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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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대한민국, 화합과 통합으로 가기 위해서는?"

2016.5.26 (저녁) 평화리더십아카데미 특강

2016.05.28. 58,071 읽음 댓글 42개

"출가를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가요?"

2016.5.26 출가콘서트, ‘청춘, 자유를 향한 날개짓’

2016.05.27. 97,535 읽음 댓글 57개

2016.5.25 대전 청년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대전시청 대강당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nbspnbsp어제밤 포항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마치고 새벽 2시에 서울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평화재단에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과 기획회의 일정을 가졌습니다.nbspnbsp오후 3시가 되어서 강연을 하기 위해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항상 여유가 없어서 저녁 식사를 하지 못하고 곧바로 강연장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조금 일찍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근처에 메밀 국수를 맛있게 하는 집이 있다고 해서 모처럼 여유있게 저녁 식사를 한 후 강연장에 들어섰습니다.nbspnbspnbsp오늘 강연이 열린 대전시청은 강연 시작 1시간 전부터 많은 청년들이 입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무대 위로 오르자 좌석을 가득 메운 청년들은 열렬한 박수로 스님을 반겨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적나라하게 마음에 있는 고민을 얘기하면 좋겠다고 독려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총 12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것이 없어 성적에 맞춰서 대학에 입학했는데 기대보다 나오지 않는 성적에 스트레스 받고 있다는 간호학과 대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저는 간호학과에 다니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제 고민이 스님께 너무 사소하게 느껴질까봐 걱정이 되지만 저는 요즘 이 문제로 너무 힘들어요. 고3 때 대입 원서를 넣을 때까지 뚜렷하게 가고 싶은 학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적에 맞춰서 과를 썼고, 합격한 국문학과와 간호학과 중에 취업이 쉽다는 간호학과를 선택했어요. 열심히 하면 적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공부가 너무 어렵고 재미없고 의욕이 나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졸업을 해서 백의의 천사라는 간호사가 될 수 있을까요?nbspnbsp벌써 2학년인데 시간이 가는 게 무섭습니다. 그렇다고 그만둘 용기도 없고요. 왜냐하면 그만둔다고 해서 제가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게 없는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부모님께도 죄송하고요.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제 앞날이 걱정됩니다.”nbspnbsp“예, 걱정이 많겠어요. 그런데 제 조언은 그냥 다니는게 좋겠다는 거예요. 간호학과 말고 뚜렷이 꼭 해야 되겠다거나 죽어도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이 없으니까 이럴 때는 하던 일을 그냥 하는 게 좋습니다. 저도 스님 생활이 딱히 재미는 없어요. 저는 이게 좋아서 하는 줄 알아요? nbspnbspnbsp40여 년을 해 왔는데 이제 와서 그냥 그만두기에는 좀 그렇잖아요? 그렇다고 이 생활이 무슨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아무 재미도 없어요. 그렇다고 이것을 놔놓고 다른 것을 뚜렷하게 할 것도 또 없고요. 그러니까 그냥 하는 거예요.”nbsp“제가 고등학생 때는 공부할 때 참고서도 많이 있고, 공부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거든요. 물론 공부가 재미없었지만 그래도 공부를 하려면 할 수가 있었어요. 성적도 올릴 수 있었고요. 그런데 지금 대학교에 올라와보니까 교수님들은 수업을 책을 읽으시면서 그냥 진도를 나가시고, 저는 그 내용을 다 공부해서 시험을 쳐야 되는데 그 방식이 저한테는 너무 버거운 거예요. 그리고 과 특성상 외워야 되는 의학 용어가 많은데 제 머리가 안 좋은 건지 외우면 까먹고, 외우면 까먹고... 너무 성적이 안 나오니까 다른 사람들이 저를 볼 때 공부 못하는 애로 보는 것 같고...”nbsp“못하는 게 사실이잖아요.” nbspnbsp“너무 자존감이 떨어지는 거예요.”nbspnbsp“괜찮아요. 지금 꼴찌해요? 중간쯤 해요?”nbsp“저 정말 못하는 것 같아요.” nbspnbspnbsp“학과에 정원이 몇 명이에요?”nbsp“320명이에요.”nbspnbsp“그 중에 320등이에요?”nbsp“아니오...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제가 잘못 해요.” nbspnbsp“그러니까 ‘못 한다’는 게 1등을 못 한다는 건지, 10등을 못 한다는 건지 100등 안에 못 든다는 건지, 중간도 못 한다는 건지, 꼴찌를 한다는 건지, 그 ‘못 한다’는 기준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 말은 질문자의 기준이 너무 높은 거 아닌지 확인해 보려는 거예요.”nbspnbsp“제가 느끼기에 저는 꼴찌인 것 같아요. 저는 대전 토박이인데, 대학병원에 취업을 하고 싶거든요.”nbspnbsp“그런데 질문자가 서울대학교 들어가고 싶지만 성적이 안 되면 못 들어가는 것처럼 대학병원에 들어가고 싶지만 성적이 안 되면 다른 병원에 가도 돼요. 꼭 대학병원에 가야 될 이유는 없어요. 병원이면 되지요.”nbsp“그럼 제 능력껏 그냥 가면 된다는 말씀이세요?”nbspnbsp“그렇지요. 그리고 간호학과 4년 다니면 저처럼 아무 것도 안 배운 사람보다는 아픈 사람이 생기면 간호를 좀 더 잘 할 거 아니에요? 어떻게 생각해요?”nbspnbsp“아, 그런데 제가 지금 22살인데 2학년이거든요. 1년이 늦어졌어요.”nbspnbsp“그건 인생에서 아무 것도 아니에요.”nbspnbsp“그래요?” nbsp nbsp nbspnbspnbspnbsp“예. 그 나이 때는 1년이 중요하겠지만 나이 들어보면 1년, 2년, 3년, 5년도 아무 것도 아니에요.”nbsp“그런데 저는 1년이 늦어졌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마음이 조급해요.”nbsp“1, 2년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20년도 아무 것도 아닐 수가 있는데 1년 갖고 난리예요. 나중에 돌아보면 아무 것도 아니에요. 1년, 2년, 3년 재수했다고 엄청 늦어진 것 같지만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아무 문제도 없어요. 그러니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또 질문자가 잘 못 외운다는 문제도 걱정할 것 없어요. 졸업할 수 있는 수준, 즉 간호사 자격증만 따는 수준이면 돼요. 우수한 성적은 아니더라도 그런 수준은 돼요?”nbsp“예.”nbsp“간호대학 졸업했는데 간호사 자격증도 못 따는 수준이예요? 아니면 간호사 자격증 정도는 따는 수준은 되겠어요?”nbspnbsp“예, 자격증은 충분히 딸 수 있는데, 제가 욕심이 많은 건지, 제 성적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nbsp“왜 스트레스를 받느냐 하면, 질문자가 스스로를 너무 높이 평가해서 그래요.”nbsp“아, 그럼 저는 그만한 그릇이 안 되는 거예요?” nbspnbsp“질문자는 간호사 자격증만 따도 굉장히 기뻐해야 돼요.”nbsp“아, 그러면 저는 대학병원에 취업할 그릇은 안 되는 거예요?” nbspnbsp“그건 안 될 수도 있지만 한번 원서를 내보면 재수 없어서 될 수도 있어요. 재수 없어서 되면 다니는 거고, 재수가 좋으면 잘 안 될 거예요.” nbsp nbsp nbspnbsp“제가 졸업까지 2년 남았으니까 참으면서 졸업을 하면 될까요?”nbspnbsp“참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는 재미있게 다니세요. 참지 말고요. ‘스님 얘기 들어보니까 졸업만 하면 되고, 꼴찌라도 자격증만 따면 되는 거였네’ 라고 생각하세요. 운전할 줄 알아요?”nbspnbsp“못 해요.”nbspnbsp“운전을 배우면 한 번 만에 합격하는 사람이 있고, 열 번을 떨어지고 열한 번 만에 합격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누가 운전을 더 할까요?”nbsp“열한 번 만에 된 사람이요.”nbspnbsp“네. 그 사람이 훨씬 안전하게 운전을 해요. 1번 만에 된 사람은 사고가 날 위험이 많고, 열번 떨어진 사람은 사고날 확률이 훨씬 적어요. 왜냐하면 과신을 안 하고 조심을 하니까요. 그리고 일단 열번 떨어졌든 스무번 떨어졌든 합격했으면 운전할 줄 안다는 거예요? 모른다는 거예요?”nbsp“할 줄 안다는 거예요.”nbsp“그래요. 한번 만에 땄느냐, 두번 만에 땄느냐는 게 면허증을 딸 당시에는 굉장히 중요한데, 일단 따고 나면 열번 만에 땄든, 한번 만에 땄든,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질문자도 1등이 됐든 2등이 됐든 10등이 됐든 꼴찌가 됐든 간호사 자격만 따면 되는 거예요. 자격증 딸 때는 1등이냐, 2등이냐가 중요하겠지만, 일단 자격을 따면 ‘간호할 수 있다’는 자격을 획득한 거잖아요. 여기서 몇 등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nbsp“그러면 성적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그냥 공부하라는 말씀이세요?”nbsp“그래요. 이제 머리가 잘 돌아가네요.” nbspnbsp“아하”nbspnbspnbsp“그러니까 일희일비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목표를 어디에 둬야 된다고요? 졸업에 둬야 돼요. 그런데 간호학과는 졸업을 하더라도 자격증을 못 따는 경우도 있으니까 질문자는 자격증 취득에도 목표를 둬야 해요. 꼴찌로 자격증을 따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리고 현장에 가서 간호를 하다 보면 성적과 아무 관계없이 친절하고 상냥하게 잘 하는 사람이 실제로 중요하지, 많이 아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nbspnbsp지식적인 건 아이패드 꺼내놓고 혼자 검색해 보면서 금방 찾으면 돼요. 아직까지는 시험 칠 때 외우는 능력이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다 아이패드 갖다놓고 검색해 가면서 시험을 치게 될 겁니다. 제가 어릴 때는 시험 칠 때 다 전자계산기 없이 암산하거나 계산해서 했는데, 요즘은 다 전자계산기 사용해도 돼잖아요. 그런 것처럼 앞으로 10년만 더 가면 일부러 외우는 건 필요가 없어질 거예요. 앞으로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해 집니다. 간호의 경우 ‘이 사람을 어떻게 치료하느냐?’가 중요하지 ‘이 근육 이름이 뭐냐?’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시대가 바뀔 거예요.”nbsp“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것도 고민이예요.”nbsp“하고 싶은 게 없는 건 굉장히 좋은 소질이에요.”nbsp“아, 그래요?”nbsp“예. 왜냐하면 아무 거나 하면 되기 때문이에요.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은 그 하나밖에 못하고, 그거 안 하면 괴로운데,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은 이거 해도 되고, 저거 해도 되니까요.” nbspnbsp“그런데 제 동생은 뚜렷하게 선생님이 되겠다고 해서 사범대학에 갔거든요.”nbsp“동생은 나중에 임용고시에 떨어지면 굉장히 괴로워할 거예요.”nbsp“그런데 제 동생은 제가 봤을 때 충분히 붙을 거예요.”nbsp“되면 다행인데, 안 될 수도 있죠. 만약에 안 되면 괴로울 거란 말이에요. 선생님밖에 하고 싶은 게 없기 때문예요.”nbsp“그럼 오히려 하고 싶은 게 없는 제가 더 나은 거예요?”nbsp“훨씬 낫지요.” nbspnbsp“저는 이렇게 하고 싶은 게 없으니까 너무 한심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하고 싶은 게 없을 수 있지?’ 하면서요.”nbsp“그런데 그건 학교 선생님들이 자꾸 ‘너는 하고 싶은 게 뭐니? 너가 하고 싶은 걸 해야 된다’ 라고 잘못 교육을 해서 그런 거예요. 마치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은 큰 죄나 짓는 것처럼 됐는데, 토끼도 하고 싶은 게 없는데도 잘 살고, 다람쥐도 하고 싶은 게 없는데도 잘 살고, 노루도 하고 싶은 게 없는데도 잘 사는데, 오히려 하고 싶은 게 있는 인간들만 괴롭게 삽니다. 저도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어요. nbspnbspnbsp그리고 저는 스님이 안 되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우리 은사 스님 때문에 억지로 됐거든요. 억지로 됐어도 한 40년 하다 보니까 이력이 나서 지금 생각해 보면 스님하길 잘한 것 같아요. nbsp그 당시에는 제 인생을 망친 것 같았거든요. nbspnbsp제가 보니까 질문자는 간호사하면 잘 할 것 같아요. 간호사 옷 딱 입고, 모자 쓰고 하면 얼굴도 괜찮고 하니까 잘 할 것 같네요. nbspnbsp자격증 따서 갈 데가 없거든 저한테 오세요. 인도에 가면 가난한 마을에 학교도 있고 병원도 있는데, 그 동네는 의료상태가 무척 열악해요. 그래서 결핵환자도 많고, 애 낳자마자 절반 이상이 죽고 그러는데, 저희가 지난 20년간 열심히 해서 유아사망을 거의 멈추게 했어요. 그러니 거기는 보건소 수준이면 돼요. 보건소 수준이라면 의사 없이 간호사만 있어도 되잖아요. 질문자가 간호대학을 졸업한 수준이면 예방주사는 놓을 수 있을 거고, 예방의학 같은 걸 가르칠 수도 있잖아요. 간호대학 졸업해도 그런 거 못 해요?” nbsp nbspnbspnbspnbsp“할 수 있어요.”nbsp“그래요. 졸업하고 저한테 오면 제가 병원장을 시켜줄 게요.” nbspnbspnbsp“그러면 정말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제가 스트레스에 정말 약하거든요. 그래서 탈모도 왔어요.”nbsp“그런데 그건 안 돌아가는 머리를 자꾸 돌리려고 하니까 그래요. 안 돌아가는 머리는 가만히 놔놓으면 돼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질문자도 고등학교 때는 성적에 연연했을텐데, 고등학교 때 월말 고사에 수학성적이 90점이 됐든 80점이 됐든 그게 지금 내 인생에 영향을 줄까요?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그러니 공부를 안 하고 일부러 농땡이 치는 건 영향이 있지만, 질문자가 그냥 최선을 다했는데 성적이 나쁘게 나오는 건 아무 영향이 없어요. 지금 질문자가 생각하기에 질문자의 인생에 대학병원 간호사로 취업하면 길이 활짝 열리고, 다른 병원에 가면 안 열릴 것 같겠지만 실제 살아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학병원에 간호사로 갈 수 있는데 일부러 가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거기 안 간다고 질문자의 인생에 특별한 영향이 없다는 거예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절에 들어가서 학교를 그만뒀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잘 살잖아요.”nbspnbsp“그러면 그냥 그런 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고,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말씀이세요?”nbsp“생각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생각은 해도 좋은데,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라는 건 뭔가 되고 싶은데 안 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다는 거 아니에요?”nbsp“예.”nbsp“그러니까 ‘안 되도 괜찮다’ 라는 거예요.nbsp성적을 1등 나오게 하려면 지금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니까 스트레스를 받게 되지만 ‘졸업만 하면 된다. 낙제만 안 하면 된다. 꼴찌라도 간호사 자격증만 따면 된다’ 이러면 마음에 여유가 생길 거 아니에요. 그러면 스트레스를 안 받지요.nbspnbsp그리고 탈모는 괜찮아요. 탈모를 막으려면 머리카락을 저처럼 깎아버리면 돼요. 저는 머리카락을 깎아버리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지는지, 안 빠지는지,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는지, 어떤지도 모르고 살아요. 그래서 젊게 살잖아요. 왜냐하면 저는 그런 걱정을 전혀 안하거든요. 질문자는 지금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거예요.” nbspnbsp“제가 하는 게 쓸데없는 걱정이라고요?”nbsp“질문자가 처음부터 ‘스님 보시기에 쓸데없는 걱정인 것 같지만 저한테는 큰일이다’라고 하면서 질문을 시작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들어보니까 진짜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말해주는 거예요. nbspnbspnbsp그리고 질문자는 공부머리가 부족한 것도 아니에요. 딱 그만하면 됐어요. 저보다도 나아요.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는 거예요. 1등 할 수준이 안 되는데 1등을 목표로 하니까 늘 스스로가 못하는 것 같은 거예요.“nbsp“제가 제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한다는 거예요?”nbsp“예.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하는데, 현실은 그 평가를 따라가지 못 하니까 스스로가 못난이처럼 느껴지는 거예요.”nbsp“아, 그럼 차라리 제 그릇을 그냥 작게 두라는 말씀이세요?”nbsp“작게 두는 게 아니라 원래 작아요.”nbsp“아, 원래 작아요?” nbspnbsp“작은 게 좋은 거예요. 왜 꼭 큰 게 좋다고 생각해요?”nbspnbsp“그런데 왜 사람들이 다 ‘그릇이 큰 사람이 되라’라고 말하는 걸까요?”nbspnbsp“그런 얘기는 다 헛소리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사는 게 다 힘든 거예요.”nbsp“아, 그릇이 작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건 아니라는 말씀이세요?”nbsp nbsp nbsp“예, 작은 건 좋은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가 자꾸 커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지금 문제가 되는 거예요.nbsp자, 여기에 물병, 컵, 뚜껑이 나란히 있어요. 컵이 물병보다 크기가 커요? 작아요?”nbspnbsp“작아요.”nbsp“그럼 컵이 뚜껑보다는 커요? 작아요?”nbsp“커요.”nbsp“그럼 이 컵 하나만 놓고 봅시다. 이 컵은 큰 거예요? 작은 거예요?”nbsp“몰라요. 기준이 없으니까 큰지 작은지 말할 수가 없어요.”nbspnbsp“맞아요. 그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데 왜 스스로를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 컵은 원래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고, 다만 그것이에요. 그러나 뭔가와 비교를 했을 때 작은지 큰지 우리에게 인식이 됩니다. 그러니 이 컵이 크다고 인식될 때도 컵 자체는 큰 게 아니고, 작다고 인식될 때도 컵 자체는 작은 게 아니에요. 내가 인식할 때 크다고 인식되기도 하고, 작다고 인식되기도 하는 겁니다.nbsp그런데 이 컵이 이 물병 옆에만 계속 같이 있다보면 이 컵은 계속 작다고 인식이 되게 됩니다. ‘이 컵 자체가 크냐? 작으냐?’ 라고 물어도 ‘작다’라고 하게 되는 거예요. 거의 습관처럼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컵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닌데 ‘이 컵이 작기 때문에 내가 작다고 인식했다’ 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만약에 컵이 뚜껑하고만 계속 오래 있다 보면 나는 항상 이 컵에 대해서 ‘컵은 크다, 크다, 크다’ 라고 인식하게 돼요. 컵은 뚜껑하고 관계없이 컵 자체가 큰 것이라고 착각을 일으킨다는 거예요. 인식 상에서 크다, 작다고 여겨질 뿐이고, 객관적 존재는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닌데, 그 인식이 지속되다 보면 마치 그 자체가 크거나 작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nbspnbsp그것처럼 질문자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잘난 사람도 아니고, 못난 사람도 아니고, 키가 큰 사람도 아니고, 작은 사람도 아닌데,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하고 늘 같이 있다 보면 못하는 것처럼 인식이 되고, 못하는 사람하고 늘 같이 있다 보면 잘하는 사람으로 착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우월감과 열등감은 이렇게 해서 생기는 것이지, 우리의 존재는 그 누구도 우월한 사람도 없고, 열등한 사람도 없는 거예요.nbspnbsp전국에서 1등하는 애만 30명을 딱 모아서 한 반을 편성하면 거기에서도 꼴찌가 나오겠죠. 반대로 전국에서 꼴찌 하는 애만 30명 모아서 한 반 편성하면 거기에서도 1등이 나오겠죠. 그러니까 1등이다 꼴찌다 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nbspnbsp그러니 질문자가 지금 이렇게 자신을 못나게 생각하는 건 기준을 너무 높이 설정해 놓았기 때문이에요. 질문자는 그냥 자기일 뿐이에요. 시험에 떨어졌다고 그게 못난이도 아니고, 시험에 걸렸다고 그게 잘난 이도 아니에요.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의 문제예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못난 존재도 아니고, 하고 싶은 게 있다고 잘난 존재도 아니고, 질문자는 그냥 질문자로서 완전한 존재예요.”nbsp“마지막 말씀이 제일 좋아요.” nbspnbspnbsp“그 말은 앞에 얘기해준 건 별 볼일 없다는 얘기예요?”nbsp“아니오. 뭔가 확 다가오는 게 앞에서는 없었거든요.”nbspnbsp“그 얘기가 그 얘기지요.” nbsp“스님 말씀 듣고 정말 느끼는 게 많았어요. 감사합니다.” nbspnbsp“학교 계속 다닐 거예요? 안 다닐 거예요?”nbsp“다닐 거예요.”nbspnbsp“그래요. 지금 그만 두고 재수해서 또 시험 쳐서 입학하는 것보다 그게 낫지 않아요? 간호사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그때 간호사 일을 하면서 다른 걸 찾아봐도 되잖아요. 그래서 다른 사무직 일을 하게 되더라도, 만약 질문자가 비행기 타고 여행 가다가 어떤 사람이 아프다면 질문자는 간호사 경력이 있으니까 그 사람을 간호해 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 간호학은 직업으로 안 써먹더라도 익혀놓으면 좋은 걸까요? 안 좋은 걸까요?”nbsp“좋아요.”nbsp“맞아요. 그러니 간호학은 익혀놓으면 꼭 간호사를 안 하더라도 평생 유용한 기술이에요.”nbsp“예. 정말 모르겠다 싶으면 스님 찾아가서 인도에 스님이 세운 보건소로 갈게요.” nbsp nbsp nbsp nbsp nbspnbsp“그래요, 자격증 따서 오세요.” nbspnbspnbsp질문한 대학생의 해맑은 반응에 청중들은 박수를 치며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궁금한 것을 서슴없이 되묻는 대학생 덕분에 오랜만에 아주 유쾌한 문답이 이뤄졌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12명의 질문이 더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이슬람교를 배격하는 문화가 있는데 스님의 생각은 어떠한지 묻는 30대 청년, 어릴 때 가정에서 겪은 아픈 일들로 인해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려 밤이 너무나도 무서운 20대 청년, 매사에 늘 자신감이 없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걱정하는 20대 청년, 사모임에서 옳지 못한 행동을 한 사람에게 바른 말을 한 뒤 상처 받아 마음이 불편한 20대 여성, 어떤 것을 시작하면 그만두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자신감을 잃고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는 청년, 국제봉사는 길이 좁다고 생각하여 미국유학을 고려중인 고등학교 2학년 학생,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것이 없어 어느 자리에 지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취업준비생, 자살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묻는 청년, 전공이 안 맞아 자퇴 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4년제 대학 졸업장이 마음에 걸리는 청년,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꿈도 없고 하루하루가 다 귀찮고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다는 20대 여성, 사랑하는 사람을 하늘나라에 보내 갑작스런 이별에 적응 못해 힘들어하는 청년까지 스님은 각각에 대해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어느 강연보다 많은 12명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으며 울고 웃고 하다 보니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스님은 청년들을 위해 10시가 넘어서까지 고민에 대해 아낌없이 말씀해 주었습니다. 아무래도 요즘 청년들이 힘들게 사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한 사람이도 더 도움을 주고자 하는 스님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치면서 스님이 재미있었어요? 유익했어요?라고 물으니 청년들 모두 네, 좋았어요 하고 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청춘을 만끽하며 살라고 힘을 북돋여 주며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진리의 길을 가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수행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현재의 종교는 문제해결능력이 없는 종교예요. 관념화 되어 있고, 권위주의화 되어 있어요. 재미도 없고요. 무언가를 주입하려고만 하고, 옭아매려고만 해요. 이런 종교는 성경에도 어긋나요. 성경에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했단 말이에요. 부처님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표도 해탈과 열반인, 즉 자유와 행복입니다. 돈을 구하고,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에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 이것이 목표입니다.nbspnbsp그런데 오늘도 여러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다람쥐보다도 못하잖아요. 사람이 다람쥐보다도 못해서야 되겠어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조금 더 가뿐하게 살아갔으면 해요. 실패했다고 울고 있으면 안 돼요. 넘어지면 일어나서 가면 돼요. 또 넘어지면 또 일어나서 가면 돼요. 다리가 아프면 쉬었다가 다시 가면 돼요.nbspnbsp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가 좋아서 가버리면 나는 다른 남자를 또 찾아서 가면 돼요. 왜 울고 불고 그래요? 다른 남자를 만나면 되잖아요. 다른 남자가 만나기 싫으면 정토회로 오세요. 스님하고 같이 살면 돼요. nbspnbspnbsp여러 가지 길이 있어요. 왜 한가지 길만 붙들고 애를 쓰고 그래요? 그러지 말고 청춘을 좀 만끽하고 사세요. 알았죠?”nbsp“네”nbspnbsp스님이 불어넣어 준 기운을 듬뿍 받았는지, 청년들의 목소리도 어느때보다 우렁찼습니다.nbspnbsp강연이 끝난 후 로비에서는 스님의 책 사인회가 이어졌습니다. 신간 행복을 비롯해 부스에서 구매한 따끈따끈한 새 책에 스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서는 청년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머물렀습니다.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것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고 질문한 첫 번째 질문자에게 스님의 말씀을 듣고 어땠는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nbspnbsp지난 충남대 강연에서 질문지가 뽑히지 않았는데 한 달을 기다려 기회를 잡아서 좋았어요. 스님 말씀을 듣고 나니 이제는 최선을 다해보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 안 하고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다잡어요.nbspnbsp대답하는 학생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했습니다. 이 분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스님에게 책 사인도 받아 갔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주관한 대전 청년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대전 청년 파이팅 이라고 외치는 얼굴에는 예쁜 꽃보다 아름다운 미소가 가득했습니다.nbspnbspnbsp봉사자들 대부분이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 학생들이였는데, 스님은 불교대학과 경전반 학생들에게 꼭 졸업하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지난주에 스승의날이 있었는데, 봉사자들은 늦었지만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스승의 은혜를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둥글게 원을 그리고 서서 기타 반주에 맞춰 정겹게 노래가 흘러나오자 스님도 웃음을 보였습니다.nbspnbspnbsp대전 청년정토회 팀장 소임을 맡고 있는 진승연 님이 꽃다발을 전하자 청년들은 큰 목소리로 환호했습니다. 꽃다발을 받아 든 스님은 웃으면서 격려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학교 공부가 하기 싫으면 그만 두세요. 왜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고 있어요? 어쩌면 인생공부가 더 중요해요. 그러니 다들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반 열심히 다녀서 인생이 행복해지는 공부를 꼭 챙겨서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nbspnbsp대전시청을 빠져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내일도 아침 7시부터 평화재단에서 미팅과 회의가 있은 후 오후 4시에는 동국대에서 열리는 ‘출가콘서트’에 참석해 청년들과 대화할 예정입니다. 저녁 7시 30분에는 평화재단에서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nbsp‘대한민국 화합과 통합의 길찾기’란 주제의 강연이 있습니다.nbsp※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5.26. 117,490 읽음 댓글 61개

