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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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16. 세계를 바로 보는 눈 제 5강, 6강, 엄마수업 중국독자 방문

늘은 서초법당에서 스님의 봄 특강 lt세계를 보는 눈gt 5강과 6강이 있는 날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5강은 lt민족사의 시원인 배달문명gt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여전히 많은 분들이 1, 2층 법당을 메워주셨습니다. 스님은 첫날보다 조금 한산해졌다며, 공부가 어렵긴 어려웠나보다 하시며 알짜배기만 남은 거냐며 농담을 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한강의 물줄기에서 가장 긴 것이 원류이듯 우리 민족의 원류는 역사가 짧은 신라의 역사가 아닌 배달의 역사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부터 배달나라까지 거슬러 하나하나 추적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우리 민족사도 족보를 찾아가듯 똑같이 추정해가면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이름이 대한민국이잖아요. 대한민국의 이름은 대한제국에서 왔습니다. 제국은 임금이 주인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는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해서 대한제국 부흥운동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립 운동을 했어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대한제국을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대한제국은 조선왕조에서 왔습니다. 조선왕조를 대한제국이라 바꾼 이유는, 청나라 속국에서 벗어나자는 국권회복운동으로 고종황제가 자주 독립국가를 선포한 것이 대한제국이었어요. 조선왕조는 고려왕조에서 왔어요. 임금의 성만 바꿔서 왕씨에서 이씨로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역성혁명이라고 하잖아요. 고려왕조는 후고구려를 계승했어요. 고구려, 신라, 백제를 모두 계승한 것을 후삼국의 통일이라고 하는데 사람과 영토는 대부분 신라를 계승했지만 역사적 정통성은 고구려를 계승하고 고구려의 본래 영토인 북방영토를 회복하려 했어요. 힘이 부족해서 이루지는 못했지만 건국정신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고려하고 조선하고는 큰 차이가 있어요. 조선은 자발적으로 한반도에 만족했죠. nbsp고구려는 고주몽이 자기는 해모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해모수는 부여를 건국한 사람이에요. 주몽은 해모수의 직계후손 쯤 됩니다. 해모수는 자기의 뿌리를 단군 조선에다 뒀어요. 단군의 후손이라고 하지요. 단군은 자신을 배달나라 임금인 환웅의 아들이라 했습니다. 환웅은 한나라 임금인 환인의 아들이에요. 바로 환인의 아들로서 왕위에 오른 게 아니고 이주해 와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신시라 하고 나라 이름을 배달이라 했어요. 원주민한테는 이들이 하늘에서 온 천손들이었어요. 환인은 한나라의 임금이었는데 그 한나라는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시작은 한나라가 뿌리입니다. 원뿌리는 한나라에서 왔지만 인구구성으로 보면 토착세력이 주류고 이주민인 천손들이 지배계급인 거죠. 역사의 뿌리는 그렇게 잡고 있어요. 그 조상도 있었겠죠. 그러나 여기까지 밖에 알 수 없기에 민족사는 여기가 시작이에요. nbspnbspnbspnbspnbsp우리나라 역사는 한나라까지 따지면 구천 삼백 년쯤 됩니다. 한나라의 3천 3백년을 빼버리면 6천 년전. 환웅 천왕이 이곳으로 이주해 와서 새로운 나라, 배달나라를 세울 때 건국이념이 홍익인간 재세이화였어요. 홍익인간이란 건 이 땅에 살고 있는, 문명에 뒤쳐진 토착세력을 이익 되게 하기 위해서 나라를 세우는 것이지, 침략·착취하기 위해 새나라를 세운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늘에서 왔으니 인간을 이익 되게 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선진문명이 이주해 와서 후진문명인 토착세력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이게 6천년 전이에요. nbspnbspnbspnbspnbsp개천은 환웅천왕이 새로운 나라를 처음 열은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단군 몇 년’보다 ‘개천 신시 몇 년’ 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때 천부인 세 개를 갖고 왔어요. 청동거울, 청동검, 청동방울. 이것은 청동기를 가진 천손의 징표에요. 그렇게 해서 1600여년을 계승해서 내려오다가 배달나라 마지막 천왕 때에 부계는 천손, 모계는 토착세력인 단군에게로 왕위가 계승 되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청동기 문명을 이룩한 6천년전의 배달나라에 대해 설명해주시고, 이렇게 우리 나라의 시원은 환웅천왕이 신시를 세운 날로 잡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이어 우리 민족이 역사를 잃어버린 과정에 대해 들려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우리가 민족사의 뿌리를 잃어버린 지는 천년이 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스스로 자발적 사대를 해서 우리 문명이 중국보다 앞선다고 되어 있는 옛 고기들을 없애버렸어요. 소위 모화사상, 중국을 부모국가로 보는 것이었죠. 이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스스로 옛 역사를 잃어버렸습니다. 거기다가 근세에 경성제대가 설립되면서 실증주의 역사방법론이 들어왔습니다. 역사를 유물, 유적, 사료를 근거해서 말하자는 건데, 좋은 얘기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를 우리 손으로 쓴 역사서는, 고구려 때 유기 백권이 있었는데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다 없어졌습니다. 고려시대 와서 일부 복원된 게 원나라 치하에 소실되고 조선시대에는 자발적 폐기를 하고 일제 시대 때 없어지고. 땅도 잃고 기록도 잃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역사를 새로 연구 복원해야 하는데 남은 거라곤 삼국유사, 삼국사기 정도 밖에 없었어요. 삼국사기는 삼국시대 이후를 기록한 것이니 당연히 고구려 이전의 부여와 단군 조선, 환웅의 배달에 대한 기록이 남은 게 없어요.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은 삼국시대를 말하는 게 목적이었지만, 그 이전 역사를 간단하게 한 페이지, 한 줄로 정리하다보니 환인시대 3300년을 환인 한 사람으로, 환웅시대 1600여년을 환웅 한 사람으로, 단군시대 2천 년을 단군 한사람으로, 마치 3대로 이어지는 것처럼 기록을 했어요. 허황된 논리처럼 비치는데 그것은 요약정리해서 그런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런 상황에서 일제의 실증주의사관으로 인해 우리의 역사가 중국 변방의 역사로 전락한 과정과 경성제대를 잇는 강단 주류사학계와 환단고기를 중심으로 새롭게 부상한 재야사학계의 논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음도 이야기 해주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이어 중국 만주 요하상류지역에서 1만년에서 5천년전 유물들이 대거 출토됨에 따라 전설처럼 취급받던 배달의 역사가 입증되기 시작했고, 이에 놀란 중국이 국가 프로젝트로 요하문명과 황하문명을 모두 자국의 역사로 재편한 과정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일제시대 때 만주에서 일본 학자들이 지금의 내몽고 자치주 적봉시에 있는 홍산 아래서 수 천년 전 유물을 발견했어요. 역사기록에는 전혀 없는 거였어요. 중국인들은 고대 중국의 임금으로 3황인 복희씨, 신농씨, 황제헌원씨와 오제인 황제, 전욱, 제곡, 요, 순 임금을 오제라고 받들어요. 그런데 중국은 사기에 주나라까지 기록은 분명히 남아 있어요, 은나라만 해도 역사기록은 있는데 전설처럼 간주돼요. 중국 5천년 역사는 유사이전과 유사이래로 나뉘는데 황제헌원이 왕위에 오르기 전이 유사 이전입니다. 중국 만리장성 밖은 오랑캐의 땅으로 중국 영토가 아니고 역사도 아니였어요. 중국은 황하유역을 중심으로 문명의 뿌리를 자랑하잖아요. nbspnbspnbspnbspnbsp그런데 이 만리장성 북쪽 한참 넘어 요하상류 광범위한 지역에 5천ㄴㅕㄴ전 유물과 유적이 엄청나게 발견되었어요. 그 시작이 적봉시 홍산부근에서 유물이 나오면서부터예요. 그래서 홍산문명이라고 이름 붙여졌어요. 그런데 이 지역에 살았던 민족은 몽골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고조선, 부여, 고구려도 있었는데 어디가 홍산문명인지는 모르고 다만 유물만 남았어요.nbsp nbspnbspnbspnbspnbsp70년대 후반에 중국이 개혁 개방하면서 경제력이 나아지고 이 지역 유물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80년대부터는 한두 군데가 아니고 오백여 군데에서 쏟아졌어요. 1만년 전 신석기 유물이 나오니 세계가 놀라고, 중국이 놀랐습니다. 지금 요녕성 서쪽 뉴허량 지역에서는 6000년전 무덤이 60여기 발견되었어요.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천년이나 앞서는 피라미드에요. 제일 큰 것은 한 변이 60미터, 높이 7단. 장수왕릉 즉, 장군총보다 한 변의 길이가 두 배인 이런 거대한 적석총을 만들려면 고대국가가 형성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발굴하다보니 신전도 발견이 되었어요. 고대문명의 핵심은 무덤과 신전이에요. 신상은 여신상인데, 손이 곰손 비슷해요. 그리고 정교한 옥기 장식품이 수도 없이 나왔어요. 머리 부분이 돼지모양의 용인 저용. 곰모양인 웅용. 연대로 치면 홍산문명은 65005000년 전. 인더스 문명은 석기인데, 홍산문명은 옥으로 만든 아주 정교한 유물이 나옵니다. 이게 해석하기 어려워요. 어떤 사서에도 이정도 규모의 발달된 문명에 대한 얘기가 한 줄 없어요. 그러나 적어도 현재 유물만 갖고도 4천 년 전에 청동기를 제작하고 제사를 지냈고 무기로 썼음을 알 수 있어요. 중국은 일대 혼란에 빠졌어요. 중국 내륙에서도 신석기시대의 유물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홍산문명은 일만 년 전부터 삼천 년 전까지가 일정한 지역 안에서 시대순으로 연결되어서 나왔어요. 중국은 황하문명이 뿌린데, 이것은 황하문명보다 천 년 이상 앞선 것이니 황하문명이 이 문명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요하강 상류지역의 문명을 요하문명이라 합니다. 그러면서 중국은 국가적으로 수백 명의 학자를 동원해 논리를 만들어 중화문명을 새로 썼어요. 중국 역사는 두 개의 문명 황하문명과 요하문명을 원류로 한다며 이를 중국 역사 속으로 편재하고 지금은 역사 교과서에까지 반영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nbsp요녕성 박물관은 이 유물 일부를 가져와 요하문명에 대한 전시대를 시를 하고 있어요. 제 1관 ‘문명의 서광’이라 해서 신석기 유물을 전시하고, 상주시대 청동기를 진열하고, 진·하화하일통이라 해서 중국의 황하문명과 북쪽의 요하문명이 진정으로 하나가 됐다고 해요. 통합역사관점에서 전시를 해요. 중국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 안에 있는 과거의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 금, 원, 청, 고구려, 발해, 부여도 중국역사. 옛날 선비족, 티베트도 다 중국역사. 그런 관점에서 공부를 가르치고 관점을 잡아 가고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고구려 문명의 두가지 특징인 피라미드식 무덤과 석성의 치가 요하문명에서 고구려보다 3천년 먼저 앞서 나타난다고 하시며, 고구려가 계승한 배달나라가 요하문명라는 근거가 된다 하셨습니다. 중국 역사에도 나오는 동이의 치우천왕 얘기도 곁들이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고구려 문명의 독창성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가 무덤. 피라미드처럼 쌓는 적석총은 동아시아 지역에는 고구려를 제외하고는 아무 데도 없습니다. 거란, 여진, 몽고, 선비족 아무 데도 없는데 고구려에만 있어요. 그 전에는 고인돌 형태였는데, 한반도, 만주에만 있지 남쪽에는 없습니다. 두번째는 석성에 치가 반드시 있다는 것이에요. 치는 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해서 측면도 공격할 수 있게 하는 획기적인 방법이에요. 그 시기 다른 나라 성에는 그게 없어요. 이게 고구려의 독창적 문화유산이라 했는데 고구려보다도 3천년 앞서서 이 지역에서 나타납니다. ‘옛 땅을 되찾는다’고 하는 다물사상은 고구려 건국이념이에요. 이 문명이 소위 말하는 배달문명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중국에는 유물은 있으나 역사가 없고 우리에게는 역사는 있으나 유적, 유물이 없으니까 한·중이 함께 연구 하면 훨씬 더 전모를 빨리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은 혈통적으로 북방몽골계에요. 남방계하고는 인종적으로 크게 다릅니다. 언어학적으로는 중국은 티벳어족, 우리는 우랄알타이어족입니다. 중국은 황하문명의 계승자, 우리는 요하문명의 계승자입니다. 요하문명이 시기적으로 앞서 있습니다. 환웅시대 14대 자오지 환웅인 치우천왕은, 청동기를 제기로만 쓴 게 아니라 무기로 썼어요. 중국 사람들은 치우천왕과 싸워서 황제가 이겼다고 하지만 사실은 백전백패한 것입니다. 머리에 뿔을 달고 입에서는 불을 뿜었다고 묘사하는데, 뿔 달린 투구를 쓰고 쇠가 부딪히니까 불이 났다고 봤겠죠. 이쪽은 청동기, 저쪽은 석기문명이어서 상대가 안 되었어요.nbspnbspnbspnbspnbsp이 배달문명의 일파가 동쪽으로 옮겨가서 만주, 요동, 평양까지 온 것이고, 서쪽으로 내려간 게 은나라입니다. 은나라는 한족이 아니라 동이족입니다. 은나라가 멸망할 때 백이숙제의 죽음과 기자등 일부 신하들의 조선 귀환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 이렇게 고도로 앞선 문명이 우리 민족의 뿌리라고 자긍심을 가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하문명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주변 문명에 의해 역전되는지를 말씀하시며, 영원히 앞서는 문명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시 한번 부흥할 수 있는 첫 단계는 통일이라고 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우리는 완전히 다르게 시작해야 합니다. 자긍심을 가져야 하고, 어쩌면 지금 부흥할 가능성도 있어요. 그 첫 단계가 통일입니다. 민주화, 산업화에 성공했다는 건 굉장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 통일해서 통일된 한국이 일본, 중국과 함께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든다면 세계문명의 중심이 동아시아이고 동아시아의 중심이 한국이 될 수 있어요. 이것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강대국이 된다는 과거 개념과 다릅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은 마지막으로 이 사회의 여러 현상을 보면 자칫 정체와 몰락의 길로 갈 수도 있다며, 배달문명의 후예라는 긍지를 가지고 통일의 비전을 꿈꾸고 동아시아 공동체로 나아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우리 문명의 원류는 배달문명, 유물로는 요하문명입니다. 유물의 유사성과 역사와 지역을 보면 중국 문명의 아류가 될 수 없습니다. 인류 문명사의 첫 뿌리를 계승한 문명의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라가 작지만 당나라와 버금하는 문화예술을 꽃 피운 것은 본래 문명의 뿌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긍심을 갖고 조금만 방향을 잘 잡는다면 새로운 문명의 선구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우리 ‘민족사의 뿌리’에 대한 강의를 마치고 오후 2시에는 스님의 책 ‘엄마수업’을 중국어판으로 출판한 중국성시출판사와 중국언론 Sina에서 기자 2명, 독자 이벤트에서 수상자로 선정된 중국인 아기 엄마 5명과 관계자등 10명이 평화재단을 방문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엄마수업’이 중국어판으로 출판되면서 중국에서도 스님의 즉문즉설이 널리 알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성시출판사에서는 엄마수업 독자들에게 이벤트를 마련했는데 여기에 수상자로 선정된 분들이 저자와의 만남을 위해 한국까지 찾아 온 것입니다. 중국인 아기 엄마들은 평소 아이를 키우면서 어려움이 있었던 부분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스님께 질문하였습니다. nbsp육아 과정에서 부부가 어떻게 분담하고 협조해야 하는지, 조부모님과 교육관에 있어서 세대 차가 있어 충돌이 일어날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이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화가 날 때는 어떻게 감정을 컨트롤 해야 하는지, 이혼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심리 지도를 할 때는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지, 아이를 정신적으로 부유하게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장 여성은 직장과 육아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지, 피아노를 배우기 싫어하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중독된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등등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중국인 엄마들의 고민이나 한국인 엄마들의 고민이나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즉문즉설 강연하실 때와 똑같이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가며 아이의 행복을 위해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을 아주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문답은 2시간 30분 동안 지칠 줄 모르고 계속 되었습니다. 통역이 빠르게 오가면서 중국인 아기 엄마들의 얼굴도 점점 더 밝아져 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스님의 법문이 국경을 뛰어 넘어 중국인들의 삶에도 바로 적용되는 감동적인 현장이었습니다. 부처님의 법은 국경, 인종을 뛰어 넘어 두루 적용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께서는 엄마의 역할에 대해 마지막에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희생하라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기뻐하면서 살면 그것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아이를 따뜻하게 감싸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아이에게 문제가 안 생기도록 예방하라는 것이고요. 둘째,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더라도 아이를 탓하지 말고 자기를 반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개선이 됩니다. 인생 고통의 절반은 자식 문제입니다. 아기가 어릴 때 처음에 좀 정성을 기울이면 나중에 아이가 커서 고생을 안 하게 됩니다. 자식을 둔 엄마가 ‘내가 아이 하나 낳아서 잘 키웠다’ 이렇게 자랑스러워 해야지요. ‘아이고, 내가 저 놈 새끼 왜 낳았노’ 하는 것보다 이 세상에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식이 잘못되면 부모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불행을 미연에 막기 위해서 이렇게 책을 낸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이어서 중국 검색 포털 사이트 Sina닷컴에서 나온 기자 2명이 각각 스님에게 인터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한 여성 기자분은 스님께 “스님은 남성이시고 출가를 하셨는데 어떻게 아이 교육에 관한 책을 내실 생각을 하셨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이 육아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까 중국인 기자 입장에서는 많이 생소했나 봅니다. 스님께서는 기자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충분히 공감이 가신 듯 활짝 웃으시며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많은 엄마들이 너무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스님한테 수백 수천명이 상담을 하다 보니까 그 내용의 일부를 책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책을 내야겠다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아이 문제에 대한 수백 수천명의 상담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내용 중의 일부를 책으로 출판하면 도움이 되겠다 해서 그 상담한 내용을 정리해서 책으로 낸 것입니다. 중생의 고통을 해결해주려 하다보니까 책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nbsp기자 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간담회가 끝나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중국에서 오신 손님들에게 단주를 손에 걸어주시고 손수건과 열쇠고리를 한분 한분에게 선물하면서 중국어판 엄마수업 책에 사인도 각각 해주셨습니다. 모두들 스님과 함께한 시간을 만족해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오늘 대화한 내용은 중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용하고 있는 Sina 포털에 기사로 소개된다고 합니다. 중국인 분들과 인사를 다 마치니 오후 5시가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저녁 강의 준비를 위해 정토회관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저녁 7시 30분부터는 ‘세계를 바로 보는 눈’ 제6강 ‘인생이란’ 주제로 강의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사람은 사회적 8228 역사적 존재입니다. 사회적 존재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공간적으로 다른 사람과 연관되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연관 속에서 나의 존재가 확인이 됩니다. 또 역사적 존재란 시간적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끝없이 연관되어져 있음을 뜻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그래서 나 하나 개인의 삶의 시작 뿐 아니라 부모, 부모의 부모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하나의 원인을 찾아가는 것이 씨족사입니다. 또, 씨족이 부족을 이루고 부족이 부족 연맹을 이루고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므로 민족의 역사 소위 민족사를 알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의 민족이 강대국에 의해 지배를 받거나 분열, 일시적으로 존재하다가 다시 통합되는 모습 등의 여러 민족의 역사를 인류문명사라 합니다. 이런 인류 문화사, 인류 문명사는 결국은 생명의 역사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역사는 결국 물질의 역사 속에 들어 있습니다. 물질의 역사라는 것이 결국은 우주의 기원, 우주의 역사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나를 좀더 분명히 알기 위해서 나의 근원을 추구하다보면 결국 우주의 역사에 이르게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그래서 우리가 우주의 역사, 또는 물질의 근원에 관한 문제로서 물질이란 것이 대체 무엇인지 물질의 근원을 추구해 보면 물질은 아주 미세한 존재들의 끝없는 결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 근원으로 가면 입자라고 할 수 없는 물질 아닌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세물질들의 고도한 결합이 이뤄지면서 결국은 물질의 기본단위인 원자, 분자, 고분자에 이르고, 더 나아가서는 결국 물질과는 다른 메커니즘을 갖는 작동 원리를 갖는 것을 생명이라고 칭하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생명의 진화 가운데에서 인간종이 출현하게 되고 신석기부터를 인류문명사로 일컫는데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적인 인간종의 진화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이는 문명사가 시작되면서부터의 인간종의 변화 발전은, 컴퓨터에 비유하였을 때 하드웨어적인 발전은 거의 없이 빠른 속도로 소프트웨어가 개발된 상황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즉 생물학적인 변화 보다는 정신적인 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생명 작용이 물질에 토대를 두고 있듯이 정신작용 역시 생명작용에 근거를 두고서 계속 진화해온 것입니다. nbspnbspnbsp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첫 방법이 촉각입니다. 감촉에 의해서 정보를 알게 됩니다. 사물을 인식하는 여타 감각으로 미각, 후각, 청각, 시각이 있습니다. 촉각은 주로 고체를 감지하며 미각은 액체, 후각은 기체, 청각은 장파, 시각은 단파를 감지함으로써 정보를 수집하여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물을 인식한다, 안다 하는 것은 결국 정보를 전달하는 신경세포, 뉴런이 발달하면서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인간의 뇌에 여러 정보를 전달하고 저장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합니다. 앞으로 뇌에 대해서 연구한다는 것은 우주에 대해 연구한다는 것만큼이나 연구할 거리가 많고 복잡할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이러한 생물학적인 고도의 진화에 기초하여 정신작용이 일어나지만 인간의 정신작용은 제한된 범위이기는 하지만 물질작용 및 생명작용에 반하는 작용을 하기도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물질작용이나 생명작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생명현상의 핵심은 자기 생명을 유지 하는 것과 종을 유지 하는 것에이기에 자기 생명을 유지하는 물질대사와 복제 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배가 고프면 먹으려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이면 먹이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정신작용으로 인하여 배가 고파도 남에게 배려하기도 하고, 배가 불러도 자신의 소유를 주장하기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소위 일반 짐승과 다르게 선심과 악심이 있으며 이는 정신작용의 모습입니다. 과거에는 정신작용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에 정신작용은 몸과 별개다. 몸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신의 영역이다 등과 같은 오해가 많았습니다. 또 반대로 오늘날 과학이 발달함으로 인해 물질에 대한 연구가 정신현상까지 모두 설명해줄 것이라는 오해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물질작용, 생명작용, 정신작용 각각 개념적인 구분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이 세 가지가 결합된 총체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우울증의 경우에도 물질적인 투약만으로 해결하려고 접근하는 것도 온전하지 않으며 정신질환으로서 순수한 정신적인 상담만으로 접근하는 것도 온전한 방법이 아닙니다. 자율신경에 변화가 일어나면 신진대사의 분비가 일어나서 결국 안정을 가져오는 물질적인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측면도 있고, 이 뿐 아니라 주위 환경에 의한 정신작용의 습관에 의해 정신심리학적인 작용으로 큰 영향을 받는 측면도 있으며 아직 어느 한 가지가 주효하다고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화를 잘 내는 사람의 원인을 살펴본다고 하였을 때, 화를 잘내는 유전자를 부모로부터 태어나면서 받은 것으로 원인을 찾을 수도 있는 반면에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아주 어린 시절의 경험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습관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UCLA 의과대학에서의 발표에 따르면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와 학대받은 아이의 뇌크기가 월등하게 차이가 났다고 합니다. 즉 부모의 극심한 스트레스는 자녀의 뇌 성장에 굉장히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유전적인 면보다는 생후 경험하는 의식적인 면에서의 영향을 강조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nbsp 사람이 안다고 할 때에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져보아 아는 것, 이 다섯 가지 감각 외에 6번째 인식의 방법이 바로 사고입니다. 뇌에서 생각하고 종합하여 아는 것을 말합니다. 가보지도 않고, 눈으로 보지도 않고, 어떠한 원리를 생각함으로써 알게 되는 것, 이것을 의식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통찰력이라고도 하고 지혜라고도 합니다. 이는 시공간이나 부분적인 것을 뛰어넘어 어떤 사물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말하며, 이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삶은 물질작용, 생명작용, 정신작용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이러한 것을 볼 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꼭 먹고 사는 데에 필요한 공부만을 할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가지고 자기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인간 삶에 대하여 자발적인 공부를 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우리는 이번에 공부한 여섯 가지 내용에 대한 책을 꼭 읽어보아야 합니다. 물질 현상, 생명 현상, 인간종, 인류 문명, 민족사, 나 자신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돈과 지위, 권력에 대한 추구보다도 기본 인격, 기본 인식의 수준이 높아져야 합니다. 대중들의 지성이 미래를 이끌어갈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수행을 통해 기본 인격을 닦아나가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전 인구의 1만이라도 이러한 사람들이 생긴다면nbspnbsp사회 전체의 부정적인 면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전법하고 만일결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스님의 말씀에 집중하여 듣느라 스님 강의가 끝나고 나서야 2시간이 훌쩍 지났음을 알았을 만큼 모두들 스님 특강에 대한 감사함과 기쁨,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였습니다. 우리 자신 인생의 희망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우리 미래의 희망이 되고자 하는 부푼 꿈에 대한 벅찬 마음과 함께 그동안 스님 특강을 함께 들었던 도반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느라 서로들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모습들이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중국내 빈곤층에 대한 지원, 그리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중국 방문 일정이 있으십니다.

