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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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일 법륜스님의 하루(경북 영덕, 영양, 울진)

오늘은 경북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대게가 유명한 영덕에서 오전 강연이 있었고, 오후 2시 30분에는 고추가 유명한 영양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녁 7시에는 망향정이 있는 울진에서 마지막 강연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서 영덕으로 향했습니다. 4시간 가량 걸렸는데,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완연한 가을이 그대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노오란 들판 위로 안개가 피어오르고, 파란 하늘에는 비늘 구름 흘러 다니고, 파란 호수엔 산그림자 내려 앉아 우리들을 반깁니다. 우리들이 맘껏 산천을 눈요기할 때, 스님은 차에서 곤히 휴식을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푹 쉴 수 있는 장거리 여행이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nbsp 영덕에 도착하기 10분전 강연장에서 문자가 왔습니다. ‘현재 100여명 정도 왔는데, 질문자는 없습니다.’ 가을에 농촌에 강연이 많이 잡혀 있는데, 실제 농사일 하는 분들이 강연장 오시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질문자들이 없는 것도 당연한 것 같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들이 강연장에 오시는 분들을 반가이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강연이 시작되고 살펴 보니, 아저씨들은 거의 없고, 50대 중 후반, 60대 초반의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더 연세드신 분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질문을 받기 전 모두 강연을 한 시간 가량 하셨습니다. “곱게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예쁘다.”고 하시면서 늙어서 좋은 점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젊다는 것, 늙었다는 것은 어떤 것이 좋고 나쁜 것이 아니지만, 젊었을 때는 젊어서 좋고, 늙어서는 늙어서 좋은 원리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법의 이치, 삶의 이치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마음의 작용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내가 좋아집니다.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못 받아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지 않아서 불행한 것입니다. 마음의 성질이 그렇습니다. 이해 못하면 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내가 상대를 이해 못해서 그렇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이해받으려고 하지 말고 이해하세요.” nbsp 50대 후반의 아주머니들이 스님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합니다. 스님은 역시 아주머니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10분 전에 100여명이라 걱정을 하더니, 강연이 시작되고도 사람들이 꾸준히 들어오더니 250여명이 강연장을 가득 채우고 강연을 들었습니다. “영덕에 왔는데, 영덕게도 못 먹어보고 가네요.”하며 저희들끼리 아쉬움을 이야기하며 영덕에서 영양으로 떠났습니다. 하루 강연이 3개 있을 때는 주변 돌아볼 시간이 없습니다. 강연 마치면 바로 다음 강연장으로 이동하고, 차 안에서 김밥이라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일정들입니다. 영양은 고추가 많이 나는 지역입니다. 가로등마다 빨간 고추 모양이 두 개씩 달려 있습니다. 고추가 특산물임을 알리는 것 같습니다. 바다를 접하고 있는 영덕, 울진과 달리 영양은 내륙으로 들어와 있는 지역입니다. 인구도 1만 8천명으로 조그마한 군입니다. 380석의 강연장에 사람들이 얼마 안 앉아 있어서 강연장이 약간 썰렁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180명이 넘게 참가를 했으니, 인구의 1가 넘는 인원이 참가한 것입니다. 고추가 막바지라 일손이 바쁘다고 하는데, 그리고 길 양옆으로 주렁주렁 달린 사과도 수확철이라 일손이 바쁜데 많은 분들이 참가해 주신 것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영양에서 울진으로 넘어가는 길도 아름다웠습니다. 절벽을 붉게 타고 오르는 담쟁이의 향연은 탄성을 지르게 했습니다. 20년 후면 물맑고 공기좋고 먹거리 안전한 이 곳이 가장 경쟁력이 있는 곳이 될 것이라고 영양 강연에서 스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시원한 가을 공기도 좋고, 계곡의 물도 면경같이 맑고 깨끗했습니다. 울진으로 넘어가는 길은 스님께서 지도를 보고 가장 가깝게 갈 수 있는 산길을 알려 주셨는데, 아직 도로 포장이 다 되지 않아서 비포장도로로 아슬 아슬 울진으로 넘어갔습니다. “아이구, 큰 일 날 뻔 했네. 잘못 했으면 강연에도 못 갈 뻔 했네.”하시며 웃으셨습니다. 비포장도로로 재를 넘어 멀리 높은 산꼭대기 너머로 파란 바다가 보입니다. 와 바다다 꼭 바다를 처음보는 사람들처럼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강연시간보다 30분 일찍 울진에 도착해서 바닷가로 갔습니다. 배들이 파도에 흔들리고, 얕은 어둠 속에 파도는 더욱 하얗게 부딪혀 쓰러집니다. 멀리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이 수평선 너머에 환한 도시 하나가 숨은 것처럼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서서 김밥과 먹을 것들을 든든히 먹고 다시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nbsp 울진은 6만의 제법 큰 군이라서 그런지, 강연장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450명이 참가해서 강연을 들었는데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질문도 많았고, 대중들의 분위기도 밝았습니다.” “저는 23살 대학생인데 살아오면서 어려운 점이 크게 없었습니다. 학교도 잘 다니고, 친구도 잘 사귀는데, 요즘 와서 가끔 삶이 무거력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저만이 아니라 친구들도 많이 느낍니다. 친구도 많고 성격도 밝던 20대가 어느날 변사체가 되어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것이 20대의 지나가는 열병인 것인지, 다른 원인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왜 사는지는 애매합니다. 친구도 많고 재미있는 일도 많은데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람쥐나 토끼가 왜 사는지를 알고 살까요, 그냥 살까요?” “그냥 산다고 생각합니다.” “왜 사느냐를 자꾸 생각하면 종착역은 자살입니다. 왜냐면 삶에는 의미가 없으니까요.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없으니까 자살을 합니다. 삶의 의미를 묻기전에 이미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삶이 먼저 있는데 왜 사냐고 물으니까 답이 안나옵니다. 사는 것은 그냥 사는 것입니다. 삶에 대해서는 ‘왜’가 아니라 ‘어떻게’가 되어야 합니다. 어차피 사는데 즐겁게 살래요, 괴롭게 살래요? 속박받고 살래요, 자유롭게 살래요? “현대사회에서 20대들이 죽음이라는 종착역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잖습니까?” “첫째, 자기 삶에 대한 생태적 삶의 자세가 안 갖춰졌기 때문에 그렇게 갈 수 있습니다. 20살이 넘자마자, 제 먹고 사는 것을 제가 책임지고 살면 자살할 확률이 푹 떨어집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부모의 희생위에 얹혀서 살기 때문에 몸은 성인인데, 정신이 미성숙해서 생기는 부조화 때문에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20살이 넘으면 부모는 무조건 자식을 내어보내고, 20대 자신도 딱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을 지면 자살이 줄어듭니다. 삶이 생태적이지 못합니다. 그것은 토끼든, 다람쥐든 산에서 키우면 엄마에게서 독립을 하는데, 집에서 키웠다가 자연에 풀어놓으면 제대로 살지 못합니다. 자연에 있는 생명은 병이 안 들지만, 집에서 키우는 동물은 병이 듭니다. 인간이 생태적인 것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 삶을 책임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살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삶의 방식이 잘못되어서 그렇습니다. 사회구조적인 잘못입니다. 이것이 환경적 조건입니다. 둘째, 심리적 조건은 심리불안입니다. 부부지간에 싸워서 엄마가 심리가 불안한 상태에서 애를 낳아서 키웠기 때문에 자아가 불안합니다. 그래서 장애에 부딪혔을 때 못 이겨냅니다. 그래서 발병합니다.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미 대학생을 조사해 보면 13가 정신적 불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의 불안심리로 인해서 형성된 자아가 억압적인 상황에 부딪힐 때 뚫고 나가지 못하고 주저앉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삶의 환경이 야생적 태도를 가지면 자살은 굉장히 떨어집니다. 그 다음 사회적 대응은, 심리적 불안요인은 조기 치료하면 됩니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자살률이 현재의 13, 15로 떨어질 것입니다. ” 20대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의 튼튼하고 건강한 구성원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nbsp 울진 강연을 마치고 어두운 밤을 가르며 다시 서울로 향했습니다. 오늘도 하루 3강 하느라 바쁘게 다녔는데 내일은 밤 10시 30분에도 강의가 있어 4개의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바쁠 것 같습니다. 내일은 서울에서 강연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오전 10시 30분에는 성북구민회관에서, 3시에는 동대문구청에서, 7시에는 노원구민회관에서, 10시 30분에는 서일대학교 대강당에서 있습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참가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nbspnbsp