2016.5.24 (저녁) 포항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후에 부산 중구 남포동에서 열렸던 즉문즉설 강연에 이어서 저녁 7시에는 포항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부산 강연을 마치고 나온 시간이 오후 5시. 포항까지 부지런히 달려도 겨우 제시간에 맞춰 도착할 것 같았습니다. 저녁 식사를 따로 할 겨를이 없어 이동하는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식사를 대신했습니다.nbspnbsp▲ 이동하는 차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스님nbsp포항에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며칠 기온이 갑자기 올라서 마치 여름 같은 더위가 이어졌는데 대지에 촉촉이 내리는 비가 아직은 봄의 한가운데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포스코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포항문화예술회관은 비 덕분에 먼지를 씻은 양 정갈했고, 곳곳에 아기자기한 꽃들이 방문객에게 미소를 띄우고 있었습니다.nbspnbsp오늘 강연을 위해 포항정토회에서 나온 봉사자 75명은 일찌감치 강연장에 집결해 준비를 했습니다. 도서판매, 안내팜플렛, 내부와 외부 안내, 좌석표 배부, 주차안내 등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많은 분들이 행복을 얻어가기를 바라는 마음과 설레임이 봄날 새순처럼 피어나는 것 같은 모습이였습니다. nbspnbsp9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스님이 무대 위로 오르자 대중들은 큰 함성과 박수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저녁은 드셨어요?”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질문을 더 많이 받기 위해 거두절미하고 곧바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총 여섯 분이 질문을 했는데요. 오늘은 그 중에서 고2 아들이 이혼한 전 남편과 닮은 모습을 보여서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데 아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물었던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문답이 조금 길어지긴 했지만 그 내용은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 질문하기까지 10여 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가 없어서, 지금도 도망가고 싶지만 크게 용기 내어 질문해 봅니다.nbspnbsp저는 18년간의 결혼 생활을 4년 전에 정리하고 지금은 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고2 아들과의 갈등 때문에 이혼 후 사라졌던 화가 다시 살아나 숨을 쉴 때마다 저려옵니다. 중3 때 시작한 아들의 사춘기 때문에 저도 많이 당황했지만, 그럼에도 정토회를 다니며 제 감정을 조절했고, 힘들어하는 아들을 이해하려고도 노력했습니다. 아들은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자기 일을 잘하여 칭찬을 받으며 자랐는데, 물론 지금도 행동이 많이 거칠거나 무질서하게 생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점점 엄마를 무시하고, 급기야는 저더러 자기 틀에 맞춰 고치라고 합니다. 저는 아들의 그런 태도가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자꾸 헤매다가 지난 주말에는 결국 언쟁을 했습니다. 현재 아들은 엄마에 대한 거부감이 분명하고, 제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틀에 맞지 않게 말을 하면 그 즉시 표시를 합니다. 저는 엄마로서 당당하기보다는 힘든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제가 오히려 아들한테 맞추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애쓰다 보니까 오래 가지 못하고 ‘내가 너한테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하면서 서운해집니다.nbspnbsp어제 저녁에 ‘스님께 질문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며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지금 이 문제가 아들과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아들의 행동에서 남편의 모습이 보여질 때마다 저는 많이 불안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저와 전 남편 사이에 있었던 상황이 저와 아들 사이에도 생길 것 같아 두려운 마음도 들고, 나중에 내가 덜 힘들려면 ‘아들한테 정을 떼야 하나’ 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스님께서는 항상 ‘남편에게 참회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전 참회를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어제야 비로소 저 스스로에게 왜 하기 싫은지를 물어봤고, ‘너무 무서웠다’는 답을 얻었습니다. ‘무서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눈물이 흘렀고, 예전에 제가 많이 외로웠던 그 상황을 생각하기가 싫었습니다. 제가 아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스님의 답변 부탁드립니다.”nbspnbsp“남편은 나와 다른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성격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습관도 다르고, 입맛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이렇게 다 다릅니다. 그래서 그 갈등이 다 남편 책임이라고 할 수가 없고 내 책임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질문자는 ‘내가 왜 참회를 해야 되느냐? 참회를 해야 된다면 쌍방 과실로써 너도 절반은 참회해야 되지 않느냐?’ 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저도 그건 인정합니다. 그런데 아들은 질문자가 낳았지, 데려온 자식이 아니잖아요?”nbsp“예.”nbspnbspnbsp“질문자가 자기 뱃속에서 만들어서, 낳아서, 젖을 먹여서, 질문자의 품에서 키웠잖아요. 그럼 그 아이의 모든 행동은 다 질문자를 본받지, 다른 사람을 본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질문자의 문제입니다. 그건 다른 사람한테 책임을 물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늘 이렇게 얘기하잖아요.nbspnbsp‘누가 낳았니?’‘제가요.’nbsp‘누가 키웠니?’‘제가요.’nbsp‘그럼 누구 닮았겠니?’‘저요.’nbspnbsp그러니까 아들의 모습은 질문자의 모습입니다. 아들의 모습에서 문제가 발견됐다면 그건 질문자에게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자신을 모르지요. 그래서 자기가 다 옳은 줄 아는 데, 질문자가 거울을 한번 보세요. 질문자가 거울에 딱 비추인 모습이 아들로 나타난 거예요. 그런데 그게 싫다면 질문자가 싫은 거예요. 그게 잘못됐다면 질문자가 잘못된 거예요. 그게 저항을 한다면 질문자가 저항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이것은 마땅히 질문자가 받아야 할 과보입니다.nbspnbsp남남끼리 만나서 서로 사랑했지만 갈등 때문에 서로 원수가 되었을 때도 그 헤어지는 과정에는 아픔이 있는 법인데, 이건 제 몸으로 낳아서 제가 키워서 제 품에 있던 게 저항을 해서 갈등이 생겼기 때문에 그 아픔은 부부 간의 갈등에서 생긴 아픔보다 10배 더 큽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과보를 나중에 안 받으려면 남편에게 참회를 해서 미리 그런 인연의 씨앗을 없애라고 얘기하는 겁니다.nbspnbsp그런데 질문자는 참회는 죽어도 하기 싫다니까 10배의 과보를 받으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10배는커녕 2배도 아직 안 받은 것 같네요. 아들이 조금 더 크면 10배를 받을 겁니다. 질문자가 그 인연의 과보와 원리만 알아도 이것은 큰 문제가 안 됩니다. 아이가 하는 행동을 보고 ‘내가 지은 인연의 과보는 10배라고 했는데 아직 10배는 안 된다. 아직 2배 밖에 안 된다’, ‘고통이 크기는 커도 아직 3배 밖에 안 된다’, ‘고맙다. 내가 10배를 받아야 되는 데 네가 아직 나한테 2배밖에 안 주니까 우리 아들 역시 착하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아이의 행동이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nbspnbspnbsp우리가 어떤 일이 일어날 걸 미리 예상만 할 수 있어도 사실은 그 일이 일어나도 큰 문제가 안 생겨요. 10배를 받으려고 각오를 했는 데 2배밖에 안 오니까 고맙잖아요.”nbsp“예.”nbsp“10배를 받아야 되는데, 안 오기를 원하는 것은 심보가 나쁜 거예요. 빚을 졌으면 빚을 갚아야지 그것을 하나도 안 갚겠다면 말이 안 되잖아요. 이자를 쳐서 좀 갚아야지요. 누군가가 빚을 받으러 오면 ‘왜 돈 달라고 그러느냐’ 라고 악 쓰지 말고 ‘그동안 잘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이자 쳐서 돈을 갚아야 되는 것처럼 항상 아이에게 ‘고맙다. 고맙다. 그래도 내가 받아야 할 과보에 비해서는 절반도 안 되네. 고맙다. 그래도 네가 그만한게 다행이다’ 이렇게 자꾸 기도를 하세요. 그럼 큰 문제 없어요.nbspnbsp귀가 했을 때 아들이 밤 10시에 들어오면 ‘네 아버지는 12시에 들어왔는데, 너는 10시에 들어오네. 고맙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남편은 내가 뭐라고 잔소리를 하면 주먹을 휘둘렀는데 그래도 너는 말로만 대드는구나. 고맙다. 네 아버지가 한 것 10배를 해도 내가 다 받아야 되는데 그래도 네 아버지보다는 아직 적다. 고맙다’ 이렇게 자꾸 기도를 해야 돼요. 그럼 아무 문제가 없어요.nbspnbsp아들이 아침에 안 일어나도, 안 일어날 뿐이지 일어나서 밥상을 걷어차는 건 아니니까 그것도 고마운 일이고, 밥상을 걷어차야 되는데 반찬투정만 해서 고맙고, 학교를 안 가야 되는데 학교라도 가 주니까 고맙다고 생각하면 아들한테 잔소리 할 게 없지요. 비위를 맞출 것도 없고요.nbspnbspnbsp왜 엄마가 되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아의 비위를 맞춰요? 엄마는 늘 아이한테 당당해야 돼요. 아이한테 비굴하게 보이면 안돼요. 그럼 아이도 나중에 비굴해 져요. 항상 당당하되 보살펴는 줘야지요. ‘고맙다. 내가 받아야 될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너 키울 때 심보를 생각하면 진짜 네가 잘못돼야 되는데, 그래도 네가 타고 난 복이 있었는지 그 정도하고 마네. 고맙다’ 이렇게 생각하면 당장 지금부터 아무 걱정이 없어지지요. 질문자는 아이하고 싸울 때 주로 무슨 일로 싸워요?”nbsp“지난 주말에 아들이 저한테 다 고치라고 하더라고요. 제 나름대로는 아들을 이해하고, 아들이 힘든 상황인 걸 분명히 아니까...”nbsp“질문자가 아들한테 자꾸 잔소리를 하니까 아들이 그런 말을 했겠지요. 질문자가 가만히 있는 데 아들이 그런 말을 했겠어요? 질문자가 가만히 자는 데 와서 ‘고쳐라’ 라고 하겠어요? 그렇게 받아들이니까 남편하고도 싸울 수밖에 없었지요.”nbspnbsp“예, 아들이 저한테 용돈을 가불해 달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저는 가불한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 건지 아들이 얘기라도 하면 좋겠더라고요. 그런데 아들이 짧게 ‘줘’라고만 했거든요.”nbsp“그럼 질문자도 짧게 ‘없다’라고 하면 되잖아요. 질문자가 바보네요. 자기 돈인데 자기 마음대로 하면 되잖아요.” nbspnbspnbsp“제가 미처 그 생각을 못 했네요. 아들의 문자메시지 때문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서 집에서 돈을 찾아 아들한테 주면서 ‘엄마가 이번에는 주는데 다음에는 어디에 어떻게 쓰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좀 해줬으면 좋겠다’ 라고 했습니다. 제 딴에는 최선을 다해서 웃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nbsp“그러니까 질문자가 바보라는 거예요. 남편한테도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남편하고 사이가 안 좋을 수밖에요. 아이가 문자로 ‘돈 줘’ 라고 보내면, 질문자는 ‘없다’ 라거나 ‘못줘’ 라고 보내고, ‘엄마, 좀 주세요’ 라고 보내면 ‘생각해 보고’ 라고 보내고, 또 ‘엄마 좀 주세요’ 라고 하면 ‘용건을 말해’ 라고 보내면 되지요. 질문자가 돈을 쥐고 있는 갑의 입장인데 왜 을한테 쩔쩔 맵니까? 그러니까 아들이 엄마를 만만하게 보는 거예요.”nbsp“그런 것 같습니다.”nbsp“예, 질문자가 바보같이 사니까요. 그리고 아이 마음에는 이미 질문자가 남편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형성된 저항감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질문자를 무시했듯이 아이도 그런 걸 다 봤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습니다.”nbsp“그래서 지금 제 마음이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아이가 그걸 다 보고 엄마를 어떻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저를 대하는 것 같아요.”nbspnbspnbsp“그건 모든 인간이 다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시장에 가서 사람들이 어떻게 물건값을 깎는지 다 살펴보고 본받아서 하잖아요. 그게 세상을 배운다는 거잖아요. 아이한테 그런 능력이 없었다면 바보가 됐겠지요. 질문자는 계속 바보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요. 그럴 때는 아들을 보면서 ‘우리 아들이 똑똑하네. 그걸 금방 배웠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nbspnbspnbsp아이들의 특징은 ‘따라 배우기’이니까, 아들도 당연히 따라 배운 거예요. 그래서 남편이 아내를 존중하면 그런 집에서 자란 아이들은 여자를 존중하고, 남편이 여자를 무시하는 집에서 자란 아이들은 여자를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게 그 아이의 잘못은 아니잖아요. 아이는 배운 대로 하는 거니까요. 미국에서 자란 아이가 한국에 온다고 갑자기 한국말을 할 수 없어요. 한국에서 1년 살고, 2년 살면서 한국말이 조금씩 늘다가 나중에는 능숙해지는 거예요.nbspnbsp그러니 제가 얘기했듯이 ‘우리 아들 똑똑하다. 배움이 빠르네. 한 번 보고 딱 배웠나 보네’ 이렇게 생각하면 그게 화날 일이에요? ‘애들 보는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더니 옛말이 맞구나. 아이들은 그저 본대로 배워서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되지요. 아이가 본대로 배워서 하는데 질문자는 왜 그걸 기분 나쁘다고 해요? 아이가 어렸을 때 그런 모습을 봤기 때문에 그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았겠어요? 그저 ‘엄마를 다루려면 저렇게 하는 거구나’ 하고 배워서 나오는 행동인데요. 만약 아들이 결혼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제 마누라한테도 똑같이 하겠지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저 집 내력이 저렇구나. 저 집 남편이 저러더니 그 아들도 똑같이 하는구나’ 하는 겁니다.nbspnbsp아이가 그렇게 배운 건 누구 때문이겠어요? 엄마가 그렇게 배우도록 한 거예요. 엄마가 남편한테 항상 공손하게 ‘여보, 알겠습니다’ 그랬다면 아이는 그런 공손한 태도를 배웠겠지요. 예를 들어 남편이 술주정을 한다고 아내가 악을 쓰게 되면 그것은 곧 부부싸움이 되니까 아이는 그 주정하는 모습을 그대로 배우는 겁니다. 그러나 남편이 술주정을 해도 아내가 ‘여보, 오늘 술 드셨네요’ 하면서 등을 두드려 주면서 재우면 아이는 ‘우리 엄마 아빠는 사이가 참 좋구나’ 하게 되니까 술주정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술주정이 아들한테 바로 가는 게 아니라 항상 엄마라는 거울에 비춰서 가는 겁니다. 아버지의 모습은 엄마의 거울에 반사되어서 아이에게 가기 때문에 엄마가 그걸 안 비춰버리면 아이는 몰라요. 그런데 질문자는 남편의 행동을 자기 거울에 반사해서 비췄기 때문에 아이가 그대로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 질문자가 책임을 져야지요. 아무튼 질문자의 아들이 똑똑하네요. nbspnbspnbsp많은 엄마들이 아이한테 ‘너는 네 아버지 술주정은 배우지 마라’ 라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안 배우겠어요? 엄마가 맛있는 걸 늘 숨겨두고 혼자 먹으면서 ‘여기 맛있는 거 있으니까 너는 먹지 마. 이건 엄마 혼자 먹는 거야’ 라고 얘기해 보세요. 아이가 엄마 없을 때 금방 찾아서 먹습니다. 그것도 못 찾아서 먹는 아이는 바보입니다. 나쁜 아이가 아니고요.nbspnbsp지금 질문자는 아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전혀 없는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는 남편과 갈등을 일으키며 살았던 그 과보를 자식을 통해서 2배, 3배, 아니 10배를 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비로소 ‘아, 내가 잘못했구나. 사람이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구나. 내 성질대로 살면 문제가 되는구나’ 라고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nbspnbsp사실은 남편하고 갈등을 일으키면서 성질을 바꿨어야 했는데, 질문자는 헤어지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제 성질 안 고치고도 살 것 같았겠지만 결국 아들이 애를 먹이는 거예요. 아들은 남편처럼 그렇게 딱 떼어내지도 못할 거고, 그렇게 딱 떨어지지도 않을 겁니다. 거머리처럼 딱 붙어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살 길은 스스로 성질을 바꾸는 길밖에 없습니다. 아들이 엄마한테 ‘고쳐라’ 라고 했다면서요? 아이가 똑똑하네요. 아이 말이 진리예요. nbspnbsp질문자가 딱 받아들여서 지금이라도 바꾸겠다는 태도를 취하면 가볍게 과보를 받으면서 살 것이고, 질문자가 남편에게 저항했듯이 아들에게도 저항을 해서 문제를 풀거나 버릇을 고치는 쪽으로 간다면 무거운 과보를 받으면서 살 거예요. 남편과는 헤어지기라도 할 수도 있지만 아들과는 어떻게 헤어질래요?”nbspnbsp“그런데 스님, 아들과 이런 상황이 될 때마다 아들은 자꾸 ‘그럼 나를 아빠한테 보내라’ 라고 합니다. 제가 보내겠다는 말도 안 했는데요.”nbspnbsp“그럼 보내세요.”nbsp nbsp“그래서 제가 그동안은 아들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그렇게는 안 한다’ 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그래. 그럼 가거라’ 라고 했더니 아들이 ‘알았다’고 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지금 안 가고 집에 있기는 있는데요.”nbsp“가겠다는 아이한테 ‘가라’고 말하는 게 지금은 수월한 것 같지요?”nbsp“아니요. 그게 또 아들한테는 상처가 될 것 같아서 걱정됩니다.”nbsp“당연히 상처가 되지요. 그래서 아들은 ‘엄마는 나를 귀찮게 여기는구나’ 싶어서 남편한테 안 가고 엄마한테 붙어서 보복을 할 겁니다.” nbspnbspnbsp“그럴 때는 제가 어떻게 답변을 하는 게 아들한테 도움이 될까요?”nbsp“아이가 ‘아빠한테 가겠다’고 하니까 질문자가 ‘가라’고 말하는 건, 아이를 위해서예요? 질문자가 힘드니까 그러는 거예요?”nbsp“아들이 저를 떠보는 식으로 말을 그렇게 하니까요.”nbspnbsp“그건 남편이 자꾸 ‘이혼하자’ 라고 했던 말과 같은 거예요. 남편이 이혼하자는 건 진짜 이혼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고, ‘네가 무릎 꿇고 좀 빌어라’는 뜻에서 이혼하자는 말을 꺼냈던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는 ‘그래. 