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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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6 함부르크 강연

오전 10시에 함부르크에서 강연을 하는 관계로 새벽 4시30분에 기상하여 바로 짐만 꾸려 5시에 베를린에서 출발하여 9시에 오늘 강연이 열리는 함부르크에 도착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미 도착해서 행사 준비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과 인사도 하시고 행사 장소를 둘러 보셨습니다. 함부르크 강연에는 정토법회가 있는 곳이 아니라 2년 전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고 몇몇 분들이 모여서 열린 법회를 하고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오늘 강연은 프랑크푸르트 송임덕 총무님과 인연이 있는 김성 보살님과 열린법회팀이 짧은 시간에 협력하여 행사를 준비를 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린 곳은 독일인이 운영하는 불교센터인데 이곳을 관리하고 계시는 분이 오셔서 2년 전에 스님께서 드린 영문책 2권이 너무 좋다고 하면서 독일어로 번역을 해도 괜찮은지 스님께 문의를 했고, 스님께서는 이번에 새로 나온 True Wisdom을 선물로 드리니 아주 즐거워하고 감사해 하였습니다. 10시에 바로 스님의 강연이 시작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우리 삶의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들 삶속에서 진리로 나아가 보자고 하시면서 바로 첫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 삼배를 왜 하는가요? 2. 어릴 때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그런지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사로 잡혀있는 것 같고, 불교에서 재물을 쫓지 말라고 하는데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가요? 3. 자식과 부모의 인연 관계가 늘 궁금합니다. 두 살 된 남자아이가 있고 또 현재 둘째를 임신 중에 있는데 어떻게 저에게 남자아이가 왔는지, 인연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4. 나이가 들면서 시간도 많고 아침에 일어나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일어나고 약간 불안감이 일어나서 작은 질환 같은데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을까요? 5. 스님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정리가 되는데 실생활에서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실제로 쉽지는 않습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아프기 전에 마음을 어떻게 하면 놓을 수 있는지, 노력과 집착은 어디까지인지요? 6. 성격이 욱하는 성질이 있어 화를 내게 되는데, 이것이 고민이라서 고칠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까요? 7. 한국에서 20년, 독일에서 40년 정도 살았는데, 마지막으로 가서 살아야 할 곳이 어디인지? 이 외로움을 어떻게 할지? 절에 가면 이 외로움이 없어질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8. 남편에게 집착을 하는 편이고,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면 질투심이 많이나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지금 같이 산지 30년이 되었는데도 계속 이러니 어떻게 해야 할지요? 이렇게 8명이 스님께 질문을 하고 답변을 주고받는 가운데 2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면서 박장대소를 하고, 고개도 끄덕이면서 아주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음이 작용하는 원리를 알게 되면 불행보다는 행복을, 괴로움보다는 기쁨을 느끼며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삶도 나날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고 하시면서 2시간의 강연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이중에서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거룩한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자들에게 귀의하며 공경의 예를 표하는 것이 3배의 절입니다. 붓다는 스스로 깨달은 사람, 그리고 붓다의 가르침인 담마, 깨달은 분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은 이, 상가, 이를 불, 법, 승이라고 하며 이것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세가지 보배라고 해서 삼보라고 합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고개를 쳐들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생각을 잘못했구나 하면 들은 고개를 숙이게 되고, 더 잘못 했구나 생각하면 허리를 숙이게 되고, 더 잘못 했구나 생각하면 무릎을 꿇게 되고, 더 잘못 했구나 하고 생각하면 이마를 땅에 조아리게 됩니다. 이것이 절입니다. 절은 상대를 높이고 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즉 아상, 아집을 버린다는 것이 절입니다. 부처님은 절을 할 만큼 존경할 만한 분이기 때문에 절하는 것이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그러나 부부가 서로에게 절 할 수 있을 때 진짜 절이라고 합니다. 남편의 발아래 내머리를 두는 것입니다. 자기를 안굽히고는 절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세리와 창녀에게 발을 씻겨 준다는 것은 가장 높은 자가 가장 낮은 자를 자기보다 높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도 똑같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절을 한다는 것은 자기를 내려놓는 것이기 때문에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이 옳습니다. 내가 부족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아내에게 ‘당신이 옳습니다. 내가 부족합니다.’ 라고 절을 할 때 진짜 절의 의미가 됩니다.” 라고 스님께서 말씀하시자 참석자들이 큰 박수로 스님의 말씀에 화답하였습니다. 삼배를 왜 하는지에 대한 단순한 질문 같았는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스님의 답변이었습니다. 오늘 스님께 한분이 와서 인사를 했는데 교회의 집사님인데 일요일 오전 10시에nbsp예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말씀을 들으러 왔다고 하면서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이제 스님의 강연은 종교를 떠나서 정말 많은 분들이 삶의 지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 기쁘기 그지 없었습니다.nbsp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책을 구입한 분들께 사인을 해주시고, 같이 사진도 찍었습니다. 이제 어디를 가든 스님 손을 잡고, 사진을 찍고자 하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준비한 책도 거의 다 판매되고 일부 종류는 책이 없어서 판매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느낀 것은 그동안 ‘스님의 주례사’, ‘방황해도 괜찮아’, ‘엄마수업’ 위주로 책을 준비했는데 북미주 강연과 마찬가지로 금강경 책이 인기가 좋아서 준비한 것들이 다 판매되었습니다. 법당이 좁아서 스피커를 통하여 바깥에서 자원봉사를 하신 분들도 함께 스님 강연을 들을 수 있어서 오늘 70여명이 함께 하였습니다. 식사 후에 저희들은 묘덕법사님과 오늘 행사를 준비한 함부르크 열린법회팀들과 김성 보살님과 함께 행사준비를 하면서 좋았던 점, 어려웠던 점, 불편했던 점 등을 서로 얘기를 하면서 아주 즐거운 공감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2년 전에 혼자서 행사를 준비했던 김성 보살님은 이번에 젊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행사를 준비하고, 준비과정에서 정말 열과성을 다해서 준비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하시면서 눈물을 비추기도 했습니다. 미주지역이 아니라서 열린법회 팀장들과 서로 얼굴도 알지 못하였는데 이번에 담당자인 구은용 보살님과 그리고 함께 법회를 하고 있는 보살님들을 보니 저도 반갑기가 그지 없었습니다. 이렇게 나누기를 하고 스님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후에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내년에 보자고 하면서 저희는 오늘 숙소인 두이스부르크 이상호 거사님댁으로 2시 10분에 출발을 하였습니다. 7시 정도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오늘이 연휴 마지막 날이라서 고속도로가 계속 밀렸습니다. 무슨 연휴인지 여쭈어보니 10월 3일이 독일 통일의 날이라고 합니다. 독일 통일기념일 연휴라고 하니 갑자기 부러운 마음도 들면서 우리도 하루빨리 남북이 통일되어 통일한국을 기념하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시 30분에 이상호 거사님 댁에 도착하니 보살님과 뒤셀도르프 신도님들께서 오셔서 저녁식사 준비를 해놓고 있었습니다. 다 함께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2년만의 만남을 축하하면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프랑크푸르트 송임덕 총무님, 베를린 이희정 총무님, 그리고 뒤셀도르프의 김선희 총무님, 그리고 운전봉사를 해주시는 김용태 거사님과 함께 우선 내년 독일과 유럽 강연계획 및 루트 등에 대하여 회의를 하였습니다. 또한 한독가정의 배우자와 자녀를 위한 스님의 강연을 통역을 해서 한번쯤 해보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고, 앞으로 한국인이 아닌 2세 자녀와 외국인을 위한 전법 계획등도 함께 하니 시계가 12시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2부로 스님께서는 총무님들과 다시 독일정토회 법인업무와 관련하여 2년만에 회의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동안 밀린 법인 업무보고 및 회의등을 하니 3시간이 훌쩍 지나가서 3시가 되어서야 부랴부랴 회의를 마무리하고 내일은 8시30분에 뒤셀도르프 법당으로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뒷정리를 하고나서 3시 30분이 되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오전 10시부터 정토불교대학 졸업식 및 수계식 그리고 오후 6시30분부터는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있으므로 뒤셀도르프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3.10.08. 17,342 읽음 댓글 4개

