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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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7.21. 가을불교대 졸업식 및 가을경전반 졸업식

오늘은 가을불대, 가을 경전반 졸업식이 문경문화예술회관에서 있었습니다. nbsp 오늘 졸업식에는 가을불대 졸업생 492여명, 가을 경전반 졸업생 115명중 약 52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약 520여명의 졸업생들에게 오전에는 졸업법문을 해주셨고 이어서 직접 졸업장을 수여하며 축하해 주셨습니다.nbspnbsp 법사님들도 스님과 함께 졸업생들을 축하해 주셨습니다.nbsp오후에는 오계 수계식이 있었습니다. 수계식 참가자들은 스님으로부터 불명을 받고 이후부터는 오늘 받은 불명의 부처님과 같은 마음을 내며 살아가야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nbspnbsp 오늘 졸업하고 수계받은 정토행자들이 앞으로도 부처님의 정법 아래에서 더욱 더 수행정진 하리라 생각됩니다.nbsp 스님께서는 다시 내일부터 4박 5일간의 2차 명상과 3차 명상에 들어갑니다.

2013.07.21. 17,584 읽음 댓글 4개

2013.7.20. 제1차 명상수련 회향 및 실무자 안거 입재

지난 7월 11일부터 시작된 1차명상수련이 오늘 회향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명상에 들어가면서부터 단식을 하셔서 오늘로 10일째로 맞이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7월 31일 모든 명상이 끝날때까지는 단식을 하실 예정입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단식을 하시는 가운데에서도 190여명의 대중들과 함께 정진하시고 저녁마다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저희 190여명의 명상수련생들은 스님의 가르침아래 10일간의 명상수련을 잘 회향했습니다. lt명상수련 바라지들과 함께gt 스님께서는 명상수련 회향식을 마치자 마자 바로 실무자들 안거 입재식에 참석하셨습니다. 스님과 법사단, 실무자 약 50여명이 함께 각자 명상수련 소감문을 나누고 스님께서는 한명한명에게 나아갈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2시 45분부터 시작된 입재식은 밤 10시가 되어야 마쳤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우리를 위해 몸을 아끼시지 않는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내일은 가을불교대 졸업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2013.07.21. 17,199 읽음 댓글 8개

2013.7.10. 힐링캠프 100회 특집 촬영

7월 7일 스님께서는 동북아 역사기행팀을 한국으로 떠나보내고, 식량사정등 북한의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서 단동을 방문하였습니다. 단동에서는 북중간 새로 짓고 있는 신압록강 다리와 주변개발지역등을 둘러보신 후 다시 심양을 거쳐서 북경을 방문하여 몇 분을 만나서 중국의 대 한반도 정책변화등을 알아보신 후 7월 9일 밤늦게 인천공항에 도착하셨습니다. 정토회관에 도착하니 0130정도 되었습니다. 도착하신 후 해외일정으로 밀린 월간정토, 법보신문등에 내보낼 여러종류의 원고를 교정하느라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하셨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오늘도 짐을 챙길 여유도 없이 아침 7시 30분부터 북한전문가들과 북한현실과 이해의 모임을 가졌습니다.nbsp 이어서 2개의 미팅을 더 갖고 난 후 북한에서 오신 노인 한 분이 갑자기 병이나 입원해 계셔서 직접 병원을 방문해서 위로 해 주셨습니다.nbsp 병문안 후 스님께서는 힐링캠프 100회 특집에 출연요청을 받고 바로 남양주 봉서원에 있는 촬영장으로 이동하셔서 밤 10시 30분까지 힐링캠프 100회 특집을 촬영 하였습니다. 오늘 촬영한 힐링캠프는 7월 15일에 방영이 될 예정이니 많은 시청바랍니다.nbsp 내일부터는 스님뿐만 아니라 정토회 모든 실무대중들이 21일간 안거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8월 3일까지는 스님의 하루를 쉬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스님의 하루를 즐겨찾는 분들께 “애독자 여러분들도 정진에 전념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nbsp 이후 법륜스님의 일정은 711201차 명상721 불교대 졸업식 및 수계식722262차 명상727313차 명상81,2실무자 수련83신도활동가 수련8411중국역사기행81118중국역사기행

