’ 하면 이걸 계속할 이유가 없으니 그만두고 저걸 합니다. 그게 도인입니다.nbspnbspnbsp물을 네모난 그릇에 부으면 네모가 되고, 둥근 그릇에 부으면 둥글게 되듯이, 정해진 모양 없이 형편에 따라 되는 겁니다. 이게 최고의 경지입니다. 질문자는 최고의 경지, 도인의 경지에 이를 소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알았습니까?”nbspnbsp“예, 알았습니다.” nbspnbsp“아무 문제가 없고, 선생님으로서도 아주 좋아요. 그런데 질문자가 헛된 생각으로 만들어 놓은 책이니 교육이니 하는 상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지금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없는 꿈을 만들려고 몸부림치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 질문자가 ‘나를 봐라. 나는 꿈 없이도 교사가 되었고, 꿈이 없기 때문에 꿈속에 살지 않고 항상 현실에 깨어있다. 괜찮다.’ 이래야 해요. 그래서 질문자는 내일이라도 선생님 하라면 선생님 하고, 공무원 하라면 공무원 하고, 농사지으라면 농사지으면 됩니다. 이게 도예요.nbspnbsp그래서 저도 여러분한테 주제를 정해주지 않고 아무거나 물으라고 하잖아요. 이거 물으면 이거 이야기하고 저거 물으면 저거 이야기하니 얼마나 좋아요? 그러니 질문자는 아주 훌륭한 선생님입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사세요. 더 이상 엉뚱한 소리는 듣지 말고요.” nbspnbsp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연이어 박수가 계속 쏟아져 나왔습니다. 질문자의 인상도 활짝 펴졌습니다. 특히 물이 그릇의 모양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는 것이 도의 최고 경지라는 설명을 하면서 질문자는 그런 경지에 이를 소질 있다고 하자 청중도 웃고, 질문자도 활짝 웃었습니다. 무엇보다 잘못된 교육이 얼마나 아이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지 되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nbspnbsp마음이 가벼워진 질문자는 질문이 한가지 더 있다면 또 다른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굉장히 안 좋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억압 속에서 자랐고, 저는 말씀드렸다시피 꿈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산 경향이 있었어요. 그런데 20살 넘어 대학생이 되고 자기 정체성이 생기면서 보니까 아버지와 굉장히 안 맞아서 충돌이 잦아졌어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말을 섞다 보면 서로 감정이 상하고 말싸움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말을 안 하고 있습니다.”nbspnbsp“그건 잘못됐어요. 아버지와 말을 안 하면 불효지요.”nbsp“모르겠습니다. 그걸 알지만 말을 하면 더 감정이 악화되니까요.”nbspnbspnbsp“말을 하는데 왜 감정이 악화됩니까?”nbsp“표현방법이 잘못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nbspnbsp“아니오, 질문자가 아버지한테 감히 주장하고 나서니까 그래요. 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네, 알았습니다, 아버지. 네, 네’ 이러면 되지요.”nbsp“그런 말씀을 스님 책에서 읽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직 스님의 경지에 오르지 못해서 그런지 생각처럼 잘 안 되더라고요.”nbsp“질문자는 꿈이 없다더니 꿈이 있네요. 아버지하고 싸워서 이기려는 꿈이 있잖아요.” nbspnbsp“그 꿈을 가지고 살면 될까요?”nbsp“아니오, 그 꿈은 헛된 꿈이니까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버지와의 갈등에는 질문자가 배울 점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완고한 게 질문자는 좋았어요?”nbsp“좋지 않았습니다.”nbsp“그러면 질문자가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대할 때 완고한 게 좋을까요?”nbsp“안 좋습니다.”nbsp“그런데 질문자는 아이들한테 완고한 편이지요?”nbsp“예.” nbspnbspnbsp“질문자는 아버지가 완고한 것을 싫어하면서도 그대로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아버지를 싫어하면서 아버지를 그대로 흉내 내고 살게 될 겁니다. 질문자가 정말 해야 할 일은 아버지와 싸우는 게 아닙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완고한 게 싫었다면 ‘나는 학생들이나 내 아이에게 완고하지 않아야 하겠다’ 이렇게 자기를 점검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내 인생에 너무 간섭해서 내가 억압을 받았다면 ‘나는 학생들이나 내 아이들에게 절대로 간섭하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배울 수가 있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게 싫었다’면서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그대로 따라 하고 있잖습니까. 아버지가 뭐라고 했을 때 아버지에게 반발하면 할수록 질문자는 아버지의 붕어빵이 될 겁니다.nbspnbsp아버지를 안 닮으려면 아버지를 안 미워해야 해요. 아버지가 완고하다는 사실을 알면서 거기에 대응을 한다는 건 질문자가 더 완고하다는 듯입니다. 그 완고한 영감한테 이기려 드니 얼마나 시건방진 생각입니까?nbspnbspnbsp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성격이 저런 줄을 아니까 이제는 기죽지 말고 ‘알겠습니다, 아버지 네, 그렇게 하지요’ 이렇게 말씀드리고 질문자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됩니다. ‘빨리 들어오너라’ 하시면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일 다 본 뒤에 늦게 들어가면 됩니다. ‘왜 늦게 들어왔니?’ 하면 ‘아이고, 오늘 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내일은 빨리 들어와’ 하면 ‘알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내일 늦게 들어가면 됩니다. 질문자가 질문자 인생의 주인이니까 구애받을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부모의 걱정은 질문자가 받아줘야 합니다.nbsp아버지가 나한테 지나치게 간섭해서 내가 어릴 때 참 안 좋았다 본인도 앞으로 아이들한테 간섭하지 마세요. 아버지가 엄마한테 너무 완고하게 하는 게 안 좋았으면 질문자도 결혼하면 아내한테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마세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상태로는 그렇게 할 확률이 100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nbsp“고치겠습니다.”nbspnbspnbsp“오늘 질문 잘 하셨어요. 고치는 방법은 아버지한테 대들지 않는 것입니다. 아직도 질문자의 마음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질문자도 똑같은 업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짜 아버지 안 닮았나, 닮았나?’ 하는 걸 알 수 있는 건 아버지를 대면했을 때 알 수 있어요. 질문자가 아버지를 만났을 때 자연스러우면 안 닮아져가는 것이고, 아버지를 만났을 때 반발이 생기면 똑같이 닮아간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뭐라 그러든 질문자는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이렇게 하세요. 