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2013.9.18. 듀크 대학교 강연
4시에 기상하여 세수만하고 잠자기 전에 꾸려놓은 짐을 차에 싣고 4시30분에 바로 공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North Carolina 랄리더램으로 가는 비행기 수속을 마치고 김성순 총무님 부부와 함께 짧은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내년에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하였습니다. 만 24시간도 함께 하지 못한 짧은 시간에 총무님은 눈물을 살짝 내비쳤습니다.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6시30분 비행기를 타고 더램랄리공항에 11시20분에 도착하니 이번에 듀크대학교로 초청해주신 듀크대학의 일미스님, 김지형교수님, 정상희법우님, 그리고 Korea Forum의 김혜영 교수님이 마중을 나와 있어 반갑게 인사하고 짐을 찾아 점심식사 약속장소인 한국식당으로 갔습니다. 한국식당에 12시30분경에 도착하니 코리아포럼 소속 교수님들이 기다리고 있어 같이 인사를 하고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듀크대학의 한국학과에는 6명의 한국인 교수가 있고, 이공대와 메디컬센터를 합치면 10명이상의 한국인교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North Carolina에는 유명한 대학이 세 개 있는데, 오늘 강연이 있는 듀크대학교와 2개의 주립대학교인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그리고 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가 있는 세개의 도시가 자동차로 1시간 이내에 있는 삼각형 꼴로 자리를 잡고 있어 이 지역을 Triangle 지역이라 불리며 공항도 이 세곳의 중간쯤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학 포럼에도 이 세개의 대학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함께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점심식사 후 숙소인 정상희 법우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작지만 아주 역사적인 장소를 보았습니다. 이곳은 남북전쟁 당시 더 이상의 전쟁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남북의 장군들이 서로 모여서 종전을 협의하고 종전선언을 한곳이라고 하여, 남북전쟁이 종결된 지역으로서의 역사적 기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을 지나면서 우리도 남북이 대치되어 있는 휴전상태를 끝내고 종전협정이 체결되어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잠깐 발원하면서 지나갔습니다. 듀크대학교는 학교캠퍼스가 아름다우며, 학교정원이 특히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하여 학교와 정원을 산책하였습니다. 추석을 하루 앞둔 18일, 스님께서는 듀크 채플의 5시를 알리는 종소리에 맞추어 강연장이 있는 신학대학교에 도착하셨습니다. Raleigh Durham Chapel Hill을 포함한 Triangle Area의 한인 커뮤니티는 크지 않지만 5시부터 신학대학교에 위치한 Goodson Chapel에 한 두분씩 들어오기 시작하여 6시가 다 되어가자 220석 모두 꽉 찰 정도로 한국분들이 모였습니다. 강연에 앞서 스님께서는 잠시 듀크대학의 명상클래스에 참석하여 지도하고 있는 교수님, 학생들과 잠깐 인사를 하고, 선과 명상이 스님의 사회적인 활동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질문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강연장에서는 듀크의 코리아포럼에서 참석자들에게 준비한 빵과 음료를 나누고 서로 인사를 하며 스님의 힐링캠프 영상을 보며 스님의 강연을 기다렸습니다. 또한 멀리 아칸사스에서 7시간 운전을 하고 왔는데 오늘 참석한 분들과 나누고 싶다면서 법륜스님의 미주강연을 축하는 큰 기념케이크를 만들어 오셨습니다. 6시가 다 되자 아시아 중동학과 김혜영 교수님께서 듀크 코리아 포럼을 대표하여 인사를 드리고, 또한 종교학과 김환수 교수님께서 오늘 강연자이신 스님약력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종교와 문화의 벽을 뛰어넘어 인류의 인권, 환경 및 사회를 위한 스님의 활동들을 나열하신 후 그 와중에서도 24일간 25개의 미주도시를 순회하는 빡빡한 일정 중에 듀크에 오신 법륜스님께 교직원, 학생들을 대표하여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 영상이 나온 후 스님께는 미소 가득한 얼굴로 강단에 오르신 후 반갑게 인사를 하신 후에 ‘인생에는 정답이 없으며,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과 함께 오늘의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인생의 고뇌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에서 고뇌가 생기는 것이며 강연의 제목이 즉문즉답이 아니고 즉문즉설인 이유가 바로 이처럼 인생에 답이 없고 스님의 역할은 그저 사람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할 뿐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우리들의 고뇌와 고민들을 듣고 이야기하며 어두운 것이 조금 더 밝아지고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워짐으로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하고 자유롭게 생활하게 되는 것이 스님의 목표라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이어 강연 바로 전 듀크의 불교수업 중 받은 질문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한 학생이 스님께서 하는 환경, 통일, 인권에 관한 모든 활동이 선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대해 밥을 먹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봉사를 하는 것도 다 사람들이 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은 각기 다른 문제가 아니라 전부 동일한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에 대한 일화로 손가락은 각각 길이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지만 다섯 손가락이 한 손으로 이어져서 물건을 집을 때 같이 움직이는 것과 같이 개인의 문제, 사회의 문제, 종교의 문제, 환경의 문제가 각각 나누어져있는 문제로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동일한 삶의 문제입니다. 이처럼 모든 분야에 걸쳐 개인에게 있어서 괴롭거나 답답한 문제가 있으면 같이 이야기하고 대화하며 조금 더 나은 길을 모색해보자고 말씀하시며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첫번째 질문자는 유태인인 미국인 남편과 결혼하여 살고 있는 부인이었는데, 이분의 고민은 자신의 욱하는 성격과 자신을 닮아가는 아들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아들과 질문자 두 분 다 ‘한 성깔 하는’ 성격으로 밖에서는 아무말도 못하지만 집에만 오면 남편을 괴롭히는 한 성질이라고 하며, 아들이 자기를 닮아가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님께 질문을 하였고, 이분과의 대화속에 첫 질문부터 유쾌한 웃음이 터졌습니다. 두번째 질문자는 대학생이었는데, 하루를 엄청나게 열심히 살다보면 하루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 같고, 이것이 잘 사는 것이라 착각하다가 우물안의 개구리로 전락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어느 순간 삶을 뒤돌아보게 되면 후회가 된다는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이어진 세번째 질문자는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남학생이었는데, 학교에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께 물어보니 다들 웃으면서 스님과 질문자와의 대화를 지켜보았습니다. 네번째 질문자는 듀크대학교 학부에 다니는 여학생으로 스님께 자존감에 대해 여쭈어보며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외국 생활을 많이 하며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자신은 그 기준을 만족하지 못해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하며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지 질문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이에 질문자에게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질문자가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답하자 스님께서 질문자에게 청중을 바라보라고 하신 다음 청중에게 과연 이 분이 부족한지 아니면 충분한지 물어보았을 때 220명 전원은 질문자가 아주 충분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 985170질문자는 목표를 너무 높이 설정하였습니다. 자신이 설정한 높은 자아와 그렇지 못한 현실의 괴리가 크기 때문에 더 괴로운 것입니다. 자신의 목표가 높을 때 현실을 끌어올려 그 기준에 맞추려고 하다보면 힘이 부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자아의식은 허상이고 망상이고 착각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열등의식은 착각일 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쁘다, 공부 잘한다 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을 때 오히려 더 열등감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어린 시절 들었던 칭찬들이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을 하기 때문에 교만감과 자만심이 생김과 동시에 열등감이 생기게 됩니다. 작은 목표를 설립하고, 작은 스텝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되면 긍적적으로 변하고 목표에 대한 달성감으로 만족감이 일어나 동기부여가 됩니다.985171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질문자가 이에 대하여 큰 목표를 잡지 않으면 자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자 스님께서는 “이는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그런식으로 자신을 끌고 가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커서도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채찍질 한다면 창의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공부는 재미있어야 하고 삶은 가벼워야 합니다985171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질문자가 기쁜 얼굴로 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다섯번째 질문자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위치에 대하여 스님께 여쭈어보았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인터넷 뉴스를 보면 여성 연예인을 성 상품화하고 가사 활동에 있어서도 남자가 가사를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배품으로 여겨지는데 이에 대한 해결방법이 없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스님께서는 “당장 해결할 방법이 없고 23세기 정도는 걸리는 과정입니다. 법은 하루아침에 바뀌어도 습관은 바뀌기 쉽지 않습니다. 인도의 예를 들어보면, 인도는 근대 국가의 탄생과 함께 카스트 제도를 금지하였지만 아직도 농촌 사회에서는 카스트 제도와 낡은 혼인 제도가 그대로 존재합니다. 이처럼 여성 인권에 관한 문제는 사회 전체가 개방이 된 이후 점차적으로 개선이 될 문제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수용과 변화를 같이 추구해야만 합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또한 자녀 양육에 있어서 어머니의 책임에 대하여 얘기하였습니다. “동물들의 사회에서 알 수 있듯이 암컷이 새끼를 키우는 것은 자연의 법칙인 것입니다. 인간은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 사회에서 또한 여성이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남성이 자녀 양육을 도와주는 것은 감사해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있지만 자연의 법칙은 존중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비판도 있음을 알지만 아이에 대한 책임을 여성의 권리와 바꾸고 싶다면 어미의 역할을 포기해야 합니다985171고 하셨습니다. 여섯번째 질문자는 한국에서 자라온 주부였는데, 질문자는 자신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지만 남편은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라 자신의 아들이 아버지의 아픔을 같이 공유하게 될까봐 두렵다고 하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님께 조언을 구했습니다.nbspnbsp 일곱번째 질문자는 듀크 MBA 학생이었는데,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할아버지가 아무리 바뀌지 않는다며 스님께 조언을 구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준엄하게 학생을 꾸짖는 모습도 보여 때로는 자상하게 때로는 호되게 질문자에게 답변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여덟번째 질문자는 박사과정을 끝내고 미국에서 취업을 해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질문자는 스님께 현 정부의 상황을 보면 답답함이 든다며 스님께서는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질문자에게 985170만약 현 상황을 지켜보고 분석하는 것이 질문자의 주요 관심이라면 그런 관심을 지속하면 되는 것입니다. 관찰자는 분석을 해야지 화를 가지고 있으면 안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주식회사에서는 주식수로 회사의 주요 사항을 결정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람 수로 결정을 합니다. 하지만 소수 집단이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돈과 권력을 사용해서라도 사람 수를 늘리려고 하기 때문에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영향력이 더 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다수의 반발이 심화가 되면 변화가 생길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질문자가 관망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면 그런 분석을 토대로 삼아 그 영향력을 더 넓혀야 합니다. 세상의 변화는 옳고 그름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의 힘에 의해서 생기게 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투표에서 과반수, 즉 51를 확보해야만 변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변화를 위해 일해야 하며, 목표달성을 위해 효과적인 방법을 항상 연구해야 합니다. 이에 비추어 보았을 때 현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며 작년 대선에서 중도가 캐스팅 보트를 가지고 있을 때 진보당 대표가 보수를 공격을 해서 중도층이 진보에 등을 돌린 사건은 효과적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현 상황을 역학적으로 분석을 해서 변화를 시켜려고 노력해야지 자신이 화를 내고 속상해 하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985171라는 말씀으로 여덟번째 답변을 끝마쳤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고등학생으로 공부에 대한 고민을 말하며 공부를 하다보면 성적을 신경을 써야하고 성적에 신경을 쓰다보면 공부가 싫어지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께 물어보았고, 2시간 35분에 걸친 강연을 끝마치며 스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지금 내가 좋고 즐거워야 하며 그리고 이를 통해 남이 같이 좋고 즐거워야 합니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을 때 지속 가능한 행복감을 느끼게 되고 그럼으로써 사회가 변화됩니다.985171라는 말로 2시간 50분동안의 즉문즉설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을 마친 후 스님께서는 책을 구입한 분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신 다음에 사진도 같이 찍어주고, 오늘 자원봉사를 해주신 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이분들께 다들 수고했다는 인사를 한 후에 스님께서는 Goodson Chapel 옆 강의실로 자리를 옮기셔서 코리아포럼 소속회원들과 소규모 토론회를 진행하였습니다. 우선 김혜영 교수님께서 북한에 대하여 미국에서 가르치며 목격한 미국학생들의 무모한 열의와 한국 학생의 무관심에 대해 지적하며 이에 대한 해법을 스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이에 스님은 정확한 상황 판단이 있어야 실제적인 조언이 가능하다고 하셨지만 대체적으로 한국에서 젊은 청년들이 북한에 대하여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전 한국이 한 나라였을 때를 기억하는 연세 드신 분들은 분단이 직접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청년들에게는 나의 문제가 아닌 과거의 이야기, 남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결혼 전에 서로에게 했던 약속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부부간 싸움이 끝이 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과거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젊은 세대에 접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 미래지향적 이익 추구 접근을 한다면 젊은 세대도 더 이상 통일이 남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됩니다.985171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답변에 토론에 참가한 분께서 통일 문제를 생각했을 때 스님께서 말한 미래지향적 이익 추구가 힘들지도 않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시며 스님께서 생각했을 때 통일 이후의 경제적 이익이 무엇인지 스님께 여쭈어보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통일 문제는 이익으로만이 아니라 민족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접근해 보았을 때도 통일은 이익입니다. 과거 일본은 남의 나라인 조선을 뺏고서도 여러가지 투자를 감행했는데 우리가 북한에 투자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현재 남한의 성장은 이미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고 미국의 서부개척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개발의 원동력이 필요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는 북한 개발만으로도 부족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다음 성장의 원동력은 동아시아 공동체여야 합니다. 하지만 동아시아 공동체의 주체는 일본이 될 수 없습니다. 일본이 주체가 되려면 독일처럼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고 그 이후 경제적 원동력이 되어야 하지만 현 일본정부처럼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동아시아 공동체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중국의 경우에는 경제적 규모는 크지만 아직 인권 문제 등 20세기의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기 때문에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입니다. 만약 남북한이 통일이 된다면 원수가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동아시아 협력의 주체로서 떠오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주체는 통일 한국 인 것입니다. 경제의 중심은 1819세기 유럽, 20세기 미국에서, 21세기 동아시아로 옮겨가고 있지만 동아시아가 문명의 중심으로 떠오르기 위해서는 경제뿐만 아니라 도덕, 사회를 아우르는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발전되고 통일을 이룩해 낸다면 이로써 문명의 중심을 동아시아로 이전하게 되는 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 분단 상황이 이어질 확률이 높습니다.nbsp현재 미국은 패권 유지를 위해 미국이 편성해 놓은 세계질서에 중국이 동의를 할 시에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중국의 이익을 보장해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남한은 국가적 목표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통일 문제를 국가적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명청 시대에서 명을 따르다가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고 청일 시대에서 청을 따르다가 일본에게 식민지 지배를 당했던 것처럼 정확한 사태 파악을 한 이후 이를 통해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국내 문제도 이와 개별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남한 사회를 좋은 사회로 만드는 것과 통일 사회를 만드는 것은 같은 일입니다. 통일 한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비전을 남한 사회가 제시해야만 하고 이를 위해서 지방 분권이 강화되고 민주주의가 심화되며 빈부 차이가 해소되는 발전이 뒤따라야 합니다.985171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토론회에서의 세번째 질문자는 중국에서 태어난 3.5세 교포였습니다. 질문자는 한중수교가 되기 전까지 중국에서 살며 북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제는 남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과연 두 나라의 사람들이 같이 생활 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하였습니다. 이에 스님은 현재의 대치 상황은 지배 계층의 권력 투쟁이고 이를 이해해야 한다며, 두 나라의 국민이 섞여 지내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지배 계층의 권력 투쟁을 이해한다면 현 북한의 지배 계층의 위치를 통일 한국에서도 보장해주는 방법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현 상황은 통일에 매우 유리하다고 스님께서는 분석하셨습니다. “예전 남한은 완전히 미국에 예속되어 있어 남한만의 주장을 펼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남한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현재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를 핑계를 대며 한반도 문제에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 중국에 예속될 가능성이 있는데 통일은 현재 북한이 중국에 완전히 예속되기 전 이루어져야 합니다.985171스님께서는 이를 위해 미국에서도 교민들이 할 일이 많다며 한국과 미국의 이익을 일치하는 정책을 위해 표를 행사해야 한다며 독려하셨습니다. 이어 스님의 말씀을 더 듣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다음 날의 일정을 위하여 11시 30분쯤에 토론회를 끝마치며 스님께서는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각자 개인 짐을 정리하고 나서 저녁식사를 하지 못한 분들이 많아서 추석도 축하할 겸해서 간단한 다과를 하기로 했는데 상희법우의 남편이 이태리출신인데 자기가 간단하게 파스타요리를 해주겠다고 하여 12시가 넘은 시간에 간단하게 파스타로 간식을 먹었습니다. 마티오는 듀크대학에서 에이즈백신을 연구하고 있는데 상희법우님의 통역으로 스님과 이태리의 정치, 경제, 사상등에 대해서 얘기를 하니 얘기가 끝날 줄을 모르고 깊어져서 저는 내일을 위해서 2시경에 스님께 인사를 하고 제방으로 돌아와서 하루를 마무리 하고 나니 2시30분이 되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프린스턴대학교와 뉴욕강연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듀크대학 강연스케치는 듀크대학의 배종현님께서 도움주셨습니다.
