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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6. 한겨레 신문 대담, 통일대비의원연구모임 참석
스님께서는 어제 광주 북콘서트를 마치고 오늘 새벽 1시경에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아침 8시부터는 11시 20분까지 한겨레 신문과 대담이 있었습니다. nbsp 12시부터는 국회의원 약 20여명이 참석한 통일대비 의원연구모임에 초청되어 스님께서 통일에 대한 주제로 발제하고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 이후에도 스님께서는 평화재단으로 돌아와서 대한민국의 비전이 되는 통일방안, 남한내 갈등과 위기에 대처하는 방안, 국제정세에 대처하는 방안등에 대한 논의를 위해 3번의 모임을 더 가진 후 하루를 마무리 하였습니다.nbspnbsp 내일은 인천 부평강연, 서울 교사 멘토링이 있습니다.
2013.11.25 군산대, 조선대 강연과 전남대 새로운백년 북콘서트
스님께서는 오늘 아침 7시에 문경에서 군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오전 10시 30분 군산대학교 아카데미홀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강연 전 10시에 군산대학교 채정용 총장님과 차담이 있었습니다. 스님과 총장님은 지난 10월에 스님께서 시드니 방문하셨을 때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스님과 총장님께서는 군산 지역의 현황, 나아가 전라도 지역의 현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스님께서는 군산은 서해안에 위치하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중국과의 교역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특히 청정 지역인 전라도는 이후에 중국의 성장에 따른 중국 고소득층에게 식품을 공급하는 친환경적 농산물을 생산하거나 가공하는 것이 더 비전이 있을 것이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차담후 스님과 총장님께서는 함께 강연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nbsp이번 군산대 강연은 전주, 정읍, 익산, 대전 등 인근 지역의 봉사자들과 군산 지역의 봉사자 분들이 함께 힘을 모아 준비하였습니다. 600명 정도의 군산 시민들이 강연장을 찾았고 군산 지역의 흥천사와 은적사 스님들도 강연에 함께 참석하셨습니다.스님께서는 연단에 올라 스님들과 총장님께 인사 말씀을 하시고 청중에게 ‘살아가면서 재미가 있습니까? 아니면 힘이 듭니까?’ 물으시며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예전에는 밥을 못 먹던지 입을 옷이 없던지 잘 집이 없던지 해야 힘이 든다 했는데 요즘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먹고 사는데 경제적으로 힘이 든다고 합니다. 우리 보다 훨씬 잘산다는 미국도 경제적으로 힘이 든다 합니다. 이걸로 예측해보면 앞으로 국민소득이 2만불에서 10만불이 되더라도 경제적으로 힘들다 할 것이고 가보지는 않았지만 천국을 가더라도 다들 힘들다고 할 것 같습니다.이런 것을 생각해보면 어디를 간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세월이 간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닙니다.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해야 됩니다.”nbsp이렇게 nbsp지금 힘든 분들의 고민을 듣고 행복해지는 길을 일러주셨습니다.고집이 센 7살 아들이 검도장에서 형들과 다투어서 고민인 엄마, 돈 때문에 친구들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 같아 괴로운 청년, 사회생활을 어찌 해야 되는지 고민인 철학과 4학년 학생,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이 한 번 싫으면 계속 싫은데 가족들에게도 이러는 것 같아 괴로운 분 등 이렇게 네 분이 질문을 하셨습니다.nbsp이 중에 철학과 4학년 학생의 질문과 스님의nbsp답변을nbsp자세히 소개해 드립니다. “불교에 관심이 있어 책을 읽고 나니nbsp지혜라는 것은 남에게 전달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소통을 하며 배우고 싶은데 막상 어린 사람에게 배운다는 것이 자존심 때문인지 실천은 어렵습니다. 사회생활에 대한 자세에 대해서 스님께 여쭙니다.” 스님께서는 지혜라는 것은 통찰력이라는 것입니다 라고 하시며 이렇게 답변을 해주셨습니다.nbsp “사물을 한쪽면만 보지 않고 전모를 다 보는 것이 지혜인데, 지혜도 책으로 배우면 ‘지혜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라는 지식이 됩니다. 불교학 박사를 따서 교수를 해도 스트레스 받아서 싸우고 화내고 자기 자신을 어찌할 줄 몰라 하면 불교에 대한 지식이 많은 거지 지혜를 얻은 게 아니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지식과 지혜는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지식이 하나도 없어도 지혜는 증득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철학적 합리성 때문에 불교에 관한 많은 교리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불교 철학을 많이 안다고 지혜가 증득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이 있으므로 해서 지혜를 증득하기 위한 욕구가 일어나기 때문에 이제는 직접 몸으로 행해봐야 합니다.nbsp책을 통한 배움이 지식이라면 지혜는 생활 속에서 배워야 합니다. ‘어린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 하는 것은 ‘어린아이에게도 배울 지식이 있다’라는 뜻이 아닙니다.nbsp앞에 질문하신 분처럼 엄마와 아이가 갈등이 있을 때 아이를 관찰해 보면 아이의 행동이 엄마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고 아이를 통해서 나의 행동에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나의 이러한 행동 때문에 불편한 남편의 마음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의 행동을 개선하려 합니다. 하지만 습관 때문에 잘되지는 않습니다.nbsp이럴 때 잘 고쳐지지 않는 나를 보면서 아이를 더욱 폭넓게 이해할 수가 있고 더불어서 남편에 대한 이해도 한층 깊어집니다. 이렇게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고 괴로움이 줄어들며 지혜를 증득해 가는 과정입니다.nbsp지식은 아무리 쌓아도 괴로움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반면 지혜는 연구하는 자세로 사물의 이치를 탐구 할 때 증득이 됩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세상에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라는 많은 사람의 조언은 지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을 참고 해서 스스로 연구를 해야 합니다.nbsp직장에 취직하게 되면 선배는 이래서 싫고 후배는 이래서 싫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연구를 해야 합니다. 연애를 할 때도 만약 상대가 떠나면 괴로워 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며 계속 연구를 해야 합니다.그러니 질문자는 사회에 나간다고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장애에 부딪히면 그 때부터 연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고 보편적으로 공통점이 이런 것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다 연구해서 다시 불교로 들어가면 ‘사물이라는 것은 다 같다고 할 수도 없고 다 다르다고 할 수도 없구나. 다만 그것일 뿐이구나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이 내 경험과 결부될 때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이 진리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삶 속에서 늘 탐구하는 자세로 임하면 장애가 큰 복이 됩니다. 이렇게 탐구하는 자세를 가지면 두려움이 없지요.그래서 사회로 나가는 분들에게 제가 해주고 싶은 말은 지금까지는 부모 울타리에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밖에 나가서 내가 내 힘으로 일하면서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복잡한 세상을 어떻게 살까 두려워하지 말고 산에 오를 때 내리막길도 있고 오르막길도 있어야 등산하는 재미가 있듯이 온갖 일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한판 놀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임해 보시기 바랍니다.”질문자는 ‘한 판 놀아보자’라는 스님의 말씀에 힘을 얻어 큰 목소리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대답을 했고 함께 듣던 청중들도 그 청년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이렇게 강연을 마친 후 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자원봉사자 김성은님께서 한반도기와 통일깃발을 꽂은 떡케익을 준비해 오셨고 봉사자 모두는 한마음으로 사회 지도층 66인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민통합선언 실현을 염원하며 66을 상징하는 초를 밝혔습니다.스님께서는 격려의 말씀에 이어서 개인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변화되는 정세 속에서 우리가 한마음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오후 3시부터는 광주 조선대학교 해오름관에서 광주의 비전에 대해서 ‘광주전남 비젼 21의 윤장현 이사장님과 스님의 대담이 ‘광주 즉문즉설’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습니다.민주화를 일구어 낸 광주사람들이 많이 아파하고 힘들어 한다며 스님께 조언을 구하자 스님께서는 광주가 일구어 낸 과거의 자랑스런 성과를 가지고 계속 이야기 하지말고 과거의 성과를 계승해서 미래의 과제를 해결해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시면서nbsp이렇게 조언해 주셨습니다. “광주의 상처나 어려움은 광주만 어떻게 해 가지고는 극복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광주가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우리나라가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큰 변화 속에 광주의 어려움도 함께 극복하려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냐는 것입니다.nbsp광주가 역사 속에서 식민지 시대, 독재시대에 항쟁을 했듯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 가는 데도 역시 광주가 앞장섰으면 합니다. 해가 쨍쨍 났을 때 촛불 켜봐야 그 밝기를 알기 어렵지만, 깜깜할 때 촛불을 켜면 주변이 환해지듯이 역시 광주는 평화 시대보다 약간 고난이 닥쳤을 때 그것을 이겨내는 횃불이 되는 역할을 맞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그리고 광주가 작지만은 정말 민주주의의 실현, 국민 행복을 위한 가치관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새로운 광주로써 대한민국의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광주가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모델을 잘 만들어 낸다면 그것도 역사 속에서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힘들어만 하지 말고 새로운 광주를 만든다는 것에 뜻을 모으고 조금 더 진취적이고 창의적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의 힘듦을 알면서도 한 번 더 일어나 역사 속에서 역할을 해 주십사하는 부탁을 드립니다.” 스님께서 희망적인 미래로 나아가자고 하니 오늘 참여한 많은 시민들은 스님의 말씀에 큰 박수로 화답하였습니다.nbsp대담이 끝난 후 광주지역 인사들과 시민들이 스님께 와서 인사를 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이어서 6시부터는 광주 지역 통일의병들을 모으기 위한 모임이 있었습니다. 광주지역의 고등학생 5명, 아나운서, 시인, 시민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스님께 왜 통일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는nbsp특히 통일 의병의 취지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통일은 필요하다 안하다의 문제가 아니라 꼭 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통일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세력을 민간 차원에서 모아서 그것이 강력한 정치 집권 세력이 되게 하는nbsp것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할 때만이 우리가 통일의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지금 같으면 외세에 놀아나기가 쉽습니다. 조선말엽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관료들이 다 자기의 권익만 챙기니까 결국 민간에서 의병이 일어났잖아요? 그런 것처럼 지금은 통일 의병이 필요할 때입니다. 원래 관군이라는 것은 무기도 주고, 식량도 주고, 훈련도 시키주는데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으니까 의병이 나온 것입니다. 의병은 군인도 아니고, 훈련도 자기들이 해야되고, 식량도 자기가 준비해야 되고, 무기도 자기 돈 주고 사야 합니다. 아무런 직위도 주어지지 않는 것이 의병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나서 의병이 승리해도 공로는 주로 관군이 가져가고, 오히려 잘못되면 역적으로 몰려 죽기도 합니다. 전쟁이 끝나면 의병들은 자기 직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한마디로 백의종군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강력한 집단이 형성될 때 국가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정부가 부족한 것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주겠다는 그런 의미에서 통일의병 운동이 지금 일어나야 합니다. 서울 쪽에서는 이미 시작했고 광주 쪽에는 아직 시작하지 못했지만 지금부터 준비해 가야 합니다. 조만간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이 좀 더 표면화 되면 국민들이 ‘이거 위험하다. 잘못되겠다’는 자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여론을 모으려면 지금부터 준비가 되어 있어야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통일의병 운동을 지금부터 힘모아 준비해야 됨을 강조하셨습니다.저녁 7시 30분에는 새로운100년 북콘서트가 있었습니다. 평화재단과 오마이북의 공동주관으로 진행되는 이번 북콘서트는 전국 5개 도시를 순회하며 열리는데, 오늘은 첫번째 도시인 광주에서 열렸습니다. 약 450여명의 시민들이 자리하여 전남대학교 컨벤션센터를 꽉 채웠습니다.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끝나자 오연호 대표가 무대로 등장했습니다. 오 대표는 스산한 날씨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청중들을 만난 것에 기쁨을 전하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기자로서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과 사람들이 더 이상 통일이라는 말에 가슴이 뛰지 않는 이유를 파헤쳐보고 싶어서 lt새로운 100년gt을 스님과 함께 쓰게 되었다고 강조하며 오늘의 대담자인 스님을 소개했습니다. 작년 이맘 대선을 앞둔 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북콘서트에서는 좌석이 부족해 무대 위까지 꽉 메웠던 것을 회상하면서 그때와 비교하면 그 열기는 식었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 강연장 좌석을 꽉 차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스님이기 때문이라는 오연호 대표의 설명에 청중들도 큰 환호를 보냈습니다.“최근 lt응답하라 1994gt라는 드라마가 유행인데, 20여년전 1994년도에 스님의 고민은 무엇이었냐”는 첫 질문에 스님은 ‘역사’였다고 바로 답을 했습니다. 남북한 역사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5천년의 역사라는 사실에 고구려, 발해, 독립유적지 답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타임머신이 있어서 앞으로 30년 후 미래로 가서 지금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 기술로는 어렵기 때문에, 과거 역사로 돌아가서 왜 실패했는지를 알면 앞으로를 예측해볼 수 있으니, 지금의 문제를 풀기 위해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며 대담을 시작하셨습니다.청중의 질문은 통일, 역사 및 사회 이슈 말고도 즉문즉설 처럼 개인 질문도 많이 나왔습니다. 자신의 성격이 괴팍하고 다혈질에 참을성이 없어서 고민이라는 분, 주말부부로 슈퍼를 운영하는데 자녀 교육 문제로 고민이 된다는 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교과서 내용이 바뀌는데 이렇게 치우친 역사 교과서로 공부하면 자기중심이 왜곡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분,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인데 아이들에게 어떻게 통일의 필요성을 설명하면 좋을지 묻는 분, 남편과 12살 나이 차이가 나는데 남편의 권위적인 행동에 뒷모습만 봐도 화가 난다는 60세 여성 분, lt새로운 100년gt을 읽고 통일에 기여를 하고 싶어졌는데 직장 생활에 충실하면서도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그리고 오연호 대표도 몇 가지 질문을 스님께 던졌습니다. 최근 천주교 신부님들이 시국미사를 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스님은 남한에 살면서 북한의 실상을 잘 파악하고 있으신데 어떻게 정보를 입수하시는지 등을nbsp물었습니다. 스님은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자세히 답해 주셨습니다.스님의 열혈 팬이라고 소개한 40대 여성분은 지금 보면 현 정부는 별로 통일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 같아요. 