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4.22. 부탄 3차 답사 1일째(파로, 팀푸, 트롱사)
"검소하게 살려니까 힘들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탄에 도착하여 하루 종일 이동하여 트롱사로 가는 날입니다.

스님은 어제저녁 비행기로 한국을 출발하여 0시 50분에 방콕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수하물을 찾아서 공항을 나오자 정토회 회원인 황소연 님이 반갑게 스님과 JTS 답사단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곧바로 차를 타고 공항 근처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스님 혼자서 다닐 때는 주로 공항에서 잠을 자는데 오늘은 답사단에 함께하는 전문가들도 있고, 영어 입재식 생방송도 해야 해서 특별히 숙소를 잡았습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방송 준비를 하여 방콕 현지 시간으로 새벽 2시에 영어 입재식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전 세계의 정토행자들이 백일기도를 시작했고, 오늘은 외국어를 사용하는 전 세계의 정토행자들이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홍콩, 필리핀, 한국, 인도, 호주, 아일랜드,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스위스, 중국, 영국 등 세계 각국에서 외국인 정토행자들이 5차 백일기도에 입재했습니다. 먼저 지난 100일 동안 부지런히 수행한 분의 소감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I’ve been doing morning practices for almost 100 days. This is a big surprise for me, because at the beginning it was hard for me to do it. But I am glad that I've been doing it every morning, and I can do it with effort. I would not say that it has had a very big effect on me or that I have changed more than you think. But I have become more sensitive to my emotions”

(수행을 한지 어느덧 100일에 이르렀습니다. 저에게는 꽤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수행을 처음 시작했을 땐 정말 힘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매일 아침 정진을 해왔고, 저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기쁩니다. 이러한 정진이 저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거나 저를 한 순간에 변화시켰다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그보다 제가 제 감정을 알아차리며, 깨어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Practices has definitely helped me to be calmer. I used to get irritated in traffic. Not so much now. I can stop those negative feelings. Now I generally don‘t let things push my buttons.”

(수행은 제가 차분해지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차가 막히면 짜증이 잘 일어났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저는 저의 부정적인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고, 이제는 그런 감정에 휘둘리도록 저를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두 분의 소감을 들은 후 다 함께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외국인 정토행자들을 위해 천일결사 수행을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천일결사에 입재하신 여러분,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앞서 두 분의 소감을 잘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 부탄으로 가는 길입니다. 방콕 공항에서 경유하는 중에 잠시 공항 밖으로 나와 여러분을 만나고 있습니다. 현재 이곳 시간으로는 새벽 2시 18분입니다.

수행이란 화가 적게 나든지, 슬픔이 옅어지든지, 괴로움이 줄어들든지 이렇게 내가 직접 경험하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을 보면 수행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첫째 믿음, 둘째 이해, 셋째 경험이 중요하다고 나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믿음에 기초하는 영역을 종교라고 합니다. 이치를 깊이 이해하는 영역은 철학입니다. 수행은 믿음과 이치를 바탕으로 자신이 직접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토회는 종교, 철학으로서의 불교를 넘어서서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가장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종교나 철학으로서의 불교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실천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도 경험해 봐서 알겠지만, 어떤 마음을 냈다 하더라도 그 마음이 오래 지속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국 속담에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결심을 해도 3일을 넘게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오늘 입재를 해서 ‘매일 아침마다 수행 정진을 하겠다’ 이렇게 마음을 내도 막상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하기 싫은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정진을 하다 보면 까르마(karma)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그래서 옛 스승들이 첫 마음을 지속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곧 깨달음의 완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매일 정진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성격이나 오랜 습관을 바꾸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에요. 그러나 변화가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업식을 바꾸려면 꾸준히 정진해야 해요.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도 이와 같습니다.

‘이 세상은 무상하다. 끝없이 변한다. 그러니 마치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꾸준히 정진하라.’

