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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5일 법륜스님의 하루(부산 기장 정관, 창원)
어제는 광주 강연을 마치고 두북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넘었습니다. 주변 정리하고 2시경에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하고 아침 식사를 하고, 조금 일찍 수련장에서 나섰습니다. 오늘 오전은 부산 기장군 정관면에서 법회가 있는데, 가는 길에 작천정계곡으로 살짝 둘러서 갔습니다. 작천정계곡 입구에 들어서니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잠시 차를 세우고 벚꽃터널을 걸었습니다. 같이 동행한 미국 뉴욕에서 온 최경숙 님은 ‘와’하고 탄성을 지르며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최경숙 님은 초기 JTS가 북한의 개방특구인 라진선봉지역에 영유아 지원사업을 시작할 때 미국 국적을 가지고 북한에 직접 들어가 JTS사업을 시작했던 분입니다. 10년만에 한국에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하나라도 더 좋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벚꽃길로 안내하신 것 같았습니다. nbsp 작천정 벚꽃 구경을 하고 경남 정관으로 가는데, 완연한 봄이라 꽃잔치가 한창이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아직 꽃구경이 어려웠는데 역시 남쪽으로 오니 벚꽃은 지고 있고 조팝, 황매화를 비롯해 갖가지 봄꽃들이 앞다투어 피고 있었습니다. 봄꽃 구경을 하면서 정관지방자치센터로 향했습니다. 정관은 면인데 인구를 3만 8천까지 유치해 내면서 지자체 단체장들의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면장과 지방자치위원장, 군의회 의장과 의원들, 파출소장과 직원들이 스님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강연을 마칠 때는 기장군수가 늦었다며 스님께 인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군의회 의장과 의원들은 접견실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무릎을 꿇고 스님께 절을 해서, 부산지역의 불심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여태껏 시군구 강연은 많이 했는데, 면단위는 정관면이 처음이라고 하자 더 고마워했습니다. nbsp 강연장에는 금새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 질문자가 많아 강연이 2시간 넘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음향 상태가 좋지 않아 강연을 듣는 사람들이 집중하기에 조금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도 스님께서는 질문한 사람과 눈을 맞추며 그 사람의 문제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볼 때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질문인데도, 짜증날 것 같은 질문인데도 스님께선 그냥 물이 흐르는 것처럼, 굽이치지 않고 항상 한결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십니다. 일상의 변함없는 그 모습이 가슴 따뜻한 감동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550여명의 사람들이 참가해서 삶의 여러 질문들을 했습니다. 유방암을 앓았었는데 재발될까 두려운 마음에 삶의 의욕이 없다는 분을 시작으로, 작년에 교통사고로 딸이 죽었는데 스님 법문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지만 수시로 딸 생각이 나서 힘이 든다는 분 등 여자분들이 대부분 질문을 하자, 마지막에는 남자 한 분이 정관에는 여자들만 사는 것이 아니라남자도 있다며 손을 들고 질문을 해서 다 같이 웃었습니다. nbsp 정관에도 처음 얼굴을 보는 자원봉사자들이 많았습니다. 정관면에도 정토회센타가 생겨서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정관면에서 강연을 마치고 바로 김해 인제대학교로 이동했습니다. 가는 길에 예쁘게 싸주신 도시락을 차안에서 먹었습니다. 오후 3시에 인제대학교 신입생과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즉문즉설 강연이 잡혀 있었습니다. 총장님과 사무처장님 등 학교 관계자분들과 사전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지역의 대학까지 와줘서 감사하다며 스님을 정성껏 모셨습니다. 사전차담에 참가한 교수님들도 스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스님 책을 읽었거나 영상물을 봐서 스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nbsp 강연장에는 학생들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진행하고, 학점을 인정받는 강연이라 자발적으로 참가한 학생들의 강연과는 확실히 집중되는 분위기가 차이가 있었습니다. 재미있어 하고 집중하는 학생들도 많았지만 뒤쪽에는 산만한 학생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강연장 앞쪽에 앉아 스님 강연에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은 스님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도 하고, 약간의 추임새도 넣으면서 신나게 강연을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도 질문들에 대해서 시원하게 답을 해 주셔서 학생들이 깔깔깔 웃어 넘어가기도 하고, 진지한 눈빛으로 조용히 집중을 하기도 했습니다. nbsp 강연을 마치고 다음 강연장인 창원으로 향했습니다. 다시 김밥과 도시락의 계절이 돌아와서 차를 타고 다니며 점심, 저녁을 먹게 됩니다. 정관에서 준비해준 도시락으로 점심과 저녁을 먹었습니다. 정성껏 싸주신 도시락 밥이 맛있었습니다. 창원으로 이동하는 중에 갑자기 스님 타신 앞차가 도로 갓길에 깜박이를 넣고 섰습니다. 얼른 뛰어가 보니, 스님께서 스님타신 차량은 강연장으로 가고, 다른 한 대의 차량으로 최경숙 님을 모시고 봉하마을 참배를 하고 강연장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봉하마을 간 김에 거가대교도 구경시켜 주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경숙 님을 모시고 봉하마을과 거가대교를 돌아보았는데 진해군항제 때문인지 차가 너무 막혀서 강연 시간이 끝나서야 강연이 있었던 창원 MBC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그냥 차 안에서 봉하마을에 안 가봤다고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했는데 스님께서 바로 배려를 해 주시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부산신항의 야경, 거가대교 야경, 세계최대 수심의 해저터널 다 너무 좋았어요.” 최경숙 님이 스님께 정말 감사하다며 몇 번을 고마워했습니다. 창원강연장에는 730여명이 참가했다고 합니다. 분위기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진지하면서도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폐경기가 되니 여자로서의 생명이 끝난 것 같아 힘이 듭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고등학생 아들과 소통이 안 됩니다. 남의 집에 가면 아들과 아빠가 대화가 되는 것이 너무 부럽습니다. 아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요?” “남편이 외도를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남편과 너무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이혼을 하자고 합니다. 괴롭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대 때 법대 시험볼 때 너무 긴장해서 손떨림이 생겼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노동일을 하고 있는데 행복합니다. 그래도 이 부분을 극복해서 자유롭고 싶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내 문제를 숨기지 않고 구체적으로 질문을 하게 되면 질문한 사람에게도, 강연장에 참가한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질문하신 분들이 스님께서 해 주신 말씀을 생활 속에서 열심히 실천해서 질문한 어려움들이 잘 해결되어 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워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nbsp 강연을 마치고 두북수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번 더 작천정계곡의 밤 벚꽃거리를 걷고 돌아왔습니다. 아침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오늘 하루 봄을 한껏 즐겼습니다. 내일 스님께서는 서울, 부산 청년리더쉽 아카데미 참가자들과 하루를 보내실 계획입니다. 비가 오고 있네요. 벚꽃잎이 이 비에 다 떨어질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밤에 듣는 빗소리는 언제나 좋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4월 4일 법륜스님의 하루(용성조사 열반일, 광주 교사멘토링)
