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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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5.29. 용성진종조사 탄생 150주년 기념 심포지엄

스님께서는 오늘 새벽 1시가 넘어서 서울에 도착하셔서 휴식을 취한 후, 아침 7시 30분부터 종교인 모임에 참석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종교인 모임에서는 세월호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을 위한 진상규명, 재발방지, 재난경고에 대해 국민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사고가 나게 된 우리 사회 전반의 성찰의 몸짓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때라는 공감이 컸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민심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진단이 많았습니다. 또, 종교인들이 무언가를 한다해도 여야, 진보보수의 진영논리에 갇혀 본심이 왜곡되고 선거전략으로 오해될 수 있으므로 6·4지방선거가 끝난 뒤에 활동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근본적인 사회변화, 국민적 변화, 나라의 변화를 위해서는 위정자들의 민심에 대한 이해, 시대에 대한 이해, 종교인들의 근본적 반성이 같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과 동시에 국가적으로는 한미일 군사정보협정의 체결 등이 이런 허약한 틈을 타서 이뤄지는 만큼 현명한 대처와 지혜가 필요한 때라 더 고민하고 돌아봐져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10시에는 6월 5일 용성진종조사 탄생 150주년 기념식과 관련한 회의가 대중부 지도부와 함께 있었고, 12시에는 서울시 교육감에 출마한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님께서 스님께 인사차 방문하셨습니다. 오늘 오후 2시 조계사에서 있는 행사 때문에 잠시 환담을 나누시고는 급히 조계사로 출발했습니다.nbsp스님께서는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용성진종조사 탄생 15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참석하셨습니다. 조경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가 사회를 맡아 진행된 이번 심포지엄은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의 격려사와 역사학자 이이화님의 축사에 이어 두 분의 발표와 네 분의 토론, 그리고 이어진 질의응답 및 전체토론으로 세 시간여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사단법인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 이사장이기도 하신 스님께서는 먼저 특별히 참석해 격려사와 축사를 해주신 자승 총무원장님과 이이화 역사학자 두 분께 감사를 표하신 후 심포지엄의 취지와 의의에 대한 여는 말씀으로 심포지엄의 문을 여셨습니다. 350여명의 청중은nbspnbsp귀를 쫑긋 세우고 진지한 마음으로 함께 했습니다. nbsp65279nbsp“지금 우리나라는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로 많은 목숨, 특히 젊은 학생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사건 발생 후 40여일이 지났지만 온 국민은 눈앞에서 죽어가는 소중한 젊은 목숨들을 지켜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현실에 대한 무기력감, 자괴감, 분노, 슬픔에서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밖으로는 중국의 부상과 이에 따른 미국의 대중국 견제정책에 의한 일본의 재무장, 그리고nbspnbsp한미일 3국 군사협력이 MOU 체결에까지 이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가 점점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지금의 상황은 19세기 말 한반도를 보는 듯합니다. 밖으로는 열강들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쟁패하고 안으로는 봉건제가 붕괴되면서 위로부터의 개혁인 갑신정변과 아래로부터의 개혁인 동학혁명이 좌절을 겪는 등 내우외환으로 많은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때 시의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나라를 빼앗기고, 일제 강점기에 고통을 겪었지만 독립을 위한 노력의 부족으로 결국 해방 후에는 다시 분단과 6.25전쟁의 비극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한반도 주변정세가 100년 만에 또다시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국내적으로는 지난 50년 동안의 물질, 물량, 속도를 중시한 성장주의적 삶의 방식이 오늘날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건에서 총체적으로 그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보여 집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제 우리는 양보다 질을, 물질보다는 사람과 생명을, 성장보다는 안전을 중시하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야한다는 강력한 시대적 요구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불행한 사건을 계기로 국론을 통합하여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기보다는 오히려 국론 분열이 심화되는 듯한 양상입니다. 한반도 주변정세 또한 통일은 커녕 평화를 지키기조차 어려워지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러한 시기에, 과거 100년 전 조선조말 일제시기에 시대의 부름에 응답해 고뇌하고 온몸을 내던져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신 백용성조사의 행적과 사상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 여러 시사점들을 줄 것으로 믿습니다.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지키면서도 불교의 지성화, 불교의 생활화와 대중화를 위해 헌신하시고, 시대의 과제에 눈떠 민중의 아픔에 함께 하신 조사의 삶을 조명해, 그 뜻을 어떻게 오늘에 살릴 것인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그분의 삶에서 부족했던 부분은 채우고 긍정적인 부분은 계승 발전시켜 이 시대에 어떻게 수행정진할 것인지, 나아가 어떻게 사회를 위해 실천할 것인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어 발표와 토론, 질의응답이 끝나고 이어진 닫는 말씀에서 스님께서는 토론의 내용을 정리하심과 동시에 느낀 바를 술회하셨습니다. nbsp“토론을 들으며 앞으로 이런 학술세미나를 통해 용성조사의 행적과 사상에 대해 좀 더 지속적인 연구와 발표가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실제 용성스님과 대중이 알고 있는 용성스님 사이의 간격이 너무 큰 것 같습니다. 이는 연구자들의 책임이라기보다는 불교계와 후학, 후손들의 책임이겠지요. 저도 스승이신 불심도문스님께서 용성스님 알리기에 평생 노력하셨고 저에게도 여러 번 당부하셨는데도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불교사적인 입장에서 좀 더 깊이 있는 연구와 토론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알리고 그 과정에서 미화된 것은 걸러내는 비판적 토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비판보다는 스님의 행적을 알리는 데 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보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그리고 사료의 부족으로 인해 제기되고 있는 용성스님의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에 대한 학자들의 논란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모든 일에는 드러난 부분 이외에 드러나지 않은 숨은 사실들이 있습니다. 이를 굳이 들추어낼 필요는 없겠지요. 보살행은 남에게 보여지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역사에서 정사로 채택되지 못하더라도 진실을 드러내 주는 것은 명예만을 추구하는 풍조를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용성조사와 손병희선생은 오랜 인연이 있었습니다. 용성스님의 스승이신 혜월스님께서 손병희선생의 스승이신 최제우선생을 6개월 이상 남원 덕밀암 은적당에 숨겨드렸고 그 기간 동안에 천도교의 여러 경전이 집필되고 두 분 사이에 많은 지적 교류를 나누셨습니다. 그로 인해 혜월스님은 승적이 박탈되고 가택연금까지 당하셨지요. 그런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용성조사와 손병희 선생 사이에는 드러나지 않은 깊은 교류가 있었던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또한 윤봉길 의사와 용성조사의 제자인 임철호 선생이 친구 사이였다는 것을 안다면 용성조사가 윤봉길 의사를 김구 주석에게 보냈다는 기록에 대해 황당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활자로 기록되지 않은 여러 구전 사실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정리하시며 연구자들에게 보다 적극적인 연구를 당부하셨습니다. 또 용성조사께서 일본 불교지도자와의 교류등에 대해 용성스님의 반일 독립사상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일본 불교라는 이유로 무조건 반대한다면 이는 출가 승려로서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일본 불교가 정법에 어긋나 있었던 부분에 대해 비판하고 반대해서 바른 길을 가신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승려는 일반적인 애국자와 다릅니다. 승려결혼 문제는 일본불교라서이기에 앞서 불교의 근본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이므로 반대를 분명히 하신 것이지요.”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오해가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관점을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용성스님과 만해스님을 비교한 논란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nbsp“불교의 지성화, 대중화, 생활화는 용성스님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정토회의 표어가 바른 불교, 쉬운 불교, 생활불교인데, 용성스님의 불교개혁의 기치와 완전히 일치합니다. 용성스님께서는 그만큼 시대를 앞서가신 분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의 사상은 현대적인 관점으로 보아도 새로울 만큼 혁명적입니다. 만해가 스님인가 아닌가에 대해 논란이 있었는데, 만해 스님께서 초기에 불교사전을 편찬하시고 불교유신론을 집필하시는 등 불교의 개혁과 대중화를 위해 많은 기여를 하셨지만, 말년에 그분이 하신 사회, 독립운동은 불교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그분은 독립을 위해서라면 승려라는 형식까지도 내던질 분이셨지요. 하지만, 용성스님께서는 불교를 기반으로 승려의 본분 안에서 비폭력적 방법으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한 용성스님이 조계사 대웅전 앞에 사리탑을 세운 시기가 인도의 유명한 다르마빨라 스님의 한국 방문시기와 일치하는 점, 대각회가 마하보디 소사이어티와 이름이 같다는 점, 그리고 스님의 유훈에 ‘인도의 5대 성지를 가꾸어라’라고 하신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보면 용성스님이 국제적인 교류를 갖고 있었다고 판단됩니다. 이런 점에서 용성스님과 간디와의 비교연구도 가능하겠지요. nbspnbspnbspnbspnbsp현재 용성스님의 사상에 대한 연구가 사회운동가적인 측면이나 불교사적인 측면 모두 답보상태입니다. 공식적인 사료에만 의존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구술사료, 논쟁의 소지가 있는 자료라 하더라고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용성스님이 만드신 의식집을 보면 현재 우리 조계종에서도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혁명적이고 앞선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런 부분도 앞으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용성스님의 독립운동 역시 불교사상을 기반으로 한 것이니만큼 함께 연구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nbsp오늘 발표해주신 여러분들의 수고에 감사드리고 부족한 부분은 내년에 더 깊이 있는 연구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학자들에게 주문과 기대를 표하신 후 마무리 인사와 함께 닫는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2시부터 5시30분까지 긴 시간 동안 청중들도 자리를 뜨지 않고 학자들과 스님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사회를 맡은 조경택 교수님은 “지금껏 수많은 심포지엄에 참가했지만, 오늘처럼 청중들이 이렇게 집중해서 경청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며 청중들의 열기에서 받은 큰 감동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특히 오늘 심포지엄은 정토회의 주부 자원활동가들이 지난 3개월 전부터 준비한 행사입니다. 자원활동가들의 힘으로 이런 전문적인 학술 행사를 치러냈다는 점에서 정토회 내부적으로도 뜻깊은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심포지엄을 마치시고 저녁에는 평화재단으로 돌아오셔서 기획회의를 하시고 밤늦게 정토회관으로 돌아오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부천, 수원에서 희망세상 만들기 강연이 있습니다.