2013.9.17. 잭슨빌 강연
4시30분에 알람을 맞춰 놓았으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아침예불소리에 벌떡 일어나니 벌써 5시5분이었습니다. 한용우 거사님댁에서 함께 아침예불 및 천일결사기도를 하고 6시 10분에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였습니다. 스님강연에 참석하기 위해서 아칸사스에서 깨달음의 장 수련을 하고 난 후에 혼자서 공부를 하고 계시다는 보살님께서 새벽에 거사님 댁으로 왔는데, 어제 강연에 참석한 후에 찜질방에서 보살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후 아침기도를 함께 하기 위해서 왔는데, 함께 아침기도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면서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한 후 이번 행사를 준비한 모든 분들께 인사를 하고 함께 기념촬영을 한 후 달라스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8시30분 비행기를 타고 휴스턴 하비공항으로 간 다음에 잭슨빌로 갈아타고 가는 노선이었는데 휴스턴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 못잔 꿀잠을 잤습니다. 중부시간에서 다시 동부시간으로 변하니 1시 20분에 도착예정이었으나 도착예정시간보다 약 25여분정도 빨리 잭슨빌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최영태 거사님이 마중나와 있어 짐을 찾아서 숙소인 김성순 총무님댁에 도착하니 1시50분정도 되었습니다.nbsp 숙소에 도착하니 잭슨빌 정토법회 분들이 스님과 함께 식사를 하려고 한가지씩 음식을 해가지고 와서 준비를 해놓고 있었습니다. 작년에 잭슨빌에 오지 않아 거의 대부분 2년만에 스님을 뵙게 되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 다음, 늦은 점심으로 다함께 맛있게 공양을 하고, 스님께서는 휴식과 업무를 보시고 저도 밀린 스님의 하루를 작성하였습니다. 그동안에 묘덕법사님과 잭슨빌 정토회원들은 서로 수행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미국은 워낙 땅이 넓다 보니 워싱턴이나 LA로 가서 수련을 한다는 것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묘덕법사님과 함께 짧지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민역사가 오랜 타도시에 비해 잭슨빌은 한인 인구가 2천여명 밖에 되지 않는 관계로 정토회와 각종 부대활동이 소규모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하지만, 수행은 결국 본인을 위한 것이기에 하루 중 짧은 시간이나마 일과 사람관계에서 벗어나 본인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꼭 규칙적으로 가지기를 묘덕법사님께서 조언해주셨습니다. 아울러 그간 기회를 갖지 못했던 회원들에게 깨달음의 장, 불교대학, 경전반등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해주셨습니다.묘덕법사님과 나누기 시간후에는 거사님들은 거사님들대로, 보살님들은 보살님들대로 서로 맡은 바 일들을 챙겨서 행사장으로 출발해서, 비록 회원은 적지만, 잭슨빌 회원들은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이용해 무리없이 아주 원만하게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잭슨빌 다운타운에 위치한 에버뱅크 빌딩의 오디토리움이 오늘 스님의 강연이 있는 곳인데, 에어뱅크빌딩은 아주 높은 초고층의 빌딩으로 미국전역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곳에서 스님 강연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한 강연장은 300여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곳인데, 언젠가는 이곳을 가득 채우는 일을 잭슨빌 정토회원들은 수행과제로 삼아 현재 한인이 가장 적은 도시에 살고 있지만 최선을 다해서 늘 홍보하고 준비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스님께서 행사장에 도착할 무렵부터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한차례 쏟아졌습니다. 스님께서는 6시40분에 에어뱅크에 도착하니, 잭슨빌 한인회장과 인근의 올랜도 지역의 한인회 관계자, 그리고 잭슨빌 한인성당 신도대표등 몇분들이 와서 스님께 인사를 드리면서 한인들이 적은 도시까지 스님께서 오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하였습니다. 이곳에서도 멀리서 스님을 뵙기 위해서 오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소나기가 와서 혹시나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염려스런 마음이 들었지만, 2년 전에 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스님께서 강연을 시작하자 약 80여명의 사람들이 왔습니다. 스님께서는 모두 강연으로 자기자신을 돌아보는 수행과 참회의 마음가짐이 중요한지를 간략하게 말씀 해 주셨으며, “인생살이란 다람쥐의 삶과 같습니다. 다람쥐는 특별히 즐거움도 없고 괴로움도 없습니다. 그래서 괴롭게 살면 짐승보다 못한 삶이 되는 것이고, 즐겁게 살면 짐승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것이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으면 짐승수준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 개인 인생사, 사회적 이슈, 우주에 대한 얘기등 어떤 이야기도 좋습니다. 다만 불교 신자라고 불교 얘기 안 한다고 섭섭해 하지 마시고, 기독교 신자라고 불교 이야기 한다고 싫어하지 말고 그냥 인생얘기를 하면 좋겠습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다만 선택만이 있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질 일만이 있을 뿐이며, 옳고 그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즉문즉답이 아니고 즉문즉설이라고 하고, 좀 더 진리의 길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해 보자는 것입니다.”라고 하시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결혼 생활 10년차 아이 둘을 가진 주부께서 했는데, 육아로 인해 몸의 기력이 많이 약해져 있는데다 가정 형편도 좋지 않고 애들 아빠는 빚까지 있는 상황이고, 이전에는 친정에서 많이 도와주었는데 이제는 친정 부모님도 지병이 있으셔서 편찮으신데다 한국에 나가보고 싶어도 나갈 형편이 안되어 나갈 수 도 없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는데, 이러하다 보니 이제껏 이정도 생활밖에 하지 못했나 하는 생각에 10년 세월이 헛된 것 같고 이런 저런 상황들로 최근엔 우울증 진단까지 받아 어떻게 하면 이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 낼 수 있을지 다시 예전처럼 직장을 나가야 할지 스님께 도움 말씀을 부탁드렸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남편이 생활비를 주는지 질문자에게 물으시고, 이전에는 친정에서 가끔 도와주었지만 생활비는 잘 준다고 하시니,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지금 빚이 있어도 굶지 않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상황에 본인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문제, 우울증 치료가 먼저여야 할 것입니다.” 라고 하시면서 약물 치료와 약간의 상담이 필요하다가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가 자기 삶이 모자란다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직장 생활을 한다고 질문자가 나아지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지금 애기 엄마는 예전에 직장에 다닐때 상황이 좋았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 내가 지금은 승려를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대학 교수를 했다 라고 말을 하고 다닌다면 그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은 비록 승려지만 내가 예전에는 잘나가는 대학교수였어, 지금 현재보다 과거에 뭐했다라고 하는 것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승려에 대한 자존감, 자신감이 없다라고 하는것과 같습니다. 지금 내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식을 키우는 엄마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애 엄마만 하고 있다는 열등감을 없애야 합니다. 직장을 다니는 것은 잘하는 것이고 아이 키우는 일은 도태되는 것 같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아버지도 편찮으셔서 한국에 나가봐야 한다지만 부모님께 자주 전화 드리면 됩니다. 가 봐야 돈 받아 올 일 밖에 없잖아요. 걱정은 아버님 돌아 가실까 하는 것이 아니라 돈 받을 때가 없을 까봐 걱정하는 것 일 수도 있습니다. 엄마 정신이 건강해야 자식이 잘됩니다. 그러니 기분전환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자식 잘 돌보고 맘을 다 잡으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번째 질문은 외할머니와 갈등에 대해 젊은 여성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자는 “어릴때 외할머니께서 제게 애착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촌들과 노는 것이 좋아 외갓집에 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떠들고 놀때 저만 혼내시는걸 보고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외할아버지께서 좋아해주시고 사촌들과 노는 것이 좋아 놀러갔었는데 대학 4학년때 외할아버지께서 돌아 가시고 장지에 갔을때 너는 내리지 말라는 외할머니 말씀에 상처를 받은 뒤로는 할머니에 대한 원망에 외갓집도 가지 않고 새해인사 전화도 형식적으로 하고 할머니와 접촉을 피하고 저도 할머니께 살갑게 대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려운 가정 형편이 못마땅해 부모님을 이혼시키려 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는 저를 임신중이었고 저 때문에 당신 딸이 고생한다는 생각에 저를 미워하시는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제 연세도 많으시고 건강도 안좋으신데 외할머니와의 사이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라고 물었습니다.nbsp 그러자 스님께서는 “굳이 본인이 나서서 해결하지 않아도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다 해결될 일입니다. 예를 들어 엉덩이에 종기가 생겼는데 3년 뒤엔 저절로 사라진다는데 굳이 수술을 해서 낫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할머니는 나름 이유가 있는데 어쩌겠습니까? 딸이 맘에 안들면 그자식도 맘에 안들어요. 남편이 미우면 자식도 밉다라는 말처럼 사위가 맘에 안들면 그자식도 다 밉게 보이고, 그 자식을 쳐다보면 사위 생각이 나고, 지금 할머니의 마음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할머니의 문제입니다. 질문자가 괴로울 정도로 미워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피해의식입니다. 인간의 피해 의식은 오래갑니다. 엄마가 언니 동생 야단칠 때 야단 맞은 우리는 생각나도 엄마는 기억에 없습니다. 그것처럼 어려서 몰라서 미워했다면 그것은 내문제입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미워하는 것은 어려서는 몰라서 그랬지만 커서 그것을 알고 나면 어릴때의 기억은 있지만 미움은 사라집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자기의 유아기 상처가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지금의 31살의 마음으로 그때의 상처를 치유해야 됩니다. 질문자는 사고가 7살 그때에 멈춰 있으면 본인만 힘들어요. 어릴때의 그것을 털어야 됩니다. 하지만 법문을 듣는다고 금방 털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할머니께 참회의 기도를 하면 좋겠습니다. 해보시고 할머니와의 대면이 불편하면 아직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것이니 또 기도 하세요. 요즘은 덩치는 어른인데 마음은 자라지 않은 어린애의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세번째는 ‘해외에서 고국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라고 다소 요점이 없고 너무 범위가 넓은 얘기로 질문을 해서 질문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았는데, 스님께서는 한반도 통일과 국제정세로 이어지는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거의 한시간여동안 대미, 대중관계, 한반도 통일의 전망과 중요성등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고, 많은 분들이 처음으로 이런 관점에서 통일이 왜 한민족, 한반도에서 지상과제일 수밖에 없는지 핵심을 집어 말씀해주셨습니다. 이 답변 덕분인지 강연이 끝난 후에는 새로운 백년을 사가지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네번째로는 세시간 운전해서 온 유학생이 여러 갈래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배운 사람들의 다소 추상적인 걱정을 스님은 간단하게 두 가지로 요약해주셨습니다. 고국에 있는 부모님 걱정과 유학생활중 맺는 인간관계의 어려움, 그 두 고민에 대한 답변은 간단히 본인의 지금 자리에서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것, 즉 공부 열심히 해라로 해결되었습니다.nbsp 다섯번째 질문자는 처음에는 다소 엉뚱하게 들리지 모르는 소리로 우리 민족의 유래와 역사에 관한 다소 파격적인 질문을 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이분의 얘기를 끝까지 경청하시면서, 결국에는 환인의 한나라, 환웅의 배달나라, 단군의 조선나라의 역사까지 역사기행 강좌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사를 쭉 돌아보시며, 한민족이 다시 한단계 비상할 수 있는 시대적 과제가 결국 통일임을 세번째 질문에서 제기되었던 문제와 아울러 다시한번 명쾌하게 정리해주셨습니다. 처음에 스님께 역사강좌를 들었던 때가 2000년 봄이었는데, 그때 제가 느꼈던 감동을 오늘 강연에 참석했던 많은 분들이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은 지역신문 기자분이 이 좋은 말씀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지 못해 아쉽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자로서 일부 보수신문의 글쓰기를 비판하면서도 스님께서도 좀 더 담대하게 언론보도를 대했으면 하는 애정 어린 비판도 과감하게 던지셨습니다. 오늘은 세번째, 다섯번째 질문이 통일과 우리민족의 역사에 대한 질문이었기 때문에 이질문은 거의 스님의 통일강연과 역사강좌 시간이 되므로 아주 길게 답변을 하여 참석자들이 지루해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우를 했는데 강연이 끝나고 나서 오히려 질문자들의 강연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높았고, 새로운 백년을 사 가지고 가는 분들이 많아서 제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의 강연은 인생에 대한 즉문즉설이든, 우리 역사와 통일에 관한 것이든 어떤 것이든 참석한 분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제가 많이 피곤한지 참석자들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많이 놓쳤습니다. 세시간 여 진행된 잭슨빌 즉문즉설 강연은 시간관계상 10시가 가까워져 마무리하였고, 이후에는 책을 구입한 분들께 책사인을 해주셨으며, 멀리서 온 분들이 많기 때문에 잭슨빌 정토법회에서는 다과회를 준비하여 함께 다과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후에 행사를 준비하면서 좋았던 점, 어려웠던 점 등에 대해서 묘덕법사님과 함께 나누기를 한 후에 숙소로 돌아오니 11시 4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다시 1시 30분까지 잭슨빌을 깃점으로 플로리다 지역에서는 내년 100회 강연을 할 경우에 어느 지역에서 강연을 할지 총무님과 최영태거사님과 함께 논의를 하였습니다. 이후에 스님께 인사를 하고 제방으로 돌아와서 개인짐을 정리한 후에 2시30분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듀크 대학교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강연스케치는 잭슨빌 정토법회의 허지원 보살님께서 도움 주셨습니다.
