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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7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JTS 이사회 및 총회)
오늘은 인도에서 방콕으로 출발하는 날입니다. 오전에 인도JTS 이사회와 인도정토회 총회를 하고,바로 출발하는 일정이라, 현지 스텝들은 행사 준비로 분주하고, 저희들은 짐정리와 출발 준비하느라 바빴습니다. 오전 10시 30분, 이사회와 총회는 수자타아카데미 JTS 홍보센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깨끗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nbsp 이사들과 총회 회원은 현지 인도인들과 한국인 활동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도JTS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정준 법우님이 작년 인도JTS 사업과 올해 계획에 대해 발표를 했습니다. nbsp 이어서, 발표한 내용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주요 토론내용은 역시 수자타아카데미 운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한국 스텝, 인도인 스텝,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의논했던 수자타아카데미 ‘너스리’ 운영과 초등학교와 중학교 입학생들에 대한 토론이 1차로 진행되면서 많은 의견들과 함께 초안에 대해 만장일치로 동의를 했습니다. 2013년도 지이바카 병원, 마을 개발 사업 계획에 대해서도 모두 동의를 했습니다. 인도JTS와 인도정토회 사무국장을 김정준 법우님이 겸하고 있었는데, 오늘 인도JTS 사무국장으로김신아 법우님이 선임되었습니다. 그리고, 5년동안 거의 활동하지 않은 회원들은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nbsp 스님께서 회의 마지막에 마을개발에 대한 제안을 하셨습니다. “제가 이번에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혼자는 어렵지만 여럿이 모이면 가능한 일이 있습니다. 나락 타작하는 탈곡기 알아요? 여기는 나락을 두어달 쌓아두었다가 탈곡을 하던데, 그렇게 하면 유실이 많습니다. 어떤 보고에 의하면 30까지 유실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기 탈곡기는 아직 이 곳에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것도 있고, 디젤유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실제 사용하기도 어렵습니다. 디젤유를 사용하지 않고 발로 밟는 탈곡기가 있어요. 이런 것은 개인이 구입이 어려우니까 사용할 마을 사람 10명이 같이 구입을 하면 어때요? 6000루피라 하면, JTS에서 3,000루피를 내고,10명이 각 300루피씩을 내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흙집에서 관리하면 금방 못 쓰기 때문에 관리는 JTS 창고에서 하고, 필요할 때 돈을 낸 사람들이 사용하는 겁니다. 탈곡기의 경우, 일년 중 잠깐 사용하는 것인데 개인이 구입해서 쓰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그 다음 못자리에 대해서입니다. 6월 중순부터 비가 오는데, 이 곳은 비가 충분히 온 후 모를 심습니다. 그런데 그 때 심으면 모가 조금 자랐을 때 우기가 끝나버려, 물이 충분하지 않은 곳은 제대로 곡식이 되지 않습니다. 농업용수를 위해 지하수를 퍼 올리면 디젤유를 감당할 능력이 안 됩니다. 농사짓는 10명이 공동으로 우기가 시작되기 전에 공동 못자리를 하면 우기가 시작될 때 이미 모가어느 정도 자라있고, 우기가 끝날 때쯤에는 모가 많이 자라있기 때문에 수확이 훨씬 많아질 수 있습니다. 잔치 때 쓰는 그릇도 학교에 빌리러 오는데, 학교는 그 다음날 바로 쓰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빌려주기가 어렵습니다. 한 마을이 30가구라면 JTS가 6,000루피를 내고, 한 집에서 200루피씩을 내어서 12,000루피로 잔치 때 사용할 그릇을 공동으로 구매해서, 필요할 때 사용하는 안이 있습니다. 돈을 낸 사람은 언제라도 빌려 쓸 수 있습니다. 빌려 쓸 때도 약간의 돈을 내면, 그릇을 보충하거나낡았을 때 교체도 가능합니다. 건축자재도 공동으로 구매해서 집을 지을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어렵지만 공동으로 하면 쉽습니다. JTS도 개인은 빌려주기 어렵지만 공동으로 하면 빌려줄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한국에서는 ‘새마을운동’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정부에서 이 운동을 지원하지만, 여기서는 처음 자리잡을 때까지는 JTS가 지원할 수 있습니다. 마을마다 조합을 만들 수 있습니다.여러분들이 뭔가 스스로 먼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주택도 공동으로 여러 집을 짓는 것도 좋습니다.우리가 사는 마을을 잘 가꾸어서 모범이 되면 이후에는 정부가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정부에 돈만 달라고 하니까 안 주는 거예요. 뭔가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물건도 공동구매하고 생산물도 공동판매하는 등 함께 하면 많은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모범적인 한 마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가히을 시범으로 한 번 해 보세요.스님이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는 사람들이 글도 모르고 해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수자타아카데미가 20년이 되어 마을 청년들이 글을 알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nbsp 이사들과 회원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어젯밤에 한국인 스텝들과 회의하면서 이런 저런 많은 의견이 나왔었는데, 평소 그런 쪽에 아이디어가 많으셨던 스님께서 오늘 회의에서 바로 제안을 하셨습니다. 한국 마을마다 ‘계’라는 것이 있어서 공동으로 하는 일들이 많듯이, 둥게스와리도 공동으로 하는 일들을 하나씩 시작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회의 참가한 사람들도 의지가 있어 보였습니다. 마을개발 사업을 담당한 최동호 법우님도 아이디어가 많아서 잘 하면 새로운 사업들이 재미있게 전개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농사에 관심이 많거나, 건축에 재능이 있는 분, 공동체 운동이나 마을개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3년 정도 시간을 내어서 이 곳에 와서 자원봉사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한국에서 죽네, 사네 하면서 살지 말고, 이런 곳에 와서 딱 30년정도 자원봉사하면서 살겠다 하는 사람 없을까? 정말 의미있게 인생을 살 수 있을텐데. 내가 이 곳에서 살면서 일을 하면 할 일이 정말 많아.”하며 웃으셨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참가한 분들에게 선물을 주고, 단체 사진까지 찍으니 시간이 12시 20분이 다 되었습니다. 후다닥 서서 끓여놓은 라면 한 그릇 먹고, 바로 차를 타고 가야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가야공항에 도착해서 수속을 밟고, 예정시간보다 15분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바라나시를 경유해서, 지금은 방콕으로 가고 있는 비행기 안입니다. 오후 9시 15분 방콕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비행기 창너머로 해가 지고 있습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nbsp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1월 26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 공화국 수립 행사, 마을잔치)
오늘은 인도 공화국 수립 6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공화국 행사와 함께 처음 인도사업을 시작할 때 함께 했던 두르가푸르, 자가디스푸르 마을 사람들까지 초대해서 마을 잔치도 있는 날이라 아침 일찍부터 인도 전체 스텝들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어젯밤에 벌써 10여명의 요리사들이 들어와서 밤새 오늘 2000여명이 먹을 뿌리, 사부지, 분디야, 샐러드 준비를 했습니다. 공화국 수립 63주년을 맞이해서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국기 게양대 주변을 예쁘게 장식했습니다. 바닥에 색색깔 가루를 놓아 인도 국기를 만들어 놓고, 화분으로 주변을 꾸몄습니다. 10시에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하얀 옷을 입고 길을 만들고, 국기 게양대 앞쪽에는학교를 지키는 군인들이 큰 목소리로 사열을 하고 섰습니다. 스님과 두르가푸르 이장님, 지역 관리 한 분이 함께 나가서 국기를 게양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여학생들이 무대에서 인도 국가를 부르고, 참가한 사람들도 다 같이 인도 국가를 불렀습니다. nbsp 공화국 수립 행사가 끝난 뒤부터는 인사할 분과 학생들 재롱잔치가 이어졌습니다. 두르가푸르 이장님이 먼저 나오셔서 인사말씀을 하였습니다. nbsp 성지순례 때 재롱을 피웠던 아이들이 나와서 더 깜찍한 모습으로 공연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공연이 올려지기도 했습니다. nbsp 오늘은 마당에 무대가 만들어졌습니다. 태권도 사범이 구령을 하자, 힘차게 태권도복을 입은 아이들이 뛰어나와 공연을 펼쳤습니다.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습니다. nbsp 아이들 공연 중간 중간 지역 관리와 학생 대표 인사말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스님께서 제안하셔서 프리댄스타임을 넣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명도 안 나오더니, 나중에는 무대가 부족해서 운동장에까지nbsp많은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나와서 춤을 추었습니다. 