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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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6. 인도성지순례 넷째날 - 가야산, 수자타아카데미, 전정각산

새벽 5시,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바라나시 호텔을 나서 부처님의 성도지인 보드가야로 향합니다. 부처님은 성도 후 처음 법을 전하기 위해 이 길을 따라 보드가야에서 바라나시로 오셨고 다시 전법선언 후 사르나트에서 보드가야의 우루벨라로 가신 길입니다. 총 거리는 260km 정도. 사방이 평평해서 동서남북을 구분하기 어려운 이 길을 맨발로 천천히 걸어서 가는데 보름 정도 걸리셨다고 합니다.순례단도 부처님이 가셨던 그 길을 따라 바라나시에서 보드가야로 56시간을 버스로 이동합니다. 인도는 지금 겨울이라고 하는데 창밖 풍경은 봄날 같습니다. 유채꽃도 보이고 농가에서는 손으로 볏짚을 털어 탈곡하는 모습이 2,600년 전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풍경 속에 부처님의 모습을 떠올리니 잔잔한 감동이 느껴집니다.nbspnbsp 잠시 정차하여 들판에서 점심을 먹고 가야산에 거의 도착할 무렵 4호차의 타이어가 펑크가 났습니다. 수리되기를 기다리자면 일정에 차질이 생길 듯하여 4호차 탑승자는 다른 차량으로 뿔뿔이 나뉘어 탔습니다. 열렬한 환호로 4호차 도반들을 맞이하여 10여 분을 더 달리니 가야산이 나옵니다.“이 산을 경전에서는 상두산이라고 합니다. 산이 코끼리 머리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코끼리 상, 머리 두자 해서 상두산입니다. 이곳 현지에서는 가야산이라고 불리고요. 부처님은 출가 후 남쪽으로 내려오셔서 라즈기르, 지금의 라자그라하, 왕사성에 오셔서 두 분의 스승을 찾아서 수행하시고 그 스승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그것이 완전한 해탈이 아님을 아시고 스승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 때 같이 수행하던 다섯 명의 도반들이 부처님과 함께 떠났어요. 그래서 부처님은 왕사성 서문으로 나오셔서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에 이르러서 먼저 이 산에 올라 주위를 쭉 둘러보셨대요. 사방을 쭉 둘러보니까 동쪽으로 네이란자라 강이 흐르고 있거든요. 그 강 건너편에 언덕이 있는데 거기가 수행하기가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그리로 건너가셨다 그래요.”스님을 따라 230여 분을 올라 가야산 정상에 서니 보드가야 전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경전에 기록된 걸 보면 당시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수행을 너무 게으르게 한다고 본 거 같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나는 용맹정진해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리라’ 이런 원을 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고 그 적당한 장소로서는 강 건너편에 있는 지금의 마을인 ‘둥게스와리’ 우리 경전에는 쁘락보디힐 그러니까 전정각산이죠. 거기가 좋겠다고 보신 거 같습니다. 그곳은 계급이 낮은 가야 사람들이 죽으면 화장을 못하고 그냥 시체를 갖다 버린 곳입니다. 그 숲을 우리가 시타림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지금의 둥게스와리는 시타림입니다.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도 바라나시 사람들의 시타림이었어요. 그런 것처럼 강을 건너서 시체를 갖다 버리니까 일반인이 접근을 잘 안 하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조용해서 수행하기에 좋겠다고 생각하시면서 동편을 내다보고 저곳에 내가 가서 정진을 해야 되겠다는 원을 세우는 장면이 경전에 나옵니다.”nbspnbsp안개 때문에 시야가 좋지 않아서 네이란자라 강 건너편 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그 장면을 떠올리니 마음이 비장해집니다.nbsp“그리고 경전에 다시 이곳이 나오는데 부처님이 사르나트로 가셨다가 60명의 제자들에게 전법선언을 하시고 부처님 홀로 이곳으로 옵니다. 여기보다 남쪽으로 좀 내려가면 우루벨라에 가섭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수행을 하고 있었어요. 부처님께서 가섭 삼형제와 그의 제자 1000명을 교화하고 설법을 하셨는데 그 설법한 장소가 이 가야산입니다. 그때 설한 설법을 ‘불의 설법’이라고 해요. 불을 섬기던 가섭형제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불을 섬기던 이전의 모든 도구들을 강에 버리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부처님께서는 ‘너희들이 바깥의 불은 껐다.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탐진치 삼독의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이 삼독의 불을 꺼라’ 이런 설법이에요. 이 불의 설법을 어떤 사람들은 예수의 산상수훈과 비교합니다.”nbspnbspnbspnbsp 가야산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30여 분을 더 가서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니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이 320명이나 되는 순례단에게 일일이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열렬히 환영해 줍니다. 이런 환영을 받을 자격이 있나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20여 년간 이렇게 되기까지의 공로를 생각하니 감사함과 더불어 이것이 인도인들의 환영하는 방식인가보다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집니다.“둥게스와리는 부정한 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머무시고 깨달음을 얻음으로 해서 이곳이 가장 성스러운 곳이 되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는 불교 성지가 대부분 당시에는 부정한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땅에는 성스러움도 더러움도 없고, 결국은 사람이 부정하게 생각하면 부정한 것이 되고 성스럽게 생각하면 성스럽게 된다는 이런 의미입니다.”nbspnbsp 학교 내에 있는 전정각사에 들러 참배를 하고 부처님이 6년간 고행하셨던 전정각산으로 향했습니다. 올라가는 길에는 다른 성지와 마찬가지로 구걸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습니다.nbspnbsp“제가 처음에 왔을 때 사진을 보면요, 전정각산 올라가는 길이 오솔길인데 양쪽에 빡빡하게 환영하는 인파처럼 그렇게 아이들이 앉아서 구걸을 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구걸의 행렬은 없어지지 않는데 이건 관광객이 오기 때문에 이 동네뿐만 아니라 이웃동네에서도 몰려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 걸식은 끝이 안 나는 것 같아요. 다만 우리가 수자타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못하도록 해서 이제 그 아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여기 계시는 아저씨 같은 경우는 동네 유지인데 멀쩡하신 분인데... 근데 처음엔 저도 이걸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했는데 우리가 가게를 운영하듯이 이 사람들에게도 하나의 생계수단인 거죠? 근데 그걸 우리 생각을 가지고 무조건 하라 마라하기가 그렇죠.”nbspnbspnbsp 산에 오르기 전 부처님께서 수행하셨다는 유영굴에서 이곳에서 설하신 경전을 독송하기 위해 둘러앉으니 전정각산이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집니다. 저 산에서 부처님은 6년간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고행을 하셨다고 합니다.nbspnbsp“그분은 이렇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끝간데까지 했는데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어요. 그때 어떤 것을 발견했느냐 하면, ‘욕망을 따라가는 것도 욕망을 억압하는 것도 근본원인은 욕망에 대한 작용이다.’ 그래서 그것을 발견하고 그분께서는 바로 다만 욕망인 줄 알아차릴 뿐이다. 다만 알아차리고 지켜볼 뿐이지 욕망을 따라가지도 않고 욕망을 억압하지도 않은 거예요. 이렇게 제3의 길을 발견하셨어요. 이것을 우리가 중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서쪽 네이란자라 강가로 가서 목욕을 하고 쓰러졌는데 수자타가 공양 올린 유미죽을 드시고 건강을 회복하여 정진을 해서 마침내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으신 거죠”nbspnbsp 스님을 따라 전정각산에 올랐습니다. 높지는 않지만 온통 삐죽삐죽한 바위로 된 험한 산능성이를 벌벌 떨면서 따라갔습니다. 스님은 치렁치렁한 가사를 입고 어찌 그리도 잘 가시는지 신기할 뿐입니다. 산에서 내려와 간단한 세면을 하고는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정성껏 준비해 주신 한국식 식사를 맛있게 했습니다.nbspnbsp식사 후에는 저녁예불을 하고 스님으로부터 수자타아카데미의 역사와 현황 및 과제 등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내일 모레가 수자타아카데미 20주년 기념일이라 학교에서는 한 달 전부터 준비에 분주했다고 합니다. 강의를 마치자 시간이 거의 10시가 되었습니다. 다들 많이 피곤한 것 같습니다. 이후에도 스님께서는 성지순례단 스텝진과 함께 지금까지 진행된 성지순례의 중간평가와 이후 일정에 대해 점검을 하시고, 수자타아카데미 개교 20주년 행사 준비상황을 일일이 챙기시느라 늦은 시간까지 회의가 이어졌습니다.nbspnbsp 내일은 아침 4시 30분에 기상해서 5시에 기도하고, 예불 후에는 걸어서 보드가야까지 가는 일정입니다.