정부가 아닌 민간인이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통일은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민간의 역할이 적습니다. 국가 원수가 단호하게 결정해야 될 일이지요. 그렇다면 민간 역할이 무엇이냐? 통일을 지향하는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민간의 역할입니다.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국민적 여론으로 비판을 해주는 게 좋지, 정부와 싸우는 건 좋지 않아요. 정부하고 싸우면 혁명군이지 의병이 아니에요. 정부가 통일정책을 잘 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비판도 하고, 기회가 오면 그런 정부가 들어서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반통일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필요한데 곧 그런 기회가 올 것 같네요.국민의 정서가 올라올 때 그것을 끌고 갈 힘이 있어야 해요. 부르르 올라왔다가 푹 꺼져버리지 않도록 통일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것을 끌고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역 정부도 통일에 대한 열망을 지속적으로 표현하면 중앙정부에 압력이 될 수 있습니다. 통일만이 우리가 살 길이다 이런 운동이 필요합니다. 통일 없이 국가 성장이 가능할까요? 불가능 합니다. 남한만 가지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은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누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고 성장 동력이 소진되었다는 것입니다. 통일 없이는 자주권 회복도 어렵습니다. 젊은이들은 우리의 살고 죽는 문제가 통일에 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왜 통일이 필요한지 알고 하면 애국 운동이 되지 정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야 충분히 힘을 받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스님의 말씀이 끝나자 오연호 대표는 다음과 같이 바로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을 쉽게 정리해 주었습니다. 통일 의병들이 바로 할 일은 새로운100년 책을 사셔서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평화재단 청년포럼 같은 이런 곳에 열심히 후원하고 활동하고 자원봉사 하는 겁니다.”nbsp스님의 마무리 말씀이 끝나고 서포터즈와 청중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합창했습니다. 노래를 부르기 전 스님은 ‘통일이여 오라’는 가사를 ‘통일을 이루자’라고 바꿔 부르기를 제안하였고, 청중들 모두 통일이 오기만을 바라는 소극적 마음이 아닌 통일을 이루자는 적극적인 마음으로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가사를 바꿔 부르니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스님께서는 책 사인회를 마치고 평화재단 청년포럼과 청년정토회로 구성된 서포터즈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행사 준비하느라 수고한 서포터즈 한명 한명과 악수를 나누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는 곧바로 서울로 올라오셨습니다.내일은 아침 8시부터 한겨레 신문과의nbsp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오전에는 인천 부평 아트센터에서 대강연이 있고 저녁에는 세종대에서 교사 멘토링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오늘 군산대 강연은 대전 전해종님이, 전남대 북콘서트는 김승연님이 정리해주셨습니다.
2013.11.24. 전국대의원 대회 마지막날
오늘도 어제에 이어 계속 전국대의원 대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모든 회의가 마무리 되고 2시부터 회향식을 가졌습니다.스님께서는 회향법문에서 지난 3년간 대의원으로 활동해온 분들에게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건네면서 이렇게 격려해 주셨습니다.“정토행자 만일결사 중 제7차 천일결사에 들어와서 대의원제도가 처음 도입되었고, 지난 3년동안 여러분께서 설립취지대로 잘 해 주셨습니다. 첫해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좀 우와좌왕 했던 해였고, 두 번째 해는 자리를 잡아가던 해였고, 세 번째 해는 원래 설립취지에 맞게 대의원의 역할들을 잘 해주셨습니다. 이번 3년동안은 이런 제도를 도입한 것의 실험기간이었습니다. 실험해보니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문제들도 발생해서 아마 다음 8차 천일결사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반영되어 개선된다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우리가 21년 전에 30년 기간동안 우리가 이땅에 정토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큰 원을 세우고 만일결사를 출발했습니다. 이제 3분의 2가 지나고 3분의 1이 남았습니다. 30년이라는 세월이 말은 쉽지만, 만일이라는 것은 우리 한 세대의 전 생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목표를 세우고, 전 생애를 바쳐서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해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세상에서도 보기드문 일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때로는 세상을 거슬러 가면서도 이 길로 달려왔습니다. 처음 원을 세울 때는 뜻은 있었지만은 정말 이게 달성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 한 쪽 구석에는 불안감도 있었습니다. 씨는 뿌려졌고, 어렵게 싹이 텄고, 지금 자라고 있습니다. 이제 제대로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야 할 과정이 남았습니다.우리가 씨앗을 심을 때는 많은 목표가 있지만 간추려 보면 2가지입니다. 하나는 불교인으로서 이 땅에 불교를 새롭게 하는 데 좋은 역할을 한번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2600여년 전에 부처님께서 처음 이 법을 설하실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참신함을 주고 희망을 주었겠습니까?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운 소식이었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이었습니다. 또, 부패한 사람들, 관념속에 있던 사람들, 권위주의적인 사람들에게는 날카로운 채찍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의 불교는 우리가 불교인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날카로움도 참신함도 없습니다.그래서 우리가 원을 세운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고목나무의 늙음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씨앗을 심고 새로운 나무를 키워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작지만 고목나무가 쓰러질 때 그것을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우리는 정말 부처님 법대로 하는 바른 불교를 해보자고 시작한 것입니다. 또, 대중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쉬운불교, 삶속에서 작동하는 생활불교를 해보자고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전국 읍면동 단위마다 이런 법을 중심으로 해서 수행하는 단체가 하나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해서 전국 읍면동에 법당을 마련하고, 그것을 중심에 서서 이끌어갈 법사를 양성해 내자는 것이었습니다.또 하나는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작게는 가족부터 크게는 인류 지구공동체까지, 특히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민족 공동체인데, 이 민족 공동체가 지난 1000년 동안 강대국의 그늘에 묻히고 짓밟히면서 늘 고난을 겪어왔고, 그래서 민족에 대한 자긍심도 없이 약소국가로 살아왔습니다. 특히 근대 100년에 이르러서는 아예 식민지로 전락했고 해방되자마자 분단되어 동족끼리 전쟁까지 치루었고, 그 후유증으로 같은 민족이 서로 원수가 되어서 증오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런 현실에서 과연 개인의 수행만으로 참 행복을 얻을 수 있겠는가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 개인의 자유와 행복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유와 행복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민족공동체가 정상화 될 수 있도록 작은 기여라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가 정착되고, 둘째 분단이 극복되고 통일이 되어야 하고, 셋째 자주적 통일 민족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 일에 우리가 중요한 마중물이 되어보자고 하는 원이었습니다.물론 여기에 공동체가 민족공동체만 있는 게 아니라 지구공동체, 인류공동체도 있으니까 그 공동체의 과제인 환경문제, 절대빈곤퇴치문제도 함께 해결하자는 것이었지요. 이 환경, 빈곤퇴치, 평화통일이라고 하는 셋 중에 우리가 좀 더 이번 만일에 집중해야 할 것은 통일문제이고, 다음 만일에는 환경과 빈곤퇴치에 우리가 큰 역할을 해야겠다고 해서 환경, 빈곤퇴치문제도 과제로 삼고 출발을 했습니다.”이렇게 스님의 법문을 통해 대의원들 모두 처음 만일결사를 시작하면서 세웠던 원을 다시 되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다시 스님께서는 우리가 세운 만일결사의 원을 가지고 7차 천일결사까지 우리가 진행해 온 일들을 다시 짚어주셨습니다.“우선 우리 개개인이 자유롭고 행복해야 된다라고 하는 불교의 가르침, 소위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상구보리해서 성불하는 길과 우리가 사는 공동체를 아름답게 가꿔 나가는 소위 하화중생하여 정토를 건설하는 두가지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행을 통한 자기 변화와 사회 실천활동을 통한 사회변화가 우리 정토회 설립 목표이고 방향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그리는 정토의 내용을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이라고 표현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우리의 실천활동은 수행,보시,봉사를 골간으로 잡았습니다. 이제 지난 7차까지 오면서 제가 볼 때는 작지만 기본 틀은 갖추어졌습니다. 가장 중요한 방향성도 어느정도 정비가 되었고, 끌고 갈 법사단도 준비 되었고, 대중주체도 어느정도 형성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수행을 지도하는 법사와nbsp행정을 담당하는 대중부의 역할분담도 이루어졌고 다시 대중부 가운데 실천운동을 해 나갈 행정담당분들과 그것의 방향을 찾고, 감독 할 대의원의 역할분담도 지난 7차년도에 어느정도 이루어졌습니다.또 지난 3년 동안 정토회가 있다라고 하는 것을 전국 시군구마다 다니며 강연을 하면서 이제 알 만한 사람들에게는 다 알렸습니다. 또 팟캐스트와 유투브를 통해서, 책을 통해서, 희망편지 앱을 통해서 대중적 지지기반은 어느 정도 조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추슬러서 실천적 활동을 하게 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아직 남기는 했지만, 적어도 기초는 마련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이제 시군구에 법당이 다 만들어지고, 그러면 각 시군구가 책임을 지고 읍면동에 수행모임을 만들어 형편이 안되는 곳은 법회로, 되는 곳은 법당으로 간다면 우리가 세운 원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막연했다가 이제 가능성이 보이고 있고, 잘하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보이고 있습니다.nbsp아직 좀 부족하다면 대중을 끌고 갈 중심인력, 정토행자라고 말할 수 있는 이 부분의 교육이 아직 많이 부족하여 정토회가 확대되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의 수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사실은 잘 훈련된 신심있는 주요활동가들입니다. 이런 인력양성이 제대로 안되면 정토회가 커지면 커질수록 오히려 제힘에 눌려서 무너질 위험이 있습니다.지금 정일사 교육을 통해서 겨우겨우 해오고 있지만 8차 천일결사에는 문경수련원의 역할이 초심자를 위한 수련기능이 아니라 더 높은 수준의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역할로 전환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정토회의 골간이 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 훈련이 지금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연수원, 중앙교육원이 필요한데, 지금은 교육공간 마련도 안되어 있습니다. 이것만 뒷받침이 되어 준다면 정토회 운동이 전국적인 확산도 가능해지고, 법사 양성도 가능해질 것입니다.두 번째 우리가 넘어야할 큰 과제가 또 하나 있는데 바로 평화통일 문제입니다. 그냥 우리가 통일에 대한 염원을 갖고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주변 정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통일에 불리해져 가고 있습니다. 통일을 하려면 민족사회에 통일을 추진할 강력한 통일주도 세력이 있어야 합니다. 남한 안에서 통일을 주도해서 갈만한 사회집단이 형성되어 주어야 합니다. 통일한국을 달성하려면 그런 구심체가 있어서 그것이 남한 사회의 중심이 되게 하고 북한과 국제사회의 협력을 얻어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데 지금 그 구심이 없다보니 통일이 지지부진해서 통일의 구심력보다는 오히려 강대국의 원심력이 우리에게 더 크게 미쳐서 이대로 가면 남한은 안보상의 이유로 한미일군사협력체제에 들어가고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서 중국의 그늘로 들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 예상됩습니다. 그러므로 남한 안에 통일을 주도해 나갈 구심력 형성이 가장 시급한 큰 과제입니다. 이것을 만들어내야 통일의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스님께서는 7차 천일결사를 마무리 하고 8차 천일결사와 그nbsp이후의 정토회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지도 알려주셨습니다. “올해가 정토회가 창립이 된지 25주년이 되는 해이고, 인도 수자타 아카데미가 설립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이렇게 씨앗을 틔우고 자라게 한 데에는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의 노고가 많았습니다. 정토활동을 하면서 가정주부로서 남이 못할 일을 해냈고 가족의 저항에 부딪히면서도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산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해탈을 할려면 길거리에 핀 풀 한포기처럼 그냥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밥 한 숟갈 먹고 살면 된다며 딱 놓아 버려야 해탈하지 무엇을 움켜지면 해탈하기 어렵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대승보살의 원인데, 우리가 정토라고 하는 원을 세우고 꾸준히 지속적으로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초지일관 밀고 나가야 원이 성취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라고 하는 것처럼 원을 실현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언젠가는 주위사람들이 감동을 하게 됩니다. 사익을 위한 것이라면 주변의 비난을 받지만, 공익을 위한 것은 처음에는 비난을 받다가도 나중에는 주변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게 됩니다. 간절한 기도는 막판에 가서 기적이 일어나듯이 갑자기 원이 성취가 되기도 합니다.nbsp 이러한 정토세상을 만들겠다는 원으로 개인사, 가정사, 인간의 욕구를 극복하고 여기까지 온 여러분들이 장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거나 지쳐서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힘을 모아서 이 장애를 돌파 해나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수행적으로는 가벼운 마음을 가지되 대승적으로는 불퇴전의 원력으로 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세운 이 원이 반드시 성취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러면서 현재 당면한 우리의 문제점도 집어 주시면서 우리가 다함께 다시 나아가자고 격려해주셨습니다.“7차를 회향하면서 8차의 기초를 마련했는데, 대의원대회에서 논의되는 것을 보면 과거에 연연해서 논의하다보니 계속성의 측면에서는 좋은데, 전환이라는 측면에서는 장애가 되는 것 같습니다. 3개월 동안의 휴식은 준비만 잘되어 진다면 8차년도에 필요한 일종의 역량을 축적하는 기간이 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지위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대중이 ‘봉사해주세요.’라고 하면 무슨 봉사라도 하면 되는데 왜 우리가 세운 원을 실천하는 이일을 못하겠어요? 기꺼이 하면 됩니다. 그러나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기꺼이 밀어주는 이런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중생심이 남아있지만 우리가 세운 원을 생각한다면 개인이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마음을 다 잡으시고 8차에 임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회향기간동안 임시직으로는 업무를 계속 해 나가면서 개인정진을 더 하셔서 내년 봄에 더 힘찬 모습으로 만나도록 합시다.”nbsp오늘 전국대의원대회는 3년 동안 수고해 온nbsp대의원들이 대의원의 자격으로nbsp하는 마지막 회의였습니다. 참여한 80여명의 대의원들은 8차 천일결사를 기약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모든 직책을 내려놓았습니다.내일은 군산, 광주 조선대, 전남대 강연이 있습니다.
