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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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7 (인도 2일째) 성지순례 A팀 바라나시 도착

nbsp 안녕하세요. 인도에서의 2일째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 드디어 첫 번째로 성지순례 A팀이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공항에서 나오는 순례객 한 명 한 명에게 환영의 마음을 담아 직접 꽃목걸이를 걸어주었습니다.nbsp nbsp ▲ 바라나시에서의 일출 모습 nbsp 바라나시 숙소에서 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친 스님은 오전 내내 성지순례 실무 준비상황을 점검한 후 11시에 순례객을 마중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습니다.nbsp nbsp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한 스님은 순례객을 환영해주기 위해 꽃목걸이 120여 개를 보자기에 싸서 도착장으로 향했습니다.nbsp nbsp ▲ 꽃목걸이를 직접 들고 온 스님nbsp 12시가 되자 수하물을 모두 찾은 정토회 성지순례단 A팀이 선주 법사님과 자광 법사님의 인솔로 드디어 줄을 지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공항에서 나오자 마자 순례객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nbsp nbsp 스님이 직접 꽃목걸이를 들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던 것입니다. 모두들 깜짝 놀라 어쩔줄 몰라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어머나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며 너무나 기뻐했고, 어떤 분들은 “세상에” 하며 감격해서 할 말을 잃은 듯 했습니다. 예고되지 않은 갑작스런 이벤트에 모두들 기뻐했습니다.nbsp nbsp nbsp nbsp 스님은 한 분 한 분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인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nbsp nbsp nbsp 이어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객들을 14박 15일 동안 성지로 데려다 줄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순례객들은 신이 났는지 버스 앞에 삼삼오오 모여 스님이 걸어 준 꽃목걸이를 자랑삼아 기념사진을 즐겁게 찍었습니다.nbsp nbsp nbsp 정토회 성지순례단 A팀을 총괄하는 선주 법사님의 신호에 따라nbsp버스들이 일제히 출발했습니다. 버스가 출발하자 송수신기를 통해 유튜브와 팟캐스트에서 늘 듣던 익숙한 스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nbsp nbsp 스님은 먼저 “바라나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제 저녁에 잘 주무셨어요? 못 잤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순례객들이 “예” 하면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nbsp nbsp A팀은 어제 오후 1시 50분에 한국을 출발하여 밤 9시 30분에 델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델리 공항에서 침낭을 깔고 노숙을 한 다음 오늘 아침 10시 15분 비행기를 타고 바라나시에 도착했습니다.nbsp nbsp ▲ 델리공항에서 하룻밤을 잔 순례객들 nbsp 어제 공항에서 노숙을 했기에 힘들 수도 있었던 순례객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순례를 떠나는 것이기에 우리는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강조했습니다.nbsp nbsp “인도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여행객이 아니라 순례객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밥은 얻어드시고, 옷은 버린 걸 주워입으시고, 잠은 나무 밑에서 주무심으로 해서 의식주에서 완전히 해방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앞으로 의식주는 걱정하면 안 돼요. 성지순례 와서 의식주 불평하는 사람은 차에서 그냥 내려놓고 가버릴 거예요. 하하하. nbsp nbspnbsp 첫째, 음식은 3일 정도 굶어도 안 죽습니다. 제가 70일까지 굶어봤는데 안 죽었습니다. 이미 이렇게 실험을 해봤으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여기서 지내는 21일 동안 하나도 안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당뇨병 환자는 굶으면 안 돼요. 당뇨병 환자는 당분이 떨어지면 죽진 않아도 뇌에 에너지가 공급이 안 돼서 정신이 가버려요.nbsp nbsp 둘째, 옷은 좀 꾀죄죄해도 괜찮으니까 ‘갈아입었네’, ‘못 갈아입었네’ 이렇게 따지면 안 돼요. 대신 색은 맞춰서 입어야 해요. 즉, 내일 가사를 받으면 반드시 걸치고 다녀야 합니다. nbsp nbsp 셋째, 자는 것은 첫날인 오늘과 내일,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날, 이렇게 사흘만 호텔에서 묵습니다. 오늘처럼 호텔에 묵을 때 씻어야 해요. 나머지 기간은 모두 학교나 절 같은 순례자 숙소에서 잡니다. 호텔에서 자는 것은 바라나시에서 오늘과 내일, 아그라에서 마지막 날 하루입니다. 아그라에서는 오늘보다 더 좋은 호텔에 묵을 거예요. 그래야 한국 갈 때 호텔에서 잤다는 기억을 남겨서 가죠. 순례하는 마음은 단단히 갖고 오셨어요?” nbsp “예” nbsp nbsp “먹는 것이나 자는 것을 두고 불평하면 안 돼요. 침낭 다 챙겨오셨죠? 침낭만 가져왔으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밥은 안 먹어도 되고, 옷은 이미 입고 있고, 잠은 안 잘 수 없는데 침낭만 있으면 길거리에서 자도 돼요. 아침에 추워봐야 10도, 12도 정도니까요.” nbsp 부처님이 어떻게 사셨는지를 이야기하자 모두들 불평이 쑥 들어가고 웃음만 남았습니다. 한국에서 사전교육을 받을 때 이미 다 숙지한 내용이라 이제는 현장에서 즐기는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nbsp nbsp 바라나시 도심에 점점 가까워지자 스님은 ‘바라나시’라는 도시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 nbsp “바라나시는 부처님 당시에는 카시국의 수도였습니다. 부처님 당시부터 카시산 비단이 아주 유명했습니다. 지금도 바라나시는 비단과 공예가 유명합니다. 바라나시라는 지명보다 카시가 더 옛날 지명이에요. 인도 사람들은 카시 또는 바라나시라고 불렀고, 서양 사람들이 들어와서는 베나레스라고 불렀어요. 카시, 바라나시, 베나레스 모두 같은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지금은 그냥 바라나시라고 불러요. 강가강과 지류인 바루나강과 아시강, 그 사이에 도시가 생겼기 때문에 ‘바라나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nbsp nbsp nbsp 바라나시는 현존하는 도시 중 가장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아온 도시라고 알려져 있어요. 옛날에 사람이 많이 살았던 도시들 대부분이 중간에 사람이 살지 않게 되어 없어졌는데, 바라나시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사람이 살아왔어요. 그래서 바라나시는 도시가 생긴 지 약 4천 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nbsp nbsp 부처님 당시에도 바라나시는 한 나라의 수도로 아주 유명한 도시였는데 지금도 120만 명 정도가 사는 도시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큰 도시들은 지금 거의 다 없어지고 빈터나 작은 마을로만 남았습니다. 왕사성, 사위성, 카필라성, 바이샬리가 다 그래요. 그런데 이 바라나시만 그때도 큰 도시였고 지금도 큰 도시로 남아 있습니다.nbsp nbsp nbsp 그리고 이곳은 힌두교 제일의 성지입니다. 강가강은 전체가 다 성스러운 강이지만 바라나시 앞을 흐르는 이 유역을 특히 성스럽게 여겨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몸을 씻고 경배를 드립니다. 바라나시는 힌두교의 본거지이며 바라나시 힌두대학이 아주 유명합니다. 불교인에게는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설법을 하신 곳이여서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고요. nbsp 바라나시에 가봐야 인도에 온 기분을 제대로 느낍니다. 인도에 온 기분이라면 우선 뭘까요?” nbsp “더럽다는 거요.” nbsp nbsp “복잡하다는 거예요. 엄청나게 북적이는 가운데 소도 다니고, 말도 다니고, 개도 다니고, 사람도 걸어도 다니고, 릭샤도 다니고, 오토바이도 다니고, 자전거도 다니고, 차도 다닙니다. 3천 년 동안 인간이 개발한 모든 탈 것이 한꺼번에 다녀요. 탈 것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나중에 한번 세어보세요. 오토바이, 자전거, 자전거 릭샤, 오토바이 릭샤, 자동차, 소가 끄는 수레, 말이 끄는 수레, 사람이 끄는 수레 등등 끝이 없어요. 전부 세어보면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모든 교통수단이 한꺼번에 전시된 박물관이나 다름없어요.” nbsp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버스 창밖을 바라보니 정말로 온갖 탈것들이 뒤엉켜 굴러가고 있었습니다.nbsp nbsp nbsp 거기다 경적 소리는 얼마나 삑삑 거리는지 정말로 ‘살아있음’이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마치 서로 다른 온갖 것들을 포용하는 용광로 같았습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부처님이 인도에서 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습니다.nbsp nbsp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1시간을 달려 드디어 사르나트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사르나트를 참배하지는 않고, 내일 사르나트 박물관이 문을 닫기 때문에 박물관만 먼저 관람을 했습니다.nbsp nbsp 박물관 입구에서는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비롯한nbsp촬영을 일절 금하고 있어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습니다. 스님은 순례객들을 이끌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구석구석을 자세히 안내해 주었습니다. 특히 조각 작품들에 대한 위트 있는 설명에 간간히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nbsp nbsp ▲ 사르나트박물관 nbsp 순례객들은 사르나트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서 오후 2시가 다 되어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었습니다.nbsp nbsp 이어서 오후 3시에는 방콕을 경유하여 오는 팀이 덕생 법사님의 인솔로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늦게 도착한 순례객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꽃목걸이를 걸어 주었습니다. nbsp 저녁 6시부터는 만찬과 더불어 성지순례 입재식이 열렸습니다. 원래 성지순례 기간 동안 조별로 직접 밥을 해서 먹어야 하는데, 오늘과 마지막날만 예외로 식당에서 밥을 먹습니다. 푸짐한 인도식 뷔페 음식을 맛있게 먹은 후 참가자들을 모두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nbsp ▲ 저녁 만찬 nbsp 우선 한국에서 온 A팀 참가자들에 대한 전체 소개가 있었습니다. 경남, 대구경북, 부산울산에서 오신 분들을 비롯해 공동체, 청년정토회가 연이어 소개되자 각 지역 별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습니다.nbsp nbsp 그리고 이번 순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줄 버스 운전기사들을 스님이 직접 소개해 주었습니다. 운전기사들을 소개하면서 덧붙여 이번 순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 네 가지를 알려주었습니다.nbsp nbsp nbsp “순례를 하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첫째, 이동을 해야 하니까 운전기사입니다. 둘째, 잠을 자야 하니까 침낭이 필요합니다. 셋째, 먹어야 되니까 전기밥솥이 중요합니다. 넷째, 한국으로 돌아가려면 여권을 잃어버리면 안돼요. 그 외에는 잃어버려도 괜찮아요.” nbsp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는 사이 버스 운전기사들과 조수들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순례객들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로 운전기사들을 맞이했습니다. 총 10명의 인도인들이 이번 성지순례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nbsp nbsp ▲ 순례객들을 성지로 안전하게 데려다 줄 인도인 운전기사들 nbsp 박지나 JTS 대표님과 선주 법사님이 인도인들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건네자 순례객들은 다시 한번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열렬한 환호에 응답하는 의미로 인도인들을 대표해서 수바스지가 인도 노래를 맛깔스럽게 들려주었습니다.nbsp nbsp 이어서 이번 성지순례 실무를 맡은 스텝들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호텔, 버스 등 전체 운영을 총괄하는 역할을 박지나 JTS 대표님이 맡았고, 스님을 수행하는 역할을 최말순님이 맡았고, 스님의하루를 매일 써서 올려주는 역할을 이준길님이 맡았습니다. 스님을 포함한 이렇게 4명은 바라나시에서 A, B, C팀을 모두 맞이해서 보내고, 바로 쉬라바스티로 넘어가서 다시 A, B, C팀을 맞이할 예정입니다.nbsp nbsp ▲ 성지순례 전체를 총괄하는 스텝들 nbsp 그리고 A팀 전체를 총괄하면서 1호차를 담당하는 선주 법사님, 2호차를 담당하는 김윤미님, 3호차를 담당하는 자광 법사님, 4호차를 담당하면서 성지 안내를 맡은 덕생 법사님이 소개되었습니다. nbsp nbsp 이렇게 소개를 모두 마친 후 입재식 및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졌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 청법가를 부른 후 순례객들이 스님에게 삼배를 올리자, 이어서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nbsp nbsp 스님은 먼저 성지순례 기간에는 밖으로는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하고, 안으로는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분별심을 살펴 자기를 알아가는 순례를 할 것을 당부하면서 14박 15일 동안 꼭 명심해야 할 내용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 nbsp “그제 한국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오느라고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와도 이틀이 걸리는 셈인데, 혜초스님 같은 옛날 우리 선배들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겠어요? 대부분 육로로 걸어오거나 해로로 동력이 없는 돛단배를 타고 여기까지 왔으니 참으로 위험하고 머나먼 길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의 순례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제 14박 15일 동안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고자 합니다.nbsp nbsp ▲ 입재식 nbsp 순례를 하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첫 번째 자세는 우리가 순례자라는 사실을 늘 명심하는 것입 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해외여행이 아니라 고행을 각오하고 떠난 순례의 길이에요. 순례의 목적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다 올바르게 이해해서 내 삶이 행복하고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한 열반을 얻고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해탈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사후에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참자유와 참행복을 얻는 것이 목적이에요. nbsp 그래서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에서 시작해 부처님이 출가하시고, 수행하시고, 성도하시고, 교화하시고, 마지막으로 열반하신 곳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위대한 삶을 우리가 한 발 한 발 현장을 밟아가면서 이곳에서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단순히 과거 역사에 대해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 앎으로써 나도 부처님처럼 어떠한 경우에도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서입니다.nbsp nbsp 불교가 이 세상에 출현한 지 2,600년 정도 되었습니다. 2,6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는 가운데, 나라가 바뀌고 문화가 다른 지방으로 전해져 내려오면서 불교가 많이 왜곡되어 그 가르침이 본질에서 많이 벗어났어요. 그래서 첫째, 우리가 다시 이곳 현장에 와서 처음 시작할 때의 모습이 어땠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둘째,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 즉 정법은 누구에게나 다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난해하지 않고 아주 쉽습니다. 셋째,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생활과 떠나지 않아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nbsp nbsp 이것이 세 가지 특징입니다. 첫째, 바른 불교입니다. 즉 정법을 공부해야 합니다. 둘째, 쉬운 불교입니다. 그 정법은 난해하지 않아서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가르침입니다. 셋째, 생활불교입니다. 정법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바른 불교, 쉬운 불교, 생활 불교를 모토로 하고 있어요. 우리 정토행자들은 반드시 인도성지순례를 와서 이렇게 붓다가 어떤 가르침을 설하고 어떻게 살아가셨는지를 직접 경험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머리로만 이해하거나 믿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저절로 믿고 받들게 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여행객이 아니라 순례자입니다.nbsp nbsp nbsp 그리고 이번 일정 동안 여러분들은 자기 내면의 변화도 함께 여행해야 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에 가보면 언어만 좀 다를 뿐 건물도 비슷하고 모든 게 우리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인도는 많이 달라요. 연세 드신 분들은 ‘우리도 5060년대에는 이렇게 살았지’ 하고 향수를 느낄 수도 있지만 젊은 사람들은 ‘진짜 이런 데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달라요. 이렇게 바깥 구경도 가지각색이지만, 사실은 그 경계에 부딪히는 자기 마음 구경이 바깥 구경보다 더 좋습니다. 마음이 죽 끓듯 시시각각 변하거든요.nbsp nbsp 지금은 이렇게 밝은 얼굴로 웃고 있지만 내일이든 모레든 언제 다시 얼굴이 찌그러져서 도무지 펴지지 않게 될지 몰라요. 이걸 사로잡힘이라고 해요. 사로잡히면 보름 내내 괴롭게 지내게 되니, 나도 모르게 사로잡히더라도 사로잡힌 줄을 빨리 알아차려서 돌아와야 합니다. 그렇게 돌아오려면 지금 여기서 순례를 떠날 때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늘 자기 마음을 잘 살펴야 합니다. 살펴보면 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간사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nbsp 예컨대 우리는 약속이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말로 약속한 건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런 걸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막 싸우게 되기 쉬워요. 물건을 살 때도 100루피 달라고 하다가 안 사고 돌아서려하면 금방 10루피로 내려갑니다. 금액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도대체 물건에 값이 있는지 없는지도 종잡을 수 없는 나라예요. 역시 부처님의 나라여서 값이 원래 없나 봐요. 이런 경험들을 할 수 있습니다. nbsp nbsp 그래서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사물을 보면 분별심이 끝도 없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인도에 와서 사흘만 지나면 ‘인도 정부는 도대체 뭐햐나, 정치인들은 뭐하고 있냐’라며 욕을 하면서 남의 나라를 몽땅 고쳐주고 가려고 들어요. 다니다 보면 온갖 생각을 다 하게 됩니다. 그러니 바깥 구경도 좋지만 이런 자기 마음의 변화도 놓치지 마세요. 내 마음이 경계에 따라 얼마나 자주, 크게 변하는지 구경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는 여행입니다. nbsp 지금은 제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겠지만 당장 내일부터는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을 거예요. 델리에 가서 제가 마지막에 또 이런 이야기하면 그때서야 ‘아, 내가 놓쳤구나’ 할 겁니다. 그러니 항상 순례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바깥으로의 순례도 있지만, 그 바깥 경계를 따라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를 잘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순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 nbsp 그리고 순례를 하는 동안 공동체생활을 하게 됩니다. 아마 이렇게 낯선 사람과 한 식구가 되어서 같은 방에 자고,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이 밥 먹으며 다녀본 적이 가족을 제외하면 별로 없었을 거예요. 같이 사는 데는 인물이 잘나거나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은 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가장 좋은 관계예요. 다시 말하면 밥도 돌아가면서 하고, 밥통도 돌아가면서 드는 등 뭐든지 일을 나누어서 해야 좋아요.nbsp nbsp 그런데 이렇게 사흘만 다녀보면 ‘밉상’이 나타납니다. 물건 들어야 할 때는 어디 갔는지 흔적도 없다가 밥 먹을 때 되면 숟가락 들고 맨 먼저 와서 앉아 있고, 설거지할 때 또 없어져요. 이런 사람들이 나타나면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해주지만 사나흘만 지나면 분별심이 생기죠. 분별심이 생기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봐야 합니다.nbsp nbsp 또 자기가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얼마나 밉상이 되고 이기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알아차리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평소에는 자기 성질을 숨기면서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지만 부부지간에는 오래 살다 보니 성질이 안 숨겨집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보름이 지나면 자기 성질머리를 숨기려야 숨길 수 없습니다. 어차피 다 나오게 되어 있으니 아예 처음부터 긴장하지 말고 성질 내어놓고 사는 게 좋아요. nbsp nbsp 이렇게 공동체생활이라는 걸 늘 생각하세요. 여기서는 차장이라고 해서 무슨 스탭도 아니고, 조장이라고 해서 돈을 10원이라도 적게 낸 것도 아닙니다. 똑같이 돈을 내고 똑같이 순례자로 왔는데 그저 전체 진행을 원활하게 하고자 차장이며 조장을 뽑은 것이지, 따로 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특히 이번 여행은 정토불교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해서 왔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거의 전체 여행을 자율적으로 진행하다시피 해야 합니다. 일반 여행처럼 다른 누군가가 해주는 대로 따라만 가면 되는 여행이 아닙니다. 따로 챙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차에 딱 법사님 한 분밖에 없고, 나머지는 전부 여러분들이어서 똑같이 온 사람들입니다.nbsp nbsp 향로에 불을 붙이든 밥을 지어먹든 다 우리 손으로 직접 일을 해가면서 다니는 여행이지, 누가 해주는 대로 받으면서 따라다니는 여행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늘 돈만 주면 여행사가 알아서 하고 여러분들은 손님으로 다니는데 익숙하지만 이번은 그렇지 않고 함께 만들어가는 여행이에요. 이렇게 첫날 하루와 마지막 날 하루에만 식사를 주는 걸 제외하면 당장 내일 아침부터는 다 밥도 여러분들이 해먹어야 하고, 물건도 나눠서 들고 가야 하고, 모든 걸 다 같이 해야 합니다. 그런 공동체로서, 가족으로서 같이 생활하는 거예요. 여행의 주인이나 스님이 따로 있고, 나는 그저 따라만 가는 여행이 아니라 내가 여행의 주인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nbsp nbsp nbsp 이렇게 설명해도 귀에 잘 안 들어올 거예요. 며칠 다니면서 밥도 못 먹고 물건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보면 조금씩 정리가 되긴 하지만, 지금 처음부터 마음가짐을 바꿔두면 여행하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nbsp 밖을 보는 순례도 좋지만 안을 보는 순례도 해야 한다는 말씀에 어떤 마음으로 순례를 해야할지 명쾌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안을 들여다보는 공부를 하자고 마음을 먹으니 마음도 한층 가벼워진 느낌입니다.nbsp nbsp 이어서 스님은 인도의 역사와 기후, 사회 문화 환경 등에 대해 지도를 짚어 가며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런 후 부처님의 생애와 순례객이 찾아갈 10대 성지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순례객들은 자료집에 열심히 메모를 하며 눈을 반짝이면서 스님의 법문을 경청했습니다.nbsp nbsp “부처님은 인도 북쪽인 히말라야 산 기슭 카필라바스투에서 태어나셔서 29살까지 거기서 살다가, 진리를 찾아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셔서 당시 가장 큰 나라였던 마가다국으로 오셨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미국의 뉴욕으로 가신 것과 같아요. 마가다국의 왕사성 주변에서 스승을 만나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때 만났던 위대한 스승이 ‘웃타카 라마푸트라’와 ‘아라라 까라마’라는 선정주의자입니다. 열심히 수행한 끝에 그 스승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완전한 해탈이 아님을 아시고 스스로 수행하러 떠난 곳이 마가다국 안에 있는 가야 지방이었어요. 가야 시의 변방에서 6년 고행을 하시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곳을 ‘깨달음을 얻은 가야’라고 해서 ‘보드가야’라고 부릅니다.nbsp nbsp nbsp 부처님이 최초로 설법을 하신 곳은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 바라나시입니다. 여기는 16강국 가운데 하나였는데 당시 이름은 카시였어요. 첫 설법을 바라나시 근교의 사르나트에 와서 하시고 다시 보드가야로 돌아가셔서 거기서 1천 명의 비구를 교화하신 뒤, 다시 왕사성으로 가셔서 빔비사라 왕을 교화하고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를 기증받게 됩니다. 부처님이 이곳에서 3년을 머무시는 동안 초기 교단의 중요한 제자들 대부분이 이때 귀의를 하게 됩니다. 우리가 ‘1250인’ 또는 ‘1200 제대 아라한’이라고 부르는 초기 제자들과 대 선지식들은 주로 부처님의 성도 후 3년 안에 출가하신 분들이에요. 지혜제일 사리푸트라, 신통제일 목갈리나, 두타제일 마하가섭 같은 존자들은 모두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계실 때 교화되신 분들입니다.nbsp nbsp 그러다 부처님은 수닷타 장자의 초대를 받고 두 번째 강국이었던 코살라국의 쉬라바스티로 가셨습니다. 우리 말로 하면 사위성이에요. 여기에서 수닷타 장자가 기증한 절이 기원정사입니다. 사위성에서 또 많은 제자들이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그래서 왕사성과 사위성은 불교의 8대 성지에 속합니다. nbsp nbsp 부처님은 이 지역들을 다니면서 교화를 하셨어요. 또 8대 성지에는 원숭이가 부처님께 꿀을 공양 올렸다는 바이샬리가 있습니다. 바이샬리에는 릿차비족과 밧지족이 살았는데 여기는 절대왕정이 아니라 공화제였어요. 릿차비족이나 밧지족이 통치하는 그 정치 체제가 부처님께서 가장 좋아하셨던 체제였어요. 오늘로 말하면 민주적인 국가였습니다. 상가가 민주적으로 구성된 것도 여기에서 어느 정도 따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제일 서북쪽으로는 상카시아까지 가셨어요. 부처님이 하늘나라의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서 도리천에 갔다가 하강하신 곳이라고 전해오는 상카시아도 8대 성지에 들어갑니다.nbsp nbsp 그리고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인 카필라바스투의 룸비니, 도를 이루신 곳인 마가다국의 보드가야, 최초로 설법하신 곳인 바라나시 근교의 사르나트,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곳인 쿠시나가라를 4대 성지로 꼽습니다. 8대 성지라고 하면 4대 성지에 네 곳을 더하면 됩니다. 첫번째가 왕사성입니다. 부처님이 죽림정사를 최초로 지은 곳으로 우리가 말하는 영축산이 있는 곳입니다. 당시 인도 지명은 ‘왕들의 집’이라는 뜻인 ‘라자그라하’였고 지금은 ‘라즈길’이라고 불립니다. 여기서 성난 코끼리가 부처님께 귀의했다고 해요. 두번째는 천불화현을 했다는 쉬라바스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쉬라바스티에 가면 천불화현탑을 참배할 예정이에요. 세번째는 원숭이가 부처님께 꿀을 공양했다는 바이샬리이고, 네번째는 부처님이 도리천에서 내려오셨다고 하는 상카시아입니다. 그래서 박물관에 가면 4대 성지를 하나의 돌판에 새기거나 8대 성지를 하나의 돌판에 새겨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nbsp nbsp 여기서 또 10대 성지라고 하면 8대 성지에 카필라바스투와 둥게스와리가 더해집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건 룸비니지만 29년간 자라신 곳은 카필라바스투예요. 룸비니는 거기에서 태어났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지만, 29년간 실제로 시간을 보낸 곳은 카필라바스투, 즉 카필라성입니다. 또 부처님이 성도하신 곳은 보드가야지만, 성도를 얻기까지 6년 간 고행하신 곳은 전정각산입니다. JTS가 수자타아카데미를 세운 둥게스와리는 전정각산 아래에 있습니다. 이 전정각산에서 6년간 수행하신 후 마지막에 보드가야에 가서 49일간 정진해서 성도하시고 성도 후 49일간 그곳에 머물며 법열을 느끼셨어요. 그러니 보드가야에는 길어봐야 98일 정도만 머무르신 셈이고 실제로 6년간 머물렀던 곳은 전정각산입니다. 그래서 카필라바스투와 전정각산을 포함해서 10대 성지라고 부릅니다.nbsp nbsp nbsp 우리의 여정은 10대 성지를 둘러보게 됩니다. 오늘과 내일 초반 이틀은 초전법륜 성지인 사르나트, 그 다음 이틀은 보드가야와 전정각산, 하루는 라즈길, 이틀은 바이샬리와 쿠시나가라, 이틀은 룸비니와 카필라바스투, 그 다음 이틀은 쉬라바스티, 그 다음은 상카시아를 둘러볼 예정이에요. 그런 뒤 아그라에 가서 타지마할을 보는 것으로 여정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아그라에 가면 순례는 다 끝나고 여행이에요. 그때 가면 화장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여행객으로 다녀도 됩니다. 순례 일정 중 이렇게 하루만 여행으로 보낸 뒤 델리로 가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래봤자 모두 북인도 지역을 벗어나지 않습니다.nbsp nbsp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14일간 다녀야 할 여행지입니다. 한 군데 한 군데씩 찾아가면서 자세히 공부하게 돼요.” nbsp 인도 지도를 조목 조목 짚어 가며 자세히 이야기를 들으니 벌써부터 앞으로의 일정이 기대가 됩니다.nbsp nbsp 이렇게 입재법문과 오리엔테이션을 모두 마치고 덕생 법사님의 간단한 공지가 있은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 nbsp 한국에서 이곳 바라나시까지 꼬박 이틀 동안 머나먼 길을 달려와서 그런지 모두들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순례객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모두 숙소로 돌아갔고, 법사님들과 차장, 조장님들은 다시 모여서 늦게까지 내일 순례 일정을 준비했습니다.nbsp nbsp 내일은 새벽 5시에 기상해서 각자 숙소에서 기도를 한 후 6시 30분에 사르나트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처음으로 설법을 해서 불법승 삼보가 이뤄진 곳이고, 구리가장자를 비롯해 처음으로 재가신자가 탄생해 삼귀의 오계가 이뤄진 곳인 ‘사르나트’에서 순례객들 모두가 삼귀의 오계 수계식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제 진정으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의 길을 떠날 채비를 마치게 되는 것이지요. 오후에는 강가강으로 가서 삶과 죽음을 대하는 인도인들의 문화를 느껴보는 시간도 가질 예정입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1.08. 71,345 읽음 댓글 61개

