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9.8.14 동북아 역사기행 7일째
“백두산 천지에 올랐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동북아 역사기행 7일째를 맞이하여 통일의병 160여 명과 함께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 천지에 올랐습니다.

새벽 4시, 연길 시장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점심에 먹을 도시락을 사두었습니다. 조원들과 현지의 여러 가지 음식을 나누어 사먹는 재미가 쏠쏠 합니다.

시장을 보고 4시 50분에 연길에서 백두산 북편산문으로 출발했습니다. 입장시간에 맞추기 위해 화장실도 딱 한번만 들렀습니다. 백두산 가까이에 오자 구름낀 하늘 사이로 햇볕이 살짝 내리쬐었습니다. 며칠 만에 보는 햇빛이 얼마나 반가운지 손바닥만한 햇빛에도 고마웠습니다. 스님은 일기 예보에 비가 온다고 했으니 백두산 천지를 볼 기대를 하지 말라고 했지만, 기행단은 기대를 놓지 않는 듯 했습니다.

하늘은 점점 맑아졌습니다. 매표소를 지나 백두산 천지로 올라가기 위해 셔틀 버스와 승합차를 두 번 갈아탔습니다. 마치 놀이 공원의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가파른 고개를 요리조리 꺾어가며 15분 가량을 올랐습니다. 파란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지는 산과 들을 보니 마음이 툭 트였습니다.

그런데 백두산 정상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갑자기 추위가 몰아치고 날아갈 듯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백두산 정상에 먹구름이 딱 걸려있었습니다.

이틀 전에는 산문 앞에서 돌아가야했는데 오늘은 그래도 백두산 정상까지 올랐습니다. 기행단은 온 몸으로 바람을 맞으면서 백두산 정상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했습니다. 흐릿한 속에서 한 발 한 발 능선 위로 가보았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정상 아래를 쳐다보았지만 천지는 윤곽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것은 거센 바람 뿐이었습니다. 모래가 날아와 얼굴을 때렸습니다. 춥고 힘든 사람은 먼저 내려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한 시간 쯤 더 기다려보았습니다. 구름 사이로 해가 나왔다 들어갔다 할 때 마다 사람들은 ‘보인다!’고 하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조금 보였다, 안 보였다 하니 사람들은 가지도 못하고 능선에 붙어서서 천지를 구경했습니다. 그러기를 몇 차례 먹구름이 더 높은 하늘로 쑥 빨려올라가더니 옥빛 천지가 살짝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맑은 날만 좋은게 아니에요. 우리는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부는 백두산 정상을 경험한 거예요.”

맑은 날 탁 트인 천지를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보일 듯 말 듯 천지를 구경하는 것도 특별했습니다. 한 여름에 오들오들 떨며 서로 체온에 의지해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어쨌든 천지를 봤다며 좋아했습니다.

12시가 되어 롤러코스터 같은 승합차를 다시 타고 정상에서 내려왔습니다. 꼬불꼬불한 길이 산 아래 마을로 이어져 있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다음은 비룡 폭포로 향했습니다. 셔틀 버스에서 내려 나무 계단을 따라 길을 걸어가니 군데 군데 김이 모락 모락 피어나는 온천 물이 보이고, 저 멀리 회색 빛깔의 화산 지형 사이로 새하얀 물줄기가 힘차게 떨어져 내리는 비룡 폭포가 보였습니다.

스님은 비룡 폭포를 배경으로 참가자 전체를 위해 일대일로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비룡 폭포에 대해 간단한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천지에서 물이 빠지는 곳을 달문(闥門)이라고 합니다. 달문에서 비룡폭포까지 흘러내려 가는 이 물을 '승사하(昇嗣河)'라고 합니다. 그 모습이 마치 무언가 하얗게 흘러내리는 것 같죠. 저기에 보이는 바위를 사이에 두고 두 줄기로 나뉘어져서 물이 떨어집니다. 용이 하늘을 오르는 것 같다고 해서 ‘비룡폭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두 개의 비단결이 놓여있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폭포의 높이는 약 68m입니다.

