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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11. 천안, 대전 강연
오늘 오전에는 충남 천안 충남학생교육문화원에서 희망강연이 있었습니다. 이번 강연은 천안정토회에서 준비하였습니다. 천안법당은 작은 규모이지만 60명이 넘는 자원봉사가 활기차게 준비하였고 특히 오늘은 JTS, 에코붓다 등 사회활동 부스를 강연장 주위에 잘 설치하여 강연장을 찾은 분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강연시간 10시 30분이 되자 천안을 비롯하여 인근지역 청주, 아산, 논산 등에서 800여명의 시민 분들이 강연장을 가득 메웠고 스님의 강연을 들으며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nbsp 청중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연단에 오르신 스님께서는 “안녕하세요. 따뜻한 봄날 여러분들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시며 인사를 하신 후 “천안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호두과자, 천안삼거리 흥노래와 충절의 고장 아산이 있지요”하시며 여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좌절하고 절망할 때가 많은데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행복하자는 취지입니다. 강사가 스님일 뿐이지 불교를 전파하러 온 것이 아니라 행복을 전파하러 온 겁니다” 하니 청중들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고 강연장의 분위기가 편안해졌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인생에 정답이 없다고 하시면서 그렇지만nbspnbsp꼭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아무리 성질이 나고 화가 나도 남을 때리거나 죽이지 말라. 아무리 욕심이 나더라도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지 마라.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남을 성추행 성폭행 하지 마라. 행동뿐만이 아니라 말로도 욕설하거나 거짓말 하여 남을 괴롭히지 마라. 술을 먹더라도 취하지는 마라”nbspnbsp 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이 다섯 가지 이외에는 나도 남이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남이 사는 것에 대해서 간섭하지 말고 자유롭게 살도록 놔두세요. 이러면 삶이 조금 자유로워집니다. nbsp nbspnbspnbspnbspnbsp 여러분들은 ‘남 눈치 본다고 자기도 속박 받고, 남 간섭해서 남도 속박시키는’ 이렇게 살아가기가 쉬운데 이제 이 다섯 가지를 잘 살펴보시고 남 눈치 보지 말고 그냥 살고 싶은 대로 사시면 됩니다. 또한 남이 무엇을 하던지 이 다섯 가지에 어긋나지 않으면 간섭하지 말고 제 맘대로 살도록 놔두시면 됩니다. nbsp nbspnbspnbspnbspnbsp 그런데 자기가 자기 자신을 해치거나, 괴롭히거나, 손해 끼치는 경우에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대화를 해서 깨우쳐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깨우치고 못 깨우치고는 그 사람 문제이니 그걸 가지고 간섭하거나 야단쳐서는 안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 이런 정도의 말씀을 하신 후 스님께서는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스님의 왕팬인 남편이 자꾸 지적하고 즉문즉설 동영상을 보라고 강요해서 고민인 여성 분, 자신과의 싸움이 중요한 거 같은데 어떻게 하면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지 궁금한 직장인, 폭력을 쓰는 남편 때문에 괴로운 여성분, 남편 직장 때문에 떨어져 살고 있어서 힘겨운 중학생 딸을 둔 여성분, 8개월 된 장애가 있는 딸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인 아이 엄마, 36년 동안 아픈 딸이 마음을 열고 세상에 나가 쓰임새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싶어서 괴로운 어머니, 우울증과 폭력적인 남편으로 인해 괴로운 여성 분, 친구가 죽은 후 남편이 그 가족을 계속 보살 펴서 괴로운 여성 분 등 여러 분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nbsp 이 질문 중에 “제 신랑이 스님의 왕팬입니다. 모든 일상생활이 스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나쁜 점도 고쳐지고 좋았는데 나중에는 저를 자꾸 지적하고 스님의 동영상을 보느라 저하고 대화도 안 해서 서운합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아까 얘기 했잖아요 스님 동영상 보고 하는 게nbspnbsp다섯 가지에 들어가요 안 들어가요” 하고 질문자에게 되물으시니 청중이 한바탕 웃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질문자가 조금 움츠러드는 목소리로 “안 들어가요”하고 답하니 스님께서도 크게 웃으신 후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그분이 스님의 법문을 듣고 좋아지기는 했는데 어떤 부분을 잘못 들었을까요? 질문자가 하는 행동이 다섯 가지에 어긋나지 않는데 지적을 하면 그 사람이 스님의 법문을 잘못들은 거예요.”라고 답하신 후 질문자에게 또다시 물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그런데 둘 사이에 남편이 하는 행동 때문에 내가 힘들어 해요? 아니면 남편이 내 행동 때문에 힘들어 해요?” 질문자가 “남편 하는 행동 때문에 제가 힘이 들어요.” 라고 답하자 스님께서는 “그러면 내 문제입니다” 라고 답하자 청중들이 가볍게 웃었고 스님께서는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설악산을 보고 잘생겼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왜 이렇게 생겼냐 하며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건 사람문제이지 설악산이 문제가 아닙니다. 남편도 스님 법문 듣고 자유롭게 사는 거예요. 그러니깐 질문자도 스님 법문 듣고 자유롭게 사시면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 ‘남편은 내 인생에 대해서 간섭하면 안 된다’ 이러지 말고 스님의 법문은 누구든지 자기만 들어야 합니다. 남편이 간섭하는 것은 남편의 권리이고 이것을 고치려고 하면 내가 괴로워집니다. 남편 인생에 내가 간섭을 하지 않으면 내가 자유로워집니다. 남편도 내 인생에 간섭을 하면 남편도 괴로운 것입니다.”라고 스님께서 말씀하시자 질문자는 “집에서 남편한테 자주 듣는 말입니다” 라고 답하자 청중들은 크게 한바탕 웃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도 한참을 웃으신 후 “그건 남편이 내 흉내 내는 거니깐. 남편이 좋아지려고 그러는가 보다 하세요. 자전거도 처음 배울 때는 걸어가는 것만 못 하듯이 남편이 지금 자전거를 타려고 연습하는 중입니다. 남편도 완성된 사람이 아니고 법문을 듣고 이해하는 수준입니다. 말로는 되는데 행동으로는 안되니 질문자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그러면 좋아질 거예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질문자는 “네에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하고 답한 후 자리에 앉자 청중들 모두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한테 적용을 하면 약이 되는데 이처럼 부인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면 부인한테는 독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남한테 적용하면 부작용이 생깁니다. 자기한테만 적용해야 합니다.”하시며 강연을 마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오늘 천안강연장인 충남학생교육문화원은 사인회를 하지 못하게 해서 대신 스님께서는 무대에서 관객들의 손을 잡아주고 추첨한 책을 직접 나눠주셨습니다. 그때 어떤 관객은 스님 손에 만원짜리를 돌돌 말아 쥐어 주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봉사자들과 기념 촬영을 한 후 대전으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대전으로 가는 길에 천안삼거리 휴게소에서 서울에서 싸 가지고 온 도시락을 문수팀 행자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점심 공양을 한창 하고 있는데 한 남자분이 찾아와서 스님께 인사를 드리며 자신은 대전지역의 레크레이션 강사인데, 한참 우울했는데, 스님의 동영상을 보고 많이 행복해졌다고 하시면서 언제든지 필요하시면 자신도 봉사를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전국을 다니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스님의 말씀에 힘을 얻고 행복해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가 꿈꾸는 희망세상에 한발한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대전법당에 도착해서 원고정리를 하신 후 7시 30분 대전시청 강연장까지 걸어갔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강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오신 분들이 계셨고 강연이 시작될 쯤에는 빈자리가 없어 계단과 무대까지 앉고서고 하며 1200여 명의 대전 시민 분들이 질문을 하고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스님께서 들어서니 참가자들이 모두 환호와 박수로 환영해주니 스님께서도 봄인사를 하시고 서서 듣고 계신 분들께 무대에 올라와 마룻바닥에 앉아 편안히 듣기를 권한 후 여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밖은 날씨가 따뜻해졌는데 실내에 들어오면 아직은 춥습니다. 이것처럼 밖은 따뜻해 졌는데 마음은 아직 봄이 오지 않은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얼음이 얼어 있는 사람도 있고, 얼음은 안 얼었지만 서늘한 사람도 있고 해서 오늘 저녁은 밖에 봄이 오듯이 마음에도 따뜻한 봄이 올 수 있도록 군불을 지펴볼까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 어떤 군불이냐면 대화를 통해서 진리에 눈을 뜨면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어둡던 마음이 밝아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들 삶에 대한 얘기, 살면서 겪는 인생의 문제를 갖고 좀 자유로운 대화를 해보자는 그런 취지입니다.” 하시며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자신은 자유로운 편인데 남편이 강박증 성향이 있어서 괴로운 사십대 주부, 27살 아들이 고등학교 때 친구 문제로 학교를 그만두게 된 후 우울증으로 괴로운 오십대의 주부, 주말부부로 살며 편안한데 나중에 합치게 되면 괴로울 것 같아서 고민인 결혼 18년 차의 주부, 여동생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질문하신 여성 분, 고락의 윤회에서 낙에만 머물고 싶은 여성 분, 형제지간에 땅 문제로 갈등이 있는 여성 분, 우울증으로 괴로운 50대 여성분등 여러분이 질문을 하였습니다.nbsp?nbsp nbspnbspnbsp 이 질문 중에 “어머니 대신 오늘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어머니는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여동생이 작년에 서른여섯의 나이로 5년간 암 투병을 하다가 사망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간호를 하며 동생을 살리려고 백방으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동생 사망 후에 충격을 받고 지금 봄이 되어서 꽃이 피었는데도 꽃이 좋은 줄도 모르겠고 가만히 있다가도 미칠 듯이 힘이 든다고 하십니다. nbspnbspnbspnbspnbsp 정신과상담을 권유했지만 싫다고 하셔서 오늘 강연에 스님께 질문을 해 보시겠냐고 하니깐 싫다고 하셔서 제가 질문을 해 보겠다고 하니까 그건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 그 방법을 잘 모르겠습니다.” 라는 질문에 스님께서는 “밥 먹고 살면 되요” 하시며 가볍게 말씀을 해주시며 말씀을 이어갔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자식이 자기 앞에 죽은 부모한테 ‘죽은 사람은 죽어도 산사람은 살아야 되지 않냐’ 하며 위로한다고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위로의 말이 귀에 안 들립니다. ‘세월이 약입니다’ 이런 말이 있듯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조금 기다리세요. 물론 탁 깨치면 되는데 지금 이런 상태에서는 깨치기가 어렵습니다.”라고 말씀하시니 질문자는 “어머니가 지금 자리에 계시는데 어떻게 기다리는 게 도움이 될까요?” 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지금 질문이 어머니가 질문하는 것이에요? 아니면 질문자가 질문을 하는 것이에요?” 하시며 “질문자는 이런 상태의 어머니한테 빨리 정신 차리라 하지 말고 질문자는nbspnbsp좀 기다려주세요.nbspnbspnbspnbsp nbspnbspnbspnbspnbsp 자식 잃은 어머니 입장에서는 저럴 수밖에 없다. 얼마나 힘들면 저러실까.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나. 봄이 봄으로 느껴지겠나. 질문자도 자식 잃으면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어머니를 빨리 정신 차리라고 하는 건 자기 욕심입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남 고치기가 쉬워요 어려워요?” nbsp nbspnbspnbspnbspnbsp 질문자가 “어렵습니다. 고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하자 스님께서는 “그러면 가끔 가서 ‘어머니, 밥이나 한 끼 먹읍시다’ 하며 밥 먹고 산책이나 함께 하고, 어머니께서 밥이 목구멍에 안 넘어간다고 하면 ‘그래도 먹어야죠’ 이러지 말고 ‘아이고 그렇겠네요. 제가 어머니 심정 다 모르지만 얼마나 힘들겠어요.’ 라고 동조를 해주면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 세월이 지나면 조금씩 옅어지는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단박에 ‘아 내가 또 빠졌구나, 내 또 편집됐구나’ 하고 깨닫는 건 쉽지 않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그런데 잘 생각하면 그게 도움이 안 된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어요. 내가 이런다고 죽은 딸이 살아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건강이 나빠지면 살아있는 딸들한테 걱정시키니 백해무익한nbspnbsp행동이고 이것을 어리석음이라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음에 빠져있는 상태에서는 그것을 자각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어머니 연세도 있으니까 그냥 두시는 게 좋아요. 어머니를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질문자가 편안해집니다.” 이런 스님의 말씀에 질문자는 “예 알겠습니다.” 하고 자리에 앉자 함께 듣고 있던 청중들은 두 모녀에게 격려의 박수를 크게 보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변을 하고 강연을 마치면서 정리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우리가 살다보면 이렇게 육체적 질병도 오고, 정신적 질병도 오고, 가정에 불화도 생기고, 직장도 그만 둘 일도 생기고, 사람사이에 갈등도 생기고, 갑자기 배우자가 바람을 피워서 청천벽력 같은 일도 생기고 교통사고도 생기는데, 이런 일이 안 생겼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nbspnbspnbspnbspnbsp 그러면 수행은 왜 하느냐? 아무 일도 안 생겨서 편안한 것이 수행이 아닙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행복하게 산다. 이게 수행입니다. 여러분들은 늘 아무 일도 안 생겼으면 하지만 이 세상은 이런 저런 일들이 생깁니다. nbspnbspnbspnbspnbsp 어떤 일이 생겨도 첫째 살아있는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가장 긍정적인 것을 바탕에 두고 사물을 긍정적으로 봐야 몸과 마음에서 봄에 새움이 돋듯이 생기가 돋아납니다. 그런 생기가 돌아야 사람을 만나면 약간의 광이 나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과 예수님을 그릴 때는 후광을 그립니다. nbsp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서 사람들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 사람 대단하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그 사람 진짜 대단하더라.’ nbspnbspnbspnbspnbsp 우리도 어떤 일이 일어나도, 어떤 상황에 처해도 긍정적 에너지를 내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고 자유입니다. 그런 자유로운 삶은 남이 만드는 것은 아니라 내가 만듭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nbsp 강연 후 사인회와 기념촬영을 한 후 대전법당으로 걸어서 이동하니 강연을 듣고 나온 분들이 인사를 하기도 하고 지나가던 한 남학생은 습관적으로 인사를 하다가 법륜스님인 것을 알아보고는 당황하면서도 반갑게 자기소개를 하면서 인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오늘은 대전법당에서 묵은 후 내일 새벽 4시에 경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내일은 경주에서 청년리더십아카데미 학생들과 경주역사기행이 있습니다.