옛날처럼 비굴하게 복종도 하지 말고, 반발도 하지 말고, 그냥 아버지 말씀은 아버지 말씀으로 받아들이되 나는 내 인생을 살면 됩니다.”nbsp“감사합니다.”nbspnbsp대화 중에 스님이 ‘결국 아버지의 성질을 고치려고 하는 것이 질문자의 꿈이였군요’ 라고 하자 더 큰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아버지의 완고한 고집을 꺽으려는 질문자는 아버지보다 더 완고한 고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이 뒷통수를 한 대 툭 치는 것 같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우리들도 평소에 그렇게 남을 탓하고만 있지 않았는지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무거운 문제도 가볍게 만드는 스님의 재치 있는 답변에 질문자는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와 밝아진 얼굴로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청중들도 스님과 질문자가 대화를 나누는 중에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에 시원함을 느꼈는지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벌써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평소와 달리 약속한 2시간 보다 10분 일찍 강연을 마친 스님은 마지막으로 지금이 좋은 줄을 아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면서 청년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청년 여러분, 지금 공부하려니 힘들지요?”nbsp“네.”nbsp“취직도 어렵지요?”nbsp“네.”nbsp“연애도 하고 싶은데, 못하지요?”nbsp“네.”nbsp“결혼도 못하고 있지요?”nbsp“네.”nbspnbsp“아이고, 불쌍하네요. 저는 늙어서 연애 안 해도 되고, 결혼 안 해도 되고, 취직 안 해도 되고, 공부 안 해도 되니 참 좋아요. 그런데 누가 여러분한테 ‘공부도 연애도 취직도 결혼도 할 필요 없는 70대 노인 할래? 아니면 연애도 공부도 취직도 결혼도 해야 하는 20대 청년 할래?’ 하고 물으면 어느 걸 할래요?”nbsp“20대 청년이요.”nbsp“그래요, 그러니까 젊은 여러분들은 저보다 지금 좋은 조건에 있다는 겁니다. 늙은 저도 이렇게 웃으면서 사는데 젊은 여러분이 왜 인상 쓰며 살아요? 지금 충분히 좋은데요. 그래도 저보단 나으니까 저 같은 처지를 하라면 안 하잖아요.nbspnbspnbsp연애 고민, 취직 고민, 공부 고민 모두 다 젊은 시절에 할 수 있는 거예요. 늙으면 그런 고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고민 안 할 수 있는 늙은이가 되라면 다 안 한다잖아요. 그런데 저는 늙은 게 좋아요. 그런 거 하기 싫기 때문이에요. nbspnbsp그러니 늙은 사람은 늙은 게 좋아야 하고, 젊은 사람은 젊은 게 좋아야 합니다. 자기 세대와 자신에 대한 긍정성을 가져야 해요. 우리는 몇 살이고 어떤 처지이든 누구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힘겹게 생각하지 마세요. 도저히 못 하겠으면 와서 저랑 바꿔요. nbspnbspnbsp나이든 사람의 입장에서는 ‘20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공부도 하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취직도 하겠다. 막노동을 해도 그게 낫겠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면 여러분들은 결코 불행한 세대가 아닙니다. 그러니 다 좋을 때인 줄 알고 행복하게 사세요. 감사합니다.”nbsp스님의 유머가 섞인 따뜻한 격려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리며 기쁜 마음으로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이후 강연장 밖에서는 스님의 책이 구비 되어있는 도서 부스에서 책을 사려는 사람들과 스님의 책에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특히 스님의 신간 ‘야단법석’은 모두 완판이 되어서 책을 구매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강연장을 나가는 한 청년은 중국인 유학생의 질문에 대한 답변 중에서 “자신이 좋다고 생각해서 한 선택이 항상 좋지만은 않다. 상황에 따라 좋아질 수도 있고 안 좋아질 수도 있다. 그래서 어느 한 선택만이 꼭 옳은 선택이라 할 수 없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며 소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또 질문을 했던 한 학생은 “질문하기 전에는 매우 답답했는데, 지금은 괜한 것으로 힘들어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며 한층 밝아진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nbsp책 사인회가 끝나고 강연을 준비했던 서포터즈들과 함께 단체사진 촬영이 있었습니다. 청년들답게 광주 청년 파이팅을 신나고 우렁차게 외쳤습니다.nbspnbsp▲ 오늘 강연을 준비한 청년정토회 광주전라 지부 자원봉사자들nbsp스님이 수고했다고 악수를 건네자 다들 신나서 스님의 손을 잡아보고자 아우성이었습니다. 스님과의 악수 한 번에 너무나 기뻐하는 봉사자들을 보니 서포터즈 역할을 하느라 강연을 자세히 들을 수는 없었지만 누구보다도 주인된 마음으로 강연에 함께한 그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전남대학교를 빠져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하루 종일 3번의 강연을 연이어 하느라 많이 피곤하셨는지 차 안에서는 깊은 잠에 드셨습니다. 밤새 고속도로를 달려 밤 12시 30분이 되어서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해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 7시부터 오전 내내 평화재단에서 실무자들과 회의와 미팅을 가진 후 저녁 7시에는 진주 경남정보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진주 시민들을 위해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nbsp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52개 도시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강연 일정을 확인한 후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강연장으로 오세요.nbspnbspnbsp강연은 선착순 무료 입장이며, 질문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연장에 직접 오셔서 사전 신청을 하셔야 합니다.nbsp

2015.11.27. 57,102 읽음 댓글 31개

2015.11.25 (오후) 목포해양대학교 초청강연