2012.10.09. 15,814 읽음 댓글 4개

10월 7일 법륜스님의 하루(통일체육축전,청주 북콘서트)

새터민들의 즐거운 하루, 통일체육축전 열려오늘은 제 10차 통일체육축전이 있었습니다. 서울 양천구에 있는 양강중학교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새터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어울려 신나게 한 판 놀았습니다. 2003년 처음 통일체육축전을 시작해서 올 해 10차를 맞이했습니다. 오랜 기근으로 굶어 죽은 부모님, 버리고 온 조상 산소, 당당히 북한에서 왔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낯선 환경에서 움츠리고 어깨를 펴지 못하는 사람들. 추석 바로 다음 일요일날, 북에서 온 사람들이 다함께 모여서 못 지낸 조상 제사도 지내고, 이 날만큼은 당당하게 “나는 북한 어디에서 왔노라.” 이야기도 하고, 신나게 한 번 놀아보자며 시작한 행사였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북한에서 짓듯이 축전이라 하고, 놀이도 북한 놀이를 많이 했습니다. 말이 통하 는 새터민들이 만나서 같이 춤도 추고, 체육 경기도 합니다. 같은 고향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하나원 동기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자원봉사자들과도 어우러져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는 공간이 만들어져 왔습니다. nbsp 새터민들은 경기를 할 때, 노래 부르고 춤 출 때 보면 정말 열정적입니다. 달리기 할 때, 아예 신발을 벗고 뛰는 분도 있고, 치마를 입고 경기에 나서기도 합니다. 온 몸으로 춤을 추고, 온 몸으로 노래를 합니다. 그 열정을 맘껏 드러내는 축전은, 그래서 뜨겁고, 그래서 즐겁고, 그래서 감동이 있습니다. 오늘은 1부 합동 차례는 배추머리 김병조씨가 사회를 봤습니다. 스님께서는 환영사를 통해, 3가지를 당부하셨습니다. “저는 3가지만 당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어떻든 행복하게 웃으며 살자. 둘째, 내가 떠나온 고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자. 여러 가지 정치적인 문제로 미움도 있고 악감정도 있겠지만 북에서 온 우리가 북을 자꾸 욕을 하면nbsp한국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 얼굴에 침 뱉는 것이다 이런 얘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북쪽 고향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셋째, 여기서 정착해서 잘 사는 것도 좋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우리가 키우자. 그럴려면 빨리 통일이 되어야 됩니다. 그 전에 평화가 와야해요. 자꾸 악감정으로 싸우면 평화도 안 오고 통일도 안 와요. 그러니까 지난 감정을 우리가 좀 묻어두고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으로 신속하게 통일을 해서 우리가 가진 재능들을 고향을 아름답게 가꾸고 고향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자. 그래서 고향에 두고 온 어렵게 사는 친구들에게 내가 희망이 되어주자. 빨리 가서 그들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그런 삶을 살자. 그런 원을 여러분들이 세우시기 바랍니다.” nbsp 그리고, 지난 2년동안 새터민 자녀들을 위한 희망 배움터 ‘사랑이 있는 아이들의 숲’을 지원해준 배우 신민아씨가 드라마 촬영으로 바쁜 일정 중에도 잠시 참가해서 감사 인사말을 했습니다. 신민아씨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고운 것 같습니다. nbsp 운동장 위에서 팔랑이는 만국기, 서로를 응원하는 고함소리, 땀범벅이 된 얼굴들, 역시 남남북녀를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운 공연단원들. 통일 연습이 이 작은 공간에서부터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얼른 통일이 되기를, 남북한 동포가 한 데 어우러져 쾡과리 소리에 따라 덩실덩실 춤 출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청주에서 새로운 100년 북콘서트 열려축전을 마치고 청주로 향했습니다. 고인쇄박물관에서 새로운 100년 북콘서트가 있었습니다. 오연호 대표님과 오늘도 같이 호흡을 맞추며 콘서트가 진행되었습니다. 질문을 한 사람이 많았는데, 충북대, 청주교대, 한국교원대 등 대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연세드신 어르신들도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스님과 젊은이들의 진지한 대화를 들으며 이렇게 희망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졌습니다. 오연호 대표님의 질문들, 강연 참가자들의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들으면서, 발상의 전환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또한, 질문에 대한 답변 하나 하나를nbsp이 글을 읽는 분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기도 했습니다. 한정된 공간이 아쉽습니다. 간명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그래서 그냥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명쾌한 스님 말씀 중 일부를 전합니다. nbsp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은 북한과의 통일이 꺼려지는데... 오연호 님 통일은 해야 하는데, 통일의 상대인 북한은 3대 세습, 인권유린,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과 같은 부정적으로 보이는 요인들이 많습니다. 법륜스님 어떤 사물을 볼 때 어떤 측면에서 볼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똥이 방에 있으면 오물이고, 밭에 있으면 거름이 됩니다. 그러나 똥은 똥입니다. 이것이 똥 철학입니다. 이것이 존재의 참모습입니다. 똥은 공합니다. 공하다는 것은 오물도 아니고 거름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오물이고 또 이렇게 보면 거름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이 정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일체유심조라 합니다. 북한은 북한입니다. 이것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독재를 한다, 인권침해를 한다, 굶어 죽는다, 이것은 오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통일을 하려면 북한을 껴안아야 되지요? 북한이 나쁜 점이 많다는 것은 통일하기 쉽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히려 북한체제의 여러 문제들 때문에 우리가 조금만 잘하면 북한 민심이 남한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물을 거름으로 볼 것이냐, 오물로 볼 것이냐의 차이입니다. 2천만 동포를 먹여 살려야 한다고 보면 엄청난 손실이지만, 2천만의 값싼 노동력이 있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이익입니다. 북한이 어려움에 처해졌기 때문에 남한 중심의 통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조금만 아량과 포용을 베풀면 통일을 용이하게 할 수 있습니다. 불리한 것을 고쳐서 유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 보면 불리하다고 생각한 것이 훨신 유리한 부분이 됩니다. 이런 것을 통찰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nbsp 미군정, 실용적 입장에서 친일파 다시 등용 참가자 질문 우리 역사를 보면서 제일 한탄스러운 것이 친일파입니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않아서, 친일파 자손은 잘 살고, 독립운동가 자손은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청산하지 않은 과거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요? 법륜스님 교사, 의사, 판사, 행정공무원 등은 일제시대 지배 질서에 참여하면서 혜택을 받았어요.nbsp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탄압을 받고 핍박을 받았잖아요. 독립이 되었어요. 친일파는 매국노로 탄압을 받게 되었고, 독립운동가는 나라를 지킨 사람으로 칭송을 받았어요. 그런데 분단이 되고 미군정이 남한에 들어왔습니다. 미군의 입장에서는 통치를 하고 치안을 유지하려면 경찰이, 학교 운영할려면 교사가, 행정을 운영하려면 행정공무원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것은 해 본 사람이 잘 하죠? 그러니까 실용적인 입장에서 일제시대 때 해본 사람들을 받아들여서 하겠죠? 거기서부터 복잡해진 거예요. 미국사람에게는 실용적으로 이 사람이 기술이 있으냐, 없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해방되자마자 이제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엎드려 있던 친일한 사람들이 도로 등용이 되면서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해방된 나라에서 친일파를 청산하지 않고, 다시 등용하니까 거기에 저항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친일 청산이 제대로 안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비해 북한은 비교적 친일청산이 된 편입니다.nbspnbsp 남한 국민, 끊임없는 저항으로 민주 정부 만들어 우리는 친일청산이 안 되어서 국민이 정부에 저항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계속 저항을 하면서 현재와 같이 민주 정부를 구성해 온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저항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국민이 주인이 된 민주사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북한은 친일파를 청산함으로해서 초기에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았습니다. 정부가 국민의 지지를 받으니까, 주민들은 정부에 복종을 한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가면서 정부가 독재를 해도 저항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지금 상황에서 보면 북한은 남쪽보다 더 비민주적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과거는 나빴지만 지금은 개선된 것이고, 북한은 출발은 좋았지만 지금은 나빠진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 모두를 사실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친일 후손도 대한민국의 국민, 차별받아서는 안 돼 그러고 보면 일제 청산이 안 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청산의 과제가 남아 있었기에 그 과제를 청산함으로 해서 우리는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nbsp그러나 아직도 말끔히 청산이 되지 못하고 청산의 과제가 많이 남아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일제 친일한 사람의 후손도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어 있죠? 그 때 친일했던 사람들은 거의 다 죽었잖아요? 과거 친일한 사람에 대해서는 친일했다고 기록하되,nbsp그들 중 일부가 국가 건설에 기술적으로 기여를 한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과거의 잘못을 규명은 하되 역사의 화해는 해야 합니다. 즉 규명도 하고, 화해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규명은 안하고 화해를 하면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되고, 규명을 하고 화해를 안 하면, 국론이 분열되어 국민 통합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또 친일의 후손이라고 차별하면 이등국민이 생기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지금 북한이 그렇습니다.nbsp이런 것들을 정확히 인식을 해서 청산은 하되 화해를 해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조상의 전역 때문에 누구도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나가야 대한민국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국민이 하나로 통합된다고 생각합니다. nbsp 많은 질문과 명쾌한 답변이 많았지만, 다 나눌 수는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다음 북콘서튼 10월 25일 대전 카이스트 대강당에서 있습니다. 사회문제, 통일문제에 대해서 시원한 스님의 해법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nbspnbsp 내일 경북 영덕, 영월, 울주에서 강연 내일은 경북 영덕, 영양, 울진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은 경북의 날이네요. 하루 3강연을 하려면 강연하고 이동하고, 강연하고 이동하며서 바쁘게 움직여야 하겠네요. 내일 영덕에서 뵙겠습니다.