2013.10.5. 베를린 강연

오늘 새벽 3시30분에 잠을 잔 관계로 오전 6시에 기상하여 짐을 꾸려 1층으로 내려와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7시에 김용태 거사님이 운전하는 벤을 타고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출발했습니다. 김용태 거사님은 라이프찌히에 살고 계시는데 8일 동안 저희를 태우고 함께 강연에 다니기 위해서 어제 라이프찌히에서 프랑크푸르트로 내려오셔서 저희와 합류하였습니다. 아침기도를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차를 타고 고속도로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모두 아침예불과 천일결사기도를 하였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비가 내렸는데 오늘 오전에는 어제밤보다 훨씬 더 비가 많이 오니 고속도로를 운전하는데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독일은 미국이나 한국에 비해서 훨씬 친환경적인 나라인데, 그 대표적인 예가 도로를 따라가면서 계속되는 풍력발전기와 태양열전기를 만들어 내는 태양열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스님께서 9시 정도에 옛날 서독과 동독을 가르는 경계지역을 넘어선다고 말씀을 해주셔서, 독일이 동독과 서독이 합심하여 통일독일을 만들어 낸 것처럼, 저희들도 남북이 서로 합심하여 통일 한국을 만들어 내기를 발원하면서 잠시 숙연한 마음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기도 했습니다. 휴게소에 들렀을때, 스님께서 독일 및 유럽지도를 펴고 이번 강연을 할 8개 도시를 도는 루트를 가르쳐주시면서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중서쪽에 위치해 있고, 베를린은 독일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대략적으로 독일의 각 도시와 유럽 도시를 지도속에서 살펴보기도 하고, 어제 행사뒤에 남은 김밥과 김선희 총무님이 준비해 온 김치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스님은 한국이나 독일에서나 늘 길 위에서 김밥을 드실 모양이십니다. 거의 1시경에 오늘 묵을 숙소인 이희정 총무님 아파트에 도착하니 몇몇분들이 반갑게 다가와서 스님께 인사를 합니다. 바로 집으로 들어가서 총무님과 베를린 신도님들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다들 물품을 챙겨서 오늘 행사장으로 가고, 저희는 각자 휴식도 취하고 업무도 하였습니다. 오늘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5시에 강연이 열리는데, 스님은 4시 40분에 행사장에 도착하여 신도님들과 미리와서 책을 구입하고 행사장을 둘러보고 계시는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강연장소가 강의실인데 350석정도가 되어 보여서 얼마나 모일지 궁금했는데 강연이 시작되니 반 이상이 차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을 시작하면서 “나는 좋은데 남이 손해가 나는 일은 지속성이 없습니다. 반드시 나쁜 과보가 따릅니다. 그리고 남은 좋은데 내가 손해 보는 것도 지속성이 없습니다. 이분들은 주로 참고 인내하기 때문에 개인은 행복하지 못하고, 또한 오래 지속할 수도 없습니다.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지속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을 위해 희생을 한 사람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것은 원래부터 지속성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는다, 용서한다는 것은 지속성이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인욕은 참을 것이 없는 것이고, 진정한 용서는 용서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는 다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속가능하려고 한다면 나도 좋고 남도 좋고, 나도 이익이 되고 남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이고, 이런 조건을 갖추면 우리가 진리라고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는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하였으며, 위의 요소를 갖추면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이 요소를 갖추지 못하면 언젠가는 과보가 돌아오게 되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얘기는 종교, 과학, 불교, 기독교 이런것을 따지지 말고 그것이 가능하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 하는 것만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라고 첫 서두를 열었습니다. 오늘은 총 6명이 질문하였는데, 어제 프랑크푸르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주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질의응답이 이루어졌습니다. 1. 저는 30살 된 지적장애우인 여동생이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때 부터 여동생을 봐왔고 함께 생활해서 여동생이 이상하지 않고 편하고 평범하게 여겨지는데, 최근에 결혼할려는 여자친구가 이것을 알고 부담스러워하고 떠났습니다. 그래서 현재 생각도 정리할 겸 여행을 와 있는데,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해야 하는지, 제가 좀 덜 좋아하더라도 이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여자와 결혼을 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2. 베를린에 살고 있는데, 하는 일마다 최근에 안좋은 결과가 나와서 포기하고 싶을 때 스님께서는 어떻게 해결해 나가고 이겨나가는지 궁금합니다. 3. 독일에 온 지 40년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발효효소가 좋다고 하여, 유익하다고 하여 저도 매일 베를린에서 발효효소를 만들어서 먹고 하는데 몸속에서 물하고 섞여서 반응하는 것과 공기속에서 반응하는 것이 어떻게 같은지 다른지 궁금합니다. 4. 작년에 전역을 하고 베를린으로 왔는데, 이제서야 어렴풋이 꿈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동기부여를 받아서 꿈을 이루어야 할 것 같은데 절박함이 부족한지 동기부여가 잘 안됩니다. 그래서 절박함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5. 베를린에 온 지 6개월 되었는데 공원도 많아서 산책도 많이 하게 되고 사유의 시간을 많이 즐기고 있습니다. 한국의 절에 가면 생각도 정리하고 산책도 하고 해서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독일에 오니 절이 없어서 갈 곳이 없는데 스님께서는 유럽이나 독일쪽에 절을 차릴 생각은 없는지요? 6. 인터넷으로만 스님법문을 듣다가 이렇게 직접 듣게 되니 너무 반갑습니다. 간호원으로 40년을 살고 있는데 이제 이곳이 한국보다 더 많이 살았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도 알고 있는데 마음 한가운데는 허전함이 있습니다. 이 허전한 마음을 떨쳐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런지요? 와 같은 질문들이 나왔는데 어떤 질문에는 간단하게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도 있었고, 어떤 질문에는 단호한 경책과 질책도 있었고, 또 어떤 답변은 자상하게 대답해 주실 때도 있었는데 모두 질문자와 상호 교감을 하면서 듣는 청중들인 저희는 아주 즐겁고 유쾌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첫번째 내용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질문자는 입에 쓰지만 몸에 좋은 약을 먹겠습니까? 맛도 좋고 빛깔도 좋지만 나중에 해로운 마약을 먹겠습니까? 질문자는 상대가 좋지만, 그 상대는 질문자의 무엇을 보고 결혼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인물도 잘생기고 훤칠한데요. 거기다 학벌도 있고 직장도 좋고 하니까요. 그런데 장애동생을 보고 부담스러워 했다지요. 상대방이 떠난 것은 여동생 때문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더불어 고통을 나눌려는 마음이 없어서 입니다. 살다가 질문자가 다치거나 직장을 관두거나 안좋은 상황이 오게 되면 그 사람은 떠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같이 살기보다는 그냥 친구로 사귀면 될 것 같습니다.” 라고 스님께서 답변을 하자 질문자가 “보기도 좋고, 맛도 있고, 몸에도 좋은 것은 없을까요?” 라고 하니 모든 청중들이 와 하고 웃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다시 “그 여자와 결혼을 하고 그 과보를 받으면 됩니다. 상황이 나빠져서 헤어질 때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한번 살아봤으니 감사할이라고 하면서 과보를 기꺼이 받으면 아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여자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약 같은 것을 좋아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선택에 따른 과보를 기꺼이 받아 들이면 됩니다. 몸에도 좋고 기분도 좋아지게 하는 그런 재주가 저에게는 없습니다.” 라고 하니 질문자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라고 답하면서 자리에 앉으니 스님께서nbsp “사람이 자기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태어남에 의해서 주어진 것을 가지고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인종, 성별, 장애, 성소수자등의 이유로 차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체장애로 태어났더라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질문자의 여자친구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변화된 여성은 아닙니다.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서 장애이거나 공부를 못하게 되면 제 아이라도 미워하고 한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자친구라면 몰라도 결혼하기에는 썩 적합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니 여동생한테 감사할 일입니다. 내가 부족한 눈을 가졌는데 동생으로 인하여 미래의 불행을 미리 막은 것이 되었으니까요. 그렇다고 그 여자분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라고 조금 더 보충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190명이 참석했는데 이전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라고 합니다. 이전에는 70여명정도가 왔는데 이번에는 두배이상 참가했다고 하면서 행사를 준비한 모든 자원봉사자들이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질문자가 비교적 적어서 오늘은 좀 빨리 끝날 줄 알았는데 강연이 진지하여 5시에 시작한 강의가 7시35분에 마쳤습니다. 모두들 큰 박수로 스님께 감사를 드리고, 스님께서는 책을 구입한 모든 분들께 사인을 해주시고 함께 사진을 찍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도 역시 장거리에서 오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한 가족은 주말이라서 베를린에 호텔을 잡았다고 하시면서 스님을 뵙고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 폴란드에서 7시간 걸려서 왔다고 하면서 아이들도 함께 기쁘게 스님과 사진을 찍고 갔습니다. 그리고 작센주의 주도인 드레스덴에서 오셨다는 분들도 2시간 걸려서 왔는데 곧 미국 뉴욕으로 이사 간다고 하면서 미국에 오면 연락을 주겠다고 하여 기쁜 마음으로 미국 오면 연락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스님의 법문으로 전세계에서 정토행자라는 이름으로 만날 수 있음이 참 기뻤습니다. 강연중간에 스님께서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님이 와 계시는 것을 보고 사인회가 끝나고 나서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님과 그리고 한국에서 현재 독일로 방문교수로 와 있는 연세대학교 박명림 교수님과 또 방문 중인 북한대학원대학교 이우영 교수님 부부 분들과 만나서 잠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행사 뒷정리를 모두 마치고 오늘 자원봉사를 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에 근처의 식당으로 이동을 하여 식사를 하고, 내년 유럽강의 계획도 얘기하면서 모두들 지도 법사님과 2년만의 즐거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아쉬운 작별의 시간을 하고, 저는 스님과 함께 숙소로 오고, 오늘 자원봉사자들과 묘덕법사님, 이희정총무님, 그리고 뒤셀도르프의 김선희 총무님은 행사에 대한 평가 및 행사를 준비하면서 좋았던 점, 힘들었던 점, 개선해야 할 점등을 나누기 위해 법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김용태 거사님과 숙소로 돌아오니 그래도 10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저는 스님의 하루를 작성하였습니다. 내일은 오전 10시에 함부르크에서 강연이 있기 때문에 새벽 5시에 함부르크로 출발합니다. 내일 함부르크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3.10.06. 18,443 읽음 댓글 7개

