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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1. 독일 뮌헨
오늘은 5시 30분에 기상하여 짐을 꾸려 6시에 숙소를 떠났습니다. 어제 예정에 없던 알프스의 융프라우를 보느라 늦은 시간에 밀라노에 도착한 관계로 밀라노 시내를 둘러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한시간 정도 밀라노 시내를 돌아보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스님께서 어제 미리 시내를 답사하고 오셨기 때문에 아이패드를 보면서 밀라노 광장으로 저희들을 인도하였습니다. 밀라노 광장에서 밀라노 대성당을 보았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지 못함이 아쉬웠습니다. 시내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니 이태리의 밀라노가 왜 예술과 디자인의 도시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불이 꺼져 있어 왕궁은 둘러보지 못했지만, 개선문과 밀라노 다운타운등을 정말 1시간 만에 둘러보고 베니스를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nbsp 독일 뮌헨으로 가는 길에 물의 도시인 베니스를 둘러보고 가기로 했기 때문에 강연시간에 늦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했습니다. 베니스에 도착하자마자 스님께서는 아이패드로 길을 안내하면서 여기서도 한시간만에 도시를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산마르코 광장까지 가서 다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저희들은 1시간 동안 베니스 시내를 뛰어다녔습니다.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스님을 알아보고 인사하고 악수를 청하면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는 한국분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급하게 1시간동안 베니스를 돌아보고 저희는 독일 뮌헨으로 방향을 돌려 이태리에서 알프스산맥으로 올라갔습니다. 스위스지역에서 보는 알프스 산자락도 아름다웠지만 이태리쪽 지역에서 보는 알프스 산자락도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북한의 뙈기밭처럼 산자락에 포도밭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스위스쪽은 낙농을 하는 것 같은데, 이곳은 포도밭과 사과나무등이 많이 보였습니다. 알프스를 넘으면서 아름다운 알프스의 풍경을 충분히 즐긴 것 같았습니다. 휴게실에 들러서 이태리 음식으로 식사를 하고 서둘러 뮌헨으로 다시 출발을 했습니다. 그러나 길을 떠나자 마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눈 덮힌 알프스 설산을 기대했는데 10월에 함박눈이 쏟아지는 알프산도 정말 좋았습니다. 여름, 가을, 겨울을 한꺼번에 느끼면서 알프스 산을 감상했습니다. 눈으로 인하여 예상보다 늦은 5시 40분에 뮌헨의 강연장소에 도착하였습니다. 강연장소에 도착하여 뮌헨 열린법회를 담당하고 있는 송혜련 보살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행사준비를 위해 좌석을 준비하고, 베너를 달고, 안내대를 설치하고 열심히 준비하고 자원봉사자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6시 30분에 강연이 시작되었는데, 뮌헨에서도 젊은 유학생들과 젊은 부부들의 많이 보였고, 남학생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 올해 처음 오신분들 손들어 보라고 하니 23 이상이 손을 들었고, 2년 전에 왔었던 분 손들어 보라고 하니 13 정도가 손을 들었는데 대부분이 연세가 드신 분들이었고, 젊은 분들은 새로 오신 분들이었습니다. 오늘은 총 7분이 질문을 했는데, 첫 질문으로 통일에 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1. 스님의 책, 새로운 백년을 읽어보니 지금이 구한말시대 같고, 경술국치 같은 일을 다시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남북이 갈라진 한반도 상황에서 국민으로서, 특히 해외에 나와있는 국민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2. 내게 부족한 것이 있어 고쳐보려 하는데 늘 지나고 나서 늦게 깨닫게 됩니다. 부족하다는 것을 놓치기 전에 스스로 알 수 있는 법은 무엇인가요? 3. 저는 인도에서 초기불교학을 7년 동안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불교에서 다른 사람을 때리지 말라고 해서 자식에게도 그것을 강조하는데,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맞고 올 경우에 자기도 때릴려고 하고, 아이의 감정이 억압되어 있는 것 같아 갈등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조절을 해야 하는지요? 4. 저는 남편의 직업상 이사를 자주 하게 되는데, 도시가 작을수록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이 높은 것 같습니다. 그럴 경우 사람들이 아이에게도 적대감을 보이는 것 같고, 아이에게 엄마가 그런 것에 대해서 자신감 없어하는 것을 보이니깐 저도 힘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저 자신도 자신감을 느끼게 될 수 있을까요? 5. 두 아이의 엄마인데,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내가 나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애와 싸우고 있자니 내가 엄마가 맞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러지 않는데 아이에게는 소리치고 악을 쓰고 그러고 삽니다. 내 꼬라지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냐는 생각도 듭니다. 6. 남편도 좋고, 시어머니도 좋고, 직장도 구하고 다 좋은데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이냐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괴롭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등의 질문이 나왔는데 그 중에서 다음의 질문과 답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워킹홀러데이 비자로 뮌헨에 와 있는 26살의 청년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부족함 없이 살아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자발적 선택이 행복으로 이끈다고 하는데,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힘들기에 순간순간 재미를 느끼는, 텔레비젼 보는 것등 같은 것만을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가 원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찾을 수 있겠는지요? 그리고 또 스님은 자발적으로 즉문즉설을 하시는데, 무엇이 힘들지 않으면서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동력이 되는지요?” “두번째부터 얘기하면 사람들이 자꾸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니 그에 따라 저도 답변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정치, 결혼생활, 자녀양육문제, 사회문제, 종교문제등에 대해서 물어보니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묻지 않는데 가끔씩 얘기하는 것은 통일문제, 환경문제, 제3세계 구호문제 등입니다. 그러나 개인인생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면 저는 얘기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자꾸 묻고 있어 지금도 답변하는 것이 동력이라면 동력입니다. 그런 요구가 있으니 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첫번째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고뇌가 생깁니다. 질문자는 그런 간절한 게 없으니 그것 때문에 고민을 안해도 되니 사실은 엄청나게 좋은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밥 먹고 살기 힘든 것이면 포기를 해야 했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시절을 겪은 부모세대들은 자식에게 자기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이 힘들다고 합니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오늘날 모든 젊은이들이 겪는 어려움입니다. 다들 어떻게 그것을 찾아야 하는 지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키울 때는 가장 핵심적인 것은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도록,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질문자는 꼭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냥 아무거나 하면 됩니다. 꼭 이것을 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지 않으니 뭐든지 해보다가 다른 것을 해보고 싶으면 또 그것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 밥벌이를 자기가 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남의 희생 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인생도 소비적이고, 삶이 소비적이기 때문에 창조성이 없습니다. 성인이 되었으니 자기 먹고 살 것은 자기가 해결해야 하는데 , 그런 결정을 할 때 돈을 많이 버는 것은 기준은 아닙니다. 이왕 할거면 내가 먹고 살기도 하고, 남으로 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좋습니다. 자립을 하고 살면서 그런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면 좋습니다.” 라고 스님께서 말씀하시니 질문한 젊은이는 ‘감사합니다’ 라고 스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nbsp 오늘은 총 104명이 참가를 하였는데, 젊은 학생들이 많았고, 특히 이과생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첫 질문에서 통일에 대한 질문이 나와서 1시간동안 스님께서 답변을 하였는데, 오히려 이 답변이 학생들에게는 좋았던 것 같았습니다. 스님의 통일에 대한 답변을 듣고 너무 좋았다고 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뿌듯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시한번 모든 사람들이 스님의 새로운 백년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유럽 8개 도시에서 8일간의 즉문즉설강연이 끝이 났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뮌헨열린법회에서 준비한 비빔밥으로 늦은 저녁을 참석자들과 함께 먹고 뒷정리를 하였습니다. 뒷정리를 마치고 스님과 저는 오늘 숙소인 송혜련 보살님댁으로 먼저 왔습니다. 저는 스님의 하루를 작성하고, 스님은 업무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묘덕법사님과 뒤셀도르프 김선희 총무님, 베를린 이희정 총무님은 송혜련 보살님과 오늘 행사를 준비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행사를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 좋았던점, 애로사항 등에 대하여 나누기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스님께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새벽 3시 30분에 뮌헨을 출발해서 프랑크푸르트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라이프찌히에서 살면서 베를린 정토법회에 다니고 있는 이범애 보살님의 남편인 김용태 거사님께서 이번 8일간의 유럽 강연을 위해서 운전 자원봉사를 해주셨습니다. 내일 새벽에 길을 떠나야 하니 스님께서는 거사님께 우선 쉬시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운전봉사를 해주신 김용태 거사님께 스님은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하셨습니다. 이번에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저희도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독일 뮌헨 강연스케치는 베를린 정토법회 이희정 법우님께서 도움주셨습니다.