nbsp안녕하세요. 스님은 오전에 전남지방경찰청 초청 강연에 이어서 오후 3시부터는 목포해양대학교에서 마련한 초청강연에 참석해 대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후 3시가 되자 목포해양대학교 제2공학관 대강당에는 스님의 강연을 듣고자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어 빈자리 없이 빼곡이 앉아 있었습니다. 자리가 부족해 많은 학생들이 뒤에 서서 강연을 함께 들었습니다.nbspnbsp▲ 목포해양대학교 제2공학관nbsp그동안 스님은 외부 초청 강연에 응해 오지 않았는데, 목포해양대학교는 전체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니 단체 생활을 통해 겪는 어려움이 많다며 간절히 강연 요청을 해와서 광주에 내려온 김에 특별히 시간을 내게 되었습니다.nbspnbsp스님의 소개 영상에 이어 사회자가 스님을 소개했습니다. 400여 명의 학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로 스님을 반겼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환한 웃음과 함께 인생은 다섯가지 제약을 제외하고는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된다고 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인생에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은 없습니다.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돼요. 그런데 ‘자기 좋을 대로’에는 다섯 가지 제한이 있습니다. 첫째, 태어난 사람은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되지만 남을 해칠 자유는 없어요. 죽이거나 때리면 안 됩니다. 둘째, 누구나 다 이익을 추구할 자유는 있지만 남에게 손해를 끼칠 자유는 없습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으면 안 됩니다. 셋째, 행복을 추구할 자유는 있지만 남을 괴롭힐 자유는 없습니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하면 안 돼요. 넷째, 말할 자유는 있지만 말로 남을 괴롭힐 자유는 없어요. 욕설하거나 사기 치거나 거짓말하면 안 돼요. 다섯째, 술 마실 자유는 있지만 술 마시고 취해서 행패부릴 자유는 없습니다. 술 마시고 취해서 남을 괴롭히면 안 돼요. 이 다섯 가지를 제외하고는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원하는 대로 생활하면 됩니다. 남도 그렇게 사는 것을 간섭하면 안 됩니다.nbspnbspnbsp그런데 우리는 깨우쳐주는 것과 잘못을 지적해서 야단치는 것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서너 살짜리 어린아이라도 친구의 장난감을 빼앗으면 야단을 쳐야 하는데 그건 내버려두고, 공부를 못하면 야단을 치니까 가치관에 혼란이 생기고 사회가 혼란스러운 거예요. 소위 청소년 학교폭력이라고 하는 게 별 거 없어요. 다른 아이를 때리는 것, 다른 아이의 물건을 빼앗는 것, 성추행하는 것, 욕설하는 것밖에 더 있어요?nbspnbsp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너무 남의 눈치 보고 살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 인생에 너무 간섭할 필요도 없습니다. 누구나 다 어떤 사람을 좋아할 권리가 있어요. 어떤 사람이 나를 좋아해서 나도 같이 좋아했는데 그에게는 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할 권리가 있는 거예요. 그걸 가지고 배신이라고 하면 안 돼요. 그러니 ‘그 동안 나와 재미있게 지내줘서 고맙다. 잘 가라’ 이렇게 말해줘야 합니다. 그걸 못 놓고 끈적끈적하게 붙어서 울고불고 하지 마세요.nbspnbspnbsp그리고 내가 상대를 아무리 좋아해도 상대가 싫다고 하면 따라다니지 말고 그만둬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남을 괴롭힐 자유는 없습니다.nbspnbsp이렇게 인생을 조금 교통정리하면 사는 게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산 속의 작은 다람쥐도 잘 사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힘들어하며 사는 건 사람의 존엄을 해치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고뇌하는 게 있으면 마음껏 이야기를 하세요. 함께 이야기하면서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건 고뇌할 일이 아니구나’, ‘이건 이렇게 하면 해결되겠구나’ 하고 스스로 답을 찾거나 애초에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찌푸렸던 얼굴이 좀 펴질 거예요.nbspnbspnbsp이렇게 여러분들이 문제제기하는 내용에 따라 대화를 하는 것이지, 정답은 없습니다. 다 자기 좋을 대로 살면 돼요. 부모님이 나를 20살까지 키워준 것은 고마운 일이니까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20살이 넘었으면 독립된 인간이에요. 20살이 넘었는데도 내내 부모 밑에서 시키는 대로 살면 그건 부모의 노예지 자유인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다 20살이 넘은 대학생이니까 자유인이에요. 자유롭게 살되,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자기 인생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아닙니다. 자, 그런 관점을 가지고 대화를 해봅시다.”nbsp스님은 서두에서 먼저 인생을 어떻게 살면 좋은지 관점을 명확히 잡아주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스님이 이야기한 다섯가지 제약에 대해 공감을 하면서도 의문이 드는 점을 서슴없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nbspnbsp총 14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첫 번째 학생은 스무살이 안 된 청소년들이 학교 폭력이나 성폭력 범죄를 일으키면 어떻게 처벌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고, 두 번째 학생은 내 실력이 남들보다 뒤쳐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원하는 꿈이라면 끝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물었고, 세 번째 학생은 사회에 대해서 배우면 배울수록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데 곧 사회로 진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물었고, 네 번째 학생은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니 서로의 취향과 생각이 달라 갈등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해결해 갈 수 있는지 물었고, 다섯 번째 학생은 대학생활의 즐거움 중에 하나가 연애인데 얼굴이 못 생겨서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며 그냥 미래를 위해 공부에 집중할지 그럼에도 연애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여섯 번째 학생은 대화를 하다가 상대가 상처를 받으면 그것은 말하는 사람의 잘못인지 듣는 사람의 잘못인지 물었고, 일곱 번째 학생은 기숙사에서 잠을 자다가 수업에 늦는 경우가 많아서 손해가 심하다며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물었고, 여덟 번째 학생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살다보니 착하면 손해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었고, 아홉 번째 학생은 다음학기부터 선상 실습을 하게 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데 월급을 받게 되면 자산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열 번째 학생은 스님이 생각하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nbspnbsp열한번째 학생은 시력이 안 좋고 잔병치레가 많았음에도 가족들이 제대로 돌봐주지 않은 것 때문에 많이 서운하고 지금도 불편하다며 어떻게 관계를 풀어야 할지 물었고, 열두번째 학생은 휴대폰이나 친구 관계를 모두 끊고 목표에만 올인하는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고, 열세번째 질문자는 지금 다니고 있는 학과가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아서 자퇴를 하고 새로 대입을 준비할지 망설여진다며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었고, 열네번째 질문자는 스님이 인생의 멘토로 삼고 있는 분이 누구인지 물었습니다.nbspnbsp각각의 질문에 대해 스님은 재치있고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특히 목표에만 올인하는 삶에 대해 질문한 학생은 얼굴에 화기가 많고 무척 상기되어 있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서로 다른 생각과 기준으로 갈등하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물었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목포해양대학교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니 많은 학생들이 이 답변이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nbsp“1학년 학생입니다. 