2014.4.10. 서울제주지부 모둠장 교육, 평화재단 기획위
오전 10시에 서울정토회 서초법당에서 전국의 정토불교대학 모둠장들과 천일결사자 모둠장들을 대상으로 한 모둠장 교육이 있었습니다. 정토회 천일결사 8차년 10대 목표 달성의 초석이 될 모둠의 역할을 확립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된 이 프로그램은 스님의 강연과 질의응답 시간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봄기운이 완연한 아침을 가르고 먼 데서 혹은 가까운 데서 모인 160여 명의 모둠장들이 진지하고도 열정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65279nbsp65279nbsp강연을 여시며 스님께서는 현장에서 활동하기 바쁜 와중에 소집된 교육에 참가하느라 모두들 수고가 많다고 모둠장들을 격려하시면서 부처님께서 아난다 존자에게 설하신 내용을 전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어느날 부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아쇼카나무 숲에 이르러 아난다 존자에게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 보이며 말씀하셨습니다.‘아난다여. 이 나뭇가지에 나뭇잎이 많은가, 적은가?’‘매우 많습니다.’‘그러면 내 손에 쥔 아쇼카 나뭇가지에 달린 나뭇잎과 저 숲에 있는 아쇼카 나뭇잎 중에 어느 것이 더 많은가?’‘저 숲에 있는 나뭇잎이 비교할 수 없이 더 많습니다.’‘그렇다, 아난다여. 여래가 이제껏 설한 법이 이 손에 있는 아쇼카 나뭇가지에 달린 잎의 수와 같다면 너희에게 설하지 않은 법은 저 아쇼카 숲에 있는 나뭇잎수 만큼 되느니라.’nbspnbspnbspnbspnbsp아무리 큰 수라 해도 분모가 무한대가 되면 영이 되듯이 총체적 진리에 비하면 붓다가 설한 법문은 아주 적은 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온 갖가지 법을 갖고 계셔서 그것을 설해 주신 게 아니고, 서있는 위치에 따라 서울 가는 방향이 정해지듯 중생의 근기에 따라 법문이 설해진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8만 4천 법문을 설했지만 한 법도 설한 바가 없고 한 법도 설할 것이 없지만은 한량없이 많은 법을 설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법문의 바탕은 무유정법으로nbspnbsp중생의 번뇌 따라 부처님의 법문이 나오는 것입니다. 즉, 중생의 번뇌가 있으니 부처님의 설법이 있고 불교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중생에게 고뇌가 없으면 부처나 보살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같은 이치로 모둠장의 역할 또한 대중의 필요와 정토회의 필요에 따라 생겨나는 것으로서 정토회가 필요한 일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대중의 필요 요구를 정토회에 수렴해주는 중간 매신저의 역할이라고 밝히시며 필요가 다양하면 쓰임새도 다양한데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듭해 상대의 마음을 알아차려서 잘 쓰이는 것이 곧 수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6527965279이어서 불교대학 모둠장의 역할은 크게 마음 나누기 진행, 소통, 수업참여 유도, 봉사활동과의 연결 등이고 천일결사 모둠장은 대자대녀를 돌보는 천주교의 대모처럼 천일결사자의 수행을 도와 정토행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각 역할에 대해 보다 더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셨습니다.매우 중요하고도 새로운 책임을 맡게 되어서인지 전국에서 모인 모둠장들로부터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천일결사 모둠장으로서 기도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지, 불교대학 모둠장으로서 동북아 기행에 불교대학생 우선권을 줄 수 있는지, 4월 20일 불교대학 저녁부 남산 사찰순례와 1920일 경전반 특강수련 일정이 겹치는데 경전반 학생으로 특강수련을 가야 하는지 불교대학 진행자로서 사찰순례에 가야하는지 고민하시는 분, 가을불교대학 재학중이고 특별한 경력이 없는데 회원팀장을 맡아 갈등하시는 분, 천일결사 모둠장은 대부분 정회원이 맡아 큰 무리가 없는데 반해 불교대학 모둠장은 학생 중에서 뽑아 당사자가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메신저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도록 해야 하는지, 모둠원 중에 상을 당하는 경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모색하시는 분, 불교대학 주간부 모둠원이 개인사정 얘기를 하며 저녁부 남산순례 참가신청을 도와달라 청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융통성과 원칙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시는 분, 이중의 멤버십을 가진 모둠원이 타 부서의 봉사에 집중하느라 불교대학 모둠에 소홀해질 경우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 난감해 하시는 분, 불교대학과 천일결사의 초심자를 위한 안내 자료를 법당에 비치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시는 분, 불교대학 저녁부의 경우 학생이 모둠장을 맡아 소임을 맡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고 영상법회를 여법하게 진행하기가 힘드니 행정처에서 이를 고민해주기를 요청하시는 분, 정회원이란 용어 대신 발심행자를 쓰고 이에 대한 안내를 공개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분 등 많은 분들이 실제 현장에서 경험한 과제들을 풀어놓았고 스님께서는 이에 일일이 지혜로운 좌표를 제시해주셨습니다.nbsp nbsp65279nbsp그중 일산법당에서 봄 불교대학 모둠장을 맡고 계시다는 분은 수업 후 나누기를 할 때 질문을 하며 토론을 하려는 모둠원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조심스럽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나누기 중에 질문이 들어오면 원칙을 내세우며 제지하지 말고 나누기 후에 질문해달라고 안내한 다음 나누기 끝나고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답변하고 토론을 원하면 모둠원의 의사를 물어보고 진행하십시오. 단, 모둠장의 역할이 모둠원들의 나누기를 원활하게 하고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니 질문이나 토론의 주제가 나머지 모둠원과 관계가 없거나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면 개인적으로 얘기를 들어주든지 관련 담당자와 연결시켜주든지 질문자의 필요에 지혜롭게 응해주는 것이 좋습니다.”라며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nbsp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께서는 불교대학생이 약 4,000명, 천일결사자가 약 45,000명인 오늘날 모둠장의 역할이 다른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말씀하시며 부담을 느끼지 말고 우리가 세운 서원에 따라 우리 스스로 역할을 수행하되 봉사 소임은 잘 분담하여 한쪽에 과중한 일감이 편중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화롭게 운영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점심 공양을 하시고 오후 2시부터 외부인사들과 3번의 모임을 가진 후, 마지막 손님이 떠나시자마자 7시부터 스님께서는 곧장 평화재단 통일 전략회의에 합류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 회의는 매주 1회씩 꼬박꼬박 벌써 한 달 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처음 이 회의에 합류하신 분들은 누구라도 아마 이렇게까지 고강도로 집중력있게 논의를 끌고 가게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처음에 서로 갖고 있던 문제의식들을 공유하고 큰 방향에서 이렇게 갔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낼 때만 해도 구체적인 그림을 어떻게 그려갈지 약간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새로 사업별로 초안이 만들어지고, 담당자도 정해지면서 일을 추진할 수 있는 토대가 하나둘 만들어지자 점점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회의를 직접 주재하시면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기도 하고 의견을 내기도 하셨습니다. 숲 전체를 보시면서도 나무 하나 하나의 디테일에 강한 스님 덕분에 회의가 매우 짜임새 있게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렇다보니 회의가 끝날때쯤 스님께서 그럼 다음 회의를 잡읍시다.고 하면 다들 자연스럽게 다이어리를 펴시거나 스마트폰 플래너를 확인하십니다. 처음엔 12번 참석하면 되겠지 싶었던 분들은 뭔가 점점 늪으로 빠져드는 기분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늘 회의는 지난 회의 이후 실무자들이 몇 차례 수정한 기획안을 집중점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목이 과연 적당한지, 어떤 사람들이 담당하는 게 좋을지, 세세하게 하나 하나 점검하다보니 아직 논의해야할 일들은 많은데 시간이 훌쩍 밤 10시를 넘고 말았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여느때처럼 와 빡세다 하면서 다들 훠이훠이 집으로 향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끝나고서도 스님께서는 남아서 몇 분과 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모두 가신 뒤에도 뒤늦게 업무를 처리하시다가 밤 11시가 훨씬 넘어서 사무실을 나서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회관에는 뒤늦게 들어온 실무자들이 씻는다고 왔다갔다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정토회관의 밤이 이렇게 부지런히 새벽으로 향합니다.내일은 천안, 대전 강연이 있습니다.
2014.4.9. 세계를 보는 눈 3강- 인류의 출현과 진화, 4강-문명의 발생과 흥망성쇠
2014년 4월 9일 수요일. 서초법당에서 ‘세계를 바로 보는 눈’ 3번째, 4번째 강의가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전에 lt인류의 출현과 진화gt라는 제목으로 인간종의 출현, 구인류, 신인류, 문명의 발생 원리에 대하여 강의해주셨습니다. 두시간 남짓 강의가 이어졌지만 400여 대중들이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함께 해주셨습니다.nbspnbsp65279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불교사상의 핵심인 불이사상에 대한 말씀으로 운을 떼셨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밖을 내려놓고 안을 봐라’했더니, 이제 안에 치우쳐 밖을 무시해 왔다며, 안과 밖이 둘이 아님을 강조하셨습니다. 마음 공부 뿐 아니라 물질, 우주, 생명, 인간종, 인간문명의 작동 원리를 같이 살펴 가야 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불교사상의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은 불이사상입니다. 다르지 않다. 또는 둘이 아니다. 육체정신, 몸마음, 물질에너지, 시공, 선악, 꽉찬 것텅빈 것, 옳고그름, 늘어남줄어듦이 둘이 아니고,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이런 말도 있습니다. 경험적으로는 둘인데 실제로는 둘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천하 만물이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연기법, 이것이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서 얻은 깨달음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도 생기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단독자라는 실체가 없습니다. 이걸 무아라고 하지요. 이것과 저것의 관계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이걸 무상이라고 합니다. 제행무상 제법무아가 존재의 실상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경험적 인식은 이것과 저것이 다른데, 실제로는 이것과 저것이 다르지 않습니다. 깨달음은 환각, 착각에서 벗어나 실제 세계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연기, 무상무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깨달음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은 이번 특강을 전문적인 강의가 아니라 학습동기유발 차원으로 시작했는데, 스님도 잊어버렸던 용어와 연대를 되짚으며 가다 보니 뜻하지 않게 내용이 어려워졌다고 하자, 대중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웃었습니다. 그래서 스님도 아는 것만 얘기할테니 자세한 것은 도반들이 책을 더 찾아보면 좋겠다고 하시고는, 먼저 지난 주에 배운 우주와 물질, 생명에 대한 내용을 연기법과 연결하여 다시 정리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일즉일체다즉일,nbspnbsp하나가 곧 일체이고 많은 것이 곧 하나다. 우주가 어떻게 형성 되어 있는지를 봐도, 여럿이 모여서 하나가 되고, 다시 또 그렇게 수없이 연관 되어 있습니다. 미시세계로 가도 마찬가지에요. 분자, 원자, 핵, 전자, 소립자, 쿼크에서 더 들어가 보면 에너지와 물질의 구분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물질이 변해서 에너지가 되고 물질이 그대로 에너지라는 겁니다. 이건 아인슈타인의 공식 Emc2에서도 나옵니다. 우주 생성의 시작점에서는 에너지가 물질화되었습니다. 물질은 없는데서 생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물질에너지, 입자파동이 둘이 아니에요. 입자와 파동이 서로 다른 것 같고, 시공이 서로 다른 것 같다고 하는 우리의 ‘상식’이 ‘진실’을 보는데 장애가 됩니다. 지난주에 이러한 우주의 원리에 대해 공부했고, 저녁반에서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분자 생물학이 발달하면서 유전자의 구조를 발견하게 되고 유전자의 변형으로 인공적 돌연변이를 만들기도 한다며 유전작 조작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들려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요즘 보면 한 가지에 세 종류의 꽃이 피는 그런 꽃이 나오죠. 또, 옥수수나 콩에 유전자 조작을 하는 것도 있어요. 이게 식량 생산의 획기적인 발전일지,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부작용을 낳을지 지금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모르니까, 위험한 걸 모르고 지금 좋다고 할 수도 있고, 아무 문제도 없는 걸 모르고 난리를 피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문명의 발전을 가져올지 큰 재앙을 가져올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아요. 핸드폰의 전파도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아직은 알 수 없어요. 건축자재에서의 석면이라던지, 냉장고의 프레온 가스라든지 처음에는 엄청 좋은 걸로 생각했는데 얼마 못가서 프레온 가스는 오존층을 파괴한다 해서 환경재앙의 원인이 되고 있고 석면도 건강을 해친다고 해서 지금 뜯어내고 있어요. 뜯어내는 것도 그 과정에서 공해로 인해 병이 든다고 조심스러워 해요. 플라스틱, 나일론도 마찬가지에요. 유전자 조작 같은 것의 위험이 공포영화에서 많이 나오죠. 유전자 조작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짧은 기간안에는 알 수 없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제 스님은 오늘의 본격적인 주제인 인간종, 즉 생물학적인 인간에 대해 얘기로 이어나가셨셨습니다. 고생대 캄브리아기 생명의 빅뱅 이후로 수백만 종의 생명이 갈래갈래 갈라져 진화를 거듭해 오면서 우리 인간종이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을 짚어주셨습니다. “지구상에 있는 수백만종의 생명이 나름대로 각각 진화해왔습니다. 각각의 종은 최선을 다해 생존해 온 것이고 현존하는 생물은 다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요. 조상 찾아 올라가다보면 출발점에서 많이 변한 게 있고, 덜 변한 게 있을 뿐입니다. 어류, 양서류의 조상이 되는 척추동물에서 어류가 나오고 양서류가 된 것이죠. 어류를 오래 두면 양서류가 되는 게 아닙니다. 현존하는 단세포 생물도 나름대로 진화해 온 것이에요. 서로 다른 생물들이라도 밖에서 보면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유전자 정보로 보면 별 차이가 없습니다. 