2013.10.10 이태리 밀라노 강연
새벽 3시 30분에 잠이 들어 오늘 아침에는 5시 40분에 기상하여 짐을 꾸려서 6시에 로비로 내려왔습니다. 오늘 오전 7시에 이태리로 떠날 것이라고 하니 어제 자원봉사를 한 권버미씨가 스님과 우리 일행이 베른시의 다운타운도 구경하지 못하고 강연만 하고 간다고 아쉬운 마음에 본인이 6시까지 숙소로 올테니 한시간 만이라도 걸어서 베른시의 다운타운을 구경하고 갔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여 한시간 정도 산책겸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묵었던 유스호스텔이 스위스 국회의사당과 외국 대통령등 귀빈 방문때 묵는 호텔 바로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회의사당 옆 골목길을 통해서 다운타운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nbsp 약 12001400년대에 지어진 건물들이 아주 고풍스러웠고, 전형적인 사행천인 아레강의 U자형의 천연요새 위에 국회의사당과 다운타운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다운타운 광장에 가니 시계의 나라 답게 예쁘고 정교한 시계탑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아주 오래된 시계로서 천동설을 표현한 것이 중앙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다 아주 유명한 윈스터성당을 보았는데, 이 성당의 입구에 천국과 지옥을 표현해 놓고, 갖가지 모양의 사람들의 표정이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nbsp 스위스는 캐톨릭이 주민의 약 40 정도로 개신교보다 더 많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독일어가 주된 언어로 통용되고 있으며, 프랑스어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어, 로만쉬어도 통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제 강연이 이루어진 교회도 다운타운에 위치해 있었는데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개신교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짧지만 한시간 가량 산책을 겸해서 시내를 둘러보고 다시 숙소와 와서 정확하게 7시 10분에 밀라노를 향해서 길을 떠났습니다. 스위스의 시골풍경이 아주 고즈넉하고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깨끗하고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도 여유로움과 자존심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 유스호스텔에서 준비해 준 도시락으로 차안에서 식사를 하면서 가는 길에 알프스 산맥 융프라우쪽을 둘러보고 루체른이라는 도시를 지나쳐서 밀라노로 갔습니다. 스님께서 알프스 설산도 볼 겸 국도로 가자고 해서 아름다운 호수를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며 가다가 인터라겐이라는 작은 도시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김선희법우가 인터라겐이 융프라우 산을 오르는 입구라고 말해서 스님께서 지도를 보시며 들렀다 가자고 해서 융프라우의 설산을 보게 되었습니다.nbspnbsp 또 스위스는 빙하가 녹아서 흘러내려 그런지 아름다운 호수가 아주 많은데 특히 루체른은 아름다운 호수와 1333년에 지어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다리인 카펠교로 유명하다고 하여 차를 잠시 길옆에 세워 놓고 호수를 감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도시로 들어와서 카펠교를 구경하고 걸어보았습니다. nbsp 이 루체른이라는 도시는 스위스 건국 이야기의 주 무대로 아들 머리 위에 사과를 놓고 활로 쏘는 장면의 빌헬름 텔 전설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유럽 도시들이 모두 아름답지만 스위스는 훨씬 더 아름답고 세련되고, 정갈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알프스 산맥쪽으로 차를 몰아 밀라노 방향으로 들어섰을 때는 히말라야를 만나는 그런 느낌이 들었고, 눈앞에 펼쳐지는 웅장한 돌산을 만났을 때는 그림으로 만나던 금강산 비경을 보는 듯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구름사이로 언뜻 비치는 눈 덮힌 알프스는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백두산 천지와 백두산이 이런 느낌이라면 이곳 사람들에게는 알프스가 그런 느낌을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이렇게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이태리로 들어왔습니다. 밀라노 시내를 통과할 때는 건물이 아주 아름다웠으나 우리가 묵을 숙소는 미국 도시 뒷골목처럼 벽에 페인트칠을 해 놓아서 밀라노의 뒷골목 같은 그런 느낌도 들었습니다. 2시 35분에 숙소에 도착하여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였습니다. 숙소 바로 옆의 조그만 카페에서 피자를 사 가지고 와서 숙소에서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 후인 4시경에 오늘 행사의 자원봉사들이 숙소로 왔는데, 정성스런 과일 바구니를 스님께 드렸습니다. ‘법륜스님과 희망세상 강연팀의 밀라노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라는 글귀를 보는 순간 정말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습니다.nbspnbsp 뒤셀도르프 김선희 총무와, 베를린 이희정 총무는 밀라노 강연 준비 팀과 같이 강연장으로 가서 배너를 달고, 영상 준비를 하면서 함께 강연준비를 하였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여 스님께서는 책을 미리 구입한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시고 자원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nbsp 이태리 사람들은 약속에 늦다고 하지만, 강연 시작 이십분 전까지도 자리가 많이 비어 있어서 사람들이 적게 올 것 같았는데, 강연 시작 시간이 되자 점점 참석자 수가 늘어나 오늘 약 110명이 참석하였다고 하는데 밀라노에서 한인회 행사를 하여도 이렇게 많은 한인들이 모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많이 오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스님 소개영상이 나오고 나서 스님께서는 바로 무대 앞으로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메트로 밀라노 인구는 얼마인가요? . 이태리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데 이곳에서 뭐하면서 살고 있나요? 한인들은 얼마정도인가요?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네요.” 이렇게 참석자들과 이곳에 인구가 얼마인지, 한인들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물어보시면서 아주 정겹게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nbsp 오늘 첫번째 질문자는 뜻밖에 이태리 사람이었습니다. 질문을 한글로 써 와서 읽었는데, 오늘날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해지고 악해진다고 생각하냐고 스님께 물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통역이 없는 강연이었는데, 다른 분이 즉석으로 스님이 하신 말씀을 이분께 통역을 해 주었습니다. 다음 질문으로는 남편과 딸에게 화를 많이 내게 되는데, 좋은 책을 많이 읽어도 달라지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살려고 직장생활을 하는데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많이 싸우게 되고, 특히 이곳에 살다보니 인종차별 같은 것을 당할 때면 전투적으로 싸우게 되면서 점점 내가 싸움닭이 되는 것 같아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행복도 불행도 나누면 두배라고 하는데, 행복하게 살기위해 생활속에 실천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주위에 인품이 좋으신 분들을 보면 살아있는 부처라고 하는데 우리도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살아가면서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해외에 정착하여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어려움을 공감하게 하는 질문이 있어서 다음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를 해보고자 합니다. “이태리 분과 결혼하여 자식 둘을 두고 있습니다. 결혼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이 사회에 살면서 갈수록 싸움닭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성숙된 인간이 되라고 하는 데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느끼거나 아시아인을 무시하는 것 같으면 더 그렇고, 또한 가족들의 보호를 위해 항상 더 싸울 자세가 되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스님께서는 “인생에는 어떤 것이 좋은 것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선택만 있을 뿐이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늘 그렇게 싸움닭처럼 살면 삶을 살아가는데 결국 지치게 됩니다. 인간의 습관은 쉽게 바꾸기 힘듭니다. 늘 자기중심적으로 살며, 관습적으로 쉽게 행동하며 살게 됩니다. 남을 비난할 때는 그것이 법률에 어긋날 정도로 심각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관습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상대를 이해 하는 쪽이 좋으며, 법률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변호사를 통해서 법으로 해결을 하도록 하면 됩니다. 그래서 시정할 수 있는 것은 시정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관습적인 것은 웃어넘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사는 것이 힘은 들지만 괴롭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여기 결혼해서 시집을 올 때는 좋은 것만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태리를 고쳐주려 내가 여기 시집 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한국사회 안에서도 차별은 있습니다. 외국이니까 더 심하겠죠? 문화적 차이가 있는 곳에는 이런 것들은 감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에게 더 좋습니다. 늘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힘은 들지만 괴롭다는 말은 안해야 합니다. 늘 이런 문제를 투쟁으로 대하다 보면 자식들도 그것을 닮아 갑니다. 싸움닭처럼 이 사회와 부딪혀 살아가는 것이 개인의 삶이나 자식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면 개선해야 합니다.” 라고 말씀하시니 질문자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오늘도 스님 강연은 2시간 40분이 되어서야 마쳤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나서 행사 전에 사인을 받지 못한 분들께 사인을 해주시고, 인사를 하는 많은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인상적이었던 것은 외국인이 스님께 질문을 하고자 한글로 질문을 적어 와서 떠듬떠듬 읽으면서 질문을 했고, 스님의 답변에 다른 분이 통역을 해주어서 외국인도 함께 스님의 강연에 참가했습니다. 질문을 하신 분들이 스님께 와서 다시 인사를 하는 것을 보니 스님의 답변이 위로가 되었는가 봅니다. 뒷정리를 마치고 스님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촬영을 한 다음에 바로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장소를 옮겨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오늘 밀라노 강연은 해외사무국으로 연락 온 박선영씨와 연결이 되어 준비하였는데 모두 6명이 함께 행사를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식사 후에 스님께서는 바로 숙소로 가시고, 저는 묘덕법사님을 모시고 행사를 하면서 좋았던 점, 어렸웠던 점, 애로사항등을 나누기 하였는데, 정말 이곳까지 스님께서 와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해 하였고, 특히 행사준비를 총괄했던 박선영씨는 자신의 일에 대해 더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서 좋았다고 하였고, 다른 자원봉사자들도 이번 기회로 이곳 밀라노에서도 정토모임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하였으며, 몇몇 분들이 함께 공부를 해보겠다고 하여 또 하나의 씨앗을 퍼트리는 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그리고 동부 베네치아지역에서 오신 전원미씨는 이태리어로 스님의 법문을 번역하여 이태리분들과 나누고 싶다고 하여 해외사무국과 함께 한번 추진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다니면서 지역에 우리가 지원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도 큰 보람인 것 같고, 스님의 법문을 듣고 기뻐하며 그 지역에서 모임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분들께 최선을 다해서 지원을 해야 할 일이 우리들의 일임을 느꼈습니다.nbsp 이렇게 나누기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12시 2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도 내일 아침 밀라노 시내를 둘러볼 곳을 답사하신 후 같은 시간에 숙소로 돌아오셨습니다. 스님과 함께 내일 마지막 강연이 있는 뮌헨으로 몇시에 출발할지, 가면서 어디어디를 들러보고 갈지 등을 논의하고 나니 1시가 훨씬 넘게 되었습니다. 내일은 6시에 독일 뮌헨으로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내일은 이번 유럽강연의 8번째 마지막이 강연이 열리는 뮌헨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이태리 밀라노 강연스케치는 베를린 정토법회 이희정 법우님께서 도움 주셨습니다.
2013.10.9. 스위스 베른
nbsp 오늘은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서 유럽 순회 강연 중 6번째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스위스 베른에서의 강연은 유튜브로 스님의 동영상을 보고 있다는 어떤 분의 요청으로 그분이 베른에 사는 다른 분을 연결해주어 처음으로 이곳에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저도 스위스 방문은 처음이라서 약간 설레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하였습니다. 새벽 3시 30분에 잠이 들어 알람소리를 듣지 못해 스님께서 저희 방으로 깨우러 오셔서 6시 30분에 부랴부랴 일어나서 짐을 꾸렸습니다. 프랑스에서 저희를 안내해 준 박지현 보살님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저희는 7시 10분에 출발했습니다. 아름다운 프랑스 파리를 뒤로 하고, 네비게이션과 아이패드의 구글 지도를 보며 저희들을 안내해주시는 스님에 의지해서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번 유럽 강연은 매일 차를 타고 이동하니 차안에서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함께 하고 있는데, 꼭 인도성지순례 다닐 때의 느낌이 납니다. nbsp 프랑스는 면적이 남북한의 2.5배가 넘은 55만km2 라고 하니, 남한의 약 5.5배정도의 크기가 된다고 합니다. 서유럽 국가 중에서 면적이 제일 넓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구는 약 7천만 정도이며, 세계 경제 5위의 대국인데, 특이하게도 농업 부문은 유럽 EU 국가 중에서 자립을 넘어서서 농업 수출국이라고 하였습니다. 스위스로 오는 길에 스님으로부터 간단하게나마 유럽의 역사, 그리고 유럽 북방, 남방, 서쪽, 동쪽 등의 인종, 종교, 그리고 각 나라 사이의 갈등, 그리고 종교의 분화 과정 등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습니다. nbsp 스위스의 농촌 분위기도 볼 겸 해서 고속도로보다는 국도를 따라서 길을 접어들었는데 파리에서 스위스 베른까지 대략 7시간 정도면 될 줄 알았는데, 초행길인데다 일부는 국도로 가다보니 공사 중이거나 혹은 조금 돌아가기도 해서 9시간이나 걸려 오늘 묵게 될 유스호스텔에 도착했습니다. 대학생이나 배낭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유스 호스텔이었는데, 스님과 함께 여장을 풀고 잠시 휴식을 한 다음 5시 35분에 행사 장소로 출발하였습니다. 행사 장소는 베른 다운타운에 위치해 있었는데,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분들이 운영하는 개신교 교회였습니다. 아주 깔끔하고 정갈하였습니다. 6시 경에 행사 장소에 도착했는데 자원봉사자들이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해주셔서 대기실에서 점심 겸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nbsp 주 스위스 한국 대사 부인이 행사장에 와서 스님께 이곳을 찾아주심에 대해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책을 구입한 분들에게 스님이 사인을 해주었는데, 책을 많이 준비하지 못해 행사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다 판매되고 없었습니다. 스님 책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해 미안하였습니다. 스위스에는 전역에 걸쳐서 한인들이 약 천 명 정도 살고 있는데, 대부분이 한스 국제결혼을 한 가정이라고 합니다. 한국인들끼리의 모임도 거의 없는 이곳에 스님께서 방문해 주심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있었고, 오늘 행사장에는 약 90여명의 한인들이 모였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기는 처음이라고 하였습니다.nbsp 6시 30분 정각에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강연 전 질문할 분들을 접수할 때는 몇 명밖에 없었는데, 질문자 접수를 마감한다는 마지막 안내가 나가자 질문자 수가 10명이 넘어서 오늘도 12명이 스님에게 질문하였습니다. 오늘의 즉문즉설 강연에서 나온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nbsp 직장에서의 성공을 위해 두 자녀를 어릴 때부터 할머니에게 맡겨야 했었는데 그게 죄의식으로 다가 온다는 분, 현재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 생각하는데 만약 내게 남편이 죽거나 실직을 하는 것과 같은 불행이 온다면 어떻게 해 나가며 살아야 하는지, 시어머니와의 갈등 때문에 늘 남편과 다투기에 그런 모습을 자식에게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나쁜 것 같아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있는데 이것이 자식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게 될까봐 걱정이라는 분, 남편에 대한 불만으로 살아가는데 그것이 자식에게 좋지 못한 아버지 상을 만들어 준 것 같아 걱정이 되는데 그것 때문인지 자식들이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분, 결혼하여 스위스로 왔지만 이젠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기신 말을 생각하면 어떤 심정으로 그 말을 남기셨는지 모르겠고 그것만 생각하면 슬프다는 분, 부모님들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하는데 어떻게 하면 이들을 제대로 이끌어 줄 수 있고 용기를 줄 수 있을지 질문하는 분, 성향이 다른 친구가 있는데 만나면 늘 부딪히고 이런 친구를 받아줘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분, 그 외 법륜 스님의 세계적 비전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다음과 같은 즉문즉설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곳에 온지 2년 반이 되었고 스위스 남자랑 결혼해서 살고 있습니다. 