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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3일 법륜스님의 하루(경주남산답사, 평화재단회의)
오늘은 두북정토마을에서 아침을 맞았습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천일결사 기도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한 후, 어젯밤 논의한대로 경주 남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어젯밤 오늘 남산행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잘 아는 용장골과 삼릉골을 제외하고 탑골, 약수골, 오산골을 답사하기로 했습니다. 탑골은 스님 중심으로, 약사골은 유수스님 중심으로,오산골은 종법행자님 중심으로 78명씩 한조가 되어 산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저희들은 스님과 함께 탑골에서 올라갔습니다. 맨 처음 옥룡암 위쪽에 위치한 부처바위와 마주쳤습니다. 부처바위에는 동서남북 사면에 불, 보살, 스님, 탑 등 34점의 여러 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황룡사 9층 목탑이라 여겨지는 탑상도 새겨져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부처 바위를 지나 길을 찾아가며 산에 올랐습니다. 스님은 워낙 지리적인 감각이 뛰어나시기 때문에 길을 따라 가면서도 위치 파악을 하면서 가서, 스님도 처음 가보는 코스인데도 헤매지않고 무사히다함께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쉽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가는 길이 완만하고 주변 경치도 좋았습니다. 봄이 되면 지천에 진달래가 피어서 참 아름다울 것 같았습니다. “경주 남산에 이렇게 완만한 길이 있었나? 참 걷기 좋네.”하시며 스님께서 천천히 걸으면서 길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산행하면서 카카오톡으로 서로 소통하면서 갔는데, 다른 팀들은 길 입구에서 헤매기도 하고,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기도 해서 10시에 산 정상 부근 헬기장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저희는 30분 전에 도착하고 다른 팀들은 10시가 지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을 기다리는동안 스님께서 따뜻한 곳으로 저희를 안내하셨습니다. 순환로 옆으로 가니 바람이 없고, 햇살이 따뜻한 곳이 있었습니다. 추운날인데다가 30분을 넘게 앉아 있었는데도 잠이 올 정도 따뜻했습니다. 스님은 바람 방향을 살피고 태양이 비치는 방향을 보면서 위치를 잡으신 것 같았습니다. 스님과 함께 다니면 생활의 지혜를 그 때 그 때 느낄 수가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한참 지나니 우리 팀들의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봤던 얼굴들인데, 산 위에서 만나니 더 반가웠습니다. nbsp 헬기장에서 3팀이 만나 올라온 코스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너무 가파른지, 많은 대중들이 오르기에 무리가 없는지, 다른 등산객들에게 피해를 줄 것 같은지 하나 하나 살펴 보았습니다. nbsp 산을 내려가면서는 탑골팀은 오산골로, 약수골팀은 탑골로, 오산골팀은 약수골로 내려가 보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스님과 함께 오산골로 내려갔습니다. 팔각정과 흔들바위를 지나 지바위를 만났습니다. 지바위 아래 쪽 부분에 마애석불 두 분이 장난스러운 얼굴로 저희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바로 아래엔 3층 석탑이 늠름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nbsp 처음 내려올 때는 좀 가파르더니, 조금 내려온 후에는 길이 완만하고 좋았습니다. 오산골 입구에 다다르니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산에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았습니다. 차를 타고 경주남산순례시 입재식할 장소 답사까지 하고,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었습니다. 목욕을 하고 두북정토마을에 들어와 밤 10시까지 회의를 했습니다. 정리가 덜 되어 있던 것들이 명확히 정리가 되어서 좋았습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스님과 도반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참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오늘 하루도 저물었습니다. 내일 스님은 ‘충청남도 도청 이전 명사특강’ 첫 회에 초청되어 오전 9시 30분 충남도청에서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새벽에 두북에서 충남도청이 있는 홍성으로 출발할 계획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3월 2일 법륜스님의 하루(경주남산순례,PLA워크샵)
어젯밤 밤늦게까지 평화리더쉽아카데미 동문들의 모임이 이어졌습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스님께서도 늦게까지 동문들과 많이 이야기들을 나누셨습니다. 오늘은 아침식사를 7시에 하고, 7시 30분 경주 남산으로 출발했습니다. 8시에 남산 용장골로 올라갔습니다. 날이 상당히 매서웠습니다. 그런데도 봄햇살은 피할 수가 없는지 양지바른 곳에는 자그맣게 새쑥이돋아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여기 봐라. 쑥이 올라오네.”하시며 반가워 하셨습니다. nbsp 용장골로 올라가 이영재를 넘어 삼화령으로 갔습니다. 가는 길에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1월달에 왔을 때 온 산이 눈이었는데, 이 곳에도 봄 소식이 벌써 와 있었습니다. 눈이 쌓였던 땅은 얼음이 녹으면서 부풀려져 있어서 밝으면 사그륵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습니다.그런데도 체감되는 온도는 꽃샘추위 때문에 손이 떨어져 나가듯 차가웠습니다. 충담스님께서 매년 삼월 삼짇날이면 부처님께 차를 올렸다는 삼화령에서 멀리 조그맣게 바라보이는 삼층석탑을 바라보다가 단체 사진도 한 컷 찍었습니다. nbsp 삼화령을 지나 하산하는 길은 삼릉골로 내려왔습니다. 삼릉골로 내려오기전에 전망대에 서서 멀리 한 눈에 들어오는 경주시내를 바라보면 스님께 주변 지역에 대해서 설명듣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시원하게 경주 전역이 눈에 그대로 들어왔습니다.nbsp nbsp 상선암 마애불은 낙석으로 인해 공사중이라 참배를 하지 못했습니다. 상선암에서 삼릉골로 내려오는 길에 여러 부처님들을 만났습니다. 대학교 다닐 때 자주 오던 골짜기였는데, 오랜만에 오니까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상선암에서 내려와 계곡 맞은 편 넓은 바위에 선각으로 부처님이 새겨져 있습니다. 스님께서 “마음이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데 부처님을 찾아보세요.”하니까, 사람들이 우루루 모여서 고개를 들고 건너편 높은 바위에 있는 선각으로 새겨진 부처님을 눈으로 열심히 찾았습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한 분 한 분 부처님을 찾아 참배를 했습니다. 삼릉골 석불좌상은 전에는 코가 없고 광배는 넘어져 있었는데, 새로 광배도 세우고 얼굴 성형도 해서 코도 만들어 넣었는데, 전에 보던 정감있는 부처님이 아니라 약간 어색했습니다. 두툼한 입술과 큰 코를 가진 삼릉골 선각여래좌상을 참배하고 내려와 삼릉골 선각 육존불 앞에 섰습니다. 선각 육존불이 원래 선명하게 보이는데, 오늘은 검은 이끼가 많이 끼어 있어, 선각들이 뚜렷이 잘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내가 40년을 넘게 남산을 다니는데, 이렇게 이끼가 많이 낀 것은 처음 보네요. 비가 많이 와서 그런가? 눈이 많이 와서 그런가?”하며 스님도 의아해 하셨습니다. 저도 이렇게 이끼가 많이 낀 육존불은 처음 봤습니다. 마애 육존불에 참배를 하고, 마애관음보살상과 만났습니다. “이 관음상은 해가 질 때 보면 지는 햇살이 비치면서 더 아름답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입술 붉은 삼릉골 마애관음보살상에도 참배를 했습니다. nbsp 마지막으로 매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목없는 석불좌상에 참배를 했습니다. “이 부처님을 보면 꼭 한국 불교를 보는 것 같습니다. 머리가 없고 손이 없죠? 머리는 부처님의 지혜이고, 손은 부처님의 자비의 실천이라면 머리가 없고, 손이 없다는 것은 부처님의 지혜도 없고, 자비로운 실천이 없다는 것인데, 이는 오늘날 한국 불교를 상징하는 것같아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하시는 스님 말씀을 들으며 함께 안타까워지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nbsp 천천히 솔숲을 걸어 내려왔습니다. 차가운 바람도 좋고, 솔숲도 좋고, 함께 걷는 사람들도 좋았습니다. 삼릉 아래 칼국수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고, 목욕도 하고, 다시 두북정토마을로 돌아왔습니다. 20여분의 거리밖에 안되는데도 피곤했는지 눈을 감았다 뜨니까 벌써 두북정토마을 운동장에 차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스님과 일행들은 바로 다시 토론에 들어갔습니다. 통일을 위해서 무엇을 기여할 것인지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4시간 가량을 자유롭게 토론을 한 후, 통일을 위해 작은 기여라도 해 보자며 통일의병의 결의를 다졌습니다. nbsp 사람들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 살다가 이웃의 그 누군가를 위하여 한 발만이라도 밖으로 내딛일 때 사회는 아름다워지는 것 같습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모이고, 토론하고, 머리를 맞대는 것 자체가 참 아름다운 삶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 자 가진 일이 있는데도 뭔가 세상에 조그마한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nbsp 저녁 식사까지 하고, 평화리더쉽아카데미 동문회 일행은 서울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오후 7시경부터는 스님을 모시고 평화재단 실무자 회의가 바로 이어졌습니다. 2013년 사업과 인사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편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내어놓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고 사람들은 10시경에 취침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는 경주남산순례 답사를 하고, 오후에 다시 회의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4월에 ‘법륜스님과 함께 하는 경주남산순례’가 있는데, 현재 1000여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다른 등산객에게 불편을 줄 수가 있어서, 5군데의 코스로 나눠서 산에 오르고 내려오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일은 3개 코스를 실무자들이 3팀으로 나눠서 미리 답사를 해 볼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경주남산은 언제가도 좋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3월 1일 법륜스님의 하루(삼일절 기념행사, PLA워크샵)