2013.11.23. 전국대의원대회
오늘 두북의 옆집에 사시는 스님의 친지되시는 분이 어젯밤에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해서 아침 9시경에 언양의 장례식장에 들러 조문을 한 후 문경으로 출발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문경정토수련원에 도착해서 점심공양을 드신 후 오후 2시30분부터 전국대의원 대회에 참석하셨습니다.nbsp 이번 전국대의원대회는 3일동안 열리는데, 정토회 만일결사중 제8차 천일결사를 준비하는 천일결사 준비 위원회에서 제출한 8차년도 천일결사기간 정토회의 조직개편, 사업방향, 예산심의등 8차년도 계획에 대한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 내일도 전국대의원대회가 계속 진행될 예정입니다.
2013.11.22. 마산 그리고 포항 강연
오늘은 마산강연이 있는 날이어서 아침 8시에 두북에서 마산으로 출발하였습니다.nbsp 경남 지역의 마지막 강연이 열리는 마산 mbc방송국 강연장에는 초겨울의 쌀쌀함에도 불구하고 봉사자들의 분주한 손길로 활기찬 기운이 가득했고 봉사자들은 오늘 강연 준비와 더불어 한국 JTS의 필리핀 태풍 피해지역 난민 긴급구호를 위한 모금을 하기도 하였습니다.nbspnbsp 강연에 앞서 소프라노 이지영님의 공연과 대금연주 봉사자의 공연으로 강연장은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습니다. 일찌감치 오신 중년의 여성분은 직장생활로 늘 시간이 맞지를 않아 강연에 참여를 못해 안타까웠는데 오늘 마침 시간이 맞아 오셨고 딸이 서울에서 정토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며 자랑스레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강연장은 700여명의 분들이 함께 자리하여 스님의 강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연이 시작되고 미리 질문을 하겠다고 신청된 분들이 질문을 시작하였습니다. 군대 전역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전에 마음대로 못살았던 내 인생을 제대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되느냐고 묻는 젊은 남자분, 어릴 때 엄마를 여의고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고 임용고시를 3년째 준비하고 있는 백수라며 아버지의 큰 기대와 잦은 마찰, 임용고시가 내가 가야할 진정한 길인가 고민인 27살의 여성분, 많이 친한 사람일수록 좋은 일이 있을 때 축하가 80정도 밖에 안 되는 마음이 왜 그럴까 라고 물은 여자분, 작년 스님 강연에서 질문을 하여 독립해서 살면서 동생의 문제에서 벗어나고 있고 봉사를 하며 살고 있는데 출판사에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다큐를 찍으려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고민인 분, 서울쪽 학교와 지방쪽 학교의 대학원에 합격했는데 어디로 입학하는 게 좋을지 묻는 26살의 여성분, 1년전부터 질문하고 싶었는데 스님께 질문을 못하고 미루다 깨달음의 장에도 갔는데 문제를 못 풀고 왔다며 사람에 대한 집착으로 괴롭고 불안감 때문에 힘들다는 50세의 여성분, 부처님법 만나서 봉사와 수행을 계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남편에게 숙여지지 않는 자신 때문에 자책하게 된다는 여자분의 질문등 다양한 분들이 각자의 고민을 내어놓고 스님의 지혜로운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 중 두번째로 질문하신 부산서 온 27살 여자분의 질문을 자세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7살로 어려서 어머니를 지병으로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왔는데 대학 졸업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약 3년 넘게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실패를 자꾸 겪다보니 힘들고 이제는 포기하고 싶다며 선생님은 되고 싶지만 과연 이길이 진정 내가 원하는 길인지, 그리고 아버지와의 잦은 마찰로 힘듭니다.”며 스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임용고시에 그렇게 모든 것을 걸지는 마세요. 그 길이 가고 싶더라도 꼭 가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길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돌아서 갈수도 있고, 내 길이라고 하더라도 가고자 하는 길이 너무 어려우면 못 갈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번 시험은 언제입니까?”라고 물으니 질문자는 바로 내일이라고 답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러면 일단 접수 했으니 시험을 보세요. 이젠 마지막 시험이다생각하고 맘 편히 보세요. 마지막으로 떨어져 본다는 심정으로 시험에 응해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임용고시를 통한 교사의 길이 안되면 꼭 정규직이 아니라도 선생님의 길을 진정 가보고 싶다면 얼마든지 이룰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도의 수자타 아카데미의 선생님이 되면 비록 월급은 없지만 선생님으로써 맘껏 창의적인 교육을 할 수 있는 길도 있습니다. 또한 학원선생님도 선생님이고 학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할수도 있습니다. 비정규직이란 직업의 안정성에 있어서 문제가 될 뿐 선생님의 꿈을 이루는 데는 아무런 걸림이 없습니다, 월급이 없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일이 아니라 놀이가 되는 것입니다.”라며 질문에 답해주셨다.nbsp 질문자가“아버지와의 잦은 마찰, 나에 대한 높은 기대,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로 힘이 듭니다.”라고 하니 스님께서는 질문자의 이런저런 상황을 물어보고는 “반독립이 되어 있으면 반간섭을 받으면 됩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받아주되 모든 것을 따라하지는 않아도 됩니다. 되도록이면 빨리 독립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자연생태계에서 어미제비는 새끼 제비가 다 크면 안 따라 다닙니다. 새끼 제비도 어미 제비를 돌보지 않습니다. 부모님을 도와드리면 좋은 일이지만 안 도와드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것은 선택입니다. 할 수 있으면 인간의 도리로 하면 되고, 못한다고 죄는 아닙니다 .지금의 질문자 상황으로는 오히려 독립하는 것이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있어서는 오히려 좋을 수 도 있습니다.nbspnbsp 인간은 자연의 원리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따르게 됩니다. 자식이 범법을 저지르거나 부도덕한 일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자식에 대한 간섭과 집착에서 부모들은 벗어나야 합니다.”라며 너무 부모님에게 매이지 말고 자신의 선택을 하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질문자는 늘 질문을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는데 무척 다행이라며 또한 스님이 말씀하시는 국제평화 운동에도 참여하고 싶다며 환한 웃음으로 질문을 마쳤습니다.nbspnbsp 이렇게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하시고는 스님께서는 오늘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 어떻게 행복하게 살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피해가는 것, 도망가는 것은 뭔가를 누구에게 해달라는 마음이 내마음속에 있어서입니다. 그러면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회피하지 말고 응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괴로운 것이 무엇인지,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를 응시 해보세요. 나의 문제를 직시하다보면 처음부터 별것 아닌 것 일 수도 있고 조금만 더 연구하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지혜롭게 해결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nbsp 자기 상태를 자꾸 점검해나가면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됩니다. 자기상태를 알아차리고 자기변화를 위한 꾸준한 기도를 하려면 적어도 1000일은 해나가야 합니다. 자기내면을 보고 자기를 사랑하세요. 내가 주인이 되어 자신을 보면 그 사람이 잘하고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사람은 그 사람일뿐입니다. 기대를 낮추어 지금 상태를 보면 행복해지고 지혜가 생깁니다. 지금보다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nbsp 이렇게 오늘 마산 강연을 끝으로 경남 지역의 2013년 스님의 희망강연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스님과 경남지역 각법당 관계자들은 마지막 강연을 끝내고 간단히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통일이 새겨진 떡케익에 불을 밝히며 통일의 간절한 염원으로 기도문을 읽어 내려가니 모두들 숙연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내년 정초기도기간에는 각 법당마다 직접 찾아서 방문을 할 계획이라고 하시면서 또, 내년 봄 강좌는 기존 대중들을 위한 정기 강좌 형태의 강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반기에는 해외강연 100강을 계획하고 있는데, 중동, 아프리카, 유럽, 미국, 캐나다, 남미, 태평양, 동남아, 중국, 일본등에서 강연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그동안 강연 준비하시느라 모두 수고 하셨다며 격려의 인사로 마무리 하셨습니다. 마산 강연을 마치고 미국 JTS의 사무국장인 민덕홍 거사님이 한국오셨다가 오늘 강연을 듣고 내일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신다고 해서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nbspnbsp 저녁강연은 포항 문화예술회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마웅스님, 일초스님과 간단히 차담을 하신 후 강연장으로 들어섰습니다.nbsp 스님께서 들어서자 역시나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스님께서는 환호하는 대중들을 향해 ‘열렬팬들만 왔나 봐요?’라며 가볍게 웃으시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고3 딸, 중2아들을 주부로 새엄마 밑에서 팥쥐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컸는데, 새엄마에 대한 이해와 참회가 잘안되고, 큰 아이와 작은아이를 차별하지 않고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남편은 같이 하기보다 혼자서 하는 것을 즐기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분, 26살 여성으로 부모님은 결혼해라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고 얼마전에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다른 사람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운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분, 부인이 고부갈등과 자신으로 인해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제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독선적인 자신의 성격을 고치고 싶다고 하는 60대 남성분, 30대 새신부로 친정은 불교, 시댁은 천주교인데, 시댁에서 계속 성당 다니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분, 중학교 교사인데, 아이들이 꿈과 희망도 없고, 등 떠밀려서 학교에 오는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자신이 애들을 도와줄 수 있을지 고민인 분, 간호학과 재학중인 학생으로 우리나라에서 내놓으라는 병원에 취업하는게 꿈인데, 의료진은 많은데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간다는 말을 들으니 내가 이 길을 가는게 좋은 건지, 큰 병원에 가는 게 두려워서 합리화하는건지 잘 구분이 안되어 고민인 분, 공부 열심히 해서 원하는 대학 갔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도 가지고 좋은 남편을 만났는데, 시험, 취직, 결혼, 짧은 목표를 이루고 나니, 아기가 없어서 그런지 아기라는 과업이 주어지면 또 잘 살 것 같은데, 60이 넘으면 나에게 뭔가 없으면 두려워할 것 같은데, 현재는 내 삶의 방향을 잡고 싶은데, 스님은 왜 라는 물음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 올 3월에 중환자실에 있다가 일반실로 가서 병원 치료를 받다가 퇴원을 했는데, 외국인 노동자가 제 차에 교통사고가 났는데, 이후에 외국인만 보면..저사람 때문에 병원살이를 몇 달했는데하는 안좋은 생각도 들고. 보면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26살의 직장인, 이 세상에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생명이 존재하는데, 반대로 이세상에 아무것도 존재 안할수도 있는지 궁금해 하는 분등 모두 9분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중 60대 거사님은 아내가 자신과 시어머니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제 자신의 성격을 고치고 싶다고 했습니다.nbsp “질문자는 자신의 어떤 성격을 고치고 싶어요?”하고 물으니 “남과 타협도 잘 안하고, 독선적입니다.” 스님과 질문자는 몇 번의 문답을 주고 받았습니다.nbsp “아내에게 미안해요?”“아는데 안되니까. 그래서 절로 갈까 했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와도 안받아줘요. 자기 마누라와도 못살면서 어떻게 남자들하고 살겠어요? 만약 절에 오려면 마누라가 절에 간다고 두팔 매달리며 말리거든 그때 그만두고 절에 오세요. 그럼 절에 와서도 잘 살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 오면 안받죠. 송장 치울려고 받아주겠어요?nbsp 질문자는 젊었을 때 잘못 살았어요. 부인은 자기만 보고 결혼했잖아요? 자기가 어렸을 때 어떻게 자랐든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야 됩니다. 어떤 여자도 늙은 여자 밑에 있는 남자와는 결혼하기 싫어합니다. 그러니까 질문자는 젊은여자인 부인과 늙은여자인 엄마, 두사람이랑 같이 산거예요. 자기 삶의 방식이 잘못된 것입니다. 늙은 여자한테서 독립해서 젊은 여자와 살았어야 했어요. 과거의 늙은 여자한테 예의로 돌보는 건 좋은데, 중간에 끼어있으면 안됩니다. 젊은 여자는 소속만 분명히 해주면 힘들어도 괴롭지 않습니다. 지금은 양다리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건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까 그렇죠. 내가 말하는 건 부인이 얼마나 힘들었겠냐는 것이죠. 어머니를 뒷바라지 한 것이 힘든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힘든건 당신의 이중적인 태도입니다. 그러니까 아내와 엄마의 중간에 서서 중재한다는 미명하에 남편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입니다. 한 여인의 남편으로서는 신통찮은 남자입니다.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어. 미안해, 미안해.’ 하면서 참회하고 설거지도 하고 밥도 차리고 해야 합니다. 그러니 참회기도를 해야 자연스럽게 말과 행동이 나옵니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은 잘 안됩니다. 