기숙사를 비롯해 폐쇄적인 공간에서 단체 생활을 하다보면 사람 관계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다들 자기만의 생각과 기준이 있어서 상대방 의도와 달리 서운해지거나 감정의 충돌이 생겨요.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자 내가 숙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nbsp“저는 숙이고 살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요. 아까 이야기했듯이 첫째, 한 방에 있는 사람을 때리지는 마세요. 물건 훔치지 말고, 성추행하지 말고, 욕하지 말고, 취해서 행패 부리지 말고요. 이것 외에는 눈치 볼 필요 없습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상대가 불편한 점을 말할 거예요. ‘야, 청소 좀 하자’ 이러면 ‘알았다’ 하고 개선하면 돼요. nbspnbspnbsp굳이 상대의 비위를 미리 완벽하게 맞추려 들면 내가 피곤해서 못 살아요. 다섯 가지를 제외하고는 그냥 편한 대로 살다 보면 상대가 불편할 경우에 문제제기를 해옵니다. 문제제기하는 내용을 들어보고 저 사람 입장에서는 불편하겠다고 동의가 되면 맞춰주면 됩니다. 나도 불편한 게 있으면 이야기해서 서로 맞춰가고요.nbsp그런데 나는 불편하지만 상대가 괜찮다고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예컨대 나는 추위를 많이 타서 히터를 좀 틀고 싶은데 상대는 덥다고 하지 말라고 할 수 있어요. 같이 살다 보면 이렇게 작은 걸로 부딪힙니다. 그러면 기숙사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의논해 방을 바꿔서 체질이 비슷한 사람끼리 함께 쓰면 돼요. 이런 길도 하나 있고, 둘이 원하는 온도의 중간으로 온도를 맞추는 방법도 있어요. 나는 약간 춥지만 견딜 만하고, 상대는 약간 덥지만 견딜 만한 겁니다. 추우면 스웨터를 한 장 더 껴입고, 더우면 벗는 식으로 해서 상대에게 내가 맞추는 방법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길 중 선택해서 하면 됩니다.nbspnbsp이 친구와 서로 너무 좋아해서 헤어지기 싫다면 방 바꾸는 것보다는 내가 스웨터 한 장 더 입고 맞춰주는 게 낫고, 굳이 둘이 한 방을 쓸 이유가 없다면 방을 바꾸면 돼요. 학교 규칙상 바꾸는 게 불가능하면 스웨터를 입고요. 이렇게 조정을 하는 거예요.nbspnbspnbsp서로 견해나 취향이 다른 것은 서로 조율을 해야 해요. 그럴 때 내 것만 고집하면 안 됩니다. 제일 쉬운 건 상대에게 맞춰주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맞춰주기 어려울 때는 내 의견도 내서 조율을 해야지, 고집하면 안 됩니다. 고집하지 말라는 말은 의견도 내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언제든지 의견은 낼 수 있지만,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럴 때 고집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렇게 조정해나가면 돼요. 지금 기숙사 방 하나 당 몇 명씩 살아요?”nbsp“세 명이요.”nbsp“그렇게 함께 살아보는 경험이 굉장히 좋아요. 옛날에는 형제가 보통 다섯에서 일곱쯤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사탕을 하나씩 나눠줬는데 막내가 징징거리면서 사탕 더 달라고 하면 엄마는 큰 애 보고 ‘너는 다음에 사 줄게, 내놔’ 이렇게 해서 막내에게 줘버립니다. 엄마는 이렇게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엄마가 밖에 나가면 큰 애가 바로 막내에게 가서 사탕을 빼앗아버립니다. nbspnbspnbsp그러면 형제 사이에 질서가 딱 잡혀요. 사회성을 갖추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요구가 다 관철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익히게 됩니다.nbspnbsp그런데 지금은 다 아이가 하나 아니면 둘이다 보니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부모하고만 관계를 맺습니다. 자기가 울거나 고집하면 부모가 뭐든지 해주는 게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학교에 가면 자꾸 부딪힙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렇게 자라서 습관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혼한 뒤에도 이혼율이 자꾸 높아져요. 조그마한 차이도 못 견디거든요.nbspnbsp기숙사 생활은 그런 면에서 결혼 연습과도 비슷합니다. 얼굴 예쁜 것은 하루 보기에는 좋지만 룸메이트로 함께 사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돼요. 부잣집 자식이라는 점도 기숙사 생활에는 크게 도움이 안 돼요. 그것보다는 방 청소하기로 한 약속을 잘 지키는지가 훨씬 중요하죠. 결혼 생활은 룸메이트와의 생활과 같습니다. 약속을 지키고 서로 생활을 존중하면서 맞춰나가는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같이 못 살 만한 사유가 없어도 자잘한 것들이 안 맞아서 결국은 갈라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권투 경기에서 잔 펀치를 많이 맞으면 기절하는 것과 같아요. 갈라서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성격 차이요’라고 대답해요. 몸이 아픈데 병원에 가서 진찰해 봐도 병명이 안 나오면 의사들이 ‘신경성입니다’ 하는 것처럼요.nbspnbspnbsp그래서 그걸 연습하는데 룸메이트가 굉장히 좋아요. 특히 까다로운 사람과 살아보면서 맞춰낸다면 앞으로 회사 생활도 잘 할 수 있고 결혼 생활도 잘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지금 당장 편하게 살려고 하지 말고 좀 멀리 보세요. 서로 맞춰가는 연습을 지금 룸메이트와 한다고 생각하면 쉬워요.”nbsp“예, 감사합니다.”nbsp질문자는 답변이 마음에 들었는지 활짝 웃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옆에 앉은 친구들도 함께 웃음을 띠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이어진 질문에서는 학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일어나 스님의 행복론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명쾌한 답변에 모두가 깊이 공감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이 생각하시는 행복과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nbsp“우리가 말하는 행복은 별 게 아니라 기분이 좋은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내가 원하는 대로 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원하는 대로 안 되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래서 이 기분 좋음의 첫째 조건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될 때’예요. 