2013.10.4(독일시간) 프랑크푸르트 강연

어제 미국에서 출발하여 오늘아침에 먼저 독일에 도착한 다음, 프랑크푸르트 송임덕총무님, 그리고 뒤셀도로프 김선희 총무님과 만나서 한국에서 오시는 스님과 일행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기다렸습니다. 스님께서는 비행기 요금이 한사람당 70만원이 싸다고 하여 서울에서 독일로 바로 오는 것을 탄것이 아니라 아랍에미레이트로 완전히 둘러서 오는 것을 타고 오는 관계로 아부다비에서 갈아타고 서울에서 독일까지 무려 20시간이나 걸려서 현지 시간으로 1시 50분에 도착하였습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고 나오니 스님께서는 2시 40분이 되어서야 공항에 마중나오신 신도님들과 신도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바로 공항에서 오늘 묵을 숙소인 배형옥 보살님이 운영하는 작은 호텔로 이동하여 조금 휴식을 취하다가 숙소근처에서 독일인들을 상대로 한국음식점을 운영하는 거사님부부께서 스님께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여 걸어서 식당까지 갔습니다. 독일은 가을이 워싱턴디시에 비해서 조금 일찍 오는 것 같습니다. 나뭇잎도 많이 물들어 있고, 담쟁이 덩굴도 빨간색으로 예쁘게 물들어 있습니다. 또한 날씨도 조금 쌀쌀하여 추운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숙소와 5분거리에 있다는 식당으로 걸어가는 길이 참 여유롭게 느껴졌습니다. 미국과 서울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도착하니 벌써 음식을 준비해놓고 계셔서 맛있게 이른 저녁 식사를 하고 식사대접을 해주신 거사님, 보살님께 인사를 드리고 바로 행사장으로 갔습니다. 오늘강연은 6시 30분부터 열리는데 저희가 도착하니 6시10분이었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송임덕총무님을 비롯하여 프랑크푸르트 정토회 자원봉사자들이 열심히 안내하고 행사준비를 하고 있었고, 자리도 거의 다 차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전대표이신 이혜정보살님과 박정숙보살님, 그리고 강연장에 먼저 와 계신 여러분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소방법때문에 좌석은 150석으로 준비했는데 사람들이 계속 더와서 강연이 시작할 무렵 의자에 다 앉지 못하고 참석자들이 서 있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6시30분, 스님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의 강연에 앞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두분의 학생이 아름다운 환영의 연주를 하여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드디어 환영영상과 스님소개영상이 나오고 스님께서 앞으로 나가자 모두들 큰박수로 스님을 환영해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뒤에 그리고 옆에 서계시는 분들께 앞으로 오시라고 하면서 모두 마루바닥이지만 앞에 앉아서 들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스님께서 오늘 아부다비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20시간 걸려 도착했다고 하시자, 많은 분들이 스님께 환영과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최근 기후 환경변화를 서두에 꺼내시면서 우리가 잘 산다고 한것이 결국에는 우리의 삶의 터전인 환경을 파괴하고 있듯이 우리 각자의 삶의 길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살아 가고 있는 삶의 방향, 문명의 방향에 대해 새롭게 점검을 해봐야 할 시점에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생에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나름대로의 선택이 있을 뿐이며, 그 선택에는 좋고 나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곧 이어 즉문즉설이 시작되었는데, 첫 질문자는 스님을 유튜브에서 보다가 직접보니 더 잘생긴것 같다고 하자, 스님께서는 유튜브에서는 못생겼던가 봅니다 그랬더니 질문자가 조금요 그렇게 답변하자 금방 강연장이 웃음으로 넘쳐났습니다. 두번째 질문자는 오히려 유튜브에서 볼때보다 스님 얼굴이 작아서 놀랬다고 하면서 더 좋아합니다. 정말 유튜브로만 스님을 만나다가 이렇게 현장에서 직접 만나서 스님께 질문하니 다들 반갑고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오늘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나왔습니다. 1. 현재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는 유학생인데, 오랜 외국생활을 하다보니 삶의 노하우도 생기고 혼자 살 힘도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아 한국인들을 안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우울해져서 다시 한국인들을 보게 되었는데, 또 이전처럼 사람들이 그냥 쉽게 하는 말에 상처를 받게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2. 남편은 제가 존경하는 사람중의 한사람으로 독서광이고 공부도 많이 하고 제가 좋아하는 그런 사람인데, 하나에 꽂히면 지나친, 즉 광적이 면이 있는데, 요즘에는 스님의 법문을 유튜브를 통해서 엄청 듣고 있는데, 계속 자기가 깨달은 것 처럼, 자기가 현자인 것처럼 너에게 가르쳐준다 이렇게 하니 저는 잔소리를 또 하는 구나, 또 시작하는 구나 이런 마음이 드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요? 3.어떤사람에게 사과를 했는데 사과를 안받아들이는 것을 보니 불편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4.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철학공부를 하고 싶어 독일에 왔는데, 인간으로 어떻게 바르게 살고 진리를 찾을수 있을까 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진리를 찾는 것이 불교, 기독교를 통해서만 찾을 수 있는지 아니면 다른 것으로부터도 찾을수 있는가요? 5.독일에 산지 24년이 되었는데 살수록 한국말이 서투르고, 한국의 신종용어도 종종 못 알아듣게 되고, 한국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보니, 독일 국적은 가졌는데 독일어도 완벽하지 못하고, 한국인으로 한국사회에 대해서도 잘 모르게 되고 있는데 자기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6.북한을 어떻게 봐야하는지요? 7.여자친구가 옆에 와 있는데, 여자친구와 현재 결혼을 할려고 하는데 여자친구는 부모님들끼리 상견례를 하자고 하는데, 본인은 여자친구집에 가서 인사하고, 또 여자친구는 본인집에 가서 인사를 하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꼭 부모님들끼리 만나서 상견례를 해야 하는지, 현재 여자친구와 의견이 다른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8.7년째 전문직종에 종사하고 있는데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적성에 맞는 것 같은데 행복감을 못느끼고 회의가 많이 드는데 어떻게 하면 일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면서 할 수 있는지, 9.