2014.05.31. 17,585 읽음 댓글 7개

2014.5.28. 수행관제 5,6강 - 대구법당

오늘은 대구법당에서 ‘수행관’ 특별법회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첫법회를 시작 할 때는 설레임과 긴장감이 있었는데, 오늘은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으로 더욱 스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졌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불교의 수행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다섯 번째 강의는 스님께서는 지난 시간의 강의를 간략하게 정리 해주시면서 시작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사람이 살기 위해 필요로 한 것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일은 합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등 생활에 필요한 것을 구입하기 위해 일을 하지요. 그러니 우리가 눈만 뜨면 일을 해야 하고 때로는 일이 힘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일을 해서 사람이 사는데 큰 불편이 없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일의 목표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욕구와 욕망이 끝이 없으니 일도 끝이 없습니다. 욕망과 욕구가 적절히 조절된다면 우리들의 일도 일정한 한계가 있을 것이고 그러면 여유도 가질 수 있을 것인데, 욕구와 욕망이 끝이 없다보니 일도 끝이 없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지금은 못 먹어서 굶어죽거나, 못 입어서 얼어 죽거나, 집이 없어서 노천에서 자는 사람도 없습니다. 옛날에는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집 마련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부자든 가난하든 그 문제는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지금 사람들은 괴로울 일이 없어야 합니다.nbsp하나하나 따져보면 옛날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경제적으로나 사회제도적으로 많이 개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nbspnbsp사는 우리들은 고마운 줄을 잘 모릅니다. 그저 불평, 불만을 표출하는데 정말 자유롭고 행복하려면 이제는 욕망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욕망의 줄달음질에서 멈출 줄 알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흘러도 우리의 고뇌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욕망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래야 자유롭고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수행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수행이 어느 때보다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이제는 수행 없이 자유와 행복을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는 욕망에 끄달려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일을 계속 찾아하고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 보다 더 바쁩니다. 왜냐하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불교가 왜 이 시대에 더 필요한가? 못살고 못 먹던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가르침이 있었다면 이 시대에 잘 먹고 잘 사는데도 생기는 괴로움은 해결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2600년전에 이미 지금의 우리의 수준으로 사셨습니다. 신분이 왕자였으니까요. 그런데도 이 인생의 고뇌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왜 괴로운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말씀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그런 답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정법, 바른 가르침만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고뇌를 고칠 수 있는 양약이 됩니다. 지금의 시대야말로 부처님의 정법이 꽃을 피울 수 있는 시기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부처님의 말씀이 부자이던지 가난한 사람이던지 그 누구에게나 인생의 고뇌를 해결하는 답이 되는 이유는 부처님이 스스로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가장 가난한 사람보다 더 가난하게 생활하시면서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셨고, 그런 속에서도 오히려 부처님은 도움을 구하기 보다는 오히려 남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사셨습니다. 왕 앞에서도 당당히 왕에게 고뇌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이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다 평등하게 적용됩니다. 그래서 보편타당한 진리라고 합니다. 무상정득각을 인도말로 아뇩다라 삼먁삼보리, 우리말로 보편타당한 최고의 진리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밖만 보고 욕망의 충족만을 추구 할 것이 아니라 안으로 보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nbsp이렇게 우리가 수행정진을 해야 하는데 부처님 당시에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본인 스스로 철저하게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어야 된다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인생의 궁극적 목표, 참 자유, 괴로움이 없는 삶, 즉 해탈과 열반의 길로 나아가려며 욕망을 조절하고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아집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본적인 생존 욕구는 충족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일이 필요합니다.nbspnbspnbspnbspnbsp재가자는 일을 해서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면서 자기 해탈의 길을 가고, 출가 수행자는 기본적인 욕구마저도 절제하면서도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못 먹는다고, 못 입는다고 못 잔다고 괴로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본적인 욕구는 충족하되 상대적인 욕구는 자제하고 제도적으로 차이가 덜 나도록 만들어주면 그 환경이 사람이 사는데 괴로움을 덜 느끼도록 행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을 ‘정토’라고 합니다. 청정국토, 깨끗한 나라 즉 ‘정토’는 환경이 좋은 세상, 괴로움이 덜 일어나는 세상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우리가 하는 온갖 일은 바로 정토를 만드는 일입니다. 수행의 차원에서 일이라고 하는 것은 정토건설의 일입니다. 정토건설을 수행으로 삼는 자를 보디사트바, 이것을 보살이라고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차별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것은 이상이고, 현실은 차별을 하나하나 없애가는 것이 괴로움이 줄어드는 쪽으로 갑니다. 소승불교는 수행자가 기본적인 욕구마저도 내려놓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으로 대중에게 희망을 주는 것으로 자기 수행이 철저해야 하고, 대승불교는 여러 사람이 행복으로 가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차별이 적은 쪽으로 가야 합니다. 이것이 개선해 나가는 것이 수행의 한 부분이고 그 일을 수행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사회 즉 정토를 만드는 일이 수행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수행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도 일입니다. 일체 중생을 구제하고 정토를 건설하는 것이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하화중생입니다. 바로 정토회에서 이렇게 환경운동, 평화통일운동을 하고 민주주의가 심화되고 사회적 차별을 철폐 하자는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조금 더 정토에 가깝게 하자는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보살의 행은 바로 상구보리 하화중생으로 일과 수행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토회에서는 일과 수행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온갖 장애가 다 수행이라 보고 정진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가 나아가는 이상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라며 우리가 욕망을 줄이고 다함께 잘 사는 정토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과 수행을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nbsp스님의 마지막 말씀을 끝으로 오전 특별법회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스님께서는 대중에게 다가서서 직접 악수도 하시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체 조용히 법당을 나가시는 분들의 마음속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희망들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오전법회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겸한 손님과의 만남을 가졌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그리고 오후 4시 30분에는 토론토법당 개원법회를 축하하는 영상을 촬영하시고는 저녁법회를 준비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저녁에는 대구에서 하는 스님의 마지막 강의를 듣기 위해 아쉬운 마음으로 240여명의 대중들이 3층 법당에서 함께 했습니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 엄마와 함께 온 듯한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스님의 책 「엄마수업」에 사각사각 연필로 뭔가를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오늘 강연 후에 사인을 해 주신다는 얘기를 듣고 사인 받을 책에 어린아이의 마음을 표시하나 보다 하고 살짜기 들여다봤습니다. 법륜스님 이라고 쓴 글씨 밑에 안경을 쓰시고 가사를 입으신 스님이 서 계십니다. 아이가 부끄러워하며 손으로 그림을 가리네요. 어느새 스님께서는 어린아이들에게도 인지도가 급경사를 그리며 올라가고 있는 듯해 기분이 좋아집니다.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먼저 욕망, 계율, 참회, 관법, 일의 다섯 가지 주제를 큰 나무를 그리시듯 굵직하게 되짚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간결한 내용들을 다섯 번에 걸쳐 알기 쉽도록, 실천하기 쉽도록 전해 주시기 위해 애쓰신 스님께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이 된 후에, 안전 중심, 삶의 질 중심, 환경 보존, 평화 유지, 민주적인 의사 반영, 사회 안전망 구축 이런 요구와 각성이 있어야 세상이 변합니다. 마음가짐과 세상을 바꾸는 것이 따로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를 반성하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정토회 설립 취지대로 새로운 삶을 살자는 정토운동이 이제 국민운동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전법과 수행이 중요합니다.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바른 법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정토회의 뿌리인 용성조사님께서 이루려 애쓰셨던 불교의 지성화와 대중화 불교화가 실현가능해질 수 있습니다.”nbsp“전쟁과 평화, 기아가 만연한 시대와 풍족한 시대를 비교했을 때 언제가 더 나은 시대입니까? 여자라고 차별받고 억압받는 세상이 행복으로 가는데 더 나을까요? 아니면 여자라고 차별 받지 않는 시대가 더 나은가요? 빈부격차가 심한 사회가 나은가요? 아니면 최대한 평등한 사회가 나은가요? 이에 대해 약간의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차별이 없는 사회가 더 나은 사회입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해질 수는 없으나 그 차이가 적으면 적을수록 삶이 좀 더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당시에도 이러한 삶의 조건이 좀 더 개선되도록 한 세상을 정토 즉 청정국토라 불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이렇게 세세하게 하나하나 말씀하실 때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 참으로 우리들을 자비로 가르쳐 주신다는 것을.nbspnbspnbspnbspnbsp “살기 좋은 조건이 잘 갖추어진 세상이라고 사람들이 모두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처럼 사회기반시설과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여도 모두가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보다는 평균적으로 행복도가 높겠지요. 그들이 우리보다 수행을 많이 해서 행복하다기보다 그들이 사는 사회가 우리들보다 좀 더 삶의 조건이 나은 정토세계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정토 세상 만들기와 개인의 수행 두 가지는 병행되어야 합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과 ‘삼계개고 아당인지’ 이 둘이 수레바퀴처럼 짝을 이뤄 부처님의 탄생계에 들어 있습니다. 어떠한 조건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지혜이고, 괴로움에 떠는 중생들을 구하여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자비입니다. 이것이 일과 수행의 통일입니다. 예전에는 선농일치가 바로 일과 수행의 통일이었어요. 앉아 있든, 서 있든, 가든, 오든, 말하든, 침묵하든, 마음이 여일하다면 그것이 바로 선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농사를 지으면서도 마음은 올곧게 가질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외줄을 탈 때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곧장 앞으로만 가면 된다고 이론적으로 말하지만, 실제는 늘 치우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면 내가 이렇게 괴로운 것이 다 세상 탓이라고 하게 됩니다. 반면 주위 조건에 관계없이 행복할 수 있도록 수행해야 한다고 하면 세상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합니다. 줄타기할 때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기울지 말고 앞으로만 가라라고 하는데 말이 쉽지요. 열번 백번해도 균형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연습을 해서 균형을 잡으면 흔들흔들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듯이, 우리는 자기 마음의 번뇌를 보고 세상을 탓하지 않고 자기를 봐야 합니다. 마음의 괴로움과 번뇌가 없는 상태로, 세상을 더 좋게 바꾸도록 노력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 만약 우리나라와 일본이 전쟁을 한다면 우리 정토회는 어떤 입장을 취할까요? 그래도 전쟁에는 반대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우리를 친일세력이라 할 것입니다.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어요?” 웃으면서 말씀하시지만 스님께서 쉬시는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평화가 말이 쉽지 사람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심리가 있기 때문에 평화를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부처님도 남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으셨는데도 때로는 비난을 받으셨어요. 미워하지 말고 책임을 물을 줄 알아야 세상이 정화됩니다. 책임을 묻자는 것은 정토의 일이고, 미워하지 않는 것은 수행의 관점입니다. 미워하지 않아야 내가 힘들지 않잖아요. 우리는 책임을 물을 때는 화를 내며 미워하고, 미워하지 않으면 방관합니다. 이런 극단에서 벗어나야 해요. 우리가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위해서 매를 들 것은 들어야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nbsp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수행하면 되지만 남을 행복하게 하려면 일을 해야 합니다. 부처님 법을 들려주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고 싶다, 그러면 법문을 할 장소가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법회를 알리기 위해 전단지를 돌리고 현수막도 달아야 해요. 그러려면 인쇄할 비용이 있어야 합니다. 때로 수모를 겪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수모를 겪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와서 이 법문을 들으면 얼마나 좋은가를 생각하면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즉문즉설 할 때 정작 질문자는 깨달음을 얻지 못해도, 그 질문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 또는 유투브 동영상으로 본 누군가가 행복해 질 수 있어요.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을 돕자고 하면, 빨갱이들이라고 소리치고 행패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수모를 겪으면서도 이를 통해 북한에 한명이라도 더 어린 아이가 밥을 먹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기뻐하고, 이를 오히려 수행으로 돌이킬 수도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고리원자력발전소를 잠깐 언급하시며 우리들이 안전을 중시할 것인지 경제적 효율을 더 앞세울 것인지 가치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구환경을 보존하고 파괴적인 개발행위를 멈추고 보존 가능한 개발을 하며 지구 저편의 굶는 아이들을 돌아보고 전쟁의 위험을 종식시키기 위해 통일을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부처님과 스님의 제자인 우리들은 참으로 할 일이 많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 “잘하려고 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갈등이 생기면 일은 더 안됩니다. 갈등이 생길 때 자기를 돌이켜서 수행을 하면 일이 더 잘됩니다. 수행자는 늘 갈등을 극복해 나가면서 일을 잘하게 되는 쪽으로 갑니다. 산 속에서 가만히 혼자 있으면서 일도 안하고 갈등이 안 생긴다고 수행자가 아니예요. 길을 갈 때도 약간 멀고, 오르막이라야 운동이 되듯이 일을 할 때 약간 어려워야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모르고 틀리는 것이 있어야 발전이 있다는 말입니다. 일 안하고 갈등이 안생기고 조용히 있다고 수행이 아닙니다. 일을 해야만 수행이 됩니다. 우리 모두는 다 서툴지만 수행적 관점만 놓치지 않는다면 점점 나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를 해야 하는데 보시와 봉사가 일입니다. 정토회는 거의 봉사로 유지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부처님이 그런 힘든 길을 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을 살기가 훨씬 쉬워졌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을 미안해하고 고마운 줄 알아야 합니다. 수행을 할 때 꾹꾹 참아 분노로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미움이 아닌 연민을 가지고 상황을 개선시키고, 세상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꾸준히 정토행자들이 수행을 하셔서 보디사트바의 길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nbsp 스님께서는 이렇게 대구에서의 특별법회를 끝 맺었습니다. 여섯 번의 스님 강의를 편하게 앉아서 듣는 동안 아침 저녁으로 봉사하신 분들의 수고로움이 곱절로 크게 다가왔습니다. 일하시며 수행하셨을 그분들이 계셨기에 강의를 들은 많은 분들이 행복과 자유라는 단어와 더 가까워졌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그 가운데에 언제나 우리들을 바른 길로 이끄시는 스님이 계십니다.nbspnbspnbspnbspnbsp 음력 5월 8일 , 양력으로 6월 5일. 독립운동과 불교개혁운동을 하셨고 이제 그 정신을 계승해야 할 우리의 뿌리 용성조사 150주년 탄생기념식. 스님을 다시 뵐 그 날을 기다립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오늘 법회를 마치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용성조사 탄생 15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있는 날입니다.

2014.05.30. 17,256 읽음 댓글 8개

2014.5.27. 백운산 산행

오늘 새벽 2시경에 두북에 도착해서 스님께서는 어제 점검하지 못한 원고를 점검하시고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새벽부터 상추, 쑥갓등 채소를 솎거나, 마당 가득한 잡초를 제거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nbsp 점심 공양을 한 후에는 백운산으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백운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시원하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기도 하고 가는 길 곳곳에 피어있는 찔레꽃을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nbsp nbsp 65279nbsp 아직 이르긴 하지만 산딸기도 보였습니다. 아직 맛이 덜 들긴 했지만, 상큼한 맛이 좋았습니다. nbsp nbsp nbsp 백운산 둘레길을 돌아 내려오면서 탑곡 수련장을 들렀습니다. 탑곡 수련장에는 고추와 배추, 야콘등이 심겨져 있었습니다. 그제 문경에서는 비가 왔었는데, 이곳은 그동안 비가 오지 않았는지 많이 가물어 있었습니다. nbsp 탑곡수련장의 뽕나무에는 오디가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맛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버찌도 조금씩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nbsp nbsp nbsp 이렇게 작물들을 보면 여름이 오고 있구나를 느끼게 됩니다. nbsp 탑곡수련장을 나와서 가메들 계곡을 걸었습니다. 가메들 계곡물도 많이 말라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다니던 중에 보기 드물게 말라 있었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보통때보다는 조금 더 천천히 걸으시면서 산책을 했습니다. 그동안 몸이 좋지 않아서 약간의 시간이라도 생기면 스님께서는 채소를 가꾸거나 산책이나 산행을 하셨습니다. nbsp nbsp nbsp 오늘도 산행을 하면서 피로를 풀었습니다. nbsp 산에서 내려와서 저녁을 먹고 난 후 스님께서는 오늘은 일찍 휴식을 취하셨습니다.nbsp nbsp 65279nbsp 내일은 대구법당에서 수행관 제 5, 6강이 있습니다.