그런데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가 없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며 널뛰는 것이 반복됩니다.nbspnbspnbsp그래서 이 기분 좋음은 분명 행복의 한 요소이지만, 기분 좋음만이 행복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기분 좋음은 지속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즐거움과 괴로움, 즉 고와 락이 반복돼요. 이걸 윤회라고 합니다. 사람이 죽어서 소가 되고 개가 되는 게 윤회가 아닙니다. 즐거움과 괴로움, 기분 좋음과 기분 나쁨이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기를 하고, 오늘은 좋았다가 다른 날은 나쁘고, 올해는 좋았다가 내년에는 나쁘고, 이생에는 좋았다가 다음 생엔 나빠지는 식으로 반복해서 돌고 도는 것을 윤회한다고 합니다.nbspnbsp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려면 이렇게 오가는 진폭이 줄어들어야 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기분 좋음과 나쁨 사이의 진폭이 너무 크잖아요. 내가 원하는 대로 됐다고 해서 너무 좋아하면 그게 원인이 되어서 앞으로 괴로울 일이 생깁니다. 애인 생겼다고 좋아하지만 그러다가 헤어지면 엄청난 충격이 됩니다. nbspnbspnbsp결혼했다고 좋아하지만 결혼해 살다 보면 모든 고민이 결혼 때문에 생기고, 자식을 낳았다고 좋아하지만 나이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죄다 자식 때문에 머리아파 죽겠다고 해요. 괴로움 속에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 속에 괴로움이 있기 때문에 즐겁다고 해서 너무 막 좋아하면 안 돼요. 그 속에 괴로움을 품고 있기 때문에 곧 괴로움으로 바뀌거든요.nbspnbsp원하는 대로 됐다고 너무 좋아하지도 말고, 원하는 대로 안 됐다고 너무 기분 나빠할 필요도 없어요. 원하는 대로 안 된 게 오히려 복일 수도 있어요. 예컨대 비행기표가 취소돼서 공항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 돌아왔는데 그 비행기가 사고로 추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못 탄 게 잘 된 일이잖아요. 세상을 살다 보면 그런 경우가 허다합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뭐가 뜻대로 안 됐다고 너무 동동거릴 필요가 없어요. 그게 나를 살리는 경우도 굉장히 많아요.nbsp그렇기 때문에 너무 좋거나 나쁜 것 사이의 널뛰기를 좀 줄이는 게 행복으로 가는 길이에요. 행복을 정의한다면 즐거움이 지속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행복은 지속될 수가 없어요. 기분 좋음을 행복으로 삼으면 반드시 동전의 양면처럼 기분 나쁨이 같이 붙어 다니기 때문에 윤회고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nbspnbspnbsp그러니 여러분들은 좋다고 너무 흥분하지도 말고 나쁘다고 침체하지도 말고, 좋을 때 벌써 그 안에 나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아서 진정을 하고, 나쁠 때 이게 도로 좋은 원인이 된다는 걸 알아서 가라앉지 마세요. 감정을 조절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진폭을 조금 줄이면 세상살이가 뜻대로 되든 되지 않든 어느 정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게 행복이라고 봅니다.”nbsp좋고 나쁨의 진폭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씀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그동안 기분 좋음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그 기분 좋음은 언제든지 괴로움으로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nbspnbsp이렇게 14명의 질문에 대해 모두 답변을 마치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언제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업 시간 때문인지 마지막에 일부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들어오기를 반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양한 질문들과 풍성한 답변 속에서 학생들은 모두 가벼운 마음이 되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우리들은 지나놓고 나서 그 때가 좋았다고 하면서 늘 후회한다고 하면서 지금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학생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20대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많다며 지금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볼 것을 당부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nbspnbspnbsp“재미있었어요?”nbsp“예.”nbsp“청춘이 힘들죠? 공부도 해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취직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해요. 늙으면 공부도, 연애도, 취직도, 결혼도 안 해도 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70대 노인하고 이것저것 다 해야 하는 20대 청년 중에 선택하라면 여러분은 뭘 할래요?” nbsp“20대요.”nbspnbsp“그것 보세요. 힘들지만 그래도 이게 좋다는 거잖아요. 여러분이 생각할 때는 공부하기도 힘들고 연애하기도 힘들고 취직도 힘들지만 제가 볼 때는 그게 다 ‘좋다’는 소리예요. 밥만 먹고 공부만 해도 아무도 잔소리하지 않는 시기는 여러분 때밖에 없어요.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도 밥만 먹고 공부만 하겠다면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그러면 밥만 먹고 공부만 할 수 있었던 시기를 또 그리워합니다. ‘그때 공부 좀 더 할 걸’ 하고요.nbspnbsp초등학교 다닐 때는 중학교 다니는 언니가 부럽고, 중고등학교 때는 대학생들이 부러워요. 대학 가면 취직한 선배가 부럽고, 취직하면 결혼한 선배가 부럽습니다. 결혼해서 아기 키울 때는 아이 다 키워놓고 여유로운 사람들이 또 부러워요. 그러다 40대, 50대가 되면 아이들을 보면서 ‘그래도 너희 때가 좋다’ 이러면서 부러워합니다. 경주에 가 보면 중년 어른들이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모여서 학창 시절을 그리워하며 노는 걸 볼 수 있어요.nbspnbsp이게 인생을 거꾸로 사는 거예요. 당시에는 죽겠다 하고, 지난 뒤에는 그때가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도는 학교 다닐 때는 학생인 때가 좋은 줄 알고, 직장 다닐 때는 직장 있는 게 좋은 줄 알고, 신혼은 신혼이 좋다는 걸 알고, 미혼이면 미혼일 때가 좋은 줄 알고, 스님이 되면 스님이 좋다는 걸 알고, 늙으면 늙은 게 좋다는 걸 아는 거예요.nbspnbsp제가 낸 책 중에서 ‘인생 수업’ 이라는 책의 원래 제목이 lt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gt입니다. 