큰노력을 해서 하나의 목표를 이루고 성취하고자 하는데, 하나를 이루고 나서는 끊임없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고, 많은 것을 이루었음에도 늘 불안한데 어떻게 하면 좋은지요? 10. 질문자는 성격이 급하고, 신랑은 성격이 꼼꼼하고 느긋하다 보니 답답하고 짜증이 나다가 분노가 일어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폭발하게 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 10개 이상의 질문이 나왔던 것 같은데 제가 현재 기억하는 것은 위와 같은 질문들이고, 질의 응답시간이 아주 재미있고 유익했었습니다. 그중에서 첫번째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스님께서 질문자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말할때 상처가 되느냐고 물으니, 질문자는 사람들이 음악을 하는데 있어 나이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나이가 많아도 꿈을 가지고 음악을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쉽게 나이가 많은데 무슨 음악이냐고 하면서 안된다고 해서 그런 말들이 상처가 된다고 하자, 스님께서 다시 질문자에게 물었습니다. “연주하고 싶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연주도 잘하면서 인기도 얻고 싶고, 돈도 벌고 싶은데 현재 실력으로는 좀 부족하다는 얘기인 것 같은데, 그러면 돈을 다른 곳에서 벌어서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하고 연주는 그냥 하면 되고, 두번째로 나이가 있는데도 연주해서 돈 벌고 살려면 보통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은 상상도 못할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지요? 예를들면 서울대 법대를 나왔지만 사법고시에 패스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초등학교를 나온 학력에 40이 넘었는데도 가끔은 또 사법고시를 패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노력을 하였던 것입니다. 현재 질문자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다 해가면서 하려면 연습량이 적기 때문에 연주해서 밥먹고 살기는 어려울 것 입니다. 그러면 밥먹고 사는것은 다른 것으로 하고, 음악은 꾸준히 내 인생에 돈 안받고 무료로 하는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였는데 안되었을 경우에는 사람은 부족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80정도의 노력을 해놓고, 안되었을 경우에는 늘 20정도의 부족감을 느끼고 조금만 더 했으면 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일어나서 늘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라고 스님께서 답변을 하자, 질문자는 어떻게 자기가 그렇게 하고 있는지 스님께서 아는지 질문하자 스님께서는 질문자가 현재 저에게 묻는다는 것은 자기가 고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입는다는 것은 자기가 독재근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단지 일반적인 자기 견해를 말했을 뿐입니다. 나에게 일반적인 것을 얘기해주는 것, 진실을 얘기해주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다 자기견해를 얘기할 뿐입니다. 제가 성당에 가서 강연을 하고 나오니, 연세 드신 어르신께서 저에게 신부님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분이 제게 하신 최대의 칭찬입니다. 또 한번은 교회에서 강연을 했더니 한 남자분이 손오공이 아무리 뛰어도 부처님 손바닥안에서 놀지요. 스님이 아무리 그대로 다 하나님 손바닥안에 있어요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이것은 다 자기식대로 생각하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남의 생각과 말을 통제하려고 합니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할 자유가 있습니다. 명백하게 나를 비난하는 말이 아닌데 내가 듣기 싫으면 그만이지 그들을 미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라고 스님께서 답변을 하니 질문자는 환한 웃음으로 스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마무리했습니다. 6시30분에 시작한 강연이 계속된 질문자들로 인하여 10시에 마치니 오늘은 3시간 30분동안 스님께서 강연을 하였는데 스님께서는 강연이 끝 마친 후에도 더 질문을 받으실 수 있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시차로 인하여 피곤한지 강의도중 중간중간 많이 졸아서 질문과 답변 내용도 많이 놓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질문하신 분들이 미주지역과 마찬가지로 유튜브나 인터넷을 통하여 이미 스님의 법문을 듣고와서 질문을 하였기 때문에 질문의 답변에 대한 만족도도 높고, 답변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서 강연장이 웃음이 넘쳐났습니다. 오늘은 약 180여명이 강연에 참석하였는데, 스님께서는 강의를 마치고 책을 구입하여 기다리고 있던 분들께 일일히 사인을 해주시고 같이 사진도 찍었습니다. 준비한 책이 거의 다 판매되었는데 특히 새로운 백년을 찾던 분들이 많았는데 이 책을 준비하지 못해 판매할 수 없어서 더 많이 아쉬웠습니다. 스님께서는 독일에서는 통일독일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통일에 독일교포들이 기여를 하면 좋겠다고 하여, 특히 독일에 있는 분들이 스님의 새로운 백년을 더 많이 읽었으면 하였는데 두고두고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사인회를 마치고 프랑크푸르트 신도님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으로 함께 식사도 같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단체촬영을 하고 10시 40분 즈음에 스님께서는 먼저 행사장을 출발하여 숙소로 가셨습니다. 저희들은 자원봉사자들과 뒷정리와 마무리를 함께 한 다음 근처 찻집으로 가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행사준비하면서 좋았던점, 서로 불편했던 점, 그리고 개선해야 할 점등에 대해서 나누기를 하고 나니 1시가 되었습니다. 2012년도에는 한국에서 300강을 한다고 쉬고, 2011년에 이어 2년만에 열심히 홍보하여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것 같다고 서로 다들 수고했다고 격려하였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뒤셀도르프에서 있을 불교대학경전반 졸업식에서 만나자고 인사를 하고 헤어져서 숙소로 돌아오니 1시 20분이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씻고 하루동안 밀린 이메일을 보고 업무처리를 하니 3시30분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베를린으로 이동해야 하니 오전 7시에 출발한다고 합니다. 그럼 내일 베를린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3.10.06. 19,807 읽음 댓글 7개