2013.9.16. 달라스 강연 - 2부
텍사스는 유전이 유명하고, 휴스턴에는 석유회사가 많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가장 잘 사는 주 중의 하나인데 달라스로 가는 길 옆으로 밭에서 작동하고 있는 석유를 퍼올리는 기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거의 3시간 30분이 걸려서 달라스 다운타운을 지나 오늘 행사가 열리는 성 안드레아 성당에 도착하니 김도미니코 신부님과 성당 성도님들이 반갑게 맞이해주었습니다. 한편 오늘 행사를 담당한 달라스 열린법회팀에서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준비하여 스님께서는 대기실에서 신부님과 함께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바로 7시에 행사장인 성당 예배당으로 입장하였습니다. 성당을 가득 채운 청중들 사이로 법륜 스님이 온화한 미소로 입장을 하셨습니다. 청중들은 우렁찬 박수로 스님을 환영하였으며, 스님께서는 우선 강연장소를 제공해 주신 성 김안드레아 달라스 한인 성당 김도미니코 주임신부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여기에 모이신 분들이 종교를 초월해서 건강한 교류와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인사하셨고, 법륜스님의 소개영상에 이어 본격적인 스님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올해 많이 덥지 않았냐고 질문하시고 유난히 더웠던 올해 한국의 기상현상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산업화에 따른 에너지 과소비로 인한 기상이변을 말씀하신 후, 전세계적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 속에 미국과 중국이 가장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한국은 1년에 버리는 음식쓰레기가 14조원, 처리비용은 5000억원이 소요될 정도로 잘 먹고 풍족하게 사는 거 같지만 공기 오염, 수질 오염은 나날이 심각해지고 물도 돈 주고 사먹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정수기나 정화기도 생기고 무공해나 유기농업식품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과연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으며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이 과연 발전인가?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개인의 삶도 다시 되돌아 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동안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았는가? 더 자유로워졌는가? 마치 달리던 자동차를 잠시 멈추고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처럼 우리 삶도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해야 내 삶이 더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종교적인 문제를 떠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라고 하시면서 첫 질문을 받았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20대의 여성분이 하였는데, 부모님과 주변의 어른분들에게는 사랑도 받고 잘 지내는데 여자친구들하고는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꽃이 예쁘면 꽃을 예쁘다 하며 내가 좋아하면 되지 꽃에게 뭘 바라지 않듯이 친구관계는 주고 받는 장사가 아니기 때문에 남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에 개의치 말고 내 마음 그대로 좋게 대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남이 나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그의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과는 별개로 내 자신 스스로가 잘 하고 좋게 대하면 된다고 답변해 주셨습니다.nbsp 두번째는 젊은 남성분이 질문하였는데, 동성결혼으로 인해 동성 결혼 2세 자녀들의 정서적 혼란과 정체성 문제도 야기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사회적 영향을 어떻게 해석하고 극복해야 하는지 스님께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세상에는 남자, 여자,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자,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한 자 등 4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은 각자 태어난 그대로 존중 받으며 살아가야 하며 그 존재로서 다 가치가 있기에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것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뭐라 할 이유가 없으며 그런 측면에서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으며, 자녀 양육에 관해서는 아이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지에 대해 좀 더 깊은 연구와 검토가 필요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nbsp 세번째는 종교가 없는 20대 여성분이 질문하였는데, 본인은 종교가 없어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결을 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질문하자, 스님께서는 웃으시면서 해결할 수 없는 건 포기하라고 말씀하시고 ,그래도 포기를 못할 일이면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 나가면서 방법을 모색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좌절과 절망은 욕심에서 오는데 자전거를 두 번 타보고 잘 타길 바라는 것이 욕심이듯 그 욕심을 버리고 자전거를 잘 탈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계속 연습하라고 하시며 세상에는 공짜가 없지만, 난관에 부딪혔을 때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난관을 견디어 내는 힘이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신앙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네번째는 20대의 대학생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가야 할지, 군대를 가야 할지 고민이라며 스님께 질문하자, 스님께서는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지를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하고 선택을 했으면 그에 맞는 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피력하시면서 경제적 여건이 제공되고 공부를 계속 열심히 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으면 대학원을 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군대를 가는 것이라고 조언하셨습니다.nbsp 다섯번째로는 중년의 남성분이 미국에 와서 생긴 두 가지 고민이 있다며 얘기를 하였습니다. 첫째, 한국에서는 따뜻한 밥에 옷도 잘 챙겨 주던 아내가 미국에 와서는 잘 챙겨 주지도 않고 변한 거 같고, 둘째, 패션 디자인에 재능이 있어 한국에서 잘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애의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아들은 미국에서 좋은 학교에 다녔고, 또 좋은 회사에서 잘 취직해서 다녔는데, 갑자기 그만두고 내옆에 와서 빵을 만들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이에 스님께서는 우선 가부장적인 태도를 버리고 그동안 힘들어 했을 아내를 생각하며 108배 참회의 절을 하면서 아내의 마음을 이해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좋은 직장을 그만 두고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 아빠와 비슷한 상황을 거치고 있으니 아들의 입장에 서서 아들이 곁에 있는 동안 감싸 주고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을 편안히 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욕망과 욕심으로 아내와 아들을 바라보지 말고 그들의 삶에 서서 바라 봐 주는 아량이 필요함을 말씀하시면서 객석에 앉아 있던 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아내는 미국생활 17년 동안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4개의 비즈니스를 운영하느라 힘들었기에 이제는 좀 자유롭고 싶고 내 삶을 찾고 싶다고 얘기하였습니다. 이에 스님께서 미국생활에 먼저 적응해 경제적으로 자립하신 부인에 비해 남편은 과거에는 좋은 직장을 다녔지만 지금은 그만 둔 상황이라 상대적으로 의기소침해 질 수 있으니 그 점을 이해해주고 격려해 주시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여섯번째로는 미국생활 15년이 되신 여성분이 질문하였는데, 한국에 계신 친정 부모님은 연로하여 한국에 돌아와 함께 살았으면 하고, 잘 크고 있는 두 명의 자녀를 생각하면 미국에 사는게 좋고 그런 면에서 갈등이 된다고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부모님이 걱정되고 돌봐 드려야 한다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부모에게 독립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다면 미국에서 아이들 잘 키우면서 잘 사는게 효도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부모님께서 혼자 살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고민해 보아야 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라면 지금처럼 멀리 있지만 미국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게 부모님에게도 좋은 일이며 대신 여건이 된다면 한국에 가끔 나가서 부모님도 뵙고 오면서 챙겨 드리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nbsp 일곱 번째로는 미국생활이 25년 되었다는 남성분이 질문을 했는데, 이제 아이들도 다 컸고 본인은 한국에 돌아가서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싶은데, 부인은 아이들과 미국에 함께 살기를 바라며 한국에 나가더라고 부인은 서울에 살고 싶다고 해서 서로 의견차이가 나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지에 대해 스님께 질문하였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아내와 같이 살고 싶으면 자기의 고집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하시면서 부인이 한국에 가서 산다고 하면 서울주변에 살면서 텃밭을 가꾸며 시골의 삶도 함께 누릴 수 있을 거라는 절충안을 웃으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편 부인에게 108배를 3년 동안 해보면서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보라고 질문자에게 조언해주셨습니다.nbspnbsp 여덟번째로 20대의 여대학생이 대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스님께 질문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하시면서, 다만 자신의 선택에 있어서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대학교를 다니면서 첫째는 학업에 충실해야 할 것이고, 둘째는 스스로 경제적으로 자립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셋째는 자기 취향에 맞는 사람만 만나지 말고 두루두루 인간관계를 넓혀 갈 필요가 있고, 네번째는 젊음의 특징은 부족하고 서툴어도 도전해 보는데 있으니 실패를 두려워 하지말고 계속 시도해보는 노력을 기울여 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아홉번째로는, 욕심을 버려라, 자신을 내려 놓으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고 어떤 노력을 해야 욕심을 버릴 수 있는지에 대해 50대의 남성분이 스님께 질문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음식을 먹을때 과식하면 안좋은 것처럼 뭐든지 과한 것은 좋지 않으며 과하다는 것이 고로 욕심을 의미하고 욕심은 안좋은 것이니 버리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자기 고집을 버리고 남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욕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삶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내려놓으면 내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 열번째로는 미국에 온지 3년 되었고 미국인 남편을 두신 여성분이 질문했는데, 자식이 3명 있고, 첫째와 셋째는 대학원과 대학교를 다니면서 잘 크고 있는데 둘째는 마약중독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사고만 친다고 하면서 이제 남편도 정년퇴직 할 예정이라 유산분배도 고려해야 하는데 깨달음의 장에 다녀 온 후, 둘째의 거짓말이 그의 말을 믿어 주지 않는 본인 때문에 반복되는 상황으로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솔직히 마음이 가지 않고 유산도 주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님께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우선 자식에게 유산을 나누어 준다면 균등하게 주어야 하며, 가급적 본인들이 쓸 노년 자금만 남겨 두고 나머지 유산은 사회에 환원하는게 좋다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요즘엔 진정한 부모가 없다라고 하시면서 말 잘 듣고 예쁜 자식만이 자식이 아니고 사고치는 아들이라 해도 끌어 안아 주는 것이 엄마의 몫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nbsp열한번째로는 29살인 여대학생이 질문했는데, 갈수록 자신이 점점 작아지는 것 같이 느껴지고 자신감이 줄어드는데 어떻게 자신감을 회복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스님은 자신이 별거가 아니라고 가볍게 생각하라고 하시며 이상의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 차이가 크면 점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현실의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그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쳐 나가라고 조언하셨습니다.nbspnbsp 열두번째로는 최근에 자신을 내려 놓으면서 삶을 되돌아 보고 있다는 남성분이 현 대한민국에 보수세력이 집권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과거에 맞물린 시대적 오류가 아니냐는 지적을 하면서 현 정권에 대한 비난과 걱정을 하였습니다. 정치적 사안은 예민한 부분이라 청중 몇 분이 동요하였고, 그만하라고 고함을 치고 하자, 스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끝까지 들어주자고 하시며 동요하고 흥분하는 청중들을 진정시켰습니다. 질문자의 말씀이 끝나자, 우선은 누군가 이야기를 하면 그 말의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끝까지 들어 주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삶을 총체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역사적 성과는 성과대로, 과오는 과오대로 인정하고, 시정해야 할 것은 시정해 나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과거를 시시비비를 하기보다는 미래를 보며 통일과 복지사회를 위한 다음 단계를 고민을 해나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를 서로 인정하고 복지사회를 구축해 가야하며, 복지에 있어 부의 재분배를 통해 삶의 균등한 질적 향상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타협을 통해 순리대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헌법정신에 의거해서 정확히 판단해 나가는 성숙된 시민의식과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오늘 이분의 질문과 청중들의 반응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미숙하게 대응을 하는지, 의견이 다르거나 생각이 다를때 얼마나 우리가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지를 새삼 생각해 보았으며, 스님께서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식이라고 했을 때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달라스 강연에는 약 700여명이 참석하여 달라스 지역에 큰 축제와 같이 행사가 성황리에 개최되고 진행되었는데,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오자 의자를 계속해서 깔고 자원봉사자들이 정말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말씀을 하시자 많은 분들이 함께 웃고 즐거워하며 정말 유쾌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 말씀을 하는 도중에 곳곳에서 ‘아멘’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하였고, 성당에서 강연을 하니, 기독교인들이 많이 참석한 것 같았습니다. 종교를 떠나서 이렇게 좋은 말씀을 들으러 올 수 있도록 오늘 행사를 담당한 달라스 정토열린법회는 법회를 시작한지 1년이 채 못되었는대도 다섯분이 합심하여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달라스 인근에 있는 4개의 대학연합소속 학생 20여명이 함께 자원봉사를 하였고, 지난해 워싱턴 청준콘서트와 워싱턴 리더쉽아카데미에서 자원활동을 한 박동준님이 수고하여 행사를 진행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nbsp 행사를 마차자 스님의 친구분이 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하였고 또 많은 분들이 스님과 인사를 나누고 사진촬영도 하였습니다. 또한 준비한 책이 거의 다 팔릴 정도로 많은 분들이 책을 구입하여 스님께서는 책을 구입하신 분들께 일일이 사인도 해주시고 또 이번 행사를 위해 기꺼이 성당을 빌려주신 신부님께 건축헌금에 사용하시라고 헌금을 하였습니다. 또한 신부님, 수녀님, 사무장님과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행사의 자원봉사자들과 4개 대학 연합회 회장 및 학생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뒷정리를 함께 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도중에 법회가 열리는 있는 법회장소로 갔는데 법회장소는 열린법회에 나오고 있는 거사님의 태권도장의 한쪽 사무실에서 법회를 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태권도장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스님께 드린다고 예쁜 카드를 만들어서 스님을 그려놓고 법륜스님 사랑합니다 라고 적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스님과 마주하니 모두들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법회장소를 둘러보고 함께 이곳에서 기념촬영을 한 다음에 지금 여러분과 이곳이 미래의 달라스 정토회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격려해주시고 한용우 거사님 보살님과 함께 숙소로 출발했습니다. 이후에 묘덕법사님과 저는 오늘 행사를 준비하면서 좋았던 점, 어려웠던 점 등을 서로 나누면서 마지막에 취재를 하지 못한다고 한 것과 관련하여 약간의 불미스러운 상황이 생겼지만 모두들 합심하여 적은 인원으로 행사를 잘 치루었고, 또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공부가 되었다고 하여 정말 적은 인원이지만 앞으로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nbsp 일정을 마치고 숙소인 한용우 거사님댁으로 돌아오니 11시 30분이 되었고, 짐정리와 그리고 내년에 해외 100회 강연을 할 경우 이지역에서는 어떤 곳에서 강연을 하는 것이 좋을지 거사님과 함께 논의를 하고나니 1시 30분이 되어 스님께 인사를 하고 방으로 와서, 개인짐을 정비하고 나니 2시가 되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잭슨빌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nbsp 강연스케치는 달라스열린법회의 김은선, 이두라 보살님께서 도움 주셨습니다.
