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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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2.경주정토회 정초순회법회, 법사단회의, 남산 산책

설연휴의 끝자락인 오늘은 정초 순회법회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10시에 첫 스타트로 경주정토회에서 법문할 예정이라, 스님께서는 일행에게 아침을 먹고, 법회에 가기전에 먼저 경주 남산을 가볍게 산책하자고 하십니다. 삼릉에서 포석정으로 가는 짧은 코스를 걷기로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저희 일행을 데리고 신라 55대 왕의 무덤인 경애왕릉을 지나 솔숲을 걸었습니다. 따뜻한 바람하며 완연한 봄이었습니다. 스님께선 먼지가 풀풀 나는 흙길을 보며 “가뭄에 온도까지 높으니 걱정이네...” 하시는 겁니다.nbspnbsp망월사쪽으로 가는 중간에 무덤들을 지나칩니다. 개인 무덤들인데, 스님의 어린 시절에는 이 무덤의 크기가 좀더 컸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작아진 것 같다고 하십니다. 무덤만이 아니라 모든게 어릴때보다 작아지게 느껴지는 건 사람이 컸기 때문입니다.nbspnbspnbsp 겨울인데도 진한 초록색을 띠고 있는 대나무 군락을 지나갔습니다. 망월사를 대표로 몇 명이 참배하는 동안 스님께서는 표지판인 남산안내도를 보며 질문하는 법사님들에게 여러 코스에 대해 설명을 하셨습니다. 질문하는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대답을 준비하고 계신 스님의 모습이 다시한번 징하게 느껴진 순간이었습니다.산책을 마치신 스님께서는 곧바로 경주정토회로 향하셨습니다. 경주 활동가분들은 일찍 오셔서 순회 법회를 여법히 진행하기 위한 리허설에 많이 분주했다 합니다. 경주정토회는 2006년 6월부터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보살님들 몇 분이 모여 가정법회로 시작하여 2007년 7월 시장인근 상가에서 문을 열었습니다.이번 새 법당은 경주회원님들의 간절한 발원 끝에 작년 11월27일 시장 인근의 깨끗하고 넓은 상가로 재불사를 했습니다. 지금도 주간법회는 인근 성동시장에서 보살님이 장사하시다 오셔서 진행하시고, 끝나면 다시 가셔서 장사하신다 합니다. 노보살님들도 많고 오랜 시간 전법을 염원하신 보살님들의 수고로움이 곳곳에 배여있는 법당이기도 합니다. 법당에 도착하니 신도 95명이 자리를 꽉 메웠고 바로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정초기도를 할 회원들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할 것인가에 대한 법문을 하시고, 나머지 시간은 몇 사람의 질문에 대한 설법하시는 즉문즉설로 마무리하셨습니다. 그 내용을 요점만 옮겨봅니다.nbspnbspnbsp “설 잘 쉬셨습니까? 세속에 사는 사람들이 조상에게 차례지내고 어르신들께 세배한 후 초삼일부터 설날을 맞아 부처님께 불공드리고 1년을 무사히 잘 지내도록 기도하는 것이 정초기도입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 있지요? 시작할 때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시작하면 세속의 풍파가 아무리 많다 해도 한해를 무사히 잘 보낼 수 있습니다. 기도 한다고 오는 비가 안 오는 것도 아니고, 안 오는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부는 바람이 안부는 것도 아니지만, 기도를 해서 마음을 굳건히 다지게 되면 세상의 이런저런 비바람이 불어도 흔들림 없이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초기도가 매우 중요합니다”nbspnbspnbsp 설은 태음력으로 첫해의 시작을 태양력인 입춘에 가장 가까운 날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추울 것이지만 최고 추위는 지났습니다. 그래서 봄을 맞는 설을 한해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정초기도를 하게 되면 아직까지는 어려운 일들이 계속 있지만 옛날보다 더 심한 일들은 없고 나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3일간은 정초기도에 빠지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해서 고비를 넘겨야합니다.nbspnbsp 2014년 올해는 정토행자들이 제8차 천일결사를 시작하는 시작하는 뜻 깊은 한 해이기도 합니다.nbspnbspnbsp 알아차리고 조금씩 나아지는 긍정적인 변화가 생겨야합니다. 이생에 부처님처럼 성불하면 좋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성인의 물길에 합류하는 수다원에는 꼭 이르러야 합니다. 여러분들 수행의 장애는 재가자라는 상에 있습니다. ‘중생이니 술 먹어도 돼. 성질내도 돼.’ 라며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수행자라는 가치관이 정확해야합니다. 이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부처의 길을 갈 때 계율을 지켜야합니다.nbspnbspnbsp 불교인이라면 비불교인과 차이가 있어야합니다. 이번 3년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내가 변화하는 것입니다. 남편을 변화시켜서 덕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해서 좀 편해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한테 잘해줘서 편한 것은 바람 앞의 등불입니다. 그 사람이 변하면 도로아미타불입니다. 자기가 좋아서 나한테 잘해주는 것뿐입니다. 인간의 속성은 다 자기식대로 자기 좋은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해탈하려면 내가 나를 편안케 하고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nbspnbspnbsp 그러려면 내가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고 이해해주고, 사랑받으려 하지말고 사랑해줘야합니다. 이것이 自利利他의 정신, 보살행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 법은 참으로 위대한 법입니다.nbspnbsp첫 번째는 내가 행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희망입니다.nbspnbsp그래서 이번 3년은 꼭 자기 수행의 정진을 하는 해가 되어야합니다.nbspnbsp두 번째는 우리는 대승불교인입니다. 자신이 행복해서 나도 남도 좋아지는 것은 대승소승 따질 것이 없지만 대승 불교는 알파가 있어야합니다. 불교세를 확장하는 것도 정토신자를 확장하는 것도 아닌, 측은지심으로 이 법을 알려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인연을 맺어줘야 합니다.nbspnbsp 세 번째는 환경오염으로 미세먼지가 있다면 모든 사람이 피해를 같이 볼 것이고 전쟁이 발발하면 같이 피해를 볼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모든 생명을 위해 환경을 더 이상 파괴해선 안됩니다.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되고 못 배운 어린이는 배워야합니다.nbspnbsp 이런 재앙은 우리 수행자들이 막아야합니다 이것은 사회실천 활동입니다.nbspnbsp잘못 생각하면 ‘내 수행만 하면 되지’ 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기심이며 부처님은 이기심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정진해서 희망이 생기듯 평화와 통일은 민족에게 희망입니다.nbspnbspnbsp 원이란 목표입니다. 목표를 이루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다가 넘어지고 뒷걸음질 치기도 하도 퇴굴심이 일어납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미끄러지면 다시 앞으로 나아갑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숙명의 천성에 꾸준히 도전을 합니다.nbsp 자신에게도 행복하고nbspnbsp세상에도 유익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nbspnbsp 법문 후 정진을 10분정도 하고는 법회 참석자 모두가 스님께 세배를 드렸습니다. 오늘부터 시작된 이 정초법회는 일반법회가 아닌 그동안 정토회를 다니며 정진하는 분들만 초청하여 정초에 발심하자는 의미로 두 시간 정도 진행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한분 한분의 가슴속에 정초를 경건히 시작하여 올 한해는 어려움이 있어도 굳건하게 무사히 지낼 수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nbspnbsp 경주법당에서 법문을 마치신 스님께서는 법당에서 준비한 공양을 드신 후 잠시 외부인사와의 만남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두북으로 오셔서는 감나무 가지를 정리하고 마당의 돌을 정리하기도 하였습니다.이어서 5시부터는 법사단과의 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스님께서는 내일은 포항, 영천, 김천, 구미에서 법문을 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오늘 경주정토회 정초순회법회는 포항정토회 이지은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2014.02.03. 18,452 읽음 댓글 3개