바위에 물방울이 똑똑 떨어져서 구멍이 날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꾸준히 떨어져야 할까요? 그렇게 꾸준히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수행을 조금 하다가 별로 변하는 게 없으면 중간에 포기해 버려요. 최소한 천 일은 꾸준히 수행을 해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천일결사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적어도 만일을 정진해야 합니다. 그래서 개인의 변화를 위해서 천일결사를 하고,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사회를 좀 더 아름답게 변화시키기 위해서 만일결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입재하신 여러분들은 적어도 천 일은 꾸준히 정진을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나도 모르게 어쩌다가 정진을 놓쳤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다음날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항상 입재할 때의 첫 마음을 잊지 말고 꾸준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면 천 일이 되고, 만일이 됩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리고,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정진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궁금했던 점을 질문받겠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신청하신 두 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분은 수행자로서 얼마나 검소하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얼마나 검소하게 살아야 하나요?

“I was taught that a practitioner is supposed to live frugally. But I find that sometimes trying to be frugal, when I don't strictly need to be, brings suffering. Therefore, should I always behave frugally, or only if it won't cause suffering? For example, I like to eat out with my husband or friends at nice restaurants occasionally and have the means to do it. But then I'm not being frugal, since it's quite expensive to eat at nice restaurants in the US. If I restrain myself from enjoying nice meals with people who I care about, that would make me unhappy.”

(수행자는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너무 엄격하게 검소하게 살려고 하다 보니 때로는 고통스러워요. 그럼에도 항상 검소하게 살아야 하나요, 아니면 괴롭지 않을 만큼만 검소하게 살아도 되나요? 예를 들어 저는 가끔 남편이나 친구들과 레스토랑에서 외식하고 싶고, 그럴 여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외식을 하려면 꽤 비용이 들기 때문에 검소한 행동은 아닙니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멋진 곳에 가서 식사하는 것조차 제한을 둔다면 제가 불행해질 것 같아요.)

“세상 속에 수행자로 살아가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고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처님께서는 출가해서 수행하는 이들에게 일체의 세속적인 사치나 풍류를 다 버리도록 지도했습니다. 출가 수행자는 음식은 얻어먹고, 옷은 주워 입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잤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고집하지는 않으셨어요.

음식은 얻어먹어야 하지만 함께 있는 수행자들이 모두 초대를 받아 함께 식사를 하는 조건이라면 식사 초대에 응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옷도 버려진 옷이나 시체를 덮었던 옷이 없을 때는 새 옷을 입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시신을 싸서 버린 천만 입어야 한다고 고집하면 만약 그런 천을 구할 수 없을 때는 벌거벗고 지내거나 새 천을 시신에 한 번 덮었다가 사용할 수밖에 없잖아요. 또, 비가 오는 날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의 처마 밑에서는 자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검소한 삶을 살도록 장려했지만, 그것을 극단적으로 지키라고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적용하셨습니다.

재가 수행자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첫째, 남을 때리거나 죽이지 말라. 둘째,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지 말라. 셋째, 타인이 원하지 않는데 강제로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하지 말라. 넷째, 거짓말을 하거나 욕설은 하지 말라. 다섯째, 술을 취하도록 마시지 말라. 이 다섯 가지가 재가 수행자가 지켜야 할 기본 계율입니다.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손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재가 수행자 중에서도 법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타의 모범이 돼야 하기 때문에 세 가지 계율을 추가했습니다. 첫 번째 계율은 ‘사치하지 말라’입니다. 비싼 옷을 입거나 장신구를 걸치거나 비싼 화장품을 쓰는 등 사치를 제한했습니다. 사치할 돈으로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 이상의 사치는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아무리 부유하더라도’라는 조건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재산을 많이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에요. 재산이 많더라도 사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 가지 이익이 있습니다. 첫째, 내가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 헐떡거리면서 살지 않아도 됩니다. 둘째,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서 공덕을 지을 기회가 생깁니다. 셋째, 지구환경을 보존하는 길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계율은 ‘겸손하라’입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더라도 겸손하라. 지위가 높거나 유명해지면 잘난 척하고 목에 힘을 주는 경우가 많잖아요. 다른 사람을 얕잡아보고 무시하기도 합니다. 만약 내가 수행자라면 지위나 인기 때문에 교만해져서는 안 됩니다. 지위가 있고 인기가 있는데도 겸손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존경을 기반으로 더 널리 법을 전할 수도 있어요.