2012.10.08. 16,211 읽음 댓글 5개

10월 5일 법륜스님의 하루(강원도 철원, 경기도 양주)

오늘은 가을 100강 중 17강, 18강이 있는 날입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20강이 다 되어 갑니다. 이렇게 쉴 새 없이 다니다보면 어느새 300강의 피날레를 장식하게 될 것 같습니다. 오전에는 강원도 철원군, 오후에는 경기도 양주시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철원으로 가는 길에 벼가 노랗게 익어서 추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윗 쪽 지방은 추수가 빨라서 지금이 한창 바쁜 철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또 철원 장날이라, 강연 참가자가 적을 것 같아서 철원 희망지기가 걱정이 많았는데 360명이나 참여를 해줘서 참 고맙다며 인사를 합니다. 첫 질문은 약간 연세드신 아저씨가 스님의 금강경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하면 공과 연기, 실상, 무아를 총괄해서 이해할 수 있는 지 물었습니다. “똥이 방에 있으면 오물이고, 밭에 있으면 거름입니다. 사실 똥은 거름이기도 하고 오물이기도 한 것이 아니라 똥은 똥일 뿐입니다. 철학적인 용어로 이야기하면 똥을 똥인 줄 아는 것을 실상이다, 공이다라고 합니다. 똥이 공하다 할 때 공은 거름도 아니고 오물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똥은 때로는 오물이라고 불리고 때로는 거름이라 불립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이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일체유심조라 합니다.”하면서 여러 가지 예를 들면서 쉽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시어머니가 교회에 다니라고 강요를 하는데 좋게 거절하는 방법에 대해서 묻는 며느리에게는 “첫째, 성경의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줘라.”“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벗어줘라.”는 말씀처럼 첫째 해결책은 시어머니가 교회 가자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가버리면 이 문제는 해결이 됩니다. 그러면 이런 것은 교회 가냐 안 가냐의 문제를 넘어서 수행이라고 합니다. 시어머니에게 억지로 끌려 가면 시어머니에게 멱살 잡혀 가는 꼴이 되지만 내가 먼저 가버리면 시어머니에게 끌려 다니지 않습니다. 교회 안 가는것만 자유가 아니라 교회 가는 것도 자윱니다.” 스님의 뜻밖의 답변에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합니다. 이어서 스님께서 대한민국은 신앙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며 두 번째, 세 번째 방법에 대해서도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거짓말을 자주 하고 가르치려고 들어서 밉고 사이가 안 좋다는 여자분의 질문에, “그 가까운 사람이 남편이지요?” 하고 스님이 묻자, 여자분이 “예 ”하고 답을 합니다, “그냥 툭 터넣고 이야기하세요.” 하자 또 사람들이 까르르 웃으며 넘어갑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은 내가 남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고, 상대가 거짓말 하는 것을 보고 내가 싫다고 해도 상대가 안 고치면 그만이잖아요. 저 사람은 말에 뭔가 풍이 있구나 하며, 거짓말하는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내가 편하고, 따지면 내가 괴롭습니다. 남편을 고칠 능력이 있어요? 없죠? 지금까지 남편과 살아온 것을 보면 남편 거짓말이 소소하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 정도는 용인하고 사세요. 미움이 생기면 내가 괴롭잖아요? 미워하면 결국 내 손해입니다.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가꿔 나가세요.”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고 자원봉사자들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철원에는 기존 인연이 많지 않아서 이 곳 저 곳에서 지원을 한 것 같습니다. 다들 수고많으셨습니다. 철원 강연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재단에서 일상 업무를 보신 후, 5시에 양주로 향해서 출발했습니다. 스님이 서울에 계실 때는 잠시의 틈도 없습니다. 분과 초를 다투어 생활을 하십니다. 지역 다니는 일정도 만만치 않은데 서울에 오면 더 만만치 않은 일정이 스님을 기다립니다. 특히, 오늘부터는 대만에서 오신 손님들이 있어서 손님들도 함께 동행을 해서 다닙니다. 스님은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손님들과 같은 차를 타고, 차안에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재단에서 양주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가 아닌데다가, 저녁 퇴근시간까지 겹쳐서 길이 많이 막혔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5분가량 늦어서 강연은 큰 차질없이 진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양주는 강연을 시작하는 첫 환영영상이 나올 때부터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습니다. 강연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중간 중간 스님의 말씀에 웃음이 터지고, 관객석 중간에서 스님 말씀에 추임새처럼 답변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뭐가 즐거운지 내내 웃으면서 강연을 듣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양주는 특히 남자분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직업 군인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분은 질문을 시작할 때, 마칠 때 큰 소리로 거수 경례를 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올 해 나이 55세라는 분은 열심히 살아왔는데 아직 처자를 만나지 못해서 고견을 듣고 싶다고 했고,nbsp스님이 성불하셨는지 알고 싶다는 연세드신 남자분도 있었습니다. 아내와 이혼하고 괴로워할 때 스님 말씀을 접하게 되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는 남자분은 아이들을 자신이 키우고 있는데 폭력적인 큰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질문을 했습니다. nbsp 그리고, 의정부 교도소에 근무하는 교도관이라고 밝힌 남자분은 갈수록 흉악해지는 범죄자들을 매일 접하면서 왜 우리나라는 사형제도가 있으면서 사형을 시키지 않는지, 흉악범은 처벌을 더 해야 하지 않나? 이제는 제소자들 교화에 회의가 든다며nbsp목소리에 감정이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스님의 답변 과정에도 댓구를 하며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교도관 생활에 지친 느낌이었습니다. 철원 강연에서도 아이 둘을 가진 엄마가 요즘의 묻지마 범죄 때문에, 특히 딸을 가진 엄마로서 성폭행범들 때문에 불안하다며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스님께서 인권이 무엇인지, 인도주의가 어떻게 자리잡아왔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특히 어린이 성범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결을 해 나가야 하는지, 죄형법정주의에 대해서, 사형제도에 대한 선진국들의 추세에 대해서,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들어서 하나 하나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아무리 나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가 있다는 말씀은 참 감동적이었습니다.nbsp처음 목소리에 화도 묻어있고 감정이 격해서 질문하던 교도관 님은 스님 말씀 중간 중간에도 불쑥 불쑥 튀어나와 스님 의견에 대해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었는데, 마지막에는 감정이 싹 가신 편안한 목소리로, “가르침, 감사합니다.”하며 스님께 공손히 인사를 했습니다. nbsp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는데, 스마트폰 부대가 스님 앞에 쫙 서서 사진을 찍어댑니다. 그런 정도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단체 사진을 찍는다고 스님께서 자원봉사자들 사이에 앉았는데도nbsp스마트폰 부대는 떠나지 않고 스님 사진을 찍어댑니다. 가는 지역마다 이런 저런 특색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양주 강연을 마치고, 스님은 다시 재단으로 가셨습니다. 아마 오늘도 스님은 늦은 밤까지 주무시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내일은 스님께서 중국에 가시는 날입니다. 그래서 내일 스님의 하루는 쉬겠습니다. 일요일은 북한동포들과 함께하는 통일체육축전이 있는 날입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청주에서 북콘서트가 있습니다. 일요일 뵙겠습니다. nbsp