프랑스어도 배우고 있는데, 매사에 의욕이 없고 우울하고 피곤합니다. 평소에는 그런대로 괜찮다가 직장에서는 많은 갈등이 있습니다. 이곳 문화에 적응했다 싶다가도 또 부딪힘의 반복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요?” 라고 질문하자, 법륜 스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nbsp “한국인들 안에서도 서로 그런 갈등이 있는데, 하물며 이곳은 외국이니 그런 문화적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직장생활에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셨는데, 나는 외국인으로서 이 나라 언어를 아무리 잘해봤자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과 비교하면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러니 내게 이런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다른 것을 잘 해주면 됩니다. 화난 일에 웃어주고 하기 싫은 것도 해주면 됩니다. 그리고 왜 직장생활에서 지치는지 찾아서 치료를 해야 합니다. 사람은 틀릴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고, 잘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괴롭고 힘들어 지는 것입니다. 모르면 물어서 알면 되고, 틀리면 고치면 되고, 잘못하면 뉘우치면 됩니다. 그러니 틀리는 것, 모르는 것, 잘못하는 것에 대해서 겁내지 말고 겪어가면서 되는대로 살면 됩니다.” 라고 말씀하시니 청중들이 외국에서 사는 어려움 때문인지 크게 공감하고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또 한 분이 “아이를 가지고 싶은 데 생기지 않아 고통스러우며 결혼한 지 7년 되었습니다. 스님께서 나오신 힐링캠프를 보고 마음을 편히 먹으려 노력은 하는데 마음을 쉽게 가라앉히기 힘들고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도 가지게 되고 제가 무능력한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아이를 가졌다거나 낳았다고 하면 머리로는 축하를 하고 싶은데 마음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제 자신을 편안하게 할 수 있을까요?” 라고 묻자, 법륜 스님은 이렇게 답해 주었습니다. “결혼의 목적은 서로 두 사람이 사랑하여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입니다. 행복하게 살다보니 아이가 태어나면 키우면 됩니다. 아이가 생기는 것은 생리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두 사람이 얼마나 사랑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억지로 하려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 아닙니다.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것에 목매어서 살게 되면 행복하지도 편안해지지도 않습니다.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결혼을 했고, 둘이 행복하게 살다가 아이가 생기면 키우는 것입니다. 아이를 갖고 싶으면 반드시 가져야 한다 생각하고, 갖기 싫으면 생긴 아이도 낙태시키는 것은 나의 욕망일 뿐입니다. 인연이 되면 책임지고 아이를 키우면 되고, 인연이 안되면 부부끼리 행복하게 살면 됩니다. 그리고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입양을 할 수 도 있습니다. 누가 낳았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입양을 했다 하더라도 내가 낳은 것처럼 아이를 키우면 내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스님의 강연이 길어집니다. 정확하게 2시 40분이 지나서야 스님의 답변이 끝이 났습니다. 마무리 말씀을 하고 나니 9시 20분이 되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준비한 책이 다 판매되어 책을 구입하지 못한 분들이 스님과 사진촬영을 하고 싶어하여 스님께서는 함께 사진촬영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외국인이 한국 부인과 함께 스님께 와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또한 스님께서는 행사를 총괄하여 주신 이주연씨, 저희와 처음 인연을 맺었던 로잔의 김이화씨, 그리고 행사를 준비하여 주신 자원활동가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9시 40분에 숙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저희는 뒷마무리를 하고 나서 근처의 찻집으로 이동하여 이번 행사를 준비하여 주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묘덕법사님과 함께 마음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해 주신 이주연씨는 스위스 베른 한글학교 교장선생님이고,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이 한글학교 선생님, 학부모 등이라고 합니다. 천주교 신자분들이 많았는데, 힐링캠프를 보면서 스님을 알게 되었고, 일부는 희망편지 앱을 통하여 스마트폰으로 희망편지를 받아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분들은 준비과정에서 너무 재미있었고, 힐링을 경험하였다고 하면서 이번 행사를 통해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얻었다고 하면서 내년에도 스님께서 꼭 방문해 주십사하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한인들이 얼마 되지않는 이곳 스위스까지 오셔서 우리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귀 기울여 주어서 너무 감동을 받았고, 고맙다고 하였으며, 불교가 딱딱한 교리가 아니라 대중들을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 같아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분들은 돈을 절약하기 위하여 일일이 손으로 준비물품을 만들기도 하여 준비과정을 얘기하는 가운데 이분들의 정성이 느껴져서 울컥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내년에 꼭 와달라고 하는 자원봉사자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11시 20분이 되었습니다. 로비에서 스님을 만났는데 스님께서는 오늘 낮부터 감기 기운이 있는지 컨디션이 안좋은 것 같습니다. 저도 뒷정리를 하고 잠자리에 드니 오늘도 새벽 3시가 됩니다. 내일은 이태리 밀라노에서 강연이 있으니 밀라노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스위스 베른 강연스케치는 베를린 정토법회 이희정 법우님께서 도움 주셨습니다.
2013.10.8. 프랑스 파리 강연
오늘은 프랑스 파리에서 유럽 8번째 중에서 5번째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김선희 뒤셀도르프 총무님 댁에서 일박을 하고 새벽 6시에 독일 아헨을 출발하여 6시 20분경에 벨기에 국경을 통과하였습니다. 오늘은 벨기에 수도인 부뤼셀를 통과하여 프랑스 파리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국경을 통과하고 차안에서 아침예불 및 천일결사 기도를 하고, 뒤셀도르프 나정숙 보살님이 아침 식사로 챙겨주신 김밥으로 요기를 하였습니다. 부뤼셀 로 들어가는 길은 아침 출근길과 맞물려서 교통체증이 심하였지만, 아이패드로 지도를 보면서 시내를 들어왔습니다. 다운타운에 공원이 있어 공원근처에 주차를 하고 왕궁이랑 다운타운을 돌아보고 시원한 가을 하늘을 즐기면서 잠시 산책과 관광을 하고, 벨기에를 지나서 프랑스 파리로 들어왔습니다.nbspnbsp파리 시내로 들어온 후 강연장을 찾는데 하필이면 그때 네비게이션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시내를 빙빙 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정에 없던 파리 시내관광을 잘 하였습니다. 오늘은 파리5구 mdm강당에서 강연이 열리는데, 강연장이 있는 거리로 들어서니 주소로 장소를 찾기 전에 멀리 강연안내 포스터가 먼저 시야에 들어오고, 주차안내 및 행사장 안내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환하게 웃으면서 스님께 인사를 하였습니다. 4개의 강연이 이루어진 독일의 도시와는 달리 파리 강연장에는 관광객과 유학생이 많은지 유난히 젊은 층이 많았습니다. 평일 오후 3시 강연이라 참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을까 하는 걱정이 다소 있었는데 준비된 200석이 다 차서 추가로 의자를 20석 더 깔아서 총 220석이 다 찼습니다. 프랑스 파리도 정식 정토법회가 있는 지역이 아니고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고 좋아서 몇몇 분들이 가정집에서 모임을 하는 열린법회지역이라 나름 큰 행사인 순회강연 준비에 대한 우려의 마음이 들었는데, 강연장에 들어서니 자원봉사자들도 많고, 정말 깔끔하게 행사를 잘 준비했다는 것이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파리 시내에서 빙빙 길을 도는 관계로 30분전에 행사장에 도착하여 스님께서는 책 사인회를 먼저 갖고 바로 3시에 강당으로 들어가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연단에 올라가자마자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부담없이 해보자고 하면서, 문제가 있다면 다만 얘길 해볼 뿐이며 그러다 보면 길이 저절로 열린다고 하시며 삶의 경험속에 진실이 있기에 그것을 같이 찾아가 보자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6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1. 13세의 아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는데 그런 좋지 않은 습관을 어떤 방법으로 해야 자존심 상하지 않게 다른 방향으로 잡아줄 수 있을까요? 2. 한국에서 미술교사로 활동하다가 프랑스로 유학을 와서 이제 3년이 되었는데, 한국에서는 학생들과 잘 통하는 교사로 알려졌는데 여기에서는 젊은 학생들과 접촉을 하다보니 많이 부딪혀 이제는 대인기피증까지 생길정도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리고 학생들을 피하다 보니 교민들을 만나고 있는데 이분들을 보면 서로 다 사기꾼이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이분들도 다 피할 수 없으니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요? 3. 유튜브를 통해서 스님의 법문은 만나고 있는데, 현실속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데, 궁금한 것은 정말 신은 있는지, 있다면 신이란 어떤 것인가요? 4. 아이가 4살때 이혼해서 현재 12살 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아들이 남이나 엄마의 아픔에 대해 무덤덤하고 마음으로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아이가 무감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회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 불교공부를 하다보니 고통 받는 사람을 구제하라는 것과 사회적 약자에게 참고 견디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불교가 개인한테는 수동적이라는 느낌이 들다보니, 불교가 오히려 사회변화 동력의 힘을 떨어뜨리는 것 같아 충돌이 일어나는 것처럼 생각이 되는데, 불교에서는 사회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 5. 성추행 같은, 있었던 일을 아무일도 없었다고 생각하라고 하는데 그런다고 있었던 일이 어떻게 없어진다고 할 수 있는지요? 6. 아이가 공부는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데 걱정되는 것은 아이가 노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너무 게으르다는 것인데 어떻게 하면 아이의 게으름을 고쳐줄 수 있겠는지등 이런 질문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사회학을 공부하는 분의 질문과 성추행에 관한 답변이 길어지면서 오늘 강연도 거의 3시간에 걸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중에서 두번째 질문자인 미술교사와의 즉문즉설 내용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자기가 유리할 때만 자기잣대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미술교사를 했다 하더라도 학생으로 유학을 왔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학생입니다. 다른 학생들도 자기를 나이에 관계없이 학생으로만 봅니다. 그런데 현재 질문자는 상황에 따라 나이로 계산을 하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과 갈등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나이로 봐주지 않습니다. 질문자가 자기 유리한 대로 계속 자기 잣대로 재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관점을 하나로 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물을 볼 때 지금은 학생으로만 생각하고 생활해야 합니다. 학생으로 있으면서 선생의 관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똑같은 학생임을 알고 다른 학생들과 관계를 맺는다면 갈등이 사라질 것입니다. 또한 여러가지 분별심이 일어날 때는 ‘내가 이렇게 보고 있구나’, ‘이런 차이가 있구나’ 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교민사회가 한국 일반사회보다 반목이 조금 더 심한 편입니다. 외국에 오면 언어, 문화가 다르므로 서로 오해가 생기기 쉽습니다. 그리고 긴장해서 살기 때문에 작은 상처나 손실에도 민감하게 대응하게 됩니다. 민감하기 때문에 피해의식이 생기고 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이주민들의 특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국에 나온 분들은 나름대로 다 똑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다 나와 모여 있으니 그 그룹에서 질서가 잡히지 않고 갈등과 반목이 생기는데 이것은 교민사회 형성자체가 그렇게 생겨난 것입니다. 연구란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을 살펴보는 것인데,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이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연구해보면 좋은 공부거리가 될 것입니다. 현재 질문자는 학생의 신분으로 왔는데 배우려는 학생이 배우려는 자세가 아니라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나는 학생들에게 평등하게 대하고, 도와줄 일은 어른으로서 학생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학생들에게 도와주어야 할 때는 똑같은 학생으로 하고 있으니 그래서 번뇌가 생기는 것입니다. 나이도 많은 나를 같은 학생그룹에 끼워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고 생각하고, 항상 나를 낮춰서 학생들과 동등하게, 그리고 어려운 문제는 어른으로서 해결해주고, 무엇이든 나눠주면 될 것입니다. 지금 질문자는 자기가 학생들을 피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내가 스스로 내 자유를 박탈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회문제를 바라보면 불평불만만 많아지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안됩니다. 그러니 우선 내가 먼저 자유롭고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스님께서 답변을 하시자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하고 박수를 쳤습니다. 강연장 사용이 6시까지였으나 다음 팀이 와서 기다리고 있어서 마지막 정리를 서둘러야 했는데, 자원봉사자들은 짧은 시간에 책 판매대, 안내대 정리, 배너정리를 신속하게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이 끝나자마자 바로 나와서 책을 구입하여 기다리고 있던 분들께 사인을 더 해주시고 일일이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오늘 행사장 당담자인 프랑스 분이 오셔서 스님같이 존경받는 분을 자기들 강연장으로 모실 수 있어서 기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강연장에는 프랑스 상원에서 일하는 분으로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활동하는 프랑스인이 참가하여 스님의 강연을 듣고 스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통일에 기여를 하고 싶다고 하니 감동스런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뒷정리를 마치고 묘덕법사님과 옆방으로 이동하여 바로 공감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총 18명의 자원활동가들과 나누기를 하였는데 열린법회팀은 몇명 안되지만 당일 행사 자원봉사를 해주신 분,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아일랜드에서 와서 자원봉사를 해주신 분, 프랑스와 독일 국경지역인 스트라스지역에서 와서 봉사를 해주신 분등, 이분들이 모두 유튜브로 스님의 법문을 듣고 일상생활 속에서 큰 기쁨을 느끼며 살고 있는데 이렇게 강연장에서 스님을 만나뵙는 것도 기쁘고 강연준비에도 조그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다들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은 한국 평화재단에서 오랫동안 스님을 도우며 일하다 파리로 이사 온 박지현 보살님을 중심으로 열린법회 모임이 만들어지면서 이분들이 주축이 되어 강연준비를 했는데 적은 인원으로 이런 큰 행사를 치루어낸 것에 대한 뿌듯함과 2006년도에 파리에 온 후로 파리에 와서 한국사람을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만난 것은 처음이라는 분 등, 다들 정말 감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기쁘고 반가웠습니다. 나누기를 하고 근처 식당으로 옮겨서 자원활동가들과 식사를 하고 내년에도 다시 파리를 찾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식사는 스님의 법문을 유튜브로 듣고 좋아하시는 강창진 거사님이 자원봉사자 모두들 초청하여 저녁식사대접을 하였습니다. 저녁식사 후 저희는 오늘 숙소인 박지현 보살님 아파트로 오니 저녁 9시 30분이 되었습니다. 내일은 스위스 베른으로 가니 이동시간이 길 것 같습니다. 내일은 스위스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프랑스 파리 강연스케치는 베를린 정토법회 이희정 법우님께서 도움주셨습니다.