오늘은 94번째 삼일절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다행히 어젯밤 내리던 비는 멎었는데 황사와 꽃샘 추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접하고 옷을 단단히 챙겨입어야겠구나 싶었습니다. 아침 일찍 오늘 행사가 있을 전북 장수 죽림정사로 향했습니다. 죽림정사는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이시며 근세 한국 불교의 중흥조이신 용성진종조사의 생가에 조사의 뜻을 기리며 지은 절입니다. 법륜스님께서 죽림정사 주지를 맡고 계십니다. 죽림정사에 도착하니, 어제 하루 먼저 출발했던 정토회 행자님들이 곳곳에서 행사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양간 일도 돕고, 행사장 정리도 하고, 접수 준비도 하고, 중간 중간에 서서 오시는 분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요사채에서 행사에 오시는 내빈들을 맞이 하셨습니다. 오전 10시가 넘어서자 전국에서 정토행자님들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오늘 삼일절 행사는 94회 삼일절을 맞이하여 삼일절의 의미를 새기고, 조상들의 숭고한 독립정신을민족 통일의 역사적 사명으로 이어가는 통일의병으로서의 발심의 기회를 갖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또한 당시 기독교, 불교, 천도교가 함께 당시의 염원이었던 독립을 준비했던 것처럼, 오늘도 기독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천도교인이 모여 지금 우리의 염원인 민족 통일을 함께 발원하는 계기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33번의 타종에 이어서 10시 30분, 죽림정사 용성교육관에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사회는 울산정토회 대표인 김용주 변호사님이 맡았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에 이어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묵념이 이어졌습니다. nbsp 이어 스님께서 순국선열들께 향공양을 올렸습니다. nbsp 이어 임명진 목사님, 최종수신부님, 이응준 교무님을 비롯한 70여명의 내빈들이 33인의 민족대표에게 꽃 공양을 올렸습니다. 다음으로 사단법인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 신봉수 총무이사님이 삼일절 경과보고를,광복회 전 전라북도 지부장이신 이풍삼 목사님이 독립선언문 낭독을, 호남 4.19혁명단체 총연합회김영용회장님이 만세삼창을 하신 후에 다같이 삼일절 노래를 제창했습니다. 이풍삼 목사님이 간절한 마음으로 낭독하는 독립선언문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당시의 삼일독립운동을 떠올리고, 일제의 압박하에서도 결연히 일어섰던 선조들의 뜻을 다시 기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어진 만세 삼창은 결의에 찬 우렁찬 함성이었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어서 사단법인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 김상두 이사장님의 환영사가 있은 후 스님의 내빈소개와 인사말씀이 있었습니다. 오늘 참석하신 분들을 한 분 한 분 소개하고, 전국 정토회 참가자도 소개를 한 후에 스님 인사말씀이 이어졌습니다. nbsp “올 해는 정전협정 60주년이 됩니다. 전쟁이 멈춘 후 6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전쟁이 온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전쟁을 온전히 종식시키는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통일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뒷걸음질해서 오히려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3.1 독립운동정신을 계승해서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를 공고히 하고, 분단을 극복하는 통일을 이룰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 종교 전 민족이 뜻을 모아서 독립선언을 한 것처럼, 오늘 우리 또한 모든 종교, 사회 단체가 힘을 모아서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 힘을 모아야 되겠습니다. 통일의 구심체가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일 수밖에 없기에 대한민국 안에 분열된 계층과 단체들이 이제는 나라의 통일을 위해 국민통합을 해야 할 것이고, 힘을 모아 통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은 단지 대한민국의 발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북을 통틀어 전 민족의 발전을 위한 길이며, 통일한국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평화와 이익을 위한 길이면 나아가 세계의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행사를 기념하는 행사에 그치지 말고 이러한 국민의 정신을 계승해서 통일의 위업을 이루는데 다함께 노력을 했으면 합니다. 이렇게 오늘 먼 곳까지 오셔서 참여해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스님nbsp말씀에 이어 인명진 목사님의 축사가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워낙 편하고 재미있게 말씀을 해 주셔서, 대중들이 많이 웃었습니다. 스님과 목사님은 워낙 오랫동안 친분을 나누신 사이인데, 두 분의 민족통일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nbsp “저는 오늘 새벽에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서울시내에서 밤에 한 자리에 서서 보면 30개씩 십자가가 보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에세 희망, 부활, 생명을 뜻합니다. 이 수많은 십자가가 보이는 서울에서 어떻게 희망을 보지 못하고 하루 46명이 목숨을 끊는가? 십자가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것은 우리 사회에 대한 도전입니다.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하는데 하루에 46명이 죽는 게 폭동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이 상태로 가면 이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이제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종교인이라 생각합니다. 기독교 천도교 할 것 없이 이 땅에 사는 백성에게 희망을 주도록 마음을 합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금년이 정전협정 60주년입니다. 6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평화는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옛날 3.1운동 때 선조들처럼 불교 스님들, 천도교회 여러분들, 그리고 가톨릭, 기독교 모든 종교인이 평화를 갈구하는 종교인들이 앞서서 분단을 끝내고 이 땅에 평화를 이뤄나가는 새로운 평화운동,새로운 독립운동으로 나라를 세우는 일에 앞장서야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는 의미에서 오늘 삼일절 기념행사에 이렇게 각계 종교인이 함께 모여서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정신을 생각하고 기념하고 이 민족의 역사를 위해 종교인들의 역할을 다짐하는 이 일이야말로 뜻 깊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뜨겁고 긴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이어서 전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이신 최종수 신부님께서축사를 해 주셨습니다. nbsp “우리 각 자에게는 하늘이 내려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농부와 노동자의 사명, 교사와 학생의 사명,정치인과 공무원의 사명이 그러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명, 스님, 목사, 교무, 신부의 사명이 있습니다. 여기에 사명은 다양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하나의 사명이 있습니다. 바로 3.1자주독립운동의 정신인 자주독립통일국가의 사명입니다.” 신부님께서 통일에 대한 사명을 힘있게 역설하시고는 온 마음을 모아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로 축사를 갈음하셨습니다. 목소리가 좋고,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어 심금을 울리는 노래였습니다. 이어 영산선학대학교수이신 이응준 원불교 교무님은 노래 두 곡으로 축사를 대신하였습니다. 두 번째 곡이었던 ‘온겨레의 노래’는 용성진종조사께서 쓰신 글에 곡을 붙인 노래로, 3절부터는 전체 대중이 다같이 불렀습니다. 겨레에 대한 큰스님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nbsp 이어서 ‘3.1 만세운동의 독립운동사적 의미를 말한다’는 제목으로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이신 임형진 님의 기념 강연과 ‘3.1정신으로 국민통합을’의 제목으로 대한불교 조계종 결사본부장이신 도법스님의 기념강연이 이어졌습니다. 이 자리에 유일하게 자리한 천도교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임형진 교수님은 천도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3.1운동과 더불어 여러 역사적인 고찰들과 당시의 많은 일화들을 말씀해 주셔서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nbsp 도법스님께서는 당시 불교인이 불교발전보다 우선시 했던 가치,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의 발전보다우선시 했던 가치가 바로 독립이었기 때문에 종교인들이 각기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모여서 같이 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그러면 지금은 민족사 전체를 놓고 볼 때, 인류사 전체를 놓고 볼 때 가장 절실한 가치는 무엇인가? 바로 생명의 가치이지 않겠는가? 그 속에서 국민통합도 이룰 수 있다는 취지의 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nbsp 이어서 청년정토회 회원들이 나와서 신독립군가를 함께 불렀는데, 당장 거리로 뛰어나갈 듯 결의에 차서 신나게 불렀습니다. nbsp 행사를 마치면서 행사에 참가한 내빈들 사진을 찍었습니다. 장수 죽림정사까지 쉽지 않은 걸음 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nbsp 행사에 참석한 내빈들은 요사채에서 공양을 드시고, 정토행자들은 날이 추워서 각 자 타고 온 차 안에서 각 자 싸온 도시락으로 공양을 했습니다. 정토행자님들은 묘수법사님의 안내로 죽림정사 사찰순례를 했습니다. 오늘 삼일절 기념행사는 내용도 있고,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었습니다. 태화관에 모여서 목숨을 내어놓고 결연히 독립선언을 했던 33인의 선조들이 흐뭇한 웃음을 띄며 바라보셨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이런 원이, 우리의 이런 간절한 바람이 남북의 평화와 통일로 이어지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해 봅니다. 장수 죽림정사에서 행사를 마치고 울산 두북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과 내일 1박 2일동안 평화재단평화리더쉽아카데미 동문 워크샵이 두북정토마을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30여명의 평화리더쉽아카데미 동문들과 오늘 저녁 우리의 힘을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내일 오전에는 같이 경주남산 순례를 하고, 오후에 다시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잡혀져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 저녁부터 1박 2일간은 평화재단 실무자들과의 회의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하루 하루가 빈틈없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고맙습니다.nbsp