2013.10.3. 용성조사 오도일 기념법회

오늘은 3.1 독립선언 33인중 불교계 대표이신 백용성조사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오도일 기념행사가 장수 죽림정사에서 있었습니다. 새벽 4시 40분에 정토회관을 나서 죽림정사로 향했습니다. 불심도문 큰스님과 함께 아침 발우공양에 참가하기 위해 일찍부터 길을 나섰으나 도로에 안개가 많이 끼어 결국은 발우공양시간에 늦었습니다. 아침 공양이 끝난 후 도문 큰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오늘 행사에 대해 의논을 하였습니다. nbsp 아침 8시30분, 용성 교육관에서 용성진종조사 뿐만 아니라 7여래불, 69조사, 7대사등 역대전등제대조사 천하종사 제대선지식들께 다례제를 지냈습니다. 2부에서는 용성조사 오도일 기념법호와 용성조사 저서 ‘귀원정종’의 번역서 출판기념 법회를 가졌습니다. 도문 큰 스님께서는 출판기념 법회에서 행사가 길어지자 법문을 간단히 노래가락으로 하셔서 대중들을 흥겹게 해주셨습니다. nbsp 1부, 2부 행사를 마치고 나서 제3부에서는 정토가을 불교대생을 대상으로 법륜스님의 법문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법문을 시작하기 전에 전국에서 온 정토 불교대생들을 지역별로 소개를 하고 난 후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전국에서 모인 불교대생 약 460여명을 대상으로 용성조사님과 탄생지인 죽림정사에 대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용성조사님께서는 1864년에 태어나셨으니 내년이면 탄생 150주년이 됩니다. 용성조사님의 행적은 크게 불교활동과 사회활동,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불교쪽 행적은 조선조 500년 동안 탄압받아서 허물어진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신 근세 불교의 중흥조이십니다. 용성조사의 공적을 세분화 시키면, 첫째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인 정법을 다시 확립하신 불교의 지성화입니다.nbsp nbsp 법륜스님의 스승은 불심도문스님입니다. 불심도문스님의 스승은 누구인가 동헌완규조사입니다. 동헌완규조사의 스승은 누구인가 용성진종조사입니다. 이렇게 쭉 올라가면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용성교육관 안쪽 벽면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한 일곱 부처님의 탱화가 있고 그 다음에 69분 조사님들의 탱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인도의 28분, 중국의 28분, 그리고 13분의 한국 조사님들의 탱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불교의 정통 법맥을 복원하였습니다.nbsp 이곳 교육관에는 용성조사가 있기까지 모든 불교의 역사가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건물이기는 하지만 역사책이고 박물관인 것입니다. 이 건물의 건너편은 용성조사님의 기념관으로 개인행적, 즉 불교운동과 독립운동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용성조사님의 일대기는 교육관 건물 바깥쪽에 모든 행적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앞면 빼고 삼면에 그려져 있습니다. nbsp 용성조사님께서는 지리산 칠불암에서 조실스님으로 계실 때 다른 종교의 불교비판에 대한 부당함을 올바르게 해명한 ‘귀원정종’을 지으셨습니다. 두 번째, 불교의 대중화입니다. 조선시대에 불교를 탄압하다보니 여성분들과 일반민중들만 불교를 믿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글자를 모르기 때문에 경전을 읽을 수가 없어서 그냥 불교를 믿고 복을 비는 사람으로 남았기 때문에 대중들도 불법을 알아야한다고 하시면서 삼장역회를 조직하시어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셨습니다.nbspnbsp 서울 시내에는 고찰이 없는데, 그 이유는 조선조 500년 동안 4대문 안에 스님을 못 들어오게 했습니다. 도시나 마을에 있던 절을 다 없애버리거나 북한산 같은 서울근교에 있는 절은 유생들의 유원지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깊은 산속,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에 있는 절만남게 되었습니다. 스님들이 속세를 버린다는 것은 세상의 속된 것을 버린다는 뜻이지 세상과 등져서 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신라시대, 고려시대 절은 모두 도시에 있었습니다. 수도원만 산속에 있었지요. 절은 산속에 있다는 인식은 조선시대 불교 탄압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당시 스님들은 탁발로 겨우 생존을 유지했습니다. 이에 용성조사님께서는 불교도 생산을 해야 한다고 해서 만주의 용정에 가서 농사짓고 수행하는 선농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백운산 밑에 화과원이라는 과수원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런것들이 불교의 생활화입니다. nbsp 1894년에 갑오농민혁명이 실패로 끝났지만, 갑오경장때 노비문서를 철폐하면서 스님들도 천민신분에서 벗어나게 되고, 또 승려도성출입금지가 해제되면서 용성스님이 서울로 오신 것입니다. 처음 우면산 대성사에서 초막을 짓고 사시면서 3.1운동을 배후에서 지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종로구 봉익동 2번지에 민간인 집을 사서 대각교당이라는 절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우리가 지금 정토법당 만들듯이 대중법당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불교의 지성화, 대중화, 생활화를 주창하시고 실천하신 분입니다.nbspnbsp 그리고 당시에는 스님들이 계율을 제대로 안 지키는 것을 보고 불교의 계율을 다시 정비하였기 때문에 조선불교 중흥률 제 6조이십니다. 재가 신자가 되는 의식인 삼귀의 오계를 만든 사람이 용성조사스님이고, 일제 강점기에 일본불교를 닮아갈 때 승려의 결혼제도는 부처님법에 어긋난다하여 정화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nbspnbsp 또, 사회쪽 행적으로는 천도교와 기독교와 협력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세수 50대 중반이후 3.1운동부터 시작하여 돌아가실 때까지 독립운동에 주로 참여하시고 기여하였습니다. 윤봉길의사는 용성조사님께 삼귀의 오계를 받고, 상해임시정부 김구선생님에게 파견되어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nbspnbsp 정토회에 오면 불교만이 아니라 사회문제의식도 가르칩니다. 그건 스승으로부터 내려온 것입니다. 할아버지 스님이 독립운동을 했으니 그 후손인 우리는 통일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정토회에 와서 이것이 맘에 안들면 자기에게 맞는 다른곳으로 가면 됩니다. 복을 빌거나, 명상을 하거나, 참선만을 하기를 원하면 그런 곳을 찾아가면 됩니다. 여기 정토회는 처음부터 부처님의 정법을 계승한다는 것과 우리의 공동체를 위한 일, 즉, 나라를 위한 독립운동, 가난할 때는 잘살기 운동, 독재시대에는 민주화운동, 환경이 파괴되면 환경운동, 인권이 침해되면 인권운동, 분단시대에는 통일운동, 전쟁위기에는 평화운동을 하고자 하는 곳입니다.nbspnbsp 정토 불교대생은 이곳에 한번은 와서 불교가 독립운동에 기여한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정토회에서는 이곳 죽림정사를 일년에 4차례 용성조사 탄생일, 오도일, 열반일, 그리고 삼일절에 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용성조사와 용성조사의 탄생지인 죽림정사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고 나서 불대생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을 하였습니다.nbsp 한 불대생은 공부하다 생긴 질문보다는 개인적인 질문을 하였습니다. 일년 전에 스님께 남편이 병이 있어 힘들었을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질문했는데, 그때 스님께서 헤어질 생각하지 말고 자식들 생각해서 잘 간호하라고 했답니다. 그 후 깨장 다녀오고 남편은 지난달에 하늘나라로 보냈는데, 지금 초등학교 딸이 셋이 있는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나한테 묻는 것을 보니 혼자 살기 힘들다는 거죠? 남자가 필요하다는 말 아닌가요?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직장 다니면서 아이 키우면 되는데, 나한테 물을 때는 그런 뜻이 아닌가요?” 하니 대중들이 크게 웃습니다. “첫째, 남자 생각을 당분간 접어라. 사람은 상대적입니다. 완전히 극복하진 못하지만 스님들은 결혼한번 안하고도 잘 사는데 난 한번 해봤는데 못살게 뭐가 있냐고 생각하면서 둘이 사는 사람 쳐다보고 부러워하지 말고 혼자 사는 사람을 쳐다보고 사세요. 둘째, 저 스님은 혼자인데 난 애가 셋이나 있으니 외롭지는 않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가족이랑 떨어져 혼자 살면 외로워요. 서울 정토회나 문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보다 더 공동체를 이루며 잘 살고 있습니다.nbspnbsp 질문자는 세 명 아이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살고 있잖아요. 그런데 부모를 모시고 사는 공동체는 갈수록 부모님이 늙으니까 힘이 들지만, 아이들과 같이 사는 공동체는 아이가 커 가니까 점점 더 쉬워집니다. 엄마라고 생각하지 말고 여자 4명이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방청소, 설거지, 밥 하는 것등 업무를 나누어서 해나가면 됩니다. 아이 셋을 다 건사하겠다고 생각하면 힘이 듭니다.nbspnbsp 아이들에게도 너희는 젊었고 난 늙었으니 젊은 너희들도 일해라고 하면서 아이들을 훈련시키면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좋아집니다. 공동체이기 때문에 회의를 해서 함께 일을 나누고, 아이들에게 공부할래, 청소할래하고 물어서 공부하겠다고하면 공부를 하게 하고, 돈 버는 건 내가 하고 이렇게 업무를 나누면 한 5년만 지나면 나아 질 것입니다. 인생은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다 책임지고 건사하겠다고 생각하면 갈수록 힘이 들고 짜증이 많아지지만, 처음부터 회의를 해서 평등하게 업무를 나누어서 해 나가면 점점 좋아집니다.nbsp 항상 권리와 책임은 같이 갑니다. 아이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이렇게 역할을 나누고 책임을 지는 것이 리더십 훈련입니다. 민주주의란 모든 것이 투명해야 합니다. 이런식으로 재밌게 살면 됩니다. 언제까지? 막내가 18살때까지. 그 다음에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은 끝내야 합니다. 누구든지 18살이 되면 끊어야 합니다. 대학을 보내는 계획도 세우지 말고,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건 고등학생때까지다라고 못 박아야 합니다.nbsp 남편이 있으면 평등하게 잘 안됩니다. 남편은 권위적이며 자기가 돈을 벌기 때문에 책임도 지고 있고, 아이들은 권리가 없는 만큼 부모에게 의지하게 됩니다. 이제 질문자 가족은 평등하게 민주주의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동체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 아빠 없는 것에 대한 열등의식도 없습니다. 만약 질문자가 전에 남편이 병들어 있는데 힘들어서 이혼을 하고 남편이 죽었다면 자기가 죄의식을 가지게 되고, 아이들은 엄마가 아빠를 버렸다는 것에 대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별이든, 이혼이든 나에게 주어진 삶은 내가 책임을 지고 사는 것입니다. 남의 애도 데려다 키우는데 내 애를 키우는 것은 쉽잖아요. 모든 문제는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는 것인데, 아이들이 내 인생의 짐이 아니고 혼자 살면 외로울 수 있는데 애가 셋이나 있으니 축복이다라고 생각하면 쉬워집니다.” 라고 하시면서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고 불교공부도 열심히 해서 진리를 찾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오늘 용성조사 오도일 기념식을 모두 마치고 점심 공양을 한 후에 스님께서는 내년도 용성조사 탄생 150주년 기념일에 행사를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점검하기 위해 책임자급 간부들과 함께 죽림정사 주변 물공원을 다니면서 장소도 답사하고 의견도 함께 나누었습니다.nbsp 오늘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서 다시 유럽강연을 위해 짐을 꾸렸습니다. 오늘 밤 비행기로 독일로 출발하였습니다.