2014.2.1. 불심도문큰스님게 세배, 경주남산 참배

스님께서는 오늘 법사님들과 함께 스승이신 불심 도문큰스님께 설날을 맞이하여 세배 드리러 새벽 6시 30분에 부산 해운대 룸비니포교원으로 출발했습니다.룸비니 포교원에 도착해서 먼저 큰 스님께서 세배 올리니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새해 덕담으로는 7사를 성취하는 대원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7사는‘9461 마음이 풍요롭고, 9462 몸의 활동에 지장이 없으며, 9463 스스로 만족하는 생활을 하고, 9464 이적으로는 수행이 물 흐르듯하며, 9465 사적으로는 업장소멸이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듯 하며, 9466 웃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며 모든이를 미래세의 부처로 향도하며, 9467 ‘이 뭣고?’ 참구하여 확철대오하여 불타·조사의 증명을 받으라.’ 는 것입니다.nbspnbsp 안부를 여쭈니 요즘 허리치료중이시라 하셨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우렁차고 힘이 넘쳤습니다.큰스님께서 직접 죽비 치시며 진행하는 아침 발우공양에 참석하여 떡국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올해는 용성조사 탄생 15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행사를 잘 진행하시라는 당부의 말씀이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11시쯤 인사를 마치고 다시 두북으로 이동 했습니다. 두북에 도착해서 점심식사를 하고, 1시 30분경 오늘도 경주 남산을 참배했습니다. 경주 남산에는 둘러볼 수 있는 코스가 여럿 있는데, 오늘은 부처골로 올라가서 경주 남산성을 거쳐 나정으로 내려오는 일정이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전국 법당에서 봄에 입학한 정토불교대학생들을 대상으로 4월 중순쯤 남산성지순례가 있는데 답사 겸해서 왔습니다. 길이 완만해서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 드신 분들에게 좋은 코스인 것 같습니다. 그때쯤이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푸른 산도 계곡도 곳곳에 핀 진달래 꽃들도 보고, 봄의 향기를 물씬 맛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nbspnbsp 부처골 초입에 있는 옥룡암 부처바위는 바위 사면에 여래상, 보살상, 비천상, 나한상, 탑, 사자상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서면 위쪽으로는 비천상이 많은데, 비천이란 ‘나는 천사’입니다. 동면 밑부분에는 보리수와 사라수로 보이는 두 그루의 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는 스님이 있습니다. 북면에는 9층탑과 7층탑, 본존불, 비천상, 사자상이 있고 남면에는 삼존불, 보살상, 금강역사상, 비구상, 탑등이 있습니다. 겨울이라 습기가 적어서인지 바위에 새겨진 상들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요즘처럼 기술이 발달한 시대도 아닌데, 바위에 새겨진 부처님 상을 보면서 그 시대 사람들의 정서를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옥룡암의 부처바위의 부처님들께 정성껏 삼배를 드렸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어제 삼릉으로 올랐다가 포석정으로 내려오는 것과는 다르게 길도 원만하여 다들 힘들이지 않고 산책하는 느낌으로 산을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후 일정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중간에 쉬기도 하고 여유로운 산행이었습니다.nbspnbsp 스님은 지난 한 달여간의 인도와 방콕, 캄보디아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서 도착하신 날 바로 두북에 오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한 달여간의 외유 일정으로 휴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언제 그런 일정이 있었는가 할 정도로 일상생활을 하십니다.며칠 전에 문수팀 행자님들과 함께 공부한 금강경의 서분을, 스님의 일상을 보면서 다시한번 깊이 새겨집니다.nbspnbsp 내일은 정초기도법회가 경주법당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4.02.02. 19,473 읽음 댓글 4개

