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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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8일 법륜스님의 하루(보건소 준공식, 관개수로 둘러보기)

자카르타 공항에서 앉은 채로 지새울 뻔했던 인도네시아에서 첫 날을 보내고 새로운 하루를 맞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밤 12가 넘어 숙소로 향하셨다가 6시에 출발하는 첫 비행기를 타려고 4시에 일어나 서둘러 공항으로 가셨습니다. 웨스트수마트라주 아감 띨라땅가 꼬또땅아 꼬또말린땅 마을보건소 준공식이 11시에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행기는 6시에 출발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박지나 대표가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아무리 항의를 해도 결국 비행기는 8시 반에 출발한다고 하였습니다. 비행기가 6시에 뜨지 못하고 8시 반에 뜬다고 했더니 JTS 봉사자들과 꼬또말린땅 마을주민들은 보건소 준공식 행사를 12시로 연기했다는데도 우리가 탄 비행기는 9시 25분에야 겨우 자카르타 공항을 떠났습니다. 결국 꼬또말린땅 마을보건소 준공식에는 스님께서 참석하지 못하고 관청관계자와 마을 주민 300여명이 참석하여 보건소 준공을 축하하고 주민들이 손수 민속공연도 하는 등 뜻 깊은 행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참석했던 봉사자들은 주민들이 정성껏 준비한 잔치에 스님께서 함께하지 못한 것을 매우 아쉬워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점심도 거르시고 파당공항에서 2시간 이상 자동차를 달려 띨라땅가 꼬또땅아 마을과nbsp우바 마을 간에 건설된 관개수로 3,240m의 준공식에 참석하실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을 주민들끼리 준공식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스님을 모신 자리에서 준공식을 하고 싶다면서 내일로 연기했다가 스님께서 오신다는 기별을 받고 다시 오후 2시로 당겼다고 합니다. JTS와 스님께 주민들이 느끼는 감사의 마음이 어떠한지 짐작하고도 남을 듯 했습니다. JTS가 코이카와 협력하여 이곳에 건설한 관개수로는 JTS가 자재를 대고 마을 주민들이 노동을 제공하여 완공되었습니다. 원래 흙이나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수로인데 폭우가 내리면 마을과 농경지로 범람하여 피해가 컸다고 합니다. 여기에 50cm 쯤 더 높이 석축을 쌓고 시멘트로 미장을 하여 홍수를 막고 논에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중요한 시설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관개수로가 건설된 현장에 도착하여 1km 정도 걸으시면서 공사내용을 꼼꼼히 살피셨습니다. 그리고 왜 어떤 데는 마무리가 말끔하고 어떤 데는 거친지, 수로를 높이고 나서 추가로 홍수피해 우려는 없는지 등 궁금한 점을 물으셨습니다. 주민들의 대답은 명료하였습니다. 동네마다 자기집 앞 수로를 공사하였는데, 솜씨가 달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마을에 홍수피해는 없을 것으로 믿는다는군요. 관개수로 준공식에는 마을주민 200여 명과 띨라땅가장 꼬또땅아장, 마을촌장, 여러 마을을 아우르는 관개수로건설위원회 위원장과 마을 원로들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마을 이장은 연단에 나와 축사를 하면서 감격에 목이 메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주민들과 함께 “JTS OK”를 연호하며 호흡을 함께하는 모습이 참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축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동네 관개수로 준공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수로 만드시느라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최근에 폭우가 내렸다는데 많이 힘드셨죠? 저는 멀리 한국이라는 곳에서 왔습니다. JTS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수로가 완공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번 일처럼 우리가 힘을 합쳐서 함께하면 우리 자신을 위해 큰 일을 함께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신께 무조건 도와달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행하면 신께서 우리를 보살펴 줄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께서 이번 수로 일처럼 힘을 합하여 마을을 위해 일한다면 저도 멀리 있지만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돕겠습니다. 여러분 내년에는 또 뭘 하시렵니까, 어떤 일을 하고 싶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올해는 애 많이 쓰셨으니까 좀 쉬시고 내년에 좋은 일을 찾아서 함께 해 나갑시다. 여러분들의 노고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스님께서는 띨라땅가 꼬또땅아 마을과 우바 마을 간의 관개수로를 JTS와 코이카, 그리고 아감이 함께 건설했다는 내용의 표지판 제막식에도 참석하셨습니다. JTS 사무실로 오시는 길에 오전에 준공식이 끝난 꼬또말린땅 마을보건소에 들르셨습니다. 이 보건소는 16개 마을 750가구 3천여 명의 주민이 이용할 의료시설인데 앞으로 의사 한 명과 간호사 2명, 빠다 1명이 근무할 것이라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보건소 건물 곳곳을 찬찬히 살펴보시고 주민들과 함께기념촬영을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30일까지 이곳에 머무시는 동안 숙소로 사용하실 인도네시아 JTS 사무실에 오시기까지 꼬박 하루 반이 걸렸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동안 사업을 진행한 봉사자들을 격려하신 후, 수마트라 지역의 커다란 지도를 펼쳐 놓으시고 이후 진행할 사업을 논의하셨습니다. 내일 스님께서는 이 지역에서 진행할 사업예정지를 답사할 계획입니다.

2013.03.29. 16,499 읽음 댓글 8개

2013년 3월 27일 법륜스님의 하루(인도네시아로 출발)

오늘 아침 서울, 햇살은 눈부시고 바람은 차가웠습니다. 스님께서는 JTS 인도네시아 사업장을 방문하시기 위해 7시 30분에 서초정토회관을 출발하셨습니다. 오늘 스님 여정은 자정 넘어까지 이어질 것 같습니다. 자카르타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수마트라섬 뺘당공항까지, 그리고 다시 자동차로 2시간을 더 달려 JTS 사업장까지 가시기 때문입니다. 2009년 9월 인도네시아 웨스트수마트라주에 진도 7.2의 강진이 엄습해서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 지진피해 복구를 위해서 JTS는 긴급지원을 시작했고, 첫해는 주로 사람들이 살 주택을 지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유치원을 짓고 보건소를 짓고, 파괴된 수로를 복구하는 등 이 지역에서 사업을 계속해 왔습니다. 이번 방문은 아감 3개면에서 관개수로 3,240m 건설하고, 유치원 두 곳, 보건소 두 곳의 개원식에참석하기 위함입니다. 스님께서는 이 관개수로 공사의 준공식과 유치원, 보건소 개원식에 참석하시는 한편, 마을 주민들을 위로하고, JTS 봉사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가시는 것입니다.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7시간여만인 오후 4시 자카르타공항에서 착륙하였습니다. 공항에는 인도네시아 불자회에서 활동하시는 거사님과 보살님들이 반겨주었습니다. 오는 31일에 있을 스님의 법회 홍보포스터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이곳 KTV에 2시간 간격으로 방영하고 있다고 스님께 자랑삼아 보고하는 모습이 참으로 당당해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분들과 담소를 나누고, 기념사진도 찍으시고, 뺘당공항으로 가는 6시 35분 비행기를 갈아타셨습니다. nbsp 7시 20분경에야 움직이기 시작한 비행기가 30분 이상 공항을 맴돌더니 승객 전원을 내리라고 안내방송을 했습니다. 국내선이라 이 나라 말로만 안내를 하니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 내렸고, 공항내 버스를 타고nbsp내리고, 한참을 이동한 후에 공항라운지로 안내되었습니다. 박지나 대표가 뒤늦게 알아보니 빠당공항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고장이 나서 그 비행기를 이동시켜 활주로를 확보할 때까지는 우리가 타고갈 비행기가 이륙을 못한다고 합니다. 언제 활주로가 트여 비행기가 정상적으로 운항될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공항 안의 음식점들도 모두 문을 닫은 시간, 다행히 라운지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쳤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시간으로 새벽 1시가 되어 갑니다. 우리와 함께 내린 다른 승객들은 아무런 동요 없이 책을 읽거나 가족끼리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의자에 눕거나 기대어 잠든 모습이 편안해 보이면서도 이채로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승객들이 어떤 모습을 보일까 잠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식사 후 계속해서 이메일로 받으신 서류를 검토하시다가 조금 전 의자에 잠시 몸을 기대어 눈을 붙이셨습니다. 스님께서 내일 예정된 준공식에 무사히 참석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두 손을 모읍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첫 밤이 이렇게 깊어 갑니다. 아 그런데 박지나 대표가 고객센터에 문제를 제기해서 숙소를 제공받기로 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공항에서 자도 괜찮지만 외국에서 말을 할 수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하고 그저 처분만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박대표의 노고를 치하하셨습니다. 이 곳 시간으로 1시 넘어서 숙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내일, 아니 잠시 눈 붙이고 4시에 일어나 공항으로 가서 6시로 예정된 비행기를 타기로 하고 휴식에 드셨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03.28. 15,550 읽음 댓글 9개