어젯밤 늦은 시간에 스님께서 3박 4일간의 대만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들어오셨습니다. 3월 31일날 인도네시아에 같이 갔던 일행은 모두 들어오고, 스님께선 인천공항에서 바로 대만으로 출국하신 후, 어제 들어오셨습니다. 오늘은 용성진종조사 입멸 73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전 6시, 정토회관에서 장수 죽림정사로 향해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미국 뉴욕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최경숙 보살님이 동행을 하고, 문수팀 행자 5명도 함께 동행을 했습니다. 장수 죽림정사에는 매화가 피어나고 따사로운 햇살이 저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영남, 중부지역 봄 불교대학생들의 사찰순례가 함께 진행되어 새내기 정토행자들이 앞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한 명 두 명 죽림정사로 들어왔습니다. 먼저 제대선지식들에게 다례를 지냈습니다. nbsp 항상 귀한 과일을 푸짐하게 올리고 정성을 다하시는 도문큰스님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다례 후, 스님께서 오늘 참가하지 못한 큰스님을 대신해서 용성진종조사의 삶과 시대적 과제에 대해서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용성진종조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용성조사님의 활동, 용성진종조사의 유훈을 받들어 평생 정진을 해오신 도문큰스님과, 도문큰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용성진종조사의 유훈을 실현해 나가고 있는 법륜스님의 연관관계를 들으며 정토회의 뿌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시간이었습니다. nbsp 그리고 이어서 즉문즉설 시간이었는데, 정토불교대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상세하고도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참가한 지역들 인사도 하고,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라 분위기가 화기애애했습니다. nbsp 영남, 중부지역 2013년 봄 불교대학 학생들은 학장님과의 첫 만남이 즐거운 것 같았습니다. 점심식사 후, 불교대학생들은 단체 사진 촬영을 하고 죽림정사 사찰 순례를 하였습니다. 대전에서 오신 분이 스님께 선물을 전달하였습니다. 87세의 노보살님께서 한 땀 한 땀 뜨개질을 해서 스님 스웨터를 짜오셨습니다. 솜씨가 대단했습니다. 정성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nbsp 스님께선 저녁에 광주에서 강연이 있어서 바로 출발을 하셨습니다. 광주가는 길에 익산에서 약속이 있어서 점심 공양 후 바로 익산으로 출발하셨습니다. 익산 원광대학교에 도착하니 하얀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습니다. 스님께선 원광대학교 총장님과 말씀을 나누시고, 그동안 저희들은 원광대학교내 작은 공원에서 봄 바람을 쐬었습니다. 약간 차가운 듯,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았습니다. 두 분 말씀을 마치시고, 바로 광주로 향했습니다. 빛고을 광주에 들어서니 벚꽃이 활짝 피어서 저희를 환한 얼굴로 맞이해 주었습니다. 오늘 오후 광주 서구문화센타에서 ‘2013년 교사멘토링’ 광주편으로,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스님 강연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강연전 광주교육감님과 교육청 관계자들과 차담을 나누셨는데, 중학교 교장 선생님 한 분은 스님 강연을 출퇴근시간에도 매일 듣고 있다며 반가운 마음을 환하게 웃으며 전했습니다. nbsp 강연은 교사들을 대상으로 인터넷에서 신청을 받았는데 500명이 신청했다고 합니다. 강연시작시간이 되니 거의 강연장이 교사들로 꽉 찼습니다. 참 가볍고 편하고 재미있고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교사들의 고민들이 소로시 드러나서 좋았고, 스님의 답변이 가볍고 시원해서 좋았고, 스님과 교사들간의 공감대가 그대로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nbsp “훌륭한 교사가 될 생각하지 말고 밥값이나 한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가볍게 임하면 내가 행복해요. 내가 행복하면 애들이 못된 짓을 해도 덜 문제를 삼게 돼요. 내가 행복하면 애들이 좋아해요. 그래서 애들이 선생님을 좋아하면 내 말을 애들이 잘 들을 가능성이 많아요. 내가 훌륭한 선생님이 되겠다고 사명의식을 가지게 되면 긴장하게 돼요. 그러면 힘들어요. 작은 것을 가지고도 짜증이 나요. 그러면 애들이 나를 싫어해요. 그러면 훌륭한 선생님이 되기 어려워요. 아셨죠? 가볍게 해 보세요.” 선생님들이 와하고 박수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 훌륭한 선생님이 되겠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그냥 밥값만이라도 해라는 스님 말씀에 선생님들 마음도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참 소중하고 필요한 자리였습니다. 더 많은 교사들이 함께 강연을 듣지 못해서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법륜스님의 교사멘토링이 전국적으로 이뤄진다고 합니다. 오늘 강연한 영상물을 통해 보다 많은 교사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내일은 경남 정관면과 창원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광주에서nbsp늦은 밤 고속도로를 달려 두북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내일은 경남의 봄 소식 전하겠습니다.
2013년 3월 31일 법륜스님의 하루(자카르타 강연)
오늘 오후 5시 자카르타에서 인도네시아 교민을 위한 스님의 희망세상 만들기 즉문즉설 강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nbspnbsp 어제 저녁에 나갔던 전기는 아침까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여기 봉사자들이 온 이후 밤새 정전이 되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 덕분에 모처럼 촛불을 켜고 올리는 예불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예불과 기도를 마치신 스님께서는 대중들에게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하시면서 봉사자들의 귀국 날짜를 일일이 챙기시고 건강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nbsp 이 곳 빠당지역은 99가 무슬림으로 부끼띵끼에 타종교는 절 한 곳, 교회 한 곳, 천주교 한 곳 뿐이랍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이곳 절 비하르 신도회가 초청하는 아침공양에 응하셨습니다. 비하르에서는 화교들 200여명이 모여 정기적으로 법회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 이곳에 머무르시는 3일 동안 이곳 신도회 회장의 부인인 주이따가 생업도 잠시 뒤로 미루고 통역봉사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 7시에 도착하여 예불을 올리자 아이들까지 함께 나와 있던 신도들도 스님을 따라 예불을 올렸습니다. 예불이 끝나자 가족단위로 스님께 예배하고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스님께 보시하는 모습이 참 정성스럽고 귀하게 보였습니다. 어린 아이까지 스님을 보면 바로 예배하는 자세가 몸에 밴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릴 때부터 이런 정신과 습관이 면면히 이어져서 1도 안 되는 사람들이 99의 무슬림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1층 로비에 마련된 공양장소로 옮겨서 공양받기 전에 소심경을 외우셨습니다. 불자들은 스님을 바라보며 합장하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각 가정에서 음식들을 몇 가지씩 정성껏 차려온 듯 했습니다. 대중들과 함께 공양을 마치신 스님께서는 소심경 끝부분으로 공양을 마무리 하시고 정문을 나서면서 전체 불자들과 기념촬영을 하셨습니다. nbsp 빠당 공항으로 가는 길에 부끼띵끼의 유명한 관광지라는 파노라마파크에 잠시 들렀습니다. 파노라마파크는 규모는 작지만 미국의 그랜드캐년 같은 협곡입니다. 야생원숭이들이 주먹만한 아기원숭이를 껴안고 가족단위로 놀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고 신기했습니다. 협곡 아래에는 과거 일제가 징병들을 동원하여 파놓은 동굴이 몇 십 킬로미터 떨어진 빠당판장이라는 곳을 비롯해서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시간이 웬만하면 동굴입구에라도 내려가 보았으면 했는데 빠당공항에서 12시 50분 비행기를 타려면 시간이 촉박하여 그냥 떠나는 마음이 못내 아쉬웠습니다.nbspnbsp 10시 35분에 빠당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부치고 기다렸는데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는 또 시간을 넘겨 오후 2시가 되어도 빠당공항에 아직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우리가 자카르타에서 빠당에 올 때 그랬던 것처럼 비행기가 몇 시간씩 늦게 뜨고 결항되는 일은 예사라고 합니다. 공항 측에서는 계속 2시에 비행기가 들어와 2시 30분에 틀림없이 출발한다고 했는데도 우리는 3시 25분에야 빠당공항을 이륙하여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법회장소는 공항에서도 1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에 있다고 해서 스님께서는 혼자라도 먼저 가시기로 하고 걸망만 하나 지니신 채 뛰어나가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짐을 다 찾아 나올 때까지 스님께서는 출구에 그냥 계셨습니다. 공항에 스님일행을 마중 나온 분들은 그분들대로 비행기가 연착되자 탑승자 명단까지 확인하며 기다렸는데도 안내하는 출구가 이리저리 바뀌고 게다가 공항 측에서 안내를 잘못하여 다른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nbsp 5시에 시작하기로 한 법회인데 스님께서 7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하셨습니다. 