2014.1.31. 설날 차례, 남산 산행

nbspnbspnbspnbspnbsp설날 아침 새벽 기도를 마치고, 어제 준비한 음식으로 차례상을 준비했습니다. 나물과 과일을 올리고, 법사님들과 행자님들은 법복을 깨끗하게 차려 입고 차례 준비를 했습니다. 법륜스님을 모시고, 간소한 상차림으로 설날 차례 불공을 올리니 괜히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스님과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절을 올렸습니다. “지심정례공양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지심정례공양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유원무진 삼보대자대비 수차공양 명훈 가피력 원공법계제중생 자타일시 성불도”부처님께 먼저 공양을 올린 후, 조상님들께도 차례를 지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부처님께 제일 먼저 예불을 올리지만, 설날 아침에 이렇게 모여 함께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조상님들께도 감사의 절을 올리니, 차가운 새벽 공기로 손발이 시린데도 마음이 따스하고 좋았습니다. 부처님과 제대선지식과 조상님들께 감사한 마음으로 큰 절을 올렸습니다.nbspnbspnbsp 차례 후에는 스님께 세배를 했습니다. 스님께서 덕담을 해 주셨습니다.nbspnbsp 봄이 오면 잎이 피고 가을이 되면 낙엽이 떨어지며 금방 일년이 지나가듯이, 인생도 나뭇잎 하나 피었다가 지는 것과 똑같습니다. 나고 죽는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있지만,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냥 자연현상의 하나입니다. 인생에 의미 부여를 너무 많이 하면 인생살이가 피곤해집니다. 그냥 나뭇잎 하나 피었다가 떨어지는 것이나, 풀 한 포기 피었다가 죽는 것처럼 생각하면 좀 밟혀도 자라서 꽃이 피고, 나뭇잎이 벌레 좀 먹어도 자라다 지고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이 과거에 좀 밟혔다, 벌레 좀 먹었다 하는 이런 생각을 계속하게 되면 인생이 괴로워지고, 죽으면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 자꾸 하게 되면 인생에 근심걱정이 많아지게 됩니다.nbspnbsp풀 한 포기 나서 죽는 것처럼 인생을 가볍게 생각하게 되면 오히려 천하의 제일 귀한 존재가 되고, 인생에 자꾸 많은 의미 부여 하게 되면 세상에서 제일 비참한 존재가 됩니다. 다람쥐도 걱정없이 사는데, 토끼도 걱정없이 사는데 오히려 인간이 괴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열등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nbsp경전을 읽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경전을 많이 읽는다고 인생이 편안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만 자꾸 늘어난다고 인생이 행복지지는 않아요. 마음을 놓아 버려야 인생이 행복해지고 힘도 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너무 애쓰지 말고, 편안한 가운데 그냥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 “우리는 내 목표대로 살아가면서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내 목표대로 안 되면 애를 쓰고 괴로워 합니다. 아니면 자기 목표를 버려 버리고 그냥 주어진대로 살아버립니다. 주어진대로 살면 짐승과 똑같습니다. 사람이라고 할 게 없습니다.그런데, 자기 식대로만 하려면 짐승보다 못해집니다. 짐승은 괴로워하지 않는데, 인간은 괴로워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자기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되 주어진 환경을 감안해서 살면 괴롭지도 않고 짐승보다 나은 인생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nbspnbspnbspnbsp그러니까 애쓰지 말고 주어지는대로 살아라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못 받아들이면 짐승처럼 살아라 그렇게 되어버리고, 또 ‘너가 부처다. 깨달아라’를 잘못 받아들여 너무 인간이 굉장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면 사명감에 어깨가 무거워져서 사는 게 힘들어집니다.nbspnbspnbsp애쓰고 말고 그러나 꾸준히 그렇게 살아보세요. 법사라는 게, 수행자라는 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어디 가든지 그렇게 꾸준히 자기 세운 원의 길을 가되, 주어진 환경에서 일어난 일을 그냥 받아들이면 됩니다.”nbspnbspnbspnbsp올 한 해는 정말 애쓰지 말고 꾸준히 그냥 살아 보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소리없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는 들꽃들처럼 그냥 그렇게 살아보자 하며 스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겼습니다. 차례상을 물려서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경주남산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공기가 찼습니다. 영하 3도라고 했습니다. 손을 호호 불며 집을 나섰습니다. 남산 삼불사에 차를 세우고, 삼릉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 갔습니다. 해가 나면서부터 기온이 영상 15도까지 올라간다는 기상 예보가 있어, 스님과 김제동씨는 옷을 가볍게 입고 출발을 했습니다. 삼릉의 솔숲을 지나 맨 처음 만난 부처님은 목이 없는 냉골석조여래좌상이었습니다. 스님께서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이 부처님은 머리와 손발이 없습니다. 우리가 고등학교 다닐 때 저 머리를 찾아 이 계곡, 저 계곡을 참 많이 헤맸습니다. 그러다 머리는 부처님의 지혜를 말하고 손발은 자비, 실천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머리와 손발을 잃어버리고 몸둥이만 덩그렇게 있는 것이 지혜와 자비의 실천을 잃어버리고 불교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는 한국불교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머리와 손발을 복원하는 길은 지혜와 자비의 정법을 구현하는 것이라 여기고 발원하였습니다. 그래서 정토가 가는 길은 바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실현하여 이 불상을 참으로 복원하는 길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 다음 만난 부처님은 냉골석조여래좌상 왼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왼손에 약병을 쥐고 서 있는 마애관음보살입상이었습니다. “이 분은 관세음보살님입니다. 지금은 그늘이 져 있지만 오후 3시가 되면 관세음보살님 얼굴로 해가 환하게 들어옵니다. 그 때 보면 얼굴을 가장 잘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남산 제일 아래에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남산 제일 위에 아미타부처님을 모셨습니다.”조금 더 올라가 이제는 선각아미타삼존불, 선각석가삼존불에 예를 올렸습니다. 갈수록 검고 푸른 이끼가 끼어서 부처님을 드러낸 바위선이 잘 보이지 않게 되어 안타까웠습니다. 육존불 뒤로 쭉 올라가면 만나는 입술이 두꺼운 선각여래좌상도 만났습니다. 거기서 옆길로 더 가면 광배 앞에 당당히 앉아 있는 석조여래좌상은 남산 부처님 중 유일하게 팔짱을 낄 수 있는 부처님입니다. 스님의 중고등학생 시절 이야기도 같이 들으며 한 분 한 분 부처님을 만나고 설명을 들으며 산에 오르다보니 등에 조금씩 땀이 배기 시작했습니다. 상선암 오르는 길 맞은 편 바위에 새겨진 선각부처님도 보고, 상선암 마애여래대좌불에도 인사를 드렸습니다. 저도 대학생 때부터 매년 다닌던 남산이라 익숙한데, 스님께선 중고등학생 때부터 다니셨던 길이니 얼마나 낯익고 정겹고 추억이 많으실까? 그 속에서 신심을 키우고 역사를 배우고 민중의 삶을 이해하셨으리라 싶었습니다.nbspnbsp금오산 정상을 지나 남산 순환도로를 따라 포석정으로 내려오는 중간에 다시 산속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자, 여기서 저 석탑 한 번 보세요. 여기서 보는 것이 제일 멋있는 것 같아요.” 스님의 말씀을 따라 바라보니, 5층 석탑이 멀리 하늘을 받치고 서 있는데, 참 아름다웠습니다. 늠비봉 5층 석탑. 용장골 3층 석탑과는 또다른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늠비봉 5층 석탑 앞에서 스님과 김제동씨, 그리고 함께 산에 갔던 일행들이 모여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nbspnbspnbspnbsp 내려오면서 부흥사 대웅전에 참배를 하고, 다시 오솔길로 접어들어 선각황금불을 참배하고, 다시 순환로를 따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산을 내려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순환로가 거의 끝나는 지점에서 바위에 새겨진 세 분의 본존불, 약사불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 뵌 지도 오래 되었는데, 오늘 부처님을 너무 많이 뵌 것 같습니다.”하며 장난스레 이야기하는 김제동씨의 말에 일행이 다함께 웃었습니다. 김제동씨 덕분에 많이 웃으면서 재미있게 남산을 다녀왔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다시 두북으로 돌아와 점심으로 떡국을 먹고 김제동씨는 저녁 일정이 있어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스님께서 직접 경주터미널까지 배웅 해 주었습니다.nbspnbsp 오후에는 스님 부모님 산소에 갔습니다. 톱과 낫, 삽, 장갑 등을 챙겨 갔습니다. 성묘를 하고, 산소 주변 정리를 했습니다. 높게 자라있는 배롱나무를 손질하고, 개나리 주변의 나무들을 쳐 주었습니다. 스님께선 열심히 톱질을 하셨습니다. 한 시간정도 정리를 하고 나니, 산소 주변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nbspnbspnbspnbsp 2014년 설날을 의미있게 보냈습니다. 스님과 함께 부처님께 차례상 올리고 예불을 모신 것도 좋았고, 스님의 덕담도 마음에 참 와 닿았습니다. 설날에 경주남산 순례를 한 것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생활하는 곳곳에 묻어나는 스님의 따스함과 배려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다시 가지게 된 것도 저에게는 소중했습니다. 내일은 도문큰스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러 가실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2014.02.01. 19,821 읽음 댓글 6개

2014.1.30. 한국도착. 두북으로 이동

스님께서는 어제 밤 10시 방콕을 출발해서 오늘 새벽 6시, 인천공항에 도착하셨습니다. 함께 가셨던 분들도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셨습니다.nbspnbsp 7시3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해서 짐정리와 간단히 세면을 하신 후 9시에는 외부인사와 잠시 만남을 가진 후 9시 40분경에 두북으로 출발하였습니다.nbspnbsp 이번 설에는 김제동씨도 스님과 함께 보내기로 해서 함께 두북으로 이동했습니다.nbspnbsp 서울을 출발하여서는 거의 막히지 않아서 여유롭게 두북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서울을 벗어나니 막히기 시작해서 전용차선도 모두 주차장이 되어 있었습니다.nbspnbsp 꽉 막힌 고속도로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러 몸도 풀면서 내려오는 길은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두북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되었습니다.nbspnbsp 미리 와 있던 몇몇 법사님들과 문수팅 행자님들이 점심겸 저녁 공양을 준비해 놓아서 맛있게 먹었습니다.nbspnbsp 공양후 스님께서는 그믐이니 목욕도 해야되지 않냐면서 함께 경주 남산을 잠시 산책한 후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한 후 안압지 야경을 함께 구경하고 돌아왔습니다.nbspnbsp 내일은 부처님께 설 맞이 공양을 올린 후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내고 나서 경주 남산의 부처님과 탑을 참배할 예정입니다.