2013.9.16. 텍사스 A&M 대학교 강연
어제 11시30분에 취침하여 오늘은 새벽 2시30분에 기상하여 짐정리를 마치고 밀린 업무 및 스님의 하루를 작성하고 기도도 하고, 조금은 여유로운 아침을 맞았습니다. 박경원 법우님댁에서 준비한 아침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8시 20분경에 Texas AampM 대학교로 출발했습니다. 바로 부시스쿨로 가서 앤드류나찌오스 교수와 미팅을 가졌습니다. 작년에 이어서 이곳에서 두분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요즘 근황과 북한문제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앤드류나찌오수 교수는 북한 식량상황 및 아사사태에 대한 루머를 스님께 확인하였고, 스님께서는 현재 북한의 식량사정에 대해 말씀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앤드류나찌오스교수는 현재 북한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질문했고, 스님께서는 북한의 주요관심사는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개선시킬 수 있는가인데, 현재 미국의 입장에서는 남한정부의 의사를 존중해서 관계개선을 지연시키고 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고 있는 농업정책변화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교수님께 중국,미국,한국이 협력하여 북한을 옥죄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북한을 중국으로 귀속되게 만드는 결과가 있을 것이며, 북한은 중국말을 잘 안듣는데, 현재 굉장히 어려워지고 고립되어 있으므로 결국에는 중국에 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국에 북한이 예속되면 한국은 통일되기 어렵고, 그래서 우리는 북한이 중국에 예속되기 전에 남한쪽으로 통일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럴러면 미국이 너무 핵무기에 집중하기보다는 북한을 포용함으로써 미국의 포용정책안에서 핵문제를 풀어야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핵문제에 너무 집착하면 북한을 중국에 밀어주게 되고, 핵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이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북한이 미국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데 북한은 체제유지가 우선이라 공격할 힘이 없다고 하시면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포용정책이 필요함을 다시 말씀하였습니다. 또한 스님께서 교수님께 다시 워싱턴디시로 돌아가서 중요한 일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언제 워싱턴으로 돌아갈 것이냐고 질문하니, 여기가 좋다고 하면서 먼저 워싱턴에서는 조그만 집에 살았고, 그때 살았던 집보다 더 싼가격에 훨씬 더 크고 좋은 맨션 같은집에서 여기서는 살 수가 있고, 하버드나 동부유명대학을 나온 학생들은 졸업후에 더 좋은 직장을 잡을려고 하는데 이곳의 학생들은 어떻게 정부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재미가 이곳이 더 좋다고 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nbsp 진보적인 학생들은 개인의 자유로운 삶에 더 관심이 많고, 보수적인 학생들은 나라에 더 관심이 있으니 결국에는 정부는 보수적인 정책으로 갈 수밖에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진보적인 학생들이 조금만 더 공익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우리나라도 이렇게 되고 있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수님은 최근에 학교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고 하시면서 내년에 스님께서 학교를 방문하시면 한국인만이 아닌 일반학생들에게 스님께서 강연을 해주면 좋겠다고 제안하여 스님께서 그렇게 하자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 학생들을 위해서 점심시간에 잠깐 강연을 하기로 해서 급하게 인사를 하고 강연장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통역은 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박사과정의 김가영님이 자원봉사를 해주었기 때문에 스님께서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앤드류나찌오 교수님과의 미팅이 조금 늦게 끝나는 관계로 오늘 강연이 열리는 학생회관에 15분정도 늦게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 도착하자마자 참석자들이 크게 환영의 박수를 학생들이 치자, 오늘 행사를 준비한 불교학생회의 유재욱님은 박사과정 학생인데, 법륜스님께 칼촌이라 불리는 이곳 시골까지 오신 것에 대해서 스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 소개영상과 더불어 스님께서는 큰 박수와 함게 연단에 올라서 조금 전에 부시스쿨에 있는 교수님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니 늦어서 미안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 거두절미하고 살면서 있는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고 하시면서 주제에 구애받지 말고 자유롭게 얘기해보자고 하시면서 첫 질문을 받았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휴스턴에서 질문을 하였던 중년여성분으로서, 미국에서 간호학을 공부하는 간호사로서, 환자를 돌보는데 있어서 치료도 중요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기독교에서는 안수기도 같은 형식으로 환자회복에 도움이 되는 말을 전해드리곤 하는데, 불교에도 그런게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하였고, 어떤 여학생은 지금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답도 아는데, 몸이 머리를 안 따라가서 괴롭다고 하면서 스님께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19살이라는 어린 여학생은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뭔지 확실히 모르겠고, 지금 어떻게 열심히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뭔가 하기는 하고 있지만, 하고 싶은 분야도 2개 있는데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미국에 살지, 한국에 살지 그것도 모르겠다고 하면서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달려갈지 스님께 질문했습니다.nbspnbsp 또한 가정주부라고 밝힌 질문자는 기러기인데, 늦게 난 아들이 있는데 우리는 취미활동 없이 공부만 한 세대여서 본인 생각에 공부 많이 해도 별거 없다 싶어 그냥 놔뒀더니 매일 컴퓨터 게임하고만 하고 만화만 보고, 심지어 주말에는 자기 취미활동만 하겠다고 하여 어떻게 하면 정신을 차리게 할 수 있는지 불안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공지도교수가 대개 유명한데, 자기를 싫어하는 교수님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남학생이 질문하였습니다. 또한 가까운 사람중에 심한 우울증과 절망감을 겪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지 질문하는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다 소개하고 싶지만 그중에 하나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질문자는 중년 남성분으로서 몇년전에 오스틴 강연에서도 뵈었다고 하면서 이렇게 다시 스님을 만나게 되어 우선 반갑다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386세대인데, 지금 20대가 저보다 더 보수적인 것인 같아서 이해가 잘 안되고 있어 제가 이렇게 기성세대가 되는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라고 얘기를 하니 스님께서는 “20대가 보수적이라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사회에 대한 특별한 의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 386세대가 지금 20대의 부모들인데, 자기들은 의식이 있어놓고, 자기 자식들은 공부만 하라고 했으니 당연히 의식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nbspnbsp 386 세대의 부모세대는 그 세대는 밥먹고 사는 것이 엄청나게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산업화를 위해 열심히 했고, 덕분에 386세대는 밥은 굶고 살지는 않았습니다. 386세대의 경우에는 먹고 사는 것은 해결되었는데, 독재 문제가 있었으니 386세대는 민주화운동을 했습니다. 지금의 20대는 산업화나 민주화 운동이 별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들에겐 이건 그저 지나간 얘기처럼 들립니다. 문화가 달라졌고, 현재는 당면한 사회적 문제가 없으며, 경제적 풍요로움 속에서 편안하게 자랐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위해 자기가 투쟁해야겠다는 의식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의식이 있는 사람은 10명에 12명꼴 정도이며, 8명정도는 무관심합니다. 또한 특별한 사회적 의식이 없으니 누가 뭐라하면 상대적으로 쉽게 동조하는 성격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 정치권에서 북한인권문제 같은 이슈를 주로 보수쪽에서 주도해서 이야기하고 진보쪽에서는 상대적으로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20대가 보수에 동조하는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보수세력화한 것으로 보일수있으나, 제가 봤을 땐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3040대보다는 20대가 보수적 성향을 가진 것 같기는 합니다. 이렇게 20대 보수층이 늘어난 것은 사회 변화에 따른 하나의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nbsp 20대가 볼 때 40대는 꼰대처럼 보이고, 말만 진보지 행동이 진보적인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환경문제, 국제구호, 평화, 인권문제 같은 쪽에서 실제적인 활동을 진보적으로 한다면 젊은이나 청소년들에게서 많은 동조나 지지를 받을 수 있지 않겠냐 하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답변을 하자, 질문자는 자기가 굉장히 좋은 질문을 한 것 같다고 하면서, 스님께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386세대들이 민주적이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이 가슴에 와 닿는데, 그렇다면 가정에서 민주적인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질문했습니다. “민주화 학생운동이 사실 민주적이지 못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독재와 싸우려면 이쪽도 비밀을 지키고 해야 하니까, 언더라고 하는 지하그룹이 따로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민주화를 주장하지만 민주화가 되지 못한 현실적 한계가 분명 있었고, 현재의 정치인들이 민주적이지 못한 행태는 거기에서 나온 것 일수도 있습니다. 민주화 운동의 리더십이라는게 비타협적 투쟁을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가능한 한 오픈하고 민주적으로 결정해야 하는데, 인간이라는게 살아온 습관이 있으니까, 습관대로 하다보니 지금 젊은이 세대가 봤을 때는 존경할만한 민주적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정의였어도 지금 보기엔 정의가 아닐 수 있으니, 지금은 변화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때엔 산업화나 민주화가 필요했었고 독단적이고 소통 없는 리더십도 통했었지만, 이제는 여러 의견을 다 수용해서 넘어서는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여러 의견을 통합하고 쌍방 타협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양 정치세력을 보면 보수는 이미 지나간 산업화를 다시 이야기하고 있고, 진보는 거기에 저항할 뿐입니다. 그래서 지금 세대에게 외면받고, 새로운 정치적 지도자에 대한 열망이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발전해서 북한이 우리 정치를 받아들여야 할텐데, 반대로 역행하고 있는 것 같으며, 화해와 협력으로 가기보다는 선군정치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국사람으로서 어떻게 함께 극복해 가겠는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공로를 각각 인정해주고, 그 이후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에서도 아이들에게 무조건 아빠 말 들어라고 하는 것은 민주적인 것이 아닙니다. 부부지간에도 아직은 가부장적인 것이 몸에 배어 있는데, 이런 것도 개선되어야 합니다. 성장이나 소유의 확대에 치중하기보다는 환경에 대한 인식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단일민족으로서 차별을 당하면서도 또 다른 민족을 차별하는 민족입니다. 인종민족적인 것을 뛰어넘는 자세가 필요하고, 이렇게 인식을 변화시켜야만 진보가 됩니다. 그리고 진보는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가 줘야 합니다. 또한 보수는 무조건 옛날을 움켜지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계승해 나가면서 점진적 변화를 해나가자는 입장을 뜻하므로 전통적 가치에 대한 맹목적인 옹호는 보수라고 할 수 없습니다.nbsp 현재 우리의 경우에는 보수나 진보나 둘다 제대로 자리가 잡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수적인 사람은 대화가 되는 합리적보수로, 진보도 자기만 옳다는 식의 단결투쟁을 할 것이 아니라, 타협도 하고 포용도 할 수 있는 융합하는 그런 진보적 세력이 등장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것은 가정과 학교에서 훈련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서로 대화하고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나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시험과 성적에 따라 줄세우는 환경에서는 이런 훈련을 하기가 힘들고 창조적 사고를 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창조라는 것은 사상적인 자유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융합속에서 창조가 일어납니다. 물론 압박당하는 상황에서도 창조가 나올 수 있지만 그 효과는 미비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로 모방을 많이 했던 지난 1세기 동안에는 압축성장이 가능했지만, 이제 우리의 수준이 서구와 비슷해진 이 시점에서, 이런방식으로는 더 이상의 성장은 힘듭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며, 과거처럼 미국에서 학위 받는다고 앞으로 30년 보장되는 그런 일이 이제는 불가능합니다. 질문자부터 이제 아이들을 방치하라는 것이 너 맘대로 하라고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어릴때부터 가정의 일원으로 참여시키며 키우라는 것입니다. 가정에 힘든일이 있으면 어려운 점을 서로 이야기해서 함께 나누고, 아이들의 협조를 구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그렇게 하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키우지 않으면 어렵게 키워도 애들이 부모의 어려움을 알지도 못하고 당연히 그렇게 된 줄 알 수도 있습니다.” 라고 스님께서 말씀하시니, 질문을 한 질문자가 스님께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nbsp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강연을 하다 보니, 다른지역에 비해서 1시간 30분동안 짧은 강연을 하였습니다. 이곳은 미국에서 한국유학생이 많은 대학중의 하나인데 약 85명정도가 강연에 참여했는데, 대부분이 유학생이었고, 한 10여분정도가 인근지역에 살고 계신 분들이 스님을 뵙기 위해서 찾아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학생들과 강연장을 찾은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시고 같이 사진촬영도 함께 하였으며, 달라스로 출발하기 위해서 함께 뒷정리를 하고 또한 이번 행사에 자원봉사를 해주신 학생들과 기념촬영도 하고, 특히 행사장소 빌리는 것에서 부터 많은 수고를 한 유재욱 학생에게는 새로운 백년을 선물하기도 하였습니다.nbspnbsp 오늘은 점심먹을 시간이 없었는데 스님께서는 달라스로 출발하기에 앞선 행사장에서 학생들이 준비해 온 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휴스턴에서 함께 온 박경원 법우님과 이원자 보살님께 수고했다는 감사 인사를 드리고, 또 학생들에게도 수고했다고 격려하고 내년에 보자고 하면서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달라스에서 우리를 태우러 오신 달라스 열린법회 한용우 거사님 차를 타고 3시가 넘어서야 달라스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강연스케치는 텍사스 AampM 대학교 강문정님께서 도움 주셨습니다.
2013.9.15. 휴스턴 강연
오전 4시 30분에 기상하여 짐정리를 마치고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후에 6시에 공항으로 출발하여 8시 10분 휴스턴행 비행기를 타고 휴스턴 하비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찾아 숙소로 도착하니 10시가 되었습니다. 숙소인 박경원 법우님 집에 도착하니 경원법우님 아내와 애기들인 상민이, 상윤이가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특히 상윤이는 5살인데, 4번째 스님을 보게 되니 스님을 많이 기다렸다고 하면서 흥분하고, 자기방에 스님께서 주무신다고 아주 좋아하였습니다. 식구들이 다같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스님께서 안부도 물었습니다. nbsp 휴스턴은 중부시간이라 한시간 늦어지니 실제로는 동부시간으로는 11시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강연이 4시에 있으므로 이른 점심을 먹기로 하여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에 상윤이는 동화책을 가지고 와서 스님께 어떻게 하면 동화책에서 소리가 나는지 가르쳐주기도 하고 스님께서는 한참을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상민이와 놀았습니다. 10시 30분경에 식사를 하고 저는 스님의 하루를 작성하고, 스님께서도 업무를 보시고, 묘덕법사님께서는 11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오스틴 열린법회팀들과 마음나누기 수련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오늘은 일요일인데, 휴스턴 날씨가 아주 좋았습니다. 보통 미국에 있는 대도시의 경우 한인들이 한 두 곳에 모여 사는데 비해 휴스턴은 다른 도시와는 달리 크기 자체가 매우 큰 도시인데다 한인의 숫자도 많지 않고, 또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어 홍보에도 조금 어려움을 겪었다고 자원봉사자들이 많은 분들이 오실 지 걱정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212석 좌석을 마련했는데 스님께서 3시 40분 즈음에 강연장에 도착하셨고, 4시가 되어 법륜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즐거운 환호와 박수로 법륜스님을 맞이하는 사이 좌석이 거의 들어찼습니다. 웃으시는 얼굴로 강단에 서신 법륜스님은 기조연설로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잘 사는 우리의 삶이, 오히려 이상기온이 심해지는 등, 우리 삶을 파괴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맑은 물과 공기를 잃어버리고 정수기와 공기 청정기를 달아놓고 예전보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현재가 정말 ‘잘’ 사는 상황인지, 이 길이 지속가능한 길인지, 어떤 미래가 펼쳐질 지 예측을 해보고 점검을 해봐야한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또 청중들에게 어렸을 때 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몇 명인지 물어보셨는데, 10명도 채 안되는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스님께서 휴스턴이 유독 살기 힘든가보다 하시는 농담에 모두들 크게 웃었습니다. 