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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15. 열반재일 법회 및 대학생 캠프 즉문즉설
오늘 아침 7시 30분부터 평화재단의 교육원장, 연구원장님, 그리고 각 부분 팀장님들과 함께 평화재단의 사업방향에 대한 회의가 있었습니다.nbspnbspnbsp 회의 후 잠시 박명송법우와 진로 상담을 한 후 11시부터는 열반재일 법회가 서초법당에서 있었습니다.nbspnbsp 3월 8일은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날이고 3월 15일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날입니다. 정토회는 출가하신 날부터 열반에 드신 날까지 8일 동안 부처님의 삶을 되새기며 부처님처럼 용맹정진을 해보자는 취지로 출가열반재일정진이 있었습니다.오늘 15일은 열반재일이자 회향일입니다. 회향법문을 법륜스님께서 직접 해 주신다는 소식에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관악법당과 동작법당의 새벽 정진팀 분들도 함께 하셨습니다. 법회는 10시에 300배 정진을 하고 11시에 법문을 듣고 이후에 천도재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nbspnbspnbsp 300배 정진을 하는데, 그 동안 들은 법문들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30년 동안 술 때문에 늦게 들어오는 남편 때문에 괴롭다는 보살님께 “우리 남편 술 많이 먹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며, 마음 하나 바꾸면 해결이 되는데 왜 그리 어렵고 복잡하게 사느냐? 단순하게 살아라고 일갈하시던 대목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선불교의 스승님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깨달음을 얻고자 애쓰시던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어떤 스님이 “이 무슨 물건이 들어오는고?” 하는 스승님의 질문에 간절하게 7년 동안 마음을 살펴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씀도 기억이 납니다. 깨달음은 지식으로 얻을 수 없다며 평생 애써 공부해 어렵게 얻으려 하지 말고 마음을 바로 보아 단박에 가볍게 깨우치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nbspnbspnbsp 11시부터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올해가 불기 2558년인데 이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지 2558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열반의 의미는 두 가지라고 합니다.nbspnbsp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으셨을 때 ‘열반을 증득했다’ 하고, 쿠시나가라에서 돌아가셨을 때 ‘열반에 드셨다’고 합니다. 열반이란 빨리어로 ‘립빠나’이며 산스크리트어로 ‘니르바나’라고 하는데, 이는 모든 고뇌가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열반의 상태는 들뜨지 않고 고요하고, 어둡지 않고 밝으며, 맑고 가벼운 상태를 말합니다. 부처님은 돌아가실 때도 마음이 고요하고 맑고 가벼워서 털끝만큼도 흔들림이 없었다 하여 대열반이라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해탈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nbspnbsp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셨을 때 해탈했다, 열반했다라고 하는데, 해탈은 온갖 것에 매여 사는 것으로부터 즉,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이는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욕망에 속박받는 것입니다. 욕구가 성취되면 즐거움이 생기고, 성취되지 않으면 괴로워집니다. 욕망을 따르면 이렇게 고락이 반복되는데 이를 윤회라고 합니다. 쾌락주의의 반대가 고행주의인데, 이는 욕구가 괴로움의 근원으로 알고 이를 억제하는 것입니다. 욕구를 억제하면 스트레스가 발생합니다. 쾌락은 욕구를 따라가는 것이며, 고행은 욕구를 억제하는 것입니다. 둘 다 욕구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그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럴려면 욕구를 따르지도 않고 억제하지도 않고 욕구를 욕구라고 알아차린다, 다만 바라본다 즉, 지금 여기에 깨어있으라는 것입니다.이어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 한 해 동안의 기록인 열반경의 내용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대장장이 춘다가 올리는 공양을 드시고 병을 얻으신 이야기, 죽음의 순간까지도 이교도인 수바드라를 깨우쳐 마지막 제자가 되게 하신 이야기에 이어 마지막에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nbspnbspnbsp “아난다여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이다. 육신은 지금 너희 곁을 떠나지만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너희 곁에 있을 것이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nbspnbsp 언제 들어도 따뜻해지고 편안해지는 말씀입니다. 이어 해탈, 열반을 하려면 수행도 욕심을 내서는 안되며 꾸준히 해야 한다며 덧붙이셨습니다.nbspnbspnbsp 마무리할 시간이 회향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습니다. “8일간 용맹정진 해서 공덕이 많이 쌓였는데, 이것을 고통받는 중생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정진한 공덕마저도 세상에 돌려주고 기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눈뜨면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삶이 전개될까’하며 기쁜 마음으로 일어나세요. 3월 23일에 있는 입재식에 한명도 빠지지 말고 참석하시고 삼년동안 하루도 빼먹지 말고 기도하세요.”nbspnbsp 서초법당을 가득 메운 200여명의 정토행자들은 큰 소리로 “예”하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출가열반재일 법문을 마치고 점심공양을 하신 후 바로 대학생 캠프가 열리고 있는 속리산 알프스 수련원으로 출발하였습니다.nbspnbsp 신학기를 맞은 대학생들이 새로운 대학생활을 어떻게 임할지 생각해보기 위해 마련된 이 행사에서 오후 3시 40분부터 5시 40분까지 법륜스님께서 150여명의 대학생 참가자들을 위해 즉문즉설을 해주셨습니다. 많은 참가자들이 기대하던 프로그램이어서인지 스님말씀에 귀기울이며 경청하는 분위기였습니다.nbspnbsp 질문을 받기에 앞서, 스님께서는 다양한 삶의 자세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먼저, 진실을 궁금해 하며 연구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고, 모방은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을 타인의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이지만 지식의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고 지적하시면서 학습이 갖는 장점은 받아들이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항상 궁금해 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우리 사회는 지난 100년 동안 모방이 중심이 돼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맞다, 틀렸다, 오엑스가 중요하죠. 궁금해 하면서 연구하는 건 오엑스로 답할 수 없어요. 사고가 닫히지 않도록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둬야 창조성이 생겨나게 됩니다. 단, 선생님이 학생이 한 말에 모순은 지적해 주되 답이 있다 없다는 말하지 않아야 창조적인 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모방이 효과적인 시대는 이제 끝나갑니다.nbspnbsp그 동안은 서양문화를 모방하면서 열심히 따라가면 됐는데 이제 앞서가는 사람의 바로 뒤까지 따라 왔어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건 창조입니다. 우리에게 창조적인 역량이 있으면 현대문명을 극복해서 앞서 나갈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정체됩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저의 대화도 답이 없어요. ‘이건 이래야한다’하는 정답이 없어요. 오늘 대화를 해보면서 이 상태에서 어떤 것이 나의 자유를 위해서, 행복을 위해서, 이익을 위해서 더 나은 길인가 함께 생각해봅시다.”nbspnbspnbsp 스님께서는 또한 더 큰 손해를 막기 위해서 때로는 작은 손해를 볼 줄 알아야 한다면서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nbspnbspnbsp 이번 즉문즉설에서도 여느 20대들이 하는 고민들처럼 연애와 진로에 관한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많아, 헤어지고 나서 다시 만나자는 전 남자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여대생에게 스님께서는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며,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며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만날지 말지의 선택은 상대방에게 맡기라고 하셨다. “연애를 하면 귀찮음이 따라올 수밖에 없어요. 그것은 상대의 요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 산, 바다를 좋아할 때는 그것들은 요구가 따로 없어서 내가 가고 싶을 때 가면 되지만, 사람은 내가 만나지 말자 할 때 상대가 만나자 하면 나에겐 귀찮음이 되는 거예요. 