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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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5.4.LA정토회 부처님 오신날 봉축법회

5월 3일 저녁, 스님께서 워싱턴을 떠나 LA를 향해 비행기로 미대륙을 횡단하시던 때, 캘리포니아주 쿠야마에 있는 LA정토수련원에서는 70여명에 달하는 정토 회원분들이 점등식과 탑돌이를 준비하고 연등을 밝혀 어둠을 조금 밀어내고 각자의 소원을 그 자리에 채우며 탑돌이를 하였습니다. 정토수련원을 세바퀴 돌며 어떤 이는 가족과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안녕을, 또 다른 이는 세상의 평온을 기원하였고, 마음 한편에서는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극락왕생을 비는 마음을 연등의 조그마한 불빛에 싣고 탑돌이를 마쳤습니다. 스님께서는 5시간 30분 비행기를 타고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하셨지만 3시간의 시차로 인하여 밤 10시 30분이 되어 수련원에 도착하셨습니다. 수련원에서 내일 행사를 준비하던 자원활동가들은 삼배로 스님의 LA방문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였습니다. nbspnbspnbsp 5월 4일새벽 4시 30분, 신새벽을 알리는 목탁소리와 함께 5시 정각에 아침예불을 시작으로 5월 4일 석가탄신일 봉축법회의 하루가 열렸습니다. 아침예불을 마치신 스님께서는 6시 30분에서 7시까지 꽃잔디를 깔아둔 것 같은 꽃길을 산책을 하신 후 7시 30분경 아침공양을 마치셨습니다. 이어 봉축법회에 앞서 속속 쿠야마 정토수련원을 찾아 멀리서부터 바쁜걸음을 재촉하신 여러 신도님들을 환영하는 시간을 잠시 가지셨습니다. 저 멀리 오레곤주의 포틀랜드,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티, 라스베가스,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 샌디에고, 그리고 오렌지카운티와 LA카운티에서 약200명에달하는 신도님들이 이번 봉축법회에 참석을 하여 부처님께서 이땅에 오신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0시 30분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을 시작으로 만중생의 해탈을 기원하는 헌향, 부처님께 지혜를 구하는 헌등, 그리고 부처님을 찬탄하는 의미의 헌화가 이어졌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11시 10분, 봉축 기념법문을 통하여 스님께서는 불기 2558년 부처님오신날을 현재에 사는 우리불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여 진정한 불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부처님의 탄생, 즉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나심과 관련하여 이를 신앙적종교적관점에서 바라보는 것과 인류 문화사적으로 이해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설법을 해주신 후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라는 붓다의선언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바에 대해 깨우침을 주셨습니다.nbsp65279nbsp“천상천하 유아독존, 즉 신들의 세계와 인간세상을 통털어 내가 가장 존귀하다는 일성중 나아자를 쓰는데, 아는 세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이라는 생명존중사상, 두번째는 내가 제일 귀하다는 인권존중사상이며, 셋째 조금 더 나아가면 깨달은 자가 가장 귀하다는 의미입니다. nbsp65279nbsp65279그런데 이 세상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어리석어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자기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으며, 깨달음을 귀하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늘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이들을 깨우쳐서 그들도 나처럼 괴로움이 없는 해탈과 열반을 정득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붓다의 선언입니다. 즉 그 어떤 사람도 행복할 권리가 있으며, 이것이 붓다의 인간존중선언, 생명존중선언, 인권선언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탄생 일성은 두가지로 나뉘어집니다. 하나는 내가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자각해서 자유롭고 행복한 존재가 되는 것, 이것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의미입니다. nbsp65279nbsp65279다른 또 하나는 내 주위에 있는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을 깨우쳐서 그들 또한 자유롭고 행복한 존재가 되도록 하는 것, 이렇게 둘로 나뉘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우리 불교도들이 이 뒷구절을 잘 알지 못합니다. 이걸 모르기 때문에 불교의 사회적 실천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이 사상이 대승불교에 가서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의 사상으로 정립되었습니다.”nbspnbsp봉축법문이 끝나고 대중은 욕불, 희사, 그리고 마정수기의 의식을 통해 미래세에 부처가 되겠다는 간절한 염원을 다시한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이후 일체영가님을 위한 천도재를 지낸 후, 점심 공양을 하시고 바로 사인회 및 사진촬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너무도 많은 신도님들이 사인회와 사진촬영에 참석해 주셔서 2시로 예약되어 있던 즉문즉설에 겨우 시간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nbsp65279nbspnbsp오전에 봉축법회를 통해 스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었음에도 즉문즉설 시간이 되자 다시한번 정토수련원이 가득 차 대중들의 법에 대한 갈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즉문즉설에 앞서 스님께서는 해외지부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번역팀에서 영어번역봉사를 하고, 또한 해외정토회 홈페이지를 만들고 이를 관리하고 있는 후기성도교회 신자인 제럿에게 가장 멀리서 온 기념으로 스님의 친필 사인이 들어있는 책을 증정하셨는데, 제럿과 그의 부인은 무려 11시간이 넘는 거리를 손수 운전하여 이번 점등식과 봉축법회에 참석을 하는 정성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책 증정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즉문즉설의 시간을 가졌습니다.첫 번째 질문자는 몸이 성치 않으신 90대의 어머님을 모시는 것과 관련하여 질문을 하였습니다. 어린 자식들은 연로하신 어머님을 모시는 것을 주장하고 있으나 질문자 내외는 여건상 직접 모시는 것에 어려움이 있어 양로원에 보내는 것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자식으로서 어떤 것이 진정한 도리인지에 대해 질문을 하였고, 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nbsp65279nbsp“부모의 의무는 자식을 스무살 때까지 보살피는 것이고, 자식이 부모를 보살피는 것은 보살필 의무는 없습니다. 그러나 늙으신 분들을 돌보는 행위는 고귀한 것이라 말할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잘하는 일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을 돌보지 않는다고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를 돌보는 것은 선한 일에 속하며, 이를 하고 안하고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법을 공부하는 것은 선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니, 이런 마음을 적극적으로 내서 행동을 하는 것이 진정한 불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식들에게는 변명을 하지 말고 선택을 하신 사항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해주고, 대신 양로원에 모시기로 하였으면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는 것이 좋습니다.nbspnbsp오히려 모시면서 나쁜 마음을 일으키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두 번째 질문자는 불교를 공부하던 중 계속해서 들었던 고민에 대해 질문을 하였습니다. 현재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운영자로서 어떤 원칙이나 기준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해야하는 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였고, 또 다른 사람의 인생에 참견하지 말라고 가르침을 주셨는데, 직원의 나쁜 점을 보면 이를 고쳐줘야 하는지 궁금해 질문을 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nbsp65279nbsp이에 스님께서는 육방예경, 혹은 선생경에 나와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고, 이를 다시 현대적인 관점에서 운영자와 종업원의 입장으로 나누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운영자는 자신의 회사를 위해 종업원을 채용하는 것이므로,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사장으로서 손해 보지 않는 한 가장 많이 주려고 노력을 해야 하며, 이러한 상대방을 위한 행위는 결국 자기 자신의 이익으로 귀결된다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람의 성격을 고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성격은 본인 스스로 자각해서 고쳐야 하지만, 옆에서 조심스럽게 제안이나 지적을 해줄 수는 있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부정적인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마음나누기를 폭넓고 심도 있게 해야만 개선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으므로 많은 노력이 필요로 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여 주셨습니다.nbspnbspnbsp 세 번째 질문자는 친정아버지가 작년 2월에 쓰러져 병원에 계시는데 의식도 온전치 못하며 고통이 심한 상태라, 이를 보기가 무척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상황이 최근에 자주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9년 전에 어머님이 돌아가셨고, 몇 년 전에는 여동생이 암으로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성격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상황이 되면 너무 마음이 힘들어 어떻게 해야할 지 스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nbsp65279nbsp“본인의 성격이 그런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금 그 성격이면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몇 달 울고, 동생 죽었을 때 몇 달 울고, 또 아버지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며 몇 달 울고…성격적으로 계속 반복될 뿐입니다. 내 주위에 누가 자꾸 죽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나이가 먹었다는 뜻입니다. 내가 점점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성격, 혹은 사유체계가 아직 소아적 체계에 있으니, 자기 심리를 잘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성격은 갈수록 상처가 커지게 됩니다. 아버님이 고통 받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싫다는 것은 아버님이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니 비록 고통속이더라도 하루라도 더 살기를 바란다면, 마음을 바꾸어서 이렇게라도 살아계셔서 다행이라고 마음을 내도록 해야 합니다.” 이후 의식이 없는 상태에 계신 분들과 관련하여 안락사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또 일베와 같은 단체가 성행하는 원인과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고, 다섯 번째 아이를 9월에 낳게 되는데 부모로서 자식을 불법에 귀의하게 하는 법에 대해서도 스님께 덕담을 구하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두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변으로 질문자들과 대중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4시가 되어 즉문즉설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남은 27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법당에 둘러앉아nbspnbsp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며 저녁 공양을 마치고 6시30분이 되어 바로 LA공항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밤 11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떠나신 스님의 5월 4일의 하루는 그렇게 다시 길 위에서 끝이 났습니다.nbsp