2012.10.06. 17,145 읽음 댓글 2개

10월 4일 법륜스님의 하루(전남 강진, 장흥)

오전 6시경 울산 두북에서 전남 강진으로 출발했습니다. 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싸간 도시락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10시경 강진에 도착했습니다. 강연전에 강진군수님과 간단한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강진은 태풍 볼라벤으로 인해 피해가 심각하다고 했습니다. 요즘 농촌으로 가면 태풍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와 정부 지원금, 보험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앞으로 농촌 정책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싶었습니다. 인구 4만의 강진은 도자기가 특산품이라며 군수님께서 스님께 다기 세트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먼 남도의 강진까지 스님이 오신 것에 대해서 감사해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350명이 참가했는데, 이 좋은 행사에 군민이 많이 참가하지 못했다며 내년 3월에 다시 강진군에 와서 전체 군민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꼭 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습니다. nbsp 강진에서는 “저는 강진 사람입니다.”하면서 첫 질문을 시작해서 많이 웃었는데, 강진에서는 외지인보다 강진 사람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큰 며느리와 종교적인 갈등으로 7년째 안 보고 있어 손자들도 보고싶은데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묻는 아주머니, 열등감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열등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는지 묻는 젊은 남자, 암에 걸린 여동생의 시댁과의 관계의 어려움에 대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묻는 언니, 공부해야 할 시긴데 공부가 하기 싫다는 남자 고등학생, 산소에 손을 대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하는데, 맞는 말인지 묻는 여자분. 여러 가지의 많은 고민들과 갈등들로 사람들이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의 답변으로 여태껏 가지고 있던 어려움이 해결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nbsp 강연을 마치자 마자 바로 장흥으로 이동했습니다. 장흥이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강진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장흥이 있었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장흥 체육공원 정자에서 마련해준 김밥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여유있게 장흥 강연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장흥은 강연장 입구부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자원봉사자만이 아니라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군수님이 오시니 스님과 약속이 있는 접견실에 우루루 같이 들어 왔습니다. 군수님, 교육장님, 군의회 의장님, 문화원장님 등 장흥지역 유지분들은 다 참석을 하였습니다. 스님 강연이 장흥군의 큰 행사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장흥은 강진보다 1200명 정도 인구가 많아 4만 2천명정도 된다고 하는데 강연장에는 450명의 대중들이 참가해서, 밝고 활기찬 느낌으로 강연 진행되었습니다. nbsp 강연장에 들어가서 스님께서 대중들에게 인사를 하니, 큰 박수가 쏟아집니다. 장흥에는 광주 등에서 원정 질문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여러 질문 중, 연세드신 할머니 한 분이 올 해 76세인 할아버지의 우울증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노인 우울증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가까이 아는 할아버지가 우울증으로 얼마전 병원에 입원한 일도 있어서, 저도 스님의 답변을 귀 기울여 듣게 되더라구요. “제가요 나이가 많은데 바깥 양반이 우울증을 앓은지가 20년이 되었어요. 항상 마음이 불안해 지고, 바깥양반이 어디에 가시면 오늘은 무슨 일이 없을까? 불안해집니다. 옆에서 어떻게 해줘야 덜 불안해 할까요?” “남편이 우울증 환자라고 했죠? 불안해하는 것이 병이라고 했잖아요. 그것을 보고 나도 같이 불안해 하는 것이 나아요? 아니면 남편 혼자 불안해 하는 것이 나아요? 둘 다 불안해 하는 것보다는 한 사람만 불안해 하는 것이 낫겠죠? 자꾸 남편을 정상적인 사람으로 요구하니까 불안한 것예요. 남편이 다리 하나가 부러졌다 했을 때nbsp옆에서 안스러워 하는 것이 다리 부러진데 도움이 되요? 다리가 부러진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우울증 환자의 상태로 약을 먹으면서 좀 나아지기도 하고 그런 거예요. 자꾸 두려워하면 질문자도 늘 우울증 환자처럼 불안해 하게 됩니다. 올 해 연세가 76세이면 사고가 나더라도 단명할 수준은 넘어섰잖아요? 이제 생긴대로 살 게 놔 두세요. 이제 자기 인생 사세요. 길에 넘어지면 모시고 오면 되고, 돌아가시면 장례 치뤄 주면 됩니다. 이제부터는 남편이 우울하든 병이 나든 걱정하지 마세요. 살만큼 살았다 생각하세요. 그리고 내가 건강해야 혹시 남편이 병원에 입원하더라도 간호할 수 있잖아요. 부처님 감사합니다. 우리 남편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이래라, 저래라 요구하면 안 됩니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nbspnbsp 질문하신 할머니가 고개를 연신 끄덕끄덕 하십니다. 할머니의 불안함이 기도하면서 없어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nbsp 장흥에서 강연을 마친 후, 광주로 달려 갔습니다. 광주에서 몇 몇 분들과 잠시 얼굴을 보고는 바로 약속이 있는 서울로 이동했습니다. 바쁘게 오느라 휴게소 들를 시간도 없이 총알택시처럼 서울로 이동했습니다. 내일 오전은 강원도 철원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오후에는 양주에서 저녁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nbsp nbsp

2012.10.05. 15,028 읽음 댓글 3개

10월 3일 법륜스님의 하루(부산 KBS 대강연)