항상 귀찮은 게 아니라 이 경우만 귀찮다는 거예요. 내 행동을 속박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동성친구 사귈 때도 똑같이 일어나요. 사귄다 하면 필연적으로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심리는 돈을 빌리고 돈을 안 갚겠다는 사람처럼 사귀면서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생각하고 상대방 의사를 존중 안 해요. 자기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가 내 삶에 장애가 된다 생각하면 외로움을 감수하고 사람 사귀는 걸 멈춰야 합니다. 그건 자기 선택이지 그 사람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에요. 애인이 있다고 좋은 것도, 없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선택의 문제니까 사귐을 선택하려면 그런 걸 수용해야 합니다.”그러면서 스님께서는 사람 간에는 상대의 자유를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내가 누구를 좋아하는 건 내 자유지만 내가 좋아하니 너도 나를 좋아해라고 요구 하는 건 독재에요. 상대가 나를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는 상대편의 몫이에요.nbspnbsp 요즘 여러분은 사랑이나 우정이 없는 거 같아요. 다 거래에요. ‘내가 이렇게 주니까 너도 그만큼 해라’하는 건 사랑이나 우정이 아니라 그냥 상거래에요. 내가 부처님을 좋아하는 건 내 자유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안 해주면 ‘에이 기도해도 소용없다.’ 하는 건 거래지 신앙이 아니에요. 여러분은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건 내 자유이지만, 네가 나를 좋아하는 건 네 자유다. 상대가 노예가 아니니 상대의 자유를 존중해줘야 합니다.”nbspnbspnbsp 다음은 진로 문제로 자신은 인문적 소양이 있는데 이공계가 더 넓은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는 주변의 조언을 듣고 이공계 전공으로 대학을 간 새내기의 질문이 이었습니다. 질문자인 새내기는 막상 대학 수업을 들어가자 자신 없는 수학·과학을 집중적으로 한다는 게 싫고 막막하다며 적성이 안 맞는 것은 노력으로도 극복하기 어려운지 묻는 질문자에게 스님께서는nbspnbspnbsp “본인이 선택한 이공계를 계속 노력해서 극복해보는 방법이 있고, 포기하고 다시 문과 쪽으로 대학을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고 말씀하시며 선택은 질문자의 몫이겠지만, 이왕이면 기초적 수학·과학 공부를 노력으로 극복해서 이공계 전공이지만 인문학적 능력을 더한다면 그 분야의 영역을 더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본래 자기가 좋아하는 성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는 것 아니냐는 재질문이 이어졌고, 스님께서는 “자신이 선택한 그 분야에서도 교육·강의 등을 통해 질문자의 발표 능력이나 재능을 살릴 기회가 충분히 있습니다. 기초학문수련정도의 수학·과학은 노력으로 극복될 수도 있으니 한 번 해보세요.”라고 격려하며 마무리해주셨습니다.한편, 감정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대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친한 친구를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를 다시 보니 아닌 것 같다며 진정한 용서가 어떤 것인지를 묻는 질문자에게 스님께서는 “용서한다는 말은 ‘자기가 잘했고 상대방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용서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널 용서하지 못하겠다’ 와 마찬가지로 ‘용서해줄게’ 역시 다 ‘내가 잘했다’는 것입니다.nbspnbspnbsp 이 세상에는 잘하고 잘못한 게 있는 게 아니에요. 서로 다를 뿐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용서해 줄 게 없을 때 진정한 용서에요. 그러니까 용서해주려고 하지 말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세요. 나하고는 세상 어떤 사람하고도 다릅니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하고는 왜 자꾸 싸울까요? 친구니까 ‘너랑 나랑 생각이 같아야 돼’라는 전제를 다는데 다른 게 발견되니까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다른 걸 인정하면 갈등할 게 없어요. 두 번째,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nbspnbsp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사람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이해가 되면 화는 안 나게 됩니다. 그러면 용서해야 할 게 없어요.”nbspnbsp스님께서는 즉문즉설을 정리해주시면서 ‘어떤 게 옳고 그르다가 아니라 사물을 이미 일어난 현실에서 선택하라’고 하시며,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이것 때문에 저것 못한다 하지 말고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서 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nbspnbsp 저녁식사를 한 뒤 7시 15분부터 한 시간 정도 참가자들의 자유발언 시간이 있고 나서, 스님께서 그것에 대해 코멘트해 주시면서 9시 30분까지 ‘대학생들이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에 대해 4가지로 설명해주셨습니다. 그 네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nbspnbsp “첫째, 이제 어른이기 때문에 먼저 자립하고 자주적이어야 합니다. 아직도 자립하지 못하면 후원자인 부모님에 대해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보호자가 아니기 때문에 후원자로서 의견 참고만 하고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둘째, 학생이기 때문에 겸손하게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청년은 패기는 있지만 아직 미숙합니다. 아직 아는 게 별로 없으니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많이 시도해봐야 됩니다. 경험을 많이 해봐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이것저것 많이 해보는 게 좋습니다. 안 된다고 너무 상처 받지 마세요. 미숙하니까 성공 확률이 높지 않은 건 당연합니다. 어릴 때 가졌던 그 조그마한 생각으로 난 뭘 잘하고 못한다고 판단하지 말고 해보면서 알아가야 합니다.nbspnbspnbspnbsp 셋째, 학교 다니면서 책만 보는 건 대학생활의 일부입니다. 인간관계를 맺는 것도 큰 자산입니다. 술 먹고 어깨동무하는 이런 친구가 아니라 성인과 성인으로 폭넓게 사람과 대화도 하고 어떤 일도 협력해서 같이 해보세요. 즉 대학은 밖에 나가서 직장생활하고 사회생활하는 하나의 연습장으로 동료, 선후배, 교수님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관계를 연습하는 곳입니다. 인간관계를 피곤하게 생각하지 말고, 자산으로 남겨야 합니다.nbspnbsp 넷째, 사회의 구성원,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나라와 사회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사회 공공성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이 있어야 합니다.사회 전체 이익이 되면 나에게도 이익이 되므로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 경제민주화와 복지사회건설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실현방법으로 기본적으로 투표를 해야 합니다. 최선, 차선이 없으면 최악을 막기 위해서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라며 대학생으로서 생활할 때 이 4가지를 새기며 패기있게 생활해보도록 조언해주시면서 오늘 강의를 마무리 지었습니다.nbspnbsp 속리산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마치면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고 서울로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 내일은 통일의병 출범식과 JTS 시민학교 수료식이 있습니다.
2014.3.14. '31정신을 이어받아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의 역할' 이란 주제로 발표 및 내부회의