2016.1.6 (인도 1일째) 사르나트 사전답사

nbsp안녕하세요. 인도에서의 첫째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A, B, C팀 순서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성지순례를 시작하게 됩니다. 오늘 스님은 성지순례의 첫 번째 코스인 사르나트 일정을 준비하기 위해 사전 답사를 했습니다. nbspnbsp어제 오후에 인도에 도착해 버스와 식당을 점검한 후 사르나트 근교의 숙소에서 하룻밤을 잔 스님은 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치고 8시에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nbspnbsp식사 후에는 이번에 성지순례 스탭으로 참가하게 된 인도인 ‘수바스지’, ‘아미타부’와 회의를 하였습니다. 수바스지는 A팀 실무를 맡게 되고, 아미타부는 B팀의 실무를 맡을 예정입니다.nbspnbsp▲ 인도인 스탭들과 회의nbsp작년까지는 스탭이 모두 한국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오랫동안 인도JTS 사업을 함께해 온 인도인들이 처음으로 스탭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인도인 스탭들은 주로 차량을 담당해 버스를 컨트롤하고, 물건을 구입하는 등 인도 현지인들을 상대하는 일을 도맡아 하게 되는데, 스님은 인도인 스탭들에게 차량을 운행하면서 명심해야 할 몇 가지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해야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성지순례객들의 버스 4대를 컨트롤 하는 거예요. 버스 회사에서 나온 매니저가 함께 가기 때문에 매니저가 1호차에 타고, 여러분은 4호차에 타서 전체가 잘 가도록 뒷받침을 해줘야 해요. 운전수와 직접 소통할 필요는 없어요. 매너저를 통해서 소통을 하면 돼요.nbspnbspnbsp첫째, 버스가 항상 순서대로 가도록 해줘야 됩니다. 그래서 운전수도 길을 잘 아는 사람이 1번 버스를 맡게 했어요. 예를 들어 버스가 성지 앞에 도착하면 도착한 순서대로 순례객이 버스에서 내려야 해요. 그럴 때 순례객이 다 내리고 다시 출발하기 위해서는 차 방향을 반대로 바꾸어야 할 때가 있어요. 이 때 안내를 잘 해줘야 해요. 진행 방향으로 계속 가면 그대로 가면 되고요.nbspnbsp둘째, 순례 기간 동안 대부분 새벽 4시 20분에 기상해서 5시에 출발하게 됩니다. 특별한 경우에만 1시간을 먼저 출발하게 됩니다. 딱 두 번 그런 경우가 있어요. 멀리 이동해야 하는 날, 즉 쉬라바스티에서 상카시아 가는 날과 라즈길에서 바이샬리 거쳐서 쿠시나가라까지 가는 날이 그렇습니다. 이런 날은 운전수를 평소보다 일찍 잘 수 있게 배려해 줘야 해요. 운전수가 피곤하면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nbspnbsp순례객이 일어나서 짐을 챙겨 1층 로비에 내려오면 4시 40분부터 50분 사이에 버스에 짐을 모두 실어야 합니다. 그래서 4시 30분에는 버스의 문이 다 열려 있어야 해요. 그래서 4시 20분에는 기상, 4시 30분에는 버스 문 열기, 4시 50분에 짐 싣기 완료, 5시에 출발하는 일정입니다. 이렇게 매일 아침 출발이 순조롭게 이뤄지도록 챙겨야 해요.nbspnbsp셋째, 이동하다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차를 멈출 때는 숲이 우거져서 은폐되기 쉬운 곳에 차를 세워야 해요. 한국인 스탭이 “화장실에 가야 합니다”라고 알려주면 10분 안에 그런 곳에 차를 세워야 해요.nbspnbsp넷째, 식사 장소를 잘 찾아야 합니다. 이동 중 매일 오전 10시 전후에는 조별로 보온밥통으로 해온 밥과 한국에서 가져온 반찬으로 식사를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식사 장소는 터가 넓고 깨끗한 곳이여야 해요. 또한 그곳에는 운전수가 짜이를 한 잔 하고 식사도 할 수 있는 작은 가게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만 밥을 먹으면 안 되잖아요. 운전수도 먹어야 하니까요.nbspnbspnbsp▲ B팀 스탭을 맡은 아미타부와 A팀 스탭을 맡은 수바스지다섯째, 차량 상태를 항상 점검해서 고장이 난 것은 쉬는 시간에 고칠 수 있게 해야 해요. 의자가 안 넘어간다든지, 창문이 꼭 안 닫혀서 바람이 들어온다든지, 이런 것들을 항상 점검해야 해요.nbspnbsp여섯째, 아침에 이슬을 밟고 흙을 신발에 묻혀서 버스에 타면 낮에 물기가 말라서 먼지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창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켜주고, 버스 안도 항상 청소를 하도록 챙겨야 해요. nbspnbsp일곱째, 기름을 넣을 때는 가능한 순례객을 성지에 먼저 내려준 다음에 기름을 넣으러 가는 것이 좋습니다. 기름 넣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이에요. 어쩔 수 없을 때는 가는 도중에 기름을 넣어야 하겠지만, 가능한 시간을 좀 절약했으면 합니다.nbspnbsp여덟째, 숙소가 둘로 나뉠 때가 있어요. 그 때는 새벽에 출발할 때 버스 운전수들이 어느 숙소에서 다시 만나서 갈지를 알고 있어야 해요. 물론 그 전날에도 미리 알려주겠지만, 운전수가 잘 알고 있는지 늘 확인을 해야 해요. 바라나시, 쿠시나가라, 상카시아, 세 군데가 숙소가 둘로 나눠져요.nbsp아홉째, 물을 구입한다든지 등 중간에 구입할 것들이 생길 수 있어요. 특히 물은 항상 몇 박스가 남았는지를 체크해서 한국인 스탭들에게 알려줘야 해요.nbspnbsp열째, 순례객들이 중간에 가다가 짜이를 사먹거나 생활상 필요한 작은 물건들을 구입하는 것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순례와 관계없는 비싼 물건을 싸게 사달라고 요청하거나 개인적인 쇼핑을 도와달라고 하면 응해서는 안 됩니다. 즉 순례를 하는 동안 생활 상 필요한 일은 도와주되 개인적인 쇼핑을 도와주면 안 돼요.nbspnbspnbsp나머지는 그날 그날 이야기를 해줄게요. 기본적으로는 한국인 스탭들이 다 처리하는데 인도 현지인들을 상대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은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해요.”nbspnbsp인도인 스탭들은 스님이 강조한 10가지 지침을 명심하며 “그렇게 하겠다”고 크게 대답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이 혹시 궁금한 점이 있으면 더 물어보라고 하니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아직 직접 겪어보지 않아서 당장은 물어볼 것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특별히 수바스지를 가르키며 한 가지를 더 강조했습니다. 수바스지는 스님의 요청에 따라 석가족 청년들을 대표해서 이번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수바스지는 다음에 석가족들을 위해서 성지순례를 안내해야 하니까 잘 봐두어야 해요. 그래서 석가족을 대표해서 이번 성지순례에 참여시킨 거예요. 특히 성지에서 스님이 법문할 때는 늘 스님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에 안내를 할 수 있어요. 사무지가 헤?” nbspnbsp스님이 인도말로 ‘이해하셨어요?’ 라는 뜻인 ‘사무지가 헤?’를 말하니 수바스지도 크게 웃으며 ‘틱헤’ 라고 대답했습니다. ‘틱헤’는 ‘알겠습니다’라는 뜻의 인도말입니다.nbspnbsp이렇게 인도인 스탭들과 회의를 마치고 나서 한국인 스탭 중 일부는 한국에서 출발한 순례객들을 마중하기 위해 델리로 출발했고, 나머지는 스님과 함께 사르나트를 답사하기 위해 숙소에서 나왔습니다.nbspnbsp오토릭샤에 몸을 싣고 삑삑 거리는 소리에 매캐한 매연을 잔뜩 마시며 사르나트로 향했습니다. 조그마한 오토릭샤에 무려 6명이 탄 채 신나게 바람을 가르며 도로 위를 달렸습니다.nbspnbspnbsp▲ 오토릭샤nbsp사르나트에 도착하고 나서는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근처 식당을 찾았습니다. 처음 찾아간 식당에서 한끼 식사에 230루피를 한다고 하자 스님은 깜짝 놀라하며 고개를 젓고 바로 식당을 나왔습니다. 더 값싼 식당을 찾고 찾다가 100루피를 부르는 곳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절약과 검소함이 늘 몸에 배어있는 스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오랜만에 짜파티, 사부지, 달 등 인도식으로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식사를 하면서 “24년 전 인도에 처음 왔을 때는 3루피 주고 한끼를 사먹었어.” 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인도인 스탭인 아미타부가 “스님 말씀이 맞습니다. 24년 전이면 제가 어렸을 때인데 그때 짜파티 5kg이 3루피 했는데, 지금은 110루피 합니다.”라고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동안 인도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인도식 점심식사nbsp식사 후 스님은 수바스지와 함께 인도 성지순례를 마치고 예정되어 있는 상카시아 석가족 청년들과의 수련을 어떻게 준비할지 의논했습니다.nbspnbsp▲ 상카시아 석가족 수련 일정을 함께 짜고 있는 스님과 수바스지nbsp스님도 영어를 잘 못하고, 수바스지도 영어를 잘 못하는데, 두 분의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모습이 무척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눈빛, 그리고 몇 가지 영어 단어, 종이에 그리는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대화가 되는 것은 오랜시간 쌓아온 신뢰 덕분일 겁니다.nbspnbsp식당을 나와서 곧바로 사르나트로 향했습니다. 사르나트는 일명 ‘녹야원’으로도 불리는 곳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후 자신과 함께 고행했던 다섯 수행자들에게 처음으로 설법을 한 곳입니다.nbspnbsp스님은 사르나트 입구에서부터 여러 가지 사항들을 점검했습니다. 정문은 아침에 몇 시부터 입장이 가능한지, 버스 주차는 어떻게 할지, 유적지 정문에서 스투파까지 입장은 어떻게 할지, 이 때 스탭의 역할은 무엇인지 하나씩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초전법륜성지 사르나트nbsp또 유적지 안으로 들어가서는 다메크 스투파를 참배한 후 이곳에서 수계식을 할 예정인데, 순례객들을 어떤 대형으로 자리에 앉힐지, 이 때 햇빛은 어느 쪽에서 비치는지, 사진이 잘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점검했습니다.nbspnbsp▲ 다메크 수투파nbsp그리고 화장실 안도 둘러보았습니다. 소변기와 좌변기의 개수가 남녀 각각 몇 개가 되는지, 탑돌이를 하는 동안 구경하는 인도 사람들이 가방과 짐을 훔쳐갈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스님은 꼼꼼히 확인을 했습니다.nbspnbspnbsp사르나트를 걸어나오는 길에는 ‘물간다쿠티’와 ‘다르마라지크 스투파’를 참배했습니다. ‘물간다쿠티’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후 첫 안거를 보내신 곳에 후세에 세운 절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허물어지고 덧지어서 원래의 모양을 추정하기는 어렵겠지만, 기둥과 벽에 많은 금박을 붙여 놓은 것으로 봐서 순례객들이 얼마나 이곳을 성스럽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물간다쿠티 앞에서 정성을 기울여 합장하고 삼배를 했습니다.nbspnbsp▲ 물간다쿠티nbsp그리고 이곳이 불교 성지임을 알려주는 아쇼카 석주가 세워진 유적도 둘러보며 간단히 설명도 해주었습니다.nbspnbsp▲ 아쇼카 석주nbsp마지막으로는 부처님께서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법을 설한 곳에 세워진 ‘다르마라지크 스투파’를 참배했습니다. 스님은 “이곳이 원래 부처님이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곳인데, 이곳 바라나시의 힌두 왕이 탑을 헐어서 그 벽돌로 자기 집을 짓고, 탑 안에 있는 사리는 강가강에 던져버렸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비단 이렇게 파괴된 곳이 한 두 개가 아니지만 직접 그 현장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nbspnbsp▲ 다르마라지크 수투파nbsp저 멀리 다메크 수투파를 배경으로 사전 답사를 온 일행 모두가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 찍기에 햇살도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인도 날씨는 늘 안개가 자욱하기 마련인데 오늘은 햇살이 가득해서 마치 한국의 봄날씨 같았습니다.nbspnbspnbsp사느나트를 나와서 곧이어 신물간다쿠티로 향했습니다. 신물간다쿠티로 향하는 길에는 자이나교 사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스님은 매년 이곳을 지나쳐 가기만 했는데, 오늘은 시간 여유가 있어서 직접 들어가 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 자이나교 사원nbsp스님은 “자이나교는 크게 아무것도 입지 않는 나체파와 흰 옷만 걸치는 백의파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왜 곳곳에 옷을 입지 않은 성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 나체 모습의 자이나교 성자nbsp자이나교 사원 앞뜰에는 반얀트리라고 하는 커다란 나무가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어 시선을 멈추게 했습니다. 특히 길게 늘어뜨린 나뭇가지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나뭇가지에서 다시 땅으로 뿌리를 내렸는데, 마치 기둥처럼 나뭇가지를 받추고 있는 모습이여서 참 신기했습니다.nbspnbsp▲ 반얀트리nbsp이어서 ‘신물간다쿠티’를 참배했습니다. ‘신물간다쿠티’는 ‘마하보디소사이어티’를 창시한 스리랑카의 전법사 담마팔라가 지은 절입니다.nbspnbsp▲ 신물간다쿠티nbsp참배를 마친 후 스님은 이곳에 120여 명이 모두 들어와서 설명을 들을 수 있는지를 간단히 점검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한편 신물간다쿠티 뒤쪽으로는 사슴이 뛰어 다니는 사르나트 동물원과 담마팔라 법사의 스투파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담마팔라 법사는 사라진 인도 불교를 다시 싹틔운 분이라는 점에서 마치 우리나라 불교를 중흥시키기 위해 ‘대각회’를 창건하신 용성 스님과 비견할 만한 분이다 싶었습니다. 실제로 용성 스님과 담마팔라 법사는 동시대에 살았고 직접 만나 교류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두 분이 만드신 단체인 ‘마하보디소사이어티’와 ‘대각회’는 같은 이름인데,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신기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는 사르나트 박물관을 둘러보았습니다. 스님은 박물관에서 꼭 설명해줘야 하는 네 가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 사르나트 박물관nbsp“이곳에서는 4가지를 꼭 설명해줘야 해요. 첫째는 아쇼카 석주의 머리 꼭대기 부분에 있었던 네 마리의 사자상이고, 이 4사자 석등은 현재 인도의 국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둘째는 설법인 모양을 하고 있는 초전법륜 상이고, 셋째는 사르나트식 불상이고, 넷째는 4대 성지와 8대 성지가 새겨진 석판이예요....”nbsp그리고 박물관을 나와서는 순례객들의 박물관 입장과 관련해서 몇 가지를 더 점검했습니다. 특히 스마트폰과 카메라는 박물관 안으로의 반입이 금지되어 있는데 이 부분을 순례객들이 간과할 수 있어서 스마트폰과 카메라는 모두 가방에 넣어 조별로 정문 앞에 모아두고 입장하도록 계획을 세웠습니다.nbspnbsp이렇게 곳곳을 꼼꼼히 점검한 후 오토릭샤를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에서는 밤늦게까지 성지순례 준비상황을 준비하며 업무를 본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nbsp이번 성지순례가 제27차 성지순례이니까 스님은 벌써 27번이나 이곳을 방문한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처음 이곳에 온 것처럼 직접 발로 걸어서 꼼꼼히 점검을 하는 모습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역시 현장에 와보니 지금 조건에서 또다시 바뀌는 것이 생겼고, 더 나은 방법들이 찾아지는 것을 보니 직접 확인하는 것과 사전 준비하는 것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내일은 선주 법사님, 덕생 법사님, 자광 법사님과 함께 A팀이 바라나시에 도착합니다. 스님은 공항에 마중을 나가서 순례객들에게 꽃목걸이를 하나씩 걸어주며 환영할 예정입니다.nbsp※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1.07. 56,823 읽음 댓글 61개