2013년 2월 28일 법륜스님의 하루(분당, 용인, 수원)
오늘은 정초순회법회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그동안 34군데 정토법당을 11일동안 돌았습니다. 지난 300강보다 더 틈없이 빡빡하게 돌았습니다. 그래도 새로 생긴 작은 정토법당까지 다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스님께서 자그마한 법당까지 다 방문을 하니, 다들 정말 좋아하고 기뻐했습니다. 지난 300강 동안은 강연 준비에 집중하라고 법당에서는 스님 식사를 따로 준비하지 않는 것으로 하고, 식사대접도 일절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각 법당을 돌면서 점심, 저녁을 법당에서 먹게 되니까, 열악한 조건에 있는 법당까지도 온 마음을 쏟아 스님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스님 피곤하시다고 좋은 음식이나 특산물, 귀한 음식들도 많이 싸 주셔서 저희들도 잘 먹었습니다.마음 써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분당, 용인, 수원에서 법회가 있었습니다. 모두 경기 동부지역이고 거리가 가까워 조금은 더 수월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아침도 조찬 모임이 있었습니다. 10시경 평화재단에서 분당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 다닌 3개 법당은 모두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다보니 좁아서 미어터질 듯이 빽빽하게 앉아 법문을 들었습니다. 오늘 첫 법문이 있었던 분당에서는 간단하고 시원한 답변들이 재미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만나뵈었었습니다. 신랑하고 문제가 있어서 한국에 나와 별거중입니다. 딸이 5월에 대학원을 졸업하는데 안가면 섭섭해 해요. 어떻게 할까요?” “안가도 돼요. 미안할 것도 없어요. 자식이 20살이 넘으면 내 말 안 들어도 괜찮고, 내가 자식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해줘도 괜찮아요.” “딸아이가 섭섭해 할 것 같아 미안해서요.” “섭섭했겠구나 하면서 이해하면 됩니다.” “아버지와 엄마가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해서 딸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좀 쓰입니다.” “자식이 20살이 넘었으면 부모가 이혼을 하든, 같이 살든 내 좋을대로 하면 됩니다. 자식은 더 이상 고려할 대상이 아니예요. 대신 부모도 자식이 인생을 어떻게 살든 간섭을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제 인생 제가 살면 될까요?” “됩니다.” “감사합니다.” nbsp “스님. 저는 형편도 친구들과 비교하면 나쁜 것도 아니고 노후 준비도 조금이나마 되어 있습니다.남편이 돈벌어 오라고 하지도 않는데, 저 혼자 자꾸 자격지심이 듭니다.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열등감에 괴롭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행복의 조건들이 많은데 강박적인 생각 때문에 마음의 평안함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을 벌지 못해서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것 같은 강박증을 없애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절 하루에 얼마나 할 수 있겠어요?” “108배를 두 달 하다가 그만 뒀어요.” “기도 시작하는 날 1,000배를 하고, 다음 날부터는 매일 200배씩 백일간 하세요. 그 다음부터는 매일 108배를 하세요. 108배가 하기 싫으면 다시 1000배를 하세요. ‘부처님. 저는 복받은 여잡니다.’하며 자꾸 절을 하면 내면의 열등의식이 없어질 것입니다. 여기 정토법당에 나오세요. 법당 관계자분은 저 분에게 빚갚도록 일을 많이 주세요. 일 하는 것을 돈으로 환산하지 마세요. 돈으로 환산하지 않는 것이 무한한 복을 짓는 거예요. 복받은 여자니까 복을 나눠 가져야 해요. 봉사하고 기도하시면 되겠네요.” “예. 알겠습니다.” 이어서 계속 질문이 이어지고 스님의 답변이 있었습니다. 법문을 마치고, 좁은 사무실 한 켠에 겨우 앉아 스님께서 점심 공양을 드셨습니다. 싱크대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자그마한 곳에서 스님공양 준비까지 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법회를 마치고 가면서 저희들이 “분당법당은 조금 더 큰 곳으로 이전해야겠는데요? 너무 작은 것 같아요.”했더니, 묘덕법사님이 “지금 이 곳도 작은 곳에서 그나마 조금 넓은 곳으로 이사한 건데, 임대료가 만만치 않아요. 얼마나 많이 알아봤는지 몰라요.”하십니다. 지역보다 수도권 정토법당이 좀더 열악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도권은 임대료며 관리비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용인정토법당은 분당정토법당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었습니다. 한 시간 가량 일찍 도착했는데,용인정토법당도 공간이 좁아서 따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스님께서 차안에서 한 시간 가량 휴식을 하신 후, 법회 시간에 맞춰 법당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래도 용인법당이 분당법당보다는nbsp조금 더 넓었습니다. nbsp “좁은 곳에서 법회하니까 좋네요. 가까이서 얼굴도 보고, 눈도 마주치고.”하시면서, 스님께서 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 신년법문을 한 시간 하신 후에 질문을 받았는데, 질문자들은 모두 정토회를 만나서 많이 행복해졌다고 했습니다. “스님. 저는 남편을 탓하고 원망하고 살다가 정토회를 알게 되면서, 제가 남편을 탓하고 원망하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딸이 사춘기가 되면서 술, 담배도 하고, 가출도 해서 얼러도 보고 협박도 해 보고 때려도 봤습니다. 남편과 밤새도록 딸을 찾으러 다닌 적도 많습니다. 딸의 권고 전학으로 수지에 와서 정토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부터 열심히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올 해 불교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아들이 21살이 되어서 스님 말씀따라 자립을 시키려고 하는데 잘 안 됩니다.” “우연히 스님 법문 듣고 작년에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저는 큰 아이에게 화도 많이 내고 짜증도 많이 냅니다.” “저는 오랫동안 가톨릭 신자로 있었는데 최근 불교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정토회를 알게 되어 옳고 그른 분별이 없는 것을 알게 되고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는 많은 평안을 얻었지만 사회적 정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임해야 되는지 많이 헷갈립니다.” 용인 질문자들은 모두 불교대학생이거나 불교대를 졸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불법을 알게 되었는데, 실제 생활 속에서 적용을 하면서 잘 안 되는 문제들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용도 더 구체적이고 진솔했습니다. 스님께서도 생활 속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한 분 한 분에게 기도문과 기도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용인법당에서 2시간 넘게 법문을 하셨습니다. 법문 후, 다음 법회가 있는 수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좋은벗들 대표를 하셨던 김동균 변호사님이 저녁 식사 대접을 해 주셨습니다. 두 분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며 오랜만에 여유롭게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수원법당도 따로 휴식 공간이 없다고 해서 법회 시간에 맞춰 법당으로 갔습니다. 콩나물 시루처럼 다리도 펼 수 없이 앉아서 법회를 들었습니다. 입구 사무실 공간까지 꽉 차서 사람들이 더 들어올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사무실 한 켠에서 법당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2시간 내내 서서 법회를 듣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수원이 정초전국법당 순회 중 마지막 법회였습니다. 법회를 시작하면서 스님께 감사함을 담아 꽃다발을 선물 드렸습니다. nbsp 오늘도 법문 시작 후 한 시간동안 불법을 알고 행하고 체험해서 믿음이 강한 불자, 불교적 가치를 실현하며 사는 불자의 모습에 대해서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올 해는 ‘진실한 불자가 되자, 참 불자가 되자’, 그렇게 원을 세워 봅시다. 참 불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 번째 불법을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바르게 실천해야 합니다. 바르게 실천하면 행복과 자유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인연과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을 신해행증이라고 합니다. 올 해는 불법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을 해서 행복과 자유를 증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봅시다.nbsp불교가 열반을 목표로 하는데, 즉 괴로움이 없는 행복을 목표로 하는데,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지수를 조사하면nbsp180개국 중 100위 아래로 떨어집니다. 