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 수행과 실천
  • 스님의하루

2013.8.5. 역사기행 둘째날 - 오녀산성, 환도산성, 국내성

어제 모든 일정을 마무리 하고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지만, 다행히 오늘은 아침 일정이 조금 여유가 있었습니다. 보통 3시 전후로 기상하여 이동하는데, 오늘 아침은 5시 50분에 기상하였습니다. 기상 후 짐을 챙겨 현관으로 오니 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서도 비가 내리고 있어서 오녀산성에 오르는 것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동안 스님께서 고구려 시대의 홀본, 집안지역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고구려가 처음 세워질 때 소서노와 주몽의 이야기, 유리왕이 왕위 오르면서 소서노가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백제를 건설한 이야기, 유리왕때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집안으로 수도를 옮긴 이야기등을 듣고 있는 가운데 비가 그치면서 오녀산성에 오르는 것이 허락되어서 다들 가벼운 마음으로 오녀산성으로 향했습니다. nbsp 오녀산성에 도착해서 기념관을 둘러보고 산성입구까지 차로 이동한 후 가파른 계단을 올랐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보니 숨이 찼는데, 스님께서는 제대로 드시지도 않으시면서 오르는 길이 많이 힘드셨을텐도 모든 일정을 저희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nbsp 오녀산성은 고구려의 첫 수도이며, 오녀 산성 아래로는 비류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오녀산성은 깍아지른 절벽위의 평지에 사람들이 살았으며, 여기에는 전망대, 병영자리, 우물터, 식량 창고자리터가 남아 있습니다. 오녀산성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쌓은 천연의 요새로 적의 침입이 거의 불가능 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산성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물과 곡식이 있어야 되는데, 이곳 오녀산성에는 우물터가 있어 지금도 샘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녀산성을 오를 수 있는 곳은 서문쪽 밖에 없는데 서문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옹자형 성문을 쌓았습니다. 산허리에 있는 동쪽 성벽의 동문은 공자형 성문이었습니다.nbsp 오녀산성을 내려와서 점심을 먹고 환도산성, 국내성이 있는 집안으로 향했습니다. 환도 산성은 지형지세가 좋고 자연조건이 워낙 견고해서 적의 공격을 막기에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함락이 잘 안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425년간 2번의 함락이 있었습니다. 환도산성에서 바라보면 국내성까지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밖에서 오는 적들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nbsp 고구려 산성의 특징중 하나는 평지성과 산성이 한 조를 이루게 되는데, 환도산성과 국내성이 한 조를 이루어 평상시에는 국내성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위급할때는 환도산성으로 이동했었습니다.nbspnbsp 환도산성 입구에는 산성하 무덤떼가 있습니다. 산성아래 무덤들이라는 뜻의 고구려 무덤으로 아래에는 기단을 쌓고 맨위는 큰돌을 얹은 적석무덤입니다. 이런 무덤형식은 중국에는 없는 고구려만의 독특한 양식입니다. 계급이 높을수록 기단의 수가 많아지게 쌓았습니다. nbsp 국내성은 평지성으로 고구려 제2대 유리왕부터 제20대 장수왕까지 425년간 통치하던 곳입니다. 지금은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고 성벽들이 일부 남아 있습니다. 국내성은 중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고 앞으로 30여년에 걸쳐 사람들을 이주시키기로 했습니다. 국내성의 동쪽벽은 거의 형체를 찾아볼 수가 없고 남, 서, 북쪽벽은 일부 성벽들이 남아 있고 성문 자리도 남아 있습니다. 서문은 공자 형태로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국내성의 남쪽벽 자리를 따라 걷는 길은 압록강을 따라 건너편에는 북한이 보입니다.nbsp 건너편 북한이 보이는 압록강변에서 사진을 찍고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저녁먹기가 약간 미안하기 했지만, 또 우리는 우리의 일정이 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저녁을 먹고 숙소로 와서 저녁강의를 들었습니다. 어제보다 약 1시간 정도 빨리 도착했습니다. nbsp오늘은 스님께서 대한민국의 뿌리를 찾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은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통일된 대한민국이 가질 정통성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nbsp “대한민국의 뿌리는 대한제국이고, 대한제국의 뿌리는 조선왕조입니다. 조선왕조는 삼전도의 굴욕으로 청나라에 종주권을 잃었다가 조선조 말엽 고종때 청나라의 세력이 약해지자, 국권회복을 하면서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로 쓰고 고종황제로 칭했습니다. 조선왕조의 뿌리는 고려왕조이며,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뀐 것은 다른 변화없이 왕의 성만 바뀐 것입니다. 고려왕조의 뿌리는 고구려입니다. 왕건이 창건할 때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고려가 신라를 계승한다고 했으면 우리의 민족사는 2천년으로 한정 되었을 것입니다. 역사의식은 발해를 계승하지만, 현실은 신라를 계승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함으로써 동시에 발해, 신라를 계승한 것이 된 것입니다. 고구려는 주몽이 부여의 왕인 해모수의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에 부여가 뿌리입니다. 동부여, 백제도 그 뿌리를 부여에 뒀고 정통성을 고구려가 계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해모수는 부여를 세울 때 나는 단군의 아들이라고 했기 때문에 단군조선을 계승했고 단군은 환웅의 아들이며, 환웅은 환인의 아들로 환인의 한나라를 계승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민족사는 환인의 한나라까지 약 9천여년이 넘는 것입니다. nbsp 앞으로 우리가 통일국가를 이룰 때 국호, 국시를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국가를 계승할 때, 북한을 배제하고 할 것인지, 아니면 북한까지 같이 계승할 것인지에 대해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 국가의 정통성을 북한을 포함해서 계승한다면 북한의 독립운동가들도 함께 계승하게 될 것이고, 배제한다면 일본에 항거했던 독립운동중 사회주의 계열의 것이 모두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민족사의 정통성에 상당한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북간에는 지금까지 정통성 경쟁을 해 왔습니다. 초기에는 북한이 우세했지만, 지금은 남한이 우세합니다. 남한은 초기에는 정통성에 취약점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지난 60여년 동안 민주화 투쟁을 통해서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정부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제는 남북한이 어떤 역사의식을 가지고 대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민족사를 온전하게 이어가며 우리 민족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줄것인가하는 문제입니다.” nbsp 오늘은 우리 민족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살펴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nbsp 내일은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국동대혈과 꿈에도 그리던 장군총, 광개토대왕릉을 둘러볼 예정입니다.