사람하고 침팬지는 98가 똑같아요. 인간 종 하나만 보면 작동원리가 굉장해서 누가 만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생명의 긴 역사에서 보면 인간 종은 최근에 생겨난 것입니다. 생명 연대 측정은 주로 화석이 발견되는 지층의 연대로 계산합니다. 지구상에 나타났던 모든nbspnbsp생물종이 아직까지 다 살아있는 것은 아니에요. 진화하고 생존하고 멸종하고 그러다보니까 그 중 한 종의 번식 속도가 커지면 지구를 점령하다시피하고 다른 종은 사라집니다. 현재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을 크게 분류를 할 때는 동물과 식물로 분류합니다. 동물계 38목 가운데 3개 목을 제외하고는 전부 지금부터 5억 4000만년 전 고생대 캄브리아기 때 나타났다고 합니다. 우주의 빅뱅처럼 생명의 빅뱅이라고 하지요.nbspnbspnbspnbspnbsp인간은 척색동물문 척추동물아문 포유강 영장목에 속합니다. 척색동물은 5억 4천만년전에 생겨났어요. 이후 고생대에 3억년 간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 동물은 삼엽충입니다. 중생대에 1억년 간 가장 번성한 동물은 공룡이고요, 포유류는 2억 4천만 년 전에 등장했는데, 6천 5백만년 전 신생대로 들어오면서 공룡이 전멸하고 나서 지구의 주류 동물이 되었어요. nbspnbspnbspnbspnbsp포유류의 특징은 따뜻한 피, 체온유지를 위한 털이 있고, 새끼를 태로 낳아 젖을 먹인다는 것이에요. 그 다음 포유류 가운데 원숭이가 속한 영장류가 나옵니다. 이러한 영장목 중에는 하등영장목이 있고, 고등영장목이 있는데 우리는 고등영장목에 들어갑니다. 영장목 중에서 사람과 비슷한 쪽의 원숭이와 먼 원숭이가 있는데, 침팬지는 우리와 비슷한 고등영장목이고 여우원숭이는 우리하고 다른 하등영장목에 속합니다. 고등영장목 중에 주로 신세계에 있는 것이 있고 구세계에 있는 게 있어요. 이때 신·구 대륙이 분리되면서 동물의 이동이 힘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원숭이 중에서 사람 계열인 호미노이드가 있습니다. 긴팔원숭이, 오랑우탄, 침팬지가 들어가지요. 다른 영장류와 어떤 차이가 있느냐하면 학습능력이 생겼어요. 모방하고, 따라 할 줄 안다는 겁니다. 이건 문화에요. 정신작용이에요. 물론 개도 정신작용이 있습니다. 정신작용이 있으니 훈련이 가능합니다. 호미노이드에 속하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아프리카에서 발견되었는데, 300만년에서 500만년정도 된 것입니다. 불안정하게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 도구를 사용하게 되고 뇌용량이 커졌어요.nbspnbspnbspnbspnbspnbsp우리 인간은 호모속이에요. 호모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호모에 속하는 것은 직립원인이라고 합니다. 이 때 원자는 원인입니다. 우리 인간의 조상이에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아프리카에만 발견되었는데 원인은 지구상 곳곳에서 화석이 나왔어요. 그중 오래된 것이 아프리카 쪽에서 나와요. 그래서 이게 각자 다른 지역에서 진화해 왔느냐, 아프리카에서 진화되어 이동해 왔느냐 두 학설이 팽팽합니다. 그중 ‘아프리카 단일기원설’이 조금 더 힘을 얻고 있어요. 이렇게 해도 약간 모순이 있고 저렇게 해도 모순이 발생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호모 하빌리스는 직립보행을 했을 뿐만 아니라, 도구를 썼어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전기 구석기, 호모 하빌리스는 중기 구석기라 할 수 있어요. 직립보행 자세가 빨라지고, 도구가 정교해지고, 뇌구조가 더 커졌어요. 사람이 기다가 급하면 서서 뛰게 되지요? 직립보행하게 되면 에너지 소모도 적게 되고 행동도 빨라져요. 손이 자유로워지니 도구를 쓰면서 손이 발달합니다. 손 가운데서도 엄지손가락이 굉장히 발달을 하게 되요. 그렇게 되니 뇌가 더 커지게 되었어요. 소위 말하는 자바원인, 북경원인은 벌써 불을 사용했어요. 도구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수렵을 했습니다. 신체적으로 똑바로 서고, 뇌구조가 확장되고, 도구는 좀 더 모양 있게 깨서 썼고, 집단적으로 대응도 하는 존재들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러다가 20만년전쯤 새로운 인간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했어요. 호모 사피엔스 중에는 구인과 현인이 있습니다. 구인에 속하는 네안데르탈인, 신인에 속하는 현생인류의 조상인 크로마뇽인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구인과 현인이 지구상에 같이 생존하다가 갑자기 3, 4만 년 전에 구인이 멸종을 해서 현재 현생인류 단일종만 남았습니다. 현인은 구인의 진화인가, 현인과 구인이 갈라진 것인가, 같은 종이니 수정이 가능한가, 다인종기원설과 단일기원설 모두 문제가 있는데, 다인종기원설을 따르면 지금 있는 인종 중에 인종 차별이 발생할 수 있어요.nbspnbspnbspnbspnbsp후기 구석기는 화덕도 쓰고 무덤도 만들었어요. 정신작용에 의해 형성된 문화가 발생했습니다. 동굴벽화도 나오고, 뼈와 뿔을 사용하고 치장도 하고 취락, 교역도 하는 것이 후기 구석기인데, 후기 구석기는 현생 인류들의 초기 모습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드디어 현생인류가 출현하면서 인류의 역사가 육체적 진화단계에서, 문명의 진화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스님은 고구마에 묻은 흙 씻어먹기와 남의 것 뺏어먹기라는 아주 사소한 정신 작용의예를 통해 문명의 발생과 전파의 원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12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인간은 육체적으로 거의 동일한 인간종입니다. 하드웨어는 변함이 없고, 소프트웨어가 빠르게 발전한 거예요. 추우면 몸이 변해서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데, 환경을 개조해서 적응을 하기 때문에 신체가 바뀔 일이 없어졌어요. 이후부터는 빠른 속도로 문화적 진화가 이루어졌습니다. 1만 2000년 전 부터 이 이제 인류문화사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에요. nbspnbspnbspnbspnbspnbsp인간 기계 자체는 20만 년 전과 지금이 기본 사양이 비슷합니다. 만약 현생인류를 태어나자마자 소나 돼지 우리에 키우면 생물학적으로는 사람인데 그 사람의 행동은 소나 돼지와 비슷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오히려 동물을 훈련시킨 것보다 못하게 돼요. 반면에 보르네오 원시부족의 석기 수준의 부족 아이를 바로 한국에 데려다 키우면 한국 사람이랑 똑같아져요. 육체는 거의 비슷합니다. 누구와 결혼하든 인간 종으로서 동일하기 때문에 동일한 인간 종을 낳게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는 ‘내 아들’이라고 하면, 프로그램의 비중이 클까, 내 생물학적 비중이 클까요? 자식의 유전자 감식 결과를 놓고 법정 싸움까지 가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이건 인간을 생물학적 수준으로 보는 것이에요. 판단 기준이 동물 수준의 판결입니다. 사람이 되는 것, 내 아들이 되는 것은 프로그램이 중요합니다. 생물학적인 내 자식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데려와서 내가 키우면 내 자식이고, 내가 내 자식이라고 인식하면 내 자식입니다. 일체유심조라고 정신작용에 대한 이해를 하면 생물학적인 내 자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1만 년 전부터 급속도로 진화해온 것은 인간생체의 진화가 아니고 문명의 진화에요. 사유체계가 빠른 속도로 변해온 것이에요. 이것이 인류문화사입니다. 인류문화사는 도구의 측면에서 신석기부터 시작합니다. 구석기까지는 생물학적인 인간종의 진화가 중심이었고 거기에 ‘문화적 요소’가 함께 발달해 오다가 신석기로 들어오면서 신체적 진화보다는 문화적인 변화가 빠른 속도로 생겨났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생체적 진화에서는,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일어납니다. 이때 변이가 일어나는 것 중에는 환경적 변화에 적응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어요. 변이가 환경에 유리하도록 변하느냐가 아니에요. 변이는 중립적입니다. 변이는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불리하면 자연도태 됩니다. 변이가 일어났는데 갑자기 지구의 환경이 변했다 하면 변이가 된 것 중에 환경변화에 적응한 것이 점점 개체수가 늘어나 종의 진화가 일어납니다. 변이된 종자가 번식을 하게 되고 새로운 종으로서 나타나고 행동양식도 나옵니다. nbspnbspnbspnbspnbsp문화적 진화는 달라요. 유전자는 그대로이고 환경에 적응하는 행동양식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에요. 새로운 행동양식이 환경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면 전파가 될 것이고 아니면 소멸할 겁니다. 예를 들어 10명이 사는데 각자 노력해서 먹고 살아요. 그런데 어떤 한사람이 남의 것을 훔쳤어요. 효과적이죠. 새로운 발견을 한 거예요. 이건 유전자의 변화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변화예요. 그런데 이게 다른 사람에 전파가 될 수 있을까? 있어요. 그러다가 10명이 다 배워버리면 모두에게 불리해집니다. 전파력이 없어져요. 문화라는 게 이렇게 형성됩니다. 그래서 공동체에서는 공익적이지 않는 것은 전파력이 없어요. 왜냐하면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빼앗아 먹는 것이 유전자로 말하면 왜 우성이 못 되느냐. 공동체 안에서 지속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웃 무리에 가서 빼앗아오면 우리 안에서는 전체 이익이 됩니다. 그러면 전파되지요. 이 집단에서는 빼앗아먹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형성이 되요. 그렇게 되면 두 무리 사이에 투쟁이 생기겠죠. 투쟁이 생기고 이기고 지는 것이 빨리빨리 반복이 되면 뺏어 먹는 문화가 우성이 되요. 뺏어 먹는 것이 이기고 또 이기고 또 이기면 이것의 문화가 정착이 되고, 상류층에는 뺏어먹는 것이 가치로 정착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인류문화에 계급이 발생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오늘 여기까지 우리는 우리의 신체구조를 갖는 종이 어떻게 왔느냐하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 갑자기 정신작용이 생겨난 게 아니고 정신작용은 이미 원시 때부터 있었습니다. 기본 생물에서부터 있었어요. 원시생물인 유글레나에 전기 자극을 한번 주고 두 번 줬을 때 다른 반응을 해요. 학습능력이 있는 거예요. 생물학적인 반응이긴 하지만 학습능력이 있다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식으로 개를 훈련시킵니다. 이런 건 ‘학습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학습’이라는 것은 모방, 따라 배우기예요. 이런 건 정신작용에 속하는 겁니다. 육체적 돌연변이처럼 정신문명에서도 우연히 뭘 하나 발견해서 좋아 보이면 다른 사람에게로 전파가 돼요. 발견과 전파가 문명의 핵심이다. 고구마를 캐서 그냥 먹다가 물에 씻어 먹는 방법을 발견 했어요. 고양이와 개는 안 씻고 그냥 먹잖아요. 씻어 먹는 게 좋으니 계속 씻어 먹게 된다. 발견하면 옆 사람이 따라 배우기를 합니다. 좋아 보이면, 즉 효율이 높으면 전파력이 커져요. nbspnbspnbspnbspnbsp발견 속도가 빠르고 전파 속도가 낮으면 문명의 차이가 생기고, 발견 속도가 전파 속도보다 느리면 문명의 차이가 없습니다. 비슷해져요. 그런데 발견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저기까지 가는데 오래 걸리면 이쪽과 저쪽은 문명차이가 생겨요. 그래서 선진문명이 생기고 후진문명이 생기는 겁니다. 이게 차이가 나면 경쟁에서 뒤지니까 통합을 해나가면 전파속도가 빨라져요. 다시 문명이 전 세계로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전 세계 문명을 볼 때 차이가 날 때가 있고 비슷할 때가 있습니다. 구석기 때는 차이가 없어요. 발견 속도보다는 전파 속도가 빨랐어요. 단위 면적에 인구 밀도가 높으면, 즉 취락, 도시가 형성되면, 발견 속도와 전 파속도가 같이 높아지고 문명이 발달합니다. 발견 속도보다 전파 속도가 빨라지면, 즉 교통 통신이 발달하면 지역간 문명 차이가 줄어들어요. 현재 한 나라 안에서 서울농촌 간보다 각 나라의 수도들은 비행기로 연결되어 있어 전파속도가 빠르니 비슷합니다. 산업화초기에는 일부지역의 발견속도가 빨라서 그 지역의 문명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지역간에 문명의 차이가 많이 나서 선진 문명지역이 후진 문명지역을 식민지로 삼아 착취를 했지요.” nbspnbspnbspnbspnbsp우주와 물질이 동일한 시원을 가지고 물질과 에너지가 하나인 상태에서 출발했다가, 넓은 우주공간에 물질이 생성되고 어느새 고도의 설계도에 따라 물질이 결합되는 생명작용을 보이고, 끊임없는 변이를 통해 갈래갈래 갈라져 생물학적 인간 종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생태적 진화가 정신적 진화 단계로 넘어가는 단계에, 현생인류와 하드웨어가 똑같은 최초의 인류가 어떻게 문명을 이루어 나가는지에 대해 극히 미시적인 관점에서 그 정신작용을 들여다보니,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고 연기가 중복되어 있다는 스님의 말씀이 큰 울림으로 와 닿았습니다. 스님이 매 강의 때마다 첫 수업 때 시작한 우주와 물질의 이야기부터 다시 시작하고 다시 꿰어주시는 것은 왜 그런 것인가 했는데 이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어서 중간에 뚝 잘라내서 볼 수 없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수평적, 공간적 연관 뿐 아니라, 한 사람을 통해 들어가서 연구해도 개인, 가족사, 민족사, 인류사가 들어 있다”고 하시며 시공을 쥐락펴락하시며 ‘연기’를 깨닫게 해주시는 스님의 깊은 가르침에 대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전 강의를 마치고 점심 공양을 드신 후 3시에는 숭실대에서 한경직 목사의 삶을 기리는 기념 강연회의 참석하시고 돌아오셔서 저녁 7시30분부터는 저녁강의를 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저녁 7시 30분부터 진행된 저녁강의는 제4강 ‘문명의 발생과 흥망성쇠’에 대한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일찍부터 많은 분들이 오셔서 400여분의 청중이 법당을 빽빽하게 채워나가며 스님의 강의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저녁 법문은 고대문명 발상지를 기준으로 문명의 발달과 교류, 충돌 그리고 흥망성쇠를 설명하시며, 현재 우리는 어떤 위치에 있으며 어떤 가능성을 봐야하는지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문명의 시작은 신석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집단취락을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수렵과 채집만 하는 게 아니라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며 정착을 하게 되었으며, 도구 면에서 돌을 갈아서 잘 다루게 되었고, 다양한 토기 종류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문명이 시작된 이래 1만1만5천의 역사에서는 신체 변화는 크게 없고 문명이 급격하게 발달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전에 공부한 인류의 진화는 컴퓨터의 하드웨어 발전과도 같은 단계였던 겁니다. 신체의 진화과정인 하드웨어의 진화는 그 정도에서 멈추고, 이제는 소프트웨어가 빠르게 발전하는 식으로 변화한 것이 우리의 인류문화사, 인류문명사의 진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자연환경이 변했을 때 그 환경에 적응해서 잘 살아남기 위한 신체구조와 유전자적인 변화가 신체의 진화라고 본다면, 문명의 진화는 그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행동양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행동양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인간의 의식에 따른 행동의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문명이라고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현생인류 이전에도 문명의 발달이라고 할 만한 것은 있었지만 돌을 그냥 쓰고 깨어 쓰고 조금씩 정교하게 깨어 쓰는데 수백만년 동안의 긴 시간에 걸쳐 더디게 변화해 왔습니다. 