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사하법당
나의 존재를 내가 존중합니다.

작은 체구와 밝은 미소로 세상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변미원 님. 갑자기, 급하게 법당 총무라는 큰 소임과 함께 코로나19로 인생 위기가 찾아옵니다. 마음의 저항과 괴로움에 도망가지 않고 수행과 도반의 믿음으로 이 시국을 자신의 안락한 마음자리로 가꾸어 가는 변미원 님의 숨은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마스크도 숨기지 못한 이쁜 미소의 변미원 님
▲ 마스크도 숨기지 못한 이쁜 미소의 변미원 님

내가 있을 곳은 여기구나!

2016년 가을, 며칠 상관으로 정토불교대학 홍보 리플렛을 두 개 받았습니다. 하나는 아는 지인으로부터, 또 하나는 직장 동료에게 카톡을 받고, 정토회에 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소개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마음은 이미 정토회에 가 있었지만, 안내를 받으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한자로 된 불법이 아니라 알기 쉬운 생활불교로 가르쳐 준다고 하여 신청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입학식은 끝난 후였습니다. 추가로 입학한 두 명 중 한 명으로 법당에 갔습니다. 입학 법문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추가 입학생 2명의 입학식을 위해 봉사자 9명이 법당에 있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놀랬는데 한분 한분의 정성스러운 환영 인사와 축하 박수가 감동이었습니다. 9분의 눈빛이 따뜻한 챙김으로 느껴졌습니다. '내가 있을 곳은 여기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감정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냥 즐겁게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아왔던 사람인데, 이런 찐한 감동은 저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일의 꾸밈은 사람이 하고 일의 이룸은 하늘이 한다

변미원 님
▲ 변미원 님

어린 시절 가난했지만, 다복하게 살았습니다. 능력은 없지만, 언제나 가정적인 아버지와 없는 가정형편에서도 자식 3명 모두 대학까지 시킨 억척같은 똑순이 어머니였습니다. 아버지는 딸을 애인처럼 웃을 때 이는 몇 개가 보여야 하고 잇몸은 보이지 말며, 책을 고르는 손이 가장 예쁜 손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는 어려운 일은 안 하고 매일 아침 아버지 팔짱 끼고 등교했습니다. 어머니 몰래 주시는 아버지 용돈을 받으며 공부만 열심히 하던 새침떼기였습니다.

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았으나, 남들 앞에서 글을 읽거나 발표를 할 때면 떨리는 심장 소리가 쿵쿵 귓전에 들렸습니다. 늘 앞에 나서기보다 뒷전에 있는 사람, 한 명이라도 깊이 사귀고,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이었습다. 이처럼 사람과 일을 대할 때 느린 편이긴 하지만, 세심하고 꼼꼼한 성격이 34년의 교직 생활을 지탱해주었습니다. 애쓰면서 '나만 잘하면 된다'는 삶의 애착에서 정토회를 만나 '일의 꾸밈은 사람이 하고 일의 이룸은 하늘이 한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불교대학 도반과 함께한 수련(가운데 변미원 님)
▲ 불교대학 도반과 함께한 수련(가운데 변미원 님)

나를 알아가는 기도

천일결사 9-1차 입재부터 9-10차 회향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100일을 기도하면 내 꼬라지를 알고 1000일을 기도하면 업을 바꾼다'는 이야기에 ‘한번 해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100일이 지날 즈음에 〈깨달음의 장〉을 갔습니다. ‘나’라고 할 것이 없는데, 나를 많이 내세웠던 세월을 돌이켰습니다.

