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11.28 청춘 톡톡(4) 대구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지 않아서 불안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2019년 마지막 즉문즉설이 열리는 날입니다. 서울을 출발한 스님은 저녁 7시에 대구에 도착했습니다.

강연이 열린 곳은 대구 남구 앞산에 위치한 대덕 문화전당입니다.

대구시 외곽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년들이 강연장을 찾았습니다.

스님은 강연 전 죽 한 그릇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 객석을 가득 메운 400여 명의 청년들이 무대로 걸어 나오는 스님을 보며 뜨겁게 환호했습니다.

“저녁은 먹고 오셨어요?”

“네.”

“저도 10분 전에 이곳에 도착해서 죽 한 그릇 헐레벌떡 먹고 무대 위에 올라왔어요.” (웃음)

가볍게 인사를 건넨 후 여는 이야기 없이 곧바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질문을 하나라도 더 받아야 하니까 거두절미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부터 마지막 11번째 질문자까지 2시간 30분 동안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임용고시에 떨어져서 기간제 교사를 하고 있지만 안정적인 직장이 아니어서 고민이라는 청년의 질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지 않아서 불안해요

“저는 어릴 때부터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매번 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현재 기간제 교사 일을 하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반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했던 안정적인 직업은 아니었고, 제가 학생들과 함께 있을 때는 행복하지만 집에 와서 생각해보면 불안정한 제 상황에 갈등이 됩니다. 주변 사람들이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보라고 조언하지만, 저는 지금 제 일이 너무 행복합니다.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 저는 제가 하는 일에 행복감을 느껴서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안정적인 모습을 생각했을 때 괴리감이 너무 커서 힘듭니다.”

“질문자가 정말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이 목적이냐, 돈을 안정적으로 버는 것이 목적이냐, 이것을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두 개를 다 하고 싶다면, 그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지위도 높아지고 싶고, 얼굴도 잘 생기고 싶고, 인기도 있고 싶고, 그런 마음이 충분히 들 수 있어요. 누구나 다 원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어느 걸 할래요?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어보세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게 더 중요해요? 아니면 돈을 안정적으로 벌 수 있는 직책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해요?”

“...”

“그 두 개를 다 이루고 싶다면, 그건 쉽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교사가 되는 것도 어렵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에요. 누구나 그걸 원하니까요. 게다가 누구나 원하는 그 두 개를 다 이루고 싶다면, 그건 더더욱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두 개 합한 것을 이루려고 하니까 매번 떨어지는 거예요. 둘 중에 하나만 이루려고 하면 그래도 조금 이루기가 쉽죠.”

“제가 욕심이 많아서 그런 걸까요?”

“욕심이 많다고 할 수 있어요. 질문자보다 시험 치는 능력이 나은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에 질문자보다 그 사람들이 두 개를 다 가질 확률이 큽니다. 누구나 다 서울대학교에 가고 싶지만, 시험 성적이 낮으면 다른 학교를 가야 되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시험 성적이 더 낮으면 거기서 또 낮춰야 되는 것처럼 직업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두가 다 돈을 많이 벌기를 원하고, 그것도 안정적으로 수입을 갖기를 원합니다.

돈을 많이 벌기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대우해주길 원해요. 그런데 인격적으로 대우받는 노동자 중에 교사만 한 직업이 없어요. 교사도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교사는 선생이라고 불리고 자기를 존경하고 따르는 학생들이 있잖아요. 일반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대우가 없단 말이에요. 그리고 여성으로서 남녀차별을 가장 적게 받는 직업이 교사잖아요. 보이지 않게 여성을 차별하는 직장이 많거든요.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교사가 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교대나 사범대를 나온 여성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교사가 되기가 쉬웠어요. 그러나 지금은 너도 나도 다 대학을 나오고, 거기다 초중고 학생 수가 줄어서 교사 수요도 줄어들었기 때문에 경쟁이 더욱더 치열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요즘 경기가 안 좋으니까 다들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는데 교사는 또 공무원이잖아요. 정년퇴직했을 때 최고로 부러운 직업이 부부 교사라고 합니다. 20대 초반에 선생이 되어서 40년간 근무하고 60대 초반에 퇴직을 하니까 퇴직금이 많잖아요. 그 많은 퇴직금을 부부 교사는 양쪽이 받으니까 얼마나 좋겠어요. 옛날에는 부부 교사가 부러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사회가 점점 더 불안정해지니까 교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거예요. 질문자가 그걸 원한다면 그만큼 치열하게 공부를 해야지요.