2014.01.08. 23,433 읽음 댓글 15개

2014.1.5. 인도성지순례 셋째날 - 바라나시 사르나트

순례단을 싣고 전날 하우라 역을 출발한 기차는 밤새 11시간을 달려 아침 6시 30분에 바라나시의 무갈사라이 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역에 도착하기 전 5시에 기차 안에서 송수신기로 다함께 아침예불과 기도를 올리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는 25년 인도성지순례 역사상 기차가 제 시간에 도착한 건 처음이라며 이는 인도에서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로서, 아마 이번 참가자들이 공덕을 많이 지어서 그런 거 같다고 하십니다. 그동안 612시간 연착 또는 기차 운행이 갑자기 취소된 사례 등을 듣고 보니 남은 순례 일정이 더욱 기대가 됩니다.nbspnbsp 새벽 2시 30분경에 개교 20주년을 맞은 수자타아카데미에 보낼 물품을 가야 역에 내리고, 무갈사라이 역에 도착한 순례단은 8대의 차량에 나누어 타고 바라나시의 강가강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순례기간 동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를 안전하게 이동해 줄 버스라고 하시며, 그래서 순례단이 탈 버스는 인도에서도 가장 좋은 버스라고 하셨습니다. 직접 버스에 타고 보니 몇 년 전에 왔을 때의 버스보다 훨씬 크고 깨끗하여 한국의 버스와 다름없는 걸 보니 순례준비 하나하나에 세심함이 보였습니다.nbspnbsp 무갈사라이 역을 출발한 버스는 바라나시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가강을 건너서 바라나시 시장 인근 산스크리트 유니버시티에 도착했습니다. 순례객들은 버스에서 내려 개인별로 자전거 릭샤를 타고 강가강의 다샤스와메드 가트로 이동하였습니다. 바라나시 시장은 얼핏 보기에 사람과 동물, 온갖 교통수단이 뒤엉킨 혼돈과 무질서를 연상하지만 다시 보면 인도 그들만의 문화가 그대로 간직된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처럼 보여 인도의 역동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성과 속이 함께하는 강가강, 릭샤를 타고 이동하면서 인도의 문화와 풍속, 인도만이 지닌 깊은 속살을 더 깊이 보고 느낍니다.nbsp강가강에는 눈으로도 보이는 가까운 강 어귀에서 한쪽은 성스러운 성수로 목욕을 하며 업을 씻어내는가 하면 한쪽엔 한 생명을 떠나보내는 의식이 진행중입니다. 시체를 덮은 주황색 천들이 여기저기 나부끼는 걸 보니 뭇 삶의 마지막을 보는 거 같아 더 경건해집니다. 더불어 시타림에 나부끼는 시체를 덮은 주황색 천이 불교의 가사의 유래라는 말씀을 듣고 보니 인간 붓다에 대한 존경스러움이 더 지극해집니다. 이제 막 가트에 들어와 강가강에 몸을 담근 후 장작더미에 올려져 화장을 기다리는 시체부터 화장이 진행중이거나 또는 모두 타고남은 잿더미,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을 보며 삶의 무상함을 다시금 눈으로 가슴으로 확인합니다. 스님과 순례단은 해탈주와 아미타불 염불을 하며 모든 존재들이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하기를 기원합니다.nbspnbsp 인도를 대표하는 릭샤 체험과 강가강으로 인도를 깊고 짧게 체험하고 다음 순례지인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인 초전법륜지 사르나트로 향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동하는 차안에서 사르나트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사르나트는 부처님께서 성도 후 처음으로 법을 설한 곳이며, 불법승 삼보가 이루어진 곳이고 전법선언을 한 곳입니다.”전법이 일상인 정토행자에게는 더 의미깊은 곳이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오는 듯합니다. 사르나트 입구에 도착한 순례단은 스님의 안내로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사르나트의 유적지와 탑을 세 바퀴 돌아 다메크스투파 앞의 넓은 잔디밭에 모였습니다. 그리곤 한국에서 준비해온 공양물을 정성껏 차려서 부처님께 예불을 올렸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는 부처님의 초전법륜과 사르나트 성지, 이곳에 남은 유적인 인도의 국장 아쇼카 석주, 고고학박물관의 유물들, 안타깝게 형체만 겨우 남아 있는 다르마라지크 스투파 등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스님께서는 2014년 성지순례단이 경계에 흔들리지 않는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부처님 법을 널리 전파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보탬과 쓰임이 되는 정토행자가 되자고 초전법륜 성지에서 발원해 주셨습니다.또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의 그날과 만일결사를 성취할 수 있도록 참여 대중 모두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그 후 이곳에서 말씀하신 경전을 전체가 함께 독송을 하였습니다.부처님께서 이곳 사르나트에서 설하신 경전을 직접 읽으니 2,600년의 시공을 거슬러 부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마냥 경전의 구절구절이 온몸에 새겨집니다.“오 카운디냐는 깨달았다. 카운디냐는 정각을 얻었다. 여래의 교법은 깊고 깊어 말로는 다할 수 없고 오묘하고 적정하여 이름붙일 수도 없다. 이제 가장 뛰어난 카운디냐가 여래의 진리에 법안을 밝히니 이제 부처님의 법이 그 빛을 찾았구나.”이리하여 부처님의 법은 다섯 비구와 야사, 야사의 친구와 부모님이 깨달음을 얻어 세상 속으로 나아가고 멀리 한국에까지 그 법이 전해져 많은 대중들이 함께 하게 되니 부처님이 그러하시듯 이제 미약하나마 그 일에 함께하는 원을 세워봅니다. 그리고 이 뜻깊은 장소에서 순례 일행은 법륜스님을 계사로 모시고 삼귀의와 오계 수계를 받아 순례기간 동안 출가한 마음으로 다 같이 부처님의 제자로서 오계를 지킬 것을 맹세하며 호궤합장 자세로 연비를 받았습니다. 짧은 순례기간이지만 이제 수행자로서 가사까지 받아 지니고 부처님과 법사님께 삼배를 올리고 거룩한 수계식을 마치니 알지 못할 뭉클함에 눈물이 가득해집니다.nbsp 사르나트의 다메크스투파를 배경으로 가사를 입고 단체 사진과 조별 사진을 촬영하는데, 순례자들의 얼굴에서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하는 자랑스러운 제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사르나트 바로 앞에 위치한 고고학박물관에서 초전법륜상과 사르나트에서 발굴된 귀한 유물들을 직접 관람하였지만,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보여드릴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합니다.nbspnbsp 오늘 마지막 순례지인 영불탑에 들렀지만 생각보다 일찍 출입문을 닫아 참배는 못하고 탑 앞에서 스님의 설명을 간단하게 듣고 아쉬운 마음을 반야심경 봉독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영불탑은 다섯 비구가 성도 후 사르나트로 오신 부처님을 맞이했던 곳으로 야쇼카 왕이 이를 기념하여 세운 탑이라고 합니다.nbspnbsp 오늘 일정을 마친 순례단은 숙소인 수라비호텔에서 맛있는 인도식 만찬을 먹으며 스님의 직접 진행으로 차량별 소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순례 참가자 대부분이 정토회의 활동가들이어서인지 짧은 소개를 통해서도 전법의 활약상과 약진이 눈에 띄게 두드러져 소개 때마다 마음이 모아지고 함께 하는 이 길이 감사할 뿐입니다. 더불어 스님께서는 오늘부터 마지막 날까지 우리의 발이 되어주시는 운전기사님께 작은 선물과 함께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였습니다.nbspnbsp 내일은 새벽 5시에 바라나시를 출발하여 약 260km 떨어진 부처님이 성도하신 곳, 보드가야로 갑니다.

2014.01.07. 21,657 읽음 댓글 10개

2014.1.4 인도성지순례 둘째날 - 캘커타

인도 성지순례 둘째 날입니다. 어제 320여 명의 순례자들이 인천공항에 집결해 싱가포르, 홍콩, 방콕을 거쳐, 4일 1시 30분에 콜카타의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인천공항에서 콜카타까지는 19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하지만 신라의 혜초스님이 배를 타고 육로로 걸어 인도에 도착하기까지 3개월이 걸린 것에 비하면 우리는 아주 쉽게 인도에 온 것입니다.nbspnbspnbsp 이른 새벽 부지런한 순례자들은 식당 바닥에 돗자리나 담요 등을 깔고 아침 기도를 하였습니다.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서 기도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묵은 숙소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인도 순례객에게는 최상의 시설이라고 했습니다. 아침 공양을 간단히 마치고 8시 반부터 입재식 및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습니다. 법륜스님이 단상으로 나오시자 순례객들은 뜨거운 환호와 함께 박수를 칩니다. 스님께서는 특유의 말씨로 “너무 그러니 내 참 부끄럽고마” 하고 농담을 하시자, 순례객들이 배를 잡고 웃습니다. 참가자 8명 중 한 명은 해외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참여 열기가 정말 뜨겁습니다. 올해는 법륜스님이 이사장으로 계시는 국제구호단체 JTS가 인도 불가촉천민 마을에 어린이들을 위해 세운 수자타아카데미 개교 20주년이 되는 해여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습니다.nbspnbspnbsp 콜카타는 인도에서도 매우 가난한 도시라고 합니다. 이런 콜카타를 순례지로 잡은 것에 대해 스님께서는 부처님의 사문유관을 경험해 보기 위해서라고 이렇게 설명하십니다.nbspnbspnbsp “부처님께서 왕궁 성문을 나가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셨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을까? 하는 것을 느껴보자는 것입니다. 호텔 안이 왕궁이라면, 밖으로 나와 거지들이 누워있는 풍경은 사문유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1991년 한국에서 인도를 처음 방문했을 때 굶주리는 아기를 안고 구걸을 하고 있는 여인을 만났을 때처럼, 청년 시타르타는 어떤 고뇌를 했을까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인도성지순례를 어떤 자세로 임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인도에는 10년 전부터 공항도 새로 짓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바뀌고 있지만, 아직도 3천여 년 전의 생활방식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다양한 바깥구경을 하다 보면 내면의 변화가 다양하게 일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성지순례는 바깥만 보는 게 아니라 내면을 보면서 자기의 업식을 살피는 시간입니다.”nbspnbsp “밖을 보는 것은 상을 보는 것이며, 내면을 보는 것은 법을 보는 것입니다. 내면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바깥 경계와 내면의 차이가 클수록 배우는 게 더 많습니다. 내 내면 속에 숨겨진 업식이 다양하고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내 성질이 이렇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nbspnbsp “15일 동안 함께 지내면 식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밥 먹고, 양치질하고, 똥싸고 하다 보면 정도 생기고 미움도 생깁니다. 식구가 되면 자기 성질을 3일 이상 못 숨깁니다. 하지만 내 성질을 보며 실망할 필요는 없어요. 성질을 내면 쾌락이고 성질을 참으면 고행이며 성질을 알아차리고 지켜보는 것, 이게 중도입니다. 일상에서 내 마음을 지켜보고, 나누기할 때는 드러내는 게 좋아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억압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고 복종입니다. 자기 성질을 다 드러내는 것은 횡포예요. 성지순례를 통해 정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후에는 콜카타 시내와 식물원을 구경했습니다. 시내를 구경하며 인도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매우 가난하지만 밝은 표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콜카타식물원에 들러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라는 반얀나무를 구경했습니다. 나무 줄기에서 뿌리가 자라 땅속으로 박혀 끝도 없이 가지가 뻗쳐나가는 것을 보며, 세상 만물이 모두 연관되어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 연기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nbsp이후에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첫 교화를 하신 사르나트로 가기 위해 하우라 역에서 무갈사라이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하우라역은 델리콜카타선의 출발역인데, 정말 대단합니다. 역사는 기차를 타려는 승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판자나 천을 깔고 누워있습니다. 기차를 타려면 밀리는 인파 속에서 달려가야 합니다. 맨몸으로 타도 힘든데 무거운 짐을 가지고 타니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거기다 단체 짐이 하도 많아 좀 건강한 이들은 두번 세 번 먼거리 짐을 옮겼습니다. 마치 군대같이 모두들 일사분란하게 그 많은 짐을 옮겨 실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일행 320명은 거의 작전을 펼치듯이 기차를 무사히 탈 수 있었습니다. 기차에 오르니 온통 땀으로 젖어있습니다.nbspnbsp 당시 저는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마치 육이오 전쟁을 체험하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사무유관을 여기에서 경험합니다. 이걸 느껴보라고 콜카타 일정이 배치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법륜스님께서는 손수 짐을 드시고 순례객을 이끄십니다. 가르침을 베풀고자 애쓰시는 스님을 보며 가슴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스님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순례객은 불평은커녕 서로 다른 사람의 짐을 들어주며 신속하게 움직입니다. 오히려 살아 생전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며 즐거워합니다. 무거운 짐을 이고지고 달리는 그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기차칸에서 같은 조원끼리 마음나누기를 합니다. 우리 조원은 모두 직장인인데 인도성지순례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몇 사람은 이를 위해 사표 쓸 각오마저 해야했습니다.nbspnbspnbsp 7시 30분에 콜카타를 떠난 기차는 다음날 새벽 무갈사라이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다음엔 어떤 경험이 전개될까요?