특히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는 OECD 가입국가 중에 제일 낮다고 합니다. 불교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에서 행복지수가 낮다는 것은 한국불교인들이 불교적 가치관을 가지고살아가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수행하면서 행복지수가 높아졌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결론적으로 참불자가 되기 위해서는 불법 공부를 해야 합니다. 불법 공부를 하는데 제일 좋은 방법은 정토불교대학에 다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짧은 시간내에 가장 바르게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제가 45년을 불법공부한 중에서 ‘적어도 이것은 꼭 알아야 한다’는 것을 쉽게 설명해 놓았기 때문에입학해서 공부하면서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꾸준히 정진을 해야 합니다. 현재의 내 까르마가 어디서 어떻게 왔든, 지금은 내 것이 되어 있습니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내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이 수행입니다. 2013년도 새해에는 부지런히 수행을 해서 자기 운명을 바꿔 봅시다.” 스님 법문 후, 많은 질문들이 이어졌는데, 수원법당도 마찬가지로 깊이 있고 구체적인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nbsp 수원법당에서 법회를 마치고, 오늘도 스님은 약속이 있어 평화재단으로 가셨습니다. 차 타고 돌아오는 길에 스님께서 “오늘 수원이 마지막 법회였네?” 하셔서, 저희가 손뼉을 치며 “스님.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모든 정토행자님들을 대신해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내일은 94돌을 맞는 삼일절입니다.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이셨던 용성조사의 생가인 장수 죽림정사에서 3.1절 기념행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립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습니다. 내일 행사 때는 비가 멎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nbsp
2013년 2월 27일 법륜스님의 하루(일산, 서대문, 인천)
서울정토회관에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새벽 2시경에 서울에 도착했는데, 스님은 아침 일찍 조찬모임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조찬모임이 끝날 즈음에 평화재단으로 가서, 스님을 모시고 일산정토법당으로 향했습니다. 일산정토법당은 구할 때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오늘 처음 가봤습니다. 건물 입구에서 거사님 두 분이 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7층 법당으로 가니까 입구에서 여러 명의 활동가들이 서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법당이 넓고 좋았습니다. 공양간도 넓고 복도도 넓어서 편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남자분들도 많았습니다. 오늘은 남자분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왜 스님께서는 항상 여자들만 남편에게 참회해라고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도 있었는데, 오늘은 남자분이 스님께 가정의 어려움에 대한 질문을 하자, 남자들의 입장에서 명확하게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nbsp “저는 가을 야간 불교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불법 만나지 1년된 초심자입니다. 중학교 3학년인 딸아이와 부인과 함께 살고 있는데 이혼을 하고 재혼을 했습니다. 아내가 부모님과 많이 싸워서 이혼을 했는데, 어머니께서 며느리를 굉장히 힘들게 하셨습니다. 현재의 아내도 굉장히 힘들어 합니다. 시댁에 가지 않은지 3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깨달음의 장 다녀와서 아내에게도 잘못했다고 하고, 정토 다니면서 어머니와 아내를 다독거려 주니까 어머니도 아내와 화해를 하고자 합니다. 제가 장남입니다. 어떻게 해야 어머니와 아내가 화해할 수 있을까요? “일단 20살이 넘으면 부모한테서는 독립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도움도 받지 말고, 복종도 하지 마세요. 특히 결혼을 하면 남자는 어머니의 아들보다 아내의 남편임을 훨씬 더 우선시 해 줘야 합니다. 그 사이에서 어물쩍 하면 가정불화의 요인이 됩니다. 그런데 남자가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부모가 키워준 은혜가 있고, 어머니와 자식간의 습관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 간섭을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제가 고부관계로 힘들어하는 여자분들에게는 효자 아들을 좋게 봐라, 그것을 싫어하면 자식에게 똑 같은 과보를 받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부인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그러나 남자는 어머니와 부인 사이에서 같은 비중을 가지고 방황하면 안 됩니다. 아내를 80, 어머니를 20 비중을 두고 입장을 정확히 가져야 합니다. 그 사이에서 어물쩍 하면 내 가정이 독립하기 어렵습니다. 부모와는 정을 끊어도 되니까 내 가정이 독립해야 합니다. 그런 정도로 삶의 방향을 먼저 잡아야 합니다. 입장이 단호해야 합니다.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해 놓고, 그 다음에 이웃 노인도 돌볼 이가 없으면 돌봐야 하듯이 내 부모도 돌볼 이가 없으면 돌봐야 합니다. 이것을 섞으면 안 됩니다. 장남이건 차남이건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 단호한 입장을 안 가져 주면 가정의 불화가 생기게 되고, 아내가 마음이 불편하고 안좋으면 아이들이 똑 같은 업보를 받기 때문에 힘들어집니다. 결혼하면 남자 입장에서는 아내를 집으로 데려오지만, 여자 입장에서는 남편 하나 보고 시집 갔잖아요? 전혀 낯선 사람을 어머니, 아버지, 동생이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것을 견뎌내려면 남편이 자기편을 들어줘도 어려운데, 남편이 어정쩡한 태도를 가지면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혼할 수도 없고 참으며 고통을 겪고 살면 그 과보가 나중에 자식에게 나타나는 겁니다. 좋은 손자나 좋은 아이를 바란다면 그 아이 엄마를 잘 보살펴야 하는 겁니다. 남자는 내 부모, 내 형제까지가 내 가족이 되지만, 아내는 남편과 아이까지가 내 가족이고, 남편의 가족까지는 내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갈등이 필연적으로 생기는 거예요. 남자라면 이 때 내 가족을 우선적으로 입장을 정해줘야 합니다. 비중을 이 쪽으로 옮겨줘야 합니다.그래야 하나의 가정을 꾸린 가장의 태도가 됩니다. 태도가 분명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그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런 것을 어머니에게도 분명히 보여줘야 합니다. 이것은 불효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현상이 그렇습니다. 그 범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부모에게 잘 해야 합니다. 아내에게 내 어머니에게 잘 해라고 강요하면 안 됩니다. 내 어머니지 아내의 어머니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감당을 해야지 아내에게 강요하면 안 됩니다.” 스님의 말씀이 시원하게 들렸습니다. 아내든 남편이든 각 자 자기가 처한 입장에서 수행을 해야 하고, 상대를 탓하거나 바꿀 것이 아니라 내가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시간이 좀 여유가 있으면 질문을 하나라도 더 받으시고, 시간이 여유가 없어도 식사시간을 줄여서라도 질문을 더 받으셔서, 마칠 시간쯤이 되면 식사를 하고 가실지, 도시락을 싸야 할지 저희들이 상황을 보고 판단을 하게 됩니다. 오늘은 다행히 다음 법문이 서대문구라 그리 멀지 않아서 늦게 법문을 마쳤는데도 식사를 하고 출발할 정도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일산정토법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시고, 다음 법문 장소인 서대문정토법당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이면 정초순회법회가 끝나는데, 가만 보니 300강 때보다 더 일정이 빡빡합니다. 가만 보니 하루 네 번 법회를 할 때도 있고, 평균 3번 할 때도 이 도시와 저 도시를 가로질러 달려야 하니까, 만만치 않은 일정이었습니다. 별 생각없이 다녔는데 벌써 내일이면 전국순회법회가 마무리가 됩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서대문법당에 도착했습니다. 서대문법당에 가니, 아는 얼굴들이 많았습니다. 1988년 정토법당이 처음 자리 잡았던 홍제법당에서길 건너 맞은 편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대문법당이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홍제동으로 오니까 괜히 정겨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 부산에서 홍제동 법당으로 와서 대학생 수련을 많이 했었습니다. 주변 환경들이 낯익고 정겨웠습니다. 자그마한 법당에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 더 이상 앉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 끼여서 앉았습니다. “스님께서 우리 법당에 와서 지금 법문을 하고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아요.”하면 감격해 하던 보살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노보살님이 스님의 서대문법당 방문을 축하하며 꽃다발을 전달했습니다. 노보살님 얼굴 가득 행복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들이 참 예뻐 보였습니다. 스님께서 2013년은 참불자로, 진실된 불자로 살아보자며 불법을 배우고, 이를 행하며 사는 삶에 대한 법문을 한 시간동안 하셨습니다. 스님 법문 후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nbsp 중증지체부자유 아이를 행복한 마음으로 키우고 있는 엄마의 사연, 서울대 출신 여의사인 올케 중심으로 돌아가는 집안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드는 시누이의 이야기,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많이 맞고 커서 이기고 지는 관계에 집착해서 살아오면서 주변에 많은 피해를 주며 살아왔다는 딸 이야기,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많았던 자신이 결혼하고 다시 이혼해서 아이들과 싸우며 사는 이야기 등 오늘도 많은 인생의 이야기 보따리들이 풀어 헤쳐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으시고, 하나 하나 갈무리를 해 주셨습니다.