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구미지회
그래서 오늘도 5시에 기도합니다

대구경북지부 구미지회는 7개의 모둠이 있습니다. 그중 상주모둠 모둠장 박정순 님은 1985년부터 상주에 거주하면서 가정법회(2007), 봄불교대학(2010), 상주법당 불사(2013), 상주행복학교(2016)를 이어온 상주에서 가장 오래된 정토회 도반입니다. 1998년 6월 27일 3-2차 천일결사에 입재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수행하고, 즐겁게 봉사하는 박정순 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2019년 행복학교 수업, 박정순 님
▲ 2019년 행복학교 수업, 박정순 님

나에게 정토회란 ‘고마움’이다

정토회는 저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도반과 함께 깨달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저는 아주 어리석었습니다. 불법을 만나기 전에는 재미있고 즐겁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즐겁고 기쁜 일이 없으면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재밌는 일이 있으면 기뻐서 방방 뛰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불법을 만난 후 ‘그게 아니구나, 내가 그냥 놀아났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정토회를 만나기 전의 불법은 뜬구름을 잡듯 막연했습니다. 처음 불법을 접했을 때, 봉사가 눈을 뜬 듯 기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50세가 되면 산으로 가겠다.”라고 했습니다. ‘산이나 절에 가야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정토회의 바른 불교, 쉬운 불교, 생활 불교를 접하면서 불법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바로 깨치면 해탈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정토회는 저에게 현실에서 불법을 뿌리내려 준 고마운 곳입니다.

가난을 발판으로 마침내 국어 교사가 되다

엄마는 시장에서 풋고추 장사를 하고 아버지는 학교 수위였습니다. 한글을 모르는 아버지가 수위 일을 하고자 제가 중학교 다닐 때 한글을 배웠습니다. 아버지는 성실했지만, 상황을 판단하는 판단력이 느려 엄마는 답답해했습니다. 엄마는 어릴 적 교회 선교사에게 딱 1주일 한글을 배우고 깨쳤을 정도로 머리가 좋았습니다. 보수적인 아버지가 딸 다섯을 버거워하며 아들 타령을 해 엄마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엄마는 딸들이 아버지에게 구박받지 않도록 공부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막내를 업고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떼서 버스 기사의 눈치를 보며 물건을 싣고 와 악착같이 장사를 했습니다. 당신이 못 배운 설움을 딸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으셨을 겁니다. 넷째 동생이 중학교 갈 무렵 간질 증세를 보였습니다. 쓰러지면 5분 정도 의식을 잃고 있다가 정신 차리기를 반복했습니다. 몸이 아픈 동생은 가족들에게 온갖 짜증을 냈습니다. 장사로 인한 힘듦과 넷째 딸의 짜증, 남편의 무능력, 이 모든 게 복합되어 엄마는 번번이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그런 엄마의 눈치를 보며 맏딸로서 엄마가 편안하도록 집안일을 거들었습니다.

학교까지 중학생 걸음으로 1시간쯤 되는 거리를 차비 아끼려고 걸어 다녔습니다. 엄마 옆에서 풋고추를 다듬고, 붕어빵을 팔고, 동생들을 때려가며 공부도 돌봐 주었습니다. 차마 용돈 달라는 말을 못 해 엄마가 장사한 앞치마에서 몰래 500원씩 꺼내 쓰기도 했습니다. 집안 형편상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했으나, 학교생활이 못마땅했고 우울했습니다. 혼자 사색하거나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읽고 쓰면서 국문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이 대학 진학을 반대하여 학비가 싼 국립대학 국문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성적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업계 고등학교 특별전형으로 국립대학 상업교육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에 가니 해방된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돈은 없지만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고, 자유롭게 사람을 만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독서동아리에서 만난 선배들은 두꺼운 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데, 저는 그 책들이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배들과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상업 교사가 되었습니다. 상업 교사로 20여 년을 근무하고 여전히 국어 교사에 미련이 남아 대학원을 진학한 후, 마침내 국어 교사가 되었습니다.

