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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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3 정토회 자원활동가 수련

ifreturnvar ab.createElementa.typetextjavascripta.idca.deferdefera.srchttpstatic.image2play.comimideo.js?appkeyP7cc1x1ce3L8b0aF6d0d008b4o042eKd74cU39ebextkey87ad5a1ad0564f6fb74d1e9ae51d04cdgrade100paramsb.getElementsByTagName0.appendChilda.onreadystatechangefunctionifa.onreadystatechangenull,undefinedtypeof imideoimideo.startfunction imideostartundefinedtypeof imideoimideo.startfunction imideostopundefinedtypeof imideoimideo.stopvar imideoextensiontrueifreturnvar ab.createElementa.typetextjavascripta.idca.deferdefera.srchttpstatic.image2play.comimideo.js?appkeyP7cc1x1ce3L8b0aF6d0d008b4o042eKd74cU39ebextkey87ad5a1ad0564f6fb74d1e9ae51d04cdgrade100paramsb.getElementsByTagName0.appendChilda.onreadystatechangefunctionifa.onreadystatechangenull,undefinedtypeof imideoimideo.startfunction imideostartundefinedtypeof imideoimideo.startfunction imideostopundefinedtypeof imideoimideo.stopvar imideoextensiontrueifreturnvar ab.createElementa.typetextjavascripta.idca.deferdefera.srchttpstatic.image2play.comimideo.js?appkeyP7cc1x1ce3L8b0aF6d0d008b4o042eKd74cU39ebextkey87ad5a1ad0564f6fb74d1e9ae51d04cdgrade100¶msb.getElementsByTagName0.appendChilda.onreadystatechangefunctionifa.onreadystatechangenull,undefinedtypeof imideoimideo.startfunction imideostartundefinedtypeof imideoimideo.startfunction imideostopundefinedtypeof imideoimideo.stopvar imideoextensiontrueifreturnvar ab.createElementa.typetextjavascripta.idca.deferdefera.srchttpstatic.image2play.comimideo.js?appkeyP7cc1x1ce3L8b0aF6d0d008b4o042eKd74cU39ebextkey87ad5a1ad0564f6fb74d1e9ae51d04cdgrade100¶msb.getElementsByTagName0.appendChilda.onreadystatechangefunctionifa.onreadystatechangenull,undefinedtypeof imideoimideo.startfunction imideostartundefinedtypeof imideoimideo.startfunction imideostopundefinedtypeof imideoimideo.stopvar imideoextensiontrueifreturnvar ab.createElementa.typetextjavascripta.idca.deferdefera.srchttpstatic.image2play.comimideo.js?appkeyP7cc1x1ce3L8b0aF6d0d008b4o042eKd74cU39ebextkey87ad5a1ad0564f6fb74d1e9ae51d04cdgrade100¶msb.getElementsByTagName0.appendChilda.onreadystatechangefunctionifa.onreadystatechangenull,undefinedtypeof imideoimideo.startfunction imideostartundefinedtypeof imideoimideo.startfunction imideostopundefinedtypeof imideoimideo.stopvar imideoextensiontrue스님께서는 오늘 정토회 팀장 이상 자원봉사자 200여명과 함께 가을 단풍이 절경을 이룬 고창 선운사로 수련을 위해 다녀왔습니다. 2011년부터 시작한 제7차 천일결사가 올해 12월 회향을 하는데, 지난 3년 동안 정토회를 이끌어 오느라 고생이 많았던 팀장급 이상 자원활동가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겸한 수련을 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습니다.전국 각지에서 새벽부터 출발해서 아침 9시 무렵 선운사 대중전 앞에 모두 모였습니다. 간단히 입재식을 하고 주지 스님으로부터 선운사의 역사에 대해 소개를 들었습니다. 주지 스님은 “백제 시대에 이 지역에는 도적이 많았어요. 검단 선사가 불법으로 이들을 선량하게 교화시켜 숯을 굽고 소금을 만들어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스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해마다 봄ㆍ가을이면 절에 소금을 갖다 바치면서 이를 보은염이라 불렀고, 15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은혜를 갚는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며 창건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주지 스님의 창건 일화를 들으시고는 “1500년 전에 은혜를 입은 주민들이 1500년 동안 은혜를 갚는 정도가 되려면 검단 선사가 어떤 마음으로 대중들의 고통을 위해서 함께 했느냐를 알 수 있죠. 한 사람에게 은혜 갚는 것도 10년 유지하기가 쉽지 않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세상이잖아요. 그런데, 1500년이나 계속되었다잖아요. 그런 깊은 은혜가 있는 절 같습니다. 그 뜻을 잘 받들어 뜻 하시는 일이 잘 이뤄지길 바랍니다.” 라며 주지 스님의 친절한 안내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대웅전을 나와 도솔암을 향해 걸었습니다. 도솔암으로 가는 길은 아주 완만해서 경치를 보며 걷기에 참 좋았고, 길가와 산속 곳곳에 노랗고 빨간 단풍이 참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길을 따라 흘러가는 도솔계곡에는 가을 단풍의 고운 빛깔이 그대로 내려앉아 있었습니다.nbsp 대중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 팔짱을 끼고 걸으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그동안 업무 하느라 쌓인 피로가 말끔히 씻겨나가는 청량한 기운이 사람들의 표정 속에 가득했습니다. 가을 단풍을 만끽하며 걷고 있는데, 스님께서 귀 속에 꽂은 송수신기 이어폰으로 송창식이 부른 선운사 노래를 틀어 주셨습니다. 대중들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주고자 하는 스님의 따뜻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고, 대중들도 너무나 좋아했습니다.선운사로부터 약 3km 정도 길을 걸으니 드디어 도솔암이 나왔습니다. 도솔암 서편에는 거대한 암벽에 마애불좌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에 조각된 마애불을 보는 순간 그 크기에 모두들 감탄사를 자아내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마애불 앞에서 지장보살 정근과 미륵불 정근을 하셨습니다. 지장보살의 원과 미륵보살의 원을 이 땅에 실현하겠다는 간절한 원을 담아 대중들 모두가 함께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대중들이 마애불 앞에 모두 앉자 스님께서는 ‘정토’의 뜻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해 주셨습니다.“지장보살의 원은 지옥 같은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자기가 대신 그 고통을 받고 그들이 잠시라도 편안함을 느끼게 하겠다는 것이죠. 내 먹을 밥을 주고 자기는 굶고, 내 치료할 약을 아픈 사람에게 죽고 자기는 아픈, 이런 자기희생을 통해서 절망에 빠진 대중을 구제하는 게 지장보살의 원입니다.미륵보살의 원은 단순히 고통에서 여의게 해준다는 것을 넘어섭니다. 미래에 정말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는 비전을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없애주자는 것이 지장보살의 원이라면, 미륵의 원은 통일을 해서 새로운 세상을 일구자는 것입니다. 저 타방의 이상세계로 이사를 간다는 것이 ‘극락정토’라면, 미륵정토는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정토로 만들자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평화가 정착하도록 해서 여기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이웃 나라에도 좋은 영향을 주자는 것은 바로 ‘미륵정토’를 말하는 것입니다.‘유심정토’는 모든 것이 다 내 마음에 있으니 어디를 가든 내가 행복하면 그곳이 정토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정토는 세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nbspnbspnbsp 정토회도 이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JTS가 하는 일은 주로 지장보살의 원인 기아, 질병, 문맹의 고통을 없애는 일이라면, 평화재단에서 하는 사회적 활동과 정토회의 활동은 미륵의 원인 ‘미륵정토’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늘 행복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유심정토’를 만드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미륵 부처님이 새겨진 마애불 앞에서 정토회의 ‘정토’가 이런 뜻이었구나 자세한 설명을 듣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이어서 각 지역별로 마애불 앞에서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고, 도솔암 내원궁을 참배한 후 다시 선운사로 돌아왔습니다. 선운사에서 준비해 준 비빔밥을 처마 밑에서 맛있게 먹고, 전체 대중은 지장보궁인 설법전으로 모였습니다.스님께서는 설법전에서 3시간 가량 대중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현장에서 실무를 맡고 있는 담당자들이 전국에서 모였기 때문에, 스님께서는 먼저 어떤 자세로 일을 해야 하는지 그 지침을 일러주셨습니다.“모든 사물에는 이치가 있습니다. 이치를 딱 살펴서 어떤 일을 추진하면 일하기가 수월하고 일이 잘 되고, 이치에 어긋나게 하면 사람은 사람대로 죽을 고생을 하고 성과는 성과대로 안 나는 문제가 생깁니다. 엎드려 절하고 참선하는 것만 수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수행이라는 것은 마음작용, 사물, 생명에 대해 이치를 파악해서 이치에 맞게끔 하는 것을 말합니다.밥할 때는 밥을 잘 하는 게 수행입니다. 불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하고, 물을 얼마나 부어야 하는지 연구하는 겁니다. 곡식 종류에 따라 같은 쌀이라 하더라도 맵쌀이냐 찹쌀이냐, 묵은 쌀이냐 햅쌀이냐에 따라 또 다릅니다. 어떤 일을 하던지 계속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어떤 법칙을 찾아가는 겁니다. 마루를 청소할 때도 걸레를 하나 갖고 얼마나 많은 면적을 효과적으로 닦을지, 물기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물기가 많으면 반드시 마른 걸레로 뒤에 닦아줘야 한다든지, 빗자루를 어느 각도로 해야 먼지가 적게 날리는지, 먼지가 많이 날리면 빗자루를 물에 약간 적셔서 먼지가 빗자루에 달라붙게 한다든지, 어떤 일을 할 때는 이렇게 이치를 살펴가면서 해야 합니다. 그래서 계율에 ‘연구하면서 한다’고 되어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늘 입으로만 연구하면서 한다고 말하고 실제로는 연구를 안 합니다.여러분들이 대중을 관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도와주어야 해요. 처음 올 때는 다 도움 받으러 오거든요. 안 도와주면 안 나와요. 그런데 계속 도움 받기만 하면 또 어떨까요? 안 나와요. 왜 안 나왔냐 물어보면 “저는 패만 끼치잖아요” “저는 별 필요 없잖아요.” 그래요. 도움을 받고 싶기도 하지만, 또한 자기도 어떤 일에 기여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필요에 의해서 자꾸 사람을 가져다 쓰기만 하면 지칩니다. “거기 가면 고생만 한다”면서 나가떨어져요. 반대로 계속 도움을 받기만 해도 “나는 거기 가봐야 아무 도움이 안된다” 이렇게 됩니다.그래서 어느 시점까지는 적절히 도움을 주면서 다음으로는 자기도 기여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적절히 일도 주어야 합니다. 일을 줄줄 모르고 그저 혼자만 열심히 일해도 리더십이 안생기고, 남한테 일을 시키기만 하고 자기는 일 안하는 사람도 얄미워서 리더십이 안 생깁니다. 처음에는 자기가 열심히 하고, 시간이 경과해서 사람이 한 두 명 더 생기면 일을 주고 책임져 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 잘해주면 간섭한다고 하고, 그래서 놔주면 외면하다고 합니다. 인간 심리는 묘합니다. 시행착오를 거듭해 가면서 적절히 조율해 나가는 겁니다.”어떤 자세로 일해야 하는지 밥 하는 것으로 쉽게 비유를 들어주시니 주부 활동가들이 특히 쉽게 공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서두 말씀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일하시면서 어려운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마음껏 편하게 이야기 하세요.” 라며 대화의 장을 여셨습니다.한 주부 활동가는 “정토회에서 팀장 역할을 맡고 있는데, 8차 천일결사에도 계속 활동을 할지 고민이 듭니다. 시댁 쪽으로는 아버님이 편찮으시고 친정 쪽으로는 부모님이 연로하시니까 집안에서 역할을 해야 하는 요구가 계속 생겨요. 친정 쪽은 언니가 계속 도맡아서 해주다시피 했는데, 요즘에는 언니가 힘드니까 ‘너는 정토회만 나가서 봉사만 하면 되냐, 왜 집안일을 안 하냐’ 며 불만을 표현했어요” 라며 집안일을 전담해야 할지, 정토회 일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을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해주셨습니다.“가족에게 비난 좀 얻어먹어 가면서 그냥 팀장 역할을 하세요. 그러다가 집안일이 나 없으면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될 때는 정토회에 양해를 구하고 결석이나 지각을 하시면 되요. 부모 모시는 일을 한번 맡게 되면 자기는 밥만 먹고 완전히 부모 모시는 일만 해야 될 겁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도 ‘쟤가 하면 된다’ 이렇게 돼서 자기한테 다 그 일이 넘어 옵니다. 그래서 6개월 좀 지나면 부모 때문에 못살겠다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나는 내 가족을 넘어서서 세상을 위해서 봉사를 좀 해야겠다, 내 가족은 언니들이 알아서 하게 두자, 이렇게 입장을 정하면 됩니다. 언니들이 뭐라고 욕하면 ‘미안해, 나도 언니 고생 하는 거 잘 알아. 그렇지만 언니가 좀 맡아줘’ 하면서 슬쩍 밀고 계속 가는 겁니다. 그러다가 언니가 도저히 안 된다고 할 때 한번 슬쩍 도와주는 겁니다. 그래야 인사도 들을 수 있어요. 부모님을 돕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두 가지 중에서 자기가 선택해서 결정하면 됩니다. 첫 번째는 정토회 일을 맡으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만 부모님 일을 맡는다, 이런 원칙을 정해 놓고 한번 해보는 겁니다. 두 번째는 정토회를 그만두고 전적으로 부모님 모시는 일을 해본다. 본인의 선택입니다.자기 없다고 부모님이 못 사는 것도 아니고, 자기 없다고 정토회가 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님도 자기가 필요하고 정토회도 자기가 필요하지만. 자기 없다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것도 아닙니다. 관점이 정확해야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언니는 엄마 돕기 하고 나는 통일 운동을 하는 것으로 역할분담을 하자, 사고가 이렇게 돌아가야 합니다. 질문자는 봉사활동을 좀 더 하는 게 좋겠습니다.”nbspnbspnbsp 그런데 질문자는 스님의 답변을 듣고 “언니한테 비난을 받으니까 계속 할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라며 입장 정리를 못하고 머뭇거렸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다시 답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수준이 안 되는 사람한테 팀장을 맡겼네요. 수준이 안되는데 팀장을 맡았으니까 8차 천일결사에는 팀장을 한번 제대로 하고 나서 효도하러 가세요. 알았지요? 이왕지 맡았으면 제대로 한번 해봐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게 어중간하게 하면 수행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돼요. 효도하러 갔다가 효도도 못하고 다시 또 돌아오게 됩니다. nbsp가족 관계는 가능한 관여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욕 좀 얻어먹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만 관여하고 가능한 관여 안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가족 관계는 내가 상대에게 해치지만 않으면 됩니다. 자연 생태계에서 봐도 어떤 동물도 늙은 어미를 돌보는 건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 죽더라도 죽는 건 내 책임이지 그 누구에게도 책임 전가를 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를 도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와 언니와의 견해 차이의 문제입니다. 언니와의 문제이지 부모와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게 관점이 분명해야 합니다. 자기가 도와준다고 부모가 안 죽고, 안 도와준다고 부모가 죽고 그러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도움은 받고 싶기 때문에 가족 문제는 끝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원칙을 딱 정해놓고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거는 봐 가면서 푸는 겁니다.그러니 이 원칙을 지키려면 팀장을 맡아서 해야 가능해집니다. 그래야 자기 마음 속의 갈등을 볼 수 있습니다. 스님이 자기를 팀장 시킬려고 이런 얘기 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당신 팀장 안한다고 정토회가 망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문제를 수행적 관점으로 풀려면 이렇게 원칙을 딱 정해서 밀어붙여야 망상에서 한 꺼풀 벗어날 수 있어요. 그래도 스님이 잡으려고 이러는가 싶으면 그냥 팀장을 그만 두는 게 좋습니다.”nbsp질문자는 그제서야 이해가 명확해졌는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3시간 동안의 즉문즉설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지난 3년 동안 땀흘려 수고한 대중 활동가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무엇으로 여러분들께 고마움을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황남빵을 1인당 두 개씩 돌리기로 했어요. 어제가 토요일이었는데 경주에서는 토요일에 황남빵 사기가 정말 어려워요. 돈 있어도 못 사요. 그러니까 나가실 때 맛있게 드세요. 스님이 여러분께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하는 마음을 담았으니, 황남빵 먹으면서 ‘우리 스님 고마운 줄 알기는 아네’ 생각하면서 가세요. 정말 고마워하고 있는데 제가 고맙다는 표현을 잘 못해요. 회향식 때 다시 만나면 1박2일 수련도 함께하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시 8차 천일결사에 입재해서 전력을 다해 봅시다.비행기가 뜨면서 비상한다고 하죠. 정토회가 지금 뜨는 단계에 있으니까 될까 말까 이러는 분들이 있는데 8차 천일결사에는 쑤욱 떠서 올라가기 때문에 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8차 천일결사에서 그 기쁨을 함께 맛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고생만 하고 지금 그만두지 마시고, 이왕지 고생한 거 기쁨도 함께 맛보았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nbsp 스님께서는 나가시는 자원활동가 한 분 한 분의 손을 꼭 붙잡으시며 정성껏 인사를 건냈습니다. 황남빵을 두 개씩 받아든 활동가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어떤 활동가는 “우리가 오히려 스님께 감사해 해야 하는데...” 하시며 스님께 받은 은혜를 왕성한 봉사활동을 통해 다시 갚을 것을 다짐하기도 했습니다.단풍 구경 마음껏 하면서 자연을 만나고, 도반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쌓고, 스님의 설법을 들으며 이치를 깨닫고 은혜 갚는 마음을 내고, 오늘 하루는 기쁨으로 충만한 힐링의 시간이었습니다. 200여명의 정토회 자원활동가들은 오늘 느낀 이 기쁨을 다시 대중들에게 정성껏 회향할 것을 다짐하며 사홍서원으로 오늘 행사를 마쳤습니다.스님께서는 밤 10시가 넘어 서울에 도착하셨습니다. 밀린 업무들을 보시고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내일 오전에는 강서 구민회관에서 일반인들을 위한 강연이, 오후에는 여의도 사학연금회관에서nbsp길벗에서 주관한 방송 문화 예술인들을 위한nbsp즉문즉설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 찾아 뵙겠습니다.

