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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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29 (저녁) 대구 즉문즉설 강연(1) 사회문제편

nbsp안녕하세요? 오전에 있었던 서초구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대구 시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수성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렸습니다.nbspnbsp수성대학교 교정은 벌써부터 벚꽃이 활짝 피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었습니다. 서울에서는 개나리꽃이 봄소식을 전해주더니 대구에서는 벚꽃이 봄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강연을 하러 전국을 다니다보면 자연의 변화를 가장 빨리 볼 수 있어 참 좋습니다.nbspnbsp▲ 대구 수성대 교정에 핀 벚꽃nbsp소개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강연장을 찾은 800여 명의 대구 시민들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수성대학교 대강당은 발디딜 틈 없이 붐볐습니다.nbspnbsp▲ 수성대 성요셉관 대강당nbsp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즉문즉설 강연의 취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즉문즉답이라고 하지 않고 즉문즉설이라고 하는 이유는 지식으로 정답 맞추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가 사라지도록 하는 대화를 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한 후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하자nbsp청중석에서는 번쩍 손을 들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총 5명이 스님에게 자신의 고민을 말했습니다. 중년의 여성 분은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는데 아이들이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이혼이 망설여진다며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물었고, 젊은 여성 분은 결혼 4년차인데 아직 아이가 안 생겨서 시어머니는 시험관 아이라도 가지라고 해서 억지로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물었고, 젊은 청년은 회사에 불이 나서 회사를 그만두게 된 이후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마음이 계속 불안해져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직장인 여성 분은 회사에서 자기 이익만 챙겨먹는 사람들을 보면 나만 희생 당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나는데 이것이 피해의식인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개인들의 다양한 인생 고민에 대해 때론 아주 재미있게 때론 아주 날카롭게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최근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공천 갈등에 대한 실망감이 커서 투표를 해야할지조차 고민이 된다는 한 시민의 걱정스런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대구 시민들의 민심이 어떠한지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스님은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이며 모근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지금의 현실을 진단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보름 후면 국회의원 선거일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투표를 안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공천과정을 보니까 진짜 해도해도 너무 한다 싶어서 ‘투표를 하지 말아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인물인지,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지역과 나라를 위해서 일했는지는 안중에도 없어요. 공천권을 가진 사람이 무슨 신하를 뽑듯이 공천심사를 하는 걸 보니까 제가 정치에 대해 특별히 기대하는 사람도 아닌데 정말이지 이건 아니다 싶습니다. 그래도 이 귀한 투표권을 버려서는 안 되겠지요? 스님께서 시기적절하게 대구에 오셨으니 답답한 마음을 꺼냅니다.nbsp제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정치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또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떤 후보에게 투표해야 할지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nbsp“질문자는 지금 우리 정치권이 ‘해도해도 너무 한다’ 라고 했는데, 그래도 북한보다는 낫지 않아요? 아무리 이렇다 해도 ‘대한민국에서 살래? 북한으로 갈래?’ 그러면 질문자는 어떻게 대답할 거예요?” nbspnbspnbsp“대한민국에서 삽니다.”nbspnbsp“그러니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그래도 대한민국이 나아요. 서로 욕하면서 닮아가는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보세요.nbsp대한민국에는 진보적인 사람도 살고, 보수적인 사람도 살고, 경상도 사람도 살고, 전라도 사람도 삽니다. 또 기독교인도 살고, 불교인도 살고, 독립운동가 후손도 살고, 친일파 후손도 살고, 민족주의자도 살고, 친미주의자도 삽니다. 이렇게 서로 뜻이 다른 사람들이 뒤섞여 살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나라는 다른 나라보다는 덜 복잡합니다. 다른 나라에는 한 나라 안에 다른 인종이나 다른 민족이 사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 나라는 더 복잡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종과 민족은 같잖아요.nbspnbsp물론 앞으로 30년 혹은 40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현재 결혼이나 노동을 이유로 우리 나라에 이주해 온 외국인 중에서 귀화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니까요.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노동자는 100만 명이 넘는데, 30년 안에 그 숫자가 전체 인구의 10, 그러니까 5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최소치가 그렇습니다.nbspnbsp그저께 제가 외국인노동자들과 법주사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그때 한국에 사는 스리랑카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물어봤더니 3만 명이래요. 태국 사람은 6만 명, 베트남 사람은 10만 명이 산답니다. 어느 나라 외국인이 제일 많이 사느냐고 물어봤더니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이 30만 명 정도 산다고 해요. 지금 한국에는 19개국의 노동자가 사는데, 스리랑카는 그 중 작은 그룹에 속한다고 해요. 시간이 흐르면 우리가 미국에 가서 시민권 받듯이 외국인 노동자도 한국국적을 취득하는 사람이 늘어날 겁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지요.nbspnbspnbsp그러면 이념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고, 여러 가지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무엇을 우리의 정체성으로 삼아야 할까요? 그건 바로 헌법입니다. 우리 모두는 헌법을 존중하고, 헌법 앞에서 평등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헌법을 존중하지 않고 부정하면 우리 사회는 갈등이 격화될 수밖에 없습니다.nbspnbsp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민주제와 공화제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왕이 주인인 나라가 있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있는데, 왕이 주인인 나라가 군주제,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바로 공화제입니다.nbspnbsp예를 들어 현재 태국은 국가의 주권자가 왕입니다. 우리 조선시대가 그랬지요. 이런 나라를 제국이라고 합니다. ‘대한제국’, ‘일본제국’ 이라고 들어보셨지요.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은 왕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고 국민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왕이 주인일 때 백성은 신민, 즉 왕의 신하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국민으로 바뀌었잖아요. 그래서 나라 이름이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바뀐 겁니다. 그리고 독재자가 통치하는 국가는 ‘전제국가’라고 하고, 국민이 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대리인을 자유롭게 선발하는 국가는 ‘민주국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nbspnbspnbsp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주인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 아니라 국민입니다. 이건 우리가 다 동의한 바예요. 그런데 지난 5000년 동안 나라의 주인이 왕이었던 오랜 역사가 있다보니까 우리가 관습적으로 생각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법적으로는 권력이 국민에게 있는데, 관습적으로는 우리의 권력을 대신 행사하라고 뽑아놓은 일꾼인 대통령을 우리는 자꾸 왕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게 모순입니다.nbspnbsp회사에 비유하자면 우리가 주주예요. 모든 주주가 회사를 운영할 수는 없으니 주주총회를 열고 우리는 그 주주총회에 참석해서 경영실적 같은 걸 보고 CEO나 대표이사를 선출하는 겁니다. 그게 선거입니다. 선거를 통해서 우리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도 뽑고,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도 뽑아서 구성하는 겁니다. 지방 정부를 구성하는 지방선거도 하고요. 그러니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이에요.nbspnbsp그런데 이번 공천 과정에서 여야를 불문하고 잡음이 많았습니다. 특히 대구에서 더 시끄러웠던 것 같아요. 이러한 공천 파동은 ‘국민이 국회의원을 선출한다’라고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게 북한과 비슷하다는 거예요. 북한에서도 선거한다는 사실을 아세요? 우리가 국회의원 선거 하듯 북한도 선거를 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딱 한 명만 당에서 추천을 합니다. 예를 들어 ‘수성구 갑 아무개’, ‘수성구 을 아무개’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면 그 한 명에 대한 찬반투표만 하는 식인데 보통 찬성이 99퍼센트 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말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지 실상 모든 권력은 당에 있습니다. 당에서 지명을 하면 형식적으로 투표의 절차만 거치는 것일 뿐 이미 당에서 지명된 사람이 당선되리라는 건 예측이 가능하잖아요. 그런데 대구의 경우도 보세요. 모든 권력이 대구시민, 즉 국민에게 있는 게 아니라 당에 있잖아요. 대구시민 여러분은 최근 20년 동안 당에서 정한 후보를 바꿔본 적 있습니까?”nbspnbsp“없습니다.”nbspnbsp“대구에서 한나라당이나 새누리당이 아닌 사람이 당선된 적 있습니까?”nbspnbsp“없습니다.”nbspnbspnbsp“그러니 제가 볼 땐 북한하고 비슷하다는 거예요. 99 찬성이냐, 80 혹은 70 찬성이냐 하는 차이는 좀 있겠지만 당에서 지명한 사람이 당선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당에서 지명된 사람들은 당선이 떼놓은 당상이니까 국민들을 보면서 ‘선출해 주십시오’ 하지 않고, 당을 보면서 ‘지명해 주십시오’ 하겠지요. 후보들은 형식적으로만 국민에게 굽실거리지 국민들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거운동다운 선거운동을 해 본 적도 없어요. 그냥 요란하게 다닐 뿐입니다.nbsp그런데 그 사람을 지명하는 것에 대해 국민이 지지해주지 않는다면 당에서 그런 무리한 지명을 할까요? 그러니 공천 파동은 당에만 책임이 있다고 할 수도 없겠지요. 여러분에게도 책임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로소이다’라고 반성할 일이지, 자꾸 대통령이나 당만 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일이 빚어진 겁니다.nbspnbsp그런데 경상도만 그런 건 아니고, 전라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라도도 민주당 깃발만 꽂아놓으면 당선됐잖습니까. 거기도 형식적 투표를 했어요. 전라도에서 한나라당이나 새누리당 후보로 나가면 당선될 가능성이 없었던 것처럼 경상도에서도 민주당이나 노동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인물하고도 아무 관계가 없었어요. 그런데 재작년 보궐선거 당시 전라도에서 먼저 ‘이건 아니다’ 해서 새누리당 후보를 뽑아주었잖아요. 벌써 몇 년 전부터 전라도 사람들은 변화했습니다. 민주당은 싫지만 그렇다고 바로 새누리당으로는 바꾸지 못 하겠으니 무소속을 많이 뽑아줬습니다. 그래서 전라북도는 자치단체장의 3분의 1이 무소속이에요.nbspnbsp지금 경상도는 전라도보다 대략 4년 정도 늦었지만 이번에 여러분도 투표권을 조금 회복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잘하면 이번에는 여러분이 결정할 가능성이 높아졌어요. 즉 당의 지명을 못 받은 사람이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 이 말이에요. 당이 지명한 사람이 괜찮으면 그 사람을 찍으세요. 당에서 지명한 사람이 다 나쁜 건 아니지요. 그런데 지명한다고 무조건 찍어주는 것도 안 됩니다. 그건 참정권을 포기하는 겁니다. 아시겠지요? 결국 여러분에게 선택권이 있습니다.nbsp전라도는 몇 년 전부터 무소속에게도 표를 줬는데, 이번엔 아예 새로운 정당 하나가 생겼어요. 신당이 전국적으로 영향력은 없지만 전라도 안에서는 기존 정당과 비교해보면 비슷비슷합니다. 그래서 총 28석 중 서로 많이 차지하겠다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걸 부정적으로 말하면 분열이라고 하겠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드디어 결정권이 국민한테 돌아왔다고 할 수 있어요.nbspnbsp그래서 지금의 대구 상황을 나쁘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항상 부정 속에서 긍정을 찾는 사람이니까 제가 볼 때는 오히려 참 잘 됐다 싶습니다. 결정권이 우리 손, 국민의 손에 들어왔으니까 드디어 우리가 결정을 할 수 있게 됐잖아요. 그래서 선거운동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예전보다 훨씬 절을 잘 할 거예요.nbspnbspnbsp그러니 이번 공천파동은 어쩌면 좋은 현상입니다. 만약 이번에 당에서 지명한 사람 중에 몇 사람이라도 당선이 안 된다면 다음부터는 공천에 더 신중을 기하겠지요. 그러니 공천파동이 기분 나쁘다고 투표를 안 하면 거기에 말려드는 겁니다. 생각 있는 사람들은 기분 나빠서 투표 안 하고, 생각 없는 사람들만 말뚝 보고 찍으러 투표장에 가면 결국 누군가의 의도대로 되겠지요.nbspnbsp지역주의가 활개를 칠 땐 우리가 지역주의에 사로잡힌 포로가 되어 참정권을 잃어버렸지만, 이제 몇 십 년 만에 우리가 직접 대표를 선출할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니 이제 제대로 일할 사람을 찾아서 표를 줘야겠지요.nbspnbsp투표 할 때는 ‘저 사람이다’ 싶은 사람을 찍는 게 최선입니다. 최선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조금 낫더라’ 싶은 사람을 찍는 게 차선이지요. ‘둘 다 꼴 보기 싫다. 뽑아줄 사람이 없다’ 싶으면 주로 기권을 하겠지요. 그런데 ‘둘 다 문제지만 어느 게 더 문제냐’ 하는 걸 찾아야 해요.nbspnbsp그래서 가장 문제인 사람이 최악, 그래도 좀 덜 문제인 사람이 차악입니다. 즉 후보자들 중에서는 최선, 차선, 차악, 최악, 이렇게 네 종류가 있을 수 있는데, 질문자가 봤을 때 최선이다 싶은 사람이 있었다면 저한테 물어보지도 않았겠지요. 최선이다 싶은 사람이 있으면 제가 찍지 말라고 해도 본인은 가서 찍을 거예요. 그리고 차선만 있어도 어지간하면 찍으러 갑니다. 그런데 차악과 최악밖에 없을 때는 주로 기권을 합니다. 차악과 최악 중에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일 때는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하는 게 이 조건에서는 최선입니다.nbspnbsp이걸 주식투자에 비유하면 ‘손절매’ 라고 합니다. 내가 10,000원 주고 주식을 샀는데, 20,000원 됐다면 배를 버니까 이때 팔면 최선입니다. 그런데 겨우 2,000원 밖에 안 올랐다면 섭섭하지만 손해 본 건 아니니까 이때 팔면 차선이에요. 그런데 10,000원 주고 샀는데 8,000원으로 떨어지면 손해지요. 그런데 조금 더 놔두면 5,000원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8,000원에라도 파는 게 이익입니다. 이걸 손절매라고 합니다. 이렇게 손해를 보고도 팔 줄 알아야 주식투자를 잘할 수 있어요.nbspnbsp그러니 포기하면 안 됩니다. 차악과 최악 중에 차악을 선택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 형편이 안 되는 중에라도 좀 덜 안 됩니다. 많이 안 되는 걸 막을 수 있어요. 조금 덜 손해 본다는 겁니다. nbspnbsp적어도 우리가 지금까지는 무조건 깃발만 보고 찍었는데, ‘깃발은 안 보겠다’ 하는데 동의가 되면 이제는 사람을 봐야겠지요. 경상도 사람은 의리를 좋아하잖아요. 저도 의리 좋아합니다. 그런데 같은 ‘의리’라 하더라도 정의로운 의리가 있고, 깡패 의리가 있습니다. 깡패 의리는 세상을 더 어지럽게 합니다. 의리라고 다 좋은 게 아니에요. ‘정치적인 의리를 지킨다고 할 때 누구를 위한 의리인가? 민주공화국에서 국가를 위한 의리인가? 국민을 위한 의리인가? 당을 위한 의리인가? 당파, 계파를 위한 의리인가? 개인을 위한 의리인가?’ 이런 걸 생각해 봐야 합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저의 바람은 우리 경상도도 이제는 ’몰빵‘하지 말고, 좀 다양한 사람들이 당선되도록 하면 어떨까 싶어요.”nbsp“차악을 한번 잘 찾아보겠습니다.”nbspnbsp“물론 가슴이 아프죠. 이번에 저는 국회의원의 목숨이 저렇게 파리목숨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라는 건 국회의원들이 중심이 되어서 하는 줄 알았더니 2선, 3선까지 해서 제법 목에 힘주고 다니는 사람들까지도 자고 일어나보니 하루아침에 공천에서 떨어져 있어요.nbspnbsp그래서 권력은 좋은 게 아닌 것 같아요. 권력이야말로 무상한 거예요. 지금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도 앞으로 2년만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그 때가 되면 그분들도 후회를 할 거예요. 물론 우리는 하루도 권력을 누리지 못하는데 2년이 남았다면 굉장히 길다고도 볼 수 있겠죠. 또 여러분들도 만약 권력을 잡으면 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할 가능성이 있어요. 그래서 너무 미워하지는 마세요. 미워한다고 해결이 되는 게 아닙니다.nbspnbspnbsp다만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렇게 자기들 멋대로 공천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많다는 것을 국민들이 투표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개선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대구는 국민 투표권에 대한 중요한 시험대가 된 것 같아요. 국민들이 좀 본때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요?”nbsp“네.”nbspnbsp차악을 찾아보겠다는 우렁찬 대답에 스님도 활짝 웃고, 청중들도 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스님의 답변은 대구 시민들의 답답했던 가슴을 조금이나마 시원하게 해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벌서 약속한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바람을 피운 남편이 끝내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여성 분의 하소연이 계속 이어져서 강연이 조금 길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청중들은 모든 질문과 답변이 너무나 유익하고 재미있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치면서 스님은 다시 한번 대구 시민들의 답답한 마음을 어루만지고, 이전투구에 급급한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nbspnbspnbsp“대구 시민 여러분, 오늘 즐거웠어요?”nbsp“예.”nbspnbsp“오늘 질문자 중에는 부부갈등 때문에 괴로운 분도 있었고,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다는 분들도 있었는데, 우리가 이렇게 얘기해 보니까 ‘그게 괴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꼭 괴로워할 일이냐’ 하는 생각도 들지요?”nbsp“예.”nbspnbspnbsp“우리는 그 괴로운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도 웃었지요? 남이 괴로운 게 뭐가 좋다고 그렇게 웃었을까요. 인생을 뒤집어보면 그게 꼭 울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지난 두 달 동안 공천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웠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의문이 들었어요. 우리는 지난 몇 달 동안 남북 갈등이 깊어지면서 전쟁 위기도 맞았는데, 보통 여야가 서로 정쟁하다가도 위기가 닥치면 통합을 하잖습니까. 통합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 대통령이나 여당이 야당한테 법안 같은 걸 좀 양보해야 통합이 가능하잖아요. 또 여당이 공천할 때도 친박이 비박의 요구를 조금 받아주면 통합이 되겠지요. 정말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면 통합을 해야죠. 말은 위기라고 하면서 양보도 안 하고 고집만 부리면서 왜 분열을 더 가중시키는 것일까요? 지난 몇 달 동안 한국은 남북 간 갈등, 여야 간 갈등, 여당 안의 갈등, 야당 안의 갈등으로 사분오열됐습니다. 여기에 지도자의 책임이 있습니다.nbspnbsp대통령께서 후보시절 선거공약 중에 ‘국민 대통합’이라는 공약이 있었던 거 아세요? 그래서 당선되신 후에 국민통합위원회를 만들어서 위원장도 임명했잖아요. 그런데 지난 3년 동안 국민통합이 아니라 국민 분열이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대통령께서 진실 되게 오직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헌신하셨지만, 국민통합을 위한 각계각층과의 소통에는 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nbspnbsp그러면 잘못만 했다는 거냐고요? 아니요. 저는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대구시민들에게는 국민의 권리인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잖아요. 이게 전화위복입니다. 그래서 나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나쁨 속에 새로움이 있으니까요. 이제 우리에게는 정치적인 기회, 국민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전에는 아무리 야당을 찍어봐야 당선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당선될 수도 있겠지요. 또 비박도 찍어볼 수 있겠지요. 또 사람이 괜찮으면 친박도 찍을 수 있고요. 이런 선택권이 주어졌다는 게 좋은 거예요.nbsp이렇게 변화된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좋은 점을 찾아서 우리는 나아가야 하는 거예요.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살면 여러분도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겁니다. 부디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nbsp청중들은 환한 웃음과 박수로 스님의 이야기에 공감을 표했습니다. 정치인들이 국민 무서운 줄을 알고, 정말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시대가 되도록 행동하는 시민이 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nbspnbsp강연장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길게 줄을 서서 오랜 시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 대구 시민들은 스님의 사인을 받고선 너무나 기쁜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사인회가 끝나고 무대 위에서는 오늘 강연을 준비한 대구정토회 자원봉사자들 모두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희망 강연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에는 힘찬 기운과 활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 사진nbsp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대구 정토법당에 잠시 들렀다가 밤 11시에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부지런히 고속도로를 달리면 새벽 3시 쯤에는 서울에 도착할 수 있을 듯 합니다.nbspnbsp스님은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잠시 눈을 붙인 후 내일 아침 7시부터 하루종일 평화재단에서 회의와 미팅을 연이어 갖고, 저녁 7시에는 홍익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lt스님의 하루gt에 실린 모든 내용, 디자인, 이미지, 편집구성의 저작권은 정토회에 있습니다. 허락없이 내용의 인용, 복제를 할 수 없습니다.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3.31. 79,125 읽음 댓글 62개