그래도 220여 명의 청중들은 강연장을 꽉 메우고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강단에 오르셔서 오늘 늦게 도착하신 연유에 대하여 말씀하신 후 청중들을 향하여 모르는 것, 궁금한 것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물으라고 하셨습니다. nbsp 결혼하려는 상대와 불교신자인 어머니가 종교가 달라서 어머니가 걱정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지를 묻는 청년, 스님은 신을 믿으시는지 묻는 남자분, 인생을 살면서 죄를 많이 지었는데 어떤 노력을 해야 죄를 사할 수 있는지를 묻는 분도 있었습니다. 또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 사는 교민으로서 생업에 종사하다 보면 이슬람에 대해 무지한 상태라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다고 질문한 분이 있었는데 이 질문에 대한 스님의 설법을 옮겨 봅니다. “사람들이 미국에 갈 때 미국이 좋다고 갑니까, 나쁘다고 갑니까?” “좋다고 갑니다.” “그러면 미국 가서 영어를 배우는 것이 유리합니까? 안 배우는게 유리합니까?” “배우는 게 좋지요.” “인도네시아에서 잘 살아갈려고 하면 무슬림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게 유리합니까, 모르는게 유리합니까?” “아는 게 유리합니다.” “그럼 자신을 위해서 무슬림에 대해서 공부하십시오.” “문화적 관습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딪히고 갈등이 있습니다.” “왜 미국에 가서 영어 배우는 건 당연하고, 여기서 이슬람 문화 배우는 것은 갈등이라 합니까? 우리가 아는 불교도 또한 문화예요. 문화는 옳다, 그르다 따지면 안됩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할 뿐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따져도 됩니다. 진리는 탐구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들이 허황된 생각을 하니까 ‘복을 지어야 복을 받고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 복 받고 싶으면 복을 지어라, 벌 받기 싫으면 죄 짓지 마라’ 하셨습니다. 부처님 법은 독이 든 물이 있다면 ‘거기 독 들었다’ 라고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먹고 안 먹고는 자신의 선택입니다. 오늘의 종교는 문화이기 때문에 첫째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해라, 둘째 그 사람 편에서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존중입니다. 그러면 다름에도 불구하고 다툴 일이 없고 평화가 옵니다. 진리를 자각하면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해집니다.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이들을 미워하는 것은 자기 불행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모두 따라해 보세요.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이해하고 존중하고 스님 가르침대로 하겠습니다.” “소수가 다수에 취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저항과 동화가 있는데 어느 쪽을 선택해도 갈등이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면서 나는 나대로 그 속에 사는 것입니다. 돈벌이가 되면 여기서 살면 되고, 안되면 한국으로 갈수도 있고, 돈벌이가 안 돼도 그냥 살면 됩니다. 우리 JTS는 어려운 사람 도우러 왔어요. JTS 이념에 따라 수로를 정비하고 보건소와 유치원을 지었어요. 이런 일을 하는 JTS도 무슬림들의 입맛에 맞게 도와주고 적응해야 하는데 질문자는 여기서 돈을 벌고 있으니 더욱 그들의 문화를 고려해야지요.” 그 밖에도 서면으로 외로움에 대한 질문, 골프치는 남편이 골프장에만 다녀오면 화를 내는데 어떻게 화를 다스려야 하는지 등의 질문에 대하여 스님께서는 쉽고 명쾌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마무리 법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노동의 해방은 노동이 놀이가 되는 거다, 이것만 깨달으면 일체 세상살이가 놀이가 된다, 직장에서 월급받고 일하기 때문에 중노동이다, 골프장 캐디는 돈을 받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고 골프 치는 사람은 놀이를 한다, 돈을 주고 하면 삶이 주체적이 되고, 돈 받고 하는 것은 돈 때문에 비추체적이 된다. 어린애가 방에 똥을 누었는데 방에 있으면 오물이 되고, 밭에 가면 거름이 된다. 화내는 남자는 나쁜 남자도 아니고 좋은 남자도 아니다. 제법은 공하다. 존재 자체는 공인데 한 생각 일으키면, 부정적 생각을 하면 똥이 오물이 되고, 긍정적 사고를 하면 똥은 거름이 된다. 불행하려면 부정적 사고를 하고, 행복하려면 긍정적 사고를 하라. 절에만 다니지 말고, 교회만 왔다가다 하지 말고 공부를 하라. 인생이 행복해져야 한다. 인도네시아에 와서 사는 것, 구경한 것 만으로도 본전 뽑은 것이다. 매일매일 정진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스님께서는 8시 50분에 강의를 마치시고 책 싸인회를 하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줄을 서서 싸인을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도 스님 곁을 떠나기가 아쉬운 듯 보였습니다. 9시 5분 강연장을 출발하여 자카르타 공항으로 향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저녁식사도 거르신 채 11시 50분 자카르타 공항을 출발하여 4월 1일 아침 8시 반에 인천공항에 내리셨다가 곧 바로 대만으로 출국하셨습니다.스님께서 귀국하실 때까지 ‘스님의 하루’는 며칠 쉬겠습니다.
2013년 3월 30일 법륜스님의 하루(유치원, 보건소 준공식)
오늘 스님께서는 이곳 사무실에서 자동차로 2시간이나 가야하는 루북바송과 딴중마띠이라에서 유치원 두 곳 보건소 한 곳의 준공식에 참석하실 예정입니다. 9시 30분에 시작되는 첫 행사에 늦지 않으려고 4시에 일어나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마쳤습니다. 라마단의 스피커 소리는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도 울려 퍼졌을텐데 끝나고야 들렸습니다. 어제 스님 말씀대로 바깥 눈치 안 보고 맘껏 기도에 집중한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도 이곳 봉사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nbsp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기가 피곤하고 어려울수록 늘 눈뜨자마자 바로 기도하게 되면 초심을 잃지 않게 됩니다. 종교의식을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 마음의 중심을 잡아줍니다. 혼자 있으면 흐트러지기 쉬운데, 아침에 딱 한 시간 매일 정진하면 질서를 잡아줍니다. 하고 싶거나, 하기 싫거나, 정신이 맑거나, 정신이 흐리거나 상관하지 말고 그냥 쭉 하게 되면, 길게 보면 사는 사람의 질서를 잡게 됩니다. 항상 정진을 놓치지 않도록 하세요.” nbsp 아침공양을 준비하는 시간을 아끼려고 6시부터 운영한다는 화교 신도의 식당에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가 죽으로 아침에 공양을 하고 6시 20분에 루북바송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가는 도중 2011년에 JTS가 코이카와 함께 건립한 유치원을 둘러보았습니다. 마침 노래를 부르며 체조를 하려고 모여 있던 유치원 어린이들이 달려와 스님 일행에게 한 명 한 명 악수를 청했습니다. 저마다 악수 한 손을 잡아당겨 제 이마에 갖다 대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귀여우면서도 정성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유치원 시설을 조용히 둘러보시고 아이들 체조하는 모습도 잠시 보셨습니다. 유치원 바로 옆에는 무슬림의 성전 건물이 짓다 만 채로 앙상하게 버티고 있었습니다. 우리 봉사자 임희성 거사님이 “몇 년째 건물을 짓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돈이 모이는 대로 조금씩 짓는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시 행사장으로 향하면서 스님께서는 “우리가 불교도이면서 무슬림의 종교시설 옆에 무슬림 아이들의 교육을 위하여 유치원을 짓는 것이 어찌 보면 모순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제 때에 교육받게 하는 것과 병 든 사람은 치료해야 한다는 JTS의 이념에는 부합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이억만리 남양군도 현재 겉모습만으로는 우리나라 농촌보다 가난하지 않은 것 같은 무슬림 사람들에게까지도 지진피해 복구를 계기로 이렇게 유치원과 보건소를 짓고, 관개수로를 정비하고, 식수를 해결해 주느라고 애쓰는데 우리와 같은 땅에서 굶주리는 북한동포들을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함과 함께 서글픔이 느껴졌습니다. nbsp 9시 15분경 드디어 오늘 유치원 개원식에 있는 딴중마띠이라 띠꾸우따라 두리언카페마을 유치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온 마을에 요란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유치원 마당 휘황찬란한 차일 아래 맘껏 차려입은 주민들이 한쪽에서는 음식을 준비하고, 한쪽에서는 공연을 준비하는 등 마을 전체가 온통 축제의 도가니였습니다. 9시 35분에 시작된 개원식 행사는 15분간의 종교의식을 시작으로 마을이장, 군수부인의 축사에 이어 스님의 축사, 아감교육청장의 축사가 이어졌고 이슬람 성직자의 종교의식과 선창 연설로 공식행사를 마무리 하고 스님께서 건물 개관 테이프를 끊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교육청장, 군수부인 등과 함께 유치원 교사가 안내하는 유치원 시설을 한 곳 한 곳을 돌아보셨습니다. 