2013년 3월 26일 법륜스님의 하루(열반재일)

오늘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날을 기념하는 열반재일입니다. 전국 정토회에서는 출가재일부터 오늘까지 8일간 매일 법문을 듣고 특별정진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특별정진을 회향하는 날이었습니다. 서초정토회관에서 오전, 오후 스님 직강이 진행되어 사람들이 많이 참가했습니다. 특히, 오후에는 신발 놓을 공간이 없어서 현관문을 열고 바깥 바닥에까지 놓을 정도였습니다. 스님께서 부처님의 일생을 전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서, 열반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열반이라는 말은 괴로움이 소멸된 상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 막 기뻐서 흥분된 상태가 아니라 아무 괴로움이 없는 마음이 고요한 상태입니다. 열반이라는 것은 욕구따라 일어나는 고락이 아니고, 그 고락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즉, 모든 괴로움이 사라진 상태, 괴로움과 즐거움이라고 하는 윤회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 윤회에서 벗어났다고 할 때는 해탈이라는 용어를 쓰고, 괴로움이 사라졌다고 할 때는 열반이라는 용어를 씁니다.nbsp “그러면 왜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날을 열반일이라 할까요? 제일 두려움이 많이 일어날 때가 죽음입니다. 온갖 두려움이 있지만 제일 두려운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 앞에서 마음이 여여하다, 아무런 흔들림이 없다하면 모든 것에서 흔들림이 없다 할 수 있겠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번뇌하지 않으면 이를 열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오늘밤에 열반에 들 것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부처님을 마지막 친견한다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무리지어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다 가고 나서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물을 것이 있으면 물어라.’하셨습니다. ‘친구가 친구에게 묻듯이 그냥 편하게 물어라.’ 이렇게 세 번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세 번 이야기를 하니 그 때 아난존자가 ‘저희는 아무런 의문이 없습니다. 여래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할 일은그 가르침에 따라 정진할 일만 남았습니다.’하였더니 부처님께서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다. 육신은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너희들 곁에 남아 있으리라. 지붕의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수행정진하라.’ 이것을 불방일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모습이 털끝만큼도 번뇌나 미련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날을 입멸이라 합니다. 완전한 열반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열반하시는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여여한 당신의 모습이 눈에 그려집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만으로도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하게 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귀의하게 됩니다. nbsp 오늘 스님께선 오전, 오후 법문 외에도 일정이 많았습니다. 아침 일찍 평화재단에서 약속이 있었고, 법문 들어가셨을 때도 조금 늦게 도착한 미국에서 오신 분들이 스님 강연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전 강연 마치고 미국에서 오신 분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시고, 간단하게 식사를 하시고 미리 약속되어 있던 장소로 급하게 가셨습니다. 오후 3시에는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라는 책을 출판한 구글의 명상전문가 챠드 멍탄씨는 한국의 모 신문사에서 강의를 하고 받은 1만불을 JTS에 전달했습니다. 구글을 검색해서 JTS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JTS 북한사업에 대한 동영상을 보여드리고, JTS 전체 사업에 대한 설명도 해 드렸습니다. 스님과 수행과 사회활동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nbsp 4시에는 세계도자비엔날레에 특강을 요청하기 위해서 스님 2분과 관계자 여러 분이 오셔서 스님과 말씀을 나누었고, 5시에는 또 다른 회의가 있어서 저녁 식사를 하시면서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오후 7시 30분에 열반재일 관련한 강의를 하시고, 9시 30분부터는 평화재단내 청년포럼, 청년학교, 청년대학생리더쉽 아카데미 운영진들과 청년운동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 청년들에게 하셨던 말씀 중 일부를 옮겨 봅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국가 발전의 비전은 통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동체 전체의 발전과 비전을 생각할 때 통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 공동체안의 구성원들인 국민의 행복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심화되어야 합니다. 아랫단위에서는 직접 민주주의가 이뤄지고 국가차원에서는 대의 민주주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경제에서는 부가 분산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경제 민주화입니다. 경제민주화가 기회의 균등, 과정의 공정성을 말한다면, 복지는 경쟁력이 없는 사람, 일시적 낙오자에게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 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노인, 병자, 장애인, 실업자와 같이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최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전 안전망을 구축해줘야 합니다. 사회 안전망이 갖춰지면 삶에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정치, 경제적 민주화가 이뤄지면 자기 의사가 사회에 반영이 되니까 국민들이 불만이 없어집니다. 이런 방향의 운동이, 여러분들의 개개인의 삶과 긴밀히 연결이 됩니다. 이제는 나를 희생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전공이, 내 직장이 사회 발전과 다 맞물러 있기 때문에 자기의 성공, 자기 실현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의 추구가 자기 성공을 희생하고 하는 것이 아니고,인류행복의 방향에 설 때 자기가 가장 성공적으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 그런 방향에서 새로운 문명, 새로운 활동을 만들어야 합니다.” nbsp 청년 운영진들은 스님과 대화를 하면서, 청년답게 의견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자유롭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제는 청년운동이 국가 비전을 이야기하고, 통일을 이야기하고, 이 땅의 청년들의 행복을 이야기하고, 청년 개인의 행복 마인드까지 이야기를 합니다. 청년들이 어깨를 당당히 펴고 맘껏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꿔 봅니다. 내일부터 스님께선 인도네시아 사업장 방문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인터넷 사정이 어떨 지 잘 모르겠습니다. 현지에서 스님의 소식 올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nbsp

2013.03.27. 16,958 읽음 댓글 9개

2013년 3월 25일 법륜스님의 하루(충주, 청주)