2016.3.29 (오전) 서초구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는 서초구 구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고, 차를 타고 이동해 저녁에는 대구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먼저 오전에 있었던 서초구 즉문즉설 강연 소식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nbspnbsp새벽 2시에 울산 두북을 출발해 6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쉴 겨를도 없이 원고 교정을 보다가 9시 30분이 되어 강연이 열리는 양재동 더케이아트홀로 향했습니다. 아침부터 햇살이 따사롭더니 우면산과 양재천에는 개나리꽃이 노랗게 피어 봄날씨를 듬뿍 느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nbspnbsp▲ 양재천에 핀 개나리꽃nbsp강연이 열리는 더케이아트홀 앞에도 산수유꽃이 활짝 피어 강연장을 찾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 듯 했습니다.nbspnbsp▲ 강연장 앞에 핀 산수유꽃nbsp소개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에 올라서자 자리를 가득 메운 900여 명의 청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와 함성으로 스님을 반겨주었습니다.nbspnbsp▲ 양재 더케이아트홀nbsp스님은 봄날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봄에는 땅의 기운을 좀 받으며 지내면 좋겠다는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따뜻한 봄날 여러분들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어제 경주 남산에 갔었는데 진달래가 활짝 피었더라고요. 예전보다 1주일 내지 10일은 빨리 봄이 온 것 같아요 여러분은 봄이 빨리 온 것이 느껴집니까?nbspnbspnbsp매일 건물 속에 사니까. 요즘 같은 봄철에는 가능한 밖에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생명체가 대지를 뚫고 새싹이 돋을 때 그때 기가 아주 많이 솟아납니다. 이런 봄날에 새로 솟아오르는 나물은 건강에도 아주 좋다고 해요. 그런 기운을 받으시면 여러분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도 아주 좋습니다. 이런 봄날 흙을 만지면서 씨앗을 심거나 모종을 심는 것은 어떤 즐거움보다도 더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걸 일이라고 고달프게 여기면 괴로움이 되지만 자연과 함께하는 좋은 기운이라 생각하면 큰 즐거움이 됩니다. 그러니 건물이나 집에만 있지 마시고 우면산이라도 산책을 하세요. 스님같이 그렇게 한가해야 그런 시간을 갖지 우리는 바쁜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바빠요 저도 바쁜 가운데서도 시간을 자꾸 내서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겁니다.”nbspnbsp이어서 본격적으로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부터 처음 도입된 제비뽑기 방식으로 강연이 이뤄졌습니다. 청중들은 미리 강연장 입구에서 질문지를 적어 내었고, 스님이 질문지를 뽑으면 해당 질문자가 일어나서 질문하는 방식입니다. 개인 고민은 녹색 종이에, 사회 문제는 보라색 종이에 적도록 되어 있었는데 보라색 종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직 일반 청중들은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보다는 개인 고민이 더 다급한 것 같습니다.nbspnbsp총 8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젊은 여성 한 분은 친구들이 나만 바라봐주면 좋겠다는 욕심 때문에 상처를 주기도 했는데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지 질문했고, 폭력을 자주 행사하는 남편 때문에 딸 아이와 함께 집을 나와서 산다고 하는 여성 분은 딸 아이의 미래를 위해 아빠를 만나게 해줘야 하는지 질문했고, 혈우병과 또 한 가지 희귀병을 같이 앓고 있는 남성 분은 아내가 병간호를 힘들어 하며 이혼하기를 원하는데 이혼을 해야할지 말어야 할지 고민이라고 질문했고, 한 어머니는 공부를 하지 않는 아들이 자꾸 비싼 사교육을 시켜달라고 해서 고민이라고 질문했습니다.nbspnbsp한 청년은 여자친구와 헤어진 상처 때문에 현재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에게도 집착이 생겨 걱정된다며 진정한 사랑에 대해 질문했고, 한 여성분은 싱글맘일 때는 열심히 직장을 다녔는데 재혼을 하고 나서 집에 있으니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든다며 어떻게 적응을 해야 하는지 질문했고, 마지막으로는 마흔살 여성분은 사귀고 있는 남자가 이혼남인데 거짓말을 자꾸하고 전 부인을 못 잊기도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소심한 남편 때문에 괴롭다고 하소연을 한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저는 결혼한 지 11년 되었습니다. 남편의 성격이 많이 여리고 소심하고, 제가 무슨 질문을 하거나 걱정하는 말만 해도 순간적으로 짜증내고 잘 삐집니다. 제 말투가 부드럽지 않고 비꼬는 말투라고 하면서 화를 내거나 쓸데없는 소리라며 제가 하는 말을 잘 안 들으려고 해요. 자기는 완벽하게 잘 하고 있는데 왜 자꾸 걱정을 하고 지적을 하느냐고 말합니다. 제 입장에서는 대화의 시도인데 남편은 이해를 못하고 화를 내니까 제가 아예 대화를 하지 말아야 하는지, 질문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nbsp“화내는 건 남편의 사정이고 묻고 싶은 건 내 사정이니까 화를 내든지 말든지 질문이 있으면 질문을 자꾸 하세요. 어려울 게 없어요. 결국은 질문자도 삐지는 거 아니에요? 결국 질문자도 소심한 겁니다. 남편이 화를 내니까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걸 소심하다고 그래요. 화 내는 건 너의 사정이고 나는 물어볼 것이 있으면 물어버리면 되는 겁니다.”nbspnbsp“그런데 남자가 돼서 소심하게 자꾸 화를 내니까 그렇죠.”nbsp“여기에 ‘남자’라는 단어를 붙이면 그건 남녀차별입니다. 남자도 소심할 권리가 있는데, 남자는 소심하면 안 되고 여자는 소심해도 됩니까? 왜 좋은 것만 다 여자가 누리려고 그래요. 무거운 짐 들 때는 ‘남자가 그것도 못 드냐’ 그러고, 맛있는 거 먹을 때는 ‘남자가 무슨 먹는 것을 밝히냐’ 그러는데, 가만히 보면 심보가 못됐어요. 남자도 소심할 수 있어요. 왜 여자만 소심해야 돼요? 여자도 대범할 수 있고, 남자도 소심할 수 있습니다. 남자가 소심한 것은 남자 여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성격이 좀 소심한 것입니다.”nbsp“그런데 남편이 짜증내는 것을 보면 저도 화가 나더라고요.”nbsp“남편이 짜증을 낸다고 해서 질문자도 왜 짜증을 내는데요?”nbsp“궁금한데 답변은 안 해주고 짜증을 내니까요.”nbsp“궁금하면 물어보면 되지 왜 짜증을 내요?”nbspnbsp“물어봤는데 대답을 안 해주고 짜증을 내니까요.”nbsp“대답을 안 하면 또 물어보면 되잖아요. 짜증을 내도 다시 물어보면 되지 왜 짜증을 내요? 그냥 또 물어보면 되잖아요.nbsp제가 보기에는 질문자나 남편이나 피장파장이다 이 말이에요. ‘나는 물어볼 뿐인데 너는 왜 짜증을 내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러나 상대 입장에서는 ‘내가 짜증을 낸다고 너도 왜 짜증을 내느냐?’ 이렇게 물어보고 싶은 겁니다.”nbsp“네. 맞아요. 남편이 항상 그렇게 말해요.”nbspnbsp“그러니 ‘내가 물어볼 때 상대는 짜증을 내면 안 된다’ 라고 생각을 한다면, ‘상대가 짜증을 낸다고 나도 짜증을 내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도 생각을 해줘야 해요. 나는 ‘물어볼 뿐인데 왜 짜증을 내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처럼 상대도 ‘내가 짜증을 낸다고 너도 왜 짜증을 덩달아서 내니?’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에요. ‘저 사람이 짜증을 내니 나도 짜증이 나는 것처럼 내가 물을 때 상대도 짜증을 낼 수 있겠구나’ 하고 상대가 짜증을 내는 것을 이해를 해야 합니다. 모르는 것을 묻거나 대답하기 싫은 걸 물으니 짜증이 나는 겁니다.nbsp그러니 ‘남편은 짜증을 낼 수 있겠다’ 하고 이해를 해주면서 ‘짜증내는 건 너 사정이고 나는 또 물어봐야 되겠다’ 하고 또 물어보면 되는 거예요. nbspnbspnbspnbsp고집은 하지 않고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그냥 물어보면 되는 거에요. 나는 그냥 편안하게 물어보는데 남편은 막 짜증을 내면 누가 더 괴롭겠어요?”nbsp“남편이요.”nbsp“남편도 정 괴로우면 대답을 하든지 답답해서 죽든지 무슨 수가 생기겠죠. 그러면 질문자는 시집 한 번 더 가면 되지 뭐가 걱정이에요? 그 때는 좀 더 대범한 남자를 구해서 결혼하면 되잖아요.nbspnbspnbsp그런데 대범한 사람을 구해서 결혼하면 질문자는 또 숨막혀서 못 살아요. 지금 남편은 물으면 짜증을 내는데 대범한 사람은 아예 독재를 해요. 그렇게 되면 구관이 명관이라고 숫제 짜증을 내는 게 낫지 이건 진짜 안 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말입니다. 칼은 날카로워서 좋지만 손을 베이는 것처럼, 솜은 부드러워서 좋지만 줏대가 없는 것처럼 사물에는 늘 양면성이 있습니다. 아버님이 성격이 좀 강해요?”nbspnbsp“네.”nbsp“아버님의 강한 성격이 싫었기 때문에 질문자는 유약한 남자를 좋아했을 거예요. 유약한 남자는 친구하기가 참 좋잖아요. 그런데 막상 같이 살아보니 소심하고 줏대가 없죠. 자업자득에요.nbspnbspnbsp그러니 남편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질문자가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대범하길 원하고, 어떤 때는 소심하길 원하고, 어떤 때는 부드러운 걸 원하잖아요. 그런데 친구처럼 부드럽고 사근사근한 남자를 구해서 살아보면 줏대가 없어 답답하고, 카리스마 있는 남자를 구해서 살아보면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 삽니다. 그래서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가 없어요. 내가 원하는 것은 줏대가 있어야 할 때 줏대가 있고, 사근사근해야 할 때 사근사근한 것인데 그것을 ‘욕심’이라고 그래요. 사람이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nbspnbsp스님이 이렇게 자상하게 대답해주니까 너무너무 좋아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만나면 냉정해요. 찬바람이 쌩 하게 난단 말입니다. 강연장 안에서는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지만 강연장 밖에 나가서 ‘스님, 사진 같이 찍어요’ 부탁해 보세요. 눈도 하나 깜짝 안 해요. 사인할 때도 ‘내 이름 써주세요’ 라고 부탁해 보세요. 안 써줘요. ‘내 이름은 내가 쓸테니 니 이름은 니가 써라’ 이럽니다. nbspnbspnbspnbsp그래서 꽃도 멀리서 보면 예쁜 꽃이 있고 가까이서 보면 예쁜 꽃이 있습니다. 멀리서 보고 좋아서 덥석 물었다가 매이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질문자가 좋아서 한 행동인데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니까 받아들여야 해요. 남편의 성격이 그런 거에요. 남편도 안 그러고 싶은데 안 고쳐지는 겁니다. 왜냐하면 어릴 때 자란 환경과 카르마로 인해서, 즉 프로그램이 그렇게 짜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남편을 고치려고 하지 마세요. ‘소심하다’, ‘나쁘다’ 이러지 말고 ‘남편은 저런 성격이 있구나’ 하고 이해해야 합니다.nbspnbsp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맞춰줄 수는 없습니다. 남편이 성질내도 물어볼 것 있으면 또 물어보면 됩니다. ‘그걸 왜 물어봐’ 하고 화를 내면 ‘몰라서 물어보지’ 라고 대답하고, ‘그만 물어’ 하면 ‘또 물어보고 싶은데’ 이러면 됩니다.nbspnbsp그런데 질문자는 남편이 ‘그만 물어’ 이러면 ‘알았다. 다시는 안 물을거야’ 이런 성질이기 때문에 서로 성질이 똑같은 겁니다. 남편은 그런 성격이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물어볼 것이 있으면 생글생글 웃으며 또 물어보면 됩니다. 서로 다를지라도 그것을 이해하면 사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남편을 고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죽을 때까지 못 고쳐요. 천성은 못 고친다는 말 들어봤죠? 천성을 고치려면 죽어야 해요. 그래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천성이 변하는 것을 보니 죽을 때가 다 됐구나’ 이런 말도 있어요. 고치면 죽어요. 명 대로 살게 그냥 놓아 두세요. 왜 남의 집 귀한 아들을 죽일려고 그래요?nbspnbsp성질내면 ‘알았다’ 하면서 또 묻고, 지풀에 지가 죽는 건 내가 상관할 바가 없어요. 그렇게 좀 대범해야 합니다. 아이고, 쫀쫀한 사람 둘이 만나서 참 고생이네요.nbspnbspnbsp남편이 쫀쫀하면 질문자가 좀 대범해야 합니다. 나사 못도 암나사가 있고 숫나사가 있잖아요. 하나가 들어가면 하나가 받아줘야 하듯이 하나가 소심하고 하나가 대범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소심한 두 사람이 같이 붙어 싸우니까 문제가 되지요. ‘남편이 소심해요’ 라고 말하는 순간 저는 벌써 질문자가 소심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질문자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세요?”nbsp“저도 진짜 소심하거든요.”nbspnbsp“만약 남편이 저한테 질문을 한다면 이럴 거에요. ‘우리 마누라는요 진짜 소심해요. 여자가 왜 그렇게 소심해요? 엄마처럼 좀 푸근해야 하는데...’. 그러면 제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nbspnbsp그런 것처럼 남편이 소심하다고 얘기하는 건 질문자도 소심하다는 걸 반증하는 거예요. ‘아이고, 우리 남편은 너무 고집이 세요’ 이렇게 말하는 건 아내도 고집이 세다는 것을 말해요. 그러니 남편이 대범해지면 좋겠다 싶으면 질문자부터 먼저 대범해지세요. 남편의 짜증에 대해서 크게 시비하지 말고 좀 받아주라는 겁니다.”nbspnbsp“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보겠습니다.”nbspnbsp“막상 집에 가면 또 안 될 거에요. 안 되지만 연습하고 연습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알았죠?”nbspnbsp“네.”nbspnbsp스님의 답변에 청중들은 자지러지듯이 박장대소를 하고 웃었습니다. 청중들은 ‘코메디보다 더 웃기다’ 며 손뼉을 치기도 했습니다.nbspnbsp질문한 여성 분도 고민이 해결되었다며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도 질문자를 위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8명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으며 울고 웃고 하다보니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강연을 마치면서 스님이 “강연이 어땠어요?” 라고 물으니 청중석에서는 “좋았어요” 하고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인생을 조금 더 길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하면서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사람이 태어나서 살다보면 온갖 일을 겪습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져서 기쁠 때도 있고, 꼭 될 줄 알았는데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믿는 사람에게 발등 찍히는 일도 있고, 이렇게 온갖 일을 겪게 됩니다. 나만 그렇게 겪는 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겪게 됩니다. 우리는 그걸 갖고 좋았다 나빴다 즐거웠다 괴로웠다 하면서 파도타기를 합니다. 그런데 인생을 길게 놓고 보면 사실은 별 거 아닙니다.nbspnbspnbsp제가 중고등학교 때를 돌아보면 월말고사 성적이 그때는 굉장히 중요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 성적이 더 올라갔다고 내 인생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이런 파도타기를 이제는 그만 해야 돼요. 인생이란 건 늘 이런저런 일이 생기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미워하는 사람도 있어요. 원래 사람들의 성질이 그래요. 그러니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너무 빠지면 나중에 더 큰 낭패가 되고, 싫어하는 것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면 그게 고통이 돼요. ‘저런 사람도 있네’, ‘이런 사람도 있네’ 하고, 내 뜻대로 되었다고 흥분해서 즐거움에 빠지지 말고, 내 뜻대로 안 되었다고 괴로워서 너무 침잠하지 말고 그냥 담담하게 ‘인생은 이런 거구나’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런 경우도 있네’, ‘저런 경우도 있네’ 이렇게 생각하고 살면 지금보다 훨씬 인생살이가 가벼워져요.nbspnbsp여러분들은 인물이 예쁘니 못생겼니 하는데 늙어보면 다 마찬가지예요. 예쁜 사람이 늙는 게 견디기 힘들까요? 못 생긴 사람이 늙는 게 견디기 힘들까요? 누가 더 힘들 것 같아요?”nbsp“예쁜 사람이요.”nbspnbspnbsp“잘생긴 사람이 힘들겠죠. 그러니 잘생긴 사람이 잘난 척 하거든 ‘아이고, 늙으면 너가 더 고생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재산이 많은 사람이 집착을 내려놓고 죽기가 힘들까요? 없는 사람이 집착을 내려놓고 죽기가 힘들까요?”nbsp“재산이 많은 사람이요.”nbsp“재산이 많은 사람이 힘들겠죠. 그러니 ‘저 사람은 죽을 때 힘들겠구나. 가져가지도 못하고’ 이렇게 생각을 가지면 그게 특별히 부러운 일이 아니에요.nbspnbspnbsp그러니 피부가 검든 희든, 인물이 잘 생겼든 못 생겼든, 재물이 많든 적든, 인기가 있든 없든, 이런 것에 너무 매달려서 흥분하면 인생살이가 피곤해요. 조금만 길게 보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어요.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그러니 행복하게 사세요. 감사합니다.”nbsp잘생긴 사람은 늙으면 더 괴로워진다는 비유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참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강연만으로도 이렇게 울고 웃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질문한 모든 분들이 스님 말씀처럼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nbspnbsp강연이 끝나고 무대 위에서는 스님의 새책 ‘행복’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은 책에 사인을 해주며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 많은 분들에게 웃음을 건넸습니다. 특히 질문한 분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힘내세요”라고 격려의 말씀도 해주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주관한 서울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희망 강연 파이팅” 이라고 외치는 얼굴에는 봄꽃보다 아름다운 미소가 가득했습니다.nbspnbsp▲ 서울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기념사진 촬영nbsp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2시에 대구 강연을 하기 위해 대구로 출발했습니다. 대구에서는 수성대학교 성요셉관 대강당에서 저녁 7시에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대구 강연 소식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3.30. 117,234 읽음 댓글 71개

2016.3.28 경주 남산 답사 및 법조인 불자 모임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농사일을 마치고 정토회 법사님들과 함께 경주 남산을 답사한 후 저녁에는 울산 지역의 법조인 불자모임과 간담회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새벽에는 얼음이 성성하게 맺힐 정도로 날씨가 쌀쌀하더니 해가 뜨자 여름 날씨 마냥 해살이 뜨거웠습니다. 오전에는 친지의 병문안을 다녀온 후 두북 수련원에서 쑥을 캐고 부추, 상치, 고소를 뜯어 쌈으로 푸짐한 점심을 먹었습니다.nbsp▲ 스님이 캔 쑥nbsp오후에는 담벼락 한쪽에 오랫동안 묵혀 둔 퇴비 무더기에서 겉표면을 걷어내고 지렁이들이 열심히 만들어 놓은 기름진 흙들을 잘 걸러서 텃밭 가까이로 옮기는 작업을 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거름 흙을 모두 퍼나르고 나니 퇴비 무더기가 있었던 곳이 아주 깔끔해 졌습니다.nbspnbsp▲ 거름 흙 퍼나르기nbsp또 겉표면에 있던 퇴비들은 마당에 흩뿌려 두었다가 돌멩이를 골라낸 후 깔끔해진 퇴비 무더기에 차곡차곡 다시 묻어 두었습니다. 퇴비를 다시 묻으면서는 서울정토회 거사님들이 무상으로 보급하고 있는 EM 효소를 함께 뿌려 더욱 잘 발효가 되도록 했습니다.nbspnbsp▲ EM 효소nbsp한편 화분에서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활짝활짝 피기 시작했습니다. 돌멩이 사이에도, 담벼락 밑에도, 곳곳에 노란색, 분홍색 꽃들이 봄햇살을 받으며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nbspnbsp▲ 봄꽃이 활짝 핀 화분들nbsp▲ 돌담에 핀 꽃nbsp지난주에 심은 채소 밭에는 벌서 작은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벌써 새싹이 돋아났다” 며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nbspnbsp▲ 상추밭에서 돋아난 새싹nbsp옥수수, 토마토, 호박 등을 심은 화분 모종에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는데, 대신 스님은 물뿌리개로 물을 주었습니다.nbspnbsp농사일을 마치고 난 후 문경에서 법사님들이 스님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내려 온다는 연락을 받고 경주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경주 남산 자락 중에서도 제일 따뜻한 곳이 열암곡인데, 이곳에는 매년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곳입니다. 스님은 법사님들이 온다고 하자 “곧 있을 경주남산순례 답사도 할 겸 진달래꽃도 좀 구경시켜 시켜주자” 하며 열암곡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아직 3월 말이라 꽃망울이 달린 정도쯤 되었을까 싶었는데, 입구에서부터 만개해서 곳곳이 분홍색 진달래 천국이었습니다.nbspnbsp▲ 경주 남산 열암곡 진달래nbsp어떤 나무는 한 가지에 진달래 수십 송이가 꽃망울을 터뜨렸는데 스님은 이 모습을 보고 “저렇게 많이 핀 것을 경상도 말로 ‘오지게 피었다’ 이렇게 말해.” 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법사님들은 “스님, 여기도 오지게 피었어요.”, “스님, 저기도 오지게 피었어요.”라며 즐거워 했습니다.nbspnbspnbsp정말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여기도 진달래, 저기도 진달래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오후 햇살이 산 속으로 비치자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모습은 마치 분홍색 보석들이 공중에 박혀 있는 것마냥 아름답게 빛을 발했습니다. 법사님들은 ‘어머나’ 라며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nbspnbspnbspnbsp이미 진달래꽃이 만발해서 경주남산순례 때는 진달래꽃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고, 대신 연달래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컷 진달래 꽃구경을 한 후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오늘은 봄을 한껏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네요.nbspnbsp▲ 법사님들과 함께nbsp경주 남산을 내려와서는 저녁식사 준비를 하러 법사님들은 일찍 두북으로 향했고, 스님은 울산 지역 법조인 불자 모임인 ‘반야회’ 구성원들과 간담회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반야회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법륜 스님의 반야심경 동영상 강연을 21회에 걸쳐 공부해 왔다고 합니다. 