오늘은 오전 강연이 없고, 오후에 부산KBS공개홀에서 대강연이 있습니다. 어젯밤 전북 부안에서 울산 두북까지 오느라 늦은 밤에 도착해서 이리저리 뒷정리하다보니 평소 일어날 시간에야 다들 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전에는 휴식도 하고 빨래도 하며 개인 정비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의 휴식은 저희들처럼 푹 퍼져서 실컷 잠을 잔다거나 비디오나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산책을 하면서 산이나 길을 걷거나 밭에서 일을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스님은 일찍 일어나셔서 마당에 있는 잡초 제거 작업을 하셨습니다. “이제 풀이 더 자라지는 않을테지만, 풀에 씨가 맺혀 있어서 씨가 떨어지기 전에 이 풀을 뽑아줘야 돼.” 하시면서 씨앗이 맺힌 풀들을 뽑으십니다. 스님은 일을 하고 계시고,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는 이유로 저희들은 쉬었습니다. 스님께서 작은 텃밭에서 아침 찬거리로 준비하신 상추, 풋고추, 가지, 호박잎 등으로 아침겸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부산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이동하는 차안에서 잠시 휴식을 하셨습니다. 부산KBS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무리지어서 공개홀로 들어갑니다. 오늘도 사람이 많겠구나 싶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아직 30분 전인데도 1층은 모두 차고 2, 3층도 반 이상 사람들이 앉았습니다. 화이트 폭스의 사전 공연이 장내를 흔들어 놓습니다. 사람들이 같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합니다. nbsp 화이트 폭스는 스님의 KBS강연 때마다 와서 재능기부를 해 주고 있습니다. 화이트 폭스의 최고 언니인 노유정씨가 서점에서 ‘스님의 주례사’를 읽은 것이 인연이 되어, 스님이 가는 곳이면 마다않고 재능기부를 해 주고 있습니다. “‘스님의 주례사’를 읽고 제가 해운대정토회로 찾아갔었죠. 스님을 뵙고 너무 행복했어요. 북한어린이돕기 5월 캠페인에도 매년 재능기부를 하고 있어요. 벌써 4회가 지났어요. 여기와서 재능기부가 뭔지도 알게 되었죠.” 진하게 화장을 하고 짧은 치마와 푹 파진 옷을 입은 화이트 폭스 멤버들이 처음 정토회 행사에서 공연을 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발랄하고 신난 공연 중에도 스님에 대한 존경심이 그대로 느껴지는데, 그래도 그 옷 차림새와 춤이 익숙하지 않아 약간의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면서 빙그레 웃음이 나옵니다. 벌써 인연이 5년이나 된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무대 뒤에서 화이트 폭스 공연을 한참 바라보시다가, 공연이 끝나고 나온 멤버들을 격려해 주시고 함께 사진도 한 컷 찍었습니다. nbsp 사전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 질문이 15개, 도저히 남편 때문에 질문을 할 수 없어서 서면 질문을 한다는 한 분까지 질문이 16개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다 답변을 하시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3시, 강연을 시작할 시간입니다. 1, 2, 3층에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 1층 양옆에 깐 임시의자에도 사람들이 다 앉고 무대앞 바닥에도 사람들로 가득찼습니다. 좌석이 2880석인데 4000명이 참가했습니다. 스님이 무대로 나오니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스님을 맞이합니다. nbsp 오늘도 다양한 인생사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인생의 이런 그림, 저런 그림들이 스님을 향해 좀 봐 달라고, 어떻게든 어려움을 좀 해결해달라고nbsp아우성을 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스님은 빙긋이 웃으시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들을 정성껏 맞이해 주셨습니다. 첫 질문을 하신 아주머니는 남편과의 갈등으로 이혼을 한 뒤 그 억울함과 아이들 문제로 자기의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이야기하는 도중에 당신 스스로 설움에 북받쳐서 울먹이면서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다시 아주머니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합니다. 스님과 아주머니 사이에 여러 차례 문답이 오고 갑니다. 그러다가 “자, 봐요. 특별히 억울할 것도 없는데, 뭐가 그리 억울해요?” 하고 시원하게 한 마디 탁 던지시는 스님. 분명히 아주머니 사연을 들을 때는 마음이 아파서 같이 눈시울도 약간 붉어졌었는데, 스님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뭔가 시원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구렁텅이에서 헤매다가 쑥 빠져 나온 느낌이 듭니다. “자꾸 옛날 생각하면서 고통스럽게 살겠어요? 아니면 희망이 있는 새로운 길로 가겠어요?” “자, 그러면 앞으로 바보같은 짓 하지 않겠다는 증표로 노래 한 곡 해 보세요. 확실히 풀어 버려요.nbsp신나는 노래 한 곡 해 봐요.” 아주머니는 노래 못 한다고 망설이다가, 스님의 재촉에 “낮에도 좋아, 밤에도 좋아, 언제라도 달려갈게...”하며 ‘무조건’이라는 노래를 중간부터 불렀습니다. 4000명의 대중들이 박수를 치면서 같이 노래를 불러주고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처음 질문할 때와는 완전 다른 분위기로 반전이 되었습니다. “아이고. 노래 가사를 들어보니 남편에 대한 정을 반밖에 못 끊겠다. 그래서 되겠어요?” 강연장이 와하면서 다시 한 번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질문자의 눈 앞에 가려져 있는 꺼풀 하나를 벗겨 주시고는, 자, 눈을 뜨고 세상을 봐라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깊은 속내까지 드러내며 질문을 했습니다. 역시 구체적인 질문은 대중들과도 공감이 쉽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추상적인 질문이 나오면, 대중들은 쉬 지루해하고, 빨리 마치고 다음 질문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질문이 많아서 6시까지 강연을 했는데도 사람들의 질문을 다 받지는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이제는 스님께 깊이있는 자기 문제를 드러내놓고 상담을 합니다. 그만큼 스님에 대한 믿음, 신뢰가 쌓여 있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4000명이 있다하더라도,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큰 바램으로 질문을 하게 되면 그만큼 많은 도움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질문을 해 주신 많은 분들로 인해, 가만 듣고 있었던 사람들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한 일상생활 속의 어려움을 풀어나가는데 많은 도움을 얻었을 것입니다. 강연을 마치자 한바탕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스님의 사인하는 장소에는 책을 산 사람들이 사인을 받기 위해 몇 겹으로 길다랗게 줄을 서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들이 스님 앞쪽에서 장사진을 이루며 사진을 찍습니다. “스님은 꼬박 3시간이나 서서 강연을 하셨는데, 마치고 나서도 저 많은 사람들 사인해 주느라 또 손까지 고생을 시키네. 어짜노?” 강연장을 나가던 분이 스님 모습이 안타까운 듯 한 마디 던지고 갑니다. nbsp 강연 후에는 오랜 지인인 부산대학교 대학원장 황한식 교수님과 만나 1시간 가량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교수님은 평생 지방 분권에 대한 연구를 하셨고, 스님은 통일에 대한 연구를 하셨는데 통일과 분권에 대한 주제로 세미나를 한 번 열기로 하였습니다. 교수님과 헤어져 다시 두북으로 들어와 한참이나 늦은 저녁식사를 했습니다.nbspnbsp 내일은 전남 강진과 장흥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은 전라남도의 날이네요. 내일 뵙겠습니다. nbsp

2012.10.04. 15,864 읽음 댓글 8개

10월 2일 법륜스님의 하루(남원, 부안)

