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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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법륜스님의 하루(산책, 정리하는 시간)

오늘 아침은 날이 화창하게 맑았습니다. 옥상엔 빨래줄마다 하얗고 노랗고, 파란색, 회색 빨래들이 가득 널려 있었습니다. 주말이라 상주대중들도 일주일을 정리하면서 빨래를 했나 봅니다. 매달 둘쨋주 토요일날은 공동체로 살고 있는 성원들끼리 포살과 울력이 있는 날입니다. 어제는 강연에 참가하느라고 포살에 참가하지 못하고, 오늘 아침 포살에 참가하지 못했던 사람들끼리 모여서 포살을 했습니다. 지난 한 달을 돌아보며, 공동체 성원으로서 정해진 계율들을 살펴보며 스스로 참회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포살을 하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저희들이 포살을 하는 동안, 스님은 오늘도 아침 일찍 조찬 모임이 있어서, 평화재단으로 나가셨습니다. 조찬모임을 마치고, 월요일 오전 강연이 대구라서 대구와 가까운 두북으로 내려왔습니다. nbsp 내일, 모레면 여름 100강도 마무리가 됩니다. 강연을 마치자마자 문경에서 3주간 명상수련이 있고, 그 후엔 2주간 중국역사기행, 미주순회법회로 이어지는 일정들이라, 오늘은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최보살님은 그동안 스님 입으셨던 가사, 장삼이며 법복을 손질하셨습니다. 어제는 낡고 삵아서 떨어진 곳을 틀질해서 다시 여미고, 오늘은 전체를 다 세탁하고 풀먹이고 다림질하는 일들을 하면서 강연 마무리와 더불어 여름을 준비하시는 모습입니다. 스님은 3달 가량을 명상과 해외 일정으로 거의 외부에서 보내시기 때문에, 전체 업무를 점검할 시간이 오늘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외부에 계실동안 정기적으로, 혹은 비정기적으로 나가야 될 원고 수정작업을 하셨습니다.그 외에도 수계자 명단 점검 등 서류상의 업무들을 다 정리하셨습니다. nbsp 오후에는 2시간 가량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스님은 강연을 하면서 운동을 너무 하지 않아, 잠시라도 시간이 되면 산책을nbsp하시는데, 실제 시간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면서 하루 운동량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습니다. “스님. 왜 김밥만 먹는데 살이 찔까요? 살이 불어나는 것 같습니다. 잠도 적게 자는데...” “운동을 워낙 안 해서 그렇지.”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어서 살펴보니, 정말 차안에서 사육당하듯이 차안에서만 거의 지내고 있었습니다. 정토회관 3층에서 1층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를 탑니다. 차는 강연장 코앞까지 갑니다. 강연장 입구에서 내려서 강연장까지 들어갔다가 스님은 2시간 동안 서서 강연을 하시고, 저희들은 2시간동안 앉아서 강연을 듣습니다. 강연이 끝나면 로비까지 나와서 스님은 사인을 하시고, 다시 강연장 가장 가까이까지 와 있는 차를 타고 다음 강연장으로 이동합니다. 가는 도중 휴게소에 들러 잠시 화장실에 다녀와서 다음 강연장으로 이동, 다음 강연장에서 또 스님은 강연하시고, 저희들은 앉아서 듣기...하루동안 걷는 시간은 거의 없고, 차에서, 강연장에서 앉아 있는 시간이 대부분입니다. “스님. 그래도 스님은 저희들보다는 더 운동을 하시는 것 같애요. 스님은 서서 강연하시잖아요. 그동안에도 저희들은 앉아 있어요.” “김밥이라서 그래도 다행이지, 다른 음식들을 먹었으면 몇 킬로씩은 살이 붙었을 거다.”하면서 김밥으로 식사하는 것에 대해서 상당한 만족감을 표하십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많이 웃었습니다. 하루 2강, 3강을 하고, 오전, 오후 강연이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까지 나눠져 있으면 실제 운동할 시간이 하루 중에는 나오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틈이 나면 걸으면서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오후 6시경부터 8시까지 산길을 7킬로 정도를 걸었습니다. 숲에 있는 도로라 햇볕도 들어오지 않고,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았습니다. nbsp 돌아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저희들은 3개월정도 비워 둘 집이라 음식정리, 그릇정리, 냉장고 정리, 텃밭정리 등 주변정리를 했습니다. 스님은 원고와 업무 정리하느라 바쁘십니다. 여름 100강 마지막인 8월 20일 부산대강연을 제외하면 내일과 모레 여름 100강이 끝납니다. 막바지로 다가갈수록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내일 오전은 내일 대구 달성군에서 강연이 있고, 오후에는 서울대에서 오연호, 박경철, 조국 님이 같이 참가하는 ‘새로운 100년’ 북콘서트가 있습니다. 내일 대구와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nbsp

2012.07.09. 18,126 읽음 댓글 6개

7월 7일 법륜스님의 하루(경기 김포, 서울 서초)