마지막 교실에는 마을 주민들이 정성껏 마련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주로 말린 생선이나 고기를 튀겨 소스를 얹은 낯선 음식들이라 우리 식성에는 맞지 않았지만 그 분들은 음식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우리가 먼저 먹기를 권했습니다. 그러는 그분들의 모습으로 보아 거기 놓인 음식들 모두가 평소에 아주 귀하게 여겨 정성껏 마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nbsp 공식행사가 끝나자 무대에서는 마을 주민들의 노래와 춤 등 장기 자랑 대회가 이어졌고, 우리는 주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우리는 다음 행사장으로 떠났습니다. nbsp 두리언카페 마을 유치원에서 하신 스님의 축사의 요지를 옮겨 봅니다. nbsp“오늘 두리언카페마을 유치원 개원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마을 주민 여러분, 유치원 짓느라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유치원을 짓는데 수고하신 우리 마을 주민들을 위해서 크게 박수 한 번 쳐주세요. nbsp유치원 개원식에 참석해주신 군수부인님, 면장님, 교육청장님 다 감사드립니다. 제가 3년 전 지진으로 파괴된 모습을 보고 갔는데 이번에 빠당 주위를 방문하면서 거의 다 복구된 모습을 보았습니다. 복구하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진은 우리에게 큰 불행이었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 지진으로 인해서 제가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릴 때 교육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유치원을 이렇게 여러분들이 지어서 교육시킨다면 여러분들의 아이들은 여러분들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건물은 훌륭하게 지어놓고 아이들을 보내지 않는다면 건물이 무슨 소용이 이겠습니까? 학부형 여러분, 아이들을 다 유치원에 보내실 거죠? nbsp 인도네시아는 땅이 아주 넓고 자원도 많습니다. 세계적으로 아주 큰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 교육입니다. 두리언카페 유치원이 그런 역할을 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유치원 짓느라고 수고하신 주민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나날이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오후 1시에 열리는 루바북송면 깜풍땅아리 뗑꽁뗑꽁마을 유치원 개원식까지는 여유가 좀 있었습니다. 그 시간을 이용하여 스님께서는 가까운 곳에 있는 바다구경을 시켜주셨습니다. 말로만 듣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서해, 인도양 드넓은 바다가 우리 눈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야자수 그늘아래 해운대 백사장보다 더 넓은 백사장에 파도만 일렁일 뿐 사람의 모습은 없었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강에서만 수영을 하지 해수욕은 안하는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발을 벗고 파도가 핥고 지나간 백사장을 거니시는 모습에서 망중한이라는 말의 참뜻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바쁜 일 잠시 다 내려놓고 모래 위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니 인도양 저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오전 내내 흠뻑 젖어버린 옷 속으로 스며들어 정말로 달고 시원했습니다. nbsp 오후 1시에 열린 뗑꽁뗑꽁 마을 유치원 개원식도 두리언카페마을 유치원 개원식과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민여러분께서 이렇게 덥고 힘들어도 유치원을 지은 것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자녀들 교육을 위해서입니다. 어린이들을 일찍부터 교육시키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어린이 때 공부하지 않고 커버리면 공부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인도네시아보다 훨씬 작고 자원도 매우 적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이 어느 정도 잘사는 것은 아이들 교육을 잘 시켰기 때문입니다. 제가 올해 나이 60인데, 저 어릴 때는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되어 쓸 수 있는 자원이 아무것도 없는 매우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밥을 먹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저희 부모님들이 저희를 공부시킨 덕분에 저희가 여기까지 와서 유치원을 짓게 되었습니다. nbsp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보다 낫게 되기를 원한다면 교육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아이들을 전부 유치원에 보내서 좋은 교육을 받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아이들 전부 유치원에 보낼 거죠? 약속했어요 앞으로 30, 40년 후 이 유치원 출신이 인도네시아에서 큰일을 할 수 있도록 공부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 nbsp 이 유치원에서도 개원 테이프를 스님께 자르게 하고 시설을 안내한 뒤, 주민들이 손수 장만한 음식을 대접하였습니다. 곧 다음 행사 일정이 촉박하다고 사양했지만 굳이 들고 가시라고 해서 손님을 대접하는 인심은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에 더 친근감이 들었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서둘러 이동해서 3시 루바북송면 깜풍땅아리 심팡움팟마을 보건소 개원식에 참석하셨습니다. 보건소에 도착하자마차 소나기가 세차게 내렸습니다. 우리나라 여름날 소나기는 더위를 식혀주는 청량제가 되는데, 이곳은 워낙 더워서 그런지 소나기가 그치고 나서도 마치 가마솥 속인 것처럼 더웠습니다. 스님께서도 연신 머리와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축사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nbsp“주민 여러분들이 고생해서 지은 이 보건소를 정부가 잘 운영하고 모든 혜택은 주민여러분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아감의 건설책임자와 보건책임자도 오셨는데 내빈들 참석해 주신 것 감사하며 이 보건소 잘 운영해 달라는 요청의 박수 부탁합니다. 박수 받으셨으니까 운영 잘하셔야 합니다. 저희 JTS는 어떤 일도 주민과 정부와 함께한다는 뜻에서 Join Together Society라 합니다. JTS가 보건소를 지어준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함께 보건소를 지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처음에 ‘지어주려면 다 지어주지’ 하고 좀 섭섭했을지 모르지만 우리 건강을 지켜주는 보건소를 함께 만들자는 뜻에서 여러분들을 참여하게 한 것입니다. 힘드셨지만 짓고 나니까 기분 좋죠? 이 보건소가 여러분의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nbsp 이곳에서도 보건소 시설을 소개하고 마지막 방에 주민들이 음식을 차려놓고 스님일행이 들고 가실 것을 권했습니다. 조금 전에 유치원에서 식사를 했고, 또 우리 사무실 근처 부끼띵끼에 사는 통역 봉사자가 7시까지는 돌아가야 해서 사양을 해도 막무가내로 붙잡았습니다. 우리는 정말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8시에 회의를 시작하셨습니다. 이번 방문기간 동안 스님께서 이 지역에서 진행한 사업과 사업예정지를 돌아보신 내용과 김기진 감사님이 감사하신 내용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대책회의를 하신 것입니다. 회의가 열띠게 진행되는 중 9시 반경에 정전이 되었습니다. 촛불 하나에 의지해서 계속된 회의는 12반에야 끝났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사업의 평가와 감사를 하시는 목적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JTS가 국제 NGO로서 지금도 투명하게 잘하고 있지만, 행정절차를 보다 체계화하고 재정의 투명성을 정립한다는 취지에서 해외사업부분에 대해서도 혹시 미진한 부분이 없는지 보완하자는 것이다, 또 각국에 파견된 봉사자들이 같은 원칙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보다 세밀하고 일관성 있는 매뉴얼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하신 후 봉사자들의 노고를 거듭 위로하셨습니다. nbsp오늘은 행사가 많고 전해드릴 이야기가 많아서 길어졌습니다. 내일은 자카르타에서 교민들을 위한 법회가 있습니다.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3월 29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네시아 사업예정지 답사)