이런 저를 알아차리고 보니 첫째 아들이 제일 먼저 생각났습니다. '아들의 욱하는 성질이 내 기대 때문에 힘들고 짜증난 행동이였구나'하고 받아들이니 아들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곧바로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 갔습니다. 교수가 되기를 바라는 엄마의 일방적인 바람으로 아들 인생에 관여를 많이 했음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그날 이후 아들의 욱하는 행동은 없어지고, 무엇을 하든 아들을 믿고 맡기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수련 이후 헛깨비로 살아왔음을 알았고, 3년이면 이런 내가 바뀐다고 하니 더 간절하게 300일, 500일, 1000일까지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양파같이 새로운 나의 모습들이 드러나고, 내가 나를 평가할 때 ‘형편없구나.’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3년, 1000일이라는 숫자는 제가 만든 놀음입니다. 평생 꾸준히 기도하며 돌봐야 하는 상처(습관 혹은 업식)임을 받아들입니다.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

2021년 온라인 가을 불교대학 스텝으로 수업 참석을 하며 5년 만에 다시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 지식이 지혜로 되는 시간입니다. 2016년 학생이였을 때 들었던 법문은 저에게 불교라는 학문, 철학, 새로운 관점에서의 세상 이치를 머리로 배웠다면, 지금 듣는 법문은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확연히 알려 줍니다.

특히 남편과의 관계에서 선명히 드러납니다. 제 기준에서 평가하고 하는 일이 완벽하지 않아 잔소리 하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니 대답은 건성으로 합니다. 대화는 줄어들고, 짜증만 늘어납니다. 사사건건 남편 탓으로 돌립니다. 남편을 향한 마음은 닫은 채 그의 존재를 깡그리 무시하고 믿지 못하는 저를 봅니다. 남편은 막내로 부모로부터 보호만 받고 자란 탓에 제가 믿고, 의지하려고 하면 저의 기대에 못 미치니 불만족스러웠습니다. 친정아버지와 같이 남편이 큰 울타리가 되길 바랬습니다. 남자란 뭐든지 척척 잘하고 손재주가 있고, 일을 하면 완전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를 해야 된다고 여겼습니다. 제가 만든 환상입니다. 불교대학을 다시 공부하면서 남에게 의지하고만 살았던 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향한 짜증은 사그라들고 제 마음도 가벼워집니다.

10-4차 모둠원들과 (왼쪽 첫번째)
▲ 10-4차 모둠원들과 (왼쪽 첫번째)

총무 소임 1년, 나를 보는 시간

10차년이 시작되기 전 법당 총무 소임 제안이 왔습니다. '법당의 7대 행사가 뭔지 모르고, 법당의 살림은 더 모르는 저 같은 사람은 무늬만 수행자이니 그 소임은 적합하지 않다'며 거절했습니다. 퇴근하려고 나가면 이미 직장 앞에서 김정숙 님이 서 있습니다. 반복된 거절과 설득의 시간을 통해 “오죽하면 나 같은 사람을 붙잡고 이 큰 소임을 주나? 정토회는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아무나에게 소임을 주지 않는 곳인데” 이렇게까지 하는 김정숙 님을 보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소임을 받았습니다. 괴로움은 그날부터 였습니다.

소임에 대한 저항은 더 큰 저항으로 저에게 번뇌와 괴로움을 만들었습니다. 저항을 하면 할수록 더 크게 압박감으로 느껴졌습니다. 물러섬은 해결방법이 아님을 알아차리니, 피할 수 없으면 즐기면서 해 보자는 대결정심의 마음을 내었습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구나' 이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마음은 대결정심이였으나, 현실은 전쟁터였습니다. 직장 일을 마치면 법당 일을 위해 법당에 갑니다. 이 두 곳은 늘 급하게 일이 진행됩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서 매일 매일 바뀌는 매뉴얼들이 하루가 ‘나’라는 존재 없이 허겁지겁 지나 갑니다.

정일사 300배 정진 후 (윗쪽 가운데)
▲ 정일사 300배 정진 후 (윗쪽 가운데)

