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하루

2019.8.15 동북아 역사기행 8일째
“연해주 안중근의 단지동맹 기념비에 울려퍼진 광복절 노래”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동북아 역사기행 8일째를 맞이해 통일의병 160명과 함께 중국 훈춘에서 국경을 넘어 러시아 연해주에 도착했습니다. 발해 시대의 성인 염주성을 둘러본 후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 기념비를 참배했습니다.

새벽 6시. 훈춘 시내에 위치한 새벽 시장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점심 식사로 먹을 것을 사두었습니다. 활기찬 새벽 시장에 올 수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중국 훈춘에서 러시아 크라스키노로 가려면 국경을 넘어야 합니다. 버스는 버스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따로 출국 수속을 밟고 다시 버스에 올라타 국경을 지난 다음 다시 러시아 땅에서 입국 수속을 밟았습니다. 입국 수속을 마친 뒤에 다시 러시아 버스로 갈아탔습니다. 짐을 오르고 내리기를 네 번 반복했습니다. 비는 쏟아지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국경을 통과하는 데는 무려 6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동안 버스 안에서 꼼짝 말고 있어야 했습니다. 국경수비대는 화장실에 가는 것도 허락해주지 않았습니다. 3호차에서 화장실이 급한 사람이 있어 허락을 구하려고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입국 수속이 끝나지 않았는데 국경을 밟았다고 불법입국이라며 벌금을 물고, 4시간 뒤에 국경을 넘어올 수 있었습니다. 국경을 넘어오고 나니 러시아 시간은 중국 시간보다 2시간이 더 빨라서 벌써 오후 4시가 지나 있었습니다.

국경을 통과하고 나서도 3개의 검문소를 더 통과하고, 입국수속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복잡하고 힘들게 국경을 통과하면서, 나라가 있어도 이렇게 어려운데 나라가 없는 사람은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울지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살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머나먼 타국까지 찾아야 했던 선조들이 떠올랐습니다.

러시아 국경을 넘어오니 주위는 온통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인 줄만 알았는데, 스님이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었습니다.

“좌우로 보이는 버스 창밖을 보세요. 굉장히 넓은 평원입니다. 풀과 나무들이 보이죠? 80년 정도 묵혀진 땅인데 지금은 이렇게 풀과 나무만 자라고 있어요. 황무지였던 이 땅을 과거 우리 선조들이 와서 다 개간을 했어요. 그러다 80년 전에 강제이주를 당해서 이렇게 황폐화가 되었습니다.”

30여 분 동안 허허벌판 위를 달리다가 처음으로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스님은 도로 왼편에 보이는 이 마을이 우리 민족이 많이 살았던 ‘연추마을’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이곳이 연추마을입니다. 연추마을 하리에서 단지동맹이 있었습니다. 안중근을 포함한 12명이 왼쪽 무명지를 자르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것을 결의한 것을 ‘단지동맹’이라고 합니다.

우리 민족이 이곳으로 넘어왔을 때 이 마을을 연추 마을이라고 불렀습니다, 연추 마을에는 하리, 중리, 상리가 있었다고 해요. 연추라는 말은 염주성에서 유래한 것 같아요. 러시아 사람들은 이 마을을 ‘크라스키노’라고 부릅니다. 염주성도 크라스키노 성이라고 불러요.”

버스에서 내린 스님과 대중들은 우비를 입고 습지를 행군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 염주성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오는데다 해가 지기 전에 빠르게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몸이 힘든 사람과 국경을 뒤늦게 넘은 3호차 참가자들은 함께 가지 못했습니다.

염주성 발굴 작업을 하고 있는 겔만 교수님과 1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4시 30분이 되어서야 염주성에 도착했습니다. 도로변에서 염주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약 40분 가량 갈대숲을 헤치며 걸어가야 했습니다. 비도 많이 내려 진흙탕인데다 길이 미끄러웠습니다.


온 몸이 젖어가며 길을 걷는데 염주성의 북쪽 성벽 위에서 겔만 교수님이 손을 흔들며 역사 기행단을 반겼습니다. 스님과 겔만 교수님은 보자마자 너무나 반가워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국경을 통과하는데, 이미그레이션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느라 늦었습니다. 이미그레이션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요.”

스님은 오랜 시간 비를 맞으며 기행단을 기다린 겔만 교수님에게 거듭 사과의 말을 표현했습니다. 겔만 교수님은 염주성이 최근 학술지에 실렸다며 책을 직접 보여주고, 그 책을 스님에게 선물했습니다.

염주성의 북쪽 성벽을 넘어 성 안으로 들어온 기행단은 겔만 교수님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한참 발굴하고 있는 성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성벽 위에 선 후 겔만 교수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염주성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한 후 겔만 교수님을 소개했습니다.