오늘 하루를 돌아봅니다. 오전 김포강연이 벌써 아득한 느낌입니다. 하루가 금세 지나갔습니다. 서울에서도 멀리 하늘에 별이 보이는 밤입니다. 선풍기 틀어놓고 앉아 오늘 하루를 돌아봅니다. 어제 동해에서 강연마치고 출발해서 서울에 도착하니 새벽 1시 30분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오늘도 아침 일찍 약속한 만남이 있어서, 조찬모임에 나가셨습니다. 조찬모임 후, 오전 강연이 있는 김포로 향했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김포에 도착했습니다. “전에 강화도 갈려면 김포에서 길이 워낙 많이 막혀 고생하곤 했는데, 이제는 4차선이 되어 있어, 차가 잘 빠지네?” 막히지 않고 시원하게 차가 빠지는 것을 보고, 스님은 옛날 생각이 나시는 것 같았습니다. 강연장 옆에서 시장님과 먼저 간단한 차담을 나누고, 시간 맞춰서 강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348석 강연장인데, 710명이 참가했습니다. 벌써 강연장에는 무대에까지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었습니다. 무대 위에 앉은 사람들에게까지 공손히 인사를 하고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역시, 도시에 오니 질문이 시원시원합니다. 뒤로 숨겨 두는 것 없이 질문을 하고, 그만큼 스님의 답변도 구체적으로 다가갑니다. nbsp 고부 갈등에 대한 부분이라 김포까지 원정와서 질문한다는 주부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저에게 제일 큰 고민이 고부간의 갈등이예요. 장남 며느리라 부모님을 모신다고 하기도 그렇고 안 모신다고 하기도 그런 속에서 그렇게 23년간 살았어요. 잘 하려고 했는데, 저희 어머니가 안 받아준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많이 지쳤어요. 지금은 어머니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어요.” “부모님 생활이 윤택했어요? 부모님들이 애 키울 때 어려운 속에서 키웠어요? 시부모 사이 관계는 어땠어요?” “관계가 아주 안 좋았어요.” “제일 간단한 것은, 시어머니 맞추기 힘드니까, 안녕히 계세요 하고 이혼하면 되잖아요?” “그러고 싶었는데 애들 아버지가 용납을 안 했어요.” “남편은 괜찮아요?” “내 남편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은데, 시어머니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싫어요.” “시부모님 부부관계가 안 좋으니까 어머니가 맏아들에게 정을 붙이고 살았겠죠? 큰 아들에게 의지하고 살았어요. 남편이 죽으면 무의식 중에 아들을 남편겸, 아들겸해서 살아요. 자기가 아들에게 온갖 희망을 걸고 정성을 들여 키워 놓았더니, 어느 날 결혼을 하니, 며느리라고 들어와서 아들을 뺏어 갔어요. 생각은 장가보내야 한다고 하지만, 마음에서는 뭔가 뺏긴 기분이예요. 그러니까 며느리 꼴이 보기 싫은 거예요. 자기 전 생애를 다 도둑맞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며느리가 어떻게 한다고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어머니와 갈등을 겪고 살면, 질문자가 나중에 아들을 장가보내면 똑 같은 갈등을 유발합니다. 똑같이 반복합니다.” “남편 원래 주인이 질문자예요? 어머니예요?”” “어머니요.” “어머니 것을 뺏어 갔으니까 어머니 심정을 이해해서, 어머니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머니가 오시면, 얼른 돌려 줘야 합니다. 나는 맨날 같이 사니까, 어머니가 오시면 아들을 어머니 방에 보내서 이야기해라고 해야 합니다. 남편이 어머니에게 30만원 주자고 하면 나는 50만원 주자고 하고, 남편이 주자는 것보다 더 줘야 합니다. 어머니가 트집이다 싶은 잔소리를 하더라도 ‘미안해요, 어머니.’하고 어머니 마음을 이해하고 살면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질문자가 시어머니와 자꾸 갈등을 일으키면 남편이 일찍 죽습니다. 중간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남편이 골골 말라들어가는 거예요.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남의 물건을 뺏어 왔으니까, 미안한 마음만 가지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애써서 아양 떨지말고, 뭐라고 하시든지 미안한 줄만 알면 됩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이렇게 하면 됩니다.” “솔직히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따라 해봐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대중들이 와하며 박수를 칩니다.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원만히 풀려서 화목한 가정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와 책 사인을 합니다.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사진을 찍습니다. “전화해라고 전화기가 있는데, 왜 전화기로 사진을 그리 많이 찍어요?”하며 스님이 웃으십니다. nbsp 김포에서 강연을 마치고, 바로 다음 강연이 있는 서초동으로 향했습니다. 서초동 강연장 가까이에 와서, 30분 가량 시간의 여유가 있어, 스님은 목이 아프다 하시며 이비인후과에 가서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치료를 받고 강연장에 가니 강연 시작 10분전입니다. 요즘 시군단위 지자체에 가면 좋은 건물에 넓은 강연장이 있는데 비해, 도시에는 오히려 넓은 공간이 부족하거나 상당히 낙후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 서초구민회관은 800석 가량 되는 큰 공간인데, 무대와 복도, 로비에까지 사람들이 앉아 1,960명이 스님 강연을 듣고, 100여명은 도저히 공간이 안 되어 돌아갔습니다. 돌아가신 분들께는 죄송한 마음 전합니다. 스님을 2,000여명이 환호를 하면서 반갑게 맞이합니다. 강연 분위기도 밝고 경쾌한 느낌이었습니다. 서초구민회관에서는 사람도 많았고, 질문자들도 많아, 대중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질문을 최대로 받았습니다. 근 3시간 가량 강연을 하셨습니다. 토요일 오후인데도 3시간동안 사람들이 거의 움직이지 않고 집중해서 강연을 듣습니다. nbsp 질문자 중, 딸 둘을 둔 어머니의 질문이 강연 지나고 나서도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딸이 둘이 있는데, 큰 애는 심한 아토피로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 있고, 둘째 딸도 대학교를 나왔는데 비정규직으로 취직해 있습니다. 이 애들을 내 삶에서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손을 놔 버리고 싶은데 내 손에 단단하게 붙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애들이 너무 사회적으로 세상에서 쳐져 있다고 할까요? 갖다 버리고 싶습니다. 내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대학교 갈 때까지는 너무너무 자랑스러웠죠. 곧 그 애가 내 인생의 전부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쳐다보기도 싫어요. 갖다 버려지지도 않아요. 이뻐서 시집이라도 가면 아파트 하나 지참금으로 줘서라도 보내버리고 싶어요.” “자기 엄마도 싫다는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자기도 갖다 버리고 싶은데 어떤 남자가 데려 가겠어요? 자기가 가진 재산을 하나도 없이 다 봉사단체나 종교단체에 기부해 버리고, 몸뚱이 하나만 달랑 가지고, 절에 가서 공양주를 하면 딱 끊어져요. 그러면 한 푼도 없기 때문에 의지도 안 하고 문제제기도 안 합니다.” “정상도 아니고 장애인도 아니고. 거기서 벗어나지지가 않네요.” “내가 낳아서, 내가 키워서, 나도 싫은 애를 세상 누가 데려 가겠어요? 그러니 이 문제를 풀려면, 질문자가 ‘이 세상 그 누구도 너희들을 보호하지 않아도 내가 보호할께’, 해야 데려갈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아껴야 다른 사람이 좋아하지요. 천하가 다 버려도 엄마는 ‘우리 아이 괜찮아요’ 해야 합니다. 그 아이의 행복을 원한다면 엄마가 기도를 해야 합니다.교회 다녀요? 절에 다녀요?” “성당 다녀요.” “그러면 가슴을 치면서 내 탓이요, 내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 해야 합니다. 껴안아줘야 합니다. 남편도 위로해 주면서 살아야 됩니다. 달리 길이 없어요. 그렇게 자기가 자기를 죽여야 됩니다. 남편의 자식에 대한 분노도 자기가 받아줘야 해요.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워서 그래요. 애들을 포용해 줘야 합니다.” “니가 죽으면 나도 같이 죽겠다고 하면서 애들한테 상처를 줬어요.” “마음은 항상 격려해주면서, 경제적인 지원을 안 해야죠. 돈을 가지고 어떻게 때우려고 하는데, 돈은 딱 끊어버리고, 완전히 내 몸뚱이를 가지고, 목숨을 걸고 아이를 살려야 합니다. 애들은 애들대로 자립심이 없어지고, 부모의 정은 못 느끼고 있어요. 헌신적으로 아이를 보살펴야 합니다. 남은 생은 아이들을 위해서 살겠다고 마음을 확 바꿔 버리면 삽니다. 딱 굽혀줘야 합니다. 정신적으로 아이에 대한 집착을 놓는다는 것은, 내가 아이에 대해서 완전히 감싸안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종교랑 관계없이 하루 300배를 하면서, 주여 내 탓이요, 내 탓이요 하면 됩니다. 앞으로 엄마가 간섭을 하면 안됩니다. 우리 딸 착하다 이렇게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세요. 이러면서 밥은 해 주지 말고. 칭찬을 해주고. 배고프면 자기가 하도록하고, 빨래도 자기들이 하도록 해서 자립하도록 해 주세요.” 아이들을 키울 때는nbsp집착을 해서 과잉보호를 하고, 커서는 내 뜻대로 아이들이 성공을 못하니까 이제는 내치는 엄마의 모습이라는 스님 말씀에, 요즘은 엄마가 없고 이웃집 아줌마만 있다고 하시던 스님의 말씀이 연이어 떠오릅니다. 부모의 답답한 마음도 다가오고, 자식들의 앞이 보이지 않는 갑갑함과 외로움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사실 일반적으로 보면 큰 문제가 있는 집은 아닌 것 같은데, 기대를 많이하고 집착을 많이 하다가 성취가 안 되니까, 절망이 너무 커서 세상이 어둡게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스님은 서초동 강연을 마치고 바로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약속된 만남을 마치고는 다시 재단내 회의가 있어, 늦게까지 회의에 참가하셨습니다. 밤바람이 시원합니다. 내일은 일요일이네요.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nbsp

2012.07.08. 16,624 읽음 댓글 7개

7월 6일 법륜스님의 하루(강원도 고성, 동해)