오늘은 2013년 희망세상만들기 100강 중 5, 6강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정토회관에서 아침 발우공양까지 하고 오전 8시 30분경에 충주로 출발했습니다. 꽃샘추위가 길게 가는 것 같습니다. 바람이 차가웠습니다. 충주KBS 방송국에 30분 가량 일찍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선 시작시간까지 차 안에서 원고점검을 하셨습니다. 청주, 제천의 정토행자님들과 중부사무국에서 와서 행사 준비를 한참 하고 있었습니다. 행사전에 제천으로 귀농한 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희가 읍내에서 불교대학도 3년째 하고 있고, 동네에서 가정법회도 하고 있는데, 전에 사이가nbsp좋지 않던 부부들이 이제는 잉꼬부부가 되었어요. 스님 법문을 매주 듣고 전체 동네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참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스님 법문을 듣고 내 괴로움이 없어지고, 가정이 화목해지고,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복원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이 쌓여 나가면 지역 공동체가, 국가 공동체가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어 갈 것 같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전법이 참으로 소중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충주는 입재식 때마다 가는 곳이고, 서울에서 문경수련원에 가려면 언제나 지나가는 곳이라 괜히 낯익고 편안한 느낌의 도시였습니다. 날이 차가운데도 다들 예쁘게 차려 입고 강연장에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낮 시간인데도 젊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nbsp 젊은 청년이 일어나 질문을 했습니다. “고부간의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제 어머니와 할머니의 관계가 소원하셔서 그 사이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할머니에게는 할머니로서 깍듯이 예를 갖추고, 엄마에게는 엄마로서 잘 대해 주면 됩니다.어떻게 내가 부모를, 할머니를 내 원하는대로 하라고 할 수 있겠어요?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하는 생각은 딱 끊고, 손자로서 할머니에게 잘 하면 되고 아들로서 어머니에게 잘 하면 됩니다. 내가 말해서 할머니를 바꾸고, 어머니를 바꾼다고 생각하면 결국 두 분이 다 내 말 안 들을 것이니까 나중에는 두 분 다 미워져요. 그래서 나중에는 둘이 싸우든지 말든지 모르겠다하고 외면하게 됩니다. 그러면 불효가 되는 거예요. 그 두 사람이 어떻게 되든 그것은 그들의 문제예요. 자, 따라 해 보세요. “앞으로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가족관계가 왜 갈등이 생기는 걸까요? 지나치게 간섭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싸우는 것은 나와 관계가 없어요. 어머니가 할머니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면 들어주면 됩니다. 그런데 할머니 욕을 하면 안 돼요. 그리고 또 할머니가 전화와서 엄마 욕하면 그냥 ‘그래요? 그랬어요?’ 하면서 들어주면 됩니다. 그들의 인생이예요. 그들대로 살도록 놔두세요. 나는 내 할 일을 하며 됩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싸워도 나는 평화를 유지할 수 있어요. 내가 두 분을 미워하지 않으면 할머니와 어머니는 싸워도 나와 할머니, 나와 어머니는 잘 지낼 수 있잖아요? 나로 인해 그나마 집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 젊은이에게 결혼해서는 어머니와 부인 사이에서 남자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결혼을 하면 자기 가정을 부모님보다 우선시 하고, 부모에게는 정을 끊되 공경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후 ‘자기가 어느 집 며느리인 사람 손 들어 보세요?’ 하시고는또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남편에 대한 소유권은시어머니에게 있고, 경영권은 나에게 있다는 것만 며느리가 정확히 인식하면 고부간의 갈등이 생길 일이 없다는 말에 사람들이 많이 웃었습니다.다음으로 ‘시어머니 되는 사람 손 들어 보세요?’ 하시고는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절대 아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해서는 안되고, 부부의 정을 끊는 것은 인륜의 정을 끊게 하는 것이라고 하시며 자식에 대한 정을 끊되, 이제는 자식을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다들 부모님이기도 하고, 아들이기도 하고, 며느리이기도 하다보니 즐거워하며 자기 입장에 비추어 가며 스님 말씀을 경청하는 것 같았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nbsp 충주에서 강연을 마치고, 찾아온 손님이 있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신 후, 서울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 어깨와 팔이 저리고 아프다며nbsp서울 가서 탈골된 것을 교정하셨습니다. 수요일부터 인도네시아 방문을 하게 되어서 미리 치료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치료를 받고, 다시 청주로 내려갔습니다. 청주에 가서는 혼자 계시는 실상화 보살님댁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라면을 끓여서 충주에서 받은 김밥을 곁들여서 저녁으로 먹었습니다. 실상화 보살님은 ‘나이가 많아지니까 이제 외로워져.’하시면서 참 반가워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나이가 들면 당연히 외로워지고 병이 오는 것입니다.’ 웃으며 보살님을 위로하셨습니다. 저녁 식사 후, 오늘 강연이 있는 충북대학교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 학생처장님과 사전 차담을 한 후 강연장으로 들어가시는데, 아직도 강연장에 들어가지 못한 시민들과 학생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습니다. 청주청년정토회가 주최가 되어 준비한 행사라 그런지 청년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무대에도, 복도에도 앉아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1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강연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스포터즈 모집을 했는데, 40여명이 참가해서 면접도 보고, 산행도 하면서친목과 결속을 다졌다고 합니다. 행사 준비와 홍보를 열심히 해서 10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참가를 한 것 같았습니다. 오렌지색 티를 입고 머리띠를 하고 열심히 행사 안내를 하는 서포터즈들. 참가하는 사람들 사진을 바로바로 찍어서 로비에 전시하기도 하며 신나게 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청년대학생들이 참가를 많이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질문도 모두 청년대학생들이 했습니다. 추상적인 질문부터 당장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부분까지 많은 질문이 있어서 2시간 30분가량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nbsp 비효율적인 한국 교육의 현실, 강요하는 대학의 술문화, 수업시간에 열심히 질문하는 것에 대해서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묻는 32살의 교대 새내기, 한국의 불교에 대해서 묻는 티벳 학생,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이야기가 오가면서 혼수, 집 장만 등으로 싸우게 되어서 힘들다는 건축학과 남학생, 어렸을 때는 돈보다 행복이 우선이었는데, 이제는 돈이 없으면 불행하게 되는 현실 앞에서 돈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지 궁금하다는 22살 여학생, 부모님의 종교간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어머니 앞에서 제사도 지내고 싶고, 어머니 신앙도 지켜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지 묻는 25살 남학생, 어릴 때부터 농업에 관심이 있어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농대에 입학했는데 농업이 사향사업이라고 하고 여자가 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청년농업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는 질문 등 젊은이들의 고뇌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중 집안의 종교갈등에 대해서 질문한 학생의 내용을 올려 봅니다. “저는 25살입니다. 저희 집안에서 종교차이 때문에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25년째 많이 다투고 계십니다. 불교집안에 어머니가 시집오셔서 기독교인지만 맏며느리라 참으면서 제사를 지내셨는데, 이제 할머니가 관여를 안 하시니까 어머니가 제사를 못 지내겠다고 해서 싸운 적이 있습니다. 이제 자식들도 다 출가를 해서 어머니는 기댈 곳이 하느님밖에 안 계십니다. 그래서 제가 어머니 기도하실 때 같이 하기도 합니다.저는 장남이라서 제사를 그만 둘 생각은 추호도 없는데, 어머니도 지키고 싶고 집안도 지키고 싶습니다.” “지금 하듯이 그렇게 하면 됩니다. 제사는 제사대로 지내고, 어머니가 기도하자고 하면 같이 기도하면 됩니다.” “저는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어라 믿어라 해서 하나님 믿는다고 했는데, 사실 저는 종교가 없거든요.” “올 해 몇 살이예요? “25살입니다.” “20살이 넘으면 더 이상 부모에게 의지해도 안 되고, 억압을 받아도 안 돼요. 독립을 해야 합니다.재정적으로 독립했어요?” “예.” “윤리도덕적으로 어머니 신앙은 어머니 신앙이고, 내 신앙은 내 신앙이예요. 어머니를 강요할 필요도 없고, 내가 어머니로부터 신앙을 강요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어머니를 존중해서 어머니 신앙을 지켜주면 됩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믿는냐고 물으면 ‘안 믿어집니다.’ 하면 됩니다. ‘어머니. 저는 장남으로서 우리 가문의 전통문화를 계승해 나갈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부모 자식이라도 그런 문제를 가지고 서로 억압하거나 억압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절에도 가고, 교회도 가도 됩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성경도 읽고 싶으면 읽고 불경도 읽고 싶으면 읽으면 됩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사상, 이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성년 남자로서 거기에 대해 위축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힘들어하면 함께 기도해 드리면 되고, 안 믿어지면 안 믿어진다고 하면 되고, 제사는 제사대로 지내면 됩니다. 제사를 지내는 것은 하나의 전통 문화예요. 그런 관점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사도 지내고 기도도 드리겠습니다.” 큰 박수 속에 강연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책 사인을 하고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 깜찍 발랄한 젊은이들이 스님 주변으로 몰려 들어 서로 서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nbsp 요즘 청년들은 모우기도 어렵고 모임도 안 된다고 하는데, 스님이 가시는 곳에는 오히려 청년들이 대세입니다. 청년들이 스님 주변으로 모여 듭니다. 스님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스님 강연을 듣고 고민을 이야기하고, 스님께서 강연하신 불교대학에 다니고, 스님과 함께 하는 역사기행에 청년들이 몰려 듭니다. 풋풋한 청년들의 마음들이 모여,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새로운 희망의 대한민국, 통일한국으로이어지길 기원해 봅니다. 청주에서 강연을 마치고 오늘도 고속도로를 벗삼아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부처님 열반재일입니다. 서울에서 오전, 오후 스님 법문이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 서울에서 뵙겠습니다.