2013.08.06. 20,849 읽음 댓글 3개

203.8.4 중국역사기행 첫째날 - 요녕성 박물관, 백암산성

오늘은 제19차 중국 역사기행 첫날입니다. 126명의 참가자들은 예정된 시간보다는 약간 늦게 심양공항에 도착했지만, 무사히 심양공항을 빠져 나와 요녕성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요녕성 박물관으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스님께서는 요하 문명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하강 유역의 홍산문명은 황하문명보다 앞선 것입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만리장성 밖은 오랑캐 땅이라고 하여 중국으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황하문명보다 앞선 문명이 만리장성 밖에서 발견되다보니 당황해 했습니다. 유물이 나온 것만이 아니라 성이 발견되고 거대한 적석무덤, 신전, 제단이 발견되었습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용문화인데, 이지역에서 최고 오래된 용과 봉황이 나왔습니다. 중국의 갑골문자보다 더 오래된 문자인 도부문자도 나왔습니다. 이제까지는 중국 문명의 시원을 황하문명, 장강문명으로 하였으나, 지금은 요하문명과 황하문명을 중국문명의 시원으로 한다고 규정한 것이 동북공정의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nbsp 요하문명은 인류 최고의 문명이라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과도 쌍벽을 이룰 정도이며, 단군조선을 넘어 환웅의 배달나라가 유물적으로 증명이 된 것입니다. 환인시대에 해당하는 9천년전 유물도 나왔습니다. 약 6천여년전 유물에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3단으로 된 제단이 발견되었고, 신전 특히, 여신전이 발견되었는데, 여신의 손모양이 곰 손모양처럼 보이는 것도 나왔습니다. 단군신화가 유물로 나온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 무덤은 주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양식인데, 고구려 무덤과 같은 적석총이 발견되었고, 그 규모도 고구려 무덤 이상으로 초기 국가가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nbsp 그렇기에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역사에 남아 있는 이런 기록들을 단순히 신화라고 생각하는 것을 바꿔야 합니다. 고구려만이 갖는 독특한 무덤, 성곽문화, 이것이 바로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고대문화, 배달문명이었던 것입니다.nbsp 이곳 요녕성 박물관은 요하문명의 일부 유물만 전시되어 있고, 요하문명의 대다수 유물, 유적은 내몽고 자치구에 있습니다. 고조선 시대를 중심으로 발달된 청동기 문화, 배달문명시대에 해당되는 잘 다음어진 옥기문화, 그보다 앞선 신석기 문화가 요하문명에 포함되어 있습니다.”nbsp 요녕성 박물관은 제1관은 구석기와 신석기, 동석병용기 시대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제2관은 상주시대에 해당하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들이, 제3관은 진한시대 이후 당나라시대까지nbsp이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nbsp 요녕성 박물관을 나와 백암산성을 향했습니다. 2시간을 달려 도착한 백암산성은 한창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nbsp 백암산성은 고구려의 산성으로 지금은 연주산성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백암산성을 따라 걸어 오르면서 스님께서는 백암산성의 특징, 고구려 산성의 특징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백암산성은 산성을 보호하기 위해 덧성을 쌓았고, 성의 안쪽과 바깥쪽으로 치를 쌓았습니다. 고구려성의 특징은 돌을 마름모꼴로 다듬어 마름모의 끝이 서로 맞물리도록 하여 서로 지탱할 수 있도록 견고하게 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nbsp 백암산성은 북쪽으로는 높고, 동쪽으로는 태자하가 흐르면서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적이 주로 서쪽으로 침공해 올 위험이 있어 서쪽으로는 성을 두껍고 견고하게 쌓아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백암산성의 맨 꼭대기인 망대에서 주변을 살펴보면 적이 오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야가 트여있었습니다. 옛고구려인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기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nbsp 백암산성을 떠나 환인으로 이동하는 길에 본계현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다시 2시간 30분을 이동하여 숙소가 있는 환인에 도착하자마자 짐은 로비에 그대로 둔채 강의장으로 향했습니다.nbsp 비록 늦은 시간에 몸이 피곤하기도 했지만, 바로 강의장으로 향하면서 역사기행 첫날, 우리역사 전반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nbsp “우리나라사람들은 크게 3가지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가 중국에 대한 문명사적 열등감인데 역사적으로는 상고사부분입니다. 