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2013년 1월 4일 법륜스님의 하루(칼리사원, 인디안박물관)
어제 캘커타 공항에 11시 10분경에 도착해서 짐 찾고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 2시가 거의 다 되었었습니다. 다들 간단히 씻고 잤는데, 시차 적응이 안 되는지 새벽 4시, 5시부터 일어나 부산스러웠습니다. 오전 8시에 출발한다고 했는데도, 해가 나서인지 아침 7시가 되니까 벌서 짐을 챙겨들고 1층 마당으로 나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한국 시간으로 오전 10시정도 돼요. 이 시간까지 어떻게 잠이 오겠어요?”하면서 늦게 잔 것에 상관없이 일찍부터 소란스러웠습니다. 아마, 여행 첫 날이라 그렇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침에 참가자들에게 달러를 루피로 환전해 주고, 따뜻한 물을 끓여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아침으로는 간단하게 달걀 1개, 바나나 1개, 머핀 1개를 나눠 주었습니다. 다들 잠시간이 부족했는데도 여행에 대한 설레임때문인지, 이국에 대한 궁금함 때문인지 차가 1시간동안 칼리사원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자지않고 창밖을 바라보며 인도의 냄새를 실컷 맡고 있었습니다. 감기기운이 있으신 스님은 약이 독한 지 차에서 계속 주무셨습니다. 칼리사원 앞에서 내려 긴 행렬을 만들며 힌두교 사원인 칼리사원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일찍 사원에 참배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칼리사원으로 가는 길이 전보다 훨씬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칼리사원의 이름은 “깔리까트”인데 꼴까타 도시 이름이 이 사원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여신 깔리는 쉬바신의 부인으로서 독립적이며 도전적이고 파괴자적인 성격이 부각되는 여신입니다. 이 곳에선 양의 목을 쳐서 그 피로 기도를 드리는 곳도 있었습니다. 참배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원에는 들어가보지 못하고 사원밖만 빙 둘러보고 나왔습니다. nbsp 칼리 사원에 속한 한 건물에 있는 죽음을 기다리는 집으로 갔습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집은 마더 테레사가 이 곳 행려자를 보호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저희들이 도착한 시간이 목욕시간이라개방이 되지 않아, 죽음을 기다리는 집도 직접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마더 테레사의 사진을 보며 인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다시 덜컹이고 급정거를 시도 때도 없이 하는 버스를 타고 인디안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인디안 박물관은 영국지배기에 세워진 박물관으로 성지에서도 보기 어려운 유물이 많은 박물관이었습니다. 사람이 많아 스님께서 두 팀으로 나누어 안내를 했습니다. 불상과 신상을 보면서 인도에서 불교와 힌두교의 문화가 뒤섞여 서로 영향을 준 것들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12시까지 자유롭게 나머지 전시실들을 둘러보게 하고, 스님께서는 전에도 둘러보신 전시관을 하나 하나 빠지지 않고 다 둘러보셨습니다. 불교 유물, 인도의 문화와 역사를 전시한 전시실과 더불어 고고학, 예술, 민속, 지질, 산업, 생물 등 여섯가지를 전시실을 다 둘러보았습니다. 깨끗하거나 세밀하게 정리가 되어 있진 않았지만 많은 내용들이 담겨져 있는 전시실이었습니다. 저도 여러번 와 봤는데, 전체를 둘러본 것은 오늘 처음이었습니다. nbsp 12시까지 박물관 관람을 한 후, 조별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도라는 곳, 그 중에서도 켈커타라는 곳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도록 조별로 같이 식사도 하고, 쇼핑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인디안박물관 뒤편에는 시장도 있고, 인도음식 거리도 있고, 고급식당들도 있어서 인도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짧은 시간에 느끼기엔 적당한 곳 같았습니다. 시장은 깊고 넓어서 충분한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자료집 뒤에 주변 지도까지 부착을 해 두어 길을 잃지 않도록 배려를 한 부분도 눈에 띄었습니다. 저희 스텝들도 스님을 모시고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후 조금 있으니, 인도 현지 스텝이 “스님. 큰 일 났습니다. 오늘 저녁 예약된 기차가 취소되었습니다. 북쪽에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서 운행이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하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보고를 했습니다. 221명이 예약되어 있고, 이 기차를 안 타면 내일부터의 일정들이 당장 문제가 되는데, 기가 차지만 또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곳이 인도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간단한 대책회의를 했습니다. 한 쪽에서는 켈커타에 오늘 잘 수 있는 숙소가 있는 지 체크를 하고, 제이티에스 박지나 대표님과 쁘리앙카, 제이제이 브라더가 급히 하울라역에 역장을 만나러 떠났습니다. 소식을 기다리는동안 스님께서는 처음 인도성지순례를 하러 왔다가, 아이 우유를 사달라는 여인의 요구를 외면했다가, 그것이 계기가 되어 배고파도 먹지 못하고,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고,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이티에스를 설립하게 되었던 그 현장에서 그 때의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nbsp “이 집이 내가 제일 처음 인도에 와서 묶었던 집입니다. 길에 나오니 아이를 안은 여인이 자꾸 저를어디로 데리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 길을 따라 계속 따라 나왔더니, 저렇게 조그맣고 어두침침한 가게에 들어가요. 그 여인이 분유를 가리키고 아이 입을 가리키기를계속 반복하는 거예요. 아, 아이 우유를 사달라고 하는구나. 그런데 분유가 60루피인 거예요. 인도 사람들에게 1루피 이상은 절대 주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던 터라, 얼른 외면하고 돌아섰지요.그런데, 숙소에 와서 60루피가 얼만지 물어보니 그 때 돈으로 2400원인 거예요. 얼마되지 않는 돈인데 배곯는 아이를 외면한 내 모습이 죄스럽고 부끄러워서 얼른 다시 그 자리에 가보니 아이를 안은 그 여인이 없었습니다. 그 때 제가 세운 원이 오늘날 제이티에스가 생기게 된 이유가 되었죠.” 항상 법문 속에서 듣던 스님의 고전같은 이야기였는데 오늘 직접 그 현장에서 스님께 이야기를 들으니 감회가 더욱 새로웠습니다. 그 때의 아이 안은 여인이 관세음보살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보았습니다. 다시 식사했던 곳으로 돌아오니 전화가 왔습니다. 하우라역이 아닌 켈커타역에서 17시간동안 가는 완행 기차를 겨우 예약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와, 역시 일은 또 되는구나 싶으면서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습니다. 4시 30분, 박물관 앞에서 다같이 버스를 타고 켈커타역으로 향했습니다. 기차표를 반환하고, 다시 예약해서 받는 과정을 거치는동안, 대중들은 역사 바닥에 앉아 저녁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뭔가 돌발현상이 생기고, 또 해결을 하고, 기차에 짐을 싣기 위해서 짐지키는 몇 사람을 빼고는 모두 짐을 나르는 모습도 재미있었습니다. nbsp 지금은 기차를 타고 가고 있는 중입니다. 완행이라 중간중간 계속 기차가 섭니다. 자리가 입구라 화장실 냄새가 인도냄새인 것처럼 진하게 밀려 옵니다. 그래도 앉아서 자지 않고 누워서 잘 수 있는 기차를 탈 수 있어서, 내일까지 바라나시에 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내일은 부처님이 처음 5비구에게 설법을 하셨던 녹야원에서 수계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기차가 오후 1시에 무갈사라역에 도착을 한다고 하는데, 별 일 없이 도착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오랜만에 인도의 침대기차에서 잠을 청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1월 3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성지순례 첫 날)