7시부터 경동교회에서 ‘31정신을 이어받아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3월 조찬기도회에서 발표가 있었습니다.nbspnbsp 기독교 손인웅 목사님, 천도교 박남수 교령님, 천주교 김홍진 신부님, 원불교 김대선 교무님, 그리고 불교에서는 법륜스님께서 발표를 하였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3.1운동의 기본정신은 첫째는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아서 자주독립 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고, 둘째는 단순히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지배되는 봉건왕조를 회복하자는 대한제국 부흥운동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립운동인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 지금 우리가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다면 첫째는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아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처럼 현재 분단된 나라를 통일된 나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된 나라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소수에게 권력과 재력이 집중되어 있는 강력한 국가가 아니라 그 속의 국민이 행복하고, 민주주의가 잘 실현되고, 경제적으로 평등한, 복지가 잘 실현되는 복지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입니다.nbspnbsp “통일한국은 자유롭고 평등한 새로운 나라 건설운동이고, 통일대한민국은 단순히 남북한의 통일을 넘어서서 남한안의 남남갈등도 해소되고 더 나아가서는 주변국인 일본과 중국과 잘 협력하여 동아시아의 평화, 동아시아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입니다.nbspnbspnbsp 3·1 독립선언서에 보면 일본의 잘못을 탓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도도한 물결에 우리는 일본과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지배가 단지 한반도 주민의 고통뿐만 아니라 일본주민의 고통이기도 합니다. 한반도의 독립은 일본국민들의 자유와 평화로 나가가는 길이 된다는 더 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nbsp nbspnbsp 일본의 압제와 침탈속에서 원한에 사무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한을 넘어서 사랑을 이야기 한 것은 3·1운동을 주도하신 분들이 종교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통일운동도 종교인들이 더 앞장을 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잘사는 국가를 만드는 국가주의를 넘어서야 하고 우리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에 빠져서 이웃나라와의 갈등을 조장한다면 세계가 나아가는 거대한 미래지향적 꿈에 오히려 반하는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통일이 오히려 남한만을 위하고 북한에 큰 고통이 되거나 한국인에게만 이익이 되고 주변국에 손해를 주는 통일이 되거나 남한의 일부에게만 이익이 되는 그런 통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nbspnbsp 남한, 북한, 동북아의 이익이 되는 통일을 지향하는 것은 종교가 서로 다르더라도 공통성인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고, 자기 종교의 사상을 전파하는 것이고, 이러한 통일운동을 하는 것도 사랑과 자비를 이땅에 실현하는 복음을 전파하는 통일운동이라면 정치적으로 오해되거나 스스로 오해될까봐 망설일 필요가 없습니다. 종교인들이 자기 신앙에 충실하고 당당해질 때 주변의 오해와 비난에 대해서 끄떡없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nbspnbsp 또 스님께서는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종교가 자리를 잡을 때 어떻게 했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200년전에 당시의 유교안에서 권력을 잃어버리고 특히 좌절과 실의에 빠져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된 것이 천주교였습니다. 그분들이 그런 모임을 하고 싶었지만 당시 워낙 감시와 탄압이 심해서 산속의 절에 와서 그들의 신앙을 키워왔습니다. 천주교 최초의 도래지도 천진암이었습니다. 절에서 공부했다는 것입니다. 절의 스님들이 장소를 제공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박해받을 때 장소를 제공하고 보호해 준 스님들이 다 똑같이 피해를 입었습니다.nbsp nbspnbsp 또 천도교가 일어나서 박해를 받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제우선생이 동학을 선포하고 피신할 때 머문 곳이 남원교룡산성 덕밀암이었고 덕밀암의 혜월선사의 거처 은적당에서 6개월 이상 머무시면서 천도교의 중요한 경전을 저술하셨습니다. 이후에 경주로 돌아가서 순교를 하셨는데 그것을 보호하셨던 혜월선사께서는 승적을 발탁당하시고 연금이 되셨습니다. 이러한 역사가 있습니다.nbspnbspnbsp 최제우선생의 제자가 손병희선생이고, 혜월선사의 제자가 백용성스님이십니다. 이런 인연으로 처음 독립운동을 할 때 백용성 스님께서 손병희 선생을 설득하여 나라를 되찾는 것에 모든 국민이 다 함께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기독교에 재정지원을 하면서까지 독립운동을 함께 하자고 하셨습니다.nbspnbspnbsp 그 당시 최대 종교였던 천도교는 지금은 소수종교가 되었고 가장 소수종교였던 개신교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종교가 되었는데, 과거 인연을 생각하면 천도교를 잘 받들고 가야 합니다. 그때 개신교가 재정적으로 어려웠는데 그 당시 5000원을 주고 개신교 부흥운동을 돕고 독립운동을 함께 하도록 했습니다. 과거인연을 생각해보면 서로 이미 협력하고 있었습니다.nbspnbsp 불교는 경전이 한문으로 되어 있는데, 용성스님이 감옥에 계실 때 목사님들이 한글로 된 성경을 읽고 있어서 감흥을 받아서 역경회를 조직해서 한문경전을 한글로 처음 번역한 분이 용성스님이셨습니다. 이것도 배운 것입니다. 처음 들어온 개신교에 자극을 받고 배워서 오늘날 불교의 현대화, 근대화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교회의 찬송가도 배우고 어린이 법회도 만들고, 이웃종교에서 배웠습니다. nbspnbspnbspnbsp 이렇게 종교가 어떻게 서로 협력을 해왔는지를 설명해주시면서 서로 협력하는 것이 서로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함께 하는 것이 자신의 신앙에 훼손이 안됩니다. 훼손된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 신앙에 확신이 없어서입니다. 북한도 자신감이 없어서 자꾸 폐쇄정책을 하는 것입니다.nbspnbsp오늘날 개신교도 다른 종교에 대해서 포용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보수세력이 한국사회에서 주류가 되었기 때문에 진보세력을 좀 넉넉하게 포용을 해주고, 우리가 통일이 되면 일본까지 껴안아서 동아시아가 함께 나아갈 때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또, 지금은 우리 종교인들이 힘을 합해서 연구해도 젊은이들을 이끌기 힘드는데, 분열하여 서로 비방만 한다면 스스로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것이 됩니다.nbspnbspnbsp 이렇게 3·1독립운동은 시사하는 점이 많이 있습니다. 통일의 시대가 임박했습니다. 시대는 임박했는데 우리의 준비가 안되어 있습니다. 준비가 안되어 있으면 통일이 희망이 되기보다 큰 재앙으로 닥칠 수도 있습니다. 통일을 이루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통일을 이루는 것이 국민의 행복, 나라의 희망이 되려면 시급하게 통일을 준비 해야 하는데 종교인들이 함께 해 나가기를 바랍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국민의 행복, 나라의 희망을 위해 서로의 신앙은 다르지만 함께 협력해서 나아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다시 평화재단으로 돌아오셔서 10시부터는 평화재단 실무자들과 회의가 있었습니다. 업무인수인계를 하면서 각 부서의 현안들을 점검하고 어떻게 할지 의논하는 시간이었습니다.nbsp nbspnbsp 오후 2시부터는 JTS 관계자들과 회의를 하면서 현안들을 점검하셨습니다.nbspnbsp 그 외에도 외부인사들과 3번의 미팅을 가졌고 저녁 8시에는 하반기에 있을 스님의 해외 100강 관련하여 스님께서 해외 100개 도시를 다니면서 하게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즉문즉설외에도 문화기행을 가미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어떤 것을 더 더 가감할 수 있는지 아이디를 얻기 위해 MBC 오상광 PD와 불교방송 김범수 PD님과 함께 의논하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nbsp nbspnbsp 이어서 밤 9시 30분에 계속 해서 북한 인도적 지원관련한 회의를 마치고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하였습니다.nbspnbsp 내일은 평화재단 연구원장, 교육원장님과 회의가 있고, 오후에는 대학생캠프에서 즉문즉설과 강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2014.3.13. 평화재단에서 7번의 모임
오늘은 아침 7시 30분부터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민통합회의’에 참가하는 사회인사들과 함께 한반도 통일을 위해 각계각층에서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통일정책, 그리고 그것이 완성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논의들이 있었습니다.nbspnbsp 중국과 일본이 대립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통일환경의 변화에 대한 국제정세까지도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남한의 사회정책이나 국가운영 시스템도 이제부터는 한반도 통일을 대비해서 조정되어야 하고 남한내 갈등들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의논들이 있었습니다.nbspnbsp 이어서 10시부터 밤 10시까지 6번의 모임을 통해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교육, 지방자치, 미래사회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해외에서 오신 교포분들과 해외동포들이 통일운동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논하셨습니다.nbspnbsp 밤 10시가 넘어 정토회관에 돌아오신 스님께서는 원고정리를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였습니다.nbspnbsp 내일은 아침 7시부터 경동교회에서 ‘3·1정신을 이어받아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의 역할’이란 주제로 발표가 있을 예정입니다.