“이곳은 발해의 동경 용원부 산하 염주성입니다. 일본으로 가는 통로였고, 소금을 생산했던 아주 중요한 곳이였습니다. 이곳을 책임지고 발굴하시는 분이 블라디보스톡 극동대학교 겔만 교수님이에요. 이 분이 이곳에서 20여 년 간 발굴 작업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매년 한국에서 합동으로 발굴 작업을 해서 작년까지도 공동 발굴 작업을 했는데, 올해는 한국에서 발굴 경비 지원이 중단되었어요. 그래서 발굴이 안 되고 있었는데, 이번 주말부터 자체 경비로 발굴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 지역은 지금 장마라고 해요. 장마가 지나야 발굴 작업이 사직될 수 있거든요. 많은 유물과 유적이 나왔기 때문에 책을 보면서 설명해야 하는데, 지금 비가 많이 내려서 도저히 안 되니까 양해를 해주세요. 자, 그럼 겔만 교수님을 소개하겠습니다.” (박수와 환호)

기행단은 빗속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겔만 교수님을 맞이했습니다.

겔만 교수님은 염주성에 대해 지금까지 연구한 것을 쏟아냈습니다. 발해의 후예인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는데 이렇게 열정적으로 발굴하고 연구해주는 겔만 교수님이 참 감사했습니다. 겔만 교수님도 기행단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이곳까지 와주신 것을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여기로 오는 것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으셨을텐데,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염주성은 여러분들처럼 강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올해는 발굴이 늦어지고 있는데, 작년에는 아주 많은 발굴을 해냈습니다. 한국 분들과 함께 벌써 400 제곱미터 이상을 발굴해냈습니다.”

전체적으로 설명을 다 듣고 나니 결국 염주성은 발해의 해상 교통로 역할을 했던 성이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발해의 사신들이 일본으로 갈 때도 이 염주성을 지나갔을 것이고, 일본에서 발해로 사신들이 올 때도 이 염주성을 지나갔을 것입니다. 또 염주성에는 옹성도 있고, 치도 있고 정말 고구려의 성벽과 많이 닮은 모습이었습니다. 고구려의 후예인 발해인들이 쌓은 성임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겔만 교수님에게 연구하시는데 사용하시라며 기금을 전달했습니다.

“연구하는 데 쓰시라고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여기에 염주성이라는 비석을 새길 수 있도록 러시아 주정부와 일단 구두로 협의를 했습니다. 스님이 주신 아이디어였는데,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지는 더 구상해보겠습니다.”

“결정하시면 제작 경비는 저희가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번에 오면 염주성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비가 오고, 시간이 많이 늦어서 절터 유지만 살펴보았습니다. 스님은 겔만 교수님에게 _“19일에 청년들과 다시 염주성을 방문하겠다”_고 약속한 후 다시 갈대숲을 헤치며 성 밖으로 나왔습니다.

나가는 길도 늪을 1시간 가량 힘들게 걸어야 했습니다. 원래 늪지인데 비가 억수 같이 쏟아져서 전체 지대가 무릎까지 물이 닿을 정도였습니다. 발이 젖지 않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해 온 사람들도 결국 신발이 다 젖고 늪지를 첨벙 첨벙 걸었습니다. 주위에 야생화가 많았지만 구경할 겨를도 없이 겨우 늪지를 빠져 나왔습니다.

“힘들긴 하지만, 통일의병 훈련으로는 딱 좋네요. 지나놓고 나면 다 추억이 될 거예요.”

수신기로 들려오는 스님의 격려를 들으며 진흙 묻은 신발을 털고 버스에 다시 올랐습니다.

다음은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 기념비를 참배했습니다. 기념비는 염주성 들어가는 입구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한국 기업 유니베라 농장 입구에 단정하게 잘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기념비 앞에 선 기행단을 향해 스님이 단지동맹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1905년에 을사조약이 맺어지면서 전국적으로 의병운동이 일어났는데요. 안중근도 처음에는 국내에서 의병운동을 하다가 이곳 연해주로 넘어와서 의병운동을 했습니다. 그 때 연해주에는 이미 이범윤이라는 사람이 가장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고, 1908년에는 국내에서 이미 의병장으로 유명했던 유인석이 국내를 벗어나 여기까지 오게 됩니다. 이들은 200~300명 정도의 의병부대를 편성해서 두만강을 건너는 국내 진공 작전을 했는데, 그 때 진두지휘를 한 사람이 안중근이였습니다.