세 번째 계율은 ‘마음이 들뜨는 즐거움을 추구하지 말라’입니다. 기분에 취해서 하는 행동을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이 지위가 있거나 돈이 있으면 교만하고, 사치하고, 향락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런 향락을 즐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 세 가지는 재가 수행자라도 다른 이들을 지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계율입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재가 수행자로서 기본만 지키고 살겠다면 다섯 가지 계율만 잘 지키면 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법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면 사치를 할 때 지적을 받을 수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법을 안내하는 사람은 맛에 탐닉하거나 어떤 즐거움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먹고 싶어서 고급 식당에 가고, 입고 싶어서 좋은 옷을 입고, 값비싼 것을 즐기는 것은 유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초대를 받거나 가족의 권유로 잠시 어울리는 정도는 괜찮습니다. 다만 그것이 습관이 돼서는 안 돼요. 이럴 때도 스스로 마음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안 갈 수 있으면 안 가는 게 제일 좋아요. 그러나 가족이나 지인을 위해 사치를 하거나 향락을 즐기는 자리에 갔다면 수행자로서 아침에 기도할 때는 참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잘못이어서가 아니라 그 행동을 합리화하면서 내가 물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가끔 사치하거나 즐기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이 습관화되면 안 됩니다. 추가적으로 더 질문이 있으면 하세요”

“I see your guidance. However, I have not yet decided whether I should give up a nice meal. I don't know yet. I see your point. At the same time, I am not yet committed to a 100% ideal life.”

(스님의 가르침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맛있는 식사를 포기해야 할지는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스님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아요. 이상적인 삶에 아직 온전히 전념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러면 천천히 하세요. 수행은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욕망이 욕망인 줄 알고 사로잡히지 않는 거예요. 내가 욕망을 따라 행동하더라도 그런 나를 알고 스트레스를 안 받도록 해야 합니다. 욕망을 참으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또 욕망대로 하고 후회하면 그것도 스트레스예요. ‘아, 나한테 이런 욕망이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조금씩 개선해 나가면 됩니다.

제가 부탄을 답사할 때 트럭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앞 좌석에 앉아서 가면 짐칸에 타는 것보다 일시적으로 편안합니다. 그런데 좌석은 다섯 개고, 사람은 열 명이라면 누군가는 짐칸에 타야 합니다. 이때 짐칸에 타서 불편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짐을 지고 걸어가는 사람보다는 낫다고 생각을 하면 괴롭지 않을 수 있어요. 이렇게 항상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렇다고 앞 좌석에 자리가 비었는데 나는 수행자니까 뒤에 타겠다고 고집하는 것도 수행이 아닙니다.”

"Yes, I see your point about living frugally. I will be able to eliminate extra stress. In reality I don't need to accumulate any more. I have deeply benefited from the practice, so thank you very much.

(네, 검소한 삶에 대한 말씀을 잘 이해했습니다. 저의 스트레스를 없앨 수 있겠습니다.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저는 더 이상 재산을 모을 필요가 없습니다. 수행을 통해 깊은 깨달음 얻고 있습니다. 스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한 분의 질문을 더 받고 법문을 마쳤습니다.

“저는 이제 곧 공항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서로 마음 나누기를 하고 입재식을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부탄에서 일주일 동안 답사를 하고 다음 주에는 미국 동부지역으로 갑니다. 다음 주에는 미국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홍서원을 한 후 단체사진을 찍고 영어 백일기도 입재식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다 되었습니다. 간단히 세면만 하고 5시에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황소연 님이 보온통에 죽을 준비해 온 덕분에 아침을 든든히 먹고 다시 방콕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수하물을 부치고 탑승 수속을 한 후 아침 7시 30분에 방콕 공항을 출발하여 부탄으로 향했습니다. 다카를 잠시 경유한 후 비행기는 히말라야 산맥의 협곡을 지나 10시 50분에 부탄 파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전통 양식을 하고 있는 이색적인 풍경의 공항 건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부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스님은 전문가 분들을 환영하며 본격적으로 안내를 시작했습니다. 공항 안으로 들어가니 부탄 비구니 재단 사무총장인 타시 장모 박사님과 미국에서 출발하여 먼저 도착한 김지현 님이 스님과 JTS 답사단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꾸즈 쌍포라.”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눈 후 서둘러 수하물을 찾고 공항 밖으로 나와 차에 짐을 실었습니다. 타시 박사님은 먼저 스님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스님, 제가 일이 너무 많아서 이번 일정은 함께 동행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저희 재단의 직원이 스님과 동행을 할 것입니다. 저는 다음에 함께 하겠습니다.”