200여명의 청중중에서 10명도 채 되지 않는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삶이 어릴때보다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우리의 삶도 지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법륜스님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현재 우리의 상태 그대로에서 우리의 마음상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하시며 첫번째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 첫번째 질문자는 결혼한 지 25년만에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이혼 후 10년간 혼자 살다가 현재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이 사람과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았습니다. 스님은 질문을 들으시고, 단박에 그런 길은 없다고 하여 사람들에게 유쾌한 웃음을 주셨습니다. 현재와 같은 마음으로 살면 현재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예전 남편의 좋았던 모습들이 계속 생각날 수 있으니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즉 이 사람과 영원히 사랑하고 지내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고, 그냥 이 사람과 있어서 좋고, 3일을 있든 5일을 있든 같이 있어줘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전 남편에게도 그동안 같이 살아줘서 감사하고, 잘하지 못한 지난 날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날을 감사하고, 내 자신을 반성하는 마음을 내면 전남편과 현재 만나는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현재 만나는 사람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그것이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nbspnbsp 두번째 질문자는 스님이 속세에 계셨다면 어떻게 사셨을 지, 어떤 삶을 살았을 지, 그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았는데, 스님은 명쾌하게 현재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가정하고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스님께서는 원래 스님이 되고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고,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결국 스님이 되었고 그런데도 잘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한가지 스님의 장점은 융합적 사고를 하는 것인데 그래서 다른 종교와도 잘 통하고 결국 종교간의 소통과 화해도 이룰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nbspnbsp 세번째 질문자는 워킹맘으로 남편은 한국에 있고, 휴스턴에 아이와 함께 머무르고 있는데, 아이도 잘 키워야하고, 미국에서 적응도 해야 하고, 일도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가끔씩 화가 울컥하고 눈물이 난다며 지쳐가고 있는 마음에 어떻게 해야 끝까지 잘 해낼 수 있는 지를 여쭤보았습니다.nbsp 스님께서 질문자에게 단호하게 꾸짖으시며 현재의 비정상적인 삶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미래를 말씀하셨습니다. 옳다고 믿으며 고생고생해서 살고 있는 현재의 삶으로 인해 망가질 수 있는 생활들, 예를 들어 남편이 바람을 피게 되어 망가질 수 있는 부부생활, 아이에게 공을 들인다고 했지만 제대로 애정을 쏟지 못해 아이가 비뚤어질 수 있는 경우, 고생해서 자기의 성공을 이뤄냈지만 망가진 건강으로 인해 전공을 펼칠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하시며, 이런 경우 지금 자기의 삶이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라고 하셨습니다. 현재의 삶은 그러한 위험 부담을 안고 가는 삶이라 하시며 질문자의 현재 삶이 남편의 아내로서, 아이의 엄마로서는 부족한 삶임을 인지하고 그것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결과에 대해서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어야 하며, 남편과 아이에게는 부족한 사람임으로 항상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야지, 스트레스를 받는다던지 삶이 힘들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 그다음 질문자는 박사과정 학생으로 프로답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친구들과 교수님들과의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하였는데, 스님은 애처럼 굴었음을 자각했으면 어른처럼 행동하면 되는 것이지 질문에 모순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마음은 즉, 이성적으로는 자각을 하고, 노력을 해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실제 마음은 노력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좋게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소위 공짜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한 것이라고 하시며 우리가 노력한 만큼 얻고, 자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면 그 부족한 것을 어떻게 보완하고 극복할지를 생각하고 노력해야 하며, 요행을 바라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nbsp 다섯번째 질문자는 남편과 함께 미국에 나와 있다 2년후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현재 아이들과 5년째 남아있는 기러기 엄마로, 아이들을 위해서 어떤 미래를 선택해야할 지를 여쭤보았는데, 스님께서는 지금 남아있는 현재의 상황이 아이들의 교육을 앞세워 본인 스스로가 미국에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초래된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의 교육 때문이 아니라, 나의 마음 때문에 눌러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나오는 과보들은 모두 나의 업보 때문이니 아이들에게 책임전가를 해서는 안되며, 아이들과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살아야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사는 삶이 최선이며, 그렇게 하지 못할때는 나의 선택으로 인한 부족함들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야한다고 하셨습니다.nbsp 그 다음 질문자는 직장인으로 특별한 문제없이 살고 있고, 직장이나 집안에 이런 저런 일이 있어도 잘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고 문제없이 살고 있는데, 가끔 아무런 감정 없이 있는 본인이 괜찮은 건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스님은 웃으시며 감정이 없는 것 같이 느끼는 것도 감정이 있으니까 그런 것이라고 하시며, 죽었으면 그런 것을 느낄 수 없다고 하시며 좋게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아픈 마음, 통증 또한 나쁜 것이 아니라 통증이 있어야 처치도 할 수 있으므로 그 정도는 있어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nbspnbsp 이어지는 질문은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괴리감을 느낀다며, 한 직장의 직원으로, 남편의 아내로, 시댁의 며느리로, 집안의 딸로서 부담을 느낀다고 하였는데, 이 질문에 스님은 명쾌하게, 아내 아닌 사람 없고, 며느리 아닌 사람 없고, 딸 아닌 사람 없는 것이라고 하시며, 그냥 평범한 삶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피곤하다고 느끼는 것은 뭔가 하기 싫은 마음이 있기 때문인데, 바쁘다 생각하지 말고 그것 자체가 살아가는 것이니 그런 속에서 나오는 즐거움을 느끼라고 하셨습니다. 여덟번째 질문자는, 법륜 스님이 지난번 휴스턴 강연에서 ‘우리 모두 선글라스를 벗듯이 무지에서 벗어나라’ 하셨는데, 그러면 예를 들어 ‘벽 색깔이 하얗다면 그 무지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모두 하얀 색깔을 보게 되는지’등 여러가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스님은 빨간 안경을 낀 사람이 흰 벽을 볼 때, 안경을 껴서 빨갛게 보인다는 것을 인식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라고 하시며, 내눈에 빨갛게 보인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파랗다고 하면 틀린 것이 아니라 저 사람 눈에는 파랗게 보이는 구나라고 접근하면 되고, 옳고 그름의 분쟁이 아니고 이해로 가야한다고 하셨습니다.nbspnbsp 그 다음 질문자는 박사과정 학생으로 미팅이나 시험 전에는 벼락치기로 공부가 잘 되는데 평상시에도 벼락치기 효율처럼 잘 되는 질문을 물어보자 청중들도 모두 웃었고, 스님께서도 명쾌하게 그런 것은 없다고 하시며, 벼락치기를 잘 하면 시험을 자주 보는 것이 답이라고 하셔서 또 한번 크게 웃었습니다.nbspnbsp 열번째 질문자는 공부를 업으로 삼고 싶은 박사과정 학생인데, 공부만 하다보면 몰입을 하게 되어 일상생활을 잘 할 수가 없는데, 친구들과 모임도 하고 싶고, 밥도 혼자 먹고, 연애도 못하게 되어 조화롭게 사는 삶을 여쭤보았습니다.nbspnbsp 이에 스님은 욕심을 내서 그렇다며 본분을 지키는 게 중요하고 여유가 생기면 다른 것도 하면 좋은 것이라 하셨습니다. 스님을 예로 드시며, 스님이 불경도 못 외면서 구호활동만 하고, 사회활동을 하면 활동가이지 스님이 아닌 것 처럼 자기 전공을 충실히 하고, 전공 문제에 대해서 남들에게 조언할 정도는 되고, 그 다음에 여유가 되면 다른 걸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3시간 연구하는 것 보다는 2시간 반을 연구하고 30분 휴식을 하여 그 다음 연구의 효율을 높이게 되면 그 30분이 연구의 연장 선상인 것처럼, 중간에 사람들과 만남을 가질 수도 있고 같이 식사를 할 수도 있고 이런 모임과 휴식을 연구의 효율을 높이는 데 사용하여 연구의 연장선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nbsp 질문자들이 많아 스님의 강연은 두시간 반이 훌쩍 넘어갔고, 이어지는 11번째 질문자는 한국에 있는 8살 어린 여동생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이쁘고 발레를 계속하던 여동생이 어느날부터 그만두고, 술담배를 많이 하고 매일 새벽 늦게 들어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동생과 어떻게 소통을 해야하는 지를 여쭤보았는데, 이에 스님은 20살이 넘었으니 부모나 언니가 간섭할 권리가 없으며,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부모와 언니가 이해를 못해주니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하시며, 자신의 능력으로 자기 살길을 살고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으며, 걱정되어서 말해주는 것은 괜찮지만, 동생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습니다.nbsp 세시간이 다되어가는 강연 끝에 마지막 질문자는 시민권자와 결혼하여 6개월전에 휴스턴으로 온 상황인데 영주권이 1년간 나오지 않고 있어 집에서 놀고 있고, 공부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스님은 ‘팔자가 좋다’고 하시니 모든 청중이 크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스님의 말씀은 지금 놀 수 있을 때 놀아야 한다. 그리고 10년 넘게 불법체류를 해가며 영주권을 받기 위해 저 임금으로 고생해서 사는 사람들이 숱한데, 그런 상황에 비하면 행복한 상황이니 즐겁게 받아들이고, 영주권이 안나와서 공부를 못하고 있어 힘들다고 하면, 학교 가기 전에 미리 책을 사서 공부를 하면 될 것이라는 명쾌한 답을 내려주셨습니다.nbspnbsp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이곳에 불교신자들이 있으니 즉문즉설의 원리를 조금 설명해주시겠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벽색깔은 각자의 업식, 과거의 살아온 습관에 의해 투영이 되어 인식이 되고 보일 뿐이지 실제로는 빨간색도 아니고 파란색도 아닙니다. 이것을 ‘공’이라고 하며, 공이란 다른 말로는 ‘다만 그것일 뿐이다’라고 말하며, 예를 들면 ‘똥은 오물도 아니고 거름도 아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와 같이 ‘똥은 똥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우리의 생활속에 있는 것이며, 제법은 공하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현실속에서 살아가므로, 현실속에서 우리가 안경을 끼고 살 수 밖에 없으므로 갈등이 생길 수 있지, 내눈에 빨갛게 보인다고 빨갛다, 내눈에 파랗게 보인다고 파랗다라고 하지말고 내눈에 빨간 것임을 인식하면 그것은 내 업식을 인정하는 것이며,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의해서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고 다 내 주관인데 이것을 일체유심조라고 합니다. 마음의 작용, 원리에 대해 이해하고 실천하게 되면 마음이 여유로와지고 밝아지고 가벼워지므로 인생의 행복, 자유는 답답함이 해결되어 지는 것이니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시며 3시간 가까운 강연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은 마무리되었고, 이후, 스님은 책을 구입한 모든 분들께 일일이 책에 사인을 해주시고, 사진도 함께 찍어 주셨습니다.nbspnbsp 그 사이 자원봉사자들은 강연장에 설치한 기기와 포스터들을 모두 마무리 하였고, 함께 단체사진을 촬영한 후에 식사장소로 이동하여 함께 식사를 하며 자원봉사자들에게 적은 인원으로 행사를 한 것에 대해서 수고했다고 격려해주었다. nbsp 저녁 식사 후에는 휴스턴 강연을 준비한 박경원법우님과 이원자보살님등 6명의 휴스턴 열린법회팀과 구진영 보살님,정민규 법우님등 6명의 오스틴 열린법회팀등 총 12명이 함께 묘덕법사님과 함께 공감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이번 행사는 인근지역에서 열린법회를 하는 두지역의 법회에서 팀원들이 합심하여 행사를 준비하였는데 이번 행사에 대한 느낌, 좋았던점, 아쉬운 점등을 나누기를 통해 서로 공유하였고, 내년의 더 멋진 행사를 위한 다짐들을 한 뒤 헤어졌습니다. 그 시각 다시 오스틴으로 돌아가려면 3시간은 족히 운전을 해야 하는데, 다들 조심해서 가라고 인사하고, 저희들은 10시가 되어서야 숙소로 출발할 수 있었고, 숙소에 도착하니 10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뒷정리를 하고 피곤해서 스님의 하루를 작성할 수가 없어서 11시 30분에 비교적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Texas AampM 대학교와 달라스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nbsp 강연스케치는 휴스턴열린법회의 이현정 법우님께서 도움주셨습니다.
2013.9.14. 애틀란타 강연
새벽 1시 30분에 취침하여 오전 4시에 기상해서 애틀란타로 가지고 갈 짐을 다시 정리하였습니다. 5시에 식사를 하고 5시20분에 출발하여 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마치고 무사히 7시 10분에 출발하는 애틀란타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어제밤에 스님께서 요 며칠사이에 계속 공항 에피소드가 있으니 오늘 조금 일찍 출발하자고 하여 숙소에서 20분거리에 있는 공항으로 5시 20분에 출발하였습니다. 오늘 공항까지 스님을 태워주신 분은 이곳에서 20년째 살고 계시는 거사님이신데, 고속도로에서 공항으로 빠지는 출구가 공사로 인해 막혀있고, 이 고속도로선상의 모든 출구가 막혀있으니 갑자기 당황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자동차 두대에 나눠서 타고 있던 저희들은 모두 하일숙 보살님차로 옮겨타고 공항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네비게이트는 유턴해서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가는 길로 계속 안내하기 때문에 아이패드를 꺼내 직접 지도를 보면서 공항으로 가는 길을 찾기로 하였습니다. 지도법사님께서 아이패드에 나타난 지도를 보면서 운전자에게 길을 일러주니 겨우 고속도로가 아닌 로컬도로를 따라 공항으로 가는데 공항을 가리키는 사인판을 보니 반갑기 그지 없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해서 오늘도 고비가 있었다고 하면서 함께 웃으면서 저희들 바래다 주신 콜럼버스 신도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저희는 탑승대로 들어왔습니다. 미국동부에서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애팔라치안 산맥이 있는데, 애틀란타는 이 애팔라치안 산맥의 가장 끝자락인 남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애팔라치안 산맥을 따라 구름이 덮혀져 있었는데 마치 눈덮힌 것처럼 보여서 이색적인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9시에 애틀란타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아 10시에 오늘 저희가 묵을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서 12시정도까지 오늘 행사에 대해 서로 의논을 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은 애틀란타에서 열린법회를 열고 있는 팀들이 준비를 하는데 이분들은 처음 자원봉사도 하고, 이런 행사도 처음하게 되니 여러가지로 질문도 많고 걱정도 많았던가 봅니다. 그렇게 1차팀이 행사장으로 떠나고 스님께서는12시30분에 조지아대학교에서 현재 교수로 재직중인 박한식교수님과 점심약속을 했습니다. 박한식교수님은 북한문제를 연구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해 미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시는 노교수님이십니다. 법륜스님께서 애틀란타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에는 꼭 스님을 만나서 여러가지 얘기를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미팅이 성사되었는데, 74세의 노교수님은 사모님과 함께 애틀란타에서 1시간정도 떨어진 곳에서 직접 운전을 하고 오셨습니다. 오늘 스님강연도 듣기 위해서 오늘 일정을 하루종일 비웠다고 했습니다. 1시무렵에 교수님께서 오셔서 두분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점심을 예약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식사를 함께 하였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우선 이렇게 여기 애틀란타에서 스님을 볼수 있게 되어서 무척 기쁘다고 하셨고, 스님께서는 교수님께 새로운 백년을 선물했습니다. 이곳에서 열린 법회팀이 처음 행사를 준비하기 때문에 점심식사 후에 저희는 바로 행사장으로 이동을 하였고, 스님께서는 교수님과 얘기를 나누시다가 강연시간이 되어서 교수님과 함께 행사장으로 오셨습니다. 행사는 Northview 고등학교 오디토리움에서 하였는데, 어느 대학 극장보다 더 좋은시설을 갖추어 놓았습니다. 이 학교에는 한국인 재학생들이 많고, 또 한국문화반이라는 동아리가 있어, 이 동아리 학생들이 모두 자원봉사를 하고, 한국인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행사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멀리 미시시피, 테네시, 알래바마, 몽고메리등 애틀란타 이외의 지역에서 오신 분들이 봉사신청을 하여, 실제 열린법회팀은 7명이지만,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30명이 넘었습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차성호 거사님 집에 설치된 프레스기를 이용하여 희망티셔츠도 넉넉하게 만들어서 자원봉사를 하는 모든분들에게 다 나눠주니 행사장에 활기가 넘치는 것 같고 또 좋아보였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여 배너도 함께 달고, 스피커와 마이크테스트도 함께 하고, 준비를 처음부터 함께하여 저도 현장에서 행사에 차질이 없도록 함께 준비를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여 4시가 거의 되자 400여명이 참석하였는데, 총 450여명이 오늘 강연장에 왔습니다. 외국인과 결혼하여 남편을 모시고 오신 분들이 2분이나 자원활동으로 참가하여 이 또한 색다른 모습이고 보기 좋았습니다. 애틀란타에서는 총 9분이 질문을 하였고, 그 중에서 74세 된 어르신과 스님의 대화는 강연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정말 재밌고 유익하고 즐겁게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첫번째 질문자는 아들에게 다른 사람에게 베풀 줄 알고,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 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문의했습니다. 