역시, 인도 사람들은 막춤의 대가인 것 같았습니다. 정말 잘 췄습니다. 하루종일 출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신나게 춰서, 보는 사람들도 같이 신이 났습니다. nbsp 이 후 스님의 인사말씀이 있었습니다. 스님 말씀을 간단히 정리해 봤습니다. “오늘은 인도 공화국 수립 63주년 기념일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서 국가를 수립한 날입니다.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로부터 억압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듯이 어떤 사람도 그 누구로부터 억압받아서는 안됩니다. 계급이 낮다고, 여자라고 차별 받아서는 안됩니다. 인도 공화국의 헌법에는 그 누구도 평등하고 독립되어 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공부를 해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독립되어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만약 여기서 우리 아이들이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도 구걸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느 도시 아이들 못지않게 얼마나 잘 합니까? 정말 예쁘게 춤을 추죠? 벌써 2600년전 부처님께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 감사한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국 독립을 위해 노력한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nbsp 아이들이 공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마을 사람들 표정이 밝았습니다. 재미있어 했습니다. 이 곳은 한 집에 사는 사람이 평균 10명정도 된다고 합니다. 아이가 평균 6명 정도 되고, 부모나 결혼 안한 삼촌들이 같이 살면 그 정도 된다고 합니다. nbsp 점심 식사시간이 되었습니다. 15개 마을 대표들과 초기 땅을 기증했던 사람들 100여명은 따로 식사 대접을 하고, 마을 분들은 마을별로 모여서 식사를 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마을 대표분들과 식사를 같이 하신 후, 학교와 마을 관련해서 회의를 하셨습니다. 어제 인도인 스텝들과 이야기했던 것처럼, 학교 운영을 올 해부터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 물었습니다. 스텝들과 논의되었던 것과 같은 의견들이었습니다. 그 다음 마을 펌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마을에 JTS에서 펌프를 파주는데 주인이 없다 보니 함부로 사용하고, 고장이 나도 고치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먹을 물이 없고, 먹을 물을 긷기 위해 먼 이웃 마을까지 다녀와야 하고, 가까이 있는 지저분한 우물물을 먹고 와서는 사람들이 배가 아프다고 호소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 펌프를 고치긴 고쳐야 하는데, 그렇다고 JTS가 매번 고쳐줄 수도 없어서 오늘 스님께서 마을 대표자 회의에 안건으로 붙였습니다. 스님께서 첫째, JTS에서 다 지원해 주는 안, 둘째, 사용하는 마을 사람들이 돈을 내어서 고치는 안, 셋째, JTS와 마을 사람들이 반반씩 내는 안으로 3가지를 제안하셨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세 번째 안이 좋다고 합니다. 마을 펌프 고치는 값은 JTS와 사용하는 마을 사람들이 반반씩 내는 것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nbsp “이제 제발 고장내지 말고 잘 써요. 잘만 쓰면 훨씬 더 오래 쓸 수 있을텐데... 알겠어요?”하며 스님께서 웃으면서 이야기하자 사람들도 그렇게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2000여명의 사람들이 밀물 빠져 나가더니 싹 빠져 나가고, 학교엔 덩그러니 사람들이 앉았던 바닥 깔개만 놓여 있었습니다. 마을 잔치가 끝나고 바로 스님과 중학생들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유치원 선생님을 하고,오후에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입니다. 스님께서 어느 어느 마을인지 일일이 물어보시고,격려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달력과 새해 용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중학생 다음으로 학교 노동자들과도 잠시 만나 격려를 해 주시고, 새해 용돈을 주셨습니다. nbsp 저녁을 먹고는 한국 스텝들과 다같이 모여서 마지막 사업 논의를 했습니다. 어제는 지바카병원과 마을개발 관련해서 회의를 했고, 오늘은 인력, 불사, 마을개발, 인도불자대회 등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논의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도 한국인 스텝들도 스님께 새해 용돈을 받고 즐거워했습니다. 회의를 마치자 최보살님께서 따끈한 감자를 삶아 주셔서, 뒷풀이를 겸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루를 마무리를 했습니다. 내일이면 저희들도 인도 일정을 마치고 방콕으로 떠납니다. 내일은 오전에 인도JTS와 인도정토회 이사회와 총회가 있고,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한 후 가야공항으로 떠날 예정입니다. 가야공항에서 오후 2시 40분 비행기를 타고 방콕으로 가서 방콕정토법당으로 이동할 계획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1월 25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인 스텝 수련)
오늘은 스님을 모시고 인도인 스텝 수련이 있었습니다. 어제는 스님을 모시고 전정각산 산행을 하고, 부처님이 이 지역에서 어떻게 수행하시고 도를 이루셨는지, 성도 후 우루벨라 카사파 교화이야기까지 자세히 들었습니다. 오전 9시부터 법당에서 수련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어제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말씀하셨던 시체를 버린 부정한 곳이라 생각하는 둥게스와리와 부처님이 수행을 하셔서 성스러운 곳이라 생각하는 둥게스와리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면서 존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부정한 것도 없고 성스러운 것도 없는 이치에 대해서 알아듣기 쉽게 다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nbsp 인도에는 아직 카스트가 존재하고, 남녀 차별이 심합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20여년을 교육해 오면서 이제 학교 내에서는 카스트나 남녀 차별이 없이 모두 평등합니다. 그러나 학교 문을 나가면 바로 학생들과 인도인 스텝들은 계급 차별과 남녀 차별의 현실과 만나게 됩니다. 스님께서 계급 차별에 대해서, 남녀 차별에 대해서도 스텝들이 이해하기 쉽게, 그러나 이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묻고 답하면서 정성을 쏟으셨습니다. “가야 사람들은 이 곳을 부정한 곳이라고 하고, 불교 신자들은 이 곳을 성스러운 곳이라고 합니다.이 곳은 부정한 곳입니까? 성스러운 곳입니까? “이 곳이 성스러운 곳도 아니고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냥 땅이라면 그것처럼 사람들이 높은 카스트라고 생각하고 낮은 카스트라고 생각하지, 사람에게는 높은 카스트도 없고 낮은 카스트도 없어요. 이해하겠어요? “여자 스텝 한 명 나오세요. 인도에서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다고 합니다.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을까요?” “아니예요. 평등해요.” “그런데 만약에 가야 사람들에게 둥게스와리는 성스러운 곳도 아니고 부정한 곳도 아니라고 하면그렇게 알아들을까요? “아니예요. 못 알아들어요.”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다는 말을 이야기하면 남자가 이해하기 쉬울까요, 여자가 이해하기 쉬울까요?” “여자가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 말은 반대로, 남녀가 평등하다고 할 때 누가 더 못 알아들을까요?” “남자요.” “그러면 낮은 카스트와 높은 카스트에게 ‘사람은 누구나 평등합니다.’ 하고 이야기하면 높은 카스트 사람이 빨리 알아들을까요? 낮은 카스트 사람이 빨리 알아들을까? “낮은 카스트요.” “그러면 높은 계급과 낮은 계급에게, 사람에게 높고 낮음은 없다고 할 때 높은 사람이 이해를 못할까요? 낮은 계급이 이해를 못할까요?” “높은 계급요.” 스님께서 인도인 스텝들이 이해를 못하면 다시 묻고 답하고, 다시 묻고 답하면서 이치를 이해시켜 주셨습니다. 인도인 스텝들도 맞든 틀리든 상관없이 생각나는대로 신나게 대답을 합니다. 분위기가 활기차졌습니다. nbsp 스님께서 부처님 교화사례 중 똥군 니이다이 이야기와 바보 주리반특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비굴함과 교만함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낮다, 낮은 계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이를 열등의식이라고 하고 열등의식이 있으면비굴해집니다. 내가 높은 계급이라고 생각하면 이를 우월의식이라고 하고 우월의식이 있으면 교만해집니다. 이 둘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높다는 생각도 버리고, 낮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우월의식도 버리고, 열등의식도 버려야 합니다. 교만함도 버려야 하고, 비굴함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교만함을 버리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 겸손해야 합니다. 