2013.10.04. 19,342 읽음 댓글 7개

2013.10.01. 제6기 청년 리더십 아카데미

nbsp 아침 7시 30분부터 진행된 ‘북한 현실과 이해의 모임’에서는 최근 개성공단 재개와 더불어 이산가족 상봉 및 금강산 관광 재개 여부까지 잘 풀릴 것 같던 남북관계가 이산가족 상봉 무산으로 또 다시 경색국면으로 돌아선 것에 대한 분석과 전망이 있었습니다. 또 스님께서는 최근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오셔서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와 미국의 대 한반도 주요 정책 관료들의 인식에 대한 말씀도 들려주었습니다.nbsp 오전 10시부터는 평화재단 각 부서의 현안, 과제들에 대해 함께 논의하는 회의가 있었습니다.nbspnbsp 이후 현 사회문제와 경색된 남북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 인사들과 3번의 모임을 더 가진 후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제6기 청년리더십 아카데미 입학식이 있었습니다. 입학생 약 70여명과 졸업생 약 25여명이 참석하여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입학식이 시작되었습니다. 평화교육원 윤여준 원장님은 인사말에서 기존의 기성세대로서 이런 사회를 물려줘서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청년들에게 새로운 사회의 주인으로 책임을 가지고 나아가기를 당부하셨습니다. nbsp 오늘 입학식에 참석한 수강생들은 각자의 소개를 PPT로 준비해 와서 재기발랄하고 재미나게 자신들을 소개했습니다.nbspnbsp 법륜스님께서는 맺음말에서 지금까지 학교나 집에서는 개인이 어떻게 살 것인지를 중심으로 배웠다면 이곳 청년 리더십 아카데미에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를 어떻게 더 행복하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함께 공부하는 곳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개인의 인생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럴 경우 사주팔자 타령, 하느님 타령, 부처님 타령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이 사람이 세상의 한 면만 보고 다른 면을 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개인도 있지만,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측면도 있습니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이 공동체 성원 모두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과 같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다를 때는 문제가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농군은 농사를 잘 지으면 되고, 선생은 학생을 잘 가르치면 되고 각자가 맡은 일만 잘하면 된다고 하지만 공동체 일원으로서 공동체의 방향과도 맞아야 합니다. 일제치하에서는 우리 모두의 희망이 나라의 독립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검사로 독립운동가를 잡아서 법대로 집행해서 검사로 성공했다면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방향인 독립과 반대방향이었기에 나중에도 성공한 인생으로 남기가 어렵습니다. 해방후에는 친일배로 낙인찍혀 괴로움을 겪게 됩니다. 진정한 성공이 되려면 개인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nbspnbsp 이런 것처럼 공동체의 방향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그 방향과 맞아야 합니다. 공동체의 방향에 거스르는 삶은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 하더라도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없고, 공동체의 방향과 같다면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방향에 따라 모두가 독립운동에 뛰어들 필요는 없습니다. 검사라면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 온 사람들을 신문할 때 조금 더 유리하도록 한다든지, 아니면 월급의 일부를 독립운동자금으로 지원한다던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대로 해 나가면 됩니다. nbsp 공동체의 방향을 고려하지 않은 개인적인 삶을 살 때는 권력이 바뀌거나 역사가 바뀌게 되면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실패의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대한 이해, 역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 모두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역사의식입니다.nbsp 이제는 자기 전공분야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전체에 대한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조국을 위해 희생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나를 좀 더 온전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고 윤리 도덕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더라도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nbspnbsp 개개인이 정말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역할에도 충실하면서 성공한 인생이 되려면, 우리 모두가 처한 공동체의 역사의식도 필요합니다. 즉, 자신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청년리더십 아카데미에서 이런 공부를 함께 해 나가면 좋겠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청년들에게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역사의식을 가지고 함께 나아가기를 당부하며 입학을 축하는 격려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 청년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한 후 밤 10시 30분경에 오늘의 마지막 모임을 가진 후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내일은 새벽 6시 20분부터 모임이 있습니다.

2013.10.03. 14,564 읽음 댓글 1개

2013.9.30 평화리더십아카데미 '힐링 동문회'

아침 7시 30분 ‘민족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이 있었습니다. 올해 한반도 중부지역의 집중호우로 북한지역도 수해 피해가 심각하여 식량부족으로 굶주리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를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남북관계의 정치적 상황에 관계없이 대북 인도적 지원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종교인들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nbsp 이후 스님께서는 남북관계개선을 위해 주요인사들과 또 다른nbsp미팅을 갖고난 후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안과에서 눈 점검을 하고, 또, 내과에서 예방접종을 맞고, 김철 선생님께 척추 교정을 받으셨습니다.nbspnbsp 저녁 7시 30분부터는 평화 리더십 아카데미 동문들 약 160여명을 대상으로 하는 ‘힐링 동문회’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nbspnbsp 강연에 앞서 평화리더십아카데미 동문들이 모은 성금 4백만원을 백성희 동문회장님께서 북한의 어린이 지원을 위해서 JTS 김기진 대표님께 전달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지난 9월에 미국을 한달간 방문했던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인류 공동체가 좀 더 발전하고 좀 더 오랫동안 유지되고 우리 후손들도 지속적으로 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우리가 좀 더 기여할 수 있도록nbsp하기 위해 평화 리더쉽 아카데미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nbsp 제가 미국 여러곳을 다니면서 보니 미국 사람들마저도 최대 과제가 경제문제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경제적인 것만으로 행복을 추구한다면nbsp어쩌면 천국에 가서도 우리는 부족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우리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국가 건설에 꼭 경제만 중요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인생을 위해서, 우리가 사는 인류 공동체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우리를 진정 행복하게 하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nbsp 대한민국 사람 중에는 이런 책임을 질만한 위치에 있는 여러분들이 먼저nbsp각성할 필요가 있습니다.nbsp그런 문제를 가지고 함께nbsp편하게 얘기해보면 좋겠습니다.” nbsp 먼저 평화 리더십아카데미 동문들이 먼저 질문지를 통해 질문한 것중 몇가지를 질문받고,nbsp그 다음에는 개별적으로 직접nbsp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질문을 소개하겠습니다.한 동문은 외국인 회사가 멋져 보이고 근무환경이 좋아서 다니고 있는데, 이 회사가 한국의 공장 4개를 인수하는 과정을 보면 우리나라의 위기를 이용해서 값싸게 먹는 방식으로 하는 것을 보니 찜찜한데 어떤 마음으로 다녀야 할지 스님께 질문하였습니다. nbsp “한 회사가 싸게 다른 회사를 인수해서 프리미엄 붙여서 되팔고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그런 것은 세계가 하나가 되어가니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그런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회생태적인 현상입니다. 누구나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내 먹고 사는데 나만 돈 벌 수 있으면 사회정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안됩니다. 질문자의 내용같은 이런 현상을 알아서 우리가 거기에 놀아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그러니 그런 자료를 모아서nbsp정부에 제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국적 기업중에 이렇게 하는 회사가 한 두개 회사가 아닙니다. 금융위기때 서울의 많은 빌딩들이 이렇게 헐값에 외국인에게 넘어갔습니다.nbsp은행도 그렇고, 이렇게 98년도 IMF때 거의 다 개방이 되었습니다. 엄청난 국가자산의 손실이 생겨났습니다. 98년 우리가 빠른 시기에 금융위기를 벗어났다고 하는데 그에 따른 국부유출이 아주 많았습니다. nbsp차라리 우리국민이 허리띠 졸라매고 2년간 고생했으면 사회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을텐데, 우리가nbsp위기를nbsp창조적으로 살릴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때 대부분의 대기업들도 다 망해 가는 것을 공적자금을 투여하거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모아서 국민의 돈으로 살려 놓은 것입니다. 이런 것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nbsp우리가 주의를 해야 합니다.nbsp개미들이 힘을 모으면 큰 손에 당하지 않는데 힘이 분산되어 있으니 큰 손을 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두번 당하면 앞으로 더 큰 손실을 미연에 방지하는 대응책이 나오지 않겠어요? 그러므로 회사에서 보고 느낀 것을 정리해서 정부에 제출하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함께 공유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nbsp 스님께서는 직장을 다니면서 사회정의에 어긋날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를 이야기 해주시면서 우리사회가 올바로 나아가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해 노력하자고 하셨습니다.nbsp 강의 후 간단한 뒷모임을 가진 후 모두 오늘 행사를 마무리 하였습니다.nbsp 내일은 평화재단에서 제6기 청년리더십아카데미 입학식이 있습니다.

