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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7일 법륜스님의 하루(중국 국동대혈, 광개토대왕비, 장군총)
민족의 뿌리를 찾아서 떠난 중국역사기행 셋쨋날입니다. 오늘부터 강행군 시작입니다. 매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는 힘들게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중국 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어 수건으로 신발을 닦아 수건 손해배상해 주느라 아침에 출발시간이 5분가량 늦었지만 참가자들이 모두 3시 30분 일어나 4시에 출발할 준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벌써 밝아진 새벽 공기를 가르며, “잘 주무셨어요? 오늘 하루 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하는 스님의 말씀으로 역사기행의 하루가 시작이 됩니다. 오늘 아침에는 국동대혈로 맨 먼저 이동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산을 오르는데, 며칠 전 왔다는 큰 비로 인해 바닥도 많이 패여 있었습니다. 옆으로 흐르는 작은 냇가 바닥에는 하얀 돌들이 깔려 있어 맑은 물이 더 맑게 보입니다. 새벽 산책을 하는 기분이 상쾌하고 좋습니니다. 국동대혈로 가는 길목에 있는 다른 큰 동굴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셔놓은 관세음보살상과 재신과 의신이 있어서 사람들은 건강과 복을 빌기도 했습니다. 국동대혈은 사람이 100명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큰 동굴이었습니다. nbsp “국동대혈은 국내성에서 동쪽으로 가면 큰 동굴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곳은 고구려 시기의 중요한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습니다. 해마다 10월이면 고구려왕은 군신들은 거느리고 직접 이 곳에 와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왕이 직접 제사장이 되어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최고의 의식을 치르게 됩니다.”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국동대혈을 찬찬히 살펴 보았습니다. 앞 뒤로nbsp트인 동굴안에 천제를 지내기 알맞게 큰 돌이 제단처럼 올려져 있습니다. 아마 그 제단 위에 제물을 올리고 왕들은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냈을 것입니다. 고구려 왕들이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한 것처럼, 우리도 개인의 건강과 행복, 나아가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발원을 했습니다. 다같이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 한 곡을 부르며, 옛 고구려 왕들의 지극한 마음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nbsp국동대혈에서 걸어내려오니, 바로 앞에 압록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일찍 내려온 사람들은 얼른 강가에 내려가 손을 씻고 건너편 북한땅을 바라봅니다. 우리 집을 남의 집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끊임없이 북한땅으로 눈길이 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들 가슴 깊이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북한을 남의 나라가 아니라 내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nbsp 집안의 숙소로 다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고 짐을 챙겨서 다음 유적지로 이동을 합니다. 5회분 5호묘, 장군총, 광개토대왕비, 광개토왕릉을 차례로 살펴 보았습니다. 15년전 왔을 때와는 다르게 주변을 정말 잘 정돈해 놓았습니다. 유네스코 등재를 하면서 관광객을 받을 수 있도록 정리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먼저 5회분 5호묘에도 들어가서 벽화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무덤에 직접 들어가 벽화를 본 것이 인상적이었고, 그 오랜 세월동안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벽화의nbsp선명한 색깔과nbsp모양이 놀라웠습니다. 5호묘 외의 다른 고분의 벽화에 대한 설명도 스님으로부터 자세히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nbsp 햇살이 뜨겁습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장군총과 광개토대왕릉에 대한 조선생님의 설명을 모두들 열심히 듣습니다. “돌을 쌓은 것을 보면 아주 과학적으로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심에 있는 돌 바로 곁에 계단식으로 쌓은 돌이 두 개 있는데 마치 벽돌처럼 만들어서 집어넣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균형을 잡기 위하여 쐐기를 박은 것 같은데 이것은 본래 모습으로 앞을 받친 돌입니다. 이렇게 받침으로 밀려나오지 않습니다. 또 큰 돌을 옆의 한 면에 세 개씩 받쳐서 벌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장군총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선조들의 지혜에 다시 한 번 탄복하게 됩니다. 이런 유적이 남아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 뿌리의 한 부분이라 그런지 괜히 뿌듯해지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장군총 앞에서는 1, 2, 3호차별로 스님과 함께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햇살이 뜨거워도 수학여행온 학생들처럼 모두들 즐거운 것 같습니다. 다음은 광개토대왕비로 이동을 했습니다. “광개토대왕비는 장수왕 때 만든 것으로 높이 6.39m, 너비는 1.34m에서 2m입니다. 장수왕은 그의 아버지가 이룬 역사를 기록하고 건국부터 호태왕까지의 역사도 기록했습니다. 중심은 호태왕의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 비석은 어마어마한 큰 돌을 자연스럽게 다듬고 글자를 새긴 것인데, 웅대한 자연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nbsp 집안에서 고구려 유적지를 탐방하고, 내일 만나게 될 백두산에 가기 위해 백산으로 출발했습니다. 백산으로 가는 길에는 적을 차단하기 위한 성벽인 관마산성 성터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통화는 머루포도로 만든 포도주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우리를 안내한 조선생님의 고향이 통화라 통화 포도주를 선물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녁을 먹으면서 선물받은 포도주 맛도 보면서 조원들과 무대에 나와서 소개도 하고, 노래도부르며 친목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는 조원들과도 더 친밀해지고, 긴장감도 풀어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저녁강의를 뺄 수는 없습니다. 식당에서 강연장으로 자리를 옮겨 오늘은 고구려의 역사에 대해 강의를 들었습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으로부터 유리왕, 광개토대왕, 장수왕에 이어 고구려의 멸망과 발해 건국에 이르기까지 전체 역사를 짚어 주십니다. 그러나 오늘도 마찬가지로 결론은 통일로 이어집니다. “고구려가 우리의 연결고리입니다. 고구려가 우리 민족사의 뿌리를 보여줍니다. 고구려는 우리 민족사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평양의 유적까지 봐야 강대한 고구려의 나머지 절반을 볼 수 있습니다. 평양에 여행가는 사실상의 통일을 다음 5년안에 꼭 만들어내야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다음 5년안에 꼭 이루어지기를 스님과 함께 발원드려 봅니다. 오늘도 빡빡한 하루 일정이 끝났습니다. 우리가 풍성하다 못해 미안하기까지한 잘 차려진 밥을 먹으면서도 힘들다고 헉헉거릴 때, 이른 새벽부터 유적지 안내를 하고, 매일 밤마다 강의를 하는 스님은 아직도 단식 보식 중이라 맑은 된장국 한 컵 드시면서 전체 일정을 소화하고 계십니다. “나는 밥을 안 먹고도 이렇게 걷는데, 매일 그렇게 먹으면서도 힘이 들어요?” 하며 웃으시는 스님. 매일 매일 탐방하는 유적지마다 스님의 민족에 대한 애정과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느끼게 됩니다. 스님과 같이 유적지를 도는 것만으로도 막혔던 것이 뚫린 듯 시원해지고, 역사에 대한 배움과 민족에 대한 자긍심으로 자신에 대해서도 넉넉해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nbsp내일 숙소에서는nbsp인터넷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8월 6일 법륜스님의 하루(중국 졸본성, 환도산성, 국내성)