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자상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서대문법당이 사람들로 꽉 차 더웠습니다. 법문을 마치고 나온 스님은 속옷이 다 젖었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나와서 바로 다음 강연 장소인 인천정토법당으로 향했습니다. 인천정토법당도 작아서 따로 공양하거나 휴식할 공간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대문법당에서 스님 저녁공양으로 도시락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일회용품이 하나도 나오지 않도록 플라스틱 통에 음식을 담고, 젓가락까지 다 준비를 해 주었는데, 정말 정성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nbsp 인천으로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맛있게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셔서 그런지 감기 기운이 있으신 것 같았습니다. 인천으로 가는 길에 차 안에서 곤히 주무셨습니다. 인천정토법당에도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인천광역시라 법당도 제법 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자그마한 법당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정토법당 나오는 것을 싫어하고, 경제적인 지원까지 끊는데, 정토법당에 나와야 살 것 같고,남편과도 잘 지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여자분,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는데 과연 통일이 당겨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분은 어릴 때 아버지에게 많이 맞으면서 커서 마음에 화가 많고 사람들과 쉽게 교류가 잘 안 된다며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21살 여자분은 모든 일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아서 힘들고 답답하다고 하소연을 했고, 어릴 때 사고로 5분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서서 질문한다는 31살 젊은 남자분은 지금 학생들을 가르치는데만족이 잘 안되고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들을 보면서 열등감을 느낀다며 분수를 모르는 자기 처지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스님께 물었습니다. 세 아이가 있는 남자와 재혼을 해서 살면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여자분도 있었습니다.nbspnbsp nbsp 살아가면서 겪는 사연들이 참 많았습니다. 스님께서 사연들을 다 들어주시고, 이해해 주시고, 공감해 주시면서도 불자로서, 수행자로서 어떻게 방향을 잡고 정진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명확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사람들 마음이 시원해졌을 것 같습니다. 스님의 말씀이 내 문제해결에 가장 중요한 핵심 키이긴 하지만, 또한 내 문제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어놓고 질문하는 것 자체가 해결점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따로 개인적으로 질문을 받지 않고 대중들 속에서 질문을 받고 바로 답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nbsp 인천에서 법회를 마치고 바로 서울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재단에서 약속을 마치고 정토회관에 늦은 시간에 들어오실 것 같습니다. 저희들은 정토회관에 먼저 들어와 내일을 위한 정비를 했습니다. 내일은 2013년 전국 정초순회법회 마지막 날입니다. 분당, 용인, 수원정토법당에서 법문이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은 법당들이 다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시간이 여유가 조금은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2월 26일 법륜스님의 하루(포항, 안동, 경주)
오늘은 경상북도를 돌았습니다. 서울 정토회관에서 새벽에 출발해서 포항으로 갔습니다. 시간에 맞춰 포항정토법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입구에 젊은 청년들 여럿이 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스님께서 “포항 청년들이구나?”하며 웃으며 물으시자, 청년들이 “녜”하면서 싱글벙글하며 큰 소리로 대답을 합니다. 포항은 작은 정토법당인데도 작년에 청년회가 결성되어서 300강을 할 때도 자원봉사를 많이 했습니다. 포항법당도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법당을 돌면서 법문을 하니까 질문이 정말 많습니다. 활동하면서, 기도하면서 생기는 어려운 점들,개인사들을 질문을 많이 하는데, 포항에서는 5개 질문을 받고 2개는 시간이 부족해서 받질 못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시간이 되는데만큼 끝까지 질문을 받으시고, 저희는 시간을 보며 스님 점심식사 상 차린 것을 다시 도시락으로 바꿔서 담고, 스님 마치자마자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습니다. nbsp 여러 질문들 중 질문하면서부터 울면서 질문한 젊은 여자분의 사연을 올려 봅니다. “ 제 고민은 신랑이 재작년부터 눈에 복시현상이 생기면서 아프기 시작해서 그 때부터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는 걸음걸이가 이상해지더니, 지금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아무것도 없습니다. 유명한 병원을 다 다녀봐도 병명이 없다고 합니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스님께좋은 말씀 들으려고 왔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그러나 이런 남편을 둔 아내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아기 있어요?” “예. 3살이예요.” “엄마가 매일 우는 것이 아기에게 좋을까요?” “아니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내가 웃을 수 있을까요? 남편이 내가 병들어라 해서 병들었나요?” “제가 소홀해서 남편의 병이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남편이 이렇게 된 데는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남편을 위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내가 돈 아끼려고 치료를 안하는 것도 아니고, 또 병원에서는 현대의학으로 어쩔 수 없다잖아요? 그런 남편을 보고 내가 매일 울어야 아기에게 좋을까요, 웃어야 남편에게도 좋고, 아이에게도 좋을까요?” “웃어야 좋겠죠.” “남편의 병이 치유가 되고 안 되고, 살고 죽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병원에 데려가는 일이고, 치료하는 것은 의사가 하는 일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설령 남편이 돌아가신다고 해도 울 일이 아닙니다. 당연히 섭섭하죠. 그러나 그 정도로 마음이 딱 잡혀야 합니다. 자기가 할 수 없는 남편 문제를 가지고 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아기를 잘 키우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엄마가 웃어야 아기가 잘 컵니다. 지금처럼 엄마가 자꾸 울면 아기 마음에 슬픔이 형성됩니다. 그래서 아기 키우는 엄마는 울면 안됩니다. 생글생글 웃어야 합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내와 엄마 중 엄마가 더 중요합니다. 엄마의 책임을 방치하면 안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엄마는 아기를 보호해야 합니다. ‘좋은 엄마가 되겠습니다. 웃는 엄마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그래야 남편 병도 더 좋아집니다. 남편의 치료는 의사에게 맡기고, 병원에만 모시고 갔다가 왔다가 하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nbsp 다음 장소가 안동이라 이동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빠듯해서 더 질문을 받기가 어려웠습니다. “질문이 남은 두 사람은 안동이나 경주로 오시면 어때요? 지금은 도저히 더 받기가 어려운데요. 미안합니다. 명상 중에 먼저 나가겠습니다. 제가 먼저 나가더라도 따라 나오지 마시고, 아직 공지사항과 몇 가지가 남아 있으니 끝까지 듣고 나오세요, 아셨죠?”하면서 명상이 시작되자 조용히 나오셨습니다. 바로 차를 타고 안동으로 향하면서 차에서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안동으로 가는 길은 국도로 갔습니다. 매일 고속도로로 다니다가 국도로 가니까 정겹고 좋았습니다. 3시부터 안동정토법당에서 법회가 있었습니다. 크지 않은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올라가는 계단이며 주변 정리가 말끔히 되어 있었습니다. “스님 오신다고 일요일부터 옥상 청소, 계단 물청소까지 하고, 내내 정리했어요.”하던 안동거사님 이야기처럼, 시설은 다른 법당들보다 덜 되어 있는데, 노력한 손길이 보이는 것 같아 스님을 맞아하는 지역 법당보살님, 거사님들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nbsp 안동에서도 많은 질문이 있었는데, 그 중에 마음에 남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남편과 교회에서 만나 결혼을 한 후 남편이 박사학위 받을 때까지 뒷바라지를 했는데, 나름대로 성공한 남편으로부터도 무시받고, 시댁으로부터도 핍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매주 가서 일을 도와도 아들을 낳지 못해서 대를 끊는다고 욕을 해서 시댁에도 발을 끊었고, 남편은 처음부터 자기를 사랑하지 않았는데 결혼을 했기 때문에같이 살기 힘들다고 해서 현재는 별거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잘 해서 남편과도 같이 살고, 시댁에도 다닐 수 있기를 꿈꾸고 있는 여자분이었습니다. “지금 몇 살이예요?” “마흔 여섯 살입니다.” “아이는 있어요? 몇 살이예요?” “딸이 하나 있습니다. 스무살입니다.” “직업은요? 밥 먹고 살 수 있어요?” “아르바이트 하고 있는데 밥 먹고 살만은 합니다.” “남편하고 같이 안 살아요?” “아이 보러 가끔 집에 옵니다. 대화도 안 합니다. 제가 말을 걸면 너와 이야기하기 싫다고 합니다.” “남편 직업은요?” “공무원입니다.” “배심원 여러분. 이 여자분 이야기 들었죠? 이 분 이야기를 100 다 믿으면 안 돼요. 상대편 남자 입장에서도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아셨죠? 이 여자분이 이혼하는 것이 좋겠어요? 안하는 것이 좋겠어요?” “ 이혼하는 것이요.” “자, 그럼 손 한 번 들어보세요.” 사람들이 이혼하는 쪽에 손을 우루루 들었습니다. “배심원 판결이 이혼하는 것이 좋겠대요.” “저는 이혼 안하고 맞춰서 대화를 해서 풀었으면 좋겠는데, 그 방법을 잘 몰라서요. 