이혼하자’ 라고 하고선 헤어졌지요?nbspnbsp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이 아빠한테 가겠다는 건 진짜 가겠다는 게 아니라 ‘엄마가 잘못했다’ 하는 말을 듣고 싶어서인데, 질문자는 ‘가라’라고 한 거예요. 질문자는 아들하고 싸워서 이겨보겠다고 그러는 건데, 아들한테 이겨서 뭐할 거예요?”nbspnbsp“그럼 그럴 때 구슬리는 게 더 나은 건가요?”nbsp“엄마가 돼서 왜 아들을 구슬려요?”nbsp“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nbspnbsp“빌어야지요.”nbsp“아들한테요?”nbsp“그럼요. 아들이 ‘아빠한테 간다’고 하면, 속으로는 보내고 싶더라도 ‘엄마는 널 사랑하는데, 네가 가버리면 엄마는 아들이 보고 싶어서 어떻게 살지?’ 라고 말해줘야 돼요. 아들이 간 뒤에 혼자 웃더라도 그렇게 말해야 된다는 거예요.” nbspnbsp“제가 계속 그렇게 말해 왔어요. 그런데 아들이 자꾸 그렇게 말하니까요.”nbsp“아들이 자꾸 그렇게 말하면 질문자도 자꾸 그렇게 말하면 되지요. 아들이 똑같은 말을 자꾸 하면 질문자도 똑같은 말을 자꾸 하면 되지요. nbspnbsp옛말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잖아요. 질문자의 아들이 지금은 그 정도일지 몰라도 이제 조금 더 있으면 ‘집 나간다’라는 정도가 아니라 ‘콱 죽어버린다’라고 할 겁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아들한테 ‘그러면 안 되지’ 하겠지만, 아들이 자꾸 그런 말을 한다고 ‘그래, 팍 죽어버려라’ 라고 할 거예요?”nbsp“아니오.”nbspnbsp“그러다가 만약 아들이 죽어버리면 어떻게 할래요? 지금 질문자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스님 말의 뜻을 못 알아듣고, 스님이 물어도 즉시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왜 말이 안 나올까요? 아이하고 싸워서 이기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아이하고는 싸울 필요가 없는 거예요. 왜 사랑하는 자기 아이랑 싸워요? 이겨서 뭐하려고요?nbspnbsp왜 제 자식한테 어미가 비굴하게 싹싹 빌고 그래요? 질문자는 싸워서 이기려다가 안 되면 싹싹 빌고, 또 싸워서 이기려다가 안 되면 싹싹 빌고, 그렇게 교만했다 비굴했다, 교만했다 비굴했다 그러니까 아이는 정신분열이 일어날 정도로 힘들게 되는 거예요. 아이가 뭐라 그러든 엄마는 ‘그래, 그래, 알았다, 알았다’ 이러면서 당당해야지 아이 말에 왜 그렇게 끌려 다녀요?nbspnbsp그리고 엄마는 아들을 사랑하니까 뭐든지 좋게 얘기해 줘야지요. 예를 들어 아들이 ‘엄마, 나 아빠한테 갈래’ 그러면 ‘왜? 아빠가 보고 싶니?’라고 대화를 해야지요. 그런데 질문자는 남편을 미워하니까 대화가 안 되는 거예요. 질문자가 진짜 남편에 대해서 참회를 해서 ‘내가 잘못해서 헤어졌구나. 내가 헤어져서 자식들이 고생하는구나’ 싶으면 아이가 ‘아빠한테 갈래’ 했을 때 ‘아빠가 보고 싶니? 엄마가 잘못해서 너희가 아빠랑 헤어져 사니 얼마나 아빠가 보고 싶겠니? 며칠 다녀오너라’ 하고 얘기하고 용돈도 주면서 ‘아빠한테 갈 때 빈손으로 가지 말고 과일이라도 좀 사가거라’ 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아들이 할머니 댁에 간다고 하면 질문자는 그렇게 말할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남편이 미우니까 그렇게 말을 못 하는 거예요. 그러니 남편에 대한 미움이 해결되지 않으면 아들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가 없는 겁니다. 용돈 문제에 대해서도 그렇고, 아빠 집에 간다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렇고요.nbspnbspnbsp그러니 질문자가 아들과 근본적으로 문제를 풀려면, 첫째, 남편한테 참회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nbsp‘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다 맞는 얘기이네요. 당신한테 내가 악심을 품었더니 그게 멀리 안 가고 아들한테로 와서 그대로 저한테 돌아오네요. 제가 어리석어서 하나하나 악심을 갖고 따지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nbspnbsp둘째, 아들한테 이런 마음을 가지세요.nbspnbsp‘내가 지은 인연의 과보를 생각하면 네가 나한테 10배로 해야 되는데, 그래도 엄마라고 나한테 그렇게 안 하는 게 참 고맙다. 아들아, 참 고맙다.’nbspnbsp그러면 아들이 어떤 말을 해도 질문자가 태연하게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더 할 말이 있으면 해 보세요.” nbsp nbspnbsp“아들과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는 스님 말씀과 같은 말이 잘 생각이 안 나요.”nbsp“남편에게 참회를 하면 그런 말이 잘 생각이 날 겁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미움이 없으면 아들과도 대화가 자연스럽게 될 거예요. 그리고 아이가 어떻게 해도 과보로 받겠다는 마음을 내고, 그저 고맙게만 생각하면 더 자연스럽게 대화가 될 거예요. 스님은 지금 아무런 미움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예요.”nbspnbsp“그런데 제가 남편과 살면서 아주 긴 시간동안 너무 많이 억압을 받아서 억울한 마음이 많이 쌓여있거든요.”nbspnbsp“질문자도 지금 억울한 마음이 쌓여서 안 풀린다는 것처럼, 아이도 지금 엄마한테 억울한 마음이 쌓여 있는 겁니다. 아이가 엄마한테 대든다는 건 아이도 엄마로부터 심리적 억압을 받았다는 거예요.nbspnbsp질문자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서 부모한테 대들면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했는데, 그동안 아이는 심리적 억압을 받았나 보구나’ 하고 금방 알아차려야 합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엄마가 야단치면 속으로는 ‘그건 아닌데, 너나 잘해라’ 라고 해도 겉으로는 ‘예’ 하거나, 말을 하기 싫으면 그냥 따릅니다.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가 그러는 게 말을 잘 듣는 것처럼 보이겠지요. 그런데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달라져요. 사춘기는 어른이 되는 과정이니까 당연히 저항을 밖으로 표현하거든요. 그럼 초등학교 때는 저항심이 없었을까요? 있었어요. 저항심이라는 게 사춘기가 되었다고 갑자기 생긴 게 아니고, 그 동안 표현을 안 하다가 사춘기 때부터 표현하기 시작하는 겁니다.nbspnbsp그러니 질문자가 중심만 딱 잡고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안 돼요. 질문자가 엄마로서 아이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지극하면 아무런 문제가 안 돼요. 남편은 아이의 아버지이잖아요. 아이의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면 아이가 나쁜 사람의 자식이 되잖아요. 아이의 아버지가 용서도 못할 나쁜 사람이니까 아이는 진짜 나쁜 사람의 자식이 된단 말이에요. 그런 마음이 어떻게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가 가질 수 있는 마음이예요? 부부 관계로는 나와 좀 안 맞았지만, 아이의 아버지로는 참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겨줘야 합니다. 내가 잘 맞춰주지 못해서 그렇지 그 분은 참 훌륭한 사람이다, 이런 마음이 들어야 아이도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nbspnbsp그러니 남편에게는 ‘내가 고집이 세서 당신의 비위를 다 맞춰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렇게 하고, 아이가 뭐라고 해도 ‘아이고, 너희 아빠가 화를 내는 것은 엄마가 아빠의 성질을 건드려서 그래. 그러니 드러난 현상만 보지 말거라. 너희 아빠는 훌륭한 사람이야’ 이렇게 얘기해 줄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진심으로 그런 마음이 들어야 이렇게 말이 나오지 진심이 아니면 그런 말이 안 나와요. 그래야 내 아이도 훌륭한 아이가 될 수 있어요. 엄마는 자식을 nbsp훌륭하게 키우기 위해서라도 아이의 아빠 또한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줘야 하는 겁니다. 그럴 정도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금 질문자에게는 없잖아요. 그저 내 잘났다는 생각에 자기 성질 못 이겨서 남편의 비위도 못 맞춰주고, 자식에게도 못 맞춰주고, 그렇게 계속 살면 나중에 혼자 외로워지죠 뭐.nbspnbsp그러면 또 이렇게 물을 거예요. ‘그러면, 스님은 할 수 있어요?’ 네, 저는 못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결혼도 했고 자식도 있잖아요. 저는 그렇게 못하는 줄을 미리 알고 아예 결혼을 안 했잖아요. 이것이 여러분과 저의 차이입니다. nbspnbspnbsp못 하는 건 못한다고 미리 아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현명한 겁니까. 질문자는 부부 생활도 제대로 할 줄 모르면서 뭣 때문에 결혼을 했고, 아이도 사랑할 줄 모르면서 왜 아이를 낳아서 키우긴 키웠어요? 자기가 한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안 지고 있잖아요. 결혼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 되고, 자식을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 되는데, 지금 질문자는 남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아이한테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겁니다. ‘아, 내가 한 행위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져야 되겠다’nbspnbsp장애를 가진 아이를 가져도 어떻게든 훌륭하게 키우려고 하고, 지적으로 부족한 아이를 가져도 어떻게든 훌륭하게 키우려고 그러는데 , 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왜 아이와 싸우고 그래요? 아이가 좀 부족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훌륭하게 키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야죠. 그래서 제가 보기에 질문자는 사랑이 부족하다는 겁니다.”nbsp“네. 스님 말씀을 듣고 나니 저도 지금 그런 느낌이 듭니다.”nbspnbsp“그래서 어떻게 할 거예요?”nbsp“남편에게 참회를 하겠습니다.” nbspnbsp“제가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도 아직 벽에 금도 안 간 것 같아요. 참회가 과연 될까요? 참회를 하다보면 성질이 나서 염주를 그냥 짚어 던지면서 ‘내가 미쳤나. 니가 나한테 참회를 해도 용서해줄까 말까 한텐데 내가 왜 그 인간한테 참회를 해야 하나?’ 하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겁니다. 그 고비를 넘겨야 해요.nbspnbsp게다가 오늘부터 참회 기도를 시작해서 아이가 더 고분고분해지면 이 고비를 쉽게 넘길 수가 있는데, 오늘부터 100일까지는 아이가 지금보다 10배 더 애를 먹입니다. 그러면 기도할 마음이 안 들어요. ‘기도가 잘못 되었나, 기도를 하니 더 설치네’ 이렇게 됩니다. nbspnbspnbsp이 과정을 이겨내야 해요. 그래서 제가 ‘10배의 과보를 받는데 아직 2배 밖에 안 받았네’ 하면서 이걸 이겨내야 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야 고비를 넘길 수 있어요. 기도하면 할수록 업장이 더 날뛰어요. 그래서 대부분 기도를 하다가 그만두게 됩니다. 업장도 자기 나름대로 살아야 하니까요. 내 입장에서는 업장을 소멸하면 좋지만, 업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죽게 되니까 안 죽으려고 발버둥을 쳐야 되는 겁니다.nbspnbsp그래서 질문자는 오늘부터 남편에게는 ‘여보, 제가 당신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당신이 화가 났지요.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참회를 해야 되고, 아이에게는 ‘그만큼이라도 해주니 고맙다. 엄마가 잘못한 것에 비해서는 니가 진짜 잘한다. 고맙다’ 이렇게 감사해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해도 ‘아이고, 고맙다’ 이렇게요. 고마운 마음을 가지더라도 내 형편이 용돈 10만원을 줄 형편밖에 안 되는데 100만원을 달라고 하면, ‘아이고, 미안하다’ 하면서 10만원만 주면 됩니다. 100만원 달라고 한다 해서 돈을 빌려와서 100만원을 주지 말고요. 그냥 10만원만 주면 되는 겁니다. 때려 부수고 해도 ‘아이고, 미안하다. 엄마가 돈이 없어서 그렇다. 이거라도 써라’ 이러면 되는 거예요 즉 흔들리지 말라는 겁니다.nbspnbspnbsp이렇게 엄마로서는 딱 중심을 잡고 살아야 돼요. 그러나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는 아이의 행동을 문제삼지 말고요. 그렇게 매일 기도를 해서 100일이 넘고 고비를 넘겨야 아이가 어떻게 하든 스님이 말한 내용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할 거예요.”nbsp“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질문자가 스님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 문답이 조금 길어지긴 했지만, 마침내 질문자는 그 뜻을 이해하고 밝은 미소를 내비쳤습니다. 이 모습을 본 청중들도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nbsp아이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을텐데요. 스님의 답변은 무엇이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것인지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해준 것 같습니다.nbsp이 외에도 5명이 더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세 아이의 엄마인데 막내인 아들을 낳기 전에 딸이라는 이유로 유산시킨 경험으로 생긴 죄책감을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이 진행되는데 인연이라는 것이 있는지 물었고, 세 번째 질문자는 초발심의 ‘초’라는 글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고, 네 번째 질문자는 갑자기 연락을 끊은 친구가 연락이 왔는데 과거의 나쁜 기억이 떠올라서 괴롭고, 서울에서 포항에 온지 5일 되었는데 아직 방을 못 구했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식구들이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어서 본인과 종교가 다른 것 때문에 죄의식을 느낀다며 이런 죄의식이 어디에서 오는지 질문했습니다.nbsp때로는 준엄하게 때로는 익살스럽게 질문자의 형편에 맞추어 진행되는 답변을 들으며 청중들은 시간가는 줄을 몰랐습니다.nbspnbsp2시간 10분 동안의 강연이 끝나고 마칠 시간이 되자 스님이 정리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질문자 중에 기독교 신앙에 대해 질문한 분도 있었고, 청중들 중에도 기독교 신앙을 가진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스님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자기 권리를 찾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우리가 찾아야 하는 권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권리는 행복할 권리예요. 그래서 늘 웃고 살아야 돼요. 남들이 ‘너는 뭐가 좋다고 웃노?’ 그러면 이렇게 도로 물어야 돼요. ‘안 웃을 일이 뭐가 있노?’ 라고요. ‘안 웃을 일이 뭐가 있는지 한 번 말해봐라’ 라고 물으면 그 사람은 아마 대답을 못할 겁니다. 만약 ‘한쪽 다리를 다쳤다’ 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해야 해요. ‘다리 다친 게 왜 울어야 할 일이니? 나머지 한 쪽 다리는 안 다친 것을 생각해봐라. 두 다리 다 다치는 것보다 한쪽 다리만 다치는 것이 더 낫지 않냐? 이렇게 생각하면 웃을 수 있잖아.’nbspnbsp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겁니다.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이 말을 잘 아시죠? 매사에 감사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주님,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면 안 되고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해요.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늘 가지면 누가 행복해질까요?”nbsp“내가 행복해져요.”nbsp“그런데 앞에서 질문한 분들처럼 맨날 상대를 미워하고 성질을 내면 자기만 괴로운 거예요. 저렇게 사니까 얼마나 인생이 피곤해요. 어릴 때는 부모와 싸워서 힘들었고, 그래서 부모로부터 도망가려고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이 인간하고도 또 싸워서 못 살겠다고 하면서 집을 나왔더니 이제는 자식과도 싸워서 못 살겠다는 것 아닙니까. 이 정도가 되면 이제 인생이 한탄스러워지는 겁니다. 그래서 ‘내 인생은 왜 이러노’ 하면서 점을 보러 가게 되는데, 인연 과보를 알면 그럴 필요가 없어요.nbspnbspnbsp살아있는 것부터가 얼마나 감사한 일이예요? 남편이 안 죽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좋은 일이예요? 그러니 남편도 고맙고요. 아이들이 안 죽고 학교에라도 다녀주는 것만 해도 고맙고요. 세월호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것이 아침에 가방 들고 나가는 아이가 없다는 것이예요. 이걸 생각하면 지금 아이가 공부 잘 하고 못 하고가 뭐가 중요해요? 아침에 가방 들고 나가고, 저녁에 가방 들고 들어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요.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사는 게 행복해요. 행복하게 사십시오.” nbsp온갖 사연을 가진 질문자들과의 기나긴 문답 내용을 듣고 나서 그런지 마지막에 행복하게 살라는 스님의 말씀이 어느 때보다 깊게 울림으로 남았습니다.nbspnbsp스님은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로비에 마련된 책 사인회 부스로 이동했습니다. 로비에는 벌써 많은 분들이 책을 들고 스님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한 분 한 분과 눈을 맞추며 정성껏 싸인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을 격려하며 단체 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포항정토회, 좋아요” 라고 외치며 활짝 웃는 모습에는 보람이 가득차 보였습니다.nbspnbspnbsp사진을 찍고 뒤돌아선 스님은 봉사자들이 각각 어디에서 왔는지 확인을 하며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대부분 덕산 정토법당과 양덕 정토법당에서 정토불교대학을 듣고 있는 학생들이였습니다. 영상 수업으로만 스님을 만나뵙다가 스님을 가까이에서 직접 본 건 처음이라는 대부분의 봉사자들은 스님의 감사 인사에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환호를 했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밤 10시에 포항을 출발했습니다. 부지런히 고속도로를 달려 새벽 2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nbspnbsp잠시 눈을 붙인 스님은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연이어 미팅 및 회의 일정을 가진 후 저녁 7시 30분에는 대전시청 대강당에서 청년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5.26. 161,285 읽음 댓글 57개