2013.11.04. 21,743 읽음 댓글 13개

2013.11.02. 청년리더십 아카데미 경주역사기행

오늘은 청년리더십 아카데미 수강생 약 60여명과 경주 역사기행이 있었습니다. 서울에는 비가 온다지만 경주는 쾌청하면서도조금은 더운 가을날씨였습니다. 오늘 경주역사기행은 법흥왕릉에서 10시에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실 신라의 역사는 그동안 우리가 역사책에서 바라본 그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스님께서 우리에게 신라의 역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떤 것인지 궁금했습니다.nbsp 얼굴에 가득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내는 스님께 청년들도 반갑게 인사를 하며 스님과 함께 역사기행을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에 관한 신화에서부터 석탈해왕, 내물왕, 지증왕등 신라왕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고대 신라의 역사를 말씀해주셨습니다. “특히 23대 법흥왕에 와서 신라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하고, 법제를 편제하는 등의 개혁이 있었으며, 불교를 공인하는 개방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법흥왕의 개혁· 개방 정책 뒤에는 금관가야와의 통합을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금관가야와 신라는 전쟁을 통해 통일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양 지도부들의 합의를 통해 통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신라는 가야의 지도부를 신라의 지도부로 인정하였으며, 그들의 사상과 종교를 인정하였습니다. 우리는 금관가야와 신라와의 통합에서 현재 남북한의 통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어야 합니다. 통일한국은 남한이 북한을 일방적으로 흡수하는 형식이 아닌 북한을 남한이 포용하는 통일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전범으로 볼 수 있습니다. 법흥왕이 금관가야의 종교인 불교를 인정해서 금관가야가 신라로 복속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다면 남한도 북한과의 통일을 위해 북한의 체제 중에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인정해 주는 것이 우리의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라와 가야의 통일은 신라 발전에 큰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가야를 받아들이면서 신라의 문화가 고급화되었으며 가야의 뛰어난 인재가 신라로 유입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북한을 포용한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더욱 커지게 되어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며 신라와 가야의 합의통일에서 남북통일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정리해 주셨습니다. nbsp 다음 장소는 태종 무열왕인 김춘추의 왕릉이었습니다. 무열왕릉은 깨끗하게 잘 정비된 공원의 느낌이었습니다. 앞의 법흥왕릉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것 같은 분위기와는 상반된 분위기였습니다. 무열왕은 신라 29대 왕으로 27대 선덕여왕의 조카이며 통일의 중추적 역할을 했습니다. 김춘추는 김유신과 함께 660년 백제를 멸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여 신라의 삼국 통일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다음은 김유신 장군 묘로 이동했습니다. 누구나 김유신에 대한 이야기는 한두 가지씩 알고 있을 정도로 김유신은 위대한 인물로 우리에게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김유신은 왕이 아님에도 죽은 후 흥무대왕이라고 추존을 받았으며 살아생전에도 태대각관이라는 최고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김춘추와 함께 무신으로서 삼국 통일을 이끌었으며 정치적으로도 수완가였습니다. 김유신 장군묘는 보존이 잘되어 있었으며 신라 후기 왕릉에서 나 볼 수 있는 12지상과 석축이 있어 그 화려함을 더했습니다. 무덤을 삥 돌면서 스님께 김유신과 김춘추와 관련된 여러 일화를 들으며 김유신, 김춘추가 살아온 삶의 행적을 조금이나마 짚어갈 수 있었습니다. nbsp 김유신 장군묘를 돌아본 후 근처의 흥무공원의 넓은 잔디밭에서 스님과 함께 청년들은 조별로 모여서 김밥과 빵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청년들은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며 경주의 이곳저곳을 다녀 허기가 졌는지 다들 점심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주변은 완연한 가을이라 이곳저곳이 단풍나무,은행나무로 아름다웠습니다. 가족 단위의 소풍을 즐기러 온 사람들도 많아 주변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nbsp 오전이 정치와 군사적으로 통일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의 묘를 다녀왔다면 오후는 주로 정치적, 사상적으로 통일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의 묘와 장소를 둘러보았습니다. 오후 첫 코스는 사천왕사 터였습니다. 현재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빈 터이지만 당시 신라를 침략하려던 당나라 군대를 부처님의 힘으로 퇴치하기 위해 문무왕이 세운 절입니다. 사천왕사를 지은 후 그 곳에서 명랑법사가 문두루 비법을 행하니 서해에 풍랑이 쳐서 당나라 배를 두 번이나 침몰시킨 기적을 이루게 한 곳이라고 합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신의 도움을 받고자 했던 고대인들의 사상세계와 애국심을 느낄 수 있는 장소입니다. 사천왕사의 문두루 비법 덕분인지 당나라 군대는 신라에서 완전히 물러갔으며 신라의 완전한 삼국 통일은 신라와 당나라가 다시 화친을 맺은 676년에 이루어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이 당시 신라와 당나라의 관계는 현재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관계와 같다고 하시면서 신라는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당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삼국통일을 이루었으나 현재 우리나라는 국방의 주권조차 온전히 우리 것이지 못한 현실을 생각 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사천왕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선덕여왕릉이 있었습니다. 선덕여왕릉은 예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었으나 전에 방영된 드라마 lt선덕여왕gt 때문에 현재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고 합니다. 선덕여왕은 신라통일의 주역인 김춘추와 김유신등을 인재로 키운 신라 최초의 여왕입니다. 선덕여왕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남성보다 더 뛰어난 지혜와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선덕여왕의 리더십은 현재 청년 리더십 아카데미의 여성 수강자들에게 많은 자극을 주었습니다. 문무대왕을 화장한 화장터에 세운 탑인 능지탑을 지나 우리는 황룡사지터와 분황사로 이동했습니다. 황룡사는 원래는 궁을 세우려 했던 장소에 황색 구렁이가 나와 결국 절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는 창건 설화를 간직한 곳으로 지금은 주춧돌만 남은 빈 터이지만 그래도 방대한 규모로 절의 전통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었습니다. 황룡사는 사면에 문이 있으며 남문에서 시작해서 중문, 탑, 금당, 강당이 있는데 이 건물들이 모두 일직선으로 되어 있습니다. 황룡사의 탑은 227척, 약 67m 로 지금의 25층 건물 높이의 9층 목탑인데, 원나라의 침공으로 소실되었으며 금당이나 강당의 규모도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넓은 벌판에 있었던 과거 황룡사의 웅장한 모습을 상상하며 스님의 말씀처럼 하루빨리 황룡사가 다시 복원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nbsp 황룡사터에서 한 수강생이 가야금 산조를 연주해 주었는데 가야금을 역사의 현장에서 들으니 그 선율이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분황사는 스님이 출가하셨던 절로 원효대사가 있었던 절이기도 합니다. 절 입구에 자리잡은 모전석탑은 벽돌을 모방해서 만든 탑으로 벽돌처럼 돌을 깎았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또한 모전석탑은 이형탑으로 비슷한 모양이 없기 때문에 원형을 복원하기가 어렵고 지금 남아있는 3층 석탑의 원 모습은 57층 정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nbsp 분황사에서 오늘 경주역사기행을 모두 마무리 하고 두북수련원으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바로 스님의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lt삼국통일로 본 통일코리아의 전망gt이라는 주제로 경주역사기행에서 둘러본 신라 통일의 여운을 현실적인 입장에서 제시해주셨습니다. 신라는 원래부터 통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고 외세의 침공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다 통일을 했기 때문에 민족사의 활동범위를 축소시켰다고 비판 하시면서 스님의 강의는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신라가 원대한 비전이 없었던 이유는 역사의식이 부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물 사상이라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지배 엘리트 계층의 건전성 때문이고, 둘째 변화된 국제 관계를 잘 이용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이런 신라의 통일 과정에 대해 짚어주면서 고조선, 고구려, 발해에 걸친 우리 민족의 역사의 흐름을 통해 우리 민족이 동북아 대륙을 제패한 강대국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긍심을 가져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통일의 문제를 바라볼 때도 남북한 통일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원래 우리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통일을 바라보는 입장은 과거의 감상론이나 당위론이 아니라 실리적인 이해관계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통일 조국이 아닌 분단 조국에서 자란 우리의 청년들은 머리로는 통일이 이해되지만 마음으로는 통일이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nbspnbsp 현재 우리나라는 성장 동력이 거의 소진되고 있어 성장이 정체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1인당 GNP가 2만불을 넘어서면서 저성장을 하고 있으며 우리의 주요 교역국인 미국과 일본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우리나라 내부에서도 저출산, 고령화, 청년들의 3D 직종 기피현상 등 산재되어 있는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것은 남북한의 통일입니다. 통일은 우리에게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습니다. 북한의 개발과 더불어 동북 아시아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 결국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고 우리가 그 중심 국가가 될 것입니다. 또한 남북한의 통일은 군사적 대립을 막아 동아시아의 평화를 가져오며 우리가 통일을 통해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인정하고 통합하는 모습은 세계 문명의 모범이 되어 사상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시며 하지만 통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스님께서는 국민과 지도자의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함을 강조하셨습니다.nbspnbsp 또한 가야와 통합하기 위해 신라가 미리 가야를 받아들일 준비를 했듯이 우리도 북한과의 통일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시며 오늘 경주역사기행을 통해 남북통일을 어떻게 해 나가야 좋을지에 대한 스님의 귀한 말씀이 마무리 되었습니다.nbspnbsp 저녁식사 후 수강생들이 너도 나도 기다리던 lt즉문즉설gt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직장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문제 등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통일과 관련한 정치적인 부분까지 다양했습니다.nbspnbsp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새터민인 수강자가 자신이 다니던 영어학원에서 북한에서 군복무를 했던 다른 새터민에 대해 사람들이 벽을 만들던 일을 예로 들면서 새터민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어느 집단이나 텃세는 있기 마련입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자기 영역에 이주민이 오면 경계하고 텃세를 부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겪는 남한 사회의 텃세는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도를 지나치면 당당히 그 부분에 항의를 해야 할 것이고 철회를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일부러 자신이 새터민이라고 밝힐 필요는 없으나 차별이 두렵다고 해서 자신의 출신에 대해 숨기거나 속일 필요는 없으면 더구나 위축될 필요도 없습니다. 습니다. 또 다른 분은 앞서 한 강의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통일 한국에서 한국은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모습의 중심 국가가 되어야 하나요?”스님께서는 “지금까지 아시아의 문명은 미국이나 서양의 문명을 모방하는 데만 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빠른 성장을 이루었지만 모델 국가와 그 기술이나 문화의 격차가 줄어들수록 그 성장 속도가 더뎌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방이 아니라 창조하는 문명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창조력이 있는 국가는 다른 나라에서 그 문명을 배우려고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구 문명을 모방하고 있지만, 과거nbsp중국의 당송, 명청 시기의 천여년은nbsp중국을 모방했던 것이고,nbsp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는 인도를 모방했던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모방에 익숙해져 왔기 때문에 창조가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삼성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좀 더 나은 것을 만들 수는 있어도 없던 물건을 새롭게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nbsp그래서 우리나라는 지금 정체기에 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정체위기를nbsp넘기기 위해서는 양적 확대를 통해nbsp극복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근본적 처방은 아닌 한시적 처방입니다. 방법은 통일과 동아시아 공동체의 형성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인 것은 우리가 창조력을 높여 새로운 문명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창조력은 경제적인 것만이 아닌 정신적, 사상적, 문화적, 환경적인 창조력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시면서 새로운 문명을 통해 동아시아의 중심국가로 서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nbsp 마지막 질문자는 직장 내에서 업무를 많이 맡다보니 건강상의 문제, 사람들과의 트러블이 많아서 욕심을 덜어내고자 노력도 했는데, 다시 팀을 맡게 되니 원상태로 돌아간 것에 대한 고민을 내어 놓았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젊은 시절에 너무 여유부리지도 말고 그렇다고 너무 많은 욕심을 부려서 일을 할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맡겨진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들이 맡긴 일에 못한다고 거절하면 자신의 역량은 더 이상 커지지 않습니다. 역량에 넘치는 여러 일을 맡다 보면 처음에는 힘들지만 자신의 역량은 늘어나 일을 효율적으로 하게 되던지, 사람을 효율적으로 잘 활용하게 되던지 여러 가지 나의 역량을 높이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라며 젊을 때는 좀 더 적극적으로 맡은 일에 임하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청년들은 스님과의 짧은 기행 속에서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으며, 통일 코리아의 청사진도 그려보았고, 각자의 인생 고민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nbsp 밤 10시가 넘어서야 강의가 마무리 되면서 오늘 경주역사기행도 마무리 되었습니다.nbsp 내일은 선운사에서 대중부 활동가들과 함께 하는 일정입니다.nbsp 오늘 청년리더십아카데미 경주역사기행은 청리아 제3기 윤보라님이 정리해주셨습니다.