2013.10.01. 15,429 읽음 댓글 1개

2013.9.29. 통일체육축전

오늘은 좋은벗들에서 주최하는 ‘제11회 통일체육축전’이 있었습니다. 추석을 즈음하여 고향에 가지 못하는 새터민들과 함께 차례를 지내고 모인 김에 한바탕 운동도 하고자 해서 마련된 행사가 벌써 열한번째를 맞이 했습니다. 올해는 서울경기, 충청, 호남권과 영남권으로 나누어서 진행이 되었는데, 수도권에는 약 846명, 영남권에는 약 615명이 참가하였습니다. nbsp 오늘 통일체육축전은 아쉽게도 오늘 비가 와서 운동장에서 하지 못하고 체육관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비가 오는 관계로 체육대회 프로그램을 일부 조정했습니다. 오전에는 법륜스님을 모시고 새터민과 함께 즉문즉설 강연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처음 미국 가서 고생하며 돈을 번 이야기, 또,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 미국에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북한에서 온 새터민들도 한국에서 어렵지만 열심히 일하고 적응해서 살아가기를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미국에 있는 한국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한국의 날을 만들어 행사를 하는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새터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이해해 주었습니다.nbsp 새터민들도 이제는 스님께 질문을 곧잘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비가 와서 갑자기 프로그램이 변경되어 스님의 즉문즉설이 잡혔는데도 여러 가지 질문들이 나왔습니다. 살아가면서 선택을 해야 되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종교를 가져야 하는지, 한국에 온지 8개월 되었는데 식당에서 일하면서 한국사람들의 이중적 태도 때문에 힘들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그리고 스님을 14년 전에 처음 스님을 뵈었는데 스님은 오히려 젊어 보이는데 그 비결이 무엇인지, 그리고 북한 사람이라고 차별받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등을 살아가면서 고민되거나 부딪히는 문제들을 질문했습니다. nbsp 질문중 아들이 반에서 반장이 되었는데, 북한에서 온 새터민을 반장으로 할 수가 없다면서 다음날 다시 무효가 되어 새로 뽑았는데,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하는지 하는 질문은 새터민들이 한국에서 살면서 차별받는 설움, 특히나 자녀들이 그것 때문에 상처받는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면서 새터민이라는 것을 숨겨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께 질문했습니다.nbsp “숨겨서 회장하면 뭐하고 숨겨서 잘 보이면 뭐해요? 숨겨서 결혼하고 나서 잘했다고 하는데, 나중에 밝혀져 이혼하게 되기도 하고, 숨긴 것들이 들키지 않아 이혼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평생 전전긍긍하면서 살게 됩니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그렇게 살 이유가 뭐가 있나요? 일부러 새터민이라고 알리고 다닐 필요도 없지만, 일부러 숨길 필요도 없습니다. 북에서 태어난 것이 무슨 죄라고 그렇게 숨깁니까? 내가 태어나기를 북에서 태어난 것이 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차별을 받아야 하나요? 만약 그런 차별을 받는다면 ‘대한민국 헌법에 그런 차별은 안된다고 되어 있는데, 왜 차별의 대상이 됩니까?’ 하고 조근조근 따지면 됩니다. 누구라도 피부색, 종교, 국적에 따라 차별 받아서는 안됩니다. 그런 것이 해고 사유가 되면 좋은벗들에게 요청해서 무료로 변호사를 지원할테니 소송해야 합니다. 그러나 법률은 그렇게 되어 있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은 자기네끼리 북에서 왔다는둥, 동남아에서 왔다는둥 수군수군합니다. 이런 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을 그렇게 짧은 시간안에 교육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안됩니다. nbspnbspnbsp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들에게 일부러 북에서 왔다고 할 필요는 없지만 고향이 어디냐고 하면 신의주, 무산등 자기 고향을 밝히면 됩니다. 엄마가 그것을 자꾸 숨기면 아이는 열등감을 가지게 됩니다. 북에서 태어난 것이 큰 죄나 되는 것처럼 되어서 앞으로 사회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지 못합니다. 아이에게는 반장이 되는 것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nbsp 두 번째는 아이가 반장이 되었는데, 다음날 만약 바뀌었다면 화를 낼 일은 아니지만, 이것은 선생님이 잘못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선생님은 성별, 피부빛깔, 종교, 국적에 따라 차별하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고, 반장은 능력에 따라 선출해야 합니다. 그 아이의 출생으로 차별한다면 상처가 얼마나 커지겠어요? 이런 문제는 학교나 교육청 가서 알려서 시정을 해야 합니다. 아님 신문에라도 내서 시정해야 합니다. 기술이나 실력이 부족해서 차별받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출생에 의해 차별받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것은 반드시 법률적인 도움을 받아서 시정을 해나가야 합니다.nbsp 한국에 먼저 온 사람들이 이런 문제들을 싸워서라도 시정해 줘야 뒤에 온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자리를 잡고 살 수 있습니다. 먼저 온 사람들이 기 죽으면 안됩니다. 여러분들은 북한에서도 기가 센 사람이잖아요. 기가 세니까 여기까지 왔잖아요. 북한에서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갔고, 중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왔으면 대단히 기가 센 사람입니다. 깡패처럼 싸우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을 가지고 부당한 것은 대응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에 보장된 권리는 행사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해는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고, 남한 사람들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이해는 해야 하지만, 그것이 옳지 않다면 시정을 요구하는 자세여야 합니다. 아이가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온다고 하면 데리고 오라고 하고, 그러나 아이가 식당에서 친구들을 초대하면 안되겠냐고 하면 그래 니 좋은대로 해라고 배려해줄 수는 있지만, 아이가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겠다는데, 데려 오지마라고 하면 내가 북에서 태어난 것이 잘못인가, 내가 여자인 것이 잘못인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만들기 때문에 반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nbsp더 중요한 자신감을 아이에게 심어줘야 합니다.” nbsp 스님께서는 새터민들에게도 아이를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키우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새터민 아이들이 겪는 차별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처하고 대한민국에서의 권리를 당당히 누리도록 말씀해주셨습니다.nbsp “아까 말씀하신 학생의 일은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어떻게 대한민국 선생님 수준이 이것 밖에 안됩니까? 여기 선생님들 계시면 이것은 정말 해결해야 합니다. 어른이 직장에서 차별받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러나 아이들이 학교에서 피부빛깔, 성별, 국적, 종교, 신체장애 때문에 차별받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이런것부터 개선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일류 문명국가로 가기는 어렵습니다. 우리세대는 그런 것을 못 배워서 습관이 남았지만, 자라나는 세대는 인종적 문제, 종교적 문제, 민족적 문제, 출생의 문제등으로 차별하는 것은 절대로 안됩니다.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는 반드시 가르쳐주고 심어줘야 합니다. 혹시 아이들이 집에 와서 누구의 엄마는 베트남에서 왔다, 북에서 왔다고 하면 야단을 쳐야 합니다.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세계 일류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물안 개구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것이 남의 나라로 가는 것은 한류라고 좋아하고 남의 것은 배타하면 한류가 오래갈 수가 없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새터민들의 아픔도 어루만져 주시면서 그리고 대한민국이 일류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정신적, 도덕적으로 앞서야 하고 포용해서 가야 함을 다시한번 일러주셨습니다.nbsp 즉문즉설이 끝난 후 각 지역에서 준비해 온 점심을 먹고 스님께서는 다시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행사장을 둘러보시면서 인사도 하시고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업무를 보시느라고 주무시지 못해서 그런지 시차적응이 안된다고 하시면서 행사장을 나와서는 회관에서 업무를 보시면서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nbsp 내일은 평화리더십아카데미 동문들을 대상으로 하는 ‘힐링 동문회’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2013.10.01. 17,118 읽음 댓글 4개