우리의 뿌리인 상고사에 대해 많은 유실과 왜곡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로 중국과 관련된 것입니다. 우리 상고사의 유실과 왜곡은 우리의 문명이 중국문명의 아류, 변방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nbspnbsp 둘째, 일본에 대한 식민지배의 상처인데 주로 근대사 부분입니다. 우리나라가 근대사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일본의 침략을 받고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우리가 스스로 자주독립을 이뤘다면 피해의식이 없을텐데, 외세의 힘으로 이루어진데다가 그 이후에 남북간 분단으로 인해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자기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대편에 대한 독립운동역사를 왜곡하거나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는 독립운동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민족적 자존감이 생길수가 없습니다.nbspnbsp 셋째는 미국등 서구문명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식계층이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와서 국민들을 개도했습니다. 현재 우리사회 발전이라는 것이 서양을 모방하는 것이고, 과학기술만이 아니라, 철학, 종교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것은 낙후되어 있고 서양것은 발전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근원적인 열등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nbsp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역사에 대한 정립이 되어야 한다는 것, 우리를 둘러싼 주변의 국제질서, 국제관계를 정확하게 알아야 된다는 것, 우리의 역량을 충분히 정확하게 파악해야하며 창조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조적 사고를 하려면 열등감이 극복되어야 합니다. 열등감은 문명의 역류현상이 일어나면 극복이 됩니다.nbspnbsp 그렇기에 우리의 역사를 민족사가 아니라 문명사로 다루어야 합니다. 중국은 이제까지의 한족 문화를 오늘날 다민족의 중국문화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가 흡수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우리의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자는 것이 아니라 잊어서 잃어버렸던 역사를 되찾아 바로 잡자는 것입니다.nbspnbsp 이런 것을 가지고 중국과 역사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극복이 되어야 한국과 중국간에도 좋은 관계가 유지되고 그래야만 도래하는 동아시아시대를 함께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인종적으로 중국의 한족은 남방 몽골리안, 우리나라는 북방몽골리안이고,nbsp문화적으로도 중국은 차이나 티벳어족, 우리나라는 우랄 알타이어족입니다. 서로 섞여 살뿐, 문화적으로는 그 뿌리가 서로 다릅니다.nbsp 중국과 우리는 문화의 출발이 서로 다릅니다. 문명은 앞선쪽에서 낮은 쪽으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nbsp 우리의 과거 역사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정말 똑똑한 사람이 역사학과를 나와서 평생 역사연구와 정립에 몸담아야 합니다.nbsp해모수라고 할 때 한문으로 적어놨는데 뜻을 새겨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순 우리말로 해석하면 ‘해를 모시는 우두머리’라는 뜻입니다. 천제를 섬기는 자라는 뜻이지요. 수리는 맨 꼭대기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언어를 모두 재해석해야 합니다. 일본의 천왕문화속에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천왕이라는 것은 신정일치이며 천왕은 등극할 때 반드시 신내림을 받아야 합니다. 역사의 복원은 현장에서 조사할 뿐 아니라 사서를 참고할때는 그들의 편견에서 본 기록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별자리의 이동도 조사하고, 백두산 폭발등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도 있습니다.nbspnbsp 역사의 현장을 다니면서 우리 민족의 자존의 뿌리를 찾아 회복하는 그런 여행효과를 얻기를 바랍니다.”nbsp 오늘 역사기행 첫날 11시가 넘어 마무리 되었지만, 우리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대단한 민족임을 자각하며 잠자리에 든 하루였습니다.