2014.01.07. 21,481 읽음 댓글 18개

2014.1.3 인도성지순례 첫날

인도로 성지 순례를 떠나기 위해 정토행자 분들이 이른 새벽부터 집을 나서서 아침 6시 30분에 인천공항에 모였습니다. 이번 성지순례는 7차년을 마무리 하고 8차년을 힘차게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활동가 중심으로 순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nbspnbsp 청년 정토회 38명을 포함하여 전년 보다 훨씬 많은 303명의 전국 정토회 활동가와 스텝과 법사님들을 포함하여 총 320명이 지도법사님의 안내에 따라 부처님의 발자취를 순례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 공항에 도착하니 먼저 나와서 준비를 하고 계신 스텝 분들과 유수스님 그리고 법사님들께서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조별로 출국수속 절차를 밟으며 전국에서 모인 도반들과도 반갑게 잠깐씩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도반들의 얼굴에 부처님의 고향 인도로 여행을 떠나는 기쁨이 만연하였습니다.nbsp이번에는 순례객이 많아서 세 대의 비행기로 나누어서 인도 캘커타를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청년 정토회 활동가들은 홍콩을 경유하여 인도에 들어가고, 대중활동가들은 두 대의 비행기로 나누어서 싱가포르와 방콕을 경유하여 캘커타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nbspnbsp 방콕 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니 스님께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셨고 공항 한 쪽으로 안내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 예전 같으면 이 자리에서 순례 전 입재식과 오리엔테이션을 했는데 이번에는 인원이 많아 비행기를 나누어 타게 되어서 공식적인 입재식과 오리엔테이션은 캘커타에 순례객 전원이 모여서 하기로 하고 오늘은 스님께서 우리와 함께 순례를 하게 된 분들을 소개해 주시고 간략한 일정설명이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 김홍신 작가님, 현기환 전 국회의원님, 길벗의 탤런트 박진희씨를 스님께서 재미있게 소개하셨고 순례객 전원은 힘찬 박수로 환영하였습니다. 순례단 중 한 분이 ‘박진희가 누구야’하는 말을 듣고 스님께서는 ‘나하고 수준이 똑같은 사람 여기도 있네’ 하셔서 모두가 한바탕 웃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연예인이라고 아무 때나 사진 찍자고 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그리고 해외 정토회에서 오신 분들을 소개하는 순서에 이어 차량 담당 법사님과 JTS 박지나 대표님을 비롯하여 실무자 분들을 소개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또한 불교TV 김범수 피디님께서 지난 번 불교티비에서 방영되었던 수자타 아카데미 소개 프로그램 2회분 짜리를 22회로 방영할 계획으로 촬영을 위해 순례에 참가하셨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자세한 일정에 관한 것은 내일 공식적인 오리엔테이션에서 하고 오늘은 대략적인 인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기후적 환경에 관하여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 일정 설명에 이어서 스님께서는 성지순례에는 어떤 여행이 맞는지에 대해서 예전 경험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두 가지 경우로 여행을 다 해보았습니다. 직접 배낭여행 하듯이 해보았고, 큰스님을 모시고 호텔가서 자며 편안히 해보기도 했는데 그건 순례가 아니었습니다.nbspnbspnbsp 우리가 하는 순례는 완전히 배낭여행처럼은 못해도 그에 준하는 형태로 호텔이 아닌 곳이나 절에서 개인침낭을 이용해 자고 밥도 우리가 해 먹으며 15박 16일을 지내게 됩니다. 이렇게 함께 한 순례객은 직계 가족을 제외하고는 가장 오랫동안 시간을 함께 한 식구와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식구는 정이 들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미움 또한 생깁니다. 떨어져서 볼 때는 좋은데 가까이서 볼 때는 ‘참 문제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nbspnbsp 지금이야 우리가 웃고 반갑다 좋아하지요 그런데 한 삼일이 지나면 본성이 나오기 시작해요. 밥도 안하고 밥통도 들고 다니지 않으면서 밥만 먹고 가는 사람, 화장실에 들어가서 오래 있는 사람, 아침에 눈만 뜨면 화장만 하고 있는 사람 등...” 이렇게 스님이 말씀하시자 순례객은 또다시 한바탕 웃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이런 모든 것들이 상대편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는...그런 것들이 내가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나하고 습관이 달라서 생긴 문제이지 나쁜 의도는 아니고 생활하는 습관이 다른 것이고 이것은 모여서 살면 생기는 문제이므로 이것을 자기로 돌려서 살펴봐야 합니다.nbspnbsp ‘내가 나쁘다’도 아니고 ‘저사람이 나쁘다’도 아니고 ‘내 업식이 이렇구나’ ‘저런 것을 싫어하는 업식을 갖고 있구나’ ‘저러면 좋아하구나’ ‘저러면 꼴보기 싫어하구나’ ‘내 업식이 이렇게 생겼구나’ 하며 자기를 아는 하나의 좋은 과제로 생각하면 됩니다.‘뭔 수행자가 저런가’ ‘정토회에 저런 인간이 있었나’ 라며 마음에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식구가 되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결혼할 때와 똑같아요. 떨어지면 좋아 보이는데 가까이 가면 이런 문제가 있고 반대로 식구는 가까이 있으면 안좋은데 떨어져 있으면 그립고 그게 식구거든요.nbspnbspnbsp 그래서 식구가 떨어져도 밉지가 않고 가까이 있어도 밉지가 않으면 ‘이게 도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좋고 싫고를 떠나라는 얘기도 되고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둘이 있어도 귀찮지 않다’ 이게 도입니다.nbspnbsp 그러니 수행 삼아서 순례를 하셔야 합니다. 밖을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마음 구경이 더욱 좋습니다. 우리가 15일 동안 지내는 환경이 평소 지내던 한국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감정이 예민해져서 조금만 잘해줘도 고맙고 조금만 잘못하면 너무 밉고 이렇습니다. 이럴 때 감정을 문제 삼지 말고 자신의 감정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옳다 그르다 하지 말고 이런 경지에서는 감정이 이렇게 일어나는구나 하시며 수행삼아 순례를 해야 합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이렇게 당부의 말씀을 하신 후 인도에 관해 궁금한 사항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진신사리, 일불승, 인도의 불교 상황 등에 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차분히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여성 순례자 한 분께서는 ‘순례를 하다가 인도가 너무 좋아서 그냥 여기서 봉사해도 되나요?’라고 질문을 하셨는데 스님께서 ‘그 얘기는 인도 좋은 남자 만나서 살아도 되는지 묻는 거 같네요’ 하시자 모든 분들이 한바탕 웃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봉사는 할 수 있지만 제대로 인도에서 살수가 있는지 한국에서 점검을 받고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단순봉사도 우리가 학교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 안에 봉사자의 숙소가 있고 그 숙소에서 인도 사람도 함께 살고 있는데 우리가 한국식대로 평범하게 살지라도 그들에게는 우리 사는 모습이 초호화판으로 보일 수가 있습니다.nbspnbsp 그래서 인도 사람이 볼 때 차이가 나지 않도록 살아야 하니깐 한국사람들이 좀 힘들어 합니다. 때문에 우선 문경수련원에 가서 좀 살아야 합니다. 그냥 봉사가 아니라 수행하면서 봉사할 수가 있느냐 이것이 점검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최소한 일 년을 있어야지 잠깐씩 하는 봉사는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질문하신 분은 한국에 오셔서 봉사를 신청하시면 됩니다.”이렇게 질의응답 마치고서는 차량별 모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준비해 온 간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서로 소개를 하고 이번 성지 순례를 시작하며 드는 소감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삼일 후에 내 성질이 드러나더라도 이쁘게 봐주세요’ 하는 도반의 나누기에 함께 웃으며 즐겁게 공항에서 시간을 보낸 후 밤 10시쯤 출발하여 12시 경에 캘커타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nbspnbspnbsp 각자의 짐을 찾고 수자타 아카데미로 갈 공용짐을 찾아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가 넘었습니다. 간단히 세면을 한 후 침낭 속에서 휴식을 취하였습니다.nbspnbsp 내일은 아침 7시에 식사를 한 후 8시부터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콜카타 식물원을 관람한 후 하우라 역으로 이동하여 기차로 무갈사라이로 이동할 계획입니다