2016.1.5 방콕 출발, 인도 도착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방콕정토회 회원들과 간담회 시간을 가진 후 방콕공항을 출발해 인도 바라나시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어제 방콕 한국문화원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마친 후 방콕정토법당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친 후 방콕정토회 회원들이 정성껏 준비해 준 음식으로 아침식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아침식사 후에는 어제 강연 실무를 담당하느라 스님께 질문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방콕정토회 회원들을 위해 편안하게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방콕정토회 회원들은 아침 정진을 하러 나온 김에 스님께 인사도 올리고, 그동안 갖고 있던 의문에 대해서도 속시원히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방콕 정토법당nbsp유달리 개인 고민보다는 사회문제에 대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해외에 살다보니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궁금함이 컸나 봅니다.nbspnbsp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재벌 기업의 횡포가 심한데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유럽과 미국, 아시아 등 각 나라별로 교민들이 갖는 특성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미국 공화당에서 트럼프 후보 같은 사람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이고,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사회가 정체될 때 일어나는 현상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등 평소 궁금하던 점에 대해 많은 질문과 대화가 오갔습니다. nbspnbsp그 중에 한 분이 회사 업무로 조만간 독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는데 독일에 있으면서도 한반도의 통일에 관련된 연구활동 등 작은 기여를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독일의 통일과 한국의 통일이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묻자, 스님은 한반도의 통일과 관련해서 몇 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독일은 서독이 통일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기 이전에도 통일할 수 있는 토대를 계속 구축해 왔어요. 독일은 통일을 이야기하지 않고도 통일을 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 왔다면 우리는 통일을 이야기만 하고 통일할 수 있는 실질적 토대는 전혀 구축하지 않고 오히려 반통일적이라 볼 수도 있는 정책을 계속 취해왔습니다. 이것이 우리와 독일의 차이입니다.nbspnbspnbsp또 독일은 분단이 될 때부터 서독이 약간 우위였고 동독은 땅 크기나 인구 구성에서나 열세였어요. 거기에 비해 우리의 통일이 조금 더 어려운 이유는 분단 초기에 북한이 남한보다 우세했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도 우위였고, 도덕적으로도 자기들이 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남쪽은 친일 부역했던 사람들이 새정부 구성에 많이 참여하고, 물리적으로도 열세이다 보니 좀 방어적이었어요. 그러다가 남한이 힘이 더 세지고 북한이 약해졌기 때문에 남한이 갖는 포용성이 좀 떨어집니다. 초기의 방어적인 습성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지금도 한편으로는 북한이 내일 당장 쳐내려온다고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이 내일 당장 망한다고 하면서 앞뒤 안 맞는 말을 계속하고 있잖아요. nbspnbspnbsp내일 쳐내려올 정도면 망할 이유가 없죠. 만약 북한이 옛날부터 못살거나 약했다면 자존심이 덜할 텐데 옛날에 잘 나갔던 경험이 있으니까 지금 굶어죽으면서도 조금도 물러서거나 양보하지 않고 큰소리를 치려 하죠. 여기에 미국과 주변 강대국의 이해까지 걸려 있으니 남북협상이 더 어려워요. 거기다 남한은 이제 힘이 더 세어졌으니까 그런 북한을 한치도 용납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접점을 찾기가 어려워요.nbspnbsp그래서 제 생각에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첫째, 무엇보다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자신감을 갖고 과감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북한의 공격에 대한 방어력은 굳건히 하되 좀 포용해줄 수 있어야 해요. 셋째, 미국에 대해서는 한미동맹을 견고하게 유지하되 자주적 동맹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지금의 국제정세에서 한미동맹을 흩뜨리면 안 돼요. 그러나 지금은 그저 미국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종속적 동맹이기 때문에 남북문제를 풀기가 어려워요. 적어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의 이익을 더 우선시하는 자주적 한미동맹으로 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반미를 외치는 것은 지금 시대에 안 맞습니다.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우리에게 굉장한 이익이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굉장한 위험이기도 합니다. 그걸 방어하려면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하는데, 현재와 같은 종속적 한미동맹에서는 미국이 한국을 대중 방어전선의 최전선에 세울려고 하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는 곧장 중국의 목표물이 됩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때 우리 나라를 두고 청나라와 일본이 싸우는 것과 같은 상황에 다시 놓이게 됩니다.nbspnbsp이런 난국을 어떻게 풀어나갈 거냐 하는 외교적 문제, 남북 간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거냐 하는 남북의 문제,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방향을 두고 남한 안에서 의견을 어떻게 통합할 거냐 하는 남남 통합의 문제, 이 세 가지 문제가 지금 겹쳐 있어요. 아무리 남북관계를 풀려고 해도 푸는 방법에 대한 남한 안에서의 견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랬다가 저랬다가를 반복하잖아요.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남한 안에서의 국민통합이고, 그 다음이 남북 간의 합의이고, 그 다음이 국제사회에서 미중 모두로부터 동의를 얻어내는 것입니다. 중국의 이익에 치우쳐도 안 되고 미국의 이익에 치우쳐도 안 돼요.nbsp그렇다고 객관적으로 따져서 정확히 중간에 서면 되느냐? 아닙니다. 그러면 미국이 기분 나빠합니다. 우리가 원래 미국 편에 서 있었기 때문이에요. 인간 심리가 참 묘합니다. 원래 우리 둘이 친했는데 새로운 친구가 와서 내가 중간에 끼면 새 친구는 괜찮지만 원래 친했던 친구는 기분 나빠해요. nbspnbspnbsp그래서 중간에 끼었더라도 옛 친구에게 조금 더 비중을 두고 챙겨주면서 새 친구를 사귀어야 갈등이 덜해요. 새로 얻는 쪽은 현재의 30퍼센트에서 5퍼센트만 더 얻어도 만족하지만, 70퍼센트를 가지고 있던 쪽은 5퍼센트만 잃어도 싫어합니다. 새로운 친구보다 2배 가까이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옛날의 이익에 비하면 손해이기 때문이에요.nbspnbsp인간 심리가 그렇게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가 중간에서 잘 조절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걸 잘 못합니다. 대통령도 지금 외교 면에서는 나름대로 굉장히 고심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북한을 다루려면 중국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지난번에 중국의 의견을 한번 수용했더니 미국은 굉장히 기분 나빠하는 거예요. 우리가 보기에는 대통령이 친미주의 같지만, 미국에서는 오히려 한국 대통령이 중국과 몰래 무슨 협상이라도 하고 있지 않나 하고 굉장히 의심하고 있어요.nbspnbsp지금 우리는 그런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 있습니다. 그러니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지나친 간섭을 배제하는 데 있어서는 우리가 대통령을 지지해줘야 해요.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주적 입장에서 대통령을 지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내 문제에 있어서의 독재나 독선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비판을 해야 합니다.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이라 하더라도 지역주의에 뿌리를 둔 것은 또 비판해야 합니다. 이렇게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아요. 얼핏 보면 언제는 이 사람 욕하고 언제는 또 저 사람 욕하는 걸로 보이잖아요.nbsp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로서의 북한은 존중해 줘야 합니다. 그러나 주민을 보살피지 않는 북한정부는 비판해야 해요. 또 북한주민은 사랑해야 합니다. 북한을 사랑하고, 북한을 비판하고, 북한을 존중한다니 말이 안 된다고 하지만 ‘북한’이라는 용어가 지칭하는 대상이 다 달라요. ‘북한’이라는 용어가 국가로 쓰일 때는 하나의 국가로 존중해줘야 하고, 그것이 북한 정부를 지칭할 때는 독재정권이니까 비판해야 하고, ‘북한을 돕자’ 할 때의 ‘북한’은 북한 주민을 뜻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와야 합니다. 이런 세 가지 경우를 같이 어울려서 쓰니까 일반인들은 헷갈려서 혼란스러워하는 거예요.nbspnbsp오늘은 개인 이야기를 하려다가 사회 이야기를 많이 했네요. 여러분들이 다 사회적으로 똑똑한 사람들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nbsp남북 문제를 바라보는 스님의 폭넓은 시각에 모두들 흠뻑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했습니다. 방콕정토회 회원들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지만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 되어 아쉽지만 간담회를 마쳤습니다.nbspnbsp공항으로 출발하는 스님에게 방콕정토회 회원들은 무사히 인도성지순례를 마칠 것을 당부하면서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는 얼굴들이 너무나 예뻐 보였습니다. 새해부터 스님의 행복 에너지를 듬뿍 받은 방콕정토회 회원들의 왕성한 활동이 기대됩니다.nbspnbspnbspnbsp공항으로 가는 길에는 비교적 저렴하게 수련원을 지을 수 있는 땅과 건물이 나왔다고 해서 잠깐 들러서 답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지도를 계속 검색하며 여러 가지 상황들을 검토하느라 차 안에서도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nbsp방콕 수와나품 공항에 도착해서는 출국 수속을 마친 후 12시 10분에 바라나시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면서, 줄을 서면서, 버스에 타면서,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 스님은 이동 중에도 계속 원고 교정 업무를 보았습니다.nbspnbsp▲ 이동 중에 늘 원고 교정을 보시는 스님nbsp인도 현지 시간으로 오후 4시에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찾아 공항을 나오자 이번 인도성지순례 스텝인 김윤미님과 인도인 스텝 아미타부가 반갑게 스님 일행을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 바라나시nbsp공항 도착nbsp털털 거리는 버스를 타고 공항을 나와 바라나시 도심에 접어들자 캐캐한 매연 냄새와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들, 도로 위에 드러앉아 있는 소, 릭셔꾼 등 너무나 정겨운 인도의 풍경들이 펼쳐졌습니다. 삑삑 거리는 오토릭샤의 경적 소리를 듣고 나니 그제서야 ‘아, 인도에 온 게 맞긴 맞구나’ 하고 실감이 났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성지순례객이 바라나시에서 머물게 될 수라비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었습니다.nbspnbspnbsp먼 길을 온 여독을 풀며 휴식을 취하는 사이 석가족 출신의 끼아나로 스님이 찾아와 스님께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 석가족 출신 끼아나로 스님nbsp끼아나로 스님은 석가족 청년회에서 활동하면서 스님과 오랜 인연을 맺어오고 있는 수바스지의 사촌 동생이면서 석가족 출신 스님입니다. 스리랑카에서 불교를 공부한 후 지금은 바나라시의 물간다 쿠띠에 머물며 힌두대학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JTS가 이번 성지순례 준비를 하는 과정에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해서 스님은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 끼아나로 스님과 수바스지nbspnbsp이후에는 숙소에서 인도성지순례 준비 상황을 보고 받고 체크를 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일은 인도성지순례 A팀이 한국을 출발해 방콕을 경유하여 바라나시로 들어오는 일정을 가집니다. 스님은 성지순례 준비 상황을 계속 점검하면서 필요하면 인근 지역을 답사도 할 예정입니다.nbsp ※ 인도로 떠난 법륜 스님,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을 카카오톡으로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nbsp법륜 스님의 하루를nbsp친구로 추가