스님께서는 새벽 예불과 천일기도를 마치고 돌아앉으시면서 “오늘은 눈치 안 보고 맘껏 예불을 할 수 있어서 좋으네” 하시며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스님께서 예불을 시작하자 곧 마을 전체에 스피커로 라마단의 기도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에 우리도 맘껏 소리내어 예불을 할 수 있었다는 말씀인 것 같았습니다. 이곳 사람들 99가 무슬림이라고 들었는데 시골이건 도시이건 몇 집 건너 있다고 할 만큼 가까이에 무스크가 있고 새벽에 온 국민을 깨워 기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nbsp 우리도 스님을 마주하고 둘러앉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이곳 봉사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봉사한다고 왔지만 주는 입장, 결정하는 입장이다, 인도에서 경험해 보니 이런 입장에 있다 보면 봉사자와 주민이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가 된다, 이렇게 하면 업무상 효율은 높아지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과는 멀어진다.’ 우리 봉사자들이 만리타국에 와서 유치원과 학교, 보건소를 짓고, 다리를 놓고 하는 일들이 사람들을 편리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생활의 질을 높이는 것이 되지만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근본임을 잊지 말라는 간곡한 당부를 짧지만 명료하게 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곳에서 진행할 사업예정지를 답사하기 위하여 8시에 사무실에서 출발하셨습니다. 가는 길에 부끼띵끼에서 유일한 절인 비하르에 잠시 들르셨습니다. 부처님을 참배하고 기도를 하신 스님께서는 이곳 신도회장과 신도들의 예배를 받으시고, 5월에 결혼한다는 예비부부에게 축원하시고 기념사진을 함께 찍으셨습니다. nbsp 오늘은 빗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주민들의 식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원지가 될 만한 샘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차라리 걸어가는 게 시원하고 빠를 것 같은 좁고 울퉁불퉁한 길을 한참 가다 멈춘 곳에 대나무 호스를 통해 맑은 물이 콸콸 쏟아지는 곳에서 차가 멈췄습니다. 주민 세 분이 미리 나와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호스에서 나오는 물맛을 보셨습니다. 주민들은 여기서 300m쯤 더 가면 샘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30m 쯤 아래에 웅덩이 같은 샘이 보였고, 스님께서는 조심조심 그곳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저 아래 호스에서 나오는 물과 윗샘의 물이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윗샘에 수원지를 설치하는 데는 산길이라 장비와 자재를 옮기는 것도 어렵고, 윗샘물과 아랫샘물 사이에 사람이 살지 않으니 수질도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고 하자 마을 주민들은 윗샘에 수원지를 만들어 관을 통해 마을에서 맑은 물을 마시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두 곳 물의 수질검사와 물의 양을 비교해 본 후 결정하자고 하셨습니다.nbsp 내려오는 길에 맑은 물 수원지를 요청하는 마을을 돌아보았습니다. 그곳에서 마을 유치원 처마에 홈통을 대고 관을 연결해서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물탱크에 모아서 마을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도록 JTS에서 시설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탱크 옆에는 예전부터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사용하는 수조가 있고 거기에 담겨 있는 흐린 물로 마을 사람들이 몸을 씻고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 중 절반 가량은 자기 집 처마에 홈을 설치하여 받은 빗물을 사용하고 나머지 반은 JTS가 설치한 탱크에서 맑은 물을 길어다가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봉사자가 물탱크에서 패트병에 물을 받아 보였는데 여느 생수와 다름없이 맑았습니다. 물맛도 좋다고는 하지만 녹슨 함석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이라 오래 먹다보면 철분이 중금속으로 쌓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스님께서는 걱정하고 계십니다. 마을의 여러 집에 들어가 보고 물을 사용하는 모습을 돌아보고 무슬림 사원의 공동 수조도 살펴보았습니다.nbspnbsp 마을의 물 사정을 살피고 돌아오는 길에 스님께서는 JTS에서 농기구를 기증했던 마을에 들러 농기구 보관 상태를 살피셨습니다. 탈곡기와 세발경운기를 마을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무슨 영문인지 바퀴에 바람을 빼놓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바퀴를 그 상태로 오래 두면 굳어져서 바람을 넣으면 새게 된다고 걱정하셨습니다. 옛날 우리나라 어려울 때, 농기구가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데 농기구를 함부로 다루는 것을 보면 면 마음이 쓰인다고 하셨습니다. nbsp 수원지 답사와 농기구 상태를 살펴본 우리는 사무실로 돌아와서는 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때웠습니다. 스님께서는 오후에는 이곳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칼데라호인 신까락 호수를 보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인도네시아 JTS의 사업진행과 재정지출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이번에 함께 오신 김기진 감사님은 오전에 답사를 함께하지 못했는데 호수 구경도 다음기회로 미뤄야 했습니다. 산까락 호수는 정말 넓고 맑은 물이 잔잔히 출렁거리는 것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멋있다는 감탄사를 연발하시는 스님을 뵈면서 맑은 호수와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었습니다. nbsp 이곳 불교신도는 모두 화교들이라고 합니다. 신도회장 가족이 어제 스님께 찾아와 예배하고 오늘 저녁공양을 초청하였습니다. 우리는 호수에서 돌아오는 길에 부끼띵끼의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갔습니다. 신도회장 가족과 신도회 간부들도 함께 참석하여 편안히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신도회장은 이곳에서 건재상을 하는데 불심이 아주 깊어 빠당공항까지 나가 이곳을 찾아오시는 스님들을 직접 마중하고 스님들께 공양 올리는 일이 아주 기쁘고 영광스럽다고 합니다. 신도회장 부인 주이따는 평소에는 남편의 사업을 돕는데 영어에도 능통해서 스님께서 이곳 사업을 돌아보시는 3일 동안 통역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성격이 아주 밝고 항상 활기가 넘칩니다. 우리 최보살님께 ‘보살님, 보살님’ 하고 정확한 우리말 발음으로 정겹게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주위 사람들 마음까지 밝아지는 것 같습니다. 신도회장의 작은딸 생일이 어제였는데 스님께 저녁공양을 올리면서 딸 생일을 축하하려고 일부러 오늘로 미루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작은딸의 생일을 마음껏 축하해 주었습니다. 이곳은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라 매일 비가 온다고 합니다. 아마 구름이 지나가다 이 거대한 언덕에 부딪쳐 비로 변하는 모양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시작된 비는 밤이 깊은 지금까지 내리고 있습니다. 내일은 JTS가 지은 유치원 두 곳과 보건소 한 곳의 준공식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3월 28일 법륜스님의 하루(보건소 준공식, 관개수로 둘러보기)
자카르타 공항에서 앉은 채로 지새울 뻔했던 인도네시아에서 첫 날을 보내고 새로운 하루를 맞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밤 12가 넘어 숙소로 향하셨다가 6시에 출발하는 첫 비행기를 타려고 4시에 일어나 서둘러 공항으로 가셨습니다. 웨스트수마트라주 아감 띨라땅가 꼬또땅아 꼬또말린땅 마을보건소 준공식이 11시에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행기는 6시에 출발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박지나 대표가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아무리 항의를 해도 결국 비행기는 8시 반에 출발한다고 하였습니다. 비행기가 6시에 뜨지 못하고 8시 반에 뜬다고 했더니 JTS 봉사자들과 꼬또말린땅 마을주민들은 보건소 준공식 행사를 12시로 연기했다는데도 우리가 탄 비행기는 9시 25분에야 겨우 자카르타 공항을 떠났습니다. 결국 꼬또말린땅 마을보건소 준공식에는 스님께서 참석하지 못하고 관청관계자와 마을 주민 300여명이 참석하여 보건소 준공을 축하하고 주민들이 손수 민속공연도 하는 등 뜻 깊은 행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참석했던 봉사자들은 주민들이 정성껏 준비한 잔치에 스님께서 함께하지 못한 것을 매우 아쉬워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점심도 거르시고 파당공항에서 2시간 이상 자동차를 달려 띨라땅가 꼬또땅아 마을과nbsp우바 마을 간에 건설된 관개수로 3,240m의 준공식에 참석하실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을 주민들끼리 준공식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스님을 모신 자리에서 준공식을 하고 싶다면서 내일로 연기했다가 스님께서 오신다는 기별을 받고 다시 오후 2시로 당겼다고 합니다. JTS와 스님께 주민들이 느끼는 감사의 마음이 어떠한지 짐작하고도 남을 듯 했습니다. JTS가 코이카와 협력하여 이곳에 건설한 관개수로는 JTS가 자재를 대고 마을 주민들이 노동을 제공하여 완공되었습니다. 원래 흙이나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수로인데 폭우가 내리면 마을과 농경지로 범람하여 피해가 컸다고 합니다. 