비굴함을 버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당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제자들아. 너희들은 교만해서는 안 된다. 겸손하라. 나의 제자들아. 너희들은 비굴해서는 안된다. 당당하라.’ 잘났다, 못 났다는 생각을 둘 다 버리면, 높다, 낮다는 생각을 다 버리면 교만하지 않고 겸손해지고,비굴해지지 않고 당당해집니다. 우리는 그렇게 나아가야 합니다. 내가 잘 났다는 생각도 버리고, 내가 못 났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남자가 높다는 생각도 버려야 하고, 여자가 낮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브라만이 높다는 생각도 버리고, 하리잔이 낮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만 사람일 뿐입니다. 모든 땅은 다만 땅일 뿐입니다. 모든 존재는 다만 존재일 뿐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여러분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면 교만한 사람은 겸손해지고, 비굴한 사람은 당당해집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어요?” “녜” 이어서 개인의 성공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 이익과 부합될 때 이를 진정한 성공이라 할 수 있다는 말씀을 인도의 영국 식민지 때를 예를 들며 말씀해 주셨는데, 이 내용은 좀 어려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nbsp 그 후 스님께서 오전 전체 정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한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해지느냐하는 것입니다. 이 행복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가 자기 행복을 만들어야 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지 그 누가 아닙니다. 두 번째는,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해서 책임을 다 하는 것입니다. 가족에 대한 책임, 마을, 사회, 나라, 지구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 대한 책임도, 세상에 대한 책임도 같이 져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고, 그렇게 살아갈 때 진정한 인생의 성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브라더, 시스터들이 왜 여기까지 왔느냐? 그것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서, 자기 마을의 문제를 넘어서서, 한국 나라를 위한 문제를 넘어서서, 전 세계 사람에 대한 한 부분의 책임을 지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마음을 넓혀 가야 합니다.” 오전 법문을 마치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1시간동안 점심시간을 가지고 바로 이어서 다시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오후에는 수자타아카데미 현안 문제에 대해서 토론을 했습니다. 작년에 정부학교에 학생들을 보내기로 하고 수자타아카데미는 초등학교, 중학교 1학년을 받지 않고 1년을 지냈더니 천민아이들이 차별받아 학교에 가지 않고 양민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 토론을 했습니다. 활발하게 토론을 했습니다. 전원 찬성을 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 의견을 몇 차례 계속 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 해결방법을 세 가지 정도 제안을 하면 그것을 가지고 주로 토론을 했는데, 스님 의견에 대해서 새로운 의견을 내는 스텝들도 있었습니다. nbsp 그리고 4살 유아를 가르치는 반을 ‘너스리’반이라고 하는데, 너스리반을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 대부분 찬성을 했는데 반대하는 사람도 몇 명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수의견을 낸 사람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다시 표결을 했습니다. nbsp 스님께서 마무리 정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서 같이 의논해서 방안을 만들었습니다. 스님이 의견을 내어서 결정된 것이예요? 여러분들 의견을 모아서 결정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자기 결정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너스리’가 많이 늘어났고, 초등학교 1학년도, 중학교 1학년도 다시 받으면 학생 수가 늘어나요. 그러면 선생님 역할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수업시간이 더 늘어납니다. 여러분들이 수업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집니다. 책임지겠어요? 스님하고 약속했어요? 앞으로 ‘너스리’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유치원을, 초등학교를, 중학교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스님과 의논하듯이 교장, 교감선생님과 여러분들이 의논해서 좋은 계획을 세워보세요. 무조건 다수 의견이면 되는 것이 아니고, 소수 의견이라도 충분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의견이라 하더라도 소수가 되면, 내 생각을 내려놓고 다수 의견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늘 모은 의견이 최종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90는 그대로 하겠습니다. 내일 마을잔치 있는 것 알죠? 내일 마을 어른들이 오시는데 그 중에서 각 마을 대표 100명을 따로 모아 그 분들의 의견도 들어보겠습니다. 그 분들도 이렇게 생각하면 결정하겠습니다. 혹시 그 사람들 중에 우리보다 더 좋은 의견이 있을 수가 있으니 약간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nbsp 스님께서 오늘 인도인 스텝들과 수련을 하면서, 사실은 대중공사를 진행한 느낌이었습니다. 상가에는 대중공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두 모여 공동체의 문제를 다같이 충분히 토론해서 함께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스님께서 결정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실제 학교에서 실무를 맡고 있는 스텝들이 현재 무엇이 문제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정보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고, 이것을 어떻게 풀어갈지 함께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도 스님 책임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일을 하는 스텝들이 책임질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내용들이 결정이 된 것입니다. 토론 방식도 부처님 때부터 상가에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는 삼의제 방식대로 오늘 토론을 진행해 나가셨습니다. 다수가 찬성하더라도 소수의견을 3번까지 충분히 듣고, 그런 후 마지막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전원 동의를 하는 방식입니다. 일은 이렇게 진행되면 어디에서나 갈등이 적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님이라고, 한국인 스텝이라고, 지위가 높다고, 나이가 많다고 쉽게 내 의견대로 진행해 버리기가 더 쉬운데, 의견 있는 사람은 충분히 이야기하면서 토론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스님의 진행방식을 보면서 또 한 번 큰 배움이 있었습니다. 수련을 마치면서 스님께서 달력과 새해 용돈을 한 명 한 명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스님과 어제, 오늘 이틀을 온통 같이 지냈습니다. 스텝들의 얼굴이 환했습니다. 앞으로 1년간 살아갈 힘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인도 스텝 수련 후, 해질녘에는 전정각산에 올라가 수자타아카데미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불교TV와 ‘수자타아카데미가 걸어온 길’에 대한 인터뷰와 영상 촬영을 하고, 어두룩해질 때 내려왔습니다. nbsp 밤에는 다시 한국인 스텝 전체 회의를 하고, 오늘 하루를 접었습니다. 내일은 인도공화국 수립 6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공화국 기념행사를 하고, 처음 사업할 때 함께 했던 옆 마을인 두르가푸르, 자가디스푸르 마을 사람들 전체를 초대해서 마을 잔치를 할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1월 24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인 스텝 성지순례)
