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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2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 스텝 회의)
어제 UP주 이따와역에서 12시 40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수자타아카데미가 있는 비하르주 가야역으로 출발했습니다. 오후 11시 30분 도착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3시간 연착된다고 해서 10시 30분까지 자지 않았던 사람들도 모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도착한 시간은 새벽시 30분이었습니다. 5시간을 연착해서 겨우 가야역에 도착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온 사람은 그래도 나았는데, 11시 30분부터 가야역에 마중 나와 있었던 박명송 법우님이 새벽까지 기다리느라고 추운데 떨면서 고생을 했습니다. 가야역에서 수자타아카데미로 들어와 새벽 기도를 하고 아침을 먹었습니다. 오전에는 빨래도 하고 휴식한 후, 오후부터 밤까지 인도 사업 관련해서 회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다들 오랜만에 빨래를 깨끗하게 하고, 몸도 씻고 잠시 휴식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과 연락하시고, 업무 점검 하신 후, 잠시 휴식을 하셨습니다. 아침 8시가 넘자 아이들이 학교에 등교하기 시작했습니다. 8시 40분에 운동장에서 조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nbsp 빨래를 하다가 운동장에 나가보니, 어린 학생들이 이번 26일 공화국 수립 기념일날 공연할 준비를하고 있었습니다. 참 귀엽고 예뻤습니다. nbsp 학생들이 다 하교한 이후, 오후 3시가 훨씬 넘어서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저녁 먹기 전까지는 27일 스님 출국하실 때까지의 일정을 체크하고, 올 3월에 있을 인도불자대회 준비 관련한 내용을 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nbsp 저녁을 먹고 난 후부터는 수자타아카데미 운영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정부학교가 많이 생기면서 정부학교와 수자타아카데미에 이중 등록하는 문제가 생겨서, 올 해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주정부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초등, 중학교 1학년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중등록을 하면 왜 문제인지 물었더니, 정부학교에서 학생은 적은데 많이 오는 것으로 등록을 해서 정부지원금을 많이 받아 부정부패를 하게 되어서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결단을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예상했던대로 천민인 아이들이 양민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생기고, 부모들의 무관심으로 학교에 보내는 사람들이 적은 것이 문제점으로 떠올라, 문맹퇴치가 목표인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루어졌습니다.새로운 대안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nbsp 거의 10시까지 회의를 하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라즈길로 한국인 스텝 수련을 가기로 해서 미리 준비할 것들을 챙기느라 조금 일찍 회의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라즈길 불교 유적지 탐방을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오전에 휴식하고 오후에는 내내 회의를 해서 간단하게 소식올립니다.nbsp 내일 소식 전하겠습니다.
2013년 1월 21일 법륜스님의 하루(석가족 수련, 수자타로 이동)
오늘도 어제와 같이 새벽 5시 10분경, 새벽길을 걸어서 수련장으로 갔습니다. 오늘이 월요일이라 수련하던 청년들 몇 명이 새벽기차를 타기 위해 수련장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새벽 명상으로 아침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40분 동안 명상을 하고, 시범으로 절하는 연습을 잠시 했습니다. 여태껏 중 제일 오랜 시간 명상을 했습니다. 명상 후, 아침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곳 사람들은 아침 식사시간에 짜이 한 잔 마신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인도 녹두와 콩, 쌀로 죽을 끓여 먹었습니다. 따끈한 죽과 과일로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수련이 이어졌습니다. 스님께서 담마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제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화가 난다는 분의 질문을 예로 들면서, 담마를 생활 속에서 체화하게 되면 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nbsp 이어서 즉문즉설 법회가 이어졌습니다. 어제와 달리 사람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손을 드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생각이 과거와 미래에 가 있는데 왜 현재에 있지 않냐고 어떤 남자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의대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다는 대학생은 어제 스님께서 욕심이 있으면 괴로움이 있다고 하셨는데, 욕심이 없으면 인생의 발전이 없지 않냐며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엔지니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학생은 열심히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집중해서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귀의를 하거나 경전을 읽게 되면 무릎을 꿇게 되는데 그 이유가 따로 있는지 궁금하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 생활 속의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사람들이 더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 정말 알기 쉽게 하나 하나 풀어서 말씀을 해 주시는데, 인도 사람들은 잘 알아듣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서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학생에게 스님 법문을 듣고 어떤 지 물어봤습니다. “여기서 45시간 걸리는 바다윤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왔습니다. 부처님 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부처님 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얼굴이 환하게 바뀌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 법을 배우면 괴로움과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마음이 깨끗해지고 기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저는 스님의 많은 말씀 중에 오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단 말씀이 제일 많이 다가왔어요. 꾸준하게 오계를 지키면서 노력했을 때 결국 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말씀이 좋았습니다. 저도 우리 지역에 가면 담마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담마를 이야기해 줄 겁니다. 그렇게 되면 혼자 있어도 두렵지 않고, 당당한 삶을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애요.” 눈을 반짝이면서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여학생을 보면서 옆에서 듣고 있던 저희가 더 감동을 받았습니다. 즉문즉설 법회까지 마치고 스님께서 수련 전체 정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부처님의 법은 그냥 믿는 것보다는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처님의 법은 어떤 원리를 설명한 것이예요. 세상의 원리, 마음의 작용, 인간관계, 몸의 작용 이런 원리를 설명한 것이예요. 마치 과학자가 이 우주의 원리, 물질세계의 원리를 설명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담마, 법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담마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행해야 합니다. 