2013.08.05. 21,005 읽음 댓글 4개

2013.8.3.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모임, 불교대 경전반 담당자 워크숍, 천준위 회의 및 2번의 미팅

오늘 아침 7시 30분부터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종교인 기자회견에 대한 내용들이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서초동 정토법당에서 전국 불교대, 경전반 담당자 약 380여명이 참석한 워크숍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법문에서nbsp“왜 불교대학을 운영하는가? 어떤 목적으로 설립이 되었는가?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운영, 관리할 것인지를 점검해야 기술적인 문제도 함께 해결될 것입니다.nbsp 불교 신자는 불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식중심으로 불교 공부를 해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불법의 가르침은 어떻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nbsp 청년불자들은 지식적으로만 불교를 공부하기 때문에 신앙심이 부족합니다. 동국대 불교학과를 나와도.에서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점을 극복하고자 정토 불교대학이 생겨나오게 되었습니다. 실천적 불교사상의 첫 머리에 왜 불교를 공부하는가? 왜 불교가 삶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이런 점을 알고 다른 종교와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불교는 무엇인가? 이런 것을 불교의 첫걸음으로 배워야 합니다. 두 번째,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야 한다면 부처님은 누구신지?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합니다. 세 번째, 근본 가르침은 무엇인지? 네 번째, 시대가 흘러가면서 변화과정은 무엇인지? 소승, 대승이 왜 생겼는지 알아야 우리와 다른 나라의 불교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그런데 한 종파에 들어가면 그 종파의 교리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종교를 가지면 더 배타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도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선방에 다니는 신도들은 일반 절에 다니는 신도를 수준이하로 보는 현상도 있습니다. 스님이 되어 신도를 하인 취급하기도 합니다. 무슨 불교를 배웠기에 이렇게 되냐? 이런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자기 정체성도 가지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포용성을 키우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수계를 할 때에도 돈 얼마주고 받기 때문에 계를 받아도 삶에 변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한다면, 한국 남자가 얼마나 외도를 했느냐?하는 설문 조사를 한다면 절에 다니는 남자는 한국 남자 평균보다 적을까요? 그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늘 보시해라라고 가르치지만 불교신자가 많이 보시할까요? 불살생 등 계율을 불교신자가 더 잘 지킬까요? 문화적인 것은 남아있으나 가치관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불교신자가 되어도 불교적인 가치관이 정립되지 못했기 때문에 일반인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불교신자가 많은 것도 중요하지만 숫자가 많은 것으로는 세상에 아무 변화도 줄 수 없습니다. 불자라면 선택하는 삶의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기부금 조사를 하여 차이가 안난다면 불교대학을 지식으로만 배우고 있지, 가치관의 변화가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깨달음의 장, 나누기 수련, 성지순례를 다녀옴으로써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불교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본인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불대 담당자는 관점을 잘 알고 관리를 해야 합니다. 설령 동국대 불교대학을 나왔다 하더라도 정토 불교대학을 다시 다니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불교에 대한 바른 이해, 전체에 대한 통찰력, 삶과 연관된 수행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최고 이상은 깨달음이며 깨우침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원을 세울 수 있습니다. 불교의 궁극적 이상이 열반과 해탈이라는 첫 출발로써 의미가 있으며 실천도 같이 병행하기 위해 봉사, 기도로 자기정진, 깨달음의 장이 필요합니다. 공부를 수직적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도반과 나누기를 하면서 타인의 눈을j 통해 나를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법문을 들어야하고 나누기를 해서 지식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나누기를 하지 않는 것은 조퇴와 같습니다. 절반만 한 것. 나누기도 교과 과정, 둘째가 나누기, 깨달음의 장, 봉사활동이고, 셋 째 기도를 해야 합니다. 수행은 사로잡힘에서 벗어나 나를 행복하게 할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자리이타의 전통사상에 입각한 것이며, 보시는 재물로써 남을 돕는 것, 봉사는 재능으로 남을 돕는 것 이 세 가지를 실천하는 것이 정토불교대학의 설립취지와 목적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1만 있어도 그 사람의 노력에 의해서 세상은 변할 수 있습니다. 정토회 만일결사의 목표이기도 하며 이것은 전국 기초구에 100명에 해당됩니다. 이것을 한 생의 목표로 삼은 것이 만일결사입니다. 원래 불교대학과 경전반은 한 과정으로 경전반에서는 기본을 터득한 입장에서 자기가 경을 보며 스스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금강경은 대승경전 중 초기 사상으로 교이면서 선사상, 반야심경과 함께 선불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육조단경입니다. 자기가 체득되도록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며 기본이 잡혀있으면 이후는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진실한 불자가 되도록 인력을 키워내는 것이 정토불교대학입니다. 여러분이 반장, 담임역할을 하며 향후 1년에 5천명이 들어오더라도 5천만 명이 되려면 백년이 소요되는데, 이것을 3년 안에 하려면 5만 명씩 10년이 필요합니다. 오는 분들이 빠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경전반으로 인도,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도록 하고 졸업자는 다시 담당자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합니다. 가능하면 입학은 많게 졸업은 다 하도록, 행복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늘어나면 우리사회는 저절로 밝아집니다.”라며 왜 불교대학을 우리가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각 지역의 불대 담당자들은 스님께 업무를 하면서 생기는 고민들을 질문했습니다. ‘진행하면서 스스로 부족한 마음이 많아 걱정인 분, 계획성이 없는데 어떻게 계획적으로 할 수 있는지 고민인 분, 깨장을 가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가야하는데, 억지로 보내는 것 같아 고민인 분, 봉사가 많아지면서 어떻게 남편의 이해를 구해야 하는지, 또 아이들을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지 고민인 분, 부처님은 왜 걸식을 하셨고, 부처님이 출가한 것이 실제로 아내와 아버지에게 아픔을 준 것은 아닌지 질문하신 분, 수행과 일상생활속에서 갈등이 있어 고민인 분’등 다양한 분들이 평소 고민하던 것을 내어놓고 스님께 진리의 말씀을 듣기를 웠습니다. 스님께서는 법문을 마치자마자 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서 평화연구원의 김형기 원장님과 만남을 가졌고, 이어서 천준위위원들과 함께 8차년을 구상하는 회의를 함께 했습니다. 이후에도 2차례의 미팅을 더하였고, 원고수정등의 업무를 하고 난 후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내일부터는 동북아 역사기행을 위해 중국으로 출국하게 됩니다.