중국역사기행 둘쨋날입니다. 6시 기상해서 짐을 모두 버스에 싣고, 6시 30분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중국 아침 식사에 항상 빠짐없이 나오는 팥같은 앙꼬가 들어가지 않은 흰 빵과 손 대기에도 뜨거운 삶은 달걀, 삭힌 오리알 등 전에 먹어봤던 음식들이 나오니 반갑습니다. 오늘은 졸본산성과 환도산성, 국내성을 돌아보며 역사 속의 고구려를 만나보는 시간입니다. 처음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에 대해서는 스님의 법문시간에 어머니인 유화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많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천손이라는 남자와 하룻밤을 자고 낳은 주몽을 유화부인은 항상 너는 천손의 아들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줬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본래 부여의 왕족인 주몽은 왕실의 배척을 받아 오이, 마리, 협보 등 세 사람과 함께 도망쳐 환인지역에 이르렀고, 지방 토착세력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건국하였습니다. 고구려가 처음 수도를 정한 곳이 환인입니다.” 스님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졸본산성은 사진으로 여러 번 봤지만 직접 멀리서 바라보면서 정말 요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산 한 가운데 자연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 산성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올라가면서 바라보고, 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뒤돌아보며 다시 한 번 탄성을 울리게 하는 산성이었습니다. 산성 위에서 고구려시대의 많은 무덤들이 수몰되었다는 댐을 바라보며 말에 물 먹이고, 전투를 하던 고구려 시대로 한 번 돌아가봅니다. 깎아지르는 듯한 계단을 땀을 흘리며 올라가고, 내려왔습니다. 땀이 나도 아침의 신선한 공기가 기분을 상쾌하게 합니다. 스님은 졸본산성의 구조에 대해서 자세하고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십니다. 중간에 안내를nbsp조선생님이 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하나 하나 덧붙이며 설명을 해 주십니다. 우리가 올라온 입구만 막으면 그 누구도 침략할 수 없었다는 졸본산성. 정말 천연의 요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인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집안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집안에서는 환도산성과 국내성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펄펄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의 주인공인 고구려 2대 유리왕 22년에 졸본에서 집안으로 서울을 옮긴 이후 장수왕 15년까지 425년간 고구려의 서울이 되었다고 합니다.nbsp먼저 환도산성으로 향했습니다. “환도산성은 고구려의 대표적인 산성으로서 국내성과 함께 하나의 방어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국내성은 고구려의 도읍지고, 환도산성은 비상시에 군사들이 가서 방어를 하고 임금이 피신해 있으면서 저항한 곳이었습니다. 환도산성은 지세가 좋고 자연조건이 워낙 견고해서 적의 공격을 막기에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함락이 잘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도 고구려가 국내성을 수도로 하고 있는 동안에 국내성은 3번, 환도산성은 2번 함락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끊어지지도 않고 고구려 이야기가 술술술 나옵니다. 같이 설명을 해 주던 조선생님은, 이런 요새가 없다며, 군사전략가들이 외국에서도 견학을 온다며 선조들이 어떻게 이런 자연조건을 갖춘 곳을 선택할 수 있었는지 지혜가 대단하다며 탄식을 합니다. nbsp “고구려가 동북아 대륙의 강자가 된 것은 졸본성과 국내성을 깊은 산 속 험한 요새에 두고 있어 수도가 안정되었기 때문입니다.”하는 스님의 설명을 들으면서,nbsp수도가 안정되어 있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환도산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산성 아래의 무덤떼 앞을 산책했습니다. 스님은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 하십니다. 천천히 무덤떼 앞을 지나면서 사람들과 사진도 찍었습니다. 다음으로 간 국내성은 집안시내에 있는데,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성이 상당히 많이 파괴되어 제 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아파트 사이로 길게 늘어서 있는 성곽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또 다시 선조들의 지혜에 탐복을 했습니다. 적들의 침입에 대비한 성의 구조, 물의 흐름과 세기를 고려한 곡선의 성벽, 성내의 물의 배수까지 고려한 배수구 등을 보며 참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특히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공자형 성문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독특한 형이었습니다. nbsp 국내성 앞으로 통구하가 흐르고 있고, 쭉 따라 내려가다 보면 압록강과 만납니다. 압록강 너머로 북한 땅이 보입니다. 스님은 압록강변에서 북한을 바라보며 북한 땅과 옛날 북한돕기 활동했던 내용에 대해 말씀을 해 주십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집안의 한 호텔에 도착해서 저녁 강의를 들었습니다. 단군 조선과 부여, 고구려의 역사에 대한 강연이었지만, 마지막은 통일의 필요성으로 돌아갑니다. “자기 문화의 정체성을 잃어 버리고, 이웃 문화의 아류가 되어 버리면 안됩니다. 선진문화를 따라가며 모방할 때는 괜찮은데, 그러면 선진문명을 스스로 창조할 능력은 없어집니다.nbsp그러므로 경제력의 신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민족사의 정립과 민족 문화에 대한 자긍심입니다. 현재 중국의 발전은 모방단계이지 창조의 단계는 아닙니다. 그래서 아직 세계 문명을 주도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통일은 미래의 개척을 위한 첫 단계입니다. 단순한 영토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문명을 주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것입니다. 고구려, 발해 역사기행은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뿌리에 대한 이해를 갖기 위해서입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단군조선, 고구려의nbsp역사가 앞으로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위한 밑받침이 되어 있어,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떨어지지않고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 느낍입니다. 고구려, 발해 유적지를 탐방하면서 미래 통일 한국이 세계 문명을 주도할 꿈을 그립니다. 강연 공간도 좁은데다 에어콘도 나오지 않아 찜통같은 강의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강의를 들으면서도 연신 땀을 닦고 부채질을 해 댑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졸지 않고 스님을 바라보며 열심히 강의를 듣습니다.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nbsp몸은 힘들지만 강의가 진행될수록 차츰 스님의 많은 내용성에nbsp탐복해 가는 분위깁니다. 내일은 3시 30분 기상입니다. 국동대혈과 장군총, 광개토대왕비, 5회분 5호묘 등 집안에서 둘러보고 백두산으로 가기 위해 백산으로 이동하는 일정입니다. 하루 하루가 쌓여져 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냥 오늘이 아니라 어제에 이은 오늘이라던 스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nbsp
8월 5일 법륜스님의 하루(중국역사기행 첫 날)
새벽 4시, 정토회관에서 인천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좋은벗들에서 매년 여름 고구려, 발해 유적지를 찾아가는 중국역사기행을 떠나는 날입니다. 올 해로 18번째 맞이하는 중국역사기행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법륜스님의 안내로 진행이 됩니다. 124명의 참가자와 15명의 진행 스텝이 7박 8일간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매년 인도성지순례 안내와 고구려 발해 유적지 안내, 그리고 국내 경주순례 안내를 하면서 부처님의 발자취와 한민족의 시원과 역사, 그리고 삼국 통일의 위업을 이루어낸 신라 역사의 현장인 경주에서 역사를 통해 돌아볼 것과 미래를 위해 배워야 할 것에 대해 안내를 해 주십니다. 역사의식이 있어야 미래를 통찰할 수 있고, 올바른 방향으로 세상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스님의 말씀은 삶을 살아가는 현장에서 그 때 그 때 직접 몸으로 만나게 됩니다. 정치, 사회적인 사건들을 보면서는 더 크게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회의 지도자가 왜 역사의식이 있어야 하는지를 더 여실히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7박 8일 여행 중의 첫 날입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중국 심양공항에 도착, 요녕성박물관을 둘러보고, 다시 백암산성으로 갔다가 환인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져 있습니다. 스님은 지난 20여일간의 단식을 마치고 보식에 들어가셨습니다. 살이 많이 빠진 모습으로 밝게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하십니다. “몸은 괜찮은데 이렇게 목소리가 아직 잘 안 나오네요.” 몸을 걱정하는 분들에게 웃으며 말씀하십니다. nbsp 중국역사기행 실무 준비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와 중국 현지에서 도움을 준 분들 덕분에 실무자들은 21일 동안의 안거를 마치고도 편안하게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별 문제없이 전원이 모두 중국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심양공항에 3대의 버스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첫 목적지인 요녕성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16년전, 처음 스님을 따라 중국에 왔을 때는 겨울이라 매캐한 매연과 안개가 저희를 가장 먼저 맞이해 주었는데 오늘 중국은몰라보게 깨끗해진 거리와 높은 빌딩들, 쭉쭉 뻗은 길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nbsp 요녕성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차안에서 먼저 요하문명에 대한 스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동북아의 요하문명과 황하문명의 시원에 대한 이야기, 환인, 환웅, 단군에 이르는 한나라, 배달나라, 조선나라로 이어지는 역사 이야기, 환웅천황의 신시개천 아래 5천년간을 이 좁은 한반도가 아니라 동북아를 중심 무대로 활동했던 우리 민족에 대한 말씀들이 한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줍니다.nbspnbsp 요녕성 박물관 1, 2, 3, 4, 5관을 훑어 보듯 살펴보고, 심양시내를 빠져나와 백암산성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산성으로 향하는 길에 보니 냇가에 황톳빛 물이 넘실거리며 흘러내립니다. 