지금은 뭐 되는 것이 가장 쉬울까요? 경쟁이 전혀 치열하지 않고 미달되는 곳이 있어요. 스님 되는 것과 수녀 되는 것입니다. 전부 미달입니다. 원서 내면 자동으로 됩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안 되려고 해요. (모두 웃음)

교사만 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인도나 필리핀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면 돼요. 제가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불가촉천민 마을에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세워서 운영하고 있거든요. 그런 곳에 가서 선생을 하면 제일 좋지요. 거기는 학부모의 간섭도 안 받습니다. 마음껏 내가 가르치고 싶은 대로 가르칠 수 있고, 온갖 실험을 다 해봐도 됩니다. 대신 월급은 없습니다. (모두 웃음)

선생이 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런 곳에 가야지요. 질문자는 지금 선생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선생이 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인도와 필리핀에 가면 됩니다. 돈만 포기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교장으로 보내줄 수 있어요. (모두 웃음)

제가 볼 때는 질문자에게는 지금 안정적인 직장이 더 우선적이지 않나 싶어요. 그러니까 자꾸 공무원에 관심이 가는 거예요. 교사 공무원은 일반 공무원보다도 경쟁이 더 치열합니다. 그만큼 더 좋은 조건에 있으니까요. 안정적인 교사 공무원이 되고 싶다면, 남들이 놀 때 안 놀고 집중해서 공부를 해보세요.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도 질문자에게 시험 치는 재능이 부족해서 합격을 못 한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건 질문자가 다른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잘 치는 재능이 부족한 거예요. 달리기를 잘하는 재능이 있듯이 시험을 잘 치는 재능이 또 있거든요.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어떤 길을 갈 것인지는 내 선택이에요. 어떤 길을 선택할래요?”

“...”

“갈수록 안정적인 직장은 없어집니다. 공무원이 왜 안정적인 직장일까요? 공무원이 다니는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국가라는 회사입니다. 국가 자체가 망하기 전까지는 안전해요. 물론 국가가 망해서 공무원도 망할 수는 있습니다. 조선 왕조가 망하니까 관리들도 다 망했잖아요. 국가가 망하면 함께 망하긴 해요.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제일 늦게까지 버티는 것이 국가입니다. 국가는 제일 큰 기업이기 때문에 당연히 공무원의 신분이 가장 늦게까지 보장되는 거예요.

공무원을 빼고는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이 안정적이겠죠. 그런데 그런 회사는 안정적이지 못한 요소가 있습니다. 공무원은 한 번 들어가면 비리를 저지르지 않는 한 안 잘려요. 그런데 대기업은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실력이 부족하면 바로 잘라버려요. 그래서 늘 전전긍긍하고 살아야 돼요.

좋은 직장에는 서로 가려고 하기 때문에 그걸 원하면 평생 껄덕거리거나 전전긍긍하면서 살아야 돼요. 그런데 스님이 되는 것은 평생 경쟁을 안 해도 됩니다. 이런 길을 좀 생각해 보면 어때요? 아니면 인도나 필리핀에 있는 학교에 가든지요. 돈 버는 것 빼놓고는 온갖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웃음)

여러분이 듣기에는 제 말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제가 보기에는 여러분이야말로 현실적이지 않고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거예요.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안정적인 지위도 가질 수 있고, 이것도 갖고, 저것도 갖고, 이런 직업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리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래서 시험에 떨어지는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험에 떨어지는 것은 재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선호하기 때문이에요. 질문자가 시험 치는 재능이 부족하다면 목표를 조금 낮춰서 다른 선택을 해라, 이런 얘기예요. 아니면 더 노력하면서 도전을 하든지요.”

“저는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몇 살인데요?”

“내년에 서른입니다.”

“아이고, 어리네요. 전 또 12살인 줄 알았어요.” (모두 웃음)

“스무 살이 넘었으면 어린애가 아니에요. 이제 성인입니다. 어떤 어리광도 용납이 안 됩니다. 용납해 주는 사람은 오직 부모님뿐입니다. 그 외는 아무도 용납을 안 해줘요. 사회 제도적으로도 스무 살이 넘으면 다 성인이에요.”