강원도에서 아침을 맞이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숙소 창 밖의 강에는 물이 불어서 황토빛 물이 콸콸 흘러 내려 갑니다. 강원도는 수해가 질 정도의 비가 오지는 않았는데, 안양, 수원 등지에서는 비가 많이 와 비 피해 소식도 전해 옵니다. 더 큰 피해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오전에는 남한 최북단의 고성군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고성군은 인구 3만의 지자체인데, 그 중에는 군인이 많이 포함이 되어 있다고 하네요. 288석인데, 260명이 참가했습니다. 오랜만에 좌석이 다 차지 않은 강연이었지만, 참가한 분들은 마칠 때까지 자리도 이동하지 않고 재미있고, 진지하게 강연에 참가했습니다. nbsp 읍내라 질문이 적지 않을까 싶었는데,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고성이 너무 먼 곳이라 원정 질문을 하러 온 사람도 없었습니다. 스님이 성철스님처럼 결혼하고 출가를 했는지 궁금하다는 첫 질문을 시작으로 이런 저런 개인적인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 이름을 바꾸는 것과 관련한 스님 말씀을 전해 봅니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개명을 하면 좋은지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기가 많이 힘든가 봅니다. “저희 아이가 태어난 지 30개월부터 아팠어요. 암투병을 하다가 공기좋은 이 쪽으로 이사를 왔어요. 시댁 작은 아버지께서 작명소에 갔더니, 저희 아이 이름에 ‘희’자가 들어있어 아프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혼돈이 됩니다.” “그걸 왜 어렵게 생각해요? 이름 바꿔서 좋다고 하면 바꾸면 되잖아요? 그 말이 맞고 틀리고를 따질 필요가 뭐가 있어요? 복잡한 거 아니잖아요? 좋다고 하면 바꾸면 돼죠? 그런데 이름 바꾼다고 인생이 바뀌면 세상을 열심히 살 필요가 없잖아요. 상식적으로 그렇지않아요? 이름을 바꿔야만 문제가 풀린다면 세상이 다 이름만 바꾸면 되겠죠? 이름만 바꾸면 대통령이 된다면 대통령 후보 나온 사람들이 왜 저렇게 열심히 하겠어요? 이름만 바꾸면 되잖아요. 이름이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있어요. 이름이 매일 불리는 것이라 특별히 발음이 나쁘면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자 획을 가지고 너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겠어요? 이름을 고치러 가는 사람은 하는 일이 잘 안되서 찾아가는데, 이름을 고치면 좋아진다고 하면 희망을 가질 수 있어 때로는 심리치료효과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nbsp 고성 강연을 마치고, 통일전망대로 갔습니다. 전에 북한 식량 지원차 개성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평상시에 내가 분단된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못 느끼다가 출입증을 따로 받고, 외국 나가듯이 검문을 받아서 무장한 군인들 속을 지나 개성으로 가면서, 아, 정말 내가 분단된 나라에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체험적으로 깊이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무장한 군인들을 보면서, 북한으로 향하는 도로와 기찻길은 뚫려 있는데 더 이상 가지 못하는 경계를 보면서 분단된 나라의 국민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님은 북한과 닿아 있는 저 해안선과 도로와 기찻길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저 너머에 오늘도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이 살고 있을 것입니다. nbsp 통일전망대에 불상, 마리아상, 십자가가 북녘땅을 향해 서 있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께 참배를 하면서,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nbsp 통일전망대를 나와 건봉사에 참배를 했습니다. 건봉사 들어가는 길목마다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건봉사는 금강산 최대의 절이었다고 합니다. 20여년 전부터 재건 불사를 해서, 지금은 모양이 잘 갖춰진 사찰이 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건봉사에서도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를 하시고, 다음 강연장인 동해로 향했습니다. 동해로 가는 길에 바다가 훤히 보이는 동해휴게소에서 짜장면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동해 강연장으로 출발했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강연장 안은 벌써 사람들이 꽉 차고, 로비에 자리를 깔고 앉고 있었습니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재잘거리며 자리 잡기 바쁩니다. 스님은 로비에 앉은 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강연장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강연장에 들어가서 또 다시 자리 배치를 했습니다. 스님이 강연을 시작하시기 전, 앞에 있던 연단을 치워달라고 요청을 하고, 무대의 작은 공간까지도 대중들을 위해서 다 내어주고, 서서 듣는 사람과 밖에 앉아 있는 사람들 더 들어와서 강연을 들을 수 있도록 하고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nbsp 강연을 시작하자,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을 합니다. 오늘은 사회적인 질문이 많았습니다. “요즘 스님의 활동을 보면 통일운동가 같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통일이 가능한 것인지, 가능하다면 언제 가능한지, 현재 북한의 김정은 체제에 대한 스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요즘의 통합진보당 사건과 종북 논란에 대해 스님의 의견을 배우고 싶습니다.” 스님이 질문에 대해서 하나 하나 짚어가며 설명을 해 주십니다. 그런데, 동해가 북한과 가까이 있는 지역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반응이 다른 지역과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자기 일처럼 듣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보통 사회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설명 중에 반응을 많이 안하는 편인데, 스님 의견에 동의가 되면 박수도 치면서 강한 동의의 뜻을 전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친정이 동해라 친정왔다가 오늘 강연을 들은 서울 주부 자원활동가가 “야, 동해 분위기 진짜 좋네? 사회적인 말씀이 많았는데 진짜 진지하고, 대단하다.” 합니다. 책 사인회를 하고 있는데 40대 초반정도의 여자분이 스님께 메모지 두 장을 주고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스님께 혹시 사람들과 나눠도 될 내용인지 여쭈니, 남편이 부도나고 갈등이 많아져 이혼을 결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라디오를 듣다가 스님 말씀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지금껏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잘 살고 있어 감사함을 표하는 내용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동해 강연을 준비한 희망지기 님의 사연도 감동적입니다. 4년전 안 좋은 일로 부인과 헤어지게 되었는데,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죽을 약까지 준비를 했다가, 어느 기회에 법륜스님을 뵙고 질문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깨달음의 장도 다녀와서 스님께서 말씀해 주신대로, 아이 둘을 어머니에게 맡기지 않고 혼자서 직장 다니면서 열심히 키웠는데 4살, 7살 아이들이 이제는 어엿한 초등학교 1학년, 4학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스님과의 인연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감사함이 커서, 이번 강연 준비할 때 강연장 관계자와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도 한 마디도 표현하지 않고, 매일 직장 다녀와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풀어가면서 오늘 강연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이런 어려움이야 언제라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스님께서 동해에 더 자주 와서 강연만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에 모두들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nbsp 두 분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목숨을 건진 사람들, 고통의 나락에서 행복의 화원으로 삶의 여정을 바꾼 사람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천당과 지옥이 있으면 할 일이 많은 지옥으로 가겠다고 하시던 스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옥같은 삶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스님 가르침을 하루라도 빨리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동해 평화활동가들과 간단한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북한동포들 지원하는 방법과 청년, 대학생 통일 교육 등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금은 서울로 올라가고 있는 길입니다. 네비게이션에 새벽 1시 40분 도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스님은 곤히 주무시고 계십니다. 내일 하루 일정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서울 일정은 항상 녹녹치 않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김포에서 강연이 있고, 오후 3시에는 서초구민회관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강연 앞뒤로 많은 약속들이 이미 포진해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즐거웠습니다. 내일 김포와 서초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nbsp

2012.07.07. 17,286 읽음 댓글 12개

7월 5일 법륜스님의 하루(강원도 양구, 경기도 가평)