그러나 문명의 급격한 발달은 1만1만5천 년 전부터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전 세계에 여기저기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물을 조사해보면 구석기를 쓴 도구의 모양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비슷하면 문명의 동질성이 있는 것이고 다르면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문명의 전파에 있어서는 앞에서 언급한 효율성과 더불어 공익성도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에 대해 쉽게 설명해주십니다.65279nbsp65279nbsp“처음에는 숲속에서 수렵하는 것에서 가축을 키우는 목축이 형성되었고, 음식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에 수로를 건설하여 인위적인 재배 즉 농업이 발달하게 됩니다. 이보다 더 효율적인 다른 집단의 것을 훔치거나 약탈하는 것입니다. 싸움에 이기기 위해 남의 것을 약탈하기 위해 무기를 정교하게 만들거나 작전을 짜서 다른 집단과 싸워 이기는데 집중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상대가 반격을 못하도록 성인 남성은 죽이고 힘없는 여자와 어린아이는 데려와 노예로 삼게 됩니다. 이렇게 통합된 부족안에 지배계급과 노예계급의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 4대문명 발상지로는 나일강변의 이집트 문명,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강 유역에 인더스 문명, 황하강 유역의 황하문명이 있습니다. 최근에 새로 발견된 요하유역의 요하문명을 5대 문명발상지로 포함하며, 신대륙에서 발견된 멕시코지역의 마야문명, 페루지역의 잉카문명까지 7대 문명발상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런 문명발상지 분포를 보면 하나같이 산림지대가 아닌 상대적으로 건조하고 척박한 초원지대에서 시작했는데 이유가 뭘까요? nbspnbspnbspnbspnbsp바로 도구 때문입니다. 돌칼, 돌도끼 등 석기로는 산림을 벌채할 수가 없었고, 초원지대만 경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향후 철기문화가 도래하면서 무기뿐만 아니라 생활도구까지 철기로 보급된 후에야 나무의 벌채가 가능해졌고, 이에 따라 산림지역으로 문명이 이동할 수 있게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 이집트 문명이 일어난 나일강 유역은 건조하고 강의 범람으로 생겨난 비옥한 토지를 기반으로 집단적으로 생활하는 취락이 형성되면서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되었습니다. BC 3,000년경 왕국이 출현하고 고대문명을 이뤘지만, 후기에는 아시리아, 페르시아의 침입과 로마의 침입으로 속주으로 전락하기까지 3천년동안 발달된 문명을 이루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현재로는 세계문명의 발생을 연대순으로 본다면 4대 문명의 발생이 독자적이라고 볼 수 있고 그 중에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가장 앞서고 있습니다.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이라 여러 교류가 많다보니 문명의 발달이 다른 데보다 뛰어났다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최고의 문명이 수메르 문명이고, 앗시리아 문명이 되고 그러면서 종족이 바뀌면서 문명의 흥망성쇠를 거듭하게 된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인더스 문명은 영국이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세계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모헨조다로와 하랍파라고 들어봤죠? 철도공사를 하다가 발견이 됐어요. 이렇게 발견이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발견된 도시가 100여개나 됩니다. 동서로 1,500키로 범위에 번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유물유적이 있지만 아직도 문자해독이 안 되고 있습니다. 역사가 없으니 왜 갑자기 망했는지는 모릅니다. nbspnbspnbspnbspnbsp황하 유역에 뛰어난 문명이 있었는데 세계 4대문명 가운데 제일 연대가 늦습니다. 대부분 문명이 7,0008,000년 전이고, 고대 왕국이 성립된 것이 5,000년 전인데, 중국의 은나라는 3천 700800년 전이므로 다른 문명에 대해서는 1천년 정도 뒤지는 것입니다. 황제 헌원은 중국 문명의 시조라고 알려져 있지만 전설로만 존재했습니다. 태평성대라고 하는 요순의 시대가 끝나고, 우황제가 세운 하나라가 있는데 여기까지는 아직 전설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그 다음이 상나라인데 신화로 간주되다가 은허유적이 발굴되고, 갑골문자와 청동기 물품이 많이 나오면서 상나라는 역사 시대로 되었습니다. 그렇게 발굴하다보니 은나라 유물 아랫부분에 더 오래된 유물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은나라는 지금으로부터 3,0003,800년 전인데 4,0005,000년 전 유물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게 하나라와 상나라의 유물로, 은나라 이전에 이미 문명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그런데 바로 최근에 요하 상류지역에서 엄청난 유물과 유적이 발견이 됩니다. 이게 황하 문명보다 1,0002,000년 앞서는 문명입니다. 중국에는 여기에 아무런 기록이 없는데 유적과 유물이 나온 것입니다. 요하지방은 만리장성 동북부 지역으로 이들 지역은 중국 역사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국 역사에서는 만리장성을 기준으로 북쪽은 오랑캐의 땅이라고 했고, 북경 이남만 중국 땅이라고 했습니다. 만리장성 이북을 중국 한족이 지배한 역사는 두 번 밖에 없습니다. 한번은 한나라 때이고 한번은 명나라 때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입니다. 마오쩌뚱이나 주은래조차 일제 때 독립운동하던 우리 선조들에게 당신들 땅이니 잘 싸우라고 할 정도로 그들 의식에 만리장성 이북은 자신들의 땅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그러다보니 발견된 유물유적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을 할 수가 없었는데 어쨌든 이것을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게 바로 동북공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하문명을 동북공정으로 중국역사에 편입시키게 되면 요하문명이 동쪽으로 이동해서 단군조선으로 이어지게 되는 우리 상고사는 당연히 중국의 역사의 일부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여기서 발견된 유물유적은 7단으로 이루어진 광개토대왕릉같은 피라미드식 무덤이고 여신전도 발견되고 옥으로 만든 수많은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발견된 지역이름을 붙여 홍산문명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우리로 말하면 배달문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집트 문명, 메사포타미아 문명과 연대를 버금가는 문명입니다. 여기에는 청동기가 5천 년 전에 제작된 것도 나옵니다. 환인에게서 환웅이 천부인 3개, 즉 청동검, 청동방울, 청동거울등 청동기를 받았다는 얘기는 환웅시대가 청동기를 다룰 수 있는 선진 문명이었다는 뜻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 중의 일파가 배달문명 이후에 고조선이 설립되면서 고조선의 일파가 동쪽으로 온 것이 만주지역으로 요동지역으로 옮겨와서 평양까지 온 것이고, 서쪽으로 북경 아래로 내려간 것이 은나라입니다. 더 연구해야겠지만 은나라는 한족이 아니고 동이족입니다. 배달문명의 일파가 들어가서 중국의 땅에 제국을 형성한 것이 은 제국입니다. 은나라가 멸망할 때 일부 신하들이 다시 조선으로 귀환하는 많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백이숙제라고 들어보셨죠, 주나라와는 다른 민족이다 보니 그렇게 산에 숨어들어가서 굶어 죽어갔던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요하문명이 발견되면서 중국의 역사, 동아시아 역사는 새롭게 연구되어야 합니다. 중국에는 유물은 있으나 역사가 없고 우리에게는 역사는 있으나 유적, 유물이 없으니까 한·중이 함께 연구 하면 훨씬 더 전모를 빨리 규명할 수 있고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습니다. 신전이 나오는데 여자 신전이며 여신의 손이 곰 모양입니다. 딱 들어보면 어때요? 단군신화에 나오는 웅녀가 생각이 나죠. 그러나 중국에서는 해석이 안 되죠. 그러니 이런데서 문명사를 연구할 때는 서로의 역사에 대해서 같이 봐야지, 지금의 민족주의적으로 지나치게 과거를 접근하는 것은 멈춰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 모든 것은 인류의 문화유산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본에서 발견된 유물하고 동일한 것이 가야지역에서 발견됩니다. 일본사람은 일본에서만 보다가 가야지역에 발견되니 가야가 일본의 식민지였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물 제작의 다양성과 시대를 보면 가야가 앞서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지금 민족주의 국가주의 관점에서 해석하려고 하니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nbsp문명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오게 됩니다. 변두리 지역이 문명을 받아 들여서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됩니다. 전자가 쇠퇴하면서 변두리 지역이 다음 문명을 계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nbspnbsp먼 곳은 전파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다음 문명을 계승할 수 없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중국은 진한시대를 거치면서 고도의 발달된 문명을 만들어냅니다.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오면서 우리의 문명이 중국에 뒤쳐지게 됩니다. 그 이전에 2천년 앞섰던 게 2천 5백년을 뒤처진 상태로 뒤쳐진 상태로 있다 보니 우리가 중국문명의 아류같은 생각이 들지만 역사를 통틀어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양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중국을 앞서갔잖아요. 통일만 되었으면 상당기간 앞서가면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는데 분단된 상태로 에너지를 낭비하기 때문에, 지금 중국의 발전 속도를 보면 1020년만 지나면 오히려 우리가 밀리면서 또다시 중국의 변방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nbspnbsp65279nbsp65279nbsp중국이라고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중국이 아닙니다. 중국은 현재 중국 435645104540안에 세워진 나라를 전부 중국역사라고 편재해 버리니까 역사도 엄청 풍부해지고 길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원나라를 중국 역사라고 하고, 청나라, 고구려도 중국역사라고 하니 우리가 보면 말도 안 되지만 저 사람들은 하나도 이상한 게 아닙니다. 명나라 시대는 굉장합니다. 한때는 세계 전체 부의 60정도를 가졌습니다. 지금의 중국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대부분 수리한 것입니다. 그런 거대한 명나라 옆에 조선이 붙어있었기 때문에 명나라를 부모국으로 섬겼던 것입니다. 힘에 눌려서 굴복한 게 아니라, 자발적 추종을 한 것입니다.nbspnbsp명나라에 대한 경도된 생각이 결국 청나라에 패해 청의 속국이 되었고, 청의 지배를 받다보니 일본이 일어나는 것을 읽지 못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게 되는 이런 과정을 겪었잖아요. nbspnbspnbspnbspnbsp제국이 유지되는 건 관료제도 때문이고, 망하는 것도 관료제도 때문입니다. 사물에는 언제나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가 존재합니다. 사물의 양면성, 이것을 우리는 항상 잘 보지 못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인류사를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은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흥망성쇠, 성주괴공을 거듭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정신만 차리면 기회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가운데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었습니다. 이 작은 승리의 경험을 딛고 일어서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실현해가며 통일한국을 이루면, 동아시아 공동체의 주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새로운 아시아 시대를 여는 포부가 우리에게 있어야 우리 스스로도 힘이 있게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어떻게 문명이 발달하고 쇠퇴하는지, 이웃문명이 어떻게 성장하고 쇠퇴하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 우리를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오늘날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문제로 정체되거나 쇠퇴하는 것인지,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지속적인 성장을 하게 될 것인지 등등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합니다. 그래야 현실을 더 정확하게 볼 수 있고 미래를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세계를 보는 눈 3, 4강을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모둠장 교육에 참가하실 예정입니다.nbsp65279nbsp오늘 오전 강의는 성동법당 배재휘님이, 오후 강의는 서초법당 저녁반 장호일님이 정리해주셨습니다.65279nbsp
2014.4.8.JTS 실무자 회의, 문수팀 나누기등
9시부터 스님께서는 법당에서 수행정진하고 있는 문수팀행자들과 함께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주 함께 동행하면서 자기에게nbspnbsp얼마나 깨어있고, 자기 살핌이 있었는지 마음 나누기를 주재하시고, 행자들의 마음나누기가 끝나자 법사로서 부족한 언어습관과 수행자로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태도의 중요성을 지적하셨다. 또 사건이 생겼을 때, 자기 중심을 잡되 경직되지 않게,nbspnbsp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지혜롭게 일처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찬찬히 짚어주셨습니다.nbspnbsp 이어서 10시부터는 JTS 실무자들과 한달동안 진행된 일들을 공유하고 현안에 대한 회의가 있었습니다.nbsp nbspnbsp 스님께서는 JTS 모든 자원활동가들이 서로 하는 일들을 잘 공유해야 합니다. 해외사업도 한국사무국에서 현장의 상황과 자금의 흐름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해외사업장을 잘 이해하되 카톡 등 SNS를 통해 행정업무를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nbspnbspnbsp현장에서 개선할 점 등을 원칙대로 안내하되 일하는 사람들이 신심나게 일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지원해줘야 합니다. 스스로 몸에 배고 자각을 통해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월례모임을 할 경우 업무별 공유가 중요합니다. 재정을 하는 사람도 사업과 홍보 등을 잘 알아야 하고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재정과 회원관리 등의 업무를 잘 알고 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해외사업 보고도 함께 해서 간단한 공유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해외사업 진행상황도 간결하고 편안하게 일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조금 더 세심하고 책임감있게 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라고 하시며 바쁘신 와중에도 활동가들과 업무를 챙겨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의 말씀에 수행을 놓치고 일만 하고 있는 모습을 다시금 돌아보게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JTS 회의를 마친 스님께서는 12시, 오찬을 겸한 외부인사와 만남이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늘은 평화재단에서의 일정을 일찍 마무리 하시고 정토회관에서 내일 있을 세계관 강의 준비와 못다한 업무을 보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서초법당에서 세계관 3, 4강이 있습니다.