스무 살이 넘었으면 어떤 어리광도 용납이 안 된다는 말씀에 가슴이 뜨끔해졌습니다. 나이가 40이나 50이 되어도 이해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질문자는 스님에게 질문을 한 가지 더 했습니다. 전혀 다른 질문이었는데, 앞의 질문과 뒤의 질문에 대한 답이 ‘욕심’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결혼하면 부모님이 너무 쓸쓸하실까 봐 걱정입니다

“저는 집에서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입니다. 저 혼자이기 때문에 부모님의 기대가 컸고 알게 모르게 어릴 때부터 남보다 철이 빨리 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내년에 서른이 되니까 결혼 생각을 하게 돼요. 제가 결혼해서 집을 떠나면 부모님이 제가 없는 두 분만의 생활이 좀 쓸쓸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시간이 지나서 혹시 부모님 중에 한 분이 돌아가시면 살아 계신 한 분이 너무 안 돼 보일 것 같아요.”

“부모님이 걱정될 수 있어요. 해결책은 어렵지 않습니다. 걱정이 되면 그냥 계속 부모님과 같이 살면 돼요. 아니면 결혼하고 나서 남편을 데릴사위처럼 받아들여서 부모님 집에서 같이 살든지요.”

“남자 친구에게 나중에 물어보겠습니다.” (모두 웃음)

“그런데 요즘은 며느리도 되기 싫어하는 세상인데, 데릴사위 되고 싶은 남자가 있을까요? 며느리가 되어서 시부모 모시는 것도 다 싫다고 하는데, 어느 남자가 데릴사위 되어서 아내의 부모를 모시려고 하겠어요?

길은 있어요. 부모 없는 남자 친구를 사귀어서 데릴사위로 삼는 겁니다. 부모 있는 남자 친구를 사귀면 안 돼요. 집안이 괜찮거나 남자가 똑똑해도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집안이 괜찮으면 그 집에서 절대로 자기 아들이 데릴사위 되는 것을 용납을 안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남자가 똑똑하면 그 부모도 아들한테 기대가 크기 때문에 용납을 안 해요.

그런데 부모가 없는 남자 친구를 사귀거나, 그저 형편없는 말썽꾸러기를 남자 친구로 구하면 데릴사위로 삼을 수 있어요. 그 집 부모도 ‘제발 우리 아들 데려가 주면 좋겠다’, ‘다시는 내 눈 앞에 안 나타났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아들이라면, 데릴사위로 삼아도 그 부모가 좋아할 겁니다. ‘아이고, 속이 시원하다’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모두 웃음)

그런데 질문자는 집안이 괜찮거나 똑똑하거나 착실한 남자 친구를 구하고 있잖아요?”

“네.”

“지금 질문자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을 함께 바라고 있어요. 가질 수는 있는데, 질문자가 두 가지를 다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갖기가 어려운 거예요. 방금 직업을 고민하는 것과 똑같아요.

부모님이 쓸쓸해질 것을 걱정하면 결혼을 안 하든지, 결혼을 하려면 고아로 자란 남자 친구나 천하에 말썽꾸러기 남자 친구를 구하면 돼요. 그런데 집안이 괜찮거나 똑똑한 남자 친구를 구해서 데릴사위 들이듯이 결혼하려고 한다면, 그건 불가능해요. 집안이 괜찮으면 며느리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서 하녀처럼 부려먹으려고 하지 자기 아들을 남의 집에 머슴처럼 줄 부모는 없습니다. 집안이 좀 가난하더라도 아들이 똑똑하면 부모가 똑똑한 아들에게 기대하고 의지하는 것이 엄청나게 많아요. 그 부모는 평생 동안 아들 하나 보고 살아온 거예요. 그래서 질문자가 그 집에 들어가서 시댁 치다꺼리하고 살아야 되는 거예요. 이건 양립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도 욕심이라면 큰 욕심입니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것이 욕심이 아니라 양립할 수 없는 것을 다 가지려는 것이 욕심이에요. ‘돈은 빌리고 싶은데, 갚기는 싫다’, ‘공부는 하기 싫은데, 서울대학교에는 가고 싶다’ 이게 욕심입니다. 질문자의 생각에는 이런 모순이 있습니다.

