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권선법당
나를 괴롭혔던 것은 다름 아닌 내 마음

한때 성당에 다녀보고 절에서 공부도 했지만, 해답은 절대적인 존재도 교리도 아닌 자신의 마음에 있음을 깨달았다는 고윤재 님. 경전반 꼭지와 모둠장의 소임을 완수하고, 가볍게 수행하면서 거듭나고 있는 고윤재 님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결혼으로 시작된 괴로움

제 어머니는 딸을 넷이나 낳았다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어머니를 섬기며 다섯 아이를 키웠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 때문에 어머니는 부업도 계속해야 했습니다. 힘들어 보이는 어머니를 돕고 싶은 마음에, 저는 공부뿐만 아니라 집안일도 열심히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딸들이 서둘러 결혼하길 부모님이 원했기 때문에 저는 결혼도 일찍 했습니다.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던 동료 교사로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직장에서 자기주장이 강하고 활발한 성격이라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저와는 다른 남편의 모습에 끌려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남편은 저에게도 자신을 주장을 앞세웠습니다. 친구들을 좋아해서 술 마시고 늦게 올 때가 많았고, 집안일도 잘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남편이 친구들과 함께 투자하다가 실패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들로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저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희귀성 난치 질환, 크론병

처음에는 직장생활과 집안일로 힘들어서 생긴 설사와 복통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심해지더니 살이 빠지기 시작했고 식사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과민성 대장염 정도로 여기다가 몸 상태가 점점 안 좋아져서 급기야 큰 병원에서 검사했습니다. 검사 결과, 희귀성 난치 질환인 크론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2016 가을경전반 졸업식에서
▲ 2016 가을경전반 졸업식에서

한 달간 입원해서 금식과 치료를 받고 나아진 줄 알았는데 퇴원 후 재발했습니다. 그 후, 입원, 퇴원, 재발의 과정을 반복했고, 1년마다 입원할 정도로 몸 상태가 악화됐습니다. 결국 소장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뒤로 정기적인 검사와 약을 먹어서 재입원은 하지 않았지만, 병이 재발할까 봐 항상 불안했습니다. 또한,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엄마의 아픈 모습을 오래 보여서 늘 미안했습니다.

내 집착이 괴로움의 시작

몸이 아프면서 종교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당도 다녀보고 절에 가서 공부도 해봤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이 괴롭고 불안정했습니다. 불교를 믿는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지, 저는 평소에 스님들의 책을 좋아했습니다. 법륜스님의 책을 읽고 간결한 문체와 정곡을 찌르는 말씀이 좋아서 정토회에 관심이 있던 중, 동료 교사가 정토회 불교 대학 입학을 적극적으로 권유했습니다. 그렇게 2015년 정토회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저를 내어놓고 나누기를 하는 것이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저를 내어놓을 때 가벼워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괴로움이 밖으로부터 오는 줄 착각하고 이 종교 저 종교, 이 절 저 절을 찾아다닌다.’라는 말씀이 딱 제 이야기 같아서 뜨끔하기도 했습니다.

2016 봄경전반 졸업식에서 도반들과 함께(오른쪽에서 첫번째)
▲ 2016 봄경전반 졸업식에서 도반들과 함께(오른쪽에서 첫번째)

또한, 보왕삼매론의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는 말씀이 제 가슴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던 저는,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제 마음이 그 모든 괴로움을 일으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집착을 내려놓아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이도 애쓰고 있구나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깨달음의 장〉1에 가서 ‘나는 옳고, 남편은 문제가 있다.’라는 생각을 새로운 시각으로 돌아봤습니다. 남편은 그 사람대로 애쓰고 있었고, 제가 옳다는 생각이 저 자신을 힘들게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를 괴롭혔던 것은 남편이 아니라 그 사람을 문제 있는 사람으로 보는 제 마음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남편과 아들, 딸이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것은 저의 집착일 뿐이었습니다.

