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구미지회
아도모례원 지기는
전천후 농사꾼

구미지회 지회장 김철한 님을 처음 만났을 때, '법사님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느긋한 말투와 행동 그리고 환히 웃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변함없이 구미지회를 든든하게 이끄는 김철한 님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어떤 마음으로 정토회에서 활동하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인터뷰했습니다. 결과는 대만족인 그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독불장군

상주법당 초파일 행사 중
▲ 상주법당 초파일 행사 중

저는 상주 북부에서 부러운 것이 없을 정도로 부유한 집에서 1남 2녀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독자였던 저는 어릴 적부터 성격도 급하고 잘났다는 자존심과 주장이 강했습니다. 그런 저의 성격을 잘 알기에 누나와 여동생은 물론 어머니조차도 저에게 거슬리는 말을 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농업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공무원으로서 농업과 관련하여 일하면서 늘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직장 동료라 할지라도 서류작성이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서류뭉치를 던져버리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로 저는 남보다 많이 잘났다는 자만심과 아상이 강했습니다.

엎어진 김에 만난 진주

취미생활로 테니스를 꾸준히 했는데, 무리한 운동으로 인대가 손상되어서 더는 운동할 수 없었습니다. 생각을 바꾸어 느긋하고 편하게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009년 어느 날, 아내와 함께 문경 정토수련원을 방문했습니다. 아내는 그 전부터 법륜스님과 정토회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도리사 대의원 월례회에서 향존 법사님과 함께(왼쪽)
▲ 도리사 대의원 월례회에서 향존 법사님과 함께(왼쪽)

수련원 입구 아래에 주차하고 언덕을 올라 대강당까지 갔습니다. 때마침 정토불교대학 특강을 마쳤는지 100명 넘는 사람들이 대강당에서 밖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법사가 된 보살이 유수 스님과 차 한잔 하자며 아내와 저를 백화암으로 안내했습니다. 함께 차를 마시면서 유수 스님은 〈깨달음의 장〉1과 〈나눔의 장〉2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그해 직장의 하계 휴가에 맞춰 〈깨달음의 장〉에 참가해서 4박 5일 동안 수련했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귀가했습니다. 이후 아내와 함께 수요일마다 문경 정토수련원에 가서 수행 법회에 참여했습니다. 이런 제 부부의 모습을 지켜보던 보광명 법사님이 천일결사3 입재식4이 있으니 참여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혼자서 대전에 있는 컨벤션 센터에 찾아가서 6-7차 천일결사에 입재했습니다.

상주 정토불교대학을 열다

이후 보광명 법사님이 저에게 상주 지역에 정토불교대학을 개설해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권유했습니다. 불교대학을 개설하기 위해서는 최소 모집 인원이 5명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상주 정토회와 인연있는 분들에게 연락했습니다. 그중에는 가정 법회에 참여하던 부부도 있었고, 대구까지 가서 법륜스님의 특강을 듣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정토회 홈페이지에 상주에서 정토불교대학 개설을 희망한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그 글을 보고, 당시 경북 지역 가정법회 활성화를 위해 활동하던 보살 두 명이 찾아왔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지금 구미지회 으뜸절 원장인 전광명 법사님입니다. 최소 인원은 모집했지만, 불교대학을 열 마땅한 장소가 없었습니다.

상주법당 초파일 행사 중(맨 오른쪽)
▲ 상주법당 초파일 행사 중(맨 오른쪽)

마침 대구까지 오가며 법문을 듣던 한 보살이 관광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사무실을 사용하지 않으니 그 공간을 활용해도 좋다고 허락해주었습니다. 그렇게 2010년 봄, 상주 정토불교대학을 개설했고, 15명이 입학했습니다. 그 당시 정토불교대학 학사과정이 1년이었는데, 처음 6개월은 처음부터 마음을 낸 활동가 두 사람이 진행을 맡아주었습니다. 이후 6개월은 제가 학생 겸 진행자 역할을 하면서 졸업했습니다.

15명 입학생 중 9명이 졸업했고, 아내와 저는 둘 다 개근했습니다. 졸업생 9명 중 8명이 정토경전대학에 입학했고, 졸업생인 박정순 님의 가정에서 경전대학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경전대학 졸업 후 저는 3년 동안 계속 불교대학을 진행했고, 꾸준히 10명 정도는 상주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아도모례원 지기 되다

이후 상주법당 불사를 맡아 35평의 법당을 열었습니다. 아내는 법당 부총무를 소임을 맡았고, 저는 천일결사 8차부터 대의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천일결사 10차까지 대의원 활동하는 도중에 정토회가 온라인으로 개편했습니다. 그래서, 기존 활동은 멈추고 토요일마다 구미지회 으뜸절인 아도모례원으로 봉사활동 하러 갔습니다.