2013.10.7. 뒤셀도르프 강연 및 독일 정토불교대학 / 경전반 졸업식 및 수계식
nbsp새벽 3시 30분에 취침을 하여 5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알람소리를 듣지 못하였고, 세분의 총무님들이 먼저 뒤셀도르프 법당으로 출발한다는 소리에 눈을 뜨니 7시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이상호 거사님댁 뒤뜰을 한바퀴 둘러보시고 텃밭과 비닐하우스에 심어 놓은 풋고추를 따서 아침식탁에 가지고 오셨습니다. 정원이 아주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고, 텃밭에 갖가지 한국 채소를 가꾸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저희는 오전 8시30분에 뒤셀도르프 법당으로 출발했는데, 연휴 뒤의 출근길이어서 그런지 어제 저녁에 두이스부르크로 오는 길처럼 고속도로에서 정체가 심하여 10시에 겨우 법당에 도착하였습니다. 10시 30분부터 독일 정토회 세군데 법당에서 공부를 한 정토불교대학 및 경전반의 졸업식과 수계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독일에는 프랑크푸르트, 뒤셀도르프, 베를린 세 곳에서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개설하여 경전반 8명을 포함하여 프랑크푸르트에서 6명, 뒤셀도르프에서 6명, 베를린에서 9명이 졸업하여 총 21명이 졸업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졸업식 법문 중에서 스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마가다국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에 고행을 함께 하였던 5명의 친구들을 찾아가서 처음 전법을 하였는데 중도, 사성제, 팔정도에 대해서 최초로 설법을 하였습니다. 이때 깨달음을 얻은 다섯 비구스님이 최초로 등장하였고, 그 다음에 구리가 장자 부부가 첫 재가 수행자로 삼귀의, 오계를 수계했습니다. 그리고 20년 뒤에 부처님의 어머니, 출가전 아내인 야소다라 공주를 비롯한 오백여명의 석가족 여성들에게 비구니계를 수계하고, 드디어 사부대중, 비구, 비구니, 우바이, 우바새가 성립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는 사제가 아니라 수행자입니다. 따라서 불교에서 사부대중은 모두 수행자입니다. 비구, 비구니는 출가 수행자이고 우바이, 우바새는 재가 수행자입니다. 그래서 수행자에는 4종류의 수행자가 있게 되고, 이 중에서 깨달음을 얻은 자가 상가 구성원이 됩니다. 그러므로 대승 상가는 4가지 종류의 대중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종교화된 불교에서는 사제와 신도가 있는데, 이것은 변질된 것이고, 원래는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원래의 불교,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수행자만 있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부처님 원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서 다같이 수행정진하여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자는 것입니다. 법에 의지하여 수행정진하자는 것이므로, 부처님께서 숲속에서 정진한 것과 마찬가지고 빈방이 있으면 여기가 수행처입니다. 따라서 가정집, 식당, 사무실, 교회, 모든 곳이 다 그냥 수행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조선조 오백년 동안 삼귀의 오계의식이 사라져버렸는데 용성진종조사께서 다시 재현해내었습니다.” 라고 하시면서 삼귀의 오계의식에 대해 말씀을 해주시니 여러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다시 한번 내가 부처님의 길을 따르는 수행자임이 자랑스러웠고, 정토행자로서 수행의 길을 걷고 있음이 자랑스러워졌습니다. 졸업식과 수계식은 사람이 적든 많든 거의 3시간 30분정도의 시간이 소용됩니다. 그래서 스님과 함께 기념촬영도 하고 나니 2시 20분이 되어서야 행사가 끝이 났고, 그제서야 점심공양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보살님들이 비빔밥으로 점심공양을 준비해주셨는데, 오늘 뒤셀도르프는 오전에 졸업식, 오후에는 즉문즉설 강연이 있으므로 적은 봉사자로 2개의 행사를 하니 무척 바쁜 하루가 되었습니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졸업생 및 행사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강연장으로 가고, 저희들은 조금 휴식을 취하다가 강연장으로 가니 6시가 되었습니다. 오늘 강연은 뒤셀도르프 한인교회에서 이루어 졌는데, 강연장에 도착하니 김재완 목사님께서 스님을 반갑게 맞아주셔서 두 분이 정말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또한 행사장에서는 교회분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미리 책을 구입한 분들께 사인을 해주시고 6시 30분에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강연 안내멘트와 함께 단상에 오르신 스님께서는 먼저 이렇게 훌륭한 교회를 빌려주신 김재완 목사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스님께서 자리에 올라서도 강연장이 꽉 차서 의자를 계속 더 내어왔지만 자리를 더 이상 만들 수 없어서 서서 강연을 들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모두 일곱 분이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첫번째 질문자는 세가지 질문을 하셨는데 1 불교는 깨달음과 믿음의 요소가 있다고 했는데, 무엇을 깨닫고 믿어야 하는지, 2 한국에서 수많은 깨달은 선사가 있었는데, 그들은 무엇을 깨달았는지, 3 나이가 조금 들어 독일에 와서 애도 낳고 이제 머리도 하얗게 되었는데,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을 놓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제 애들도 다 키워 놓고, 남들은 은퇴할 나이가 되었지만, 학교도 다니고 싶고 새로운 일도 하고 싶은데, 이것은 나이가 들면 놓아야 한다는 것과 다른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세번째 질문에 대해서 먼저 답변을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질문자에게 “나이가 얼마나 됩니까? . 주위를 한번 돌아보세요. 그 나이가 늙은 나이입니까? 얼마나 된다고 늙었다고 하십니까?” 라고 하니 관중들은 웃음보를 터뜨렸습니다. “늙는다는 것은 자연현상입니다. 자연현상에 따라 몸을 움직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젊어서 욕심을 내면 열정이 되고, 늙어서 욕심을 내게 되면 노욕이라고 말합니다. 젊었을때는 과식, 과음, 과로를 해도 빨리 회복이 되지만 나이가 60이 넘어가면 과식, 과음, 과로를 하게 되면 몸이 낫더라도 기운이 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생물학적인 존재 자체는 그렇게 되므로 그때 그 나이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60 고비를 넘어가게 되면 조금씩 비워가야 하며, 이것이 자연현상입니다. 자연현상에 맞추어 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대신 맞추지 않으면 자기에게 손실이 있게 되고 비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릴 때는 어른 흉내를 내고, 어른이 되어 젊은이 흉내를 내려고 하면 오히려 손실이 오므로 그때 그 나이에 가장 알맞게 행동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이롭게 됩니다. 봄꽃도 이쁘지만 가을 단풍도 예쁩니다. 떨어진 봄꽃을 주워가는 사람은 없지만 떨어진 가을단풍은 책갈피에 꽂아 둡니다. 따라서 곱게 늙어가는 것이 품위있고 더 아름답습니다. 곱게 늙어가는 비결은 인생을 조금씩 정리하고 집착을 내려놓고, 나눠주고, 베풀어주고, 봉사하고, 사회에 환원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젊었을 때는 깐깐했더라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너그러워지고, 젊을 때 재물을 모으던 것을 늙으면 빈손으로 올 때처럼 비워가야 합니다. 젊을 때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야망차게 행동하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자기 재능을 나누어 주는 봉사를 하면서 살아가면 늙어 가는 것이 청춘보다 훨씬 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살 때는 마음껏 살고, 죽을 때는 기꺼이 죽는 것이 자연의 원리에 맞게 사는 것입니다. 인생의 고뇌는 자연의 원리에 거슬러 살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스님께서는 자연에는 차별이라는 것이 없기에, 태어남에 의해서 주어지는 성별, 인종, 신체장애, 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은 그래서 자연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늙어가면서 일어나는 성질이 있는데, 자기의 성질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성질에 맞게끔 인간관계를 조절하고 유지시켜 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수행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자연의 원리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수행이고 또 원리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불교안에는 어떤 불교냐에 따라 그 스펙트럼이 너무나 넓기 때문에 불교는 이렇다고 말할 수가 없다고 하시자 질문자가 자기가 원하는 답변을 주는 것이 아니니 조금 기분이 나빠 보인다고 하시면서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라는 것에 사로잡혀 버리면 기분이 나빠지고 그러면 마음이 무거워지는데 그럴때 스님이 왜그럴까 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살펴보면 오히려 질문에 대한 답변을 알 수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스님이 ‘불교는 이런 것이다’ 라고 말하는데 왜 기분이 나쁜지 마음을 살펴보는 것이 수행이고 이렇게 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믿어야 된다는 것은 이미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물의 이치를 관통해 버리면 이미 믿어져 있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므로 믿음과 깨달음이 둘이 될 수 없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억누르고 제어하는 것이 수행이 아닙니다. 마음작용의 본질을 꿰뚫어야 합니다. 내가 싫어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놓아버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본질을 깨달아서 삶의 양식으로 삼을 수 있어야 그것이 불교입니다.” 라고 스님께서 보충 답변을 해주시자 질문자의 얼굴이 다시 환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두번째 질문자는 영국에서 7년간 공부를 했지만 학위를 받지 못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극복하려 노력하지만, 부모님께 학위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게 걱정이어서 아직 말을 하지 못했다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에 스님께서는 학위를 빼고 따로 얻은 것은 무엇인가 물으시며, 공부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이 수행이 아니고, 하기 싫은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오히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기에 어찌 보면 떨어진 것이 잘된 것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가장 큰 성과는 내가 남의 눈치때문에 세상을 살아갔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7년도 긴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박사학위를 못받았기 때문에 다른 직업을 갖는다고 생각하면 열등의식이 되지만, 적성에 안 맞는 것을 억지로 하려 했구나 하고 깨닫는 다면 그것은 오히려 성과라고 하시면서, 부모님께서 지금까지 도와주신 것은 고마워해야 하고, 나중에 돈을 벌어서 갚으면 되기에 부모님에 대한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부모님에게 지속적인 불효를 하는 것이라고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세번째 질문자는 강연장에 올 때는 질문이 없었는데 강연대 앞에 붙여져 있는 ‘내가 희망입니다’ 를 보니 갑자기 질문이 생겼다며, 그게 어떤 뜻이냐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에 스님께서는 내가 내 인생, 내 가족, 사회공동체, 인류공동체, 지구에 대한 희망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희.망.세.상.만.들.기. 운동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서, 이에 나부터 시작해보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이런 일들의 출발은 내가 행복해야 하는 것이기에, 모든 것의 첫출발은 내가 먼저 행복하고 자유로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30대 직장인이라고 말씀하신 네번째 질문자는 독일 온지 5년 되었는데 지금까지는 열심히 달려가고 그 성취감속에 살았는데 요즘은 매사 늦어지고 재미가 없어지는 것 같다고 고민을 얘기하자, 스님께서는 전체적으로 속도가 늦고, 차분히 준비하며 여유있게 살아가는 독일은 한국과 다르기에 여기에서 오히려 가질 수 있는 장점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성숙한 사회에서는 이 사회가 가지는 좋은 점을 생각하면서 적절한 여유를 가지고 사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결혼 26년째인 다섯번째 질문자는 자신은 그렇다고 생각지 않는데, 남편이 넌 척척박사구나, 잘났어라고 그런말을 하면 그냥 넘기지 못하고 부르르 올라가는데 왜 그런 화가 올라오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스님께서는 고집이 센 줄 모르는 사람이 고집이 정말 센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그건 자신의 상태를 자기가 모르는 것이니, 남편이 그런 말을 하면 내가 그런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그동안 아는 척하고 간섭했기에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기에, 그런 것을 알고 108배 기도를 통해 남편에게 참회의 기도를 해 볼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들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은 그런 줄 다 아는데 자기만 자기 상태를 모르는 범부중생의 상태이므로, 이에 한단계 나아가면 남이 아는 것을 나도 아는 현인의 단계이며, 자기 까르마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아는, 남이 나를 모르는 것까지 아는 것의 중요함을 이야기 하셨다. 