2014.04.18. 20,112 읽음 댓글 4개

2014.4.15. 두북 어르신 봄나들이 - 송광사

오늘은 두북 정토마을 근교의 어르신들 봄나들이가 있는 날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두북 근교에서 오신 150여분의 어르신들과 봉사자 20여분이 전남 순천 송광사로 봄나들이를 가게 되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출발 직전 버스 4대에 직접 오르셔 간단한 인사말씀과 오늘 하루 재미지게 놀아보자고 하시며 송광사로 출발했습니다. 봄꽃이 한창이라 차창 밖으로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어르신들의 또 하나의 봄나들이 같았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송광사가 가까와지자 송수신기로 오늘 봄나들이를 가게 된 송광사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 송광사는 순천의 조계산 북쪽에 위치한 우리나라 삼보 사찰 중 승보사찰에 해당하신다며 3보사찰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송광사는 고려시대때 16명의 국사를 배출해서 승보사찰이 되었다고 합니다. 국사는 나라의 스승으로 한 절에서 한분 나기도 힘든데nbspnbsp열여섯 분이나 나오게 되어 승보사찰이 된 배경을 얘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리고 오늘은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나들이하기 좋다고 하시며 예년보다 훨씬 따뜻한 날씨 때문에 봄꽃들이 순서대로 피지 않고 한꺼번에 피고 지고 있다며 날씨로 인해 농사가 어떨지에 대한 염려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nbsp두북 정토마을을 출발한 버스는 약 4시간이 걸려 송광사에 도착 했습니다. 긴 시간이긴 했지만 어르신들은 지친 기색이 없어 보입니다. 어르신들도 꼭 소풍 나온 어린애들 마냥 웃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버스가 경내까지 가지 못하니 어르신들께 거동이 영 불편하신 분을 제외하곤 걸어서 올라가자고 하시며 함께 걸었습니다. 스님과 함께 걷는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입니다.nbsp스님께서는 일주문 입구에 있는 송광사 안내 표지판을 친절하게 읽어 주셨습니다. 송광사는 신라말 혜린 선사에 의해 창건되어 송광산 길상사라고 했으며,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9년간의 중창 불사를 통해 절의 규모를 확장하고 참선을 중요시하는 선종사찰로 3개의 국보와 20개의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초파일이 다가오는지라 송광사도 색색의 등들이 많이 걸려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절 경내로 들어가는 다리의 모양이 예뻐서 유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다리도 예쁘고 다리 아래 흐르는 물 속에 비친 등들도 예뻤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어르신들과 함께 대웅전으로 들어가 참배하고 염불도 하고 간단히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봉사자들의 안내로 어르신들께서는 질서정연하게 대웅전으로 들어 가 앞자리부터 앉으셨습니다. 자리가 정돈되자 스님께서 어르신들의 건강과 편안한 노후를 위한 축원발원을 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은 이어서 행복한 노후를 위한 법문도 해주셨습니다.“이렇게 나이 들어서 보니 예전에 내가 잘한다고 했던 일들이 꼭 잘한 것도 아니고 잘못했다고 한 일들이 꼭 잘못한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 때 구슬치기를 잘해 구슬을 많이 따서 보관까지 했는데, 그 시절엔 많이 따고 많이 가진 것이 잘한 것 같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남의 구슬 따 먹은 게 잘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때 구슬을 땄더라도 친구들에게 나눠줬다면 아마 지금쯤 스님은 어릴때부터 보통아이들과는 달랐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공부해야 할 시절에 소 풀 베러 다니고 집안일 거든 것이 그 시절엔 힘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잘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해외 나가서 활동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하시며 인생을 7,80은 살아야 이런 이치를 안다며nbspnbsp‘살아 왔던nbspnbsp삶 자체가 공부’라고 하셨습니다. nbsp“우리는 진짜 귀한 걸 귀한 줄 모르고 별로 필요 없는 걸 정말 귀한 줄 잘못 알고 살아왔습니다. 다시 살아라고 하면 아마도 다 잘 살 것입니다.”라고 해서 어르신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인생은 이렇게 살아봐야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미리 좀 아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보통 죽을 때가 되어야 조금 알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너무 집착해서 악착같이 죽기 살기로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라고 하시며 편인히 노후를 맞이하시라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 세상을 졸업하고 저 세상에입학할 때 모든 점수의 기준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기준과는 좀 다릅니다. 이 세상 살 때에는 손해 안보고 이익만 보려고 했고, 집도 크게 넓히고, 옷도 좋은 것 입어야 잘 사는 것 같지만 저 세상 갈 때는 손해도 좀 보고 옆에서 ‘에이, 바보야’하는 소리를 좀 들어야 점수가 잘나옵니다. 저 세상 입학 점수가 좋으려면 악착같이 살지 말고 마음을 좀 후하고 너그럽게 가지면서 베풀고 살아야 합니다. 영감님과 같이 사시는 분들은 잔소리도 좀 그만하시고 영감님들도 마누라 이제 그만 부려 먹어야 합니다.”라고 하자 법당 안이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다음 생을 위해 너그럽고 후한 마음을 내어 베풀며 행복하게 사는 게 지금 편안하게 노후를 맞이하는 일이라고 하시면서 “자식들 걱정도 그만 하시고, 자식들을 위해서 논, 밭 팔아 주지 말고, 집을 잡혀 돈 빌려주지도 말고nbspnbsp고향을 지키며 자식들이 나중에 돌아 올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나를 위한 일이고, 자식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입니다.”라며 자식들에 집착말고 편안히 노후를 맞도록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죽음의 세계에 대해 해학적으로 풀어주시는 스님의 지혜가 어르신들의 마음을 녹이는 것 같았습니다.“항상 살아 있는 것에 고맙다 생각하시고, 과식과 과음도 줄이시고, 농사일도 너무 과로해서 하지 말고, 행복하고 편안하게 사십시오.”라는 당부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대웅전을 나와 왼쪽 박물관으로 들어가시며 스님은 송광사에는 유명한 것 세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비사리구시와 몇 백개를 쌓아도 무너지지 않는 그릇, 그리고 향나무라고 합니다. 어르신들은 비사리구시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리며 구경을 하십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리고 송광사에는 탑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절터가 물 위에 뜬 연꽃처럼 생겼다 하여 무거운 돌탑이나 석등이 있으면 절터가 무너진다하여 탑을 세우지 않았다고 합니다.송광사에 또 하나 없는 것이 ‘풍경’인데 참선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없다고 합니다. 역시 승보사찰로서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집니다.nbsp스님과 어르신들은 사찰 여기저기를 둘러보시고 대웅전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했습니다.nbsp 어르신들의 미소가 봄 햇살만큼이나 따사로워 보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선 점심공양을 위해 어르신들과 식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점심으로 비빔밥을 드시고 스님께선 헤어지기 아쉬우신지 주변에 앉아서 소화도 시키고nbspnbsp쉬실만한 공간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셔서 마침 식당 앞에 넓은 평상이 있어 어른신들과 모여 나들이에 빠질 수 없는 노래부르기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마을별로 가수들 나와서 노래를 불러 보라고 하시니 각 마을별로 나오신 어르신들은 농사nbspnbsp지으시면서 언제 그렇게 노래를 배우셨는지 구성진 노래가락에 편안함 마저 묻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nbsp그 중에 하활천에서 오신 어르신 한분은 노래 대신 어려운 불교 말씀을 이해하기 쉽게 설법해주시고 이렇게 우리와 가까이 해 주신 스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어르신들의 흥에 겨운 노래자랑이 끝나자 스님께선nbspnbsp내년을 기약하며 마무리 인사를 하셨습니다. 늘 농사일과 자식들 걱정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마음에도 오늘은 봄기운이 가득하기를 바래 봅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내일 서울에서 강의가 있기 때문에 송광사에서 서울로 향하셨고, 어르신들은 두북으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르신들과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을 전하시며 서울로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늘 하루 두북 어르신 봄 나들이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순천 법당에서 어르신들의 순례를 도와 드리기 위해 봉사자 11분이 참석해주셔서 행사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nbsp내일은 세계를 보는 눈 5, 6강이 있습니다.