2014.3.12. 한국도착. 행정처 회의 및 미팅들
스님께서는 오늘 새벽 6시 30분경에 8일간의 인도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셨습니다.nbspnbsp 인천공항에서 서울 정토회관으로 돌아오셔서도 바로 내년도 인도성지순례 일정과 JTS와 업무에 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회관에서 점심 공양을 하신 후 2시부터는 정토회 행정처 소속 임원들과 8차년도 정토회 사업방향에 대한 회의가 있었습니다.오늘 회의는 3월 23일부터 시작될 제 8차 천일결사의 목표아래 정토회 대중부 조직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지, 그리고 2014년 정토불교대학에 3500명이 입학을 하였는데 정토회를 모르고 온 사람,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소문만 듣고 온 사람들이 다수일텐데, 이런 불대생들에게 어떤 교육을 제공할 것인지, 어떻게 학사관리를 할 것인지에 대하여 함께 의논하는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nbsp 그 외에도 지금 당면한 여러가지 현안을 함께 논의하면서 물질과 정신이 같이 건강해지는 운동, 그동안 실천해 온 희망세상만들기를 범국민 운동으로 펼쳐야 된다는 의견을 같이 나누었습니다.nbsp nbspnbsp 오후 4시부터는 북한의 어린이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과 관련한 관계자들과 회의가 있었습니다. 먼저 북한주민의 식량상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지방에는 식량부족 현상이 심각하다는데 뜻을 같이 했습니다. 올봄 춘궁기의 식량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북식량지원 준비를 빨리 하기로 하였습니다.nbspnbsp 오후 8시부터는 예전에 청년정토회 활동을 하였고 지금은 법조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과 만남이 있었습니다.nbspnbsp 오늘 모든 모임을 마치고 밤 10시 넘어서 회관으로 가셔서 그동안 마무리 하지 못한 원고를 교정하시고 하루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2014.3.11. 마을리더들과의 회의 및 한국으로 출발
어느덧 9박 10일이 훌쩍 가고 스님께서 인도에 계시는 마지막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7시부터 마을 리더들과의 회의로 일정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회의는 15개 마을 중 17명의 리더들이 참석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일찍부터 학교로 찾아온 리더들에게 차와 다과를 넉넉하게 준비하도록 당부하시고는 바로 회의를 시작 하셨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 각 마을 방문시에 눈 여겨보셨던 문제부터 언급하셨습니다. 바가히 마을 유치원에 들어가는 길목에 무너진 다리 보수 문제를 얘기 하시고, 설치 해 놓은 핸드펌프 물 사용에 어려움이 없는지 물으셨습니다. 유달리 물에 철분이 많이 섞여 나왔던 가왈비가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걱정하기도 하셨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각 마을에서 현재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물으셨습니다. 전기가 필요한 마을도 있었고, 청결이 문제인 마을도 있었고 도로가 문제인 마을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다니기 좋은 길이 될 수 있도록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묻기도 하셨습니다.nbspnbspnbsp “만꼬시힐은 지금 뭐가 문제입니까?” 도로가 제일 문제입니다.nbspnbsp “길 다니는 도로 말인가요? 물구덩이는 흙을 채운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먼저 굵은 돌을 집어넣고, 그 다음 그 위에다가 여기 돌광산에 가면 돌하고 자갈 섞인 흙 있는데 그걸 갖다가 부으면 비가 와도 괜찮아요. 이해하셨나요? 우리가 트랙터 제공해주면 쉬람단 할 수 있어요?” 네 우리들이 다 같이 할 수 있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마을 문제를 들고 얘기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해주셨습니다. 마을 하나하나 필요한 것을 챙기시면서 JTS가 꼭 지원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마을 사람들이 꼭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함께 의논하여 역할분담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지막을 아이들 이야기로 마무리하셨습니다. “아직 입학원서가 다 들어오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들어온 것을 보면, 현재 수자타아카데미 유치원생은 900명, 초등학생 450명, 중학생은 120여명입니다. 그렇게 아시고 아이들이 학교 잘 다니도록 마을 사람들이 함께 지원을 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수자타아카데미가 먼 마을 스리람푸르, 아자드비가, 자르하리는 바로 옆에 정부학교가 있는데 수자타아카데미 까지 올게 뭐가 있어요. 정부학교에 가도록 꼭 좀 해주시고요.” 스님께서는 수자타아카데미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하는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둥게스리에 있는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고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기를 바라는 스님의 마음에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nbspnbspnbsp 마을개발 리더들과 회의가 끝나자마자 스님께서는 JTS 책임자이신 김신아법우님과 최동호 법우님과 학교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다시 대중들에게 보안에 대해 당부하셨습니다.“항상 사고가 나고 난 뒤 한 3년은 바짝 긴장해서 점검하고 관리하는데, 3년이 지나면 또 헤이해져 사고가 나곤 합니다. 근래 10여년이 넘는 동안 경찰이 학교에 주둔해서 아무 사고가 없어 조금 해이해졌습니다. 이럴 때 모두가 역할 분담을 해서 항상 주위를 잘 살피고 문닫는 시간에는 학교내에 외부사람들이 없도록 점검한 후에 문을 닫는 것이 필요합니다. 보안에 대해 겁을 먹을 필요는 없지만, 항상 조심해서 살펴야 합니다” 라고 하시며 한국 활동가들 약 10여명이 살게 되기 때문에 각자가 좀 더 살펴서 하도록 말씀해주셨습니다. 이곳은 외진 곳이라 치안유지가 어려운 곳아가 때문에 스스로 주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인도 JTS 한국인 활동가는 마지막으로 스님께 삼배를 올리며 스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마지막 당부에서도 “물론 일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여러분은 수행자입니다. 일은 수행삼아 하는거예요. 이제 곧 더위가 시작 될 거예요. 많이 힘들 거예요. 그래도 내가 수행자임을 놓치지 않도록 해 보세요.”라고 하시며 부지런히 수행정진 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스님의 말씀은 첫 날 대중들에게 해주셨던 법문 내용이었습니다. 스님.. 인도에서 스님을 뵐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제가 수행자임을 다시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인도생활의 지침삼아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습니다.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수자타 아카데미를 떠나서 보드가야에 있는 방글라데시 절을 방문하였습니다. 방글라데시 절과 스님의 인연은 약 10여년 전부터라고 합니다. 그때 방글라데시 절은 울타리만 있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스님께도 계속 도와달라고 요청이 있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그동안 조금씩 조금씩 도와 드렸습니다. nbsp 보드가야 방글라데시 절은 지금은 법당이 완성되어 있고 일부 게스트하우스가 완성되어 있으며 약 100여명이 묵을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가 공사중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시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보시금을 전달했습니다.nbspnbsp 이어서 다시 수자타아카데미 초창기부터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도움을 준 챠크마 템플의 쁘리야팔 스님을 방문해서 안부를 물으시고 보시금을 전달하고는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인도에서 약 8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스님께서는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2014.3.10. 초등학생 법회 및 중학생 법회