잘 늙으면 청춘 못지않으니 한탄할 필요가 없습니다. 늙으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공부할 일도, 결혼할 일도, 취직할 일도 없이 한가롭습니다. 그런데 늙은이는 젊은이를 쳐다보며 부러워하고, 청년들은 또 나이든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합니다. 이런 걸 경상도 사투리로 ‘디비쫀다’고 해요. nbspnbspnbsp인생을 거꾸로 산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은 아까 물어보니 20대 하겠다고 했잖아요. 부부싸움 하는 사람한테 ‘그러면 머리 깎고 스님 될래요?’ 하고 물어보면 ‘아니요’ 이래요. 스님 되는 것보다는 그렇게 싸우면서 같이 사는 게 낫다는 소리예요. 그러면서 저한테 하소연하면 제가 저보다 나은 사람을 왜 동정하겠어요?nbsp이런저런 불평불만을 늘어놓지만 조금만 돌아보면 지금이 좋은 시절이에요. 우리는 지금이 좋은 시절이라는 걸 지난 뒤에야 압니다. 그 시절은 괴롭게 보내고, 지난 뒤에는 또 그 시절이 좋았다 그리워 하고, 그러면서 또 지금 시간은 괴롭게 보내고, 또 지난 뒤에 그때가 좋았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여든이 넘은 사회 저명인사를 만났어요. 올해 제 나이를 묻기에 예순 셋이라고 했더니 ‘아이고, 한창 좋을 때네요’ 이래요. nbspnbsp저는 이제 은퇴하려는데 저더러 한창 좋을 때라는 거예요. 80살이 되어서 보면 60살이 한창 좋을 나이고, 60살이 보면 40살이 한창 좋을 나이고, 40살이 보면 20살이 한창 좋을 나이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다 한창 좋을 나이입니다.nbspnbspnbsp그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여기에 재미를 붙여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고민은 20대만이 할 수 있는 기회이고 고민입니다. 그걸 낭비할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들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걸 뒤집어놓고 보면 그것마저도 좋은 겁니다. ‘그것마저도 좋다’ 이렇게 자기를 긍정적으로 보고 행복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힘차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스님에게 학생들도 큰 박수갈채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오늘 강연은 행복이란 무엇인지 많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요즘 대학생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들어볼 수 있어서 참 유익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강연을 마치고 오후 5시가 넘어서 목포해양대학교를 빠져나왔습니다. 학생들은 환한 웃음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수업을 들으러 교실로 향했습니다.nbspnbsp저녁 7시부터는 광주 전남대학교에서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목포에서 광주까지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불안했습니다. 원래는 저녁을 간단히 먹고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 곧장 광주로 내달렸습니다. 다행히 30분 전에 전남대학교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nbspnbsp전남대학교 컨벤셜홀에서 열린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진행 중입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nbsp

2015.11.26. 46,399 읽음 댓글 49개

2015.11.25 (오전) 전남지방경찰청 초청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하루 동안 2시간씩 세 차례에 걸쳐 연이어 강연을 했습니다. 오전 10시 30분에는 전남지방경찰청 초청강연을, 오후 3시에는 목포해양대학교 초청강연을, 저녁 7시에는 청년정토회 주관으로 전남대학교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전남지방경찰청 강연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오늘은 서울에서 목포로 먼 길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새벽 5시 20분에 기도와 예불을 마친 후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을 나왔습니다.nbspnbsp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아침 식사와 원고 교정 업무를 보며 잠시 쉬었다가 10시에 목포시에 위치한 전남지방경찰청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전남지방경찰청nbsp경찰청사 1층 로비에는 전자식으로 방명록을 남기는 기계 장치가 있었는데, 스님은 방명록에 “국민의 안전을 내 몸 지키듯이” 라고 쓴 후 경찰청장님과 차담을 나누기 위해 청장실로 향했습니다.nbspnbsp▲ 경찰청 입구에서 전자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있는 스님nbsp백승호 전남지방경찰청장님은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스님을 맞이하면서 바쁜 가운데도 불구하고 특별히 초청 강연에 응해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의 청장님의 환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사실은 이렇게 동일집단을 대상으로 한 강연 초청에는 응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광주에 온 김에 함께 하게 되었다며 즉문즉설의 취지에 대해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 백승호 전남지방경찰청장님과 환담nbsp동일집단이기 때문에 소문이 날까봐 개인 고민을 마음껏 이야기하지 못하게 되는데, 대신에 경찰청에서도 즉문즉설의 취지를 잘 살리고자 신분이 공개되지 않는 서면 질의를 사전에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님이 질문지를 읽고 그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10시 30분이 되자 경찰청 1층 대강당은 빈자리 없이 빼곡이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사회자의 스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은 후 본격적으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경찰청에서는 매달 한번씩 명사 초청 특강을 해오고 있는데 오늘처럼 빈자리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nbspnbspnbsp330개의 좌석이 꽈 차고 몇 명은 보조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앉았습니다. 경찰청 직원들의 스님에 대한 높은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박수와 함께 무대에 오른 스님은 가볍게 인사말을 건네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여기는 시설이 최신식으로 되어 있네요. 처음으로 전자 방명록을 써봤습니다. 저는 ‘국민의 안전을 내 몸 지키듯이’라고 썼어요. 