2016.5.24 (오후) 부산 중구 즉문즉설 강연

nbsp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산 중구와 포항에서 하루에 두 번 즉문즉설 강의가 있는 날입니다. 먼저 오후 1시 30분에는 부산 중구 롯데백화점 문화홀에서 부산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nbspnbsp아침 일찍부터 하늘에는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빗방울이 간간히 날렸습니다. 스님은 어제에 이어서 오전 내내 농사일을 했습니다. 특히 장미꽃 가지가 뭉쳐져 있는 것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는 작업을 계속 했는데, 한참 동안 스님의 손길이 닿자 장미꽃 가지들은 마침내 제법 풍성해 보일 정도로 예쁜 모양새가 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어제 스님이 경주 통일암에서 캐어 온 죽순은 밤중에 삶겨서 아침 식사 반찬으로 나왔습니다. 순하고 부드러운 죽순에 초고추장에 버무리니 아주 맛깔스런 밑반찬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스님이 방금 밭에서 따온 상추, 고소와 함께 쌈을 싸서 먹으니 맛이 아주 일품이었습니다.nbspnbspnbsp원고 교정을 본 후 10시 30분이 되어 강연이 열리는 부산으로 출발했습니다. 강연은 부산 중구 남포동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문화홀에서 오후 1시 30분에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부산 중구는 부산항여객터미널, 용두산공원, 번화가인 남포동, 자갈치시장 등이 있어 부산의 경제, 교통, 관광의 중심지입니다. 롯데백화점 13층 전망대에 오르니 저 멀리 부산항 여객터미널과 한진중공업, 각종 화물선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훤히 펼쳐졌습니다.nbspnbspnbsp강연 시작 10분 전이 되자 문화홀에 마련된 500석은 모두 만석이 되었고, 자리가 부족해 입장하지 못한 150여 명의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서 애타게 입장을 원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이 소식을 들은 스님은 입장하지 못하고 되돌아가야 하는 많은 분들에게 직접 사과를 하러 강연장 밖으로 잠시 나왔습니다.nbspnbsp“세월호 사고가 생기고 나서 공연장에는 정원 외에 추가 인원을 일절 받지 못하도록 바뀌었어요. 양해를 좀 해주세요. 다음에 6월 8일 저녁 7시 30분에 KBS홀에서 또 강연이 있으니까 그 때 오세요.”nbspnbspnbsp스님이 직접 양해를 구하자 시민들은 그제서야 웃음을 보이며 스님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가려고 다들 손을 내밀었습니다. 스님은 악수라도 한 번씩 건네준 후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강연장으로 들어왔습니다.nbspnbsp소개 영상에 이어서 스님이 무대 위로 오르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습니다. 스님은 거두절미 하고 곧바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시작했습니다. 총 10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nbsp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암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데 가족들이 이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할 것을 걱정하는 여성분의 고민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nbspnbspnbsp“저는 20년 전에 육종암 진단을 받았어요. 방사선치료를 비롯한 항암치료며 개복수술 후유증 때문에 몇 차례 유착 제거 수술을 해서 몸속에 남들에 비해 없는 게 좀 많은 편입니다. 신장이나 비장도 없지만 잘 살아왔어요. 그런데 작년에 또 장유착이 와서 수술을 하러 들어갔더니 이제는 그게 온몸에 전이가 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nbsp어쨌든 20년을 아이들과 잘 살 수 있었던 것은 굉장히 감사하고, 아이들한테도 ‘같이 받아들이고 감사한 것만 생각하면서 살자’고 이야기했어요. 병원에서는 나이가 52살로 젊은 편이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포기하기보다 항암치료를 하자고 해요. 그런데 이전에 방사선치료를 받아본 경험도 있고, 제게 생긴 암에는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가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것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에 거절했어요. 장유착 수술 후에 지금은 잘 먹어서 몸무게도 조금 늘고 컨디션도 좋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nbspnbsp지금은 통증이 없으니까 이전처럼 생활을 잘 하고 있지만, 앞으로 통증이 심해질까 걱정입니다. 누구나 다 가는 길이기 때문에 죽음 자체는 받아들이겠는데 가족들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사실 보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통증이 심해졌을 때 제가 어떻게 생각을 하면 좀 더 지혜롭게 지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이 올 때까지 제가 어떤 노력이나 기도를 하면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nbsp“네. 병을 20년 앓고도 이렇게 밝게 살아오신 걸 우선 축하드립니다. 격려박수 부탁드립니다.nbspnbspnbsp우리가 작은 눈으로 보면 먼저 죽는 건 큰 재앙이고, 늦게 죽는 건 큰 복 같이 보이지만, 좀 큰 눈으로 보면 상황이 전혀 달라요. 하루살이 알죠? 하루밖에 못 산다고 해서 ‘하루살이’예요. 하루살이들은 해가 떴을 즈음에 깨어나 날아다니다가 해가 지는 저녁 6시나 7시쯤에 대부분 죽습니다. 그런데 하루살이를 1,000마리든 10,000마리든 많은 수를 관찰해보면 다 똑같이 저녁 6시나 7시에 죽진 않을 거예요. 관찰해서 분포도를 그려보면 다수가 저녁 6시나 7시에 죽을 확률이 제일 높은 것일 뿐이지, 오후 2시나 3시에 죽는 것도 있고, 밤 11시나 12시까지 살다 죽는 것도 있겠죠. 사람에 비유하면 오후 2시에 죽는 것은 20살에 죽는 것, 오후 4시에 죽는 것은 40살에 죽는 것, 오후 7시에 죽는 것은 70살에 죽는 것, 오후 9시에 죽는 것은 90살에 죽는 것, 저녁 10시에 죽는 것은 100살에 죽는 것이라고 생각해봅시다. 하루살이에게는 ‘3시에 죽느냐, 4시에 죽느냐, 5시에 죽느냐, 6시에 죽느냐’가 엄청나게 중요할 것 같지만, 사람이 볼 때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어차피 하루밖에 못 사니까 사고를 당해서 오후 2시에 죽든 요행히 밤 10시까지 살든 그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nbspnbsp하느님이 계시든 옥황상제가 계시든 또 다른 존재가 있든지 해서 저 하늘 위나 지구 밖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면 인간의 수명 100년이라는 게 아주 잠깐이에요. 찰나에 불과한 시간입니다. 그런 큰 눈으로 보면 그 100년 중에 ‘100살까지 살았다, 90살까지 살았다, 80살 살았다, 60살 살았다’ 이게 하등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사람의 경우에도 많은 수를 조사해보면 20살에 사고가 나서 죽는 사람도 있고, 30살에 죽는 사람도 있고, 40살에 죽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다수는 한 70이나 80살에 죽어서 그래프를 그려보면 거기가 꼭지점이 되고, 또 개중에는 90살이나 100살까지 사는 사람도 간혹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큰 눈으로 보면 이건 하등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주 좁게 보면 하루 더 살고 못 살고가 아주 중요하지만, 큰 눈으로 보면 10년 더 살고 못 살고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nbspnbsp예수님은 33세까지밖에 안 살았잖아요. 게다가 그냥 죽은 게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히는 사형을 당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나이 서른세 살에 뭘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그러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추구해서 보통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일을 했기 때문에 그 분이 곧 하느님의 아들이자 하느님으로 추앙받게 된 거예요. 80살, 90살까지 살아도 이름 없이 죽어간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nbspnbspnbsp전 세계를 통틀어 인류 역사상 지금까지 왕이 되었다가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수십만, 수백만 명이 될지도 몰라요. 부처님도 왕이 되었다면 그 수백만 명 중의 한 명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왕위를 버리고 평생을 맨발로 다니고 나무 아래서 잠자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nbsp것이 참행복인지를 설파했기에 2,6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존경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존경받는다’라는 것도 더 큰 눈으로 보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에요. 5천년 인류 역사라는 것도 지구 전체의 역사에서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불과합니다.nbsp그럼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삶의 중요한 가치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그건 시간도 아니고, 재물도 아니고, 지위도 아닙니다. 내가 하루를 살더라도 행복하게 사느냐, 이게 중요한 거예요. 재물이 많아도 괴롭게 사는 사람이 있고, 지위가 높아도 괴롭게 사는 사람이 있고, 오래 살아도 괴롭게 사는 사람이 있어요. 하루를 살고 죽어도 행복하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nbspnbsp그러니 이 기준을 자꾸 다른 데다 두면 안 돼요. 기준을 확 바꿔버리면 아무 문제도 없어요. 예컨대 암에 걸려 1년밖에 못 산다고 진단을 받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사람은 반드시 불행해야 할까요? 이 사람이 불행한 이유는 ‘나는 1년밖에 못 산다’라는 생각으로 그 1년을 괴롭게 살다 죽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 이 질문자보다 먼저 죽을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nbsp“있어요.”nbsp“질문자보다 젊고 질문자보다 건강한데도 질문자보다 먼저 죽을 사람들이 여기에 많아요. 누구인지를 몰라서 그렇죠.nbspnbspnbsp그런데 그 먼저 죽을 사람들은 웃으면서 사는데, 늦게 죽을 자기는 ‘얼마 못 산다’ 이 생각에 사로잡혀서 괴롭게 살다 죽는다면 이게 불행입니다. 병이 불행이 아니라, 신체장애가 불행이 아니라, 가난이 불행이 아니라, 그걸 핑계로 괴롭게 살다가 죽는 게 불행이라는 거예요.nbspnbsp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 옆에 절이 있었는데 그 절의 스님이 저더러 스님이 되라는 거예요. 저는 절대로 안 한다고 버텼어요. 저는 종교인이 싫었거든요. 허황한 소리, 웃기는 이야기만 하고 돌아다니잖아요. ‘처녀가 애를 낳았다’, ‘애가 태어나자마자 서서 걸었다’ 이런 턱도 없는 소리만 하는데 그걸 제가 왜 믿겠어요. 그냥 종교를 믿으라고 해도 믿기 싫은데 심지어 종교 지도자를 하라니까 하고 싶겠어요? 당연히 거부를 했지요. 어쨌든 1년간 협박, 꼬임을 거듭한 끝에 결국 제가 마음을 바꿔서 절에 들어왔어요.nbspnbspnbsp그랬더니 저희 어머니가 찾아와서 난리가 났어요. 고등학교라도 졸업하면 데려갈 것이지, 고등학교 다니는 애를 데려가면 어떡하느냐는 거예요. 그랬더니 우리 스님이 어머니더러 ‘보살님은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압니까?’라고 했어요. 어머니가 ‘모릅니다’라고 했더니 스님이 이래요. ‘나는 알아요. 그러면 아는 사람이 지도해야 되겠어요? 모르는 사람이 지도해야 되겠어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는 사람이 해야죠’라고 했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궁금하니까 ‘애가 어떻게 되는데요?’ 하고 물었더니 스님이 ‘얘는 밖에 있으면 단명해요’ 그랬어요. 절에 안 들어오고 밖에 있으면 일찍 죽는다는 말이에요. 그러자 저희 어머니가 너무너무 놀라서 ‘아이고, 그러면 스님 아들 하세요’ 하고 가버렸어요.nbspnbspnbsp대학 나온 요즘 엄마들은 그렇게 하기는커녕 멱살 잡고 끌고 가겠죠. 그래서 제가 저희 어머니한테 너무너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어릴 때는 부모님이 무학이라고 해서 부모님에 대한 자긍심이 별로 없었는데, 그때 저를 포기하신 어머니의 결정이 자식에 대한 사랑인 걸 알게 됐습니다. 자식이 살 길이라면 내가 아무리 가슴이 아파도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엄마의 사랑입니다. 여러분들은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자기 욕심이에요. 어쨌든 그렇게 제가 절에 들어와 살게 됐습니다.nbspnbsp그런데 ‘단명한다’고 하면 어느 정도 살다 죽어야 ‘단명’일까요? 이게 참 애매모호해요. 90살을 기준으로 삼으면 80살도 단명이고, 80살을 기준 삼으면 70살도 단명이고, 70살을 기준삼으면 60살도 단명이에요. 그러나 보통은 40살 고비를 못 넘길 때 ‘단명한다’는 말을 씁니다. 질문자처럼 52살에 죽으면 명대로 살고 죽는 사람이에요. 그런 건 단명 축에도 안 들어가요. 아이가 열여덟 살 되기 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셔야 ‘고아’라고 하지, 아이가 20살이 넘었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고아’라고 하지는 않는 것과 같습니다.nbspnbsp그래서 저는 ‘길어야 40살까지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았어요. 그 동안 병치레도 많이 했지만 열심히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80살까지 사는데 저는 40살까지밖에 못 산다 생각하니 놀 여유가 없었어요. 부지런히 살았어요. 그런데 40살을 넘어도 안 죽었어요. 1년 지나도 안 죽고, 2년 지나도 안 죽고, 3년 지나도 안 죽었습니다.nbspnbsp그러니까 사는 게 굉장히 즐거운 거예요. 여러분들은 스님이 너무 열심히 일한다고 걱정하지만 정작 저는 내일 죽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덤으로 사는 거니까요. 덤으로 사는 거야 뭐, 이래 죽으면 어떻고, 저래 죽으면 어떻겠어요? 질문자도 현대 의학이 없었으면 벌써 죽었을 거예요. 안 그래요?”nbsp“그렇죠.”nbsp“그래요. 질문자도 지금 덤으로 사는 거예요. 병을 20년 앓았다면 아이도 지금은 스무 살 넘었겠네요.”nbsp“네. 25세, 27세입니다.”nbsp“25세, 27세면 다 키웠잖아요. 그런데 죽는 게 뭐 겁나겠어요?”nbsp“죽는 건 두렵지 않는데,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nbspnbsp“하루 살든, 이틀 살든, 사흘 살든 즐겁게 살면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 눈떠보고 ‘아이고, 아직도 안 죽고 살았네’ 하고 기뻐하세요.nbspnbspnbsp산 기념으로 오늘 좋은 일도 좀 하고요. 이렇게 살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자꾸 항암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의사 소견이 치료받는 게 좋겠다면 받고, 그래도 본인이 안 받겠다 하면 안 받으면 돼요. 받아야 하는지 안 받아야 하는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치료 받는 게 낫겠다’ 하면 받으면 되고, ‘그거 받아서 괴롭게 오래 살면 뭐 하겠냐? 나는 살 만큼 살았고 애들도 다 키웠으니 됐다’ 이러면 안 받고 살면 돼요. 어느 쪽이든 행복하게 살면 됩니다.nbspnbsp그러다가 통증이 오면 주사를 맞아서 통증을 줄이면 되고요. 주사를 맞아도 못 참도록 아프면 ‘아야야야야야’ 하면 되죠. ‘아야야야 하면 자식이 힘들지 않을까?’ 이 걱정도 할 필요가 없어요. 자식이 부모한테 젖 얻어먹고 밥 얻어먹었으면 엄마가 ‘아야야야’ 하는 것도 좀 들어야죠. 어쩌겠어요? 그런데 질문자는 왜 남 걱정을 하고 있어요? 나는 죽고 자식들은 살 텐데, 내가 걱정이지 자식이 무슨 걱정이에요? 그런 걸 자꾸 따지면 질문자는 말로는 행복하게 산다 하면서도 자꾸 얼굴에 그림자가 끼게 됩니다. 사람들이 ‘아이고, 어떡하냐’ 하고 걱정을 해도 ‘뭐가 걱정이냐? 살 만큼 살았고 애도 다 컸는데’라고 해야 해요.nbspnbsp그러니까 맛있는 거 먹고 즐겁게 사세요. 그렇다고 몸에 안 좋은 걸 굳이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겠죠. 안 좋다는 음식은 안 먹는 가운데서도 그냥 일상적으로 먹고 사는 만큼 사는 거예요. 그러나 과로하면 안 돼요. 그렇다고 아프다고 맨날 누워서 청소도 안 하면 곤란해요. 청소도 하고 밥도 하고 놀러도 가세요. 그러나 몸이 약하면 과로하면 안 됩니다. 과로하면 병을 악화시키니까요. 그래도 적당한 운동은 해주는 게 좋아요. 헬스클럽 가서 운동하는 것만 좋은 게 아니에요. 설거지하고 방 닦는 것도 다 몸을 움직이는 거니까 운동이에요. 그렇게 즐겁게 살면 됩니다.nbspnbspnbsp‘나 죽은 뒤 어쩌냐?’라며 배우자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내가 죽고 나면 남은 사람이야 재혼을 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겠죠. 그걸 왜 ‘재혼을 해라, 하지 마라’, ‘너희는 어떻게 해라’ 하고 골치 아프게 내가 정해요? 많은 사람들이 저더러 ‘스님 돌아가시면 정토회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하고 물으면서 걱정하는데, 그걸 왜 제가 걱정해요? 그건 살아 있는 사람들이 걱정할 일이지요. 지금 저는 살아서 할 일도 바쁜데 뭘 죽은 뒤까지 걱정을 하겠어요?nbspnbsp공부가 덜 돼서 그런 소리를 자꾸 하는 거예요. 저는 이미 20년 전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이미 정리를 다 해놨어요. 내일 죽는다 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아프면 진통제 맞으면 돼요. 저도 아까 들어올 때 몸에 열이 나고 덜덜 떨려서 약을 먹고 들어왔어요. 많이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는 거고요.nbspnbsp그러니 이것저것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하루를 살더라도 재미나게 사세요. ‘재미나게 살고 싶다’ 한다고 재미나지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생각을 놓아버려야 재미나게 살아집니다. 기도문이 꼭 필요하다면 아침에 눈뜰 때마다 이렇게 세 번씩 외치세요. ’오늘도 살았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한번 해보시겠어요?”nbspnbsp“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nbsp“예, 그럼 됐어요.”nbsp“예, 감사합니다.”nbspnbsp질문자는 처음에는 울먹이는 모습이었는데,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선 환하게 웃었습니다. 흐린 하늘이 맑게 개이는 듯한 분위기에 청중들도 뜨거운 격려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8명의 질문이 더 있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친정부모님 제사를 오랫동안 모시고 있었는데 이제는 제사를 그만 모시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물었고, 두 번째 질문자는 가족처럼 일하던 사람이 배신을 하고 떠났는데 자꾸만 화가 나서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스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배신을 했는지 물었으나 밝힐 수가 없다고 해서 아쉽게도 스님으로부터 구체적인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스님은 이후에도 “얘기해 볼래요?”라고 기회를 주었지만 해결이 되었다며 그냥 넘어갔습니다.nbspnbsp세 번째 질문자는 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가 무엇인지 물었는데, 스님이 “그런 건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더 잘 나와요”라고 대답해 큰 웃음을 주었습니다. 이 분은 결국 다시 질문을 했는데 민주화 과정에서 인권이 유린된 것이나 친일파 청산이 안 된 것이 과연 제대로 회복이 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네 번째 질문자는 올해 나이가 29세인데 아직도 무엇을 하고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며 진로 상담을 요청했고, 다섯 번째 질문자는 약사였는데 똑같은 생약 재료로 약을 지어도 한의사들은 의료보험 지원을 받아서 저렴하게 약을 공급하고, 약사들은 비싸게 공급해야 하는 불평등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질문했도, 여섯 번째 질문자는 기도할 때 집중이 안 되고 자꾸 다른 생각이 나서 어떡하면 좋을지 물었고, 여덟 번째 질문자는 나이 어린 친구들이 인사를 안 하거나 대답을 제대로 안 하면 참지 못하는 성격을 갖고 있는데 계속 참아야 할지, 양해를 구해야 할지 물었고, 아홉 번째 질문자는 가습기로 인해 사람들이 사망한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운데 이것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물었습니다.nbspnbsp스님은 각각에 대해 쉽고 재미있는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니 어느덧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강연을 마무리하며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도 주로 개인의 인생고민을 상담했는데, 스님은 수행과 사회변화를 함께 도모해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nbspnbspnbsp“여러분들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자각을 하셔야 합니다. 북한 같은 곳은 나라가 잘못되면 그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책임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 만약 나라가 잘못되면 대통령 책임이 아니라 우리 책임이에요. 그러니 자꾸 욕만 하지 마세요. 책임이 우리 책임이니까요. 우리가 주인입니다. 그리고 이걸 바꾸기 꺼려하면 안 돼요. 우리가 주인이니까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개인의 마음을 다스려서 행복해지는 ‘수행’과 우리 사회에 좀 더 좋은 제도를 마련해서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 변화’를 함께 도모해 가야 합니다.nbsp스님의 역할은 이 두 가지 중 지금은 개인의 행복에 대한 것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이 부분에서 주로 제가 역할을 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그래서 불만이에요. ‘스님은 맨날 개인 문제만 다루어서 사람들이 세상 문제를 외면하도록 만든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제가 그걸 외면하는 게 아니라 제 신분과 역할이 이 역할이라서 그런 거예요. 그러나 사회적인 변화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니 수행뿐 아니라 사회 변화도 꼭 함께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nbsp열정적으로 강연을 해 준 스님에게 다시 한 번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이 아주 아담하고 좋았고, 스님의 말씀도 너무 재미있어서 모두가 끝까지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치고 무대 위에서 스님의 새책 ‘행복’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얼마 전 노인분들을 위해 ‘행복’ 책의 큰 활자본이 출간되었는데, 오늘 사인회에서는 큰 활자본 책이 아주 인기가 좋았습니다. 스님은 사인을 해주는 가운데 시민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습니다.nbspnbspnbsp사인회를 마치고 나서는 강연을 준비한 서면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서면 파이팅”을 외치는 얼굴에는 강연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보람과 기쁨이 가득해 보였습니다.nbspnbspnbsp이어서 깜짝 이벤트로 케이크와 촛불을 들고 나와 다함께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지난주가 스승의날이었는데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봉사자들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촛불이 그냥 촛불이 아니라 불꽃이 확 일어나고, 회전판에서 여러개의 촛불이 돌아가기도 해서 모두들 환호를 했습니다.nbspnbsp봉사자들 대부분이 정토불교대학 입학생이거나 경전반 재학생들이어서 스님은 “공부 열심히 하세요” 라고 특별히 격려를 더 해주기도 했습니다. 감사 인사를 한 후 부산을 출발했습니다.nbspnbspnbsp잠시 후 저녁 7시부터는 포항 문화예술회관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부산을 출발한 시간이 5시 무렵, 부지런히 달려도 겨우 강연 시작 시간에 맞춰서 강연에 도착할 것 같았습니다. 포항 즉문즉설 강연 소식은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5.25. 173,946 읽음 댓글 49개