오늘 스님이 울산에 머문다고 하니 잠깐이라도 뵙고 인사를 하겠다고 해서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더욱이 오늘 간담회를 주선한 분은 김용주 변호사님인데 정토회 자원활동가로서 오랫동안 스님과 인연을 맺어오고 있는 분입니다. 모임은 두북 정토수련원에서 이뤄졌습니다.nbspnbsp▲ 울산 지역 법조인 불자 모임 ‘반야회’nbsp먼저 스님은 그동안 반야심경을 공부한 것이 지식에 그치면 안 된다고 하면서 불교의 핵심은 수행이라고 강조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불교의 핵심은 철학도, 사상도, 윤리도, 도덕도 아닙니다. 불교의 핵심은 수행입니다. 수행을 통해 고뇌를 사라지게 하고, 행복과 자유의 길로 인도한다는 게 불교입니다. 또 누구한테 빌거나 도움을 얻어서 그 길로 가는 게 아니라 마음의 작용 원리를 알아서 내가 체험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마치 만유인력의 원리를 이용해서 인공위성을 쏘면 그게 달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것처럼, 불교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게 어떻게 작용해서 괴로움이 생기고, 그 괴로움은 이런 모순에서 생겼기 때문에 이 부분만 수정하면 내 괴로움도 사라진다’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 중에 과학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무척 합리적입니다.nbspnbspnbsp불교는 그런 마음작용을 논리적으로도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는데, 그것을 단지 논리로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논리를 불교라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머리로 지식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행복하다’, ‘괴롭다’ 하는 건 생각에서 오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교 교리를 아무리 머리로 많이 이해해도 그것은 경험과는 다릅니다. 다만 불교를 합리적으로 이해는 했으니까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동인은 되지요. 그러나 불교 교리란 것도 결국 체험을 해야만 되는 거예요. 체험을 하는 게 수행입니다. 참선이나 염불은 수행 방법 중 지극히 일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건강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운동부족입니다. 운동 좀 하세요’ 한다고 친구들한테 ‘무슨 운동을 할까?’라고 묻자 ‘운동은 축구가 제일이다’, ‘아니다. 운동은 농구가 제일이다’ 이러면서 싸우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무슨 종파논쟁 같은데 개입할 필요도 전혀 없습니다. 그런 논쟁은 어떤 세력을 형성해 보려고 할 때는 필요가 있겠지만요.nbspnbsp그러니 우리는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배우고 있다는 반야심경을 통해서 ‘불교가 이렇게 훌륭하구나’ 하는 것을 아는 데서만 끝을 낸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불교지식이 좀 느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치를 탁 깨달으면 ‘아, 정말 옳고 그른 게 없는 거구나. 아까 저 사람이 나한테 틀렸다고 하니까 내가 화가 났는데, 그건 저 사람의 생각이 그렇다는 거구나’ 하고 이해가 되어서 실제 화가 안 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경험해 나가야 합니다. 다만 제가 반야심경을 강의한 이유는 사람들이 불교를 너무 허황되게 생각하니까 ‘불교는 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갖춰져 있는 것이니 불교를 우습게 보지마라’ 하는 관점에서 말로 설명한 거예요.nbspnbsp그래서 저희는 정토회를 신앙공동체라고 하지 않고 수행공동체라고 합니다. 정토회는 신앙하는 집단이 아니고 수행하는 집단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라면 재가나 출가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승속을 따지지 않아요. 그렇다고 스님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고,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미국인들은 교회에 다니면서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을 가진 크리스찬이 불교수행을 한다면 그 사람은 ‘크리스찬부디스트’가 됩니다. 정토회에서는 굳이 신앙을 바꾸란 말을 안 해요. 조상들로부터 지켜오는 신앙이 있다면 그것을 가진 채로 수행을 하면 됩니다. 또 바꾸고 싶으면 바꿔도 돼요. 신앙을 바꾸는 건 개인의 자유이니까요. 그러니까 해탈의 길로 가기 위해서 신앙을 강제로 바꿔야 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종교를 갖기 싫으면 갖지 않고 수행하고, 종교를 갖고 싶으면 갖고 수행하고, 불교 신앙을 갖고 싶으면 불교 신앙을 갖고 수행하고, 기독교 신앙을 갖고 싶으면 기독교 신앙을 갖고 수행하면 됩니다. 신앙은 개인적 믿음이니까 개인이 알아서 하되, 다만 해탈을 하려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진리의 가르침에 따라서 정진을 해야 합니다.”nbsp모임의 성격이 학습 모임이다 보니 자칫 지식적인 학습에만 그칠 수 있었는데, 스님의 얘기를 듣고 나니 불교의 핵심인 수행의 중요성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nbspnbsp이어서 “그동안 반야심경을 공부하면서 궁금했던 점이나 평소에 물어보고 싶었던 점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라고 하자 몇 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 변호사 한 분이 오늘 스님을 직접 뵙는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고 하면서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 법문을 들으며 불교는 어떤 종교인지, 진리는 어떻게 탐구하는지에 대해 계속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안이 불교 집안이고, 어머님도 절에 다니시면서 제가 입시를 앞두고 있을 때는 절에 가셔서 저를 위해 기도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불교 문화에 젖어있는데, 스님 강의를 들을 때는 ‘불교의 진리란 이런 거구나’ 하다가도 생활 속에서 문제에 부딪히면 마음이 굉장히 외롭고 힘들어집니다. 그러면 또 절을 찾게 되더라고요. 절에 가서 염불하고 기도하면 마음이 좀 편안해지니까요. 그래서 가기는 열심히 가는데요. 제가 일상 속에서도 마음을 다스리거나 강하게 하려면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할까요?”nbspnbsp“기독교 신자가 교회나 성당에 가서 위로를 받듯이, 불교 신자가 절에 가서 위로를 받는 게 나쁜 건 아닙니다. 그러나 위로를 받는다는 건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거잖아요. 위로를 통해서는 해탈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나를 도와주는 존재가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내가 그 존재로부터 도움을 받는 한 나는 그 존재의 속박을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예를 들어 부모로부터 내가 도움을 받으면 도움을 받는 동안에는 행복할지 몰라도 부모가 돌아가시거나 하면 내 행복은 없어지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위로는 자립적인 게 아니라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겁니다. 그건 해탈이라고 할 수가 없죠.nbspnbsp그렇다고 필요 없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어릴 때 다 부모의 도움을 받고 자라듯이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저런 사정으로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종교를 부정하진 않으셨지만 그건 해탈의 길은 아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내생이 있느니 없느니, 천당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말은 할 필요가 없어요. 그건 굉장히 중요한 위로의 한 요소이니까요. 그러나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해탈이란 그런 위로의 한 종류가 아닙니다. 천당 간다는 걸 극락 간다고 바꾸어 표현하는 정도가 불교는 아니라는 겁니다. 불교는 ‘나의 이 두려움이 어디로부터 일어나는가?’를 참구해서 그 두려움의 뿌리를 찾고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가르치는 것입니다.nbspnbsp그러니 질문자도 즉문즉설 법문을 들으면서 ‘어떻게 저 사람들이 갈등으로부터 벗어나는가?’ 하면서 그 이치를 한번 파악해 보세요. 그리고 실제로 체험도 해 보시고요. 질문자의 질문의 요지는 ‘어떤 일로 괴로움이 생기느냐?’ 하는 건데, 그렇게 막연하게 질문하면 지식적인 얘기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질문은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질문자가 ‘남편이 바람을 펴서 화가 납니다’ 그러면 스님은 ‘남편이 바람 폈는데 왜 당신이 화가 나느냐?’ 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그 질문자는 ‘어떻게 화가 안 날 수가 있어요?’라고 하겠지요. 그럼 저는 ‘그런데 그게 왜 화가 나느냐?’ 라고 합니다. 이런 대화가 오고가면 처음에는 질문자가 답답해서 미치려고 합니다.nbspnbspnbsp그런데 제가 계속 ‘바람난 남편은 그 여자를 만나서 즐거웠다는 거 아니냐? 당신 남편이 즐거웠다는데 왜 당신이 괴롭냐?’ 하면서 계속 물어 들어가면 그 질문자는 ‘바람난 남편이 나쁘고, 남편이 나를 괴롭히기 때문에 내가 괴롭다’라고 말은 하겠지만 자꾸 깊이 들어가다 보면 자신의 괴로움이라는 게 어디서 왔는지 자각하게 됩니다. 그런 경험을 직접 해 봐야 해요. 이런 방식이 부처님의 본래 문제해결 방식입니다.nbspnbsp하나 더 예를 들어보면, 어떤 질문자가 ‘저 사람이 욕을 해서 화가 납니다’ 라고 하면 저는 ‘저 사람이 욕을 했다고 네가 왜 화가 나느냐? 그 사람이 너를 화나게 하려고 그런 말을 했느냐? 아니면 자기가 성질나니까 자기 성질대로 소리를 지른 거냐?’ 라고 묻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성질대로 소리를 지른 거란 말이에요. 그 사람은 그 사람 성질대로 소리를 질렀는데, 질문자가 끌려들어간 거예요. 자기가 성질나서 소리치는 사람한테 왜 질문자가 다가가서 그 오물을 덮어쓰느냐고요. 그냥 ‘오, 저 사람 지금 성질났구나. 성질나서 난리피우네’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 사람이 성질을 가라앉힐 때까지 웃으면서 지켜보면 되지요.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잘 안 되지요. 안 되니까 연습을 해야지요. 끌려들어갈 때마다 ‘오, 이번에 또 끌려들어갔다. 바보같이 내가 또 남의 쓰레기를 뒤집어썼네’ 이렇게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빙긋이 웃을 수 있는 날이 옵니다. 한 바라문이 부처님한테 막 욕을 하니까 부처님께서 그 바라문을 보면서 빙긋이 웃으셨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부처님의 교화 사례가 다 이와 같습니다.nbspnbsp우리는 불교 공부를 통해서 부처님의 인격을 닮아가야 합니다. 어렵겠지만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게 수행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런 수행을 안 하고 있잖아요. 우리는 지금이라도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는 수행을 통해서 부처님의 인격을 닮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첫째, 이치를 알아야 되고, 둘째, 직접 해 봐야 합니다. 그런데 해 보면 잘 안 되지요. 왜 그럴까요? 까르마 때문에 그렇습니다. 욕을 들으면 탁 화가 나는 프로그램이 짜여 있단 말이에요. 그건 마치 인공지능과 같은 거예요. 프로그램이 짜인 대로 반응을 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내가 정말 자유인이라면 프로그램이 짜여진 대로 안 놀아나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놀아나면 그건 로봇이에요. 다른 사람 같으면 프로그램 짜인 대로 반응을 하겠지만 수행자는 그렇게 반응을 하지 않고 다만 빙긋이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까르마로부터 해탈한 분이시고, 우리는 부처님을 닮고자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까르마의 놀음에 안 놀아나는 것, 그게 해탈이고 자유입니다.nbspnbsp▲ 두북 정토수련원에 핀 홍매화nbsp그러니까 부처님 법으로 말하자면 모든 것이 다 연기적인 거예요. 부처님은 모든 것이 프로그램화 되어 있다, 즉 연기 되어 있다고 보셨어요. 그래서 연기법이 위대하다는 거예요. 부처님이 발견하신 12연기가 ‘무명행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인데 그 고리가 아주 정확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은 그 중에 ‘수’라는 고리를 알아차려서 우리가 반응을 안 하면 나머지 고리도 끊어진다고 하셨어요. ‘애’에서 고리를 끊는 것이 계율이고, ‘수’에서 고리를 끊는 것이 선정이고, ‘무명’에서 고리를 끊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런 원리에 따라서 수행을 하는 겁니다. 이런 위대한 가르침을 공부하는 것이 불교인데, 기도하면 복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불교를 이해하는 것은 하수에 불과합니다.nbspnbsp이렇게 불교 공부를 하시고 나면 교만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좀 당당해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답답할 때 절에 가면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을 거부할 필요도 없고, 기존의 스님들이 가르치는 것을 잘못됐다 이렇게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신앙이 달라도 신부님들, 목사님들을 존중하잖아요. 그것처럼 기존의 스님들도 모두 존중해야 합니다. 다만 부처님 법의 원칙에 의해서 본다면 이렇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nbspnbsp그래서 정토회는 비록 미약하지만 부처님의 법의 원칙에 입각해서 수행해 보려고 지금 발버둥을 치고 있어요. 법문은 거기에 견주어서 하고요. 어떤 사람들은 즉문즉설을 듣고 나서 ‘스님이 선법문을 안 하고 무슨 부부생활 상담을 해주느냐’ 라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스님은 번뇌에 대해 상담을 하는 겁니다. 어떤 번뇌에 대해서도 ‘번뇌가 왜 생겼니?’ 이렇게 물어 보잖아요. ‘연애에 실패해서 괴로워요’ 하는 번뇌나 ‘남편 때문에 못 살겠어요’ 하는 번뇌나 ‘아이가 시험에 떨어졌어요’ 하는 번뇌나 ‘죽어서 어디로 갑니까’ 하는 번뇌나 ‘화두가 안 들립니다’ 하는 번뇌나 모두 제가 볼 때는 번뇌의 종류일 뿐입니다. 8만4천 번뇌 중에 그냥 한 번뇌가 있는 것이거든요. 그 번뇌에 대해서 저는 법문을 하는 겁니다. 문답을 통해서 그 번뇌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겁니다.nbspnbspnbsp그런데 지식적인 질문을 하거나 교리적인 질문을 하면 지식적인 대답을 하게 되는데, 그것조차도 진짜 법문으로 대답할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면, 저는 ‘공’에 대해서 설명해 주지 않고 ‘그것이 왜 궁금한데?’ 라고 되묻습니다. ‘공은 이런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면 그것은 지식적인 접근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부처님 법은 아닙니다. 그것이 진리가 되려면 ‘그 번뇌가 너에게 왜 일어났는데?’, ‘왜 공이 무엇인지 궁금한데?’ 이렇게 질문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 마음이 왜 일어났느냐를 살펴야 됩니다.nbsp사건은 그냥 사건일 뿐입니다. 그 사건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바르게 보면 두려움이 안 일어나고, 무지에 의해서 오해를 하게 되면 심리가 불안해 집니다. 바르게 보는 것을 정견이라고 합니다. 화를 내는 이유도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못하는 것은 나의 무지 때문입니다. 그래서 착한 사람이 무섭다는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착한 사람은 어릴 때부터 늘 자기가 착하고 바르다고 얘기듣고 자랐기 때문에 자기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nbsp“변호사님들이 대부분 다 그래요.”nbspnbsp“제 말의 요점은 우리가 ‘프로그램’, ‘까르마’, ‘업식’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화를 내던 상황에서 안 내는 게 해탈의 길이고, 자유의 길이라는 거예요. 거기로부터 내가 자유로워지는 게 수행의 핵심이에요. 죽고, 다시 태어나는 문제가 핵심이 아니에요. 그렇게 된다면 여러분은 지금 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길로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 원리를 설명해 놓은 게 사성제, 팔정도, 12연기, 공사상입니다. 공이라는 게 뭡니까. 정해진 바가 없다는 거잖아요. 다들 ‘운명이 정해져 있다’ 하는데 부처님께서는 ‘공이다’, ‘정해 진 바가 없다’ 라고 하셨습니다. 정해진 바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수행을 통해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는 겁니다.”nbsp질문한 분은 활짝 웃으면서 스님의 답변에 공감을 표했습니다.nbspnbsp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원래는 1시간 법문을 요청했는데 스님이 부처님의 일생부터 다양한 사례들을 재미있게 들려주니 흠뻑 몰입이 되어 언제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갔습니다.nbsp법문을 마치고 스님이 참석한 법조인에게 새책 ‘행복’을 사인해서 선물하니 모두들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마지막으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법조인들 중에서도 불법을 바르게 공부해서 세상에 희망이 되는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늘어나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nbsp내일은 새벽 2시에 울산 두북을 출발해 6시에 서울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아침 10시 30분부터는 양재동 더케이아트홀에서 서초구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다시 대구로 내려가서 저녁 7시부터는 수성대학교 대강당에서 대구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3.29. 106,654 읽음 댓글 38개

2016.3.27 다문화센터 외국인 노동자들과 봄나들이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JTS 안산 다문화센터와 인연이 된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속리산 법주사로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nbspnbsp아침 7시에 서울을 출발한 스님은 9시 30분에 법주사에 도착했습니다. 봄나들이라고 했지만 가만히 서 있으면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날씨가 쌀쌀했습니다. 안산 JTS 다문화센터에서 출발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곧이어 도착하자 스님은 “추운데 가만히 서 있으면 더 춥다” 라며 예정보다 10분 일찍 행사를 시작하게 했습니다.nbspnbsp스리랑카에서 오신 분들, 태국에서 오신 분들, 중국 연변에서 오신 한 분 포함해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80여 명, 안산 JTS 다문화센터에서 한국인 봉사자들이 60여 명, 총 140여 명이 함께 했습니다.nbspnbsp솔숲에서 시작한 입재식은 스리랑카 스님의 선창으로 테라밧다 방식으로 함께 예불을 하며 시작했습니다. 참석한 외국인 노동자들 모두가 불교를 신앙으로 하는 나라에서 오신 분들이라 모두가 불자인 셈입니다.nbspnbsp▲ 입재식nbsp이어서 스님이 봄나들이를 시작하며 입재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날씨가 쌀쌀한 관계로 짧게 속리산에 대한 소개만 해주었습니다. 통역은 스리랑카에서 오신 담마끼띠 스님과 태국에서 온 지라펀 선생님에 의해서 각각 나라별로 송수신기를 통해 이뤄졌습니다.nbspnbspnbsp“좀 춥죠? 스리랑카나 태국보다 한국이 훨씬 추워요. 여기는 대한민국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면 법주사예요. 여기 산 이름이 속리산인데요. ‘속’은 세상이라는 의미이고, ‘리’는 떠난다는 의미여서, ‘속리’는 세상으로부터 멀리 떠난다는 뜻이에요. 그 말은 ‘더러운 세상으로부터 멀리 떠난 깨끗한 부처의 세상’을 의미해요. 지금은 우리가 차를 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옛날에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40km 정도를 걸어와야 여기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그 정도로 사람이 살지 않는 깊은 산속이에요.”nbsp이어서 스님이 참가자들을 일일이 소개해 주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보다 봉사자들이 더 많은 것 같다”며 모두 웃었습니다. nbspnbspnbsp10분 남짓 서 있었는데 한기가 느껴지자 스님은 “지금 추우니까 좀 걸어야 돼요. 한 시간 정도 먼저 걸읍시다.”라며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법주사 입구 주차장에서 세심정까지 약 2.4km의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걸었습니다. 10분 정도 열심히 팔을 휘저으며 걸으니 금새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 법주사 입구에서 세심정까지 산책nbsp평지에는 이미 봄꽃이 많이 피었는데, 이곳은 산속이어서 그런지 아직도 메마른 나무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봄나들이 일정을 2주만 뒤로 미뤘으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nbspnbspnbsp오순도순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새 세심정 휴게소 인근까지 도착했습니다. 앞으로 더 가면 경치가 더 좋지만 함께 온 남방 스님들은 12시 이전에 식사를 해야 해서 발길을 돌려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공기도 맑고 자연 풍광도 너무 좋다”며 곳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점심식사 후에는 약 1시간 동안 스님이 법주사 경내에 대해 자세히 안내해 주었습니다. 자유시간을 잠시 가진 후 금강문 앞에 모두 모이자 스님의 설명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법주사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 금강문 앞에서 시작한 법주사 사찰 순례nbsp“저희가 도착한 이 절은 ‘법주사’입니다. 기록에 보면 이 절은 A.D 553년에 지어졌다고 하니까 지금으로부터 한 1500년 전에 지어진 것입니다. 인도로부터 경전을 말에 싣고 이곳까지 가져와서 이 절에 보관했다고 해요. 즉 ‘법이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고 해서 절의 이름이 법주사입니다.nbspnbspnbsp8세기와 9세기 사이에 신라에는 유명한 진표율사라는 스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여기에 미래의 부처님이 오실 것이라며 미륵부처님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고려의 왕자 출신으로 스님이 되신 대각국사 의천이 여기에 계셨기 때문에 이 자리에 아주 큰 절이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또 1300년대 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00년 전쯤 고려의 공민왕이 직접 이곳을 방문해서 당시 부처님 사리를 모셨던 통도사로부터 사리 일과를 가져와 이곳에 모시게 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쯤 일본이 침략해서 이 절을 모두 불태웠습니다. 사실 이 절뿐 아니라 그 당시 산에 있던 큰 절들은 그때 대부분 불탔습니다. 그래서 지금 보이는 주춧돌 같은 건 다 신라시대의 것으로서 천년이 넘는 것이지만 나무로 지은 건 그때 다 불타버렸기 때문에 가장 오래 되었다 해도 400년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절은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국보가 3점, 보물이 12점, 유형문화재가 21점이나 있습니다.”nbspnbsp법주사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마치고 금강문을 지나 천왕문을 통과하여 차례대로 경내를 둘러보았습니다. 