인도성지순례를 가는 날입니다. 새벽 3시 30분, 인도성지순례 스텝들은 인천공항으로 향했습니다.참가자가 많아서 미리 공항수속 밟고, 인도에 가져갈 많은 짐들도 미리 부치고, 참가자들이 편하게 출국 수속을 받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하 16도를 밑도는 새벽 추위는 살을 에는 듯 했습니다. 이 시린 새벽 공기를 뚫고 전국에서 인도성지순례를 떠나기 위해 사람들이 인천공항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켈커타에서 합류할 미국, 방콕 분들을 포함해서 순례객이 207명, 스텝이 13명으로 220명이 함께 15박 16일동안 법륜스님과 함께 부처님의 발자취를 찾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모든 수속절차를 마치고 인천공항을 떠나 방콕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방콕 공항에 오후 2시경에 도착했는데, 인도 켈커타행 비행기는 저녁 9시 55분 출발이라 방콕 공항에서의 시간이 많았습니다. 준비해온 간단한 김밥과 빵 등으로 조별로 모여앉아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고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오후 4시부터 방콕 공항 한 쪽에서 인도성지순례 입재식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이번 성지순례에 임하는 자세, 성지순례를 하면서의 여러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시면서 여행이라 생각했을 때는 힘들고 어렵겠지만, 순례라고 생각했을 때는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인도성지순례를 하면서 나중에는 제일 큰 걱정이, 부처님은 온데 간데 없고, 어디서 어떻게 싸느냐, 무엇을 먹느냐, 어떻게 자느냐는 것이 됩니다. 그 때 자기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이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지, 똑 같은 조건에서 밥먹고 차타고 자는데, 누군가 특별한 조건이 없는데 얼굴이 환해서 좋아죽겠다, 내년에 또 오고싶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상 팍 쓰고 다른 사람들이웃는 것도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나타날 때, 조건이 다르면 감정이 다를 수 있는데 조건이 똑 같은데 감정이 다르다고 하면 감정의 원인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자기에게 있습니다.자기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업식입니다. 순례다니면서 즐거우면 한국에서도 즐거울 수 있고, 순례다니면서 불평하면 평소에 내가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산다고 보시면 됩니다. 자기 업식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45일 지나면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습니다. 머리도 못 감고, 몸도 못 씻고, 피난민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밤에 방에 들어갔는데도 습해서 축축합니다. 그러니까 이 마음이 자기 성질대로, 자기 까르마대로 가는 것입니다. nbsp 스님께서는 2시간에 걸쳐서 열강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30분 휴식을 하고, 다시 인도의 역사와 기후, 관습, 현재의 인도 상황인 종교갈등, 인종갈등, 민족갈등, 언어갈등을 포함한 인도 전반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 후, 우리가 순례하는 길이 부처님이 다니신 순서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서 헷갈릴 수 있다며 부처님의 생애와 10대 성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안내를 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서서 1시간 30분가량 열정적으로 강의를 해 주시면서, 처음 서암큰스님과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마음 가는 곳에 부처님이 있습니다. 저의 스승님이셨던 서암큰스님과 처음 인연이 되었을 때, 그 때는 그 분이 누군지도 몰랐어요. 둘이서 우연히 함께 있는 시간이 되었어요. 미국 LA에 있는 한 작은 법당에 하룻밤 묵으려고 찾아갔더니 절 주지는 외출하고 없고, 노승이 한 분 계셨어요. 먼저 왔으니 대접을 하겠다고 하며 먹던 밥으로 볶음밥을 해 주셨어요. 밥을 먹고 나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 때만 하더라도 제가 30대 열혈청춘이라 불교계에 불만이 많았어요. 이것도 고쳐야 하고 저것도 고쳐야 한다며 데모도 하고 그러던 때였어요. 불교계에 대한 불만 이야기를 두어시간 말씀을 드렸어요. 노승께서는 한 말씀도 안 하시고 다 들으셨어요. 다 듣고 나서 “여보게, 어떤 한 사람이 말이야. 논두렁 밑에 앉아서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중이네. 그 곳이 절이야. 이것이 불교라네.” 그랬어요. 그 때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뒷통수를 몽둥이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이론적으로는 ‘제법이 공하다’ 이런 것을 다 알죠. 그러나 현실에서 스님은 머리깎고 먹물 옷 입은 사람이다, 절은 기와집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것이 불교라고 규정짓고 이 불교가 잘못되었다, 고쳐야 한다는 입장에서 접근을 했는데, 큰 스님 말씀은 마음이 청정한 사람이 수행자다, 수행자가 머무르는 곳이면 어떤 곳이든 절이다, 도량이다, 수행처다 이런 이야기였어요. 이것이 불교다 이런 거예요. 그런데 나는 그동안 불교 아닌 것을 불교로 삼고, 그것을 고치려고 애쓰고 안 고쳐진다고 불만을 토로해 왔어요. 선에서 마치 어리석은 자가 환화를 꺾으려는 것과 같다, 허공의 헛꽃을 꺾으려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이 때 환화라는 것은 꿈 속에서 본 환상의 꽃을 말하는데요, 그처럼 나도 또한 불교 아닌 것을 불교로 삼고 그것을 고치려고 한 헛된 노력이었습니다. 이런 스승의 지도와 작은 깨달음이 계기가 되어서, 소위 말하면 형식적인 것보다는 내용적으로 어디서든지 법담을 나눌 수 있다면 그 어떤 곳이나 다절이지 어떤 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nbsp 그래서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방콕공항에서 법이 설해지니 이 곳이 또한 절이고 수행처라고 하시면서 부처님의 생애를 전반적으로 쭉 훑어 주셨습니다. 자상하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참가한 분들도그렇게 오랫동안 앉아 있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스님과 함께 하는 역사순례라 그런지 자료집을 앞에 두고, 눈을 반짝이면서 들었습니다.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스님 입재법문을 마치고 나니, 이번 순례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과 자세, 우리들의 역할에 대해서도정리가 확실히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강연 후 인도성지순례 스텝들이 퀴즈를 통해 부처님 성지에 공양 올릴 조를 배정하기도 하고, 넌센스 퀴즈를 통해 순례기간동안 주의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재미있게 놀이로 진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nbsp 방콕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인도 켈커타로 들어왔습니다. 