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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21. 영남권 경주남산순례, 경주 강연
2014 봄 불교대 경주 남산순례는 전국 불교대생을 대상으로 네차례에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오늘은 그 네 번째 마지막 행사가 진행된 날이었습니다. 대전충청, 광주전라, 대구경북, 부산울산, 경남지역 600여명의 불교대학생들이 이른 새벽길을 달려와 경주 남산아래 모두 모였습니다. ‘세월호사고’로 전국이 애도와 침묵으로 잠겨 있기에 오늘 행사는 엄숙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불교대생들과 함께 하지 않고 새로운 코스를 점검하기 위해 답사에 나섰습니다. 오늘은 약수골로 오르는 길이었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스님께서는 지금까지 갔던 길중에 가장 가파르다고 하셨는데, 처음에는 길이 아주 완만하였고 길가의 많은 연달래가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무너진 절터가 보였습니다. 그 절터 앞에는 목이 사라진 석조불상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의 목을 복원해야겠다면서 석조불상 뒤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셨습니다.nbsp이 석조불상이후부터는 길이 매우 가팔랐습니다. 또 다시 한참을 가다보니 마애여래입상이 아주 큰 바위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앞에 발로 보이는 부분이 떨어져 나간 채로 대충 불상앞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발부분이 떨어져 나갔던 것을 대충 그 자리에 넣어놓은 것 같았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남산에 있는 불상중에는 가장 큰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이 불상 또한 몸체만 바위에 새겨져 있었고, 머리부분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머리부분은 조각을 해서 만든 것 같은데, 떨어져 나가고 없었습니다. 이 불상의 머리부분에 스님께서 섰더니 원래 부처님의 얼굴보다도 스님의 모습이 훨씬 작은 듯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가셨던 분들이 같이 옆에 섰는데도 왠지 원래 불상의 머리만큼은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에 있는 부처님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nbsp다시 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이 매우 가팔랐습니다. 겨우 정상에 도착해서 기념촬영을 한 후 바로 국사골로 내려갔습니다. 초반에 길을 잘못 들어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로 가다보니 험난한 길을 가다가 중간에 다시 등산로를 만나서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다 보니 국사골 제4지 삼층석탑이 있다는 표지판을 보고 다시 산을 올라 탑을 보고 왔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주변의 유물들이 아직 복원되지 않은 상태에서 탑만 복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탑에 참배를 한 후 바로 내려왔는데도 예상보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습니다. nbsp그런 가운데서도 스님께서는 어제와 같이 대중들이 앉을 자리를 톱과 낫으로 정비하고 난 후 공양을 들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남산의 여섯 골짜기를 지역별로 각각 나누어 순례를 하고 돌아온 불대생들은 예정된 시간에 맞춰 속속 숲속 너른 숲터로 모여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오셔서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학생들에게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가까이에서 스님을 처음 보는 불대생들은 예상치 못한 만남에 당황해 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행복해 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점심공양을 마친 후 각 지역에서 온 불대생들 모두가 한자리에 둘러앉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지역 법당들을 하나하나 호명 하시며 불대생들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전국에서 모여서 그런지 그 지역마다 스님의 소개에 환호하는 방법도 다양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소개가 모두 끝나고 남산의 43개의 골짜기 마다 숨어있는 150여개의 절 터, 100여개의 탑 터, 120여개의 불상들이 생겨나게 된 유래들을 역사와 설화를 바탕으로 자세히 설명하신 후 불대 교육과정 중에 왜 남산을 순례하는지에 대한 말씀이 있으셨습니다.nbsp“남산에는 크고 작은 절들이 골짜기 마다 자리하면서 민중 신앙의 요람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조금이라도 조각하는 재주가 있으면 직접 가서 불상을 새기고 자기가 절을 하나 짖고 싶으면 돈 조금 주고 조각하는 사람 시켜서 불상 하나 만들고 이렇게 하다보니 굉장히 유명한 조각가는 불국사나 석굴암에 가서 작업하고 남산은 아마츄어 수준정도의 사람들이 와서 새겼기 때문에 불상이 예술적으로 굉장하다는 것은 없지만 해학적이고 친근감 있고, 가까이 갈 수 있기도 했습니다. 부처님이 저 높은 선반위에 황금빛으로 앉아 있으면 절만 하고 가야 되는데, 여기는 가서 만져도 보고 팔짱도 껴보고 절도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불상이 굉장히 많아 친근감이 있고 부처님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는 좋은 면이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정토회는 항상 바른 불교, 정법으로써 불교를 중요시 합니다. 그런데 정법으로써의 불교가 약간 치우치면 엘리트 불교가 되기 싶습니다. 또, 생활과 유리된 불교가 되기 쉬운데 바른 불교를 할 때 반드시 엘리트 불교가 아닌 대중 불교를 해야 됩니다. 대중 불교를 할려면 그 바른 불교를 쉽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면 복준다 이러면 쉽긴 하지만 바른 불교는 아닙니다.nbspnbsp바른 불교를 하되, 그 전달방법이 아주 쉬워야 되고, 그것이 내 삶의 문제, 내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해 나가려면 수행을 해서 자기 삶이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해져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 두 번째 타인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실천을 해야 합니다. 그게 보시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정토회의 지침이 수행·보시·봉사입니다. 여러분들이 불교대학에서 불교를 배우는 것은 바른 불교를 행하는 것이고 불교대학에서 강의 만 듣지 않고 봉사를 통해 직접 해보고 수행도 직접 해보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정토회가 하는 공부도 경주 남산의 민중신앙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경주 남산의 민중신앙, 실천신앙을 현장에서 보고, 기도도 하면서 이곳에 부처님의 정신이 어려 있음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이렇게 모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신라시대 초기 지나치게 엘리트 불교로 치우치던 시대 원효대사의 일화와 경흥국사의 일화를 재미있게 이야기 해주시면서 그 속에서 우리 한국불교와 불자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시켜 주셨습니다.nbsp스님을 통해 듣는 역사속 일화들은 손으로 곧 잡힐 듯이 생생하면서도 그 속에 재미가 있어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다가도 순식간에 보석같은 지혜들을nbspnbsp버무려 내시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법문을 들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 법문이 끝난 후 이어서 불대생들이 공부하면서 들었던 의문들이나 생활하면서 어려운점들을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 남편하고 26년 살았는데 남편하고 사는게 힘이 들고 요즘같은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 미래를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줘야 할지 고민이라고 묻는 분, 불교대학 수업을 듣다가 정견과 사견에 대해 이해가 잘되지 않았고 사견중에 상견, 단견에 대한 이해가 어려웠다면서 자세한 설명을 묻는 분, 또,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연등 달기를 했는데 집주인이 기독교인이라 연등을 달지 못하게 해서 불편한 마음이 많이 들었는데 그럴 때 예라고 하는 것이 나은것인지 그런 상황에서 어떤 마음을 내어야 되는지 묻는분등이 있었습니다. nbsp그중에서 마지막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 해주신 답변을 전해드리겠습니다.“그분과 대화하고 만나고 한번 안된다면 다섯 번쯤 만나서 연등을 달아야죠. 근데 그분이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화가 나면 내문제입니다. 화가 날 때는 나를 봐야 됩니다. 내가 옳다고 고집하구나 하고 나를 보고 고집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지, 자신의 의견을 내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등을 달고 싶으면 이렇게도 이야기 하고, 저렇게도 이야기 하고, 커피도 사주고, 빌어도 보고, 선물도 사주고, 법에 걸리지 않는 범위내에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걸 원력이라고 합니다. 화나고 성질나고 내가 미쳤다고 이런 것 까지 하는가 하면 그건 집착입니다. 안될 때 때려 치워 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집착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안될수록 더 연구가 되어지면 원력입니다. 원력이라고 백프로 성취 되는건 아닙니다. 이번에 도저히 안 될 수도 있지요 그러면 다음에는 집 구할 때 더 주의를 하게 되고 그걸 통해 샛방살이의 서러움도 알게 되고 그렇습니다. 섯불리 포기하시지 마시고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해보십시오.”라고 답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늘 있는 문제들이 스님을 만나는 순간 판단은 명료해지고 단순해집니다.nbspnbspnbspnbspnbsp질문자는 밝고 씩씩하게 “예, 알겠습니다”라며 합장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nbspnbspnbspnbsp 불대생들과의 즉문즉설 시간이 끝나고 다음 행사 장소인 염불사로 줄지어 이동했습니다. 길게 뻗은 순례 행렬들 속에 곱게 피어있는 갖가지 꽃들도 오늘 우리들 마음만큼이나 가볍게 한들거리고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염불사에 도착한 스님과 불대생들은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며 기도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불대생들에게 정성을 다해 먼저 개인의 자기발원을 하고, 두 번째는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명복을 빌고 실종자들의 무사를 빌며, 세 번째는 우리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길 당부하셨습니다. 600여명이 함께 모여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모습은 경건함 그 자체입니다. 초록이 한껏 익어가는 경주 남산아래에서 저마다 가슴속에 어떤 간절한 염원들을 품고 계실까 궁금해지기도 하면서 하루빨리 세월호 실종자들의 소식이 전해오길 바래보았습니다.nbsp65279nbsp오늘로써 2014년 봄 불대 경주남산 순례행사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자연의 위대함 역사의 위대함 속에서 지금여기의 우리가 해야할 일들을 다시 새겨 보는 의미있는 시간들이 지나갑니다. 전설속의 휘황찬란한 곳이 아닌 일상의 삶속에 고통받는 삶속에 부처님을 만나고 이해했던 값진 시간들이 사월의 남산에서 엮어졌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저녁 7시부터는 경주의 서라벌 문화회관에서 희망강연이 있었습니다. 이번 강연은 경주정토회의 2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께서 열심히 준비해 주셨습니다. 강연장 입구부터 밝은 표정으로 570여명 가량의 손님들을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강연에 앞서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인해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실종자들이 무사히 생환 할 수 있도록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강연에서 “열반은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던 이 고락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져야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이루어지지 않아도 행복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괴로워지지 않는 방법을 증득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똑같이 힘든 환경에서도 내가 임하는 자세에 따라 삶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nbsp오늘 우리는 ‘이래서 힘듭니다’하고 괴로워 할만한 일이 있다면, 자기 자신의 마음가짐을 바꿔야 합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상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관점을 바꿔서 문제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라고 하시며 모든 문제나 불행은 내가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달렸다고 하시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우울증을 앓고 있는 20대 유학생 딸의 문제로 고민이신 여성분, 술버릇이 안좋은 남편 때문에 별거를 시작하신 60대 여성분, 공항장애등 건강상의 이유로 직장생활도 그만두고 앞으로의 삶의 대한 걱정이 많은 20대 여성분, 한집안에서 시부모님의 종교전쟁 때문에 고민이신 종갓집 주부, 알콜중독으로 몇 년째 힘든 싸움을 계속하고 계신 분등이 스님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그 중 우울증을 앓고 있는 20대 유학생 딸의 문제로 고민중이신 첫 번째 질문자의 고민에 스님께선 “여기서 질문자가 반성할 부분은 뭐냐면, 우울증환자는 치료를 먼저 해야 하는데 질문자는 딸의 공부를 생각하고 있잖아요. 아픈 사람은 치료부터 해야 하는데 어렵게 공부한 거 포기하는 것을 아까워하고 있지 않아요? 아이가 병이 나면 치료가 우선이지, 다른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처음 발병했을 때 무조건 치료를 최우선으로 했으면 이렇게 만성으로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애가 학업을 완성했으면 하는 부모의 바램이 아이의 불안을 더욱 조성한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세요. 중학교 3학년 어린나이에 외국에 나가 유학하면서 불안하지 않았겠어요? 마음의 상처를 입은 걸 알았다면 귀국시켜서 치료를 했어야지, 좋은 학교를 우선해서는 안됩니다. 아직도 엄마입장에서 정상적인 아이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습니다. ‘아이의 건강이 최우선이다’는 목표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nbsp우울증의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자라는 과정에서 정신적 좌절과 상처로 우울증이 나타났다면 정신과 치료를 해야 합니다.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를 살펴보고 약물치료와 동시에 심리치료를 병행해야 합니다. 만성이면 지금보다도 조금만 더 개선되면 된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러다 조금 호전이 되면 부모는 아이가 ‘못 마친 학업을 계속하면 안될까?’ 하는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엄마는 지금 이 현재 상태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엄마는 지금 5년이나 치료해야 한다는 것에 두려워하고 있어요. 자식자체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지 ‘병의 완치’와 ‘공부’에 매달리면 안됩니다. 조금씩 개선되는 것에 감사해 하고, ‘고맙다, ‘그만하길 다행이다’ 라고 말해야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아이를 키울 때 심리적으로 좋지 않은 상태였을 것입니다. 아이의 현 상태를 감사하고 지지 해줘야 합니다. 이게 최선의 길입니다. ‘엄마는 다만 현재의 너의 상태로도 만족하고 너를 후원해 주겠다’라고 하면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부모와 자식의 인연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강합니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의 기대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움츠러들어서 기를 못펴고 살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을 해방시켜 줘야 합니다. 격려하고 믿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20살이 넘으면 지원을 끊어줘야 합니다. 서른이 넘어도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은 자식의 의지심만 키우게 됩니다. nbsp아이를 낳아서 키울 때 무심코 ‘자식 키우는 게 힘들다’ 말하면, 부모를 힘들게 하는 불효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 키우는 것이 행복해요’하면 부모를 행복하게 하는 효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정말 자식이 없었다면 삶의 깊은 맛을 몰랐겠구나.’ 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진짜 진리의 길은 내가 결혼하고 자식이 있기 때문에 더 깊이 깨달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정말 자식을 아끼는 것입니다.”라며 어떤 것이 자식을 위하고 사랑하는 것인지를 다시한번 짚어주시면서 오늘 강연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강연후 사인회를 마치고 오늘 하루 활동한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후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내일은 거제도 애광원 원생들과 경주 나들이와 포항시청 강연이 있습니다.nbsp65279nbsp오늘 경주남산순례는 대구태전법당 권명숙님이, 경주 강연은 정란희님이 정리해주셨습니다.65279nbspnbspnbsp