2014.05.06. 18,107 읽음 댓글 12개

2014.5.3. 워싱턴정토회 부처님 오신날 봉축기념법회

오늘은 워싱턴 정토회에서 스님을 모시고 전체 정토회중에서는 가장 빠르게 부처님 오신날 기념 봉축행사를 하는 날입니다. 오전 10시부터 봉축행사를 시작하는데 오전 9시경에 University of Virginia에서 연구원으로 있는 법우님이 오는 가을에 세계불교학회에서 스님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다고 스님을 잠시 뵙기를 청하여서 스님께서는 이분과 약 40분정도 미팅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nbspnbsp10시부터 불기 2558년 워싱턴정토회 부처님 오신날 기념 봉축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봉축행사에는 14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감리교의 홍덕진 목사님, 수도장로교회 이재수 전도사님, 필립보교회 김광훈 목자님, 그리고 한인성당의 신행우 성도님께서도 함께 축하를 해주기 위하여 참석하였습니다. nbsp그리고 뉴욕정토회의 도반님들도 스님과 함께 하는 봉축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먼거리를 운전해서 왔습니다. 한편 뉴욕뉴저지 뿐만아니라 버지니아, 메릴랜드, 노쓰캐롤라이나등 법당과 45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에서도 스님과 함께 하는 봉축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아이들과 함께 주말에 나들이 오듯 오신분들이 많아서 정말로 부처님 오신날 행사가 많은 분들의 잔칫날처럼 좋았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먼저 본행사에 앞서 한국에서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된 분들들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서 바로 만중생의 해탈을 염원하며 스님께서 먼저 부처님 전에 향을 올리고 나서 모두 함께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헌공예불을 하였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바쁘신 와중에도 미주정토회관을 찾아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면서 봉축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 경전에 적힌 부처님의 탄생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 주시고 나서, 29살에 출가하시어 상구보리해서 35세에 깨달음을 얻고,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는 80세가 되도록 45년을 쉬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는 하와중생하셨던 부처님의 평생의 삶을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라는 두 글귀로 묘사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천상과 천하, 즉 인간과 신들을 통틀어서 내가 가장 존귀한 존재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아”라는 말에는 생명, 자신, 깨달은 자, 이렇게 세가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가장 존중히 여기는 사상, 자신을 가장 중요히 여기는 사상, 깨달은 자를 가장 위대하다고 보는 사상이 담겨 있어, 붓다의 출생은 인권선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다 붓다이며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존재라는 얘기입니다. 삼계개고 아당안지는 삼계가 다 괴로움이 빠져있으니 내 이를 마땅히 편안하게 하겠다라는 뜻으로 이것이 바로 구제사상, 구원사상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가장 소중한 존재인지를 자각하지 못하고 괴로움에 빠져있으니 스스로가 붓다임을 깨우쳐서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겠다 이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첫번째 구절은 붓다가 가장 귀중하다, 두번째 구절은 나만 붓다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붓다다, 나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소중하다. 이것은 나에게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 남에게도 이익이 되어야 된다 , 스스로 깨닫고 , 남을 깨닫게 해준다 ,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 아래로는 일체중생을 구원한다 . 이런 두 개의 수레바퀴로 불교사상이 정립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그 분의 삶을 압축적으로 설명한 글귀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이어서 세월호 사고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습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학생들이 많이 희생되어서 안타깝고, 답답하고, 화가 나고,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생기고, 아직도 실종자들의 상태가 최종적으로 확인이 안되니까 아픔이 훨씬 길어지고 있는 이런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이런 사고가 안 일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일이 간혹 일어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슬픔, 괴로움, 분노에서 못 벗어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에도 괴로움에 빠지지 않는 길, 슬픔에 빠지지 않는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번 사고에서 볼 때도, 첫째는 사고가 안 생겨야 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배 자체도 무리하게 구조변경을 했고, 운행도 무리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둘째, 사고가 났을 때에는 신속하게 대피를 해야 희생을 최소로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피훈련도 안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책임지고 대피시켜야 할 사람들이 전혀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문제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사고가 안 나면 훈련받는 사람이나 안받는 사람이나 결과가 똑같습니다. 그런데, 사고가 나면 훈련받은 사람과 안받은 사람은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납니다. 수행도 이와 비슷합니다. 똑같은 상황이 일어났을 때 수행자는 거기에 함몰되거나 빠지지 않는다는 것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번 세월호 같은 일도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희생자 개개인에 대해서는 상구보리의 관점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도 수행적 관점을 갖게 되면 훨씬 더 슬픔이 줄어들고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고 위험율을 줄이려면 사고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여 앞으로는 배가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도록 불법 증축 및 구조변경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며, 과적하지 않도록 운항에 대해서 검사가 충분히 되어야 할 것이고, 안전한 운행 매뉴얼등이 있어야 될 것이며, 사고 났을 때를 대비한 대피 훈련등이 충분히 되어야 합니다.”nbsp또한 스님께서는 직업윤리의식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습니다. “선장, 선원도 사람이니까 그들 개인이 도망가고 싶다는 것은 인정해야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훈련받은 사람이니 훈련받지 않은 승객들을 먼저 대피시키고 본인들이 제일 마지막에 대피해야 한다는 직업윤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보면 직업윤리의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만 이런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개인 윤리의식과 직업 윤리의식을 혼돈합니다. 그 선장 개인이 착했느냐 하는 문제와 그 사람이 선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는가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런 것은 그 사람이 그 직분에서 다 해야 할 직업윤리를 가지고 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nbspnbspnbsp그 동안 한국은 짧은 시간에 압축 성장을 했습니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죽기 살기로 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고도성장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계속 이런 관점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후진국형이라고 할 만한 재난사고가 계속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삶의 가치를 돈 중심, 성장 중심에서 사람 중심, 생명 중심, 안전 중심으로 바뀌어줘야 합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서 이 사회에 큰 변화가 온다면 이 분들의 희생이 더 많은 수많은 희생을 멈추게 해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희생을 유의미하도록 할것이냐, 무의미하도록 할것이냐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가족들을 위로하고 우리가 같이 아파하는 게 우리가 첫번째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문다면 이런 사건은 계속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서 상구보리 하화중생처럼, 위로하고 아파하고 같이 해결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재발을 줄일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개선하는 쪽으로 국민적인 에너지가 모아져야 됩니다.nbspnbsp65279nbspnbspnbspnbspnbsp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렇게 예기치 않은 일이 늘 일어나게 되는데, 이럴 때도 내 삶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가 붓다의 가르침에 가장 중요한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또 우리사회의 보다 나은 공동선을 위해서라도 이런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 좀 더 필요합니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마음공부를 하는 좋은 길을 열어주신 부처님을 기리는 이유에 대해 말씀해주시면서 봉축법문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nbsp스님의 기념법문에 이어서 아기 부처님을 씻겨드리는 욕불의식과 미래세에 부처가 되리라는 마정수기를 스님께 받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이들까지 모두들 기쁜마음으로 욕불의식도 하고 스님께 수기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 공양 올린 기쁨을 모든 영가님께 회향하는 천도재를 올리고 행사를 마무리하니 1시가 조금 지났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오늘은 특히 좋은벗들과 평화재단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스님 워싱턴방문때 마다 통역봉사를 하고 외국인 즉문즉설 강연을 할때면 통역봉사를 하고 있는 제이슨 림이 가족과 함께 미주정토회관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지난 2013년 정토행자대회에서 마련된 특별상을 제이슨림에게 오늘 직접 전달해 주셨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워싱턴정토회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콩나물 비빔밥으로 오늘 행사에 참석하신 많은 분들과 함께 식사도 하시고 인사도 하셨습니다. 곧 이어서 많은 분들이 스님책을 구입하여 사인을 받기 원하셔서 바깥에서 책사인회도 하였습니다. 책사인회를 한 후에는 남아있는 자원봉사자들과 뉴욕정토회 신도님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뉴욕정토회에서 오신 신도님들과 둘러앉아 안부도 묻고 오랜만에 모두들 스님께 인사도 드리고 잠시 담소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이후에 스님께서는 다시 행장을 꾸려서 LA로 가기위해 짐을 들고 내려오니 설겆이, 청소등 뒷정리를 하던 워싱턴법당 식구들이 법당에서 스님께 삼배로 배웅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10월에 보자고 하시면서, 적은 인원으로 수고가 많았다고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또한 오늘 행사를 보시고 나서 조금 부족했던 부분을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주셔서 내년에는 더 멋지게 행사를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nbspnbsp 이렇게 법당에 남아있던 분들과 인사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공항으로 출발하여 오후 5시 51분 워싱턴덜레스 공항에서 LA행 비행기를 타고 LA로 출발했습니다. 내일은 LA 정토수련원에서 부처님 오신날 행사를 전해드리겠습니다.