올 때보다 더 좁고 작은 비행기를 타고, 인도 켈커타의 늦은 밤에 도착했습니다. 내리자마자 매연의 매케한 냄새가 이곳이 인도구나 하는 생각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짐이 많아 스텝들은 거의 모두 짐을 찾고 체크하고 정리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그리고 인도스텝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트럭에 짐을 싣고, 6호버스까지 본인이 배정된 차에 모두 올라탔습니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스텝들을 만나니 반가움이 더했습니다. 잠시 눈 인사를 나눴지만, 함께 하는 도반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마웠습니다. 오늘은 숙소가 두 군데로 나눠졌습니다. 저희가 머문 곳은 세바켄드라입니다. 씻지도 못하고, 양치질만 겨우 하고 잠을 잡니다. 벌써 새벽 3시가 넘었네요. 내일은 켈커다 칼리사원과 죽음을 기다리는 집을 보고, 인디안박물관 참배를 하고, 하우라역에서 기차를 타고 밤새 무갈사라역으로 이동할 계획입니다. 내일 소식 다시 전하겠습니다. nbsp
2013년 1월 2일 법륜스님의 하루(정토회, 평화재단 시무식)
날이 많이 추워졌습니다. 지난 번 왔던 눈들이 녹지 않고 얼어붙어 해가 들지 않는 길들은 모두 빙판길이 되었습니다. 모두 조심 조심 다니고, 차 옆에도 바로 붙어서 가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침 일찍부터 조찬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0시경에는 안과와 안경점, 이비인후과에 다녀오셨습니다. 지난 번 눈에 실핏줄이 터져 정토회관 가까운 안과에 갔었는데, 원장님이 그렇잖아도 존경하는 스님을 기회가 되면 눈을 전체적으로 검사를 해 주고 싶었는데 잘 됐다며 검사를 다해 주셨습니다. 오늘 한 번 더 오라고 해서 가서 마지막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기가 아직 딱 떨어지지 않아 이비인후과에까지 다녀오셨습니다. 병원 다녀오셔서도 약속이 있어 계속 재단에서 일정을 하시다가, 오후 2시 정토회와 평화재단 전체 시무식이 있어 정토법당으로 오셨습니다. 시무식에는 실무자들과 중앙사무처와 서울정토회 활동가들이 참가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에 이어 서울정토회 상임법사님이신 자재법사님의 인사말씀으로 2013년 시무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장이신 윤여준 님께서도 함께 자리를 하셔서 더 좋았습니다. “저도 스님뵌지 5년 되는데 그 뒤부터 편하게 사는 것 포기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스님이 하도 열심히 하시길래 스님을 절반따라 가려다가 병원에 여러 번 갔습니다. 그 때 반성한 게, 흉내낼 수 없는 걸 흉내내다가 당한 벌이다, 그래서 올해는 아무리 스님이 열심히 하셔도 저는 잘 거 다 자고 해야겠습니다. 계사년 올해에도 저는 스님 모시고 여러분과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원장님의 인사말씀을 들으며 많이 웃었습니다. 언제나 가까이에 계셔 주셔서 든든하고 포근한 원장님이십니다. nbsp 스님께서 시무식 법문을 해 주시면서 새해 인사도 겸하여 해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2013년도 계사년 새해 첫인사를 드립니다. 본래 시작도 없고 끝도 없지마는 또 우리는 이렇게 시작과 끝을 만들어 놓고 한해를 보내고 또 한해를 맞습니다. 한 생각 일으켜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 일이라는 것이 너무나 복잡합니다. 그러나 한 생각 쉬고 본래 자리로 돌아가보면 이 세상에는 아무 일도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애인이나 부부관계더라도, 또 사랑하는 부모자식관계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절친한 친구관계라 하더라도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하면서 자기 생각에 빠져서 살펴보면많은 차이가 있고, 도저히 함께 못할 많은 이유들이 있고, 또 아무리 해결하려해도 해결할 수 없는그런 복잡한 관계가 생겨납니다. 그런데 한 생각 놓아버리면 철천지 원수인 사람도 사실은 아무 문제가 없고, 사람과 산천초목까지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조용한 곳에서 마음을 쉬면, 다만 들숨과 날숨만 있고 이 천지 우주간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사실은 이 텅 빈 자리가 본래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 곳을 고향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 본래 자리입니다. 그런 곳에서는 나도 없고 너도 없고 내 것도 없고 네 것도 없고, 내가 옳다 네가 옳다 할 것도 없습니다. 그 곳에는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고 사람과 사람 아닌 것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옛 스승들은 그런 자리를 부처라 불렀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텅 빈 자리에 앉아 있어보면 사실은 한국이니 미국이니 하는, 또 한국 안에서도 서울법당이니 문경이니 부산이니 하는 이런 것도 다 구분이 없어집니다. 그러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고 옳은 것도 아니고 그른 것도 아닌 그런 자리에 우리가 설 때, 안온한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nbsp “지난 한 해동안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만가지 몸을 나투었습니다. 무슨 팜플렛을 안돌려보나, 플랭카드를 안붙이나, 포스터를 안붙이나, 전국 시군구 강당을 빌려서야단법석을 안 벌리나, 길거리에서 춤을 추고, 이런 혼탁한 세상에 나가서 조금이라도 맑은 기운을만들어 볼까해서 우리에게 똥물튀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속에 거닐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 사람과의 다른 점은 바로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와서, 텅빈 자리로 돌아와서 본래 자기모습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고요적정속에 있다가 또 필요하면 세상에 만가지 모양을 나툴 줄을 알아야 합니다.” 스님 법문을 듣고 다같이 잠시 명상을 하면서, 오늘 들은 법문을 올 한 해동안 명심해서 살아가리라다짐을 했습니다. 스님 법문 뒤에는 각 부서별로 나와서 올 한 해를 다짐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올 해는 신나게 놀면서 ‘놀자정신’으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몰빵정신, 춤박정신, 피라미드정신,도발정신 등을 내세우며 올 한 해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도 끝까지 자리에 함께 하며 활동가들의 재롱을 즐겁게 봐 주셨습니다. nbsp 시무식을 마치고도 스님은 평화재단에서 계속 회의와 약속이 이어져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늦은 시간에 돌아오셨습니다. 내일부터는 인도성지순례를 떠납니다. 성지순례는 15박 16일이고, 스님께서는 성지순례 후에도 인도석가족 수계식, 수자타아카데미 스텝 수련 및 회의, 방콕 법회 등의 일정이 있어 1월 29일 귀국하셨다가 바로 당일날 필리핀 학교 준공식 참석차 필리핀으로 떠나실 예정입니다. 저도 스님과 인도 일정에 동행할 예정입니다. 인도 인터넷 사정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최대한 스님의 인도의 하루를 올려서 공유하겠습니다.nbsp잘 다녀오겠습니다.