질문자처럼 생각하면 미래의 젊은이들은 아무도 결혼을 못 합니다. 지금 태어난 아이들은 거의 다 독자예요. 요즘 부부들은 자녀가 없거나 하나만 낳습니다. 둘을 낳는 경우도 드물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쓸쓸해질까 봐 결혼을 안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두 명의 성인이 최소한 자녀를 두 명은 낳아야 인구가 그대로 유지되는데,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출산율이 0.98로 떨어졌습니다. 수명이 길어져서 아직은 인구가 늘고 있지만, 곧 감소하게 될 시점이 옵니다. 일본은 벌써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해서 빈집이 몇 백만 채가 될 정도입니다.

부모님 인생은 부모님 인생이고, 나는 스무 살이 넘었으니까 내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부모님,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 바이 바이.’

이렇게 부모님께 말하고 질문자는 결혼해서 자기 인생을 살아야죠. 부모에게 자꾸 연연하게 되는 이유는 부모한테 뭘 바라고 있거나 떡고물이라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질문자처럼 자기가 부모를 돌보겠다고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는 것은 더 문제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결혼해서 가정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요. 예를 들어 결혼을 한 남자가 아내는 염두에 없고 계속 자기 부모만 생각한다면, 부모 입장에서는 효자이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괜찮은 남자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결혼을 한 여자가 친정 생각만 한다면, 남편이나 시댁 입장에서는 괜찮은 여자가 아니에요.

그런 생각을 갖고 결혼하면 안 돼요. 남자든 여자든 결혼을 했으면 자기 가정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내가 어릴 때 자란 집은 옛날 가정이에요. 새로운 가정을 우선으로 하고, 여유가 있으면 옛날 집과 관계를 맺거나 도와주는 것은 괜찮아요. 그렇지 않고 옛날 집에만 연연한다면 상대가 같이 살기 어려워요. 요즘 상당수의 남자들이 이렇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습니다. 남자가 젊은 여자와 늙은 여자를 모두 끼고 살려고 하기 때문에 고부간에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옛날에 일부다처제 사회에서는 남자가 부인을 여러 명 두고 살았기 때문에 부인들끼리 서로 갈등을 일으켰던 거예요. 지금은 그런 상황은 아니지만 고부 갈등도 심리적으로는 똑같은 현상입니다.

요즘은 시절이 바뀌면서 남자가 양다리 걸치는 것이 적어지는 반면, 오히려 여자가 친정과의 관계를 안 끊어주고 양다리 걸치는 경우가 늘어나는 거 같아요. 질문자 같은 사람이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에요. (모두 웃음)

결혼을 하려면 부모와의 관계는 딱 끊어야 돼요. 결혼을 한 상태에서도 계속 부모님 집에 살려면 부모 없는 남자를 구해야 돼요. 어떤 목적을 갖든 괜찮습니다. 목적과 그걸 이루는 방법이 서로 맞아야 된다는 거예요. 제 말 이해하셨어요?”

“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양립할 수 없는 것을 다 가지려는 것이 욕심이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아버지가 자수성가하셨는데 어머니와 상의하지 않고 몰래 친척들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많이 줍니다. 아버지가 욕심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고, 도움만 바라는 친척들이 얄밉습니다.
  • 결혼 3년 차인데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입니다. 남편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데 그냥 하늘에 맡길까요?
  •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요? 앞으로 자본주의는 어떻게 변할까요? 저는 돈을 좋아하는데 계속 돈을 좋아해도 될까요? 집값이 많이 오르고 있는데 집값이 계속 오를까요?
  • 돈을 악착같이 모아도 한 번에 쓸 일이 생기고, 손가락만 까딱하면 모든 게 배달되는 세상이지만, 사람들은 운동 부족에 시달리는 이 상황이 모순으로 느껴져요. 삶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것 같아요.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살까요? 스님은 어떤 의미로 사시나요?
  • 스님께서 ‘불생불멸’을 얼음이 물이 되듯이 성질이 변할 뿐이라고 설명하셨는데요. 사람은 태어나기 전에는 어떤 성질이고, 죽고 난 후에는 어떤 성질로 변하는 건가요?
  • 저는 늘 아이들과 함께 있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은데, 아이들 눈에 저는 어른입니다. 어른의 조건이 무엇이고, 좋은 어른은 어떤 사람일까요?
  •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을 버리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남들에게 잘 보이려니까 제가 너무 힘들어요.
  • 얼마 전에 결혼까지 약속하고 믿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남자 친구는 인상도 좋고 주위에서 사윗감으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앞으로 남자든 여자든 인상이 좋든 아무도 못 믿을 것 같은데, 스님은 인상이나 관상을 믿으시나요?
  •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사촌언니와 저의 성적을 비교해서 상처를 받았습니다. 또 엄마가 화를 심하게 낼 때가 있어서 속상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의 질문이 참 당돌해서 큰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한 질문자는 남편과 별거 중이라며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현재 남편과 별거 상태입니다. 남편과 저는 이혼을 원하고 있지만, 아이는 자기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이혼을 하지 말아 달라고 해서 별거만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혼을 하고 싶은데, 아이가 상처 받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님은 답변을 자세하게 해 주었지만, 그래도 별거 중인 부모 밑에서 혼란을 겪을 아이가 걱정이 되었는지 강연 끝 무렵 질문자에게 한마디를 더 해주었습니다.