2014.05.04. 18,919 읽음 댓글 5개

2014.5.2 워싱턴 일정-WFP 방문, 국무부, INSA 방문

스님께서는 LA정토회와 워싱턴 D.C.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불기 2558년 봉축법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미국을 방문하시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미국을 방문하시는 일이 있으시면 꼭 워싱턴 디씨를 들러서 국무부, 의회, 씽크탱크 등 워싱턴 조야에 계신 많은 분들과 미팅을 하십니다. 그래서 어제 5월 1일 한국을 출발하여 워싱턴 D.C.로 오셨습니다. 오전 11시 30분에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도착을 했는데, 수속이 길어져서 거의 3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수속을 마쳤습니다. 워싱턴 D.C. 지역은 토네이도와 폭우가 겹쳐서 3일 동안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졌는데, 오전 10시 경부터 하늘이 개이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여름 날씨처럼 기온이 올라갔습니다. nbsp그래서 회관으로 들어가는 길에 포토맥 강에 가서 폭우로 인해 무섭게 내려오는 흙탕물을 한 번 둘러보고 바로 늦은 점심 겸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에 들러서 간단히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가까운 공원에 있는 정원으로 가서 지금 한창인 튤립과 아직 덜 핀 철쭉 등 갖가지 꽃들을 둘러보고 회관으로 들어오니 6시가 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피곤하신 지 바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내일 워싱턴 디씨에서 있을 미팅을 위한 자료를 검토하시고, 또한 올 가을부터 있을 해외 100강 순회강연 준비 검토를 밤 늦게까지 하였습니다.nbsp5월2일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비온 뒤 화창한 하늘은 워싱턴의 전형적인 봄날씨입니다. 오늘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계속 미팅이 있었습니다. 첫 미팅은 유엔 식량기구 의 워싱턴 책임자인 존 브라우쓰씨와의 만남이었습니다.nbspnbsp두 분은 오랜 친구이기 때문에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였는데, 스님께서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것을 보시고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것이라고 하니, 안타까워하시면서 미국민 전체도 함께 깊은 위로를 보낸다고 하였습니다. nbsp이 곳에서 스님께서는 현재 북한식량 상황 및 소외계층의 식량사정, 그리고 농사전망, 북한 전체의 경제상황등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하시고, 유엔에서는 북한의 식량 위기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세계적으로 아직도 북한처럼 식량상황이 열악한 곳은 어느 지역이nbspnbsp있는 지 등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하셨고, 존브라우쓰씨는 아시아 지역에서는 북한을 제외하고는 식량위기상황인 지역은 없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유엔 WFP에서도 북한에 식량지원을 하려고 하는데 북한은 만성적인 식량위기 상황이고 정치적 상황까지 안 좋다보니 재정기부가 여의치nbspnbsp않아 지원이 어려운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nbspnbsp존브라우쓰씨와 함께 한 시간 미팅을 하고 바로 인근에 있는 국무부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nbsp국무부에서는 부서를 달리하면서 연이어 2번의 미팅을 하였습니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만나자마자 모두들 한국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위로의 말씀을 보내주었습니다. 한반도 관련 부서의 직원들과의 미팅에서는 북한의 식량사정, 경제상황등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였습니다. 아울러 현재 한미일 공조체제에 대한 한국민의 우려상황등에 대해서 한국과장님과는 아주 깊이 대화를 나누셨습니다.nbspnbsp65279nbspnbspnbspnbsp국무부에서 3시까지 미팅을 한 후에 바로 INSA로 이동 하였습니다. INSA 는 민, 관, 학계의 정보 및 안보 전문가들이 모인 비영리, 비정파적인 단체로서 2004년 북한과의 9.19협의를 이끌어 내었던 디트라니 대사님이 소장으로 있는 곳입니다. nbspINSA에서 디트라니 대사님과는 북한의 식량사정, 경제사정 뿐만 아니라 한미일 공조에 대한 한국민의 우려를 충분히 전달을 했으며, 그리고 북한과의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미국이 해야 할 여러가지 등에 대해서 많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두 분의 인연이 워낙 깊은데다 대사님께서는 한반도 전문가이시다보니 한반도 전체 상황에 대해서 두 분이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3시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nbspnbsp6시에 미팅을 마치고 회관으로 돌아오시면서 “북.미간의 대화가 쉽지 않겠네. 북한에 대한 관심자체가 식어있고, 또 중국에 해결책임을 미루고 있기 때문에” 라고 하시며 한반도 통일의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회관으로 돌아 온 후nbspnbsp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스님께서는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이후에는 미국에서 스님 책을 영어로 번역하는 문제에 대해서 회의도 하고, 내일 워싱턴정토회 부처님 오신날 행사준비를 하고 있는 총무님, 부총무님,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하시고, 함께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nbsp이렇게 또 워싱턴의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내일은 불기 2558년 부처님 오신날 봉축법회가 이곳 미주정토회관에서 있습니다. 정토회에서 가장 빨리 스님을 모시고 하는 봉축행사인것 같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nbsp

2014.05.03. 15,770 읽음 댓글 5개

2014.5.1. 미국 워싱턴으로 출발

스님께서는 오늘 5월 1일부터 5월 5일까지 미국 워싱턴과 LA를 방문하기 위해 오늘 아침 10시 30분 비행기로 미국 워싱턴으로 출발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먼저 워싱턴을 방문해서 북한과 관련된 업무를 보시고, 5월 3일 워싱턴 정토회에서 부처님 오신날 행사를 한 후 LA로 출발하여 5월 4일 LA 정토수련원에서 부처님 오신날 행사를 하신 후, 5월 6일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 공항에서도 계속 업무를 보시며 공항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nbspnbsp nbspnbspnbspnbspnbsp이후 스님의 하루는 미국에서 소식이 오는대로 전해드리겠습니다.