천지의 물은 대부분 지하수이기 때문에 천지의 수량 자체가 강우량에 큰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다. 물론 비의 양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은 땅에서 나오는 지하수입니다. 또 그 중 일부는 온천수라고 합니다. 겨울이 되면 이곳의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천지에는 두께 약 1미터 정도의 얼음층이 생깁니다. 그래도 이곳에 물은 계속 흘러내립니다. 얼음 아래에서 물이 흘러나가면 대개 얼음층이 꺼지거나 내려앉게 되는데, 그 빈 공간을 지하수가 계속 나와서 다시 채우기 때문에 폭포물도 끊이지 않고 계속 흘러내리게 됩니다.

폭포 아래 흘러내리는 물을 ‘이도백하(二道白河)’라고 합니다. 백두산에서 흐르는 물에는 일도백하, 이도백하, 삼도백하, 사도백하, 오도백하 이렇게 다섯 가지가 있는데, 천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그 중 이도백하입니다. 이 아래에 있는 마을도 그 강 옆에 있다고 하여 이도백하라고 불립니다.”

설명이 끝나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2시가 지났습니다. 비가 오기는커녕 날이 맑았습니다. 햇살이 비치는 숲길을 내려오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상에서 일찍 내려와 천지의 모습을 많이 보지 못해 아쉬워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저는 산문 안에 들여보내주기만 해도 감사하다, 비가 안 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는데 천지까지 볼려고 했어요?”(웃음)

숲길을 내려와 셔틀버스를 타고 소천지로 이동했습니다. 소천지는 작은 화산호인데 모양은 둥글고 아담하며 주변에 빽뻭하게 둘러 있는 나무들과 하늘에 떠 있는 구름들이 수면 위에 영롱하게 비춰진 모습이 마치 거울과 같은 곳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래서 은환호라고도 불립니다. 소천지에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며 스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도착한 곳은 ‘소천지(小天池)’라는 곳입니다. 이곳은 기생화산(寄生火山)입니다. 천지는 용암이 폭발적으로 분출되어 만들어진 칼데라호(caldera lake)인 반면, 이곳은 용암이 분출된 화구에 물이 고여서 호수가 만들어졌습니다. 제주도 한라산의 백록담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호수를 화구원호(火口原湖, atorio lake)라고 합니다. 울릉도의 경우도 봉우리가 작고 물이 고여 있지 않지만 칼데라호에 속합니다. 물이 고여 있지 않아서 나리분지(羅里盆地)라고 하고, 그 안에 알봉이 있는 구조입니다.

과거에는 이 주변을 산책도 했는데 지금은 길을 다 막아두었네요. 여기 있는 나무는 자작나무인데,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물에 비친 나무 모습을 보면 실제 나무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똑같아 보입니다. 지금은 바람 때문에 잔물결이 일어서 그 모습이 나오진 않네요.

여기서 앞으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조금 전 우리가 건너 온 이도백하 물이 용암이 굳으면서 갈라진 틈 사이로 다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측면에서 보면 흐르던 개울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는 땅 속으로 흐르는 거예요. 이곳은 틈이 1미터 정도 벌어진 곳으로 내려오던 물이 모두 땅 속으로 사라지는 곳입니다. 아래로 더 내려가면 틈이 50센티미터 정도 벌어진 곳으로 들어가기도 하는데 흐르던 물이 사라지는 곳을 보면 땅 속에서 폭포로 흐르기도 합니다.