2013.07.11. 24,702 읽음 댓글 22개

2013.7.7. 심양 요녕성 박물관

오늘은 동북아역사기행 마지막 날입니다. 4시 반에 백산의 숙소에서 출발하여 통화에서 아침시장을 구경하면서 식사를 하고 심양의 요녕성 박물관을 관람하는 일정입니다. 마지막 날이라 피곤은 쌓이고 긴장은 풀려서인지 차만 타면 자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통화의 아침 시장은 우리의 옛 재래시장을 연상시킵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저마다 준비해온 오이, 호박, 과일, 옷, 떡, 생선, 고기, 살충제나 쥐약으로 보이는 것까지 온갖 것을 팔고 또 삽니다. 스님께서도 재래시장 한 편에 노점으로 마련된 노천 식당에서 따근한 순두부 한 그릇으로 아침식사를 간단히 떼우십니다. 처음 중국의 시장에 나와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터에 낯선 중국 음식 앞에서 머뭇거리던 참가자들도 스님의 스스럼없는 간소한 아침식사를 보고 용기를 내어 과감하게 중국 음식에 도전합니다. 순두부, 쌀국수, 물만두, 꽈배기, 쌀전병 등 값싼 음식들이 금새 식탁을 채우고, 호기심을 반찬 삼아 즐겁게 아침식사를 마쳤습니다. 약 1시간 가량 시장구경과 아침식사를 재미나게 하고 요녕성 박물관이 있는 심양으로 향했습니다. 시내에 이르기 전 스님께서 심양의 역사에 대한 간단한 설명으로 이해를 돕습니다.nbsp 인구가 천만이라는 동북아의 중심지 심양으로 들어서자 지금까지 차창 밖으로 봐왔던 풍경과는 전혀 다르게 마천루 즐비한 대도시의 모습이 펼쳐졌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중국의 급속한 변화와 그에 따른 한반도의 미래가 연상되어 지기도 합니다. 시내를 관통하자 요하문명 유물전이 열리고 있는 요녕성 박물관에 어느덧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 차분히 요하문명에 대한 설명을 해주십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황하문명보다도 12천년 앞선 요하 문명은 환웅의 배달문명으로 이어져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로 이어진 사실을 독특한 무덤 양식이나 발달한 옥 문화 등을 통해 유추 해석할 수 있으나 우리에겐 유적과 유물이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nbspnbsp 요하문명에 대한 공부를 끝으로 동북아워크숍 전체 일정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다른 일정이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심양공항까지 함께 오셔서 참가자들이 안전하게 출국 수속을 마치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고 손을 흔들어 배웅까지 하시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바쁜 일정 가운데에서도 4박 5일간 긴 시간을 함께 해 주신 스님께 참가자들은 머리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동북아워크숍의 소감을 나누었습니다.nbspnbsp “아직도 수천년 우리 민족의 역사는 바쁜 삶과는 거리가 먼 책 속의 이야기, 드라마 속의 스토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고구려의 성벽을 바라보며 우리 선조들이 피흘려 지켜낸 삶의 터전을 두 발로 딛고 서서, 그 유구한 겨레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머나먼 과거가 현재가 되고, 조상들의 고통과 희망이 민족의 자부심으로 되살아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압록강변을 따라 백두산을 향해 가며 바라본 북녘 땅의 뙤기밭, 가늘게 피어오르는 오두막집의 연기를 보며, 북한동포들의 처참한 현실을 가슴 아프게 깨닫게도 됩니다. 짧은 여행 속에서 발로 깨닫고 눈으로 되새긴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포부, 북녘 동포들의 고난의 행군을 이제 일상에서도 잊지 않으렵니다.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차근차근 통일의 밑돌을 놓기 위해 궁리하고, 많은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 lt평화리더십아카데미 4기 여영학님의 소감문gt nbspnbspnbsp “4박 5일 동안 편안하고 울컥하기도 했고 정리도 되는 느낌입니다. 말로만 하던 ‘통일의병’이란 단어가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내 생활의 일부로 여겨질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고, 이후에 어떤 마음으로 활동을 해 나갈 수 있을지 정리가 되었습니다. 5년 전에 왔을 때는 중국에 대한 열등감과 무시하는 마음에서 모든 유적지, 역사의식에서 ‘내꺼’라는 마음, 우월감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며 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니꺼, 내꺼’가 아니라 ‘중국과 함께 새로운 동아시아의 문명을 만들 수 있겠구나’ 라는 배척하는 마음이 아닌 ‘함께’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스님께서 늘 말씀하시던 통합, 화합의 마음이 새겨져서 스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고, 15년 동안 북한동포돕기 하신 스님의 활동과 정성이 전해져서 북한동포들의 아픔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함께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으로 통일의 비전을 볼 수 있고, 이렇게 함께 선각자의 뒤에 따라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함께 가는 분들이 있는 것만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중국이 점점 친근해지고, 북한동포들의 아픔을 잊지 않겠다고, 나날이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하게 살겠다고, 스님께서 일러주신 공심을 잊지 않겠다고 마음을 내어 봅니다. 이번에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여성리더십아카데미 분들과 함께 가는 것에 대해서 기대와 설레임이 있었는데, 함께 하니 진짜 든든하고 참 좋았습니다. 통일의병 분들의 에너지, 간절함에서 배운 것들이 많았고, 세대를 아울러 함께 통일의병의 힘을 모은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공부와 여행을 이끌어 주신 법륜스님, 수고하신 스텝분들, 그리고 함께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lt새로운백년 청년학교 1기 이주현님 소감문gt