2014.05.03. 14,110 읽음 댓글 5개

2014.4.30. 우리가 사는 세상(사회관)-3,4강

오늘 새벽 기도후 6시 30분에 대전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강의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스님께서는 강의 준비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대전법당에서 스님의 봄특강‘우리가 사는 세상’ 3번째,4번째 강의가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제3강,인권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 인권존중에 대하여 강의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강의 전에 스님과 함께 200여 대중은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하여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고통과 두려움에 떨었을 어린 영혼들이 평화로운 안식을 찾을 수 있기를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어리석음과 아집에서 벗어나 지혜와 힘을 모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발원문을 낭독하고 해탈주를 3회 독송하였습니다.nbsp스님께서는 간단히 인사를 하시고 인권에 대하여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오늘은 행복으로 나가는 인간의 권리를 살펴보려 합니다. ‘인권’은 인간의 권리입니다. 사람에게는 어떤 권리가 있는가? 첫째가 ‘생존권’입니다. 생존할 권리가 있다. 사람은 살아있을,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지구상에 있는 생물은 생존권이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생존권은 안전에 대한 권리가 첫 번째입니다. 이는 타인으로부터 강제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외부적으로 죽임을 당할 때 생명은 가장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죽임을 당하지 않을 권리, 즉 안전하게 살 권리, 사고를 당하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자연재해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는 권리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개인 윤리의식은 비교적 괜찮은데 사회적 책임의식은 많이 부족합니다. 즉, 직업 윤리의식이 부족합니다.nbspnbspnbspnbspnbsp두 번째가 먹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 말은 확대해석하면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먹을 것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경주 최부자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내 책임이다라고 한 것은 그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 줄 수는 없지만 그 사람들이 굶어 죽는 것은 내가 먹고 있는 한 내 책임이다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인류가 굶주려 죽는 문제가 있다면 이것은 선진국 책임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데 왜 우리가 책임을 져야하느냐?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세 번째는 치료받을 권리, 보건위생의 권리입니다. 병이 나면 치료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결핵, 이질, 장티푸스등 법적 전염병등은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는 치료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국의 국민이라 하더라도 굶어죽으면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하며, 전투가 끝난 후에는 부상당한 적병이라 하더라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남북간에 갈등이 심해도 감정으로 대응하면 안되고 군인과 군인은 총을 쏘고 싸우더라도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면 살려 내야합니다. 북한의 결핵환자가 수십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약을 지원해서 치료를 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네 번째는 산모, 유아, 어린이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종족보존의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유지되려면 자기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고 하나는 종족을 보존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모는 보호받아야 하고 어린아이는 엄마나 가족이 보호해야 하지만 가족이 없으면 누구든지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다음은 인간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그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던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첫째로 자유권,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자유권의 첫째가 사상, 양심, 종교, 이념의 자유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두 번째가 언론의 자유, 말 할 권리입니다. nbsp세 번째는 집회, 결사의 자유입니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에 더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행복할 권리, 두 번째는 평등권. 즉, 차별받지 않을 권리입니다. 내가 피부가 검다고 여러 사회활동에 차별받으면 안 됩니다. 이제는 인종적, 민족적 차별을 해서는 안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부처님은 이미 2600년 전 인간을 계급으로 차별할 때 계급철폐를 주장하셨습니다. 인간을 계급으로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그 당시 계급사회에서는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또, 성차별이 그렇게 심할 때, 여자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그런 시대에 여성출가를 허용했어요. 저항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야말로, 비구니 제도야말로, 여성해방 운동의 효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다음은 종교차별로 소수종교라고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차별을 하기 때문에 저항이 생기고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인류 문명은 평등으로 나아가는데 아직 저항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종, 민족, 종교 문화를 차별해서는 안되고 세계시민이 되려면 그 나라에 있는 여러 현상을 하나의 문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마지막으로 성적취향을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자기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태어나면서 그렇게 된것은 자연스럽게 살아가도록 행복할 권리를 줘야합니다.nbspnbspnbspnbspnbsp행복권의 핵심은 자유권, 평등권, 교육권입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먹고 살 권리가 있고, 교육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즉, 문자를 터득해서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 놓은 문명을 계승할 권리가 있어요. 이것을 위한 최소한의 교육이 초등교육입니다. 그러니까 인도나 아프리카에 태어나 초등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면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또, 우리사회에서도 아이들이 평등하게 교육을 받아야 하고 누구나 동일한 기회를 가지고 경쟁해야 합니다. 기회균등의 핵심은 교육을 받을 권리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모든 아이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출발선상의 기회균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기본교육을 받을 권리를 균등하게 줘야 합니다. 이런 경우에도 논쟁은 많지만 앞으로 사회는 이렇게 되어가야 합니다. 장애인들에게 기본교육을 시키는데 경비가 많이 들지만, 그들에게도 기회균등이 주어줘야 합니다.nbsp불교에서는 인권존중을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천상은 신들, 천하는 인간을 말합니다. 신들과 인간을 통틀어서 내가 가장 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의 이름으로도 훼손시킬 수 없는 권리라는 뜻이므로 천부적 권리라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것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한 것이 오계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첫째로 불살생. 살아있는 것을 함부로 죽이지 마라. 이것이 안전권입니다. 내 생명을 안전하게 유지할 권리는 있지만 다른 생명을 헤칠 권리는 없다는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둘째로 불투도. 남의 물건은 뺏거나 훔치지 마라. 이 말은 누구나 자기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만 남의 이익을 해칠 권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불살생과 불투도는 사람에 대한 생존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쳐서는 안되고 손해 끼쳐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셋째로 불사음. 삿된 음행을 하지마라. 즉, 성적인 문제는 내가 좋다고 껴안아도 상대가 싫으면 그 사람에게는 괴로움이 됩니다. 내 행복을 위해서 남을 괴롭힐 권리는 없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행복권의 하나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네 번째로 불망어. 거짓말, 욕설을 하지마라. 이것은 언론의 자유에 속합니다. 남이 말하는 자유를 줘야 하고 나도 자유롭게 말해야 되지만 남을 속일 자유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불사음과 불망어는 행복권에 들어갑니다.nbspnbspnbspnbspnbsp다섯 번째로 불음주. 술을 마시고 취하지 마라. 이것이 중요한 것은 취하게 되면 앞의 4가지 계율을 모두 어기게 됩니다. 그래서 ‘술을 먹지 마라’고 되어있지 않고 ‘취하지 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라며 오계를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권, 즉 생존권과 행복권으로 나누어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 “가정에서도, 부부지간에도 인권을 존중하고 사회적으로도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경제부국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문화대국, 도덕적 국가가 되는데 더 비중을 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단순히 세상의 인권이 아니라 불교에서는 훨씬 더 일체중생이 다 부처다하는 말로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인권의식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오늘날 우리가 인권의식만 제대로 가져도 이 세상이 아주 정화된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꺼번에 하긴 어렵겠지만 자신이 이해하고 가까이서 실천해 가고 조금씩 극복해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세계시민으로서 가장 높은 인권의식을 갖는 사람이 됩시다.”