여러분들이 이미 나라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자 불철주야 수고하시는데 거기다가 더 강조해서 ‘내 몸 지키듯이 해주십시오’라고 부탁 말씀을 드렸어요. nbspnbspnbspnbsp이 강의는 제가 여러분께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어떤 애로나 고뇌, 의문이 있으면 먼저 문제를 제기한 뒤 그걸 가지고 대화를 하는 자리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해결책을 찾든지, ‘문제가 아니구나’ 해서 문제가 없어지든지 해서 지금보다는 조금 좋아지게 됩니다.nbsp다만 청중이 동일집단일 때 제일 어려운 문제는 체면 때문에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다고들 하는 게 배우자나 자식과의 관계와 같은 개인 문제이고 두 번째가 직장에서의 사람 관계입니다. 상사나 동료, 후배들과의 사이에서 여러 가지 애로가 있잖아요. 아마 오늘 여러분들은 고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이야기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집안 이야기도 못 하겠고, 그렇다고 직장 이야기도 못 하겠고요.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주로 지식적인 것을 묻기 때문에 재미가 좀 없어져요. 제가 이런 동일직장에 강의를 잘 안 가려 하는 이유가 그런 데 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무료강의라고 너무 좋아들 하지 마세요. 저는 선불제가 아니라 후불제입니다. 강의를 듣고 자기가 좋았던 만큼 나중에 다 갚으시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듣고 도움이 되었다면 대가를 지불하는데, 꼭 저에게 지불할 필요는 없습니다. 연말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보시를 해도 제게 지불한 것과 동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짜라고 하지만 사실은 공짜가 아니예요.” nbspnbspnbsp스님의 강연은 후불제라는 이야기에 모두들 웃음을 빵 터뜨렸습니다. 이어서 강연 전 질문지함에 넣어 둔 질문지들이 스님에게 전달이 되었고, 스님은 한 장씩 읽어가며 답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플라스틱함에 비공개로 사전 질문지를 받았습니다.nbspnbsp총 12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부모님이 시골에 계시는데 서로 사이가 안 좋다며 자식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물었고, 두번째 질문자는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아이에게 자꾸 화내고 짜증을 내게 되어 어떻게 하면 이런 자기를 고칠 수 있을지 물었고, 세번째 질문자는 결혼하고 20년 동안 시댁을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요즘 시어머니가 손아래 동서를 너무 편애해서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네 번째 질문자는 아내가 초산을 했는데 육아를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고, 다섯번째 질문자는 매사에 화를 자주 내게 되는데 넓은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여섯번째 질문자는 괴롭힘을 계속 당하다 보니 상대가 싫은데 어떡해야 하는지 물었고, 일곱번째 질문자는 계급이 높거나 본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막말을 자꾸 해서 심리가 위축되는데 즐거운 마음을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고, 여덟번째 질문자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건 알겠는데 그 과정이 너무 싫다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방법을 물었고, 아홉번째 질문자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감사함을 느끼면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감사하며 살 수 있는지 물었고, 열번째 질문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배려심은 작아지고 욕심이 커지는데 어떡해야 하는지 물었고, 열한번째 질문자는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물었고, 열두번째 질문자는 스님은 어쩜 그렇게 잘 생겼는지 짧은 편지글을 남겨 주었습니다. nbspnbsp그 중에서 계급이 높은 사람들이 막말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강연이 끝나고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이 너무 좋았다며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nbspnbspnbsp“저는 직장 생활도 즐겁게 하고 직원들과 즐겁게 지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계급이 높거나 본청에 근무하는 직원들 중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잘 지내려는 마음이 위축되는 것은 물론이고 막말에 상처받지 않으려고 저도 차갑게 사무적으로 대하게 됩니다. 다른 직원들의 어떤 말에도 동요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법을 알려주시면 남은 20년 직장생활이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어떤 사람이 나한테 ‘야, 이 자식아’ 하고 큰 소리를 치면 기분이 나빠져서 그 말을 계속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아무리 자기가 지위가 높다 해도 그렇게 막말을 할 수 있어?’ 이렇게요. 이것은 남이 던져주는 쓰레기 봉지를 받은 것과 같아요. 받아보고 쓰레기인 줄 알았으면 버려버리면 될 텐데 계속 쓰레기 봉지를 안고 다니면서 ‘이 자식, 이게 뭐야. 이건 과자 먹고 나온 쓰레기이고, 이건 사과 먹고 나온 쓰레기네. 이걸 네가 어떻게 나한테 줄 수 있어?’ 하는 것과 같아요. 계속 안고 다니면서 욕하고, 조금 있다가 또 꺼내보고 또 꺼내보는 거예요. 이러면 어리석은 사람이에요.nbspnbspnbsp받아보고 쓰레기 봉지면 그냥 던져버리면 됩니다. ‘그 사람이 막말을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이 말은 너무 심하지 않느냐?’ 하며 화를 내는 것은 쓰레기 봉지를 계속 뒤지고 있는 것과 같아요. 자기는 똑똑하다 생각하지만 옆에서 보면 바보예요. 쓰레기면 버려야지, 왜 계속 쥐고 있어요?nbspnbsp이게 싫으면 사표 내고 나가면 됩니다. 나갈 형편이 못 되면 위에 진정서를 내서 상사를 바꾸세요. 바꿀 형편이 못 되면 나서서 싸워가지고 말버릇을 고치세요. 그럴 형편도 못 되면 ‘저 사람은 말버릇이 저렇구나’ 하고 귓등으로 듣고 넘기세요. 그것도 힘들면 우리말이 아닌 영어라고 생각하세요. nbspnbspnbsp‘이 새끼’는 ‘너’를 의미하는 영어라고 생각하고 그냥 들으면 돼요. ‘저 사람 성격이 저렇다. 말버릇이 저렇다. 그냥 저 사람의 까르마, 업식이다’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라는 건 좋게 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게 좋다고 칭찬할 일은 아니잖아요. 그냥 말버릇이 저렇다고 이해하세요. 이해하면 상대가 아니라 내가 편하고 좋아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 이러는 건 이해를 못 해서 내가 답답하니까 나오는 말이에요. ‘아, 오늘 아침에 부부싸움을 해서 성질이 나니까 나한테 그랬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내가 편안해집니다.nbspnbsp‘아니, 내가 경찰 하려고 왔지, 상사 이해하려고 여기 왔나?’ 이렇게 생각하면 사표 내는 수밖에 없어요. 