남편이 보기에는 그렇게 비치어 그런 말을 한 것이기에 내가 어떤 상태이기에 상대가 그렇게 말할까 생각해보고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라고 하셨습니다. 상대가 그렇게 말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기에, 자기 스스로 자각이 안될 때는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고 기분이 좋을 때 물어 보라고 하시는 구체적인 제안도 해주셨습니다. 또한 자매간의 갈등에 대한 질문을 한 여섯번째 질문자에게는 내가 언니를 이해하는 것은 내 문제고, 언니가 나를 이해하는 것은 언니 문제이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기에게 적용하면 양약이고, 남에게 적응하는 것은 독약이기에 갈등이 있을 때 가르치려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잘못했다고 사과를 할 때도 나는 그렇게 할뿐이고, 받아주고 받아주지 않고는 상대의 문제이기 때문에 상대가 받아주고 안받아주고에 따라 마음이 움직이고 변하는 것은 내가 상대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므로 그냥 내가 화해를 해버리면 이미 나는 화해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자꾸 남편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마지막 질문자에게 생긴대로 살아라고 하여 모든 사람들이 빵하고 터졌습니다. 무의식에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남을 도와주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기에 나쁘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으므로 잘 고쳐지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남편이 아내의 잘못한 것까지 지금은 사랑해 주니 같이 사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런 단점보다 질문자가 가진 장점이 더 많기에 그것이 커버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남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라고 하면서 고치지는 못하더라도 좀 줄여 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강연장소가 교회였기 때문인지, 스님께서는 성경말씀을 많이 인용하셔서 스님이 불교 강연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를 정도로 참석한 분들이 아주 즐거워하고 좋아한 강연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스님께서는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강연이 끝이 났고, 강연이 끝난 후에는 책을 구입한분들에게 사인도 해주시고 사진촬영도 함께 하였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스님을 유튜브로 만나고 계시는데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고 스님 손을 꼭 잡고 싶어 하였습니다. 행사 후에 뒤셀도르프 신도님들이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 오셔서 참석자들이 다과의 시간을 가지는 동안 자원봉사자들과 저는 묘덕법사님과 공감나누기를 하였습니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점, 미비했던 점, 좋았던 점을 서로 나누면서, 이번에 2개의 행사를 준비한다고 힘들었던 것등을 격려도 해주었습니다. 또 처음 행사총괄을 맡아서 진행한 김순진 보살님과 임진선 보살님께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2011년에 비해서 거의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더 많이 참석한 것에 서로 기뻐하면서 내년에는 더 큰 장소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해보자고 하면서 내년을 기약하기도 했습니다. 한인교회 관계자분들과 신도님들이 우리가 나누기를 하는 동안에 설겆이등 뒷정리를 해주시고 또한 즉석에서 공감나누기 장소를 마련해 주시고, 저희들이 여유있게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시고, 많은 배려를 해주셔서 다시한번 목사님과 교회 신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신도님들께 내년에 만나자고 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하고 저희는 10시 10분에 오늘 숙소인 아센의 김선희 총무님댁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김선희 총무님집에 도착하니 11시 20분이 되었습니다. 내일은 프랑스 파리에서 오후 3시에 스님의 즉문즉설강연이 있기 때문에 오전 6시에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대부분 뒷정리를 하고 23시에 잠자리에 들었으나 저는 밀린 스님의 하루를 작성하느라 꼬박 밤을 새웠습니다. 내일은 프랑스 파리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뒤셀도르프강연 스케치는 베를린 정토법회 이희정 법우님께서 도움 주셨습니다.
2013.10.06 함부르크 강연
오전 10시에 함부르크에서 강연을 하는 관계로 새벽 4시30분에 기상하여 바로 짐만 꾸려 5시에 베를린에서 출발하여 9시에 오늘 강연이 열리는 함부르크에 도착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미 도착해서 행사 준비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과 인사도 하시고 행사 장소를 둘러 보셨습니다. 함부르크 강연에는 정토법회가 있는 곳이 아니라 2년 전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고 몇몇 분들이 모여서 열린 법회를 하고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오늘 강연은 프랑크푸르트 송임덕 총무님과 인연이 있는 김성 보살님과 열린법회팀이 짧은 시간에 협력하여 행사를 준비를 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린 곳은 독일인이 운영하는 불교센터인데 이곳을 관리하고 계시는 분이 오셔서 2년 전에 스님께서 드린 영문책 2권이 너무 좋다고 하면서 독일어로 번역을 해도 괜찮은지 스님께 문의를 했고, 스님께서는 이번에 새로 나온 True Wisdom을 선물로 드리니 아주 즐거워하고 감사해 하였습니다. 10시에 바로 스님의 강연이 시작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우리 삶의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들 삶속에서 진리로 나아가 보자고 하시면서 바로 첫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 삼배를 왜 하는가요? 2. 어릴 때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그런지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사로 잡혀있는 것 같고, 불교에서 재물을 쫓지 말라고 하는데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가요? 3. 자식과 부모의 인연 관계가 늘 궁금합니다. 두 살 된 남자아이가 있고 또 현재 둘째를 임신 중에 있는데 어떻게 저에게 남자아이가 왔는지, 인연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4. 나이가 들면서 시간도 많고 아침에 일어나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일어나고 약간 불안감이 일어나서 작은 질환 같은데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을까요? 5. 스님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정리가 되는데 실생활에서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실제로 쉽지는 않습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아프기 전에 마음을 어떻게 하면 놓을 수 있는지, 노력과 집착은 어디까지인지요? 6. 성격이 욱하는 성질이 있어 화를 내게 되는데, 이것이 고민이라서 고칠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까요? 7. 한국에서 20년, 독일에서 40년 정도 살았는데, 마지막으로 가서 살아야 할 곳이 어디인지? 이 외로움을 어떻게 할지? 절에 가면 이 외로움이 없어질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8. 남편에게 집착을 하는 편이고,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면 질투심이 많이나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지금 같이 산지 30년이 되었는데도 계속 이러니 어떻게 해야 할지요? 이렇게 8명이 스님께 질문을 하고 답변을 주고받는 가운데 2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면서 박장대소를 하고, 고개도 끄덕이면서 아주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음이 작용하는 원리를 알게 되면 불행보다는 행복을, 괴로움보다는 기쁨을 느끼며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삶도 나날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고 하시면서 2시간의 강연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이중에서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거룩한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자들에게 귀의하며 공경의 예를 표하는 것이 3배의 절입니다. 붓다는 스스로 깨달은 사람, 그리고 붓다의 가르침인 담마, 깨달은 분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은 이, 상가, 이를 불, 법, 승이라고 하며 이것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세가지 보배라고 해서 삼보라고 합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고개를 쳐들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생각을 잘못했구나 하면 들은 고개를 숙이게 되고, 더 잘못 했구나 생각하면 허리를 숙이게 되고, 더 잘못 했구나 생각하면 무릎을 꿇게 되고, 더 잘못 했구나 하고 생각하면 이마를 땅에 조아리게 됩니다. 이것이 절입니다. 절은 상대를 높이고 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즉 아상, 아집을 버린다는 것이 절입니다. 부처님은 절을 할 만큼 존경할 만한 분이기 때문에 절하는 것이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그러나 부부가 서로에게 절 할 수 있을 때 진짜 절이라고 합니다. 남편의 발아래 내머리를 두는 것입니다. 자기를 안굽히고는 절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세리와 창녀에게 발을 씻겨 준다는 것은 가장 높은 자가 가장 낮은 자를 자기보다 높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도 똑같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절을 한다는 것은 자기를 내려놓는 것이기 때문에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이 옳습니다. 내가 부족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아내에게 ‘당신이 옳습니다. 내가 부족합니다.’ 라고 절을 할 때 진짜 절의 의미가 됩니다.” 라고 스님께서 말씀하시자 참석자들이 큰 박수로 스님의 말씀에 화답하였습니다. 삼배를 왜 하는지에 대한 단순한 질문 같았는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스님의 답변이었습니다. 오늘 스님께 한분이 와서 인사를 했는데 교회의 집사님인데 일요일 오전 10시에nbsp예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말씀을 들으러 왔다고 하면서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이제 스님의 강연은 종교를 떠나서 정말 많은 분들이 삶의 지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 기쁘기 그지 없었습니다.nbsp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책을 구입한 분들께 사인을 해주시고, 같이 사진도 찍었습니다. 이제 어디를 가든 스님 손을 잡고, 사진을 찍고자 하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준비한 책도 거의 다 판매되고 일부 종류는 책이 없어서 판매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느낀 것은 그동안 ‘스님의 주례사’, ‘방황해도 괜찮아’, ‘엄마수업’ 위주로 책을 준비했는데 북미주 강연과 마찬가지로 금강경 책이 인기가 좋아서 준비한 것들이 다 판매되었습니다. 법당이 좁아서 스피커를 통하여 바깥에서 자원봉사를 하신 분들도 함께 스님 강연을 들을 수 있어서 오늘 70여명이 함께 하였습니다. 식사 후에 저희들은 묘덕법사님과 오늘 행사를 준비한 함부르크 열린법회팀들과 김성 보살님과 함께 행사준비를 하면서 좋았던 점, 어려웠던 점, 불편했던 점 등을 서로 얘기를 하면서 아주 즐거운 공감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2년 전에 혼자서 행사를 준비했던 김성 보살님은 이번에 젊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행사를 준비하고, 준비과정에서 정말 열과성을 다해서 준비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하시면서 눈물을 비추기도 했습니다. 