다리에 닿을 듯 밀려내려오는 물결들, 가장자리에는 이미 쓰러져 부러진 나무들도 보입니다. 어제까지 이 곳에는 비가 많이 왔다고 합니다. “아하. 작년에도 백암산성에 못 올라갔는데, 올 해도 못 갈 수도 있겠네. 저 정도 물이면 물을 건널 수가 없겠는데...” 하시며 스님이 안타까워 하십니다. 백암산성까지 가는 길은 넓게 펼쳐진 만주 벌판을 바라보는 시원함과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 넓은 땅에 온통 옥수수가 심어져 있습니다. 쓰러져 가듯이 군데 군데 촌락을 이루고 있는 집들도 정겨워 보입니다. 백암산성 앞 태자하도 역시 물이 넘실거리며 흘러 내리고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 백암산성으로 갈 수가 없어 일행들은 할 수 없이 차를 돌렸습니다. 멀리 백암산성을 바라보며, 옥수수밭 옆에 차를 세워놓고, 차안에서 스님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nbsp 백암산성의 역사와 성의 구조, 백암산성의 특색까지 하나 하나 상세히 설명을 해 주십니다. 고구려 성의 특징에 대한 설명, 지난 역사 속에서 선조들이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들이 눈에 하나씩 그려집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아, 이 곳이 우리 고구려 땅이었구나 하는 것이 새삼 느껴졌습니다. 이 광활한 땅이 내가 교과서에서 배우고 있는 우리 선조들이 숨쉬며 살아왔던 땅이라는 생각에 내가 선 이 곳이 다시 한 번 더 바라봐지고, 발에 힘을 주고 땅을 다시 밟아 봅니다.nbspnbsp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점심은 옥수수 한 개씩을 먹었는데, 백암산성 오르는 일정이 취소되면서 저녁식사를 더 일찍하게 되었습니다. 본계의 한 호텔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이번 일정 중 중국 음식과의 첫 만남이었는데, 다들 배가 고팠던 탓인지 입맛에 맞다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전체가 함께 있는 이 시간에 어떤 분들이 참가했는지, 그리고 행사를 진행하는 스텝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nbsp 다시 두 시간 정도를 차를 타고 오늘의 숙소인 환인으로 들어왔습니다. 두 시간동안은 각 차량별로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와서 어떻게 이번 여행에 참가하게 되었는지와 자기 소개시간을 가졌습니다. 저희 차량에는 부부도 몇 커플이 되고, 미국, 일본, 태국, 중국 등 외국에서 오신 분들, 정치인, 공무원, 언론인 등 다양한 분들이 타고 계셨습니다. 서로를 알아가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바로 짐만 풀어놓고 강연장에 모여 스님의 첫날 강연을 들었습니다. 왜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을 하시면서,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특히 6천년 우리 민족 역사에서 역사유실과 역사왜곡이 심각한 부분에 대해서 자세한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민족사의 뿌리에 해당하는 상고사 부분이고, 둘째는 일제침략기에 행한 독립운동사이고, 셋째는 현대사 부분입니다. 상고사 부분이 많이 유실되고 왜곡되었기에 우리 민족사가 중국사의 변방이 되어 버려서 중국에 대한 열등의식과 피해의식을 갖고 있고, 남북분단으로 인한 독립운동사의 왜곡은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과 열등의식을 갖게 만들었습니다.nbsp현대사는 서양문명, 특히 미국 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열등의식을 극복하지 않고는 새로운 인류문명을 개척하고 창조해 나가는데 앞장서기가 어렵습니다. 이 셋 중에서 이번 역사기행의 주과제는 고구려 발해사를 중심으로 해서 상고사 부분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려면 첫째, 역사관이 올바르게 정립되어야 합니다. 둘째, 주변국의 정세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셋째는 우리의nbsp역량을 정확히 타산해야 하며 넷째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올바른 전략과 전술을 구사해야 합니다. 여기서도 민족사관의 정립이 첫째 과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역사기행동안 나의 정체성과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올바른 민족사관을 정립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번 여행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nbsp 여행 첫 날이라 다들 피곤할텐도 민족의 자긍심이 가슴 깊이 느껴져서인지눈을 똑바로 뜨고 스님 강연을 진지하게 듣습니다. 다른 나라 역사가 아니라 우리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하고, 상고사, 독립운동사, 현대사의 열등감을 극복할 때 동북아의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말씀에 새로운 기운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첫 날, 오랜 역사를 가진 한민족으로서의 자부심들을 마음에 차곡차곡 새기고, 다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스님은 된장국물 몇 모금만 마시면서, 오늘 하루도 참가자들에게 우리 민족의 뜨거운 가슴을 일깨워주고,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갈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채워 주십니다. 내일은 둘쨋 날입니다. 졸본산성과 환도산성, 국내성을 돌아보며 단군조선과 부여를 계승했다는 위풍당당한 고구려의 역사와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7월 22일 법륜스님의 하루(백일기도 입재식)
7월 12일부터 9박 10일간 문경정토수련원에서 2012년 제 1차 명상수련이 있었습니다. 180여명이 스님의 안내에 따라, 평소의 14도 안 되는 밥과 감자로 소식을 하며 몸과 마음을 맑히는 수련에 참가하였습니다. 단지, 숨 하나 들고 남을 바라보며 새벽부터 밤까지 묵언하며 조용히 앉아 수련을 합니다. 명상수련 들어가기 이틀 전부터 단식을 시작하신 스님은, 오늘로 단식 13일째가 되었습니다. 단식 중임에도 수련하는 대중들과 똑같이 정진을 하시고, 정진 안내를 하시고, 매일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수련에 참가한 사람들은 오로지 스님의 말씀을 나침반 삼아서 한 숨 한 숨 따라가며 9박 10일 수련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수련을 마치면서 부처님 법 만남이 감사하고, 매일 매일 힘을 잃지 않고,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면서도 바르게 정진해 나갈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시는 스님이 계심이 너무 감사해서, 또 쉽지 않았던 그 과정을 도망가지 않고 마지막까지 정진을 한 자신에 대한 뿌듯함에 눈물을 흘립니다. 지난 삶을 참회하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며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맑아진 한 사람 한 사람의 환한 얼굴이 모두 부처님 얼굴입니다. nbsp 오늘은 제 7차 천일결사 중 제 6차 백일기도 입재식이 충주에서 있었습니다. 2500여명이 참가해서 가슴 뜨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지난 100일동안,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희망세상 만들기의 열정이 그대로 입재식 현장에도 옮겨져 왔습니다. 참가하는내내 가슴이 뛰고, 눈시울이 여러번 붉어졌습니다. 여러 번 울컥 울컥했습니다. 내가 희망임을 이야기합니다. 그 희망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힘.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희망이 보입니다. 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슴 가득 안고 가는 것 같습니다. nbsp 스님은 단식으로 약간 야위어진 모습으로 5차 백일기도 회향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희망세상 강연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더 간절하게 다가옵니다. 참가한 많은 대중들에게 기운을 받으셨는지, 어제 명상수련 마칠 때보다는 조금 더 기운이 있어 보입니다. “수행은 우리의 부족함을 알아서 부족한 가운데 두 발로 디디고 서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입니다. 너무 목표에만 집착을 하게 되면 부족한 자기를 용납하기가 어렵습니다. 수행이라는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경계에 부딪히면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것이 현재의 나입니다. 이런 나를 거부하지 말고 인정을 하자, 이런 나를 받아 들이자, 여기서부터 시작을 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서 출발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에서 중요한 것은 꾸준한 정진입니다. 꾸준히 해 나가다 보면 하나도 된 게 없는 것 같은데, 백일 전을, 일 년 전을, 천일 전을 돌아보면 내가 많이 왔구나, 옛날보다는 많이 안정이 되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수행이고, 이것이 정진입니다. 이렇게 정진을 해 나가면서 우리는 새로운 원을 세웠습니다. 세상에 보탬이 되어 보자는 것입니다. 나의 경험을 이웃에게 나눠주자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옛날의 나처럼 법의 인연을 맺어주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희망세상 만들기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이 기쁨을 세상에 전하자는 것입니다. 법의 인연을 맺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희망의 홀씨를 세상에 전하자는 것입니다.”nbsp 모두 진지하게 스님 말씀을 듣습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지난 100일동안 희망세상 만들기 강연 현장에서 희망씨앗으로 활동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지난 100일을 돌아보며,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고, 활동을 스스로 평가해 봅니다.