제가 이야기를 잘 해도 남편은 너에게 안 돌아갈 것이라고 하면서 화내서 말합니다.” “남편이 개과천선해서 반성을 해야 이 문제가 해결되잖아요. 그런데 남자가 안 그러면 어떻게 할래요? 남자 바라보고 사는 인생이 내 인생 내가 사는 거예요? 노예처럼 사는 거예요? 노예처럼 살기 싫으면 이제는 마음에서는 끝을 내세요. 더 이상 기대를 하지 마세요. 아이가 20살이 넘어 성인이 되었기때문에 엄마로서의 책임을 다했으므로 이제은 남편과 일대일로 단판만 하면 돼요. 내가 이 남자가 싫어서헤어지는 것이면 참회를 하고 같이 살면 되지만, 상대가 싫다고 하는 것이라 상대가 변해야 해결이 되는 겁니다. 결혼해서 남편 뒷바라지해서 성공 시켰고 아이도 하나 키워 봤잖아요. 헤어진다고 해서 손해볼 것이 뭐가 있어요? 왜? 이혼해 봐야 별 소득이 없어요? 그러면 이혼은 하지 말고, 마음 정리를 하고내 인생 열심히 살면 됩니다. 상대가 변해서 같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은 상대를 고치자는 것이므로 수행이 아니예요. ‘절 열심히 하면 상대가 언제가 돌아오겠지’ 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라 기복이예요.” “사실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바보지요. 그렇게 살지 말고, 내 인생의 주인은 나잖아요? 내가 도와줬다느니, 시댁에 가고 싶다느니 하는 생각을 끊으세요. ‘내 할 일은 다 했다’하고 자기가 먼저 독립을 하면 됩니다. 자기는 지금 하는 태도는 비굴한 것입니다. 남편 환심을 어떻게 사 볼까?하는 거예요. 비굴하게 살기 때문에 억울한 것이 안 없어지는 겁니다. 마음에서 끝을 내야 해요. 그래야 자기가 두 발로 설 수 있어요. 뭐가 좋아서 그래요? 공부시킨 것이 아까워서 그래요? 그 남자가 좋아요?” “아이 아빠니까요. 가정을 깨기 싫으니까요.” “그렇게 비굴하게 구니까 남자에게 천대받는 거예요. 엿처럼 붙어서 안 떨어지니까 천대받는 겁니다. 참고 사는 것이 잘 한 것이 아니예요. 자기 마음 씀씀이가 굉장히 비굴한 것이예요. 이 세상에 여자로 태어난 것이 죄예요? 내가 라면을 끓여 먹고 살아도 비굴하게 살 필요없어요. 여기서 마음을 딱 정리해서 그 남자에게 비굴하게 굴지 마세요. 당당해야 합니다. 인생 잘 못 산 것입니다. 나는 이런 남자 만나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 당당하게 사세요. 지금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것은 착한 것이 아니라 노예근성같은 것입니다. 대한민국 여자를 창피주고 있어요. 당당하게 살아보세요.” 사람들 살아가는 사연이 참 많았습니다. 오늘은 법당간 간격이 멀어서 이동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안동에서 바로 경주로 이동했습니다.경주법당에서 저녁식사를 정성껏 준비해 놓아서, 스님과 수행팀, 촬영팀, 영남사무국까지 다 같이맛있게 먹었습니다. 경주법당에도 사연이 많았습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29살 여자분은 회사와 노조간의 갈등 때문에 회사에서 해고당하게 되었는데, 비정규직 없애라고 하니까 회사가 비정규직 중 대부분을 해고한다고 합니다.그래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재미있던 회사생활을 접게 되면서 ‘내가 일회용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인생의 허무함에 죽고 싶다고 했습니다.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질문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질문하지 않았으면 자살할 수도 있었겠다 싶었습니다. 법문을 마칠 즈음에 스님께서 그 여자분 얼굴을 보며 “아까 곧 죽을 듯이 축 쳐져 있더니, 이제 환하게 웃네. 괜찮아요.”스님 말씀에 저희도 같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법당 앞에 개소주집이 있어서 왔던 사람이 다시 안 오기도 해서 마음이 위축되기도 한다는 불교대학 담당자의 질문도 있었습니다. “개소주집이 있는 것이 문제인가요? 개소주집 위에라도 법당이 있는 것이 좋은 것인가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 저것 따지면 고마운 것 없이 다 문제입니다. 개소주집 위에라도 법당이 있어서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해도 고마운 것입니다.” nbsp 경주법당 활동가들은 법당이 시장통 안에 있어 사람들이 찾기가 어려운데다, 이제 문틀도 일어나고화장실도 공사를 해야 하는데, 이 참에 법당 이전을 하는 것이 어떨까 싶어 이 곳 저 곳 법당 자리를물색하고 있었나 봅니다. 법회를 마치고, 경주정토회 대표님이 스님을 모시고, 큰 대로변에 있는 물색한 장소 한 곳을 보여주며 이런 저런 경주정토회의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인사를 하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일산, 서대문, 인천에서 법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스님은 조찬 모임이 있어서, 오늘 밤새 서울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연을 접했던nbsp하루였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nbspnbsp
2013년 2월 24일 법륜스님의 하루(서원정토행자대회)
어제와 오늘, 금요일부터 있었던 전국대의원회의에 이어서 1박 2일 동안 서원정토행자대회가 있었습니다. 전국의 서원행자들이 문경정토수련원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면 뒷정리할 일이 많기 때문에, 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수련원에 수련을 하러 갈 때는nbsp꼭 챙겨가는 물품들이 있습니다. 제일 큰 부피를 차지하는 것은 침낭입니다.몇 백명의 침구는 사전에 준비하기도 힘들고, 뒷정리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개인이 자기 침낭을 들고 옵니다. 그 다음 준비물은 식기와 수저입니다. 수련원에서는 밥과 국과 찬만 해줍니다. 음식을 먹은 후 식기와 수저는 식사시간에 주어지는 청수와 숭늉으로 설거지를 합니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시간도 많이 줄어들고설거지할 일거리도 줄어듭니다. 이번 수련에는 개인이 밑반찬까지 들고 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식사시간에 갖가지 종류의 밑반찬들을 맛 볼 수 있어서 식사시간이 더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수련원에서는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는 비누와 치약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죽염만 공급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한꺼번에 씻으면 물 소비도 만만치 않고, 비누와 치약을 한꺼번에 쓰면 물도 오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국에서 모인 300여명의 서원행자들이 반가움에 서로 인사도 나누고, 오랜만에 온 마음의 고향인문경정토수련원의 공기도 한껏 들이마셔 봅니다. 오후 5시, 입재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의 입재법문으로 행사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입재법문에서 정토회의 역사 속에서 지금의 회원제도로까지 오게 된 배경, 발심· 서원행자의 역할 및 중요성을 말씀해 주시면서 서원행자들에 대한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그와 함께 정토행자의 자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강조하셨습니다. “정토행자는 제일 중요한 것이 첫째,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수행적 관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수행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을 가지고 이 세상이 행복해지는 데 기여를 해야 합니다. 전법을 해야 합니다. 정토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여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좀 더 나은 사회로 바뀌어 나가게 해야 합니다. 갈등이 있으면 화해할 수 있도록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자기 수행을 기초로 사회활동을 해 나가야 합니다. 정토회는 개인의 고뇌를 극복하는데 부처님의 법이 양약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현재 우리 인류의 인간성 상실, 공동체 붕괴, 자연환경 파괴를 해결하는데도 부처님 법이 양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토행자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함께 하는 대승불교의 길을 추구합니다. 이것을 일과 수행의 통일이라고 합니다.” 스님 법문을 듣고 다시 한 번 발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새로 영입된 서원행자님들의 발원시간을 가진 후, 각 지역별로 나와서 한 명 한 명 소개하고인사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얼굴만 봐도 좋고,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도반들입니다. 스님과 법사단이 함께 하고 있고, 함께 활동하는 도반들이 있어서 그런지, 단지 이름과 직책을 소개할 뿐인데도, 다들 까르르 까르르 웃기도 하고, 배를 잡고 웃기도 합니다. nbsp 스님께서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 말씀이 웃음이 되기도 하고, 격려가 되기도 합니다. 스님이 앞에 앉아 계셔서 떨려서 말이 헛나오기도 하고, 이름을 잊고 소개 안하기도 하고, 직책을 빼 먹기도 합니다. 소개하는 시간이 이렇게 즐거운 줄 몰랐다는 재치있는 사회자의 진행도 즐거움에 한 몫을 했습니다. 소개하는 시간을 끝으로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정월대보름을 하루 앞둔 둥근달이 은은한 달빛을 곱게 비춰주었습니다. 맑은 공기를 새근새근 들이마시며 우리는 곤한 몸을 누이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새벽 4시 30분, 불이 켜지자 다들 일어나 침구를 챙기고, 청소 당번인 조원들은 얼른 대수련장을 쓸었습니다. 5시에 다같이 천일결사 기도를 한 후, 다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전국대의원회의에서 결정된 사업 보고가 있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온 몸과 정성으로 준비했던 전국 시군구 300강연인 ‘희망세상 만들기’는 다시 돌아봐도 감동적이었습니다. 보고하는 동안에도 중간중간에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하며 우리들의 작년 한 해를 자축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의원회 보고를 듣고는 서원행자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정말 모두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들은 더 날카롭게 질문을 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새롭게 제안을 하기도 해서, 더 활발하게 회의가 진행이 될 수 있었습니다. nbsp 모든 보고와 질의응답을 다 받은 후에 있었던 스님의 정리말씀도 좋았습니다. 