2014.01.31. 15,015 읽음 댓글 7개

2014.1.29. 방콕 아유타야로 소풍

캄보디아 JTS 활동을 돌아보신 후 스님은 JTS 박지나 대표님과, 로타리클럽 기성종 회장님, 백성희 거사님과 함께 방콕을 방문하였습니다. 방콕 희망세상 만들기 강연 이후 방콕 정토회 신도님들과 3일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오전 11시 반쯤 공항을 입국장을 통과해 나오신 스님은 밤 11시 10분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시간 까지 남는 10시간의 귀중한 시간을 방콕 정토회 신도님들을 위해 내 주셨습니다.버스를 대절해 스님을 맞은 저희들은 어르신에서 갓난아이까지 24분이 모였고 스님일행 4분을 합하여 총 28명이 태국의 아유타야왕조의 수도였던 아유타야로 멋진 나들이를 가게 되었습니다.차 안에서 인사말씀을 통해 스님은 캄보디아의 오지 라타나끼리 교육사업에 대한 성과와 새로 개설한 5곳의 학교개교식 행사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2년 전 라타나끼리를 방문했던 몇 분의 신도님들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미세먼지로 눈을 뜨기 조차 힘들었던 그곳 상황을 상기하며 스님의 노고에 새삼 존경의 마음이 더해졌습니다.스님의 말씀에 이어 방콕 정토회를 일구신 홍정혜대표님의 인사말을 듣는 동안 점심을 해결할 휴게소에 도착한 모두는 태국식의 볶음국수인 팟타이와 란나탈레로 허기를 채웠습니다. 다시 차에 오른 일행은 홍정혜대표님의 방콕 정토회 역사에 대한 회고를 들었고 스님의 원력을 본받아 저희들 또한 다음 3년 안에 법당을 건설하는 불사의 원을 실현하자는 결의를 다지기도 했습니다. 2시반 뜨거운 한 낮에 드디어 아유타야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한동안 이상기온의 여파로 쌀쌀했던 태국이 오늘은 유난히도 뜨거웠습니다. 더위에 지칠까 염려되는 마음이 일었지만 그 더위보다도 스님과 함께하는 귀중한 시간을 갖는 환희의 마음이 더 뜨거워 한낱 더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아유타야의 많은 유적지중 제일 처음 도착한 곳은 ‘왓 마하 탓’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아유타야의 상징인 머리 잘린 부처상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스님은 이곳이 두 번째 방문이셨고 신도님들 중에도 처음이신 분도 있고 여러 번 방문하신 분들도 있었지만 몇 번의 방문인지가 그리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함께 조용히 폐허가 된 유적지를 돌며 새로운 감상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머리 잘린 부처, 팔이 잘린 부처, 반 토막 난 부처, 얼굴만 있는 부처, 몸통만 있는 부처 등 사원 곳곳에 널려있는 부처상을 보며 남방의 부처님들은 한국불상에 비해 유난히 팔이 긴 것 같다는 질문에 스님은 유난히 긴 팔도 부처님의 32상중 하나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면 알 수 없는 것들 속에도 배워야 할 다양한 의미가 있는 듯 했습니다.두 번째 방문지였던 ‘왓 프라 람’은 잘못된 안내로 실수를 하게 된 곳이었습니다. 원래 그곳은 왕실의 화장터로 이용되었던 곳이었으나 왕궁사원으로 잘못 안내되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왕궁사원으로 보기 힘든 여러 가지 이유를 발견해 내셨습니다. 진행 팀의 오류로 인한 실수였지만 스님은 그저 그런 곳인가 보다라고 생각지 않으시고 사원 안의 조각상이나 양식을 통해 오류를 바로 잡아 주셨던 것입니다. 사물을 탐구하고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우게 된 순간이었습니다.세 번째 방문지는 ‘와 프라 씨 싼펫’으로 아유타야왕조의 왕실사원이었던 곳입니다. 지금 현재는 3개의 커다란 쩨디와 폐허화된 회랑, 법당 등이 흔적만 남아 있지만 모형으로 복원된 미니어쳐를 보니 과거의 영화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사리탑이 그렇듯 이곳에 남아있는 3개의 대형 탑 안에는 당시 고승의 유골 등이 안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나라마다 문화적 특성상 조금씩 다른 모양을 지니고 있어도 탑이 지니는 고유의 기능들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스님은 신도님들과의 기념촬영을 위해 좋은 위치와 각도를 알려주셨고 섬세한 배려덕분에 모두들 환한 미소로 추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마지막 방문지인 ‘와 까이 수타람’은 42m의 와불상이 있는 곳입니다. 열반상과는 조금 다른 이곳 부처님의 모습은 남방불교 특유의 여유와 해학이 담긴듯한 새로운 모습이었습니다.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 아유타야의 많은 유적지중 시간관계상 4곳의 유적지만을 둘러보았지만 진행 팀의 미숙으로 세세하고 알찬 안내가 이루어지진 못했습니다. 스님으로부터 중간중간 태국의 역사와 지리, 기후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마다 사실은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타국이라는 이유로 몸담고 있는 지역사회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자처럼 전문적이지는 않더라도 이민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관심은 필요하다는 것을 세상에 대한 해박한 정보를 펼치시는 스님을 통해 배우게 된 시간이었습니다.이렇게 두 시간이 넘는 사찰순례를 마친 일행은 저녁 식사를 위해 ‘짜오 프라야’ 강가에 위치한 ‘끼티 레스토랑’으로 향했습니다. 강가에 정박중인 유람선에 저녁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스님은 잠시 각자 미리 준비해 온 책에 일일이 저자서명을 해주셨고, 서명이 끝나자 구정 설을 앞둔 신도님들은 스님께 새배를 드렸습니다. 이에 스님은 미리 준비하신 새뱃돈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오랜만에 새뱃돈을 받아 든 어르신들도 아이들도 신나고 즐거운 행사였습니다. 준비가 다 된 유람선에 옮겨 탄 우리들은 태국전통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마침 강 주변으로 펼쳐지는 유적지 사이로 붉고 커다란 해가 떨어지는 일몰의 시간이라 더 멋진 저녁시간이 되었습니다.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모든 분들의 소감나누기가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쁘신 스님인걸 알기에 우리들 모두는 비행기 연결 편 문제로 생긴 이 귀한 시간들에 감사했습니다. 한치의 여유도 없이 늘 쉬지 않는 스님이시지만 잘 쉬어 가는 것도 정진임을 알려주셨고, 그 쉬는 시간 마저 신도님을 격려하고 다독이는 시간으로 쪼개시는 스님을 생각하니 비록 적은 인원으로 움직이는 방콕 정토회지만 일당백의 정신으로 활동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어 큰 힘을 얻게 된 것 같았습니다.긴 시간을 함께 한 하루였는데도 스님께선 감기로 인해 상담을 많이 못해주신 것을 미안해 하셨고, 그럼에도 함께 하신 여러분들이 좋았다니 스님도 좋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저녁 8시 반 방콕 수와나품 공항에 도착한 후 스님은 다시 한번 방콕 정토회의 발전을 기원해 주시며 합장으로 인사를 나누셨습니다.내일부터는 다시 한국에서 인사드릴 것입니다.

2014.01.31. 17,616 읽음 댓글 6개

2014.1.28.캄보디아 툼푼룽툼 학교 준공식, 캄보디아 왕자 만남

스님은 어제 캄보디아 소수부족들이 사는 4개 마을의 준공식을 마치고, 오늘 오전 8시에 툼푼릉톰 학교의 준공식에 참석하셨습니다. 툼푼릉톰 마을은 큰 마을로 교실도 네 칸이나 지은 시골학교 치곤 큰 학교입니다. 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건물이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 주민들의 요청으로 새로운 학교를 짓기로 했는데 마을이 몇 개로 나누어지다 보니 주민들이 학교 짓는데 여러 번 참여하지 않아서 공사가 몇 번 중단되었던 마을입니다. 하지만 스님은 주민들에게 학교가 완공되어서 고맙다고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nbsp 그리고 아이들에게 “부모님이 어렵게 학교를 지었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은혜에 보답할거예요?”“공부 열심히 하는거예요.” “네”nbspnbsp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주민들을 세워주시고 아이들에게 “은혜”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매일매일 학교 나올 사람 손 들어봐요?” 스님의 말씀이 끝나자 모든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자 스님은 웃으시면서“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우면 어떻게 할 거예요?”아이들이 대답을 머뭇거리자 스님은 자상한 억양으로 다시 물었습니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워도 학교에 와야 되지요?”nbsp“예. 학교에 매일 와야 합니다.”아이들은 힘차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학교를 지어도 교육청에서 선생님을 보내지 않거나,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학교 건물은 무용지물이란 걸 아시기에 아이들에게 재차 물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육청장님에게 좋은 선생님을 보내준다는 약속을 받으셨습니다.준공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스님께서는 로타리클럽 총재님과 그 일행들과 나누기를 하셨습니다.nbspnbsp “공사가 중단되었던 3개 학교가 완공되고, 새로운 2개 학교가 완공되는 등 총 5개 학교가 완공되어서 기쁩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렇게 5개 학교가 완공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KOICA에서 재정의 절반을 후원하고, 로타리클럽 박영구 총재님이 땅아 마을 학교에 공사비 일부분을 후원하고,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하는 김재송 거사님이 아이들 교복을 지원하고, 춘천 서상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책가방을 후원하고, 로타리클럽 기성종 회장님이 아이들 학용품을 후원하고, 거리에서 수많은 한국 시민들이 거리에서 모금함에 모금한 돈과 정성이 모여서 캄보디아에서 오지이면서 소수 부족들이 사는 마을에 학교를 지을 수 있었다는 것에 고마움을 표시하였습니다.nbspnbsp 스님은 캄보디아 소수부족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셨고, 마을의 새 역사의 시작을 함께 하였습니다. 이제 이 다섯 개 마을 아이들은 제때에 공부를 하고 문맹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부족과 마을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갈 것이다. 스님은 8시40분에 준공식을 마치고 JTS 사무실에 들러 짐을 싣고 서둘러 10시에 프놈펜으로 출발하였습니다. 프놈펜에서 저녁 7시에 전 외무부 장관을 지낸 캄보디아 왕국의 왕자님과의 약속이 있어 다시 910시간 걸리는 먼길을 출발하였습니다.nbspnbsp 나타냐끼리주의 주정부, 교육청이 소수민족 교육을 위한 학교 짓는 일에 협조가 부족하여 오늘 왕자님과 만나 중앙정부 교육부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해 봅니다.nbsp스님께서는 내일 아침 7시에 프놈펜에 거주하는 교민중 불자모임분들과 정토불교대학생들과 조찬모임을 갖고 10시에 방콕으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내일 소식은 방콕에서 보내드리겠습니다.