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는 활짝 웃으면서 2500명이 스님과 하나의 호흡이 됩니다. 희망세상 만들기팀만이 아니라 ‘새로운 100년’ 북콘서트를 진행한 사람들, 정토법당, JTS, 좋은벗들, 에코붓다, 평화재단의 대중들과 활동가들, 청년, 대학생, 각 직능별 사람들, 해외 정토회, 해외 사업장의 활동가들이 모두 지난 100일간도 열심히 각 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였습니다. 가슴이 뿌듯해집니다.nbsp그 모든 정토행자들에게 스님이 감사함을 전하십니다. 오후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신나게 다같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매번 느끼지만, 정말 끼많은 정토행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유명한 가수가 오지 않아도, 이름 알려진 누군가가 오지 않아도, 내 가진 재능을 흔쾌히 내어놓는 사람만 있으면 정토행자들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신규입재자 결의식을 마치고, 6차 백일기도 입재법문이 있었습니다. 하반기에는 지금 하고 있는 희망세상 만들기 전국 시군구 300강연 뿐만 아니라 100만인 함께하기 캠페인 “내가 희망입니다.”에 힘을 모아서 국민운동으로 확산하자는 것이 주요내용이었습니다. 천일결사자들이 100일간 하루에 한 명 서명받기를 해서 100만인 인연을 맺어주고, 이 세상이 희망세상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 이번 실천과제였습니다. 법문을 마무리하시면서 스님의 새로운 계획을 발표하셨습니다. “제가 전국 시군구를 모두 찾아 다니면서 강연을 해 나가면서도 2정도 약간부족함을 느꼈는데, 그것이 뭐였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동안은 북한동포들이 굶어 죽는다는 소식을 들으면 북한동포돕기를 해 왔는데, 올 해는 남한에 신경을 쓰다보니 북한동포들이 굶어 죽는다는 소식을 듣고도 돕는 운동을 하지 못해서 내 마음 밑바닥에 가시가 되어 남아 있었습니다. 명상 중에 단식하며 간절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기도를 하고 있는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단식이 며칠 지나면서 배가 고프고 힘이 빠지고, 오르내리며 걷는 것도 힘들고, 절하려고 엎드리면 힘들고 어지러워지기까지 했는데, 그 때 북한동포를 내가 마음으로 잊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런 원이 생겼습니다. 그게 뭐냐면 우리가 올해는 전국을 다니면서 남한 국민을 위해 강연을 하는데, 내년에는 북한동포들도 도와야 되겠다, 북에 가서 모든 군을 다 돌아다녀봐야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북한 정부가 허락하지지 않을 것 같고, 북한 주민도 법문을 듣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가고파 죽겠는데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 하겠지요. 그래서 딱 생각이 난 것이, 밥을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럴려면 모든 시군에 100톤씩 식량을 주자, 북한은 2000만 동포인데 200개 시군이니까, 한 개군에 평균 10만명이 된다고 보고, 그 중 20 정도 되는 극빈자들 5000가구에 100톤을 주면 한 가구에 20kg 한 포대씩은 돌아가겠다, 그들에게 우선 배고픔을 면해주는 것부터 시작을 해 보자. 이것이 우리가 간절하게 통일을 기원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식량은 비록 적은 양이지만 그들을 염려하는 우리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으므로 큰 공덕이 될 것입니다. 배고픈 동포들에게 식량을 보내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께 공양 올리듯이 이렇게 해 보자는 겁니다. 이런 간절한 기도로 천지신명이 감동해서 통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북한동포들의 배고픔을 외면하고 어떻게 통일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올 해는 남한 국민들은 정신적으로 괴로워 하기 때문에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법문을 통해 마음의 양식을 주고, 내년에는 배고픈 북한 동포들에게 그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한 숟갈의 밥을 줌으로써 모든 국민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이 공덕으로 통일이 꼭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제 6차 백일기도의 가장 강력한 내용입니다. 개인이 열심히 정진하면서 온 힘을 다해서 노력을 한다면 2012년도에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꾸는 그런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 기적을 함께 만들어 봅시다.” 사람들이 환호를 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벌써 15년이 넘는 시간동안 북한동포들 돕기를 스님과 함께 해 온 정토행자님들. 희망세상 만들기를 하면서도 북한동포들의 굶주림에 대해서 스님만큼은 아니라도 조금씩은 마음이 쓰였었나 봅니다. 스님의 내년 계획을 듣자, 당장 옥수수를 짊어지고 북한으로 떠날것처럼 환호를 하며 좋아합니다. nbsp 정말 내년에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원해 봅니다. 명상수련을 하면서 한 숟갈도 되지 않는 밥을 매 때마다 꼭꼭 씹어먹으며 북한동포들 생각이 났습니다. 한 숟갈이라도 매일 먹을 수 있으면 굶어죽지는 않을텐데...스님의 원이 우리의 원이 되고, 우리의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올 한 해 하늘을 감동시키는 기적을 반드시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스님은 내일부터 8월 3일까지 다시 명상수련에 들어가십니다. 명상수련 이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7월 10일 법륜스님의 하루(전북 순창, 충북 진천)
아침 7시, 정토회관에서 전북 순창으로 이동했습니다. 순창하면 고추장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nbsp지역 특성에 맞게 장류박물관도 있다고 합니다. 인구가 2만 9천명정도 되는데 오늘 539명이나 되는 군민들이 참가해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40대 중반인데 일찍부터 학원사업을 해서 돈도 벌고, 아이들이 공부도 잘 하고 속을 썩이는 일도 없는데 행복하지 않아서 행복해지고 싶어서 왔다는 여자분, 글로벌 시대 통일을 자손들에게 남겨줘야 할텐데 개인은 어떤 의무를 져야 하는지, 통일을 생각하면 잠을 설칠 때도 있다는 여자분, 경제력이 부족한 예술가인 남편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는 젊은 부인, 캐나다에서 공부하다가 군대입대한다고 들어왔는데, 제대하고 다시 캐나다로 유학을 가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묻는 학생, 하나의 관심사가 생기면 쉽게 빠져들어 고민이라는 여고생, 친구사귀기가 어렵다는 고1 남학생, 나이 40이 넘었는데도 성격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물으면서 별거중인 아내와 대화하는 법을 묻는 남자분, 임용고시를 준비 중인데 나로인해 어린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미리 걱정된다는 임용고시생nbsp등 많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nbsp 그 중 예술가와 살고 있는 부인에게, 처음 그런 남자를 선택할 때부터 문제는 내재되어 있었다며 남편이 살아있는 것,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내어야 한다, 그래야 이제 갓 4개월 지난 아이의 심성이 안정된다며, 악한 예술가의 부인으로 남을래요? 천사같은 부인으로 남을래요? 하는 말씀을 들으면서 역사 속의 예술가들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다음 강연장으로 이동을 하다가 휴게소에 들어가서 받은 김밥으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드시지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부터 단식에 들어가셨습니다. 모레부터 3주간 명상이 시작됩니다. 스님은 여름 명상 때면 단식을 하시곤 합니다. 어떤 때는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의 굶주림을 함께 하기 위해서, 어떤 때는 몸에 너무 쌓인nbsp피로를 풀기 위해서 단식을 하십니다. 올 해는 어떤 마음으로 단식을 하실까? 강연을 다니는 중 몸이 너무 아플 때에, 너무 힘이 들 때에,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여름 명상 때까지는 이 몸을 끌고 가야 할텐데...” 상반기 200강 하시느라 몸이 너무 무리가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몸에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서 단식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하반기 미주 순회강연과 가을 100강을 무사히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 3주간 단식을 하고, 또 3주간 복식을 하면, 중국역사기행 동안도 제대로된 식사를 못하면서 안내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명상 들어가기 이틀전에 먼저 단식을 시작하시면서, “강연 마치는 날 맛있는 것 사줘야야 하는데, 내가 단식을 시작해서 미안하네.”하면서 저희들을 먼저 살펴 주십니다. 충북 진천으로 가서 잠시 시간을 내어 보탑사 참배를 했습니다. 보탑사 주지스님께서 스님 저녁 식사 초대를 했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 되어서 못 간다고 했었는데,nbsp스님은 마음이 쓰이셨는지, 잠시 시간을 내어 참배만 하고 서둘러 돌아왔습니다. 보탑사 마당에서 참배를 하다가 주지스님을 만났습니다. 