2014.4.20. 서울제주지부 정토불교대학 경주남산순례
지난주에 이어 오늘은 서울, 경기 동부, 강원 지역의 불교대학 학생 6백여 명이 경주 남산 성지순례를 했습니다. 원래 약 9백여명이 함께 하기로 했으나 행사당일날 참가하지 않으신 분들이 예상외로 많아서 약 6백여명이 함께 했습니다. 아마도 지금 온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는 세월호 침몰사고 때문에 취소한 사람들이 다른 때에 비해 많은 것 같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늘 서울제주지부 불교대학 경주남산순례는 대구경북지부가 주축이 되어 대구정토회와 동래정토회 등 영남권역 정토행자들이 함께 봉사를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늘 묘수법사님께서 경전반 특강으로 빠지게 되어 무변심법사님과 함께 스님께서 삼릉코스로 가기로 하셨습니다. 이 코스에는nbspnbsp수원, 안성, 평택, 의정부, 남양주, 구리등 경기동부지역 불교대생이 함께 했습니다.nbsp8시, 삼릉입구에서 입재식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삼릉으로 순례를 함께 하는 지역분들을 소개하면서 오느라 수고하셨다는 인사말을 한 뒤 경주 남산에 대한 설명을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제2코스인 삼릉길은 ‘남산에서도 유적지가 가장 많은 곳’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외에도 아마도 많은 분들이 산을 오를 것이라 예상됩니다. 휴일이라 다른 분들이 많을 거라 예상하여 6개 코스 중 가장 인원을 적게 배치했습니다. 삼릉골은 원래 냉골이라고 하는데,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3릉이 있다고 해서 삼릉골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남산에는 크고 작은 골짜기가 43개나 되고 산기슭에는 절터와 왕릉이, 능선마다 탑, 불상 등이 있어 자연박물관으로 유네스코에 등록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이전에 한꺼번에 진행하던 남산순례를 이번에 6개 코스로 나눈 것은 1천여명에 가까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나의 코스로 하다보니 스님께서 안내를 하면 후미에 있는 사람들은 스님께서 설명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게 되어 참가자들을 지역별로 6개 코스로 나누어 각 지역 담당법사님이 함께 안내하고 진행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고 하시면서 각 코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신 뒤 순례길에 올랐습니다. nbspnbsp삼릉을 지나면서 한 분이 이 곳의 소나무들은 왜 꾸불꾸불하게 자라냐고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땅이 비옥하면 나무가 곧게 자라는데 이곳은 화강암이 많아 땅이 나무가 자라기에 좋지 않아 꾸불꾸불 자랍니다.”라고 답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그리고 지난주에는 진달래가 한창이었는데 오늘은 진달래는 다 지고 연달래와 철쭉이 한창이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삼릉을 오르며 먼저 도착한 곳은 석조여래좌상을 지나 마애관세음보살입상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마애관음보살입상은 사람 키보다 작아 보이는 입술이 붉고 왼손에는 감로수병을 들고, 오른손에는 연꽃을 한 송이 들고 있는 형상입니다. 불상 뒤에 뾰족한 바위가 있어 관세음보살이 하늘에서 내려와 서 있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신라 사람들은 그냥 바위에 기도하다 불교가 들어오면서 바위 속에서 부처님이 계시다가 몸을 나투신 것처럼 몸 부분은 바위 속에 있고 얼굴 부분만 바위 속에서 드러내듯이 부조식으로 조각을 한 것이 많습니다. 이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상태 그대로를 지키려는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신라사람들은 맨 위쪽은 부처 세계, 맨 아래쪽은 사바세계를 가리킨다고 생각하여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세계에 내려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산아래 입구에 새겨놓았습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상에 기도하면 영험이 많다고 이곳에 와서 많은 사람이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이 마애관음보살입상이 있는 곳은 남산 서쪽이라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뜻합니다. 이 불상은 평소 오후 서 너 시 경에nbspnbsp불상이 가장 잘 보입니다.”nbsp마애관음보살입상이 있는 곳을 내려와 바로 아래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이 불상은 목이 없는데 인공적으로 목을 부러뜨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처음에는 이 불상이 쳐박혀 있어서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가슴 부위에 있는 옷 매듭은 파괴되지 않았는데 그 조각이 정교하고 아름답습니다. 얼굴과 손이 파괴되어 어떤 불상인지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가슴에 있는 이 옷의 매듭으로 두 가지 정도로 예측할 수가 있는데, 하나는 지장보살이라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미륵불상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용장골의 삼륜대좌불도 매듭이 있는 옷인데 이를 미륵불이었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이 불상도 그렇지 않을까 예측하는 것입니다. 남산에는 머리 없는 불상이 꽤 있는데, 이런 불상의 모습이 현재 우리나라 불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불상의 머리가 없는 것은 불교는 있는데 부처님의 법이 없다는 것을 상징하고, 손이 없는 것은 실천력이 없는 불교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과 손을 새로 만들어 불상의 형상을 복원하기보다는 이땅에 정법을 구현할 때 머리를 복원하는 것이고, 자비행의 실천불교를 행할 때 손발을 복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상을 복원하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수행과 자비행을 실현하는 것이 진정으로 불상을 복원하는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다음으로 본 것은 선각육존불로 200여 명이 함께 기도할 수 있는 넓은 곳이었습니다. 왼쪽 바위에는 부처가 중간에 서 있고 양쪽에 보살들이 앉아서 꽃을 바치고 있어 아미타부처님이라고 봅니다. 오른쪽 바위에는 중간에 부처가 앉아 있고, 양쪽에 보살이 서 있는데 설법하는 손모양을 하고 있어 석가모니 부처라 해석합니다.nbsp이 불상은 노천에 새겨져 있으나 위에 덮개가 있고, 처마 친 자국이 있으며 물길을 만들어 불상에 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해 두었습니다. 이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러 온다고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선각여래좌상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불상은 유난히 코가 크고 입술이 두툼하였습니다. nbspnbsp석조여래좌상은 누군가 무너뜨려 머리, 얼굴이 파괴되어 입, 코, 턱을 새로 만들어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부서진 광배도 최근에 새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곳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한 분들을 생각하며 반야심경을 독송하였습니다.nbsp상선암으로 오르는 곳에 계곡 건너편 산에 선각마애여래상을 보았는데 업이 두터우면 보이지 않는다고 하셔 모두가 웃었는데 ‘난 업이 두터운가보다. 안 보인다.’며 발걸음을 옮기는 분들도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상선암에 올랐으나 마애대좌불은 수리중이어서 지나치면서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2코스 중 가장 전망이 좋은 바둑바위에서 잠시 쉬며 경주시내를 조망하며 주변을 설명해 주신 후 간식을 나눠먹었습니다. 이후에는 무변심법사님의 안내하에 설명을 들으며 공양장소인 통일암 근처 솔숲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가시나무, 썩은 나뭇가지, 부러진 나무등을 정리해서 1000여명이 모여도 잘 보일 수 있도록 모임장소를 정돈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리고 스님께서는 점심 공양할 장소인 솔숲으로 먼저 이동하셔서 대중들이 앉기 편하도록 자리를 정돈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대중들이 오기전에 먼저 공양을 하시고 점심 공양 장소로 들어서는 대중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대중들이 공양이 끝난 후 스님께서는 경주 남산과 불교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nbsp“경주는 옛 신라의 수도였으므로 왕궁사찰로는 황룡사, 귀족들이 지은 절로는 불국사, 분황사등이 있습니다. 이런 절에는 일반 서민들이 갈 수 없으므로 그들이 만든 절이 경주 남산에 있는 불상과 절입니다. 그래서 불상들이 소박하고 투박하고 재미있습니다. 남산은 일반 서민들이 부처님을 쉽게 접촉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여 대중과 친근한 곳이며 바위 곳곳에 불상을 새길만큼 많은 불상들이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곳 불상의 특징은 민간신앙이 불교로 바뀌면서 바위에도 부처가 있다라고 여기며 불상을 새겼기 때문에 선각 불상이 많습니다. 현재 입체상으로 완전히 존재하는 것은 많지 않고 자연상태로 조화를 이룬 상태가 많습니다. 산 자체를 수미산으로 보고 바위자체를 부처로 보아 돌출부분만 인공적으로 만들어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 모습입니다.경주 남산은 민중신앙, 민중불교의 산실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부처님의 가르침은 중도, 해탈과 열반의 가르침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엘리트 집단은 철학적 접근을 하여 교만함이 있고 이것이 신라불교의 특징으로 지식인 불교, 귀족불교입니다. 다른 한쪽은 불법이 너무 어렵다는 입장으로 나무아미타불만 염불하면 극락간다고 하는 등입니다. 또 이렇게 치우치면 불교안의 불법은 없어지고 단순 기복신앙이 되어 버립니다. nbsp불교의 가장 올바른 모습은 해탈과 열반에 이르는 길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지금의 어른들은 기복신앙에 치우치고, 젊은이들은 학문적으로 많이 치우칩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바른 불교를 실천하는 것을 중시합니다.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란, 가르침을 통해 해탈과 열반이 증득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고뇌가 해결되어 가는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대중의 불교화는 일반인들이 불법을 습득하기 쉽도록 쉬운 불교를 지칭한 것입니다. 불교의 바른 이치에 기초하여 쉬운 불교를 설한 것 중 즉문즉설이 그 예이고 쉬운 것입니다. 쉬운 불교를 하되 생활과 직결되어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일상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활불교입니다. 현실의 삶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용성진종조사님께서 불교의 지성화, 불교의 대중화, 불교의 생활화를 주창하셨는데 그것이 정토회가 주장하는 바른불교, 생활불교, 쉬운불교입니다.nbsp불법을 잘 알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지식에 치우치기 보다는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정한 법의 이치를 알고 동시에 실천을 해야 합니다. 이해는 머리, 실천은 가슴으로 합니다. 이해도 되고 감동도 있어야 합니다. 철학은 이해, 신앙은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지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루어 이해와 실천이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서 불법 공부도 하고 봉사를 통해 실천을 하는 것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해 나가야 합니다.” 라며 남산에 대한 설명, 불교에 대해 설명해주시면서 불교의 근본 목적에 이르기 위해 정토회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설명 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리고 현장에서 불교대생 세분의 질문을 받았는데, 그중 한 분의 질문을 공유하겠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불교대학 공부를 하면서 화가 올라오면 화가 나는 건 알겠는데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보라는데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더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남편의 입장에선 알겠는데, 딸과의 관계에서 딸이 왜 그러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8살인데 카페트에 물감을 부어 그림을 그려놓았습니다. 왜 그랬냐고 물으니 아이는 그냥 하고 싶어서 했다고 합니다. 너무 화가 나서 말을 하지 않으니 아이는 계속 쫓아다니면서 “엄마 잘못했다”고 합니다. 나를 약 올리려고 하는 것 같아 너무 화가 나서 지금은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 이따 얘기하자고 해도 아이는 계속 쫓아 다닙니다.”nbspnbspnbspnbspnbsp“본인도 남편에게 어처구니없는 일을 해놓고 따라다니며 잘못했다고 그러겠지요? 아이가nbspnbsp그걸 보고 배워서 그러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했다는데 니가 뭔데 용서를 안해주느냐?’ 하면서 쫓아다니며 잘못했다고 했을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아이는 보고 배웁니다. 아이한테 내가 이런 걸 보여줘서 애가 그렇겠구나하며 애를 보며 나를 보아야 합니다. 그 나이의 애가 집에서 일어나는 일 외의 것을 보고 배워하기는 어렵습니다. 뭔가를 보고 기억에 남아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거울을 통해서 나를 보는 게 중요합니다. 나를 따라 배워서 애가 그러는구나 생각하면 아이를 이해하기 쉽습니다. 어떻게 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애한테 물어봐야 합니다. 사고인지, 의도인지, 저항인지 분석해야 치유가 가능합니다. 그럴 땐 아이와 대화가 필요합니다. 아이는 엄마가 화가 났다고 생각하니 더욱 주눅 들게 됩니다. 외면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유를 들어보고 그럴만하다 싶으면 용서를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라며 엄마가 아이의 거울임을 알아 이해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그리고 다시 염불사로 내려와서 탑앞에서 염불하고 세월호 참사로 생사의 기로에 있는 분들을 위해 발원을 하고 난 후 오늘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회향식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모든 행사를 마치고 두북으로 돌아와서 법사단 회의를 한 후 밤 10시가 되어 모든 일정을 마무리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영남권 불교대학 경주남산순례가 있습니다.