그러나 질문자는 자기가 원했기 때문에 할 수 있습니다. 노력하면서 부인한테 마음 고생시키고 괴롭게 했던 것을 참회하세요. 말은 미안하다고 해도 속으로는 ‘내가 뭘 잘못했나, 돈을 안줬나?’하는 무의식이 깔려있습니다. 그러니까 부인이 조금만 뭐라 그러면 버럭 화를 냅니다. 그러니까 마음에서 느껴져야 됩니다. 그러니까 이제 백수가 됐으니까 커피도 끓여 바칠 수 있나요? 계속 절을 하세요. 절을 하면 저절로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절을 하라는 것입니다. 절을 해야 정말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느껴집니다. 생각으로는 설거지도 하고 밥도 할수 있을 것 같은데, 부인이 뭐라하면 버럭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진짜 자기가 참회를 해야 됩니다. ‘여보 미안해. 힘들었지.’하면서 100일만 기도를 해보면 느껴져요.”라고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스님의 제안에 질문자는 “저는 이런데 잘 안오는데 오늘 부인 따라왔습니다. 오늘 재수가 좋은날입니다.”라며 감사해 하니 스님께서는 함께 왔다는 부인에게 마이크를 주라고 하니 부인은 마이크를 잡고 “스님 반갑습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하고 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보냈고, 스님께서는 “제 말 듣고 기분 좋아졌어요? 저 보세요. 저렇게 좋아하잖아요. 부인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줘 봐요.”하니 질문자가 ’여보 미안해.‘하면서 부인을 살며서 안아주었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그래 그렇게 살면 됩니다. 그리고 부인도 하고 싶은 이야기 해 보세요.”하니 부인은 “거사님이 조금 별납니다. 혼자 크다보니 자기가 최고인줄 알고 살았는데, 퇴직하고 많이 변했는데도 아직은 성질이 보입니다.”라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다시 부인으로서 퇴직하고 난 남편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주셨습니다. “남자가 퇴직하고 나면 기가 죽습니다. 그러니까 격려를 해줘야 됩니다. 남편은 그동안 직장 다닌다고 큰소리 쳤지만, 이제 퇴직했으니까 부인을 껴안아주고, 부인도 그동안 직장 다닌다고 힘들었죠하면서 껴안아주세요. 남편은 부인에게 잘 못했다고 하면서 집안일을 해주면서 참회하고, 부인은 그동안에 남편 직장다니면서 힘들었죠하면서 토닥여 주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해보시길 바랍니다. 저분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스스로 일어나서 성질이 잘 안고쳐집니다하고 질문을 한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문제점을 해결해보겠다 하면 가능성이 있어요. 박수한번 쳐드리세요. 저분은 적어도 이사갈 때 버려지지 않고 따라 갈 수 있을 것 같네요.. 요새 이사갈 때 조심하라고 하더라구요.”하면서 스님께서는 부인과 남편이 서로에게 어떻게 해야할 지를 알려주시면서 마무리를 하니 함께 참가했던 참가자들도 크게 웃으면서 큰박수로 두분을 격려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포항강연을 마무리 하고 사인회와 기념촬영을 한 후 포항지역 자원활동가들과 잠시 시간을 가지며 스님께서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하고 내일은 문경에서 전국대의원대회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마산 강연은 권숙경님이 정리하셨습니다.
2013.11.21.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방문단 맞이 및 특강
스님께서는 오늘 아침 7시 30분부터 조찬회의가 있었습니다. 회의 후 잠시 업무를 보신 후 오전11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에서 온 교수학생 방문단을 맞이하기 위해 조계사로 향했습니다. 방문단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에서 한반도 및 한러 관계 연구 석사과정에 있는 학생 14명과 교수님 6명 , 칼럼니스트 1명, 총 2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평화재단은 장소가 비좁고 관광할 수 있는 요소가 없어, 한국의 전통 불교를 느낄 수 있게 조계사로 초대한 것입니다.nbsp스님께서는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주지스님인 도문스님과 함께 방문단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주지스님의 안내로 대웅전을 함께 둘러본 후, 대중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식사 및 특강이 열릴 예정인 불교역사문화관으로 향했습니다.nbsp스님의 환영 인사와 함께 식사가 시작되었는데, 스님께서 웃으시며 “이곳은 절이여서 음식에 고기가 없다”고 하자 러시아 학생들은 알고 있는 듯 괜찮다고 했습니다. 식사는 조계사 후원에서 일하시는 보살님들이 정성껏 만들어주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식사를 마치시고, The Freedom라는 스님의 영문 번역 책과 전통문양이 담긴 책갈피를 방문단 전체에게 선물했습니다. 방문단에서도 스님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와 모습이 담긴 사진을 선물했습니다.간단한 다과가 있은 후, 스님의 특강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현재 남북관계의 상황과 국제 정세에 대해 10분 가량 브리핑을 해주셨습니다.nbsp“현재 동아시아 정세는 130년 전과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때 한국은 중국 청나라의 영향 하에 있었습니다. 청나라는 점점 쇠퇴해 가고 있었고 일본이 새롭게 부흥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통해서 극동지역으로 점점 진출해 오고 있었고, 러시아의 동진 정책을 막기 위해서 영국과 일본은 동맹을 맺었습니다. 미국도 필리핀에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는 1894년에 동학혁명이 일어났지만 그것을 정부가 진압을 못했고, 결국 정부는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입니다. 그러자 일본 군대가 자동으로 개입해 들어오면서 외국 군대가 동학 혁명을 진압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진압이 끝나자 다시 청나라와 일본 군대가 싸웠고 결국 일본이 이겨서 한국은 일본의 영향권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을 피하려고 임금이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을 했고, 결국 1904년에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또 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러시아가 지게 되면서 1905년에 한국은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합니다. 이때 일본과 미국이 서로 타협을 했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는 것을 미국이 용인하고,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하는 것을 일본이 용인했습니다. 이것을 카스라테프트 협약이라 합니다. 결국 그렇게 해서 1910년에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제가 과거 역사를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런 비슷한 상황이 한국을 중심으로 다시 재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지금까지 거의 미국에 의지해서 발전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중국이 급격히 부상하게 되면서 경제적인 교류는 미국보다 중국이 2배이상 많아졌습니다. 미국은 힘이 약해지면서 아시아에서의 자기 역할을 일본에 넘기려고 일본의 재무장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고 한국도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데, 한국도 일본과 서로 군사협력을 맺어서 한미일 군사협력체재를 만들자고 미국은 한국에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없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만약에 한미일 군사협력체계에 한국이 참여하게 되면 중국으로부터 강력한 저항을 받게 될 것입니다. 첫째, 경제적으로 압박을 가해와서 한국경제는 아주 어려움에 처할 것입니다. 통일도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결국 한국은 북한 때문에 미국에 기울어야 되고, 북한은 한국 때문에 중국에 붙어야 되고, 그렇게 되면 미중의 갈등이 남북한의 갈등으로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통일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평화도 유지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일부 보수 세력은 이런 국제 정세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미국에 계속 의지하는 게 살 길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통일을 지향하고 있지만 상당히 어려움에 봉착해 있습니다. 이런 처지에서 러시아와의 좋은 협력이 필요합니다.”스님께서는 이 정도로 국제 정세에 대한 상황 설명을 마치고, 교수님들과 학생들로부터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남북한이 60년간 분단되었는데 아직도 서로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묻는 분, 남북한 관계 발전을 위해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묻는 분, 통일이 평화적으로 가능한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그 중에서 두 가지 질문과 스님의 대답을 자세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아시아 지역 국제관계를 연구하고 있는 크로조브 이반 이라는 학생은 “남북이 통일되려면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 것이라고 스님께서는 생각하시는지?”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해주셨습니다.“앞으로 10년 안에 통일을 못하면 통일은 30년nbsp뒤로 멀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한 20년 정도 지나면 중국과 미국의 세력 균형이 바뀌게 되는데 이 세력 균형이 바뀌기 전에, 다시 말하면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절대적으로 행사하기 전에, 또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울 수 있는, 이 시점에 통일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기회를 넘어가버리면 그동안 한국이 미국의 영향 아래 있었듯이 이번에는 거꾸로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 아래 편재되어 통일이 굉장히 어려워지기 때문에 이 세력 균형이 바뀌기 전인 10년 안에 통일의 기회를 잡으면 통일이 가능합니다. 하지만,nbsp한국이 한미일 군사협력체제에 들어가 버리고 중국이 북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져버리면 통일의 기회를 잡기가 굉장히 어려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일은 한 30년 뒤로 넘어가 중국의 영향권 아래에서 다시 통일논의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때는 통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중국의 변방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통일을 하려면 한국이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적극적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지금 잘 안 되고 있어서 큰 걸림돌입니다. 만약에 한미일 군사협력체계에 한국이 참여하게 되면 통일은 어렵다고 봐야 됩니다.”스님의 답변을 듣고 엘리자베타 라는 학생은 “만약 10년이 지나면 통일이 아예 안 될 것인가요?” 라고 다시 물었고, 스님께서는 “한국이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한 위에 다시 통일논의가 가능은 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한 30년, 40년 더 걸려야 된다는 겁니다.” 라며 지금 10년이 매우 중요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해 주셨습니다.nbspnbsp또, 프로카쉐브 로만 이라는 학생은 “남북한의 통일을 위해 러시아가 어떤 것을 해줄 수 있는지?” 스님께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러시아의 시베리아가 개발되려면 반드시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서 남한이 북한을 통과해야 가능해집니다. 이 때 러시아는 한국 정부한테 시베리아 개발이라고 하는 막대한 이익을 주면서 남북관계를 개선하도록 압력을 넣어주는 게 필요합니다. 가스, 광산 등 시베리아의 자원을 개발하거나 대륙횡단철도 건설 등 한국에게 이익이 되는 문제를 러시아가 허용하는 조건으로 남북관계의 개선을 요구하는 겁니다. 러시아와 국경이 맞닿으려면 북한을 통과해야 되니까 남북관계가 나쁜 이상은 이 프로젝트는 성사가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밀접하게하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된다, 이것이 설득되어야 합니다.또한 러시아는 북한에 대해서도 남한과 협력하도록 해주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북한이 장기적으로 개방을 해 나갈 때 경제적으로 중국에 예속될 확률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북한은 이것을 굉장히 우려를 하고 있는데, 러시아 쪽에서 북한의 경제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 해서 북한이 중국에 지나치게 예속되는 것에 대해 균형을 잡아 준다면 통일에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스님의 막힘 없는 답변에 방문단 모두 박수를 보냈습니다. 특강이 모두 끝나고 방문단 대표로 트카첸코 스타니슬라브 교수님이 “식사에 초대하고 특강을 해주어서 정말 고맙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특히 요즘은 러시아에서도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도 스님께서 좋은 활동을 많이 해주시고 남북 관계에도 많이 기여해 줄 것을 기원해 주셨습니다.자리를 일어서며 스님께서는 식사 바라지를 해준 보살님들께 인생수업 책 한권씩을 사인해서 선물했습니다.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방문단 일행과 함께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인각사와 삼국유사’ 전시회를 관람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방문단 한명 한명의 손을 마주 잡으며 정성껏 배웅을 하셨고, 방문단은 스님께 무척 고마워하며 다음 일정을 향해 떠났습니다.스님께서는 방문단에 대한 안내를 마치고는 바로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요즘 과로로 피곤하셔서 몸이 많이 가렵다고 하십니다. 가능한 도시보다는 공기 좋은 시골에 머물면서 업무를nbsp보시고,nbsp내일은 강연이 있는 창원으로 갈 예정입니다.내일은 창원과 포항에서 희망세상만들기 즉문즉설nbsp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오늘 러시아 방문단 안내에 대한 글은 이준길님이 정리해주었습니다.