법륜스님께서 평소 좋은 일 많이 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주지스님도 스님 하는 일에 조금 돕고 싶다 하시며 보시금을 전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곳에서도 스님은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를 하십니다. nbsp 진천군청에서는 군수님이 스님을 만나 뵙고 선물을 드리고 싶다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진천에는 종박물관이 있다며, 소리가 맑고 크게 나는 작은 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인협회장님은 법륜스님의 진천 방문을 축하하며 ‘희망세상’을 붓글씨로 써서 족자를 선물로 주셨고, 강연 마치고 나올 때도 한 분이 스님께 목판 ‘희망세상’을 새겨서 선물로 주셨습니다. nbsp 진천은 추진위원회를 꾸려서 법륜스님 강연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추진위원장님, 상공회의소 회장님, 도의원님, 예인협회장님 등 지역의 많은 인사분들과 자원봉사단들이 마음을 모아 행사를 진행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작은 공간을 빌렸다가 사람들이 많이 올 것 같아 더 큰 공간을 빌리면서도nbsp혹시 다 차지 않을까 조마조마 했다고 하는데,nbsp오늘 강연장 468석에 611명이 와서 공간을 가득 채워서 강연을 했습니다. 시골 구석구석까지 열심히 홍보를 한 덕분인가 봅니다. 사전 차담을 할 때, 이 곳은 충청도라 스님이 하시는 방식인 문답식으로 강연 진행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미리 걱정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스님도 충청도 여러 번 해 봐서 반응이 늦은 걸 알고 있으니 괜찮다고 하셨었는데, 강연장에 들어서서 질문자 손을 들어라고 하니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손을 듭니다. 그리고, 첫 질문부터 남편이 바람을 피웠는데, 살아야 되겠는지 안 살아야 되겠는지 묻는nbsp59세 아주머니를 시작으로 바로바로 질문이 이어집니다. 작년 구제역으로 돼지, 소를 강제로 묻은 포크레인 기사는 가축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 후 지금까지 매일 가축들 좋은데 가라고 108배를 해 오고 있는데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겠냐고 묻습니다. 결혼 46일을 앞두고 양쪽집안의 갈등으로 결혼식을 해야 할지, 말아아야 할지 고민하는 남자, 77세 아버지가 이제 죽음을 준비하면서 오토바이 열쇠도 넘겨주고, 고추 말리는 기계 사용법도 알려주는데, 아들로서 어떻게 이 상황을 맞이해야 하는지 묻는 사람 등생활 속의 구체적인 질문들이 많아 강연이 진지하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즐거워 하기도 하고, 심각한 사연일 때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강연에 집중하기도 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오면서, 이곳은 충청도같지 않다고 하면서 웃었습니다. nbsp 밤 10시 30분에 재단에서 회의가 잡혀 있어, 진천 강연을 마치고 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늦게 시작한 회의라 보통 새벽 12시는 되어야 끝이 납니다. 내일 아침 일찍 조찬 모임이 있어서, 오늘 밤에도 스님 잠시간은 짧을 것 같습니다. 스님은 오늘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하루를 강행군하셨습니다. 오늘로서 드디어 여름 100강도 끝이 났습니다. 이제 가을 100강만 남았습니다. 스님이 차를 타시기에 “스님. 그동안 수고많으셨어요.”하면서 저희들이 감사의 박수를 쳤습니다.nbsp그랬더니 스님께서 “운전한다고, 글쓴다고, 밥 준비하고 생활 바라지 한다고, 상담한다고 다들 수고했어요. 영상 촬영팀, 교육팀도 다 이번에 수고 많았네.”하면서 함께 동행하고 있는 저희들에게도 박수를 쳐 주십니다. 수고하신 전국 자원활동가들을 대신해서 저희가 스님께 박수를 받았습니다. nbsp 봄 100강, 여름 100강, 200강을 정말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 왔습니다. 살인적인 일정을 다 소화해내신 스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희망본부 활동가님들과 각 지역마다 강연준비를 한 지구장님과 희망지기님들, 자원봉사자님들 모두 모두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정진하는 마음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고, 괴롭고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었습니다.nbsp굶주리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남한이 북한을 지원해야 하고, 남한이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백성을 감동시켜야만 하늘이 감동해서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며 매일 매일 기도를 하시는 스님과 함께 달려온 여정이었습니다. 모두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스님은 오늘부터 단식 들어가셨고, 내일부터 문경정토수련원으로 내려 가십니다. 8월 3일날, 명상을 마치고, 8월 5일부터 2주간 중국역사기행 안내차 동행을 하십니다. 그리고 저희들도 모레부터 9박 10일 명상 들어갔다가, 8월 3일까지 실무자 수련이 있습니다. 스님의 하루는 스님 명상하시는 동안 쉬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뵙겠습니다. 그동안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nbsp
7월 9일 법륜스님의 하루(대구 달성군, 서울대 북콘서트)
대구 달서군 현풍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오전 강연이 있었습니다.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반가이 맞이해 주셨습니다. 질문자들이 많아 강연을 2시간 30분동안 진행했습니다. 그랬는데도 질문을 하지 못한 분들이 있어서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오늘 질문 중에 유독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는 질문이 있습니다. 시어머니의 아들 내외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현명한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흐뭇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nbsp질문한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전해 봅니다. “저희는 영감, 할멈 둘 다 70이 넘었습니다. 4년전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사돈이 없는 고아랑 결혼을 하려고 해서 말렸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직장도 없는 내게 저런 여자가 딱입니다, 아니면 필리핀, 베트남 여자와 결혼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도 좋겠냐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 천도재를 지내주고 결혼을 시켰습니다. 며느리가 참 착합니다. 며느리에게 설에 옷꼬시를 해서 맛을 봐라고 하니까 치아가 안 좋아서 맛을 못 본다고 합니다. 돌봐 줄 사람이 없어서 치아를 못 고쳤다고 해서, 제가 데리고 가서 1500만원을 주고 다 고쳐 주었습니다. 시집와서 운전면허증을 따고 싶다고 해서 면허증도 따게 했습니다. 아이 하나 낳고 커피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싶다고 해서, 면허증은 있으면 좋은 거다 하면서 따게 했습니다. 애도 잘 키우고, 아르바이트도 하겠다고 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아이가 참 명랑하고 활발하고 문제가 없이 우리 맘에 쏙 들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우울증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해서 병원에 데려 가니 우울증이니까 집에서 즐겁게 해 주라고 합니다. 무엇이 문제냐고 물으니, 남편이 직장없이 노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가장이 돈을 벌어서 가정을 일구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우울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며느리가 아들이 놀면서 가정을 책임지지 않는 것 때문에 이혼을 이야기합니다.nbsp며늘아이가 “지금 이혼해서 나가도 남편보다 좋은 사람과는 만나겠는데, 어머님, 아버님 보다 좋은 분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합니다. 합니다.겨우 달래서 다시 살기로 했는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일 모레 이혼해도 손해날 것 없다고 생각하고 마음 편안하게 사세요. 아들하고 의논해서, 처음 결혼할 때는 반대했는데, 너의 말대로 괜찮은 여자 만나서 사는데, 여자가 어떻게 룸펜하고 살 수 있겠니? 힘을 합해서 사는 시늉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니? 하면서 한 달에 50만원이라도 버는 직장을 구하도록 의논해 보세요. 부인이 원하는 것은 부모가 돈을 준다고 하더라도 남편이 노는 것을 못 본다는 거잖아요. 마음을 며느리가 아들과 4년 살아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이런 마음을 가지세요. 우리 며늘아이가 착합니다. 우리 아들이지만 저런 아들과 살아준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맙습니까? 아이고, 우리 아들 장가라도 가보고, 가정이라도 꾸려봐서 감사합니다 하세요. 그리고 어떤 여자도 부모 유산만 받아먹고 사는 것보다, 남자가 나가서 제 역할을 해야 좋아합니다. 아들과 이야기해서 안 살려거든 보내줘라 하고, 살려거든 나가서 7080만원이라도 벌어라 하세요. 요즘 엄마 같으면 난리가 났을텐데 질문하신 분도 참 착하시네요. 살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면 나중에 며느리가 집나가면 미워져요. 살아준 것만해도 고맙다, 고맙다 하면 살아주는 것도 고맙고, 가도 고맙습니다.nbspnbsp 질문을 듣고 스님과 문답이 오가는 속에서 참 지혜로운 시어머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 현풍고등학교에서 강연을 마치고 곧장 ‘새로운 100년’ 북콘서트가 있는 서울대로 향했습니다. 서울로 오는데 고속도로 공사가 이 곳 저 곳 많아서 정체되는 곳이 여러 곳 있었습니다. 스님은 바깥 상황과 관계없이 현풍에서 서울 오는 동안 차안에서 곤히 주무셨습니다. 서울대학교에 도착하니 강연 한 시간 전입니다. 