추석 연휴가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님의 희망세상 만들기 강연도 다시 시작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남원과 부안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아침 제주도에서 광주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셨습니다. 저희는 제주도에서 12시 쾌속선을 타고 완도로 와서, 부안 강연부터 참가를 했습니다. 남원 강연은 참가했던 분의 이야기를 옮겨서 적습니다. 오전 남원 강연은 남원시청에서 진행을 했는데, 340석인데 525명이 참가해서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강연장 내부에 다 앉지 못하고 로비에도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58세의 공무원인 남편이 따로 떨어져 살면서 바람이 났는데 이혼을 하려니 경제적으로 자립이 어렵고, 남편 연금도 분할이 안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 묻는 아주머니, 존중과 인재를 화두로 삼고 있는데 스님이 보시는 존중과 인재는 어떤 것인지 묻는 남자분. 용성스님이 남원 출신인데, 많은 업적을 남긴 스님이 출가하셨던 덕밀암을 복원하는 것이 불교계에서 해야 할 일인 것 같다며 건의한다는 한 시민, 결혼 23년째인데도 자기는 남편만 보면 가슴이 울렁거리는 뜨거운 사랑을 하고 있는데 남편은 자기 취미생활을 하며 나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 같다, 남편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며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묻는 여자분, 사람이 뭘 위해 사는지 모르겠다는 젊은 청년 등 질문이 많았고, 대중들도 박수를 치며 스님 강연에 함께 참가를 했습니다. 강연 후 현장에서 강연을 들은 시장님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강연장을 찾아주신 도법스님과 오랜만에 김밥 대신 제대로 갖추어진 점심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광한루에서 남원의 유지분들과 덕밀암 복원 문제 등 남원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 1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남원이 고향이신 용성스님에 대한 남원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서 스님도 놀랐다고 하셨습니다. 부안의 가장 큰 현안은 새만금 간척사업이므로 새만금 간척지를 잠깐 둘러 보았습니다. 강연 시간 때문에 전체를 다 보지는 못하고, 중간쯤에서 다시 돌아와 부안으로 향했습니다. 저희들은 부안군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부안으로 들어오는 길 양옆에 코스모스가 아름답게 피어서 절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와, 스님 보시면 좋아하시겠다.” 하고 차에 탄 사람들끼리 입을 모았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시고, 부안문화예술회관 안으로 들어서자, 부안군수님이 나와서 인사를 하십니다. 곧이어 군의회 의장님도 오셨습니다. 이번 태풍으로 낙과 피해가 많았다고 합니다. 구수한 군수님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뒤에 자리가 조금 비어 있었는데, 계속 사람들이 들어 왔습니다. 인구 6만의 부안군에 500명이 참가해서 재미있고 유익한 강연시간을 보냈습니다. nbsp 보통 군단위로 내려가면 질문이 많이 없거나 있어도 남자들이 추상적인 질문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오늘 부안의 분위기는 어떨까 살짝 기대도 해 보았습니다. 인생이 외롭다는 젊은 남자를 시작으로 강연이 끝날 때까지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그 중, 사회에 공헌하고 싶어 검사가 되고 싶은데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묻는 15살 남학생의 답변을 간단히 올려 봅니다. “앞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는 창조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지난 100년간 우리는 서양문명을 모방하면서 발전해 왔기 때문에 모든 교육이 서양을 따라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문명 수준이 서구에 거의 근접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따라 배울 데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이제 우리 스스로가 해결해야 하고, 오히려 우리가 창조한 기술을 서구 사람들에게 수출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어떤 분야든 어떤 분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 분야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창조성이 있는 사람 사람을 원합니다. 창조성이 일어나려면 그 분야에 굉장히 집중적인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집중적인 노력이 가능하려면 자기가 그것을 정말 좋아해야 합니다. 좋아한다는 것은 자발적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발적으로 그 분야에 집중해서 노력하면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육성하려면 부모는 시키는대로 하는 아이를 만들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장기를 잘 살려줘야 합니다. 창조를 할 때는 100개를 시도해도 1개를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도전과 실패, 재도전이 계속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안전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자녀들이 도전하고 실패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의 돌봄이 아이에게 큰 공덕이 되는데, 커서 부모의 자식에 대한 간섭은 창조성을 망가뜨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미래 창조성이 있는 인재를 양성하려면 도전하고 실패하고 재도전할 수 있도록 부모가 지켜봐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스님 하신 말씀을 옮겨 적다보면, 소소한 한 말씀까지도 버릴 것이 없어서, 다시 옮겨 적고, 다시 옮겨 적다보면 어느새 긴 글이 되어 있기가 일쑵니다. 한 말씀, 한 말씀이 소중한 삶의 지침들인 까닭입니다. 오늘은 추석 연휴 바로 뒷날이라 힘들었을텐데도 열심히 강연을 준비해 주신 자원봉사자님들께 감사말씀드립니다. 강연장에서 만난 봉사자 한 분은 “시댁, 친정 갔다 와서 오늘 행사 준비까지 하려니 눈이 빨개.” 하면서 보조개를 보이며 티없이 웃어 주었습니다. “나도 제주도 강정마을 잔치 가고 싶었는데, 며느리다 보니 제사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네요. 수고 많았습니다.”하면서 오히려 격려를 해 주십니다. 이런 한 분 한 분의 자원봉사자들이 있어서 희망세상만들기 300강연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nbsp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 단체사진까지 찍고 나오니 입구에서 강연을 다 들은 군수님께서 스님 배웅을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스님께서 군수님께 감사함의 인사를 드리고, 같이 사진도 한 장 찍었습니다. 그런 후, 가사장삼도 벗지 않으시고 얼른 차에 타십니다. 스님으로 인해 군수님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쓸 것 같아, “자, 빨리 나가자.”하시며, 얼른 자리를 비웁니다. 어두운 고속도로를 한참 달려서 늦은 시간에 두북에 도착했습니다.nbspnbsp 내일은 오후 3시에 부산KBS 대강연이 있습니다. 오전 강연이 없어서 조금 여유로운 날이 될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2.10.03. 14,951 읽음 댓글 1개

10월 1일 법륜스님이 하루(제주 강정마을 한가위 큰잔치)