스님께서는 아침예불과 청소, 아침공양을 인도 대중들과 함께 하시고, 9시 30분부터 초등학생들 법회와, 1시 중학생 법회를nbspnbsp진행하셨습니다.nbspnbsp 쁘락보디 홀에서 진행된 초등학생 법회는 초롱초롱 고운 눈망울의 2학년부터 제법 의젓해진 5학년까지 320명의 초등학생을 위해 스님께서 새학기를 맞이 하여 한 법회였습니다. 1학년은 아직 등록기간이고 정식으로 입학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nbsp“여러분은 학생입니다.” 라고 시작하신 스님의 법문은, 살아가면서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지만,nbspnbsp놓칠 수 있는 기본적인 생활 습관에 대해, 요모조모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말씀해 주시면서 아이들의 “예스”라는 대답을 계속해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법문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스님과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따라 해보세요.“ 라는 스님의 말씀에, 맑고 우렁찬 목소리로 스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릴 때, 무조건 어른들을 따라 흉내를 낸다고, 평소에 늘 법문을 하셨던 것처럼, 스님께서는 오늘 피부색도, 언어도 완전히 다른, 낯선 나라 먼 인도의 아이들에게, 따라하는 아이들의 특성에 맞춰 눈높이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법문이 진행되는 한 시간 내내, 아이들은 스님의 말씀을 따라하고, 또 따라하고.......스님의 질문에 “예스” “예스” “예스” 라고 계속해서 답을 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예스”라는 대답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왜 공부를 하고, 왜 청소를 하고, 왜 정리정돈을 해야 하며, 왜 정직하고 성실해야 하는지?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인 5계를 지켜야 하고, 여자와 카스트와 종교와 피부색에 따라서 차별하지 않아야 되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왜 구걸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어렴풋이 느끼며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꼭 해야만 되는 일들과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법회 시간 내내 계속 된 “예스”라는 아이들 스스로의 대답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와 닿았던 스님의 법문은,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남을만한 법회였습니다.초등학생들을 위한 법회시간중에 한국에서 온 성지순례 객들이 뒤에서 스님께 삼배를 올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초등학생을 위한 법회를 마치자마자 성지순례객들에게 가셔서 수자타 아카데미를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습니다. 성지순례객들은 경남 하동에 있는 성불사와 대비암에서 방문하신 지견스님과 서봉스님을 비롯하여 약 20여명의 신도님들이 함께 오셔서 수자타 아카데미 학생들을 위해 초코파이 30박스와, 문구류 다수를 보시해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온 쵸코파이를 초등학생, 중학생, 스텝들, 노동자들에게 한 개씩 나눠주셨습니다.오후 1시부터 진행된 중학생 법회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정성을 들이신 선생님들 덕분에 바른 자세로 의젓해진 119명의 학생들과 함께 법당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오전 초등학생때 와는 다르게 학생이며 동시에 리더가 되는 6학년이상의 학생들에게nbspnbspnbsp “5학년까지는 도움을 받고 자랐습니다. 6학년부터는 도움을 받으면서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른은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더 이상 어린이날 대상자가 아니지만 또한 어른도 아닙니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게 중학생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학생들에게 “나는 리더다” 라고 따라하게 하시면서, 그동안 도움을 받기만 했던 어린이의 삶에서, 이제부터는 도움을 주면서 살아가는 어른의 삶을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가 될 수 있도록 자상하게 웃는 모습으로 안내하는 법문을 하셨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오전에는 남을 돕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하여 흔쾌히 “예스”를 할 수 있도록, 수자타 아카데미가 설립되던 20년 전, 교육이 전무했던 둥게스와리 지역의 상황들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JTS의 창립 이념인 ‘아이들은 제 때 배워야 합니다.’ 라는 취지에 따라, 이곳에 수자타 아카데미 초등학교를 설립했다는 것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초창기 수자타 아카데미의 선배들이, 초등학교를 어렵게 졸업을 했지만, 졸업한 뒤에 정부학교에 갈 수 있는 몇 명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중학교에 갈 수 없었던 선배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배움을 열망했는지? 또 얼마나 중학교를 만들어 주기를 스님께 간절하게 요청했는지? 선배들의 배우고자하는 그런 간절함이, 중학교를 개설하게 했다는 학교 역사를, 가슴 찡한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마음과 마음의 울림으로 전해주셨습니다. 학생들은 스님의 법문을 통해 중학생이 되면서, 스스로가 후배들의 교육을 도와주며, 중학교 과정을 배워나가는nbspnbsp수자타 아카데미의 진정한 리더, 곧 어른으로서의 자발적인 마음이 깨어나도록 해주셨습니다.6학년이 되었지만 패스를 못해, 유급 처지에 놓였던 6학년 20명과, 7학년 25명에게는, 현재 그들의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3개월간의 공부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서 패스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방법을 제시함으로서 동기부여를 하셨습니다. “리더라고 하는 것은 남을 돕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 공부가 부족한 사람은, 남을 돕는 것보다 내가 더 급합니다. 원래 남을 돕지 않으면, 수자타 아카데미의 중학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과 제가 의논을 해서, 3개월 동안 공부만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줄 테니까, 열심히 해서 다 패스합니다. 알았습니까?” 성적이 나빠서 그만 유급위기에 처했던, 기죽은 45명의 아이들은 스님의 말씀에, 법당이 떠나갈 듯 “예스”라고 대답을 하며, 패스를 약속 했습니다.nbspnbsp 선생님중의 한 분이 만약 이 아이들 중에 다음학년으로 패스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스님께서는 “그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면 이 학생들이 모두 패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죠? 모두들 열심히 공부해서 다음 학년으로 패스 할거죠?”라고 물으니 중학교 학생들은 모두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예스”라고 답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스스로 자긍심을 가지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스님은 법회 하시는 동안 내내, 사람으로서 살아가면서 꼭 해야 될 일과, 반드시 하지 말아야 될 일들에 대해, 한결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또 카스트 때문에 아주 천하게 여겨서,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화장실 청소에 대해서는 아주 특별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남녀차별, 계급차별 등, 인도에서 전통적으로 계속되었다 하더라도 옳지 않다면, 그것은 개선되어야 하는 일을 예로 들으시면서, 그와 같이 개선되어야 하는 일이라면, 우리가 먼저 개선해 나가야 된다는 것을, 학생들 스스로 인정하게 하셨고, 그것과 마찬가지로 화장실 또한,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이렇게 똥이 나와요. 누구나 뱃속에 똥이 있어요? 없어요? 똥이 더럽다면 우린 다 더러운 사람이에요. 다 뱃속에 똥이 있잖아요. 화장실 청소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학생 될 자격이 없어요. 화장실은 깨끗이 청소해야 되요. 알았어요?” 라는 스님의 자상한 말씀에, 학생들은 법당이 떠나가도록 “예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후의 뜨거운 인도의 태양이 무색할 정도로, 학생들의 배움의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는 감동적인 청소년 법회를 이끌어 주셨습니다.스님께서는 4시부터는 석가족의 아쉬니지 고등학교 교장선생님과의 미팅이 있었습니다. 가야의 석가족이 마을 청년회를 조직해서 기독교의 주일학교처럼, 일요일에 보드가야의 스님을 모셔다가 법문을 듣는 등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 법륜스님께서도 꼭 한번 법문을 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석가족의 분포도와 불교부흥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를 말씀해주시면서 함께 얘기 나누었습니다. 미팅이 끝나고, 석가족과 함께 저녁예불을 드리신 뒤, 바르샤 보살님께서 끓여주신 수제비로 저녁 공양을 드셨습니다. 저녁 8시부터는 한국인 활동가들과 마지막 회의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학교를 둘러보면서, 또 선생님들과의 회의에서, 스텝들과의 회의등에서 나온 얘기들을 종합해서 한국인 활동가들과 함께 학교 운영, 상급생들의 업무 배치, 교사, 상급생들의 관리 원칙, 지바카 병원의 운영, 그 외에도 학교시설 보완등 그동안 얘기되었던 문제들에 대해 함께 의논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한국인 활동가들에게 “여기 계시는 분들은 수행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제 곧 날씨가 더워지면서 땀나고 짜증이 나게 됩니다. 그러면 수행은 온데간데 없고 조그마한 일에도 토라지고 짜증내게 됩니다. 이렇게 토라질 때 딱 정진을 해야 합니다.nbspnbspnbsp 일도 잘 해야 하지만 일보다는 항상 수행이 먼저입니다. 마음이나 생각이 한쪽으로 빠져서 좁아지면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좁아지고, 그러면 다른 사람의 충고도 들리지 않습니다. 마음나누기 할 때 도반들 마음나누기를 귀담아 들어줘야 하는데 마음이 틀어지면 그게 잘 들리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다 함께 고생하면서 사는데 이 안에서 토라져서 그러면 정말 힘들어집니다.nbspnbspnbsp 사람이 서로 뜻만 맞으면 바깥의 일은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뭉쳐서 힘이 나게 되는데 내부의 적은 사람을 맥 빠지게 만듭니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때려치우고 싶은 심리가 일어납니다.nbspnbsp 꾸준히 수행정진을 해야만 이런 상황을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정진이 필요합니다. 수행정진을 놓치지 말고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라며 한국인 활동가들이 이렇게 해외에 나와서도 자기수행을 놓치지 말고 생활 해 나가기를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내일 아침부터 마을 리더들과 회의를 한 후 한국으로 출국할 예정입니다.