강연전에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 원장님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식사를 못 하신 스님께 샌드위치를 준비해 주셔서 간단한 요기를 하면서, 통일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원장님은 최근 유럽에 평화관련 탐방을 다녀 오신 이야기를 하시면서 20세기형 평화관리형의 한국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두 분이 서로 오래된 지인이라 거리낌없이 편안하게 사회문제와 통일에 대한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7시가 되어 강연장에 들어가니, 1600석 강당엔 1, 2층 모두 꽉 차고 복도에도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1800여명이 참가를 했다고 합니다. 200여명이 바닥에 앉았는데, 바닥이 카펫으로 되어 앉기에 좋았습니다.nbsp 기nbsp 오늘은 초대손님으로 시골의사 박경철, 서울대 교수 조국 님이 나와서 인사를 하고, ‘새로운 100년’을 읽고 어땠는지부터 여러 질문들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창조적인 삶,nbsp진보적인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스님과 함께 이 자리에 앉아서 구시대의 낡은 통일이 아니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통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자체가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강연장에 온 1800여명의 관객들은 모두 스님 강연을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 같았습니다. 스님의 통일에 대한, 역사에 대한 이야기 한 단락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희망세상 강연회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아, 사람들이 이렇게 스님의 말씀에 공감을 하고 있구나. 오늘 강연 온 사람들은 정말 통일을 위해 통일의병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 분위기에 취해서 감동하곤 했습니다. 통일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겠구나. 이런 열기를 모아 나간다면, 정말 통일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느낌으로 확인하는 희망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강연 마지막에, 여기 있는 사람들이 이 강연장 밖으로 나가서도 행동을 할 수 있는 실천방법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뭔가 통일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행동해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자의 간절함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그 때 스님의 하신 말씀이 마음에 많이 남습니다. 2000만 북한동포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데, 이것을 외면하고 어떻게 진리를 이야기하고,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맨 처음, 이들을 위해서 커피 한 잔 값이라도 먼저 기부를 하는 것에서부터 통일을 위한 준비는 시작된다고 하신 말씀이 가슴에 많이 다가왔습니다. 굶주리는 북한동포들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사람들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살짝 눈물을 보이시는 듯했습니다. 그 모습에 저도 가슴이 찡해지면서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인간이라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일을 우리는 외면하고 있구나....가슴이 아팠습니다. 북 콘서트가 오늘로써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처음 서울에서 북콘서트 하던 날, 이렇게 해서 사람들의 열의를 모아 나갈 수 있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사실 앞섰습니다. 두 번째, 광주에서의 북콘서트를 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의를 가지고 있구나. 귀를 열고 듣고 있구나. 행동하려고 하는구나. 대전, 울산, 부산을 거치면서 조금씩 조금씩 분위기가 달구어져 왔던 것 같습니다. 오늘, 1800여명이 모인 서울대에서 같이 환호하고, 같이 손뼉을 치는 10대부터 머리 하얀 할아버지들까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감동이 밀려와서 저는 또 눈물이 났습니다. nbsp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내기 위해서 스님이 얼마나 많은 날들을 거리에서 보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오직 굶주리는 북한동포들을 돕기 위해, 통일을 위해 염원하고 또 염원하셨는지.... 어느 곳에서나 어느 때나 항상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시는 스님. 스님의 기도가, 이제는 우리들의 염원이 된 통일이 속히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내일은 사실상 여름 200강 마지막 날입니다. 순창과 진천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 강연장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7월 8일 법륜스님의 하루(산책, 정리하는 시간)
오늘 아침은 날이 화창하게 맑았습니다. 옥상엔 빨래줄마다 하얗고 노랗고, 파란색, 회색 빨래들이 가득 널려 있었습니다. 주말이라 상주대중들도 일주일을 정리하면서 빨래를 했나 봅니다. 매달 둘쨋주 토요일날은 공동체로 살고 있는 성원들끼리 포살과 울력이 있는 날입니다. 어제는 강연에 참가하느라고 포살에 참가하지 못하고, 오늘 아침 포살에 참가하지 못했던 사람들끼리 모여서 포살을 했습니다. 지난 한 달을 돌아보며, 공동체 성원으로서 정해진 계율들을 살펴보며 스스로 참회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포살을 하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저희들이 포살을 하는 동안, 스님은 오늘도 아침 일찍 조찬 모임이 있어서, 평화재단으로 나가셨습니다. 조찬모임을 마치고, 월요일 오전 강연이 대구라서 대구와 가까운 두북으로 내려왔습니다. nbsp 내일, 모레면 여름 100강도 마무리가 됩니다. 강연을 마치자마자 문경에서 3주간 명상수련이 있고, 그 후엔 2주간 중국역사기행, 미주순회법회로 이어지는 일정들이라, 오늘은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최보살님은 그동안 스님 입으셨던 가사, 장삼이며 법복을 손질하셨습니다. 어제는 낡고 삵아서 떨어진 곳을 틀질해서 다시 여미고, 오늘은 전체를 다 세탁하고 풀먹이고 다림질하는 일들을 하면서 강연 마무리와 더불어 여름을 준비하시는 모습입니다. 스님은 3달 가량을 명상과 해외 일정으로 거의 외부에서 보내시기 때문에, 전체 업무를 점검할 시간이 오늘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외부에 계실동안 정기적으로, 혹은 비정기적으로 나가야 될 원고 수정작업을 하셨습니다.그 외에도 수계자 명단 점검 등 서류상의 업무들을 다 정리하셨습니다. nbsp 오후에는 2시간 가량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스님은 강연을 하면서 운동을 너무 하지 않아, 잠시라도 시간이 되면 산책을nbsp하시는데, 실제 시간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면서 하루 운동량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습니다. “스님. 왜 김밥만 먹는데 살이 찔까요? 살이 불어나는 것 같습니다. 잠도 적게 자는데...” “운동을 워낙 안 해서 그렇지.”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어서 살펴보니, 정말 차안에서 사육당하듯이 차안에서만 거의 지내고 있었습니다. 정토회관 3층에서 1층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를 탑니다. 차는 강연장 코앞까지 갑니다. 강연장 입구에서 내려서 강연장까지 들어갔다가 스님은 2시간 동안 서서 강연을 하시고, 저희들은 2시간동안 앉아서 강연을 듣습니다. 강연이 끝나면 로비까지 나와서 스님은 사인을 하시고, 다시 강연장 가장 가까이까지 와 있는 차를 타고 다음 강연장으로 이동합니다. 가는 도중 휴게소에 들러 잠시 화장실에 다녀와서 다음 강연장으로 이동, 다음 강연장에서 또 스님은 강연하시고, 저희들은 앉아서 듣기...하루동안 걷는 시간은 거의 없고, 차에서, 강연장에서 앉아 있는 시간이 대부분입니다. “스님. 그래도 스님은 저희들보다는 더 운동을 하시는 것 같애요. 스님은 서서 강연하시잖아요. 그동안에도 저희들은 앉아 있어요.” “김밥이라서 그래도 다행이지, 다른 음식들을 먹었으면 몇 킬로씩은 살이 붙었을 거다.”하면서 김밥으로 식사하는 것에 대해서 상당한 만족감을 표하십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많이 웃었습니다. 하루 2강, 3강을 하고, 오전, 오후 강연이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까지 나눠져 있으면 실제 운동할 시간이 하루 중에는 나오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틈이 나면 걸으면서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오후 6시경부터 8시까지 산길을 7킬로 정도를 걸었습니다. 숲에 있는 도로라 햇볕도 들어오지 않고,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았습니다. nbsp 돌아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저희들은 3개월정도 비워 둘 집이라 음식정리, 그릇정리, 냉장고 정리, 텃밭정리 등 주변정리를 했습니다. 스님은 원고와 업무 정리하느라 바쁘십니다. 여름 100강 마지막인 8월 20일 부산대강연을 제외하면 내일과 모레 여름 100강이 끝납니다. 막바지로 다가갈수록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내일 오전은 내일 대구 달성군에서 강연이 있고, 오후에는 서울대에서 오연호, 박경철, 조국 님이 같이 참가하는 ‘새로운 100년’ 북콘서트가 있습니다. 내일 대구와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nbsp
7월 7일 법륜스님의 하루(경기 김포, 서울 서초)