2014.04.16. 18,153 읽음 댓글 5개

2014.4.14, 수도권 불대생 주간반 경주남산순례, 울산 동구청 강연

오늘은 수도권 정토불교대학 주간반 경주남산순례가 있었습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불교대생들은 모두 6개 코스로 나뉘어서 남산을 올랐고, 스님께서는 또 다른 코스를 점검하기 위해 남산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어제보다 조금 더 일찍 나서셨습니다. 오늘은 새로운 코스를 답사하고 빨리 내려와서 어제 함께 모여 밥을 먹고 모임을 가졌던 솔숲을 좀 더 정리하기 위해서 톱과 낫을 챙겼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늘은 어제와 비슷하게 새갓골로 올라 열암곡 석불좌상으로 가지 않고 반대쪽 길인 암조암 골로 올랐습니다. 이 길도 새롭게 가보는 길인데,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인지 지도를 보면서 그리고 길을 확인하면서 올랐습니다. 얼마가지 않아 파손된 불상조각들이 모아져 있는 절터를 지나 어제보다는 가파른 길을 20분 정도 오르다 보니 무너진 탑과 절터가 보였습니다. nbsp이 절터에 누군가가 묘를 쓰기 위해 일부러 탑을 무너뜨린 것이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탑의 잔해들을 보니 규모가 제법 컸던 것 같았고 스님께서는 이 폐탑이 있는 앞이 넓은 절터인데 산 중턱에 이렇게 넓고 햇볕이 잘 드는 곳이 있다는 것에 감탄하시면서 정말 절터가 좋다고 하셨고 우리들도 처음 보는 이곳이nbspnbsp편안해 보이고 좋았습니다.nbsp65279nbspnbspnbspnbspnbspnbsp절터를 떠나서 다시 정상으로 오르다 보니 심수골 여래좌상이 있다는 표지판을 보고 다시 옆길로 내려가니 목이 없어진 불상이 있었습니다. 여기를 참배한 후 다시 길을 되돌아 올라가 어제 갔던 봉화대를 지내 산 정상에서 휴식을 취한 후 칠불암으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산정상에서 칠불암을 내려다 보니 아직 여기로 오는 사람들이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칠불암을 향해 내려오다 신선암 부처님을 참배한 후 밑의 칠불암을 바라보니 이제 사람들이 도착해서 염불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칠불암으로 내려오니 막 염불을 끝낸 대중들이 스님을 보자 반가워했습니다. 이곳 칠불암은 스님께서 고등학교때 절에 들어오신 후 불심도문 큰스님의 지도를 받으며 수행정진한 곳이기도 합니다.nbsp65279nbspnbspnbspnbspnbsp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힘들게 칠불암을 올라간 불교대학 학생들에게 스님께서도nbspnbsp반갑게 맞아 인사해주시며 순례를 잘하라 말씀하시고 칠불암 스님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길을 재촉하여 떠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걸음을 서둘러 내려와서 염불사지를 지나 전체가 모이는 통일암 솔숲에 도착하자마자 낫과 톱을 꺼내 들고 죽어서 늘어진 가지나 사람들이 다니기에 방해 되는 가시나무들을 쳐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어제보다 장소가 훨씬 더 넓어 보였습니다. 장소를 어느정도 정리하고 난 후 스님께서는 대중들이 내려오면 인사를 하며 마중을 하기 위해 공양을 먼저 드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공양을 드신 후 대중들을 맞이하기 위해 입구에 서서 오는 모든 분들에게 인사를 하며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남산을 순례하고 내려와 점심공양 할 넓은 솔숲에 도착하였을 때 반갑게 맞이 해주시는 스님의 모습에 불대생들은 당황하면서도 반가워 스님의 모습을 휴대폰에 담기도 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모든 참가자들이 공양을 끝낸 후 스님의 감로 법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우선 스님께서는 “남산에는 43개의 골짜기에 절터가 150여개, 불상이 120여개, 탑이 100여개 등 총 700여개의 문화유산이 있는 자연 박물관이자 노천박물관입니다.”라며 경주남산의 두 봉우리 수리산과 금오산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해주시며 그 산을 끼고 있는 계곡과 남산에 산재해 있는 절터 불상 탑등 많은 유적지에 대해서 상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 또한 불교대학 학생들이 산행한 코스에 대한 내용을 잔잔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신라가 어떻게 불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또한 귀족불교와 민중불교의 입장에서 신앙의 차이에 대한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남산에 산재해 있는 불상이나 탑들은 주로 민중들이 그들의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위에 새겨진 부처의 모습이 민중들의 민족신앙과 불교가 합쳐져서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산의 부처님들은 만질 수 있고 굉장히 친근한 모습으로 자연속에서 민중들의 부처님을 나타내주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 남산의 유적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해주신 후 스님께서는 불교대학 학생들에게 불교대학을 열심히 잘 다닐 것과 기도를 하루도 빼먹지 말고 매일 해야 한다며 부지런히 수행정진 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어서 간단하게 즉문즉설로 몇분의 질문에 답을 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렇게 즉문즉설로 궁금증을 풀어주시고 시원한 솔숲을 나와 염불사지로 이동했습니다. 염불사지에 도착해서 약 20분간 함께 염불정진을 한 후 오늘 수고하신 분들을 소개하며 함께 감사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nbspnbspnbspnbsp 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오늘 남산순례의 회향식을 하고 쌍피탑을 거쳐 통일전에서 마무리 하였습니다. 오늘 스님과 함께 한 남산순례는 봄꽃과 나무들의 새순들을 감상하며 마음에 위안을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진달래와 연달래를 보면서 이 봄이 참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면서 법륜스님과 함께해서 이 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저녁 7시부터 울산 동구청에서 강연이 있기 때문에 서둘러 동구청으로 향했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공양을 하고 목욕을 한 후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동구청 강당은 기본 400석의 강당 좌석이 강연 30분전에 벌써 700여분의 사람들이 강당을 꽉채웠습니다. 강연장에 들어선 스님께서는 마룻바닥이 좋다고하시며 서 있는 사람들에게 강단으로 올라오시라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자꾸 사진만 찍으면 어쩌냐고 우스개 소리를 하시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와주신점에 대해서 감사의 마음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오전에는 경주 남산순례에 참석하시면서 소풍온 듯 멋진 하루를 보냈다고 하시면서 보통 저녁 못먹고 강의할때가 많은데 오늘은 자장면 한 그릇을 먹었다며 행복해 하시는 스님의 말씀에 소박한 스님의 모습을 뵈는듯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인생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해주셨습니다. “100m를 20초에 달리는 사람이 10초를목표해서 매일 운동한다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소원 성취 못한다고 스스로 자책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19초를 목표로 하면 목표달성을 할 수 있습니다. 안될 수도 있지만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목표를 너무 높게 세우게 되면 대부분 달성을 하지 못하고nbspnbsp남에게 신뢰도 주지 못하며 자기 자신에게도 믿음을 주지 못합니다.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욕심이 많아서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인생의 성공은 첫째, 현재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건과 사고 속에서도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자신에게 좀 더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살기는 사는데 좀 더 행복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를 하며 사는 것입니다. 나와 남편이 다르고, 나와 아이의 입장이 다릅니다. 남을 이해하면 내가 편하고, 욕심과 고집을 내려놓으면 훨씬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이해해도 잘 안되는 것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자기중심적 습관이 몸과 마음에 배여서 그렇습니다. 습관이란 자동으로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감정이 일어납니다. 모든 것은 무지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알아차림을 살피고 항상 깨어있는 삶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행복도 준비하는 만큼 얻어지는 것이며 매사에 집중하고 순간을 포착하듯이 깨어있는 생활이 현재를 좀 더 행복하게 사는 길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오늘은 모두 9분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남자친구가 부모님으로부터 정신적, 경제적으로 독립되지 못해 결혼이 망설여지는 분, 게임만 하는 오빠와 할머니의 지나친 간섭 때문에 힘들다는 분,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고 하면서도 보상심리나 억울함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분, 나는 남을 돕거나 하는데 지인들은 왜 남을 돕느냐고 하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분, 아들이 고1에 입학하고 한달전 자퇴를 하고 집에서 공부하면서 검정고시를 치고 대학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분, 딸이 결혼한 지 3년이나 되었는데 사위와 계속 싸우는데 궁합이 안좋아서 그런것인지, 30살의 직장인인데 일과 사랑에 대해 고민이 많은 분, 대한민국의 거시적인 발전 전망에 대해, 그리고 스스로도 나라에 도움이 되고 좋은 세상에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묻는 분, 고3인데 강박증이 있고 자꾸 자신을 못 믿게 된다는 여학생 등이 스님께 고민을 내어 놓고 답을 구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중에서도 30대 직장인이 전공이 맞지 않아 정신적으로 힘들고 부모님의 농사를 돕고 싶다는 생각과 착한여자와 잘난 여자중에서 어떤 여자를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어떤 일이든지 첨부터 재밌고 취향에 맞는 일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자마자 좋은 것은 쾌락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마약이나 게임은 첨부터 좋지만, 그 외엔 익숙해야 좋아집니다. 고비를 넘어야 좋아집니다. 최소한 3년은 해봐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 선택의 길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람은 누구나 제 스스로 밥 벌어먹고 살아야하니까 전공도 했고 5년 가까이 직장에 다녔으니까 그래도 다른 일보다는 현재의 직장이 낫습니다. 대기업에서 힘이 들면 승진을 포기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정해진 규칙에 다만 충실하면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다른 하나는 농사가 좋으면 부모님 도우며 차라리 농사일을 하는 것이 낫습니다. 먼저 내가 무엇이 좋은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선택을 한 후 결혼을 고려해야 합니다. 결혼보다 우선 진로부터 결정지어야 합니다. 결혼대상자도 농사를 함께 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질문자가 대기업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조그마한 회사를 다니거나 파트타임으로 전문적인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자를 찾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삶이 갈수록 자기가 주인공이 못되고 자신의 주변에 얽매여서 자기가 지치게 됩니다. nbspnbspnbsp적어도 결혼할 사람이라면 사람을 봐야지, 껍데기만 봐서는 안됩니다. 본인 역시도 착한여자일까 잘난여자일까 따지는 것 보다 내가 상대에게 적합한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람을 안 보고 껍데기만 보고 수단으로만 봐서 여러 가지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무조건 나한테 동조하라는 게 아니라 토론을 하면서 이렇게 대화가를 될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직장은 좀 더 검토해보고 퇴사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의 답변을 들은 질문자가 “열심히 살겠습니다.”라고 답을 하니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듯이 웃으며 박수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이어서 “어떤 전공을 하든, 뭘 선택하든 지나고 보면 사실 별 차이가 없습니다. 과잉선전하면 처음에는 효과가 있지만 기대가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본인이 부담되고 피곤해집니다. 쓸데없이 과잉선전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변에서 기대를 크게 하기 때문에 만족도가 떨어집니다. 기대를 작게 하면 만족도가 커집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모든 건 영원히 성장하는 게 없고 성장하다가 정체되다가 기우는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내가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거품이 일면 내 손해입니다. 내 삶의 자유가 속박 받는 것입니다. 내 수준을 체크하면서 자기가 부족한 줄 알면 세상이 칭찬해도 거기에 들뜨지 않습니다. 그래야 자기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같이 살면서 좋은 사람은 역할분담을 해 주는 사람이 좋습니다. 역할 분담을 해 주지 않으면 오래 살기 힘듭니다. 서로가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역할분담을 해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라며 우리가 어떤 일을 해 나갈 때, 어떤 사람을 선택할 때 어떤 기준으로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nbsp65279nbspnbsp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어제 오늘 경주남산을 순례 하시고 오늘은 저녁 강연까지 하시는 모습에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두북 어르신 나들이가 있습니다.nbsp65279nbsp경주남산순례는 김순주님이, 울산 동구청 강연은 울산법당 김외선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65279nbsp