새벽 5시, 강원도 양구로 출발했습니다. 새벽같이 감자를 찌고, 밥 한 술 준비해서 아침여행을 떠났습니다. 중간 휴게소에서 밥과 감자로 푸짐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넓은 휴게소엔 청소하는 아저씨만 비질을 하고 계시고, 주변은 조용했습니다. 양구문화회관에 들어서니, 군복을 입은 군인 몇 명도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양구군은 총 인구가 2만 2천명정도 되는데, 인구에 포함되지 않는 군인 인구가 2만 2천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군인의 고장입니다. 강연장이 309석인데 420명이 참가해서, 복도에 앉고 뒤에 서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한 비구니 스님은 강연 참가자들을 위해 커피와 녹차와 뜨거운 물까지 준비를 해 주셨습니다. 양구지역에서 포교활동을 하시는 여러 스님들이 오셔서 스님을 반가이 맞이해 주십니다. 양구군 희망지기가 이번 강연을 준비하면서 있었던 훈훈한 미담을 이야기해 줍니다. 법륜스님 강연 플랭카드를 보고, 양구시장에서 과일 가게를 하는 분이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자기는 기독교인인데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고 인생이 행복해졌다면서, 같이 홍보할테니 전단지 좀 달라는 전화였습니다. 그 분이 전단지 1000장을 들고 가서, 양구시장에서 시장온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시장통 가게에도 전단지를 붙이고, 심지어 아이 학교까지 찾아가, 쉽지 않은 기회니 학생들 전체 강연 참가를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까지 했다고 합니다. 몸집이 자그마한 분이였습니다. 포교는 억지로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법을 만나 인생이 행복해지면 저절로 주변에 행복을 전하게 된다던 스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분당지구에서 그동안 강원도 7개 지역을 담당해서, 직접 홍보도 하면서 많은 지원을 했습니다. 오늘이 봄, 여름 100강 중 분당지구에서 맡은 강원도 지역 마지막 지원이었습니다. 그동안 재미 있었다며 환하게 웃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어nbsp 양구 강연장 질문 중 마음에 남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일찍 명예퇴직을 당하고, 귀농해서 살고 있는데 마음이 답답하고 갑갑하다고 합니다. 아들 둘이 대학교 다니고 있는데, 졸업반인 큰 놈은 지방대라 취직이 안 되고, 물가는 비싸고, 농사도 어렵다 합니다. 서민이 살기가 어렵다며 스님의 시원한 답을 원한다면서 질문을 하는데, 목소리에 세상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습니다. 힘들고 답답한 가장의 무게감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일단 어렵다고 인정하구요, 한 번 이야기를 해 봅시다. 만약 내가 산다면 베트남에 가서 살래요? 한국에서 살래요?” “한국에 살겠습니다.” “베트남보다 한국이 살기가 낫겠죠? 그럼 중국에 살래요? 한국에 살래요?” “한국에 살겠습니다.” “그러면 한국이 살만한 나라라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왜 한국에 못 살아요?” “살긴 사는데, 요 근래가 어렵습니다.” “요 근래라 하더라도 베트남에서 살래요? 한국에서 살래요? 살만 해요? 안 해요?” “살만 합니다.” “예, 대한민국이 살만한 나라입니다.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에 대해서 먼저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스님은 문답을 하면서 그 분의 분노를 잠재워주고, 그 분이 제기한 왜 살기 어려운지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현재의 서민 경제의 답답함의 원인이 되고 있는 양극화에 대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 민주화에 대해서 알기 쉽게 맥락을 잡아가며 설명을 해 주십니다. 처음과 달리, 마이크에 대답하는 아저씨의 목소리에서 가벼움이 느껴집니다. 양극화가 당장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왜 귀농한 가장이 답답하고 갑갑한지에 대해서 스님이 설명을 해 주시면서 마음을 받아주니까, 곰같이 큰 몸집을 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집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나는 서민들의 현실의 모습들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nbsp 양구군에서 강연을 마치고, 스님은 과천에서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천으로 가서 사람을 만나고, 다시 경기도 가평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과천에서부터 비가 솟아지기 시작하더니, 늦은 밤까지 계속 쏟아지고 있습니다. 전국가는 곳마다 저수지가 바짝 말라 있었습니다. 며칠 전 내린 비로 밭작물은 해갈이 조금 되었는데, 저수지며, 댐에는 물이 차지 않았습니다. 오늘 내리는 비로 완전히 해갈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가평 강연장은 처음 시작할 때는 2층이 다 차지 않았는데, 비가 오는데도 사람들이 꾸준히 왔습니다. 좌석이 649석인데 680명이 참가해서, 강연이 끝날 때까지 거의 움직이지 않고 집중해서 듣습니다. 백발의 할머니도 계시고, 할아버지도 계십니다. 아빠가 있을 때는 억눌려 있다가 아빠만 없으면 동생을 때리고 엄마에게 욕을 하는 중학생 아들을 가진 엄마의 고민, 8년간 유학을 하고 돌아왔는데도 선생님과 부모님이 시키는대로만 살다가 이제 대학을 졸업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모르겠다는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 나이 38살인데, 엄마의 과잉 보호로 직장을 가도 8개월 이상 다니지 못하는 정신이 약한 젊은이의 자립에 대한 고민, 결혼 전에는 긍정적으로 살았는데 결혼 후부터 친구들에게 몇 번 돈을 사기 당하면서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었다는 남자분의 질문, 요즘 신문에 나는 저축은행비리 등 수천억원 단위의 부정부패 현상을 보면서 서민들이 성실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인생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지 모르겠다며 가치관의 혼란을 느낀다는 60대 할머니의 문제의식까지 바로 바로 이어서 나옵니다. 스님이 왜 자녀를 3살까지는 꼭 엄마가 키워야 하고, 엄마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고 그렇게까지 강조를 하시는지, 왜 유치원, 초등학교까지는 돌봐주고, 사춘기때는 지켜봐주고, 성인이 되면 독립을 시켜야 한다고 말씀을 하시는지, 오늘 질문자들의 모습을 통해 인연과의 법칙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nbsp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해서 친구와 원수가 되었다는 질문자에게 “친구가 돈을 갚지 않아 친구가 약속을 깨긴 했지만, 돈 안 갚은다고 친구를 버린 나도 친구의 의리를 저버린 것입니다. 남 탓만 하지 말고 자기를 돌아봐야 합니다.” 라고 하시면서, 정리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장님이 종업원을 고용할 때, 직원 좋은 일 시키려고 고용해요? 자기 돈 벌려고 고용해요? 자기 돈 벌려고 고용하죠? 직원이 취직할 때 사장 좋은 일 시키려고 취직해요? 자기 이익 볼려고 취직해요? 자기 이익 볼려고 취직하죠? 직원이 사장 심정을 조금만 이해해 주면, 사장이 직원을 회사에 오래 잡아두려고 하기 때문에 직원은 자기 직장이 안정적으로 보장되겠죠? 또 사장이 직원 입장을 조금만 생각해주면 직원이 회사를 나가려고 하지 않으므로 직원들의 근무가 안정적이라 회사가 발전할 수 있겠죠? 서로 조금만 이해하면 서로에게 이익이 될텐테 다 자기 이익만 생각하니까 서로에게 손해가 생기고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어리석어서 그렇습니다.” 항상 우리가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괴로워하고 힘들어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은데, 매 순간 ‘나’라는 함정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갑니다. 강원도의 산천을 만나고, 강원도 가까이 위치한 가평의 사람들과도 만났습니다. 내일은 강원도의 동해안 고성과 동해로 갑니다. 여름 100강 중 강원도 마지막 날이 되겠네요. 내일 뵙겠습니다 nbsp