여기에 50cm 쯤 더 높이 석축을 쌓고 시멘트로 미장을 하여 홍수를 막고 논에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중요한 시설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관개수로가 건설된 현장에 도착하여 1km 정도 걸으시면서 공사내용을 꼼꼼히 살피셨습니다. 그리고 왜 어떤 데는 마무리가 말끔하고 어떤 데는 거친지, 수로를 높이고 나서 추가로 홍수피해 우려는 없는지 등 궁금한 점을 물으셨습니다. 주민들의 대답은 명료하였습니다. 동네마다 자기집 앞 수로를 공사하였는데, 솜씨가 달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마을에 홍수피해는 없을 것으로 믿는다는군요. 관개수로 준공식에는 마을주민 200여 명과 띨라땅가장 꼬또땅아장, 마을촌장, 여러 마을을 아우르는 관개수로건설위원회 위원장과 마을 원로들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마을 이장은 연단에 나와 축사를 하면서 감격에 목이 메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주민들과 함께 “JTS OK”를 연호하며 호흡을 함께하는 모습이 참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축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동네 관개수로 준공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수로 만드시느라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최근에 폭우가 내렸다는데 많이 힘드셨죠? 저는 멀리 한국이라는 곳에서 왔습니다. JTS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수로가 완공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번 일처럼 우리가 힘을 합쳐서 함께하면 우리 자신을 위해 큰 일을 함께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신께 무조건 도와달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행하면 신께서 우리를 보살펴 줄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께서 이번 수로 일처럼 힘을 합하여 마을을 위해 일한다면 저도 멀리 있지만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돕겠습니다. 여러분 내년에는 또 뭘 하시렵니까, 어떤 일을 하고 싶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올해는 애 많이 쓰셨으니까 좀 쉬시고 내년에 좋은 일을 찾아서 함께 해 나갑시다. 여러분들의 노고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스님께서는 띨라땅가 꼬또땅아 마을과 우바 마을 간의 관개수로를 JTS와 코이카, 그리고 아감이 함께 건설했다는 내용의 표지판 제막식에도 참석하셨습니다. JTS 사무실로 오시는 길에 오전에 준공식이 끝난 꼬또말린땅 마을보건소에 들르셨습니다. 이 보건소는 16개 마을 750가구 3천여 명의 주민이 이용할 의료시설인데 앞으로 의사 한 명과 간호사 2명, 빠다 1명이 근무할 것이라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보건소 건물 곳곳을 찬찬히 살펴보시고 주민들과 함께기념촬영을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30일까지 이곳에 머무시는 동안 숙소로 사용하실 인도네시아 JTS 사무실에 오시기까지 꼬박 하루 반이 걸렸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동안 사업을 진행한 봉사자들을 격려하신 후, 수마트라 지역의 커다란 지도를 펼쳐 놓으시고 이후 진행할 사업을 논의하셨습니다. 내일 스님께서는 이 지역에서 진행할 사업예정지를 답사할 계획입니다.
2013년 3월 27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네시아로 출발)
오늘 아침 서울, 햇살은 눈부시고 바람은 차가웠습니다. 스님께서는 JTS 인도네시아 사업장을 방문하시기 위해 7시 30분에 서초정토회관을 출발하셨습니다. 오늘 스님 여정은 자정 넘어까지 이어질 것 같습니다. 자카르타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수마트라섬 뺘당공항까지, 그리고 다시 자동차로 2시간을 더 달려 JTS 사업장까지 가시기 때문입니다. 2009년 9월 인도네시아 웨스트수마트라주에 진도 7.2의 강진이 엄습해서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 지진피해 복구를 위해서 JTS는 긴급지원을 시작했고, 첫해는 주로 사람들이 살 주택을 지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유치원을 짓고 보건소를 짓고, 파괴된 수로를 복구하는 등 이 지역에서 사업을 계속해 왔습니다. 이번 방문은 아감 3개면에서 관개수로 3,240m 건설하고, 유치원 두 곳, 보건소 두 곳의 개원식에참석하기 위함입니다. 스님께서는 이 관개수로 공사의 준공식과 유치원, 보건소 개원식에 참석하시는 한편, 마을 주민들을 위로하고, JTS 봉사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가시는 것입니다.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7시간여만인 오후 4시 자카르타공항에서 착륙하였습니다. 공항에는 인도네시아 불자회에서 활동하시는 거사님과 보살님들이 반겨주었습니다. 오는 31일에 있을 스님의 법회 홍보포스터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이곳 KTV에 2시간 간격으로 방영하고 있다고 스님께 자랑삼아 보고하는 모습이 참으로 당당해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분들과 담소를 나누고, 기념사진도 찍으시고, 뺘당공항으로 가는 6시 35분 비행기를 갈아타셨습니다. nbsp 7시 20분경에야 움직이기 시작한 비행기가 30분 이상 공항을 맴돌더니 승객 전원을 내리라고 안내방송을 했습니다. 국내선이라 이 나라 말로만 안내를 하니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 내렸고, 공항내 버스를 타고nbsp내리고, 한참을 이동한 후에 공항라운지로 안내되었습니다. 박지나 대표가 뒤늦게 알아보니 빠당공항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고장이 나서 그 비행기를 이동시켜 활주로를 확보할 때까지는 우리가 타고갈 비행기가 이륙을 못한다고 합니다. 언제 활주로가 트여 비행기가 정상적으로 운항될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공항 안의 음식점들도 모두 문을 닫은 시간, 다행히 라운지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쳤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시간으로 새벽 1시가 되어 갑니다. 우리와 함께 내린 다른 승객들은 아무런 동요 없이 책을 읽거나 가족끼리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의자에 눕거나 기대어 잠든 모습이 편안해 보이면서도 이채로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승객들이 어떤 모습을 보일까 잠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식사 후 계속해서 이메일로 받으신 서류를 검토하시다가 조금 전 의자에 잠시 몸을 기대어 눈을 붙이셨습니다. 스님께서 내일 예정된 준공식에 무사히 참석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두 손을 모읍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첫 밤이 이렇게 깊어 갑니다. 아 그런데 박지나 대표가 고객센터에 문제를 제기해서 숙소를 제공받기로 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공항에서 자도 괜찮지만 외국에서 말을 할 수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하고 그저 처분만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박대표의 노고를 치하하셨습니다. 이 곳 시간으로 1시 넘어서 숙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내일, 아니 잠시 눈 붙이고 4시에 일어나 공항으로 가서 6시로 예정된 비행기를 타기로 하고 휴식에 드셨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년 3월 26일 법륜스님의 하루(열반재일)
오늘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날을 기념하는 열반재일입니다. 전국 정토회에서는 출가재일부터 오늘까지 8일간 매일 법문을 듣고 특별정진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특별정진을 회향하는 날이었습니다. 서초정토회관에서 오전, 오후 스님 직강이 진행되어 사람들이 많이 참가했습니다. 특히, 오후에는 신발 놓을 공간이 없어서 현관문을 열고 바깥 바닥에까지 놓을 정도였습니다. 스님께서 부처님의 일생을 전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서, 열반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열반이라는 말은 괴로움이 소멸된 상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 막 기뻐서 흥분된 상태가 아니라 아무 괴로움이 없는 마음이 고요한 상태입니다. 열반이라는 것은 욕구따라 일어나는 고락이 아니고, 그 고락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즉, 모든 괴로움이 사라진 상태, 괴로움과 즐거움이라고 하는 윤회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 윤회에서 벗어났다고 할 때는 해탈이라는 용어를 쓰고, 괴로움이 사라졌다고 할 때는 열반이라는 용어를 씁니다.nbsp “그러면 왜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날을 열반일이라 할까요? 제일 두려움이 많이 일어날 때가 죽음입니다. 