2013.03.26. 16,639 읽음 댓글 6개

2013년 3월 24일 법륜스님의 하루(평화연구원 워크샵)

오늘은 오전 9시 40분부터 하루종일 평화연구원 워크샵이 수유리에 있는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을 모시고 9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더니, 벌써 와 계신 분들도 몇 분이 있었습니다. 평화재단은 크게 세 파트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초기부터 꾸준히 진행되었던 통일을 위한 정책 연구파트인 평화연구원, 통일을 위한 인재교육을 담당하는 교육파트인 평화교육원, 그리고 실제 통일운동을 진행해 나가는 운동파트인데, 초기에는 연구파트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이 진행되다가 그 다음은 교육파트, 작년 같은 경우 통일온동 파트가 활발하게 활동을 했습니다. 연구, 교육, 운동파트가 서로 영향을 주면서 유기적으로 잘 운영되는 것이 평화재단의 하나의 목표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현재 평화연구원은 5개의 콜로키움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각 주제별로 모임이 진행이 되고 있는데 오늘은 5개 모임 구성원들이 모두 같이 모여서 토론도 하고 서로 인사도 나누는 친목의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일요일인데도 전체 구성원의 반 이상이 참가해 주셔서, 풍부하게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제 17회 남북화해와 평화네트워크 워크숍으로 ‘북핵 이슈를 넘어 평화와 통일의 한반도로’라는 큰 주제로 세 개의 마당이 펼쳐졌습니다. 첫 번째 마당은 ‘한반도 통일시계, 어디까지 와 있는가?라는 큰 주제 아래 ‘동북아정세와 한반도 안보환경의 변화’, ‘2013년 북한 내부 정세 진단과 김정은 정권의 향방’,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신뢰외교가 나아갈 길’에 대해서 연구원들이 발표를 하고, 토론자 3명과 함께 오늘 참가한 분들이 다같이 의견을 내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진지하게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첫 마당으로 오전 타임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한 후 두 번째, 세 번째 마당이 이어졌습니다. 두 번째 마당은 쉬어가는 마당으로 준비가 되었는데 현재의 평화연구원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평화연구원의 역할 모색’이라는 주제를 다뤘는데 평화연구원장이신 김형기 원장님이 직접 진행하셨습니다. ‘평화연구원 2012년 사업보고 및 2013년 사업방향’, ‘통일관련 연구기관의 동향과 평화연구원의 역할’에 대해서 먼저 발표를 하고, 평화연구원이 현재 부족한 점과 개선할 점, 한국사회에서 어떤 역할들을 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소중한 의견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어서 세 번째 마당이 펼쳐졌습니다. ‘북핵 이슈를 넘어 평화와 통일의 한반도로’라는 큰 주제 아래‘북한 핵실험과 주변국의 이해와 전략’, ‘북핵이슈를 넘어 교류와 협력의 남북관계를 모색한다’, ‘통일한국의 사회통합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라는 내용으로 세 분이 주제발표를 하고 세 분의 토론자와 함께 참가한 분들의 토론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현재 남북간의 전쟁 분위기 고조와 그 속에서 향후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어떻게 작용을 해 나갈 것인가? 그 속에서 연구원의 활동은 어떤 방향을 잡고 나가야 하는가 등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하루종일 앉아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전체 토론이 끝나자 스님의 의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첫 번째 소감은 발표문들이 너무 좋습니다. 우리끼리 듣기에 아깝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늘 발표한 한 분 한 분에게 통일교육 강사로 요청을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원장님께 드리는 부탁은 분기별로 전체 모임을 진행해서 서로 공통점도 발견하고 친목도 되는 시간을 만들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각 전문가 모임 구성원끼리만 모여서 토론을 하다가 오늘 전체 연구원들이 한 자리에 같이 모여서 토론을 하니, 정보 교류도 되고, 서로 활동들에 대한 격려도 되고 경책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 오늘 워크숍 전체를 마치면서 정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오늘 발표하고 토론한 분들도통일연구 파트에서 전문가들인데, 스님께선 워낙 오랫동안 통일에 대해서 몸으로 직접 뛰면서 수많은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보니, 그 누구보다도 통일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이 넓고 깊어서 어디서나 균형추의 역할과 함께 국가적인 차원에서 통일의 방향을 제시해 나가는 역할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많은 토론을 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분권과 통일이 같이 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지도자를 뽑는 민주주의만 있습니다. 뽑힌 지도자가 민주적인 리더쉽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를 합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는 일상생활 속에서의 시민의 권리가 행사될 수 있는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중앙권력이 지방으로 더 이양되어야 합니다. 주민 자치, 지방분권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런 분권이 이루어진 지방정부가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통일을 대비한 준비를 갖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 사회가 북한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 놓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독일 통일에서 배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북한의 붕괴라고 하는 것은 정권의 붕괴는 몰라도 북한이라는 국가가 붕괴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북한 붕괴라는 말의 의미를 새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의 향후 전망을, 소위 말하는 권력을 유지하면서도 개혁에 성공하겠는가? 북한 자체적으로는 성공 가능성이 낮지만 배후에 중국이라는지원국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고려해야 합니다. 때문에 박근혜 정부라도 하루빨리 국가연합이라는 형식을 갖춰놔야 만약 북한의 제도적인 붕괴가 일어나더라도 외세가 간섭할 수 없는 국내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이 붕괴되면 바로 친중정권이 들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북한이 리모델링 된다면 통일은 천천히 가도 되는데, 형식상의 통일은 좀 빨리 서둘러야 할 문제입니다. 그런 문제에 대한 연구와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근혜정부가 어떤 정부든 상관없이 이 5년의 시기가 그냥 간다면 민족사에서 돌이키기 어려운 과오를 남기게 될 것입니다. 박근혜정부가 올바른 통일정책을 실현해 나갈 수 있도록 평화재단이 좀더 적극적으로 활동을 펼쳐서 통일에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는 하루종일 앉아서 토론하는 연구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께서 가시는 곳에는 참 소중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구나 싶었습니다. 통일연구 파트에서는 이름있는 분들이 자기의 재능과 에너지를 이렇게 기부하고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준 것도 대단하고, 이런 활동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참 대단한 일이다 싶었습니다. 이렇게 연구하는 사람이 있고, 통일을 위해 실제 대중들과 사회지도층을 교육하는 사람이 있고, 거기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통일을 위해 대중운동을 펼쳐 나갈 사람이 필요하단 생각이 같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참 무궁무진하구 싶었습니다. 오늘도 참 보람된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충주와 청주에서 희망세상 100강이 있는 날입니다. 내일은 충주와 청주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3.25. 15,835 읽음 댓글 5개

2013년 3월 23일 법륜스님의 하루(평화리더쉽, 인보성체수도회, 청년토크콘서트)