2014.05.28. 15,918 읽음 댓글 18개

2014.5.26. 순천, 전주 강연 그리고 팽목항 방문

스님께서는 새벽 5시에 문경정토수련원에서 순천 강연장으로 출발하셨습니다. 일찍 출발해서인지 강연 시작전에 여유있게 도착했습니다. nbsp 월요일 오전에 진행되는nbspnbsp강연인데다 전 날 비까지 많이 와서 혹시 빈 자리가 많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강연 시작 1시간 반 전부터 입장하기 시작하여 1시간 만에 모든 자리가 들어차고 또 바닥에 앉아서 듣는 분들까지 약 65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nbsp 이번 순천강연은 순천시 문화건강센터에서 열렸는데 작년까지는 법당이 없었기 때문에nbspnbsp타 지역의 봉사자분들께서 도움을 많이 주셨는데 이제 순천에도 법당이 생겨 조금씩 역량이 늘어감에 모두들 뿌듯해 하였고, 이 모두가 법륜스님의 땀방울 덕분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nbsp 스님께서는 앞으로 다시는 이런 세월호 사고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다짐이 있어야 희생자들이 영면하지 않겠냐하시면서 관객들과 함께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기도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nbspnbsp 스님께서는 어느 학생의 인터넷 댓글을 소개해 주시면서 본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nbsp “아이들이 죽어갈 때 해경은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부처님도, 하느님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nbsp 이에 스님께서는 우리가 예기치 못한, 원하지 않았던, 상상도 못한 엄청난 일이 일어났을 때 그 댓글처럼 무척 당황한 나머지 기존 믿음에 대한 회의를 가진다고 하셨습니다.nbspnbsp오늘 질문자 중에서도 열심히 절에 다니며 믿고 기도했었는데 여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한 후 3년 동안 고생하다 결국 죽었다며 실망이 너무 커서 잠시 절에 안 다녀도 부처님한테 벌을 안 받겠느냐는 질문을 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에 스님은 ‘무엇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비는 것은 여타 종교와 다를 바 없는 종교로서의nbspnbsp불교이고, ‘무엇이 일어나도 그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평정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수행으로서의 불교라며 우리는 후자를 우선시 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원하는대로 인생이 된다면 수행을 한 사람이나 수행하지 않는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지만 갑자기 큰 일을 당한다던지, 이렇게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큰 차이가 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nbsp 오늘 즉문즉설에서는 유난히 젊은 사람들의 질문이 많았습니다. 모델을 하려는데 엄마가 허황된 꿈을 꾸지 말라며 몸 만드는데 필요한 헬스클럽 갈 돈을 주지 않아 걱정이라는 고3 남학생, 전직이 직업군인이었는데 가족과 같이 하는 시간이nbspnbsp너무 없어 소방공무원으로 전직해서 지금은 만족하고 살고는 있지만 마냥 이렇게 행복해 해도 될까하는 두려움도 있고 또 승진 등 또 뭔가를 더 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는 30대 가장, 왜 사람들은 특정직업 몇 개에만 몰릴까를 궁금해 하는 1년차 취업준비생, 절에 열심히 다녔는데 잠깐 안 다녀도 될까요 하는 60대 여성분, 스님 말씀을 듣고 보니 손절매를 해서라도 이제는 결혼을 해야겠는데 결혼상대로서 결혼을 해서는 안될 여자는 어떤 여자인지 묻는 33세 남자 직장인, 연애할 때 너무 진지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어 고민이라는 24세 대학생 등이 스님에게 가르침을 청하였습니다. nbsp 그 중에서 스님의 일화를 섞어 가며 대답해 주신 첫 번 째 질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즉문즉설이 대화로 나누어지는 형식이기 때문에 이에 맞춰 소개하겠습니다. nbsp nbsp nbsp 질문자 제가 모델을 하려고 하는데 엄마가 허황된 꿈을 꾸지 말라고 해요. 스님nbspnbsp 지금 몇 살이예요? 질문자 고3, 19살이예요. 스님nbspnbsp 고3이면 연기 관련한 대학을 가겠다는 건데 왜 허황된 꿈이라고 하는 거예요? 질문자 그러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안될 꺼라고 말씀을 하세요. 스님nbspnbsp 지금 성적과 실력으로 가고 싶은 학교에nbspnbsp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질문자 네. 근데 엄마는 하지 말래요. 그냥 공부하래요. 스님nbspnbsp 아니, 엄마한테 얘기할 것 뭐 있어요? 그냥 본인이 원서 내면 되지. 뭐가 문제예요? 질문자 그게 확실하게 붙을려면 몸을 좀 만들어야 하는데 엄마가 헬스클럽을 안 끊어줘요. 스님 고3이 공부는 안하고 헬스장을 다니겠다니깐 엄마가 보기에는 이상하지. 그러면 헬스장 다니는데 얼마나 들어요? 질문자 nbspnbsp...... 스님nbspnbsp 아니 그것도 안 알아봤어요? 질문자 이제 알아봐야죠 스님 그럼 어머니는 가능성이 없어서 반대하는 것 같은데 혹시 선생님이나 다른분한테 가서 가능성이 있는지 물어봤어요? 질문자 친구들한테 말했는데 못생겨서 안된대요. 스님 평범한 모델도 있고 못생긴 모델도 있어요. 그건 문제가 안되요. 질문자 근데 엄마가 헬스장을 안보내줘서... 한 번 찔러 보는 거 말고 도전해보고 싶어요. 스님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하는 마음으로 하면 성공할 확률이 없어요. 무언가를 이루려면 굉장히 집요해야 되는데 엄마에게 자기의 비젼을 정확히 얘기해서 설득을 하든지, 지금이라도 잠 적게 자고 아르바이트 해서 돈을 모아 헬스장을 다니든지 하는게 자기 꿈을 향한 첫걸음이예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혼자 자취를 할 때, 추운 겨울에도 연탄불을 넉넉히 땔 수 없어 연탄 2장 가지고 3일 버티는데 윗목은 물이 얼도록 춥고nbspnbsp아랫목만 겨우 따뜻한 거예요. 그래 추우니까 아랫목에 발을 넣고 엎드려서 공부를 하게 되는데 그렇게 공부를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잠이 들기 일쑤였어요. 그래서 어느 날 벽에다가 종이 한 장을 붙여놨어요. ‘내 꿈을 달성하는 길은 지금 이불 밑에 발을 넣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결심을 해야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것들이 쌓여서 꿈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질문자 알겠습니다. nbspnbsp스님 요즘 젊은이들 상담해보면 거의 대부분이 꿈이 뭔지 몰라 고민이라 해요. 뭐가 꼭 되고 싶다는 학생은 열에 한 명도 안되요. 그게 정상이예요. 모든 애들 보고 꿈을 가져라고 가르치는데 그것 역시 문제예요. 꼭 하고 싶은게 있는 사람은 그것 하나 밖에 못하지만 딱히 하고 싶은게 없는 사람은 아무거나 하면 되요. 저 같은 경우는 원래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근데 학교 옆에 있는 절에 갔다가 반강제로 스님이 됐어요, 처음에는 싫었지만 이것도 오래하고 보니깐 괜찮아요. nbsp nbsp 나이 어린 학생의 질문이었지만, 사회가 다원화, 다양화되어지고 평생 수명도 늘어남에 따라 이전에는 학교교육 만으로도 자기 꿈을 이루고 밥벌이를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살면서 언제든지 부딪힐 수 있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를 상황 탓을 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무엇보다 그 꿈이 우리에게 정말 얼마나 간절한 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한 번 그것을 이루겠다고 마음을 먹으면nbspnbsp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야 된다는 뜻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덧붙여, 스스로의 노력없이 막연한 꿈을 가지는 것은 아이가 반성할 일이지만 나름대로의 꿈을 가진 아이들은 일반적인 견해로 반대하는 것은 부모의 편견에 의한 ‘집착’이라 하셨습니다. nbsp 10시 30분에 시작한 강의는 거의 1시까지 진행되었습니다. 매우 긴 시간이고 점심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참석자분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스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들었습니다. 순천법당 불대생들은 지난 주말에 문경에 특강수련 다녀왔는데,nbspnbsp어제 오전에 3시간 넘게 법문을 하실 때에 자세 한 번 흩트리지 않고 시간을 넘기는 것도 모르고 하나라도 더 깨우쳐주시려는 모습을 보고 정말 감동이었는데 오늘 하루만에 다시 순천에서 스님을 뵈니 젊은 사람 보다 더 열정적으로 사시는 스님의 모습이 마치 우리에게 더 열심히 게으름 피우지 말라고 몸소 보여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nbsp 강연이 끝나후 자원 봉사자들과 사진 촬영을 하면서 스님 옆모습을 살짝 훔쳐보니 2시간 반 동안의 강연으로 인해 입이 좀 말라nbspnbsp보여서 마음 한 켠이 찡하였지만 스님의 맑은 눈빛은 저희들을 너끈히 품어주셨습니다. nbsp 순천 강연을 마치자마자 전주 강연장으로 가기전에 스님께서는 팽목항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지난번에 안산에 마련된 빈소에 조문을 다녀왔지만, 팽목항에는 일정이 여의치 않아서 오늘에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nbsp 팽목항에는 유애경 보살님이 지난주부터 오셔서 함께 지내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팽목항 법당에 들러 기도를 하고 그동안 계속 기도하고 계셨던 스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듣기도 했습니다. 6월 3일 49재가 끝나면 아마도 다들 철수할텐데 마무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재가자라도 괜찮다면 49재 이후에 정토회도 함께 기도하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nbsp 팽목항 법당을 나와서 사건이 일어난 직후부터 기도를 하고 있던 약사회 불자회에서 만든 천막에도 들러 참배를 하고 오셨습니다. nbsp 팽목항에서 마주하게 된 바다는 불의의 사고로 희생된 분들의 안타까움이 더 진하게 와닿는 또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이번 사고로 희생된 모든 분들이 극락왕생하기를 빌어봅니다. nbsp 다음 전주 강연 때문에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서 스님께서는 참배를 마친 후 바로 전주로 이동하셨습니다. 오늘은 새벽부터 저녁 강연까지 조금의 시간도 없어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신 채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nbsp 오늘 전주 강연을 위해 강연장을 섭회할 때 선거와 맞물리면서 장소를 구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렸습니다. 다른 지역은 장소가 섭외되었는데 전주만 장소가 정해지 않아 불안해하는 와중에 전북대 불교학생회와 공동 주체를 하게 되면서 전북대 학술문화관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nbsp 전북 최고의 지성이 모인 전북대 내에 위치한 학술문화관에서 행사가 진행되어선지 강연장은 젊은 분위기가 감도는 듯 했습니다. nbsp 아름다운 5월의 싱그러움과 젊음이 어울러진 대학캠퍼스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그림이었습니다. 일반 봉사자들은 스님을 뵙는다는 설레임을 지니고, 행사 관계자들은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되면서 약간의 긴장감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nbsp 강연시작 10분전쯤 스님의 차량이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여전히 가벼운 걸음으로 전주에 발을 내딪으시고 저희 모두는 감사의 마음으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nbsp nbspnbsp nbsp 스님께서는 오전에 순천강연이 있었고 전주로 오기전에 팽목항에 들러서 기도를 하고 오시느라 서둘러서 점심과 저녁 끼니도 거르시고 강연회를 진행하시게 된 과정을 설명하시면서 사람이 살면서 이런저런 일들이 생기는데, 싫고 좋음에 나를 맡기지 말고 안좋은 상황도 이로 인해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긍정의 논리로 전환할 때 우리의 삶은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음을 피력해주셨습니다. nbsp “이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한탄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기도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성인의 가르침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행복해 질 수 있음을 깨우쳐 주시고 그 방법을 제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nbsp 문제의 전모를 보면서 통찰력을 길러내고 지혜를 길러 진리에 접근했을 때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nbsp 이렇게 서두 강연을 하시고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강연은 총 8분의 질문자가 자신의 문제를 내놓고 명쾌한 스님의 답변이 이어졌습니다.nbsp바꿀수 없는 운명이란 것이 있는가? 운명적인 인연이란 존재하는 것인가? 스님의 통일관에 공감하며 함께 하려는 마음에서 JTS후원에 동참하고 있는데 결산을 보니 북한사업이 제대로 안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되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이 나만 소외시키고 있는데 내게 액운이 많아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인지,nbsp佛家와 佛敎의 차이에 대한 궁금증,nbspnbsp미숙아로 태어나 자라면서 부족한 내 모습을 감추기 위해 새 옷과 구두를 사고 내가 낳은 아이도 나를 원망할 것 같은 마음에 늘 열등감에 힘겨워하는 질문자등이 질문을 하였고 스님께서는 질문자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면서 문제의 핵심에서 멀어져 상황을 직시하지 못함을 깨닫게 해주시고 그 문제의 답을 스스로 알게끔 눈과 귀를 열어 주었습니다. nbsp nbsp 자식의 문제로 힘겨워하는 마지막 질문자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nbsp “6살 아들을 갖고 있는 아빠인데 아들이 자폐증상이 있어서 2년 반 정도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다 자폐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이해하는 게 좀 부족합니다. 제 욕심으로 일반학교에 보내고 싶습니다. 어떤 믿음을 가지고 행동을 해야할지요?” nbsp 이에 대해 스님께서는 먼저 아이 엄마의 상황이 어떠한지 먼저 체크 하셨습니다. nbsp “아이를 가졌을 때 부인의 마음상황은 어떠했나요?” “처음은 많이 싸웠지만 지금은 사랑하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nbsp 그리고 문제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 nbsp “부인이 힘들었을 때 아픈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해서 아이에게 이런 증상이 생긴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의 장애를 정상인처럼 만들려고 할수록 아이는 더 열등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많은 것이 부족해도 칭찬하고 80만 해도 잘한다고 칭찬해야 합니다. 그 아이의 현재 수준에 맞게 요구해야 합니다. 아이를 정상아 속에 보낼 때는 거기에서 파생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아빠가 각오를 하고 받아들이되 아이를 나무래서는 안됩니다. 아이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조금만 부족해도 놀리게 됩니다. 어리석은 아이들의 놀림도 이겨내야만 정상아가 됩니다. 힘겨운 과정을 아빠와 아이가 함께 겪어 나가면 아이는 좌절하지 않고 추억으로 기억하게 됩니다. nbsp 아빠가 분노하고 한탄을 하면 안됩니다. 1000번을 넘어져도 1001번째 일으켜 세운다는 인내심이 있을 때 아이는 정상아가 될 수 있습니다. 아빠만 준비되면 그 아이는 그 아이의 상태로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과정은 아빠와 함께 이겨내어야만 합니다. 아이를 죄의 과보로 생각하면 열등감이 생겨나게 됩니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아이에게 맞는 요구로 삶의 희망을 주고 그것을 지켜봐주고 함께 해야 합니다. nbsp 기도하면서 생활해야 합니다. 내가 이런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한 마음이 들어야 이러한 아이를 지켜봐 줄 인내가 생기게 됩니다. 아이를 키우는 걸 힘들어하면 안됩니다. 일이 힘들면 아이와 분담하면서 즐겁게 지내면 아이는 이런 것들을 추억으로 기억하게 됩니다. nbsp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어주게 되면 아이는 열등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와의 관계는 가벼워야 합니다. 그 아이의 수준에 맞추어 함께 한다면 그 아이는 바르게 성장할 것입니다. 자식을 짐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있는 그대로 지켜봐주세요.” nbsp nbsp nbsp 무거웠던 아버지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을 것 같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방향이 보였을 것 같습니다. 모든 질문자의 질문에 너무도 가볍게 응대해주셔서 대중은 가벼움 속에서 깊은 혜안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nbsp 바쁜 일정속에서 끼니를 거르시면서도 에너지 넘치게 답하시는 모습에 존경을 표합니다. nbsp 순천 강연과 팽목항, 전주 강연의 강행군 에서도 행복을 놓치시지 않는 스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행복의 의미와 자세를 되새기고 그간 반복되는 푸념과 내 아집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nbsp 법당이 생기고 불교대에서 공부하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서로 모르는 얼굴들이 많았습니다. 지금껏 강연회에 도움을 주신 인연들과 다른 요일과 시간에 공부하시는 모든 도반이 모여 함께 봉사하고 스님과 함께 하나되는 인연을 지어주심에 감사드렸습니다. nbsp 전주에서 행사를 진행하지만 정읍, 군산, 익산, 진안, 장수, 김제, 남원에서 함께 오셔서 강연회 교향곡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번 전주 강연은 봉사자 45명을 포함해서 600분이 모여 진정한 행복의 길을 찾아보았습니다. 봉사자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많은 인원이 함께하니 서로가 가볍고 행복한 얼굴이었습니다. 오늘 스님의 말씀이 오랫동안 가슴에 울리기를 바래봅니다. nbsp nbsp 스님께서는 전주 강연을 마치고 경주로 오시는 길에 늦은 시간이었지만 장수 죽림정사를 들러서 6월 5일 용성조사 탄생 150주년 기념식이 진행될 장소를 둘러보면서 어떻게 자리를 마련할 것인지를 고민하셨습니다. 깊은 밤이었지만 죽림정사 경내와 건너 물공원, 사찰주변을 둘러보면서 대중이 앉을 자리, 식사자리, 이동식 화장실 놓을 자리들이 사용하기에 적절한지 등을 세세히 살피셨습니다. nbsp 장수 죽림정사를 떠나 두북 수련원에 돌아오니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어 오늘은 21시간동안 활동하셨고 이동거리도 1000km가 넘었습니다. nbsp 이 글은 조경혜, 김성은님이 정리해 주셨습니다.