아래로 내려가면 녹색을 띄는 호수가 나옵니다. 물이 녹색을 띈다고 해서 ‘녹연담’이라고 부릅니다. 녹연담을 본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지하살림으로 가겠습니다. 그곳에서 다리 아픈 사람은 벤치에 앉아서 쉬고, 나머지 사람들은 1.2km 정도 되는 길을 왕복하거나 길을 따라 한 바퀴 돌겠습니다. 산책을 하면 총 3km 정도를 걷게 되는데, 산책하고 돌아와서 백두산을 내려가겠습니다.”

곧이어 녹연담으로 향했습니다. 녹연담은 정말로 녹색 에메랄드빛을 발하는 연못이였습니다. 아름다운 폭포를 배경으로 기행단은 서로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녹연담을 나와 다시 셔틀 버스를 타고 지하산림으로 향했습니다. 지하삼림은 말처럼 땅 속에 숲이 있는 것이 아니고 화산 활동의 영향으로 함몰된 넓은 면적의 땅에 숲이 형성된 것을 말합니다. 숲의 주변을 둘러싸고 절벽이 솟아 있어 마치 땅 아래에 숲이 형성된 것처럼 보입니다. 김홍신 작가님은 ‘대발해’라는 소설을 쓸 때 지하삼림을 보고 발해 군인들의 훈련장으로 묘사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빠듯해서 지하산림까지 다녀오는 3km를 40분 만에 다녀왔습니다. 3km를 완주한 사람들은 의병훈련 제대로 했다며 웃었습니다. 4시에 지하산림을 나와 산문 앞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백두산을 내려온 스님은 가장 먼저 기사님들과 중국 스텝들을 찾아 _"덕분에 역사기행단이 백두산을 볼 수 있었다"_며 고생했다고 격려했습니다. 그동안 무리하게 백두산 일정을 추진하느라 긴장되어 있던 중국 스텝과 기사님들의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감돌았습니다. 다함께 기념사진도 촬영하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차량별로 인원확인 해주세요. 다 왔습니까?”

“네. 다 왔습니다.”

항상 출발시간보다 늦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출발시간을 따로 말하지도 않았는데 모든 사람이 탑승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백두산 보고 왔으니 백두산 노래를 다시 한번 불러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백두산으로 찾아가자 ♬ 만주벌판 말을 달리던. 전사들의 투쟁의 고향 ♬ 살아쉬는 백두산으로!”

사람들은 그 어느때보다 씩씩한 목소리로 백두산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제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더니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저절로 노래가 나오나봐요. 그러니까 마음이 중요해요. 생각을 아무리 해도 마음이 움직여야하는 거예요.”

우여곡절 끝에 백두산에 올랐기 때문인지 기행단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나가자 드디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비야 기행단과 상관없이 내리겠지만, 백두산을 둘러보는 동안 날씨가 맑아서 참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이제 비야 오든지 말든지!”(모두 웃음)

이도백하에 도착해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하루종일 걸었더니 다들 허기가 졌는지 밥맛이 꿀맛이라며 맛나게 먹었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중국 스텝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이 중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기 때문입니다. 스님이 먼저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번 동북아 역사기행은 지난 8월 8일에 시작했습니다. ‘심양’에서 출발해서 ‘환인’으로, 환인에서 ‘집안’으로, 집안에서 ‘림강’, ‘이도백하’, ‘돈화’, ‘연길’을 거쳐 오늘 ‘훈춘’에서 중국 일정을 모두 마치게 됩니다. 백두산 천지를 보기 위해 중간에 일정을 변경하여 이도백하에 두 번 오게 되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오늘 훈춘에서 저녁을 먹고 짐을 다 내리고 버스 기사님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일정이 바뀌는 바람에 훈춘에 도착하는 시간이 밤 10시가 넘게 될 것 같습니다. 늦은 시간에 다시 마당에 모여서 행사를 진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하면서 기사님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지난 7일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우선 사고가 있어서 1호차 기사님은 차량을 두 번 운행을 했고, 3호차 기사님은 먼 심양에서 밤새 차를 몰고 오셔서 우리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중국 일정을 안내해주시는 스텝 분들도 고생을 많이 하셨고, 특히 백두산 입장표를 물리고 어젯밤 새로 입장권을 끊기 위해 불가능한 일을 어떻게든 되도록 노력을 해주셨어요. 덕분에 중국 일정을 오늘 무사히 마치게 되었습니다.