오늘은 새벽 5시 두북에서 용인으로 출발했습니다. 용인의 현대인재개발연구원에서 평화리더쉽아카데미 8기 입학 워크샵이 어제부터 1박 2일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오전 9시에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스님 강의가 잡혀 있었습니다. 8시 30분경에 도착해서 어제 먹다 남은 김밥과 컵라면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시고 강의에 들어가셨습니다. 윤여준 원장님께서 맨 앞자리에 앉아서 자리를 지켜 주고 계셨습니다. 스님께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2시간 동안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스님은 오늘도 역시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서 역설하셨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줄여서 정리해 봅니다. “일반적으로 돈을 많이 벌거나 지위가 올라가거나 인기가 많아지면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성공은 공동체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일치했을 때입니다. 공동체 이익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의식이 있어야 하고, 시대정신을 알아야 합니다. 일제 강점기 때 공부를 잘 해서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가 되었지만 당시의 시대정신인 독립운동에 기여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문명사적 전환기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기술 수준이 서양과 거의 동등해졌기 때문에 모방의 시대는 끝나가고 창조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방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현재 남한만 보면 시대정신은 산업화, 민주화 과정을 거쳐복지사회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는 지방분권이 시대적 과제입니다. 그러나 전민족적 관점에서는 통일이 시대적 과제입니다. 그리고 통일이 되어 북한을 개발하는 것이새로운 성장동력입니다. 개인이 성실하게 윤리적으로 사는 것보다 시대적 과제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통일이라는 시대정신을 꿰뚫어보고, 커든 작든 통일운동에 기여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의 의미입니다. 2030년을 내다보고 손자에게 재산보다 통일운동에 기여한 공덕을 물려줘야 합니다.” nbsp 스님 말씀을 들으니 얼마 전 평화리더쉽아카데미 입학식날, 한 분이 인사하면서 했던 말이 기억났습니다. “제가 군대갈 때 내 아들은 군대가지 않도록 하리라 했었는데, 오늘 둘째 아들을 군대에 입대시키고 왔습니다. 통일이 되어서 내 손자녀석은 군대에 가지 않는 날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정말 통일된 세상에서 파란 하늘 바라보며 꾸밈없이 웃는 청소년들의 얼굴을 그려봅니다. 스님 말씀 이후 질문을 받았는데, 다음 일정이 있어서 길게 받지는 못했습니다. 강연을 마치자마자 단체사진을 찍고, 바로 용인 인보성체수도회로 향했습니다. 12시부터 3시까지‘사회복지 사도직안에서의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사회복지 활동을 하고 계시는 수녀님들과의 시간이 잡혀 있었습니다. 11시 40분경에 도착을 하니 입구에서 수녀님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강의가 있는 곳은 양로원이었습니다.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곳이라 그런지 깔끔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양로원 2층 다과실에 준비되어 있는 과일과 수정과를 간단하게 먹고 12시부터 수녀님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처음 강연을 시작하면서 진정한 신앙심에 대해서 말씀을 먼저 해 주셨습니다. “우리 기도는 원하는대로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원하는대로 되면 주님께서 은총을 주셨다고 하고,원하는대로 되지 않으면 은총을 주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신앙심이 부족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시고 이뤄지는 것이 좋으면 이뤄지게 하시는 것이고, 이뤄지는 것이 좋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신앙심이라는 것은 이뤄져도 감사하고, 이뤄지지 않아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뤄지면 감사하고, 이뤄지지 않으면 감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기 뜻대로 되면 좋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싫어하기 때문에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주변에 나의 삶을 맡기면, 그 마음만 내려놔 버리면 무엇을 하든 힘든 일이 크게 없어요.” nbsp 스님께서 예수님의 삶을 예로 들면서, 일반인들에게 강의하실 때보다 좀더 근본적인 부분을 짚으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어서 수녀님들의 질문을 받았는데 실제 사회복지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라 복지활동에서의 어려움에 대한 질문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저희 집은 어르신들이 80분 살고 계세요. 남자분이 15분, 여자분이 65분입니다. 개원한지 15년이 되었습니다. 개원하고부터 살고 계신 분은 30명 정도 계십니다. 처음 들어오셨을 때 건강하셨던 분이 이제는 치매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분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죽 먹겠다’ 해서 죽 끓여 드리면 ‘밥 먹겠다’고 합니다.밥을 해서 가면 ‘이것도 밥이라고 가져왔냐?’ 하세요. 인간적으로 얄미울 때도 있고, 당신 며느리에게 죽 한 그릇도 못 얻어 먹고 와서 왜 그러시나? 하는 갈등들이 끊임없습니다. 그러니까 모시고 살아야 하고 그러니까 사랑이다 하지만, 순간순간 미워질 때도 있고 대립이 될 때도 있습니다. 저녁에 기도를 하면 돌아봐지고 참회가 됩니다. 그런 어르신을 80명이나 되다 보니, 죄를 짓고 있지는 않나 이런 생각도 듭니다. 늘 하느님의 사랑으로 감싸안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어떤 마음을 갖고 살면 될까요?” “저는 초등학생들과 살고 있습니다. 최근에 들어온 아이 중에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애는 부모도 있습니다. 글을 쓰다가 틀렸다, 고쳐 쓰라고 하면 화가 너무 나서 악을 쓰고 발로 차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수정을 해 주면 목 조르는 흉내까지 냅니다. 어린 아이가 왜 그리 화가 차 있는지, 그 화를 어떻게풀어줘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장애주간보호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지적 장애,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입니다. 아이 중 한 명이 발달장애아인데요, 가정의 엄마가 2 부족한 어머니시고, 아이는 우리 시설에서제일 나은 아이예요. 아침에 저희 집에 오면 전날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책상을 차고, 자기 서랍을 치고 박습니다. 집에 전화를 해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어머니에게 물으면 어머니는 제가 불면증이 있어서 잠을 못 자고 울어서 그런가 보다고 합니다. 그런 것이 너무 잦아요. 그 애가 정상인 애는 아니고 발달장애인데 어떻게 해 줘야 할까요?” “저는 노숙자들과 같이 있습니다. 얼마전 탈북노숙자 한 분과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북한을 떠난 지는 15년 되었고, 한국까지 들어오는데는 8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 분은 수도사가 뭔지 모르고 저희를 여자를 봅니다. 취업하러 나가면 이것 저것 다 이용해 먹습니다. 사고치면 저희 수녀회로 연락이 옵니다. 이 분은 사고를 치고 저희는 수습을 하는 것을 몇 차례 하다가 이제는 연락을 안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그리고 강정마을의 문제에 대해서 스님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한 분 한 분의 질문에 대해서 함께 마음을 나누면서 해결책을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워낙 편안해서 스님이 아니라 수도사님과 오래 이야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며 수녀님께서 스님께감사 인사를 드리며 마무리를 했습니다. nbsp 3시 10분까지 강연을 하고 다음 강연장인 조계사로 이동했습니다. 조계사 역사문화회관에서 5시부터 서울경기청년불자들이 주최한 토크콘서트 두런두런에 초청되어 청년불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청년 불자들이 행사를 예쁘게 준비해 놓았습니다. 작은 소품들이며 색색깔의 종이에 쓰인 질문지들 등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두런 두런 콘서트의 마지막 순서였는데 혜민스님, 정목스님에 이어 마지막으로 법륜스님께서 청년들과 대화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신청을 받고, 청년들로 나이 제한을 해서 1인당 1만원씩 참가비를 받고 하는 행사였습니다. 불교TV 중계차도 와서 촬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nbsp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질문받은 질문지가 스님앞에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스님은 화가 나실 때 어떻게 하시는지, 출가 후 부모님이 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지, 스님은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 때어떻게 해결하시는지, 작년 희망세상만들기 300강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등 스님에 대한 궁금함들이 많았습니다. 이어서 방청석에서 직접 질문을 했는데 자신에 대한 불만족, 통일을 위한 청년들의 실천방법 등 여러 질문들이 있었는데, 청년들이라 역시 구체적인 삶의 애환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 등 삶의 자세에 대한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강연 후 청년회장이 스님께 감사함의 꽃다발을 드리고, 간단한 인터뷰까지 하고 마쳤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강의 3개가 바로 바로 이어져 바쁘게 다녔습니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식사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아침에는 컵라면과 식은 김밥으로, 점심은 과일 약간과 수정과만 드시고 저녁강의까지강행군을 하셨습니다. 조계사 강연을 마치고 들어오면서 “저녁이라 나는 괜찮은데 다들 배고플 것 같네. 뭐 좀 먹을까?” 하셔서, “밥심으로 사는 할매라 먹어야겠는데요?”하는 최보살님 말씀에 다같이 웃었습니다. 정토회관에 차를 주차하고 스님 모시고 칼국수집에 가서 늦은 저녁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평화연구원 워크샵이 있는 날입니다. 내일 소식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3.24. 16,249 읽음 댓글 5개

2013년 3월 22일 법륜스님의 하루(부산 중구, 거제시)