오늘 하루를 돌아봅니다. 오전 김포강연이 벌써 아득한 느낌입니다. 하루가 금세 지나갔습니다. 서울에서도 멀리 하늘에 별이 보이는 밤입니다. 선풍기 틀어놓고 앉아 오늘 하루를 돌아봅니다. 어제 동해에서 강연마치고 출발해서 서울에 도착하니 새벽 1시 30분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오늘도 아침 일찍 약속한 만남이 있어서, 조찬모임에 나가셨습니다. 조찬모임 후, 오전 강연이 있는 김포로 향했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김포에 도착했습니다. “전에 강화도 갈려면 김포에서 길이 워낙 많이 막혀 고생하곤 했는데, 이제는 4차선이 되어 있어, 차가 잘 빠지네?” 막히지 않고 시원하게 차가 빠지는 것을 보고, 스님은 옛날 생각이 나시는 것 같았습니다. 강연장 옆에서 시장님과 먼저 간단한 차담을 나누고, 시간 맞춰서 강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348석 강연장인데, 710명이 참가했습니다. 벌써 강연장에는 무대에까지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었습니다. 무대 위에 앉은 사람들에게까지 공손히 인사를 하고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역시, 도시에 오니 질문이 시원시원합니다. 뒤로 숨겨 두는 것 없이 질문을 하고, 그만큼 스님의 답변도 구체적으로 다가갑니다. nbsp 고부 갈등에 대한 부분이라 김포까지 원정와서 질문한다는 주부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저에게 제일 큰 고민이 고부간의 갈등이예요. 장남 며느리라 부모님을 모신다고 하기도 그렇고 안 모신다고 하기도 그런 속에서 그렇게 23년간 살았어요. 잘 하려고 했는데, 저희 어머니가 안 받아준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많이 지쳤어요. 지금은 어머니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어요.” “부모님 생활이 윤택했어요? 부모님들이 애 키울 때 어려운 속에서 키웠어요? 시부모 사이 관계는 어땠어요?” “관계가 아주 안 좋았어요.” “제일 간단한 것은, 시어머니 맞추기 힘드니까, 안녕히 계세요 하고 이혼하면 되잖아요?” “그러고 싶었는데 애들 아버지가 용납을 안 했어요.” “남편은 괜찮아요?” “내 남편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은데, 시어머니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싫어요.” “시부모님 부부관계가 안 좋으니까 어머니가 맏아들에게 정을 붙이고 살았겠죠? 큰 아들에게 의지하고 살았어요. 남편이 죽으면 무의식 중에 아들을 남편겸, 아들겸해서 살아요. 자기가 아들에게 온갖 희망을 걸고 정성을 들여 키워 놓았더니, 어느 날 결혼을 하니, 며느리라고 들어와서 아들을 뺏어 갔어요. 생각은 장가보내야 한다고 하지만, 마음에서는 뭔가 뺏긴 기분이예요. 그러니까 며느리 꼴이 보기 싫은 거예요. 자기 전 생애를 다 도둑맞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며느리가 어떻게 한다고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어머니와 갈등을 겪고 살면, 질문자가 나중에 아들을 장가보내면 똑 같은 갈등을 유발합니다. 똑같이 반복합니다.” “남편 원래 주인이 질문자예요? 어머니예요?”” “어머니요.” “어머니 것을 뺏어 갔으니까 어머니 심정을 이해해서, 어머니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머니가 오시면, 얼른 돌려 줘야 합니다. 나는 맨날 같이 사니까, 어머니가 오시면 아들을 어머니 방에 보내서 이야기해라고 해야 합니다. 남편이 어머니에게 30만원 주자고 하면 나는 50만원 주자고 하고, 남편이 주자는 것보다 더 줘야 합니다. 어머니가 트집이다 싶은 잔소리를 하더라도 ‘미안해요, 어머니.’하고 어머니 마음을 이해하고 살면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질문자가 시어머니와 자꾸 갈등을 일으키면 남편이 일찍 죽습니다. 중간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남편이 골골 말라들어가는 거예요.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남의 물건을 뺏어 왔으니까, 미안한 마음만 가지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애써서 아양 떨지말고, 뭐라고 하시든지 미안한 줄만 알면 됩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이렇게 하면 됩니다.” “솔직히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따라 해봐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대중들이 와하며 박수를 칩니다.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원만히 풀려서 화목한 가정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와 책 사인을 합니다.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사진을 찍습니다. “전화해라고 전화기가 있는데, 왜 전화기로 사진을 그리 많이 찍어요?”하며 스님이 웃으십니다. nbsp 김포에서 강연을 마치고, 바로 다음 강연이 있는 서초동으로 향했습니다. 서초동 강연장 가까이에 와서, 30분 가량 시간의 여유가 있어, 스님은 목이 아프다 하시며 이비인후과에 가서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치료를 받고 강연장에 가니 강연 시작 10분전입니다. 요즘 시군단위 지자체에 가면 좋은 건물에 넓은 강연장이 있는데 비해, 도시에는 오히려 넓은 공간이 부족하거나 상당히 낙후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 서초구민회관은 800석 가량 되는 큰 공간인데, 무대와 복도, 로비에까지 사람들이 앉아 1,960명이 스님 강연을 듣고, 100여명은 도저히 공간이 안 되어 돌아갔습니다. 돌아가신 분들께는 죄송한 마음 전합니다. 스님을 2,000여명이 환호를 하면서 반갑게 맞이합니다. 강연 분위기도 밝고 경쾌한 느낌이었습니다. 서초구민회관에서는 사람도 많았고, 질문자들도 많아, 대중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질문을 최대로 받았습니다. 근 3시간 가량 강연을 하셨습니다. 토요일 오후인데도 3시간동안 사람들이 거의 움직이지 않고 집중해서 강연을 듣습니다. nbsp 질문자 중, 딸 둘을 둔 어머니의 질문이 강연 지나고 나서도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딸이 둘이 있는데, 큰 애는 심한 아토피로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 있고, 둘째 딸도 대학교를 나왔는데 비정규직으로 취직해 있습니다. 이 애들을 내 삶에서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손을 놔 버리고 싶은데 내 손에 단단하게 붙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애들이 너무 사회적으로 세상에서 쳐져 있다고 할까요? 갖다 버리고 싶습니다. 내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대학교 갈 때까지는 너무너무 자랑스러웠죠. 곧 그 애가 내 인생의 전부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쳐다보기도 싫어요. 갖다 버려지지도 않아요. 이뻐서 시집이라도 가면 아파트 하나 지참금으로 줘서라도 보내버리고 싶어요.” “자기 엄마도 싫다는데 누가 좋아하겠어요? 자기도 갖다 버리고 싶은데 어떤 남자가 데려 가겠어요? 자기가 가진 재산을 하나도 없이 다 봉사단체나 종교단체에 기부해 버리고, 몸뚱이 하나만 달랑 가지고, 절에 가서 공양주를 하면 딱 끊어져요. 그러면 한 푼도 없기 때문에 의지도 안 하고 문제제기도 안 합니다.” “정상도 아니고 장애인도 아니고. 거기서 벗어나지지가 않네요.” “내가 낳아서, 내가 키워서, 나도 싫은 애를 세상 누가 데려 가겠어요? 그러니 이 문제를 풀려면, 질문자가 ‘이 세상 그 누구도 너희들을 보호하지 않아도 내가 보호할께’, 해야 데려갈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아껴야 다른 사람이 좋아하지요. 천하가 다 버려도 엄마는 ‘우리 아이 괜찮아요’ 해야 합니다. 그 아이의 행복을 원한다면 엄마가 기도를 해야 합니다.교회 다녀요? 절에 다녀요?” “성당 다녀요.” “그러면 가슴을 치면서 내 탓이요, 내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 해야 합니다. 껴안아줘야 합니다. 남편도 위로해 주면서 살아야 됩니다. 달리 길이 없어요. 그렇게 자기가 자기를 죽여야 됩니다. 남편의 자식에 대한 분노도 자기가 받아줘야 해요.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워서 그래요. 애들을 포용해 줘야 합니다.” “니가 죽으면 나도 같이 죽겠다고 하면서 애들한테 상처를 줬어요.” “마음은 항상 격려해주면서, 경제적인 지원을 안 해야죠. 돈을 가지고 어떻게 때우려고 하는데, 돈은 딱 끊어버리고, 완전히 내 몸뚱이를 가지고, 목숨을 걸고 아이를 살려야 합니다. 애들은 애들대로 자립심이 없어지고, 부모의 정은 못 느끼고 있어요. 헌신적으로 아이를 보살펴야 합니다. 남은 생은 아이들을 위해서 살겠다고 마음을 확 바꿔 버리면 삽니다. 딱 굽혀줘야 합니다. 정신적으로 아이에 대한 집착을 놓는다는 것은, 내가 아이에 대해서 완전히 감싸안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종교랑 관계없이 하루 300배를 하면서, 주여 내 탓이요, 내 탓이요 하면 됩니다. 앞으로 엄마가 간섭을 하면 안됩니다. 우리 딸 착하다 이렇게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세요. 이러면서 밥은 해 주지 말고. 칭찬을 해주고. 배고프면 자기가 하도록하고, 빨래도 자기들이 하도록 해서 자립하도록 해 주세요.” 아이들을 키울 때는nbsp집착을 해서 과잉보호를 하고, 커서는 내 뜻대로 아이들이 성공을 못하니까 이제는 내치는 엄마의 모습이라는 스님 말씀에, 요즘은 엄마가 없고 이웃집 아줌마만 있다고 하시던 스님의 말씀이 연이어 떠오릅니다. 부모의 답답한 마음도 다가오고, 자식들의 앞이 보이지 않는 갑갑함과 외로움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사실 일반적으로 보면 큰 문제가 있는 집은 아닌 것 같은데, 기대를 많이하고 집착을 많이 하다가 성취가 안 되니까, 절망이 너무 커서 세상이 어둡게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스님은 서초동 강연을 마치고 바로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약속된 만남을 마치고는 다시 재단내 회의가 있어, 늦게까지 회의에 참가하셨습니다. 밤바람이 시원합니다. 내일은 일요일이네요.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nbsp
7월 6일 법륜스님의 하루(강원도 고성, 동해)