2016.5.23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묘역 참배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를 맞아 묘역을 참배하고 헌화했습니다.nbspnbsp새벽 5시에 울산 두북을 출발한 스님은 6시에 봉하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매년 5월 23일이 되면 항상 이른 새벽에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날이 밝으면 참배객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새벽에 참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nbspnbsp▲ 봉화산 정토원nbsp이른 아침,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봉화산 정토원입니다. 정토원 대웅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이곳에서 화장한 유골을 안치하고 49재가 치러졌다고 합니다. 스님은 위패를 향해 천도기도를 한 후 대웅전을 나왔습니다.nbspnbspnbsp▲ 대웅전에 모셔진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위패nbsp이곳에는 스님과 오랜 인연을 맺어오고 있는 선진규 법사님이 원장으로 있는 곳입니다. 선 원장님은 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재가 법사로써 포교활동을 시작해 수많은 포교사를 양성한 불교계의 어르신입니다. 스님이 인사를 하자 선 원장님은 맞절을 하며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nbspnbsp▲ 봉화산 정토원 선진규 원장님nbsp또 스님이 방문한 걸 환영한다며 쌀눈으로 만든 건강식과 따뜻한 차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불교의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1시간이 넘도록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특히 지금 조계종에서 군법사가 부족해서 군법사가 없는 군법당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만약 군법사가 부족하면 다른 종파 스님이라도 임명이 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는 허용하지 않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면서 선 원장님의 의견에 공감했습니다. 선 원장님은 이런 이야기를 법륜 스님이 더 많은 대중들에게 이야기를 좀 해달라며 부탁을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그리고 지난 부처님오신날에 정토원에서는 ‘화합, 상생, 지혜의 정치를 염원하는 300 당선인 축하 기원 점등식’을 거행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연등에 붙인 명패에는 당명이나 무소속을 빼고 ‘국회의원 000’ 식으로 이름만 적었다고 하면서 한국 정치가 제발 화합을 좀 했으면 하는 바람을 얘기했습니다. 더군다나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7주기인데, 이에 대해 스님도 “특정인이 노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러 오는 것을 반대하는 행위는 옳은 태도가 아닌 것 같아요.”라며 화합을 위해서는 나와 다른 상대에 대해 이해하는 자세가 중요함을 이야기했습니다.nbspnbsp▲ 지난 부처님오신날에 화합과 상생의 정치를 염원하며 단 300개의 연등nbsp정토원에서는 정성스럽게 아침식사도 대접해 주었는데, 구수한 숭늉과 갖가지 나물 반찬으로 맛있게 식사를 한 후 감사 인사를 하고 봉화산을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곳인 부엉이 바위와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상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nbspnbsp▲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부엉이 바위nbsp햇살이 내리쬐긴 했지만 아직 이른 아침이라 참배객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스님은 국화 꽃을 손에 들고 마음을 정갈히 한 후 중앙 박석을 따라 헌화대로 향했습니다. 헌화대 앞에 선 스님은 헌화를 한 후 합장을 하고 해탈주 삼독을 했습니다.nbspnbsp▲ 헌화대nbsp그리고 무덤 앞으로 다가가 다시 한 번 추모 기도를 한 후 주위를 한바퀴 돌며 추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덤 아래에는 대통령님과 함께 참여정부의 기록과 국민들의 추모 영상 DVD를 함께 안장했다고 합니다.nbspnbsp▲ 무덤nbsp그리고 무덤에는 따로 비문이 새겨져 있지 않고 ‘대통령 노무현’ 여섯 글자만 새겨져 있었고, 박석 하나하나에 새겨진 국민들의 존경과 추모, 애도와 사랑의 글 전체가 비문을 대신했습니다. 추모글이 새겨진 박석과 자연박석이 어우러져 묘역 전체가 사람 사는 세상인 마을, 도로, 냇가 등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듯 했습니다.nbspnbsp참배를 마치고 조용히 묘역을 걸어나온 스님은 다시 울산 두북으로 돌아왔습니다. 도착하니 점심 무렵이 되어서 스님은 곧바로 텃밭에 들어가 상추와 취나물을 뜯고 씻어서 반찬으로 내는 일을 했습니다.nbspnbsp▲ 밭에서 상추를 따고 있는 스님nbsp두북에서는 계속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식사 때마다 방금 밭에서 딴 채소와 나물들을 반찬으로 냅니다. 오늘도 싱싱한 채소로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스님이 밭에서 따온 상추와 고소, 각종 나물nbsp식사 후에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햇살이 누그러질 무렵 경주 통일암으로 향했습니다. 통일암에는 대나무 숲이 있는데, 지금 한창 죽순이 올라오고 있어서 죽순을 캐었습니다. 얼마 전에 이곳에서 누군가가 대나무를 마구 베어갔는데, 베어진 자리에는 항상 새로운 죽순이 마구 올라온다고 합니다. 스님의 예상대로 곳곳에서 죽순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nbspnbsp▲ 땅 위로 막 올라온 죽순nbsp삽을 발로 콱 누르면서 한 번 내지 두 번 정도 땅을 파면 금방 죽순을 캘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땀을 뻘뻘 흘리며 죽순을 캤는데, 어느덧 캔 죽순이 큰 포대 두 개를 가득 채웠습니다. 같이 동행한 분들이 “스님, 그만하고 이제 갑시다”라고 말을 했지만, 스님은 “먹을 것이 이렇게 지천에 깔렸는데 어떻게 그냥 갈 수가 있어?” 하면서 쉼없이 계속 일을 했습니다.nbspnbspnbsp죽순을 다 캐고 나서는 그 자리에서 바깥 껍질을 깨끗이 벗겨내는 일을 했습니다. 포대에 가득 찬 죽순을 바라보며 스님은 “이걸 시장에 내다 팔면 값이 얼마인지 알아? 몇 십만 원도 더 될거야.”라며 웃음을 보였습니다.nbspnbspnbsp오늘 캔 죽순은 나중에 초고추장에 버무려서 반찬으로 내기 위해 밤 늦게까지 뜨거운 물에 푹 삶았습니다. 이 죽순을 누구한테 주려고 하는지 묻자 스님은 “6월초에 동남아에서 스님들이 정토회를 방문하는데, 그 때 내려고 한다”며 더욱더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nbspnbspnbsp죽순 두 포대를 가득 싣고 다시 울산 두북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창밖으로 경주 남산의 전경이 훤히 보였습니다. 경주 남산을 멀리서 보면 바위가 듬성듬성 많이 보이는데, 이 모습을 보고 스님이 퀴즈를 하나 내었습니다.nbspnbsp“경주 남산에 바위가 안 보이면 통일이 될 것이다, 이런 말을 누가 한다면 무슨 뜻이 될 것 같아?”nbspnbsp▲ 경주 남산nbsp한참 생각을 시간을 주었지만 아무도 대답을 못하고 있자 스님이 그 뜻을 말해 주었습니다.nbspnbsp“통일이 되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야.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뜻대로 안 되는 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아. 뜻대로 안되니까 우리의 책임이 더 커지게 되고, 책임이 커지면 더욱더 역량을 키워야 하고, 역량이 커지면 우리의 영향력도 그만큼 커지게 되거든.”nbsp지나가는 말로 하신 말씀이지만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습니다.nbspnbsp울산 두북에 도착한 스님은 어제 마무리짓지 못한 농사일을 더 했습니다. 텃밭에 장미 나무가 여러 개 있는데, 넘어지지 않게 나뭇가지 밑둥을 끈으로 묶어 두었더니 가지들이 서로 엉키고 장미꽃이 너무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모양새가 별로 좋지 않아 보여서 스님은 장미꽃들을 분산시키기 위해 철사로 지지대를 만들어서 엉킨 나뭇가지들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했습니다.nbspnbspnbsp또 키가 큰 나뭇가지들은 끈에다가 돌멩이를 매달아 묶어서 담벼락 너머로 넘기기도 했습니다. 한참 동안 작업을 하고 나니 장미꽃이 제법 분산이 되면서 훨씬 나아 보였습니다.nbspnbspnbsp한편에서는 메마른 작물들에게 물을 듬뿍 주는 일을 했고, 또 한편에서는 방금 따온 죽순을 더욱 깨끗하게 다듬고 뜨거운 물에 삶는 일을 했습니다. 국통이 작아서 여러 차례 나누어 삶다보니 죽순 삶는 일은 밤 11시가 넘어서 끝이 났습니다.nbspnbsp▲ 죽순을 삶고 있는 모습nbsp▲ 초고추장에 버무려서 반찬으로 만든 죽순nbsp그리고 텃밭 곳곳에서는 지난 3월에 심은 작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북한에 보내려다가 못 보낸 씨감자도 이제 제법 무성한 잎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가지, 고추, 토마토, 복숭아, 배, 고소, 겨자채, 당근, 옥수수 등 다양한 작물들이 스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잘 자라나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텃밭의 채소들nbsp내일은 오전에 농사일을 하다가 오후 1시 30분에는 부산 중구 롯데백화점 문화홀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저녁 7시에는 포항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nbspnbsp ※ 카카오톡으로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받아보세요. 아래 배너를 누르고 친구 추가