미주지역이 아니라서 열린법회 팀장들과 서로 얼굴도 알지 못하였는데 이번에 담당자인 구은용 보살님과 그리고 함께 법회를 하고 있는 보살님들을 보니 저도 반갑기가 그지 없었습니다. 이렇게 나누기를 하고 스님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후에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내년에 보자고 하면서 저희는 오늘 숙소인 두이스부르크 이상호 거사님댁으로 2시 10분에 출발을 하였습니다. 7시 정도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오늘이 연휴 마지막 날이라서 고속도로가 계속 밀렸습니다. 무슨 연휴인지 여쭈어보니 10월 3일이 독일 통일의 날이라고 합니다. 독일 통일기념일 연휴라고 하니 갑자기 부러운 마음도 들면서 우리도 하루빨리 남북이 통일되어 통일한국을 기념하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시 30분에 이상호 거사님 댁에 도착하니 보살님과 뒤셀도르프 신도님들께서 오셔서 저녁식사 준비를 해놓고 있었습니다. 다 함께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2년만의 만남을 축하하면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프랑크푸르트 송임덕 총무님, 베를린 이희정 총무님, 그리고 뒤셀도르프의 김선희 총무님, 그리고 운전봉사를 해주시는 김용태 거사님과 함께 우선 내년 독일과 유럽 강연계획 및 루트 등에 대하여 회의를 하였습니다. 또한 한독가정의 배우자와 자녀를 위한 스님의 강연을 통역을 해서 한번쯤 해보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고, 앞으로 한국인이 아닌 2세 자녀와 외국인을 위한 전법 계획등도 함께 하니 시계가 12시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2부로 스님께서는 총무님들과 다시 독일정토회 법인업무와 관련하여 2년만에 회의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동안 밀린 법인 업무보고 및 회의등을 하니 3시간이 훌쩍 지나가서 3시가 되어서야 부랴부랴 회의를 마무리하고 내일은 8시30분에 뒤셀도르프 법당으로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뒷정리를 하고나서 3시 30분이 되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오전 10시부터 정토불교대학 졸업식 및 수계식 그리고 오후 6시30분부터는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있으므로 뒤셀도르프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3.10.5. 베를린 강연
오늘 새벽 3시30분에 잠을 잔 관계로 오전 6시에 기상하여 짐을 꾸려 1층으로 내려와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7시에 김용태 거사님이 운전하는 벤을 타고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출발했습니다. 김용태 거사님은 라이프찌히에 살고 계시는데 8일 동안 저희를 태우고 함께 강연에 다니기 위해서 어제 라이프찌히에서 프랑크푸르트로 내려오셔서 저희와 합류하였습니다. 아침기도를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차를 타고 고속도로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모두 아침예불과 천일결사기도를 하였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비가 내렸는데 오늘 오전에는 어제밤보다 훨씬 더 비가 많이 오니 고속도로를 운전하는데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독일은 미국이나 한국에 비해서 훨씬 친환경적인 나라인데, 그 대표적인 예가 도로를 따라가면서 계속되는 풍력발전기와 태양열전기를 만들어 내는 태양열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스님께서 9시 정도에 옛날 서독과 동독을 가르는 경계지역을 넘어선다고 말씀을 해주셔서, 독일이 동독과 서독이 합심하여 통일독일을 만들어 낸 것처럼, 저희들도 남북이 서로 합심하여 통일 한국을 만들어 내기를 발원하면서 잠시 숙연한 마음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발원하기도 했습니다. 휴게소에 들렀을때, 스님께서 독일 및 유럽지도를 펴고 이번 강연을 할 8개 도시를 도는 루트를 가르쳐주시면서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중서쪽에 위치해 있고, 베를린은 독일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대략적으로 독일의 각 도시와 유럽 도시를 지도속에서 살펴보기도 하고, 어제 행사뒤에 남은 김밥과 김선희 총무님이 준비해 온 김치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스님은 한국이나 독일에서나 늘 길 위에서 김밥을 드실 모양이십니다. 거의 1시경에 오늘 묵을 숙소인 이희정 총무님 아파트에 도착하니 몇몇분들이 반갑게 다가와서 스님께 인사를 합니다. 바로 집으로 들어가서 총무님과 베를린 신도님들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다들 물품을 챙겨서 오늘 행사장으로 가고, 저희는 각자 휴식도 취하고 업무도 하였습니다. 오늘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5시에 강연이 열리는데, 스님은 4시 40분에 행사장에 도착하여 신도님들과 미리와서 책을 구입하고 행사장을 둘러보고 계시는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강연장소가 강의실인데 350석정도가 되어 보여서 얼마나 모일지 궁금했는데 강연이 시작되니 반 이상이 차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는 강연을 시작하면서 “나는 좋은데 남이 손해가 나는 일은 지속성이 없습니다. 반드시 나쁜 과보가 따릅니다. 그리고 남은 좋은데 내가 손해 보는 것도 지속성이 없습니다. 이분들은 주로 참고 인내하기 때문에 개인은 행복하지 못하고, 또한 오래 지속할 수도 없습니다.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지속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을 위해 희생을 한 사람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것은 원래부터 지속성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는다, 용서한다는 것은 지속성이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인욕은 참을 것이 없는 것이고, 진정한 용서는 용서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는 다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속가능하려고 한다면 나도 좋고 남도 좋고, 나도 이익이 되고 남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이고, 이런 조건을 갖추면 우리가 진리라고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는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하였으며, 위의 요소를 갖추면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이 요소를 갖추지 못하면 언젠가는 과보가 돌아오게 되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얘기는 종교, 과학, 불교, 기독교 이런것을 따지지 말고 그것이 가능하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 하는 것만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라고 첫 서두를 열었습니다. 오늘은 총 6명이 질문하였는데, 어제 프랑크푸르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주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질의응답이 이루어졌습니다. 1. 저는 30살 된 지적장애우인 여동생이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때 부터 여동생을 봐왔고 함께 생활해서 여동생이 이상하지 않고 편하고 평범하게 여겨지는데, 최근에 결혼할려는 여자친구가 이것을 알고 부담스러워하고 떠났습니다. 그래서 현재 생각도 정리할 겸 여행을 와 있는데,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해야 하는지, 제가 좀 덜 좋아하더라도 이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여자와 결혼을 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2. 베를린에 살고 있는데, 하는 일마다 최근에 안좋은 결과가 나와서 포기하고 싶을 때 스님께서는 어떻게 해결해 나가고 이겨나가는지 궁금합니다. 3. 독일에 온 지 40년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발효효소가 좋다고 하여, 유익하다고 하여 저도 매일 베를린에서 발효효소를 만들어서 먹고 하는데 몸속에서 물하고 섞여서 반응하는 것과 공기속에서 반응하는 것이 어떻게 같은지 다른지 궁금합니다. 4. 작년에 전역을 하고 베를린으로 왔는데, 이제서야 어렴풋이 꿈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동기부여를 받아서 꿈을 이루어야 할 것 같은데 절박함이 부족한지 동기부여가 잘 안됩니다. 그래서 절박함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5. 베를린에 온 지 6개월 되었는데 공원도 많아서 산책도 많이 하게 되고 사유의 시간을 많이 즐기고 있습니다. 한국의 절에 가면 생각도 정리하고 산책도 하고 해서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독일에 오니 절이 없어서 갈 곳이 없는데 스님께서는 유럽이나 독일쪽에 절을 차릴 생각은 없는지요? 6. 인터넷으로만 스님법문을 듣다가 이렇게 직접 듣게 되니 너무 반갑습니다. 간호원으로 40년을 살고 있는데 이제 이곳이 한국보다 더 많이 살았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도 알고 있는데 마음 한가운데는 허전함이 있습니다. 이 허전한 마음을 떨쳐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런지요? 와 같은 질문들이 나왔는데 어떤 질문에는 간단하게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도 있었고, 어떤 질문에는 단호한 경책과 질책도 있었고, 또 어떤 답변은 자상하게 대답해 주실 때도 있었는데 모두 질문자와 상호 교감을 하면서 듣는 청중들인 저희는 아주 즐겁고 유쾌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첫번째 내용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질문자는 입에 쓰지만 몸에 좋은 약을 먹겠습니까? 맛도 좋고 빛깔도 좋지만 나중에 해로운 마약을 먹겠습니까? 질문자는 상대가 좋지만, 그 상대는 질문자의 무엇을 보고 결혼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인물도 잘생기고 훤칠한데요. 거기다 학벌도 있고 직장도 좋고 하니까요. 그런데 장애동생을 보고 부담스러워 했다지요. 상대방이 떠난 것은 여동생 때문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더불어 고통을 나눌려는 마음이 없어서 입니다. 살다가 질문자가 다치거나 직장을 관두거나 안좋은 상황이 오게 되면 그 사람은 떠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같이 살기보다는 그냥 친구로 사귀면 될 것 같습니다.” 라고 스님께서 답변을 하자 질문자가 “보기도 좋고, 맛도 있고, 몸에도 좋은 것은 없을까요?” 라고 하니 모든 청중들이 와 하고 웃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다시 “그 여자와 결혼을 하고 그 과보를 받으면 됩니다. 상황이 나빠져서 헤어질 때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한번 살아봤으니 감사할이라고 하면서 과보를 기꺼이 받으면 아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여자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약 같은 것을 좋아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선택에 따른 과보를 기꺼이 받아 들이면 됩니다. 몸에도 좋고 기분도 좋아지게 하는 그런 재주가 저에게는 없습니다.” 라고 하니 질문자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라고 답하면서 자리에 앉으니 스님께서nbsp “사람이 자기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태어남에 의해서 주어진 것을 가지고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인종, 성별, 장애, 성소수자등의 이유로 차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체장애로 태어났더라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질문자의 여자친구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변화된 여성은 아닙니다.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서 장애이거나 공부를 못하게 되면 제 아이라도 미워하고 한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자친구라면 몰라도 결혼하기에는 썩 적합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니 여동생한테 감사할 일입니다. 내가 부족한 눈을 가졌는데 동생으로 인하여 미래의 불행을 미리 막은 것이 되었으니까요. 그렇다고 그 여자분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라고 조금 더 보충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은 190명이 참석했는데 이전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라고 합니다. 이전에는 70여명정도가 왔는데 이번에는 두배이상 참가했다고 하면서 행사를 준비한 모든 자원봉사자들이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질문자가 비교적 적어서 오늘은 좀 빨리 끝날 줄 알았는데 강연이 진지하여 5시에 시작한 강의가 7시35분에 마쳤습니다. 모두들 큰 박수로 스님께 감사를 드리고, 스님께서는 책을 구입한 모든 분들께 사인을 해주시고 함께 사진을 찍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도 역시 장거리에서 오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한 가족은 주말이라서 베를린에 호텔을 잡았다고 하시면서 스님을 뵙고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 폴란드에서 7시간 걸려서 왔다고 하면서 아이들도 함께 기쁘게 스님과 사진을 찍고 갔습니다. 그리고 작센주의 주도인 드레스덴에서 오셨다는 분들도 2시간 걸려서 왔는데 곧 미국 뉴욕으로 이사 간다고 하면서 미국에 오면 연락을 주겠다고 하여 기쁜 마음으로 미국 오면 연락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스님의 법문으로 전세계에서 정토행자라는 이름으로 만날 수 있음이 참 기뻤습니다. 강연중간에 스님께서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님이 와 계시는 것을 보고 사인회가 끝나고 나서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님과 그리고 한국에서 현재 독일로 방문교수로 와 있는 연세대학교 박명림 교수님과 또 방문 중인 북한대학원대학교 이우영 교수님 부부 분들과 만나서 잠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행사 뒷정리를 모두 마치고 오늘 자원봉사를 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에 근처의 식당으로 이동을 하여 식사를 하고, 내년 유럽강의 계획도 얘기하면서 모두들 지도 법사님과 2년만의 즐거운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아쉬운 작별의 시간을 하고, 저는 스님과 함께 숙소로 오고, 오늘 자원봉사자들과 묘덕법사님, 이희정총무님, 그리고 뒤셀도르프의 김선희 총무님은 행사에 대한 평가 및 행사를 준비하면서 좋았던 점, 힘들었던 점, 개선해야 할 점등을 나누기 위해 법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김용태 거사님과 숙소로 돌아오니 그래도 10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저는 스님의 하루를 작성하였습니다. 내일은 오전 10시에 함부르크에서 강연이 있기 때문에 새벽 5시에 함부르크로 출발합니다. 내일 함부르크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3.10.4(독일시간) 프랑크푸르트 강연