2014.04.16. 17,946 읽음 댓글 8개

2014.4.13.정토불교대학 영남지역 저녁반 경주남산순례

오늘은 영남권 저녁반 정토불교대학 경주남산순례가 있는 날입니다. 불교대학 학생 수가 많아지면서 남산 순례길을 6개 코스로 나누어서 법사님들과 행자님들이 기본 안내를 하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불교대생들이 가는 6개 코스외에 또 다른 코스를 개척하기 위해 남산을 올랐습니다. 스님께서도 오늘 남산의 남쪽 골짜기인 새갓골로 오르면서 열암곡 마애여래좌상을 보는 코스는 처음이라며 답사를 해보자고 하시면서 길을 나섰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오늘 새벽부터 비가 왔었지만, 산을 오를 때는 잦아들면서 부슬부슬 약하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스님과 수행팀, 관음팀 행자2분이 함께 오르는 길에는 진달래, 연달래, 산 벚꽃 그리고 이름모를 꽃들과 새싹들이 각각의 모습으로 온 산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그 중 산 벚꽃은 연두색으로 덮여가는 나뭇잎 속에서 은색을 반짝이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또, 진달래꽃을 좋아하시는 스님께서는 진달래가 져 가고 연달래가 활짝 핀 모습에도 계속해서 ‘와아’하는 감탄사를 연발하셨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도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갖가지 꽃구경을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한참을 오르니 열암곡 석가여래좌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정비중인 것 같은 곳에 크지 않은 부처님이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표지판에 있는대로 그 부처님만 보며 참배하고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여기저기 둘러보시더니 더 멋진 부처님이 여기 검은 그물천막에 있다고 하셔서 모두 뭘까하고 움직였습니다. 그 안에는 마애여래입상의 부처님이 엎드린 채로 있었습니다. 최근에 발견되어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기도 하지만, 80톤이나 되는 거대바위에 새겨진 불상이 무너져 내려 엎어져 있었기에 주의깊게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가 쉽겠다 싶었습니다.65279nbspnbsp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우리 대신 남산기슭에서 온 몸으로 부처님께서 직접 참회를 하고 계시네요.”nbsp65279nbspnbspnbspnbspnbspnbsp엎드려 있는 부처님은 옆에서 본 모습은 별로 손상은 없는 듯해서 그나마 다행스러웠습니다. 보통 넘어지면 코가 깨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곳 부처님은 코도 그대로고 얼굴이나 상체는 크게 손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nbsp이곳 부처님을 참배하고 다시 산길을 올랐습니다. 봉화대를 지나 산 정상의 바위에 앉아 잠시 목을 축이고 주변 경치를 보다 다시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산 정상에서 내려오다 보니 밑으로 칠불암이 보이고 그 곳으로 올라온 사람들의 염불소리도 들렸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산을 내려오면서 중간에 여러 갈래 길이 나오면 스님께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들에게도 어디로 가면 좋을지 물으면서 내려왔습니다. 일을 해 나갈 때 함께하는 사람들과 의논해서 하는 모습을 몸으로 보여주시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이번 남산순례 봉사자들이 단 표지판이 잘 못된 것도 다시 고쳐 달아주시기도 하셨습니다. 65279nbsp65279nbsp스님과 일행들은 용장계지곡 모전석탑을 보고 이영재로 해서 통일전쪽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점심을 먹기 위해 모이기로 한 장소에는 아직 한 팀도 오지 않았습니다. 먼저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장소를 다시 돌아보며 1천여명이 다 앉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먼저 점심공양을 드신 후 솔숲 입구에서 산을 내려오는 참가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도착하고 공양을 마친 후 스님께서 직접 나서서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셨습니다. 처음엔 머뭇거리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노래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nbsp한 보살이 노래를 멋들어지게 하니 한 거사가 지폐를 내어 놓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노래를 하면 5만 원 권, 1만 원 권 등 지폐를 스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모든 문화 프로그램이 끝난 후 모아진 돈은 보이며 스님께서는 북한돕기에 쓰겠다고 하시면서 함께 참석한 JTS 박지나 대표에게 직접 전달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어 스님께서는 불교에 대한 짧은 강연을 하셨습니다. “불교가 한쪽은 너무 기복적 민간신앙으로 치우치고 동국대학 같은 곳은 너무 학문적, 지식적으로만 흐르고 있고, 일부 종단은 권위주의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일상의 삶에서 겪는 갈등과 고뇌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탈과 열반에 이르는 길을 벗어나 있습니다.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으로 돌아가 보자는 것이 정토회 설립취지입니다. 부지런히 수행정진하면 누구나 성불할 수 있습니다. nbsp정토회를 보면서 불교신자는 불교적 의식이 너무 없다고 불만이고, 천주교나 개신교 신자는 불교적 의식이 많아 불편하다고 불만입니다. 그러나 정토회도 따지고 보면 현실에서는 불교에 속하니 불교의식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불편하더라도 그대로 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 불교대학 교과과정은 최소한 알아야 될 것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물을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가 기본입니다. 그걸 기초로 불교의 유명 경전을 공부해 보는 게 경전반입니다.” 이렇게 정토회 불교대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설명을 잠깐 하시고 경주에 있는 특징적인 탑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시기도 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이어서 즉문즉설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불교대학을 공부하면서 의문이 나는 점을 질문하라고 하셨고 모두 4분이 질문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용장골, 삼릉골의 불상에 시꺼먼 이끼가 많이 끼었는데 처마를 해서 비 안 맞게 보존할 방법이 없는지, 아들한테 바라는 마음이 커서 아들이 미운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분, 반야심경을 외우다보면 자꾸 주기도문이 생각나 외워지질 않는다는 분, 천생연분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등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불교대 공부하면서 생긴 질문보다는 개인이 가진 고민들이 더 많았습니다.nbspnbsp그중에서 천생연분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답변을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노부부가 나와서 낱말 맞히기를 하는데 ‘천생연분’이라는 단어를nbspnbsp영감이 설명할 방법이 없어 ‘당신하고 나의 관계’라고 했더니 부인이 “원수”라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영감이 두 글자 말고 네 글자 했더니 ‘평생 원수’라고 대답했습니다.천생연분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면 원수인지 아닌지 알면 알 수 있습니다. 원수면 천생연분입니다.”라고 스님께서 이야기로 풀어주자 참가자들도 모두 박장대소를 하며 함께 웃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부인은 남편과 아들한테 ‘원수덩어리’라 표현합니다. 부부나 부모자식 간에는 갈등이 많습니다. 갈등이 많은 이유를 모르니 중국에서는 궁합이 안좋아 그렇다고 하고, 인도에서는 전생에 원수여서 그렇다고 하는 속설이 생긴 것이지 실지로 그런 건 없습니다. 기대가 크기 때문에 갈등이 많습니다. 내 기대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nbspnbsp기대는 득 보려는 것입니다. nbsp65279nbspnbspnbspnbspnbspnbsp말로는 상대방이 잘되라고 그런다고 하지만, 무의식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자기 득 보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내 성질대로 하려는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득 보려는 마음은 탐심이고, 화 내고, 짜증내는 마음은 진심입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득 보려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길 가다가 만난 사람과도 웃으며 잘 살 수 있습니다. 무의식 속에서 나와 일치하기를 바라므로 가족한테는 더 짜증내게 되고 또, 의식을 놓고 방심하기 때문에 무의식에 있던 원래 습관이 나오게 됩니다. 또, 자신은 별 욕심 아니라 하지만 잘 살펴보면 다 욕심입니다. 이래서 삶이 피곤해 지는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목표를 너무 높게 잡지 말고 지금보다 조금만 더 높게 잡고 지금보다 조금만 더 나은 모습을 생각하며 연습해야 합니다. 작은 목표를 세워 성취하고 자신감을 높여야 합니다.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자기가 자신을 못 믿게 됩니다. 무의식 속에서 자신에 대해 ‘너 또 못할 거 아닌가?’하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워낙 실패 경험이 많으니까 자기에 대해 과잉으로 생각해서 그런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입재식 때 항상 말씀드리는 것이 기도를 백일동안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루만 한다고 생각하라고 합니다. 하루 하고, 또 하루 하고, 또 하루 하면서 내일 한 번만 더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nbspnbsp이런 식으로 자기 긍정, 성공사례를 계속 만들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욕심 때문에 남 기 죽이고, 나도 기 죽으면 삶이 피곤해집니다. 작은 성공을 자꾸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적절하게 긍정해주고 격려해주면서 작은 것들을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nbsp부부는 서로 오해를 묻어두지 말고 또, 너무 참지 말고 불평이 있으면 드러내야 합니다. 떨어져 있으면 멀어지고, 가까이 있으면 가까워지는 게 인간의 속성입니다. 인간은 늘 관계 맺으면서 살아가고 의식도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나쁜 존재도 아니고 특별히 선한 존재도 아니고 늘 변하는 그런 존재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세상사람들은 나한테 조금 손해가 되거나 조금 이득이 되는 사람들 일뿐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살면 지금보다는 조금 낫게 살 수 있습니다. 지금도 괜찮다며 현실을 인정하고 살면 조금 더 나은 쪽으로 옮겨가는 건 가능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러다 방심하면 뒷걸음치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앞으로 나아가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공부를 하다보면 부처님의 법의 가피, 진리의 가피를 입었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자기 경험에 비추어 마음공부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스님이 없어도 되고 독립해도 됩니다. 그렇게 공부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라며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관계를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별 의미 없는 질문 같은데도 부처님 법에 비추어 말씀을 해주시면서 우리에게 웃음과 지혜를 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 즉문즉설을 마치고 염불사로 이동하였습니다. 염불사지에 있는 탑을 보며 염불정진을 하였습니다. 탑 앞에 90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 한목소리로 염불을 하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고 감동이었습니다.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며 감동으로 목이 메어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정진 후 스님께서는 멀리서 온 제자들을 지역별로 소개하시고, 또 오늘 봉사를 해주신 봉사자들과 오늘 하루 안내를 해주신 법사님들과 행자님들에게도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회향식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이 행복과 불행, 진실로 내가 만드는 것이네.’를 따라 하라고 하시면서 모두가 어떤 것이든 책임지고 행복해라고 당부하시면서 마무리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늘 6개 코스로 나누어 순례를 하니 앞으로 다섯 번은 더 와야 남산을 다 훑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남산순례를 마치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드신 후 법사님, 행자님들과 함께 남산 순례 평가를 가졌습니다. 먼저 소감 나누기를 한 후, 오늘 진행하면서 문제가 되었던 점, 보완할 점등을 함께 논의하며 내일을 기약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수도권 주간반 경주남산순례가 있습니다.

2014.04.15. 18,248 읽음 댓글 7개

2014.4.12. 청년리더십아카데미 경주역사기행

4월의 경주, 봄이 왔습니다. 들판에는 부지런한 농부들이 이른 아침부터 밭을 갈고 있고 복사꽃이 집집마다 피어 봄의 소식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곧 비가 올듯했지만 청년리더십아카데미 7기의 경주 역사기행을 시작하는 마음은 가볍고 설렙니다. 평소와 달리 이번 기행은 조금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9시 법흥왕릉을 시작으로 무열왕릉, 김유신 장군묘, 낭산, 황룡사지 터를 다녀왔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법흥왕릉으로 올라가는 언덕을 오르며 오늘은 무슨 말씀으로 시작하실까하는 즐거운 기대감이 가득 찼습니다. nbspnbsp스님께서는 법흥왕릉에서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에 관한 신화에서부터 내물왕, 지증왕 등 신라왕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고대 신라의 역사를 말씀해주셨습니다. 또한 법흥왕과 진흥왕이 삼국 통일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특히 신라 23대 법흥왕 시기는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하는 등 신라의 통일을 위한 역량을 키우는 시기였습니다. 법흥왕의 개혁 · 개방 정책은 금관가야와의 통합을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금관가야와 신라는 전쟁을 통해 통일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양 지도부들의 합의를 통해 통일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걸 위해서 신라는 가야의 지배계층을 신라의 지배계층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사상과 종교를 인정하였습니다. 그래서 가야의 종교인 불교를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우리는 금관가야와 신라와의 통합에서 현재 남북한의 통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어야 합니다.” 라고 말씀하시며 통일한국은 남한이 북한을 포용하여 통일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는 것을 스님께서는 우리에게 전달하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두 번째 장소는 태종 무열왕릉이었습니다. 태종 무열왕은 신라의 29대 왕으로 신라 통일의 주역입니다. 태종 무열왕릉을 바라보며 김유신과 김춘추가 어떻게 신라가 통일의 중추적 세력이 되었는지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동맹이었던 신라와 백제가 왜 연합 관계를 끊고 새롭게 백제와 고구려가 연합을 이루고 신라와 대립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으며, 신라가 당나라와의 연합을 통해 통일의 주요 세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우리가 남북한의 통일을 위해서는 국제 정세의 변화를 잘 알아 이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세 번째는 누구나 신라하면 떠오르는 김유신 장군묘였습니다. 입구에서부터 잘 정비된 공원의 느낌이었습니다. 김유신은 신라의 장군이지만 흥무대왕이라고 추존을 받을 정도로 예전이나 현재나 위대한 인물로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김유신 장군의 묘는 왕릉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김춘추와 김유신에 얽힌 일화를 들으며 김유신과 김춘추가 살아온 삶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점심은 김유신 장군 묘가 있는 흥무 공원에서 먹었습니다.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과 등산객들이 몰려 다채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곳에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한 후 우리는 바쁜 일정을 재촉했습니다. nbspnbspnbsp오후는 사천왕사 터와 선덕 여왕의 능이 있는 낭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천왕사 터는 최근에 발굴이 끝나 그 터의 규모를 눈으로 확인 가능했습니다. 사천왕사는 문무왕이 당나라의 군대가 고구려 침공 후 신라까지 침공하려고 하자 불교의 힘을 빌려 그것을 막기위해 세운 호국사찰입니다. 사천왕사를 지은 후 명랑법사가 문두루 비법을 행하니 서해에 풍랑이 쳐서 당나라 배를 두 번이나 침몰시킨 기적을 이룬 곳이라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으며 끝까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문무왕의 애국심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천왕사 덕분인지 신라는 당나라의 침공을 격퇴하고 676년에 삼국통일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신라는 배달민족의 정통성에 대한 역사적 의식이 부족하여 고구려의 영토까지 통일할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단군조선의 옛 땅을 잃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점도 듣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당시 당나라와 신라의 관계는 현재 미국과 우리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문무왕은 당나라와 동맹을 하더라도 신라의 자주권을 되찾기 위해 전쟁까지도 감수하면서 당나라를 물리쳤으나 오늘날 우리는 미국과 동맹을 굳건히 하면서도 자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사천왕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소나무 숲 속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릉이 있었습니다. 가는 길에 선덕여왕과 관련된 삼국유사의 기록 세 가지를 들으며 선덕여왕이 여자라는 사실 때문에 당나라에 무시를 당했으나 그것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한 이야기를 들으면 선덕여왕이 얼마나 영민한 여왕이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삼국통일은 김춘추나 김유신에 의해 이루었지만 그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인재를 발굴한 사람은 바로 선덕여왕이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문무왕의 유해를 화장한 장소에 세워진 능지 탑을 지나 황룡사지까지 시골길을 걸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버스를 탔을 테지만 논밭에 봄이 온 것을 보며 걸으니 기분도 상쾌하고 아침부터 시작된 여정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마지막 장소인 황룡사지에는 유채꽃이 노랗게 피었습니다.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봄을 즐기는 모습을 뒤로 하고 우리는 원나라의 침공으로 인해 소실되었지만 거대한 사찰인 황룡사의 원래 모습에 대해 상상해 보았습니다. 황룡사지 목탑은 현재 27층 정도의 높이인 67m로 거대한 목조탑이었습니다. 그 목탑이 건설된 황룡사지는 터만 해도 16만평으로 이 터를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웅장한 절이었겠구나 하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황룡사의 남문 터를 지나 중문, 9층목탑, 금당과 강당을 지나면서 옛 선조의 숨결을 느꼈습니다. 황룡사 터에서 청리아 7기의 소리꾼이 판소리 춘향가의 사랑가 한 대목을 열창을 하였습니다. 판소리는 tv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 창과 아니리가 생동감이 있어 금방 노래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분황사를 뒤로하고 우리는 한 나절의 일정을 마치고 스님과 함께 두북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스님의 통일 코리아에 대한 강연은 4시 반부터 시작되었습니다. nbspnbsp하루 종일 우리들의 경주 역사 기행을 담당하시느라고 피곤하실 텐데도 스님께서는 피곤한 기색도 없이 통일 코리아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와야 하는 것일지 신라는 어떻게 삼국의 비주류에서 주류로 올라서서 삼국 통일의 주역이 되었는지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신라가 통일의 주역이 된 것은 신라가 성장 국면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보다 국력이 더 막강했지만 점점 쇠퇴하고 있는 나라의 국운을 막을 순 없었습니다. nbspnbsp둘째, 신라는 백제나 고구려에 비해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었으며 부패 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적었습니다.nbspnbsp셋째,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백제와 고구려는 잘 받아들이지 못했으나 신라는 그 정세의 관계를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적절히 이용할 줄 알았습니다. nbspnbsp65279nbspnbspnbsp우리는 이러한 신라 통일의 방법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갈등 상황을 보면 개인적 이익을 도모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정체 국가나 쇠퇴 국가에서 보이는 현상입니다. 이는 남한 사회의 성장이 멈추고 곧 쇠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타개하고 성장 동력을 얻기 위해서 통일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동아시아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신라가 당나라와의 관계를 이용여 통일의 발판을 마련한 것처럼 우리도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를 잘 대처하여 우리의 통일과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합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또, 스님께서는 “통일은 일제 시대에 대한 아픔과 분단 상태의 고착화에 따른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친일 잔재 청산이나 독립운동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도 분단된 상황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통일이 된다면 우리는 이념의 대립에 의해 왜곡된 역사가 아닌 제대로 된 역사 의식을 재정립하여 우리의 과거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나라는 과거의 아픔을 딛고 성장하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라고 하시며 통일을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도 말씀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통일을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입장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남북한의 사이에 중도적 입장을 가지고 포용해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남한의 성장이 계속될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을 버리고 현재의 정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실질적 방안이 통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미중 관계에서 우리의 경제적 이익과 안보, 민주주의의 발전 등을 모색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미국이나 중국에게 좌지우지되는 종속된 관계로 전락할 뿐입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스님의 짧은 강연이 끝난 후 사람들이 통일과 관련된 질문에 대한 답변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지금 현재 박근혜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통일 대박론에 대한 스님의 입장이었습니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곧 붕괴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통일을 해야 하며 통일은 우리에게 큰 이익을 줄 것이라는 환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과 달리 북한의 붕괴는 쉽지 않으며, 중국이나 미국의 입장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서로의 힘의 균형 관계가 깨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통일은 신중하게 진행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중국이나 미국 사이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또한 안보를 위해 미국과 긴밀한 협조를 하면서도 중국과의 상호협력의 폭을 점진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이 과정은 너무 빨라서도 너무 늦어서도 안 되며 이를 위해서는 지도자의 역량이 중요하고 국민의 분열된 국론을 모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현재 여야가 서로 다투고 국민들이 서로 분열된 채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속빈 강정일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또 다른 질문자는 통일 한국을 위해 청년들이 가져야할 마음의 자세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통일 한국을 위해서는 청년들은 세계 시민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세계 시민 의식이란 보편적 윤리나 가치에 의한 판단입니다. 무슨 상황을 판단할 때 보편적 가치를 고려하게 된다면 자국만 고려하는 것이 아닌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을 나의 동포, 나의 친구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의 문제도 바라 봐야합니다. ‘북한 동포의 문제이니깐 손을 걷어붙이고 도와줘야지’, ‘북한이 싫으니깐 북한 문제는 무시해야지’ 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서 그들의 딱한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비단 남북한 간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다문화 사회에서 필요한 필수적 덕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마치면서 통일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미래에 대해 다시 강조하셨습니다. “통일은 우리에게 물질적 풍요를 넘어서서 정신적 풍요까지 얻게 할 것입니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치유할 수도 있으며 많은 국민들의 요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다원화된 세계시민적 사회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이 현실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처럼 우리는 통일에 대한 방법도 점점 현실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통일을 위한 피상적인 방법론이 아니라 우리의 상황에 맞는 실질적 통일 방법론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일 이후의 우리의 삶과 사고에 대해서 연구를 해야 합니다.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단체에서도 통일 이후의 삶에 대한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통일에 대한 사고방식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야 통일이 우리에게 비전을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스님이 말씀하신 통일한국의 비전은 동아시아의 문명의 핵심이 되는 선진 국가였습니다. 통일된 한국은 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하여 아시아의 평화와 이익을 도모하는 세계 문화의 핵이었습니다. “고구려 이후 우리나라가 이런 꿈을 꿀 수 있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요? 이 꿈은 환상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 꿈입니다.” 스님의 마지막 말씀이 아직도 선명히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바라지가 정성껏 준비한 궁중떡볶이와 짜장밥을 먹고 서둘러 스님의 즉문즉설을 위해 모두들 강당에 모였습니다. 서로가 그동안 가졌던 삶의 고민을 풀어내며 스님의 고견을 듣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연애 문제, 직장 문제, 성격 문제 등 서로의 고민은 다양했습니다.nbspnbsp nbspnbsp사회복지 민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새내기 직장인은 민원인의 태도에서 상처를 받고 진로 고민을 하게 된다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nbspnbsp스님께서는 어떤 일도 쉬운 것이 없으며 이제 고작 3개월하고 이직을 이야기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적어도 1년 이상은 해봐야하며 3년 정도 했을 때도 계속 같은 생각이 들면 그때 이직을 결심하거나 윗사람에게 말을 해 다른 보직으로 변경해도 늦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민원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라는 당부도 하셨습니다. nbspnbspnbsp또 다른 질문자는 연애에 대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한 연애에 대한 상처로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남자 분에게 상처를 주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그 남자 분이 이제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관계를 예전으로 회복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nbspnbsp스님께서는 “그 질문은 나한테 할 것이 아니라 그 남자에게 그대로 해라.”라고 가볍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인간관계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셨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면 그 상처를 그만큼 다시 받게 된다고 하시며 만약에 어떤 남자가 자신을 계속 따라다니며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아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받아줄 때쯤이면 그 쪽 사람은 이미 그 마음을 포기하던지 아니면 자신을 역으로 나를 괴롭힐 수 있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도 자신이 나중에 다 갚아야 하는 빚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나를 상처 준다고 해서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다 자신의 과보입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마지막 질문자는 자신의 신념을 남에게 전달하고자 할 때 상대방이 자신의 한 말에 상처를 받고 불쾌해 한다면 그 때 자신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자신의 신념대로 하고 싶으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고 불이익을 받고 싶지 않으면 남의 비위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모두 정답일 수는 없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서 상대방을 미워하거나 그것을 굳이 따지는 것보다 그냥 넘어가주는 것도 좋아요. 내가 예전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나중에 보면 중요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어요. 굳이 안 꼬집어도 되는 일을 들추어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내 인생을 통틀어 보면 그 상황이 내 인생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 내지는 않아요. 그냥 너그럽게 넘어가세요.”nbspnbspnbsp스님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스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통일 한국의 어제와 오늘을 그릴 수 있었으며 잠시나마 통일 조국의 미래를 꿈꿀 수 있었습니다. 또한 청년들이 가진 개인적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의 문제가 나만이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되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밤 10시 가까이 되어서 90여명의 청년들과 한 경주역사기행을 마무리 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영남지역 저녁반 불교대학 경주남산순례가 있습니다.