2014.05.28. 18,180 읽음 댓글 14개

2014.5.25. 정토불교대 특강수련

325명의 봄불대 학생과 스텝 25명이 참석한 가운데 스님께서는 불교대 특강 즉문즉설을 진행하셨습니다. 스님께서 간단히 인사를 하자 참석하신 분들은 박수로 응답하면서 스님을 맞이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수행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불편하거나,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거나, 미움이 일어날 때 그것의 원인을 밖으로 찾으며 남 탓 하지 않고, 안으로 돌이키면 내 공부로 삼는 것입니다.nbspnbsp아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식으로 아는 것이 지식이고, 혜로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초등학교만 나오면 지식, 앎음알이가 부족하고, 외국 유학하고 온 박사인데도 남의 얘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지식은 많은데 지혜가 부족한 것입니다. 지혜가 부족하고 모자랄 때 괴로움이 생깁니다. 지혜가 있고 지식이 적은 사람은 노력을 많이 해야 되지만 괴롭지는 않습니다. 괴로운 것은 무지하고 어리석어서 그렇습니다. 지혜가 부족한 것입니다. nbspnbsp어제 저녁에 불편해서 잠을 못 잔 사람이 이곳 장소나 시설을 불평불만하게 되면 지혜가 없는 사람이고 나의 습관 때문임을 알아차리게 되면 지혜가 있는 사람입니다.nbspnbsp원인을 밖으로 찾으면 누군가를 원망하게 됩니다. 불편함이 짜증과 미움을 가져와 괴로움이 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정토불교대학은 지혜를 쌓기 위해서 다닙니다. 스님이 한국의 보통 말을 쓰는데도 너무 어려워서 못 알아듣는다면 지식이 부족한 것이고, 계속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 했던 말 또 하고, 물었던 것 또 묻고 하는 것은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nbspnbspnbspnbspnbsp 깨달음을 얻을 때 지혜가 증득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뭔가를 깨달아 나가면 그게 바로 지혜입니다. 불교대 교과과정이 지식도 쌓고 지혜도 터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고 하시며 정토불교대의 목적, 불교대 교육과정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불교대학은 즉문즉설보다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왜 그런가 하면 첫째, 불교용어를 쓰니까 어렵다고 느낍니다. 이것은 지식을 쌓는것이니 배워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둘째, 재미가 없다고 합니다. 즉문즉설보다는 재미가 없는 게 사실입니다. 즉문즉설은 생활의 문제로 얘기하니까 귀에 쏙쏙 들어오는 편인데, 불교대는 지혜에 대한 전반적 이야기로 구체성이 떨어지니 재미가 적다는 것을 감안하고 다녀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다른 불교대 보다는 지혜의 측면을 더 많이 다루고 있지만 지혜에 대한 원리를 설명하다 보니 지식적으로도 많이 공부해야 합니다. 교과과정에 여러 가지가 들어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은 강의를 듣는 것은 전체 교과과정의 3분의 1 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학교교육처럼 지식 습득이 목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해가 생깁니다. 지식 습득만 목표라면 인터넷 강의로 하면 됩니다. 정토 불교대학은 지식전달이 목표가 아닙니다. 지혜를 증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봉사, 특강, 깨장을 갔다 오라고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지혜증득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지식은 머리로 이해해서 받아들이는 것이고, 지혜는 마음으로 가슴에서 증득하는 것이기에 행동이 가능합니다.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도 꼭 필요합니다만 마음으로 증득하여야 실행이 됩니다. 지행합일이 되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법문을 듣고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나누기입니다.nbspnbsp청년회는 나누기 안하면 출석체크가 안됩니다. 자기의 생각을 나누는 것은 지식을 심화시키는 과정이지만 마음을 나누는 것은 그 법문을 듣고 마음에 느껴지는 것이 어떤 것이냐이기 때문에 지혜를 쌓아가는 것입니다. 지식은 길고 말이 많지만, 느낌은 말이 많을 필요가 없습니다. 말이 길면 생각나누기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마음나누기가 잘 안 됩니다. 자기 속마음을 내놓는 게 잘 안 되는 것은 잘몰라서 못 내놓기도 하지만, 우리는 알아도 내어놓으면 안된다고 길러져서 그렇기도 합니다.nbsp‘오늘 스님 법문 길어서 조금 짜증나더라.’ 하는 것이 마음나누기입니다. 마음 나누기는 자칫 잘못하면 남을 탓하는 것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나누기를 하면서 남을 탓하는 마음을 가져도 안되고, 듣는 사람도 그렇게 들어도 안 됩니다. 스님법문이 길어서 지루했다고 하면 누가 고쳐야하나요? 스님이 고쳐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내어놓고 알아차리는 것을 공부하면서 법문을 소재로 마음알아 차리기를 연습하는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 그 다음 특강 수련을 다녀와야 합니다. 늘 듣기만 하다가 직접 해보는 것입니다. 아는 것과 실제는 다릅니다. 직접 해보면서 안하던 것을 해보니 힘이 드는데 3일째 저항이 제일 셉니다.nbspnbsp문경 갔더니 화장실도 냄새나고 절하려니 다리도 아프고, 새벽 일찍 일어나니 힘들고 밥 먹을 때 고기도 없고등등 여러 가지로 힘이 들어서 다시는 문경에 가고 싶지않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즉문즉설 들을 때는 좋았는데 ‘정토불교대학은 불편하다, 문경 오니까 완전히 힘들다, 아 이것도 종교집단이네.’ 이렇게 밖을 탓하면 실망이 크고 안으로 살피면서 ‘아 내가 너무 편하게 살았구나. 환경실천을 하려면 약간 불편한 것을 감수해야겠구나.’라고 배우게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절을 한다든지, 예불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문화에 속합니다. ‘불교는 이런 식으로 하고 있구나’라며 다른 문화를 배우는 것입니다. nbsp마음은 어디에 뿌리에 두고 있냐면 습관입니다. 습관이 업식입니다. 이런 이치를 알고, 나의 마음은 다 업식으로부터 일어난다더니...하면서 자기화 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다 공부거리입니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도 힘들듯이 자기습관을 알아차리는 것도 어려운줄 알아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자원봉사는 자기실현입니다. 방석도 깔고, 영상을 틀고, 청소하고, 목탁 치고, 설거지 하는 것등은 돈 받고 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전문성이 떨어져요. 뭔가 서투르고 돌파리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모든 일을 봉사자가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준비하는 정성은 더 깊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돈을 내고 불교대학을 다닌다 해도 봉사를 해야 합니다. 봉사를 20시간도 못 하면 다닐 자격이 없습니다. 미래 사회로 가면 봉사시간이 많아지고 보시액이 자기 월급에 비해서 얼마나 많아집니다. 자유인으로 자기실현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가 선진사회의 기준이 되고 모두가 보살이 되면 성숙한 사회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불대생이라면 깨달음의 장을 다녀와야 합니다.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면 깨달음의 장 다녀오는 것이 입사 조건이 되는 곳도 있게 됩니다. 사원이 되면 깨달음의 장을 의무적으로 보내는 곳도 있고, 시민단체 사람을 계속 보내는 분도 있습니다. 며느리, 사위 볼 때 깨달음의 장을 갔다 와야 한다는 조건만을nbspnbsp내는 사람들도 있고, 아이를 낳으면 3년간 아이를 키운다는 조건을 내거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삶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깨달음의 장을 대중화하는 것입니다. 빈그릇 운동이 환경부에서 하는 운동으로 전환이 됐습니다. 이처럼 부처님의 말씀이 보편적으로 세상에서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9.11이후 미국의 의식이 바뀌었듯이 세월호 사건 이후로 대한민국도 바뀌어야 합니다. 불교대학을 다닌 여러분이 10년 20년 후면 선각자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불교대를 선착순으로 받지만, 몇 년후는 들어가기 힘들거에요. 자발적으로 공부하세요.” 라며 불교대에서 해야 하는 수행, 보시, 봉사에 대해서도 정리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불교대에 다니면서 생기는 어려운 점들을 상세하게 짚어주며 끝까지 공부해서 불대를 졸업하라 당부를 하시면서 즉문즉설 질문자의 질문지를 읽고 재미있게 답변을 해 주셨습니다.nbsp무의식을 다스리고 싶다는 분, 다단계에 대한 스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하는 분, 부처님 법문을 듣고 있으면 될듯한데 실제에서는 잘 안된다고 하는 질문, 부처님 전생담에서 매와 비둘기를 위해 자기 살을 베어 주셨다는 이야기에서 부처님은nbspnbsp전지전능했습니까라는 질문, 인생이 고락의 반복이 맞는가요라는 질문, 나를 내려놓을 때와 고집할 때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묻는 질문, 아들에 대한 강박증이 있다는 질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고 잘하려는 마음이 크다는 질문, 세월호 사고로 불행을 겪은 사람은 전생의 과보로 그런것인가 하는 질문등이 있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즐겁게 스님의 법문을 듣는 가운데 집중을 하다보니 시간이 3시간 20분을 넘어가고 스님께서는 어제 경주 순례를 하고 오신 후 피곤하신데도 남은 질문지 2개를 끝까지 답변 못해 준 것에 미안해 하시면서 마무리를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불교대 특강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불교대 학생들을 위한 격려 영상을 대웅전 앞에서 촬영한 후 오늘은 문경 정토수련원 명상원에서 보내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순천, 전주 강연이 있습니다.