2013.07.10. 16,519 읽음 댓글 1개

2013.7.6. 백두산

동북아역사기행 넷째날, 오늘은 꿈에 그리던 백두산 가는 날입니다. 설레임에 밤잠을 설쳤다는 사람, 기상시간 1시간 전부터 일어나 목욕재개를 했다는 사람, 구름 낀 아침 하늘을 보면서 걱정하는 사람, 신이 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 등 언제나 그렇듯 ‘백두산 가는 날’은 그야말로 기다리던 소풍이나 축제와도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백두산 천지 탐방’은 이번 동북아워크숍 참가의 가장 중요한 이유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동북아워크숍의 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벽 5시 정각, 버스는 예정대로 흐린 하늘과 새벽안개를 헤치며 백두산으로 힘차게 출발합니다. 버스에서 백두산에 대한 스님의 설명으로 이해를 돕습니다.nbspnbsp “백두산은 우리나라는 물론 동북지방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서 중국에서는 장백산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60만 년 전에 화산 분출로 인해 생성되었으며, 높이는 해발2,750m인데 정상에는 2,500m 이상의 봉우리가 16개나 솟아있습니다. 그 중 제일 높은 봉우리가 북한편에 있는 장군봉입니다. 천지 바깥쪽에 있는 능선 중 34은 중국 땅에 속하고, 천지의 35는 북한땅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산 정상의 호수인 천지는 전형적인 칼데라 호수로서, 화산이 폭발할 때 용암이 분출해서 흘러내려가고 그 화산재가 덮이면서 형성되었습니다. 흔히 용왕담이라고도 불리우는 천지는 해발 2,189m에 위치하며 남북 4.9km, 동서 3.35km의 면적에 수심이 384m나 되는데, 전 세계적으로 이런 높이와 면적을 가진 호수로는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명산입니다. 또한 백두산에는 천연적인 식생이나 동물이 많고 자연적인 약초들도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백두산에 있는 풀 한포기, 돌 하나, 동식물 하나라도 무단으로 채취하거나 가져가는 행위는 모두 위법이 됩니다.”nbsp ‘백두산으로 찾아가자 우리들의 백두산으로 신선한 겨레의 숨소리 살아 뛰는 백두산으로 백두산으로 찾아가자 만주벌판 말을 달리던 전사들의 투쟁의 고향 백두산으로 찾아가자 서해에서 동해에서 남도의 끝 제주도에서 그 어디서 떠나도 한품에 넉넉히 안아줄 백두산 온 힘으로 벽을 허물고 모두 손 맞잡고 오르는 백두산이여 꺽이지 않을 통일의 깃발이여’백두산으로 가는 마음을 담아 버스에서 신나게 노래도 함께 배우고, 목청껏 백두산을 불러보기도 하면서 버스는 달리고 달립니다. nbspnbspnbsp 백두산 남문에 예정 시간 보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것은 그만큼 백두산 천지를 빨리 맞나고 싶다는 우리들의 소망 때문이었을 겁니다. 어서 빨리 개장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삼삼오오 모여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소형 버스로 갈아타고 정상을 향해 굽이굽이 올라가는데 그 길이 장관이었습니다. 산 아래 쪽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지만, 해발 2천미터 이상 올라가다보면 하얀 사스래 나무만이 홀로 남아 수목한계선임을 표시하며 백두산을 지키고 있습니다. 길 양쪽에는 이제 피기 시작한 야생화 군락이 보이고 특히 중간 정도 올라갔을 때부터 보이던 연노란색의 두메양귀비는 노랑 나비처럼 아름다워 참가자들의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지천에 두메양귀비, 보라색 매발톱, 노랑 만병초 등이 피어 있어 보는 눈이 즐거웠습니다. 올라갈 때는 하늘이 맑고 구름도 뭉게구름이라 천지를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잔뜩 했는데, 거의 정상에 도착할 때쯤엔 갑자기 구름이 어디선거 몰려와 하늘을 뒤덮어 사람들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듭니다. 갑자기 먼저 간 일행의 천지 정상쪽에서 ‘와’ 하는 탄성이 터져나옵니다. 곧이어 강의용 수신기를 통해서 스님께서도 기쁜 마음으로 탄성과 함께 화답해 주십니다. ‘천지가 열렸다’는 말에 가슴이 벅차올라 참가자들은 그 기쁜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는 듯 보입니다.nbspnbsp “자, 여러분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 천지를 보니 기분이 좋지요? 여러분들이 그동안 공덕을 잘 쌓은 인연 때문인지 오늘은 정말로 하늘이 맑고 시야가 깨끗해서 천지의 본 모습을 만끽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눈앞에 보이는 것인 바로 천지입니다. 천지의 물은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지하수가 60나 됩니다. 그리고 온천도 있습니다. 천지에 고여 있는 물 자체는 북쪽으로 흘러서 송화강의 원류가 되고, 백두산의 서쪽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압록강의 원천이 되고, 동쪽 기슭으로 흘러내린 물은 두만강을 이루게 됩니다. 이렇듯 백두산 천지는 이 동북일대의 강물의 원천이 되어, 예로부터 이 곳 사람들로부터 신비스럽고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지며, 각종 기원과 제사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이 천지가 북쪽의 천문봉과 용문봉 사이의 통천하를 통해 흘러서 장대한 폭포를 이루는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장백폭포’입니다. 백두산은 예부터 우리 민족 활동의 중심지로서 보이는 것처럼 산세가 장엄하고 자원이 풍부하여 일찍이 한민족의 발상지이자 개국의 터전으로서 민족의 영산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특히 일제 식민지 시절에는 이 곳 백두산 일대를 중심으로한 항일독립운동의 주요한 무대로서 그 역사적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nbspnbspnbsp 백두산이 우리 민족에게 전하는 역사적 의미를 스님의 설명을 통해 듣고, 직접 눈앞에 펼쳐진 장엄하고 웅대한 백두산 봉우리와 심오한 천지를 바라보는 참가자들의 마음은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가슴 뛰는 설레임으로 웃음 짓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떠올리며 숭고한 마음으로 뚫어지게 한 곳을 바라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저 봉우리 건너편의 북한동포를 생각하며 하루 빨리 통일의 길이 열리기를 바라는 간절함도 있었노라고 내려오는 길에 이런저런 감상들이 이어집니다. 천지의 감동이 사라지기 전, 내려오는 길에 들른 압록강이 발원하는 물줄기가 이룬 폭포수와 압록강 대협곡을 덤으로 감상하며 참가자들은 어 더 없는 행복감을 맛보는 시간이었다고 전합니다. 백두산 탐방을 마치고 숙소가 있는 백산으로 가는 길에서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느낀 소감을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맛있게 마치고 친교의 시간을 가진 뒤 워크숍 마지막 강의를 스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nbspnbspnbsp “우리 사회에서 자살율이 많은 것은 현재 삶에 대해서 희망적이지 못하다는 반증입니다. 출산율이 매우 저조하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두가지는 현재뿐 만아니라 미래에 대해서도 희망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성장동력이 작아졌느냐? 첫째, 그동안 우리 성장동력이 모방이었습니다. 모방을 통해 압축성장, 고도성장이 가능했지만, 이제 우리의 성장이 서구문명의 수준에 이르렀어요. 그러므로 더 이상 모방으로는 성장하기가 어려워졌어요. 그런 점에서 한계점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일본이 이미 보여주고 있습니다. 20년전에 서양기술 수준에 도달했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죠. 우리는 이제 도달해서 앞으로 정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두번째로는 인건비라던지, 인구의 정체현상이라던지 여러 요소들을 봤을 때 성장이 더 이상 되기 어려운 국면에 놓여져 있어요. 세번째는 국제정세의 변화입니다. 전에는 미국 중심으로 세계의 질서가 편재되었지만 지금은 중국의 급격한 성장을 통해 세계가 G2시대로 돌입했습니다. 이런 세가지 변화를 잘 살펴야 합니다.”nbspnbsp “현재의 한국이 처한 내외적 상황을 분석해 볼 때 한국은 정체와 쇠퇴국면으로 갈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통일한국을 이루어 미중관계에서 자주성을 갖고 우리의 이익을 추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면에서 통일은 과거를 단순히 청산하는 이념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것입니다. 또한 통일은 우리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옵니다. 통일문제는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한 당위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발전적 비전을 만들어 내고, 우리가 자신감을 갖게 되고, 희망을 갖게 만드는 유일한 하나의 돌파구입니다. 우리 사회가 양극화가 아주 심한 사회라면 통일에 아무런 동력이 없습니다. 또한 중앙권력이 지방으로 분산되고, 지방권력이 더 주민들에게 더 분산되어서 지방분권형태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민주화라고 할 수 있죠. 또한 독점된 부가 분산되는 것이 경제민주화입니다. 남한에 의한 북한의 지배가 아니라 그냥 각각의 지방자치정부가 어느 정도의 자주권을 갖는 지방분권의 형태를 갖는 것입니다. 이러면 세계문명의 가치와도 일치하겠죠. 힘에 의한 통일, 전쟁에 의한 통일 이런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세계가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가면서 근대의 질서들을 청산해나가는 통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이러면에서 통일은 과거의 학생, 노동자만의 요구가 아니라 이제는 중산층의 요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은 더 이상 이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가 통일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고, 통일된 국가의 내용에 대해 주변국가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고, 앞으로 인류의 미래에 어떤 역할, 비전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바라봐야 하는 통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의병은 우리 사회의 갈등관계에 놓여있던 사람들이 공공의 이익, 민족적 이익을 위해서, 애국심 있는 사람, 헌신성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새로운 백년, 통일시대의 비전과 여러분이 역할입니다.”nbsp 동북아워크숍의 마지막 날 강연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백두산을 통해 우리 민족의 원대한 기상을 직접 보고 느낀 경험에 스님의 새로운 백년, 통일코리아의 비전이 더해져 가슴 뛰는 대륙의 밤이 깊어만 갑니다.