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것이 됩니다. 부처님이 훌륭하시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봐야 나하고 관계가 없습니다.부처님의 가르침인 붓다 담마가 내 인생의 고뇌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내 병을 치료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부처님에 대해서 고마움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저절로 절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무 붓다, 나무 담마, 나무 상가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아무런 이익을 못 받았어요. 아무런 혜택도 못 받았는데 나무 붓다, 나무 담마, 나무 상가 하는 것은 입으로만 하는 거예요. 제가 왜 인도 사람도 아닌데 붓다 담마에 귀의해서 여기까지 와서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겠습니까? 그것은 붓다 담마를 내가 받아들여서 너무나 내 인생의 큰 기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붓다 담마를 믿고 행해서 그런 기쁨을 얻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마지막 정리 말씀 이후에 단체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먼저 여자분들이 사진을 찍고, 이어서 남자분들이 찍었는데, 단체 사진 이후에도 스님과 사진 찍느라고 다들 바빴습니다. 스마트폰,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으로 그룹 그룹, 가족을 모아 스님과 사진을 찍습니다. 요즘 스님은 국내에서나 국외에서나 사진 찍히느라 바쁘십니다. nbsp nbsp 수련 마치고도 계속 스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거나, 양쪽 발에 예를 표하고 합장을 하며 공경의 예를 올립니다. 문으로 나오는데 이제는 여자분들이 모두 몰려와 스님 발에 예를 올립니다. 사진 찍고 예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참이 지난 후에야 스님께서 수련장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수바쓰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수련 전체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어떻게 평가를 하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스님께서 오셔서 정말 너무 좋았습니다. 스님께서 담마에 대해서 말씀해 주셔서 너무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3일은 너무 짧은 것 같습니다. 스님은 한국에는 내내 계시지만 인도에는 1년에 한 번 오시니까, 내년에는 적어도 5일은 시간을 내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담마를 충분히 이해하기에 3일은 너무 짧습니다. 5일정도 오셔서 부처님 법인 담마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하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이번 행사 장소를 제공한 분이 스님을 초대했습니다. 우리 숙소 바로 옆 골목에 있는 집이었습니다.집으로 들어가니 수련장에서 봤던 얼굴들이 다 모여 있었습니다. 연세드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먼저 스님께 이마를 발에 맞추며 공경의 예를 올리자, 이어서 4명의 아들 부부, 손자, 손녀들이 다스님께 인사를 올립니다. 이 후 사촌들까지, 동네 청년들까지 모두 스님께 다시 공경의 예를 올리느라 오늘 스님께서 조금 늦게 수련을 마쳤으면 기차 타기도 빠듯했을 것 같았습니다. 이 집 셋째 아들 부부는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아이가 없어서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스님 법문을 듣고 마음이 많이 자유로워졌다고 감사함을 표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기도문을 주시면서, 어떻게 기도할지 기도문을 주셨습니다. 집안 가득 사람들이 모여들어 잔치집이 되었습니다. nbsp 인도는 큰 스승에게 올리는 기본적인 예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머문 집에도 연세드신 부모님과 아들이 나와 스님 가신다고 꽃으로 공양을 올리며 환송을 해 주었습니다. 저희들은 스님 옆에 있다가 같이 환영을 받아서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동네를 빠져 나와 이따와역으로 향했습니다. 2박 3일이었지만 반짝이는 눈동자의 사람들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스님을 향한 공경의 마음을 보면서 전법의 힘을 느낄 수 있었고, 전혀 높낮이 없이 평등하게 이 곳 사람들을 대하고 정성을 기울이시는스님의 모습에서 소리없는 감동이 피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뿌린 씨앗으로 인해 이 곳에도 우리와 함께 뜻을 펼쳐 나갈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선 수바쓰지와 향후 석가족 불사에 대한 말씀을 나누시고, 마지막으로 YBS회원들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수바쓰지와 YBS 회원들이 기차칸에까지 짐을 실어주고 손을 흔들며 환송해 주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유피주 이따와역에서 오후 12시 40분 기차를 탔습니다. 비하르주 가야역에는 오후 11시 30분에도착하게 됩니다. 11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가서, 가야역에서 수자타아카데미가 있는 둥게스와리로들어갈 예정입니다. 오늘은 기차를 타고 환한 대낮에 글을 씁니다. 내일부터 6일간은 수자타아카데미에서 한국인 스텝 수련, 인도인 스텝과의 수련, 마을 방문, 공화국 행사, 인도JTS와 인도정토회 이사회, 총회 등의 일정이nbsp잡혀 있습니다. 내일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소식 전하겠습니다.
2013년 1월 20일 법륜스님의 하루(석가족 수련)
새벽 5시, 마을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저희 숙소에서 수련장소까지는 500m 가량 되었습니다. 걸어서 수련장으로 가는 새벽길. 하늘에 별이 총총하고 공기는 시원했습니다. 수련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인사를 하시고, 바로 명상으로 오늘 하루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고요한 새벽 명상. 사람들이 스님께서 안내하는대로 조용히 앉아 명상을 했습니다. nbsp 명상 후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7시에 바로 수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오전 수련은 신해행증대한 스님의 법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첫째, 담마를 믿는다는 것은 인연과를 믿는다는 것이고, 둘째 담마를 알아야 한다,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연기법을 알아야 하는 것이며, 셋째, 담마를 행해야 한다는 것은 계율을 지키고 선정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고, 넷째, 담마를 증득한다는 것은 반야와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각각에 대해서 예를 들어가며 듣는 사람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깊이, 자세하고 상세하게, 그러나 알아듣기 쉽게 하나 하나 짚어가면서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오전 법문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뿌리와 사부지, 달과 파파야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제일 먼저 스님께 음식을 드리고, 저희 일행이 먹었습니다. 남자들이 식사를 안 하고 있어서 왜 식사를 안 하냐고 물으니, 접시가 부족해서 여자들이 먼저 식사한 후에 남자들이 먹는다고 했습니다. 수련이 모두 스님께서 진행하는 것이라, 오전 내내 쉬지 않고 법문을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점심시간에 잠시 휴식을 하시고, 오후 내내 다시 법문을 하셨습니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어제는 150여명이 참가를 했었는데, 오늘은 300명이 넘게 참가를 했습니다. nbsp 오후에 다시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오후 법문은 벽에 걸려 있는 벽화 중에 제따바나를 기증한 수닷타장자에 대한 이야기로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3시경이 되니까 UP주 주의원이 인사차 찾아왔습니다. 인도는 연방 국회의원이 있고, 주의회 의원이 있다고 합니다. MLA 의원이 행사에 참가하기는 쉽지가 않은데 와 주었다고 합니다. MLA는 스님께 예를 올리고,어제 찾아오려고 했는데 델리에 있어서 오지 못하고 오늘 와서 미안하다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잠시 수련 휴식시간을 갖고, 휴식시간에 국회의원과 스님께서 잠시 차담을 하셨습니다. 