라며 물질적 행복이 아니라 정신적, 도덕적으로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고 하시면서 강의를 맺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점심 공양 후 스님께서는 내일부터 있을 미국 방문시 필요한 보고서등을 점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후 4시 30분부터는 해외에 계시는 분들에게 드릴 ‘부처님 오신날’ 기념법문을 녹화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저녁 7시 30분부터는 ‘우리가 사는 세상’ 4강 ‘통일 평화, 통일, 자주독립’에 관한 주제로 강의를 하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대중들께 인권에 관한 오전 강의를 핵심을 짚어서 간략히 정리해 주시고 ‘평화란 무엇이냐?’하시면서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평화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소극적인 평화와 적극적인 평화입니다. 소극적인 평화는 ‘갈등은 있지만 전쟁이 없는 상태’를 말하고 적극적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소극적인 평화에는 우리 남북관계나 노사관계처럼 갈등이 내재해 있고 밖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있고, 인도의 경우처럼 계급차별이 내재해 있지만 문화적으로 억눌려서 표출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갈등이 있지만 밖으로 표출되지 않는 경우에는 지배계급은 좋을지 모르나 피지배계급에게는 좋지 않습니다. 왜냐면 충돌이 일어나야만 해결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nbspnbspnbspnbspnbsp한국사회를 볼 때는 남북관계의 갈등, 남남사이의 갈등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nbspnbspnbsp 남북 간에는 정전상태의 일시적 평화입니다. 다시 전쟁을 한다하면 아무런 선전포고가 필요 없이 그냥 하면 됩니다. 그래서 남북 간에 평화체제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전쟁에 참여한 여러 나라 중에서 크게 한국, 북한, 미국, 중국 이렇게 네 나라가 전쟁을 종식시키는 종전협정을 맺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종전협정은 ‘전쟁을 끝맺자는 것’이고 평화협정은 ‘서로 협력하여 평화롭게 살자’라는 것인데 평화협정도 4자가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견해 차이가 있습니다.” 하시며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한국이 평화협정을 남북 간에 맺자고 하면 북한은 전시작전권도 없는 한국은 당사자가 아니니 미국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평화협정을 맺으려면 전시작전권을 가져와야 남북 간에 평화협정을 맺는 데 법률적, 제도적 완비를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미국은 가타부타 말은 하지 않지만 중국은 4자간에 맺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4자 간에 평화협정을 맺으면 남북이 독립된 국가처럼 되고, 북·중 사이에 군사동맹을 맺게 되면 우리는 북한에 대해서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가 없습니다. 평화는 가져오지만 통일에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통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평화협정이 되기 위해서는 남북 간에 협정을 맺고 중미가 보증을 서면 통일로 가는 길을 열어 놓게 됩니다. 이러려면 한국이 북한을 설득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전시작전권이 빨리 회수가 되어야 북한을 설득하기가 훨씬 더 용이하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아무튼 종전과 평화협정을 맺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우리는 평화도 소중하지만 통일도 바라고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런데 자기 나라의 국익에 따라서 어떤 나라는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나라는 평화는 바라지만 통일은 바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통일문제가 쉽지 만은 않습니다.nbsp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서 동아시아의 평화체제를 한·미·일 군사동맹과 이에 대응하는 북·중·러 군사동맹으로 가면 수십 년간 냉전체제로 가야 합니다. 분단뿐만 아니라 강대국 간 갈등의 제1선에서 우리 민족끼리 대립해야 하는 지난 시기의 운명을 되풀이 해야만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하지만 통일이 되면 한국이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서 동아시아의 세력 판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균형자의 역할을 해서 한반도의 평화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도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사실은 외교, 안보, 국방, 통일은 정부가 하는 것이지 민간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렇게 애를 쓰는 것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관군이 제대로 대응을 못하면 나라를 구하는 의병이 일어나듯이 통일의병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스님께서는 남북관계의 평화와 통일에 관해서 말씀을 하신 후 ‘이념갈등’ ‘노사갈등’ 등 남남갈등에 관해 강의를 계속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 “남한에는 첫째 진보·보수라는 이념갈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노사갈등이 있고, 환경과 개발 사이의 갈등이 있고, 선거 때 나타나는 지역갈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광적인 개신교를 제외하고는 종교 사이의 갈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 중에서 가장 심한 것이 이념갈등입니다. 이념 갈등이라는 것이 원래 ‘경제적인 평등을 주장하는 노동자’와 ‘경쟁의 원리를 주장하는 사용자’ 간의 갈등인데 우리사회에서는 이것이 핵심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진보·보수와 유럽사회에서 말하는 진보·보수와는 개념이 완전히 다릅니다.nbspnbspnbspnbspnbsp우리 사회에서는 ‘북한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집니다. 북한을 포용해야 할 대상으로 보면 진보라 하고,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보수라 합니다. 또 미국에 대해서 조금만 비판해도 진보로 취급받고 미국을 편들면 보수라고 합니다. 이것은 남북이 적대관계로 대치되어 있고 분단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우리가 왕조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처럼 현실적으로 국가로 인정을 하듯 북한 또한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 가치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체를 인정을 하지 않으면 평화를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평화의 가장 핵심적인 조건은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기입니다. 이 인정과 이해가 평화의 전제 조건이고 기초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또한 미군과의 관계에서도 긴밀한 동맹관계를 가지면서 국익이 상충될 때는 우리의 국익을 지킬nbspnbsp줄 아는 자주국가로서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옛날에 신라가 당나라와 협력해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지만, 당나라가 백제·고구려 땅을 차지하니깐 당나라와 8년간이나 싸웠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이 끝난 후에 화친을 해서 협력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 때 신라는 속국으로서가 아니라 자주국가로서 협력을 했습니다.”nbsp이렇게 스님께서는 남남갈등에 관해 설명을 하신 후 ‘소극적 통일’과 ‘적극적 통일’에 관한 강의를 계속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소극적 통일의 의미는 분단되었으니깐 한민족으로 통일해서 이산가족, 일제청산 등 과거를 청산하자는 것입니다. 특히 분단으로 축소된 독립운동사가 사실대로 복원이 되어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적극적 통일은 과거청산뿐만 아니라 변화된 정세 속에서 우리의 자주권과 이익을 유리하게 할수 있는 돌파구입니다. 통일은 이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비젼을 만드는 유일한 희망이고 출구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돌파구가 하나 더 있다면 바로 ‘창조경제’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는 롤모델이 있어서 ‘따라 배우기’를 통해 압축성장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일본도 따라 배워서 서구수준에 20년 전에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창조성이 없으니까 20년 동안 정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럴 가능성이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창조성을 키우려면 교육이 전면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 학교에서는 ‘이것은 맞고 이것은 틀리다’고 하면서 가르치는데 이것을 불교로 말하면 극단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극단을 버리고 중도로 가라 하셨습니다. 중도라는 것은 정함이 없는 살아있는 창조성입니다. 또 각부분이 융합을 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앞으로 동아시아 시대가 도래하고 동아시아의 중심이 한국이 되어야 한다는 자부심이 딱 잡혀야 창조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뭐든지 남한테 가서 배워 오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이런데서 통일은 한계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를 가져올 시간적 여유를 벌어 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한국은 단순히 한반도의 통일을 넘어서서 우리의 국가위상을 획기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게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우리가 일제로부터 독립하려고 3.1독립운동을 주창할 때 처음에는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기기 전 대한제국 부흥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용성스님께서 ‘단순히 과거의 회복이 아니다. 왕이 주인인 대한제국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 되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가야한다’라고 주장하셨습니다.nbsp그처럼 통일한국은 남북을 반반 섞어 놓은 통일국가가 아니라 우리가 인류문명에서 가장 앞선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 내야 됩니다” 하시며 화엄경에 있는 보살의 원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강의를 마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보살에게 있어서 정토란 이미 완성된 세계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서 보살이 활동하는 국토다”nbspnbspnbspnbspnbsp지금 전국에서 정토행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바로 여기가 정토라는 말씀이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바로 서울로 이동하셨고, 내일 5월 1일부터 5월 5일까지 미국일정이며, 5월 6일 새벽에 한국에 도착하실 예정입니다.