대의원 월례회에서(맨 왼쪽)
▲ 대의원 월례회에서(맨 왼쪽)

구미지회 으뜸절인 신라 법륜초전지 아도모례원은 고구려 승려였던 아도화상이 모례가의 장자 집에 은신하면서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파한 곳입니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용성 스님이 용맹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은 곳이기도 합니다. 현재 구미시와 정토회가 함께 보존 관리하고, 대구 경북지역 정토회원들의 활동 중심지인 뜻깊은 장소입니다. 저는 봉사자들이 찾아오면 일감을 나누어주고 봉사활동을 마치면 함께 법사님과의 일문일답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때 들었던 법사님의 일문일답 중에서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오른쪽 모서리에 마음을 두고 눈으로는 왼쪽 모서리를 볼 때와 눈과 마음이 한 곳을 볼 때, 어떤 것이 편한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듣고 나서 실제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실험해 보니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일 때는 어느 한쪽에도 집중하기 힘들었습니다. 제가 그런 식으로 사물을 보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말로 짓는 농사꾼

저는 농사를 잘하는데 몸보다는 말로 더 잘합니다. 농업통계 관련 일을 수십 년 해왔고 관심도 많아 남다른 눈으로 바라봅니다. 비교 수치, 기준 수치를 적용해서 매년 생산량을 비교하고, 기준에 미달하면 어디에 그 원인이 있는지 찾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농업과 관련해서 설명할 때면 신이 납니다. 평생 농업에 종사한 사람들도 저의 설명과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곤 합니다.

상주법당 조별활동 중(맨 오른쪽)
▲ 상주법당 조별활동 중(맨 오른쪽)

아도모례원 원장이었던 보수 법사님이 저에게 “나는 거사님의 설명이 좋다. 농업을 전혀 모르는데도 설명을 듣고 나면 아주 상세히 알게 되어서 나에게는 굉장히 좋아. 그런데, 과연 다른 사람에게도 그게 좋을까?”라고 지나가듯 한마디 툭 던졌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상대를 위해 하는 일이더라도 상대가 원하지 않을 때는 그것이 상대를 힘들게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처님도 법을 청할 때만 법을 설했다는 법륜스님의 법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부터 자꾸 남을 가르치려는 제 행동을 돌아보고, 매일 기도하며 남에게 숙이는 연습을 했습니다.

전천후 나눔이

저는 온라인 정토회 개편을 마친 후 지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일주일에 고정된 회의가 전국, 지부, 지회 회의를 통틀어 6개 정도이고,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수업 참관, 전법활동가 교육 참관, 그리고 직장, 농사, 봉사 활동까지 눈코 뜰 새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 삶의 신조가 “쓰임 있는 삶을 살자!”이기에 주어진 일은 그냥 하고 있습니다.

몇 해 전 공무원 은퇴를 앞두고 전원생활을 시작하여 600평 정도의 땅에 농사짓고 있습니다. 자급자족을 목표로, 마을 주민들이 마트라고 할 정도로 다양하게 농사짓습니다. 친환경 농산물 재배를 위해 가능하면 농약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비료도 화학 비료보다 유기물 비료를 사용합니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자투리땅에는 연년생 작물을 심었습니다. 수확물을 판매하지 않고, 이웃과 직장 동료, 으뜸절 봉사자와 김장재료로 나눕니다.

아도모례원 옥수수밭 봉사활동 중
▲ 아도모례원 옥수수밭 봉사활동 중

저의 일상은 빈틈없이 꽉 채워져 남들이 보면 너무 바쁘게 살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느긋한 것과 체질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아침 6시부터 2시간가량 계속 테니스를 쳤던 것이 정토회를 만나 아침 기도하고 활동하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정토회에서 이 소임 저 소임 맡아 활동해서 제가 정토회를 도운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토회를 만난 후 “인상이 좋다, 느긋해 보인다,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 것을 보면, 제가 오히려 받은 것이 더 많습니다. 이렇게 한결같이 정토회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요인은 가족의 조용한 후원에 힘입어 아내와 함께 활동한 것입니다. 또한, 〈깨달음의 장〉 수련을 마치고, 매일 아침 기도를 놓치지 않고 저를 돌아보았기에 가능했습니다.


정토회 활동과 직장 일을 병행하며 600평의 농사까지 짓는다는 김철한 님.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정말 대단합니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둑에 개미취를 심었는데, 봄에는 잎을 나물로 먹고 여름에는 줄기를 말려 차로 먹고, 가을에는 보랏빛 꽃을 화단으로 활용한다는 김철한 님의 말이 오랫동안 맴돕니다. ‘김철한 님이야말로 개미취 같은 분이구나, 뭐 하나 버릴 게 없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저도 김철한 님처럼 언제 어디서든 전천후로 쓰이는 수행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글_희망리포터_정태남(대구경북지부 구미지회)
편집_성지연(강원경기동부지부 경기광주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2.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3.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4. 입재식 정토행자 천일결사를 백일 단위로 나누어 매 백일 마다 함께 모여 수행을 점검하고, 새롭게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의식.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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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응

좋은 글, 멋진 삶, 앞서간 도반의 수행에 비추어 나를 봅니다. 함께 했던 활동들이 스쳐가네요.

2022-12-14 20:55:27

허영애

직장, 정토회 봉사. 600평농사 농작물 나눔실천, 대단하십니다.
저도 가까이 다가가서 배우고 싶은 한 분입니다.
존경스럽습니다.

2022-12-06 07:36:52

현은영

쓰임이 있는 삶을 살자!!!
유난히 힘이 되는 글귀입니다.
상대에게 보호 받고 기대지 않고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 만큼 나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주는 최고의 처방인 듯 합니다.
오늘도 잘 쓰임이 되는 시간을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2022-12-05 06:5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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