2013.08.04. 16,474 읽음 댓글 1개

2013.8.2. 실무자 안거 마지막 격려말씀, 한겨레 인터뷰 및 미팅

스님께서는 어제까지 진행된 실무자 안거에 대한 소감문을 보고서 오늘 아침 실무자들에게 앞으로 우리가 어떤 자세로 나아가야 하는지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수련때 돌이킨 것이 일상생활에서는 잘 안된다고 하는데, 누구나 그렇습니다. 명상할 때 보면 서서 다닐때는 괜찮다가도 앉으면 다시 다리가 아픈 것과 같습니다. 이런 가운데 늘 자신을 돌이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를 잘 점검하려면 도반끼리 항상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함께 모여 자기성찰하고 상대가 수행적 관점을 놓치는 것 같은 것을 비판이 아니라 알려주는 자리를 자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는 수행집단이지만 분위기는 일반 집단과 같습니다. 생활하다 스트레스 받으면 때로는 잡담하던지, 험담하던지, 자기 억압된 마음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nbsp 밖에서 보면 수행자이지만, 우리와 가까이 있는 대중들이 보면 우리문화가 수행문화로 아직 제대로 정착이 안되어 있습니다. 대중들이 볼 때 ‘실무자들이 사는 것을 보면 짜증내고 하는 것은 우리들과 비슷하지만, 끝날 때 나누기 하고, 돌아보고 자기를 체크하고 서로에게 격려되는 문화가 다르구나’ 하는 이런 문화가 정착 되어야 합니다. 부처님 계율에 법에 관계되지 않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즉문즉설할 때 연애도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할 때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면서 연애하면 된다는 것처럼 수행도 해야 하고 놀기도 해야 할 때 수행자로서 놀이문화를 어떻게 가질것인가이며 이런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술을 안먹는 계율이지만 설령 술을 한잔 먹는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의 소재이고 우리들의 대화내용이 수행에 관계되는 이야기이거나 원력에 관계되는 이야기라면 이럴 때 술 한잔이 무슨 큰 문제가 되겠어요? 대중들이 볼 때 저사람들은 술을 한잔 먹더라도 늘 정진의 관점을 가지고 있구나하는 이런 것들이 정착될 때 대중들도 자기들과 같은 줄 알았는데, 역시 다르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평화재단의 경우 실력을 높여서 전문 연구가들을 뛰어 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세속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평소에는 하인처럼 허드렛 일하며 지낸다 하더라도 같이 어울려서 서로 함께 할 때 뭔가 다르구나하는 것이 도덕적 우월성을 가진 자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는 억압심리가 있습니다. 공식적 자리에서는 그런 문화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문화가 힘이 없습니다. 티벳불교의 장점은 서양사회에서도 자기를 지켰기 때문에 서양사람들이 티벳문화를 접근하고 존중합니다. 우리는 우리것을 버리고 서양사회에 동조해버려서 전파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세속에 있을 때 원칙을 지킴으로 해서 세속이 궁금해서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우리가 동화되기 때문에 결국은 우리가 세속을 동경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자의 삶이 속박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규칙을 정하고 통제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같이 있을때는 가능합니다. 세속에 가서 살아도, 세속과 어울려도, 집에서 부모님 간호하고 3년을 있다 와도 다만 가서 필요에 의해 있었을뿐이지, 세속은 있을 곳이 못되는구나하고 자각하고 돌아오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까지 안되니까 늘 힘들면 세속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nbsp 시집 온 여성이 늘 친정을 그리워 하면서 친청을 불사르지 못하는 것처럼 세속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밖에서 보거나 정토회 대중이 보면 정토회의 지도자입니다. 내가 무슨 정토회 지도자인가 하지만 밖에서는 여러분들을 정토회 지도자로 인식하게 됩니다. 지금 정토회를 구성하는 중심 멤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기위치에서 우리의 문화가 어떤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3년 계획을 세워서 법당을 수백개를 만들고, 일년에 깨달음의 장을 몇 명이나 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중심이 어떻게 구성이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스스로에게 부족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늘 정진하는 문화. 일상 삶이 그런 관점을 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통일에 대한 원이 있다면 누구를 만나든,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자리에 있던 그 관점에서 대화를 하고, 사람을 만나고 이런 것들을 이루어가게 되는데, 의식만 있으면 말이 강하고 사석에서는 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nbsp 역사나 사회가 변화하려면 내부로부터 변화가 없으면 설령 큰 성과를 냈다하더라도 결국 내부로부터 붕괴가 됩니다. nbsp 미얀마, 티벳불교가 아직 부처님의 법에 대한 큰 원칙을 지키고 있지만, 미얀마가 개발이 되었을 때, 티벳이 개발될 때에도 계속 유지가 될까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세속과 떨어져 산속에 있어 유지된 것은 확장성은 없습니다.nbspnbsp 우리가 잘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깊이 들여다보면 중심적 가치, 환경적 가치, 윤리적 가치가 딱 잡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사회에 유의미한 것도 많지만, 현재로서는 확장이 되면 분열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많습니다. 나가면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가치관의 측면에서는 분명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수행이라고 이름을 붙인다고 수행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nbsp 그런면에서 우리가 미래를 설계할 때 여러분의 삶의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낸 소감문을 읽어보면서 느껴진 것은 돌이켜졌는데, 실생활에서 돌아가면 잊어버리고 전전긍긍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버린다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주말등에는 서로 모여 차도 마시면서 자발적 수행의 모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함께 나누기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문화들이 형성되면 여러분들이 자각한 것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혼자서는 힘듭니다. 이런 문화를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의식입니다. 밑 마음에서 변화가 와야 삶의 변화가 오게 됩니다. 이런 수련을 통해서 자기 바닥마음을 가까이 접근하니까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은 일상에서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본 것을 현상유지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을 일년 동안 할 일이고, 이것을 유지한 상태에서 정진을 하면 내년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수련을 하고 난 후 한달 만에 없어져버리니까 더 깊이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판 때 묻히는 것은 1020년 했잖아요?. 혼자서 잘 자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지하려면 도반들이 도와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열심히 정진하십시오.” 스승님의 가르침 잘 새겨서 더욱 더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실무자 안거의 마지막 격려 말씀을 해 주신 후 두북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에 경주 남산 삼릉에서 포석정까지 잠시 산책을 하셨습니다. 가는 길에 스님께서 젊은 날에 활동할 때 머물렀던 망월사를 들러서 그때 도와주셨던 노보살님께 인사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오후 5시부터는 한겨레 신문과 개성공단문제로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현재 남북이 개성공단 중단문제로 서로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어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것에 대해 스님께서는 우리가 민족통일을 위해 대화를 하는 것이라면 남북이 서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인터뷰하셨습니다. nbsp 이후에도 2번의 미팅이 있은 후 밤 10시가 넘어서야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nbsp 내일도 아침 7시 30분부터 종교인 모임을 시작, 전국 불교대, 경전반 담당자 워크샵, 천준위 회의등 모두 6번의 모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2013.08.03. 17,893 읽음 댓글 6개