새벽 1시 30분경 두북에 도착했습니다. 잠을 자고 5시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한 후 오늘 오전 강연이 있는 부산 중구청으로 향했습니다. 오랜만에 부산에 와서 부산공기를 마시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차담이 있어 중구청장실에 들어가니 떠들썩했습니다. 스님께서 들어가니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스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중구청장님이 오늘 스님 강연이 있다고 부산지역 여고 동창회장님들 전체 모임을 했다고 합니다. 구청장님이 여장부처럼 성격이 시원시원해 보였습니다. “강연장이 크질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은 모두 모니터로 시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1층엔 따로 모니터를 설치해 두었습니다. 오늘 우리 구에 큰스님이 오셔서 정말 영광입니다.”하며따뜻하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nbsp 300석 강연장에는 오늘도 사람들이 가득 차서 무대 위, 복도에까지 앉아 강연을 들었습니다. 구청장님과 부산지역 여고 동창회장님들도 끝까지 강연에 참석했습니다. 강연장이 그리 크지 않아서 오히려 오붓한 맛이 있었습니다. 오늘 질문하신 분들 중 한 아저씨의 이야기를 나눠 봅니다. “스님. 저는 55살이고 경주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대중 앞에서 사생활을 공개하기가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어 질문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군 의무를 마치고 와서 경주에서 옷 가게 하다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큰 슈퍼를 인수하여 5년을 했는데 또 문을 닫게 되었고, 그 다음으로 식품 대리점도 했는데 5년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이어서 운수업을 했습니다. 그것도 5년 하다가 잘 안되어서 양계농장을 인수했는데 태풍 때문에 쫄딱 망해서 2억 5천만원을 빚졌습니다. 가족이 모두 월세집으로 이사 와서 일당직 운수업을 했는데 그것마저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직과 성실을 기본으로 살아왔습니다. 본인의 양심을 벗어나는 것을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깨달음의 장, 나눔의 장, 명상수련도 다 하고 경전반에 입학하여 정진하고 있습니다. 스님. 저는 왜 하는 일마다 56년이 되면 실패를 하는 걸까요? 하기 싫어서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왜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지, 저에게는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왜 하는 일마다 실패가 반복되는지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몇 살이예요?” “55살입니다.” “건강은요?” “이루 말할 수 없이 건강합니다.” “아이들은요?” “1남 2녀입니다. 큰 애는 홍대 미대 다니다가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3학년에서 그만 뒀습니다. 둘째는 대구에서 대학교에 다니고 있고, 셋째는 자기가 알아서 살겠다고 하사계급 따서 군대에 있습니다.” “자, 한 번 보세요. 이 분은 하는 일마다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했어요, 큰 가게를 했어요? 대형 슈퍼 하다가 양계장도 큰 것을 해서 2억 5천만원이나 빚졌죠? 그것을 하다가 중단하고 중간에몇 번 바꿨다는 것 빼고는 그만 그만한 사업을 계속 해 왔고, 아이들도 다 컸죠? 이 정도면 한국 사회에서 평균 이상은 되죠? 아이들은 이미 스무살이 넘었잖아요? 자기 할 일 다 했어요. 저는 고등학교 다니다가 그만 뒀는데 큰 아이는 대학 다니다가 그만 뒀잖아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따져 보면 큰 걱정이 아니예요. 둘째도 아르바이트 해서 학교 다니면 되고, 셋째는 그렇게 살면 되고, 자기 건강하고. 그렇게 생각하면 큰 문제 아니죠?” “제가 제일 고민하는 것이 집 한 칸 없이 월세 산다는 것이 부담이 됩니다.” “월세 얼마 줘요?” “월 30만원 나갑니다.” “월 100만원 벌면 월세 30만원 주면 되잖아요. 부인이 불만이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운전 잘 해요?” “베테랑입니다.” “자기는 아무 문제도 없어요. 잘 살았고 성실하게 살았어요. 자기가 자기 자신을 거름이라 보지 않고 오물이라고 보니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저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맨날 실패합니까?’ 이렇게 하지 말고 ‘부처님. 감사합니다. 제가 지은 공덕이 없는데 부처님 믿은 공덕으로 몸 건강하고, 결혼생활 원만하고, 아이들 다 잘 키웠습니다. 재능이 부족한데 잘 살도록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면서 기도를 하면 상황이 바뀔 거예요.” “예. 알겠습니다.” nbsp 오전 강연을 마친 후, 지방분권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활동을하고 계시는 부산대학교 황한식 교수님과 점심 식사를 하셨습니다. 평소에는 식사 초대를 받거나 따로 식사를 하시지 않는데 이번에 교수님이 퇴임을 하게 되었는데 찾아 뵙지를 못해서 죄송하시다며 교수님과 따로 식사 약속을 잡으셨습니다.그런데 식당 사장님이 스님께서 본인의 식당에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저희들 식사비까지 일체를 다 보시해 주셨습니다. 스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오늘 아이를 낳았다는 사장님의 딸에게 ‘엄마 수업’ 책을 사인해서 선물을 드렸습니다. 부산에서 거제로 가는 길에 잠시 을숙도에 들렀습니다. 남쪽이라 가는 길에 동백꽃이 허드러지고,노란 개나리꽃이 한창이었습니다. 아직 3월인데도 벚꽃이 핀 곳도 있고 꽃 필 준비에 바쁜 모습이었습니다.nbsp 을숙도 공원 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햇볕만 나면 따뜻하고, 햇볕이 숨으면 아직 쌀쌀했습니다. nbsp 을숙도를 잠시 들린 후 거가대교를 지나 거제도로 향했습니다. 점심을 외식을 해서 배가 고프지 않다 하시며 스님께선 저녁 식사를 안 하시고 강의에 들어가셨습니다. 강연장이 404석인데 500여명이 와서 복도에도 사람들이 앉았습니다. 거제는 삼성, 대우 중공업 등이 있어서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과 아기를 안은 젊은 엄마들도 많이 참가했습니다. 거제 강연장은 9시면 공간을 비워줘야 해서, 강연을 시작하면서 바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마지막에 질문한 딸과 아버지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봅니다. “얼마 전에 스님 책을 보고 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보수적입니다. 제가 이제 나이가 들어 가니까 아버지 뜻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주말에 집에 가면 아버지와 조금씩 부딪히다가 얼마 전에는 크게 싸우고 집에서 쫓겨 났습니다.” “아버지가 자기에게 요구하는 것 중 가장 큰 것이 뭐예요?” “아버지가 자꾸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합니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지만 참다 참다가 ‘제가 태어나서 저 줄려고 밥을 한 게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밥상에 제 숟가락 하나 더 놓은 것이지 않냐? 아빠가 해 준 것이 뭐가 있냐?’고 해 버렸습니다.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포장마차도 하시고, 계란 장사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가장이긴 하지만 아버지는 아버지가 벌어서 아버지 인생을 즐기세요. 금전적으로 아버지가 해 준 것이 없는데, 요즘 ‘아빠가 해 준 것이 얼만데?’ 하면 화가 납니다. 효라는 것이 뭔가요?” “몇 살이예요? 직장 있어요?” “24살요. 직장 있어요. 대학 다닐 때부터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있어요.” “아버지가 없었으면 세상에 태어났어요, 안 태어났어요?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하죠? 엄마는 아버지를 원수로 여겨요, 어때요?” “원수로 여겼다가 잘 지내다가 왔다갔다 하세요.” “엄마가 아버지를 미워했기 때문에 자기가 아버지를 안 미워하려고 해도 저항감이 있는 거예요. 어쨌든 두 분이 싸우면서도 살잖아요. 엄마는 해 주고 아버지는 안 해줬다고 나누면 안 됩니다. 아버지께 고맙다고 100일간 108배를 해 보세요.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셔도 ‘감사합니다, 아버지 때문에 잘 자랐습니다’ 하고 억지로라도 해 보세요.” “월급 얼마나 받아요?” “세금 떼고 140, 150만원 정도 됩니다.” “그러면 기독교에서 십일조 하듯이 매월 월급의 110을 부모님께 드리세요. 그러면 해결될 거예요. 정말 고마운 마음으로 드리세요. 지금이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예요. 결혼하고 나면 못 드릴 수도 있어요. 적은 가운데 지금 자기의 처지에서 나눠 쓰는 것이 좋아요. 한꺼번에 드리지 말고 정기적으로 드리세요. 그렇게 해 보세요. 부모님이 봉투를 집어던지고 화를 내도 두고 오세요. 대문 밖으로 버리면 주워오고. 금방 해결이 될 거예요. 스님이 시킨대로 한 번 해 보세요. 하루 기도 108배하고,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며 기도하고, 용돈도 드리고. 아셨죠? 이렇게 안 하면 나중에 남자를 만나면 아버지 같은 남자와 만납니다. 그러면 부모와 똑같이 되풀이 됩니다.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있을 때는 남편에게 그런 문제가 생길 때 격렬하게 내가 반응하게 됩니다.갈등이 증폭됩니다. 어릴 때 받은 상처가 결혼생활에 큰 장애가 됩니다. 아버지 문제를 푸는 것은아버지 관계를 넘어서서 내 결혼생활과 내 아이를 키우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지금 베풀어야 합니다. 아버지에게 베풀고 참회기도 해야 자기 속의 상처가 치유되어 남편 만났을 때 재발이 안됩니다. 아셨죠?” “예. 알겠습니다.”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스님과 대화를 함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작은 깨달음으로 다시 스스로가 주인으로 설 수 있는 힘을, 방향을 잡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강연장에 참가한 사람들도 스님과의 대화를 들으면서 함께 웃고 함께 눈물도 흘리면서 자기 문제를해결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nbsp 날이 많이 추웠습니다. 꽃샘 추위가 마지막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강연장 안에서도 발이 시렸는데, 스님께서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열강을 하셨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사인회를 하는데, 스님 손을 잡는 사람, 사진 찍고 싶어 왔다갔다 부산한 사람, 고맙다고 크게 인사하며 웃는 아줌마, 7개월된 애기를 안고질문한 남편과 스님을 사진찍기 위해 애써는 사람 등 스님 주변으로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 들어 분위기가 붕붕 떠 있었습니다. 스님과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nbsp 거제도에서 밤을 달려 두북으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오전 9시, 용인에서 평화리더쉽아카데미 입학 워크삽에 강의가 있고, 12시에 용인인보성체수도회에서 수녀님들을 대상으로 강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후 5시에는 조계사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서울경기지역불자청년회 초청 두런두런콘서트가 있습니다. 내일도 바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3.03.23. 16,924 읽음 댓글 7개