2013.9.28.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스님께서는 어제 일정이후에도 회관에서 밤새워 원고교정 작업을 해서 이제 원고교정은 다 끝냈다고 합니다.nbsp 오늘은 경기도 이천에서 ‘2013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개막식이 있었습니다. ‘2013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행사중 ‘국제도자학술회의’에 특별강연으로 스님께서 각국에서 온 참가자들 약 100여명을 대상으로 ‘21세기의 공동체’ 라는 주제로 강의가 있었습니다. nbsp “호주나 미국 같은 이민사회는 법률에 의해서 공동체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민사회에서는 사람의 정서나 감정이 중심이 아니라 법률에 의해서 질서가 유지되므로 공동체 붕괴현상이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동체 붕괴현상은 국가나 사회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고 개인의 자기 정체성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오직 돈, 소비, 물질에만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공동체성이 붕괴되니까 사회 구성원간에 갈등이 심화될 뿐만 아니라,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사이에도 갈등이 첨예해져 가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자연의 토대위에서 살아가는 것인데, 우리가 자연의 은혜위에 살아간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nbspnbsp 현대사회는 인간이 자연을 개발하는 힘이 자연이 복원하는 힘보다 커졌습니다. 지금 인간이 포크레인이나 다이너마이트로 자연을 폭발시키면 자연이 스스로 복원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는 파괴가 일어나기 때문에 자연훼손이 심각합니다. 자연이 재생산이 안 될 정도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문제가 심각합니다. 환경 공동체는 인간 공동체가 아니라 생명 공동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생명 공동체가 파괴되면 인류문명이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결국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습니다.nbsp 연못에서 프랑크톤이 태양의 빛을 보고 자라고, 물벌레, 개구리, 뱀이 살아가고 있는데, 개구리가 볼 때 뱀의 위협속에서 살아야 하니 뱀을 제거시키면 개구리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하느님께 기도하거나 자기들이 힘을 모아서 뱀을 제거할 때, 일시적으로는 개구리가 번식하지만, 개구리 개체수가 일정 수 이상 늘어나면 생태연못의 물벌레가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한순간에 개구리가 전멸합니다. 그러니 개구리는 뱀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생태공동체로 볼 때는 적자생존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입니다. 개구리에게 있어서 일시적인 성장과 멸망에는 뱀이 필요 없지만, 개구리의 지속적인 번영을 위해서는 뱀이 필요한 것처럼, 오늘 인류 문명의 발전이 지속적인 번영을 하려면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 발전이라는 가치관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 인류의 올바른 삶의 방향이라면 중국사람, 인도사람, 아프리카 사람들도 1인당 GDP가 2만불 , 3만불로 살아야 하는데, 그러면 지구환경은 존립되기 어렵습니다. 결국 이 문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선진국이 계속 발전하려면 나머지 인류는 빈곤상태로 묶어두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같이 공멸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선진국 국민부터 소비수준을 줄여야 합니다. 소비를 통해 만족을 얻고 기쁨을 얻는 이 문명은 이제 멈춰야 합니다. 즉, 절대빈곤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빈곤을 퇴치해야 하고, 과소비하는 나라 사람들은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사람들은 아직도 경제 때문에 다 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이런식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GDP가 50만불이 되어도 경제 때문에 어렵다고 할 것입니다. 지구 공동체를 오래도록 유지하려면 더 이상 소비를 확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지구 저편에 있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와 우리 후손의 삶의 터전을 남겨두고 그 위에 우리의 소비를 적절하게 하는 환경 윤리적 관점 없이는 이제 더 이상 진리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지구에 70억의 인구가 살고 있는데 인구의 20가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인구의 20는 절대빈곤 상태에 있습니다. 이들에 대해서 책임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유엔에서는 그들의 빈곤을 퇴치하기 위한 개발자금을 각 나라 GDP의 0.7를 지원하자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노르웨이와 스웨덴등 아주 일부국가만 GDP의 1를 지원하고 있고, 미국은 0.3, 한국은 0.1를 지원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nbsp 대한민국은 지난번 선거에서 복지가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자기가 벌어서 자기가 쓰면 된다는 생각에서 모든 국민들에게 기본생존을 할 수 있도록 최저 생존을 보장하고, 그 이상의 문제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수입을 가져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나 노인들, 신체장애가 있어서 정상적인 경쟁을 할 수 없거나, 병이 들거나, 재난을 당하거나, 갑자기 실업이 되면 이를 도와주는 사회보장제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새 정부도 선거때 한 복지약속을 재정의 어려움을 느껴 복지수준을 낮춘다고 해서 지금 갈등이 되고 있습니다. 세금을 더 내고 사회안전망을 갖춰야 하는데 또, 세금을 더 내기는 모두 싫어합니다. 우리가 세금부담을 좀 더 지고 빈곤층에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도 한 가지 길입니다. 이념적으로 논쟁하기보다는 공동체의 기본자세라는 입장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남북한이 적대관계에 있다보니 북한이 굶어 죽어도 미워하고 잘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자세는 잘못된 것입니다. 북한 어린아이들에게 정치적인 관점을 넘어선 인도주의적 지원은 민족 공동체를 복원하는 길이고 세계시민의 자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nbsp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간의 삶의 가치가 바뀌어야 합니다. 욕심을 버리지 않고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도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개인의 변화, 즉 자기의 고통을 해결하고, 자신의 삶이 이웃과 공존할 때 보람이 있다는 면에서 인생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인류, 사람만이 아니라 지구, 생명 전체에 대한 통합적인 인식이 필요합니다. 도자기를 만들 때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흙을 잘 다져야 합니다. 잘 섞이도록 잘 다져야 하고, 잘 구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갈라지거나 부서집니다. 인간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결국은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이렇게 전통적인 공동체가 붕괴되고 인종, 민족, 신앙, 이념이 다른 사람이 모여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적인 소수자와 장애인도 함께 다양하게 섞여서 살아갈 때 과거에 연연해서 피부색, 성별, 종교에 의해 차별한다면 더불어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이제는 자기 에고를 내려놓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려면 흙반죽이 잘되어야 하는 것처럼 서로 잘 어울려야 합니다. 그러나, 반죽만 잘된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뛰어넘어서 높은 온도에서 이것저것이 다 녹아서 하나가 되는 용융과정이 있어야 하듯이 불교와 기독교가 서로를 존중하는 것만으로는 공동체로 가기가 어렵습니다. 불교와 기독교를 뛰어넘는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nbspnbsp 생명과학에서 토마토와 감자가 열리는 감토가 나타나는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종교와 과학이 분리되면 안됩니다. 진리는 종교적으로 보나 과학적으로 보나 일치되어야 합니다. 물질문명을 연구하는 사람도, 정신문명을 알아야 하고, 의학도 양의와 한의를 알아야 합니다. 미국에서 강의하면 기독교인이 80라서 그 사람들이 이해하려면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고등학생에게는 불교의 인연과보를 뉴턴의 제2법칙으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수처작주라고 해서 어디에서라도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어디서든 주인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부터라도 적게 쓰고 아껴 써야 합니다. 맥도날드에서 냅킨을 푹 가져가서, 한두장 쓰고는 안 쓴것도 같이 쓰레기통에 버려 버립니다. 결국은 이런 것들이 쌓여서 지구멸망으로 가게 됩니다. 제국의 멸망을 보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권력이 한쪽으로 치우치고 소비가 생산보다 많아지면서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nbsp 제가 미국에서 25곳에 강연을 했다고 하니 미국의 인상을 묻길래, 제가 30년 미국을 다니면서 보니 미국이 늙어간다는 것과 미국이 점점 불편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동남아등 개발도상국들은 갈수록 개선되는데, 미국은 공항에 가면 나를 잠재적 범죄인으로 본다는 것이 역역하게 느껴졌습니다. 미국의 시큐리티 경비가 점점 늘어나는데 이런 방식이 과연 옳은 안보인지, 여기에 드는 경비의 십분의 일이라도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사용하면 오히려 더 나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미국에 대적할 적은 아무도 없는데 미국 안에서 그렇게 웅크리고 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점점 이것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아파트에 카드키가 없으면 엘리베이트도 못타게 되어 있는등 공동체가 점점 붕괴되고 있습니다. nbsp 그러나 새로운 희망은 있습니다. 지난 수백년간 싸우던 유럽의 나라들이 각자 나라의 개성을 인정하고 새로운 공동체로 나아가는 것은 인류의 또 하나의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일본의 행동을 보면 동아시아 공동체로 나아가는 자세는 아닙니다. 중국도 국가주의가 지나치고, 남북한도 적대관계가 지나칩니다. 아시아가 경제성장 비중이 커지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의 태도로 볼 때 인류문명을 이끌어 갈 자세는 아닙니다. 적어도 문명의 미래를 열어가려면 적어도 북한의 잘못된 행동은 비판하지만 그런 북한마저도 포용해서 중국, 일본, 한국이 서로 협력하여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아름다운 도자기가 만들어 질려면 흙을 잘 섞어 다지고 난 후 뜨거운 불에 구워 모두 녹아서 하나가 되듯이 도자기를 구우면서도 우리 인류가 마치 아름다운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자세를 함께 가졌으면 좋겠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물질만능주의로 가는 것을 경계하시며 다함께 잘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세계 문명을 주도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 스님의 강의가 끝난 후 호주에서 오신 분은 한국의 도자의 역사가 깊은데,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하는 것에 대해 왜 그런지, 어느 정도가 가난하다고 할 수 있는지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nbsp 강연이 끝난 후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하는 중에 스님을 알아보고 와서 인사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도자기 전시장을 둘러봤습니다. 각나라 도예가들이 출품한 작품들을 둘러보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nbsp 내일은 제11회 통일체육축전이 있는 날입니다.

2013.09.30. 16,706 읽음 댓글 2개

2013.9.27(한국시간) 한국 도착

스님께서는 어제 미국 워싱턴에서 출발하여 약 14시간 비행을 한 후 오늘 오후 4시 40분경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환한 얼굴로 들어오시는 스님께 건강은 어떠신지 여쭤보니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합니다. 아마도 미국에서 23개 도시 25개 강연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강연을 위해 도시와 도시를 이동할 때 우리나라처럼 34시간 걸리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을 비행기로 이동하거나, 차로 78시간 이동하기도 했던 것이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무리한 가운데도 도착하자마자 바로 미팅이 잡혀 있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길은 금요일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많이 막혔습니다. 7시에 평화재단에서 저녁식사를 겸한 미팅에 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저녁 미팅은 프로 골퍼인 김인경 선수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김인경 선수는 깨장도 하였고 얼마전에 명상수련까지 했다고 합니다. 시합을 하다가도 힘들거나 하면 스님께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하고 밤 10시가 넘어서 평화재단 사무실을 나서서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nbsp 내일은 경기도 이천에서 경기 국제 도자 비엔날레 행사에 스님의 강연이 있습니다.

2013.09.29. 14,913 읽음 댓글 1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