2013.07.09. 17,630 읽음 댓글 4개

2013.7.5. 조중국경변, 장백

동북역사기행 셋째날입니다. 집안 시내에서 압록강변을 따라 20여분 정도 지나면 한적한 시골도로와 만나는데, 함께하는 벗들과 산책삼아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피우며 걸어 올라가는 길이 ‘고향의 봄’에 나오는 그 길같아 정겹고 아늑합니다. 국동대혈 전에 먼저 들른 곳은 관세음보살상을 오래도록 모셔온 관음굴입니다. 관음굴에 도착하니 굴의 오른쪽에는 건강의 신이, 왼쪽에는 재물의 신이, 정면에는 관세음보살상이 우리 일행을 맞이합니다. 오랜만에 부처님께 예배를 올린 후, 스님께서는 ‘의신으로부터는 건강을, 재신으로부터는 재물을, 관세음보살로부터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기를 기원하였으니 모두 여러분들의 뜻한 바대로 실현될 것입니다’라며 축원해 주셨습니다.관음굴에서 조금 더 오르니 유리왕의 사랑이야기가 담긴 사랑바위에 다다릅니다. 워크숍에 참여하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세월을 넘나드는 사랑이야기에 함박 웃음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경사진 언덕길을 올라 아침 이슬이 촉촉이 땀으로 배어나올 즈음에 눈 앞의 거대한 암석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이는 공간이 나타나는데, 바로 국동대혈입니다. 스님도 땀을 식히시고 차분히 설명을 해 주십니다. nbsp“국동대혈은 국내성에서 동쪽으로 가면 큰 대혈이 있다는 뜻입니다. 국내성으로부터 17km, 압록강으로부터 1km 떨어진 산 정상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옛날 해마다 10월이 되면 고구려의 왕들은 군신들을 거느리고 이 곳에 와서 나라의 평안과 백성의 안녕, 그리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하늘을 향해 지극한 마음으로 올렸습니다. 이 때의 왕은 단순히 세속적인 통치권력자로서 뿐만 아니라 천손으로서 하늘의 권능을 빌리는 제사장의 역할도 겸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국동대혈의 발견은 고구려인들의 신앙, 제사, 풍속 등에 관한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nbsp 그리고 국동대혈 참배를 마친 후 스님께서는 특별히 참가자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nbsp “오늘 여러분들을 관음굴에서 마음의 평화와 육체적 건강과 재물을 얻기를 기원하고, 또 사랑바위에서는 사랑이 깃들기를 기원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개인에게 간절히 요구되는 바람입니다. 이제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나라와 민족, 공동체 사회를 위한 공적인 마음을 더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곳 국동대혈에서 천제를 올린 뜻입니다. 개인의 행복과 이익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익, 나라와 국민의 이익을 위하는 그런 마음도 내고 그런 활동도 하셔야 합니다.” nbsp어제 하루 종일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했던 탓일까요? 고구려인의 정취와 숨결이 한층 친숙하게 느껴지는 터에 국동대혈에 올라 그 옛날 고구려인들이 하늘에 올렸다는 지극한 마음을 헤아려보니 친근함을 넘어 짐짓 숙연해지기까지 합니다. 참가자들도 옛 고구려인의 마음이 되어, 우리 민족의 번영을 기원하고, 한반도에 더 이상 배고픔의 고통과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기를 염원하는 마음을 고구려의 하늘에 정성스레 담아 올려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지 않던가요.nbspnbsp 아침식사를 마치고 조금 비장한 각오로 버스에 오릅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압록강 국경변을 따라 장장 10시간에 걸친 버스 여행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워크숍의 종착지라 할 수 있는 백두산을 향해 갈 수 밖에 없는 길이기에 마음을 단단히, 그러나 가볍게 내어봅니다. 집안 시내를 벗어나 통화, 백산, 림강을 지나자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믿지 못할 광경에 참가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강 너머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북녘 산하의 헐벗은 모습 때문입니다. 일명 ‘뙤기밭’으로 불리우는 북한의 산 중 개간지가 강변을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마치 산 전체를 조각난 연초록색 누더기 천으로 짜깁기 한 듯, 뙤기밭은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고 이어집니다. nbspnbsp “제가 15년 전, 1996년도에 굶주리는 북한동포들을 위해 제가 식량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경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줄 수 없다’는 사실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과연 국경이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왜 저쪽에서는 굶어 죽고, 이쪽에서는 음식이 남아도는데, 왜 국경이라는 장벽 때문에 식량 한 줌을 주지 못하는가? 제가 북한 강변의 굶주린 아이를 불렀을 때 그 아이는 대답이 없었어요. 인도 같으면 가난한 아이들이 따라 다니면서 손을 내밀고, 아니면 내 손을 잡고 계속 따라 옵니다. 그런데 북한의 그 어린아이가 배고픈데도, 음식을 주려고 하는데도 대답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저 아이는 도대체 나에게 무엇일까? 그 때 동행했던 조선족 분이 ‘조선아이들은 구걸할 자유도 없습니다’라고 말해주더군요. ‘도대체 무슨 교육을 받기에 배고픈 것도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인가? 그 배고픔을 배고프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담담한 어조로 하지만 무게감이 느껴지는 절절한 마음을 담아 흔들리는 버스를 따라 북한이야기를 써내려 가십니다. nbsp “저 비탈진 뙤기밭은 우리가 모르는 동안에 북한에 사는 동포들이 그만큼 어려움을 겪고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식량이 없어서 많은 이들이 굶어 죽었고, 굶어죽지 않으려고 서있기도 어려운 비탈진 산에 붙어서 기적같이 살았습니다.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존을 위해서 인간이 얼마나 처절한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사람이 저렇게 살려고 애를 쓰는데, 굳이 외면하거나 보복을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이런 문제는 꼭 종교적인 차원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민들이 지금까지도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소수의 북한 관리들의 주장에 동조해 북한 정부를 두둔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봐야합니다.” nbsp 아침 8시 30분에 출발하여 통화를 거쳐, 12시 30분경 림강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다시 한참을 달려 오후 5시가 다 되어서야 장백에 도착하였습니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 발해의 영광탑을 참배하였습니다. 오늘의 저녁 강의는 스님께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구호활동 등 ‘인도주의 정신과 활동’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이야기들로 가득 메워집니다. nbspnbsp “식량난으로 인한 북한주민들의 고통, 그것을 견디지 못해서 국경을 넘은 난민들을 우리가 너무 정치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시다. 