2012.07.06. 16,437 읽음 댓글 7개

7월 4일 법륜스님의 하루(충북 괴산, 부산대 북콘서트)

지난 이틀간은 하루에 3강연씩 진행되다보니, 강연 마치면 바로바로 쉴 틈 없이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오전, 오후 두 개의 강연만 진행되었습니다. 뭔가 굉장히 여유로워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하루, 이틀 사인데도 금세 그 상황에 적응이 되었나 봅니다. 오늘 오전 강연은 충북 괴산이었습니다. 괴산에 들어서니 제 키보다 더 크게 자란 옥수숫대들이 우리를 먼저 반기는 것 같습니다. 괴산군청에 도착하니 괴산군 자체 행사가 먼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군수님의 목소리가 연세가 있으신데도 쩌렁쩌렁 힘이 넘칩니다. 강연장엔 이미 사람들이 가득 차 있고, 또 강연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계속 들어옵니다. 550석인데 800여명이 참가해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행사가 약간 늦어져서, 스님이 환영 영상, 법륜스님 소개 영상도 취소하라고 하시고는, 바로 무대로 오르셨습니다. 지역으로 오면 스님으로부터 법문을 듣기 위해 오시는 연세드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사 어려운 부분에 대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스님께서 하나의 질문에 대해서 상세하게, 어르신들도 알아들으실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하십니다.nbsp그러다보면 도시에서처럼 질문마다 즉문즉설 특유의 간명하면서도 시원한 분위기는 덜 하지만, 그 나름의 진지함이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귀를 기울이고, 진지하게 집중하는 모습들을 보면 사람들이 정말 스님 말씀을 들을 준비를 하고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nbsp 괴산강연장에서는 어떤 연세드신 할아버지가 그동안의 여러 스님들의 좋지 못한 행위들에 대해 화가 나셨는지, 법륜스님이 다른 모든 스님을 대표하는 양 속된 말까지 섞어 가면서 질타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그 어르신의 마음을 아시고, 어르신이 질문하신 내용이며, 그 이면의 뜻까지 상세하게 예를 들면서 설명을 해 드리니, 마음이 싹 풀리셨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스님이 막말을 하셨던 어르신 손을 잡아 드리니, 어르신이 정말 스님께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 하십니다. 강연을 마치고 부산으로 이동하는 길에 스님은, 질문하셨던 어르신이 스님에게 너무 미안해 하셔서 혼자서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함이 크실 것 같다고 하시면서 괴산군수님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그 어르신께 스님은 아무렇지도 않으니 너무 자기 말에 신경쓰지 마시라고, 원래 즉문즉설은 자기 속내를 다 드러내고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전해 달라는 당부까지 하셨습니다. 어르신이 마음을 훌훌 털고 스님 말씀을 벗삼아 신나게 남은 인생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르신이 질타하신 여러 내용 중, 어르신이 입고 있는 양복 상위가 32년째인데, 일부 스님들은 금빛 가사를 입고 너무 세속적으로 살면서, 성철스님 누더기 옷 입는 것을 왜 본받지 않느냐고 하시면서, 현실의 실태를 꾸짖는nbsp말씀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나눠봅니다. “질문자가 양복을 30년 입은 것은 좋고 칭찬받을 일입니다. 그러나 수행이라는 것은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좋으나 다른 사람 즉,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강요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같이 살기가 힘듭니다. 내가 좋은 것이라고 타인에게 강요하면 이것은 독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을 강요하면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미운 마음으로 변하므로 사랑을 눈물의 씨앗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행복만 가져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 아니라 사랑을 요구하기 때문에 괴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해서 시작한 사랑도 내 요구가 안들어지면 원수로 돌변해집니다. 이해없는 사랑은 폭력과 같습니다. 내가 검소하게 사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내식대로 하라고 남에게 요구하면 갈등이 생기고 내가 괴로워집니다. 그러나 어르신께서 검소하게 사시는 것은 좋은데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삶을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nbsp 괴산 강연을 마치고, 다음 강연이 있는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부산대 학생회관 대강당은 800석인데, 900여명이 참가한 것 같습니다. 부산 북콘서트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서울, 광주, 대전, 울산에 이어 오늘 5번째 북콘서트였습니다. 오연호 기자가 전체를 진행하고 스님이 답을 하십니다. 북콘서트는 사회 전반 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인생 상담이 아니라 사회문제에 대한 상담 시간이랄까요? 오늘 통일과 관련해서 질문한 내용 하나를 간단히 정리해서 공유해 봅니다. “저는 군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콘서트를 기다렸습니다. ‘새로운 100년’도 읽었습니다. 군대에서는 북한은 주적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주위에서 군인은 전쟁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하면, 제가 군인은 나라를 잘 지키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해 보지만 역부족입니다. 이런 저에게 조언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nbsp “남북 갈등의 고민이 가장 첨예한 곳에 근무하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합니다. 용기있게 질문한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현실적으로 북한은 우리와 적대관계에 있지만 북한이 가지는 이중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적대적 관계 뿐아니라, 우리 미래의 이익을 위한 통일의 상대방이기도 합니다. 군인의 진짜 목표는 평화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군인의 최고의 전략입니다. 그러나 적의 도발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해서라도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마지막 전략입니다. 상호 선린관계를 유지해서 갈등이 없도록, 전쟁이 안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최고의 전략입니다. 남북간의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북한이 도발할 때 우리는 응징을 해야하지만, 응징을 하면 북한이 더 큰 도발을 하게되어 결국 전쟁까지 이르게 돼죠.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조사를 해보면 전쟁을 하자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반대로 북한 사람들은 전쟁을 하자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 살기가 힘들어 현상변경을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한 주민들은 전쟁을 원하지는 않지만 북한이 도발을 하면 즉각 응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nbsp그러면 어떻게 이 모순을 해결할 것인가? 긴장상태에서 도발을 응징하면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 평화와 화해를 추구하는 가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발이 있을 경우, 즉각 응징을 하게 되면 도발에 대한 응징이 전쟁으로 가지 않게 됩니다.nbspnbsp 통일의 목표를 큰 틀에서 세우고 나가면 설사 북한이 도발할 대 응징을 하더라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절대 지도자가 감정으로 대해서는 안돼요. 올바른 지도자는 국민의 생명, 재산을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의 민심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것이냐 이것이 통일정책입니다.” 통일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미래 통일 한국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뜁니다. 젊은이들이 이 사회와 민족과 인류 역사를 위해 할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기회인 것 같습니다. 내일은 강원도 양구군과 경기도 가평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양구와 가평에서 뵙겠습니다.