하루살이 같은 하루를 기도로 버티며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지겠지?' 라는 기대와 믿음으로 저를 다독이며 무장하고 매일 아침 집을 나섭니다. 모둠장들의 행복한 회의에서 마음 나누기하다보면 눈물바다가 되기도 합니다. 늘 평탄하게 지내는 것을 원했고, 제 삶은 큰 변화 없이 잘 흘러 왔으며, 할 수 있을 만큼의 일들을 해내며 무탈하게 살아 온 저에게 매우 힘든 나날들이었습니다. 마치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쯤 상반기 정일사와 새물정진으로 100일 동안 300배를 하였습니다. 절을 하며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 잘하려고 애쓰고 있는 나, 잘해야만 하는 나, 지나치게 지나가는 말에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가볍게 넘어가도 될 것 들을 꼭 답변을 해야 하는 나를 알아차립니다. 결국은 나를 잘 보이기 위한 아주 강한 욕심으로 일을 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잘 채색된 항아리에 똥만 가득한 나를 보았습니다. 이런 나를 보게 하기 위한 소임이 총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라서 가능합니다

코로나 19가 조금 더 일찍 만들어준 온라인 체계지만, 앞으로 정토회가 만들어 갈 시스템입니다. 특히 사하법당의 경우 연세 드신 분들이 많아 컴퓨터와 핸드폰 사용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 역시 이번에 노트북을 구입해서 하나하나 저항 없이 새롭게 경험해 가고 있습니다. 도반들이 조금씩 익혀가는 과정은 아릅답습니다. '수행처럼 하겠다'는 의지로 배우고 익혀서 극복 해 가는 모습이 감동입니다. 그런 도반들과 함께하다보면 기술적 사용으로 불만, 불평을 할 틈이 없습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온라인 공청회 (아래칸 왼쪽 두번째)
▲ 온라인 공청회 (아래칸 왼쪽 두번째)

부탁하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으면 하고 마는 저였는데, 법당일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고 함께 하는 일입니다. 작고 소소한 것에서 큰 소임까지 부탁을 하면서 저의 업식들도 허물어져 갑니다. 총무 전화는 안 받는다고 하는데, 전화 받아주는 도반들, 어떤 부탁에도 거절 안하며 소임 받아 묵묵히 열과 성의를 다하는 도반을 보며 제가 성장해 갑니다.

직장에서 일이 마무리 되면 성취감과 물질적인 것이 남는다면 정토일은 꼭 사람이 남습니다. 조금씩 도반이 전부라는 말을 체감합니다. 요즘 저는 '신해행증'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확실히 갖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여, 배운 바를 행동으로 옮겨, 몸으로 체험하고 증득하는 원을 품고 있습니다. 감사함을 알고 실천하는 수행자가 되고 싶습니다.

지난 1년 잘 살펴보면 일은 힘들었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덜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 없이 시작한 기도는 참회로 이어지고 어렵고 복잡한 일들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도반들과 함께 '그냥 해 보자'는 마음으로 하니 일들이 되어갑니다. 요즘 저는 감정을 살펴보는 것이 재미가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저절로 “네, 하고 합니다”가 됩니다. 신기하게 저의 애착들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삶은 가벼워집니다. 저에게 정토회는 나를 알아가고 나의 삶의 주인이 되어가도록 합니다.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내가 존중하게 합니다.

나는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입니다
▲ 나는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입니다


변미원 님은 매일 기도하며 "이대로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모두의 덕분입니다." 라고 합니다. 총무하면서 ‘모둠장들이 나의 모둠원이다’ 하며 따뜻하게 챙기고, 늘 밝은 모습으로 가볍게 소임을 하는 모습이 매력이라고 도반들은 말합니다. 희망리포트가 바라본 주인공은 겉으로 보이는 밝음 내면에 힘듦이 느껴져 늘 마음이 애잔했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를 만나 든든하고 따듯한 마음입니다.

글_허승화 희망리포터(사하정토회_ 사하법당)
편집_박성희(해운대정토회_수영법당)

전체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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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수

잘채색된 항아리에 똥만 가득하다 는 말씀 가슴에 닿습니다^^

2021-02-14 21:57:49

박신영

변미원님의 따뜻하고 긍정적인 나누기 잘읽었습니다 소임이 곧 수행이라는 말씀 가슴에 와닿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02-10 06:12:51

아이들

교사하셨다는데 커닝/컨닝이라는 인상이 확들어오네요. 아이들에게 같은것 반복해서 가르치는 일하면서 교활할 필요가 있을까요?

2021-02-09 12: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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