2013년 3월 21일 법륜스님의 하루(대중부 회의, 평화리더쉽 입학식)

오늘 오전은 서초구청장님께서 직원과 함께 방문하셔서 차담을 나누며 구정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출산 장려를 위한 할머니 손주 보기’에 대한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정토회 대중부 책임자들과 회의를 하셨습니다. 중앙사무처와 수도권, 중부권, 영남권 광역사무국장, 청년학생 대표자들까지 참가해서 7차 천일결사 마무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8차 천일결사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면서 올 해 사업 전반에 대한 논의를 하였습니다. nbsp 7차 천일결사 마지막 해라 그 전 연도에 미처 달성되지 못한 목표까지 다 달성해야 해서 약간의 부담감들도 있었는데, 오늘 스님과 회의를 하고 나서는 7차 천일결사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 스님과의 회의를 마치고도 거의 밤 10시까지 다시 회의를 하면서 신나게 일정도 잡고, 계획들도 잡았다고 합니다. 특히, 스님의 말씀에 올 해 불교대학과 경전반에 대한 애정이 많이 녹아 있어서회의를 하면서도 참으로 감동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앙사무국을 비롯해 각 지역 사무국까지 어려운 일이 뭐가 있는지, 그에 대한 해결방법에대해서까지도 세밀하게 말씀을 해 주셔서 작년부터 많은 논의를 하면서도 갑갑하게 남아 있던 부분이 오늘 스님과 회의를 해고 나서는 뻥 뚫린 것 같다고들 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환한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저녁에는 제 8차 평화리더쉽아카데미 입학식이 있었습니다. 스님과 교장선생님이신 윤여준 원장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자리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입학식 축하 인사를 하시면서 통일의 중요성과 이를 위해 통일의병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nbsp “우리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진 사람이 되어 보자는 것이 이 모임의 목적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시대적 과제는 통일입니다. 그런데 큰 일을 이루는데 있어서는 정부가, 전문가가잘 해야 합니다. 관군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관군이 역량이 조금 부족하니까 의병이 필요합니다. 의병이란 것은 지위도 없고 훈련도 안 되어 있지만 돈도 목숨도 자기가 다 내놓고 일하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지금은 통일을 위해서,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의병과 같은 역할이 필요한 때입니다. 의병은 자발성, 헌신성이 중요합니다.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관군은 잘하면 승진을 하지만 의병은 너무 잘해도 참수를 당합니다. 그렇기에 일이 끝나면 칭찬받거나 승진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서 선비는 선비로, 농민은 농민 역할로 돌아가는 것이 의병입니다. 그래서 저는 의병이 시민사회의 역할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누군가가 나서면 못 미더워 합니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설치나, 한 자리 하려고 하나? 생각합니다.이럴 때 의병이 필요합니다. 평화리더쉽아카데미는 통일로 가는 사관학교고, 여기 출신자들은 의병들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공부하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일 의병 참 멋있는 말 같습니다.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통일 의병이 된다면 정말스님 말씀처럼 통일도 되고, 한국의 새로운 미래가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참으로 설레는 우리들의푸른 꿈입니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끝없이, 쉼없이 통일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시는 모습에 숙연해지기도 하고,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 힘이 솟기도 했습니다. 오늘 입학한 사람들이 일어나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지인의 소개가 많았고, 스님의 책과 영상을 보고 찾아온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스님 말씀을 통해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뭔가 보탬이 되어야 할 것 같아서 왔다는 분, 통일에 관심이 많아서 왔다는 분, 새로운 삶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기 위해서 왔다는 분 등 다양했습니다. 그 중에 서 군인 출신 한 분은 스님과 통일에 대해서 바라보는 관점이 같아서 왔다고 하는 말을 들으며 스님의 통일에 대한 시각이 얼마나 균형이 잡혀져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변호사, 의사, 회사 대표, 국회의원, 교수, 시인, 작가, 직장인, 군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했는데열심히 해 보겠다고 다짐하는 모습들에서 결의가 넘쳐 보였습니다. 오늘 참가한 모든 분들이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셔서 꼭 스스로 이루고자 했던 목표 달성하시길 기원합니다.nbspnbsp 내일은 부산 중구와 거제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입학식을 마치자마자 두북으로 출발했습니다. 고속도로 위에서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밤이 깊었네요. 내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3.22. 14,000 읽음 댓글 2개

2013년 3월 20일 법륜스님의 하루(서울 도봉구, 수원 장안구)