2012.07.05. 16,422 읽음 댓글 7개

7월 3일 법륜스님의 하루(영광, 완주, 대전 북콘서트)

이른 아침, 5시 20분경 전남 영광으로 출발했습니다. 5시간 가량 걸려서 영광에 도착했습니다. 영광은 인구 5만 7천명의 군소재지로,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며, 기독교 순교지, 원불교 성지가 위치해 있고, 동학혁명의 중심지 중의 하나이기도 한 역사깊은 지역입니다. 310석의 강연장에 530명이 참가해서, 스님 말씀처럼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행사 준비를 하면서 현수막을 달았는데, 그 다음날 바로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서 현수막도 떨어지고, 사람들이 많이 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참가해서, 행사 준비를 한 자원봉사자들의 표정도 밝았습니다. 강연장에 참가한 사람들도 분위기가 밝았습니다. 영광 강연장에서도 이런 저런 인생사에 대한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nbsp 7월 중순 이후 스님의 일정이 어떻게 되는 지 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스님의 이후 일정을 나눠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7월 10일까지 여름 100강이 있습니다. 여름 100강을 마치면 올 해 계획한 300강 중 200강을 마치게 됩니다. 8월 초까지 3주간 문경정토수련원에서 명상수련이 있고, 명상이 끝나면 중국 역사 기행이 2차례 잡혀져 있습니다. 그 후 미주 순회법회가 있고, 미주 순회 법회를 마치고 돌아와 9월 24일부터 가을 100강을 시작합니다.” 올 한 해 스님 일정이 빽빽하게 다 잡혀져 있습니다. 영광에서 완주로 가는 길에 잠시 김제에 있는 요양병원에 들렸습니다. 스님이 80년대 대학생불자들을 지도할 때의 학생이 이제는 50의 나이가 되어, 위암 말기로 곧 죽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병문안을 가니 손을 꼭 잡고, 스님을 꼬옥 안으면서 좋아하십니다. 마지막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시기를 기원해 봅니다. 완주 강연장으로 가니 이 곳도 거의 난리가 났습니다. 군수님과 사전 차담을 하고 들어가니, 로비에 비디오를 설치해놓고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nbsp강연이 오후 3신데, 오후 2시에 강연장 자리는 물론 복도까지 다 차서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스님은 로비에 앉아 계신 분들게 불편한 자리에 앉아 강연듣도록 해서 죄송하다며 고개 숙여 양해를 구합니다. nbsp 무대 앞까지 빡빡하게 앉아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강연장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아 에어콘이 제대로 작동이 안 되어 더운데도 사람들이 초롱초롱 집중해서 스님 말씀을 듣습니다. 아이 키우는 문제나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이 제일 반응을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nbsp완주에서도 정신적인 불안이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들이 있어 스님의 답변이 좀 길어졌는데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귀 기울여 스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아이처럼 밝았습니다.nbspnbsp nbsp 완주nbsp강연을 마치고 또 바로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대전 ‘새로운 100년’ 북 콘서트가 있었습니다. 북콘서트를 기독교연합회관에서 했는데,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해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스님과 오연호 기자의 문답에 이어, 플로어에서 질문을 했는데 질문하려는 사람이 넘쳐 났습니다. 특히 대학생, 20대 후반, 30대 초반 젊은이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유성지역 국회의원도 참가해서 강연을 끝까지 듣고 스님 사인도 받아갔습니다. 대전 kbs 아니운서도 함께 했습니다. 20, 30대가 약간 많았지만, 20대부터 60대까지의 연령층이 다 참가한 것 같았습니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답답함에서 나오는 질문들이 눈에 띄였습니다. “통일에 관심이 없고 다른 나라 얘기 같았는데 ‘새로운 100년’ 책을 보면서 우리도 이대로 하면 되겠구나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주부로서 당장은 아니지만 어떤 생각으로 애들한테 얘기를 해줘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통일을 하게되면 경제적 상황이 안 좋을 것 같은데 경제적 손실이 있을텐데 그걸 감안하고까지 통일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책을 읽고 좋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통일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일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저는 공직에 있는데 공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새로운 100년’을 읽고 역사의식이랄까, 역사의 혼이 제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역사의식을 주변 사람들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nbsp 일반인들이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스님이 말씀해 주십니다. “일반인들이 통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요. 일제시대 농사꾼들이 독립운동을 하는데 할 수 있는 일이 많았겠어요? 추수하게 되면 쌀 한 가마 군자금으로 내어 놓거나, 산에 나무해서 장작을 지원하는 이런 일이었겠죠? 자식이 여러 명 있으면 그 중 한 명을 독립운동 시킨다든가 했겠죠. 일반인들은 기부가 가장 쉬운 방법이지요. 그리고 한국 현대사나, ‘새로운 100년’이나 책 읽기 모임을 한다거나 ‘새로운 100년’ 책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일도 하나의 방법이겠죠. 친구들 밥 한 끼 사주고 이런 토론회에 데리고 오는 방법도 있고. 통일을 위해서 거리에서 캠페인을 해 보는 방법도 있죠. 반대하는 보수적인 할아버지의 저항도 받아보면 현실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부딪혀 봐야 됩니다. 직장이면 직장, 학교면 학교에서 가벼운 한 두 개를 시작하면서 방향을 잡아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작게 해 나가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큰 것을 바라봅니다.” 대전 강연을 마치자마자 서울로 향했습니다. 늦은 밤에 스님과 약속되어 있는 분이 있어서 바로 서울로 왔습니다. 하루에 3개 강연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스님만이 아니라 동행한 사람들도 다들 피곤했는지 운전자 외에는 모두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내일은 충북 괴산과 부산대 북콘서트가 있습니다. 아침에 괴산 갔다가 다시 저 아랫마을 부산까지 갔다와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괴산과 부산에서 뵙겠습니다.

2012.07.04. 16,788 읽음 댓글 11개

7월 2일 법륜스님의 하루(하동, 구례, 김해)