2014.05.27. 17,535 읽음 댓글 9개

2014.5.24.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여성리더십아카데미 경주역사기행

nbsp오늘 새벽 2시 가까이 되어 경주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아침 일찍부터 낫과 호미를 들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풀을 뽑기도 하고, 가지가 늘어진 것은 가지치기를 하기도 하며, 이곳저곳을 정비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후 12시 30분부터는 평화재단의 평화리더십 아카데미와 여성리더십 아카데미의 경주 워크샵이 진행되었습니다. 법륜스님과의 경주 일정 첫 번째 장소는 법흥왕릉이었습니다. 구부러진 오솔길을 5분정도 걸어 법흥왕릉에 도착했고 법륜스님은 신라역사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신라는 우리 민족사에서 주류라기보다는 변방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신라가 어떻게 삼국을 통일하고 우리 민족사의 주류로 발돋움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신라가 가야와 합의통일을 하면서 가야의 우수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가야의 귀족을 신라의 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신라는 통합의 시너지 효과로 강성해졌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수강생들에게, 신라가 가야와의 통일을 현재 남한과 북한의 상황에 빗대어 설명해 주셨고 수강생들은 신라의 통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되새기는 듯 한 표정들이었습니다.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하는 등 개혁과 개방정책을 폄으로써 나라를 발전시켜 고대 국가로서의 모양새를 갖추는데 큰 공헌을 한 왕입니다. 신라는 모범적인 지도자들이 있었고 왕권이 안정되어 국론을 통일하는데 용이했습니다. 또, 그 당시 국제정세가 신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갔지요. 우리가 신라의 통일에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점은 가야와의 통합에서 보여준 그 시너지 효과입니다. 상대의 훌륭한 인재를 수용하고, 문명을 받아들이고, 이것이 신라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스님은 신라의 통일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강조하시며, 수강생들과 함께 법흥왕릉을 떠나 무열왕릉으로 이동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태종무열왕릉 입구에는 태종무열왕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이 때 경주의 온도는 32도에 달하며, 수강생들 이마에 맺힌 땀이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거렸습니다. 그러나 스님의 흥미로운 역사이야기에 모두들 지친기색도 없었습니다. “668년 고구려가 내분과 나당연합군과의 전쟁에 패해서 멸망하자, 당나라는 고구려 영토중 대동강 이남 땅을 신라에 주기로 약속했지만, 오히려 안동도호부와 9개의 도독부를 설치하고 고구려를 직할 관리했습니다. 이는 마치, 미국의 도움으로 남북이 북한을 멸망시키자 남북이 통일이 될 줄 알았는데, 미군이 북에 미군정을 실시하며 미국이 직접 관리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 것이지요. 신라는 그런 상황에서 당나라와 전쟁을 벌였고 무려 8년이나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신라는 대당 전쟁에서 당나라의 침공을 막아내고 676년에 당나라와 화친하면서 대동강 이남땅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nbsp그 때 만약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을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수강생의 질문이 있었고 스님의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5세기경에 할 수 있었고 고구려는 중원을 점령하거나 아예 고구려가 없어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신라가 통일을 함으로 인해서 영토가 지금의 한반도에 국한되었다는 것이 한계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반면 통일의 주체가 신라였기 때문에 중국에게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아 민족의 고유성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어떻게 평가하고 어느 면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장점과 단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스님은 태종무열왕릉 뒤에 있는, 고분군에서 수강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계속되는 더위에도 스님께서는 빠른 걸음으로 수강생들은 인솔하셨습니다. 다음 장소는 김유신장군묘 였습니다. 스님은 수강생들을 그늘에 앉히시고 지팡이를 손에 쥐신 채 김유신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김유신은 신라에서 최고의 장군으로 추대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신라 하대에 가서는 흥무왕이라고 추존 될 정도였습니다. 김유신은 신격화된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유신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애인 천관을 외면해서 천관을 죽게 만들었던 것을 보면 한 여인의 좋은 아들이었던 것은 같은데, 한 여인의 좋은 남자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도 그런 사람들 있는 것 같은데..” 스님의 말에 수강생들이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수강생들과 함께 왕릉보다 화려한 김유신장군 묘와 그를 받치고 있는 12지신이 새겨진 돌들을 한바퀴 둘러보았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사천왕사지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사천왕사지는 신라에서 신성스럽게 여겨지던 낭산의 중턱에 위치해 있는데, 이는 낭산을 수미산이라 여기고 도리천과 인간세계의 중간계에 있는 사천왕들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사천왕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세운 호국사찰입니다. 문무왕때 당나라가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접하자, 왕은 이 사찰을 지었고 명랑법사가 유가승 12명과 함께 문두루 비법을 행하니 바다에 폭풍이 일어 당나라 군대가 모두 수장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저 뒤에 가면 12지신을 모시고 문두루비법을 행했던 터가 남아있어서, 그 비법을 행한 것은 설이 아니라 실제였구나 확인이 되었죠. 그런데 그때가 78월인데, 우리나라에 태풍이 많이 일어나는 계절이지요.” nbsp논리적이고 명쾌한 스님의 설명에, 오래된 옛날이야기도 사실적으로 다가와 황량한 절터가 실감나게 느껴졌습니다. “저 뒤에 보면 산이 보이죠? 저게 낭산인데 저기에 선덕여왕릉이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일제시대때 일본이 우리나라의 지맥을 끊는다고 쇠말뚝 같은거 박았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어요? 사천왕사지와 낭산이 연결되어 있는데, 여기에다가 철길을 만들어 놨어요. 철길을 우연히 여기에 만든건지, 일부러 지맥을 끊으려고 만든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사천왕사지에는 거북이 두 마리가 있는데, 하나는 문무왕의 공덕을 기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천왕사의 공적을 기리는 거북이 인데 두 마리 모두 목이 잘려져 있었습니다. 이 역시도 일제강점기의 흔적이라는 설명에 수강생들은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고, 나라독립의 중요성을 새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일제강점기의 흔적인 철길을 지나 산으로 올라가니 산 위에 안락하게 자리 잡은 선덕여왕릉이 보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왕릉 앞에 도착하신 후 한숨 돌리시고 곧이어 설명을 이어가셨습니다. “선덕여왕이 행했다는 신비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선덕여왕이 즉위 한 후 당 태종이 꽃씨와 꽃그림을 선물로 보냈다고 합니다. 이를 받은 선덕여왕이 ‘이 꽃은 향기가 없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씨를 심어 꽃이 피고 보니 정말로 향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신하가 어떻게 그걸 아셨냐고 물으니 ‘그 그림에는 나비가 없더라’라고 말했습니다.”nbsp 얼마전 한 사극드라마에서 보여진 선덕여왕은 실제의 선덕여왕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분황사, 영묘사, 첨성대, 황룡사 9층 목탑등 선덕여왕 시대에 완성된 많은 문화유산들이, 그녀가 역사적으로 재조명될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낭산을 내려오는 길에는 문무왕을 화장한 자리에 탑을 세웠다는 능지탑을 만나, 죽어서라도 나라를 지키려고 했던 문무왕의 호국정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법륜스님과 수강생들은 마지막 장소인 황룡사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황룡사지에는 한참 모내기를 하시는 마을 농민분들도 보입니다. 황룡사지는 생각보다 규모가 상당했습니다. 목조 건축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황룡사지는 몽고가 쳐들어왔을 때 완전히 소실되었는데, 우리나라에 큰 규모 사찰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몽고란, 임진왜란, 6·25 전쟁때 타서 모두 소실되었다는 스님에 말씀에 모두들 안타까워했습니다. “황룡사지는 진흥왕때부터 축조를 하기 시작했어요. 저 옆에 보이는 곳이 신라 왕궁터였는데 왕궁을 옮기기 위해서 원래 습지였던 이곳을 메워서 왕궁을 세우려고 했는데, 커다란 구렁이가 나왔어요. 그래서 여기는 사람이 살 곳이 아니라 부처님이 계실 곳이다, 해서 절을 짓게 된 것입니다. 황룡사지는 남문, 중문, 탑, 금당, 강당의 순서가 아주 원칙적으로 잘 지어진 절의 정형입니다. 그것은 이곳이 습지를 메워 만든 평지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선덕여왕때 만들어진 황룡사9층 목탑은 높이가 67m에 달했습니다. 9개의 층은 신라의 9개의 적을 방어하는 것을 의미하구요.” 설화가 가미된 스님의 설명은, 막연한 황룡사지의 숨겨진 이야기들과 그 규모가 눈 앞에 그려지는 듯했습니다. 황룡사지의 남문터와 금당터에 직접 발을 디뎌보면서, 스님과 수강생들은 화려했던 통일신라와 몽고침략의 아픈 순간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nbsp스님께서는 경주의 유적지들을 돌아보시고 나서 숙소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시고, 잠시 휴식을 취하신 후 730분에는 평화amp여성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과 ‘신라의 삼국통일로 본 통일코리아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오늘 하루 경주역사기행을 정리하는 강연이 있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신라는 당시에 강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고조선을 계승한 부여가 맹주였지요. 우리는 5국 시대라 하면 동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이렇게 다섯 나라를 이야기 하고 다시 삼국시대를 거치고 통일신라 이후에는 민족사적으로 보면 2국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발해, 남쪽은 신라. 이렇게요. 민족사에서 변방이었던 신라가 2국 시대를 이룰만큼 강대해 진 것은 법흥왕 때 개혁개방정책을 취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야와 합병을 할 때 합의통일을 했기에 가야의 인적자원을 신라에 모두 유입하게 되었습니다. 11이 2를 넘어서 3이 되고 5가 되는 시너지효과를 가져왔습니다.nbsp이런 점에서 동독과 서독의 통일은 신라와 가야의 통일과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독일의 통일은 단지 통일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 결과 EU의 중심 국가가 된 것이지요. 통일이 가능해지고, 상승효과도 생기게 하려면, 힘 있는 쪽에서 없는 쪽을 가능한 포용해서 통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깊이 검토해야 합니다. 우리의 평화정책은 분단을 극복하는 징검다리로서의 평화와 우리의 통일정책은 통일을 넘어서 동아시아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 통일을 만든다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비전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신라는 국제정세의 변화를 잘 감지하고 활용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등장했고 당나라는 중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문명수준이 높은 국가였습니다. 신라는 그런 당나라와 협력을 유지했고, 그것이 통일의 주역이 될 수 있었고, 그 이후에도 문명의 발전을 가져온 큰 행운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한국도 주변정세의 변화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식민지배, 분단, 전쟁을 겪은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그런 상황에서도 산업화 민주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한민국은 조선시대의 명나라에 대한 자발적인 사대정책으로 중국의 변방으로 전락되듯이 국제정세 가운데에서 자주성을 띄기보다는 강대국에 휘둘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공간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예민하게 반응해야 합니다.nbspnbsp이제 우리가 처한 현실이 어떤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지금 중국의 급격한 부상에 따라서 세계는 미중의 패권이 경쟁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미국은 일본을 동아시아의 미국대리인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고, 한국이 일본과 함께 군사협력 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국제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가기 전에 빠른 시간 내에 통일이 가능합니다. 만약 영향권에 들어가서 친중 정권이 들어선다면 과거 한국정부가 미국영향권 내에 들어선 것과 같아 통일은 상당기간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지금 우리 목표는 남한체제유지 뿐만 아니라 북을 포함한 전 민족의 이익을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이는 전민족적인 책임의식이지요. 그런데 이런 의식이 없다는 것이 통일에 있어서 가장 큰 취약점입니다. 그런데 남한의 보수는 통일의 주체가 남한이다 하는 의식은 있지만, 전민족적 책임의식이 없어 북을 포용하지 못하고, 진보는 남한이 중심이 되는 전민족인 책임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우리식대로의 일방적인 통일이 아니라 이런 토대위에서 북한을 포용하여야 합니다. 북한의 민심은 지금 현재,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런 흔들리는 민심을 잡기 위해서는 인도적 지원은 필수이고, 남과 북의 경제적 교류가 필요합니다. nbsp앞으로의 북한의 미래는 굉장히 불안정합니다. 합의통일은 북한이 자주성을 유지할 때까지만 유효하고, 북에 친중정권이 들어서면 합의통일을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이 미국보다 우위에 선다면 통일을 한다 해도 국가발전 비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통일이 되어도 강대국의 변방으로 전락합니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역사의식을 가져야하고 통일에 대해 조금 더 주체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라며 리더십 아카데미에서도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들이 무엇이 있을지 서로 대화하고 연구하길 바란다며 오늘 하루를 정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몇가지 질문을 받고 난 후 오늘 하루를 마무리를 하시고 내일 문경에서 있는 정토불교대 특강수련에 참석하기 위해 문경으로 출발하셨습니다.