2014.04.14. 17,109 읽음 댓글 3개

2014.4.11. 천안, 대전 강연

오늘 오전에는 충남 천안 충남학생교육문화원에서 희망강연이 있었습니다. 이번 강연은 천안정토회에서 준비하였습니다. 천안법당은 작은 규모이지만 60명이 넘는 자원봉사가 활기차게 준비하였고 특히 오늘은 JTS, 에코붓다 등 사회활동 부스를 강연장 주위에 잘 설치하여 강연장을 찾은 분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강연시간 10시 30분이 되자 천안을 비롯하여 인근지역 청주, 아산, 논산 등에서 800여명의 시민 분들이 강연장을 가득 메웠고 스님의 강연을 들으며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nbsp 청중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연단에 오르신 스님께서는 “안녕하세요. 따뜻한 봄날 여러분들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시며 인사를 하신 후 “천안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호두과자, 천안삼거리 흥노래와 충절의 고장 아산이 있지요”하시며 여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오늘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좌절하고 절망할 때가 많은데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행복하자는 취지입니다. 강사가 스님일 뿐이지 불교를 전파하러 온 것이 아니라 행복을 전파하러 온 겁니다” 하니 청중들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고 강연장의 분위기가 편안해졌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인생에 정답이 없다고 하시면서 그렇지만nbspnbsp꼭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아무리 성질이 나고 화가 나도 남을 때리거나 죽이지 말라. 아무리 욕심이 나더라도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지 마라.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남을 성추행 성폭행 하지 마라. 행동뿐만이 아니라 말로도 욕설하거나 거짓말 하여 남을 괴롭히지 마라. 술을 먹더라도 취하지는 마라”nbspnbsp 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이 다섯 가지 이외에는 나도 남이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남이 사는 것에 대해서 간섭하지 말고 자유롭게 살도록 놔두세요. 이러면 삶이 조금 자유로워집니다. nbsp nbspnbspnbspnbspnbsp 여러분들은 ‘남 눈치 본다고 자기도 속박 받고, 남 간섭해서 남도 속박시키는’ 이렇게 살아가기가 쉬운데 이제 이 다섯 가지를 잘 살펴보시고 남 눈치 보지 말고 그냥 살고 싶은 대로 사시면 됩니다. 또한 남이 무엇을 하던지 이 다섯 가지에 어긋나지 않으면 간섭하지 말고 제 맘대로 살도록 놔두시면 됩니다. nbsp nbspnbspnbspnbspnbsp 그런데 자기가 자기 자신을 해치거나, 괴롭히거나, 손해 끼치는 경우에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대화를 해서 깨우쳐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깨우치고 못 깨우치고는 그 사람 문제이니 그걸 가지고 간섭하거나 야단쳐서는 안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 이런 정도의 말씀을 하신 후 스님께서는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스님의 왕팬인 남편이 자꾸 지적하고 즉문즉설 동영상을 보라고 강요해서 고민인 여성 분, 자신과의 싸움이 중요한 거 같은데 어떻게 하면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지 궁금한 직장인, 폭력을 쓰는 남편 때문에 괴로운 여성분, 남편 직장 때문에 떨어져 살고 있어서 힘겨운 중학생 딸을 둔 여성분, 8개월 된 장애가 있는 딸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인 아이 엄마, 36년 동안 아픈 딸이 마음을 열고 세상에 나가 쓰임새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싶어서 괴로운 어머니, 우울증과 폭력적인 남편으로 인해 괴로운 여성 분, 친구가 죽은 후 남편이 그 가족을 계속 보살 펴서 괴로운 여성 분 등 여러 분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nbsp 이 질문 중에 “제 신랑이 스님의 왕팬입니다. 모든 일상생활이 스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나쁜 점도 고쳐지고 좋았는데 나중에는 저를 자꾸 지적하고 스님의 동영상을 보느라 저하고 대화도 안 해서 서운합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아까 얘기 했잖아요 스님 동영상 보고 하는 게nbspnbsp다섯 가지에 들어가요 안 들어가요” 하고 질문자에게 되물으시니 청중이 한바탕 웃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질문자가 조금 움츠러드는 목소리로 “안 들어가요”하고 답하니 스님께서도 크게 웃으신 후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그분이 스님의 법문을 듣고 좋아지기는 했는데 어떤 부분을 잘못 들었을까요? 질문자가 하는 행동이 다섯 가지에 어긋나지 않는데 지적을 하면 그 사람이 스님의 법문을 잘못들은 거예요.”라고 답하신 후 질문자에게 또다시 물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그런데 둘 사이에 남편이 하는 행동 때문에 내가 힘들어 해요? 아니면 남편이 내 행동 때문에 힘들어 해요?” 질문자가 “남편 하는 행동 때문에 제가 힘이 들어요.” 라고 답하자 스님께서는 “그러면 내 문제입니다” 라고 답하자 청중들이 가볍게 웃었고 스님께서는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설악산을 보고 잘생겼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왜 이렇게 생겼냐 하며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건 사람문제이지 설악산이 문제가 아닙니다. 남편도 스님 법문 듣고 자유롭게 사는 거예요. 그러니깐 질문자도 스님 법문 듣고 자유롭게 사시면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 ‘남편은 내 인생에 대해서 간섭하면 안 된다’ 이러지 말고 스님의 법문은 누구든지 자기만 들어야 합니다. 남편이 간섭하는 것은 남편의 권리이고 이것을 고치려고 하면 내가 괴로워집니다. 남편 인생에 내가 간섭을 하지 않으면 내가 자유로워집니다. 남편도 내 인생에 간섭을 하면 남편도 괴로운 것입니다.”라고 스님께서 말씀하시자 질문자는 “집에서 남편한테 자주 듣는 말입니다” 라고 답하자 청중들은 크게 한바탕 웃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도 한참을 웃으신 후 “그건 남편이 내 흉내 내는 거니깐. 남편이 좋아지려고 그러는가 보다 하세요. 자전거도 처음 배울 때는 걸어가는 것만 못 하듯이 남편이 지금 자전거를 타려고 연습하는 중입니다. 남편도 완성된 사람이 아니고 법문을 듣고 이해하는 수준입니다. 말로는 되는데 행동으로는 안되니 질문자가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그러면 좋아질 거예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질문자는 “네에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하고 답한 후 자리에 앉자 청중들 모두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한테 적용을 하면 약이 되는데 이처럼 부인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면 부인한테는 독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남한테 적용하면 부작용이 생깁니다. 자기한테만 적용해야 합니다.”하시며 강연을 마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오늘 천안강연장인 충남학생교육문화원은 사인회를 하지 못하게 해서 대신 스님께서는 무대에서 관객들의 손을 잡아주고 추첨한 책을 직접 나눠주셨습니다. 그때 어떤 관객은 스님 손에 만원짜리를 돌돌 말아 쥐어 주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봉사자들과 기념 촬영을 한 후 대전으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 대전으로 가는 길에 천안삼거리 휴게소에서 서울에서 싸 가지고 온 도시락을 문수팀 행자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점심 공양을 한창 하고 있는데 한 남자분이 찾아와서 스님께 인사를 드리며 자신은 대전지역의 레크레이션 강사인데, 한참 우울했는데, 스님의 동영상을 보고 많이 행복해졌다고 하시면서 언제든지 필요하시면 자신도 봉사를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전국을 다니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스님의 말씀에 힘을 얻고 행복해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가 꿈꾸는 희망세상에 한발한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대전법당에 도착해서 원고정리를 하신 후 7시 30분 대전시청 강연장까지 걸어갔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강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오신 분들이 계셨고 강연이 시작될 쯤에는 빈자리가 없어 계단과 무대까지 앉고서고 하며 1200여 명의 대전 시민 분들이 질문을 하고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nbsp 스님께서 들어서니 참가자들이 모두 환호와 박수로 환영해주니 스님께서도 봄인사를 하시고 서서 듣고 계신 분들께 무대에 올라와 마룻바닥에 앉아 편안히 듣기를 권한 후 여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밖은 날씨가 따뜻해졌는데 실내에 들어오면 아직은 춥습니다. 이것처럼 밖은 따뜻해 졌는데 마음은 아직 봄이 오지 않은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얼음이 얼어 있는 사람도 있고, 얼음은 안 얼었지만 서늘한 사람도 있고 해서 오늘 저녁은 밖에 봄이 오듯이 마음에도 따뜻한 봄이 올 수 있도록 군불을 지펴볼까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 어떤 군불이냐면 대화를 통해서 진리에 눈을 뜨면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어둡던 마음이 밝아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들 삶에 대한 얘기, 살면서 겪는 인생의 문제를 갖고 좀 자유로운 대화를 해보자는 그런 취지입니다.” 하시며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자신은 자유로운 편인데 남편이 강박증 성향이 있어서 괴로운 사십대 주부, 27살 아들이 고등학교 때 친구 문제로 학교를 그만두게 된 후 우울증으로 괴로운 오십대의 주부, 주말부부로 살며 편안한데 나중에 합치게 되면 괴로울 것 같아서 고민인 결혼 18년 차의 주부, 여동생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질문하신 여성 분, 고락의 윤회에서 낙에만 머물고 싶은 여성 분, 형제지간에 땅 문제로 갈등이 있는 여성 분, 우울증으로 괴로운 50대 여성분등 여러분이 질문을 하였습니다.nbsp?nbsp nbspnbspnbsp 이 질문 중에 “어머니 대신 오늘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어머니는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여동생이 작년에 서른여섯의 나이로 5년간 암 투병을 하다가 사망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간호를 하며 동생을 살리려고 백방으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동생 사망 후에 충격을 받고 지금 봄이 되어서 꽃이 피었는데도 꽃이 좋은 줄도 모르겠고 가만히 있다가도 미칠 듯이 힘이 든다고 하십니다. nbspnbspnbspnbspnbsp 정신과상담을 권유했지만 싫다고 하셔서 오늘 강연에 스님께 질문을 해 보시겠냐고 하니깐 싫다고 하셔서 제가 질문을 해 보겠다고 하니까 그건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 그 방법을 잘 모르겠습니다.” 라는 질문에 스님께서는 “밥 먹고 살면 되요” 하시며 가볍게 말씀을 해주시며 말씀을 이어갔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자식이 자기 앞에 죽은 부모한테 ‘죽은 사람은 죽어도 산사람은 살아야 되지 않냐’ 하며 위로한다고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위로의 말이 귀에 안 들립니다. ‘세월이 약입니다’ 이런 말이 있듯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조금 기다리세요. 물론 탁 깨치면 되는데 지금 이런 상태에서는 깨치기가 어렵습니다.”라고 말씀하시니 질문자는 “어머니가 지금 자리에 계시는데 어떻게 기다리는 게 도움이 될까요?” 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지금 질문이 어머니가 질문하는 것이에요? 아니면 질문자가 질문을 하는 것이에요?” 하시며 “질문자는 이런 상태의 어머니한테 빨리 정신 차리라 하지 말고 질문자는nbspnbsp좀 기다려주세요.nbspnbspnbspnbsp nbspnbspnbspnbspnbsp 자식 잃은 어머니 입장에서는 저럴 수밖에 없다. 얼마나 힘들면 저러실까.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나. 봄이 봄으로 느껴지겠나. 질문자도 자식 잃으면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어머니를 빨리 정신 차리라고 하는 건 자기 욕심입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남 고치기가 쉬워요 어려워요?” nbsp nbspnbspnbspnbspnbsp 질문자가 “어렵습니다. 고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하자 스님께서는 “그러면 가끔 가서 ‘어머니, 밥이나 한 끼 먹읍시다’ 하며 밥 먹고 산책이나 함께 하고, 어머니께서 밥이 목구멍에 안 넘어간다고 하면 ‘그래도 먹어야죠’ 이러지 말고 ‘아이고 그렇겠네요. 제가 어머니 심정 다 모르지만 얼마나 힘들겠어요.’ 라고 동조를 해주면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 세월이 지나면 조금씩 옅어지는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단박에 ‘아 내가 또 빠졌구나, 내 또 편집됐구나’ 하고 깨닫는 건 쉽지 않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그런데 잘 생각하면 그게 도움이 안 된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어요. 내가 이런다고 죽은 딸이 살아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건강이 나빠지면 살아있는 딸들한테 걱정시키니 백해무익한nbspnbsp행동이고 이것을 어리석음이라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음에 빠져있는 상태에서는 그것을 자각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어머니 연세도 있으니까 그냥 두시는 게 좋아요. 어머니를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질문자가 편안해집니다.” 이런 스님의 말씀에 질문자는 “예 알겠습니다.” 하고 자리에 앉자 함께 듣고 있던 청중들은 두 모녀에게 격려의 박수를 크게 보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변을 하고 강연을 마치면서 정리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우리가 살다보면 이렇게 육체적 질병도 오고, 정신적 질병도 오고, 가정에 불화도 생기고, 직장도 그만 둘 일도 생기고, 사람사이에 갈등도 생기고, 갑자기 배우자가 바람을 피워서 청천벽력 같은 일도 생기고 교통사고도 생기는데, 이런 일이 안 생겼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nbspnbspnbspnbspnbsp 그러면 수행은 왜 하느냐? 아무 일도 안 생겨서 편안한 것이 수행이 아닙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행복하게 산다. 이게 수행입니다. 여러분들은 늘 아무 일도 안 생겼으면 하지만 이 세상은 이런 저런 일들이 생깁니다. nbspnbspnbspnbspnbsp 어떤 일이 생겨도 첫째 살아있는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가장 긍정적인 것을 바탕에 두고 사물을 긍정적으로 봐야 몸과 마음에서 봄에 새움이 돋듯이 생기가 돋아납니다. 그런 생기가 돌아야 사람을 만나면 약간의 광이 나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과 예수님을 그릴 때는 후광을 그립니다. nbsp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서 사람들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 사람 대단하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그 사람 진짜 대단하더라.’ nbspnbspnbspnbspnbsp 우리도 어떤 일이 일어나도, 어떤 상황에 처해도 긍정적 에너지를 내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고 자유입니다. 그런 자유로운 삶은 남이 만드는 것은 아니라 내가 만듭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nbsp 강연 후 사인회와 기념촬영을 한 후 대전법당으로 걸어서 이동하니 강연을 듣고 나온 분들이 인사를 하기도 하고 지나가던 한 남학생은 습관적으로 인사를 하다가 법륜스님인 것을 알아보고는 당황하면서도 반갑게 자기소개를 하면서 인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오늘은 대전법당에서 묵은 후 내일 새벽 4시에 경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내일은 경주에서 청년리더십아카데미 학생들과 경주역사기행이 있습니다.