온갖 두려움이 있지만 제일 두려운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 앞에서 마음이 여여하다, 아무런 흔들림이 없다하면 모든 것에서 흔들림이 없다 할 수 있겠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번뇌하지 않으면 이를 열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오늘밤에 열반에 들 것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부처님을 마지막 친견한다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무리지어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다 가고 나서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물을 것이 있으면 물어라.’하셨습니다. ‘친구가 친구에게 묻듯이 그냥 편하게 물어라.’ 이렇게 세 번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세 번 이야기를 하니 그 때 아난존자가 ‘저희는 아무런 의문이 없습니다. 여래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할 일은그 가르침에 따라 정진할 일만 남았습니다.’하였더니 부처님께서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다. 육신은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너희들 곁에 남아 있으리라. 지붕의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수행정진하라.’ 이것을 불방일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모습이 털끝만큼도 번뇌나 미련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날을 입멸이라 합니다. 완전한 열반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열반하시는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여여한 당신의 모습이 눈에 그려집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만으로도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하게 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귀의하게 됩니다. nbsp 오늘 스님께선 오전, 오후 법문 외에도 일정이 많았습니다. 아침 일찍 평화재단에서 약속이 있었고, 법문 들어가셨을 때도 조금 늦게 도착한 미국에서 오신 분들이 스님 강연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전 강연 마치고 미국에서 오신 분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시고, 간단하게 식사를 하시고 미리 약속되어 있던 장소로 급하게 가셨습니다. 오후 3시에는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라는 책을 출판한 구글의 명상전문가 챠드 멍탄씨는 한국의 모 신문사에서 강의를 하고 받은 1만불을 JTS에 전달했습니다. 구글을 검색해서 JTS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JTS 북한사업에 대한 동영상을 보여드리고, JTS 전체 사업에 대한 설명도 해 드렸습니다. 스님과 수행과 사회활동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nbsp 4시에는 세계도자비엔날레에 특강을 요청하기 위해서 스님 2분과 관계자 여러 분이 오셔서 스님과 말씀을 나누었고, 5시에는 또 다른 회의가 있어서 저녁 식사를 하시면서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오후 7시 30분에 열반재일 관련한 강의를 하시고, 9시 30분부터는 평화재단내 청년포럼, 청년학교, 청년대학생리더쉽 아카데미 운영진들과 청년운동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 청년들에게 하셨던 말씀 중 일부를 옮겨 봅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국가 발전의 비전은 통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동체 전체의 발전과 비전을 생각할 때 통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 공동체안의 구성원들인 국민의 행복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심화되어야 합니다. 아랫단위에서는 직접 민주주의가 이뤄지고 국가차원에서는 대의 민주주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경제에서는 부가 분산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경제 민주화입니다. 경제민주화가 기회의 균등, 과정의 공정성을 말한다면, 복지는 경쟁력이 없는 사람, 일시적 낙오자에게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 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노인, 병자, 장애인, 실업자와 같이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최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전 안전망을 구축해줘야 합니다. 사회 안전망이 갖춰지면 삶에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정치, 경제적 민주화가 이뤄지면 자기 의사가 사회에 반영이 되니까 국민들이 불만이 없어집니다. 이런 방향의 운동이, 여러분들의 개개인의 삶과 긴밀히 연결이 됩니다. 이제는 나를 희생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전공이, 내 직장이 사회 발전과 다 맞물러 있기 때문에 자기의 성공, 자기 실현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의 추구가 자기 성공을 희생하고 하는 것이 아니고,인류행복의 방향에 설 때 자기가 가장 성공적으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 그런 방향에서 새로운 문명, 새로운 활동을 만들어야 합니다.” nbsp 청년 운영진들은 스님과 대화를 하면서, 청년답게 의견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자유롭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제는 청년운동이 국가 비전을 이야기하고, 통일을 이야기하고, 이 땅의 청년들의 행복을 이야기하고, 청년 개인의 행복 마인드까지 이야기를 합니다. 청년들이 어깨를 당당히 펴고 맘껏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꿔 봅니다. 내일부터 스님께선 인도네시아 사업장 방문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인터넷 사정이 어떨 지 잘 모르겠습니다. 현지에서 스님의 소식 올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nbsp
2013년 3월 25일 법륜스님의 하루(충주, 청주)
오늘은 2013년 희망세상만들기 100강 중 5, 6강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정토회관에서 아침 발우공양까지 하고 오전 8시 30분경에 충주로 출발했습니다. 꽃샘추위가 길게 가는 것 같습니다. 바람이 차가웠습니다. 충주KBS 방송국에 30분 가량 일찍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선 시작시간까지 차 안에서 원고점검을 하셨습니다. 청주, 제천의 정토행자님들과 중부사무국에서 와서 행사 준비를 한참 하고 있었습니다. 행사전에 제천으로 귀농한 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희가 읍내에서 불교대학도 3년째 하고 있고, 동네에서 가정법회도 하고 있는데, 전에 사이가nbsp좋지 않던 부부들이 이제는 잉꼬부부가 되었어요. 스님 법문을 매주 듣고 전체 동네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참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스님 법문을 듣고 내 괴로움이 없어지고, 가정이 화목해지고,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복원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이 쌓여 나가면 지역 공동체가, 국가 공동체가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어 갈 것 같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전법이 참으로 소중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충주는 입재식 때마다 가는 곳이고, 서울에서 문경수련원에 가려면 언제나 지나가는 곳이라 괜히 낯익고 편안한 느낌의 도시였습니다. 날이 차가운데도 다들 예쁘게 차려 입고 강연장에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낮 시간인데도 젊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nbsp 젊은 청년이 일어나 질문을 했습니다. “고부간의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제 어머니와 할머니의 관계가 소원하셔서 그 사이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할머니에게는 할머니로서 깍듯이 예를 갖추고, 엄마에게는 엄마로서 잘 대해 주면 됩니다.어떻게 내가 부모를, 할머니를 내 원하는대로 하라고 할 수 있겠어요?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하는 생각은 딱 끊고, 손자로서 할머니에게 잘 하면 되고 아들로서 어머니에게 잘 하면 됩니다. 내가 말해서 할머니를 바꾸고, 어머니를 바꾼다고 생각하면 결국 두 분이 다 내 말 안 들을 것이니까 나중에는 두 분 다 미워져요. 그래서 나중에는 둘이 싸우든지 말든지 모르겠다하고 외면하게 됩니다. 그러면 불효가 되는 거예요. 그 두 사람이 어떻게 되든 그것은 그들의 문제예요. 자, 따라 해 보세요. “앞으로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가족관계가 왜 갈등이 생기는 걸까요? 