2014.4.19. 경전반 특강수련 법회
오늘은 장수 죽림정사에서 불심도문 큰스님의 팔순 기념법회가 있었습니다. 법륜스님께서는 새벽 4시에 정토회관을 나서 장수 죽림정사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법륜스님께서는 불심도문 큰스님의 팔순 잔치를 해 드리려 했으나 불심도문 큰스님께서 마다하셔서 그동안 용성조사유훈 실현을 위해 수고하셨거나 도움을 많이 주신들을을 초청해서 감사하는 자리로 하자는 법륜스님의 말씀에 큰 스님께서도 동의를 하셔서 아주 조촐히 기념법회를 겸한 인사의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동안 용성조사유훈 실현을 위해 도움을 주신 서울, 부산지역의 불자님들, 큰스님의 상좌들, 정토회 활동가들 약 150여명이 함께 해서 스님의 법문도 듣고 함께 공양을 들었습니다.nbsp공양이 끝난 후 큰스님께서는 각각 참석한 단위별로 기념촬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행사를 마치고 법륜스님께서는 경전반 특강수련생에게 법문을 하기 위해서 문경으로 향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전국의 경전반 학생 401명과 스텝 41명, 도합 443명이 상반기 특강수련에 참석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먼저 스님께서는 경전반 학생들에게 “금강경 공부하니까 재밌어요? 내가 20대 때 금강경을 읽었을 때는 몇 번을 읽어도 별 내용이 없는 것 같았어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고, 그것도 아니라니, 이거 뭔가? 말장난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가 70년대, 유신독재 말기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많이 잡혀가고, 죽고, 또 우리 사회가 산업화해 가는 과정 속에서 도시빈민이 양산이 되고, 전태일 열사가 ‘노동3권 보장하라’며 분신하고, 농촌이 붕괴되어가는 등 사회적인 혼란이 가중되는 시기였습니다. 그런 시기에 제가 금강경을 읽었는데,nbspnbsp‘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고, 그것도 아니다’는 논리가 너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 아니냐 싶어서, 불교에는 좋은 점도 많은데, 현실의 삶을 떠나있는 것은 아니냐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후 고문도 당하는 등 고통도 겪으면서 글자의 이면, 글자 너머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조금 생기면서 금강경에 쓰인 글자, 그 이면의 뜻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금강경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습니다.”라고 스님의 경험을 이야기 해주시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지은 상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지만 또다시 다른 상을 짓게 되는데, 어떻게 지은상을 알아차려야 하는지, 불교대학 교과 과정중에서 근본불교 강의에서 제5강 12처와 18계 중 제8식 아뢰야식을 설명을 하시면서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아뢰야식이 다르다고 했는데, 아뢰야식엔 전생습이 포함되어있는지, 또 스님께서 티벳불교 린포체 신앙에 대해서 또 하나의 계급주의에 빠진 지나친 신앙이라고 하셨는데, 아뢰야식의 전생습을 부정하는 것인지 궁금한 분, 부처님은 나라고 할 것이 없다고 했는데, 불교에서는 내 본성을 찾아라, 참마음을 보라라고 하는데 무슨 뜻인지, 29강에서 시타림에서 시체들의 옷을 처음에는 그냥 입다가 의사 지바카가 옷을 세탁해서 말려 입으면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니까 부처님이 그것이 좋겠구나해서 빨아입게 되었다고 했다는데, 부처님이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대답하신 것 같은데 병에 걸리든 걸리지 않든 상관없는 것 아닌지, 수업을 들으면 너무 좋은 데 일상생활로 돌아가면 평정심을 잃게 되고 몸에 대한 집착이나 무시받는다는 마음이 크게 일어나는데 어떻게 하면 일어나는 마음에 싹 끌려가지 않게 되는지, 세월호 참사 후 배를 버리고 탈출한 선장에 대한 분노가 큰데, 그분 또한 그 가족들에겐 살아 돌아와 다행스런 가장일 터인데, 누구에게나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고 이해를 해야 하는지, 신라 가야에 살던 사람들은 부여계통으로부터 이동해 온 민족인지? 토착세력인지? 고구려신라가야의 민족의 기원이 같은지? 경전반 법문 중 우울증으로 자살한 분이 있는 집안이 살인자가 나온 집안의 여파보다 크다고 하셨는데, 왜 그런 것인지, 깨닫고 난 이후의 세계는 어떤 세계인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질문지를 통해 질문을 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그중 세월호 사고와 관련하여 선장이 먼저 탈출한 것에 대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nbsp“그 사람도 사고 난 순간 가족도 생각나고, 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살고 싶은 욕구는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개체든 자신을 보존하려고 하는 욕구가 있으니까 생물학적으로는 그 사람의 그런 욕구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될 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하잖습니까? 변호사, 스님, 정치인도 모두 직업적 윤리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정의로우려면 직업적 윤리의식이 있어야 됩니다. 그게 없으면 동물들이 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의사가 ‘돈 안 내면 치료를 안 해 주겠다.’고 하면 직업윤리에 어긋나는 것처럼, 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여객들을 먼저 대피시키고, 잘 아는 선장이 마지막에 탈출해야 한다는 훈련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선장에게는 직업적 윤리의식이 부족했던 것인데, 생물학적인 자기 생존의 본능을 따랐을 뿐입니다. 어떻게 보면 선장입장에서는 지금 안 나가면 자기도 같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했던 것일텐데, 그게 꼭 나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거기서 한명이라도 더 구하면 자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데 죽는 게 낫느냐, 아니면 하는 데까지 하고 여기서 나가야 되겠다했는지는 좀 더 상황을 살펴봐야 될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다만 안타까운 것은 2시간 가까이 배가 기울어져 가고 있었는데 눈앞에서 뻔히 보이는 것을 못 구하고, 지금도 배안에 못 들어가고 있다는 걸 보면 참 답답합니다. 하도 답답하니까 음모론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서해는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바닥이 뻘이다 보니까 물이 밀려오고 밀려나갈 때 물이 탁해져서 시야가 확보가 안 된다고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이렇게 마음이 답답하고 안타까운데, 가족들 입장에서는 어떻겠습니까? 그러니 가족들이 악을 쓰고 물병을 던지고 뺨을 때리면 맞아야 됩니다. 총리과 장관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분노를 표현할 데가 없으니까 자식이 죽어서 정신이 없으니까 그런 것을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러나 우리가 덩달아서 무조건 남을 비난하는 것은 자제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문제도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보통 일본 배가 가라앉았다면 일본이 못되게 구니까 벌받아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안됩니다. 일본에서 원자로 사고 났을 때, 미얀마에 태풍이 일어났을 때 서울의 어느 대형 교회 목사님이 하나님 안 믿어서 벌 받아서 그렇다고 했는데, 그래서는 안됩니다. nbsp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그런 일을 당한 것 아닌가한다면, 그건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책상을 밀었을 때 밀리는 건 착한사람이 미니까 밀리고 나쁜 사람이 미니까 안 밀리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현상은 다 원인이 있어 일어났는데, 배가 뒤집히는 건 윤리적인 원인에 의해서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이건 사고입니다. 사고의 원인으로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이 방향을 급선회하니까 짐을 확실히 동여매지 않아서 컨테이너가 한쪽으로 쏠려서 그 무게에 의해서 기울어졌고, 기울어지면 더 확 쏠리니까 침몰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 데 그럼 왜 급커브를 했느냐가 밝혀져야 될 일입니다. 그러니까 세월호에 대해서 윤리적으로 접근하지 않아야 합니다.” 라며 우리가 사건이 생겼을 때 결과만 보고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것에 대해 조심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또 다른 질문은 “부처님은 나라고 할 것이 없다고 했는데, 불교에서는 내 본성을 찾아라, 참마음을 보라라고 말합니다. 무슨 뜻인지 알듯 말 듯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나’ 라고 할 때 ‘나’가 내 육신이나 가족을 지칭할 때가 있습니다. 또, 경상도와 전라도가 싸울 때는 서로 다른 ‘나’인데, 일본하고 싸울 때는 경상도와 전라도가 다 같은 ‘나’입니다. 그냥 우리가 ‘나’라는 용어를 쓰지만 이게 참 묘합니다. 그래서 ‘나’라고 할 때 계속 의미하는 바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나’라고 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하는 탐구는, 이런 ‘나’는 다 거짓이고 진짜 ‘나’는 따로 있다는 걸 지칭하는 게 아니라, 나라고 하는 이것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깊이 관찰해 보라는 뜻입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러면 ‘나’라고 하는 것이 깊이 관찰해 보면 어떤 때는 이걸, 어떤 때는 저걸 지칭하면서 수도 없이 옮겨 다닌다면 특정하게 지칭해서 이게 나라고 할 게 없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끊임없이 ‘나’라고 하는 의식은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서 그것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게, 그것의 작용을 꿰뚫어보는 게 곧 부처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상을 지어서 보기 때문에 집착을 하게 되고 집착을 하니까 괴로움이 생기는 데, 그게 텅빈 줄 알면 집착할 바가 없어집니다. nbsp현실은 집착을 놓으면 되는 데 놓으려는 데 안 놓아진다는 것은 내가 옳다는 게 있기 때문에, 나라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직 본질을 탁 꿰뚫지 못했기 때문에 상황에 부딪치면 ‘나’라는 게 작용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본은 우선 생각이 바뀌어져야 의식이 바뀌고, 무의식도 바뀔 여지가 있는 데 의식이 바뀐다고 꼭 무의식이 금방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다만 바라보기만 하라’, ‘깨어 있어라’, ‘찰나에 깨어 있으라’, ‘알아차림을 유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얼음이 물 되고 물이 수증기가 되면 물질이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중학생 정도 되면 이렇게 물질이 바뀌었다고 아는데, 물질의 상태가 바뀐 것이지 물질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본질은 물분자라고 알게 됩니다. 얼음으로 있을 때나 물이나 수증기로 있을 때 물분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해야 설명이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고등학생들은 그 물분자라고 하는 것이 상태변화에서는 변화가 안 일어나지만, 화학변화에 있어서는 분자도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이 수소와 산소로 바뀌어 버립니다. 그것은 물이 물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또, 물 아닌 것이 결합하여 물이 되기도 합니다. 화학식으로 설명하면 원자는 바뀌지 않는 걸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돌턴의 원자설은 원자가 더 이상 변하지도 않고 쪼개지지도 않는 물질의 근본 알갱이로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설명이 되는데 나중에 고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그 원자도 소립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을 가르칠 때도 물리변화, 화학변화, 핵변화등으로 차원을 달리해서 가르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화를 낼 때, 그건 네 본성이 아니니까 네 본성을 찾아라고 얘기를 한 후에 공부가 많이 되면 또 다른 얘기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픈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이 너무 체력이 떨어져 있으면 약부터 먹이기 보다는 우선 몸을 좀 보한 후에 약을 먹이게 되는 것처럼 단계를 따라 가르치게 됩니다.”nbsp스님께서는 3시간을 꽉 채워서 밤 10시가 되어서야 법문을 마치고내일 수도권 저녁반 경주 남산순례가 있기 때문에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
2014.4.18. 용인, 성남 강연
오늘 새벽 1시가 넘어 회관으로 들어오신 스님께서는 새벽까지 원고점검등을 하시고 나서야 잠시 눈을 붙이신 후 다시 7시 30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민통합회의’ 조찬모임에 참석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회의에 앞서 먼저 ‘세월호 사고’로 희생되었거나 위험에 처한 분들을 위한 기도를 한 후 회의를 진행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세월호 사고’로 인해 우리 사회 전체가 아픔과 고통속에 빠져 있지만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내용들이 우리나라의 앞으로의 운명과 관련해서 중차대한 일이기에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중론이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 재편을 맞아 한미일 3각 안보협력체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도에 대해 우리 정부가 입장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기로 하고 그와 관련한 성명서를 발표하자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조찬 모임 후 바로 용인 강연장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강연장이 용인시청 에이스홀이라 강연전에 용인시장님과 잠시 차담이 있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용인시청 강연을 준비한 70여명의 활동가들은 여러 부스로 나눠 환희심 가득 찬 환한 웃음으로 약600명 가량의 사람들을 맞이 하였습니다. 희망강연이 열리는 에이스홀 옆 강당에는 교통봉사대의 교육이 있었는데, 그곳에 오셨다가 법륜스님의 희망 강연이 있는 것을 보시고, 희망앱을 다운받으려 줄 서있는 모습은 정말 법륜스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시작하자 바로 ‘세월호 사고’로 희생되었거나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모든 분들을 위해 간단히 기도를 하고 나서 “인생을 살다 보면 이처럼 얘기치 않은 일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나쁜 일이 안 일어나게 해 달라고 하고 기도를 하지만 현실은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납니다. 개인들에게는 아이가 학교에 안간다, 회사가 부도가 났다, 암진단을 받았다, 가족 중에 사고를 당했다, 애기를 낳아보니 장애아다등 감당하기 어려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예로부터 나쁜 일이 생기면 ‘하나님의 벌이다’, ‘전생의 업보다’, ‘사주팔자이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일이 안 일어나면 좋겠지만 이런 일이 생겨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평안하고 행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자연재해든, 사고 든, 전쟁이든, 이런 재앙은 끊임없이 일어났고, 개인적으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계속해서 일어난 것이므로 이렇게 늘 일어나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안 일어나게 하는 게 모두의 바램이지만, 발생 했을 때도 주어진 현실속에서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 수 있을까? 부처님께서는 이런 일이 일어남에도 어떻게 하면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것인지를 고민하셨습니다. 우리의 과제는 종교를 초월해 인생을 어떻게 행복하게 살 것인가?입니다.nbspnbspnbspnbspnbsp행복은 먼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문제로 지금의 장애가 있는 상태에서도 행복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시험에 떨어진 상태에서도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조건이 문제가 아니고 사물을 부정적인 마음으로 보아서 불행한 것입니다. 주어진 조건을 개선하는 것도 자신입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괴로움은 무지로 인해 일어남으로 무지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본인 스스로를 조금 더 행복하게 하는 좋은 제안들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습니다.”라며 비록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그런 속에서 어떻게 행복을 찾을 것인가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며 각자가 처한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고 행복해 질 것인지 함께 고민해 보자고 하시며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말과 행동이 자유로울 수 있는 수행방법에 대해 묻는 40대 후반 남성분, 조부모 손에 자란 두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키우다 보니 할아버지가 본인을 키우듯이 아이를 너무 끼고 키우는 것에 대해 고민인 분, 남편이 명퇴한 지 15년 되었는데 노름하고 게임하고 술, 담배로 지내 힘들어하는 이야기, 엄마가 자신 앞에서 자살을 하고 그 후 계모에게 구박받고 살다 모자란 동생을 두고 집을 나와nbspnbsp객생활을 하며 친정식구를 안보고 사는데 아버지가 칠순이라 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인 분, 어머니가 믿는 종교에 대해 어머니로부터 강요를 받고 싶지도 않고, 어머니와 사이도 좋게 지내고 싶다는 분등이 스님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nbsp그 중 언행일치로 고민하신 첫 번째 질문자의 고민에 스님께선“언행이 일치되는 것은 어렵습니다.nbspnbsp‘이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가 머리에서 가슴까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는 것은 머리에서 하고, 행하는 것은 가슴에서 한다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는 것은 생각은 컨트롤이 되지만 마음은 컨트롤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마음은 생각으로 통제가 안 됩니다. 마음은 무의식의 작용으로 움직입니다.일상적으로는 무의식이 잘 안 바뀝니다. 그래서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가능 한 것은 아닙니다. 억지로라도 연습하면 마음이 변화하게 됩니다. 그러나nbspnbsp시간이 많이 걸리고 저항을 받습니다. 담배를 이십년 피워놓고 하루 아침에 끊으려면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마음을 변화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꾸준히 노력하면 마음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수행입니다. 점점 노력하면 바뀌어 가게 됩니다. 처음부터 무의식에 충격을 줘서 바꿔버리면 한번에도 가능합니다. 짜증을 낼 때 마다 전기충격을 주게 되면 다섯 번만 하면 고쳐집니다. 이렇게 충격을 주면 무의식보다 더 밑에 있는 생명작용이 우선하게 되어 멈추게 됩니다. 