2013.11.20 구리 그리고 고양 강연
아침 9시 30분에 남양주 강연이 열리는 구리시청으로 출발했습니다. 초겨울 쌀쌀한 아침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른 9시경부터 입장하는 분들을 맞이하느라 자원봉사활동가들의 발걸음과 손길이 한층 더 분주해져 강연장으로 향하는 곳곳은 열기와 환한 웃음으로 밝은 분위기였습니다.강연 시작 전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늘 그렇듯이 두툼한 반두루마기, 털모자, 낡은 회색빛 운동화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원봉사활동가들과 환한 인사를 하고, 자원봉사활동가들 역시 밝은 웃음과 인사말로 스님을 맞이해 강연장 복도는 행복한 기운이 넘쳐났습니다.nbsp 이미 강연 시작 전 임에도 전체 좌석 450석은 물론 통로에 앉으신 분들, 뒤에 서 계신 분들, 앞쪽에 방석을 깔고 앉으신 분들까지 법륜스님과 함께 하고자 달려오신 700여명의 소중한 분들로 대강당은 꽉 들어찼습니다.법륜 스님의 활동 영상도 보고, 남양주 법당 자원봉사활동가 분들께서 ‘뭉게구름’ 노래에 맞춰 율동도 선보였습니다. 무대에서 율동을 하는 자원봉사자 분들의 쑥스럽지만 정성스런 몸 동작에 객석에서는 노래와 박수를 함께 해 강연장의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지고 열기가 달아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드디어 법륜 스님께서 우뢰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에 환하게 웃으시며 무대위로 오르시고 인사말을 시작하니 또다시 큰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와nbsp잠시nbsp인사말을 잠시 멈추셨습니다.nbsp그리고 나서nbsp좌석에 앉지 못하고 바닥에 앉은nbsp분들께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초강력 태풍으로 인한 필리핀 태풍 피해지역에 대한 JTS의 구호활동, 에너지 과다 사용으로 인한 기상이변과 지구 온난화의 가속으로 인한nbsp지구 환경의 변화, 소비 문화에 도취돼 환경 위기의 대응에 소극적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또한 사람들이 잘하려고 생활하는 것이 결국 환경의 파괴로 이어지듯이 우리의 일상 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결혼하려고 선을 볼 때 가장 좋은 사람을 골랐는데 살아보면 가장 나쁜 경우가 있지요. 마치 물고기가 낚시 밥을 물 때, 쥐가 쥐약을 먹을 때와 같이 좋아하는 것을 취했는데 결과는 죽음의 고난이 닥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의 뜻이거나 사주팔자가 아니라 내가 쥐약이 든 줄 몰랐다는 ‘무지’와 ‘무명’에서 비롯돼 화를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은 내가 나빴다는게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한 까닭입니다. 나의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무지로 인해 펼쳐진 고난이니 우리 문제를 우리가 스스로 해결해봅시다.” 이렇세 서두에서 운을 떼셨습니다.nbsp잠깐 동안이지만 인생의 희로애락을 풀어내시는데 저절로 맞장구가 쳐지고, 박수가 나오고, 큰 웃음이 강연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러면서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하시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nbsp 8개월 때 입양해 9살 된 딸이 입양 사실을 알게 될까봐 걱정이라는 주부,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한 집에 함께 살던 먼 친척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두 번의 결혼도 실패해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으나 성폭행 당한 사실을 모르는 친정 식구들과의 냉담한 관계와 친정에서 가해자와 마주침으로 인한 괴로움에 어떻게 하면 좋은지 질문한 주부,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의 세 번째 부인인 새 엄마와 재산 분배로 인한 친정 두 오빠의 지나친 협박과 새 엄마를 모시고 살고 싶은 본인에게도 협박을 해 걱정이 된다는 주부, 오빠와 언니가 어려서부터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평상 시에도 불안하고 가슴이 그냥 콩닥콩닥 뛰어 대인관계에서도 얼굴이 빨개지고 힘들다는 주부, 12살 큰아이와 ADHD인 10살 둘째 아이의 다툼이 지나쳐 힘들고 본인도 어려서 부모의 관계 때문에 힘들었고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라서인지 전 남편과 생활할 때도 너무 무서워 이혼했다는 주부, 결혼 9년차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남편의 지나친 짜증과 심한 기분 변화 그리고nbsp공격적이고 자주 무시한다고 말하는 남편 때문에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남편의 모습을 닮을까봐 걱정이라는 주부 등 모두 여섯 분이 질문을 하고 추가로 계속 손을 드시는 분들이 계셔서 스님께서 안타까운 마음에 추가 질문을 더 받았습니다. 절에 다닌 지는 10년 됐는데 꿈에 자주 절과 nbsp법륜스님이 나와서 이게 정상적으로 괜찮은 것인지 궁금하다는 주부, 초등1학년인 아이가 학교생활을 이야기하면 엄마가 아이가 된 것처럼 더 상처 받고 아이가 상처 받을까봐 염려되고 아이 친구 엄마들이 얘기하자고 하면 큰 일을 이야기 할 것 같아 걱정이 많은 주부,nbsp3살인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이 괜찮은 것인지 궁금하다는 주부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이 중에서 첫 번째로 질문하신 분의 질문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9살 된 딸이 있습니다. 8개월 때 입양해서 지금까지 키우고 있습니다. 딸아이는 자기가 입양된 것을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은 딸아이가 입양 된 사실을 많이 알고 있어요. 혹시 딸이 입양된 사실을 알고 상처를 받게 될까봐 걱정입니다. 동네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하고 있는데요. 이사를 갈까도 생각합니다. 딸아이가 사춘기가 돼서 입양사실을 알고 방황하지 않을까 무척 걱정이 됩니다.”nbsp 질문을 들으신 스님께서는 이렇게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이사 가는 것도 방법이지만 굳이 이사 가지 않아도 됩니다. 얘기하지 말고 그냥 지내세요. 아이가 성년이 되면 알려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질문자의 딸은 초등학생으로 미성년자이므로 굳이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아이가 알게 되어 얘기해야 한다면 ‘엄마는 널 사랑한다. 나는 너의 엄마이고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다. 다른 이야기는 듣지 말아라.’ 이렇게 말하고 20살이 되면 그때 알려주세요. 지금은 알리지 않는 게 좋습니다.예전 인도에서 영국 사람들이 늑대 우리에 이상한 게 있어서 잡았는데 여자아이 2명이었습니다. 아무리 교육을 해도 다시 사람으로 안 돌아왔어요.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이지만 인류학적으로 보면 늑대인 것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만 3살까지 사람 손에 자랐다면 동물에게 키워졌다 하더라도 다시 사람 교육을 받으면 사람으로 돌아옵니다. 사람은 3살까지 자아가 형성되기 때문에 3살까지만 사람에게 길러졌으면, 힘들지만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게 됩니다.10여년 전 즈음에 중학교 3학년 학생의 혈액형이 부모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혈액형이 나왔어요. 부모는 자신들의 혈액형 검사도 다시 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똑같은 혈액형인거예요. 말은 안해도 부인이 더 난처한 상황인거예요. 그러나 부인은 남편 한 사람 밖에는 몰랐어요. 그래서 조사를 했더니 아이가 태어난 병원에서 같은 날 태어난 다른 아이가 있었던 거예요. 그 집 부모에게 사정사정해서 검사를 했더니 병원에서 아기가 바뀐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낳은 아이가 자식인가요? 중학교 3학년까지 기른 아이가 자식인가요?“ 이렇세 스님께서 되물으니 객석 여기저기서 기른 아이가 자식이라고 하는 말들이 나왔습니다.자기가 기른 아이가 당연히 자기 아들, 딸인데 이웃집 애를 데려오겠어요? 엄마는 낳은 사람이 아니라 기른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할머니가 아이를 키우면 할머니가 엄마인 거예요. 그런데 의식은 젊은 여자가 엄마이고 무의식은 할머니가 엄마여서 나중에 정신분열도 일어날 수 있으니 최소 3살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합니다.지금 질문자는 본인이 흔들리는 거예요. ‘넌 내 딸이다. 난 네 엄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해도 넌 내 딸이다’ 라는 확고한 믿음으로 딸에게 말하면 됩니다. 그러면 딸이 잠시 방황하더라도 다시 제자리를 찾습니다. 엄마 마음속에 입양했다는 생각을 하면 안돼요. 엄마가 길렀으니 당연히 엄마이고, 당연히 내 딸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입양했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그냥 내 딸입니다. 엄마가 흔들리면 아이도 따라서 흔들리기 때문에 엄마가 확실히 마음을 잡아야 합니다.”질문자는 눈시울을 글썽이며 ‘기른 엄마가 진짜 엄마다’ 라고 확실하게 말씀해주시는 스님의 말씀에 동의하면서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된 듯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nbsp 2시간 15분 동안의 강연이 끝나니 객석에 계신 분들이 스님께 큰 박수와 감사의 인사를nbsp했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질 사인회에 가고자 발걸음을 바삐 움직였습니다.nbsp스님께서 사인하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시는 분, 여러 권의 책에다 사인을 받아 가시는 분, 하와이에서 오셨다며 사진촬영을 부탁하시는 분 등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이 스님에게로 이어졌습니다. 목덜미가 헤진 스님의 법복에서 스님의 검소한 생활을 볼 수 있었으며, 낡은 회색 운동화를 보면서 털신 한 켤레를 선물로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습니다. 책 사인회가 끝나고 자원봉사활동가들과 기념사진 촬영을nbsp하는 일정을 끝으로 함박웃음과 따뜻한 인사말을 나누면서 구리시청에서의 일정을 마치셨습니다.nbsp구리 강연을 마치고 오후 3시 30분부터는 평화재단에서 미팅이 있었습니다. 