2013.8.1. 실무자 안거 마지막날

오늘은 실무자 안거 마지막날이었습니다. 법륜스님께서는 어제까지 21일간의 1차, 2차, 3차 명상수련을 마치고 오늘 실무자 안거 마지막날 함께 해주시면서 각 개인의 수행점검을 해주시고, 내년부터 시작하는 8차년도 사업에 대해 큰 방향에서 실무자들의 의견을 듣고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제까지 21일간의 단식을 마무리 하시고 오늘부터는 복식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러나 3끼를 다 먹고 있는 우리들보다 더 힘차게 우리 실무자들의 수련을 마무리 해주셨습니다. nbsp오전에는 주로 개개인의 수행적 고민에 대해 지도해 주셨습니다. 실무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고집이 세다하고 또 한가지 일에 빠지면 주위를 잘 살피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업무가 버거워서 두렵고 물러서는 마음이 생기고, 수련을 하고 나면 힘이 나서 가서 다시 해봐야지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제대로 잘 안되는데,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명상을 하다보니 평소에 불편한 사람들에게 말을 해대며 시원해 하는 모습이 있었는데, 이제 착한척하지 않고 그대로 표현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평소 사람들이 징징댄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 이런 나를 좀 더 살펴보면 되겠는지, 평소에 자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데 명상때 살펴보니 속으로 불만을 쌓고 있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안듣고 속마음과 겉이 다르게 표현되기도 하는데, 언행일치가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평소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은데 가끔씩 관성화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생각으로 아는구나 해서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는 등 각자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을 스님께 내어놓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실무자들이 고민하고 있는 몇몇 사례를 가지고 자세하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nbsp 그중에서도 한 실무자는 ‘평소 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서운해지고 기운이 빠지기도 하고 일이 하기 싫어지기도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스님께 했는데, 이것은 모든 실무자, 활동가들이 대부분이 겪기도 하는 문제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현상이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분석하자면 업무가 자기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엄마가 자기 말을 안들어 줄 때 엄마에게 ‘공부안해’하는 것은 공부가 자기일이 아니고 엄마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토회 같으면 업무가 법륜 스님의 것이고 법사단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인생도 어릴 때는 자꾸 부모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엄마한테 죽어버린다고 협박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삶이 자기 삶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구에 대한 책임도 나의 일이고, 민족에 대한 책임도 나의 일이고, 정토회의 일도 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정토가 지향하는 일을 나혼자 하려면 힘들고 감당이 안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어 일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커집니다. 누가 주인인지 객인지 모를 때 끝에 보면 알게 됩니다.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이 주인이고 인사 받고 가는 사람이 객이고, 고맙다고 돈 주는 사람이 주인이고 돈 받는 사람이 객입니다. 아직 우리가 완전히 주인이 안되서 그렇습니다. 아직도 누군가의 일이다. 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수처작주’ 어디를 가든 주인이 되라. 자기가 주인이 되면 인사 받을 일이 없어지고 오히려 인사를 하게 됩니다. 어디를 가든, 어떤일을 하든 거기서 주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어떤 업무를 하게 될 때 이웃집과 비교하면 내 일이 되는데, 우리집안에서 비교하면 부부지간에도 또 니 일, 내 일 나누게 됩니다. 어디든지 처하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자꾸 저 사람 일이라고 생각하면 섭섭해집니다. 그래도 정토회 조직은 다른 조직에 비해서 덜한 편입니다. 그런 것을 알고 내가 섭섭해 하면 이 일을 내 일로 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 됩니다.”라며 우리가 업무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려주셨습니다. nbsp 오후에는 각부서별로 8차년 사업을 계획하면서 크게 쟁점이 되는 부분을 가지고 스님께 질문하고 조언을 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다 계획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쟁점이 되는 부분은 스님께 조언을 구해서 좀 더 자세한 계획을 짜려는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큰 방향에서 이후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원칙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nbsp 오늘도 늦은 시간까지 스님께서는 실무자들과 함께 하면서 수행지도를 해주시고 또, 8차년 사업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는 시간을 가져주셨습니다. 단식이 끝난 직후라 힘드실텐데도 전혀 내색없이 오히려 우리들보다 더 적극적인 모습에 다시 마음을 가다듬게 됩니다. nbsp 스님께서는 내일 아침 실무자들에게 수련 마무리 인사를 하고 두북에서 다시 서울로 가셔서 사람들과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2013.08.02. 16,183 읽음 댓글 5개