그러나 생명이 위협을 느끼지 않게 되면 다시 되돌아옵니다. 고문 역시 생명을 위협해서 마음을 바뀌도록 하는 것입니다. 단박에 깨닫겠다고 하면 욕심입니다. 고비가 왔을 때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습관을 이겨내는 단호한 결심으로 넘어서야 합니다. 습관을 이겨내려면 첫째는 작은 노력이라도 꾸준히 합니다. 108배를 하더라도 꾸준히 핑계대지 말고 해야 합니다. 둘째는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이기 쉽습니다. 백일기도 입재하면서 안 빼놓고 할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면 안됩니다. 일단 ‘오늘 하루만’ 하고, ‘하루 해봤으니 하루만 더하자’, ‘또 하루만 더하자‘ 고 하면 시간이 모여 백일이 됩니다. 이러다보면 자기에 대해 긍정적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고비가 오더라도 넘어야 합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 이것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문제입니다. 하기로 했으면 꾸준히 밀어야 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하는 단호함이 필요합니다. 5시에 일어나 기도하기로 했으면 3시에 자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까르마에서 유혹하는 것을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면 자기 자신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라며 변화를 가져오려면 부지런히 수행정진해야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용인시청 강연을 마치고 평화재단으로 오셔서 필리핀 JTS 이원주 회장님 가족분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후 3시부터는 통일 의병 시민학교의 영상강의를 촬영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저녁 7시에는 성남 청소년수련관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성남 강연장은 5시 30분부터 입장을 시작해서 강연 시작하고서는 420석 좌석에 520명이 와서 무대 앞의 바닥과 복도에까지 꽉 찼습니다. 분당 정토회는 확장불사로 바쁜 와중에도 봄 불교대학 학생 26명을 포함 87명의 봉사자와 인근의 경기도 광주법당에서도 파견된 11명의 봉사자들은 밝은 웃음으로 성남시민을 맞이했습니다. 스님께서는 6시 35분에 도착하셔서 1층에 있던 봉사자들과 접수 중이던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청소년수련관에 들어오셨습니다. 강연 전 성남시 이재명시장님과 간단히 차담을 하신 후 강연장으로 들어서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하여 밖은 봄인데도 마음은 한겨울입니다. 우리나라가 이거 밖에 안 되나 하는 분노로 우리들 마음이 매우 착잡합니다. 내일 서울시청 앞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기해서 일만 명이 참여하는 법회를 계획했지만 취소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실내행사이고 우리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행사이기에 강의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강의 진행에 앞서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과 실종자 분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기도를 하겠습니다. 잠시 기도 하겠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묵념 후 여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같이 옆에서 보는 사람도 이렇게 마음이 착잡한데 당사자 부모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이게 우리 인생인 것 같습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무사하기를 기도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우리가 바라지도 않는 사고가 우리의 바램과 관계없이 늘 일어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기도하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각자의 종교대로 기도를 합니다. 제대로 믿기만 하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거나 잘못 믿어서 그렇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nbsp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괴로울 수밖에 없느냐? 그런 경우에도 다른 사람보다 덜 괴롭거나, 예전의 나보다 덜 괴롭고 행복할 수 있는 그런 길을 같이 한번 찾아보자는 겁니다.” nbspnbspnbspnbspnbsp질문을 받기에 앞서 오늘오전 이웃 용인 강연회에서 질문을 하지 못하신 분들에게 우선적으로 질문을 하도록 하며 질문을 받았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첫 번째 질문은 친정오빠와 도련님과 남편의 동업으로 차린 회사를 정리하려고 하는데 스님말씀 듣고 가벼워지고 싶다는 주부이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두 번째 분은 “발음과 말을 잘 못해도 양해 부탁합니다.”라는 부탁 말씀으로 시작했습니다. 10살 때 뇌종양 수술, 13살에 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폭력서클에 가입했었고 고등학교 입학 후 미국에 이민을 가서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해서 4년제 대학에 합격했고, 지금은 고려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후 제가 바르게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분들이 모두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듣고 장례식장에서 생각한 것인데, 내 인생의 의무가 무엇인가 은혜를 갚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뜻 깊게 사는 것인지 묻고 싶다는 질문이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세 번째는 예전에 화가 많아서 방황하며 32살까지 살다가 스님의 강연과 책을 보고nbspnbsp지금은 편안해졌지만 상대의 입장에 간섭하지 않고, 내가 관여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내 의견을 말할 필요도 없고 친구를 만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서 인간관계가 심심해졌습니다. 이것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이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네 번째는 24살 자폐증 딸이 있는데 아빠가 아이에 대해 부정적이라 걱정이라는 엄마의 질문이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다섯 번째 질문은 아동학과를 4년 배우고 졸업해 유치원 교사를 했는데 심신이 힘들고 지쳐서 유치원을 그만 두었는데 불안과 죄책감으로 힘들다는 질문이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여섯 번째는 23년 전에 가정 있는 남자의 가정을 깨고 결혼을 했는데 4년 전에 남편에게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1년 전에 이혼을 했지만 아직 남편이 좋아서 정리가 잘 안되어 힘들다는 질문이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일곱 번째 질문은 고3인 큰아이가 아빠의 사업실패로 인한 자살을 알고부터 공부도 안하고 방황해서 힘들다는 주부의 질문이었습니다.nbsp 마지막 여덟 번째 질문은 결혼을 꿈꾸는 예비신랑으로 궁합을 100 믿을 수는 없지만 재미로 봤는데 좋다고 나왔는데 나중에 어른들이 궁합을 봤을 때 나쁘다고 나오면 어떡할지 고민이라는 물음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옛날에는 이혼이 어려웠습니다. 한번 결혼하면 끝이었습니다. 아무 사전 정보도 없이 얼굴도 못 보고 하는 결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결혼을 번복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결혼은 요행이고 복권이었습니다. 그래서 온갖 연구를 하고 통계를 낸 것이 궁합입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결혼하기 전에 궁합을 꼭 봐야했지만, 지금은 결혼을 하기 전에 손도 잡아볼 수도 있고, 얼굴보고 얘기를 해볼 수도 있는등 내가 직접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결혼을 하고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헤어질 수도 있고, 또 새로 결혼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하는데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만약 내가 본 궁합이 좋았다면 다른 사람들이 봐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본 궁합이 좋았는데, 다른 사람이 봐서 나쁘다면, 궁합의 결과가 이랬다 저랬다 한다면 궁합이란 것이 믿을게 못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문제로 너무 걱정하지 말고 결혼해서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라며 궁합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 간단명료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예정된 시간인 9시를 지나서 질문이 끝나고 마무리 말씀으로 “인생은 정해진 길이 없습니다.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고 살아가면 됩니다” 라는 말씀으로 강연을 끝내셨습니다. nbsp2013년 10월 1800석 규모의 성남아트센타 대강연에 비하면 오늘의 성남강연은 420석 규모의 성남시 수정구 청소년수련장에서의 소강연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남시민분들은 멀리 가지 않고 좋은 강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질문자의 질문에도 응원의 박수와 호응으로 용기를 주었고, 스님의 질문에도 큰소리로 대답해 주시어 강연장 분위기는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강연 끝나자마자 스님의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줄은 길게 늘어섰습니다. 특히 궁합을 걱정했던 예비신랑도 여자친구와 같이 와서 스님께 인사드리고 사인 받고 웃으며 돌아갔습니다. 스님과 봉사자들의 기념촬영을 끝으로 스님은 떠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죽림정사에서 불심도문큰스님 80순 기념 법회가와 경전반 특강이 있습니다.
2014.4.16. 세계를 바로 보는 눈 제 5강, 6강, 엄마수업 중국독자 방문
늘은 서초법당에서 스님의 봄 특강 lt세계를 보는 눈gt 5강과 6강이 있는 날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5강은 lt민족사의 시원인 배달문명gt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여전히 많은 분들이 1, 2층 법당을 메워주셨습니다. 스님은 첫날보다 조금 한산해졌다며, 공부가 어렵긴 어려웠나보다 하시며 알짜배기만 남은 거냐며 농담을 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한강의 물줄기에서 가장 긴 것이 원류이듯 우리 민족의 원류는 역사가 짧은 신라의 역사가 아닌 배달의 역사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부터 배달나라까지 거슬러 하나하나 추적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우리 민족사도 족보를 찾아가듯 똑같이 추정해가면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이름이 대한민국이잖아요. 대한민국의 이름은 대한제국에서 왔습니다. 제국은 임금이 주인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는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해서 대한제국 부흥운동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립 운동을 했어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대한제국을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대한제국은 조선왕조에서 왔습니다. 조선왕조를 대한제국이라 바꾼 이유는, 청나라 속국에서 벗어나자는 국권회복운동으로 고종황제가 자주 독립국가를 선포한 것이 대한제국이었어요. 조선왕조는 고려왕조에서 왔어요. 임금의 성만 바꿔서 왕씨에서 이씨로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역성혁명이라고 하잖아요. 고려왕조는 후고구려를 계승했어요. 고구려, 신라, 백제를 모두 계승한 것을 후삼국의 통일이라고 하는데 사람과 영토는 대부분 신라를 계승했지만 역사적 정통성은 고구려를 계승하고 고구려의 본래 영토인 북방영토를 회복하려 했어요. 힘이 부족해서 이루지는 못했지만 건국정신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고려하고 조선하고는 큰 차이가 있어요. 조선은 자발적으로 한반도에 만족했죠. nbsp고구려는 고주몽이 자기는 해모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해모수는 부여를 건국한 사람이에요. 주몽은 해모수의 직계후손 쯤 됩니다. 해모수는 자기의 뿌리를 단군 조선에다 뒀어요. 단군의 후손이라고 하지요. 단군은 자신을 배달나라 임금인 환웅의 아들이라 했습니다. 환웅은 한나라 임금인 환인의 아들이에요. 바로 환인의 아들로서 왕위에 오른 게 아니고 이주해 와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신시라 하고 나라 이름을 배달이라 했어요. 원주민한테는 이들이 하늘에서 온 천손들이었어요. 환인은 한나라의 임금이었는데 그 한나라는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시작은 한나라가 뿌리입니다. 원뿌리는 한나라에서 왔지만 인구구성으로 보면 토착세력이 주류고 이주민인 천손들이 지배계급인 거죠. 역사의 뿌리는 그렇게 잡고 있어요. 그 조상도 있었겠죠. 그러나 여기까지 밖에 알 수 없기에 민족사는 여기가 시작이에요. nbspnbspnbspnbspnbsp우리나라 역사는 한나라까지 따지면 구천 삼백 년쯤 됩니다. 한나라의 3천 3백년을 빼버리면 6천 년전. 환웅 천왕이 이곳으로 이주해 와서 새로운 나라, 배달나라를 세울 때 건국이념이 홍익인간 재세이화였어요. 홍익인간이란 건 이 땅에 살고 있는, 문명에 뒤쳐진 토착세력을 이익 되게 하기 위해서 나라를 세우는 것이지, 침략·착취하기 위해 새나라를 세운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늘에서 왔으니 인간을 이익 되게 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선진문명이 이주해 와서 후진문명인 토착세력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이게 6천년 전이에요. nbspnbspnbspnbspnbsp개천은 환웅천왕이 새로운 나라를 처음 열은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단군 몇 년’보다 ‘개천 신시 몇 년’ 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때 천부인 세 개를 갖고 왔어요. 청동거울, 청동검, 청동방울. 이것은 청동기를 가진 천손의 징표에요. 그렇게 해서 1600여년을 계승해서 내려오다가 배달나라 마지막 천왕 때에 부계는 천손, 모계는 토착세력인 단군에게로 왕위가 계승 되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청동기 문명을 이룩한 6천년전의 배달나라에 대해 설명해주시고, 이렇게 우리 나라의 시원은 환웅천왕이 신시를 세운 날로 잡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이어 우리 민족이 역사를 잃어버린 과정에 대해 들려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우리가 민족사의 뿌리를 잃어버린 지는 천년이 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스스로 자발적 사대를 해서 우리 문명이 중국보다 앞선다고 되어 있는 옛 고기들을 없애버렸어요. 소위 모화사상, 중국을 부모국가로 보는 것이었죠. 이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스스로 옛 역사를 잃어버렸습니다. 거기다가 근세에 경성제대가 설립되면서 실증주의 역사방법론이 들어왔습니다. 역사를 유물, 유적, 사료를 근거해서 말하자는 건데, 좋은 얘기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를 우리 손으로 쓴 역사서는, 고구려 때 유기 백권이 있었는데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다 없어졌습니다. 고려시대 와서 일부 복원된 게 원나라 치하에 소실되고 조선시대에는 자발적 폐기를 하고 일제 시대 때 없어지고. 땅도 잃고 기록도 잃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역사를 새로 연구 복원해야 하는데 남은 거라곤 삼국유사, 삼국사기 정도 밖에 없었어요. 삼국사기는 삼국시대 이후를 기록한 것이니 당연히 고구려 이전의 부여와 단군 조선, 환웅의 배달에 대한 기록이 남은 게 없어요.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은 삼국시대를 말하는 게 목적이었지만, 그 이전 역사를 간단하게 한 페이지, 한 줄로 정리하다보니 환인시대 3300년을 환인 한 사람으로, 환웅시대 1600여년을 환웅 한 사람으로, 단군시대 2천 년을 단군 한사람으로, 마치 3대로 이어지는 것처럼 기록을 했어요. 허황된 논리처럼 비치는데 그것은 요약정리해서 그런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런 상황에서 일제의 실증주의사관으로 인해 우리의 역사가 중국 변방의 역사로 전락한 과정과 경성제대를 잇는 강단 주류사학계와 환단고기를 중심으로 새롭게 부상한 재야사학계의 논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음도 이야기 해주셨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이어 중국 만주 요하상류지역에서 1만년에서 5천년전 유물들이 대거 출토됨에 따라 전설처럼 취급받던 배달의 역사가 입증되기 시작했고, 이에 놀란 중국이 국가 프로젝트로 요하문명과 황하문명을 모두 자국의 역사로 재편한 과정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일제시대 때 만주에서 일본 학자들이 지금의 내몽고 자치주 적봉시에 있는 홍산 아래서 수 천년 전 유물을 발견했어요. 역사기록에는 전혀 없는 거였어요. 중국인들은 고대 중국의 임금으로 3황인 복희씨, 신농씨, 황제헌원씨와 오제인 황제, 전욱, 제곡, 요, 순 임금을 오제라고 받들어요. 그런데 중국은 사기에 주나라까지 기록은 분명히 남아 있어요, 은나라만 해도 역사기록은 있는데 전설처럼 간주돼요. 중국 5천년 역사는 유사이전과 유사이래로 나뉘는데 황제헌원이 왕위에 오르기 전이 유사 이전입니다. 중국 만리장성 밖은 오랑캐의 땅으로 중국 영토가 아니고 역사도 아니였어요. 중국은 황하유역을 중심으로 문명의 뿌리를 자랑하잖아요. nbspnbspnbspnbspnbsp그런데 이 만리장성 북쪽 한참 넘어 요하상류 광범위한 지역에 5천ㄴㅕㄴ전 유물과 유적이 엄청나게 발견되었어요. 그 시작이 적봉시 홍산부근에서 유물이 나오면서부터예요. 그래서 홍산문명이라고 이름 붙여졌어요. 그런데 이 지역에 살았던 민족은 몽골족, 선비족, 거란족, 여진족, 고조선, 부여, 고구려도 있었는데 어디가 홍산문명인지는 모르고 다만 유물만 남았어요.nbsp nbspnbspnbspnbspnbsp70년대 후반에 중국이 개혁 개방하면서 경제력이 나아지고 이 지역 유물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80년대부터는 한두 군데가 아니고 오백여 군데에서 쏟아졌어요. 1만년 전 신석기 유물이 나오니 세계가 놀라고, 중국이 놀랐습니다. 지금 요녕성 서쪽 뉴허량 지역에서는 6000년전 무덤이 60여기 발견되었어요.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천년이나 앞서는 피라미드에요. 제일 큰 것은 한 변이 60미터, 높이 7단. 장수왕릉 즉, 장군총보다 한 변의 길이가 두 배인 이런 거대한 적석총을 만들려면 고대국가가 형성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발굴하다보니 신전도 발견이 되었어요. 고대문명의 핵심은 무덤과 신전이에요. 신상은 여신상인데, 손이 곰손 비슷해요. 그리고 정교한 옥기 장식품이 수도 없이 나왔어요. 머리 부분이 돼지모양의 용인 저용. 곰모양인 웅용. 연대로 치면 홍산문명은 65005000년 전. 인더스 문명은 석기인데, 홍산문명은 옥으로 만든 아주 정교한 유물이 나옵니다. 이게 해석하기 어려워요. 어떤 사서에도 이정도 규모의 발달된 문명에 대한 얘기가 한 줄 없어요. 그러나 적어도 현재 유물만 갖고도 4천 년 전에 청동기를 제작하고 제사를 지냈고 무기로 썼음을 알 수 있어요. 중국은 일대 혼란에 빠졌어요. 중국 내륙에서도 신석기시대의 유물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홍산문명은 일만 년 전부터 삼천 년 전까지가 일정한 지역 안에서 시대순으로 연결되어서 나왔어요. 중국은 황하문명이 뿌린데, 이것은 황하문명보다 천 년 이상 앞선 것이니 황하문명이 이 문명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요하강 상류지역의 문명을 요하문명이라 합니다. 그러면서 중국은 국가적으로 수백 명의 학자를 동원해 논리를 만들어 중화문명을 새로 썼어요. 중국 역사는 두 개의 문명 황하문명과 요하문명을 원류로 한다며 이를 중국 역사 속으로 편재하고 지금은 역사 교과서에까지 반영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nbsp요녕성 박물관은 이 유물 일부를 가져와 요하문명에 대한 전시대를 시를 하고 있어요. 