2014.05.25. 16,473 읽음 댓글 13개

2014.5.23. 은평, 동대문 희망 강연

오늘 아침에는 북한현실모임이 있었습니다. 원래 7시 30분부터가 모임 시작인데, 다들 일찌감치 오셔서 환담을 나누셨습니다. 요즘 세월호 이후 국정변화에 대한 얘기가 많았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군국주의는 날로 강해지는 상황을 언급하며, ‘각 나라마다 자기 미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데 우리는 내우외환이다. 세월호 사고를 분기점으로 우리 사회의 시스템과 가치관이 다 바뀌어야 한다. 성장, 속도, 효율 이런 중심에서 생명, 안전, 복지, 행복 이런 쪽으로 다 바뀌어서 정말 성숙한 사회로 가야한다. 우리의 목표만 뚜렷하다면, 저런 일본도, 저런 중국도, 저런 미국도, 저런 러시아도 잘 활용할 수도 있다. 통일에 초점을 맞춰야지, 미운 북한을 골탕 먹이는데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 그런데 통일은 고사하고 평화도 지키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동아시아가 21세기 세계중심지역으로 나아갈 것인지, 과거 19세기 유럽처럼 민족주의의 충돌로 분열됐던 낡은 문명으로 퇴보할 것인지 중요한 분기점에 서있다. 여기에 우리나라가 동아시아 전체 문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이다. 이것을 리더들이 잘 간파하고 각 정파가 협력을 해야 하는데, 세월호 사고 이후 오히려 분란과 정쟁으로 갈 위험이 훨씬 높아 보인다.’고 걱정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다른 전문가분들도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뿐만 아니라 북한 내부의 문제, 그리고 무인기 사건과 연평도 포사격 등을 분석해주셨습니다. 6월 시진핑 방한과 8월 을지훈련, 교황방한, 가을 푸틴 방한 등 여러 굵직한 사건들이 있어 남북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예의주시해야 한다며 다음 모임에서도 전망해보기로 하고 모임을 마쳤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곧이어 오전 10시부터 강연이 있어 모임이 끝나자마자 전문가분들을 배웅하시고 곧바로 은평으로 향했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싱그러운 초여름의 열기가 가득한 5월 셋째 주 금요일 오전의 은평문화예술회관. 한가로운 바깥 풍경과는 달리 강연장 입구는 입장 시작인 10시 이전부터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이 늘어서고 10시 30분 스님께서 입장하실 때는 701석의 강연장이 이미 차고 청중은 복도를 메웠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편안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스님께서 입장하시자 장내에서는 환호성이 울려퍼졌습니다. 오늘 강연장은 봉사자들의 열띤 홍보 덕분에 1075명의 청중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고, 세월호 참사로 어느 때보다 시대의 멘토를 그리워했을 청중들은 시종 차분하고 집중된 분위기 속에서 스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습니다.nbsp스님께서는 국민적 아픔인 세월호 참사에 대해 따뜻한 위로의 말씀과 함께, 청중과 함께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으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오늘 강연에서는 모두 8명의 질문자가 다양한 인생문제에 대한 성찰과 지혜를 터득할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질문에는 껍데기뿐인 대학졸업장을 안고 방황중인 20대 미취업 대학졸업자의 고뇌, 이혼의 기로에 서서 자녀 문제로 고민 중인 40대 여성의 사연, 나이든 부모를 모시며 갈등을 겪는 40대 여성의 힘겨움, 장애아에 대한 정부의 지지부진한 대책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30대 여성의 호소와 같이 색깔은 다르지만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절실한 삶의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부처님께서 출가하심으로써 아내 야소다라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묻는 60대 여성과,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손해 보는 것 같아 억울한데 그래도 착하게 살아야하는 건지 묻는 젊은 여성, 그리고 스님의 책을 읽고 법문을 대하면서 괴로움이 많이 덜해졌는데 젊은 나이에 너무 머리로만 생각하고 감정을 억누르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회의하는 30대 초반의 여성, 스님의 그 많은 답변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은 무엇인지 묻는 20대 청년 등 다양한 연령층에 의한 다양한 궁금증들이 스님을 만나 명쾌한 답을 찾았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이중 가장 긴 시간 스님과 대화를 주고받은 세 번째 질문자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드리겠습니다. “개인 사업을 하는 남편이 10년째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걸 알게 돼 이혼을 고려 중인데, 이혼에 찬성한다던 두 아들이 남편이 막상 집을 떠난다고 하자 태도를 바꾸어 이혼을 반대하고 있다. 둘째 아들은 지금 고 1인데 어려서부터 병치레가 심하고 심리 불안도 심해 상담을 받는 중인데, 아이들이 반대하자 남편도 6개월째 나간다고 말만하고 나가지 않고 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참고 살려고 했었고 애들이 아빠와 헤어지는 걸 반대하는 걸 보면서 아이들의 상처를 알게 되었지만, 같이 살기 싫다하면서도 나가지 않고 이중생활을 계속하는 남편과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야 할지 아이들이 반대하더라도 깨끗이 헤어져야 될지 고민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결코 만만치 않은 이 질문자의 고민에 대해 스님께서는 “남편에게 이 문제 말고 다른 문제가 있으면 세 가지만 말해보세요”고 주문하셨습니다. 질문자는 “첫째, 희생적인 아내의 역할을 원하는 남편과 경제활동을 하며 독립적인 여성으로서 살고자하는 자신의 가치관이 다르고, 둘째,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아이들을 압박하는 남편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자신의 양육방식의 차이 때문에 많이 다투었으며, 셋째, 5년 전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관계가 있었는데 그 일을 남편이 묵인해주었으나 갈등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특히 심리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둘째 아이에 대해 남편이 아이의 문제를 문제로 인정하지 않으려하고, 공부를 잘하면 다 극복이 되는 거라며 공부하기를 압박해 아이와 관계가 악화되고 남편이 아이 치료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고 답변했다. nbsp스님께서는 “아빠가 본인을 괴롭히는데 왜 아이가 아빠와 같이 살고 싶어하느냐”고 물으시니, 질문자가 “아빠가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해주는데 그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고 답변하자 스님께서는 “아이가 문제가 있음에도 아빠와 살고 싶다는 것은 아빠가 자신에게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보다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을 아이 스스로 인정한 것이므로 아이는 이혼의 결정에 변수가 될 수 없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본인과 남편의 관계인데, 솔직히 남편과 살고 싶어요? 아니면 더 좋은 상대를 찾아가고 싶어요?”라고 다시 물으니 질문자가 남편과 함께 하기보다는 좀 더 나은 관계를 찾고 싶다는 의사를 비치자, 스님께서는 4050대의 일반인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이성을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신 후에, “하지만 미성년인 아이가 있는 부모에게는 자기 자신의 권리보다는 자녀에 대한 책임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특히 엄마는 아이가 세 살 때까지는 100, 아동기에는 70, 사춘기에는 50로 여성으로서의 본인의 권리에 비해 아이에 대한 본인의 책임이 더 큽니다. 그러므로 질문자는 어떤 결정을 하든지 사춘기인 아들과 협의해서 아이의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아이가 끝까지 반대하면 이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정 이혼하고 싶으면 아이가 20살 성인이 될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질문자는 남편이 나가고 싶어하므로 본인이 잡을 수 없고 남편이 계속 이중생활을 지속하므로 보고 있기가 힘들다고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질문자는 지금 남편이 한 말을 빌미삼아 남편을 내쫓으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과의 부부관계는 이미 끝났고 남편은 아이의 보호자로서만 존재하면 되는데 그런 남편이 밉다는 것은 본인이 남편에 대해 미련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에게도 질문자가 과거에 다른 남자를 만났을 때 그랬을 것처럼 어떤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질문자는 남편을 깔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남편은 상대방 여자에게서 질문자가 주지 못하는 편안함과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느끼게 해주는 대우를 받고 있을 것입니다. 질문자의 아이들 역시 엄마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진한 사랑을 아빠에게서 받고 있는 것입니다. nbsp질문자는 자식보다 자신이 더 중요한 사람이예요. 이 경우 부부문제는 부차적인 것이고 아이를 보호해야 합니다. 아이가 아버지를 필요로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나가지 않고 있어준다면 아이를 위해 고마워해야 할 일 아닌가요? 부부의 인연은 끝났지만 아이 아빠의 역할에 대해 남편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잘해주세요. 그것이 본인에게도 행복한 길입니다. 이 부부는 아이를 핑계로 상대가 숙이고 들어오기를 바라며 서로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며 매일 108배 절을 하면서 ‘당신은 남입니다’ ‘ 고맙습니다’라고 기도하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확실한 해결의 길을 제시하시는 스님의 날카로운 지혜는 오늘도 유감없이 그 빛을 발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어 5명의 다른 질문자의 질문에 역시 명쾌, 유쾌, 통쾌한 답변을 해주신 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권력이 국민을 무시한다며 6월 4일 지방선거에 반드시 투표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을, 차선도 없으면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상황에서 최선의 길인데, 우리는 최선만을 쫓다가 최악을 선택하는 우를 범한다며 시대의 멘토로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경계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2시간 반에 가까운 강연을 끝으로 스님께서는 책 사인회장을 거쳐 봉사자들과 사진을 찍으신 후 치과치료를 받으신 후에 평화재단으로 돌아오셔서 4시에 손님을 만나신 후 오후 강연이 예정된 동대문 구민회관 강연을 위해 또다시 총총히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강연이 열리는 동대문구민회관의 650석 규모의 좌석이 빠르게 채워지고 복도등을 메우면서 약 940여명이 참석하셨습니다. 강연이 시작되는 7시가 되어 스님께서 나타나시니 많은 사람들이 박수로 스님을 환영하였습니다.nbspnbspnbspnbspnbsp강연시작전에 세월호 참사로 인해 희생되신 분들을 위해 묵념을 하고 위로의 말씀도 해주시고는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총 8분이 질문을 하였습니다.nbsp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만나기 힘듭니다, 왜 자꾸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요?, 남자친구와의 결혼이 어렵습니다, 가족과 소통하기를 거부하는 형을 어떻게 하나요?, 앞날이 풀리지 않고 인간관계가 어렵습니다, 남편의 외도와 그로인한 이혼이 고민됩니다, 직장을 계속 그만두고 하는 일마다 자신감이 없습니다. 27세의 딸과 자주 큰소리로 싸우게 된다는 질문들이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이 질문 중에서 앞날이 풀리지 않고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스님께 물어본 한 청년의 이야기를 자세히 적어보겠습니다.nbspnbspnbspnbspnbsp“34세 청년입니다. 앞날이 풀리지 않고 인간관계가 어려워 질문드립니다. 문제의 시작은 17살 고등학교 2학년때 였습니다. 방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구두 한 짝이 없어진 문제로 부모님이 크게 싸우셨습니다. 그 소리에 짜증이 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무 생각없이 겨우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갔습니다. 군대에서 나는 왜 사는지 조차 모르고 방황하며 군생활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제대 후에 나홀로 지내며 힘들게 대학을 졸업했고 이후에 갑상선암 수술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방문 교사를 하며 돈을 벌어 병을 치료하고, 그 돈으로 가정 문제 전문가에서 상담도 많이 받고 정신과에 가서 약도 먹었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 아버지께서 자취방에 오셔서 용돈하라며 50만원을 주셨습니다. 저는 그 돈을 받지 않고 내던져 버렸고, 며칠 후 부모님께서 다시 찾아오셨지만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로 모든 사람과 연락을 끊었습니다. 이후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책도 읽으면서 법륜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를 공부해서 취직을 했는데, 조직생활의 어려움을 느껴서 8개월만에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공단의 일용직으로 일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제 마음은 17살 그때 그 시절에 머물러 있습니다. 눈물이 납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nbsp질문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그 청년에게 위로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스님께서는 추가로 물으셨습니다“어렸을때 엄마의 삶이 어땠어요? 엄마가 자기를 안고 신세타령을 많이 했어요?”청년은 엄마가 사는 것을 매우 힘들어했고, 자기한테도 신세타령을 했다고 답하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nbspnbsp 과거의 상처가 무의식에 도사리고 있어요. 과거의 상처가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 누르고 있다가 17세때 부모님이 싸우던 날에 그동안 참았던 것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nbspnbsp더 근원적으로 가면 태중에 있을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봐도 부모의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전이된 것입니다.부모가 태중이나 아이가 어릴 때 스트레스가 많으면 아이의 심성 자체가 스트레스로 형성됩니다. 부모의 스트레스 유전자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아이는 이런 체질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스스로 극복이 잘 안되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키울때는 유의해야 합니다.nbspnbsp 그래서 엄마수업 책을 결혼도 안하고 애도 없는 그것도 남자인 내가 쓴 이유가 이것이 부모와 아이에게 후유증이 크기 때문에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입니다.nbspnbsp그러므로 자기도 오래전 어릴 때부터 그런 상처를 깊게 가진 것이지, 17세에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인자를 갖고 있다가 그 일을 계기로 발병한 것입니다. 질문자는 바깥의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자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이걸 알면, ‘사회생활을 할 때 문제가 발생하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문제구나’ 하고 알아버리면 문제를 해결하기가 쉬워집니다. nbsp질문자는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첫째는 살아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장애가 없어도 죽는 사람 많습니다.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어도 ‘살아있어서 감사합니다’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대로도 행복합니다’고 생각하고 고치려고 너무 애쓰지 마세요. 이 상태의 나를 수용하세요. 살아있는 것을 행복으로 삼으세요.두번째는 질문자도 결혼하면 꼭 아버지처럼 됩니다. 과잉행동을 하고 그 일로 아내는 힘들어하고 그러면 질문자의 아이도 질문자처럼 그렇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미워할 대상이 아니예요. 아버지도 질문자처럼 힘든 상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낳고 키워줬잖아요. 여기 있는 사람들 누구도 자기한테 50만원 주는 사람 없잖아요.nbspnbsp그러나 부모님은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도움도 주잖아요. 그러니까 부모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물론 의식속에서 부정적인 저항이 굉장히 강할 것예요. 엄마가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내가 엄마와 심리적 동질감이 생겨서 엄마를 괴롭히는 사람은 나에게도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nbspnbsp‘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저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억울해서 눈물이 날거에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이해하는 마음이 들거예요. 아버지의 힘듦, 어머니의 힘듦을 알고 감사의 눈물이 나면 자기속의 무의식이 치유받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직장에 가도 ‘나 같은 사람 일하게 해주니 고맙구나’ 하고 생각하게됩니다. 자기가 무엇인가에 의지해서는 치료가 안됩니다. 상담은 응급치료는 되는데 근본치료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상담사에 의지하려고 하거든요. 결국은 자기 스스로 일어서야 합니다. 누구나 다 가능합니다. 다만 어렵습니다. 특히 질문자는 너무 어릴때부터 이렇게 자랐기 때문에 자기가 굉장한 결심을 가지고 변화시키려고 해야 가능하지. 이젠 누구도 책임져 줄 사람은 없습니다.nbspnbsp지금 직장생활속에서 치유한다고 생각하고 직장생활을 하세요. 세상과 더불어 사는 연습이라 생각하세요. 그 속에서 이겨내야 정상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수행삼아 하라는 것입니다.”nbspnbsp 스님의 답변이 끝나고 다시한번 많은 사람들이 위로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모든 질문자의 즉문즉설을 마치고 나니 7시에 시작한 스님의 강연이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질문자들의 물음에 공감하면서 같이 슬퍼해주고 스님의 말씀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강연이 마무리되고 있었습니다. nbsp강연을 마치고 사인회를 하시고 이번 강연을 준비한 자원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는 경주로 이동하셨습니다.nbsp 내일은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수강생들과 함께 경주역사기행이 있습니다.