그들에겐 식량이 필요할 뿐인데, 왜 이것이 정치적 이념이 되어버리는 것일까요? 그것이 북한체제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잘 살펴보면 사회체제의 구조적 희생자들이고, 지도자의 잘못에 의한 희생자들인데, 지도자가 밉다고 희생자들을 외면하면 그들은 이중고통을 겪는 것과 같습니다.전쟁을 하게 되면 우리가 적을 죽이죠. 그런데 적이 부상을 당해서 공격력을 잃어버리면, 옛날에는 확인사살을 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전쟁에서 이겼는데도 굳이 확인사살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것은 보복심리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상호간에 전쟁 중에 서로 총을 쏘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하는 사람들이 굳이 확인 사살하기 보다는 치료해 주는것이 마땅하지 않는가?’ 라는 인류애의 보편성을 갖게 된 것도 백년 남짓한 일입니다. 또한 전쟁 포로를 해치지 않고 보호하기 시작한 것도 19세기 말에 정착된 규범입니다. 이것은 종교적 이념이 아니라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동의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완전히 실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nbspnbsp 이상과 현실의 간극, 하지만 그것이 사람의 생명에 대한 문제에서 이상보다는 현실의 힘이 강력한 것 같아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안타까움이 더해집니다.nbspnbsp “우리가 이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보편적으로 접근합시다. ‘인류가 지난 수 천 년 문명이 발전해왔다고 하는 그 결과물로 우리가 전쟁에 관계없는 사람들을 보호하자’는 것은 세계시민의 의무로서 수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북한 동포들이 어떻게 굶어죽게 되었는가를 살펴야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당장, 전부 해결해 줄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일단 굶어죽는 사람들은 구제를 하면서 동시에 그 원인을 제거해가자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원인이 제거되기 전까지는 그런 희생을 방치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적어도 제 생각에서는 UN인권선언에 맞지 않다는 겁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북한 군인도 굶어죽으면 먹여 살려야 합니다. 굶어죽는 사람을 살리는 것은 사상과 관계없어야 해요. 군인도 배가 고파서 지원받은 식량을 가져간다고 할 때, 무조건 거부해야할 일일까요? 군인도 사람이고 젊은이잖아요. 북한의 젊은 남자가 다 굶어 죽어야 하는 것인가? 북한주민에 대해서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최소한 보장받아야할 대우, 즉 인도적 지원이나 난민 보호에 관한 사항은 외면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북한시민도 세계시민가운데 하나에요. 우리는 아프리카의 인권은 얘기하면서 왜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외면하느냐? 겨우 북한 인권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북한 인권개선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핑계로 북한정권의 타도를 얘기한다면, 그것은 남북간에 합의한 내정불간섭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입니다. 남북정부가 나서서 인권을 빙자해서 인권을 외면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다. 또한 인권을 주제로 해서 북한체제를 변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이념,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북한주민을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북한주민들이 인류의 한 사람이고. 인간의 권리를 최소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해야합니다. 이런 문제에서 우리는 자기 이념을 너무 앞세워서 북한을 수단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북한주민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려면 그들의 이념이 어떻든 마땅히 구제해주어야 합니다. 만약 북한법에 문제가 있다면 UN헌장에 따라서 법개선을 요구할 수도 있고, 또 그들이 북한법마저 지키지 않을 때에는 우리 생각으로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잘 지키라고 말하는 것은 북한체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처럼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이제는 개선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nbsp그동안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인도주의적 관점과 이념의 문제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고통받는 북한동포들의 마음을 담아 더욱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nbsp“우리가 돌아보면 공적인 마음, 즉 공심이 조금 부족하지 않는가? 모든 인간은 다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기본이에요. 그러나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에는 어떤 것보다도 사람을 더 소중히 하는 것을 바탕으로 어떤 이념이든, 이익이든 추구해나가야 합니다. 오늘도 아침에 국동대혈에 가는데 참 좋았잖아요. 왼쪽으로는 건강, 오른쪽으로는 재산, 그리고 사랑이 있었죠. 그러나 제일 위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공적인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이 있어줘야 우리가 인류의 당면 문제, 북한동포의 생명을 살리는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여러분들이 북한주민들이 겪은 지난 20여년의 고통을 외면했던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충분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에 대한 무관심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의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우리가 정말 고통받는 북한동포들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 봅시다. 그래서 통일만이 그들의 인권, 생명권을 해결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한국의 국가비전과 같은 큰 목표도 있지만, 작게는 북한 동포들의 굶주림과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의 통일에 대한 여론형성과 활동영역을 좀 더 활발하고 광범위하게 만들어가야 북한동포들도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nbsp오늘도 밤이 깊었습니다. 압록강변을 따라 가며 바로 눈 앞에서 보았던 처참한 북한동포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어른거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내일 백두산에 오르면서는 굶어죽는 생각만 하지 말고, 우리 새로운 미래와 희망, 새로운 100년, 1000년을 만들어나가는 상상력을 가져 봅시다’ 라며 하루의 맺음말을 해주신 법륜스님의 말씀처럼 내일은 또 다시 새로운 희망으로 하루를 열어야겠습니다.