제 1관 ‘문명의 서광’이라 해서 신석기 유물을 전시하고, 상주시대 청동기를 진열하고, 진·하화하일통이라 해서 중국의 황하문명과 북쪽의 요하문명이 진정으로 하나가 됐다고 해요. 통합역사관점에서 전시를 해요. 중국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 안에 있는 과거의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 금, 원, 청, 고구려, 발해, 부여도 중국역사. 옛날 선비족, 티베트도 다 중국역사. 그런 관점에서 공부를 가르치고 관점을 잡아 가고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고구려 문명의 두가지 특징인 피라미드식 무덤과 석성의 치가 요하문명에서 고구려보다 3천년 먼저 앞서 나타난다고 하시며, 고구려가 계승한 배달나라가 요하문명라는 근거가 된다 하셨습니다. 중국 역사에도 나오는 동이의 치우천왕 얘기도 곁들이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고구려 문명의 독창성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가 무덤. 피라미드처럼 쌓는 적석총은 동아시아 지역에는 고구려를 제외하고는 아무 데도 없습니다. 거란, 여진, 몽고, 선비족 아무 데도 없는데 고구려에만 있어요. 그 전에는 고인돌 형태였는데, 한반도, 만주에만 있지 남쪽에는 없습니다. 두번째는 석성에 치가 반드시 있다는 것이에요. 치는 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해서 측면도 공격할 수 있게 하는 획기적인 방법이에요. 그 시기 다른 나라 성에는 그게 없어요. 이게 고구려의 독창적 문화유산이라 했는데 고구려보다도 3천년 앞서서 이 지역에서 나타납니다. ‘옛 땅을 되찾는다’고 하는 다물사상은 고구려 건국이념이에요. 이 문명이 소위 말하는 배달문명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중국에는 유물은 있으나 역사가 없고 우리에게는 역사는 있으나 유적, 유물이 없으니까 한·중이 함께 연구 하면 훨씬 더 전모를 빨리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은 혈통적으로 북방몽골계에요. 남방계하고는 인종적으로 크게 다릅니다. 언어학적으로는 중국은 티벳어족, 우리는 우랄알타이어족입니다. 중국은 황하문명의 계승자, 우리는 요하문명의 계승자입니다. 요하문명이 시기적으로 앞서 있습니다. 환웅시대 14대 자오지 환웅인 치우천왕은, 청동기를 제기로만 쓴 게 아니라 무기로 썼어요. 중국 사람들은 치우천왕과 싸워서 황제가 이겼다고 하지만 사실은 백전백패한 것입니다. 머리에 뿔을 달고 입에서는 불을 뿜었다고 묘사하는데, 뿔 달린 투구를 쓰고 쇠가 부딪히니까 불이 났다고 봤겠죠. 이쪽은 청동기, 저쪽은 석기문명이어서 상대가 안 되었어요.nbspnbspnbspnbspnbsp이 배달문명의 일파가 동쪽으로 옮겨가서 만주, 요동, 평양까지 온 것이고, 서쪽으로 내려간 게 은나라입니다. 은나라는 한족이 아니라 동이족입니다. 은나라가 멸망할 때 백이숙제의 죽음과 기자등 일부 신하들의 조선 귀환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 이렇게 고도로 앞선 문명이 우리 민족의 뿌리라고 자긍심을 가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하문명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주변 문명에 의해 역전되는지를 말씀하시며, 영원히 앞서는 문명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시 한번 부흥할 수 있는 첫 단계는 통일이라고 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우리는 완전히 다르게 시작해야 합니다. 자긍심을 가져야 하고, 어쩌면 지금 부흥할 가능성도 있어요. 그 첫 단계가 통일입니다. 민주화, 산업화에 성공했다는 건 굉장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 통일해서 통일된 한국이 일본, 중국과 함께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든다면 세계문명의 중심이 동아시아이고 동아시아의 중심이 한국이 될 수 있어요. 이것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강대국이 된다는 과거 개념과 다릅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은 마지막으로 이 사회의 여러 현상을 보면 자칫 정체와 몰락의 길로 갈 수도 있다며, 배달문명의 후예라는 긍지를 가지고 통일의 비전을 꿈꾸고 동아시아 공동체로 나아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우리 문명의 원류는 배달문명, 유물로는 요하문명입니다. 유물의 유사성과 역사와 지역을 보면 중국 문명의 아류가 될 수 없습니다. 인류 문명사의 첫 뿌리를 계승한 문명의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라가 작지만 당나라와 버금하는 문화예술을 꽃 피운 것은 본래 문명의 뿌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긍심을 갖고 조금만 방향을 잘 잡는다면 새로운 문명의 선구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우리 ‘민족사의 뿌리’에 대한 강의를 마치고 오후 2시에는 스님의 책 ‘엄마수업’을 중국어판으로 출판한 중국성시출판사와 중국언론 Sina에서 기자 2명, 독자 이벤트에서 수상자로 선정된 중국인 아기 엄마 5명과 관계자등 10명이 평화재단을 방문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엄마수업’이 중국어판으로 출판되면서 중국에서도 스님의 즉문즉설이 널리 알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성시출판사에서는 엄마수업 독자들에게 이벤트를 마련했는데 여기에 수상자로 선정된 분들이 저자와의 만남을 위해 한국까지 찾아 온 것입니다. 중국인 아기 엄마들은 평소 아이를 키우면서 어려움이 있었던 부분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스님께 질문하였습니다. nbsp육아 과정에서 부부가 어떻게 분담하고 협조해야 하는지, 조부모님과 교육관에 있어서 세대 차가 있어 충돌이 일어날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이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화가 날 때는 어떻게 감정을 컨트롤 해야 하는지, 이혼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심리 지도를 할 때는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지, 아이를 정신적으로 부유하게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장 여성은 직장과 육아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지, 피아노를 배우기 싫어하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중독된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등등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중국인 엄마들의 고민이나 한국인 엄마들의 고민이나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즉문즉설 강연하실 때와 똑같이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가며 아이의 행복을 위해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을 아주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문답은 2시간 30분 동안 지칠 줄 모르고 계속 되었습니다. 통역이 빠르게 오가면서 중국인 아기 엄마들의 얼굴도 점점 더 밝아져 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스님의 법문이 국경을 뛰어 넘어 중국인들의 삶에도 바로 적용되는 감동적인 현장이었습니다. 부처님의 법은 국경, 인종을 뛰어 넘어 두루 적용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그러면서 스님께서는 엄마의 역할에 대해 마지막에 이렇게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아이를 위해서 엄마가 희생하라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기뻐하면서 살면 그것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아이를 따뜻하게 감싸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아이에게 문제가 안 생기도록 예방하라는 것이고요. 둘째,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더라도 아이를 탓하지 말고 자기를 반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개선이 됩니다. 인생 고통의 절반은 자식 문제입니다. 아기가 어릴 때 처음에 좀 정성을 기울이면 나중에 아이가 커서 고생을 안 하게 됩니다. 자식을 둔 엄마가 ‘내가 아이 하나 낳아서 잘 키웠다’ 이렇게 자랑스러워 해야지요. ‘아이고, 내가 저 놈 새끼 왜 낳았노’ 하는 것보다 이 세상에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식이 잘못되면 부모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불행을 미연에 막기 위해서 이렇게 책을 낸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이어서 중국 검색 포털 사이트 Sina닷컴에서 나온 기자 2명이 각각 스님에게 인터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한 여성 기자분은 스님께 “스님은 남성이시고 출가를 하셨는데 어떻게 아이 교육에 관한 책을 내실 생각을 하셨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이 육아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까 중국인 기자 입장에서는 많이 생소했나 봅니다. 스님께서는 기자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충분히 공감이 가신 듯 활짝 웃으시며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많은 엄마들이 너무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스님한테 수백 수천명이 상담을 하다 보니까 그 내용의 일부를 책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책을 내야겠다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아이 문제에 대한 수백 수천명의 상담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내용 중의 일부를 책으로 출판하면 도움이 되겠다 해서 그 상담한 내용을 정리해서 책으로 낸 것입니다. 중생의 고통을 해결해주려 하다보니까 책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nbsp기자 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간담회가 끝나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중국에서 오신 손님들에게 단주를 손에 걸어주시고 손수건과 열쇠고리를 한분 한분에게 선물하면서 중국어판 엄마수업 책에 사인도 각각 해주셨습니다. 모두들 스님과 함께한 시간을 만족해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오늘 대화한 내용은 중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용하고 있는 Sina 포털에 기사로 소개된다고 합니다. 중국인 분들과 인사를 다 마치니 오후 5시가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저녁 강의 준비를 위해 정토회관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저녁 7시 30분부터는 ‘세계를 바로 보는 눈’ 제6강 ‘인생이란’ 주제로 강의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사람은 사회적 8228 역사적 존재입니다. 사회적 존재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공간적으로 다른 사람과 연관되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연관 속에서 나의 존재가 확인이 됩니다. 또 역사적 존재란 시간적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끝없이 연관되어져 있음을 뜻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그래서 나 하나 개인의 삶의 시작 뿐 아니라 부모, 부모의 부모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하나의 원인을 찾아가는 것이 씨족사입니다. 또, 씨족이 부족을 이루고 부족이 부족 연맹을 이루고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므로 민족의 역사 소위 민족사를 알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의 민족이 강대국에 의해 지배를 받거나 분열, 일시적으로 존재하다가 다시 통합되는 모습 등의 여러 민족의 역사를 인류문명사라 합니다. 이런 인류 문화사, 인류 문명사는 결국은 생명의 역사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역사는 결국 물질의 역사 속에 들어 있습니다. 물질의 역사라는 것이 결국은 우주의 기원, 우주의 역사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나를 좀더 분명히 알기 위해서 나의 근원을 추구하다보면 결국 우주의 역사에 이르게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그래서 우리가 우주의 역사, 또는 물질의 근원에 관한 문제로서 물질이란 것이 대체 무엇인지 물질의 근원을 추구해 보면 물질은 아주 미세한 존재들의 끝없는 결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 근원으로 가면 입자라고 할 수 없는 물질 아닌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세물질들의 고도한 결합이 이뤄지면서 결국은 물질의 기본단위인 원자, 분자, 고분자에 이르고, 더 나아가서는 결국 물질과는 다른 메커니즘을 갖는 작동 원리를 갖는 것을 생명이라고 칭하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생명의 진화 가운데에서 인간종이 출현하게 되고 신석기부터를 인류문명사로 일컫는데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적인 인간종의 진화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이는 문명사가 시작되면서부터의 인간종의 변화 발전은, 컴퓨터에 비유하였을 때 하드웨어적인 발전은 거의 없이 빠른 속도로 소프트웨어가 개발된 상황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즉 생물학적인 변화 보다는 정신적인 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생명 작용이 물질에 토대를 두고 있듯이 정신작용 역시 생명작용에 근거를 두고서 계속 진화해온 것입니다. nbspnbspnbsp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첫 방법이 촉각입니다. 감촉에 의해서 정보를 알게 됩니다. 사물을 인식하는 여타 감각으로 미각, 후각, 청각, 시각이 있습니다. 촉각은 주로 고체를 감지하며 미각은 액체, 후각은 기체, 청각은 장파, 시각은 단파를 감지함으로써 정보를 수집하여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물을 인식한다, 안다 하는 것은 결국 정보를 전달하는 신경세포, 뉴런이 발달하면서 가능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인간의 뇌에 여러 정보를 전달하고 저장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합니다. 앞으로 뇌에 대해서 연구한다는 것은 우주에 대해 연구한다는 것만큼이나 연구할 거리가 많고 복잡할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이러한 생물학적인 고도의 진화에 기초하여 정신작용이 일어나지만 인간의 정신작용은 제한된 범위이기는 하지만 물질작용 및 생명작용에 반하는 작용을 하기도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물질작용이나 생명작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생명현상의 핵심은 자기 생명을 유지 하는 것과 종을 유지 하는 것에이기에 자기 생명을 유지하는 물질대사와 복제 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배가 고프면 먹으려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이면 먹이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정신작용으로 인하여 배가 고파도 남에게 배려하기도 하고, 배가 불러도 자신의 소유를 주장하기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소위 일반 짐승과 다르게 선심과 악심이 있으며 이는 정신작용의 모습입니다. 과거에는 정신작용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에 정신작용은 몸과 별개다. 몸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신의 영역이다 등과 같은 오해가 많았습니다. 또 반대로 오늘날 과학이 발달함으로 인해 물질에 대한 연구가 정신현상까지 모두 설명해줄 것이라는 오해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물질작용, 생명작용, 정신작용 각각 개념적인 구분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이 세 가지가 결합된 총체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우울증의 경우에도 물질적인 투약만으로 해결하려고 접근하는 것도 온전하지 않으며 정신질환으로서 순수한 정신적인 상담만으로 접근하는 것도 온전한 방법이 아닙니다. 자율신경에 변화가 일어나면 신진대사의 분비가 일어나서 결국 안정을 가져오는 물질적인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측면도 있고, 이 뿐 아니라 주위 환경에 의한 정신작용의 습관에 의해 정신심리학적인 작용으로 큰 영향을 받는 측면도 있으며 아직 어느 한 가지가 주효하다고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화를 잘 내는 사람의 원인을 살펴본다고 하였을 때, 화를 잘내는 유전자를 부모로부터 태어나면서 받은 것으로 원인을 찾을 수도 있는 반면에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아주 어린 시절의 경험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습관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UCLA 의과대학에서의 발표에 따르면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와 학대받은 아이의 뇌크기가 월등하게 차이가 났다고 합니다. 즉 부모의 극심한 스트레스는 자녀의 뇌 성장에 굉장히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유전적인 면보다는 생후 경험하는 의식적인 면에서의 영향을 강조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nbsp 사람이 안다고 할 때에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져보아 아는 것, 이 다섯 가지 감각 외에 6번째 인식의 방법이 바로 사고입니다. 뇌에서 생각하고 종합하여 아는 것을 말합니다. 가보지도 않고, 눈으로 보지도 않고, 어떠한 원리를 생각함으로써 알게 되는 것, 이것을 의식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통찰력이라고도 하고 지혜라고도 합니다. 이는 시공간이나 부분적인 것을 뛰어넘어 어떤 사물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말하며, 이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삶은 물질작용, 생명작용, 정신작용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이러한 것을 볼 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꼭 먹고 사는 데에 필요한 공부만을 할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가지고 자기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인간 삶에 대하여 자발적인 공부를 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우리는 이번에 공부한 여섯 가지 내용에 대한 책을 꼭 읽어보아야 합니다. 물질 현상, 생명 현상, 인간종, 인류 문명, 민족사, 나 자신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돈과 지위, 권력에 대한 추구보다도 기본 인격, 기본 인식의 수준이 높아져야 합니다. 대중들의 지성이 미래를 이끌어갈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수행을 통해 기본 인격을 닦아나가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전 인구의 1만이라도 이러한 사람들이 생긴다면nbspnbsp사회 전체의 부정적인 면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전법하고 만일결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스님의 말씀에 집중하여 듣느라 스님 강의가 끝나고 나서야 2시간이 훌쩍 지났음을 알았을 만큼 모두들 스님 특강에 대한 감사함과 기쁨,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였습니다. 우리 자신 인생의 희망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우리 미래의 희망이 되고자 하는 부푼 꿈에 대한 벅찬 마음과 함께 그동안 스님 특강을 함께 들었던 도반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느라 서로들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모습들이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중국내 빈곤층에 대한 지원, 그리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중국 방문 일정이 있으십니다.