2016.05.25. 86,453 읽음 댓글 50개

2016.5.22 (오후) 새터민 즉문즉설

nbsp안녕하세요?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정토불교대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해준 스님은 문경 정토수련원을 나와 곧바로 공주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11시 30분에 공주 곰나루 솔밭 쉼터에 도착한 스님은 먼저 점심 식사 장소를 답사했습니다. 스님이 도착했을 때는 대중들이 사좋은벗들 이승용님의 안내로 공주 역사기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님은 점심식사 장소에서 새터민들을 반갑게 맞이할 생각이었습니다nbspnbsp그런데 진행측이 잡은 점심식사 장소에는 나무가 별로 없어서 햇살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본 스님은 식사 준비 봉사자들에게 “이곳은 식사를 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하면서 나무가 무성한 솔숲 쉼터를 찾아주었습니다. nbspnbsp▲ 봉사자들이 잡은 식사 장소nbspnbsp▲ 스님이 다시 답사를 해서 찾아낸 식사 장소nbsp봉사자들과 함께 밥과 국, 반찬을 부지런히 나르고, 책상을 펼쳐 셋팅까지 마치자 드디어 새터민들이 역사기행을 마치고 막 식사장소로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휴일이라 꿀잠을 잘 시간인데 엄마 손에 이끌려 부은 눈으로 나온 어린이, 손을 꼭 잡고 온 연인 등 각양각색의 새터민들이 줄을 지어 솔숲으로 들어왔습니다. 스님은 합장 반배로 인사를 하며 환한 웃음으로 새터민들을 맞이했습니다.nbspnbsp▲ 새터민들에게 환영인사를 하고 있는 스님nbsp오전에는 새터민 600여 명이 사좋은벗들 이승용님의 인솔로 공주 역사기행을 했습니다. 공산성 성곽길을 걸은 후 송산리 고분군으로 이동해 모형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서 이곳 곰나루 솔숲으로 점심을 먹으러 온 것입니다.nbspnbsp새터민들은 돗자리를 펴고 삼삼오오 모여서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 개중에는 북한을 떠나온지 7년 만에 고향 사람을 만났다는 분도 있고, 처음 남한에 와서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을 때 만났던 동기를 만났다며 기뻐하는 분도 보였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은 아이들과 즐거운 게임 한판을 벌이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식사를 하고 있는 새터민들을 한바퀴 둘러보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새터민 여성 한 분이 “정토회가 북한보다 조직성이 더 없는 것 같다” 며 어수선한 행사 진행에 대해 농담조로 스님에게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그래도 남한에서 조직성 하면 정토회가 제일 나은 수준인데, 북한하고 비교하면 어떡해요?” 하며 “그럼 자기가 한번 나서서 딱 질서를 잡아봐요”라고 하며 웃었습니다.nbspnbspnbsp화끈한 성품의 새터민들은 스님을 보자 주저없이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스님도 이런 새터민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어떤 이야기도 잘 받아주었습니다.nbspnbsp점심을 배불리 먹고 공주 문화예술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새터민들은 남한에 정착해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많이 겪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마음껏 자신들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듣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강연장으로 새터민들이 입장하고 있는 동안 무대에 오른 스님은 즉석에서 장기자랑 시간을 가졌습니다. 늘 사회자의 소개를 받고 스님이 무대에 올랐는데, 오늘 새터민들 앞에서는 스님이 사회자 역할을 했습니다.nbspnbsp새터민들은 주저함이 없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와 노래 실력을 뽐냈습니다. 고향 사람들끼리 한자리에 모이니까 고향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는지 모두들 북한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nbspnbspnbsp노래를 부르러 나온 새터민들은 자신의 고향이 어디인지 소개했는데, 무산, 함흥, 혜산, 해주, 회령 등 어떤 곳을 말해도 스님은 그곳이 어디인지 척척 알아듣고 그 도시와 관련된 한마디씩을 들려주었는데 새터민들도 모두 놀라워 했습니다.nbspnbsp고향 생각을 하며 한바탕 신나게 어우러진 후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총 5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는데, 그 중에서 대한민국에 오면 잘 먹고 잘살 거라 생각해서 목숨을 걸고 왔는데 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북한동포돕기 활동을 펼쳐온 스님이기에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어떤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답변이 매우 현실적이면서 구체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새터민들도 아주 기뻐했습니다.nbspnbspnbsp“저는 북한에서 한국으로 올 때 한국은 지상낙원이고 천국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한국으로 오면 정말 돈이 하늘에서 뚝뚝 떨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와보니 생활이 너무 어렵고, 특히 외래어 능력이 많이 부족해서 정말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정말 마음의 갈피를 못 잡겠습니다. 그래서 저희 이탈주민들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고 지칠 때 법륜 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마음의 상처를 달랠 수 있도록 좋은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nbsp“한국이 지상낙원인 줄 알았다고요? 한국 사람들은 미국이 지상낙원인 줄 알고 200만 명이나 가서 살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매년 한 번씩 미국 전역을 다니면서 교포들을 상담해 보면 다 힘들어서 죽겠대요.nbspnbspnbsp또 한국의 젊은이들은 유럽이 지상낙원인 줄 알아요. 그래서 런던에 한 5만 명, 독일에 한 4만 명, 파리에 한 3만 명이 가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재작년에 전 세계를 한 바퀴 돌아봤거든요. 유럽 29개 도시, 미국 56개 도시, 그리고 캐나다와 남미, 즉 멕시코, 페루,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를 거쳐서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동남아를 거쳐서 일본까지, 장장 115개 도시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중동과 아프리카만 빼고 다 다녔어요. 그렇게 다니기 전에는 저도 잘 사는 일본, 미국, 캐나다, 호주, 유럽 등에 가서 사는 한국 사람들은 참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고, 남미나 동남아 등 가난한 나라에 가서 사는 사람들은 굉장히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nbspnbsp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까 정반대였어요. 우리 나라 사람 중에는 그래도 대학 나오고, 똑똑한 사람들이 주로 유럽에 가잖아요? 그런데 막상 유럽에 가서 살면 우리 나라에서 서울대를 나왔든 연세대를 나왔든 충남대를 나왔든 그게 유럽 사람들한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학벌이 엄청나게 중요하지만 유럽에 가면 하나도 중요하지가 않아요. 거기서 중요한 건 접시를 잘 닦거나 요리를 잘 할 줄 아느냐, 다시 말해서 기술이 있느냐 하는 겁니다. 우리 나라에 와있는 베트남 사람이 하노이 법대를 나왔든 호치민 공대를 나왔든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그저 육체노동을 잘 하거나 기술이 뛰어난 게 중요한 것처럼 말이에요.nbspnbsp한국사람이 유럽에 왜 갈까요? 유럽은 고임금, 즉 우리나라보다 인건비가 몇 배나 비싸니까 거기 가서 일하면 한국의 임금보다 23배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는 거예요. 우리는 최저임금이 약 6불밖에 안 되는데 거기는 15불이니까요. 그러나 그 나라 사람들 중에 우리 교포들이 제일 하층입니다. 이해되세요?”nbsp“예.” nbspnbspnbsp“그러니 교포들이 처음 유럽에 가서 한 3년 벌어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돈 좀 번 격이지만 거기에서 계속 살 거라면 그 나라에서 제일 하층으로 살아야 합니다. 대부분 원룸과 같은 10평이나 15평짜리에 삽니다. 저도 세계 100강을 다닐 때 그런 곳에 침낭 가지고 가서 쪼그리고 자면서 강연을 다녔거든요. 사는 게 굉장히 궁색합니다. 가끔 의사 같이 전문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좀 잘 살지만 90는 그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게 살아요.nbspnbsp그러면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사는 우리 교민들은 어떨까요? 공항에 마중 나올 때부터 다릅니다. 제가 한국에서 타보지도 못한 좋은 차를 끌고 마중을 나옵니다. 그 차를 타고 집으로 가보면 집이 대궐 같아요. 그런 나라에 간 교민들은 노동 이민을 간 게 아니라 주로 투자 이민을 갔기 때문입니다. 다만 얼마라도 돈을 가지고 그 나라로 간 뒤에 작은 가게라도 얻어서 그 나라 사람들을 종업원으로 고용해서 사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가보면 한국사람들은 다 사장입니다.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대다수가 그 사회에서 잘 사는 상류층에 속합니다. 마치 미국인, 프랑스인들이 우리 나라에 외국인촌을 형성해서 부자로 살듯이 우리 교민들도 동남아나 남미에서는 그렇게 살더란 말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저에 대한 접대도 다르지요.nbspnbsp돈 1억 원 가진 사람이 1,000만 원 가진 사람들 동네에 가서 살면 부자이지요? 그런데 100억 원 가진 사람들 동네에 가서 살면 가난뱅이가 됩니다. 그런 것처럼, 여러분들이 북한에서 살다가 남한으로 오니까 환경은 여기가 훨씬 나아도 여러분들이 엄청 가난한 것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북한에서는 한 달에 50불 벌었는데 여기 오면 1,000불 벌잖아요. 북한에 살다가 중국만 가도 어때요? 월급도 많고 좋잖아요.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또 한국에 오고 싶어 해요. 지금 여러분들은 한국에 왔잖아요. 그리고 여기 와서 1년이나 2년 번 돈을 갖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면 형편이 좋은 편에 속하잖아요? 지금 당장 1만 불만 가지고 북한에 들어가면 가게 하나는 할 수 있잖아요.nbspnbsp그러나 여기 계속 산다면 여러분들은 이민자이니까 하층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요. 마치 한국에서 서울대 졸업했어도 유럽에 가서 살면 당분간 하층민으로 살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렇게 10년, 20년 열심히 살다가 운 좋게 성공해서 잘 살게 될 수도 있겠지만, 다수는 어렵게 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에요.nbspnbspnbsp그러니까 여러분이 한국에 와서 힘든 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 인생계획을 잘 세우셔야 해요. 한국에 장기적으로 정착할 거냐? 아니면 빨리 통일을 해서 고향으로 갈 거냐? 만약 통일이 되어서 여러분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고향에서는 좀 잘된 축에 속할 거 아닙니까? 여기에서 살던 아파트 딱 정리해서 그 동안 모은 돈 보태가지고 북한으로 가면, 각자 고향에서는 부자 축에 들어가서 당 간부가 부럽지 않을 거예요. 지금 당장 갈 수 없어서 아쉽지만요.nbspnbsp월남이 패망하고 베트남이 통일될 때 월남 사람 중에 한 400만 명이 전부 외국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우리가 탈북 하듯이 보트피플이라고 해서 미국, 호주, 유럽으로 도망을 나갔단 말입니다. 그래서 엄청나게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베트남이 통일된 지 20년 후에 개방을 해서 투자를 받았는데, 그때 보트피플들이 미국으로 가서 막노동이라도 해서 번 돈을 가지고 다시 베트남으로 들어가면서 베트남 발전의 작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이 공산화될 때 대만이나 홍콩으로 도망갔던 사람들인 화교들이 중국이 개방을 하자 자기네가 번 돈을 가지고 중국으로 들어가서 중국의 외자유치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nbsp여러분들이 지금 한국에서 살기 어려운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합니다. 한국사람이 여기서 서울대 나왔어도 미국에 가서 정착하려면 접시 닦아야 되고, 채소가게에서 일해야 하는 것처럼 너무 당연한 거예요. 정착 초기에는 그런 것밖에는 할 수가 없으니까요. 서울대 나와 봤자 그걸 미국에서 써먹을 데가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김일성대학이나 김책공대를 나왔단들 한국에서 누가 알아주겠어요? 전문기술이 있으면 좀 다르겠지만요.nbspnbspnbsp그러니 여기서 여러분들이 정착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예를 들어 고추 모종도 온실에서 재배한 걸 뽑아다 밭에 옮겨 심으면 ‘사람한다’라고 해서, 잔뿌리 내리고 잎이 파랗게 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거예요. 모내기를 해도 한 열흘은 지나야 빼빼 말라 비틀어졌던 잎이 펴진단 말이에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뿌리를 내리고 살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그건 미국에 가서 살아도 그렇고, 유럽에 가서 살아도 그렇고, 어디 가서 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에서 돈을 엄청나게 가지고 여기 왔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여러분 대부분은 몸만 왔잖아요.”nbsp“주먹만 가지고 왔어요.”nbsp“몸뚱이도 왔겠지, 어떻게 주먹만 와요? 주먹에 발도 안 달렸는데요. 미국 이민 1세대도 전부 몸만 가서 불법체류하면서 살았던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좀 살만 했던 80년대에 광주민주항쟁이 있은 후 군부독재가 들어섰잖아요? 그때 미국으로 간 사람들은 재산을 팔아서 들고 갔기 때문에 미국에 가서도 큰 고생은 안 했어요. 처음부터 돈을 가지고 가서 바로 가게를 얻어 정착을 했기 때문에. 앞으로 북한도 이런 경우가 생길 거예요. 지금 여러분처럼 난민 1세대는 다 몸만 왔지만, 지금 북한에서 간부든 뭐든 돈 좀 번 사람들이 북한에 어떤 정치적 변화가 있거나 해서 돈을 지고 남한으로 도망 오는 사람들이 앞으로 생긴다면, 그 사람들은 여기 오자마자 딱 폼 잡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난민 1세대와 2세대 사이의 갈등이 아주 심해지겠지요. 우리 미국 교민 사회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nbspnbsp몸만 오게 되면 정착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 왜 그럴까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인간관계라는 게 있잖아요. 때로는 돈이 없어도 친인척, 동향, 동문, 군대 가서 사귄 사람 등 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해서 내가 부족하더라도 서로 밀어 주고, 끌어 주면서 살아간단 말이에요. 그런데 여러분은 북한에서는 그런 관계 속에 있다가 나무 한 포기가 뽑히듯이 뽑혀서 여기에 딱 옮겨 심어졌으니까 누구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잖아요. 그러니 고생할 수밖에요.nbspnbspnbsp그런데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베트남에서 왔거나 중국에서 왔거나 외국에서 온 사람에게는 대한민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쉽게 안 주잖아요. 그래서 그런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여기에서 불법체류해 가면서 돈 벌잖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오자마자 시민권, 즉 주민등록증을 딱 내주잖아요. 또 정착금도 주잖아요.nbspnbsp옛날에 탈북이 시작되던 초창기에 여러분들과 같은 분들을 데리고 제 고향인 시골로 수련을 한번 간 적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그 시골 아주머니가 저한테 ‘나는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나이 60이 넘도록 살았어도 정부로부터 땡전 한 닢 지원받은 적이 없는데, 저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뭐 한 게 있다고 오자마자 3,000만 원씩이나 주느냐?’라면서 성질을 내더라고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외국에서 왔다고 정착금 주는 나라는 한 나라도 없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갔다고 정착금 주는 일 없어요. 난민으로 가도 우선 텐트촌에 좀 살도록 하다가 일자리 알선해 주고는 나가서 스스로 벌어먹고 살라고 하지 정착금을 주는 일은 없습니다.nbspnbsp그런데 한국에서는 왜 여러분들께 정착금을 주느냐면, 옛날에 남북이 한참 이념 경쟁할 때 북쪽에서 남쪽으로 간첩을 내려 보냈더니 여기 와서는 전향을 하더란 말이에요. 그럼 남쪽에서는 그 사람한테 포상을 했습니다. 그때 5,000만 원이나 1억 원씩 주던 게 전통처럼 남아서 지금 정착금이라도 주는 겁니다. 정착금뿐만 아니라 직장도 알선 해 주고, 집도 주선해 주지요. 물론 집세는 정착금에서 내지만 서울에서 집 구하기가 어려운데 집을 주선해 주는 게 어디입니까. 요즘 한국에서 태어난 젊은이들도 서울에서 집을 못 구하잖아요.nbspnbspnbsp그러니 불만을 가지면 끝도 없어요.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면, 여러분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충성했고, 김일성, 김정일한테만 충성했지 대한민국에 충성한 적이 없잖아요. 대한민국에 세금 한 푼 낸 적도 없잖아요. 오히려 북한군으로 입대해서 대한민국에 총부리 겨누며 욕했잖아요. 그래 놓고 여기 와서는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더 더 더’ 라고 하면, 그것을 다 들어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 생각을 바꿔야 여기서 살 수가 있습니다.nbspnbsp예를 들어 북한에서 살다가 중국으로 넘어갔을 때는 잡혀서 다시 북한에 넘기지만 않아도 고마운 일이었잖아요. 제가 난민을 많이 돕다 보니까 한 젊은이로부터 이런 얘기도 들은 적이 있었어요.nbspnbsp‘스님, 중국은 사회주의 천국입니다.’nbsp‘왜? 뭘 보고?’‘중국에 와보니 중국에서는 개도 이밥을 먹습디다’nbspnbsp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자기 주인 집 개는 이밥도 아니고, 개밥이라고 아예 따로 정해져 있는 걸 주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성질이 나서 주인 없을 때 ‘이 새끼, 우리도 못 먹는 걸 처먹는다’ 면서 개를 패줬대요. 이게 90년대 후반의 일입니다.nbspnbsp제가 여러분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도움을 받으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여기에서 살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유럽에 가도 어렵고, 미국에 가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살려면 각오를 해야 됩니다. 제가 난민들을 도울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돈 억만금을 줘도 북조선에서는 살기 싫고, 자유로운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는 사람은 내가 한국에 갈 수 있게 도와주겠지만, 먹고 사는 게 힘들어서 한국에 가겠다면 내가 지금 돈을 좀 줄 테니까 이 돈을 가지고 도로 북조선으로 들어가거라’라고 말이에요. 제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고향을 떠나면 어디에서 살든 사는 게 너무 피곤한 법입니다. 돈이 좀 없어도 고향에서 살면 그래도 친인척, 친구, 안면 있는 사이, 어쩌고 해서 좀 비빌 언덕이 있지만, 고향을 떠나면 그런 게 없기 때문에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집니다.nbspnbsp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외로움 때문에 거의 정신질환자 수준이 되어 있어요. 여러분들은 한국말이 좀 어눌해서 그렇지 말이라도 통하잖아요. 그런데 미국에서 살려면, 말도 안 통하지, 또 유색인종이라고 차별받지, 너무 힘든 거예요. 여기에서 북한사람들 차별하는 건 차별도 아니라고 할 정도로 인종차별이 심합니다. 그런 속에서도 우리 교민들이 30년이 넘게 살아내면서 지금 교민사회가 자리를 잡은 거예요.nbspnbspnbsp그러니 제가 볼 때는 10년 내지 20년만 지나면 여러분들이 다 한국에서 중산층이 될 겁니다. 왜 그럴까요? 남한의 젊은이들은 직장에서 일이 주어지면 그 일을 할 줄은 알지만 스스로 악착같이 돈 버는 건 할 줄 몰라요.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 세대는 어릴 때부터 밭 매고, 낫질하고, 톱질하고, 지게질 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금방 일해서 먹고 살 궁리를 하는데, 지금의 한국 젊은이들은 태어나서 아무 것도 안 하고 공부만 하면서 스무 살 넘을 때까지 살다 보니까 직장에서 ‘이 일 해라’ 하고 시키는 것만 할 줄 알지, 직장이 없으면 서른 살이 되어도 그냥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부모가 해 주는 밥이나 얻어먹고 살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북한에서 어렵게 자랐기 때문에 단련이 돼 있잖아요. 그러니 여기 살면서 잘 살펴보면 고생이 좀 되더라도 한국사람들이 잘 안 하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처음에만 고생이지 돈 되는 일들이 좀 있어요. 그런 걸 찾아서 악착같이 살아야 합니다.nbspnbsp그렇게 여기서 정착해서 살든지, 안 그러면 돈을 쓰지 말고 모아놨다가 통일되면 북한으로 다 가지고 가세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중에 혹시 남북 간에 무슨 일이 있을 때 북한을 욕하고 데모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제가 볼 때 바보입니다. 남한 사람들은 그렇게 해도 되지만, 북한에서 온 사람이 그렇게 하면 바보예요. 우리 모두가 북한이 나쁘다는 거 알아요. 그렇지만 ‘북한이 나쁘다’ 라고 아무리 얘기한들 북한이 개선되는데 도움이 될까요?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계속 ‘북한이 나쁘다’라고 하니까 북한에서는 여러분들이 가족과 전화도 못 하게 하고, 송금하는 것도 막아버렸잖아요. 여러분들이 가족한테 돈을 보낼 때 옛날에는 수수료를 20만 줘도 됐던 게 지금은 50 줘야 가잖아요.nbspnbsp남북관계가 좋아져서 통일이 되면 제일 이익 보는 사람이 바로 여러분들이에요.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북 간에 자유 왕래만 할 수 있어도, 투자만 할 수 있게 돼도 여러분들이 제일 이익입니다. 남한 사람은 돈이 좀 있어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되는지 모르지만, 여러분들은 그 안에서 살았으니까 잘 알잖아요. 왜 바보같이 북한 욕하고 데모하는 데 끼고 그래요? 남한 사람이 다 통일을 반대해도 여러분들만은 통일하자고 해야 할 판인데요.nbspnbsp또, 전쟁을 통해서 통일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물론 남한이 북한보다 군사력과 경제력이 월등히 앞서고 우방인 미국도 있어서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남한이 이기는 건 당연할지 몰라도, 남북이 모두 피해를 입는 건 피할 길이 없잖아요. 여러분은 북한에 살아봐서 북한이 어떻다는 걸 알잖아요. 북한은 지더라도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이니까, 결과적으로 엄청난 인명피해, 재산피해를 낳을 게 뻔하잖아요. 그러니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북한이 나쁜 건 맞지만, 또 우리가 북한에 굴복해서도 안 되겠지만, 전쟁보다는 살살 달래서 통일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쉽진 않겠죠. 그러나 그것이 올바른 정책이라는 거예요.nbspnbspnbsp한국에 와있는 베트남 노동자나 중국 사람들이 질문자를 보면 엄청나게 부러워할 거예요. 중국에 있을 때는 질문자가 중국 사람을 부러워했겠지만, 질문자가 한국에 오니 이제는 중국 사람이 한국 사람인 질문자를 부러워할 거예요. 여자분들도 중국으로 넘어가서 살 때는 살 방법이 달리 없어서 중국 남자랑 결혼해서 괄세 받고 살았지만, 이제 한국에 오니까 어때요? 중국인 남편이 기죽어 하지요?”nbspnbsp“예.”nbsp“한국에 오면 여자분들은 여기서 말이 통하지만 중국 남편은 말이 안 통하니까 기가 죽을 수밖에요. 그러니 여기서는 여러분들이 유리한 게 많아요. 너무 불리한 것만 생각하지 말고 유리한 걸 생각하세요. 어차피 고향 떠나 살면 괄세를 좀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한국 안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가서 살면 좀 괄세 받고,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 가서 살면 좀 괄세를 받습니다. 북한 안에서도 함경도 사람, 평안도 사람이 서로 텃세 좀 부리잖아요. 제가 여러분들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스님이 그런 마음을 이해 못해서 냉정하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nbsp그러나 여러분이 자꾸 어렵다고 생각해 봐야 여기서 사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러니 첫째, ‘2,000만 북한 사람 중에 내가 중국을 거쳐서 이 대한민국에 오다니 이것만 해도 행운이고 기적이다. 이런 혜택을 입은 김에 나는 악착같이 일해서 꼭 성공하겠다. 그래서 남조선 사람들한테 북조선 사람 좀 깔보지 말라고 확실히 보여주겠다’ 하는 게 필요합니다. 둘째, 그렇게 해서 꼭 성공을 하되 남북관계가 조금 나아져서 북한에 투자할 수 있게 되면, 고향에 투자해서 잘난 척하던 당 간부들한테 본때를 보여주라는 거예요.nbspnbsp그런 목표가 있어야 살맛이 나지, 여기 사람들 쳐다보면서 ‘나는 언제 저렇게 돈 버나?’ 생각하면 힘들고 괴로워서 못 살아요. 질문자는 아직 젊어 보이는데, 몇 살이에요?”nbsp“스물네 살입니다.”nbsp“그렇게 젊은 사람이 그런 소리하면 어떻게 해요. 힘내세요nbspnbsp그리고 누가 물었을 때 북한에서 왔다는 걸 숨길 필요는 없어요. 질문자 스스로 ‘나 북한에서 왔다’는 말을 할 필요도 없지만요. 그래서 누군가 ‘너 어디서 왔니?’라고 묻는다면 ‘천안에서 왔다’라고 하면 되지 ‘함흥에서 왔다’라고 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고향이 어디냐?’라고 물으면 ‘함흥입니다’ 하면 되고, 또 ‘북한에서 왔어?’ 그러면 ‘예’ 하면 되지 그 사람이 이어서 뭐라고 말하든 신경 쓸 거 없습니다.nbspnbsp아이들도 학교에 가면 고향을 숨기고 그런다던데 숨길 필요가 없어요. 미국에 가서도 ‘너 어디서 왔니?’ 물으면 ‘한국에서 왔다’ 라고 당당하게 얘기해야지 얼버무릴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태어난 고향으로 차별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북한에서 태어나서 지금 이럴 뿐이고,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뭐가 잘나서가 아니라 어쩌다 재수 좋게 여기에서 태어나다 보니까 이런 거지요. 그러니 북한 출신이라고 열등의식을 갖거나 숨을 필요가 없고, 당당하게 경쟁해서 살아갈 필요가 있어요. 스님이 너무 인심이 박하게 얘기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힘내세요 알았죠?” nbspnbsp“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nbsp“제가 여러분들 사정을 모르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어렵다’, ‘힘들다’라고 하면서 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 첫째, 여러분은 남한에서 악착같이 노력해서 정착에 성공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둘째, 여러분은 여기서 영원히 살 생각을 하지 마시고, 적절하게 기술도 익히고 자본도 축적해서 고향으로 돌아가 고향을 재건할 꿈을 꾸세요. 여러분들의 힘만으로는 그런 기회를 못 만들겠지만 스님도 힘을 보탤 거니까요. 통일은 좀 놔놓고, 가능하면 평화적으로 전화나 왕래라도 하고, 투자라도 할 수 있게는 해야 되지 않겠어요? 꼭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만 통일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통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으니까요. 한국 안에서도 한번 권력을 잡은 사람은 그걸 안 내놓으려고 저렇게 상대방과 물고 차고 싸우는데, 자기 군대까지 가진 남과 북의 정치지도자들이 쉽게 권력을 내놓으려고 하겠어요? 그래서 저는 통일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말되 준비는 계속 해야 합니다.nbspnbsp그리고 북한도 언젠가는 변하겠지요. 그것 또한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저렇게 인류문화의 발전에 역행하는 식으로는 오래갈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첫째, 좀 시간을 갖고 기다리는 것, 둘째, 준비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여러분께도 대박 터질 날이 있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nbspnbspnbsp남쪽 사람들은 기회가 와도 개성공단처럼 돈만 엄청나게 집어넣고 별 소득도 없는 일을 잘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돈 조금만 가지고도 효과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잖아요. 여러분들은 북한에 살아봤으니까, 어디 투자하면 잘 될지, 차를 사서 어떻게 굴리면 잘 될지, 집을 어디에 사면 잘 될지, 이런 걸 잘 알잖아요. 기회만 온다면 그런 게 여러분들의 강점이 될 겁니다. 여러분이 지금 너무 힘든 건 알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분명히 기회가 있습니다.nbspnbsp그리고 연세 드신 분들은 ‘밥만 안 굶으면 됐다. 여기서 놀다가 죽기 전에 고향 갈 수 있으면 가고, 못 가면 그만이고’ 이렇게 생각하시는 게 좋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목표를 세워서 살아야 합니다. 남 얘기 듣지 마시고 제 말을 잘 들으면 다 성공할 거예요. 스님이 말을 좀 못되게 해서 그렇지 진심은 있어요.” nbspnbspnbsp스님의 경험 속에서 우러나오는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들 때문인지 새터민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 질문자도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자 다함께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nbspnbsp이 외에도 네 명이 더 스님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운칠기삼’이라는 사자성어의 뜻이 무엇인지 묻는 분, 본인은 남한에 와서 잘 살고 있는데 어릴 때 헤어져 지금도 북한에 남겨져 있는 엄마가 힘들게 살 것을 생각하니 무척 가슴이 아프다며 울먹이는 분, 명상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달라는 분, 남한에 정착해서 열심히 일하며 잘살고 있는데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늘 불안하다는 분의 질문까지 약 두 시간 동안 즉문즉설이 진행됐습니다.nbspnbsp특히 오늘은 즉문즉설만 하지 않고 질문 사이 사이에 새터민들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답변 하나가 끝난 후 스님이 “자, 그럼 이번엔 어느 분이 나오셔서 노래를 한번 불러 볼래요?”라고 말하면, 서너 분이 무대 위로 뛰어 나와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며 흥을 돋우었습니다.nbspnbspnbsp자작시를 암송한 70대 후반의 어르신은 많은 공감을 얻어 큰 박수를 받았고, 남한의 대중가요인 ‘내 나이가 어때서’를 열창한 여성분은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을 보여주어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nbspnbsp유익한 강연도 듣고, 신나게 노래도 불러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약속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오늘 만남을 마무리하며 스님은 다시 한 번 새터민들을 위한 격려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nbspnbsp“방금 전에 젊은 사람이 질문한 것에 대해서는 제가 답변을 해드렸는데, 연세 드신 분들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연세 드신 분들은 언제 돈 벌어서, 언제 고향에 투자하시겠어요?nbspnbsp그러니 아까처럼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이렇게 재미나게 그냥 사는 거예요. 아시겠죠? 대한민국에 충성은 안 했지만, 그래도 북한에서 충성하며 사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어요. 북한도 우리나라이고, 남한도 우리나라잖아요. 그러니 고생 많으셨어요. 그러니 한국에 살면서 절대로 기죽으면 안돼요. 아시겠죠?”nbsp“예.” nbsp nbspnbsp“각 정토회에서 여러분께 자원봉사하시는 분들도 오늘 이 자리에 많이 와 계신데, 그분들 평소에 수고가 많으시지요? 그분들을 위해서 박수 한번 쳐주세요.nbspnbspnbsp그리고 스님이 여러분과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모두 후원금 덕분인데요, 여러분, 혹시 배우 신민아 씨를 아세요? 여러분들의 아이들 공부 가르치는 사이숲 활동에 신민아 씨가 많은 후원을 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물론 신민아씨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지원을 해주고 계십니다.nbspnbspnbsp지금 대한민국에서 사는 게 좀 빡빡할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도 지금 죽겠다고 아우성이니까요. 그래도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이렇게 좋은 마음으로 보시도 하면서 우리와 함께 하려는 사람들도 많아요. 어디든 다 좋은 사람만 사는 것도 아니고, 다 나쁜 사람만 사는 것도 아니고,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이 섞여있어요. 그러니 예전에 나쁜 사람들 만나서 피해 입고 차별 당한 것 떠올리면서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세상이라는 게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섞여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시고, 너그럽게 이해하며 사시기 바랍니다.”nbsp새터민들은 정토회 봉사자들과 배우 신민아씨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가슴이 훈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nbspnbsp강연의 마지막도 역시 노래로 갈무리했습니다. 스님이 “노래 한 곡 부르고 헤어지자”고 하니 세 명이 무대 위로 올라와 노래를 불렀습니다.nbspnbspnbsp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새터민들의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슬픔과 한이 느껴졌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개개인이 다 얼마나 많은 고통과 한스러움을 겪었을까요? 다행히 좋은벗들의 봉사자들이 해마다 이런 시간을 마련해준 덕분에 그나마 새터민들이 답답함을 풀어놓고 갈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nbspnbsp마지막으로 다함께 손에 손을 잡고 부른 노래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었습니다. 새터민들은 이 노래를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분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지금도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이 살아있기 때문에 통일은 고사하고 자유 왕래만이라도 간절히 바라는 것이 바로 새터민들일 겁니다.nbspnbspnbsp이렇게 강연을 모두 마친 후 다함께 문화예술회관 앞 계단에 올라서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 만남이 너무나 좋았는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nbspnbspnbsp새터민들과 작별 인사를 한 후 오후 5시에 공주를 출발한 스님은 곧바로 울산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7주기를 맞이하여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고 헌화할 예정입니다.nbspnbsp※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5.24. 89,435 읽음 댓글 42개