2014.05.25. 18,016 읽음 댓글 5개

2014.5.22. 용성조사 탄생150주년 기자간담회,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

nbsp 오늘 새벽에 1시가 넘어 서울에 도착하신 스님께서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전 7시 30분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에 참석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늘 모임에서는 지난 17일에 계획했던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국민추도회’를 연기하게 된 그간의 상황을 다함께 다시 공유하고, 대통령 담화 이후 사회 전반적인 흐름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종교인으로서의 근본적 성찰을 하게 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서로 나누며, 우리 사회의 정신을 바꿔나가는 역할을 다양한 종교인들이 모인 이 모임에서 하는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나누기도 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올해는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께서 탄생하신 1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 이사장이시고 죽림정사 주지이신 법륜스님은 백용성조사의 정법안장과 독립운동정신을 선양하고자 기념심포지엄과 탄생기념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nbspnbspnbspnbsp오늘 12시, 스님께서는 인사동에서 일간지 기자들 10여명과 만남이 있었습니다. 법륜스님은 용성스님은 승려라는 직분에 충실하면서도 사회의식과 시대의 염원에 깨어있으셨고, 한국불교의 청정수행 기풍을 세운 분이시며 독립운동의 숨은 주역이시다라고 하시면서 용성스님의 업적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번 행사를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기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재단으로 돌아오셔서 앞으로 진행되어야 할 일정에 대해서 실무진들과 논의하면서 일정을 확정지었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오늘 스님께서는 일찍 정토회관으로 돌아오셔서 회관에서 업무를 보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내일은 은평, 동대문 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2014.05.23. 13,908 읽음 댓글 3개