2014.4.15. 두북 어르신 봄나들이 - 송광사
오늘은 두북 정토마을 근교의 어르신들 봄나들이가 있는 날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두북 근교에서 오신 150여분의 어르신들과 봉사자 20여분이 전남 순천 송광사로 봄나들이를 가게 되었습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출발 직전 버스 4대에 직접 오르셔 간단한 인사말씀과 오늘 하루 재미지게 놀아보자고 하시며 송광사로 출발했습니다. 봄꽃이 한창이라 차창 밖으로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어르신들의 또 하나의 봄나들이 같았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송광사가 가까와지자 송수신기로 오늘 봄나들이를 가게 된 송광사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 송광사는 순천의 조계산 북쪽에 위치한 우리나라 삼보 사찰 중 승보사찰에 해당하신다며 3보사찰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송광사는 고려시대때 16명의 국사를 배출해서 승보사찰이 되었다고 합니다. 국사는 나라의 스승으로 한 절에서 한분 나기도 힘든데nbspnbsp열여섯 분이나 나오게 되어 승보사찰이 된 배경을 얘기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리고 오늘은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나들이하기 좋다고 하시며 예년보다 훨씬 따뜻한 날씨 때문에 봄꽃들이 순서대로 피지 않고 한꺼번에 피고 지고 있다며 날씨로 인해 농사가 어떨지에 대한 염려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nbsp두북 정토마을을 출발한 버스는 약 4시간이 걸려 송광사에 도착 했습니다. 긴 시간이긴 했지만 어르신들은 지친 기색이 없어 보입니다. 어르신들도 꼭 소풍 나온 어린애들 마냥 웃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버스가 경내까지 가지 못하니 어르신들께 거동이 영 불편하신 분을 제외하곤 걸어서 올라가자고 하시며 함께 걸었습니다. 스님과 함께 걷는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입니다.nbsp스님께서는 일주문 입구에 있는 송광사 안내 표지판을 친절하게 읽어 주셨습니다. 송광사는 신라말 혜린 선사에 의해 창건되어 송광산 길상사라고 했으며,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9년간의 중창 불사를 통해 절의 규모를 확장하고 참선을 중요시하는 선종사찰로 3개의 국보와 20개의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초파일이 다가오는지라 송광사도 색색의 등들이 많이 걸려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절 경내로 들어가는 다리의 모양이 예뻐서 유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다리도 예쁘고 다리 아래 흐르는 물 속에 비친 등들도 예뻤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어르신들과 함께 대웅전으로 들어가 참배하고 염불도 하고 간단히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봉사자들의 안내로 어르신들께서는 질서정연하게 대웅전으로 들어 가 앞자리부터 앉으셨습니다. 자리가 정돈되자 스님께서 어르신들의 건강과 편안한 노후를 위한 축원발원을 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은 이어서 행복한 노후를 위한 법문도 해주셨습니다.“이렇게 나이 들어서 보니 예전에 내가 잘한다고 했던 일들이 꼭 잘한 것도 아니고 잘못했다고 한 일들이 꼭 잘못한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 때 구슬치기를 잘해 구슬을 많이 따서 보관까지 했는데, 그 시절엔 많이 따고 많이 가진 것이 잘한 것 같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남의 구슬 따 먹은 게 잘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때 구슬을 땄더라도 친구들에게 나눠줬다면 아마 지금쯤 스님은 어릴때부터 보통아이들과는 달랐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공부해야 할 시절에 소 풀 베러 다니고 집안일 거든 것이 그 시절엔 힘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잘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해외 나가서 활동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하시며 인생을 7,80은 살아야 이런 이치를 안다며nbspnbsp‘살아 왔던nbspnbsp삶 자체가 공부’라고 하셨습니다. nbsp“우리는 진짜 귀한 걸 귀한 줄 모르고 별로 필요 없는 걸 정말 귀한 줄 잘못 알고 살아왔습니다. 다시 살아라고 하면 아마도 다 잘 살 것입니다.”라고 해서 어르신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인생은 이렇게 살아봐야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미리 좀 아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보통 죽을 때가 되어야 조금 알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너무 집착해서 악착같이 죽기 살기로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라고 하시며 편인히 노후를 맞이하시라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 세상을 졸업하고 저 세상에입학할 때 모든 점수의 기준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기준과는 좀 다릅니다. 이 세상 살 때에는 손해 안보고 이익만 보려고 했고, 집도 크게 넓히고, 옷도 좋은 것 입어야 잘 사는 것 같지만 저 세상 갈 때는 손해도 좀 보고 옆에서 ‘에이, 바보야’하는 소리를 좀 들어야 점수가 잘나옵니다. 저 세상 입학 점수가 좋으려면 악착같이 살지 말고 마음을 좀 후하고 너그럽게 가지면서 베풀고 살아야 합니다. 영감님과 같이 사시는 분들은 잔소리도 좀 그만하시고 영감님들도 마누라 이제 그만 부려 먹어야 합니다.”라고 하자 법당 안이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다음 생을 위해 너그럽고 후한 마음을 내어 베풀며 행복하게 사는 게 지금 편안하게 노후를 맞이하는 일이라고 하시면서 “자식들 걱정도 그만 하시고, 자식들을 위해서 논, 밭 팔아 주지 말고, 집을 잡혀 돈 빌려주지도 말고nbspnbsp고향을 지키며 자식들이 나중에 돌아 올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나를 위한 일이고, 자식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입니다.”라며 자식들에 집착말고 편안히 노후를 맞도록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죽음의 세계에 대해 해학적으로 풀어주시는 스님의 지혜가 어르신들의 마음을 녹이는 것 같았습니다.“항상 살아 있는 것에 고맙다 생각하시고, 과식과 과음도 줄이시고, 농사일도 너무 과로해서 하지 말고, 행복하고 편안하게 사십시오.”라는 당부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대웅전을 나와 왼쪽 박물관으로 들어가시며 스님은 송광사에는 유명한 것 세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비사리구시와 몇 백개를 쌓아도 무너지지 않는 그릇, 그리고 향나무라고 합니다. 어르신들은 비사리구시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리며 구경을 하십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리고 송광사에는 탑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절터가 물 위에 뜬 연꽃처럼 생겼다 하여 무거운 돌탑이나 석등이 있으면 절터가 무너진다하여 탑을 세우지 않았다고 합니다.송광사에 또 하나 없는 것이 ‘풍경’인데 참선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없다고 합니다. 역시 승보사찰로서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집니다.nbsp스님과 어르신들은 사찰 여기저기를 둘러보시고 대웅전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했습니다.nbsp 어르신들의 미소가 봄 햇살만큼이나 따사로워 보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선 점심공양을 위해 어르신들과 식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점심으로 비빔밥을 드시고 스님께선 헤어지기 아쉬우신지 주변에 앉아서 소화도 시키고nbspnbsp쉬실만한 공간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셔서 마침 식당 앞에 넓은 평상이 있어 어른신들과 모여 나들이에 빠질 수 없는 노래부르기 시간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마을별로 가수들 나와서 노래를 불러 보라고 하시니 각 마을별로 나오신 어르신들은 농사nbspnbsp지으시면서 언제 그렇게 노래를 배우셨는지 구성진 노래가락에 편안함 마저 묻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nbsp그 중에 하활천에서 오신 어르신 한분은 노래 대신 어려운 불교 말씀을 이해하기 쉽게 설법해주시고 이렇게 우리와 가까이 해 주신 스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어르신들의 흥에 겨운 노래자랑이 끝나자 스님께선nbspnbsp내년을 기약하며 마무리 인사를 하셨습니다. 늘 농사일과 자식들 걱정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마음에도 오늘은 봄기운이 가득하기를 바래 봅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내일 서울에서 강의가 있기 때문에 송광사에서 서울로 향하셨고, 어르신들은 두북으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르신들과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서 죄송한 마음을 전하시며 서울로 이동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늘 하루 두북 어르신 봄 나들이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순천 법당에서 어르신들의 순례를 도와 드리기 위해 봉사자 11분이 참석해주셔서 행사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nbsp내일은 세계를 보는 눈 5, 6강이 있습니다.
2014.4.14, 수도권 불대생 주간반 경주남산순례, 울산 동구청 강연
오늘은 수도권 정토불교대학 주간반 경주남산순례가 있었습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불교대생들은 모두 6개 코스로 나뉘어서 남산을 올랐고, 스님께서는 또 다른 코스를 점검하기 위해 남산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어제보다 조금 더 일찍 나서셨습니다. 오늘은 새로운 코스를 답사하고 빨리 내려와서 어제 함께 모여 밥을 먹고 모임을 가졌던 솔숲을 좀 더 정리하기 위해서 톱과 낫을 챙겼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늘은 어제와 비슷하게 새갓골로 올라 열암곡 석불좌상으로 가지 않고 반대쪽 길인 암조암 골로 올랐습니다. 이 길도 새롭게 가보는 길인데,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인지 지도를 보면서 그리고 길을 확인하면서 올랐습니다. 얼마가지 않아 파손된 불상조각들이 모아져 있는 절터를 지나 어제보다는 가파른 길을 20분 정도 오르다 보니 무너진 탑과 절터가 보였습니다. nbsp이 절터에 누군가가 묘를 쓰기 위해 일부러 탑을 무너뜨린 것이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탑의 잔해들을 보니 규모가 제법 컸던 것 같았고 스님께서는 이 폐탑이 있는 앞이 넓은 절터인데 산 중턱에 이렇게 넓고 햇볕이 잘 드는 곳이 있다는 것에 감탄하시면서 정말 절터가 좋다고 하셨고 우리들도 처음 보는 이곳이nbspnbsp편안해 보이고 좋았습니다.nbsp65279nbspnbspnbspnbspnbspnbsp절터를 떠나서 다시 정상으로 오르다 보니 심수골 여래좌상이 있다는 표지판을 보고 다시 옆길로 내려가니 목이 없어진 불상이 있었습니다. 여기를 참배한 후 다시 길을 되돌아 올라가 어제 갔던 봉화대를 지내 산 정상에서 휴식을 취한 후 칠불암으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산정상에서 칠불암을 내려다 보니 아직 여기로 오는 사람들이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칠불암을 향해 내려오다 신선암 부처님을 참배한 후 밑의 칠불암을 바라보니 이제 사람들이 도착해서 염불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칠불암으로 내려오니 막 염불을 끝낸 대중들이 스님을 보자 반가워했습니다. 이곳 칠불암은 스님께서 고등학교때 절에 들어오신 후 불심도문 큰스님의 지도를 받으며 수행정진한 곳이기도 합니다.nbsp65279nbspnbspnbspnbspnbsp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힘들게 칠불암을 올라간 불교대학 학생들에게 스님께서도nbspnbsp반갑게 맞아 인사해주시며 순례를 잘하라 말씀하시고 칠불암 스님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길을 재촉하여 떠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걸음을 서둘러 내려와서 염불사지를 지나 전체가 모이는 통일암 솔숲에 도착하자마자 낫과 톱을 꺼내 들고 죽어서 늘어진 가지나 사람들이 다니기에 방해 되는 가시나무들을 쳐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어제보다 장소가 훨씬 더 넓어 보였습니다. 장소를 어느정도 정리하고 난 후 스님께서는 대중들이 내려오면 인사를 하며 마중을 하기 위해 공양을 먼저 드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공양을 드신 후 대중들을 맞이하기 위해 입구에 서서 오는 모든 분들에게 인사를 하며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남산을 순례하고 내려와 점심공양 할 넓은 솔숲에 도착하였을 때 반갑게 맞이 해주시는 스님의 모습에 불대생들은 당황하면서도 반가워 스님의 모습을 휴대폰에 담기도 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모든 참가자들이 공양을 끝낸 후 스님의 감로 법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우선 스님께서는 “남산에는 43개의 골짜기에 절터가 150여개, 불상이 120여개, 탑이 100여개 등 총 700여개의 문화유산이 있는 자연 박물관이자 노천박물관입니다.”라며 경주남산의 두 봉우리 수리산과 금오산에 대해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해주시며 그 산을 끼고 있는 계곡과 남산에 산재해 있는 절터 불상 탑등 많은 유적지에 대해서 상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 또한 불교대학 학생들이 산행한 코스에 대한 내용을 잔잔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신라가 어떻게 불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또한 귀족불교와 민중불교의 입장에서 신앙의 차이에 대한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남산에 산재해 있는 불상이나 탑들은 주로 민중들이 그들의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위에 새겨진 부처의 모습이 민중들의 민족신앙과 불교가 합쳐져서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산의 부처님들은 만질 수 있고 굉장히 친근한 모습으로 자연속에서 민중들의 부처님을 나타내주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 남산의 유적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해주신 후 스님께서는 불교대학 학생들에게 불교대학을 열심히 잘 다닐 것과 기도를 하루도 빼먹지 말고 매일 해야 한다며 부지런히 수행정진 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어서 간단하게 즉문즉설로 몇분의 질문에 답을 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렇게 즉문즉설로 궁금증을 풀어주시고 시원한 솔숲을 나와 염불사지로 이동했습니다. 염불사지에 도착해서 약 20분간 함께 염불정진을 한 후 오늘 수고하신 분들을 소개하며 함께 감사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nbspnbspnbspnbsp 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오늘 남산순례의 회향식을 하고 쌍피탑을 거쳐 통일전에서 마무리 하였습니다. 오늘 스님과 함께 한 남산순례는 봄꽃과 나무들의 새순들을 감상하며 마음에 위안을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진달래와 연달래를 보면서 이 봄이 참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면서 법륜스님과 함께해서 이 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저녁 7시부터 울산 동구청에서 강연이 있기 때문에 서둘러 동구청으로 향했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공양을 하고 목욕을 한 후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동구청 강당은 기본 400석의 강당 좌석이 강연 30분전에 벌써 700여분의 사람들이 강당을 꽉채웠습니다. 강연장에 들어선 스님께서는 마룻바닥이 좋다고하시며 서 있는 사람들에게 강단으로 올라오시라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자꾸 사진만 찍으면 어쩌냐고 우스개 소리를 하시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와주신점에 대해서 감사의 마음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오전에는 경주 남산순례에 참석하시면서 소풍온 듯 멋진 하루를 보냈다고 하시면서 보통 저녁 못먹고 강의할때가 많은데 오늘은 자장면 한 그릇을 먹었다며 행복해 하시는 스님의 말씀에 소박한 스님의 모습을 뵈는듯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인생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해주셨습니다. “100m를 20초에 달리는 사람이 10초를목표해서 매일 운동한다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소원 성취 못한다고 스스로 자책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19초를 목표로 하면 목표달성을 할 수 있습니다. 안될 수도 있지만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목표를 너무 높게 세우게 되면 대부분 달성을 하지 못하고nbspnbsp남에게 신뢰도 주지 못하며 자기 자신에게도 믿음을 주지 못합니다.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욕심이 많아서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인생의 성공은 첫째, 현재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건과 사고 속에서도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자신에게 좀 더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살기는 사는데 좀 더 행복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를 하며 사는 것입니다. 나와 남편이 다르고, 나와 아이의 입장이 다릅니다. 남을 이해하면 내가 편하고, 욕심과 고집을 내려놓으면 훨씬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이해해도 잘 안되는 것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자기중심적 습관이 몸과 마음에 배여서 그렇습니다. 습관이란 자동으로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감정이 일어납니다. 