이 분은 작년 선거 중에 스님께 찾아와 인사를 드렸는데, 당선되었다고 좋아하면서 스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이 분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스님께서 축원 좀 해 주십시오.”해서 다 같이 웃었습니다. nbsp 그 후에는 즉문즉설이 이어졌습니다. 생활상에 궁금한 것에 대해서 물어보라고 했을 때 남자 한 분이 일어서서 질문을 했습니다.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 화가 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물었습니다. 스님께서 예를 들면서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인도분들이 참 즐거워했습니다. 가정사 문제는 한국이나 인도나 별 차이가 안나나 봅니다. nbsp 첫 질문에 이어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갈수록 농사짓는 것이 손해를 보게 되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는데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이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왜 남한과 북한은 사이가 안 좋은지, 인도와 파키스탄이 사이가 안 좋은 것과 같은 문제인지 묻기도 했습니다. 오후 법문을 마치고 저녁시간이 되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서 낮에 시장에서 산 완두콩과 감자를 삶아서 먹었습니다. 이 곳 야채들이 참 싱싱하고 맛있습니다. 당근도 단맛이 강하고, 과일도 맛있습니다. 저녁에는 스님께서 벽화 중에 라훌라 출가 장면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대중들이 참 진지하게 듣습니다. 그리고 재미있어 합니다. 이렇게 법이 전해지는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젊은 청년들도 많이 참가했습니다. 스님께서 일상에서 정진할 수 있는 방법 두 가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한 가지는 어제부터 계속 가르쳐 주고 있는 명상법인데 하루에 30분에서 한 시간씩 하면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절하는 법에 대해서 알려 주시고, 하루 108배를 해 보면 나를 내려놓는데도 좋고건강에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대중들에게 절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데 사람들이 참 좋아했습니다.스님께서 직접 시범을 보이고, 청년들과 아이들이 직접 올라와 절을 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nbsp 스님께서 “이제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잘 주무시고, 내일 새벽 5시 30분부터 다시 수련을 시작하겠습니다.”하시면서 9시 30분경에 수련을 마치고 천천히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작년에도 이 행사에 참가했던 무변심 법사님이 스님께 왜 올 해는 작년보다 사람이 적은지 물었습니다. “작년에는 큰 도시에서 해서 여러 지역 사람들이 많이 왔지만 이번에는 작은 도시, 우리 읍과 같은작은 곳에서 해서 주로 이 지역 사람들이 오다보니 사람들이 적지만, 사람들이 순박해서 좋네.” 하셨습니다.정말 그랬습니다. 아이들까지 가족들이 다 참가해서 스님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을 존경하고 공경하는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스님과 함께 온 저희들에게도 관심을 보이며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저희도 어제는 약간 어색하고 낯설었는데 하루 사이에 친한 사이되어편안해졌습니다. 이 곳은 농산물이 풍부하고 일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수자타아카데미가 있는 둥게스와리와는 달리 깨끗하고 풍족해 보였습니다. 사람들도 순박했습니다. 밤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수레 가득 하얗고 긴 싱싱한 무가 실려 있었습니다.스님께서 무가 참 좋다며 한 단 사서 내일 수자타아카데미 가서 김치를 담아 먹자고 하셨습니다. 주인에게 한 단에 얼만지 묻자 스님을 보고 웃으면서 그냥 가져 가라고 합니다. 수레에 담긴 무 전체를 다 가져 가도 되고, 수련장 옆에 밭이 있으니 내일 와서 더 가져가도 된다고 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수레 옆으로 우루루 나와 좋은 무를 골라 주며 오히려 좋아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한 단을 얻어 왔습니다. 스님께선 이 행사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수바쓰지와는 벌써 20년전 수바쓰지가 20대 때부터 인연이 되어 오늘의 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바쓰지 부인과 델리와 아그라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 둘도 다 함께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스님께서 “수바쓰가 원래 나랑 살기로 했는데 출가를 안 했으니, 아들 둘 중 하나는 나에게 보내야지.”하자, 부인이 허락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부인이 아들 둘 다 데려 가도 된다며 웃으며 흔쾌히 대답을 합니다. nbsp 사람들이 모두 스님을 존경하고 공경하고 감사해 합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웃으며 농담으로 제안을 해도 바로 흔쾌히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이 곳 사람들의 스님을 존경하는 태도와 수련에 진지하게 참가는 모습에서, 함께 온 우리를 가족이상으로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에서 지난 20년동안 인도에서의 스님의 발자취가 그대로 느껴진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오전까지 석가족 수련을 하고 오후 12시 30분에 수자타아카데미가 있는 가야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기차를 12시간 타야 한다고 합니다. 내일 소식 전하겠습니다.
2013년 1월 19일 법륜스님의 하루(망고과수원 법당 개원, 석가족 수련)
아침 일찍 일어나 천일결사기도를 하고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어제 델리불자회에서 챙겨준 빵과 과일, 김치, 김밥이 아침 식사였습니다. 집 주인이 따뜻한 짜이를 끓여 주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8시에 수련장 부지가 나온 곳으로 출발했습니다. 1시간 가량 차를 타고 가니, 유채꽃이 핀 넓은 들판이 보였습니다. 이 곳은 거의 100 석가족이 사는 곳이라고 합니다. nbsp 수련장 부지를 보고 다시 1시간 가량 달려서 지난 성지순례 때 늦게 도착해서 가보지 못했던 상카시아 석가족을 위해 정토회가 구입한 절 부지에 가 보았습니다. 5년전 인도에 왔을 때는 들판만 있었는데, 그동안 벽돌로 울타리를 쳐 놓았습니다. 인도 석가족을 위해서 수련센터와 절을 지어 주기 위해 구입해 놓은 부지인데 아직 불사가 제대로 진행이 안 되고 있습니다. nbsp 전체 절터만 둘러 보고 바로 마하마야아카데미에 들렀습니다. “이 학교는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생각하며 석가족이 운영하고 있는 초등학교인데, 땅은 석가족이 보시하고 건축비는 스님께서 재가연대와 연결해서 지원받아 만든 학교입니다. YBS에서 처음 만든 학교입니다.” 스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나와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건기 때는 건물 안이 더 추워서 운동장에 나와서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nbsp 석가족 스텝이 스님을 법당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법당 한 켠에 돌로 만든 불상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이 불상은 사르나트 초전법륜상입니다. 석가족이 사는 지역에 108개 법당을 불사하기로 했습니다.불상은 우리가 지원하기로 해서 여태껏은 한국에서 불상을 조성해서 왔는데, 이 곳 기후와 맞지 않아서 불상이 변색이 됩니다. 그래서 인도 불상을 조성했는데, 이것이 샘플입니다.” nbsp 학교를 둘러보고 점안식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점안식은 특이하게 건물 안이 아니라망고나무 과수원에 부처님을 모신다고 합니다. 인도스님 4분이 망고나무 과수원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정진 중인데, 이번에 정식으로 불상을 모시고 점안식을 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불상은 정토회에서 지원을 했습니다. 