2014.01.04. 23,748 읽음 댓글 18개

2014.1.2. 정토회 2014년 시무식

오늘은 2014년 정토회 시무식이 있는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오전 7시 30분에 한차례 미팅을 가진 후 오전 8시40분부터 10시까지 성도재일 기념 법문을 녹화 촬영 하셨습니다. 원래 성도재일은 1월8일인데 스님께서 인도성지순례를 가시기 때문에 사전에 기념 법문을 미리 녹화해 놓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성도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1시간 20분 동안 열강을 해주셨습니다. 10시부터는 2014년 정토회 시무식이 열렸습니다. 서울 정토회를 비롯하여 수도권, 경기권 지역에서 활동하는 200여명의 활동가 분들이 함께 자리해 스님께 새해 인사로 삼배를 올리고, 스님의 신년 법문도 함께 듣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윤여준 원장님과 김홍신 작가님도 시무식에 함께 하셔서 새해 인사말을 나눠주셨습니다. 특히 윤여준 원장님은 이번 주를 끝으로 지난 6년 동안 맡아 오시던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장 소임을 모두 내려놓기로 하셨습니다. 윤여준 원장님은 “평화재단과 함께한 지난 6년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값지고 보람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며 함께 한 대중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스님과 대중들 모두 그동안 평화재단을 위해 힘 써주신 그 노고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김홍신 작가님은 이번에 스님과 함께하는 인도성지순례를 떠나십니다. 스님께서 ‘대붓다’ 라는 책을 쓰라고 권유하셔서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 또 많은 영감을 얻고 책을 쓰기 위해 인도성지순례를 떠난다고 하셨습니다.이어서 시무식 기념 법문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에 대해서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법문을 해주셨습니다.“새해는 제 7차 천일결사가 끝나고 제 8차 천일결사가 시작되는 한해가 되겠습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수행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어떤 일이 닥칠지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몸을 크게 다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고 또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갑작스런 병이나 사고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재산을 날릴 수도 있고 지위가 갑자기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하는데 이런 일이 안 일어날 수가 없는 게 이 세상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크고 작은 일이 늘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하나하나에 좋아하고 싫어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괴로워한다면 우리 인생이 늘 널뛰기처럼 웃었다 울었다 하면서 한 세상 보내게 됩니다. 좋은 것은 일어났으면 해서 따라다니느라 헐떡거리게 되고, 싫어하는 것은 안 일어났으면 해서 피해 다니느라 헐떡거리게 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이 어떻게 되든,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런 일들을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에 너무 널뛰기 하지 않는, 그런 자기 힘을 먼저 갖추어야 됩니다.내 인생에 대해서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부처님도, 하나님도, 아내도, 자식도, 스승도,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밥을 대신 먹어줄 수 없는 것처럼 이 기쁨과 슬픔을 그 누가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 여러 가지 변화, 태풍이든 사고든, 다 예측하고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게 그걸 예측해서 요리저리 피해 살려다 보니까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고 때로는 비굴해지고 때로는 유혹에 끌려들고 허망한 데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 중심을 잃어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설령 죽는다 하더라도, 또 내 가족이 죽었다 하더라도, 그냥 이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게 먼저 받아들일 수 있는, 즉 이런 상황에 덜 끄달리는 자기 힘을 먼저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수행을 할 때는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저 사람은 절에 다니니까 사고가 안 일어났다 이런 걸 신앙이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정말 신앙이라면 ‘아, 저 사람은 저런 경우를 당했는데도 헤쳐 나가는 힘이 있구나’ 이게 수행이고 신앙입니다.그 어떤 어려운 경우에도 능히 이겨낼 수 있고 흔들림이 없다면, 환경이 좋을 때야 말할 것도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우리는 수행을 한다고 하면서도 늘 무슨 요행을 바랍니다. 그래서 헐떡거리며 살게 됩니다. 그래서 첫째, 우선 내가 내 인생에 주인이 되어야 하고, 내가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합니다. 불교 믿는다고 누가 대신해 주는 건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또 따라 행하면 내가 그런 존재로 되는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믿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이런 건 없어요.그런데서 먼저 자기 입지를 분명히 해야 됩니다. 이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어요. 이 문제는 오직 부처님 법에 귀의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염두 해 두고 스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서 결국엔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심이 있느냐 없느냐 수행이 됐느냐 안 됐느냐는 똑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과 비교해 봤을 때 어떻게 여기에 임하느냐 그것만이 평가의 기준입니다. 거기에 수행자다움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신앙의 힘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자기 정진을 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우선 자기 정진의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수행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면 안 됩니다. 보이기 위해서 한 것은 죽음 앞이나 어려움에 부닥치면 아무 쓸모가 없어요. 흔들리는 자기를 보고 그 흔들리는 것을 넘어서는 그쪽으로 나아가는 이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누구도 희생하면 안됩니다. 남을 위해서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이 진짜 나를 위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내가 희생이 안 되어야 합니다. 희생이 되면 나중에 억울해 집니다. 부처님을 원망하게 되고 스님을 원망하게 되고 수행을 중간에 그만두게 됩니다. 왜? 자기를 희생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수행은 자기 희생이 아니라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우리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일을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세상에 보탬이 되려고 하는 일은 세상이 너무 크다 보니 혼자서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세상의 갈등을 좀 해소시킨다던지, 굶어죽는 사람을 멈추게 한다던지, 이런 세상의 변화는 혼자서 조금조금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작은 힘이지만 우리가 힘을 모아서 함께 대응을 해야 작은 변화라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토회라는 수행 공동체를 만든 것입니다. 정토회는 수행자들이 모여서 뭔가 세상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기여해보자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첫째는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수행법을 우리 이웃에게 전해서 그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도록 인연을 맺어주자 하는 전법을 합니다. 둘째는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 세상을 위해서 쓰레기 제로운동이든, 환경문제든, 평화문제든, 차별을 극복하는 문제든, 통일을 향한 문제든 우리가 대중들 보다 좀 더 앞장서서 해보자 이런 겁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남북 갈등을 해결해서 통일로 가는 길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작은 기여라도 해보자 하는 겁니다. 또 환경 실천을 위해서는 빈그릇 운동을 하고, 또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는 기아질병문맹 퇴치운동을 하고, 갈등이 있는 곳에 평화를 가져오는데 특히 한반도에는 통일이 올 수 있도록 우리가 통일의병이 되어보자 이런 활동을 하자는 겁니다. 이렇게 활동하고 수행하는 모범을 전국 시군구에 설립해 보자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정토회가 우리 대한민국 안에 있기 때문에 결국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하고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는데 기여를 할 때 정토회의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점점 더 갈등이 심해지고 혼란이 가중될 때 우리가 좀 더 이것을 해소할 수 있는 역할을 해 나가야 합니다. 또한 여러 민족 간의 갈등이 있고 세계에는 많은 변화들이 있는데, 가능하면 지구의 사람들이 좀 더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우리가 기여를 해보자는 것들이 우리가 점차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이런 일들을 웃으면서 내일 죽어도 후회 없이 해봅시다. 얼마까지 해야 성공이 아니라 하는 것 자체가 성공이 되도록 그렇게 우리가 해봅시다. 자기희생이 생기지 않도록, 남이 봤을 때는 헌신이지만 나는 그것이 스스로 좋아서 하는 것이어서 하나도 헌신하는 게 아닌, 그렇게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오래 할 수 있습니다. 오래 해야 세상에 변화가 옵니다. 즐거워야 오래 하지 괴로우면 오래 못합니다. 항상 마음을 가볍고 즐겁게 가지고 꾸준히 해 나가야 우리들이 바라는 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꿈을 꾸며 손 맞잡고 함께 간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지나놓고 보면 인생의 큰 보람입니다. 좀 힘이 들고 고생이 된다 하더라도 그런 어려운 가운데 서로 신뢰하고 돕고 노력해서 원을 성취할 때, 고생은 지나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참 보람 있어 집니다. 그런 3년이 되도록 해봅시다. 파도가 쳐야 파도 타는 재미가 있잖아요. 저는 늘 윈드서핑을 생각합니다. 파도가 없으면 재미가 없어요. 회오리 바람이 몰아쳐야 역시 한 세상 살만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날이 어두워야 작은 촛불이 밝습니다. 낮에 켜 놔봐야 누가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어두운 밤은 밤대로 좋아요. 촛불이 빛나니까. 또 낮은 낮대로 좋습니다. 세상이 밝으니까. 이런 세상이 오든, 저런 세상이 오든 험난한 세상이 불어 닥치면 할 일이 많아서 좋고 세상이 고요해지면 농사 짓거나 참선하면 되니까요. 물이 평지로 흐르면 고요해서 좋고, 언덕을 만나면 폭포가 되어서 또 좋고, 이렇게 세상이 오는 대로 기꺼이 맞아들일 그런 마음으로 새해를 맞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는 행복한 나날이 되기를 바랍니다.”참석한 대중들 모두 스님의 법문을 듣고 큰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스님께 삼배로 새해 인사를 올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각 부서별로 앞에 나와서 간단히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원으로 빙 둘러서서 차례대로 돌아가며 윤회의 악수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한 분 한 분의 손을 꼭 잡으며 “한해 동안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하시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활동가들도 스님과 악수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한분 한분과 눈을 맞추고 인사를 나누다 보니 몇몇 분들은 금새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이렇게 좋은 스승님을 만나 좋은 법을 공부하며 좋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으니 이것 자체가 큰 기쁨으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마음 따뜻한 악수의 시간을 뒤로 하고 사홍서원을 끝으로 시무식을 마쳤습니다. 이제 오늘부터 정토회의 2014년 새해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nbsp점심은 새해를 맞이하여 맛있는 떡국이 나왔습니다. 대중들은 떡국을 먹고 각자의 업무 공간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점심공양 후 저녁까지 제8차 천일결사 준비위원들과 회의를 하고 또 결사행자 회의에도 참석하셨습니다. 이어서 저녁공양 후에는 법사단 회의를 하셨습니다.내일은 제20차 인도 성지순례를 떠나십니다. 인도 성지순례 이야기는 성지순례에 참석한 활동가들이 직접 현장에서 계속 글을 올려주실 예정입니다. 인도에서 계속 뵙겠습니다.