2016.5.22 (오전)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

nbsp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에 참가해 즉문즉설 시간을 가진 후 오후에는 새터민들과 함께 봄나들이겸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어제 서울시청광장에서 청년들 1만 명과 함께한 청춘콘서트를 마치고 새벽 2시에 문경 정토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눈을 붙인 스님은 새벽 6시에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이 열리고 있는 대수련장에 들어섰습니다.nbspnbsp오늘 특강수련은 경상남도, 강원도, 경기도 동부 지역에서 정토불교대학을 수강하고 있는 4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청법가와 삼배로 스님에게 법을 청하자 스님이 법상 위에 올라 법문을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먼저 스님은 이곳 대수련장에서 하룻밤을 숙박한 대중들에게 “잘 주무셨어요? 이런 곳에서도 한번 자보는 것은 좋은 수행이예요” 라는 인사말로 잠자리가 불편했을 대중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nbspnbsp그리고 오늘처럼 이렇게 꼭두새벽에 강연이 잡히게 된 까닭에 대해 위트있게 설명을 해주면서 대중들의 양해를 구했습니다.nbspnbsp“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실천적 불교사상’에 해당하는 10회분 강의를 다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평소 궁금했던 것을 모아서 오늘 한꺼번에 질문을 받겠습니다. 사실은 매번 강의가 끝난 뒤에 바로 질문을 받는 게 제일 좋아요. 제가 여러분들 앞에 수십 군데 동시에 몸을 나퉈서, 즉 분신을 해서 강의를 하는 것은 현재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서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 수백 수천 명을 동시에 제 앞에 나타나게 하는 기술은 아직 제가 터득을 덜 했어요. 수행을 조금만 더 하면 곧 될 거예요.nbspnbspnbsp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이 공부하다가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에서 송신기능을 활용해서 ‘질문 있습니다’ 하고 메신저 같은 걸로 보낼 수가 있어요. 제가 그걸 보고 ‘질문하세요’ 이러면 여러분들은 자기 얼굴을 보여주면서 궁금한 걸 질문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을 해주는 거예요. 제 수행이 조금만 더 되면 곧 이렇게 할 수 있을 거예요.nbspnbsp그런 기술은 이미 개발되어 있어요. 어떻게 상용화할 거냐가 문제인데, 국제회의 같은 데서는 이미 활용하고 있지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정토불교대학에서도 학생들과의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질 겁니다. 그래도 아직은 쌍방향 소통이 어려우니까 오늘 이렇게 모여서 열 번 강의한 내용 중에서 궁금한 내용들을 한꺼번에 질문받는 거예요.nbspnbsp수업 들을 당시에는 질문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오늘 질문을 적으려니 생각이 안 나죠?”nbsp“네.”nbsp“그런 질문은 원래 질문거리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런 건 분별이라고 해요. 들을 때 ‘에이, 뭐 저래. 저게 뭐야’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 생각이 안 드는 것은 물을 필요가 없는 거예요. 오늘도 법문 듣는 동안 무슨 생각이 떠오를 텐데 그것도 물을 필요가 없어요. 우리는 자극을 받으면 항상 생각이 일어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잘 때마다 꿈을 꾸는 것과 똑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게 뭐지?’ 하고 계속 남아 있는 것은 의문에 속합니다. 그런 의문은 반드시 물어서 해소해야 해요. 자, 그러면 여러분들이 써낸 질문을 하나씩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질문이 서른 개가 넘어요.nbsp어떤 분이 또 이런 이야기를 해요. ‘스님, 왜 새벽 4시부터 깨워가지고 피곤해 죽겠는데 강의까지 합니까? 집에 있으면 아직 잘 시간이라 졸려 죽겠습니다.’ 라고요. 그런데 어쩔 수가 없어요. 선택을 해야 해요. 이렇게라도 강의를 들으실래요? 그냥 강의를 듣지 않고 잠을 잘 수 있게 해줄까요? 둘 중 어느 게 나아요?”nbsp“강의 듣는 게 나아요.” nbspnbsp“예, 이렇게라도 듣는 게 낫죠. 이렇게 새벽에 강의를 해야 하는 이유는 제가 바쁜 몸이라서 그래요.nbspnbsp저는 하루에 두 탕, 세 탕씩 강의를 뛰어야 하는데, 여러분들은 여기서 하룻밤을 묵으니까 새벽에 해도 되잖아요. 집에서 오는 사람더러 새벽 6시부터 오라고 할 수는 없는데, 여러분들은 지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에요. 스님이 여러분들을 애먹이려고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니에요.”nbsp“예”nbspnbsp다들 새벽 4시에 일어나보거나 새벽 6시에 강의를 들어보는 경험은 처음인 분들이 많았는지 스님의 위트있는 설명에 공감을 하며 활짝 웃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은 학생들이 써낸 질문지를 하나씩 읽어내려 가며 답변을 시작했습니다. 총 32개의 질문지가 올라왔지만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동안 15개의 질문에 대해서만 답변을 해줄 수가 있었습니다.nbspnbsp오늘은 그 중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고 지켜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질문한 내용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은 일상 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쉽고 재미있게 비유를 들어주어 대중들도 즐겁게 답변을 들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의 정토불교대학 강의내용 중에 궁금한 것이 있어 질문드립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라고 했던 어린 장금이의 대사처럼, 저는 제 뜻대로 되면 즐거운 ‘락’이 생기고 제 뜻대로 안 되면 괴로운 ‘고’가 저절로 생겨납니다. 스님께서는 이 때 ‘아, 일어나는구나’라고 가만히 지켜보라고 하셨지만, 저는 ‘아, 화가 나네’ 생각만 할 뿐 화가 나는 상대에게 뭐라고 말은 하지 않아도 가슴 속에는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는 제 자신을 느낍니다. 고락에 집착하지 않고 지켜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nbspnbsp“이 질문은 ‘윤회’와 ‘해탈’에 대한 것입니다. 윤회는 돌고 돈다는 뜻이에요. 흔히들 생각하듯이 사람이 죽어서 소 되고, 말 되고, 개 되고, 부자 되고, 가난한 사람 되고, 남자 되고, 여자 되면서 돌고 돈다는 것은 인도의 전통문화입니다. 태어난 생년월일시에 따라서 운명이 정해진다는 게 중국의 전통문화인 것처럼 윤회도 인도의 전통사상이에요.nbspnbspnbsp부처님의 일생을 쓰는 사람들도 인도 사람들이었으니까 자기들의 문화 양식대로 기록을 한 거예요. 자기들 생각에서는 이렇게 위대하신 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고작 6년간 수행해서 깨달았다는 건 말이 안 되었던 거예요. 그래서 우리 눈에만 이렇게 보일 뿐이지 사실은 과거 생에 한량없이 수행을 해왔기에 부처님이 이생에 깨닫게 된 것이라고 기록한 겁니다.nbspnbsp이렇게 기록한 건 거짓말로 과장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 역사적 사실도 아니고, 단지 그들의 표현 방법일 뿐인 겁니다. 그렇게 표현할 때는 그 사람들 나름대로 뭔가 우리에게 교훈을 주려고 그렇게 표현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취득하면 되지, 그것을 객관적 사실이라고 믿어도 안 되고, 다 거짓말이라고 말해도 안 됩니다. 그건 문화이기 때문이에요.nbsp부처님은 ‘윤회’나 ‘까르마’ 같이 인도 전통문화에서 사용하고 있던 용어를 쓰셨습니다. 그러나 용어는 같지만 부처님이 쓰신 용어의 의미는 인도 전통으로 내려오는 의미와는 다를 때가 많아요. 인생을 살면서 자기 마음을 잘 관찰해보세요. 내가 원하는 게 이루어졌을 때 어때요? 나도 모르게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죠. 그런데 내 뜻대로 안 되면 기분이 나빠요. 이 기분 좋은 것을 ‘즐거움’, 한자로는 ‘락’이라고 해요. 기분이 나쁜 것을 ‘괴로움’, 한자로는 ‘고’라고 합니다. 이게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를 반복하면서 즐거운 게 곧 괴로움이 되기도 하고, 괴로운 게 곧 즐거움이 되기도 하면서 늘 바뀌는 거예요. 오늘만 해도 그래요. 처음에는 ‘야, 문경에 수련하러 간다’ 하고 기분이 좋았죠? 그런데 와서 새벽에 절하라니까 기분이 나쁘죠? 법륜 스님을 직접 보니까 또 기분이 좋죠? 지금은 졸리니까 ‘아이고, 빨리 안 끝나나’ 하고 또 기분이 나쁘죠? 이렇게 늘 고락이 돌고 도는 것을 윤회라고 해요. nbspnbspnbsp사람이 나고 죽고, 나고 죽고, 사람이 되고, 개 되고 하는 것을 반복하다가 그 반복이 멈춰서 더는 안 태어나는 것을 인도에서는 ‘윤회에서 벗어났다’고 해요. 그런데 부처님이 말하는 ‘윤회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 이렇게 반복되는 것이 끝났다는 거예요. 즉, 즐거움과 괴로움이 되풀이 되는 것이 멈추었다는 겁니다.nbspnbsp여러분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즐거움은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조금 유지하다가 괴로움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즐거움으로 올라왔다가 또 떨어지면서 돌고 도는 것입니다. 그러나 ‘열반’이란 말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말해요. 그래서 이 즐거움이 지속가능합니다. 즐겁거나 괴롭다고 할 때 말하는 즐거움이 지속가능하려면 원하는 욕구가 100퍼센트 다 채워져야 하는데 그렇게는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말은 즐거움으로부터도 벗어나버린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반복하며 돌고 도는 즐거움과 괴로움, 이 둘 모두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이름 하여 ‘열반’ 혹은 ‘열반적정’이라고 합니다.nbspnbsp진정한 행복은 내가 바라는 무엇이 이루어져서 ‘야, 기분 좋다’ 하는 것이 지속되는 걸 말하지 않습니다. ‘기분 좋다’ 하는 건 마음이 들뜨는 거예요. ‘기분 나쁘다’ 하는 건 마음이 가라앉는 거예요. 이렇게 들뜨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파도타기를 하는 걸 ‘윤회’라고 하고, 이 파도타기가 없어진 걸 ‘고요적정하다’라고 표현합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죠? 그렇다면 공부 좀 더해야 해요.nbspnbspnbsp그래서 이런 즐거움에 의미를 부여하면 즐거움에 빠져서 공중에 붕 떴다가 가라앉을 때는 툭 떨어지니까 또 죽는다고 아우성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늘 ‘산다’, ‘죽는다’를 반복합니다. 부부관계도 조금만 잘해주면 ‘다음 생에도 너와 살겠다. 내가 결혼 잘 했지’라고 하고, 조금만 못해주면 ‘다음 생에는 너와는 안 만나겠다. 이런 인간과 결혼하다니 내가 미쳤지’라고 합니다. 자식도 ‘내가 왜 저 자식을 낳았나’ 하다가도 ‘아이고, 그래도 자식 덕분에 산다’라고 해요. 요사스럽기 그지없어요.nbspnbsp여러분들도 지금 불교대학 다니면서 그러고 있는 줄 뻔히 알아요. ‘불교대학 잘 들어왔다’ 했다가, ‘괜히 시작했다’ 했다가, 법륜 스님 법문 듣고 ‘좋다’ 했다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이야기를 해서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스님이 왜 쓸데없이 정치 이야기 하느냐’라고 했다가, 그래서 며칠 동안은 ‘스님의 하루’도 안 보다가 또 즉문즉설 하나 읽어보고 나면 ‘아, 그래도 훌륭한 사람이다’ 하면서 좋아하고, 이렇게 늘 왔다 갔다 하고 있죠? nbspnbspnbsp이걸 ‘윤회한다’고 해요. 이런 것으로부터 벗어나버린 상태가 해탈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해서 벗어날까요? ‘나는 안 즐거워야지’, ‘나는 안 괴로워야지’ 이런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이건 내가 의도적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각자에게는 업식이라는 게 있어요. 이게 바깥 경계에 탁 부딪히면 북을 쳤을 때 자동적으로 울리듯이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거예요. 여기에서 나의 의지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늘 이 업식에 끌려서 삽니다. 기분이라는 것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자기가 알아서 반응해요.nbspnbsp내가 여기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이렇게 기분 좋음이 일어나도 그저 빙긋이 웃어야 해요. ‘아이고, 또 반응이 일어나는구나.’ 하면서요. 기분 나쁨이 일어나도 그 좋고 나쁘고에 비중을 두지 않고 ‘또 반응하는구나’ 이렇게 아는 거예요. 좋은 반응도 나쁜 반응도 다만 반응일 뿐이에요. 이런 반응을 ‘음, 또 그러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려야 해요.nbspnbspnbsp물론 우리가 알아차려도 반응은 여전히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건 포물선하고 똑같아요. 돌멩이를 던지면 이렇게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떨어지죠? 그냥 가만히 놓아두면 올라가던 돌멩이도 이윽고 떨어집니다. 여러분의 화 역시 가만히 놔둬도 언젠가는 가라앉아요. 수행을 안 해도 가라앉아요. 죽을 때까지 그 화가 지속되진 않습니다. 그런데 수행을 안 할 때는 화가 이만큼 높이 올라왔다가 가라앉는다면, 수행을 할 때는 조금 달라요. 알아차려도 화가 올라가긴 하지만 조금만 올라왔다가 금방 가라앉아요. 올라가기는 올라가지만 딱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올라가는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해요. 이렇게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는 걸 ‘지켜본다’ 라고 해요.nbspnbsp여러분들은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억누르고 있는 거예요. ‘화내지 말아야지’ 하고 억누르는 건 지켜보는 게 아니라 억압하는 거예요. 그러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여러분들은 성질대로 했다가, 참았다가, 성질대로 했다가, 참았다가, 이렇게 하는 거예요. 참으면 영원히 참으면 되는데 세 번밖에 못 참아요. 삼세번이라고 하죠? ‘두고 보자’, ‘두고 보자’ 이러다가 세 번째가 되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이렇게 펑 터지는 거예요.nbspnbspnbsp참지 말고 지켜보세요. ‘내 업식이 또 내 의지와 관계없이 자동 반응하는구나’, ‘화가 나는구나’ 이렇게 그냥 ‘봄이 오는구나’ 하듯이 바라보세요.nbspnbsp그러면 여러분은 ‘그래도 화가 나던데요’라고 하겠죠. 맞아요. 그게 쉬우면 누가 못 하겠어요? 그러니 연습을 해야 해요. 원리는 원리이고, 배운 원리에 따라 연습을 자꾸 하면 상대가 화를 내도 나는 빙긋이 웃을 수가 있게 됩니다. 지금은 잘 안 돼요. 원리를 알아도 상대가 성질을 내면 나도 같이 성질이 나버려요. 저쪽에서 화를 딱 내면 이쪽에서는 자동으로 팍 하고 반응을 하게 돼요. 그런데 이걸 자꾸 연습하면 상대가 화를 내는데도 빙긋이 웃게 됩니다. ‘오, 저 사람이 저런 인식 상의 오류로 화를 내는구나. 저러면 자기 몸에만 나쁠 텐데...’ 이런 생각이 드니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거예요. 욕을 얻어먹고 참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참으면 터지는 거예요.”nbsp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니 어떻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지 명쾌하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제 직접 부딪히면서 계속 연습을 해봐야겠지요.nbspnbsp스님의 답변에 대중들은 웃음을 빵빵 터뜨렸습니다. 졸린 눈도 금새 떠지고, 옆 사람의 웃음 소리에 깜짝 놀라 졸음이 달아난 사람도 몇몇 보였습니다.nbspnbsp그런데 다시 1시간이 지나자 졸음을 깨우기 위해 측면으로 걸어나와 서서 법문을 듣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이런 분들이 10명을 넘어서자 스님은 “자, 그러면 모두 제자리에서 일어나세요. 기지개를 주욱 펴 봅니다.”라며 대중들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nbspnbspnbsp대중들은 “아이고, 시원하다” 하면서 한바탕 스트레칭을 한 후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대중들 중에 노래 한 곡 불러볼 사람 있으면 앞으로 나와 보세요.” 라며 분위기를 전환시켰습니다. 그런데 다들 망설이기만 하고 한참 동안 앞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한 분이 번쩍 손을 들고 나와 “제가 노래를 잘 못 부르더라도 이해해 주세요.”라며 노래 한자락을 불러 주었습니다.nbspnbspnbsp그런데 노래는 정말 잘 불렀는데 늦게 나온 것 때문에 스님이 한 소리를 했습니다.nbspnbsp“노래는 잘 하셨는데, 그렇게 노래를 잘 하면 빨리 나와서 부르지 뭣 때문에 우물쭈물 했어요? 노래를 못 불러도 이해해 달라고 그러셨는데, 우리는 자기가 노래를 못 불러도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요. nbspnbspnbsp왜냐하면 자기가 가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거든요. 스님이 ‘노래를 잘 하세요’ 라고 안 했잖아요. 그냥 ‘노래를 해보라’ 라고 했죠. 산토끼 노래를 불러도 되고, 태극기 노래를 불러도 되고, 뭐든지 부르기만 하면 되는데... 좀 잘나 보이고 싶었어요? nbsp이렇게 시킬 때 안 하려고 하는 건 대부분 ‘내가 잘났다’ 하는 거예요. 노래 한번 해보라고 했는데 ‘못한다’고 하면서 10분씩 끌다가 노래하는 사람들 중에는 산토끼 노래 부르는 사람이 없어요. ‘비목’처럼 아주 어려운 노래를 해요. nbspnbsp이건 무슨 뜻이냐면 ‘내가 잘 났는데, 노래를 하게 되면 내가 잘난 것에 좀 흠이 간다’ 는 뜻이예요. 그러니 앞으로는 ‘노래 한번 해보세요’ 라고 하면 그냥 앞에 나가서 아무거나 부르면 되는 거예요. 부르다가 가사를 모르면 그냥 그만두면 되는 거예요. 중간에 그냥 ‘아이고, 모르겠다’ 하고 그냥 그만두면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노래를 끝까지 부르세요’ 라는 말을 안 했잖아요.nbspnbsp그냥 아는 데까지 부르다가 그만두면 되는 거예요. 인생을 그렇게 복잡하게 사니까 괴롭죠. 제가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은 ‘그럼 스님은 왜 안하세요?’ 라고 따지는데, 저는 스님이기 때문에 계율에 음주가무를 하지 말라고 되어 있어요.” nbspnbsp스님의 이야기에 대중들은 또한번 박장대소를 하며 배꼽을 잡았습니다. 노래 한 곡 부르는 것 속에서도 수행을 배울 수 있다는 말씀에 ‘정말 수행이 아닌 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이후 계속된 법문에서는 대중들이 조금이라도 졸지 않게 하려고 평소에 강연할 때보다 더 큰 목소리로, 더 실감나게 비유를 들어가며 답변하는 스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까운 시간을 내어 이곳에 모인 대중들이 조금이라도 삶의 변화를 얻게 되기를 바라는 스님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3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답변을 해준 스님은 마칠 시간이 되자 다시 한 번 새벽부터 강연을 열심히 들어 준 대중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이 강연이 끝나면 공주로 가야 돼요. 한국에 들어와 있는 새터민들이 살기가 무척 힘든데, 그 분들의 이야기도 들어줘야 해서 오늘 새벽부터 강연을 하게 됐어요. 양해를 바랍니다. 혹시 졸려서 죽을 뻔 했다는 분들 있었어요?”nbsp“아니요.”nbsp“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nbspnbsp대중들도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nbspnbspnbsp대수련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공주로 이동했습니다. 공주에서는 낮 12시부터 새터민들과 함께 숲속에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한 후 오후 2시에는 인생 고민에 대해 묻고 답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이어집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5.24. 82,949 읽음 댓글 44개

