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정토행자의 하루
매일 1g씩 중도를 증득합니다

편집팀 소임을 하며 다른 사람들의 수행담을 좀 더 가까이, 세밀하게 접합니다. 어떤 날은 진한 감동에 울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 진한 감동이 글에 녹아나지 못함에 아쉬워하고, 또 어떤 날은 이거 수행담이 맞나?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합니다. '진한 감동이 있는 수행담'만 찾는 마음을 보면서, 어쩌면 '깨달음'이란 것에 또 상을 짓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평범한 삶 속에서, 하루하루 소소하게 깨우쳐 가는 것들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행자의 하루 2차 편집팀의 권영숙, 서지영, 김혜경입니다.

행자의 하루 2차 편집팀 회의 사진 (좌측부터 박지윤, 서지영, 권영숙, 김혜경, 박성희)
▲ 행자의 하루 2차 편집팀 회의 사진 (좌측부터 박지윤, 서지영, 권영숙, 김혜경, 박성희)

'팔아주려고 했더니'에 걸린 내 마음 (권영숙님)

행자의 하루 편집팀의 권영숙님
▲ 행자의 하루 편집팀의 권영숙님

난 가게를 한다. 얼마 전 손님이 명절 선물로 곶감을 주문한다. 작년 추석에도 했던 손님이다. 그 손님은 무조건 싸게 달라고만 한다. 무농약 곶감을 싸게 줘봐야 한계가 있다. 지난 추석 때도 싸게 줬는데도 택배비를 나더러 부담하라고 했다. 그때, 이미 그 손님에 대한 내 평가는 마이너스다. 그런데 이번 설에 또 곶감을 싸게 달란다. 작년 작황이 좋지 않아 곶감값이 많이 뛰었다. 가격을 들은 손님은 내게 “팔아주려고 했더니 비싸네.”라고 말했다. 나는 손님의 ‘팔아주려고 했더니’라는 선심 쓰는 듯한 말에 탁 걸렸다. 이럴때 내 성질은 자동 반응했다. “네, 올해 비싸요. 다른 곳에서 하세요.”라고 억지로 감정을 누르며 말했다.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전화를 끊고 찝찝함과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팔아주려고 했더니’에 걸렸을까? 말로만 들으면 고마운 말이 아닌가. 다른 사람 물건도 아니고 일부러 내 가게 물건을 팔아주겠다고 하지 않나. 평상시에는 안 오지만 명절 때라도 선물 사러 오니 고마운 일 아닌가? 그러나 그 의문은 내 기분 나쁜 감정을 이기지 못했다. 그날 밤, 매일 쓰는 감사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그 손님에게 비굴하게 물건을 팔지 않은 나에게 고맙습니다.”

그런데 감사일기를 덮자마자 바로 아까의 물음이 또 올라왔다. ‘그 사람이 뭘 잘못했지? 팔아주고 싶다잖아. 너는 무엇이 그렇게 걸린 거지? 네 마음을 잘 봐봐.’

알았다. 나는 동정하듯, 선심 쓰듯, 하는 말이 싫구나. 팔아준다는 그 말이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구나. 내 안에 ‘내 물건이 좋으니 당신이 사는 거지? 어디서 팔아준다고 생색이야?’라고 쏘아붙이는 마음이 있구나. 그 사람은 정말 내 물건이 좋기도 하고, 내 것을 팔아주고 싶을 수도 있는데 그걸 꼬아서 받아들이는 나를 봤다.

그렇게 올라오는 내 마음을 억누르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줬다. 그러니 마음이 바뀌었다. ‘상대가 하는 말은 있는 그대로 듣자.’라는 내 안의 소리가 들렸다. 덮었던 감사일기를 다시 열었다.

“한 생각을 돌이키게 해준 그 손님에게 고맙습니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도반을 통해서 나를 보다 (서지영님)

분별만 솔직하게 말하다 정신차린 서지영님
▲ 분별만 솔직하게 말하다 정신차린 서지영님

10-4차 입재식이 끝나고 바로 '행자의 하루' 2차 편집자 회의가 잡혔다. 기사가 펑크 나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 펑크를 어떻게 매울 것인지 논의하다 이번 입재식이 너무 감동적이었으니 입재식 스케치 기사를 다뤄보자는 결론을 내게 되었다. 에너지 뿜뿜, 분별도 뿜뿜, 긍정도 뿜뿜인 도반이 1차로 스케치 기사를 쓰고, 의견을 모아서 수정하기로 했다.

나는 도반이 쓴 1차 기사를 한번 쓱 읽고는 “마음을 좀 더 넣어도 좋겠어요. 어떻게 감동이었는지, 어디서 울컥했는지. 스케치 기사긴 한데, 신문 기사는 아니니까.”라고 말했다. 이를 놓칠세라 그 에너지 뿜뿜 도반은 받아쳤다. “이 사람이. 당신이 감동을 넣으면 되지. 수정해요.“라고. 이에 나는 “난 그리 감동을 잘 안 해서.”라며 잘 비껴간 듯하였다. 그러나 그 도반은 예리하기까지 하다. “머리 좋네. 잘 빠져나감.” 하고 내 뒷덜미를 잡는다. 나는 머쓱해져서 “진심인데, 감동을 잘하는 당신이 신기해요.”라고 합리화했다. 그러나 이에 물러날 도반이 아니다. 무척 집요하기까지 하다. 예전에 내가 단톡방에 올린 글들을 하나하나 가져와서, 이게 감동이라고 보여준다. '지인을 불교대학에 인연 맺어주고, 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며 뿌듯하고 감사했던 내 마음, 봉사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감사한 마음' 이런 게 감동이라고 한다. 너무 거창한 걸 바라지 말고, 딴 세상에 있지 말고, 두 발을 땅 위에 둬보란다. 나는 마지막 항변을 해본다. “근데 저는 감동이 짧게 끝나요. 말로 나오기 전에.” 그러나 그 말은 이미 힘을 잃었다. 나는 항복한다. “알았어요. 감동을 토해볼게요.” 그에 만족한 듯 물러나며 하는 도반의 말 “표현 좋네.”