추석 잘 보내셨나요? 올 해는 달도 휘영청 밝게 떠서,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춰주었습니다. 오늘은 한가위 강정마을 큰잔치가 있었습니다. 행사 준비를 위해서 평화재단 실무자들은 지난 금요일 배편으로 제주도에 도착해서, 한 팀은 토요일날 오후, 강정마을 집집마다 이번 행사 선물인 장우산을 돌렸습니다. 한 분 한 분께 인사를 드리고, 행사 참여도 요청했습니다. 직접 한 집 한 집 돌아보면서, 소수이기는 하지만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분들을 만나고, 또 반대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감정의 골이 상당히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추석날인 어제는 오전에는 4.3 평화공원에 다녀왔습니다. 가슴아픈 4.3 제주 민주항쟁을 보면서 실무자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3만여명의 죽은 자들은 말이 없지만, 이 나라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들이 남긴 역사의 과제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오후에는 강정마을 큰잔치 사전 준비를 했습니다. 행사장에 만국기를 달고, 음향기기를 들여놓고, 무대설치를 도왔습니다. 식사팀들은 강정마을 부녀회 회원들과 함께 내일 먹을 국수 고명을 준비하고, 그릇을 미리 챙겼습니다. 그리고,저녁 식사 후에는 스님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스님은 이틀동안 내내 금강경 원고를 보셨습니다. 원고 수정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새벽 기도를 마치고, 일찍 밥을 먹은 후 강정마을로 향했습니다.두 팀으로 나눠서, 강정의례회관에서 음식 준비를 하는 팀과 행사장 팀으로 나눠서 준비를 했습니다. 이번 행사 음식은 강정마을 부녀회에서 수고를 많이 해 주셨습니다. 점심으로는 국수와 돼지고기, 김치와 양파절임, 떡과 포도, 사과와 막걸리가 나가고, 행사 마칠 때쯤에는 돼지고기와 도토리묵, 바나나, 귤과 함께 막걸리를 준비했습니다. 부녀회에서도 함께 음식 배식할 준비를 해 주셨습니다. 10시 40분경부터 마을 어르신들이 오시기 시작했습니다. 스님도 일찍 오셔서 일하는 분들에게 수고한다며 인사를 하시고, 일찍 오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인사를 드렸습니다. 문정현 신부님과도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nbsp 제주 정토회에선 20여명이나 와서 하루종일 일을 실컷 했습니다. 스님이 같은 공간에 있어서 좋아서 그런지 밝은 모습으로 설거지, 배식, 음식 준비, 주변 정리까지 해 주셨습니다. 참 든든했습니다. 스님께서 감사의 뜻을 전하며 제주정토회 회원분들과 사진 한 컷 찍었습니다. nbsp 오늘 행사는 3부까지 진행이 되었습니다. 1부는 ‘나눔과 공감의 장’으로 강동균 마을 회장님 인사말, 인명진 목사님, 김홍신 작가님의 격려사,nbsp법륜스님의 ‘위로와 화합의 말씀’, 강정마을 주민 이야기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2부는 ‘화합의 문화마당Ⅰ’으로 제주도말로 노래하는 뚜럼브라더스의 공연, 김제동 토크콘서트, 제주민요패 소리왓 마당극, 김미린씨의 노래로 이어졌고, 3부는 ‘화합의 문화마당Ⅱ’로 마을 주민장기자랑으로 진행되었습니다. nbsp 행사를 마칠 때까지 햇살 뜨거운 축구장에 앉아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주민들과 함께 하던 스님의 모습도 주민들에게 인상깊게 다가간 것 같습니다. 인명진 목사님, 김홍신 작가님, 정동영 전의원님, 이강래 전의원님이 어려운 걸음을 해 주셨습니다. nbsp 김제동씨는 토크콘서트를 통해 힘들었던 강정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즐거움을 선물했습니다. 사람들이 참 좋아했습니다. 김제동씨도 재능기부를 해 주셨습니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nbsp 오늘 하늘은 참으로 맑고 아름다웠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강정마을에 조용히 울려퍼진 스님의 말씀은 여태껏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했고, 강한 여운을 남긴 것 같습니다. “야당이고 시민단체고 다 해군기지 반대만 이야기했지, 오늘 스님처럼 말씀하시는 분은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오늘 스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희망이 생기는 것 같고, 방향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꼭 스님이 중재를 해 주십시오. ” “그동안 주민들이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찬성과 반대를 떠나, 오늘 하루 맘놓고 실컷 놀아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참으로 감사합니다.” “마을행사에 주민이 이 정도로 모이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행사에 한 번도 참가하지 않던 마을 사람들도 오늘 여러 명 왔다갔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경쾌한 쾡과리 소리 울려 퍼지고, 술 한 잔 거나해진 어르신들의 어깨가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이번 잔치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화합을 위한 하나의 시작점이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푸른 강정마을의 바람 사이로 차분하게 그러나 무게있게 들렸던 스님의 말씀을 옮겨 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생각을 달리할 수가 있습니다. 의견을 달리해서 결과가 다르기도 하고 생각과 견해를 달리 해서 야당이나 여당, 진보나 보수가 되기도 합니다 마땅히 다른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다보니까 정부의 해군기지 정책에 대해서도 마을주민들 사이에는 견해를 달리하고 있고, 또 달리하다보니까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이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우리 강정마을이 해군기지로 인해서 4백년 이상 살아온 마을의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또 어쩌면 대대로 살아온 마을의 일부분이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더 걱정하는 것은 이러한 문제는 우리가 언젠가는 회복할 수 있는 문제지만, 이 문제를 둘러싼 사람들의 갈등, 그로 인해서 생겨나는 우리들의 상처는 치유하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데서 아름다운 자연이 파괴되는 것보다 함께 살아가는 이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을 더 안타까워해야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이런 마을 화합의 잔치를 마련한 것은 우선 파괴되어가는 자연환경을 우리가 어떻게 막아내고nbsp복원할 것인가에 앞서서 사람들 사이에 생채기 나고 있는 이 상처를 어떻게 아물게 할 것인가, 파괴되고 있는 마을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가 먼저 인 것 같아서입니다.”nbsp “현실은 함께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하지 않는다면 해결되기 어렵습니다.nbsp남북간엔 6.25 전쟁까지 겪고 철천지 원수가 되어서 지난 60여년을 지내오고 있습니다. 남북한이 화해와 협력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로 협력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습니다. 한국사회의 진보와 보수는 과거 역사를 돌아보면 정말 함께 하기 어렵습니다. 무고하게 죽은 사람들의 온갖 상처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미래를 좀 더 낫게 만들어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정말 함께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미래를 보면 함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서 우리 자손들에게 물려줄 평화로운 마을, 전통이 잘 유지되는 그런 마을을 앞으로 만들어가려면 오늘 우리에게 닥친 이 어려움을 아무리 어렵더라도 극복을 해 나가야합니다. 그런데서 오늘 이 잔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하는 시작의 자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이하 정부 관계자들, 이 문제를 추진하는 행정부 관계자들, 그리고 국방을 지켜야 될 의무를 가지고 있는 우리 해군관계자 여러분들께서 이 주민들의 아픔과 간절함을 다시 한 번 재고를 해주셔서 정말 주민들 속에 있는 이 분함과 억울함과 이 아픔을 해소할 수 있는 그런 정책을, 그런 희망을 주는 정부정책을 재고해 주십사 이 자리에서 간곡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희들이 정부의 잘못되거나 부족한nbsp정책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대신에 여러분들도 찬성하는 분들의 소수의 아픔을 좀 이해하시고, 미워하기보다는 그분들까지도 껴안아주는 그런 아량을 베풀어주시기를 간곡하게 요청드립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이 먼저 화합한다면 틀림없이 이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여러분들의 그 원이 반드시 성취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희들 또한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겠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해군기지를 강행하는 정부를 보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소수자로 억울한 느낌이었는데, 또한 마을로 돌아와서보면 찬성하는 사람들이 어느새 소수자가 되어서 또 하나의 아픔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바라보고 어떤 관점에서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하나 하나 짚어주시는 스님의 말씀을 강정마을 사람들도 귀담아 듣고 있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제주시로 이동했습니다. ‘제주희망만들기 콘서트’에서 스님 초청강연이 저녁 7시 30분부터 예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강연장에는 350여명이 빽빽하게 앉아 강의를 들었습니다. 새로운 100년에 대한 말씀이 주 내용이었습니다. 왜 지금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 통일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크고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인지, 통일을 준비하는 시민들은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지, 2012년 대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스님의 강연은 통일 강연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될 것 같습니다. 스님 강연을 들으면 왜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 왜 통일이 희망인지, 왜 통일이 새로운 백년을 위한 초석인지 이해하게 되고, 가슴 설레는 희망을 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일 제주도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즐겁기도 했고, 가슴아프기도 했고 또한 감사하기도 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잘 마무리하고 돌아갑니다. 내일은 남원과 부안에서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이 진행됩니다. 스님은 아침 비행기로 광주로 바로 이동하셔서 강연을 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nbsp

2012.10.02. 15,693 읽음 댓글 3개

9월 28일 법륜스님의 하루(광주, 전주 초청 강연)

새벽 일찍 정토회관에서 기도를 하고, 바로 광주로 향했습니다. 호남고속도로로 접어드니, 세상이 온통 안개로 뒤덮혀 있습니다. nbsp 스님은 어젯밤 주무시지 않으시고, 오늘 차에서 주무셨습니다. 호남고속도로 마지막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하면서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보살님이 새벽 일찍 어제 정선장에서 산 녹두로 녹두죽을 끓여 도시락을 싸 오셨습니다. 오랜만에 먹는 녹두죽이 참 맛있었습니다. 오늘 강연은 희망세상만들기 100강에 포함되지 않는 외부 초청 강연입니다. 오전은 호남 4.19 혁명단체 총연합회 초청 통일 대강연회였습니다. 4.19혁명 기념관에서 강연이 있었는데 1층에 4.19혁명에 대한 기념관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면서 산화해 간 16명의 영정 앞에 스님은 참배를 드렸습니다. nbsp 3.15 학생의거와 4.19혁명에 참가했던 분들이라 그런지, 오늘 강연에 참가하신 분들은 연세드신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 분들이, 이 분들의 친구분들이 젊었을 때 불의를 향해 온 몸으로 항거를 했었겠구나 싶었습니다. 사회를 맡으신 교수님의 말씀처럼, “현재 가장 열심히 통일운동을 하고 계신 법륜스님을 어렵게 모셨다”는 것은 아직도 통일에 대한nbsp열정을 가지고 계시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회원분들이 스님 오신 것을 다들 반가워하고 정성껏 맞이하는 느낌입니다. 스님께서는 많은 어르신들 앞이라 무대에 준비된 의자에 앉지 않으시고, 서서 2시간 가량 열강을 하셨습니다. 진지한 분위기에서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질문을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일정들이 있어서, 강연을 마친 후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나누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바쁘게 이동을 해서 스님께서는 많이 미안해 하셨습니다. nbsp 광주 강연 후에는 바로 전주 전북대학교로 이동했습니다. 전북대학교 중앙& 취업 동아리 이룸 초청 강의가 있었습니다. 길이 막혀 학교에 늦게 도착했지만 전북대 총장님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강연에 20여분 늦게 참가를 하게 되어, 마칠 때도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며 정중히 인사를 하셨습니다.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이 500여명 참가를 했는데, 이룸이라는 동아리 자체에서 행사를 준비를 다 했다고 합니다. 미리 메일과 인터넷으로 질문을 받아놓고 추첨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전체적인 진행이 밝고 명랑하고 참신한 느낌이었습니다. 오늘 사인회에서는 강연에 늦어진 것이 미안하다며 사인받는 사람들 이름까지 하나 하나 적어주셨습니다. nbsp 전북대학교에서 강연을 마치고 다시 광주공항으로 이동하는데 추석전이라 차가 많이 막혔습니다.nbsp그러나 늦지 않게 도착해서 무사히 제주도로 올 수 있었습니다. 광주정토회 총무님 부부가 공항에 나와서 스님 제주도 가는 비행기표를 미리 예약해 주셨습니다. 차도 받아서 10월 2일 다시, 스님이 제주도에서 광주로 오실 때 공항으로 가지고 오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전국 어느 곳엘 가나 보이지 않게 도와주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런 분들이 계셔서 희망세상 만들기 300강이 진행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서울에서 광주, 광주에서 전주, 전주에서 다시 광주, 광주에서 제주도로로 이동하면서 강연하고 사람들도 만나느라 광주정토회에서 싸 준 도시락도 먹을 시간이 없이 바쁘게 다녔습니다. 10월 1일날은, 한가위 강정마을 큰잔치가 있는 날입니다. 스님께서 지난 6월에 제주도에 희망세상 만들기 강연차 오셨다가 강정마을에 들리셨습니다. 그 때 해군기지 문제로 마을 주민들이 찬반으로 나뉘어져 서로 갈등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아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 추석에는 마을 사람들이 찬반 갈등으로 인한 원망심, 분노, 지친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예전처럼 같이 어울려 한 판 놀아보자며 평화재단에서 마을 잔치를 준비했습니다. 추석 연휴라 자원봉사자를 구하기도 쉽지가 않아서, 정토회 실무자들이 행사 지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행사 하루 전날 배편이 미리 예약디 다 되어 잇어서 실무자들은 배편을 구할 수 있는 오늘 완도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들어왔습니다. 일찍 온 김에 내일 하루는 한라산과 돌문화공원 구경을 하고 추석날 오후부터 행사 준비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금강경 원고 작업이 계속 미뤄지고 있어서, 내일과 모레는 꼬박 원고작업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행사 지원차 오긴 했지만, 처음으로 실무자들이 제주도에 다같이 와서 기분이 좋습니다. 스님께서도 “실무자들이 다같이 제주도엘 다 오고. 이런 일은 처음이네.”하고 웃으시면서 잠시 실무자들과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nbsp 법륜스님의 하루도, 내일과 모레는 쉬어야 할 것 같네요. 이틀 쉬고, 10월 1일부터 다시 만나뵙겠습니다. 한가위, 사랑하는 가족들과 넉넉한 마음으로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2.09.29. 14,528 읽음 댓글 4개