2013.11.03. 15,731 읽음 댓글 2개

2013.11.01. 울산, 대구 강연 및 운문사 강의

오늘은 울산 북구에 있는 현대자동차문화회관에서 1030분에 강연이 있어서 두북에서 울산으로 가면서 조금 일찍 출발해서 탑곡 수련장을 둘러보고 산길을 가며 단풍구경을 하였습니다. 반구대 암각화 옆을 지나며 산길로만 계속 울산시내까지 진입하며 가을 산과 들을 만끽했습니다. 강연장은 좌석수보다 많은 약 655여명이 참석해서 강단 바로 아래 바닥에도 앉아야 했습니다. 아이와 왔다가 되돌아가신 분도 있었습니다. 강연이 시작되자 강단에 오른 스님께서는 “안녕하세요. 자리가 없어서 어떡해요”라고 먼저 말씀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앉았던 자리를 바닥에 앉은 대중에게 앉으라고 하니 대중들이 웃어서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nbspnbsp “부유한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부유할 때는 부유한 입장밖에 모르는데 어려운 사람의 입장을 알게 되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지위가 떨어짐으로서 아랫사람의 입장을 알게 됩니다. 즉 이쪽면만 알다가 저쪽면도 알게 되고, 위밖에 모르다가 아래도 보고, 앞쪽만 알다가 뒷면도 알게 됩니다.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한면 밖에 못보고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이 이면도 보고 저면도 보고 전면을 다 보는 것을 통찰력, 지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혜가 늘어나게 되면 똑같은 일에 부딪쳐도 두려움이 적어지고 마음이 가벼워지고 행복도가 높아지고 괴로움이 줄어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nbsp 그러니까 어려움에 처하는 것이 꼭 나쁜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어려움이 큰 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여러가지 어려운 고비를 극복을 하면 오히려 삶이 풍부해지고 통찰력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니 그 어려움을 회피하려 하지 말고 그게 복인 줄 알고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게 좋습니다.nbsp 재앙이 복인줄 알면 인생살이가 겁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복만 복인 줄 알고 재앙은 재앙인 줄 아는데, 재앙이 복인 줄 알아버리면 인생이 다 복인 것입니다. 재앙도 복이고 복도 복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질문자의 그 많은 요구를 내가 해결해줄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놓여있는 상태 그대로 두고 조금 더 행복해지는 길을 찾을 수는 있습니다.” 라며 통찰력에 대해 최근 강연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주었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는 대중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우리의 고민도 별게 아닌 것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본격적으로 질문을 받기 시작하니,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과정과 부모님의 취업권유 사이에서 고민인 분, 2018년부터 간호조무사 없어지고 간호사체계로 일원화되는데 현장에서 어떻게 일해야 원만할 수 있을지 묻는 분, 어렵게 출산했지만 27개월 딸아이에게 하루에 한두번은 짜증이나 화를 내게 된다는 여성분, 처음엔 경제적 이유로 자녀계획이 없었는데 아이를 낳으려고 하니 최근 스트레스성 불안장애로 약을 복용중이며 마음이 무겁다는 분, 3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4살 때 입양되어졌지만 상처가 남아있는 분등 쉼없는 8분의 질문이 있었습니다.nbsp 그중 첫 번째 질문을 올려보고자 합니다. “남편과 7년 연애를 하고 결혼생활을 10년 넘게 했는데, 작년에 남편이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었어요. 사채와 대부업체 은행권에 가족들 카드에 돈을 쓰고 술을 마시고 여자를 만나고 골프를 치러 다녔어요. 아파트는 사채로 올해 넘어가고 오갈 데가 없어 친정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회사에서 준 주식을 팔아 여자를 만나고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안녕히 가십시오 못하는 건 아직 어린아이를 데리고 독립해서 살기엔 경제적으로 능력이 되지 않습니다. 남편이 차압당해서 얼마 되지 않는 월급통장을 주지만 살기 힘들어 풀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스님 법문을 들으며 아침마다 5시에 절을 하며 마음이 많이 가라앉지만 아직 남편이 원망스럽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저의 마음이 고쳐질까요? 어떻게 해야 저와 아이들이 이런 상황속에서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라며 질문을 하였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어린아이가 아직 엄마가 필요할 때인지 확인하시면서 “엄마가 늘 우울하고 남을 미워하면 아이가 정신적으로 영향을 받는 나이인가요? 상관없는 나이인가요?” 라고 물으니 질문자는 “영향을 많이 받는 나이입니다.”라며 답했습니다.nbsp “그러니까 아이가 없이 두 남녀관계만 있다면 이혼을 하든 살든 오늘 결정해버리면 됩니다. 그런데 아이가 있으면 아이에 대해서는 아이가 만 18살이 될 때까지는 부모로서 자식을 책임지고 키워야 합니다. 그럼 남편이 죽어도, 바람이 나도, 병들어도 키워야 됩니다. 그러니까 자기에게 중요한 것은 부부관계가 아니고 아이의 엄마로서 어떻게 할것인가입니다. 즉 부부로서는 남편이 이미 기본적인 신의를 어겼기 때문에 이혼을 해도 다른 사람들은 뭐라 할지 모르겠지만, 스님은 오케이 문제 없어요. 그런데 아이가 있다면 남편은 내일이라도 그만두면 되지만 아기와의 관계는 18살까지는 엄마가 일방적으로 그만둘 수 없습니다. 반드시 보호자를 찾아서 임무교대를 해줘야 합니다. 왜냐면 아이는 키워 줄 부모가 필요하기 때문에 엄마가 키우기 어려우면 양부모를 찾아 넘겨주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양부모를 찾아서 넘겨줄 의향이 있어요?”라고 자식에 대한 엄마의 마음을 확인합니다.nbsp 질문자는 “없습니다.”라고 답합니다. “없어요? 그런데, 자기가 남편을 자꾸 미워하고 원망하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고 했잖아요?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자기가 원망할까요? 안할까요?” 스님은 질문자에게 하나하나 질문을 하며 문제를 풀어갑니다. “원망 안하겠죠.”nbsp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원망 안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는 자기가 책임지고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키우면 됩니다. 그런데 애들 입장에서 볼 때는 아빠 죽어서 없는 것이 나아요? 바람피우며 돌아다녀도 애들 아빠가 있다는 게 좋을까요?”nbsp “있는 것이 좋습니다.”nbsp “남편이 죽었으면 자기가 책임지고 아이를 키울 것이고, 그러고 꿈속에서라도 가끔 와주는 아빠가 있으면 좋을텐데, 애들 아빠는 꿈속도 아닌데 살아서 가끔 왔다갔다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마음에서 남편을 죽었다고 생각하고 딱 정리해버리면, 남편을 더 이상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애들에게 아빠가 있는게 좋다고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남편이 가끔 애들을 위해서 보러와 주면 고마워요? 안고마워요?”nbspnbsp “고맙죠”nbsp “질문자는 남자없이 살 수 있어요? 없어요?”라고 물으니 머뭇거리다 “남자없이 살 수 없습니다 .”라고 답하니 대중들이 큰소리로 웃습니다. “남편이 죽었다치고 다른 남자를 가끔 만나면 자기로서는 위험해요? 안위험해요?” “위험합니다.”nbsp “그런데 모르는 남자 만나는 것보다야 이 남자 만나는 게 위험부담이 적지 않아요?”라고 하니 대중들은 이해가 되어서인지 아니면 생각지도 못하게 상황을 가볍게 봐서 인지 다시 크게 웃습니다. 대중들의 웃음에 질문자도 좀 가벼워 졌는지, 가벼운 웃음을 띠고 답도 가볍게 합니다.nbsp “스님이 쓸데없는 얘기를 하나요? 나는 삶에 대한 현실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계산을 정확하게 하라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감정에 치우쳐, 자꾸 자기의 이해를 버리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남편이다는 전제하에서 보면 굉장히 나쁜 사람이지만, 그래 너하고 끝났다고 생각하면 나하고 관계없는 이 남자가 나한테 해주는 이익이 많다는 것입니다.nbspnbsp 아이들한테 아빠역할도 해주죠, 한달에 사오십만원이라도 보내주죠, 그러니 버리는 것이 나아요? 활용하는게 나아요? 자기가 생각할 때 어느쪽이 나아요?” “활용하는게 낫습니다.”nbsp “그럼 기도할 것이 뭐가 있나요? 머리만 잘 돌아가면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로서 마음에서 정리해 버리면 고마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꾸 옛날 생각하면서 나하고 했던 약속, 내 남편이다라는 것을 놓지 못하면 밉고 나쁜 인간이지만, 남이다라고 딱 정리해버리면 아주 고마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정리되죠? 확실히 됐어요? 근데 그래도 내 남편인데 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으로는 잘 안될 것입니다.nbspnbsp 그래서 이렇게 기도를 하세요. 하루 108배 절을 하면서 ‘니는 남이다, 니는 남이다.’ 남이라면 이 사람이 미운 사람이예요? 고마운 사람이예요?”라며 마지막 정리를 하면서 물으니 대중들이 모두 공감한다는 듯이 “고마운 사람”이라고 크게 답합니다.nbsp “고마운 사람입니다. 내가 외로울 때 위로도 해주고, 가끔 와서 아빠노릇도 해주고, 돈도 가끔 보내주고 정말 고마운 사람입니다. ‘니는 남이다, 니는 남이다, 고맙습니다.’라고 기도하면서 남편으로 생각하지마세요. 가끔 나를 위로해주는 남자친구로 생각하세요.”라고 스님께서 마무리 하니 대중들은 큰박수와 함께 웃음이 끊이지를 않았습니다.nbspnbsp 어떻게 보면 힘든 일이겠지만, 스님과의 주고 받는 문답속에서 질문자가 많이 가벼워져 보였고, 듣는 우리들도 ‘아, 그렇지’하면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바로 잡아갔습니다.nbsp 마지막 질문이 끝나고 스님께서는 “고정관념을 버리세요. 그리고 자기 생각에 너무 사로잡히지 말기 바랍니다. 툭 터놓고 조금 한발 떨어져서 세상을 보면 여러 길이 있습니다. 길이 없는 것 같은데 여러 길이 있습니다. 밝은데 있다가 갑자기 어두운데 나가면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가만히 조금만 기다리면 희미한 속에 여러 정황이 보이게 됩니다. 자기 생각만 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안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눈을 열고 여러분이 살아간다면, 지금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겠죠?” 하니 대중들은 또 웃으며 큰소리로 “네” 하며 대답했습니다.nbsp “이 세상에 누구도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자기가 자기 불행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정에 너무 치우치지 말고 조금만 살펴보면 자기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많은 길이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nbsp 스님의 가벼우면서도 명쾌한 말씀속에 웃음과 감동이 함께했습니다. 강연장을 나오신 스님께서는 책사인회를 하고 봉사자들과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불사를 계획하고 있는 북구 봉사자들만 모으시니 순식간에 스님 곁으로 깔깔거리며 모여들어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봉사자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하게 피었습니다.nbspnbsp 이렇게 오전 울산 강연을 마치자마자 바로 운문사로 이동했습니다. 지난 봄에 INEB에서 오신 동남아 스님들을 모시고 운문사를 방문했을 때 운문사 주지스님께서 하반기에 학인스님들을 위해 꼭 강의를 한번 해 달라고 해서 오늘 울산과 대구 강연 사이에 빠듯하지만 운문사 스님들을 위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nbsp 운문사 학인스님 약 120여명 대상으로 ‘글로벌 시대의 수행과 포교’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였습니다. 진리로서의 불법을 알고 전통을 계승해 나가면서 새로운 것을 모색해 나가며 모든 문제가 있을 때 항상 나를 바라봐야 된다고 하시면서 이러한 수행의 관점을 가지고 수행과 포교를 함께 해 나가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내가 출가한 것은 나의 해탈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고 부지런히 수행정진 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 일진 주지스님께서는 조금 늦게 참석하셨다가 강의 후 인사말씀에서 스님과의 인연, 그리고 감사의 인사를 해주시면서 며칠전에 운문사 총동문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모은 돈과 학인스님들이 모은돈을 법륜스님께 드리면서 좋은 일에 써달라고 했고, 법륜스님께서는 인도, 캄보디아등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고 하시면서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nbsp 강의를 마치고 가시는 길에 약 30여명의 스님들이 나와서 함께 기념촬영도 하고 스님 가시는 길을 배웅해주셨습니다. 운문사를 떠나서 대구 수성대학으로 바로 이동했습니다. 오늘은 강연이 3개이다 보니 점심, 저녁을 모두 차안에서 먹게 되었습니다. 저녁은 운문사에서 오후불식이어서 공양접대를 하지 못하는 대신 가면서 드시라고 고구마, 땅콩, 과일들을 싸주신 것으로 대신하였습니다.nbsp 저녁 강연은 청년들이 준비한 법륜스님의 ‘방황해도 괜찮아’강연으로 대구 수성대학에서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 모든 자리가 청춘들로 가득 메워지기 시작하여 강연이 시작될때는 630여 좌석이 다차서 복도와 뒷자리에 앉거나 서서 듣기도 했습니다.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속에 스님의 위트가 섞여 가벼운 분위기속에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청춘은 저마다 인간관계에 있어 많은 문제를 호소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그중에 한 분은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어 고민을 호소하였습니다. 질문자는 대학생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더 효심이 생겨 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독립을 한 지 일년이 다 되었는데 아버지가 있는 집에 가게 되면 토할 것 같고, 몸이 긴장되고 초조한 증상이 있어 이번 명절에 집을 방문하지 않은게 죄책감처럼 여겨집니다.” 라고 고민을 털어 놓았습니다.nbsp 이에 스님께서는 200배 하기를 수행과제로 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200배 정진을 통해 심신을 닦고 이후에 시험삼아 가끔 아버지께 가려는 마음을 냈을때도 이전과 똑같은 증상이 보이면 아직 덜 치유된 것이므로 끊임없이 정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nbsp 또 한 분은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알바를 하며 학교를 다니다 대학을 자퇴하고 직장을 다니다 다시 편입을 생각중인데 돈이 전부인줄만 알고 살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공부가 중요한 것 같아 공부를 하려하는데 주위 사람들은 그래서 언제 취직해서 장가를 가려고 하냐는 말을 듣게 됩니다.”라며 고민은 내어 놓으니 스님께서는 먼저 질문자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편입이 하고 싶다면 취직과 장가를 미루고 장가를 가야겠다고 생각하면 학교를 그만두고 바로 취직하라고 조언 하였습니다.nbspnbsp 두시간여간의 강의를 통해 사람들은 알차고 통쾌한 답안을 얻어 가는 것 같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나서 사인회 후 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 스텝분들과 함께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그동안의 활동을 격려해주셨습니다.nbspnbsp 이렇게 오늘 3번의 강연을 모두 마치고 두북으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 내일은 청년리더십 아카데미 학생들과 경주역사기행이 있습니다.nbsp 오늘 울산 강연은 정은진 님이, 대구 강연은 김미경님이 정리해주셨습니다.