2014.5.21. 수행관 제3,4강 - 대구법당

오늘은 대구법당에서 수행관 제3, 4강이 있는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새벽 5시에 서울에서 대구법당으로 향했습니다.법회시작 전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10시가 되어nbspnbsp3층 법당을 가득 채운 240여명의 도반들이 스님의 법회를 듣기 위해 자리를 하였습니다. 즉문즉설 위주의 희망 강연과는 달리 정토회 회원들의 세계관, 인생관, 수행관 확립을 위한 특강이라 지혜의 증득을 염원하는 분들의 뜨거운 관심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nbsp 먼저 앞서 강의한 욕망과 계율에 대한 강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주시며 오늘의 주제인 참회와의 연관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욕계 중생인 인간에게 욕구는 삶의 동력인 동시에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므로 욕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한 데 삶의 동력은 살리고 괴로움을 없애도록 해야 합니다. 욕구 중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욕구는 인간의 권리이므로 반드시 충족이 되어야 하고, 상대적인 욕구는 경쟁을 유발하므로 절제가 필요하고, 중독되어 일어나는 탐욕은 손해되는 지나친 욕구이므로 버려야 하며 스스로 버리지 못하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욕구를 적절하게 조절하고 자제하는 것이 계율입니다. 계율에 따라 선을 행하고 악은 행하지 말아야 하며 스스로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 이게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복이 되는 것은 간직하고 해가 되는 것을 버리는 그 울타리가 계율입니다. 계율은 절제하기 때문에 때로는 속박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나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시켜서 괴로움의 과보를 받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입니다. 계율을 지키면 좋은 데, 계율을 어겼을 때 어떻게 하는가하는 이것이 오늘 3강의 주제인 참회입니다.nbspnbspnbspnbspnbsp과거의 잘못된 습관 때문에 계율을 어기면 먼저 과보를 받아야 하는데 과보를 받지 않으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참회를 하려면 먼저 잘못에 대해 자각을 하고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해야하며 다시는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참회를 하려면 가장 먼저 되어야 하는 것이 잘못에 대한 자각인데, 겉으로는 참회한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렇게 잘못한 것은 아니라는 마음이 있으면 진정성 있는 참회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참회를 하려면 참회의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먼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 수상이 말로는 참회했다고 하나, 속으로는 ‘식민지배를 통해 한국이 이익이 된 것도 많지 않았냐?’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에 ‘통석의 염’이니 뭐니 하며 어렵게 억지 사과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다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비슷한 게 있는 데 5.16은 헌정 질서를 중단시킨 군사쿠데타인데 보수세력들은 ‘그래도 박정희 정권 때문에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지 않았느냐’는nbspnbsp생각이 남아 있어 사과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억울하다고 생각하니 참회가 잘 안되는 것입니다. 참회는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5.16은 헌정 질서를 중단한 것이므로 잘못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하고 그래도 경제 개발은 잘 했다고 평가를 해야 진실을 규명한 위에 화해를 하는 화합과 합일점을 찾아 나갈 수 있습니다.”nbsp“세월호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상규명입니다. 왜 이런 사고가 생겼는지, 왜 대응이 늦었는지가 정확히 밝혀져야 재발방지가 가능합니다. 해경을 해체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닙니다. 껍데기만 바뀌지 그 역할은 다른 부서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실의 규명위에 국민의 동의를 구하고 국회의 입법과정을 거쳐서 정부기능을 바뀌는 것이어야 합니다. 국민의 감정에 영합해서 법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포퓰리즘입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으니 사소한 것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집중된 과도한 권력을 분산시켜야 중간에서 책임을 지는 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라고 말씀을 하시며 대통령 중심의 중앙집권적 방식에서 지방으로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지방분권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참회의 기준이 되는 죄 또는 잘못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과 간접적인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를 예를 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생생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우리가 힘이 약하니까 일본이 침략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끼리 반성할 문제이지 그것을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은 침략 그 자체에 대해서 진심으로 참회를 해야 우리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일본이 식민지배 과정에서 우리에게 얼마의 이익을 주었다고 해서 침략을 미화하며 변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nbspnbspnbspnbspnbsp참회에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냥 잘못했다고 말한다고 참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준인 계율에 따라 참회를 해야 합니다. 다른 생명을 죽이거나 괴롭혀서는 안되는데, 여러분들은 애 말 안 듣는다고 때려놓고 ‘니 잘되라고 때렸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니 잘되라’고 때리는 경우는 10명에 1명도 안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일본이 한국에게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때리면서 가르쳤으니 니가 이만큼 자랐지’라는 것은 불자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때린 것은 잘못 된 것이고, 그것이 우연찮게 효과가 난 것입니다.nbspnbsp니 잘되라고 때렸다는 핑계를 대며 지 성질을 부린 것이므로, 가해자는 합리화 하지말고 진솔하게 반성하고 과보를 받아야 합니다. ‘니 잘 되라고 때렸지’는 가해자가 할 말이 아니고 맞은 사람이 자기 치유과정에서 할 수 있는 말입니다.nbspnbspnbspnbspnbsp 정말 아이를 위한다면 자기 종아리를 걷고 아이한테 때리라고 해야 ‘너 잘되라고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본처럼 가해자는 항상 이런 입장으로 자기를 합리화를 하게 됩니다. 피해자는 피해이상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고, 가해자는 자기를 합리화를 하므로 진실을 객관적으로 밝히고 피해자는 치유를 하고 가해자는 진실하게 반성하고 과보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이렇게 참회의 기준이 되는 직접적인 원인과 그에 따르는 간접적인 요인들을 대중들이 알기 쉽게 일본의 침략과 5.16쿠데타, 성추행 문제등을 예로 들면서 피해자가 치유의 과정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간접적인 원인을 직접적인 원인인 양 합리화 하면서 진실되게 참회하지 않으므로 해서 생기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많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참회의 가장 기본인 잘못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에 대한 자각에 많은 시간을 보내시면서 가해자가 간접적인 요인을 마치 직접적인 원인인 양 합리화하면서 생기는 진정성의 결함에 대해 많이 강조를 하셨습니다.이어서 참회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습니다.“참회란 먼저, ‘내가 잘못했구나.’ 라고 알아차려 잘못을 인정을 하고, 과보를 기꺼이 받겠다는 수용하는 자세, 그리고 다시는 이런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하는 다짐을 하는 이런 과정이 참회입니다. 이미 잘못을 저질렀을 때 반성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중생은 잘못을 또 저지르게 되므로 업이 끝이 없이 이어지므로 참회도 끝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표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이나 우리 현실은 오류를 범할 수 밖에 없으므로 조금씩 오류를 시정해가는 데 있습니다.”nbsp더불어 참회의 기준이 되는 기본 계율 5계와 간접적인 계율인 3계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계율은 첫째, 남을 때리거나 해롭게 하지 말고 둘째, 남에게 손해를 입히지 말고 셋째, 남에게 괴로움을 주지말고 넷째, 남을 괴롭히는 말을 하지 말고, 다섯째, 술을 먹고 취해서 남을 괴롭히지 마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기본 계율인데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직접적으로 남에게 해를 주는 것입니다. 간접적인 계율로는 첫째, 몸에 장식을 하지말라. 둘째, 춤추고 노래하며 즐기지 마라. 셋째, 높은 자리에 앉지 마라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참이란 지나간 허물을 뉘우치는 것이고 회란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잘못했다는 말만 있고 다시 안 하겠다는 다짐이 없으면 참회가 아닙니다.참회를 해도 잘못을 다시 저지르게 되는 데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것은 아니더라도 오랜 업식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짜증을 내게 되면 방에 들어가 108배 절을 하며 참회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과보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되돌아오는 게 약해집니다. 계율을 지키면 옛날에 지은 인연의 과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나 새로운 나쁜 인연을 짓지 않으므로 미래의 과보를 받지 않으므로 확대생산이 아니라 축소 생산을 해서 언젠가 종결이 되는 것입니다. 참회란 계율을 지키는 가장 낮은 단계의 수행법입니다.”nbspnbspnbspnbspnbsp더불어 참회 정진을 하면서 꼭 필요한 절에 대한 의미를 말씀하시며 아침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참회를 할 때 절을 해야 하는 데 반드시 절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참회의 핵심은 마음에서 알아차리고 다시는 안하겠다고 맹세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몸이 건강하다면 그것에 대해 표현을 하고 책임을 져 줘야 합니다. 과보를 받아주는 것이 절입니다. 내가 옳다 잘났다 할수록 몸이 점점 세우게 되고 고개도 들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잘못 알았음을 자각하면 고개가 숙여지고 몸이 낮춰지고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게 됩니다. 절은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이고 자기가 옳다는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절은 참회의 의미도 있고, 극기훈련의 의미도 있습니다. 절 횟수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지만 마음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의 삶을 돌아보고 업식 때문에 저지른 잘못을 아침마다 절을 하며 참회하는 것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참회의 의미를 정리하시면서 오늘 저녁에 강의하실 관법수행에 대해서도 연관지어 설명을 하셨습니다.“오늘 저녁 강의는nbspnbsp‘계율을 어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한 것으로 계율을 어기지 않도록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관법입니다.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에 알아차리면 욕망으로 이어지지 않아 계율을 지킬 것도 없습니다. 공부는 마음을 알아차리면 좋고 놓치면 계율을 지켜야 하고, 계율을 어겼으면 잘못한 줄을 알고 참회를 하는 것입니다. 계율을 어기지 않도록 참으면 스트레스가 되므로 참지 말고 마음이 일어날 때 알아차리는 것이 관법 수행입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참회 정진을 통해 이치를 깨달아 가는 지혜를 증득하기를 당부하시며 특강을 마무리 하셨습니다.특강이 끝난 후 용성조사님 탄생 150주년 기념식과 기념음악회 참석을 당부하셨고 6월 4일에 치르지는 지방선거에 대해서 ‘권력은 투표를 하지 않는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찍을 사람이 없다.’며 기권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하라. 이마저도 아니라면 최악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라.’ ‘최악과 차악 중에서 선택할 수 밖에 없다면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다.’고 말씀하시면서 오전법회를 마치셨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스님께서는 점심공양을 드신 후 용성조사 탄생 150주년 행사와 관련한 원고 점검등의 업무를 보시고 저녁 강의에 들어가셨습니다.nbsp지난 주에 이어 오늘도 간절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 눈을 감고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극락왕생을 빌어보았습니다. nbspnbspnbspnbspnbsp“참회정진에 앞서는 것이 관법입니다. 인간의 감각에는 여섯 가지 감각이 있습니다. 촉각, 미각, 후각, 청각, 시각, 지각이 그것입니다. 인간의 감각 중 가장 발달한 것이 시각인데 정보의 90 이상을 시각에 의존합니다. 그래서 바르게 보는 것이 바로 바르게 아는 것과 같습니다. 볼 견 이나 볼 관자는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를 의미합니다. 법은 이치, 존재를 뜻합니다. 그래서 관법이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nbspnbspnbspnbspnbsp윤리적 계율을 어겨 죄가 되는 것은 실제 그 행동이 바깥으로 드러났을 때입니다. 하지만 선정을 닦는데는 계율을 어길 마음만 먹어도 장애가 됩니다. 명상할 때 제일 처음 하는 것이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호흡을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화두를 가지고 고요한 가운데 집중하는 것을 ‘소소영영’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면 쉽지가 않아요. 고요해지지가 않습니다. 어쩌다 고요해지면 잠이 오거나 멍청해집니다. nbspnbspnbspnbspnbspnbspnbsp깨어있으면 멀리 있는 작은 소리도 들리고 멀리서 피우는 담배 냄새도 맡습니다. 고요할수록 알아차림이 깊어지고, 알아차리면 마음이 더욱 고요해지고. 이런 선순환이 되면 좋은데 마음이 고요해지면 쉽게 잠이 와서 알아차림을 놓치게 되고, 그러면 마음의 고요가 깨지게 되는 악순환이 됩니다. 선순환이 되도록 항상 연습을 해야 합니다. 첫째는 호흡을 가지고 연습을 합니다. 명상할 때 시간이 흘러 숨이 고요해지면 알아차림을 놓치게 되어 대부분 졸게 됩니다. 알아차리면 더 고요해지고, 더 고요해지면 더 집중해야하고, 더 집중하다보면 더 고요해지고, 또 더 집중하고. 이렇게 됩니다. nbspnbspnbspnbspnbsp욕심을 내면 몸에서 열이 나고 호흡이 가빠집니다. 열이 나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들어 바로 호흡이 거칠어집니다. 아주 고요한 상태에서는 금방 감지가 됩니다. 따라서 첫 번째로 욕구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알아차림이 계속 유지되는 것을 지켜본다 라고 합니다.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 담배를 피우는 것은 욕구에 끌려가는 것, 피우지 않으려 하는 것은 욕구를 억압하는 것입니다. 욕구는 충족시키면 놓아집니다. 그런데 욕구를 참으면 견디지 못할 정도로 커집니다. 그래서 나중에 참다 참다 터져버립니다. 하지만 이를 가만히 지켜보면 욕구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제풀에 꺾입니다. 배고픔도 마찬가지입니다. 먹어도 욕구가 사라지지만 지켜봐도 욕구는 사라집니다. nbspnbspnbspnbspnbsp 참는다는 것은 곧 긴장한다는 것입니다. 참지 말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를 꽉 깨물어 참아서 욕구에 끌려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도수행이고 관법입니다.nbspnbspnbspnbspnbsp 욕심에 눈이 어둡다는 것은 알아차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나서 알게 되면 참회를 해야 합니다. 바로 지금 알아차리면 행동하기 전에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참아서 계율을 지키면 계율을 지키는 그 자체가 고통이고 작심삼일이 되기 쉽습니다.nbspnbspnbspnbspnbsp 관법은 선정의 하나입니다. 앉아서 명상을 하는 것도 선정이나, 평소 생활하면서 그때그때 알아차리는 것도 선정을 닦는 것입니다. 즉 지금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나누기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생각을 내놓아요. 생각이 복잡하니 말이 길어집니다. 지금 여기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내어놓는 것이 마음나누기입니다.nbspnbsp마음나누기에 대한 스님의 가르침을 듣고 다들 고개를 끄덕입니다.nbspnbsp 우리는 평소 호흡을 못 알아차릴 정도로 정신없이 삽니다. 그러니 호흡할 때는 조용히 앉아서 호흡을 알아차리고 경계에 부딪힐 때는 마음의 작용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욕구는 업식으로부터 오게 되는데 업식과 욕구 사이에 느낌이라는 하나의 단계를 더 거치게 됩니다. 부싯돌로 불을 킬 때 불은 반짝 하고 끝나는데, 그 불이 옮겨 붙으면 지속적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우리의 느낌은 부싯돌의 불과 같이 반짝하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옮겨 붙으면 지속되는 ‘갈애’가 됩니다. 우리가 누구를 미워할 때도 순간 기분이 나쁘면서 계속 싫어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찰나의 반짝하는 느낌을 알아차리려면 굉장히 고요한 마음의 상태가 되어야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마음 알아차리는 것도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의지로 ‘이러면 된다, 안 된다’하며 감정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억누르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경상도사람들은 애정표현을 잘 못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남자가 대범해야지, 여자가 감정을 드러내면 안된다’라는 소리를 듣고 자라왔어요. 이에 비해 서양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편안하게 잘 표현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리는 수행을 같이 해보면 서양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훨씬 더 잘합니다. nbspnbspnbspnbspnbsp 찰나의 느낌을 알아차리면 느낌이 감정으로 가기 전에 멈춥니다. 그러면 욕망까지 가지 않습니다. 느낌이 좋다, 싫다로 가기 전에 멈춰지면 갈애로 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람이 욕망이 없을 수 있나’ 라고 생각하지만, 느낌을 알아차리면 욕망까지 가지 않습니다. 업식이 없으면 수가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업식이 소멸 되었을 때의 얘기이고, 업식이 있더라도 잘 알아차리면 갈애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관법수행입니다. nbspnbsp 호흡 알아차리기는 호흡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자기가 자기 상태를 모르는 것을 농사에 비유하면 자기 밭에 잡초가 무성해서 길가는 사람들이 다 지적을 하는데 본인만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부중생, 즉 온 동네 사람도 다 아는 자기 자신을 모르는 것이지요. 수행을 조금만 해도 자기 자신을 알게 됩니다. 남이 나를 아는 만큼 나도 나를 알게 됩니다. 그 다음 단계는 욕망이 일어났을 때 딱 알아차려서 행동을 안 하는 것입니다. 억눌러서가 아니라 알아차려서 안하는 것입니다. 남은 모르는데 자신만 아는 것이지요. 남은 지나가면서 내 밭의 잔풀을 못 보지만 나는 알아요.nbspnbspnbspnbspnbsp 종교인들이 일반인보다 평균적으로 욕심은 적습니다. 욕심이 적으면 맑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의 얼굴이 대체로 맑은 편입니다. 욕심이 가득하면 눈빛이 탁하고 얼굴이 어둡습니다. 아이들의 눈이 맑은 이유가 욕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종교인들은 일반인보다 평균적으로 사명감이 더 크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종교인들은 쉽게 죄책감을 느낍니다. 몸에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인 듯 합니다. 부부싸움은 하루 가고 나라싸움은 30년 가는데 종교싸움은 1000년을 가요. 이는 옳고 그름이 너무 강해서 그렇습니다.nbspnbspnbspnbspnbsp따라서 첫째 욕심이 없고 마음이 맑아야 하고, 사명감은 너무 무겁지 않게 가벼워야 합니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참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림을 통해 참을 것이 없는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우리는 알아차림보다 참기가 더 쉬워요. 그러니 먼저 고요히 앉아서 미세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처음에 번뇌가 많아도 그것도 공부의 과정입니다.”nbspnbspnbspnbspnbsp 스님께서는 마지막에 긴 강의의 내용을 간결하게 요약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을 연습하다보면 우리의 행복과 자유가 성큼성큼 다가올 것 같습니다. nbsp 강의가 끝난 후 스님께서는 특별히 용성조사님 탄생 150주년 기념식에 많은 참석을 당부하셨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이 자리에서 이런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은혜로움을 찾아 올라가다보면 스님의 스승님의 스승님의 스승님이신 용성조사님이 계시겠지요. 용성조사님께서 그토록 이루려 애쓰셨던 뜻을 이어받아 정말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남을 지켜봅니다.nbspnbsp스님께서는 또 참석해야 할 중요한 행사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6.4 지방선거입니다. 주민등록증만 있으면 5월 30일과 31일 전국 어디에서나 투표를 할 수 있는 사전투표제도가 있으니 잘 활용하라고 하십니다. 최선이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차악이라도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투표율이 90까지 높아야 국민이 무서운 줄 안다는 말씀을 하실 때는 스님의 답답해 하시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말씀을 다 마치시고 스님께서는 용성조사 탄생 150주년 기념 홍보 동영상을 함께 보셨습니다. 뿌리가 깊은 가르침을 잘 새겨들어 열심히 수행정진 해야겠습니다.nbspnbspnbspnbspnbsp저녁법회까지 모두 마친 스님께서는 내일 오전 7시 30분에 종교인 모임이 있어서 바로 서울로 이동하셨습니다.

2014.05.22. 23,183 읽음 댓글 7개