오늘 아침 스님께선 평화재단에서 있었던 『제 69차 북한현실이해와 연구 전문가 모임』으로 하루 일정을 시작하셨습니다. 아침 모임 후, 서울 도봉구민회관으로 바로 이동을 하셨습니다. 오늘부터 ‘2013년 법륜스님의 희망세상 만들기 100강’이 시작되었습니다. 상반기에는 3월 20일 시작해서 6월 18일까지 총 49강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홈페이지를 참고하셔서 인근 강연장에 많은 분들이 동참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0시 조금 넘어서 도봉구민회관에 도착했습니다. 강연 전에 도봉구청장님과 간단하게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구청장님은 지난 300강 할 때는 일이 있어 스님을 뵙지 못했다며 도봉구를 찾아와줘서 감사하다고인사를 하였습니다. nbsp 총 600석인데 10시 10분경에 좌석이 다 찼습니다. 10시 25분경에 스님과 구청장님이 차담을 마치고강연장으로 들어가다 보니까, 자리가 다 차고 들어가지를 못해서 50m 넘게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줄 끝까지 걸어가면서 자리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고, 강연장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강연장에 온 분들이 많아 강연장 복도에도 다 앉지 못해 무대까지 가득 앉았습니다. 오랜만에 스님께서 대중강연을 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스님을 뵈러 온 것 같았습니다. nbsp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생의 고민거리들을 한 보따리씩 들고 왔습니다. 37년생할머니부터 25살 총각까지 거의 모든 세대들에서 질문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12개의 제사를 며느리에게 물려주기가 부담스러운데 한 날짜에 몰아서 해도 되는 지 물으시는 할머니, 민망하거나 긴장을 하면 자기도 모르게 히죽히죽 웃어서 오해도 받고 사회생활하기도 힘들다는 25살 여자분, 30년간 군생활을 한 남편이 어느날 지뢰를 밟아 장애인이 되어 너무 힘들어 하는데 어떻게 해줘야 하는 지 묻는 아주머니, 자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지쳐가고 있는데 따끔하게 혼 좀 내달라는 25살 남자분, 6살 아이가 좀 늦되는데 기다려줘야 할지, 치료를 받아야 할지 궁금하다는 2살, 6살 아이를 가진 엄마 등 많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서운해 한다는 청년과 스님의 대화를 들으며 사람들이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청년입니다. 첫 번째는 독립된 성인이 되고 싶어서, 부모님에게 정을 떼어 달라고 하니 안 떼어 주더라구요. 제가 정 떼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부모님이 서운해 하세요. 냉정하게 하고 있는데 이것이 옳은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같이 안 놀아준다고 부모님이 서운해 하세요. 그리고 2년 전 결혼을 생각했던 여자친구와 헤어졌어요. 방황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그 친구가 생각나서 정리가 안 되는 거예요. 결혼을 해야 할 것 같고 나눠줘야 할 여유가 생긴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좀 가르쳐 주세요.” “직장 다녀요? 부모랑 같이 살아요? 자기가 번 돈으로 먹고 살 수 있어요? 그럼 일단 이사를 나오세요. 집으로부터 나와서 작지만 열 평짜리 집이라도 얻어서 일단 삶이 먼저독립되는 것이 필요해요.” “제가 집에 생활비를 내고 있고, 부모님과 외식하면 제가 다 계산해요.” “독립하고 생활비를 드리면 되죠.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고 함께 있고 싶은 것을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돼요. 자기가 낳고 키워왔기 때문에 늘 엄마는 걱정이 되는 거예요. 그것은 고맙게 받아들여야 해요. 그런데 고맙다고 다 받아들이면 안 돼요. 그러면 마마보이가 돼요. 마마보이가 되면 여자들이 안 와요. 여자들은 참 이상해요. 자기가 결혼하면 남편이 효자가 되는 것은 원치 않고, 자기 아들은 효자이기를 바래요. 이상하죠? 이제 자기가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해요. 나이가 스무살이 넘으면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도, 다른 쪽으로도 의지를 하지 말고, 인생에 대해서도 간섭을 안 받아야 해요. 요즘 청년들은 의지는 하고 간섭은 안 받으려고 하니까 갈등이 생겨요. 자기는 경제적으로 독립이 되니까 먼저 독립을 하세요. 요즘 젊은 여성들은 부모님과 같이 사는 남자, 결혼해도 부모님과 같이 살아야 하는 남자는 싫어해요.” “제가 같이 살기 싫다고 말씀드리니까 서운해 하시더라구요.” “싫다고 하니까 싫어하시죠. 그렇게 이야기하면 불효죠. 엄마에게 물어봐요. 제가 총각으로 이렇게 부모님 모시고 사는 것이 좋겠어요? 가정을 이루는 것이 좋겠어요? 하고.” “어제도 결혼하라고 하셨어요.” “요즘 여자들은 남자 뒤에 늙은 여자가 있는 것을 싫어한대요. 그래서 어머니께 ‘제가 장가갈 때까지 살림을 내서 살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먼저 살림을 조그맣게 내고 부모님께는 생활비를 좀 대어 주는 거예요. 생활비를 대어줄 때도, 이렇게 해야 돼요. 지금 100만원을 드리는데 결혼을 하면 50만원으로 줄이겠다 싶으면 조금 서운해 하시더라도 지금부터 50만원으로 줄여서 줘야 해요. 지금은 욕을 듣고, 결혼을 하면 70만원을 주면서, ‘아내가 50만원이 적다고 20만원을 더 올려 주래요.’ 이렇게 이야기해야 돼요. 결혼을 해서 부모에게 너무 효도를 하면 부인이 싫어해요. 그러면 부모와 부인 중간에 끼여서 살면자기 명이 단축돼요. 엄마로부터 딱 독립을 해야 돼요. 부모로부터 독립이 되지 않는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없어요. 첫째 독립을 먼저 할 것, 그 다음은 부모에게는 적절하게 재정을 지원할 것, 결혼해도 줄 수 있는 만큼 미리 줄일 것, 알겠어요? 부모가 어떤 말을 해도 ‘알겠습니다, 어머니.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사를 하고, 실제 하는 것은 내 하고 싶은대로 하면 돼요. 그러면 불효 아니냐?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것은 효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은 성인으로서 내가 사는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두 가지만 하면 됩니다. 엄마 말대로 따라해도 내가 결정한 것이고, 안 해도 엄마를 거역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안 한 거예요. 엄마가 섭섭해 하면 ‘죄송합니다’ 하면 됩니다. 자기 인생이 먼저 독립되어야 합니다. 자식이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 느끼는 그 아픔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엄마도 적응을 해야 합니다.” 청년이 밝아서 강연장도 같이 밝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하고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노원법당 불사 준비하랴, 강연 준비하랴 노원 자원봉사자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도봉구민회관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김밥으로 점심 식사를 하셨습니다. 다시 김밥의 계절이 돌아왔다며 저희들끼리 웃었습니다. 스님께서 평화재단에서 업무도 보시고, 사람도 만나셨습니다. 오후 강연은 수원 장안구민회관에서 있어서 오후 6시 재단에서 출발했습니다. 식사하실 시간이 없어서 싸간 도시락으로 차안에서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하셨습니다. 장안구민회관도 500석인데 사람이 많이 와서 중간 복도에까지 사람들이 앉아 강연을 들었습니다.강연을 시작하면서 스님께서 질문할 사람 손을 들어보라고 하니 13명이나 손을 들었습니다. 2시간 30분간이나 강연을 하셨는데도 8명밖에 하지를 못했습니다. 질문한 내용들이 모두 간단히 답을 할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었습니다. 강연을 마칠 때쯤 스님께서 “왜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들어요?”하실 정도로 오늘은 삶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쭉 이어졌습니다. nbsp 질문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스님 법문이나 책을 읽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실제 자신의 문제에 스님 말씀을 적용을 해 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몰라 질문을 하다보니, 기본적으로 스님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어서 자신의 문제를 숨기지 않고 구체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두 무거운 이야기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강연이 2시간 30분 동안 이어져도 강연장을 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딸아이를 키우면서 13년간 남편과 별거를 했습니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살다가, 형부 친구를 소개받아서 재혼을 하려고 합니다. 다시 재혼할 남자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은 아들이 친어머니를 못 보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가 저희 딸과 만나는 관계를 불편해 합니다.전 남편과 같이 살고 있는 딸을 보면서 전 남편과 연결될까 봐 못 만나게 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6개월 후로 보류하고 서로 다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결혼을 해도 딸아이와 만나지 않는 것은가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혼자 살기도 어렵습니다. 제 딸은 중학교 1학년입니다.” “제가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9살 때 어머니가 재혼했습니다. 어렸을 때 가정불화가 심하고 어렸을 때 따돌림이 경험이 있고, 새아버지의 동생에게 여러 번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성실한데 저는 마음이 불안해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했어요.” “‘스님의 주례사’를 요즘 봤어요. 결혼할 때 그 책을 못 본 것이 통한스럽습니다. 나는 사기 당한 것 같습니다. 모든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살았더니 결혼생활이 개판이 되어 버렸습니다.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는데 대기업 다닐 때는 묻혀 살다가, 명퇴한 이후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집사람이 제가 부모에게 잘 하고 자기에게 잘못한 것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저에게도 그렇고 아이들에게도 심하게 합니다. 부부로서 남남이 된 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도 치료를 받아서 가족관계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치료를 받아야 할 대상이 부인과 막낸데 저로서는 방법이 없어요.” “결혼한 지 19년 되었습니다. 남편 외도로 이혼을 하려고 했는데 이혼을 안 해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살려고 하는 것도 집착이고 안 살려고 하는 것도 집착이란 생각에 이혼 생각은 내려놨어요.둘째가 20살이 될 때까지 5년간은 더 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많아요. 시집에 대한 의무를 해라고 하면 분노가 올라와요. 시댁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맏며느린데.시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많아요. 큰 애가 3살이고 둘째가 뱃속에 있을 때도 남편 외도 문제가 있었는데 시어머니가 애 떼고 큰 애 놔 두고 나가라고 했어요. 시댁은 외면하고 싶은데 외면할 수도 없고 마음이 편하지가 않아요.” 스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상하면서도 시원하게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어리석어서 보지 못하는 부분을 깨우칠 수 있도록 때로는 꾸짖고 때로는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참 삶이 무겁고 힘든 사람들이 많구나 싶었습니다.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정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자, 모두 따라 해 보세요.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고, 기대를 낮추면 만족이 크다.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 없다. 깊은 산속, 깊은 바다 속에 숨는다 하더라도. 지은 인연의 공덕은 없어지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때,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스님 말씀을 따라 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이어서 사인회를 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nbsp스마트폰으로 스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아 사인하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100강의 첫 날이 저물었습니다. nbsp 내일은 평화교육원 평화리더쉽아카데미 8기 입학식이 있는 날입니다. 내일 입학식 소식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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