“부부로서는 연이 좀 없다 하더라도 친구로서는 같이 지낼 수 있잖아요. 남편으로서는 문제가 좀 있지만 애 아빠로서 존중을 해줄 수는 있잖아요. 아이에게 ‘너희 아빠도 훌륭한 사람이다’ 이렇게 말해줘야 아이에게 자긍심이 생깁니다. ‘너희 아빠는 나쁜 놈이다’ 이렇게 말하는데, 아이가 어떻게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겠어요?

내 남편으로서 부족하다고 해서 애 아빠로서도 부족하다고 할 수 없어요. 내 남편으로서 부족한 것과 애 아빠로서 부족한 것은 서로 다른 문제예요. 애가 아빠와 같이 살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애가 볼 때는 아버지가 괜찮은 사람인 거예요. 그걸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합니다. 아이와 아빠에 대해 얘기할 때도 항상 아빠를 칭찬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아이의 심리가 안정이 되고, 아이에게 자신감이 생깁니다. 자기 성질대로만 막살면 안 돼요.”

질문자의 얼굴도 밝아지고, 옆에 앉아 있던 아이의 얼굴도 한층 밝아지자 청중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스님은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확실하게 입장이 정리되어서 좋습니다.”
“길가에 핀 풀처럼 별 것 아닌 줄 알고 가볍게 살겠습니다.”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른이 되겠습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대화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아무리 힘들다고 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자각시켜 주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좋은 조건에 있다는 걸 좀 아셨으면 해요. 예전에 어떤 학생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법륜 스님처럼 될 수 있습니까?’
‘부럽니?’
‘네.’
‘그럼 내가 알려주면 해볼래?’
‘네.’
‘고생을 많이 하면 된다. 해볼래?’

그랬더니 ‘그건 못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더라고요. 또 어떤 학생은 ‘어떻게 하면 법륜 스님처럼 강연을 잘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길래 오히려 제가 이렇게 되물은 적이 있어요.

‘이렇게 강연을 잘하는 67살 된 영감이 될래요? 강연을 잘 못하는 20살 된 학생이 될래요? 둘 중에 하나 선택하라고 하면 어느 것을 선택할래요?”

한참을 고민하더니 ‘20살 된 학생이 낫겠습니다’라고 대답하더라고요. (모두 웃음)

여러분들은 나이만 갖고도 저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인정합니까?”

“네.”

“만약에 돈도 좀 생기고, 아는 것도 좀 많아지고, 지위도 좀 높아지는 대신에 당장 내일 아침에 67살이 된다고 하면. 그렇게 하시겠어요?”

“아니요.”

“돈을 10조 줄 테니까 산소호흡기 꽂고 누워 있는 대기업 회장이 되라고 하면 그렇게 하시겠어요?”

“아니요.”

“아니라고 대답을 하셨다면, 여러분이 지금 그 대기업 회장보다 좋은 조건에 있다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들은 아무리 가진 것이 없다 해도 공부를 하려면 공부할 수도 있고, 선생이 되려면 선생이 될 수도 있고, 어느 걸 하든지 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그리고 꼭 선생이 안 된다고 해서 다른 길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다른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나이잖아요. 한국에서도 살 수도 있고, 외국에서 살 수도 있고, 이 남자하고 사귀다가 헤어지면 저 남자와 만날 수 있는 나이잖아요.