2013.7.21. 가을불교대 졸업식 및 가을경전반 졸업식

오늘은 가을불대, 가을 경전반 졸업식이 문경문화예술회관에서 있었습니다. nbsp 오늘 졸업식에는 가을불대 졸업생 492여명, 가을 경전반 졸업생 115명중 약 52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약 520여명의 졸업생들에게 오전에는 졸업법문을 해주셨고 이어서 직접 졸업장을 수여하며 축하해 주셨습니다.nbspnbsp 법사님들도 스님과 함께 졸업생들을 축하해 주셨습니다.nbsp오후에는 오계 수계식이 있었습니다. 수계식 참가자들은 스님으로부터 불명을 받고 이후부터는 오늘 받은 불명의 부처님과 같은 마음을 내며 살아가야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nbspnbsp 오늘 졸업하고 수계받은 정토행자들이 앞으로도 부처님의 정법 아래에서 더욱 더 수행정진 하리라 생각됩니다.nbsp 스님께서는 다시 내일부터 4박 5일간의 2차 명상과 3차 명상에 들어갑니다.

2013.07.21. 17,798 읽음 댓글 4개

2013.7.20. 제1차 명상수련 회향 및 실무자 안거 입재

지난 7월 11일부터 시작된 1차명상수련이 오늘 회향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명상에 들어가면서부터 단식을 하셔서 오늘로 10일째로 맞이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7월 31일 모든 명상이 끝날때까지는 단식을 하실 예정입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단식을 하시는 가운데에서도 190여명의 대중들과 함께 정진하시고 저녁마다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저희 190여명의 명상수련생들은 스님의 가르침아래 10일간의 명상수련을 잘 회향했습니다. lt명상수련 바라지들과 함께gt 스님께서는 명상수련 회향식을 마치자 마자 바로 실무자들 안거 입재식에 참석하셨습니다. 스님과 법사단, 실무자 약 50여명이 함께 각자 명상수련 소감문을 나누고 스님께서는 한명한명에게 나아갈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2시 45분부터 시작된 입재식은 밤 10시가 되어야 마쳤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우리를 위해 몸을 아끼시지 않는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내일은 가을불교대 졸업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2013.07.21. 17,411 읽음 댓글 8개

2013.7.10. 힐링캠프 100회 특집 촬영

7월 7일 스님께서는 동북아 역사기행팀을 한국으로 떠나보내고, 식량사정등 북한의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서 단동을 방문하였습니다. 단동에서는 북중간 새로 짓고 있는 신압록강 다리와 주변개발지역등을 둘러보신 후 다시 심양을 거쳐서 북경을 방문하여 몇 분을 만나서 중국의 대 한반도 정책변화등을 알아보신 후 7월 9일 밤늦게 인천공항에 도착하셨습니다. 정토회관에 도착하니 0130정도 되었습니다. 도착하신 후 해외일정으로 밀린 월간정토, 법보신문등에 내보낼 여러종류의 원고를 교정하느라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하셨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오늘도 짐을 챙길 여유도 없이 아침 7시 30분부터 북한전문가들과 북한현실과 이해의 모임을 가졌습니다.nbsp 이어서 2개의 미팅을 더 갖고 난 후 북한에서 오신 노인 한 분이 갑자기 병이나 입원해 계셔서 직접 병원을 방문해서 위로 해 주셨습니다.nbsp 병문안 후 스님께서는 힐링캠프 100회 특집에 출연요청을 받고 바로 남양주 봉서원에 있는 촬영장으로 이동하셔서 밤 10시 30분까지 힐링캠프 100회 특집을 촬영 하였습니다. 오늘 촬영한 힐링캠프는 7월 15일에 방영이 될 예정이니 많은 시청바랍니다.nbsp 내일부터는 스님뿐만 아니라 정토회 모든 실무대중들이 21일간 안거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8월 3일까지는 스님의 하루를 쉬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스님의 하루를 즐겨찾는 분들께 “애독자 여러분들도 정진에 전념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nbsp 이후 법륜스님의 일정은 711201차 명상721 불교대 졸업식 및 수계식722262차 명상727313차 명상81,2실무자 수련83신도활동가 수련8411중국역사기행81118중국역사기행