2013년 1월 1일 법륜스님의 하루(해돋이, 현대자동차 농성장)
새벽에 일찍 일어나 다같이 천일결사 기도를 했습니다. 그 후 오늘도 따끈한 김치국밥 한 그릇을 먹고는 2013년 첫 해를 맞이하기 위해서 경주 양남면 해변가로 서둘러 이동했습니다. 한 시간 가량 이동해서 바닷가에 내리는 순간, 해가 수평선 너머에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이 맑아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고 환하게 해가 솟아 올랐습니다. 함성을 지를 시간도 없이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nbsp 오랜만에 붉게 온 바다를 물들이며 당당하게 떠오르는 일출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파도와 물안개가 어우러져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새해 떠오르는 첫 햇님을 보면서 다같이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같이 둘러서서 이번 대통령님이 말씀하셨던“잘 살아보세” 노래를 큰 소리로 부르며 정말 잘 난 사람, 못난 사람, 가진 사람, 못 가진 사람,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가리지 않고 모두가 잘 살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생각하며 크게 만세 삼창도 하고, 가슴 절절하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도 불러 보았습니다. nbsp 스님과 함께, 도반과 함께 하는 이 시간들이 구름 한 점 없이 밝고 환하게 뜬 일출과 어울려 새해 첫 아침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스님과 개인적인 사진도 찍고, 부서별 사진도 찍었습니다. 서울팀, 문경팀, 법사단, 행자팀하며 각 묶음 이름들을 만들어 스님과 이리도 찍고 저리도 찍었습니다. 새해를 맞이 하는 기분이 상쾌하고 즐거웠습니다. nbsp 해가 한참 떠오른 것을 보고 울산 현대자동차공장으로 향했습니다. 2013년 첫 날, 철탑 위에서 아침을 맞이한 노동자들의 마음을 어떠할까? 울산현대자동차 송전탑에서 농성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격려 방문하였습니다. 농성장 앞은 천막만 쳐져 있고, 조용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천막을 돌아가니, 송전탑 앞에 노조 관계자분들이 여러분 계시고, 송전탑 농성장과 연결하는 크레인도 와 있었습니다. “와 즉문즉설 법륜스님이시네요. 저기 올라가 있는 동지 두 명이 다 불교 신자들입니다. 그렇잖아도 왜 연말연시인데 불교계쪽에서는 한 분도 안 오시나 하며 기다리는 마음이 있었는데, 새해 첫 날부터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하면서 관계자가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저 높은 곳의 농성장을 향해 “어이, 즉문즉설 법륜스님이야. 질문 준비해”하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반갑게 맞이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nbsp 경향신문 특별 취재팀이 취재와서 크레인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임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운이 좋아 크레인을 타고 스님께서는 철탑 위의 농성하는 두 분과 직접 만나서 악수도 하고, 격려의 말씀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통해서 봤지만, 두 분의 표정이 밝고 환해서 좋았습니다. nbsp 송전탑 위에서 농성중인 두 분과 크레인을 타고 올라갔던 사람들이 오늘 떠오른 해처럼 환하게 웃으며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nbsp 송전탑의 두 노동자는 대법원에서 판결난대로 비정규직 파견근무 2년 후에는 정식 채용을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업주부터 법을 제대로 지켜달라는 절규였습니다. 오늘로서 77일째 고공 농성을 하시는 분들.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비정규직이 얼마나 됩니까?”하고 스님께서 노조위원장님께 물었습니다. “하청업체 빼고 울산자동차에만 8천여명이 됩니다.”하였습니다. 스님께서 언젠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유럽처럼 직업이 안정되지 않는 비정규직이 모든 혜택을 받는 정규직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아야 한다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근 10년째 비정규직 관련 투쟁을 한다는 노조 임원들.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 속에서 참으로 어렵고 힘들겠구나 싶었습니다. 스님께서 인사말씀을 하셨습니다. “저희들은 오늘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절에 가서 부처님께 인사를 하려고 하다가 살아있는 부처님인 이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첫 예배를 올리는 마음으로 이 곳을 방문했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뭔가 변화가 있으면 희망이 생기지 않겠나 생각했을텐데 그것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약간 절망적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가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곳곳에서 마음고생을 하고 있고 고통을 받고 있는 이런 분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가 되어야 100 대한민국이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이 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눈물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서, 이런 아픔을 해소하는 정치가 새해에 펼쳐지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더라도 오늘 아침 밝은 해가 떠오르듯이 여러분들에게 그런 밝은 희망의 해가 떠오르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합니다. 세상사가 다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뜻대로 안 된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이 여러분들의 이런 어려움에 충분히 함께 동참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면서 새해에는 여러분과 함께 좋은 희망의 한 해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 nbsp 이 분들에게 2013년 첫 날 아침, 법륜스님의 방문이 또 하나의 힘이 된 것 같습니다. 하루속히 이런 풀리지도 않고 매듭지어지지도 않는,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가 힘겨운,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도 힘겨운 이런 싸움이 없는 세상, 함께 상생하는 세상을 꿈꿔 봅니다. 크레인 위의 두 노동자를 향해 “힘내세요. 와”하고 큰 함성을 보내며 인사를 하고 농성장을 나오는데, 농성장 앞에 경찰차가 서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차창을 열고 경찰 관계자들에게 수고 많으시다며인사를 했습니다. 두 사람이 달려와 스님께 꾸뻑 인사를 합니다. 스님께서도 차에서 내려 “얼른 문제가 풀려서 서로 고생을 안 하도록 해야 될텐데, 수고가 많습니다.”하면서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스님께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되냐며 스마트폰을 들고 겸연쩍게 웃는 모습이 꼭 초등학생들 같았습니다. nbsp 철탑 위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 철탑 아래에서 함께 투쟁하는 노동자들, 농성장 밖의 경찰들 모두가 수고로움을 벗어나서 서로가 잘 살려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3년 첫 날, 어려움 속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방문한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중간에 폭설이 내리고, 7중 충돌사고도 있었습니다. 조심조심하며 서울로 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쌍용자동차에도 들렸다가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안 되네.”하고 아쉬워하시면서 다음 약속이 잡힌 서울 평화재단으로 이동을 하셨습니다. 곧 해외 나가시는 일정이라 각 단위별 회의와 만남들이 쭉 잡혀 있어서, 오늘 밤 늦게 들어오셨습니다. 내일도 계속 회의와 만남 일정이 있습니다. 오후 2시에는 정토회 본부와 서울지역 시무식에 참가하실 예정입니다. 내일은 시무식 소식 간단히 올리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12월 31일 법륜스님의 하루(남산 산행, 대중공사)