또한 딸과 아들을 두고 있는데 딸은 그렇지 않은데 아들은 아빠를 닮아서 그런지 베풀 줄 모르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nbsp 그러자 스님께서 자기가 낳고 자기가 키웠는데 누구를 닮았겟습니까? 지금 질문자의 자세부터가 남에게 배풀고 배려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딸은 자기를 닮았다고 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닮았다고 하니, 좋은 것은 자기 닮고 나쁜 것은 남편 닮았다고 하니, 이것부터가 베풀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베푸는 마음은 잘된 것은 아빠 닮고 못된 것은 나를 닮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들이 엄마 닮았네요. 라고 하니 첫 질문부터 반전이 나와서 그런지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러면서 스님께서는 맹모삼천지교를 얘기하면서 베풀어라 뭐해라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이 베푸는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할 지를 질문했는데, 스님과 질문자의 대화속에서 결국은 엄마가 남편한테 열린마음을 먼저 내어야 아이도 변화가 올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남편한테 깊은 참회의 마음을 내고 참회를 해야 한다고 설명해주셔서 질문자의 질문과는 전혀 상반된 답변 같아 보였지만,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두번째로는 외국인 남편과 함께 와서 질문을 한 50대 중반정도의 중년 여성이었는데,nbsp백인남편과 결혼한 지 30년이 되었고, 본인은 천태종 가정에서 독실한 불교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반면에 남편은 독실한 침례교 집안인데, 남편이 결혼하고 나서 20년전에 불교로 개종을 하고 나니 시부모님이 질문자보고 자꾸 남편을 훔쳐갔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것은 다 봐줄테니 종교만 옮기라고 하고, 질문자도 자기 신앙이 있으니 자꾸 이런 말을 하니 시부모님을 만나기가 불편하고 시댁에 가기 싫고, 본인도 싫어하니 결국 아들도 할머니, 할아버지 한테 가는 것을 싫어한다고 질문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리고 종교만 옮기라고 하지만 제맘속에는 기독교에 대한 거리감이 오고, 마음이 따라가지 않고 있고, 지금도 시부모님은 천당과 지옥을 얘기하면서 종교를 옮기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스님께 질문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985170지옥에 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내가 지옥에 가면 나한테 부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므로 내가 도와주어야 할 일이 많으니 수행자에게는 좋은 일입니다. 천당에 가서 할일없이 빈둥빈둥 놀면 심심할 것이니 고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착하게 살아서 내가 지옥에 안갈 수 있고 천당에 갈수 있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서 나는 지옥에 가겠습니라는 마음으로 지옥에 간다면 그것은 더이상 지옥이 아닙니다. 그리고 시부모님께는 알겠습니다 라고 하면 되고, 걱정이 되어서 얘기해준다고 하면 늘 걱정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감사랍니다. 라고 하면 됩니다. 시어머니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주면 됩니다. ‘어머니의 신앙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신앙의 자유가 있으니 내 신앙을 바꾸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계속 말씀을 하시면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라고 하고,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인정해주면 됩니다. 그러면서 ‘어머니, 저는 예수님의 용서의 정신,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면서 살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그분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질문자의 그런 마음은 불교신자의 마음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나를 걱정해주는 것을 듣기 싫다고 하면 불교인이 아닙니다. 절을 하면서 ‘어머님 당신 아들을 빼앗아 가서 미안합니다. 좋은 아들 낳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 하면 좋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마음을 내고 90세 된 어머님의 마음을 받아주지 못하는 참회의 마음을 내면 됩니다.985171라고 자상하게 말씀을 해주셔서 종교간의 갈등이 있는 집안에서 어떤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세번째는 화초를 많이 가꾸고 있는데 화초를 가꾸다가 마음속에서 펑하는 에너지가 나오는 느낌이 들면서 시기하고 질투한 자기 모습이 보여 식은땀이 낫다고 하면서 이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질문했고, 네번째 30살 된 대학원생은 작년에 결혼을 했는데, 아내도 대학원생이고, 직장생활도 잘하고 싶고, 학교생활도 잘하고 싶은데 시간이 모자란 것 같아 평소에 마음이 불편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리고 현재 이상태에서 아이를 가져야할지등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결혼을 했으니 상황이 더 복잡해졌는데, 상황이 복잡해졌으니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더 열심히 집중해서 살면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아이를 준비해서 낳을 수는 없지만, 아이가 생기면 낳는 대신에 낳으면 책임을 지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대개 우리는 일이 많아지면 복잡해서 하기 싫어하고 한가지만 선택하고 싶어하는데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하여야 하면 더 열심히 집중해서 살아야 함을 알수 있어서 저는 좋았습니다. 다섯번째 질문자는 오분거리에 살고있는 언니가 놀부심보인데, 아버지가 형제간에 우애있게 살라고 해서 안보고 살수도 없고, 언니를 미워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에 대해서 질문을 했는데, 이분께는 절은 자기의 머리를 상대의 발밑에 두는 것이고, 숙이는 것의 몸의 표현이 절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마음이 숙여져야 몸이 숙여지는 것인데, 몸을 억지로라도 숙여서 마음을 숙이는 연습을 해보라고 해서 이부분만 보면 참 뜬금없는 답변같았지만 현장에서 스님과 질문자의 대화속에서 이같은 말씀을 해주시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습니다.nbsp 여섯번째 질문자는 남편의 불륜을 큰아이가 알게 되었고, 남편에게 아이들에게는 최소한 이것을 보이지 말아야 할 것 아니냐고 하니 남편이 다 먹고 살기위해서 한 것이라고 하며, 상관하지 말라고 하니 자존심도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그러던차에 스님께서 오신다는 것을 알고 질문하러 왔다고 하면서 아들이 본인의 성격을 닮아 소심하고 숫기가 없어 걱정이라는 분의 질문이었습니다. 일곱번째는 종교에 관한 질문이었는데 스님께서는 신의 아들,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에 대해서 자상히 말씀하셨는데, 스님과의 대화 후에 이분은 스님은 종교얘기보다 삶의 얘기를 해주어서 침 좋다고 하여 청중들이 모두 큰 박수로 환호하였습니다.nbsp 그리고 결혼 7년차인 주부가 아직 아기가 없어서 고민이라고 하니 어떤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스님께서 자상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nbsp 오늘의 거의 마지막에 나오신 분 거사님이 오늘 즉문즉설의 백미였습니다 모든 분들이 빼꼽을 잡고 웃었고 이보다 더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질문자는 74세의 어르신이었는데, 며느리와의 갈등이 있어서 여기에 나왔고, 3년전에 며느리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며느리가 한국에 잠시 나가게 되었는데 가끔 아들집에 가서 보니 집이 너무 지저분하고 더러워서 5일 동안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였더니 며느리가 돌아와서 남의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하면서 3년전부터 며느리가 오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을 하며, 전화도 안 받고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하는데 말도 없고, 지금은 집도 팔고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번호도 안가르쳐 주어서 아들집을 방문하고 싶어도 방문할 수가 없어서 한번은 아들이 올때 까지 아파트 주차장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아들을 만나서 함께 들어가고 싶었는데 며느리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그냥 왔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스님께 하소연 하듯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그냥 놔두라고 하시면서 며느리가 열쇠를 주면서 그냥 가끔 와서 우편물을 챙겨주고 집에 도둑이 드는지 살펴봐 달라는 것이었는데 집에 들어가서 함부로 청소를 한다면서 남의 물건을 옮기면 안된다고 하자, 어떻게 집이 더럽고 지저분한데 청소를 안 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계속 스님과 실갱이를 벌이자 스님께서는 여러차례 설명을 해도 질문자가 고집을 하자, 그럼 배심원들의 판결을 한번 들어보자고 하시면서, 이런 경우 청소를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자 거의 대부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또한 스님께서는 질문자는 현대 여성의 편에서 보면 골치 아픈 시아버지라고 하니, 질문자가 전혀 동의를 하지 않자 또다시 스님께서는 배심원 판결을 한번해보자고 하면서 이분이 골치아픈 시아버지라고 생각하는분은 손들어보라고 하자 절대다수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자 이분께서 한사람이 손을 안들었는데 우리 아내네요. 라고 껄껄웃으셔서 다시 한번 우리가 박장대소를 하였습니다. 이분은 위트가 있어서 스님과의 대화가 아주 재미있어 보는 저희들이 다 즐거웠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시아버지가 자꾸 아들, 며느리의 삶에 간섭 하면 결국에는 아들을 이혼시키는 것이 된다고 하면서 아들과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이런 마음을 내야 한다고 하니, 질문자는 스님께 머리숙여 인사하면서 감사합니다. 라고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거의 3시간에 걸친 유쾌한 즉문즉설 강연시간이 끝났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7시부터 스님께서는 약 30분간 책에 사인도 해주시고 사진촬영도 해주셨습니다. 오늘 여기서도 많은 분들이 스님의 강연에 감동을 받았는지 준비해 간 책이 완전히 판매되었고, 미네아폴리스에서 남은 책을 가지고 왔는데도 더 이상 책이 없어서 판매할 수 없게 되어 아직 사고 싶은 책을 사지 못한 분들이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이렇게 행사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자원봉사를 해준 한국문화반 고등학교 학생들, 지도선생님과 함께 사진촬영을 하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자원봉사자들과 사진촬영을 하고 스님께서는 숙소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뒷정리를 하고, 동아리 학생들과도 간단하게나마 나누기를 하였는데, 이런 행사에 참가한 것이 뿌듯했고, 4시가 되어서는 봉사는 정리하고 뒷자리에 와서 모두 앉아서 스님강연을 들었는데 좋았다고 하면서 자기들도 다음에는 질문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한국문화하면 한국전통악기 이런것만 생각했는데 조금 더 방향을 달리하여 요즘 한국문화를 알리는 것도 좋은 것 같다고 하며 오늘 정말 뿌듯한 시간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뒷정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서 애틀란타 열린법회팀 7명과 멀리 테네시에서 6시간에 걸쳐 외국인남편과 함께 와서 자원활동하고, 몽고메리에서 오신 용수진님, 그리고 어바인에서 오신분, 또 미시시피에서 7시간에 걸쳐서 오신분등과 함께 8시에 늦은 저녁식사를 스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스님께서는 이분들과 함께 내년에 100회 강연을 할 경우에 조지아 인근의 테네시, 사우쓰캐롤나이나등 어느 지역에서 강연을 하면 좋을지, 한국교민은 어느 정도 되는지 등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모두 수고했다는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nbsp그리고 저와 묘덕법사님은 자원활동가들과 공감나누기를 하여 처음 행사를 하느라 미진한 점도 많았지만, 각자의 역할을 잘해서 행사가 잘 되었다고 격려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콜럼버스법당의 전범석법우님이 박사학위를 받고 조지아텍으로 직장을 잡아 애틀란타로 옮겨서 이곳에서 영상담당 및 어려운 부분을 맡아서 일을 또 진행해주어서 모든 것이 원만하게 잘 된 것 같다고 그러니, 정토행자들이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참 잘쓰이는 것이 좋았습니다.그리고 이번 열린법회팀을 이끌어가면서 이번 행사를 준비한 차성호 거사님, 그리고 곽선희 보살님, 또한 김병조거사님 내외 및 열린법회팀들과 불교대학에 대한 논의, 그리고 앞으로의 법회장소 및 법회에 대한 논의등 애틀란타는 이제 갓 첫걸음을 띠는 곳이니 서로 논의할 것이 많아서 11시가 되어서야 모두들 아쉬움을 안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저는 숙소로 돌아와서 뒷정리와 내일 휴스턴으로 갈 짐등을 정리하고 나니 1시가 되었습니다. 내일은 서쪽으로 이동하니 시간이 한시간 늦어져 내일은 하루가 25시간이 되니 조금 여유가 있을 것 같아 스님의 하루가 밀렸는데 내일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텍사스 휴스턴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3.9.13. 콜롬부스 강연
새벽 2시 30분에 취침하여 오전 4시30분에 일어나서 오늘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짐정리를 마치고 5시 30분에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다음에 숙소를 제공해주신 거사님 내외와 장희옥 보살님께 인사를 드리고 저희는 콜럼버스에서 어제 트로이로 저희를 태우러 온 하일숙 보살님 차를 타고 트로이를 출발했습니다. 트로이는 디트로이트 폴리탄의 외각에 위치해있어 콜럼버스로 내려가는 길에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을 들려서 얼마나 폐허가 되었는지 둘러보고 가기로 했습니다.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으로 내려가는 길로 내려서니 벌써부터 폐허가 된 건물이 보입니다. 200만명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가 몇년만에 140만명이 빠져나가고 시에는 60만명만이 살고 있고, 대부분 흑인이라고 합니다. 도시가 파산을 했으니 대형 교회와 성당도 문이 닫혀있고, 대형빌딩들의 유리창이 깨어지고, 전기가 끊어졌는지 신호등에 불도 들어오지 않는 곳도 있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30년전 뉴욕맨하튼의 할렘가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시내를 따라 내려가자 오대호와 마주한 캐나다 국경변을 마주보는 곳은 아주 높은 GM본사건물이 휘황찬란하게 있으니 이곳이 파산한 도시가 맞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잠깐 내려서 강가를 건너다 보니 호수 너머로 Casino 호텔도 보이고 평화로운 캐나다가 보입니다. 맨하튼 할렘가가 복원된 것처럼 디트로이트도 30년 후면 복원될테니 지금 우리가 초석을 한번 다져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도시가 파산을 할 경우에 얼마나 황량해지는지를 보면서 다시 차를 타고 우리는 콜럼버스로 향했습니다. 날씨가 오늘아침부터 갑자기 추워져서, 스님께서도 미국 와서 처음으로 스웨터를 꺼내 입었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우리 다들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오늘이 11번째 강연이니 총 25번의 강연중에 아직 일정의 반도 소화해내지 못했습니다. 콜럼버스는 오하이오주의 Capital City로서 한국교민은 적으나 오하이오주립대학교가 있어서 한국유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OSU 학생들이 콜럼버스법당에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콜럼버스 법당에 도착하니 총무님과 보살님들이 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고, 또 총무님과 신도님들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조금 이른 점심이 준비되어 함께 점심공양을 하고나서 스님께서는 12시에 달라스에 있는 라디오 코리아와 생방송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숙소에서 나오셔서 함께 내년도 100회 강연을 할 장소와 콜럼버스를 중심으로 중부지역 도시 및 대학들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이 있는 7시까지 잠깐 시간이 나서 법당에 와 있는 학생 및 신도들과 함께 근처의 공원 Highbanks Metro Park으로 산책을 가기로 했습니다. 약 1시간 30분 정도 산책을 하고 법당으로 돌아오셔서 다음 강연을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6시 20분에 행사장으로 출발하여 행사장 First Unitarian Universalist Church of Columbus에 도착하여 자원봉사자들 및 강연장에 오신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스님 책을 사신 분들께 반갑게 책사인회도 잠시 가져주셨습니다. 드디어 7시 강연이 시작되고 스님께서는 연단에 오르셨습니다. “오늘 제가 달라스 라디오코리아와 여기 오기 전에 12시에 잠깐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교민들에게 희망을 줄만한 무슨 메시지를 가지고 왔는지 묻길래, 저는 메시지가 없습니다. 주어진 상황을 바꾸지 않고서도 지금 있는 상황에서도 조금 더 행복해지고 자유로운 길이 있다면 그것이 희망적입니다. 라디오에서 이런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영주권이 없는 동포인데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그렇고, 여기 있기도 그런 상황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영주권을 받고 여기에 오는 것이 맞습니다. 여행으로 여기에 왔으면 여행이 끝나고, 공부하러 왔으면 공부가 끝나고 돌아가면 됩니다. 그런데 돌아가지 않고 남아서 영주권을 획득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은 괴로운 일이 아닙니다. 이치에 맞지 않게 욕심을 부리기 괴로울 뿐입니다.” 