스님을 모시고 무변심 법사님 집전으로 점안식이 진행되었습니다. nbsp 점안식 이후, 석가족 분들이 스님께 꽃을 올리면서 공경의 예를 올렸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 오늘 모인 석가족을 대상으로 법문을 하셨습니다. 쁘리앙카지가 유창하게 통역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과 석가족의 멸망, 석가족이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법문에 이어 즉문즉설이 있었는데, 질문자 중 한 분이 왜 인도에 불교인이 늘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 때 스님께서 “그 질문은 내가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습니다. 나는 인도인도 아니고 석가족도 아닌데, 멀리 한국에서 와서 이렇게 불법을 전하고 있는데, 왜 여러분들은 인도인이고 부처님의 후손인 석가족이면서 왜 불교를 안 믿는 지 묻고 싶습니다.”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13세기 무슬림이 침공하며서 인도에 불교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어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에 태어났지만 부처님 법을 이어받아 계승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육신은 석가족으로 부처님의 후예지만 불교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정신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제야 불교를 믿으면서 자신이 부처님의 후예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부처님에 대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부처님은 어떤 분이었을까? 어떤 분이었기에전 세계 사람들이 저렇게 존경할까? 그런 것들을 알게 되면 여러분들이 부처님의 후예라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힘을 모아 인도에 불교를 다시 부흥시켜야 합니다.그 운동에 여러분들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nbsp 오늘 망고나무 과수원에 불상을 모시도록 보시한 분의 집으로 가서 식사 대접을 받았습니다. 동네에서 그래도 잘 사는 집인데도 땅바닥에 헝겊을 깔고 식사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동네 잔치집처럼 사람들이 가득 모여 음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참 밝았습니다.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주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인도 요구르트라며 준 음료는 맵고 시고 향신료가 많이 들어 있어 못 마시고 나머지는 모두 맛있게 먹었습니다. nbsp 식사 후, 이 집의 할머니, 따님, 손자들까지 와서 스님께 꽃을 올리고 발에 절을 하면서 예를 올렸습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샤키족 전체 수련이 있는 곳으로 다시 이동을 했습니다. 수련은 2박 3일간 진행될 예정입니다. 수련장은 우리 숙소에서 500여미터 떨어져 있는 곳에 있었습니다. 이 지역의 대학이라고 했습니다.넓은 공간에 150여명의 석가족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스님께 스승으로서 귀의하는 의미로 꽃으로 공경의 예를 올렸습니다. 스승에게 꽃을 올리는 것은 인도의 풍습입니다. 대표적인 몇 분만 꽃을 올릴 줄 알았더니 사람들이 전부 스님께 꽃을 올렸습니다. 공경의 예로 꽃을 올린 뒤, 여학생 한 명이 스님께 환영하는 노래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 후, 빨리어로 법을 청하는 청법가를 불렀습니다. nbsp 그 후 스님께서 법문을 하셨습니다. 인생의 행복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가지만 탐, 진, 치 삼독을 좇아서 사는 삶이 행복인 줄 알고 살아가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며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지금 이 순간부터 탐, 진, 치 삼독심을 내려놓고 지금 여기서 마음의 평화를 얻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행복을 얻는 것이고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경험을 위해 명상하는 법을 지도해 주시고,nbsp명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잠시 휴식을 하고 다시 수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수련장 뒤에 걸려 있는 벽화 중에 부처님께서 석가족과 꼴리족의 로히니강 물로 인한 전쟁 일화를 이야기해 주시면서 전쟁과 평화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계율인 불살생정신이 나아가 더 적극적으로는 생명을 살리는 방생의 정신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명상을 하고 오늘 하루 수련을 마쳤습니다. “내일 아침은 새벽 5시 30분부터 수련하겠습니다.”하시고는 오늘 수련을 마쳤습니다. 오늘 여기 오신 분들은 이 주변 지역 사람들만이 아니라서 수련장에서 잘 예정이라고 합니다. 저희들은 스님을 모시고 가까이 있는 저희 숙소에 돌아왔습니다. 오늘 하루를 돌아봅니다. 한국에서나 인도에서나 스님 일정은 잠시의 틈도 없이 빡빡합니다. 그리고 스님께선 한국 사람들에게나 인도 사람들에게나, 카스트가 높든 낮든 상관없이 변함없는 열정과 정성을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님 옆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감동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일 하루 일정도 기대가 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1월 18일 법륜스님의 하루(델리)
어제 델리공항에서 성지순례객 배웅을 하고 늦게 들어왔습니다. 들어오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밤새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계속 내렸습니다. 건기에 이렇게 비가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델리불자회의 자그마한 법당에 전기 장판을 깔고 각 자 가지고 있는 침낭을 가지고 오랜만에 따뜻하게 잠을 잤습니다. 델리불자회에서는 게스트 하우스에 스님과 저희 일행 숙소를 마련했는데, 스님께서 침낭이 있어서 어디서라도 잘 수 있다며 극구 마다해 델리불자회 법당에서 잤습니다. 새벽에 스님과 함께 천일결사 기도를 했습니다. nbsp 기도 후, 델리불자회 보살님들이 미리 준비해준 반찬으로 밥을 해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먹는 김치콩나물국이 참 시원하고 맛있었습니다. 오전 10시쯤이 되자 델리불자회 회원님들이 한 분 두 분 오기 시작했습니다. 델리불자회는 인도델리에 주재원으로 오는 사람들의 가족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도에 계속 사는 사람보다는 몇 년씩 인도에 살다가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계속 회원들이바뀐다고 합니다. 스님과 인연이 되어 스님 법문으로 법회를 하고, 정토불교대학을 진행하기도 했었는데, 이번에는 불교대학을 할 회원이 없어서 진행을 못했다고 합니다. 회원분들이 모두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법당에 들어오는 회원님들 한 분 한 분 다 인사를 다 받아주셨습니다. 오전 11시에 스님의 즉문즉설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작은 법당에 사람들이 빼곡이 앉아서 귀를 기울여 스님 법문을 들었습니다. 2시간 가량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처음 진지하던 분위기가 나중에는 웃음꽃이 피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처음 법문을 시작하시면서 장유화상과 허황후, 혜초스님 등 인도와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의 관계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오늘 법문은 엄마수업이 중심이었습니다. 질문을 한 세 분도 모두 자녀 교육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스님께서 자녀교육에 대한 기본 관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서, 명쾌한 답을 주셨습니다.nbsp nbsp 법문 후에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회원들이 집에서 음식을 하나씩 준비해 왔습니다. 음식 솜씨들이 하나씩 모이다보니 정말 푸짐한 만찬이 되었습니다. 빵집을 하는 분이 빵과 케익을 준비해 오셔서 오랜만에 제과점 빵도 먹어봤습니다. 식사시간에 스님 앞에 오신 한 분은 “스님, 제가 스님 뵙기 위해서 1년을 기다렸습니다.”