2013.11.02. 16,178 읽음 댓글 6개

2013.10.31 노보살님들과 저녁 공양, 여성리더십, 평화리더십 아카데미 강의

스님께서는 오늘 오전 11시에 미국 뉴욕에서 오신 조병창 거사님과 잠시 미팅을 가진 후, 11시 30분부터 정토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노보살님들 25분께 스님께서 점심공양을 올렸습니다. 보살님들은 스님께서 머리를 기르고 포교를 하던 법사시절인 소림선원 시절, 비원포교원 시절부터 홍제동시절에 활동하시던 70대 이상부터 87세 되신 분들까지 이제는 연로하여 걷는 것도 불편하고,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도 귀가 어두워 제대로 들리지 않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해마다 노보살님들을 모시고 2박 3일 정도로 나들이를 다녔는데, 근래 23년 동안은 제가 너무 바빠서 제대로 못 모셨습니다. 올해도 나들이는 어렵고 이렇게 식사로 대신합니다.”라며 함께 여행하시지 못한 아쉬운 마음을 그나마 공양을 올려 표함을 말씀드렸습니다.nbsp 노보살님들께서는 바쁘신 스님과 함께 이렇게 공양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노보살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난 후 이번에 베스트셀러가 된 ‘인생수업’을 노보살님들의 이름을 일일이 다 적고 사인을 해서 한분씩 나눠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내년에는 꼭 시간을 내어서 1박2일 정도라도 나들이를 가자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노보살님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낸 후 2시부터 스님께서는 평화 교육원에서 주체하는 제5기 여성리더십 아카데미 수강자 약 25명을 대상으로 “갈등의 대한민국,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였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근래에 이렇게 적은 수를 대상으로 강의하기 처음이라며 웃으며 분위기를 가볍게 한 후 우리나라에서 어떤 갈등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말씀해 주시면서 강의를 시작하였습니다.nbsp “우리나라는 여성들이 밤늦은 시간에 택시타고 다닐 수 있는 세계에서 치안이 잘 유지되는 몇 안되는 나라입니다. ‘대한민국은 살만한 나라다.’라는 긍정을 바탕으로 비판을 해야 그 비판이 파괴가 아닌 건설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하기보다 개선해야 할 사항이 많이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사회에는 많은 갈등이 있은데 그 중 가장 큰 것은 남북문제입니다. 북한에 대해 어떻게 볼 것인가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미국을 어떻게 볼것인가도 북한을 어떻게 볼것인가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민족문제와 대외관계에 대해서 우리 사회안에서 시각차이가 많이 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는 빈부격차 문제로 진보와 보수가 나뉘어지기보다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진보와 보수가 나뉘어지고 있습니다.nbspnbsp 두번째는 성장과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빈부격차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입니다. 같은 진보내에서도 경제적인 관점과 북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 상충된 견해가 있습니다.nbsp 세번째로는 환경문제로 개발과 보존을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nbspnbsp 네번째는 지역갈등입니다. 영남과 호남, 수도권과 비수도권, 중앙과 지방의 갈등이 있습니다. 지방분권이 제대로 안되어 있습니다. 이는 정치사회권력의 문제입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은 균형발전의 문제로 경제적인 문제가 많습니다.nbsp 다섯번째 노사갈등입니다. 재벌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 재벌기업의 노동자와 중소기업의 노동자는 같은 노동자이지만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것입니다. 재벌기업 노동자는 하층노동자와의 관계에서 재벌의 입장에 서 있으며 지적수준과 학벌, 경제적으로도 자본가인 영세 자영업자보다 훨씬 여유가 있습니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문제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습니다. 여섯째는 종교갈등입니다. 주로 개신교가 갈등의 원인으로 그중 보수파가 주요인이 되고 있는데, 다른 종교는 구원이 없다는 배타적인 태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주의, 교회 성장중심주의, 배타주의가 종교갈등의 원인입니다. 종교갈등은 우리 사회 곳곳에 보이지 않게 첨예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군대, 공무원과 같이 조직사회에서는 더욱 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nbspnbsp 그리고우리 사회의 리더십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타협하는 것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지만, 옛날에는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타협, 민주화 운동가와 독재자가 타협이 가능했을까요? 그때는 타협은 굴욕이요, 비굴이며, 야합이었습니다. 비타협 투쟁이 승리의 길이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여야가 손잡고 협력하고 진보와 보수, 종교사이의 협력이 좋다는 것이 현재 사회적 요구이고 이런 요구가 있다는 것은 사회가 변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화해와 협력이 정의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우리사회의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그래서 통합의 리더십이 우리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nbspnbsp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라는 강력한 구호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갔고, 경제성장을 견인해 나갔는데, 이 리더십을 성장의 리더십, 성공신화 리더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nbsp 개발시대 성장의 리더십, 카리스마 리더십은 늘 모델을 보고 따라 배우기를 하니 성공확률도 높아 신화가 되었습니다. 성장 리더십을 주도한 사람들의 자녀들은 먹고 살만하니 배고픔의 경험이 없습니다. 먹고 살만한 시대가 왔는데도 무조건 잘살아보자, 복종해야 한다고 하니 젊은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공감이 안되는 것입니다.nbspnbsp 정치적 자유에 대한 갈구가 독재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났습니다. 80년대로 넘어오면서 20대 젊은 사람들에게 독재에 대한 저항이 광범위하게 나타났습니다. 저항하면 폭력적인 협박 이나 돈 또는 지위로 유혹해서 제압하려고 했고 정치권내 야당은 유혹과 협박에 타협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다 넘어갔습니다. 우리사회에서 타협은 좋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타협은 부정의 한 말로 다가오는 것은 이런 시대에 굴복을 타협으로 말했기 때문에 뜻이 좋지 않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다 보니 이들 지도자들도 독선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희생에 의해서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나 그들이 사회지도자가 되었을 때는 전혀 민주적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리더십이 성공해서 독재시대를 마감하고 직선제가 등장하였습니다. 박정희, 전두환대통령이 경제성장을 성공시켰다면, 노태우 대통령 이후부터는 민주화를 점차 이루어나갔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거치면서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상태에서 민주화의 선명성, 도덕성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제성장이라는 욕구가 다시 일어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것입니다. 경제성장의 리더십, 민주화 리더십이 각각 20년을 거쳤는데 다음 단계로 가지 않고, 도로 성장의 리더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한국사회가 방향을 못 잡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시대의 요구가 현실을 반영하는 리더십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이 기성정치에 실망한 것입니다. 기성정치에 대한 실망으로 새로운 시대의 요구나 정치적 무관심이 한국사회에 팽배해 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성장해 왔고, 민주화를 이루어 왔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서 지금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해 있는 갈등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셨습니다. “우리사회는 민족 전체적으로는 남북갈등을 해결해야 합니다. 국내에서 북한에 끌려 다니는 것은 다 싫어합니다. 전쟁 또한 싫어합니다. 평화정착과 남북교류가 국민적 요구이면서 동시에 북한에 끌려가기 싫은 것도 국민적 요구입니다. 우리가 중심이 되기를 원하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우리가 그동안 일구어 놓은 재산을 잃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nbspnbsp 두번째는 지역갈등이 심합니다. 이것을 정치적으로 풀려면 분권과 균형발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치인들이 대중들에게 절하고 인사하는 것은 겨우 4년중 3개월정도입니다. 뽑힌 대통령은 기존에 비민주적이었던 대통령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이전과 똑같습니다. 3년 9개월은 독재인 것입니다. 4년 내내 민주주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되려면 중앙의 권력이 지역으로 넘어가고, 주민자치센터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동네에서 뭔가를 하나 만들때도 주민들이 참여해서 결정하도록 해야 합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시청직원은 동네 사람들의 여론을 모아서 관장하는 것입니다. 공무원이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nbspnbsp 우리나라는 중앙에 권력의 80가 있기 때문에 중앙 권력의 절반이 지역으로 넘어가는 지방자치시대로 가야 하고, 분권이 되어야 합니다.nbspnbsp 경제적 민주화를 위해서는 분배가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전에는 연 10 성장하면 그래도 23는 국민들에게 돌아갔는데 지금은 3 성장하니 모두가 재벌에게만 가고, 개개인에게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장보다는 분배가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치민주화에 대한 각성은 되어 있으나 경제민주화에 대한 각성은 부족합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때는 경제민주화가 이슈가 되었으나 지금은 거론되지 않고 여전히 경제성장만 중요시 되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이익만이 더 커지고 있고 빠른 속도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양극화를 없애지는 못하지만 완화시켜야 합니다.nbspnbsp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이분법적인 논쟁은 의미가 없습니다. 타협을 통해서 성장과 복지를 적절하게 배분되어야 합니다. 다양한 요구를 가지고 조율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의회가 상시적으로 열려야 하고 다당제가 되어야 합니다. 독일의 녹색당, 보수당, 사회당과 같은 다양한 정당이 사회 과제를 가지고 조율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복지사회는 정치적으로 분권, 경제적으로는 분배가 잘되는 사회입니다. 북유럽사회가 비교적 종합적으로 잘 이루어져 있습니다. 경제성장, 민주화, 복지화로 점차 이루어져야 하고 리더십도 성장리더십을 지나 투쟁의 리더십에서 통합의 리더십으로 가야 합니다. 아직 우리사회는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이 있어 사회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리더십이 끌어주고 국민들이 각성해서 앞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보수와 진보가 아닌 중도가 중심이 되어 나가야 합니다. 남북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은 우리의 적이라는 것이 현실이지만, 미래를 볼 때 같이 통일로 가야 하는 나라 또한, 북한입니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미래를 봐야 합니다. 북한과 신뢰를 쌓고 협력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양극단을 통합해서 나갈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더라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중도적 통합이 가능합니다. 이것을 화쟁사상이라고 합니다.”라며 갈등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통합하고 이 갈등을 해결해 나가야 할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이렇게 강의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몇가지 질문을 받고 마무리 하였습니다. 이어서 5시에 외부인사와 미팅을 가진 후 6시에는 평화교육원 원장이신 윤여준 원장님, JTS 박지나 대표님과 저녁식사를 한 후 7시 30분부터 평화 리더십 아카데미 강의에 들어갔습니다.nbsp 강의 주제는 여성리더십 아카데미에서 한 강의와 마찬가지로 ‘갈등의 대한민국,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였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난 후 질문 몇가지를 받고 오늘 강의를 마무리 한 후 오후 9시 30분에 두북으로 이동했습니다.nbsp 내일은 울산, 운문사, 대구 강연이 있습니다.