2013.07.11. 24,917 읽음 댓글 22개

2013.7.7. 심양 요녕성 박물관

오늘은 동북아역사기행 마지막 날입니다. 4시 반에 백산의 숙소에서 출발하여 통화에서 아침시장을 구경하면서 식사를 하고 심양의 요녕성 박물관을 관람하는 일정입니다. 마지막 날이라 피곤은 쌓이고 긴장은 풀려서인지 차만 타면 자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통화의 아침 시장은 우리의 옛 재래시장을 연상시킵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저마다 준비해온 오이, 호박, 과일, 옷, 떡, 생선, 고기, 살충제나 쥐약으로 보이는 것까지 온갖 것을 팔고 또 삽니다. 스님께서도 재래시장 한 편에 노점으로 마련된 노천 식당에서 따근한 순두부 한 그릇으로 아침식사를 간단히 떼우십니다. 처음 중국의 시장에 나와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터에 낯선 중국 음식 앞에서 머뭇거리던 참가자들도 스님의 스스럼없는 간소한 아침식사를 보고 용기를 내어 과감하게 중국 음식에 도전합니다. 순두부, 쌀국수, 물만두, 꽈배기, 쌀전병 등 값싼 음식들이 금새 식탁을 채우고, 호기심을 반찬 삼아 즐겁게 아침식사를 마쳤습니다. 약 1시간 가량 시장구경과 아침식사를 재미나게 하고 요녕성 박물관이 있는 심양으로 향했습니다. 시내에 이르기 전 스님께서 심양의 역사에 대한 간단한 설명으로 이해를 돕습니다.nbsp 인구가 천만이라는 동북아의 중심지 심양으로 들어서자 지금까지 차창 밖으로 봐왔던 풍경과는 전혀 다르게 마천루 즐비한 대도시의 모습이 펼쳐졌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중국의 급속한 변화와 그에 따른 한반도의 미래가 연상되어 지기도 합니다. 시내를 관통하자 요하문명 유물전이 열리고 있는 요녕성 박물관에 어느덧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 차분히 요하문명에 대한 설명을 해주십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황하문명보다도 12천년 앞선 요하 문명은 환웅의 배달문명으로 이어져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로 이어진 사실을 독특한 무덤 양식이나 발달한 옥 문화 등을 통해 유추 해석할 수 있으나 우리에겐 유적과 유물이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nbspnbsp 요하문명에 대한 공부를 끝으로 동북아워크숍 전체 일정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다른 일정이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심양공항까지 함께 오셔서 참가자들이 안전하게 출국 수속을 마치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고 손을 흔들어 배웅까지 하시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바쁜 일정 가운데에서도 4박 5일간 긴 시간을 함께 해 주신 스님께 참가자들은 머리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동북아워크숍의 소감을 나누었습니다.nbspnbsp “아직도 수천년 우리 민족의 역사는 바쁜 삶과는 거리가 먼 책 속의 이야기, 드라마 속의 스토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고구려의 성벽을 바라보며 우리 선조들이 피흘려 지켜낸 삶의 터전을 두 발로 딛고 서서, 그 유구한 겨레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머나먼 과거가 현재가 되고, 조상들의 고통과 희망이 민족의 자부심으로 되살아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압록강변을 따라 백두산을 향해 가며 바라본 북녘 땅의 뙤기밭, 가늘게 피어오르는 오두막집의 연기를 보며, 북한동포들의 처참한 현실을 가슴 아프게 깨닫게도 됩니다. 짧은 여행 속에서 발로 깨닫고 눈으로 되새긴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포부, 북녘 동포들의 고난의 행군을 이제 일상에서도 잊지 않으렵니다.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차근차근 통일의 밑돌을 놓기 위해 궁리하고, 많은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 lt평화리더십아카데미 4기 여영학님의 소감문gt nbspnbspnbsp “4박 5일 동안 편안하고 울컥하기도 했고 정리도 되는 느낌입니다. 말로만 하던 ‘통일의병’이란 단어가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내 생활의 일부로 여겨질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고, 이후에 어떤 마음으로 활동을 해 나갈 수 있을지 정리가 되었습니다. 5년 전에 왔을 때는 중국에 대한 열등감과 무시하는 마음에서 모든 유적지, 역사의식에서 ‘내꺼’라는 마음, 우월감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며 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니꺼, 내꺼’가 아니라 ‘중국과 함께 새로운 동아시아의 문명을 만들 수 있겠구나’ 라는 배척하는 마음이 아닌 ‘함께’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스님께서 늘 말씀하시던 통합, 화합의 마음이 새겨져서 스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고, 15년 동안 북한동포돕기 하신 스님의 활동과 정성이 전해져서 북한동포들의 아픔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함께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으로 통일의 비전을 볼 수 있고, 이렇게 함께 선각자의 뒤에 따라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함께 가는 분들이 있는 것만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중국이 점점 친근해지고, 북한동포들의 아픔을 잊지 않겠다고, 나날이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하게 살겠다고, 스님께서 일러주신 공심을 잊지 않겠다고 마음을 내어 봅니다. 이번에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여성리더십아카데미 분들과 함께 가는 것에 대해서 기대와 설레임이 있었는데, 함께 하니 진짜 든든하고 참 좋았습니다. 통일의병 분들의 에너지, 간절함에서 배운 것들이 많았고, 세대를 아울러 함께 통일의병의 힘을 모은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공부와 여행을 이끌어 주신 법륜스님, 수고하신 스텝분들, 그리고 함께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lt새로운백년 청년학교 1기 이주현님 소감문gt

2013.07.10. 16,734 읽음 댓글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