새벽 일찍 일어나 천일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도 후, 최보살님이 끓여주신 따끈한 김치국밥으로 아침을 먹고,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남산은 입구부터 얼음빙판이었습니다. 눈이 녹은 곳은 빙판이 되어 있고, 눈이 있는 곳은 그대로 얼어 있었습니다. nbsp 용장골로 올라갔습니다. 조심조심 천천히 길을 걸었습니다. 날이 차가웠습니다. 그래도 기분은 상쾌했습니다. 스님과 법사님들과 전체 공동체살이 대중들이 모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 함께 산에 오르니 그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설잠교와의 갈림길을 지나 용장사 삼층 석탑이 잘 보이는 길에 한 줄로 서서 세계에서 기단이 제일 높다는 용장사 삼층 석탑을 바라보며 기도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언제나와 같이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간절히 발원하셨습니다. nbsp 이영재와의 갈림길에서 이영재로 가지 않고 칠불암쪽으로 걸었습니다. 완만한 골짜기가 걷기에 참 좋았습니다. 산 정상에 가까운 부분에서 작은 저수지를 만났습니다. 마치 천지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날이 추운만큼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 스님과 법사님들을 모셔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nbsp nbsp 전체 대중들도 같이 사진을 찍자며 23가 모였는데, 얼음 깨지는 소리가 쩡쩡 울렸습니다. 놀라서 얼른 흩어지는 바람에 전체가 모이면 찍으려던 사진은 못 찍고 저수지 둑에 모두 서서 겨우 한 컷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어릴 적 얼음 지치던 때가 생각나셨는지 신나게 얼음을 지치졌습니다.nbsp nbsp 칠불암으로 가는 길은 3층석탑을 만났습니다. 저도 횟수로 세기 힘들 정도로nbsp남산에 많이 와 봤는데, 처음 보는 석탑이었습니다. 석탑 앞에서 다같이 기도를 드리고 칠불암으로 향했습니다. nbsp 칠불암으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눈이 녹아 얼음이 되어 바위틈은 빙판이었습니다. nbsp 스님은 등산화도 신지 않으시고, 운동화만 신으셨는데도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훌쩍 훌쩍 뛰어 다니셨습니다. 칠불암 위 신선암앞의 마애불 앞에서 기도를 했습니다.nbsp nbsp 스님께서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도문큰스님 아래 출가를 하시고, 이 곳 칠불암에서 정진을 많이 하셨다고 했습니다. 칠불암이 바로 아래로 바라보이는 낭떠러지 위에는 자그마한 바위가 세 개 놓여 있습니다. 그 바위 위에 앉아 정진을 하셨다는 말씀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스님께 어떻게 앉아서 정진을 하셨는지 여쭸습니다. “바로 떨어지면 죽는데도 졸음이 와서 깜빡하면, 온 몸이 아찔했는데도 그래도 또 졸음이 오곤 했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 하십니다. nbsp “오늘 한 해를 보내면서 3사 순례를 하네? 용장사탑, 3층 석탑, 신선암 마애좌상까지 보고.”하셨습니다. 칠불암 쪽이 가파르고 미꺼러워서 칠불암은 내려다만 보고 발길을 돌려서 금오산 정상쪽을 향했습니다. 이영재에서 순환도로를 만났습니다. 이 곳에서도 용장사 3층 석탑이 멀리 보였습니다. 찬기파랑가를 쓰셨던 충담스님을 기리는 삼화령에서 다시 전체 사진을 찍고, 천천히 포석정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온통 눈길이라 위험했습니다. nbsp 순환도로 끝나기 전에 있던 배리 율을곡 마애불좌상 앞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렸습니다. 약사부처님 앞에서, “오늘 기도한 공덕으로 새해에는 건강하세요.”하신 스님 말씀 덕분에 내년 한 해는 더 건강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천천히 잘 내려왔는데, 순화로가 거의 끝나는 무렵에 얼음에 미끌어지면서 두 사람이 넘어져 팔이 부러져 급하게 119가 와서 병원으로 이송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삼릉 솔숲 앞에서 칼국수를 먹고, 2012년 한 해 묵은 때를 벗기는 단체 목욕도 했습니다. 목욕후 다시 두북정토마을에 들어와 2013년 정토회의 사업 방향에 대한 토론을 했습니다.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그동안 보고 느꼈던 점, 제안하고 싶은 사업, 우리가 전체적으로 놓치고 있는 일은 뭐가 있는지 등 많은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토론을 했습니다. 대중공사였습니다. nbsp 스님을 포함해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고 제안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 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중간에 잠시 저녁공양과 예불을 올리고, 또 토론을 했습니다. 참 좋은 의견도 많고 아이디어도 많았습니다. 대중부와 함께 더 많은 논의들이 진행되어야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마치고 다과를 하면서 친목의 시간도 가지고, 자정에는 법당에 모여 앉아 작은 종을 치며 고요히 2013년을 맞이했습니다. 자정을 넘기면서 스님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새해 인사를 올렸습니다. nbsp 이렇게 2013년을 맞이하였습니다. 2012년은 정말 하루 하루가 참으로 알차고 보람있고 즐거운 나날이었습니다. 『스님의 하루』와 함께해서 더욱 즐거웠습니다. 자정이 지나서 오늘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오늘은 아침에 일출을 보고, 다시 회의를 잠시 한 후,서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지난 한 해,『스님의 하루』를 많이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분들 행복하고 건강한 2013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2013년에도 스님의 감동적인 일상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12월 30일 법륜스님의 하루(명상수련, 공동체 모임)
2012년을 마무리하면서 12월 26일부터 30일까지 정토회 활동가 명상수련이 있었습니다. 전국에서 184명이 정토수련원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추운 날씨라 옷을 켜켜이 껴입고, 한 손에는 침낭을, 한 손에는 눈이 올세라 준비한 우산까지 한 켠에 넣은 큰 가방을 들고, 어떤 분은 웃음 지으며, 어떤 분은 벌써 다리의 통증을 예감하는 듯 비장한 얼굴로 수련원으로 들어섰습니다. 스님의 지도로 4박 5일간 명상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부분이 활동가라 평상시 명상수련과는 달리, 법문도 많지 않고 정진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명상하는동안 2번이나 눈이 내려 새하얗고 멋진 풍경을 수련생들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러나 뒷바라지하는 분들이 수련 바라지에 눈까지 치우느라 바라지 일이 두 세 배는 힘들었을 것 같아서 죄송스러웠습니다. 수련 4일째인 어제 저녁 즉문즉설이 있었습니다. 수련을 하면서 생긴 어려움에 대한 질문을 하라고 했는데, 그동안 활동하면서 힘들었던 일, 앞으로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묻는 질문 등 지난 1년동안 활동하면서의 일들에 대한 질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렇게까지 원을 세워서 300강을 했었구나, 일상에서 저렇게 열심히 정진을 하고 있었구나... 한 분 한 분의 질문이 오히려 감동을 주었습니다. “역시 활동가들 수련이라 다르긴 다르네요.”하면서 웃으시던 스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늘 새벽, 명상으로 하루를 열었습니다. 마지막 명상을 마치고, 새벽 천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유수스님의 종성염불과 맑은 종소리에 마음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 직접 예불을 하셨는데 마음이 절로 숙연해졌습니다. 예불 후, 스님께서 발원을 하셨습니다. 그 중 일부를 옮겨 봅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을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줄 아는 기쁨을 살아있는 생명에게는 살아갈 수 있는, 배고픔없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아픔이 있는 중생에게는 그 아픔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양약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배움의 기회가 똑같이 주어지기를 중생의 가지가지 소원과 소원이 모두 성취되기를 그리하여 나나 너나 다름이 없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렇게 간절히 발원하옵나니 제불 보살님들은 저희의 이 발원에 응답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발원하옴은 이렇게 추운 겨울에도 입을 옷도 없고 땔감도 없어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는 북한 동포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한 줌의 따뜻한 밥을 몸을 감쌀 수 있는 한 장의 담요와 옷이 주어지기를 간절히 발원하옵나니 저희의 이 발원이 부디 성취되기를 천룡팔부 신중님들은 저희를 옹호하여 주옵소서nbsp 저희가 5일동안 용맹정진하고 청정한 마음을 내고 간절히 발원한 이 공덕으로 하루속히 남북이 통일되고, 한반도가 평화롭고,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가 정착되고 지구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모든 생명에게 생명의 존엄이 지켜질 수 있기를 또한 이번 대선에 희망을 걸고 있다가 절망에 빠진 많은 사람들 특별히, 강정마을 사람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MBC PD와 기자들 그 뿐만 아니라 실의에 빠진 모든 사람들에게 새해에는 새로운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그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되기를 발원하옵나니 제불 보살님들과 천룡팔부 신중님들은 저희의 이 간절한 발원을 증명하고 옹호하여 주옵소서nbsp 또한 이번 이 용맹정진에 참여한 대중 일동과 부지런히 수행하고 보시하고 봉사한 정토 대중일동은 지난 한 해 수고한 모든 일들 가운데 상처로 남아있거나 집착으로 남아있는 것들은 즉시 소멸하고 새해에는 보살로 발심하여 용맹정진 할 수 있기를 발원하오니 저희 발원 성취케 하여 주옵소서” 스님의 발원을 들으며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의 온 마음이 담겨있는 발원을 들으며 계속 눈시울이 뜨거웠습습니다. 특히, 쌍용자동차 관계자들, mbc 파업 피디와 관계자들, 강정마을 관계자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어만져 주시고, 이 추운 날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있을 북한동포들에 대한 발원을 하실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겨울이 특히 더 시리고 추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우리 전부의 마음이었고, 또한 아픈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회향식을 대웅전에서 했습니다. 방석을 깔지않고 바로 바닥에 앉았습니다. 스님께서도 대중들이 다 바닥에 그냥 앉았다고 방석을 도로 물리시고 함께 찬 바닥에 앉으셨습니다. 손과 발이 조금 시리긴 했지만 우리 수련원의 부처님 앞에 다같이 모여서 청법가를 부르고 법상에 앉아 법문을 하시는 스님 법문을 듣는 것도 기분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스님 일정이 계속 해외 일정이라 미리 새해 인사로 3배도 드리고, 선물로 스님과 악수하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명상수련을 마치고, 오늘부터 1월 1일까지는 정토회 공동체살이를 하고 있는 대중들이 두북정토마을에 모여 수련을 하기로 했습니다. 