2014.3.9. 수자타 아카데미 학교 둘러보기 및 인도JTS 스텝들과 회의
스님께서는 오늘도 인도 JTS 활동가들과 함께 아침기도를 하고 마당 청소를 하신 후, 아침 공양을 하셨습니다. 공양을 하시면서 오늘 아침에는 학교를 둘러보면서 점검해보자고 하셨습니다.nbsp교문 옆 건물을 시작으로 학교를 둘러보았습니다. 예전 교장실이었던 이 건물은 지금은 학생들을 위한 교육교재등 물품창고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좌측 건물의 창고부터 살펴보셨는데 첫 번째 방에는 드라이푸드 포대가 바닥에 쌓아져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학생들을 위한 식품이기 때문에 항상 청소가 깨끗이 되어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맨바닥에 그냥 놓기 보다는 바닥에 나무판 같은 것을 놓고 포대를 놓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셨습니다. 그 옆에는 중학생들을 위한 사물함이 있는 방 이었습니다.nbspnbspnbsp 수자타 아카데미에는 초등학생 440여명, 중학생이 120여명으로 약 560여명이 다니고 있으며 1층은 모두 8칸으로 도서관, 양호실, 교사회의실, 여교사휴게실로 쓰이고 있었고, 나머지 4개 교실은 중학생 교실로 쓰인다고 합니다. 2층은 컴퓨터실, 미술실, 타이핑룸과 1칸은 경찰들이, 너머지 4칸은 교실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3층은 물레를 배우는 교실 2칸, 물레 물품 1칸, 5칸은 교실로 쓰이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 스님께서는 교실 한칸한칸을 모두 둘러보시며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어떻게 활용하면 가장 좋은지, 현재 쓰이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하면 더 편리하게 할 수 있는지, 현재 학생들을 위한 물품 보관용으로 쓰이고 있는 곳도 가능한 교실로 활용하는 방안등을 함께 얘기 나누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의 1,2,3학년 학생들은 바닥에 천을 깔고 수업을 합니다. 그런데, 아직 학교가 정비중이긴 하지만 바닥용 천이 둘둘 말아져 교실 가운데 책상에 올려져 있기도 했고 책상, 청소도구들이 정리가 안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학생들의 교육이 글자 하나 가르치는 것보다 청소를 깨끗이 하고 빗자루나 다른 물품들을 벽 뒤에나 옆면에 못을 달아 걸어둘 수 있도록 물품 정리정돈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교육이라고 하시면서 아이들에게 우선적으로 가르치도록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4,5학년은 책상과 의자를 이용하여 수업을 받습니다. 한 반에 40명 정도 있는데 교실의 크기에 비해 책상이 무겁고 너무 커서 교실이 너무 좁아 보였습니다.nbspnbsp책상과 의자의 무게와 크기를 줄이고 한 반의 학생수를 줄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습니다.nbspnbsp 학교 옆 건물에는 식당과 식품 창고가 연결 되어 있습니다. 그 옆에는 자전거 보관소, 발전기실이 연속해서 있었습니다. 자전거는 번호를 부여해서 각 개인이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데도 도난이 있어서 좀 더 철저히 관리하도록 당부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훔쳐가는 것도 문제지만 관리를 철저히 해서 미리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한번 도난이 되면 사람들이 훔쳐도 된다는 인식이 생기기 때문에 미리 미리 관리를 더 철저히 하도록 활동가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계속해서 자재보관소, 목공소, 재봉반을 둘러보셨고, 또 쁘락보디홀로 와서는 현재보다 인원을 더 수용할 수 있도록 양옆을 잔디를 깔어 넓히고 처마를 더 내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하셨습니다.nbspnbspnbsp 스님께서는 모든 장소를 꼼꼼히 둘러보시고 새로운 의견을 내거나 더 잘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항상 보던 곳이지만 더 잘쓰이는 곳으로 변하게 하는 스님의 생각은 무궁무진해보였습니다.nbspnbsp 학교를 둘러 본 후 어제에 이어 8시부터 JTS 센터에서 교사들과 스텝들과의 회의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어제 학교회의에 이어서 마지막으로 교사를 어떻게 배치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와 마을개발, 병원 운영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교사들에게는 수업을 잘 챙겨서 진행하는지 물어보시고 유치원생을 가르치기에 몇 학년이 적당한지등 학교운영에 대해 꼼꼼히 물으시면서 인도문화가 늦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교사가 지각하지 않아야 아이들도 지각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교사들에게 시간을 잘 지키도록 당부하셨습니다. 교사들이 무단결근이나 결석이 많은데 이유가 집안일이 많은데 바쁜 건 충분히 이해 하지만 여기 와서 자원봉사하는 것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온 것이기 때문에 정말 바쁘면 선생을 하면 안된다고 하시면서 정말 바쁘면 미리 이야기 하여 대비할 수 있도록 하고 나오지 않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냥 빠지면 절대 안된다고 교사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 스님과 교사와 스텝들이 마주 앉아 의논을 하다보니 조금씩 수자타 아카데미가 정비되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nbspnbspnbsp 10시 40분, 오늘은 교사들과 스텝들이 점심공양을 인도식으로 준비했습니다. 계란커리와 달, 사부지, 샐러드등 모든 교사들이 모여 함께 준비하였습니다. 뜨끈뜨끈한 커리와 달, 사부지를 먹으면서 스님께서는 인도음식이 맛있다고 하시면서 ‘카나, 아차해’하시면서 음식준비한 선생님들을 격려해주시기도 했습니다. 1시 30분, 다시 JTS 센터로 모여 마을 개발 회의부터 시작했습니다. 장기적으로 자립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협동조합을 운영해서 이익이 주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nbspnbsp둥게스리 주민 전체 이익을 위한 방안들을 서로 의논해 보았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마을을 좀 더 좋게 만드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지금 마을에 큰일이 있을 때 음식만드는 그릇이 없으니까 일인당 500루피씩 내서 5천루피를 만들고 제이티에스가 오천 루피를 제공하고 그래서 그릇을 공동구입을 해서 큰일 있을 때 빌려서 쓰도록 하는 그릇계중이 있습니다. 제가 마을을 방문해서 물어보니 다 좋아했습니다. 조금만 힘을 합하면 얼마든지 우리 스스로 할 수 있어요. 마을에 필요한 것을 공동으로 한꺼번에nbspnbsp공동구매를 하면 싸게 구입할 수 있어 주민들에게 이익이 있습니다.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이 힘을 합하면 부자들과 경쟁 할 수 있어요. 또 마을 은행도 만들 수 있고요. 이런 일들을 우리가 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근데 이 마을이 보통 마을이면 충분히 시작하기 쉬운데 이 마을은 첫째 생활 수준이 너무 낮고, 어른들 중 글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문제의식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래서 지난 20년동안 시작을 못했습니다. 이제 JTS가 시작한 지 20년이 되어서 어린 아이들이었던 여러분들이 이렇게 컸잖아요. 이제 청년들이 마을마다 많이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라고 하시며 지금부터 마을을 좋게 만들고 마을의 이익을 위해 함께 노력해보자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병원을 운영하면서 힘든 점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논해보았습니다. 제일 큰 문제가 전기가 없어 예방접종 백신등 냉동보관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원숭이나 개한테 물리고 나서 맞는 광견병 치료주사가 잘 구해지지 않는 것 등의 어려움을 얘기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 학교 스텝들과 회의 마치고 난 후 저녁공양을 하고 7시부터는 한국인 활동가들과 다시 회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먼저 내년도 인도성지순례일정부터 점검했습니다. 내년도에 500여명의 성지순례객들이 온다면 숙소와 식사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했습니다.nbspnbsp 그다음은 다시 학교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학교를 맡은 김정민 법우님과 권도영법우님이 스님께 아이들이 청소를 잘 안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쭤보았습니다.“왜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 하는지 감이 없고 도구함을 놓아도 내일도 쓸건데 왜 도구함에 넣어야 하는가? 이불을 넣을때 개켜서 넣어야 한다 하면 왜 이렇게 까지 접어야 하냐라고 묻습니다.”nbspnbsp 스님께서는 “책보고 시험치고 하는 것만 공부라고 생각하지 밥 먹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게 공부라고 생각 안해요. 하지만 이것이 더 중요한 교육이예요. 걸레를 어떻게 빨고 빗자루 질은 어떻게 하고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계속해서 가르쳐야 해요.nbspnbsp평생 이불 갠 거를nbspnbsp본적도 없는 걸 한 번 가르쳐서 안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자기가 태어나서 선생님도, 친구도, 부모도, 그렇게 하는 걸 본적이 없잖아요. 그걸 짜증내고 하면 안돼요. 경험이 없어서 그래요. 계속 이야기 하고 이야기 하고 그게 공부예요. 수자타 아카데미 처음 시작할 때는 매일 줄 세우는 것만 했어요. 그리고 오늘도 내가 선생님들에게 계속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하고 반복하잖아요. 그렇게 해야 해요”nbspnbsp 스님께서 말씀 하시는 모습에서 평소에 우리가 잘 알아듣지 못해 헤매일 때nbspnbsp끊임없이 법문을 해주시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nbspnbsp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저뭅니다.내일은 초등학생법회와 중학생들과의 수련이 있습니다.