이른 아침 오전 강의가 있는 하동으로 출발했습니다. 하동 강연장으로 가는 길에 섬진강을 만났습니다. 넓게 펼쳐진 강과 흐르는 푸른 물, 오래된 벚나무 가로수길이 어우러져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하동은 섬진강이 있고, 화개장터도 있고, 최참판댁도 있고, 박경리 소설 토지의 고향이기도 한 낯익은 지역입니다. 오늘은 공무원 교육을 겸해서 진행된 강연이었습니다. 하동군수님과 강연전 간단한 차담을 하고 강연에 들어갔습니다. 강연장은 678석인데, 630명이 참가했습니다. 공무원들이 월례조례를 하고 참가를 해서, 시간 빠듯하게 우루루 몰려 들어왔습니다. 스님이 강연 서두에서 지역으로 내려오면 그 지역 사람들은 질문자가 별로 없고, 인근 지역에서 원정 질문자들이 많다는 말씀을 했었는데, 오늘도 첫 질문자부터 시작해서 마산, 창원, 진주 등지에서 질문을 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nbsp 61세의 사별한 아저씨의 질문을 옮겨 봅니다. “사별을 했습니다. 다시 좋은 인연을 만나서 사는 것이 가능할까요? 다른 사람 소개로 두 번을 만나봤는데, 저는 다만 둘이서 오손도손 살고 싶은데, 상대편에서는 모두 조건을 붙입니다. 공무원 퇴임을 해서 재혼하고 제가 죽으면 당연히 재산이고 연금이고 다 넘어갈 건데, 미리 재산을 요구합니다.” “젊은이들이 처음 결혼할 때도 상대가 어떤가 하고 이것 저것 조건을 따집니다. 그런데 60살이 넘어 재혼하면서 어떻게 조건을 따지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이 나이에 재혼을 생각할 때는 서로 대화가 되는 친구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생활의 안정을 바라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조건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만약 10살이나 많은 70대 할머니와 결혼을 해도 좋다면 조건을 따지지 않거나 아주 작은 요구를 할 겁니다. 그런데 내가 그런 나이의 할머니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것부터 많은 조건을 내가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조건을 따지는 상대를 탓하지 말고 이 나이에 결혼할 때는 조건을 따질 수밖에 없겠구나 하며 이해하고 적절한 선에서 선택을 하십니오.” 하동 강연을 마치자마자 바로 구례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하동과 구례가 거리가 멀지 않아, 식사도 차에서 하다보니 시간을 조금 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례 화엄사로 향했습니다. 대웅전과 각황전, 국보인 사사자삼층석탑에 참배를 했습니다. 스님은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30분 정도의 여분의 시간으로 서둘러 화엄사 참배를 했는데, 그런 중에도 화엄사 각황전의 유래며, 사사자 삼층석탑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셔서 재미있게 화엄사 사찰 순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순천에서 스님 강연 들으러 왔다가 화엄사에 잠시 들렸다는 분도 만나고, 광주 과기대학원생들의 요청으로 함께 단체 사진도 찍었습니다. 화엄사 참배를 마치고 바로 구례 강연장으로 갔습니다. 구례도 분위기가 참 밝았습니다. 열의가 느껴졌습니다. 하동과 구례가 가까이 있어, 한 군데에서만 강연을 하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스님께서 엄연히 다른 지자체니까 따로 해야 한다고 해서 오늘 강연이 만들어졌다고 하자, 대중들이 박수를 치면서 환호를 합니다. 옆에 앉아 계시던 백발의 할머니 세 분이 나란히 앉아 추임새를 넣으면서 열심히 강연을 들으십니다. 강연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할머니. 즐거우셨어요?”하고 물으니, “즐겁지. 내가 차만 있으면 스님 다음 법문 하는데까지 따라 갈껀데, 차가 있나? 뭐가 있나? 이래 다리가 아파서 어데 따라 다니지도 못하고.” “매일 TV로 스님 방송 듣제. 오늘 보니까, 부처님이 내려와서 법문하는 것 같다, 하하하” 큰소리로 호탕하게 웃으며 말씀하십니다. 저도 할머니들 이야기에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nbsp 구례는 강연장이 320석인데 복도에 앉고, 서서 듣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490명이 참가해서 인생사에 대한 많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자원봉사자들 나누기에서는, 사회적인 질문이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 아쉬워하는 분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강연이 하루에 3개나 되어 강연 마치고 다음 강연장으로 이동하기가 바쁩니다. 차가 막힐 수도 있어서, 구례 강연 후 바로 김해로 떠났습니다. 김해시청에 들어서니, 강연들으러 온 사람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그렇잖아도 작년에도 김해시청 대연회실에서 강연을 한 경험이 있어서, 공간이 부족할 것이라는 예상은 했었는데, 아니다 다를까, 그 공간으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긴 줄을 보고, 스님이 바로 줄 선 사람들에게로 성큼 성큼 걸어가십니다. 100m나 되어 보이는 긴 줄 마지막까지 걸어가면서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십니다. “죄송합니다. 공간이 좁아서 혹시 못 들어가게 되더라도 양해바랍니다.” 하면서 고개를 숙여 일일이 인사를 하십니다. “바로 시청 앞이 집이라서 시간 맞춰서 왔더만, 들어가지도 못하게 됐네예.아이구, 참...”하면서 아쉬워하는 아주머니도 계십니다.nbspnbsp nbsp 강연장에는 로비에 앉은 사람들까지 1200명이 참가를 하고, 500명도 넘는 사람들이 돌아갔습니다.nbsp돌아가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스님의 법문 CD 한 장씩을 드렸지만,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더운 로비에서 빼곡이 앉아 강연을 들으신 분들께도 감사의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nbsp 김해에서도 질문이 많았습니다. 의처증과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과 24년을 살다가,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100일전쯤에 집을 나왔는데 생활력이 없는 남편이 걱정이 되어 마음이 불편하다는 착한 아주머니, 고등학교 때 오토바이 사고로 건강한 남자로서의 성생활을 못하는 것에 대해 좌절하는 아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의 질문이 특히 마음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모든 문제에 있어서의 핵심은 상대가 아니라 나라는 것,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고, 나는 주변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스님의 말씀은 오늘도 강연장 안에서 강조되고 다시 강조가 됩니다. nbsp 김해는 스님 말씀에 대한 반응이 즉각 즉각 나타납니다. 박수도 우렁차게 치고, 박수 횟수도 많고, 박수만 치는 것이 아니라 큰 소리로 거의 떠드는 것처럼 웃습니다. 스님이 “좀 조용히 해 봐요. 이야기 좀 듣게.” 하실 정도로 사람들이 재미있어 합니다. 세 번의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스님이 “아이고, 하루 3개 하니까 좀 힘이 드네.” 하십니다.스님은 몸이 힘이 들면 힘이 든다고 하시고, 피곤하면 피곤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몸이 힘이들고, 피곤해서 괴로워 하시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보통의 저희와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힘이 들어도, 피곤해도 그냥 하십니다. 그런데 내일도 강연이 3개가 잡혀 있습니다. 굴비로 유명한 전라도 영광과, 완주에서 희망 강연이 이어지고, 대전에서 저녁에 북콘서트가 있습니다. 내일도 바쁘겠죠? 내일 영광과 완주, 대전에서 뵙겠습니다. nbsp

2012.07.03. 18,166 읽음 댓글 15개

7월 1일 법륜스님의 하루(해외 활동가들과의 시간)

두북정토마을입니다. 달빛이 밝습니다. 개구리 울음소리도 들립니다. 경부고속도로로 쌩쌩 달리는 차 소리도 들려 옵니다. 7월이 시작되는 날이라 그런지, 한낮은 30도가 넘는 무더위이더니, 밤바람은 약간 싸늘한 듯 상쾌한 느낌입니다. 스님은 해외에서 활동하시는 분들과 함께 오늘 하루를 보내셨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손님들과 함께 마당의 풀을 뽑았습니다. 햇살이 뜨거워 금새 땀 범벅이 됩니다. 씻고 약간 늦은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일을 하고 먹는 식사라 다들 맛있게 먹습니다. 필리핀과 인도에서 활동하시는 분들과 함께 여러 명이 어우러져 식사를 했습니다. 대가족입니다. 훈훈하고 따뜻한 느낌이었습니다.nbsp 식사 후 약간의 휴식을 하고, 뜨거운 햇살이 세상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오전 11시경 가벼운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산나리, 산수국, 이름 모르는 노란 꽃, 하얀 꽃 등 야생화도 예쁘게 피어 있었습니다. nbsp 다행히, 숲이 우거진 계곡을 따라 난 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산행이라, 많이 더운 줄 모르고 그늘 아래서 가볍게 산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수지는 어제 온 비 때문에 간신히 바닥을 면하는 신세가 되어 있었지만, 계곡에는 물이 콸콸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일행 맨 선두에 서서, 낫으로 길을 정리하면서 갔습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 나무와 풀들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길가는데 많이 방해가 되는 나무들만 쳐 내면서 길을 만들어 갔습니다. 스님은 “반바지 입은 사람에게 이런 가시있는 풀들이 살갗에 스치면, 얼마나 따갑고 아픈지 몰라.”하시면서, 특히 가시있는 넝쿨들을 뒤에 오늘 일행들을 위해 낫으로 걷어 내십니다. 스님의 사람에 대해 배려하시는 모습은 동행하면서 상황 상황에서 매 번 만나게 됩니다. 계곡을 따라 가벼운 산행을 마치고, 탑곡수련장에 도착했습니다. 어제 비가 온 덕에 땅이 촉촉합니다. 오늘 일꾼이 많다며 처음부터 호미를 준비해 오신 법성행 보살님에게 일에 대한 설명을 듣고, 들깨 모종 옮겨 심기를 했습니다. 멀칭을 해 놓은 곳이나 비어 있는 이랑에 들깨 모종을 심었습니다. 호미로 땅을 파고, 모종을 넣고, 비닐안에 있는 마르지 않은 흙으로 단단히 고정을 시킨뒤, 북까지 덮어주면서 제대로 모종을 심었습니다. 많이 심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농사일을 하니 재미있었습니다. 아랫마을에서 들깨 모종을 들고 온 분들이, 뜻하지 않게 밭에서 호미들고 일하고 계신 스님을 만나자 인사를 꾸뻑하면서 정말 반가워합니다. 밭에 잘 자란 고추를 따 와서, 늦은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산행을 하고, 밭 일까지 하고 와서 먹는 늦은 점심도 꿀맛이었습니다. 필리핀에서 오신 분들은 저녁에 약속이 잡혀 있어, 스님과 오늘 하루 실컷 일만 하시다가 약속장소인 부산으로 가셨습니다. 남은 일행들은 경주 연꽃이 한창이라 아름답다고 해서 다 같이 꽃 구경을 다녀 왔습니다. nbsp 스님은 “경주에 그렇게 자주 왔어도 꽃 구경은 오늘 처음이네. 이런 걸 구경한다는 생각도 못 했던 것 같네”하시면서 안압지 부근에서 첨성대 앞 넓은 꽃밭을 지나 반월성까지 가볍게 산책을 했습니다. 연밭이 참 잘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연꽃이 지금 한창인 것 같았습니다. 쉽게 보기 어렵다는 백년도 화려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조롱박터널도 예쁘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접시꽃길도 아름다웠습니다. nbsp 산책을 마치고 늦은 저녁으로 스님께서 시원한 밀면을 사주셔서 저녁도 맛있게 먹었습니다.nbsp 참으로 오랜만에 여유있게 3끼 식사를 다 했던 하루였습니다. 하루를 돌아보니 참으로 평화로웠던 하루였네요. 스님은 해외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오늘 하루를 온전히 비워 두신 것 같았습니다. 스님과 함께 하루를 보낸 해외 활동가들도 즐거워 보였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nbsp감사했습니다. 내일은 또다시 바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경남 하동, 전남 구례, 경남 김해, 이렇게 3곳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강연 마치자마자 바로 다음 강연장으로 달려가야 할 일정이네요. 섬진강이 있는 하동과 화엄사가 있는 구례, 가야인의 도시 김해에서 내일 뵙겠습니다.