그런데 나이가 저처럼 67살쯤 되면 자기 입맛대로 못 삽니다. 제가 지금 물리학자가 되고 싶다고 해서 과연 될 수 있을까요? 스무 살 때나 서른 살 때는 도전했을 때 가능성이 높지만, 지금은 불가능한 건 아니어도 가능성은 낮아요. 제가 지금부터 아무리 연습한다고 해도 100미터를 10초에 뛰는 것은 불가능한 것과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 경험이 많기 때문에 원숙한 장점이 있는 반면에 삶에 있어 선택의 폭은 점점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오히려 선택의 폭이 너무 넓어서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늙은 사람들처럼 선택의 폭이 좁아져서 2개 중에 1개만 고를 수 있게 되기를 자꾸 원하는 것 같아요. 심지어 누가 대신 선택해 주기를 원하고요.

여러분이 지금 고민하는 걸 쉽게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돈 5천 원을 갖고 오징어 한 마리를 사러 시장에 갔어요. 그런데 시장에는 오징어도 있고, 가자미도 있고, 명태도 있고, 고를 게 너무 많은 거예요. 다 사려니까 돈이 부족하고, 이걸 사려니까 저걸 먹고 싶고, 저걸 사려니까 이걸 먹고 싶어서 고민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징어만 갖다 놓지 왜 다른 것도 갖다 놓았냐!’ 이렇게 불만을 터뜨리는 겁니다.

오징어 하나만 가져다 놓았으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는 건데, 오징어를 사는 건 그 상황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오징어를 사러 갔으니까 오징어만 사 오면 되잖아요. 설령 오징어를 사러 갔다 하더라도 다른 것이 더 보이면 선택의 여지가 있어서 좋은 거잖아요. 물건을 여러 개 진열해 놓은 것이 나아요? 딱 한 개만 갖다 놓는 것이 나아요?”

“여러 개요.”

“그런데도 여러분은 여러 개 있다고 불평하고, 또 그걸 살 돈이 없다고 불평하고 있는 거예요. 선택의 여지가 딱 하나밖에 없었으면 불평할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돈도 부족하고 경험도 부족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게 많단 말이에요. 그런 자기의 장점을 알아야 해요. 지금 여러분은 좋은 조건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여러분들은 자기가 나쁜 조건에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이 문제죠.

스무 살이 넘었으면 이제는 자기 삶을 책임지고 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도움을 얻었을 때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돈을 얻든, 밥을 얻든, 도움을 얻었다면, 항상 ‘감사합니다’라고 표현을 해야 돼요.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니라 성인과 성인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강의를 공짜로 들었잖아요. 그렇다면 강의 끝나고 나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저도 여러분한테 ‘고맙습니다’ 이렇게 말해야 돼요. 길거리에서 제 얘기 좀 들어 달라고 하면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요? 대부분 안 듣고 지나가버려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이렇게 앉아서 귀를 쫑긋하고 들어주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도 여러분들에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런 마음을 내면 삶이 편안해집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내 보세요. 내가 원하는 일이 안 이루어져서 속상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내 뜻대로 안 되는 것 한두 가지를 빼면 감사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아요.

젊을 때부터 이런 공부를 하고 살면 인생에 좋습니다. 산에 다람쥐도 잘 사는데, 사람이 왜 못 살겠어요.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모두 박수)

열변을 토하는 스님의 목소리 속에 청년들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청년들에게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모습에 가슴이 찡했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온 스님은 남편과 별거 중이라고 질문한 여성 분의 딸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여 주었습니다. 그늘 진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책 사인회를 마치고 나서 스님은 강연을 준비한 청년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수고했어요.”

이것으로 올해의 강연을 모두 마치게 되었습니다.

한 해 동안 강연을 준비한 수백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에게도 스님이 똑같이 들려주고 싶은 말이었을 겁니다. 고개를 숙여 감사한 마음을 전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다시 차로 1시간을 달려 두북 정토수련원에 도착한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농사일을 한 후 오후에는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감을 딸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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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20-01-07 01:18:20

유경원

스님의 크신 사랑에 눈물이 날만큼 감사합니다.
누가 이렇게 유쾌한 가운데 청년들에게 삶의 이치를 희망을 얘기해줄 수 있을까요.
감사감사합니다()

2019-12-10 08:31:32

박범숙

법륜스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감사합니다

2019-12-07 15:3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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