2016.01.06. 65,712 읽음 댓글 56개

2016.1.4 방콕(Bangkok)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인도성지순례를 안내하기 위해 델리로 가는 길에 방콕을 하루 경유하여 방콕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예불과 기도를 마친 공동체 대중들이 인천공항으로 막 출발하려는 스님에게 “건강히 잘 다녀오세요” 라고 하며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도 합장을 하고 “잘 다녀오겠습니다” 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nbspnbsp▲ 한 달 동안의 해외 일정을 떠나는 스님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공동체 대중들nbsp새벽 6시에 서울 정토회관을 나온 스님은 인천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고 9시 30분에 방콕으로 출발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해외로 떠나는 인파들이 많아 출국심사대에서 꽤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는데, 스님은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게이트로 이동하면서, 계속 원고 교정 업무를 보며 시간을 아껴 사용했습니다.nbspnbsp▲ 인천공항nbsp약 5시간 30분을 비행하여 태국 시간으로 오후 2시에 방콕 공항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방콕 공항에는 황소연 방콕정토회 총무님과 동생분이 마중을 나와 스님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지난 세계 100회 강연 이후 오랜만에 스님을 뵙게 되었다며 무척 기뻐하면서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nbspnbsp▲ 방콕정토회 황소연 총무님과 동생분nbsp강연 시간까지는 시간 여유가 좀 있어서 수련장을 지을 만한 땅과 건물이 값싸게 나온 것이 있다고 해서 몇 군데를 둘러보았습니다. 방콕은 동남아시아에서 교통의 중심지여서 수련장이 지어질 경우 동남아 전체의 본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스님은 땅과 건물을 보고 있습니다. nbspnbspnbsp방콕 정토법당에 들러 점심 겸 저녁으로 식사를 하고, 잠깐 휴식을 취하다가 강연이 열리는 한국 문화원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한국 문화원 2층 대강당에 스님의 강연을 듣고자 많은 분들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대기실에는 몇몇 지역 인사분들이 스님께 찾아와 인사를 했습니다.nbspnbsp▲ 방콕 한국문화원nbsp민주평화통일위원회 태국지부 회장님과 옥타세계무역협회 태국지부 회장님, 태국한인회 회장님 등 몇몇 분들이 함께 자리한 가운데 최근 태국 경제 현황, 방콕의 도시개발 상황, 동남아 지역경제의 전망 등에 대해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한인회 회장님은 지난 세계 100회 강연 이야기를 하면서 어떻게 그런 살인적인 스케쥴을 다 소화할 수 있었느냐고 하면서 존경심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 태국 한인 사회의 주요 인사들과 간담회nbsp이어서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립법회를 열고 있는 김경필, 고명주씨 부부가 찾아와 스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두 분은 재작년 세계 100회 강연 중 하노이에서 열린강연에 참석했다가 스님에게 직접 질문을 하는 기회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 인연을 계기로 지금까지 수행을 이어오고 있는데, 고명주씨는 “하노이 강연에서 질문했을 때 스님께 크게 야단을 맞아서 너무 부끄러웠다”며 웃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야단 맞은 것은 큰 복을 받은 것이니까 그것을 갚으려면 법회를 만들어야지” 하며 격려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 하노이에서 열린 법회를 시작한 김경필, 고명주씨 부부nbsp그리고 스님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법회를 열고 있는 두 분을 위해 기념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또 올해 6월에 세계한민족포럼이 2박 3일 동안 하노이에서 열리는데, 이 때 잠시 시간을 내어서 즉문즉설 강연을 해줄 테니까 잘 준비해 보라며 힘을 실어 주기도 했습니다.nbspnbsp한편 방콕정토회에서는 강연장을 찾은 교민들을 위해 직접 준비한 색깔 고운 떡과 귤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환경 실천을 하기 위해 떡을 담는 그릇으로 나뭇잎을 일일이 감싼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떡을 나눠주는 봉사자는 “방콕정토회는 환경을 생각하며 합니다”라며 자부심을 내비쳤습니다.nbspnbsp▲ 환경 실천을 위해 나뭇잎으로 포장한 떡nbsp저녁 7시가 되자 스님 소개 영상과 함께 드디어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자리를 가득 메운 150여 명의 교민들은 스님이 무대 위로 오르자 큰 박수로 열렬히 환영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환한 웃음을 보이며 먼저 새해 인사를 건넸습니다.nbspnbspnbsp“새해 연휴 잘 보내셨어요? 새해 시작되자마자 방콕에 오게 됐네요. 지금까지는 주로 인도 성지순례를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방콕에 들러 법회를 하는 일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돌아오는 날이 설이에요. 설에는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참석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인도로 가는 날을 하루 당겨서 이렇게 연초에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nbsp그리고 즉문즉설 강연의 취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후 거두절미하고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nbsp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방콕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종업원에게 순간적으로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게 된다며 어떻게 성질을 고칠 수 있는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고기를 엄청 좋아하지만 다른 생명을 헤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자살하려고 여러 번 시도를 했었는데, 자살은 남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를 죽이는 것인데 왜 사람들은 자살을 나쁘게 보는 것인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네 번째 질문자는 외국인 여성과 결혼을 했는데, 폭언이 너무 심해 도망을 치다시피 집을 나오게 되었다며 어떻게 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지 물었고, 다섯 번째 질문자는 비록 해외에 살고 있지만 남북통일을 위해 어떻게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조직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한 개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물었고, 여섯 번째 질문자는 스님은 죽음이 두렵지 않은지,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종업원에게 화를 자주 내게 되어 고민이라는 첫 번째 질문자의 질문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질문자 뿐만 아니라 우리들 대부분이 어떤 어리석음에 자주 빠지게 되는지 상기시켜 주었습니다.nbspnbspnbsp“가족들과 방콕에 온 지 13년째이고 6년 전부터는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스님 동영상을 보고 많이 뉘우치긴 했지만, 결벽증이 심해서 짜증을 많이 내느라 인생이 항상 피곤합니다. 병원도 가봤지만 나아지지 않아서 종업원들에게 항상 순간적으로 화를 내고 소리를 지릅니다. 장사를 하다 보니 목소리도 커지고 화내는 때도 많아져서 주변 사람들은 ‘또 시작하는구나’ 할 정도예요. 그러면 협조해주지 않고 무시하는 것 같아서 더 화가 납니다.”nbsp“한마디로 질문자의 성질이 더럽다는 거군요. 다른 사람에게 짜증을 많이 낸다, 신경질을 많이 낸다는 얘기죠? 질문자는 어떨 때 주로 신경질을 내는 것 같아요?”nbsp“행주질 하는 것이나 청소하는 것만 봐도 그래요. 몇 번씩 방법을 가르쳐줘도 제가 직접 보지 않으면 대충 해버리니까 화를 많이 내게 됩니다.”nbspnbsp“종업원들이 질문자처럼 행주질도 잘하고 청소도 잘하고 음식도 잘 만들고 뭐든지 다 잘하면 좋겠지만, 그러면 왜 질문자에게 와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겠어요? 자기가 사장해서 가게를 차리죠. 한번 가르쳐주면 알아서 깔끔하게 할 정도의 솜씨가 있으면 금방 배워서 자기도 사업체를 차릴 텐데, 그게 안 되니까 질문자 밑에서 몇 년씩 그렇게 일을 하는 거잖아요.nbsp질문자가 종업원에게 마음에 들도록 일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는 곧 사업을 그만두겠다는 이야기와 똑같아요. 그 사람이 그렇게 잘 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질문자는 사장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늘 부하 직원들에게 내가 말을 안 해도 알아서 잘 하고 나보다 더 일을 잘 처리해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왜 거기서 일하겠어요?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잠시 하다가 나가서 다 자기 사업을 하죠. 능력이 되면 다 조금 하다가 독립해요. 여기 계신 분들도 능력이 되니까 다들 독립해서 일하잖아요. nbspnbspnbsp그러니 일 못하는 걸 두고 성질내고 화내면 앞뒤가 안 맞아요. 여러분들이 질문을 할 때 제가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 머리가 그렇게밖에 안 돌아가느냐’ 하면서 질문자를 늘 구박하고, 수준이 안 맞아서 법문 못 하겠다고 불평한다면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지혜가 없기 때문에 질문을 하지, 그런 지혜가 있으면 질문을 왜 하겠어요? 저는 거의 비슷한 질문을 받고 거의 비슷한 대답을 하기를 수십 년 째 해왔고 죽을 때까지 계속할 거예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제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제가 법문을 안 해야죠. 생각이 그렇게 안 돌아가니까 괴로워지고, 괴로우니까 질문을 하는 것인데 내 기대에 안 미친다고 성질내면 앞뒤가 안 맞잖아요. 어떻게 생각해요?”nbsp“예. 순간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나면 저도 좀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그게 마음대로 잘 안 됩니다.”nbsp“순간적이든 아니든, 질문자는 상대에게 내 식대로 되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내 식대로 안 되니까 성질을 부리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은 애초에 질문자 만큼 될 수가 없는 사람이에요. 질문자의 마음에 쏙 드는 직원이 있다면 곧 질문자의 강력한 경쟁 대상이 될 겁니다. 나가서 질문자와 같은 사업을 시작할 거예요.nbspnbsp한국 사람들 한번 보세요. 30년 쯤 전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갔던 사람들은 모두 시골에서 농사짓던 사람이 아니라 대학 나오고 똑똑한 사람들이었어요. 한국에서 월급받는 것보다 미국에서 노동하는 게 더 돈벌이가 된다고 해서 미국으로 건너갔잖아요. 다들 똑똑한 사람들이다 보니, 처음에는 접시도 닦고 심부름하는 잡무를 맡았지만, 지금 보면 30년째 계속 종업원으로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보통은 23년 쯤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나와서 자기 사업을 합니다.nbspnbsp그런데 이것 때문에 우리 한국 사람끼리 많이 싸웁니다. 스패니시나 흑인들을 데려다 놓으면 문화도 다르고 일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드니까 한국 사람을 데려와 씁니다. 그러면 일은 마음에 들지만 종업원으로 오래 일하는 사람이 없어요. 23년 있다가 고용주와 갈등이 생기면 나와서 독립합니다. 세탁소에 있던 사람은 나와서 근처에 세탁소를 차리고, 채소가게에 있었던 사람은 나와서 근처에 채소가게 차리고, 네일가게에 있었던 사람은 나와서 근처에 네일가게를 차리니까 서로 원수가 돼요.nbspnbsp그런데 이치로 생각해보면 시비할 게 없어요. 첫째, 똑똑한 사람이 무엇 때문에 남의 밑에 계속 있겠어요? 둘째, 채소가게에서 일하다가 나왔으니까 자기가 그 경험으로 할 수 있는 게 채소가게밖에 없어요. 게다가 한국도 아니고 외국 생활이니 전혀 모르는 일을 벌이기가 더 힘들죠. 셋째, 겨우 첫 가게를 내는데 근처에 차려야 종업원 하면서 알던 손님 중 얼마라도 좀 가져갈 수 있잖아요. 먼 곳으로 가면 손님을 100퍼센트 새로 구해야 하니 힘들어요. nbspnbspnbsp내 이익만 생각하면 괘씸한 일일지 몰라도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것 밖에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게 싫다면 종업원으로 스패니시를 데려오면 됩니다. 그러면 10년이든 30년이든 가게를 독립해서 차릴 생각 없이 종업원으로 일합니다. 대신 속이 터지죠. nbspnbsp그러니까 선택을 해야 해요. 질문자의 마음에 들게 하려면 한국에서 괜찮은 젊은이를 뽑아서 일을 시키면 돼요. 대신 월급을 많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월급은 한 300달러 쯤 주면서 청소든 뭐든 다 내 마음에 들도록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건 질문자의 욕심이에요. 월급은 조금 주고 일은 자기 마음에 들도록 해주기를 바라는 거잖아요. 그런 건 애초에 불가능해요. 뭐든지 자기 식대로, 자기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거예요. 돈은 조금 주고 싶고, 일은 잘 하라고 하니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을 두고 안 된다고 성질부리니까 결국 자기 건강만 해치는 거예요.nbspnbsp그 사람들 입장에서도 좋을 게 없습니다. 성질내는 것뿐 아니라 야단치는 것도 마찬가지여서 한두 번, 많아도 세 번까지만 효과가 납니다. 무엇이든 시간이 지나면 면역력이 생겨요. 병충해나 바이러스도 오래되면 면역력이 생깁니다. 사람은 이걸 적응력이라고 해요. 야단을 맞으면 처음에는 두렵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면역력이 생겨서, 나중에는 사장이 야단을 쳐도 ‘또 미쳐서 날뛰는구나’ 하고 별로 겁도 안 내요. 오히려 비웃죠.nbspnbsp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때릴 때만 겁을 내지, 엄마가 늘 매로 때리면 아이가 거기에 적응해서 무의식 세계가 ‘까짓 거 맞으면 되지’ 이렇게 됩니다. 때린다고 겁내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일을 저지를 때 이미 맞을 각오를 하고 저질러요. 야단치고 성질부리는 것은 단기적으로나 효과가 있지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없습니다. 질문자도 너무 자주 신경질을 냈기 때문에 결국 자기 성질만 더러워지고 종업원들은 아무도 질문자를 겁내지 않게 되어버렸어요. 그 근본은 종업원 문제가 아니라 질문자 문제입니다.nbspnbspnbsp성질이 더럽다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 질문자가 욕심이 지나치다는 게 가장 문제입니다. 월급은 조금 줘놓고 일은 나만큼 하라고 하니까요. 질문자라면 지금 월급 300달러 받고 그 일 안 할 거잖아요. 어디 가서 그렇게 깔끔하게 일해주려면 3000달러는 받으려 하지 않겠어요? 질문자가 종업원에게 그만큼 주면서 요구를 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보다 훨씬 적은 돈을 주면서 일은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지나친 욕심입니다. 거기에다 성질까지 내니까 질문자만 손해지요.nbspnbsp야단치려고 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치를 이야기한 거예요. 이 문제는 질문자뿐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그래서 여기 와서 사업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월급을 300달러 주었는데 일도 300달러 어치 하면 잘 했다고 생각해서 항상 격려해주고 고맙게 여겨야 해요. 나라면 300달러 받고 그 정도로 일해주지 않을 거잖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종업원들이 일은 한 1000달러 어치 해주고 받아가기는 300달러만 받아가길 바래요. 그래야 700불이 남으니까요. 종업원을 두는 이유는 다 그렇게 해서 얻은 차익으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가게를 하든 무슨 사업을 하든 내가 돈을 버는 게 다 그 사람들 덕분인데 그 사람들한테 매일 신경질을 내면 그건 사업 안 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무릎 꿇고 고맙다고 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항상 ‘아이고, 고맙다. 오늘 수고했다’ 이렇게 인사를 해줘야 해요. 그리고 계속 데리고 있을 생각이라면 열 번 가르쳐줘서 못한다고 답답해 하지 말고 11번 가르쳐줘야 합니다. 한번 가르쳐서 바로 알아들을 사람이면 금방 배워가지고 자기 일 하지, 거기 붙어 있을 이유가 없어요. 이게 우리의 욕심이고 우리의 무지입니다. 이치에 맞게 하지 않게 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예요.nbsp근본 이치는 그렇지만, 신경질이 너무 많은 경우는 몸에 어떤 스트레스성 질환이 있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호르몬 분비에 불균형이 생겨서 발작처럼 성질을 부리는 증세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건강도 체크해 볼 필요가 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건강이 나빠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건강이 나빠져서 성격이 히스테리컬하게 변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먼저 건강 체크를 해서 조금 여유를 가지는 게 필요합니다.nbspnbspnbsp이렇게 신경질이 많은 사람은 감사기도를 해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108배 절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기도를 하세요.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도 감사하고, 이렇게 신경질 많은 나와 살아주는 남편도 감사하고, 신경질 많은 엄마와 살아주는 아이들도 고맙고, 나처럼 신경질 내는 사장과 함께 일해주는 종업원들도 고마운 거예요. 손님들도 매일 와서 밥을 먹어줘서 내가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니 고마운 존재입니다. 이렇게 감사기도를 해야 신경질이 좀 누그러지고 까르마가 바뀝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절을 하면서 항상 감사기도를 해야 해요.”nbsp“감사합니다.” nbspnbsp질문자의 안색이 많이 좋지 않았는데, 스님은 마지막에 가서 질문자의 건강을 많이 염려했습니다. 스님의 애정어린 조언에 질문자도 감사 인사를 했고, 청중들도 큰 박수로 격려의 마음을 표했습니다.nbspnbsp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어느덧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강연을 마치며 스님은 간단히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은 저한테 이렇게 개인사를 이야기하지만, 저를 개인사 해결해주는 상담사로 이해한다면 오산이에요. 저는 여러분들이 무엇을 묻든 상관없이 늘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참선에 대해서 묻든, 경전에 대해서 묻든, 부부관계에 대해서 묻든, 장사에 대해서 묻든, 그건 질문의 종류에 불과해요. 깨달음이나 참선에 대해서 물으면 질문 수준이 높고, 부부갈등에 대해 물으면 수준이 낮다고 이해하면 안 돼요. 다들 똑같이 그냥 질문일 뿐입니다.nbspnbspnbsp질문이 무엇이든, 질문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는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겁니다. 무지를 깨달아야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nbspnbsp그러면 뭘 깨달아야 할까요? 지금 대화를 하면서 ‘상대가 제대로 못한다고 내가 화를 냈다’ 이렇게 현실이 나타났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제대로 못 하는 것은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어요. 제대로 못 하니까 내 밑에 와 있지, 제대로 하면 애초에 내 밑에 올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제대로 못 한다고 화를 낼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제대로 못 하면 제대로 하도록 가르쳐주면 됩니다. 한번 가르쳐줬는데 못 한다고 화낼 이유도 없어요. 한번 가르쳐줘서 알 사람이면 애초에 내 밑에 와서 살 사람이 아니에요. 한번 가르쳐줘서 모르면 두 번 가르쳐주고, 두 번 가르쳐줘서 모르면 세 번 가르쳐주고, 열 번 가르쳐서 모르면 열한 번 가르쳐주고, 가르쳐주는 시간이 이 사람이 와서 일하는 시간보다 더 많이 들어서 비효율적이라면 내보내면 돼요.nbspnbsp이건 화내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종업원이 가르쳐주는 대로 안 해서 화가 났다고 하지만 사실 화내는 것과 종업원이 일 못하는 건 아무 관계가 없어요. 자기 성질이 더러워서 화를 내는 겁니다. 내가 그렇게 화내서 종업원이 일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내 사업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백해무익한 짓을 아무 이유 없이 하는 거예요. 이런 걸 ‘미쳤다’라고 합니다. 그냥 자기 혼자 미쳐서 이런 짓을 하는 거예요. ‘미쳤다’는 건 곧 무지, 즉 어리석다는 이야기입니다. ‘잘 했다, 잘못했다’의 문제가 아니에요.nbspnbsp이렇게 우리가 조금 현명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결혼했으면 결혼한 대로 좋아야 하고, 장사를 하면 장사하는 게 좋아야 하고, 혼자 살면 혼자 사는 게 좋아야 해요. 그래서 괴로울 일이 없어야 합니다. 괴로울 일이 없다는 게 곧 열반입니다.nbspnbspnbsp현실에서는 까르마가 있기 때문에 좀 괴롭습니다. 순간적으로 화도 나고, 순간적으로 짜증도 나고, 순간적으로 욕심도 나지만, 그러나 금방 정신을 차린다면 괴로웠다가도 금방 돌아오고, 화냈다가도 금방 돌아올 수 있어요.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어, 내가 또 미쳤구나’ 이렇게 돌아오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 때문에’라며 상대를 탓하니까 인생이 계속 괴로워지는 겁니다.nbsp예컨대 통일문제를 풀려면 북한이 저렇게 한다고 북한을 욕하는 것은 통일에 아무 도움이 안 돼요. 저렇게 핵무기 만들고 난리 피우는 상대를 어떻게 구슬리고 관리하고 압박해서 통일에 유리하도록 끌고갈 지 고민하는 게 정책입니다. 욕하는 건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안 돼요.nbspnbsp질문자도 화를 내지 말고 머리를 굴려 계산을 해보세요. 가르쳐도 잘 못하고 어리버리한 종업원이지만 데리고 있는 게 그래도 나을지, 내보내는 게 나을지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비교해보고 내보내는 건 괜찮지만, 성질이 나서 내보내면 현명하지 못합니다. 남편이 어쩌고, 아내가 어쩌고 하며 불평들을 하지만 그래도 다 득이 되니까 같이 사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아무리 욕을 해도 저는 거기에 잘 휘말려 들어가지 않아요. 배우자가 저녁에 성질내고 욕할 때는 기분 나쁘지만 그래도 다른 좋은 게 있는 거예요. 욕 들으면 하루 만에 가버릴 수도 있는데 왜 수십 년씩 붙어살겠어요? 뭔가 자기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보다가 이제 손익분기점이 넘어가니까 그만두고 나오는 거예요. nbspnbspnbsp새해부터는 이렇게 별 것 아닌 일로 욕하고 성질내지 말고 지나간 건 털어버리세요. 그 사람만 이기적인 게 아니라 나도 이기적이라는 걸 인정해야 해요. 그 사람만 나를 사랑 안하는 게 아니라 나도 그 사람을 사랑 안 한다는 걸 인정하면 홀가분해집니다. 저 산의 다람쥐도 괴롭게 살지 않고, 우리에 갇힌 짐승도 이렇게 발악하면서 살진 않아요. 이왕 태어난 삶인데 사람이 다람쥐보다는 잘 살아야죠. 그러니 다들 얼굴에 미소를 띠고 사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nbspnbsp즉문즉설은 개인 상담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길로 안내하는 데에 목적이 있음을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치고 나서는 곧바로 로비에서 책 사인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내용을 담은 책 ‘야단법석’이 특히 인기가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해외에 살고 계신 분들의 고민과 스님의 대답이 담긴 책이여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사인과 더불어 환한 웃음으로도 강연장을 찾은 교민들에게 행복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오늘 강연을 위해 몇 주 전부터 강연 홍보, 사전 준비, 당일 행사 진행을 도맡아 준 방콕정토회 회원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얼굴에 보람과 행복이 가득 묻어났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방콕정토회 회원들은 새해를 맞이해 스님에게 세배를 올렸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세배를 받았으니 세배돈을 줘야지” 하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세배돈을 주었습니다. 기뻐하는 대중들을 보며 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nbspnbsp“오늘 받은 돈에 동그라미 네 개를 덧붙여서 다음 생에 갚아야 돼요.” nbspnbsp이렇게 새해를 맞이해 스님으로부터 행복의 기운을 듬뿍 받은 교민들은 강연장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지은 후 기쁜 마음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연장을 빠져 나갔습니다.nbspnbsp스님은 밤 11시가 다 되어 다시 방콕 정토법당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오늘밤은 법당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내일 아침 비행기로 인도 바라나시로 들어가 인도 성지순례를 시작할 nbsp예정입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1.05. 86,391 읽음 댓글 68개