2013.11.02. 18,166 읽음 댓글 1개

2013.10.30. 안산, 수원 강연

스님은 오전 9시 무렵, 하반기 희망세상만들기 전국 50회 연속강연 중 12번째 강연이 열릴 안산 올림픽기념관으로 출발하였습니다.nbspnbsp강연전 김철민 안산 시장님과 차담이 있었습니다. 안산은 인구가 76만여명으로 그 중 이주 노동자가 약 5만여명nbsp됩니다.nbsp전국에서 다문화 가정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인데 이주민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으로 230년 후 대한민국의 모습이 지금 안산의 모습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대책을 잘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 등을 나누었습니다.nbsp 강연장에는 10시 30분이 되자 준비된 420석이 모두 꽉 찼고 이후에도 사람들이 입장하여 모두 490명이 참석하였습니다. 큰 박수 소리와 함께 스님이 무대에 올랐고, 스님이 “질문하실 분 손 들어 보세요” 하자 사람들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차례차례 질문이 이어졌고 스님은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가며 질문자가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게 안내해 주었습니다. 총 11명이 질문하였습니다.nbsp 결혼 8년차인데 권태기라 남편의 얼굴만 봐도 화가 나는데 참고만 살아야 하는지 묻는 분, 3년 동안 육아 휴직을 하고 내년에 초등학교 교사로 복귀하는데 자신감이 없고, 자신의 아들을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 보내도 되는지 묻는 분, 일본에서 살고 있는데 요즘 한일관계가 좋지 않아 연일 한국을 비판하는 기사가 나오고 혐한 시위를 하는 것을 보면 무섭기도 한데 한국인으로서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묻는 분, 스님이 출가하게 된 계기가 스승이 질문한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물음이었다고 하셨는데 40여년이 지난 지금 어떤 답을 얻으셨는지 묻는 분,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등이 생겨 고민된다는 61세의 남자 분, 법륜스님의 멘토는 누구인지 묻는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오는데 왜 하기 싫은지 모르겠다는 분, 세상이 갈수록 흉흉해져 지하철에서 뒤에 남자가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두려운데 이를 없애는 방법을 묻는 분, 매사에 부정적이고 학교를 가기 싫어하며 모든 걸 남 탓 하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분, 진심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 진심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한 분의 질문과 대답을 자세히 소개합니다.nbsp“어렸을 때 사랑을 못 받아서 그런지 사람을 대할 때 낯설음이 심합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사람들에게 마음이 잘 열리지 않습니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나이 많은 분들에게는 마음을 잘 여는데 나이 어린 분들에게는 마음을 잘 못 엽니다. 그래서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됩니다. 한 사람만 좋아하고 잘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스님은 이렇게 답하고 다시 질문자에게 되물었습니다.“자기가 가진 성질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밥과 김치를 먹는 음식 습관도 빵을 먹는 음식 습관으로 바꾸려고 하면 어느 정도는 바뀌지만 늙으면 다시 돌아갑니다. 담배 피웠던 습관도 바꾸기가 어렵고 화를 벌컥벌컥 잘 내는 것도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생각은 바꾸기가 쉽지만 마음은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무의식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꾸기 어려우니까 그냥 생긴 대로 살던지, 바꾸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전자 충격기로 지져가며 생존본능까지 위협해야 바뀔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천성을 바꿔볼 각오가 되어 있나요?”“안 되어 있습니다.”nbsp“그러니까 생긴 대로 살라는 겁니다. 젊은 여자는 부담스럽고 늙은 여자가 편하다면, 한 다섯살 정도 나이 많은 여자랑 사귀면 됩니다. 업식은 못 바꾸면서 왜 젊은 여자한테 자꾸 관심을 가져요? 관심을 갖지 마세요. 나이 든 편안한 여자 분을 만나면 여자 분도 좋아합니다. 알았지요? 부인은 꼭 나이가 어려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생각 바꾸기가 쉽지 업식 바꾸는 건 어렵거든요.바로 결혼하겠다 하지 말고 누나랑 편안하게 같이 지내다가 좋은 사람 있으면 결혼하면 됩니다. 큰 종이는 큰 구멍에다 바르고 작은 종이는 작은 구멍에다 발라야 일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큰 구멍에 작은 종이를 바르려면 종이를 이어야 됩니다. 작은 구멍에 큰 종이를 바르려면 종이를 잘라야 된단 말이죠. 그래서 젊은 여자는 아예 상대를 안 하는 겁니다. 찾아와서 얘기하면 어쩔 수 없지만요.그리고, 나는 한 여자만 보고 영원히 살고 싶다, 이건 이치에 안 맞습니다. 얼음 구슬을 가지고 영원히 안 녹았으면 좋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나만 여자를 자꾸 바꾸지 않으면 됩니다. 나는 이 여자를 좋아하는데 그 여자는 다른 남자를 좋아한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닙니다. 한 여자만 좋아하겠다는 원칙을 어긴 것도 아닙니다. 그 여자가 떠나면 나는 다시 새로운 여자를 만나면 됩니다. 그 여자가 떠나줌으로 해서 나는 한 여자를 좋아하겠다는 원칙도 지키고 새로운 여자를 만날 수도 있게 되는 겁니다.nbsp 나를 싫어해서 그 여자가 떠난 것은, 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내 원칙을 어긴 것이 아니니까 떠난다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떠나주면 결과적으로 나에게 이익입니다. 왜? 나는 새로운 여자를 만날 수가 있게 되기 때문에. 같이 있어도 좋고 떠나도 좋다. 괴로울 일이 없죠? 이것이 해탈로 가는 길입니다. 매달리는 게 사랑이 아니라 그 여자가 다른 남자가 좋다면 보내주는 게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괴로움이 없습니다.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겁니다. 사랑이 눈물의 씨앗이 아니라 집착이 눈물의 씨앗입니다. 댓가를 바라기 때문에 과보가 따르는 겁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무주상보시’라고 한 것입니다.”명쾌한 답변에 청중도 크게 웃고 질문자도 환하게 웃었습니다. 질문과 대답이 무려 2시간 반 동안이나 진행되었음에도 지루함 없이 한편의 공연을 본 것 같이 쏘옥 빨려 들어간 느낌이었습니다.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갈채 속에서 그 감동이 함께 전해졌습니다.강연이 끝나자마자 스님의 책 사인회가 진행되었고, 안산 강연을 준비해준 봉사자들과 단체사진도 함께 찍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강연을 마친 후 평화재단으로 와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저녁 강연이 열리는 수원 아주대학교로 출발했습니다.아주대학교에 도착해서 이전에 정토회에서 잠시 활동했던 분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스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저녁 7시30분부터는 아주대학교 율곡관에서 청년 대학생들을 위한 ‘방황해도 괜찮아’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483석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641명이 참석하여 복도와 계단에도 청년들이 빈자리 없이 앉았습니다. 간혹 머리가 희끗한 늙은 청년들도 보였지만, 대부분 대학생 또는 20대 청년들이었습니다.스님은 질문을 받기에 앞서 통찰력과 지혜가 무엇인지 먼저 소개해주며 대화의 장을 열었습니다.“고생을 많이 하게 되면 통찰력이 생깁니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 사람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경험이 짧기 때문에 한 부분만 보게 되는데, 고생을 하게 되면 위만 보던 사람이 아래도 보고, 앞만 보던 사람이 뒤도 보고, 왼쪽만 보던 사람이 오른쪽도 보고, 이렇게 평소에 못 보던 여러 면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통찰력이 생기는 겁니다. 성경에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는 말이 있지요. 어려움에 처해야 진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지 편안한 상태에서는 잘 안 들립니다. 고생이 곧 능력을 배양해주고 통찰력을 갖게 해줍니다. 통찰력이 지혜입니다. 지혜를 갖게 되면 한쪽 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저쪽면도 보게 되기 때문에 덜 괴로워지고 행복도가 높아집니다. 자, 이런 관점에서 어떤 고민이든 함께 나눠봅시다.”nbsp 여는 이야기에 이어서 9명이 차례대로 질문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취업에 대해 불안하지만 특별히 원하는 일도 없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29살 여자 대학생, 회계사 시험에 떨어지고 취업을 하자니 막막하다는 27살 남자 대학생, 곧 결혼하는데 출산을 할지 말지 고민된다는 34살 직장인 여성, 천주교 신자인데 불교대학에서 마음공부를 마쳤고 이제 다시 성당으로 돌아가기 위해 정리를 하고 싶다고 묻는 남성분, 교육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하고 있는데 내담자가 분노를 표출하거나 적대감을 표현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묻는 34살 여성분, 감정표현을 못하고 속으로 삭히는 걸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여성분, 뉴스를 보면 세상이 너무 두렵고 무섭게 느껴지는데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봐야하는지 묻는 중3 여학생, 대학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내 성격이 이상한 것 같아서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워진다는 대학교 1학년 여학생까지 다양한 처지에서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한 가지 질문과 스님의 대답을 자세히 소개합니다.대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한 여학생이 “어떤 사람들은 부족함이 있어도 그걸 상쇄시킬 만한 매력이나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 건지 궁금합니다. 자신감과 자존감을 가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 물었습니다.nbspnbsp 스님은 “어떤 사람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인가요?” 라고 되물었고, 질문자는 “자기가 하는 일에 당당하고 자기가 실수를 해도 부끄럽지 않고 항상 행복한 사람이 자존감이 있는 사람입니다.” 라고 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이렇게 답하여 주었습니다.“그런 사람은 지구상에 얼마 안 될 겁니다. 자존감을 너무 높게 설정해 놓으니까 자존감이 없게 되는 겁니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는 자기와 현실의 자기는 대부분 서로 다릅니다. 대부분 자기를 굉장히 좋고 아름답게 그려놓고 거기에 집착하고 있어요. 현실의 자기와 자기가 믿고 있는 자기가 서로 달라요. 이 사실을 대부분 잘 모르지요.옆에 사람들이 ‘너 성격 급하네’ 라고 말해도, 본인한테 물어보면 ‘내가 왜 성격이 급해?’ 이럽니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와 남이 자기를 바라볼 때의 자기가 서로 차이가 많아요. 남이 나를 보고 얘기해주는 것은 비교적 현실의 자기와 가깝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는 현실의 자기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갭이 크면 클수록 정신분열 현상이 일어나거나 열등감이 생기거나 자존감이 없어집니다.nbsp그래서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가 현실의 자기모습을 보면 너무 너무 부족해 보입니다. 키도 작고 못생겼고 성격도 별로고 말도 더듬고 이렇게 자기가 자기에게 불만이에요. 자존감이 없어집니다. 매사에 자신이 없고 자기가 못마땅해 집니다.그래서 대부분은 현실의 자기를 끌어올려서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에 맞추려고 노력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아 의식이 워낙 높게 설정되어 있어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아 의식만큼 못 올라갑니다. 결국 ‘나는 안 된다’ 는 자괴감이 생깁니다.nbsp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노력을 해서 끌어올려 자아의식에 맞추려는 방식은 천명의 한명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천명 중에 천명이 모두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아 의식이 허망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현실의 자기를 받아들이는 겁니다. 키가 160이면 160이 나다, 아프면 아픈 게 나다, 팔 하나 없으면 없는 게 나다, 말 더듬는 게 나다, 느리면 느린 게 나다, 이렇게 현실의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내가 부처다’ 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과 동일한 겁니다. 기독교 신앙으로 말하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눈이 안보이면 안보이는 대로, 말을 더듬으면 더듬는 대로, 그대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임을 자각하면 이것이 최고의 자존입니다. 자기는 이미 붓다이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말을 잘해야 한다는 상을 가지니까 말 더듬는 자기를 열등하게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키가 커야 한다고 정하니까 키 작은 자신이 못마땅해 지는 겁니다. 수련이라는 것도 자기를 끌어올리려는 작업이 아니라 이 잘못된 허상을 버리는 작업이 수련입니다. 허상인 줄 자각하고 이 헛된 것을 벗겨내는 과정이 수련입니다.”스님의 알아듣기 쉬운 설명과 비유 덕분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그 이치가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특히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최고의 자존감이라는 말씀은 그동안 스스로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힘들어 해왔던 많은 청년들에게 큰 위안과 힐링이 되어주었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스님을 향한 청년들의 박수갈채 소리에는 무거운 짐을 걷어낸 한층 가벼워진 기쁨의 환호가 함께 묻어났습니다.nbsp 강연장 입구 로비에는 스님의 책 사인을 받고자 기나긴 줄이 꼬불꼬불 늘어져 있었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에 스님의 얼굴을 담아가 보려는 청년들도 우르르 몰려들었습니다. 사인회를 마친 스님은 강연을 홍보하고 준비한 수원 청년대학생 서포터즈들과 함께 “수원 청년 파이팅”을 외치며 단체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nbsp 강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청년들은 뒷정리를 하면서도 얼굴에 웃음이 넘치고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 스님은 밤 10시 경 아주대를 출발하여 10시3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들어왔습니다.내일은 여성리더십 아카데미와 평화리더십 아카데미에서 강의가 있습니다. 오늘 안산, 수원 강연은 이준길님이 정리해주셨습니다.