오늘은 스님과 인도JTS 인도인 스텝들과 함께 하는 날입니다. 인도JTS 각 부서에는한국인 스텝과 인도인 스텝이 함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인도인 스텝은34명이 참가했는데 수자타아카데미, 지바카병원, 마을개발, 건축 파트 스텝 중 수자타아카데미 대학생 교사들의 숫자가 제일 많았습니다. 인도JTS도 정토회 방침대로 자원봉사로 운영이 되고 있어서, 대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자원봉사로 수자타아카데미 상급반 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새벽 6시, 천일기도를 끝내고 내려오니 인도인 스텝들이 한 두명씩 오고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은 달걀 2개, 빵1개, 바나나1개, 짜이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인도인 남자 스텝들은 모두 운동화를 신고 왔는데, 여자들은 전원 슬리퍼를 신고 왔습니다. 운동화 자체가 없다고 합니다.슬리퍼를 신고 산에 오를 수 있을까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오전 6시 40분경 스님으로부터 오늘 하루 전체 일정에 대한 소개를 듣고 전정각산으로 출발했습니다. 교문을 나서면 바로 앞에 돌무더기가 있습니다. 그 앞에 서서 스님께서 전정각산 전반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nbsp “우리가 살고 있는 ‘둥게스와리’는 부정한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둥그’는 부정한, ‘스와리’는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는 옛날 가야 사람들이 시신을 버리던 곳입니다. 시타림이라고 합니다. 부정하다는 것은 위생적인 의미가 아니라 시신을 버리는 곳이라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그런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부처님이 5비구에게 최초의 법을 설했던 바라나시의 사르나뜨도 둥게스와리와 같이 시신을 버리던 곳입니다. 시신을 버리는 곳은 부정한 곳이라 사람들이 잘 오지 않기 때문에 조용해서 수행자들이 주로 그 곳에서 수행을 했습니다. 부정하다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땅인데 시신을 버렸을 때는 부정한 땅이었는데부처님께서 수행했던 곳이라서 지금은 성스러운 곳이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닫기전 정진한 곳이라고 해서 이 곳을 쁘락보디힐이라고 하고, 유영굴은 쁘락보디 케이브라고 합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보이는 돌무더기있는 곳은 부처님께서 시신옆에서 명상하시던 곳입니다. 전정각산은 부처님께서 6년동안 정진하셨던 곳이라 여러분들이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6년이나 계셔서 명상하셨던 곳마다 탑터가 있습니다. 부처님과 친구 5명이 같이 수행했던 자랑스러운 곳입니다. 지금은 자랑스러운 곳이 되어 있습니다. 부정한 곳이라도 부처님이 깨달아성스러운 곳이 되었듯이, 여러분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도록 하세요.” 스님을 따라 전정각산으로 올랐습니다. 유영굴 앞에서 부처님께서 그림자를 남기고 간 이야기, 부처님이 오래 여기 계셨기 때문에 흔적이 남겨져 있다는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고, 전정각산에 유일하게 물이 나오는 ‘부처님 샘터’에서도 잠시 머물러 부처님과 이 곳에 사는 동물들이 먹었을 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 전정각산에서 명상하기 제일 좋은 곳인 것 같다고 지난 번 성지순례 때도 말씀해 주셨던 곳에 앉아 오늘도 다같이 명상을 했습니다. nbsp “내 생각에는 전정각산 전체에서 여기가 명상하기가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앉아 있으면 여름에는시원한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요. 부처님께서도 여기에서 명상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들 조용히 앉아 바람을 느끼고, 햇빛을 느껴 보면서 늠름한 수행자 폼을 한 번 잡아봤습니다. 전정각산은 완전 칼산입니다. 그런데 한 두명의 여자 스텝을 빼놓고는 다 잘 걸었습니다. 성지순례 때는 스님이 맨 먼저 갔는데, 오늘은 대부분의 인도스텝들이 스님을 앞질러 갔습니다. 동네 앞산이라 항상 다니던 곳이어서 험한 칼산도 쉽게 쉽게 뛰어 다녔습니다. “여기 탑터 보이죠? 여기도 부처님이 계셨던 곳입니다. 부처님이 계셨던 곳에 아쇼카왕이 탑을 세워 놨는데 훼손되어서 지금은 이렇게 벽돌조각과 탑의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전정각산 정상부분에 지금 남아 있는 탑터가 총 몇 개나 되는지 한 번 세어 봅시다. 자, 총 몇 개? 열 개네요.” 스님 옆과 뒤에는 항상 사람들이 붐빕니다. 스님 옆에서 같이 가고 싶어서 다가옵니다. 전정각산 제일 높은 탑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환한 웃음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스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운 것 같습니다. nbsp 전정각산 낙타등까지 넘어서 평지로 내려왔습니다. 네이란자라강쪽으로 접어드는데 길가에 우리나라 엉겅퀴같은 잎새에 노랗고 예쁜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그 꽃 참 예쁘지?” 하십니다. 살짝 카메라에 담아봤습니다. nbsp 성지순례 때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물이 있었는데, 오늘 네이란자라강은 완전히 물이 말라 그냥 전체가 넓은 모래밭 같았습니다. 강을 건너자마자 부처님이 쓰러지셨던 곳에서 스님께서 부처님의 중도의 발견과 고행을 그만두고 목욕을 하고 수자타에게서 유미죽을 얻어 먹게 되는 과정들을 이야기로 재미있고 알기 쉽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벌써 11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산을 탔더니 배가 고팠습니다. 부처님 쓰러지신 곳에서 500미터 정도 더 부다가야쪽으로 가면 정토회에서 명상센터를 짓기 위해 구입한 부지가 있습니다. 지난 번 성지순례 때는 열쇠를 챙겨오지 않아 들어가지 못했었는데, 오늘은 그 곳에 들어가 간식을 먹었습니다. 부지 바깥으로는 벽돌로 벽을 치고, 내부에는 나무도 심어놓고 풀도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성지순례객들이 봤으면 참 좋아했겠다 싶어 괜히 뒤늦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간식을 먹고, 수자타 공양터에 들러 스님 설명을 듣고, 우루벨라 가섭을 교화했던 곳으로 갔습니다.강가 모래밭에 둘러앉아 스님께 우리벨라 카사파를 교화한 재미있는 부처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nbsp 그 후, 논길을 걸어 수자타스투파에 갔습니다. 이 곳은 수자타의 공덕을 기려 수자타의 집에 지어놓은 스투파입니다. 수자타스투파에서 참배를 드리고, 부다가야로 향했습니다. 부다가야에 들어가니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혼잡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스텝들의 얼굴표정은 신난 것 같았습니다. 대탑에 들어가, 그늘진 잔디밭에 앉아 스님께서 다시 부처님의 성도 과정에 대해서 자세하고 알기 쉽게 하나 하나 설명해 주셨습니다. 스텝들도 진지하게 스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설명을 다한 후에는 스님께서 대탑을 돌며 부처님께서 성도를 이루신 곳, 성도 후 첫 일주일을 보내신 곳, 두 번째 일주일을 보내신 곳, 세 번째, 네 번째 일주일을 보내신 곳을 차례로 다니며 스텝들에게 설명을 하셨습니다. 성지순례 때는 인원이 너무 많아 전체적으로 설명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오늘은 스님께서 직접 스텝들을 데리고 다니며 하나 하나 일러 주셨습니다. 이렇게 오늘 성지순례는 마쳤습니다. 이제 1년에 한 번, 스님께서 오시면 하는 전체 외식을 하러 갔습니다. 식당에는 한국인 스텝들이 미리 배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맛있게, 실컷 점심겸 저녁을 먹고, 대절한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인도인 스텝들의 얼굴 표정이 참 밝았습니다. 오늘 하루를 스님과 보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궁금해서 몇 명의 스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저는 스님을 보고 놀랐습니다. 부처님께서 무엇을 했고,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외우고 계신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저에게 스님은 힌두신 같이 하나의 신과 같은 분이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여기서 태어나서 이 마을에 살면서 매일 산에도 올라가곤 했지만 이 지역에 대해서 자세하게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책에도 간단하게는 나와 있는데, 오늘 스님께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처음 들었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으셨던 곳에 직접 가서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nbsp 스님께서 인도인 스텝들에게 부처님에 대해서 정성을 다해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동행했던 불교TV 감독님이 “수행을 열심히 하면 스님처럼 될까요?”하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스님과 함께 동행하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존경과 감동의 표현인 것 같습니다. 내일은 스님을 모시고, 오늘 함께 동행했던 인도인 스텝들과 수련이 있을 예정입니다. 인도인 스텝들은 일을 하면서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1월 23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 한국인 스텝 나들이)