국내 유일의 목탑인 팔상전을 비롯 쌍사자석등, 석련지, 사천왕석등, 대웅보전 등 국보급 문화재들에 대해 스님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nbspnbsp▲ 당간지주. 조선 고종 때 국가재정 마련을 위해 당백전을 만들려고 대원군의 명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복원되었다고 합니다.nbspnbsp▲ 마애여래의좌상. 불상으로는 보기 드물게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무척 특이했습니다.nbspnbsp▲ 팔상전. 한국 목조탑의 유일한 실례가 되고 있는 중요 건축물이며 내부에는 석가여래의 일생을 여덟 장면의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도가 모셔져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후 다시 지어졌다고 합니다.nbspnbsp▲ 쌍사자 석등. 8각의 바닥돌 위에 사자 조각이 올려져 있고, 사자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윗돌을 받치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nbspnbsp▲ 대웅보전. 우리나라 3대 불전의 하나로 꼽히는 곳으로 역시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후 다시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nbspnbsp특히 대웅보전 옆 쪽에 세워진 삼성각에 이르러서는 현지 전통사상을 파괴하지 않고 포용하는 불교의 특징에 대해 스님은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 삼성각nbsp“여기에 ‘삼성각’이라고 쓰여있는데, ‘세 분의 성인을 모셨다’는 뜻입니다. 건물 명칭 중에는 ‘대웅전’이라고 해서 ‘전’으로 끝나는 게 있고, ‘삼성각’처럼 ‘각’으로 끝나는 게 있는데, 부처님이나 보살을 모신 데는 ‘전’이라고 하고, 신을 모신 데는 ‘각’이라고 합니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한국에는 전통신앙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늘과 산의 신을 섬기는 신앙이었습니다. 하늘의 북두칠성을 섬기는 의미에서 칠성신을 섬겼고, 또 한국에는 산이 많으니까 산신을 섬겼습니다.nbspnbsp불교가 한국에 들어왔지만 한국의 전통신앙을 없애버리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한국에 있는 절에 가면 반드시 가운데에는 부처님을 모시는 대웅전이 있고, 그 뒤에는 조그맣게 산신각과 칠성각을 지어서 전통신앙을 포용했습니다. 그런데 산신각과 칠성각을 모두 짓기 어려울 때는 산신, 칠성신에다가 독성, 즉 혼자서 깨달았다는 독성까지 한 곳에 모시게 되는데, 그 건물 명칭이 ‘삼성각’입니다.”nbspnbsp모두들 현지 문화를 포용하는 불교의 태도에 대해 인상 깊게 경청하는 모습이었습니다. nbspnbspnbsp마지막으로 금동미륵대불 앞에 모두 섰습니다. 금동미륵대불 역시 조선 고종 때 대원군이 경복궁 축조 자금 마련을 구실로 당백전 화폐를 주조하기 위해 불상이 몰수되는 일이 겪었다고 합니다. 시멘트로 다시 복원을 했다가 붕괴 조짐이 있어 청동으로 다시 조성했는데, 2012년에 이르러 다시 금을 입혔다고 합니다.nbspnbsp이렇게 사찰 안내를 모두 마치고 다함께 거대한 금동미륵대불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자연을 만끽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얼굴에는 웃음과 편안함이 가득했습니다.nbspnbsp▲ 금동미륵대불nbsp이어서 오후 2시부터는 금동미륵대불이 있는 지하 법당 ‘미륵전’에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 한국에 와서 매일 일한다고 어디 가보지도 못 했지요? 한국에 좋은 절들이 많으니까 매주는 못 가더라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1년에 4번 정도는 친구들과 모여서 한 번씩 구경가는 것도 좋아요. 한국에 5년 정도 살다가 고국으로 돌아갔을 때 ‘공장에만 있어서 아무 것도 본 게 없다’라고 하면 안 되잖아요. 또 도시에서 살다 보면 십자가만 보이잖아요. 그래서 한국에서 몇 년 살다가 간 사람들 중에는 한국에 불교가 있는 줄도 모르고, 심지어 한국이 기독교 나라인 줄 잘못 아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한국에 불교가 들어온 건 2000여 년 전이라서 오랜 불교역사를 갖고 있는데도 말이에요.nbspnbsp자,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이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궁금했던 것, 어려웠던 일에 대해서 스님과 대화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갖겠습니다. 아무 것이나 물어도 좋습니다. 스리랑카나 태국에서는 스님들한테 부부싸움 한 얘기나 노동했는데도 월급을 못 받은 얘기 같은 일상생활에 대해 질문해본 적이 없지요? 그래서 저한테도 질문하기 어려워 할 것 같은데, 오늘은 마음껏 아무거나 물어볼 수 있는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자, 질문하세요.”nbsp▲ 법주사 미륵전nbsp스님의 밝은 미소에 분위기도 한층 밝아지고, 몇몇 사람들이 가볍게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왜 불교가 사라지고 기독교가 번창하게 되었는지, 남방 스님들은 오후 불식을 하는데 한국 스님들은 왜 하루 세끼 식사를 하는지, 비록 한국에 일하러 왔지만 유학 공부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등 대부분 지식적이거나 문화적인 것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마지막으로 질문한 분은 자신이 처한 괴로움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nbspnbsp한국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었는데 특히 술을 강제로 권하는 괴롭힘을 많이 받았다며 어떻게 하면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처음으로 법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며 반가운 마음을 표현한 후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nbspnbspnbsp“저는 금생에 스리랑카에서 태어나 스리랑카의 사고방식을 갖고 한국에 왔고, 좋은 차, 좋은 집을 갖기 위해서 한국에서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스리랑카 불교에서나 다른 나라의 불교에서나 본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다음 생에서 제가 인간이나 다른 중생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제가 금생에서 열반을 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nbspnbsp“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처음으로 법에 대한 질문을 하셨네요.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되는데, 그 여러 가지 일을 겪는 걸 전생에 지은 죄 때문이라든지 본인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 인도의 전통신앙인 힌두교적인 생각이지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닙니다. 우리가 불교신자라면 부처님 법을 이해하고 실천해야 되는데, 힌두교적인 믿음을 부처님 법이라고 오해하니까 헷갈리는 겁니다.nbspnbspnbsp제가 즉문즉설을 마친 후 저기 계단을 내려가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건 제가 전생에 죄를 지었기 때문일까요? 무슨 잘못을 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냥 부주의했기 때문에 넘어진 것이고, 다리가 부러진 건 그냥 사고일 뿐입니다. 그러니 병원에 가서 치료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리가 부러지면 ‘내가 법주사 안 갈 걸 그랬다’, ‘내 뒤에 오던 사람들이 빨리 가라며 재촉해서 내가 넘어진 것이다’, ‘어젯밤에 꿈이 이상하더니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 라고 하면서 괴로워하니까 문제입니다. 넘어진 게 문제가 아니라 괴로워하는 게 문제입니다.nbspnbsp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다고 괴로워 할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괴로워한다고 다리가 낫는 것도 아니고, 넘어지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만 치료받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괴로워하지 않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 즉 열반입니다. ‘죽고 난 뒤에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고, 안 태어나고’ 하는 개념이 아니에요. 그러니 질문자는 금생에서 열반을 증득할 수가 있어요. 그런 이치를 정확하게 가르친 것이 부처님 법입니다.nbspnbsp그런데 우리는 늘 ‘뭘 하고 싶다’ 하는 욕구를 따릅니다. 그리고 그 욕구가 이루어져서 기분이 좋아지는 걸 즐거움으로 삼고, 그 욕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기분이 나빠지는 걸 괴로움으로 삼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를 반복합니다. 이걸 ‘윤회’라고 합니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게 윤회가 아니고, 즐거움과 괴로움을 반복하는 게 윤회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욕구로부터 자유롭다면 괴로울 일도 없고, 즐거울 일도 없습니다. 그것을 해탈과 열반이라고 합니다.nbspnbspnbsp예를 들어 질문자는 사장이 월급을 안 준다면 화가 나겠지요? 그게 괴로움이에요. 그런데 사장이 월급을 주면 기분이 좋아지겠지요? 그게 즐거움이에요. 이게 윤회입니다. 괴로워한다고 사장이 월급을 주는 건 아니지요. 그렇다고 ‘월급을 안 줘도 그만이다’라고 생각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괴로워하지 말라는 겁니다. 괴로워하지 말고, 실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겁니다.nbspnbsp그런데 정말 사장이 돈이 없다면 질문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받을 수가 없겠지요. 그럼 포기해야 되겠지요. 그런데 사장이 돈이 있으면서도 안 준다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든지 해서 받을 방법을 찾아야지요. 안 주면 포기하라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악착같이 받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내게 주어진 권리는 찾되 괴로워하지는 말라는 겁니다.nbspnbsp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하면 질문자가 좋아지겠지요? 또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괴롭지 않는 삶을 살면 질문자의 인생에도 좋겠지요? 그래서 부처님 법이 위대하다는 겁니다. 월급 안 준다고 가만히 있는 게 불자의 태도가 아니고, 그렇다고 막 때려 부수는 것도 불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계단에서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질 수 있는 것처럼 월급을 못 받는 일이 인생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그런 일이 생겨도 마음에는 괴로움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노력해서 받으라는 겁니다. ‘모든 것이 다 내가 지은 것’이라는 말은 ‘괴로움은 내가 만든 것’이라는 뜻입니다.” nbspnbspnbsp“괴로운 일이 똑같이 반복되면 두드려 부수고 나가야 될까요? 아니면 포기하고 있어야 될까요? 예를 들어 한국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저는 술을 안 마시는데, 한국 사람들이 제가 술을 안 마신다고 뭐라고 합니다. 특히 같은 공장에 한국 직원들이나 사장님은 ‘네가 술을 안 마신다고?’ 하면서 괴롭힙니다. 한국의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괴롭힘이 힘들어서 이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가면 거기에도 또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nbspnbsp“그건 아무 문제도 아닙니다. 제 얘기를 잘 들어 보세요. 그들은 질문자를 괴롭히려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할 뿐입니다. 그러니 그냥 술자리에 참석해서 그들이 술을 주면 같이 ‘건배’하고 받아 마시는 척하면서 그냥 흘려버리세요.nbspnbspnbsp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반복하면 그들은 질문자를 막 욕하다가 어느 날부터 ‘쟤는 술 주지마. 쟤한테 술 주면 또 옷에 흘려버린다’ 라고 할 겁니다.”nbspnbsp“그런데 친구들이 회사의 반장님한테 얘기해서 자기들은 놀면서 모든 일을 제가 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 심장과 무릎에 문제가 생겨서 병원에 가야하는 괴로운 상태인데, 그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nbspnbsp“그러니까 질문자는 그들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그런다는 생각을 우선 버려야 합니다. 그들이 그런다고 질문자가 거기에 대응을 하면 질문자는 그들한테 끌려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어떻게 하든 질문자는 질문자 식으로만 하면 됩니다. 그들이 아무리 마시라 그래도 아까처럼 안 먹는 방법이 있고, 한 잔 먹고 취한 척하고 깽판을 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럼 그들은 ‘저 친구한테 술 주면 주정한다. 술 주지마라’ 라고 할 겁니다. 아니면 친구들 술 마실 때 질문자는 명상하는 방법도 있지요. 그렇게 질문자가 상황의 주도권을 쥐어야 합니다.nbspnbsp그래서 질문자가 그들 때문에 괴로워할 게 아니라 그들이 질문자 때문에 ‘저 자식은 미쳤다’ 하며 화를 내고 난리를 피우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그들이 괴로우니까 그만두게 될 거예요. 지금은 질문자가 더 괴로워 하니까 그들은 재미가 나서 자꾸 더 질문자를 괴롭히는 겁니다.”nbspnbsp“그러니까 우리는 그렇게 괴롭게 살아가는데, 지금 이 순간부터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nbspnbsp“지금 얘기했잖아요. 문제라고 생각했던 일을 ‘별일 아니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질문자는 그들의 행동이 나쁘다고 생각하니까 괴로운 거예요. ‘저 사람들의 문화가 저렇구나. 저 사람들은 저렇게 행동하는구나’ 하세요. 그들이 빨간 옷을 입든, 노란 옷을 입든, 술을 먹든 말든, 별 일 아닌 것으로 바라보면 질문자의 마음이 괴롭지 않을 거예요.nbspnbspnbsp그리고 그들은 일을 안 하면서 질문자한테만 일을 많이 시킨다고 했지요? 그럼 질문자는 좀 더 일을 하세요. 그게 무슨 문제입니까? 예를 들어 스리랑카에서 1시간 일하면 5불 주는데, 한국에서는 1시간 일하면 10불 주잖아요. 그러니까 일을 조금 더 하게 될 때는 ‘그래도 스리랑카보다는 낫다’ 라고 생각해 버리면 되잖아요. 또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이거 잘못됐다’ 하고 시정을 요구하세요. 화가 난다고 해서 회사에 사표 던지고 뛰쳐나오지 말고, 정당한 조건만 계속 요구하세요. 그러면 그들이 못 견뎌서 ‘너 나가라’ 할 겁니다. 그때 나오면 됩니다. 질문자 스스로 나가면 계약위반이지만 자기네가 질문자를 내보내면 자기네가 계약위반을 하는 것이니까 질문자는 다른 데 가서 일해도 되잖아요.nbspnbsp죽은 뒤에 열반을 증득하려고 하지 말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 지금 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해야 합니다. ‘죽어서 이런 어려운 조건이 없는 세상으로 가겠다’라고 하는 건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질문자의 얼굴이 검든 희든, 한국 사람이든 스리랑카 사람이든, 남자든 여자든, 스리랑카에서 살든 한국에 와서 살든, 일이 좀 많든 적든, 돈을 많이 받든 적게 받든, 질문자는 항상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 살아도 행복하고, 스리랑카에 돌아가도 행복하고, 돈을 벌어도 행복하고, 돈을 원하는 만큼 못 벌어도 행복하고, 그렇게 될 수 있어요. 이게 바로 열반입니다. 그게 질문자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이에요. 조금 나쁜 사장을 만나도 행복하고, 좋은 사장을 만나도 행복해야지 나쁜 사장 만났다고 괴롭고, 좋은 사장 만났다고 즐겁다면 질문자는 죽을 때까지 계속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면서 끌려다니는 윤회의 괴로움을 겪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nbspnbspnbsp부당한 일을 당했더라도 질문자의 마음이 일단 괴롭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개선을 해나가야 돼요. 예를 들어 그들이 노동법을 어기면 개선을 요구해야 돼요. 그러나 그것으로 힘들어 하지는 마세요. 우리 인생이라는 게 죽을 때까지 늘 그렇게 부당한 것을 개선해 가면서 사는 겁니다. 아무 일도 안 생기고 편안한 건 진짜로 잘 사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죽은 시체와 다를 바 없어요. 해탈과 열반은 내 삶 속에서 지금 실현할 수가 있는 겁니다.” nbspnbsp질문한 분은 활짝 웃으며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모두들 스님의 답변이 너무 좋았다며 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답변을 모두 마치니 어느덧 약속한 2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어떤 상황에 처하든 행복은 내 마음에 달려있다며 다시 한 번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의 생활이 많이 어렵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스스로 선택해서 한국에 오셨잖아요. 누가 여러분들을 강제로 한국으로 추방했거나 누가 강제로 데려온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온 거잖아요. 막상 한국에 와 보니까 생각했던 것과 다르지요? 그런데 한국은 원래 이랬어요.nbspnbspnbsp여러분은 스리랑카에서 한국을 너무 좋게만 생각했던 거예요. 한국 사람들도 지금 한국에서 사는 게 힘들어서 죽겠다고 난리예요. 그런데 여러분 같은 외국인들이 와서 어떻게 행복하기만 할 수 있겠어요? 여러분이 외국인이기 때문에 괴로운 게 아니에요. 여러분한테 한국시민권만 준다면, 한국사람 만큼만 월급을 준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요? 그런데 지금 한국 젊은이들은 여러분들보다 더 괴로워하면서 살아요. 한국 젊은이들은 시민권도 있고, 월급도 더 많이 받는데 왜 그럴까요? 여러분은 직장이라도 있지만 한국 젊은이들은 지금 절반이 직장도 없어요. 그러니 괴롭게 살 거냐, 행복하게 살 거냐 하는 건 다 우리 마음에 달린 문제입니다.nbspnbspnbsp여러분이 친구도 없고 말도 안 통하는 한국에 와서 사는 게 힘든 건 너무 당연한 거예요. 그래서 여기 올 때는 이미 힘들 것을 각오하고 왔어야 하는 겁니다. 제가 볼 땐 여러분이 한국을 지나치게 좋게 생각하고 왔기 때문에 지금 힘든 것 같아요. 어떤 나라에 가더라도 돈 빌려주고 안 갚는 사람이 있고, 일 시키고 돈 안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에요. 스리랑카에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또 스리랑카에만 좋은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한국에도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게 그렇게 생겼어요.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겁니다. 이런 속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nbsp박수와 함께 강연을 모두 마쳤습니다. 어디를 가든 행복은 내 마음에 달려있다는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nbspnbspnbsp강연이 끝나자마자 질문을 했던 분에게 다가가 스님의 답변을 들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밝게 웃으며 편안해진 얼굴로 대답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동안 힘들었던 저를 편안하게 해준 선물과도 같은 하루였습니다. 불교에 대해 전통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 새로운 사고를 처음으로 하게 된 것 같아요. 스님이 얘기해 준 관점으로 다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을 준비해 준 스님과 봉사자들 모두 너무 고맙고, 오래오래 좋은 가르침 많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nbsp함께한 80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 분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스님은 버스를 타기 위해 미륵전을 나오는 외국인 노동자 분들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스님과 봉사자들이 준비한 오늘 하루가 이국 땅에서 받았던 서러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작은 계기가 되었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법주사를 나온 스님은 법주사를 드나드는 옛길인 고불고불한 말티재를 지나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180도로 꺽어지기를 수차례 반복하는 고개길을 다 내려오고나니 그제서야 ‘아, 그래서 속세를 떠난, 속리산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속리산 말티재nbsp대전에서 한 차례 미팅을 가진 후 연수원으로 사용할 건물을 몇 개 둘러보고 밤 10시에 울산 두북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두북에서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다가 서울로 올라갈 예정입니다.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3.28. 69,514 읽음 댓글 43개