2016.5.21 (저녁) 2016 청춘콘서트

nbsp오후 내내 무교로 일대에서 펼쳐졌던 청춘박람회에 이어서 저녁 7시부터는 서울시청광장에서 청춘콘서트가 열렸습니다.nbspnbsp어슴푸레 저녁이 되자 청년들은 오늘의 메인 행사인 청춘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 시청광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미 6시부터 많은 인파가 모여들면서 인산인해를 이루기 시작했고, 6시 30분이 되자 드디어 1만명의 청년들이 시청광장 드넓은 잔디밭을 가득 메웠습니다.nbspnbspnbsp첫 번째 무대에 오른 인디밴드 ‘요술당나귀’가 카페라떼 노래를 시작하자 시청광장은 순식간에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이어서 인디밴드 ‘버스트리드’, ‘아마다스’의 공연이 계속되면서 청춘콘서트는 축제의 기운을 한껏 뿜어내었습니다.nbspnbspnbsp오프닝 영상에서는 청춘콘서트를 준비한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이 비춰졌는데, 오늘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청년 사회자 두 명이 무대에 올라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1만 청춘들의 염원을 담은 신비한 주문을 청중들에게 소개했습니다. 사회자가 “세상을 바꾸는 우리의 주문” 이라고 선창을 하자 1만명의 청춘들도 큰 소리로 함께 외쳤습니다.nbspnbsp“얄리얄리 얄라셩”nbspnbspnbsp한국 사회의 현실은 갈수록 청년들이 희망을 갖고 살기가 어려워지고 있는데요. 청년 자살률 세계 1위, 출산율 세계 최저, 줄어드는 청년 일자리,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사회 등 답답한 현실로부터 잠시 벗어나 시청광장에 모인 1만 청년들은 한 목소리로 희망을 염원하는 듯 했습니다. nbspnbsp이어서 오늘 청춘콘서트를 준비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뛰어준 청년단체 대표 4인의 여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청년포럼 대구 대표인 손주희님은 “5년 전에 소박하게 시작했던 청춘콘서트가 오늘 1만명의 청춘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시청광장에서 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라고 소감을 말하면서 “아직도 대구와 같은 지역에서는 이런 기회가 적어요. 청년포럼은 지역에 있는 청년들과도 희망을 만들어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하고 다짐을 말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nbspnbspnbsp선선한 초여름 밤, 푸른 잔디밭에 모여 앉아 있으니까 기분도 참 좋고, 낭만적인 느낌도 들었는데요. 이렇게 좋은날 더욱더 감성적이고 로맨틱한 이야기 보따리를 펼쳐주기 위해 노희경 작가님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행복 토크의 첫 번째 게스트로 나온 노 작가님은 “사랑과 연애”를 주제로 청년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작가님은 최근 새로운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로 우리 곁에 다시 찾아와서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데요. 사회자가 “잠시 후면 본방 할 시간인데 청년들이 모두 여기에 와 있어서 큰일났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유쾌한 웃음 속에 대화가 진행됐습니다.nbspnbspnbsp사회자가 “사랑을 할 때도 밀당을 하면서 자꾸 계산을 하게 되는데, 사랑이 너무 어렵다”라고 질문하자 노 작가님은 “우리는 상대를 자극하고, 나도 자극받는 것에 너무 길들여져 있는 것 같아요. 쉽게 말해서 잘해줘도 지랄, 못해줘도 지랄, 끊임없이 지랄하는데...”라며 “자기가 지랄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멈추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내가 지랄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차릴 수 있어도 극복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말해 청년들의 속을 후련하게 해주었습니다.nbsp노희경 작가님과의 토크가 끝나자 1만 청년을 깜짝 놀라게 할 특별 게스트가 무대로 올라왔습니다. 특별 게스트는 바로 인기 절정의 여배우 한지민씨와 신민아씨였습니다. 두 여배우가 나타나자 청년들은 열렬히 환호를 하며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두 분은 청년들을 응원하기 위해 특별히 시청광장을 찾았다고 하면서, 응원의 메시지를 한마디씩 해주었습니다. 먼저 한지민씨는 “저도 20대 때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항상 현재를 즐기지 못했던 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 현재에 늘 깨어 있고 즐기시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라고 응원해 주었고, 신민아씨는 “삶이 힘들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가까운 사람들을 챙기면서 소소한 행복들을 느끼면서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행복하세요.”라고 응원해 주어서 청년들의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nbspnbspnbspnbsp스님은 노 작가님에 이어서 두 번째 행복토크 게스트로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nbspnbspnbsp스님은 늘 해오던 방식 그대로 즉문즉설 방식으로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즉문즉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 스무살 성년이 된 분들을 위해 축하 인사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5월 16일이 무슨 날이었는지 아세요? 성년의 날입니다. 성년이 되었다는 것은 한 사람으로서의 완성된 인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nbspnbspnbsp성년의 날을 맞는 분들이 여기 계시면 손 한번 들어보세요. 우리 모두 이분들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박수 한번 보내줍시다.nbspnbspnbsp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났다고 다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직 완성이 안 됐다’는 의미에서 미성년이라고 하지요. 미성년일 때는 스스로 삶을 다 책임지고 살지 못 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미성년자에게는 보호자가 필요하지요. 주로 부모님이 보호자가 됩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안 계시면 삼촌 등 제3자가 보호자가 됩니다. 미성년자는 보호자의 도움과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동시에 보호자의 말을 들어야 할 의무도 있습니다. 그런데 20세, 보통 만 18세가 넘으면 육체적으로는 거의 다 성장을 해서 완성된 사람이 됩니다.nbspnbsp이 때 육체적으로만 성년이 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 또한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누구로부터 보호받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인생을 책임져야 하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부모나 보호자에게 위탁했던 권리를 가져와서 이제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합니다. 성년이 되어서 좋은 점은 결정을 스스로 한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인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년은 권리와 책임을 모두 갖습니다.nbspnbsp오늘부터 성년이 되시는 분들은 이제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야 합니다. 꼭 집을 나가는 것만 독립이 아니라 같은 집에 살더라도 방값, 밥값, 옷값을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집 밖에서 돈을 벌어서 값을 지불하는 방법도 있지만, 집 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2시간 동안 밥하고 청소해 놓고 부모님 깨워서 ‘식사하십시오’ 하고, 저녁에 귀가해서도 1시간 정도 청소를 하는 겁니다. 지금 최저임금이 약 6,000원이니까 하루에 3시간 이렇게 하면 18,000원이 되고, 그렇게 30일을 하면 540,000원이 되니까 그 정도면 자립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최저임금을 조금 더 올려야 되겠지요? 그래야 자립하기도 더 쉬워지니까요.nbspnbspnbsp또 이렇게 하면 부모님이 ‘우리 아이에 대해서는 내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내가 신경 안 써도 잘 살아 가겠다’ 하고 생각하시게 되기 때문에 명실상부한 자립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부모님의 말씀을 더 이상 들어야 할 의무도 없어지는 거예요.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은 참고만 하면 됩니다. 부모님은 자식을 사랑하시니까 자식한테 좋은 말씀을 해 주시잖아요. 가능하면 부모님의 말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되 결정은 스스로 하면 됩니다. 그러니 더 이상 어떤 일의 결과를 두고 ‘어머니가 그렇게 하라고 하셨잖아요’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됩니다. ‘부모가 반대해서 결혼 못 한다’ 이렇게 얘기해도 안 됩니다. 물론 부모님도 반대할 권리가 있어요. 그러나 성년이 된 사람은 그런 부모의 의견을 수용할 권리도 있고, 수용하지 않을 권리도 있어요. 성년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견을 받아들이든 안 받아들이든 스스로 결정권을 갖는 게 성년입니다. 그래서 성년이 되면 나라에서도 그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인정하는 의미에서 투표권을 주지 않습니까. 투표를 한다는 것은 나라의 주인이 된다는 의미이니까요.nbspnbsp오늘 성년이 되신 분들께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성년이 되신 분들을 위해 큰 박수를 보내드립시다.” nbspnbsp1만 청년이 스무살 청년들에게 보내는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nbspnbsp이어서 스님이 질문을 받겠다고 하자 번쩍 손을 든 4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중에서 한 젊은 여성 분은 아기를 낳지 않기로 남편과 합의하고 결혼을 했다고 하면서 그런데도 주위에서 자꾸 왜 아기를 낳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꾸 받아서 고민이 된다고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답변을 듣고 나서 질문자는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습니다.nbspnbspnbsp“새벽같이 울산에서 청춘버스를 타고 왔어요. 반갑습니다. 결혼 3년차인데 제 나이도 있고 해서 주변에서 아이를 언제 가질 거냐는 질문을 많이 하세요. 저희 부부는 결혼 초에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고 합의했는데 사람들이 왜 그러냐며 이유를 굉장히 많이 물어봐요. 사회통념적으로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서 길러야 한다고들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그냥 ‘하나의 인격체를 책임지기에는 제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습니다’ 혹은 ‘아이에게 희생하기보다는 제 삶을 살고 싶어요’ 이렇게 답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은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아이를 낳아서 길러야겠다’는 마음이 잘 안 일어납니다.nbspnbsp돌아보면 제가 두 돌 되기 전에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셔서 모성이라는 걸 가까이에서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제가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가 싶기도 해요. 그래서 제 생각 너머의 진짜 마음이 어떤 건지 궁금하고, 제 마음을 몰라서 스님께 질문 올립니다.”nbsp“네 마음 네가 알지, 제가 어떻게 당신 마음을 알겠어요? 질문이 좀 이상해요. 제가 질문자도 아닌데 어떻게 질문자 마음을 알겠어요? 자기 마음을 자기가 딱 살펴보면 알 수 있지, 그걸 저한테 물으면 곤란하죠. 그러면 제가 점쟁이가 돼야 하는데 저는 점쟁이는 되기 싫거든요.”nbspnbsp“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서 저도 많이 고민을 했는데요. 사람들이 이걸 정상이 아니라고 보니까 저도 깊이 생각을 하다가 ‘내가 잘못된 건가? 어렸을 때 그런 기억 때문인가?’ 하고 생각을 하게 돼서 ‘진짜 그런 걸까요?’라고 여쭤보고 싶었습니다.”nbsp“그럴 수도 있어요. 아닐 수도 있고요.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기 때문에 무의식 세계에 부모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나도 그럴까?’ 하는 두려움이 생겨서 자꾸 망설여질 요소가 충분히 있어요. 그러나 본인이 살아온 삶의 경험을 제가 다 듣지 못했잖아요. 그것 이외에도 자식에 대해 약간 부정적인 까르마가 있는지, 즉 마음 속에 무엇 무엇이 있는지는 제가 더 들어봐야 알겠죠. 여기서는 멀어서 제가 질문자의 얼굴을 볼 수도 없고, 질문자와 제가 대화를 자세히 해본 것도 아니거든요. 그러나 질문자가 이야기한 대로만 듣고 판단해보자면 그럴 수 있는 요소는 충분히 있어요.nbspnbsp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문제는 질문자의 선택의 문제라는 겁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안 하고는 내 자유에 속하는데, 사람이 태어나면 다 결혼하는 관습을 갖고 있는 사회에서 볼 때는 만약 결혼을 하지 않으면 뭔가 장애가 있거나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될 수 있겠죠. 그러나 현대 사회는 결혼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됐습니다. 그것처럼 결혼을 한 뒤에 자식을 낳고 안 낳고의 문제도 선택의 문제입니다.nbspnbsp그런데 문제는 질문자가 자꾸 ‘나는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문제제기를 받게 되는 거예요. 저라면 아이를 안 낳기로 확실히 결정했다면 이렇게 이야기하겠어요. ‘저와 남편은 신체적 장애가 있어서 아이를 갖지 못합니다’라고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훨씬 간단하잖아요. 그렇게는 말하기 싫다는 거죠?”nbspnbsp“제 신체는 건강하니까요.”nbspnbsp“질문자가 뚜렷한 이유가 있다면 ‘저는 이러저러해서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 돼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뚜렷한 이유가 없는데 자꾸 사람들이 물어서 곤란하다니까 저처럼 말해버리면 된다는 거예요.nbsp그리고 또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어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나이가 많든 적든 생물학적으로 모성애라는 게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닭이든 쥐든 토끼든 다람쥐든 어떤 동물도 새끼가 없는 상태에서는 자기 생명을 우선시합니다. 즉 개체보존의 본능을 우선시해요. 그런데 일단 새끼를 갖게 되면 종족보존의 본능을 우선시하게 됩니다. 모든 생물은 생태적으로 그렇게 형성되어 있어요. 그래야 종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아이를 안 낳겠다’ 이런 질문자의 생각은 아이를 낳기 전에는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질문자뿐 아니라 누구나 다 그래요. 그런데 아이를 일단 낳게 되면 종족보존의 본능 쪽으로 생각이 바뀌어버려요. 즉 모성애가 저절로 일어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아이를 낳으면 잘못 키우지 않을까?’, ‘집이 가난해서 아이를 키우기 어려울 거야’ 이런 건 낳기 전의 생각이에요. 낳아버리면 그런 생각이 없어지고, 어떻게든 아기를 보호하고 키우려는 쪽으로 사고와 행동이 바뀌어버리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요.nbspnbsp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안 낳기로 결정했다면 ‘아이고, 저도 낳고 싶은데 몸에 약간 이상이 있어서 못 낳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그러면 계속 질문에 시달릴 필요 없이 간단하게 한방에 딱 끝내버릴 수 있어요.nbspnbspnbsp둘째,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일어나는 대로 맡기는 겁니다. ‘생기면 낳고, 안 생기면 안 낳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다 아기가 생기게 되면 ‘이러저러해서 아기를 키울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이런 생각은 아기를 낳는 순간 모두 없어져버려요. 그건 한번 낳아보면 알아요. 그렇게 안 되면 그때 다시 저한테 찾아와서 항의를 하세요.”nbsp“네. 제가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스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스님의 답변에 1만 청춘들의 박수 소리가 태평로 일대를 가득 울렸습니다.nbspnbspnbsp즉문즉설을 마치면서 스님은 청년들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것을 다시 한 번 당부했습니다.nbspnbsp“배고파요?”nbsp“예.” nbspnbsp“우리가 육체를 위해서는 매일 밥을 먹여주잖아요. 그런데 우리들의 정신적인 기쁨을 위해서는 꾸준히 밥을 먹여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청년 여러분들은 우리가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 매일 하루 세 끼 밥을 먹듯이, 우리들의 정신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도 매일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청춘은 아름답다’, ‘청춘은 행복하다’, ‘미래가 우리들의 것이다’, ‘미래는 희망이다’ 하는 생각을 갖고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멘토들의 행복 토크 중간 중간에는 청년 뮤지션들의 공연이 펼쳐져서 청년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힙합부터 락까지 장르도 다양했습니다. 빅베이비드라이버, 김지수, 볼 빨간 사춘기, 조문근 밴드, 아웃사이더의 이어진 공연들은 청년들의 어깨와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며 시청광장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nbspnbspnbsp다음은 박원순 서울시장님이 무대 위에 올라 “청춘아, 상상하자”란 주제로 행복 토크를 이어갔습니다. 박 시장님도 사회자의 여러 가지 질문에 답변을 이어가다가 마지막에는 객석에서 직접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nbspnbsp손을 번쩍 든 한 시민은 “뉴스에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들을 보게 되는데,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박 시장님은 “오늘 청춘콘서트에 온 것부터가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격려하면서 “얼마 전 강남역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 사건의 희생자에 대한 추모 물결도 한 시민의 이메일에서 비롯된 것이예요. 누구나 문제의식을 느낀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부터 한다면 세상을 바꿀수가 있어요”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nbspnbsp이어서 마지막 공연자로 나온 가수 김태우씨는 ‘사랑비’ 노래를 열창했는데, 이 순간 청춘콘서트는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급기야 잔디밭에 앉아 있던 1만 청년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nbsp뜨겁게 달아오른 무대를 이어 받아 드디어 김제동씨가 행복 토크의 마지막 게스트로 걸어나왔습니다. ‘김제동’을 외치는 청년들의 함성 또한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nbspnbsp김제동씨는 ‘청춘아, 세상과 어깨동무하자“라는 주제로 35분 동안 재치있는 입담을 쏟아내며 청년들의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특히 김제동씨는 청년들로 하여금 통일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희망과 비전에 대한 상상력을 무한히 확장시켜 주었는데, 청년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nbspnbspnbsp“여러분 통일이 되면 어떨지 한번 상상해 보세요. 결혼을 하면 부부싸움의 스타일 자체가 달라집니다. ‘에이씨, 집 앞에 가서 맥주 한잔 해야지’ 이렇게 하는 게 아니고 ‘에이씨, 택시 타고 대동강 가서 맥주나 한잔 먹어야겠다’ 이렇게 변합니다. 아이들도 가출을 할 때 이제 금강산으로 하게 됩니다. 일주일 가출하고 오면 도를 닦아 나옵니다.nbspnbsp여러분의 아이들은 이제 전국 어디에서나 기차를 잡아 타면 신의주와 블라디보스톡을 거쳐서 유럽으로 수학여행을 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런 나라를 좀 만들어 줍시다.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겠어요?nbspnbspnbsp소풍가기 전날이 소풍가는 날보다 훨씬 더 즐겁듯이 우리가 이런 통일에 대해서 꿈꾸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산업화를 이뤄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우리 형님 세대들은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그러나 지금의 10대와 20대는 이런 세대적 자부심이 보이지 않아요. 그것은 여러분들의 잘못이 아니고 지금까지 그럴 수 밖에 없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예요. 그러나 이제 여러분들은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통일 세대가 될 수 있어요. 만약 여러분들이 통일을 이룩해낸다면 한반도가 생긴 이래로 역사상 가장 큰 일을 해낸 세대가 될 겁니다. 그 꿈을 향해 함께 나아가 봅시다.”nbsp통일의 희망에 대해 실감나고 재치있는 이야기가 계속되자 청년들은 쉴새없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nbspnbspnbsp이 외에도 김제동씨는 청년들 스스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고, 청년들은 더욱더 환호했습니다. 또 세월호 희생자들을 언급하면서 높으신 분들이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하는데 여기 모인 청년들, 아기 엄마, 아이들이 바로 지켜야 할 국가라고 힘주어 말하는 대목에선 많은 청년들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nbspnbsp이제 시간은 10시가 다 되었고, 1만여 명이 함께한 축제도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법륜 스님, 김제동씨가 무대 위로 올라와 올해 스무 살 성년이 된 청년들을 축하하는 성년 이벤트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사회자가 “97년생 소띠분들은 모두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라고 하자 많은 청년들이 김제동씨와 법륜 스님 앞으로 달려나왔습니다. 축하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두 분은 직접 사인한 책 꾸러미와 장미를 한 송이씩을 청년들에게 선물했습니다.nbspnbspnbsp그리고 출연진과 서포터즈 모두가 무대 위로 올라온 가운데 대망의 엔딩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1만명의 청춘들이 양손을 하늘 위로 흔들며 합창하는 장관이 펼쳐졌습니다. 소름이 돋을 정도의 장관이었습니다.nbspnbsp합창을 하는 1만 청춘들을 향해 스님이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nbspnbsp“청년 여러분, 실패해도 좋고, 방황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일단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새롭게 출발합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으니까요.”nbspnbspnbsp청년들은 또다시 환호했습니다. 이제 청년들은 무대 가까이로 바짝 다가와서 밤새 뛰어놀 기세로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노래 두 곡을 더 부른 후 청춘콘서트를 모두 마쳤습니다. 아쉬움이 컸지만 내년을 기약하며 스님과 김제동씨가 손을 흔들자, 청년들도 마침내 작별의 손을 흔들었습니다.nbspnbspnbspnbsp1만명의 청년들은 사회자의 공지에 따라 그리고 서포터즈들의 안내를 받아가며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중이 모두 사라지고 텅빈 시청광장에서는 500여 명의 봉사자들이 다시 모여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줍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메뚜기떼가 지나가듯이 시청광장과 무교로 일대를 깨끗이 청소해 마치자 드디어 통제되었던 교통도 해제되었고, 무사히 청춘콘서트를 치러낸 500여 명의 서포터즈들도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 주며 가슴에 보람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nbspnbspnbsp청춘콘서트 행사가 뒷정리까지 잘 마무리되는 모습을 지켜본 스님은 함께해 준 김제동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서울시청광장을 출발했습니다.nbspnbspnbsp밤 11시 40분에 서울을 출발한 스님은 곧바로 문경으로 이동해 새벽 2시에 문경 정토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눈을 붙인 스님은 내일 새벽 6시부터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에 참석해 법문을 한 후 낮 12시부터는공주에서 새터민들과 함께 봄나들이를 하고 즉문즉설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nbspnbsp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2016.05.23. 135,093 읽음 댓글 62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