2014.01.03. 23,017 읽음 댓글 12개

2014.1.1 밀양 송전탑 분향소 방문 및 새해 일출

오늘은 2014년 새해 첫날입니다. 어제 스님께서는 울주군 두북에서 2013년의 마지막 밤을 주무시고 새벽 5시에 간단히 아침을 드신 후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서둘러 동해로 출발하셨습니다.아침 7시30분, 경북 양남면 바닷가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인파들이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구름 위로 붉은 해가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자 여기저기서 환호와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차가 막힐 것 같아 간단히 기념사진만 몇 장 찍고 서둘러 인파 속을 빠져나왔습니다.새해 아침, 스님께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밀양 송전탑 공사로 갈등하다 농약을 먹고 숨진 고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입니다. 분향소로 향하는 길에 차안에서 희망편지 앱 회원들에게 신년 인사를 보냈습니다. 어제밤 스님께서 직접 신년 인사를 종이에 적어주셔서 해가 뜨자마자 곧바로 희망편지에 신년 인사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스님께서 적어 주신 신년 메시지입니다. 새해, 새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요. 내 마음 깨달으면 나날이 새날이요.내 마음 행복하면 나날이 새해입니다. 나날이 좋은 날인데 좋지 않은 날이 어디 있겠으며곳마다 정토인데 정토 아닌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난 한 해 동안 알게 모르게 도와준 모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새해, 새날, 정토에서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에는 나날이 행복하십시오. 2014년 1월 1일.법륜 올림.오늘 희망편지를 받아보신 많은 분들이 스님의 신년 메시지 덕분에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카카오스토리에 올라간 희망편지에는 6시간 만에 무려 2만 여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님께 ‘새해에는 건강하세요’ 라는 댓글을 달아주었습니다. 오전 9시30분에는 밀양 송전탑 공사 때문에 농약을 먹고 돌아가신 고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에 도착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도착하시자마자 영가단에 향을 꽂고 절을 한 후 해탈주 삼독을 하며 고인의 넋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곧이어 고 유한숙 어르신의 큰아들인 유동한씨와 밀양 시의원으로 일하고 있는 문정숙씨가 도착해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종이 박스와 비닐로 둘러쳐진 천막 안으로 들어가니 밀양 어르신 몇 분이 이불을 덮고 추위를 피해 앉아 계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손을 꼭 잡아주며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라고 인사 하셨습니다. 어르신들도 “큰 걸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문정선 밀양 시의원은 “경찰에서는 어르신이 돌아가신 이유가 빚이 많아서, 가정 불화가 있어서 라는 식으로 사망원인을 왜곡하고 있다” 며 사망원인만이라도 바로잡아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고인의 큰 아들인 유한동씨는 “한전이나 밀양 시청에서 사과 표명도 전혀 없었었어요. 사과도 하지 않고 보상 이야기만 해서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라며 사과라도 먼저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스님께 호소했습니다. 옆에서 이야기를 함께 듣던 이순출 할머니도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땅만 있으면 할매들이 알아서 먹고 살긴데, 이래 땅을 다 뺏기니 너무 억울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짓밟을 수가 있습니까. 너무 해요. 참말로. 우리도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인데요. 자식들 안 먹이고 안 입히면서 힘들게 일군 땅이래예.” 라며 답답함을 하소연 했습니다.스님께서는 눈물 흘리는 할머니들의 손을 꼭 잡아드리며 “저희들이 도움은 못되지만 방문이라도 해서 위로가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라며 금일봉을 대책위에 전달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위로의 말씀을 어르신들과 유가족들에게 해주셨습니다.“보상은 고사하고 우선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해야 정치인데요... 옛날에는 가난해도 다 마음 편하게 잘 살았잖아요.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나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나, 저 세상으로 잘 보내드리는 게 산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49재 지내시고 편안하게 가시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싸우는 건 또 싸운다 하더라도 말이에요. 물론 송전탑 공사가 멈추면 모든 것이 해결 되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싸움이 길어질 것 같거든요. 우선 돌아가신 고인의 사인이 억울하게 왜곡된 것만 풀어지면 장례는 치루는게 좋겠어요. 저도 노력해 보겠습니다. 세상에 참... 정치를 잘 하겠다고 하더니 정치가 자꾸 잘못되어 가네요.” 스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에 연신 “세상에 참...” 하시며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분향소를 나오며 어르신들과 유가족들을 꼭 안아드렸습니다. 한 맺힌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자 하는 스님의 마음이 전달되어서 인지, 몇몇 어르신들은 급기야 연신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분향소 위문을 마치고 오후에는 설악산 기슭의 백담사 만해마을로 향하셨습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4시간이 넘게 차로 달려 만해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조실로 계신 오현 스님을 뵙고 이야기를 나눈 후 저녁 6시30분에 다시 서울로 출발하셨습니다. 동해에서 일출을 보고 귀경하는 차들이 고속도로로 몰려들어 차가 많이 막히다 보니 밤10시가 넘어서야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하셨습니다.내일은 2014년 정토회 시무식과 결사행자 회의가 하루 종일 있습니다.