저와 함께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남편에게 고마워하겠다고 다짐하면서 깨달음의 장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내가 옳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 저의 잣대를 내려놓고, ‘아,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하고 남편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정말 소임이 복이네

경전반 공부를 하면서 불교대학 부담당 봉사를 했습니다. 불교대학 학생일 때는 수업 중에 많이 졸고 결석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불교대학 부담당으로서 수업에 참여하니 긴장해서인지 졸지 않고 수업에 집중도 잘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경전반에서 하는 공부에도 더 많은 재미를 느꼈고,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소임이 복이라는 말처럼, 주인의 마음으로 참여하니 얻는 것이 참 많았습니다.

현재는 봄 경전반 꼭지와 모둠장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또 운영회의때, 제 모둠뿐만 아니라 법당의 전반적인 운영에 관한 의견을 내기 위해서는 일주일 내내 온라인으로 안내하고 취합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계속 다양한 것에 관심을 더 기울이고, 깨어서 제 마음을 잘 알아차리려 노력합니다.

10차 천일 결사 모둠장이 도중에 소임을 내려놓으면서 제가 모둠장이 되었습니다. 제 모둠은 주간반과 저녁반 구성원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저녁반 도반들은 수행 법회에 함께 참여해서 친숙했지만, 대다수의 주간반 도반들은 처음 만난 사이입니다. 모둠활동을 통해서 좀 더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모두 참석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만나서 활동을 하기 위해 연락하는 일이 상대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선뜻 나설 수 없었습니다.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이 저에겐 참 힘든 일이라는 것을 모둠장을 하면서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저 자신과 만나고 있습니다.

2019 봄경전반 문경수련 담당자 봉사 중(왼쪽)
▲ 2019 봄경전반 문경수련 담당자 봉사 중(왼쪽)

모둠장으로서 참여한 운영회의에서 여러 가지 정토회 소식을 접하고 안건을 협의합니다. 그러다 보니, 부지불식간에 정토회 운영에 좀 더 깊은 관심이 생기고, 상황을 더 넓게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졌습니다. 전에는 전달받은 일을 수동적으로 수행했는데, 지금은 제 일이라는 마음과 자발적인 자세로 맡은 소임을 수행합니다.

또한, 과거에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새벽 정진을 안 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둠장으로서 제가 먼저 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떠올라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새벽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려는 마음과 핑계 대려는 마음이 들 때, 모둠장이라는 소임이 저를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내려놓고 가볍게

예전에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습니다. 그러나, 정토회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 ‘인연 따라 다만 가볍게 할 뿐이다.’라는 말씀을 따르려 꾸준히 연습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소임을 맡다 보니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과 부담감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옳다.’ ‘내가 해봐서 안다.’라는 마음이 여전히 올라오곤 합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려놓은 후 모든 일에 가볍게 임하려 합니다. 남편에게 기대하는 마음, 자식에게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길가에 핀 한 포기 풀처럼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꾸준히 수행 정진하겠습니다.

정토회에서 부처님의 바른 법을 만난 것에 새록새록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 고맙고 바른 법을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2019 봄경전반 졸업식 담당자 봉사 중(앞줄 오른쪽 첫번째)
▲ 2019 봄경전반 졸업식 담당자 봉사 중(앞줄 오른쪽 첫번째)


몸과 마음의 아픔을, 집착하는 마음에서 가벼워지는 계기로 만든 고윤재 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의 수행 여정을 겸허히 돌아보았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는 혼란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고윤재 님은 봄 경전반을 잘 이끌어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저를 비롯하여 2020 권선 법당 봄 경전반의 모든 학생이 무사히 곧 졸업합니다. 봄 경전반 학생을 대표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글_윤현석_희망리포터(수원정토회_권선법당)
편집_성지연(서초정토회_서초법당)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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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경

술술 읽히는 글이네요! 멋지십니다 !

2021-03-08 07:11:28

조수빈

덕분에 배웁니다. 감사드려요~ 🌿

2021-02-25 19:46:42

이의수

감동적인 수행담 잘봤습니다 화이팅입니다**

2021-02-14 18: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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