저녁 강연은 고양시였기 때문에 길이 막힐 것을 우려하여 조금 서둘러 5시 40분에 고양으로 이동했습니다. 6시 45분에 고양시청에 도착해서 최성 시장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시장님은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에 대해 대단하다고 하시며 우리가 함부로 할 수 없는 말들을 스님께서는 스스럼 없이 하니 좋은 것 같다고 하셨고, 스님께서는 시장님께 지금 베스트셀러인 ‘인생수업’을 선물로 드렸고 시장님도 준비한 선물을 스님께 드렸습니다.nbsp고양시청 내 고양문예회관에서 7시에 시작된 강연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470여 좌석을 가득 채우고 통로에 앉기도 하면서 모두 550여명이 강연을 들었습니다. 고양시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장의 규모로 볼 때는 그 중 작은 공간이었지만 열기와 감동은 어느 때보다도 높았습니다.스님께서 강연장에 입장하시자 사회자의 진행이 잠시 멈칫할 정도로 관중들은 스님께 환호를 보내며 박수를 쳤습니다. 관객들은 벌써 스님과 같은 마음이 되어 스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온전히 되어 있었습니다.스님께서는 코앞에 다가온 추운 날씨를 인생 살이에 빗대어 잘 이겨내자는 말씀으로 시작하셨습니다. “더위 속에 있을 때는 지루했지만 지나고 나면 괜찮아지고 인생도 지금은 힘들지만 지나고 나면 좋았다고 기억하는 경우가 많으며, 고난을 겪을수록 사물의 전모를 보는 통찰력과 지혜가 생깁니다. 지금이 좋은 줄 아는 게 수행이니 다만 고생이 상처가 되어 왜곡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피하지 말고 맞닥드려 봅시다.”돌이 지난 아이를 키우는데 남편이 경제적 능력이 없어 이혼을 생각한다는 마흔 살 여성, 가족과 소통하지 않고 갈피를 못잡는 청년 아들로 인해 힘들다는 아버지, 딸의 결혼을 앞두고 궁합을 보는 게 좋을 지 고민이라는 어머니, 자신의 부정으로 인해 아이와 떨어져 살게 되었는데 시가와 어떻게 화해하고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묻는 삼십대 여성, 공부를 하려는데 놀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초등학생, 은둔형 외톨이로 십오년 째 생활하는 아들을 둔 육십 대 아버지, 결혼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싶다는 미혼 여성 등 모두 일곱 분이 질문을 하였습니다.nbspnbsp 이렇게 짧은 질문에 긴 사연이 담겨져 있어서 듣는 이들의 호흡이 잠시 멈춘 듯 무거워지기도 했지만 스님은 관객이 감정에 젖을 새도 없이 가볍게도 만들고 또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흐려지지 않도록 질문을 던지며 맥락을 잘 짚어주셨습니다.이혼을 하려는 여성에게 남편을 아이의 아버지로서 존중해주라고 할 때는 조목조목 구체적이었고, 자기 잘못으로 아이를 못키우고 있는 여성에게 남편과의 관계개선을 우선하라고 하실 때는 너무나 적나라하셨고, 아들 때문에 속 끓이는 아버지에게 아이의 어머니에게 참회하라고 할 때는 속이 다 시원할 정도여서 함께 호흡하는 관객들은 박장대소를 하기도 하고 한숨을 억누르기도 하며 스님의 말씀에 온전히 몰입하였습니다.강연을 마치고 젊은 여성분에게 소감을 여쭈었더니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본인도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일들을 다시 되새기게 되었고, 스님을 만나게 된 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했습니다. 이 분은 아기의 권리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이 가장 마음에 남았다고 했습니다.아이의 권리에 대해 질문자와 주고 받은 스님의 말씀은 이러합니다.nbsp “아이가 돌인데, 남편은 직장도 없고 알바할 생각도 없고,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고 애를 돌보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사는게 고통스럽고 힘듭니다. 이혼하자 했더니 애만 놓고 나가라고 해서 소송을 알아보고 있는데 애를 두고 나와 소송 기간을 보낼 자신도 없습니다. 스님 책을 보며 좋은 마음으로 살고자 하나 너무 힘듭니다.” 질문자는 남편의 무능력에 대한 힘듦과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스님께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물었습니다.nbsp“두 남녀만 결혼했으면 당장 헤어져도 됩니다. 그러나 애기가 있으면 안됩니다. 살아보고 애기를 낳지 뭐가 좋다고 덜렁 낳았어요? 애기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죠. 내 필요에 의해 애기만 있으면 된다는 건 이기주의고, 엄마 중심의 사고입니다.”nbsp 질문자는 “그럼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하고 되묻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필요하니까, 어떤 고통이 있어도 아이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게 엄마의 마음이고 내가 애기 없으면 못살아서 데려오려고 한다면 애기가 수단이고 장난감인 거지요. 애기에게 엄마가 필요하다면 죽을 마음으로 살아야합니다. 애기는 안중에도 없고 자기 살 궁리만 하면 안됩니다. 엄마라면 아기에게 어떤 역할을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누가 애를 보살피는 게 나아요? 엄마가 낫다면 애기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보살펴야 합니다. 이혼을 하고 안하고는 부차적인 것입니다. 항상 사고를 아이를 우선으로 생각해서 할머니가 보살피는 게 나으면 놓고 나가고, 엄마가 필요하다고 여기면 남아야 합니다. 솔로몬의 지혜에서처럼 애기를 위해 내가 어떻게 처신하는 게 좋은지를 판단해야 합니다.”엄마라면 항상 아이가 최우선 되어야 된다고 하시면서 “남편하고는 뭐가 문제인가요? 성격차이는 신경쓰지 말아요. 질문자는 결혼해서 실망한 것에만 정신 팔려서 애기는 안중에 없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요. 처음에 결정할 때 신중해야 하는 것처럼 지금 결정을 함부로 하면 또 후회가 올 거예요. 사귀어 보고 이 남자 괜찮다고 결혼했는데 실망한 것처럼, 지금 실망감에 헤어지고 나면 지금 이 판단은 맞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어요? 자기가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정신 차리고 결정해야 합니다. 전에는 좋은 감정만 갖고 결정했다면 지금은 싫은 감정만 가지고 결정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nbsp 스님은 상황을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들어보시더니 남편이 돈을 못 벌 뿐 큰 해를 끼치지는 않으니 그 정도로 기대를 내려놓으라고 하시면서, “남편은 앞으로도 직장을 다니다 말다 하겠네요? 남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관계를 하나씩 따져봅시다.nbsp 헤어지고 난 뒤 이익이 되는 돈은 한 달에 대출금 50만원이네요. 언니네 집에 가서 생활하는 것도 마흔 넘어서 할 일은 아니고, 2년 동안 남편과 함께 살면서 들어가는 돈은 년 집세 1200만원에 남편이 먹는 것 300만원 정도 해서 많아봐야 1500만원 정도네요. 1500만원 버릴 각오 하고 2년만 노력해 보세요. 적어도 애기가 3살 넘을 때까지는 노력을 해보세요. 원래는 20살 넘을 때까지인데, 최악의 경우 적어도 3살까지는 노력을 해보세요. 남편이 피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니 밥숟가락 하나 더 얹는다 생각하고 내가 시비만 안 하면 상대방도 시비 안할 거 아니예요? 성격 차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인가요? 어떻게 화를 내는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남편이 꼴 보기 싫은 건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나에게 특별히 손해 끼치는 게 없다는 건 인정하죠? 내가 특별히 잔소리 안하면 싸울 일 없는 거 그것도 이해해요? 그럼 어차피 먹는 밥에 숟가락 하나 얹는다 생각하고 속으로는 이혼했다는 마음을 정하고 저 인간이 애 아빠이니 예우는 해 주세요. 옆방에 손님하나 왔다 생각하고 손님이니까 일부러 차려주지는 말고 먹을 때 함께 애기 아빠로서만 존중해서 같이 밥 먹는 정도로 해서 살아보세요. 애기 아빠로 존중해 주는 정도가 2년에 한 1500만원 정도 들어간다 생각하세요. 그래야 애한테 나중에 애 아빠를 존중해줬다는 걸 떳떳하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의 성의는 베풀어줘야 내 아이에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내 아이의 아빠를 존중해 줘야 애가 존중받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저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필요할 때 한 번씩 써 먹어서 본전을 뽑으세요. 이렇게 생각을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수처작주’라고 처한 곳에 따라 내가 주인이 되도록 살아야 합니다. 애 아빠한테 방도 하나 빌려주고 애랑 가끔 놀게 하고 밥 한 숟가락 주고 필요할 때 제비로도 활용하고 설거지도 좀 시키고 이렇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혼해서 남의 집에 얹혀 사는 것보다 훨씬 낫잖아요? 생각을 이렇게 바꾸고 살아본 후 한 2년 정도 지난 뒤 괜찮으면 더 데리고 살고, 아니면 그때 버리면 됩니다. 어떻게 생각해요?nbsp이 대목에서 아이 엄마는 “괜찮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참가자들은 아이 엄마의 풀어진 마음에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다시 마음을 다 잡을수 있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지금은 이렇지만 막상 남편을 보면 마음이 홱 돌아서게 되고 맑은 정신이 안됩니다. 그래서 늘 절하면서 ‘제가 이 집의 가장입니다. 주인입니다. 빚을 갚아야 할 인연이 있으니 2년간 빚을 갚겠습니다.’ 라고 생각하며 수행을 하다보면 풀릴 수가 있습니다. 남편과 자연스럽게 헤어지든지 자연스럽게 결합하든지 저절로 풀리니 법으로 하는 이혼은 접어두고 오늘부터 마음으로는 이혼했다 생각하고 애 아빠로만 대접하며 살도록 해보세요.”저녁 9시가 넘어 강연이 끝난 후 스님께서는 그 감동을 마음에 품고 사인을 받으려는 분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 기념촬영을 한 후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내일은 조찬 모임과 러시아에서 약 20분의 손님을 접대하는 일정이 있습니다.nbspnbsp오늘 구리 강연은 남양주정토회 김용숙님이, 고양 강의는 일산정토회 정경옥님이 정리해 주셨습니다.