2014.01.30. 15,574 읽음 댓글 3개

2014.1.27. 캄보디아 4개 마을 학교 준공식

스님은, 로타리 클럽 박영구 총재님, 기성종 회장님, 백성희 거사님, JTS 박지나 대표님과 함께 프놈펜에서 밤새 차를 달리셔서 아침 5시 30분 경에 라따나끼리에 도착하셨습니다.nbspnbspnbsp 라따나끼리는 가난한 캄보디아에서도 오지여서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 곳인데 스님은 이곳에 2009년부터 초등학교를 지어서 아이들이 제때에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nbspnbspnbsp 캄보디아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소수 부족 아이들에게 작년까지 9개를 학교를 지어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게 해 주셨고, 올해 새롭게 5개 학교를 완공하여서 그 중에 4개 학교 준공식이 오늘 있었습니다.nbspnbsp 스님은 밤새 차를 타고 오셔서 피곤하실 법도 한데 라따나끼리에서 KOICA 백숙희 소장님과 함께 전체 경과보고를 캄보디아 JTS 책임자로부터 듣고 마을로 출발하셨습니다. 오늘 4개 마을에서 준공식이 있는 관계로 아침 8시부터 준공식이 계획되었기 때문입니다. nbspnbsp굽이굽이 산길을 한참 달려서 드디어 준공식이 열리는 땅아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이른 아침 시간임에도 아이들이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새로 지은 학교 앞에 모여 있었고 30여 가구 밖에 되지 않은 작은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이미 자리에 다 앉아 있었습니다. 스님은 연단이 아닌, 아이들과 주민들을 가까이에서 보시면서 얘기하시려고, 주민들과 아이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가셨습니다.nbspnbsp “주민 여러분 학교 짓는다고 힘드셨지요?”스님이 주민들에게 물으시니 주민들은 스님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습니다.“학교를 짓는 건 힘든데 왜, 지었어요?”스님의 질문에 마을 주민 한 명이 씩씩하게 대답하였다.“내 아이가 다닐 학교입니다.”“맞아요. 여러분들 아이들이 다닐 학교이니 여러분들이 지은 겁니다.”스님은 이제 아이들을 바라보며 “학교가 새로 지어지니 좋아요?”라고 묻자“예” 아이들이 밝게 대답합니다.“그러면 이 학교는 누가 지었어요?”“예. 우리 부모님이 지었습니다.”“맞아요. 이건 여러분들 부모님이 지었어요?”스님과 아이들의 대화는 아침햇살처럼 밝게 이어졌습니다.스님은 아이들을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니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그러면 이제부터 저를 따라하세요.”nbsp 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이들은 스님을 바라보며 두 손을 합장합니다.“어머니, 아버지, 학교를 지어줘서 고맙습니다.”아이들은 학교에 다녀 본 적이 없어서인지 따라하지 못해서 스님이 다시 한 번“어머니, 아버지 학교를 지어줘서 고맙습니다.”그러자 아이들이 밝고 힘찬 목소리로“어머니, 아버지 학교를 지어줘서 고맙습니다.”아이들이 학교를 지은 주민들을 바라보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공손하게 인사를 하니 주민들이 환하게 웃었습니다. 주민들 중에 일부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스님은 이렇게 주민들과 아이들을 “고마움”이란 말씀으로 이어주었습니다.nbspnbsp “이 학교는 KOICA가 후원해서 학교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KOICA 소장님에게 고맙다는 박수를 한 번 보내주세요.”스님의 말씀이 끝나자 주민들이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학교는 로타리클럽 박영구 총재님이 특별히 후원했습니다. 총재님에게도 박수를 한 번 보내주세요.”스님은 이렇게 학교가 지어지는데 후원을 한 분들을 주민들에게 소개하셨습니다. 서로 떨어져 있었던 한국의 후원자와 마을 주민을 이어주었습니다.nbspnbsp 스님은 학교가 지어졌지만 캄보디아 도 교육청에서 교사를 보내지 않으면 학교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셔서 아이들을 바라보며“교육청장님 이 학교에 좋은 선생님을 보내주세요.” 스님의 말씀이 끝나자 아이들이 스님의 말씀을 따라합니다.“교육청장님 우리 학교에 좋은 선생님을 보내주세요.” 아이들의 말을 듣자 교육청장님은 약속의 미소를 아이들에게 보냅니다. 스님은 교육청과 아이들을 이렇게 이어주었습니다.nbspnbsp 스님은 마지막으로nbsp “여러분들이 받은 책가방은 한국의 초등학생들이 돈을 보내줘서 산 거예요. 한국에 있는 여러분들 친구에게 고맙다는 박수 한 번 보낼까요?”아이들은 스님의 말씀이 끝나자 쌀쌀한 아침을 덥힐 정도의 박수로 스님에게 답을 했습니다. 스님은 이렇게 서로 만나지 못할 것같은 한국의 아이들과 캄보디아 아이들을 이어주었습니다.nbspnbsp 스님이 캄보디아 귀빈과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과 리본을 자르자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이 새 학교를 경축하는 축하의 박수를 오랜 시간 칩니다. 이제 소수부족이 사는 땅아 마을의 첫 학교가 정식으로 개원을 하였습니다. 이제 땅아 마을 아이들은 새 교복을 입고, 한국의 아이들이 보내준 새 책가방을 메고, 새 학용품을 가지고, 새 교과서로 새로운 선생님 밑에서 새 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될 것입니다. 단지 마을에 학교 하나가 세워진 게 아니라 마을의 새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스님은 그 첫 문을 마을주민, 아이들과 함께 밝게 연 것입니다.nbspnbsp 땅아 마을을 뒤로 하고 강 건너에 있는 웽찬 마을에 스님 일행은 도착하였습니다. 특히, 이 마을은 강을 건너야 하는 지리적 특성으로 마을 주민들이 자재를 조그만 조각배로 일일이 져 날랐습니다. 스님은 웽찬 마을에서 이런 주민들의 고마움에 대해서 특별히 격려하시고 즉석에서 후원금을 마을주민에게 주셨습니다. 주민들은 새 학교가 지어진 게 감격스러운지 소까지 잡아서 마을잔치를 준비한 것입니다. 학교를 하나 짓는 게 마을 주민들 간에 화합을 이끌어냈고 마을 주민들 한 명한 명을 이어준 것입니다. 그리고 준공식은 마을잔치가 된 것입니다. 스님은 행복하게마을 주민들과 학교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시고 아이들이 교실에 그린그림을 일일이 살펴보시고 참가한 귀빈과 손님들에게 이 마을 아이들의 자랑을 하셨습니다.nbspnbsp그리고 스님이 세 번째 마을인 따농에 도착하시자 주민들이 소수 부족 전통악기로 멀리서 온 스님과 손님들을 맞이하였습니다. 스님이 준공식을 마치고 다른 마을로 가려고 하시는데 마을 주민들 중에서 아주머니들이 스님께 찾아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습니다. 이 마을은 새 학교를 짓기 위해서 오랜 시간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공사를 시작하자는 주민회의를 했을 때, 주민들이 너무 기쁜 나머지 몇몇 아주머니들이 눈물을 흘리셨는데, 그때 눈물을 흘린 아주머니들이 스님의 방문에 너무 고마워서 길을 막고 스님께 감사 인사를 한 것입니다. 얼마나 학교를 원했으면 학교를 짓기도 전에 주민들이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nbspnbspnbsp마지막 마을인 인 마을은 외진 마을이어서 우기 철에 주민들이 학교를 짓지 못하고 다리와 도로를 보수하는데 많은 땀을 흘린 마을입니다. 우기철이라서 공사가 늦게 시작되어서 공사 마무리가 약간 미흡했는데도 주민들이 가장 열심히 학교를 지었고, 준공식 준비도 가장 열심히 한 인 마을에도 스님은 후원금을 주시면서 주민들의 노력에 고맙다는 답례를 하였습니다. 특히 인 마을에서는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학교 지어줘서 고맙다는 감사편지를 군수로부터 받았습니다.nbspnbspnbspnbsp 스님은 이렇게 사연 많고, 학교가 꼭 필요한 마을에 학교를 짓고, 오늘 준공식에도 참석하셨습니다. 준공식을 마치자 이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갑니다. 해는 이렇게 뉘엿뉘엿 넘어가도 네 개 마을의 새로운 역사가 밝게 시작되는 것을 스님은 보셨습니다.