2016.1.3 2016년 정토회 시무식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2016년 새해를 맞아 ‘정토회 시무식’에 참석해 정토행자들이 새해에 가졌으면 하면 마음자세에 대해 법문 했습니다.nbspnbsp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친 후 아침 7시부터 조찬을 시작으로 각종 회의와 미팅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12시에는 지난 30년 동안 정토회 법사단과 실무자들을 물심양면으로 응원해 주고 계신 연화회 노보살님들이 공동체 전체 성원들을 식사 초대했습니다.nbspnbsp▲ 연화회 노보살님들의 식사 초대nbsp식당에 모인 공동체 성원들을 향해 먼저 스님이 간단히 오늘 식사 초대의 취지를 말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저희 정토회는 원래 1인당 1만원 이상 되는 음식은 안 먹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노보살님들이 1년에 한 번만 허락해 달라고 특별히 요청을 하셔서 이곳 식당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드시기 바랍니다.”nbsp이어서 스님이 직접 노보살님들 한 분 한 분을 소개한 후 대표로 한 분에게 소감을 물었습니다. 노보살님은 스님께 특별히 건의를 드리고 싶다며 이야기를 했습니다.nbspnbsp“스님, 법사님, 여러 실무자님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그냥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올해 한 해도 활기찬 한 해가 되시고,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스님에게 특별히 건의드리고 싶은 것은 노인네들이 1년에 딱 한번 공양을 올리고 싶어 하는데 그러지 말라고 자꾸 야단을 치셔서 한 번도 마음 편하게 식사 초대를 못했어요. 정말입니다. 스님이 자꾸 식사 초대를 하지 말라고 그러시면 앞으로는 스님 모르게라도 식사 대접을 해드릴 겁니다.” nbspnbsp노보살님들의 간곡한 요청에는 지난 수십 년 간 헌신하며 살아온 공동체 대중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웃으며 답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율에 얻어먹기만 하고 식사 초대에는 가능한 가지 말라고 되어 있어요. 부처님이 식사 초대에 응하지 말라는 말씀은 안 하셨어요. 너무 자주 가지 말라고 했거든요. 그러니 노보살님들이 1년에 한 번씩 이렇게 대접해 주시는 것은 앞으로도 응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노보살님들의 극진한 마음에 공동체 대중들은 감사한 마음을 느끼며 큰 박수로 고마움을 표했습니다.nbspnbspnbsp절에서 검소하게만 음식을 먹던 대중들은 오랜만에 풍족하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스님은 식사 초대를 해주신 노보살님들에게 직접 사인한 야단법석 책을 선물했습니다.nbspnbspnbsp오후 3시에는 정토회 수도권 자원활동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2016년 시무식이 열렸습니다. 시무식이 일요일에 진행되다 보니 주간부 활동가 뿐 아니라 청년부, 저녁부 활동가들이 다수 참가하여 법당이 꽉 찼습니다. 공동체, 수도권 대의원, 행정처, 수도권 지부사무국, 서울정토회 활동가들 220여 명이 함께했습니다. 시무식 연례 행사로 자리잡은 부서별 명심문 발표시간을 위해 옷색깔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뛰어 웃음을 짓게 했습니다.nbspnbsp▲ 2016년 정토회 시무식nbspnbsp삼귀의, 반야심경을 봉독한 후, 정토회 대표 이기혜 님의 인사말씀에 이어 소설가 김홍신 님과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장 조민 님의 새해 덕담이 있었습니다. 김홍신 님은 “곧고 바르게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무작정 달려간다고 잘 산 게 아니더라고요. 때론 한눈 파는 것도 좋아요” 라며 “새해에는 통일운동, 참자유, 이런 것에 대해 마음껏 한눈을 팔아보자”고 위트있는 제안을 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nbspnbsp▲ 소설가 김홍신 작가님nbspnbsp소설을 쓰기 위해 관상 공부를 한 적 있다는 작가님은 관상은 생긴 대로가 아닌 그 사람의 분위기라고 하면서 “지금 관상을 바꾸려면 꽤 괜찮은 데에 한눈 팔면서 살면 됩니다. 정토회와 통일의병에 한눈 팔아서 참자유를 느끼는 한해가 되세요”라고 말해 대중들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법륜 스님을 모시고 신년 법문을 청해들었습니다. 새해 첫 희망편지에 붉은 해돋이 사진과 함께 “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라는 메시지로 많은 이들에게 힘찬 기운을 불어넣어준 스님을 새해 들어 처음으로 뵙는다고 생각하니 대중들도 모두 설레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사실 매일 매일이 새로울 게 없는 똑같은 날이지만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면 새로울 수 있다며 새해에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활동에 임했으면 좋겠는지 재미있게 들려 주었습니다.nbspnbsp“안녕하세요. 새해맞이 잘 하셨습니까?”nbsp“네.”nbspnbsp“2016년 새해를 맞아 오늘 첫 업무를 시작하는 시무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매년 이렇게 새해를 맞이하는데 과연 새해란 무엇일까요? 자연적인 현상으로 보면 매일매일 똑같은 날이니 하나도 새로울 게 없어요. 태양이 새 태양인 것도 아니고, 지구가 새로운 지구도 아니고, 공기가 새로이 맑아지거나 나무가 새로이 푸르러진 것도 아니고, 사실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도 매일매일 어제를 그제같이 살았고, 오늘을 어제같이 살고, 내일을 오늘같이 살아가고 있으니 이 또한 새롭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nbsp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은 새로울 수 있습니다. 어제까지 괴로워하며 살다가 오늘부터 행복하게 산다면 새로워진 게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어제까지 온갖 얽매임 속에서 속박받고 살다가 오늘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산다면 새로운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nbspnbsp이처럼 달력의 숫자가 아닌 마음이 새로워져야 새해라고 할 수 있는데, 즐겁던 마음이 괴로워지는 것으로 바뀌었다면 새해라고 할 수 없어요. 괴롭던 마음이 즐거워지고 얽매인 마음이 자유로워진다면 새해 새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늘 사는 게 똑같다 보니 우리가 오늘처럼 특정한 하루를 새해 새날로 정해 ‘오늘부터 나도 한번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보겠다’, ‘나도 업식에 끌려다니던 지금까지의 삶에서 벗어나 업식에 끌려가지 않는 삶, 내가 업식을 굴리는 삶을 살아보겠다’하고 다짐을 하는 게 새해 새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nbsp이렇게 새해 새날에 새로운 각오를 하지만 1년을 살고 돌아보면 각오 하나 안 하나 어느덧 헌 날이 되어 버려요. 그렇다고 몇 번을 해도 늘 마찬가지라는 이유로 포기할 일은 아닙니다. 안 되는 건 이미 지나간 거예요. 올해부터, 오늘부터는 그래도 변화의 희망을 가지고 다시 도전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희망이 없다면 삶이 다른 동물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결과적으로는 그 전과 비슷해졌다고 하더라도 늘 시작은 희망을 가지고 임해보세요. 그렇게 해서 잘 되면 다행이지만 안 되면 또 새롭게 시작해볼 수 있으니 그것 역시 실망할 일이 아닙니다.nbspnbsp그래서 오늘 우리들은 지난해보다는 올해, 어제보다는 오늘 더 자유롭고 더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원을 세워야 하고 결과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과거의 경험 중 좋았던 경험은 살려내서 계속 이어가고, 과거에 어리석어서 실수했거나 실패했거나 과오를 저질렀던 경험은 한탄하는 대신 경험 삼고 뉘우쳐서 다시는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는 쪽으로 다시 시도해볼 수 있어야지요. 새해의 시작에는 이런 다짐을 해야 합니다. 오늘 시무식을 맞는 여러분들에게도 새로운 마음,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nbsp이어서 스님은 어떻게 하면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 스님의 어릴적 경험을 들려주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어떻게 하면 좀 더 자유로워질까요? 작년에 먹던 밥을 올해는 안 먹고, 작년에 자던 잠을 올해는 안 자고, 작년에 입던 옷을 올해 안 입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또 작년에 하던 일을 올해 안 하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하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서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전과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이 밥을 먹고 똑같이 잠을 자고 똑같이 일상을 살아가지만, 이 삶이 남에게는 똑같이 보이더라도 나에게는 좀 달라야 해요. 좀 더 행복해야 하고 좀 더 자유로워야 합니다.nbspnbsp제가 어릴 때 산에 소를 먹이러 가서 놀던 경험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산에 풀어놓은 소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지키면서 너무 멀리 가면 더 못 가게 하고, 가까이 있으면 옆에서 놀아요. 제일 편한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지만, 가만히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장난을 치고 놀아요. 예컨대 소나기가 퍼부어서 길에 물이 흐르면 온 힘을 다해서 작은 댐을 만듭니다. 돌을 가져와 쌓고 흙을 퍼 와서, 몇 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지만 아주 견고한 댐을 만들어요. 그러다가 집에 갈 때가 되면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던 댐을 허물어요. 댐을 허물어서 갇혀 있던 물이 콸콸 흘러내려가는 걸 보면서 박수를 치고 기뻐하고, 남은 흔적까지 발로 이리저리 다 밟아 없애버린 뒤 소를 찾아서 내려갑니다. nbspnbspnbsp이게 수행에서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가 노동을 하는 것도 이와 똑같습니다. 놀이든 노동이든 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노동을 한 것은 항상 성과물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지만, 놀이는 그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모래 위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다가도 놀이가 끝나면 그려놓은 그림을 발로 밟아버리고 돌아가요. 놀이와 일의 차이가 거기에 있어요.nbspnbsp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예쁜 댐을 하나 만들었다, 모래사장에 예쁜 그림을 그렸다는 결과에 집착을 하면 그건 어린아이가 하든 어른이 하든 일이 되어버립니다. 아이가 하든 어른이 하든 끝날 때 발로 밟아버리고 갈 일이라도 하더라도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혼신을 다해서 할 때 그 일이 놀이가 됩니다. 놀이라고 해서 대강 하는 게 아니에요. 놀이도 온 힘을 다해서 죽기살기로 해요. 그런데 그게 놀이가 되는 것은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nbspnbsp그 과정에서, 즉 돌을 가져오고 둑을 쌓고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하며 언성도 높아지지만 놀이는 의견이 달라도 일과 달리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놀이에도 집착하면 놀다가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요. nbspnbsp그러니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놀이가 되어야 해요. 밥 먹고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더 좋으면 그냥 쉬세요. 아무 일도 안 해도 돼요. 그런데 그렇게 심심하게 노는 것보다는 여기 와서 같이 놀아보는 것도 좋잖아요. 이제까지 아무도 해결 못 했던 통일이라고 하는 큰 과제를 우리가 놀이삼아 한번 해보는 거예요. 등산도 그렇잖아요. 아무도 못 올라가봤다는 높은 산을 보고 ‘한번 올라가볼까?’ 하고 올라가는 거예요. 올라가려면 힘들어요. 한번 올라갔다고 해서 거기서 안 내려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힘들게 올라왔는데 왜 내려가’ 하고 정상에 그냥 앉아 있을 건 아니잖아요. 올라가면 다 내려오는 거예요. nbspnbsp똥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그렇습니다. 음식 재료 사와서 요리해서 꼭꼭 씹어 먹어서 소화해서 따끈따끈한 똥 한 무더기를 만들어내기까지 드는 노고가 굉장합니다. 그런데 ‘똥 누고 뒤도 안 돌아본다’라는 말이 있어요. 결과물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시장 보는 과정이 즐겁고 요리하는 과정이 즐겁고 먹는 과정이 즐겁고 소화시키는 과정이 즐거운 거예요. 이 모든 과정에서 이미 에너지를 다 쓰고 재미를 다 누린 뒤에 나오는 똥은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이란 건 늘 과정은 온데간데 없고 그 찌꺼기에만 연연합니다. 복 달라는 말은 곧 똥 달라는 말이에요. 복 짓는다는 말은 ‘똥은 개가 먹든 누가 가져가 밭에 뿌리든 알아서들 해라. 나는 장보고 요리하고 음식 먹고 소화하는 걸 하겠다’라는 뜻입니다. 깊은 산속에서도 똥을 누면 똥파리가 모여들 듯, 원래 복에는 온갖 똥파리들이 복 달라며 덤벼들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그건 그들에게 주고 우리는 이 복을 짓는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nbspnbsp그게 일과 수행의 통일이에요. 일 절반 하고 수행 절반 하고, 한 손은 일하고 한 손은 수행하고, 아침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수행하는 게 아니라 일을 놀이처럼 하는 게 일과 수행의 통일입니다. 일을 놀이화하는 게 노동의 해방이에요. 노동 안 하는 게 노동의 해방이 아니라, 노동을 놀이처럼 하는 게 노동의 해방이에요.nbsp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요지는 삶이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게 재미있어야 해요. 힘이 안 든다는 뜻은 아닙니다. 노는 것도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nbspnbspnbsp그러나 놀이는 힘들어도 기쁨이 있고, 놀고 난 결과라는 건 없어요. 일과 놀이의 차이가 그것입니다. 놀이는 그 과정이 소중한 것이고 일은 그 결과가 소중한 거예요. 새해에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일을 놀이처럼 하길 바랍니다. 다시 말해 그냥 노는 것보다 일하고 노는 게 더 재미있어야 해요.nbsp직장생활을 하든, 결혼생활을 하든, 한 끼의 음식을 먹기 위해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든, 정토회에서 청소를 하든, 통일운동을 하든, 전법을 하든, 설법을 하든, 개인의 삶이 무엇이든 이렇게 접근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육체적으로 피곤할 수 있고, 몸이 너무 아파서 못할 수도 있어요. 노는 것도 너무 아프면 못 놉니다. 어지간히 아픈 정도로는 친구들이 부르면 나가 놀아요. nbspnbsp그럴 때 일하러 가자고 하면 아마 안 나가겠지만, 노는 건 나가 놀다 보면 어지간히 아픈 것도 좀 나아집니다. 그런데 많이 아프면 나가 놀자고 해도 못 놀아요. 그러니 아프면 쉬어야 해요.nbspnbsp그러나 많이 아프고 적게 아프고를 떠나, 삶이란 게 늘 놀이같이 되어야 스트레스를 안 받아요. 실컷 놀고 나서 논다고 받은 스트레스를 푼다며 또 놀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여러분은 일을 힘들게 하니까 스트레스를 풀려면 또 놀아야 하는 거예요. 일이 곧 놀이가 되면 특별히 노는 시간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어요. 육체적으로 피로하면 잠시 쉬면 되고, 배고프면 좀 먹으면 되고, 졸리면 좀 자면 되는 것 외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뭔가 또 새로운 놀이를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남이 보면 놀지도 않고 내내 일만 한다고 하지만, 내내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내내 놀고 있기 때문에 따로 놀 필요가 없어서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편이 굳이 결과를 따진다면 일의 효율성도 높아지고 스트레스도 덜 받습니다.nbspnbsp다만 놀이도 너무 집착하면 싸움 날 수도 있고 병이 날 수도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좋은 것도 너무 집착하면 안 돼요. 놀이도 너무 과하면 병이 나는 것과 같아요. 그러나 놀이는 일보다는 두 배쯤 열심히 해도 어지간해서 병이 안 납니다. 심리적으로 거부하는 것을 노력해서 억지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일은 노력을 하기 때문에 힘들어요. 그러나 노는 것을 노력해서 놀지는 않습니다. 만화책을 보려고 엄청나게 노력하는 사람은 없어요. 자기가 좋아서 노는 건 놀지 말라고 해도 몰래 숨어서 놉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늘 노력한다고 해요. 노력하는 게 좋은 게 아닙니다. 노력한다는 말을 들으면 저는 ‘얼마나 하기 싫으면 노력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nbspnbspnbsp노력할 게 없어야 해요. 일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자기 의미를 가지고 한다면 특별히 노력하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에요. 집중할 것이 없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중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면 저절로 집중이 돼요.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나 영화를 볼 때는 부모가 밥상 차려놓고 불러도 모르다가 소리질러야 겨우 귀에 들어오는 거예요.nbsp그렇게 새해에는 삶이 좀 더 행복하고 자유로워지기를 바랍니다. 누가 간섭을 하지 않아야 삶이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에요.”nbsp어릴 때 소나기가 내리면 계곡에 가서 온 힘을 다해 돌을 쌓아 댐을 만들었다가 집에 갈 때는 다 허물어 버리며 기뻐했다는 스님의 이야기에 무척이나 공감이 갔습니다. 죽기살기로 열심히 논 기억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스님 말씀대로 일을 놀이화, 삶을 놀이화하면 최고로 행복한 삶이 될 것 같습니다. 대중들은 올 한해 신나게 놀아보겠다고 다짐을 한 듯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통일의 기운이 시기적절하게 도래하고 있다며 이 시기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재미있게 일해보자고 당부했습니다. nbspnbsp“사회적인 이런저런 일이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터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가 그 내부의 압력이나 요동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예측이 돼요. 세상이 복잡하다는 말은 세상이 정말 복잡하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에요. 내 고정관념으로는 세상이 이해되지 않으니까 세상이 복잡하다고 느끼는 거예요. 내가 이해하게 되면 세상은 하나도 복잡하지 않습니다.nbspnbsp이치를 안다는 게 지혜입니다. 밝은 지혜로 보면 복잡할 게 없습니다. 늘 날씨 변하듯이 세상이 요동을 치는 것뿐입니다. 날씨가 춥거나 덥다고 꼭 나쁜 게 아니에요. 썰매 타려면 날씨가 추워야 하고 수영하려면 날씨가 더워야 도움이 되듯이 세상의 요동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겨울에 수영하려 들면 날씨가 안 받쳐줍니다. 여름에 썰매 타려고 하면 엄청난 돈을 들여 시설을 만들어야 해요. 그러나 하려는 일을 적절한 시기에 맞춰서 하면 그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nbspnbsp그래서 첫째, 우리가 뭘 원하는지가 확실히 있어야 하고, 둘째, 세상의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잘 살피고 맞추어서 해야 합니다. 원해서 무조건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변화를 완전히 거스르기는 어렵지만 적절히 맞춰서 조금 당기고 조금 늦추는 것은 크게 힘 안 들이고 가능합니다. 봄에 조금 일찍 파종하면 조금 일찍 먹을 수 있는 것과 같아요.nbspnbsp입춘이 지나면 봄이 오는 줄 우리가 모를 뿐이지 봄은 서서이 오고 있듯이, 통일의 기운은 지금 시기적절하게 도래하고 있어요. 그러나 통일은 봄처럼 가만히 놔둬도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봄이 와도 곡식을 안 심으면 싹이 나지 않고, 아무리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와도 곡식을 가꾸지 않으면 추수할 게 없습니다. 아무리 여건이 좋아지고 환경이 유리해진다 해도 곡식을 심을 때 심고 거름을 줄 때 주고 김을 맬 때 매고 수확할 때에 수확할 수 있듯이 우리가 그 변화에 맞추어 적절히 대응해야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어요. 또 상황이 받쳐주지 않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겨울에 아무리 곡식을 심고 노력해도 수확할 것이 없는 것과 같아요.nbsp새해에는 여러분들의 개인사도 그렇고 정토회가 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일들도 그렇고 얼굴에 웃음기를 잃지 말고 일을 하세요. 여러분을 보면 좋은 일 한답시고 엄청나게 인상 쓰면서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nbspnbspnbsp짜증내가면서 싸워가면서 합니다. 그런데 대중이 볼 때는 일을 조금 못 해도 웃는 걸 훨씬 중요하게 여겨요. 인상쓰고 일하는 게 효율적인 것 같아도 안 그래요. 괴로운 사람들이 여기 오면 좀 행복해진다고 홍보해서 모아놨는데 막상 와보니 행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엄청 인상쓰면서 말 하잖아요. 자기는 엄청나게 괴로워하면서 입으로는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하면 앞뒤가 안 맞으니까 찾아왔던 사람들도 떨어져 나갑니다. 설명이 좀 부족하고 뭔가 서툴고 미숙하더라도 우선 찡그린 얼굴을 펴는 게 중요해요.nbspnbsp그러나 인상만 편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왕 만드는 것이니 장난감이라도 좀 잘 만드는 게 좋잖아요. 결과에 연연하면 ‘어차피 대충 쓰고 버릴 장난감인데 잘 만들면 뭐하고 못 만들면 뭐해?’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걸 잘 만들려고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얻는 행복은 대충대충 하면서 얻는 행복과는 차원이 달라요. 늘 대충대충만 해 와서 열심히 할 때 얼마나 기분 좋은지를 잘 모르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온전히 몰두했을 때 얼마나 삶이 행복한지 몰라요.nbspnbspnbsp최선을 다하되 집착이 없어야 합니다. 정토회 시무식이니까 올해는 정토회에서 각자 맡은 일을 팽이 만들고 연 만들듯 진짜 명품으로 만들어보세요. 밥을 먹는지 안 먹는지도 모를 정도로 몰두해보세요. 그렇게 하고 있으면 부모님은 ‘밥도 안 먹고 뭘 하냐? 그걸 해서 밥이 생기냐, 돈이 생기냐?’라고 야단들입니다. 저도 그런 꾸중을 많이 들었어요. 우리가 하는 걸 보고 남들은 ‘그거 해서 돈이 되냐, 뭐가 되냐? 아무 것도 안 되는 걸 굳이 왜 네가 나서서 하냐?’라고 하지만 그건 남들의 시각입니다. 어린아이는 그 순간 몰입해서 만드는 게 중요하지, 그게 뭐가 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세상 사람의 평가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런 재미를 잘 몰라요.nbspnbsp그래서 우리가 세운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되 그게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걸 더 세심하게 다듬는 게 피곤하지 않고 재미있어야 해요. 앞뒤 순서를 짜고 효과를 살펴서 조정하는 모든 과정이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조금만 이야기하면 ‘골치 아프고 피곤한데 꼭 그렇게 해야 합니까? 대강 하면 되지요’라고 합니다. nbspnbsp어떤 프로그램 하나를 짜더라도 어떤 노래가 앞에 가고 뒤에 가느냐에 따라 사람들 기분이 달라져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게 재미있어야 하는데 골치 아파하니까 발전이 안 되고 늘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거예요. 늘 하면서 성공했던 실수했던 잘했던 못했던 ‘이번에는 이렇게 해보고 다음에는 저렇게 해보자. 야, 이러니 낫네’ 이렇게 평가해서 조정하고 살피는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들 일하는 재미를 잘 모르고 노는 재미만 아는 것 같아요. 일을 놀이화할 때 일하는 재미가 있습니다.nbsp이 정도 되면 새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요? 확실히 지금까지와는 다른 해가 될 겁니다. nbspnbspnbsp세상이 어떻고, 삶이 어떻고, 남편이 어떻고, 아내가 어떻고, 그런 이야기를 만 번 해봐야 나에게 아무 도움이 안 돼요. 세상이 그렇다면 이런 세상을 어떡할 겁니까? 그냥 놔둘래요, 바꿀래요? 바꾸려면 어떻게 바꿀래요? 이런 가정에서 내가 태어났는데 어떡하겠어요? 여기서 그냥 울고 살래요, 아니면 여기서도 웃으면서 살래요?nbspnbsp‘그래, 그렇다. 그런데 어떡할래?’ 이건 결국 내 선택이에요. 남의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이고 내 삶이기 때문이에요. 여기 앉아서 우는 것보다는 웃는 게 낫고, 주저앉아 있는 것보다는 장애를 극복하는 게 낫잖아요. 그런 자세로 임한다면 정토행자라 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nbspnbsp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니 새해에는 정말로 신나게 일해봐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일었습니다. 모두 크게 공감하며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대중들은 소중한 가르침을 들려 준 스님에게 새해를 맞이하여 세배를 올리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법당이 빈틈 없이 꽉 차 있어서 대중들은 세배 대신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며 스님에게 “사랑합니다”를 외쳤습니다. 200여 명의 하트 세례를 받자 스님은 환한 웃음을 하며 합장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 삼배 대신 스님에게 하트를 만들어 보이는 대중들nbsp다음은 기다리던 부서별 명심문을 퍼포먼스로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난해는 법륜 스님의 통일의병 강연 20강을 비롯한 국내외 즉문즉설 103강과 1, 2차 통일의병대회를 통한 1,813명의 통일의병 배출, 천일 통일 기도를 시작하는 등 통일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한 해였습니다. 2016년은 그 마음이 모여서 큰 나무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박차를 가하고 통일의병, 나아가 세계시민으로서의 의식을 더욱 고양하는 나날이 될 것 같습니다. 퍼포먼스에서는 2016년을 준비하는 이런 각 부서의 힘찬 결의들이 가득 묻어 났습니다.nbspnbsp첫 순서로 공동체 식구들이 나왔습니다. “병신년”을 목에 걸고 “외세”, “종북몰이” 등과 힘겨루기를 해서 물리치는 모습을 재미있게 연출한 뒤, “병신년을 통일년으로”라는 구호를 외쳐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nbspnbsp▲ 공동체 식구들의 병신년을 통일년으로 퍼포먼스nbsp다음은 수도권 대의원들이 나와 미래에 통일이 된 이후 어느 학교의 역사수업 장면을 상상해서 연극으로 표현했습니다. 한국전쟁 모습, 집회에서 물대포를 쏘는 장면을 자료화면으로 보여 준 뒤, 통일을 이룬 사람들은 이렇게 싸우지 않고, 손가락 운동을 잘 해서 마침내 통일을 이루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nbspnbsp▲ 수도권 대의원들의 손가락으로 통일을 퍼포먼스nbspnbsp“선생님. 그 분들 혹시 마술사예요?”하고 학생이 질문하니 선생님은 “아니야. 자기가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걸 알고 있는 평범한 시민이야. 자 통일 의병들이 활동했던 역사 현장으로 가볼까?”라고 안내했습니다. 그러자 직장인, 주부들이 나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을 흉내 내며 총 없이 손가락으로 통일을 이루었다는 것을 재미있게 표현해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청년대학생들이 나와 평화 통일은 우리가 이룩하겠다는 의지를 독수리 오형제 노래에 맞춰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고, 서울제주, 강원경기동부, 인천경기서부 지부사무국, 서울정토회 순으로 재미있는 발표가 계속 이어졌습니다.nbspnbsp▲ 청년대학생들의 독수리오형제 퍼포먼스nbspnbsp특히 서울정토회에서는 70여 명의 활동가들이 모두 나와 “서울에서 평양까지”라는 노래에 맞춰 통일기차를 만들어 법당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노래 가사처럼 경적을 울리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신명나게 달려보는 그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 서울정토회의 서울에서 평양까지 기차놀이 퍼포먼스nbspnbsp마지막에는 행정처 활동가들의 신명나는 풍물놀이가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풍물도 흥이 났지만 개사한 가사가 좋아서 더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nbspnbsp▲ 행정처 활동가들의 풍물놀이nbspnbsp“흙수저가 똘똘 뭉쳐 금수저가 되면은 한반도 새날이 찾아올까.nbsp어야디야 어기야디야nbsp♬nbsp통일의 나라 언제오나. 정토회에 딱 붙어서 우리 모두 주인 되면 통일의 새나라 밝아온다. 어야디야 어기야디야nbsp♬nbsp통일아 어서 오소.”nbspnbsp통일을 주제로 한 부서별 각오가 어느 해보다 뜨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한 도반은 “자알 놀았습니다. 올해는 이렇게 노는 기분으로 일하면 되겠어요.”라며 오늘 스님의 시무식 법문에서 얻은 기운을 쭉 이어갈 것을 다짐했습니다.nbsp마지막으로 다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가자 통일로”를 외치는 대중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오늘 퍼포먼스 발표 준비를 다들 얼마나 재미있게 했는지, 스님이 앞서 법문에서 강조한 ‘일과 수행의 통일’, ‘일의 놀이화’를 첫날부터 바로 실천한 기분이었습니다. nbspnbspnbsp이렇게 시무식을 마치자 곧바로 떡국 공양이 나왔습니다. 대중들은 떡국을 한그릇씩 먹으며 오늘 시무식 참가 소감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정겨운 대화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nbspnbsp▲ 떡국 공양nbsp이어서 스님은 곧바로 2층 다담실로 이동해 오는 1월말에 결혼하게 되는 청년정토회 이효상 국장과 진주정토회 강다영님으로부터 삼배로 인사를 받고 격려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리는 날 스님은 인도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결혼식에 참석 못하는 대신 ‘스님의 주례사’ 책을 사인해서 선물로 준 다음 가볍게 덕담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 결혼을 앞두고 인사를 하러 찾아온 청년정토회 이효상, 강다영님nbsp“첫째로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편을 서로 이해하는 것이예요. 자기 요구, 자기 생각만 하면 천하 누구와 같이 살아도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고, 상대편을 이해하고 살면 천하 누구하고도 같이 살 수 있으니까 이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nbspnbsp두 번째는 두 분 다 정토행자이기 때문에 결혼을 하든, 하기 전이든, 삶이 여일해야 합니다. 인도에 가면 음식은 다른 것을 먹되 사는 것은 똑같고, 미국에 가면 문화가 조금 다르되 사는 것은 똑같듯이, 결혼 하고 안 하고에 관계 없이 내가 세운 원은 그대로 지속이 되어야 해요. 원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수행자가 속퇴를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진을 해나가야 하는데, 속퇴를 하면 수행을 그만둔다든지 하면 수행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세운 원은 그대로 가져가고, 둘이 살든 혼자 살든 그것은 삶의 조건이 바뀌는 것일 뿐이라는 자세를 딱 가졌으면 합니다.”nbspnbsp스님의 따뜻한 격려 말씀에 두 사람은 큰 목소리로 “예”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두 사람과 같이 기념 사진을 찍어 준 후 “행복하게 사세요” 라고 악수를 건넸습니다.nbspnbspnbsp저녁에는 내일 인도로 출국하기 전에 사회 인사 몇 분들과 미팅을 가진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부터 2월7일까지는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해외 일정을 가질 예정입니다. 우선 내일은 인도로 들어가는 길에 방콕을 경유하여 가는데, 방콕에서는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해줄 예정입니다. 그리고 1월 6일부터는 인도성지순례가 시작됩니다...※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1.04. 56,899 읽음 댓글 57개