문경정토수련원에서 두북정토마을로 이동했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고속도로 진입전까지 조심조심 운전을 했습니다. 저녁 6시 30분경에야 모두 두북정토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같이 예불을 모시고, 스님과 함께 60여명의 대중들이 둘러앉았습니다. 명상수련 때 작성한 소감문을 각 자 읽었습니다. 스님과 대중들은 모두 조용히 앉아 한 사람 한 사람이 읽는 소감문을 경청했습니다. 참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 도반은 저런 것을 느꼈구나, 아, 저런 힘듦이 있었구나, 아, 내가 미쳐 생각지 못한 내 모습이 저기 있구나 하면서 상대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내가 미처 살피지 못한 내 모습을 도반의 소감문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소감문을 전체 듣고 스님께서 정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자신의 까르마를 보고 있는 것과 까르마에 빠져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빠져 있으면 상처가 치유가 안됩니다. 상처가 있지만 그 상처로부터 자신이 분리가 되어 있어야 상처가 치유되어 나갑니다. 어떤 감정과 번뇌가 일어나더라도 빨리 탈출을 해서 자기 갈 길을 가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경계에 반응을 했더라도 상념에 빠지지 않고 자기를 남 보듯이 하면 금방 빠져나올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까르마가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짧은 순간 나도 모르게 까르마에 빠져 있을 수는 있지만 금방 되돌아 나와야 합니다.” 내 업식과 나를 동일시할 때 제가 가장 작아지고, 힘들 때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스님의 정리 말씀으로 명상수련 4박 5일 전체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늘 하루를 정리하며 300배 정진을 했습니다. 스님의 말씀이 그대로 마음에 남았습니다. 내가 내 업식을 멀리서 바라보며 빠지지 않고, 내 원력으로 스스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발원했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경주 남산 산행을 하고 수련원으로 돌아와, 2013년 우리 사업에 대해서 마음껏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12월 25일 법륜스님의 하루(쑥고개성당)
어제 갈릴리교회 자정예배에 참가하고 돌아오니 새벽 2시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선 아침 7시 30분부터 또 일정이 있어서, 들어와서 잠시 휴식하신 이후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스님의 공식적인 일정은 오전 11시 쑥고개성당 성탄미사에 참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오전 10시, 평화재단에서 봉천동에 있는 쑥고개성당으로 향하였습니다. 쑥고개성당 신부님인 김홍진 신부님은 스님과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함께 하면서 인연이 되어 그 뒤로도 꾸준한 만남을 이어오고 있어서, 저희들에게도 친근한 신부님이십니다. 신부님이 문정동 성당에 계실 때는 문정동성당으로 갔었는데, 작년에 봉천동 쑥고개성당으로 오셔서 저희들도 작년부터 쑥고개성당으로 가고 있습니다. 봉천8동성당인데, 성당이 있는 고개가 쑥고개라서 형제자매님들과 의논해서 쑥고개성당이라 하기로 했다는 말을 작년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신부님이 계시는 성당에 가면 항상 대접을 잘 받습니다. 오늘도 성당에 들어서니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셨습니다. 신부님의 집전으로 성탄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정토회에서도 50여명의 회원들이 참가해서 함께미사에 참가했습니다. 의식이 장엄하고 거룩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이었고, 신부님 혼자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자매님들이 함께 동참해서 미사가 진행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 강론을 하신 후, 스님께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께서 예수님 오신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예수님은 세상 속에서 고통이 극심한 그런 시기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리석어 아무도 진리를 알지 못하는 그런 시대에 태어나셨습니다. 그것도 고귀한 분께서 가장 가난한 곳, 아이를 낳는 엄마가 보호받지 못하고 마굿간에서 아기를 낳을 수밖에 없는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가장 작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가 따뜻한 봄날, 누구나 다 봐도 알 수 있는 그런 화려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가장 고통받는 세계에, 깜깜할 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시간에, 가장 작은 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구세주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사람들, 신앙심이 돈독하고 하느님에 대해서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율법학자나 수많은 유대인들 아무도 그 분이 오심을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유대 신앙인이 아닌 이방인 동방박사는 그 분이 오심을 알아보고 가장 먼저 그 분께 경배하고 예물을 올렸습니다. 이런 것이 무엇을 상징할까요? 우리가 찾는 진정한 진리는 어쩌면 우리가 가장 어려울 때, 고통에 신음할 때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고, 우리가 정말 스스로 눈을 뜨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을 기다리지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도 알아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이 세상에서 작은 것들, 평소에 하찮게 여기는 것들에서 주님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그런데서 어쩌면 주님은 오늘 우리가 성탄예배를 하는 이런 자리에 오시기보다는 고통이 극심한 북한 같은 곳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 그 분께서 오셔서 머물지도 모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 아무도 그 분이 오신 것을 몰랐다는 것은 어쩌면 지금도 오히려 큰 교회, 제도가 잘 갖춰지고 권위가 있고, 아름답고, 찬송이 울려퍼지는 이런 곳에 그 분이 오시지 않을 것 아닌가? 어쩌면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 오히려 그 분을 알아보지 못하지 않을까? 그런 것을 우리가 오늘 예수님 탄생일에 그 분이 오셨던 모습에서 한 번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오신 날 그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자기를 못 박아 죽이는 자에게까지 “주여, 저 두 놈을 지옥의 불구덩이 던져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고,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라고 말한 것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 없이는 그렇게 이야기하기 힘듭니다. 그런 면에서 세상 사람들이 예수의 육신은 비록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 있어도 그 영혼만은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부활이 아닐까 싶습니다. 죽일래야 죽일 수 없고,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이것이 영원한 생명이지 않은가? 그분께서 오래 살아서 많은 말씀을 해야 성공이 아니고, 짧은 기간 활동하다가 고통스런 모습으로 돌아가셨지만, 그 분의 영혼은 이 세상 가운데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삶을 사셨기에 결국은 그 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부활이라는 더 큰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오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님 말씀을 들으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가 다시 한 번 새겨졌습니다. 예수님만이 아니라 부처님 또한 이 땅에 오시면 이 세상의 가장 작은 자들과 함께 하시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 땅에 천주교가 처음에 들어올 때 탄압이 많았습니다. 공부할 데가 없어서 절에 가서 모여 앉아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천주교 신앙자도 죽였지만, 장소를 제공하는 스님들도 많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천주교 신앙으로 순교한 분들만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 주위 스님들까지 처벌을 받았습니다. 서로 신앙이 다른데도 오늘날 불교와 천주교가 왜 이렇게 더 심정적으로 가까울까요? 오히려 천주교와 개신교는 같은 신앙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에 더 친해야 하는데 정서적으로 천주교와 불교가nbsp더 가까운 것은 우리가 조선조 봉건시대에 함께 차별을 받고 억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조선조가 건국되고 오백여년간 극심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승려들을 속퇴시키고 그래도 산 속에 남아 있는 승려들을 천민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이렇게 극심한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천주교 신앙이 처음 들어올 때 그들의 아픔을 생각해서 장소를 제공했고 또 고통을 함께 겪은 보이지 않는 이런 역사가 있기 때문에 동료의식이랄까? 