2014.4.7.김천, 길벗 강연
nbsp 스님께서는 어제 두북에서 서울로 와서 기획위 회의를 마치고, 오늘은 새벽 6시 30분에 김천으로 출발했습니다. 김천 강연전에 직지사를 들러 참배했습니다.아직 직지사에는 벚꽃이 만발하였고, 자목련이 꽃을 피우기 위해 준비중이었습니다. 대웅전, 비로전등을 참배하고 경내를 둘러 보았습니다. 직지사를 방문한 몇몇 분들은 스님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 직지사 경내를 나와 공원을 둘러 본 후 강연이 있는 김천문화예술회관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 김천문화예술회관에는 아침 8시부터 김천 법당을 중심으로 한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설레는 마음으로 강연 준비를 하였습니다. 입장 전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이 정겨웠습니다. 김천 문화 예술회관에서 10시 30분부터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400여 청중들의 환대를 받으며 무대로 입장하셨습니다.nbspnbsp “벚꽃이 활짝 핀 좋은 봄날입니다. 예전보다 봄 기온이 높아서 꽃이 일찍 피었어요. 따뜻한 봄날 여러분들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밖은 봄이 왔는데 아직 마음은 한 겨울인 사람이 있으면 오늘 이 강연을 듣고 마음에도 따뜻한 봄이 오기를 바랍니다.nbspnbsp 즉문즉설이라는 것은 제가 여러분에게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한다는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강연이 아니고 대화를 통해서 함께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사람은 각자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면 첫째, 다른 생명을 때리거나 죽이지 말고,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고, 성추행·성폭행으로 남을 괴롭히지 말고, 또, 욕설 거짓말 등 말로도 괴롭히지 말고, 앞의 네 가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술 먹고 취하지 말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위 다섯 가지 외에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고 내 인생을 사는데도 남의 눈치를 보지 마세요. 스스로 기죽고, 남 기죽이고, 나도 속박하고, 남도 속박하지 말고 나도 행복하고 자유롭고, 남도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도록 하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 열반이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강사가 스님일 뿐 특정 종교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해 담론하고 있으며 여기가 바로 법당, 성당이 되고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는 스님 말씀으로 시작된 즉문즉설은 총 다섯 분의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nbsp 여자친구 아버지가 벌이가 너무 적고, 시기가 너무 이르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한다던 서른 한 살 초등학교 선생님,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는 자꾸 미루게 되거나 포기하게 되어 고민이라던 서른 여덟의 여성분, 막내 딸이 결혼한 지 5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어 기도 중인데 스님께 아이가 생기는 기도 방법을 묻고 싶어 달려왔다던 아주머니,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면서 직접 모시지 못해 불효한다는 생각과 요양원 직원들의 서비스가 흡족하지 못해 항상 마음이 무겁다는 아저씨, 사는 게 즐겁지 않아 이런 기분으로 인생이 끝나면 어떻게 하나 싶다는 사십대 여성분등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고민이 인생에서 우리가 한번쯤 마주할 법한 내용이라 많이 공감되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알콜 중독 아버지 때문에 홀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힘들어하시는 어머니를 돕느라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자꾸 미루거나 포기하게 되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던 고민에 대해nbspnbsp “먼저 하고 싶은 일을 꼭 해야 한다는 것도 옳다 할 수 없고 하고 싶은 일을 무조건 안해야 한다는 것도 옳다 할 수 없어요. 세상에는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 내가 하기 싫은데 하면 안 되는 일, 내가 하고 싶은데 하면 안 되는 일, 내가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일등 네 가지 경우의 수가 있어요. 그런데 앞의 두 경우는 문제가 안 되는데 뒤에 두 경우에는 과보가 따라요. 절대로 하면 안된다는 것은 없고, 하려면 손해를 각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nbspnbsp그런데 질문자의 경우는 내가 들으니 아무 문제가 없어요. 뒤집어 생각해보면 부모가 공부해라고 해서 공부가 짐이 된 사람이 있는데 질문자의 어머니는 공부를 안시키고 일만 시켜서 본인은 공부가 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긴 것은 장점이지요. 공부를 억지로 한 사람은 숙제하기 싫고, 시키는 사람까지 미워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과 더불어 어릴 때부터 일하느라 일찍 자립되었다는 것은 인생에서 굉장한 이익이지요.nbspnbsp 의지하는 어머니를 모셔야한다는 부담감은 있지만, 성인으로 딱 독립할 수 있다는 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 서운함은 있지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은 없지요?nbspnbsp 또 망설임이 고민이라면 그걸 고치는 방법은 망설임이 들때는 그냥 해 버리는 방법이 있어요. 망설임이 들 때 무조건 해버리는 연습을 해 보세요.”nbspnbsp 또, 질문자는 절을 하고 수행하는 것을 어머니가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못하게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물었습니다.nbspnbsp “수행으로 절하는 것을 엄마가 비난하지만, 절하는 것은 목탁을 쳐서 이웃에 시끄러운 피해를 주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내 방에서 혼자 절을 한다는 것은 남에게 피해주는 문제가 없어요. 그러니 그냥 하세요. 다만 어머니도 싫은 것을 표현할 자유는 있어요. 어머니에게 ‘내가 절하는 게 무슨 상관이냐’고 대들면 안되고 하지마라 하시면 ‘네, 알았어요.’ 하고 그냥 절하면 됩니다. 모든 사람 비위를 다 맞출 수는 없는 일입니다. 부모를 존중하지만 딸이 엄마의 노예는 아니잖아요.nbspnbsp엄마가 뭐라고 해도 나는 그냥 하면 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틀어졌을 때 자식이 부모를 존중해주면 오래는 안갑니다. 부드럽지만 원칙을 지키며 살다보면 엄마도 적응하게 되어 있어요.”nbspnbsp 스님은 오늘 질문들처럼 인생에서 고민은 끝도 없는 것이라며 마지막으로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nbspnbsp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라는 부처님 말씀을 모두 함께 독송하면서nbspnbsp “ 자기가 자신을 소중히 여기세요.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데 누가 나를 소중히 여겨주겠으며, 나도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남을 소중히 여기겠습니까? 남으로부터 사랑받고 내가 남을 사랑하는 출발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로 이제는 내 삶을 부모니, 자식이니 누구 누구때문에 희생한다 하지말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데서 인생을 시작해 봅시다.” 는 말씀으로 오늘 김천 강연을 마무리하셨습니다. 오늘 강연장을 찾은 사람들은 스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돌아가는 표정이 참 밝아보였습니다. 강연장 로비에 긴 줄을 선 사람들에게 일일이 서명을 마치신 스님께서는 자원 봉사자들과 사진을 찍으시고 다음 일정으로 향하셨습니다.nbspnbsp 모두가 떠난 자리에 아름다운 꽃잎이 분분히 떨어집니다.nbspnbsp 저녁 강연은 길벗강연으로 서울 여의도에서 있기 때문에 김천 강연장을 나서 서울로 오다 추풍령 휴게소에서 싸 가지고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햇볕이 따뜻하고 벚꽃도 활짝 핀 봄날의 벚꽃 나무 아래에서 먹는 점심이 임금의 상을 능가하는 것 같습니다.서울에 정토회관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저녁공양을 한 후 6시에 여의도 사학연금회관으로 출발했습니다.nbspnbsp 조금 일찍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대기실에서 이금림 작가님, 노희경 작가님, 한지민씨, 김여진씨등과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김여진씨는 아들 준이를 데리고 왔는데, 스님 말씀대로 아이가 3살때까지는 직접 키우고 있다고 합니다.또, 파스타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가 와서 11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인사를 했습니다. 재작년 300강 때는 애기가 엄마 배속에 있었는데, 이제는 유모차를 타고 함께 왔습니다.nbspnbsp 오늘 길벗 강연은 정토불교대와 법회에 홍보를 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무대위까지 자리를 하게 되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봄 꽃 소식을 전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사회자가 문화, 예술, 방송인들의 공통 질문을 하였습니다.nbspnbsp “몇 년 사이에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하는 연예인들의 소식을 많이 듣게 됩니다. 제 주위를 봐도 일정치 않은 수입으로 힘들어하는 동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좋아서 하는 일이고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수입을 얻으면 된다고 하지만 조금이라도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거나 언제 일이 들어올지 모르는 배우들의 경우에는 다른 일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술의 복지제도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이름 없는 단역배우들에게는 그것도 먼나라 이야기입니다. 힘든 경제 문제로 마음까지 힘들어지는 그들에게 어떻게 희망을 전해야 할까요?”스님께서는 구체적인 예가 없는 일반적인 질문에 대해 질문이 두루뭉술하다고 하시면서 “일은 조금하고 수입은 많고 일은 쉽고 인기는 높고 이런 직업이나 직책은 다수의 사람들이 선호합니다. 다수가 선호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합니다. 이런 직업군일수록 소수의 성공자와 다수의 실패자. 즉,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사람이 피라미드식으로 분포할 수 밖에 없습니다.nbspnbspnbsp 농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도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지만 수입의 격차가 농업 쪽하고 연예인하고 어느 쪽이 크겠어요? 연예인 쪽이 크겠죠? 이거는 연예인이라고 하는 직업에 대한 현재 대중의 선호도, 대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nbspnbspnbsp 이 직종은 사람사이에 수입의 격차가 많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자살하는 것고 같은 비극이 다른 직종에 비해서 많이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런 모임이 이루어진 것이기도 합니다.nbspnbspnbsp 기본 생활이 안되는 사람만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성공을 한 인기 있는 사람에게도 더 인기 있는 사람과 비교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이런 분들도 인기가 올라갔다가 떨어지면 좌절감이 굉장합니다. 처음부터 높이 올라가지 못한 사람은 떨어져도 다리를 약간 높이 올라갔다 떨어진 사람은 허리가 부러지는 것입니다.nbspnbspnbsp 어제 우리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입니다. 첫번째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수입격차의 간격을 좁혀주는 것입니다. 그게 요즘 말하는 복지사회라는 것입니다. 생존을 위한 최저 생계비를 국가가 사회 안정망을 구축해서 해결해 주고 더 이상은 자유 경쟁해서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 빈부격차의 폭을 좁혀서 사회 공정성을 확보해 주어야 합니다. 사회전체 분위기는 제도적으로 이 문제를 푸는 것이 전체를 구하는 것입니다. 수입이 많으면 세금을 많이 내고 , 수입이 적은 사람에게도 기본적인 실업 급여나 최저생계비가 돌아가게 하자는 것입니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세금을 내서 아이 낳아 키우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나는 건강하지만 적당한 의료비를 매달 정기적으로 내서 아픈 사람들에게 부담이 덜 가게 하자는 것입니다.두 번째는 사회만 책임을 질 수 없고 개인도 자기 선택에 대해 책임지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실패했을 좌절해서 자살하는 쪽으로 가지 말고 이 무리에서 빠져나오면 되잖아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미련을 못 버리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무리에서 경쟁하고, 시도 해보고, 뜻대로 안된다고 하면 이 무리에서 빠져 나와서 다른 직업군으로 옮기는 방법이 있습니다.nbspnbspnbsp 이런 문제는 이 직업군 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가 안정망 구축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배고플 때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성장의 꿈이 있었고, 밥먹고 살만하면 우리도 한번자유롭게 살아보자는 자유의 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산업화에 성공했고, 민주화에도 성공했습니다.nbspnbsp 그러면 이 다음 단계가 뭐냐면 바로 사회적 안정망 구축하고 상대적 빈곤감을 줄여주는 사회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즉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머리띠를 두르고 단결투쟁을 외치거나 아직도 오직 성장만을 외치는 이 두 개의 과거의 성공에 도취되어 그것을 가지고 편을 나누어 갈등하기 때문에 다음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사회 전체가 갈등과 정체의 국면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편을 나눈 두 세력에 대해 둘 다 각각의 시대에 해결한 공로를 인정하고 다음 단계의 과제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갈등도 해소되고 정체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식이 개인 직업에 관계없이 스님이든, 목사든, 배우든, 의사든 이런 걸 넘어서서 우리가 이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라며 생계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개인이 극복하는 것도 있지만, 복지사회로 나아가는 사회적 제도를 마련해야 함을 강조해 주셨습니다.그 외에는 5분의 질문이 이어졌고 스님께서는 한사람 한사람에게 맞춤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이렇게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정토회관으로 돌아와서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nbspnbsp 내일은 JTS 실무회의와 몇 번의 미팅이 있습니다.