라고 서두를 시작하시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총 여덟분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미국에 유학 온 지 6년 된 여학생은 개인적으로 한국에 있을때는 자신감도 많은 사람이었는데, 미국에 유학와서 영어도 잘해야 하는 학문이라서 그런지 영어도 원어민처럼 되지 않고 그래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서 감정 콘트롤도 좀 잘 안되고 하는데 어떤 마음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질문을 했고, 한분은 작년여름에 치과대학에 합격통지서를 받았으나 3년간 치과대학입학을 준비하면서 건강이 안좋아져서, 학교수업을 받을 수 있는 심신의 상태가 아니라서 학교입학을 취소했더니, 1년이 지나니 우울증이 생겼고, 입학을 안한 것에 대한 후회하는 마음도 생기고, 그동안의 삶의 방향을 잃은 것 같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잘 몰라 현재 방황하고 있는데 어떻게 할지 조언을 달라고 하는분, 2000년 미국에 공부하러왔는데 몇년후에 집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지도교수가 우울증이 심하니 휴학을 하고 건강이 좋아지면 다시 공부하라고 하는데, 휴학을 하면 졸업이 늦어질것 같아 그냥 다녔더니 병이 심해져서 오히려 더 늦어졌고 그러는 사이 저하고 같이 입학한 동료에 비해 10년 이상 늦어지니 후회하는 마음도 올라오고 하는데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질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생물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유학생은 현재 하고 있는 실험이 동물을 죽여야 하는 실험을 해서 많이 괴로운데 어떤 마음으로 전공생활을 할 수 있는지 질문을 하였고, 또 한 유학생은 유학생활을 하면서 생활이 단조롭고 밋밋하고 재미없는 것 같아 한국으로 갔더니 한국에서 얼마 안있다가 미국의 여유로움이 좋아서 돌아왔는데, 여기가면 저기가 그립고하는 마음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중년의 대학교수님은 가족들과 약 6개월정도 떨어져 있다보니 불교공부를 하게 되었고, 공부를 하다보니 몇가지 의문사항이 생겨서 이렇게 질문을 한다고 하면서 색즉시공, 공즉시색, 불교의 윤회사상등에 대해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중에서 부모님이 간절함이 담겼지만, 스님께서 따끔하게 혼을 낸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2002년도에 미국에 이민 왔고, 현재 20살이 된 여식이 있습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는 별문제도 없었고, 공부도 아주 잘하여 1등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고3이 되자 심적 부담을 느껴서 그런지 집중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고 대학도 현재 진학하지 않고 있으며, 양방, 한방으로 3년간 치료를 하고 있지만 좋아지지도 않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라도 하는데, 영적인 문제라면 애아빠로서 어떻게 하면 아이가 회복될 수 있는지 스님께 질문하고 싶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자식을 위해서 아버지가 존재합니까? 아버지를 위해서 자식이 존재합니까?, 아버지는 아이가 행복해지는 것을 어떻게 찾아줄 것인가?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고자 아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옛날 능력만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안죽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고맙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가 옛날처럼 되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의 아이를 인정하고 이 아이가 이 상태로도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지 지나간 것은 다 버려야 합니다. 질문자는 반성을 먼저 해야 합니다. 아이는 심리가 약합니다. 영리할지는 몰라도 정신력이 약합니다. 아이는 부모가 기대하는 짐이 무겁습니다. 공부를 할때는 가볍게 해야 합니다. 가볍게 해야 창조성이 나옵니다. 아이가 어렸을때 엄마가 정신적으로 안좋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첫번째로 아이의 그대로를 인정하고 아이에게 너무 큰 기대를 갖고 요구를 해서는 안됩니다. 단지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서 시간을 길게 가지고 치료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본인때문에 아이가 힘들었기 때문에 참회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절도 하고 하루 10km 정도 걷고 잠을 푹 잘자고 하면 23년뒤에 오히려 잘 될 수도 있고 대학도 갈 수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따뜻하고 인자하게 격려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다시 아이가 조금 좋아진다고 잊어버리고 옛날처럼 대한다면 다시 증상이 반복되어 치료할 기회를 놓칠 수 있으니 꾸준히 치료하고 운동이나 육체적인 활동을 통해서 잠을 푹 잘 잘수 있도록 하는게 좋다고 다시 격려해주었습니다. 오늘 오하이오는 오하이오 인근 23시간 걸리는 많은 지역 및, 시카고에서도 강연장을 찾아와서 질문을 하였고, 특히 멀리 켄터키 루이빌지역 및 일리노이에서 5시간을 운전해서 와서 질문했습니다. 특히 장거리에서 오신 분들의 질문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하이오 주립대학교가 위치해 있고, 씬씨네티대학교등도 인근에 있어서 참가자중 학생이 많았고, 질문자도 학생이 많았습니다. 유학생활속에서 참으로 힘듬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멀리서 다들 어려움을 가지고 스님께 질문을 하러 오는데 모두들 유튜브나 동영상을 보면서 나름대로 스님과 많이 만나고 있고, 그 가운데에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먼거리를 와서 스님께 질문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오늘은 외국인 한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스님이 말씀하실때마다 빙그레 웃으시길래 한국말을 다 이해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강연이 끝난후에 스님께 와서 스님말씀 잘들었다고 하면서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한국말이 아주 유창하였습니다. 또한 지난번 유니온 신학대학교 있었던 참여불교와 해방신학자와의 만남이란 주제로 가졌던 컨퍼런스에서 만났던 백은주교수도 스님을 뵈러 여기에 왔다고 하면서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고 다음에는 본인이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강연을 해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스님의 강연요청이 점점 늘어나고, 대학교에서 근무하는 분들은 모두 스님을 본인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모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9시45분이 되어서야 질문에 대한 답변이 끝이 나고 이렇게 훌륭한 교회를 빌려주신 교회관계자 분들께 감사인사를 하시면서 10시가 되어서야 스님께서는 강당을 내려오셨습니다. 이후에는 약 30분정도 행사장을 찾은 많은 분들과 인사를 하였고, 약 30분정도 사진촬영도 하시고 책사인도 하시면서 강연장을 찾아오신 많은 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하신 분들과 단체로 사진촬영을 하신 후 자원봉사하신 분들께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한 후 스님께서는 숙소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묘덕법사님과 함께 자원봉사자들과 행사 후의 뒷정리를 하고, 이번 행사를 하면서 들었던 마음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년 시카고 행사에 비해서 우리 식구들끼리 행사를 준비하니 일체감이 더 많았고, 좋았다고 하였으며, 비록 준비과정에 미흡한점들도 있었지만 다들 잘 행사를 치루었다고 하여, 함께 즐거움을 나누었습니다. 공감나누기를 마치고 11시30분쯤에 숙소로 돌아와서는 김종필 거사님,오봉산 보살님 내외분, 그리고 해외사무국식구들과 스님께서는 내년도 100회 강연을 어떻게 준비할지등에 대해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자 시간을 훌쩍 1시30분을 넘겼습니다. 그럼 내일 애틀란타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3.9.12 디트로이트 강연
새벽 2시에 잠을 자고 5시에 기상하여 6시에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다음, 오늘 법륜스님의 강연이 있는 미국 트로이로 라이드를 해 줄 김진석 거사님과 만날 미시가와지역으로 7시 즈음에 숙소를 출발하였습니다. 김민석 거사님은 불교TV 에서 피디로 있다가 캐나다로 이민온 지 11년이 되었다고 하면서 불교 TV시절 법륜스님을 뵈었다고 하면서 이렇게 스님을 모실 수 있어 영광이라고 하였습니다. 거사님과 8시에 만나 디트로이트로 출발하였는데, 무사히 캐나다 국경을 통과하여 오대호 중 하나인 휴런호를 지나 미국지역으로 들어왔습니다. 12시 40분경에 트로이에 도착한 다음 스님께서는 법회장소를 둘러보고 신도님들이 준비해 놓은 음식으로 점심공양을 한 다음에 원고교정 및 업무를 보시고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저도 식사 후에 그동안 밀린 업무을 보고 나서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미시간에서 가장 큰 도시는 GM 포드회사의 본사가 있는 디트로이트인데 트로이는 디트로이트 북쪽에 있는 위성도시입니다. 디트로이트는 인구가 약 200백명 이상이었으나 최근에 디트로이트시가 파산을 한 후에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빠져나가 지금은 인구가 60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운타운 지역등에는 빈건물등이 많아 도시가 황량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미시간주위에는 캐나다와 국경을 맞댄 오대호가 있는데, 이곳 오대호의 담수가 전세계 담수의 21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날씨가 쌀쌀할 것을 예상했지만, 토론토도 그렇고 이곳도 그렇고, 한여름도 아닌데 어제, 오늘 기온이 90도를 넘어서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녁에 한차례 천둥번개가 치면서 바람이 적당하게 불었습니다. 오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곳은 폴란드문화센터였는데, 정갈하고 깔끔하게 지어져 있고, 외국인단체에도 저렴한 가격으로 장소를 빌려주어서 이번에 이곳에서 강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한 다음에 스님께서는 강연장에 찾아온 분들과 자원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University of Michigan 의 한국학 교수님께서 스님께 다음에 미시간 대학교에서 강연을 한번 하면 좋겠다고 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 소개영상이 나가자 강연장이 열기를 뿜기 시작했으며, 큰 박수로 환영을 받으신 스님께서는 사람의 도리를 쉽게 말씀하셨고 우리가 쉽게 놓치지만 심각하게 잘못 알고 있는 잘못된 것과 어리석은 것과의 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하셨습니다. 남을 때리거나 죽이는 경우,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는 경우, 성추행하거나 성폭행 하는 경우, 남을 속이거나 욕설을 하는 4가지 경우처럼 남을 해치거나, 손해 끼치거나, 괴롭히거나, 속이는 경우가 아니고는 인간은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으므로 가능하면 남의 삶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간섭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네가지를 4바라이라고 하며, 이것은 나쁜 행위입니다. 아이가 공부를 안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이지 나쁜행위는 아닙니다. 어리석은 행위는 깨우쳐 주고 나쁜 행동은 야단을 쳐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둘을 혼돈하여 야단을 칠때는 야단을 치지 않고, 깨우쳐주어야 할 때는 야단을 치므로 혼돈이 오게 됩니다라고 하시고는 즉문즉설을 시작하셨습니다 첫번째 질문자는 성질을 참지 못하고 자식을 혼내는 젊은 엄마의 고민이었습니다 스님께서 들으시고 그 성질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과보가 어디로 미칠 것인지를 심각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일러주셨습니다. 원인이었던 아빠에게 오히려 감사기도를 드려야 자신의 상처가 치유된다고 하시면서 자신을 극복하는 수행법을 일러주셔서 질문자는 공감했고 대중은 박수로 함께 했습니다 두번째 질문자는 고부갈등사이에서의 남편의 고민이었습니다. 효자이고도 싶고 좋은 남편이고도 싶은 것이 모든 가정을 가진 남자들의 소망일지 모르지만 이는 양다리 전략이고 이중 맴버쉽이라고 하면서 한가정의 가장으로 큰 책임을 우선 순위로 하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세번째 질문자는 나이 지긋하신 분의 불교와 종파에 대한 지식을 물으셨고 이에 스님께서는 차분히 그 역사성과 배경을 동서양을 넘나드시면서 종교와 종파의 탄생을 일러주셨습니다 앞자석에 국제결혼을 한 것 같은 커플이 나란히 앉아서 열심히 스님의 법문을 여자분이 남자분에게 작은소리로 해주니 남자분이 함께 웃음을 터트리는 것을 보고 스님의 법문을 정말 빨리 국제화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네번째 질문자는 미국에 산지 40년이 넘었고, 어머니가 진실한 불자인 집안에서 자랐는데 어느교회에도 규칙적으로 나가지 못하고 사람들은 왜 교회에 나오지 않느냐고 하고, 어머니의 그런 영향을 받은 것인지, 교회에는 나가기 싫다는 분이 왜 그런지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질문자는 좋게 말하면 신앙심이 깊고 지조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고집이 센 것입니다. 지조가 있다는 것과 고집이 세다는 것은 정신작용에 있어서 동일한 현상입니다. 수행의 관점에서 둘 다를 놓아야 합니다. 어머니가 불교인이기 때문에 교회에 안나간다면 이것은 고집입니다. 내가 나가봤는데 내마음에 들지 않아서 안나가게되면 나의 선택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자기정체성이 있으며, 나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야 자기정체성이 있는 것입니다. 보통 교회나 절에 미친 것 같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편집증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심이 깊다와 종교에 미쳤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어떤 한가지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며, 편집증인 것입니다. 그런데 몰두와 편집증은 다릅니다. 에디슨이 연구에 몰두하는 것과 참선을 할 때 꿈에도 화두가 성성한 오매일여는 같은 것입니다. 집중해야 과학이나 사회적인 현상에서 창조가 일어나고, 정신적으로는 깨달음이 일어납니다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다섯번째는 원불교가 불교의 한종파인지, 불교에는 몇 개의 종파의 있는지 질문하여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어떻게 분파하여 왔는지 설명해주시면서 불교는 인도에서 어떤식으로 분파하여왔는지 비교 설명해주니 훨씬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그리고 여섯번째 질문은 고부간의 갈등에 대해 질문을 한 결혼 3년차의 남성분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고부간의 갈등속에 끼여있는 것 같았으며 지난 힐링캠프에서 방송되었던 이중 멤버쉽에 대한 본인의 의문에 대해서 질문하였고, 스님께서는 다시 아주 상세히 설명해주시면서 남자의 태도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고부갈등이 생기는 것이지, 여자가 질투가 많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하니 그동안 여자들에 대해 잘못된 인식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곱번째는 유학 온 학생의 질문이었는데, 어렸을때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버지와의 사이가 어색하고 불편한데, 이번에 한국에 나가보니 더 어색하였고, 여기에서 떨어져 있으면 아버지와의 사이가 조금 안정되는 것 같은데, 아버지와의 관계를 좋게 해보고 싶다고 질문하였습니다. 여덟번째 질문자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고 있는 현재의 삶이 무의미하여 이제 아이들도 다커서 남편하고 이혼하고서라도 수행자의 길을 걷고 싶은데, 이혼하지 않고 수행자의 길을 가는 방법이 없겠는지에 대해 질문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왜 무의미하다고 느끼는지를 살펴서 무의미한 것에서 자유로와지는 것이 수행입니다. 지금 여기서 마음에 사로잡힌 것을 알아차리고 놓아버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지금 집착을 놓아버려 해탈의 길로 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지금 질문자는 수행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을 바꾸어 보겠다는 관점입니다. 이 남자와 이혼하고 저 남자와 살아보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생각입니다. 라고 대답하니, 질문자는 직장에 다니면서 수행하는 것에 대한 갈증이 너무 심하고, 하루종일 수행만 하고 싶다고 하자, 스님께서는 이전에 절에 가서 하루종일 있으니 좋았던 것은 휴가가서 놀다 온 것과 같은 것입니다. 노니까 편안하고 좋은 것이지 정말 수행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수행이란 자기업의 저항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이 넘어가는 고통을 이겨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은 직장생활하는 것보다 10배는 더 어렵습니다. 그래야 업, 습관을 뛰어넘어갈 수 있습니다. 현재 질문자는 직장생활에 지쳐있으므로 조금 휴식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 약간 심리적 공허감에 의해서 그런 것이라면 이것은 구도심이 아니라 갱년기 장애입니다. 그러니 먼저 깨달음의 장 수련을 해서 내가 누구인지 깊이 성찰을 하면 삶이 안정될 것입니다. 삶이 안정되면 직장생활을 해도 편안히 할 수가 있고, 절에 들어와서 살 수도 있습니다. 망념에서 깨어나서 현실이 꿈과 같은 것임을 알게 되면 세상에 털끝만큼의 미련도 없어집니다 라고 말씀하시니 청중들이 다함께 큰 박수를 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진리의 길로 안내하는 것이 잘못하면 질문자와 원수가 될 수 도 있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근기가 좋네요. 자기를 돌이키는 힘이 있습니다. 위로는 환자에게 필요하지만, 위로만 가지고 환자가 건강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남편, 아내, 자식, 하나님, 부처님도 아니고 오직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므로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합니다. 나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남이 나를 사랑할 것이며, 내가 나도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남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의 불행을 더 이상 남의 책임으로 돌리지 말고, 이제 나한테로 책임을 돌려야 합니다. 무지해서 어리석어서 그랬구나 하고 알아 차려야 합니다. 내 탓이라고 하는 것은 원인이 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지 내가 큰 죄를 지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로부터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책임을 나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원인을 밖으로 돌리면 문제해결이 어렵지만 안으로 돌리면 문제해결이 아주 쉽습니다. 미국이 오늘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것은 모두 북한탓, 시리아탓, 이라크탓으로 생각합니다. 저 사람들이 왜 저렇까 돌이켜보고 잘 살펴보면 적은 노력으로도 문제를 풀 수 있고, 그러면 미국이 다시 세계적인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각성하지 못하고 성질을 극복하지 못하면 개인도 나라도 쇠퇴의 길로 갈 것입니다. 살때는 즐겁게 살고, 죽을때는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라고 하시면서 9시 30분에 오늘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시간동안 분위기가 진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위트가 넘쳐서 청중들과 함께 큰 웃음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또 준엄하게 꾸짖기도 하면서, 스님께서는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제한된 시간으로 인해 질문자 신청자의 반이상이 질문 하지 못해 질문하지 못했던 분들은 아쉬움이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강연이 마치자 많은 분들이 일어나서 기립박수로 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고, 미시간에서 이루어진 법륜스님의 첫번째 즉문즉설 대중강연은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는 책을 구입한 분들께 싸인을 해주시고 기념촬영도 해주셨습니다. 행사후에는 자원봉사한 분들과 단체기념촬영을 하였고, 또한 강연장에서 1시간 이상 떨어져 있던 미시간주립 대학교에서 온 자원봉사 10명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으면서 수고하였다는 격려해주고 챙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내년에 다시보자고 하시면서 행사장에서 10시에 숙소로 출발하였습니다. 스님께서 숙소로 떠나고 난후에 묘덕법사님과 저는 남아있는 물건을 챙겨서 행사장 근처의 장희옥 보살님 학원으로 장소를 옮겨 미시간주립대학교 의 자원봉사자 학생들과 함께 늦은 식사를 하고 간단히 자원봉사자들과 인사를 하고 11시 30분쯤에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수행법회 1년을 하면서 모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마지막 짐을 뒷정리하고 이번 행사를 준비한 트로이 열린법회팀 신도님들과 함께 다시 공감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이곳에 한인들이 약 2만5천명 정도 있어서 300석이 다차서 자리를 더 준비할 정도를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조금 아쉽다고 했고, 준비과정이 정말 재미있었고 즐거웠다고 하였습니다. 저희는 수행법회 1년 하면서 처음으로 행사준비하면서 좋은 행사장에서 여법하게 잘 준비해서 행사를 잘 마쳤다고 격려하면서 내년을 다시 기약했습니다. 12시 30분쯤에 나누기가 끝나서 스님께서 1층으로 내려오셔서 디트로이트 지역현황에 대해 문의를 하고 이 지역에서 100회 강연을 할 경우에 어디에서 해야 할지 등에 대해서 논의를 했습니다.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내일 콜럼버스로 옮길 짐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드니 새벽 2시30분이 되었습니다. 그럼 내일은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3.9.11 토론토 강연