2016.1.2 실무자 수련 2일째 (활동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실무자 수련 2일째를 맞이하여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정토회의 사회 활동 전반에 대해 함께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치고 아침 7시에 두북 정토수련원에 도착한 스님은 어제에 이어서 실무자 수련 2일째 시간을 함께 가졌습니다. 어제는 주로 개인 수행과 관련해서 스님께 묻고 답하는 시간이었다면 오늘은 사회 활동 전반에 대해 스님께 건의하고, 조언을 듣고, 방향에 대해 이야기 듣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 두북 정토수련원nbsp먼저 스님은 “어제는 바다와 산에 다녀와서 피곤했는데 눈치도 없이 늦게까지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잘들 주무셨어요?” 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어젯밤 잠을 충분히 자서 그런지 대중들이 환한 얼굴로 “네”라고 대답하자 “피곤하면 언제든지 이야기하세요. 쉬어 가면서 할게요” 라며 곧바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많은 질문과 대답,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건의를 하고 답변이 돌아오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또 정토회의 중요한 역사적 자료들을 어떻게 안전하게 보관할 것인지, 사회적으로 노인층이 점점 많아지는데 이 분들이 어떻게 자원봉사를 많이 하도록 할지, 청년들이 활력있게 활동할 수 있게 해주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각종 사고가 일어났을 때 위기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중이 점점 많아지는데 교육 시설을 어떻게 마련해 갈지, 시민사회 단체들과는 어떻게 연대를 해나갈지, 야권이 분열되는 한국 정치 형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남북관계 단절로 창고에 쌓여가고 있는 북한 구호물품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통일의 필요성을 알리는 컨텐츠 제작 방안,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통일의병들을 더욱더 확대 모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 갖가지 건의사항, 질문, 대답이 오갔습니다.nbspnbsp그 중에서 통일 운동에 대한 건의사항과 질의응답이 가장 열띠게 이뤄졌는데요. 그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특히 청년들은 통일의 혜택을 가장 많이 입는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통일에 무관심한 세대가 되어가고 있는데, 스님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사회 활동을 하면 좋을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청년들은 통일 문제 보다는 오히려 일반적인 정치나 사회 영역 쪽으로 접근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통일 문제를 보는 접근방식도 달리 해야 할 것 같아요. 스님의 통일 강의를 들으면 통일의 필요성은 다 이해하지만 본인들이 지금 겪고 있는 현실 문제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 듯합니다.nbsp또 투표율 현황을 보니까 거의 전국 모든 지역, 모든 선거에서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이 투표를 제일 안 하더라고요. 19세는 첫 투표기 때문에 오히려 투표를 많이 하는데,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이 전 연령층에서 가장 투표율이 떨어지는 걸 보니 그만큼 정치적인 관심이 확실히 적은 것 같아요.”nbsp“그렇게 따지면 일반인들이 청년들보다 이해하고 움직이기가 더 어렵죠. 아이 키우고 직장 생활하고 은퇴 고민하는 등 개인의 현실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하잖아요. nbspnbspnbsp20대 초반이 지금 보수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현재 25살 정도까지는 8년 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할 때 중고등학교를 다닌 학생들이 올라온 세대인데, 이 세대가 북한에 대해 굉장히 반감이 큽니다. 정부와 언론에서 계속 북한을 악의 축으로 묘사했던 시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으니까요.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20대 전체가 반북 정서를 소지해 더욱더 보수화될 수 있습니다.nbspnbsp30대는 조금 사회의식이 높은 편이고, 40대 정도 되면 진보적인 성향이긴 해도 현재와 같은 운동권 진보로는 안 되겠다는 의식이 있고, 50대부터는 운동권이든 아니든 이미 보수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양하겠지만 연령별 전체 분포는 현재 대체로 그런 것 같아요.nbsp그래서 지금까지와 같은 사회운동적인 진보의 관점으로는 청년들 다수의 관심을 끌어서 역동적으로 움직여가기에는 지금의 시대 상황과 좀 안 맞아요. 어떤 방식과 어떤 지향을 가지고 활동할 때 청년들이 자기 요구와 사회적인 희망을 가지고 사회운동에 동참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전에는 우리 세대만 해도 나름대로 사회혁명적인 열기가 있었어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 우리나라를 한번 자유로운 나라로 만들어보자, 통일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대학 다니는 사람들이 농촌에 내려가거나 공장에 가서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대는 그런 분위기가 거의 없어진 상태예요.nbspnbsp그렇다고 지금의 젊은이들이 꿈이 없지는 않습니다. 어떤 것들이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꿈인지를 발견하고 개발해야지, 기존의 진보적 개념만 가지고 마냥 계속하면 지금 청년들과는 안 맞을 겁니다. 청년들의 사회 활동은 이런 걸 고려해서 이끌어야 해요.nbsp또 말로는 다 같은 청년이라고 하지만, 자라온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지금 25세 이하와 25세 이상 사이에 인식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납니다. 청년정토회에 동참하겠다고 오는 사람들이 주로 25세가 넘지요? 대부분 30대 초반이라고 알고 있습니다.nbspnbsp교육이 잘못되는 등 여러 가지 요인 때문에 청년들이 문제가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며칠 전에는 이런 견해도 들었어요. 평균 수명이 60살에서 80살로 늘어났기 때문에 청년들의 평균 연령이 20살에서 30살로 높아졌대요. 그래서 우리가 보통 말하는 ‘성인’의 기준을 20살에서 30살로 높여야 한다는 거예요. 전체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연령대를 높여서 봐야지, 자꾸 20대 청년들이 문제라고만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였어요. nbspnbsp이렇게 될 때 발생하는 문제는 신체와 정신의 성장 사이에 간극이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신체는 옛날보다 생육이 빨라 15세쯤에 이미 성인의 몸이 되는데, 사회적으로는 성인이라는 책임의식을 30살에 둔다면 육체는 어른인데 정신적으로는 무책임한 상태가 15년이나 지속되는 셈이잖아요. 그러면 성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부터 시작해 모든 분야에서 굉장한 사회적 문제가 새롭게 발생할 거예요. 신체적 성인이 되면서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줘야 하는데 그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거예요.nbsp그래서 우리가 지금 통일하자는 것만 내세워서는 안 돼요. 8년 전 광우병 촛불시위 때도 시위가 불붙는 과정을 보면 자기의 건강이라고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와 연관되어 움직였습니다. 그게 훼손된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문제의식까지 갔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시작은 자기하고 연결된 것이니까 움직였잖아요. 그런 전례를 참고하면 우리가 지금 하는 통일운동도 통일이 내 건강, 내 아이, 내 가족 등 나의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주는 방법을 고민하고 개발해야 합니다. 막연히 국가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이 문제가 나와 당장 어떻게 연결되느냐, 즉 좀 더 가까이 와 닿도록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다면 좀 더 많은 대중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nbsp“예를 들어 ‘통일되면 연애할 수 있다’ 이런 구호를 만들어 볼까요? 통일이 안 되면 당장 내 가정에, 내 자녀한테, 나한테 어떤 손해가 생긴다는 걸 쉽고 재미있게 보여줘서 설득하면 어떨까요?”nbsp“손해가 생기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인데다가 지난 50년간 통일 안 되고도 이미 잘 살았다는 게 문제예요. 지난 50년간 통일 안 된 상태에서도 다 시집장가 가고, 경제도 발전하고, 정치도 민주화되고, 안보도 튼튼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통일에 관심이 없어요. 앞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을 위기가 왔는데 위기의식을 못 느끼는 이유는 과거의 성공적인 경험 때문입니다.nbspnbspnbsp통계를 보니 2014년도 세계 무기 수입 1위가 대한민국이었어요. 그것도 세계 전체 무기 수입액의 10퍼센트가 넘어요. 전 세계 무기 수입액이 약 781억 달러인데 우리나라가 78억 달러, 즉 9조 2천억원을 썼습니다. 2014년도에 계약이 이루어진 건을 따지면 그래요. 그 전에도 3, 4위를 유지하면서 항상 5060억 달러는 쓰다가 이번에 1위가 되었는데, 그 78억 달러 중 70억 달러가 미국산 무기를 수입하는 데 들어갔습니다. 원화로는 8조원이에요. 이 정도 돈이면 지금 이야기하는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실현뿐 아니라 청년 실업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부분은 좀 구체적으로 연구를 해야 해요. 10조 정도의 돈이면 우리 사회의 복지문제나 어떤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예측을 보여주며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으로 인해 들어가는 국방비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면 어떤 걸 할 수 있는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해요.nbspnbsp지금 정부가 거액으로 사들이는 무기의 대부분이 미국산이라는 점도 주목할 점이에요. 지금 사드 배치도 결국에는 돈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드 배치를 안 하는 대신 첨단무기를 엄청나게 수입해줘야 미국과 타협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겁니다.nbspnbsp얼마전 한일간 위안부 문제 타결도 사실은 미국의 집요한 요구에 의해서 이루어지다시피 한 겁니다. 국제 여론들은 모두 미국과 일본이 이익을 봤다고 평가하거나, 한국이 그동안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 있다가 이번에 완전히 미국 쪽으로 끌려온 셈이라고 평가합니다. 일본 내에서도 ‘우리는 돈 10억 엔 말고는 손해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조롱조의 기사도 나왔을 정도예요.nbsp그러니 이런 문제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접근해야 해요. 통일문제와 관련해서 칼럼을 쓰고 여러 곳에 공유하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그럴 때 칼럼 내용이 너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정확해야 합니다.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식으로 감정적으로 접근하면 안 돼요.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건 좋지만 이 사안에서는 뭐가 문제고, 뭐가 잘못됐고, 관점이 어떻게 됐다’는 식으로 짚어나가야죠. 신문에서도 ‘부녀가 대를 이어 나라를 말아먹었다’ 이런 감정적인 기사를 쓰면 안 돼요. 이웃 나라와 계속 싸울 수는 없는 거잖아요. 이웃 나라와 협력해서 나아가야 하는 건 맞는데, 이런 식으로 타협하는 게 과연 민족적인 자존심이나 역사의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맞느냐를 따져야 합니다. 가령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지난 몇 년간 한일 관계를 완전히 파탄내서 일본에서 일던 한류 열풍도 다 죽여놓았을 정도로 몰아붙여 놓았는데 겨우 돈 100억 원 받으려고 그랬냐?’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거예요. 타협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지만, 그 동안 위안부 문제를 내세워서 한일 관계를 엄청나게 악화시켜 놓고 그 결과로 지금 굉장한 걸 얻은 양 굴지만 실제로는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nbspnbsp또 이렇게 타협할 수 밖에 없다면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여 먼저 상황을 알려드리며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받으려고 했지만 현 일본정부 하고는 타협이 안 되니, 이 정도 선에서 한일 관계를 정상화시키고, 완전한 문제 해결은 다음 정부 또는 역사에 맡기자.”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또 돈을 받기 보다는 그 정도 돈이라면 우리 정부가 대신 지불하고, 배상 문제는 역사적 미해결로 남겨 두어야 하지 않았을까 해요.nbspnbspnbsp이처럼 ‘국제사회의 암투’라는 소용돌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고 앞으로도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될 겁니다. 지금은 중국과 미국이 경쟁하는 구도 속에서 일본이 미국 편에 붙어 있고 우리가 거기에 끼어있는 형국이라 우리는 대통령을 욕하지만, 사실 미국은 우리 나라 대통령을 의심해서 완전히 포위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거든요. 그러니 이 외교 전쟁이 간단하지가 않아요. 특정인물 한 사람을 욕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과거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 끼었던 것처럼 지금은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 낀 여기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해요. 미국의 한 대통령 후보는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을 위해서 여러 가지를 도와줬는데 한국은 우리를 위해서 해주는 게 뭐가 있느냐’라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잖아요. 미국 안에서도 ‘안보 무임승차’라는 여론이 일어나고 있어서 우리는 앞으로 돈도 더 내야 하고 무기도 엄청나게 사야 할 거예요.nbsp이런 식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처럼 한미관계를 계속 이어가면 앞으로는 득 볼 일이 거의 없고 오히려 옛날 득 봤던 걸 내놓으라는 압력에 시달리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남북 간의 대치가 우리에게 굉장한 장애로 등장하게 될 거예요. 지금 이것은 총만 안 들었을 뿐 거의 전쟁과 다름없어요. 그래도 민주주의 사회니까 미국은 한국 대통령이 자기 말을 안 들으니 총 대신 국민 여론을 움직이려 하는 겁니다. 그러자면 보수를 증강시켜야 하는 거예요. 지난번에 이야기 들으니까 7대 종단 수장을 미국대사가 불러서 대화란 이름으로 설득하는 일도 있었다고 해요. 종교계 최고 지도자들을 그것도 대사가 한꺼번에 대사관저에 부른 겁니다. 이건 일제 강점기에 총독부가 할 법한 일이에요. 그러니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문제에 있어서는 한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자주적 한미 관계로 재정립 해야 합니다.nbspnbsp이런 걸 국민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으니 국민들에게만 의지해서는 통일운동이 좀 어려워요. 국민이 이런 문제에까지 각성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은 복지 등 국내의 문제에만 관심이 있으니까요.nbsp지금 북한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가운데서도 핵개발을 계속 하고, 한국은 북한 핵개발을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무기를 사들입니다. 그러면 북한은 남한의 이런 엄청난 무기 확산에 대응해서 핵개발이든 생화학무기 개발이든 미사일 준비든 더욱더 많이 해야 하고, 남한도 또 거기에 대비해서 또 증강을 해야 해요. 이렇게 악순환을 거듭하다 보니 남북 간의 군비증강 경쟁이 굉장히 과열되어 있어요. 일본과 중국 사이뿐 아니라 남북 간에서도 긴장이 계속 증폭되고 있어요.nbspnbsp북한 핵무기의 실질적 위협보다는 이런 긴장이 더 큰 불안요소입니다. 북한 핵무기 보유량이 얼마로 추산되고 핵무기 소형화에 성공했다는 둥 미국에서 자꾸 과장되게 발표해서 한반도 안전에 긴장을 고조시키니까 신무기 구입에 대한 우리 전체의 여론도 거기에 따라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국회에서 야당도 반대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지는 거예요. 반대하면 ‘안보를 외면한다’는 비난을 들으니까 다들 동조하지 않을 수 없어요. 정치라는 건 전부 여론에 의해 이루어지는 여론전이니까 정치인이 그걸 넘어서서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정치인들이 투철한 애국심을 갖고 있으면 괜찮겠지만 다들 자기 야망을 갖고 정치를 하고 있으니까요.nbspnbspnbsp북한을 포용한다는 것도 사실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2천만 명이나 되는 인구가 이미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70년을 살아왔어요. 이 사람들이 지금 그냥 다 몰려오면 국가적 부담이 엄청날 테니 어떻게 조율하고 의견을 맞추어 상호 협력해나갈지 고민해야 해요. 자칫 잘못하면 ‘분단된 채 사는 게 낫다’라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거든요. 이런 문제를 감당하려면 정치적 역량이 대통령 한 명 정도로는 안 됩니다. 지자체와 국회의원들은 물론 전체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이 높아져야 이 문제가 감당이 되고, 나아가 상승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겁니다.”nbsp스님과 대화를 주고 받다 보니 점점 더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많은 점들에 대해 실무자들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nbsp엊그제 송년회에서 2016년 새해는 통일을 향한 교두보를 마련하는 해로 만들자고 다함께 뜻을 모았는데,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우리들이 정말 많은 일들을 해나가야겠고, 다른 시민 단체와의 연대도 모색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긴 시간의 토론은 오후 3시가 되어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아니 시간이 부족해서 더 논의하지 못하고 마쳐야 했습니다. 스님은 “다음에 또 이런 자리를 가져보자”고 하면서, 연말 연초에 수련에 열심히 임해 준 실무자들을 다시 한 번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nbsp실무자들도 지난 8일 동안 수행의 원칙과 활동 방향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전해 준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삼배를 올렸습니다.nbspnbspnbsp사홍서원을 끝으로 실무자 수련을 모두 마친 후 대중들은 언양에 가서 스님이 사주신 저녁 식사를 맛있게 먹은 후 서울과 문경 각각의 처소로 향했습니다.nbspnbsp▲ 회향식nbsp스님도 저녁 8시가 다 되어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아무튼 오늘 하루는 통일운동을 어떻게 더 국민적으로 확산시킬지, 특히 청년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어떻게 이끌어낼지, 많은 연구 과제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들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아래에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nbspnbsp내일은 2016년 정토회 시무식이 서울 정토회관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nbsp