“다음은 없어요. 수행자는 항상 지금 여기가 제일 중요해요.” (웃음)

스님은 타시 박사님을 대신하여 부탄 비구니 재단에서 온 체왕 님을 걱정하며 말했습니다.

“저 따라다닐 수 있겠어요? 따라다니다가 병이 나면 어떡할래요?”

타시 박사님이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이 분은 아주 튼튼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시켜주시면 잘합니다.” (웃음)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눈 후 11시 30분에 파로 공항을 출발하여 오늘의 목적지인 트롱사로 향했습니다.


창밖으로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들이 계속 펼쳐졌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잠깐씩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전문가 분들도 궁금한 점을 편안하게 질문했습니다.

“여기 주민들은 농업을 선호하나요? 일하면 돈이 될 만한 것이 무엇인가요?”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그냥 자기 밥만 먹고사는 것 같아요.”

“수익이 좀 생겨야 고향에 젊은 사람들이 남을 텐데요.”

“수익이 남은 게 없죠.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전부 해외로 나가고 시골에는 없어요.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제가 여러분을 데려온 겁니다. 주민들에게 다만 몇 푼이라도 수익이 생겨서 신발이라도 살 수 있게 해 주려고요. (웃음)

그렇다고 항상 도와주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 자립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밥을 못 먹어서 굶는 사람은 없어요. 노년층과 장년층은 자기 밥 먹는 것 외에도 생필품을 살 수 있게 수익이 될 만한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젊은 층은 전통적인 농업 방식으로는 시골에 안 남으려고 하니까 협동 농장을 만들든지 해서 어떻게 하면 젊은 층이 시골에 살면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여성들은 가내수공업을 하는 방법도 있고요. 예를 들어 관광객들을 위해 전통 수공예품을 만드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남성들은 건축 기술을 익히면 좋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팀푸 시내만 해도 건축 붐이 일어서 공사가 많은데 노동자가 없어서 외국인들이 와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기술을 익혀서 노동을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파로를 출발한 차는 팀푸 시내를 관통하여 지나갔습니다.

“팀푸가 해발 2200미터 정도 됩니다. 여기만 해도 엄청 높지요.”

팀푸 시내를 벗어나자 고불고불한 오르막 길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귀가 먹먹하고 머리가 띵했습니다.

“해발 3000미터가 넘었나요? 곧 있으면 경치 좋은 고개에 도착할 겁니다. 거기서 점심을 먹고 가겠습니다.”

오후 1시에 도출라 초르텐(Dochula Chorten)에 도착했습니다. 해발 3100미터라고 합니다. 차에서 내리니 공기가 차가웠습니다.

위령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가던 길을 계속 달렸습니다.



한참을 달리다 스님이 카페를 가리켰습니다.

“저기가 타시 카페입니다. 차를 좀 세워주세요.”

스님이 가리킨 곳에 빈 원두막이 있었습니다. 원두막 아래로는 절벽이었습니다. 강물이 힘차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지난번 답사 때 이곳에서 타시 박사님이 따뜻한 차를 준비해 와서 나눠주었기 때문에 스님이 ‘타시 카페’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타시가 없는 타시 카페였습니다.

간식을 먹고 바람을 쐰 후 다시 차에 올라탔습니다. 산을 내려가는가 했는데 계곡을 건넌 후 다시 더 높은 곳을 향해 도로가 이어졌습니다.

“이번에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해발 3400미터까지 올라갈 거예요.”

차창 밖으로 가파른 산 위에 밭을 만들어서 살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이 자주 보였습니다.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자세히 보면 산 위에 띄엄띄엄 사람들이 농사짓고 살아요. 저렇게 가파른 곳에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자기 먹을 것 말고 뭘 더 할 수 있겠어요? 저도 처음에는 그냥 경치가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두 번 오고, 세 번 오고, 자주 오다 보니까 산 위에 농사짓는 사람들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어요.”

정말로 깎아지는 절벽 같은 곳에 밭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계곡 옆에는 땅이 없어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고, 결국 평지를 찾아 산 위로 점점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 부탄 사람들의 삶이었습니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자 야크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스님과 JTS 답사단은 드디어 해발 3400미터 고개에 도착했습니다.