2014.04.13. 17,980 읽음 댓글 8개

2014.4.10. 서울제주지부 모둠장 교육, 평화재단 기획위

오전 10시에 서울정토회 서초법당에서 전국의 정토불교대학 모둠장들과 천일결사자 모둠장들을 대상으로 한 모둠장 교육이 있었습니다. 정토회 천일결사 8차년 10대 목표 달성의 초석이 될 모둠의 역할을 확립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된 이 프로그램은 스님의 강연과 질의응답 시간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봄기운이 완연한 아침을 가르고 먼 데서 혹은 가까운 데서 모인 160여 명의 모둠장들이 진지하고도 열정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65279nbsp65279nbsp강연을 여시며 스님께서는 현장에서 활동하기 바쁜 와중에 소집된 교육에 참가하느라 모두들 수고가 많다고 모둠장들을 격려하시면서 부처님께서 아난다 존자에게 설하신 내용을 전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어느날 부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아쇼카나무 숲에 이르러 아난다 존자에게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 보이며 말씀하셨습니다.‘아난다여. 이 나뭇가지에 나뭇잎이 많은가, 적은가?’‘매우 많습니다.’‘그러면 내 손에 쥔 아쇼카 나뭇가지에 달린 나뭇잎과 저 숲에 있는 아쇼카 나뭇잎 중에 어느 것이 더 많은가?’‘저 숲에 있는 나뭇잎이 비교할 수 없이 더 많습니다.’‘그렇다, 아난다여. 여래가 이제껏 설한 법이 이 손에 있는 아쇼카 나뭇가지에 달린 잎의 수와 같다면 너희에게 설하지 않은 법은 저 아쇼카 숲에 있는 나뭇잎수 만큼 되느니라.’nbspnbspnbspnbspnbsp아무리 큰 수라 해도 분모가 무한대가 되면 영이 되듯이 총체적 진리에 비하면 붓다가 설한 법문은 아주 적은 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온 갖가지 법을 갖고 계셔서 그것을 설해 주신 게 아니고, 서있는 위치에 따라 서울 가는 방향이 정해지듯 중생의 근기에 따라 법문이 설해진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8만 4천 법문을 설했지만 한 법도 설한 바가 없고 한 법도 설할 것이 없지만은 한량없이 많은 법을 설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법문의 바탕은 무유정법으로nbspnbsp중생의 번뇌 따라 부처님의 법문이 나오는 것입니다. 즉, 중생의 번뇌가 있으니 부처님의 설법이 있고 불교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중생에게 고뇌가 없으면 부처나 보살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같은 이치로 모둠장의 역할 또한 대중의 필요와 정토회의 필요에 따라 생겨나는 것으로서 정토회가 필요한 일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대중의 필요 요구를 정토회에 수렴해주는 중간 매신저의 역할이라고 밝히시며 필요가 다양하면 쓰임새도 다양한데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듭해 상대의 마음을 알아차려서 잘 쓰이는 것이 곧 수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6527965279이어서 불교대학 모둠장의 역할은 크게 마음 나누기 진행, 소통, 수업참여 유도, 봉사활동과의 연결 등이고 천일결사 모둠장은 대자대녀를 돌보는 천주교의 대모처럼 천일결사자의 수행을 도와 정토행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각 역할에 대해 보다 더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셨습니다.매우 중요하고도 새로운 책임을 맡게 되어서인지 전국에서 모인 모둠장들로부터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천일결사 모둠장으로서 기도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지, 불교대학 모둠장으로서 동북아 기행에 불교대학생 우선권을 줄 수 있는지, 4월 20일 불교대학 저녁부 남산 사찰순례와 1920일 경전반 특강수련 일정이 겹치는데 경전반 학생으로 특강수련을 가야 하는지 불교대학 진행자로서 사찰순례에 가야하는지 고민하시는 분, 가을불교대학 재학중이고 특별한 경력이 없는데 회원팀장을 맡아 갈등하시는 분, 천일결사 모둠장은 대부분 정회원이 맡아 큰 무리가 없는데 반해 불교대학 모둠장은 학생 중에서 뽑아 당사자가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메신저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도록 해야 하는지, 모둠원 중에 상을 당하는 경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모색하시는 분, 불교대학 주간부 모둠원이 개인사정 얘기를 하며 저녁부 남산순례 참가신청을 도와달라 청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융통성과 원칙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시는 분, 이중의 멤버십을 가진 모둠원이 타 부서의 봉사에 집중하느라 불교대학 모둠에 소홀해질 경우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 난감해 하시는 분, 불교대학과 천일결사의 초심자를 위한 안내 자료를 법당에 비치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시는 분, 불교대학 저녁부의 경우 학생이 모둠장을 맡아 소임을 맡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고 영상법회를 여법하게 진행하기가 힘드니 행정처에서 이를 고민해주기를 요청하시는 분, 정회원이란 용어 대신 발심행자를 쓰고 이에 대한 안내를 공개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분 등 많은 분들이 실제 현장에서 경험한 과제들을 풀어놓았고 스님께서는 이에 일일이 지혜로운 좌표를 제시해주셨습니다.nbsp nbsp65279nbsp그중 일산법당에서 봄 불교대학 모둠장을 맡고 계시다는 분은 수업 후 나누기를 할 때 질문을 하며 토론을 하려는 모둠원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조심스럽다고 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나누기 중에 질문이 들어오면 원칙을 내세우며 제지하지 말고 나누기 후에 질문해달라고 안내한 다음 나누기 끝나고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답변하고 토론을 원하면 모둠원의 의사를 물어보고 진행하십시오. 단, 모둠장의 역할이 모둠원들의 나누기를 원활하게 하고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니 질문이나 토론의 주제가 나머지 모둠원과 관계가 없거나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면 개인적으로 얘기를 들어주든지 관련 담당자와 연결시켜주든지 질문자의 필요에 지혜롭게 응해주는 것이 좋습니다.”라며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nbsp강연을 마무리하며 스님께서는 불교대학생이 약 4,000명, 천일결사자가 약 45,000명인 오늘날 모둠장의 역할이 다른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말씀하시며 부담을 느끼지 말고 우리가 세운 서원에 따라 우리 스스로 역할을 수행하되 봉사 소임은 잘 분담하여 한쪽에 과중한 일감이 편중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화롭게 운영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점심 공양을 하시고 오후 2시부터 외부인사들과 3번의 모임을 가진 후, 마지막 손님이 떠나시자마자 7시부터 스님께서는 곧장 평화재단 통일 전략회의에 합류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 회의는 매주 1회씩 꼬박꼬박 벌써 한 달 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처음 이 회의에 합류하신 분들은 누구라도 아마 이렇게까지 고강도로 집중력있게 논의를 끌고 가게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처음에 서로 갖고 있던 문제의식들을 공유하고 큰 방향에서 이렇게 갔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낼 때만 해도 구체적인 그림을 어떻게 그려갈지 약간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새로 사업별로 초안이 만들어지고, 담당자도 정해지면서 일을 추진할 수 있는 토대가 하나둘 만들어지자 점점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회의를 직접 주재하시면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기도 하고 의견을 내기도 하셨습니다. 숲 전체를 보시면서도 나무 하나 하나의 디테일에 강한 스님 덕분에 회의가 매우 짜임새 있게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렇다보니 회의가 끝날때쯤 스님께서 그럼 다음 회의를 잡읍시다.고 하면 다들 자연스럽게 다이어리를 펴시거나 스마트폰 플래너를 확인하십니다. 처음엔 12번 참석하면 되겠지 싶었던 분들은 뭔가 점점 늪으로 빠져드는 기분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늘 회의는 지난 회의 이후 실무자들이 몇 차례 수정한 기획안을 집중점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목이 과연 적당한지, 어떤 사람들이 담당하는 게 좋을지, 세세하게 하나 하나 점검하다보니 아직 논의해야할 일들은 많은데 시간이 훌쩍 밤 10시를 넘고 말았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여느때처럼 와 빡세다 하면서 다들 훠이훠이 집으로 향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끝나고서도 스님께서는 남아서 몇 분과 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모두 가신 뒤에도 뒤늦게 업무를 처리하시다가 밤 11시가 훨씬 넘어서 사무실을 나서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회관에는 뒤늦게 들어온 실무자들이 씻는다고 왔다갔다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정토회관의 밤이 이렇게 부지런히 새벽으로 향합니다.내일은 천안, 대전 강연이 있습니다.