새벽 도량석 소리를 들으며 깊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천일결사 기도를 하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학교 교문앞에서 오전 6시 40분 라즈기르로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스님께서 인도 한국인 스텝을 위해서 하루 일정을 뺀 날입니다. 매년 성지순례를 마치고 이 맘 때쯤 스님을 모시고 인도JTS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인도인 스텝들과 수련을 하게 됩니다. 한국인 스텝과는 주로 인근 지역 불교 유적지 답사차 스님과 함께 나들이를 하는 시간을 가집니다.성지순례 때는 부처님 10대 성지 중심으로 정해진 곳만 가지만, 이 때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거나가봤던 곳이라도 성지순례객들에게 안내할 수 있는 유적인지 사료를 확인해 본 후 다시 확인을 하기 위해 답사를 합니다. 오늘은 라즈기르의 부처님 유적지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라즈기르는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승용차를 타고 가면 2시간가량 되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라즈기르는 부처님과 인연이 많은 곳입니다. 성지순례를 했던 것처럼 영축산, 죽림정사, 빔비사라왕 감옥터, 칠엽굴 등이 있는 지역으로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이 다스리던 왕사성의 현재 지명입니다. 인도JTS 김정준 법우님이 생활하면서 보드가야나 지역 불자들로부터 들었던 사전 정보를 바탕으로오늘 답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렇지만 그 위치가 정확하지 않아 좀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라즈기르 지역 불자인 살렌드라씨와 날란다에서 고고학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아난드씨의 도움을 받아 자세한 위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살렌드라씨는 가는 길에 직접 만나서 약도까지 그려가며 상세한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 자세한 설명이 없었더라면 오늘 못 보고 지나쳤을 유적지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이패드로 길을 찾아보면서 살렌드라씨의 설명을 자세히 들으셨습니다. nbsp 스님의 안내에 따라 첫 번째 간 곳은 ‘인드라살라’란 동굴이었습니다. 몸이 안좋은 사람들은 산 아래에 남고, 가파른 산에 잘 올라갈 수 있는 사람들만 올라갔습니다. 이 동굴에서 부처님께서 정진을 하셨다고 전해지는데 아직 확실한 사료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동굴 앞에는 가지런하게 돌이 쌓여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여기 동굴 앞에 돌이 쌓여져 있네요. 돌 쌓은 흔적으로 봐서 여기도 부처님이 머물렀던 유적일 가능성이 많습니다.”하시면서 동굴 앞 바위산을 올라가셨습니다. nbsp 동굴 앞에서 다같이 참배를 드리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바깥에서 볼 때보다 안이 훨씬 넓었습니다. 동굴 안에 또 작은 동굴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먼저 작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셨던 스님께서 5m정도 들어가셔서는 “갑자기 온도가 달라지네요. 덥습니다. 안경에 김이 다 서렸어요.” 스님 안경이 하얗게 변했습니다.저희도 따라 들어가 보니 불을 피워놓은 것처럼 더웠습니다. “스님. 부처님께서 여기서 정진을 하셨다면 고행을 하신 게 아니겠는데요?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고.”하고 농담하는 무변심 법사님 이야기에 다함께 웃었습니다. 정말 바깥 기온은 약간 초가을처럼 싸늘한 편인데, 동굴 안은 여름날처럼 더웠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곳에서 얼마나 정진을 하고 계셨을까? 눈으로, 마음으로 한 번 더듬어 보고 내려왔습니다. nbsp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동굴에서 내려와 가까이 있는 ‘고다카토라’호수에 가봤습니다. 건기라 물이 많지 않았습니다. ‘고다카토라’호수와 ‘인드라살라’동굴을 살려 이 지역을 라즈길의 새로운 관광지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수 반대편에 보이는 곳에 거대한 불상을 세울 예정이라고 이 지역 불자들이 이야기합니다. nbsp 호수에서 나와 다시 돌아오던 길로 되돌아갔습니다. 올 때 돌산 입구에 힌두신을 모셔놓은 곳이 있어서 눈에 띄었었는데, 앞서 가던 스님 차량이 그 앞에 섰습니다. 산꼭대기에 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기쯤일 것 같다는 스님 판단에 따라, 저희 일행이 산에 올랐습니다. 아랫마을에는 사람이 죽었는지 강가에 사람들이 모여 화장할 나무들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멀리 산에서 내려다보였습니다.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자, 여기도 탑터네요. 그리고 저기 보세요. 성벽을 쌓은 흔적들이 보이죠?저것이 왕사성 외성을 쌓았던 흔적이고, 이 탑터는 아쇼카왕이 부처님이 머무셨던 자리마다 쌓았던 그 탑이 무너져 탑터만 남아 있는 것이네요.”하고 스님께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동안에도 탑터가 두어 개 더 있었습니다. “스님. 부처님께서 이 산에도 많이 계셨나 봐요. 탑터가 저렇게 계속 나오는 것 보면요.” “부처님은 안거 3개월 외에는 내내 다니셨으니까, 이 곳에도 오셔서 정진을 하셨겠지.”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nbsp 그런데 산 중간쯤 올라서 위를 보니 멀리 우뚝 솟은 탑이 하나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탑의 위용이 드러났습니다. 전정각산에서도 그렇고, 올라오면서도 탑 윗부분이 다 없어지고 탑터만 남은 것을 많이 봤는데, 이 곳은 탑이 손상이 되긴 했지만 탑 윗부분까지 잘 남아있었습니다. nbsp 스님과 함께 탑에 먼저 참배를 드렸습니다. “탑 아랫 부분에 푹 들어간 이 곳에는 작은 부처님이 한 분 한 분 모셔져 있던 곳이고, 저 윗부분에 모셔진 부처님은 파트나박물관으로 옮겨져 있어요. 우리도 오늘 여기는 처음이예요.약도를 알려줘서 그냥 이 곳일 것 같아서 찾아와 봤는데, 제대로 찾아왔네요.”하시며 스님께서도 반가운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여기는 기리약힐이라고 하는데 굽타팔라시대의 유적지가 남았다고 책에 표기되어 있다고 합니다. 탑터는 워낙 많이 봤는데 탑신까지 남아있는 새로운 탑을 보게 되니까 기분이 좋았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산꼭대기까지 더 올라가 봅시다.”하며 성큼 한 걸음 먼저 내딛으시는 스님을 따라 조금 더 떨어진 꼭대기에 올라가니 아까 본 호수며 산너머 마을까지 환하게 다 보였습니다. 커다란 야생 사슴도 봤습니다. 10마리 정도 되는 사슴들이 우리가 다가가니 천천히 다른 곳으로 도망갔습니다. 기리약힐에서 내려오니, 발이 아파 산에 못 올라간 사람들이 라면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점심으로 라면을 먹고, 다음 유적지를 찾아 갔습니다. 다음 유적지는 찾기가 쉽지 않은가 봅니다. 앞서 나가던 차가 여러 번 동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고, 차를 돌리기도 하면서 동네의 작은 길도 찾아들어가면서 겨우 찾은 것은 작은 연못 앞에 있는 검은 색 불상이었습니다. nbsp 청소를 하지 않아 지저분한 바닥에 맨 발로 들어가 참배를 하고 스님께서 불상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동네 연못가에 큰 불상이 있다고 해서 찾아 찾아 왔어요. 불상이 그냥 있었는데, 사람들이 집을 만들어 주고, 지금은 힌두 사원에서 관리를 하고 있어요. 이 불상은 파트나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검은 석불들과 양식이 거의 유사합니다. 그것으로 비추어 볼 때 8세기경의 불상이지 않을까 추정해 봅니다.” 우리가 찾아가니 마을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불상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스님과 인도 활동가들은 다음 유적지 가는 길에 대해서 의논을 했습니다. nbsp 다시 다음 유적지로 향해 갔습니다. 마을들을 돌아 돌아 한참을 가니 동네 가운데 돌로 된 동산이우뚝 솟아 있고, 돌산 위에 힌두사원이 서 있었습니다. 선두로 가던 차량이 돌산 앞에 섰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화장실인지 곳곳에 똥이 많아서 조심스레 올라갔습니다. 꼭대기에 올라가니 힌두사원 안에 어깨아래가 없는 불상 하나가 옆에 놓여 있고 힌두사원 뒤로 돌아가니 불상의 떨어진 어깨 아래 부분이 놓여 있었습니다. 불교가 없어지고 힌두교가 불교 유적지까지 다 관리하는 인도 현실을 보여 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스님께서 머리가 없는 불상 앞에 참배를 하고,nbsp전체를 쭉 둘러 보셨습니다. nbsp nbsp “이 곳은 샤카빤하경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인드라신에게 속세에서의 도덕적 삶에 대한 8가지 의심에 대해서 설법했다고 알려진 곳이란 말이 있는데, 여긴 지 처음 갔던 동굴인지 아직 확실치가 않습니다.” 사전조사를 했던 김정준 법우님의 이야기였습니다. 주변을 다시 한 번 돌아본 후 부다가야로 돌아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수자타아카데미로 들어왔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에서도 저희 실무자들과 역사 유적지 탐방을 가끔 하십니다. 스님과 함께 하는 역사 유적지 탐방은 항상 흥미롭습니다. 오늘 유적지 탐방은 특히 더 흥미로웠습니다. 한국에는 이미 다 발굴되어 있는 유적지가 대부분인데 인도는 아직 문화재에 대한 중요성을 덜 인식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적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님의 역사에 대한, 지리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으로 새롭게 유적지를 찾아보고, 줄거리를 만들어 보고, 다시 역사와 불교를 공부하게 되는 시간들이 참 즐겁고 흥미로웠습니다. 내일은 인도인 스텝들과 함께 전정각산 등산과 함께 부다가야까지 걸어갈 예정입니다. 이 곳에 살면서도 부처님의 발자취에 대해서 정확히 잘 몰라서 스님께서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인도인 스텝들의 요청이 있어서 일정을 잡았다고 합니다. 내일 소식 전하겠습니다.