2014.01.02. 17,870 읽음 댓글 15개

2013. 12. 25. 쑥고개 성당 성탄절 미사 그리고 김제동 토크콘서트

오늘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입니다. 스님께서는 오전 11시 쑥고개 성당에서 열리는 성탄절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정토회관을 나서셨습니다. 쑥고개 성당에 도착하자 김홍진 신부님을 비롯한 성당 관계자분들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셨습니다. 시작 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해서 신부님과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시다가 11시 정각이 되어 미사에 참석하셨습니다.nbspnbsp정토회에서도 50여명의 신도님들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축하하기 위해 함께 자리해 주셨습니다.미사가 시작되자 성가대의 합창과 바이올린 연주 소리가 절묘한 화음을 이루며 성당 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정말 웅장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졌습니다. 특히 오늘은 성탄절 미사와 함께 세례식도 함께 열려 더욱 뜻 깊었습니다.nbsp김홍진 신부님은 예식을 주욱 이끌어 가시다가 순서에 이르자 “귀한 손님들이 찾아오셨다” 며 법륜 스님과 정토회 식구들을 소개했습니다. 뜨거운 박수 갈채가 쏟아지자 스님께서는 준비해 온 꽃다발을 예배단에 헌화 하셨습니다. 스님께서 땅에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정성껏 헌화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자 더 많은 분들이 힘찬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김홍진 신부님은 즉석에서 스님께 성탄절 강론을 청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꽃다발만 주시겠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신부님의 간청이 이어지자 결국 연단에 올라서서 강론을 시작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예수님이 어떻게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셨는지를 이야기해 주시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를 이렇게 강론해 주셨습니다.“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셨는데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가장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면서 권세 있는 자들을 내리치셔서 낮게 하시고, 이방인이나 새리 등 가장 낮은 자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높이셔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드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먼저 오신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비둘기 날리듯이 날리면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라” 하는 하나님의 게시를 받으셨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사는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하는 것을 보여주신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불교와 견주어 본다면 결국 부처님께서 ‘내가 부처다’ 하는 것을 깨달으신 것이나 예수님께서 ‘내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는 게시를 받은 것이나, 저는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표현 방법이 다를 뿐이지 결국은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 의미는 결국 우리 자신들 하나 하나가 다 가장 소중한 존재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자각하셨지만,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는 반대와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굶주리셨을 때 사탄이 나타나서 “너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덩어리로 빵을 만들어라” 고 했다고 합니다. 즉 배고픈 자를 배불리 먹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사람이 빵으로 사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라고 했다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한번 보십시오. 사람들이 무엇으로 삽니까? 물질로 살지 않습니까? 경제만 성장한다면 뭐든지 다 용납이 되는 그런 사회입니다. 그것이 불법적으로 행해지든 그것이 부정의한 방법으로 행해지든 결국 경제만 성장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 기관이 선거에 개입하는 불법 행위를 저지르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느냐 이것만 지금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들은 우리가 빵만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우리가 굳이 기독교 신자가 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려고 신자가 된 것인데, 오늘 우리들은 말씀으로 사는 게 아니라 빵으로 산다는 데에만 너무나 많이 경도되어 있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어쩌면 사탄의 후손이 아니냐. 이걸 우리가 다시 생각해봐야 되겠습니다.즉 우리는 첫 번째 사탄의 시험에 지금 말려들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 강정마을 주민들의 고통, 밀양 주민들의 고통, 지금 철도 파업을 하고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고통 등 모든 고통들이 다 경제적 효율을 위해서 외면되어져 왔습니다. 거기에는 말씀이 짓밟혀도, 즉 정의가 훼손되고 불의가 횡행해도 빵만 얻어진다면 상관없다 하는 이런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두 번째 사탄은 그분을 성전의 높은 곳에 데리고 가서 “너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곳에서 한번 뛰어내려 봐라” 한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났다면 이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마라” 라고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종교는 이런 신비주의가 지금 횡행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했더니 사업이 잘됐다, 애가 시험에 붙었다, 남편이 승진했다는 등 이런 기도의 영험이 없으면 교회가 성장하지 못할 만큼 기복적 신비주의가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힘을 잃고 신비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세 번째 사탄은 그분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 천하를 내려다보면서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이 천하를 다 너가 다스리는 영광을 주리라.” 한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한마디로 단호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직자와 신자들이 이런 물질의 유혹, 사회적 지위의 유혹, 명예의 유혹 등 영광에 목말라하며 사탄 앞에 무릎을 꿇고 비굴하게 영광을 구걸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느 종교 할 것 없이 국가 예산 지원받으려고 권력에 비굴하게 구는 것도 마찬가지이고요.nbsp이런데서 오늘 우리가 정말로 기독교 신자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좀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가르침에 충실한 것이 이 땅에서는 오히려 순수하지 못한 신앙자인 것처럼 평가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가르침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사람, 세상의 불의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마치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우리가 다시 성경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본다면 온당치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서 이런 어려운 시기일수록 신앙심을 가진 사람들의 순수한 신앙의 열정이 필요로 하는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카인에게 “너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었을 때 카인이 “저는 모릅니다. 제가 왜 그 아이를 살펴야 합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렇지 않느냐 싶어요. 같은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우리는 같은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빈부 격차가 극심해져 지배자와 피지배자,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는 점점 격차가 커지고 있습니다. 가진 자들은 갖지 못한 자들에게 도무지 관심도 없고 알지 못하고 ‘왜 내가 그들을 보살펴야 하는가’ 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nbsp그러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우리 주위의 어려운 형제들에 대해서 살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북한 동포들에 대한 우리들의 사랑과 애민의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북한이 여러 가지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 그 속에 사는 백성들은 얼마나 아픔이 크겠느냐. 이 추운 겨울날 식량 부족과 의약품 부족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인권을 침해 받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 대한 우리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없다면 도대체 그들은 누구를 믿고 어디에 희망을 두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조금만 이런 얘기를 해도 종북주의라고 몰아붙이는 이런 편견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데에 너무 겁먹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좀 더 당당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옳은 건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용기가 필요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예수님께서 오신 이 좋은 날, 우리가 기쁜 얘기하기보다도 약간 슬픈 얘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분께서 오실 때의 모습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겠느냐 싶어요. 하나님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모두가 환영하고 영광스럽게 맞이했어야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 그 누구도 그분의 오심을 알지 못했고, 결국 그 추운 날 말구유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을 알아본 사람은 유대인도 아닌 저 이방인 페르시아 사람들이 와서 그분께 경배를 했다 합니다. 오늘날 비유로 들어본다면, 예수님의 진실한 가르침이 교회 안에 있지 않고 오히려 교회 밖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교회 밖에서 지금 그분께 경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유대인들이 그분을 사회를 혼란시킨 사람으로 매도해서 십자가에 처형했듯이 어쩌면 교회가 지금 그분을 교회로부터 추방하지 않을까. 이런 우리들의 신앙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기라고도 생각이 됩니다.천주교는 민주화시기에 정말 국민들의 희망이 되어 주었습니다. 명동 성당 김수환 추기경님은 종교가 다른 저에게도 항상 존경스럽고, 저희들이 고통에 있을 때 찾아갈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또 북한 동포들이 굶주려 죽을 때도 그 분을 모시고 동포 돕기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천주교의 지도자를 넘어서서 우리 모든 국민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천주교는 이런 민주화 과정 속에서 이뤄낸 도덕성 덕분에 민주화 이후 신자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nbsp그런 면에서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의 교인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과 국가가 원하는 그런 긍정적인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북한 동포 한명 한명에게 선교를 하는 것보다도 그들에게 희망이 되어주는 일이 통일 이후에 오히려 그들에게 신앙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오늘 성탄절을 맞아서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다시 한 번 성탄을 축하드리며 신부님과 또 형제자매 여러분들과 함께 뜻을 모아서 우리 사회가 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그런 일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스님의 성탄 축하 메시지가 끝나자 뜨거운 박수갈채가 성당 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신부님은 강론을 해주신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면서 “제가 강론할 때는 박수가 없었는데 스님이 강론을 하니까 박수가 쏟아진다” 며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세례식이 거룩하게 진행 되었습니다. 참 웅장하고 성스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미사가 모두 끝나자 많은 분들이 스님과 사진을 찍고자 모여 들었습니다. 특히 신부님이 “스님과 사진을 찍고 싶으신 분들은 1층에서 기다리라”고 공지하는 바람에 많은 분들이 줄을 서서 스님과 사진 한 장을 찍고자 기다렸습니다. 사진 촬영을 모두 마치고 신부님의 안내에 따라 인근 식당으로 함께 점심을 먹고자 이동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신부님을 비롯 수녀님, 성당 관계자 분들께 인생수업을 한권씩 선물하고 식사를 함께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스님과 신부님, 수녀님들 모두가 이렇게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니 마음이 참 훈훈해졌습니다.스님께서는 오후 4시경에 정토회관으로 들어오셨다가 5시 경 김제동 토크콘서트가 열리는 연세대학교로 향하셨습니다. 김제동 토크콘서트는 12월에 시작해서 내년 4월까지 이어지는 대장정을 달려가고 있었는데, 오늘은 서울에서 하는 마지막 공연이었습니다.공연장에 도착하시자마자 스님께서는 가장 먼저 대기실로 찾아가 김제동씨를 격려하였습니다. 대기실 문을 열자 야구 선수 이승엽씨가 오늘의 초대 손님으로 출연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대기실에서 김제동씨, 이승엽씨와 함께 담소를 나누시다가 이승엽씨에게는 인생수업 책을 친필사인 해서 선물로 드렸고, 김제동씨에게는 고생하고 있는 스텝들 밥 사 먹이라며 금일봉을 선물했습니다. 김제동씨는 금일봉 받기를 조금 난처해 하다가 오히려 자신의 이번 시즌5 콘서트 수익금 중 1,000만원을 JTS 국내 복지사업에 기증하겠다고 스님께 약속 했습니다. 옆에 있던 이승엽씨도 어떨 결에 100만원을 함께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공연은 김제동씨가 전혀 돈을 받지 않고 하는 공연이 되어버렸습니다. 참 훈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nbspnbsp오후6시가 되어 공연장에 입장하셨습니다. 시작부터 김제동씨가 오늘은 특별히 법륜 스님이 오셨다고 소개해 청중석에서 크게 환호가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또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커플이 무대 위에 나와 프로포즈하는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지금 이 마음 변치 않고 죽을 때까지 함께 살자. 애는 두 명만 낳아서 키우자” 라며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그러자 이 커플을 위해 김제동씨는 즉석에서 스님께 스님의 주례사를 청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프로포즈를 들으시고 이렇게 조언해 주셨습니다.nbsp“마음은 변하는 게 정상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봐야 둘 관계를 오래 오래 유지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안 변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변하는 마음을 가지고 상대에게 실망하게 되고 다투게 됩니다. 그러나 상대의 마음이 변하는 것까지도 이해하고 받아주어야 오래 오래 함께할 수 있습니다. 또 덕 보려고 하지 말고 덕을 주려고 하는 생각을 갖고 살면 좋겠습니다. 애는 두 명만 낳고 살아야지 하고 정하지 말고 그냥 생기는 대로 낳으세요.” 청중들도 스님의 조언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또 음악에 맞춰 서로 포옹해주는 타임이 있었는데, 김제동씨가 스님께 가까이 다가가서 스님 옆에 앉은 여성분과 포옹하게 하는 장면을 연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오히려 김제동씨와 포옹을 해서 청중들이 크게 웃었습니다. 때론 크게 소리 지르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때론 김제동의 입담에 넋을 잃고 웃기도 하면서 어느덧 3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스님께서는 공연이 끝나고 다시 대기실로 찾아가 김제동씨에게 수고했다며 격려하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밤10시 무렵에 정토회관으로 돌아오셨습니다.nbsp내일은 아침 일찍 조찬 모임이 있고, 그 이후는 두북으로 내려가실 예정입니다.nbspnbsp