이런 심정적인 가까움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어떤 이론보다는 삶의 문제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설령 이론이 달라도 같은 고통을 겪으며 생활하게 되면 결국은 훨씬 더 동질감을 갖게 되고, 같은 종교의 뿌리를 갖고도 고통을 함께 겪지 않게 되면 작은 이론을 갖고 서로 다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쑥고개성당에 가면 꼭 인근 절에 간 듯 편안한 느낌입니다. 친근하고, 괴리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오늘 스님께서 우리나라 불교와 가톨릭의 역사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셔서, 이것 또한 역사성에 기인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성탄미사를 마치면서, 스님과 정토회가 성탄미사에 참여해줘서 감사하다며 스님께 꽃다발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꼬마 두 명이 부끄러운 듯 웃으며 스님께 꽃다발을 전달했습니다. nbsp 미사를 다 마친 후, 신부님께서 정토식구들을 위해 중국집에서 식사 준비까지 따로 해 주시면서 세세한 관심을 기울여 주셨습니다. 수녀님들과 성당에서 주요 역할을 맡으신 분들은 신부님께서 소개하시고, 정토회 참가자들은 스님께서 소개를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크리스마스날 이렇게 식사까지 대접해 주시니, 예수님께서 매일 오셨으면 좋겠습니다.”하고 신부님께 인사를 드려 저희가 다같이 신나게 웃었습니다. 마음이 훈훈해지고 따뜻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신부님과 형제자매님들에게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성당에 다녀오신 후에도 계속 일정이 있었습니다. 몇 건의 약속과 원고 수정까지 하시고 12시 30분경 회관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내일부터 4박 5일동안 명상수련에 들어가십니다. 명상수련 마치고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2월 24일 법륜스님의 하루(대선 힐링, 경동, 갈릴리교회)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날입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돌아오면 부처님 오신날보다 더 바쁘게 스님 일정이 짜여집니다. 오랫동안 교류해 왔던 목사님들과 신부님이 계신 교회와 성당을 찾아가 성탄예배에 참가하셔서 축하인사를 드립니다. 작년에는 보름 전부터 찬송가도 준비해서 예배 때 저희가 준비한 찬송가를 부르기도 했는데, 올해는 바빠서 미리 준비하지를 못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제 아침 일어나시더니 감기가 걸린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보니까 콧물이 쉴 새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래서 어제 대전에서 행사를 마치고 올라오면서 코 감기약을 사서 드셨는데, 좀체 잦아들지가 않더니 오늘 아침에는 눈에 실핏줄까지 터져 눈이 벌겋게 충열되었습니다.“몸이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 명상하고 좀 휴식하려니까 감기도 걸리고, 실핏줄도 터지고...” 하십니다. 그런데 시간이 없어서 병원에도 못가고 하루 일정을 시작하셨습니다. 오전 10시에는 경향신문에서 기자들이 와서 2시간 가량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nbsp 그리고 오후 2시 30분부터는 오마이뉴스에서 진행하는 『대선 올레 법륜스님과의 힐링』에 참가하셨습니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들을 대상으로 준비된 방송으로nbsp오마이TV를 통해 생방송되었습니다. 지방에서 스님 방송을 듣기 위해 동네분들과 모여 앉아 있다는 사람, 해외에서도 방송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지인의 문자를 받으면서 작은 방송도 위력이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행사는 대선 이후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이 멘붕 상태에 빠져 헤어나오지를 못해스님의 힐링이 필요하다는 요청에 따라 준비된 행사였습니다. 오마이뉴스 대표 오연호 님이 진행하면서 스님께 질문을 하기도 하고, 참가자들이 스님께 바로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행사에 참가하면서 5149로 대선에 패배한 사람들이 상심이 참 컸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울면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며 질문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nbsp “세상 일이라는 것이 내가 원하는대로 다 될 수가 없습니다. 또 된다고 반드시 좋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을 좀더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5천만 인구 중에는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나와 반대되는 사람도 적어도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과 비슷한 수만큼 있다는 것을 아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대로는 안된다, 뭔가 변화가 와야 된다, 새로운 희망을 만들자’ 하는 젊은 세대보다 ‘우리 사회가 좀 안정되어야 되겠다, 뭔가 불안하다, 우리가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나라가 흔들려서 되겠는가’하는 안정을 원하는 기성세대의 단결력이, 그들의 바라는 바가 더강하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50대의 투표율을 보면 알 수 있잖습니까? 초유의 일이잖아요?89.9 10명 중 9명이 투표를 하러 나갔다는 것 아니겠어요? 그만큼 기성세대가 이 나라를 안정시켜야 되겠다는 것이 변화를 열망하는 젊은 세대보다 강했기 때문에 일어난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다고 안 받아들일 수 없잖아요. 2012년, 2013년도 이후의 대한민국이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면, 새로운 현실 위에서 어떻게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평화와 통일을 만들어나갈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지나가버린 것을 생각하기보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스님의 첫 시작 말씀으로 진지한 힐링의 시간들이 진행되었습니다. 왜 대한민국의 50대 여성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을까? 선거 때마다 있는 북풍으로 인한 분단체제의 현실에 대해서 절감을 했는데 북풍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선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아프다, 안후보 진영과 민주당 진영의 갈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투표율이 올라가면 이긴다고 했는데 왜 이런 결과를 예측한 학자는 한 명도 없었을까? 앞으로 5년동안 언론도 더 막힐 것이고, 검찰, 경찰, 선관위까지 다 편파적이 될 수도 있고,사회적 약자는 더 어려워질 것 같아 희망이 생기질 않는다, 답답하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전교조 회원인데 이 정부와 새로운 교육감의 정책 속에서 어떻게 내 소신을 지켜나가야 하는가? 머리로는 이해되었는데 가슴까지 내려가는 길이 막혀서 안정이 안되는데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 속에 있는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nbsp 진지하게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두 시간이 금새 지나갔습니다. 스님의 말씀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두 힐링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마칠 때의 분위기는 시작할 때보다 한층 밝았습니다. 스님께서 가시는 분 한 분 한 분 손을 잡아주고, 스님의 신간 ‘쟁점을 파하다’도 한 권씩 선물로 주셨습니다. 날씨가 매우 추웠는데, 마음이라도 조금 더 따뜻해져서 돌아가셨기를 바래봅니다. nbsp 스님께서는 저녁 약속 후에 7시 30분 평화재단에서 경동교회로 출발하셨습니다. 경동교회는 크리스찬아카데미를 운영하셨던 강원룡목사님이 계셨던 곳이고, 지금은 박종화 목사님이 담임목사로 계신 곳으로, 스님과는 오랜 친분이 있는 교회입니다.오늘은 캐롤송을 중심으로 성탄전야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아기 예수 오심을 찬탄하며 성가대들의 우렁차고 맑은 목소리가 교회당내에 울려 퍼졌습니다. 성탄예배에 정토회원 7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지막에 인사말씀을 하시면서, 성탄을 축하하고, 한국사회가 평화와 통일을 이룰 수 있고, 양극화가 해소될 수 있는 나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하셨습니다. nbsp 행사를 마치고 박종화 목사님과 여러 신도님들과 간단한 차담을 하시고, 다음 자정 예배가 있는 갈릴리교회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눈이 조금씩 흩뿌려지고 있었습니다. 갈릴리교회에 들어가니 인명진 목사님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정토회 가족들이 40여명 참가했는데, 미리 차와 떡과 과일, 잡채 등을 준비해 두고 있었습니다. 매년 이렇게 마음을 써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자정이 되자 성탄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성가대들의 찬송가와 목사님의 인례에 따라 의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종교를 떠나 한 분의 성인이 이 땅에 오심을 이렇게 같이 축하할 수 있음이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예배를 마치면서 스님께서 한국사회의 평화와 통일, 양극화 해소로 인한 국가발전과 이 시간에도 어렵고 힘든 사람들, 굶주리고 있을 북한 동포들에게도 성탄의 기쁨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는 인사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nbsp 인명진 목사님께서 마지막 정리말씀을 하시면서, 대중들 뒤에서 유애경 님이 들고 있던 “오늘 아침 북한 아이들도 밥은 먹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펼침막을 보고, 원래 북한 아이들1인 1만원씩 500명을 후원하고 있는데, 성탄절 아침을 맞이하여 3000명의 아이들에게 후원을 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셔서 저희가 감사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니 눈이 하얗게 내려 있었습니다. “와,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누군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모두들 동심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축하하며, 오늘 하루 스님도 바쁜 하루를 보내셨습니다. 정토회관에 들어오니 새벽 2시가 다 되었습니다. 내일 스님께서는 오전 11시 쑥고개성당 성탄 미사에 참가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12월 23일 법륜스님의 하루(정토회 활동가들과의 만남)