정토회를 만나다. 수행자가 되다

정토회와의 첫 인연은 1997년 스님 법문에 감동한 동료 교사를 따라 문경수련원에 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상주에는 정토 법당이 없었고 불교대학도 몰랐습니다. 그 후 시간 날 때마다 혼자 수련원에 갔습니다. 마침 제가 간 1998년 6월 27일이 천일결사 입재식1이었습니다. 입재식에 참여는 했지만, 소속이 없어 조용히 스님 법문만 듣고 왔습니다. 그리고 법문 테이프를 사서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그 후 동료 교사가 〈깨달음의 장2〉을 다녀와 가정 법회를 열었고, 동료 교사 부부, 장모, 저 이렇게 4명이 가정 법회를 했습니다. 여행업을 하는 분이 가정 법회에 참여하면서 사무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법회를 했고, 그곳에서 2010년 봄 상주에 처음으로 불교대학을 개강했습니다. 법당이 생기기 전까지 불교대학 졸업생들의 경전대학은 저의 집에서 진행했습니다. 그러다 2013년 1월, 드디어 상주 법당을 개원했습니다. 직장생활로 총무 소임은 못 했으나, 저녁에 꼬박꼬박 법당에 나갔습니다.

상주 법당을 개원할 무렵 인도 성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인도에 가서 많이 울었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 그렇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열반당에서는 눈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인도 성지 순례를 다녀온 후 꾸준히 법당에서 봉사했습니다. 불법 만나 제가 좋아지고 혜택을 받으니 많은 사람에게 불법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불교대학 홍보 기간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홍보지 들고 포스터 붙이며 거리를 누볐습니다.

불교대학 홍보
▲ 불교대학 홍보

2014년 인도성지순례
▲ 2014년 인도성지순례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한 행복학교

2016년 겨울 통일특별위원회에서 행복학교 진행 제안을 받고 행복학교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행복학교는 불교와 연관이 없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되어 법당에서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학생 모집, 프로그램, 장소, 진행 모두 제가 기획하고 준비해야 했습니다. 대구, 대전에 있는 통일특별위원회 도반들과 소통했지만, 함께 의지하고 수행했던 법당 도반들이 전혀 도와주지 않으니 난감하고 서러웠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임진각 만배정진 기도에 참여했습니다. 통일 의병 정신을 기도에 녹아내고 싶었고, ‘부처님의 가피가 있겠지!’라는 간절함도 있었습니다. 3일간 기도한 후 행복학교에 대한 막막함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렇게 2017년부터 행복학교 학생을 모집했습니다.

2018년 임진각 기도(왼쪽에서 첫번째 박정순 님)
▲ 2018년 임진각 기도(왼쪽에서 첫번째 박정순 님)

1985년부터 상주에서 학교에 근무한 경력은 행복학교 참가자 모집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졸업한 제자들에게 알리고 사무실도 구했습니다. 일단 시작하니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행복학교로 모였습니다. 행복학교 사무실이 서쪽 창으로 넘어가는 볕이 너무 눈부셨습니다. 그런데 행복학교 다닌 분의 지인이 사무실에 블라인드를 설치해 주었습니다. 행복학교 글자가 새겨진 블라인드 3개를 창에 걸고 사무실 안에도 걸었습니다. 너무도 신기했습니다. ‘나와 아무 인연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마음을 낼 수 있을까?’, ‘열심히 하니 알게 모르게 선한 기운이 전해져 나를 도와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학교를 하면서 참가자들과 지역사회의 현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상주시 시의원 두 분을 초대해 간담회를 했습니다. 상주시 의회 청사에서 행복학교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행복학교 참가자를 모집하고자 상주 시내에 있는 각종 동아리 사람을 접하면서 지역사회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3년 동안 13기 행복학교를 진행했고, 약 12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행복학교 참가자와 한 달에 한 번씩 행복학교 홍보나 전국 행복학교 행사, 쓰레기 줍기 등의 행복 광장에 참여했습니다. 행복학교를 시작할 때의 걱정은 행복학교를 하는 동안 어느 순간 눈 녹듯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행복학교 사진을 보면 저도, 학생들도 정말 행복해 보입니다. 행복학교는 우물 안에 갇혀 있던 저를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어른으로 성장시켰습니다.