2014.05.01. 18,492 읽음 댓글 7개

2014.4.29.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양소 참배, 수련장 답사

오늘은 기증 받은 해남 수련장 부지를 답사하기 위해 새벽 5시에 울산에서 해남으로 출발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가다가 7시에 함안 휴게소에서 유수스님, 묘덕법사님과 만나서 함께 해남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수련장 부지를 둘러보고 장기적으로 이곳에 수행도량을 만들어 농사도 지으면서 수행자들이 살 곳으로 적합한지를 둘러보았습니다.nbsp또 지도를 보면서 주변에 적합한 곳이 있는지를 계속 둘러 보았습니다.nbspnbspnbspnbspnbsp해남 수련장 부지를 둘러보고 서울로 오는 길에 제주법당 개원법회에 참석하시는 유수스님을 광주공항에 내려 드리고 서울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서울로 오면서 안산에 있는 ‘세월호 희생자 들을 위한 합동 분양소’를 찾아 희생자들의 영혼을 천도하고 명복을 빌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염불을 하시면서 일반 시민들과 함께 줄을 서서 약 1시간을 기다려 참배를 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분향소에는 200여분의 영정이 노랗거나 하얀 꽃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분향소에 들어서니 그 많은 사람들이, 특히나 어린 학생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의 영정은 절로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국화꽃을 헌화하고 합장하며 영정이 놓여 있는 영단을 따라 기도하며 영가들의 명복을 빌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언론을 통해서 보는 소식에서만도 답답했지만, 막상 직접 분향소를 찾으니 뭐라 할 말이 더 없어집니다.nbspnbspnbspnbspnbsp부디 안타깝게 희생 되신 분들이 모두 극락왕생하기를 바랍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바로 서울로 오셔서 미국 방문 보고서를 교정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대전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 3, 4강이 대전법당에서 있습니다.

2014.04.30. 15,863 읽음 댓글 5개

2014.4.28. 창원,부산대 학생회관 강연

오늘 오전에는 창원 늘푸른전당에서 희망강연이 있었습니다. 어제밤부터 내리던 봄비가 오늘도 계속 내렸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비가 와서 어제 심은 채소들이나 꽃들에게는 아주 좋지만, 오늘 강연에는 어떨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비가 내리는 가운데 스님의 강연을 듣기위해nbspnbsp약700여 분이 대중 오셨습니다, 비가 오니 이런 글귀가 생각납니다. 행복이란 우산을 많이 빌려주는 일이고 불행이란 아무도 우산을 빌려주지 않는 일이고,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밀 줄 알면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곧 스님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다른 강연장과 마찬가지로 서두에 세월호 사고로 희생되신 분들을 위해 다함께 기도를 한 후 강연에 들어갔습니다.nbsp오늘은 친정어머니가 우울증, 불안증을 앓다가 돌아가셨는데, 자꾸 아버지가 미워지는데 아무 감정없이 아버지와 지낼수 있을지 묻는 분, 인재로 인한 사고가 많은데, 생명은 어디까지 사는지 의구심이 있다는 분, 일을 하고 상대가 나와 다르거나, 약속을 어기면 화가 나는데, 어떻게 수행해야 화가 심하게 나지 않는지 묻는 분, 가까운 친척 중 이혼한 후 아이를 고아원에 맡겼다가 다시 부모가 결합하면서 아이를 데려다 키웠는데, 엄마가 아이를 7살에 데려와 도박판에도 데리고 가고 했는데, 그때 차라리 친부모가 아니라 양부모를 만났다면 도박에 빠져들지 않았을까요라는 질문자, nbspnbspnbspnbspnbsp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남과 비교당하면서 심한 욕설을 받으며 자랐는데, 정신적 스트레스로 몸도 힘들고, 여동생과 심하게 다투는데, 매일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 아가씨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 음탕이 생각이 일어 날 때가 있는데, 생물학적으로 그렇겠다 하지만 스스로를 미워하는 마음을 알아차리면 되는데,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있는지 묻는 분, 진짜 하느님이 있는지, 천국에 가는 건지 묻고 싶어서 왔다는 분등이 질문을 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그중에서도 첫 번째로 질문하신 분의 내용을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nbspnbsp“친정어머니 우울증, 불안증 앓다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가 자꾸 미워지는데, 아버지에 대해감정 없이 대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버지를 안보면 가보고 싶은데, 가면 화가 나고 전화가 오면 받기가 두렵습니다. 끊고 나면 안 좋은 감정들이 생각납니다. 4, 8살 아이가 있는데 아이들에게도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감정정리를 해야 하고 아무 감정없이 아버지와 지낼 수 있을 지 궁금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어머니만 우울증이 아니라, 질문자도 우울증입니다. 그런 감정에 휩싸인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어머니가 그러면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심리적으로 약한 심리를 갖게 됩니다. 전이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질문자는 엄마 아버지를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닥친 일이 더 급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아버지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00일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다른 여자를 만나 재혼, 동거하겠다고 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아야 합니다. 내 생각으로 자꾸 따지면 미움만 남습니다. ‘낳아 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또 하나는 아버지에 대해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 ‘미움이 일어나구나’하고 알아차리고 ‘미움은 나의 업식이다. 아버지로부터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화가 올라오는 것을 알아 차려라는 것이지, ‘화를 내지 마라’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자의 남편이 참고 산다고 하는데 그냥 두면 40세가 넘으면 폭발 할 수 있으니 참지 말고 대화로 남편을 편안히 해 주고 감사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라고 하시며 질문자가 먼저 불안한 심리를 알아차리고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내가 행복하게 사는게 부처의 길이고, 세상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하는게 정토의 길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하는 것이 바로 보디사트바입니다. 즉,nbspnbsp상구보리 하와중생의 삶입니다.nbsp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발원한다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됩니다.“라는 말씀을 끝으로 강연을 마무리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창원 강연을 마치고 해운대 법당에서 머무시면서 업무를 보시다가 저녁 강연을 위해 부산대로 향했습니다. 새벽부터 내린 많은 비와 거센 바람이 불었으나 스님의 강연을 준비하는 자원봉사자 50명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 듯 했습니다. 노란리본을 가슴에 달고 정숙하면서도 밝은 얼굴로 곳곳에서 강연장을 안내해주고 계셨습니다. 좋지 않은 분위기와 짓궂은 날씨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듯, 한 두 사람씩 자리를 메우면서 750여명이 자리를 채웠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시작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안타까움과 묵념으로 시작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수행을 많이 한다고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려움에 대처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 우리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다시 알게 되었고,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큰 선물입니다.”라고 말씀하시고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첫 번째 질문자는 올해 70살인 할머니께서 남편의 술주정 때문에 참회정진을 1년 해서 내 마음은 편안하졌는데 남편은 계속 술을 먹고 술주정을 하는데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어떻게 해야할지 물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두 번째 질문자는 고3 여자아이와 고1 남자아이를 둔 엄마인데 6학년까지만 해도 효자였는데 6학년 수학여행 갔다 오면서 사고를 쳐서 혼냈더니 조용히 지내다가 중학교 가면서 심해지면서 고등학교 가니깐 욕도 하고 학원도 안 가려고 하고 반항을 하니깐 이제는 아이를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고 내 삶이 점점 엄마를 닮아 간다는 생각이 들고 아들이 친정오빠의 모습이 보이면서 말 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와 괴롭다고 스님께 물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세 번째 질문자는 딸과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딸아이가 어릴 때 남편과 이혼을 하고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돈을 많이 벌어서 아이에게 공부를 많이 시켜 유학도 보내주었습니다. 물론 제 자식의 인생이고 제 딸아이의 문제지만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데 딸아이의 남자친구는 그럴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네 번째로는 저는 중3과 중1일인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인데 큰아이가 폭력피해로 엄청나게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폭력 위원회를 열고 수사하는 과정에서 제가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잘못을 하는지 보았습니다. 아이의 장점을 보이지도 않고 막말하고 욕하고 하고 아이는 저항하지 못하고 듣기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는 지금 겉으로는 표현을 안 하지만 동생에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 엄마에 대한 분노가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저도 어릴 때 불안하게 살아서 저도 불안증이 있는데 그게 아이에게 그대로 보입니다. 이번에 아이와 저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부모에 대한 분노가 많이 없어졌습니다. 저의 모습 때문에 아이의 모습에 죄송하고 눈물이 납니다. 도와주세요. 스님.nbsp다섯 번째는 25살 남자 대학생으로 돈이라는 것에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분.nbspnbspnbspnbspnbsp여섯 번째는 4, 5살 아이가 있고 시어머니가 주중에 아이들을 봐주시는 맞벌이 주부 엄마입니다. 시어머니께서 주중에는 돌보아주시는데 고지식한 편이라서 남편이 집안일을 하면 싫어해서 갈등도 있지만 이해를 하다가도 서운해서 다툽니다. 남편은 나중에 시어머니와 같이 살기를 원하시는데 저는 고민도 많이 하고 한 번씩 화도 올라옵니다. 아이는 성격이 많이 예민하고 피부도 문제가 있어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저를 잘못 만나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이nbspnbsp아이를 어떻게 돌보아야 할지 모르겠고 시어머니도 걱정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여러 질문 중 네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어보려 합니다. 스님께서는 도와달라는 질문자에게 단호히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하시며 말씀을 이어갔습니다.nbsp“자기가 지은 과보이기 때문에 죽을때까지 짊어지고 살아야 됩니다. 부모라는 사람이 자기 말 잘 들으면 착한 아이고 자신의 말을 안들으면 나쁜 아이라고 합니다. 내말 잘 듣는다고 효자라고 하고, 내 말 잘 안 듣는다고 불효자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아이가 내말 듣고 안듣고를 떠나서 아이가 합리적이고 정상적인가가 중요합니다. 내 아이를 사람이 되도록 키워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아이가 어릴 때 부모나 선생님한테 억압되어서 말도 제대로 못하다가 나중에 커서 술 한잔 먹으면 막 튀어 나오기도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아이를 학대하는 엄마는 엄마가 아닙니다. 계모가 아이 학대한 이야기 들었죠? 질문자도 욕을 얻어 먹어야 된다 이말입니다. 그러니깐 다시 돌아가서 내가 아이를 학대해서 아이의 성장에 큰 잘못을 저질렀구나하고 반성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엄마한테 분풀이를 하면 ‘내가 죄인이다’라고 생각해서 위축이 되면 거꾸로 아이가 엄마에게 분풀이를 더 하게 됩니다. 엄마를 때리고 욕을 하면 결국 내 자식을 불효자로 만들게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앞으로 아이가 어떻게 하던지 격려해주고 이렇게 감싸주며 엄마는 엄마답게 당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미안하다, 엄마가 미안하다.’라고 감싸야 합니다. 애 엄마이기 때문에 보호자로써 당당해야 하는데, 아이의 보호자가 아이 때문에 안절부절하며 어쩌지를 못하면 애한테 만만하게 보여 오히려 아이가 엄마를 휘어잡으려고 합니다. nbsp책임전가 하지 말고 대화를 해보고 전문 상담관하고 상담을 해서 대응을 해 나가야 합니다. 아이를 소유물처럼 생각하니까 내 성질대로 두들겨 패고 하잖아요. 그게 무슨 엄마예요? 지금 같으면 해결하기 힘듭니다. 솔직하게 죽을 각오로 수행을 해야 합니다. 엄마로서 의연한 마음을 가질 것, 아이가 거꾸로 감정이 폭발해도 전문가에게만 맡기려고 하면 안됩니다. 엄마가 책임지지 않고 떠넘기려고 하면 아이가 사랑을 더 못 느낍니다. ‘우리 함께 극복해보자’ 이런 자세로 엄마가 당당한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자신이 부모가 되어 보니까 자기도 어리석어서 그런 것처럼, 내 엄마도 나처럼 나보다 더 어려운 조건에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도 참 어려웠겠다. 엄마 고마워. 이정도라도 살게 해줘서 고맙습니다.’라며 어머니한테 감사 기도하고, 이렇게 해도 내일 아이의 모습을 보면 성질부터 먼저 나니깐 매일 아침 300배 기도를 하면서 ‘미안하다. 엄마가 어리석어서 이렇게 되었구나.’라고 참회기도를 해보시기 바랍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오늘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야단쳐서 미안합니다.’ 라고 하시면서 스님께서는 말 못하는 어린아이들을 대신해서 말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엄마가 정신이 건강하면 아빠가 없거나 이혼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핵심은 엄마의 스트레스를 아이는 그대로 학습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중요하며 남편과 시어머니는 아이에게 잘해 줄 것이 아니라 아이 엄마에게 잘해주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스님께서는 아이의 엄마는 중요하다고 강조하시면서 9시 반이 넘어서 강연이 마쳤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해남의 수련장 부지 답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2014.04.30. 17,835 읽음 댓글 2개