2013년 1월 22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 스텝 회의)
어제 UP주 이따와역에서 12시 40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수자타아카데미가 있는 비하르주 가야역으로 출발했습니다. 오후 11시 30분 도착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3시간 연착된다고 해서 10시 30분까지 자지 않았던 사람들도 모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도착한 시간은 새벽시 30분이었습니다. 5시간을 연착해서 겨우 가야역에 도착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온 사람은 그래도 나았는데, 11시 30분부터 가야역에 마중 나와 있었던 박명송 법우님이 새벽까지 기다리느라고 추운데 떨면서 고생을 했습니다. 가야역에서 수자타아카데미로 들어와 새벽 기도를 하고 아침을 먹었습니다. 오전에는 빨래도 하고 휴식한 후, 오후부터 밤까지 인도 사업 관련해서 회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다들 오랜만에 빨래를 깨끗하게 하고, 몸도 씻고 잠시 휴식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과 연락하시고, 업무 점검 하신 후, 잠시 휴식을 하셨습니다. 아침 8시가 넘자 아이들이 학교에 등교하기 시작했습니다. 8시 40분에 운동장에서 조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nbsp 빨래를 하다가 운동장에 나가보니, 어린 학생들이 이번 26일 공화국 수립 기념일날 공연할 준비를하고 있었습니다. 참 귀엽고 예뻤습니다. nbsp 학생들이 다 하교한 이후, 오후 3시가 훨씬 넘어서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저녁 먹기 전까지는 27일 스님 출국하실 때까지의 일정을 체크하고, 올 3월에 있을 인도불자대회 준비 관련한 내용을 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nbsp 저녁을 먹고 난 후부터는 수자타아카데미 운영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정부학교가 많이 생기면서 정부학교와 수자타아카데미에 이중 등록하는 문제가 생겨서, 올 해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주정부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초등, 중학교 1학년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중등록을 하면 왜 문제인지 물었더니, 정부학교에서 학생은 적은데 많이 오는 것으로 등록을 해서 정부지원금을 많이 받아 부정부패를 하게 되어서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결단을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예상했던대로 천민인 아이들이 양민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생기고, 부모들의 무관심으로 학교에 보내는 사람들이 적은 것이 문제점으로 떠올라, 문맹퇴치가 목표인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루어졌습니다.새로운 대안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nbsp 거의 10시까지 회의를 하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라즈길로 한국인 스텝 수련을 가기로 해서 미리 준비할 것들을 챙기느라 조금 일찍 회의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라즈길 불교 유적지 탐방을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오전에 휴식하고 오후에는 내내 회의를 해서 간단하게 소식올립니다.nbsp 내일 소식 전하겠습니다.
2013년 1월 21일 법륜스님의 하루(석가족 수련, 수자타로 이동)
오늘도 어제와 같이 새벽 5시 10분경, 새벽길을 걸어서 수련장으로 갔습니다. 오늘이 월요일이라 수련하던 청년들 몇 명이 새벽기차를 타기 위해 수련장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새벽 명상으로 아침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40분 동안 명상을 하고, 시범으로 절하는 연습을 잠시 했습니다. 여태껏 중 제일 오랜 시간 명상을 했습니다. 명상 후, 아침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곳 사람들은 아침 식사시간에 짜이 한 잔 마신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인도 녹두와 콩, 쌀로 죽을 끓여 먹었습니다. 따끈한 죽과 과일로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수련이 이어졌습니다. 스님께서 담마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제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화가 난다는 분의 질문을 예로 들면서, 담마를 생활 속에서 체화하게 되면 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nbsp 이어서 즉문즉설 법회가 이어졌습니다. 어제와 달리 사람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손을 드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생각이 과거와 미래에 가 있는데 왜 현재에 있지 않냐고 어떤 남자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의대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다는 대학생은 어제 스님께서 욕심이 있으면 괴로움이 있다고 하셨는데, 욕심이 없으면 인생의 발전이 없지 않냐며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엔지니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학생은 열심히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집중해서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귀의를 하거나 경전을 읽게 되면 무릎을 꿇게 되는데 그 이유가 따로 있는지 궁금하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 생활 속의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사람들이 더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 정말 알기 쉽게 하나 하나 풀어서 말씀을 해 주시는데, 인도 사람들은 잘 알아듣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서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학생에게 스님 법문을 듣고 어떤 지 물어봤습니다. “여기서 45시간 걸리는 바다윤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왔습니다. 부처님 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부처님 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얼굴이 환하게 바뀌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 법을 배우면 괴로움과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마음이 깨끗해지고 기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저는 스님의 많은 말씀 중에 오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단 말씀이 제일 많이 다가왔어요. 꾸준하게 오계를 지키면서 노력했을 때 결국 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말씀이 좋았습니다. 저도 우리 지역에 가면 담마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담마를 이야기해 줄 겁니다. 그렇게 되면 혼자 있어도 두렵지 않고, 당당한 삶을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애요.” 눈을 반짝이면서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여학생을 보면서 옆에서 듣고 있던 저희가 더 감동을 받았습니다. 즉문즉설 법회까지 마치고 스님께서 수련 전체 정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부처님의 법은 그냥 믿는 것보다는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처님의 법은 어떤 원리를 설명한 것이예요. 세상의 원리, 마음의 작용, 인간관계, 몸의 작용 이런 원리를 설명한 것이예요. 마치 과학자가 이 우주의 원리, 물질세계의 원리를 설명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담마, 법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담마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행해야 합니다. 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것이 됩니다. 부처님이 훌륭하시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나하고 관계가 없습니다.부처님의 가르침인 붓다 담마가 내 인생의 고뇌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내 병을 치료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부처님에 대해서 고마움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저절로 절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무 붓다, 나무 담마, 나무 상가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아무런 이익을 못 받았어요. 아무런 혜택도 못 받았는데 나무 붓다, 나무 담마, 나무 상가 하는 것은 입으로만 하는 거예요. 제가 왜 인도 사람도 아닌데 붓다 담마에 귀의해서 여기까지 와서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겠습니까? 그것은 붓다 담마를 내가 받아들여서 너무나 내 인생의 큰 기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붓다 담마를 믿고 행해서 그런 기쁨을 얻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마지막 정리 말씀 이후에 단체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먼저 여자분들이 사진을 찍고, 이어서 남자분들이 찍었는데, 단체 사진 이후에도 스님과 사진 찍느라고 다들 바빴습니다. 스마트폰,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으로 그룹 그룹, 가족을 모아 스님과 사진을 찍습니다. 요즘 스님은 국내에서나 국외에서나 사진 찍히느라 바쁘십니다. nbsp nbsp 수련 마치고도 계속 스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거나, 양쪽 발에 예를 표하고 합장을 하며 공경의 예를 올립니다. 문으로 나오는데 이제는 여자분들이 모두 몰려와 스님 발에 예를 올립니다. 사진 찍고 예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참이 지난 후에야 스님께서 수련장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수바쓰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수련 전체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어떻게 평가를 하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스님께서 오셔서 정말 너무 좋았습니다. 스님께서 담마에 대해서 말씀해 주셔서 너무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3일은 너무 짧은 것 같습니다. 스님은 한국에는 내내 계시지만 인도에는 1년에 한 번 오시니까, 내년에는 적어도 5일은 시간을 내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담마를 충분히 이해하기에 3일은 너무 짧습니다. 5일정도 오셔서 부처님 법인 담마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하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이번 행사 장소를 제공한 분이 스님을 초대했습니다. 우리 숙소 바로 옆 골목에 있는 집이었습니다.