2016.3.25 익산 통일이야기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전북 익산시에서 ‘즉문즉설과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아침 7시부터 오전 내내 평화재단에서 회의와 미팅을 가진 스님은 오후에 치과 진료를 받은 후 3시 30분에 강연이 열리는 전북 익산으로 향했습니다.nbsp강연은 익산시 솜리문화예술회관 중공연장에서 열렸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입구에서부터 많은 봉사자들이 표지판을 들고 길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익산시 솜리문화예술회관nbsp저녁 7시가 되자 통일의병 소개 영상이 상영된 후 스님이 무대 위로 걸어나왔습니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600여 명의 익산 시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내며 환영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간단히 오늘 강연의 취지를 이야기하며 환한 웃음과 함께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오늘 이 강연은 ‘새로운 백년을 여는 통일의병’에서 주최한 강연입니다. 왜 이런 강연을 열었을까요? 통일의병 운동에 많이 참여하라는 뜻이겠죠. 그래서 오늘 강의 주제도 원래는 통일인데, ‘통일 얘기만 하면 사람들이 많이 안 온다. 스님의 장기인 인생사도 같이 얘기해 주면 좋겠다’ 하는 요청이 있어서 통일 얘기뿐 아니라 인생 얘기도 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니 오늘 인생사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은 원래 취지에 안 맞지만 해 주는 거니까 반드시 통일의병에 가입을 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래서 오늘은 통일 얘기 들으러 온 사람도 인생 얘기를 좀 들어야 하고, 인생 얘기 들으러 온 사람도 우리 모두의 문제인 통일 얘기를 들으면서 함께 공부를 하면 좋겠습니다.”nbsp스님 말씀처럼 개인 고민, 통일에 대한 관심 등 다양한 요구를 갖고 강연장을 찾았지만, 모두들 강연의 취지에 공감하며 끝날 때까지 어떤 주제의 이야기가 전개되든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강연장 입구에는 질문을 신청하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많은 분들이 질문지함에 질문을 넣어주었습니다. 분홍색 질문지에는 통일 문제에 대한 질문이, 노란색 질문지에는 개인 고민에 대한 질문을 적게 했습니다. 스님은 두 가지 색깔을 번갈아가며 뽑으며 통일 이야기와 개인 고민을 적절히 석어가며 흥미있게 강연을 이끌어 갔습니다.nbspnbsp▲ 질문지함nbspnbsp총 6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는데 마지막에 질문자로 뽑힌 분의 질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본인은 통일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면 통일에 무관심한 국민들로 하여금 통일의 필요성을 가슴으로 느끼게 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고 싶다며 간곡한 어투로 질문했습니다.nbspnbspnbsp“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인데 대부분의 국민들이 머리로만 생각할 뿐인 것 같아요. 통일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자는 국민들의 의식을 어떻게 하면 깨울 수 있을까요?nbspnbsp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스님의 모습이 항상 존경스러운데, 스님께서는 생활 속에서 평화를 실천하기 위해 어떤 행보를 걷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듣고 싶습니다.”nbsp“통일과 평화의 필요성을 의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해달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여러분들의 세대에서는 불가능합니다. 마음으로 느낄 수 있으려면 전쟁을 경험해야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서 가족들이 죽고, 자식을 등에 업고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도망을 가든지,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가든지 해서 그 나라에서 온갖 차별을 받으면서 자신이 직접 전쟁의 고통을 겪어보면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생각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여러분 세대는 태어나서 지금에 이르도록 통일과 전쟁을 겪은 적이 없잖아요. 피난을 가본 적도 없잖아요. 그러니 통일과 평화의 필요성을 느낄 수가 없어요. 그것을 느끼게 해달라는 것은 불가능한 요구예요.”nbsp“전쟁의 고통을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요즘 다들 가정마다 위기이기 때문에 가정 속에서는 끊임없이 전쟁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가정 안에서는 평화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요.”nbsp“그렇다면 이런 건 느낄 수 있겠죠.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는 네가 좋고 너는 내가 좋다 해서 만났고, 그렇게 만나서 한 이불 밑에 잠까지 같이 자고, 아이까지 낳아서 키우면서도 서로 싸우잖아요. 그러니 ‘아, 부부간에도 사람이 서로 싸우니까 이웃집 간에 싸우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렇게 될 수 있죠. 정치인들이 싸우는 것이 이해가 안 되다가도 우리집 싸우는 거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스님들끼리 싸우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남북 간에 싸우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이렇게 이해를 할 수 있죠. 이해가 되면 번뇌가 안 생깁니다.nbspnbsp그런데 저 같은 스님 입장에서는 부부가 한 이불 밑에서 같이 자기도 하면서 서로 싸운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스님들이 서로 싸우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하는데, 저는 스님들이 싸우는 것은 너무 너무 이해가 됩니다. 오히려 부부가 싸우는 것을 보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싶거든요. 그러니 평화를 위해서는 ‘우선 나부터 나와 다른 이 남자를 이해해야 되겠다’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nbspnbsp“평화를 외치기 전에 내가 먼저 빛이 되라는 말씀이시죠?”nbsp“빛까지 되려고 할 필요는 없어요. 욕심도 많네요. 그게 문제에요. 이해만 하면 됩니다. ‘저 남자는 나와 다른 집에서 자랐으니 사고 방식이 다르구나, 취미가 저렇구나, 생각이 저렇구나, 관점이 저렇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싸울 일이 없어져요. 내가 낳아서 키운 자식도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잖아요. 내 마음대로 키웠는데도 이해가 안 되잖아요. 하물며 남편을 어떻게 내 마음대로 하겠어요? 이렇게 이해의 폭을 넓혀가야 합니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면 상대를 안 고쳐도 갈등이 점점 줄어들어요. 그런 것을 경험하면서 평화를 만들어가는 겁니다.nbspnbsp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첫째, 취미가 다르든 생각이 다르든 그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틀렸다고 규정하면 안 돼요. 둘째,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막무가내로 말하는 것을 보면 불교 신앙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유일신을 믿는 그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저렇게 말할 수가 있겠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nbspnbsp남북 간에 교류를 하기 위해서도 ‘내가 북한에 두 번 갔으면 너도 한 번 남한에 와라’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교류가 안 됩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우리와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북한에 열 번쯤 가줘야 그들은 한 번 와 줍니다. 저도 교회 목사님들과 교류할 때 그랬습니다. 목사님이 저희 절에 오기 전까지 제가 교회에 열 번도 더 찾아갔습니다. 그 정도 되어야 교류가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 주고 하나 받는 일대일 방식으로는 교류를 못 합니다. 기독교가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형태가 그렇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인정하고 이해하면 교류가 가능해집니다. 상대의 성질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겁니다.nbspnbsp교류를 할 필요가 없다면 안 하면 되겠죠. 그러나 제가 우리 나라의 보수 세력이나 기독교인들과도 교류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저는 통일을 위해서 북한과도 교류를 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인데 하물며 어떤 보수세력과도 대화를 못하겠으며 어떤 기독교인들과도 대화를 못하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미래를 위해서 우리를 36년간 식민지배했던 일본과도 교류 협력을 하고 있고, 6.25전쟁 때 100만 대군을 보내 우리와 싸웠던 중국과도 교류 협력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왜 일본과 중국하고는 교류 협력을 하면서 제 동족인 북한과는 교류 협력을 안 하려고 하고, 같은 나라 안에서 살고 있는 진보, 보수와는 대화를 안 하려고 하고, 같은 종교 안에서 기독교, 불교가 왜 대화를 안 하려고 해요?nbspnbsp그러면서 또 통일은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럼 이 때의 통일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네 것은 없애고 내 식으로 하자는 겁니다. 소위 적화통일, 승공통일 하자는 것이니 적절치 않습니다. 그냥 각자 자기 좋은대로 하고, 갈등하는 것보다는 협력하는 것이 나으니 연대를 하자, 이렇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네가 먼저 그랬지 않느냐’ 이렇게 나옵니다. 부부싸움 할 때도 늘 하는 얘기가 ‘당신 결혼 할 때 나한테 뭐라고 그랬어?’ 이겁니다. 이런 태도 때문에 대화가 안 되고 문제가 안 풀립니다.nbspnbsp전쟁을 체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쥐약을 꼭 직접 먹어서 죽었다가 깨어나 봐야 쥐약은 먹으면 안 된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안 먹어보고도 다른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잖아요. 이것이 사람과 짐승이 다른 점이란 말이에요. 남의 경험을 보고 유추해서 ‘저건 먹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알기 때문에 인간은 지혜롭다고 말하는 겁니다.nbspnbspnbsp그러니 지금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리아 사태를 한번 보세요. 같은 회교도 안에 시아파와 수니파라고 해서 서로 종교가 다르죠. 쿠르드족과는 서로 종족도 다르죠. 그러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같은 민족인데도 서로 갈등이 생기는데, 시리아는 서로 종족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서로 자기 주장대로 하려고 하다 보니 전쟁까지 하게 되고 결국은 외세가 개입하게 됩니다. 전쟁이 나서 국민들은 국경을 탈출해서 난민이 되고, 또 유럽으로 간 난민들은 얼마나 천대를 받았습니까. 어린 아이들이 배 타고 가다가 죽는 모습 보셨죠? 우리도 전쟁이 나면 그런 꼴을 당하게 됩니다.nbspnbsp안에서는 싸울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밖에서 보면 바보 같은 짓이에요. 시리아 사람들도 자기들 안에서는 다 싸울 만한 이유가 있어요. 그래서 한 쪽은 러시아 쪽에 서고, 한 쪽은 미국 쪽에서 서서 서로 싸우다가 1차 휴전 협정을 맺었는데, 그래도 또 싸우면 다음 단계는 뭘까요? 지역을 분할 점령하는 겁니다. 우리도 북한 문제가 안 풀리니까 이제 북한을 미국, 중국, 러시아, 남한 4개국이 분할 점령하자는 제안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제안이 담긴 보고서가 얼마 전 해킹이 되어 언론에도 보도되었습니다.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되는 속에서 전쟁을 하면 다 피해를 보니까 강대국들 입장에서는 분할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nbspnbsp우리가 전쟁을 경험하지 않아도 조금만 눈을 돌려 다른 나라를 보면서 우리에게 적용해 보면 ‘문제가 안 풀리니까 강대국들은 결국 분할해서 해결하려고 하는구나’ 하고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이 패망하고 전후 처리를 어떻게 했습니까. 일본은 미국이 관할하고, 만주는 소련이 관할하기로 했는데,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의 이해가 상충되니까 38도선을 잘라서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관할하기로 한 겁니다. 그렇게 관할하다가 물러나기 전에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권을 각각 세웠고, 그것이 지금까지 흘러온 겁니다.”nbsp“그래서 우리에게는 통일이 정말 필요한 것인데, 일반 국민들에게는 통일이 나와 상관 없는 일처럼 느껴진다는 거죠. 나와 상관이 있다는 것을 좀 일깨워주시면 좋겠어요.”nbsp“나와 상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너무 당연해요. 그 이유는 첫째, 만약 여러분들이 통일된 사회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스무살이 되어 분단이 되었다면 분단된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경험적으로 통일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겠죠. 그런데 여러분 모두가 분단된 후에 태어났잖아요. 둘째, 분단된 상태로도 우리가 발전을 했잖아요. 경제적으로도 성장했고, 정치적으로도 민주화가 진전이 되었어요. 여러분들은 분단된 상태에서 태어났고, 분단된 상태에서도 대한민국은 발전했기 때문에 아무리 통일을 얘기해도 무의식 세계에서는 의미있게 다가오질 않는 거예요.”nbspnbsp“그렇다고 해도 통일의 필요성을 피부에 와닿게 얘기할 수 있잖아요. 통일이 이뤄지면 자녀들이 대학을 무료로 다닐 수 있다든지요.”nbsp“그건 거짓말이에요. 피부에 안 와닿는 얘기예요. 통일이 된다고 대학을 무료로 다닐 수 있지는 않아요. 통일이 안 되어도 지금이라도 대학은 무료로 다닐 수 있게 할 수 있어요. 제 얘기는 우리 국민들에게 통일이 염원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겁니다. ‘왜 너희는 통일을 염원하지 않느냐?’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분단된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리고 분단된 상태에서 발전해 왔기 때문에, 의식은 통일해야 된다고 알지 몰라도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만 잠시 공감이 되고, 나머지 일상에서는 잊어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처지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통일을 염원하지 않는다고 나무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의 의식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한테 통일 이야기를 하면 ‘쓸 데 없는 소리 한다’ 하고 나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nbs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현실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즉 지난 50년 동안은 분단된 상태로도 발전해 온 것이 사실이에요. 그런데 앞으로도 분단된 상태에서 계속 발전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태어나서 20년 동안 살면서 한 해 마다 계속 키가 컸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서른 살 마흔 살까지 계속 키가 크지는 않잖아요. 스무 살까지 키가 큰 건 맞지만 그 이후에는 키가 안 크고 더 줄어들 수도 있는 겁니다. 그것처럼 지금까지 성장해 온 것은 맞아요. 민주주의도 발전해 온 것이 맞아요.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은 민주주의가 더 이상 발전되지 않고 있잖아요. 대통령이 나빠서가 아니라 발전이 안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경제가 성장 안 되는 것이 현실이에요. 앞으로도 경제가 성장이 안 될 수 있고, 민주주의도 더 이상 발전을 안 할 수 있고, 어쩌면 경제는 더 쪼그라 들 수 있고, 민주주의도 약간 후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성장동력이 소진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인구 구성에서도 노인이 많아지고, 사회복지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국제적인 경제 환경도 나빠지고, 국방비도 늘어나고, 이런 것들이 성장 동력이 소진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nbspnbspnbsp그런데 좀 더 성장하고 싶은 게 우리의 염원이잖아요. 그럼 해결책을 찾아야겠지요. 옛날처럼 될 수는 없지만 3 내지 5 성장은 아직 가능성이 있어요. 가장 쉬운 방법은 양을 좀 늘리는 것, 즉 경제의 규모를 조금 키우는 거예요. 서부개척이 미국에 활력을 불어넣었듯이, 북한개발이 우리에게 활력이 될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럼 ‘북한을 먹여 살리려면 돈이 들 거 아니냐?’ 하고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북한을 우리가 먹여 살린다’ 하는 관점에서 보면 양식 값이 많이 들겠지만 북한사람들이 그거 먹고 월급 30만 원만 받고 노동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지금 우리 중소기업이 인건비 때문에 여기서 운영을 못하고 외국으로 나가거나 외국인노동자를 데려다 쓰는데, 차라리 북한으로 가서 사업을 하면 우리의 자본 및 기술과 북한의 자원 및 노동력이 결합을 하면 북한은 우리가 3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또는 오늘날 중국과도 같은 생산기지가 될 수 있어요. 또 북한에 공장을 설립하려 해도 돈이 들겠지요? 그런 돈은 빌려도 되잖아요. 생산해서 나중에 갚으면 되니까요. ‘통일비용이 든다’는 말은 맞는데, 그건 대부분 생산에 드는 돈입니다.nbspnbsp이렇게 되면 경제규모는 전체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북한개발이라는 건 꼭 통일이 되어야지만 가능한 것이 아니고, 통일에 준하게 남북의 협력관계만 이루어져도 일단 뚫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경제문제도 풀리고, 평화문제도 풀리고, 국방예산도 줄일 수 있을 거예요. 줄인 국방예산은 복지기금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남북을 잘라서 경제가 더 안 되도록 하고, 국방비는 더 늘리고, 그럼 복지비는 더 없고, 성장은 더 안 되니까 세금은 안 걷히고, 이러면 우리는 더욱 정체가 되지요. 이걸 조금만 생각해 보면 통일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예요. nbspnbsp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하자는 것도 아니고, 북한을 위해서 통일하자는 것도 아니에요. 우리가 지금 이 난관을 극복하려면 통일밖에는 길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왜 그걸 안 하려는 거예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요. 제가 생각할 때 그 이유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바보라서 그런 것이고, 하나는 워낙 보살심이 많다 보니 북한을 중국에 주려고 그런 거예요. 지금 중국한테 ‘너희가 북한을 컨트롤하라’ 하고 있잖아요. 북한정권이 지금 이대로 버티면 갈등이 계속될 겁니다. 이런 갈등 속에서 북한에서 레짐 체인지가 이루어지면 친중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친중정권이 들어서면 중국 입맛에 맞으니까 남북 간에 평화는 오겠지만 통일은 물건너가요. 그리고 북한은 중국의 자원공급국, 소비시장, 값싼 노동력 제공국이 되겠죠. 그게 좋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그러면 우리는 출구가 없어요. 그냥 섬이 되는 거예요. 미중 사이에 계속 갈등이 생기면 우리는 미일동맹체제에 의해서 미국의 대중방어전선의 일선에 서게 되고, 북한은 중국의 대미방어전선의 일선에 서게 될 테니까 남북은 계속 갈등할 수밖에 없고, 우리와 중국의 관계는 더 나빠지겠지요.nbspnbsp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경제는 더 안 좋아지고, 안보는 더 위협받을 겁니다. 우리가 사드를 배치해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는다고 하는데, 중국 사람들이 ‘사드는 북한 때문이 아니라 우리 때문에 하는 거다’라고 생각하면 중국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중국은 공격을 할 때 우리한테 초점을 맞출 테니까 우리의 안보는 더 위험해지지요. 돈은 돈대로 들고, 안보는 안보대로 위험해지는 거예요. 그러니 이렇게 가는 건 어리석은 거예요.nbspnbspnbsp그런데 이걸 바로 잡을 사람은 이제 국민밖에 없어요. 기득권 세력은 남북관계에 긴장이 조성되어야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가 있어요. 그래야 군인들은 예산을 많이 확보할 수 있고, 그래야 미국은 한국에 무기도 많이 팔면서 영향력도 가질 수가 있어요. 그러면 결국 손해는 우리 대한민국이 보고, 그 안에 사는 국민들이 보는 거예요. 남북 간에 갈등이 심해지면 김정은 정권도 체제 유지하기가 쉬워져요. 이런 걸 정말 우리 국민이 원하는 걸까요?nbspnbsp우리가 대한제국 말기에도 봤듯이 이렇게 하는 게 해결책이 아니라 나라를 망치는 길이고, 국제정세 하에서 우리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일임을 이미 경험했잖아요. 동학혁명이 일어나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니까 우리나라 권력층은 청나라를 끌어들여서 막았고, 그러니까 일본이 자동으로 개입했지요. 지금 우리가 미국을 끌어들이니까 중국이 개입을 하듯이 말이에요. 그래서 지금 우리와 관계없이 미중 저희끼리 협의해서 사드배치를 논하잖아요. 결국 대한제국 말기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청나라와 전쟁을 해서 일본이 이기니까 일본이 우리 나라를 합방시켰잖아요. 그런데 미국이 간섭하니까 필리핀은 미국이 갖는 걸 인정해 주고, 우리 나라는 일본이 갖겠다고 일본과 미국이 협상한 게 바로 카쓰라테프트 조약입니다.nbspnbsp그러니까 미국은 한 번은 일본과 협상해서 한국을 일본 식민지로 인정해 줬고, 한 번은 소련과 협상해서 남북을 분단시켰고, 이번엔 중국과 협상해서 북한 핵무기만 제거하면 중국이 관할해도 좋다고 타협할 가능성이 높아졌어요. 그래서 미국은 마치 부모가 나를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내 인생의 간섭자인 것처럼 우리의 은인이기도 하지만 장애이기도 합니다.nbspnbsp이런 현실을 알고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자는 겁니다. 사실 이건 새로운 건 아니에요. 조금만 상식이 있으면 우리가 앞으로는 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문제를 풀 사람은 국민 외에 누구도 없어요. 그러니까 국민이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이런 쪽으로 가자는 게 통일의병운동입니다. 오늘 강의 듣고 다 통일의병에 가입하시겠어요?”nbsp“예.”nbspnbspnbsp“이렇게 남북이 협력을 하면 남북이 다 살 수 있습니다. 통일 한국은 통일 한국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일본과 중국, 미국과의 주변정세를 잘 활용하면 동아시아가 평화와 협력의 공동체로도 발전해 갈 수 있어요. 그렇게 협력공동체가 되면 동아시아 시대가 도래합니다. 다시 말하면 문명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갔다가 동아시아로 온다는 겁니다. 1세기 안에 동아시아 시대가 도래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동아시아의 중심국가가 한국이라면, 한국은 세계문명의 중심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그런 가능성이 열리는데, 통일이 안 되면 미중의 세력균형을 위한 힘겨루기에서 우리는 충돌지점이 되어 분단, 분열, 분쟁이 계속되는 1세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nbspnbspnbsp우리가 어떤 나라를, 어떤 가능성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이에요. 피부로는 못 느끼더라도 조금만 생각하면, 즉 내가 쥐약을 먹어보진 못 했지만 먹고 죽는 걸 보면서 ‘먹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듯이, 감정보다는 이성적인 판단이 중요하고, 그에 따른 우리의 실천적 행동이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 희망을 함께 만들어 봅시다.”nbsp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질문자도 청중들도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무엇보다 국민들이 통일에 무관심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현실 인식 위에서 해법을 찾아가는 모습이 감명 깊었습니다.nbspnbsp스님이 열정적으로 강조한 통일의 희망을 듣고 나니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2시간 40분 동안 오롯이 스님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던 청중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그 감동을 그대로 이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사이 사이에 중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도 많이 자리해 더욱더 의미있는 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 다함께 합창nbsp강연을 모두 마치고 로비에서는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청중들은 사인을 받으면서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 준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많이 했습니다.nbspnbsp▲ 책 사인회nbsp그리고 스님은 오늘 강연을 준비한 광주전라본부 통일의병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직은 수가 적지만 이분들이 씨앗이 되어 광주전라지역 전역에 통일의 기운이 퍼져나가길 기원해 봅니다.nbspnbsp▲ 광주전라지역 통일의병 모임nbsp집으로 돌아가는 익산시민들을 향해 통일의병들은 ‘익산 통일시민학교’가 개최된다는 사실을 열심히 알리며 참가신청자 접수를 받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가신청서를 내고 돌아갔습니다.nbspnbsp▲ 익산 통일시민학교 신청을 받고 있는 통일의병들nbsp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울산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JTS 안산 다문화센터 주관으로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들과 함께 속리산 법주사로 봄나들이를 함께 다녀올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3.27. 53,741 읽음 댓글 25개