2016.01.03. 35,926 읽음 댓글 44개

2016.1.1 새해 일출, 실무자 수련 1일째 (수행편)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동해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서 수행공동체 정토회에서 상주하고 있는 실무자들과 함께 2016년 새해 첫 일출을 함께 본 후 기림사, 오어사, 나원리 5층석탑을 찾아가 발원 기도를 하고, 저녁에는 수행과 관련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새벽 예불과 기도, 아침 식사를 마치고 새벽 6시 20분에 두북 정토수련원을 출발한 공동체 대중 일동은 해가 뜨기 30분 전인 7시 무렵에 동해 바닷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nbsp인파가 몰리는 유명한 곳을 벗어나 비교적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가 해가 뜨기를 기다렸습니다. 예상보다 날씨가 따뜻해서 추위에 떨지 않고 정겹게 대화를 나누며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아침 7시 40분, 드디어 해가 손톱만큼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가 탄성을 지르며 환호했습니다. 정말로 2016년 새해가 밝은 것입니다. 모두들 가슴 속에 소원 한 가지씩은 떠올렸을 텐데, 정토회 실무자들이다 보니 대부분 남북의 평화통일을 간절히 발원했을 것입니다.nbspnbspnbsp자연스럽게 손을 맞잡고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불렀습니다. 익숙한 노래이지만 오늘만큼은 더욱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불러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터” 등 노래들을 열창하며 기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nbspnbspnbspnbsp모두가 설레임을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 스님이 공동체 대중들을 위해 새해 덕담을 들려주었습니다. 스님은 깨달음과 통일을 일출 보는 것에 빗대어 아주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해뜨기 전에 늘 그 징조로 여명이 먼저 밝아오지요. 그처럼 이미 통일의 여명은 밝았다고 nbsp할 수 있지만, 아직 해가 보이진 않았어요. 원래 해뜨기 직전에는 해가 잘 안 보이다가 ‘안 뜨려나’ 싶을 때 쑥 올라옵니다. 통일도 그렇게 오지 않을까 해요.nbspnbsp깨달음도 그렇게 옵니다. 딱 그만둬버리고 싶을 때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지만 안 돼요. 3년 내내 붙어 있다가 도저히 안 돼서 완전히 그만두고 돌아서면 그 순간 해가 뜹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가면 뜨고, 안 가면 계속 안 뜹니다. nbspnbspnbsp뜨기를 기대하면서 하면 안 되고 무조건 그냥 해야 생각지도 않은 어느 순간에 떠요. 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올해 통일의 해는 아직 눈에는 보이지 않고 지금의 여명처럼 뜰 듯 말 듯 해서, 가버리는 사람들도 꽤 생길 거예요. nbspnbspnbsp그래서 제가 붙어만 있으라고 늘 이야기합니다. 새해에는 모두 건강하십시오.”nbsp스님의 유쾌한 덕담에 모두들 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각 부서별로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어떤 분은 오늘 스님과 찍은 사진을 사무실 책상 앞에 꽂아 두겠다며 무척 좋아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새해 일출을 본 후 곧바로 ‘기림사’로 향했습니다. 경주 함월산 자락에 위치한 기림사는 ‘임정사’라고 불리우던 절을 신라 643년에 원효 스님이 중창을 하면서 기원정사에서 ‘기’자를 따와 ‘기림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올 정도로 원효 스님과 인연이 깊은 절입니다. 특히 임진왜란 때는 전략적 요충지라 승병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라고 합니다.nbspnbsp▲ 기림사nbsp특히 스님은 임진왜란 때 무기를 보관하던 곳을 가리키며 “산에 있는 절이 대부분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이유는 일본 사람들이 볼 때는 산이 전부 군사기지로 보였기 때문” 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nbspnbspnbsp경내에는 감나무가 몇 그루 보였는데, 아직 따지 않은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어 운치를 더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대적광전으로 들어가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간절히 통일 발원 기도를 했습니다. 세 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어서 한 번은 “나무 비로자나불”을 염하고, 한 번은 “나무 아미타불”을 염하고, 마지막 한 번은 “나무 약사여래불”을 염하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온 정성을 기울여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nbspnbspnbsp다음은 포항 근교에 위치한 ‘오어사’로 향했습니다. 오어저수지를 옆에 끼고 길가에 주차한 수많은 차들을 지나 깊숙이 들어가니 오어사가 나타났습니다. 원효대사와 혜공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실 때 서로의 법력을 겨루고자 개천의 고기를 한 마리씩 삼키시고 변을 보았는데 한 마리는 죽고 한 마리는 살아서 힘차게 헤엄치는 것을 보고 서로가 자기 고기라고 해서 나 ‘오’, 고기 ‘어’자를 써서 ‘오어사’라 명명했다고 합니다.nbspnbspnbsp천도재를 지내고 있어서 대중전 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하고 먼 발치서 둘러보고 있는데, 스님은 “이곳은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이라고 하면서 절벽 꼭대기에 있는 작은 암자를 가리켰습니다.nbspnbsp▲ 절벽 꼭대기에 있는 것이 오어사 자장암nbspnbsp성큼성큼 걸으니 금새 암자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오어사의 산내 암자로서 ‘자장암’이라 이름 붙어져 있었습니다. 깍아지른 기암 절벽을 이루는 바위 봉우리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듯한 모양새로 지어져 있었습니다.nbspnbsp자장암으로 올라가는 산길에는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 있어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옛말에 한겨울에 꽃이 피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있듯이 상서로운 징조를 보니 새해에는 우리 나라가 통일을 향해 진일보하는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감도 가져 보았습니다.nbspnbspnbsp자장암에서 내려다 보니 오어사를 감싸 안은 오어지의 큰 호수는 경치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nbspnbspnbsp법당, 삼성각, 요사, 보탑을 차례로 둘러본 후 법당에 들어가 간절한 마음을 담아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며 통일 발원기도를 했습니다.nbspnbspnbsp높은 절벽 위에 세워져 하늘과 가까운 곳이라서 그랬는지 누구라도 이곳에서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면 모두 성취가 된다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합니다. 암자의 신도님들이 스님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자 스님은 “영험있는 곳이라서 해서 통일 기도를 하러 왔다”며 웃음을 보였습니다.nbspnbspnbsp다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한 후 스님은 대중들에게 오어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오어사에는 신라의 4대 고승이 머물렀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요. 우리가 잘 아는 자장, 원효, 의상, 혜공, 네 분이 있죠. 원래는 저수지가 아니라 깊은 계곡이었어요. 그런데 저수지로 막으니까 물이 고여서 물 아래의 절경들이 모두 수장되어 버렸습니다. 옛날부터 경치가 아주 좋아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제가 학창 시절에 수련을 하기 위해서 권선을 하러 다녔는데, 그 때 와 본 기억이 있어요.”nbsp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나원리 5층탑을 찾아가 참배하고 역시 다함께 통일 발원 기도를 했습니다.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다니느라 다소 지친 대중들을 향해 스님은 “통일을 하려면 지극정성을 기울여야지” 하며 웃었습니다.nbspnbsp▲ 나원리 5층탑nbsp나원리 5층탑은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지만 국보 제39호로 지정된 유물이었습니다. 보기 드문 거대한 규모인데다가 각 부의 구조도 정연하고, 비례도 아름다우며 다소 높은 둔턱에 세워져 있어 주위를 압도하는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어릴 적에 이 탑을 그냥 ‘백탑’이라고 불렀다고 소개해 주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정말로 빛깔이 빼어나게 하얀 것 같았습니다.nbspnbsp마침 오후 햇살이 포근하게 비춰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곳곳을 찾아가 정성껏 기도한 공덕으로 새해에는 통일의 초석이 튼튼히 다져지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이렇게 오늘은 가는 곳곳마다 통일 발원 기도를 했는데, 스님이 얼마나 통일 문제를 풀려고 정성을 쏟고 있는지 그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오후 3시가 다 되어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다시 돌아온 대중 일동은 점심 겸 저녁 식사를 한 후 5시부터는 스님과 함께 수련을 함께 했습니다.nbspnbsp먼저 새해를 맞이하여 언제나 우리들을 바른 가르침으로 이끌어주시는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올렸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지난 5일 동안 명상 수련을 하고 나서 썼던 소감문과 2일 동안 정일사 수련을 하고 나서 썼던 소감문을 돌아가며 발표했습니다. 특히 정일사 수련에서는 각 개인들에게 ‘이런 점은 좀 고치면 좋겠다’는 도반들의 애정어린 비판을 모아서 선물로 건네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선물로 받은 그 내용들이 모두 공개가 되면서 큰 웃음을 자아내었습니다.nbspnbsp먼저 스님은 소감문을 발표를 경청한 후 이에 대한 스님의 소감을 나누어 주었습니다.nbspnbsp“전체적으로 느낀 소감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이렇게 우리가 조금씩 좋아지는 원동력은 같이 산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nbspnbspnbsp인류 문명의 발전이나 진화도 이렇게 사람이 한 군데 모여 사는 데서 일어납니다. 언어도 발달하고, 기술 전파도 빠르게 이루어지고, 정보가 축적되는 가운데 새로운 아이디어도 더 나옵니다. 수행도 이렇게 문명사적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같이 살면서 늘 싸워대면 분열과 파괴로 가겠지만, 이렇게 마음을 모으게 되면 특별한 노력 없이도 서로 탁마하면서 조금씩 좋아져갑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좋은 도반은 수행의 전부다’라고 말씀하신 것 같아요. 특히 불교로 말하자면 말법 시대라고 하는 지금, 탁월한 스승이 없더라도 부족하나마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함께 수행생활을 해나간다면 시간이 흐르며서 조금씩 개선되어 가지 않겠나 생각합니다.nbsp공동체 안에서 길게는 1030년씩 함께 산 사람도 있고, 저와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들 중 공동체에 안 들어오고도 그만큼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공동체에 안 들어오고, 수행도 안 했는데 공동체 생활하며 수행하는 사람보다 더 자기중심이 잡혀 있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그건 처음부터 자기 토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걸 갖고 ‘수행한다는 사람이 왜 저것 밖에 안 되나? 수행 안 해도 저렇지 않느냐?’ 이렇게 비교하는 건 온당치 않은 것 같아요. 그러나 비슷한 기질, 성질, 까르마를 가진 사람들을 놓고 수행공동체에 사느냐, 밖에 사느냐, 공동체 생활한 기간이 얼마나 됐느냐를 비교해보면 대체로 차이가 납니다. 물론 우리 공동체에 갓 들어온 사람이 여기서 20년 산 사람보다 인격적으로나 능력면에서나 잘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죠.nbspnbsp그러나 그 사람의 업식이라는 걸 고려해서 공동체 생활을 5년, 10년씩 했을 때 일어나는 변화를 살펴보면 차이가 납니다. 처음에는 ‘5년 지나도 저 모양인데 수행자라고 할 수 있겠냐? 변하기나 하겠냐?’ 이렇게 느낄지 모르지만, 더 길게 보면 변화가 확연합니다. 그 변화는 일직선상이 아니라 계단 모양으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거의 안 변하는 것 같다가 어느 날 훅 자각해서 변화하고, 변하는 것 같다가도 멈춰 서서 몇 년씩 그대로 있고, 또 그래서 안 되는 줄 알았더니 다시 어느 날 변화가 생겨요. 길게 보면 그런 과정을 거듭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좋아져갑니다.nbspnbsp여기 공동체에 우리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 있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가능한 것 같습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과 특히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이 함께 살잖아요. 부부나 부모자식만 되어도 자기 자식, 자기 부모, 자기 배우자라는 집착 속에서 살기 때문에, 같이 살더라도 상대나 자기를 객관적으로 비춰보기가 좀 어려워요. 자기가 보는 자식, 자기가 보는 부모, 자기가 보는 남편, 자기가 보는 아내라는 자기 주관이 더 강하게 비춰져서 객관적 현실이 오히려 남보다 더 왜곡되기 쉽습니다.nbspnbsp그런데 여기 사는 우리들은 경제적인 이해관계도 없고, 가족 사이의 집착이나 정에 끄달리는 것도 비교적 적은 편입니다. 물론 서로에게 애정이 있어야 하지만 그게 집착과 결부된 애정과는 조금 다르니까요. 그러다보니 상대를 보는 것도 처음에는 자기 감정과 분별심에 따라 보지만 10년, 20년씩 지나면 비교적 집착에서 자유로운 애정을 가지고 상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거울 같은 도반들이 있기에 이번에 함께한 ‘선물주기’와 같은 수련 프로그램이 생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nbsp불교의 오랜 수행 전통 중 최고의 수행 가운데 하나가 도반들과 함께 자자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르침을 청하고, 상대가 보기에 내가 어떤 면에서 개선되면 나를 위해서 좋을지 말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지적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위해 이야기하기보다는 평소 자기 속에 있던 감정을 드러내거나 자기 맺힌 걸 이야기하며 시비하기 쉽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잘못을 지적하거나 비난하거나 힐난하는 것처럼 들리기 쉬워요. 그래서 자자를 하다 보면 울거나 상처가 남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 수행자라면 도반이 거울이기 때문에 자자보다 더한 스승은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스승’이라고 하면 항상 어떤 신통력을 가진 것처럼 생각합니다. 스승이라고 하면 나를 안 보고도 내 마음을 다 알고 내 이야기 안 듣고도 내 본질을 다 알아서 지적을 다 해줄 거라는 환상이 좀 있어요. nbspnbsp스승은 점쟁이나 도사가 아니라 바른 길을 안내해주는 분이고, 그 길을 따라서 내가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문화적으로 익숙해진지 오래 되었기에 스승을 점쟁이처럼 여기고, 또 자기가 법사나 스승이 되면 그런 역량이 있어야 할 것처럼 여기는 잘못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함께 오래 정진한 도반들은 내 모습을 비춰주는 가장 좋은 거울이자 나를 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인도해주는 최고의 스승입니다.nbsp사실 세속에서도 수행적 관점만 딱 잡히면 아내에게는 남편 이상의 거울이 없고, 남편에게는 아내 이상의 거울이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약간의 집착이 섞이게 마련이라 그 거울이 때로는 흐려지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초기에는 자기감정이 배어있기 때문에 거울이 거울 역할을 하더라도 그냥 비춰지는 게 아니라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여러분들이 이제 조금씩 그 감정을 넘어서게 되면서 서로의 거울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습니다. 지금 ‘선물 주기’라는 부드러운 표현을 빌렸지만 엄격히 말하면 이것은 자자와 같은 성격입니다. 형식을 살짝 바꾸어서 전통적인 의식을 행하는 부담을 덜고 좀 편하고 가볍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것 뿐이에요.nbsp지난 여름 수행 뒤에도 느꼈고 이번에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우리는 좋아지고 있습니다. 본인들은 부족한 게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자기가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잘 몰라서 그래요.nbspnbspnbsp빨리 못 가는 것만 생각하고 자기 출발점이 어디였는지를 모르니까 자꾸 자기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제가 좀 위에서 내려다보면 어디서 출발하는지를 대강 아니까 나름대로 잘 가고 있는 게 보입니다. 채소로 치면 잘 자라고 있는데 자기 생각에 자꾸 못 자란다고 여기는 게 아닌가 해요. 그렇게 좋아지는 가장 큰 힘은 여러분들은 ‘스승의 은혜’라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런 건 부차적이고, 결국 첫째는 자신이고 둘째는 도반들이라고 생각합니다.”nbspnbsp지난 2일 동안 ‘선물주기’를 하면서 도반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는데, 스님의 말씀을 통해 다시 명쾌하게 듣게 되니 도반의 소중함이 더욱 크게 와 닿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같이 생활하고 업무를 하다보면 자기 상태를 가볍게 드러내고, 상대의 상태를 알아주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점이 부족해 보인다고 하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명상을 할 때 ‘통증을 통증으로만 느껴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서 참지 말고 느껴라’ 하지만 잘 안 돼서 억지로 참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것처럼 여러분들은 지금 수행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참는 거예요. 그래서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표현할 때 툭 튀어나옵니다.nbspnbsp생각대로 마구 말하는 건 물론 나쁘지만, 그렇다고 말 없는 게 꼭 좋은 것도 아닙니다. 내부에 억누르고 있기 때문에 소통만 안 되는 게 아니라 갈등이 심화돼요. 그래서 우리가 감정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상태를 적절하게 알려나가는 것, 즉 자기 표현하기가 필요한 거예요.nbspnbsp내 상태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은 요구하는 것과 다릅니다. ‘내가 이러니까 이거 해주세요. 내가 이러니까 이거 봐주세요’ 이렇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면 내가 좀 불편합니다. 이러저러해서 내가 몸이 좀 아픕니다’ 이렇게 자기 상태를 알리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이걸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달라 해도 안 줄 것이고 봐달라고 해도 안 봐줄 것이니 말해봤자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을 참게 되고, 참다가 도를 넘어서 터지면 입이 나오고 말이 세지는 거예요.nbspnbsp아픈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프다고 해서 동정심을 구하거나 아프다는 핑계로 쉬려 하는 게 아니라, 아픈 것에 대해서 자기가 적절하게 표현하는 거예요. ‘제가 지금 몸이 좀 불편합니다’라고 이야기했는데도 상대가 ‘아, 그렇지만 이 일은 지금 해야 합니다’ 하면 그 일을 해야죠. 이럴 때 ‘이야기 해봤자 자기 생각만 하는 걸’ 이렇게 섭섭하게 생각하면 안 돼요. 내가 적절하게 표현을 했는데도 해야 한다면 좀 아파도 할 수는 있잖아요. 졸린다고 말 했지만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해야죠. 그러나 지레짐작해 입을 닫아버리거나 쌓아두지는 말고 적절한 표현을 해줘야 합니다. 굳이 안 해도 되는 상황이라면 조금 쉬라거나 조금 자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늘 적절하게 자기 표현하기를 해야 합니다.nbspnbsp이걸 알림이라고 하죠. 이렇게 우리가 서로에게 알려야 해요. ‘이 정도 하는 걸 보면 상대가 알지 않겠냐’라고 하지만 인간 존재가 그렇지 않아요. nbspnbspnbsp자기가 자기도 잘 모르는데 남의 마음을 헤아리기는 불가능해요. 다 자기 생각만 하지, 남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자기가 누굴 사랑해준다고 해도 사실은 그 사람을 생각해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마음, 자기 욕구를 채우는 것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사랑이라는 게 사실 받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그러니까 상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거든요.nbspnbsp그러니까 이렇게 자기의 상태를 늘 적절히 표현해야 합니다. 다만 자기표현은 요구가 아니어야 하는데, 우리는 표현하면 반드시 요구를 하게 되고, 요구가 들어지지 않을 상황에서는 아예 표현을 안 합니다. 어릴 때부터 ‘말해봤자 야단만 맞지’ 이렇게 입 다문 적이 많잖아요.nbspnbsp수행자들은 감정을 꾹꾹 쌓아뒀다가 어느 순간에 터뜨리지 말고 이렇게 자기 상태를 적절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하고, 상대에 대해서는 상대가 말을 꺼내기 전에 적절하게 알아줘야 합니다. ‘네가 말 안 했잖아’ 이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상태를 봐서 적절하게 알아주기가 필요해요. 그러나 가장 기본적으로는 자기가 자기에 대해서 적절하게 표현하기를 해야 합니다.”nbsp이 외에도 스님은 실무자들이 더욱더 용기와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은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신년초부터 스님으로부터 애정이 가득 담긴 말씀을 듬뿍 들으니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지금 여기 깨어있기’를 늘 실천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해 주었습니다.nbspnbsp“오늘 아침에 ‘새해에는 행복합시다’라고 새해 인사를 드리면서, ‘내가 어떻게 태어났다 하더라도, 내가 지난날 어떤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라는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어떻게 태어났느냐, 즉 내가 사생아로 태어났느냐, 내가 아버지 없이 태어났느냐, 내가 가난한 집에 태어났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가 태어나 보니 그 집에 태어난 것이고 내가 태어나 보니 피부 빛깔이 그렇게 되어 있었던 것뿐이지, 그건 나와 아무 관계없는 일이에요.nbspnbspnbsp내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오면서 성추행을 당했든, 가난한 집에서 자랐든, 여자여서 차별을 당했든,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했든, 대학을 못 갔든, 신체에 장애가 있든, 키가 작든 다 지나간 일이에요. 그게 지금 나한테 뭐가 문제예요? 뭘 기준으로 해서 지금 문제를 삼느냐는 거예요. 키 작은 걸 두고 ‘나는 키가 작다’라고 한탄한다고 지금 뭐가 해결되겠어요? 키가 작으면 작은 상태, 학교를 못 갔으면 못 간 상태, 여자면 여자인 상태, 가난하게 자랐으면 가난한 상태가 현재의 나의 상태잖아요. ‘지금 내 상태가 어떠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떻게 할 거냐?’가 중요합니다.nbspnbsp그러니 이미 지나가버린 일을 가지고 자꾸 문제 삼지 마세요. 그걸 어떻게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냐는 말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걸 문제 삼아봤자 아무런 득이 없잖아요. 그건 이미 다 지나가버린 일이어서 지금 어떻게 돌이킬 수도 없고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어요. 아직 안 죽고 살아 있는 이 상태, 지금 여기에서 내가 어떡할 건지가 문제입니다. 장애가 있다면 극복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nbspnbsp그런 관점을 갖는다면 여러분들의 삶이 한결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해요. ‘지금 여기 깨어있다’라는 건 그저 앉아서 코끝에 드나드는 숨만 지켜보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다는 건 지금이잖아요. 과거와 미래라는 것은 머릿속에서 흘러가는 영상일 뿐이에요. 지금 산다는 건 지금 여기서 숨 쉬고 사는 이거예요.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nbspnbspnbsp그런 데서 우리가 ‘지금 여기 깨어있기’의 문제를 조금 더 깊이 살펴봐서 삶을 좀 가볍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nbsp지금 여기 깨어있어야 한다는 스님의 강조에 모두들 합장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이렇게 약 2시간 동안 스님의 조언을 들은 후, 잠시 쉬었다가 다시 약 1시간 동안은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로 개인 수행을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과 궁금함을 스님에게 묻고 대답을 듣는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3명으로부터 질문이 있었고, 답변을 마치고 나서 더 이상 질문이 없자 밤 10시가 되어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 예불과 기도 후 아침 7시부터 다시 수련을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오늘은 주로 개인 수행에 대해 집중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면 내일은 활동과 관련해서 집중적으로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1.02. 57,114 읽음 댓글 43개