2013.12.26. 22,499 읽음 댓글 17개

2013.12.24. 성탄절 교회 방문 및 천도교 인일기념식 참석

오늘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절 전야입니다. 스님께서는 그동안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종교인 모임을 통해 오랫동안 함께 교류해 온 이웃 종교 지도자분들의 성탄 예배에 참석하시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셨습니다.스님께서는 아침 일찍 평화재단에서 2번의 미팅을 가진 후 오전 11시부터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열린 인일 기념식에 참석하셨습니다. 오늘 행사가 열리는 중앙대교당에 스님께서 들어서자 박남수 교령님을 비롯한 많은 천도교 관계자분들이 스님과 악수를 청하며 환영해 주었습니다. 천도교에서는 오늘이 의암 손병희 선생께서 1897년 12월24일 해월 최시형 신사로부터 도통을 이어받으신지 116주년이 되는 기념일이라고 합니다. 이런 뜻 깊은 날을 맞이하여 천도교에서는 스님께 ‘3.1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여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자’는 주제로 기념 강연을 요청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런 요청에 응하셔서 기념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천도교의 손병희 선생님을 모시고 불교계를 대표해 3.1독립선언을 하신 백용성 스님이 바로 저의 3대 스승님이십니다. 또 백용성 스님의 스승님인 혜월 대선사는 최제우 대신사께서 은거하신 덕밀암 은적당을 제공하신 분입니다. 저는 어릴 때 ‘최제우 선생님의 뜻을 받아서 살아라’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고등학교 때 불법에 귀의하게 되었습니다. 수운 대신사께서 경주에서 포덕하시다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자 남원으로 오셨고 남원nbspnbsp교령산성 덕밀암에서 혜월 대선사의 도움을 받아 은거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때 유교와 불교와 도교 삼도에 대한 많은 대담을 하셨습니다. 특히 불교는 마음을 닦지만 세상에 대한 뜻을 펴지 못한 한계를 갖고 있음에 비해서 수운 대신사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할 큰 포부를 갖고 계셨습니다. 부처님의 법을 35대로 계승하신 중국의 마조 도일 선사가 하신 말씀 중에, 제자가 묻기를 “부처가 뭡니까”하고 물었더니 “심즉시불, 마음이 곧 부처니라”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심즉시불이 동학의 핵심사상인 ‘사람이 곧 하늘이다’ 라고 하는 인내천 사상과 일맥상통 합니다. 이런 교류가 있은 후 동학의 많은 핵심 사상들이 이곳 덕밀암 은적당에서 집필 되었습니다. 수운 대신사는 경주에서 포덕을 하시다가 순교를 하시게 되고, 혜월 대선사는 수운 대신사를 숨겨준 죄로 승적이 박탈되고 덕밀암 박을 나가지 못하는 유배형이 내려졌습니다.용성 조사님은 혜월 대선사를 모시고 출가하여 수행을 했습니다. 1918년에 들어와서 독립의 기운이 일어날 때 천도교에서는 단독으로 독립선언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당시 교세를 보면 천도교가 10이라면 기독교와 불교는 1도 채 안 되는 작은 교세였습니다. 천도교 입장에서는 굳이 작은 세력과 함께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용성 조사께서 의암 성사를 찾아가서 과거 수운 대신사와 혜월 대선사의 인연을 얘기했습니다. 용성 조사께서 “나라를 되찾으려면 비록 작지만 천도주교와 불교, 기독교의 삼교가 연대해서 독립선언을 해야 국민을 통합할 수가 있다.”고 하자 의암 성사께서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셔서 다른 종교도 함께 참여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렇게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큰 뜻을 내신 분이 의암 성사입니다.nbspnbsp박남수 교령님을 뵙게 된 인연을 생각해보면 이 인연이 참 묘한 것 같습니다. 용성 스님의 법을 계승하신 분이 저의 스승이신 불심 도문 스님이시고, 저는 용성 스님의 탄생지인 죽림정사의 주지를 맡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다시 만나서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혜월 대선사와 수운 대신사는 조선조 말기에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하고 밀려오는 서학에 대비해서 나라를 보호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보국 안민’에 뜻을 모았다면, 그 제자들이신 용성 조사님과 의암 성사는 나라를 빼앗기고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서 나라를 되찾는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이제 그 뜻을 계승한 우리들은 분단된 나라를 하나로 만들고 헤어진 핏줄을 다시 잇는 ‘민족 통일’에 우리가 함께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이런 데서 이제 다시 우리가 힘을 합쳐야 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을 뵙게 된 것도, 또 교령님께서 죽림정사를 방문해 3.1독립운동 기념식에서 강연을 해주신 것도, 단순한 종교 교류 같지만 과거역사를 보면 필연입니다. 그러므로 통일운동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닌가합니다. 동학 혁명과 3.1운동의 위대함을 단순히 기념만 할 것인가요?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잊지 않고 기념해야 하지만, 정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스승들이 그 당시 했던 것처럼, 그 분들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신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분단된 나라를 통일하는 일을 함께 하셨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꿈꿨던 평등한 세상 그리고 외세로부터 자유로운 독립된 국가 이런 것들을 함께 꿈꾸지 않으셨겠는가.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의 독립이 시대적 과제였고, 조선 말에는 민중의 해방이 시대적 과제였다면, 오늘날의 시대적 과제는 민족의 통일이 아니겠는가. 그처럼우리가 통일 국가를 이룰 때 만이 과거 100년의 상처도 치유되고 앞으로 전개될 미래 100년의 좋은 출발점도 될 것입니다.nbspnbsp분단된 상태에서는 어떤 답도 찾을 수 없습니다. 남한은 미일 동맹 체제의 하위 변수로, 북한은 중국의 하위변수로 전락해서 미중의 세력 충돌이 남북 간의 갈등으로 재현되는 희망 없는 100년을 우리는 또 보내야 합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남북이 빠르게 협력하고 통일을 해서 미국도 존중하면서 중국과 협력하는, 자주적 입장에서 미중의 세력균형을 잡는, 한반도의 통일이 동아시아의 평화도 가져오는, 이런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고구려 발해 멸망 이후 1000년 만에 도래한 기회입니다. 그동안 강대국의 변방에서 이제는 오히려 강대국간의 세력균형을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로 일어설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저는 천도교의 과거 역사를 볼 때 하나의 종교로서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역할만 했다면 천도교가 빛나지 않았을 겁니다. 천도교는 고통 받는 민중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도를 닦는 역할도 했지만, 처음 대신사님께서 창도하실 때부터 동학혁명, 3.1운동처럼 나라와 국민들의 희망을 만들어냄으로 천도교는 빛이 났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들이 천도교의 부흥을 꿈꾼다면 이 민족의 시대적 과제를 외면하고는 천도교의 부흥은 쉽지가 않습니다. 천도교의 비전을 위해서도 또 이 민족이 갖고 있는 희망을 위해서도 우리가 함께 힘을 합해서 통일의 문을 열고 나갔으면 합니다.nbspnbsp통일은 우리 기성세대가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선물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그런 면에서 여기 계신 어르신들이 오히려 이 통일에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요. 통일을 하려면 북한에 대한 좀 더 큰 열린 마음의 포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당장 굶어죽는 사람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지 않고는 현실적으로 통일의 방법은 없습니다. 통일은 국제정세의 변화국면에서 대한민국을 한번 더 도약하게 하는 어쩌면 유일한 출구일지 모릅니다. 그런 측면에서 큰 마음을 내어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교령님께서 갖고 계신 큰 뜻이 여러분들과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들도 옆에서 작은 힘이지만 돕겠습니다.” 박남수 천도교 교령님은 스님의 기념 강연을 듣고 “오늘 스님이 해주신 말씀은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꼭 듣고 싶어 했던 내용이었습니다” 며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강연 후에는 천도교 관계자 분들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하셨고, 평화재단으로 들어오는 길에 치과에 들러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오후에는 평화재단에서 잠깐 집무를 보시다가 저녁6시30분 무렵 성탄 축하의 밤 행사가 열리는 경동교회로 향하셨습니다. 저녁7시30분에 경동교회에 도착한 스님께서는 경동교회 박종화 목사님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성탄 전야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먼저 예배에 앞서 성탄 축하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유치부, 어린이부, 중고등부의 공연에 이어 서울지역 각 구역별로 찬송가 경연대회가 릴레이로 계속 되었습니다. 정토회에서도 50여명의 신도님들이 함께 자리해서 찬송가를 따라 부르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했습니다.찬송가 경연대회가 끝나고 스님께서는 박종화 목사님에게 축하 꽃다발을 건네며 성탄절 축하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경동교회 교인들 모두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드립니다. 구역별로 이렇게 찬송하는 것을 들으니까 참 좋았습니다. 이렇게 재미가 있으니까 다들 절에 안 오고 교회에 가는가 봐요. 절에 오면 바닦에 앉으니까 다리가 저리고 염불만 하니까 젊은 사람들이 절에 잘 안 오는가 봐요. 박종화 목사님과 저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기도도 하면서 항상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는 20대 때부터 강원룡 목사님이 하시는 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농민교육을 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서 강원룡 목사님을 사회적으로 큰 스승님으로 모시고 배움을 많이 가졌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경동교회는 저한테는 특별히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오늘 성가대 공연을 들으니까 제가 어릴 때 시골교회에서 배운 찬송가가 생각납니다. 노래가 그 때 배운 거랑 많이 다르네요. 제가 한번 불러 볼까요?”스님께서는 어릴 때 배운 찬송가를 즉석에서 불러 주셨습니다. 교인 분들 모두 큰 박수로 환호하면서 스님께서 부르시는 찬송가를 박수 치며 함께 들었습니다. 스님의 찬송가가 염불가락조라 덕분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밝아졌습니다. 스님께서는 목사님의 설교도 듣고 성서 봉독도 함께 하시다가 밤 10시30분 무렵 경동 교회를 빠져나와 갈릴리 교회로 향하셨습니다. 갈릴리 교회에 도착하자 인명진 목사님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 해 주셨습니다. 길이 막히지 않아 일찍 도착했는데, 교회 측에서 맛있는 다과를 정성스럽게 차려 주셔서 담소를 나누며 예배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일찍 온 이인영 국회의원, 길정우 국회의원 등 몇몇 분들과 담소를 나누시다가 밤12시 정각이 되어 성탄 축하 예배에 들어가셨습니다. 늦은 밤이지만 정토회에서도 30여명의 신도님들이 함께 참석해 주었습니다. 인명진 목사님의 성탄 축하 설교가 있은 후 목사님의 요청으로 스님께서 성탄 축하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많은 갈등이 있습니다. 제주도 강정 마을 주민들의 아픔이 너무 크고, 밀양에서도 마을노인 분들이 갑자기 날벼락 맞듯이 한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일이라는 것은 서로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이해관계도 서로 다르고요. 그러나 서로 합의해서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이렇게 힘 약한 사람들이 원한 속에서 죽어만 갈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저희 종교인들의 힘이 너무 미약함을 느낍니다. 오늘 예수님 오신 기쁜 날, 이렇게 기운이 떨어지는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밖에 없는가. 이런 저희들의 삶에 대해서도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 어떤 이유로 오셨나요? 또 예수님은 어떤 목적으로 이 세상에 오셨나요? 우리가 그 분들을 따른다는 것은 그 분들의 삶을 본받아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종교인들은 그분들의 희생을 내세워서 보상만 바라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다만 그분들의 삶을 칭송하기만 하고 우리는 그냥 덕만 보는 데에 좀 급급한 것 아닌가. 그분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닮아가려고 하는 의지가 있다면 우리 사회가 지금 보다는 조금 낫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부활의 새로운 희망이 생겼듯이 이런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다시 부활의 희망과 힘을 가져야 될 것 같습니다. 좀 더 마음을 모으고 사회를 좀 더 화합시키고 남북이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길을 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오늘 어떻게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이 어려운 시기에 부활의 희망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축하 인사를 마친 후, 그동안 갈릴리교회를 오랫동안 이끌어오고 우리 사회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신 인명진 목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꽃다발을 선물로 전해드렸습니다. 인명진 목사님은 올해로 담임 목사직을 은퇴하신다고 합니다.nbspnbsp인명진 목사님은 스님께 꽃다발을 선물 받으시고는 “목사가 은퇴하는데 스님이 꽃다발을 선물하는 건 세계 교회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라며 기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nbspnbsp목사님과 스님이 이렇게 함께 교류하고 화합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부처님과 예수님도 동시대에 살았다면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 사회가 자꾸만 극한의 대립과 갈등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오늘 스님께서 보여주신 이웃 종교인들과 함께 하는 모습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귀감이 된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많은 정치인들도 이런 스님과 목사님의 화합을 많이 본받아 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갈릴리교회 예배가 모두 끝나니 새벽 1시가 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새벽 2시 무렵 정토회관으로 들어오셔서 집무를 더 보셨습니다. 내일은 오전 11시에 쑥고개 성당에서 열리는 성탄절 미사에 참석하십니다. 저녁에는 김제동 토크콘서트에 참석하십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즐거운 성탄절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야기는 희망플래너님이 정리해주셨습니다.