2013.07.07. 17,227 읽음 댓글 6개

2013.7.4. 집안-고구려 유적지 답사

동북아역사기행 둘째날인 오늘은 ‘고구려의 날’입니다. 왜냐하면 주요한 고구려 유적지 6곳을 둘러봐야하기 때문입니다. 아침 5시, 고구려의 첫 도읍인 환인을 뒤로하고 고구려의 도시 ‘집안’으로 새벽 버스는 달립니다.nbspnbsp “저희는 지금 집안으로 향합니다. 유리왕 22년 졸본에서 천도한 후 장수왕 15년 평양으로 3차 천도할 때까지 집안은 425년간 고구려의 찬란한 수도로서 기능해 왔습니다. 집안은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으로서 뒤로는 험준한 노령산맥을, 앞으로는 압록강이 펼쳐져 있어 주변 지역에 비해 기후는 온화하고 토지는 비옥하며 수산물이 풍부하여 동북지방의 살기 좋은 환경을 가진 도시였습니다. 이곳에서 고구려는 본격적으로 국가의 기틀을 다지고, 주변국들을 복속하여 동북지역의 맹주로 발돋움하며, 독창적인 고구려 문화를 꽃피워 갔습니다. 마치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 어느 곳을 둘러보더라도 유적유물이 나오는 것처럼, 집안 시내 어느 곳을 파더라도 고구려의 문화유물이 발견될 정도로 고구려인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있는 도시입니다. 오늘 저희는 환도산성, 국내성, 장군총, 광개토왕릉과 비석, 오회분오호묘, 서대묘와 천추묘 등을 답사할 예정입니다.”nbsp 집안의 역사적 의미를 설명해 주시는 스님의 안내를 들으니 집안으로 향하는 가슴이 더욱 설레어 옵니다. 집안 고구려 유적 답사의 시작은 환도산성으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환도산성은 전쟁이나 재난 발발시 평지성인 국내성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데, 고구려의 방어체계는 이렇게 평지성과 산성이 하나의 짝을 이루어 건축되었다는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환도산성을 빠져나오니 통구하를 사이에 두고 넒은 들판에 수천기의 고구려 무덤군이 있는데, 이것을 ‘산성하 무덤떼’라 이름한다고 하였습니다.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 없는 무명비를 보니 긴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면서도, 중국과는 다른 독특한 무덤양식을 이렇게 발전시켜 온 고구려인의 기술력에 자긍심이 돋아나기도 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하고 유명한 장군총, 광개토대왕릉과 비석을 연이어 답사하였습니다. 그 무덤의 웅장함에도 놀라움이 있었지만, 이 무거운 돌을 운반해서 쌓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들은 참가자들은 고구려인의 과학적 기술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듯하였다고 합니다. nbsp 이어서 간 곳은 ‘오회분 오호묘’입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고구려 고분 벽화를 감상할 수 있었는데, 중국사관이 아닌 스님으로부터 직접 전해 듣는 우리민족의 신화와 설화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nbsp 저녁식사를 하는 조선족 식당 인근으로 압록강이 유유히 흐릅니다. 국내성의 해자 역할을 했던 통구하가 미끄러지듯 흘러들어가는 압록강변을 따라 스님께서 들려주시는 북한 식량난 이야기를 함께 걸으며 들으니 더욱 절절히 다가옵니다. 압록강 너머 북녘땅을 바라보니 스님께서 15년 전, 역사답사 중에 전해들은 북한의 식량난 소식이 도저히 믿기질 않아 직접 배를 타고 압록강을 따라 북녘땅을 둘러보다가 만난 ‘구걸할 자유도 없었다던 그 굶주린 북한 아이’가 눈에 어른거리고 손에 잡힐 듯도 하여 안타까움이 더해만 가는 하루였습니다. nbspnbspnbsp 오늘의 저녁강의는 고구려의 역사를 뛰어넘어 ‘역사의 정통성’에 관한 집중 강의로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민족문화의 우수성에 대해 힘차게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 “자, 오늘 우리가 돌아본 장군총, 광개토대왕릉, 산성하 고분군, 서대묘와 천추묘 등은 중국 대륙의 유적에 비하면 규모면에서 그리 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술적, 예술적 측면에서는 굉장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고도의 선진문명을 계승한 민족적 특징이 그것입니다. 고구려뿐만 아니라 신라의 유물·유적 또한 당나라와 비교해서 규모는 작지만 정교함에 있어서는 당나라의 것을 능가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의 섬세한 기술적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nbspnbsp 그리고 이어서 우리 민족의 뿌리, 즉 시원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 “어제는 우리 민족의 시원인 환인의 한나라, 환웅의 배달나라, 단군의 조선나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삼신이며, 세 영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인은 큰님, 밝은님, 하느님을 의미한다면, 환웅은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한 사람, 즉 토착세력과 함께 새로운 문명을 건설한 사람을 의미하는데, 바로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정신을 구현한 것이라 할 수 있겠죠. 환웅은 정신적으로 이끌었다고 한다면, 단군은 이주민과 토착세력과의 결합을 통해서 진정한 나라를 건설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국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천지인의 개념으로 보면, 진정한 인의 실현자라고 할 수 있겠죠. 예를 들어 남미에서 지금까지 백인이 대통령을 하다가, 최근에 원주민 출신의 대통령이 나오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환웅이 하늘의 문을 열었고, 그것이 혼탁해지자 단군에 의해 새롭게 그 뜻을 인간적으로 실현한 것이 단군의 건국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구상의 가장 선진적인 문명중의 하나인 하늘문명을 계승한 것이 배달문명이고, 그것을 또한 계승한 것이 단군조선 문명인데, 이것은 모두 중국의 문명보다 앞선 문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nbsp 이렇게 문명의 시원에 대한 설명에 이어서, 중국문명의 흥망성쇠와의 역사적 비교를 통해서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와 신라고려조선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민족문화의 계승과정을 상세히 설명하시면서 ‘역사의 정통성’을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 nbsp “오늘 고구려의 역사유적을 답사하면서, 환인환웅단군부여고구려발해고려로 연결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고려는 왜 발해가 아닌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했을까요? 고려가 영토나 사람으로 보면 신라를 계승했는데, 그것이 전부라고 한다면 우리의 영토적 역사성은 대동강 이남 밖에 안되고 민족역사도 2천년 밖에 안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발해를 계승했다고 한다면, 발해는 신라와 적대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신라의 역사성에는 배타적인 불완전한 계승일 수 밖에 없습니다.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결국 신라와 발해를 모두 계승했다, 즉 온전한 역사성의 계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조선왕조는 역성혁명을 통해 왕의 성만 바뀌었지 고려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고려왕조의 정통성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한제국은 ‘큰 한나라’라는 뜻으로 환인의 ‘한나라’ 또는 ‘삼한’에서 온 나라명입니다. 조선왕조가 청나라로부터 굴욕을 당하면서 자주성을 잃었기 때문에 자주국가라는 것을 재천명하기 위하여 대한제국이라고 국호를 바꾸었습니다. 이 대한제국에서 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가라는 뜻으로 대한민국으로 계승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일제로부터의 독립운동은 과거 대한제국의 부흥운동이 아니라 새로운 대한민국 수립운동이라고 용성조사님께서 제창하셨습니다.”nbspnbsp 민족의 시원으로부터 현재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가 어떻게 계승되어 왔는지를 한눈에 알게되니 가슴 뿌듯한 자긍심이 샘솟습니다. 스님은 다시 말씀을 이어가십니다.nbspnbsp “남북한 통일 과정에서도 역사적 정통성을 잘 고려해야 합니다. 민족사의 미래를 보았을 때, 남북한 합의통일을 통하여만 독립운동사를 모두 계승할 수 있습니다. 바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의 계승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한 주도의 통일이 되더라도 반드시 북한주민의 동의에 기초한 통일이 되어야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해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북한까지도 온전히 계승한다는 것은 한중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까지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이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역사의식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에게 역사적 정통성, 정체성, 자신감에 대한 결여가 있는 것은 바로 역사의식의 결여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nbsp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힘주어 말씀하십니다.nbspnbsp “우리는 민족사관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한중일이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룬다면, 역사유적과 그 해석을 두고 네 것, 내 것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동북아의 문명사로 인식하여 창조적인 공동문명으로 수용해 가야 합니다. 서양은 인류의 시원이 서구라고 믿었는데, 아프리카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발견되었을 때, 이를 인류의 시조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인류문명사 연구가 무려 100년이 지체되는 오류를 범하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하문명을 중국사의 일부로만 본다면 큰 한계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갈수록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요하문명은 반드시 동북아 문명사로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역사를 볼 때 영토적으로는 1천년, 정신적으로는 6백년의 단절기간이 있었습니다. 전자가 발해의 멸망이라면, 후자는 조선의 명나라에 대한 사대의식입니다. 남북한이 통일이 되고, 동북아 공동체를 이루고, 나아가 세계문명의 중심으로 떠오른다면 고구려·발해 이후 1천년, 배달문명 이후 다시금 세계문명의 중심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런 원대한 꿈과 희망, 그 가능성과 기회가 열려있고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가능성은 우리가 식민지 시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50년간 산업화, 민주화를 이룩하고, 이제 새로운 통일시대의 기초를 닦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nbsp 오늘도 대륙의 밤은 깊어갑니다. 반도와 대륙의 경계에서 외적으로는 민족의 방파제로서, 내적으로는 민족문화의 찬란한 꽃을 가꾸어 온 고구려, 고구려인의 꿈을 꾸고 싶습니다.