하면서 반가움을 표했습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어젯밤부터 온 비로 도로교통이 정체된다고 해서 2시 20분경 델리불자회 법당에서 나와 델리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기전에 델리법당 앞에서 델리불자회 회원님들과 살짝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nbsp 델리불자회 회원님들 덕분에 하루를 잘 보냈습니다. 어제 델리공항에서 델리불자회 법당까지 들어올 때 짐을 미리 보내고, 자가용 2대를 따로 준비해 주셨는데, 오늘 기차역으로 가는데도 미리 자가용 3대를 준비해 주셔서 편안하게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카시아에 가면 먹을 것이 부족할 것이라며 제과점 빵 한 상자, 김밥 20줄, 김치와 밑반찬, 오렌지와 바나나 등 먹을 음식도 잔뜩 챙겨주셨습니다. 스님께서 뿌려놓은 인연공덕으로nbsp저희가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델리불자회 회원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인사드립니다. 한 시간 넘게 차를 타고 델리역에 도착해서 오후 4시 30분발 기차를 탔습니다. 유피주 이따와에 오후 9시 30분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스텝들이 행사 마치고 감기든 사람이 여러 명 있어 약을 먹고 침대칸에서 잤습니다. 저도 감기약을 먹고 두어 시간 자고 오니, 스님과 제이티에스 스텝들이 인도 사업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 운영 방안, 병원 운영, 인도 스텝들의 훈련 방안과 더불어 인도불교부흥사업 등 향후 인도사업 전반에 대한 토론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선 “저녁에도 자고 낮에도 또 자나?”하며 저희들을 보고 웃으십니다. nbsp 기차가 연착되어 한 시간 가량 늦게 이따와역에 도착했습니다. 역에 도착하니 석가족분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자가용 3군데 나눠타고, 석가족 중 한 분의 집에 짐을 풀었습니다. 앞으로 2박 3일간 우리가 묶을 공간입니다. 인도집인데 집이 깨끗하고, 습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수련원 부지를 잠시 살펴보고 샤까모니 부드비하르 점안식 및 개원식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연이어 오후부터 상카시아 주변 석가족을 위한 수련이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1월 17일 법륜스님의 하루(델리, 성지순례 마지막날)
오늘 아침은 여유있게 출발했습니다. 8시 30분경 델리로 출발했습니다. 가는 길에 마투라박물관에 들러 당시 불상과 조각품들을 관람했습니다. 처음 성지순례를 할 때는 많이 추웠는데, 며칠 전부터는 날이 풀려서 낮에는 많이 더웠습니다. 더운 버스안에서 땀을 흘리며 델리로 향했습니다. 델리로 들어오니, 대도시의 분위기가 느껴지면서오히려 편안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도시에서의 삶이 몸에 젖어 있어서 편안한 느낌인 것 같습니다. 오후 4시경에 델리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 같이 박물관에 들어가셔서 불상과 조각품들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델리박물관에서 삐쁘라하와 석가족 진신사리탑에서 발견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친견했습니다. 스민과 참가자들이 우슬착지로 참배를 드렸습니다. “영롱한 구슬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스님 말씀처럼 뼈 조각이네요. 2600년전의 뼈 조각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정말 부처님이 한 분의 사람이었구나 하는 것이 더 확연히 다가옵니다.” 델리박물관을 관람한 후, 공항 가까운 호텔에서 마지막 만찬이 있었습니다. 인도에서의 마지막 식사였습니다. 야외에서 인도 전통 공연도 보면서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 조별로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피리를 부르기도 하고, 독창을 하기도 했습니다. 해외에서 오신 분들과 인도여행을 더 할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델리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델리공항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잘 가라고 직접 손을 잡아주시며 인사를 하셨습니다. 성지순례객들은 모두 공항으로 들어가 출국 심사를 하고, 저희는 공항 밖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인도델리불자회 법당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델리불자회 법당에서 자고, 내일 오전 스님 법회를 한 후, 오후 4시 30분 기차를 타고 유피주 이타와로 가서 석가족 수련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내일 소식 전하겠습니다.
2013년 1월 16일 법륜스님의 하루(아그라)
새벽 4시, 상카시아에서 아그라로 출발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이동을 해서 성지순례를 마치고 한국으로 가더라도 시차적응은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일찍 일어나 차를 타고 가면서 자는 아침 잠도 참 맛있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스님께서 오늘 관광할 타지마할과 아그라포트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 인도 역사와 중국 역사를 비교해서 정확한 연도까지 말씀하시며 설명해 주셔서, 오늘도 저희가 감탄을 했습니다. 정확한 연도까지 어떻게 저렇게 다 알 수가 있을까? 스님은 외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톱니바퀴가 딱 딱 맞아서 돌아가듯이, 서양 역사, 동양역사가 환히 그림 보듯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이 곳은 인도 무굴제국의 수도였습니다. 마우리아 왕조 이후 가장 큰 나라였습니다. 무굴 제국은 중국의 원나라나 청나라처럼 외부에서 인도를 침입해서 세운 나라로 몽골의 후예입니다. 타지마할은 무굴제국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아내 아르주망 바누 베굼을 기리기 위해 22년에 걸쳐 지은 무덤입니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성된 직후, 더 이상 아름다운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고자 공사에 참여했던 2만명의 공인의 손목을 다 잘랐다고합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입니다.” 스님께서는 밖에 계시고 성지순례객들만 들어가 관람을 했습니다. 타지마할에 들어가 가이드를 한 명 교섭해서 자세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7대 불가사의라 할 정도로 대단한 건축이었습니다. 붉은 대리석에 불을 비추면 붉게 빛이 나고, 나무를 깎은 듯이 자연스럽게 대리석을 조각해 놓았습니다. 타지마할은 4면 어디에서 보나 같은 모양으로 보이고, 기둥의 한 부분은 착시현상을 이용해 4면의 기둥이 8면으로 보이도록 해 놓은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건축물이라 당시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착취를 당했을까 살펴졌습니다. 타지마할에서 다시 아그라포트로 갔습니다. “아그라포트는 타지마할과 야무나강을 사이에 두고 북서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마주보고 있는 성입니다. 16세기말 무굴제국의 악바르황제가 수도를 델리에서 아그라로 옮기면서 천연 해자를 이용하기 위한 군사적인 목적으로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타지마할을 축조하면서 너무 많은 재정을 낭비한 샤 자한이 말년에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된 곳으로도 유명한데, 샤 자한은 야무나 강 너머의 타지마할이 가장 잘 보이는 탑에 갇혀 있다가 결국 그 곳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샤 자한이 숨진 탑에서 멀리 안개 사이로 타지마할이 고요히 서 있었습니다. 타지마할과 아그라포트를 전체적으로 둘러보고, 잠시 쇼핑을 하고, 숙소인 호텔로 돌아왔습니다.스님께서 처음 말씀하셨듯이, 첫 날과 마지막날은 숙소가 호텔이라 따뜻한 물도 나오고, 럭셔리했습니다.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성지순례 전체 정리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성지 순례 했던 곳 하나 하나를 짚어 가면서 다시 전체를 자세히 정리해 주셨습니다. 15일 동안의 생활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스님 강연 후, 조별로 소감문을 쓰고, 조별 발표를 한 후, 전체가 다시 모여서 소감 발표를 했습니다. 