2018년 행복학교 행복광장(왼쪽에서 두번째 박정순 님)
▲ 2018년 행복학교 행복광장(왼쪽에서 두번째 박정순 님)

꾸준한 수행으로 나를 알아차린다

저는 성격이 급하고, 욕심 많고, 말을 함부로 합니다. ‘엄마가 아버지한테 함부로 말하는 것을 보며 닮지 않았을까?’라며 엄마 탓을 하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막말을 했듯이 저도 남편에게 그렇게 했습니다. 저의 부족한 욕구를 채워주지 않는 남편이 늘 불만이었습니다. 욕심 없고, 말수 적고, 집안일도 도와주지 않는 저와 성향이 다른 남편에게 늘 분별심을 내고 싫은 말을 내뱉었습니다. ‘남편에게 숙이겠습니다.’라는 기도문을 받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문제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남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보기까지 20년이 걸렸습니다.

2005년 <깨달음의 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그곳에서 받은 충격이 얼마나 크고 신선했는지 더 이상 괴로울 일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 문 앞에 있는 짜장면 그릇을 보고 화가 났습니다. 제가 가난하게 커서 그런지 아이들이 배달 음식 시켜 먹은 것을 보고 순간 화가 났던 것입니다. 엄마가 없는 동안 그렇게라도 챙기는 것이 기특해야 하는데 화가 났으니 ‘그전에는 얼마나 더 아이들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고 힘들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가족에게 화를 낼 때 알아차리고 조금씩 변했습니다. 어느 날 중학교 3학년인 큰 아이가 “엄마가 때리지도 않고 소리도 안 지르고 착해졌다.”라고 했습니다.

1차 만일결사 3-2차 천일결사에 입재하여 꾸준히 기도하다 7차 천일결사 때부터 새벽 5시를 꼭 지켜서 1000일 정진 기도상을 받았습니다. 좋은 것에 집착하는 저의 업식이 수행에도 적용되었습니다. 이제는 학생들을 바라보는 마음에도 여유가 생겨 학생들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바라볼 수 있습니다. 감정 소모하느라 에너지를 쓰지 않으니 그만큼 다른 곳에 쓸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렇게 수행하면서 얻은 ‘알아차림’으로 제가 편안해지니 수행은 놓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급하고, 욕심 많고, 함부로 말하고, 좋아하는 것만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안 하려고 하는 업식이 남아있어 죽을 때까지 수행이 숙제이지만 조급하지는 않습니다. '되는대로 하다 보면 어느 날 새털처럼 가벼워질 것이다.'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꾸준히 5시에 기도합니다.

2019년 부처님 오신 날
▲ 2019년 부처님 오신 날


박정순 님은 ‘모자이크 붓다’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정토회 회원 한 분 한 분이 각자의 위치에서 정성스럽게 자기 소임을 하니 정토회가 발전하게 된다.’라며 희망리포터 소임을 응원합니다. 박정순 님이 작년 법사에 도전했는데, 인터뷰에서 떨어졌습니다. 떨어진 후 ‘아, 나에게 이런 점들이 아직 부족하구나!’라고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수행하고 알아차리고 다시 도전하는 박정순 님! 정토회 법사로 정년 퇴임하는 그날까지 응원합니다. ‘당신은 우리의 소중한 도반입니다.’

글_김정림(대구경북지부 경주지회)
편집_김윤희(강원경기동부지부 용인지회)


  1. 입재식정토행자 천일결사를 백일 단위로 나누어 매 백일 마다 함께 모여 수행을 점검하고, 새롭게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의식. 

  2.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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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아

오랫만에 오래되신 선배도반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1997년 나도 그때 라디오에서 스님의 음성으로 감동받고
법륜스님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후15년이 흘러 안연이 되었습니다
글을 읽고 감동받고 마음이 가그윽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09-26 13:44:06

황보미

불법을 만나 행복해지고 그법을 두루 나누시는 모습이 정말 감동이예요
행복학교 진행하며 그 정성들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 수행의 향기가 널리 퍼지시리라 기원합니다~()

2023-09-25 09:56:55

전현숙

정순님의 넘치는 에너지가 늘 부러웠습니다. 오래전에 정토회 일을 해오신 것들이 지금의 에너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같이 가는 도반이라 행복합니다.

2023-09-25 08: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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