9월 27일 법륜스님의 하루(강원도 정선, 경기도 안성)

강원도 정선. 정선아리랑을 어떻게 부르는지도 모르는데, 정선아리랑이라는 말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강원도로 간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았는데,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 차에 타자마자 자기 시작해서, 강연장에 도착해서야 잠이 깼습니다. 추석전이라 정선장이 서는 날이었습니다.nbsp추석전이라 강연에 많은 주민들의 참가가 어려울 것 같아 걱정했는데, 지역주민들이 많이 참가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군수님 인사말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군수님도 끝까지 강연에 참가를 하셨고, 지역 주민들도 공지사항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책선물 공지가 나갈 때는 큰 박수를 치면서 강연에 대해서 만족해 하였습니다. 정선 강연은 강원도 전 지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함께 강연을 준비했는데, 그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분당, 제천에서도 왔지만, 태백, 화천, 춘천, 원주, 강릉에서 두 세명씩 와서 함께 행사를 지원했는데, 강원도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정선사람들만 모여서 사진도 한 컷 찍었습니다. nbsp 질문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대학입시 준비를 하고 있는데, 대학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대학을 다니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묻는 젊은이의 질문에, 기존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는 삶과 그 길을 벗어나서 살아가는 두 가지 삶에 대해서 스님께서 살아오셨던 삶의 경험들을 말씀해 주시면서 젊은이가 스스로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상세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대학생인데 시험에 떨어져 초라해진 자신에게 충고 한 말씀해 달라는 대학생에겐, 실력이 안 되어서 떨어진 것은 굉장히 잘된 일이다, 감사한 일이다, 연습을 해서 제 실력으로 합격해야 한다, 그런데 시험에 떨어져 지쳐서 시골에 내려왔다면 공부할 수준이 안 되니까 그만 두는 게 낫겠다, 시험에 떨어지면 실력을 더 쌓아야겠구나 하면서 그 다음날부터 바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이 합격을 할 수 있다, 하면서 시험에 떨어지면 안 좋다는 기존의 생각을 바로 뒤집어서 말씀을 해 주시니 학생이 “바로 공부 시작하겠습니다.” 하면서 우렁차게 대답을 합니다. nbsp 소설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분은, 대한민국의 희망은 무엇인지? 통일과 희망에 대해서 스님께 여쭈었습니다. 스님께서 성공이란 무엇인가? 시대정신이 왜 중요한가? 통일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군수님이 정선 특산품의 하나라며 수리취떡을 5상자 선물 주셨습니다. 수리취의 향과 달콤한 팥이 앙꼬로 들어간 쫀덕한 찰떡이 참 맛있었습니다. 차가 출발하려고 하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달려와 어제 가리왕산에 가서 땄는데 스님 드릴려고 가져왔다며 버섯을 선물로 주십니다. 저는 처음 본 버섯인데 노루궁둥이버섯이라고 했습니다. 털이 보슬보슬난 것처럼 예쁜 버섯이었습니다. nbsp 감사함의 인사를 드리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오대천을 만났습니다. 아침에는 보지 못했던 경치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곤두레밥을 싸주셔서, 오대천 옆에 차를 세우고 맛있게 점심 식사까지 하고 정선을 떠나왔습니다. 서울로 와서 스님은 재단에서 사람을 만나고, 저희는 2시간 가량 휴식을 했습니다. 오늘 저녁 강연은 안성에서 있었습니다. 안성 희망지기가 열심히 홍보활동을 하면서, 매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서, 안성 사람들과의 만남이 살짝 기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스님께서는 ‘법륜스님의 영상 희망편지’ 촬영을 간단하게 했습니다. 추석을 맞이하여 희망편지를 받아보는 분들에게 추석인사 말씀을 전했습니다. 강연장에는 벌써 좌석은 모두 다 차고, 복도와 무대에까지 사람들이 앉았습니다. 700명이nbsp넘는 사람들이 참가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홍보도 열심히 했지만, 안성에는 스님이 처음 오셔서, 사람들이 많이 기다렸다고 합니다. 분위기도 정말 좋았습니다. 스님도 다른 날보다 더 열정적으로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nbsp 첫 질문으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에 대해 잘 모르겠다며 스님께 설명을 요청하는 남자분이 있었는데, 첫 질문부터 이런 질문이면 좀 딱딱할텐데하면서도nbsp 스님께서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해 주셨는데, 색과 공에 대해서, 계율에 대해서, 불교에 대해서 설명하신 것이 좋았습니다. 스님 일정이 빡빡한데 그런 중에서도 힘을 얻도록 하는 음식이 과연 뭔지 궁금하다는 젊은 청년, 아이가 한 명 있는데 둘째 애를 가져야 하는지, 안 가져야 하는지 스님께 여쭙는다는 젊은 주부, 임신 4개월짼데 애기 낳은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게 나을지,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닐지 고민이 된다는 여자분, 28살인데 꿈이 없는 것이 고민이라던 젊은 여자분. 스님의 답변이 시원시원했습니다. 문제가 해결된 질문자들의 답변과 각오들도 가볍고 밝았습니다. 사람들이 스님 말씀을 들으며 즐거워하는 것이 그대로 느껴지는 분위기였습니다. 같이 온 사람끼리 속닥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웃고, 스님 말씀에 바로바로 추임새도 넣으며 재미있어 합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는데 젊은 청년 한 명이 스님께 편지를 내밉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천안에 사는 29살 청년 000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몇 달전 스님의 책을 읽고 나서 정말 충격받았습니다. 모두 내 탓이었구나 한 생각 바꾸니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스님. 정말 고맙습니다. 스님으로 인하여 불법을 접했고, 기부도 시작했고, 더욱 행복해졌습니다. 스님이 쓰신 책들은 거의 다 읽었습니다. 새로운 100년도 읽었습니다.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꼭 통일의병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평생 존경하는 마음으로 뒤에서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구 비타민C를 동봉합니다.” 스님과 인연이 되고 더욱 행복해졌다는 말에 울림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이처럼 스님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얻고, 스님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내일은 광주와 전주에 초청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nbsp

2012.09.28. 16,255 읽음 댓글 4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