2013.07.06. 18,920 읽음 댓글 4개

2013.7.3. 심양도착, 백암산성, 홀본산성

동북아워크숍 첫째날,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오전 9시 30분경 중국 심양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간단한 입국 절차를 마치고, 4박 5일 대륙을 달릴 버스에 오릅니다.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평화재단 교육생들의 발걸음은 소풍가는 어린아이 마냥 가볍기만 합니다. nbsp 첫 역사기행 유적지는 요녕성의 백암산성입니다. 연주산성으로도 불리우는 백암산성은 만주벌판의 중요한 방어선이었으며, 고구려의 독창적인 축성 양식을 공부할 수 있는 유적지입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도 스님께서는 쉬지 않고 설명해 주십니다.nbspnbsp “고구려성의 중요한 특징은 성벽 안 밖으로 ‘치’를 만들어서 적의 공격으로부터 성벽을 보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성을 쌓을 때 밑의 기단부는 계단식으로 쌓아 기초를 튼튼히 하고, 그 위로는 수직으로 쌓아 올려 적이 쉽게 성벽을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대비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성벽의 안쪽면은 돌을 서로 엇갈리게 맞물려 쌓는 개이빨식 방식으로 조성하여 성벽의 일부가 무너지더라도 전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견고한 축성기술을 발달시켜 왔습니다. 이것은 동북아 일대의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고구려만의 독특한 축성법입니다.”nbspnbsp 성벽을 타고 올라 정상의 망대에 오르니 시야가 트이고 태자하가 산성과 마을을 휘감으며 유유히 흘러갑니다. 깍아지르는 절벽과 강물, 그리고 견고한 축성기술로 쌓아올린 웅장한 성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자연의 지형지세를 멋지게 활용한 고구려인의 지혜에 다시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nbspnbsp 다시 버스는 환인을 향해 달립니다. 심양에서 시작한 옛 길은 요양, 본계를 거쳐 환인으로 이어지는데, 이 길은 고구려인들이 만주 벌판을 내달리던 유일한 교통로였음을 스님의 안내로 알 수 있었습니다. 고구려인들처럼 ‘우리도 이 길을 말을 타고 신나게 달려보았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고구려의 첫 도읍지인 홀본산성으로 쉼없이 달려갑니다.nbspnbsp “여러분, 창밖 10시 방향을 한번 보세요. 저기 우뚝 솟아있는 성이 바로 오녀산성입니다. 홀본산성이 옛 지명인데요, 산성 아래로는 비류수가 흐르고, 자연절벽으로 이루어진 성채는 무척 가파르지만, 절벽의 윗 부부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평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곳은 부여로부터 나온 고주몽이 다물사상의 건국이념을 가지고, 고구려를 세울 때의 첫 수도입니다. 굉장하지요?”nbsp 스님의 말씀처럼 멀리서 바라보는 홀본산성은 마치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의 원대한 기개를 닮은 듯, 대륙 위에 우뚝 솟구쳐 있었습니다. 정상까지 오르는 돌계단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릅니다. 땀에 흠뻑 젖어 20여분을 오르니 서문에 이릅니다. 서문은 옹자형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적의 침략 시 공격과 방어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독특한 고구려식 구조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성 안에는 행궁터, 양식창고, 병영지, 읍마지 등 고구려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특히 수천년 전부터 온돌문화를 발전시켜온 옛 고구려인의 지혜에 탐복할 따름이었습니다. 어느덧 해가 기울고,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하산을 서두릅니다.nbsp “비도 온데다 해도 떨어졌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일단 한 줄로 서서 덜 위험한 오른편으로 붙어서 내려오세요. 사진을 찍으면 집중력이 흐트러지니 잠시 중단하겠습니다. 조금 숨이 가쁘신 분은 잠깐 쉬셨다가 청년들 도움을 받아서 천천히 안전하게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너무 뒤처지지 않도록 후미를 잘 챙겨주시기 바랍니다.”nbsp nbsp 자상하게 하산하는 법을 알려주신 뒤, 스님께서 성큼 앞장 서 내려가십니다. 내려가는 중간 중간에도 대중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챙기시는 모습이 꼭 어린 자식과 험한 산에 오르내리는 아버지처럼 느껴져 용기를 얻습니다. 날은 저물었지만, 모두 무사하게 내려온 뒤 기다리고 기다리던 식당으로 향하는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빠듯한 일정상 빵과 음료수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해서인지 저녁식사는 그야말로 꿀맛입니다. 세상 부러울게 없는 저녁입니다. 그리고 다시 강당으로 향해 법륜스님으로부터 역사 강의를 들었습니다. nbspnbspnbsp “오늘은 고구려의 대표적 산성인 백암산성과 고주몽이 최초로 도읍을 삼은 홀본산성을 둘러 보았습니다. 오늘 좀 힘드셨지요?”nbspnbsp “제가 볼 때 우리 국민에게 3가지 열등의식이 있습니다. 첫째 중국에 대한 고대사 콤플렉스, 즉 우리 문명은 중국 문명의 아류라는 인식입니다. 둘째 일본에 대한 근대사 콤플렉스, 일본에 대한 저항의식도 있지만 식민지 지배를 받은 뿌리깊은 열등의식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중국인보다 한국인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셋째 미국에 대한 현대사 콤플렉스인데 정치경제, 기술, 철학, 종교, 교육,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서양을 대표하는 미국에 대한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간명하면서도 알기 쉽게 살아있는 역사강의를 이어가십니다. nbsp“불교는 인도에서 왔지만 우리가 인도에 대해 사대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부 기독교인은 미국에 대한 사대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중국에 대해서 사대의식을 가지는 것은 문명의 시작이 중국이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는 수동적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국으로부터 배우면 되지만, 여기에는 일정한 역사적 오류와 왜곡이 있기 때문에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우리의 잃어버린 상고사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 nbsp한편 일본에 대한 열등의식은 통일이 되어야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독일처럼 유럽인에게 과거사를 깊이 반성하듯 하면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의 일본 정치인, 국민들의 역사의식을 봐서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을 통해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치유하는 길은 통일을 하는 것입니다. 가령 베트남인들이 미국으로부터 많은 피해를 본 것은 사실이지만, 피해의식을 갖지 않는 것은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과 수교를 맺고 적극적인 협력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nbsp마지막으로 서양에 대한 열등의식의 극복은 현대문명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명적 대안을 우리가 만들고 준비해 가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길은 우리가 21세기 새로운 백년의 꿈을 가진다면, 통일한국은 21세기 전반기에, 동아시아 공동체는 중반기에, 세계문명의 중심국가로의 도약은 후반기에 달성해 간다는 미래의 로드맵을 가져 볼 수 있습니다” nbsp밤은 11시가 넘어가지만, 역사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 우리의 시원을 찾아 떠나는 뜻깊은 여행은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계속됩니다. nbsp“대륙의 변방이라는 우리의 소극적 역사의식을 극복하고, 작지만 자긍심을 가진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앉아서, 책보며 해서만은 안 되고, 설득력을 가지려면 역사현장에서 그것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애써 역사기행을 오는 취지이고, 오늘은 상고사에 대한 바른 역사의식을 공부하는 첫 시간이었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nbsp밤 11시 30분, 비록 몸은 조금 고되고 피곤함이 몰려오지만 우리 민족의 시원을 더듬어보고 올바른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일깨울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따라 배우기만한 수강생들보다 더 활기가 넘치시는 스님과 함께할 내일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nbspnbsp