2014.04.12. 16,565 읽음 댓글 1개

2014.4.9. 세계를 보는 눈 3강- 인류의 출현과 진화, 4강-문명의 발생과 흥망성쇠

2014년 4월 9일 수요일. 서초법당에서 ‘세계를 바로 보는 눈’ 3번째, 4번째 강의가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전에 lt인류의 출현과 진화gt라는 제목으로 인간종의 출현, 구인류, 신인류, 문명의 발생 원리에 대하여 강의해주셨습니다. 두시간 남짓 강의가 이어졌지만 400여 대중들이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함께 해주셨습니다.nbspnbsp65279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불교사상의 핵심인 불이사상에 대한 말씀으로 운을 떼셨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밖을 내려놓고 안을 봐라’했더니, 이제 안에 치우쳐 밖을 무시해 왔다며, 안과 밖이 둘이 아님을 강조하셨습니다. 마음 공부 뿐 아니라 물질, 우주, 생명, 인간종, 인간문명의 작동 원리를 같이 살펴 가야 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불교사상의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은 불이사상입니다. 다르지 않다. 또는 둘이 아니다. 육체정신, 몸마음, 물질에너지, 시공, 선악, 꽉찬 것텅빈 것, 옳고그름, 늘어남줄어듦이 둘이 아니고,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이런 말도 있습니다. 경험적으로는 둘인데 실제로는 둘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천하 만물이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연기법, 이것이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서 얻은 깨달음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도 생기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단독자라는 실체가 없습니다. 이걸 무아라고 하지요. 이것과 저것의 관계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이걸 무상이라고 합니다. 제행무상 제법무아가 존재의 실상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경험적 인식은 이것과 저것이 다른데, 실제로는 이것과 저것이 다르지 않습니다. 깨달음은 환각, 착각에서 벗어나 실제 세계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연기, 무상무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깨달음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은 이번 특강을 전문적인 강의가 아니라 학습동기유발 차원으로 시작했는데, 스님도 잊어버렸던 용어와 연대를 되짚으며 가다 보니 뜻하지 않게 내용이 어려워졌다고 하자, 대중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웃었습니다. 그래서 스님도 아는 것만 얘기할테니 자세한 것은 도반들이 책을 더 찾아보면 좋겠다고 하시고는, 먼저 지난 주에 배운 우주와 물질, 생명에 대한 내용을 연기법과 연결하여 다시 정리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일즉일체다즉일,nbspnbsp하나가 곧 일체이고 많은 것이 곧 하나다. 우주가 어떻게 형성 되어 있는지를 봐도, 여럿이 모여서 하나가 되고, 다시 또 그렇게 수없이 연관 되어 있습니다. 미시세계로 가도 마찬가지에요. 분자, 원자, 핵, 전자, 소립자, 쿼크에서 더 들어가 보면 에너지와 물질의 구분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물질이 변해서 에너지가 되고 물질이 그대로 에너지라는 겁니다. 이건 아인슈타인의 공식 Emc2에서도 나옵니다. 우주 생성의 시작점에서는 에너지가 물질화되었습니다. 물질은 없는데서 생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물질에너지, 입자파동이 둘이 아니에요. 입자와 파동이 서로 다른 것 같고, 시공이 서로 다른 것 같다고 하는 우리의 ‘상식’이 ‘진실’을 보는데 장애가 됩니다. 지난주에 이러한 우주의 원리에 대해 공부했고, 저녁반에서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분자 생물학이 발달하면서 유전자의 구조를 발견하게 되고 유전자의 변형으로 인공적 돌연변이를 만들기도 한다며 유전작 조작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들려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요즘 보면 한 가지에 세 종류의 꽃이 피는 그런 꽃이 나오죠. 또, 옥수수나 콩에 유전자 조작을 하는 것도 있어요. 이게 식량 생산의 획기적인 발전일지,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부작용을 낳을지 지금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모르니까, 위험한 걸 모르고 지금 좋다고 할 수도 있고, 아무 문제도 없는 걸 모르고 난리를 피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문명의 발전을 가져올지 큰 재앙을 가져올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아요. 핸드폰의 전파도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아직은 알 수 없어요. 건축자재에서의 석면이라던지, 냉장고의 프레온 가스라든지 처음에는 엄청 좋은 걸로 생각했는데 얼마 못가서 프레온 가스는 오존층을 파괴한다 해서 환경재앙의 원인이 되고 있고 석면도 건강을 해친다고 해서 지금 뜯어내고 있어요. 뜯어내는 것도 그 과정에서 공해로 인해 병이 든다고 조심스러워 해요. 플라스틱, 나일론도 마찬가지에요. 유전자 조작 같은 것의 위험이 공포영화에서 많이 나오죠. 유전자 조작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짧은 기간안에는 알 수 없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제 스님은 오늘의 본격적인 주제인 인간종, 즉 생물학적인 인간에 대해 얘기로 이어나가셨셨습니다. 고생대 캄브리아기 생명의 빅뱅 이후로 수백만 종의 생명이 갈래갈래 갈라져 진화를 거듭해 오면서 우리 인간종이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을 짚어주셨습니다. “지구상에 있는 수백만종의 생명이 나름대로 각각 진화해왔습니다. 각각의 종은 최선을 다해 생존해 온 것이고 현존하는 생물은 다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요. 조상 찾아 올라가다보면 출발점에서 많이 변한 게 있고, 덜 변한 게 있을 뿐입니다. 어류, 양서류의 조상이 되는 척추동물에서 어류가 나오고 양서류가 된 것이죠. 어류를 오래 두면 양서류가 되는 게 아닙니다. 현존하는 단세포 생물도 나름대로 진화해 온 것이에요. 서로 다른 생물들이라도 밖에서 보면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유전자 정보로 보면 별 차이가 없습니다. 사람하고 침팬지는 98가 똑같아요. 인간 종 하나만 보면 작동원리가 굉장해서 누가 만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생명의 긴 역사에서 보면 인간 종은 최근에 생겨난 것입니다. 생명 연대 측정은 주로 화석이 발견되는 지층의 연대로 계산합니다. 지구상에 나타났던 모든nbspnbsp생물종이 아직까지 다 살아있는 것은 아니에요. 진화하고 생존하고 멸종하고 그러다보니까 그 중 한 종의 번식 속도가 커지면 지구를 점령하다시피하고 다른 종은 사라집니다. 현재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을 크게 분류를 할 때는 동물과 식물로 분류합니다. 동물계 38목 가운데 3개 목을 제외하고는 전부 지금부터 5억 4000만년 전 고생대 캄브리아기 때 나타났다고 합니다. 우주의 빅뱅처럼 생명의 빅뱅이라고 하지요.nbspnbspnbspnbspnbsp인간은 척색동물문 척추동물아문 포유강 영장목에 속합니다. 척색동물은 5억 4천만년전에 생겨났어요. 이후 고생대에 3억년 간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 동물은 삼엽충입니다. 중생대에 1억년 간 가장 번성한 동물은 공룡이고요, 포유류는 2억 4천만 년 전에 등장했는데, 6천 5백만년 전 신생대로 들어오면서 공룡이 전멸하고 나서 지구의 주류 동물이 되었어요. nbspnbspnbspnbspnbsp포유류의 특징은 따뜻한 피, 체온유지를 위한 털이 있고, 새끼를 태로 낳아 젖을 먹인다는 것이에요. 그 다음 포유류 가운데 원숭이가 속한 영장류가 나옵니다. 이러한 영장목 중에는 하등영장목이 있고, 고등영장목이 있는데 우리는 고등영장목에 들어갑니다. 영장목 중에서 사람과 비슷한 쪽의 원숭이와 먼 원숭이가 있는데, 침팬지는 우리와 비슷한 고등영장목이고 여우원숭이는 우리하고 다른 하등영장목에 속합니다. 고등영장목 중에 주로 신세계에 있는 것이 있고 구세계에 있는 게 있어요. 이때 신·구 대륙이 분리되면서 동물의 이동이 힘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원숭이 중에서 사람 계열인 호미노이드가 있습니다. 긴팔원숭이, 오랑우탄, 침팬지가 들어가지요. 다른 영장류와 어떤 차이가 있느냐하면 학습능력이 생겼어요. 모방하고, 따라 할 줄 안다는 겁니다. 이건 문화에요. 정신작용이에요. 물론 개도 정신작용이 있습니다. 정신작용이 있으니 훈련이 가능합니다. 호미노이드에 속하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아프리카에서 발견되었는데, 300만년에서 500만년정도 된 것입니다. 불안정하게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 도구를 사용하게 되고 뇌용량이 커졌어요.nbspnbspnbspnbspnbspnbsp우리 인간은 호모속이에요. 호모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호모에 속하는 것은 직립원인이라고 합니다. 이 때 원자는 원인입니다. 우리 인간의 조상이에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아프리카에만 발견되었는데 원인은 지구상 곳곳에서 화석이 나왔어요. 그중 오래된 것이 아프리카 쪽에서 나와요. 그래서 이게 각자 다른 지역에서 진화해 왔느냐, 아프리카에서 진화되어 이동해 왔느냐 두 학설이 팽팽합니다. 그중 ‘아프리카 단일기원설’이 조금 더 힘을 얻고 있어요. 이렇게 해도 약간 모순이 있고 저렇게 해도 모순이 발생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호모 하빌리스는 직립보행을 했을 뿐만 아니라, 도구를 썼어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전기 구석기, 호모 하빌리스는 중기 구석기라 할 수 있어요. 직립보행 자세가 빨라지고, 도구가 정교해지고, 뇌구조가 더 커졌어요. 사람이 기다가 급하면 서서 뛰게 되지요? 직립보행하게 되면 에너지 소모도 적게 되고 행동도 빨라져요. 손이 자유로워지니 도구를 쓰면서 손이 발달합니다. 손 가운데서도 엄지손가락이 굉장히 발달을 하게 되요. 그렇게 되니 뇌가 더 커지게 되었어요. 소위 말하는 자바원인, 북경원인은 벌써 불을 사용했어요. 도구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수렵을 했습니다. 신체적으로 똑바로 서고, 뇌구조가 확장되고, 도구는 좀 더 모양 있게 깨서 썼고, 집단적으로 대응도 하는 존재들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러다가 20만년전쯤 새로운 인간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했어요. 호모 사피엔스 중에는 구인과 현인이 있습니다. 구인에 속하는 네안데르탈인, 신인에 속하는 현생인류의 조상인 크로마뇽인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구인과 현인이 지구상에 같이 생존하다가 갑자기 3, 4만 년 전에 구인이 멸종을 해서 현재 현생인류 단일종만 남았습니다. 현인은 구인의 진화인가, 현인과 구인이 갈라진 것인가, 같은 종이니 수정이 가능한가, 다인종기원설과 단일기원설 모두 문제가 있는데, 다인종기원설을 따르면 지금 있는 인종 중에 인종 차별이 발생할 수 있어요.nbspnbspnbspnbspnbsp후기 구석기는 화덕도 쓰고 무덤도 만들었어요. 정신작용에 의해 형성된 문화가 발생했습니다. 동굴벽화도 나오고, 뼈와 뿔을 사용하고 치장도 하고 취락, 교역도 하는 것이 후기 구석기인데, 후기 구석기는 현생 인류들의 초기 모습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드디어 현생인류가 출현하면서 인류의 역사가 육체적 진화단계에서, 문명의 진화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스님은 고구마에 묻은 흙 씻어먹기와 남의 것 뺏어먹기라는 아주 사소한 정신 작용의예를 통해 문명의 발생과 전파의 원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12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인간은 육체적으로 거의 동일한 인간종입니다. 하드웨어는 변함이 없고, 소프트웨어가 빠르게 발전한 거예요. 추우면 몸이 변해서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데, 환경을 개조해서 적응을 하기 때문에 신체가 바뀔 일이 없어졌어요. 이후부터는 빠른 속도로 문화적 진화가 이루어졌습니다. 1만 2000년 전 부터 이 이제 인류문화사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에요. nbspnbspnbspnbspnbspnbsp인간 기계 자체는 20만 년 전과 지금이 기본 사양이 비슷합니다. 만약 현생인류를 태어나자마자 소나 돼지 우리에 키우면 생물학적으로는 사람인데 그 사람의 행동은 소나 돼지와 비슷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오히려 동물을 훈련시킨 것보다 못하게 돼요. 반면에 보르네오 원시부족의 석기 수준의 부족 아이를 바로 한국에 데려다 키우면 한국 사람이랑 똑같아져요. 육체는 거의 비슷합니다. 누구와 결혼하든 인간 종으로서 동일하기 때문에 동일한 인간 종을 낳게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는 ‘내 아들’이라고 하면, 프로그램의 비중이 클까, 내 생물학적 비중이 클까요? 자식의 유전자 감식 결과를 놓고 법정 싸움까지 가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이건 인간을 생물학적 수준으로 보는 것이에요. 판단 기준이 동물 수준의 판결입니다. 사람이 되는 것, 내 아들이 되는 것은 프로그램이 중요합니다. 생물학적인 내 자식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데려와서 내가 키우면 내 자식이고, 내가 내 자식이라고 인식하면 내 자식입니다. 일체유심조라고 정신작용에 대한 이해를 하면 생물학적인 내 자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1만 년 전부터 급속도로 진화해온 것은 인간생체의 진화가 아니고 문명의 진화에요. 사유체계가 빠른 속도로 변해온 것이에요. 이것이 인류문화사입니다. 인류문화사는 도구의 측면에서 신석기부터 시작합니다. 구석기까지는 생물학적인 인간종의 진화가 중심이었고 거기에 ‘문화적 요소’가 함께 발달해 오다가 신석기로 들어오면서 신체적 진화보다는 문화적인 변화가 빠른 속도로 생겨났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생체적 진화에서는,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일어납니다. 이때 변이가 일어나는 것 중에는 환경적 변화에 적응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어요. 변이가 환경에 유리하도록 변하느냐가 아니에요. 변이는 중립적입니다. 변이는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불리하면 자연도태 됩니다. 변이가 일어났는데 갑자기 지구의 환경이 변했다 하면 변이가 된 것 중에 환경변화에 적응한 것이 점점 개체수가 늘어나 종의 진화가 일어납니다. 변이된 종자가 번식을 하게 되고 새로운 종으로서 나타나고 행동양식도 나옵니다. nbspnbspnbspnbspnbsp문화적 진화는 달라요. 유전자는 그대로이고 환경에 적응하는 행동양식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에요. 새로운 행동양식이 환경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면 전파가 될 것이고 아니면 소멸할 겁니다. 예를 들어 10명이 사는데 각자 노력해서 먹고 살아요. 그런데 어떤 한사람이 남의 것을 훔쳤어요. 효과적이죠. 새로운 발견을 한 거예요. 이건 유전자의 변화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변화예요. 그런데 이게 다른 사람에 전파가 될 수 있을까? 있어요. 그러다가 10명이 다 배워버리면 모두에게 불리해집니다. 전파력이 없어져요. 문화라는 게 이렇게 형성됩니다. 그래서 공동체에서는 공익적이지 않는 것은 전파력이 없어요. 왜냐하면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빼앗아 먹는 것이 유전자로 말하면 왜 우성이 못 되느냐. 공동체 안에서 지속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웃 무리에 가서 빼앗아오면 우리 안에서는 전체 이익이 됩니다. 그러면 전파되지요. 이 집단에서는 빼앗아먹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형성이 되요. 그렇게 되면 두 무리 사이에 투쟁이 생기겠죠. 투쟁이 생기고 이기고 지는 것이 빨리빨리 반복이 되면 뺏어 먹는 문화가 우성이 되요. 뺏어 먹는 것이 이기고 또 이기고 또 이기면 이것의 문화가 정착이 되고, 상류층에는 뺏어먹는 것이 가치로 정착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인류문화에 계급이 발생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오늘 여기까지 우리는 우리의 신체구조를 갖는 종이 어떻게 왔느냐하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 갑자기 정신작용이 생겨난 게 아니고 정신작용은 이미 원시 때부터 있었습니다. 기본 생물에서부터 있었어요. 원시생물인 유글레나에 전기 자극을 한번 주고 두 번 줬을 때 다른 반응을 해요. 학습능력이 있는 거예요. 생물학적인 반응이긴 하지만 학습능력이 있다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식으로 개를 훈련시킵니다. 이런 건 ‘학습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학습’이라는 것은 모방, 따라 배우기예요. 이런 건 정신작용에 속하는 겁니다. 육체적 돌연변이처럼 정신문명에서도 우연히 뭘 하나 발견해서 좋아 보이면 다른 사람에게로 전파가 돼요. 발견과 전파가 문명의 핵심이다. 고구마를 캐서 그냥 먹다가 물에 씻어 먹는 방법을 발견 했어요. 고양이와 개는 안 씻고 그냥 먹잖아요. 씻어 먹는 게 좋으니 계속 씻어 먹게 된다. 발견하면 옆 사람이 따라 배우기를 합니다. 좋아 보이면, 즉 효율이 높으면 전파력이 커져요. nbspnbspnbspnbspnbsp발견 속도가 빠르고 전파 속도가 낮으면 문명의 차이가 생기고, 발견 속도가 전파 속도보다 느리면 문명의 차이가 없습니다. 비슷해져요. 그런데 발견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저기까지 가는데 오래 걸리면 이쪽과 저쪽은 문명차이가 생겨요. 그래서 선진문명이 생기고 후진문명이 생기는 겁니다. 이게 차이가 나면 경쟁에서 뒤지니까 통합을 해나가면 전파속도가 빨라져요. 다시 문명이 전 세계로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전 세계 문명을 볼 때 차이가 날 때가 있고 비슷할 때가 있습니다. 구석기 때는 차이가 없어요. 발견 속도보다는 전파 속도가 빨랐어요. 단위 면적에 인구 밀도가 높으면, 즉 취락, 도시가 형성되면, 발견 속도와 전 파속도가 같이 높아지고 문명이 발달합니다. 발견 속도보다 전파 속도가 빨라지면, 즉 교통 통신이 발달하면 지역간 문명 차이가 줄어들어요. 현재 한 나라 안에서 서울농촌 간보다 각 나라의 수도들은 비행기로 연결되어 있어 전파속도가 빠르니 비슷합니다. 산업화초기에는 일부지역의 발견속도가 빨라서 그 지역의 문명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지역간에 문명의 차이가 많이 나서 선진 문명지역이 후진 문명지역을 식민지로 삼아 착취를 했지요.” nbspnbspnbspnbspnbsp우주와 물질이 동일한 시원을 가지고 물질과 에너지가 하나인 상태에서 출발했다가, 넓은 우주공간에 물질이 생성되고 어느새 고도의 설계도에 따라 물질이 결합되는 생명작용을 보이고, 끊임없는 변이를 통해 갈래갈래 갈라져 생물학적 인간 종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생태적 진화가 정신적 진화 단계로 넘어가는 단계에, 현생인류와 하드웨어가 똑같은 최초의 인류가 어떻게 문명을 이루어 나가는지에 대해 극히 미시적인 관점에서 그 정신작용을 들여다보니,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고 연기가 중복되어 있다는 스님의 말씀이 큰 울림으로 와 닿았습니다. 스님이 매 강의 때마다 첫 수업 때 시작한 우주와 물질의 이야기부터 다시 시작하고 다시 꿰어주시는 것은 왜 그런 것인가 했는데 이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어서 중간에 뚝 잘라내서 볼 수 없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수평적, 공간적 연관 뿐 아니라, 한 사람을 통해 들어가서 연구해도 개인, 가족사, 민족사, 인류사가 들어 있다”고 하시며 시공을 쥐락펴락하시며 ‘연기’를 깨닫게 해주시는 스님의 깊은 가르침에 대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전 강의를 마치고 점심 공양을 드신 후 3시에는 숭실대에서 한경직 목사의 삶을 기리는 기념 강연회의 참석하시고 돌아오셔서 저녁 7시30분부터는 저녁강의를 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저녁 7시 30분부터 진행된 저녁강의는 제4강 ‘문명의 발생과 흥망성쇠’에 대한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일찍부터 많은 분들이 오셔서 400여분의 청중이 법당을 빽빽하게 채워나가며 스님의 강의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저녁 법문은 고대문명 발상지를 기준으로 문명의 발달과 교류, 충돌 그리고 흥망성쇠를 설명하시며, 현재 우리는 어떤 위치에 있으며 어떤 가능성을 봐야하는지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문명의 시작은 신석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집단취락을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수렵과 채집만 하는 게 아니라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며 정착을 하게 되었으며, 도구 면에서 돌을 갈아서 잘 다루게 되었고, 다양한 토기 종류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문명이 시작된 이래 1만1만5천의 역사에서는 신체 변화는 크게 없고 문명이 급격하게 발달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전에 공부한 인류의 진화는 컴퓨터의 하드웨어 발전과도 같은 단계였던 겁니다. 신체의 진화과정인 하드웨어의 진화는 그 정도에서 멈추고, 이제는 소프트웨어가 빠르게 발전하는 식으로 변화한 것이 우리의 인류문화사, 인류문명사의 진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자연환경이 변했을 때 그 환경에 적응해서 잘 살아남기 위한 신체구조와 유전자적인 변화가 신체의 진화라고 본다면, 문명의 진화는 그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행동양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행동양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인간의 의식에 따른 행동의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문명이라고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현생인류 이전에도 문명의 발달이라고 할 만한 것은 있었지만 돌을 그냥 쓰고 깨어 쓰고 조금씩 정교하게 깨어 쓰는데 수백만년 동안의 긴 시간에 걸쳐 더디게 변화해 왔습니다. 그러나 문명의 급격한 발달은 1만1만5천 년 전부터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전 세계에 여기저기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물을 조사해보면 구석기를 쓴 도구의 모양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비슷하면 문명의 동질성이 있는 것이고 다르면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문명의 전파에 있어서는 앞에서 언급한 효율성과 더불어 공익성도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에 대해 쉽게 설명해주십니다.65279nbsp65279nbsp“처음에는 숲속에서 수렵하는 것에서 가축을 키우는 목축이 형성되었고, 음식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에 수로를 건설하여 인위적인 재배 즉 농업이 발달하게 됩니다. 이보다 더 효율적인 다른 집단의 것을 훔치거나 약탈하는 것입니다. 싸움에 이기기 위해 남의 것을 약탈하기 위해 무기를 정교하게 만들거나 작전을 짜서 다른 집단과 싸워 이기는데 집중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상대가 반격을 못하도록 성인 남성은 죽이고 힘없는 여자와 어린아이는 데려와 노예로 삼게 됩니다. 이렇게 통합된 부족안에 지배계급과 노예계급의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 4대문명 발상지로는 나일강변의 이집트 문명,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강 유역에 인더스 문명, 황하강 유역의 황하문명이 있습니다. 최근에 새로 발견된 요하유역의 요하문명을 5대 문명발상지로 포함하며, 신대륙에서 발견된 멕시코지역의 마야문명, 페루지역의 잉카문명까지 7대 문명발상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런 문명발상지 분포를 보면 하나같이 산림지대가 아닌 상대적으로 건조하고 척박한 초원지대에서 시작했는데 이유가 뭘까요? nbspnbspnbspnbspnbsp바로 도구 때문입니다. 돌칼, 돌도끼 등 석기로는 산림을 벌채할 수가 없었고, 초원지대만 경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향후 철기문화가 도래하면서 무기뿐만 아니라 생활도구까지 철기로 보급된 후에야 나무의 벌채가 가능해졌고, 이에 따라 산림지역으로 문명이 이동할 수 있게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 이집트 문명이 일어난 나일강 유역은 건조하고 강의 범람으로 생겨난 비옥한 토지를 기반으로 집단적으로 생활하는 취락이 형성되면서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되었습니다. BC 3,000년경 왕국이 출현하고 고대문명을 이뤘지만, 후기에는 아시리아, 페르시아의 침입과 로마의 침입으로 속주으로 전락하기까지 3천년동안 발달된 문명을 이루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현재로는 세계문명의 발생을 연대순으로 본다면 4대 문명의 발생이 독자적이라고 볼 수 있고 그 중에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가장 앞서고 있습니다.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이라 여러 교류가 많다보니 문명의 발달이 다른 데보다 뛰어났다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최고의 문명이 수메르 문명이고, 앗시리아 문명이 되고 그러면서 종족이 바뀌면서 문명의 흥망성쇠를 거듭하게 된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인더스 문명은 영국이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세계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모헨조다로와 하랍파라고 들어봤죠? 철도공사를 하다가 발견이 됐어요. 이렇게 발견이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발견된 도시가 100여개나 됩니다. 동서로 1,500키로 범위에 번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유물유적이 있지만 아직도 문자해독이 안 되고 있습니다. 역사가 없으니 왜 갑자기 망했는지는 모릅니다. nbspnbspnbspnbspnbsp황하 유역에 뛰어난 문명이 있었는데 세계 4대문명 가운데 제일 연대가 늦습니다. 대부분 문명이 7,0008,000년 전이고, 고대 왕국이 성립된 것이 5,000년 전인데, 중국의 은나라는 3천 700800년 전이므로 다른 문명에 대해서는 1천년 정도 뒤지는 것입니다. 황제 헌원은 중국 문명의 시조라고 알려져 있지만 전설로만 존재했습니다. 태평성대라고 하는 요순의 시대가 끝나고, 우황제가 세운 하나라가 있는데 여기까지는 아직 전설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그 다음이 상나라인데 신화로 간주되다가 은허유적이 발굴되고, 갑골문자와 청동기 물품이 많이 나오면서 상나라는 역사 시대로 되었습니다. 그렇게 발굴하다보니 은나라 유물 아랫부분에 더 오래된 유물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은나라는 지금으로부터 3,0003,800년 전인데 4,0005,000년 전 유물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게 하나라와 상나라의 유물로, 은나라 이전에 이미 문명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그런데 바로 최근에 요하 상류지역에서 엄청난 유물과 유적이 발견이 됩니다. 이게 황하 문명보다 1,0002,000년 앞서는 문명입니다. 중국에는 여기에 아무런 기록이 없는데 유적과 유물이 나온 것입니다. 요하지방은 만리장성 동북부 지역으로 이들 지역은 중국 역사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국 역사에서는 만리장성을 기준으로 북쪽은 오랑캐의 땅이라고 했고, 북경 이남만 중국 땅이라고 했습니다. 만리장성 이북을 중국 한족이 지배한 역사는 두 번 밖에 없습니다. 한번은 한나라 때이고 한번은 명나라 때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입니다. 마오쩌뚱이나 주은래조차 일제 때 독립운동하던 우리 선조들에게 당신들 땅이니 잘 싸우라고 할 정도로 그들 의식에 만리장성 이북은 자신들의 땅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그러다보니 발견된 유물유적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을 할 수가 없었는데 어쨌든 이것을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게 바로 동북공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하문명을 동북공정으로 중국역사에 편입시키게 되면 요하문명이 동쪽으로 이동해서 단군조선으로 이어지게 되는 우리 상고사는 당연히 중국의 역사의 일부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여기서 발견된 유물유적은 7단으로 이루어진 광개토대왕릉같은 피라미드식 무덤이고 여신전도 발견되고 옥으로 만든 수많은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발견된 지역이름을 붙여 홍산문명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우리로 말하면 배달문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집트 문명, 메사포타미아 문명과 연대를 버금가는 문명입니다. 여기에는 청동기가 5천 년 전에 제작된 것도 나옵니다. 환인에게서 환웅이 천부인 3개, 즉 청동검, 청동방울, 청동거울등 청동기를 받았다는 얘기는 환웅시대가 청동기를 다룰 수 있는 선진 문명이었다는 뜻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 중의 일파가 배달문명 이후에 고조선이 설립되면서 고조선의 일파가 동쪽으로 온 것이 만주지역으로 요동지역으로 옮겨와서 평양까지 온 것이고, 서쪽으로 북경 아래로 내려간 것이 은나라입니다. 더 연구해야겠지만 은나라는 한족이 아니고 동이족입니다. 배달문명의 일파가 들어가서 중국의 땅에 제국을 형성한 것이 은 제국입니다. 은나라가 멸망할 때 일부 신하들이 다시 조선으로 귀환하는 많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백이숙제라고 들어보셨죠, 주나라와는 다른 민족이다 보니 그렇게 산에 숨어들어가서 굶어 죽어갔던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요하문명이 발견되면서 중국의 역사, 동아시아 역사는 새롭게 연구되어야 합니다. 중국에는 유물은 있으나 역사가 없고 우리에게는 역사는 있으나 유적, 유물이 없으니까 한·중이 함께 연구 하면 훨씬 더 전모를 빨리 규명할 수 있고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습니다. 신전이 나오는데 여자 신전이며 여신의 손이 곰 모양입니다. 딱 들어보면 어때요? 단군신화에 나오는 웅녀가 생각이 나죠. 그러나 중국에서는 해석이 안 되죠. 그러니 이런데서 문명사를 연구할 때는 서로의 역사에 대해서 같이 봐야지, 지금의 민족주의적으로 지나치게 과거를 접근하는 것은 멈춰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 모든 것은 인류의 문화유산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본에서 발견된 유물하고 동일한 것이 가야지역에서 발견됩니다. 일본사람은 일본에서만 보다가 가야지역에 발견되니 가야가 일본의 식민지였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물 제작의 다양성과 시대를 보면 가야가 앞서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지금 민족주의 국가주의 관점에서 해석하려고 하니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nbsp문명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오게 됩니다. 변두리 지역이 문명을 받아 들여서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됩니다. 전자가 쇠퇴하면서 변두리 지역이 다음 문명을 계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nbspnbsp먼 곳은 전파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다음 문명을 계승할 수 없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중국은 진한시대를 거치면서 고도의 발달된 문명을 만들어냅니다.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오면서 우리의 문명이 중국에 뒤쳐지게 됩니다. 그 이전에 2천년 앞섰던 게 2천 5백년을 뒤처진 상태로 뒤쳐진 상태로 있다 보니 우리가 중국문명의 아류같은 생각이 들지만 역사를 통틀어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양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중국을 앞서갔잖아요. 통일만 되었으면 상당기간 앞서가면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는데 분단된 상태로 에너지를 낭비하기 때문에, 지금 중국의 발전 속도를 보면 1020년만 지나면 오히려 우리가 밀리면서 또다시 중국의 변방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nbspnbsp65279nbsp65279nbsp중국이라고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중국이 아닙니다. 중국은 현재 중국 435645104540안에 세워진 나라를 전부 중국역사라고 편재해 버리니까 역사도 엄청 풍부해지고 길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원나라를 중국 역사라고 하고, 청나라, 고구려도 중국역사라고 하니 우리가 보면 말도 안 되지만 저 사람들은 하나도 이상한 게 아닙니다. 명나라 시대는 굉장합니다. 한때는 세계 전체 부의 60정도를 가졌습니다. 지금의 중국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대부분 수리한 것입니다. 그런 거대한 명나라 옆에 조선이 붙어있었기 때문에 명나라를 부모국으로 섬겼던 것입니다. 힘에 눌려서 굴복한 게 아니라, 자발적 추종을 한 것입니다.nbspnbsp명나라에 대한 경도된 생각이 결국 청나라에 패해 청의 속국이 되었고, 청의 지배를 받다보니 일본이 일어나는 것을 읽지 못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게 되는 이런 과정을 겪었잖아요. nbspnbspnbspnbspnbsp제국이 유지되는 건 관료제도 때문이고, 망하는 것도 관료제도 때문입니다. 사물에는 언제나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가 존재합니다. 사물의 양면성, 이것을 우리는 항상 잘 보지 못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인류사를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은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흥망성쇠, 성주괴공을 거듭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정신만 차리면 기회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가운데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었습니다. 이 작은 승리의 경험을 딛고 일어서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실현해가며 통일한국을 이루면, 동아시아 공동체의 주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새로운 아시아 시대를 여는 포부가 우리에게 있어야 우리 스스로도 힘이 있게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어떻게 문명이 발달하고 쇠퇴하는지, 이웃문명이 어떻게 성장하고 쇠퇴하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 우리를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오늘날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문제로 정체되거나 쇠퇴하는 것인지,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지속적인 성장을 하게 될 것인지 등등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합니다. 그래야 현실을 더 정확하게 볼 수 있고 미래를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세계를 보는 눈 3, 4강을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모둠장 교육에 참가하실 예정입니다.nbsp65279nbsp오늘 오전 강의는 성동법당 배재휘님이, 오후 강의는 서초법당 저녁반 장호일님이 정리해주셨습니다.65279nbsp