“5분만 내렸다가 경치 구경하고 가겠습니다.”



다시 차는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넓은 목장이 펼쳐졌습니다.

“이 높은 곳에 넓은 목장이 있어요. 어디를 가도 평지를 찾기가 어려운데, 부탄에서 정말 보기 드문 풍경입니다.”

오후 5시가 되어 첸데지 초르텐(Chendebji Chorten)에 도착하여 내각 비서실에서 온 린첸 님과 이시 님을 만났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스님은 이시 님에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지난번에 스님한테 그렇게 혼나고도 또 왔어요?”

“네, 더 많이 배우려고 또 왔습니다.” (웃음)

스님은 지난 답사 때 이시 님에게 공무원이 가져야 할 마음자세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이 있었는데요. 이시 님은 그 가르침이 무척 좋았다고 합니다. 이번 답사도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

법당을 참배한 후 라마가 준비해 준 차를 한 잔씩 마셨습니다. 이곳에는 라마 한 분과 어린 스님들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스님은 지난 답사 때 이곳을 방문하여 어린 스님들을 격려해 준 적이 있는데요. 오늘은 라마에게 어린 스님들의 교육 문제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어린 스님들이 몇 명이나 살고 있어요?”

“22명이 살고 있습니다.”

“모두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여기서 그냥 공부해요?”

“여기서 공부합니다. 8학년까지는 어른 스님 두 명이 어린 스님들을 가르칩니다. 8학년 이후에는 승가 교육을 받습니다.”

“아무리 출가를 했더라도 10학년이 될 때까지는 승려 교육 외에 과학, 수학, 사회, 역사 등 일반 상식을 가르쳐야 합니다. 옛날에는 일반 국민들도 공부를 안 했는데, 지금은 10학년까지 공부를 다 시킵니다. 그래서 승려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승려가 일반 국민들을 지도하기 어려워집니다.”

“네, 동의합니다.”

“어떤 방식이 가능한지 연구를 해주면 저도 지원을 하겠습니다. 스님이기 전에 사람이잖아요. 스님도 부탄 국민입니다. 부탄 정부의 정책이 10학년까지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스님도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승려들의 학교 교육 필요성을 강조한 후 보시금을 라마에게 전달했습니다.

다시 차에 올라타서 산길을 계속 내려갔습니다. 저녁 6시가 넘자 해가 졌습니다.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산길을 달려 7시 30분에 트롱사에 도착했습니다.


짐은 나중에 내리기로 하고 먼저 회의부터 했습니다. 내각 비서실 소속 린첸 님을 비롯하여 트롱사 종각의 공무원들이 자리한 가운데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린첸 님이 부탄 정부 관계자들을 소개하고, 스님이 한국에서 온 전문가 네 분을 소개했습니다.

“박진도 교수님은 충남대학교 명예교수님인데, 평생 농촌의 발전을 위해 연구해 오신 분입니다. 주형로 님은 친환경 농업을 평생 동안 해오신 전문가 분입니다. 노기선 님은 상하수도 전문가입니다. 앞으로 부탄이 도시 개발을 하게 되면 꼭 필요한 분야입니다. 최원규 님은 평생 동안 산림 경영을 연구해 온 임업 전문가입니다.”

“Welcome to Bhutan!”(부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번에 현장을 보신다고 해서 금방 해결책이 떠오르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현장을 한 번 보고 가셔야 계속 연구를 하게 될 거예요.”

마지막으로 내일 일정에 대해 논의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어제와 오늘 먼 거리를 오느라 다들 피곤한 상태여서 저녁 식사를 한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납지 치옥과 콜푸 치옥을 함께 답사하면서 농업, 임업, 상하수 문제를 확인하고, 저녁에는 게옥의 공무원들과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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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화

무탈하게 잘 다녀오십시요.()

2024-04-29 06:56:42

임영현

저는 5계만 알았는데 8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알게 된 것을 하나 하나 실천하며 제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잘 살피며 지내겠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지금 부탄에서 하시는 일이 인류에게 제시하는 새로운 문명 창조를 위한 기초 작업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04-27 22:46:47

김학연

지속가능한 부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스님께 감사합니다
답사 가신 분들도 건강하게 다녀오십시오

2024-04-27 10: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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