2014.01.29. 15,815 읽음 댓글 8개

2014.1.26. 방콕 희망세상만들기 강연

인도성지순례와 인도JTSnbsp 업무를 마치고 스님은 매년 그랬듯 올해도 어김없이 방콕 정토법당을 찾아주셨습니다. 어제 저녁 9시에 방콕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가정법회가 진행되고 있는 음승혜법우님 집에 들러 저녁을 드신 후 바로 방콕정토법당에 오셔서 취침하셨습니다.nbspnbsp 아침 식사후, 스님은 방콕 Shutdown 사태에 대한 태국의 상황과 교민들의 반응을 물어보시고nbspnbsp이렇게 시국이 불안한 와중에도 강연준비를 차분히 진행해 준 정토회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였습니다.12시 30분 쟈스민호텔 11층 행사장에 들어서신 스님은 잠시 강연장 안으로 들어 와서 참석해주신 분들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청중들은 스님의 등장에 설렘과 기쁨으로 잠시 장내가 술렁였습니다. 12시 40분 스님의 책 싸인회가 열리자 많은 분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고 한 분 한 분 싸인을 받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엔 기쁨과 행복의 미소가 넘쳐났습니다.nbspnbsp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참석한 관계로 잠시 의자를 추가하며 자리정돈을 한 후 1시가 되어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방콕 시위사태로 사람들이 적게 올까 염려했는데, 150여명이나 참석해서 일부 청중들은 서서 강의를 듣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본격적인 즉문즉설에 앞서 스님의 방콕 열린법회를 축하하기 위해 유네스코 방콕 본부장이신 김광조님의 기타독주가 있었습니다. 아마추어라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스님은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국제적인 중책을 맡고 계신 김광조님의 노고에 대한 감사의 말씀도 잊지 않았습니다.nbspnbsp 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참석해nbsp 주신 한인회장님등 내외귀빈께 감사를 전하며, 취재를 부탁한 몇몇 교민회 기자님들에게 “교민 분들이 잘 살고 계시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제가 특별히 해 드릴 말씀이 없어서 인터뷰를 사양했습니다.” 라며 취재에 대신하는 양해의 말씀도nbspnbsp전하셨습니다.즉문즉설은 즉석에서 묻고 즉석에서 답하는 형식이나 방콕교민의 특성상 서면 질문서를 미리 받아보신 스님은 여섯 분의 서면 질문서에 대한 답과 두 분의 현장 질문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서는 여섯 분의 상담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즉문 43살의 주부입니다. 그 동안 4번의 자연유산을 겪었습니다. 이젠 나이도 있고 해서 계속해서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nbspnbsp 즉설 꼭 자식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어요. 아이는 원한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안 원한다고 안 생기는 것도 아니니 자연스럽게 대처해야죠 기도의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은데 기도의 마음이란 기독교인이라면 ‘주여, 뜻대로 하소서’ 라는 믿음의 마음으로, 불교인이라면 ‘인연과보를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기도입니다.종교라는 말이 원래 으뜸되는 가르침이라는 뜻이에요.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 종교인의 자세이니 생명의 원리, 자연의 원리를 알아서 그 원리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아이가 생기게 되면 생기게 되는대로 낳아 잘 키우고 만약 생기지 않더라도 괴로워하지 말고 부모가 없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든 아이도 많으니 그런 인연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을 베푸는 삶이고 자세인 것입니다.즉문 종교인의 자세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확고히 하는 것과 지나치게 극단적인 모습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맹목적이고 극단적인 그들을 볼 때 화가 납니다.즉설 대한민국은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기에 사상과 이념이 다르다고 처벌이 가능한 상황은 아닙니다. 그러니 각자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그들을 그냥 놔두고 바라봐야죠. 자유민주주의 범주에는 극단적 사고의 자유도 포함된다는 뜻이거든요. 좌편향이든, 우편향이든, 종교편향이든 그것 또한 그들의 선택이고 자유인 것입니다. 다만 이런 극단주의는 어떤 측면에선 편집증의 일종이기에 좋은 현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헌법정신의 측면에서 보면 다양함을 인정해서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일이지요. 그렇다고 권장할 일은 아닙니다.서로가 다른 옷을 입고 살아가는 종교인들 또한 서로가 옷이 다르다는 이유로 미워할 이유는 없겠죠. 옷이라는 것이 겉모양은 달라도 사람을 보호하는 목적은 같기에 상대의 옷에 대한 이해는 필요합니다.다양성이라는 것이 헌법에도 보장된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정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 대한민국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로 자신과 다른 사상이나 이념, 종교를 배격하는 획일성의 추구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래도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게 좋지 않겠어요?nbspnbsp 즉문 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더 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현장에서 교사로서 충실 하는 게 나을까요?nbspnbsp 즉설 첫째, 이론만 공부하고 연구하는데 몰두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선 남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되어 객관성은 있을 수 있어요.nbspnbsp 둘째, 현장에서 부딪히며 일만 한다면 경험은 풍부해질 것이나 그 경험이 주관에 치우치기 쉬워 객관적인가에 대한 검증은 필요합니다.결국 둘 다 조금씩 장점과 단점이 있을 수 있죠. 그래서 이론적인 연구와 더불어 이것을 현장에서 실천하며 검증의 과정을 밟는다면 경험이 바탕이 된 이론이 정립되어 교육의 효과 또한 높아질 수 있는 거니까 어느 것을 먼저 해야하느냐 하지 말고 둘 다 하는 게 좋은 일이죠.