2013.10.31. 22,931 읽음 댓글 3개

2013.10.29. 5번의 미팅

오늘은 아침 7시 30분부터 북한현실과 이해의 모임이 평화재단에서 있었습니다. 북한현실모임에서 북한을 연구하는 전문가들과 스님께서는 우리나라의 외교안보위기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 가하는 우려의 말씀들이 오갔습니다.nbspnbsp 미국이 최근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추진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일본의 우경화 행보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한미일 군사협력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이므로, 우리 정부는 최대 경제교역국인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우리나라가 처한 딜레마에 대해 “미국과 동맹을 견고하게 하되 갈수록 자주적이어야 하고, 중국과는 패권을 경계하되 협력해야 합니다.”고 하셨습니다. 남북한이 대화를 재개하고 교류협력을 활발히 하면서 동북아 정세에서 주도권을 갖게 되면, 이 위기도 극복해갈 수 있을 것이란 말씀을 들으면서 명청 교체기와 구한말 대륙세력 교체기에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뼈아픈 실패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nbsp 이어서 오전 10시에는 외부에서 미팅이 있은 후 돌아오는 길에 병원을 들렀습니다. 요즈음 계속 되는 강행군으로 스님께서는 입안이 헐고 목이 아파서 편두통까지 있었는데, 오늘은 이비인후과에 가서 치료를 받고 다시 평화재단으로 와서 점심 공양을 하였습니다.nbsp 점심 공양 후 다시 스님께서는 오후와 저녁에 3개의 미팅을 더 가진 후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하고 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nbspnbsp 내일은 안산, 수원 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2013.10.30. 14,424 읽음 댓글 8개

2013.10.28. 여수, 광주, 전주 강연

오전 10시 30분 전남 여수 시민회관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울산에서 6시 30분에 출발해서 양산을 지나며 월요일 출근시간과 맞물려 길이 좀 막혀서 강의시간에 늦을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시간내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강연전에 여수 부시장님과 잠깐 만나서 차담을 하면서 여수, 여천의 통합과 다시 광양, 순천까지의 통합에 대한 지역의 여론, 장단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쌀쌀한 날씨와 오전 이른 강연임에도 불구하고 700명의 여수시민들께서 강연장을 찾아오셔서 스님께 자신의 문제를 묻고 답을 들으며 함께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스님께서는 인사말을 하시고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 사서라도 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어려운 것을 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려움이 나쁜 것이 아니라 나에게 능력을 키워주는 복이라는 인생의 이치를 깨달으면 해탈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살이에 겁날 것이 없습니다. 라는 말씀으로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nbspnbsp 결혼 이후 자신의 불안함으로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때문에 걱정이신 분, 일곱 살 어린 아이가 ‘엄마 저는 당당하지 못한 거 같아요’하며 묻는데 어떻게 답해줘야 할지 고민이신 아이 엄마, 군대 제대 후 경찰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데 공부가 원하는 만큼 되지 않아서 힘든 청년, 중2 아들의 통일에 관한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이신 분, 초등학교 아들 딸이 컴퓨터와 티비를 많이 하는데 그냥 둬야 할지 통제를 해야 할지 고민이신 분, 엄마가 없으면 제 자신의 통제가 잘 안되어서 게으름에 빠져서 고민인 분들이 질문을 하셨습니다.특히 “중2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물어요. 그래서 간단하게 대답은 했는데 저도 북한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하는데 어떻게 답을 해줘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스님께서 차근차근 말씀해 주셨습니다.“아이에게는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한 이백 개 나라를 조사해 보면 한 민족이 한 나라를 이루고 사는 나라가 제일 많고 여러 민족이 모여서 하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그 다음에 많고 한 민족이 분열되어 두 나라를 이루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입니다. 오히려 여러 민족, 나라가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EU 같은 경향이 현대 문명의 추세이므로 통일로 가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우리 민족의 분단은 외세의 힘에 의해서 양쪽 힘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분열되었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장애가 있지만 남북간에는 협력하고 통일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20년 뒤에 되돌아보면 정말 잘했다는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지금까지는 분단된 상태로도 이만큼 왔지만 더 이상은 성장이 안됩니다. 성장 동력이 소진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북한 없이도 잘 살았잖아요.’ 라는 말도 맞습니다. 그런데 이건 남한으로써 발전할 수 있는 최대치에 근접한 것입니다. 이것은 분단된 남한으로서는 피크는 지났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밑으로 내려갈 것입니다.우리의 노력 부족도 있지만 한계에 다 달았어요. 지금은 젊은이들이 고생되는 일은 안합니다. 부모들도 자식에게 힘든 일을 시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더 이상 발전하기는 힘듭니다. 여기서 돌파구는 통일입니다.통일을 하면 영토도 넓어지고 인구도 늘어나고 북한개발로 인해 성장이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민족 전체를 위해서도 통일해야 되지만 남한을 위해서도 통일을 해야 합니다. 북한에 굶어죽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통일 밖에 없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남북 간의 갈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통일은 서로를 이롭게 한다는 것을 중학생의 수준에 맞게 이야기 해주면 됩니다.”스님의 답변을 가만히 듣고 있던 질문자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만족한 듯 대답을 하셨고 함께 듣고 있던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하시며 박수를 보냈습니다.강연을 이렇게 마치고 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하는데 한 분이 오셔서 스님께 “스님 제가 스님의 법문을 듣고 일본에서 왔습니다. 문경수련원에 가서 ‘깨달음의 장’ 수련을 마치고 스님의 법문을 직접 듣고 싶어서 여수까지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하며 인사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 웃으시며 ‘잘하셨습니다’ 하고 맞아주니 옆에 있던 봉사자들도 할머니의 정성에 감동이 되었고 이렇게 봉사하는 것에 참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이렇게 여수 강연을 마치자 마자 광주서구청에서 광주 서구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바로 이어서 잡혀 있어 바로 광주로 이동했습니다.다행히 강의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새로 구하고 있는 광주법당 건물을 둘러보고 강연장인 서구청에 도착했습니다. 서구 구청장님, 서구 의회 의장님의 인사말에 이어 스님께서는 광주 서구민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해주셨습니다.“감정은 참 귀한 것인데 감정에 치우치면 힘들어 집니다. 감정은 나쁜 것이 아닌데 감정에 지나치게 치우치면 손실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니 감정을 너무 믿을 것은 못 됩니다. 감정에 치우치기 보다는 통찰력으로 뭐가 더 좋은지 봐야 합니다. 때로는 감정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을 넘어서서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암진단을 받고 수술을 해야 할지, 대체의학과 같은 자연치유를 해야 할지 고민인 서른 아홉의 주부, 남편이 도박을 해서 사업도 실패하고 어려운데 아이들에게는 그런 걸 숨기고 시골로 와서 수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엄마 때문에 불편한 생활을 해야 하고 아빠도 못만나다고 원망하는 것이 힘들다는 분,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부부가 더 이상 살기 싫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분을 대신해서 질문하신 분, 현 정치상황이나 뉴스에 나오는 말도 안되는 상황들을 보면 댓글이라도 달고 싶어도 애들을 키우다보니 괜히 썼다가 잡혀갈 수도 있는 참 말도 안되는 세상인데, 어떻게 더 마음 편하게 볼 수 있을까 고민인 분 등 모두 4분이 질문을 하였습니다.이렇게 4분과 고민을 함께 나눈 후 스님께서는 다음 전주 강연을 위해 서둘러 길을 나섰습니다.저녁 7시에는 전주 덕진 예술회관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전주 시민들은 강연장으로 모였고 강연이 시작될 때는 자리가 다 차서 객석 사이 통로에 앉을 정도로 강연장이 메워져 600명 이상의 전주시민 분들이 함께 했습니다.스님께서는 질문을 받기 전에 무유정법에 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서울 가는 길을 인천 사람이 물었을 때는 동쪽이라고 답하고 수원 사람이 물으면 북쪽이라 합니다. 그래서 서울 가는 길은 ‘무유정법, 즉 정함이 있음이 없다’라고 합니다. 진리는 어떤 정해진 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길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또, 아무렇게나 가라는 것도 아닙니다. 인연에 따라서 정해지지만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이게 진리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처지에 따라 다릅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조금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찾을 수가 있습니다.” 라며 질문을 받았습니다.변호사처럼 따져가며 어머니께 화를 내어 마음이 아픈 여성 분, 어머니의 죽음으로 힘들어 하시는 여성 분, 뮤지컬 공부가 잘 안되어서 고민인 공익근무 중인 대학생, 시어머니와 갈등하는 며느리, 기초생계를 유지하며 진취적인 일을 하고 싶으나 무기력한 자신이 걱정이신 30대 후반의 여성 분, 대학 시간강사를 했는데 비관적인 사회 현실 때문에 차별을 당한다는 40대의 여성 분, 욱하는 성격 때문에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고 싶다는 20대의 회사원의 질문이 있었습니다.그 중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이 포커페이스를 많이 하는데 저는 좋고 싫어하는 것을 분명하게 하는 편인데 짜증이 나거나 폭발적으로 화가 나면 컨트롤이 안됩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그런 화나는 감정이 생기면 더욱 혹독하게 합니다. 평상시에는 이해심도 많고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인데 제가 봤을 때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그것에 관해서 변호사처럼 따져가면서 잘잘못을 가리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으로 어머니가 상처를 받으셔서 힘들어 하고 계셔서nbsp어머니와 관계를 회복하고 싶습니다.”라고 한 여성분이 질문하였습니다.이에 스님께서는 “질문자는 자신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변명입니다. 그런 성격을 ‘성질이 더럽다’ 이렇게 말합니다. 성질이 더러우면 세상에서 인간관계가 좋지 않고 가족의 화합에도 안좋습니다. 나쁘다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보통 이런 성격을 성질이 더럽다 말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이런 줄 알면 개선을 해야 되는데 질문자는 인정을 안하는 것 같아요. 이것을 인정을 안하면 개선할 가능성이 없습니다.nbsp정말 문제다 해도 개선이 어렵습니다. 이유는 개선을 해야지 하는 것은 의식이지만 화가 버럭버럭 나오는 것은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무의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이 정서적인 것은 무의식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의식으로는 컨트롤이 안됩니다. 화 안내야지 한다고 화가 안나는 것이 아닙니다.이런 무의식은 오랜 시간의 습관으로부터 형성이 됩니다. 어릴 때 엄마가 성질을 버럭버럭 내서 엄마로부터 물려 받았거나 아니면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화를 내어 형성이 됩니다.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화가 나는 것입니다.그래서 이것을 개선하려면 무의식에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의식을 개선하겠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면 다시 습관이 되어서 무의식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니깐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한번 하고 말고, 한번 하고 말고 이래서는 안됩니다.nbsp두 번째는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서 정말 잘못했구나 하며 뉘우치면 깊은 참회가 일어납니다.nbsp세 번째는 무의식 보다 더 밑바닥에는 생존본능이 있습니다. 생존본능이 영향을 받으면 무의식이 개선 됩니다. 예를 들면 담배에 중독이 된 사람도 담배를 피면 총으로 쏘겠다 하면 안피웁니다.nbsp하나는 지속적으로 노력을 해서 변화의 징후가 나타나는데 평균적으로 한 3년 정도 걸립니다. 100일 쯤 참회기도를 하면 ‘내가 문제가 있구나’ 하는 자각을 스스로 하게 됩니다. 내가 화를 잘 내는구나 하고 자각하는데 100일 쯤 걸립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노력을 해서 옆의 사람이 봤을 때도 ‘저 사람 변했네’라고 하는데까지 이르려면 3년 가까이 걸립니다.nbsp왜냐면 내부에서 자각한 것이 외부로 나타나는 것이 3년 정도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내가 옳다 할 것이 없습니다’ 하며 기도를 해야 합니다. 화가 날 때는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상태이므로 ‘내가 옳다 할 것이 없습니다’라며 꾸준히 108배를 해야 합니다.두 번째는 내가 화를 낸 후에 마음 깊은 곳에서 눈물이 날 정도로 뉘우치며 감동이 와야 합니다.nbsp세 번째는 생존에 위협을 가하면 누구나 고쳐집니다. 부처님의 6년 고행과 같이 대결정심을 내고 정말 고치려면 화를 한 번 낼 때마다 손가락을 한 마디씩 자르세요. 분명히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면서 고칠 생각을 안합니다. 그래서 무의식에 계속 끌려 다니는 것입니다.”이렇게 답변을 들은 질문자가 말씀해주신 것 새겨 듣고 노력해보겠습니다 하니 스님께서는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으로 노력해서는 무의식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nbsp무의식을 변화시킬 만큼 결정심을 내고 매일 108배를 3년 동안 꾸준히 하고 기간을 짧게 하려면 한 번 화 낼 때마다 500배씩 해야 합니다. 그러면 힘이 듭니다. 힘이 들면 무의식에 영향을 줍니다.그리고 마음에 감동을 주기 위해 문경수련원의 ‘깨달음의 장’ 수련을 하면서 화가 왜 나는지 의식 아래의 내면까지 파고 들어가면 변화가 옵니다. 질문자는 자신을 개선하기 위해 이런 노력을 해야 합니다.”스님의 말씀을 듣고 질문자는 네에 알겠습니다 하며 자리에 앉으니 함께 듣고 있던 청중도 박수를 치며 공감했습니다.nbsp오늘 전주 덕진예술회관에서는 책 판매와 사인회는 없이 봉사자들과 기념 촬영을 한 후 마무리 되었습니다.nbsp내일은 아침 7시 30분 조찬모임을 시작으로 모두 5건의 미팅이 있습니다.오늘 여수, 전주 강연은 대전 전해종님께서 정리해주셨습니다.