다른 길이 있으면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표도 못 내면서 ‘사표 낼까, 사표 낼까’ 끊임없이 생각하고, 교체도 못하면서 ‘위에 확 찔러서 교체해버릴까’ 내내 벼르고, 대들지도 못하면서 ‘확 대들어버릴까’ 하고 속으로만 곱씹습니다. 이게 바로 쓰레기통을 들고 내내 뒤지는 것과 같아요.nbspnbspnbsp그러니 그러지 말고 받자마자 그냥 버려버리세요. ‘알고 보니 사람은 괜찮은데 말버릇이 저렇구나’ 혹은 ‘아이고, 오늘 기분이 안 좋은가 보다’ 이렇게 넘어가면 돼요. 웃으면 ‘오늘은 기분이 좋은가 보다. 애인 만났나?’ 하면 되지, 그걸 갖고 ‘저 성질 봐라. 아까는 성질내더니 금방 헤헤거리긴 왜 헤헤거리냐. 아까 야단을 치지 말았어야지’ 이러면 안 돼요. 남의 성질을 고치려다 내가 죽습니다. nbspnbspnbsp자기 성질도 자기가 고치기가 어렵고, 내가 낳아서 키운 자식도 성질 고치기가 어렵고, 내 부모도 성질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남의 성질을 고치려고 하면 안 돼요. 그건 그 사람의 가족이 고치든 본인이 고치든 알아서 고치도록 놔두세요.nbsp다만 그게 공무원 수칙이나 노동 규율에 어긋나는 경우에는 대응하십시오. 아랫사람이라 해도 인권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면 안 되잖아요. 그 규칙에 어긋나면 자기 권리를 행사해야 합니다. 바로 고발이나 고소를 해야 해요. 그렇게 대응하는 것을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에게는 노동을 할 때 노동 이외의 다른 것을 억압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권리가 침해당할 때는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건 아닙니다. 당신은 아래에서 일하는 제게 명령할 권리는 있지만 제게 욕할 권리는 없습니다.’ 이렇게 딱 이야기를 하세요.nbspnbspnbsp그럼 잘리지 않겠냐고요? 세상을 바꾸려면 그 정도 피해를 각오해야 합니다. 독립운동 할 때는 나라를 되찾으려고 목숨까지 걸어야 하고, 민주화 운동할 때는 감옥 갈 각오를 해야 바뀌잖아요. 세상을 더 낫게 바꾸려면 그 정도 불이익은 감수해야죠. 나는 불이익 하나도 안 당하고 세상은 좋아지는 경우는 없어요.nbspnbspnbsp그러니 고치려면 불이익을 감수하세요.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으려면 자기가 적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억울하고 분해 하면 자기만 손해라는 이야기입니다.”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모두가 빵빵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망론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던 답변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명령하달식 계급 체제로 유지되는 곳이다보니 다들 조금씩 억누르는 감정이 많았는데, 오늘 스님의 답변을 듣고 많이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nbspnbsp12명의 질문에 대해 모두 답하고 나니 벌써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마칠 시간이 되자 스님은 직업도 오래 하다 보면 습관이 된다며 수사하는 경찰관이라 하더라도 국민들을 너무 범죄자 보듯이 하지 말고 업무가 끝나면 평범한 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재미있었어요?”nbsp“네.”nbsp“손들고 질문하면 더 재미있을 거예요. 다음에 제가 다시 올 기회가 있으면 그때는 이렇게 종이에 써서 질문하지 말고 손들고 이야기해도 되겠죠?”nbspnbsp“네.”nbsp“눈치 볼 것 없어요. 누군가를 나무라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이렇다고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너무 기죽어 살지 말고 좀 더 활기 있게 사시기 바랍니다. 이왕 하는 일이니 기분 좋게 하고요.nbspnbspnbsp아무리 내가 수사를 하는 사람이라 해도 국민들을 자꾸 범죄자 보듯 하지 마시고요. 경찰하고 기자가 제일 문제예요. 사람만 보면 ‘정체가 뭘까, 꿍꿍이가 뭘까’ 하고 살피는 일을 너무 오래 하다 보니 습관이 돼요. 직업상 할 수 없긴 하지만, 업무가 끝나면 그냥 한 사람으로 딱 돌아와야 해요. 직업도 오래 하다 보면 습관이 되거든요. 그렇게 해서 자기를 아름답게 가꾸며 한 사람으로서 행복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nbsp스님의 따뜻한 격려에 모두들 큰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특수한 직업이다 보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가 끝나면 그냥 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 가슴에 오래 남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참석한 분들 중에 추첨을 통해 스님이 직접 사인한 ‘새로운 100년’ 책을 선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첨된 한 분 한 분에게 스님은 정성껏 사인을 해주며 격려의 말도 함께 해주었습니다.nbspnbsp▲ 추첨 이벤트에 당첨된 경찰관에게 직접 사인한 책을 선물하고 있는 스님nbsp그리고 많은 분들이 스님과 기념 사진을 찍고 싶어 해서 여러 차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매일 스님의 하루, 희망편지, 즉문즉설을 스마트폰으로 받아보면서 많은 용기와 힘을 얻고 있다며 감사 인사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nbspnbspnbsp원래 스님은 강연을 준비한 측에서 식사 준비는 하지 않도록 요청했지만, 준비 측에서 구내 식당에서 본청 직원들과 3500원 짜리 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해서 승낙을 했습니다.nbspnbsp식판을 들고 차례대로 줄을 서서 밥과 반찬을 담은 후 경찰청 직원들과 가볍게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경찰들의 고민은 무엇인지 편안하게 경청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구내 식당에서 강연을 들은 경찰관들과 함께 점심 식사nbspnbsp강연을 준비한 경찰청 교육계 직원들에게 “수고하셨습니다” 라며 인사를 건네고 새책 ‘야단법석’을 선물한 후 전남지방경찰청을 나왔습니다.nbspnbsp경찰청을 출발하여 이곳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곧바로 목포 정토법당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목포 정토법당nbsp작고 아담한 법당에 도착하자 목포정토회 회원들 몇 분이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한 후 정성껏 우려낸 대추차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잠깐의 여유 시간 동안 법당 한켠에 앉아서 원고 교정 작업을 했습니다.nbspnbspnbsp오후 3시부터는 목포해양대학교에서 스님의 초청강연이 열렸습니다. 목포해양대학교는 전체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단체 생활을 하는 학생들의 고민과 어려움이 크다고 해서 스님도 흔쾌히 강연을 해주게 되었습니다. 목포해양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 소식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nbsp ※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진행 중입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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