2016.3.26 안중근 의사 순국 106주기 추모식

nbsp안녕하세요? 106년 전 오늘,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의 사형집행일이자 순국일입니다. 스님은 안중근 의사 순국 106주기를 맞이하여 남산 자락에 위치한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찾았습니다.nbspnbsp새벽 6시에 울산 두북을 출발한 스님은 10시 30분에 안중근의사기념관에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참배했습니다. 스님이 기념관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정토회 실무자 10명도 함께 동행했습니다.nbspnbsp▲ 안중근 의사 동상 참배nbsp스님 일행 외에도 순국일을 추모하고자 많은 분들이 기념관을 찾았습니다. 마침 10시부터 안중근의사기념관 강당에서는 안중근 의사 숭모회 주관으로 안중근 의사 순국 106주기 추모식이 거행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조용히 행사장 뒤편에 서서 함께 추모하는 시간을 가진 후 기념관을 나왔습니다.nbspnbsp▲ 안중근 의사 순국 106주기 추모식nbsp추모식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남긴 ‘최후의 유언’이 낭독되어서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다시금 새겨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 묻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 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nbspnbsp너희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당부해 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nbspnbspnbsp1879년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난 안중근 의사는 일제가 대한제국 외교권을 박탈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워 민족계몽운동에 힘쓰다가 일제의 강점이 본격화 하자 의병운동에 투신했습니다. 1909년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자르고 일사보국을 맹세한 안 의사는 같은 해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습니다. 뤼순 감옥에 투옥돼 일제의 심문과 재판을 받는 중에도 의연한 태도를 조금도 굽히지 않던 안 의사는 사형을 선고받고 1910년 오늘 3월 26일 32살의 나이로 순국했습니다.nbspnbsp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지만 ‘자유’, ‘독립’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많은 애국지사 분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다시 한 번 새겨보게 됩니다. nbspnbsp▲ 1910년 뤼순감옥 내에서 쓴 옥중유묵nbsp안중근의사기념관을 나오니 앞쪽 너른 언덕에 백범 공원과 한양도성이 잘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먼저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을 참배했습니다.nbspnbsp▲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nbsp동상 앞 비석에는 “나라가 광복된 후에 두 동강으로 끊어진 남북을 통일하려고 노력하셨으나 통일 대업을 이루지 못하신 채 철천의 한을 품고 순국하시니 슬픈 마음 그지 없다”라고 적혀 있어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nbspnbspnbsp김구 선생의 동상 옆에는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이시영 선생의 동상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이시영 선생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을 주도하였으며 1945년 해방시까지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켰으며 제헌국회에서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의하다 부통령직에서 사임된 분입니다. 스님은 묵념으로 선생의 공훈을 기렸습니다.nbspnbsp▲ 이시영 선생의 동상nbsp그리고 백범 공원을 가로지르면서 한양도성이 잘 복원되어 있었습니다.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입니다. 평균 높이 58m에 전체 둘레 길이가 18.6km에 이르며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래도록 성의 역할을 다한 건축물이라고 합니다.nbspnbsp▲ 새로 복원한 한양도성nbsp마침 공원 한쪽 편에 서울시 지도 위에 한양도성의 둘레가 잘 표시된 그림이 있어 스님은 유심히 지도를 살펴보았습니다. 사대문과 사소문의 위치를 각각 확인하고, 전체 구간의 70가 옛 모습에 가깝게 정비되었다는 설명을 들은 스님은 “다음엔 도성 전체 둘레를 한 번 걸어봐야겠다” 며 웃음을 보였습니다.nbspnbsp▲ 한양도성 지도nbsp스님은 “새벽 6시부터 걷기 시작하면 하루만에 다 돌아볼 수 있겠다”고 자신을 했는데, 실무자들은 “저희는 이제 늙어서 어렵습니다”라며 다들 고개를 저었습니다. 실무자들보다 스님이 훨씬 연세가 많은데 말이죠.nbspnbsp남산 자락을 타고 내려가는 성곽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스님은 성곽 앞에서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다시 남산을 내려오는 길에는 곳곳에 개나리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주에는 울산 두북에서 진달래꽃이 활짝 핀 모습을 구경했는데, 오늘 서울에서는 가느다란 가지에 개나리꽃이 줄줄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서울 남산에 핀 개나리꽃nbsp오후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과 미팅을 가진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안산다문화센터 외국인노동자들과 함께 속리산 법주사 나들이를 다녀올 계획입니다.nbspnbsp ※ 스님의 하루 구독자와 함께하는 공개방송을 마련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나도 스님에게 질문을 해보고 싶다 하는 요청이 많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제 직접 스님에게 질문해 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공개방송 신청을 누르시면 됩니다. nbspnbspnbsp

2016.03.26. 45,135 읽음 댓글 25개

2016.3.24 (오후) 전주우석고 초청, 교사들을 위한 특강

nbsp안녕하세요. 오전 10시에 있었던 경기여고동문회 카톨릭 모임 초청 특강에 이어서 오후 4시 20분부터는 전주 우석고등학교 영성당에서 초청 특강이 있었습니다.nbspnbsp이번 초청 강연은 원불교 김대선 교무님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스님과 김대선 교무님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통해 지난 10여 년 간 인연을 맺어오고 있습니다.nbspnbsp특히 오늘은 우석고등학교, 전북여고, 전북중 3개 학교가 속해 있는 학교법인 훈산학원의 개교 12주년이 되는 날이라고 합니다. 개교기념식을 맞이해 교직원 전체를 위한 특강을 스님에게 요청한 것입니다.nbspnbsp▲ 전주 우석고등학교nbsp오후 4시 무렵 스님이 전주 우석고등학교 교정에 도착하자 원불교 김혜봉 전북교구장님과 김대선 교무님, 훈산학원 윤여웅 이사장님이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주었습니다. 행사 시작 전 이사장실에서 잠깐 차담을 나누는 동안 스님은 김 교구장님과 윤 이사장님에게 새책 ‘행복’을 사인해서 선물했습니니다.nbspnbsp▲ 김혜봉 원불교 전북교구장님에게 새책 ‘행복’을 선물하는 스님nbsp먼저 개교기념식 식전 행사로 음악선생님들이 나와 뱃노래, 새타령, 진도아리랑 노래를 멋지게 불러주었습니다. 이어서 수고한 선생님들에게 공로패를 수여한 후 이사장님이 무대 앞으로 나와 “전북에서 제일가는 학교가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 제일가는 학교를 만들자” 라고 격려사를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개교기념식이 있은 후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행사장 무대 위에는 ‘인재육성을 선도하는 훈산학원’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에 스님은 지금의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진단하면서 인재 육성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스님의 생각을 들려주었습니다. nbspnbsp“지난 50년간 우리 교육은 소위 베끼기 교육, 암기 교육이었습니다. 이런 모방 교육이 효과를 보는 이유는 이미 우리보다 앞선 선진문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위 서구문명, 단적으로 말하면 미국을 따라 배우기 하는 거였어요. 독려하고 독촉하면 성과가 났기에 지난 50년 동안 ‘빨리빨리’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는 성장이 점점 둔화되어서 지금은 거의 정체 국면에 들었습니다. 지금 정부에서는 정체를 극복하려고 막 독려를 하는데, 이 정체를 극복하려면 따라 배우기인 모방 교육과 문화가 아니라 창조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창조적이어야 한다’, ‘서양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nbspnbspnbsp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 지금 정부는 따라배우기 할 때처럼 ‘빨리 창조 안 할 거야?’ 이렇게 독려해서 창조력을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목표가 다른데도 방식은 50년 전 방식과 똑같이 하고 있어서 성과가 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nbspnbsp창조는 긴장해서 노력한다고 나오지 않습니다. 자유로움에서 나옵니다. 방금 전 이사장님 말씀을 들으니까 전북에서 제일가는 학교가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 제일가는 학교를 만들자고 하셨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학교라고 해 봐야 지금 별 볼일 없습니다.nbspnbspnbsp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학교라 해도 따라배우기, 암기, 모방을 하는 방식으로 제일가는 것이지, 창조력을 키우는 학교나 창조하는 교육은 아니기 때문이에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창조입니다. 창조를 하려면 제일 중요한 게 재미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학교가 바뀌려면 우선 선생님부터 수업하는 게 재미있어야 해요. 지금 재미없고 힘드시죠?”nbspnbsp“......” nbsp“그렇다면 안 됩니다. 학생들은 공부하는 게 재미있어요? 솔직하게 말해 봐요. 힘들죠?”nbsp“힘듭니다.”nbspnbsp“힘이 드는 한은 창조가 안 나와요. 첫째, 재미가 있어야 해요. 가르치는 사람도 재미가 있어야 하고, 배우는 사람도 재미가 있어야 하고, 학교를 운영하는 사람도 재미가 있어야 해요. 즐거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냥 노는 것보다는 가르치는 게 더 재미있어야 하고, 그냥 노는 것보다는 배우는 게 더 재미있어야 해요.nbspnbsp재미가 있으면 집중력이 생깁니다. 하기 싫으면 아무리 집중하라 해도 집중이 안 되지만, 재미가 있으면 저절로 집중이 돼요. 어릴 때 보던 만화책은 재미있잖아요. 만화책은 노력해서 열심히 보는 게 아니라 옆에서 보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열심히 봐져요. 부모가 말리거나 야단치면 화장실에 가서 몰래 봐요. 창조가 나오려면 하지 말라고 해도 숨어서 몰래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해요. 그 정도로 재미가 있으면 집중이 돼요. 그렇게 우리의 에너지가 딱 집중돼야 창조가 일어납니다. 집중이 된 상태에서 빵 터지면 그게 창조에요. 선에서는 ‘이 뭣고’라는 화두에 엄청나게 집중이 돼서 빵 터질 때 화두 타파라고 하는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nbsp창조력을 키우려면 유치원이며 초등학교 때부터 OX나 단답형 지식 공부를 가르쳐서는 안 돼요. 과제를 주고 생각을 키워줘야 합니다.nbspnbsp‘너 어떻게 생각하니?’nbsp‘저는 이렇게 생각해요.’nbsp‘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선생님은 그런 생각은 못해 봤는데, 굉장하다.’nbspnbsp이렇게 정답이 없어야 창조가 나와요. 그런데 우리는 늘 정답을 만들잖아요. 사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생각,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접근해야 창조가 나옵니다. 했던 방식 그대로 하는 건 이미 다른 사람이 했다는 뜻이에요.nbsp아까 이야기를 듣다가 두 가지 느낀 게 있어서 지금 말씀드리는 겁니다. 첫 번째, 이사장님이 대한민국에서 최고가 되자고 하셨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최고가 되는 걸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가 되어봐야 아무 의미가 없어요. 두 번째, 무대 위에서 상을 타는 선생님들 얼굴을 보니 도무지 웃질 않아요. 상을 타도 웃지 않는데 수업하면서 웃겠어요?nbspnbsp▲ 뒤늦게 웃음을 띠고 있는 공로상 수상 선생님들nbsp그러니 수업을 재미있게 해야 합니다. 재미가 있어야 건강합니다. 재미있다는 말은 스트레스가 없다는 말이니까요. 스트레스를 만들고, 그걸 푼다고 또 술 마시면서 시간 버리고 돈 버리고 건강 해치고 욕 얻어먹는 건 어리석어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됩니다. 일이 없어서 노는 사람더러 보충 수업 들어가라고 하면 좋아할 거잖아요. 앉아서 놀다가 보충수업 하라는 말을 들으면 얼굴이 확 밝아지면서 재미있게 들어가야 하고, 학생들도 오늘 수업 한 시간 연장한다는 말을 들으면 ‘이야’ 하고 환호해야 해요.nbsp저는 시험을 치기 위해서 억지로 공부한 적이 별로 없어요. 고등학교 1학년 다니다가 절에 들어왔으니까요. 모든 공부는 제가 필요해서, 좋아서, 하고 싶어서 했습니다. 그러니 공부가 재미있죠. 재미가 있으면 집중이 되고, 집중이 되면 기억효과가 굉장히 높아집니다.nbspnbsp중요한 건 머리가 얼마나 좋으냐, IQ가 높으냐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걸 불교용어로 ‘수처작주’라고 해요. 어딜 가든지 자기가 주인 노릇을 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이것을 굉장히 쉽게 표현했습니다. ‘5리를 가자 하면 10리를 가주어라.’ 이런 말 기억나시죠? 원불교 다녀서 모르세요?nbspnbspnbsp성경은 종교와 관계없이 기본 상식으로 우리가 알아야 해요. ‘5리를 가자 하면 10리를 가주어라’,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옷까지 벗어주어라’,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대어주어라’ 이 세 가지가 다 을로 살지 말고 갑으로 살아라, 소극적으로 살지 말고 적극적으로 살라는 말입니다. 누가 5리를 가자고 할 때 그냥 따라가면 내가 을이 되지만, ‘내가 10리 가 줄게’라고 하면 내가 갑이 됩니다. 주기 싫은데 달라고 해서 주면 빼앗기는 것이지만, 주고 싶어서 달라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주겠다고 하면 베품이 되듯이요.”nbspnbsp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지 참석한 선생님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총 4명 선생님들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 중 마지막으로 질문한 선생님은 아이들의 상담 지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경험담을 들려주며 상담자의 기본 자세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nbspnbspnbsp“학교 현장에서 아이들 상담을 하다 보면 개인적인 고민이나 진로, 생활상담 등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게 되지만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 그렇구나’ 이렇게 들어주고 마음을 풀어주고 공감을 해주는 게 우선적이긴 하지만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보면 아이의 미래를 개척해주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볼 때 그 아이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창의적으로 해결해 나가면 그 미래가 개척이 되는지, 아니면 옛날 방법으로 보면 사주팔자처럼 그 아이의 미래가 정해져 있는지 고민될 때가 많아요.nbspnbsp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그래, 그래’ 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아이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해주기가 정말 겁날 경우가 있어요. ‘어떻게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하는 고민이 나름대로 해소가 안 될 때가 많거든요.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nbsp“제 경우에 이런 즉문즉설을 하면 두 시간 동안 67명씩, 많을 때는 10명 정도와 대화를 나눕니다. 개중 제 이야기에 다 동의했지만 제가 이야기한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딱 질문할 때 벌써 ‘이야기해주면 뭐하나, 어차피 안 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고, 다음으로 ‘이런 강연 하면 뭐해, 어차피 안 할 건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죠. 이렇게 되면 강연을 할 수가 없어요.nbspnbsp이런 걸 욕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내가 말하면 남이 반드시 따라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인생은 다른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내가 뭔가를 해결해 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지금 이 고뇌의 원인입니다. 그는 지금 답답해서 묻는 것이고, 나는 내 능력껏 대화를 하는 것뿐입니다. 하고 안 하고는 본인의 문제예요.nbspnbsp그러니 욕심을 안 내야 해요. 부모도 자식 인생을 마음대로 못하고, 남편도 아내를 마음대로 못하고, 아내도 남편을 마음대로 못 하는데, 한번 봤을 뿐인 제가 그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건 건방져도 너무 건방진 생각입니다. 그러니 들어주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알면 아는 만큼 이야기해주고, 그냥 이렇게 하는 거예요. 저는 이야기할 때 핀잔도 팍팍 줘버리잖아요. 직업 상담사가 이렇게 하면 손님 다 떨어져요.nbspnbspnbsp그런데 저는 돈을 안 받기 때문에 눈치 볼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욕설 빼놓고는 그냥 제 생각대로 다 이야기해요. 예컨대 질문자는 ‘자기 남편이 또라이 같다’ 라고 하는데 저는 ‘얘기를 들어보니 당신이 또라이네’ 라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그 사람더러 무턱대고 또라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먼저 누구를 또라이라고 하면 제가 이야기를 듣다가 ‘당신이 또라이네요’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렇게 저는 대화할 때 자유로운 편이에요.nbspnbsp선생님이 학생들과 대화할 때 나이가 많다고 혹은 선생님이라고 이 아이를 어떻게 해주려고 생각하니까 그게 안 되면 내 능력이 부족하다고 자책하는 생각이 들거나 내가 말한 대로 안 한다고 아이가 얄미워지는 일이 생기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놓아야 해요. ‘누구의 인생에 대해서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게 상담의 가장 기본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첫째,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겁니다. 둘째, 공감해주는 거예요. 그걸로 끝이에요. 그것만 해도 고민의 7080퍼센트는 낫습니다. 그 동안은 말할 사람조차 없었으니까요.nbspnbsp만약 어떤 학생과 상담을 했는데 해결책을 모른다면 ‘그건 나도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이야기하면 돼요. 그걸 무엇 때문에 머리를 써요? 그냥 모르면 ‘나도 모르겠다’ 이러면 돼요. 그 다음에 내 경험이 있으면 이야기해 주면 됩니다. ‘나는 옛날에 이렇게 해봤더니 이런 도움이 되더라.’ 그런데 이 때도 ‘이러면 된다’ 라고 이야기하면 안 돼요. ‘내가 이랬으니까 너도 하면 된다’ 이건 위험한 생각입니다. 사람마다 상황과 기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이랬다, 나도 어릴 때는 너처럼 이러저러했는데 그러다가 이렇게 했더니 도움이 되더라’ 이렇게 이야기해주면 됩니다.nbspnbsp이건 이사장님께 부탁드려야 할 것 같은데, 학교 다니다가 술 마시고 싸우고 사고 치고 하다가 정신 차리고 공부하는 애들을 사범대에 보내야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부분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 하고 착실했던 사람이 선생님이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되고 나면 공부 안 하고 농땡이치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어요. 도무지 왜 그러는지를 모르니 선생 자격이 없습니다.nbspnbspnbsp지적인 자격만 있지 진정한 교사 자격이 없어요. 이해하려고는 하지만 경험적으로 거부 반응이 생겨요. 머리로는 이해가 되더라도 마음에서는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이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치 못하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거든요. 그러니 편안하게 듣고 그냥 내가 생각한 대로 이야기하면 돼요. ‘나도 다 맞는 건 아니지만 이러면 좋겠다.’ 이렇게요.nbsp그리고 부모를 떠나 혼자 사는 아이들은 보살펴주면 해결이 될 것 같지만 너무 이렇게 감정적으로 쉽게 접근하면 안 돼요. 특히 여자 선생님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엄마로부터도 버림을 받은 상처가 있어서 사랑을 갈구하는데 책임을 못 져주잖아요. 내 말대로 하면 책임져 주겠지만 내 말대로 안 하면 힘들다고 팽개칠 거잖아요. 내 자식도 팽개치는 세상이니까요. 그러면 이 아이들에게는 또 상처가 돼요. 그래서 쉽사리 자선을 베풀면 안 되고, 쉽사리 고치려고 해도 안 돼요. 한번 마음을 줬으면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길게 보고, 최악의 경우만 막아주는 역할을 하면 돼요.nbspnbsp‘아, 내가 좀 술 마신 게 좀 문제다’ 이렇게 자기가 자각을 하면 금방은 안 고쳐지더라도 고쳐지는 쪽으로 첫 발을 내딛습니다. 우리 인간의 뇌에는 그런 기능이 있어요. 사람의 뇌를 닮게 만드는 인공지능이 자가발전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기준이 되는 분기점이 여기예요. 그 지점을 넘어가면 이제 자동으로 업그레이드되고, 그걸 못 넘어가면 업그레이드를 계속 사람이 시켜줘야 해요.nbspnbsp그런데 우리가 흔히 사주팔자라고 하는 건 실제로는 생년월일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인공지능에 마치 프로그램을 깔듯, 엄마가 아이를 낳아 키울 때 프로그램이 깔린다는 뜻입니다. 특정한 가족의 상황에서 태어나서 주로 세 살 무렵까지 자라는 동안 심리적 바탕에 엄마의 프로그램이 깔리고,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기본형의 프로그램이 깔려요. 그래서 예부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천성은 못 고친다,’ ‘천성이 바뀌는 걸 보니 죽을 때가 다 됐나보다’ 라고 해요. 형성된 천성을 바꾸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nbspnbspnbsp천성이란 실제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에요. 생년월일시를 가지고 생성되는 게 아니고, 전생이 있어서 생성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게 워낙 잘 안 바뀌니까 중국에서는 생년월일을 가지고, 인도에서는 전생을 가지고, 다른 데서는 하느님이 조정한다는 것을 가지고 옛날 사람들이 그렇게 추론했던 거예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nbsp업이라는 것은 원래 정해진 게 아니라 이렇게 프로그램이 깔리면서 형성되는 거예요. 그렇게 기본 프로그램이 한번 깔리면 변경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주라는 말도 나오고 천성이라는 말도 나와요. 그렇다고 바뀌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그러나 쉽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바뀌는 것 같다가 또 돌아오고, 바뀌는 것 같다가 또 돌아와요. 여러분들 경험을 생각해보세요. 