2013.10.29. 17,969 읽음 댓글 5개

2013.10.27. 정토불교대학 경주평지순례

오늘은 정토 불교대학생을 대상으로 경주 평지순례가 있었습니다. 어제는 청년들 약 200여명과 함께 했고 오늘은 정토 불교대학생 약 1030여명과 함께 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참가한 분들은 대부분이 이번 경주순례가 처음이었습니다. 스님께서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경주순례를 안내하시는nbsp이유는 변방의 작은 신라가 어떻게 삼국을 통일하고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현재 우리의 과제인 남북통일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함입니다.nbsp아침 8시 30분, 전국에서 온 정토 불교대학생 1030여명과 함께한 무열왕릉에서의 입재식을 시작으로 오늘 경주 평지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정토 불교대학생들은 스님의 법문에 열심히 귀 기울이기도 했고, 또 스님께서 법문을 하는 동안에도 곳곳에서 스님의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nbsp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한 무열왕의 릉을 바라보며 신라의 국가 기원부터 삼국통일에 이르기까지의 개괄적인 설명을 먼저 들었습니다. B.C. 57년경에 신라는 6개 씨족으로 이뤄진 부족국가로 시작하였고,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는 나정에서 말울음소리가 들려 갔더니 흰말은 하늘로 날아 올라가고 우물가에 붉은 알이 있어 깨어 보았더니 옥동자가 있었다는 이야기와 그 아기가 자라 18세가 되어 임금으로 추대되었다는 설화를 시작으로 신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nbsp 신라 초기에는 외래문화의 영향이 적었기에 왕을 뜻하는 용어로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이라는 말을 했다가 이후 22대 지증왕 때부터 중국 문명의 영향을 받아 ‘왕’이라는 칭호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스님께서는 본격적으로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nbsp “신라 17대 내물 마립간 당시에는 신라보다 가야가 훨씬 세력이 컸으며 일본에까지 나라를 형성하였습니다. 이는 가야에서 일본으로 문명이 이동하였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신라보다 앞서가던 가야는 왜와 연합하여 신라를 침공하였고 신라는 고구려에 원병을 요청하여 광개토대왕이 5만 군대를 보내 가야를 물리쳤고, 이 후 금관가야의 세력 약화로 후기가야의 중심은 대가야로 이동하였습니다.nbsp당시 고구려는 최대 경쟁국이었던 백제를 견제하고자 하였고 가야는 백제와 연대를 맺었기에 고구려의 공격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가야의 세력은 점점 약화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세력이 커진 신라가 가야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무력이 아닌 협상과 합의가 이루어 졌다는 것입니다. 가야의 왕족을 신라의 왕족으로 받아들이고 가야의 신앙인 불교를 수용함으로써 분쟁과 혈투의 통일이 아닌 우리 역사에 모범적인 합의 통합의 사례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현재 분단국가로 살아가는 우리가 배워야 할 점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남북통일을 이루어 나갈 때 서로가 인정할 것은 인정해주면서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어 나가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신라는 가야와의 합의통일로 인해 단순히 112가 아닌 1110 혹은 그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신라의 영토 확장뿐만 아니라 인재등용의 폭이 넓어진 점도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라와 가야의 통일이야기와 더불어 신라의 개혁과 개방정책에 관한 설명을 해주신 후 스님은 대중들과 함께 태종무열왕릉을 한바퀴 돌아보면서 지역별로 기념촬영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장소인 김유신 장군묘를 향해 차에 올랐습니다.nbsp오늘 참가한 인원이 많다보니 김유신 장군묘에서 다함께 모여 설명듣기가 어려워 흥무 공원에서 모여 김유신 장군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 당시를 다시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비록 왕은 아니었지만 태종무열왕을 도와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김유신은 당시 고구려에 승리하고 신라까지 넘보는 당나라에 강력하게 저항했으며, 문무대왕을 도와 나당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태대각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후에는 흥무대왕으로까지 추존되었다는 설명을 해주셨습니다.스님과 1030명의 정토 불교대학생들은 줄지어 흥무공원에서 김유신 장군묘까지 걸어가면서 경치도 구경하고 스님의 말씀도 들었으며, 12지 지신상이 잘 보존되어 있는 김유신 장군묘를 참배하고 다시 사천왕사지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사천왕사지에서 사천왕사가 세워진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당나라의 20만 대군이 신라를 침략하려 한다는 소식을 문무왕의 동생이자 김춘추의 둘째아들인 김인문이 당나라에 유학와 있던 의상 대사에게 소식을 알리고, 의상대사가 신라에 전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신라는 당의 침략을 막기 위해 낭산 기슭에 사천왕사를 짓고 불보살과 신들의 힘을 빌려 나라의 위기를 구하고자 사천왕사에서 명랑법사를 중심으로 문두루 비법을 펼치자 서해에서 폭풍이 일어나 당나라 20만 대군이 전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이렇게 사천왕사가 지어진 연유, 여기에 얽힌 일화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nbsp또, 많은 대중이 이동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이곳 사천왕사에서 선덕여왕에 얽힌 일화 등을 듣기도 했습니다.nbsp비록 지금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절이지만 이곳에서 사천왕사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더 뿌듯합니다. 사천왕사지, 선덕여왕릉, 능지탑에 대한 설명이 끝난 후 이곳 사천왕사지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선덕여왕릉, 능지탑을 거쳐 황룡사까지 걸어가면서 가을을 만끽하며 가다가 동요를 부르기도 했습니다.황룡사지에서는 앞에 온 사람들이 뒤에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장기자랑도 하고 잠시 흥겨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nbspnbsp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이자 스님께서는 황룡사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였습니다. “황룡사 탑은 67미터 25층 건물 높이로 당시 신라의 기술로는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백제의 아비지를 비롯한 200명의 기술자를 불러서 나라의 재앙을 막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황룡사도 호국사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룡사에 대해 먼저 설명해 주시면서 황룡사의 강당인 백고자에 대한 이야기, 원효대사에 얽힌 일화 등도 함께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고등학교 때 이 황룡사를 복원하기를 발원하였는데 아직까지 복원 못했다고 웃으시면서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nbsp설명을 듣고 황룡사터를 둘러본 후 오늘 경주 평지순례를 마무리 하는 회향식을 가졌습니다.오늘 저녁공양은 동국대 교수불자회 분들과 함께 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교수님들은 스님께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묻기도 하고nbsp특히nbsp지역 대학의 어려움을 이야기nbsp했는데, 스님께서는 이는 지방분권과 관계가 있어서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 먼저 지방 분권이 되어야 함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저녁 7시부터 시작된 동국대 백주년 기념관에서의 강연에는 종단의 학교이다 보니 스님들이 많이 보였습니다.일요일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강연 시작 전부터 490석이 이미 가득 찼습니다. 미리 오신 분들은 사전영상으로 스님이 출연하셨던 힐링캠프 녹화 방송을 시청 하며 가끔 담소도 나누고 웃기도 하면서 스님을 기다렸습니다. 강연에 조금 늦게 오신 분들은 자리가 없어 통로에 자리를 잡고 앉기도 했습니다. 오늘 강연엔 550여명이 오셔서 스님의 강연을 경청했습니다.먼저 질문하신 두 분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힘들어서 괴로워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어린시절 종가집 막내딸로 자라면서 소외되고 방치된 것 같고 늘 눈치 보며 살았는데 결혼해서 시댁과의 관계가 어렵고 매사 예민해서 고민이라는 분과 엄마와의 관계 문제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고등학생의 질문이었습니다. 다음 이어진 질문들은 깨달음의 길에서 법륜스님처럼 지혜를 얻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는 분, 깨달음을 얻은 후 실천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스님처럼 잘 실천 할 수 있는지를 여쭈어 보는 분이었습니다. 곧이어 인생의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지 힘들어하며 스님께 질문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는데 결혼을 해야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시는 분, 일년에 세 번이나 회사를 옮겼는데 다시 새로운 회사의 입사를 준비하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고민 하시는분이 있는가 하면 한 회사에 28년째 다니고 있어 재미가 없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재미나게 사는 방법을 좀 알고 싶은 분까지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고민들이 스님께nbsp질문되었습니다. 스님은 질문자들의 근기 따라 일화와 비유를 들어 가면서 쉽고 재미있게 답을 이어 가셨습니다.nbsp 그 중 한 분은nbsp1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나 10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혼자서 장사하면서 자녀들을 키웠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힘은 돈의 힘이라고 여기며 돈이 인생의 전부라는 말을 엄마에게 많이 들으며 자랐습니다. 엄마처럼 돈에 집착하고 돈을 악착같이 모아 결혼도 하고 살았는데 근래에 사기를 당해 모아두었던 돈을 다 잃게 되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 하시며 스님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여쭈었습니다.질문을 다 들으신 스님께서는 “남 줄려고 악착 같이 모았네요. 모을 때는 모으는 재미가 있고 내가 최선을 다해 모으는 것입니다. 모아둔 재산을 누가 가져가서 쓰던 크게 상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가 성인으로 성장한 것은 모으는 그 자세에서 성장한 것이지 모아놓은 돈 그 액수를 누군가가 질문자에게 준다고 해서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적으로 보면 빚 갚았다 생각하고 놓아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없어진 것이잖아요? 찾을 수 있나요? 찾을 수 없으면 놓아버리 것이 제일 좋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까 마음을 편히 먹는 것이 좋습니다.” 라고 하니 질문자는 다시 “그렇게 살려고 마음을 먹는데 하루에도 수백번씩 수천번씩 생각이 납니다.” 라며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질문자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다시 쉽게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 “다 잃었다 하지만 아직도 질문자에게는 좋은 조건이 있습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을 아쉬워하면서 계속 괴로워하면 계속 괴로움이 더 일어나서 성격도 버리고 사람을 의심하는 병도 생기고 건강도 헤치고nbsp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부처님 말씀을 빌리면 ‘제 1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마라.’ 처럼 돈을 잃어버린 제 1의 화살은 어쩔 수 없이 날아와 맞았지만 그다음의 화살은 내가 나에게 쏘아 나에게 손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나를 해쳤는데 다음에는 자신이 스스로를 헤치고 있는 것입니다.그 돈을 벌기 위해서 질문자가 많은 노력을 했다면 뭐가 남아 있겠어요? 경험은 쌓여 있겠죠. 여러분들 똥 누고 뒤도 안돌아 본다는 말 들어본 적 있으시죠? 왜 똥을 누고 뒤도 안돌아 볼까요? 똥 만드는데 얼마나 노력하는데요. 온갖 반찬 맛있게 만들어서 이걸 꼭꼭 씹어서 먹고 소화시키고 하루 지나서 노란 똥을 힘들게 만들어 놓고는 그걸 주워 가야지 그걸 누고 왜 그냥 갑니까? 근데 우리는 똥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죠. 똥을 만드는 과정에서 내가 필요한 에너지는 다 뽑아쓰고 똥은 찌꺼기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뒤도 안돌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돈을 버는 과정에서 질문자의 역량이 커지고 돈은 남은 찌꺼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질문자가 돈에 집착하는 것은 지금 찌꺼기에 연연하고 있는 겁니다. 거름하려고 놓아뒀는데, 이웃집 개가 와서 먹어 버리면 그래 또 누면되지 하면 되는 것입니다.” 스님의 말씀에 모두 함께 크게 웃었습니다. 질문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스님의 말씀을 듣다가 마지막 말씀을 듣고 활짝 웃으며 “감사합니다.” 라고 답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질문자의 답변과 더불어 수행자의 자세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놓고 살아라는 말은 노력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다만 할뿐이다’ 라는 말입니다. 인과를 믿으면 다만 할 뿐인 것입니다. 과보는 저절로 오는 것이니까요. 과보에 연연하는 건 인과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복은 안 지어놓고 복은 받겠다고 합니다. 죄는 지었으면 기꺼이 받아야 되고 빚을 졌으면 갚아야 됩니다. 죄를 지어놓고 안받을려고 피하고 발버둥 치고 그러니 불행한 것입니다. 수행자는 인과를 믿고 인연의 과보를 기꺼이 받는 것입니다.부처님께서는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다. 깊은 산 속 깊은 바다 속에 숨는다 하더라도. 지은 인연의 공덕은 무너지지 않는다. 지금 원하는 때에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 신자라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불교 신자라면 불법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불법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불교 신자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법에 귀의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제1의 화살은 맞아도 제2의 화살은 맞지 마라 라고 외우면서도 제2의 화살을 자초하면서 괴로워하는 건 불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제 1의 화살은 안맞으면 좋지만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2,3,4로 나아가는 것은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받으려면 받고, 안받을려고 하면 안받아도 되는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가 길을 가다가 벽돌이 떨어졌다고해서 늘 벽돌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하늘을 쳐다보고 사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건 내 역량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다니다가 떨어져 맞았다면 빨리 병원가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지 다른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치료한 뒤에는 전에도 맞았는데 또 맞을까봐 하늘 쳐다보고 다녀야 됩니까? 또 맞으면 병원에 가면 됩니다. 하늘을 쳐다보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있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스님의 말씀이 끝나자 참가자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습니다.nbsp 빅수 치고 웃다가 보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흘러갔습니다. 재미 있으면서도 유익하기까지 한 이 시간이 참 행복했습니다.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함께 하신 참가자 분들과 봉사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일은 여수와 광주, 전주에서 강연이 있습니다.nbsp 오늘 동국대 강연은 대구의 권명순님께서 정리해주셨습니다.