그런데 회령 전투에서 실패하고, 동지들이 대부분이 죽습니다. 안중근을 비롯한 일부만 겨우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일제에 목숨을 걸고 대항하기 위해 안중근은 살아남은 동기들과 단지동맹을 맺었습니다. 그 후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고 결국 사형을 받고 순국했습니다.

원래 단지동맹을 했던 곳은 연추마을 하리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군부대가 들어서서 단지동맹 기념 비석을 세울 수가 없었어요. 그 아래 다리 밑에 비석을 세워놓았는데 훼손이 심해서 얼마 전 이곳 유니벨라 농장 앞으로 비석을 옮겼습니다.”

오늘은 마침 광복 74주년 8월 15일 광복절입니다. 광복절 기념행사를 준비했지만 저녁 8시가 넘었고, 비가 많이 와서 간단하게 기념식을 진행했습니다. 대중들은 애국가 제창을 한 후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단지동맹 동지들과 그 외에 많은 애국 열사들의 넋을 기리는 묵념을 했습니다. 이어서 애국가와 광복절 노래도 함께 불렀습니다.

“이 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 길이 지키세 길이 길이 지키세.“

이어서 스님이 광복 74주년을 기념하여 역사기행에 참가한 통일의병들을 격려하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우리 통일의병은 이곳 단지동맹 기념비 앞에서 안중근을 포함한 12명의 동지들과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생각해 봅니다. 이런 공덕이 쌓여서 8.15 해방을 맞은 것입니다. 그러나 8.15 해방을 순수히 우리의 힘으로 이뤄내지 못하고, 연합군에 일제가 패망하는 조건 속에서 해방을 맞이했기 때문에 우리가 독자적으로 독립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국제 사회가 인정할만한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결국 미국과 소련의 신탁 통치를 받게 되었고, 미국과 소련의 대리 정부가 각각 남북에 들어서는 분단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일제 식민지 36년의 두 배가 넘는 시간을 이렇게 분단의 상태로 보내고 있습니다.

올해 8.15 광복절은 특별히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의 해인 동시에 상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일본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조국이 분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직도 우리가 경제적으로는 일본에 예속되어 있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깥으로 드러난 것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죠. 나라가 완전히 자주독립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4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아직도 자주적인 국가를 건설하지 못한 것은, 선조들이 봤을 때 우리들의 큰 부족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의병 여러분들께서 오늘을 기해서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도록 하는 ‘평화’와 남북이 서로 화해하고 협력하여 하나가 되는 ‘통일’의 기초를 마련해 나갈 것을 함께 다짐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자주독립국가가 되는 길을 앞당기기 위해서 함께 노력했으면 합니다.

비가 오든, 사고가 나든, 인생을 살다보면 늘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때로는 넘어진 동지를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역사기행이 여러분들에게 고생이라기보다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역사기행을 도와줄 분들을 소개했습니다. 평화재단 통일의병이자 러시아에서 역사기행을 도와줄 오미령님, 오미령님의 남편이자 유니베라 농장의 책임자로 근무하면서 단지동맹 기념비 관리도 함께 하고 있는 장민석님, 그리고 역사기행 동안 러시아어 통역을 도와줄 아들 장하연님이었습니다. 역사기행단은 일가족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오미령 님은 기행단 모두에게 맛있는 우유를 한 병씩 선물했습니다.

이렇게 러시아에서의 첫날 일정을 마친 후 역사기행단은 숙소가 있는 우수리스크로 향했습니다. 밤 11시 30분에 우수리스크에 도착한 기행단은 늦은 저녁을 먹고 12시가 넘어서야 긴 하루를 마쳤습니다.

“안 죽고 살았어요? (모두 웃음) 우리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원래 일정대로 하는데, 내일은 한 시간 출발 시간을 늦추겠습니다.”

연일 강행군을 하던 대중들은 출발시간이 한 시간 늦춰지자 몹시 반겼습니다. 내일은 아침 7시부터 우수리스크 일대에 위치한 이상설 유허비, 4월 참변비, 솔빈부성을 둘러보고 오후에는 한카 호수를 다녀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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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염주성 안갈줄 알았는데 안올 사람 안와도 좋다는데 따라나서 놓고는 남을 탓하며 내 밑바닥을 다 드러냈었다. 모두들 동요없이 일정을 소화하는데 대단해보였다. 광복절날 단지동맹비 앞에서 부른 광복절날 노래와 스님의 염원이 잊혀지지 않을것 같다. 흔들림없이 나아가는 모습이 감동이다..

2019-09-06 19:16:12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역사기행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2019-08-30 12:37:43

김혜경

감사드립니다. 잘들엇습니다. 건강하소서.^6

2019-08-19 11: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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