어머니가 점점 늙어서 70살, 80살이 되면 어릴 때 봤던 외할머니 모습과 비슷해지잖아요. 쏙 빼닮아요. 잘 관찰해보세요. nbsp콩이 싹터서 자라는 동안은 콩 모습이 없다가도 열매 맺을 때가 되면 콩이 딱 달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학교 교육 같은 것은 지적인 문제예요. 기본 기질은 말년에 이르면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그래서 ‘운명이 정해져 있다’라고들 말하는 거예요.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프로그램이 딱 깔리면 이대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사주란 말도 나오고 전생이란 말도 나오는 거예요. 이걸 바꿀 수는 있지만 쉽게는 안 바뀝니다. 이것까지 바꾸려면 한번 죽었다가 살아날 정도가 돼야 해요.nbspnbspnbsp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간 금식하시면서 한 번 죽었다가 거듭났기 때문에 하느님의 음성을 들은 거예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라’라는 성령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이 바로 업이 바뀐 거예요. 부처님은 6년 고행을 하면서 환골탈태한 거예요. 병으로 그랬든, 잡혀가서 감옥에서 죽을 뻔했든, 성인들은 다 한번 죽었다가 거듭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야 업이 바뀌는데, 여러분들은 지금 그렇게까지 수행할 생각은 없잖아요. 사실은 바꾸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아요. 화 잘 내는 걸 못 바꿔서 고민인 사람은 화낼 때마다 전기충격기로 지져버리면 10번만 해도 딱 고쳐집니다.nbspnbsp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서 바꿀 생각은 없기 때문에 못 바꾸고, ‘못 바꾼다’ 라고들 말한는 거예요. 절대로 안 바뀐다는 게 아니라, 바꿀 수는 있는데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욕심을 내면 안 돼요. 못 바꾼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해도 안 되고 뭘 하면 바뀐다고 낭만적으로 이야기해도 안 됩니다.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므로 바뀔 수는 있지만, 바뀌기는 어려워요.nbspnbsp이걸 바꾸려면 두 가지가 중요해요. 첫 번째,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지속적이 돼야 합니다. 계속 반복해야 그게 바뀌어요. 이게 천성을 바꾸는 방법이에요. 그렇다고 꼭 바꿔야 되는 건 아니에요. 예컨대 불끈불끈하는 성질이 통제가 안 된다는 경우에 내가 성질이 더러운 줄을 알면 안 바꿔도 돼요. 성질 확 냈다가도 아내한테 ‘아이고, 여보, 미안해요. 내가 성질이 좀 더러워서.’ 이렇게 사과하면 이혼 안 하고 살 수준은 돼요. 자기를 못 바꿔도 살기는 살 수 있어요.nbspnbsp이런 원리를 알아서 첫째, 조급하게 바꾸려고 들면 안 돼요. 이건 원래 잘 안 바뀌는 거예요. 그러니 조금 장기적으로 봐야 합니다. 두 번째, 의지가 굳세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자꾸 작심삼일이 되거든요.nbspnbsp그러니 아이들을 좀 느긋하게 봐줘야 해요. 이미 집에서 까르마, 즉 기본 프로그램이 깔려서 학교에 온 아이들을 내가 바꾸려고 하면 안 바뀝니다. 그 아이는 그런 성격과 그런 프로그램이 깔린 거예요.nbspnbsp그러나 어떤 프로그램이 깔린 아이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이게 제일 중요해요. 피부가 검은 아이도 행복할 수 있고, 신체장애를 가진 아이도 행복할 수 있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도 그 수준에서 행복할 권리가 있고, 공부를 못 하는 아이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부모님이 안 계신 아이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측면에서 보세요. ‘그래, 너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아이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일하면 큰 문제가 없습니다. 지금 한 반에 몇 명이에요?”nbsp“35명입니다.”nbsp“35명 중에 바꿀 아이는 크게 없어요. 그런데 꼭 한 아이 때문에 선생 하기 싫죠. ‘저 놈만 없으면 선생 할 만한데’ 라고 생각하지만 그 학생이 없어지면 또 그런 학생이 생겨요. 길거리에 ‘때려 주세요’ 라고 써놓은 두더지 게임과 똑같아요. 이걸 때리면 저기서 튀어나오고, 저길 때리면 여기서 튀어나와요. 인생을 살면서 ‘이것만 어떻게 하면 내가 살만한데’라고 하지만 그게 안 없어져요. 그게 없어지면 배우자한테, 자식한테, 부모한테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인생이란 늘 이렇게 여기저기서 두더지가 튀어나오는 가운데 사는 거예요. 아까 갈등 속에서 산다고 한 것처럼 이런 건 늘 있어요.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저 아이가 있음으로 해서 그 아이가 나머지 34명을 좋은 아이로 만들어주는 거예요. 1등 하는 아이를 기준으로 보면 35명이 모두 모자란 아이가 되지만, 35등 하는 아이를 기준으로 잡으면 앞의 34명이 다 좋은 아이예요. 그 35등 하는 아이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예요.nbspnbspnbsp그러니 그걸 고치려고 해도 안 되고, 그 아이를 내쳐서도 안 됩니다. 그런 기질을 가진 속에서도, 즉 공부를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약간 성질이 있으면 있는 대로 그 아이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선생으로서 차단을 해줘야 합니다. 이렇게 느긋하게 생각하면 화가 안 나는데, 여러분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교육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성질나서 때리거나, 야단치면서 자기 성질을 푸는 것 아니에요? 솔직하게 말해보세요.”nbsp“네.”nbsp“그렇게 스트레스를 푸는 식으로 하면 교육 효과는 안 납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수행을 좀 해야 해요. 수행이라고 해서 절을 하라는 게 아니라, 사물을 조금 폭넓게 보고 느긋하게 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특히 상담하시는 분들은 그런 자세가 더욱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들 가르치는 것을 재미있게 생각하세요.”nbsp스님이 얘기해 준 상담하는 자세가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많았는지 선생님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기뻐했습니다.nbspnbsp네 분의 질문에 모두 답변을 마치고 나니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늦게 마쳤습니다. 훈산학원 교직원들과 원불교 관계자들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명강연을 들었다며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저녁 6시 30분에 우석고등학교를 나온 스님은 스님을 뵙기 위해 찾아온 손님과 저녁식사를 한 후 서울로 출발해 10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내일은 아침 7시부터 평화재단에서 연이어 미팅과 회의를 가진 후 저녁 7시에는 전북 익산 솜리문화예술회관 중공연장에서 익산시민들과 함께 ‘통일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 스님의 하루 구독자와 함께하는 공개방송을 마련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나도 스님에게 질문을 해보고 싶다 하는 요청이 많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제 직접 스님에게 질문해 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공개방송 신청을 누르시면 됩니다. nbspnbspnbsp

2016.03.25. 73,037 읽음 댓글 42개

2016.3.24 (오전) 경기여고 동문회 카톨릭 모임 초청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70대 어르신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아침 10시에 경기여고동문회 카톨릭 모임에서 초청한 강연에서 ‘행복’을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오후 4시에는 전주 우석고등학교 초청으로 교사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했는데요. 먼저 70대 어르신들과 함께한 카톨릭 모임 초청 강연 소식부터 전해 드립니다.nbspnbsp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서울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법당에서 예불을 함께 올린 후 아침 9시 30분에 초청 강연이 열리는 경기여고 100주년 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이 기념관 앞에 도착하자 경기여고 카톨릭 모임의 우선희 회장님이 반갑게 스님을 마중해 주었습니다. 우선희 회장님의 남편 되시는 분이 윤여준 전 장관님인데 스님과 윤 전 장관님은 한반도의 평화와 사회적인 진보를 위해 십 수 년째 활동을 함께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봄에 사모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오늘 초청 강연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nbspnbsp강당을 가득 메운 100여 명의 동문회 참석자들은 스님이 들어서자 열렬한 박수로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들이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어르신들에게 옛날 기억을 한번 떠올려 보라고 하면서 옛날보다 지금이 경제적으로 더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행복한지 질문을 던지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저는 어떤 지식적인 것을 갖고 여러분들과 얘기할 만큼 수준이 깊지 않습니다. 저는 산골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 다니다가 절에 들어왔기 때문에 세상의 교육을 많이 받지 않았습니다. 소위 신부님들은 유학도 다녀오고 하잖아요. 다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해 대화를 해보고자 합니다.nbspnbspnbsp돈이 많으면 행복하다는 말이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돈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던가요? 저도 돈 많은 사람들을 상담해 보지만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짧게만 보면 지위가 높으면 행복할 것 같은데,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만나보면 행복하다고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많은 괴로움을 갖고 있습니다.nbspnbsp다들 연세가 있으시니까 50년 전을 기억하시죠? 1960년대에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1인당 100불 정도 되었습니다. 지금은 2만 8천불까지 되었지 않습니까. 약 300배 가까이 늘었잖아요. 그런데 우리 삶이 300배 행복해졌습니까? 여러분들 할머니보다 여러분들이 300배 행복해졌습니까. 300배는 고사하고 30배 행복해졌습니까? 30배는 고사하고 3배는 행복해졌습니까?nbspnbspnbsp여러분들도 오래 사셨으니까 과연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까, 어떻게 해야 자유로워질까, 죽음 앞에서도 두렵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눠보았으면 합니다.”nbsp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대화를 연 후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총 3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참석자들이 모두 천주교 신자들이어서 그런지 모두 윤리 도덕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선의의 거짓말을 해도 되는지, 거짓말로 인해 가족이 고통을 당하게 되는 일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는 것인지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 등 각각에 대해 스님은 윤리 도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그 중 첫 번째 질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nbsp“저는 보기에는 솔직 담백한 것 같아도 지난 77년 동안 거짓말을 참 많이 하고 자라왔어요. 거짓말이라고 하면 빨간 거짓말, 하얀 거짓말이 있다고 하잖아요. 이 거짓말을 해서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고요. 저희 옆집에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사는데 어제가 자기네들 예수 신앙 기념일이라고 해요. 그래서 저보고 같이 가자고 하기에 저는 천주교인이니까 가기가 싫었어요. 그 때 제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성당에서 특강이 있어서 못간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사실은 가기가 싫었는데 말이죠. 이럴 때 제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이 괜찮은지요?” nbsp“괜찮아요. 왜 괜찮냐 하면 베드로님께서도 하루 저녁에 세 번이나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nbsp부인했는데 그래도 성인이 되셨잖아요. 그 때 ‘나는 예수님의 제자이다’ 하고 말하고 죽는 것이 나았을까요? ‘아니다’ 라고 부정하고 살아서 이 진리를 조금 더 널리 전하는 게 나았을까요?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반드시 말할 수는 없어요.nbspnbspnbsp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첫째, 상대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말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에게 괴로움이나 손해를 끼칠 자유는 없어요. 만약 산 속에서 혼자 산다면 욕을 하든지 무슨 말을 해도 괜찮습니다. 욕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이 안 되니까요. 만약 외국 사람이 운전하는 자동차와 충돌해서 기분이 나쁠 때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 새끼, 저 새끼’ 그러면 어떨까요? 그 외국 사람한테는 욕이 안 됩니다. ‘이 새끼’ 라는 것이 욕이 아니라 내가 욕이라고 느껴야 욕이 되는 겁니다. ‘이 새끼’라는 말은 하나의 언어일 뿐입니다. 욕이라고 정해진 것이 없어요. 말일 뿐이에요. 말인데 그것을 내가 욕이라고 생각하면 욕이 되는 거예요.nbspnbsp남이 나를 욕해도 내가 욕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욕이 안 되고, 남이 나한테 욕을 안 해도 내가 욕이라고 생각해버리면 욕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는 내가 욕을 안 했는데도 욕을 했다고 시비가 일어날 때도 있고, 내가 욕을 했는데도 상대가 웃으면서 그냥 농담으로 받아들이면 아무런 문제도 안 생길 때가 있습니다. 욕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상대에게 들리느냐의 문제입니다.nbspnbsp외국에 가보면 외국의 중요한 언어가 우리말 발음으로 하면 욕이 되는 언어가 있잖아요. 반대로 우리말로는 좋은 말인데 그 나라 발음으로는 욕이 되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오해가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욕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먼저 접근을 해야 합니다.nbspnbspnbsp그러면 내가 욕을 안 했는데도 상대가 나보고 욕을 했다고 하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될까요? ‘나는 욕을 안 했다’ 라고 말해야 됩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내가 미안하오’ 이렇게 얘기해야 합니다. 상대가 그렇게 들었다고 하니까 그것은 인정을 해야 합니다. ‘욕으로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라고 말한 후에 ‘그러나 저 입장에서는 그런 뜻으로 한 얘기는 아닙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앞에서 ‘죄송하다’라고 말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욕을 했기 때문에 죄송하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욕이라고 받아들이니까 일단 내가 사과부터 먼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도 해명할 기회가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먼저 말을 하고 그 다음에 ‘그러나 저의 입장에서는 그런 뜻으로 한 얘기는 아닙니다’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nbspnbsp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내일 교회에 갑시다’ 라고 얘기하면 ‘저는 천주교 신자이니까 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라고 내 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나는 가기 싫어’ 라고 화를 낼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겁니다. 상대를 시비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렇다고 표현하는 겁니다.nbspnbsp거짓말이라고 정해진 것은 본래 없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말이라는 것은 상대에게 의사를 전달하고, 남을 위로하고, 남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는 것이 원래의 성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을 통해 남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가장 근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다른 강의가 있어서 참가를 못하겠습니다’ 라고 말한 것은 거짓말이 절대적으로 있다고 생각하면 거짓말이 되는 것이지만, 그 말이 상대에게 피해를 주었나요? 아무런 피해를 안 주었잖아요. 그래서 괜찮다고 말한 겁니다.nbspnbspnbsp이 말은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케이스는 첫째, 상대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둘째, 본인한테도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 문제를 갖고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겠다 싶습니다. 즉 언어의 절대성은 없다는 것이고요. 그 다음에 상대에게 피해를 준 것 같지도 않고, 본인한테도 특별히 피해를 주지는 않았으니까 제가 느끼기에는 그 정도 말에는 너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되겠다 싶습니다.nbspnbsp그러나 이건 조심해야 합니다. 나는 그때 그때 별것 아닌 듯이 거짓말을 했는데 상대가 볼 때는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안 된다는 겁니다.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nbspnbsp예를 들어 남녀가 결혼을 했는데 상대가 묻지도 않는데 당신하고 만나기 전에 어떤 여자, 어떤 남자와 연애를 했었다고 하는 얘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어요. 그 얘기를 안 했다고 거짓말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부부 사이에서 상대가 ‘결혼하기 전에 연애해 본 적 있어요?’라고 묻는데, ‘없다’ 라고 대답하면 그것은 거짓말이 됩니다. 이 때는 ‘있다’ 라고 얘기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로 연애했냐?’ 라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연애를 했었다’라고 솔직하게 얘기해도 괜찮아요. 그것 때문에 상대가 ‘나는 너하고 못 살겠다’라고 한다면 그런 사람하고는 같이 살 필요가 없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nbspnbspnbsp이렇게 사실대로 얘기하는 게 좋기는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 앞의 경우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옛날 얘기는 서로 묻지 맙시다. 우리의 만남은 지금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고 좋으냐의 문제이지 옛날에 너가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은 옳지 않지 않느냐?’nbspnbsp그런 사실이 실제로 있었고 없었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해서 지금을 부정하거나, 그런 사실이 없는 것이 좋다고 한다면, 이 사랑 자체가 불안전한 사랑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사실은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당신이 과거에 어떤 경험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그 모든 것을 포함한 당신을 지금 나는 사랑한다.’nbsp그래서 이런 과거는 얘기를 해도 되지만, 상대의 성숙도를 봤을 때 조금 힘들어하겠다 싶으면 ‘연애 안 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보다는 ‘그런 얘기는 안 하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설령 실제로 연애를 안 했다 하더라도, 자신있게 ‘나는 안 해 봤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자꾸 정답 맞추기를 하는 것은 좋은 대화의 방식이 아닙니다.nbspnbspnbsp그런데서 거짓말의 성격을 너무 절대화시키지 마세요. 그렇다고 해서 빨간 거짓말이 있고, 하얀 거짓말이 있다고 하면서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여기면 너무 주관주의에 빠지게 돼요. 술 먹고 취한 사람들 중에 자신이 취했다고 얘기하는 사람 못 봤잖아요. 그런 것처럼 주관주의가 되어 버립니다. 결론적으로 이 케이스에 대해서는 그렇게 너무 죄의식을 안 가져도 될 것 같습니다.”nbspnbsp스님의 답변에 질문한 할머니는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어제 거짓말을 한 것이 마음에 많이 걸려 있었는데 이제 말끔히 해소된 것 같았습니다.nbspnbsp질문은 3명 밖에 안 했지만 스님은 각각의 답변 속에서 성소수자 문제, 인도에서의 계급 차별 문제, 예수님의 가르침과 당시 유대교의 신앙,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불교에서는 계율을 어떻게 보는지 등 많은 이야기들을 함께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스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젊었든, 늙었든, 결혼했든, 안 했든, 혼자이든, 둘이든, 아기가 있든, 없든, 신체 장애가 있든, 건강하든, 어릴 때 가난한 집에 태어났든, 성추행을 당했든, 어떤 경험을 했든, 성적 취향이 어떻게 태어났든, 피부 빛깔이 어떻든, 어느 나라에 태어났든, 지금 살아 있다면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로 문제를 삼지 말아야 합니다.nbspnbspnbsp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 우리는 그 권리를 행사해야 될 것 아니에요? 그래서 행복하셔야 해요. 윤리 도덕을 무시했던 게 아니라 그 윤리 도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던 예수님, 그 분께서 우리에게 이런 자유를 주셨잖아요. 그러니 여러분들도 자유로운 삶을 사시길 진정으로 바랍니다.nbspnbsp‘나이가 조금만 젊었으면’ 이런 얘기는 지금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지금 연세가 80이라면 ‘내 나이가 70만 되었어도’ 이런 얘기는 하지 말고, ‘옛날에는 80까지 못 살았는데, 지금 80까지 살고 있다는 것만 해도 큰 복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몸이 좀 아프면 ‘옛날 같으면 아프면 죽었는데,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살았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몸이 좀 아프고 여러 가지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이렇게 살아있는 것 자체가 복인 줄 알면 여러분들이 지금보다는 좀 더 행복할 수 있습니다.nbspnbsp그런데 여러분들은 항상 불행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항상 ‘남편이 없어서 불행하다’,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 ‘애가 말을 안 들어서 불행하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여러분들은 ‘나는 불행해야 한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불행해야 한다고 미리 정해놓고 거기에 이유를 자꾸 가져다 붙여요. 그런데 남편이 없는 것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지 불행해야 할 조건이 아니에요. 이 나이가 되어서 또 남편 시중들 이유가 뭐가 있어요?nbspnbsp‘있으면 있어서 행복하다’, ‘없으면 없어서 행복하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이예요.”nbsp긍정적인 생각으로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스님의 열정적인 말씀에 모두들 환한 웃음으로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강연을 마친 후 잠깐 기념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장소가 비좁아 전체가 같이 사진을 찍지는 못하고, 삼삼오오 앞으로 나와 원하는 사람들만 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경기여고 100주년 기념관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전주로 향했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원불교 김대선 교무님의 요청으로 전주 우석고등학교에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3.24. 94,817 읽음 댓글 35개