스님께서 혹시 더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거나 의견이 있으면 자유롭게 더 이야기 해 보자며 자리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미흡했던 이야기들이 더 쏟아져 나오고, 어떻게 하면 부족한 부분을 우리가 같이 채워나갈 지에 대한 의견들도 함께 내면서 대중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대중들이 스스로 주인으로서 정토회를 운영해 나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보살피며 지도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마무리 회향 법문을 하시면서, 다시 저희들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통일은 안됐지만 통일을 꿈꿉니다. 우리는 지구 환경이 좀더 개선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우리 사회가 좀더 민주화되기를 꿈꿉니다. 우리 사회가 좀더 평등해지기를 꿈꿉니다. 피부빛깔이나 남녀, 종교, 사상, 이념이나 취향 때문에 차별받고 억압받지 않는 세상을 꿈꿉니다. 저 멀리 불빛을 보고 가는 사람은 아무리 멀어도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나요? 돈? 쾌락? 명예? 있다고 해도 불빛이 될 만한 것은 아니지 않나요? 그런데 우리는 불빛을 보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자긍심이 있어야 합니다. 교만이 아니라 자긍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만 있다면 먹고 자는 것이 조금 피곤한 것은 큰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긍심이 부족하면이럴 때 지치게 됩니다. 몸이 피곤한 것이 지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흔들리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있는 괴로움도 없애려고 여기 들어와서 없는 괴로움을 만듭니다. 그런 것은 수행이라 할 수도 없고,보살의 원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괴로움이 있고 한계가 있고 모순이 있지만, 어제보다 오늘,지난해보다 올 해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 멀리 불빛을 보고 가기 때문입니다.지금 세상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볼 때 그들의 주요 대화 내용이 뭐예요? 이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개인들을 좀더 행복하게 하도록 하는 비전을 가지고 자기 삶을 투여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의 활동은 어떻게 보면 고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침대에서 자는 것과 침낭에서 자는 것은 차이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빛을 보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올 한 해를 임해 봅시다.”nbspnbsp nbsp 온 몸 가득 에너지를 충전받아서 그럴까요? 집으로 돌아가는 즐거움 때문일까요? 회향식을 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환했습니다. 오늘 행사를 마치고, 스님과 법사님들은 서원행자 신도님의 어머니가 오늘 갑자기 돌아가셔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장례식장에 들러 조문과 기도를 하고, 늦은 시간에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정토회 산하 사단법인 단체들의 이사회와 총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2월 22일 법륜스님의 하루(전국대의원회의)
오늘은 아침 7시부터 평화재단 이사회가 있었습니다. 스님께선 어젯밤 늦게 들어오셨는데, 오늘 아침 또 일찍 평화재단으로 나가셨습니다. 이사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2012년 평화재단 사업 평가와 결산, 2013년 사업계획과 예산에 대해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전원 동의하에 사업계획과 예산이 통과되었습니다. nbsp 벌써 오랫동안 스님과 함께 평화재단을 이끌어가고 있는 이사님들 덕분에 평화재단이 한국사회에서 남북관계와 평화와 통일에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면서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평화재단 이사회 후에 찾아오신 분이 계셔서 만남을 가지고, 11시에 문경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문경은 아직도 한겨울 같았습니다. 낮 햇살에 아침에 내린 눈이 소리없이 녹아내리기는 했지만, 금새 겨울 속으로 다시 달려가는 것 같습니다. 밤이 되니 기운이 내려가 낮에 녹아 질척이던 땅이다시 딱딱하게 얼어 붙었습니다. 문경정토수련원에서는 정토회 전국대의원회의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오늘부터 내일까지는 전국대의원회의를 하고, 내일부터 1박 2일동안은 서원정토행자대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정토회는 회원구조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발심행자가 있고, 서원행자가 있습니다. 정토회에 들어와서 소정의 과정을 거치고 정토회의 목적과 취지에 동의하게 되면 발심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발심행자 중에서 정토회의 만일결사에 동의하게 되면 이 땅에 정토를 구현하는 서원을 세우게 되므로 서원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서원행자는 정토회 임원이 될 수 있는 피선거권을 갖게 됩니다. 전국대의원회의는정토회 전체 사업, 결산과 예산 등을 결정하는 의결기구입니다. 그리고 서원정토행자대회는 서원행자 전체 모임으로서, 전국대의원대회의에서 결정된 사업을 보고받고 공유하는 실질적인 대중총회와 비슷한 성격을 가집니다. 오늘 대의원회의는 23이상의 대의원이 참가해서 성립은 되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참가하지 못한 의원들도 몇 명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정토회에서의 대의원이란 어떤 위치이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서원행자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전국대의원회의는 정토회의 모든 사업을 결정하는 회의입니다. 대의원은 내가 정토회 사업의 결정권자라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전국대의원회의는 정토회 결정단위이기 때문에, 안건에 상정된 사업이나 예산이 정토회 사상과 이념에 맞게 진행이 되었는지, 맞게 계획이 잡혔는지 책임지고 살펴봐야 합니다. 서원행자들도 다 대의원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서 회의한 것이 서원행자들에게 공유가 되어야 합니다. 서원행자가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고, 정토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면 새로 대의원으로 선출될 수가 없습니다. 잘못하면 대의원회의는 의례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사무처에서 올린 것을 거치는 하나의 형식으로 전락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서 대의원회의가 중요성을 좀더 자각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대의원이 정토회 전체를 책임지는 역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의원은 나에게 주어진 결정권을 신중하게 행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 결정된 것을 집행부가 진행하는데 있어 감독권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진솔하게 언제나의견을 개진하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직분에 따른 일을 거리낌없이 해야 합니다.” 정토회를 창립된 지 20여년이 지났습니다. 처음 스님께서 가지고 계시던 결정권을 법사단에, 그 다음은 법사단과 실무자로 구성된 총회에, 이제는 법사단, 실무자, 대중들로 구성된 전국대의원회의에 넘겼습니다. 스님도 대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전국대의원회의에 참가하셔서 의견을 개진하고, 투표에 참가를 하십니다. 스님이 정토회의 중심이 아니라, 실제 대중들이 중심이 되어 정토회가 운영되어 갈 수 있도록 준비해온 세월이 벌써 20년입니다. 지금은 정토회 대표도 대중이, 전국대의원회의 구성원도 대부분이 대중입니다.정토회 운영의 대부분을 대중들이 하고 있고, 지도법사이신 스님과 법사단은 정토회 전체 큰 방향이 불법의 이치에 맞게 갈 수 있도록 지도를 해 주고 계십니다. 문경에서 맞이하는 차가운 공기가 폐부 끝까지 타고 들어가 온 몸을 시원하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정말 상쾌합니다. 소나무 사이 비춰드는 달빛도 참 곱습니다. 좋은 스승님과 좋은 도반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들이 참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2013년 2월 21일 법륜스님의 하루(청주, 제천, 원주)
어제 일기예보에 목, 금요일 중부지역에 눈이 온다기에 약간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맑은 하늘이라 안심을 했습니다. 그 대신 기온이 떨어져서 쌀쌀했습니다. 오늘 오전은 청주정토회에서 법회가 있었습니다. 각 법당마다 정초에 한 번 오시는 스님을 맞이하느라 꼭 잔치집 같이 들뜬 분위기들입니다. 점심식사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입구에선 오는 분들에게 인사하느라, 주차돕느라 자원봉사자들이 왔다갔다 합니다.nbspnbsp 청주정토회는 몇 년전만 하더라도 활동가들이 나이가 많고, 사람이 많지 않아 약간 썰렁한 느낌이 많았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활기차고, 법당게시판도 갖가지 모양으로 예쁘게 꾸며 놓았습니다. 청주에서도 질문이 많았습니다. 그 중 한 분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저는 공무원하다가 퇴직했습니다. 어머님이 88세이신데 치매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농사지으면서 저희들을 키웠습니다. 저도 열심히 해서 생활도 잘 했습니다. 그 때는 제가어머니를 잘 모신다고 했고, 주위에서는 어머니도 모시고 며느리도 착하다는 그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는 퇴직을 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치매니까, 이성적으로는 잘 모신다고 생각하는데, 감정적으로는 귀찮아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런 마음이 드는 제 자신을 보면서 자괴감이 들더라구요. 열심히 천배하고 정진하면 그런 마음이 없어질까요?” “그것은 자연스러움이예요.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 들어보셨죠? 