감동적인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는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십여년전 성지순례 왔을 때 유영굴 앞에서 구걸하던 아이들이 이제 학생이 되어 구걸하는 아이들이 없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고 스님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불교 대학 다니면서 공부를 더 열심히 했으면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열반당에서 ‘부처님. 이제 저희가 하겠습니다. 안온히 계십시오.’하시던 스님 말씀이 지금도 가슴에 남습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로서, 지독한 가난 속에 아이를 키우는 여자들의 모습이 눈에 제일 많이 들어왔습니다. 성지순례를 통해 부처님이 한 분의 인간으로 다가오고,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닮아가고 싶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시어머니의 며느리를 교화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이해되었습니다. 어머니께 지혜롭게 대하지 못한 저의 모습이 참회됩니다.” “법륜스님을 다시 알게 되었고,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법륜스님이야말로 제대로 된 부처님의 제자인 것 같습니다. 이 인연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통일의병이 되어야겠단 다짐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더 정진해서 성실한 불자로 이타적인 삶을 살겠습니다. 올바른 삶을 살겠습니다.” “인도성지순례는 불교대학 결석처리 하지 말아 주세요.” “켈커타의 인상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안개가 개인 기분으로 인간 붓다를 만났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로 당당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가사를 받고 수계를 받는 것에 눈물이 났습니다.” “변함없는 열정으로 가르쳐 주시는 스님께 눈물나도록 감사합니다.” “군대시절 이후 이렇게 바쁘게 지내기는 처음입니다.” 울먹울먹하면서 소감문을 발표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15일동안 같은 조원들끼리도 정이 많이 들어서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마음도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자기 현실이 감사하고 고맙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nbsp 스님께서 소감문을 듣고 간단하게 정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내가 부족한 줄 알고, 상처투성이인 것을 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틀렸을 때 틀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희망이 있습니다. 좋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신감이 생깁니다. 고물상의 딸이라서 상처를 받았다고 하는데 어릴 때의 상처가 평생의 나를 좌우합니다. 이것이 몸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내가 어떤 집에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제법이 공한 줄을 알아서떨쳐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탄센에 가서 인터넷만 되면 살고 싶다는 그런 마음, 가난하면서도 여유를 즐기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한국에서 가지면, 한국에서 욕심을 내려놓으면 한국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소감 발표 후, 만찬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도에 왔지만 밥솥을 들고 다니면서 밥을 해 먹어서 인도 음식 먹을 기회가 적은데, 오늘 저녁은 간만에 인도음식을 맛볼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음식이 정말 푸짐하게 나왔습니다. 인도 음식은 올 때마다 더 입에 맞아지는 것 같습니다. 성지순례객들도 접시에 가득 가득 음식을 담아 갔습니다. 이제 집에 갈 날도 얼마 안 남아서 그런지nbsp분위기도 들떴습니다. 성지순례 기간동안 생일이었던 사람들의 생일파티도 있었습니다. 케익에 촛불을 켜고 축하행사를 했더니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습니다. 조별로 나와 노래도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만찬 후, 내일 새벽 델리로 가면서 차에서 먹을 주먹밥을 각 조별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사용했던 자리, 가방, 밥솥, 반찬통, 그리고 인도에 보시할 옷이나 반찬 등을 모두 내어놓았습니다. 스텝들이 늦은 밤까지 짐정리를 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로 갈 짐과 서울로 보낼 짐을 분류하고, 단단히 테이핑을 해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nbsp 내일은 델리로 이동해서 박물관 관람을 하고, 출국 수속을 할 예정입니다. 내일 소식도 간단하게 전하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1월 15일 법륜스님의 하루(상카시아)
오늘은 인도성지순례 중 가장 오래 차를 타는 날입니다. 부처님의 8대 성지 중의 하나인 상카시아로 가는 일정인데, 거리가 워낙 많이 떨어져 있어, 보통 성지순례객들은 잘 찾아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천축선원에서 새벽 2시 20분 기상해서 3시에 상카시아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출발한 지 1시간쯤 지났을 때 5호 차량이 고장이 났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총 6대의 차량이 같이 움직이고 있는데 5번째 차량 고장으로 차 고칠 때까지 전체가 다 2시간 가량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기다렸습니다. 차를 고쳐서 출발을 했는데 이번에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가우리 가는 길 앞을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속도도 내지 못하고 천천히 가다보니, 원래 10시간 계획했던 시간이 14시간이 되어서 상카시아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차 안에서 실컷 잤습니다. 그리고 저희 차량은 어제 차량 탑승한 사람 반만 소개를 했는데, 오늘 남은 사람들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간이 충분해서 그런지, 활동을 열심히 해서 그런지 진한 나누기가 진행되었습니다. 20년을 벼러서 성지순례에 온 분도 있고, 오고 싶어도 시어머니 재사 때문에 못 오다가 마침 윤달이 들어 시어머니 재사가 인도성지순례 기간을 피해 있어서 얼른 신청해서 왔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워낙 조용해서 차에 있는 듯 없는 듯 했던 남자분은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데 현장에서 워낙 말도 많이 하고 지쳐 길을 잃은 듯해서 성지순례를 오게 되었는데 부처님과 법륜스님을 통해 새로 길을 찾게 된 것 같다며 환희심을 표현한 분도 있고, 아들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괴로워하다가 법륜스님을 알게 되었는데 3년은 정진을 해라고 해서 그 회향으로 성지순례를 와서 참으로 감사하고 고맙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아프고 힘들어서 성지순례 오기 전 닝겔까지 맞고 죽어도 부처님의 땅 인도에서 죽자 하면서 왔는데, 와서는 안 아파서 신기하다며 감사함을 표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미국에서 간호사를 하고 계신 분은 앞으로 지이바카병원 책임을 지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앞에서 아이패드로 우리 가고 있는 길을 살피면서, 조용히 나누기를 듣고 계셨습니다. nbsp 14시간을 달려가도 인도는 산이 없이 계속 넓은 벌판이었습니다. 상카시아쪽으로 갈수록 넓은 벌판 가득 농작물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넓은 감자밭이 눈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벌판의 야생 공작들이 눈을 심심치 않게 해 주었습니다. nbsp 원래 1시에 상카시아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오후 5시에 도착했습니다. 석가족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탑터 입구에 아쑈카 석주가 이 곳이 부처님의 성지임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정토회에서 인도불교부흥사업의 일환으로 상카시아에 인도 석가족을 위해 절을 지어주기로 해서,부지를 구입하고 불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원래 절을 짓기 위해 구입한 부지에서 성지순례 회향식을 할 계획이었는데 시간이 너무 지체되는 바람에 어두워져서 그 곳까지 가지 못하고, 부처님께서 도리천궁에서 하강하셨다는 탑터에서 회향식을 했습니다. 