2013.07.04. 17,742 읽음 댓글 5개

2013.6.28-7.2 미얀마 방문

스님께서는 지난 6월 28일부터 7월 2일까지 5일간 미얀마를 방문하셨습니다. 6월 28일 저녁 비행기에 올라 7월 2일 아침에 서울에 도착했기에 실제로는 3일낮, 3일밤 동안 미얀마를 방문하신 셈입니다.nbsp 스님께서는 미얀마에 밤 10시 15분에 양곤공항에 도착하셔서 휴식한 후 다음날 새벽 4시에 JTS사업장이 있는 짜웅공 지역의 삐야지 마을다리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4시간정도 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nbsp 짜웅공지역은 2012년에 78일동안 내린 비로 인해 홍수피해를 입은 지역으로 JTS에서는 당시 긴급구호로 16개 마을 481가구에 식량을 지원하였고, 이후 복구 사업으로 3개 마을에 다리공사와 25개 학교에 책상, 의자등 기자재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nbsp 삐야지 마을의 다리 준공식을 마친후 배를 타고 싸퓨수 마을로 이동해서 허물어져가고 있는 학교를 답사하였습니다. 학교를 새로 지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nbspnbspnbsp 싸퓨수 마을에서 쭌차웅 마을로 다시 배를 2시간 타고 이동해서 다리준공식을 가졌습니다. 이 다리를 지원함으로써 주변 11개마을 약 3660명의 사람들이 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 다리 준공식을 마친후 아직 공사중인 타공초등학교 현장을 둘러보았습니다. 타공 마을을 비롯해 4개 마을에 사는 114명의 아이들이 다닐 예정입니다. 현장을 둘러본 후 다시 배로 짜웅공으로 와서 차로 양곤으로 돌아왔습니다. . nbsp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새벽 4시에 출발하여 차로 3시간을 이동한 후 다시 배로 1시간 이동한 후 탄터빈 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탄터빈 마을에는 아직 다리를 짓고 있었습니다. 다리공사 현장을 답사하고 또 이 마을에서 학교를 지어주기를 요청해서 지금 있는 학교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방문하였습니다. nbsp 다리공사 현장을 방문하니 마을에서 환영식과 점심을 준비해주셨습니다. nbsp법륜스님께서는 특별히 공양을 준비해준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nbsp 탄터빈 다리 공사현장을 방문하는데에도 많은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지원해준 JTS와 스님을 환영하였으며 마을 사람들은 스님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나서도 배타는 곳까지 스님을 배웅하기 위해 왔습니다. 배타기 직전 스님과 다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nbspnbsp 답사를 마친후 이날 저녁에는 양곤에서 교민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 법회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차로 4시간, 배로 1시간을 이동하여 양곤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날 즉문즉설 강연에는 약 120여명의 교민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nbsp 4일째는 지난 5월에 한국을 방문한 INEB 스님들중 미얀마에서 오신 우 삔야바따스님의 웨이루원 절을 방문했습니다. 우 삔야바따스님의 웨이루원 절에서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약 400명의 학생들과 고아 30여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 방문하셨을때는 점심시간이어서 급식을 먹는 중이었습니다.nbspnbspnbspnbsp 다시 양곤으로 와서는 미얀마 주재 미국 대사 데릭미첼과 만남을 가졌고 저녁에는 미얀마 3대 사원중의 하나인 쉐다공 사원을 방문했습니다. 쉐다공 사원은 부처님의 8가닥 머리카락을 모셔두기 위해 2500년 전 건립한 98m의 높이로 금으로 둘러져 있습니다. nbsp 이렇게 미얀마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밤 11시 45분 비행기로 한국으로 출발했습니다.

2013.07.04. 15,653 읽음 댓글 8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