2013.11.19. 평화교육원 엄마수업 즉문즉설
스님께서는 오전 10시 30분부터 역삼1동 주민센터에서 평화재단 평화교육원에서 주최하고“엄마가 행복하면 자식도 행복하다”는 주제로 열린 lt엄마수업gt 강연에서 즉문즉설을 하셨습니다. lt엄마수업gt 강연은 지난 10월22일부터 총 5강으로 진행되었는데, 그동안 다양한 아동 전문가들의 강연이 있었고 이번 강연은 전체 강연을 마무리하는 자리로써 아이를 키우면서 어려운 점을 직접 묻는 즉문즉설로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육아와 자녀교육을 주제로 열린 강연이다 보니 참석한 이들 모두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었습니다. 스님께서 아이 키우면서 어려운 점 있으신 분들은 손을 들고 질문하라고 하니, 곳곳에서 많은 분들이 손을 번쩍 들고 순서를 기다렸습니다.nbsp7살 아이가 주의력에 문제가 있어 ADHD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 부작용이 있어 약을 먹여야할지 고민인 분, 어렸을 때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고 자랐는데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할지 모르겠다는 분, 주부로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은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으니 그래도 괜찮은지 묻는 분, 초등학교 4학년 남자 아이가 공부는 안하고 밖에서 운동하는 것만 좋아하는데 어떻게 공부를 좀 하게 할 수 있는지 묻는 분, 아이를 100일 때부터 어린이집에 보내서 키웠는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엄마와도 거리감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딸을 연년생으로 두 명 낳았는데 지금 42살이 되어 남편이 다시 아들을 간절히 원하고 있어 고민이라는 분, 휴직하고 3년 간 쌍둥이 아이를 키웠는데 체력이 약해서 조금만 피곤하면 아이한테 화를 낼 것 같아 복직이 두렵다는 분, 아이 낳고 3주 만에 일을 나가야 해서 아이한테 못해준 것 때문에 죄책감이 있는데 어떻게 참회기도를 해야 하는지 묻는 분, 첫째 아이가 둘째 아이를 자꾸 때려서 혼을 내어도 말을 잘 안 듣는데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지 묻는 분까지 다양한 질문들이 많았습니다.그 중에서 직장 때문에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아이한테 늘 죄책감이 든다는 한 어머니의 질문과 스님의 대답을 자세히 소개해 드립니다. 질문자는 이렇게 스님께 질문했습니다.“21개월 된 딸아이를 키우고 있고 3개월 육아 휴직을 쓰고 다시 직장에 나가고 있어요. 지금은 시어머니가 아이를 봐주고 있습니다. 깨달음의장을 갔다 오니 직장이 그만 두고 싶어져서 남편에게 이야기 했지만 시어머니와 남편은 계속 다니라고 합니다. 아이를 볼 때면 죄의식 때문에 항상 눈물이 납니다. 저는 직장 일이 좋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이 보기는 늘 부담스럽습니다. 엄마가 키우는 게 좋다는 스님의 말씀을 계속 들으니 제가 키우고 싶은데 이제라도 직장을 그만 두는 게 좋을까요? 직장을 그만둘 결심을 계속 못하고 있어요.”스님께서는 질문을 집중해서 들으시고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스님은 세 살까지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원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이 경우는 스님이 오히려 여러분들에게 고민을 준 것 같네요. 만약 할머니가 아이를 키워주었다면 할머니한테 고마운 마음을 내야 아이한테 좋아요. 제가 키웠어야 하는데 할머니가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요. 할머니한테 고마워 한다는 건 아이 엄마한테 고마워한다는 얘기가 되거든요. 그래야 아이의 정서가 좋아집니다. 만약 할머니를 나쁘게 생각하면 아이를 나쁘게 생각하는 것과 동격이 되는 거예요.아이의 모체가 할머니이기 때문에 할머니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아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아진다는 겁니다. 이미 할머니가 아이에게 중요한 모체가 되었기 때문에 내가 이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건 할머니에 대해서 굉장히 마음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애가 커서 문제가 생긴다고 저거 할머니가 키워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아이가 어떻게 되든 할머니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해야 돼요. 부족한 것은 나지 할머니가 아니에요. 내가 할머니한테 아이를 맡겼잖아요. 그러니까 할머니에 대해선 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아이의 마음의 모체인 할머니에 대해서 늘 고맙게 생각하니까 아이도 나에 대해서 좋은 정서를 갖게 되는 겁니다. 늘 할머니에 대해서 ‘할머니 저 대신 아이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 기도를 해야 됩니다.아이가 크면서 나보다 할머니를 더 찾는다 해도 그걸 섭섭해 하면 안 됩니다. 항상 애가 할머니한테 가려고 하면 ‘그래, 할머니한테 가라’이렇게 얘기해주고, 마음속으로 항상 아이 엄마는 할머니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늘 아이가 할머니와 가깝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지 섭섭해 하면 안돼요. 그래야 아이가 정신적으로 혼란이 없이 자랍니다. 아이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중요하지 나와 친하냐 안 친하냐는 중요하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은 항상 아이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지 않고 늘 자기를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죄의식도 갖지 마세요.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요. 아이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자기는 절하면서 ‘아이고 내가 제대로 엄마 노릇 못했는데도 네가 그래도 이렇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 아이에게 이렇게만 생각하면 큰 문제없어요. 내가 못한 것에 비해서 잘 자라줘서 고맙다, 늘 이런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세요. 어떤 일이 있어도 이제는 엄마 마음으로 대해야 돼요.nbspnbspnbsp 옆에서 시어머니와 남편은 애기 엄마가 마음이 편해지도록 도와 줘야 돼요. 애기 엄마의 심리를 불안하게 하면 그만큼 애기에게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애기 엄마는 애기에 대한 자기희생이 필요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잘하라는 것이 아니라 애기 엄마에게 잘 하라는 것이고, 시어머니도 며느리에게 잘하라는 게 아니라 애기 엄마한테 잘해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전부 중심을 애기에게 맞추고 그 애기가 안정되게 자라게 하기 위해 1차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게 애기 엄마이기 때문에 애기 엄마 스스로도 잘해야 되지만 우리 주위에서도 애기 엄마가 안정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된다는 겁니다.사회적으로도 도와야 합니다. 애기를 어디 맡기면 지원해주는 그런 제도는 잘못된 거예요. 애기 엄마든 그게 누구든 애기를 키우는 사람한테 지원을 해야 되는 거예요. 가능하면 자기가 자기 애기를 키우도록 해야 하고, 애기를 키우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도와주는 제도를 만들어야 앞으로 사람들의 심리가 안정이 되고 정신질환이 덜 나타나게 됩니다.걱정 말고 시어머니한테 감사해 하고, 항상 아이한테 ‘잘 자라줘서 고맙다’이런 마음을 내야 해요. 자꾸 아이한테 시비를 하면 안돼요. 어쩌면 이런 사람이 이걸 깨달으면 좋은 면도 있어요. 자기는 그동안 엄마 노릇 잘 못했으니까 앞으로 엄마 노릇을 잘한다는 것은 이런 겁니다. 아기를 잘 입히고 잘 먹이는 게 엄마 노릇 잘하는 게 아니라, 항상 아이에게‘아이고 내가 부족했다 그런데도 네가 그 정도여서 다행이다’ 이렇게 품어주는 것이 엄마 노릇을 잘 하는 겁니다. 이것만 분명하면 어쩌면 엄마 역할을 더 잘 할 수도 있는데, 애만 보면 죄의식 때문에 운다 하면 그건 엄마로써 빵점이에요. 엄마가 슬프면 아이는 슬픔을 가슴에 안게 되거든요. 항상 아이를 좋게, ‘내가 제대로 노력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네가 제대로 잘 자라 주는구나’ 이런 마음을 내야 아이 보는 앞에서 내가 늘 밝은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그동안 엄마수업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면서 세 살까지 아이를 잘 돌봐주지 못한 엄마들은 고민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책감을 많이 가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스님께서는 죄책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주셨습니다. 오히려 나 대신 아이를 돌봐준 할머니에게 항상 감사해 하고, 아이에게도 미안해하면서 포용해 내는 힘을 가지면, 오히려 아이를 잘 키울 수 있게 된다고 일러 주셨습니다. 스님의 진의가 다소 오해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오늘 스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 명쾌하게 다시 정리해 주시니 청중들도 모두 기뻐하였습니다.즉문즉설을 모두 마치고 앞서 다섯 번의 엄마수업 강연을 최종 마무리하면서 스님께서는 엄마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지난 5주간 공부 잘했죠? 애기 키우느라 힘들죠? 엄마 수준이 안 되는데 아이를 낳아 키워서 그런 겁니다. 엄마 수준이 되는 나도 아이를 안 낳아 키우는데, 왜 엄마 수준도 안 되는 사람들이 일을 벌려가지고 힘들어 해요? nbspnbspnbsp 아기 키우는 걸 힘들게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아기 키우는 걸 힘들어하는 게 가장 아기한테 잘못된 겁니다. 아기 키우는 걸 기쁨으로 여겨야 아기가 엄마로부터 사랑받는 거예요. 엄마가 아기 키우는 걸 힘들어하면 아기는 엄마에게 내침을 받는 존재가 되잖아요. 엄마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요. 엄마로부터도 천대 받는데 애가 어디 가서 귀여움을 받겠어요?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부부 지간에 행복하게 살고 그저 약간 일이 많을 뿐이라고 생각해야지 애한테 너무 많은 신경을 쓰면 안돼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치잖아요. 애기 키우는 게 너무 힘들어 지치니까 애기를 내치는 게 된단 말이에요. 애기한테 너무 많은 것을 해주고 무거운 짐을 느끼는 것은 애기를 제대로 못 키우는 것에 속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애기한테 해주는 걸 최소로 하세요. 무거운 짐으로 지지 말고 여러분들의 생활을 즐겁게 하세요.엄마가 인생을 즐겁게 사는 것이 아이를 사랑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아이를 어떻게 하는 게 최고의 방법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매사에 스트레스가 없으면 애는 저절로 행복해요. 엄마가 늘 울고 화내고 걱정하면, 그런 엄마 밑에서 자란 애에게 무엇을 사주고 무엇을 입힌들 어떻게 애가 행복하겠어요? 아이는 여러분의 분신과 다름없습니다. 여러분들을 그대로 이어받아요. 그러니까 아이를 위해서 여러분들이 행복하셔야 된다. 아이를 위해서 희생하라는 게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여러분들이 행복하셔야 된다. 그럴 때 우리 아이가 가장 건강하게 자란다. 이렇게만 이해하시면 애 키우는 게 그렇게 힘드는 게 아니에요. 애가 있음으로 해서 여러분 생활에 더 활력이 되고 직장 생활도 더 활력이 되어야지, 애 때문에 직장생활하기 어렵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돼요. 부부가 화목하면 이사를 열두 번 다녀도 애한테 문제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이사를 다니면서 엄마가 힘들어하면 애기는 적응을 못해요. 여러분들의 삶이 괴롭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된다, 이런 말씀을 꼭 드립니다.너무 여러분들 개인적 욕망에 아이를 수단으로 만들지 말고 항상 아이가 부족하면 부족한 것에 맞춰서 내가 무엇을 도와줄 것인가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자꾸 내 기준에다가 애를 끌어올리려고 하면 아이들은 다치게 됩니다. 항상 있는 그대로, 검으면 검은 대로, 장애는 장애대로, 그대로 존중해줘야 된다. 이것이 기독교로 말하면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아들이다’가 되고, 불교로 말하면 ‘모든 사람은 다 부처다’라는 정신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을 한 사람의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어미 된 책임으로 정성을 기울여서 도와주되 스무 살이 넘으면 정을 딱 끊어줘야 됩니다. 사춘기 때도 큰 틀에서만 감독해주지 너무 간섭하면 안 된다. 그리고 어릴 때는 모범을 보여줘야 된다. 세 살까지는 정성을 다해서 희생도 각오해야 된다. 그렇게만 하면 큰 문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마지막 정리말씀까지 큰 감동이었습니다. 스님의 답변이 끝나자 청중들 모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쳐주었습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것인지를 가슴으로 느끼게 해 준 강연이었습니다.nbspnbsp강연을 마치고 무대 위에서 수강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강연장을 나오자 많은 엄마들이 수첩과 볼펜을 가져와서 사인을 청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스님을 카메라에 담으려 많은 분들이 북적거렸습니다. 사인을 다 마치시고 곧바로 강연장을 나왔습니다.오후 2시부터는 정토회관에서 결사행자대회가 있었습니다. 40여명의 결사행자들이 모여 천일준비위원회에서 제출한 ‘8차nbsp천일결사nbsp사업방향과 목표’에 대해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저녁 9시부터는 평화재단에서 기획위 회의가 있었습니다. 현 국내외의 사회적8228정치적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들이 있었습니다. 여러 의견들이 오가는 가운데, 밤 12시가 되어서야 회의를 마무리 하고 정토회관으로 귀가했습니다.내일은 남양주, 그리고 고양시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오늘 엄마수업 정리는 이준길님이 해주셨습니다.