맞다. 나도 입재식 중에 수행담을 듣다가 울컥해서 혼자 눈물을 훔쳤다. 그래 놓고는 싹 돌아서서 '나는 그냥 그랬는데' 하며, 매사 시큰둥한 나의 업식을 발동시켰다. 나는 왜 나의 긍정적인 마음은 인정하지 않았을까? 왜 분별에만 유독 솔직할까? 감정적인 것은 약한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나는 약하면 안된다는 생각. 그 한 생각을 붙잡고 내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나도 내 소중한 마음을 인정해주고 싶다. 집요하게 끝까지 물어준 그 도반에게 감사하다.

가끔은 말을 멈추면 내 마음이 보인다. (김혜경님)

작은 아들과 함께 산책 중인 희망리포터 소통 담당 김혜경님
▲ 작은 아들과 함께 산책 중인 희망리포터 소통 담당 김혜경님

작은아들과 산을 산책 삼아 한 바퀴 도는데, 진정한 자폐 장애인 울 아들은 '슈퍼'라는 말을 100번쯤 반복한다. 그래서 결국 쇼핑센터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전화벨이 울려 화면을 보니, 남편이다. 보는 순간 받기 싫은 마음이 확 올라왔다. 통화버튼을 누르고 “왜?”라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남편은 퇴근길인데 가는 길에 함께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휴, 꼴도 보기 싫은데 왜 같이 가자고 하나’ 생각이 들었다. 싫었지만 알았다고 답하고 쇼핑센터에서 만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말도 하기 싫어 자연스럽게 묵언. 나는 앞만 보고 열심히 운전했다.

가만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어제 남편과 티격태격한 일이 떠올랐다. 늦은 밤 작은아들을 데리고 동네 한 바퀴 돌아 집으로 오는 골목, 나이 든 아저씨가 작은아들의 행동을 보고 또라이라고 혼잣말을 했다. 남편이 그 말을 듣고 “왜 남의 아들에게 욕을 하냐, 욕하지 말라” 고 따졌다. 그 사람은 당신의 아들인지 몰랐고 행동이 이상해서 그랬다고 했다. 남편은 재차 다시 욕하지 말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 말에 그 사람은 감정이 격해져서 우리 아들의 행동을 우스꽝스럽게 따라 해 보이고는 우리에게 쌍욕을 했다.

남편의 손을 잡고 빨리 걸음을 옮기고는 무시하고 가자는 내 말을 안 들어준 것과 가르치듯 따지는 남편의 말 습관에 대해 나도 남편에게 따졌다. 저런 사람과는 그냥 무시했으면 되는데, 더 화를 돋우어 욕만 더 먹었다고 따졌다. 남편은 억울해하며 왜 그 사람 때문에 너에게 자신이 이런 말을 들어야 하냐고 받아쳤다. 나도 내 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시아버지로부터 분별난 이야기로 2차 공격을 했다. 두 번째부터는 내 감정이 점점 올라가고 있음을 알아차렸고 그때서야 타인을 분별하는 남편을 보고 나 역시 남편에게 분별을 하고 있구나, 나도 똑같구나 라고 알아차려 말을 멈추었다. 그 순간 나는 마음을 나에게로 돌렸고, 화 난 감정도 알아차렸으니 내 마음은 편안하게 가라 앉을거야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남편을 마주하게 되니 어제의 감정이 올라와 미웠다. 이 감정은 여전히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남편을 편안히 바라보지 못한 것이다. 아무 말 없이 함께 한 그 순간 내가 옳다고 고집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렇게 내 마음을 제대로 알고 나니, 나는 나대로 옳고, 남편은 남편대로 옳은 거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옳고 그는 틀렸다 라는 생각은 바보같은 생각이었구나' 라고 반성하게 되니, 이후 자연스럽게 마음이 풀렸다. 집에 도착해서는 얼른 밥을 하고 따뜻한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여 마주보며 맛있게 먹었다.


취향이 뚜렷하고, 자유분방한 사람들이 모인 행자의 하루 2차 편집팀. 그런 만큼 더 많이 출렁이고, 또 그런 출렁이는 자신의 마음을 생생하게 표현하기를 좋아합니다. 이 안에서 저도 잘 내어 놓지 못하던 마음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표현해봅니다. 편집이 1할이요, 회의가 4할이며, 마음 나누기가 5할인 행자의 하루 2차 편집팀에서 재미있게 놀며, 매일 내 마음을 보고 함께 성장해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오늘도 1mm 만큼 더 성장하고 있습니다.

글_권영숙, 서지영, 김혜경(홍보국 행자의하루 편집팀)
편집_서지영(홍보국 행자의하루 편집팀)

전체댓글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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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왕

수고하시는 분들 덕분에 꼼꼼히 잘 챙겨읽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2021-02-14 13:59:06

조진덕

연휴 동안 집안 사람들과 부딪히며 경계를 대할 때마다 불안하고 답답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마음의 짐이 덜어짐을 느낍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2021-02-13 12:48:24

장보민

새롭고 신선한 이런 정토행자의 하루 감동 뿜뿜!!^-^
편집팀의 에너지에 박수를 보내며
응원합니다.
항상 감사하게 읽고 있습니다.
마음은 이렇게 들여다보는 건가..
간결하게 알아차리는 느낌을 잘 알려주셔서 배우고 갑니다....저도 읽으며 1mm 씩 성장한 듯💕

2021-02-13 07:4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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