모든 것은 무지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알아차림을 살피고 항상 깨어있는 삶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행복도 준비하는 만큼 얻어지는 것이며 매사에 집중하고 순간을 포착하듯이 깨어있는 생활이 현재를 좀 더 행복하게 사는 길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오늘은 모두 9분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남자친구가 부모님으로부터 정신적, 경제적으로 독립되지 못해 결혼이 망설여지는 분, 게임만 하는 오빠와 할머니의 지나친 간섭 때문에 힘들다는 분,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고 하면서도 보상심리나 억울함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분, 나는 남을 돕거나 하는데 지인들은 왜 남을 돕느냐고 하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분, 아들이 고1에 입학하고 한달전 자퇴를 하고 집에서 공부하면서 검정고시를 치고 대학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분, 딸이 결혼한 지 3년이나 되었는데 사위와 계속 싸우는데 궁합이 안좋아서 그런것인지, 30살의 직장인인데 일과 사랑에 대해 고민이 많은 분, 대한민국의 거시적인 발전 전망에 대해, 그리고 스스로도 나라에 도움이 되고 좋은 세상에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묻는 분, 고3인데 강박증이 있고 자꾸 자신을 못 믿게 된다는 여학생 등이 스님께 고민을 내어 놓고 답을 구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중에서도 30대 직장인이 전공이 맞지 않아 정신적으로 힘들고 부모님의 농사를 돕고 싶다는 생각과 착한여자와 잘난 여자중에서 어떤 여자를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어떤 일이든지 첨부터 재밌고 취향에 맞는 일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자마자 좋은 것은 쾌락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마약이나 게임은 첨부터 좋지만, 그 외엔 익숙해야 좋아집니다. 고비를 넘어야 좋아집니다. 최소한 3년은 해봐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 선택의 길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람은 누구나 제 스스로 밥 벌어먹고 살아야하니까 전공도 했고 5년 가까이 직장에 다녔으니까 그래도 다른 일보다는 현재의 직장이 낫습니다. 대기업에서 힘이 들면 승진을 포기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정해진 규칙에 다만 충실하면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다른 하나는 농사가 좋으면 부모님 도우며 차라리 농사일을 하는 것이 낫습니다. 먼저 내가 무엇이 좋은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선택을 한 후 결혼을 고려해야 합니다. 결혼보다 우선 진로부터 결정지어야 합니다. 결혼대상자도 농사를 함께 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질문자가 대기업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조그마한 회사를 다니거나 파트타임으로 전문적인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자를 찾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삶이 갈수록 자기가 주인공이 못되고 자신의 주변에 얽매여서 자기가 지치게 됩니다. nbspnbspnbsp적어도 결혼할 사람이라면 사람을 봐야지, 껍데기만 봐서는 안됩니다. 본인 역시도 착한여자일까 잘난여자일까 따지는 것 보다 내가 상대에게 적합한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람을 안 보고 껍데기만 보고 수단으로만 봐서 여러 가지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무조건 나한테 동조하라는 게 아니라 토론을 하면서 이렇게 대화가를 될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직장은 좀 더 검토해보고 퇴사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의 답변을 들은 질문자가 “열심히 살겠습니다.”라고 답을 하니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듯이 웃으며 박수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이어서 “어떤 전공을 하든, 뭘 선택하든 지나고 보면 사실 별 차이가 없습니다. 과잉선전하면 처음에는 효과가 있지만 기대가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본인이 부담되고 피곤해집니다. 쓸데없이 과잉선전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변에서 기대를 크게 하기 때문에 만족도가 떨어집니다. 기대를 작게 하면 만족도가 커집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모든 건 영원히 성장하는 게 없고 성장하다가 정체되다가 기우는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내가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거품이 일면 내 손해입니다. 내 삶의 자유가 속박 받는 것입니다. 내 수준을 체크하면서 자기가 부족한 줄 알면 세상이 칭찬해도 거기에 들뜨지 않습니다. 그래야 자기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같이 살면서 좋은 사람은 역할분담을 해 주는 사람이 좋습니다. 역할 분담을 해 주지 않으면 오래 살기 힘듭니다. 서로가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역할분담을 해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라며 우리가 어떤 일을 해 나갈 때, 어떤 사람을 선택할 때 어떤 기준으로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nbsp65279nbspnbsp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어제 오늘 경주남산을 순례 하시고 오늘은 저녁 강연까지 하시는 모습에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두북 어르신 나들이가 있습니다.nbsp65279nbsp경주남산순례는 김순주님이, 울산 동구청 강연은 울산법당 김외선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65279nbsp
2014.4.13.정토불교대학 영남지역 저녁반 경주남산순례
오늘은 영남권 저녁반 정토불교대학 경주남산순례가 있는 날입니다. 불교대학 학생 수가 많아지면서 남산 순례길을 6개 코스로 나누어서 법사님들과 행자님들이 기본 안내를 하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불교대생들이 가는 6개 코스외에 또 다른 코스를 개척하기 위해 남산을 올랐습니다. 스님께서도 오늘 남산의 남쪽 골짜기인 새갓골로 오르면서 열암곡 마애여래좌상을 보는 코스는 처음이라며 답사를 해보자고 하시면서 길을 나섰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오늘 새벽부터 비가 왔었지만, 산을 오를 때는 잦아들면서 부슬부슬 약하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스님과 수행팀, 관음팀 행자2분이 함께 오르는 길에는 진달래, 연달래, 산 벚꽃 그리고 이름모를 꽃들과 새싹들이 각각의 모습으로 온 산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그 중 산 벚꽃은 연두색으로 덮여가는 나뭇잎 속에서 은색을 반짝이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또, 진달래꽃을 좋아하시는 스님께서는 진달래가 져 가고 연달래가 활짝 핀 모습에도 계속해서 ‘와아’하는 감탄사를 연발하셨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도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갖가지 꽃구경을 하기도 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한참을 오르니 열암곡 석가여래좌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정비중인 것 같은 곳에 크지 않은 부처님이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표지판에 있는대로 그 부처님만 보며 참배하고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여기저기 둘러보시더니 더 멋진 부처님이 여기 검은 그물천막에 있다고 하셔서 모두 뭘까하고 움직였습니다. 그 안에는 마애여래입상의 부처님이 엎드린 채로 있었습니다. 최근에 발견되어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기도 하지만, 80톤이나 되는 거대바위에 새겨진 불상이 무너져 내려 엎어져 있었기에 주의깊게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가 쉽겠다 싶었습니다.65279nbspnbsp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우리 대신 남산기슭에서 온 몸으로 부처님께서 직접 참회를 하고 계시네요.”nbsp65279nbspnbspnbspnbspnbspnbsp엎드려 있는 부처님은 옆에서 본 모습은 별로 손상은 없는 듯해서 그나마 다행스러웠습니다. 보통 넘어지면 코가 깨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곳 부처님은 코도 그대로고 얼굴이나 상체는 크게 손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nbsp이곳 부처님을 참배하고 다시 산길을 올랐습니다. 봉화대를 지나 산 정상의 바위에 앉아 잠시 목을 축이고 주변 경치를 보다 다시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산 정상에서 내려오다 보니 밑으로 칠불암이 보이고 그 곳으로 올라온 사람들의 염불소리도 들렸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산을 내려오면서 중간에 여러 갈래 길이 나오면 스님께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들에게도 어디로 가면 좋을지 물으면서 내려왔습니다. 일을 해 나갈 때 함께하는 사람들과 의논해서 하는 모습을 몸으로 보여주시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이번 남산순례 봉사자들이 단 표지판이 잘 못된 것도 다시 고쳐 달아주시기도 하셨습니다. 65279nbsp65279nbsp스님과 일행들은 용장계지곡 모전석탑을 보고 이영재로 해서 통일전쪽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점심을 먹기 위해 모이기로 한 장소에는 아직 한 팀도 오지 않았습니다. 먼저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장소를 다시 돌아보며 1천여명이 다 앉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먼저 점심공양을 드신 후 솔숲 입구에서 산을 내려오는 참가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도착하고 공양을 마친 후 스님께서 직접 나서서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셨습니다. 처음엔 머뭇거리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노래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nbsp한 보살이 노래를 멋들어지게 하니 한 거사가 지폐를 내어 놓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노래를 하면 5만 원 권, 1만 원 권 등 지폐를 스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모든 문화 프로그램이 끝난 후 모아진 돈은 보이며 스님께서는 북한돕기에 쓰겠다고 하시면서 함께 참석한 JTS 박지나 대표에게 직접 전달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어 스님께서는 불교에 대한 짧은 강연을 하셨습니다. “불교가 한쪽은 너무 기복적 민간신앙으로 치우치고 동국대학 같은 곳은 너무 학문적, 지식적으로만 흐르고 있고, 일부 종단은 권위주의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일상의 삶에서 겪는 갈등과 고뇌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탈과 열반에 이르는 길을 벗어나 있습니다.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으로 돌아가 보자는 것이 정토회 설립취지입니다. 부지런히 수행정진하면 누구나 성불할 수 있습니다. nbsp정토회를 보면서 불교신자는 불교적 의식이 너무 없다고 불만이고, 천주교나 개신교 신자는 불교적 의식이 많아 불편하다고 불만입니다. 그러나 정토회도 따지고 보면 현실에서는 불교에 속하니 불교의식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불편하더라도 그대로 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 불교대학 교과과정은 최소한 알아야 될 것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물을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가 기본입니다. 그걸 기초로 불교의 유명 경전을 공부해 보는 게 경전반입니다.” 이렇게 정토회 불교대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설명을 잠깐 하시고 경주에 있는 특징적인 탑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시기도 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이어서 즉문즉설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불교대학을 공부하면서 의문이 나는 점을 질문하라고 하셨고 모두 4분이 질문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용장골, 삼릉골의 불상에 시꺼먼 이끼가 많이 끼었는데 처마를 해서 비 안 맞게 보존할 방법이 없는지, 아들한테 바라는 마음이 커서 아들이 미운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분, 반야심경을 외우다보면 자꾸 주기도문이 생각나 외워지질 않는다는 분, 천생연분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등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불교대 공부하면서 생긴 질문보다는 개인이 가진 고민들이 더 많았습니다.nbspnbsp그중에서 천생연분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답변을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노부부가 나와서 낱말 맞히기를 하는데 ‘천생연분’이라는 단어를nbspnbsp영감이 설명할 방법이 없어 ‘당신하고 나의 관계’라고 했더니 부인이 “원수”라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영감이 두 글자 말고 네 글자 했더니 ‘평생 원수’라고 대답했습니다.천생연분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면 원수인지 아닌지 알면 알 수 있습니다. 원수면 천생연분입니다.”라고 스님께서 이야기로 풀어주자 참가자들도 모두 박장대소를 하며 함께 웃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부인은 남편과 아들한테 ‘원수덩어리’라 표현합니다. 부부나 부모자식 간에는 갈등이 많습니다. 갈등이 많은 이유를 모르니 중국에서는 궁합이 안좋아 그렇다고 하고, 인도에서는 전생에 원수여서 그렇다고 하는 속설이 생긴 것이지 실지로 그런 건 없습니다. 기대가 크기 때문에 갈등이 많습니다. 내 기대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nbspnbsp기대는 득 보려는 것입니다. nbsp65279nbspnbspnbspnbspnbspnbsp말로는 상대방이 잘되라고 그런다고 하지만, 무의식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자기 득 보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내 성질대로 하려는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득 보려는 마음은 탐심이고, 화 내고, 짜증내는 마음은 진심입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득 보려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길 가다가 만난 사람과도 웃으며 잘 살 수 있습니다. 무의식 속에서 나와 일치하기를 바라므로 가족한테는 더 짜증내게 되고 또, 의식을 놓고 방심하기 때문에 무의식에 있던 원래 습관이 나오게 됩니다. 또, 자신은 별 욕심 아니라 하지만 잘 살펴보면 다 욕심입니다. 이래서 삶이 피곤해 지는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목표를 너무 높게 잡지 말고 지금보다 조금만 더 높게 잡고 지금보다 조금만 더 나은 모습을 생각하며 연습해야 합니다. 작은 목표를 세워 성취하고 자신감을 높여야 합니다.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자기가 자신을 못 믿게 됩니다. 무의식 속에서 자신에 대해 ‘너 또 못할 거 아닌가?’하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워낙 실패 경험이 많으니까 자기에 대해 과잉으로 생각해서 그런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입재식 때 항상 말씀드리는 것이 기도를 백일동안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루만 한다고 생각하라고 합니다. 하루 하고, 또 하루 하고, 또 하루 하면서 내일 한 번만 더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nbspnbsp이런 식으로 자기 긍정, 성공사례를 계속 만들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욕심 때문에 남 기 죽이고, 나도 기 죽으면 삶이 피곤해집니다. 작은 성공을 자꾸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적절하게 긍정해주고 격려해주면서 작은 것들을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nbsp부부는 서로 오해를 묻어두지 말고 또, 너무 참지 말고 불평이 있으면 드러내야 합니다. 떨어져 있으면 멀어지고, 가까이 있으면 가까워지는 게 인간의 속성입니다. 인간은 늘 관계 맺으면서 살아가고 의식도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나쁜 존재도 아니고 특별히 선한 존재도 아니고 늘 변하는 그런 존재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세상사람들은 나한테 조금 손해가 되거나 조금 이득이 되는 사람들 일뿐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살면 지금보다는 조금 낫게 살 수 있습니다. 지금도 괜찮다며 현실을 인정하고 살면 조금 더 나은 쪽으로 옮겨가는 건 가능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러다 방심하면 뒷걸음치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앞으로 나아가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공부를 하다보면 부처님의 법의 가피, 진리의 가피를 입었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자기 경험에 비추어 마음공부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스님이 없어도 되고 독립해도 됩니다. 그렇게 공부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라며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관계를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별 의미 없는 질문 같은데도 부처님 법에 비추어 말씀을 해주시면서 우리에게 웃음과 지혜를 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 즉문즉설을 마치고 염불사로 이동하였습니다. 염불사지에 있는 탑을 보며 염불정진을 하였습니다. 탑 앞에 90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 한목소리로 염불을 하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고 감동이었습니다.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며 감동으로 목이 메어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정진 후 스님께서는 멀리서 온 제자들을 지역별로 소개하시고, 또 오늘 봉사를 해주신 봉사자들과 오늘 하루 안내를 해주신 법사님들과 행자님들에게도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회향식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이 행복과 불행, 진실로 내가 만드는 것이네.’를 따라 하라고 하시면서 모두가 어떤 것이든 책임지고 행복해라고 당부하시면서 마무리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늘 6개 코스로 나누어 순례를 하니 앞으로 다섯 번은 더 와야 남산을 다 훑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남산순례를 마치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드신 후 법사님, 행자님들과 함께 남산 순례 평가를 가졌습니다. 먼저 소감 나누기를 한 후, 오늘 진행하면서 문제가 되었던 점, 보완할 점등을 함께 논의하며 내일을 기약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수도권 주간반 경주남산순례가 있습니다.