어제 미국에서 출발하여 오늘아침에 먼저 독일에 도착한 다음, 프랑크푸르트 송임덕총무님, 그리고 뒤셀도로프 김선희 총무님과 만나서 한국에서 오시는 스님과 일행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기다렸습니다. 스님께서는 비행기 요금이 한사람당 70만원이 싸다고 하여 서울에서 독일로 바로 오는 것을 탄것이 아니라 아랍에미레이트로 완전히 둘러서 오는 것을 타고 오는 관계로 아부다비에서 갈아타고 서울에서 독일까지 무려 20시간이나 걸려서 현지 시간으로 1시 50분에 도착하였습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고 나오니 스님께서는 2시 40분이 되어서야 공항에 마중나오신 신도님들과 신도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바로 공항에서 오늘 묵을 숙소인 배형옥 보살님이 운영하는 작은 호텔로 이동하여 조금 휴식을 취하다가 숙소근처에서 독일인들을 상대로 한국음식점을 운영하는 거사님부부께서 스님께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여 걸어서 식당까지 갔습니다. 독일은 가을이 워싱턴디시에 비해서 조금 일찍 오는 것 같습니다. 나뭇잎도 많이 물들어 있고, 담쟁이 덩굴도 빨간색으로 예쁘게 물들어 있습니다. 또한 날씨도 조금 쌀쌀하여 추운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숙소와 5분거리에 있다는 식당으로 걸어가는 길이 참 여유롭게 느껴졌습니다. 미국과 서울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도착하니 벌써 음식을 준비해놓고 계셔서 맛있게 이른 저녁 식사를 하고 식사대접을 해주신 거사님, 보살님께 인사를 드리고 바로 행사장으로 갔습니다. 오늘강연은 6시 30분부터 열리는데 저희가 도착하니 6시10분이었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송임덕총무님을 비롯하여 프랑크푸르트 정토회 자원봉사자들이 열심히 안내하고 행사준비를 하고 있었고, 자리도 거의 다 차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전대표이신 이혜정보살님과 박정숙보살님, 그리고 강연장에 먼저 와 계신 여러분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소방법때문에 좌석은 150석으로 준비했는데 사람들이 계속 더와서 강연이 시작할 무렵 의자에 다 앉지 못하고 참석자들이 서 있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6시30분, 스님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의 강연에 앞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두분의 학생이 아름다운 환영의 연주를 하여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드디어 환영영상과 스님소개영상이 나오고 스님께서 앞으로 나가자 모두들 큰박수로 스님을 환영해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뒤에 그리고 옆에 서계시는 분들께 앞으로 오시라고 하면서 모두 마루바닥이지만 앞에 앉아서 들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스님께서 오늘 아부다비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20시간 걸려 도착했다고 하시자, 많은 분들이 스님께 환영과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최근 기후 환경변화를 서두에 꺼내시면서 우리가 잘 산다고 한것이 결국에는 우리의 삶의 터전인 환경을 파괴하고 있듯이 우리 각자의 삶의 길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살아 가고 있는 삶의 방향, 문명의 방향에 대해 새롭게 점검을 해봐야 할 시점에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생에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나름대로의 선택이 있을 뿐이며, 그 선택에는 좋고 나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곧 이어 즉문즉설이 시작되었는데, 첫 질문자는 스님을 유튜브에서 보다가 직접보니 더 잘생긴것 같다고 하자, 스님께서는 유튜브에서는 못생겼던가 봅니다 그랬더니 질문자가 조금요 그렇게 답변하자 금방 강연장이 웃음으로 넘쳐났습니다. 두번째 질문자는 오히려 유튜브에서 볼때보다 스님 얼굴이 작아서 놀랬다고 하면서 더 좋아합니다. 정말 유튜브로만 스님을 만나다가 이렇게 현장에서 직접 만나서 스님께 질문하니 다들 반갑고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오늘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나왔습니다. 1. 현재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는 유학생인데, 오랜 외국생활을 하다보니 삶의 노하우도 생기고 혼자 살 힘도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아 한국인들을 안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우울해져서 다시 한국인들을 보게 되었는데, 또 이전처럼 사람들이 그냥 쉽게 하는 말에 상처를 받게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2. 남편은 제가 존경하는 사람중의 한사람으로 독서광이고 공부도 많이 하고 제가 좋아하는 그런 사람인데, 하나에 꽂히면 지나친, 즉 광적이 면이 있는데, 요즘에는 스님의 법문을 유튜브를 통해서 엄청 듣고 있는데, 계속 자기가 깨달은 것 처럼, 자기가 현자인 것처럼 너에게 가르쳐준다 이렇게 하니 저는 잔소리를 또 하는 구나, 또 시작하는 구나 이런 마음이 드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요? 3.어떤사람에게 사과를 했는데 사과를 안받아들이는 것을 보니 불편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4.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철학공부를 하고 싶어 독일에 왔는데, 인간으로 어떻게 바르게 살고 진리를 찾을수 있을까 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진리를 찾는 것이 불교, 기독교를 통해서만 찾을 수 있는지 아니면 다른 것으로부터도 찾을수 있는가요? 5.독일에 산지 24년이 되었는데 살수록 한국말이 서투르고, 한국의 신종용어도 종종 못 알아듣게 되고, 한국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보니, 독일 국적은 가졌는데 독일어도 완벽하지 못하고, 한국인으로 한국사회에 대해서도 잘 모르게 되고 있는데 자기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6.북한을 어떻게 봐야하는지요? 7.여자친구가 옆에 와 있는데, 여자친구와 현재 결혼을 할려고 하는데 여자친구는 부모님들끼리 상견례를 하자고 하는데, 본인은 여자친구집에 가서 인사하고, 또 여자친구는 본인집에 가서 인사를 하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꼭 부모님들끼리 만나서 상견례를 해야 하는지, 현재 여자친구와 의견이 다른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8.7년째 전문직종에 종사하고 있는데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적성에 맞는 것 같은데 행복감을 못느끼고 회의가 많이 드는데 어떻게 하면 일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면서 할 수 있는지, 9.큰노력을 해서 하나의 목표를 이루고 성취하고자 하는데, 하나를 이루고 나서는 끊임없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고, 많은 것을 이루었음에도 늘 불안한데 어떻게 하면 좋은지요? 10. 질문자는 성격이 급하고, 신랑은 성격이 꼼꼼하고 느긋하다 보니 답답하고 짜증이 나다가 분노가 일어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폭발하게 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 10개 이상의 질문이 나왔던 것 같은데 제가 현재 기억하는 것은 위와 같은 질문들이고, 질의 응답시간이 아주 재미있고 유익했었습니다. 그중에서 첫번째 질문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스님께서 질문자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말할때 상처가 되느냐고 물으니, 질문자는 사람들이 음악을 하는데 있어 나이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나이가 많아도 꿈을 가지고 음악을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쉽게 나이가 많은데 무슨 음악이냐고 하면서 안된다고 해서 그런 말들이 상처가 된다고 하자, 스님께서 다시 질문자에게 물었습니다. “연주하고 싶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연주도 잘하면서 인기도 얻고 싶고, 돈도 벌고 싶은데 현재 실력으로는 좀 부족하다는 얘기인 것 같은데, 그러면 돈을 다른 곳에서 벌어서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하고 연주는 그냥 하면 되고, 두번째로 나이가 있는데도 연주해서 돈 벌고 살려면 보통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은 상상도 못할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지요? 예를들면 서울대 법대를 나왔지만 사법고시에 패스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초등학교를 나온 학력에 40이 넘었는데도 가끔은 또 사법고시를 패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노력을 하였던 것입니다. 현재 질문자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다 해가면서 하려면 연습량이 적기 때문에 연주해서 밥먹고 살기는 어려울 것 입니다. 그러면 밥먹고 사는것은 다른 것으로 하고, 음악은 꾸준히 내 인생에 돈 안받고 무료로 하는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였는데 안되었을 경우에는 사람은 부족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80정도의 노력을 해놓고, 안되었을 경우에는 늘 20정도의 부족감을 느끼고 조금만 더 했으면 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일어나서 늘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라고 스님께서 답변을 하자, 질문자는 어떻게 자기가 그렇게 하고 있는지 스님께서 아는지 질문하자 스님께서는 질문자가 현재 저에게 묻는다는 것은 자기가 고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입는다는 것은 자기가 독재근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단지 일반적인 자기 견해를 말했을 뿐입니다. 나에게 일반적인 것을 얘기해주는 것, 진실을 얘기해주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다 자기견해를 얘기할 뿐입니다. 제가 성당에 가서 강연을 하고 나오니, 연세 드신 어르신께서 저에게 신부님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분이 제게 하신 최대의 칭찬입니다. 또 한번은 교회에서 강연을 했더니 한 남자분이 손오공이 아무리 뛰어도 부처님 손바닥안에서 놀지요. 스님이 아무리 그대로 다 하나님 손바닥안에 있어요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이것은 다 자기식대로 생각하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남의 생각과 말을 통제하려고 합니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할 자유가 있습니다. 명백하게 나를 비난하는 말이 아닌데 내가 듣기 싫으면 그만이지 그들을 미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라고 스님께서 답변을 하니 질문자는 환한 웃음으로 스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마무리했습니다. 6시30분에 시작한 강연이 계속된 질문자들로 인하여 10시에 마치니 오늘은 3시간 30분동안 스님께서 강연을 하였는데 스님께서는 강연이 끝 마친 후에도 더 질문을 받으실 수 있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시차로 인하여 피곤한지 강의도중 중간중간 많이 졸아서 질문과 답변 내용도 많이 놓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질문하신 분들이 미주지역과 마찬가지로 유튜브나 인터넷을 통하여 이미 스님의 법문을 듣고와서 질문을 하였기 때문에 질문의 답변에 대한 만족도도 높고, 답변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서 강연장이 웃음이 넘쳐났습니다. 오늘은 약 180여명이 강연에 참석하였는데, 스님께서는 강의를 마치고 책을 구입하여 기다리고 있던 분들께 일일히 사인을 해주시고 같이 사진도 찍었습니다. 준비한 책이 거의 다 판매되었는데 특히 새로운 백년을 찾던 분들이 많았는데 이 책을 준비하지 못해 판매할 수 없어서 더 많이 아쉬웠습니다. 스님께서는 독일에서는 통일독일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통일에 독일교포들이 기여를 하면 좋겠다고 하여, 특히 독일에 있는 분들이 스님의 새로운 백년을 더 많이 읽었으면 하였는데 두고두고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사인회를 마치고 프랑크푸르트 신도님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으로 함께 식사도 같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단체촬영을 하고 10시 40분 즈음에 스님께서는 먼저 행사장을 출발하여 숙소로 가셨습니다. 저희들은 자원봉사자들과 뒷정리와 마무리를 함께 한 다음 근처 찻집으로 가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행사준비하면서 좋았던점, 서로 불편했던 점, 그리고 개선해야 할 점등에 대해서 나누기를 하고 나니 1시가 되었습니다. 2012년도에는 한국에서 300강을 한다고 쉬고, 2011년에 이어 2년만에 열심히 홍보하여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것 같다고 서로 다들 수고했다고 격려하였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뒤셀도르프에서 있을 불교대학경전반 졸업식에서 만나자고 인사를 하고 헤어져서 숙소로 돌아오니 1시 20분이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씻고 하루동안 밀린 이메일을 보고 업무처리를 하니 3시30분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베를린으로 이동해야 하니 오전 7시에 출발한다고 합니다. 그럼 내일 베를린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13.10.3. 용성조사 오도일 기념법회