효자가 아니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특히 육체적인 질환은 간호할 때 보람을 느껴요. 그런데 정신적인 질환은 육체가 멀쩡하기 때문에아픈 것이 눈에 안 보여요. ‘정신만 좀 차리면 될텐데...’하는 생각이 드니까 힘이 듭니다. 정신적인 질환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꾸 하잖습니까? ‘니가 내 밥에다가 독 탔지’ 이런 말을 하니까 환자라는 생각이 들어도 못 견디는 거예요. 간호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우리가 그럴 준비가 덜 되어 있거든요. 치매 노인도 마찬가지예요. 딴소리를 하거든요. 치매라는 것은 뇌세포에 이상이 있어서 정신이 왔다갔다 하는 거예요. 무의식으로 깊이 들여다보면 어릴 때의 상처입은 것이 계속 나옵니다. 지금 나를 욕하거나 불만을 토로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어릴 때 상처가 저렇게 있었구나’, 가만히 지켜보면서, ‘어머니가 어릴 때는, 결혼생활할 때는 저런 어려움이 있었구나’하며 재미로 보면 됩니다. 연구하는 마음으로 하면 됩니다. 기도를 할 때 그런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내 자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죠. 지금 잘 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정떼는 거예요. 노인들이 자는 듯이 죽는 것이 소원이잖아요? 그러면 자식들이 너무 너무 섭섭해 해요. 죽을 때는 자는 듯이 죽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고달프지만좀 아프다가 죽어야 해요. 갑자기 죽으면 남은 사람들이 제정신을 못 차려요.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은 정을 떼고 있다는 거예요. 나고 죽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거예요. 자연의 순리에 내버려 두세요.나는 간호만 할 뿐입니다. 여기서 불법이라는 것은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도 나는 행복할 수가 있다는 것, 이것이 불법입니다. 정성을 다해서 모시면 됩니다.” nbsp 청주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제천으로 향했습니다. 제천정토법당은 두어 번 와 본적이 있습니다. 자그마한 제천법당에도 신발장에 신발이 다 들어가지 않아, 바깥에 쭉 늘어놓았습니다. 스님께서 법문을 시작하시면서 2013년은 진실한 불자가 되어 보자고 하셨습니다. “신년은 참불자가 되겠다, 진실한 불자가 되겠다고 원을 세워봅시다. 참불자가 되기 위해서는 불법을 올바로 믿고, 올바로 이해하고, 올바로 실천하고, 올바로 증득해야 합니다. 이것을 신해행증이라고 합니다. 불법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대학이나 경전반에 다니고, 불교를 바르게 행하기 위해서는 백일기도에 입재해서 한 번도 안 빠지고 기도를 한 번 해 보는 겁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불법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문제가 참 많이 해결되는 것 같습니다.매일 매일 정진하는 생활까지 할 수 있으면 보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3년은 불교대학과 천일기도로 한 번 시작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천에서도 컴퓨터 게임을 하는 자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결혼생활 25년동안 부인과 의논하지 않고 큰 돈을 빌리고 사용하는 남편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분,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남편과 이제는 이혼하고 싶다는 분의 사연을 들으면서 가정생활을 힘들게 해 나가고 있는 분들의 삶의 힘겨움이그대로 전해져서 같이 마음이 무거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어느 상황에서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하시면서, 질문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남자가 돈버는 기계냐며 꾸지람도 하시고, 어려움에 대해서 공감도 해 주시면서 법의 이치에 대해서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권위적인 남자들이 돈까지 못 벌면 가정 속에서 살아가기가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도 못 벌고 있다가 아프면 간호도 해야 하잖아요?”하는 말에 조금은 씁쓸해지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가족이라는 것은 경제개념을 넘어서는 공동체라며, 이혼을 하더라도 아이의 아빠가 아프면 당연히 간호를 하고 보살펴야 된다며 스님께서 조금은 야단치듯이, 조금은 어르듯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천에서 원주는 1시간정도의 거리였습니다. 원주에서 저녁식사 준비가 어렵다고 해서 오늘 저녁은 스님께서 원주에서 막국수를 사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천에서 저녁 식사준비를 해 주셔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어정쩡하게 있다가 준비한 음식을 받았습니다. 차를 타고 오면서 스님께서“저녁에 막국수를 먹기로 했으면 음식을 준비해 주시더라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해서 안 받아야지.”하셨습니다. “싸온 밥을 먹을래? 막국수 먹을래?” 저희들에게 선택권을 주셔서 “막국수요.”해서, 도시락은 내일 아침 문경 내려가면서 먹기로 하고 저녁으로는 막국수를 먹었습니다. 저는 특히, 이럴 때 사람 관계가 더 우선시 되어서 단호하게 일을 처리하는 부분이 참 잘 안 됩니다.또 한번 배움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막국수를 맛있게 먹고, 원주정토법당으로 향했습니다. 원주정토법당은 오피스텔 사무실 같은 곳을법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통영법당보다는 조금 더 큰 것 같았습니다. “오늘 60여명 정도 온다고 했습니다.”해서 60명이 과연 들어갈까 싶었는데, 그 좁은 공간에 70여명이 참가해서 거룩하게 법회가 봉행되었습니다. nbsp 오십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남자분이 일어나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요, 17일날 충주 입재식에 못 갔습니다. 입재식에 간다고 하니까, 부인이 “여보, 그런데 가지마.”해서 안 갔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일까요? 두 번째는, 법륜스님과 관련해서 걱정이 되어서 말씀드립니다. 3년 전의 스님 존안과 요즘 존안이너무 차이가 납니다. 스님이 자리에 앉자마자 살펴보니 스님 얼굴이 너무 피곤해 보입니다. 일정 좀 줄이시고, 오래 사셔서, 법문을 더 오래 전해 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의 생활이 스님 중심으로 되어 있는데 오래 사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세 번째는, 스님의 즉문즉설을 하루종일 듣고도 또 듣고 싶은데, 활동이 너무 화려해서 ‘난 뭐야’ 하는 비교의식이 생기곤 합니다.” 질문을 하는데 듣는 사람들이 즐거워서 신나게 웃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스님께서도 웃으면서 질문에 답을 하셨습니다. “세 번째 것부터 답을 하죠. “난, 나야” 하면서 사시구요. 저는 3년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촛불인데,날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밝아보이고, 날이 밝으면 밝을수록 드러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시대가 어려워지나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은 조금 어려울 때 강합니다. 시절이 어려워지다보니 더 쓰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치도 잘 되면 사람들이 찾지 않을텐데 어려우니까 찾게 되고, 남북관계도 복잡하니까 묻는 일이 생깁니다. 여러분들 가정이 행복하면 나에게 물을 일이 있겠어요? ‘엄마수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아이 키우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스님의 주례사’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결혼생활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바깥 밝기에 따라서 드러나기도 하고, 전혀 드러나지 않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이 피곤한 것은 사실입니다. 미국 갔다가 들어왔는데 시차 극복이 좀 어렵습니다. 항상 미국갈 때는 비행기에서 푹 자고 내려서 깔끔한데, 미국에서 돌아올 때는 잠이 안 와 영화도 한 편 보고 그래요. 시차극복이 어려운데, 바로 정토회 35곳을 다니다 보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무리를 했으니까 여기까지 와 봤잖아요. 인상은 좀 안 좋더라도 이렇게 가까이서 보잖아요. 멀리 보면서 얼굴 좋은 것을 볼 때도 있고, 화면은 좀 안 좋아도 가까이 보는 재미가 또 있습니다. 그리고 부인에 대한 것인데, 저는 남편이 못 가게 하는 것과 부인이 못 가게 하는 것과는 어려움은 비슷한데, 남편 쪽은 좀더 수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권위주의다’ 하는 것은 위에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하다가 뭘 내걸어서 제압을 하려고 하는 것이 권위주의입니다. 말이 딸리면 ‘스님 앞에서 신도가 어디’한다든지, ‘여자가’, 혹은 ‘어디 아버지한테’ 하면서 누릅니다. 자기 힘이 아닌 다른 힘을 빌려와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하는 것이 권위주의인데, 그러면 상대가 승복이 안 되고 억압이 됩니다. 그러면 나중에 폭발을 하게 되지요. 부부간에, 자식에게 권위로 대하면 나중에 버림받게 됩니다. 권위로 누르지 마세요. ‘우리 남편이 너무 종교에 빠지지 않나?’하는 걱정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문제도 권위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토론을 하면서 풀어보세요.” 오늘은 서울에서 약속이 있어 9시 30분에는 마쳐야 했는데, 거의 10시 되어서 마쳤습니다. 질문자가 꼭 질문을 해야 되겠다고 하면 스님도 잘 끊지를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이구. 질문하겠다고 그렇게 하는데 어떻게...”하십니다. 서울로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스님께서는 평화재단으로 가셨습니다. 약속을 마치고 오시면 스님의 오늘밤은 또nbsp짧을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 7시부터는 또 평화재단 이사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금, 토, 일은 문경정토수련원에서 전국대의원대회가 있습니다. 문경의 차가운 공기와 쏟아지는 하늘의 별들이 갑자기 그리워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