중국 스텝 세 분과 기사님 세 분께 큰 감사의 박수를 드립시다.” (모두 박수)

큰 박수와 함성이 터져나오자 스텝들과 운전 기사님들도 함박 웃음을 보였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한국 스텝들이 조그마한 선물도 전달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생을 함께 해서인지 정이 듬뿍 들었습니다.

훈춘까지 갈 길이 멀기 때문에 바로 버스에 올랐습니다. 다시 5시간은 더 가야하기 때문에 스님의 안내 말씀이 먼저 있었습니다.

“오늘은 숙소에 늦게 도착해서 저녁강연이 없습니다. 많이 걷고 밥도 먹었으니 한 두시간 쉬다가 중간에 화장실에 한 번 들린 뒤 차 안에서 공부를 하겠습니다.”

스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은 단잠에 빠졌습니다. 버스는 둥근 달이 훤하게 비치는 밤길을 달렸습니다. 스님은 중간 중간 일어나 잠들어 있는 기행단을 살펴보았습니다. 곤하게 잠들어있는 사람들을 자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훈춘에 도착하기 직전에 사람들을 깨우고 훈춘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었습니다.

“이곳 훈춘은 발해 시대 때 5경 중에 하나인 동경 용원부였습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첫 번째 유적은 현재 동경 용원부로 추정되는 팔련성(八連城)입니다. 팔련성은 지금 우리가 가는 고속도로가 끝나는 지점 가까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곳은 토성이라서 많은 부분이 파괴되고 일부가 남아있는데 현재 발굴 조사 중이라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 유적은 고구려 시대 때 쌓은 책성(柵城)입니다. 고구려 6대 태조왕이 책성을 직접 순시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책성은 국경 변에 있는 성인데 그곳이 훈춘입니다. 책성 옆에는 우리의 역사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요나라, 금나라 시기의 비우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훈춘에는 고구려, 발해 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동경 용원부는 일본으로 가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동경 용원부 산하에 동해 바닷가에 위치한 성이 염주성(鹽州城)입니다. 이곳은 내일 우리가 직접 가볼 곳입니다.

중국에서는 고구려와 발해의 성에 대한 우리의 방문이 허락되지 않았는데, 내일 러시아에 있는 염주성에 가면 그곳의 발굴 책임을 맡고 있는 겔만 교수님이 우리를 직접 안내해주실 겁니다. 염주성은 바다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고, 또 이름에 소금 염(鹽)자를 딴 것을 보면, 아무래도 소금이 생산되던 곳이어서 이름을 그렇게 짓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동경 용원부가 일본으로 가는 길의 출발지이면서, 동해안을 따라 나 있는 신라로 가는 길의 출발지였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군이 중국을 침략하기 위해 조작한 ‘훈춘사건’이 1920년에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서 북한으로 가면 석탄이 많이 나오는 아오지 탄광이 있고, 훈춘에는 노천탄광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땅굴을 파고 들어가서 석탄을 캐는 것이 아니라 포크레인으로 산 위에서부터 채굴할 정도로 석탄이 많이 나오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그 석탄을 이용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화력발전소가 있습니다.

훈춘은 조선족 자치주 8개 시현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장 규모가 큰 곳이 연길, 두 번째가 돈화, 세 번째가 훈춘입니다. 길림성은 동해안을 통해 오는 철도의 마지막 종착역이기도 합니다.