지나치게 간섭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싸우는 것은 나와 관계가 없어요. 어머니가 할머니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면 들어주면 됩니다. 그런데 할머니 욕을 하면 안 돼요. 그리고 또 할머니가 전화와서 엄마 욕하면 그냥 ‘그래요? 그랬어요?’ 하면서 들어주면 됩니다. 그들의 인생이예요. 그들대로 살도록 놔두세요. 나는 내 할 일을 하며 됩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싸워도 나는 평화를 유지할 수 있어요. 내가 두 분을 미워하지 않으면 할머니와 어머니는 싸워도 나와 할머니, 나와 어머니는 잘 지낼 수 있잖아요? 나로 인해 그나마 집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 젊은이에게 결혼해서는 어머니와 부인 사이에서 남자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결혼을 하면 자기 가정을 부모님보다 우선시 하고, 부모에게는 정을 끊되 공경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후 ‘자기가 어느 집 며느리인 사람 손 들어 보세요?’ 하시고는또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남편에 대한 소유권은시어머니에게 있고, 경영권은 나에게 있다는 것만 며느리가 정확히 인식하면 고부간의 갈등이 생길 일이 없다는 말에 사람들이 많이 웃었습니다.다음으로 ‘시어머니 되는 사람 손 들어 보세요?’ 하시고는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절대 아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해서는 안되고, 부부의 정을 끊는 것은 인륜의 정을 끊게 하는 것이라고 하시며 자식에 대한 정을 끊되, 이제는 자식을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다들 부모님이기도 하고, 아들이기도 하고, 며느리이기도 하다보니 즐거워하며 자기 입장에 비추어 가며 스님 말씀을 경청하는 것 같았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nbsp 충주에서 강연을 마치고, 찾아온 손님이 있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신 후, 서울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 어깨와 팔이 저리고 아프다며nbsp서울 가서 탈골된 것을 교정하셨습니다. 수요일부터 인도네시아 방문을 하게 되어서 미리 치료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치료를 받고, 다시 청주로 내려갔습니다. 청주에 가서는 혼자 계시는 실상화 보살님댁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라면을 끓여서 충주에서 받은 김밥을 곁들여서 저녁으로 먹었습니다. 실상화 보살님은 ‘나이가 많아지니까 이제 외로워져.’하시면서 참 반가워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나이가 들면 당연히 외로워지고 병이 오는 것입니다.’ 웃으며 보살님을 위로하셨습니다. 저녁 식사 후, 오늘 강연이 있는 충북대학교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 학생처장님과 사전 차담을 한 후 강연장으로 들어가시는데, 아직도 강연장에 들어가지 못한 시민들과 학생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습니다. 청주청년정토회가 주최가 되어 준비한 행사라 그런지 청년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무대에도, 복도에도 앉아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1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강연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스포터즈 모집을 했는데, 40여명이 참가해서 면접도 보고, 산행도 하면서친목과 결속을 다졌다고 합니다. 행사 준비와 홍보를 열심히 해서 10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참가를 한 것 같았습니다. 오렌지색 티를 입고 머리띠를 하고 열심히 행사 안내를 하는 서포터즈들. 참가하는 사람들 사진을 바로바로 찍어서 로비에 전시하기도 하며 신나게 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청년대학생들이 참가를 많이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질문도 모두 청년대학생들이 했습니다. 추상적인 질문부터 당장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부분까지 많은 질문이 있어서 2시간 30분가량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nbsp 비효율적인 한국 교육의 현실, 강요하는 대학의 술문화, 수업시간에 열심히 질문하는 것에 대해서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묻는 32살의 교대 새내기, 한국의 불교에 대해서 묻는 티벳 학생,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이야기가 오가면서 혼수, 집 장만 등으로 싸우게 되어서 힘들다는 건축학과 남학생, 어렸을 때는 돈보다 행복이 우선이었는데, 이제는 돈이 없으면 불행하게 되는 현실 앞에서 돈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지 궁금하다는 22살 여학생, 부모님의 종교간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어머니 앞에서 제사도 지내고 싶고, 어머니 신앙도 지켜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지 묻는 25살 남학생, 어릴 때부터 농업에 관심이 있어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농대에 입학했는데 농업이 사향사업이라고 하고 여자가 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청년농업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는 질문 등 젊은이들의 고뇌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중 집안의 종교갈등에 대해서 질문한 학생의 내용을 올려 봅니다. “저는 25살입니다. 저희 집안에서 종교차이 때문에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25년째 많이 다투고 계십니다. 불교집안에 어머니가 시집오셔서 기독교인지만 맏며느리라 참으면서 제사를 지내셨는데, 이제 할머니가 관여를 안 하시니까 어머니가 제사를 못 지내겠다고 해서 싸운 적이 있습니다. 이제 자식들도 다 출가를 해서 어머니는 기댈 곳이 하느님밖에 안 계십니다. 그래서 제가 어머니 기도하실 때 같이 하기도 합니다.저는 장남이라서 제사를 그만 둘 생각은 추호도 없는데, 어머니도 지키고 싶고 집안도 지키고 싶습니다.” “지금 하듯이 그렇게 하면 됩니다. 제사는 제사대로 지내고, 어머니가 기도하자고 하면 같이 기도하면 됩니다.” “저는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어라 믿어라 해서 하나님 믿는다고 했는데, 사실 저는 종교가 없거든요.” “올 해 몇 살이예요? “25살입니다.” “20살이 넘으면 더 이상 부모에게 의지해도 안 되고, 억압을 받아도 안 돼요. 독립을 해야 합니다.재정적으로 독립했어요?” “예.” “윤리도덕적으로 어머니 신앙은 어머니 신앙이고, 내 신앙은 내 신앙이예요. 어머니를 강요할 필요도 없고, 내가 어머니로부터 신앙을 강요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어머니를 존중해서 어머니 신앙을 지켜주면 됩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믿는냐고 물으면 ‘안 믿어집니다.’ 하면 됩니다. ‘어머니. 저는 장남으로서 우리 가문의 전통문화를 계승해 나갈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부모 자식이라도 그런 문제를 가지고 서로 억압하거나 억압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절에도 가고, 교회도 가도 됩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성경도 읽고 싶으면 읽고 불경도 읽고 싶으면 읽으면 됩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사상, 이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성년 남자로서 거기에 대해 위축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힘들어하면 함께 기도해 드리면 되고, 안 믿어지면 안 믿어진다고 하면 되고, 제사는 제사대로 지내면 됩니다. 제사를 지내는 것은 하나의 전통 문화예요. 그런 관점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사도 지내고 기도도 드리겠습니다.” 큰 박수 속에 강연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책 사인을 하고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 깜찍 발랄한 젊은이들이 스님 주변으로 몰려 들어 서로 서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nbsp 요즘 청년들은 모우기도 어렵고 모임도 안 된다고 하는데, 스님이 가시는 곳에는 오히려 청년들이 대세입니다. 청년들이 스님 주변으로 모여 듭니다. 스님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스님 강연을 듣고 고민을 이야기하고, 스님께서 강연하신 불교대학에 다니고, 스님과 함께 하는 역사기행에 청년들이 몰려 듭니다. 풋풋한 청년들의 마음들이 모여,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새로운 희망의 대한민국, 통일한국으로이어지길 기원해 봅니다. 청주에서 강연을 마치고 오늘도 고속도로를 벗삼아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부처님 열반재일입니다. 서울에서 오전, 오후 스님 법문이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 서울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