오늘은 3.1 독립선언 33인중 불교계 대표이신 백용성조사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오도일 기념행사가 장수 죽림정사에서 있었습니다. 새벽 4시 40분에 정토회관을 나서 죽림정사로 향했습니다. 불심도문 큰스님과 함께 아침 발우공양에 참가하기 위해 일찍부터 길을 나섰으나 도로에 안개가 많이 끼어 결국은 발우공양시간에 늦었습니다. 아침 공양이 끝난 후 도문 큰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오늘 행사에 대해 의논을 하였습니다. nbsp 아침 8시30분, 용성 교육관에서 용성진종조사 뿐만 아니라 7여래불, 69조사, 7대사등 역대전등제대조사 천하종사 제대선지식들께 다례제를 지냈습니다. 2부에서는 용성조사 오도일 기념법호와 용성조사 저서 ‘귀원정종’의 번역서 출판기념 법회를 가졌습니다. 도문 큰 스님께서는 출판기념 법회에서 행사가 길어지자 법문을 간단히 노래가락으로 하셔서 대중들을 흥겹게 해주셨습니다. nbsp 1부, 2부 행사를 마치고 나서 제3부에서는 정토가을 불교대생을 대상으로 법륜스님의 법문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법문을 시작하기 전에 전국에서 온 정토 불교대생들을 지역별로 소개를 하고 난 후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전국에서 모인 불교대생 약 460여명을 대상으로 용성조사님과 탄생지인 죽림정사에 대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용성조사님께서는 1864년에 태어나셨으니 내년이면 탄생 150주년이 됩니다. 용성조사님의 행적은 크게 불교활동과 사회활동,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불교쪽 행적은 조선조 500년 동안 탄압받아서 허물어진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신 근세 불교의 중흥조이십니다. 용성조사의 공적을 세분화 시키면, 첫째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인 정법을 다시 확립하신 불교의 지성화입니다.nbsp nbsp 법륜스님의 스승은 불심도문스님입니다. 불심도문스님의 스승은 누구인가 동헌완규조사입니다. 동헌완규조사의 스승은 누구인가 용성진종조사입니다. 이렇게 쭉 올라가면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용성교육관 안쪽 벽면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한 일곱 부처님의 탱화가 있고 그 다음에 69분 조사님들의 탱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인도의 28분, 중국의 28분, 그리고 13분의 한국 조사님들의 탱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불교의 정통 법맥을 복원하였습니다.nbsp 이곳 교육관에는 용성조사가 있기까지 모든 불교의 역사가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건물이기는 하지만 역사책이고 박물관인 것입니다. 이 건물의 건너편은 용성조사님의 기념관으로 개인행적, 즉 불교운동과 독립운동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용성조사님의 일대기는 교육관 건물 바깥쪽에 모든 행적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앞면 빼고 삼면에 그려져 있습니다. nbsp 용성조사님께서는 지리산 칠불암에서 조실스님으로 계실 때 다른 종교의 불교비판에 대한 부당함을 올바르게 해명한 ‘귀원정종’을 지으셨습니다. 두 번째, 불교의 대중화입니다. 조선시대에 불교를 탄압하다보니 여성분들과 일반민중들만 불교를 믿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글자를 모르기 때문에 경전을 읽을 수가 없어서 그냥 불교를 믿고 복을 비는 사람으로 남았기 때문에 대중들도 불법을 알아야한다고 하시면서 삼장역회를 조직하시어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셨습니다.nbspnbsp 서울 시내에는 고찰이 없는데, 그 이유는 조선조 500년 동안 4대문 안에 스님을 못 들어오게 했습니다. 도시나 마을에 있던 절을 다 없애버리거나 북한산 같은 서울근교에 있는 절은 유생들의 유원지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깊은 산속,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에 있는 절만남게 되었습니다. 스님들이 속세를 버린다는 것은 세상의 속된 것을 버린다는 뜻이지 세상과 등져서 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신라시대, 고려시대 절은 모두 도시에 있었습니다. 수도원만 산속에 있었지요. 절은 산속에 있다는 인식은 조선시대 불교 탄압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당시 스님들은 탁발로 겨우 생존을 유지했습니다. 이에 용성조사님께서는 불교도 생산을 해야 한다고 해서 만주의 용정에 가서 농사짓고 수행하는 선농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백운산 밑에 화과원이라는 과수원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런것들이 불교의 생활화입니다. nbsp 1894년에 갑오농민혁명이 실패로 끝났지만, 갑오경장때 노비문서를 철폐하면서 스님들도 천민신분에서 벗어나게 되고, 또 승려도성출입금지가 해제되면서 용성스님이 서울로 오신 것입니다. 처음 우면산 대성사에서 초막을 짓고 사시면서 3.1운동을 배후에서 지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종로구 봉익동 2번지에 민간인 집을 사서 대각교당이라는 절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우리가 지금 정토법당 만들듯이 대중법당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불교의 지성화, 대중화, 생활화를 주창하시고 실천하신 분입니다.nbspnbsp 그리고 당시에는 스님들이 계율을 제대로 안 지키는 것을 보고 불교의 계율을 다시 정비하였기 때문에 조선불교 중흥률 제 6조이십니다. 재가 신자가 되는 의식인 삼귀의 오계를 만든 사람이 용성조사스님이고, 일제 강점기에 일본불교를 닮아갈 때 승려의 결혼제도는 부처님법에 어긋난다하여 정화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nbspnbsp 또, 사회쪽 행적으로는 천도교와 기독교와 협력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세수 50대 중반이후 3.1운동부터 시작하여 돌아가실 때까지 독립운동에 주로 참여하시고 기여하였습니다. 윤봉길의사는 용성조사님께 삼귀의 오계를 받고, 상해임시정부 김구선생님에게 파견되어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nbspnbsp 정토회에 오면 불교만이 아니라 사회문제의식도 가르칩니다. 그건 스승으로부터 내려온 것입니다. 할아버지 스님이 독립운동을 했으니 그 후손인 우리는 통일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정토회에 와서 이것이 맘에 안들면 자기에게 맞는 다른곳으로 가면 됩니다. 복을 빌거나, 명상을 하거나, 참선만을 하기를 원하면 그런 곳을 찾아가면 됩니다. 여기 정토회는 처음부터 부처님의 정법을 계승한다는 것과 우리의 공동체를 위한 일, 즉, 나라를 위한 독립운동, 가난할 때는 잘살기 운동, 독재시대에는 민주화운동, 환경이 파괴되면 환경운동, 인권이 침해되면 인권운동, 분단시대에는 통일운동, 전쟁위기에는 평화운동을 하고자 하는 곳입니다.nbspnbsp 정토 불교대생은 이곳에 한번은 와서 불교가 독립운동에 기여한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정토회에서는 이곳 죽림정사를 일년에 4차례 용성조사 탄생일, 오도일, 열반일, 그리고 삼일절에 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용성조사와 용성조사의 탄생지인 죽림정사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고 나서 불대생들을 대상으로 즉문즉설을 하였습니다.nbsp 한 불대생은 공부하다 생긴 질문보다는 개인적인 질문을 하였습니다. 일년 전에 스님께 남편이 병이 있어 힘들었을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질문했는데, 그때 스님께서 헤어질 생각하지 말고 자식들 생각해서 잘 간호하라고 했답니다. 그 후 깨장 다녀오고 남편은 지난달에 하늘나라로 보냈는데, 지금 초등학교 딸이 셋이 있는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나한테 묻는 것을 보니 혼자 살기 힘들다는 거죠? 남자가 필요하다는 말 아닌가요?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직장 다니면서 아이 키우면 되는데, 나한테 물을 때는 그런 뜻이 아닌가요?” 하니 대중들이 크게 웃습니다. “첫째, 남자 생각을 당분간 접어라. 사람은 상대적입니다. 완전히 극복하진 못하지만 스님들은 결혼한번 안하고도 잘 사는데 난 한번 해봤는데 못살게 뭐가 있냐고 생각하면서 둘이 사는 사람 쳐다보고 부러워하지 말고 혼자 사는 사람을 쳐다보고 사세요. 둘째, 저 스님은 혼자인데 난 애가 셋이나 있으니 외롭지는 않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가족이랑 떨어져 혼자 살면 외로워요. 서울 정토회나 문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보다 더 공동체를 이루며 잘 살고 있습니다.nbspnbsp 질문자는 세 명 아이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살고 있잖아요. 그런데 부모를 모시고 사는 공동체는 갈수록 부모님이 늙으니까 힘이 들지만, 아이들과 같이 사는 공동체는 아이가 커 가니까 점점 더 쉬워집니다. 엄마라고 생각하지 말고 여자 4명이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방청소, 설거지, 밥 하는 것등 업무를 나누어서 해나가면 됩니다. 아이 셋을 다 건사하겠다고 생각하면 힘이 듭니다.nbspnbsp 아이들에게도 너희는 젊었고 난 늙었으니 젊은 너희들도 일해라고 하면서 아이들을 훈련시키면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좋아집니다. 공동체이기 때문에 회의를 해서 함께 일을 나누고, 아이들에게 공부할래, 청소할래하고 물어서 공부하겠다고하면 공부를 하게 하고, 돈 버는 건 내가 하고 이렇게 업무를 나누면 한 5년만 지나면 나아 질 것입니다. 인생은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다 책임지고 건사하겠다고 생각하면 갈수록 힘이 들고 짜증이 많아지지만, 처음부터 회의를 해서 평등하게 업무를 나누어서 해 나가면 점점 좋아집니다.nbsp 항상 권리와 책임은 같이 갑니다. 아이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이렇게 역할을 나누고 책임을 지는 것이 리더십 훈련입니다. 민주주의란 모든 것이 투명해야 합니다. 이런식으로 재밌게 살면 됩니다. 언제까지? 막내가 18살때까지. 그 다음에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은 끝내야 합니다. 누구든지 18살이 되면 끊어야 합니다. 대학을 보내는 계획도 세우지 말고,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건 고등학생때까지다라고 못 박아야 합니다.nbsp 남편이 있으면 평등하게 잘 안됩니다. 남편은 권위적이며 자기가 돈을 벌기 때문에 책임도 지고 있고, 아이들은 권리가 없는 만큼 부모에게 의지하게 됩니다. 이제 질문자 가족은 평등하게 민주주의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동체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 아빠 없는 것에 대한 열등의식도 없습니다. 만약 질문자가 전에 남편이 병들어 있는데 힘들어서 이혼을 하고 남편이 죽었다면 자기가 죄의식을 가지게 되고, 아이들은 엄마가 아빠를 버렸다는 것에 대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별이든, 이혼이든 나에게 주어진 삶은 내가 책임을 지고 사는 것입니다. 남의 애도 데려다 키우는데 내 애를 키우는 것은 쉽잖아요. 모든 문제는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는 것인데, 아이들이 내 인생의 짐이 아니고 혼자 살면 외로울 수 있는데 애가 셋이나 있으니 축복이다라고 생각하면 쉬워집니다.” 라고 하시면서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고 불교공부도 열심히 해서 진리를 찾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오늘 용성조사 오도일 기념식을 모두 마치고 점심 공양을 한 후에 스님께서는 내년도 용성조사 탄생 150주년 기념일에 행사를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점검하기 위해 책임자급 간부들과 함께 죽림정사 주변 물공원을 다니면서 장소도 답사하고 의견도 함께 나누었습니다.nbsp 오늘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서 다시 유럽강연을 위해 짐을 꾸렸습니다. 오늘 밤 비행기로 독일로 출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