덧붙이자면 종교인이든 선생님이든 농부든 그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든 세상을 바라보는 다섯 가지 관점은 좀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nbspnbsp 첫째, 물질의 근원, 우주의 근원에 대한 이해.둘째, 생명의 근원과 원리에 대란 이해셋째, 인간에 대한, 인류문화사와 문명에 대한 이해넷째, 민족사에 대한 이해, 특히 고대사, 근대사, 현대사에 대한 가치관 정립다섯째, 마음 작용에 대한 이해nbspnbsp 무언가 편중된 심리의 사람은 이 다섯 가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오게 됩니다. 그러니 이 다섯 가지에 대한 공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즉문 지나간 잘못된 일을 생각하면 생각이 많아지고 괴롭습니다. 마음을 어찌 다스려야 하는지요?nbspnbsp 즉설 누구나 다 이런 증세가 조금씩은 있으므로 괜찮습니다. 그러나 지나치면 마음병 입니다. 병은 치료해야죠. 과거의 일이 경험이라고 생각하면nbsp 자산이 되지만 상처라고 생각하면 병이 됩니다. 어떤 경험도 상처로 남으면 현재뿐 만 아니라 미래에도 영향을 주니 불편한 겁니다. 상처는 삶의 장애로 남고 경험은 자산이 되어 여유로 남는 거에요.우린 서로 상처 주고 상처 받는데 대부분 준 것은 잘 기억 못하고 상처 받은 것만 기억할 뿐입니다. 기억을 못한다고 해서 내가 상처를 준 게 없는 건 아니에요. 누구에게는 생생한 기억이 누구에게는 기억조차 없는 일이기도 해요. 이렇게 상처가 생긴 곳은 성장을 멈추고 삶에 장애로 남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과거의 일을 상처라고 생각하지 말고 경험으로 간직하세요.즉문 아이가 모든 면에 성장이 느리고 부족한 듯 합니다.즉설 부족함에서 시작해야죠. 그런데 이 엄마는 이미 기준을 높게 잡아 놓고 아이를 보니nbspnbsp아이가 부족한 게 문제가 되는 거에요. 옆집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인물도 좋으면 부럽죠. 누구나부러워해요. 그런데 요즘은 엄마의 관점이 이렇게 옆집 아줌마의 관점으로 아이를 바라보지 엄마의 관점으로 아이를 대하지 않아요. 그러니 문제에요. 부족하다고 행복하지 말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부족하면 부족한 데로 누구나 행복할 자유가 있어요. 엄마라면 주어진 조건을 탓할게 아니라 그런 부족함 속에서도 이만큼이라도 성장해주니 고맙다고 생각해야죠. 헬렌켈러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도 글을 가르쳐서 세상을 살아가는 길을 열어준 게 엄마에요. 부족한 면은 내가 돕겠다는 마음이 들어야 엄마인 거에요. 아이에게 옆집아줌마가 되지 마세요.즉문 개인의 과보 뿐 만 아니라 국가적인 과보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여전한 일본의 태도는 우리국민들에게 큰 상처가 되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즉설 우리의 상처는 외부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자가치유를 해야 극복할 수 있어요.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참회가 있다면 좋겠죠. 그러나 그 참회가 위안은 되겠지만 그 치유는 한시적일 뿐이고 상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우리 스스로가 자유로워져야 해요. 통일한국이 이루어지면 우리 스스로 많이 치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일본이 하는 짓을 보면서 지진이 나거나 재앙이 닥치면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인연과보가 아니라 인과응보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인과응보와 인연과보는 말은 비슷해도 전혀 다른 개념이에요. 인과응보는 나쁜 짓을 하면 벌받는다는 식의 자연보복의 원리지만 인연과보의 원리는 전혀 다릅니다. 선악의 개념, 징벌의 개념으로 누가 벌을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불이익을 자초하는 행위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예요. 스스로 불이익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 이것이 인연과보인 겁니다. 그러나 이 인연과보는 시차가 있어서 금방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있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 경우 보통은 인연과보를 믿게 되지요. 또한 과보의 결과를 물질적인 가치로 계산만 합니다. 행복은 그렇게 얻어지는 게 아니지요. 자기 삶을 잘 조율해서 행복을 만들어 가듯이 국가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간의 조율과 노력이 서로의 관계형성에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일본은 이것이 부족하지요. 그래서 스스로 일본이 미래에 불이익을 초래하는 것입니다.nbspnbsp이렇게 즉문즉설이 끝나고 스님은 정리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사는 게 힘들지요? 힘듭니다. 그러나 동물들은 그런 생각하고 살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냥 살아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에요. 저절로 살아지는 게 인생이니까 사는 게 힘들다 어렵다 생각하지 말고 사세요.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세상살이에요. 각자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는 삶이라면 세상은 더 혼란스러워 질 거에요. 그러니 내 뜻대로 잘 안 되는 게 어쩌면 더 나은 겁니다. 동물들도 힘들다는 생각 없이 잘 사는데 인간인 우리가 굳이 그들보다 힘들게 살 이유가 없어요. 그러니 우리도 잘 살아봐요. 이시겠지요?”nbspnbsp희망의 메시지로 힘을 북돋워주신 스님에게 청중은 모두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습니다.nbspnbsp강의가 끝나신 후 스님은 급히 공항으로 향하셨습니다. 캄보디아 JTS를 방문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바쁜 일정으로 인해 차량 안에서 간단한 과일공양만을 드신 스님은 이동 중에도 방콕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담소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 nbspnbsp4시 40분 출국 수속을 마친 스님은 배웅나온 저희를 향해 손을 들어 인사를 나누고 떠났습니다. ‘법륜’이라는 이름처럼 잠시도 법의 수레바퀴를 멈추지 않고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시는 모습을 보며 저희들 또한 ‘내가 희망입니다’라는 주홍티셔츠가 자랑스러워 졌습니다. 스님처럼 저희도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정진하겠습니다.nbspnbspnbsp 내일은 캄보디아에서 소식을 전할 것입니다.