2013.10.29. 18,374 읽음 댓글 6개

2013.10.26. 청년학교 경주역사기행

오늘은 청년학교 2기 청년들 약 200여명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 가을 경주워크숍이 있었습니다.아침 9시40분쯤 스님은 전날 전국에서 모인 청년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 뒤 태종무열왕릉 앞에서 3배를 올린 뒤 본격적인 역사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nbsp 오늘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한 영웅들의 묘소 참배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신라라는 국가의 기원부터 삼국통일에 이르기까지의 개괄적인 설명을 시작으로 역사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소 쌀쌀한 아침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은 스님의 말씀에 열심히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nbsp 이후 스님께서는 본격적으로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당시 신라보다 세력이 강했던 가야는 왜와 연합하여 신라를 침공하였고, 위기에 처한 신라는 고구려에 원병을 요청하였고, 이에 광개토대왕은 5만 군대를 보내 가야를 물리쳤습니다. 이 후 금관가야는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어 후기 가야의 중심은 대가야로 이동하였습니다.nbsp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후 가야의 세력은 약화되고 신라의 위상은 높아져갔지만 세력이 커진 신라가 가야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무력이 아닌 협상과 합의가 이루어 졌다는 점을 스님께서는 강조하셨습니다. 기존의 가야의 왕족을 신라의 진골 왕족으로 인정하였고 서로의 지위를 보장해 나가면서 합의하여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신라와 가야의 통일이야기와 더불어 신라의 개혁과 개방정책에 관한 간략한 설명을 해주신 뒤 자리에 일어나 태종무열왕릉을 청년들과 함께 산책하시면서 다음 장소인 김유신묘를 향해 차에 올랐습니다.nbsp 장소를 이동하여 11시 에는 김유신묘에 도착했습니다. 비록 왕은 아니었지만 태종무열왕을 도와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김유신은 당나라를 이땅에서 추방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 신라 하대에는 흥무대왕이라는 왕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nbsp 김유신 묘에 대한 스님의 안내가 끝나고 동국대학교로 이동해 점심식사를 하셨습니다.이후 오후 1시에는 동국대학교 캠퍼스 내에 백주년기념관에서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백년’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미리 질문을 잘 준비해온 청년들은 그동안 스님의 책 ‘새로운 백년’을 읽고 세미나 하면서 가졌던 의문들을 이 기회를 빌려 스님께 여쭤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nbspnbsp 먼저 첫 번째 질문자는 부산에서 온 청년이었습니다. 새로운 백년을 읽고 나서 무엇보다 역사 의식의 중요성을 느꼈는데 최근 역사 왜곡 교과서에 대한 문제가 붉어지고 있고 요즘 일본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영토분쟁을 홍보영상으로 만들어 배포하고 있는데 이러한 일본의 태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스님은 “외부국가 즉 제 3자인 입장에서 봤을 때는 독도분쟁은 단순한 영토분쟁으로 보지만, 우리나라에게는 영토문제 그 이상입니다. 일본이 과거 한반도 침략에 대한 반성의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고 나아가 그들의 어두운 과거를 부정하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역사왜곡의 문제입니다. 현재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은 일관된 자세로 우리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의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적대적인 감정싸움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일본의 행동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독립당시 우리의 힘으로 온전히 독립을 하지 못했고 이후 미소의 힘이 한반도를 점령했기에 분단이 되었습니다. 이후 미중의 세력 갈등이 한반도에 전쟁으로 비화되었고 이것이 60년이 지난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과거 일본의 침략에 관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고 일본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를 내세워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입장입니다. 일본은 패전국의 멍에를 벗고 싶어하며 더욱이 현재 일본사회는 장기침체로 인해 극우적인 선동에 쉽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고 이것이 혐한시위로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분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완화와 통일된 나라가 원천적인 대응이 될 수 있습니다. 남북이 협력되면 한미일 군사협력의 필요성이 적어지며 동북아의 긴장이 완화되며 중국과의 관계가 용이해집니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악화가 된다면 전쟁위기 고조로 인한 한미일 군사동맹에 편재되어 중국과의 갈등이 불거질 것입니다. 이러한 긴장관계의 해소는 궁극적으로 통일을 해야 해결이 됩니다. 일본과의 분쟁에 하나하나 대응하면 결국 일본의 우파세력에 이득이 됩니다. 감정적인 대응을 할수록 결국 일본의 우파정권에 이득이 되며 일본사회에서 갈수록 독도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진정으로 패전의 멍에를 벗고 대국이 되려면 분쟁지역에 있어서 과감하게 권리주장을 포기하고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더불어 주변국가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이 일본이 대국이 되는 길입니다. 우리나라도 역시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남북관계를 풀고 통일을 지향하면서 우리 입지를 높여 간다면 일본이 ‘한국을 잘못 건드리면 안 되겠다.‘라는 이렇게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다음 질문은 스님이 책에서 통일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민족주의를 강조하시는 것 같은데 이것이 나아가 배타적 민족주의는 아니더라도 분열의 싹이 되지 않을지 민족주의라는 개념 없이 지구촌 사회라는 넒은 개념으로 평화를 추구 하는것은 어떤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우리는 과거 진정한 우리만의 진정한 민족독립국가을 이루지 못하고 분단되어 있으니 통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민족을 내세워 다른 나라를 공격하자 하면 나쁜 민족 우월주의가 되지만 우리의 권리를 찾자고 하는 것은 정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20세기에 정리하지 못한 민족문제를 20세기식으로 해서는 안되며 21세기식, 이웃과 연대하는 민족주의 즉 열린 민족주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이 필요하지만 우리 내부에 있는 갈등이나 문제들을 바라 봤을때, 지역별로 자치권을 확보해 줘야 합니다. 중앙권력을 줄이고 지방에 권력을 분산시켜 아래위로 서로 연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아가 현재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사대주의나 분단 등으로 해체되어 있습니다 이를 다시 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우리 민족만이 최고라는 인식이 아니라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고쳐야 할 것은 고쳐나가면서 소중한 민족사에 대한 이해도 필요합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질문과 스님의 명쾌한 답변들이 오고 갔습니다. 스님의 책을 읽고 난 후, 통일에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지만 통일 이후 북한주민들의 혼란이 염려되는데 어떤 대응책이 있을지, 그리고 통합의 리더십에 대한 궁금증, 통일을 위한 통일 비용에 부담이 된다는 의견 등 우리 청년들이 통일한국을 꿈꾸면서 든 다양한 질문들을 쏟아냈습니다.nbspnbsp 새로운 백년 즉문즉설이 끝나고 다시 야외로 나가 사천왕사 터로 향했습니다.nbsp 스님은 사천왕사에 이르러 이 사찰이 세워진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사천왕사는 종교적으로 세워진 사찰이 아니라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호국사찰입니다.nbsp 비록 지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절이지만 부러진 거북이 비석받침과 주춧돌만 남은 사천왕사 터를 둘러보고 난 뒤 낭산에 있는 선덕여왕릉으로 올라갔습니다.nbsp스님은 선덕여왕릉으로 올라가는 내내 선덕여왕의 지혜를 잘 엿볼 수 있는 설화들을 재미나게 이야기 해주셨습니다.이후 분황사로 이동하여 간략히 모전 석탑에 관련한 설명과 함께 스님께서 이곳 분황사에서 출가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nbsp 황사를 잠시 둘러본 뒤 곧장 황룡사지로 향하여 당시 신라의 위세와 68m에 이르렀을 황룡사 9층목탑의 흔적이 있는 황룡사지를 청년들과 함께 거닐었습니다. 해질녘 쌀쌀해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노을을 배경삼아 듣는 스님의 안내는 가을 역사기행의 운치를 한 층 더 깊어지게 하였습니다.nbspnbsp 저녁 6시가 지나 숙소로 이동하여 저녁식사를 서둘러 마친 뒤 법륜스님의 저녁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낮에 동국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오고간 우리사회와 통일에 관한 질문과는 달리 현재 자신이 가진 개인적인 고민들을 털어놓는 시간이었습니다.nbsp 즉문즉설을 위해 숙소의 4층 강당으로 들어서자 청년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습니다. 다시 한번 스님의 인생 즉문즉설의 인기를 실감 할 수 있었습니다. 기념관 강당에서 이루어진 형식과는 달리 스님이 연단에서 내려와 보다 가까이 질문자와 눈동자를 맞춰가며 유쾌한 시간을 만들어 갔습니다.청년들의 웃음바다에 빠지게 했던 질문 중 하나로 대전 청년의 질문이었습니다.스님의 책이 즉문즉설을 접하고 난 뒤 어머니로서의 역할의 중요성에 깊이 공감을 하는데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미래의 자녀와 나의 배우자 선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만약 미래의 배우자가 스님과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다면 설득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있는 그대로 상대를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셨습니다.nbsp 스님이 평소 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는 여성분들께 드리는 조언이지 남자가 여자를 그렇게 설득하라고 한 말이 아니라고 하시니 일동 웃음과 함께 박수가 터졌습니다.nbsp “자식을 잘 키우고 싶다면 부인한테 잘하면 됩니다.”라고 덧붙이셨고 질문자는 그렇다면 육아에 있어서 남편으로서의 역할은 무엇이냐고 여쭸습니다.nbsp 스님은 재차 “아내에게 잘하세요. 아이가 생기면 아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여성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육아의 원리에 따른 것이기에 아이한테 잘하고 싶으면 곧 아이의 엄마한테 잘하면 됩니다. ”라고 하셨습니다.nbsp 20대 취업준비생인 학생은 현재 취업을 준비하면서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nbsp 스님은 “일단 자기 밥벌이, 즉 자기 자신의 생활이 독립되어야 하고 그 이후에 통일에 힘쓰는 단체에 작게 후원을 하든지 아니면 시간을 내어 봉사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에 진정 통일문제에 뛰어들고자 한다면 세속적 이익을 포기하고 마치 수행자와 같이 통일일꾼으로 일하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다면 재가 통일일꾼으로서 자신이 가진 일부를 보시하고 재능을 나눔으로서 도울 수 있습니다. 지금 취업준비생이라면 취업을 준비하는데 우선을 두고 그 외에 남는 시간이 있다면 조금씩 통일에 대해 공부도 해보고 통일운동을 돕는 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nbsp 이 외에도 친구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며 조급한 마음과 진심으로 축하를 해줘야 하는지 대한 고민 대학전공에 대한 회의감, 밀양 송전탑 문제, 귀농을 생각중인 젊은 가장의 고민까지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고 그에 대한 스님의 말씀은 청년들의 많은 박수와 웃음으로 따뜻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모자라서 더 많은 질문을 하지 못해 많은 청년들이 아쉬워했습니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지나간 즉문즉설이 끝나고 저녁 9시반 이면 입장이 마감되는 안압지를 가기 위해 부랴부랴 서둘러서 이동했습니다. 옛 신라 왕국안의 유원지인 안압지의 아름다운 야경을 청년들과 함께 걸은 후 근처에 위치한 첨성대로 향하셨습니다.nbsp 첨성대 앞 들판에서 200여명의 청년들과 스님은 둥글게 원을 만들어 두 손을 맞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다함께 불렀습니다. 이후 청년들이 손수 준비한 스님께 드리는 청년들의 롤링페이퍼와 홍시 전달식이 있었고 스님은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놓고 봤을 때 21세기 초반에 통일을 이루고 후반에 들어서 동북아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시대가 오도록 해야 하는데 앞으로 230년 후에 사회에서 더 영향력이 있게 될 나이가 되는 청년들이 개인의 이익에만 집중된 일보다는 우리사회 나아가 우리민족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일에 보다 더 힘쓰고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마무리 말씀과 함께 스님은 자리를 떠나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청년들과 함께 역사에 대해, 인생고민에 대해, 나아가 통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스님의 정성스런 가르침과 역사, 통일에 대한 감동을 함께 가슴에 안고 갑니다. nbsp내일은 정토불교대학생들과 함께 경주 평지순례가 있습니다.

2013.10.28. 18,459 읽음 댓글 3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