부처님 어머니 마야부인은 부처님 태어나시자마자 일주일만에 돌아가셔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어느 해 안거 때 도리천궁의 마야부인에게 3달간 법을 설하고 하강하셨다는 이 곳의 탑터에 참배를 했습니다. 탑을 세 바퀴 돌고 정성껏 예불을 올리고 잠시 명상을 하고, 경전 독송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상카시아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nbsp “어느 해 안거 때 대중들이 부처님을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그 때 목갈리나가 부처님은 어머니를 위해 도리천궁에서 법을 설하고 어느 시에 상카시아로 하강한다고 했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가 생겼을까 생각해 보면, 수행자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위해 출가를 하지만, 가족이 볼 때는 마음이 아픈 것 같습니다. 아무리 성인이라도 부모님의 은혜, 특히 어머니의 정성을 잊지 못합니다.그래서 부처님도 생모 마야부인을 위해 도리천궁에서 3달간 법을 설하고 하강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 열반 후 200년 즈음에 아쑈카 석주가 세워졌는데, 그것으로 봤을 때 초기부터 있었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하강하실 때 좌우로 제석천과 인드라천인 옹립해서 내려왔다는 것은, 당시 가장 세력이 컸던 두 신보다 부처님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부처님도 어머니를 위해 도리천궁에 가서 법을 설하고 내려오셨다고 하는데, 우리도 우리들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어버이 은혜’ 노래를 다같이 불러봅시다.” 스님의 말씀에 따라 대중들이 다같이 ‘어버이 은혜’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있고, 석가족이 준비한 등불만 켜진 밤에 고요히 노래가 흘러 들었습니다.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훌쩍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nbspnbsp 이어서 바로 인도성지순례 회향식을 했습니다. 오늘 부처님 8대 성지인 상카시아를 마지막으로 성지순례 회향을 하고, 내일과 모레는 타지마할 관광과 박물관 관람 등이 잡혀져 있습니다. 스님께서 회향 법문을 하시면서 성지순례 전체를 쭉 짚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결국 2600년 전 과거로 돌아가서 살펴봤지만, 우리가 사는 것은 현실입니다. 2600년이 지난 지금 인도가 아닌 한국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부처님의 삶을 재현할 것인가? 수많은 종교의 하나인 불교가 아니라 수많은 종교를 뛰어넘고 수많은 사상을 뛰어 넘어, 남녀나 민족이나 인종이나 종교나 그런 것을 뛰어넘어서 고뇌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행복을 가질 수 있도록, 속박받는 사람들에게 좀더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그런 길로 내 스스로 살아야 하고, 내 가족, 내 이웃, 세상 사람들을 그 길로 인도해야 하는 것, 그것이 결국 남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부처님께서는 계급차별이 있는 세상에서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남녀 차별이 있는 세상에서 남녀가 평등하다는 것을 깨우치시고, 그것을 세상속에서 작은 모델로 상가에서 실현을 했다면 오늘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이 세상 속에서 실현시키는 일이지 않겠는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이 세상속에 실현하는 것입니다. 탐욕있는 곳에 탐욕에 물들지 않고 탐욕을 여의는 세상이 되도록, 성냄이 있는 세상에서 성내지 않고 성냄을 여의는 세상이 되도록, 갈등이 있는 곳에 갈등에 휩쓸리지 않고 갈등을 화해할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여러분들이 일상 삶 속에서 붓다의 삶을 늘 비교해 보면서 내가 어떻게 붓다를 닮아갈 것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어떻게 사는 것이 붓다의 삶인가? 이름과 형식, 모양 이런 데 집착해서 볼 것이 아니라 바로 진실을 봐야 됩니다. 그런데서 이번 성지순례가 여러분들 인생에 새로운 희망, 새로운 등불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 이런 순례를 통해서 사상이나 이념, 종교 등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면, 지나친 탐욕에 얽매여 있다면 순례를 통해서 다 내려놓아버리고, ‘나’라 할 것도 없고, ‘내 것’이라 할 것도 없고, ‘내가 옳다’ 할 것도 없는 그런 텅 빈 자리로 돌아가서 좀 더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들 다 행복하기를, 자유롭기를, 우리만이 아니라 생명 가진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다 우리처럼 살아가기를, 자타일시성불도 하기를 발원합니다. 성지순례 잘 마쳤습니다. 이제 여러분들 각자의 몫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각자의 몫으로 돌아왔습니다’라는 스님의 마지막 말씀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해서 길을 알려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회향 법문 후, 사르나트에서 삼귀의, 오계 수계를 하면서 받았던 가사를 정중히 다시 반납을 했습니다. 이로써 성지순례는 회향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 오늘 이 행사를 준비해준 석가족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석가족이 우리를 위해 간식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1시에 도착한다고 해서 그 전부터 와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행사를 준비한 분들은 YBS 회원들입니다. 20년전부터 인연이 되어 이 지역 석가족의 20가 불교에 귀의를 하고, 해마다 불상지원, 수련 지원 등 인도불교부흥사업을 해 오고 있습니다. YBS회원 10여명이 수자타아카데미 초기 학교 교사도 하고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성지순례를 마치고 떠나면 저는 석가족 법회, 석가족 수련, 불상 점안식 등의 일정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지금 그 행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하면서 인도 석가족에 대해서, 인도불교부흥사업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너무 감동받았어요. 스님께서 수자타아카데미만이 아니라 인도불교부흥을 위해서도 저렇게 오랜 세월동안 일을 해 왔구나 싶으니까 그냥 눈물이 나네요.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큰 틀에서 진행되는 일들이참 많구나 싶었습니다. 석가족이 환영해 주는 것은 생각도 못 했는데, 기뻐고 고맙고 감사해요. 이렇게 눈물이 나네요.” 상카시아에서 석가족의 환영을 받고, 인도불교부흥사업을 꾸준히 해 온 것들에 대해 성지순례객들이 많은 감동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인도불교부흥사업을 위해 오래 전부터 큰 원을 세워서 부처님의 8대 성지에 부처님의 교화사례와 맞는 불사를 계획하고, 천천히 불사를 해 오고 있습니다. nbsp 따뜻한 감자와 짜이, 식빵과 당근, 구화바 등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늦게 도착해서 회향식까지 하고 나니 다들 배가 고팠는데, 석가족이 간식을 준비해 주셔서 정말 감사히, 맛있게 먹었습니다. 짜이도 인도에 와서 먹은 짜이 중에 제일 맛있었습니다. 즉석에서 인도불교부흥사업을 위해, 석가족 지원을 위해 즉석에서 보시금이 걷어졌습니다. 5만 루피 가까이 모금이 되어서, 5만 루피를 채워 석가족에게 지원을 했습니다. 다들 마음이 따뜻해져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nbsp 숙소에 돌아와 조별로 라면을 끓여 먹고 하루를 접었습니다. 나라 밖에 나와서 먹는 라면 맛은 언제 먹어도 꿀맛입니다. 오늘로써 성지순례 일정이 마쳐졌습니다. 부처님의 4대성지, 8대성지, 10대 성지를 다 돌아보는 만만치 않은 일정들이었습니다. 그래도 벌써 끝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일은 아그라로 가서 타지마할과 아그라포트를 보고, 성지순례를 정리하는 일정들이 잡혀져 있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nbsp
2013년 1월 14일 법륜스님의 하루(쉬라바스티)