2014.04.11. 24,430 읽음 댓글 16개

2014.4.8.JTS 실무자 회의, 문수팀 나누기등

9시부터 스님께서는 법당에서 수행정진하고 있는 문수팀행자들과 함께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주 함께 동행하면서 자기에게nbspnbsp얼마나 깨어있고, 자기 살핌이 있었는지 마음 나누기를 주재하시고, 행자들의 마음나누기가 끝나자 법사로서 부족한 언어습관과 수행자로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태도의 중요성을 지적하셨다. 또 사건이 생겼을 때, 자기 중심을 잡되 경직되지 않게,nbspnbsp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지혜롭게 일처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찬찬히 짚어주셨습니다.nbspnbsp 이어서 10시부터는 JTS 실무자들과 한달동안 진행된 일들을 공유하고 현안에 대한 회의가 있었습니다.nbsp nbspnbsp 스님께서는 JTS 모든 자원활동가들이 서로 하는 일들을 잘 공유해야 합니다. 해외사업도 한국사무국에서 현장의 상황과 자금의 흐름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해외사업장을 잘 이해하되 카톡 등 SNS를 통해 행정업무를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nbspnbspnbspnbspnbsp현장에서 개선할 점 등을 원칙대로 안내하되 일하는 사람들이 신심나게 일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지원해줘야 합니다. 스스로 몸에 배고 자각을 통해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월례모임을 할 경우 업무별 공유가 중요합니다. 재정을 하는 사람도 사업과 홍보 등을 잘 알아야 하고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재정과 회원관리 등의 업무를 잘 알고 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해외사업 보고도 함께 해서 간단한 공유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해외사업 진행상황도 간결하고 편안하게 일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조금 더 세심하고 책임감있게 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라고 하시며 바쁘신 와중에도 활동가들과 업무를 챙겨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의 말씀에 수행을 놓치고 일만 하고 있는 모습을 다시금 돌아보게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JTS 회의를 마친 스님께서는 12시, 오찬을 겸한 외부인사와 만남이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늘은 평화재단에서의 일정을 일찍 마무리 하시고 정토회관에서 내일 있을 세계관 강의 준비와 못다한 업무을 보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서초법당에서 세계관 3, 4강이 있습니다.

2014.04.09. 15,403 읽음 댓글 4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