2012.07.02. 14,967 읽음 댓글 12개

6월 30일 법륜스님의 하루(대구 경북대, 울산 북콘서트)

스님은 오늘도 이른 아침 일찍 조찬 모임으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오늘은 오전에 대구에서 강연이 있고, 오후에는 울산에서 북콘서트를 하기로 한 날입니다. 바쁘게 움직였을 대구와 울산지역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이 떠올라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스님은 아침 일정 2개를 마치시고는, 차에 타시면서, 가볍게 “가자” 하십니다. 스님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깊은 잠에 빠져 들고, 차는 계속 내리는 비를 뚫고 대구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에는 다들 어디로 가는지 차량도 많고, 곳곳에 사고가 나 있기도 했습니다. 강연전에 스님의 옛 친구분들과도 만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고등학교 동기들이라 45여년 지난 후 만나니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경북대학교 대강당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건물 자체가 오래된 건물이라 로비도 넓지가 않아서, 비디오 아래 200개 의자를 준비해서 깔았는데, 그 의자에 앉을 사람도 넘쳐나 복도 바닥에 앉아서도 들었습니다. 불편한데도, 끝까지 복도에 앉거나 서서 강연을 들으셨던 분들,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nbsp 대강당과 무대, 복도가 사람으로 가득 찼습니다. 3,20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오늘은 첫 질문부터 사람들이 많이 웃었습니다. 25년을 같이 살면서 잘 지내온 남편이 본인도 모르게 4년동안이나 바람을 피웠는데, 가만히 생각만 하면 남편이 더럽고 밉다는 한 아주머니의 고민 이야기였습니다. 스님과 문답이 계속 오갔습니다. 한 발 물러서서 아주머니를 바라보니 참 재미있었습니다. 아주머니가 팽팽하게 자기 입장을 이야기하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정말 금방 누구의 문젠지,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가 보입니다.nbspnbsp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부간에 정이 많이 있어 보이네요. 그런데 남편이 바람을 피웠으니 미워지는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생각으로는 용서할 것 같은데, 마음에서는 용서가 안되는 것 같애요.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해야 돼요. 남편이 지난 4년간 바람을 피울 때는 내가 몰라서 하나도 안 괴롭고 오히려 행복했는데 지금은 바람을 안 피우는데 오히려 내가 괴롭습니다. 왜 이럴까요? 지금은 바람을 안 피우는 데 그 생각을 자꾸 하면 괴롭고 그 때는 바람을 피웠는데도 그 생각을 안 하니 안 괴로운 거예요. 내가 생각하면 괴로우니까 괴로움이 남편으로부터 와요, 나로부터 와요? 나의 생각으로부터 오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것이지 바람피는 남편과는 관계가 없어요. 남편하고 관계없는 걸 알았으면 별거를 하니, 같이 사니 따질 필요가 없잖아요?. 남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내가 편하고, 어떻게 그런 인간을 용서할 수 있나, 이렇게 접근해서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괴로워집니다. 이해하면 내가 편해지니까요. 이 이야기는 남편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에요. 남편의 문제로 보면 문제 해결점이 안 나와요.nbsp지금 내 인생을 어떻게 선택할 것이냐. 어떻게 나를 만들어 나갈 것이냐의 문제예요.” nbsp 로비는 좁고, 사람은 너무 많아, 무대 위에서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책 사인도 받고, 스마트폰으로 스님 사진도 찍었습니다. 스님이 좋아, 옆에 와서 서성거리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대구 강연을 마치고 서둘러서 울산 상공회의소로 이동했습니다. 대구 강연에 사람들이 많이 참가해서 강연시간도 좀 길어진데다, 거리에 차량이 많아 시작 시간인 7시까지 도착하지 못하고, 조금 늦었습니다. 오연호 기자님이 앞 시간을 대중들과 대화를 하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북 콘스트인데도 대학생, 청년들보다 3040대 직장인이나 가정 주부들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인생에 대한 질문없이 통일과 사회문제에 대한 질문이 집중되어 나왔습니다. 특히, 100년 위원회를 구성하자, 그리고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담당공무원을 배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들도 참신하고 새로워 보였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정말 통일이 우리 곁으로 한 발 빨리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 싶었습니다. 우리들의 시대적 과제, 통일. 300강을 마무리하는 올 연말이면nbsp대한민국 사람들 누구나 통일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통일을 대화 주제로 삼아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nbsp 스님의 강연 마지막 정리 말씀을 나눠 봅니다. “다들 내 살기 바쁘셔서 ‘통일이 뭐야?’ 라고 하시는데, 충분히 이해 됩니다. 인생에는 개인에 대한 목표가 있고, 또 공동체에 대한 목표가 있는데 그 중 공동체의 목표로는 통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개인에게는 그것이 잘 다가오지 않습니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이 시대의 과제일 때 독립운동가만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 즉 학생과 농민들이 조금씩 도와서 이루어졌던 것처럼 개인이 조금씩 도와준다면, 자손들에게도 자긍심을 심어줄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통일은 민족적인 과제인 것이죠. 통일은 일제식민지, 분단, 전쟁, 냉전 등 과거 100년이 모두 청산이 되고, 또 미래 100년의 중요한 출발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족 비전의 열쇠는 통일에 있습니다. 같이 한번 힘을 쏟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스님은 오늘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또한 민족의 시대적 과제에 대해서 진정을 다해 대중들과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뿌려 놓은 이 희망의 씨앗이, 저 500년 넘은 보리수나무보다 더 커고 푸르른 희망나무로 자라 주기를 다시 한 번 마음으로나마 기원해 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nbspnbspnbsp

2012.07.01. 15,635 읽음 댓글 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