강원도에서 아침을 맞이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숙소 창 밖의 강에는 물이 불어서 황토빛 물이 콸콸 흘러 내려 갑니다. 강원도는 수해가 질 정도의 비가 오지는 않았는데, 안양, 수원 등지에서는 비가 많이 와 비 피해 소식도 전해 옵니다. 더 큰 피해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오전에는 남한 최북단의 고성군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고성군은 인구 3만의 지자체인데, 그 중에는 군인이 많이 포함이 되어 있다고 하네요. 288석인데, 260명이 참가했습니다. 오랜만에 좌석이 다 차지 않은 강연이었지만, 참가한 분들은 마칠 때까지 자리도 이동하지 않고 재미있고, 진지하게 강연에 참가했습니다. nbsp 읍내라 질문이 적지 않을까 싶었는데,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고성이 너무 먼 곳이라 원정 질문을 하러 온 사람도 없었습니다. 스님이 성철스님처럼 결혼하고 출가를 했는지 궁금하다는 첫 질문을 시작으로 이런 저런 개인적인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 이름을 바꾸는 것과 관련한 스님 말씀을 전해 봅니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개명을 하면 좋은지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기가 많이 힘든가 봅니다. “저희 아이가 태어난 지 30개월부터 아팠어요. 암투병을 하다가 공기좋은 이 쪽으로 이사를 왔어요. 시댁 작은 아버지께서 작명소에 갔더니, 저희 아이 이름에 ‘희’자가 들어있어 아프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혼돈이 됩니다.” “그걸 왜 어렵게 생각해요? 이름 바꿔서 좋다고 하면 바꾸면 되잖아요? 그 말이 맞고 틀리고를 따질 필요가 뭐가 있어요? 복잡한 거 아니잖아요? 좋다고 하면 바꾸면 돼죠? 그런데 이름 바꾼다고 인생이 바뀌면 세상을 열심히 살 필요가 없잖아요. 상식적으로 그렇지않아요? 이름을 바꿔야만 문제가 풀린다면 세상이 다 이름만 바꾸면 되겠죠? 이름만 바꾸면 대통령이 된다면 대통령 후보 나온 사람들이 왜 저렇게 열심히 하겠어요? 이름만 바꾸면 되잖아요. 이름이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있어요. 이름이 매일 불리는 것이라 특별히 발음이 나쁘면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자 획을 가지고 너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겠어요? 이름을 고치러 가는 사람은 하는 일이 잘 안되서 찾아가는데, 이름을 고치면 좋아진다고 하면 희망을 가질 수 있어 때로는 심리치료효과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nbsp 고성 강연을 마치고, 통일전망대로 갔습니다. 전에 북한 식량 지원차 개성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평상시에 내가 분단된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못 느끼다가 출입증을 따로 받고, 외국 나가듯이 검문을 받아서 무장한 군인들 속을 지나 개성으로 가면서, 아, 정말 내가 분단된 나라에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체험적으로 깊이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무장한 군인들을 보면서, 북한으로 향하는 도로와 기찻길은 뚫려 있는데 더 이상 가지 못하는 경계를 보면서 분단된 나라의 국민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님은 북한과 닿아 있는 저 해안선과 도로와 기찻길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저 너머에 오늘도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이 살고 있을 것입니다. nbsp 통일전망대에 불상, 마리아상, 십자가가 북녘땅을 향해 서 있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께 참배를 하면서,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nbsp 통일전망대를 나와 건봉사에 참배를 했습니다. 건봉사 들어가는 길목마다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건봉사는 금강산 최대의 절이었다고 합니다. 20여년 전부터 재건 불사를 해서, 지금은 모양이 잘 갖춰진 사찰이 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건봉사에서도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를 하시고, 다음 강연장인 동해로 향했습니다. 동해로 가는 길에 바다가 훤히 보이는 동해휴게소에서 짜장면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동해 강연장으로 출발했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강연장 안은 벌써 사람들이 꽉 차고, 로비에 자리를 깔고 앉고 있었습니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재잘거리며 자리 잡기 바쁩니다. 스님은 로비에 앉은 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강연장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강연장에 들어가서 또 다시 자리 배치를 했습니다. 스님이 강연을 시작하시기 전, 앞에 있던 연단을 치워달라고 요청을 하고, 무대의 작은 공간까지도 대중들을 위해서 다 내어주고, 서서 듣는 사람과 밖에 앉아 있는 사람들 더 들어와서 강연을 들을 수 있도록 하고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nbsp 강연을 시작하자,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을 합니다. 오늘은 사회적인 질문이 많았습니다. “요즘 스님의 활동을 보면 통일운동가 같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통일이 가능한 것인지, 가능하다면 언제 가능한지, 현재 북한의 김정은 체제에 대한 스님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요즘의 통합진보당 사건과 종북 논란에 대해 스님의 의견을 배우고 싶습니다.” 스님이 질문에 대해서 하나 하나 짚어가며 설명을 해 주십니다. 그런데, 동해가 북한과 가까이 있는 지역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반응이 다른 지역과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자기 일처럼 듣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보통 사회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설명 중에 반응을 많이 안하는 편인데, 스님 의견에 동의가 되면 박수도 치면서 강한 동의의 뜻을 전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친정이 동해라 친정왔다가 오늘 강연을 들은 서울 주부 자원활동가가 “야, 동해 분위기 진짜 좋네? 사회적인 말씀이 많았는데 진짜 진지하고, 대단하다.” 합니다. 책 사인회를 하고 있는데 40대 초반정도의 여자분이 스님께 메모지 두 장을 주고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스님께 혹시 사람들과 나눠도 될 내용인지 여쭈니, 남편이 부도나고 갈등이 많아져 이혼을 결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라디오를 듣다가 스님 말씀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지금껏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잘 살고 있어 감사함을 표하는 내용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동해 강연을 준비한 희망지기 님의 사연도 감동적입니다. 4년전 안 좋은 일로 부인과 헤어지게 되었는데,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죽을 약까지 준비를 했다가, 어느 기회에 법륜스님을 뵙고 질문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깨달음의 장도 다녀와서 스님께서 말씀해 주신대로, 아이 둘을 어머니에게 맡기지 않고 혼자서 직장 다니면서 열심히 키웠는데 4살, 7살 아이들이 이제는 어엿한 초등학교 1학년, 4학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스님과의 인연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감사함이 커서, 이번 강연 준비할 때 강연장 관계자와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도 한 마디도 표현하지 않고, 매일 직장 다녀와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풀어가면서 오늘 강연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이런 어려움이야 언제라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스님께서 동해에 더 자주 와서 강연만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에 모두들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nbsp 두 분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목숨을 건진 사람들, 고통의 나락에서 행복의 화원으로 삶의 여정을 바꾼 사람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천당과 지옥이 있으면 할 일이 많은 지옥으로 가겠다고 하시던 스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옥같은 삶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스님 가르침을 하루라도 빨리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동해 평화활동가들과 간단한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북한동포들 지원하는 방법과 청년, 대학생 통일 교육 등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금은 서울로 올라가고 있는 길입니다. 네비게이션에 새벽 1시 40분 도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스님은 곤히 주무시고 계십니다. 내일 하루 일정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서울 일정은 항상 녹녹치 않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김포에서 강연이 있고, 오후 3시에는 서초구민회관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강연 앞뒤로 많은 약속들이 이미 포진해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즐거웠습니다. 내일 김포와 서초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