2014.4.6. 서울공동체 활동가들과 산행, 기획위
2013년 4월 6일 일요일. 스님께서는 두북 정토수련원에서 1박 2일 동안 식목일 맞이 울력을 한 서울공동체의 실무자와 상근 자원 활동가, 행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아침 예불을 드린 후에는 스님께서 서울 공동체 활동가들에게 경주의 벚꽃 구경을 시켜주었습니다. 수련원을 나서 김유신 장군묘 앞 벚꽃길, 무열왕릉 앞 길, 분황사 앞 벚꽃길, 보문단지 벚꽃길, 불국사 벚꽃등 경주 일대를 돌며 꽃구경을 실컷 했습니다.nbspnbsp 흥무로 벚꽃 길에는 만개한 벚꽃이 터널을 이루며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불국사 벚나무 숲에서는 바람에 날리는 꽃비를 맞으며 걷기도 하고, 모두 함께 모여 사진을 찍고 담소를 나누며 봄을 한껏 만끽했습니다.nbspnbsp 꽃을 피우기 전에도, 만개했을 때도, 또 꽃잎이 흩날려 땅으로 내려앉을 때에도 각각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벚꽃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습니다.관광객들의 꽃구경 행렬이 이어지기 전 이른 아침에 벚꽃 구경을 마친 후, 수련원에 돌아와 아침 공양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 봄에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봄나물이 가장 맛난 것”이라며 냉이와 벌금자리 나물, 쑥 등 향긋한 봄나물로 아침 공양을 하셨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공양을 빨리 하고 대중들이 공양할 동안nbspnbsp고향집으로 가서 꽃나무를 심었습니다. 어제가 식목일이라 어제 심으려고 꽃나무를 사 두었는데,nbspnbsp어제는 청년들과 함께 하느라 짬을 내지 못해 오늘 심었습니다. 스님은 과실수를 원했는데, 최보살님이 꽃나무를 사 와서 “왜 열매도 못 먹는 것을 사왔느냐”며 나무라시니 보살님께서는 꽃이 예쁘다고 대꾸해서 모두들 잠시 웃었습니다.nbsp공양을 마친 후에는 산행에 나섰습니다. 스님의 오후 일정상 시간이 많지 않아, 산을 오를 때는 차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영남 알프스’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백운산, 고헌산을 따라 굽이굽이 오르는 길에는 아래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광이 펼쳐졌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개나리와 매화, 복사꽃과 진달래, 산벚꽃과 갖가지 나무, 풀, 풀꽃들이 모두들 색색깔로 모여 조화를 이룬 산의 풍경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진달래가 무더기로 피어 붉게 물든 산을 보며 “와”하며 탄성을 지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석남사 쪽으로 내려가는 길 등 백운산, 고헌산의 여러 갈래 길들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산을 한바퀴 돌고 다시 탑곡 수련원으로 돌아와서는 차에서 내려 가뫼들 계곡을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산을 내려가시는 스님을 따라 산 곳곳에는 샛분홍빛의 진달래와 산벚꽃이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 밀짚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으신 스님의 뒤를 이어 한 줄로 길게 늘어져 걷는 뒷모습이 참 흐뭇하고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걸음이 빠르신 스님의 뒤를 종종거리며 쫓아가느라 조금 숨이 차긴 했지만, 스승님의 뒤를 이어 걸어가는 길은 더없이 좋았습니다. 계곡을 지나고 바닥에 깔린 낙엽을 밟으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스님과 실무자들은 탑골샘 중간부터 복안저수지와 상동마을에 이르기까지 ‘태화강 100리길’의 4코스를 함께 걸어 내려갔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 꽃 한 송이에도 마음이 잠시 머물렀고, 계곡에도 머물렀습니다. 비록 산을 오르지 않고 내려가는 길이고 또, 긴 거리는 아니었지만 산 곳곳에 숨은 좋은 경치를 즐기며 모두가 함께 할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스님께서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공동체 실무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내어주셨기에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이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곁에서 걷던 쁘리앙카지에게 “인도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꽃이 한꺼번에 피는 것은 못 봤지?” 농담을 던지셨습니다.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인도의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당연하다는듯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함께 들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다시 수련원으로 돌아와서 간단히 점심공양을 한 후 서울에서 오후 일정이 있기에 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울 공동체 활동가들은 남아서 뒷정리를 한 후 출발하기로 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서울로 오는 길을 잘못 선택해서 중부내륙고속도로, 영동선으로 오다보니 예상보다 길이 더 많이 막혔습니다. 그러나 길이 막힐 것을 예상해서 서둘러 출발했더니 다행시 회의 시간에 맞춰 도착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6시부터는 기획위 회의가 진행되었고 10시 30분이 되어서야 회의를 마치고 정토회관으로 와서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김천, 길벗 강연이 있습니다.
2014.4.5. 청년 경주역사기행
2014년 4월 5일 토요일. 전국의 청년들과 함께 하는 경주 봄 역사기행이 있는 날입니다. 법륜스님께서는 청년들과의 경주역사기행에 앞서 다음주에 있을 전국 정토불교대학의 경주남산순례 답사팀과 경주 IC앞 서라벌 광장에서 회의가 있었습니다.오늘 답사를 하는 분들과 팀별로 코스를 설명하면서 특히 주의해야 할 곳, 길을 잘 못 들수 있는 곳, 전체가 모여서 식사하는 곳등 하나하나 점검해 주시면서 답사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셨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스님께서는 청년들이 모이는 무열왕릉으로 이동하셨습니다.오전 9시30분, 무열왕릉 앞에서 청년들과 스님께서 만났습니다. 서울, 인천, 부천, 수원, 청주, 대전, 광주, 대구, 포항, 부산, 울산, 진주, 창원 총 13개 지역을 하나하나 언급하시면서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날 경주역사기행은 역대 최대 인원인 376명이 참가했습니다.법륜스님께서는 행사의 취지를 세가지로 꼽으셨습니다. “첫째, 봄꽃 나들이 왔다. 둘째 경주가 역사의 도시니까 역사공부를 한다. 셋째 친목을 도모한다. 오늘 저와 산책하면서 이야기 나누어요.” 라고 말하시며 청년들에게 경주역사기행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주셨습니다.nbsp오늘 돌아본 곳은 무열왕릉김유신장군묘사천왕사지선덕여왕릉능지탑황룡사지분황사였습니다.제일 먼저 간 무열왕릉은 신라 제 29대 왕인 태종무열왕인 김춘추의 무덤입니다. 삼국통일의 세 영웅이라고 하면 태종무열왕, 김유신, 문무대왕 세분을 주로 이야기 하는데 그 중 태종무열왕은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은 분입니다. 법륜스님께서 삼국통일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우리가 통일을 이야기 할 때 독일의 사례도 있지만 우리역사 속에서 가야와 신라의 합의 통일이 통일의 시너지효과를 보여준 사례이고 남북통일을 할 때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전해주셨습니다. 청년들은 무열왕릉에 삼배한 후 단체사진을 찍고 김유신 장군묘까지 걸어갔습니다. 스님의 표현대로 벚꽃이 오지게 핀 자전거 길을 따라 함께 노래 부르며 걸으니 참 좋았습니다. 벚꽃 구경을 온 시민들이 법륜스님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기도 했습니다. 김유신 장군묘에 도착해서 한바퀴 돌며 묘 하단에 조각된 지신상을 확인하고 묘에 삼배를 드린 뒤, 김유신 장군묘 아래에 있는 홍무공원에 돗자리를 펴고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점심식사 후에는 각 모둠별로 모여 스님과 사진을 찍고 레크레이션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사천왕사지에 가기 위해 버스에 탑승하여 이동했습니다. 벚꽃 관광객이 많아 도로에 차가 많았지만 덕분에 벚꽃 가득한 도로를 실컷 구경했습니다. 사천왕사지에 도착하여 강의를 시작하니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지고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참가자들은 스님의 말씀에 집중하며 강의를 들었습니다. 사천왕사는 당나라 군대의 침략을 막기 위해 명랑법사님과 12명의 유가승들이 문두루 비법을 행하기 위해 지은 절입니다. 결국 30만 당나라 군대가 서해에서 풍랑을 만나 수몰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입니다. 사천왕사지에서 낭산 중턱으로 걸어 올라가니 선덕여왕릉이 나왔습니다. 선덕여왕은 찬란한 신라문화를 꽃 피우고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은 신라 27대, 최초의 여성 왕입니다. 16년간 제위하며 황룡사 9층탑, 분황사, 영묘사 창건, 첨성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김춘추, 김유신 등 많은 인재도 선덕여왕 때 배출된 인재입니다. 그 후 20년 뒤 그들이 통일의 주역이 된 사람들입니다. 소나무가 빽빽한 산 중턱에 호젓하게 선덕여왕릉이 있어서 산책하기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선덕여왕 드라마의 인기에 관광객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선덕여왕릉을 지나 언덕을 내려오니 능지탑이 나왔습니다. 능지탑은 문무대왕의 화장터로 문무대왕의 유언에 따라 화장 후 유골은 동해바다 대왕암에 묻고 재를 모아 이곳에 탑을 쌓았습니다. 능과 같은 탑이라 하여 능지탑이라 이름지어진 곳입니다. 이런 능지탑은 발해 외에 신라에는 이곳밖에 없다고 합니다.nbsp마을길을 따라 능지탑에서 약 20여분간 걸어가니 너른 들판에 황룡사터가 나왔습니다. 비록 지금은 초석 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9층 목탑이 있었을 것을 상상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컸을까 궁금해졌습니다. 황룡사터를 지나 분황사로 가는 길에 예쁜 유채꽃이 벌써 피었습니다. 청년들은 모둠별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유채꽃밭에서 각자의 개성이 돋보이는 단체사진을 찍으며 4월의 추억을 하나 남겼습니다. 법륜스님께서 분황사에 들어서자마자 관계자 분들의 많은 인사를 받으셨습니다. 분황사는 법륜스님께서 고등학교 때 처음 출가하시게 된 절이기도 합니다. 분황사는 원효대사의 본찰이며 가장 오래 머무셨던 절로 유명한 곳입니다. 스님께선 이곳에서 청년들에게 원효대사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nbsp“원효대사는 어렸을 적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랐으며 나이 스물 아홉 살에 출가를 하셨습니다. 원효대사는 주아 해골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를 깨달아 ‘한 생각 일어나니 만법이 일어나고 한 생각이 사라지니 만법이 사라지네.’ 하며 깨달음을 얻고 위해 당나라에 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원효대사는 자신이 깨달은 관점에서 수많은 경전과 논장의 주석서를 써서 신라에서 가장 유명한 고승이 됩니다. 그런데 어느날 대한대사란 분이 원효대사를 찾아와 부곡으로 데리고 가서 주모에게 가 술 한상 차려달라고 하니 원효대사는 창피함에 그냥 가버렸습니다. 그 때 대한대사는 “대사 여기 마땅히 구제받아야 할 중생을 두고 어디 가서 별도의 중생을 구제한단 말인가.”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불구부정이고 제법이 다 공한 것인데 실제로 부딪히니 ‘어. 아니네.’ 라고 느낀 원효대사는 내가 공부가 덜 되었구나 싶어 머리를 길러 한 절에 들어가 신분을 숨기고 부목 생활을 했습니다. 구박도 많이 당하며 부목 일을 하는 가운데 스님들의 토론에 아는 체를 했다가 결국 신분이 들통 났습니다. 그래서 야밤에 도망을 가려고 했더니 그 절에 있던 꼽추라고 천대받던 방울스님이 ‘원효 잘가게’ 하는 거에요. 그 말에 원효대사는 크게 깨닫게 됩니다. 그 절의 모든 스님이 원효 대사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방울스님 만큼은 원효대사를 알고 있었던 거죠. 원효대사는 “여기 마땅히 구제받아야 할 중생을 천민”이라고 생각했었고, 그렇게 이해했었는데 방울스님 말을 듣곤, ‘분별을 일으키는 지금 내가 중생이구나’ 라고 딱 깨쳤다고 합니다. ‘너는 지금 네 마음을 안보고 밖을 보고 분별을 하느냐’ 라고 했던 것입니다. 깨쳐버리면 본래 구제한 중생도 없다는 게 제법이 공한 것인데, 예전에는 이론으로 깨쳤다면 이제는 체험으로 깨치게 됐습니다.nbsp천하고 귀한 존재가 없다는 도리를 깨달은 원효가 천민마을에 친구가 되기 위해 가니 이젠 그 사람들이 원효를 위대한 원효대사라고 떠받들어 주었습니다. ‘원래 성스러움도 없고 부정한 것도 없는 것인데 왜 나를 성스럽게 생각할까?’ 그 이유는 그 유명한 원효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원효대사가 ‘그 유명한 원효를 버리자’ 하여 요석공주와 스캔들을 일으키자 모든 사람들이 원효를 파계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비난받고 쫓겨나자 그때야 비로소 천민들과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원효는 민중 속으로 들어와 민중과 함께 살았습니다. 역사 속에서 원효의 흔적이 사라졌지만 지금 대부분의 절에 가면 모두 다 원효대사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걸 ‘화현’ 이라고 합니다. 민중 속에서 수많은 원효로 나타났다. 그래서 원효대사가 ‘신라의 부처’라고 칭해지게 되었습니다.스님의 설명을 듣고 한 대학생 참가자는 ‘원효대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어 좋았다’라고 소감을 밝혀 주었습니다.nbsp분황사를 끝으로 오늘 경주역사순례를 마치고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지금 경주는 벚꽃이 한창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관광객들로 거리는 차들로 가득찼습니다. 스님께서도 분황사에서 청년들의 숙소가 있는 불국사 근처로 가는데도 1시간 이상이 걸렸지만, 가는 길 내내 화창하게 핀 벚꽃 구경을 하였습니다.nbsp숙소에서 식사 후 8시부터 강당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법륜스님과 함께 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루 종일 경주 일대를 걷느라 피곤했을 법도 한데, 청년들은 기대되는 얼굴로 스님의 말씀에 집중했습니다. 즉문즉설은 주로 이번에 봄 불교대에 입학한 신입생들의 질문들이 많았습니다.