2014.01.28. 17,857 읽음 댓글 7개

2014.1.25. 인도 JTS 정기 이사회, 총회

오늘은 인도JTS 정기 이사회와 총회가 있었습니다.nbsp인도JTS 이사장이신 법륜스님, 부이사장이신 닥터 VK버마님, JTS 대표 박지나님, 프리야팔스님, 사띠아나다 스님, 쁘리양카님, 마을주민 수캇 만지님, 람지 미스트리님, 수닐님, 지바카병원 까미스와르님, JTS 스텝 카필데오지, 삼부님, 수자타 아카데미 선생님 빠완님, 인드라지님 등 총 25명의 인도 JTS회원님들이 참여 하셨습니다.nbspnbsp 먼저 법륜스님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이사회가 시작 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바쁘신 중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쁘레야빨 스님과 사께아난다 스님이 보드가야에서 와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또 지난 1년동안 학교와 병원, 마을개발을 잘 이끌어주신 JTS 멤버들께 감사드립니다. 마을 사람들에게도 보다 좋은 삶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nbspnbsp 그리고 사무국장이신 김신아 법우님이 지난 1년 동안의 사업보고와 결산보고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각 사업별 사업에 대해서 회원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이 지역에 정부학교가 5개가 있습니다. 정부학교가 운영이 그동안 잘 되지 않았습니다. 잘 운영하라고 하니까, 아이들이 다 수자타 아카데미에 가서 학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2년 전부터 수자타 아카데미가 학생을 받지 않았습니다. 유치원 졸업생들을 정부학교에 강제로 보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습니다. 학교에 가는 아이도 있고 안가는 아이도 생겼습니다. 까나홀 등 양민 마을 아이들은 학교에 갔습니다. 그러나 두르가푸르 자그디스푸르 등 하리잔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다가 다 그만뒀습니다. 학교에 가니 양민 아이들이 차별을 해서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두르가푸르 자그디스푸르 등 몇 개 마을만 1학년을 받았습니다. 그다음에 안투비가 아자드비가도 다시 받았습니다. 소라즈비가는 정부학교가 잘 운영이 되어서 받지 않았습니다. 까나홀 정부학교도 잘 운영이 되어서, 가왈비가 바가히 자르하리 아이들도 받지 않았습니다.nbspnbspnbsp 그런데 방갈비가는 양민마을인데 정부 학교에 하리잔이 많다고 오히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받았습니다. 올해 1년간 다시 검토해 봤습니다. 바가히는 대부분 학교에 잘 가고 있었습니다. 자르하리는 안가는 학생이 많았습니다. 가왈비가도 절반 정도 안가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정부학교에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안가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우리가 받아야 하겠습니다.nbspnbsp 우리가 정부 학교에 보내려고 하는 이유는, 정부에서 많은 돈을 들여서 학교를 운영하기 때문에 선생님들 실력도 우리보다 낫고, 지원금도 많이 나오고, 잘 운영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특히 하리잔 아이들은 학교에 안가는 아이들이 또 발생하게 됩니다. 이 아이들을 위해서, 까나홀에도 분교를 다시 열려고 합니다. 일단 정부학교에 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정부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을 위해서 수자타에서 학생들을 받으려고 합니다. 대부분 선생님들이 여기에 동의를 했습니다. 회원님들도 대부분 동의 하십니까? 그 다음에 유치원이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마을리더 중에 많았습니다. 바가히도, 문을 열고 금방 닫아버린다고 말했습니다. 가왈비가도 좀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의논해서, 지금 유치원이 1시간 반 운영되는데, 여름에는 3시간 운영을 하고 겨울에는 추우니까 2시간 운영을 하기로 했습니다. 또 학교가 오전에 수업이 끝나니까, 두르가푸르 자그디스푸르 아이들이 자꾸 유영굴 앞에서 구걸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4시 정도까지 공부할 수 있도록 계속 가르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nbspnbsp 그리고 전에 수자타 아카데미에 낙제 제도가 있었습니다. 탈락하는 아이들은 학교를 그만두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제도를 없앴습니다. 그랬더니 성적이 부족한 아이들이 계속 올라가서, 문제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낙제 제도를 두자고 선생님들이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는, 한 명이라도 탈락해서 학교에 안 나오게 된다면 좋은 결과는 아닙니다. 그래서 선생님들 의견을 받아서, 낙제 제도는 다시 만들되, 탈락하는 아이들을 모아서 한 달 정도 다시 가르쳐서 시험을 보게 하는 기회를 주자고 했습니다. 그래도 또 탈락하는 아이들이 생기면, 학교 기숙사에 아예 살게 하면서 공부를 가르쳐서, 탈락을 면하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어제 선생님들과 의논이 되었습니다.nbspnbsp 병원에 대해서는, 우리가 호모패틱과 앨로패틱을 다 하고 있습니다. 호모패틱 환자는 주로 먼 마을 사람들이 많고, 앨로패틱은 주로 가까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앨로패틱의 경우, 항생제 주사가 조금 많지 않느냐 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인도와 한국과 상황이 달라서 그런데, 지금 세계적인 추세는 항생제를 적게 쓰는 것입니다. 까미스왈 지께서 항생제를 조금 줄이는 것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제가 인도 상황을 잘 몰라서 그런데, 닥터 B.K.버마 지께서 이 상황을 보시고 항생제 비중이 과다한지 아닌지 판단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환자 입장에서는 주사 한 대 맞고 낫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자꾸 강한 주사를 놓게 됩니다. 그러나 점점 항생제에 대한 세균의 저항력이 생기면, 나중에 더 강한 주사를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환자가 요구한다고 해서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nbspnbsp 마을 개발 문제인데요, 지난 번 마을 사람들이 그릇 계를 했던 것은 비교적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난하다보니 집에 그릇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잔치할 때마다 자꾸 그릇을 빌리게 됩니다. 그런데 마을에 빌릴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10집이나 20집이 그룹을 만들어서, 개인이 돈을 조금 내고, JTS에서 절반을 내고, 잔치를 할 만큼의 그릇을 구입했습니다. 그곳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할 때 빌려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을에서 아주 호응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확대가 되어 갈 겁니다. 이런 방식으로, 협동이 필요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제가 생각하는 것은, 마을 사람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물건을 구입할 때 다 소매로 구입합니다. 그래서 비싸게 구입합니다. 만약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소비자 협동조합을 만들면, 필요한 것을 도매로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필요한 물건을 훨씬 값싸게 구할 수 있습니다. 농사에 필요한 물건도 그렇고요, 생활 필수품도 그렇고, 시멘트철근 등 건축 자재도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생산한 물건들을, 조금 조금 팔면 교통비도 많이 들고 값도 제대로 받지 못하기 때문에, 생산자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이것을 모아서 많은 양을 가게에 정기적으로 공급하면 값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산자소비자 협동조합이 필요합니다.nbspnbsp 정부에서 지금 집을 고치라고 보조금이 나옵니다. 그 중 일부를 정부사람들이 가져갑니다. 불법이지만 그것이 현실이니까, 그 돈으로 집을 짓는 데 돈이 부족하여 늘 짓다가 중단하게 됩니다. 이런 것도 협동조합으로 하면, 집도 싸게 지을 수 있고, 부족한 돈을 융자받을 수도 있습니다. 또 우리가 각자 집에 돈이 조금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은행에 예금할 수도 없고, 집에 두니까 잃어버리기도 쉽고, 써버리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마을에 조그마한 은행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작은 돈이라도 예금할 수 있고, 예금한 돈이 일정 금액 이상이 되면, 그 액수의 두 배 만큼 융자를 받는다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금한 돈의 이자는 은행보다 더 쳐주고, 우리가 돈을 빌릴 때는 은행보다 낮게 빌릴 수 있도록, 이렇게 하면 우리가 돈을 사용하기가 편합니다.nbspnbspnbsp 20년전에 제가 이것을 생각했는데, 마을에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제 20년이 지났습니다. 수자타를 졸업한 청년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이 협력을 하면, 이런 것들을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마을을 우리가 바꿔야합니다. 큰 도로는 정부가 만들지만, 동네의 작은 골목길은 우리가 고칠 수 있습니다. 여기 벽돌공장이 있습니다. 못 쓰는 깨진 벽돌이 아주 많습니다. 그걸 가져와서 집 앞의 도로를 포장하면 됩니다. 핸드펌프를 JTS가 파주고 있는데, 물을 많이 쓰게 되니까 마을 주위가 지저분합니다. 물길을 멀리 빼야합니다. 마을 쉬람단으로 할 수 있습니다. 집을 개량하고, 골목을 정비하고, 수로를 정비하고, 마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일을 한국에서는 새마을 운동라고 했었습니다. 그런 것을 우리도 할 수 있는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nbspnbsp 교육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조사를 해보면, 둥게스와리 전체에 1524세 사람 중에 글자를 아는 사람이 60이고, 모르는 사람이 40입니다. 20년 전에는 대부분이 몰랐습니다. 글자를 아는 사람 중에 90는수자타 아카데미에서 혜택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10년만 더 지나면, 젊은 사람 중에는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어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우리가 문명 퇴치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전에 결핵 환자가 아주 많았습니다. 닥터 B.K.버마지의 지도로 우리가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고, 현재 5명이 치료받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제로를 만들 수 있습니다. 또 아이를 낳다가 죽는 산모도 많았습니다. 세 살 되기 전에 죽는 어린아이도 많았습니다. 이 문제도 거의 없어져가고 있습니다.nbspnbspnbsp 그래서 이런 교육건강 문제가 해결이 되면 해야할 일은 마을개발입니다. 이런 것들이 앞으로 JTS가 해야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10년이 더 지나면 둥게스와리 마을이 잘 사는 마을은 아니지만 살기좋은 마을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함께 만들어 갑시다.” nbspnbsp 이렇게 정시 이사회와 총회가 잘 끝나고 스님께서는 내일 방콕에서 법회가 있어서 식사할 시간도 없이 바로 공항으로 가셨습니다. 230에 가야에서 출발해서 바라나시에 한번 멈췄다가 방콕에 도착하면 저녁 9시가 됩니다. 내일 소식은 방콕에서 전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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