훈춘에서 동해안으로 가면 동해안까지 이어지지는 않지만 해안 가까이 가늘게 이어지는 중국땅이 있는데 그곳을 ‘방천(防川)’이라고 합니다. 오늘 백두산에 가지 못했다면 대신 방천을 방문하려고 했어요. 방천은 중국 국경의 동쪽 끝입니다. 그곳에서는 북한, 중국, 러시아 세 나라의 닭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해요. 즉, 북한, 중국, 러시아 세 나라가 만나 접경을 이루는 곳이 방천입니다.

중국은 예부터 동해안으로 진출하려고 했지만 북한과 러시아 국경에 막혔습니다. 중국은 나진을 통해서라도 동해안으로 진출하려고 나진항을 조차하는 협약을 맺었지만, 실제로는 개발운영이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교역이 가장 많은 곳은 단둥과 신의주이고, 두 번째로 교역이 많은 곳이 훈춘과 나진입니다.

제가 20년 전에 훈춘에서 출발해서 두만강을 건너 나진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기온이 영하 28도나 되는 겨울이었는데 전기도 없고 난방도 전혀 안 되서 얼어 죽을 뻔 했습니다. 북한 사람을 만나면 주려고 내복들도 챙겼는데, 너무 추워서 제가 하나 꺼내 입었습니다. (모두 웃음)

훈춘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 때문에 벼농사가 안 되는 지역이었는데, 요즘에는 못자리와 비닐을 이용해서 벼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스님의 설명이 계속되던 중 고속도로가 끝나고 버스는 훈춘시에 들어왔습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 스님이 더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손가락을 자르고 단지동맹(斷指同盟)을 한 곳은 연해주 크라스키노(Kraskino)이지만, 거사가 있기 전 한 달 동안 머물며 권총으로 사격 연습을 한 곳은 훈춘에 있습니다. 제가 20년 전에 그곳을 방문했을 때는 그 집이 아직 있었는데 지금은 다 허물어지고 없습니다. 현재는 중국 해관 땅으로 귀속되었고 안중근 의사가 머물던 집은 흔적도 없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북한, 중국, 러시아의 구분이 뚜렷하지만 1860년 이전에는 모두 청나라 땅이었어요. 북경조약으로 청나라가 연해주를 러시아에 넘겨 주었죠. 당시 조선 사람들이 두만강을 넘어오면 연해주로 이동하나 훈춘 쪽으로 이동하나 연길로 이동하나 모두 강 하나를 넘는 것인데, 강을 건너와서 보면 연해주 쪽은 러시아 땅이고 훈춘 쪽은 중국 땅이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여진족이 살던 곳입니다. 그러다가 청나라 시대에 들어와서 이곳에 사람이 살지 않도록 소개(疏開)해서 점차 이 지역은 사람이 살지 않는 정글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우리 선조들이 건너와서 연해주를 개간했고, 북간도도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개간을 한 것입니다.”

밤늦게 도착해 주변 풍경을 보지는 못했지만, 스님의 설명을 통해 훈춘이 우리와 어떤 연관이 있는 곳인지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릴 때는 짐을 모두 내려서 버스를 깨끗이 비웠습니다. 내일은 다른 버스를 타고 러시아로 넘어가게 됩니다. 중국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내일은 연해주로 넘어가서 독립운동 유적지와 발해 유적지를 계속 찾아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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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나윤

감사합니다. 🙏

2023-11-09 12:18:47

고맙습니다

천지만 보러간건 아니지만 천지를 못 보면 너무 아쉬울것 같았는데 맑은 천지는 아니라도 봐서 넘 좋았다. 저 날의 기대감, 수많은 중국사람들과의 몸싸움, 본 뒤의 환희, 덜덜 떨었던 기억, 이후의 백두산내 산행 등이 모두 좋았다. 역시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말씀이 와닿는다. 이끌어주시고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이때 아니면 천지를 또 언제 보겠냐니까 조만간 통일되어 더 자주 온다고 생각하라던 팀원분이 떠오른다.

2019-09-06 07:01:29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역사기행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19-08-29 16: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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