2014.3.8. 인도JTS 활동가들과 사업논의 및 마을 리더들과의 회의
스님께서는 오늘 새벽 아침기도를 함께 하시고 청소도 함께 하셨습니다. 청소 후 아침 공양을 하시면서 새로온 행자들 외에 전정각산 유적지에 아직 가보지 않은 활동가가 있는지 물으셨고 몇몇 활동가가 다녀온 적 없다고 하니 얼른 아침을 먹고 다녀오자 하셨습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난 후 JTS활동가 10여명이 스님과 함께 전정각산 산행에 나섰습니다. nbspnbspnbspnbsp 길을 나서면서 스님께서 학교앞 돌무더기와 유영굴에 대해서 알려 주셨습니다. 이곳 전정각산은 부처님께서 6년동안 고행하신 곳이며 학교앞 돌무더기는 부처님께서 시체더미 곁에서 수행하셨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탑터라고 하셨습니다.nbspnbspnbsp 그 후에 한 티벳스님이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유영굴을 방문하고 거기서 정진을 하신 후 깨달음을 얻어 유명해져서 티벳불자들에게는 이곳이 부처님이 아니라 그들의 스승되는 분의 수행터로 알려져 또다른 성지가 되었다고 합니다.nbspnbsp 돌산을 오르고 올라 중턱을 지나서 제 2유영굴에 다달았는데, 부처님께서 여기서 6년간 수행을 하실 때 유영굴 뿐만 아니라 다른 2개의 동굴에도 계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2, 제3의 유영굴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주위에는 2300년 전 쌓은 벽돌들도 세월과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 전정각산 정상을 따라 걷다보니 수자타 아카데미의 모습을 훤히 볼 수 있었고 네이란자라 강도 보이고 가야가섭이 천명의 비구들을 설법 했다는 가야산도 보였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리고 돌산등성이 길을 따라 부처님이 걸어가는데 발 디딜 공간 밖에 없는 좁은 길이어서 아찔하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앞서 가시면서도 모두가 잘 오고 있는지 뒤를 돌아봐주시면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길 따라 보이는 강줄기, 마을 풍경이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아찔하게 올라온 보람이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산꼭대기에는 아쇼카 왕이 부처님의 수행처를 따라 세운 무너진 탑들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돌길을 따라 옆으로 이동하니 산정상 절벽아래 벽돌 무더기가 있는 곳에 제3의 유영굴로 추정되는 동굴이 보였습니다. 그 곳에서 스님께서는 가부좌를 틀고 잠시 명상에 잠기셨습니다.nbspnbspnbsp 그렇게 오르고 올라 정상에 올랐습니다. 부처님께서 네이란자라 강을 따라 지나가시던 길도 보이고 낙타산 뒤로 보이는 대탑, 그리고 그제 방문했던 바가이, 까나홀, 스리람푸르등 그저께 방문했던 마을을 한 눈에 바라보며 정상에 오른 기쁨을 만끽 하였습니다.nbspnbspnbsp 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바위에서 또 한 번에 명상 포즈를 취해주시는 스님 장엄한 뒷모습nbspnbspnbsp 돌길을 따라 내려오는 길은 조금 미끄러웠습니다. 그 길 아래에는 부처님께서 마셨다는 붓다의 연못 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물이 있는 곳은 여기뿐이어서 모든 짐승들이 이곳으로 모인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무사히 산행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 오전10시부터 스님께서는 JTS센터에서 10개 마을 리더들 15명과 회의를 가졌습니다. 회의에서는 현재 마을에서 진행되고 있는 그릇계에 대해 더 필요한 품목이나 운영방안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고, 또 마을 주민들이 필요한 물품 중 공동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것들, 그것들의 가격, 마을에서 생산할 수 있는 품목이나 시장에서 팔 수 있는 품목, 시장가격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주고 받으며 구입하는 물건이나 생활용품 등을 협동조합을 만들어 제 값 받고 팔고, 싸게 구입하는 방식에 대해 함꼐 의논하기도 하였습니다.그 외에도 마을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도로정비나 식수, 마을에서 집을 짓다가 있는 것에 대한 원인이나 문제점, 개선점에 대한 논의가 계속 있었습니다.nbspnbsp 오후 1시에는 학교 선생님, 스텝, 한국인 활동가 약 40여명과 함께 JTS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있었습니다. 회의에 앞서 스님께서는 인도 JTS 활동가들에게nbspnbspnbsp “어떤 일을 하든지 목표가 중요합니다. JTS의 세 가지 목표인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사람은 치료 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교육은 받아야 합니다.’입니다.nbspnbspnbsp JTS가 중학교를 지원하는 건 원래 목적이 아닙니다. 그러나 수자타아카데미를 졸업한 학생들이 유치원 아이들을 지도하기 때문에 중학교를 지원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어려운 사람을 돕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대학교 학자금을 지원하고 월급도 지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점점 여러분들의 생활비를 받는 것으로 인식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nbspnbsp 여러분들의 생활이 어려운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JTS는 여러분의 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는 곳은 아닙니다. 우리는 많은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 있는 단체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자원봉사로 하는 겁니다. 문제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불만이 생깁니다. 이처럼 JTS는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한 단체이고, 그것을 여러분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았고 지금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머리를 맞대어 의논하는 것입니다.nbspnbsp 사람은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고자 하고 수입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지금 가장 잘사는 나라는 미국이고 경제적으로 가장 어렵다고 하는 나라도 미국입니다. 경제가 사회문제를 푸는 해결책이 아니고 경제적으로 풍요하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함께 도우면서 세상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행복입니다.우리가 어떻게 살 것이냐? 내가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자기 인생은 자기 것이기에 내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하고 내일이 아니라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각자 삶을 행복하게 만들 책임이 있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길입니다. 그렇기에 학교에서는 최소한 5가지는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울 스스로 지켜야 합니다. 1. 남을 때리거나 죽이지 않는다. 2.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뺏지 않는다. 3. 성추행, 성폭행을 하지 않는다. 4. 거짓말이나 욕설을 하지 않는다. 5. 술 먹고 취하지 않는다.nbspnbspnbsp 지금 돈을 더 많이 갖는 것이 재산이 아니고 사람에게 믿음을 주는 것이 큰 재산이 됩니다. 계율을 지키면 믿음을 주기 때문에 나에게 가장 큰 재산을 쌓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환자를 잘 치료 할 수 있는지, 아이디어를 내고 의견을 모우고 협력해서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함께 의논해 봅시다.”라며 JTS의 설립목표에 맞게 활동을 해 나갈 때 어떻게 하면 더 잘 될 수 있는지 함께 의논해 보자고 하시면서 법문을 마쳤습니다.nbspnbsp 법문에 이어서는 인도인, 한국인 활동가들과 함께 학교 교육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 회의에서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선생님 배치를 어떻게 할것인지, 각 마을 유치원의 문제점에 대해서 의논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또 병원에서 응급처치와 치료를 어떻게 할지 의료교육 시간을 갖는 것을 제안하시기도 하셨습니다.저녁7시에는 중, 고등학교, 대학교 학생들의 인력관리 문제에 대한 논의로 한국스텝들만 모여서 JTS 회의를 가졌습니다. 오늘도 밤이 깊어서야 이렇게 스님의 하루가 지났습니다. 내일은 학교 선생님, 스텝들과 오늘 회의를 마무리 하고 함께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먹는 시간을 가지기로 하였습니다.