2014.4.27. 봄 불교대 특강

스님께서는 오늘 아침 8시부터 봄 불교대학 특강수련에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이번 특강수련에는 서울지역 주야간, 경남지역 주야간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봄 불교대생 230명과 돕는이 42명, 총 272명이 여법하게 수련하였습니다. 처음 문경수련원에 와 보시는 분들이 많아 무척 설레는 모습이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특강수련을 온 봄 불교대생들에게 법문을 해주시기 위해 어제 세월호 추모 연등행사를 하고 난 후 바로 서울에서 문경으로 달려오셨습니다. 스님께서 소화하시는 바쁜 일정을 보면 홍길동의 후예임에 틀림없습니다. 어제 아침에는 경주에서 청년들과 함께 하셨고, 오후에는 서울 종로에서 저녁 늦게까지 ‘세월호 아픔과 함께하는 추모 연등행렬’에 참석하셨고, 오늘 아침부터 문경에서 저희와 함께 하셨으니 말입니다. 홍길동 같은 스님 덕분에 불교대생들에게는 무척 뜻 깊은 특강수련이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우리가 어려움이 없을 때는 신앙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수행한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닥치면 수행하지 않은 사람은 상황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수행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그 상황을 이겨냅니다. 공부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연습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저는 어제 서울 종로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추모 연등행렬을 했습니다. 아직 구조되지 않는 사람이 115명이나 된다니까 이제 슬픔을 딛고 나아가자는 말도 하기가 이른 그런 상태입니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는 명복을 빌고, 실종된 사람들은 혹시나 한 명이라도 더 생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국민들의 마음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돌아가신 분들은 왕생극락을, 생사를 아직 모르는 분들은 무사히 생환을 바라는 해탈주를 먼저 하겠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과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해탈주를 했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 두 달 가까이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궁금했던 것들이 있으면 질문하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님께 질문하셨는데 그 중에 두 가지만 나누어 보겠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첫 번째 질문은 젊은 보살님의 습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nbsp질문 스님, 습관에 대해서 질문 드리겠는데요. 자격증 공부를 할 때 며칠만 지나면 싫은 마음이 생깁니다. 저의 이 포기하는 습관을 버리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궁금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 이 세상의 어떤 인간도 자기가 세운 계획을 다 실천하는 인간은 없습니다. 다만 좀 더 많이 하는 사람이 있고 적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보다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니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왜 포기할까요? 첫째, 그 일을 안 해도 사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짜 다급하면 다합니다. 억지로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안 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두 번째는 물질도 그렇고, 정신도 그렇고, 관성의 법칙이 있어서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고 멈춘 것은 계속 멈추려고 합니다. 목욕을 안 하면 안 하는 게 편합니다. 매일 목욕하는 습관이 들면 절하고 몸을 안 씻으면 불편합니다. 이것은 목욕을 안해서가 아니라 습관 때문입니다. 하루 세끼 먹는데 한 끼 먹으면 힘듭니다. 모두 습관 때문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단식을 해보면 습관 때문에 힘듭니다. 처음 5일 동안은 힘들어서 죽을 것 같지만 그 고비를 넘기면 그런 게 사라집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처음에는 바깥에서 공급한 에너지로 쓰지만 나중에는 자기 안에 있는 것을 꺼내서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하루에 300g씩 줍니다. 그러니 실제 우리가 필요한 에너지는 300g 정도입니다. 하루에 그것만 먹으면 아무문제가 없습니다. 에너지가 남아서 뱃살이 늘어나고, 남을 때리고 하는 겁니다. nbsp6시에 일어나다 5시에 일어나면 하루 종일 피곤합니다. 새로운 일을 할 때 저항을 받습니다. 그런데 습관을 바꾸려면 관성의 법칙을 거슬러야 되기 때문에 저항을 이겨내야 됩니다. 그런데 자기습관을 이기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밖의 백만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습관을 바꾸려면 저항이 당연히 일어납니다. 이기는 방법은 아무리 저항이 와도 해버리는 겁니다. 어떤 걸 바꾸려면 원칙을 정하고 실패를 백번 천번 만번 해도 극복한다고 다시 해야 합니다. 하루 이틀 해봐서 안 됩니다. 안 되는 게 당연합니다. 바뀌는 게 어려운 걸 알고 도전을 하면 됩니다. 아픈 날도 하고 비오는 날도 하고 3시에 일어나도 하고. 까짓 꺼 절하다 죽는다하는 생각으로 계속 하면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이 매번 법문을 하고 싶어서 할까요? 어떤 날은 목이 아파서 진짜 하기 싫은 날도 있습니다. 그러나 합니다. 하기로 했으니까. 자꾸 하다보면 하고 싶고 하기 싫고가 별로 중요 하지 않습니다. 좋다 싫다 높낮이가 잔잔해집니다. 업식이 있으니까 좋다 싫다가 늘 일어나지만 내가 사는데 별 영향을 안 줍니다. 습관을 바꾸는 게 중요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습관에 관한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안 해도 문제가 없으며, 다급하면 다 하게 되어있다는 말씀에 무척 위안이 되었습니다. 왜 위안이 되었을까요? 제가 못하는 것에 대해 핑계를 삼고 싶어 하나 봅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질문 제 인생에 스님 만난 것이 큰 행운입니다. 남북통일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남북통일을 하려면 남북이 서로 신뢰를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북한의 행태를 봐서 북한을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nbspnbspnbspnbspnbsp스님 스님이 아주 좋아하는 질문을 했어요. 부부지간에 사이가 아주 좋으면 서로 신뢰하자라는 말을 안하겠지요? 친구지간에 사이가 좋으면 이런 말이 필요 없습니다. ‘진짜 못 믿겠다. 네가 하는 말은 백 마디 다 못 믿겠다.’ 이러면 갈라서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갈라서려고 보니까 재산을 나눠야 됩니다. 재산을 분할 할 때 서로 상속 문제 때문에 많은 재산을 세금으로 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뜻이 안 맞는 걸 생각하면 갈라서야 하는데 우리가 가진 재산 중에 많은 부분이 사라진다 하면 고민이 되겠죠?nbspnbspnbspnbspnbsp 애들이 막 울고, 불고 난리입니다. 우리 둘만 생각하면 갈라서면 좋겠는데 애들이 난리를 칩니다. 그러면 애들 생각에 갈라서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저것 따져보니까 미래의 이익, 공동이익을 살펴보니 갈라서면 세금이 엄청납니다. 그래서 합하자고 하면 ‘뭘 믿고 합치나’ 하는 이런 의심이 들 때 우리가 어떻게 시작해야 될까요? 네가 먼저 반성해라. 그 징표를 내놓으면 살 의향이 있다.’ 이렇게 다투는데 상담할 때 아내 얘기 들어보면 아내 말에도 일리가 있고, 남편 얘기도 일리가 있습니다. nbsp이럴 때는 첫째, 조건 없는 대화, 먼저 만나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적대관계에 있을 때 일수록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게 안 되는 것은 너무 꼴 보기 싫어서 입니다. 네가 확실하게 뭘 해결하겠다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만나기 싫겠지만 이런 때일수록 만나야 합니다. 두 번째, 대화를 할 때 대화의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너와 내가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남한은 북한 핵무기 개발이 싫다하고, 북한은 세계최강인 미국과 합동군사훈련을 하는 것은 위협이며 침략 의도가 있는게 아니냐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를 건드리기만 하면 너 죽고 나 죽는다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남한은 북한을 보고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무슨 평화냐 핵무기를 없애겠다고 확실히 보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양쪽 얘기를 다 들어봐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문제는 ‘그래, 북한하고는 함께 살지 말자’ 라고 결론이 나면 되는데 조금 깊이 들어가면 앞으로 미래를 봤을 때 이대로 가면 남한만으로는 더 이상 발전할 소지가 적다는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래서 북한을 적절히 다루어 함께 하는 게 우리한테 이익입니다. 믿고 못 믿고가 핵심이 아니고 버려놓고 나중에 돌아보면 굉장히 아깝습니다. 민족 전체의 이익뿐 아니라 남한의 이익을 위해서도 북한하고 대립 갈등하는 것은 손실입니다. 북한에 대한 동조나 반대 개념을 넘어서서 신뢰 프로세스는 좋은 것입니다. 지금 신뢰 프로세스는 ‘네가 신뢰할 만한 짓을 해야 내가 신뢰하지’라고 하는데 그런 전제조건이 있는 얘기로는 적대관계에서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테러범이라 하더라도 처음부터 테러범하고 협상 안한다 하면 인질을 죽이는 것입니다. 인질을 살리려면 양보하고, 기회를 포착해야 합니다. ‘왜 인질범하고 대화하느냐’ 라고 말한다면 인질의 희생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통일 안하는 것과 하는 것과 어떤 것이 이익인가? 하는 것이 이익이다. 그러면 국민의 의견. 미중의 의견도 맞춰야 합니다. 굉장히 복잡하지만 이익이 되면 해야 합니다. 비굴이 아닙니다. 일시적인 후퇴까지도 감수하면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남북관계는 북한을 믿을 수 있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교류와 협력이 이익이 되면 관계를 맺어나가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사고를 넓혀야 합니다. 일본과 갈등이 있지만, 한일관계는 협력이 필요하며 통일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국과 잘 풀어야하고 중국과도 잘 풀어야합니다. 나쁜 점이 있다고 그것만 생각하면 안 되고 여러모로 관찰해서 평가해야 합니다.” nbsp통일에 관한 질문이 나오니 스님께서는 열정적으로 지금의 미중 관계에 관해서도 상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지금이 얼마나 통일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인지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마무리 말씀을 하시면서 세월호 침몰에 대해 다시 한 번 언급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얼마나 가슴 아파요? 30년 전에 삼풍 사건 났을 때 정신 차려서 우리가 너무 ‘돈돈’하지 말고 사람, 생명, 안전을 중시하는 시스템으로 바꿨으면 이번 사건을 미연에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똑같은 사건이 났더라도 희생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부터 무방비 상태입니다. 비행기 타도 안전훈련 안 듣고, 차 안전띠 안 매고, 소방훈련 건성으로 하고, 자격증 적당하게 안따고 요행을 바라고, 얼렁뚱땅 사니까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도처에 지뢰가 묻혀 있습니다. 수치로 성장만 따지지 말고, 참말로 후손을 위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배, 바로 ‘민족호’라는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지금 약간 위험국면에 놓여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지혜롭게 잘 풀어나가는 게 필요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의 마무리 당부말씀이 가슴에 많이 와 닿았습니다. 이미 수차례 많은 사람이 희생된 사건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무시하고 넘겼었구나. 그래서 이번에 또 ‘세월호 사고’를 맞이했구나, 싶어 참회가 많이 되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즉문즉설을 마치고 바로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두북으로 오는 길에 수박, 참외 모종, 그리고 갖가지 봄꽃들도 사 들고 왔습니다. 먼저 그동안 돌보지 못한 마당에 난 풀도 뽑고 난 후 사 가지고 온 봄 꽃들과 수박, 참외모종을 심었습니다.nbsp웃자란 나무 가지도 쳐 내고 주변 정비를 하였습니다. 지난달에 심었던 상추, 열무들을 속아서 저녁 공양을 먹었습니다. 우리가 심은 채소를 밭에서 바로 따서 먹으니 따로 보약이 없고 이 음식 자체가 보약인 것 같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창원, 부산 강연이 있습니다.