집으로 들어가니 수련장에서 봤던 얼굴들이 다 모여 있었습니다. 연세드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먼저 스님께 이마를 발에 맞추며 공경의 예를 올리자, 이어서 4명의 아들 부부, 손자, 손녀들이 다스님께 인사를 올립니다. 이 후 사촌들까지, 동네 청년들까지 모두 스님께 다시 공경의 예를 올리느라 오늘 스님께서 조금 늦게 수련을 마쳤으면 기차 타기도 빠듯했을 것 같았습니다. 이 집 셋째 아들 부부는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아이가 없어서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스님 법문을 듣고 마음이 많이 자유로워졌다고 감사함을 표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기도문을 주시면서, 어떻게 기도할지 기도문을 주셨습니다. 집안 가득 사람들이 모여들어 잔치집이 되었습니다. nbsp 인도는 큰 스승에게 올리는 기본적인 예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머문 집에도 연세드신 부모님과 아들이 나와 스님 가신다고 꽃으로 공양을 올리며 환송을 해 주었습니다. 저희들은 스님 옆에 있다가 같이 환영을 받아서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동네를 빠져 나와 이따와역으로 향했습니다. 2박 3일이었지만 반짝이는 눈동자의 사람들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스님을 향한 공경의 마음을 보면서 전법의 힘을 느낄 수 있었고, 전혀 높낮이 없이 평등하게 이 곳 사람들을 대하고 정성을 기울이시는스님의 모습에서 소리없는 감동이 피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뿌린 씨앗으로 인해 이 곳에도 우리와 함께 뜻을 펼쳐 나갈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선 수바쓰지와 향후 석가족 불사에 대한 말씀을 나누시고, 마지막으로 YBS회원들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수바쓰지와 YBS 회원들이 기차칸에까지 짐을 실어주고 손을 흔들며 환송해 주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유피주 이따와역에서 오후 12시 40분 기차를 탔습니다. 비하르주 가야역에는 오후 11시 30분에도착하게 됩니다. 11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가서, 가야역에서 수자타아카데미가 있는 둥게스와리로들어갈 예정입니다. 오늘은 기차를 타고 환한 대낮에 글을 씁니다. 내일부터 6일간은 수자타아카데미에서 한국인 스텝 수련, 인도인 스텝과의 수련, 마을 방문, 공화국 행사, 인도JTS와 인도정토회 이사회, 총회 등의 일정이nbsp잡혀 있습니다. 내일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소식 전하겠습니다.
2013년 1월 20일 법륜스님의 하루(석가족 수련)
새벽 5시, 마을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저희 숙소에서 수련장소까지는 500m 가량 되었습니다. 걸어서 수련장으로 가는 새벽길. 하늘에 별이 총총하고 공기는 시원했습니다. 수련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인사를 하시고, 바로 명상으로 오늘 하루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고요한 새벽 명상. 사람들이 스님께서 안내하는대로 조용히 앉아 명상을 했습니다. nbsp 명상 후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7시에 바로 수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오전 수련은 신해행증대한 스님의 법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첫째, 담마를 믿는다는 것은 인연과를 믿는다는 것이고, 둘째 담마를 알아야 한다,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연기법을 알아야 하는 것이며, 셋째, 담마를 행해야 한다는 것은 계율을 지키고 선정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고, 넷째, 담마를 증득한다는 것은 반야와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각각에 대해서 예를 들어가며 듣는 사람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깊이, 자세하고 상세하게, 그러나 알아듣기 쉽게 하나 하나 짚어가면서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오전 법문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뿌리와 사부지, 달과 파파야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제일 먼저 스님께 음식을 드리고, 저희 일행이 먹었습니다. 남자들이 식사를 안 하고 있어서 왜 식사를 안 하냐고 물으니, 접시가 부족해서 여자들이 먼저 식사한 후에 남자들이 먹는다고 했습니다. 수련이 모두 스님께서 진행하는 것이라, 오전 내내 쉬지 않고 법문을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점심시간에 잠시 휴식을 하시고, 오후 내내 다시 법문을 하셨습니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어제는 150여명이 참가를 했었는데, 오늘은 300명이 넘게 참가를 했습니다. nbsp 오후에 다시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오후 법문은 벽에 걸려 있는 벽화 중에 제따바나를 기증한 수닷타장자에 대한 이야기로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3시경이 되니까 UP주 주의원이 인사차 찾아왔습니다. 인도는 연방 국회의원이 있고, 주의회 의원이 있다고 합니다. MLA 의원이 행사에 참가하기는 쉽지가 않은데 와 주었다고 합니다. MLA는 스님께 예를 올리고,어제 찾아오려고 했는데 델리에 있어서 오지 못하고 오늘 와서 미안하다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잠시 수련 휴식시간을 갖고, 휴식시간에 국회의원과 스님께서 잠시 차담을 하셨습니다. 이 분은 작년 선거 중에 스님께 찾아와 인사를 드렸는데, 당선되었다고 좋아하면서 스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이 분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스님께서 축원 좀 해 주십시오.”해서 다 같이 웃었습니다. nbsp 그 후에는 즉문즉설이 이어졌습니다. 생활상에 궁금한 것에 대해서 물어보라고 했을 때 남자 한 분이 일어서서 질문을 했습니다.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 화가 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물었습니다. 스님께서 예를 들면서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인도분들이 참 즐거워했습니다. 가정사 문제는 한국이나 인도나 별 차이가 안나나 봅니다. nbsp 첫 질문에 이어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갈수록 농사짓는 것이 손해를 보게 되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는데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이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왜 남한과 북한은 사이가 안 좋은지, 인도와 파키스탄이 사이가 안 좋은 것과 같은 문제인지 묻기도 했습니다. 오후 법문을 마치고 저녁시간이 되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서 낮에 시장에서 산 완두콩과 감자를 삶아서 먹었습니다. 이 곳 야채들이 참 싱싱하고 맛있습니다. 당근도 단맛이 강하고, 과일도 맛있습니다. 저녁에는 스님께서 벽화 중에 라훌라 출가 장면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대중들이 참 진지하게 듣습니다. 그리고 재미있어 합니다. 이렇게 법이 전해지는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젊은 청년들도 많이 참가했습니다. 스님께서 일상에서 정진할 수 있는 방법 두 가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한 가지는 어제부터 계속 가르쳐 주고 있는 명상법인데 하루에 30분에서 한 시간씩 하면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절하는 법에 대해서 알려 주시고, 하루 108배를 해 보면 나를 내려놓는데도 좋고건강에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대중들에게 절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데 사람들이 참 좋아했습니다.스님께서 직접 시범을 보이고, 청년들과 아이들이 직접 올라와 절을 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nbsp 스님께서 “이제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잘 주무시고, 내일 새벽 5시 30분부터 다시 수련을 시작하겠습니다.”하시면서 9시 30분경에 수련을 마치고 천천히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작년에도 이 행사에 참가했던 무변심 법사님이 스님께 왜 올 해는 작년보다 사람이 적은지 물었습니다. “작년에는 큰 도시에서 해서 여러 지역 사람들이 많이 왔지만 이번에는 작은 도시, 우리 읍과 같은작은 곳에서 해서 주로 이 지역 사람들이 오다보니 사람들이 적지만, 사람들이 순박해서 좋네.” 하셨습니다.정말 그랬습니다. 아이들까지 가족들이 다 참가해서 스님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을 존경하고 공경하는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스님과 함께 온 저희들에게도 관심을 보이며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저희도 어제는 약간 어색하고 낯설었는데 하루 사이에 친한 사이되어편안해졌습니다. 이 곳은 농산물이 풍부하고 일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수자타아카데미가 있는 둥게스와리와는 달리 깨끗하고 풍족해 보였습니다. 사람들도 순박했습니다. 밤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수레 가득 하얗고 긴 싱싱한 무가 실려 있었습니다.스님께서 무가 참 좋다며 한 단 사서 내일 수자타아카데미 가서 김치를 담아 먹자고 하셨습니다. 주인에게 한 단에 얼만지 묻자 스님을 보고 웃으면서 그냥 가져 가라고 합니다. 수레에 담긴 무 전체를 다 가져 가도 되고, 수련장 옆에 밭이 있으니 내일 와서 더 가져가도 된다고 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수레 옆으로 우루루 나와 좋은 무를 골라 주며 오히려 좋아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한 단을 얻어 왔습니다. 스님께선 이 행사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수바쓰지와는 벌써 20년전 수바쓰지가 20대 때부터 인연이 되어 오늘의 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바쓰지 부인과 델리와 아그라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 둘도 다 함께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스님께서 “수바쓰가 원래 나랑 살기로 했는데 출가를 안 했으니, 아들 둘 중 하나는 나에게 보내야지.”하자, 부인이 허락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부인이 아들 둘 다 데려 가도 된다며 웃으며 흔쾌히 대답을 합니다. nbsp 사람들이 모두 스님을 존경하고 공경하고 감사해 합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웃으며 농담으로 제안을 해도 바로 흔쾌히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이 곳 사람들의 스님을 존경하는 태도와 수련에 진지하게 참가는 모습에서, 함께 온 우리를 가족이상으로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에서 지난 20년동안 인도에서의 스님의 발자취가 그대로 느껴진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오전까지 석가족 수련을 하고 오후 12시 30분에 수자타아카데미가 있는 가야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기차를 12시간 타야 한다고 합니다. 내일 소식 전하겠습니다.