오늘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9번째 강연이 있었습니다. 새벽 2시30분에 취침하여 5시에 기상해서 짐을 꾸리고 6시에 간단히 숭늉으로 아침공양을 한 후에 6시 30분에 공항으로 출발하여 20분 정도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고속도로 출구가 공사중이라 막혀 있어 우회도로로 돌아가서 7시 10분에 미네아폴리스공항에 도착했습니다.오늘 저희가 탈 비행기는 캐나다로 가는 국제선이라 체크인 할때 여권정보가 필요한데 컴퓨터로 여권정보를 입력할 수 없어 미리 체크인을 하지 못했습니다. 8시 15분 출발하는 아메리칸 에어라인이었는데, 국제선의 경우에는 바로 탑승카운터로 가서 여권을 보여주면 수속이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용하는 아메리칸 에어라인은 모두 키오섹에서 여권 및 영주권을 스캔하라고 하여, 기계에서 여러번 여권을 스캔하였으나 정보가 읽혀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옆에서 도움을 주는 직원에게 요청하여 직원도 수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제대로 읽혀지지 않아 수속은 되지않고 시간은 지나가니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수차례 카운터에서 수속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카운터에서는 1등석 승객만 수속할 수 있다고 하니 답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드디어 직원도 안되겠는지 상사에게 얘기하여 카운터에서 수속을 밟아 무사히 게이트안으로 들어와 아슬아슬하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미네아폴리스에서 캐나다로 바로 가는 비행기가 있으나, 시카고를 경유하는 것보다 한사람당 70불 정도 비싸기 때문에 시카고를 경유하는 표를 끊었는데, 이번에는 시카고 공항에서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카고에서 토론토로 갈아타는 비행기가 약 1시간 30분정도 여유가 있어 저는 시카고 공항에서 컴퓨터를 켜놓고 스님의 하루를 작성하여 한국으로 보내고, 이곳에서 다들 업무도 보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탑승을 알리는 안내방송과 함께 법륜스님, 묘덕법사님, 최말순보살님을 찾는 안내방송이 나와 게이트로 가니 한국여권을 가지고 있는 세분은 비행기를 탈수가 없다고 하니 또 기가 찼습니다. 왜 그렇냐고 물으니 미국입국서류가 없어 비행기를 탈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한국은 미국에 올때 무비자이기 때문에 올해부터 I94를 작성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으나 직원이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I94를 보여달라고만 하고, 시간은 지나가고 속이 탔습니다. 박지나 대표님이 카운터에서 실갱이를 벌이고 있는 동안 게이트에서 기다리고 있던 분들이 저에게 왜그러냐고 물어서 제가 설명을 하니, 저분이 누구시냐고 하시길래 제가 한국에서 오신 스님이신데 오늘 토론토에서 강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비행기를 타고 토론토로 가셔야 하고, 또 다음주에는 Texas AampM 대학, 듀크대학, 프린스턴대학, 예일대학, 하버드대학, 아메리칸대학교등에서도 강연을 하실 것이라고 하니, 참 인자하게 보이신다고 하면서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시길래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JTS 박지나 대표님께서 수퍼바이저를 불러 해결을 하고, 겨우 비행기를 타고 토론토로 향했습니다. 작년에는 토론토에서 뉴욕으로 오는 비행기를 놓쳐서 다음비행기를 타고 겨우 강연시작 10분전에 뉴욕강연장에 도착하였는데, 이번에 또 이런 경우를 당하다 보니 토론토행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1시 40분경에 토론토 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찾았으나 저희를 마중 나온 분들이 조금 늦게 나와 숙소로 돌아오니 3시쯤이 되었습니다. 숙소에 와서 다함께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간단히 늦은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 후에 저는 행사장으로 가서 행사팀에 합류하여 현장을 둘러보았습니다. 행사로비는 작년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되어있고, 주차장등 모든 준비가 작년에 비해서 훨씬 좋았고 자원봉사자들도 즐겁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스님께서 6시 30분에 행사장에 도착하여 행사장에 강연을 들으러 오신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시고 책을 구입하신 분들께 사인을 해드렸습니다. 드디어 7시 행사장에 스님께서 입장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난해에 오신분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니 약 550명중에서 13이 참석하였고, 나머지는 새로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불교신자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니 110 정도가 불교신자라고 손을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저의 강연은 여러분과 대화하는 방식입니다. 가능하면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지식적인 것은 묻지 말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상 살아가면서 생기는 이런저런 의문이 있거나, 고민등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얘기를 한번 해보면 좋겠습니다. 아무거나 물어도 좋습니다. 제가 모르는 것을 물었다면 저는 모른다고 답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큰 소득을 얻게 돕니다. 뭘 모르는지 알기 때문에 저의 공부꺼리가 생각기 때문입니다. 과학얘기, 환경얘기, 자신이 궁금한 것, 자기고민얘기 어떤 것도 좋습니다. 여기는 인생얘기를 하러왔지 불교얘기를 하러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교신자들이 불교를 물으면 답을 할 뿐입니다. 남을 가지고 탓하지 말고 무엇이든 묻는 야단법석을 깔고 마음껏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라고 서두를 시작하였습니다. 첫번째 질문자는 60대 후반의 남자분이었는데, 스님께서 작년에 안철수의원의 멘토로서 언론에 나왔는데, 지금도 안철수의원의 멘토인지, 만약에 멘토가 아니라면 왜 아닌지 설명해달라고 하였고, 또 하나는 지금 스님의 인기가 어느 TV 스타보다 높고, 다방면에서 한국사회의 멘토가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어떤공부를 하였는지 가방끈이 얼마나 긴지등에 대해서 질문하니, 스님께서는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다니다가 절에 들어갔기 때문에 가방끈이 짧고 돌팔이라고 하시면서 대신에 남들과의 차이점은 사는데 고생을 좀 하여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경험을 좀 많이 하였다고 하여 처음부터 저희들을 웃게 만드셨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인간관계로 인해서 힘들어 하는데, 스님의 강연을 유튜브로 듣고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은 알게 되었지만, 얌체같고,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가지고,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에 상처를 받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은 그냥 제가 잘해주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잘해주고자 하니 억울하다고 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이들을 봐야하는지 물었습니다. 세번째 질문자는 이민 온 지 10년 되었는데 아직도 한국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은데 직장에서 어떻게 하면 캐나다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지 문의를 했습니다. 네번째 질문자는 아이가 엄마, 아빠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제가 화를 냅니다. 그러면 아내가 좀 두고 보자고 하여 제가 2번, 3번 더 지켜보다가 화가 더 나서 결국에는 폭발하게 되고, 또 그것때문에 아내와 싸움을 합니다.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다고 하지만 저한테는 좋은 것이 있는데, 아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와 부딪치고 또 아내와 싸우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의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지만 또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습니다라고 대화를 시작했는데, 마지막으로 이분께 정리하는 말씀이 저는 좋았습니다. 아이가 엄마,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은 부모를 따라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에는 엄마가 아버지를 무시하는것을 보고 따라하거나, 아버지가 엄마를 무시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는 2가지 경우입니다. 아이를 나무란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두부부가 서로 무시하는 것을 해결하지 않고 아이보고 무시하지 말라고 하고 억압하면 개선되지 않을 것입니다. 1년정도 절을 하면서 아내에게 당신말이 맞습니다. 제가 부족합니다. 라고 연습하면 좋아질 것입니다. 내려놓기가 쉽게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연습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집하게 되면 고집했다는 것을 알고 돌이키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108배를 하는 것은 내려놓는 몸의 표현입니다. 절을 하면 내가 옳다는 아상이 꺽이게 되고 마음을 숙이는 연습이 됩니다. 지금 질문자는 몸과 얼굴에 화기가 많습니다. 이런 stress가 또 몸을 망치게 되니 절을 많이 해서 화기를 누구려뜨려야 합니다. 아내에게 숙일 수 있으면 천하 누구한테도 숙일 수 있습니다. 누구나 다 부처님께 숙일 수 있습니다. 부처님 앞에 숙이는 것은 아무 효과가 없고, 그냥 인사하는 것입니다. 진짜 숙이는 것은 아내, 남편에게 숙이는 것입니다.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앞에 숙일 수 있는 것이 나를 내려놓는 연습입니다. 제가 부족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108배를 하면서 연습하면 좋아질 것입니다 라고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니 청중들이 질문하신 이분께 큰 박수를 보냅니다. 여러 질문들이 계속되었지만, 그중에서도 14년전에 이민 온 1.5세인 24세의 젊은 청년은 부모님과 사고방식도 다르고 마음가짐도 이제 많이 달라졌는데 부모님은 여전히 아기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부모님과 갈등이 많다고 하면서, 계속 갈등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부모님과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질문을 했습니다. 이렇게 1.5세 청년이 이곳 강연장에 와서 질문을 하는 것을 보니 이제 정말 많은 젊은이들이 스님의 법문을 유튜브를 통해 많이 듣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젊은 청년이 나왔는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대화였습니다.nbsp 저는 신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조선족으로 연변출신이며, 캐나다에 이민을 왔습니다. 한국인들과 만나도 저는 한국인 같지가 않고, 중국인들과도 만나도 중국인 같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한국사람도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을 하고, 중국사람들도 한국인을 비하하는 말을 합니다. 저는 한국말, 중국말을 다 할 줄 아니, 한국인들이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을 듣고, 중국인들이 한국인을 비하하는 말을 들으니 괴롭습니다. 그래서 캐나다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고민은 없으니 차라리 캐나다 친구들만 만나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그래서 제가 신분을 잘 밝히지 않고 있다가 친구들에게 우연히 제 신분을 밝히면 한국인은 한국인들대로 아주 놀랍니다. 이런 저의 신분에 대해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여기 와서 기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출신은 중국이며, 민족은 조선족이고, 여기 캐나다에 살고 있는 캐나다인이라고 하면 됩니다. 여기서 중국계 캐나다인, 한국계 캐나다인 하는 것처럼, 저는 한국계중국인으로 지금은 캐나다인이라고 하면 됩니다. 그러니 3개를 다 얘기하고 절대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인간이 태어난 것으로 인해, 피부색깔, 동양사람, 종교, 성적취향, 장애 이런것으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앞서가는 사람은 이것을 넘어서서 자기 스스로를 여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계 중국인, 중국출신의 한국계 캐나다인임을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이나, 질문자나 이곳에서는 다 똑같은 이민자 일뿐입니다. 전혀 숨길필요도 없고 차별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중국말, 한국말, 영어를 다 알아들으니 좋은 것입니다. 한국인에게도 끼일 수 있고, 중국인에게도 끼일 수 있고, 2가지 말을 다 알아듣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만 생각하지 말고, 나에 대해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물으면 대답하면 됩니다. 자신감을 가지세요. 우리가 동양계이므로 우리는 이곳에서 소수민족입니다. 중국인, 일본인, 인도인들도 서로 더 친해야 합니다. 여기사는 한국인들끼리 서로 싸울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교회에 다녀도, 절에 다녀도 새로 한국교회가 개원하고, 새로 한국절이 개원하면 서로 축하해주어야 합니다. 라고 젊은 청년을 격려해주고 저희도 큰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인생의 주인은 나입니다. 세상 누구와도 나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술 먹고 길거리에서 취해 쓰러져있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버리는 것입니다. 마약, 게임등에 중독되거나, 화내고 성질 내는것은 다 자기가 자기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힘써 자기를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나도 남을 사랑하고, 남도 나를 사랑해주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기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날이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마무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 토론토 강연에는 약 550여명이 참가하였고, 집중도도 높고 질문자도 많아서 10시가 되어서야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을 마친 후에는 스님께서 무대에서 길게 늘어선 분들에게 책사인회를 하시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오늘은 준비해 간 책이 모두 판매되고, 강연에 참가한 분들이 책이 없음을 아쉬워하여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강연장에서 스님께서는 반가운 분들을 만났습니다. 한분은 1997년도에 스님께서 장백에서 북한난민돕기를 할때 스님께서 도와주셨던 탈북난민을 만나 더 반갑게 인사를 하였고, 또 한분은 스님의 고향 동네분으로 두북의 복안리 출신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지난번에 해외사무국으로 문의를 했던 김재명법우님은 사하법당출신으로서 천일결사자인데 한달전에 캐나다 워털루대학교로 아내, 아이와 함께 유학을 왔는데, 워털루에서 스님강연에 참가하기 위해서 1시간 30분 차를 운전하여 가족들과 함께 왔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정토행자들을 스님강연을 기회로 만날 수 있으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사인회가 끝나고 이곳 한인 TV에서 스님과 잠깐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하여, 인터뷰를 하고, 또 이번 행사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준 한인회관의 스탭들이 스님과 사진촬영을 하고 싶다고 하여 함께 사진촬영도 하였습니다.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고 이번 행사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스님께서는 행사에 참여한 모든 분들께 정말 수고 많았다고 격려를 한후에 10시 30분경에 숙소로 떠났습니다. 묘덕법사님과 저는 자원봉사자들과 뒷정리를 하고, 공감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이곳 토론토 열린법회팀은 작년행사에 함께 했던 3분과 깨달음의 장 출신3분, 불교대학생 7명등이 합심하여 정말 큰 갈등없이 행사를 준비하였고, 작년행사에서 미진했던 것들을 보완하여 적은 인력으로 정말 훌륭하게 큰 행사를 치루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기쁘다고 하였고, 저도 이분들께 큰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nbsp 공감나누기를 한 후 숙소로 돌아오니 11시 30분이 넘었습니다. 숙소에 와서는 스님과 정연희 보살님 부부내외와 함께 다시 내년에 해외 100회 강연을 할 경우 캐나다 벤쿠버 지역 및 캐나다 동부지역에서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문의하며, 100회 강연을 어디에 할 것인지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시간이 1시를 넘어서서 저희는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내일 미국 디트로이트지역으로 가지고 갈 짐등을 정리하고 나니 2시가 넘어서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디트로이트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