2016.3.22~23 부처님 열반일 기념법회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것을 기념하는 불기 2559년 열반일입니다. 스님은 열반일을 맞이해 서울 정토회관에 모인 300여 명의 대중들을 위해 ‘열반의 의미’에 대해 기념법문을 했습니다.nbspnbsp어제 새벽 1시에 울산 두북을 출발한 스님은 5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곧바로 아침 7시 30분부터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연이어 미팅과 회의를 가졌습니다. 오후 1시에 미팅과 회의를 모두 마친 후 오후에는 치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nbspnbsp오늘은 아침 7시 30분부터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이 있었습니다. 종교인 모임을 마친 후 10시부터는 서울 정토회관 1층 법당에서 부처님 열반일을 맞이해 기념법회가 열렸습니다. 법당을 가득 메운 300여 명의 대중들은 청법가와 삼배로 스님에게 법을 청했습니다.nbspnbspnbsp법상에 오른 스님은 “지난 일주일 동안 정진 잘 하셨습니까?”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대중들이 큰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하자, 스님은 “수고 많으셨어요” 라고 격려하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대중들은 지난주 부처님 출가 기념일로부터 오늘까지 8일 동안 매일 스님의 영상 법문을 듣고 300배 정진을 함께 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열반’이라는 용어가 일반인들에게는 많이 낯선 용어인데 ‘열반’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었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불기 2559년 음력 2월 15일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열반절입니다. 열반이라는 용어는 두 가지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첫번째 의미는 모든 고뇌가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는 ‘니르바나’, 빨리어로는 ‘닙빠나’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을 우리식 한문으로 옮겨서 표현하다보니 ‘열반’이라고 부르게 된 겁니다. 인도말을 발음을 따서 옮긴 것이기 때문에 무슨 ‘열’자인지 무슨 ‘반’자인지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 뜻을 풀이하자면, 모든 고뇌가 소멸하고 아주 고요한 상태에 있다고 해서 ‘적멸’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nbspnbsp두 번째 의미는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것을 뜻합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것은 완전한 고요함에 드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완전한 열반, 즉 ‘반열반에 드셨다’라고 표현합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는 모든 고뇌가 사라진 경지에 이르셨다고 해서 ‘열반을 증득하셨다’ 라고 말한다면, 부처님께서 돌아가실 때는 완전한 열반에 드셨다고 해서 ‘반열반에 드셨다’라고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살아있을 때도 이미 열반적정의 경지에 있으셨기 때문에 돌아가시는 것이나 살아있을 때나 아무런 차이가 없으셨어요. 우리는 어려움에 처하거나 죽음 앞에 이르면 두려움이 생기잖아요.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죽음 앞에서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으셨어요. 이미 모든 고뇌가 사라진 경지에 드셨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저녁에 잠잘 때 편안하게 쉬는 것처럼 부처님께서는 생의 마지막을 그렇게 보내셨어요.nbspnbspnbsp그런데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있으면 병이 들잖아요. 통증도 있고 밥을 안 먹으면 배도 고프고요. 또 친한 사람이 죽거나 어려움에 처하면 슬픔에 빠지지는 않더라도 약간의 슬픔은 일어날 수 있지요. 고뇌가 사라졌다고 해서 돌멩이처럼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육신을 버림으로 해서 어떤 흔들림도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서 열반에 드셨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그래서 ‘열반을 증득했다’는 것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뜻이고, ‘열반에 드셨다’는 것은 한 생을 마쳤다는 뜻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것은 기쁨을 뜻하고 죽는 것은 슬픔을 뜻하니까 열반이라는 용어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지 않나 싶지만 모두 같은 뜻으로 쓰인 겁니다.nbspnbsp부처님은 항상 고요 적정에 있었기 때문에 돌아가신다고 해서 흔들림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오실 때나 가실 때나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고 해서 ‘타타가타’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가고 옴이 여여하다라고 해서 이것을 한문으로 옮기면 ‘여래’ 라고 표현합니다. ‘오늘이 열반절이다’ 하는 말은, 세속으로 말하면 ‘부처님이 돌아가신 날이다’ 하는 뜻이고, 원래의 의미는 ‘부처님이 고요적정함에 드셨다’ 하는 뜻입니다.”nbspnbsp열반의 의미를 이해한 대중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한 해를 자세히 기록해 놓은 열반경의 내용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열반경에 드러난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스님은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nbspnbsp“여러 경전들 중에 ‘열반경’이라는 경전이 있습니다. 열반경에는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한 해가 일기처럼 기록되어 있어요. 부처님이 쿠시나라가에 도착할 때까지의 하루하루 생활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 출발점이 당시 최대의 제국인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그라하’, 즉 왕사성입니다. 왕사성 밖에 언덕이 있는데 그 언덕 이름이 ‘그리드라쿠타’예요. 우리말로 옮기면 ‘독수리봉’인데, 한문으로 옮기면 ‘영축산’이라고 불리우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제자들에게 설법하는 장면으로 경전이 시작됩니다. nbspnbspnbsp열반경 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 중에 하나가 500명의 유녀를 거느린 암나팔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갖고 있던 망고 동산에 부처님이 와 계신다고 하자 암나팔리가 마차를 타고 와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자 부처님께서 좋은 법문을 해주었어요. 이 법문을 듣고 암나팔리가 크게 깨달았어요. 너무 기뻐서 다음날 아침에 부처님과 제자들을 자신의 집에 식사 초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바이샬리의 리차비족 왕족들도 부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오다가 암나팔리와 마주치게 됩니다. 암나팔리는 먼저 와서 친견하고 돌아가는 길이었고, 리차비족 왕족들은 친견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암나팔리는 내일 아침 공양을 준비해야 하니까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보니 서로 부딪치게 되었어요. 진흙이 튀고 해서 옷을 다 버리게 되니까 왕족들이 화가 나서 야단을 치면서 이렇게 문답이 오갑니다.nbspnbsp“버릇없이 왜 그러느냐?”nbsp“아이고, 어르신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급한 일이 있어서 실례를 했습니다.” nbsp“뭐가 그리 급하냐?”“내일 아침에 제가 부처님을 식사 초대 했습니다.”nbsp그런데 왕족들이 생각해보니까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부처님인데 당연히 왕족들이 제일 먼저 초대하는 것이 맞잖아요. 그런데 기생이 먼저 초대를 했으니 자신들의 체면이 구겨졌다고 여긴 겁니다.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nbspnbsp“그 초대권을 우리한테 넘겨주면 어떻겠느냐?”nbsp“싫습니다.”nbspnbsp그러자 다시 묻습니다.nbspnbsp“10만금을 주겠다. 초대권을 넘겨 주겠느냐?”nbspnbsp그러나 암나팔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nbspnbsp“10만금이 아니라 이 나라를 다 준다고 해도 싫습니다.”nbsp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제자들이 가진 당당함이었습니다. 왕족들이 보기에는 도대체 무엇을 깨달았기에 몸을 팔아 돈을 버는 기생 주제에 왕족의 요청을 안 듣는 정도가 아니라 나라를 준다고 해도 싫다는 정도의 당당함이 있는 것인가 싶었던 겁니다. 이런 재미있는 스토리가 열반경 속에는 주욱 펼쳐집니다.nbspnbsp그렇게 해서 부처님께서는 쿠시나가라에 도착한 뒤 사라나무 숲으로 들어가셔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사라나무는 느티나무나 보리수처럼 옆으로 가지가 뻗는 큰 나무가 아니고, 미루나무처럼 위로 키만 크는 나무입니다. 그런 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진 나무와 나무 사이의 그늘에 자리를 깔았던 거예요. 두 그루 사이에 드리워진 그늘에 웃옷을 벗어서 네 겹으로 깔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얼굴은 서쪽, 머리는 북쪽, 다리는 남쪽을 향하게 누우신 뒤 ‘오늘 저녁에 여기서 열반에 들겠다’고 선언을 하셨어요.nbspnbsp그러자 아난존자가 너무 슬퍼서 혼자 울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부처님께서는 아난존자를 위로하는 설법을 하셨습니다.nbspnbsp“아난다여, 슬퍼하지 마라.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다. 육신은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너희 곁에 남아 있으리라.”nbsp이후 아난존자의 질문과 부처님의 답이 계속됩니다.nbsp“지금까지 우리는 늘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부처님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까?”“4대 성지를 생각하라”nbsp4대 성지는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룸비니,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신 보드가야,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법하신 사르나트,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쿠시나가라를 말합니다. nbspnbsp“우리는 늘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셨는데,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 우리는 누구를 스승으로 삼아야 합니까?”“나의 가르침인 계를 스승으로 삼아라. 계를 지니고 있으면 나와 함께 있는 것과 같고, 비록 나와 같이 있다 하더라도 계를 지키지 않으면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니라.”nbsp“우리는 늘 부처님을 의지하고 살았는데, 부처님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무엇을 의지해야 됩니까?”nbsp“사념처에 의지하라.”nbspnbsp사념처란 첫째, 관신부정, 즉 몸이라는 것은 청정한 것이 아니다. 둘째, 관수시고, 즉 느낌이라는 것은 사실 괴로움이다. 셋째, 관심무상, 즉 마음이라는 것은 늘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으로써 항상한 게 아니다. 넷째, 관법무아, 즉 모든 존재는 실아가 없다. 이렇게 네 가지를 말합니다. 이것을 관하는 것이 명상이고 위빠싸나입니다.nbspnbsp“우리는 늘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서 큰 공덕을 지었는데,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 때 우리는 어디에 공양을 올려야 큰 공덕을 지을 수 있습니까?”“네 가지를 공양하라.”nbsp네 가지는 첫째,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공양해서 배불리 먹게 하고, 둘째, 병든 자에게 약을 공양해서 병을 낫게 하고, 셋째,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며, 넷째, 청정하게 수행하는 자를 잘 외호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이 네 가지 중에 앞에 있는세 가지를 따서 만든 게 JTS의 슬로건이에요. ‘배고픈 자는 먹어야 하고, 병든 자는 치료받아야 하며,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한다’는 게 그것입니다. 굶고, 병드는 건 생존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들을 제외하고 가난을 가장 뚜렷하게 상징하는 징표가 바로 제 아이를 가르치지 못하는 거예요. 얼마나 가난하면 제 아이를 공부시키지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그게 누구의 아이든 아이들은 모두 기초교육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nbspnbspnbsp그렇듯이 남북관계가 나쁠지라도 북한 사람들이 굶어죽으면 음식을 지원해야 되고, 병들면 치료약을 보내야 되고, 아이들은 모두 초등학교까지는 공부할 수 있도록 교육교재 등을 지원해야 됩니다. 그래서 JTS를 만들어서 필리핀의 무슬림 지역이나 원주민 지역, 인도의 불가촉천민 마을처럼 가난한 곳에 지원을 하는 겁니다. 심지어 불상을 막 때려 부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한테도 지원을 해야 합니다. 불상을 때려 부순 건 어른들이지 그 아이들이 아니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막 흥분을 해서 “그놈들은 굶어죽어도 싸”라고 하던데, 폭언을 하는 그 감정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문명인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nbspnbsp그 옛날 봉건제 사회에서도 부처님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예요. 예수님은 천국에 가는 기준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과 같다”고 하셨잖아요. 가장 작은 자에 대해서 여섯 가지로 설명합니다.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것,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주는 것, 헐벗은 자에게 옷을 주는 것, 병든 자에게 약을 주는 것, 나그네 된 자를 영접하는 것, 감옥에 갇힌 자를 면회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나그네 된 자’란 요즘 말로 난민, 이주노동자를 뜻하고, ‘감옥에 갇힌 자’란 양심과 신념을 지키다가 부당하게 옥살이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솔직히 우리 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종교인이고, 그 중에 불교와 기독교가 제일 많은데, 각기 가르침대로만 산다면, 지금 이 나라가 이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무엇을 위해서 절에 다니고, 교회에 다니는지 모르겠어요.nbspnbsp부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아난존자의 질문에 하나하나 설해주시기를 마치신 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에 뵈려고 온 많은 사람들의 인사도 다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밤이 깊어지자, 부처님께서 편안하게 열반에 드시게 하려고 모두 조용히 하며 밖에서 기다리는데, 120세의 수바드라가 와서는 “나는 부처님을 만나야 되겠다. 나한테 의문이 있는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못 물어보니까 지금 꼭 물어봐야 되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난존자는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하며 수바드라와 실랑이를 하게 됐습니다. 부처님께서 “웬일이냐?”고 물어서 아난존자가 “영감 하나가 와서 죽기 살기로 뵙자고 청합니다. 제가 안 된다고 했는데도 고집을 부립니다” 라고 하니까 부처님께서 “들여보내라. 그는 나에게 법을 물으러 왔다”고 하신 뒤 수바드라에게 “무슨 일인지 얘기하시오” 라고 말합니다. 수바드라가 “누구는 이렇게 주장하고, 누구는 저렇게 주장하는데, 이 사람은 저 사람이 틀렸다고 하고, 저 사람은 이 사람이 틀렸다고 하니 어느 게 맞고 어느 게 틀렸습니까? 아니면 다 틀렸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수바드라는 자기의 질문을 하지 않고 세상의 논쟁에 대해 질문을 했던 건데,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nbspnbsp“수바드라여, 나는 그들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 마음 속에 욕심과 질투를 품고 얘기하면 그가 무슨 얘기를 하든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러니 옳으니 그르니 따질 필요가 없다. 여덟 가지 삿된 것을 버리고, 여덟 가지 바른 길을 실천하라.”nbsp그런 후 팔정도를 설해 주시고, 사성제를 설해 주셨는데, 수바드라는 그것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이 분이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되신 분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시고 열반에 드십니다.nbspnbsp“나는 집을 나와서 51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근면 성실하게 부지런히 정진하고 살았다. 그러니 너희들도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해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nbsp그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법문의 핵심은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꾸준히 근면하게 성실하게 정진해야 합니다. 된다, 안 된다에 너무 치우치지 말고, 자기가 지은 업은 태산 같은데 며칠 정진해서 다 없앨 것처럼 난리 피우지 말고, 그저 ‘이렇게 하루 사는 것만 해도 고맙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죄인을 이렇게 살아있게 해 주는 것만 해도 고맙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정진하세요. 늙었다고 한탄하지도 말고, 병 좀 들었다고 한탄하지도 말고, 재산 없다고 한탄하지도 말고, 혼자라고 한탄하지도 말고, 그저 ‘살아있는 것만 해도 참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해 나가면 누구나 다 안온의 경지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nbspnbsp이렇게 부처님 한 분의 편안함이 우리 모두의 편안함으로, 부처님 한 분의 열반이 우리 모두의 열반으로, 마치 한 알의 씨앗이 썩어서 수많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 모든 중생들에게도 부처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런 뜻으로 열반일을 기리는 것이니 그 뜻을 잘 아시고, 그 소중함을 잘 아셔서, 오늘 출가열반일 1주일 정진은 회향하더라도 부처님의 열반 당시 마지막 말씀인 부지런히 근면하고 성실하게 정진하라는 말씀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nbsp오늘은 부처님 한 분의 열반이 우리 모두의 열반으로 열린 날이라는 말씀에 모두들 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마지막으로 법문을 마치면서 스님은 품위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nbspnbsp“세상살이에 대해서 조금 품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유행 따라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처럼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고 그러지 말고, 돈이 좀 있어도 수수하게 살면 좋잖아요. 없는 사람이 그렇게 살면 ‘극빈’이라 말하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살면 ‘청빈’이라고 말합니다. 속에 좀 들었는 데도 이렇게 안 내세우고 목에 힘 빼고 살면 ‘겸손하다’ 라고 말하고, 그저 없는 주제에 눈치 살펴가면서 굽신거리면서 살면 ‘비굴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비굴해서는 안 되고, 당당해야 되고, 그렇다고 교만하면 안 되고 겸손해야 합니다. 늘 마음은 부자로서 풍요로운 마음을 가지되 사는 모습은 청빈하게 사세요. 그렇다고 부처님처럼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나무 밑에서 자라고는 안 할 테니까, 돈 좀 있다고 무조건 집 큰 것 사고, 차 큰 것 사고 그러지 마세요. 또 가방에 물건만 담기면 되지 몇 백 몇 천 만원짜리 명품 가방 사서 들고 다니지 말고요. 자기가 속이 허하니까 물건으로 자꾸 채우려고 하는 거예요.nbspnbspnbsp그러니 이제는 사는 품위가 달라져야 돼요. 나쁜 의미의 귀족이 아니라 좋은 의미의 귀티를 내면서 사세요. 마음을 좀 풍요롭게 가지고요. 늘 쪼들리고 비굴하고 눈치 보며 살지 말고요.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 뭐가 겁날 게 있어서 그래요? 암나팔리와 같이 그렇게 당당하게 사세요. ‘내가 비록 기생을 하더라도 인간적으로 비굴하게 살진 않는다’ 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열반일을 기해서 부처님으로부터 이런 좋은 선물을 받아 지니기 바랍니다.”nbsp부처님의 마지막 열반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늘 감동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말씀,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말씀, 마음은 풍요롭게 가지되 청빈한 삶을 살아라는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겨 봅니다.nbsp법문이 끝나자 대중들은 지난 8일 동안 계속 해온 300배 정진을 이어서 했습니다. 한 배 한 배 절을 하면서 오늘 스님이 법문해 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오롯이 새겨보았습니다.nbspnbsp열반일 기념법회를 모두 마친 후에는 실무자들과 함께 여름에 있을 동북아 역사기행, 겨울에 있을 인도 성지순례에 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또 저녁에는 불교계 관계자들이 찾아와서 스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진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nbspnbsp내일은 오전 10시에 카톨릭 월례모임 초청으로 강연을 한 후 오후 4시에는 원불교 김대선 교무님의 요청으로 전주에서 초청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3.23. 58,862 읽음 댓글 4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