2013년 1월 19일 법륜스님의 하루(망고과수원 법당 개원, 석가족 수련)
아침 일찍 일어나 천일결사기도를 하고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어제 델리불자회에서 챙겨준 빵과 과일, 김치, 김밥이 아침 식사였습니다. 집 주인이 따뜻한 짜이를 끓여 주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8시에 수련장 부지가 나온 곳으로 출발했습니다. 1시간 가량 차를 타고 가니, 유채꽃이 핀 넓은 들판이 보였습니다. 이 곳은 거의 100 석가족이 사는 곳이라고 합니다. nbsp 수련장 부지를 보고 다시 1시간 가량 달려서 지난 성지순례 때 늦게 도착해서 가보지 못했던 상카시아 석가족을 위해 정토회가 구입한 절 부지에 가 보았습니다. 5년전 인도에 왔을 때는 들판만 있었는데, 그동안 벽돌로 울타리를 쳐 놓았습니다. 인도 석가족을 위해서 수련센터와 절을 지어 주기 위해 구입해 놓은 부지인데 아직 불사가 제대로 진행이 안 되고 있습니다. nbsp 전체 절터만 둘러 보고 바로 마하마야아카데미에 들렀습니다. “이 학교는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생각하며 석가족이 운영하고 있는 초등학교인데, 땅은 석가족이 보시하고 건축비는 스님께서 재가연대와 연결해서 지원받아 만든 학교입니다. YBS에서 처음 만든 학교입니다.” 스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나와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건기 때는 건물 안이 더 추워서 운동장에 나와서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nbsp 석가족 스텝이 스님을 법당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법당 한 켠에 돌로 만든 불상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이 불상은 사르나트 초전법륜상입니다. 석가족이 사는 지역에 108개 법당을 불사하기로 했습니다.불상은 우리가 지원하기로 해서 여태껏은 한국에서 불상을 조성해서 왔는데, 이 곳 기후와 맞지 않아서 불상이 변색이 됩니다. 그래서 인도 불상을 조성했는데, 이것이 샘플입니다.” nbsp 학교를 둘러보고 점안식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점안식은 특이하게 건물 안이 아니라망고나무 과수원에 부처님을 모신다고 합니다. 인도스님 4분이 망고나무 과수원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정진 중인데, 이번에 정식으로 불상을 모시고 점안식을 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불상은 정토회에서 지원을 했습니다. 스님을 모시고 무변심 법사님 집전으로 점안식이 진행되었습니다. nbsp 점안식 이후, 석가족 분들이 스님께 꽃을 올리면서 공경의 예를 올렸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 오늘 모인 석가족을 대상으로 법문을 하셨습니다. 쁘리앙카지가 유창하게 통역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과 석가족의 멸망, 석가족이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법문에 이어 즉문즉설이 있었는데, 질문자 중 한 분이 왜 인도에 불교인이 늘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 때 스님께서 “그 질문은 내가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습니다. 나는 인도인도 아니고 석가족도 아닌데, 멀리 한국에서 와서 이렇게 불법을 전하고 있는데, 왜 여러분들은 인도인이고 부처님의 후손인 석가족이면서 왜 불교를 안 믿는 지 묻고 싶습니다.”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13세기 무슬림이 침공하며서 인도에 불교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어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에 태어났지만 부처님 법을 이어받아 계승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육신은 석가족으로 부처님의 후예지만 불교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정신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제야 불교를 믿으면서 자신이 부처님의 후예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부처님에 대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어떤 분이었을까? 어떤 분이었기에전 세계 사람들이 저렇게 존경할까? 그런 것들을 알게 되면 여러분들이 부처님의 후예라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힘을 모아 인도에 불교를 다시 부흥시켜야 합니다.그 운동에 여러분들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nbsp 오늘 망고나무 과수원에 불상을 모시도록 보시한 분의 집으로 가서 식사 대접을 받았습니다. 동네에서 그래도 잘 사는 집인데도 땅바닥에 헝겊을 깔고 식사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동네 잔치집처럼 사람들이 가득 모여 음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참 밝았습니다.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주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인도 요구르트라며 준 음료는 맵고 시고 향신료가 많이 들어 있어 못 마시고 나머지는 모두 맛있게 먹었습니다. nbsp 식사 후, 이 집의 할머니, 따님, 손자들까지 와서 스님께 꽃을 올리고 발에 절을 하면서 예를 올렸습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샤키족 전체 수련이 있는 곳으로 다시 이동을 했습니다. 수련은 2박 3일간 진행될 예정입니다. 수련장은 우리 숙소에서 500여미터 떨어져 있는 곳에 있었습니다. 이 지역의 대학이라고 했습니다.넓은 공간에 150여명의 석가족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스님께 스승으로서 귀의하는 의미로 꽃으로 공경의 예를 올렸습니다. 스승에게 꽃을 올리는 것은 인도의 풍습입니다. 대표적인 몇 분만 꽃을 올릴 줄 알았더니 사람들이 전부 스님께 꽃을 올렸습니다. 공경의 예로 꽃을 올린 뒤, 여학생 한 명이 스님께 환영하는 노래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 후, 빨리어로 법을 청하는 청법가를 불렀습니다. nbsp 그 후 스님께서 법문을 하셨습니다. 인생의 행복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가지만 탐, 진, 치 삼독을 좇아서 사는 삶이 행복인 줄 알고 살아가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며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지금 이 순간부터 탐, 진, 치 삼독심을 내려놓고 지금 여기서 마음의 평화를 얻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행복을 얻는 것이고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경험을 위해 명상하는 법을 지도해 주시고,nbsp명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잠시 휴식을 하고 다시 수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수련장 뒤에 걸려 있는 벽화 중에 부처님께서 석가족과 꼴리족의 로히니강 물로 인한 전쟁 일화를 이야기해 주시면서 전쟁과 평화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계율인 불살생정신이 나아가 더 적극적으로는 생명을 살리는 방생의 정신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명상을 하고 오늘 하루 수련을 마쳤습니다. “내일 아침은 새벽 5시 30분부터 수련하겠습니다.”하시고는 오늘 수련을 마쳤습니다. 오늘 여기 오신 분들은 이 주변 지역 사람들만이 아니라서 수련장에서 잘 예정이라고 합니다. 저희들은 스님을 모시고 가까이 있는 저희 숙소에 돌아왔습니다. 오늘 하루를 돌아봅니다. 한국에서나 인도에서나 스님 일정은 잠시의 틈도 없이 빡빡합니다. 그리고 스님께선 한국 사람들에게나 인도 사람들에게나, 카스트가 높든 낮든 상관없이 변함없는 열정과 정성을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님 옆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감동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일 하루 일정도 기대가 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