2014.04.28. 18,236 읽음 댓글 8개

2014.4.26. 세월호 사고 추모연등행렬, 청년학교 경주 순례

스님께서는 새벽 2시 20분경에 경주에 도착해서 잠시 쉬셨다가 7시 30분부터 청년학교 학생들과 경주 불국사 순례길에 나섰습니다. nbsp 스님의 설명을 듣기 위해 청년들이 스님 주변으로 모이자, 스님께서는 신라가 시작되는 시기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nbsp “신라는 2000년 전인 기원전 57년에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고대왕국이라기 보다 6개의 촌락이 합쳐진 작은 부족국가였습니다. 처음에는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고 부족장을 뜻하는 거서간이라는 칭호를 쓰다가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등의 칭호를 썼습니다. 내물왕때인 기원후 400년 경에는 가야·왜 연합군의 침공을 받고 위기에 처하자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에게 지원을 요청하여 겨우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대신 신라는 고구려로 왕자를 인질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기원후 500년 경 22대 지증왕 때 비로소 소로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우산국을 정복하고, 영토확장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왕의 호칭을 쓰게 되었습니다.”라며 신라 전반기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nbsp nbsp “법흥왕 시절 국내적으로는 율령을 반포하고, 대외적으로는 불교를 공인하여 개혁과 개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야는 오래 전 불교국가였지만 신라는 불교를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신라는 가야와 통합하면서 불교를 수용하게 됩니다. 신라가 가야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합의통합을 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통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nbsp 신라는 백제와 연맹을 맺은 뒤 고구려가 차지한 한강유역을 차지하게 됩니다. 신라는 이 기세로 함경남도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이 시기가 진흥왕 시기이고 그렇게 하여 새겨진 비석이 진흥왕 순수비입니다. nbsp 진흥왕 때 신라는 영토를 거의 3배로 확장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진정한 삼국시대로 도래하게 됩니다. 그 전까지의 신라는 작은 국가에 불과했지만 진흥왕 이후 삼국시대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nbsp 신라는 태종무열왕과 문무대왕을 거치면서 통일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고구려에 군사를 요청하여 백제의 침공을 막으려고 했지만 고구려는 이를 거절하면서 김춘추를 감금합니다. 김춘추는 그들을 잘 구슬려서 고구려를 탈출하고 당나라로 가서 당과 연맹을 맺게 됩니다. 그러면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당나라는 신라에게 순순히 두 나라의 땅을 주려고 하지 않고 본인이 가져가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당전쟁이 일어나는데 8년 동안 일어나는 전쟁입니다. 결국 신라는 당나라를 물리치지만 우리나라의 위쪽을 많이 내주게 됩니다. nbsp nbsp 비록 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렸다고는 하지만 후에는 당나라를 치고 통일을 하였습니다. 신라는 당나라와의 전쟁을 통해서 진정한 통일을 이뤘지만 역사의 정통성을 계승하지 못했기 때문에 만주의 고조선을 계승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후에 고구려의 후예가 발해를 세우면서 민족사적으로는 남북국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라며 신라 중기까지의 역사를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nbsp 신라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본격적으로 불국사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스님을 따라 불국사안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불국사 대웅전으로 오르기 전 마당에서 스님께서는 nbsp 불국사는 부처의 나라, 부처의 땅이라는 말이라고 하며 김대성이라는 재상이 지은 절이라며 스님께서는 불국사를 짓게 된 사연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 “한 청년이 어떤 집안의 종이었습니다. 그는 주인이 시주를 얻으러 온 스님에게 비단 10필을 보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를 보고 생각하기를 ‘주인은 현생에 복을 지어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고, 지금 또, 복을 지으니 내생에도 잘 살겠구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집에 스님이 시주를 하러 왔을 때 어머니에게 시주를 하자고 했습니다. 줄 것이 없다는 어머니의 말에 그럼 강가의 뙤기밭을 주자고 했고 결국 어머니의 동의를 얻어 스님에게 시주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청년은 갑자기 죽게 되었고 사람들은 괜한 짓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재상집 아들로 태어나고 그 어머니는 김대성의 유모로 들어가게 됩니다. nbsp 그래서 김대성은 전생의 부모와 현생의 부모를 다 모시는 사람이 되었고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을 지었다고 삼국유사에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라며 불국사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불국사 앞 마당에서 대웅전 앞으로 올라 가니 다보탑과 현재는 해체 수리중인 석가탑이 보였습니다. nbsp “불국사에는 두 개의 탑이 있습니다. 석가탑과 다보탑입니다. 백제 출신의 기술자인 아사달이 석가탑을 만들었는데, 그 기간을 삼년이라고 했는데 3년이 지나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서 부인은 남편을 찾으러 절로 갑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부인을 안으로 들여보내주지 않아서 부인은 탑그림자가 비친다는 연못으로 갑니다. 그러나 그 연못에도 석가탑은 비치지 않았습니다.nbspnbsp그래서 부인은 상심하여 연못에 빠져 죽게 됩니다. 아사달이 탑을 다 완성하고 아내를 찾으러 연못으로 왔다가 죽은 아내를 발견합니다. 그는 그 연못에서 부인을 그리워하며 조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석가탑을 무영탑이라고 부르고 그림자가 보이는 다보탑을 유영탑이라고 부릅니다. nbsp 삼국시대에는 외탑을 쌓았는데 통일이후가 되면서 쌍탑을 쌓았습니다. 불국사도 통일 이후에 만들어진 절이기 때문에 쌍탑을 쌓았습니다. 부처님의 자리에서 오른쪽이 석가탑이고 왼쪽이 다보탑입니다. 현재는 석가탑이 완전 해체되어서 복원 중입니다.”라며 다보탑과 석가탑에 얽힌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nbsp 이어서 대웅전에 대한 설명도 해주셨습니다. “불국사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의병이 불국사에 무기를 숨기고 본거지로 삼습니다. 그래서 왜군은 불국사를 불태우게 됩니다. 임진왜란 후에 대웅전, 극락전, 자하문 범영주만 다시 복원하게 됩니다.” nbsp nbsp nbspnbsp“불국사에는 33개의 계단이 있습니다.nbsp 아랫 땅은 중생들의 세계를 뜻하고, 계단 위는 부처의 세계를 뜻합니다. 그래서 가장 밑에 있는 돌은 자연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있는 가운데 기둥 옆의 돌들은 한 면만 평평한 자연석을 골랐습니다. 이는 모든 중생이 부처의 모습을 단 하나라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nbsp 스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불국사를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평소에 왔더라면 그냥 지나치거나 설명문에 적혀진 글만을 대충보고 지나쳤을 그곳들을 스님의 역사적인 이야기에 덧붙여서 설명을 들으니 귀에 쏙쏙 들어오고 건물들이 더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nbsp 불국사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많이 소실이 되었지만 박정희 정부때 어느 정도 복원을 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nbsp 스님과 불국사 순례가 끝나고 강당으로 돌아와서 즉문즉설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의 책들을 통해서 느낀 점들이나 살아가면서 의문점이 가거나 힘들었던 점들에 대해서 질문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nbsp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다양한 질문과 다양한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nbsp 원래라면 스님께서는 하루 동안 청년학교 참가자들과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세월호 사건으로 추모행사에 참석하게 되어서 즉문즉설 시간을 끝으로 오전 시간만 청년들과 함께 했습니다. nbspnbsp “스님의 책에서 아들이 심장마비로 죽어서 슬퍼하는 어머니에게 죽은 아들과 어머니를 위해 ‘이미 일어난 일은 잘 된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많은 국민들이 분통함과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또, 무력감에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까 합니다. 이것도 ‘지나간 일은 좋은 거’라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신나는 일이 생겨도 가슴 한 켠이 먹먹하니 기분도 안나고 뉴스만 보면 우울해지고, 좋은 일 생겼다고 나만 웃고 떠들면 욕먹을 것 같고... 스님, 현 시점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진정한 추모의 자세와 의미는 무엇인가요?”, “떠나간 어머니에 대해서 용서를 해야 할까요?”,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은데 20년간 다니면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그만두기가 힘듭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거절을 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nbsp 이번에 세월호 사건이 터지면서 이와 관련된 질문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사회적인 문제와 개인적인 문제는 구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인적인 문제일때는 자식이라고 하더라도 사고로 죽었든, 살인을 당했든, 자살을 했든 이미 죽었습니다. 그런데nbspnbsp죽은 자식을 계속 잡고 있으면 내가 불행해집니다. 세월호의 참사를 보고 내가 지금 가슴이 아플 때 내 마음을 다스릴 때는 이것을 이미 지나간 일이고,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가 진짜 더 이상 물질 중심으로 사물을 보지 않고 사람, 생명, 안전을 중심으로 사물을 보도록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앞으로는 이런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응해야 하는 일입니다.” nbsp 정말 이번 사건이 요행주의를 바라는 이 세상에 일침을 주어 안전을 제일선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nbsp 나를 낳고 곧 집을 떠나간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가지고 있는 질문자에게는 “자신을 낳아줬다고 해서 엄마가nbspnbsp아니라 키워준 분이 엄마입니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그 어머니에게는 거기까지가 다이며, 키워준 할머니가 진짜 엄마입니다.”라고 답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그리고 연금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분을 위해서는 “고작 3년 일해놓고 20년 뒤의 연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요?”하니 참가자들도 모두 함께 웃습니다. 그러자 질문자는 일이 재미없어서 그렇다기보다는 매번 하는 일을 해서 지루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고 다시 말하니 스님께서는 “직장일은 지금처럼 하고 일찍 끝나고 정토회에 와서 사람들 만나면서 일을 하세요.”라고 제안을 하셨습니다. 정말 현명한 답변이셨습니다. nbsp 거절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거절하고서 사람들에게 욕먹지 않으려는 건 욕심입니다. 거절에 대한 상처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거절을 하게 되면 더 큰 상처를 주니 차라리 일찍 거절하는 게 좋습니다.” 라고 하시며 스님 조차도 이런 저런 이유로 욕을 먹는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욕먹지 않으려고 한다는 건 욕심이라고 말씀 해 주셨습니다. nbsp 남은 질문들이 몇개 더 있었지만 스님께서 다시 서울로 가셔야 해서 아쉽지만 즉문즉설을 마무리 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님을 따라다니면서 신라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불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내가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누구도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든 내 인생을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 두 번째 자기가 가진 재능을 세상을 위해 써야 합니다. 유용한 곳에 쓸 때 보람이 있습니다. 나중에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내가 참 잘했다.’라는 보람이 행복이 됩니다.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라며 청년들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리고 세상의 행복을 위해 살도록 조언해 주셨습니다. nbsp nbsp 이 말씀을 끝으로 스님의 청년학교포럼과의 일정이 끝났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스님의 많은 조언으로 도움을 얻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청년들과 함께 점심 공양을 드신 후 ‘세월호 사고 추모 행렬’을 위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nbsp 저녁7시부터 동대문 두산타워 앞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연등행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연등행렬이 열려야 하는 날이지만, 최근 많은 국민들을 가슴 아프게 한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추모 행렬로 행사가 급하게 변경되었습니다. 스님께서도 세월호의 아픔에 함께 하고자 다른 일정들을 모두 조정하시고 오늘 추모 연등행렬에 동참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저녁7시부터 두산타워 앞에는 서울 정토회 회원들이 일찍 자리를 잡고, 오전부터 법당에서 봉사자들이 직접 만들어 준 백색 등과 촛불, 추모리본을 참석자들에게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특히 카카오스토리와 희망편지 앱을 통해 스님의 추모 행렬 참석 소식이 알려지면서, 평소 희망편지를 접해오시던 많은 분들이 함께 자리해 주셨습니다. 정토회 회원들과 희망편지 회원들을 합쳐 총 2천여명이 행렬에 참석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추모 행렬의 맨 마지막 꼬리부분에 섰습니다. 스님 뒤로 2천여명의 정토행자들이 노란 리본과 백색 등으로 기나긴 행렬을 이루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동대문에서 종각사거리까지 오직 묵언으로 걷고 또 걸으셨습니다. 출발할 때는 다소 마음이 산란했지만 1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걷고 또 걷는 행렬이 계속되자 산만했던 마음은 차츰 가라앉고 점점 우리들의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2천여명의 대중들이 묵묵히 묵언하며 함께 걷는 모습은 그 자체로 크나큰 애도의 마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nbsp 누군가에게는 사랑스런 딸이었고, 늠름한 아들이었을 고인들을 생각하니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가벼웠던 발걸음은 점점 참회의 걸음이 되어 갑니다. 너무나 그 충격이 크다 보니 너무 남 탓만 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나도 반성하고 되돌아볼 일은 없는가, 시선은 자꾸만 나에게로 향해 갑니다. 사고에 연루된 몇몇 분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조금씩 알아가는 행렬이 되어 갑니다. 행렬을 이어가며 몇몇 분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기도 합니다. 이런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지혜를 모으자고 다짐도 해 봅니다. nbsp nbsp 어느덧 행렬은 조계사에 다다라 끝이 났습니다. 스님께서는 오직 묵언으로 함께 걸으며 세월호의 아픔에 함께 하셨습니다. nbsp 추모 행렬 모습을nbsp영상에 담아 봤습니다. 현장에 못오신 분들도 추모하는 마음으로 함께 보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nbsp nbsp 추모 행렬을 모두 마치고 스님께서는 곧바로 문경으로 향하셨습니다. 내일은 오전8시부터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불교대학 특강수련에서 강의 하실 예정입니다.

2014.04.28. 22,272 읽음 댓글 4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