아침 일찍 두북정토마을에서 아침을 먹고, 대전으로 출발했습니다. 어젯밤부터 기온이 내려가더니 아침 날씨가 쌀쌀하고 추웠습니다. 대전으로 오면서 보니 산천이 하얀 눈세상이었습니다. 대전과 인근지역에는 눈이 많이 왔다고 합니다. 길이 미끄러운데도 전국에서 정토회 활동가들이 대전정토회로 모여들었습니다. 2012년 한 해 동안 희망세상 만들기를 해냈던 전국 주요 활동가들입니다. 전국 곳곳에서 항상 만났던 얼굴들이라 참 반가웠습니다. 멀리 태백에서, 진주에서도 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직접 법상 앞에 서서, 각 지역에서 오신 분들 소개를 할 때마다 바라보며 인사를 하셨습니다. nbsp 어제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90여명의 활동가들이 모여 올 한 해 사업을 하면서의 어려움과 해결방안에 대한 토론을 하고, 스님으로부터 전체 방향에 대한 정리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전에는 먼저 스님으로부터 2012년 활동정리와 2013년 활동방향에 대한 법문을 요청했습니다. “2012년도, 2013년도 사업방향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하는데 사실은 따로 논의할 것이 없습니다.정토회가 어떤 방향으로 갈 지는 이미 정토회 창립할 때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그것을 잘 숙지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2012년, 2013년, 2014년은 약간 차이가 날 뿐이지 기본적으로 큰 방향에서는 같습니다. 설립취지를 성취하기 위해 제1차 만일결사를 입재하였습니다. 첫째, 정토행자는 우선 나부터 행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수행을 기초로 합니다. 사회활동도 수행과정의 하나입니다. 보디사트바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을 동시에 하는 자로, 보살이라 합니다. 반대되는 성문, 연각은 상구보리만 하지, 하화중생은 상구보리한 뒤에 하겠다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많이 힘들어 합니다. 이들에게 도움을 줘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면 자연히 주위를 돌아보게 되고 자신도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데 참여하게 됩니다. 이것이 전번입니다. 이렇게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의 삶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으니 환경 또한 개선해야 합니다.자기 수행과 사회 환경 개선을 함께하자는 것이 정토회 설립 목표입니다. 만약 자기 수행만 하고 사회환경 개선을 하지 않거나 사회환경 개선만 추구하고 자기 수행을 하지 않으려 한다면 이는 정토회원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성불회라 하지 않고 정토회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자기 수행은 기본으로 하고 사회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자는 뜻입니다. 특히 우리 불교가 하화중생, 즉 중생구제하는 사회성이 현재 약해져 있으니 우리는 이 부분을 좀더 적극적으로 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토세상 만들기 만일결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정토행자는 자기 수행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그 바탕위에서 사회환경을 변화시키자는 것입니다.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영역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지구적 시각을 가지고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보존하는 것, 둘째, 인류적 시각을 가지고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나눔을 하는 제3세계 구호활동, 셋째, 민족의 과제인 평화와 통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현재 분단된 상황에서 대립하며 갈등하고 있으니 화해를 통해 평화와 통일을 달성하자는 것입니다.이 세 가지가 정토회 사회활동의 주요내용입니다.” nbsp 스님께서는 정토회 설립 목표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시면서 2012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2013년에는 어떤 방향으로 정토회 사업을 해 나갈 지에 대해서 큰 그림을 말씀해 주시면서,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토론을 하면서 이야기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7차 천일결사의 목표 실현, 올 해 300강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전법의 확산, 청년활동의 활성화 등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어서 올 한 해 사업을 하면서 겪었던 여러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타회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큰 주제는 오후의 논의거리로 남기고 오전 타임을 끝냈습니다. 정성드려 맛있게 준비해준 대전정토회의 점심공양에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잡채, 녹두빈대떡, 무조림, 미역무침, 버섯무침, 깎두기 김치, 된장국을 맛있게 배불리 먹고, 레크리에이션 시간도 잠시 가졌습니다. 모두들 춤 실력이 늘어서 노래를 부르면서도 몸을 흔들흔들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다 같이 박장대소를 하고 웃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함께 하는 도반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고 즐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아무 거리낌없이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고, 또 이를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다시금 생각되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nbsp 스님을 모시고 사업 이야기를 하지만, 이 자리 또한 수행자의 본분으로 논의하고 질문하고 문제제기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가 어느 때,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수행자로서 임해야 함을 오늘도 강조하셨습니다. 오후에는 스님께서도 법상에서 내려오셔서 대중들과 가까이 책상 앞에 앉아 내년 1년에 대한 논의를 함께 하셨습니다. 스님은 벌써 내년 12월까지 일정이 거의 빡빡하게 잡혀 있었습니다. 스님의 일정을 공유해 주시고, 내년에 진행할 사업에 대해서 질문을 받고, 큰 틀에서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정리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한국불교가 새로운 이미지로 바뀌어야 합니다. 불교가 한국사회에 새로운 모습으로 사랑을 받는 불교로 만들어 봅시다. 또 하나는 우리 민족이 가진 평화통일의 과제입니다. 한국사회를 업그레이드 해 봅시다. 정토회 설립취지문에도 민족중흥이 들어있습니다. 개인 생활만 하면 편하겠지만 사람이 태어나서밥만 먹고 죽는 것보다는 뭔가 세상을 위해 용을 써보고 죽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자부심을 가지고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부처님 제자로서 불보살의 길을 가봅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민족의 시대적 과제인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어 봅시다. 혼자는 못합니다.nbsp마음 맞는 사람들이 함께 해 나가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해 나갑시다. nbsp 스님은 여러분들을 만나서 할 수 있고, 여러분도 스님을 만나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앞에서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여러분들이 미는 역할을 해서 10년내에 우리 민족과 불교에 희망을 만들어 냅시다. 너무 조급하지 않되, 최선을 다하는 자세 가져야 합니다. 얼굴 펴시고 희망을 가지고 임하면 좋겠습니다.”nbsp 오늘 이후 스님 일정이 빡빡합니다. 24, 25일은 교회와 성당에 성탄축하하러 다니시고, 26일부터는 명상수련에 참가하십니다. 명상수련 후에 실무자 수련을 하고, 1월 3일부터 인도 일정이 진행되면 내년 2월 초에야 스님을 잠시 뵐 수 있고 이후에도 해외 일정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래서 그동안의 스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모아서, 전체 대중들이 스님께 극진히 삼배를 올렸습니다. 내년에도 올 해처럼 활기차고 신나게 희망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nbsp 내일 스님은 오전 10시에 경향신문과 인터뷰가 있고, 오후 2시 30분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하는 『대선 올레 법륜스님과의 힐링』이 평화재단에서 있습니다. 저녁 8시 30분에는 경동교회 성탄축하예배에 참석하시고, 자정에는 갈릴리교회 성탄축하예배에 참석하실 계획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nbspnb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