2014.3.7. 수자타 아카데미 근교 5개 마을 방문 및 나디가섭 수행터
인도 현지시간으로 4시 30분, 스님께서는 간단히 세면을 하시고 인도JTS 대중들과 함께 새벽예불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어제는 전정각산 너머의 마을을 둘러보셨다면 오늘은 수자타아카데미를 기준으로 남쪽에 위치한 라훌나가르로 가서 돌아오는 길에 만코시힐, 방갈비가, 두르가푸르, 자그디스푸르 마을과 각 마을 유치원을 순차적으로 둘러보기로 하셨습니다. 어제 함께하지 못했던 대중들도 오늘은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사탕을 나누어 배낭에 메고 스님과 함께 6시 50분에 학교를 출발 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마을 이동 중에도 활동가들과 학생들 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셨습니다. 한 활동가가 스님께 학생들을 감시하는 것 같다는 고민을 이야기하자 스님께서는 “초기에는 좋은 습관이 들 때까지 감독을 해 줘야 해요. 사람은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어릴 때 4살 5살부터 방 닦고 청소하는 훈련을 시키면 아이도 그걸 통해 엄청나게 배워요. 그래서 자기 삶을 자기가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예요. 관리 감독을 해 줘서 훈련을 시키는 것이 그 아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예요. 방치하는 것은 그 아이에게도 불행입니다. 그 아이가 언제까지나 수자타 아카데미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아이가 학교를 나갔을 때nbspnbsp수자타 아카데미 출신 사람들은 믿을 수 있다는 소리를 듣게 해줘야 해요. 기술력이 탄탄하든지 성실성이 있어서 사람들이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삶을 자기가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라고 하시며 활동가들이 아이들을 대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 라훌나가르를 지나 네이란자라 강가에 있는 나디 가섭의 수행터를 들렀습니다. 부처님 당시 네이란자라 강 위쪽에는 맏형인 우루벨라 가섭이 제자 500을 거느리고, 중간에 동생 나디 가섭이 제자 300명을, 아랫쪽에는 가야 가섭이 20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수행을 하다가 후에 가섭 3형제와 그들의 제자 1000명이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나디 가섭 존자의 수행터에 들르기 위해 바지를 걷고 모하나 강을 건너는데 인도에서 이 시기에 이렇게 흐르는 물을 볼 수 있다는 게 대단한 운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가는 길에 이정표 하나 없어서 물어 물어 갔는데 인도 현지인들은 이 곳을 어떤 왕이 살 던 곳으로 알고 있지 부처님의 제자인 나디 가섭의 수행터인 줄을 모르고 있다고 합니다. 나디 가섭 수행터에 도착하여 참배를 하신 후 스님께서는 땅에 수자타아카데미, 전정각산, 나이란자라 강을 그려가며 활동가들에게 현재 우리가 둘러보고 있는 마을의 위치를 찍어주시고 부처님의 발자취를 일러주셨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부처님의 움직임과 현재 우리의 움직임이 공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나디가섭 수행터에서 다시 라훌나가르 마을로 되돌아와 8시 30분쯤 라훌나가르 유치원에 도착했습니다. 라훌나가르 마을은 천민마을인데도 다른 마을보다도 교육열이 높은 편이라서 일부 학생들이 보드가야까지 공부하러 나가기도 한답니다. 오늘 방문한 학교 중 제일 나중에 만들어진 유치원이라서 그런지 다른 유치원보다 건물도 깨끗하고 디자인도 새로웠습니다. 아직 유치원 시작시간이 되지 않아 유치원 문은 잠겨있었지만 어제와는 사뭇 다르게 학교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담장이 없는 유치원을 보시며 담장을 만들어 공부하기에 좋은 안정된 분위기를 만들자고 말씀 하셨습니다. 담장 하나를 생각할 때에도 유치원 아이들의 마음을 고려하시는 스님이 보였습니다. 유치원 문 앞에 잠시 앉아 쉬고 있자 금새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스님께서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 어느 유치원 학생인지, 몇 학년 인지를 꼼꼼히 물어보시면서 가지고 왔던 사탕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라훌라가르 마을의 그릇계를 하고 있는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이곳은 그릇 개수에 상관없이 하루에 20루피를 받고 대여해 주고 있었는데 스님이 도착하셨을 때는 결혼을 하는 어느 신부 집에서 그릇을 빌려간 상태였습니다. 라훌라가르 마을 주민도 그릇계가 잘 쓰여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음은 만코시 힐 마을의 유치원으로 향하는데 어떤 한 어머니가 아이를 정부학교에 보내려는데 아이는 수자타 아카데미만 가고 싶어 한다며 스님을 향해 이야기 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스님과 JTS 활동가들은 9시가 넘어 만코시힐 유치원 에 도착하였습니다. 만코시힐 마을은 역시 천민마을입니다. 다른 학교보다 눈에 띄는 점은 교실 내부 벽면에 우리나라 가나다라같은 힌디어가 예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망꼬시힐 유치원은 총 47명의 아이들이 새롭게 등록했는데 15개 유치원 중 3번째로 많은 아이들이 등록한 유치원이라고 합니다. 스님이 도착하셨을 때는 유치원 외부에서부터 선생님들이 열심히 청소 중이었고 안에서는 아이들이 모여 앉아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스님께서는 방갈비가 유치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방갈비가 마을은 양민마을로 유치원은 현재 입학기간이라서 UKG는 수자타 아카데미로 이동하느라 학생이 없었고 Nursery 학급은 아직 학생이 다 모이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지금까지 총 11명의 아이들이 입학을 신청했는데 스님께서 유치원에 도착하셨을 때에는 다섯명의 아이들이 노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선생님들에게 왜 11명이라고 되어nbspnbsp있는데, 유치원에 온 아이는 5명 밖에 되지 않는지?등 유치원 현황과 아이들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묻고는 아이들에게 줄 사탕을 선생님께 전달하고 나와서 다음 마을인 두르가 푸르로 이동하였습니다. 두르가푸르 마을은 수자타아카데미 옆에 있는 마을로 스님께서 처음 이곳에 오셨을 때 지금 있는 수자타아카데미 터를 보시해준 사람이 두르가푸르 마을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두르가푸르 유치원은 수자타 아카데미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 본교에서 제일 처음으로 분리된 유치원이기도 합니다. 스님께서 도착했을 때 55명의 아이들이 모여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여기도 유치원의 담장이 없어 담장을 치도록 마을 리더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아이들에게 사탕을 직접 나눠주고 난 후 자그디스푸르로 이동했습니다. 두르가푸르 마을과 자그디스푸르 마을 사이에 수자타 아카데미가 있습니다. 10시가 넘어서야 오늘 마지막 유치원인 자그디스푸르 유치원에 도착했습니다. 자그디스푸르 마을은 수자타아카데미와 시작을 함께 했던 마을입니다. 수자타 아카데미를 세울 당시 11명의 두르가푸르 마을 사람들이 땅을 보시하고 힘을 모아 학교를 세웠다고 합니다. 올해 59명의 아이들이 등록했는데 15개 유치원 중 두 번째로 많은 아이들이 입학신청을 한 상태였습니다. 스님께서 유치원에 도착했을 때는 한 아이의 선창으로 나머지 아이들이 열심히 따라 외며 힌디어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수업중인 관계로 아이들에게 나눠줄 사탕은 선생님들께 건네주고 마을에서 그릇계를 하고 있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자그디스푸르에 있던 그릇계 방문을 마지막으로 11시가 다 되어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오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 대체적으로 오늘 방문했던 유치원은 어제 방문했던 유치원에 비해 훨씬 쾌적하고 깨끗했습니다. 스님께서는 각 유치원별로 입학 등록되어 있는 학생 수가 몇 명인지, 실제 유치원에 나오고 있는 아이들은 몇 명인지, 못 나온다면 왜 못나오고 있는지, 나오고 있다면 뭐가 좋아서 나오는지, 정부학교와 비교해서 어떤 점이 좋은지 어떤 점이 떨어지는지를 하나하나 파악하셨습니다. 끈임 없이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셨습니다. 오전에 마을 유치원 방문을 마치신 스님께서는 활동가들과 한 시간정도 티타임을 갖으신 뒤 점심공양을 하시고 바로 학교 교사들 회의를 소집하셨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를 졸업하여 활동하는 교사는 총 26인데 17명의 교사들이 오늘 회의에 참석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회의에서 반 편성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작년에 비해 학생인원이 감소한 마을도 있었고, 정부학교 학생들이 수자타 아카데미로 옮겨와서 오히려 늘어난 마을도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약간 무거운 분위기로 시작한 듯 했지만 먼저 교사들의 의견을 물으시고 거기에 대한 스님의 의견을 내시면서 상의하는 과정에 활기를 띄었고 교사들의 환한 웃음을 보니 회의 결과를 만족스러워 하는 듯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후 4시가 되어서야 회의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내일은 유치원을 어떻게 잘 운영할지, 초등학교를 어떻게 잘 운영할지, 또 유치원의 아이들과 초등학교 학생들을 어떻게 잘 가르칠 수 있을지 등을 세세하게 의논하자고 하시면서 어떻게 교육의 질을 높일 것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저녁공양 후 스님께서는 인도JTS 활동가 회의를 진행 하셨습니다. 병원파트, 학교파트, 마을개발 파트 담당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스님과 함께 전체적인 점검을 하였습니다. 병원파트에서는 현재 약품이 어떻게 쓰여 지고 있는지, 학교 파트에서는 교사들의 근무 상태가 어떠한지,nbspnbsp마을개발 파트는 만들어진 핸드펌프 상태와 유치원 수리, 시설 점검 상태를 확인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10시가 다 되어서야 회의를 마무리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오늘 하루 스님을 따라다니면서 스님의 하루를 적다 보니 수자타 아카데미를 나서면서 하셨던 ‘관리’에 대한 말씀이 마지막에도 새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