부모님이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묻는 분, 평소에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할 때 얼굴이 자주 붉어져 고민이라는 분, 아토피 때문에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묻고, 속을 썩이는 동생에 대한 어머니의 고민을 대신 물어봐주신 분, 불교대학에 중도를 배웠는데 허무주의랑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물으신 분, 남자를 잘 만나려면 어떻게 수행해야하는지 물은 분, 자신감이 없어 사람들의 눈을 잘 못 처다보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물으신 분, 자격증 공부를 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호소하신 분, 헤어진 남자친구를 어떻게 하면 다시 붙잡을 수 있는지 방법을 물으신 분, 스님의 공부 비법을 물으신 분이 있었습니다.nbspnbsp그 중 한분의 즉문즉설을 옮깁니다.nbsp질문자 “어머니께서 고등학생인 여동생이 집에도 잘 안들어오고 남자친구에게만 빠져있는 것 때문에 전전긍긍하시고 스트레스를 받으십니다. 어머니께서 어떤 마음을 가지시면 좋을지 조언 부탁드립니다.”nbsp스님 “내가 아끼는 시계를 갖고 있다고 합시다. 이 시계를 잃어버릴까봐 늘 전전긍긍하고 있을때 이 시계를 안 잃어버리는 것도 좋지만 잃어버리는 것도 나에겐 도움이 됩니다. 전전긍긍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아주 좋아하는 사람 있는데, 서로 좋아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인생을 전전긍긍 하며 살게 되요. 좋아하는 건 좋은데 전전긍긍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반면에 헤어지게 되면 이별의 아픔이 있지만 전전긍긍 안 해도 되는 좋은 점이 있습니다. 딸이 늘 집밖에 나가 있으면 책임 안 져도 되잖아요. 그런데 집에서 착실하게 말 들으면서 있으면 결혼 시켜야지, 이것저것 챙겨주어야지, 굉장히 일거리가 많아요.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집을 나가 주는 것이 효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게 어머니한테는 해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도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 딸이 집이 들어와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자기가 행복할 수 있어야 됩니다.”집착하는 마음이 생길 때 괴로움이 생긴다는 이야기였습니다. 2시간 반 동안 즉문즉설을 마치시고 법륜스님은 내일 일정을 위해 청년들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셨습니다.내일은 두북에 울력 와 있는 실무자들과 산행을 할 예정입니다.nbsp이nbsp글은 청년정토회 기획홍보팀장 박세미님께서 작성해 주셨습니다.
2014.4.4.노원, 송파 강연
스님께서는 오늘 서울 지역 첫 강연인 노원 강연에 가기 전, 7시 30분부터 평화재단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민통합회의’ 실무모임을 가졌습니다.nbspnbsp 회의를 마친 후 9시 30분경 노원 구민회관으로 향했습니다. 750석 규모의 대강당에 1,300여명이 참석해, 통로는 물론 입구 계단까지 가득 차 많은 분들이 선채로 강연을 듣기도 했습니다. 강연시작 2시간 전에 도착한 할머님 한 분은, 이번엔 작정하고 왔다며, 영상으로만 뵙는 게 아니라 진짜로 오시는 게 맞느냐고 몇 번을 확인하시기도 했습니다. 강연이 시작되어 스님께서 무대로 오르자 참가하신 분들은 모두 환호를 하며 큰 박수로 스님을 환영해주셨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지금 바깥의 봄처럼 마음에도 봄이 찾아오도록, 얼어붙고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자며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 nbsp“우리는 각자 서로 다르기 때문에 누가 잘하고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런데 ‘나’를 기준으로 하다 보니까 네가 잘못한 게 되는 거예요. 서로 다른 것이지,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이 아닙니다. 이걸 바르게 알아버리면 네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없어져 버리니까 미워할 일이 없어요. 미워할 일이 없는 게 용서입니다. 잘못한 일이 없는 걸 깨닫는 게 진짜 용서입니다. 용서할 게 없는 게 용서다 이 말입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또한 지은 인연을 알면 억울할 일이 없음도 강조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작용하는 전체를 보면 항상 원인과 결과라고 하는 것이 성립합니다. 이건 우주 질서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연이 움직이는 이치, 생명이 작동하는 이치, 우리들의 마음이 괴로움으로 나타나느냐 즐거움으로 나타나느냐 모두 이치가 있는 거예요. 갑자기 날벼락처럼 일어난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연이란 것은 짧은 시간에 보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잘 모르면 우연이라고 하고 그것을 알게 되면 필연이라고 말 할 뿐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오늘 질문자는 총 여덟 분이셨습니다. 힘들 때마다 전화해서 하소연 하는 숙모님으로 인한 괴로움을 얘기한 임신한 새댁의 이야기, 다짐만 하고 의지를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을 맘에 안 들어 하는 젊은 여성분의 고민, 공부 잘했던 여동생이 사회생활이 잘 풀리지 않자 가족들을 원망하고 폭력적으로 행동해서 힘든 임산부의 고민, 한국전쟁보도연맹사건에 연루되어 현재에도 힘들게 살고 있는 가족의 마음을 풀어주고 싶어 하는 중년 여성의 고민, 미국에서 공부할 때 만나 사랑하게 됐으나, 이어지지 않아 생긴 그리움과 원망으로 힘들어하는 젊은 여성의 고민, 도박으로 경제력 잃은 남편과 굴욕감을 준 시댁 식구들을 미워하면서도 죄의식으로 힘들어하는 여성분의 고민, 의처증과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으로 인해 두려움과 아이들 걱정을 하는 엄마, 우리나라 인성교육이 가능한 시기와 정토유치원 계획을 물은 엄마 등 다양한 질문을 해주셨고, 스님께서는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시원하게 질문자들을 지혜의 길로 안내하셨습니다.nbsp여러 사연 중 보도연맹사건으로 괴로워하는 가족을 둔 분이 질문하신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nbspnbsp“한국전쟁보도연맹사건으로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를 동시에 잃은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전쟁 후 60년이 흘렀지만 매일 많은 양의 술을 드십니다. 부모님은 연좌제에 대한 기억으로 자식들에게 피해 갈까봐 진상규명위원회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자신들이 감당할테니 묻어둬라 하십니다. 이 아픔이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지지 않고 풀어내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nbspnbspnbspnbspnbsp“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여러 가지 불행한 일을 겪고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이런 말 못할 아픔을 간직한 분들이 많습니다. 제주 4.3사건이 예전엔 반란사건이었다가 학살사건으로, 또 항쟁사건으로 바뀌어왔습니다. 60년이 넘어서야 그 희생에 대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고, 올해부터는 국가 기념일로 제정이 된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또한 연변 지역에 가면 1920년대 봉오동, 청산리 전투가 승리했다 하지만 일본군이 독립군에게 패배하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 그 동네 집을 불태우는 등 양민학살을 했습니다.그런 원한이 사무쳐서 자식이 다시 독립군에 들어가서 저항을 해왔고, 그 마음을 풀지 못한 채 남북이 분단되고 전쟁까지 일어낫서 남한에서는 좌익으로, 북한에서는 반동으로 서로가 학살을 당했습니다. 제가 태어난 이웃 동네에도 제삿날이 같은 집이 스무집 정도가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그런데 이것이 밝혀지기 쉽지 않은 이유는 피해자 자손은 억울함을 밝히고자 하지만, 이 땅에 함께 살고 있는 가해자의 자손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남아공대통령 만델라는 인종분쟁을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만들어 해결해갔는데, 그 중심 내용은 진실은 철저히 밝히되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가해자에 대해서 보복을 하게 되면 새로운 갈등이 시작되기 때문이었지요.nbspnbspnbspnbspnbsp우리는 북한에 비해 민주주의가 확산돼 있고 자유스러운 국가니까 원한을 갖지 않으면서 진실을 규명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1,2년 만에 해결 될 거라 생각지 말고 꾸준히 도를 구하는 마음으로, 이 행위가 민족통합을 가져오고 통일을 가져온다는 자세로 하는 게 좋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아버지 입장에서는 혹시 잘못돼 피해를 입을까봐 안 밝히려는 속성이 있으니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조금 더 큰 안목으로 진실을 규명하고 화해하면서 문제를 풀자는 것이지요. 감정대로만 대응을 하면 대를 이어서 원한으로 이어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대를 이어서 갈등을 하고 있습니다.nbspnbsp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라는 큰 줄기에서는 정리하되 개인 차원에서는 그 아픔을 다 수용하면서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내가 가해한 사람의 입장이 되어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참회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이념을 떠나 원인을 돌아보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해 미래로 나아가라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질문자와 더불어 많은 이들이 공감한 시간이었습니다.2시간 30분이 넘는 시간동안 강연이 진행되었지만, 비록 좌석이 없어 절반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강연을 들었으니 자리가 많이 불편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강연내내 많은 분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셨고 함께 웃고 함께 마음 아파하며 서로가 이어져 있음을 확인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노원 강연을 마치고 평화재단으로 오는 차안에서 도시락으로 점심공양을 하신 후 2시부터 외부인사와 만남을 가진 후 4시에는 예전에 함께 활동하셨던 분의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시타림을 갔다가 저녁강연이 있는 서울시 교통회관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금요일 퇴근길이라 차가 많이 막히다 보니 예정된 강연시간보다 10분정도 늦게 도착하셔서 바로 강연에 들어가셨습니다.강연장에 함께 한 분들은 스님께서 들어오시자 뜨거운 박수로 맞이해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들어오시면서 1,2층 그리고 무대 위와 아래 바닥에 앉은 청중들을 향해 각각 반가운 인사를 하셨습니다.오늘은 모두 8분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한 청년은 질문을 하기 위해 노원구민회관에 갔지만 시간에 쫓겨 못한 질문을 하기위해 이곳까지 왔다고 하면서 참 자아를 찾고 싶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두번째 질문자는 자신을 유튜브에 올리지 말아달라고 하면서도 질문은 꼭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어릴 적 환경 때문에 선택한 남편에게 추가적인 요구사항이 이뤄지지 않아 괴로운 사례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세번째 질문자는 질문을 하기 위해 수업도 빼먹고 강원도에서 왔다는 여대생으로 현재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문과적 성향이 강하고 이과적 성향이 부족해서 공부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네 번째 질문자는 대학생 아들을 둔 엄마로써 28살 아들이 지방대 다니고 있는데, 정신질환까지는 아니지만 주변에서 이상한 아이 취급도 받고 모든 일에 자신감이 결여되어 병원에 데려가려 하지만 거부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다섯 번째 질문자는 스님께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모든 난관을 극복한 사례를 통해 자신도 배우고 싶다고 스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지 질문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여섯 번째 질문자는 아이 셋을 키우는 워킹맘으로 세째 아이를 언니에게 맡겼다가 일주일에 한번씩 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 육아휴직을 내었고, 3개월 후면 다시 복직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스님께 답을 구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일곱 번째 질문자는 멀리 부산에서 오신 분으로 첫 번째 질문자처럼 노원에 갔다가 이곳에 왔다고 하면서 38살 된 아들이 2년전 아내와는 사별하고 남매와 함께 살고 있는데 돈벌이는 하지 않고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돈을 자꾸 요구하는데, 그동안에도 여러 차례 돈을 해주었고 지금도 막무가내로 돈을 내놓으라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스님께 여쭈러 왔다고 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여덟 번째 질문자는 군제대 후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인 분으로 책을 읽지 않는 단점이 있다면서 질문을 하였습니다.,8명의 질문자 중에 아들의 도박 중독 때문에 고민하는 한 보살님의 사례가 가슴 아팠습니다. 강연장을 나서는 아주머니께 어떠냐고 물음에 ‘스님 말씀이 옳지만 아직은 답답하다’고 하셨습니다. 다음에 부산에서 강연할 때 다시 한번 질문을 해보라는 말로 위로를 해드렸습니다. 오늘도 질문자들의 고민꺼리는 함께 한 분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오늘 송파 강연은 830여석의 대강당을 꽉 채우고 무대위와 아래에 방석을 깔고 앉아서 들었지만, 1,100여명의 청중이 질서정연하고 차분하게 그러면서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강연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봉사자들의 일사불란한 업무 분장과 봉사자들이 그동안 몇 번 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맡은 업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임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강연장을 찾았지만, 강연은 원활하게 진행되었고, 성황리에 잘 마친 듯하여 뿌듯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오늘 강연을 마치고 내일 경주에서 청년들과 함께 하는 경주역사기행을 위해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시는 스님의 건강이 염려되기도 하였습니다.오늘 노원 강연은 노원법당 민영진님이, 송파 강연은 송파법당 최은희님이 정리해주셨습니다.