2014.4.12. 청년리더십아카데미 경주역사기행
4월의 경주, 봄이 왔습니다. 들판에는 부지런한 농부들이 이른 아침부터 밭을 갈고 있고 복사꽃이 집집마다 피어 봄의 소식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곧 비가 올듯했지만 청년리더십아카데미 7기의 경주 역사기행을 시작하는 마음은 가볍고 설렙니다. 평소와 달리 이번 기행은 조금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9시 법흥왕릉을 시작으로 무열왕릉, 김유신 장군묘, 낭산, 황룡사지 터를 다녀왔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법흥왕릉으로 올라가는 언덕을 오르며 오늘은 무슨 말씀으로 시작하실까하는 즐거운 기대감이 가득 찼습니다. nbspnbsp스님께서는 법흥왕릉에서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에 관한 신화에서부터 내물왕, 지증왕 등 신라왕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고대 신라의 역사를 말씀해주셨습니다. 또한 법흥왕과 진흥왕이 삼국 통일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특히 신라 23대 법흥왕 시기는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하는 등 신라의 통일을 위한 역량을 키우는 시기였습니다. 법흥왕의 개혁 · 개방 정책은 금관가야와의 통합을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금관가야와 신라는 전쟁을 통해 통일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양 지도부들의 합의를 통해 통일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걸 위해서 신라는 가야의 지배계층을 신라의 지배계층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사상과 종교를 인정하였습니다. 그래서 가야의 종교인 불교를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우리는 금관가야와 신라와의 통합에서 현재 남북한의 통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어야 합니다.” 라고 말씀하시며 통일한국은 남한이 북한을 포용하여 통일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는 것을 스님께서는 우리에게 전달하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두 번째 장소는 태종 무열왕릉이었습니다. 태종 무열왕은 신라의 29대 왕으로 신라 통일의 주역입니다. 태종 무열왕릉을 바라보며 김유신과 김춘추가 어떻게 신라가 통일의 중추적 세력이 되었는지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동맹이었던 신라와 백제가 왜 연합 관계를 끊고 새롭게 백제와 고구려가 연합을 이루고 신라와 대립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으며, 신라가 당나라와의 연합을 통해 통일의 주요 세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우리가 남북한의 통일을 위해서는 국제 정세의 변화를 잘 알아 이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세 번째는 누구나 신라하면 떠오르는 김유신 장군묘였습니다. 입구에서부터 잘 정비된 공원의 느낌이었습니다. 김유신은 신라의 장군이지만 흥무대왕이라고 추존을 받을 정도로 예전이나 현재나 위대한 인물로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김유신 장군의 묘는 왕릉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김춘추와 김유신에 얽힌 일화를 들으며 김유신과 김춘추가 살아온 삶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점심은 김유신 장군 묘가 있는 흥무 공원에서 먹었습니다.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과 등산객들이 몰려 다채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곳에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한 후 우리는 바쁜 일정을 재촉했습니다. nbspnbspnbsp오후는 사천왕사 터와 선덕 여왕의 능이 있는 낭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천왕사 터는 최근에 발굴이 끝나 그 터의 규모를 눈으로 확인 가능했습니다. 사천왕사는 문무왕이 당나라의 군대가 고구려 침공 후 신라까지 침공하려고 하자 불교의 힘을 빌려 그것을 막기위해 세운 호국사찰입니다. 사천왕사를 지은 후 명랑법사가 문두루 비법을 행하니 서해에 풍랑이 쳐서 당나라 배를 두 번이나 침몰시킨 기적을 이룬 곳이라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으며 끝까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문무왕의 애국심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천왕사 덕분인지 신라는 당나라의 침공을 격퇴하고 676년에 삼국통일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신라는 배달민족의 정통성에 대한 역사적 의식이 부족하여 고구려의 영토까지 통일할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단군조선의 옛 땅을 잃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점도 듣게 되었습니다.nbspnbspnbsp스님께서는 당시 당나라와 신라의 관계는 현재 미국과 우리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문무왕은 당나라와 동맹을 하더라도 신라의 자주권을 되찾기 위해 전쟁까지도 감수하면서 당나라를 물리쳤으나 오늘날 우리는 미국과 동맹을 굳건히 하면서도 자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사천왕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소나무 숲 속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릉이 있었습니다. 가는 길에 선덕여왕과 관련된 삼국유사의 기록 세 가지를 들으며 선덕여왕이 여자라는 사실 때문에 당나라에 무시를 당했으나 그것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한 이야기를 들으면 선덕여왕이 얼마나 영민한 여왕이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삼국통일은 김춘추나 김유신에 의해 이루었지만 그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인재를 발굴한 사람은 바로 선덕여왕이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문무왕의 유해를 화장한 장소에 세워진 능지 탑을 지나 황룡사지까지 시골길을 걸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버스를 탔을 테지만 논밭에 봄이 온 것을 보며 걸으니 기분도 상쾌하고 아침부터 시작된 여정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마지막 장소인 황룡사지에는 유채꽃이 노랗게 피었습니다.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봄을 즐기는 모습을 뒤로 하고 우리는 원나라의 침공으로 인해 소실되었지만 거대한 사찰인 황룡사의 원래 모습에 대해 상상해 보았습니다. 황룡사지 목탑은 현재 27층 정도의 높이인 67m로 거대한 목조탑이었습니다. 그 목탑이 건설된 황룡사지는 터만 해도 16만평으로 이 터를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웅장한 절이었겠구나 하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황룡사의 남문 터를 지나 중문, 9층목탑, 금당과 강당을 지나면서 옛 선조의 숨결을 느꼈습니다. 황룡사 터에서 청리아 7기의 소리꾼이 판소리 춘향가의 사랑가 한 대목을 열창을 하였습니다. 판소리는 tv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 창과 아니리가 생동감이 있어 금방 노래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분황사를 뒤로하고 우리는 한 나절의 일정을 마치고 스님과 함께 두북으로 향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스님의 통일 코리아에 대한 강연은 4시 반부터 시작되었습니다. nbspnbsp하루 종일 우리들의 경주 역사 기행을 담당하시느라고 피곤하실 텐데도 스님께서는 피곤한 기색도 없이 통일 코리아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와야 하는 것일지 신라는 어떻게 삼국의 비주류에서 주류로 올라서서 삼국 통일의 주역이 되었는지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신라가 통일의 주역이 된 것은 신라가 성장 국면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보다 국력이 더 막강했지만 점점 쇠퇴하고 있는 나라의 국운을 막을 순 없었습니다. nbspnbsp둘째, 신라는 백제나 고구려에 비해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었으며 부패 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적었습니다.nbspnbsp셋째,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백제와 고구려는 잘 받아들이지 못했으나 신라는 그 정세의 관계를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적절히 이용할 줄 알았습니다. nbspnbsp65279nbspnbspnbsp우리는 이러한 신라 통일의 방법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갈등 상황을 보면 개인적 이익을 도모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정체 국가나 쇠퇴 국가에서 보이는 현상입니다. 이는 남한 사회의 성장이 멈추고 곧 쇠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타개하고 성장 동력을 얻기 위해서 통일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동아시아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신라가 당나라와의 관계를 이용여 통일의 발판을 마련한 것처럼 우리도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를 잘 대처하여 우리의 통일과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합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또, 스님께서는 “통일은 일제 시대에 대한 아픔과 분단 상태의 고착화에 따른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친일 잔재 청산이나 독립운동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도 분단된 상황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통일이 된다면 우리는 이념의 대립에 의해 왜곡된 역사가 아닌 제대로 된 역사 의식을 재정립하여 우리의 과거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나라는 과거의 아픔을 딛고 성장하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라고 하시며 통일을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도 말씀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통일을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입장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남북한의 사이에 중도적 입장을 가지고 포용해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남한의 성장이 계속될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을 버리고 현재의 정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실질적 방안이 통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미중 관계에서 우리의 경제적 이익과 안보, 민주주의의 발전 등을 모색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미국이나 중국에게 좌지우지되는 종속된 관계로 전락할 뿐입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스님의 짧은 강연이 끝난 후 사람들이 통일과 관련된 질문에 대한 답변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지금 현재 박근혜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통일 대박론에 대한 스님의 입장이었습니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곧 붕괴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통일을 해야 하며 통일은 우리에게 큰 이익을 줄 것이라는 환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과 달리 북한의 붕괴는 쉽지 않으며, 중국이나 미국의 입장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서로의 힘의 균형 관계가 깨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통일은 신중하게 진행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중국이나 미국 사이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또한 안보를 위해 미국과 긴밀한 협조를 하면서도 중국과의 상호협력의 폭을 점진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이 과정은 너무 빨라서도 너무 늦어서도 안 되며 이를 위해서는 지도자의 역량이 중요하고 국민의 분열된 국론을 모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현재 여야가 서로 다투고 국민들이 서로 분열된 채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속빈 강정일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또 다른 질문자는 통일 한국을 위해 청년들이 가져야할 마음의 자세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통일 한국을 위해서는 청년들은 세계 시민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세계 시민 의식이란 보편적 윤리나 가치에 의한 판단입니다. 무슨 상황을 판단할 때 보편적 가치를 고려하게 된다면 자국만 고려하는 것이 아닌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을 나의 동포, 나의 친구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의 문제도 바라 봐야합니다. ‘북한 동포의 문제이니깐 손을 걷어붙이고 도와줘야지’, ‘북한이 싫으니깐 북한 문제는 무시해야지’ 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서 그들의 딱한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비단 남북한 간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다문화 사회에서 필요한 필수적 덕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강연을 마치면서 통일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미래에 대해 다시 강조하셨습니다. “통일은 우리에게 물질적 풍요를 넘어서서 정신적 풍요까지 얻게 할 것입니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치유할 수도 있으며 많은 국민들의 요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다원화된 세계시민적 사회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이 현실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처럼 우리는 통일에 대한 방법도 점점 현실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통일을 위한 피상적인 방법론이 아니라 우리의 상황에 맞는 실질적 통일 방법론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일 이후의 우리의 삶과 사고에 대해서 연구를 해야 합니다.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단체에서도 통일 이후의 삶에 대한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통일에 대한 사고방식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야 통일이 우리에게 비전을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스님이 말씀하신 통일한국의 비전은 동아시아의 문명의 핵심이 되는 선진 국가였습니다. 통일된 한국은 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하여 아시아의 평화와 이익을 도모하는 세계 문화의 핵이었습니다. “고구려 이후 우리나라가 이런 꿈을 꿀 수 있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요? 이 꿈은 환상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 꿈입니다.” 스님의 마지막 말씀이 아직도 선명히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바라지가 정성껏 준비한 궁중떡볶이와 짜장밥을 먹고 서둘러 스님의 즉문즉설을 위해 모두들 강당에 모였습니다. 서로가 그동안 가졌던 삶의 고민을 풀어내며 스님의 고견을 듣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연애 문제, 직장 문제, 성격 문제 등 서로의 고민은 다양했습니다.nbspnbsp nbspnbsp사회복지 민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새내기 직장인은 민원인의 태도에서 상처를 받고 진로 고민을 하게 된다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nbspnbsp스님께서는 어떤 일도 쉬운 것이 없으며 이제 고작 3개월하고 이직을 이야기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적어도 1년 이상은 해봐야하며 3년 정도 했을 때도 계속 같은 생각이 들면 그때 이직을 결심하거나 윗사람에게 말을 해 다른 보직으로 변경해도 늦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민원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라는 당부도 하셨습니다. nbspnbspnbsp또 다른 질문자는 연애에 대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한 연애에 대한 상처로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남자 분에게 상처를 주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그 남자 분이 이제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관계를 예전으로 회복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nbspnbsp스님께서는 “그 질문은 나한테 할 것이 아니라 그 남자에게 그대로 해라.”라고 가볍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인간관계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셨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면 그 상처를 그만큼 다시 받게 된다고 하시며 만약에 어떤 남자가 자신을 계속 따라다니며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아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받아줄 때쯤이면 그 쪽 사람은 이미 그 마음을 포기하던지 아니면 자신을 역으로 나를 괴롭힐 수 있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도 자신이 나중에 다 갚아야 하는 빚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나를 상처 준다고 해서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다 자신의 과보입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마지막 질문자는 자신의 신념을 남에게 전달하고자 할 때 상대방이 자신의 한 말에 상처를 받고 불쾌해 한다면 그 때 자신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자신의 신념대로 하고 싶으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고 불이익을 받고 싶지 않으면 남의 비위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모두 정답일 수는 없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서 상대방을 미워하거나 그것을 굳이 따지는 것보다 그냥 넘어가주는 것도 좋아요. 내가 예전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나중에 보면 중요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어요. 굳이 안 꼬집어도 되는 일을 들추어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내 인생을 통틀어 보면 그 상황이 내 인생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 내지는 않아요. 그냥 너그럽게 넘어가세요.”nbspnbspnbsp스님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스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통일 한국의 어제와 오늘을 그릴 수 있었으며 잠시나마 통일 조국의 미래를 꿈꿀 수 있었습니다. 또한 청년들이 가진 개인적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의 문제가 나만이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되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밤 10시 가까이 되어서 90여명의 청년들과 한 경주역사기행을 마무리 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영남지역 저녁반 불교대학 경주남산순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