2015.12.31 공동체 송년회

nbsp안녕하세요? 병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먼저 2016년 1월 1일 0시에 스님께서 직접 적어주신 새해 희망편지를 여러분께 전합니다.nbspnbsp“새해에는 행복 하십시오.nbspnbspnbsp나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nbspnbsp어떤 경우에도 이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nbspnbspnbsp내가 어떻게 태어났다 하더라도nbsp내가 지난날 어떤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nbsp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nbsp내가 행복할 권리를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nbspnbspnbsp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nbspnbsp불행을 합리화하지 마십시오.nbspnbsp이유를 대며 괴로워 하지 마십시오.nbspnbspnbsp그런 과정을 겪고도nbspnbsp이런 상황에서도nbspnbsp나는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 행운입니다.nbspnbsp나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nbspnbspnbsp새해 새날이 밝았습니다.nbspnbsp매일 매일 같은 날이지만nbspnbsp오늘부터 나는 행복하게 살기로 했기에nbsp그래서 새해 새날입니다.nbspnbspnbsp새해에는 행복 하십시오.nbspnbsp그 행복을 다른 이에게도 좀 나누어주어nbsp그들도 행복하도록 작은 도움을 줍시다.nbspnbsp그럼 이 세상이 함께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nbspnbspnbsp새해에는 우리 함께 행복합시다.”nbsp오늘부터 어떠한 경우에도 행복할 수가 있다는 말씀과 이 행복을 다른 이들과 나눠 함께 행복한 삶을 살자는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 봅니다. 여러분들도 스님이 전해주신 희망편지 그대로 새해에는 함께 행복한 길을 향해 나아가시길 기원합니다.nbspnbsp2015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스님은 수행공동체 정토회에서 상주하며 살아가는 대중들과 함께 2015년 한 해를 보내는 송년회를 하였습니다.nbspnbsp새벽 예불과 기도를 마치고 원고 교정 업무를 본 후 오전에는 어제 답사한 법흥왕릉에서 태종무열왕릉에 이르는 산길을 반대 방향으로 올라 다시 답사를 했습니다. 어제 했었던 답사가 조금 미진했는지 스님은 다시 그곳으로 가서 대중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는지 더 점검해 보았습니다.nbspnbsp저녁 7시 30분부터는 두북 정토수련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함께 하고 있는 실무자들 30여 명과 함께 송년회 모임을 가졌습니다. 실무자들은 어제부터 오늘 오후까지 한해를 마무리하는 정일사 수련을 함께했는데, 그 기운을 이어받아 저녁부터는 스님을 모시고 친목을 도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먼저 다함께 경상도 사투리로 “간데이 을미년 온네이 병신년”을 외치며 송년회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송구영신의 의미를 담아 케익 컷팅식을 했습니다. 케익에 정토회의 모토인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을 새긴 채 다함께 “송년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병신년. 새해 축하합니다” 라고 축하 노래를 부르자 스님이 직접 ‘후’ 하고 초를 껐습니다. 모두들 크게 박수를 치며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공동체 실무자들은 약 3시간 동안 송년 퀴즈왕 대결, 송년 메들리, 선물 교환의 시간을 가지며 오랜만에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중에서 선물 교환의 시간에는 공동체 실무자들 모두가 각자 3시간을 할애해 도반 한 명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을 선물로 적어 내었습니다. 그리고나서 한 명씩 나와 무작위로 하나씩 뽑아서 각각의 선물을 가져갔습니다. 그러면서 ‘2015년 가장 잘 한 일’과 ‘2016년에 이것만은 꼭 하겠다’는 발표했습니다.nbspnbsp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킨 선물은 법륜 스님이 내어 준 선물이었습니다. 스님의 선물은 “2시간 동안 경주 남산을 같이 산책하고 1시간 동안 칼국수 한 그릇 같이 먹기” 였습니다. 매년 봄과 가을에 가는 경주역사기행 코스와 너무 비슷해서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nbsp또 2015년에 가장 잘 한 일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스님은 “계획된 강의 안 빼먹고 다 했다”고 대답했고, 2016년에 무엇을 꼭 해보고 싶냐는 질문에는 “2016년에는 통일에 진일보하는 교두보를 확보하겠다”고 대답해 대중들도 함께 할 것을 다짐하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이렇게 한껏 어우러진 후 마지막으로 귀한 시간을 내어 준 스님으로부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격려 말씀을 청해 들었습니다. 스님은 건강을 잘 챙길 것과 극한 상황에서 백척간두 진일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습니다.nbspnbsp“여러분과 같이 연말을 웃고 보내서 참 좋았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수고들 많이 하셨는데, 다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자꾸 아픈 사람이 생기는 것 같네요. 법사님들도 그렇고 실무자들도 그렇고 아픈 사람들이 많이 생겼어요. 다들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이겠죠.nbspnbspnbsp그러나 이렇게 비실비실 하더라도 오래도록 가야하지 않겠어요? 최소한 만일결사 끝날 때까지는 함께 가야 해요. 그리고 그 전에 꼭 통일이 되어야 해요. 제가 말하는 통일은 정치·군사적인 통일이 아니라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통일의 길에 들어서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되면 정토회의 설립 목적 중 1차 만일결사의 목표는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볼 수 있어요. nbspnbsp다만 제가 주욱 살펴보니까 기한을 딱 지키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즉 1차 천일결사의 목표가 2차 천일결사의 중반 쯤에 이뤄진다든가, 7차 천일결사의 목표가 8차 천일결사의 중반 쯤에 이뤄진다든가 하는 것을 볼 때, 1차 만일결사도 만일 안에 딱 이뤄지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2차 만일결사의 초반부에는 이뤄질 수 있겠다고 대략 짐작을 하고 있습니다.nbspnbsp그래서 저를 비롯한 법사단과 1세대의 역할은 1차 만일결사까지 원만성취 하고, 2차 만일결사의 주인공들이 잘 출발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주는 게 아니겠나 생각합니다. 그런 여정 가운데에서 올 한 해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가장 큰 과제는 두가지입니다. 첫째, 정토회의 설립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속도가 좀 늦어진다 하더라도 원래 세운 계획대로 착실하게 나아가느냐 하는 문제이고요. 둘째,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 제대로 역할을 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불교 중흥이라는 첫 번째 목표는 부족한 대로 우리가 설계해서 해나갈 수 있는 문제라면, 두 번째 목표인 통일은 우리가 세운 계획대로만 되지 않고 정세의 변화에 따라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토회는 외부 상황과 관계없이 우리가 세운 목적대로 꾸준히 해나가면 됩니다. 외부 상황이 때로는 우리가 설정한 목적과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지만 거기에 너무 연연해 할 것은 없겠다 싶어요. 우리가 세운 목표대로 꾸준히 해나가면 짧게 보면 상황이 잘 안 맞지만 길게 보면 상황도 맞아 떨어지지 않겠나 싶습니다.nbspnbsp그래서 첫째, 건강을 잘 챙기세요. 둘째, 조금 어려움이 있더라도 물러나는 마음 없이 잘 극복해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면 약간 안쓰러움도 있고, 안타까움도 있고, 이해되는 면도 있지만, ‘수행자’라는 원칙적은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이것을 보호하려고 한다든지 안주하도록 도와줄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내 인생은 누구도 대신 할 수가 없고,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는 것이거든요. 주변 상황은 어느 정도 도와줄 수 있지만 최종적인 극복은 자기 스스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nbspnbsp‘정말 힘들다’, ‘정말 이건 아니다’, ‘정말 못하겠다. 때려치우겠다’ 하는 극한 상황에 가서 한 생각을 돌이킬 때 깨달음의 문턱이 바로 앞에 있습니다. 밤이 깊어야 새벽이 가까워지는 것처럼 그런 극한적인 상황일 때 나가 떨어지지 말고, 거기서 백척간두 진일보 해서 한 발 더 나가면 곧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이런 믿음을 갖고 정진을 했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2015년 지난 한해 동안 수고들 많이 하셨고요. 2016년에도 변함 없이, 내일도 오늘과 같이 여일하게 정진해 갔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공동체 실무자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스님의 격려 말씀을 가슴에 잘 새기면서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 순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불러야 마땅하지만 이 노래는 내일 일출을 보면서 부르기 위해 아껴두기로 하고, 북한 노래인 ‘다시 만납시다’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노래 가사를 곱씹으며 북녘 동포들을 생각하고 통일의 꿈을 다시 새겨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백두에서 한라로 우린 하나의 겨레 ♬헤어져서 얼마냐 눈물 또한 얼마였던가잘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가시라 다시 만나요목메어 소리 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nbsp부모형제 애타게 서로 찾고 부르며 ♬통일아 오너라 불러 또한 몇해였던가잘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가시라 다시 만나요목메어 소리 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nbsp꿈과 같이 만났다 우리 헤어져 가도 ♬해와 달이 찬란한 통일의 날 다시 만나자잘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가시라 다시 만나요목메어 소리 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nbsp다함께 두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르면서 새해는 통일을 향해 진일보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보았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송년회 모임을 모두 마치고, 스님은 1월 1일 0시가 되자 새해 첫날 아침에 대중들에게 전할 희망편지를 직접 작성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새벽 일찍 정토회 실무자들과 함께 동해 바다로 가서 새해 첫 일출을 본 후 감은사, 기림사, 오어사, 나원리 5층탑을 참배한 후 저녁에는 다시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돌아와 수행과 관련된 즉문즉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nbsp

2016.01.01. 65,765 읽음 댓글 83개

2015.12.30 (오후) 연말 명상수련 5일째, 회향식

nbsp오전에 소감문 발표와 이에 대한 격려 말씀에 이어서 오후에는 연말 명상수련을 마무리하는 회향식이 열렸습니다.nbspnbspnbsp대중들은 지난 5일 동안 가르침을 잘 설해준 스님께 청법가를 부른 후 삼배를 하며 회향 법문을 청했습니다.nbspnbspnbsp대중들이 명상을 하고 있는 가운데 죽비 삼성이 끝나자 곧이어 스님은 대념처경을 읽어주었습니다. 지난 4박 5일 동안 몸으로 행한 그 내용이 담긴 경전이었습니다.nbspnbsp대념처경을 다 읽고 난 후 스님은 부처님이 살았던 삶과 비교해보면 오늘날 우리는 무엇이든 기쁜 마음으로 해나갈 수 있다고 하면서 회향 법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지난 5일 동안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대념처경, 즉 사념처관을 행했습니다. 계율을 청정히 지키고, 한적한 곳에 와서 먹고 입고 자는 집착을 놓아버리고, 오직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한 가운데 코끝에 집중해서 들숨과 날숨에 온전하게 깨어 있었어요. 눈을 감고 편안하게 앉아 있어도 졸음이 오지 않고,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영상이나 미래의 이런저런 상상들이 일어나더라도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지금 여기 호흡에 깨어 있는 연습을 했습니다.nbspnbsp물론 잘 되진 않았지만, 잘 안 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그런 방향으로 이미 출발해서 열반이라는 목표점을 향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목표지점까지는 아직 까마득하지만 그래도 되돌아보면 출발점에서 한참 멀리까지 왔어요. 출발점에서 한참 왔다는 것은 앞으로 계속 가면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모두 꾸준히 정진해나가시기 바랍니다.nbsp정토수련원에서는 부처님의 ‘고행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전정각산 아래 시타림에서 홀로 외로이 정진하실 때, 비록 고행이 깨달음의 근원은 아니지만 저런 고행의 과정을 통해 삶과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셨어요.nbspnbspnbsp저런 고행 생활을 경험하셨기에 깨달음을 얻으신 이후에도 그 분은 먹는 음식에 집착하지 않고 여느 수행자와 다름없이 걸식을 해서 드셨고, 저런 고행을 이미 경험하셨기에 여느 수행자나 다름없이 분소의를 걸치고 생활하셨고, 이미 저런 고행을 겪었기에 여느 수행자나 다름없이 나무 아래나 동굴이나 처마 아래에서 한가히 잠들 수 있었습니다.nbspnbsp그랬기에 아무리 돈이 많은 부자가 와도 아무리 지위가 높은 왕이 와도 부처님이 보시기에는 그들이나 그저 매일매일 걸식할 때 만나는 일반인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어요. 그들을 특별히 우대하지도 않고 그들을 특별히 배척하지도 않고, 그냥 평등하게 보셨습니다. 그들이 괴로워하며 물으면 친절하게 깨우쳐 주셨고, 그들이 잘난 척 하더라도 거기에 추호도 굴함이 없었어요. 부처님은 진리의 가르침대로 여법하게 올곧게 살아가셨지만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배척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깨우쳐 주셨습니다.nbspnbsp그러나 계급 차별을 하거나 성차별을 하는 등 우월주의에 빠진 사람에게는 날카롭게 그 허구성을 비판하시고, 제자들 중에 그런 흔적이 남은 사람에게는 아주 냉정하게 세속으로 돌아가거나 그 허물을 버리기를 요구하며 분명하게 가르침을 펴셨습니다. 세상을 다 정화시키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부처님 법 안에서, 상가 안에서는 부처님의 법이 실현되었어요.nbspnbspnbsp부처님께서 이미 가르침을 주시고 모델을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의 사명은 그 모델을 이 세상에 실현시키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남녀니 승속이니 하는 차별이 없도록 하는 것, 이 법이 이 세상 속에서 모든 사람에게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들의 전법의 목표입니다.nbsp여러분들은 항상 저 부처님의 고행상을 보면서 내가 아무리 못 먹어도 부처님보다 잘 먹고, 내가 아무리 못 입어도 부처님보다 잘 입고, 내가 사는 집이 아무리 허름해도 부처님보다 좋은 곳에 살고 있고, 내가 아무리 불편한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걸어다니셨던 부처님보다는 편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아무리 힘든 일을 하고 어떤 불행을 겪더라도 부처님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에서 살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생전에 자기의 종족이 전멸하는 참사를 겪으셨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올곧게 그 분의 길을 가셨고 대중에게 항상 바른 법을 펼치셨습니다.nbspnbsp그러니 우리가 진정 부처님을 내 삶의 모델로 생각한다면 마음을 기쁘게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훌륭하신 분도 비난을 받고 가족의 불행을 겪었는데, 우리처럼 부족한 사람이야 하물며 더한 비난과 더한 재앙이 따르더라도 감내하지 못할 이유가 뭐 있겠어요? 이렇게 생각한다면 오늘 우리들이 하는 일이 비록 작고, 힘들고, 앞으로 갈 길이 멀다 하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가볍게 갈 수 있습니다.nbspnbspnbsp이 길은 반드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길입니다. 우리 인류에게 이 희망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인류는 결국 공멸로 가게 될 것입니다. 공멸로 가지 않으려면 어차피 이 길로 갈 수밖에 없어요. 이 길이 아니고는 인류에게 지금 문명의 대안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nbsp그러니 여러분들은 지금은 비록 작아 보여도 시간이 흐른 뒤 되돌아보면 우리가 참으로 큰일을 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결과가 어떻게 되든 이 길이 바르기 때문에, 우리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자부심을 가진 채 꿋꿋이 이 길을 갈 수 있어야 합니다.nbsp지난 한 해 수고하셨습니다. 그 동안 지쳤다면 이번 수련을 통해서 원기를 회복하셔서 내년 한 해도 꾸준히 이어서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행복해야 한다는 거예요. 웃으면서 가볍게 해야 합니다. 내가 넘어져서 다른 사람이 나를 일으켜줄 때 우는 얼굴이 아니라 빙긋이 웃는 얼굴로 놀래켜줄 수 있어야 해요. nbspnbspnbsp무슨 기적으로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저건 인간도 아니다’ 이런 소리를 들을 만큼 우리가 행복하고 자유로워야 합니다. 남이 볼 때는 많은 계율의 속박 속에 사는 것 같지만 우리는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야 해요. 그러니 어떤 문제를 자꾸 남 탓으로 돌리지 마세요. 결국은 그런 세상, 그런 사람,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할 거냐’라는 것이 문제입니다.nbspnbsp‘상황이 이러니 나는 울 거냐?’nbsp‘상황이 이러니 나는 괴로워할 거냐?’nbsp‘상황이 이러니 나는 포기할 거냐?’nbsp‘아니면 상황이 이렇더라도 나는 웃을 거냐?’nbsp‘이런 상황을 나는 극복의 대상으로 삼을 거냐?’nbsp‘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한 발 앞으로 나아갈 거냐?’nbspnbsp말로는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좋은 일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내 인생의 문제예요.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떤 인생을 살 거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수행자의 자세로 일해 나가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nbspnbspnbsp우리는 자기가 대단한 일을 하는 양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 모두는 이 세상 만 중생과 천지만물의 은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첫째, 내가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은 보잘것없음을 알아 대단한 척 하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둘째,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내가 하는 일이 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 하나가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 당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검소하게 살되 풍요로워야 하고, 겸손하게 살되 당당해야 한다’고 하셨어요.nbspnbsp그런 마음으로 새로운 한 해도 행복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늘 부처님 법 안에서 우리는 수행자로서 행복해야 합니다.”nbsp수련을 마치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금이라도 더 대중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고자 하는 스님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부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떠올리면 오늘날 우리들은 정말 기쁜 마음으로 이 일을 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지난 5일 동안 활동가들이 용맹 정진을 하는 동안 공양간에서 방송실에서 수련장 뒤편에서 조용히 대기하며 수련이 잘 진행될 수 있게 뒷바라지해준 봉사자분들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30여 명의 봉사자들이 차례로 줄을 지어 무대 앞으로 걸어나오자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nbsp많은 분들의 소감문 발표 속에는 바라지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내용이 많았는데, 실제로 그 분들의 얼굴을 확인하자 더욱더 고마운 마음이 일었습니다. 보이지 않았지만 많은 분들의 은혜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음을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회향 법문까지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대중들을 위해서 스님은 한 명씩 손을 잡아주며 “한해 동안 수고하셨어요” 라는 말을 환한 웃음과 함께 건네 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다시 가정과 직장으로 하산하는 대중들을 위해 정토수련원에서는 떡과 귤을 나눠주며 내려가는 길에 행여 허기가 질 것까지 알뜰히 챙겨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렇게 5일 동안의 연말 명상수련을 모두 마친 후 스님은 곧바로 경주로 향했습니다. 법흥왕릉에서 태종무열왕릉으로 넘어가는 산길이 있는데, 내년 봄에 청년들을 데리고 경주역사기행을 할 때 이 길을 한번 가보려고 답사를 나선 것입니다. 아무리 답사 일정을 잡아보려 해도 일정이 도저히 나오지가 않아 오늘 특별히 시간을 내어 한번 가보았습니다.nbspnbspnbsp법흥왕릉을 시작으로 경주대학교를 지나 선도산을 넘어 태종무열왕릉이 있는 곳까지 약 1시간을 등산했습니다. 스님은 명상수련을 시작하면서부터 단식을 시작해서 오늘로 단식 5일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씩씩하게 산을 올랐습니다. 법흥왕릉을 오르면서도 “답사도 하고 운동도 하고 일석이조이지?” 하며 기운을 내어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시골길이며 산길이며 인적이 드문 길을 금새 찾아 내었습니다. 스님께 “길을 정말 잘 찾으시네요” 라고 하자 스님은 “나는 시골 사람이여서 이런 길을 갈 때는 거의 인간 네비게이션 수준이야” 라며 웃으셨습니다.nbspnbspnbsp이 길, 저 길, 갈림길, 길의 너비, 이동시간 등 곳곳을 꼼꼼하게 점검한 후 산을 내려왔습니다. 대중을 인솔할 때는 항상 꼼꼼하게 미리 답사를 해놓아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이 절로 생각이 났습니다.nbspnbsp답사를 마치고 나서 스님은 경주에서 옛날 불교학생회와 불교청년활동을 같이한 분들, 옛 고향 친구분들에게 연말 인사를 나눈 후 울산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와서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nbspnbsp내일부터 연말과 새해를 겸해 3일 동안은 정토회 실무자들과 함께 수련과 연찬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nbsp

2015.12.31. 55,610 읽음 댓글 7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