2013.12.25. 21,455 읽음 댓글 7개

2013.12.22. 동지법회 그리고 길벗, 시민단체 송년모임

오늘은 동지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그전에 스님께서는 평화재단에서 2번의 미팅을 가진 후 정토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서울 정토회관에는 동지법회가 스님의 직강으로 이뤄진다는 소식을 접하고 600여명의 대중들이 찾아왔습니다. 1층 법당은 법회 30분 전부터 빈자리 없이 꽉 차서 자리가 부족했고, 현관 입구에는 신발을 둘 자리가 없어 지하부터 2층 복도까지 신문지를 깔고 신발을 두어야 했습니다. 2층 강당과 3층 소법당에도 대중들이 꽉 드러찼습니다. 동지를 맞이하여 스님의 좋은 말씀을 듣고자 하는 대중들의 열기를 가득 느낄 수 있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대중들에게 24절기 중에 하나인 ‘동지’의 수행적 의미에 대해 쉽게 풀이해 설명해 주면서 대중들이 수행 정진을 발심할 수 있도록 북돋워 주셨습니다.“오늘은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동지입니다. 동지라는 전통 명절이 왜 불교 명절이 되었을까요? 수행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동지를 신년으로 쳤어요. 낮의 길이가 가장 짧았다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때여서 그렇습니다. 오늘부터 낮의 길이가 길어지지만 오늘부터 당장 따뜻해지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더 추워져요. 동지를 지나서 한 달 만에 찾아오는 게 제일 추운 ‘대한’이지요. 낮의 길이가 제일 짧은 날은 12월 22일인데 제일 춥기는 1월말 2월초가 제일 춥습니다. 그것이 인연과보에 시차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일 짧다는 말은 길어지기 시작한다는 말이고 제일 춥다는 말은 앞으로 따뜻해지기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원리를 따져서 봄은 오늘부터 시작된다고 보는 겁니다. 동지가 지났다는 것은 봄은 올 수밖에 없지만 현실에서는 갈수록 더 추워집니다. 동지가 지났지만 실제로는 더 추워지니 현실에서는 따뜻해진다는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이것은 수행과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 발심해서 기도하면 오늘이 동지날입니다. 그것은 기도입재하면 앞으로 좋아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현실에서 내가 느끼는 건 얼마간은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기도하다 그만둡니다. 기도를 시작했지만 현실은 좋아지는 게 아니라 더 나빠져요. 기도했기 때문에 나빠지는 게 아니에요. 그 전에 저지른 과보가 지금 돌아와서 나빠지는 것이지 기도를 해서 나빠지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기도를 잘못해서 불행이 초래한 줄 잘못하고 대부분 기도룰 그만 두지요.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습니다.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습니다. 원인은 짓지 않고 결과만 바라거나, 원인을 모르니 결과를 원망만 하게 되는데, 지은 인연의 과보를 알면 원망할 일이 없습니다. 원망하는 것은 자기가 빚진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은 과보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깊은 산속 깊은 바다 속에 숨는다 할지라도. 저축을 안 했는데 은행가서 돈 주세요 하면 안 준다 이 말입니다. 목돈을 얻기 위해서는 저축을 해야 합니다. 오늘 받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받습니다.nbsp인연과보가 일어나는 데는 시차가 있습니다. 어떤 것은 즉시, 어떤 것은 한 달 뒤, 어떤 것은 다음 생에, 때로는 부모가 지은 걸 자식이 받기도 합니다. 이렇게 원인을 짓고 결과가 일어나는 데는 시차가 있습니다. 동지날 이후 이미 따뜻해지는 쪽으로 가지만 추위의 과보가 밀려오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추워집니다. 그래서 수행자에게는 동지가 중요합니다. 입재하면 동지입니다. 비록 과거에 지은 인연의 과보는 받지만 지금부터는 복을 짓기 때문에 언젠가는 복이 돌아옵니다. 이렇듯 백일기도 했다고 갑자기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자기 모습은 알게 돼요. 이건 내 탓이구나. 내 성질이 그래서 그렇구나. 이렇게 자신을 자각하기 때문에 고통을 자신이 이겨 낼 수 있게 됩니다. 천일 쯤 기도하면 춘분이 지나고 꽃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주위로부터 저사람 변하기는 변하네 이런 소리를 듣게 됩니다. 만일을 기도하면 운명이 바뀌어요. 사람 자체도 바뀌지만, 한 세대가 노력하면 세상도 바뀌어요.nbspnbsp이런 수행적 관점을 받아들여서 동지날을 기리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나에게 닥친 재앙들이 물러가라 한다고 내일부터 물러갈까요? 안 갑니다. 앞으로 백일은 따라 다닙니다. 평소에 나타나면 그러려니 하는데 기도를 하고 있는데 나타나니 기도를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기나 싶어서 기도를 그만 두게 됩니다. 그러니 입재하고 백일까지는 절대 멈추면 안돼요. 더 나아가서 꾸준히 3년은 기도해야 남들도 느낄 만큼 변화될 수 있습니다. 3년을 기도하면 이제 끝일까요? 그건 아니에요. 만일은 해야 됩니다. 만일을 하면 인생에 좋은 습관이 붙습니다. 수행을 안 하면 오히려 불편해져요. 하지마라 해도 하게 됩니다.nbsp정토회는 수행만 하니 일반 절과 많이 달랐죠? 그래서 동지 기도를 어색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수행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에 오늘부터 기도를 하셔야 됩니다. 그동안 살아온 삶도 반성하고, ‘지혜롭게 살겠습니다.’하고 발원도 하고, ‘지은 인연의 과보는 기꺼이 받겠습니다.’ 해보세요. 이런 마음들이 재앙을 쫓아주는 것입니다. 좋은 복을 바란다면 부지런히 복을 짓겠습니다 발원을 해야 하는 겁니다. 추운 날씨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오늘 같은 날 보시를 해야 됩니다. 또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평화롭게 나아가도록 함께 손잡길 바라는 그런 마음으로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nbsp대중들도 스님의 가르침대로 오늘부터 새롭게 입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수행정진 할 것을 다짐하며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법문을 마치고 스님께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10분간 갖자” 고 제안하셔서, 스님과 대중들 모두 합장하고 관세음보살 염불을 일심으로 불렀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간절히 염원했을 것입니다.오후에는 시민단체 대표, 활동가들 12명을 초청해서 송년모임을 함께 하였습니다. 동지팥죽을 곁들인 점심식사를 함께 하면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주 관심사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내외 정세, 남북한의 갈등, 남한내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것들이 우리에게 어떤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국정부의 역할이 중요한데, 한국내의 사회갈등의 현안들을 어떻게 해결하면서 남북관계가 통일이 될 수 있도록 현명하게 대응하는 것이 다른 어느때보다도 중요한때이라는 것에 동의 하면서 이후에 어떤식으로 활동을 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저녁7시부터는 정토회 방송연극문화예술인 모임인 ‘길벗’ 회원들과 함께하는 송년모임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한 해 동안 방송연극문화예술인을 위한 강연회를 매년 봄가을에 열어왔고 JTS 거리모금도 열심히 해왔던 길벗 회원들 모두의 노고를 진심으로 격려해주셨습니다.오늘 길벗 송년모임에는 노희경 작가, 이금희 작가, 배우 한지민씨, 배우 박진희씨를 비롯해 김병조씨 부부, 성준기 감독, 방송작가 이성희씨, 김서호씨, 성현미씨, 만화작가 박경숙씨, 강두석씨 송명신씨 부부, 밴드 온더스팟의 리더 신궁씨, 배우 김병주씨, 신인배우 백승조씨, 한숙 길벗 대의원님, 전혜진 길벗 총무님 등 총 18명의 길벗 회원들이 참석하였습니다. 모두들 어제 명동에서 빈곤퇴치 거리모금을 함께 진행했는데 모금액이 무려 1천만원이 넘었다며 다들 기뻐했습니다. 특히 신인배우 백승도씨는 스님 앞에서 아이돌 음악에 맞춰 멋진 댄스를 두 곡 연달아 보여줘서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nbspnbsp한분 한분의 소개를 다 들으시고 스님께서는 길벗 회원들에게 이렇게 격려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마약하고 자살하는 연예인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줄일 수는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이 문제에 도움이 되는 일을 길벗이 해주면 좋겠어요. 권력, 돈, 인기 이 세 가지가 인간의 욕망을 추구하는 건데, 돈 돈 돈 해도 그래도 돈 잃었을 때가 가장 충격을 덜 받는다고 합니다. 돈 잃으면 대부분 다 제 정신이 없는데 그것보다 더 충격이 큰 것이 높은 지위에서 떨어졌을 때입니다. 늘 높은 데 있다가 밑으로 떨어지면 잘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 인기가 떨어졌을 때 인 것 같아요. 돈이나 지위는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서 어른이 되어서 얻어지는데, 인기는 대부분 20대 아니면 30대에 얻습니다. 오를 때는 빨리 오르고 떨어질 때는 한꺼번에 너무 빨리 떨어지고 하니까 충격이 큰 것 같습니다. 자기 발견이 없으면 굉장히 힘든 상황이 될 수 있거든요. 오르지 못해서 고통이고, 또 내릴 때 너무 급격히 내려가서 고통이죠. 이런 때일수록 길벗 모임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개인별로 다 상담해주기는 어렵더라도 정기적인 미팅이라도 가질 수 있도록 해서 고통 받는 연예인들에게 수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 싶어요.nbsp두 번째, 저희들이 하는 수행과 사회적인 실천활동 이런 것들이 널리 퍼져나가게 하는 일은 정치권력의 힘을 빌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써서 광고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대부분 자원봉사를 통해 해 나가니까 대중화를 위해서는 작가나 연기자, 언론인 이런 분들의 자원봉사가 굉장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정토회에서는 좀 더 대중화를 위해서 인터넷방송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쌍방 소통이 될 수 있는 방송을 해보려고 하는데 아이디어도 많이 내어주시고 기여도 많이 해주시면 좋겠습니다.nbsp인기와 연관되어 있는 여러분들은 무엇보다 자기 수행이 중요합니다. 작지만 사회실천도 할 수 있는 길을 조금씩 열어나가면 좋겠다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길벗의 적극적인 활동을 바랍니다.”길벗 회원들을 대표해서 노희경 작가님도 “스님께서 이렇게 송년모임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 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노희경 작가님은 “길벗이 생기고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법회에 빠진 적이 없어요. 제 인생에서 평생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은 모임 하나가 있다는 건 큰 자부심” 이라며 앞으로도 길벗이 왕성한 활동을 이어갈 것임을 다짐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런저런 덕담을 많이 나누어주셨습니다. 송년모임을 마치고 나서는 함께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길벗이 생긴 지 올해로 10주년이 되는 해인데 이를 기념할 수 있는 사진을 스님과 함께 찍을 수 있어 기쁘다며 다들 좋아했습니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참석한 한분 한분에게 직접 인생수업 책을 사인해서 선물로 드렸습니다. 배우 한지민씨와 박진희씨도 스님으로부터 책을 선물 받고 무척 좋아했습니다.내일부터는 정토회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있는 실무자들이 3년에 한번 있는 10일간의 휴가기간입니다. 스님께서는 쉬지 않고 매일 일정이 계속되지만, 실무자가 없으므로 스님의 하루는 당분간 쉬겠습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에는 여러 교회를 방문하시기 때문에 희망플래너님이 소식을 전할 예정입니다.

2013.12.23. 21,973 읽음 댓글 8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