2013.11.18. 강릉 그리고 춘천 강연
오늘 새벽 5시에 두북에서 강릉으로 출발했습니다. 동해안을 따라 겨울바다를 보며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오늘부터 본격적인 초겨울 날씨라 해안가에는 칼바람이 부는 차가운 날씨였으나, 다행히 햇살은 빛나고 밝아서 오시는 분들을 환하게 했습니다. 봉사자들이 원주와 태백, 동해, 진부 그리고 경기도 분당에서 많이 오셔서 함께 해주셔서 한결 신나고 즐겁고 가볍게 진행하면서 하나로 뭉친 강원도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시민들이 강연을 듣기위해 일찍부터 오셔서 단오문화회관 현관 접수처에서 여러 줄로 서서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작년 300강 때는 저녁 시간이라 700명이 넘는 대중들이 왔었는데, 이번 강연은 오전이라 좌석을 얼마나 채울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찍부터 1층이 다 차고 강연 시작 10분 전부터는 2층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단오문화회관 435석이 다 차고 485명의 사람들이 참석해서 자원활동가들은 가볍고 즐거운 마음이 되었습니다.nbspnbsp 강연이 시작되기 15분 전쯤 스님께서 강연장 로비로 들어서자 봉사자들이 반갑게 인사드리며 스님을 맞이했고 스님께서도 웃으시며 자원활동가들에게 인사하였습니다. 강연전에 잠시 이전에 스님께 법사수계를 받으셨던 광운법사님과 잠시 만나서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광운법사님께서는 스님께 공양을 올리고 싶어 하셨지만, 스님께서는 이후 일정으로 마음만 받겠다고 하셨습니다. 강연이 시작되자 스님께서는 낮인데도 학생처럼 보이는 젊은이들이 많아서 “학교 안 가고 왔어요?”하며 가볍게 인사하며 강연을 시작하였습니다. nbsp 말로도 힘으로도 아내를 이기는 철없는 남편을 내가 한번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다는 결혼 6년차 주부, 마음 공부를 하고 싶어 심리학 공부를 하고 얼마 전에 대학원을 졸업하여 남을 이해하고 남도 이해해서 즐겁지만 더 넓은 세계를 배우고 싶어서 영국에 3년 동안 자원봉사자로 가려고 하니 설레고 즐거운데 한편으로는 무거워서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인 여성분, 군대를 다녀오고 계약직 일을 하는 아들과 상을 받은 대학생 딸을 뒀는데 남편이 딸을 편애를 해서 아들이 위축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어머니, 29살 여성 분으로 졸업하고 직장을 세 번이나 옮기고 그만 두었는데 지금은 나이도 있고 해서 잘 안 되는데, 지금 생각하니 내가 잘못 살았나? 싶기도 하고 예전의 직장에 다시 가고 싶기도 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여성분, 오빠가 정신질환으로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약을 먹으면서 통원치료를 했는데 얼마 전부터 자신이 혼자 극복하겠다고 약을 끊었는데, 재발을 해서 오빠 몰래 약을 타서 먹이고 있는데 지금처럼 약을 몰래 먹여야 하는지 강제 입원을 시켜야 하는지 고민인 분, 아들이 며느리와 이혼을 해서 며느리가 손자를 데리고 갔는데 아들이 자기 아이를 데리고 오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해야 좋은지 고민하는 분등 모두 6분이 고민을 내어놓고 스님께 길을 물었습니다. 오늘은 아들이 며느리와 이혼하고 손자를 데려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인 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45년 전에는 남편과 많이 힘들었는데 스님 법문 들으면서 괜찮아졌습니다. 그런데 내 걱정이 없으니까 자식 걱정이 생겼습니다. 아들이 결혼을 했는데 며느리가 1년 4개월 만에 이혼 서류를 해놓고 친정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는데 아들이 아이를 데리고 오고 싶어합니다.” nbsp 스님께서 “모든 애기는 엄마가 키워야 합니다. 누구집 아이든 상관없이 엄마가 키워야 합니다. 모든 아이들은 엄마가 좋든 나쁘든 제 엄마로부터 사랑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내가 그 아이를 사랑한다면 그 아이 엄마가 편안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양육비를 지원하고 아이가 보고 싶어도 애기 엄마가 보여 주면 보러 가고, 보여주지 않으면 보러 가면 안됩니다. 저 아이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내 욕구로 보러 가면 안됩니다. 그것이 아이를 위하는 길입니다.”라고 하니 질문자는 “내 걱정은 없는데 그 아이를 생각하면 걱정입니다.”하며 답하니 스님께서는 간단하지만 단호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자기 일이 아니에요. 아들에게 절대로 먼저 전화하지 말고 전화가 와서 물으면 옛부터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말하세요. 모든 동물은 어미의 새끼예요. 수컷의 새끼가 아닙니다. 남자는 옆에 있어서 그렇지 누구의 아이인지도 몰라요.”하니 대중들이 모두 크게 한바탕 웃습니다. “아이 엄마가 제 아이를 어떻게 키우든 간섭할 일이 아닙니다. 아이 엄마가 남편에게 애를 데려가서 키우라 하면 오케이 하고 데려왔다가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안돼’라고 하면 알았다 고맙다 하고 다시 돌아오면 됩니다. 열 번 오라 하면 열 번 가고, 스무 번 오라 하면 스무 번 가면 됩니다. 정말 아이를 위한다면 아이 엄마를 어떻게든 다독거려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남편이 애기한테 잘하고 싶으면 애기 엄마한테 잘해 주는 것이고,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잘하는 것이 손자한테 잘하는 것입니다.”라며 스님께서는 아이가 정말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 질문자는 풀리지 않는 마음이 있는지 “며느리에게 이쁜 말만 하고 사랑한다 하고 좋은 말만 했어요.” 그말은 들은 스님께서는 “그런 말도 하지 마세요. 사랑하지 않으면서 뭘 사랑한다 그래요? 그렇게 거짓말 하니까 며느리가 거짓말인줄 알죠.”하니 대중들은 다시 와하고 웃습니다. 질문자가 다시 “우리 아들 사랑해 주라고...” 하니 스님께서는 “주책이야, 그 말을 듣는 며느리는 ‘내가 사랑하든 말든 내가 알아서 하는데 니가 무슨 상관이냐’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왜 남의 인생에 간섭해요? 사랑해 주라느니 말라느니 그런 말도 하지 말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면 좋은 말을 하고 꾸며서 좋은 말은 하지 마세요. 거짓말보다는 침묵이 낫습니다. 내가 보니까 자꾸 아들 편 드네요. 그래도 애기는 엄마가 키워야 합니다. 관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첫째, 내 아이가 아니니까 내 상관할 바가 아니다. 둘째, 남의 집 아이라도 엄마가 키워야 한다. 셋째, 엄마를 편하게 해주어야 한다. 며느리를 보면 괘씸해도 아이를 생각해서 아이 엄마에게 잘해 주어야 합니다. 누구든 며느리가 싫어하면 아들집에도 가지 말고 반찬을 해다 나르지도 말아야 합니다. 며느리들은 현금 빼고는 다 싫어합니다. 현금도 통장으로 넣어주어야 합니다. 딸 가진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인장모가 왜 간섭을 해요? 딸이 사위 흉을 보면 네가 선택한 것이다. 엄마도 남이니 자기남편 흉보지 말라고 야단을 쳐야 해요. 지들끼리 잘 살게 두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간섭하면 안됩니다. 아들에게 따끔하게 이야기 해 주어야 합니다.” nbsp 스님의 답변에 질문자 옆에 앉은 젊은 여성분이 갑자기 즉석에서 질문을 했습니다. “ 그런 시어머니를 둔 며느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니 대중들이 모두 크게 웃으며 스님의 답을 기다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이전 강연에서도 몇 번 말씀 하신 내용으로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남편의 원주인임을 알고 항상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내라며 답변해 주셨습니다. 요즘 젊은 부부에게서 많이 일어나는 이혼 문제, 육아 문제에 대해서 어떤 관점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고부간에는 어떻게 서로 대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신 말씀이었습니다.nbspnbsp 강연이 두 시간 반 동안 이어졌지만 모두 우리의 살아가는 일과 관련된 말씀이어서 끝까지 진지하고 집중된 분위기에서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오늘 질문을 했던 젊은 여성분에게 스님의 답변을 듣고 어떤지를 물으니 스님께서 내 속을 환히 읽고 계신 것 같이 답을 해주셔서 참으로 감사하다고 하면서 얼굴엔 고민이 해결되고 새로운 의지가 생긴 듯한 표정이 보였습니다. nbsp 강연장을 나와서 사인을 받으려고 서 계시던 70세의 노거사님은 스님의 모든 말씀이 다 재미있었다고 하시고 그 뒤에 서 계시던 80세 노보살님은 “나는 공적인 문제를 질문하고 싶었는데 스님이 너무 힘드실 것 같아서 질문을 안 했는데 다음에 오시면 꼭 질문하겠다고 하시며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을지 모르겠다.”라며 인사를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봉사자들에게 수고했다고 환하게 웃으시면 격려하시고 덕분에 바다 구경 잘했다고 하시며 강연장을 떠났습니다.nbsp 스님께서는 춘천으로 가는 길에 경포대에 들러 차가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겨울 바다를 보며 잠시 산책을 한 후 춘천으로 이동했습니다. nbsp 춘천 강연은 한림대 일송아트홀에서 있었습니다. 오늘 춘천 강연에는 춘천 불교대학생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습니다. 올해 3월 춘천정토센터가 문을 연 뒤로 불교대학생들이 엄청나게 늘어난 덕입니다. 전에는 춘천에 정토회원이 얼마 되지 않아 강연 봉사자를 모으는데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예전 강연에서는 그 지역 불자들, 시민단체 회원들의 도움도 받고, 주변 지역 정토회원들이 대규모로 와서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도 수원, 남양주, 원주, 홍천의 많은 정토 행자들이 봉사해주셨지만, 춘천의 불교대학생들이 대다수였고 모두들 기쁜 얼굴로 봉사하는 모습에 흐뭇해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올 가을에 각각 주간반, 야간반 불교대학에 입학한 부부가 강연에서도 열심히 봉사를 하는 모습이 특히 보기 좋았습니다. 남편 되시는 분은 호법을 맡게 되었는데 이 임무를 위해 양복을 새로 샀다 하면서 며칠 전부터 좋아하셨답니다. 그분에게서 흥분과 자랑스러움이 전염되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졌습니다. 결혼을 며칠 앞둔 법우가 신붓감을 소개하기도 하고, 봉사하는 아내를 남편이 퇴근길에 깜짝 방문하기도 하고, 강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강연장은 훈훈해져 있었습니다. nbsp이번 강연은 캠퍼스 내의 공연장에서 열려서인지 대학생 질문자들이 많았습니다. 대학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1학년 여대생, 공무원 시험에 한 번 더 도전할까 말까 고민하는 4학년 남학생,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진로에 확신이 없는 남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아버지와 연락 끊고 사는데 죄책감에 힘들다는 아기 엄마, 결혼하라는 압박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된다는 30대 여성도 스님께 지혜의 말씀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생도 최근 반항심이 자꾸 커지는 것 같다고 귀여운 목소리로 질문을 했습니다. 한 40대 남성은 요즘 독재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답답함과 무기력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작년 이즈음 이 자리에서 스님이 강연을 하시는 도중에 안철수 후보의 사퇴 소식을 들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고 말문을 연 그 질문자와 스님의 대화를 소개해봅니다. nbsp “우리나라 경제나 정치가 요즘 좋아요, 나빠요?”“나쁘다고들 합니다.” “우리나라가 베트남보다 살기가 좋아요, 나빠요?”“그렇게 위안을 하고 살아야 될까요? 독재 시대에도 아프리카 나라들보다는 나았다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핑퐁처럼 질문과 질문이 오고 갔습니다. 스님이 다시 한 번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같은 질문과 약간 다른 대답이 한두 번 더 오고 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사물을 볼 때 긍정적으로 보는 위에 비판을 하면 창조적인 힘을 가지지만 부정적 시각 위에 비판하면 파괴적인 에너지로 작용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긍정만 하고 비판의식 없이 안주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하자 질문자는 “우리나라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공안 통치로 가는 요즘 모습을 보니 긍정하기가 어렵습니다.”하고 답했습니다. 스님은 긍정 위에 비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답답한 것이고 빨리 바꾸고 싶어 하는 욕심이 앞서기 때문에 답답한 것이라고 알려주시면서 또 세상이 원래 자기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요즘 답답한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라고 스님께서 말씀하시니 “모든 사람들이 현 상황이 답답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라고 질문자가 스님께 항변합니다. 스님께서는 그렇게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자기생각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씀 하시면서 대중을 향해 질문을 던집니다. nbsp “아직은 지금 정부를 지지한다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4분의 1 넘는 사람들이 손을 듭니다. “비판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하니까 그보다 더 많은 2분의 1이 되는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모르겠다, 더 지켜보겠다 하는 사람도 4분의 1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국민들은 국가 기관이 선거에 개입한 것은 심각한 문제지만 ‘현정부가 아직 1년도 안 됐는데’ 하고 유보하고 일단 지켜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라고 진단하시면서 “성질 급한 사람들은 국민이 왜 벌떡 일어나지 않나 하고 답답해하지만 예전에 민주주의가 너무 열악할 때 양식 있는 대다수 사람들이 다 일어났던 것처럼 지금 시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데 모두가 동참하는 것은 아닙니다.” 끈질긴 핑퐁 게임이 지루해졌는지 청중 가운데서 “세상이 그러든 말든 우리만 잘 살면 됩니다.” 하고 낭랑한 여성 목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세상과 같이 살아야지, 그럼 안 돼요.” 하시고는 다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질문자뿐만 아니라 청중의 다양한 정치적 입장이 서슴없이 표현되고 드러나는 것이 참 재미있었고 의미있는 시간이라 여겨졌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질문자의 답답한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나와 다른 사람도 인정해줘야 합니다. 대한민국에는 나이든 사람도 산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과제로 삼고 연구해 가면서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해 나갈 때 대중의 의식에 맞추어 함께 가는 길이 있고, 반 발짝 앞서가는 길이 있고, 선지자적으로 성큼 앞서가는 길이 있는데, 이 세 가지 중에 선택해서 가면 됩니다. 선지자의 길을 택하면 느긋해야 합니다. 왜 이걸 모르느냐 하고 답답하게 여기면 안 됩니다. 그 길을 택하면 미친 놈 취급을 받기 십상인데 그런 평가와 무관하게 자기 할 일을 해가면 됩니다.”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어떤 일에 부딪혔을 때 어떤 자세로 대처하고 나아가야 할지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nbsp 이번 춘천 강연에서는 참가자들의 평균 연령도, 질문의 내용도 부쩍 젊어진 것 같습니다.nbspnbsp 이렇게 춘천 강연을 마무리 하면서 스님께서는 책 사인회를 하고 기념 촬영을 한 후 서울정토회관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 내일은 엄마수업 강연이 있는 날입니다.nbsp 오늘 강릉 강연은 강릉 신영순님이, 춘천강연은 화천의 이현정님이 정리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