2014.4.3. 전국 조직 자원활동가 교육
오전 10시부터 대전법당에서 자원활동가 교육이 있어서 스님께서는 아침 기도후 6시 30분에 대전법당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오늘 자원활동가 교육에는 각 지역 정토법당에서 팀장급 이상 소임을 맡은 정토행자 196명이 참가하였습니다. 천일결사 8차년 사업에서 자원활동가 조직화의 중요성을 공유하고 대중 연찬을 통해 현장에 맞는 자원활동가 조직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저도 서울에서 6시 30분에 출발해서 왔는데 더 먼곳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서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고 하시며 인사를 하신 후 입재법문을 하셨습니다.nbspnbsp “부처님께서 어느 날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의 제자 비구들아 너희들은 겸손해야 한다. 교만해서는 안된다. 나의 제자 비구들아 너희들은 당당해야 한다. 비굴해서는 안된다.’nbspnbsp 그런데 우리 삶의 현실에서는 당당하다는 것이 자칫 교만하기가 쉽고 겸손하다는 것이 자칫 비굴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비굴한 것과 겸손한 것이 비슷해 보이고 당당한 것과 교만한 것이 비슷해 보입니다.nbspnbspnbsp 그러나 내면적으로 보면 당당하기 때문에 밖으로 겸손할 수가 있고 또 내면이 꽉 차있기 때문에 겸손할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이 당당하셨기 때문에 부자든 가난한 자든 가리지 않고 그들의 복전이 되기 위해서 편안하게 걸식을 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만약에 비굴한 사람이라면 밥을 얻으면서 당당할 수가 없습니다.nbspnbsp 그러나 밥을 비는 자이기 때문에 밥을 주는 자에게 절대로 교만할 수가 없지요. ‘밥 내놓아라’ 하며 고함을 치는 것이 아니라 ‘밥을 주거나 안주거나 그것은 당신의 뜻입니다’ 하며 아주 겸손한 자세로 하지만 당당한 자세로 걸식을 하셨습니다.부처님께서는 남이 먹다가 버린 음식을 먹고도 살 수도 있었기 때문에 왕에게도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비굴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잠은 나무 밑에서 자고, 옷은 버려진 분소의를 입고, 밥은 걸식을 하며 살았으므로 얻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 왕 앞에서도 태연자약하고 추호도 비굴함 없이 당당했습니다.nbspnbsp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천민들에게 가서도 겸손했습니다. 왜냐면 그들에게 밥을 비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자에게 밥을 빎으로서 그들 발아래 자신을 두었고, 이 세상에서 가장 높다고 하는 왕에게 아무런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당당하게 그들의 위에 섰습니다. 가장 낮은 자에게의 아래에 있고 가장 높은 자의 위에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을 평등하게 대했다는 것입니다.nbspnbsp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교만하기가 쉽고 비굴하기가 쉽습니다. 내가 돈에 집착하면 나 보다 돈이 더 많은 사람한테는 비굴해지고 나 보다 돈이 적은 사람한테는 교만해지가 쉽고 지위에 연연하게 되면 나 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한테는 비굴해지고 지위가 낮은 사람한테는 교만하기가 쉽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늘 교만함과 비굴함 사이에서 오고 갑니다. 바로 이것을 중생심이라고 합니다.그러니 우리 정토행자들은 ‘이 세상 어떤 사람 앞에서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또한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 앞에서도 마음이 위축되지 말고 당당한 자세로 임해라’ 이것이 수행자, 우리 정토행자가 가야 할 길입니다.오늘 이렇게 모임을 갖는 것은 8차년도에 우리 정토회 천일결사 목표를 완수하려면 어떤 자세로, 어떤 방식으로 또 어떤 노력으로 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관한 논의를 하고 학습을 하는 자리입니다.nbspnbsp 8차 천일결사의 목표를 잘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20년 전에 발원한 만일결사의 목표를 성취하는데 있어서 이 8차년도가 중요한 관건의 해입니다. 9차, 10차년도에 열심히 한다고 만일결사의 원이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8차년도가 결정적인 기회이기 때문에 저까지도 나서서 함께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참석을 했습니다.nbspnbsp 지금까지 법문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정토회의 운영문제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회의에 참석하여 의견을 내고 문의가 오면 답을 하거나 했지 이렇게 직무교육에 직접 참석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 해 지난 정토불교대학 담당자 교육에 참여를 했고 오늘은 자원활동을 하는 여러분의 행사에 참여를 하는 것은 8차년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nbspnbsp 8차에 우리가 해야 할 목표가 10대 목표 안에 다 들어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자기 수행입니다’ 개인 정진을 중심에 놓고 일을 해야 됩니다. 정토행자가 세상을 위한다고 하면서 울고불고 악쓰고 하면 세속에 사는 사람들과 차이가 없지요. 우리가 하는 일들이 어떤 면에서 세상 보다 더 어렵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수행자다’하는 자기 정체성은 지켜야 합니다.그 다음 일에 있어서 8차 목표로 세운 것 중 하나는 ‘정토세상을 만들고자 원을 세운 만 명의 정회원을 만든다.’입니다. 또 하나는 시·군·구에 자원활동가들의 수행, 활동공간인 정토법당을 만드는 것이 드러난 핵심 과제입니다.nbspnbspnbsp ‘우리가 지금까지도 열심히 해왔지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게 될 때 해낼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우리가 정성을 기울여야 할 대상은 천일결사자와 불교대학생입니다. 단순히 숫자와 졸업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부처님의 제자다운 삶으로 인도해줘야 합니다. 또한 온라인에서도 희망편지를 받아보는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집에서 수행하고 봉사할 수 있도록 관리를 해줘야 합니다.이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앙에서 내려주는 방법이 아니라 내가 서있는 우리법당은 조직구조를, 역할분담을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현실에 맞는 아이디어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니깐 현장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먼저 검토 되고 그것을 지원하기 위해 지부와 중앙행정처는 어떻게 역할을 하는 것이 현장 활동가들에게 효과적인지를 고려해서 필요하다면 조직 개편을 해야 합니다.nbspnbsp 오늘은 지도법사로서 법문을 하거나 수행지도를 해주러 온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현장에서 뛰고 있는 현실을 정확히 파악을 하고 일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려 왔으니 마음껏 자기 의견을 내놓고 토론하는 편안한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시며 입재법문을 마치셨습니다.nbspnbsp 입재법문이 끝난 후에는 오늘 교육에 참가한 정토행자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지부별로 소개를 하고 대의원 인사에 이어서 문경에서 수련 중인 행자 분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대중들께 인사를 하였습니다.nbspnbsp 이어서 정토회 대표 이기혜 보살님의 인사와 행정처장 김은숙 보살님의 8차년 사업목표에 관한 브리핑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스님과의 연찬이 시작되었습니다.스님께서는 먼저 오늘 토론의 쟁점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정토회가 일을 해올 때 환경팀 몇 명, 사회활동팀 몇 명, 행정조직의 몇 명 등 이런 식으로 주로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사람들 위주로 조직되어 왔고 일반회원들은 조직되지 않고 개별적으로 관리되어 왔습니다.nbspnbspnbspnbsp8차년도를 준비하면서 기존의 방식이 아닌 작년에 했던 모둠활동의 성공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모든 정토회원을 모둠별 회원으로 전환하면 좋겠다는 안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틀로는 안된다’는 생각과 ‘바꾸려고 하니 기존에 틀에 따라 해온 오랜 관습 때문에 현장에서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문제의식이 뒤섞이어 논의가 잘 진척 되지 않았습니다.nbspnbsp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정토회의 부서편재와 조직을nbspnbsp어떤 방식이 좋겠는지 의논을 해보자는 것이 오늘 모임의 취지입니다.”nbspnbsp 이렇게 말씀 하신 후 스님께서는 김해법당, 전주법당, 수원법당의 부총무들에게 직접 현장의 상황에 대해서 물으셨습니다. 작은 규모의 법당에서 정회원은 몇 명인지, 불교대생은 몇 명인지, 수행법회 참석인원은 몇 명인지, 천일결사자 모둠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활동가는 어떻게 역할분담을 해서 활동하고 있는지, 현재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등에 관해 자세하게 묻고 답을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각 법당의 현장상황을 듣고 “자원활동가나 자원봉사자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큰 과제인데 완전히 상근하는 봉사자만을 갖고는 정토회가 확산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바뀌어서 주간에 나오는 봉사자들도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사람만 상근하고 나머지를 파트타임으로 봉사 하는 비상근으로 수백 명을 조직해서 10명이 상근하듯이 법당을 운영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각 소속법당의 현장상황에 맞게 연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며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연찬이 끝난 후에는 각자 준비해 온 반찬을 꺼내놓고 함께 점심공양을 하였습니다. 점심공양이 끝난 후에는 직급별로 모둠토론의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토론이 끝난 후 모둠별 발표시간을 통해서 정토회 총무, 소속법당 부총무, 회원팀 등nbspnbsp각 직급별로 지금 처한 현장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가 있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발표를 들으신 후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열띤 토론의 흔적이 있다 하시며 각 모둠별로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받으셨습니다.동지법회 때 모둠별로 봉사를 해보니 좋은데 담당자로 쓸 인력이 부족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불대생들을 어떤 모둠으로 관리해야 하는지, 작은 법당에서 지원팀과 자원활동팀으로 나누는 것은 일을 이원화 하는 것이 아닌지, 불교대 모둠장이 나누기만 잠깐씩 들어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거 아닌지, 초파일 행사 때 정회원이 아닌 일반신도에게 집전을 맡겨도 되는지 등 여러 가지 질문에 스님께서 자세히 의견을 주셨습니다.nbspnbsp 또한 스님께서는 “조직개편을 하는데 있어서 팀장을 하다가 담당이 되었다고 이름에 연연해 섭섭해 하지 말 것을 당부하시며 우리는 사회조직이 아니라 수행공동체이고 이것은 중앙에서 내린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함께 의논하여 결정한 것입니다.” 하시며 정리말씀을 마치자 대중들이 크게 웃으며 네하고 대답하며 교육을 마쳤습니다. 스님께서는 교육을 마치고 바로 서울로 이동하셨습니다. 저녁 7시부터 평화재단 전략기획회의가 있는데, 자원활동가 교육이 조금 늦어진데다가 차도 막혀서 스님께서는 30분정도 늦게 회의에 참석하셨습니다. 평화연구원, 평화교육원 원장님을 모시고 평화재단 팀장들과 함께 회의를 하는 자리였습니다.nbspnbsp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배경에서 나왔고, 앞으로 어떻게 전망하는지 서로 의견들을 나누셨습니다. 통일에 대한 정부의 의도가 국내정치용이라는 비판이 있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어떻든지간에 우리는 우리대로 민간차원에서 평화재단이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기획하고 진행해나가자는 말씀으로 최근 동향 논의를 갈무리했습니다. 그 외에도 지난번 논의 되었던 아이디어에 대한 기획 초안이 나와서 이를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따져보고 논의하는 시간이 이어져 회의는 밤 10시가 훨씬 넘어서야 끝났습니다.nbspnbspnbsp 통일에 관한 한 스님의 하루는 24시간을 초단위로 쪼개서도 모자랄 판입니다. 회의를 마치고 11시 가까이 되어서 회관으로 오셔서 다시 JTS 업무관련하여 논의를 하신 후 하루를 마감하셨습니다. 스님의 하루는 이렇게 또 저물었습니다.nbspnbspnbsp 내일은 노원, 송파 강연이 있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