새벽 4시 30분 기상을 해서 5시에 천일결사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 후 모두 가사를 수하고 숙소였던 천축선원에서 천불화현탑으로 걸었습니다. 새벽 어둠이 약간 남아있는 길을 한 줄로 서서 천천히 걸었습니다. 날씨도 그리 춥지 않고 안개도 끼지 않아 상쾌한 새벽공기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천불화현탑은 부처님께서 사위성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많은 군중이 모인 가운데 부처님께서 망고를 먹고 그 씨를 땅에 심어 순식간에 싹을 틔워 거목으로 자라게 한 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망고나무 열매 하나하나에 부처님이 화현하여 1000분의 부처님이 나타났다고 해서 천불화현이라고 합니다. 왕사성에는 부처님 법을 따르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 곳 사위성에는 부처님을 알지 못했는데,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교화되었다고 합니다. 문화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이 곳 사위성 사람들을 처음에 교화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부처님께서 사위성 사람들을 교화하는 장면을 생각하며 명상을 하였습니다. nbsp 천불화현탑에서 천천히 걸어 기원정사로 갔습니다. “부처님은 마음이 가장 편안한 상태로 걸으셨다고 합니다. 1250명의 비구들이 기러기떼처럼 걸어서 걸식을 하였습니다. 하루 15km가량을 걸었습니다. 너무 늦지도 않고, 너무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오직 지금 자신의 동작에 깨어서 걸어 봅니다. 두리번거리지 않고 걷는 걸음에만 집중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1250명의 대중들과 밥을 빌러 사위성으로 들어가시듯이 천천히, 마음에 깨어서 걸어 봅니다.” nbsp 천불화현탑에서 기원정사로 가는 길에 저 멀리서 빨갛고 둥근 해가 떠올랐습니다. 부처님 당시의 걸식을 하러 걸어가는 1250명의 비구스님이 되어 걸었습니다. 그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기원정사에 들어가서 부처님의 처소인 간다쿠티를 한 바퀴 돌며 탑돌이를 하고, 잔디밭에 넓게 앉았습니다. 이 잔디밭의 곳곳에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이 앉아서 수행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 우리도 앉아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을 찬탄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nbsp 스님께서 기원정사의 유래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인도말로는 ‘제따바나’ 즉 ‘제따의 숲’이라고 합니다. 제따 태자가 제공한 숲과 급고독 장자가 세웠다고 하여 ‘기수급고득원’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을 줄여 기원정사가 된 것입니다. 급고독은 ‘외로운 이를 돕는 자’라는 뜻으로 인도 말로는 ‘아난드 핀디카’라고 하며 수닷타 장자의 별명입니다. 수닷타는 전 재산을 정법에 다 바쳐 부처님에게 공양드리며 불법에 귀의하였습니다.” “수닷타 장자가 왕사성 친구집에 왔다가 부처님을 만나게 되고, 부처님께 귀의하여 부처님께 사위성으로 오시도록 요청을 드렸습니다. 사위성으로 돌아온 수닷타 장자는 왕사성의 죽림정사처럼 왕궁에서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아 수행하기 좋은 처소를 찾던 중 제따의 숲을 발견하고 제따왕자에게 그 숲을 팔기를 요청했습니다. 제따태자가 숲에 금화를 모두 깔면 팔겠다고 하자, 수닷타 장자가 곡간 문을 열어 실제 금화를 까는 모습에 감동을 해서 나머지 부분을 보시했습니다.이렇게 기원정사가 생기게 되고, 부처님께서는 45안거 중 19안거를 기원정사에서 보내셨습니다.” nbsp “어때요? 좋죠? 저도 기원정사가 참 좋습니다. 부처님께서 45안거 중 24안거를 사위성에서 하셨으며, 그 중 19안거를 하신 곳이라 그런지 이 곳에 오면 마음이 편안하고 좋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저도 인도성지순례에 왔다 가면 항상 기원정사가 제일 마음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앉아 있어도 편안하고, 천천히 걸어도 좋고, 편안하고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아 어느 곳에 있어도 참 좋습니다. 예불과 기도를 하고, 스님의 기원정사에 대한 말씀을 듣고, 잠시 휴식을 했습니다. 그동안 스님께서도 염주를 들고 천천히 절을 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부처님이 대승불교의 요체인 금강경을 설하신 배경과 핵심 내용, 오분향 예불문에 대해법문을 해주시고, 기원정사에서 있었던 부처님의 여러 이야기들을 해 주셨습니다. “부처님 법을 듣고 달라진 사람들, 유녀 암나팔리, 신통력을 쓰지 못하게 하자 죽을 때도 신통력을 쓰지 않고 죽은 목갈리나, 부처님 설법 때 존다는 말을 듣고 아예 잠을 자지 않아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천안을 얻은 아니룻다, 장사하는 사람임에도 부처님께 귀의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내어놓은 수닷타 장자 등 부처님 법에 귀의한 사람들의 신심은 대단했습니다. 또한 참으로 당당했습니다.” nbsp “금강경 뿐만 아니라 많은 경전이 사위성을 배경으로 설해졌습니다.또 여러분들이 잘 아는 가난한 여인의 등불도 이 곳이 배경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곳에 머문 시간이 많다보니 전해지는 이야기도 참 많았습니다. 경전 독송을 하면서 부처님의 병든 비구를 간호하는 이야기, 눈 먼 아니룻다의 바늘에 실을 끼어주시는 부처님의 이야기를 독송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부처님의 큰 자비심과 인자함, 자상함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코살라국 프라세나짓왕에게 훌륭한 왕이 되는 길에 대해서도 설하셨습니다. ‘첫째, 백성을 사랑하기를 외아들 사랑하듯이 해라. 둘째, 타인의 희생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아서는 안 된다. 셋째,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해라’고 하셨습니다. 왕이 어리석으면 나라는 고사하고, 자기 목숨도 지키기 어렵습니다. 국가 지도자가 이렇게 국민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훌륭한 지도자가 되겠죠? 2600년전, 절대왕국의 시대에 부처님은 왕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위대함과 당당함을 다시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정말 오랫동안 기원정사에 있었습니다. “여태껏은 성지순례오면 오후 4시경에 이 곳에 도착해서 경전읽고 법문하기에 바빴는데, 지난 20여년 동안 오늘처럼 이렇게 하루 종일 여유있게 기원정사에 있었던 적이 없었어요. 처음입니다. 참 좋네요.” 법문 후에는 스님과 함께 차량별로, 조별로, 개인들까지 다 사진을 찍었습니다. nbsp 사진을 찍고 기원정사를 나와 앙굴리말라탑터로 향했습니다. “이제 사위성으로 들어갑니다. 기원정사에서 나와 사위성의 서쪽문으로 들어갑니다. 부처님과 1250명의 비구들이 기원정사에서 사위성으로 걸식하러 걸어갔던 길입니다.” 스님께서는 정말 자세하고 자상하게, 부처님이 살아오신 것처럼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앙굴리말라탑터에 도착해서 경전을 독송하고 잠시 명상을 했습니다. “‘앙굴리’라는 말은 손가락이란 뜻이고, ‘말라’는 목걸이라는 말입니다. 앙굴리말라는 100명의 사람을 죽이고 그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든 살인마였습니다. 살인마 앙굴리말라를 교화해서 출가하게 하고 깨닫게 한 것은 프라세나짓 왕이 “부처님이시여, 참으로 위대하시고 거룩하십니다.” 하며 찬탄한 것처럼 부처님의 위대함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앙굴리말라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안온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은 바로 부처님 법의 위대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nbsp 앙굴리말라탑터에 참배를 하고, 맞은 편에 있는 수닷타 장자의 탑터에도 참배를 했습니다. “수닷타 장자는 재가신자지만 부처님의 10대 제자에 버금가는 분이었습니다. 왕사성에는 지바카, 사위성에는 수닷타 장자와 베사카 부인으로, 실제 교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분들입니다.”nbsp nbsp 수닷타탑터에서 천축선원으로 돌아와 라면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저녁예불을 했습니다. nbsp 저녁예불 후에는 천축선원 주지이신 대인스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단한 원력으로 불사를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대인스님 말씀 후에는, 다같이 금강경이 설해진 곳이니만큼 금강경을 한 번 더 독송하고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상카시아로 갑니다. 오랫동안 차를 타야겠네요. 내일 상카시아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